Magazine N Januar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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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w w.t heasian . asia

JANUARY

2 016

Inspiring Leaders l Empowering People l Leading Asia’s Change

Future of Robotics:

A society of humans and robots A society of humans and robots

인류와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

인류와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 값 12,000원

N o . 3 1 JANUARY 2016

01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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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

064 Features Robot Party: Expanding Robotics attraction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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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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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소개

파키스탄 기자 눈에 비친 인류와 로봇의 미래 ‘로봇파티’_Rahul Aijaz

기상천외하고 혁신적인 로봇들이 이렇게 빨리 등장할 줄은 몰랐다!

Letter from N

인간과 로봇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컨셉으로 기획된 ‘로봇파티’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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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Journalism을 제안하고 지향합니다_이상기 발행인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거나 함께 장난치고, 술 동무가 돼주는 기상천외한 로봇 총 50여점이 선보인다. ‘감성 로봇’과 함께할 인류의 모습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Partnership 10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The AsiaN 12 M A G A Z I N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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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아시아엔 창간 4돌’ 아시아의 금강송으로 참언론 사명 다할 터

2 016

Inspiring Leaders l Empowering People l Leading Asia’s Change

Photo Break

Future of Robo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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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ociety of humans and robots A society of humans and robots

인류와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

인류와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

아트센터 나비가 주최한 ‘로봇파티’에서 라훌 아이 자즈 기자가 촬영한 ‘비트봇 밴드’다. 이 로봇들은 직 접 디제잉을 하고 드럼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보고 듣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값 12,000원

N o . 3 1 JANUARY 2016

01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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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

On the Cover

The cover photograph by photojournalist Rahul Aijaz shows a music performance by a robot band, Beat Bots Band during the Robot Party event at Art Center Nabi on December 16, 2015. December issue.

Asia Round-up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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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애? 놔둬?”…인도네시아 쓰레기매립장 ‘딜레마’_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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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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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Envoys

Insights

22 UAE 44주년 국경일 기념식 ‘이모저모’_최정아 24 주한라오스대사 “아세안의장국 라오스 주목해달라”_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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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월드컵 건설현장서 1천2백명 사망 ‘이주노동자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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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Ashraf Aboul-Yazid 스리랑카 ‘평화의 사도’ 소비타 스님을 기리며 _Kalinga Seneviratne

Age of Asia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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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시대, 대학의 길을 묻다 ②]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인성 갖춘 글로벌 인재양성 목표”_최정아

Special Report

Features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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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기자 눈에 비친 인류와 로봇의 미래 ‘로봇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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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Rahul Aijaz ‘제1회 거제국제사진전’, 외국인 사진작가 한자리 “원더풀!” _Rahul Aijaz

70 years after the WWll: Asia’s progress and future 전후 70년 아시아, 어떻게 발전했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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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산물 ‘커피’, 아시아 키우는 ‘자양분’ 되다_박영순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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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 아랍민족주의’, IS 등 중동문제 유발_Alpago Sin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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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기후난민 2억5천만 누가 책임지나_Pramod Mathur

72 한강의 기적 뒤에 숨은 이야기들_김영수 74 [작은거인 알리바바 마윈 ⑧] 만사 제치고 COP21 참석한 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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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인니’ 부정부패 근절 위한 언론역할 5가지_Eddy Suprapto

People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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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계인이면 지구 떠난다”_안동일

Business 한비야 구호전문가

“박사과정·세계시민학교 병행, 고달픈만큼 보람도 커”_이상기 47 ENG ‘지식도시락 배달사업’ CEO 유종필 관악구청장_이상기 50 ENG 김기석 ‘국경없는 교육가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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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화려한 히잡 봤나요? 무슬림 패션, 색다른 변신_김아람

시티플러스 안혜진 대표

“서비스 발전법 입법 땐 청년일자리 10만개 창출”_김아람

“아프리카 최빈국 부르키나 파소, 평생교육만큼은 ‘으뜸’”_최정아

Special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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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오프라 윈프리 찾는 면세점 꼭 만들 것”_이상기 79 ENG 김영배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 이사장

Views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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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총장의 ‘파리 기후협정’에 아낌없는 갈채를_김국헌

84 당신의 성공에 필요한 3가지 렌즈_김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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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 대표이사·발행인 이상기 편집인 Ashraf Aboul-Yazid 편집위원장 이오봉 부편집장 이주형 대기자 민병돈 전문기자 박상설 김재화 안동일 이신석 조슈아 최 취재·편집 최정아 김아람 Rahul Aijaz Radwa Ashraf 편집고문 김승웅 박준순 엄기영 유재천 육정수 임철 편집위원 기영노 박현찬 하지원 Sinan Ozturk 현지특파원 Alpago Sinasi(터키) Bishnu Gautam(네팔) Ivan Lim Chin(싱가포르) Kuban Abdymen(키르기스스탄) Nasir Aijaz(파키스탄) Pramod Mathur(인도) Shafiqul Basher(방글라데시) Uyanga Amarmend(몽골)

94 Perspectives

사업이사 차재준 애드마케팅에디터 정현 광고부장 김홍석 마케팅팀장 박호경 광고기획 유경수 디자인 이주형

86 [허영섭의 대만이야기 ⑯] 대만 국민이 ‘국적 찾기 투쟁’에 동원하고 있는 것은? 88 [박명윤의 웰빙 100세 ⑲] 아델 등 해외스타도 한때 불안장애로 고통 90 [천비키의 명상 24시 ⑬] 묵은 해를 청정하게 보내는 정화법

제작·인쇄 ㈜타라티피에스 홈페이지 www.theasian.asia 기사제보 02-712-4111, news@theasian.asia 창간 2013.06.25. 등록 2013.05.02. 등록번호 종로 라00407 발행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5 화수회관 207호(우 110-521)

Culture 92 박상설 선생의 ‘잘 사는 법에 대하여’ 돌아보기 [하]_홍종효 94 싱가포르서 얻은 횡재, 거장의 아주 특별한 ‘인생수업’_전찬일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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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황폐했던 한국·일본 감동시킨 역도산_Rahul Aij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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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팬이 바라본 2015 마마

<매거진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화려한 무대는 좋아요, 공정성은 글쎄요”_Radwa Ashraf

글로벌 제휴사

Culinary Asia 102 각양각색 아시아푸드 한곳에 ‘월드식품박람회’_최정아·Radwa Ashraf

Memorial 104 소통·원칙·확신·개혁의 리더십, 신건 전 국정원장을 추모하며_이상기 106 녹번동 건강지킴이 윤홍중 약사_이상기

정기구독 및 광고문의

(O) 02-712-4111 (F) 02-718-1114

정기구독(일시납 입금·신용카드 결제)

Travel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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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이집트 기자가 만난 ‘겨울연가’ 무대 남이섬,

한류마니아라면 꼭 한번!_Radwa Ashraf

Commentary 112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_최재천

구독료

1년

2년

3년

144,000원

288,000원

432,000원

※ 10년 정기구독(1,440,000원) 시 평생독자로 모십니다 정기구독 입금계좌 하나은행 274-910006-67504 / 국민은행 031601-04-171721 농협 355-0022-8500-13 예금주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신용카드 결제 http://kor.theasian.asia/에 접속하여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정기구독(CMS 자동이체 약정) 매월 12,000원 출금. 위 연락처로 전화 혹은 http:// kor.theasian.asia/에 접속 후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Letter from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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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Hu-Journalism을 제안하고 지향합니다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내내 <매거진 N> 독자님과 가정, 그리고 행복과 건강, 발전이 늘 함께 하기 를 기원합니다. 새해엔 물심(物心) 양면에서 풍요를 누리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물질과 정신의 이원성(二元性) 세계에서 물질이 발행인 이상기

Lee Sang-ki

Publisher of Magazine N

나 정신 가운데 어느 하나가 부족하면 그것의 영향을 받아 행복을 느끼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독자님의 새해는 물질 의 풍요를 통해 정신의 안정과 만족이 배가(倍加)되는 나 날이 되리라 믿고 빕니다. 존경하는 독자님! 지난 을미년(乙未年) 한 해 <매거진 N>과 온라인 <아시 아엔>을 사랑해주신 데 대해 무한 감사드립니다. 창간 30 개월 만에 평생독자 200여분을 포함해 전후방 군인독자 를 비롯해 정기구독을 하시는 분들이 3천여 분 가까이 된 것은 부족한 저희들에 대한 아낌없는 질책과 격려 덕분입 니다. 병신년 새해에도 ‘기사 한 꼭지, 문장 한 줄, 디자인 한 폭’에 혼신의 노력을 더해 <매거진 N>을 제작할 것을 다 짐합니다. 존경하는 <매거진 N> 독자님! 저는 ‘휴 저널리즘’을 제안합니다. 영어로는 ‘Hu-Jouralism’으로 ‘Human Journalism’의 약어(略語) 입니다. 사람냄새 흠씬 묻어나는 기사로 이 세상을 훈훈하게 하는 언론을 지향해 나갈 것입니다. 서둘거 나 빠르게 가기보다 천천히 여기저기 살피고 어루만지면서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휴(Hu)는 한자 ‘休’ 그대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두손 꼭 맞잡겠습니다. 2015년 11월 <아시아엔> 창간 4돌에서 밝힌 대로 ‘아시아의 금강송으로 공도(公道)의 이(利)를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강원도 홍천군 내면 광원리 ‘샘골’ 오대산 자락 600고지엔 <매거진 N> 평생독자님을 기념하는 ‘금강송’ 이 한겨울 눈보라를 이겨내며 새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달래 피는 4월 평생독자님을 모시고 오대산 샘골의 ‘아시아엔 금강송 동산’에서 평생독자님 성함이 새겨진 명패를 한 그루 한 그루에 걸어 길이 기념할 계획입니다. <매거진 N> 독자님의 성원과 참여로 샘골에 금강송 향기가 수천 년 이어지길 고대하며 글을 마칩니 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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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nership

magazine N | 201601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50개국 AJA 전문필진이 만드는 ‘매거진 N’

<매거진 N>은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의 뉴스 네트워크를 기 반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고급정보와 심층해설을 전달합니다.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로 한국, 중국, 일 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 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2개국, 300여 명의 회 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 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교·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 로고 아시아기자협회 네팔지부 ‘미디어와 평화’ 포럼(2014. 03)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 글, 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이 지역 최초의 온라인 매체로서 AsiaN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매우 뜻 깊은 The AsiaN 영문판·아랍어판 메인화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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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History

AJA in Brief

2004.11.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회원

2010.07. AJA,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사무국 서울

2011.06. AJA,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지부

2011.07.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이사장

2011.11. 11월11일 아시아엔(The AsiaN) 한글·영문판 창간

2012.11.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창간

회장

2012.11. 네이버(NHN), 줌(ZUM) 뉴스검색 제휴, 모로코작가협회 제휴 2012.12. 다음(Daum) 뉴스검색 제휴, Al-Arabi Magazine 제휴 2013.02.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2013.03. 이집트 Al-Hilal Magazine 제휴 2013.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013.09. AJA ‘아시아 문화언론인포럼’ 광주서 개최 2014.03. AJA, 쿠웨이트 황금보트상 수상 2014.04. 아시아엔(The AsiaN) 편집위원회 발족 2015.01. 최초 해외인턴기자 라훌 아이자즈(Rahul Aijaz, 파키스탄) 연수 시작 2015.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주년 2015.07. 이집트 출신 라드와 아시라프(Radwa Ashraf) 연수 합류 2015.10. 네팔지진 후원 사진전, 조진수 작가 공동주관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김학준 한국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2012.02. 중국 온바오닷컴, Global Asia, THE KOREA TIMES 기사제휴 2012.03. 뉴시스, 연합뉴스, 터키 CIHAN 통신사 기사제휴

52개국 357명

창립회장 Ivan Lim 싱가포르 The Straits Times 전 기자

이상기 한국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Xu Bao Kang 중국 인민일보 한국판 전 지사장

Dolgor Chuluunbaatar 몽골 Ulanbaatar Times 전 편집국장

Eddy Suprapto 인도네시아 RCTI TV 부국장

Bishnu Nisthuri 네팔 네팔기자연맹(FNJ) 전 회장

Norila Mohd Daud 말레이시아 Utusan Malaysia 선임기자

강석재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부회장

2015.11. 아시아엔(The AsiaN) 창간 4주년

Messages from AJA

Magazine N breaks new ground for rising Asia

‘아시아 시대’에 발맞춘 매거진 N

The inaugural issue of Magazine N is a commendable first effort by our columnists, reporters and correspondents to give readers insights on Asia from an insider’s perspective. They write with inheren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their own home turf matched by native feelings and regional sentiments. The pages appear in a refreshing and reader friendly format made attractive by photographs and other graphic illustrations. Style-wise, our writers have delivered content that is serious and substantive. However, they have not forgotten to give them a human touch as shown in the way stories are woven around political, business and sports personalities of the day. Our editors have also thrown in a good mix of topics and lively spread of photographs to suit a variety of interests and preferences among readers. They have also been imaginative and creative in projecting Magazine N as a ‘new frontier’ publication that will, as we go along, break new ground in our coverage of a rising Asia and the consequential re-shaping of the regional, political and economic architecture. That is the professional thinking and aspiration driving our efforts in Magazine N, as it is with our online - Ivan Lim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news portal The AsiaN.

아시아기자협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엔>을 창간한 지 4년 남짓, 이들이 이제 월간 <매거진 N>을 이 땅에 선보였습니다. 굳이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예측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전쟁과 기아에 신음하던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바로 이때, <매거진 N>이 전달할 질 높고 다양한 정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줄 것을 확신합니다. - 김학준 (사)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한동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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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siaN

magazine N | 201601

‘아시아엔 창간 4돌 기념 후원의 밤’ 참석자들이 기념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주식농부 박영옥, 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특파원, 법현 스님, 이상기 ‘아시아엔’ 발행인 한비 야 국제구호전문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상설 아시아엔 자연과 삶 전문기자, 김근상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주호영 새누리당 의원, 임종룡 금융위원장,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아시아엔 창간 4돌’

아시아의 금강송으로 참언론 사명 다할 터 <아시아엔> 창간 4돌에 축하해주신 분들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公道의 利를 바탕으로 정론과 직필로 독자를 늘 중심으로 삼으며 ‘아시아의 금강송’을 다짐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난 4년을 디딤돌로 저널리즘 본령을 늘 잊지 않고 최고의 정보와 깊이 있는 분 석, 양심과 양식을 저버리지 않는 언론으로 우뚝 서도록 응원해주시는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창간 4돌 사회 및 강연, 공연해 주신 분 사회 배한성 성우, 강연 박현찬 <경청> <마중물> 작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 공연 박석호 테너, 양두름 소프라노, 에 드가 노 바이올리스트, 일기예보 나들, S. With(서울대 색소폰 4중주)

창간 4돌 후원의 밤 참석해주신 분 강구영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강지원 변호사, 고명진 영월미디어박물관 관장(전 한국사진기자협회장), 구명수 공군사관학교 명예교수, 구혜연 피아니 스트,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예비역 육군소장), 김근상 성공회 주교, 김기오 전 국민대 법인사무국장, 김길수 프리랜서 사진작가(전 세계일보 사 진기자), 김남주 서울대동창회보 편집장,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이사,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김수룡 서울대 색소폰 콰르텟 S.with 알토, 김용 성 벤타코리아 이사, 김용호 김용호치과 원장, 김재화 말글커뮤니케이션 대표, 김정기 전 청와대 교육비서관(전 위덕대 총장), 김정태 머니투데이 편집 국 부장, 김주철 충북일보 충주본부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홍선 해양기업협회 회장(지오시스템리서치 회장), 나들 가수(일기예보), 류진 커머스 대 표(서울대사학과 총동창회 총무), 민병돈 전 육사교장,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박상설 캠프나비 대표, 박석호 테너 가수, 박송자 (주)고창농 산 대표이사, 박영옥 스마트인컴 회장(주식농부), 박용환 한국능륭협회인증원 심사원, 박우현 경찰청 공보관, 박현찬 <경청> <마중물> 작가, 배철현 서 울대 종교학과 교수, 배한성 성우, 법현 열린선원 원장, 손건웅 풍수유람가, 손봉석 경향신문 뉴미디어 기자, 시난 오즈투르크 (주)케르반그룹 대표이사, 신학림 미디어오늘 사장, 신화수 문화체육관광부 홍보기획관(전 전자신문 편집국장), 안준현 (주)한국공간에너지 이사, 알파고 시나씨 터키 지한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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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파원, 양두름 소프라노 가수, 에드가 노(노현석) 비올리스트, 여요한 서울대 색소폰 콰르텟 S.with 리더(소프라노), 오권수 신도아톰 대표, 유경수 전 제주방송 광고국장, 유동훈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장, 이나일 영화음악 작곡 편곡가, 이미연 (사)김포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이병규 명지대 교수 (변호사), 이상술 여행레저신문 본부장, 이석연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전 법제처장), 이성철 C채널방송 전무, 이승무 진명여고 교장(전 부산시부교 육감), 이원섭 IMS KOREA 대표, 이은재 한국공간에너지연구회 공동대표, 이재후 김앤장 대표변호사(엄홍길휴먼재단 이사장), 이종상 예술원 회원(서 울대 명예교수), 이창구 신한은행 WM영업본부 본부장, 이팔호 전 경찰청장, 이형범 바보나눔재단 간사, 이홍 광운대 경영학과 교수, 이효영 (주)시티플 러스 마케팅 이사,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 임철 전 매일경제 논설위원, 장용수 MBN 디지털영상국장(영동고언론인모임) 회장, 장원진 서울대 색소 폰 콰르텟 S.with 바리톤, 전순옥 국회의원, 정석구 (주)한국공간에너지 감사,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 조현배 경찰청 정보국장, 조형옥 기분좋은 섬 유 대표이사, 주호영 국회의원, 지상욱 전 서울시장 후보, 지춘경 목사, 차익환 한겨레 팀장, 최영헌 서울대 색소폰 콰르텟 S.with 테너, 최춘지 피아니스 트, 성신여대 외래교수, 추광휘 코리아시스컴 대표이사, 한부귀 더 한스 대표, 한비야 세계시민학교 교장(구호활동가), 한창석 한화그룹 홍보2팀장, 홍성 대 상산학원 이사장(<수학의 정석> 저자), 홍옥선 엄홍길휴먼재단 사무처장, 황규학 <법과 종교> 발행인(목사)

창간 4돌 축하 ‘매거진 N’ 독자 신청하신 분 강신명 경찰청장,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목사, 김인규 전 KBS 사장, 김홍선 (주)지오시스템리서치 회장, 김흥기 한국사보 협회 회장, 노소영 아트센터나비미술관 관장, 민병철 어학원 원장, 박해선 오투씨앤아이 대표이사, 배한성 성우, 윤석호 네모파트너스 대표이사, 이순동 삼성전자 고문, 이의명 한유에너지 대표이사, 이재후 김앤장 대표 변호사, 이호순 허브나라 대표, 정기선 봉등전기(주) 대표이사, 정명호 본명상 원장, 정 향희 제주 부영호텔 셰프, 제이에스케이코리아, 최동국 작곡가, 최상희 경원공영(주) 대표이사, 추광휘 코리아시스컴 대표이사 (이상 평생독자) 김영희 차인 편집장, 김희옥 법무법인해송 변호사(동국대 전 총장), 박광온 국회의원, 오준 주유엔대사, 장민수 문화방송 기자, 정규성 대구일보 기자, 조병수 세무사, 홍승수 서울대명예교수 (이상 정기독자)

창간 4돌 축하동영상 및 메시지 보내주신 분 엄홍길 산악인, 정념 흥천사 회주스님,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나시르 아이자즈 파키스탄 PPI 전 편집국장, 비쉬누 니스트리 아시아기자협회 네팔 지 부장, 아시라프 달리 쿠웨이트 <알 아라비> 편집장,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회장, 프라모드 마터 인도 SPOTFILM CEO

창간 4돌 축하금 내주신 분 강구영 합참 지원본부장, 강신명 경찰청장, 고명진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관장, 김기오 전 국민대 법인국장, 김대현 벤타코리아 대표, 김덕권 ‘덕화만발’ 운영자, 김서권 예수사랑교회 목사, 김용호 치과병원장, 김정기 위덕대 전 총장, 김주철 충북일보 충주본부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홍선 한국해양협회 회장, 류문선 신한은행 지점장, 류진 (주)커머스 대표, 류효선 JSK 고문, 박남수 천도교 교령, 박송자 (주)고창농산 대표, 박승희 서울대총동창회 사무총장, 박영순 경민대 겸임교수, 박영옥 주식농부, 박진 전 국회의원, 보네이도 코리아. 손봉석 경향신문 기자, 손주은 메가스터디 대표, 신학림 미디어오늘 대표 이사, 안혜진 시티플러스 대표이사, 오권수 신도아톰 대표, 오준 UN ECOSOC 의장, 유동훈 문화체육관광부 소통실장, 이미연 김포여성경제인연합회 회 장, 이병규 명지대 교수(변호사), 이상억 경주이씨중앙화수회 사무국장, 이성철 C채널방송 전무, 이승무 진명여고 교장, 이종상 예술원 회원, 이창구 신한 은행 본부장, 임영진 신한은행 부행장, 임철 전 매일경제 논설위원, 장용수 매일경제 뉴미디어 국장, 전순옥 국회의원, 정영무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조윤 호씨, 조현재 경찰청 정보국장, 주호영 국회의원, 지춘경 목사, 진양혜 프리랜서 아나운서, 추광휘 코리아시스템 대표,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

창간 4돌 화환, 화분 및 선물 보내주신 분 건국대 농축대학원 자생회, 김규진 LIG넥스원 CR기획실장,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 박광온 국회의원, 법현 열린선원 스님, 유동훈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장, 윤병은 아주산업 대표, 이경만 공정거래연구소장, 이광구 우리은행 은행장, 이영규 웰크론그룹 회장, 이재후 엄홍길휴먼재단 이사장, 이 필우 경주이씨 중앙화수회 회장, 정영무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홍덕률 대구대 총장

창간 4돌 축하 떡, 케익 보내주신 분 축하떡 선명숙 명인, 축하케익 벤타코리아(대표 김대현)


Photo 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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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 In a Box Upon the Sea

“카메라로 관찰하는 행위 즉 사진가가 관찰하고 있는 대상에 대해 어떤 기술적 조작이나 연출을 시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관찰의 행위는 - 만약 그 행위가 그의 감성과 지성의 결합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 세계에 대한 풍부한 표현과 개인의 성찰을 담은 철학적이며 심지어 정신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이런 행위의 결과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예술’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사진에서 일어났을 때 그건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이러한 일 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필립 퍼키스

“When a photographer looks at the things through a camera without any effort of technical manipulation or dramatization, such an act of observation in a combination of his sensibility and intellect can become a philosophical, even a spiritual act that inherits the reflections and the rich expressions of the photographer towards the world. The outcome of such an act is what corresponds to the common definition of “art”. If such a thing happens within photography, it is a “miracle” because we cannot know how this Philip Perkis thing has happened. Such things are not something that could be understood with r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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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서울 종로구 서촌 류가헌에서 사진 교육자이 며 사진가로서 50여년의 세월을 살아온 사진가 필립 퍼키스 의 다섯번째 책 ‘바다로 떠나는 상자 속에서’(In a Box Upon the Sea, 안목출판사) 출판기념 사진전이 열렸다. 필립 퍼키스의 신간 사진집에는 총 57장의 작품이 실려있 다. 이 중에는 네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며 촬영한 사진 들도 포함돼있다. 이 밖에도 삶과 사진에 대한 깊이 있는 철 학과 고뇌의 흔적이 엿보이는 그의 글 13편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사진집을 출판하고 전시회를 기획한 박희태 안목출 판사 대표는 “필립 퍼키스의 다섯번째 책 ‘바다로 떠나는 상 자 속에’를 만들면서 그동안 ‘사느라 바빠서’ 유예하고 있던 사진 작업에 대한 욕구를 절실하게 느꼈다. 필립 퍼키스의 삶의 깊이처럼 내 자신이 보고 느끼는 이 세상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 내면서 내면을 성장시키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고 말한다. 필립 퍼키스는 올해 한국나이로 81세다. 그의 꿈은 죽는 그날까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지닌 행위가 아 닌, 삶의 원동력을 얻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날마다 영위하는 일상의 한 부분처럼 자연스레 사진 속에 녹아든 그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촬영한 작품들을 직접 암실에 서 현상하고 인화해오며 그 결과물을 내놓아 왔다. 퍼키스의 흑백 필름 사진들은 특별한 주제가 없다. 그저 그가 어디서든 바라보 는 일상의 장면들을 담아낸다. 그의 사진에서 특별한 사연을 찾으려한다면 독자는 실망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사진 속에서 당신을 매료시키는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 자체가 바로 당신에게 주제가 될 것이다.

필립 퍼키스 Philip Perkis (1936~) 공군에서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며 사진가가 되었다. 제대 후에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마이너 화이트, 도로시어 랭, 안 셀 애덤스, 존 콜리어 주니어에게 사진을 배웠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의 사진과 교수로 40년간 재직했으며 사진학과의 학장을 역 임했다. 뉴욕대학, 시각 예술 학교, 쿠퍼 유니온에서 사진을 강의했고,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워크샵을 열었다. 50년 간의 사진 강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진강의노트’(Teaching Photography, 2002)를 저술했고, ‘워릭 마운틴 시리즈’ (Warwick Mountain Series, 1978) ‘인간의 슬픔’(The Sadness of Men, 2008) ‘한 장의 사진, 스무 날, 스무 편의 편지들’(A Single photography, Twenty days, Twenty Comments, 2014) 등의 사진집을 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뉴욕 현대 미술관을 비롯한 전세계 유명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2010년 3월, 조지아 뮤지엄 에서 그의 특별전이 열렸다. 필립 퍼키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 ‘Just to see a mysteryʼ가 완성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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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젤라틴 실버 프린트, 2015 作 갤러리 토크에서 필립 퍼키스의 사진세계를 설명하 고 있는 박태희 안목출판사 대표


Asia Round-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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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애? 놔둬?”…인도네시아 쓰레기매립장 ‘딜레마’ 최근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이하 COP21)가 개최됨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적 관 심이 뜨겁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오히려 온실가스 감 축으로 생계를 잃어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이른 바 ‘쓰레기로 먹고 사는’ 재활용품 수집가들이다. 인도네시아는 분리수거 및 재활용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 아 대량의 쓰레기가 한꺼번에 매립장에서 처리된다. 이곳에 서만 3천명의 사람들이 재활용이 될 만한 플라스틱, 장난 감, 깡통 등의 쓰레기를 주워서 되팔아 생계를 꾸려나가고 신화사

있다. 심지어 매립지 근처에는 이들이 따로 모여 사는 마을 이 있을 정도다. 반면 쓰레기매립장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메탄’을 대량 생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부가 환경보호 차원에서 분리수거 및 재활용 시스템을 이곳에 구축한 다면, 이들은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셈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제일 큰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는 타키딘(42)씨는 10대 때부터 이곳에서 쓰레기를 주어 생 계를 유지했다. 그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 편하다”면서 “일하고 싶을 때는 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이들의 수입은 인도네시아 평균 임금에 비해 썩 나쁘지 않다. 별다른 수확이 없을 때는 하루에 4달러(4천600원), 운 이 좋을 때는 10달러(1만1600원)까지 벌 수 있다. 그러나 나쁘지 않은 수입에 비해 부상의 위험도 있다. 이들은 포크레인이 새 로 들어온 쓰레기를 더미 위에 올려놓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등 작업 도중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9년째 쓰 레기를 줍고 있는 이웍(40)씨는 “예전에 포크레인에 한번 부딪힌 적이 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면서 “이 매립장 에서만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고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매립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런 사고에 개의치 않는 다. 오히려 “언젠가 쓰레기 더미가 무너질까 걱정”이라고 한다. 많은 이들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매립장에서 하루종일 쓰레기를 줍고 다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는 온실가 스 감축 부담을 안고 있어 쓰레기매립장을 그대로 놔두기도 곤란한 ‘딜레마’에 처해있다.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Recycle waste pickers in Indonesia As the United Nations Climate Change Conference (COP21) is held in Paris, France, international society pays much attention to the issue concerning reduction of greenhouse gasses. However, in Indonesia, there are people who will lose their jobs because of cutting greenhouse gasses. They are ‘recycle waste pickers’ who earn their bread by collecting recyclable ‘garbage’. Indonesian households do not separate their trash into ‘waste’ and ‘recyclable’ trash. Thus, the mass garbage is dumped straight into a giant landfill. 3,000 people earn their livelihood by collecting and reselling garbage such as plastics, toys, and cans. However, ‘garbage landfills’ release a huge amount of methane. If the government establishes an advanced recycling system for protecting environment, they would lose their jobs, and their livelihood will be jeopardized. Their average daily wage is about 4 dollars a day, or 10 dollars when they are lucky. However, there is also danger of injuries. Some workers get injured because of forkcranes in the landfills. One of the collectors said, “More than 10 people have died in this landfill. However, most pickers like me are concerned about whether the garbage heap would disapp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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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Muslims oppose Islamophobia by wearing hijabs Chicago’s Vernon Hills High School held a “Walk a Mile in Her Hijab Day” last week as non-Muslim female students were encouraged to wear the hijab, the Islamic headscarf. The event was sponsored by the school’s 10-member Muslim Student Association. Meanwhile, Wheaton College political-science professor Larycia Hawkins announced on Dec. 11 that she would be wearing a hijab to show “religious solidarity with Muslims.” “I stand in human solidarity with my Muslim neighbor because we are formed of the same primordial clay, descendants of the same cradle of humankind,” she wrote, “I stand in religious solidarity with Muslims because they, like me, a Christian, are people of the book… But as I tell my students, theoretical solidarity is not solidarity at all. Thus, beginning tonight, my solidarity has become embodied solidarity.” Hawkins said she wants to start a movement of women showing their solidarity for Muslims. Even though her decision resulted in her suspension from Wheaton University, Hawkins didn’t go back on her word. This comes after the racist comments by a number of presidential candidates such as Donald Trump and Bill Carson who demanded for a ban on Muslims in the US. It wasn’t the first time American non-Muslim women took such an initiative, as last year a large number of women protested to the attack a Muslim woman faced in a restaurant by going to the restaurant themselves wearing hijabs. Also in 2014, a number of Muslim youth made a video of them trying to convince American young women to try on the hijab for a short time, trying to change their perspectives on Muslims. The video garnered over 4 million views. On the other hand, a number of opposing campaigns started to appear, demanding to stop the Islamization of the US.

이슬람 혐오증 항거 ‘히잡의 날’, 미국인이 무슬림처럼 ‘히잡’을… 미국 시카고 힐스고등학교(Hills High School)의 ‘비 무슬림계’ 학생들이 ‘히잡의 날’(Walk a Mile in Her Hijab Day)을 개최해 눈길을 끌고 있다. 무슬림학생협회가 지원한 이 행사에선 여학생들이 무슬림 전통복장인 ‘히잡’을 착용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 행사를 기획한 ‘기독교인’ 라이시아 호킨스 휘턴대학 교수는 2015년 12월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히잡을 착용한 모습을 공유했다. 그녀는 “최근 도날드 트럼프, 빌 카슨 등 일부 공화당 대선 후보들의 이슬람 혐오 발언을 무책임하게 내뱉고 있 다”며 “나는 무슬림 이웃들과 함께 인류적인 연대를 이루고자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독교 선교대학’ 휘턴대학은 12월15 일 호킨스 교수를 제명하기로 결정했다. 호킨스 교수는 고별인사를 전하는 기자회견에서 큰 박수를 받았다. 그동안 일부 기독교인들은 ‘히잡쓰기 운동’을 통해 일부 몰지각한 미국인들을 비판해왔다. 히잡을 쓴 무슬림들에게 싸늘한 눈길을 주는 미국인들을 피해 히잡을 벗는 많은 무슬림들이 히잡을 벗어왔기 때문이다. 2014년엔 젊은 무슬림들이 모여 비 무슬림 여성들에게 히잡을 씌워주는 영상을 제작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영상은 조회수 4백만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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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ram where the Beatles stayed, reopens in India Arguably the greatest band in the history, The Beatles, spent their time in India in the 1960s. Their fans have been intrigued and interested in the details of their stay in an ‘ashram’ (a spiritual hermitage or a monastery where Hindu cultural activities such as yoga, music or religious studies are performed). Luckily, for the Beatles’ fans, the ashram named ‘Mahesh Yogi ashram’ was opened to public on December 8. Located in India’s northern city of Rishikesh, the spiritual complex was home to Maharishi Mahesh Yogi, who passed on his teachings of ‘Transcendental Meditation’. Yogi attracted large number of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and taught them transcendental meditation techniques. Famous celebrities like American surrealist filmmaker David Lynch, comedian Andy Kaufman, actor Clint Eastwood, and many more including the Beatles themselves, practiced meditation techniques, which helped them improve their art. The ashram was once a hotspot for many years, known to travelers and fans as ‘Beatles ashram’, however its neglected condition for the past two decades turned away many of them. Its re-opening on December 8, which coincided with John Lennon’s 35th death anniversary. Situated on the outskirts of the Rajaji Tiger Reserve in Uttarakhand, it is the place where the Beatles wrote 48 songs, sitting on the banks of River Ganges, in a period of only seven weeks. Many of those became part of their ‘White Album’. In 2012, Canadian artist Pan Trinity Das along with a bunch of travellers, painted the walls with pop art and portraits of The Beatles, apart from other spiritual leaders like the Dalai Lama. Even over five decades later, the place still remains a popular tourist spot. For about $2 for locals and $10 for foreigners, the Beatles ashram is the perfect getaway to a nostalgic experience for the rock band’s fans and meditators alike.

존 레논 피살된 그날, 비틀즈 흔적 담긴 인도 ‘아쉬람’ 재개장 196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 밴드 비틀즈가 한때 인도 명상에 푹 빠져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는지? 1968년 비틀즈는 인도 북부의 힌두교 성지 리시케시로 떠났다. 초월명상(TM) 지도자로 유명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만나 가르침을 얻기 위해 서였다. 그는 명상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구루(힌두교, 불교, 시크교 및 기타 종교에서 일컫는 스승)로, 현재 전세계에 1천2백 개의 초월명상 센터가 있으며 그동안 초월명상을 배운 사람만 300만명이 넘는다. 리시케시의 아쉬람(힌두교도들이 수행하며 거주하는 곳)에서 7주간 생활했던 비틀즈 멤버들이 갠지스강가에서 써내려간 곡만 무려 48개다. 이후 몇 십 년간 수많은 비틀즈 팬들과 관광객을 끌어 모았던 이곳은 안타깝게도 노후한 환경 탓에 점차 그 발길이 끊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12월8일, 비틀자가 머물었던 아쉬람이 ‘마헤시 요기 아쉬람’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 다. 2012년 이곳을 방문한 캐나다 출신 팬 트리니티 다스가 벽면에 비틀즈 초상화와 함께 여러 팝아트와 달라이라마를 그 려 넣어 더욱 유명해진 ‘비틀즈 아쉬람’은 지금도 여전히 비틀즈를 그리워하는 팬들과 명상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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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report

파키스탄 페샤와르 탈레반 테러 1년…지워지지 않는 상처 2014년 12월16일, 파키스 탄 페샤와르의 한 학교에 서 발생한 파키스탄 탈레 반(TTP) 테러로 어린 학생 134명을 포함 151명이 숨졌 다.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흘렀으나, 피해자 유족과 사고 현장에 있던 학생들 은 지금도 그날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A Pakistani woman holds a photograph of a victim during a ceremony to mark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army-run school attack in Peshawar, 신화사

northwest Pakistan, Dec. 16, 2015.

COMMENTS from Asia

나렌드라 모디

파리기후변화 총회로 전세계가 가스배출 문제로 떠들썩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FT>에 기고한 글을 통해 “화석연료를 이용해 번영을 구가한 선진국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선진국의 기준으로 개도국 에게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고 밝혔다. 인도는 중국, 미국, 유럽연합(EU) 다음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탄소를 많이 배 출하는 나라다.

Narendra Modi

Indian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writes in the Financial Times, “Advanced countries that powered their way to prosperity on fossil fuel must continue to shoulder the greatest burden. The principle of 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 should be the bedrock of our collective enterp[rise.”

무하마드 알리 무슬림이자 미국의 스포츠영웅 무하마드 알리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유력 대선후보의 ‘무슬림 입국금지’ 발언을 비난했다. 알리는 “세계 어디서든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행위는 이슬람의 교리가 아니다. 정치가 들은 지하디스트들이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한다”고 말했다.

Muhammad Ali Muslim sports hero Muhammad Ali condemned the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Donald Trump’s recent call to ban Muslims from entering the US, saying, “I am a Muslim. There is nothing Islamic about killing innocent people in Paris, or anywhere else in the world. Our political leaders should use their position to clarify that these misguided murderers have perverted people’s views on what Islam really is.”


Asian Env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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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에미리트 제44주년 국 경일 기념식. 압둘라 칼판 알 로마이 대사는 다친 아들의 휠체어를 손수 밀어주며 끈 끈한 부정(父情)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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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두라 꼬마신사’ 하객사랑 독차지 경쾌한 음악 속 요을랑 춤 ‘덩실덩실’ UAE 44주년 국경일 기념식 ‘이모저모’

주한 아랍에미리트 대사관 주최 아랍에미리트

연설이 마무리되자 경쾌한 음악이 시작됐다.

(UAE) 제44주년 국경일 기념식이 2015년 12월2일

아랍에미리트인들은 국경일을 기념하는 전통춤 요

낮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렸다.

을랑(Youla)을 추기 시작했다. 요을랑은 전통음악

행사장에 들어서자 남성 전통의상 깐두라 (kandura)를 차려입은 걸프국 출신 하객들이 눈

jchoi12@theasian.asia

리트 전통춤이다.

길을 사로 잡았다. 가장 큰 인기를 끈 이들은 바로

이날 행사엔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는

깐두라를 입은 ‘꼬마 신사’들이었다. 꼬마 신사들이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참석했다.

나타나자 방문객들은 연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이 교수는 UAE의 7개 에미리트 중 하나인 알샤르

누르기 시작했다. 이들과 사진찍기를 요청하는 이

자의 셰이크 자밀라 빈트 모하마드 알카시미 공주

들도 눈에 띄었다.

와의 인연으로 UAE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공학기

행사 도중 한 남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최근 아

글·사진 최정아 기자

에 맞춰 긴 막대기를 오른손에 쥐고 추는 아랍에미

기(AT) 개발에 힘쓰고 있다.

랍에미리트는 예멘 시아파 후티족 반군에 대규모

행사가 마무리될 무렵, 압둘라 칼판 알로마이

공습을 단행하고 있다. 이 남성은 아랍에미리트인

대사가 다리를 다친 아들과 함께 등장했다. 알로마

을 살해한 후티족 반군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였

이 대사는 아들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행사장 한켠

다. 곧이어 큰 박수가 쏟아졌다.

에 마련된 사진들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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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깐두라 꼬마신사들 아랍에미리트 현지 요리사가 직접 내어온 양고기 요리 는 하객들이 가장 많이 찾은 음식 중 하나였다. 행사 도중 예멘 시아파 후티족 반군을 성토한 아랍에미 리트 남성은 하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압둘라 칼판 알로마이 대사가 다리를 다친 아들의 휠 체어를 손수 밀어주며 사진들을 둘러보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인들이 국경일을 기념하는 전통춤 요을 랑을 흥겹게 추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국의 스티븐 호킹’ 이상묵 서울 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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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Env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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께오달라봉 주한라오스대사 “아세안의장국 라오스 주목해달라” ‘라오스 건국 40주년 겸 한-라오스 수교 20주년 기념행사’

지난 12월2일 저녁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주한라오

글·사진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스의 행보를 기대해달라”고 밝혔다.

스대사관(대사 캄쑤와이 께오달라봉)이 주최하는

오후 6시30분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된 행사 내

‘라오스 건국 40주년 겸 한-라오스 수교 20주년

내 다양한 라오스 전통춤 축제 공연들과 한국 전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통 부채춤 공연이 펼쳐졌다. 특히 한국에서 좀처럼

이날 기념행사에는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찾아보기 힘든 ‘비어라오’ 등 라오스맥주가 제공돼

벳쇼 고로 주한 일대사, 추궈홍 주한 중국대사 등

눈길을 끌었다. 주한라오스대사관 및 라오항공도

각국 대사 35명과 함께 외교사절 60여명이 참석했

이날 행사에 참석한 귀빈들을 위해 라오스 특산 건

다. 또 김재원 한-라오스 의원친선협회 회장(새누

과일과자와 커피 등을 증정했다.

리당 국회의원), 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최근 아세안의 ‘뉴 타이거’로 급부상하고 있는

오명환 한-라오스친선협회 회장, 조원권 주한 라

라오스는 남북한을 비롯해 전세계 138개국과 외

오스명예영사, 강영훈 서아시아태평양국장 등 300

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산림 및 지하자원 등을 바

여명이 자리했다.

탕으로 경제발전을 꾀하고 있다. 12월 초 중국과

캄쑤와이 께오달라봉 주한 라오스대사는 “지

국경도시를 잇는 고속철 건설에 착수했으며, 특히

난 20년간 양국의 협력과 성과를 지켜볼 수 있어

2009년부터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벤치마킹한 농

기쁘다”면서 “내년 아세안 의장국으로 나서는 라오

촌개발이 성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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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건국 40주년 겸 한-라오스 수교 20주년 기념행사’ 참석자 들이 기념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라오스 전통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무대 기념행사에서 선보인 라오스 맥주 ‘비어라오’ 무용단이 라오스 전통춤을 공연하고 있다. 캄쑤와이 께오달라봉 주한 라오스대사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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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 of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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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뉴욕주립대

강의실에서 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는 김춘호 한국뉴욕 주립대 총장(앞 줄 가운데)

“인성 갖춘 글로벌 인재양성 목표… 학생 3분의 1 장학금 혜택도”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

최정아 기자 jchoi12@theasian.asia

아시아 시대, 대학의 길을 묻다 [ 2 ]

통령 등 다양한 ‘꿈’들이 매년 쏟아진다. 4년 동안

한국뉴욕주립대(The State University of New

일반대학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을 보니 한국

York, Korea, SUNY Korea)엔 ‘대통령’을 꿈꾸

뉴욕주립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기자가 김춘

는 학생들이 있다. 초등학생도 공무원이 장래희

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망이라 하는 요즘 시대에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

에 인터뷰를 요청하게 된 계기였다. 김 총장과 한

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뉴욕주립대에선 조

국뉴욕주립대와 인연은 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금 다르다. 한국뉴욕주립대에 입학한 모든 학생

이 제안했던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다.

들은 개강 전 전교생 앞에서 ‘꿈 프레젠테이션’을

“처음엔 총장직을 정중히 거절했어요. 그런데

해야 한다. IT사업가, 빈민들을 위한 교육가, 대

문득 ‘이 학교에서 참교육을 위한 그림을 그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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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할

리 학교에 가정문제 등으로 마음의 상처

라 꼽히는 부르키나 파소에서 온 학생이

일은 두 가지예요. 첫째는 품격있는 인재

가 있는 학생들이 있어요. 전 교직원들

꿈 프레젠테이션에서 “국민 70%가 전기

를 키우는 것이죠. 요즘 아이들은 매우

한테도 이런 아이들한테 더 관심을 가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이기적이에요. 이타적인 학생을 찾기 힘

야한다고 말해요. 사실 잘하는 아이들

김 총장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이에 김

들어요. 인성교육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은 걱정이 안돼요. 우리가 챙겨주지 않아

총장은 한전을 설득해 부르키나 파소에

수 있는 품격있는 글로벌 인재를 만드는

도 똑똑하게 잘 하니까. 정말 우리 손길

태양력 발전소와 전기기술자 양성 센터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둘째는 개발도

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관심을 줘야죠.”

를 만들었다. 대지진 이후 큰 어려움을

상국 학생들을 키워서 고국으로 돌려보

한국뉴욕주립대의 선발기준은 보통

겪고 있는 네팔에 학교도 지을 예정이다.

내는 거예요. 한국은 ‘원조 받는 나라에

의 국내 대학들과는 조금 다르다. 수능

“부르키나 파소 학생의 발표를 듣고

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세계유일한 나라

을 잘 못 보더라도 특별한 재능과 잠재력

한전을 설득했어요. 함께 이 나라를 도

죠. 개도국들도 한국을 배우길 원해요.

을 갖고 있는 학생이라면 두 팔 벌려 환

와보자고요. 이곳 사람들이 자립할 수

개도국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성장시

영한다. GPA 및 영어성적(토플·아이엘

있도록 기술자를 양성할 수 있는 곳도

켜서 고국에서 장관, 대통령으로서 좋은

츠 등)과 면접전형을 통해 학생을 뽑기

만들었죠. 최근엔 네팔에 학교를 지어주

리더가 되도록 하는 것이죠. 이는 장래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해외학생의 경우

기로 했어요.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대한민국에도 큰 힘이 될겁니다.”

빈곤국 학생들, 그리고 고려인, 조선족과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들을 추진할 수 있

같은 한민족 동포들을 주로 선발한다.

는 이유는 바로 ‘공적인 가치’를 우선순위

김 총장이 학부모들에게 매번 하는 말이 있다. “‘내 자식만 잘 먹고 잘 살자’

“우리 학교엔 고2때 KBS 9시뉴스에

에 두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이

하는 부모님들은 나가셔도 좋습니다.” 김

도 출연한 학생이 있어요. 이 학생의 아

런 프로젝트가 있을 때 학생들을 꼭 참

총장이 생각하는 인재상은 ‘베풀고 나눌

이디어에서 힌트를 얻은 미국 MIT교수

여하게 해요. 이런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수 있는 사람’이다. 이를 위해 만들어진

가 제품을 개발했죠. 그런데 이 친구는

있는 것이 많거든요.”

교육과정이 바로 ‘인성교육’이다. 새내기

흔히 말하는 SKY 대학을 못가요. 수학,

한국뉴욕주립대는 처음 출범했을 당

들은 입학직후 1년 동안 자신의 비전에

과학은 잘하는데 사회, 국어를 못하는

시 행간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어려운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2학년이

거예요. SKY 갈만한 수능성적이 안 되

시기도 겪었다. 국내 진출한 첫 미국대학

된 후엔 미국 뉴욕 본교에서 다양한 경

는 것이죠. 우리는 이런 친구들을 뽑아

인데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소위 ‘부잣

험을 쌓으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더욱 구

요. 성적 자체보다는 학생들의 잠재력까

집 자녀’만 가는 대학이란 오해도 받았

체적으로 탐구한다.

지 더 넓은 범위에서 보는 거죠. 해외학

다. 하지만 외부의 추측과는 다르게, 기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학생에게

생은 조금 달라요. 방글라데시, 브루키

자가 본 모습으로는 대학 구성원들 사이

‘왜?’냐고 물어보면 답이 없어요. 이런 학

나 파소, 케냐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 대

의 끈끈한 정(情)이 느껴졌다. 한국뉴욕

생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뉴

사관에 실력있는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

주립대는 총장은 물론, 교직원들과 학생

욕에 가기 전 새내기들한테 자신의 비전

청하죠. 개도국 학생들 덕분에 우리 학

들 간 관계가 매우 돈독한 편이다. 김 총

을 생각해보도록 교육하고 있어요. 3학

교가 이룬 일들이 많아요.”

장은 최근 학생들 때문에 감동의 눈물을

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기업가 정신 교

한국뉴욕주립대는 최근 한 학생의

육’도 마찬가지에요. 진정한 기업가 정신

발표를 계기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빈

“우리학교의 모든 해외학생들이 총

은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곤국을 돕기도 했다. 아프리카 최빈국이

장 부부와 교직원들을 불러 잔치를 해줬

흘린 사연을 들려줬다.

이거든요. 월급쟁이라도 조직 안에서 자 신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교육시키죠. 4학년 때는 멘토가 붙어서 학생들을 이 끕니다.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사회

“개도국 대사관에 학생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죠. 그리고 개도국에서 필요 한 사업들도 지원해요. 저희 학교에서 이런 일들을 추진할 이유는 바로 ‘공

에서 ‘어떻게 이런 인재를 키웠지’란 말

적인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프로젝트

을 듣게 하는 것이 제 목표에요. 사실 우

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을 꼭 참여시켜요.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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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대학 교육 분야에서 벤치마킹할 대학을 꼽을 때, 하버드가 아닌 ‘한국뉴욕주립대’란 소리를 듣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다음은 위의 기사 중 일부를 영어로 옮긴 번역본 입니다.

At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SUNY Korea), there are students who dream of being the president. In this day and age, when even primary school students say being a civil servant is a dream, thinking of being the president sounds weird and funny. However, SUNY Korea sees it differently. All students at SUNY Korea should do a ‘dream presentation’ in front of all the students and professors. Every year, students show their diverse dreams of being an educator to the president. This is unusual as compared to other universities. Naturally, my curios한국뉴욕주립대

ity brought me to conduct an interview with SUNY president Kim Choon-ho. Kim says, “At first, I rejected this po-

어요. 학생들이 자기 나라 전통음식을

스쿨 FIT(뉴욕패션기술대)의 디자인과

sition politely proposed by Oh Myung,

직접 요리해서 준 것이죠. 소스나 향신료

도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 총장

former Minister of Science and Technol-

를 서울에서 못 구하니까 전국 팔도를 뒤

은 ‘등록금이 비싸다’는 일각의 비판에

ogy. But it occurred to me that I would be

져 공수해서 만든 요리였어요. 또 학생

대해서도 자신있게 말했다.

able to create a new education system in

들이 연주를 해준다고 기타, 피아노를 쳐

“이곳은 해외분교가 아니라 ‘확장 캠

this university. I have two roles. One is to

주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마음이 따

퍼스’(extended campus)에요. 여기는

train talented people. These days, most

뜻해지고 보람차더라고요. 사실 학부모

뉴욕 본교 학위가 나와요. 뉴욕본교에서

youngsters are very selfish. It is hard

들의 응원도 많아요. 개교 초기 부정적

졸업식을 해도 되고, 이곳 송도에서 졸업

to find altruistic students. This is why I

인 기사가 보도되면 학부모들이 직접 전

식을 해도 되는 거죠. 등록금의 경우, 장

introduced the subject of ‘Humanism’

화하셔서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셨

학금 받으면 돼요. 학생 3분의1이 장학

in the regular curriculum. Another role

어요. 정말 감사하죠.”

금을 받고 있어요. 우리 학교에선 돈없어

is to cultivate students from developing

한국뉴욕주립대는 꾸준히 내실을 채

서 공부 못한다는 것은 핑계입니다. 전세

countries, and send them back to their

워나갈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2016년

계 대학이 모두 학점 잘 받아서 좋은 직

countries. Many developing countries

봄 학기부터 응용수학통계학과, 경영학

장가는 것에 집중하죠. 하지만 우리는

want to learn about how Korea surpris-

과가 신설되고, 2017년엔 세계적인 패션

올바른 인성을 갖춘 글로벌 인재를 키우

ingly developed so fast, economic. W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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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t them to be good national leaders

once broadcasted in KBS news at the age

concert for us, playing a guitar and piano.

in their countries. This would become

of 17, because his idea was credited by

It brought me to tears. This was the hap-

Korea’s power.”

a renown professor of MIT. Despite his

piest moment for me and my staff. Actu-

President Kim believes that the right

genius, he could not go to Seoul National

ally, many school parents gave us a lot

people are students who can contribute to

University, because of his low score in

of support. Whenever negative reports

the society. All students in SUNY Korea

humanities subject.

were released, some parents sent us messages of support.”

should take ‘Humanism’ classes manda-

SUNY Korea has helped poor coun-

torily. Freshmen have time for thinking

tries in desperate need such as Burkina

SUNY Korea is not a branch school,

of their vision for one year. In the second

Faso or Nepal, building schools for local

but the extended campus of SUNY in

year, they move to New York, and have

students and solar power plant. Presi-

New York City. It means that the degree

diverse cultural experiences in the city.

dent Kim says, “The reason why we suc-

that students would receive is the same

President Kim says, “There was a

ceeded in this project is because we put

as SUNY in the US. SUNY Korea plans

student who dreamed of becoming a

'social value' as our priority”. He encour-

to introduces more courses such as man-

lawyer. I asked him ‘why?’, but he could

ages students to participate in such proj-

agement and statistics in 2016. Also, FIT,

not answer. I feel sad whenever I meet

ects so that students can learn something

which is the world’s best fashion school,

this kind of students. Thus, I always

from them.

is going to open in Song-do campus in

emphasize about having a vision to my

SUNY Korea suffered from cynical

students. The enrepreneurial spirit class

views at the beginning. Because of ex-

Kim says, “Around 33% of students

that the third year students attend is also

pensive tuition fee, some misunderstood

are getting scholarships from the uni-

in the same context. We educate students

them as a university that only the rich

versity. ‘Expensive tuition fee’ is not a

that all leaders should bring new vision

can afford. However, what I saw at SUNY

problem to not study in SUNY Korea.

and value to society. Salary men are also

Korea was affection among students

Most universities focus only on students

same. They also should find their value

and the staff. President Kim said, “All

getting better jobs after graduation.

in their organization. Actually, in our

overseas students cooked their own tra-

However, our aim is to train talented stu-

university, there are many students who

ditional foods for me, my wife, and the

dents who can contribute to society with

have left deep scars in mind. I always de-

staff. Some students performed a small

the right attitude.”

than other students, because excellent students can do well themselves. This is our vision of the university.” Admission standard of SUNY Korea seemed different from other common universities. Although the score of the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is not good, they welcome students who show excellent talent and potential. For international students, SUNY Korea selects mainly Korean diaspora such as Koryoin or Joseonjok, and students from poor countries. One of students was

SUNY Korea

mand my staff to take care of them more

2017.


70 years after the WWll: Asia’s progress and future 전후 70년 아시아, 어떻게 발전했고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전세계 인구의 60%가 모여 사는 ‘아시아’가 2차대전을 딛고 일어선지 70여년이 흘렀다. 그동안 아시 아는 제국주의 식민시대가 남긴 문화를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는가 하면 그 잔재로 인해 민주주의 정 부 수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끝이 없는 탐욕으로 자연을 무분별하게 개발했고, 그 여파로 기후 변화 후유증에 직면해 있다. <매거진 N>은 문화, 정치, 환경, 사회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아시 아의 변화상을 고찰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진단한다. 편집자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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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산물 ‘커피’, 아시아 키우는 ‘자양분’ 되다 Summary

Coffee as a cultural unifier Since the early 20th century, when Asia began to export coffee in earnest, it affected the economy of Brazil, which supplied more than 70 percent of global coffee in the international trade. With great harvest in 1906, oversupply of coffee led to the birth of instant coffee, a new culture in that time. Instant coffee was distributed to soldiers during the War, and soon, it boomed across the world. Asia also started to cultivate Robusta coffee to meet this trend. As Indonesia, Vietnam and India focused on Robusta, East Asia region became the hub of coffee supply to the world. Now, a coffee map of the world has been changed for the last 70 years. Brazil and Columbia, which supplied 90 percent of the total coffee in the international market before, have begun to keep an eye on Asian trends these days. Currently, three Asia countries - Indonesia, Vietnam, and India - comprise 30 percent of the coffee supplied across the globe. Among the three, Vietnam produces 60.2 percent, following Indonesia and India which produce 22.7 percent and 12. 1 percent, respectively. Some experts say that coffee consumption seemed to reach its uppermost limit in the 20th century, but the production competition is getting hotter as China and India become new emerging markets producing massive amount of coffee. East Asian countries also create coffee like Kopi Luwak. This is a great example of creating something different by mixing western culture and Asia’s own features. By producing such delicacies, we open up to other cultures and create a beautiful fusion, combining the best of both. Park Young-soon Professor at Kyungmin University | Summary by Kim A-ram Staff Reporter

전세계 육지의 32%를 차지하고, 세상 사람의 60%

은 역사에 뿌리를 둔 아시아는 민족주의를 바탕으

가 모여 사는 ‘아시아(Asia)’. 이쯤 되면 지구촌의

로 지칠 줄 모르는 식민투쟁을 벌이면서 50여년 간

주인 대접을 받아야 할 터이지만, 불행하게도 아

의 암흑시대에서 탈출했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

시아는 서양 열강의 침략과 수탈로 긴 시간을 고

본으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의 수난을 겪고 중국

통 속에서 인내해야만 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공산당 결성과 팽창으로 대륙은 혼란 속으로 빠져

싹튼 독점 자본주의는 유럽 강국들을 제국주의

들기도 했지만, 아시아의 유구한 역사에 비쳐 ‘한 때

(Imperialism)의 망령에 사로잡히게 했다. 19세기

의 몸살’ 쯤으로 위안을 삼아도 좋겠다.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아시아는 그들의 식민지 각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후 식민체제가

축장으로 변질됐다. 아시아에게 제국주의란 식민주

붕괴되면서 인도네시아, 베트남, 라오스의 독립선언

의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었다.

을 도화선 삼아 요르단, 필리핀, 인도, 파키스탄, 한

국가의 저력은 역사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기원 전 3000년~2000년 인더스문명과 황화문명의 깊

국, 미얀마, 실론, 이스라엘, 캄보디아 등이 속속 독 립했다. 아시아의 현대사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박영순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 겸임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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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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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한 커피농장에서 농부가 커피를 골라내고 있다. 베트남은 아시아국가 중 가장 많은 커피를 생산해내는 국가로 성장했다.

커피 로스팅 모습

지난 70년을 돌아볼 때, 아시아는 서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

차 세계대전이 기여(?)한 바가 크다. 사연

구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이 믿겨지

럽의 무역 강국들에게 커피는 그야말로 노

인 즉 이렇다. 물에 쉽게 녹여 단숨에 즐

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발전을 거듭해 나

다지였다. 19세기 말 아시아에 불어 닥친

길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를 만드는 기술은

가고 있다. 많은 사례를 들 수 있겠지만,

서구열강의 식민지 경쟁은 커피 재배지를

1901년에 만들어졌지만, 시장의 수요가 미

커피와 관련해선 ‘반전(反轉)의 역사’라는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비했기 때문에 실험실에 머물렀다. 그러다

표현이 실감난다.

아니었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커피

1938년 참다 참다 못한 브라질 정부가 전

커피나무는 원산지가 아프리카의 에티

를 심어 유럽으로 실어 나르며 큰 재미를

세계에 과잉커피 처리를 호소했으며, 마침

오피아이지만, 생산을 위해 처음으로 경

보고 있는 것을 목격한 영국은 인도와 미

내 스위스의 네슬레(Nestle)가 ‘네스카페’

작된 곳은 서남아시아인 예멘이다. 7세기

얀마, 프랑스는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라는 이름으로 인스턴트커피를 대량생산

초 이슬람 창시와 함께 메카, 이란, 이집

에 커피밭을 일궈 부를 축적했다.

하기로 결정했다. 이듬에 발발한 2차 세계 대전은 산더미처럼 쌓인 인스턴트커피 재

트, 시리아를 거쳐 16세기에는 터키에 퍼 져 커피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카페까지

커피 주 생산지, 브라질서 아시아로

고를 털어내는 돌파구가 됐다. 전장의 군

등장했다. 거의 1천년간 아라비아 반도에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아시아에서

인들에게 필수품으로 지급된 것이다. 아시

갇혀 있던 커피는 1615년에야 지중해를 건

커피가 본격 출하되자 세계 커피의 70%

아-유럽 전쟁터의 군인들은 모두 인스턴

너 이탈리아 베니스를 통해 유럽대륙을 밟

이상을 공급하던 브라질은 타격을 입게

트커피를 졸음 쫓는 용도로 애용했다. 서

는다. 이때부터 유럽 전역이 커피에 열광하

됐다. 이런 상황에서 1906년 대풍작까지

양의 군인들에게 커피를 배급하는 것은

기까지는 반세기도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

겹치자, 브라질은 커피를 증기기관차의 땔

19세기 초 나폴레옹 1세 때부터 시작된 것

에선 귀족들이 커피 찌꺼기가 치아에 끼지

감으로 사용하는 지경이 됐다. 그러나 커

으로 전해진다.

않도록 인퓨전 추출방식까지 고안해내며

피의 과잉공급은 인스턴트커피(Instant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남은 인스턴트커

커피를 즐겼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선 카

coffee)의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커피음용

피를 지니고 고향으로 흩어진 군인들 덕분

페에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면서 ‘급행료

문화에 새장을 열게 되고, 아시아 커피산

에 세계 곳곳에서 거세게 인스턴트커피의

(tip) 문화’를 만들어냈다.

지도 상업용 로부스타 커피 재배를 통해

붐이 일게 된다. 어렵게 식민지에서 독립

당시 향신료와 설탕 가격의 거품이 빠

거대한 판로를 확보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한 아시아 국가들에게 인스턴트커피용 생

져 새로운 대박거리(?)를 찾고 있던 영국,

인스턴트커피의 세계적 확산에는 제2

두 재배는 경제자립의 희망이 됐다. 베트


033

magazine N | 201601

우간다 2.6%, 과테말라 2.4% 순이다.

대중화되기 시작한지 한세기도 안돼 아시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전 세계 물량

아 커피는 전세계 생산량 중 30% 이상을

의 90%이상을 차지하며 독주하던 브라

차지할 정도로 발전했다. 또한 사향고양

질·콜롬비아 등 남미를 아시아 국가들이

이를 통해 제조되는 루왁 커피 등 아시아

견제하며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의 방식을 녹여낸 상품을 개발해 냈다. 이

베트남·인도네시아·인도 등 아시아 3국

는 아시아가 다른 문명의 문화를 소화해

이 세계 커피생산량의 30%를 담당하고 있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고, 독창적인 문화

다. 아시아만 살펴보면 베트남 60.2%, 인

와 어우러질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

도네시아 22.7%, 인도 12.1%, 파푸아뉴기

출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니 1.8%, 라오스 1.1%, 태국 1.1%, 필리핀

볼 수 있다.

0.4%, 예멘 0.4% 등의 순으로 많다.

이는 커피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

원유(18억9000만 톤) 다음으로 전 세

필자는 믿는다. 커피처럼 또다른 외부의

계 화물물동량이 많은 것이 커피(700만

무언가도 아시아에 들어와 발전할 수 있지

톤)인데, 커피시장 규모가 약 2조3000억

않겠는가? 그 옛날 서방이 오리엔탈 문명

달러(약2661조원)에 달한다. 이 중 30%인

을 가져다 스스로의 입맛에 맞게 각색, 발

798조원이 아시아 국가들의 부로 쌓인다.

전시켰듯이 말이다.

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인도가 상대적으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커피소비가 한

로 재배하기 쉽고 생산력도 좋은 로부스

계점에 달한 것이 아니냐는 회의론이 나

타 종을 주력 품종으로 택하면서 아시아

오기도 했지만, 차 문화가 지배하던 중국

세계화라는 기치 아래 서구와 아시아

는 인스턴트커피 원료를 공급하는 허브가

과 인도가 신흥 커피소비국으로 부상하면

의 인적, 문화적 교류가 활발한 작금이다.

됐다. 서구 열강이 식민지 루트를 따라 전

서 커피생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

과연 아시아는 서구의 문명을 아시아의 시

했던 품종은 향미가 좋은 아라비카 종이

다. 여기에 유럽과 미국의 선진국을 중심

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켜나갈 준비가 되

었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세계 시장의 트

으로 품질이 좋은 스페셜티커피(Specialty

어있는가? 필자는 커피전문가이자 기자로

렌드를 주시하면서 재빠르게 품종을 바꿔

coffee)의 소비가 ‘제3의 물결’에 비유될

서 아시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자립의 꿈을 키워온 것이다.

만큼 급증하고 있다. 이를 겨냥해 로부스

식 커피 문화를 전세계와 향유하기 위해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70년간 세

타 커피대국인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네시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시아의 언론도 아

계 커피지도가 바뀌었다. 국제커피협회

아, 인도 등은 아라비카 커피의 재배 비율

시아에 녹아든 ‘서구의 무언가’를 전세계에

(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가

을 높이고 있다. 아시아 커피의 고급화 바

알리고, 우리 식으로 소화시킬 수 있다는

집계한 결과, 2014년 커피생산량은 14만

람과 함께 중국과 인도가 깨어나 커피소비

문화적 포용성과 역량을 과연 세계에 드

3253백(1bag=60kg)에 달했다. 이 가운

의 블랙홀로 작동하면서 커피는 거대한 이

러낼 수 있겠는가?

데 59.3%가 고도가 높은 지역에서 재배되

권이 걸린 ‘하나의 권력’이 되는 모습이다.

남미와 아프리카의 커피재배자들에

는 향미 좋은 아라비카(8만4999백)였고,

즉 아시아 커피생산국가들이 커피를 통해

비해 근면하고 탐구력 또한 뛰어난 아시아

나머지가 인스턴트커피 제조에 쓰이는 로

경제, 문화적 부흥을 이끌 수 있는 호기를

인의 저력이 2600조원이 걸린 커피 전쟁

부스타였다. 대륙별 비중은 브라질과 콜

잡은 셈이다.

에서 헤게모니를 쥐게 하고 있다는 평가가

‘한국식 커피문화’ 세계화 절실

롬비아가 포함된 남아메리카 44%, 아시

일본의 스시, 중국의 면요리, 인도의

나오고 있다. 서구 열강이 자신들의 주머

아 31.9%, 멕시코·중앙아메리카 12.6%,

커리 등은 아시아 고유의 문화를 전세계

니를 채우기 위해 아시아에 심었던 커피가

아프리카 11.6% 순이다. 10대 커피생산국

에 널리 알린 사례들이다. 그러나 커피는

70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고

은 브라질 31.7%, 베트남 19.2%, 콜롬비아

이와 반대로 2차대전 직후 인스턴트 커피

통 속에 피운 꽃이 됐다. 아시아 커피는 아

9.3%, 인도네시아 7.2%, 에티오피아 4.6%,

가 서구를 통해 아시아에 들어오면서 대

시아의 문화적 포용성과 역량, 그리고 경

인도 3.9%, 온두라스 3.8%, 멕시코 2.7%,

중화된 측면이 있다. 커피가 본격적으로

제적 가능성을 보여준 ‘한 떨기 꽃’이다.


Special Report

034

magazine N | 201601

전후 ‘급진 아랍민족주의’ IS 등 중동문제 유발 ‘올바른 교육’의 부재, 중동 민주화 걸림돌

Summary

WWII effects on the world map When you look at a world map, a number of countries’ borders were reorganized after the World War II. After the war ended in 1945, a new era began as many countries achieved independence. In spite of that, it is true that the regions like Middle East, Africa and the Balkan states are still in chaos. Turkey, the first country which accepted democracy in the region, was a newly independent republic in 1923. Initially, some people insisted on reviving the monarchy system of the Ottoman Empire, which had been in control before but the government suppressed them in the name of protecting the republic system. These serial habits had prohibited Turkey from moving to the next level, a multiparty system. By the end of the War, the Soviet realized Turkey’s geopolitical importance and threatened Turkey claiming that its northeast region belongs to the Soviet. Since Turkey allied with the U.S., the government adopted the multi-party system as it is requited by the U.S. It led to the birth of Democrat Party which de-seated the Republican People's Party during the national elections of 1950, ending Turkey’s one party era. However, as DP gained victory two times more, it had started to repress the journalism and the public. Pass through three military coups and now Justice and Development Party (AKP) has held majority of the seats for 13 years, but the suppression of press is still going on. Why can democracy not be completely settled in Turkey? The main reason is the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idea of democracy, as the public’s familiarity with the concept is crucial. Yet, only few Turkish know and understand what democracy stands for. The reason why the Middle Eastern countries like Saudi Arabia and Jordan are not modernized yet is because of the colonization, and religious conflicts. Also, like in Turkey, lack of education is another problem. Furthermore, most of the Middle Eastern countries were liberated with the international influences, not with their own will. I think the Islamic State (IS) would not exist in Iraq if it had followed democratic system from the beginning, like Korea.

알파고 시나씨 (Alpago inasi) 터키 지한통신사 한국특파원

Alpago Sinasi Correspondent at Chihan | Summary by Kim A-ram Staff Reporter

세계 지도의 유럽, 아시아 및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

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에 필자는 각 지역별로 몇 개

분은 2차 대전 이후 그려진 것이다. 독일의 폴란드

국가들을 선정해 이 같은 문제의 배경과 주된 원인

침공으로 발발한 세계 2차 대전이 1945년에 끝나면

을 서술하고자 한다.

서 신세계 질서가 나타났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

터키는 발칸반도를 포함해 중동과 아프리카에

자마자 걷고 말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하듯

서 제일 먼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으며, 1923년

이, 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일어나고

공화국으로서 역사 무대에 등장했다. 초기에는 과

있는 인류 공동의 문제들은 시간의 부족 탓인지 아

거의 술탄 제도를 원하는 국민이 있었는데, 당시 터

직도 해결되지 못한 상황이다. 이 지역은 민주주의,

키 정부가 공화국 체제 보호를 목적으로 대중들을

언론 자유, 민족 혹은 종교 갈등의 늪에서 아직 벗

억압하는 과정에서 비민주적인 방법이 동원되기도


035

magazine N | 201601

했다. 이렇듯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

게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래

상으로 생각했다. 이들은 서양에 맞서 지

지 못하다 보니, 터키는 다당제로 넘어가

서 1971년, 1980년, 1997년 등 수차례에

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슬람

지 못했다. 1923년부터 단일정당제를 고

걸쳐 쿠데타가 발생했다. 지금도 2002년

이 종교 차원을 뛰어넘어 하나의 사상 혹

수해온 터키는 2차대전 발발로 다당제를

에 정권을 잡은 AKP가 13년 장기 집권 하

은 이념으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채택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치고 말았다.

고 있는데, 최근 정부 비리 수사보단 오히

서 종교를 둘러싸고 잘못된 설명이나 해석

2차대전의 승전국 소련은 다시금 연

려 언론을 탄압하고 있다. 필자가 볼 때 터

들이 나타나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여기에

안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에

키에서 아직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급진 아랍 민족주의가 나타난 것이 오늘

남하정책을 감행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못하는 주된 원인은 ‘민주주의 교육’의 부

날 중동 문제의 시발점이 됐다.

터키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나토까지 가

재라고 생각한다. 터키 국민은 아직도 민

여기서 제일 큰 문제는 터키 사례와 유

입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터키의 민주

주주의의 의미와 국민의 권리를 제대로 알

사한 ‘올바른 교육의 부재’다. 중동 지역에

화를 요구했다. 이에 터키정부는 어쩔 수

지 못한다. 실제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선 아직도 현대 교육이 확산되지 못한 상

없이 다당제를 받아들였으며, 집권당에서

나라임을 떠나서, 국민들이 얼마나 민주

황이다. 터키와 달리 중동의 잘못 끼워진

무시당했던 유력 정치인들이 탈당해 민주

주의에 대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

첫 단추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포함해 대

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은 1950년대 총선

는지의 여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부분 중동 국가들의 독립이 자력이 아닌

중동 국가들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닌 국제 정치의 흐름에 의존했다는 사실

그렇다면 터키는 현재 완전한 민주주

예전에 오스만 제국 밑에 있었던 오늘날

이다. 때문에 2차대전 이후 중동에서 수립

의를 이룩한 것일까? 1950년대 정권을 잡

중동 국가들이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 정

된 정권들이 그 나라 국민들에 정당성을

은 민주당이 이후 두 차례 선거에서 압승

책으로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다. 요

지녔다고 보긴 힘들다.

을 거두면서, 과거 공화당처럼 언론을 탄

르단, 사우디 등은 영국이 주도한 아랍 민

이라크를 예로 들어보자. 1920년대 오

압하기 시작하며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족주의 바람의 영향을 받아 반란을 일으

스만 제국에서 분리된 땅에 ‘이라크’라는

결국 1960년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 2

키고 오스만 제국에서 분리되었지만, 몇

이름을 붙인 영국은, 애초 이 지역을 식민

년간 정권을 잡고 있던 군부가 민정이양을

십 년 동안 서구의 신탁 통치를 받았다. 2

지처럼 통치하려고 하다가 지역민들의 반

하고 정계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민주주의

차대전까지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은 이

대에 부딪혔다. 이에 당시 메카에 있는 왕

실현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지역은 현대화를 이루지 못했다.

의 아들을 이라크 왕으로 즉위시키고, 오

에서 정권 교체를 이뤘다.

당시 군부 입장에서는 정부가 정치를

이 지역의 국민들은 서구 군대가 중동

늘날의 이라크가 탄생했다. 약 20년 동

잘 못하면, 쿠데타를 일으켜 정신을 차리

까지 나와 있다는 것을 하나의 십자군 현

안 입헌군주제로 통치된 이라크에서 왕의 AP

정당성과 영향력은 미미했고, 1958년 쿠 데타를 통해 공화국으로 변모했다. 그러 나 공화국을 선포했다고 해서 하루 아침 에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1968년 한 차례 쿠데타가 더 일어나고 아 랍 사회주의 부흥을 지향하는 바트당이 정권을 잡았다. 이후 아랍 민족주의가 급 부상하면서 시아파와 쿠르드족이 중앙 정 부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만약 이라크가 한국처럼 내부의 원동 력으로 독립운동을 하고 민주화를 이룩했 다면, 지금처럼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 이

지난 2015년 12월, 터키 앙카라 시내에서 복면을 쓴 쿠르드족이 경찰을 향해 최루탄을 던지고 있다. 터키는 에르도안 대 통령 집권 이후 소수민족 쿠르드족과 언론 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슬람국가(IS)가 판치는 나라가 되지는 않 았을 것이다.


036

Special Report

magazine N | 201601

The Glacial Tragedy The Water Tower of Asia Summary

아시아의 빙하가 녹는다…2050년 기후난민 2억5천만 누가 책임지나 마하트마 간디는 생전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은 모든 이들에게 부족함이 없지만, 한 사람의 탐욕을 충족시키기엔 한없이 부 족하다.” 때문에 사람들이 ‘필요한 것’과 ‘탐욕’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이치를 인류는 그동 안 외면해왔다.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한계에 다다랐고, 자연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 종전된 이래 70년이 되는 해이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전지구적 ‘기후변화’다. 이미 경고등은 켜졌다. 지난 1천년 가운데 최근 50년은 지구가 가장 뜨거운 시기 였다.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힌두 쿠시 대산맥과 티베트 고원을 아우르는 히말라야 전체 산맥은 그 길이만 4천3백만km가 넘으며, 아프가니스탄, 부탄, 주국, 인도, 미얀마, 네팔, 파키스탄 등 아시아 각국에 걸쳐져 있다. 이곳은 극지방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눈과 얼음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총 길이 2천4백km에 이르는 히말라야 산맥에는 전세계에서 가 장 깨끗한 물의 70%를 보유한 빙하 1만8천개가 존재한다. 그러나 빙하 가운데 67% 가량이 지구온도상승으로 사라져가고 있 다. 연구에 따르면 이 빙하들은 향후 40년이내 지구온난화로 인해 모두 소멸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빙하들 이 아시아의 인더스강, 양쯔강, 황하강, 갠지스강, 메콩강 물줄기의 원천이라는 점이다. 인도 갠지스강과 중국 양쯔강은 5억5 천만명을 먹여 살리고 있으며, 히말라야 산맥 곳곳에 자리한 강 유역에는 1억3천만명이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 온도가 조금이라도 상승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 가운데서도 방글라데시의 경우는 기후변화에 특히 취약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향후 50년내 해수면이 1미터 상승했 을 때 방글라데시 해안지대 3분의1 가량이 물에 잠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곳에 거주하는 2천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셈 이다. 방글라데시가 코 앞으로 다가온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제방시설, 피난처, 도로 및 인프라 시설을 갖추려면 40억달 러(4조644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전세계 기후변화로 삶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는 ‘기후난민’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세계적인 환경학자 노먼 마이어 스는 향후 2050년 기후난민은 2억5천만명 수준에 이를 것이라 내다봤다. 이들 대부분은 거처를 옮겨 다니며 ‘언젠가 고향으 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고 있다. 이제 질문은 몇 가지로 귀결된다. 누가 이 엄청난 재앙을 막기 위해 나설 것인가? 전세계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별다른 갈등 없이 해결할 수 있을까? 곧 닥칠 기 후난민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Pramod Mathur CEO of SPOTFILMS

프라모드 마터 인도 SPOT FIME CEO·번역 김아람 기자

It is important for the human race to understand

resources. There are now seven billion people

the difference between the “need” and “one

on the planet, compared to just three billion half-

person’s greed”. Need is self-limiting and knows

century ago.

its boundaries; greed creates more greed and

The Industrial Revolution in the 19th

ultimately, cascades beyond all control. Human

century saw the large-scale use of fossil fuels.

race has refused to accept this simple fact and

Industries created jobs. Rural urban migration

is set out to cause misery for itself. The world

took place for a better life. This migration is

is already hitting global limits in its use of

continuing even today in most less developed


037

magazine N | 201601

AP

and in community forests across the land.” He further wrote, “India is also experiencing the impact of climate change caused by the industrial age of the developed world. We are concerned about our 7,500 km. of coastline, more than 1,300 islands, the glaciers that sustain our civilisation and our millions of vulnerable farmers”. Some of the most crucial topics of discussions and agreements that could come out of this are centred on implementing new policies, with the end-goal of limiting rising global

Climate activists demonstrate in Paris, Saturday, Dec.12, 2015 during the COP21, the United Nations Climate Change Conference.

temperatures to within 2°C. The ultimate goal of COP21 was to create

and developing nations. Deforestation

wind force, causing more damage to

an atmosphere of collectivism and

for new habitations also continues in

coastal ecosystems and communities.

tackle the crisis of climate change from

these countries. Natural resources are

With the increase in temperature,

a globally united perspective — and to

being used extensively for construction,

droughts have already become longer,

spread awareness and explore solutions.

industries, transport and consumption.

more frequent and more severe. In spite

Three years back, an anchor on

Consumerism has increased. Also,

of scientific intervention, agriculture

ABC News in America, was sharing

our population has increased to an

output has not risen in Asia and Africa

the information about global warming

incredible extent.

as expected.

with his audience. He said, “Global

Since the end of World War II in

Meeting 150 world leaders at

warming is really happening… for

1945, much has changed in our world.

COP 21 in Paris last month, in a blunt

the doubters, 332 straight months of

The most visible change that human

warning to rich nations, Indian

above average temperatures is not

race has experienced since then has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told

proof enough…” To back up his claim,

been in the climate of the earth that has

developed countries, which powered

he played a film about the receding

changed to our detriment.

their way to prosperity on fossil fuels

glaciers… The commentary of the film

Summer months are longer and

that it would be “morally wrong” if they

went like this, “since 1979 half of the

hotter in the southern hemisphere.

shift the burden of reducing emissions

arctic sea ice has disappeared…”

Unseasonal rain destroy agriculture

on developing countries like India.

Alarm bells are already ringing

f ields. Seasons are sh ift i ng,

In response to an article in UK's

around the world. Last 50 years have

temperatures are rising and sea levels

leading financial daily, the Financial

been the warmest in 1000 years. Closer

are rising due to glacial melt. According

Times, Modi wrote, “The instinct of our

home in Asia, matters are as serious if

to scientific research, this change will

culture is to take a sustainable path to

not more.

cause hurricanes and tropical storms

development...This idea, rooted in our

The Himalayan region,

to become more intense with stronger

ancient texts, endures in sacred groves

encompassi ng t he Hi ndu Kush


038

magazine N | 201601

This is the picture of the Himalayas. Among total glaciers here, 68 percent has been disappeared due to climate change.

mountains and the Tibetan Plateau,

increased the volume of water in the

to seek sanctuary elsewhere, however

spans an area of more than 4.3 million

rivers, causing flooding. These glaciers

hazardous the attempt. Not all of

square kilometres spread across

feed seven great rivers of Asia…Indus,

them have fled their countries, many

Afghanistan, Bhutan, China, India,

Yangtze, Yellow, Ganga, Mekong and

being internally displaced. But all have

Myanmar, Nepal, and Pakistan. The

Huang He. Yangtze and Ganga alone

abandoned their homelands on a semi-

region stores more snow and ice than

support over 550 million people of the

permanent if not permanent basis, with

anywhere else in the world outside

world. The entire Himalayan river

little hope of a foreseeable return.

the two poles. 2,400 kilometres long

basins are home to about 1.3 billion

Himalayan mountain range has over

people and supply water, food and

18,000 glaciers, of which 67% have been

energy to more than 3 billion people.

A s f a r b a c k a s 19 9 5, t h e s e

receding due to rising temperature of

Crossing the 2 degrees ceiling is truly

environmental refugees totalled at least

the earth. This is the largest volume

dangerous for the human race.

25 million people, compared with 27

Climate refugee crisis

of ice found outside the polar region.

There is a new phenomenon in

million traditional refugees (people

70% of world’s fresh water is frozen in

the global arena: Environmental

fleeing political oppression, religious

these glaciers. No wonder it is called as

refugees. These are people who can no

persecution and ethnic troubles). British

“Water Tower of Asia”. These glaciers

longer gain a secure livelihood in their

environmentalist, Norman Myers,

may vanish in 40 years as a result of

homelands because of drought, soil

more recently, has suggested that the

global warming as per some studies.

erosion, desertification, deforestation

figure of environment refugees by 2050 might be as high as 250 million.

Gangotri glacier that feeds river

and other environmental problems,

Ganga has receded over 20 meters in

together with associated problems of

The environmental refugees total

ten years. Khumbu glacier in Nepal

population pressures and profound

may well have doubled between 1995

has receded over 5 kilometres since

poverty. In their desperation, these

and 2010. Moreover, it could increase

1953. This rapid melting of glaciers has

people feel they have no alternative but

steadily for a good while thereafter, as


039

magazine N | 201601

growing numbers of impoverished

The world has never faced such

of climate refugees in a country of 160

people press ever harder on over-

a predictably massive threat to food

million people crammed into an area of

loaded environments causing other

production as that posed by the melting

147,610 square kilometres. Bangladesh

compounded urban crises. When

mountain glaciers of Asia. China and

needs much more than over $4 billion

global warming takes hold, there

India are the world's leading producers

to build embankments, cyclone shelters,

could be as many as 200 million people

of both wheat and rice - humanity’s food

roads and other infrastructure in the

overtaken by disruptions of monsoon

staples. China’s wheat harvest is nearly

next few decades to mitigate the threats.

systems and other rainfall regimes, by

double that of the United States, which

The President of Maldives has

droughts of unprecedented severity

ranks third after India. With rice, India

already announced collection of a

and duration, and by sea-level rise and

and China together account for over

sovereign fund to buy land to shift his

coastal flooding.

half of the world harvest. Europe must

country and the population to India, Sri Lanka or Australia.

Mountain glaciers in the Himalayas

prepare for increased competition over

and on the Tibet-Qinghai Plateau could

dwindling resources, waves of climate

soon deprive the major rivers of India

change refugees and energy wars.

The question now is, who is going to pay to ward off this catastrophe?

and China of the ice melt needed to

Experts say, a third of Bangladesh’s

In other words, what it means

sustain them during the dry season.

coastline could be flooded if the sea rises

is that, can we resolve the issue of

In the Ganges, the Yellow, and the

one meter in the next 50 years, creating

GHG emissions today at a much

Yangtze River basins, where irrigated

an additional 20 million Bangladeshis

lower cost and resolve the impending

agriculture depends heavily on rivers,

displaced from their homes and farms.

environmental refugee issues now.

this loss of dry-season flow will further

This is about the same as Australia’s

By reducing emissions today, the

shrink harvests.

population. It is unclear how the

west is sure to save a huge amount of

government could feed, house or find

crisis mitigation funds that would be

enough clean water for vast numbers

required in the year 2050.

12-year-old Moly, whose family lost their home to the river, helps tend to her family's poultry in the island district of Bhola, where the Meghna River spills into the Bay of Bengal, Bangla

AP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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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Investigating Journalist Cultural Envelope in Indonesia Summary

‘인니’ 부정부패 근절 위한 언론역할 5가지 인도네시아에선 기자를 사회 곳곳의 빛을 밝히는 매우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인 듯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기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언론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족쇄처럼 따라붙 기도 하고, 저널리즘의 ‘이상’을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이란 기자가 단순한 정보전 달자가 아닌 사회, 정치, 경제적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부작용이란 무엇일까? 기자를 대단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사익으로 삼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미 인도네시아 언론에서 ‘뒷돈’은 공공연한 일이다.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대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보통 기업공개(IPO)를 앞두거나, 대 규모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기업들은 각 언론사에 5천만루피아(약450만원) 상당의 돈을 건넨다. 심지어 정부마저 언론과 뒷 거래를 하다 보니, ‘정보전달자’가 돼야 할 기자가 ‘돈의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때문에 기업이나 기관들도 기자가 먼저 접근해올 경우 ‘무언가를 요구할까’하는 생각부터 할 지경에 이르렀다. 과거와 달리 현 재 인도네시아에서 기자는 ‘이상’보다는 ‘돈’을 좇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이렇게 악화된 데에는 낮은 봉급도 한 몫 한다. 인도네시아 기자의 월급은 이웃국가 태국에 비해 4분의1 수준이며, 필리핀의 3분의1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는 변명에 불 과하다. 올바른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정부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언론의 ‘뒷돈 문화’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언론은 정 부는 물론 사회의 감시자 역할을 수행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필자는 이에 인도네시아의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언론의 역할 5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정부 예산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 도록 꾸준히 경제지식을 쌓아야 한다. 둘째, 취재할 정부단체 관련 법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셋째, 정부 문서를 살펴 볼 때,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조사해야 한다. 넷째, 정부 문서의 진위여부 혹은 신뢰할 만한 출처에서 나왔는지 등을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부정부패가 적발될 경우 국민들에 이를 알리고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여론이 형성될 때까지 끝까지 파헤쳐 보도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언론의 역할이 잘 이루어진다고 해서, 단숨에 정부의 부정부패가 근절되는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 히 민주주의가 자리잡지 못한 아시아에선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모여 기적을 이루고, 더 나은 아시아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

Eddy Suprapto Deputy director at RCTI TV

에디 수프랍토즈 인도네시아 RCTI TV 부국장·번역 김아람 기자

Imagine! There was a reporter from El

the pen and ink were no longer able to free

Espectador, a Columbian newspaper, being

the people suffering from oppression, he then

interrogated by the military. He was not taken

decided to take the radical steps. According to

because of his writing but was arrested for

Gabriel Garcia Marquez, “It is impossible for

smuggling the weapon for the left arms group.

a journalist working without social sensitivity

This is seemingly impossible to happen in

from his society he lives in. Journalist and

Indonesia. But for the former Bogota University

society have an insoluble link that cannot be

Columbia journalist, this was the logic of his

parted in forming the common consciousness.

frustration over the authoritarian regime. When

Knowledge will be no direction if it is no


041

magazine N | 201601

connection to progressive means. It will also be blind if it is not enlightened by progressive theory”. It was not suppressing for this Noble Prize winner to expose the human rights abuses by the military regime in Columbia but also encourage for open physical

Xinhua

that his critical writing aimed not only

Journalists work at the media center of the 21th Asia 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Smmit in Bali, Indonesia, Oct. 7, 2013

profession creates myths among the

idealism to lift up their head each time

Indeed Gabriel Garcia Marquez

society that they can be considered

they enter a public space such as the

has a different style compared to

a bright star providing the light on

House of Representative Building,

Indonesian journalists. But it doesn’t

the road of marginal society. Some

Municipal, Jakarta Trading Centre

mean that Indonesian journalists have

also conservatively believe that this

and Banks for they can be seen as the

no practical experiences as Garcia

profession is the noblest on earth. Such

economic predators.

Marquez’s. The example can be found

beliefs, sometimes, become a prison for

It is now common practice for

in the bitter time during the New Order

a journalist and even wrap ‘idealism’

Indonesian journalists receiving

experienced by the AJI’s founding

in an unusual way. Then the idealism

envelope each time they cover news

members. Some had been through the

in a journalist’s work turns to become

on the field. In fact, some expect to

trouble of dismissal from their work,

the destructor of the diaphragmatic that

receive it each time they are present in

intimidated and even hunted by the

separates the function and the myth

the location. According to Solahudin,

military because of their profession. In

within the society. Here the journalists

the AJI’s General Secretary as he

an oppressed society and the unstable

can take advantage over the noble myth

quoted Sofyan Lubis, the Director of

system, the journalist can become a

and pursue their personal interest.

Indonesian Journalist Association

vanguard for the change. Their task

Subsequently the journalists and media

(PWI), “Envelope is legal as long as

cannot be separated from society’s

begin the put aside the social sensitivity

both parties are happy to have such

dreams and idealism over the better

and replace it with exploitation. They

arrangements”. In his reportage,

change. This could also mean that they

have abandoned idealism to become

Solahudin depicted that the envelope

do not only firmly stand as the informer

servants of self-interest and are unable

practices are about money hunt by

but also as a participator in finding the

to answer the public space problems of

journalists without publication. They

solution in the social, economic and

today. Instead, they become the cause

meet in groups around ten to twenty

political confusion. Such idealism had

of the conflicts itself. The fact is indeed

in a hotel in Jakarta and move together

been shown by Mr. Fuad Mohammad

sad.

to approach the committee members

struggle.

Safrudin, who was murdered when he

or coordinator events to hand the list

revealed justice and truth through his

Modus Operandi of Idealism and

of journalists’ names. Then the money

writing. Here is the best example of the

Corruption

easily flows. Their prey is the House

idealism within journalism that is also

Along with moving away from

of Representative – the members of

difficult to find in the everyday life of an

idealism, the previous pride for

which are crazy over popularity, the

Indonesian journalist today.

being a journalist has become an

State owned enterprise BUMN’s public

M a ny b o o k s b e i n g w r it t e n

embarrassment. As it is difficult for

relation and even some NGOs.

about the journalist ’s historical

some journalists who still keep their

The development of such practices


042

magazine N | 201601

become sophisticated and are also

actual facts of an Indonesian journalist’s

the partner. Their work then becomes

adopted by some journalists who

life.

biased. Here independence is being sacrificed.

work under formal institutions. In

Consequently, there are also

every Initial Public Offering (IPO) or

g r ow i ng d i f f ic u lt ie s for s ome

Once the Indonesian Attorney-

special investment bit conducted by

journalists to approach the person or

General openly said to one of the AJI’s

some companies in the Jakarta Trading

institutions which can become the

Committee Member related to the

Centre, each press release sent is always

source of information. They seemingly

envelope culture practiced by one of

attached with the Rp 500.000.00 (five

distance themselves from journalists

the Jakarta electronic reporter, “That

hundred thousand rupiah). One can

because of the fear that they could be

television journalist is refusing an

imagine if in one single day, two IPOs

the journalist’s prey.

envelope, but he wants the money

are conducted, it means the envelope

The existing envelope journalist is

send to his account number”. This is

journalist will earn Rp.1.000.000.00

indeed intimidating but the apology

a minister’s comment pointing the

(one million rupiah). Furthermore

being made is that it is related to the

finger to a corruption practice. This

there is additional compensation

poor salary they receive. In comparison

explains that the envelope journalist is

provided by other department such as

to Thailand, an Indonesian journalist

indeed losing the bargaining power by

the Mining Department, Commerce,

only receives a quarter and one

sacrificing his/her independency. One

Financial, Pertamina and others. These

third from their counterpart in the

can imagine, how could a journalist

institutions were under the State Own

Philippines. The salary for the junior

in such a position successfully cover

Enterprise and the money distributed

reporter in Jakarta is only Rp.1.000.000,

corruption issues?

by the Public Relation Department

00 (one million Rupiah) and the local

which is included within the State

area outside Jakarta range between

Annual Budget. This reveals that all

Rp.150.000, 00 to Rp.250.000, 00 (one

Journalists have the most strategic

Indonesians carry the financial burden

hu ndred f ift y t housa nd to t wo

position in the society. The information

for a journalist’s notorious habits.

hundred fifty thousand rupiah). This

is a vital instrument to build a better

explains that the poor welfare amongst

has led the profession from being an

the Indonesian journalists has led to the

information provider’s to become

growing desire for envelope culture.

a financial parasite. The journalists

Now there is strong indication

who are placed on the House of

that the profession of a journalist is

Representative and other political

money oriented rather than idealism.

institution will become the political

Journalism is a profession that is

book makers. The winning bit of

no different than other ordinary

Governor through local election, the

jobs. People who choose to become

fight over highest political position in

journalists are no longer motivated by

some political parties can be invented

idealism but merely financial profit.

by the work of journalist. It is no longer a

(See “Dream to Live Properly”, AJI

surprise that the journalist interference

Annual Report 2001, page 35)

can be found everywhere. Now the

Another negative aspect of this

practices of illegal gambling to legal

phenomenon is making a journalist the

capital bit are no different. These are the

mouth-piece of the certain source rather

Local students participate in an anti-corruption campaign in Jakarta, Indonesia. A protester dressed in folk costumes attends the rally to commemorate International Anti-Corruption Day in Jakarta, capital of Indonesia.

Xinhua

The growing envelope culture

W hat needs to be done by Indonesian Journalists?


043

magazine N | 201601

or other methods.

society and a journalist is obliged

1. They should be equipped with

to monitor the state. For example,

the knowledge of micro economics that

4. Thoroughly double examine the

by exposing the state’s financial

could enable them to read the financial

authenticity of the documents involved

mismanagement, a journalist combats

book-keeping. So that it is easy to

or other information. For example,

corruption. The society has rights

understand the system applied in the

when the journalist receiving the copy

to receive the correct information

State Budget in both level the national

of the check being transferred by Mr.

concerning the cause of financial crisis

and the local one.

X to the member of the House. Such

and state deviation. One of the reasons

2. Collecting the complete data

a document must be confirmed and

the state financial trouble occurs is

related to the law and rules involving

double examined to the competent

because the corruption has been widely

the high state apparatus’ rights and

source.

spread. Journalists have a right to

authorities that going to be investigated.

5. Publish continually the final

explain to the public about corruption

The journalist should also know

result of the research regarding the

and why, how and when it needs to be

whether the person in power has

inappropriate use of the state financial

eliminated. Without journalists’ serious

successfully met the target of his/

until the public opinion being formed.

motivation to fight corruption, any

her duties - in particular, related to

Total investigation should be done

agenda to destroy corruption, collusion

the financial approved in the budget.

until all the roots of the problems are

and nepotism is doubted.

This is important for avoiding the

revealed clearly. Then making people

Therefore, in order to achieve the

unnecessary collision which could be

aware that such a case could ruin the

highest goal of democratic society, the

fatal and end up being sued by the one

state financial system and threat the

journalist should be able to function as

who is being investigated.

society as the whole.

3. The ability to examine the open

Above mentioned conditions are

documents and even the classified one

obviously not a kind of miracles that

In the frame works regarding

without breaking the code ethics. For

can cure corruption in Indonesia.

the investigation job for the issue of

example to conduct research about the

However, t hey could become a

corruption, there should be several

state financial reports audited by the

journalist’s contribution in laying

conditions for journalists:

professional public account via website

a st rong fou ndat ion to bu i ld a

the vacuum cleaner against the misuse of power and corruption.

better society. Because the political Xinhua

reformation without support from the watchdogs of the state financial system can be compared to an effort building a great castle on the sand. Overall, the limitation of being a journalist, we often think to ourselves: Is it realistic to put the burden of cleaning up the corruption on the shoulder of a journalist? It is difficult to answer. Nevertheless, if we look back into our history on the rise of the nation, we realize that a journalist is the vanguard of the societ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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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박사과정·세계시민학교 병행, 고달픈만큼 보람도 커” 한비야 구호전문가

2015년 11월20일 ‘아시아엔 4주 년 후원의밤 기념행사’에 참석한 한비야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Summary

“The world is for challengers” Han Bi-ya, Daughter of the Wind Han Bi-ya, known as the ‘Daughter of Wind’ in Korea, plays diverse roles - from the president of the ‘School of Global Citizenship’ organized by the Word Vision to a university lecturer and an international emergency relief expert of the World Vision. On November 20, she attended the 4th anniversary celebration of The AsiaN, an online news outlet under the auspices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and introduced me as ‘my lifelong comrade’. A few days later, I spoke to her via phone, and paid attention to what she said deeply. Subconsciously, I was taking notes of what she was saying and recorded her voice. This was how the interview with 'my lifelong comrade' began. Han Bi-ya is doing her Ph.D in ‘Relations of International Relief and Development Cooperation’. Regarding recent climate change, she said, “The frequency of natural disasters would be more often than now due to climate change. It would be important to prevent disasters and reduce the scale of damage. The field study should become a precedence. Only then, this would be able to go to the next step of making policies. Policies can make relief work more systematic. This is what I am studying.” She said that she has two aims for 2016. One is to finish her Ph.D degree, and to learn national plans of the UN and all countries for making policies for preventing disasters. Another one is to focus on the School of Global Citizenship. The number of students has reached to 500, 000, although it started with 50 students in 2007. She develops textbooks and trains 800 lecturers. This school’s aim is to help students accept world citizenship. She finished the interview by saying, “The world is for challengers. No one knows how much we can achieve. Even when it comes to a bumpy road, if you walk step by step, you would be able to reach the peak of the mountain. People cannot control their own life. However, if you look back on your life, all the things you have achieved were possible because of your small steps. I believe that even one step forward can allow you to expand the possibilities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and limits.”

Lee Sang-ki | Summary by Choi Jung-ah Staff Reporter


045

magazine N | 201601

세계적인 구호전문가이자 ‘바람의 딸’로 불리는 한

그러니까 병원으로 치면 응급수술보다 예방접종

비야씨는 요즘 박사과정 공부와 세계시민학교 교

을 잘 하는 게 훨씬 나은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그

장 그리고 대학 강의로 여전히 1인 다역(多役)을 하

걸 연구하고 있는 거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15년을

고 있다. 지난 11월20일 <매거진 N> 온라인판 자매

일했는데 지나서 보니 그것도 중요하지만 설거지만

지인 <아시아엔> 창간 4돌 기념행사에서 기자를 ‘평

하는 느낌이다.”

동’(평생동지)이라고 소개했다. 기자는 2011년 6월

비유가 조금 심하지만 아주 적절한 것 같다.

베이징대에서 연수중이던 그와 3박4일 동안 아홉

“지금의 자연재해가 기후변화 때문에 잦아질

끼 식사를 나누며 동행한 적이 있다. 그때 뜻이 맞

텐데, 재난대비와 피해규모 축소가 굉장히 중요하

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앞으로 평생을 동지로 지

다. 먼저 현장에 대한 연구가 되어야 정책으로 갈

내자”며 ‘평동’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수 있다. 정책으로 돼야 훨씬 체계적으로 구호를 할

창간기념 행사 며칠 뒤 그가 아시아엔 후원금

수 있다. 지금 하는 공부가 그걸 배우는 것이다.”

을 보내왔다. 기자가 전화를 걸어 “세계시민학교 하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 역할은 계속 하고 있나?

기도 벅차고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무슨 여유가 있

“3년 임기인데 2014년에 끝났다. 그러니까 박사

다고 후원을 다….”라고 했더니 “없는 사람끼리 도

과정 공부가 가능하지.” (그는 1986년 늦깎이로 홍

와야 진짜 돕는 거고 좋은 일이 이뤄지는 것 아니

익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유타대학

냐?”며 예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한마

대학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제구

디 한마디에 빠져든 기자는 메모를 하다가 이내 녹

호활동을 시작한 이후 2010년에는 미국 터프츠대

음을 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평동 인터뷰’는 이

학 플레처스쿨에서 인도적 지원학으로 석사학위를

렇게 이뤄졌다. (한비야씨와 기자는 평소에 경어체

또 받았다.)

를 쓴다. 인터뷰는 그러나 평어체로 정리한다.)

박사과정 하면서 학부생 강의도 한다고 하던데?

“학부 필수교양 과목인데 5년째 ‘국제구호와 개 지난 번 아시아엔 기념행사 건배사 고맙다. “우리는 아시아엔

발협력’을 가르치고 있다.”

의 금강송을 사랑합니다. 우리 모두 아시아엔을 사랑합시다!”

병신년 새해 목표는 무언가? 화두라고 할까….

라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오늘(인터뷰 당일)이 12월9일인데 학기말 시험은 어떻게?

“일단 2가지가 목표다. 하나는 박사과정을 잘 마무리 하는 건데 현장에서 미처 몰랐던 큰 그림 그

“기말이라 바쁘다. 박사과정 공부도 하고 세계

리기를 연구하려 한다. 재난대비 정책 수립을 위한

시민학교 교장 역할도 해야 하고, 지난 5년간 가을,

유엔이나 개별 국가단위의 계획을 배울 생각이다.

겨울에는 해외현장에서 일하는데 올해는 한국에

현장 전문가 외에 연구자나 학자로서의 글쓰기도

있다보니 참석해야 할 행사가 얼마나 많은지. 몸이

열심히 하려 한다. 그래야 현장과 연구 그리고 정책

열 개라도 모자란다. 그 와중에 이번 2학기 성적장

의 3박자를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

학금을 받았다. 해외 있다면 모를까 한국에 있는

는 세계시민학교 활동에 더욱 매진하는 거다. 2007

한 사회생활을 해야 되는 일이 생긴다.”

년 50명으로 시작해 지금 50만명을 가르치는데 일

지금 박사과정 2학기째? 전공은 뭔가?

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번 끝나면 2학기 남는다. 절반 마쳤다. 전공 은 ‘국제구호와 개발협력의 연계점’이다. 간단하게

1년에 50만명? 그 많은 학생을 무엇으로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재난대비와 피해 규모 축소가 중요하 다. 현장에 대한 연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네팔 산악지역에 10년간 열

“세계시민의식을 가르친다. 교재를 개발하고,

심히 여러 단체와 지역주민들이 다리도 놓고, 학교

800명의 강사를 양성한 후 현지로 파견해 가르친

도 세우고 했는데 지진이 발생해 10초만에 다 무너

다. 교육부와 MOU를 맺어 일선현장에서 직접 학

져버리면 허사가 되고 만다. 그런 상황에 맞춰 재

생들을 가르치지만 교육부 예산은 없이 기부금을

계적인 구호활동이

난 대비를 잘 하면 재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모아 한다. 법무부와 함께 공익신탁이라는 걸 만들

이뤄질 수 있다”

구가 되어야 정책이 수립되고, 훨씬 체


046

magazine N | 201601

어 고액기부 신탁금도 받고 있다. 월드비전에서 세

걸 가지고 토론을 한다고 들었다. IS 문제가 더 이

계시민학교를 전담하는 직원 25명을 지원해주지

상 남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않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서울에 본부가 있고 지

난민문제가 나왔으니 말인데, 가장 피해가 큰 중동의 이슬람

방 19곳에 지부가 있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세계시민학교는 월드비전에만 있나?

“청년실업률이 제일 높은 데가 중동이다. 청소

“월드비전뿐 아니라 국제이해 교육, 글로벌 시

년들이 갈 데가 없으니 IS에 가담하는 일까지 생긴

민교육 등 여러 이름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다. 중동 문제에 걱정과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사

서 세계시민학교라는 타이틀로 유치원, 초등학교,

람들이 브레인스토밍을 하면 작은 실마리라도 잡

중학교에 맞춤형 교재로 찾아가는 교육을 하는 건

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중동 현지민, 중동 연구자,

월드비전 외엔 없는 걸로 안다. 내가 초대 교장이다

구호활동가와 테러연구자 등 10명 안팎이 브레인스

보니 세계시민학교를 마치 내가 만든거냐고 묻기도

토밍을 하면 어떨까? 나도 힘을 보태고 싶다.”

하는데 당연히 아니다. 나는 세계시민학교 교장을

<매거진 N>은 편집자가 31살이고, 그 아래 이집트, 파키스탄

10년만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올해로 5년째다. 남은

에서 파견 온 상근기자를 포함해 전원이 20대다. 한비야씨를

기간, 즐겁게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닮아서 그런지 도전의식이 있다.

최근 <중앙일보> 주말 칼럼에 난민 얘기를 썼더라.

“하하하. 세상은 도전하는 사람들 것이다. 우리

“난민의 경우 어느 국가에서 받아들이면 고마

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는 해봐야 아는 거다. 처

운 거고, 아니면 이유가 있어 그렇구나 여길 수밖에

음에는 도저히 못갈 것 같이 험하고 힘든 길도 한

없는 문제다. 얼마 전 강원도로 산행을 갔는데, 새

발짝씩 나가다보면 어느덧 산 꼭대기에 도착하지

벽에 땅에서 냉기가 올라와 잠을 설쳤다. 중동지역

않던가? 세상 일이 다 마음먹은 대로 되진 않지만

난민들의 일상이 바로 그렇다. 난민 문제는 그들만

돌아보면 해낸 일은 모두 이런 마음으로 한발짝씩

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내딛으며 이룬거다. 그 한발짝이 내 가능성과 한계

IS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진다. 어떻게 대책이 없을까?

를 넓여가는 거라고 굳게 믿는다. 2016년 새해에도

“얼마 전에 IS에 대해 글을 썼는데 학생들이 그

<아시아엔> <매거진 N> 파이팅 하시라!” 뉴시스

서울 여의도 월드비전 한국 본 부에서 자신이 구호활동에 나섰 던 아이들을 배경으로 서 있는 한비야 구호전문가


magazine N | 201601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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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삶 시작되는 도서관, 나를 이끌었다” ‘지식도시락 배달사업’ CEO 유종필 관악구청장 관악구 홍보전산과 정동칠 주임

Summary

Gwanak-gu ‘the city of humanities’ The Mayor of Gwanak-gu, Yoo Jong-pil has been enjoying dyeing colour on a part of hair as the point during one and half years ago. He who has previously worked as a journalist of The Hankyoreh daily newspaper and The Hankook Ilbo, says, “Life is short. No one knows when we die. I believe in enjoying my life. If I am happy, the citizens of Gwanak-gu could also be happy.” Mayor Yoo talked about the so-called ‘knowledge box delivery project’, where they deliver books to libraries nearest to the readers. He said, “During the last year, we had delivered 270, 000 books, and this year, 310, 000 books have been delivered. Internet or smart phone service is available for requesting the delivery. I use this service a lot. The number of books we have is around 590, 000. We have the most books that citizens search. Just after the inauguration, I began to run a small library business. The aim was to make Gwanak-gu ‘the city of humanities’”. Mayor Yoo believed that this project would improve the quality of people’s lives in Gwanak-gu without additional expenses. Meanwhile, it is hard to increase citizens’ income temporarily or create many jobs in a short amount of time. As the result of the project, anyone living in Gwanak-gu can go to library within 10 minutes by walk. Since its opening in November 2012, more than 1,000 people go to libraries everyday. However, there are no buildings that are newly constructed for the project. The expenses saved from that were used in establishing 38 libraries including ‘manless ubiquitous libraries’ in subway stations. When it comes to the management, volunteers manage the libraries.

Lee Sang-ki | Summary by Choi Jung-ah Staff Reporter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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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은 1년반 전부터 머리에 물

설을 우연히 발견하고 읽었다. 1980년대 말 상황이

을 들이고 있다. 그를 만나는 이들이 거부감 같지

배경인데 읽을 만하더라.”

않느냐는 물음에 “짧은 인생, 언제 갈지 모르는데

하루 일과는 어떤가?

즐겁게 살자는 게 내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이 행 복해야 구민들도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때는 점심 먹고도 나오고. 그리고 거의 6 시 이전에 사무실에서 나간다. 사무실에 잘 없다.

유종필 구청장과 기자는 1988년 봄, 서울 종

집 아니면 동네, 서울대 캠퍼스에 우두커니 서있거

로구 안국동 안국빌딩 ‘한겨레신문 창간사무국’에

나, 바깥 세상에 있거나. 안에 계속 앉아 있는 것보

서 처음 만났다. 기자는 한겨레신문사 공채 1기로,

다 바깥에서 바람 쐐는 게 더 정신건강에 좋다. 머

유 구청장은 <한국일보>에서 경력기자로 한겨레

리가 맑아야 일도 잘 된다.”

에 온 것이다. 만 28년이 다 된 지금, 기자와 구청

정창교 관악구 정책실장이 얼마 전 카카오스토리에 “관악구

장으로 다시 만났다. 그의 튀는 행동은 여전하지

에 도서관이 유종필 구청장 취임 전 5곳에서 43곳으로 늘었

만, 그제나 지금이나 여유와 생각의 깊이는 변함

다는 글을 읽고 인터뷰를 하게 됐다.

이 없다.

“우리 도서관의 핵심은 ‘지식도시락배달사업’이 다. 2014년 27만권, 2015년 31만권 정도를 배달했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신청할 수 있다. 나도

“구청장을 하면 보람도 있지만 심신이 고되고

이용 많이 한다. 장서는 59만권 정도 된다. 주민들

즐겁지 않은 일이 많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즐겁게

이 찾는 책은 거의 다 있다. 민선 5기 취임 직후 관

살기 위해 노력한다.”

악구를 ‘책 읽는 도시’, ‘인문학 도시’로 만들기 위

복잡한 문제들은 어떻게 푸나?

해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 만들기 사업에 적

“주민들 문제는 직접 만나서 해결한다. 공무원

극 나섰다. 주민의 소득을 일시에 올려주거나 갑자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주민들과 직접 부딪히는 걸

기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삶의 질을 올

어려워 하고 골치 아프다 생각하는데 나는 거의 다

리는 것은 돈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배짱으로 대응하는 편이다.”

다. 집에서 10분만 걸으면 누구나 도서관을 갈 수

오늘 아침 현관문 나오면서 무슨 생각하셨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구청 1층에는 ‘용꿈 꾸는 작

“날이 추운데 걸을까 말까 고민했다. 하루에 무

은 도서관’이 있다. 2012년 11월 문을 연 이래 하루

조건 만 보 이상은 걷는다. 구청에 오면 5층에 있

1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찾는다. 구청 근처에서 구

는 내 방까지 무조건 걷고, 집은 3층인데 마찬가지.

두수선방 부부가 최고 단골이라고 들었다.”

건물 있는 곳은 항상 걸어다니니 1년에 에베레스트

구청장 하면서 제일 골치 아픈 일은 뭔가?

산 높이 정도는 걷는다고 보면 된다. 지하철이나 버

“재개발, 재건축! 재산권 문제가 제일 머리 아

스 타는 대신 웬만하면 다 걸어다닌다.”

프다. 마르크스가 말하기를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요즘 무슨 책을 주로 읽나? (그는 1994년 MBC TV만평 <단

잊어도, 내 재산 빼앗아 간 사람은 못 잊는다’ 그랬

소리 쓴소리>(문예당)를 시작으로 <9남매 막내 젖 먹던 힘까

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평생 벌어서 땅 사고 집

지>(2003, 상상미디어), <세계 도서관 기행>(2010, 웅진지식

샀는데, 그걸 헐고 짓느냐? 그런데 이게 다 주민들

하우스),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2013, 메디치미디어) 등

끼리의 싸움이다. 우리 주민과 다른 구 주민 싸우

7권의 책을 ‘직접’ 썼다.)

면 우리 주민들 편이나 들 텐데, 한 울타리 안에서

“‘즐겁게 살자’는 주의자니까 책을 봐도 ‘어느 구

싸우니까 참 골치 아프다. 그래서 원칙대로 해결한

청장이 잘하나’ ‘사회 어떻게 잘 만드나’ 그런 책 안

다. ‘절대로 구청에서 어디 편들지 마라, 철저하게

보고, 그림이나 소설 건축 관련 책을 읽는다. 최근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진행해라’고 직원들한테 당

엔 양귀자씨가 쓴 책을 읽었다. <원미동 사람들> 조

부한다. 물론 그러니까 양쪽에서 다 불만이다. 전에

금 보다 말았는데 이번에 <슬픔도 힘이 된다>는 소

는 구청이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요즘에는 부동산


049

magazine N | 201601

경기도 안 좋아서 하겠다고 한 사람도 지금은 반대

“12월8일 일정을 소개하겠다. 오전에는 6개국

하는 경우도 있다.”

의 국장과 현안업무 부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

구청장실에 ‘구정목표’ 같은 거 적은 액자가 안 보인다. (그때

장단회의가 있다. 그 후 동장, 통반장 교육, 동 주민

주막 같은 집 앞에 키 큰 남성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사진

건의사항 등을 통해 수렴한 주민건의사항 처리결

이 눈에 들어와 물었다) 저 사진은 뭔가?

과 보고가 이어진다. 회의 후에는 올해 수능을 마

“돈키호테가 하룻밤 묵었던 주막 앞에서 찍은

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200여명에게 ‘좀 다르게

거다. 뜬구름 잡는 돈키호테, 맺을 수 없는 사랑을

살아도 괜찮아’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관악의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

미래가 될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세계도서관기

을 견디면서,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아라!

행’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등의 주제를 가지고

이게 돈키호테의 핵심이다. 짐승은 항상 땅만 보고

특강을 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엉뚱함과 창의성이

걷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땅만 보고 걷더

가수 싸이를 세계적인 스타로 이끈 성공 요인임을

라. 쓰레기 혹시 있나 보면서. 나는 몸은 구청장으

강조하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모두가 스타가 되길

로 묶여있지만 영혼은 좀 자유롭게, 머리에 물도 들

바란다는 메시지로 강의를 했다.”

이고 그러면서 살고 싶다.” 민선 5기 4년과 6기 1년 반 재직 기간 동안 가장 보람 있던 일 과 아쉬운 일은 무언가?

인터뷰 말미 유 구청장이 기자에게 두권의 책 을 전했다.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는 <창문넘어 도망

“우리 구에 등록된 장애인은 2만여명으로 서울

친 100세 노인>(열린책들)과 자신이 2010년 쓴 <세

25개 자치구 중 4번째로 많다. 그 중 90%가 후천적

계도서관 기행> 두권이다. <세계도서관 기행>은 작

장애인이다. 장애인복지과를 신설하고 ‘장애인복지

년 말 개정증보판 9쇄가 발행됐으며 이미 대만판이

관 건립기금 설치조례’를 제정해 평균 10억원 씩 31

나온데 이어 내년에 일본어판이 나온다고 한다.

억원의 기금을 적립하고, 로또기금 17억원과 서울

그는 이 책 증보판 프롤로그에서 “도서관은 진

시 지원금 15억원을 유치해 지난 12월10일 복지관

정한 삶이 시작되는 곳이다. 책은 우리 내의 구석

건립 첫 삽을 뜨게 됐다. 2017년 1월 개관 목표다.”

구석 산소를 공급해 준다. 나는 영혼이 이끄는대로

2015년 12월 어느 하루의 동선을 소개해 달라. 그리고 그 가

도서관 여행을 했고, 이제 도서관이 나를 이끌어간

운데 느꼈던 감상은?

다”고 했다.

“우리 도서관의 핵 심은 ‘지식도시락배 달사업’이다. 올해 31만권 정도를 배달 했다. 인터넷이나 스

관악구청 제공

마트폰으로 신청할 수 있다. 장서는 59 만권 정도 된다.”


People

050

magazine N | 201601

아프리카 최빈국 부르키나 파소, 평생교육만큼은 으 ‘ 뜸’ 김기석 ‘국경없는 교육가회’ 대표

Summary

Educators Without Borders: Rebuilding Burkina Faso Burkina Faso (which can be translated to ‘the honest country’) is a small landlocked state located in Northernwest Africa. Burkina Faso just achieved democratization in the spring of 2014, putting a stop to the dictatorship that had continued for 27 years. However, in September 2015, the remnants of dictatorship staged a coup again. It was obvious that numerous innocent citizens would have died like in South Sudan. At this immediate flashpoint, a message from the King who had remained just a historical symbol behind the republic government changed the situation. The King said, “Innocent citizens must not be sacrificed.” People began pouring into the streets to speak out in favor of democratization. After all, on December 1, new President Roch Marc Christian Kaboré was elected through the first democratic election, getting an overwhelming support from 54% of the voters. President Kaboré said, “I will solve youth unemployment issues, and rebuild education and health care institutions.” With that, a new chapter in the history of Burkina Faso has begun. GAPA (Global Aliance for Poverty Alleviation), which is a lifelong educational program, and has been developed by EWB, won the UNESCO King Sejong Literacy Award in 2014, competing with 140 organizations. Although the organization’s history is as short as 8 years, its achievements are tremendous. Chairman Kim said, “Burkina Faso experienced surprising changes. Public education is ranked at the bottom, but in terms of 'lifelong education, Brukina Faso can be said to be at the top in Africa.” The beginning of EWB was special. Unlike other organizations, EWB was established by local African experts. Thus, they could figure out what local poor people really wanted. The outcome of this was GAPA. The program has different stages to help the locals, which includes literacy education, technical training, start-up loans and opening a small start-up business. Chairman Kim said, “Many people emphasize only on ‘Korean type development’, but I think that is the wrong approach. Each country has their own type for development. One of the African local experts currently serves the Minister of Education in Burkina Faso. I believe this is our own distinction that other organizations do not have.” One phrase that Kim emphasizes is “Women are the hope”. However, in Burkina Faso, where the majority of the population is Muslim, most women rarely have education opportunities. This is why participants of GAPA are mostly women. Honorary Consul to Korea, Kim Ki-seok is the bridge between Burkina Faso and Korea. The Ministry of Education in Burkina Faso is investing 1.2 billion Won in EWB, which is a significant investment for the poverty-stricken country. Kim said, “Local people suggest proposals or ideas for development to us. As professionals, we create specific plans for their demand. Education needs professionalism. Compassion is not enough. Our ultimate aim is to get out of Burkina Faso, and to make them stand without our help. For this, training leaders is essential.” 최정아 기자 jchoi12@theasian.asia

Choi Jung-ah Staff Reporter


magazine N | 201601

051

최정아

‘부르키나 파소’란 나라를 들어본 적 있는가. ‘정직 한 나라’란 뜻을 지닌 ‘부르키나 파소’는 아프리카 서북부에 자리 잡은 작은 나라다. 한국 대사관도 들어서지 않은 이 나라에서 ‘명예영사’로 활동하 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바로 ‘국경없는 교육가회’ (Educators Without Borders, EWB)의 김기석 대표(서울여대 국제협력 석좌교수)다. 그는 박수정 협력사업부 팀장과 함께 아프리카 빈민들이 빈곤 의 사슬을 끊고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 ODA’ 사업 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8살 밖에 안 된 작은 단체 지만, 성과는 매우 놀랍다. ‘국경없는 교육가회’에 서 개발한 교육 프로그램, GAPA(Global Aliance for Poverty Alleviation)가 한국 최초로 ‘2014 유 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을 수상한 것이다. 기자가 그가 활동하고 있는 ‘부르키나 파소는 어떤 나라인가’ 질문을 던지자 김 대표의 눈빛이 반짝인다. “부르키나 파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 력이 있는 나라에요. 2007년 1월, 아프리카 친구 가 ‘반드시 부르키나 파소에 가야 된다. (혼자만) 잘 살거냐’고 저를 설득했어요. 그렇게 부르키나 파소 땅을 처음 밟았죠. 부르키나 파소는 거의 버 려진 나라나 마찬가지였어요. 정부가 제 역할을 못하니 정규교육(공교육)이 제대로 갖춰졌을 리가 없었죠. 이 나라에서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난 8년간 열심히 노력한 결과 부르키나 파소는 놀라운 변화를 겪었어요. 공교육은 아프리 카 국가들 중에서 바닥이지만, 평생교육은 ‘으뜸’ 이 된 것이죠.” ‘국경없는 교육가회’의 시작은 특별했다. 국내 지식인들이 모여 설립된 여타 단체와는 달랐다. 아프리카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뜻을 모아 출범 해, 자연스레 현지에 녹아들었다. 현지빈민들이 실 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했고, 이를 바탕 으로 만들어진 것이 교육프로그램이 ‘GAPA’(한글 발음 갚아)다. ‘GAPA’는 ‘문해교육→창업 기술연 수→무담보소액대출→창업’의 과정을 거친다. 교 육목적은 ‘자립’(自立). 빈민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GAPA의 성공비결은 ‘현지화’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

있도록 단계별 교육을 진행한다. 2010년 처음 발

형 개발’만을 강조하는데, 각 국가에 맞는 개발 프로그램이 필요하

을 뗀 이 사업은 한국 최초로 ‘2014 유네스코 세

죠. 저희는 처음부터 아프리카 교육가들과 치밀하게 협업했어요.”


052

박수정 국경없는 교육가회 팀장(왼쪽)과 김기석 국경없는 교육가회 대표 글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부 르키나 파소 여성

magazine N | 201601

최정아 국경없는 교육가회

종대왕 문해상’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문해교육을 시작한 지 5년째인데, 그동안 수

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박수정 팀장은 문해교육 수 혜를 받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혜자 880명을 배출했습니다. 수강생들은 교육과

“‘문맹’이 얼마나 삶에 어려움을 주는지에 대해

정 말미에 수료증을 취득하기 위해 시험을 보는

생각을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몇 년 전 문해교육

데, 98%가 합격할 만큼 다들 열심이죠. 비누제

수혜자 중 한분이 저한테 한 한 마디가 아직도 머

작 같은 소득창출이 가능한 기술연수도 진행하고

릿속에 맴돌아요. ‘이제 길을 잃어도 표지판을 읽

있죠. 1천2백여명이 기술연수를 받았는데, 이 중

을 수 있으니 무섭지 않다.’ 에이즈 환자 수혜자들

550명 정도가 창업 소액대출을 받았어요. 상환율

은 처방전을 읽을 수 있으니, 시간에 맞춰 혼자 약

도 98%에 달해 매우 성공적이에요. GAPA의 성공

을 먹을 수 있죠. 이 분들이 문맹으로 살아가면서

비결은 ‘현지화’(localization)라고 생각해요. 많은

‘얼마나 무서웠을까’라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일했

사람들이 ‘한국형 개발’만을 강조하는데, 크게 잘

던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못됐다고 봐요. 각 국가에 맞는 개발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이 많아요. 여성분들이 교육을 받는 것

필요하죠. 저희는 처음부터 아프리카 교육가들과

을 본 남편들이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고 직접 찾

치밀하게 협업했어요. 함께 이 프로그램을 구상했

아오기도 해요. 가부정적인 부르키나 파소에서 말

던 현지전문가 중 한분은 현재 부르키나 파소 교

이죠. 남성들이 직접 오는 것을 보며 인식의 커다

육부 장관을 맡고 있어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

란 변화가 생겼음을 느껴요.”

해상’을 수상했을 땐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모 든 멤버들이 함께 기뻐했어요.”

“우리는 자선가가 아닌 ‘프로’입니다.”

‘여성이 희망이다.’ 김 대표가 늘 강조하는 말이

한국 대사관이 없는 부르키나 파소에서 ‘명예

다.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여성이 교육을 받아야 가

영사’를 맡고 있는 김기석 대표는 한-부르키나 파

정이 살고, 나아가 사회와 나라가 산다고 믿는다.

소 간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국경없는 교

여성교육이 한 나라의 성장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

육가회’는 부르키나 파소 정부와 활발히 교류하고

다. 하지만 무슬림이 대다수인 부르키나 파소엔 글

있다. 특히 부르키나 파소 교육부는 GAPA 프로

을 읽을 수 있는 여성들이 거의 없다. ‘남녀칠세부

그램의 성과와 가능성을 앞서 내다본 듯하다. ‘국

동석’ 문화도 강해서, 남성과 여성이 한 자리에 앉

경없는 교육가회는 아프리카 최빈국이라 꼽히는

지도 못하며, 여성들에게 돌아가는 교육의 기회도

부르키나 파소 교육부로부터 무려 12억원을 투자

매우 적다. 그래서 GAPA 문해교육을 받는 수혜자

받고 있다.


053

magazine N | 201601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에게 투자 와 지원을 ‘요청’하잖아요. 저희는 반대에요. 저희 는 현지인들에게 제안하지 않아요. 현지인들이 저 희에게 먼저 ‘콩밭을 만듭시다’라고 제안을 하죠. 그럼 우리는 전문가로서 계획을 구상해주는 식이 에요.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구호단체나 자선가가

김기석 명예영사가 말하는 부르키나 파소

“절망의 나라에서 일어난 기적, ‘제2의 한국’으로 우뚝 서길”

아녜요.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예요. 교육은 단 순한 ‘측은지심’ 갖고는 안돼요. 전염병, 지진 등 재 난이 일어났을 때 굿네이버스, 월드비전과 같은 구 호단체가 가죠. 하지만 이런 자연재해로 인한 어려 움에서 벗어나고 발전하려면 이젠 과학, 기술, 혁신 등 전문기술이 필요하죠. 저희가 하는 일들이 과 학, 기술 등을 전문적으로 교육시키는 거예요.” 최근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200에이커 규모의 땅을 기증받았다. 이 땅에 부르키나 파소 교육부 와 함께 ‘교원양성센터’와 ‘적정기술연수센터’(ICC) 를 건설하고 있다. 이 곳에서 농업기술, 축산, 특 용작물 관련 ‘교육자’들이 양성될 예정이다. “문해교육을 마치신 분들 중 일부는 ‘교사가 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이 기쁨을 알리고 싶다’고 하세요. 문해교육을 직접 진행할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요. 실제로 교사연수를 통해 인증을 받아 교사가 된 분도 있어요. 이런 식으로 선순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아래 부르키나 파소라는 나라가 있다.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 라이다. 인구 1천8백만명, GDP는 113억달러로 세계 126위(2015 IMF 기준)인 이 나라는 6·25 전쟁 후의 우리처럼 찢어지게 가난하다. 그러나 우리처럼 교육열은 대단하다. 열악이란 말조 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공교육이 부족하여 비정규 평생학습을 발전시킬 수 밖에 없었다. 절 망의 나라이나 가난의 굴레에서 헤쳐 나오기 위해 처절하게 애쓰는 나라이다. 최근 이 나라 는 ‘민주화’를 성공시키며 기적을 일궈냈다.

되는 거죠.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는 부르키나 파

2014년 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시민들의 손으로 27년 묵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과

소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에요. 빈곤은 자신들이 스

도정부가 들어선 후 부리키나 파소는 대선과 총선 준비에 집중하였다. 하지만 선거를 몇 달

스로 깨부숴야 해요. 이를 위해선 ‘지도자’ 양성이 중요하죠. 우리가 8년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해법을 ‘브랜드화’시켜서 더 많은 빈곤국에 적용시 키고 싶어요. 곧 라오스에도 진출할 예정입니다.” 현재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UNDP와 함께 부 리키나 파소, 앙골라, 콩고 3개국에 교육정책 평가 사업을 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 세네갈, 부르키 나 파소 아프리카 3개국에선 여학생들을 대상으 로 ‘삼성꿈장학재단’과 함께 멘토링 사업을 진행중 이다. 이밖에도 세네갈, 파키스탄 등 아시아·아프 리카 빈곤국에서 다양한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김기석 대표와 박수정 팀장은 “빈곤을 깨부수 는 방법은 ‘교육’이다”라고 말한다. ‘국경없는 교육

앞둔 지난 9월 독재 잔당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착하디착한 국민이 돌연 성난 폭도로 바뀌 어 시내를 점령했다. 봉기는 수도에서 주요 지방 도시로, 그리고 또 농촌마을로 퍼져 나갔 다. 과도정부도 물러서지 않고 죽기 살기로 맞싸웠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반전이 시작됐다. 건국 이래 뒷전으로 물러나 상징으로만 남아있 던 지방 토호 왕국의 왕이 나선 것이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무력 충돌로 무고한 국민이 희 생되선 안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반란군 수장이 무릎을 꿇었다. 무기를 내려놓고 진압군에 투항하였다. 반란 진압 소식에 국민들은 위 사진처럼 다시 길거리에 나와 자발적으로 청소 를 시작했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 하야 이후 시청에 모여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난 12월1일, 새 헌법 절차에 따라 민주적인 선거도 마쳤다. 유권자 54%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록 마크 크리스티앙 카보레(Kabore) 후보가 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취임 직후의 그 는 “청년 실업을 해결하여 경제를 건설하고 교육과 보건 시설을 새롭게 하겠다”고 말했다. 부르키나 파소의 ‘산업화 역사’의 새 장을 여는 말이었다. 상주 외교공관도 없고 개발협력 중점대상국도 아닌 이 나라에서 빈곤퇴치를 하고 있는 단 체가 바로 ‘국경없는 교육가회’(Educators Without Borders·EWB)다. 한국처럼 나라를 일으 켜보겠다는 의지로 경제·문화·교육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서울에 명예영사관도 설치하였

가회’는 더 많은 빈곤국에 진출해 더 많은 빈민들

다. ‘국경없는 교육가회’는 새 대통령의 첫 국가 방문 대상국이 대한민국일 것이라고 믿는다.

이 자립하도록 도와줄 준비가 돼있다.

또한 부르키나 파소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는 ‘제2의 한국’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화려한 히잡 보셨나요? ‘무슬림 패션’의 색다른 변신 H&M·유니클로·타미힐피거 등 글로벌 브랜드도 주목


magazine N | 201601

Special Topics

055

Summary

New Fashion Trend: Muslim Hijab Takes Over Generally, the media depicts Muslim women wearing long black full-body robes as a sign of oppression. But in fact, it’s far from the truth. Muslim women fashion industry is a new emerging market. Globally, Muslims spent $266 billion on clothing and footwear in 2013 and the figure is expected to increase to $484 billion by 2019. To meet with this trend, many global fashion brands like Uniqlo and Mango have launched clothes especially designed for Muslim women. DKNY and Tommy Hilfiger also unveiled a women’s capsule collection for Ramadan. Mariah Idrissi, a 23-year-old Muslim woman, has become the first model to wear a hijab in an H&M campaign. Even There is even a famous Muslim fashion blogger who is inspired by Japanese Lolita fashion. You can find a variety of Muslim traditional clothes like burka, a full body cloak and hijab or a headscarf that covers the hair, ears, and neck; these garments comes in different designs depending on the country and its religious inclination. However, not all Muslim women wear such clothes. In all the Gulf countries except Saudi Arabia, western clothing is allowed. Radwa Ashraf from Egypt says, “Most women in Egypt enjoy western clothes and they just put on hijab as an outer.” Even in religiously conservative countries like Iran, Iraq and Pakistan, fashion is becoming more liberal. Indonesia has the largest Muslim population in the world, with approximately 203 million Muslim. HijUp, a local online shop especially for Muslim women, has gained a huge popularity since its opening in 2011. The CEO of HijUp, Diajeng Lestari says, “The number of hijabers has tremendously increased in the past few years and now it’s a new fashion stream.” Upon being asked about the 2016 trends, she responds that simple but accentuate feminine style will be the new fashion. “To becoming the world’s best online Muslim fashion mall, HijUp has a plan to participate in upcoming London Fashion Week”, she added.

Kim A-ram Staff Reporter

기사를 읽기에 앞서 왼쪽의 여성을 살펴보자. 분홍

억달러(약 566조47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

빛의 오버사이즈 맨투맨 티. 롤업진 위의 그레이 롱

세계 무슬림 인구가 17억임을 감안하면 ‘무슬림 패

스커트. 깔끔한 올백의 스니커즈. 청색으로 깔맞춤

션’이 전세계 패션의 ‘트렌드’로 자리잡는 것도 시간

한 스카프와 앙증맞은 백팩. 누가봐도 옷차림에 신

문제다.

경 쓴 모양새다. 그런데 머리 위에 쓴 무언가가 수상 하다. 그 물건의 정체는 바로 무슬림들이 머리를 가

17억인구·566조 ‘무슬림 패션시장’

리기 위해 쓰는 터번이다. 이집트 출신 무슬림으로

무슬림 패션이 각광받는 시장으로 떠오르자 많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디나는 ‘무슬림에도 불구하

은 브랜드들도 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제품들을 출

고’ 패션블로거로 유명하다. ‘무슬림 여성’하면 온 몸

시하고 있다. 2015년 9월 글로벌 의류브랜드 ‘H&M’

을 검정색이나 흰색 천으로 칭칭 휘감은 모습이 떠

이 공개한 광고에는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와 목 등

오르는데, 상상과는 좀 다르다.

을 가리기 위해서 쓰는 이슬람 전통복장인 히잡

최근 몇 년 사이 무슬림 패션시장에 ‘새로운 바

을 둘러쓴 모델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영

람’이 일고 있다. 서구의 양식을 차용한 다양한 디

국 출신 무슬림 여성모델 마리아 이드리시(23). 그

자인의 무슬림 의복과 서구 의복-무슬림 의복이 혼

는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그간 이슬람 여성

재된 새로운 양식의 패션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의 패션은 터부시돼왔다”면서 “이슬람교 율법에 어

이전보다 좀더 자유로운 복장을 즐겨입기 시작하

긋나지만 않는다면 무슬림 여성들의 패션도 문제될

며, 무슬림 여성들도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2013년

게 없다”고 말했다.

전세계 무슬림 패션 시장은 2천660억달러(약 311조

최근 ‘유니클로’는 무슬림 여성전용 패션코너

3천억원)로 성장했고, 2019년에는 약 2배인 4천840

를 통해 다양한 디자인의 히잡을 선보였으며, 미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056

magazine N | 201601

미국 텍사스에 거주하고 있는 팔레스타인계 무슬림 리나 아사드

인도네시아 온라인쇼핑몰 히즈업의 화보

히잡을 두른 모델이 등장해 화제가 된 H&M의 광고

국 의류브랜드 ‘타미힐피거’ 역시 2015

것에 기원을 둔다. 이후 이슬람 율법이 등

인도 러크나우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

년 여름부터 무슬림 패션을 접목한 상품

장함에 따라 여성의 몸을 가리기 위해 쓰

는 마리얌 칸은 “평소 맥시 스커트를 즐겨

을 출시 중이다. 글로벌 패션브랜드 ‘망고’

는 전통의상 ‘히잡’이 등장했다.

입는다”며 “종교적 억압에서 벗어나 나만

와 ‘DKNY’ 역시 무슬림의 금식성월인 라

무슬림 여성의상은 히잡 외에도 얼굴

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패션을 선호한

마단에 맞춰 다양한 의상을 선뵀다. 뿐만

과 몸 전체를 다 가리는 부르카, 얼굴을 제

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국가로 알려진 이

아니다. 일본의 ‘롤리타 패션’을 접목한 이

외한 몸 전체를 가리는 차도르 등 종류가

라크와 파키스탄에서도 최근 도시를 중심

색적인 무슬림 패션도 등장해 눈길을 끌

다양하다. 국가와 종교적 성향, 집안의 전

으로 무슬림 여성들이 옷을 자유롭게 입

었다. 엘리사 살라자르(25)는 개인블로그

통,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물

는 추세다.

(thehijabilolita.tumblr.com)에 파스텔 색

론 무슬림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몸을 가

감의 화려한 원피스와 큰 액세서리를 특징

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랍국가 가운데

으로 하는 무슬림과 롤리타를 결합한 새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을

로운 패션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서는 비교적 복장이 자유롭다. 이집트 출

선호하기 시작한 무슬림 여성들. 이러한

종교적 억압 NO! 나만의 개성 OK!

무슬림 패션의 아이콘이라 볼 수 있

신 라드와 아시라프 <매거진N> 기자는

흐름을 타고 무슬림 패션을 주도하는 쇼핑

는 히잡의 기원은 이슬람교가 탄생하기

“이집트 무슬림은 굳이 전통의상을 입지

몰이 있다. 전세계 17억 무슬림 인구 중 2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동 사막지역

않아도 괜찮다”며 “많은 여성들이 기성복

억5백만명이 살고 있는 전세계 최대 이슬

의 모래바람을 막고 이방인에게 여자를

위에 전통의상을 걸치는 방식으로 옷을

람 국가 인도네시아의 온라인쇼핑몰 ‘히즈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을 가리기 시작한

입는다”고 말했다.

업’(HijUp)이 그 주인공이다. 월 50만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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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는 방문자수를 기록하고 있는 히즈업은 지난 2011년 창업한 ‘따끈따끈한’ 온라인 쇼핑몰이지만, 급성장 중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슬림 패션 디자이너 디안 펠랑 기, 리아 미란다, 제나하라 등 100여명의 히즈업 디자이너들은 전세계 패션트렌드

레스타리 히즈업 대표

“2016 런던패션위크 참가, 세계에 히잡패션 알리는게 목표”

를 무슬림 패션에 접목시키고 있다. 레스타리 히즈업 대표는 “인도네시아 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무슬림 시장 중 하

히즈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

나로, 무슬림 패션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

지? 목표가 있다면? “평소에 제 취향에 맞 는 히잡이나 옷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래

며 “전체 고객 중 20%는 말레이시아, 인

서 온라인쇼핑몰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

도, 미국 등 해외고객이기 때문에 해외시

죠.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쇼핑할 수 있는

장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데다 선택지도 많으니까요. 히즈업의 성공 비결은 전세계 무슬림 패션시장의 잠재력

고 덧붙였다.

덕분이었다고 봐요. 최근 타미힐피거, 망고,

미국 퓨 리서치(Pew Research)에 따

유니클로 등 글로벌 의류브랜드들이 무슬

르면 2050년경 무슬림 인구는 기독교 인

림 여성 의류를 선보인 것도 행운이었고요.

구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증

저희의 목표는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자

가하는 무슬림 인구 중에는 젊은 세대의

랑스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거에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무슬림 패션시장에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 이유다. 때문에 비

은데 얼마나 많은 국가에서 히즈업을 이 용하나요? “현재 전세계 100개국 이상에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무슬림 패션에 관

상품을 배송하고 있어요. 고객은 대부분

심을 갖기 시작했다. 스웨덴 출신의 여성

22~35세 사이의 여성들이에요.”

패션디자이너 이만 알데베(30)의 사례가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많은 이슬람 국가

대표적인 예시다. 스톡홀름과 파리, 뉴

에서는 반드시 무슬림 전통의상을 입지 않 아도 된다고 하는데, 굳이 히잡을 선택한

욕, 두바이 등의 백화점에 매장을 낸 그 는 무슬림 여성으로, 히잡이나 터번을 응 용한 패션으로 전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06년 방송에 소개된 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도네시아에서는 히 잡이 새로운 패션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어요. 지난 몇 년간 히잡을 즐겨 입는 ‘히자버’(hijaber)가 급 증했죠. ‘라이카’(LAIQA) 매거진처럼 히잡 트렌드 등을 소개하는 패션잡지가 생겨나며 무슬림 여성패 션이 떠올랐어요.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더욱 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찾고 있고, 이제 자연스러운 패션

후 외신들이 잇따라 그를 보도하며 입소

의 일부로 자리잡게 됐죠. 20만 무슬림이 살고 있는 한국도 향후 진출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다른 얘

문을 탄 것이다. 그녀가 디자인한 옷들은

기지만, 전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게 됐는지 늘 궁금해요. 히잡을 널리 알리

무슬림 여성뿐만 아니라 비(非) 무슬림 여성들에게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온 몸을 가린채 거리로 나섰던 무슬 림 여성들. 하지만 무슬림 여성들은 종교 적 속박에 얽매이기보단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무슬림 패션도 이에 맞춰 서양 의복의 디자인을 차용하며 새

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해외 진출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보수적인 국가는 어떤가요? “히즈업은 전세계 최고의 무슬림패션 온라인 쇼핑몰을 꿈꾸고 있어요. 2016 런던패션위크에 참가해 전세계에 우리의 존 재를 알릴 예정이에요. 사우디도 고려 대상이기는 하지만 주 공략시장은 아니에요. 특정 국가 진출전 략보다는 전세계 무슬림을 대상으로 히즈업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이같은 패션 트렌드가 지속된다면, 향후 무슬림 전통의상이 개방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 까요? “충분히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요. 향후 무슬림 패션시장이 꾸준히 발전해나간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무슬림 여성은 얼굴부터 손까지 가려야 한다는 기존 이슬람 교리에선 벗어나기에, 비판 의 목소리도 있을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도전하고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죠.”

롭게 진화하고 있다. 머지 않은 미래, 전

2016년 무슬림 패션 트렌드를 소개해주세요. 작년과 비교해서요. “작년 트렌드는 딱 꼬집어 말할

세계 곳곳의 런웨이를 장식하는 무슬림

수는 없지만, 올해부터는 심플한 디자인이 많이 등장할거예요. 최대한 변형을 줄여 단순하면서도 여성

패션을 우린 목격할지 모른다.

미가 드러나는 실루엣을 갖춘 스타일이 유행할 것 같네요.”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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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r against Expats in the Arab Gulf States Ashraf Aboul-Yazid(Dali) is an Egyptian poet, novelist, translator, journalist, traveler and TV presenter. He is Editor of Al-Arabi Magazine (Kuwait) and has published more than 20 books of poems, novels, travels, and children literature. Some of his literary works are translated into Spanish, Russian, Korean, Turkish, English, Italian, Swedish, and Persian. He is also President of AJA Middle East Chapter and Editor-in-Chief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 Summary

카타르월드컵 건설현장서 1천2백명 사망 ‘이주노동자의 비애’ 최근 걸프지역 국가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체류 외국인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세에 큰 타격을 입은 쿠웨이트가 그 중 하나로, 체류 외국인들에 제공하던 공공 의료서비 스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 카타르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영국 <BBC>에 따르면 오는 2022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건설에 동원된 외 국인 노동자 1천2백명이 사망했다. 근무환경이 열악한 탓이다. 긴 시간을 땡볕에서 견디며 일하는 이들은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지저분한 숙소에서 생활한다. 그에 비해 돌아오는 보상은 터무니없이 적다. 지난 5월 카타르 정부는 월드컵경기장 공사현장을 취재하던 <BBC> 기자를 사유지 무단침입죄로 체포하 기도 했다. 당시 카타르 정부는 오히려 “BBC 기자가 카타르의 외국인 노동자 근로 및 생활여건 개선을 위한 노력과 진전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한 데 심히 유감”이라고 전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체류 외국인의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20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 법원은 팔레 스타인 시인 출신 아시라프 파야드에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내렸다. 수니파 이슬람 국 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법 체계는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기초한다. 이에 성직자들로 구성된 현지 재 판부는 신성모독과 배교를 사형에 처해야 할 범죄로 보고 있다. 이렇듯 걸프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 및 체류 외국인들에 대한 인권 유린, 저임금 등 사회적 차별의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 물론 국가마다 그 정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나마 아랍에미리트(UAE)가 사정이 낫 다고는 하나, 물가가 비싼 탓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쉽사리 선택하기 쉽지 않다. 출입국 심사 때부터 시작 되는 차별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

It takes you a few minutes to search the headlines to realize the active war of the Arab Gulf States authorities against expatriates who live and work there, as many procedures have been taken into effect regarding the current and future expats. Kuwait is considering to stop all access to public health services for expatriates, though they pay KD 50 ($165) per year for every individual

아시라프 달리 <알 아라비> 매거진 에디터·번역 김아람 기자

health insurance. The idea is to reduce stress on the government budget, weakened by lower oil prices in the international market. Suggestions in this regard include doing away with ‘harmful subsidies’ which include healthcare for expats in public medical facilities, according to a report by the Supreme Council for Planning and Development. According to the daily newspaper Kuwait Times,

there is an official call for imitating an example followed in the 1990s when the Kuwaiti government scrapped free education for expatriates in Kuwait, thus banning foreigners from studying at public and forcing them to enroll in private schools. The action led to a boom in the private sector, and skyrocketing of private school tuition fees in the country that has almost 3 million expatriates. All news regarding expatriates are negative. Recently a high rank officer in the Ministry of Interior, who was interviewed on TV, said that visiting family visas are too easy, as the coming people are enjoying free dinner meals every day by visiting the wedding parties! Now, there is a growing fear of deporting anyone who might act against the law. Lately, the Kuwaiti authorities deported without trial 17 Egyptians and six Syrians after they were involved in a mass brawl over a commercial dispute. It is not only the official authority that acts against expats, as Kuwaiti citizens with racist intentions are worse. Recently a young Egyptian expat, named Ahmed Atef, was killed as a fight broke out between a group of Kuwaitis and Egyptian expat worker Mohamed Amin when they allegedly differed over a set price of a PlayStation game console. The two Kuwaitis wanted to buy the console at half its price, and later one of them drove his car over the victim. The Egyptian Embassy in Kuwait released a statement, announcing its condolences to the victim’s family. Egyptian diplomats are in contact with Kuwaiti officials to follow up on the investigations, and the Egyptian consulate assisted Atef’s family in Kuwait to receive his death certificate and sent his body to Egypt. An official from the Egyptian consulate went to Hawally prison in Kuwait to follow up on those who were arre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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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Wikipedia

The United Arab Emirates is introducing labor reforms that aim to tighten oversight of employment agreements for the millions of temporary migrant workers. Khalifa Stadium in Doha, Qatar

The scene gets worse in Qatar. Accordi ng to BBC, t he sca nda l surrounding corruption within world football’s governing body, FIFA, has focused fresh attention on the workers who have died building stadiums in Qatar for the 2022 World Cup. The figure of 1,200 deaths is often cited. Living and working conditions for migrants in Qatar are appalling. Long hours in the blazing heat, low pay and squalid dormitories are a daily ordeal for thousands; they cannot even leave without an exit visa. Qatar is clearly worried about stories getting out about the workers’ suffering. The Qatar authorities arrested a BBC team in Doha investigating the real story. In Saudi Arabia, the news about the shameful and harmful actions of the Kingdom’s authorities against Arab citizens who live and work there, has become regular. Recently, a Saudi

Arabian court sentenced the Palestinian poet Ashraf Fayadh to death for apostasy (abandoning his Muslim faith). As published by Reuters, Mr. Fayadh was detained by the country's religious police in 2013 in Abha, in southwest Saudi Arabia, and then rearrested and tried in early 2014. The verdict of that court sentenced him to four years in prison and 800 lashes, but after appeal, another judge passed a death sentence on the Arab citizen. Such judgments are common for many reasons, such as insulting the King,

and that has forced many other Arab expats living in the KSA to flee. Work agreements with violated human rights, low wages, social abuse and other types of harassment are among the rising problems facing the expatriates living in the Arab Gulf States, with different degrees from a country to another. While UAE is considered the best, it is also the most expensive one for average workers. In all Arab Gulf States, differentiation starts at the passport check point, but it does not end there.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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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 of Popular Buddhist Monk Draws Attention to Failing “Revolution”

Ven. Sobitha was a socialist and a social justice advocate who used the nonviolent style of Buddhist social activism to take on governments when it drifted into dictatorial politics. He never joined any political party, but the power of his Buddhist sermons twined with political messages attracted a lot of charisma and he was twice instrumental in bringing down powerful presidents. Ven. Sobitha’s early efforts

Kalinga Seneviratne is a Sri Lankan born journalist, media analyst and international communications lecturer based in Singapore. He is a freelance correspondent for Inter Press Service (IPS). Summary

스리랑카 ‘평화의 사도’ 소비타 스님을 기리며 지난 11월8일 스리랑카 스리나가사 소비타(73) 주지스님이 싱가포르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비폭력 정신으로 평화와 화합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그는 전세계로부터 존경 받는 사회운동가이자 승려였다. 그 는 마이쓰리팔라 시리세나 대통령이 새 정부를 구성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마힌다 라자팍사 스리랑카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타밀족 반군과 26년에 걸친 내전에서 승리해 큰 인 기를 얻었지만, 내전 동안 민간인 학살 의혹과 지나친 족벌주의 인사로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새로 당선 된 시리세나 대통령은 스리랑카 내전에 대한 인권침해조사를 실시하는 등 이전 정권과는 달리 전향적이 고 개혁적인 노선으로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생에 걸쳐 스리랑카 국민들의 권익과 표현의 자유를 위해 맞서온 소비타 스님은 1956년 헝가리 혁명에 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당시 헝가리의 국민들이 공산당 독재와 공포 정치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이 혁명은 개혁파 인사를 수상으로 선출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소련의 침입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또한 소비타 스님은 1980년대 스리랑카 정부의 무상교육 철폐 반대에 앞장섰으며, 최근 스리랑카 대통령 의 행정직 권한 폐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친 바 있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임기 동안 헌법을 개정해 행정부 권한을 확대하고, 대통령 임기제한 조항을 없애는 등 대통령 중심제를 통한 공권력 남용으로 지 탄을 받아왔다. 소비타 스님은 기존의 대통령 중심제가 대통령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독재를 조장해 민주주의 이념과 나라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바라봤다. 이는 전세계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축 소시키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소비타 스님은 인구 비율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주로 불교를 믿는 싱할라 족이 스리랑카 소수민족인 타밀 족 및 무슬림과 화합해야 한다고 주창하기도 했다. ‘스리랑카 평화의 사도’였던 셈이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자 각계 지도자뿐 아니라 타밀과 이슬람 지도자들도 깊은 애도를 표했다.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 역시 수백만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비타 스님이 있었기에 지금의 스리랑카가 존재할 수 있었다”며 존경을 표했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 11월12일 소비타 스님 국가장을 치뤘다. 스리랑카 국민들 역시 국민 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가장 중요한 시점에 세상을 떠났다며 그를 애도했다. 칼링가 세네브라트네 스리랑카 프리랜서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The death of popular Sri Lankan Buddhist monk 73-year-old Venerable Maduluwawe Sobitha Thero due to heart failure at a hospital in Singapore

earlier this month has drawn attention to the waning “good governance” revolution that he helped to launch at the end of last year.

As a young monk, Ven. Sobitha got his initial inspiration from the 1956 socialist revolution that toppled an English-speaking pro-western ruling elite and brought a reformist government to power that gave the Sinhalese-speaking Buddhist majority their long-suppressed rights. He came into political prominence in the late 1980s when the then dictatorial President J.R Jayawardena invited Indian Peace Keeping Forces (IPKF) to Sri Lanka, while centralizing power within an executive presidency and suppressing civil liberties. An excellent orator, Ven Sobitha was able to mobilize peoples’ opposition to Indian intervention, and later on when Jayawardena’s successor President Ranasinghe Premadasa became even more dictatorial and stifled all forms of dissent, he was a long voice that stood against him, until Premadasa’s assassination at the hands of a Tamil Tiger suicide bomber. “Just like many other Buddhist monks who had an impact on social change in the country, Sobitha Thero too started his rebellious career with nationalism” noted Umesh Moramudali writing in Ceylon Today. “However, unlike many others, he did not stick only to nationalism, but was concerned about many other social and political issues as well. He was direct and had immense courage to stand up against the social injustice despite how strong 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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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ponent would be”. His social causes included playing a major role in the 1980s against an Education White Paper that would have undermined the free education system in the country. In recent years, he had campaigned heavily to abolish the Executive Presidency, which he saw as the biggest threat to democracy and freedom in the country. In 2014, Ven Sobitha again came into political limelight when he offered himself as the sole opposition candidate to challenge President Mahinda Rajapakse who was using Sinhala Buddhist nationalism to consolidate his power and restrict dissent, especially among the Buddhist majority. He formed the National Movement for Just Society (NMJS) and using his charisma, influence and oratory skills he was able

to unite a divided opposition, as well as trade unions, rights groups, artistes and academics behind a common candidate, which he was instrumental in choosing. This candidate was the then Health Minister in the Rajapakse regime, Maitripala Sirisena, who defected and challenged Rajapakse for the Presidency as the “common opposition candidate”. After Sirisena won the presidency in a shock result in January this year, Ven. Sobitha became the power behind the throne with considerable clout in directing government policy under a Buddhist slogan of “Maitri Yahapalanaya” (compassionate good governance). However, this policy did not restrict itself to empowering only the Sinhala Buddhists but he strongly advocated

reconciliation with the Tamil minority and co-existence with the Muslims. Thus, when he died on November 8, both Tamil and Muslim leaders praised him as a genuine compassionate reformist monk. Interestingly, he died a heartbroken man. Since President Sirisena was elected to office on the “Yahapalanaya” slogan to stamp out endemic corruption from the political system, he had seen his dreams shattered by a chain of government actions that seemed as if one corrupt lot of politicians have been replaced by another corrupt lot. The outspoken monk openly criticized the new government’s corrupt practices such as the multi-billion rupee Central Bank bond scam. The fatal blow to his dreams came after the August 17 general elections Xinhua

People march during the funeral of the Venerable Maduluwawe Sobitha, an influential monk who passed away on Nov. 8, in Colombo, Sri Lanka, Nov. 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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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erable Maduluwawe Sobitha

when President Sirisena using a constitutional loophole nominated to parliament candidates from his party that have lost the popular vote and named them as ministers in a National Unity Government. All these candidates served in the Rajapakse regime (like Sirisena) and were tainted with corruption allegations. Following this action, Ven Sobitha issued a scathing statement under the NMJS banner on the new government’s action. Few hours after it was released to the media the monk was believed to have suffered a heart attack and entered a local hospital. His health gradually deteriorated and on November 4, he was taken to Singapore for heart surgery where he died. In July, after the parliament was dissolved, Ven. Sobitha argued that people involved in corrupt practices with business interests in casino and other gambling, drug dealings, operation of taverns and bars, should

not be nominated as candidates. He told the Sirasa television network that such people are not worthy of peoples’ vote and it is the people that have to provide for their wages and other perks, as well as a life-long pension if they serve five years as a member of parliament. Sobitha given a state funeral

In an editorial after his death, the Daily Mirror observed that, in his vision and mission for “liberating spirituality” Ven. Sobitha believed that religious leaders - while not getting involved in party politics - have a moral responsibility to get involved in politics because “Deshapalanaya” (governing the country) needs to be for the common good of all the people, especially the impoverished or marginalized and not for the rich and ruling elite, to get richer and more powerful. In a statement issued immediately after his death, President Sirisena said that Ven. Sobitha’s “determination

to bring negative political forces that existed in the country to the right path was a great guidance and stimulation for the public commitment to strengthen democracy in Sri Lanka. That inspiration gave us an immense courage to form a good governance government under my leadership to take the country towards the right path”. But, recalling the final conversations they had with the monk, NMSJ member and unionist Saman Rathnapriya told a media briefing after his body was brought back to Sri Lanka that the Sobitha Thero had told them that “his expectations were shattered and told us to lobby for social and political reforms continuously.” His passing has resurrected the now largely forgotten issue of abolishing the executive presidency. President Sirisena, surprising many, said in his eulogy to Ven. Sobitha in front of hundreds of thousands of mourners and million watching live on national television that he would do “everything in his power” to make that vision a reality. T he gover n ment declared November 12, the day of his funeral, a national day of mourning and he was given a state funeral. But, many Sri Lankans from all walks of life mourned the fact that Sobitha Thero has passed away at a time when the nation needed him the most, to keep the corrupt politicians honest. “In this corrupt, criminalized and communalized political and social environment, Ven Sobitha has been a ray of hope and a rare source of inspiration, irrespective of race and religion, to all those who cherish family, religious and cultural values and firmly believe and dream of a decent government, corruption free administration and a peaceful country where all could live in harmony,” said Latheef Farook, a Muslim columnist of the Colombo Telegraph.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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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ot Party: Expanding Robotics attraction in Korea Summary

파키스탄 기자 눈에 비친 인류와 로봇의 미래 ‘로봇파티’ 최근 들어 ‘인공지능 로봇’이 TV쇼나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기자도 이를 접하며,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인 간의 동작을 완벽히 따라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까 관심 깊게 지켜봐 왔다. 지난 12월, 서울 장충동 타박마당에서 아트센터 나비(관장 노소영)가 주최하는 ‘로봇파티’를 방문한 기자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애초 괴짜 과학자의 실험실 같은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전시장에서 만난 로봇들은 너무나 정교하고 따뜻해 보였다. 기상천외하고 혁신적인 로봇들이 이렇게 빨리 등장 할 줄은 몰랐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컨셉으로 기획된 ‘로봇파티’에선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거나 함께 장난치고, 술 동무 가 돼주는 기상천외한 로봇 총 50여점이 선보인다. ㈜타스코가 개발한 로봇밴드 ‘타스코’는 신나는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했고, SK텔레콤의 음성인식기술을 탑재한 로봇 곰 인형 ‘동행’은 나긋한 목소리로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람이 앉으려고 할 때마다 도망 다니는 ‘걸어 다니는 의자’도 인기였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직장인 박은찬씨가 제작한 술 동 무 로봇이다. 이 로봇은 사람과 함께 대작하는 놀라운 기능을 탑재했다. 더 놀라운 것은 폭탄주를 제조하는 로봇의 존재였다. (주)마젠타로보틱스가 제작한 이 로봇은 한국인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술 ‘소맥’을 만들어준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은 “2년전부터 감성로봇 분야를 연구해왔다”면서 “로봇파티는 기존 대중들 에게 널리 알려진 산업용 로봇이 아닌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감성소통로봇들을 선보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혜인 학예연구원은 “로봇을 만드는 오픈소스가 대중들에게 알려짐에 따라 직장인이나 학생 아마추어들도 직접 DIY 로봇 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누구나 로봇을 만들 수 있는 ‘메이커운동’(Maker Movement)은 이미 전세계적 트렌드” 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에도 확산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로봇파티에서 공개된 ‘드링키’ ‘보미’ ‘우리 에 그’ 등은 직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는 한중일을 대표하는 로봇 메이커들의 창작축제 ‘해카톤’(Hackathon)도 개최한다. 해카톤은 해킹(hacking)'과 '마 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컴퓨터 프로그래머 사이에서는 흔히 ‘난이도 높은 프로그래밍’이란 뜻으로 쓰인다. 올해로 7회 째를 맞는 이 행사에는 3개국 6팀이 참여해 2박3일동안 머리를 맞대고 디자인부터 시작해 로봇 프로토타입까지 제작할 예 정이다. 그동안 해카톤을 기획해온 김시우 연구원은 “단순한 교류를 떠나 지속 가능한 한중일 로봇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북미와 유럽, 일본에서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35년간 로봇 분야에 공을 들여왔고, 아트센터 나비의 ‘로봇파티’는 한국 로봇 연구의 결실이라 볼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인간과 소 통할 수 있는 ‘반려의 존재’ 로봇을 현실화시킨 ‘로봇파티’. ‘감성 로봇’과 함께할 인류의 모습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 다. 인류와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를 보여주는 로봇파티는 1월16일까지 열리니, 놓치지 말자!

Rahul Aijaz Photojournalist/Reporter rahulaijaz@theasian.asia

With the latest surge of films and TV shows with ‘conscious’ robots, I have developed an interest in the artificial intelligence and robots which can perfectly mimic human behavior. When I heard about Art Center Nabi’s Robot Party exhibition, I imagined it to be like something right out of Dr. Krieger’s lab (from the animated television show,

라훌 아이자즈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Archer): glowing radioactive pigs, holographic Japanese anime girls and cyborgs showing more emotional range than humans. But thankfully (or sadly), it wasn’t that. Instead, I was treated to a wonderful show of a variety of robots, some of which exhibited a very Korean behavior: from drinking soju to making soma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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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d at Art Center Nabi in Seoul, Robot Party exhibition converged art and technology with an aim to offer a festival where people could have an emotional experience with robots. Under the title of ‘Emotional Intelligence’, the Robot Party brought experiences for the audience, which imitated the concept of ‘conscious’ robot to an extent. Robots mimicking humans

An aptly named robot, Drinky, created by engineer Eunchan Park and team, turned out to be a heavy soju drinker. With its metal hands, it poured soju in the glass, raise it for a toast and gulp it down in his container, which could contain 20 shots. Another robot, MagentaW - a true Korean I must say - was programmed to make soju and beer cocktail. What proved to be another robotics achievement was from a robot, Tasko by Tasko Inc. from Japan: A robot band which played music. Two headless female robots played the guitar as a system of wires and hands played t he dr ums, as t he audience a nd photojournalists fired away shutters and recorded videos. Another exhibit was the American 19 Doll_Ted Bot, inspired by the talking teddy bear in the American comedy film, Ted featuring Seth McFarlane, the creator of Family Guy, as the voice of Ted. One of the project team member Jo dong-gen said, “It has an artificial intelligence ability to recognize human voice. As it is created to make fun of people, you should watch out as he can utter aggressive words. You have to talk with him in English.” X Chair Walker was, as the name suggests, a walking chair. As you move close to it to sit, it walks away from you. Jeon hye-in, one of the staff of the center, said “There is a principle for robots that they should not be able to harm people. But, in this case, the rule has been a little bit violated.”

A robot, created by Tasko Inc. from Japan, plays a guitar during the music performance. Tasko creators pose with their robot band after the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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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nky toasts with the audience and drinks soju. MagentaW pours soju to make a somaek drink for the audience.

Art Center Nabi’s 7th Hackathon, the international robot building project which was also part of the ‘party’, brought together six participant teams from Japan, China and Korea, continuing the maker movement in the Northeast Asia, to compete and create robot prototypes. All in all, more than 50 robots were exhibited, which combined artistic ability of the makers and high-end technology. Nabi aims to spread the ‘Maker movement’ in Korea through this exhibition, with the idea that a new future of society and culture where humans and robots live together is not far away. With open-source robotics, the Maker culture is a new way to create DIY robots with a dramatic decrease in cost. Besides experts, even students and anyone interested can create their own rob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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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otics is the future. As the Director of Art Center Nabi, Soh Yeong Roh said that besides being industrially used, robots will help in our daily life in the future. The most beautiful aspect of this is that numerous studies have been going on in the Western world as well as in Japan where scientists have invented robots which are capable of thinking, learning and making decisions by themselves, leading to a new debate about the rights of robots. With its technological progress in electronics, shipbuilding and many other industries, and its 35 year long history of designing and building robots, it should not be too long before Korea jumps in the picture and competes with the latest advancements in robotics industry.

art center nabi

American 19 Doll_Ted Bot as it processes the dialog and comes up with a response. Beat Bots Band plays music during another performance. Robotists work on their creations in the 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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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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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tors take a look at the photographs exhibited at the Geoje International Photo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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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s community gathers in Geoje Island Geoje International Photo Festival Summary

‘제1회 거제국제사진전’, 외국인 사진작가 한자리 “원더풀!” ‘제1회 거제국제사진전’에 기자가 출품한 사진이 선정돼, 지난 11월27일 이틀간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를 방문했 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근 5시간만에 거제도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창 밖으로 보이는 설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요 며 칠 눈이 내린 덕분에 하얗게 뒤덮인 산과 지붕들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전은 옥포동에 위치한 ‘거제국제교류센터’에서 열리는 데 이 곳까지는 내려서 한 시간 가량이 더 소요됐다. 대망의 날, 관객들에게 공개되는 ‘제1회 거제국제사진전’에는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와 150여장의 사진을 살펴보며 즐거운 시 간을 즐겼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거제도에서 거주하는 많은 외국인들이 사진전을 찾았으며 서울, 부산, 대전 등 멀리에서 온 여행객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개인 세미나를 열었던 조슈아 헤린, 피터 드마르코, 데비 콜린스 작가는 사진 편집부터 시 작해 인물 및 흑백사진에 대한 정보와 카메라 청소 팁 등을 관람객 및 사진전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강연했다. 이 중 피터 드마르코가 사진 작가들만의 각기 다른 작업 방식을 소개한 것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강의를 마친 뒤 사람들은 그룹 별로 자신만의 ‘사진 철학’에 대해 토론했다. 워크샵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유용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 간이었다. 기자도 이번 사진전을 통해 새로운 사진작가들을 만났다. 평소 인물이나 거리 사진들을 주로 찍는 편인데, 이번 전시를 통해 다양한 풍경사진들을 접하고 나니 ‘이 분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로이 크루즈와 오이진 피니 작가가 곤지암에서 촬영한 풍경 사진은 기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릴 정도로 멋졌다. 사진전이 열린 거제국제교류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실, 등산, 댄스, 미술 등 다양한 강좌와 공연 등 Rahul Aijaz Photojournalist/Reporter rahulaijaz@theasian.asia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이번에 열린 ‘제1차 거제국제사진전’ 역시 그 일환으로, 향후 더 많은 사진작가 및 아마추어들이 참 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라훌 아이자즈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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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November 27 marked my first visit to Geoje Island, the second largest island in Korea. The reason was quite simple and interesting. My photographs had been selected as part of the first Geoje International Photo Festival and I was also on assignment to cover the festival. The two-day journey to the socalled ‘Sin City’ of Korea started with a bus ride. The snow covered mountains loomed on both sides of the road and the white rooftops protected with cottonlike layers. The near five-hour ride came to an end and then another hour to find my destination: Geoje International Center in Okpo. My first day included helping out in arranging the photographs and subsequently, dinner and coffee, ending the night with a few beers in the hotel Participants discuss photo editing techniques in Pete DeMarco’s Lightroom Ideas Exchange workshop. Participants practice photo composition in Debbie Collins’ workshop.

room, watching a UFC show, dubbed in Korean. Showtime in Geoje

The next morning, it was show time. The exhibition began and I hopped down to the venue, observing a number of visitors lost in thoughts, analyzing

and enjoying the 150 photographs exhibited. But that was not all there was to it. There were multiple workshops, inviting amateurs and professionals alike to learn and advance their photography skills. Joshua Herrin, Pete DeMarco and Debbie Collins conducted individual


070

Features

magazine N | 201601

A visitor takes a look at photographs by Rahul Aijaz.

seminars on photo editing techniques, portrait photography, camera cleaning tips and black and white conversion and Lightroom ideas exchange. In a room full of amateur, hobbyist and professional photographers, DeMarco shared Lightroom techniques and how every photographer’s process differs from the other. The experienced users then shared further tips with others in separate groups, so each participant can learn as much as they could from the workshop. T he photo fest ival t ur ned out to be a great occasion to meet new photog raphers, some more experienced, some in the initial learning stage who were nonetheless enthusiastic about the opportunity at hand. Being a mainly portrait and street photographer myself, I came

across some wonderful landscape and urban exploration photographs, t hat i nt r ig ued me i nto possibly experimenting in those genres as well. Some photographers that come to mind are Roy Cruz, Oisin Feeney whose photographs shot in Gonjiam and Macbeth Omega whose stunning landscapes caught my attention. Geoje Community bond

The festival attracted most of the foreigners living in Geoje as well as some who traveled all the way from different cities such as Seoul, Busan and Daejon. What fascinated me most was how the Okpo area of Geoje was a small community, similar to Haebangchon in Seoul. It felt like a bigger ‘Itaewon’ as it came to my knowledge that Geoje has

more foreigners than we have in Itaewon. A communal bond is present among the residents. People are much friendlier and laid back than in most parts of the busy Seoul. The idea of gathering emerging as well as professional and experienced photographers from all over Korea proved to be a great learning experience for beginner enthusiasts. T he fest iva l venue, Geoje International Center, holds regular events and classes for the Geoje community involving Korean language classes, hiking, cooking, dancing, art, concerts and many other events. The photo festival was one of such events to create a ripple in the market and continue the flow of learning and sharing, reaching out to photographers all around the Korean peninsula.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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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체비지·그린벨트·주공 등 기발한 금융공학 사건이 큰 몫” ‘한강의 기적’ 뒤에 숨은 이야기들 상 더럽다”는 소리를 하고…. 그냥 밑천이 좀 모자 란 거다. 셋째, 매우 유식한데, 말이 좀 어눌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주면 사실 대화하며 들인 시간에 비해 가장 효율 적인 투자를 한 거다. 어눌한데 뭘 물어도 서너 번 익힌 답을 던져주는 사람이다. 숨은 강타자들이 많다. 예를 들면 <총 균 쇠>를 쓴 제레드 다이아몬 드다. 그가 누군가를 모르고 이야기를 들으면 아 마 맞먹고 타고 들려고 할 거다. 넷째, 엄청 유식한데가, 말까지 잘 한다. 그런 분은 희귀종이다. 적극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다. 내 의견과 같으냐 아니냐를 떠나, 이런 분들은 무 척 귀중하다. 자기 의견과 다른 데 이렇게 유식하 임동근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고 말 잘하면 무척 미워하는 사람이 많다. 다섯째, 엄청 유식하고 말까지 잘 한다. 하는

필자는 아침에 조깅하면서 강의를 듣는 습관이 있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들으면 음악이요, 쓰면 시다.

다. 좋은 강의, 조깅, 좋은 경치, 좋은 날씨. 인생

오바마 대통령과 손석희 앵커 같은 사람이 그렇

에 이 보다 더 큰 낙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해도 미워할 수 없다. 워

필자가 좋아하는 강의와 인터뷰가 있는데, 임 동근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의 인터뷰를 무척 좋아

낙 말을 아름답게 잘 한다. 임동근 박사가 바로 다 섯째 유형이다.

한다. 이번에 그분의 책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 생>이 나왔길래 사서 읽었다. 책 내용을 소개하기

메디치가·로스차일드가 ‘고난’, 유럽전쟁 양상 바꾸기도

전에 내가 그의 인터뷰를 왜 좋아했는지에 대해

말 잘하는 분은 말투에도 독특한 리듬이 있다.

이야기하려 한다. 사람이 말을 할 때 여러 스타일이 있다.

이 무척 높은 뒷얘기를 이미 생각하고 있는 거다.

첫째, 그냥 무식한데, 말까지 어눌한 사람이

상대의 관심을 차분히 끌고 올라가다가, 클라이맥

있다. 일단 논외로 치자.

김영수 국제금융학자, 경제학박사

문장의 서두에서는 오히려 소리가 작다. 지적 함량

스에서 문장을 탁 끊어버린다. 당연히 어퍼컷을 맞

둘째, 말은 잘하는데, 좀 무식한 사람들이 있

은 상대는 계속 생각하게 되고, 이 도사들은 다음

다. 피곤하다. 저질러 놓고 수습 못하는 말들을 많

이슈로 넘어가 버린다. 거기서도 서두에는 소리가

이 한다. 수습한답시고 괜히 자조적인 척한다. “세

또 작다. 무서운 두뇌를 가진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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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임동근 박사의 <메트로폴리스 서울

한강의 기적이라는 대사건 뒤에는 ‘체

의 탄생>은 서울의 도시발전의 근세사를

비지’ ‘그린벨트’ ‘주공’이라는 기발한 금융

자한테 뇌물이나 받으면 나라가 망하는 거다.

정리하고 있다. 행정조직은 어떻게 현재

공학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번호를

❿ 정부가 필요로 하는 돈이 엄청 많다. 그런데

의 형태를 갖추었고, 어느 지역은 왜 지금

매겨가면서 설명을 해보자.

그 돈을 다 댈 만큼 체비지가 팔리지 않는다.

처럼 개발이 되었고, 누가 돈을 벌었고,

터리로 만들고, 집행도 잘 못하고, 거기다가 업

 그래서 나오는 묘수가 있다. 그린벨트로 상

왜 벌었고, 못 번 사람들은 누구이며 왜

❶ 국가전체의 발전에 필요한 돈이 있다. 정부

당 부분 땅을 묶는다. 재산권을 엄청 제한해 버

못벌었는지를 기가 막히게 잘 정리하고

는 그 돈이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개인이고

린다. 환경도 보호하는 명분과 실리 효과를 다

있다. 그리고 나와 우리 부모가 그 시점에

정부고 꼭 언제나 돈이 모자란다.

본다. 그래서 토지에 대한 수요를 정부의 체비

어디서 살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를

❷ 그렇다고 돈을 찍으면 인플레가 발생하고,

지로 몬다.

생각하면서 읽으니 더 재미있고 더 현실

외국에서 빌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

 그리고 정부의 체비지를 주공이 일단 매입

감 있게 다가온다. 어디 어디 살던 내 친

❸ 이때 땅을 수용한다. 지주들은 좀 억울하다.

한다. 주공은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개발, 판매

구들…. ‘아, 그 친구들은 이런 개인사를

그러나, 이래저래 개발되지 못하는 값 없는 땅

할 노하우를 그간 재빨리 습득했다. 체비지를

겪었겠구나’ 생각하게도 만든다.

이니 그 억울함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일부 남

팔릴 만한 아파트단지로 만들어 파는데 성공한

겨 주기도 한다. 다른 땅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다. 그래서, 다시 정부와 주공 그리고 지주가 모

지’ 관련 내용이다. 한 인간의 흥망, 한 기

❹ 정부가 계획을 하고 이를 발표한다.

두 윈-윈-윈을 이룬다. 주공이 그런 노하우를

업의 흥망, 세계적인 대사건 뒤에는 언제

❺ 3번의 땅 가운데 상당 부분을 상당히 높은

못 얻었다면, 혹은 노하우를 얻었더라도 사람들

나 기가 막힌 금융공학적 사건이 있기 마

가격에 민간에 판다.

이 사지 않았다면 말이다.

련이다.

❻ 그 돈으로 4번의 계획을 추진한다.

 그런데다 중동 특수와 베트남 특수 때 들어

내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것은 ‘체비

제2차대전 때도, 영국금융도사 처칠

❼ 계획이 성공하고 나면, 5번에서처럼 비싼 가

온 돈으로 위의 모든 단계에서의 자금난에 숨

과 월스트리트의 변호사 출신의 금융빠

격에 산 사람도 돈을 번다. 심지어는 3번에서

통을 틔어놓았다. 즉, 1번에서 12번이 아무리

꼼이 루즈벨트 둘이서 군수물자를 놓고

억울하던 지주들도 남아있던 땅 가격이 올라서

잘 되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숨통을 터주는 그

기가 막힌 금융공학을 펼친다. 군수물자

좋다. 훨씬 더 벌 수 있었지만 그보다 못 미쳐

한방, 한방들이 없으면 백약이 무효한 거다. 사

를 묘하게 리스(Lease) 해주는 방법을

억울할 뿐이지, 재산으로는 상당히 흐뭇한 상

람은 역시 운이 따라줘야 한다. 또, 그런 한방들

만들었다. 이들은 미국 국회에서 발생할

태를 만들어 준다.

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그 운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견제를 우회하고, 고갈된 영국

❽ 위의 윈-윈-윈이 성공하려면 당연히 4번의

자격이 없으면 그것이 내 것이 되질 못한다.

의 해외금융자산(금)의 문제를 풀어준다.

계획이 좋아야 한다.

 이제는 민간도 아파트단지 개발 노하우를

메디치가와 로스차일드가의 고난도

❾ 예를 들어 길을 보자, 길이 뚫리기만 하면 사

갖추게 됐다.

금융공학 ‘필살기 시전(市廛)’으로 많은

람들이 이용하고, 예전에 멀어서 한가했던 지역

 경제가 이미 도약단계로 들어간다.

유럽전쟁의 향배가 바뀌기도 하고, 인민

들이 번화가로 바뀐다. 예전에는 관료들이 그런

은행의 금융공학적 개인기 시전으로 국

것을 잘했다는 이야기다. 상당히 유능하고 청

공전쟁에서 승패가 갈리기도 했다.

렴하면서 그같은 집단이성이 있었다. 계획을 엉

한강의 기적 뒤에는 이런 기막힌 금 융공학적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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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AP

COP21에서 연설하고 있는 마윈

작은거인 알리바바 마윈 [ 8 ]

만사 제치고 COP21 참석 마윈 “내가 외계인이면 지구 떠난다”

안동일 칼럼니스트, 동아시아 연구가 <북관대첩비> <장수왕의 나라> 저자

독특한 외모 때문에 마윈은 종종 외계인, ET 라

마윈(馬雲) 회장은 2015년, 재산의 10% 규모

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런 외계인의 남다른 지구

인 2조6000억원 가량을 내놓으며 2014년에 작년

사랑, 이웃사랑이 세모를 맞아 크게 부각되고 있

에도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상하이에서 발행되

다.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중국에서도 기부에 대

는 <제일재경일보>는 중국 사회과학원 기업사회책

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임연구센터가 최근 발표한 ‘2015년 중국기업가 공

어떻게 보면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하면

익행위연구보고’를 통해 자산순위 100대 기업인

서도 빈부 격차가 날로 심각해진다는 얘기의 반증

중 26명만이 지난해 기부금을 낸 기록이 있었다

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 100대 부호의 70% 이상

고 보도했다. 나머지 74명은 한푼도 내지 않은 셈

이 올해 기부금을 한푼도 내놓지 않은 것으로 나

이다. 이들 기업인 26명이 낸 기부금 총액은 165억

타났다.

5900만 위안(2조9900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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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갑부 100명의 자산총액이 4조

2015년 11월30일 개막한 기후변화협약

치고 싶을 정도”라고 중국 대기오염의 심

430억 위안(730조원)인 점에 비춰 기부

당사국총회(COP21)에 참석차 프랑스 파

각함을 전했다.

율은 0.41%에 불과하다. 그나마 마윈 회

리를 찾은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지구

마 회장은 “하지만 나는 안타깝게도

장의 ‘통큰’ 기부가 중국 기업인의 체면치

를 떠나고 싶을 정도의 스모그 등 기후

외계인이 아니고 인류에게 지구는 단 하

레를 해준 셈이다. 마 회장은 지난해 100

변화 문제 해결을 위해 전 인류가 함께

나 뿐”이라며 “환경오염 문제는 정치인만

대 기업인 기부금 총액의 88.5%를 차지하

행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환경문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주

는 총 146억4800만 위안(2조6452억원)

제에 관한 자신의 관심도를 다시 상기시

목하고 책임져야할 문제”라고 말했다.

을 내놓았다. 자기 재산(1450억 위안)의

켰다.

마 회장은 또 “중국 SNS에서 최근 가

마윈은 메인 행사였던 ‘액션데이’에

장 인기 있는 이미지는 ‘푸른 하늘’”이라

2위인 부동산 개발상 황루룬(黃如

주제 발표자로 나서 “진짜 내가 외계인이

며 “앞으로 50년 후에 아이들에게 코끼

論) 스지진위안(世紀金源) 그룹 이사장의

라면 지구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환경이

리, 나비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해야 하

기부액 2억8100만 위안과도 한참 차이가

오염됐다”면서 “이는 실질적인 행동을 통

고 호랑이가 공룡처럼 멸종동물이 될까

난다. 중국 최고 부호인 왕젠린(王健林)

해 함께 해결해야할 중대한 문제”라고 강

두렵다”고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거듭 강

완다그룹 회장 이름은 기부액 상위 10인

조했다.

조했다.

10.1%에 달하는 액수다.

의 명단에 나오지 않았다.

마 회장은 “내가 많은 업무를 제쳐두 “기업인, 지구 대가로 돈 벌면 안돼”

기업사회책임연구센터 책임자는 “절

고 기후변화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자 주

반 이상 기업인의 공익지수가 ‘제로’였고

변 지인들이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면서

마윈 회장은 일각의 경제성장과 환경

자산 대비 기부율이 0.5%에도 미치지 못

“중국에서는 내가 미친 짓을 하거나 나

보호가 함께 이뤄질 수 없다는 시각에 대

했다는 점은 중국 기업인들이 ‘능력이 많

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나를 외계인 같다

해서도 “그렇지 않다”면서 “기업인은 지

을수록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회적 인식

고들 한다”고 말했다. 또 “지난주 베이징

구를 대가로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고

이 부족하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에 밀려든 스모그는 숨막히게 심각했고

강조했다. 그는 “인류 모두가 함께 환경오

며 “그런 점에서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최근 몇 년 암으로 고통받다 하늘로 떠난

염과의 전쟁에 나서야 한다”면서 “이 전쟁

경우는 커다란 귀감”이라고 말했다.

친척과 친구도 꽤 된다”면서 “내가 정말

에서 패배하면 인류는 전부 사라져 승자

외계인이라면 지구를 떠나 우주로 도망

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런 가운데 중국 기업인을 대표해

AP

이런 마윈의 인기가 계속 올라가면서 인터넷 매체에는 마윈의 복사판 도플갱 어로 SNS에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키 콴쇼우씨의 사진이 실려 많은 관심을 끌 고 있다. 중국 산둥성 청도의 한 건물에서 경 비원으로 일하는 콴쇼우는 툭 튀어나온 광대, 동그랗고 큰 눈, 뭉툭한 코 등 많은 부분이 마윈 회장과 꼭 닮았다. 특히 왜 소한 체격과 선한 인상은 마윈 회장이라 고 착각할 정도다. 그는 “마윈 회장의 독특한 외모에 대 해 외계인이나 원숭이를 닮았다는 등 말 들이 많은데 착한 일 많이 하는 마회장과 닮아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다는 사

한 시민이 얼굴을 마스크로 감싼채 스모그로 뿌옇게 가려진 베이징 시내를 걷고 있다.

실이 싫지는 않다”고 했다.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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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마윈·오프라 윈프리 찾는 면세점 꼭 만들 것” 시티플러스, 한국 토산품·합리적 가격으로 대기업과 승부

Summary

Dream of a Duty-free shop where Jack Ma and Oprah Winfrey would love to visit The world-class small-medium duty-free shops have just opened at the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in October, being officially allowed by the governemnt for the first time. One of them is the ‘City Duty-free shop’, which is located in the west DF10.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has become the hub that allows Asian countries and further, from America to Africa to be connected with each other. An Hye-jin, president of the City Duty-free, which is the first Korean small-medium duty-free shop that has opened at the airport, says, “The start was a bit late. However, we want to be loved by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with our reasonable price and high quality products. The City Duty-free shop hopes to be a comfortable place where it is worth staying long and to visit again and again.” An Hye-jin, who once worked as a highschool teacher, also served the head of Korean branch of an influential Chinese company, began this new challenge with her 200 employees. President An says, “My dream is to make such a duty-free shop that even world-class celebrities such as Jack Ma and Oprah Winfrey would love to visit here.”

Lee Sang-ki | Summary by Choi Jung-ah Staff Reporter

중소기업 면세점이 2015년 정부 허가를 받아 10

이 회사 200명의 직원을 이끌고 새로운 도전

월말부터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인천공항에서 본

에 나서고 있는 시티플러스 안혜진(52) 공동대표

격적인 영업에 들어간 곳이 있다. 인천공항 웨스

는 이력이 다소 특이하다. 수학교사 출신으로 유

트 DF10 구역에 자리잡은 시티면세점이 바로 그

력한 중국 금약그룹 한국지사장을 맡다가 2015

곳이다.

년 초 이 회사에 합류했다. 안 공동대표는 “가게

중국, 일본, 아세안국가, 중동 등 아시아는 물

분위기는 ‘펀(fun)’하고 상품은 ‘유니크(unique)’

론 미국, 유럽과 멀리 아프리카까지 연결되는 항공

하며 직원들은 진심어린 미소로 국내외 손님을

기가 출발하는 인천공항은 세계 공항의 허브 역

가족처럼 모시는 게 시티면세점의 꿈이자 목표”

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으로는

라고 했다.

한국 최초로 면세점을 오픈한 시티플러스의 꿈은 다음 문장으로 압축돼 있다.

안 대표는 “중국 알리바마의 마윈, 미국의 오 프라 윈프리, 프랑스의 샤넬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 펠트 등이 우리 시티면세점을 찾도록 하는 게 꿈

“출발은 늦었지만, 한국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린 고품격의 합 이상기 기자

이며 실현가능한 미래”라고 했다.

리적인 가격의 제품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싶다. 한번 방

winwin0625@theasian.asia

문한 손님이 다시 찾고 싶은 곳, 내 집 같은 편하고 오래 머물

중소기업 최초로 시티플러스가 세계적인 인천공항 면세점에

사진 시티플러스 제공

고 싶은 곳, 바로 시티면세점!”

입점한 걸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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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축하받을 일이긴 하지만, 험난한 길

가구매력(buying power)와 이를 발판

“절대 그렇지 않다. 솔직히 힘들다. 면

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이 많다. 280

으로 60~70%의 바겐세일까지 하고 있

세점은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유

평 매장에 연간 180억원, 하루 5천만원

어, 중소기업인 시티면세점은 같은 방식

명 브랜드는 중소기업 면세점 입점을 꺼

에 해당하는 임대료 직원 200명 급여 등

으로 하면 백전백패할 수 밖에 없다. 특

린다. 대기업 화장품의 경우 해외 톱 브

하루 최소한 2억원의 매출을 내야 하는

히 우리 시티면세점이 있는 서편 엔틀러

랜드 제품이 없으면 자사 화장품 브랜드

데 그게 쉽지 않다. 하지만 거대한 전차

(30~41번 게이트)에는 공항 이용객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물건을 주지 않는다.

에 올라탄 골리앗들 사이를 자갈을 쥐고

10% 정도만 다닌다. 따라서 국내 중소기

대기업은 싸게 구매가 가능해 마진율이

가로지르는 다윗의 심정으로 반드시 돌

업 제품 중심의 ‘아임쇼핑’ 매장에는 아

50~65%에 달해 할인쿠폰을 마구 뿌리

파해 나갈 것이다.”

이디어와 기술력 갖춘 중소기업의 합리

고 멤버십 회원들에게 추가로 할인해 준

인천공항은 2015년 처음으로 중소기업에게 면세

적인 가격의 고품질 신상품 코너를 냈다.

다. 우리가 그랬다가는 뱁새가 황새 따라

점 입점 자격을 주었는데, 후발주자로서 어떤 전

여기서 국내 명인, 명장의 토산품으로

가는 격으로 망하고 만다. 시티면세점은

략을 세우고 있나?

승부를 걸 예정이다.”

소비자에게 정직한 가격으로 제품을 팔

“롯데·신라·신세계 등 대기업이 8

구체적으로 어떤 제품들인지 소개해달라.

고, 정부에 대해서는 면세유통구조의 개

개 구역, 시티플러스·SM·엔타스·삼

“강릉 유과, 서산 한과, 춘천 옥비누

선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익악기 등 중소기업이 4개 구역 운영자

등 외국인이 좋아하는 우리 고유제품과

정부가 움직여 줄 것으로 보는가?

로 선정됐다. 우리 시티면세점은 대기

정관장에 가려 빛을 못 보는 홍삼 흑삼

“그동안 대기업이 독점하던 공항면세

업 면세점처럼 향수·화장품·주류·담

제품들이 그것이다. 특히 중국 젊은 부부

점을 중소기업에 개방한 것은 크게 박수

배 등 전 품목을 판매한다. 100m 달리

여행객을 겨냥한 고급 매트리스와 아기

받을 일이다. 기획재정부나 관세청 등 관

기에서 50m쯤 앞서달리는 대기업과 경

용품 등도 눈여겨 보고 있다.”

련 당국도 처음 시행하는 중소기업 인천

쟁에서 이기려면 다른 전략을 쓸 수밖

그런 전략이 성공하면 수익면에서도 불리하지 않

공항 면세점이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

에 없다. 대기업은 대량구매에 따른 저

을 것 같다.

방법을 찾고 있다고 들었다. 면세점 특허


078

magazine N | 201601

권 기간도 기존 5년에서 8년으로 상향조

표가 생각하는 면세점 직원들의 직업관과 회사의

해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때 인연을 맺은

정하는 것도 제안하고자 한다.”

직원 처우는 어떤지 궁금하다.

분이 모기업인 (주)탑솔라의 대표 오형석

이웃 일본이나 중국의 면세점 상황은 어떤가?

“진정성 있게 손님을 가족처럼 여기

회장이다. 오 대표와 내가 시티플러스 공

“일본은 시골 관광지까지 소형면세점

는 게 가장 중요하다. ‘키 크고 잘 생긴

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 잘 돼있다. 중국관광객이 한국을 떠나

외모’보다 진심어린 미소로 손님을 따뜻

중소기업 첫 인천공항 면세점 대표로서 남다른 각

일본으로 몰려가는 이유 중의 하나다. 중

이 응대하는 직원이 훨씬 낫다. 200여

오가 있을 것 같다. 애로사항도 함께 얘기해 달라.

국 역시 하이난과 금문도 지역에 초대형

직원 대우는 대기업 수준으로 맞출 계획

“10월31일 개점 얼마 뒤 외국 출장길

면세점이 들어서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이다. 수익이 얼마가 나오든 첫해 수익의

에 나선 중소기업 대표들이 시티면세점에

도 이들 경쟁국의 실태를 파악해 대비해

30%는 무조건 직원에게 투자하고, 단계

들러 ‘껌이라도 팔아주려고 왔다’고 하시

야 한다고 본다.”

적으로 직원들과 이익을 공유해나갈 계

더라. 눈물이 났다. 그리고 다짐했다. 어

현행 면세점 제도의 문제는 뭐라고 보나?

획이다.”

떤 난관이 있더라도 반드시 성공하겠다

안 대표는 고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고 들었다.

고. 개점 초기엔 면세사업 관련 부처나 대

교사가 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기업 면세점 관계자들이 ‘대기업 틈에서

“과도한 프로모션비용과 높은 임차 료는 결국 입점업체와 소비자가 짊어지게 된다. 1년 중 반년 가까이 바겐세일을 하

“맞다. 30대엔 수학교사와 유명 입시

중소면세점이 해낼 수 있을까’ 우려를 많

고, 1년 내내 사은 행사를 하면서 과잉경

학원 강사와 원장을 지냈다. 2003년 친

이 했는데 지금은 우리를 보는 눈이 많이

쟁을 하면 중소업체는 고래 싸움에 새우

환경 벤처기업에 합류하면서 사업가로 변

달라졌다. 중소기업으로서 한계는 중소

등 터지는 것과 같다. 특히 공기업인 인천

신했으며. 이후 중견 건설업체 임원과 중

기업청은 물론 국민 모두가 격려하고 응

공항공사의 과다한 임대료는 속히 현실

국계 해외투자법인 한국 대표 등을 지냈

원하며 도와주면 그리 멀지않은 시기에

적이고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

다. 전 직장인 중국계 외국 회사가 한국

그 한계를 뛰어넘어 크게 도약할 수 있을

면세점은 유통업이면서 서비스업 아닌가? 안 대

에서 ‘투자 사기’를 당했을 때 소송을 통

것이라 자신한다.”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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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 발전법 입법 땐 청년일자리 10만개 창출” 김영배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 이사장

Summary

Developing service industry to improve domestic economy Chairman Kim Young-bae of the Korean Institute of Service Industry is a representative figure leading the development in the Korean service industry. Beginning with the Korea Specialist Volunteer Association in 2001, he is now the chairman of both the Korean Wig Association and the International Scalp and Hair Association. Upon being asked why he has such an interest in promoting service industry, he responded, “Service industry occupies 70 percent of the total employment sector. However, its working environment is comparatively poor. To improve the weakened domestic economy, development of service industry can be a key role.” For this, he suggests two things: Passing the service development law and growing service industry led by private sector. As many business under government had failed with a lot of regulations, Mr. Kim emphasizes that fresh ideas can be used efficiently if private organizations control the industry. He answered the question about his youth days, “When I was young, I was interested in inventions that brought out something new. As a high school student, I was awarded for creating Natural wind fan in a science contest and, and in college I created a science society, Idea Bank. I used my personal connections with businessmen from science contests for special lectures for my circle, and later I began my research in reusable products in the natural protection association.” Mr. Kim added that he got an offer from Samsung heavy industries before he even graduated, and later worked for Aurora World as the salesman in the overseas department. However, he wanted to escape the monotonous routine of a worker’s life, and quit the job to start his own business. In 1997, the company called Beautiful People Beauty Academy was incredibly successful but later, he went through hard times when his another business venture, Beauty TV failed. Currently, Mr. Kim is operating three organizations. “I see service as the happiness index of life. You can’t talk about life without service. If there is strong service industry environment, I believe people’s lives will be happier,” he said. Kim A-ram Staff Reporter | Summary by Kim Dong-ha

지난 12월14일, 곧 이어질 강추위를 알리기라도 하

스산업진흥원 이사장은 국내 서비스산업 발전에

듯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이날 대학로 상명아트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지난 2001년 대

홀에 위치한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을 찾아 김영배

한민국전문가자원봉사연합회를 시작으로 현재는

(47) 이사장을 만났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사

한국가발협회 및 국제두피모발협회 이사장까지 맡

무실과 큰 액자에 용의 형상을 가미해 그려낸 한자

고 있다. 그를 만나 국내 서비스산업 발전방안 및

‘용’(龍)이 마치 그의 열정을 대변해주는 듯 기개 있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청년 시절부터 남다른 창의 력과 호기심으로 똘똘 뭉쳐있던 김영배 한국서비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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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훌 아이자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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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서비스 산업은 전체 고용의 70

하시더라. 서비스산업 관련 정책을 제안

뷰티아카데미’를 창업했다. 회사를 나온

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데 비해 산업환

하고 다양한 분야에 맞춘 컨설팅을 해보

뒤 사업을 구상하다가 ‘뷰티’시장에 뛰어

경이 열악해 연구 및 개발되어야 할 부분

자는 취지로 지난 2008년 사단법인으로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여성’

이 많다. 현재 한국은 수출경쟁력이 약화

출범했다.”

혹은 ‘아이’와 관련한 사업은 망하지 않는

되고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는 등 어느 때

최근 국회에서 ‘서비스발전법’ 계류 중이다. 국내

다는 이야기가 있어 여성관련 아이템을

보다 내수활성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서비

서비스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른 발상이었다.

스산업의 질적 향상이 절실한 이유다. 이

나아가야 하나?

운이 좋게도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졌다.

에 따라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에서는 다

“서비스발전법에 반대하는 주요 이유

창업 한달 후, IMF사태가 터졌는데 많은

양한 사업과 연구를 시행하고 있다. 3년

중 하나가 의료민영화를 우려해서다. 대

이들이 미용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으

전에는 서비스 직무 분석을 실시했다. 내

다수 서민들이 아닌 일부 상위소득계층

로 몰려들었다. 경제가 휘청거리고 취업

부 실태를 보다 자세히 파악하고 구조개

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목소리가

이 어렵다 보니 자격증을 선호하는 분위

혁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취지로 정부차

많지만, 단편적인 것만 봐서는 안 된다. 의

기가 형성된 덕분이었다. 한달 수강생만

원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현재는 공

료법인이 허용되면 의료관광 등 다양한

8백명에 이를 정도로 성황이었고, 전국

공정책 개발, 브랜드 컨설팅, 신규일자리

분야의 서비스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 또

에 학원 24곳을 운영하게 됐다.”

창출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준비

한 법안에는 기획재정부에 ‘서비스산업선

그야말로 사업이 승승장구하던 시절이라고 할 수

중인 ‘웨딩스트리트사업’은 중국 예비 신

진화위원회’를 두고 5년마다 ‘서비스산업

있겠다. 그밖에 또 어떤 성과를 거뒀나.

랑신부를 겨냥한 것으로, 한국의 우수한

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해 서비스산업 규제

“수익이 엄청나게 급증했다. 5천만원

웨딩서비스를 활용해 웨딩관광에 요우커

완화 등 제도적 지원을 하는 내용이 포함

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250억을 벌어들

들을 끌어 모으는 것이 목표다. 웨딩 촬영

돼있다. 과거 정부가 각종 규제에 얽매여

이기 시작했다. IMF가 운이 되어준 덕분

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요우커만 한 달

정형화된 방식으로 사업을 주도하다 보니

도 있고, 취업연계프로그램을 운영도 꽤

에 1천명이 넘어 전망이 밝다. 이 밖에도

실패가 많았다. 이제 민간 주도로 이끌어

좋은 성과를 거뒀다. 학원 수강생들이 현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은 8만여명의 진흥

나가야 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대표적인

장에 직접 투입될 수 있도록 외부에서 미

원 회원, 3천여명의 교수진과 함께 꾸준

성공사례다. 자체기구를 통해 다양한 아

용업계 관계자를 초빙해 직접 강의를 했

히 협력하고 있다.”

이디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기회가 충분했

다. 현장선행교육 덕분에 우리 학원 수강

한국서비스산업진흥원 창립 계기는 무엇이었나.

기 때문에 명실공히 아시아 최대영화축제

생은 일반 직원에 비해 월급도 20만원 가

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량 더 받았다. 당시 미용실 직원 월급이

서 운영위원장를 맡고 있었는데 함께 일

1990년대에는 뷰티아카데미 사업을 한 것으로 알

40만원부터 시작했으니, 학원 출신 수강

하시던 분들께서 봉사만 할게 아니라 서

고 있다. 자세히 소개해달라.

생은 월급이 70만원이었던 셈이다. 또한,

“대한민국전문가 자원봉사연합회에

비스 발전을 위한 통로를 만들어보자고

“지난 1997년 11월 ‘아름다운 사람들

미용 관련 언론사 ‘뷰티투데이’를 창간하


081

magazine N | 201601

고 국내에 미용관련 통계자료가 없어 ‘미

간자격증을 만들어 진행했다. 두피모발

영업부로 이직했다. 그러나 정형화된 회

용연감’을 발행하는 등 뷰티산업 발전의

관리사는 탈모로 외모를 고민하는 고객

사생활이 내게는 맞지 않아 그만두고 사

토대를 만들었다.”

에게 가발 상담부터 스타일링까지 도맡는

업을 시작하게 됐다.”

지난 2001년 ‘대한민국전문가 자원봉사연합회’를

전문직종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 현재

힘든 시기는 없었나.

만들었다. 서비스산업에 매진해온 그간의 행보와

의 협회가 만들어졌다.”

는 색다른 모습인데.

서비스산업 중에서도 뷰티산업에 일가견이 있으

하다 큰 돈을 한꺼번에 잃었다. 어린 나이

“지난 2002년 뷰티 관련 신규 사업을

“뷰티아카데미 사업 당시 수강생들과

신 듯 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공헌활동에도 힘쓰

에 큰 돈을 손에 쥔데다, 경험이 부족해

함께 무료미용봉사 등 봉사활동을 다녔

고 계시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꾸준히 일궈올 수

서 생긴 일이다. 굉장히 힘들었다. 이 일

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서비스분

있는 원동력이 궁금하다. 어린 시절은 어땠나.

로 본의 아니게 회사를 나와 다시 사업

야의 사람들과도 알게 되더라. 요리나 집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특히

을 시작했다. 지난 2010년 ‘뷰티TV’를 창

수리부터 시작해 음식, 의료까지 서비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발명에 관

설해 홈쇼핑과 방문판매의 장점을 결합

전문봉사팀과 교류했던 당시 경험이 ‘대

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전국

해 만든 방송 서비스인 이른바 ‘홀쇼핑’

한민국전문가 자원봉사연합회’의 시초가

발명경진대회에 참여해 ‘자연풍선풍기’로

(Hallshopping)을 제공하는 일을 했다.

됐다.”

수상한 특상을 계기로, 대학에서 발명동

미용실에 여행,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지난 2005년, 2008년에는 각각 한국가발협회와

아리 ‘아이디어뱅크’를 만들었다. 각종 발

뉴스와 함께 중간중간 판매방송을 삽입

국제두피모발협회를 발족했는데, 무슨 계기가 있

명대회에 참여하며 알게 됐던 기업인 인

했다. 기존 홈쇼핑과 달랐던 점은 ‘주문전

었나.

맥을 활용해 동아리 특강에도 초청했고,

화번호’ 대신 ‘지금 계신 미용실 원장님과

“뷰티산업에 뛰어들어 꾸준히 서비스

나중에는 자연보호협회에서 폐식용유로

상담하세요’라는 문구였다. 홈쇼핑이 고

분야에 매진하다 보니, 더욱 발전하기 위

만드는 비누 등 재활용상품 연구개발에

객에게 구매의사를 충분히 할 시간을 주

해서는 커트나 파마 같은 노동의존형 미

매진했다. 당시 교수님들은 날더러 ‘유별

지 않아 반품률이 높다는 것에 착안, 방

용 아이템보다 고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새

나다’고 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늘

문판매의 고객맞춤형 판매의 장점을 결

로운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후

밖에서 기업이니 발명이니 돌아다녔기 때

합해 만든 방송이다. 지금은 협회에 집중

탈모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관련 전문가

문 일거다. 졸업 전 삼성 부사장 소개로

하고 있다.”

를 양성하기 위해 ‘두피모발관리사’ 등 민

입사했다가, 완구회사 오로라월드 해외

김영배 이사장에게 서비스란 어떤 의미인가?

“삶의 행복지수라고 본다. 서비스를 뉴시스

떼놓고 생활을 말할 수 없다. 현대 사회 에서 가장 밀접한 산업이 바로 서비스산 업이다. 대중교통부터 시작해 식당 등 서 비스는 늘 우리가 이용하는 일상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난 늘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꾼다. 현대사회는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과 서비스 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튼튼한 서비스산업 환경이 뒷받침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서비스발전법이 통과되면 청년일자 리 10만개 창출 등 경제발전뿐 아니라 많 은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더욱 높아질 것

2015년 9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 뷰티박람회ʼ 방문객들이 각종 뷰티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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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김국헌 군사학박사 국방부 정책기획관 역임

반기문 총장의 최고 업적 ‘파리 기후협정’에 아낌없는 갈채를 Summary

COP21 reaches a deal to curb hazardous emissions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 국 총회(COP 21)에 참가한 195개국은 선 진국·개발도상국 구분 없이 2021년부터

1​​​95 parties, which participated in 2015 United Nations Climate Change Conference (COP21) held in Paris, France, pledged to curb emissions, strengthen resilience and joined to take common climate action from 2021. This is the first agreement has been reached for obligatory reduction of emissions.

온실가스 감축 실현을 의무화하는 내용 의 협정에 가입했다. 전 세계가 의무감축 에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직 온

Although there are some critics about the lack of exact details such as when and how the

실가스를 “언제, 어떻게 줄여나갈지 구체

countries will cut the emissions, the outcomes of COP21 reached a landmark conclusion

적인 일정에 빠졌다”는 비판은 있으나, 인

that humanity is on its way to reduce the hazardous emissions. This can be called a ‘des-

류가 일단 이 길로 들어선 것은 큰 의의를

perate promise’ at the international level, and it is the same as the Paris Declaration of Hu-

갖는다. 이것은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약

man Rights in 1948, which was the ‘most beautiful promise of humanity’. Humanity is facing a catastrophe that no one can deny. Firstly, people in Beijing are suffering from the worst smog that has made it hard to breathe, and showed the limits of China’s national management. Thanks to Chinese economic reform led by the

속’인 1948년의 파리 인권선언과 같은, 지 구적 차원에서 ‘가장 절박한 약속’이라 할 수 있다.

former President Deng Xiaoping, China achieved the rapid economic growth, and became the world factory. However, the climate problem would not be solved in a short time. A large number of Chinese people could leave the country only for the purpose for ‘breathing’. Secondly, a number of prominent coastal cities around the world, such as Maldives face a risk of being submerged. Singapore could also disappear. Korea has been promoting the‘Green Growth’ project since the last government. Thanks to this project, Korean

인구감소·신에너지 사업에도 관심을

인류는 지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난국(catastrophe)에 직면하고 있다. 첫 째, 베이징에서는 숨 쉬는 것이 어려워졌 다. 베이징에 파견된 특파원들이 전하는

President Park Guen-hye proposed specific plans regarding the ‘energy industry’ in

보도는 숨 막힐 정도다. 값싼 노임으로 ‘세

Paris, the scale of which could expand to worth 10 trillion won, and create 500,000 jobs.

계의 공장’이 된 중국이 시진핑 주석도 어

Experts say that Korea’s future would depend on ‘decoupling’, which can be developed

쩔 수 없는 스모그로 마비된 것은 중국의

by reducing greenhouse gas. To do so, it needs to expand renewable energy develop-

국가 경영전략의 한계를 증명한다. 등소평

ment projects, and to encourage bio-energy and carbon capture technology. At the same time, the institutional framework should be conducted and the minimum consumer strategy should be utilized rather than energy-guzzling industry structure.

의 개혁 개방으로 소위 G2로 불리게 된 지 금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Eventually, Korea has to reorganize its industry structure, as China catches up with Ko-

다. 이제 당면한 문제는 단시간에 풀리지

rea. Furthermore, small and middle-sized but prominent companies of energy conser-

않는다. 수많은 중국인이 ‘숨을 쉬기 위해’

vation such as Finland, Swaziland and Germany should become leading supporters of

중국에서 탈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Korea’s economy. ​ Kim Kook-Hun Former Director General for Policy Coordination, Ministry of National Defense | Summary by Choi Jung-ah

둘째, 태평양의 유명 관광지 몰디브 를 비롯하여 바다에 인접한 세계의 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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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사 신화사

지난 11월3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COP21 개막식 COP21에서 연설하고 있는 반기문 총장

도시들이 수몰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싱가포르도 사라질지 모른다. 한국은 지 난 정부에서 녹색성장의 기치를 내건 이 래 실천이 가능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파리회의에서 태양광·풍력 등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보 급 확대를 서두르고, 장차 에너지 산업을 100조원 규모로 키우고 일자리 50만개를 창출하겠다고 구체적인 구상을 밝힌 것은 이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온실가스를 줄이며 성장 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 脫同調化)에 한 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되찾는 등 적극적인 국정운영이 필요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확대하고, 바이오에

기후변화 이외에도 한국엔 다른 문

너지와 탄소포집기술에 박차를 가하며,

제들이 산적해 있다. 한국이 마주한 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

다른 문제는 출산율 감소다. 이대로 나가

그 중에서도 신재생 에너지는 이번 기

축하고,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를 에너

다가는 현재 5천만이 넘는 인구가 2100

후변화협약에서도 주요 의제로 등장했다.

지 ‘최소 소비 전략’ 구조로 개편하여야 한

년 경에는 4천만 이하로 감소된다는 것

한국은 전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신에너지

다. 어차피 중국의 추격에 밀려 산업구조

이다. 이는 노동인구 감소를 의미하며,

산업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한국이

를 재편해야 되는데 이를 앞당기는 계기

국가적 경제차원에서 커다란 손실이 될

배출한 세계적인 외교관 반기문 유엔사무

로 삼는 것이다. 나아가 핀란드, 스위스,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남북

총장이 기후변화협약의 중심에서 중대한

독일과 같은 강소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

경제 통합을 통해서 생산인구를 늘리고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에게

를 조정해야 한다.

신에너지 산업 등으로 청년들의 활력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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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당신의 성공에 필요한 3가지 렌즈 필자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물품 중 한 가

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기 때

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

지는 바로 수동카메라다. 사진에 대한 관

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접사렌즈를 구입했

고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지

심과 매력에 빠져 20여년 전 구입해 지금

다. 이 렌즈는 매우 가까이서 초점을 맞출

등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까지 소장하고 있다.

수 있어 보다 자세하고 세밀한 촬영이 가

힘겹다고 하더라도 결코 빠뜨려서는 안

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될 렌즈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을 배우면서 처음에는 표준렌즈 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다들 알다

표준렌즈를 비롯해서 망원렌즈와 광

두 번째 렌즈로는 자신의 생각과 네트

시피 표준렌즈는 사람의 시각과 가장 유

각렌즈 그리고 접사렌즈를 가지고 사진을

워킹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광각렌즈를

사한 각도와 거리를 가지고 있어 육안으

찍기 시작하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것과

권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독서의 양을

로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을 수

표현하기 어려웠던 것 등을 대부분 해결

획기적으로 늘리고 다양한 분야에 있는

있다. 그러나 표준렌즈만으로는 더 멀리

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즐

사람들과의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자신

더 넓게 그리고 더 자세하게 보고자 하는

거움도 배가됐다.

이 관심있는 분야의 책만 읽거나 익숙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웠다.

물론 지금은 이 카메라와 각종 렌즈

사람들과의 만남만으로는 이와 같은 렌즈 를 가질 수 없다.

이와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가끔씩 꺼내 놓

는 별도의 렌즈가 필요했고 필자는 용돈

고 보면서 삶과 일에 있어서 발생하는 문

마지막으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을 조금씩 모아 각각의 용도에 맞는 렌즈

제를 해결하거나 즐거움을 느끼기

보다 자세하고 세심하게 볼 수 있는 접사

위해서는 사진을 찍는 것과 마

렌즈를 권하고자 한다. 어떤 현상이나 문

찬가지로 표준렌

제에 대해 세밀하게 보는 것은 전체를 보

즈뿐만 아니

는 것만큼 중요하다. 바둑 용어 중 착안대

금액이

라 다양 한

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이라는

모인 후

렌즈 를 가

말이 있는데 이는 거시적으로 보되 한수

가장 먼저

지고 있어

한수는 세심하게 하라는 뜻으로 우리의

구입한 렌

야 한다는

삶과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즈는 망원

생각을 해

있다.

렌 즈였 다.

본다.

를 하나씩 추가로 구매하기 로 했다. 소정의

당신은 어떤 렌즈로 삶과 일을 바라

그리 고

보는가? 만일 단 하나의 렌즈만으로 바라

이와 관련해

보았다면 다른 렌즈를 통해 다시 한 번 볼

서 첫 번째 렌즈로 자신

생각은 없는가?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망

것을 넘어 더 멀리 더 넓게 그리고 더 자세

문이었다. 다음으로는 광각렌즈를 구입했

원렌즈를 권하고 싶다. 삶과 일에 있어 망

하게 볼 수 있는 렌즈로 교체해서 보는 것

는데 이는 화각이 넓어서 육안으로 보이

원렌즈와 같은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 멀리 있 는 피사체를 바 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다는 매력이 남달랐기 때


Perspectives

086

magazine N | 201601

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 16 ]

대만 국민이 ‘국적 찾기 투쟁’에 동원하고 있는 것은?

2015년 11월 싱가포르에서 만 난 양안 정상의 굳은 악수. (왼 쪽) 그러나 최근 대만은 중화민 국 표기를 가린 여권 스티커로 떠들썩하다.

정부 당국이 발급한 공식 여권에 별도의 비닐 커버

이른바 ‘국적(國籍)찾기 투쟁’이다.

를 씌우는 것은 불법인가. 여권이 훼손되는 것을 막

이 스티커와 짝을 이루는 게 ‘Taiwan is my

으려고 씌우는 것이어서 커버가 용인된다면, 거기

Country’라는 스티커다. ‘대만국’ 스티커가 여권의

에 또 다른 문구를 집어넣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것

앞표지용이라면 ‘Taiwan is my Country’ 스티커

은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요즘 대만 국민들 사이

는 뒷표지용이다. 한자로 ‘台灣是我的國家’라는 문

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논란이다.

구가 함께 따라붙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닐 커버보다는 커 버에 적힌 문구가 논란의 초점이다. 국민들 가운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대만 어디에 있는가>, <일본, 조선총 독부를 세우다> 저자

대만 역사적 정체성, 여권 통해 표출

데 일부가 여권에서 ‘중화민국(中華民國)’이라고 표

이들 스티커의 의미는 분명하다. 중국 대륙에

기된 국적 부분을 가리고 ‘대만국(台灣國)’이라는

서 출범한 중화민국은 지금의 대만과 엄연히 다르

스티커로 대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는 주장이다. 대만의 역사는 1911년 신해혁명으

‘Republic of China’라는 영문 표기에 있어서도

로 탄생한 대륙 시절의 역사와는 구분해야 하므로

‘China’ 대신 ‘Taiwan’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기도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정

한다.

체성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문

이러한 주장은 대만의 독립론과도 맞닿아 있

제의 ‘대만국’ 스티커가 2014년 7월 민간단체에 의

다. 중국 정부가 주장하듯이 양안은 ‘하나의 중국’

해 시중에 처음 선보인 이래 25만개 이상이나 배포

이 아니라 서로 별개의 국가라는 인식이 바로 그것

된 것으로 전해진다. 대만의 역사적 정체성을 찾으

이다. 거리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는 ‘대만독립(台

려는 시도가 여권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灣獨立)’이라는 스티커가 이러한 인식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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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적어도 현재 중국에 귀속된 홍콩이나 마카오와는

사실, 이런 불만이 제기될 만큼 국제사회에서

중화민국과 대만은

처지가 다르다는 것이 대부분 대만 국민들의 생각

대만 국민들이 푸대접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

이다.

일에서는 대만 국적자를 ‘465’라는 코드로 별도 분

엄연히 다르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한 폐해도 발생하

류하다가 2011년 중국 국적자와 함께 ‘479’ 코드로

에 중화민국이라는

고 있다. 개인이 자기들 마음대로 여권에 허락되지

통합시켰다. 이에 대한 대만 정부의 공식 항의로 대

국호를 사용해서는

않은 스티커를 붙임으로써 여권의 신뢰성이 저해되

만국적 코드가 다시 살아났으나 요즘도 간혹 마찰

안 된다는 정체성

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존엄성도 마찬가지다. 이

을 빚고 있다. 제네바의 유엔기관에서 대만 여권 소

러다 보니 외국에서는 가짜 여권이 아닌가 의심을

지자에 대해서는 시설 관람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

받기도 한다.

도 최근의 사례다.

최근 싱가포르에 입국하려던 대만 여행객 3명

대만이 정부 차원에서 여권에 ‘대만’이라고 표

이 창이공항에 도착하고도 입국을 거절당한 것이

기했던 경우도 없지는 않다. 민진당 천수이볜(陳水

바로 여권에 붙여진 스티커 때문이었다. 여권의 진

扁) 총통 당시이던 2002년 여권 앞표지의 ‘중화민

짜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입

국’이라는 표기 윗부분에 ‘대만’이라는 표기를 추가

국을 거절당하자 싱가포르 주재 대만대표부에 전

했던 것이다. 당시 민진당이 대만의 독립을 추구하

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으나 도움을 얻지 못했다.

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던 조치다.

이렇게 문제가 되자 당사자들이 문제의 스티커를

여권 표기는 아니지만 중국인과 구분하려는 목

떼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싱가포르 이민국 당국

적에서 스티커가 배포된 적도 있다. 지난해 베트남

은 끝내 입국을 허가하지 않았다.

에서 대규모 반(反)중국 시위가 일어났을 때 현지

사태가 이런 식으로 확대되면서 결국 대만 정

에 주재하는 대만 기업인들을 보호하려는 의도에

부가 제동을 걸고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여권법

서 배포된 스티커가 그것이다. “I am a Taiwanese.

시행세칙을 개정해 여권의 원래 디자인에 어떠한

I am from Taiwan”이라는 내용으로 적힌 스티커

변형도 금지한다는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개인들

가 영어와 베트남어로 배포되었다.

이 마음대로 여권을 변형시키는 것은 물론 속 페이

여권에 붙여진 스티커로 인해 문제가 야기되는

지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스탬프를 찍는 것

현상은 지도적인 정치인들이 저마다 대만의 중요성

도 금지하고 있다.

을 강조하는 것과도 미묘한 대조를 이룬다. 현 마

대만 정부는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잉주(馬英九) 총통도 4년 전의 선거운동에서 “나는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지만 스티커로 인해 국제사회

대만인인 동시에 중화민국 국민(I’m a Taiwanese

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and also an ROCer)”이라는 표어를 내걸기도 했

밝히고 있다. 여권의 원래 모습을 알려주려는 뜻에

다. 그런데도 현실적으로 ‘대만’이라는 표현이 억제

서 각국에 여권 샘플을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규정

되고 있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대만의 입지를

은 새해부터 정식 발효될 예정이다.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 조치에 대해서도 “국민들의

한편, 대만과 비자협정을 맺고 있는 나라는 모

자유의사를 억압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에 퇴행

두 158개 국가에 이른다. 최근 에티오피아와 모리

하는 처사”라는 불만이 제기된다. 즉, “이 스티커가

타니아, 레바논, 잠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협

여권 소지자의 국적이 중국이 아니라 대만임을 쉽

정이 추가된 결과다. 운전면허 상호 사용 국가도 한

게 알아보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면 굳이 막을 필요

국과 일본, 미국을 포함해 85개국에 이르고 있다.

가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하

대만 면허 소지자가 별도의 시험을 보지 않고도 현

나의 중국’ 정책에 추종하여 대만의 존재를 스스로

지 면허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면허증의 국

부정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고립을 자초할

적 표기도 ‘중화민국’만 허용된다. 국제사회에서 대

뿐이라는 정치적인 지적도 제기된다.

만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의식이 밑바닥에 깔 려 있는 것이다.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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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박명윤의 웰빙 100세 [ 19 ]

케이트 모스, 아델 등 해외스타도 한때 불안장애로 고통 정형돈 방송중단과 불안장애 [ 상 ] 뉴시스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방송인 정형돈(37)씨가 건강상 이유로 모든 방송

예체능> <주간 아이돌> <냉장고를 부탁해> 등이다.

활동을 중단했다. 정형돈의 소속사 FNC 엔트테인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참

먼트는 2015년 11월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 소속

아온 예능인 정형돈씨의 아픔이 팬들의 마음을 안

방송인 정형돈씨가 오래전부터 앓아 왔던 불안장

타깝게 하고 있다. 적절한 치료를 받고 하루빨리 쾌

애가 최근 심각해지면서 방송을 진행하는 데 큰 어

차하여 팬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려움을 겪어 왔고 결국 제작진과 소속사 및 방송

정형돈씨는 2012년 한 토크쇼에 출연하여 불

동료들과 상의 끝에 휴식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밝

안장애를 겪고 있으며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밝

혔다.

힌 바 있다. 그는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데도 지금

‘4대 천황’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방송가를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 내 밑천이 드러날까 두렵

종횡무진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정형돈

다. 내 능력을 벗어나 있는 복을 누리자 잘못될 것

이 당분간 활동을 중단한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프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형돈이 출연하는

로그램은 MBC <무한도전>을 위시하여 <우리동네

방송의 한 제작진은 “녹화장에서 식은 땀을 자주


magazine N | 201601

흘리고 피곤을 호소하며 장시간 쉬는 등 도통 집중 하지 못하곤 했다”고 말했다. 정형돈씨는 2002년 제17회 KBS 신인 개그맨 선발대회에서 동상(銅賞)으로 입상하여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였다. 그 후 <개그콘서트> <폭소 클럽> 등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도전하 여 2005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무한도전>을 통해 대한체육회 봅슬레이 선수로 등록하기도 했다. 연예계에는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을 호소하 는 연예인들이 꽤 많다. 예를 들면, 방송인 이경규 김구라, 가수 김장훈, 배우 차태현 김하늘 김승우 공형진 박용우 등이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앓았다 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해외스타 중에서도 배 우 케이트 모스, 팝스타 아델 등이 불안장애를 앓 았다고 밝혔다. 불안장애(不安障碍, anxiety disorder)란 다양 한 형태의 비정상적,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精神疾患) 을 통칭한다.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불안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이 2008년 39 만8천명에서 2013년 52만2천명으로 1.3배로 증가 했다. 불안감과 공포가 가끔 나타나는 것은 인간의 정상적인 정서 반응이다. 불안은 때때로 불쾌하게 느껴지지만 우리의 위기관리 행동을 촉진시켜 위 험으로부터 안전하게 보전하도록 돕는 순기능이 있 다. 이에 매사에 불안하고 걱정이 많다고 불안장애 를 겪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위험을 내포한 위협적인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정 상적인 불안(normal anxiety)이라고 본다. 하지만 불안감이 지속적으로 나타나서 통제를 할 수 없어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방해를 받으면 불 안장애라고 할 수 있다. 즉 경계경보 장치가 너무 민감하거나 잘못되어 수시로 경계음을 내면 불필 요한 경계태세를 취하게 되고 과도하게 긴장하고 혼란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처럼 불안 반응이 부 적응적인 양상으로 작동하는 경우를 병적인 불안 (pathological anxiety)이라고 한다.

089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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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천비키의 명상 24시 [ 13 ]

묵은 해를 청정하게 보내는 정화법 또 한해가 저물고 새해를 맞이한다. 명상칼럼을 쓰

송구 정화명상 : 비우기 1

기 시작한지가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2016

➊ 지금부터 몸과 마음을 세신한다고 의도를 세운다.

년을 맞아 새해에는 내 몸과 마음을 정화하여 깨끗

➋ 지난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준 자신에게 감사한다.

하면서도 빈 공간의 여유로움으로 여러분들을 만

➌ 샤워기를 틀어둔 상태에서 호흡을 2~3번 하면서 몸

나고자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

을 이완한다. 너무 세게 물이 나오지 않도록 조절하며 물

고 싶다.

온도에 마음이 뺏기지 않도록 조절한다.

예로부터 몸과 마음은 하나이기에 몸을 깨끗

➍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 상태에서 지난 한 해 동안의 일

이 함으로써 마음마저도 정갈하게 준비하였다. 그

들을 영화를 빨리 돌려 보듯이 떠올린다. 이때 어느 한 장

래서 그 추운 동지섣달 겨울에 꽁꽁 얼어가면서도

면을 잡지 않도록 한다. 1월, 2월, ~ 12월…. 떠올리면서

목욕을 했던 것이다. 그 목욕은 단순히 먼지를 털

일어나는 마음을 바라보면서 샤워기의 물과 함께 몸 구석

어내고 때를 벗기는 행위가 아니기에 이를 목욕재

구석이 씻겨 흘러 내려가고 있다고 상상한다. 이 과정은

계라고 하였다. 이것은 몸을 씻는 것이 아니라 정

탕욕을 하면서도 좋다.

신, 의식, 마음을 씻는 것이었다.

➎ 이어서 분기별로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불편한 경험

비단 물에 몸을 담구어서 몸과 마음을 청정하

을 떠올리고 그와 함께 올라오는 느낌을 보고 잠시 같이

게 하는 일은 우리 선조만 행한 일이 아닐 것이다.

머물러 본다. 그러한 느낌이 몸의 어느 부위에서 일어나는

기독교의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남과

지를 관찰한 다음 천천히 샤워기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

정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힌두교인은 성스러운 어

이 해당 부위를 지나면서 함께 씻겨 내려가고 있음을 바

머니의 강으로 갠지스강을 숭배하여 아침마다 영

라본다. 무릎을 지나 발을 빠져나가 하수구로 버려짐을

혼의 강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어 낸다.

상상한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송구영신

➏ 그렇게 각 분기별로 몸 속 깊이 박혀있는 감정들을 하

의 명상으로 지난 한해 열심히 살면서 나의 몸과

나씩 흘려보낸다. 이때 한 건에 10초를 넘지 않도록 한다.

마음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기쁨, 즐거움 및 사랑과

➐ 샤워타월에 비누거품을 낸 뒤 온 몸을 쓸어 내리 듯이

더불어 원망, 분노, 미움, 시기, 두려움, 노여움 등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샤워물과 함께 씻어 흘려보낸다. 그

을 하나씩 하나씩 때어 내 몸을 가볍고 청정하게

순간 몸이 깨끗해지고 마음 또한 청정해진다고 상상한다.

만드는 것이다. 이번에는 송구(送舊) 정화명상을

몸은 점점 빛이 나고 순수의식이 세상을 향해 펼쳐지고

해보자.

있다고 생각한다. ➑ 욕실 밖으로 나와서 찬찬히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가

천비키 본명상 코치 코엑스, LS그룹, 농협하나로유통, 육 군부대 등서 명상 지도

간단하게 세신을 한 다음 실시한다.

볍게 톡톡 치면서 닦아내어 몸을 건조시킨다.

샤워실에서 나오면 마실 수 있도록 따뜻한 차, 깨끗한 노

➒ 자신이 좋아하는 오일이나 스킨로션을 얼굴과 팔 다리

트와 팬 그리고 명상에 도움되는 음악을 준비하자.

배 가슴 등의 순서로 가볍게 톡톡 두드리듯 향기가 온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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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을 감싸게 한다. 이제 당신의 몸은 순수의식의 상태로 만

받아들입니다.”

들어졌다. ➓ 샤워 전 미리 준비해둔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좋았던 좋지 않았던 간에 경험은 나의 삶에 영

머무른다.

향을 미치는 의식구조를 만든다. 그 상황에서 나

※ 매번 샤워를 할 때마다 하루동안 쌓인 몸과 마음의 찌

는 내 나름대로 긍정의 의도를 가졌으며 최선을 다

꺼기를 위와 같은 방법으로 씻어내도 좋다.

했다. 삶에서 실패는 없기에 경험이 나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송구정화를 하

송구 정화명상 : 비우기 2

면서 경험이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구조로 정리될

이렇게 해서 더렵혀진 나의 과거는 물과 함께 정화되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 깨끗해진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자아를 한번 더 치유 를 해야 할 단계이다. 온전한 수용이 치유이다. 지금의 청

송구 정화명상 : 지혜얻기

정한 자아가 과거의 사람들을 온전히 품는 것이다. 그리고

➊ 지난 한해 겪었던 10가지 정도의 사건을 노트의 왼쪽

자신의 잘못도 받아들여 치유를 한다.

에 기록한다. 샤워실에서 떠올렸던 사건이어도 좋다. ➋ 오른쪽에는 ‘이 경험이 나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타인을 수용합니다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예전에 당신

라는 질문에 간단하게 적어 나간다. 너무 오랫동안 그 경

이 말로든 생각으로든, 행동으로든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험에 빠져있지 않도록 한다.

않든 간에 나는 당신을 받아들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고통

➌ 교훈들을 최종적으로 한 문장으로 만든다. 이것이 당

을 주었더라도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신이 받은 선물이다.

타인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당신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➍ 자신이 성장하고 지혜롭게 거듭날 수 있도록 도움을

내가 당신에게 말로든 생각으로든, 행동으로든 상처를 주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었다면 당신의 용서를 빕니다. 나의 분노, 두려움, 맹목적

뉴시스

인 행동, 게으름 이런 것으로 당신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이제 깨끗하게 정화된 자아가 새로운 2016년을

진정으로 당신의 용서를 빕니다.”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려 맞이할 차례이다. 다음 호

나는 나를 받아들입니다 “나는 이런 모든 나를 온전히

에서 영신(迎新)의 의도명상으로 만나자.


092

Culture

magazine N | 201601

가장 좋은 노후 준비, 자연중심 문화에 녹아드는 것 박상설 선생의 ‘잘 사는 법에 대하여’ 돌아보기 [ 하 ]

<아시아엔> <매거진 N>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박상

해 산을 찾는다고 말한다.

설 선생은 구순을 앞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연

세계의 철인들인 장 자크 루소, 칸트, 헤겔은

을 누비고 있다. 또한 자연에서의 깨닮음을 녹여낸 그

걷는 습관을 가진 사색가들이다. 마사이족은 하

의 저서 <잘 사는 법에 대하여>는 세간을 감동시켰다.

루에 평균 3만보를 걷는다고 한다. 그들의 평균

<매거진 N>은 경기도 안성시 성산성결교회 홍종효 목

수명은 80~90세다. 자기 체력에 맞춰 매일 걸으

사가 박상설 선생의 책을 읽고 남긴 진솔한 감상평을

면 200개의 뼈와 60개의 근육이 골고루 움직여

2회에 걸쳐 독자여러분과 공유한다. 좋은 글, 좋은 뜻

총체적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

은 함께 나누라고 하지 않았던가. -편집자

아이들에겐 자연이 학교이다. 자연은 설교 없 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자

3장, 생각이 깊어지는 삶이 행복하다

연의 친화 속에서 키워야 할 이유이다. 사람은 자

캠핑은 열정적인 소꿉놀이다. 삶의 신념을 심

연 속에서 삶을 발견하게 된다. 삶이란 결국 자연

어주는 묘약은 아웃도어의 행위문화에 있다. 박상

의 거울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인간의 영원

설선생은 자연을 여행하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삶

한 고향인 자연을 통해 자신의 존재이유와 행복

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연 속에서 걷기’ 예

의 근원을 발견해보라. 기계적 세계관에서 자연

찬론자이다. 걷기는 발을 빌려 몸으로 자연과 세

생명의 세계관으로 눈을 뜨자. 자연에 사는 것이

상을 읽는 행위란다. 일·여행·레저·감성·존재를

인생을 가꾸는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걷기를 통해 완성해 보라 말한다. 걷기는 각본 없 는 즉흥적 행위예술이며, 사유의 극치이다. 행동 이 생각이고 신념이다. 그는 가혹하리만치 자신을

문화로 소통하는 가정, 아웃도어의 문화를

담금질 하라고 말한다. 걷는다는 것은 위대한 일

강조한다. 이런 오토캠핑과 주말영농생활을 즐

이다. 이 교훈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선생은 걸을

기라 한다. 이런 가정을 이루려면 가장이 먼저

수 없을 때 기어서라도 산책하리라 말한다.

변해야 한다. 그는 더 나가 국민행복 프로젝트를

인간은 누구나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지만, 다 시 자연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숲은 오랜

홍종효 성산성결교회 담임목사 침례신학대학원 박사

4장, 홀로 숲을 이루는 나무는 없다.

제안한다. 그것은 주말 레저농원을 생활화 하는 것이다.

시간 침묵하는 듯 하나, 보이지 않게 자란다. 분명

우리나라의 산업화로 인한 경쟁속에서 진정

히 자라지만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숲 속에서 깊

성공했다고 행복한게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것

은 생각에 빠지는 것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다. 숲

이라 말한다. 쌀과 돈만으로는 행복해 질 수 없다.

은 이웃이다. 숲에는 기다림이 있고, 세월이 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맑고 소박한 행동과 마음

삶이 있고, 인내가 있다. 숲 예찬가인 그는 캠핑과

의 풍요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유언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심고 퍼트리기 위

장을 소개함으로 마무리 짓는다.


093

magazine N | 201601

박상설 선생은 아흔 살이 다 됐음에도 자신의 삶을 공고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

“나는 자연을 친구로 두었고, 긍정의 태도를 갖

게는 자연이 직장이다’ ‘출근은 자연으로, 여행은 지구로!’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웅지

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어떤 일에도 사변적 지

(雄志)를 편다. 필자는 그의 웅지에 대한 화답으로 ‘목회와 자연이 내 직장’이라고 말

식이 아닌 몸으로 부딪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며 공감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 속에서 심플 라이프를 발견하게 된다. 자연이 가르쳐 주는

자연주의의 삶은 노동을 최우선으로

교훈이다. ‘시집 한 권 들고 숲에 가자. 주중엔 열심히 일하고 주말에 야영하고 농사

삼고, 간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을 최고

일하고 산에 가고 여행하자. 자연을 모태로 삼은 레저 문화를 꽃피우자. 여한이 없단

의 가치로 여긴다. 그는 삶은 말로 설명할

다. 근심 걱정 따위는 자연에는 없단다.

대상이 아니라 직접 보여 주어야 할 무엇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박상설 선생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노인은 당연히 앉아있고, 줘야 먹고, 늙어가면서 주변의 부담스런 존재라고 생각한 다. 그를 통해 노인의 열정과 자신감, 할 수 있다는 확신과 소망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한마디로 ‘도전의 삶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라고 말하는 행동주의자이다. 지시하는 교육이 아니라 직접 보여주 는 산교육인 셈이다. 그의 삶은 도전과 응전의 삶이라고 해 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배워야 할 것은

‘노인은 다만 소멸을 앞둔 절정을 향한다.’

배워야지요!’ 한 노인의 신념고백이다. 오 토 캠핑과 기차여행을 통해 미국 대륙을

가장 좋은 노후 준비는 자연중심의 문화에 중독되는 것이다. 그는 실천적 행동

횡단한 것도 네 차례나 된단다. 그는 환자

가이기도 하다. 그의 사상이 자연 속에서 터득했다고도 볼 수 있고, 많은 책을 읽으

로 죽지 않고 여행자로 죽을 것을 다짐한

면서 수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이론가이기보다는 현장에서 삶을 체

다. 자연에 도전하는 한 ‘청년’의 신념고백 이다.

험하는 행동가이다. 그의 시크릿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박상설


Culture

094

magazine N | 201601

전찬일

제26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공 로상 시상 중 마흐말바프 감독의 청으로 무대에 올라온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인사하고 있다.

전찬일 영화 평론가, 부산영화제 연구소장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 텐츠학과 겸임교수

싱가포르국제영화제서 얻은 횡재, 거장의 아주 특별한 ‘인생수업’ 이집트 출신 아시라프 달리 쿠웨이트 <알 아라비>

마흐말바프 감독은 <매거진N> 2015년 2월호

매거진 편집장, 이세중 변호사, 윤양희 서예가 등

(<아시아엔> 1월13일자)에 게재된 ‘할머니가 내 영

과 2014년 만해대상(문예부문)을 수상한 모흐센

화의 스승’이란 제목의 특별기고를 통해 이렇게 말

마흐말바프를 뜻하지 않게 만났다. 지난 12월 3~6

했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가족들에게 영화이론

일, 미국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

과 실무에 관해 알려줬다. 우리 집은 마치 영화학교

MPA) 초대로 다녀온 제26회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같았고, 가족을 비롯한 다른 이들도 영화를 배워갔

(11.26~12.06)에서다.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

다”. <아빠의 영화학교>는 다름 아닌 그 ‘영화학교’

제 이후 13개월만의 전혀 예정에 없던 해후다. 그는

에 관한 성찰적이며 감동 넘치는 70분 짜리 소중한

특별전(Tribute to Mohsen Makhmalbaf)과 더불

기록이다. 이 영화는 이란과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

어, 2014년 첫 수상자 임권택 감독에 이어 두번째

했으며, 주로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10편이 넘는 작

공로상 수상자로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었다. 필자

품을 만든 하산 솔주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거장

는 5일 오전 11시에 잡혀 있던 마스터클래스와, 특

마흐말바프의 가족이 몇해 전부터 살고 있는 영국

별전 상영작 중 한편인 <아빠의 영화학교-모흐센

자본으로 이 다큐를 연출했다. 이 다큐는 2014년

마흐말바프>(Daddy's School) 상영 30분 전 싱가

부산영화제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등

포르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행사장 건물

에서 선보인 바 있었다. 영화는 무슨 연유에서 <아

안 카페에 갔다. 그런데 그 옆 자리에 마흐말바프 감

빠의 영화학교>가 탄생하게 됐는지, 어떤 과정을 통

독이 있는 게 아닌가. 부산영화제 김지석 수석 프로

해 부인 마르지에, 두딸 사미라와 하나, 아들 메이

그래머 등과 함께였다.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는 깊

삼, 그리고 강아지 트위기에 이르기까지 가족 구성

은 포옹을 나눴다.

원 여섯 모두가 영화인이 됐는지, 나아가 그들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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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아빠의 영화학교’. 이 영화는 마흐말바프의 교육관과 영화철학, 인생관을 담아냈다.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필자(왼쪽)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

금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장차 어떻게 살아갈지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부산영화제 프로 그램 노트에도 실려 있듯, 영화는 ‘가난과 혁명에 대한 열정 때문에 학교를 중퇴했던’ 거 장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교육 및 영화철학은 물론 인생관 등을 두루 탐구한다. 거장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영화와 연관된 유서 깊은 명제에, 총 여섯 개의 답변 을 들려준다. 상상력, 질문, 현실, 사유, 사랑, 그리고 인생이 그것이다. 다소 추상적이 전찬일

면서 상투적인 감도 없진 않으나,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10대 시절부터의 반정부투쟁에 서 출발해 문학을 거쳐 20대 중반 투신한 감독의 영화 이력이 결국 그의 삶 자체였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정의들이다. 무엇보다 상상력을 첫 번째로 내

김지석에 비하면 일천하기 짝이 없는 그

세운 정의가 인상적이다. <아빠의 영화학교>는 “시공간적 한계에 묶여 있지 않다. 어디

간의 만남과 영화를 통해 판단컨대, 나 역

든 학교가 될 수 있고, 무엇이든 교재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동료이기도 한

시 김지석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실

모흐센은 언제 어디서든 가르칠 수 있는 칠판을 짊어진 유목 교사다. 사회참여적이면서

은 그 이상이다. 세계 영화사에 존재해온

도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마흐말바프 가족의 영화는 이러한 교육철학이 있었기 때문

모든 영화감독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제일

에 가능했던 것이다(프로그램 노트 中)”라고 말한다.

존경하는 이라면 <매거진 N> 독자들은 이 해하실까.

이보다 멋진 영화수업, 아니 인생수업을 내가 받은 적이 있던가?

다른 지면에도 썼듯, 거장은 김지석 프

이게 다가 아니다. 거장은 그 못잖은 가르침을 내게 선사했다. 12월5일 싱가포르국

로그래머에게 각별한 감사를 전하는 데 그

제영화제에서 열린 실버 스크린 어워즈 시상식 중 공로상 수상 순간이었다. 수상 소감

치질 않았다. 부산영화제의 20년을 지켜온

을 말하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소감 대부분을 부산영화제와, 부산영화제의 ‘어떤 이’에

‘이 사람’이 없었다면 자기 자신은 말할 것

게 감사하는 데 할애하는 것 아닌가. 김동호 명예 집행위원장을 말하는 것일까? 일찍이

없고 아시아 영화가 오늘날과 같은 위상에

거장은 18회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영화감독 김동호의 첫번째 단편영화 <주리>의

도달하지 않았을 거라며 공로상을 그에게

제작일지인 <그의 미소>에서 ‘정부관료에서 시작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거쳐 영화감

바쳤다. 그러면서 그를 무대 위로 청했다.

독으로 변모해온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의 과거와 현재를 ‘우정 어린 시선으로’, 일상과

지금껏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깜짝 이벤트였

변하지 않는 그의 미소 속에 담아냈다. 김동호는 그러나 시상식 현장에 없었다. 그렇다

다.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아니면 상상조차

면 부산영화제 아시아 영화담당인 김지석 프로그래머를 가리키는 것일까? 김지석은 싱

하기 쉽지 않았을 감동적 해프닝이었다.

가포르영화제 자문위원이기도 해 마침 시상식 현장에 거장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시쳇말로 짜고 친 고스톱 아닐까? 아니

“부산국제영화제 정체성과 정신이 온전히 기록되어 국내외 독자들에게 간접경험을

었다! 시상식 후 확인해본즉 김지석 본인조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출간했다는 <영화의 바다 속으로-부산국제영화제 20

차도 그 이벤트를 모르고 있었다. 김지석은

년 비하인드 스토리>(본북스, 2015)에도 피력했듯, 김지석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마흐말

결국 시상자로서 준비했던 시상의 변을 수

바프 감독을 “나의 멘토요 구루”라고 역설해왔다. ‘내 인생의 구루, 모흐센 마흐말바프

상 소감으로 ‘둔갑’시켜 자연스럽게 연출했

감독’ 편에서 김지석은 말한다. “부산영화제와 함께 한 20년 동안 수많은 게스트를 만났

던 것이다. 거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시치미

고, 많은 분이 깊은 인상을 남겼으나, 그 중에서도 마흐말바프 감독이 가장 기억에 남는

를 뚝 떼고, 기념비적 해프닝을 연출한 것이

다”고. 그러면서 김지석은 “마흐말바프 감독은 겸손하고 편견 없는 박애주의자요, 현자

다. 첫 걸음인 싱가포르영화제가 내게 남긴

와 같은 삶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영화인”이라고 평했다. 대체 어떻게 한 인간이 다른 인

가장 인상적 순간이었으며, 평생 잊지 못할

간, 그것도 아시아 영화에 대한 전문성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러하는 세계 최고 전문가

흐뭇한 사건이었다. 그야말로 거장의 아주

중 한 사람에게 이런 최고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과장된 것일까? 아니다.

특별한 영화 수업이자 인생 수업이었다.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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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A Korean Orphan Who Inspired Hope in post-WWII Japan Summary

전후 황폐했던 한국·일본 감동시킨 역도산 1950년대 일본 열도를 레슬링 열풍으로 휩쓸며 ‘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한국계 일본 프로레슬러 영웅 ‘역도산’. 1924년 함경남도 홍원군에 태어난 그의 본명은 김신락으로, 고아로 생활하다 일본 부농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 다. 이후 일본 전통스포츠 스모 선수로 운동을 시작했지만, 순수 일본인 출신이 아니면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말에 ‘프로 레슬링’으로 전향했다. 이같은 결심에는 역도산이 1951년 세계적 프로 레슬링 선수 B.브란스의 일본 원정을 본 경험도 크 게 한 몫 했다. 프로레슬러로 나선 역도산은 강인한 체력과 가라데촙으로 강적들을 제압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1953년 일본프로레슬 링협회를 창설했으며, 1958년에는 세계선수권자인 J.S.루테스를 물리치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그 후 전세계 프 로레슬링을 제패한 역도산은 사비를 털어 체육관을 설립하고, 안토니오 이노키, 김일, 자이언트 바바 등 후진 양성에도 힘썼다. 그가 지금까지 전설로 추앙 받는데는 실력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배경도 따라줬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이 새로운 시대, 새 로운 영웅을 절실히 바라고 있던 시점에, 역도산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과 같았다. 모두가 ‘역도산! 역도산!’을 외쳤 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역도산은 일본과 한국에 희망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그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불운한 최후를 맞이했다. 1963년 12월 도쿄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 청년의 칼에 찔려 복막염으 로 사망한 것이다. 역도산 사망 이후 일본 프로레슬링은 주춤하는 듯 했으나, 그의 제자들 덕분에 다시금 인기를 회복했 다. 아버지를 따라 프로레슬러의 길을 걷게 된 아들 모모타 미츠오도 프로레슬링 선수는 1989년 세계주니어헤비급 챔피 언에 등극하며 그 영광을 역도산에게 돌렸다.

Rahul Aijaz Photojournalist/Reporter rahulaijaz@theasian.asia

라훌 아이자즈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Amidst all the angst between Japan and Korea for

spirits high and hopeful. Those heroes who,

the atrocities committed by the Japanese Imperial

if their countries were defeated, would not let

army on Koreans in the last century, there are

the people feel disheartened, and if they felt

stories that are easily forgotten and sidetracked, to

disheartened, would reinvigorate their souls to

make way for the aforementioned conflicts to be

learn from the history, be better and build for the

highlighted. It does not mean those stories are less

future.

significant. We talk about national heroes, war

One such hero was Rikidozan – a wrestler

heroes who sacrificed their lives to protect their

of Korean descent who gained fame in Japan in

homeland, who fought for independence, defied

1950s and became their national hero.

authorities, who built countries, who destroyed

When I first read about Rikidozan, I had

countries but we forget those who, while the

never expected to find that someone held in

other heroes were fighting enemies, kept people’s

such high regard in Japan could have come f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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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Korea. Rikidozan (Korean name: Kim Sin-rak) was an orphan who initially, trained

how he would have expanded his legacy

to become a sumo wrestler and entered the sport by the age of 16. Fighting in about

if he had lived longer. On December 15,

two dozen tournaments, he finished with a record of 135-82, before turning his

1963, Riki got into an altercation with

attention to the world of pro-wrestling in 1950.

Katsuji Murata, a member of Sumiyoshi

After World War II, when Japanese people needed a hero to stand up to

Kai - the second largest Yakuza syndicate

Americans, Rikidozan rose. He gained huge stardom in pro-wrestling in Japan and

- while partying at New Latin Quarter

became a big ‘draw’ competing against and defeating American wrestlers with

club in Tokyo’s Akasaka district. He was

moves like Mongolian chops and piledrivers. Now, being a pro-wrestling nerd, I

stabbed in the abdomen with a urine-

knew about the history of the sport in the US, reading about Buddy Rogers, Bruno

soaked blade. There are conflicting

Sammartino, Karl Gotch, Gorgeous George, Lou Thesz and a jillion more. But never

reports about whether he went to see

had I imagined that in 1958, Rikidozan actually faced Lou Thesz (the creator of some

a doctor or not. According to Tokyo

of the most popular wrestling moves like STF, powerbomb, belly-to-back suplex

Reporter, Rikidozan returned to his

and Lou Thesz Press) and defeated him. Thesz was the most dominant wrestler

home, Riki Mansion, and received

who went on to be the face of pro-wrestling in America in the 1960s. Rikidozan also

treatment. Murata arrived later at

defeated the top stars of the era including Freddie Blassie, establishing himself as the

apartment and apologized, which Riki

‘cream of the crop’ (in the great Randy Savage’s words) and one of the all-time greats.

accepted. However, he died a week later

His bouts with Thesz and the Destroyer are considered all-time classics.

of peritonitis on December 15.

Rikidozan also started the first wrestling promotion in Japan in 1953, named

Mu r at a wa s f o u n d g u i lt y o f

‘Japan Pro-Wrestling Alliance’ (JWA). He is often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manslaughter and served seven years in

wrestlers of all time. In 2002, he was named the third greatest wrestler of all time,

prison. Upon release, he became a gang

behind Ric Flair and Riki’s rival, Lou Thesz, in a magazine article ‘The Top 100

boss. On each anniversary of Riki’s death,

Wrestlers of All Time by wrestling journalist John M. Molinaro.

Murata offered apologies to his family and visited his grave. Murata died on

Legacy and training next generation stars

April 10, 2013.

As impressive as his in-ring accomplishments were, perhaps

Although, after Riki’s death, pro-

his most valuable contribution to the pro-wrestling industry

wrestling business suffered in Japan, it

would be his training legendary wrestlers like Antonio Inoki and Giant Baba, who followed in his footsteps and carried Japanese prowrestling to new heights. Karl Gotch may have been the

was ultimately survived by his students and successors like Antonio Inoki who founded N e w Ja p a n

‘Kamisama’ (Japanese word for ‘God

Pro Wrestling

of Wrestling’) due to his influence in

(NJPW) in 1971.

shaping the Japanese pro-wrestling style – mixing amateur, Greco-Roman and Indian martial art, Pehlwani, it was Riki who is known as the ‘Father of Puroresu’. It is safe to say

Such is the story of a Korean orphan who brought Japanese audiences to their feet as they

that Riki ruled the 1950s and early 1960s wrestling scene

chanted for him by the only name

in Japan.

they knew him as – “Rikidozan!

Although he died at the early age of 39, one wonders

Rikidozan! Rikidozan!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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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ang arrive at Mnet Asian Music Awards 2015 in Hong Kong.

magazine N | 201601

MAMA 2015: Asia, United by Music Summary

중동팬이 바라본 2015 마마 “화려한 무대는 좋아요, 공정성은 글쎄요” 2015 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이하 마마)가 어김없이 한 해의 대미를 장식했다. 12월2일 홍콩 아시아 월드 엑스포 아레 나에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아시아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중동에서의 한류열풍 덕분에 많은 중동 팬들이 지켜본 마마에서 가장 빛난 가수는 빅뱅이었다. 빅뱅은 아이돌 그룹 엑소, 소녀시대와 함께 공연을 펼치며 청중을 열광케 했다. 중동 팬들은 방탄소년단과 블락비의 멋진 댄스에도 감탄을 금치 않았지만, 다소 선정적이었던 태국 가수 채의림과 박진영의 공연에는 그다지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빅뱅 팬클럽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라 오마르는 마마에 대해 “예년에 비해 아이돌 콜라보 공연도 늘었고, 무 대 위에서 배틀을 벌이는 새로운 컨셉도 마음에 들었으나,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부 가수들이 출연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는 소감을 전했다. 시리아 출신 팬 라칸 오라비는 “다른 좋은 가수들이 많이 있었는데 박진영이 베스 트 남자 가수상을 받은 것은 좀 의아했다”며 시상의 공정성에 대해 언급했다. 아랍에미리트의 자나도 “지난 2010년 이후 로 마마가 이해하기 힘든 수상자 선정으로 신뢰를 잃었다”면서 거들었다. 한편 올해의 가수상, 올해의 노래상, 베스트 뮤직비디오, 월드와이드 페이버릿 아티스트 수상의 영광을 누린 빅뱅은 논 란의 소감으로 화제가 됐다. 멤버 태양이 수상소감으로 “신나는 축제의 장이 됐으면 좋겠는데, 많은 가수 분들이 자리에 계시지 않아 아쉽다”고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중동 팬들은 대중들은 스케줄로 먼저 자리를 떠난 엑소와 소녀시대, 샤이니 등 아이돌 그룹과 특정 가수만을 초청한 주최 측을 겨냥한 것 아니냐며 경솔했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대다수 팬 들은 그의 발언에 동의했다. 매년 화려한 무대로 아시아를 즐겁게 한 마마. 2016년 마마가 시상에 공정성을 기하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 각국의 더 많 Radwa Ashraf radwaashraf@theasian.asia

은 가수들을 한자리에 모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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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J.Y.Park comes back from his hiatus with hits that won him a couple of awards at MAMA 2015. PSY, the international star, performs the two main singles of his comeback album, “Daddy” and “Napal Baji”.

Mnet Asian Music Awards, originally launched in 1999, once again chose Hong Kong

BTS and Black B garnered a lot of

as its arena to award the outstanding performances by idols and stars. The ‘MAMA’

attention for their dance skills, as their

is a major K-pop award ceremony that attracts performers from all over the world. It

performances were among the most loved

aims to bring together international fans and musical artists of different cultures and

by Arab spectators. Different viewers

languages on one great stage as well as bring Asian music to the world. This is the sixth

from Gulf countries and Middle East

time the event has been held outside of South Korea, and the fourth time in a row to be

complemented their professionalism.

held in AsiaWorld-Arena, in Hong Kong.

On the other hand, some performances

“2015’s MAMA was much better than last year’s concert. I liked the concept of

weren’t received well by viewers in Egypt,

group battles and collaborations and how they incorporated it much more this year

such as Jolin Tsai’s performance with the

around. The show’s organization definitely improved over the years,” Sarah Omar

back dancers and JYP’s Honey dance

says, a VIP (Big Bang fan club) from Egypt, who tuned in for the live show of MAMA.

moves, which were described as cringe-

One of the best collaborative performances was executed by GOT7 and BTS, who

worthy by most of them. But even though

previously wowed audiences at KCON 2015 in Los Angeles. The cross-agency stage

this show was quite a success, Sarah said

highlighted the performativity of BTS and the acrobatics of GOT7.

that the show missed older performers like CNBLUE, JYJ, and B.A.P.

BigBang and Hip Hop stole the show

EXO, despite having a huge fan base

Among the well-loved performances was the Bae Bae performance by Big Bang,

especially in the Middle East, were met

especially when they started interacting with fellow artists, as Seungri joined EXO and

with outrageous comments as a lot of

Girls’ Generation during his verses, winning the crowd over with this simple gesture

people didn’t like their performances, and

as Omar puts it, while Rakan says that 2NE1 “brought the house down” when they

more specifically, that they won a large

performed their classic “Fire” and their hit “I’m the Best” because no one knew if they

number of awards.

were going to reunite or attend MAMA at all. Another Egyptian girl commented that they liked the way the show celebrated hip-hop and electronic dance through performances from "Show Me the Money" and "Unpretty Rapstar" stars Lil Boi, Basick, Yezi, and Truedy.

Winners, deserving or not?

This year, some artists won the same award that they have been winning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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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a couple of years in a row, while new artists were introduced. Big Bang managed to

J. Y. Park won the best male artist, when

dominate the grand prizes, taking home ‘Artists of the Year’ award and ‘Song of the

the other nominees like CNBLUE’s

Year’ for “Bang Bang Bang”, while ‘Album of the Year’ award went to EXO’s album

Yonghwa, Super Junior’s Kyuhyun,

“Exodus”.

and ZION.T had better vocals. A lot of

Best Female Artist award was given to Taeyeon, the leader of Girls’ Generation,

netizens agreed on TVXQ, Vixx and

who made her solo debut a short while ago, and performed her solo song “I” with killer

BEAST, when asked who they think

vocals. Best Male Group award was presented to EXO who executed a wonderful act,

should have been nominated as well.

combining their songs “Call me Baby” and “Lightsaber” breaking out the mythical "Star

As the list of nominations came out,

Wars" swords for their performance, unlike the video for the special release, proving

a big number of fans were outraged such

that the song could have longevity beyond serving as a tie-in for the popular action

as Atheer, from Saudi Arabia, who was

film franchise.

quite surprised to see that groups like

But when it comes to other categories, people note that a lot of the nominated

BEAST, TVXQ, and Super Junior were

artists didn’t really deserve to win, such as HyunA who won the best solo

omitted from the awards despite being

dance performance. Omar says that Ga In who had a much better dance in her

more famous than other artists who had

conceptual music video “Paradise Lost” most deserved to win. Rakan Orabi,

the chance to perform this year. Another

another avid watcher of MAMA from Syria, said that he was disappointed that

fan from UAE, Tasneem Gamal, noted

Tiffany and Seohyun from Girls’ Generation pose for pictures on the red carpet of MAMA 2015

EXO performing a number of their hits in MAMA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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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that even though the numbers show that Super Junior should be on top, they didn’t

note of that in his acceptance speech of

attend the event. She said, “Maybe they didn’t get the award because they didn’t

their “Artist of the Year” award saying,

attend?”

“I wish it could have been a festival to the

Another fan, Jana from UAE, said that she had lost her trust in MAMA since 2010,

end but many artists are now absent.” This

as she repeated what many fans said that Super Junior and TVXQ deserved to win

comment by Taeyang was actually met

over the new artists who dominated the show.

with a positive reaction by Arab people. Even those who weren’t Big Bang fans,

Veterans vs. new artists

agreed with him.

Big Bang proved to have been the main reason the audience filled the auditorium,

T h e 2 015 M n e t A s i a n Mu s i c

as their performances of “Bae Bae” and “Bang Bang Bang” were true crowd pleasers, and

Awards were truly a sight to behold,

their “Loser” performance had a perfect harmony between melodic vocals and rap. Their

from wonderful Michael Jackson-like

fans screamed the lyrics, throughout the performance and were entertained by their

dance routines and lavish entrances to

audience interaction throughout the night.

surprising performances.

But besides that, Big Bang were one of the few veterans attending the show,

People from all around the world tuned

surrounded by newer and debuting groups than previous years. When it came

in for the red carpet and the live show to

to the prize distribution, after the performances, a lot of artists had already left,

witness one of the best music awards shows

which was criticized heavily. Taeyang, one of the members of Big Bang, even took

in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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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람회 전경. 치맥부터 와인까지 다양한 식음료를 한자리에서 맛 볼 수 있다.

Culinary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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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푸드서 치맥·와인까지 당신의 오감 사로잡는 ‘별미의 향연ʼ 각양각색 아시아푸드 한곳에 ‘월드식품박람회’

최정아 기자 jchoi12@theasian.asia

Radwa Ashraf radwaashraf@theasian.asia

2015년 11월27일, 일산 킨텍스엔 설레는 얼굴로

베트남, 태국, 필리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와

전시장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세계 다

동남아에서 온 현지인들이 방문객들의 눈앞에서

양한 요리부터 와인과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월드

직접 요리를 선보였다. 고소한 지단과 이국적인 향

식품박람회 2015’가 열렸기 때문이다. 200여개의

신료가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산업체가 참가한 이번 박람회장 곳곳에서 ‘에그

“맛있는 베트남 음식 맛보세요!” ‘베트남 바잉

페스티벌’ ‘와인 페스티벌’ ‘할랄푸드 페스티벌’ ‘치

세오’ 부스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이미경씨는 유창

맥 페스티벌’ 등 다양한 축제가 동시에 열렸다. 방

한 한국어를 뽐내며 한국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

문객과 바이어들은 각종 식품을 판매하고 있는 부

로잡았다. 이미경씨는 “다문화센터를 통해서 이번

스들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박람회에 참여하게 됐다”며 “보통 한국인들은 ‘베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부스는 ‘에그 페

트남음식’하면 쌀국수와 월남쌈을 많이 떠올린다.

스티벌’의 ‘아시아 계란요리’ 섹션이었다. 이곳에선

베트남 남부에서 즐기는 계란요리 ‘바잉세오’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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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국에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옆 필리핀 부스에선 구수하고 익숙한 닭고기 냄새가 풍겼다. 이곳에선 닭죽에 튀긴 마늘

한국 거주 4년차인 시리아 출신 아미드 씨도 터키 전통디저트를 판매하며 “달달한 터키 음식도 한국인들 입맛에 맞을 것”이라고 자랑했다.

을 곁들인 현지음식 ‘아로스 칼도’가 전시됐다. 이

‘월드식품박람회 2015’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부스의 관계자는 “아로스 칼도는 한국의 닭죽과

‘할랄푸드 페스티벌’에도 많은 이들이 모였다. 이곳

비슷한 필리핀 전통음식이다”라며 “이렇게 추운 겨

의 하이라이트는 ‘할랄인증교육’ 세미나였다. 세미

울날에 딱 맞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실은 할랄 인증을 받아 해외진출을 꿈꾸는 이

중국 부스는 북방지역에서 즐겨먹는 지단쥬차

들로 만석이었다. 세미나를 진행한 (주)해외인증

이허즈(중국식 부추 부꾸미)를 선보였다. 중국 출

센터의 이석규 대표는 “무슬림 관광객과 유학생이

신 관계자는 “한국에 다양한 중국만두가 이미 소

늘어나면서 할랄음식의 수요는 점점 높아져 가고

개됐으나, 부추가 들어간 중국식 만두는 한국인

있지만, 많은 기업들이 아직 할랄공식인증 절차나

들에게 색다를 것이다”라고 밝혔다.

판매 등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

다양한 계란요리를 맛보고 나니, 이번엔 터키,

정이다”라며 “할랄푸드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학

인도 요리들이 기자 일행을 반겼다. 인도카레 전

교는 한양대뿐이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 때문에

문점 ‘겐지스’의 베카스씨는 “최근 인도전통카레가

종교계에서 할랄푸드 판매에 대한 보이콧을 하는

한국인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한국식 카레

등 어려운 점도 있다”고 밝혔다.

보다 인도카레가 더욱 향신료 향과 매운 맛이 강 한데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듯 하다”고 설명했다. 터키를 여행해 본 사람이라면 기념품으로 하 나씩 챙겨왔을 법한 것이 있다. 바로 터키 전통 디 저트 ‘터키쉬 딜라이트’(Turkish Delight)다. 이번 박람회 중 부스 두 곳에서 터키쉬 딜라이트를 소 개했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단맛을 낮춘 ‘한국 식 딜라이트’를 소개한 ‘글로리아’의 이승은 대표는 “전통 터키쉬 딜라이트는 한국인의 입맛엔 굉장히 달 수 있다”며 “터키 대표 디저트를 더 많은 한국 인들이 맛보았으면 한다”고 소개했다.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에게 터키 전통 딜라이트를 소개하고 있는 시리아 출신 아미드씨 세계계란요리 섹션에 참여한 베트남의 바잉세오 ‘할랄인증교육’ 세미나를 진 행중인 이석규 대표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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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소통·원칙·확신·개혁의 리더십, 신건 전 국정원장을 추모하며

존경하는 신건 원장님!

재소자들의 신문구독 허용, 저녁식사 시간 조

11월24일 밤, 원장님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

정, 면회 제도 개선 등 수십년 내려온 악습이나 제

을 듣고 얼마나 황망하고 송구했는지 모릅니다.

도들을 대폭 개선하셨던 거죠. 특히 재소자 문제

이틀 전인 지난 11월22일 편치 않으시다는 소식을

에 대한 해결은 교도관들의 처우개선과 맞물려 있

듣고 회복을 기원하는 글을 쓰려던 차에 원장님의

는데 바로 그 점에서 원장님께서 하신 일들은 가

부고를 알리는 문자 한통을 받았습니다.

히 ‘혁명적’이었다고 울산교도소장을 지낸 윤종우

어느새 제 생각은 원장님과의 지난 25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깊은 추

씨 등이 뒷날 제게 전해주더군요. 교도관들의 맞 교대를 3교대로 바꾼 게 바로 그것이었지요.

억들이 있었더군요. 딱 4번의 만남이었지요. 1990 년 여름, 2002년 봄, 2011년 10월, 그리고 2013년

존경하는 신건 원장님.

11월28일. 첫 만남은 한겨레신문 기자와 법무부

빈소에 가니 벌써 국정원 차장과 원장 시절 비

교정국장으로 저녁식사를, 마지막은 시민으로 돌

서실장 등 과거 함께 한 동료들이 여럿 와 있더군

아와 점심을, 2002년엔 두 번째는 한국기자협회

요. 별세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고 하더군요.

장과 국정원장으로 국정원장실에서 차를 나눴고,

국정원 시절 원장님이 어떻게 하셨을까를 미뤄 짐

2011년엔 국회에서 우연히 뵈었지요.

작할 수 있겠더군요. 하지만 원장님께는 국정원장

원장님 빈소가 차려지기를 기다리며 원장님

시절의 일로 10개월여 감옥생활을 하신, 역설적인

성함을 검색해보니 저와 몇 차례의 문자를 주고

일이 벌어졌으니 이 또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

받은 게 남아있더군요.

습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듣고 취재한 바로는 이

불과 4번의 만남, 3~4번의 문자메시지가 고작 인데도 제게 신건(辛建)이란 이름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렇더군요. 원장님께서 사법처리를 받은 것은 국정원 불 법사찰 혐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이렇게

먼저 교정국장 시절 만남에서였습니다. “이상기

제게 파악됐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원장님께서 가

기자, 당신이 교도소 문제 지적하는 기사 종종 써

장 잘 아시겠는데,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들을

줘 고맙소. 덕분에 많이 고쳤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수가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기사가 나오면 참고해서 개선토록 하리다.” 당시 저

“김대중 정부 후기 신건 원장 취임 초기 당시

는 민가협을 출입하면서 교도소 내 재소자 처우문

까지 해오던 불법도청은 계속되고 있었다. 나중에

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기사를 쓰곤 했었지

이를 알게 된 신건 원장은 불법도청장치를 모두

요. 당연히 교도행정에 대한 비판기사였는데, 원장

수거해 용광로에 집어넣어 없애버렸다. 그리고 더

님께선 이를 바탕으로 교도소 문제의 개선에 활용

이상 신 원장 시절 불법도청은 없었다. 그런데 노

했다고 하니 참 고마운 분이라고 생각했었지요.

무현 정부 때 국정원 불법도청이 문제되면서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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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magazine N | 201601

정에 신 원장이 서게 됐다. 신 원장은 이같은 과정

원장님 빈소에서 만난 전직 간부가 이러더군

과 사정을 설명하고 ‘국가안보상 대북 및 해외 관

요. “검찰 출신이지만, 아마 음지에서 일하는 국정

련 도청은 했지만 정치나 언론사찰은 하지 않았다’

원 직원들의 애환을 우리보다 더 걱정하고 해결해

고 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실형을

주신 분이다. 소탈한 웃음과 화내는 법 없이 나지

선고했다. 나중에 집행유예로 석방됐지만, 전임자

막한 목소리로 낮은 곳까지 챙기신 큰 형님 같으신

들의 불법행위를 없앤 자신이 실형을 선고받은데

분이셨다.”

대해 몹시 마음 상해 했다.”

원장님께선 법무부 교정국장과 차관 등 검찰 시절, 그리고 국정원 차장, 원장 시절 ‘소통’ ‘원칙’

또 한가지 국정원장 재직시절 원장님이 하신

‘확신’ ‘개혁’, 이 4가지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어

중요한 일이 있더군요. 바로 직원들 사기를 크게

나가셨지요. 원장님의 리더십은 지금도 국정원 직

올려주셨더군요.

원들 가슴 속에 남아있으리라 믿습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대 로 국정원 직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퇴직 후 대

존경하는 원장님.

부분 직원들이 전관예우는커녕 마땅한 일자리를

너무 일찍 가셨습니다. 한달 정도밖에 사시기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지요. 아니 그걸 되레 자랑

어려울 것이란 얘길 듣고 쾌유를 비는 글을 쓰려

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저는 보고

던 것이 이렇게 추모글이 돼 너무나 안타깝습니

듣고 믿습니다. 그러니 퇴직 후 사회부적응을 하

다. 계시던 자리마다 최선을 다해 이 세상을 조금

는 분들도 종종 봤습니다. 그래서 원장님께서 하

이라도 맑고 밝게 하시려던 그 노고에 하나님 은

신 일이 특정직으로 있던 것을 공안직으로 바꿔

총과 역사의 기록이 남으리라 확신합니다.

매달 20만원 정도 급여를 높여주셨더군요. 자연

제가 좋아하는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히 연금에도 적용돼 안정적인 근무여건이 조성됐

성공인가’를 원장님과 낭송하고 싶습니다. 먼길 편

을 거라고 봅니다.

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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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l

magazine N | 201601

서울대총동창회

2015년 8월25일 서울대총동창 회 장학금 수여식이 열린 모교 관악캠퍼스 문화관 중강당에서 고 윤홍중 약사가 성낙인 서울 대 총장(왼쪽)과 서정화 총동창 회장(오른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학증서를 읽고 있다.

녹번동 건강지킴이 윤홍중 약사, 장학금 8억 쾌척하고 부인 곁으로

그는 이 세상 살면서 근면·성실·검소·절약을 늘 실천하

들의 벗이 돼주었다. 그는 2015년 12월4일 오후 2시30분

고, 자신의 성정을 닮고 존경하는 삼남매를 남겼다. 그는

팔순을 꼭 3주 앞두고 삶을 마감하고 6년 4개월전 먼저

평생 누구에게 “무얼 이렇게 하라” 하기보다 스스로 본을

보낸 부인 곁에 눕는다.

보여주는 삶으로 일관했다. 그는 2015년 초 평생 모은 재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산의 4분의1에 해당하는 8억원을 서울대동창회 장학금으

‘바른생활’로 교과서적인 삶을 살아온 윤홍중(79)

로 기부했다. 그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후 서울 은평구

약사 이야기다.

녹번동에서 1970년 봄, 금강약국을 열며 35년간 아픈 이

윤 약사는 1936년 12월25일 충남 천원군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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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세면 가송리 361에서 태어났다. 3살 때 부친(윤최

했다. 윤 약사는 또 철저한 시간 관리와 정직성을

병)이 돌아가셔 홀어머니 슬하에서 외동아들로 자

늘 강조하였다. 그는 “정직하지 못하면 신용을 잃

랐다. 가난은 그와 모친에게 하루도 떠날 날이 없

고 신용을 잃는 것은 가치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었다. 천안농고를 졸업하고 달랑 입학금만 들고

라고 자녀들에게 가르쳤다.

1955년 서울대 약대(13회)에 입학했다. 가정교사

3년 전 자신이 소유한 건물을 삼남매와 서울

등 아르바이트로 등록금을 마련하며 1959년 약대

대동창회 장학금으로 4분의1씩 남기기로 하고 공

를 졸업했다. 해군에 입대해 약제관으로 근무하다

증을 했다. 자녀들도 윤 약사의 장학금 기부 결심

1970년 소령 예편했다.

에 대환영이었다. 그러던 중 2014년 10월 윤 약사 에게 혈액암이란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 사실을

아침부터 자정까지 일년 내내 한결같이…

알게 된 윤 약사 생각은 진일보하였다. ‘죽기 전에

윤 약사는 1961년 결혼한 부인(이상임)과 신혼

장학금을 내는 게 낫겠다. 자식들도 내 뜻을 이해

무렵부터 살아온 녹번동에 제대하던 봄 금강약국

해 주니 너무 고맙기만 하다. 서울대장학금은 건

을 열었다. 윤 약사는 ‘금강’이란 단어를 무척 좋아

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미리 내는 게 맞겠다.’

했다. 다이아몬드의 변하지 않는 성질과, 분단된

그리고 2015년 초 서울대동창회에 장학금 8억

조국이 통일 돼 금강산에 가고 싶다는 말을 평소

원을 기부했다. 조건은 한가지뿐. “내가 졸업한 약

자주 했다고 한다. 금강약국은 의약분업 실시 전

대생과 나라가 발전하려면 과학이 중요하니 공대

엔 명절을 제외하고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일년 열

생들에게 주기 바란다.”

두달 하루도 문이 닫히지 않았다. 금강약국과 윤

이에 따라 자신과 부인의 성을 딴 ‘윤이금강장

홍중 약사는 녹번동 주민들의 건강지킴이로 한결

학회’ 명의로 공대 3년 이상훈, 약대 3년 유정윤

같이 그 자리를 지켰다.

등 9명의 후배들이 지난 8월 말 윤 약사의 첫 장학

윤 약사는 슬하에 중학교 영어교사인 큰딸 숙

금을 받았다. 매년 10명 안팎의 후배들이 윤 약사

희(53), 내과의사 아들 인재(51) 그리고 애니메이터

장학금을 받게 된다. 이날 사위의 부축을 받으며

로 근무하다 전업주부로 돌아온 막내딸 경희(48)

수여식에 참석한 그의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흘렀

씨를 두었고 은행지점장으로 은퇴한 최윤근(54)과

다. 먼저 간 아내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홀가분한

변호사로 개업하고 있는 남태우(54) 두 사위와 약

마음과 자신처럼 어렵사리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사 김문정(46) 며느리가 있다. 이들은 교육계와 의

보탬을 주게 됐다는 뿌듯함에서였을 터다.

약계, 법조계, 금융계, 예능계 등 다양한 분야에

서울대총동창회(회장 서정화)는 윤 약사의 뜻

서 자기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윤 약사는 또 손녀

을 기리기 위해 장례절차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5명의 손자 1명을 두어 다복한 가정의 큰 어른으

않기로 했다. 동창회 박승희 사무총장은 “윤 선생

로서 구심점이 되어 왔다.

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숨기면서 거액을 내주신 분

윤 약사는 약국 안 쪽방에서 삼남매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 영어를 가르쳤다. 이는 두 딸이 대학

은 좀처럼 뵙지 못했다”며 “고인의 뜻에 맞게 소중 하게 장학기금을 운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윤 약

고인의 빈소에는 윤 약사의 초중고교와 대학

사는 2014년 10월 혈액암(급성백혈병) 진단을 받

시절, 그리고 해군 장교 시절 친구와 선후배 100여

고 입원하면서도 젊어서부터 하던 대로 영어, 중

명이 조문했다. 특히 1999년 의약분업 실시 초기

국어, 일본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외국어를

복잡해진 처방전 등의 전산입력을 위해 6개월여

배워야 세상 돌아가는 걸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자

함께 일한 곽창애(44)씨가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녀들에게 얘기하곤 했다.

나주에서 상경해 윤 약사 영정을 바라보며 오열했

그는 액자에 담긴 가훈은 달지 않았지만, 부지 런하고 성실하고 검소하고 절약하는 삶으로 일관

다. 평소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살아온 윤 약사의 인 간미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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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sland is basically a picturesque park filled with an assortment of scenic spots and pathways.

magazine N | 201601

Namiseom: falling in love with a half-moon shaped island Summary

이집트 기자가 만난 ‘겨울연가’ 무대 남이섬, 한류마니아라면 꼭 한번!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남이섬은 많은 방문객이 찾는 한국의 관광명소다. 주변에 기차역이 있고 서울과 가까워 접근성도 좋 다.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가 보존된 이 곳은 조선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내다 역적으로 몰려 요절한 남이 장군의 묘가 있어 남이섬이라고 불리게 됐다. 북한강 위에 반달 모양으로 떠 있는 남이섬은 지난 1965년 수재 민병도 선생이 불모지 남이섬을 매입해 나무를 심기 시작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의 아름다운 경관을 갖추게 됐다. 이 섬은 TV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타면서 한류 열풍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섬 안으로 들어서면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메타세쿼이어길은 겨울연가의 주인공이 걸었던 길 로, 남이섬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겨울연가’에 감동을 받아 남이섬을 찾은 많은 외국인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용준과 최지우가 함께 탔던 하늘 자전거, 이들이 작은 눈사람을 만들며 첫키스를 나눴던 호수 옆 테이블 등 드라마의 한 장면 장면을 되새기며 추억에 잠긴다. 또한 주인공의 동상 앞에는 사진을 찍기 위한 사람들로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강변을 따라 뻗어 있는 자작나무 길과 갈대숲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밖에도 남이섬에는 갤러리와 박물관 부터 시작해 유니세프 나눔열차, 체험 공방까지 다양한 즐길 거리가 많다. 번지점프와 짚라인으로 활동적인 레포츠도 즐 길 수 있다. 현재 한류는 싸이, 빅뱅, 소녀시대, EXO 등을 위시한 K-pop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한류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방영된 ‘겨 울연가’를 통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이 드라마는 한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한류의 시초라 볼 수 있는 ‘겨울연가’, 그리고 명작의 무대가 된 남이섬. 한류를 사랑하는 이라면 이곳에서 한류의 시초를 만나봄이 어떨까. Radwa Ashraf radwaashraf@theasian.asia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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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On a fall Saturday morning, I checked

nature wonderland, it was a desolate

of treason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another item off my Korea bucket list,

piece of land with only a few scattered

the seven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visiting one of its most famous islands:

chestnut, poplar and mulberry trees on

Although his grave is not discovered,

Namiseom or Nami Island, a tiny half-

the fringes of a small peanut farm. Its

there are a pile of stones where his body is

moon shaped sanctuary-like island.

history revolves around General Nami,

supposed to be buried. It is believed that if

Nami Island is located in the

whom it is named after and who had died

someone takes even one stone from there,

Bukhangang River off Gapyeong though

at the age of 28 after being falsely accused

it would bring misfortune to their house.

it belongs to Chuncheon. It formed as the water of the North Han River rose as a result of the construction of Cheongpyeong Dam in 1944. It has been for a long time one of the country’s most popular day trips away from Seoul, due to its historical significance, contributions to Korea’s arts and culture scene, and its peaceful air and harmonious relationship to nature. Before the island was purchased by Minn Byeong-do, who turned it into this Indian music and culture festival, one of the many cultural events held in Nami Island Recycling proves to be quite essential in the island, as evidenced by their numerous art pieces made out of old soju bot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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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Fall in Nami Island makes you marvel at the colorful tress and falling leaves. Ostriches in Nami Island were some of the most people-friendly animals I’ve seen. Squirrels and rabbits scattered across the island posing for pictures “Winter Sonata” fans can view memorabilia and photographs from shooting scattered across the island. A picture with the poster of the Korean drama “Winter Sonata,” the main reason this island gained its fame.

extra layer of beauty. Arriving at the ferry wharf of Gapyeong is easy using either the train or bus, and at the wharf you could either take a 5-minute ferry ride to the island, or take a more adventurous route and The island is basically a picturesque

galleries, gift shops, and libraries.

choose the airborne zip-lining.

park filled with an assortment of scenic

Making the trip there from Seoul is

One of the first things you would

spots and pathways. There are river

quite easy, making it the perfect day trip

notice going to Namiseom, is that you

views, a lush lotus pond, ostriches, and

any time of the year, as people would

have to get a “visa” at the port first to

pathways lined by cherry, sequoia, maple,

recommend you to go there in summer

be able to get on the ferry and enter the

and gingko trees, just to name a few

to enjoy the weather, or in fall to marvel at

island. It declared itself a self-governing

attractions. Pretty much everywhere you

the colorful trees and falling leaves, and

country in 2006 as acceding to General

look, there’s another photo opportunity.

in winter it’s definitely worth a visit to see

Nami’s natural greatness of soul. In

In addition to the natural sights, there are

the whole island covered in white, while

addition, it has invented its own passport,

also cafes and restaurants, museums, art

in spring everything blossoms adding an

currency, stamp and telephone 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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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1

and has promoted the establishment of

cowering closer trying to get hold of

the most memorable moments from the

“Naminara” in other countries.

cameras, squirrels gathering around nuts

series, including renting bikes and riding

Once you arrive at the island, you

you would throw them and staring at you

down the serene, tree-lined bike lane that

could lose yourself to strolls through

long enough to take a few photographs,

Bae Yong-joon and Choi Ji-woo took or

tree pathways, riding sky bikes or

rabbits, on the contrary, running away

pretend to build mini snowmen atop a

renting a bicycle and touring the island,

from people and hiding under bridges

picnic table while stealing a first kiss.

or even paddling in the lake with their

and inside the fall foliage.

memorabilia and photographs from

swan boats. You would also notice how recycling proves to be quite essential in

Drama fans can also view

Hallyu wave started with Namiseom

shooting scattered across the island,

the island, as evidenced by numerous art

Namiseom is quite popular for being

as well as markings on different spots

pieces made out of old soju bottles. The

a gateway from the bustling city of Seoul,

to indicate where filming occurred.

island tries to be very environmentally

but the main reason why it is visited by

The bronze statue of the drama's

conscious as all of the trash bins around

millions of people every year is mainly

lead characters has become the main

the island had separate slots to make

because of the Korean drama, Winter

attraction in the island with queues of

recycling easier.

Sonata.

people lining in front of it waiting to take

I noticed the variety of activities held

The metasequoia path, picnic tables

pictures. Even those who are not familiar

at the island; on the day I visited, there

by the lake, and tiny snowmen, all served

with the drama wanted to take part in the

was an Indian music and culture festival,

as a backdrop for Korea’s most successful

magic.

which was a fun experience for an Indian

and globally famous drama. You can

Today, Nami Island has succeeded in

friend who accompanied us. Another

say that this drama is how the Hallyu

carrying out Mr. Minn’s desire to “purify

aspect we became quickly fond of, were

wave actually started back in 2002 when

the human mind through the unification

the people-friendly animals: Ostriches

it first aired. Visitors can relive some of

of nature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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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ary

magazine N | 201601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동물들은 계절이 변하는 것을 우리보다 훨씬 민감하게 알아차리지만 아마 햇수를 세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처럼 10주년이나 100주년 등을 기리고 애써 의미를 부여하는 등 우스꽝스러운 짓은 하지 않 는 것 같다. 우리 인간은 십진법을 가장 보편적인 기수법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이를 테면 7주년이나 13 주년보다 10주년에 훨씬 각별한 의미를 둔다. 우리말에는 10년을 강조한 속담이 제법 많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를 비롯해 “10년 세도 없고 열 흘 붉은 꽃 없다”, “10년 묵은 환자(還子)도 지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등. 영어에는 아예 10년을 지칭하는 단어가 따로 있다. 라틴 기원의 ‘데케이드(decade)’는 일상에서 10이라는 숫자를 거론하지 않고도 흔히 사 용하는 단어이다. 2015년은 유엔이 정한 ‘생물다양성 10년(United Nations Decade on Biodiversity)’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그런데 정작 단어까지 만들어 놓고는 이렇다 할 속담이나 격언은 별로 없다. 딱히 단 어도 없는 우리는 이런 저런 속담을 되뇌는데 단어까지 만든 서양은 그렇지 않아 적이 야릇하다. 개인적으로는 10년이라는 세월이 사뭇 실질적인 의미를 지닌다. 내가 우리 사회에 ‘통섭’을 화두로 던진 지 꼭 10년이 된 2015년은 특히 그런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경계를 낮추고 넘나들어야 진정한 발전을 이 룰 수 있다는 통섭의 개념은 우리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다. 통섭의 전파에 가장 탁월한 역할을 담당한 책 <대담>의 10주년 기념 개정판이 얼마 전 출간됐다. 지난 2001년부터 4년 동안 나는 당시 경희대 영문학과 교수였던 도정일 선생님과 무려 10여 차례에 걸쳐 장시간 대담을 나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만 날 수 없이 보였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당돌한 만남이었다. 그로부터 10년, 우리 학계와 사회가 어떤 변화 를 겪었는지 짚어보기 위해 우리는 작년에 또 두어 차례 만남을 가졌고 그 자료를 보태 개정판을 냈다. <통섭>과 <대담>에 덧붙여 2005년에 나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174쪽의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생물학자가 진단하는 2020년 초고령 사회>라는 책을 냈다. 현상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대체출산율 2.1의 절반밖에 안 되는 출산율이 이어지는 데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정부의 태도에 경종을 울릴 셈으로 쓴 책이었지만 당시 너무 앞서간다는 비판만 뒤집어썼다. 그러나 최근 내가 이 책에서 제안한 주장들이 어설픈 정책으로 둔갑해 불거지고 있어 적이 당황스럽다. 강력하게 주장했던 임금피크제는 공공기관 전반에서 시 행 단계에 들어갔고, 정년제도가 없어질 것이라는 내 예언(?)은 정년연장의 형태로 서서히 현실화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저출산이 당황스러운 현상이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지구 만병의 근원인 인구 증가 를 잡는가 싶던 순간에 또 다시 잘 사는 나라들이 자국민의 수가 줄어드는 걸 우려해 출산율을 높이려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인구의 증가가 아니라 인구의 이동이 현명한 해결책이라는 분석과 함께 나는 10년 전 이 책에서 우리나라도 문호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당시에는 단일민족의 전통을 훼손 한다며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버젓한 다문화국가가 되었다. 책에서 나는 또한 출산율을 정상화하는 방안으로 조혼을 예찬하고 그러기 위해서 젊은이들의 사회 진입을 앞당기기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이화여대 석좌교수, 하버드대학 생물학 박사, 기후변화 센터 공동대표 BPW Gold Award, 대한민국 과학기 술훈장,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미 곤 충학회 젊은과학자상 등 수상

위해 교육제도를 5-5-5제로 하자고 제안했다. 초중등 과정을 각각 1년씩 줄이는 제안이었다. 최근 정부 가 비슷한 내용의 정책을 발표하는 걸 보며 물론 상관은 없겠지만 공연히 혼자 황망스러워 하고 있다. 통섭의 개념은 상당한 논의와 비판을 거쳐 무르익었지만 고령화 대책은 전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 고 튀어나오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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