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N Februar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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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16

Inspiring Leaders l Empowering People l Leading Asia’s Change

Asian Youth Unemployment 아시아청년은 실업중

中 업 실 은 년 청 아시아

값 12,000원

N o . 3 2 FEBRUAR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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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2

020 Special Report Asian Youth Unemploy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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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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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소개

아시아청년은 실업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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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그래프로 살펴본 권역·국가별 청년실업률_최정아

Letter from N

25

ENG

아시아 취업시장 ‘먹구름’, 어떻게 풀어야 하나_김아람

8

28

ENG

“취업준비에 2년은 기본, 일자리 ‘미스매치’도 심각”_최정아

30

ENG

중국·일본·인도 청년취업정책 살펴보니…_최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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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영화·드라마·소설 속 아시아 청년실업_김아람

‘오피니언과 트렌드의 합리적인 조화와 균형’_이상기 발행인

Partnership 10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Asia Round-up 12 M A G A Z I N E

w w w.t heasian . asia

FEBRUARY

ENG

싱가포르 철도공원서 서울역 고가공원이 배울점은?

2 016

Inspiring Leaders l Empowering People l Leading Asia’s Change

Age of Asia 18

ENG

‘행복 왕국’ 부탄의 빛과 그림자_김아람

Asian Youth Unemployment

Asian Heritage

아시아청년은 실업중

실업中 아시아청년은

값 12,000원

N o . 3 2 FEBRUARY 2016

02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On the Cover 라훌 아이자즈 기자가 아시아 청년들이 맞닥뜨린 취 업난을 레터링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The cover designed by Rahul Aijaz is a representation of youth unemployment criris that has hi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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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무참한 ‘문화청소’에 전세계 ‘경악’_Radwa Ashr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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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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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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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s 민병철 ‘선플운동’ 창시·전도사

“선플 통한 인터넷 평화운동, 지구촌 구석까지 펼칠 터”_이상기 42 ENG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66 전역·취업 앞둔 이 땅의 아들딸들에게_이은택 68 삼성 바이오’ 결단 이재용 리더십, 삼성家 도약 이룰까?_김국헌 69 진짜 ‘위협’은 화학무기…강대국 논리 무작정 좇는건 ‘위험’_민병돈

“빈곤의 악순환 끊는 건 식량 아닌 ‘교육’”_최정아 46 ENG 이상묵 서울대 교수가 교통사고 후 달라진 것들_이상기

Perspectives 70 [허영섭의 대만이야기 ⑰]

Special Topics 50

ENG

IS 테러, ‘문명의 충돌’ 아닌 ‘인간성과 야만성의 충돌’ _Fethullah Gulen

총통 당선 직후부터 ‘양안갈등’에 직면한 차이잉원 72 [박명윤의 웰빙 100세 ⑳] 불안과 분노로 힘드신가요? 74 [천비키의 명상 24시 ⑭] 하루를 활기차게 열어주는 아침명상 8가지 76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⑪] “커피는 불화 속에서 발전한다”

Insights 54 58

ENG

‘메카’ 성지순례, 매년 수천명 압사…근본적인 대책은 언제쯤

Culture

ENG

_Ashraf Aboul-Yazid 광활한 타르사막에 펼쳐진 이슬람-힌두 화합의 장_Nasir Aijaz

80 [박상설의 자연속으로] 나의 방랑처는 산과 들, 대자연과 우주 84 [시각문화 3.0시대 ②]

Economy 62 [작은거인 알리바바 마윈 ⑨] “잘못된 일을 정확하게 하면 빨리 망할 수 밖에 없다”_안동일 64 성공하고 싶으면 ‘문전 처리’ 완벽히 하라_김영수

200년 피땀의 결실 ‘사진’ 누가 예술이 아니라 말할 수 있나?_김인철 87 ‘파리의 한국남자’가 던진 인상적 감흥들_전찬일 90 [냥이아빠의 일본 엔타메 ①] 92

‘꼴찌갸루’ 아리무라 카스미가 게이오대에 합격한 이야기_박호경 ENG 영화촬영지의 ‘무한확장’…오감 느끼는 현장으로 _Radwa Ashr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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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2 대표이사·발행인 이상기 편집인 Ashraf Aboul-Yazid 편집위원장 이오봉 부편집장 이주형 대기자 민병돈 전문기자 박상설 김재화 안동일 이신석 조슈아 최 취재·편집 최정아 김아람 Rahul Aijaz Radwa Ashraf 편집고문 김승웅 박준순 엄기영 유재천 육정수 임철 편집위원 기영노 박현찬 하지원 Sinan Ozturk 현지특파원 Alpago Sinasi(터키) Bishnu Gautam(네팔) Ivan Lim Chin(싱가포르) Kuban Abdymen(키르기스스탄) Nasir Aijaz(파키스탄) Pramod Mathur(인도) Shafiqul Basher(방글라데시) Uyanga Amarmend(몽골) 사업이사 차재준 애드마케팅에디터 정현 광고부장 김홍석 마케팅팀장 박호경 광고기획 유경수 디자인 이주형

100 Arts 96

ENG

손인숙 실그림 작가 “실그림은 나의 삶이자 우주”_김아람

100

ENG

자유로운 영혼 신현철 도예가가 빚어낸 ‘연꽃다기’_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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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서울서 마주한 거장 스탠리 큐브릭_Rahul Aijaz

제작·인쇄 ㈜타라티피에스 홈페이지 www.theasian.asia 기사제보 02-712-4111, news@theasian.asia 창간 2013.06.25. 등록 2013.05.02. 등록번호 종로 라00407 발행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5 화수회관 207호(우 110-521)

Transnational 108

ENG

<매거진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위안부 소녀상, 그 자리에서 계속 평화 지켜주오” _Radwa Ashraf

글로벌 제휴사

Memorial 110

ENG

언론자유 향한 당신 투혼 영원히…_이상기

정기구독 및 광고문의

Commentary 112 2016년, 당신은 어떤 발자국을?_김희봉

(O) 02-712-4111 (F) 02-7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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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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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정기구독(1,440,000원) 시 평생독자로 모십니다 정기구독 입금계좌 하나은행 274-910006-67504 / 국민은행 031601-04-171721 농협 355-0022-8500-13 예금주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신용카드 결제 http://kor.theasian.asia/에 접속하여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정기구독(CMS 자동이체 약정) 매월 12,000원 출금. 위 연락처로 전화 혹은 http:// kor.theasian.asia/에 접속 후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Letter from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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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오피니언과 트렌드의 합리적인 조화와 균형’

존경하는 <매거진 N> 독자님. 새해 품으신 꿈과 계획이 뜻대로 이뤄지길 기원합니다. <매거진 N> 2월호가 도착할 때쯤이면 설날을 앞두고 귀향길을 서둘거나, 원근에서 모일 가족과 친지들 재회할 기대에 부풀어 계실 듯합니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나라 안팎이 경제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긴 어느 때도 희망적인 예측이 나온 적은 거의 없었지요. 하지만, 연말 대차대조표를 보면 조금의 희망은 늘 남아있어 발행인 이상기

Lee Sang-ki

Publisher of Magazine N

이를 밑거름으로 새해를 설계하곤 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매거진 N>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는 6월25일 창간 3돌을 앞두고 옷깃을 여미며 다짐을 합니다. 지 난 1월호에서 제안한 ‘休 저널리즘(Hu-Journalism)’대로 ‘서둘지 않고 여기저기 살피고 어루만지며 뚜벅 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연세 드신 독자님들께선 기억하실 겁니다. 1970년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잡지를. 그 때 연재됐던 ‘숨어사는 외돌토리’가 있습니다. 염습쟁이, 소리꾼, 목수 등등…. 세상에 알려지진 않았지 만, 인류와 후손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묵묵히 땀 흘리는 분들을 저희 <매거진 N>이 찾아 소개하고 싶 습니다. 독자님의 제보 기다립니다. 물론 사회적 성취를 이루신 분의 뒷 얘기도 널리 알려 젊은이들이 거울로 삼도록 하는 일 역시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2월호에 실린 손인숙 실그림 작가, 신현철 도예 장인, 이상묵 서울대 교수, 민병철 선플운동 선구자,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등의 인터뷰가 이러한 범주에 속하겠지요. 아울러 <매거진 N> 2월호는 범아시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청년실업 문제를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동아시아, 동남아, 서아시아 그리고 멀리 중동 지역에서도 청년들이 일자리를 못 구해 어 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매거진N>은 각국의 청년실업 실태와 전문가 진단, 정부대책, 각국 청년좌담 회 및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영화, 드라마, 소설 등을 짚었습니다. 아시아 청년들이 자신에게 맞는 일 자리를 찾아 맘껏 역량을 펼치길 함께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거진 N>이 비교적 중후하고, 수준 높은 칼럼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이의 모태가 된 온라인 아시아 엔(www.theasian.asia)은 좀더 발랄하고 아시아 각국의 현지 소식을 젊은 시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굳이 저널리즘 이론을 원용한다면 ‘오피니언과 트렌드의 합리적인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려는 시도입니다. <매거진 N>과 <아시아엔>을 낳은 (사)아시아기자협회 총회가 오는 4월 중순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입 니다. 아시아의 현안은 무엇이며,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등에 대해 심도있게 토론하게 될 겁니다. 아울러 (사)아시아기자협회는 2월17~22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전시관에서 ‘네팔대지진 복구 지원 사진전’(부제-아시아기자들이 함께 하는 히말라야의 꿈)을 엽니다. 이번 전시회에는 1993년 이후 23년간 매년 1달씩 네팔 오지를 自費로 찾아다니며 네팔 원주민의 표정과 자연풍광을 촬영해온 조진수 사진작가 (<매거진 N> 포토칼럼니스트)의 사진작품 100여점이 선보입니다. 사진전 수익금은 네팔 현지의 학교 복구 와 어린이장학금 등으로 사용됩니다. 독자여러분의 성원과 참석을 당부드리며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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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nership

magazine N | 201602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50개국 AJA 전문필진이 만드는 ‘매거진 N’

<매거진 N>은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의 뉴스 네트워크를 기 반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고급정보와 심층해설을 전달합니다.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로 한국, 중국, 일 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 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2개국, 300여 명의 회 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 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교·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 로고 아시아기자협회 네팔지부 ‘미디어와 평화’ 포럼(2014. 03)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 글, 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이 지역 최초의 온라인 매체로서 AsiaN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매우 뜻 깊은 The AsiaN 영문판·아랍어판 메인화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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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AJA in Brief

2004.11.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회원

2010.07. AJA,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사무국 서울

2011.06. AJA,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지부

2011.07.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이사장

2011.11. 11월11일 아시아엔(The AsiaN) 한글·영문판 창간

2012.11.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창간

회장

2012.11. 네이버(NHN), 줌(ZUM) 뉴스검색 제휴, 모로코작가협회 제휴 2012.12. 다음(Daum) 뉴스검색 제휴, Al-Arabi Magazine 제휴 2013.02.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2013.03. 이집트 Al-Hilal Magazine 제휴 2013.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013.09. AJA ‘아시아 문화언론인포럼’ 광주서 개최 2014.03. AJA, 쿠웨이트 황금보트상 수상 2014.04. 아시아엔(The AsiaN) 편집위원회 발족 2015.01. 최초 해외인턴기자 라훌 아이자즈(Rahul Aijaz, 파키스탄) 연수 시작 2015.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주년 2015.07. 이집트 출신 라드와 아시라프(Radwa Ashraf) 연수 합류 2015.10. 네팔지진 후원 사진전, 조진수 작가 공동주관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김학준 한국 한동대 석좌교수

2012.02. 중국 온바오닷컴, Global Asia, THE KOREA TIMES 기사제휴 2012.03. 뉴시스, 연합뉴스, 터키 CIHAN 통신사 기사제휴

52개국 357명

창립회장 Ivan Lim 싱가포르 The Straits Times 전 기자

이상기 한국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Xu Bao Kang 중국 인민일보 한국판 전 지사장

Dolgor Chuluunbaatar 몽골 Ulanbaatar Times 전 편집국장

Eddy Suprapto 인도네시아 RCTI TV 부국장

Bishnu Nisthuri 네팔 네팔기자연맹(FNJ) 전 회장

Norila Mohd Daud 말레이시아 Utusan Malaysia 선임기자

강석재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부회장

2015.11. 아시아엔(The AsiaN) 창간 4주년

Messages from AJA

Magazine N breaks new ground for rising Asia

‘아시아 시대’에 발맞춘 매거진 N

The inaugural issue of Magazine N is a commendable first effort by our columnists, reporters and correspondents to give readers insights on Asia from an insider’s perspective. They write with inheren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their own home turf matched by native feelings and regional sentiments. The pages appear in a refreshing and reader friendly format made attractive by photographs and other graphic illustrations. Style-wise, our writers have delivered content that is serious and substantive. However, they have not forgotten to give them a human touch as shown in the way stories are woven around political, business and sports personalities of the day. Our editors have also thrown in a good mix of topics and lively spread of photographs to suit a variety of interests and preferences among readers. They have also been imaginative and creative in projecting Magazine N as a ‘new frontier’ publication that will, as we go along, break new ground in our coverage of a rising Asia and the consequential re-shaping of the regional, political and economic architecture. That is the professional thinking and aspiration driving our efforts in Magazine N, as it is with our online - Ivan Lim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news portal The AsiaN.

아시아기자협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엔>을 창간한 지 4년 남짓, 이들이 이제 월간 <매거진 N>을 이 땅에 선보였습니다. 굳이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예측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전쟁과 기아에 신음하던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바로 이때, <매거진 N>이 전달할 질 높고 다양한 정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줄 것을 확신합니다. - 김학준 (사)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한동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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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Round-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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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장 철도공원’ 싱가포르서 탄생…서울역 고가공원이 배울점은? 싱가포르 남북을 잇는 27km의 철도가 아름다운 공 원으로 재탄생한다. 이 철도는 탄종파가역에서 시 작해 북부 말레이시아 국경까지 이어지며 미국의 고가공원 ‘하이라인’보다 무려 10배나 더 길다. 싱가 포르 도시개발청은 2015년 철도공원 디자인 공모전 을 열었고, 그 결과 일본 글로벌 건축기업 ‘니켄세케 이’(Nikken Sekkei)와 싱가포르 시디자인 회사 ‘티에 라디자인’(Tierra Design)의 합작품이 새로운 철도공 원 모델로 선정됐다. 새로 들어설 공원에는 총 122개의 입구와 21곳의 휴 게공간 및 화장실이 건설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대중 의견 수렴을 거쳐 디자인 수정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원하는 시민들이 많을 경우, 샤워시설이나 자전거대여소, 식당 등 이 추가로 들어설 수 있다. 실제로 도시개발청은 지난 12월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받고 있으며 오는 3월까지 시민들의 의견이 접수된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도 서울역 고가공원 공사가 이제 막 시작됐다. 노후 정도가 심각해 본래 철거하려고 했던 계획 대신, 주변 상 권 활성화를 위해 미국의 ‘하이라인’을 본뜬 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그덕 소리를 내고 있 다. 지난 12월 고가도로를 폐쇄하면서 운전자들을 위한 교통편 마련부터 서울시청과 경찰청 간 대립이 있었다. 낮은 안전등 급을 받은 고가도로의 공원화가 안전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서울역 고가공원은 싱가포르에 들어설 세계최장 철도공원과 미국의 하이라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미국의 하이라인 공 원은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로 10년 동안 자연스럽게 조성됐으며, 싱가포르에 들어설 공원 역시 대중의 피드백을 통해 차츰 수정 및 보완해나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여론을 먼저 수렴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는 싱가포르 공원 사업. 시작부터 우왕좌왕하며 2017년 봄까지 속전속 결로 공사를 마무리하겠다는 서울역 고가공원. 확연히 비교된다.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Singapore is creating its own version of New York’s High Line Singapore is constructing its own version of the High Line Park from New York. The 27 kilometer rail park of Singapore runs across the island from south to north, reaching the Malaysia border. This railway was once used in trade from Malaysia to the Singapore port during the British colonial period, but later on, it was closed until the Singapore Urban Redevelopment Authority, inspired by the High Line Park in New York, decided to recreate the new rail park. The city will be accepting public feedback on the plan until March, while Nikken Sekkei and Tierra Design, the two winning teams for designing the project, carry out the preliminary design. The winning proposal calls for over 122 entrances and includes 21 toilets and rest areas. Meanwhile in South Korea, Seoul has just begun to build a high-railway park as well. However, a controversy over the rail park project has risen. It raises a question of whether rebuilding old highway is safe. Seoul’s rail park project shows the contrast with Singapore and New York. The High Line Park in New York was built by voluntary participation from its citizens for 10 years, while Seoul city council announced that the construction would be handled in one year without de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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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tar bans Disney’s Snow White storybook A book based on Disney’s “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 has reportedly been removed from a Qatari private school’s library after it was deemed to contain “indecent” illustrations. The book was an abridged version of the story, part of Penguin Kids series. Officials from Qatar’s supreme education council were said to have intervened after a complaint from the father of a pupil at the Spanish SEK international school, based in the capital, Doha. The father said the book contained indecent and inappropriate illustrations and phrases as well as “sexual innuendo”, Al-Sharq newspaper wrote on Thursday. SEK head-teacher Vivian Arif told Doha News that the school immediately took action after receiving the complaint. All schools in Qatar are required to follow SEC-issued regulations detailing which books and learning materials are permitted and culturally appropriate. Despite the relatively fast response of removing the book from the school’s library, some people deemed it “not enough”, as they took to twitter to express their anger. Nora Alkubaisi said, “This is not the first time and the SEC has not done anything in the past to hold those responsible accountable. Therefore, such incidents continue to take place and uglier stuff will continue to happen.” The removal of the book comes less than two weeks after Qatar banned the film “The Danish Girl”, which is about an artist who underwent one of the world’s first sex change surgery, after protests about the movie’s alleged “depravity”. Snow White’s storybook isn’t the first book to be banned by the Qatari government either. In 2012, they banned the comic book series “The Boys” by Garth Ennis, labeling it “sexual” material and, as such, too offensive to be allowed into the country. Jacob M. Appel’s “The Man Who Wouldn’t Stand Up” about the modern American society was also banned in 2014 for its depiction of Islam.

카타르, 디즈니 ‘백설공주’ 도서관서 퇴출…“불건전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토대로 한 동화책 <백설공주>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카타르 수도 도하의 한 사립학교 도서관에서 퇴출됐다. 카타르 <도하뉴스>에 따르면 스페인계 SEK국제학교의 한 학부모가 “불건전한 삽화와 문구가 있다”며 “특히 성적인 묘사도 있어 부적절하다”고 학교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문제가 된 장면은 백설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뒤 왕자의 키스로 다시 되살아난 부분이다. 비비안 아리프는 SEK국제학교 교장은 학부모의 항의를 받은 뒤 즉시 <백설공주> 퇴출을 결정했다. 아리프 교장은 “우리는 카타르 문화를 존중한다”며 “<백설공주>를 심의없이 도서관에 배치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과거에도 이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카타르 정부는 ‘방탕’하다는 이유로 세계 최초 성전환자를 다룬 영화 <대니쉬 걸>의 상영을 금지했다. 또한 2012년엔 만화 ‘더 보이즈’(The Boys)도 성적인 요소가 많다는 이유로 출판 금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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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lim youth believe ISIS and Al-Qaeda distort Islam According to a recent poll conducted by “Zogby Research Services,” a majority of Arab Muslims youth see the actions of extremists such as ISIS and Al-Qaeda as a perversion of Islam’s teachings. The poll, conducted among 5,374 young Muslim men and women from the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also found that many blame corruption and repressive governments for the rise of jihadist groups. Xinhua

“At least three-quarters of millennial respondents in all countries surveyed said movements like ISIS and Al-Qaeda are either a complete perversion of Islam’s teachings or mostly wrong,” the polling firm said. The survey was conducted in October and November 2015 with respondents aged 15 to 34 in Morocco, Egypt, Saudi Arabia, the United Arab Emirates, Bahrain, Kuwait, Jordan, and the Palestinian territories, AFP reported. More than 90 percent of respondents in Morocco and the UAE called both extremist groups a “complete perversion of Islam,” as did 83 percent of respondents in Egypt and more than 60 percent in Bahrain and Jordan. More than 55 percent of respondents in the Palestinian territories and Saudi Arabia also said the radical groups were distorting Islam’s teachings. More than 30 percent of those polled in many countries, including 69 percent of respondents in the UAE and 50 percent in Morocco, said “corrupt, repressive, and unrepresentative governments” were the main causes of young men and women joining extremist groups. Others blamed extreme religious teachings and poor levels of education. “In most countries, the majority says that religion does not need to be reformed” but rather that religious discourse “needs to be made more relevant,” the polling firm’s chief James Zogby said while releasing the survey results.

중동 무슬림 청년 75% “IS, 이슬람 교리 완전 왜곡” 중동 무슬림 청년들이 이슬람국가(IS)와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이슬람 교리를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으로 드러났다. 여론조사기관 ‘조그비 리서치 서비스’는 2015년 10~11월 두 달간 무슬림 만 15~34세 남녀 5천374명을 대상으로 ‘이슬람 지 하디스트와 무장그룹이 이슬람 교리를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조사 결과, 75% 이상의 응답자가 “극단 주의 단체가 이슬람 교리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모로코와 UAE의 경우, 응답자 90% 이상이 “이슬람 교 리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또 이집트 응답자의 80%, 바레인과 요르단 응답자의 60% 이상이 이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또한 극단주의 단체에 가입하는 무슬림 청년들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 현상에 대해선 응답자 대다수가 “정부가 부패하고 모 범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일부는 교육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다. ‘조그비 리서치 서비스’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종교개혁보다는 교리를 더욱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중동 무슬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라고 밝혔다.


015

magazine N | 201602

PHOTO report

“우리 해체 안해요”…일본 국민아이돌 스맙, 해체설 ‘일단락’ 해체설에 휩싸였던 25년차 일본의 아이돌 그룹 ‘스맙’ (SMAP)이 생방송을 통해 “스맙의 해체는 없을 것”이 라고 공식발표했다. 스맙은 총리까지 나서 이들의 해체 를 만류할 정도로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이다.

Members of The decades-old Japanese pop group SMAP say they will stick together, ending rumors of a breakup that shocked fans in Japan and elsewhere in Asia at the beginning of its weekly show on Fuji Television AP

on Monday, Jan. 18, 2016.

COMMENTS from Asia

차이잉원

대만 총통으로 당선된 차이잉원이 대만선거를 앞두고 불거진 ‘쯔위 대만국기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대만 아이돌, 그것도 16살밖에 안 된 소녀가 한 방송에서 중화민국 국기를 들고 있다는 이 유로 억압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당파를 불문하고 대만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고 밝혔다.

Tsai Ing-wen

“An entertainer, a young 16-year-old girl, working in South Korea, recently attracted opposition after she was filmed holding the Republic of China flag. This incident has angered many Taiwanese people, regard-

less of their political affiliation. This particular incident will serve as a constant reminder to me about the importance of our country’s strength and unity to those outside our borders.”

필립 해먼드 최근 홍콩에서 반중(反中)서적을 판매하는 서점 관계자 5명이 잇따라 실종돼 홍콩 정계와 시민단체 들이 중국 당국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는 일국양제의 핵심 사안이다. 홍콩과 중국 당국 모두가 나서 그들의 행방을 찾아야 한 다”며 중국 측에 조사를 요구했다.

Philip Hammond The British foreign secretary, Philip Hammond, said over five Hong Kong booksellers have disappeared in recent months, “We have urgently inquired both of [the] Hong Kong authorities and of the mainland Chinese authorities what, if anything, they know of his whereabouts.”


Age of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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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뒷이야기 [ 1 ]

‘행복 왕국’ 부탄의 빛과 그림자 잘 알려지지 않았던 4가지 진실

Summary

Light and shadow of Bhutan: Unhappy people in the happiest country Bhutan, officially the Kingdom of Bhutan, is a landlocked country in South Asia at the eastern end of the Himalayas. The Kingdom is also well known as the happiest country in the world, according to a report issued by the New Economics Foundation on 2010. However, it is not all good as you see. The youth in Bhutan struggle to get a job and easily get addicted to drugs. Youth employment rate was 10% in 2014, according to World Bank. As the economy grows each year, more youth have been enrolling into colleges. Unfortunately, a large number of quality job openings are unavailable for their future. Many Bhutanese youth rush to the capital city of Thimbu with hopes of becoming white-collar workers, but soon, it all turns out to be a disaster; overpopulation and jobs available only in agriculture and construction sector. The hardships of unemployment lead them to use drugs to relieve stress. Drugs are easy to gain from across the Indian border, due to lack of strict security as two countries are in tactical alliance. “Poor condition, peer pressure and family separation like divorce and single parents are also reasons of drug addiction in youth,” said Nazhoen Pelri, who works at Drop-in Centre, which helps addicted youth. Surprisingly, Bhutanese refugees make up a seventh of the total population. All are ethnic Nepalese who fled across the border in the early 1990s, claiming persecution after Bhutan made national dress compulsory and banned the Nepalese language. Subsequently, some 100,000 Bhutanese refugees have resettled in Western countries like the U.S and Canada in 2015, thanks to UNHCR and IOM. Even though, human rights violations continue against members of religious minorities. The fate of Prem Singh Gurung is a case in point. A Protestant, he was sentenced to three years in prison for screening a movie on the life of Jesus. In 2006, the government of Bhutan began promoting democracy after centuries of absolute monarchy in which all religions other than Buddhism were banned. The new constitution of 2008 recognized freedom of religion for all Bhutanese, on the condition that the authorities are informed. However, proselytizing is banned. The same is true for publishing Bibles, building Christian schools or sending foreign religious into the country. Unlike the common viewpoint about the Kingdom, which uses Gross National Happiness (GNH) as an economic index, it may not be the happiest country. Sometimes, the truth hurts but it is needed to understand the issues from various perspectives.

Kim A-ram Staff Reporter

부탄 하면 대부분 “아~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곳?”이라 떠올리실 겁니다. 2010년 1인당 국내총 생산(GDP)이 2천달러(242만원)에 불과했지만 그해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148개국을 대상으로 조 사한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에 올라 주목을 받았거든요. 무려 100명의 국민 가운데 97명이 “행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복하다”고 답했을 정도였습니다. 반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68위에 그쳤죠. 최빈국 부탄이 어떻게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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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신화사

1694년 세워진 탁상사원. 부탄의 상징적인 사원이자, 불교를 처음 나라에 들여온 파드마 삼바바가 날개달린 호랑이를 타고 내려와 수행했다는 곳으로 알려진 명소다.

1

부탄은 GDP를 지양하고 국민행복지

폐해를 찾기 힘듭니다. 때문에 부탄은 아

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

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것으로도 유명하

를 사회발전지표로 채택한 국가입니다.

죠. 국토절반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을

1970년대에 개발된 지표로 정신건강·신

정도니까요. 사회지도층과 일반국민 간

용하거나 소지하다가 발각되면 징역 3개

체건강·교육·문화·여가·정부·사회활

소득격차가 그리 크지 않아 상대적 박탈

월, 판매할 경우 6~9년까지의 징역형에

동·생태다양성 및 회복력·생활수준 9가

감이 적은 편도 부탄 국민들이 행복한 이

처해집니다. 그러나 오히려 마약에 중독

지 부문으로 나눠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

유 중 하납니다.

된 청년들은 증가하고 있어 정부가 골머

부탄에도 마약중독자가?

부탄 정부는 약물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환각제를 사

조사를 실시하는데, 2007년부터 경제협

이런 부탄을 두고 국내외 언론에서는

리를 앓고 있습니다. 마약 대부분은 이웃

력개발기구(OECD)도 활용하고 있답니

“진정한 행복은 돈이 아닌 마음에서 비

나라 인도에서 들어오는데, 신분증만 있

다. 즉 행복의 기준을 물질보다는 정신적

롯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마구 쏟아냈죠.

으면 양국 간 통행이 자유로운 편이라 마

요소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

관련 도서들도 많이 출간됐었고요. 그런

약 반입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고 합니

겠네요.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데, 여기 부탄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 중국과의 국경갈등으로 부탄과 인도

소중히 여기다 보니 부탄에선 산업화의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가 우호관계에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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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신화사

2

도시를 방황하는 대졸 실업자들

세계은행(WB)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부탄 전체 실업률은 2.8%로 낮은 데 반해 청년실업률은 1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꾸준히 경제가 성 장함에 따라 대학진학률 역시 함께 높아 졌지만 정작 일자리는 이 속도를 따라가 지 못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공무원 등 ‘화이트칼라’를 꿈꾸며 수도 팀 부로 몰려들지만 농업이나 건설 외에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 금세 좌절 하고 맙니다. 실제로 팀부 시내에는 낮부 터 술을 마시거나 당구장에서 놀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요, 그들 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있답니다. “대학 까지 나왔는데도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신화사

없다”고요. 현지 비영리단체의 관계자는 “농촌 청년들이 도시생활을 꿈꾸며 수도 팀부 로 향하지만, 이미 인구가 포화상태인데 다 좋은 일자리가 없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서 취업난 스트레스로 청년 들이 방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갈수록 청년실업이 심각해지자 현지 노동부는 2013년부터 중동 해외취업프로그램을 운 영해오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3

문화혁명이 부른 10만 난민

부탄의 수도 팀부의 모습. 많은 청년들이 희망을 품고 이곳으로 몰려오지만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좌절하고 만다. 팀부의 교외에 위치한 양첸풍공립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놀라셨죠? 숫자도 부탄 전체 인

구의 7분의1 수준인 10만명에 달합니다. 원인은 다름아닌 ‘종교’인데요, 티베트불

네요. ‘약물사용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2015년 상담을 위해 센터를 찾은 청년

교국가인 부탄은 1990년 ‘문화혁명’을 내

부탄 전역에 설립된 마약중독 치료센터

만 수천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대부

세우며 힌두교 신자들을 추방하기 시작

는 10여곳에 이릅니다.

분이 학생 또는 자퇴생 등 미성년이지만,

했습니다. 티베트문화와 정체성을 지켜야

마약중독을 치료하는 드롭인센터

낮은 임금으로 고생하는 직장인들도 종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죠. “불교국가에

(Drop in Centre)의 나조엔 펠리는 “청

종 방문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앞으로의

왠 힌두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

년마약문제는 한부모가정 혹은 부모의

전망에 대해 “더 많은 치료프로그램을 준

실 텐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죠.

이혼 등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가난, 주

비하고 있어 좋은 결과를 얻길 바라지만,

부탄에는 힌두교가 국교인 네팔에 조

변에서의 유혹 등으로부터 비롯된다”며

예산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하더군요.

상을 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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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쪽에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롯샴파’

을 합쳐 이들을 도운 덕분에 난민들 대다

세가 됐죠. 구룽은 “부탄은 안으로 무고

라고 불리기도 하죠. 원래 네팔에서 살

수는 미국·호주·캐나다·영국·덴마크·

한 사람들을 탄압하고 있으면서도 밖에

던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부탄으로 이주

뉴질랜드·노르웨이 등지로 떠나 정착했

선 민주국가로 선전하는 모순적인 국가”

하기 시작하면서 그 수가 점점 불어났고,

다고 합니다.

라고 비판했습니다.

1958년 부탄의 정식국민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들이 늘어나자 티베트불교국가 인 부탄 정부는 힌두교도인 롯샴파들이

신화사

부탄의 단일종교와 문화적 정체성에 영

4

22개 언어와 여러 민족이 섞여있는 부

민주국가 표방, 종교의 자유는?

차별의 대상이 된 건 힌두교뿐

만이 아닙니다. 티베트불교를 제외한 모

탄이지만, 정부는 ‘단일 언어, 단일 종교’ 정책만을 고수하고 있어 사각지대에 놓인 국민들이 많다고 하네요.

향을 줄까 우려하게 됩니다. 결국 모든 국

든 종교는 부탄정부의 탄압대상입니다.

민들이 부탄 전통의복을 입도록 의무화

부탄은 지난 2006년 절대군주제가 막

부탄의 학교에서는 하루 일과 시작

하고, 네팔어를 학교에서 쓰지 못하도록

을 내린 이후 헌법을 개정하며 민주국가

전 30분간 국가이념과 정신문화(불교)교

하는 문화혁명을 단행했죠.

를 표방했습니다. 그러나 2008년 개정된

육을 한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부탄 국민

오갈곳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헌법을 들여다보면 기존 법과 달리 종교

들이 종교에 세뇌 당해 ‘행복하다’고 착각

되고 만 10만명의 힌두교신도들은 정부

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있

하는 것 아니냐는 다소 과격한 주장도 있

의 탄압을 피해 서쪽으로 이웃한 네팔로

지만,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멉니다. 실제로

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이, 소

향했습니다. 7곳의 난민캠프에서 생활하

2010년, 부탄 정부는 프렘 싱 구룽이라

박한 삶에서 정신적 행복을 추구하는 것

던 이들은 다시 부탄으로 돌아가기 위해

는 기독교 신자가 예수를 주제로 한 영화

으로 널리 알려진 부탄에도 어두운 부분

수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

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3년의 징역형을 선

들이 감춰져 있었네요. ‘행복의 왕국’ 부

습니다. 다행히 2007년부터 유엔난민기

고했습니다. 그와 함께 전도활동을 펼친

탄의 국민들, 정말 행복하다고 할 수 있

구(UNHNR)와 국제이주기구(IOM)가 힘

다른 2명의 신자들도 경찰에 쫓기는 신

을까요?

네팔의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탄어린이들


Asian Youth Unemployment 아시아청년은 실업中

해가 바뀌면서 졸업시즌이 다가 오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아시아 청년들은 학사모를 쓴 사진 속 학생들과 달리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기 힘들다. 졸업과 동시에 사회로 첫발을 내딛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취업하기 힘든 현 세태를 풍자해 한국에선 취업준비생이란 씁쓸한 신조어가 나왔고, 이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아시아 청년들이 취업난으로 고통받고 있는가? 또 어떤 연유로 아시아 청년들은 졸업과 동시에 구직의 어려 움을 겪고 있는가? <매거진 N>이 짚어본다. 편집자 Can you notice the joyful faces of youngsters who have just graduated, in this photo? However, this joy is short-lived. Most graduates in Asia suffer a similar fate and are unable to land a job. In Korea, a neologism, hich refers to students preparing for employment, became a kind of essential process for getting a job after graduation and this shows the burden that Korean youth have to manage nowadays. This is not limited to Korea, but also, other Asian countries. Magazine N covers all about youth unemployment in Asia. – Editor’s note


magazine N | 201602

Special Report

021

지역 정세 불안·고용 없는 성장 아시아청년 어깨 짓누르다 그래프로 살펴본 권역·국가별 청년실업률

Summary

Analyzing youth unemployment conditions in Asia ​Magazine N analyzes youth unemployment country and region-wise in Asia, based on World Employment Social Outlook by ILO and the related data by World Bank. Middle-East: The worst youth unemployment rate Endless regional conflicts weighed on the​Middle-East’s economy. Its youth unemployment rate in 2009 ​was 2.5 times​to that​of South Asia, reaching 24%. Unstable economic and political situation led ​the ​Middle-East to rank​ among the worst youth unemployment​regions​in Asia, soaring to 29.5% in 2014. ILO explained that the rate ​is expected to increase more to 29.9% in 2019. Lybia showed the highest youth unemployment rate in the ​Middle East. The rate was 43.9%​in 2007​, and declined a bit to 42.6% in 2011. However, since 2014 there h ​ as been a ​ n​upward movement, a ​ s rate increased to 48.9%. Meanwhile, Qatar, one of the ​oil-rich M ​ iddle Eastern ​countries, has the lowest youth unemployment rate, ​with only 1%. ​​ outh Asia: Jobless growth​ S South Asia face​d​​​jobless growth. Despite rapid e ​ comonic ​growth, youth unemployment ​in India ha​s​grown steadily​from 8.9% in 2007​to 10.4% in 2014. Considering high econom​ic​growth, experts explained that this is a low score. Afghanistan ha​s​the highest ​unemployment ​rate in South Asia, ​with 18% in 2008, reach​ing​21.1%​​. On the other hand, Nepal showed the lowest​youth unemployment rate​with o ​ nly 4 ​ %. East Asia: ​Not enough good jobs ​A slower growth in China affect​ed​the region’s ​development. The youth unemployment rate rose slightly from 9.4% in 2009 to 10.5% in 2014. ILO predicted that the rate ​would be 11.7%​b ​ y 2019​.​ This partly reflects the difficulties young people face in finding jobs that match their skills and expectations. In China, for example, the unemployment rate in 2013 was just above 4% in urban areas, but was more than double​​ (8.6%) among registered graduates in the same area. Meanwhile, Japan had the lowest rate in East Asia. Its youth unemployment rate in 2014 stood at 6.5%. ASEAN: China’s economic impact As the labor cost in China​-​once called the factory of the world​-​has been increasing, numerous global companies have moved to South-east Asian countries such as Vietnam and Indonesia. ILO says, “The job creation among youth has also been fairly robust, averaging 0.6% of youth unemployment rate per year between 2010 and 2013, but overall increased to 13.6% in 2014.” This has been affected by developments in Indonesia, the region’s largest economy. Its youth unemployment slowly declined to 20.3% in 2012, but rebounded to 21.8% in 2013.

​Choi Jung-ah Staff Reporter

최정아 기자 jchoi12@theasian.asia


022

magazine N | 201602

‘청년실업’이 전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요즘,

경제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2014

지역 헤게모니 싸움으로 국제사회

아시아서도 많은 국가들이 심각한 청년실

년 중동 청년실업률은 29.5%을 기록했다.

가 주목하고 있는 ‘중동의 앙숙’ 사우디

업 위기를 맞고 있다. <매거진 N>은 세계

ILO는 2019년 중동 청년실업률이 29.9%

아라비아(이하 사우디)와 이란은 어떨

은행 데이터와 국제노동기구(ILO) 2015

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까. 2007년 사우디와 이란의 청년실업률

세계취업아웃룩(World Employment

중동에서 가장 높은 청년실업률을 보

은 각각 30.2%, 22%로 이란이 더 낮았으

Social Outlook) 자료를 분석해 지역·국

인 국가는 리비아다. 리비아의 청년실업은

나, 지난 7년간 이란 청년실업률은 갈수록

가별 최근 청년실업 현황을 정리했다.

고질적인 문제로, 근 10년간 40%가 넘는

올라갔다. 2014년 양국의 청년실업률은

청년실업률을 보였다. 2014년에도 역대 최

29.5%(사우디), 29.4%(이란)를 기록했다.

중동: 최악의 청년실업률…30% 육박 끊임없는 지역분쟁이 중동을 더욱 무

고치인 48.9%를 기록하며 ‘최악의 청년실 업난 국가’라는 오명을 떨치지 못했다.

반면 청년실업률이 가장 낮은 국가는 카타르다. 경기도 면적만한 국토에 인구는

겁게 짓누르고 있다. 2000년~2012년 중

이집트의 청년실업도 심각하다. 2007

130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지만, 풍부한

동지역 경제성장률은 5.3%에 달했으나,

년 26.1%의 청년실업율을 보였던 이집트

석유자원 덕분에 중동의 다른 국가들보다

2013년 들어서 2%대로 급감하며 전세계

는 잇따른 정권교체와 쿠데타로 정치·경

상대적으로 경제상황이 좋다. 카타르 청년

권역 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어 2014년엔 42%

실업률은 2007년(1.8%)부터 2014년(1.3%)

의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다.

까지 1%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최근 중동 노 동시장에 대해 “잇따른 정치 불안으로 회

시리아 상황 또한 좋지 않다. 이슬람국

복이 불투명하다”고 평했다. 중동 청년실

가(IS)의 등장과 시리아 내전으로 최근 몇

업률은 2009년 남아시아보다 약 2.5배 높

년간 청년실업률이 급등했다. 2014년 청년

세계경제가 성장엔진 가동을 잠시 멈

은 24%에 달했다. 7년전부터 이미 세계

실업률은 2007년(19%)보다 10%가량 높은

추고 숨을 고르고 있다. 바야흐로 ‘뉴노멀’

최악의 수준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

30.1%를 기록했다.

시대다. 하지만 ‘남아시아’라면 말은 달라

남아시아: 경제성장≠고용창출


023

magazine N | 201602

받고 있는 인도를 먼저 살펴보자. 청년실 업률은 2007년(8.9%)부터 점차 증가해 2014년 10.4%에 달했다. 인도의 높은 경 제성장률을 감안할 때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이다. 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청년실업 률을 기록한 나라는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이었다. 아프간의 청년실업률은 2008년(21.3%) 처음으로 20%대에 올라 선 후, 남아시아 청년실업의 맹주(?) 자리 를 지켜오고 있다. 반면 이 지역에서 가장 낮은 청년실 업률을 기록한 곳은 네팔이다. 2007년 (3.4%)부터 청년실업률이 소폭 증가해 2009년 4%를 기록했으나, 이후 5년간 2014년까지 4%를 유지했다. 동아시아: 고학력 많은데 좋은 일자리 없다 중국 경제성장 둔화는 동아시아 경제 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 일본 등 동아 시아 국가 모두 중국과 긴밀하게 경제협력 을 이뤄왔기 때문이다. 전세계 청년실업률 에 비하면 여전히 낮지만, 동아시아 젊은 이들은 지금 그 어느때보다 심각한 취업 난에 직면했다. 2014년 동아시아 청년실업 률은 10.5%를 기록했다. ILO는 이 지역의 2019년 청년실업률을 11.7%로 전망했다. 다른 아시아 권역보다 먼저 경제성장 을 이룩한 동아시아. 이 지역의 대학졸업 인구는 아시아 타 권역보다 상대적으로 많 진다. 미국발 금리인상 등 외부요인에도

것으로 보인다. ILO는 “2019년 남아시아

다. 이에 따라 청년구직자들의 높아진 기

불구하고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의

청년실업율이 10.3%로 예측된다”며 “청년

대치를 충족시킬 ‘좋은 일자리’가 화두로

경제성장률은 수년간 6~7%대의 가파른

실업률이 앞으로도 계속 높아질 것”이라

떠올랐다.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내지 못

성장률을 보였다.

고 전망했다.

한다면, 동아시아의 청년실업은 쉽게 해소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제성장률’과 ‘청년취업률’이

이처럼 남아시아의 가장 큰 문제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

는 ‘일자리 창출 없는 경제성장’(Jobless

특히 중국에서 이런 현상이 심해,

게도 남아시아 청년실업률은 낮아질줄

Growth)이다. 가파른 경제성장에도, 청

2007년 8%대에 불과했던 청년실업률이

몰랐다. 2009년 남아시아 청년실업률은

년들은 정작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

2014년 10.5%로 증가했다. ILO는 “2013

9.8%였으나, 2014년 10%로 소폭 증가했

는 현실이다.

년 중국 대도시의 청년실업률은 4%를 웃

다. 청년실업 증가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제2의 중국’으로 국제사회의 각광을

돌았다”며 “하지만 대졸자 실업률의 경


024

magazine N | 201602

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2010년(9.1%) 9% 대에 들어섰다. 하지만 2014년 청년실업율 (6.5%)은 다시 낮아졌다. ASEAN: 중국 노동임금 상승, 반사이익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인도네 시아를 필두로 ‘라이징 스타’로 각광받았 던 아세안이 중국발 경제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아세안 경제성장률은 2014년 들어 4%대로 급락했다. 이는 2008년 이 후 최저치다. 하지만 위기는 아세안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했다. ‘세계의 공장’ 중 국의 노동 임금이 오르면서, 수많은 글로 벌 기업 공장들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에 따라 아세안 청년실업률은 2012년부터 꺾여 하 향선을 그리고 있다. ILO는 “2009년 아세 안 청년실업률은 14%를 유지했으나, 2014 년 13.6%로 낮아졌다. 2019년 예상 청년실 업률은 13.5%이다”라고 밝혔다. 인구 2억5천만에 달하는 인도네시 아는 아세안 경제대국이라 불린다. 그러 나 아세안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청년실업 률을 기록해 체면을 구겼다. 인도네시아 는 2013년을 기점으로 대외수출이 저조 해지며 경제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다. 청년 실업률도 이 흐름에 영향을 받았다. 25.6%였던 청년실업률은 2007년을 기점 우, 2배가 넘는 8%대를 기록했다”고 밝

“중국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현재 연

으로 점차 낮아져 2012년 20.3%을 기록

혔다. 이는 중국의 교육정책과도 관련 깊

봉에 만족하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했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한

다. 중국 정부는 고학력자를 늘리기 위

56%에 달한다”며 “양질의 일자리는 중국

2013년(21.8%)부터 다시 반등했다.

해, 대학 수를 대폭 늘렸다. 2003년 중국

정부의 또다른 도전이 될 것”이라고 분석

필리핀의 경우, 제조업을 중심으로

대학 수는 1552개였지만, 10년 후인 2013

했다. 한국도 청년실업이 사회적 이슈로

꾸준히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년 2491개로 급증했고, 실제로 대졸자 또

떠오르고 있다. 2007년 8.8%였던 청년실

2007년 필리핀 청년실업률은 17.5%였으

한 폭증했다. 같은 기간(2003년~2013

업률은 점차 늘어 2014년 10.4%를 기록

나, 점차 줄어 2014년엔 16.4%로 나타났

년)동안 대졸자는 3.4배 증가한 640만명

했다.

다. 한편 잇따른 쿠데타로 인한 정치혼란

에 이르렀다. ‘중국 대졸자 취업 연간 보

한편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낮은

을 겪은 태국이 가장 낮은 실업률을 보여

고서’(the Chinese College Graduates'

청년실업률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2007

눈길을 끌었다. 2014년 태국의 청년실업률

Employment Annual REport 2014)는

년 청년실업률은 7.8%였으나, 2008년 미

은 3.9%였다.


magazine N | 201602

Special Report

025

아시아 취업시장 ‘먹구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전문가들이 진단한 아시아 청년실업

Summary

Expert’s opinion on Asia youth unemployment As an unprecedented rise in youth unemployment becomes the main issue for Asian countries, we hear what experts are saying about the current situation for each region, in terms of the reasons and solutions. Lee Kyu-yong, a researcher in Korea Labor Institute, points out reasons for unemployment as the lack of fine jobs, divided labor market (major-small companies), preference for experienced workers and skills mismatch between regular class and real industry. Japan’s situation comes from decades of low economic growth. “It is natural for youth to give up things like house, jobs, marriage, which mean high risk” according to Hiroshi Ishida, a Tokyo university professor. Meanwhile, many youth in China attempt to run their own business while others go to graduate school. In the Southeast Asian region, Indonesia, where youth unemployment rate was 21.6% in 2015, is also struggling as many youth are low-educated with lagged economic growth. As a solution, Arif Budimanta, adviser to the finance minister, said the government was introducing measures such as halving lending rates for small businesses and exempting most goods from a luxury tax to stimulate consumption. Like Malaysia and Thailand, Vietnam is getting more college graduates than required. In this regard, the education ministry recently issued a policy which limits the number of students at each school to under 15,000. But Hoang Ngoc Vinh, director of the ministry’s professional education department, said, “The unemployment problem might be caused by the quality of university education rather than a surfeit of university graduates.” In India, in contrast with rapid economic growth, youth unemployment rate is still high; 10.4% in 2015. According to Craig Jeffrey, director and chief executive of the Australia India Institute said, “Many young people lack the skills required to obtain jobs in new sectors of the Indian economy. Government degree colleges are underfunded and they cannot start business because due to lack of requisite skills, corruption, and crumbling infrastructure.” The Middle Eastern region has an extremely high youth unemployment rate. Current situation is getting worse as oil prices drop continuously, leading to financial instability. A World Bank report said, “At present, the public sector is often one of the largest employers of workers with higher-than-average educational attainment, but undereducation in employment is more prevalent than over-education in most countries.” In general, many Asian countries grapple with solving youth employment crisis, but it does not seem easy to resolve because global economy enters a ‘New Normal’ with complicated sociopolitical situation.

Kim A-ram Staff Reporter

세계은행(WB)은 “전세계 15~29세 사이의 18억 청년인구 가운데 5억여명이 실업상태”라고 발표했다. 4명 가운데 1명 이상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셈이다. 2015년 동남아 및 태평양 지역 청년실업률은 평균 13.6%, 중동지역은 29.4%를 기록했다. 무슨 연유로 아시아 청년들이 유례없는 취업난을 맞닥뜨린 것일까? 아시아 각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026

magazine N | 201602

신화사

중국 난징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두 청년이 채용목록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먼저 한국의 전문가를 만나보자. 이

자리 창출보다는 개수 늘리기에 급급한

선>의 천즈원 편집장은 “최근 몇 년간 대

규용 한국노동연구원 노동통계연구실

임시방편용 정책만을 내놓고 있어 안타

졸자는 사상 최다를 기록했지만, 취업시

장은 “20대 청년층 일자리 중 비정규직

깝다”고 덧붙였다.

장은 여전히 불황인 탓에 대학원 진학률 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이 34.6%를 차지하며, 전체 일자리의 27.0%가 중위임금 3분의2 이하인 저임

日 아베노믹스 효과, 대졸취업 상승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가보자. 히로시

금 일자리”라고 밝혔다. 그는 점차 악화

중국의 청년실업률은 2014년 기준

이시다 도쿄대 교수는 “20년간 이어진 일

되고 있는 청년 취업난 원인으로 양질

10%를 넘어섰지만, 창업에 도전하는 청

본의 장기 불황 탓에 결혼·출산·주택 등

의 일자리 부족, 노동시장 이중구조(대기

년이 늘고 있는 점이 한국, 일본과 다르

을 자연스럽게 포기한 ‘사토리 세대’가 양

업-중소기업), 경력직 중심의 노동수요

다. 베이징대학 시장연구센터의 보고서

성됐다”며 “임금은 제자리걸음이고 고용

구조 변화, 정규교육이 기업에서 요구하

에 따르면 주링허우(90년대생) 대졸자의

불안정은 더욱 악화됐다”고 전했다. 그러

는 직무역량 학습기회를 제공하지 못하

15.6%가 창업을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

나 최근 5년새 대졸취업률이 꾸준히 상

는 일자리 미스매치 심화를 주 원인으로

다. 이에 대해 중국국가통계국은 “경제지

승해 2016년 대졸취업률은 80%를 넘어

지적했다. 민선영 청년참여연대 경제분

표별 현황을 통해 면세 혜택과 인큐베이

설 전망이다. 최근 아베노믹스의 영향으

과장은 “최근 서울시의 청년수당과 성남

터설립 등을 골자로 하는 중국의 창업 지

로 내수경기가 활성화되고 기업들 역시

시의 청년배당처럼 청년에게 일정금액을

원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고 있음을 확인

실적이 오르면서 고용증대에 나섰기 때문

‘선투자’하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 필

했다”고 밝혔다. 반면 취업난을 피해 대

이다. 하지만 ‘블랙기업’, 즉 인건비 삭감을

요하다”면서 “이는 아르바이트 등으로 당

학원 진학을 선택한 청년들도 적지 않다.

위해 사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에

장의 취업준비에 집중하기 힘든 청년들에

중국 <신경보>에 따르면 2015년 대학원

시달리는 일본청년들이 여전히 많다.

게 시간적, 금전적 여유를 만들어 줄 것”

시험 응시생은 전년도 대비 7% 증가한 것

동남아 가운데 가장 큰 경제 규모를

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양질의 일

으로 나타났다. 교육 잡지 <중국교육재

자랑하는 인도네시아를 살펴보자. 세계은


027

magazine N | 201602

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인도

따라 현지 정부는 올해부터 각 대학 입학

가운데 16만1천명이 실업상태”라며 “전체

네시아의 청년실업률은 21.6%를 기록했

정원을 1만5천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

실업자 가운데 약40%가 대학을 졸업한

다. 전반적으로 청년층의 학력수준이 낮

러나 현장에서는 “청년 취업난 원인은 공

고학력자”라고 발표했다. 태국도 상황은

은 것이 문제다.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급과잉이 아닌 대학에서 직무역량교육을

매한가지다. 오랜 기간 구직에 실패한 대

절반을 차지하는 30세 이하 1억6천만 인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반박

학 졸업생은 36만명으로, 전체 졸업자 중

구 가운데, 5천만명 이상이 초졸, 2천4백

도 나오고 있다. 하노이의 한 의료장비 수

40% 수준이다. 이 지역 전문가들은 “고학

만명이 중졸이 최종학력이다. 최근의 경제

입업체 관계자도 “엔지니어에 지원하는 이

력 청년들이 일자리 미스매치로 취업난을

성장 둔화로 기업들이 채용인원을 줄이고

들 대부분이 무역업에 필요한 외국어 능

겪고 있는 현상은 경제성장 과도기에 있는

있는 것도 악재다. 아리프 부디만타 인도

력이나 실무경험이 부족해 재교육에 많은

신흥국들이 안고 있는 만성적인 문제”라고

네시아 재무부 장관 자문은 “소기업 대출

투자가 들어간다”고 밝혔다. 고학력자 실

지적한다.

이자를 절반으로 감면하고, 대다수 제품

업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단순 제조업이 아

의 특별 소비세를 면제해주는 정책을 시행

닌 고부가가치 산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

한다면 내수 경제를 활성화시켜 고용창출

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르지 지락즈

최근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

에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

키 국제노동기구(이하 ILO) 베트남 사무소

는 인도를 살펴보자. 대한무역투자진흥공

나 아직 정부는 청년 교육문제에 대한 구

대표는 “제조업 중심의 기존 산업체계에서

사(KOTRA)는 “2016년 인도 경제성장률

체적인 정책은 내놓지 않은 상태다.

벗어나, 고학력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고

은 작년보다 0.2%p증가한 6.5%로 예상된

부가가치 업종에서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로 청년실업률은 2012년 이래 10%를 유지

반면 베트남에선 고학력자 취업난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베트남 노

걸프국, 저유가 속 취업난 심화

동보훈사회부 조사 결과 2015년 4분기 기

말레이시아와 태국 청년들도 고학력

하고 있다. 크레이그 제프리 호주국립인도

준 최종학력이 대졸 이상인 실업자 수는

자 실업난이 문제다. 2015년 말레이시아

연구소 소장은 인도청년실업의 원인으로

22만5천여명으로 전분기보다 13.3% 증가

전체실업률은 약4%인데 비해 청년실업률

빠른 시장변화로 인한 미스매치 심화와 인

했다. 즈엉득란 노동보훈사회부 직업훈련

은 약10%를 기록했다. 같은 해 5월 압둘

맥 중심의 취직행태를 꼽았다. 그는 “청년

과장은 “고학력의 공급 과잉이 베트남청

와히드 오마 말레이시아 경제기획부 장관

직무교육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속도를

년 취업난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이에

은 “20~24세 사이의 대학 졸업생 40만명

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 신화사

업을 경영하고 있는 자야데브 갈라 하원의 원은 “대졸 청년층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 해서는 교육의 질 향상과 더불어 시대에 맞는 직무교육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중동은 전세계에서 가장 청년실업이 심각한 지역 중 하나다. 최근 연이은 저유 가 사태로 극심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걸 프국에선 취업난이 더욱 심화됐다. 세계 은행 보고서는 “중동 취업시장의 큰 부분 을 차지하는 공공부문 일자리 대부분은 평균이상의 학력을 요구하지만, 청년들의 학력 수준이 낮은 편”이라며 “이들의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부와 기업, 교육기 관의 긴밀한 상호협조가 필요하다”고 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학사모를 쓴 청년들이 청년실업 해결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적했다.


Special Report

028

magazine N | 201602

“취업준비에 2년은 기본, 일자리 ‘미스매치’도 심각” 특별좌담

청년실업, 필리핀·파키스탄·이집트·인도 청년에 물었다

신화사

동고용부에 따르면, 2014년 약 145만 청년(만 18~24세)들이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다. 필리핀 청년 2명중 1명이 청년실업문제를 겪고 있는 셈이 다. 청년들의 취직 준비기간도 점점 길어지고 있 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필리핀 마닐라, 세부 지역 가정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학 졸업자 가 첫 직장을 갖기까지 1년이 걸리고, 정규직 직원 으로 채용되기 까진 2년이 걸린다. 고졸자는 더 심 각하다. 첫 직장에 취직하기까지 3년이 걸리고, 정 규직이 되기까지는 4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로헬 청년실업은

오늘날 파키스탄 젊은이들이 직면

한 가장 큰 도전이다. 최근 정치·사회적 문제로 파 키스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 문제가 더욱 심각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한 공 립도서관 앞에 학생들이 줄서 있 다. 이들 대부분은 취업준비생으 로 매일 아침 자리를 맡기 위해 긴 줄을 서야 한다.

해지고 있다. 보통 대졸자들은 최소 2년간의 취업 한국의 청년실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취업준비생’

준비기간을 갖는다.

(이하 취준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1~2년간의

나샤트 이집트

취직준비기간은 ‘필수’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은

꼽힌다. 평균적으로 2년간 취직을 준비하는데, 많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시아 이

은 젊은이들이 이 시간을 가장 힘들어 한다. 일자

웃국들의 청년실업, 얼마나 심각한 것일까?

리가 부족해 취업경쟁도 매우 높다.

앞서 아시아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봤다면

사만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나라로

인도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국제사회에서 주

이번엔 청년실업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아시아

목을 받고 있는 나라지만, 성장과는 반대로 청년실

청년들을 만나보자. <매거진 N>은 에바 마리 왕

업률은 높아졌다. 인도 청년 대다수가 일자리를 찾

(Eva Marie Ranay Wang·필리핀·서울대), 로헬

기 위해 해외로 나간다. 고학력자들은 계속 배출되

아이자즈(Rohel Aijaz·파키스탄·MBBS 의과대

는데, 좋은 일자리가 없다. 대학 졸업생들이 취직

학), 마이 나샤트(Mai Nashat·이집트·아인샴스

을 위해 수년을 투자하는 이유다.

대학), 사만다(Samantha Stephen·인도·아랍에 미리트대학 연구원) 등 동남아, 중동, 남아시아 지

취업난을 가중시킨 원인은 무엇이라 보는가

역에 거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물었다.

에바

구직자의 업무경험과 능력이 부족하다. 필리

핀은 한국과 달리 젊은이들이 업무경험을 쌓을 수 정리 최정아 기자 jchoi12@theasian.asia

아시아 청년실업, 얼마나 심각한가 에바

필리핀의 경우, 상당히 심각하다. 필리핀 노

있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지 않다. 졸 업 전 현장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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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무경험이 부족한 필리핀 청년들은 첫 직 장으로 임시직에서 경험을 쌓지만, 그 중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사례는 매우 적다. 로헬 파키스탄에선

지난 몇 년간 사립대학

수가 급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교육의 질은 나아지고 있지 않다. 자 격과 능력을 갖춘 교수진이 여전히 부족 한 실정이다. 대학교육이 바로 서야 학생 들의 취업의 길도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 나샤트 사실 청년실업 문제는 대학에도 책임

이 있다고 본다.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사업체에서 요구하는 능력과 기술을 갖춘 학생들은 거의 없다. 이런 부분이 대학 교 과 과정에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만다

인도의 경우, 빈곤, 저개발 등 여러

정치·사회 문제 때문에 산업이 다변화되 지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IT업계가 인도 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 때문에 많은 청 년 공학도들이 IT기업에 취직을 하고 있 다. 그 외에 문과계열 전공 일자리는 턱없

Eva Marie Ranay Wang, the Philippines “Lack

of experience and relevant skills among the youth are considered as causes of unemployment. There is also limited exposure of the Filipino youth to industry experience prior to graduation, for instance, internship is not generally considered as part of work culture or practice in the Philippines. Thus, youth employment is most likely to be informal or temporary.”

Samantha Stephen, India “Majority of population go abroad seeking jobs because many jobs are not available in India. Also, landing a job can take a few years. IT is one of the sectors that is building its roots in India. A lot of engineering graduates get placed in IT companies in India every year. Other than that, there are no other flourishing jobs for graduates.”

이 부족하다.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 라 생각하는가 에바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와 캐나다

국제개발에이전시(CIDA)의 지원으로 필 리핀 청년취업 지원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고용시장과 사업체에서 요 구하는 기술을 적절히 교육시켜 취업률을 늘리기 위해 마련됐다. 이밖에도 마닐라, 퀘손 등 주요도시에서 관련 취업지원 프 로그램이 운영중이다. 이처럼 필리핀 정부 가 나서서 청년구직자들을 위한 지속적인 취업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본다. 사만다

현재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청년실

업을 해결한다고 공약을 건 상태다. 이를 위해 모디 총리가 해외 순방을 다니며 글 로벌 기업들이 인도에 투자·진출하도록 하는 중이다. 아마 최근 이런 분위기가 인 도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될 것이다.

Mai Nashat, Egypt “Unemployment is quite

serious in Egypt, as youth could go from two years up to five years trying to land a job. There is no guarantee that they will be able to find jobs if they meet certain requirements. The reason for lack of job opportunities for youth is the poor distribution of graduates and the requirements of the faculties’ majors.”

Rohel Aijaz, Pakistan “Most graduates spend almost 2-3 years before they finally earn the jobs they seek. Over the years, there has been a tremendous increase in the number of private universities in our country. Ironically, quality of education hasn’t improved much due to the lack of qualified staff in the institutions.”


Special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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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좁디 좁은 문도 두드리고 또 두드리니 뚫렸다 중국·일본·인도 청년취업정책 살펴보니…

Summary

How they solve the youth unemployment in India, Japan and China? The Employment Exchange, operated by the Federal Ministry of Labour of India since 1959, runs more than 900 individual employment exchanges in order to better match demand and supply with regard to work opportunities. In particular, following up on PM Narendra Modi’s ‘Make in India’ initiative, micro, small and medium enterprises (MSMEs) stand to gain significantly from the employment exchange. According to 'Standard Business’, in 2009, the MSMEs provided employment to about 88 employees per unit, but by 2015, this had climbed to 153 employees per unit. Youth Support Station has been established by the Ministry of Health, Labour, and Welfare of Japan in 2006 as a main youth employment policy. 50 stations, rooted from Job cafe and Young Job spot, are dispersed nationwide, and are being supported by central and local governments. The main task for the stations is individual career counselling for youngsters who need self-confidence and psychological stability, offering professional psychological and mental counselling with relaxed atmosphere and a welcoming air. Seminars and training programs by people who are in actual business field are also offered. One of the most popular programs is voice training. Young people become used to speaking confidently in front of others. In China, ‘Start-up fever’ brew up nation-wide with the international popularity of Jack Ma, founder of Alibaba. Chinese government has invested a huge amount of budget since the end of 2014 in order to support young CEOs of start-up companies, and solve recent youth unemployment crisis. The central government introduced a bill regarding crowd-funding for start-up companies, and decided to offer tax-benefits. Also, Beijing encouraged universities to recognize academic credit for students who establish a business. Local governments in cities like Beijing, Shanghai, and Shenzhen also invest a huge amount of money for start-up companies, creating a synergy effect with central government’s support.

아시아의 좁디 좁은 ‘취업문’. 아시아 각국은 청년

jchoi12@theasian.asia

이력과 전공에 맞는 취업자리를 알선해 주고 있다.

취업난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정책들을 시행하고

‘취업 익스체인지’가 57년이란 긴 세월동안 롱

있을까? 인도, 일본, 중국의 청년취업 지원 정책들

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전문

을 살펴보자.

가들은 청년구직자와 사업체 모두 ‘윈-윈’ 할 수

인도: 57년 전통 ‘취업 익스체인지’

최정아 기자

Choi Jung-ah Staff Reporter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청년들은 자신에게 맞 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고, 사업체에선 인력부족

‘취업 익스체인지’(Employment Exchange) 프

난에서 탈피해 좋은 인재를 구할 수 있다. 특히 사

로그램은 1959년 청년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인도

업체 측에선 공개채용에 드는 시간과 비용 부담

노동부가 처음 도입한 제도다. 인도 노동부는 이 프

없이 맞춤형 인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공공기

로그램을 통해 한 해 900여명의 청년들을 선발해

관과 일반 중소기업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031

magazine N | 201602

또한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제조업 활

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현재 지자

격적으로 스타트업 기업들을 위한 자금

성화를 위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체의 지원을 받아 일본 전역에 50개 센

지원 정책을 실시했다. 사모주식 및 크라

India) 슬로건을 내 건 이후 ‘취업 익스체

터가 설립돼 청년실업자들의 구직을 돕

우드펀딩 관리법을 추진하는 한편, 대학

인지’의 성과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인도

고 있다.

생 예비창업자에게 세금혜택을 주고, 창

경제지 <Standard Business>는 “제조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은 적성·심리

업활동을 학점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등

분야 중소기업 5천개를 분석한 결과, 이

상담부터 직무교육까지 ‘원스톱 서비스’

적극적인 스타트업 기업 지원책을 마련

프로그램을 통해 2009년 한 사업체당 평

를 제공한다. 가장 특이한 점은 전문 심

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

균 청년 88명이 채용됐으며, 2015년 평

리상담사가 상주해 있다는 것이다. 구직

래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각 지방 정

균 153명이 채용됐다. 앞으로 이 프로그

의욕과 자심감이 결여된 청년들을 돕기

부도 지역 특색에 맞는 지원 정책을 함께

램을 통한 채용자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

위해서다. ‘목소리 훈련 강습’은 구직자들

확대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이다”라고 밝혔다.

의 자신감 고취를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

그 중 IT기업들이 몰려있는 베이징

이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이 재기할 수

중관촌의 경우, 미국 실리콘밸리를 벤치

있도록 자신감을 되찾게 해줘 구직자들

마킹해 초기 인큐베이팅, 온라인 커뮤니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밖에도

티, 창업공간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사업체에서 직접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또 시 당국은 스타트업 투자유치를 위

등 다양한 강연도 제공한다.

해 벤처캐피털(VC)와 공동으로 13억 위

일본: 지친 구직자들 요람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 일본의 대표적인 청년실업 정책으로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Youth Support Station)을 들 수 있다. ‘잡 카페’(Job Cafe)와 ‘청년 일자리

중국: 스타트업 지원도 ‘대륙의 스케일’

안(약 2400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중 이다. 상하이 또한 ICT 분야 창업을 장

센터’(Young Job Spot)를 모태로 한 ‘청

마윈 알리바바 회장의 세계적인 인기

려하고 있다. 상하이 당국은 기금 3억 위

년 서포트 스테이션’은 잇따른 구직실패

를 등에 업고 중국에서 ‘스타트업 열풍’이

안(약 553억원)을 조성해 창업기업 지원

로 우울감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심리

거세게 불고 있다. 749만 대학 졸업생들

을 확대할 계획이다. ‘하드웨어 실리콘밸

적 안정과 자신감을 되찾아 주기 위해

의 취업난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리’라고 불리는 중국 광둥성 선전(심천)도

2006년 처음 설립됐다. 이 곳은 딱딱한

직접 나서 창업을 적극 권장하고 있기 때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대표 도시다. 특히

사무실이 아닌 동네 카페같은 편안한 인

문이다. 정부의 청년창업 육성은 전세계

전자제품 전문시장인 화창베이에서 젊은

테리어로 청년실업자들이 부담없이 찾

적인 추세라지만, 중국의 스케일은 뭔가

이들의 창업이 활발하다. 이에 선전시는

남다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위한 기금조성과 공

‘타마 청년 서포트 스테이션’에서 열린 취업 특강 베이징 중관촌에서 열린 스타트업 특강에서 창업을 꿈 꾸는 청년들이 경청하고 있다.

중국 중앙정부는 2014년 말부터 본

간확보 등을 추진하고 있다.

Tama Youth Support Station

신화사


Special Report

032

magazine N | 201602

취업 못하면 인생 선택할 권리도 없다? 영화·드라마·소설 속 아시아 청년실업

Summary

Depiction of Youth Unemployment in Asian Cinema and literature Culture is the best way to check how society stream changes so fast. That’s why we look into Asian movies, dramas and novels dealing with current youth unemployment situation. In Korea, there are a number of dramas and movies. Miseng, based on the famous webtoon, created a huge bond of sympathy among youth in 2014. After its huge success, many Korean youth in hardships called their friends and themselves as Miseng. My Dear Desperado, a 2010 movie, depicts the real society in detail like youth job crunch, bossy interviewers and old fashioned fathers who say, “Get married if you are still struggling to find a job!” 2015 saw the release of Alice in Earnestland and You Call it Passion, both based on the aforementioned issue. Japan has suffered from the unemployment crisis for decades. Osozakino Himawari (2012) and Freeter ie wo Kau (2010) are such representative works. In the former one, two men - one, a failed to be regular worker who moved to countryside to get another contract job and, the other, a medical college graduate, appointed to work in cottage hospital unwillingly by a professor. They meet in the same small village and the drama unfolds, showing their emotional growth as they face plenty of obstacles. The latter is about a youngster who quit his first job after only three months. With no dreams, no savings, and a poor relationship with his family, he becomes a freeter - a Japanese expression for ‘unemployed’ or ‘underemployed’. However he soon faces big family problems and decides to work towards rebuilding his life: “Even though I'm just a freeter, I’m going to buy a house for the sake of my family.” That’s the start of the whole story. In case of Middle East - the region with one of the highest youth unemployment rates - it is hard to find movies or dramas as most of countries have strict cultural laws. Nonetheless, we found out two novels in Egypt like The Unemployed (2011) and A Prescription for Unemployment (2010) which explores the unemployment issue. Both talk about youth unemployment crisis vaguely, perhaps so that it gives a mild consolation to Middle Eastern youth in difficult times.

Kim A-ram Staff Reporter

문화콘텐츠는 시대상을 반영해 대중과 공감대를

년들 사이에선 취업에 허덕이는 자신과 친구들을

형성한다. 이에 <매거진 N>은 아시아 청년실업과

‘미생’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현상도 생겼다.

취업난을 다뤄 청년들의 공감을 얻은 콘텐츠들을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소개한다. 한국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이 주제

“요새 불황 아니냐, 불황. 우리나라 백수 애들 착해요. 테레

들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더

비에서 보니까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니,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2014년 윤태호 작

부수고 난리를 떨던데. 우리나라 백수애들은 다 지 탓인줄

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된 드라마 <미생>(연출

알아요. 지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김원석)은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을 다뤄 이 시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러는 건데. 야, 넌 너 욕하고 그러지

대 청년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청

마, 취직 안 된다고. 당당하게 살어.”


033

magazine N | 201602

취업난으로 방황하는 청년들을 다룬 일본 드라마 ‘늦게 피는 해바라기~나의 인생, 리뉴얼~ʼ 포스터

이집트 청년취업난을 그려낸 옴니버스소설 ‘실업처방전’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감

후 지도교수로부터 원하지 않는 시골병

이 작품은 2013년 한국에서도 <백수

독 김광식)에서 삼류건달 동철(박중훈

원 부임을 제안 받은 니카이도 카호리(마

알바, 내 집 장만기>라는 제목으로 방영

분)이 회사 부도로 직장을 잃고 치열한

키 요코 분)라는 두 청년이 시골마을 시

된 바 있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등장하는

취업경쟁에 다시 뛰어든 세진(정유미 분)

만토에서 겪는 일들을 따뜻하고 담담하

프리터는 1987년 처음 일본에서 등장한

을 향해 한 말이다. 이 영화는 ‘갑질’하는

게 그려냈다. 첫방송 오프닝에서 주인공

신조어다. 15∼34세 청년 가운데 자발적

면접관, “취직 못하면 시집이나 가라”는

코다이는 이런 말을 한다.

의사 혹은 취업난으로 어쩔 수 없이 아르

근시대적인 아버지 등을 조명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2015년엔 <성실한 나 라의 앨리 스>(2015, 감독 안국진) <열정 같은 소리

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지 “나는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나

칭하는 단어로 일본의 청년취업난을 상

를 받아들여주는 곳에 갈수밖에 없다. 설령 그

징하는 ‘아픈 단어’다.

앞에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하고 있네>(2015, 감독 정기훈) 등의 영 화들이 청년실업과 취업난을 다뤘다. 웹 드라마 <취업전쟁>은 2014년 중국에 진 출해 취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 의 아픈 청년들을 달래줬다.

전세계에서 청년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중동은 엄격한 문화 규제

이 오프닝은 일본의 취업빙하기를 단 적으로 드러낸 장면으로 꼽힌다.

를 시행하는 보수적인 정권으로 인해 청 년실업을 중점적으로 다룬 콘텐츠가 드

두번째 작품 <프리터, 집을 사다>

물다. 그럼에도 이집트에선 청년실업을

(2010, 연출 코노 케이타)는 첫 직장을 3

다룬 두편의 소설이 출간돼 중동 청년들

코미디 프로그램들도 어려운 취업현

개월만에 관두고 프리터 생활을 하던 주

의 공감을 샀다. 단편소설모음 <실업처방

실을 풍자하기 바쁜 걸 보면, 한국에서

인공 타케 세이지(니노미야 카즈나리 분)

전>(2010, 아말 까이리)과 <실업자>(2011,

‘청년실업’은 단연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인

가 아픈 가정사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나사르 이라크)다. 전자는 이집트의 실제

듯 하다.

담고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

청년실업난을 옴니버스 식으로 풀어냈고,

게 된 세이지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후자는 이집트의 한 구직청년이 겪는 취

오랫동안 저성장 침체기를 겪은 일 본에서도 청년실업과 취업난은 영화, 드

업난의 현실과 연애 등을 과감히 그려내

라마의 단골소재였다. 이를 다룬 드라마

“취업한지 3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며 많은 중동 청년들에게 힘이 됐다.

두 작품을 소개한다. 첫번째로 살펴볼

세상은 내게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다른

지금까지 소개한 영화나 드라마, 소

작품은 <늦게 피는 해바라기~나의 인

알바들 역시 오래 하지 못했다. 인생이 점점 꼬

설 이야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생, 리뉴얼~>(2012, 연출 이시카와 준이

여가는 것 같다. 가족들 앞에선 알바를 하며 취

아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청년들의 현실

치 外)이다.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시

업준비도 열심히 한다고 당당히 말해놓긴 했지

이다. 이야기속 주인공처럼 현실의 청년

골마을 계약직 자리를 얻은 청년 코다이

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자리를 찾

라 죠타로(이쿠타 토마 분)와 의대졸업

눈치가 보인다.”

아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Asian Heritage

034

magazine N | 201602

Heritage genocide and cultural violence in the Middle East Xinhua

Palmyra, which used to be a trade center linking the East and the West, was listed as a World Heritage Site by the UNESCO in 1980.

Summary

IS, 무참한 살상 이은 ‘문화청소’에 전세계 ‘경악’ 인류는 ‘문화 청소’(cultural cleansing, 하나의 가치관에 근거하여 다양한 문화를 하나로 통일하려는 것)는 반드시 사라져야 할 악행이라 믿는다. 한번 무너진 문화유산들은 다시 재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문화유산들이 스러져 가고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참혹한 ‘문화 청소’가 인류의 공분을 사고 있다. IS가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을 점령한 이후 수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세계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 지역은 인류 4대문명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산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이라크의 하트라·니네베, 시리아의 팔라 마 등이 보존돼 있는 곳이다. IS는 2015년 4월 탄약더미를 이용해 하트라를 폭발시키는 장면을 전세계에 공개했다. 이들은 또한 자동폭발장치와 망치 등 으로 무참히 세계문화유산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이며 인류를 경악케 했다. 유네스코는 이에 대해 “이라크에서 잔혹한 ‘문화 재 청소’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 하트라 파괴로 나타난 IS의 잔혹성은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니네베 또한 고대시대 만들어 진 조각과 문서가 남아있는 곳으로 문화보존가치가 매우 높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지만 IS의 광란으로 모두 사라졌다. 이후 IS는 그들이 발행하는 월간지 <다비크>(Dabiq)를 통해 이라크와 시리아의 문화유적지를 파괴하는 장면을 담아 사진특 집으로 다뤘다. 다비크는 “수니파 극단주의 집단 IS는 시아파와 관련된 유적지와 사원들을 모두 파괴한다”며 “전세계 모든 기독교 집단과 유산도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IS는 ‘문화 청소’ 전략을 이용해 세력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있다. 여기 서 끝이 아니다. IS는 문화유산을 약탈해 암시장에 되팔아 군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원들과 무덤이 파헤 쳐 지고 있다. IS는 인류의 목숨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정신과 혼이 깃든 문화유산도 파괴하고 있다.

Radwa Ashraf radwaashraf@theasian.asia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번역 최정아 기자


035

magazine N | 201602

“Cultural violence is not a practice exclusive to

Iraq. The two countries are located in the region

Islamic groups or areas; rather, it is the nature

where the first alphabet, agricultural practices

of all radical ideologies, religious and national

and cities were born. The rich cultural heritage of

alike. The destruction of human communities

this region has thus been of global significance,

is incomplete without cultural violence.” This

with many sites being featured on the UNESCO

was the conclusion of lawyer and human rights

list of World Heritage like the cities of Hatra and

advocate Raphael Lemkin, the Polish-born

Nineveh in Iraq and Palmyra in Syria.

jurist who came up with the term “genocide” and fought successfully for its recognition by international legal bodies as a crime. Cultural violence has long been a component

Heritage destruction at the hands of ISIS

Hatra boasts an impressive Greek and Roman influenced architecture and a prominent position

in the obliteration of communities; it legitimates the denial of diversity and makes them much harder to rebuild. Fiona Rose Greenland, a researcher at the University of Chicago, says that despite media coverage has rightly focused on the human dimension of suffering, she thinks we should reflect upon another important aspect of the violence: the systematic destruction of cultural sites and objects. ISIS had long ago taken control over Syria and

Xinhua Xinhua

The Old Walled City of Shibam in Yemen, which was added to UNESCO list of endangered conflicted areas. The detonation of the 2,000-year-old temple of Baalshamin in Syria’s ancient caravan city of Palmyra.


036

magazine N | 201602

Xinhua

Hatra, an ancient city in Iraq, withstood invasions by the Romans in 116 A.D. and 198 A.D. thanks to its high, thick walls reinforced by towers, but now is endangered by ISIS.

on the Silk Trade, while Nineveh, capital of the

the forefront of the global media as the latest victim

Assyrian empire was at one point being the largest

of these attacks on world heritage. ISIS seized the

city in the world. Both cities were taken over by

town and the nearby ancient ruins in May 2015,

ISIS in 2014. Hatra has been used as an ammo

and although the militants initially promised to

dump and training ground by the militants, with

leave the city’s columns and temples untouched,

a propaganda video being released by ISIS in

in August they publicly beheaded Khaled al-

April 2015 showing fighters using sledgehammers

Asaad, a Syrian archeologist and director of

and automatic weapons to destroy sculptures in

antiquities for Palmyra, after he refused to reveal

several of the site’s largest buildings. UNESCO

the whereabouts of the city’s cultural artefacts. The

commented at the time that “The destruction of

same month ISIS released images of the militants

Hatra marks a turning point in appalling strategy

rigging the 2000 year-old Temple of Baalshamin

of cultural cleansing underway in Iraq.” Similarly,

with explosives and blowing it up, along with the

in Nineveh, many of its ancient sculptures and

Temple of Bel, leaving nothing but rubble.

manuscripts were damaged during the rampage

ISIS has openly boasted about its exploits in

through the Mosul Museum, where most of the

its own magazine, Dabiq. The magazine features

sculptures were housed, in late February 2015,

photo reports of the various mosques, shrines

while another propaganda video showed men

and religious heritage sites they have destroyed

smashing half-human, half-animal guardian

throughout Iraq and Syria. ISIS’s drive to obliterate

statues called lamassus on Nineveh’s ancient

any non-Sunni heritage and culture in the region

Nirgal Gate.

is blatantly declared, and the terror group has

Palmyra, the Syrian city which thrived as an

vowed to continue this destruction throughout the

oasis in the desert for centuries, offering sanctuary

Christian world. As well as pursuing a strategy

to caravans on the Silk Road, has been propelled to

of cultural ‘genocide’, they have also looted many


037

magazine N | 201602

of these cultural sights, using it to finance their

Houthis, the Shia rebel-group controlling the

military operations. Selling artifacts in black

capital. Severe damage has been caused to the

market or even allowing others to loot and dig up

Great Dam of Marib, the structure dating from

temples.

the 8th century BC which has sustained four hits

UNESCO points out that the cultural

in the past few months. Coalition air strikes have

heritage in Iraq and Syria, which bears witness to

also obliterated the Dhamar museum holding the

thousands of years of history in the cradle of world

artifacts of an American-Yemeni archaeological

civilization, is being deliberately destroyed. The

dig along with 12th century citadels and minarets.

list includes other religious sites such as the Jewish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side, citizens

Shrines of Jonas and the Prophet Daniel, the Jobar

of these countries are suffering the most from

synagogue near Damascus, which, legend has it,

losing their own heritage. Mokadam Qabil, an

goes back to the time of Elijah the Prophet, and the

Iraqi teacher who left Iraq a few years ago said,

tombs of Sufi Sheikhs in Mosul have been sacked.

“This will remain deeply etched in the communal

The archaeological sites of the Green Church in

memory of Iraqis for decades to come.” While

Tikrit, dating back to the eighth century, and the

Ahmed Nabil from Egypt says, “We have a

citadel of Tikrit have been severely damaged.

story to tell, so we can't lose for our children and

In Syria, cultural sites such as the historic city of

grandchildren. Our heritage is much more than

Aleppo, which is on UNESCO’s World Heritage

our collective memory. It is our collective treasure.”

List, have been hit.

Syria and Iraq are simply additional chapters in the long-running story wherein conflict is

The world’s latest genocide

characterized by a two-fold assault on humanity:

Yemen’s precious heritage is also being

human bodies themselves as well as the objects

ravaged by conflict, as the ancient capital

and sites that people create and infuse with

of Sana’a is being ripped apart by the war

cultural meaning.

People search for victims in the ruins af ter an air strike in the Old City of Sana’a in Yemen, which was added to the 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

between a Saudi-led Sunni coalition and the Xinhua


038

People

“선플 통한 인터넷 평화운동, 지구촌 구석까지 펼칠 터” 민병철 ‘선플운동’ 창시·전도사

magazine N | 201602


People

magazine N | 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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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Countering Cyber-bulling and violence Min Byoung-chul, chairman of the Sunfull Movement and a professor at Konguk University, was ranked at No. 17 in the popularity rankings of official celebrities, conducted by Weibo, the biggest social media network in China. The ranking was carried out during the span of one year (Dec. 1, 2014-Nov. 30, 2015), analysing activities and the number of clicks, based on top 150 celebrities. The surprising outcome that Min ranked in the top 20 was the result of his involvement in the Sunfull Movement. He has been working on the campaign for his 2.6 million Chinese followers in order to promote peace on the internet and to get rid of cyber-bullying and the hateful comments. Min holds ‘Sunfull (good comments online) debate’ to communicate with the Chinese citizens in realtime. 57 million Chinese read his writings on the Sunfull. Min was invited for the 2nd World Internet Conference, and introduced ‘Sunfull Movement’ in a measure to prevent from cyber violence and bullying. Meanwhile, he delivered ten thousand ‘Memorial Sunfulls’ to CCTV for the victims of the Sichuan earthquake in 2008 and 2013. The comments were gathered from Korean teenagers and Sunfull teachers. Chinese netizens, who participate in the Sunfull Movement opened a memorial website for the Sewol ferry accident in 2014, gathering 50 thousands comments. The ultimate aim of the Sunfull Movement is to make humanity live happily in a peaceful world. The Sunfull Movement counters cyber bullying and violence caused by anonymity, and spread positive energy in our society in a way of writing good and positve comments to youngsters. “Our slogan is to spread postive energy in the society. It implies that we should be good persons who positively

민병철 이사장의 ‘웨이보’

contribute in others’ lives. Surprisingly, this is exactly parallel to what China’s leader Xi Jinping is pursuing.” All the conflicts begin from a ‘verbal dispute’. Thus, instead of hateful comments and arguments, support and consideration should be practiced.

Lee Sang-ki | Summary by Choi Jung-ah Staff Reporter

민병철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건국대 교

해 사이버 폭력을 예방하는 방안으로 ‘선플운동’을

수)은 지난 1월 중국 최대 SNS ‘웨이보’가 선정한 ‘공

소개했다. 이 내용은 나흘 뒤 중국 관영 <CCTV>

익유명인사 랭킹’ 17위에 올랐다. 6억명의 회원을 보

인기프로그램 ‘대담’(Dialouge)에서 방송됐다.

유하고 있는 중국 ‘웨이보’의 ‘공익유명인사 랭킹’은

민병철 이사장은 2008년과 2013년 중국 쓰촨

2014년 12월1일부터 2015년 11월30일까지 1년간 민

성 대지진 발생 당시 한국의 청소년들과 선플 교사

간인들의 공익 활동 내역과 열람횟수 등을 분석해

들이 대지진 희생자들을 위해 올린 ‘추모와 위로 선

상위 150명을 선정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민병철

플’ 1만여개를 모아 만든 추모선플집을 CCTV에 전

이사장이 중국 ‘웨이보’ 선정 ‘공익유명인사 랭킹’ 17

달했다. 이후 중국 네티즌들도 2014년 세월호 침몰

위에 오른 것은 26만명의 중국인 팔로워를 대상으

사고 당시 추모사이트를 개설하고 5만여 네티즌들

로 응원과 배려의 선플운동을 전개한 것이 결정적

이 추모의 뜻을 밝혀오는 등 선플운동을 통해 두나

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라 사이의 민간외교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

이와 함께 민 이사장이 중국 네티즌들과 실시 간으로 작년 5월20일, 8월25일 2차례에 걸쳐 개최

고 있다. 민 이사장을 지난 1월5일 저녁 강남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한 ‘선플토론회’는 6천6백만 클릭을 기록했다. 2016 년 새해 벽두부터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한국에 서 최초로 시작된 ‘민병철 선플운동 바람’이 일고 있는 것이다.

요즘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나?

“두가지를 하고 있다. 하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을 통한 평화운동이다.

민병철 이사장은 지난해 12월16일엔 중국 저장

영어는 세계와 소통하는 기본 도구다. 지구촌

(浙江)성에서 개최된 ‘제2회 세계인터넷대회’에 참가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영어는 자신의 성장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사진 선플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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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민병철 이사장이 2015년 말 중 국 ‘CCTV’에 출연해 선플운동 을 알리고 있다.

동력이다.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과 의

퍼뜨려, 아름다운 인터넷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운

사소통이 되는 실용영어가 특히 필요하다. 현재 건

동으로 영어로는 ‘Sunfull’로 표기한다. 신조어인

국대에서 비즈니스영어를 원어강의로 가르치고 있

‘선플’과 음이 가까운 영어로 ‘햇살이 가득하다’는

다. 메인 프로젝트는 현재의 모바일 상거래 시대

뜻이다. 특히 젊은 네티즌들에게 좋은 글을 써서

(mobile commerce era)에 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

사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자는(to spread

디어를 ‘모바일 앱개발 제안서’로 만들게 하는 것인

positive energy in society)것이 모토이다.”

데,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이 무한경쟁 글로벌

선플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취업환경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취업에 도움이 되는

“2007년 초, 한국에서 한 젊은 여가수가 악플

휴먼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하는

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를 접한 뒤 큰

것이 목표다. 현재 이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중 대

충격을 받았다. 그 해 봄 학기에 내 영어수업을 듣

학생 창조앱 아이디어 공모전’도 개최하고 있다.

는 570명의 대학생들에게 각자 악플로 인해 고통

인터넷은 21세기 인류 제1의 의사소통수단이

받는 10명의 유명인들의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순식간

등을 방문해서 악플을 자세히 읽어 본 다음 이 사

에 얻을 수도 있지만, 근거 없는 내용을 장난 삼아

람에게 근거 없는 악플을 달지 말아야 할 이유와

적는 한 줄의 글이 상대방의 영혼까지 못질하게 되

악플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격려와 용기를

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버리게 만든다. 다른 사람에

주는 선플을 달아준 후, 그 결과물을 제출하도록

게 비방대신 응원과 배려의 아름다운 선플을 달아

과제를 내어 주었다. 그 결과 악플이 달린 연예인

주어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

들의 블로그와 홈페이지에는 순식간에 5천7백개

선플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나?

의 아름다운 선플이 달리게 되었고, 이 과제를 통

“‘선플’은 착한 댓글(good comments), 긍정적

해 학생들은 악플의 폐해와 선플의 중요성을 깨닫

인 댓글(positive comments)로, ‘악플’(malicious

고 스스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선플운동이

comments)의 반대말이다. 인터넷 상에서 근거 없

시작된 계기다.”

는 비난과 허위사실을 유포 하지 말고, 악플로 인

인터넷상의 악플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이 있나?

해 상처 받는 분들에게 응원의 댓글을 달자는 것이

“악플 근절을 위해서는 인성교육(캠페인)과 적

다. 또, 선플운동을 통해 긍정의 에너지를 사회에

절한 제도적 장치(법적 제재)가 필요하다. 운전자의


041

magazine N | 201602

안전벨트를 예로 들어보면, 과거엔 운전자들이 안

학습법 좀 소개해 달라.

전벨트를 잘 매지 않았지만, 안전벨트를 매지 않으

“외국어학습의 최종목표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캠페인과 함께 위반자

생각을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세계적 인터넷 기

들에게는 벌점을 부과 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뒤따

업인 알리바바를 세운 마윈이 영어를 배운 방법을

라서 요즘은 운전자들이 안전벨트를 꼭 착용한다.

소개한다. 마윈은 영어 대화자를 찾기 위해, 매일

벌점을 받을 까봐 매는 것이 아니라 안전벨트가 생

아침 10km가 넘는 거리를 45분동안 자전거를 타

명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고 가서 항저우 호텔 앞에서 외국인만 보면 말을 걸

선플달기 캠페인과 악플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장

고, 기회가 되면 외국인들에게 무료로 가이드를 했

치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계층, 세대, 지역

다고 한다. 이제 그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 하는

간 갈등을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성공한 글로벌기업가다.

지난해 말 중국 세계인터넷대회에 참석하고 ‘CCTV’에도 출 연했다고 들었다.

영어를 잘하는 방법은 먼저 자신이 실제로 필 요한 기본 표현을 영어로 만들어 반복 훈련을 하는

“작년 12월16일, 중국 정부 초청으로 저장성 우

것이다. 다음은 실제 대화 연습을 해야 하는 데, 구

전에서 개최된 세계인터넷대회에 참석했다. ‘More

태여 외국인이 아니더라도 곁에 있는 친구와 영어

Goodwill, Better Internet’(선의로 더 밝은 인터넷

로 말하기 연습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세상을)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행사는 시진핑 주석

요즘은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위에 널

과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 CEO들이 참석한 자리였

려있다. 인터넷 영어학습자료, 영어 방송, 영어 오

다. 행사의 일환으로 중국 <CCTV>의 인기 프로그

디오 소설 등.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로의

램 ‘대담’에 출연해 선플운동을 소개했다. 그런데,

대화연습이다. 마윈처럼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갑자기 사회자가 “이른 새벽 환경 미화원들에게 따

에게 한국을 안내하는 것도 좋고, 또, 외국인과의

뜻한 국수를 무료로 나눠주는 공익 국수집을 어떻

전화를 통한 학습도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게 하면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라고 물어왔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선플운동에 더 많 은 학생들이 동참할

나는 “중국의 유명배우나 인기인들이 그 국수

“앞으로도 영어를 도구로 창의적 글로벌 인재

수록 자신들 스스로

가게에 많이 방문하면 홍보가 되지 않겠느냐? 각

를 육성하고, 선플을 통해 좋은 인성을 갖춘 인재

변화한다. 선플운동

자 수만에서 수백만 명의 팬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

를 양성하는 활동을 계속 할 것이다. 또, 선플운동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는 한국에 돌아와 공

이 응원과 배려를 통해, 화합에 일조하고, 지구촌

을 통해 긍정의 에너

익국수집을 응원하는 선플 사이트(http://noodle.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나누는 데에도 보탬

지와 기운을 사회에

sunfull.or.kr)를 개설하였는데 한달 만에 천여명

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확산시켜야 한다.”

이 선플을 올렸다. “추운 날씨에 차가운 식사를 하 는 분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을 보니 제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나도 지금부터 작은 일이라도 어려 운 이웃을 위해 봉사에 참여하겠다.” 같은 선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또 이 캠페인에 공감한 유명 팝페 라 가수인 이사벨 선플 국제친선홍보대사가 노래 로 만들어 보겠다고 한 상태이다. 이게 바로 인터넷 을 통해 긍정의 에너지와 기운을 사회에 확산시키 는 선플운동이고 이런 아이디어는 행동으로 옮기 는 게 중요하다.” 민병철 교수는 우리나라에 ‘생활영어’를 처음 본격적으로 보 급하신 국민 영어선생님이신데 영어를 효과적으로 배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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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magazine N | 201602

“빈곤의 악순환 끊는 건 식량 아닌 ‘교육’, 물고기 주기보다 낚시법 가르치는게 사명”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인터뷰 [ 상 ]


magazine N | 201602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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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Education can break the poverty chain,” ROK UNESCO Secretary Gen. At the center of Seoul in Myeong-dong, there is a building that has been watching over the surprising growth of Korea for more than 60 years. That building is Korean National Commission for UNESCO, at the UNESCO road of Seoul. Secretary-General Min Dong-seok, who was inaugurated in 2012, says, “I thought UNESCO needed to wake up from a long sleep. Without support and social consensus of citizens, it is impossible for an organization to survive. This is the reason why I announced our vision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Korean National Commission.” As the UNESCO put efforts into increasing the number of donors as the first step to encourage participation of citizens in UNESCO, the outcome was amazing. At first, when the project began in January, 2014, the number of supporters was around 52, but it has increased 40 times, and reached to 2,300 in two years. Now all the donors can get the year-end tax adjustment. At the roof top of the building, there is an eco-garden, called ‘Small World’. Min says, “More than 200 bugs and plants live at the ‘Small World’, creating a mini ‘ecosystem’ at the center of Myeong-dong. In summer, we do beekeeping as well.” The Baerongnamu(Crape Myrtle) cafe inside the eco-garden has become a small place for people to take rest amid the downtown hustle. This calm and quiet cafe offers a cup of Americano only for 2,500 won. Also, all the profit from the cafe is donated for African children’s education in desperate need. Min says, “Local artists exhibit their works here. We do not receive any space rental fee, instead, if their artworks is sold, 30% of the profit would go for donation.” After the Korean war, UNESCO invested in education, building a print factory at Daebang-dong to publish elementary school textbooks. This became a driving force of suprising growth of Korea. Min believes, “Only education can break down the chain of poverty. In order to gain the sympathy and support from citizens, recently, Korean top actress Lee Young-ae was named as the honorary ambassador for UNESCO. Of course, it was not easy to appoint her as the honorary ambassador.”

Choi Jung-ah Staff Reporter

관광객들과 화장품 상점으로 북적이는 서울 명동

화 한가운데에는 올해로 취임 5년차를 맞은 민동석

한복판. 여기에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리를 지키

(64)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있다.

며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켜본 건물이 있다.

“취임 후 이 조직을 잠에서 깨게 해야겠다고 생

‘유네스코길’ 명동예술극장 바로 건너편에 자리 잡

각했어요. 이제 국민의 지지와 공감대를 얻지 못하

은 ‘유네스코 회관’이다. 회관에 들어서면 한국 60

는 조직은 생존이 불가능해요. 이런 위기의식 속에

년사와 함께 해온 흔적이 느껴지는 ‘유네스코 한국

서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업이 무엇인

위원회’(UNESCO HOUSE, 이하 한위) 현판이 보

지 고민했죠. 이를 위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해 처

인다. 로비에 들어섰다. 후원인들의 이름이 적힌 전

음으로 비전을 선포했어요. 3대 쟁점이 있는데, 바

광판과 한편에 마련된 월간 ‘유네스코 뉴스’를 비롯

로 저개발국 교육나눔, 글로벌 인재양성, 한반도와

한 전단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유네스코 한위가

동아시아 평화 도모입니다. 100명 남짓한 이 작은

얼마나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지 짐작케 하는

조직에서 과학, 문화, 교육 전반에 걸친 모든 영역

대목이다.

을 다 소화할 수 없어요. 그래서 선택과 집중으로

2014년, 창립 60주년을 기점으로 유네스코 한 위는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분주한 명동 한복판에

효율성을 높여 감당해 나가겠다고 생각했죠. 이것 이 유네스코의 존재 이유고 소명이라 생각해요.”

서 ‘잠자고 있던’ 유네스코 한위가 역동적이고 국민

국민과 함께 하는 유네스코. 민 사무총장이 항

과 함께 하는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

상 강조하는 말이다. 이를 위해 유네스코는 국민의

최정아 기자 jchoi12@theasian.asia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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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옥상에 금붕 어 몇 마리 풀어놨 더니 짝짓기를 해서 새끼 35마리를 낳 았어요. 명동 한복 판에서 가족을 이뤄 새끼를 낳은 것 자 체가 큰 의미가 있 다고 생각해요.”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후원개발’에 힘써오고 있

옥상 생태공원 ‘작은누리’에서 데려온 귀한 생명들

다. 그 성과는 매우 놀라웠다. 2014년 1월 처음 ‘후

이었다. 이 ‘붕어 가족’들은 민 사무총장 사무실에

원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당시만해도 정기후원

서 ‘월동’을 하고 있었다.

자는 52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년만에 40배가 증

“건물 옥상에 자연생태가 조성돼 있어요. 습지

가해 후원자 수가 2천3백명에 이르렀다. ‘후원개발’

도 있고 곤충·식물 등 200여종이 넘는 생명이 서

이야기가 나오자 민 사무총장의 눈이 반짝인다.

식하고 있죠. 그곳에 금붕어 몇 마리를 풀어놨더

“짧은 기간동안 후원자 수가 폭증했어요. 우리

니 짝짓기를 해서 새끼 35마리를 낳은 거에요. 명

가 하고 있는 일과 방향성에 대해 확신하기 때문에

동 한복판에서 가족을 이뤄 새끼를 낳은 것 자체가

후원자 수는 더욱 늘 것이라고 봐요. 사실 사업을

유네스코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하기 위해선 재원(財源)이 필요한데, 예산에 한계가

‘붕어 가족’을 이곳에 잠시 넣어둔 거예요. 저는 직

있고 정부지원은 10%정도밖에 안돼요. 또 남의 돈

원들에게 잡초 하나라도 뽑지 말라고 해요. 시골에

으로 사업을 하면 ‘우리 사업이다’라고 말하기는 어

선 잡초겠지만 서울 도심에선 귀하디귀한 ‘금초’(金

려워요. 이제는 한위만이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국

草)거든요. 놀라운 것이 방아깨비, 사마귀도 있어

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

요. 도대체 어디서 온 애들인지 모르겠어요.(웃음)

했어요. 이 첫 시작이 바로 ‘후원개발’이었죠. 물론

봄·여름이 되면 옥상 위쪽에서 양봉도 해요.”

어려움도 있었어요. 한위가 한번도 걸어가지 않은

유네스코회관 옥상엔 민 사무총장의 또다른

길이었거든요. ‘후원모금기구’로 등록하기 위해, 여

야심작이 있다. 냉난방 집기를 쌓아놓았던 곳을

러 법적인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 있었어요. 우리 조

‘도심 속 자그마한 쉼터’로 탈바꿈한 ‘배롱나무 카

직 구성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이제 유네스코 후

페’다. 호객행위와 관광객으로 부대끼는 명동에서

원자들 모두 연말정산을 받을 수 있습니다.(웃음)”

‘조용하게’, 그것도 단돈 ‘2500원’으로 아메리카노

인터뷰 도중 기자의 눈에 ‘어항’이 들어왔다. 어

를 마실 수 있다! 최고급 원두로 바리스타가 내리

항속엔 커다란 금붕어 2마리와 수십마리 조그마

는 배롱나무 카페 커피맛은 훌륭하다. 이뿐만이 아

한 붉은색 금붕어가 오밀조밀 들어있었다. 이 많은

니다. 모든 커피값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교육을

붕어를 한 곳에 넣어놓기엔 비좁아 보이는데 무엇

위해 쓰인다. 좋은 분위기에서 커피도 마시고, 기부

인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물어보니, 유네스코회관

도 하는 셈이다.


magazine N | 201602

“원래 이곳은 냉난방 시설이 있던 곳이었어요. 정말 어둡고 지저분한 공간이었죠. 직원들한테 조 금 예산에 무리가 되더라도 카페를 하나 만들어서 국민들한테 되돌려주자고 제안했어요. 이 회관은 국민들이 후원해서 만들어준 것이거든요. 부대끼는 도심 한복판에 이 곳 국민들이 쉴 곳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여기서 전시도 해요. 대관료는 없어요. 대 신 자신의 작품을 판매하면 수익 30%를 아프리카 교육지원금으로 기부해요. 이런 방법으로 국민참여 를 이끌어내는 것이죠. 세계적인 모델 미란다 커가 방한했을 당시 이곳에서 인터뷰하기도 했어요. 최 근엔 이 카페를 찾는 단골손님이 많아지고 있어요.” 반기문 총장도 UNESCO 교과서로 공부

1950년 6월14일, 한국은 세계 55번째로 유네스 코 회원국이 됐다. 하지만 불과 열하루 뒤, 한국전 쟁이 발발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손꼽 혔던 대한민국이 내전의 상처까지 안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60년 후,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던 수혜국에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주는 공여국 으로 자리를 바꾼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됐다. 유례없 는 대한민국의 기적과 같은 변화의 가장 큰 원동력 은 바로 ‘교육’이었다. 6·25 전쟁 직후 유네스코는 쌀이 아닌 교육에 투자했다. 대방동에 인쇄공장을 지어 교과서를 발간한 것이다. 민 사무총장도 유네 스코의 지원을 받은 이 교과서로 공부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은 바로 교육이 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당시 유네스코가 지원 한 교과서로 공부했거든요. 유네스코가 쌀이 아닌 교육에 투자했던 것은 정말 기가 막힌 선택이었다 고 생각해요. 의료품과 쌀은 당장에는 효과가 있지 만, 5~10년 이후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는 없거든 요. 교육이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이 증명한 것이죠. 요즘 TV를 보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를 보여주며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 면 이 아이는 죽습니다’라는 공익광고가 대다수에 요. 그런데 ‘교육을 통해 빈곤국을 도와야 한다’는 내용의 광고는 거의 없죠. 이에 대한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 정말 어렵게, 어렵게 ‘국민배우’ 이영애씨 를 홍보대사로 위촉했어요.”(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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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 개발

이상묵 서울대 교수가 교통사고 후 달라진 것들

2015년 12월2일 서울 신라호텔 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 국경일 행사에서 이상묵 교수(오른쪽) 와 이상기 기자가 대화를 나누 고 있다.

Summary

Training the Disabled in Technology and Engineering Very few know this fact that Lee Sang-mook, professor at the School of Earth and Environmental Sciences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s also known as the Korean Stephen Hawking and, has been helping UAE develop Auxiliary Engineering Device (AT). The interview with him took place in two sessions, one at the UAE’s 44th national day event in Seoul, on Dec. 2, and an e-mail session. Professor Lee teaches programing regarding application for the disabled to university students of UAE and holds Assistive Technology Student Education and Competition: Web Design and App Development (AT EDUCOM) for Persons with Disability. The winner and the first runner-up receive an opportunity to hold an international forum at the Floating Island of Seoul to display their products and poster, sponsored by LG electronics and the organization for the disabled that Princess Jameela Al-Qasimi owns. Lee said, “Arab students have a warm heart, but completeness and technology of their applications is quite low. On the other hand, Korean students who have more opportunities to learn programing are competent. Thus, if a start-up company for the disabled is established with local students as CEO and Korean stduents as CTO, they would be able to obtain some investment and support from Abu Dhabi Investment Council.” Professor Lee visits UAE twice or thrice a year. He met Princess Jameela Al-Qasimi, whose sister is the first lady of Emirate of Sharjah, at National Rehabilitation Center in Korea. Since then, Lee has been working with her organization. He said, “Sharjah is a free and democratic emirate among other emirates. In particular, the organization, established for not only disabled people but also foreign workers, is faithful to Islamic spirit. Also she is a princess of eminent virtue in the UAE. When President Park Guen-hye visited UAE, her cousin, Minister of Foreign Trade,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Lubna Al-Qasimi welcomed President Park at the airport.”

Lee Sang-ki | Summary by Choi Jung-ah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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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재직 중 교통사고로 1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은 이상묵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아랍에미리

“UAE는 부유한 국가여서 국민들이 큰 불만

트(UAE)에서 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AT) 개발활

이 없지만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해 걱정하고 있

동을 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매거

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47

진 N>은 지난 12월2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아랍에

조원짜리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우리나라가 수주

미리트 국경일 행사장에서, 또 1월초 이메일을 통

했는데 원전에서 배출되는 온수로 인해 주변에 피

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가 생기듯이 여기도 이 나라에서도 문제가 될

이 교수는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는 전체 인

것 같다. 특히 아라비아만은 수심이 낮고 호르무

구 850만명 가운데 외국인노동자가 85% 정도

주 해협을 빼고는 폐쇄돼 있기 때문에 온수의 확

로,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해 의료와 교육에 사

산이 더 심각할 거다. 더욱이 바라카 원전은 사우

회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며 “자국민이 이공

디아라비아와 카타르 국경선 근처에 있어서 해양

계 대학원에 가면 국가에서 한국 대학원의 12배

환경문제가 잘못하면 국제분쟁으로까지 이어질

가 넘는 2억원을 지급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중

우려가 크다. 경험 많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하면

동 국가 가운데 아랍에미리트가 자유롭고 민주

좋은 이유다.”

적”이라며 “샤르자의 자밀라 알카시미(Jameela

이 교수는 미국 MIT에서 해양학 박사학위를

Al-Qasimi) 공주가 운영하는 Sharjah City for

마친 후 영국 더럼대연구소에서 2년, 한국해양연

Humanitarian Services는 직원 500명이 매년 4

구원에서 7년 근무하다, 서울대로 온 지 1년반 만

천명의 장애인뿐 아니라 외국노동자를 대상으로

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는 사고 전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도움을 주는데 매우 경건하고 이슬람 정신에 충실

담담하면서도 당당하게 소개했다.

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매년 2~3차례 UAE를 방문한다.

“오늘(12월2일) 오후 서울대에서 강연을 한다.

그가 오래전부터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밀

2015년도 서울대교육상을 받았는데, 수상기념 특

라 공주는 형부가 샤르자 국왕과 친언니가 영부

별강연이다. 특강은 ‘과학교육과 과학적사고가 신

인, 아래 남동생이 왕세자라고 한다. 이 교수는

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2014년 10월 자밀라 공주가 한국에 왔을 때 국립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교통사고 후 과

재활원에서 우연히 알게 됐다”며 “공주의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이 비밀이어서 사진을 못 찍게 하니까 사람들이 내가 이분 이야기를 하면 사기치는 걸로 생각한다”며 껄껄 웃었다. 그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자밀라 알카시미 공주의 사촌언니 루브나 알카시미(Lubna AlQasimi)는 국제개발협력부 장관이자 자예드 (Zayed)국립대 총장으로 아랍세계의 최고 여성 지도자로 꼽힌다. 작년 박근혜 대통령 방문 때 공 항에서 영접했던 분으로 나도 직접 만난 적이 있 다. 사촌 사이지만 자밀라 공주와 아주 각별한데 이 교수는 “자밀라 공주 덕분에 아랍에미리트 대학총장과 부총장을 10명쯤 만났다”며 “자부하 건대 아랍에미리트 교육시스템에 대해 한국에서

이상묵 교수 제공

미국에서 같이 유학했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

자밀라 공주의 사촌인 루브나 알카시미 국제개발협력장관(가 운데)와 이상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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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덕분에 새로운 세상에 잘

LG전자가 현금 1억원과 5천만원 상당의 물품을

적응할 수 있었던 같다. 과학공부가 학위 받고 과

제공했다. 자밀라 공주가 운영하는 장애인 지원

학자가 되는데만 도움 될 줄 알았는데, 어려운 일

단체에서도 많은 지원을 했다. 그 일로 내가 아랍

을 당하고 나니 자신을 돌아보는 데 큰 도움이 됐

에미리트 현지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도 보도됐

다. 사람들은 신체나 재산, 또는 주변사람을 잃는

다. 이 행사에 참가한 아랍 학생들은 장애인에 대

건 쉽지만 그걸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한 마음이 너무 따뜻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하

런데 나의 경우 과학자이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다 보니 기술측면에서 앱 완성도가 낮은 편이다.

살아왔나,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나’ ‘나는 왜 사

반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프로그래밍을 배울 기회

는가’ ‘내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나’ 등을 이해하려

가 많아 실력이 좋다. 그래서 양국 학생들을 이어

노력했다.”

주면 좋을 것 같아 현지학생을 CEO, 한국 학생을

그는 “사고 뒤 울어본 적도, 우울증에 빠진 적

CTO로 하여 장애인을 위한 기술개발 벤처기업을

도 없다”고 했다. “예전에 어떤 방송사에서 내 오

만들 경우 아부다비 투자청으로부터 창업지원도

랜 친구에게 (이 교수가) ‘다치기 전에도 그렇게 긍

받을 수 있을 거다.”

정적이었냐’고 묻자 그 친구는 ‘교통사고 날 때 머

이 교수에게 한국과 중동의 장애인 정책 차이

리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부분을 다친 것 같

점과 우리가 배울 점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다.

다’고 답해줬다.(웃음) 믿기 어렵겠지만 사고 후 이

“사람들은 최근 중동하면 테러와 메르스 등을 걱정

렇게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될 줄 몰랐다. 사고는 작

하는데 UAE는 매우 안전하다. 그곳에 가기 전 장

은 데만 집착하여 앞만 보고 달릴 뻔한 나를 넓은

애인 상황에 대해 궁금했는데, 가보니 종교적인 이

세상으로 이끌었다.”

유와 신념 때문에서인지 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생

그는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이메일로 사진 한

각이 매우 훌륭하더라. 중동국가 중에서도 걸프연

장을 보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벌인 행사사진이

안을 끼고 석유가 나는 GCC국가(사우디아라비아,

다. 매년 현지 대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UAE, 오만)는 돈이 많

친 다음 장애인을 위한 앱을 만들도록 하는 AT

아 장애인들이 필요한 기기와 서비스를 아끼지 않

EDUCOM경진대회다. 일종의 대학별 서바이벌

는다. 장애인 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 투자나 따뜻한

게임인데 1, 2등을 차지한 팀을 한국에 초청했다.

마음이 모두 갖춰져 있다. 참 부럽다.”(계속) LG전자/뉴시스

“아랍에미리트를 비 롯한 GCC국가는 장애인에 필요한 기 기와 서비스를 아끼 지 않는다. 장애인 을 위한 재정적 투 자나 따뜻한 마음이 모두 갖춰져 있다.”


Special To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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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IS 테러, ‘문명의 충돌’ 아닌 ‘인간성과 야만성의 충돌’ 특별기고

터키 히즈멧운동 창시자 페툴라 귤렌

Summary

ISIS Terrorism: The clash of Humanity and Brutality Watching over the horrible activities of the terrorist group, so-called the Islamic State (IS), I cannot find any single word to express my grief and anger. 150 million Muslims around the world feel deep frustration over the reality that IS has been committing terrorism under the name of religion and distorting Islam. In this crisis, Muslims have a responsibility. We should root out violence including terrorism and the perversion of Islam’s teachings by extremists. It would be easy to glorify a certain group or religious identity by using abstract language. However, if they continue wrong activities, the belief and veracity they claim would be faded and discolored. We firmly blame their wrong identity and perception that IS and other terrorists argue, and maintain religious pluralism. Until now, Muslims haved faced the problems and kept away from conspiracy that has encouraged us to escape from the reality. Rather than raising rumors and escaping from responsibility and duties, we should face our reality to solve our problem. Also, we should cast the question ourselves whether the Muslim community has the responsibility of the recent rise in terrorism, that is, at its core, pure totalitarianism, due to unbalanced education, indifference over youth and domestic violence, and authoritarianism. I am deeply concerned to revive the discourse of the clash of civilizations. I am not sure if the scholar of the discourse had intention or not, but it is true that the clash of civilizations is abused by extremist groups who want to attract terrorists from the world. What I can say, obviously, is that it is not ‘the clash of civilizations’, but ‘the clash of humanity and brutality’. In order to protect humanity’s peace and tranquility, regardless of religious difference, we need to act right now. Muslims need to show what real Islam is and stop the radical Islamic teachings that come from uncertain sources. Also, we need to take care of our children, who need not be affected by the wrong ideologies and teach them democratic values from an early age. With this, we would be able to fight with totalitarianism that is full of violence and terrorism.

Fethullah Gulen Islamic scholar, Turkey

터키의 이슬람학자이자 교육 운동가인 페툴라 귤렌이 프랑스의 유명 일간지 <르 몽드>와 <매거진 N>에 IS를 규 탄하는 특별기고문을 보냈다. 한국에선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로 잘 알려진 귤렌은 “무슬림이라면 테러를 규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정 노력을 해야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는 무슬림들이 테러를 음모론에 입각해 다 루기 보다는,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한 소외 계층이 테러리즘에 빠지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해결해야 한다 고 강한 논조로 비판하였다. 또한 테러가 이슬람 세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온전히 이루지 못한 가운데, 권 위주의적 분위기에서 생긴 것은 아닌지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을 통해 사회제도를 페툴라 귤렌 터키 이슬람학자, 히즈멧운동 창시자 2013년 만해평화상 수상

개선하려는 시민운동인 ‘히즈멧운동’의 창시자인 그는 올바른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매거진 N> 은 페툴라 귤렌의 특별기고문을 독자들께 전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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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소위 이슬람국가(IS)라고 불리는 테

를 준수해야만 종교적 신념을 다한다고 할

마주해야합니다. 음모론을 제기하며 책임

러리스트 집단에 의해 자행된 잔혹 행위

수 있습니다.

과 의무를 피하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를 보면서, 그 슬픔과 분노를 표현할 단어

우리는 IS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이

있도록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주장하는 그릇된 이념을 단호히 규탄하

또한 이슬람공동체가 권위의식, 가정

IS가 비정상적인 이념을 종교로 포장

며, 종교적 다원주의를 지지합니다. 인종,

폭력, 청소년에 대한 무관심, 균형 잡힌 교

하여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는 현실에, 전

국가, 종교 보다 앞서는 것은 인류공동의

육의 부재 등으로 인해 전체주의 사고방식

세계 15억 무슬림과 함께 깊은 좌절감을

인본주의이지만, 이는 인간성을 상실한 야

을 지닌 테러조직을 양산한 것은 아닌지

느낍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우리 무슬림

만적 행위가 자행될 때 마다 시련을 겪고

우리 스스로에 되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있습니다. 최근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파리

인간의 기본권, 자유, 법치주의와 다원적

는 전세계인들과 힘을 합쳐 테러를 포함한

에서 목숨을 잃은 프랑스인들, 베이루트에

세계관을 지키지 못해, 공허 속에서 절망

폭력행위를 근절시켜야 하며, 또한 이슬람

서 목숨을 잃은 시아파 무슬림 레바논인

과 씨름하다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추구하

의 퇴색된 의미를 되살려야만 합니다.

들, 이라크에서 희생된 수니파 무슬림들,

는 집단에 명분을 주는 것은 아닌지 자문

특정 집단 혹은 종교의 정체성이나 신

이들 모두는 우리와 같은 인간입니다. 종

해야 합니다.

념을 추상적 언어로 포장하기는 쉽지만,

교와 민족을 떠나서 인류의 고통을 비극

최근의 파리 참사는 성직자와 일반 무

집단이 그릇된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들이

적으로 받아들이고 대응할 때에야 비로소

슬림이 이슬람의 이름아래 자행되는 야만

주장하는 진실성과 신념은 퇴색할 수 밖

우리 세계의 문명이 발전합니다.

적 행위를 거부하고 규탄해야 한다는 점

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에 없습니다. 종교적 신념은 추상적인 구

무슬림들은 지금까지 우리가 직면한

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

호로 포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존

사회문제를 회피하는데 일조한 음모론들

고난의 시기에 거부나 규탄만으로는 충분

엄성을 지키고, 인류가 공유하는 핵심가치

을 멀리하고, 우리가 앓고 있는 문제들과

하지 못합니다. 이슬람공동체는 정부당 AP

프랑스 파리 테러 총지휘자로 알려진 벨기에 국적의 압델하미드 아바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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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er K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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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종교 지도자, 사회운동가 모두의 유기

남아있을지 모르나, 무슬림 시민은 그들이

쓴 잔악한 행위와 과격한 폭력을 효과적

적인 협업으로 테러리스트 양성을 방지하

살고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녹아 들어

으로 퇴치할 수 있습니다.

고, 이들을 격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로 통합될 수 있도록 해당 정부의 통 합정책을 지지해야 합니다.

무슬림 청년들, 민주주의 가치 체득해야

최근의 사태를 보면서 나는 ‘문명의 충 돌’이라는 담론이 부활한 것을 매우 애석

우리는 무슬림으로서 이슬람이 시대

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가정을 처음 세운

우리 이슬람 공동체는 끊임없이 협력

의 여건과 소명에 부합할 수 있도록, 그 종

사람이 예방의 차원으로써 그랬는지 의도

하여 위기에 처한 청년들을 찾아내고, 그

교적 신념을 비판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

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오늘날

들이 파멸의 길로 향하지 않도록 막아야

요합니다.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실천했듯

이런 담론의 부활이 테러조직의 테러리스

하며, 이들 가정의 상담 등 지원책을 통해

이 말입니다. 이것은 과거 이슬람 전통에

트 양성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시스

서의 이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

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점은 우리가 직

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슬람 각

려 지적인 자문자답을 통해 꾸란의 진정

면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문명의 충돌’

국 정부가 적극적인 주도 하에 무슬림들

한 가르침과, 우리 무슬림 선조들이 밝히

이 아니라 우리 인류의 문명에서 ‘인간성

이 테러 방지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고 시도했던 예언자의 전통을 다시금 되돌

과 야만성의 충돌’입니다.

고 믿습니다.

아봐야 합니다.

전세계 무슬림의 삶과 자유를 수호하

무슬림 청소년들도 민주적 방식으로

무슬림들은 특정 집단이 이슬람의 맥

고 또한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의 평

찬성이나 반대를 표현하는 방식을 배워야

락에서 벗어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화와 평온을 수호하려면, 우리는 지금 바

합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학교 교과과정

비정상적인 이념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아

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우리 무슬림이

에 포함시킨다면 젊은이들의 마음에 민주

야 합니다. 무슬림 사상가와 학자들은 한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이고, 출처가 불분명

주의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쪽에 치우치지 않은 전체론적 접근방식

한 과격주의 이슬람 해석을 억제해야 합

과거를 살펴보면 이런 비극이 발생할

을 독려했습니다. 핵심가치를 따르고 신념

니다. 또한 우리의 청년들이 그릇된 종교

때마다 극렬한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하

을 갖는 것은 독단과 구분돼야 합니다. 종

관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주시하며, 무슬

지만 반이슬람 정서의 확산과 무슬림들

교 정신에 충실하면서도 이슬람의 르네상

림 젊은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민주주의의

을 테러리스트로 치부하는 태도는 비생산

스를 일궈낸 ‘사상의 자유’라는 정신의 부

가치를 가르쳐야만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적일 뿐입니다. 유럽의 무슬림은 평화롭고

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런

폭력과 테러로 점철된 전체주의적 이념과

평온하게 살고자 합니다. 부정적 인식이

토양 속에서 무슬림은 종교의 탈을 뒤집어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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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cca: Seasons of Pilgrimage and Anger Ashraf Aboul-Yazid(Dali) is an Egyptian poet, novelist, translator, journalist, traveler and TV presenter. He is Editor of Al-Arabi Magazine (Kuwait) and has published more than 20 books of poems, novels, travels, and children literature. Some of his literary works are translated into Spanish, Russian, Korean, Turkish, English, Italian, Swedish, and Persian. He is also President of AJA Middle East Chapter and Editor-in-Chief of the Arabic version of The AsiaN . Summary

‘메카’ 성지순례, 매년 수천명 압사…근본적 대책마련은 언제쯤 독일이 항복하면서 1차대전이 끝나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이후 중동에는 새 역사의 장이 열렸다. 1923 년 터키공화국이 탄생한 것이다.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국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 는 세속주의 채택을 근거로 칼리프(이슬람교 창시자인 마호메트의 뒤를 이어 종교를 수호하고 이슬람 공 동체를 통치하는 최고지배자) 제도의 폐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632년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가 선출된 이래 661년까지 ‘전통 칼리프 시대’가 이어졌다가, 1517년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이슬람권 최대 국가로 떠오 르면서 지금의 터키로 칼리프의 권위가 옮겨갔다가 터키 공화국의 탄생 이후 폐지된 셈이다. 그러나 아랍국가들은 종교통치자 ‘칼리프’의 부활을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1926년 3월3일,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칼리프를 선출하는 중동정상회의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압델 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이 “메카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종교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나를 칼리프로 인정해달라”고 설득에 나섰고 다른 국가 지도자들도 이를 인정했다. 압둘 아지즈 국왕의 후계자들은 그에 이어 칼리프를 도맡으며 메카 순례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압둘 아지즈 국왕은 자신을 곧잘 ‘신성한 성지의 하인’이라고 표현하며 “칼리프로서 내 임무는 전세계에서 더 많은 이들이 메카를 찾아오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매년 이슬람 최대 연례행사 ‘하지’를 맞아 메카를 방문하는 이들이 급증했고, 이 시기에는 수십만 의 무슬림이 메카로 향한다. 안타깝게도 성지순례자가 급증하다보니 사건사고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좁 은 공간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모이다 보니 ‘압사 사고’는 이제 연례행사 수준이다. 2015년에만 최소 2 천명 이상이 압사사고로 사망했으며, 1990년에도 1천5백여명의 순례자가 목숨을 잃었다. 1987년에는 반 미 시위를 펼쳤던 이란 순례자들과 군부대 간의 충돌이 벌어져 4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란 출신의 한 순례자는 “사우디 정부는 순례자를 보호할 자격이 없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 통제 할 수 있는 국제단체 출범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이에 사우디 당국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슬람교 신전 ‘카바’(Kaaba) 주변의 확장공사를 하고 있지만, 이는 또 다른 사고의 시발점이 됐다. 2015년 9월11일 공사 장에서 대형 크레인이 넘어지면서 111명이 사망하고 23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제 대로 된 사고방지대책이 절실한 시점이지만, 현지 정부는 원론적인 정책만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시라프 달리 <알 아라비> 매거진 에디터·번역 김아람 기자

Two years after the end of the Ottoman Empire, in the wake of the First World War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secular Turkish Republic, the Arab region clamored for a revival of the caliphate.

On 3 March 1926, delegates from Muslim countries, including Egypt, accepted an invitation from King Abdel-Aziz Al-Saud to discuss the matter. The gathering was held in Mecca, and Abdel-Aziz immediately announced his desire to be the next caliph. But there were other would-be caliphs. King Hussein bin Ali of the Hejaz, a rival of Abdel-Aziz, had already made a failed bid for the caliphate. Egypt’s King Fuad I was also eyeing the prestigious position. On March 25, 1924, t he t hen grand imam of Al-Azhar, Sheikh Mahmoud Al-Gizawi, the president of Egypt’s Supreme Sharia Court, Sheikh Mohamed Al-Maraghi, and the grand mufti, Sheikh AbdelRahman Qoraa, among other scholars, signed a document claiming that the Ottoman caliphate had fallen short of Islamic laws and set out the terms and conditions for the creation of a new caliphate. In 1925, the chairman of the Islamic Council in Palestine, Sheikh Mohamed Amin Al-Husseini, tried to organize a conference in Palestine for similar purposes, as did religious scholars in Delhi in India. As a result, at the 1926 meeting, Abdel-A z i z wa sted no t i me i n presenting the audience with his bid for the caliphate. “When the state of war [in what became Saudi Arabia] and the fate of the country rested in our hands, the people of good judgement in the Hejaz did not wish to wait for the convocation of an Islamic conference as they were unsure who would come to it. Instead, they sent us pledges of allegiance,” Abdel-Aziz said. “We turned these pledges down with due humility. Then the people of influence and resolve in Najd, who were the main pillars in purging the country and who are the main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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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Muslim pilgrims circle the Kaaba, the cubic building at the Grand Mosque in the holy city of Mecca, Saudi Arabia. The September stampede during the hajj in Saudi Arabia killed over 2,400 pilgrims, a new Associated Press count shows, three times the number of deaths acknowledged by the Kingdom even months later.

of security in the country, for it is on their work that all reform depends, expressed the same view,” he told the delegates. “We then had to accept the pledges of allegiance because we – the family of Al-Saud – are not tyrannical kings or selfish rulers. Instead, we are duty bound to the rulings of the Sharia.” “You will see with your own eyes and hear with your own ears from

those who came before you to this land to perform the pilgrimage how security is well established in the entire land of Hejaz and how, between the two holy shrines, the land is as safe as it has ever been,” he added. Much of the claim of Abdel-Aziz to the Muslim caliphate emanated from his ability to secure the safety of pilgrims to Mecca, a task that he accepted as a religious duty and a mark

of honor, and one that he said qualified him for the highest office in the entire Muslim world – that of caliph. In the end, none of the other hopefuls were able to prosecute their claims, and the Arabs had to improvise other methods of working together, the later Arab League and other such organizations included. But Abdel-Aziz, the founder of Saudi Arabia, and his success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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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inued to take pride in their role as the protectors of the pilgrims, often using the humble title “Servant of the Two Holy Shrines” to assert their central status in the world’s grandest religious rit ual, the pilgrimage to Mecca, which is a gathering of worshippers that matches no other and that keeps growing by the year. As the pilgrims grew in number, the Saudis kept expanding the perimeter of the Kaaba, known as Al-Haram AlMakki, to accommodate ever more visitors. But managing this grand, and ultimately lucrative, ritual hasn’t always been easy. Violence, accidents and human error have claimed many lives over the years. Ousting the formidable Hussein bin Ali from power in the Hejaz, AbdelAziz assured his listeners in 1926 that, with the power of the sword in one hand and the blessings of the Quran in the other, he would continue to enforce law and order in the land. “Of money I have nothing… but I have the sword and the Quran,” he said. “The money belongs to the people of the Hejaz, whom I defend and protect,” Abdel-Aziz told visiting dignitaries during the 1933 pilgrimage season. Two years later, three Yemeni pilgrims attempted to assassinate Abdel-Aziz. He survived the attempt, suggesting that God had wanted him to continue his mission to protect pilgrims against acts of violence. “God in His grace allowed me to survive,” he said. “I ordered the gates of the sanctuary closed and completed the tawaf [ritual walking].”

supporters to the city where they attempted what may have been a coup d’état, though this is not how Al-Oteibi described it. Instead, he claimed to be acting out of allegiance to the hidden imam, or mahdi, a man who, according to religious tradition, is sent by God to bring justice to the world. This tradition goes back to a hadith, or saying, of the Prophet Mohamed to the effect that “God will send to this nation at the beginning of every century someone who will renew religion.” Leadi ng a g roup of f ighters numbering anywhere between 200 and 600, Al-Oteibi claimed that one of his blood relatives, a man named Mohamed bin Abdallah Al-Qahtani, was the Mahdi. The group barricaded itself into Al-Haram Al-Makki and called on Al-Qahtani to come and accept its pledge of allegiance.

Mother of Ghazanfar Roknabadi, former Iranian ambassador to Lebanon who had been missing since the Saudi hajj stampede in September, cries upon arrival of his body from Saudi Arabia at the Mehrabad airport in Tehran, Iran, Friday, Nov. 27, 2015. Muslim pilgrims circle the Kaaba, the cubic building at the Grand Mosque in the Muslim holy city of Mecca.

AP

Waiting for the Mahdi

Fast forward to November 20, 1979, one of the sons of Abdel-Aziz, King Khaled of Saudi Arabia, faced another surge of violence in Mecca. A man by the name of Joheiman Al-Oteibi had brought a few hundred

Dozens died in the ensuing clashes and, on January 9, 1980, King Khaled had some of the insurgents executed in public. One of the half-brothers of Al-Qaeda leader Osama bin Laden, a man named Mahrus bin Laden, was arrested briefly in connection with this mutiny. But the bin Laden family mostly backed the Saudi government. A company owned by the family was involved in the expansion of Al-Haram Al-Makki at the time, and it offered information to the police that helped apprehend the insurgents. Al-Oteibi’s insurrection was a wake-up call to the Saudi government, and it reacted by opening the way for hardline jihadists to go to Afghanistan where they could channel their zeal into battles with the invading Soviets. The jihadist movement, of which AlQaeda is only a part, was born from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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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re to give the extremists a remote place in which to expend their energies. After the Islamic Revolution in Iran in 1979, Iranian leader Ayatollah Khomeini claimed in a public statement that the US had planned Al-Oteibi’s insurgency. Mobs then attacked the US embassies in Pakistan and Libya. On July 31, 1987, Iranian pilgrims staged demonstrations against the US policies in Mecca. There were clashes with police and more than 400 people perished, most of them Iranian. Meanwhile, as the numbers of the pilgrims coming to Mecca grew, Saudi Arabia introduced successive plans to accommodate them. Under King Fahd, another son of Abdel-Aziz, the Saudi government spent about $20 billion on expanding the perimeters of the Kaaba, the holy shrine in the middle of AlHaram Al-Makki. By confiscating large swathes of land lying immediately around the older areas, the Saudi authorities were able to expand the total area of

the shrine to 356,000 square meters, allowing it to accommodate 773,000 worshippers. The expansion angered some locals who found it too intrusive, and some of the buildings that were demolished for the expansion were important parts of the city’s religious history. Their concerns were shared by some architects and archaeologists, local as well as foreign, who complained that Mecca’s skyline was being disfigured by modern flyovers and high-rise hotels, with their modernistic lines and glistening glass façades. Double tragedy

In 2015, tragedy struck Mecca twice. The first was caused by heavy machinery hired to carry out another expansion plan that would bring the total area of Al-Haram Al-Makki to 1.5 million square meters, large enough to accommodate 2.3 million pilgrims. Over the course of the expansion, the Saudi government had confiscated AP

nearly 5,882 properties next to the shrine’s perimeter. It was at 5:10 P.M on Friday, September 11, that a giant crane teetered and came crashing to the ground in Al-Haram Al-Makki in Mecca, killing 111 worshippers and injuring more than 230. No link has been established between the crash of the 200-meter crane and the anniversary of the Twin Towers attacks in the US in September 2001. The Iranians, who have no love for Saudi Arabia, immediately lashed out at Riyadh, saying the Saudi government was “not qualified” to organize the pilgrimage and urging the formation of an international body to take charge of Mecca. The Iranian newspaper Kayhan said that Mecca should be run by a Muslim “Council of Custodians”. Then, a second tragedy took place. A stampede in the Valley of Mina in eastern Mecca left 1,358 dead, including 464 Iranians, 165 Egyptians, 120 Indonesians, 101 Indians and 99 Nigerians, according to Saudi figures. The real death toll may, however, be higher since Egypt has thus far declared 190 of its nationals dead and 45 missing in connection with the incident, a higher figure than that released by the Saudis. One report said that the convoy of a Saudi prince in the area had triggered the stampede. Eyewitnesses claimed that the tragedy could have been averted had the authorities opened VIP tents located on both sides of the road to relieve the pressure on the main thoroughfare. Not letting this opport unit y pass, Iran’s spiritual leader, Ayatollah Khamenei, again questioned the ability of the Saudis to organize the annual event. During a speech at the UN, Iranian President Hassan Rouhani also demanded an investigation into the causes of the tragedy.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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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kistan’s Thar Desert becomes symbol of Interfaith Harmony Nasir Aijaz is a 38-year experienced Pakistani journalist. He has worked as editor, reporter, magazine editor, news editor and anchor in different newspapers, news agencies and radio news services. Until recently, he served as Bureau Chief and Editor at Pakistan Press International(PPI) news agency and Head of PPI radio news service. He currently serves as the Chief Editor at the Indus Chronicle, a monthly magazine based in Karachi, Pakistan. Summary

광활한 타르사막에 펼쳐진 이슬람-힌두 화합의 장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타르 사막(인도 사막)은 파키스탄 남서부에서 인도 북서부에 걸쳐 광활하게 펼 쳐져 있다. 2015년 12월 중순, 파키스탄과 인도 기자들이 타르사막으로 4일간의 학술회의를 떠났다. 무 슬림이 대부분인 파키스탄에서 차별 받으며 살아가는 소수 종교 힌두교인에 대한 현 상황을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타르 사막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가뭄에 시달리는 건조한 이 곳 이 두 종교의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 사막에서는 무슬림과 힌두교인 들이 사이 좋게 지내며 죽어서도 같은 묘지에 묻힌다고 한다. 필자 일행은 종교소수자의 인권과 평화를 지향하는 파키스탄 비영리 단체 ‘신드교외지역협회’(SRPO) 의 도움을 받아 신드주 타르사막에 위치한 미르푸르카스, 우메콧, 타르파카 세 지역을 방문해 현지 단 체 및 의원들과 함께 소수 종교인들의 권리와, 이슬람 개종 강요, 힌두교인 혼인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파키스탄의 랄 말히 의원은 “파키스탄에는 힌두교인을 위한 법적 혼인제도가 마련돼있지 않아 많은 부 부들이 서류 등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정부에서는 인도의 관련법을 차용해 몇 가지 조항을 덧 붙인 힌두교인 혼인제도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덧붙인 조항 가운데 하나는 부부 중 한 사람이 결혼을 위해 강제 개종을 했을 경우, 결혼은 무효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선 이견이 있었다. 바루 말 암라니 기자 겸 인권운동가는 “실제로 강제 개종보다는 어린 소년소녀들이 종교가 다른 배우자와의 결혼을 부모에게 허락 받지 못해 도피하는 경우가 더 잦 다”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종교보다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학술회의에서 제기된 또 다른 문제는 힌두교 카스트 제도였다. 부유한 상위계층 일부를 제외한 90%는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정부는 마땅한 해결의지가 없어 보인다. 하 위 카스트에 속한 힌두교인들은 사원 및 종교건축물 공사 등에 동원되곤 하지만, 막상 완공 후에는 건 물 안으로 절대 출입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차별을 받고 있다. 이슬람과 힌두교 사이의 갈등, 그리고 힌두교 내부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종교의 다름을 받아들이 고 살아가는 타르 사막 주민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많은 것을 느꼈던 여정이었다. 나시르 아이자즈 아시아엔 파키스탄 지부장·번역 김아람 기자

Thar Desert where Hindu and Muslims bury their loved ones in common graveyard

While travelling across Thar, world’s 7th largest desert divided between Pakistan and India, one would be

amazed to know that the vast arid land faced with persisting drought and other natural calamities, is the cradle of interfaith harmony, where the Hindus and the Muslims bury their loved ones in common graveyards. The Thar Desert is also home a large number of temples and shrines of saints where the people of different faiths could be seen coming for pilgrimage. “The Muslims and Hindus have common cemeteries in desert villages and one of them named as ‘Ranna Sar graveyard’ is located near Chelhar village,” Bharu Mal Amrani, a local journalist and rights activist, told a group of newsmen from Karachi and Hyderabad during a meeting with people of religious minorities at Chelhar village near Mithi, the district headquarter town of Tharparkar on December 13, 2015. “First, we are human beings and then Hindu or Muslims, we all face the severities of drought and diseases alike being the common problems and never confront each other,” he said disapproving the general perception that there exists discrimination of any kind against the religious minorities in desert district. “We live and die together and are buried in same cemetery,” he said adding that Muslims, Meghwar, Bheel, Kolhi and other communities use to live in Chelhar village sharing their woes and joys. The journalists’ team was on visit of Mirpur Khas, Umerkot and Tharparkar, three districts of southern Sindh Province of Pakistan, bordering the India, in second week of December 2015. The four-day tour was arranged by Sindh Rural Partners’ Organization (SRPO), working for rights of religious minorities and interfaith harmony. The study tour was aimed at taking stock of the situation with regard to social, political and economic rights of religious minorities and certain repo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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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lage and homes of poor religious minorities Inner view of Shiv Temple

cases of abduction, forced conversion to Islam and marriages of Hindu girls besides observing the state of interfaith harmony. The three districts were chosen as majority of rural population in Mirpur Khas is composed of Bheels, Kolhis and Meghwars while they account fifty percent of the population in Umerkot and Tharparkar districts. The SRPO has formed a network of ten Local Support Organizations for effective liaison the oppressed communities. Bharu Mal, who represented the Association of Desert Development, disparaging the government policies, said: “The desert is rich in natural resources like country’s largest coal reserves and China Clay. We have 4.5 million cattle heads here that meet the 45 percent needs of meat of big cities but even then the desert people have scanty source of livelihood only because the government has not yet formulated any desert development policy.” He also spoke of absence of Land Grant Policy and Livestock Insurance schemes for desert that falls in the limits

of five districts - Tharparkar, Umerkot, Sanghar, Khairpur and Ghotki. Reejho Mal, a former chairman of local Union Council, also present there, endorsed Bharu’s views. As far as issues of relig ious minorities are concerned, both the persons however drew attention towards non-existence of Hindu Marriage Law in Pakistan. “The Hindus have no system of registration of marriages and thus Hindu couples face

hardships proving their marriage while applying for the computerized National Identity Cards,” they told. This issue was also raised by Mr. Lal Malhi, member, National Assembly of Pakistan, when the journalists’ team met him a day earlier at Umerkot. “The Federal government plans to introduce Hindu Marriage Bill in the parliament, which in fact has been copied from an Indian law with addition of certain new Articles. One of such Articles envi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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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with children of Meghwar community in a village

that the marriage would stand dissolved if a person converts to any other religion, and we have raised objection to it,” Lal Malhi told. T he pa rl ia ment a r ia n, who represents Hindu communities, told he intends to move two private bills – one for establishing National Commission on Minority Rights and the other against Forced Conversion. “Conversion to any other religion and marriage is a humanitarian problem but one should not be forced for it,” he exhorted. Hindu class difference issues

Certain cases of embracing Islam by Hindu girls of well off families and marrying to Muslims had been reported in northern parts of the province, however, in South the case was a little bit different, as majority of religious minorities belonged to lower castes living in abject poverty. “The ninety percent population of religious minorities in Sindh lives below the poverty line,” Lal Malhi confirmed. Bhar u Mal Amra n i however rejected allegations of abduction, forced conversion and marriages saying young Muslim girls too often elope when they fail to get consent of their parents and

same is the case with girls from religious minorities. “It’s a social issue and not the religious one,” he viewed. In Mirpur Khas, Mr. Mangha Ram Kewlani, the Secretary of Hindu Panchayat (Association) too dispelled the impression that their girls were being abducted, converted and married to Muslims. “No such case has taken place in southern districts,” he said however opined that it might have happened in schedule caste communities. It transpired during the discussion with official of Hindu Panchayat, representing Luhanas, the upper class caste in Hindus, that they keep Bheels, Kolhis, Meghwars and other lower caste people at distance and are indifferent to their problems. The men and women of these communities also voiced against such attitude of upper class Hindus when the journalists’ team visited some other towns. “We are victims of class difference, deep-rooted in Hindu society,” Vidya Meghwar, one of a dozen female members present at the office of Local Support Organization Development & Awareness Women Network (DAWN) told at Diplo, a historic town of Tharparkar. The organization, led by Muslim women,

is striving for the rights of female population of lower castes. Similar views were expressed by one Somji Mal Dharani, a retired government officer, in a meeting with officials of Sujag, another Local Support Organization, in same town. “The people of Meghwar community are mostly engaged in construction of temples and mosques, as they work as masons and laborers, but they are never allowed to enter when these worship places are built,” Somji, who himself a Meghwar, told. It was gathered during the study tour that different schedule castes like Bheel, Kolhi and Meghwar, deprived of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rights, had been encountering indifferent attitude even of their own elites and elected representatives. The religious minorities so divided due to class system and facing severe hardships caused by natural calamities and government indifference, were however peace-loving and believed in co-existence. They use to visit the shrines of Muslim Saints and their love and respect for the Muslim Saints is reciprocated by the Muslims who often visit the temples.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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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거인 알리바바 마윈 [ 9 ]

“잘못된 일을 정확하게 하면 빨리 망할 수 밖에 없다” 사 용자 에게 ‘무료

알리바바 비즈니스 모델의 특성은 구글에 가깝다.

의 매력’을 던져주고

이유는, 알리바바는 상품을 검색하는 엔진을 핵

더구나 닷컴버블이 터지며 투자자들이 자금회

심자산으로 해 광고수익을 올리는 기업이기 때문

수를 압박해 오면서 알리바바는 사면초가에 처하

이다.

게 된다. 그때 차이충신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건

사 용자 간의 ‘경쟁

에서 분란만 조장했다.

심’ 속에서 돈을 버

이런 비즈니스모델은 재무제표에서도 확인된

의했고 마윈은 해외지사와 고액 연봉자들에 대한

는 것이 알리바바의

다. 알리바바와 아마존의 매출액을 비교하면 알리

혹독한 감축을 시행한다. 광고예산도 없애고, 출

바바는 현저히 적은 수준이다. 이유는 알리바바는

장 시 호텔도 3성급으로 엄격하게 제한하는 자금

제품을 직접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통제에 나섰다.

비즈니스모델이다.

타오바오를 설립하고 이베이와 경쟁하는 동안

구조조정 당시 알리바바에는 2500만달러의

투자유치를 기반으로 마윈은 수익과는 별도로 공

투자금 중 1800만달러를 날려버리고, 단 700만달

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한다.

러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후 알리바바는 일단 중국시장을 먼저 장악하기로 전략을 수정하고, 기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일을 정확하게 할수록 더 빨

업문화를 바로세우는 내실 다지기에 모든 노력을

리 망하게 된다.”

기울이게 된다. 이 시기인 2005년, 야후로부터 10억달러(약 1

이 말은 마윈이 잘못된 해외 진출을 후회하며 남긴 이야기다. 홍콩과 영국에 현지 사무소를 설립했고, 일본,

것이야말로 재무적으로는 기사회생의 한 수였다 고 평가 된다.

대만, 한국에는 합자회사를 세웠다. 또 실리콘밸

이 결정으로 알리바바는 지분 40%를 야후에

리에는 20여명의 엘리트를 고용해 연구소를 세웠

넘겨주고 대신 야후차이나 포털사이트와 검색기

는데, 이들의 연봉은 최소 10만달러다. 부회장 차

술, 통신 및 광고업무 등 업무 일체를 넘겨받았다.

이충신이 알리바바로 오기 전 받았던 그 연봉이

당시 마윈은 전자상거래 서비스의 4대 요소를

다. 하지만 차이충신의 초기 월급이 500위안, 우

시장과 신용, 지불시스템과 ‘검색’으로 생각했다.

리 돈으로 10만원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유명

야후차이나의 운영권을 손에 넣은 마윈과 알리바

한 얘기다.

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알려진 검색 사업에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겠다면서 마윈의 강력

안동일 동아시아 연구가 <북관대첩비> <장수왕의 나라> 저자

조1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빅딜을 성사시킨

야심차게 진입을 시도한다.

한 의지로 일을 밀어붙였지만, 당시 알리바바는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이 일도 마냥 콧노래를

‘중급 공급상’이라는 핵심 수익모델을 찾기 전으

부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 결정은 결국 2013

로 전세계 지사들은 돈 먹는 하마에 불과했다. 야

년 9월 야후차이나가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대실

심차게 영입한 미국 MBA 엘리트들은 오히려 알

패’로 막을 내리게 된다. 알리바바 역사상 최대의

리바바의 기업문화와 어울리지 못하며, 회사 내

실패라고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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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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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이베이와 치열

스적 특성을 따져본다. 알리바바는 다

기 위해 판매자들에게 일정액의 보증금

한 경쟁을 펼치고 있던 상황에서, 무리하

른 업체와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알리바

과 수수료를 받는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

게 검색엔진 영역까지 전선을 넓히며 구

바를 특별하게 했는가. 아마존이 공급처

를 제외하고, 알리바바 그룹의 비즈니스

글, 바이두와 힘겨운 싸움을 펼친 것은 승

에서 제품을 직접 구매해서 소비자에게

모델은 기본적으로 ‘무료로 편리하고 자

산이 너무 낮은 싸움이었다는 분석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판매하는 인터넷

유롭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플랫폼을

판 월마트라면, 이베이는 판매자와 구매

제공’하는 데 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보다 똑똑한 방법으로 야

자를 연결하는 중개자(Middle man) 역

미국이나 한국의 전자상거래 소비자

후차이나를 매입했을 것이며, 사업 확장도 더

할을 하면서 수수료를 받는다. ‘중개’라

들은 일단 구글이나 포털에서 제품을 검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인터넷 기업들이 알리바

는 측면에서 알리바바는 이베이와 유사

색하고 비교하지만, 중국인들은 일단 알

바의 사례에서 배우는 바가 없다면 조만간 또

하다. 하지만, 이베이와 알리바바의 결정

리바바에서 물건을 검색한다. 그러니 제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적 차이점은 중개 수수료가 무료라는 점

품의 판매자들은 알리바바에 올리지 않

이다. 알리바바와 타오바오는 중개수수료

으면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없는 것이

대신에 광고수익에 의지한다.

현실이다. 소비자들은 알리바바를 유일

아마도 야후에 너무 많은 지분(40%) 을 양도한 것을 지적한 말인 것 같다.

알리바바는 소비자가 제품검색을 하

무이한 플랫폼으로 의존하고, 판매자들

2005년 10억달러를 투자한 야후는 지난

면 화면 상단에 노출시켜주고 광고료를

은 이 플랫폼에서 주목받기 위해 광고료

2012년 지분 절반 가량을 71억달러에 팔

받는 방식으로 광고수익을 올린다. 국내

를 지불하는 것이다.

았으며, 지난해 상장 당시에도 22.6%의

유명 포털의 프리미엄 링크와 동일한 비

사용자에게 ‘무료의 매력을 던져주고

알리바바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돼

즈니스 모델이다. 타오바오 닷컴에서는 8

사용자간의 ‘경쟁심’ 속에서 돈을 버는 것

2대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야후는

억개가 넘는 제품이 7백만이 넘는 판매

이 알리바바의 비즈니스모델이다. 바로

최소 14배를 남긴 셈이다. 알리바바야말

자들을 통해 중국 전역에 판매된다.

이 ‘무료’와 ‘경쟁심’이라는 두 단어에 알리 바바의 핵심가치가 있다.

로 전 세계적으로 침몰하는 야후호의 마

예외적으로 알리바바 그룹에서 유일

지막 호흡기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돌고

하게 수수료를 받는 서비스는 B2C 플랫

이같은 핵심가치 위에서 이베이를 몰

돈다는 얘기다.

폼인 티몰(Tmall)이다. 유명브랜드의 제

아내고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면서 회사

품을 판매하기에 거래의 안정성을 꾀하

는 날로 성장했다.

다시 알리바바와 타오바오의 비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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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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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고 싶으면 ‘문전 처리’ 완벽히 하라 사업 시작 때 그렇게 흐지부지하게 핵심기술을 취 득해서야 회사가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회 사가 성공하고 나니 그 사람이 해코치를 하기 시 작하다가 제풀에 망해버렸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사업이 제대로 자리도 잡기 전에 이 사업이 전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 했다. 이에 필자는 “내 지분은 당신이 재판 걸어서 가져가고, 나는 경영에서 손을 뗄 테니 잘 해보라” 고 했다. 회사가 거의 망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두 사람은 궁극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지 성공하고 싶으면 마무리를 잘해 야 한다.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 지만 골을 넣어야만 한다.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골이 분명히 골대로 필자는 비즈니스를 해오며 크게 성공한 사람, 성공

들어간다’는 것을 믿었으면 하프타임 때 집에 가질

직전에 실패한 사람 등을 여럿 만났다. 그러면서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어떤 프로젝트나 과실을 따

일본이 2차대전에 패한 것은 처음부터 대강 휘

먹는 사람은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이다. 노력하

젓고 강화조약으로 이익을 챙기려 했을 뿐 궁극적

는 것도 중요하지만 ‘골을 넣어야’ 하는 것이다. 그

으로 이기려고 전쟁을 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라

리고 같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골을 넣겠다”고 시

는 분석이 있다. 일본은 1차대전 때 그런 식으로 이

작한 사람은 끝까지 남아서 마지막에 같이 과실을

익을 챙겼다. 이기려고 한 전쟁이 아니니 이기는 것

따먹는데, 대강한 사람들은 전반전에 여기저기 뛰

은 이미 논외로 한 것이고, 잘 해야 무승부 아니면

어다니다 하프타임 때 집에 가버린다. 돌아보니 하

패전이다. 반면 소련은 “독일이든 일본이든 끝까지

프타임에 집에 가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골을 넣

가거나 우리가 몰살을 당하거나” 심정으로 싸웠다.

을 생각이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김영수 국제금융학자, 경제학박사

사업할 때 좀 시간을 가지고 오랫동안 고민해

필자가 지금 사업을 시작할 때 세 사람이 같

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전망이 정말 좋은가를 생

이 했다. 필자 지분은 4분의1 정도였다. 그런데 초

각해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들 말

창기에 그 중에 핵심기술을 가진 한 사람이 우리

한다. 과정이란 말은 결과가 있기 때문에 성립가

와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회사와도 이중계약을

능한 개념이다. 결과도 없이 무슨 과정이란 말인

하고, 또 다른 회사와도 3중계약을 했다. 그러면서

가? 나는 종종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정

회사의 노하우를 마구 퍼뜨리고 다녔다. 일단 그

말 성공하고 싶어, 아니면 그냥 열심히 노력하고

사람은 그렇게 탈락해 필자 지분이 2분의1로 올라

싶어?” 사업에서 내가 따먹을 수 있는 궁극적인

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 사람과 이중

과실은 뭔가, 그게 정말 따먹고 싶은건지 생각해

삼중 계약한 회사들은 파산했다. 당연한 일이다.

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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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이은택 연세대, 한양대 겸임교수 미국 휴스톤대 경영학박사

전역·취업 앞둔 이 땅의 아들딸들에게 “어떻게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가느냐구요? 뭐

공부할 때 제대로 좀 하지 하는 아쉬움도

의와 이해 없이 주어지는 지시, 전혀 성장

간단합니다.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갔지요. 진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네가 여기까지

배경이 다른 선후배들과의 소통과 협업,

정으로 바라는 사람은 이룰때까지 합니다.”

오는데 도움된 게 별로 없었다는 아쉬움

개인적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공동생활,

이 더 컸단다. 세상은 왜 그리 내 잘난 아

반복되는 힘든 훈련 등 엄청난 어려움을

들을 몰라주는지….

아들 너는 잘 헤쳐나와서 드디어 대한민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한 힐러리 경

국 육군병장 이 병장으로 전역했다.

“언젠가라는 말로 생각하면 실패한다. 지금이라

결국 그런 세상에 너는 네 존재를 알

는 말로 행동하면 성공한다.” 벤자민 프랭클린

리며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네가 사령장

나는 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받아 온 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

너 스스로도 네가 자랑스러웠지? 그땐 세

아들 잘 도착했니? 오늘은 날씨가 어제보

다. 그날 저녁 친구들 모임에서 은근히 자

상에 두려운 게 없었을 걸? 넌 엄청난 인

다 춥다던데…. 걸어가는 길이 춥지는 않

랑하다 속내를 들켜 왕창 뒤집어 썼다.

내심과 건강한 몸으로 뭉쳐진 자신감을 얻었을 거다.

았는지? 한 10분 걷는다고 했나? 빌딩숲

친구들이 참 부러워 하더라. 너를 어

사이로 내치는 새벽 칼바람이 만만치 않

릴 적부터 알아온 한 친구는 인사성이 참

졸업까지 한 학기 밖에 남지 않은 복

을텐데 말이다. 목도리 잘 여미거라. 오늘

밝더니 잘 풀렸다고 하더라. 어릴 적 아파

학생! 제대 후 지난 1년 남짓 취업을 위해

은 좀 늦어서 지하철에 사람들이 좀 많았

트 같은 동 어르신들 너 모르는 분이 없었

얼마나 뛰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력서는

겠네.

다. 너는 축구를 참 좋아했지? 내가 조금

백장도 더 쓰고 중국회사 사이트도 엄청

일찍 퇴근하면 저녁식사 후 나를 꼭 달빛

뒤졌지? “면접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

아래 골대로 불러내곤 했지.

다”라는 메일만 수십통 받았지? 그것들이

이제 딱 한 주가 지났네. 그래 한 주 다녀보니 어떠니? 학교나 집에서 경험치 못했던 세상이지? 그래도 군대병영 시절

비록 내가 반대해 선수로 뛰진 못했지

너를 실망시키고 좌절케도 했지만, 너는

이 조금 생각날 수도 있겠구나. 조직생활

만 지금도 동네 축구에 열심인 너는 참 변

취업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지원회

이고 위 아래가 있고 전혀 다른 성장배경

함 없이 보기 좋구나. 중고교 시절엔 친구

사 인사팀에 이메일도 쓰고 직접 찾아 다

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

들 너무 좋아해 같이 운동하고 어울려 다

니며 기가 꺾이지 않더라. 옆에서 보며 얼

이 조금 비슷한 면이 없지 않을 거다. 한번

니며 가끔 사고도 치곤 했지만 부모님 사

마나 안쓰러웠는지 넌 짐작하기 어려울 거

에 다 알려들지 말거라. 그리 되지도 않겠

업실패로 어려워진 친구에게 밥 사주려고

다. 내가 도와줄 것은 별로 없어 더욱 미

지만, 네가 몸으로 부딪치면서 조금씩 배

가끔 네 엄마에게 거짓말할 때도 밉지는

안했단다. 하지만 잘 버티고 끈질지게 두

워 나가면 된다.

않았다.

드린 끝에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어쨌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맘 고생이 많

동년배 친구들보다 늦게 간 군대에서

든 본선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지. 그게 지

았니? 어정쩡한 전공에 학점도 그리 잘 받

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니? 아마도 이

난 12월 중순이지. 그날 네 엄마한테 소식

지 못했으니 왕고시절에 시작한 중국어 앞

제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

듣고 몇 번을 확인했는지…. 아직 내가 너

세워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 아비 입장에

이었을 거다.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과의

를 못 믿는 것 같다.^^

서 안타깝기도 하거니와 아쉽기도 했다.

이별, 제한된 자유와 확실한 위계질서, 합

얼마 전 테드에서 본 강연인데, 안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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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리(Angela Lee Duckworth)라는 뉴욕 의 수학교사가 ‘성공의 열쇠, 인내심?’(key to the success, grit)이라는 제목으로 10 분 정도 얘기하더라. 경영컨설턴트로 일하 다 공립학교 수학교사로 옮긴지 10년째인 재미교포 3세 여성이지. 그녀는 어떻게 열등생들 학업성취도 를 높일 것인가 고민 중 공부 잘하는 친 구,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사람들, 월가 에서 변호사로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통점을 살펴보니 가문도, 학업도 IQ도 아니라 인내심이더라는 얘기야. 이 강연을 우리말로 쉽게 풀면 “한 우물 오래 끈질지 게 판다”는 뜻이지. 결국 성공의 열쇠는 인 내심이라는 거야. “군생활 인내심, 네 평생 자산이란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사회생활의 초입 에 선 너는 불확실, 저성장, 고용불안, 삼 포시대, 갑질, 불공정 등이란 심란한 단어 에 미리부터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이제까 지 너는 참 잘 해 왔거든. 만만치 않은 입 시제도와 녹록치 않은 군생활 및 취업경 쟁을 뚫고 이제 막 본선에 나섰다. 결선에 오른 너를 내가 얼마나 자랑스 러운지 잊지 말기 바란다. 네가 견뎌내고 노력한 결과에 대해 너는 마음껏 자랑해 도 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인근에 사 무실이 많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맛있는 점심 먹는 것도 만만치 않지? 그래도 줄 잘 서서 영양가 있는 식사 값싸게 하면 좋 겠구나. 혼자만 잘 먹으면 재미없으니 직 장 선후배들과 꼭 같이 먹으며 즐거운 시 간 만들거라. 사랑한다 아들.^^ 그리고 이 말을 늘 명심해줬으면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네게 군생활을 통 해 몸에 밴 인내심이 얼마나 많은 자신감 다는 사실을….

뉴시스

을 주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깨닫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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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김국헌 군사학박사 국방부 정책기획관 역임

‘삼성 바이오’ 결단 이재용 리더십, ‘태조’ ‘태종’ 이어 삼성家 도약 이룰까? 뉴시스

소기업을 좇아가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 나 새롭게 시작하는 바이오 부문에서는 앞설 수 있다. 바이오산업 특히 신약의 가 득소득은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을 수십 배 앞선다. 파리 기후협정에서 규정되었듯 이 이제 한국에서 굴뚝산업은 유지하기 어렵다. 삼성이 바이오산업에 명운을 건 것은 획기적 결단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태조 이성계와 같다고 하면,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은 태종 이방원과 같은 업적을 이루었는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 떠할는지 궁금하였는데 새로운 경지를 여 는 것을 보니 든든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영접하는 것을 보니 마

삼성이 바이오 산업을 일으키는 기지가

그런데 송도에 가서 ‘21세기 한국의 경

치 스케이트의 여제(女帝) 김연아가 박 대

될 인천 송도에 가봤다. 그곳엔 ‘인천의

제수도는 인천’인 것을 확인하고 상하이

통령을 맞을 때와 같이 당당한 것도 인상

꿈,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적힌 대형 플래

와 겨룰 날을 꿈꾼다. 인천의 안상수, 제주

적이었다.

카드가 걸렸다. 이를 보니 60여년 전 “한

도의 원희룡 등은 앞으로 주목할 만한 지

우리는 젊음을 살려야 한다. 지금까지

국의 미래를 보려면 ‘서울의 동북’ 화랑대

도자다. 업적은 숫자로 말한다. 뭐라 해도

산업화, 민주화에 수고해온 50~60대는

육군사관학교를 보라”고 하였고, 40여년

무디스에서 한국경제를 높게 평가한 것은

나름대로 역할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앞

전 관악캠퍼스로 서울대가 함께 모일 때

박근혜 대통령, 최경환 경제부총리에 일

으로 세계화, 선진화의 주력은 30~40대

“누가 민족의 갈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단 공이 돌아가야 하는 것과 같다.

이다. 캐나다 트뤼도 수상이 얼마나 힘이

관악을 보게 하라”라는 정희성 시인의 시 구가 그랬듯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필자의 고등학교 시절 19세기가 물

넘치는가? 우리 사회에서 선거로 세대교

리학의 세기였다면, 20세기는 화학의 세

체를 이루기는 쉽지 않을지 모른다. 1987

십수년 전 중국에 갔을 때 “‘19세기 세

기,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라

년 체제는 제도만이 아니라 세대가 고착

계의 수도가 런던’이었다고 하면, ‘20세기

고 들었다. 국가 번영전략에서 런던, 싱가

되어 있었다. 이 시대 우리 사회는 새로운

의 수도는 뉴욕’, ‘21세기의 중심은 상하

포르와 같이 금융서비스도 중요하나 국력

피가 수혈된 혁명이 필요하다. 이재용 부

이’”라는 소리를 듣고 속이 은근히 편치

의 기초는 역시 생산이다. 우리가 유구한

회장 등 젊은 지도력에 기대하고 힘을 모

않았었다.

역사를 가진 독일, 스위스, 일본 등의 강

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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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

핵보다 진짜 ‘위협’은 화학무기… 미국 등 강대국 논리 무작정 좇는건 ‘위험’ 뉴시스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충분한 양의 화학

갈 때 심리적 공황은 해소할 길이 없다.

무기와 항공기, 유도탄, 장사정포 등 투발

이쯤 되면 싸움을 포기하고 패전이 된다.

수단도 갖추고 있다. 핵은 원자탄이든 수

그런데 시간(몇 시간 또는 며칠)이 지나면

소탄이든 한반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

오염지역은 해독되고 건물과 무기 및 장

기가 아니다.

비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스란히 남

핵무기는 열, 폭풍, 방사능 등 3가지 효과가 있다. 이 3가지 효과 중에서도 방

그 뿐만이 아니다. 화학무기 등 대량

사능효과는 장기간 지속돼, 잔류방사능

살상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국제협정에

오염지역에서는 오랫동안 군부대의 점

도 불구하고 화학무기를 사용한 측은 규

령(주둔)이나 주민 거주가 불가능하다.

탄을 받을 뿐 응징당한 예가 없다. 대다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수 강대국들은 과거 화학무기 사용 전과

에 미군의 원자폭탄이 투발된 지 70년이

(前過)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북한의 핵

지난 오늘날에도 (방사능에 오염된) 원자

실험 후 미국은 북한 핵실험을 규탄할 뿐

병 환자가 많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한의 화학무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그후 한국전쟁, 중동전쟁, 베트남전 쟁 등에서 핵폭탄은 사용되지 않았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핵무기 폭발 피해 예상도

아있다. 이 또한 화학무기의 이점이다.

없다. 화학무기로는 미국을 공격할 수 없 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의 핵무기’라고 일컬어지는 화

한반도 현실에서 무엇보다 ‘위협인식’

학무기는 다르다. 북한이 이미 반세기 전

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국 등 강대국

지난 1월6일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부터 제작·보유한 화학탄은 공격 측에

판단과 논리에 그대로 따르기보다 북한

여러 나라의 반응은 우려와 비난 일색이

는 매력있는(?) 무기다. 값싸고 제작하기

과 우리의 능력과 강·약점을 냉철하게 판

다. 미국은 이에 더해 구체적 제재에 나서

쉬운데 비해 효과가 엄청나게 크다. 화학

단,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이번 북핵 실

고 있다. 우리는 마땅한 제재수단이 없어

무기 살상효과는 핵무기 못지않다. 더 큰

험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온 나라가 북핵

모두 한 목소리로 북한을 비난할 뿐 유효

효과는 적을 심리적 공황(psychological

문제에만 경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한 대책을 내 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안

panic)상태에 빠뜨릴 수 있다. 전장의 전

안 된다. 북한이 이미 반세기 전부터 힘

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북한의 무기가 무

투원들은, 적탄이 날아오는데 적은 보이

들여 구비한 화학전 능력으로 보아 실전

엇인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북핵

지 않을 때 더 큰 두려움을 느낀다. 군인

에서 핵무기보다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보도만 쏟아내고 있다. 우리에게 치명적

들이 주간전투보다 야간전투를 싫어하는

화학무기에 대한 대비책이 더 긴요하고

위협이 되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화학

이유다. 독가스는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

시급하다. 그리고 북의 핵무기 문제는 미

무기다. 만약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다면

만 죽일 뿐이다. 적은 보이지 않는데 전

국이 해결하도록 그냥 맡겨두는 것이 현

핵무기 대신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기

우들이 목을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죽어

실적으로 현명한 대책이다.


070

Perspectives

magazine N | 201602

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 17 ]

총통 당선 직후부터 ‘양안갈등’에 직면한 차이잉원 AP

총통 선거에서 현 마잉지우(馬英九) 총통에게 분 패했던 설욕을 갚은 것이다. 천수이볜(陳水扁) 총 통 당시 행정원 부위원장을 지냄으로써 행정 경험 도 갖추고 있다. 국립대만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법학석사와 박사 를 받은 뒤 국립정치대에서 교수를 지낸 학자 출신 이다. 그러나 나라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 지 않다는 점에서 승리의 축배(祝杯)를 들기에는 아 직 이른 것이 현실이다. 내부적으로는 경제난 해결 이 시급하며, 외부적으로는 중국과의 양안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 대만의 경기 침체가 중국경제 에 과도하게 휘둘리고 있는데서 야기됐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양안문제로 초점이 좁혀지게 된다. 결국 국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결정적인 원인도 양안관계의 완급 조절에 실패한 때문이었 다. 마잉지우 총통이 2010년 중국과 관세 감면과 서 비스시장 개방을 내용으로 하는 경제협력기본협정 (ECFA)을 체결하는 등 친(親)중국 정책을 가속화 해 왔으나 지금에 이르러 오히려 대만 경제의 발목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대만 어디에 있는가>, <일본, 조선총 독부를 세우다> 저자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이 압도적인 지지로

을 잡은 측면이 다분하다. 기업 자본의 대륙 유출이

총통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대만은 1996년 총통

심화됐고 결과적으로 대만 내에서는 일자리 부족

직선제 도입 이래 3번째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함

으로 젊은이들의 실업난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께 선거가 실시된 입법원에서도 집권당인 국민당을

경제 문제를 떠나서도 대만의 정체성 문제와 관

밀쳐내고 다수석을 차지했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련하여 중국과의 관계설정이 심각한 과제로 떠오

빈부·도농·이념적으로 대립을 보이던 지역적 차이

르고 있다. 중국과의 통일이냐, 아니면 독립이냐의

를 넘어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율로 당선됐다는 점

논란이 그것이다. 차이 당선자는 이와 관련해 ‘현상

에서도 그녀에 대한 신뢰도를 짐작하게 된다.

유지’ 정책을 통해 양안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겠

차이 당선자 본인은 대만 역사에서 첫 ‘마담

다는 공약을 내세워 왔다. 민진당이 태생적으로 대

프레지던트’라는 기록까지 세우게 되었다. 4년 전

만 독립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는 유보적인 입장


071

magazine N | 201602

으로 돌아선 셈이다. 선거 과정에서 가급적 중국을

차이 당선자는 당선소감에서 “최근의 쯔위 논란은 나에게 국가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강력하게 만들고 외부에 대해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중화민국 총

하지만 그녀의 ‘현상유지’라는 게 그동안 국민 당 정부가 추진해왔던 정책과 똑같을 수는 없을 것

통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고 밝혔다. 또한 중

이다. 마잉지우는 집권기간을 통해 ‘통일하지 않고,

국의 억압은 양안관계의 안정을 파괴할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독립하지 않고,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無統·無獨· 無武)’ 이른바 ‘3무(三無)정책’을 추진해왔다. 그 바

지를 내보냈다. 차이 당선자에 대한 축하나 기대의

탕이 ‘하나의 중국’ 원칙 위에서 서로가 중국을 대

언급은 없었다. 오히려 차이 당선자와 대만독립 논

표할 수 있다는 ‘1992년 공식(共識)’이다. 그러나 차

쟁을 일으킨 쯔위에 대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이 당선자는 이 기본 원칙부터 인정하지 않겠다는

(微博)에서 검색을 차단하는 조치가 취해졌을 뿐

입장이다.

이다.

이런 상황인 만큼 중국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그러나 이러한 외부 압력에도 불구하고 대만

수밖에 없다. 대만이 독립을 추구할 경우 티베트와

내에서 젊은 세대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국가 정

신장, 홍콩과 마카오의 관할 문제까지 위기에 직면

체성 찾기 움직임이 앞으로도 더 거세질 것으로 전

할 가능성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망된다. 다시 말해서,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마잉지우 총통과 싱가포르

나려는 시도다. 2014년 입법원을 점거했던 ‘해바라

에서 역사상 첫 양안 정상회담까지 가졌던 것도 국

기 시위’와 지난해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개편을 둘

민당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한편 민진당에 대한

러싼 학생들의 집단적 반발이 그런 사례다. 국호를

경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중화민국’ 대신 ‘대만국(台灣國)’으로 바꾸자는 주

더구나 선거 막판에 뜻하지 않게 쯔위(周子瑜) 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짐으로써 대만해협에는 벌

장도 마찬가지다. 차이잉원의 당선은 이러한 시대 적 분위기에 편승한 결과일 뿐이다.

써부터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국 걸그룹 트와이

중국의 입장으로서도 대만의 독립 주장에 대

스의 대만출신 멤버인 쯔위가 한국 텔레비전에 청

한 견제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과거처럼 대

천백일기를 흔드는 장면이 방영된 것이 빌미였다.

만해협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겠으나 세계적인

이 장면을 놓고 쯔위가 독립주의자라는 논란이 거

대국으로 올라선 마당에 마음대로 무력시위에 나

세졌으며, 결국 중국 내에서 공연이 전면 취소되는

서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도 ‘대만관계법’에

사태까지 초래되면서 선거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던

따라 만일에 사태에 있어서는 양안문제에 직접 개

것이다.

입한다는 방침을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최근 대만

차이 당선자는 당선소감에서도 바로 이 문제 를 꺼내들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국가를 강력하게

에 무기판매 방침을 발표했던 데서도 미국의 의중 이 드러난다.

만들고 외부에 대해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중화민

차이잉원도 집권기간을 통해 지금의 국민당보

국 총통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것을 일깨워줬다”

다는 중국을 약간 멀리하고 미국에 더 가까이 다가

고 했다. 중국의 억압은 양안관계의 안정을 파괴할

서겠다는 의중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예측·지속이 가능한 바탕 위

도 더 밀접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과연 어느

에서 ‘현상 유지’를 추구해 나가겠다는 양안정책의

한도까지 그것을 용인할 것인지가 양안관계의 초점

틀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폭풍을 만나 출렁대고 있

이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불황기에 차이

는 모습이다.

잉원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할

중국 당국의 대응도 주목할 만하다. 선거 결과

수 있겠느냐 하는 점도 관건이다. 승리의 축배가 순

가 나온 직후 발표된 성명에서 “어떤 형태로든 대만

식간에 쓰라린 독배(毒杯)로 변할 수도 있는 것이

독립을 위한 분열활동에 반대한다”는 경고성 메시

지금 대만이 처한 여건이다.


Perspectives

072

magazine N | 201602

박명윤의 웰빙 100세 [ 20 ]

불안과 분노로 힘드신가요? 국화차·연잎차·솔잎차로 달래세요 정형돈 방송중단과 불안장애 [ 하 ] 불안장애에 해당하는 질환에는 공포증, 공황장애,

레스 장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극심한 정신적

범(凡)불안장애, 강박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

충격을 일으키는 사고나 재해 등이 원인으로 주로

애, 급성 스트레스 장애 등이 있다. 공포증(恐怖症)

발병한다.

은 실제로는 위험이 없는 대상이나 상황을 두려워

진단은 정신과 전문의의 진찰과 병력 청취, 질

하고 회피하는 것을 말하며, 범불안장애는 지속적

의응답 등의 과정을 통하여 내려지며, 평가 설문지

이고 통제할 수 없는 걱정이 특징이다. 강박장애는

를 통하여 질병의 심각성을 평가할 수 있다. 또한

통제할 수 없는 생각, 충동, 이미지를 떠올리고 반

불안 증상을 가지는 다른 질병과의 감별 진단을 위

복적인 행동 또는 정신적 행위(강박행동)를 한다.

해 혈액검사나 뇌(腦)검사 등을 시행할 수 있다.

외상(外傷)후 스트레스 장애는 자연재해, 교통

전문의의 진단 과정을 거쳐 불안장애의 세부

사고, 폭행 등 분명한 외상적 경험 후에 지속적으

진단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대체

로 고통스러움이 반복되는 장애이다. 대형참사 이

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이용한 약물치료가 시

후 살아남은 사람이 몇 년이 지나서까지도 사고와

행된다. 불안과 관련된 정신의 무의식적인 부분을

관련된 생각 때문에 심한 불안을 경험하는 것이다.

다루는 정신분석치료도 있다. 불안장애는 약물치

특징적인 증상은 각성 수준 증가, 정서의 둔감, 증

료와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하면 90% 이상 낫는다

상의 재경험 등이며, 또한 해당 사건을 회상하면 불

는 게 정설이다.

안을 겪게 된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은 외 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다. 공황장애는 현기증, 심계항진(心悸亢進), 떨림 등의 증상이 갑자기 발생하고 무언가 일어날 것 같 은 공포심이 수반된다. 주기적인 강렬한 공황 발작 을 호소한다. 때로는 공황발작으로 인하여 집밖으 로 외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공공장소에 있는 것 이 두려운 광장(廣場)공포증이 따르기도 한다. 불안장애에는 성격이 다른 여러 정신질환이 속 해 있기 때문에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 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안이나 우울 등의 정서적 인 부분을 담당하는 뇌신경 내의 신경전달물질의 부족 또는 과다, 뇌의 기능적 또는 구조적 변화, 사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회심리적인 측면, 인지행동적인 부분 등이 병적인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외상 후 스트


073

magazine N | 201602

벡(Aaron T. Beck)의 인지치료는 초기에는 주

불안증, 우울증 등에 기존 치료를 보완하는 요

로 우울증에 적용되었으나 나중에는 다양한 심리

법으로 명상(瞑想·meditation)이 활용되고 있다.

장애에 적용되었다. 벡은 우울증, 불안장애, 성격문

마음의 긴장을 풀고 내면의 세계로 몰입하는 명상

제 등의 치료에 인지이론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을 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집중명상’

인지행동치료는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

은 한 가지 사물이나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며, ‘마

들을 극복하도록 돕는 것에 초점을 두며, 건강한

음챙김명상’은 명상하는 순간의 행동에 집중하는

적응 행동은 촉진하고 부적응 행동은 변화시키는

것이다.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지행동치료가 기존의 여타

분당차병원은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의 진

심리치료를 따돌리고 주류 심리치료법으로 성장하

단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명상인지치료를 실

기에는 협력적 경험주의에 입각한 근거중심의 연구

시하고 있다. 명상인지치료는 마 음챙김명상

방법론을 채택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프로그

불안은 정상적인 심리 반응이기 때문에 불안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절한 치료에 의

램에 인지치료를 결합한 것으로 8주 동안 그룹치료 로 진행된다.

해 불안 정도가 감소하고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

가부좌로 앉아서 복식호흡(단전호흡)을 하면

지만 재발이 될 수 있다. 또한 불안장애는 흔하게

서 명상을 하면 뇌의 교감신경계가 안정되고 부교

우울증을 동반하며, 불안을 줄이기 위하여 음주를

감신경계는 활성화된다. 뇌 속의 세타파가 감소해

자주 하면 알코올

생각이 또렷해지면

의존과 같은 중독

서 집중력이 높아

질환이 발생하므로

지고 인지능력이

주의하여야 한다.

향상된다. 명상은

최근 경제협력

정신적인 안정을 가

개발기구(OECD)

져와 삶의 질을 높

가 발표한 보건관

여준다.

련 자료(Health at

불안장애는 다

a Glance, 2015)에

양한 원인에 의해

따르면 우리나라는

발생하므로 예방이

OECD 회원국 중

쉽지 않다. 그러나

자살률이 인구 10

휴식, 취미활동 등

만명당 29.1명으로 가장 높은 반면, 우울증(憂鬱

심리적 이완을 통해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관리하

症) 치료는 최저 수준으로 조사됐다. 즉 우리나라

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안장애를 완화하거나, 나쁜

의 항우울제(抗憂鬱劑) 복용량은 인구 1000명당

영향을 주는 음식은 없으나, 공황장애 환자가 커피

20DDD(의약품 하루 소비량, 2013년 기준)로 28개

등 카페인을 섭취할 경우 심장 박동수가 변하는 증

조사 대상국 가운데 두 번째로 낮았다.

상이 있으면 카페인 함유 음식을 피하는 것이 좋다.

OECD 회원국의 항우울제 하루 평균 소비량

한의학에서는 불안과 분노는 열(熱)이 너무 올

은 1000명당 58DDD로 한국의 2.9배에 달한다. 우

라서 생기는 증상이므로 열을 내려주는 시원한 식

울증을 초기에 치료할 경우 완치 확률이 매우 높지

품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국화차(菊花茶)

만, 우울증을 방치해 악화될 경우 자살 등 극단적

는 열을 내리고 들뜬 상태를 차분하게 해주며, 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우리 사회가 정

잎차나 송화차도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

신과 환자를 보는 부정적 시선으로 인하여 질병을

오미자차, 연잎차는 약해진 담(膽)의 기능을 도와

키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안과 우울을 완화시키는데 효과가 있다.


Perspectives

074

magazine N | 201602

천비키의 명상 24시 [ 15 ]

하루를 활기차게 열어주는 아침명상 8가지 새해가 되면 누구나 한번쯤 새로운 뜻을 세워 꿈을

과거 필자의 모습이다. 지금은 어떤가? 아침에

정되어 있는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꿈을 이

잠에서 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환하게 미소

룰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짓기다. 자명종 소리도 자연의 부드러운 음악으로

영어 표현 중에 ‘first thing in the morning’

짧게 맞추어 하루를 리드미컬하게 연다. 자연소리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에 첫 의식을 미소로 물들이며 “아, 잘 잤다. 감사합

은 “아침에 처음 하는 일로 잊지 않고 꼭 해야 할 중

니다” 하고 몸을 활짝 기지개를 편다. 내가 누구인

요한 일”이란 뜻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많

지, 나에 대한 어떤 기억도 없는 텅 빈 의식에 미소

이 잡아먹는다는 말과 비슷하다. 한자어로는 ‘조기

와 감사로 벌어진 입 속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온다.

삼광 지기삼황’(早起三光 遲起三慌)이란 말도 있다.

감사로 활짝 벌어진 입만큼 들어오는 신선함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세 가지 광명이, 늦게 일어나

따라 하루의 행복이 펼쳐진다. 웃음으로 얼굴이 진

면 세 가지 암흑이 있다”는 말이 있듯 각국에는 아

짜 꽃피울 때까지, 몸과 마음이 깨어나 하나 될 때

침의 소중함을 담은 말들이 많다. 따라서 아침을

까지 잠자리에 일어나지 않는다. 충분히 몸에게 시

어떻게 맞이하고, 어떤 기분으로 무엇을 시작하느

간을 준다.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이 지구별에 처음

냐에 따라 하루의 행복이 결정된다.

태어난 아기처럼 머리에서부터 온 몸을 천천히 느

아침은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시간이

낀다. 의식이 온몸에 다 들어올 때까지 충분히 느

다. 이슬을 머금은 공기처럼 투명하다. 모든 만물은

끼며 기다린다. 몸과 마음이 풀어진 이때야말로 하

아침의 태양을 받고 황금빛으로 물들며 생기를 되

루를 어떻게 만들어갈 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질

찾는다. 그러므로 아침은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새

문을 던지기에 최상의 시간이다. 잠에서 덜 깨어난

롭게 시작하는 황금의 시간이며 생명의 시간이다.

느슨한 상태는 내가 원하는 일을 쉽게 그려볼 수 있

당신은 어떻게 아침을 맞이하며 무엇을 하는

천비키 본명상 코치 코엑스, LS그룹, 농협하나로유통, 육 군부대 등에서 명상 지도

빠진 호흡에 정신도 뛰어나간다.

이루고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시간은 한

기 때문이다.

가? 아침을 쫓기며 맞는 사람과, 맑은 마음으로 맞

그래서 과거에는 억지로 일어나려고 애를 썻지

이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자명종 소리에 인상을

만, 지금은 이 몽롱한 상태를 몽환적 상태로 즐기

찌푸리고 힘겹게 일어나는 사람의 모습이다. 내려

고 활용을 한다. 하나둘 질문에 맞춰 떠오르는 답

앉은 눈꺼풀만큼이나, 아침이 무겁고 버거워 늘어

과 함께 점점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고 잃어버렸던

져 있다가 허둥댄다.

일도 생각이 난다. 영상으로 선명하게 보이기도 한

하루의 시작이 요란한 만큼 정신도 소란하다.

다. 어느 정도 선명함이 느껴지면 일어나 화장실에

‘5분만 더’ 하는 잠의 유혹에 빠져버린다. 잠시 눕

가서 거울을 보고 다시 활짝 웃음을 짓는다. 가볍

는다는 게 15분, 아니 1시간이 지나서야 일어났다.

게 씻고 닦는 정화의 작업 후, 몇 가지 몸명상으로

“아뿔싸!”를 외치며 발을 동동 굴러 뛰어나간다. 가

몸을 푼다.


075

magazine N | 201602

그런 다음 명상노트를 펼치고 마음에 올라오는

➑ 풍요로운 느낌 속에 두 손을 합장하여 에너지를 집중

내용들을 아무 판단 없이 써내려간다. 한 자 한 자,

시킨 후,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마음으로 몸을 숙여 마

한 문장 한 문장 써가면 내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

무리한다.

는지 보인다.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갈 지도 어느새 답이 나온다. 노트에 자신에게 떠오르

필자는 의도의 명상을 할 때마다 맑은 물을 뜨

는 생각과 감정을 마치 ‘주문’처럼 쓰고 읽으며, 서

고 초를 켠다. 잡념이 들 때면 잠시 눈을 떠서 불꽃

각을 새기듯 정성스럽게 적는다.

을 바라보며 집중하기 위해서다. 나의 의식처럼 맑

이제 노트에 자신의 다짐을 쓴 ‘의도문’을 갖고

고 투명한 물을 통해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의도의 명상에 들어간다. 15~20분

서다. 더불어 모든 자연에 감사하기 위해서 물과 불

정도 진행하면 좋다.

을 함께 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아침에 해야 하는 일도 중요

➊ 크게 들이켜서 내뱉으며 몸을 이완한다.

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무엇일까? 바로

➋ 배 속 깊이 들이키고 내뱉으며 마음을 텅 비운다.

핸드폰이나 TV, 컴퓨터, 라디오, 신문 등을 접촉하

➌ 온몸으로 들이키고 내뱉으며 편안한 몸과 고요한 마

지 않는 것이다.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외부

음을 하나로 느낀다.

에서 들어오는 정보는 정신을 분산시킨다. 분산된

➍ 최대한 머리에서부터 꼬리뼈가 일직선이 되도록 몸을

마음은 소중한 마음의 씨앗인 의도를 깨뜨린다. 정

바로 세워 왕(王)자로 좌정한다.

신이 의도로 통일 되고 맑은 기운으로 꽉 채워질 때

➎ 잠시 고요 속에서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사할 일들

비로소 세상과 접촉한다. 그 때 세상은 내 의도로

을 찾아본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존재하기까지 모든 것에

꽉 차게 된다. 꿈을 이루는 방법이다.

대해 감사를 느껴 마음을 따뜻하게 연다.

이 소중한 아침, 당신은 한 해의 시작을 어떻게

➏ 그 열림 속에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의도를 진심으로 짧

보낼 것인가. 2016년도의 아침은 ‘의도의 명상’으로

게 세 번 염원한다.

하루 하루를 새날로 열어보자. 매일 아침, 처음에

➐ 그 의도가 내 몸과 마음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날숨에

하는 일로 원하는 것을 마음 속으로 그리고 느끼며

의도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들숨에 의도를 깊

행복과 건강, 그리고 풍요를 불러 꿈과 희망이 가득

이 품는다. 그 느낌을 여러차례 느끼며 환히 미소 짓는다.

한 해로 만들자.


076

Perspectives

magazine N | 201602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 11 ]

“커피는 불화 속에서 발전한다” 구한말서 IMF까지 ‘한국 커피 굴곡사’

한국 커피의 역사가 시작된 곳 중 하나인 손탁호텔. 구한말 지식인들은 이 곳에서 커피를 향유했다.

박영순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 겸임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국민 1명이 하루에 커피를 2잔씩 마시는 나라, 한

보니 살벌한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의 전쟁

해동안 성인 1인당 마시는 커피가 430잔을 넘는 나

터 아닌가. 질주하는 ‘설국열차(Snowpiercer)’ 안에

라, 커피전문점이 전봇대만큼 흔한 나라…. 한국의

서 먹을거리는 한정돼 있어 임계점을 넘은 입들은

커피열풍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가차 없이 창밖으로 내던져질 판이다.

된다 싶으면 빠르게 쫓아가는 우리 겨레의 근성

기차 안은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 양진영의

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커피시장

공방이 치열하다. 기차 뒷켠에서 기죽어 지내던 원

은 매년 20% 성장가도를 달려 지난해에는 4조원을

두커피가 어느새 공간의 40%를 넘어서 절반을 차

넘어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커

지하겠노라 으르렁대고 있다. 어떻게 해야 냉혹한

피가 단일품목으로서는 전세계에서 석유 다음으로

커피생태계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커피에 뛰어들

많은 물동량을 과시한다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커

려고 하니 “상투 잡는 거야”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피로 꿈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것만 같다. 어디를 비집고 들어가야 살 수 있을까?

‘커피에 인생을 걸겠노라’ 기차에 올라탔긴 했는

한국의 커피역사를 자세히 뜯어보면 굴곡(屈

데, 안에서 보는 풍경은 결코 낙관적이진 않다. 한

曲)이 있었고, 부침(浮沈)도 많았다. 커피는 불화

없이 영역을 늘려갈 것만 같았던 커피시장이 알고

(不和) 속에서 발전해왔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


077

magazine N | 201602

시에르의 ‘합의를 추구하

지식인다방과 마

기보다는 불화를 용인하

담다방이 내던 ‘불

는 것이 차라리 민주주의의

협화 음’ 속에서

핵심이다’는 명언에서 빌린

커피는 ‘대중화’라

이 명제는 ‘커피의 미래’를

는 소중한 자산을 얻게 된다. ‘전국의

예측할 수 있는 멋진 프레임

사장님들은 모두 마담다

(frame)이 될 만하다.

방에 몰려있다’는 말이 나올 정

한국 커피의 시작은 구한말 아관파 천(1896년) 때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나라님부

도로 인기가 극에 달할 즈음, 수상한 기운이 감돈

터 즐긴 커피는 최고급 공간인 인천 대불호텔(최초

다. 1976년 동서식품이 커피믹스를 개발한 데 이어

의 서양식 호텔, 1888년), 손탁호텔(서울 최초의 호

2년 뒤인 1978년에는 커피자판기가 깔리기 시작한

텔, 1902년), 조선호텔(1914년) 등을 중심으로 고관

것이다. 뜨거운 물에 믹스봉투를 툭 털어 넣는 것

대작들의 문화생활로 금세 둥지를 틀었다. 커피가

만으로 다방커피 못지않은 커피를 사무실에서 즐

국민들의 일상에서 목격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

길 수 있게 되고,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도란도

대 일본 사람들이 명동에 다방을 열면서부터다. 한

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 역시 자판기 주변 벤치

국인이 차린 다방은 1927년 영화 ‘춘희’를 만든 이경

나 휴게실 등지에서 심심찮게 목격됐다. 기세등등

손 감독의 ‘카카듀’다. 이를 시작으로 배우 김용규

하던 마담다방도 이내 풀이 죽게 됐다. 이후 젊은

의 ‘멕시코다방’, 건축가 이순석의 ‘낙랑파라’, 천재

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음악다방’도

시인 이상의 ‘제비’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워크맨(Walk Man, 1979년)을 필두로 한 휴대용

문화적-비생산적 활동을 추구하는 유한계급 (leisured classes)에게, 커피는 명품가방을 소비하

카세트플레이어가 보급되면서 인기가 사그라들긴 했지만 말이다.

는 심리처럼 자신을 과시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

지금 당신이 1979년도에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처럼 커피가 지식인들의 문화적 취향을 표출하던

이같이 여러 주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커피

트렌드는 한국전쟁 직후까지 이어지다가 1960년대

업에 뛰어들겠는가?

들어서 전환점을 맞는다. 미군 PX을 통해 유통량

물론 마담다방이 바로 꼬리를 내린 것은 아니

이 넉넉해진 커피는 ‘유한계급들의 문화소비’를 동

다. 마담다방에 한줄기 희망은 1982년 1월5일 급작

경하던 대중 사이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당시 비즈

스레 터져 나왔다. 37년간 밤을 묶어 두던 야간통

니스를 고민하던 사람들에게는 커피는 지금처럼 노

행금지가 풀리면서 마담다방은 심야다방이라는 옵

다지로 보였을 법하다.

션을 장착하며 ‘빅뱅시대’로 접어든다. 1996년 다방

1960년 이후 ‘마담다방’ 30년간 전성기 만약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지식인들이 운영하던 ‘고품격 다방’을 꺾기 위해 어떤 전략을 썼 겠는가?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지만, 공룡에게 갑 작스레 다가온 빙하기처럼 ‘지식인다방’을 멸종시 킨 것은 예쁜 종업원과 눈웃음치는 마담을 내세 운 다방의 등장이었다. 이른바 ‘마담 다방’은 1990년대 스타벅스로 대변 되는 원두커피전문점이 부흥하기 이 전인 30년간 전성기를 구가한다.


Perspectives

078

magazine N | 201602

커피비평가협회(CCA)

미국 LA의 스페셜티 커피전문 점 ‘고 겟 뎀 타이거’

의 수는 전국적으로 4만1008개소를 기록하고 이후

다. 그러다보니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와 정신을 이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마담다방에 치명타를 날린

어가기 위해 커피를 직접 볶아 서비스하는 로스터

것은, ‘커피 본연의 맛을 추구하자’는 기치를 내걸고

리 카페가 커피업계의 화두로 등극하고 있는 시점

1988년 ‘자뎅’을 신호로 문을 열기 시작한 원두커피

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 로스터리 카페를

전문점들이었다.

불러온 것은 1997년 12월3일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커피비즈니스를 노리던 사람들이라면

(국가부도위기)’이라는 ‘국가적 불화’였다.

19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나온 ‘커피수입 자유

고환율이 원두커피 수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

화’(1987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했어야 했

자 생두수입업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생두

다. 커피수입 자유화로 ‘원두커피’를 수입하고 유

를 일단 볶아야 한 잔의 커피가 되는 것이 아닌가.

통하는 업체들이 급증하면서, 커피업의 핵심 코드

이 때 커피로스터리사업이나 로스터리 카페의 싹을

가 지금의 ‘스페셜티 커피’로 바뀐 것이다. 이는 곧

볼 줄 알았던 사람이라면 지금 확고한 자리를 잡고

1920~1930년대 지식들이 손수 추출해주던 원두커

있을 게 분명하다. 지금 우리는 그런 분들을 손으

피로의 귀환이요, ‘원두커피의 르네상스’였다. 이 코

로 쉽게 꼽을 수 있다.

드는 지금까지 유효하다. ‘특별한 원두커피’는 1970

커피 사업의 성공여부를 두고 ‘된다’ ‘안 된다’ 시

년대 초, 전세계적으로 스페셜티 커피가 불러일으

대를 원망하지 마라. 시대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킨 ‘제3의 물결’을 관통하는 코어메시지다.

접점, 그 ‘불화의 현장’에서 커피가 나갈 미래를 찾

커피 본연의 맛, 스페셜티 커피가 주는 차별화

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치열한 커

된 맛을 스타벅스나 커피빈, 파스쿠치와 같은 대형

피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코드는 ‘스페셜티 커피

커피전문점에서 찾는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이

(Specialty coffee)’일 수 있다.


Culture

080

magazine N | 201602

나의 방랑처는 산과 들, 대자연과 우주

“내 욕망은 호시탐탐 여행을 노리는 떨림”

된다는 다짐으로 희망과 더 아름다운 삶의 글을 전하려고 안달걱정 입니다. 한겨울인데도 싱그러 너무 늦은 건가. 한해는 다 갔습니다.

운 땀이 송송 맺히는 걸음은 작은 꿈으로 가득합

말 못하고 몸으로 솟구치는 저 숲은 얼마나 자족한 것인가.

니다.

그네들의 새싹 앞에 다시 설렘으로 새해를 맞습니다.

늙은 기자의 기쁨은 자연의 시노(侍奴)로 농

여행은 혼자서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 지으며, 걸으며, 노숙하며 길 위에서 푸짐하게

세모를 쏘다닌 풍경을 전합니다.

놀아온 재미였나 봅니다. 글 짓는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지산골을 누비며 씨 뿌리고 나무를 심고

‘왕 늙은’ 기자의 세모풍경

아라뱃길 습지 억새 밭을 넘실대며 밀려오는 낙조….

캠핑하며 살아왔습니다. ‘자연의 경험’을 글로 그 대로 옮겨 ‘자연의 흔적’을 남겼을 뿐입니다. 하여 기자라는 직함이 부끄럽습니다.

호젓한 들녘을 걸으며 붉게 사방을 휘감아오 는 노을 앞에 섰습니다. 한 해를 마지막으로 보내

글·사진 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핑 호스트, ‘캠프나비’ 대표

말 못하는 자연과 인터뷰하며…

는 일몰은 쓸쓸하고도 장려합니다. 바람과 들녘과

오랫동안 자연에 뒹구는 일을 정성껏 써왔지

물과 나지막한 산 그리고 억새와 갈대숲에 머물러

만 후일에 그 글을 읽으니 부끄러워서 차마 볼 수

나를 봅니다.

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수십 년을 자연 속에서

강인지 바다인지 운하인지 한줄기 평화를 이

지내온 세월의 주름살과 수척해진 몸으로 쓰는

끄는 물줄기는 넉넉합니다. 뱃길 위에 물안개가 피

근래의 글이 제 벗이 되어주는 것 같아, 자연의

어오릅니다. 길을 떠나면 물을 만나고 바람을 만

감촉과 풍경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나지만 여간해선 만나기 어려운 그리움의 겨울 물

늙은 기자는 한 편의 詩 같은 자연 속으로 들

안개, 꿈결 같습니다. 한 편의 시가 빚는 또 다른

어가 인간이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자연을 읽어

풍경…. 寒天의 日沒이 왜 이리도 시린가요.

냅니다. 말 못하는 자연에 숨겨진 상념을 인터뷰

춥고 허기지고 어렸을 때의 걸음과 마주합니

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의 주관적 견해가 들어갈

다. 해질녘의 하루가 닫히는 소멸과 끝의 세월이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자연이 보여주는 맑고

구십년이나 흘렀습니다. 아득한 삶을 보듬으며 가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치유의 마음을 우리는 정

물가물 살팍하게 잘 살아온 할아비입니다. 가슴속

성껏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연의 사랑을 새벽이

에서 또 한 사람의 내가 태어나듯 여든아홉의 왕

슬의 눈으로 보듬습니다. 시인의 마음으로 생의

늙은 기자로 말입니다.

중심에 자연을 품고 인성을 다져나가야 한다는

긴 세월의 흔적을 찾아 늙은 기자는 독자 여러 분에게 추억을 실어 나릅니다. 늙은이로 살면 안

것을 자연을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때는 미 처 몰랐던 깨달음이지요.


magazine N | 201602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고 있습니다. 모두 사는 게 힘들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근원을 생각해 봅니다.

좋은 책도 많고 유익한 강의도 흔합니다. 멋진 말도 넘쳐납니다. 모두 옳은 것뿐이고 그 속의 인 류를 향한 일침도 소중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그 런데 왜 아무리 배우고 야단을 맞아도 그때뿐일까 요? 왜 늘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끼는 걸까요? 자 연이 그 답을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노기자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묻습니다. 원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너무 어려운 물음이라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해봐.

“‘소박한 삶의 풍요로움’ 입니다.” ‘성공과 돈’이 유일한 꿈이라고 야단들인데, 궁상맞게 ‘소 박한 풍요로움’은 또 뭐야?

“물론 돈과 성공이 중요합니다. 돈 없으면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위축됩니다. 그러나….” 이제, 고만해. 아는 체 하지 말고. ‘소박한 삶의 풍요로움’ 이라는 말은 드라마에나 나오는 말이야. 어서 부지런히 돈이나 벌어!!

“네, 돈은 물론 벌어야죠. 그런데 무엇인가 중 요한 핵심을 빠뜨리고, 돈만 벌라고 몰아붙이는 것 같습니다.” 참 답답하네, 돈이 핵심이지 무슨 또다른 핵심이 있다는 건가?

“돈을 향한 욕심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행위도 곧 욕구이자 본능입니다. 식량을 사는데는 돈이 필요하고요. 전세계 사람 그 누구도 돈 벌 욕심에 차 잊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습니다. 돈 벌라는 이야기는 이 제 고만하세요.” 알겠네.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식욕, 성욕, 쾌락과 같은 원초적 욕구를 채워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다른 것이 핵심이라는 건 무슨 말인가?

“‘왜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 하 나?’ 이 문제를 먼저 알아야 ‘소박한 삶의 풍요로움’

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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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나의 방랑은 산이

을 이해하게 됩니다. 인간의 욕구가 고통을 불러오

편으로 이 ‘인정 욕구’는 경쟁을 일으키는 원천이

고, 들판이고, 여행

니까요.”

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고, 지구입니다. 주말에는 야영하며, 농사일하며, 살롱문 화 워크숍으로 자연 속에서 뒹굽니다.”

어렵게 말하지 말고 간단하게 말해봐….

가난을 벗어나려면 열심히 배우고 일하여 경 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쉽지 않습

‘인간은 왜 인정 받고 싶어 하나?’ 노 기자는 자 연 속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갈구해왔습니다.

니다. 경제사정이 낮은 계층에서 차상위 계층으로 도약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은 문화이다”라는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고통의 근원

인간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고통을 받 습니다. 남들은 모두 웃는 낯에 행복해 보이는데 왜

의 책 속 글이 늘 떠오릅니다. 인간이 지닌 인정 욕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 는 것이 고통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나만 이렇게 괴로울까?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빈곤감은 고

인정 욕구의 두 갈래

통을 더 합니다. 갈등의 원인은 자신의 욕구가 남

인간이 욕구를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에

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반대로 자신도 남의 욕구

게 결핍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남과 비교

를 받아들이지 않는 데 있습니다.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과 고통은 이렇듯 인정 받고픈 욕구에 의

인간의 욕구는 ‘자연적 욕구’와 ‘의식적 욕구’

해 좌우됨으로,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모든 행

두 가지로 나눕니다. ‘자연적 욕구’는 본능적 욕구

동은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노력의 연속

이고, ‘의식적 욕구’는 의도적인 행위를 개입시키는

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모든

경우입니다. 이는 ‘사회적 욕구’라고도 불립니다.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것이 실존의 한계입니다. 한

그런데 세상의 모든 욕구 중에 자연을 찾는 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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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구가 유일하게 제일 신선하고 순수하고 영원히 변

휴대하고 다니며 보험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아무리 좋은 일도 계속 반

나는 산에 갈 때 나를 버리러 갑니다. 어떤 사

복하면 흥미를 잃게 되고 질리게 되는데, 자연만

람은 내가 늙어 할일이 없어져서, 취미삼아 시간을

은 아무리 접해도 싫증이 안 나고 영원합니다. 구

때우는 것쯤으로 여길지 모르겠으나 천만의 말씀입

순을 앞둔 노기자가 수십년을 자연 속에서 지내며

니다. 나는 젊어서부터 오늘까지 일관되게, 자연인

깨달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욕구를

으로 살아왔습니다.

줄여야 합니다. 그 남은 욕구는 마저 자연 속에서

일이나 생계를 내팽겨 칠 수 없기 때문에, 여차

방출해야 합니다. 이로써 삶의 고통을 줄일 수 있

한 경우라도 일을 해치우고 난 후에 산에 갔습니다.

습니다.

이런 보람을 죽어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일과 생활에 매몰되어 자기생활을 할 수 없다

욕구를 무엇으로 줄이나?

는 핑계는 자기에 대한 모독이며 기만입니다. 죽는

“정답이 없습니다.”

날까지 나의 책임 하에 나의 시간을 100% 활용합

그럼 어떻게 하나?

니다.

“각자의 몫입니다.”

가족이나 주위에 더 큰 자유를 완벽하게 개방

당신의 사례를 들려주게.

하고, 그들과 섬에 살듯 서로 떨어져, 갈매기 좇는

“좀 긴데 들어주십시오. 나의 욕구의 목표는 자

돛단배로 소통하고 지내는 ‘문화-소통’의 삶을 연

연을 찾는데 있습니다. 나의 방랑은 산이고, 들판

상해 주십시오. 서로 따로 또 같이 그러나 또 따

이고, 여행이고, 지구입니다. 주말에는 야영하며,

로…. 멀리 떠나는 우리….”

농사일하며, 살롱문화 워크숍으로 자연 속에서 뒹 굽니다. 이 목적을 위한 소비가 나의 고민입니다. 그 러나 그 고민은 즐거운 사치입니다. 물론 자연의 사

뉴시스

치에는 어림도 없지만요.

인간의 조건은 욕구를 줄이는 것입니다. 그리 고 자유의 조건은 홀로서기입니다. 내가 원하는 삶은 ‘소박한 삶의 즐거움’입니다.

“세상의 모든 욕구 중 자연의 욕구가 유 일하게 제일 신선하

내가 소유한 것은 야영도구와 책, 컴퓨터, 휴대

세속적인 욕구가 끼어들 수 없는 맑은 생활을 영

전화, 농기구, 차량 외에는 없습니다. 물론 텐트와

위하나, 호시탐탐 여행을 노리는 떨림에 기대어 삽

고 순수하고 영원히

침낭은 재산목록 1호이지요. ‘시신 기증 유언서’를

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Culture

084

magazine N | 201602

200년 피땀의 결실 ‘사진’ 누가 예술이 아니라 말할 수 있나?

이어졌다.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는 작은 구멍 누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 이 시대를 맞아

을 통과한 광선이 상(像)을 맺을 수 있다는 가설이

우리의 일상과 시각 이미지와의 관계에 대하여 고

이미 세워졌고, 10세기의 아라비아 학자였던 알하

찰해본다.

젠(Alhazen)은 그 현상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카메

길을 가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밥을 먹거나, 회 의를 하거나, 즐거운 시간 등을 가지면서 우리는 늘

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암상자·暗箱子)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사진을 찍는다. 심지어 셀카봉이란 것까지 몸에 지

르네상스 시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카메라 옵

니고 다니며 이것저것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을 찍

스큐라를 실제로 제작하여 바늘구멍 사진기의 구

어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하며 살고 있다. 이제

멍에 렌즈를 부착하게끔 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리

우리는 원하는 이미지들을 얼마든지 소유하며 살

하여 화가에게 캔버스나 종이 위에 투사된 이미지

게 되었다. 이는 정말로 새삼스러운 일상이다.

를 따라 그릴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천재예술가 다빈치도 ‘한몫’

밖에서 그림을 보게끔 한 카메라 루시다(Camera

그후 카메라 초점면에 우유빛 유리관이 있어서

김인철 시각문화평론가 전주비전대 국제교육원장

인류에게 어쩌면 해결하기 어려웠던 숙제 중

Lucida, 투명한 방)가 개발되었다. 1807년 윌리엄

하나가 바로 소중한 이미지들을 영원히 간직하고

하이드 울러스턴(William Hyde Wollaston)이 카

자 하는 열망이었을지 모른다. 비단 의사소통의 중

메라 루시다의 특허를 획득하였다.

요성을 차치하더라도, 우리 주변의 시각적 모습들

17세기경부터 유럽에서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

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인류는 그런 이미지

리를 이용한 암실이 휴대용으로 만들어져 텐트

의 영속성(永續性·eternity)을 추구하여 그것들

(tent) 형식으로 유행하였다. 렌즈를 통한 선명한

을 기록하고 영원히 간직하는 방법을 탐구해왔다.

상을 카메라 옵스큐라의 내부에서 볼 수 있게 되었

이러한 시도들은 그리스의 일상을 남긴 한 그

던 것이다. 이 장치는 멀리 떨어진 풍경의 감상 등

림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림의 제목은 ‘코린트의 아

에 이용되면서 한편으로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윤

가씨’(The Corinthian Maid). 이것은 그리스 도

곽을 추적하여 그리는 일을 가능케 했다.

기에 새겨질 부조를 위한 것으로, 젊은 여성이 남

이렇게 이루어진 이미지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자 모델의 윤곽을 그리게끔 한 이미지이다. 그림에

든 평면에 정착시켜 기록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울

서 보듯이 당시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러 진행되었는데 1826년 프랑스인 조제프 니세포

방식으로든 사람들과의 모습을 간직하고자 여러

니엡스(Joseph Nicéphore Niépce)가 금속판 위에

방법을 시도해왔다. 그리고 이는 보이는 이미지들

이미지를 정착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이것을

을 그대로 저장하는 기술(사진술)에 대한 시도로

헬리오그래프(Helio-graph)라 하였다.


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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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무렵 영국에서는 윌리엄 폭스 탈 보트(W.H.Fox Talbot)가 니엡스나 다게르 의 방식과는 달리 자연의 영상을 염화은 을 통하여 종이의 섬유 위 레이스나 깃털을 밀착 현상했다. 이때 명암이 반대로 이루 어지는 음화(negative·陰畵)가 이루어졌 고 이것을 원판으로 하여 몇 장이고 양화 (positive·陽畵)를 만드는 시도에 성공했 다. 이러한 실험들을 거쳐 1840년 6월에 현 대 사진의 근본이 되는 기술을 발표하게 된 다. 감광유제가 입혀진 종이에 잔상이 형성 될 정도로만 노출을 한 다음 화학적 현상 과정을 거치는 기술이었다. 그는 이를 칼로 타입(calo-type)이라 불렀다. 칼로타입은 여러 이미지들을 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게레오타입과 달랐다. 그러나 이것은 다 게레오타입이 이미 1839년 1월7일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최초의 사진기술로 인정 받았기 때문에 이보다 늦은 1839년 1월25 일 영국 왕립기구에서 발표되면서 최초의 사진발명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디지털카메라 ‘결정판’ 코닥 DCS 1851년 3월에는 프레드릭 스코트 아처 (Frederick Scott Archer)에 의해 콜로디 온 습판 방식이 도입되었다. 다게레오타입 의 장점인 선명도와 칼로타입의 장점인 복 제성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감광성도 좋 았던 이 방식은 건조시킨 방식(건식)이 도 입되기 전인 1880년대 후반까지 널리 이용 코린트의 아가씨

니엡스가 헬리오그래피 기법으로 만들어낸 사진 이미지

되었다. 1880년대 즈음에 새로운 젤라틴 유제

그 원리는 광선에 노출되면 굳어지는 아스팔트의 일종인 유대 비투멘(bitumen of

가 개발되었고, 이를 이용해 롤(roll)필름

judea)을 바른 백랍판 위에 만들어진 것으로, 빛에 노출된 비투멘은 굳어지고, 노출되

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지 이스트만

지 않아 부드러운 비투멘은 용해되어 없어지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George Eastman)은 이러한 기술을 이

한편 1831년에 또 다른 프랑스인인 루이 다게르(L.J.M.Daguerre)가 옥화은판을

용해 ‘이스트만 아메리카 필름’을 생산했다.

노출시킨 뒤 수은 증기에 쬐어 이루어지는 습식 사진의 기본원리를 발명하였다. 1837

이때 롤필름을 통하여 새로운 종류의 카메

년에는 촬영, 현상, 정착의 프로세스를 완성하여 이미지를 영구적으로 고정시켰는데,

라도 만들 수 있었다. 그는 1888년, 100장

자신의 스튜디오(studio)의 한 구석을 촬영하여 ‘예술가의 스튜디오’라 제목을 붙이고,

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필름이 들어있는

이 과정을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으로 불렀다.

코닥(Kodak) 카메라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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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은 “You push the button, we do the rest”(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알아 서 작동할 것입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사진과 카메라의 대중화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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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사진작가라는 새로운 예술가들 이 나타났다. 사진작가들은 기존의 화가들

1861년에는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 타탄

이 담당한 일들을 이어받았음은 물론 지금

(tartan) 리본의 색을 재현해낸 최초의 컬러사진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1928년에 코

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각이미지를 제작하

닥이 컬러 필름을 생산하면서 컬러사진의 대중화도 이루어졌다.

기 시작했다. 이것은 불과 백여 년 만에 이

1969년에는 디지털 사진을 위한 전하결합소자(Charge-Coupled Device, CCD) 가 AT&T 벨 연구소의 윌라드 보일과 조지 E. 스미스에 의해 발명되었다. 이어 1975년

루어진 시각문화 3.0 시대의 첫 번째 특징 이라고 할 수 있다.

코닥의 엔지니어인 스티븐 사순이 100x100 픽셀 CCD를 장착해 ‘필름이 필요 없는’ 최

하지만 언제나 새롭게 이루어지는 예술

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만들었다. 또 코닥은 1986년에 세계 최초의 140만 메가픽셀 이

사조들은 만만치 않은 반발에 직면하게 되

미지 센서를 발명하였으며, 1990년에는 전문 사진가를 겨냥하여 시장에서 구입이 가

는데 사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불과 얼

능한 디지털 카메라인 코닥 DCS(digital camera system)를 발매하였다.

마 전까지만 해도 사진을 예술로 인정할 수

이번 시각문화 3.0에서는 사진의 발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사진의 진전은 단순

없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들은 디지

히 기술적 확장만은 아니다. 그러한 발전의 근거에는 인류의 이미지에 대한 대단한 갈

털 사진의 등장에 분노하기까지 했다. 그

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망이 없었다면 그토록 눈부신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

러나 이제 사진은 고유의 시각예술 영역으

했을 것이다.

로 확실하게 자리 잡았으며 디지털 사진의

사진의 발명과 더불어 우리는 기존 시각이미지에 대하여 냉대하게 되었다. 이제 사물을 거의 똑같이 묘사하는 전문가, 장인들의 손재주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제임스 클럭 맥스웰이 1861년 만들어낸 최초의 컬러 사진

가치에 대하여 시비 거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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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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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과 전수일이 손 맞잡은

‘파리의 한국남자’가 던진 인상적 감흥들 실낱같은 믿음과 희망 속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낸 어느 날, 상호는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창 (미콴락)과 아픔을 공유하며 아내가 사라진 후 처 음으로 욕망을 느낀다. 그 이후 그토록 찾고 싶었 던 연화로 추정되는 이를 알고 있다는 매춘부가 나타나고, 그녀를 찾아 파리를 떠나 마르세이유로 향한다. 보도자료를 빌린 이 짧은 소개에서 영화의 성 격이 대략 도출된다. 미스터리 성격을 띤 로드무비 요 일종의 성장영화랄까. 자연스럽게 몇몇 의문들 도 찾아든다. 상호는 과연 연화를 찾게 될까? 그 이전에 연화는 납치·실종된 것일까? 혹 자발적으 로 상호를 떠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왜? 굳이 대중·상업 영화가 아닌, 대개의 저예산 독립영화라도 그들은 으레 그런 의문들을 푸는 과 정을 거쳐 그런 결말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하지 만 감독이 전수일이라면 그와 같은 기대를 걸기란 난망일 터.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다 보고나서도 관객들은 위 물음들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얻을 <파리의 한국남자>는 전수일 감독의 열 번째 장편

수 없다. 감독은 자기 영화를 보고 듣고 생각하고

연출작이며, 주연배우 조재현과 세 번째 함께 한

느끼는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의향이 애당

영화다. 영화는 지난해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초 없다. 그 감독 참, ‘불친절’ 하달까?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세계 첫 선을 보였다.

지난 1월15일 오후 매체시사 후 기자간담회에 서 감독은 “… 영화는 의미를 던지고 상상할 수 있

전수일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듯, 이 영화의 극

는 것들을 캐릭터 속에서 생각할 기회를 전한다면

적 설정 역시 간단하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신혼

관객이 감상할 때 좀 더 풍요롭게 보지 않을까”라

여행 중 어린 신부 연화(팽지인 분)가 갑자기 사라

는 바람을 전했다. “계획대로 인생을 사는 것은 아

진다. 상호(조재현)는 연화를 찾아 매일 밤 파리의

닌 것 같다. 우연한 사건에 의해 운명이 바뀌게 되

뒷골목을 헤매며, 그때껏 보지 못했던, 날것 그대

고, 주인공이 그 운명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의 과

로의 파리의 속내와 마주하게 된다. 의심과 불안,

정을 따라가고 싶었다”고 하면서.

전찬일 영화 평론가, 부산영화제 연구소장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 텐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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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은 따라서 그 낱말 속에 내포돼 있는 무례나 무시 등과는 별 상관이 없다.

필요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 단지 영화 연

그것은 관객을 향한 배려의 또 다른 이름이며 열려있음의 징표다. 이른바 영화적 절

출 스타일 면에서 비주류 화법으로 일관한

제니 생략 등은 그 수단이고. 또 그것은 비단 전수일 그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동서고

다. 감독은 대중 상업영화의 오락적 가치

금을 막론하고 비주류 작가와 감독들은 대체적으로 불친절해왔다.

들을 최대한 억압한다. 무엇보다 느린 편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하고 써왔듯 전수일 감독의 영화들은 결코 지켜보기 만만

집 호흡과, 움직이건 멈춰서 있건 간에 늘

치 않았다. 조재현과 첫 작업을 한 단편 <내 안에 부는 바람>(1996)에 ‘아이:말에게

응시적인 카메라 시선을 통해서다. 그래서

물어보렴’과 ‘노인:길 위에서의 휴식’을 앞뒤로 붙여 시간, 기억, 죽음에 대한 옴니버

일까, 여덟 번째 연출작 <핑크>(2012) 이

스 3부작 구성으로 빚어내 1997년 제50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

후 체모 노출도 마다지 않는 적나라한 성

됐던 장편 데뷔작 <내 안에 부는 바람>부터 조재현과 두 번째 작업한 최근 작 <콘돌

묘사도 선정적이기는커녕 그다지 자극적이

은 날아간다>(2013)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없다. 그의 전작(全作) 중 가장 대중적이면

지 않다. <파리의 한국남자>에서는 의붓아

서 다소는 상업적이라 할 수도 있었던 세 번째 연출작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

버지를 대상으로 창녀 창이 펼치는 노골적

다>(2003)나, 가장 마음 편히 볼 수 있(다고 여겨지)는 다섯 번째 연출작 <검은 땅의

오럴섹스가 유리창에 투사돼 묘사되지만,

소녀와>(2007)도 그랬다. 최민식이 <친절한 금자씨> 이후 3년여 만에 연기에 복귀한

그 느낌은 외설적이기보다는 외려 슬프다.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2009)에서도 톱스타 최민식이 아니라 전수일의 작가

짙은 페이소스가 감지된다. 저예산이란 물

성이 압도했다.

질적 여건 탓에 대개는 스타가 부재하나,

그렇다고 전수일 영화들의 속내가 난해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 별 설명이

최민식과 조재현 같은 스타가 출연해도 그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주담담에서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의 주연배우 최민식과 전수일 감독(왼쪽)이 관객의 질문을 듣고 있다. ‘파리의 한국남자’의 상호(조재현)는 생애 가장 행복했던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신혼여행 중 갑자기 사라진 아내 연화(팽지인)를 찾기 위해 파리를 헤맨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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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인해 영향 받는 것은 거의 없다. 감독의 기질상 스타에 의해 자신의 영화적 진정성 및 메시지가 변질·퇴색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할까.

이른바 다양성 영화들은 상영관을 잡 기가 여간 어렵지 않는데다, 설사 운 좋

전수일 그는 ‘좁은 길’의 감독이요, ‘가지 않는 길’의 작가다. 긴 호흡으로, 여간해

게 개봉관을 잡더라도 이른 아침이나 늦

선 가지 않는 길을 걷는 작가다. 조재현은 어느 인터뷰에서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한

은 밤 시간대에 편성되기 십상이다. 조재

결같은 자세로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하는 전수일 감독이 대단하고 존경한다”고 전했

현은 “이런 문제는 독립영화만의 문제는

다. 부산의 경성대학교 영화과 선배인 감독을 향한 홍보성 립서비스 아닐까, 싶기도

아니라”고도 역설했다. “1000만 영화에만

하겠지만 그의 진심은 매체시사 후 간담회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집중하다 보니 300만, 400만 짜리 영화

그 자리에서 조재현은 “개인적으로 예술영화 하시는 감독님에 대한 존경감이 있

도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

다. 끊임없이 하시는 분들에게 더 큰 존경심이 생긴다”고 했다. 조재현은 “상업영화에

재현은 ‘큰 영화’와 ‘작은 영화’가 공존하는

서 느끼지 못한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그것이 작가의 상상력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걸 잊지

으로 커버해주는 시나리오에 관심이 많다”며, 예술영화에 대한 열정과 더불어 그가

않았다.

왜 바쁜 와중에도 전수일 감독의 영화에 연거푸 출연했는지 이유를 명확히 말했다.

<파리의 한국남자>는 영화도 영화지만

“제가 이런 영화를 하는 것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제가 참여함으로

전수일의 생명력과 조재현의 문제의식이

써 제작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도 있다.”(<연합뉴스> 참고 및 인용)

영화평론가인 내게 평론가로서 본분·역할

그는 작금의 한국영화 풍토에 대한 유감도 밝혔다. “<파리의 한국남자>의 개봉이

등을 새삼 되새기게 해준 소중한 계기였

확 유쾌하고 신이 나고 흥분되지 않는데, 이런 영화가 개봉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꼭

다. 그때 그 감흥을 오랫동안 잊지 않을 참

필요하고 중요한 영화임에도 관객과 만나는 것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이다.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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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갸루’ 아리무라 카스미가 게이오대에 합격한 이야기 아리무라 카스미(有村架純)의 활약이 단연 최고였 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2015년 *게츠구 ‘엔타메’란 엔터테인먼트의 일본식 준말로 보통 일본

<어서오세요 우리집에> 등 드라마 4편, 영화 2편에

에선 연예계 소식을 엔타메로 칭합니다. 더 알고 보면

출연하며 왕성한 활동을 했지요. 아리무라 카스미

재밌는 일본 문화와 연예계 동향을 드라마, 영화를 중

는 2015년 한해동안 일본에서 인기의 척도인 CM

심으로 전해드립니다. -편집자

을 12편이나 찍으며 일본 여자배우 중 2위를 차지 했습니다.

2015년 가장 ‘핫’했던 일본 배우는 누구일까요? 2015년 일본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변

두리 로켓>의 아베 히로시(阿部寛), 혜성처럼 나타

박호경 기자 appleyuki@theasian.asia

열도 ‘심쿵’케한 화제작 ‘스트롭 에지’ 히로인 그녀를 2015년 일본 최고의 핫스타로 꼽을 수

나 일본 CF계를 평정한 히로세 스즈(広瀬すず),

있었던 배경에는 영화 <스트롭 에지>와 <비리갸

<데스노트>의 쿠보타 마사타카(窪田正孝), <돌의

루>의 연이은 흥행 대박 때문입니다.

고치> 등 3편의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기무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드라마 부문에서는

라 후미노(木村文乃) 등 쟁쟁한 배우들의 이름이

<어서오세요 우리집에> 외에는 별다른 히트작이

머리속에 떠오릅니다.

없었고 이 작품에서도 조연급 배역을 맡았다는 점

하지만 스타들 가운데서도 93년생 당찬 그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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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사카 아오의 만화가 원작인 영화 <스트롭 에지>는 일본의 전형적인 학원물로

특히 올해 일본 영화 최고 기대작이라

‘카베동(벽치기)’에 이어 ‘소매접기’를 유행시킨 작품이지요. ‘소매접기’는 여성의 뒤에 선

불리는 <아이 엠 어 히어로>에선 일본 최

남성이 팔을 뻗어 여성의 소매를 접어주는 행동으로 뭇 여성들을 ‘심쿵’하게 만들기도

고 배우인 오오이즈미 요(大泉洋), 나가사

했죠. 이 영화는 24억엔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와 마사미(長澤まさみ)와 함께 공동 주연을

<비리갸루>는 2015년 일본영화 박스오피스 8위를 기록한 작품입니다. 보통 일본

맡으며 작년에 이어 흥행몰이에 나섭니다.

박스오피스는 애니메이션이 강세를 보이기 때문에 실사 영화 흥행이 쉽지 않은데, <비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는 일본에서 400

리갸루>는 실사 영화 중에서도 3위에 오르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만부 이상 팔린 동명의 베스트셀러 만화를

누계 60만부 발행부수를 기록한 츠보타 노부타가의 에세이 <학년 꼴찌 갸루가 1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경기도 파주 아울렛

년만에 편차치를 40 올리고 게이오 대학교에 합격한 이야기>가 원작입니다. 한국 상

에서 촬영을 진행해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

황에 맞게 풀이하면, 고2때까지 전교 꼴찌였던 학생이 1년 만에 연세대에 합격했다고

고 있는 작품입니다.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아리무라 카스미가 극 전체를 홀로 이끌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 니다. 오롯이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비리갸루>는 흥행에 대한 우려를 불 식시키며 28억엔의 흥행수입을 기록했습니다.

*게츠구 후지TV 황금시간대인 월요일 오후 9시에 방영 되는 드라마로, 보통 게츠구의 주연 배우는 인지도가 높거나 당대의 톱배우만이

‘2015년 가장 브레이크했던 여배우’ 1위 올라 연이은 흥행 대박을 통해 그녀는 지난 연말 일본 ‘오리콘 스타일’ (ORICON STYLE)에서 발표한 ‘2015년 가장 브레이크했던 여배우 순위’에서 <마레> <변두리 로켓>에서 열연한 츠지야 타오(土屋太 鳳)를 제치고 1위에 올라섰습니다. 2016년에도 그녀의 행보는 거침이 없을 전망입니다. 올해 1분 기 게츠구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것 같아> 의 주연을 맡아 대세임을 입증했으며, 영화 <아이 엠 어 히어 로> <나만이 없는 거리> <나츠미의 반딧불이>가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캐스팅되기에 일본의 젊은 배우들 에게 게츠구 출연은 큰 상징성을 지닙니다. 일본 프로야구팀 ‘요 미우리 자이언츠’에게 일본 국 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것 과 유사한 맥락입니다.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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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tion vacations: how cinema transformed tourism Hobbiton, an entire set built in New Zealand to make visitors relive Tolkein’s epic Lord of the Rings and The Hobbit movies, with visitors increasing each year. Jordan’s Petra gained immense popularity after being featured in one of Indiana Jones’ blockbuster movies.

Summary

영화촬영지의 ‘무한확장’…스튜디오서 오감 느끼는 현장으로 ‘영화·드라마 촬영지 순례’란 말을 들어봤는가? 최근 TV·스크린 속 인기 스타들이 다녀간 장소가 ‘관광명소’로 재탄생하 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레이스랜드,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에 안식하고 있는 가 수 짐 모리슨의 묘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1990년대 초, 보잘 것 없었던 캐나다의 작은 시골마을은 세계적인 유명 관광지로 떠올랐다. 이곳은 세계적인 인기를 모 았던 미국 드라마 <스타트랙>에서 인기 캐릭터 ‘스팍’(Spock)의 고향 불칸(Vulcan)으로 그려진 곳이다. <스타트랙>은 ‘대 박난’ 작품 하나가 지역 경제를 어떻게 활성화 시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좋은 작품은 불모지도 유명 관광 지로 탈바꿈시킨다. 한국 또한 ‘한류’의 영향으로 지난 수년간 관광객 수가 급증했다. 관광객 대다수는 스크린 속 장면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느끼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 아이돌 등 일본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팬들은 일본 문화를 직접 느끼고 싶어 한다. 최근엔 튀니지, 요르단과 같은 아랍 국가들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 스>의 촬영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수많은 도시들이 ‘영화 촬영지’ 혹은 ‘유명 배우가 영화 속에서 밥 먹었던 곳’이 라 홍보하며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지만, ‘반짝 인기’로 끝나는 경우도 흔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트와일라 잇>이다. <트와일라잇>의 폭발적인 인기로 한때 주 촬영지였던 미국 소도시 폭스(Forks)에 관광객이 쏟아졌다. 하지만 영 화의 인기가 사라지면서 이곳을 찾는 관광객도 사라졌다. 영화 촬영지는 더 이상 스튜디오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일부 소품을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 는다. 사람들은 작품을 직접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진짜 촬영지’를 원한다. 최근 많은 영화·드라마 제작사들이 촬영지 를 매우 신중하게 선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트렌드가 된 ‘영화·드라마 촬영지 순례’는 전세계 여행가들을 유

Radwa Ashraf radwaashraf@theasian.asia

혹하고 있다.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번역 최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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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culture tourism or film-induced travelling has become in some respects akin to

Bond’s Spectre sparked interest in

pilgrimage, with its modern equivalents of places of pilgrimage being Elvis Presley's

the region of Tyrol in Austria, while

Graceland and the grave of Jim Morrison in Père Lachaise Cemetery, among many

Ireland has become known as the Game of

others. But what is a “location vacation”? Recent studies show that more people are

Thrones territory. Brochures were printed

starting to plan their vacations and travels based on where movies and TV shows they

out to promote these places, using the

like, are shot.

commercial success of these franchises.

In the early 1990s, a small rural community in Canada began to explore ways it

Film-induced tourism has proven to bring

could capitalize on the coincidence of the town's name being the same as popular Star

in higher revenues, and its potential to

Trek Character, Mr. Spock’s home planet: Vulcan, to develop its local tourism industry.

revitalize rural communities and increase

This is just an example of what film tourism can do to enhance the economic situation

tourism in urban centers.

of entire cities, or even countries. In the same way, a good movie could lead to the prosperity of its filming location, a bad movie could destroy that place’s reputation.

Whether it’s the main goal of a vacation, part of a family holiday or

Filming destinations no longer mean the filming studios. People are no longer

a romantic getaway, tourists proved

satisfied by visiting studios and watching a few movie props. Instead they want to see

that after being awed by historical

real places, which have become the main drive for production companies in choosing

monuments, emotional impact of a movie

their filming locations carefully. And while production companies are doing their

comes close to second place in being

best to satisfy the future tourists, countries and places of attraction are doing the same.

the main motivation in planning their

Film tourism is a growing phenomenon worldwide, fueled by both, the growth of the

vacations.

entertainment industry and the increase in international travel, therefore, resulting

Film tourists seek to immerse

in destinations, globally, seeking whenever and wherever possible to associate

themselves in another world, whether it’s

themselves with a successful film or franchise that will entice any potential film tourist

a sci-fi realm or a world of magic, going

to visit their destination.

back in time or jumping into a whol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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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nwick Castle secured itself a steady income for many years after being featured in the famous Harry Potter franchise. Nami Island in South Korea has become one of the country’s main tourist destinations due to the popularity of the Korean drama “Winter Sonata”. Times Square, one of the most distinguishable parts of New York City. Almost all superhero movies that are set in New York feature it somehow.

the popularity of the movie or franchise should be taken into consideration as well. Forks city suffered when Twilight’s popularity died away, and with it went all the appeal the city set for itself. Without film storylines, a castle may not be distinguishable from others. The same way many heritage sites that serve as film locations gain fame after the film is dimension. But providing all of this comes at a cost, and those who usually pay it are

released because they obtain a new specific

the locals.

connotation through the movie. New

Daily shops turned into souvenirs stores, a wider range of hotels, locals losing

Zealand became one of the most popular

their privacy, and memorabilia tacked everywhere, are just some of the aspects people

vacation destinations after Lord of the

might argue to be the negative sides of such an industry. Even though film tourism

Rings and The Hobbit trilogies were filmed

proves to be a quite long-lasting industry not affected by weather and seasonal

there. Now the set of Hobbiton is known to

changes, it still has its own list of cons.

attract thousands of visitors every year. On the other side of the world, USA became

Location vacations across the world

known as the country of superheroes, with

Almost every city in the world now promotes itself for something that sets it

each city celebrating a DC or Marvel hero

apart, and most cities are using movies. Misrepresentation is quite common, and

whose story started there, whether 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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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Metropolis, Illinois, home of Superman, North Carolina, home of The Hunger Games, or

when he chose it as a filming location

New York City which has gained an iconic status in cinema in itself.

for his 2014 Disney movie Into the Woods

South Korea has seen a tremendous rise in Hallyu-loving tourists whose sole

and we can see why he was attracted,

purpose of travel is to visit filming locations. Japan is another country that has become

like many before him, to the magic of

a well-loved destination, owing to the famous Japanese pop culture, spread mainly by

England.

anime and manga.

Before mov ies a nd TV shows,

Arabic countries like Tunisia and Jordan, where visitors have increased from

E ng l a nd wa s a l r eady a m a s sive

thousands to millions, thank famous franchises like Indiana Jones and Star Wars for

attraction by itself, but there’s no denying

filming there.

that The Beatles’ name, for example, brought more revenue to Liverpool,

Britain – home of fairytales

and William Shakespeare’s hometown

Figures released by “Creative England”, the body funded by the British Film

Stratford-upon-Avon receives millions

Institute to help companies find locations, show that, in 2015, it supported more than

of visitors every year just because of him.

1,100 film and television projects, a record for the third successive year.

But then cinema came along, and the

England’s transformation into a giant movie set is a far cry from 2006 when the BBC caused a fad by opting to film Robin Hood in Hungary because it was cheaper

magic of England was revealed in all of its galore.

than doing it in the UK. Since then the change in the financial climate played its part.

Doctor Who, Merlin, Assassin’s Creed,

“It has period villages still. It has magnificent forests and woods with ancient

The Huntsmen, The Iron Lady, Victor

trees with scale and size, and that was thrilling to find. It has castles...It just lends

Frankenstein, Suffragette, and Captain

itself to that so beautifully,” said American filmmaker Rob Marshall about England,

America all have one thing in common: they are all shot in Britain. But of course Harry Potter franchise is what started the craze for portraying England in movies, when Alnwick Castle was chosen as Hogwarts for the first movies, and the Forest of Dean was chosen as a main location for later films. That same forest was featured in the latest Star Wars movie, The Force Awakens. Now hardly a week passes without it receiving an inquiry from production scouts, eager to capture its mysterious beauty for the big screen. Be it due to the adaptations of famous English classics such as Austen’s Pride and Prejudice, and Sense and Sensibility, to BBC’s latest rendition of Sherlock Holmes in the modern-day Sherlock that makes you look at London in a different light, England

In 2015 alone, England supported more than 1,100 film and television projects, a record for the third successive year.

seems to be one of the most favorable destinations for movie lovers.


Arts

096

magazine N | 201602

“실그림은 나의 삶이자 나의 우주” 예원 손인숙 실그림 작가 조선시대 3대 풍속화가 중 한 명인 신윤복의 ‘미인도’를 자수로 옮긴 이 작품을 살펴보시 죠. 어느 한 땀,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 없이 완벽하게 ‘미인도’를 재현해냈습니다. 붉은 입술의 미묘한 명암과, 귀 옆 흩날리는 잔머리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정교하게 수놓아 져 있습니다. 얼핏 보면 피부색도 비슷해 보이지만 오른쪽 볼과 턱, 목의 아랫부분에는 더 짙은 그림자가 들어가있죠. 멀리서 바라보면 원본으로 착각할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 다. 이 작품은 예원 손인숙 실그림 작가의 인기 작품 중 하나입니다.


magazine N | 201602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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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수련도, 자수(1990), 병풍(2005)

예원실그림문화재단(이사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이 운영하는 자수박물관 방문을 위해 서울 개포동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을 찾았습니다. 아파트를 박물관으로 꾸민 곳이라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둔탁한 철문 뒤로 펼쳐진 세

창의교육은 정형화

상에 그만 눈이 휘둥그래해졌습니다. 가지각색의 매력을 뽐내는 화려한 실그림들이 캔버스뿐 아니라 병 풍과 장롱에도 세심하게 수놓아져 있었기 때문이죠.

된 대학교육과는 전

예원 손인숙 실그림 작가는 평생을 ‘실’과 함께 살아오며 전통회화부터 시작해 풍경화, 추상화까지

혀 달랐다. 덕분에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여왔습니다. 그의 작품은 정교하고 미묘한 명암의 차이까지 묘사해, 멀리서 보면

전통 자수의 틀을

마치 한 폭의 그림 같기도 합니다. 가까이에서 살펴볼수록 형형색색 실들의 향연은 완벽한 조화를 이룹

깨고 새로운 분야에

니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인내해야 했을 작가의 고통을 떠올리니 절로 숙연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걸 혼자서 해낸 것은 아닙니다. 액자틀(백골) 조각부터 옻칠까지 많은 장인들의 손

시도할 수 있었다”

길이 필요합니다. 늘 곁을 지키며 응원해주시던 어머니 역시 지금의 손인숙 작가를 있게 한 장본인이죠. “어머니는 내 예술의 원동력”이라고 말할 만큼 그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무한한 의미를 지닙니다. 명인에게 “어떻게 평생에 걸쳐 작품을 만들 수 있었냐”고 묻자 “명예욕을 뿌리치고 한길만 걸어왔기 때 문에 오롯이 작품활동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지난해 프랑스 기메박물관 전시를 시작으로 해외에서 그를 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 기메박물관에서 시작된 전시회는 오는 3월16일까지 이어 질 예정입니다. 프랑스 유명 일간지 <르 파리지앵>에도 소개됐다고 하네요. 5월부터는 프랑스 니스박물 관에서 전시전이 열리고, 이후에는 스위스에서도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예원 손인 숙 실그림 작가의 작품을 감상해볼까요? Son In-sook is an embroidery artist who has spent her whole life with thread. She prefers to be called a Silgeurim artist in reference to the art she practices ― painting with thread. Her work ranges from Buddhist paintings and famous Korean paintings to her original realistic and abstract works. Son began doing embroidery at the age of 10 under the guidance of her mother. She said her mother encouraged her to look at objects from various perspectives so that she could create a new style of work. Her remarkable and elaborate work is currently exhibited at the Guimet Museum, Paris until March 16.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사진 예원실그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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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보자기, 자수(1985), 액자(2000), 104x104 (이하 단위 cm) 꽃두루주머니(2005), 23x14x20 보자기(1995), 136x75 꽃장식저고리(2005), 41x143.5 실그림 봄풍경(2002), 24x50 수 장롱(1997), 81x52x72

“자수가 아닌 ‘실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수를 놓는 행위에 그치 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담 아내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실그림은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의 류, 가방, 휴대폰 케이스 등 그 어디에 나 활용될 수 있다. 정부의 문화정책 도 한 예술이 여러 분야에 접목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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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실그림이란 어느 한 땀도 사색 이 반영되지 않는 땀이 없으며, 어느 한 땀도 내 몸 속으로부터 나가지 않 는 땀이 없다. 실그림은 예술 혹은 창 조 자체를 실행에 옮기는 나의 삶이 자 나의 우주다.” “내 작품을 위해 힘써준 모든 장인들 이 노후에 편히 지낼 수 있는 집 한 채쯤은 마련해주고 싶다.”

예원(藝園) 손인숙 학력 1966~1969 동래여고 졸업 1972~1976 이화여대 섬유예술과 졸업 경력 한국미술협회 추천작가 교육부 실업고등학교 가정교과서 편찬 연구위원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기계자수부문 심사위원장 장애자기능올림픽 지방/전국대회 자수부문 심사위원 전시 2015 전통+창조(프랑스 기메박물관) 2003 조선통신사 특별기획전(부산시청 전시관) 2002 섭리: 손인숙 자수공예 초대전(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 수회관) 2001 주머니 특별기획전(평창동 가나아트) 외 다수 Rahul Aijaz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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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이 빚어낸 ‘연꽃다기’ 연파 신현철 도예가

이 작품은 연파 신현철 도예가의 작품 ‘참새다기’다. 참새부리는 주둥이로, 참새꼬리는 손잡이로 형상화했다. 찻잎이 짧고 끝 이 날카로운 참새 혀와 닮았다는 뜻의 한국 전통차 ‘작설차’(雀 舌茶)에서 영감을 얻은 이 작품은 국내외 차 애호가들 사이에 서 명품으로 손꼽힌다. 신현철 도예가는 이밖에도 연꽃이나 연잎 등 우리에게 친 숙한 조형을 찻잔에 최초로 응용하며 전통 도자기의 새로운 지 평을 열었다. 그에겐 ‘전통 다기의 한계를 극복한 명장’이란 수 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This pottery is called Chamsaedagi, made by Shin Hyunchoul, a great master ceramic artist. The ceramic is modeled on features of sparrow which are called Chamsae in Korean. The handle resembles sparrow’s tail and the hole borrows its beak. Shin got inspiration from Korean traditional tea, Jakseol, meaning that its leaves are similar to sparrow’s small and sharp tongue. Chamsaedagi is considered a masterpiece among global tea devotees. Shin, who has created a new Korean ceramic style, has been praised beyond Korean traditional styles. He is also the first ceramic artist who incorporates familiar objects like lotus or its petals to po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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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파(蓮波) 신현철 2014 연파 신현철 도자예술전(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북경국제 차박람회 초대전(중국 북경) 북경한국문화원 초대전(중국 북경) 한중일 삼국도자예술교류초대전(중국 하남성) 2013 명인도예 연파 신현철 초대전(KNN 월석아트홀) 외 다수 작품 소장 박물관 서울중앙박물관, 국립국악원, 오설록박물관, 사천성 세계차 박물관(중국), 산동성 치박시 중국도자박물관, 샌프란시스코 자연사박물관(미국), 지바현 가와무라미술관(일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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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Rahul Aijaz

신현철 도예가가 연잎 찻상에 올 려둔 잔에 백차를 따르고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코 끝으로 들어오는 차갑고 신

다법’을 즐길 수 있다. 말 그대로 연꽃과 함께 차

선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을 들이켰다. ‘후~’

를 마시는 방법이다.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연

하고 숨을 내뱉으며 주변을 돌아보자 흰둥이 몇

꽃이 움츠러들 때 그 안에 찻잎을 넣고 그대로 꽃

마리와 황토집 한 채가 보였다. 연파(蓮波) 신현철

을 따서 냉동 보관한다. 후에 급랭한 연꽃을 내어

도예가의 작업공간이자 주거공간이다. 그는 한국

물속에 넣는다. 그러면 따뜻한 물에 연꽃이 봉오

을 대표하는 도예가 중 한 명으로 연잎다기와 연꽃 향을 차에 담는 연지다법을 세계최초로 개발했다. 연꽃 ‘연’과 물결 ‘파’를 쓰는 그의 호에서 알 수 있 듯이 신 명장은 연꽃과 인연이 깊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가장 띄었던 것은 커다란 연잎 모양의 찻상이었다. 바닥에는 구멍이 뚫려있 었는데, 좀처럼 용도를 짐작할 수 없었다. 찬찬히 연파 선생이 차를 우려 내주는 모습을 지켜보기 로 했다. 그는 제일 먼저 작은 잔들을 찻상에 올 려두고 따뜻한 물로 헹구었다. 그 물은 찻상에 난 구멍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는데, ‘똑똑’ 떨어지는 청아한 물소리가 아름다웠다. 최근 중국에서 한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사진 신현철도예연구소

창 유행이라는 ‘백차’를 잔에 따라 주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여기에 연꽃만 있으면 그가 개발한 ‘연지화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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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를 펼쳐내면서 향긋한 차의 향기가 퍼진다. 이

구’ 개발의 계기가 됐다.

다법은 국내외 차(茶)·불교행사에서 빼놓지 않을

그는 문화센터에서 만난

정도로 유명해졌다.

윤광조 도예가를 스승으로

연파 선생이 손수 따라준 차를 천천히 마시고

모시며 수련생활을 시작했고, 3년

있자니, 어느 먼 과거로 돌아가 풍류를 즐기는 선

간의 연구 끝에 1987년 연잎다기를

비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만들어냈다.

느끼는 오랜만의 여유에 나도 모르게 옛 정취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차문화는 불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

자유로운 영혼으로 청춘을 보냈던 그가 도예

어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하다, 휴대가 간편하고 연

가의 길로 들어선 인연은 다소 특별하다. 대학생

잎이나 연꽃 등 종교적 상징을 지닌 형태의 연잎

시절 들린 고미술 전시회에서 ‘고려백자’에 마음을

다기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뺏긴 것이 그 시작이었다.

무궁화 다관

다. 어떻게 하면 스님들이 차를 손쉽게 바랑에 넣

그는 지난 1986년 인사동에서 열린 첫 개인전 이후 개인전 및 초대전을 수십 차례 열어왔다. 미

UAE 한국문화원, 뮌헨박물관서 전시 예정

국·중국·일본·독일·핀란드 등 해외전시회를 통

“처음에는 조선시대 백자라고 생각했어요. 고

해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과 차문화를 널리 알리

려청자가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백자는 조선시대

는데 공헌했다. 올해 5월엔 뉴욕에서 전시회가 열

도자기로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어떤 분이 ‘고려

리고, 아랍에미리트에 들어설 한국문화원의 한국

백자’라고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백자에

전통문화 그룹전에서도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입을 맞춰보라고 하셨는데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독일 뮌헨박물관과도 전시논의를 하는 중이라고

수 없습니다.”

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연파 선생에게 도예가

이후 한국 도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경기

로서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도 이천 수광리 도자마을을 찾았다. 그런데 대부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차문화는 알아도 한

분의 도자가 고려 혹은 조선시대 방식으로 만들

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차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져 있었다. 연파 선생은 ‘왜 오늘날 한국의 그릇

잘 모릅니다. 앞으로 전세계에 한국의 훌륭한 전

은 없는 걸까’ 고민했고, 그것이 현재 ‘한국식 다

통 차문화를 알리는 것이 꿈입니다.”

신현철 도예가가 가마에 달항 아리를 차례차례 얹히고 있다. 각기 다른 모양의 다관들 연꽃을 띄워 연꽃차를 우려내 는 연지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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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ating Stanley Kubrick’s genius in Korea Summary

서울서 마주한 거장 스탠리 큐브릭 스탠리 큐브릭. 영화 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법한 이름이다. 그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시계태엽 오렌지>(1971) <풀 메탈 자켓>(1987) 등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특히 인류 역사와 기계 문명에 대한 철학 적인 성찰을 담아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SF영화의 전환점을 만들어내며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 감독 등 여러 감독들에게 영감을 줬다. 기자는 한국에서 큐브릭 전시회를 만날 기회가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서울에서 아시아 최대규모로 ‘스탠리 큐브릭 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전시회에는 큐브릭 감독이 실제로 영화 제작 당시 사 용했던 각종 소품들과 의상 및 세트장이 전시돼있었으며, 그의 필모그라피를 한눈에 엿볼 수 있도록 각 작품마다 전시관 이 나뉘어져 있었다. 이뿐 아니라 큐브릭 감독의 미공개 영상과 미완성 유작까지 확인할 수 있는, 그야말로 그의 일대기 를 집대성한 전시회였다. 여러 전시물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시계태엽오렌지>에 등장하는 코로바 우유가게(마약이 들어간 우유를 파는 가 게)세트장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태아 모형, 공포영화 <샤이닝>의 주인공인 소설가 잭이 사용하던 타자기였다. 큐브릭 감독이 영화 관계자들과 기자들에게 받은 비난의 편지들도 색달랐다. 그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4)와 <시계태엽오렌지>가 폭력을 미화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 신만의 시각을 영화로 담아냈기 때문에 많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밖에도 큐브릭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수상한 오스카 특수효과상과 1997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받은 황금사자상이 눈에 띄었다. 자료수집부터 개봉까지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완벽주의 성향으로 유명한 큐브릭 감독의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작품들 Rahul Aijaz Photojournalist/Reporter rahulaijaz@theasian.asia

에 기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전시를 둘러 보는 내내 얼마나 설렜던지 모른다. ‘스탠리 큐브릭 전’은 오는 3월13일까 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라훌 아이자즈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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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If you’re a film nerd, you may have already heard the name ‘Stanley Kubrick’. If you haven’t, you just did. So read on! When there’s a debate about the greatest film directors of all time, one name that constantly comes up is of ‘Stanley Kubrick’. The director of some of the most memorable films in the history of cinema like 2001: A Space Odyssey, A Clockwork Orange and Full Metal Jacket, Kubrick’s contributions to the cinema are priceless. The man was so ahead of his time that his epic space drama A Space Odyssey is still the benchmark for sci-fi genre films. More than four decades later, A Clockwork Orange still shocks the audience and, The Shining has gained the status of a classic horror film throughout the decades. The man behind films in such diverse genres – from horror to war films to sci-fi, historical and socio-political commentary – was surely a genius. Kubrick excelled in everything he tried. I never expected Kubrick to have a following in Korea, but a large of visitors at the latest Stanley Kubrick exhibition at the Seoul Museum of Art in Seoul proved me wrong. The exhibit was full of vintage props, recreation of sets used in his films and relics from his life’s work. Different halls were set with scenes from various Kubrick films, showcasing original costumes and props. One that fascinated me more than anything was the room with statuettes from A Clockwork Orange’s Korova Milk Bar. Just looking at the dimly lit room with white naked figures staring at me, reminded me of the first shot of the film – the lead character Alex and his ‘droogs’ sit in front of the white naked figures, drinking milk and as Alex’s penetrating eyes stare into the camera as it tracks out. Another ‘attraction’ was the infant prop used in A Space Odyssey. The fans of the film will surely recognize the beauty and significance of it. The

The astronaut costume from 2001: A Space Odyssey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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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atue of a “droog” from Kubrick’s masterpiece “A Clockwork Orange”(1971) Stanley Kubrick

film was a masterpiece that’s still relevant to this day. The most beautiful thing for a film student or a filmmaker was to see the technique Kubrick had used to stage the pre-historic era with apes. Among multiple halls and two floors were nostalgia, excitement and reliving of Kubrick’s genius for his most fanatical followers. What excited me the most were some of the letters from producers and journalists to the controversial filmmaker, blasting him for his provocative films like Dr. Strangelove and A Clockwork Orange, which angered everyone for their socio-political commentary and in the latter’s case, apparent glorification of violence. Letters of people of significance bashing Kubrick for being a shame to the country for producing work criticizing the war (therefore naturally, criticizing the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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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heroes) was a real treat to see as eventually, it

Kubrick’s films while the soundtracks played

didn’t stop him from stating what he felt through

in the background, all made up for an exciting

his films.

experience.

A hall with a couple small rooms exhibited

Another treat was to see the original Oscar

items from The Shining. Jack Nicholson’s

award that Kubrick won for the special effects

typewriter, walls covered with “All work and no

for 2001: A Space Odyssey and the Golden Lion

play makes Jack a dull boy” written on long paper

he received at th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rolls and the original dresses of the twins from the

Venice in 1997. Among his personal items were his

film in a showcase. The only thing missing was the

chess, and a huge library containing books about

hallway carpet with the iconic pattern on it, which

Napoleon, which he had collected for his research

could have taken the experience to another level.

for ‘the greatest film never made’.

As a ghostly projection of the twins from the movie appeared and disappeared in the corner, I moved into a different hall.

As I exited the last exhibition hall, I thought, “Is that it?” Perhaps, I was expecting Stanley Kubrick

A collection of film slates from Kubrick’s

coming back to life and greeting me at the end.

productions, such as Barry Lyndon, Eyes Wide

I sighted the art shop and ran into it to get some

Shut among others, was a real treat to look at.

memorabilia – a diary, cards and a bag - in

Storyboards of films like Dr. Strangelove adorning

remembrance of perhaps ‘the greatest director of

the orange walls, projections of clips from

all time’ and leave for home.

Jack’s typewriter and knife from Kubrick’s classic horror film “The Shining” The Academy Award which Kubrick won for Best Visual Effects for “2001: A Space Odyssey”


Trans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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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 for Justice Radwa Ashraf Eygypt Reporter

The sight of the bronze girl statue surrounded with flowers and hundreds of motivational post-it notes sent shills down my spine. The bronze girl statue sitting in front of the Japanese embassy in the heart of Seoul despite Japan’s condition to remove it to agree on Korea’s conditions, it doesn’t seem fair to remove the statue of the girl. The statue is simply a reminder for Japan of what happened in the past, removing it wouldn’t remedy their wrongdoings but its presence can ensure that Japan won’t forget or go back on its words. The weekly demonstrations have become the main outlet for the victims of Japanese Imperial army's war crimes to vent their anger. On January 6, 2016, the 1212th anniversary of the weekly “Wednesday Demonstrations” dozens of protesters gathered, sitting on the ground, surrounded by police forces, journalists and filmmakers

magazine N | 201602

Comfort Girl Statue: A symbol of History and a Lesson for Future anticipating to document these peaceful demonstrations. Labor union members, priests, students of all ages, and even entire families came together to support a cause they believe in. It definitely was different today, as it marks the anniversary of the demonstrations, and it also comes days after the controversial deal between Korea and Japan concerning sex slavery settlement. These demonstrations that have been going on for 24 years had a main goal, which is to recover the dignity of former “comfort women”. The large numbers of protesters this time forced the police to extend the yellow “police line” imposing their power and flipping the table on the authorities. The crowd was interacting actively with the speeches and the Summary

“위안부 소녀상, 그 자리에서 계속 평화 지켜주오” 1월5일 위안부 소녀상을 보기 위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관을 방문했다. 소녀상 앞에는 꽃다발이 수북하게 놓여있었고, 주변에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 알록달록한 종이들이 붙여져 있었다. 동 상 옆 빈 의자에는 ‘소녀상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눈에 띄었다. 소녀상의 그윽한 눈빛 이 잊혀지질 않는다. 소녀상 옆 빈 의자에 쌓인 꽃다발과 메시지를 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할머니에 위로와 응원이 메시지를 보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소녀의 주먹 쥔 두 손은 결연한 의지를, 어깨 위의 새는 평화를 상징하는 듯했다. 소녀상의 상징들이 최근 일본 정 상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표명하는 데 일조한듯 보인다. 다음날, 2016년 새해 첫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오후 12시, 위안부 소녀들의 아픔을 상징하는 퍼포먼스 로 집회의 막이 열렸다. 구슬픈 가락과 춤이 흘러나왔고, 시민들은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혼을 위로했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후손에게 아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여생 동안 힘을 내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일 양국의 이번 위안부 협상은 외교적으로 볼 때 굉장한 진전이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한국민 입장 에서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논란이 되고 있는 ‘소녀상 철거’가 옳은 지에 대해서는 개 인적으로 의구심이 든다. 일본 정부에 역사의 과오를 상기시키고 되풀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소녀 상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번역 최정아 기자

performances despite the freezing weather. Even children were holding banners, giving out donations and clapping along to motivational speeches. And through a short play reenactment of the suffering of old women and a song performance where all the audience sang along, we could certainly feel their compassion and dedication toward fixing the issue. We met different people among them was Park Seong-nam, a father who came with his children, who said, “I wanted my sons to learn what happened to the grandmothers and how these protests would shape Korea’s relationship with Japan. Before coming here, my kids watched some animation about the former comfort women. Children would not be able to fully understand their pain, but I believe my sons would learn something from all of this.” Another participant was Ahn Sol-bin, a high school student, he said, “This is my first participation in this kind of protests. I came here with my friends. I was really surprised that the grandmothers did these protests every Wednesday for more than 1200 times. I could feel their pain and desperate wish.” A student, Lee Hae-jee from Ewha Women’s University, she said, “We are from a student community for comfort women, called ‘Nabi’ at Ewha Women’s University. We learnt a lot from ‘Wednesday Demonstrations’. Japan would not offer their sincere apology to the victims easily. However, I believe that justice will prevail and the grandmothers would be able to regain their honor for 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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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말 한일 정상이 합의한 위안부 협상을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특히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 철거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매거진 N>에서 연수하 고 있는 라훌 아이자즈(파키스탄) 기자와 라드와 아시라프(이집트) 기자가 1월5일 직접 소녀 상을 방문했다. 이어 1월6일엔 24주년을 맞은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외국인 기자의 눈에 위안 부 문제는 어떻게 비춰질까? -편집자

Rahul Aijaz

A Game of Apologies and Honor Rahul Aijaz Pakistan Photojournalist/Reporter

Upon coming across this more than seven decades old sensitive issue between Japan and Korea, my first view was that of an outsider. I thought to myself why they would not move on and reconcile. Then I realized, although with a few differences, the relations between Pakistan and India are also similar. The point is some issues are too sensitive to be forgotten. As I delved deeper into the stories of former comfort women, the more I realized how horrific their experiences were. Admitting my prior ignorance, I understood that yes, these women who suffered extreme torture by Japanese Imperialist army during and before the

World War II, will eventually pass away - most or all of them are in their 80s and

90s - but their stories shall not be forgotten. Countries may or may not apologize and eventually reconcile with each other but the suffering they endured shall be remembered and shall serve as a lesson to future generations to not make war and ruin innocent lives. The dispute between Japan and Korea is not about compensation and a mere apology for former comfort women’s treatment, but rather an effort to regain their honor. All their lives they suffered the consequences of being tortured and molested. The comfort girl statue in front of the Japanese embassy in Seoul may perhaps be a symbol of their endurance but it is also a representation of looming guilt on Japanese government’s conscience - the current government may not have been responsible for the former comfort women’s suffering but although governments change, policies remain the same. In an ideal world, Japan would sincerely apologize and recoup the women of their honor and dignity. The comfort girl statuette should stay where it is, as an everlasting lesson for generations to come. Summary

‘소녀상’ 보며 파키스탄-인도 분쟁 떠오르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갈등의 골은, 그 세월만큼이나 깊다. 지난 12월28일 양국 정상은 극 적으로 합의에 도달했으나, 그 내용을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기자는 ‘오래된 갈 등을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좋은 일인데 왜 비판하는가’ 의문이 갔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에 대 한 자세한 배경을 알아가면서 생각이 점차 바뀌었다. 실상은 생각보다 참혹했다. 세계 2차대전 동안 위 안부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제 80대 혹은 90대다. 지난 평생을 아픔 속에 살아왔던 위안부의 상처는 결코 쉽게 잊혀질 수 없는 것이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내 모국인 파키스탄과 인도의 관계와 비슷하다. 과거 카슈미르 영유권 등을 두고 세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감정의 골이 깊어 최근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 있 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떤 것들은 쉽사리 잊혀질 수 없는 법이다. 단순히 얼마를 보상해주느냐를 떠나 위안부 피해자가 진정 원하는 것은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다. 역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 아가, 후손들에게 교훈이 되고, 향후 더 이상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은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긴 세월 고통을 인내했던 위안부의 상징이자, 일본 정부로 하여금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책임지게끔 하는 것이 바로 ‘소녀상’이기 때문이다. 부디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위안부 희생자들이 존 엄성과 명예를 다시 회복할 수 있길 바란다.

라훌 아이자즈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Mem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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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백담사 개울에 정성껏 돌탑 쌓듯 언론자유 향한 당신 투혼 영원히…

Summary

Remembering Khairul Bashar who dedicated his life for press freedom Mass Communication expert and noted journalist Prof. Khairul Bashar passed away on 26 December (Saturday) night at a hospital in Kuala Lumpur, Malaysia. He was 78. He was suffering from severe lung disease. He left behind wife, a son and two daughters. His body was taken to his home town Bangladesh capital Dhaka by air and he was buried there on 29 December. Khairul Bashar was the professor of Mass Communication Department at Selangor University of Malaysia. He was also the Executive Director of the Kuala Lumpur-based Asian Institute of Development Communication(Aidcom) since 1986. During his 30 years’ association with Aidcom he worked relentlessly to uphold the spirit of the freedom of press. He obtained Master degree in Mass Communication from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USA and also worked as a journalist with a number of newspapers in Bangladesh including daily Morning News, daily Sangbad and daily Ittehad during 1960s. Later, after independence of Bangladesh in 1971 he joined the Unesco as a senior official and worked for this organization at different places including Paris, Bangkok, Kuala Lumpur and Nairobi for more than 10 years. Afterwards he established the Aidcom in Kuala Lumpur in 1986 and was with it until his last day. He was the editor of reputed international magazine ‘Journal for Development Communication(JDC)’ published from Malaysia. He was Secretary General of Manila-based Press Foundation of Asia(PFA) during 2000-2005. Khairul Bashar used to write columns regularly in the Malaysian daily The Sun. He was associated with Asia Journalist Association(AJA) since its birth and attended a number of AJA programs as keynote speaker and resource person.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새해 첫날 방글라데시 다카로부터 안타까운 소식

78세를 일기로 별세한 카이룰 바샤는 아내와

이 전해졌다. 아시아기자협회(AJA) 창립회원이자

아들 하나, 딸 둘을 두었다. 그는 1986년 유엔의

아시아발전커뮤니케이션(Aidcom) 연구원장인 카

지원 아래 Aidcom을 설립하고 최근까지 상임이사

이룰 바샤르가 닷새 전인 2015년 12월26일 쿠알

로 활동했다. Aidcom은 아시아 지역의 언론자유

라룸푸르 대학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수호 및 기자 양성에 큰 공헌을 해왔다. 카이룰 바

었다.

샤는 말레이시아 셀랑고르대학 매스커뮤니케이션

그의 동생인 샤피쿨 바샤 AJA 방글라데시 지

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양성에도 나섰으며, 아

부장 겸 <아시아엔> <매거진 N> 방글라데시 현지

시아기자협회 창립멤버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특파원은 “나의 맏형인 카이룰 바샤가 6주간 폐병

그가 평생을 몸담아 일했던 언론 관련 NGO와 언

으로 고생한 끝에 숨졌다”며 “12월29일과 1월1일

론학계 그리고 아시아기자협회의 큰 손실이다. 그

형의 고향인 다카에서 종교예식으로 장례식을 치

의 영면에 대해 동생 샤피쿨 바샤 기자는 이렇게

렀다”고 했다.

말했다. “카이룰 큰형님의 죽음은 우리 가족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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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magazine N | 201602

에게 큰 슬픔과 상실을 안겼다. 맏형이자 집안을

양 공보담당관 사완트 카우어(Sawant Kaur)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던 터라 슬픔을 가눌

는 ‘기후 뉴트럴 네트워크’(Climate Neutral

길이 없다.”

Network),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ASEAN 환경

기자와 카이룰 바샤의 첫 만남은 2007년 5월

기자협회 회장을 지낸 이반 림(Ivan Lim) AJA

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Aidcom

수석부회장(현 회장)과 환경운동에 관해 심도 있

주최 세계언론자유의날(World Press Freedom

는 대화를 나누었다. 당시 카이룰 바샤는 다른

Day) 행사장에서였다. Aidcom 대표를 맡고 있

참석자들과 기후변화와 아시아 언론의 역할, 기

던 카이룰 바샤는 당시 AJA 회장이던 필자에게

후변화가 국제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탁

‘Press Freedom, Safety of Journalists and

견을 발표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튿날 그는 칠

Impunity’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부탁했다. 세계언

십을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철원 지역 DMZ

론자유의날은 1993년 UN총회에서 선포된 국제기

에서 열린 ‘기후변화 Stop CO2 퍼포먼스’에서

념일로 UNESCO가 주관하는 공식행사와 각 나

“Stop CO2!”를 선창했다.

라 및 단체별 행사가 열리고 있다. 기자는 10분 가

그는 숙소가 있던 강촌으로 이동 중 과로로 쓰

량 ‘언론인 안전결의문’과 ‘동아시아 평화선언 실천

러져 응급조치를 받은 뒤 이튿날 백담사 템플스테

강령’ 등을 소개하고 아시아기자들의 연대 필요성

이에 합류하는 ‘투혼’을 보여줬다. 그는 이튿날 아

을 설명했다. 연설 뒤 그는 식사자리에서 “언론은

침 백담사 오솔길을 따라 산책에 나서며 크고 작

공기와 같은 것으로, 이것이 오염되면 독자와 시청

은 돌탑이 무수히 쌓여 있는 계곡가에서 돌탑을

자의 영혼도 따라서 오염된다”고 말했다. 나는 전

쌓으며 미소를 지었다. “우주는 늘 우리에게 말을

적으로 공감했고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 말을 듣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기후변화와 언론의 역할’

TV 안테나를 올리듯 우주의 메시지에 귀기울이

을 주제로 서울과 DMZ, 춘천 등에서 열린 ‘2008

는 마음으로 돌탑을 쌓아보라”는 백담사 진묵 스

아시아기자협회 총회’에 그를 기조연설자로 초청

님의 말씀이 너무 가슴에 와닿는다고 했다. 그가

했다. 그는 코엑스에서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 고

7년여 전 백담사에 쌓은 돌탑은 무너졌을지도 모

건 전 국무총리, 국제기자연맹(IFJ) 짐 보멜라 회

른다. 하지만 카이룰 바샤가 돌탑을 쌓으며 들인

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총회에서 ‘기후변화

정성은 여전히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팔십 평

의 심각성과 미디어의 중요성’을 주제로 연설했다.

생, 언론자유와 저널리즘 발전에 앞장서온 카이룰

당시 유엔환경계획(UNEP) 아시아-태평

바샤 박사의 명복을 빈다.

아시아기자협회 창립회원이 자 아시아발전커뮤니케이션 연 구원장으로 활동하다 별세한 카 이룰 바샤 2008년 10월 ‘기후변화와 언 론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아시 아기자협회 총회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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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2

2016년, 당신은 어떤 발자국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들은 남다른 발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인터넷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발레리나 강수진씨의 발이 그렇고,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박지성 선수의 발이 그렇다. 우리 곁에 조금 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로 보자면 부모님의 발도 마찬가지이 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다. 이들의 발에는 그동안의 노력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손과는 달라서 직접 살펴보지 않는 한 어떤 모습인지 추정조차 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족식과 같은 의식에서 상대방의 발을 씻기려고 처음 보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흠칫 놀라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상대방의 노고와 수고에 대한 감사와 존경어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두 발은 태어나면서부터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다. 태어나자마자 발도장을 찍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의 발은 아침에 일어난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한시라도 편안하게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몸에 걸치는 옷과 달리 신발은 제 발에 맞는 편안한 것을 찾는지 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발이 갖는 의미는 신체적인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어떤 직책을 맡거나 일을 할 때 “이 분야에서 족적을 남기고 싶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 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자 한다”는 등의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곧 자신의 발길이 닿는 곳이나 닿을 곳에 남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람의 발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밟아 왔는지를 통해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유추해 볼 수도 있고 지금 어느 곳에 발을 딛고 있는지를 통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도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발걸음을 향할 것인지를 통해 미래에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가늠해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 에게 있어 발은 신체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필자가 수년 전에 접한 후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되뇌어 보는 시가 있다. 눈 덮인 길을 걸어 갈 때에는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서산대사의 ‘답설(踏雪)’이라는 시이다. 이 시는 첫 출발의 시점에 서있는 이들은 물론, 무엇인가를 마 무리하는 시점에 서있는 이들에게도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2015년을 걸어 온 당신은 올 한 해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가? 그리고 아직 아무도 걷지 않은 2016년 에는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싶은가? 이와 함께 당신을 뒤따르는 이에게 당신의 발자국이 충분한 이정표 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는 한 발 한 발 보다 더 신중하게 내딛어 보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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