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N Marc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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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A G A Z I N E

w w w.t heasian . asia

MARCH

2 016

Inspiring Leaders l Empowering People l Leading Asia’s Change

Nepal: Land of God’s Smile ‘신이 미소 짓는 땅’ 네팔 Nepal: Land of God’s Smile ‘신이 미소 짓는 땅’ 네팔 값 12,000원

N o . 3 3 MARCH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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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 Photo Break ‘신의 얼굴 미소의 땅’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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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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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소개

지난 23년간 네팔 오지를 다닌 히말라야 사진가 조진수(57)씨의 ‘네팔의 서부’ 사진전이 2월17일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막을 올려 22일까지 성황리에 열렸다. <매거진 N>은 조 작가의 작품 중 일부를 독자들께 소개한다.

Letter from N 8

“돈 잘 버는 것은 기술, 잘 쓰는 것은 예술”_이상기 발행인

Partnership 10 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Asia Round-up 16 M A G A Z I N E

w w w.t heasian . asia

MARCH

ENG

파키스탄서 부는 ‘한류 열풍’_Nasir Aijaz

2 016

Inspiring Leaders l Empowering People l Leading Asia’s Change

Asian Envoys

Nepal: Land of God’s Smile ‘신이 미소 짓는 땅’ 네팔 Nepal: Land of God’s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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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한-베 FTA 발효·TPP 협정, 對 베트남 투자 전략은?_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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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자히드 칸 주한파키스탄 대사 “에너지 투자 유치 총력” _Rahul Aijaz

‘신이 미소 짓는 땅’ 네팔

On the Cover 네팔 서부 지역의 나무하러가는 소녀들. 사진작가 조진수가 <매거진 N>에 기고했다.

값 12,000원

N o . 3 3 MARCH 2016

03 9 772288 328008 ISSN 2288-3282

A picture of Nepalese girls on the way to gather firewood. This photograph was taken by Cho Jinsoo, a Korean photographer.

Age of Asia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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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뒷이야기 ②] 고속성장 쾌거 ‘아시아의 용’ 싱가포르의 민낯_김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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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Herigate

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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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모흐센, 이집트 어촌을 ‘아트 실크로드’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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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Ashraf Aboul-Yazid 가정집 절간서 장신구까지…아시아 불교 문화유산 _Radwa Ashr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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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s 68 [허영섭의 대만이야기 ⑱] 총통부, 타이난으로 옮겨 가나? 70 [천비키의 명상 24시 ⑯] 번잡한 출퇴근길서 찾는 내 마음의 여유 72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⑫] “우유로 ‘묵은 커피’ 숨기려는 자들은 가라!” 74 [박명윤의 웰빙 100세 ] ‘메르스’ 교훈 삼아 ‘지카’ 유입 철저 대처를

Special Topics ENG

Views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박상설 전문기자 대담

우리시대 두 어른이 말하는 ‘자연과 삶’ 속의 행복이란?_김아람 ENG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유네스코 키즈’ 프로그램으로 ‘제2의 반기문’ 양성 꿈 꾼다’”_최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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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건축가’ 김종석이 연희동 카페거리 만든 사연_박호경

66 이란·베트남·인도로 눈돌려야_김국헌 67 1910년 3월26일, 안중근 참모중장 순국하다_민병돈

People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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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동정의 시선, 코피노 불우한 존재로 만든다_최정아

Culture 78 [냥이아빠의 일본 엔타메 ②]

Insights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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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제재’ 해제 이란, 새 시대 희망 키운다_Pooneh Ne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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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르사막 어린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올 들어 170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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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

_Nasir Aijaz 스리랑카 새 정부 1년, 미국·중국·인도서 잇단 러브콜 _Kalinga Seneviratne

‘청순미녀’ 아라가키 유이, ‘리갈하이’로 톱스타 반열_박호경 81 영화 ‘동주’…윤동주 vs 송몽규 개인사 넘어 한일 사회사로_전찬일 84 ENG ‘대영박물관-영원한 인간 展’ 시대 관통하는 예술 단골소재 ‘인간’_Radwa Ashr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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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 3 대표이사·발행인 이상기 편집인 Ashraf Aboul-Yazid 편집위원장 이오봉 부편집장 이주형 대기자 민병돈 전문기자 박상설 김재화 안동일 이신석 취재·편집 최정아 김아람 Rahul Aijaz Radwa Ashraf 편집고문 김승웅 박준순 엄기영 유재천 육정수 임철 편집위원 기영노 박현찬 하지원 Sinan Ozturk 현지특파원 Alpago Sinasi(터키) Bishnu Gautam(네팔) Ivan Lim Chin(싱가포르) Kuban Abdymen(키르기스스탄) Nasir Aijaz(파키스탄) Pramod Mathur(인도) Shafiqul Basher(방글라데시) Uyanga Amarmend(몽골) 사업이사 차재준 애드마케팅에디터 정현 광고부장 김홍석 마케팅팀장 박호경 광고기획 유경수 디자인 이주형 제작·인쇄 ㈜타라티피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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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www.theasian.asia 기사제보 02-712-4111, news@theasian.asia 창간 2013.06.25. 등록 2013.05.02. 등록번호 종로 라00407 발행 ㈜아자미디어앤컬처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로 35 화수회관 207호(우 110-521)

Traces 88 일본 도쿄의 명당과 흉지는 어디?_손건웅

<매거진 N>은 한국간행물위원회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Travel

글로벌 제휴사

90 [‘노아의 방주’ 터키 지즈레,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①] 터키 비극은 자국민 향한 ‘야만의 민족말살’_이신석

Commentary 96 당신은 ‘도박사의 오류’서 벗어나 ‘도전하는 삶’ 살고 있는가_김희봉 정기구독 및 광고문의

(O) 02-712-4111 (F) 02-718-1114

정기구독(일시납 입금·신용카드 결제) 구분 구독료

1년

2년

3년

14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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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정기구독(1,440,000원) 시 평생독자로 모십니다 정기구독 입금계좌 하나은행 274-910006-67504 / 국민은행 031601-04-171721 농협 355-0022-8500-13 예금주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신용카드 결제 http://kor.theasian.asia/에 접속하여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정기구독(CMS 자동이체 약정) 매월 12,000원 출금. 위 연락처로 전화 혹은 http:// kor.theasian.asia/에 접속 후 메뉴바 오른쪽에 위치한 “구독신청”을 클릭하여 진행


Letter from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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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버는 것은 기술, 잘 쓰는 것은 예술”

우수와 정원대보름이 지나면서 봄기운이 확 피어옵니다. 3월 경칩과 춘분이 전후해 붉은원숭이해 새봄은 창문 밖에서 여러 모양으로 우리를 반기겠지요? 봄처럼 희망을 나누는 분들 몇분을 소개하려 합니다. 먼저 지난해 12월4일 자신의 재산 4분의 1을 서 울대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고 운명을 달리한 윤홍중(당시 80세) 약사 이야기입니다. 윤홍중 약사는 1971년 서울 역촌동에서 금강약국을 열어 한 자리에서 30년 넘게 약사로 일하며 주민 발행인 이상기

Lee Sang-ki

Publisher of Magazine N

건강지킴이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세남매를 둔 그는 평생 땀과 절약으로 일군 재산의 4분의 1에 해 당하는 8억원을 서울대총동창회 장학금으로 기부했습니다. 윤 약사는 앞서 타계한 부인 이상임 여사의 장례식 조의금을 역시 서울대에 기부한 바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평생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내 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이 말을 지인들에게 자주 했 다고 합니다. <매거진 N>과 <아시아엔>의 분쟁지역 전문기자인 이신석씨는 또 다른 형태의 희망을 전하는 ‘꿈과 사 랑의 메신저’입니다. 그는 10여년전부터 민족, 종교, 인종 등을 이유로(실제로는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둘러 싸고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중동과 서아시아를 다니고 있습 니다. 그는 출발 전 현지 청소년들에게 전해줄 선물을 준비합니다. 일용품에서 전자기기까지 일가 친척과 이웃들이 전투의 희생양이 되는 이곳 분쟁지역 청소년들에게 이신석 기자의 선물은 큰 위안이 됩니다. 그 의 배낭엔 카메라와 노트북 그리고 간단한 의류 외엔 모두 분쟁지역 청소년들에게 전달될 기부용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많게는 50만원에서 3만원까지 20명 가량이 보태준 현금과 30여명이 보내온 옷가지 등 생활용품 등으로 말입니다. 그의 열정과 따스한 사랑에 박수를 보냅니다. 끝으로 한분 더 소개합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니 샌더스입니다. 샌더스는 올해 만 75세입 니다. 폴란드 유태계 부모 사이에서 출생해 미국으로 이민 온 그는 젊은 시절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습니 다. 아니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란 표현이 적확할 듯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미국을 뒤흔들고 있습니 다. 그의 가장 큰 선물은 70대 노령에도 불구하고 세계인과 꿈과 미래 비전을 나누고 있는 점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앞서 언급한 윤홍중 약사의 70년 지기인 류제봉 단국대 명예교수가 들려준 말입니다. “버는 것은 기술 이고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합니다” 크게 공감 가는 말 아닌가요? 개나리 진달래 활짝 피는 4월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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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n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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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s Window to the World, the World’s Window on Asia 50개국 AJA 전문필진이 만드는 ‘매거진 N’

<매거진 N>은 아시아기자협회(AJA)와 ‘아시아엔(The AsiaN)’의 뉴스 네트워크를 기 반으로 국제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고급정보와 심층해설을 전달합니다.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is… 2004년 11월 공정보도, 언론자유 수호, 저널리즘 발전 등을 목표로 한국, 중국, 일 본, 몽골 등 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필리핀 등 아세 안(ASEAN) 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발족했습니다. 이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기자들이 참여해 현재 52개국, 300여 명의 회 원이 “한 줄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피와 땀을 아끼지 않는다”는 모토 아래 활동하 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종교·인종·민족·국가·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환경보전 등 인류보편 가치 실현을 공통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아시아기자협회 로고 아시아기자협회 네팔지부 ‘미디어와 평화’ 포럼(2014. 03)

The AsiaN (www.theasian.asia) is… 2011년 11월11일 아시아기자협회가 창간한 인터넷 매체로 아시아기자협회 소속 베테랑 언론인, 전문가들이 정확한 뉴스와 깊이 있는 논평을 영어, 한 글, 아랍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합니다. ‘The AsiaN’의 N은 ‘미래비전(Next)’, ‘균형잡힌 뉴스(News)’, ‘소통 한마당(Network)’을 의미합니다.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이 지역 최초의 온라인 매체로서 AsiaN의 출범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아시아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오늘날 매우 뜻 깊은 The AsiaN 영문판·아랍어판 메인화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반기문 UN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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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AJA in Brief

2004.11. 아시아기자협회 창립

회원

2010.07. AJA,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인가

사무국 서울

2011.06. AJA, 기획재정부 지정기부금단체 선정

지부

2011.07. (주)아자미디어앤컬처 설립

이사장

2011.11. 11월11일 아시아엔(The AsiaN) 한글·영문판 창간

2012.11. 아시아엔(The AsiaN) 아랍어판 창간

회장

2012.11. 네이버(NHN), 줌(ZUM) 뉴스검색 제휴, 모로코작가협회 제휴 2012.12. 다음(Daum) 뉴스검색 제휴, Al-Arabi Magazine 제휴 2013.02. 수아드 알 사바 시집 ‘쿠웨이트 여자’ 번역 출간 2013.03. 이집트 Al-Hilal Magazine 제휴 2013.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013.09. AJA ‘아시아 문화언론인포럼’ 광주서 개최 2014.03. AJA, 쿠웨이트 황금보트상 수상 2014.04. 아시아엔(The AsiaN) 편집위원회 발족 2015.01. 최초 해외인턴기자 라훌 아이자즈(Rahul Aijaz, 파키스탄) 연수 시작 2015.06. 6월25일 ‘매거진 N’ 창간 2주년 2015.07. 이집트 출신 라드와 아시라프(Radwa Ashraf) 연수 합류 2015.10. 네팔지진 후원 사진전, 조진수 작가 공동주관

몽골, 네팔, 방글라데시, 터키, 중동

김학준 한국 한동대 석좌교수

2012.02. 중국 온바오닷컴, Global Asia, THE KOREA TIMES 기사제휴 2012.03. 뉴시스, 연합뉴스, 터키 CIHAN 통신사 기사제휴

52개국 357명

창립회장 Ivan Lim 싱가포르 The Straits Times 전 기자

이상기 한국 한국기자협회 전 회장

Xu Bao Kang 중국 인민일보 한국판 전 지사장

Dolgor Chuluunbaatar 몽골 Ulanbaatar Times 전 편집국장

Eddy Suprapto 인도네시아 RCTI TV 부국장

Bishnu Nisthuri 네팔 네팔기자연맹(FNJ) 전 회장

Norila Mohd Daud 말레이시아 Utusan Malaysia 선임기자

강석재 한국 세계태권도연맹 사무차장

부회장

2015.11. 아시아엔(The AsiaN) 창간 4주년

Messages from AJA

Magazine N breaks new ground for rising Asia

‘아시아 시대’에 발맞춘 매거진 N

The inaugural issue of Magazine N is a commendable first effort by our columnists, reporters and correspondents to give readers insights on Asia from an insider’s perspective. They write with inherent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their own home turf matched by native feelings and regional sentiments. The pages appear in a refreshing and reader friendly format made attractive by photographs and other graphic illustrations. Style-wise, our writers have delivered content that is serious and substantive. However, they have not forgotten to give them a human touch as shown in the way stories are woven around political, business and sports personalities of the day. Our editors have also thrown in a good mix of topics and lively spread of photographs to suit a variety of interests and preferences among readers. They have also been imaginative and creative in projecting Magazine N as a ‘new frontier’ publication that will, as we go along, break new ground in our coverage of a rising Asia and the consequential re-shaping of the regional, political and economic architecture. That is the professional thinking and aspiration driving our efforts in Magazine N, as it is with our online - Ivan Lim President of the Asia Journalist Association news portal The AsiaN.

아시아기자협회 회원이 주축이 되어 <아시아엔>을 창간한 지 4년 남짓, 이들이 이제 월간 <매거진 N>을 이 땅에 선보였습니다. 굳이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예측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시대”라는 말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불과 수 십 년 전까지 전쟁과 기아에 신음하던 아시아가 ‘세계의 공장’, ‘문화의 중심’으로 발돋움한 바로 이때, <매거진 N>이 전달할 질 높고 다양한 정보는 독자들의 안목을 높여줄 것을 확신합니다. - 김학준 (사)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한동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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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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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얼굴 미소의 땅’ 展 히말라야 사진작가 조진수 네팔 서부 사진전

히말라야 사진가 조진수(57)씨의 ‘네팔의 서부’ 사진전이 2월17일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막을 올려 22일 까지 성황리에 열렸다. 지난해 4월말 수차례 계속된 지진 참사로 큰 희생을 당한 네팔을 돕기 위해 열리는 전시회에는 조 진수 작가가 지난 23년간 네팔 오지를 다니며 촬영한 희귀한 사진 100여점이 전시됐다. 조 작가는 지난해 가을 김포문화 회관에서 연 사진전 수익금을 지진으로 부상당한 네팔기자 치료비 등으로 기부한 바 있다. <매거진 N>은 조 작가의 작품 중 일부를 독자들께 소개한다. Photographer Cho Jin-shoo's latest exhibition ‘Western Nepal’ was held in Chosun Ilbo Art Gallery from 17th to 22nd Feb, to help Nepal, where a deadly earthquake last year left more than 8,000 dead. Cho, who has traveled around remote areas of Nepal for 23 years, released 100 rare photographs. He donated all profits from the previous exhibition, held in Kimpo Cultural Centre last year, for Nepali journalists injured by the disasters. Magazine N would like to introduce some of his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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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서부지역에 있는 라라 호수의 반영. 네팔에서 만 난 호수 중 가장 넓은 곳이다. 돌포에 있는 누마라(5,238m) 고개를 내려오다 만난 현지인. 양들도 반가운지 아는 체 한다. 돌포 여정이 마무리 될 때 즈음, 장나 고개(4,800m)를 넘어서 만난 첫번째 마을. 토종꿀을 채취하고, 사냥을 하 며 사는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너무나 평화로운 마을 모습 에 넋을 절반쯤 잃은 채 촬영했다.


Asia Round-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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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kistan Television airs Korean drama The State-owned TV channel Pakistan Television has started airing a Korean drama serial from 4th January 2016. The PTV Home channel is broadcasting the Korean drama series famously known as ‘Jewel in the Palace’ (Dae Jang Geum) from Monday to Saturday. The airing of Jewel in the Palace on PTV Home is a big step forward in promoting cultural ties between Pakistan and the Republic of Korea. For the convenience of viewers in Pakistan, the drama has been dubbed in Urdu language. ‘Jewel in the Palace’ is one of the top ten Korean drama series of all time and has already been aired in 91 countries all over the world including the USA, Canada and Australia. ‘Jewel in the Palace’ is based on a true story and is a historical drama set mainly in the 16th century. It follows the tale of a young and poor orphaned woman who eventually became the king’s first female physician in an era when women had little influence in society. In the process she overcomes challenges and intrigues and learns the secrets of cooking and medicine to cure the king of his medical problems. The drama series has been praised for its excellent portrayal of Korean society and culture during this historical time and its resonance with audiences all over the world who can easily identify with the characters and social issues which confront many of us. Nasir Aijaz Director, The AsiaN’s Pakistan Bureau

파키스탄서 부는 ‘한류 열풍’…‘대장금’ 국영방송서 절찬리 방영 파키스탄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2월4일부터 현지 국영방송 <PTV Home>에서 한국 인기 드라마 ‘대장금’(영어제목 ‘궁의 보석’ Jewel in the Palace)이 절찬리 방영 중이다. 파키스탄 공용어인 우르두어가 자막으로 제공된다. ‘대장금’은 한국의 인기 드라마 중의 하나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91개국에 수출돼 방영됐을 만큼 세계적인 호응을 끌었다.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제작한 픽션으로,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어려웠던 16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가난한 고아였던 주 인공 장금이가 여성 최초의 어의(왕을 돌보는 의사)가 되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 작품은 당시 한국 사회의 문화를 반영해 호평을 받았다. 또한 장금이 직면하는 수많은 어려움과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 은 현대인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현시대 전세계 팬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한편, 이번 ‘대장금’ 방영으로 한국-파키스탄 양국의 문화 교류 물꼬가 트이면서 향후 더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시르 아이자즈 매거진 N 파키스탄 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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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online platform to debunk ‘refugee crimes’ Developer Lutz Helm and Karolin Schwarz launched last week ‘Hoaxmap’, an online platform that allows people to separate fact from fiction by debunking false rumors about supposed crimes committed by refugees across Europe. According to Al-Jazeera, the platform will “use an interactive system of popping dots, as the map documents and categorizes where those “crimes” allegedly took place. It then counters that false information with official statements from the police and local authorities, as well as news reports in which the allegations have been disproved. One week in, Hoaxmap has featured some 240 incidents, mainly from Germany but also Austria and Switzerland. Germany, especially, has seen a change of stance towards refugees after the reports of dozens of attacks on women at New Year celebrations in Cologne, which renewed criticism of Chancellor Angela Merkel’s open-door policy on refugees and migrants, with some 1.1 million new asylum seekers registered in the last year alone, according to Al-Arabiya. Cologne alone has seen a number of angry reactions toward non-Europeans as a result of these attacks, such as a group of six Pakistanis were attacked by a gang of about 20 people, while a Syrian national was reportedly targeted in a separate attack by a group of five people, even leading police forces to analyze whether there is a link between immigration and the sexual harassment of women in Germany. The platform aims to clear the refugees’ names of some of the rumors and hoaxes people claim to be done by them. The cases on the map include almost all kinds of offenses from thefts and assaults to rape. Schwarz said, “As the number of hoaxes increases, we want to work with the data as well, to check if there are relations between stories which are often shared locally.”

난민 둘러싼 루머 밝히는 어플리케이션 ‘혹스맵’ 출시 ‘유럽으로 이주한 시리아 난민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최근 유럽에서 시리아 난민을 두고 각종 루머가 번지면서 많은 난민들이 ‘범죄자’ 혹은 ‘사회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란 편견 속에 살고 있다. 난민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으레 ‘난 민이니까 그랬을거야’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눈총 받기 십상이다. 이러한 난민 관련 루머의 사실관계를 바로 잡아주는 어플리케이션 ‘혹스맵’(Hoaxmap)이 등장해 화제다. 이 어플리케이션은 고향을 떠나온 난민들이 잘못된 소문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개발됐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혹스맵은 온라인 지도에 범죄가 발생한 곳에 ‘점’을 찍어 주는 시스템을 활용한다. 일명 ‘범죄지도’는 현지 경찰이 발표한 공식 성명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난민범죄 관련 확대재생산된 루머를 바로잡아주고 있다. 이 어플리 케이션은 일주일 사이에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각지역에서 발생한 240개 범죄 사건을 온라인 지도상에 기록했 다. 특히 새해부터 벌어진 쾰른 성폭력 사태로 반이민 정서가 확대되고 있는 독일에선 이 프로그램의 활용가치가 높다. 이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한 슈와츠는 “난민 관련 수많은 루머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는 온라인에 떠도는 데이터들을 활용 해 사실과 거짓을 밝혀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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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kistani scientist helps detect Einstein gravitational waves As the news of the scientific breakthrough that saw the historic detection of gravitational waves, hypothesized by Albert Einstein a century ago, came out, celebratory roars were heard all around the world. Amid the roars, Pakistan’s were the loudest, because the team of scientists behind this historic discovery consisted of one Pakistani. Scores of people celebrated Dr. Nergis Mavalvala’s efforts as a member of the US-based 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at the helm of this discovery. AP

This is the story of a woman from a minority Parsi community in Pakistan, with an unconventional dream of being a physicist and got to be at the center of this historic discovery. “Growing up, I didn’t know there was a subject such as astrophysics. I did know there was physics and I did know there was a sky filled with pretty interesting objects,” says Dr. Mavalvala. “I was pretty young when I started to learn about the night sky. I used to live in the Clifton neighborhood in an apartment building and would go to the rooftop of the building on certain nights of the year when there were meteor showers and look at meteorites … I had this kind of typical wonder about the universe. I was also extremely interested in how the universe began. That was formed because I did not believe in any other religious explanation for these things even as a child.” Even as she joins her jubilant colleagues at the Laser Interferometric Gravitational Wave Observatory and other scientists across the world in the realization of this advancement, Dr. Mavalvala still feels they have “just chipped the tip on an iceberg”. “… My sense is that [with] every major discovery… the moment you feel like you’ve made the discovery is followed by a realization that you have actually only opened up more questions that you need to answer. It’s really fun!”

파키스탄 소수민족 출신 마발와라 박사의 중력파 검출 성공스토리 2월11일(현지시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약 100년전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예측한 ‘중력파’ (重力 波) 검출에 성공했다. 중력파란, 별의 폭발, 블랙홀 생성 등 우주에 초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 중력 에너지가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것을 말한다. 최근 라이고(LIGO) 팀이 검출한 중력파는 무려 13억 광년 전 충돌한 두 개의 블랙홀에서 발생한 중력 파가 지구에 도달했다. 한편 실험을 주도했던 ‘라이고’ 팀 연구원 가운데 파키스탄 소수 민족 출신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여성’ 천체물리학자 날거스 마발와라 박사다. 그는 여성교육 수준이 낮은 파키스탄에서 탄생한 여성 과학자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마발와라 박사는 웰슬리 칼리지에서 물리학 및 천문학 학 사를 취득했으며, 메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MIT에서 천체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발와라 박사는 파키스탄 현지언론 <던>(DAWN)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부터 고정된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았다”며 “덕 분에 여성이라도 모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랐고, 이것이 꿈을 이루는 큰 자양분이 됐다”고 전했다. 또 마발와라 박사는 파키스탄 사람들을 향해 “당신의 성별, 종교, 성적 취향에 상관없이 무엇이든지 이루어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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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ian doctors’ syndicate stages anti-police rally Thousands of Egyptian doctors staged a protest Friday 12, February, outside their union headquarters in Cairo over a lack of legal action against policemen who beat up two of their colleagues. Nine policemen are alleged to have assaulted the doctors in a state hospital in Cairo’s northern district of Matareya on January 28 after they refused to forge a medical report. The prosecutor’s office called the nine policemen in for questioning but released them on Thursday, according to Al-Ahram. Xinhua

The head of the doctors’ syndicate, Hussein Khairi, told AFP: “Our demands, which are very fair, are the safety of doctors while performing their job and that the attackers be taken to court.” “The interior ministry is thugs,” the protesters chanted as they were joined by over 60 public figures and syndicates’ representatives expressing their solidarity, standing 500 meters away from four armored police vehicles. There were no clashes. They demanded the sacking of the Health Minister, Ahmed Emad, due to his failure to protect the doctors on duty, according to Al-Jazeera. The doctors also demanded the installation of CCTV cameras in ER sections and hospitals passages, to guarantee theirs and patient’s rights, and that no armed person enters any medical facility except the facility’s security personnel only. The assembly also agreed to give the rights to doctors to strike if they are being attacked or their medical workplace is being attacked. The protesting doctors have assured they won’t end their strike unless the minister resigns. Activists expressing solidarity with the doctors have initiated the Hashtag #I_support_Doctors_syndicate” in Arabic that was trending in Egypt on Friday with over 40,000 tweets. While the interior ministry didn’t release any comments so far, a large number of public figures showed their solidarity on social media, criticizing the ministry and the way media dealt with the protests.

이집트 경찰, 진료기록 위조 거부한 의사 집단폭행 ‘시민들 뿔났다’ 2월12일(현지 시간) 수천명의 이집트 의사들이 수도 카이로에서 경찰 9명이 의사 2명을 집단 폭행한 것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현지보도에 따르면, 경찰 9명은 1월28일 의사 2명이 진료기록을 위조하라는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집 단폭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검찰은 해당 가해자들을 지난 11일 석방했다. 이에 따라 의사뿐만 아니라 시민들 또한 검찰의 가 해자 석방조치에 불만을 터뜨리면서 시위 열기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후세인 카이리 이집트의사협회 회장은 <AFP>에 “내무부 장관뿐만 아니라 보건부 장관 아프메드 이마드가 의사들의 권리 를 보호하는데 실패했다”고 비판하며 의사들에게 폭력을 가한 경찰들이 정당한 심판을 받아야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모든 병원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병원 경호원을 제외한 무장경찰·군인의 병원출입을 금해야한다”고 밝혔다. 이집트 시민들도 의사협회의 시위를 지지하는 분위기다. 이집트 SNS에선 ‘나는 의사협회를 지지합니다’라는 내용의 해쉬 태그(#I_support_Doctors_syndicate)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의사폭행사건을 비난하는 트윗이 2월12일 하루에만 4만개를 돌파했다. 이집트 언론도 “이집트 혁명이 일어난 뒤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부는 시민들의 요구를 귀담아듣지 않고 있다” 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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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자녀 정책’의 그림자…빛 보지 못한 뭇 생명들 지난 1월1일 중국 당국은 35년동안 이어왔던 ‘한자녀 정책’ (One child policy)를 폐지하고 ‘두자녀 정책’으로 선회하겠다 고 선언했다. 미국 <포린 폴리시>는 1980년 한자녀 정책 도입 이후 ‘둘째딸’ 로 태어나고 자란 캐롤라인 칸의 글을 2월4일(현지시간) 보도 했다. 칸의 부모는 ‘한자녀 정책’이 불어 닥친 시대적 변화를 직 격탄으로 맞은 세대다. 당시 중국 가족계획부의 관할 하에 사 무소가 중국 전역에 설치됐다. 신화사

캐롤라인 칸은 “가족계획사무소는 둘째아이를 갖게 된 기혼여 성들을 소환해 강제낙태시켰다. 낙태시기가 지난 임산부들은 벌금을 내야만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35년 전 당시 ‘900달러’는 중국서민에겐 너무나도 큰돈이었다. 수많은 서민가정은 둘 째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칸의 부모는 그녀를 ‘후커우’(Hukou, 호적등본)에 등록시키기 위해 910달러를 지불했다. 하지만 칸의 동네친구는 달랐다. 칸은 “맏딸이었던 그 친구는 호적신고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남동생이 태어나자 마자 곧바로 할아버지댁으로 이사를 갔다. 이는 중국 지방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칸에겐 오빠 한명이 있다. 칸의 오빠가 태어나자마자 가족계획사무소는 칸의 어머니를 강제로 병원으로 데려갔다. 자궁 내 피임기구인 ‘피임링’을 시술하기 위해서였다. 출산한 기혼여성들은 모두 정기적으로 초음파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피임링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988년 봄, 칸의 모친은 비밀리에 피임링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가족계획부의 정기검진은 피할 수 없었다. 그녀 는 피임링을 몰래 주머니에 가져가 초음파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궁 근처에 가져다 댔다. 이러한 눈속임으로 당국의 검진 때 마다 빠져나갈 수 있었다. 칸은 “수많은 위기 끝에 1989년 3월, 내가 태어날 수 있었다. 난 정말 운이 좋았다”고 밝혔다. 칸은 “발표 직후 과거 정부가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들에 대해 묻기 위해 가족계획부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거절당했다”라 며 “나의 숙부가 살던 마을엔 가족계획부가 파견한 감독 2명이 있었다고 했다. 소중한 생명들이 그 두 명의 손에 죽어갔다”고 말했다.

China ‘One-child policy’ end upsets people China announced the end of the ‘one-child policy’ on the first day of 2016. However, some citizens begun to boycott, complaining the government should compensate for the second child that could not be granted a hukou, the registration papers that enable Chinese people to obtain such services as education and healthcare. Also some claimed that the government should pay back the penalties for giving a second birth that numerous parents had to pay. On February 4, ‘Foreign Policy’ released the story of a Chinese girl, Karoline Kan. Her mother had to go through various hardships, during the years when the one-child policy was strictly enforced. Every few months, women who had already had one child would be taken to the hospital to take an ultrasonic photo and make sure their intrauterine rings were still there. However, her mother secretly removed her intrauterine ring, and during the regular physical check she adjusted the exact position of the ring and took her x-ray photo. This is how Kan was born in 1989. Also, she claimed that, at that time, Chinese women who were pregnant with a second child were forced to abort by directors in the local family planning office. Kan said, “In a local village, there are two directors from the local family planning office. Both of them have many lives on their ha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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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report

대만 타이난서 6.4 지진 ‘17년만에 최악의 지진’ 2월7일 대만 남부 타이난 에서 6.4 규모의 지진으로 116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융캉구의 웨이관 진룽 빌딩에서 희생된 것으 로 파악됐다.

Standing below a beam of exposed oil cans used to fill space in some structures, rescue teams continue to search for the missing in a collapsed building from an earthquake in Tainan, Taiwan on 7th Feb. The government revealed the death toll from the earthquake AP

to be 117.

COMMENTS from Asia

푸시 라이엇 2012년 2월 반푸틴 시위를 벌이며 유명세를 탄 러시아 인디밴드 ‘푸시 라이엇’(Pussy Riot)이 신곡 차 이카(Chaika)로 돌아왔다. 푸시 라이엇은 “(푸틴의 숙적) 알렉세이 나발니는 우리의 정치적 뮤즈다. 유리 차이카 검찰총 장의 부패를 폭로한 나발니의 영상에서 영감을 얻어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Pussy Riot

Russian feminist punk rock protest group Pussy Riot, who came into spotlight with their anti-Putin movement, have returned with a new song, ‘Chaika’. Pussy Riot said, “The lyrics were inspired by the recently uncovered bloody criminal connections and unbelievable corruption of Russia’s top law enforcement official, General Prosecutor Yuri Chaika.”

“무슬림은 발렌타인데이를 기념해선 안 된다.” 발렌타인데이였던 지난 2월14일, 인도네시아의 한 무슬림 소녀가 발렌타 인데이를 금지하자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여 화제를 모았다. 최근 인도네시아에 발렌타인데이를 축하하는 문 화가 확산되자, 현지 무슬림 학생들이 반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Muslims forbidden to celebrate Valentine’s Day.” A Muslim girl displays a poster during a protest against Valentine’s Day in Jakarta, Indonesia on 14th Feb. As Valentine’s Day culture spreads in Indonesia, one of the Muslim countries, some conservative Muslim students boycott against Valentine’s day.


Asian Env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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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2014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과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인근 한 호텔에 마련된 공동기자 회견장에서 한-베트남 FTA 서명을 지켜보고 있다.

현지전문가에게 물었다

한-베 FTA 발효·TPP 협정 이후 對 베트남 투자 전략은?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지난해 12월20일 한-베 FTA 발효와 앞서 작년 10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지난해 5900명을 넘어섰다.

월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계기

유학생 출신국으로는 중국 다음으로 큰 규모다. 한

로 베트남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인구 9천만명

류의 영향까지 겹쳐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

의 베트남은 TPP 참여 12개 국가 중 손꼽히는 생

자 한국 유학이 늘고 있다. 베트남의 양대 도시인

산기지로 새삼 한국기업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하노이와 호치민에서 활약하는 서울대 졸업생만해

있다. 이 나라는 베트남전을 계기로 60년대 이후

도 300여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베트남인은 150명

한국과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현지 진출기

을 웃돈다. <매거진 N>은 현지에서 짧게는 10년에

업도 3천개를 훨씬 웃돌며 베트남 내 투자국 1위를

서 1992년 수교 이전부터 활동해온 전문가들로부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고용한 베트남 현지인력은

터 한-베 FTA협정 이후 베트남에서 성공하기 위

60만명에 이른다.

해 필요한 조건과 비결, 숨겨진 현지 사정 등을 들

한국에 유학 온 베트남 학생도 2010년대 들어

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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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농촌 인력이 많고 메콩강 주변 등의 농업환경이

“베트남도 서서히 환경규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뛰어나 발전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투자나 세계적으로 인

같다.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은 이에 대한 준비도

정받고 있는 농업기술력을 투입하면 좋을 것이다.”

해야 할 듯싶다.”

박동철 탐비나 대표

배종하 국제식량농업기구 베트남 국가사무소장 “베트남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노동의 질이 높다. 여름에는 “베트남에서 생산한 물품은 미국으로 관세 없이 수출할

밤새도록 공사하는 곳도 많다. 공사현장으로 넘쳤던 우리

수 있다. 한국의 경공업 업체들의 베트남 러시가 계속될 것

나라 80년대를 보는 듯하다.”

이다.” “베트남도 서서히 환경규제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중국에 꽌시라는 게 있는데 베트남에도 그런 게 있다.

같다.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은 이에 대한 준비도

오히려 더 강한 것 같다. 그게 없으면 여기서 사업하기 힘

해야 할 듯 싶다.”

들다.” “하롱베이는 난개발이 돼서 문제가 많다. 좀 체계적인 개 “베트남의 미래가 밝은 이유는 교육열이 높기 때문이다. 한

발이 필요해 보인다. 다낭 해변의 길이는 40km가 넘는데,

국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어려서부터 과외도 많이 시키

개발 수요가 무궁무진하다.”

김인환 전 환경부 차관

고, 명문학교 진학 경쟁률이 대단히 높다. 전쟁 중에도 호 치민이 젊은 학생들을 유학을 보냈다. 1세대는 러시아와

“이 나라 경제성장률이 6∼7%가 적당하다고 보는 것은 다

동부 유럽, 2세대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최근에는 미국

른 나라 케이스를 보고서 결정한 것 같다. 빠른 성장 후에

을 비롯해 한국 등으로 많이 보낸다.”

오는 갈등구조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베트남은

노경용 아르페지오 베트남 대표

그런 과정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용봉 우리은행 하노이 지점장대우

“TPP 12개국 중에 베트남만큼 노동력이 좋은 곳이 없다. 미국이 베트남을 끼워준 것은 아마도 베트남 항만 사용을

“베트남에서 두 번째 큰 국영석유사를 뚫기 위해 2년 반

염두해 둔 것 같다.”

동안 수시로 인사를 갔다. 거르지 않고 인사하고 선물주 고 하니까 그때서야 한번 공급해보라는 말이 나오더라.

“베트남 경제의 문제는 큰 기업들이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중간에 담당 직원도 바뀌고 그러면 참 힘들지만 인내를

부동산 기업이라는 점이다. 1억의 인구가 먹고 살기엔 서

갖고 정성을 보여야 한다.”

비스, 부동산업은 한계가 있다”

변점석 현대오일뱅크 하노이 지사장 신화사


Asian Env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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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with Pakistan Ambassador to Korea, Zahid Nasrullah Khan Summary

자히드 나스룰라 칸 주한파키스탄 대사 “에너지 투자 유치 총력” 작년 시진핑 중국 주석은 향후 10년 동안 460억달러(52조원)을 투자해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사업을 추진하겠다 고 밝혔다. 파키스탄은 또한 국민 평균 연령이 22.6세(한국 40.2세)로 무척 젊은 나라인데다, 정규교육을 받은 국민이라면 누구 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어 발전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국가다. 지난 2월 중순, 파키스탄에서 온 라훌 아이자즈 기자가 자히드 나스룰라 칸 주한파키스탄 대사를 만나 한국에서의 그의 역할과, 그간 양국의 발전을 위해 공헌해온 일 등에 대해 이 야기를 나눴다. 한국과 파키스탄은 지난 1983년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2013년 12월 취임한 칸 대사는 “지금까지 양국의 경제 교류 확대 방안에 집중해왔다”면서 “해외직접투자, 지식 공유 협약 등 을 포함해 다양한 부문에서의 무역 교류 증대를 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파키스탄 산업, 특히 에너지 부문에 한국 투자자 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도 했다. 파키스탄은 많은 인구에 비해 전력 공급량이 부족해, 전력난이 해소되면 경제 성 장이 더욱 탄력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칸 대사는 “양국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준비가 계속 되고 있으며, 한국 정부와 수 출입은행의 지원으로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IT 경제특구가 조성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미디어와 예술 분야의 교류는 어떨까? 경제만큼 교류가 활발하지는 않지만, 점차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어 주목된다. 칸 대사 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을 포함해 많은 기관들이 파키스탄 예술인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며 “한국국제 교류재단은 올해 말 한국에서 ‘간다라 문명 展’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했다. 고대 간다라 문명은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2세 기까지 파키스탄 등에서 번영했던 문명이다. 그레코 불교의 중심지이자, 여러 민족과 종교가 뒤섞인 다양한 형태의 불교미술 과 건축으로 유명하다. 또한 칸 대사에 따르면 파키스탄에도 상당수의 한국인 커뮤니티가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서 온 유학생을 포함해 다수의 기업인과 외교관들이 살고 있으며, 근로자 대부분은 에너지 사업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지 여행을 위 해 파키스탄을 찾은 한국 여행자들도 꽤 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카라치나 라호르 같은 대도시에 정착한 한국인들도 있다고 전했다.

Rahul Aijaz Photojournalist/Reporter rahulaijaz@theasian.asia

라훌 아이자즈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Please introduce yourself to the Magazine N

economic relations with Korea, because of the very

readers.

fact that the two countries belong to regions, and

“I joined the foreign service in 1989 and since

they have their own political and security regime.

then, I have served in many countries. This is my

The foreign policies of both countries focus more

first ambassadorial assignment which I assumed

on their regional security regimes. But what could

in December 2013.”

be binding between the two countries is to develop

What has been your activities in the last two

their economic relations. When we talk about

years?

economic relations, we talk about foreign direct

“We have had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investment, bilateral trade, partnership in sharing

Korea and Pakistan since 1983. After my arrival

of knowledge, capacity building, technical courses

here, I found out that it was important to focus on

and economic system. First of all, with regar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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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planning to build an IT park in Islamabad with the help of Korea Eximbank and Korean government. It will be over an area of 2 acres, with a budget of about $100 million.”

FDI, we try to encourage Korean investors to invest

We are planning to build an IT park in Islamabad

in Pakistan, especially in the energy sector. Some

with the help of Korea Exim-bank and Korean

Korean companies are happy to invest there in

government. It will be over an area of 2 acres, with

hydro-power plants.

a budget of about $100 million.

It is also important to compete with other ex-

We are also trying to establish some vocational

porters to Korea, in textile and leather products.

universities, because Korea is very advanced in

We continue to work on signing a free trade agree-

that field and we have many upcoming industries,

ment as Pakistan and Korea are in the process of

like automobile industry and other sectors, where

completing a pre-feasibility study, which we hope

people need such labor force.

to complete by June 2016. We then look forward

Pakistan China Economic Corridor is an on-

to the first round of bilateral trade negotiations,

going huge investment of $46 million, which will

which will kick start the process of FTA.

see a lot of economic activities in Pakistan. That

The third component, which is very impor-

implies that Pakistan will need a very highly

tant, is that the Korea Exim-bank is extending the

qualified labor force. This is why I am focusing on

Economic Development Cooperation fund. When

vocational training and this is where Korea’s role is

I joined in Korea, it was $180 million and last Sep-

important.”

tember, we signed an agreement to boost it to $500

How do you think this compares to India’s ef-

million.

forts to attract investment in the country?

We plan to work on projects which Pakistan

“India has a distinct advantage in that sec-

government is currently not working on. Obvi-

tor. They have a huge class of people which is

ously, Korea has an edge in technological expertise.

very well-educated. They have a great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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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3

pool over there. We also have a good education

Pakistan in Korea? People here seem to be

system but our education system doesn’t turn out

surprised if they know you’re from Pakistan.

such type of graduates which are useful for the

Similarly, Pakistanis are totally unaware

manufacturing and service industry. We are not

about Korea.

industry-focused. I believe vocational training is

“It depends on who you talk to. You see,

the backbone of any country. Therefore, we want to

before 1979, there was no terrorism, militancy

set-up state-of-the-art vocational schools and other

or religious extremism in Pakistan. But then we

schools would spring up from there.”

suffered through it. So now, we have to face that.

Have there been or are there any plans to

There are people in Pakistan who have not trav-

make efforts in art-related sectors, such as

eled to Korea and there are Koreans who haven’t

creating more opportunities for collaboration

been to Pakistan. If you talk to the well-educated

between media industry and artists in Korea

class, they will thank you, because they are aware

and Pakistan?

how South Korea borrowed Pakistan’s ‘Five-year

“We are in the process of making such efforts

Plan’ (Pakistan’s average economic growth rate

but they are on a very limited scale. There are cer-

was higher than the average world economy in

tain cultural organizations which promote artists

1960s, resulting in many countries, including

and bring them here from Pakistan. There is Kore-

South Korea, emulating Pakistan’s economic

an Culture Foundation, who organized a Hanbok

strategy). In fact, you will be surprised that about

recognized as a

fashion show in Islamabad (in October 2015). The

130 students regularly go to Pakistan, and they

separate country

Korean ambassador in Islamabad is very active

return having a fantastic experience. They also

(from North

and he is looking to establish a Korean restaurant

speak Urdu. So it depends who you talk to. The

in the city. Unfortunately, we don’t have a direct

business and diplomat community knows about

flight between the two countries and that, I think,

Pakistan quite well.

“When South Korea applied in the UN to be

Korea), Pakistan played

an

is a major impediment, especially, in promoting

Pakistan played a very pivotal role, which most

important role in

our cultures. There are cultural exchanges but they

Koreans don’t know. When South Korea applied

supporting that.”

are limited.

in the UN to be recognized as a separate country

Korea has a Buddhist background so we are

(from North Korea), Pakistan played an important

going to have a major exhibition of Gandhara civi-

role in supporting that. ”

lization (an ancient civilization in Pakistan which

There is a small community of 11,000 Paki-

lasted from 1500-500 B.C., and served as a center of

stanis in Korea. What can you tell us about the

Greco-Buddhism) this year. Our Korean friends,

Korean community in Pakistan?

especially Korea Culture Foundation are working

“Koreans who live in Pakistan mostly work at

hard to organize and bring the artifacts from Paki-

power companies. And there are a lot of Koreans

stan.

who go there for trekking. In fact, you will be sur-

What is important is the frequency of inter-

prised to know there is a Korean who is settled in

action, which remains limited due to expensive

Gilgit (the capital city of Gilgit-Baltistan, an admin-

flights between Korea and Pakistan. Even then, I

istrative territory of Pakistan). So there are many

would say, relatively speaking, cultural interaction

Koreans who stay there for different reasons.

has increased than it was in the past.”

There are many Koreans who are permanently

How do you plan to change the image of

settled in Lahore and Kar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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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e of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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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뒷이야기 [ 2 ]

댓글 하나로 까딱하면 감옥행? 고속성장 쾌거 이룬 ‘아시아의 용’ 싱가포르의 민낯

Summary

Singapore suffering from side effects after rapid growth Singapore is well-known as a global commerce, financial and transportation hub. However, side effects, followed by sudden economic growth, still linger today. In this regard, I would like to discuss some major problems of the Asian tiger in context of four aspects: media, society, education and politics. Nowadays, all press including personal writing and comments are monitored by Media Development Authority (MDA). If MDA deems some contents to be against ‘public interest’, the person of notice should remove it immediately or be arrested by the government. In February 2015, two co-editors of news portal ‘The Real Singapore’ were arrested on charge of sedition and its website operation was suspended. Also, a Filipino nurse working in Singapore spent four months in prison for comments he posted online blaming Singaporeans. Foreign migrant workers in the country, who are struggling with non-payment of wages, restrictions on movement, and sometimes physical and sexual abuse, are a major problem. However, it does not mean that local workers are in good condition either. Any and all strikes are banned and a permission by the government is required if there is a new agreement to be signed between the workers and management (such as, in case of wage increase). Based on Lee Kuan Yew’s pragmatism and ability system, Singapore adopted elite education. From elementary school to university, all students take customized courses according to their grade. Few students in upper ranks survive until the end, and they are fostered to be senior civil servants with very high-income, designed to prevent political corruption. For students with serial failure to go to the next level, they are trained at vocational schools. Essentially, the government is using the education system to pick out promising children among thousands. Here is one more secret on how People's Action Party (PAP), the ruling party, hasn’t missed a victory in every election since the foundation of Singapore: a mixed election system, single member constituencies and group representation constituency, always gives an advantage to PAP. What really matters is GRC, a type of an electoral constituency that requires members of parliament to be voted into parliament as groups of 4 to 6 people. As the opposition is more difficult to find enough candidates to contest GRC comparing the ruling party, they are easily defeated and subsequently, lose more candidates than SMC.

Kim A-ram Staff Reporter

동남아 금융의 허브 ‘싱가포르’ 하면 높다란 빌딩숲, 마리아나베이샌즈 호텔의 수영장에서 휴식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죠? 리콴유 전 총리의 지휘 아래 단기간 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싱 가포르에는 ‘아시아의 용’ ‘청렴한 나라’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 등 따라다니는 수식어들도 화려합니다. 최근엔 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설을 갖춘 공동체 ‘이네이블링블리지’를 오픈했고, 양로원에선 노인을 위한 운동코치 로봇이 등장하는 등 복지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는 정부가 제공하는 김아람 기자 kimrm214@theasian.asia

공공임대아파트 HDB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집 걱정도 없죠. 그런데 일각에서는 경제성장을 이뤄낸 주인 공, 리콴유 전 총리를 독재자로 묘사하고 싱가포르를 ‘잘사는 북한’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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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사

2015년 7월 싱가포르 국민연금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정부로부터 명예훼손 고소 당한 싱가포르 블로거 로이 응어잉씨가 대법원을 나서며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5가지 부분에서

있죠. 하지만 개인보다 국가의 이익에 우

짚어보려 합니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이

선순위를 뒀던 성장 과정에서 생겨난 부

해를 돕기 위해 싱가포르의 역사를 간략

작용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더 리얼 싱가포르>가 사회에 분란을 조

1

장할 만한 기사를 올렸다는 이유로 웹사

히 짚어보겠습니다. 싱가포르는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

표현의 자유

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례로 2015년 5월 MDA는 현지 언론

이트 운영을 중지시켰으며, 공동편집장 2

먼저 언론입니다. 싱가포르의 모든

명을 ‘선동죄’로 체포했습니다. 매년 전세

언론은 정부의 철저한 통제 아래에 놓여

계 언론 자유도를 조사하는 미국 비영리

서 추방당해 단일국가로 독립하게 됐죠.

있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가 남긴 유명한

단체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말레이계에 맞서

어록 가운데 “언론자유는 싱가포르의 통

발간한 ‘2015 인터넷 자유도 조사’에 따르

비말레이계의 단결과 지지를 호소했다는

합과 정부의 우선순위 아래 종속돼야 한

면 싱가포르 언론자유지수는 전세계 199

이유에서였습니다. 당시 해외언론은 이

다”는 말도 있었죠. 올해 초 국제인권단체

개국 가운데 67점으로 매우 낮은 수준을

자그마한 나라의 전망을 잇따라 비관하고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기록했습니다. 100점에 가까울 수록 정부

나섰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부정부패 척

가 발간한 2016 월드리포트에 따르면 “싱

의 언론탄압이 심하다는 의미입니다.

결·능력주의·실용주의를 중심으로 한 정

가포르 현지 방송법에 따라 정치나 종교

일반인들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긴 어

책을 필두로 경제 성장에 총력을 기울여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언론은 사전에

렵습니다. 2015년 7월에는 한 블로거가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초대 총리

미디어당국(MDA)의 허가를 받아야 하

리콴유 전 총리의 장남인 리센룽 현 총리

였던 리콴유는 사후에도 국민들의 칭송

며, MDA가 공익에 적합하지 않은 콘텐츠

가 제정한 국민연금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을 받으며 ‘싱가포르의 국부’라고 불리고

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즉시 그 내용을 삭

올렸다가 정부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

립해 말레이시아 연방 구성원이 됐습니 다. 그러나 불과 2년 뒤인 1965년 연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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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으며, 같은 해 9월에는 현지에서 일하

위를 벌여 화제가 됐습니다. 이 사건은 당

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적에 따라 우

는 필리핀 출신의 간호사 에드가 싱가포

시 인도 출신의 한 남성이 남아시아 출신

열반 수업을 하고, 6학년 때 치르는 졸

르를 비판하는 댓글을 올렸다가 징역 4개

이주 노동자들이 주로 사는 리틀 인디아

업시험(PSLE) 성적에 따라 상위 60%만

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심지어 10대 유명

거리에서 버스에 치여 사망한 뒤 사고 수

중학교에 진학합니다. 중위 20%는 초등

블로거 아모스 이도 유튜브에 리콴유 전

습 과정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항의하며

학교를 2년 더 다닌 후 졸업시험에 합격

총리를 패러디한 동영상을 올렸다가 징역

촉발됐습니다. 열악한 근무조건에 시달리

할 경우 진학 가능하며, 하위 20%는 4

4개월을 선고 받은바 있죠. 길거리에선

던 이주 노동자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

년간 초등학교를 더 다닌 뒤 직업훈련학

사복차림을 한 비밀경찰이 불순분자가

진 사태였죠.

교로 보내집니다. 이쯤 되니 “PSLE 성적

없는지 사람들을 감시하기도 한답니다.

2

그렇다고 현지 근로자들이 마냥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건 아닙니다. 1968년 개

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정해진다”는 말 도 많습니다.

정된 노사관계법에 따라 파업 및 태업이

중·고등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시험

싱가포르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

금지되며, 급여인상 등의 노사협약이 있

을 통해 수월성 교육을 받게 되는데, 중간

에 대한 노동력 의존도가 굉장히 높습니

을 경우 노조분쟁조정위원회의 감독 및

에 낙오하는 학생들은 모두 직업훈련코스

다. 독립 이후 경제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승인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회사가 급여

를 이수하게 됩니다. 공부 못하는 어린 학

이주 노동정책을 펼쳤기 때문인데요, 현

를 올려준다고 해도 위원회의 승인이 없으

생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일터로 보내겠

재 전체 노동인구 280만명 중 약 90만명

면 ‘말짱 도루묵’ 되는 셈이죠.

다는 거지요.

열악한 노동자 처우

이 이주 노동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노 동착취, 임금체불 등에 시달리고 있으며, 때때로 신체학대 및 성폭력을 당하는 사

3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남을 테니 당

‘엘리트 지상주의’가 낳은 부작용

연히 학업성취도가 높을 수 밖에 없고 자

2015년 OECD가 76개국을 대상

연스레 엘리트 계급이 생기겠죠. 국가가

으로 실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1

선택한 ‘될성부른 떡잎’들은 자연스럽게

보호를 받지 못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죠.

위를 차지한 싱가포르. 여기에 ‘엘리트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되니 별다른 공무원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바로 지난

교육’이 빠지면 섭섭합니다. 싱가포르는

시험은 없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요람부터

2013년 12월 있었던 폭동인데요, 남아시

초등교육부터 대학까지 매번 시험을 통

무덤까지 국가가 개인의 인생을 정해주는

아 이주 노동자 400여명이 경찰차를 뒤집

해 소수 정예만이 대학에 입학할 수 있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창

고 주변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과격한 시

는 능력주의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 있

의적 인재’는 기대하기 힘들겠죠.

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지 노동법의

2013년 싱가포르 리틀 인디아 폭동으로 훼손된 차량과 도로

싱가포르 초등학교 어린이들

싱가포르 야당 노동당(WP)후보들이 유세하고 있는 모습

신화사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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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부의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뜻이며,

의회에 후보를 4~6명을 함께 내세워 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

0.4가 넘어가면 심각한 수준이라고 봅니

권자들이 개인이 아닌 ‘팀’을 선출하도록

엘리트는 향후 국가의 요직을 차지하는

다. ‘잘 사는 나라’ 싱가포르, 엘리트 교육

하는 제도입니다. 이때 최대 득표를 얻은

지배계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싱가

에서 살아남은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천국

팀의 후보는 모두 의석을 획득하게 됩니

포르에선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공무

이 아닐까요?

다. 이 제도는 여당에 유리할 수 밖에 없

5

었습니다. 유명 후보 한 명만 팀의 간판으

심각한 빈부격차, 총리 연봉만 수십억

원에겐 일반 서민 임금의 80~100배의 임 금을 준다고 합니다. 의원 연봉이 수억 원

여당에 유리한 선거제도

로 내세우면 다른 후보들의 지명도가 낮

이번엔 다소 독특한 싱가포르의

더라도 쉽게 높은 득표율을 낼 수 있었으

기도 합니다. 리센룽 총리는 작년 연봉만

선거제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15

니까요. 야당 입장에선 한 석만 잃어도 될

170만달러(21억원)로, 버락 오바마 미국

년 9월 싱가포르 조기총선이 있었죠. 늘

것을 GRC 탓에 최소 4석을 빼앗기는 상

대통령 연봉의 4배 수준입니다. 리 총리

그래왔듯 집권 여당 인민행동당(PAP)이

황을 겪습니다.

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국

69.9%를 득표해 전체 89석 가운데 83석

가 정상으로 꼽히기도 했죠. 반면 전체 인

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습니다. 싱가포

이밖에 싱가포르에선 토지 대부분이

구의 하위 10%는 1년에 벌어들이는 소득

르는 영국의 자치정부 시절인 1959년 리

국가 소유로, 도시계획에 필요하다면 언

이 1000달러(125만원)가 채 안됩니다. 소

콴유 전 총리가 집권한 이후 지금까지 집

제든지 개인의 토지를 취득할 수 있는 법

수 엘리트가 부를 독점하는데다 이주 노

권당이 바뀐 적이 없어, 사실상 ‘1당 체제’

안이 있다고 합니다. 토지 소유주는 정부

동자 대부분이 하류층을 구성하다 보니

나 마찬가집니다. 2011년 총선에서 제1야

의 토지 취득 이후 땅값이 올라도 보상을

빈부격차가 심하게 벌어지는 겁니다.

당 노동당(WP)이 6석을 획득한 이후 약

받을 수 없고, 정부에 반발하는 것도 사

실제로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진을 보이고는 있지만, 선거는 그저 ‘형식’

실상 불가능합니다. 개인의 재산이 국가

2015년 싱가포르 1인당 GDP는 5만3천

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바로 복

소유와 마찬가지로 취급되기 때문에 가능

달러로 세계 7위(한국 28위)를 기록했습

잡한 선거제 때문인데요. 싱가포르는 소

한 일입니다.

니다. 그러나 소득분배 불평등 정도를 나

선거구제(한 선거구에서 의원을 1명 선출)

한때는 성장의 동력이었던 싱가포르

타내는 지니계수는 2014년 미국 CIA 기

와 집단선거구제(GRC)가 혼재하고 있습

의 철저한 규제와 감시, 특정 소수에 집중

준 0.464로, 심각한 빈부격차에 시달리

니다. 여기서 GRC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

된 정책들이 지금은 오히려 국민들을 옥

고 있는 중국 0.469과 비슷한 수준을 보

습니다. GRC란 인접한 여러 선거구들을

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

이고 있습니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울

묶어 ‘군 의회’로 설정하고, 각 정당이 군

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신화사

에 달하며, 장관급은 십억 단위를 넘어가

신화사


Asian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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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g El-Burullus: The Silk Road of Art Summary

예술가 모흐센, 이집트 어촌을 ‘아트 실크로드’ 중심으로 인류의 초기 예술은 어떤 형태였을까? 원시인들이 벽에 사냥 방법을 묘사하고, 중요한 행사 등을 그려 넣던 ‘벽화’가 바로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벽화는 단순한 ‘역사의 기록’이 아닌 예술의 한 분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 다. 화려한 그래피티부터 시작해 최근 한국에서도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는 예쁜 벽화마을까지, 이제 벽화는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르가 됐다. 여기 이집트에도 벽화로 각광받고 있는 예술가, 압델 와하브 압델 모흐센이 있다. 작은 어촌에서 나고 자란 그는 나무 표 면을 조각해 다양한 작품들을 완성해낸다. 주로 목판예술을 해왔던 그가 어떻게 벽화와 인연을 맺게 됐을까? 그는 지난 2014년 자신의 이름을 딴 지역 단체 ‘압델 와하브 압델 모흐센 예술 및 지역 발전 센터’(이하 ‘모흐센 센터’)를 설립한 뒤, 마 을을 아름다운 벽화로 꾸미고 주민들에게 예술의 아름다움을 알려왔다. 덕분에 이 작은 어촌은 생기발랄한 곳으로 거듭 났다. 모흐센 작가는 “어린 아이를 포함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그려 넣는다”면서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며, 달 라진 마을 모습에 다들 좋아한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그는 모흐센 센터를 해외 아티스트와의 교류의 장으로 만들었다. 마을에 그림을 그려 넣는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이란, 인도, 포르투갈, 요르단, 튀니지 등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의 참여를 이끌어낸 것이다. 작년 10월에 있었던 프로젝트에선 총 10개국에서 25명의 해외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아마드 압델 카림, 타리크 엘 코미 등 이집트 출 신 작가들을 비롯, 이란의 나세르 팔랑기 작가, 인도의 푸남 찬드리카 트야기 작가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렇듯 모흐센 작가는 인접국의 예술을 한데 연결하는 ‘아트 실크로드’의 토대를 닦았다. 각국 예술가들은 한 마음이 되어 지역의 예술발전을 이루고, 교류 또한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설립된 지 3년에 불과하지만, 이집트 정부에서도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이 센터는 향후 중동 예술 가교 역할에 큰 부분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라프 달리 쿠웨이트 <알 아라비> 매거진 에디터·번역 김아람 기자

Ashraf Aboul-Yazid Editor of Al-Arabi Magazine

Painting on walls may have been the first

everlasting exhibitions, whether they exist in the

forerunner of all arts. This early art was born

hearts of China’s mountains and are offered by

when prey hunters’ scribbles recorded the story of

monks to their gods, on the walls of Pharaohs’

hunting and those who lived in the wild painted

tombs where the stories of the dead are recorded,

their life stories round fire, as they illustrated

awaiting their resurrection, or on the many

themselves with visual symbols revealing their

architectural achievements in all civilizations in

diaries after returning to their caves after a day’s

the world’s continents.

dramatic journey. Man’s relationship with murals

As the contemporary experiment of painting

is therefore very close; it has been deep-rooted

on walls is no longer related to history, it has

since those early lines which matured with the

reappeared in more than one form: when popular

development of the murals themselves. Historians,

artists painted words of welcome on house

art critics and artists will recognize walls as

facades to those returning after performing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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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j (pilgrimage). Graffiti painters, known and

‘Artist Abdel-Wahhab Abdel-Mohsen Foundation

unknown, have excelled in painting walls with

for Culture, Arts and Development’.

revolutionary ideas; but we are here talking about a

He is a great lover of Burullus Lake, in Kafr El-

third form of painting on walls which represents a

Sheikh governorate, his birthplace, to the north of

new artistic visual journey on the Silk Road of Art.

Cairo. This love manifests itself in his exhibitions,

The experiment carried out by artist Abdel-

which portray the surface of the lake, which he

Wahhab Abdel-Mohsen in the town of Borg

frequently paints, without repetition, but in a

El-Burullus, which is surrounded by the

unique manner using his tools efficiently, aware

Mediterranean and Burullus Lake, was difficult,

of the renewal of the lake’s water and faces. But the

as it made an extraordinary attempt in a difficult

lake is no longer just water or a geographic sphere;

environment, and at a time in which ugliness

it has become a globe or a planet which Abdel-

invaded life and behavior. Consequently, the result

Mohsen redefines with the details of surfaces

has been impressive, as in two seasons, he was

and dwellers of its depths and people fascinated

able to create the Burullus Forum for Painting on

by the two elements of formation: water and

Walls and Boats, a cultural activity in agreement

earth, to which he adds the fire of art and ignites

with its societal environment crossing geographic

with translucent but revealing, warm and vivid

boundaries and promoting the value of art.

materials like the people he loves. Burullus Lake is

I have been monitoring Egyptian artist

located on the Mediterranean coast, 200 km to the

Abdel-Wahhab Abdel-Mohsen’s career for years,

north of Cairo. It represents an area of life which

admiring his active steps and distinguished deep

provides with its details a space for its people and

vision since he loved and studied art until he

visitors for contemplation and creativity.

became an academic and taught art in Egypt and

The idea of painting on walls represents the

abroad, in addition to his enlightening role, which

true artist’s communication with his society at a

stems from his good citizenship. This is clearly

time when points of view prevail that the artist

shown in his characteristic art exhibitions - which

lives in an ivory tower, with his works not reaching

reflect his deep attachment to his homeland, his in-

the audience, resulting in the artist’s alienation

depth critical analysis - and finally, establishing the

from his society and creating a rift between society

The Forum was held under the patronage of Dr. Osama H a md y, Kafr El - S he ik h Governor, organized by Artist Abdel-Wahhab AbdelMohsen Foundation for Culture, Arts and Development ad attended by painting icons from Egypt, including Dr. Ahmad Abdel-K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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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beauty. The experiment has succeeded in

age of King Ramses III and his war against some

a space surrounded by the sea’s and the lake’s

invaders coming across the Mediterranean and

natural beauty.

their alliance with tribes beyond the western

Artist Ahmad Abdel-Karim participated in

border to invade Egypt, as if history repeated itself

the Forum for the second year. As we believe that

in the 1956 battle. The painting was not a repetition

sculptor Mahmoud Mokhtar is the grandson of

of the past but rather an artistic attempt to reread it,

the great sculptors in the Pharaonic civilization,

derive inspiration and learn lessons from it.

artists Tariq El-Komi (Egypt) is the inheritor of this

Artist Saly Elzaini’s (Egypt) mural brought

legacy which he always revives so as to maintain

joy and gained considerable reputation with

the glamor of the journey of Egyptian sculpture.

photographers and featured prominently on the

He turned his felucca into a great piece of sculpture

pages of newspapers and periodicals with her

with three-dimensional layers, probably to relate

child-like spirit, bold colors, combining fascinating

the story of the felucca, not only of those who took

decorations of the elements of the environment.

it to the open sea and the heart of the lake, but it also was turned into a historical monument from

Part of a mural by artist Alaa Awad, portraying a naval battle from the age of Ramses III and his war against invaders coming across the Mediterranean.

A journey upstream the Nile

the ages which we did not live in, representing

As the Nile floats north to its mouth at the

the concerns of fishermen and the history of El-

end of its journey from its sources, feluccas sailed

Burullus.

upstream and moved from the space of Borg El-

Artist Alaa Awad, from the new generation,

Burullus to Smart Art Hall, an exhibition in Cairo

says that the Forum is a unique experience as

professionally arranged by Dina Shaaban and

the art of the street (or painting murals) is a

Lina Muwafi, as if rebuilding Atlantis.

positive expression of society, addressing and

The boats came back carrying the smell of

communicating with recipients of all types, ages

water and the perfume of breaths, which they

and cultures without an intermediary, in contrast

poured as they colored them, and under sunlight

to exhibitions and closed halls. Alaa Awad’s

which covered it during its journey to live a new

mural portrayed another naval battle from the

life with the perfume of new visitors and 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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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ficial lights carrying the smell of nostalgia and the memories of both artists and the public. Fish, women and legends

The artists’ choice of recurrent – but neither similar nor identical – themes may have been inspired by the special magic of the place. As fish appeared elegantly and richly colored in most paintings on walls and boats, women also appeared glamorously spreading joy, and legends were in place with their mystery and pride, as if they were women’s evening tales or men’s stories at open seas. From such magic emerged the felucca of the Egyptian veteran artist Samir Fuad (aged 72) which carries four women painted in acrylic colors, as legendary figures, while in the background of the painting, fish dance on the bottom of the felucca, as if presenting an Egyptian version of the legend of Achilles’ daughters who in their sweet voices called sailors, and their ships were wrecked because of the coral reefs. The version here is the “caller” who drives out the fishermen or Nile villagers with her voice so they proceed to water where they drown. It is the feminine magic which transcends civilizations, cultures, legends, waters, walls and feluccas. Greek gods were mixed with themes inspired by Islamic and Coptic arts in the works of Omar El Fayoumi, another skilled artist known for his paintings inspired by Fayoum’s funerary faces. In the heart of the Mediterranean, Borg ElBurullus lighthouse used to light the journey of the Silk Road of Art and guide artists from India and Iran in the east to Tunisia and Portugal in the west, and from Jordan in the north to Sudan in south, a journey whose sailors believed in the value of their colors and their impact which went beyond the palette and the painting frame to implant delight in the hearts of simple people, stir stagnant water in the art lake and keep the vow with arts which revived and immortalized civilizations.

Fish and children, life and joy are themes in Borg El-Burullus’s mural, by artist Adel Mustafa. Cafe with horse. Genuine love of minute details and bold colors, and the feminine sense of the Indian legends are the theme of the two works: murals and the felucca presented by the Indian artist Poonam Chandrika Ty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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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m and its many faces across Asia

Asian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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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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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가정집 절간서 장신구까지…아시아 불교 문화유산 “모든 일은 마음이 근본이 된다. 마음에서 나와 마음으로 이루어진다. 청정한 마음을 가지고 말하거나 행동하면 즐거움이 그를 따른다.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듯이.” 법구경(法句經)의 한 구절이다. ‘진리의 말씀’을 뜻하는 법구경은 올바른 삶을 위한 많은 조언들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지금까지 불교도 사이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이라고 한다. 지금도 아시아 곳곳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종교인 ‘불교’. 인도에서 생겨난 종교가 어떻게 아시아 전역에 널리 전파됐을까? 불교의 창시자 붓

The scenery of Mount Emei, a famous Chinese Buddhism mountain in southwest China’s Sichuan Province. A woman prays in front of a Buddhist relic during a ceremony marking the Makha Bucha festival at the Sanam Luang plaza in Bangkok, Thailand, on March 4, 2015.

다(석가모니)는 본래 새로운 종교 창시나 개종시키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스스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길 원했을 뿐이었으나, 아시아 전역에 걸쳐 붓다의 가르침이 널리 전파되면서 자연스 레 ‘불교’가 발전하게 됐다. 수많은 불교서적을 영어로 번역한 저명 불교학자, 알렉산더 버진은 그의 논문 ‘불교가 아시아에 미친 영향’에서 “기원전 전 통 소승불교가 인도에서 스리랑카로 전파된 것을 시작으로 중국,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로 확산됐 다”며 “이후 약간 다른 형태의 소승불교가 현재의 파키스탄, 카슈미르, 아프간, 이란, 우즈베키스탄 지역에 전파됐다”고 밝 혔다. 또한 “이후 중국에서 발달된 대승불교가 한국과 일본, 북베트남으로 퍼져나갔다”고 했다. 그 옛날, 불교가 아시아 전 역에 알려진 것은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에서도 태국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불교국가다. 국민 95%가 불교를 믿고 승려 수만 17만명에 달한다. 남자의 경우 만 20세가 되면 일정기간 삭발하고 사찰에서 수행을 하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정도다. 초등학교 대부분에 사찰이 있 어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불교에 익숙해지고, 결혼과 출산, 장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상생활을 불교의식으로 치른다. 스님들 역시 사람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날 경우 이를 중재하고, 고아를 돌보아 주는 등 사회 유지의 중심역할을 해내고 있 다. 태국의 각 가정은 가정의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는 신을 모시는 작은 나무 사찰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세상의 모든 것 에는 신이 있다는 ‘애니미즘’이 불교와 결합돼 생겨난 태국 만의 이색문화다. 불교는 건축 양식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인도네시아는 1293년 인도에서 불교를 들여오면서 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인도 건축물의 형태와 디자인, 장식 등에 영향을 받은 사원들이 전국 곳곳에서 세워졌다. 이 사원들의 벽면은 종교적 가르 침을 묘사하는 조각과 그림으로 장식됐다. 특히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 있는 보로부두르 불교사원은 세계 최대 불교 유적 지로, 동남아를 대표하는 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이 사원은 인도의 굽타 왕조와 그 이후의 예술에서 영향을 받은 건축물 로, 여러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탑과 산 모양의 사원 등 매우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 받는다.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Blessed is the birth of the Buddhas; blessed is the

with others his methods that they found useful

enunciation of the sacred Teaching; blessed is the

in their lives. This is how what is now called

harmony in the Order, and blessed is the spiritual

“Buddhism” spread far and wide.

pursuit of the united truth-seeker,” said Buddha in his

Buddhism never developed a missionary

book Dhammapada, which is fittingly dubbed

movement, but Buddha’s teachings spread far

‘Buddha’s path to wisdom’, explaining the merits

and wide throughout Asia. In each new culture

of Buddhism.

it reached, the Buddhist methods and styles

Buddha didn’t ask others to denounce and

were modified to fit the local mentality, without

give up their own religion and convert to a new

compromising the essential points of wisdom

one, for he was not seeking to establish his own

and compassion. Buddhism, however, never

religion. He was merely trying to help others

developed an overall hierarchy of religious

overcome unhappiness and suffering that they

authority with a supreme head. Each country

were creating for themselves because of their lack

to which it spread developed its own forms, its

of understanding. Later generations of followers

own religious structure and its own spiritual

were inspired by Buddha's example and shared

head. The most well-known and internationally

Radwa Ashraf radwaashraf@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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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3

Tourists visit the ellora caves near Aurangabad in Maharashtra, India. Ellora, with its uninterrupted sequence of monuments dating from A.D. 600 to 1000, brings the civilization of ancient India to life.

respected of these authorities at present is the Dalai Lama of Tibet.

seventh century to Kyrgyzstan and Kazakhstan. “The Chinese form of Mahayana later spread

There are a number of faces of Buddhism,

to Korea, Japan and North Vietnam. Another

of which two major forms have survived:

early wave of Mahayana, mixed with Hinduism,

Hinayana, also known as Theravada, in

spread from India to Nepal, Indonesia, Malaysia

Southeast Asia, and Mahayana, namely the

and parts of Southeast Asia starting in about the

Chinese and Tibetan traditions.

fifth century. The Tibetan Mahayana tradition,

In his paper “Buddhism and its Impact

which, starting in the seventh century, inherited

on Asia,” Alexander Berzin tracks down

the full historical development of Indian

how Buddhism actually spread: “Theravada

Buddhism, spread throughout the Himalayan

traditions spread from India to Sri Lanka

regions and to Mongolia, East Turkistan,

and Burma in the third century BCE, and

Kyrgyzstan, Kazakhstan, Siberia and the Kalmyk

from there to Yunnan in southwest China,

Mongol region near the Caspian Sea in European

Thailand, Laos, Cambodia, South Vietnam

Russia.”

and Indonesia. Pockets of Indian merchants practicing Buddhism were soon found on the

Buddhism faces across Asia:

coast of the Arabian Peninsula and even as far

“Follow not the vulgar way; live not in heedlessness; hold

as Alexandria, Egypt. Other forms of Hinayana

not false views; linger not long in worldly existence.”

spread from that time to modern-day Pakistan, Kashmir, Afghanistan, eastern and coastal Iran,

The spread of Buddhism was aided by many

Uzbekistan, Turkmenistan and Tajikistan. From

factors, among them were the increase in trade,

this base in Central Asia, they spread further

immigration and resettlements, and visits that

in the second century CE to East Turkistan

included bringing parts of that culture back home.

(Xinjiang) and further into China, and in the late

Artisans and craftsmen had as much of a role as


039

magazine N | 201603

monks in making people adopt and adapt to the

the architectural designs that set Asia apart

rituals, texts, social norms and architectural style of

have been heavily influenced by Buddhism. In

Buddhism.

Indonesia, the golden age of art began in 1293 due

Buddhism had a huge effect on the culture

to Buddhism deriving from India. As a result,

of many Asian countries. Thailand, for example,

countless numbers of Hindu-Buddhist brick

was greatly influenced by Buddhist beliefs and

temples were built with Indian construction

traditions. Since A.D. 900, Thai people have owned

techniques, architectural style, and decorations.

spirit houses, miniature wooden houses where

Temple walls made of relief sculptures usually

household spirits live. They present offerings such

depict stories or religious teachings. Manasara,

as food, drinks, flowers, and candles to keep the

an Indian religious book, describes Canonic

spirits happy. If they are unhappy, they will inhabit

rules held by Indian builders. Builders had once

larger households and

believed that the rules were

cause chaos. Spirits must be

sacred and held magical

cared for because they are

powers. A construction

believed to protect people,

that was built according

grant wishes, and bring

to the rules would benefit

good luck and health.

the ruler who ordered the

While in Vietnam,

construction, and the builder

Buddhist monk Van Hahn

himself. It would also bring

helped King Ly Cong Uan

riches and happiness to

stabilize power and create

the people. Statues of their

the Ly Dynasty after the

gods and goddesses (such as

fall of the T’ang Dynasty.

Vishnu, Brahma, and Tara)

Ly owe d it to Ha h n ,

were placed inside these

leadi ng Buddh ism to

temples. While in China, literature

become the state religion. Viet nam combines Buddhist teachings of Pure Land and Zen, and

A part of a woodblock copy of Journey to the West created by Wei Lizhong, inheritor of woodblock painting technique, at Baima Temple in Luoyang, central China’s Henan Province.

was one of the aspects heavily characterized by Buddhism. The Diamond Sutra is the

their meditation center and Buddhism schools

world’s first, oldest, and surviving printed book

are acknowledged across Asia. Pure Land teaches

and it is one of China’s marks of Buddhism. It is

that only through devotion to and guidance from

a Mahayana scripture made of seven strips of

Amitabha Buddha (Buddha of Pure Land), one

paper joined together, offering meditations on

can be reborn in the Pure Land, a paradise where

illusion and perception. It was originally written in

enlightenment can be reached. Zen purifies

Sanskrit and translated into the Diamond Sutra in

wisdom. It is the realization of emptiness and the

the year 868. It acts as an antidote for the suffering

ambition for enlightenment allows compassion

and must be achieved through wisdom.

to grow. It focuses concentration and calms the frustrated mind. It wasn’t just a cultural influence; some of

“The realization of emptiness of all things is the key step to saving all be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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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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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두 어른이 말하는 ‘자연과 삶’ 속의 행복이란?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박상설 아시아엔 전문기자 대담

Summary

Practicing the Danish art of ‘Hygge’ for a content society Park Sang-sul, a senior journalist at Magazine N, recently met Lee Jang-moo, chairman of KAIST, to talk about nature and human life. Both graduated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SNU), with the same major, mechanical engineering. To briefly introduce Mr. Park, he has a free soul which leads him to live with nature. Along with operating a camping site located on a mountain, he walks every morning, even though he approaches 90. Meanwhile, Mr. Lee is also co-chairman of National Science & Technology Council and was the president of SNU. During their conversation, they discussed about energy conservation in our daily life to slow down the increasing entropy in nature. In this regard, Mr. Lee mentioned the paper manufacturing company Double-A, which plants 400 million trees. Mr. Park said it is important to let people think that saving is their own business not others’, through lectures and an awareness movement. They also talked about the idea of true happiness in life. Two men agreed that we could live with joy when we are satisfied, even if it involves small things like having meal with family and friends. The chairman introduced a Danish concept of ‘Hygge’, which refers to enjoying the good things in life, being grateful and creating a warm atmosphere. Denmark was selected as the happiest country among OECD countries. Thirdly, Mr. Lee shared his experience of visiting a lab in Berlin College of Engineering. Unlike others who are busy explaining their success and achievements, the chief of the center said, “Based on the philosophy to make a sustainable green society, we are doing our best.” Mr. Park also agreed that it is crucial to build basic philosophy in scientific growth rather than unconditional development. Furthermore, the president of KAIST claimed field experience for children is very significant to make them cherish the value of nature. Mr. Park asked about impoverished and orphaned children, and Mr. Lee answered that big 정리 김아람 기자

enterprises and the government should help them. He told that he has been donating regularly for such children.

kimrm214@theasian.asia

The conversation, between the two men who understand the most precious thing in life is invisible, makes us think

사진 김남주

about the true value of our society and our life: gratitude.

서울대총동창신문 편집장

Kim A-ram Staff Reporter


magazine N | 201603

People

카이스트 이사장,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위원장, 기

가의 법칙이라고 하죠? 물에 물감을 떨어뜨리면 가

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 제24대 서울대학교 총장

만히 있는 게 아니라 퍼져나가듯, 시간이 지남에 따

등….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이 걸어온 길을 단

라 세상은 무질서(엔트로피) 정도가 증가하게 된다

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직함들이다. 2008년 서울

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연을 파괴하는 무분

대 총장 재직 당시 서울대학교를 지속 가능한 캠퍼

별한 과학 발전으로 엔트로피가 너무나 빠르게 증

스, 즉 ‘그린캠퍼스’로 선언하고 2030년까지 교내 이

가하고 있어 걱정입니다.

산화탄소 배출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

이 예, 맞습니다. 물감이 번지는 걸 막을 순 없을지

웠을 만큼 ‘지속 가능한 사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

언정, 번지는 속도는 충분히 줄여나갈 수 있죠. 박

지고 있는 그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저자 박상

선생님께서 주창하시는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이

설)의 애독자이기도 하다.

엔트로피의 증가속도를 줄이는 생활 아닙니까?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1월말, <아시아엔> <매거

박 일례로, 종이컵 1억개를 만드는데 여의도 면적

진 N>의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와 ‘캠프나비’ 대표

의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

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박상설 기자가 서울

들은 종이컵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죠. 엔트로

대학교에서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과 만났다. 오

피 증가속도를 조절하려면 낭비를 줄여야 합니다.

랜 세월 내공을 쌓인 이들이 ‘자연과 삶’을 주제로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 ‘절약은 나와는 상관이 없는

나눈 대화를 정리해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일’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절약에 적극 동참하는 것 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20대부터 여행할

박상설 전문기자(이하 ‘박’) 이렇게 또 만나 봬 영광

때 항상 텐트에서 자고, 결혼식 때도 헌 옷을 입는

입니다. 그간 건강하셨죠? 여러 일들을 하고 계시

등 의식주를 최소화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이 정도

는데,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이컵 사용을 줄이고 나무를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이하 ‘이’) 만나서 반갑습니

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다. 네, 몸 아픈 데는 없습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 태국에 더블에이라는 유명한 복사지 제조사가

삶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박 선생님에는 못 따라

있습니다. 이 기업은 ‘나무를 쓰는 만큼 다시 심는

가지만, 전 주로 집 근처 공원이나 남산 등을 산책

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 농촌 휴경지에 나무 4억

하는 편입니다. 평일에는 주로 혼자 다니지만 주말

그루를 심고 직접 재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1억그

에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담소도 나누곤 하죠. 이

루를 잘라서 복사지를 만들고, 또 1억 그루를 심고

렇게 선생님을 만나 뵈니, 캠핑을 자주 다녔던 어

이런 식으로 운영을 하는데 참 인상 깊더라고요.

린 시절이 떠오르네요.(웃음)

많은 기업이 본받아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박 혼자 걷는 사람이 참 건강한 사람입니다. 옆에

누가 없으면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은 외로움을 잘 타

사소한 것에도 행복한 사회 꿈꾼다

서 술에 의지하고, 그러다 보면 건강이 악화되기 쉽

박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길가에 핀

더라고요. 사색하면서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게 얼

민들레를 보고 가슴 뛰던 그런 시절이 그립습니다.

마나 좋습니까?

부탄처럼 국민소득이 낮은 국가에서도 많은 국민 들이 행복하다고 얘기하죠. 자연과 함께 뒹구는 생

에너지 사용 줄이는 ‘저엔트로피’ 습관 들이자

활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는 같은

박 지난 1월 스위스에서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임을 가지며 담소를 나누

다보스포럼이 열렸습니다. 모든 물건을 네트워크로

는 ‘살롱’ 문화가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작은 일에

연결할 수 있는 ‘사물인터넷’(이하 ‘IoT’)도 주제에 포

도 행복을 느끼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요?

함돼 있었죠. 기술이 사회를 지배하는 세상이 다가

이 예전에 <아웃라이어>(저자 말콤 글래드웰)에서

오고 있는데 한편으론 걱정도 됩니다. 엔트로피 증

미국의 한 장수마을의 비밀에 관해 읽은 적이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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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인데, 사람들이 다 장수를 하더랍니다. 연구자들이 의아 하게 여겨 조사해보니, 마을 사람들이 울타리 없이 이웃간에 자주 드나들며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 문 화가 장수의 비결이었죠. OECD 행복지수 1위 덴마 크에도 ‘휘게’(Hygge)라고 하는 국민정서가 있습니 다. 한국에 ‘한’이라는 독특한 정서처럼 말이죠. 친 구와의 식사처럼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고 행복해하 는 건데요, 이런 낙천적인 감성이 행복의 원천 아닐 까 생각해봅니다. 선생님도 하루하루의 소박함에 의미를 두시니 항상 행복한 분 아니십니까.(웃음) 박 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

다. 길을 걷다 죽는 게 원이라 항상 유언장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자녀들 집을 방문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각자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녀걱정도 없 습니다. 그저 자연에 삶을 맡길 뿐이지요. 무조건적 발전보다는 ‘행복’이 우선 이 말씀하신 것처럼 IoT, 3D프린터 등이 등장하면

서 4차산업혁명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 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죠. 물론 새 로운 직업이 생겨날 수 있겠지만, 대규모 실직사태 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 봅니다. 행복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직업’ 아닙니까? 무조건적인 발전보다 는, 고용에 초점을 둔 성장이 절실한 때입니다. 박 네, 이제 개개인이 직접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쓸 수 있는 세상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 또,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인간 본

연의 가치인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학이 바탕 이 된 과학발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예전 베를린공 대 생산기술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소장이 이런 이 야기를 하더군요. 보통은 으레 기술력을 자랑하기 마련인데, “지구보전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사회 를 만들어야 한다. 이 명제를 항상 명심하며 연구 를 진행한다”고 하더군요.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습

“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길을 걷다 죽는

니다. 그런 면에서 박 선생님의 ‘자연과 가까이하는

게 원이라 항상 유언장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자녀들 집을 방문

삶’ 운동은 굉장히 선구적이지요.

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각자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자녀걱정도 없

자연과 함께하는 삶 위해선 인성교육도 중요

습니다. 그저 자연 속에 삶을 맡기고 살아갈 뿐이지요.”

박 중요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이 모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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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람의 문제’인만큼 가정교육도 참 중요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경쟁 사회로 내몰리다 보니 자 연과 가까이 할 시간이 없거든요. 이 동의합니다. 오래 전 미국의 저명 경제학자 제

레미 리프킨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사이버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가상현실에 빠진 청소년들이 괴팍해질까 심히 우려를 하더군 요. 어릴 적부터 컴퓨터게임만 할 것이 아니라 학교 나 가정에서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체험학습도 많이 해야 합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주는 것이 제일 첫 번째니까요. 박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체험학습의 기회가 적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그런 경우는 정부와 기업이 직접 나서야 합니

다. 저도 새싹멘토링사업, 지역아동센터 프로그램 등 어린이청소년 자선사업을 펼치고 있는 미래국제 재단(이사장 김선동)에 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김선 동 이사장은 “음지에서 태어난 잡초 같은 어린이들 을 양지 좋은 곳으로 옮겨 자라나게 하는 게 기성 세대와 성공인의 몫”이라고도 했죠. 대담 말미, 박상설 기자가 “앞으로 무엇을 하 고 싶느냐”고 묻자 이장무 카이스트 이사장이 답 했다.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우리나라 종 (鐘)에 대한 책을 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고. “신라종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종을 만드는 주 조기술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종의 과학과 예술성을 다룬 <자랑스 러운 과학문화유산, 한국 범종>(가제)이 올해 출판 될 예정입니다.” 삶에 치여 살아가는 현대인. 늘상 자연 속에서 생활하긴 힘들겠지만, 그 대신 일상 속에서 작은 실 천들을 해보면 어떨까? 작은 화분을 사무실 책상 에 둔다거나, 주말엔 산과 들로 떠나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여유를 즐긴다면 작은 행복이 싹트지 않을 까? 이들의 대담을 지켜보며 박상설 전문기자의 저 서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쌀과 돈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맑고 소박한 행동과 마음의 풍요가 있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 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죠. 행복의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직업’ 아닙니까?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철학이 바탕이 된 과학발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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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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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키즈’ 프로그램으로 ‘제2의 반기문’ 양성 꿈 꾼다” 민동석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인터뷰 [ 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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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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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Lee Young-ae, KNCU work to help developing countries “For me, I could not dream of my future from an early age because of poverty, but I hope my child will not. Education is the only hope. Please keep a mother’s hope.” A public advertisement for promoting donation featuring the top Korean actress Lee Young-ae’s voice went on the air. This ad attracted attention, thanks to Lee Young-ae’s appearance, who is known as ‘the nation’s actress’ among Koreans. Secretary-General of Korean National Commission of UNESCO (KNCU) Min Dong-suk said, “It was not easy to appoint her as an honorary ambassador. We had a long and deep conversation and at the end, we found we had the same perspective regarding the importance of education. So we could make the public advertisement with the concept of “all mothers’ hearts are the same”. However, due to financial reasons, we cannot deliver this precious advertisement with the national actress through major broadcasting companies such as SBS, MBC. This is the sad reality.” It is not surprising that KNCU receives excellent praise from the international society. This is because KNCU has been helping developing countries through various business, supporting each national commissions’ websites free of cost. Also, for some developing countries that do not have experience to be designated as the world cultural heritage of UNESCO, KNCU supports them with lesser known but valuable cultural heritage sites to be listed in the world heritage of UNESCO. ‘Bridge Project’, which is becoming a bridge between Korea and developing countries, is one of major projects of KNCU. Literacy education, and vocational education, the main programs of the Bridge Project, help people begin actual economic activities for earnings. Min said, “For a few years, special field agents with local experiences have helped people in different countries. Their responsibility is to cooperate with the governments. A village headman in an African country told me, “We have a poultry farm, and plan to have a swine farm too. We will stand on our feet ourselves someday without KNCU's support. This is not easy for us, but we will. I feel proud when I see these changes in Africa.” KNCU is putting efforts into education programs for teenagers with potential. One of them is called ‘UNESCO Kids’, a program for creating the second Ban Ki-moon. Min said, “25 students are sent to Paris at the end of the year in the UNESCO Kids program. Those students spend time with Secretary-General Irina Georgieva Bokova and take multi-cultural education classes. In this way, we believe that children can open their eyes to the world and have their vision and a dream.”

Choi Jung-ah Staff Reporter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일만해서 꿈조차 꾸지 못했지만 내 아이

“정말 어렵게 국민 톱배우 이영애 씨를 한위 특

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육만이 아이들의 삶을 바

별대사로 위촉했어요. 이영애 씨도 아프리카 봉사

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엄마의 마음을 지켜주세요.

활동 하면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느끼고 있 다고 했어요. 특별대사 위촉 전에 유네스코에 대해

국민배우 이영애의 목소리로 전하는 유네스코 후

샅샅이 조사해 보신 것 같더라고요. 오랜 대화 끝

원모금광고의 한 장면이다. 아이 교육을 위한 ‘엄마

에 이영애 씨의 인생관과 저희 한위의 비전 사이에

의 마음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엄마들도 한마음

일치점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죠. 그래서 ‘엄마의 마

이다’라는 내용의 이 광고는 이영애의 출연으로 더

음은 똑같다’라는 주제로 유네스코 후원광고를 찍

욱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배우 이영애를 유네

게 됐어요. 하지만 지상파에 이 귀한 광고를 보낼

스코한국위원회(이하 한위)의 특별대사로 위촉하기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에요. (광고료가) 너무 비싸거

는 그리 쉽지 않았다. 민동석 사무총장은 삼고초려

든요. 어려운 분을 모셔 광고를 찍어 놨는데 정작

jchoi12@theasian.asia

를 하며 이영애 씨를 모셨다고 한다.

많이 내보내질 못하니 아쉬워요.”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최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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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레소토

한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매우 놀랍다.

42%. 이처럼 교육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나라를

공화국에 유아교육

물론 한국이 ‘교육’을 통해 빈곤의 사슬을 끊은 거

위해 한위는 ‘브릿지 사업’을 통해 한국과 빈곤국 간

의 유일한 국가란 배경도 무시할 수 없지만, 다른

‘다리’(Bridge)가 되고 있다. 문해교육과 직업기술교

이유도 여럿 있다.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이 약한 유

육을 마련해 빈민들이 실질적인 경제활동을 하며

네스코 국가위원회들을 여러 사업을 통해 지원하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문성과 경

부 교육기관으로 편

고 있기 때문이다. 한위는 재정이 어려운 국가위원

험을 갖춘 현장 전문요원도 각국에 파견된다. 현지

입시켰어요. 신발도

회에 웹사이트를 무상으로 만들어주고 교육·문화

정부와 협업하며 전문성을 높여 시민들이 자립할

사업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유네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불과 5년전에 시작된 브릿

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경험이 없는 빈곤국들을

지 사업의 성과가 나오고 있다.

을 위한 지역학습 센터를 설립해 정

못 신었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거죠.”

위해 보호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세계문화유산 에 등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몇 년 전부터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현장전문 요원 중심으로 체계를 바꿨어요. 상주 전문요원은

“한국의 경제성장 경험 덕분에 여러 빈곤국의

국위 파트너와 MOU를 체결하고 정부와 협의해서

롤모델이 되고 있어요. 여건이 좋지 않은 국가위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아요. 사실 다른 민

회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무상으로 도와주고 있

간 NGO단체에서 우리를 많이 부러워해요. 아프리

죠. 한위가 국제무대에 설 때마다 인정을 받는 이

카에서 개발사업을 하려면 정부와 협업해야 하는

유도 여기에 있다고 봐요. 지난 2월17일엔 아프리카

데 우리는 파리에서 장관들을 직접 만나 협업프로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교육지원사업 관련 컨퍼런

젝트를 성사시키니까요. 일례로 아프리카 레소토

스를 개최했습니다. 이번 회의엔 피터 무타리카 말

공화국에 유아교육을 위한 지역학습센터를 설립해

라위 대통령도 참석했어요. 서로 경험을 나누면서

정부 교육기관으로 편입시켰어요. 신발도 못 신었

말라위 교육사업의 방향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

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거죠. 지

였어요. 아프리카 아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담긴 눈

난번엔 한 촌장이 제게 오더니 얼마 전에 양계장을

을 보면 눈물이 나요.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도와

만들었다며 더 이상 한위에 의존하지 않고 앞으로

주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텃밭과 양돈장을 만들어서 자립할 것이라고 하더

이러한 상황을 널리 알리고 국민들 마음을 열어서

라고요. 이렇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후원을 더욱 받아야 될 책임이 있어요.”

마음이 뿌듯합니다.”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 초등학교 중퇴율은

인재양성사업도 한위의 중점사업 중 하나다.


047

magazine N | 201603

50년 역사를 지닌 KUSA(유네스코 한국학생회)의

에도 틈날 때마다 아이디어를 잊지 않고 적었다. 그

“6시에 ‘칼퇴근’해

뒤를 이어 2013년부터 제2의 반기문 총장을 양성

가 일하는 방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요. 직원들한테도 6

하기 위한 ‘유네스코 키즈’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일

“전 6시에 ‘칼퇴근’해요. 직원들한테도 6시 넘으

명 ‘제2의 반기문 양성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유네

면 빨리 가라고해요. 저녁시간에 가족들과 시간을

스코 키즈는 한해 100명을 선발하는데 2천5백명이

보내든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든지 하라고 하죠.

라고 해요. 대신 퇴

넘는 학생들이 지원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유네

꽉 막힌 사무실에서 머리 아프게 남아있지 말라고

근 후 시간을 활용하

스코의 이념과 정신을 실천하는 ‘유네스코 학교’도

해요. 저 같은 경우는 대신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하

있다. 과거 180개교에 불과했던 유네스코 학교는

죠. 제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가방이 있는데 집에

죠. 집에서 아이디어

최근 408개교로 대폭 늘었다.

가면 다시 가방을 열고 아이디어를 정리해요. 먹고

시 넘으면 빨리 가

를 정리하다보면 꿈

“세계적인 골프스타 박인비가 탄생한 것도 ‘박세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여러 가지 생각들

에서도 아이디어가

리 키즈 프로그램’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유네

을 정리하죠. 꿈에 아이디어가 나올 정도니까요.(웃

떠오를 정도예요.”

스코 키즈’도 이런 목적으로 만들었어요. 연말까지

음) 꿈에 아이디어가 나오면 깨자마자 메모장에 바

자기주도학습을 하고 연초에 25명만 엄선해서 파리

로 적어놓죠.”

로 보내요. 파리에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

유네스코 사무실 한 편엔 한위 평화친선대사로

총장과의 시간도 가지고, 프랑스 학교에서 다문화

활동하고 있는 시인 고은의 유네스코 헌정시 ‘유네

교육도 받고, 인류가 왜 세계문화유산을 보호해야

스코에게’가 적혀있다. 고은 평화친선대사는 지난

하는지 직접 느끼죠. 아이들의 눈을 세계로 돌리고

해 11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 본부에서 평

꿈과 비전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저희 역할

화의 시낭송회를 가지기도 했다. 민 총장은 “고은

입니다. 지난해 메르스가 터졌을 때, 전 솔직히 ‘완

선생님의 시가 유네스코의 방향성을 제시해 준 것

전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천200명이나 지

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고은 평화친선대사

원했데요. 정말 놀라웠죠. 이런 식으로 매년 프로그

의 시는 한위가 한국 현대사에 남긴 발자취를 읊어

램을 꾸려 가면 10년 뒤 수료자 1천명이 나와요. 이

주는 듯하다.

들 중에 제2의 반기문이 나올 거라 생각해요.” 민동석 총장의 주머니 한편엔 자그마한 수첩이

하나의 메아리가 자손의 명예인 것/이토록 지상의 오랜 의미

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나 기록할 것이 있을 때마

를 세우는 자/그 누구런가/그대의 숙연한 이름 유네스코에

다 적어두기 위한 수첩이다. 민 총장은 인터뷰 도중

우리는 모여든다


Special Topics

048

magazine N | 201603

어설픈 동정의 시선, 코피노 불우한 존재로 만든다 제2의 하인스 워드 나오면 부정적 인식 사라질 것

Summary

Helping Korean-Filipino Children Find Their Fathers A blog called ‘Kopino Children Find Their Fathers’, has been a hot issue in Korean society. Kopino, the term for Korean-Filipinos whose mothers are often prostitutes and whose father is a Korean who once visited the Philippines. While Koreans express anger toward irresponsible fathers, Filipinos’ reaction to Kopinos seems quite different from Korean society. Eva Mary Wang, Global Education Cooperation Program Ph.D. Candidate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says, “In the Philippines, you can find many single mothers. This is why Filipinos do not have sympathy, like Korea has, for the Kopino children and single mothers.” Many overseas Koreans who marry Filipino women are reluctant to use the term ‘Kopino’, because it implies a dark subtext. Recent sympathy atmosphere for Kopino moves to ‘paternity and child rearing expenses’ lawsuit. Some Korean law firms help Kopino mothers file a lawsuit for free. However, not all the law firms offer free lawsuit service for the Kopino families. Some companies take 30-50% compensation from the Korean fathers as success fee for the cases they win. However, some criticize that retaining fee is too expensive for them and the Kopino issue should be handled in the purpose of public interest, not commercially. Many people tend to think that it is true that Kopino families are suffering from poverty, and the fathers do not have any will to find their children. This is why the solution should be a ‘lawsuit’. On the other hand, some people strongly claim that lawsuits cannot solve the issue. The Philippines is a maternal society. Many females are responsible for household economy. Son Bum-sik at Kopino Children Association says, “If a Filipino mother earns a lot of money, other relatives begin to live in her house and share the living expenses. I know Koreans never understand this tradition of the Philippines, but it always happens here. Although, Kopino mothers can get rearing expenses from the father, there is a high possibility to share the money with other families, unlike the intention of the lawsuit that began only for the Kopino child.” Then what is the right solution to help Kopinos? Some say ‘education’. Rather than giving money, it is better to teach and educate children to support themselves financially. Even then, most Kopinos do not have opportunities to learn Korean. Son Bum-sik says, “I plan to establish a cooperative association for Kopino families in order to increase their earnings.”

Choi Jung-ah Staff Reporter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

최근 한 블로그가 한국 SNS를 강타했다. 코피노(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최정아 기자 jchoi12@theasian.asia

지칭하는 말)의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 한국 남성들의 사진은 물론 신상정보까지 상세히 공개한 것이다. 이 블로그를 접한 네티즌들은 무책임한 한국남성을 향해 분노를 쏟아냈다.


049

magazine N | 201603

싱글맘과 코피노를 향한 동정론이 없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필리 핀 현지인은 “한국은 필리핀의 싱글맘 문 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코피노와 싱글맘들을 도우려는 한국의 자선단체들 이 오히려 한국인들에게 필리핀 싱글맘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심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필리핀 교민사회에서도 ‘코피노’가 화 제가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내 놓고 있다. 필리핀 여성과 혼인한 교민 문 종구씨는 “밝게 자란 우리 아이들도 코피 노라 불리는데 반갑지 않다. 코피노란 단 어 자체가 ‘사생아’란 의미를 내포해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이라며 “많은 한국 교민 들이 코피노 대신 ‘코필’이란 단어를 사용 한다”고 말했다.

2

‘코피노 양육비 소송’

국내 언론들도 여론에 발맞춰 ‘한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며 코피노에 대한 후 원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보도를 이어갔

1

“코피노가 뭐죠?”

필리핀 현지 반응을 요약하면 간단

하다. “코피노가 뭐죠?”

코피노에 대한 동정여론은 친자

확인·양육비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 피노 가족의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국내 자선단체가 나서 로펌과 함께 친자

다. 하지만 필리핀 현지 분위기는 한국과

현지인들은 오히려 한국인들이 코피

확인·양육비 소송을 진행중이다. 현재 세

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오히려 코피노가

노를 불우한 아이들로 몰아간다고 생각

종공익센터, 한국여성변호사회 등 일부

무엇이냐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코피노,

한다. 에바 마리 왕(서울대 글로벌교육협

로펌에서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양육비 관

도대체 어떻게 봐라봐야 하나?

력전공 박사과정)은 “한국 매체들은 코피

련 무료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한국과 필리핀 교민사회에서 불

노를 어둡게 그리는 경향이 있다”며 “역대

하지만 이들처럼 모든 로펌들이 무료

거지고 있는 ‘코피노’ 논란 쟁점에 대해 살

대통령 중에서도 싱글맘이 있을 정도로

로 코피노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은 아니

펴보자.

필리핀에선 싱글맘이 흔하다. 필리핀에서

다. 코피노가 화제가 되면서 일부 로펌들 코피노어린이재단


050

뉴시스

magazine N | 201603

이 단체들과 연계해 양육비 청구소송 사

피노 가정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가 없는 남성들에게 양육비를 받아내

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변론을 무료

것은 변하지 않은 사실이며 금전적인 어

는 길은 소송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로 진행하는 대신 국제소송이라는 점, 또

려움을 해결할 방법은 ‘소송’ 밖에 없다는

패소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들어 위

것이다.

한편 ‘양육비 소송은 코피노 아이들 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하게 반박

자료·양육비 총액의 30~50%를 성공보

청소년인권단체 탁틴내일과 협약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필리핀은 한국과 달리

수로 책정하고 있다. 하지만 살림이 어려

맺어 코피노 양육비 소송을 무료로 돕고

‘모계사회’로 불릴 만큼 여성들이 가정경

운 코피노들을 대상으로 ‘지나치게 비싼

있는 한국여성변호사회 소속 임지영 변

제의 중심이다. 가족과의 관계 매우 돈독

수임료를 받는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호사는 “일각에선 소송으로 한국인 아버

해 수입이 많은 여성이 일가친척을 모두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피노 소송사업을

지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등 부정적인 측

먹여 살리는 일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

지켜본 한 필리핀 현지인은 “한국 NGO

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필리핀 문화의 이해 없이 소송은 무의

단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코피노가 ‘비

“하지만 우리는 코피노 모친들이 법적으

미하다는 것이 ‘소송 반대파’의 입장이다.

즈니스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주

로 보장받아야할 권리에 중점을 두고 있

장했다.

다”고 말했다.

3

최근 한국인 남성들의 신상정보를 올

면 친척일가가 모두 그 집에 들어와 살거

려 화제가 된 WLK(We Love Kopino)의

나, 생활비를 받아쓴다. 한국에선 절대로

공익사업이든 수익사업이든, 이

구본창 대표도 “한국에서나 필리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곳에선 쉽게

들은 ‘양육비 소송’이 코피노를 돕기 위한

나 미혼모 혼자 양육비 지원 없이 아이를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한다. 그는 “양육비

최선의 방법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코

키우는 일은 힘들다”며 “자녀를 찾을 의

가 엄마에게 전달된다고 해도 그 돈이 코

‘소송’이 올바른 해결책인가

코피노어린이재단의 손범식 대표는 “필리핀 여성이 갑작스럽게 큰돈이 생기


051

magazine N | 201603

뉴시스

꼽힌다. 손범식 대표는 “한국의 경우에도 부부지간에 소송이 생기면 관계가 완전히 무너진다. 코피노와 한국인 남성도 돌이 킬 수 없는 지경으로 관계가 끝장난다. 결 국 상처는 코피노의 몫이다”라고 밝혔다.

4

돈보단 ‘그물잡는 법’ 가르쳐야

그렇다면 양육비 소송의 대안은

무엇일까. 혹자는 일본의 자피노(일본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혼혈2 세) 사례를 참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현 재 일본 정부는 필리핀 현지 재단에 간접 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자피노들을 돕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정부의 경우, 코피노에 대한 별다른 지원정책이 없다. 현지 코피노 단체는 또다른 대안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코피노 대부 분이 일반 필리핀 서민처럼 제대로 된 정 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 범식 대표는 “지난주 필리핀의 한 지방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코피노 가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아이를 데려다

피노에게 제대로 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각에서 우려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

가 교육 받게 할 예정이다”라며 “코피노

필리핀 사람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또한 단기적

가족에게 무조건 돈을 쥐어주는 것이 능

WLK 구본창 대표는 이에 대해 “승소

인 효과이며 가족문화가 강한 필리핀에서

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기 잡는 방법

후 받은 양육비가 온전히 코피노에게 쓰

큰돈이 생긴 여성을 다른 친척들이 가만

을 가르쳐야 한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

일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있다”며 “사이트

히 놔둘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교

는 코피노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를 만든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일부 엄

민사회의 대다수 의견이다.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

마들이 소송을 통해 양육비를 받았는데,

소송의 역기능으로 부자관계 악화도

했다. 손 대표는 필리핀에서 코피노 엄마 와 아이들을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을 꾸 려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술·직업교육을

쟁점사안

찬성 측

반대 측

양육비 문제

코피노 모친 교육을 통해 충분히 해결되니 양육비 샐 걱정 없음.

여성이 가족을 부양하는 필리핀 문화로, 양육비가 코피노에게 온전히 돌아가기 어려움

부자관계

한국인 남성들은 자식을 볼 의지가 없음. 소송만이 답

소송으로 부자관계가 무너질 수 있음

싱글맘에 대한 인식

한국이나 필리핀 모두 여자 혼자 자식을 부양하는 것이 어렵긴 매한가지. 필리핀 싱글맘들이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야

진행할 예정이다. 손 대표는 코피노 중 제2의 하인스 워 드가 나온다면 코피노에 대한 부정적 인 식이 많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코피노는 불우하지 않습니다. 코피노 아이들을

코피노와 싱글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확산. 싱글맘이 많은 필리핀 문화에 대한 이해 필요

불쌍한 아이들이 아닌 ‘한국의 미래 인적자원’ 으로 접근한다면 한국사회에 중요한 인재가 될 것입니다.”


Insights

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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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n in the New Season of Global Changes

agreement reached to the point of action on 16th January 2016. It was a historical moment for Iranian society when Javad Zarif, foreign minister of Iran and Federica Mogherini, EU foreign policy chief read the joint statement. Hope

Pooneh Nedai is an Iranian publisher. She is the publishing Iranian cultural Magazine Shokaran Summary

특별기고

‘경제제재’ 해제 이란, 새 시대 희망 키운다

2015년 7월14일 이란은 역사적인 비핵화 타결을 이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P5+1)은 이란이 핵물질 생산력을 실질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을 조건으로 핵개발과 관련된 국제사회의 제재를 해제하기로 약속하는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이란과 체결 했다. 그리고 지난 1월16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부 장관과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이란 경제재제 ‘해제’를 알리는 공동성명을 읽는 장면은 앞으로 이란 국민들에게 역사적인 순간으로 꼽힐 것이다. 이번 타결로 이란엔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이란은 정치적으로 친밀한 중국과 교역규모를 10 년 안에 연간 6천억 달러로 늘리기로 뜻을 모았다. 이는 2014년의 11배 규모다. 또한 이란은 프랑스에 본사 가 있는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에서 250억달러(30조1천500억 원)에 달하는 118대의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하는 등 서방국가와의 경제협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 또한 이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국가 중 하나다. 이란 국민들은 오랫동안 한국산 제품들을 신뢰하고 소비해왔다. 경제제재 당시 한국은 이란 으로부터 석유를 수입한 반면 이란은 한국 공산품을 수입해왔다. 또 양국은 문화교류도 이어왔다. 이는 양국 관계 발전의 기반이 될 것이다. 물론 이란이 풀어야할 숙제도 남아있다. 지난해 7월 이슬람명절 ‘하지’ 동안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 메 카 성지순례에서 벌어진 불상사 이후 이란-사우디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결국 지난 1월 이란 수도 테헤란의 사우디 대사관 방화사건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이는 모든 이란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이 아닌, 일부 극단적인 세력의 소행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프랑스 순방 중 사우디 대사관 방화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관계자들을 구속시켰다. JCPOA 이행을 지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31호는 이란에겐 희망의 씨앗이다. 이란 국민들의 반응 은 어떨까? 대학생 알리는 “이란은 사회, 경제적으로 더욱 나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인 아쉬가르는 “불과 2년전만해도 파산 상태였다. 그러나 이제 재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연구원 하산 도 “2231호는 이란-이라크 전을 종식시킨 유엔결의안 598호보다 더 중대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 이라고 전했다.

On 14th July 2015, when Iranian people heard about the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they went to the streets and showed their pleasure about the

푸네 네다이 이란 <쇼크란> 발행인·번역 김아람 기자

agreement, since they realized that the 12 years of challenge between Iran and the West has reached an end. They were happy again when the nuclear

Merchants and businessmen found a new hope to develop the market. Now the window for swift exchange of money is open for Iranian market. In this case, Iranian people are very hopeful for this new season opening in their life. Recently, Iran agreed to $600 billion trade with China for the next 10 years and $51 billion trade with Italy and France. Iranian market is now open for serious competition in economic fields. Relations with Korea

Korea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countries for Iranian market. Great number of Iranian people have been serious consumers of Korean products, showing a long time trust on Korean products. During the sanction, Korea was present in Iranian market in two ways: buying oil and selling products to Iran. After intensifying the sanction, Korean presence in Iran market reduced. Now that the sanction has been lifted, Korea can revitalize its economic relations with Iran. I think the cultural relations between Iran and Korea have improved during the past decade and it will be a good base for the future of two countries. Iranian President, Mr. Rohani in meeting with France President, Mr. Oland hoped for a better future for Iran. Case of Saudi Arabia

There is a lot of negative reaction, both in the country and internation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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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 ning the attack on Saudi Embassy in Tehran. Some small headstrong group is to be credited for the attack. Alt hough a huge number of Iranian pilgrims died in the tragedy at Mecca due to the Saudi Arabian government’s irresponsibility during Haj, Iranians do not agree with the attack on the Embassy. They have lost their dears and families in the incident at Mecca but they disdain the attack on the Embassy. Iranian President while travelling to France, told that the government condemn the attack and they have arrested the attackers and imprisoned them. Before him, the Supreme Leader condemned the attack on Saudi Embassy too. End of Sanction

Now the question is whether this diplomatic crisis will influence the

future of Iran in post-sanction times. It seems not.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adopted a resolution of 2231 and it means that all six previous resolutions (1737, 1569, 1835, 1803, 1747, 1929) have been cancelled. The political specialists believed that the 1929 resolution of Security Council might paralyze the economy of Iran, but the historical agreement put a final point to the sanction. Iran after sanction

I talked to a number of local citizens to understand the political atmosphere of my country these days and the feeling prevailing in Iranian society. Ali, a university student, says, “I am hopeful about my future. I think my life will become better, socially as well as economically.” Similarly, Poopak, a housekeeper, says, “I hope my family’s life will grow better and I

feel our tomorrow will be brighter than today and yesterday.” While Asghar, a merchant, says, “I was bankrupted within two years ago. Now in the post-sanction period, I really hope to reconstruct my business.” Nahid, a publisher, believes, “when there is no sanction, I think the economy level of life will grow and people will find their enthusiasm to read more books. I think people will pay more attention to books and difficulties in our business will come to an end.” Hasan, a researcher, says, “I believe that the resolution 2231 is more important than the resolution 598 (resolution 598 of UN was about ending the war between Iran and Iraq) in Iranian history.” The general consensus shows that, in the light of the sanction lift, citizens have found a hope for the future, a new-found belief that their lives will improve. AP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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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150 Children die in fresh outbreak of diseases in Thar Desert of Pakistan Nasir Aijaz is a 38-year experienced Pakistani journalist. He has worked as editor, reporter, magazine editor, news editor and anchor in different newspapers, news agencies and radio news services. Until recently, he served as Bureau Chief and Editor at Pakistan Press International(PPI) news agency and Head of PPI radio news service. He currently serves as the Chief Editor at the Indus Chronicle, a monthly magazine based in Karachi, Pakistan. Summary

타르사막 어린이, 수인성 전염병으로 올해만 최소 170명 사망 파키스탄 남서부에서 인도 북서부에서 걸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타르사막.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사막인 이 곳은 가뭄과 가난의 고통을 동시에 안고 있는 곳이다. 타르사막 가운데 특히 신드주(州)의 타르파카(Tharparkar) 지역에선 올해 1월부터 150명이 넘는 어린이들이 수인성 전염병(콜레라와 장티 푸스 등 물이나 음식물에 들어 있는 세균에 의해 전염되는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지난 2013년부터 극 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데다 깨끗한 식수가 부족한 비위생적인 환경 탓이다. 설문 조사 결과, 이 곳 의 약 70% 가구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연합(UN)의 인권보도매체 아이린(IRIN)의 보고서에 따르면 “파키스탄 남동부(타르파 카)의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 해당 지역 거주민들의 영양상태가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어린 이와 임산부, 모유 수유모의 경우 상황이 심각하다”고 한다. 타르파카 지역은 농사에 필요한 씨앗과 비 료이 부족하고 관개시설이 노후돼 제대로 된 먹거리를 얻기도 힘들다. 설상가상으로 환자가 발생한 경 우 제일 가까운 병원까지 17km를 내달려야 할 만큼 병원 수도 현저히 적고, 병원에 도착해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다. 이 지역에서 일하는 의사가 300명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르파카의 전체인구 가 130만명인 걸 감안하면 턱 없이 낮은 수치다. 올해 초 많은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사망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자, 지난 1월말 신드 주의회 야 당에선 ‘해당 지역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기간제 의사를 파견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민 간 단체들 역시 “주정부는 그간 타르파카에 만연한 가뭄과 식량난 등을 방치해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신드주 정부는 “관련 예산을 2배로 늘리며 의료 장비를 확충하고 의료진을 추가로 채용하는 등 최대한 노력을 해왔다”며 반박했다. 솃 까임 알리 샤 신드주지사도 어린이 사망사건에 대해 “타르파카 사태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의사소통 수단 부족으로 이 넓은 지역의 아동들을 일 일이 조사하기란 어렵다”면서 “이번 사건의 원인은 기근 때문이 아닌 모계 건강문제로 보인다”고 밝혔 다. 또한 그는 “일부 소수의 문제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는 것은 부적절하며, 173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는 언론 보도는 부풀려졌다”고 말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따라 양측의 공방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 질 전망이다. 한편 난드 랄 파키스탄 현지 기자는 <아시아엔>과 <매거진 N>에 “많은 산모들이 영양실조를 겪다보니 태어나는 많은 아이들도 면역력이 약해 작은 기후 변화에도 쉽게 질병에 노출된다”고 전했다. 부족한 의료진 문제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환경이 열악한 사막에서 일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정부에서 발령을 보내더라도 제대로 근무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시르 아이자즈 아시아엔 파키스탄 지부장·번역 김아람 기자

At least 150 children have died of waterborne disease since January this year in Pakistan's impoverished desert district of Tharparkar, which has been devastated by drought since 2013. The media reports suggest the death toll around 173 but the government authorities have termed it an ‘exaggerated figure’. Civil society groups and opposition politicians say the Sindh provincial government’s response to the crisis has been insufficient to prevent widespread hunger and disease. “We have not seen any benefits, despite government claims,” said Kamla Bibi of a local civil society group called ‘Thardeep’ at Mithi town, the headquarters of Tharparkar district, bordering India. Nisar Khuhro, the provincial government spokesman, admitted there were problems, but told that problems of suffering people were being “urgently addressed”. Yet, four years into the crisis, farmers are still in need of seeds and fertiliz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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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preliminary data in an unpublished report being prepared by the Pakistan Food Security Cluster, which is led by the United Nations Food and Agricultural Organization and the World Food Program. New irrigation systems also need to be built and old ones repaired, according to a draft of the report obtained by Integrated Regional Information Network (IRIN) of the United Nations. Officials from the FAO and WFP cautioned that the survey results have not been finalized and that the findings of the report could change. But there is no doubt that people are suffering as harvests fail and livestock die. This is especially true in the hardhit southeast of Sindh province, where Tharparkar is located. Although 96 percent of households surveyed said they had received food assistance during the preceding two years, 90 percent said drought had adversely impacted their food consumption. “It can be safely concluded that food deprivation caused by the drought

in the southeast is increasing and worsening malnutrition, especially among children, pregnant and lactating women,” says the draft report. In addition to lack of food, 68 percent of households surveyed in Tharparkar reported that they drew water from potentially unsafe sources, which exposes them to diarrhea that can cause malnutrition and vice-versa. The conditions “can be linked in a vicious cycle amongst children,” according to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According to report by Al-hasan Systems, a company that specializes in gathering humanitarian data, at least 139 children died in Tharparkar in January. Al-hasan Systems attributed the deaths to a combination of drought-related disease and poor access to healthcare. Asha Bibi, who heads a local civil society group called Polki, said his organization also counted at least 100 deaths from hospital records, but she told IRIN that it was possible that adults or other children were dying. “These are the children who die in

hospitals,” she said. “There could be other deaths occurring in small hamlets and villages which we know nothing about.” The survey carried out by the Food Security Cluster highlighted that access to healthcare is a major problem in the region. The average distance to health facilities in Tharparkar is 17 km. Out of the nine districts surveyed in Sindh, researchers found that households in Tharparkar travel the longest distance on average to access healthcare services. Even if a sick person makes it to a clinic, they may not receive adequate care. There are only 298 doctors in the district, which is home to more than 1.3 million people. More than 215 village dispensaries meant for medication and providing minor healthcare are “nonfunctional”, according to Al-hasan Systems. The deaths of children in Tharparkar have sparked fierce debate in the provincial legislature. Opposition members proposed in the January 28 session that the government requ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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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doctors entering the public health system in Sindh to work for a period of time in Tharparkar. Khuhro, the provincial government spokesman, was quoted as saying by IRIN that the government is committed to improving health facilities, although he did not provide details of the plan. “We are doing everything we can to improve conditions at hospitals,” he said. Nand Lal, a local journalist of desert district, told Magazine N that the deaths of children are reported round the year but the kids born weak owing to malnutrition are prone to different ailments during extreme hot and cold weather in summer and winter seasons. “The male and female population of this district use to live in very unhygienic conditions. Moreover, the pre-mature deliveries due to malnutrition are often reported from remote villages where the services of untrained conventional midwives are hired, which aggravate the situation,” he said. According to him, most of the basic health units are virtually non-func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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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wing to dearth of doctors. “Over 120 posts of doctors in such health units are lying vacant, as the doctors are not willing to serve in desert areas. Even the doctors appointed by the government, disappear from the duties.” Meanwhile, finding no solution to the issue, Chief Minister of Sindh P r ov i nc e Sye d Qa i m A l i S h a h constituted a Judicial Commission to investigate the situation in Thar Desert in the wake of continuing deaths of children because of malnutrition and waterborne diseases. The twomember commission headed by a retired Justice has been tasked to complete its inquiry. The commission will look into reasons for children’s death, impact of measures taken by the government, point out shortfall in efforts/policy and suggest measures for improvement. Latest reports from Thar put the death toll of children at 173 since Jan 1 because of waterborne diseases and malnutrition, however, the Chief Minister says the figure is exaggerated.

Taking notice of media reports, the chief minister said the government had taken practical measure for poverty alleviation in Thar. He wondered how the government could know about each and every child in the desert area, where the communication system was not so good, and claimed that deaths of children being reported in Tharparkar were largely on account of maternityrelated complications and not from hunger or lack of food. If there was drought and lack of healthcare facilities, then men and women would also have suffered equally, he said, adding that this was injustice to hold his government responsible for a thing that was not even prevailing. “I have improved health services, upg raded basic hea lt h u n it s, dispensaries and hospitals by providing equipment and have doubled the budget for medicines.” Despite that, Mr. Shah said, media reports were saying that infants’ deaths were on the r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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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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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 Lanka The New Geo-Political Battleground Kalinga Seneviratne is a Sri Lanka born journalist and academic who teaches regional communication issues at 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in Singapore. Summary

스리랑카 새 정부 1년, 미국·중국·인도서 잇단 러브콜 2015년 1월8일 스리랑카의 조기 대선은 그야말로 ‘대반전’이었다. 세 번째 집권에 도전한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제치고, 제1야당 통일국민당(UNP)의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후보가 당선 돼 정권교체를 이 뤄낸 것이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지난 2009년 타밀족 반군과 26년에 걸친 내전에서 승리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내전 동안 민간인 학살 의혹과 지나친 족벌주의 인사 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반면 새 정권은 스리랑카 내전 기간 벌어진 인권침해조사를 실시하고 그간 탄압받아왔던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개 혁적인 노선으로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고 있다. 대선 이후 1년, 지금의 스리랑카는 어떻게 변했을까? 이전 정권은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과 가까운 거리 를 유지한 반면, 내전 기간 잇따랐던 미국과 영국의 내정간섭으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지 향하는 현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국 고위 관계자가 연이어 스리랑카에 방문하며 양국 관계개선의 물꼬 가 텄다. 작년 한해 동안 니샤 데사이 비스왈 미 국무부 중앙·남아시아 담당 차관보는 스리랑카를 무려 두 번이나 방문했다. 그는 “1월8일 역사적인 대선 이후 스리랑카 국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봤다”며 야당 인사와 비영리 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현지 사회 현안문제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같은 해 5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직접 스리랑카를 찾아 시리세나 대통령과 함께 양국 간 협력 및 경제교류 방향 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편 1950년부터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중국은 스리랑카를 향해 더욱 공격적인 투자 공세에 나서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9월 스리랑카를 방문해 향후 40억 달러를(4조9천억원) 투자하겠다고 밝 혔다. 또 작년 3월 시리세나 대통령의 중국 방문 당시 시 주석은 “아시아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 중국과 스리랑카, 인도가 힘을 모아 중요한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거부 감을 드러내며 중국과의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기도 했던 스리랑카 새 정부도 최근 중국의 러브콜을 받아 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칼링가 세네브라트네 스리랑카 프리랜서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On January 8 last year, when President Mahinda Rajapakse’s former Cabinet colleague Maitripala Sirisena defeated his old boss in a shocking election result, campaigning on heralding a non-corruptible ‘yahapalana’ (good governance) regime, people of Sri Lanka

took a deep breath, some with euphoric expectations and others with fears of war and terrorism re-visiting the now peaceful island. With this month marking the first year anniversary of the event, there were mixed reviews of it in the local

newspapers. While it was universally agreed that there is a better climate of freedom, especially in the media, but whether democracy and media freedom could eradicate corruption from the political system is another question. The very corruption Sirisena and his allies in the UNP (United National Party) and the NGO sector claimed were endemic in the Rajapakse regime is now gradually creeping into the new government, with corruption tainted Cabinet ministers from the Rajapakse regime now drafted in to the new regime’s Cabinet. Meanwhile, Sri Lanka’s new allies, the US and the UK leaders, are singing praises of the new government for heralding in a new era of democracy and freedom. After all the failures in Libya, Iraq, Egypt and Syria, the Obama administration in particular seems to be desperate to demonstrate a “success story” in its regime change democracy crusades, and Sri Lanka is, thus, becoming the latest geo-political battle ground with its strategic location in the Indian Ocean. In March last year, on the eve of Indian Prime Minister Narendra Modi’s visit to Sri Lanka, Mr. Rajapakse said in an interview with an Indian newspaper, that the US, Europeans and India’s intelligence services known as RAW had a role in the overthrow of his regime but he absolved Mr. Modi from this alleged conspiracy. Rajapakse regime was detested by the West because they ignored western pressure and went ahead and finished off the 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LTTE) in May 2009 becoming the only country to eliminate terrorism in the modern era. Just two weeks before the LTTE leadership was killed in action, British Foreign Secretary David Milliban and French Foreign Minister Bernard Kouchner flew to Sri Lanka to make a personal demand on President Rajapakse and his brother Def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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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ary Gotabaya Rajapakse to declare a ceasefire. The latter was reported to have told the visiting foreign ministers that Sri Lanka was no more a colony of the Europeans. This rebuff not only bruised European egos, to make matters worse, Sri Lanka accomplished its aim to eliminate terrorism because of diplomatic and military assistance from China, Russia and Pakistan, and financial assistance from Libya and Iran. This is a scenario that the West doesn’t want other countries, especially in Asia and Africa to look up to as a template to solve their internal problems. I n r et u r n, t he We st t ra i ned and funded local NGOs to make allegations of human rights violations and corruption against the Rajapakse regime, while mobilizing the UN system to mount inquiries on alleged war crimes committed by Sri Lankan armed forces on the final days of the war with LTTE. UN secretary general Ban Ki-Moon took the unpreced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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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of setting up a committee headed by former Indonesian attorney general Marzuki Drussman to inquire into possible war crimes in Sri Lanka. The report, which was supposed to be an advisory report to Mr. Moon and was widely criticized in Sri Lanka for lacking credibility, became the basis of a number of resolutions moved by the US and its allies at the UN Human Rights Council (UNHRC) against the Rajapakse regime’s alleged human rights violations. The Rajapakse regime and most Sri Lankans saw this campaign as a classic example of western double standards and hypocrisy, as neither the UNHRC nor Mr. Moon have raised any issues with regards to worse war crimes perpetuated by the West in Afghanistan, Pakistan, Iraq and lately in Libya and Syria. Pushed into a corner, Rajapakse regime became paranoid of domestic dissent and cracked down heavily on human rights activists (mainly funded by the West) and tightened controls on the media.

The Rajapakse regime became closer to China, who invested heavily in Sri Lanka building ports and airports and in November 2014, President Xi Jingping visited Sri Lanka and declared the country a “strategic partner” of China. Thus, when the Rajapakse regime fell in the shocking election result, there was much elation in Washington and London. US Assistant Secretary of State for South and Central Asian Affairs Nisha Biswal has visited Sri Lanka twice in last year, first in February and later in August, just after the general elections. During her visit in February, she said, “It is a privilege to visit Colombo to witness for myself the sense of excitement and optimism that the Sri Lankan people have ushered in through the historic January 8 election”. During both the visits, she has met not only with government leaders but also opposition Tamil politicians and civil society (NGOs), which would amount to a direct interference in domestic affairs of a country. The US has also hinted that they may

Former Sri Lankan President Mahinda Rajapaksa, right, and former Defense Secretary and his brother Gotabaya Rajapaksa, offer prayers during a function organized to sign a petition against UN recommended investigation into alleged war atrocities in Colombo, Sri Lanka, Monday, Feb. 8, 2016. Supporters backing former president Mahinda Rajapaksa protest out side the U.N. office in Colombo, Sri Lanka, Saturday, Feb. 6, 2016. U.S. Secretary of State John Kerry (L, front) meets with Sri Lankan President Maithripala Sirisena (R, front) in Colombo, Sri Lanka, May 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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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p the Tamils, whom they have used in the war crimes campaign against the Rajapakse regime, when the visiting Tamil Chief Minister of the Northern Province C.V. Wigneswaran was told by Ms. Biswal in July to soften his “genocide” rhetoric and work with the Sirisena government for reconciliation and development of the province. In May last year, her boss, Secretary of State John Kerry visited Sri Lanka and made glowing tributes about the new government’s commitment to democracy and human rights. Knowing that the US needed to have the support of the island’s Buddhist majority who are mainly distrustful of the West, he made a highly publicized visit to a leading Buddhist temple near Colombo making traditional Buddhist offerings to monks and getting their blessings in return. A string of US military leaders has also visited Sri Lanka in the past year hinting at closer cooperation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is sphere. In November, State Department Counsellor Thomas Shannon during a visit to Colombo said, “Sri Lanka’s contributions to the development of a reg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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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ciousness – one that promotes the values of democratic governance and respect for human rights, freedom of navigation, sustainable development, and environmental stewardship are noteworthy”. It is the comment on freedom of navigation pushed into the middle of the statement that should be of concern to China, that sees the Chinesebuilt Hambantota harbor as a crucial lynchpin in their Maritime Silk Route project. The US is also trying to conscript the Sri Lankan armed forces into their disaster relief schemes very likely via the UN. The US Deputy Assistant Secretary of Defense for South and Southeast Asia Dr. Amy Searight, during a threeday visit to Sri Lanka in late December has examined the future role for Sri Lankan security forces in humanitarian assistance, responding to natural disasters, and increased participation in overseas peacekeeping operations, according to a US Embassy statement issued in Colombo. Many in the Sri Lankan Defense establishment are known to be unhappy with a commitment given in September

to the UNHRC by the government when Sri Lanka co-sponsored a resolution with the US to establish a domestic mechanism that may include foreign judges trying war crimes cases in Sri Lanka. Senior army offices have held discussions with President Sirisena recently on the issue and it is very unpopular with the Sinhalese electorate, who see it as an infringement of the country’s sovereignty. Many Sinhala politicians have criticized the Sri Lankan government’s refusal to table a report prepared by a commission headed by a respected former Judge Maxwell Paranagama at the UNHRC sessions and instead co-sponsoring a resolution on Sri Lanka with the US, that is seen as a capitulation to western pressure. The Paranagama Commission was set up in August 2013 by President Rajapakse to inquire into the issue of missing persons in Sri Lanka, where international human rights organizations, the UN, international media and even the Drussman report have quoted a figure of 40,000. But no one has even named 400 such missing persons. The Paranagama Com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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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ese President Xi Jinping (L, front) and his Sri Lankan counterpart Mahinda Rajapaksa (R, front) unveil the cornerstone of the Colombo Port City Project, a large construction project undertaken by the China Harbour Engineering company, in Colombo, capital of Sri Lanka, Sept. 17, 2014. Sri Lankan President Maithripala Sirisena (L) and Indian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wave their hands before a meeting at Hyderabad House in New Delhi, India, Feb. 16, 2015.

report questioned the credibility of such allegations made in the Drussman report, while acknowledging that both the armed forces and LTTE may have been involved in what amounts to war crimes. Couched in the usual UN jargon and language this report makes comparisons with western behavior in the war against terror. Instead of capitulation, the Sri Lankan government should have tabled this report at the UNHRC and called on its membership to set up a South African style lessons learnt commission to look at the war on terror worldwide in order to learn from each other and develop strategies to fight terrorism, where terrorists are increasingly using civilians

as shields. In the first months in office, the Sirisena government demonized Chinese investments in Sri Lanka accusing the Chinese of building infrastructure projects at enormously inflated costs and giving billions of rupees as kickbacks to the Rajapaksas. All such infrastructure projects including the multi-billion dollar Colombo Port City project inaugurated by President Xi in November 2014 were suspended. Many believed that this was succumbing to pressure from India. Even this month, a deal to purchase JF-17 fighter jets from Pakistan was cancelled when India raised strong objection to it. The deal would have

involved the Chinese along with the Pakistanis, setting up an aircraft servicing base in the island. India has questioned Sri Lanka’s need for fighter jets. Both Pakistan and China played a major role in Sri Lanka’s war with LTTE. It is no secret that Pakistani air force pilots helped to train their Sri Lankan counterparts in precision bombing, while China provided hi-tech radar and other military hardware. India did not object to these at that time. China has been a friend of Sri Lanka for a long time. The relationship goes back to the 1952 rubber-rice pact where China sold rice to Sri Lanka at under the market price while buying rubber at above the market price. In the 1970s, China was a close ally of the Mrs. Bandranaike government, which also had a close relationship with India. Just this month, the Sri Lankan government seems to be making a remarkable U-turn in its dealings with China. It became quite evident after a high-level Chinese delegation led by Yang Weiqun, director of the department of Asian affairs at the Chinese Commerce Ministry visited Colombo earlier this month. The Minister of Megapolis and Western Development Champika Ranawaka addressing an investment promotion seminar last week indicated that the Colombo Port City project will be given pride of place in Sri Lanka’s grand strategy to become a developed nation. Mr. Ranawaka was a member of the Rajapakse Cabinet and after defecting to the Sirisena camp, he was one of the most vociferous critics of Chinese kickbacks to the Rajapakses during the elections campaign. “The new city will tap the intrinsic values of the region and environment to create a new ideal modern community for business, living and leisure. This will help attract companies and inves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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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ensure it will become a beacon of excellence for Sri Lanka,” he said. The State Minister for Trade Sujeewa Senasinghe told reporters on January 12 that the Port City project will go ahead with slight changes to the agreement where the 50 acres to be given to a private company will be changed to a government deal. He also said that Sri Lanka would be getting a large loan from the Chinese at 2 percent interest to pay off loans the previous regime has taken at 6.9 percent. The overtones to China has perhaps been influenced by an IMF report in November on the Sri Lankan economy that has is believed to have adverse comments on government economic policy. The government has not given its consent to publish the report and on top of it, financial gurus George Soros and Joseph Stiglitz who attended a special economic forum organized by Prime Minister Wickremesinghe in Colombo this month, gave some gloomy forecasts of Sri Lanka’s ability to attract foreign A Sri Lankan Buddhist devotee offers prayers during the inauguration of the annual Duruthu Perahera festival at Kelani Buddhist temple, in the outskirts of Colombo, Sri Lanka.

investments in the current economic climate. While they were in Colombo, the stock market collapsed with indices showing lowest level since the government came to power. “All Chinese funded projects were halted the moment the new government took office until ‘investigations’ into them were over. This was an extraordinary insult to a powerful nation which has never had anything but goodwill towards Sri Lanka,” noted the ‘Island’ newspaper in a special commentary to mark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Sirisena government. “It was only when a whole procession of American dignitaries came to Sri Lanka and brought not a cent with them, that reality deems to have dawned on the government that if the Americans were going to give Sri Lanka any money, they would have to borrow it from the Chinese! As this reality dawned on them and the economic crisis began to bite, the government started making overtures to the Chinese once again”. Sri Lanka is thus at the crossroads having to battle geo-political crosscurrents in the Indian Ocean. But, there

are opportunities to be grabbed, which needs imaginative diplomacy. The loan deal mentioned above could give an indication. During President Sirisena’s visit to China in March last year, President Xi is reported to have told him that Sri Lanka, China and India together could play an important role in the development of Asian trade routes. With Mr. Modi promoting the Indic-Buddhist Civilizational movement to help link China’s Silk Routes projects with a cultural focus, to which President Xi has responded positively, Sri Lanka is well placed to play a pivotal role in it. After all it was the Sri Lankans that preserved the Indian Buddhist tradition and spread it to Southeast Asia after the writing of the Buddhist cannon Tripitaka in Sri Lanka in the 1st century BC. If the Sri Lankan government grab this opportunity to work together with India and China in the cultural sphere, it will also contribute enormously towards reconciliation between the Hindu Tamils and Buddhist Sinhalese in Sri Lanka, which no divisive constitutional reforms could achieve.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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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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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건축가’ 김종석이 연희동 카페거리 만든 사연 열일곱에 가방 매고 꿈 찾아나선 김종석 (주)쿠움 대표 김종석 (주)쿠움 대표

Summary

Yeonhui-dong Regeneration: From a consumer to a producer street Yeonhui-dong cafe street is one of Seodaemun-gu’s hottest places. The calm and classic atmosphere attracts people regardless of age or gender. Kim Jong-seok of COOM Partners, who designed 90% of the cafe street, contributed his young passion to Yeonhui-dong. Just after graduation from high school in Busan, he arrived in Seoul at the age of 20 years. He began a new life to be recognized as an architect, just after an accident. At that time, he managed Jeong-um Electronics. Since 2010, he has put his efforts in designing Yeonhui-dong cultural street. Yeonhui-dong cafe street became popular through blogs and news media attracting people. This was a big transition from being a consumer village to a producing one for Yeonhui-dong. Kim said, “As the cafe street has been revitalized, people living in Yeonhui-dong are very kind to me. Now Yeonhui-dong has become a village that can make money with bright energy. 90% of buildings on the street were built by me.” Kim Jong-seok, who is currently working on ‘New Yeonnam-dong Refuge Way Project’, said, “I want to spend the rest of my life working on the revival of the street.” Kim said, “I would like to give lectures after the Yoennam-dong project, rather than begin another project in another region. There are many cities and villages that cannot be redesigned and rebuilt successfully, because people do 박호경 기자

not have experience in it. I want to help other regions through village regeneration. I believe that village regeneration

appleyuki@theasian.asia

is the second ‘Saemaeul’ Movement. I will spend my life on village regeneration.”

사진 Rahul Aijaz 기자 Photojournalist/Reporter, Pakistan

Park Ho-kyung Staff Reporter | Summary by Choi Jung-ah Staff 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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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카페골목을 조성한 건축가이자

부산에 도착한지 3일만에 친구와 만

2002년 현대투자신탁 명동점에서 사다

(주)쿠움의 김종석 대표를 만나기 위해

나게 된 김 대표는 가구 공장에서 1년간

리에 올라 작업을 하던 중 사다리 연결고

그의 사무실을 찾아 갔다. 멋스럽고 안락

일하다 뒤늦게 전자공고에 입학했다. 학

리가 끊어지며 2층에서 1층 로비로 추락,

한 느낌의 카페거리에 들어서자 네비게이

교를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결정돼 곧

왼팔을 크게 다친 것이다.

션에 찍힌 주소 번지수와 똑같은 이름의

바로 서울로 상경, ‘소니서비스센터’에 취

“팔 뼈가 17조각이 났었습니다. 병원

카페가 나타났다. ‘Cafe 129-11’, 슬며시

직한다. 20살에 연희동에 있는 전파상인

에선 팔을 절단하자고 했어요. 전 그렇게

웃음이 나왔다. 센스 있는 이름이란 생각

‘정음전자’로 직장을 옮긴 그는 이때부터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 절박했죠.”

을 하던 찰나 마중 나온 김대표를 만났

연희동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의 고집이 의사를 설득시켰다. 12

“정음전자에서 1년간 일하다 군대에

시간의 수술이 끝난 후 80% 회복할 수

가게 됐어요. 그러다 제대 5개월을 남겨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 사고로

“전 건축 전공이 아닙니다.”

두고 전파상 사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

4개월 간의 입원생활을 하게 된 김대표는

그의 첫마디부터 기자의 호기심을 자

식을 들었죠.” 이를 계기로 전파상 직원

입원하며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극했다. 김종석 ㈜쿠움 대표는 1968년

들은 모두 떠났고 그나마 가게를 지키던

“단순 육체 노동으로는 먹고 살기 힘

생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6남 1녀

사모님은 가게를 내놓겠다고 했다. 김대

들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건축설

중 막내인 그에게 부모님은 함양에서 함

표는 이때 정음전자를 인수하기로 마음

계를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현장에서

께 농사 지으며 살기를 바랐다고 한다. 고

먹었다고 한다. 군대 가기 전 친분을 맺었

인테리어 일을 돕다 보니 도면도 어느 정

등학교 입학식 날, 가방 하나만을 둘러맨

던 연희동 사람들과 친형의 도움, 그동안

도 볼 줄 알았고 건축가들과 인맥도 쌓였

채 그는 부산으로 떠났다. 더 넓은 곳에

모아온 월급 등으로 자금을 마련해 25살

을 때였거든요.”

서 경험을 쌓고 싶었던 그는 집을 빠져 나

되던 해 정음전자를 인수했다.

다. 자연스레 카페로 이동, 커피 한잔을 나누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와 해운대에 있는 친구를 찾게 된다.

연희동 카페 129-11 내부

하지만 시련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2003년 연세대학교 후문에서 100m 떨어진 47평의 땅을 7380만원에 경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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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 대표의 두번째 작품인 연희동 초입 건물

magazine N | 201603

오는 4월 자리를 옮길 연남동 사무실 건물과 피난길 초입

습니다.”

구입한 그는 이곳에 건축가로서의 처녀

으로 그때그때 공사하다 보니 시간이 오

작을 완성했다. 당시 흔치 않는 외장 목

래 걸렸다고 한다. 2007년 연희동 주택이

김 대표는 당시 원로 조각가였던 김

조를 사용해 원룸 건물을 지었는데, 원룸

완공돼 명물로 인정받자 지역 주민들의

영중 조각가의 유지를 이어 받고 실행에

크기가 3.3평에 불과했지만 주변 10평짜

의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

옮기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 원룸보다 월세를 비싸게 받을 정도로

는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며 건축 설계와

"그 분이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저

인기가 많았다.

인테리어로 두각을 나타냈다. 사업이 확

에게 연희동을 담장이 없는 거리, 카페

장되자 자리를 옮겨 종암동에 100평짜리

와 갤러리로 넘치는 문화의 거리로 만들

사무실을 얻기도 했다.

어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얼마 지나지 않

처녀작의 성공과 함께 자신감이 생긴 그는 연희동으로 돌아와 노태우 전 대통

“사무실이 커지니까 오히려 세무조사

아 김준 작가가 제의를 해서 힘을 합치기

“그 자리가 연희동 초입 골목이에요.

에 시달리고 매출이 떨어졌어요. 그리고

로 한거죠." 2010년 ㈜쿠움의 탄생과 함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꼭 거쳐가는 사거

무엇보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

께 본격적인 연희동 카페 마을 조성사업

리 코너여서 주목 받던 위치였죠.”

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시작되었다.

령의 사저 인근에 주택을 건설하게 된다.

김대표는 또 다시 도전을 택했다. 국

연희동으로 돌아온 김대표는 2009년

이 프로젝트를 착수하면서 어려움도

내에선 구입할 수 없었던 코르텐강을 조

3평짜리 사무실에서 6명의 직원과 함께

많았다. 구청장, 구의원의 반대와 카페마

금씩 모아 건축에 도입했다.

아웅다웅 일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책

을의 성공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를 얻기

“코르텐강이란게 파랗게 녹이 슬어 보

상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곳 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문

이게끔 하는 자재입니다. 멋을 위해 일부

곳 현장을 누비며 일거리가 늘었다고 했

화계 인사들이 지원 사격을 해주자 김대

러 사용했죠. 그걸 모르던 지역 주민들은

다. 일이 다시 많아 지면서 ‘일하는 즐거

표는 과감히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비만 오면 비닐을 가져와 씌워주기도 했어

움’도 다시금 깨달았다고 했다.

요. 더 녹이 슬어버릴까 봐요. 전 일부러 코르텐강을 사용한 건데 말이죠.”(웃음)

연희동에서 명성이 자자하자 화가 김 준 작가가 그를 수소문해 찾아왔다.

“지인들에게 투자금을 받아서 연희동 의 오랜 주택이 매물로 나오면 임대 선점 을 했어요. 특히 가장 중요한 사거리 코너 는 제일 먼저 선점을 했습니다.”

김대표의 두번째 작품인 연희동 주택

“처음엔 친구하자고 하더군요. 친해

은 자금이 부족해 완성하는데 3년이 꼬

지다 보니 김준 작가가 이 마을을 재밌는

선점한 7개의 건물에 김대표는 최대

박 걸렸다. 정음전자를 운영하면서 번 돈

동네로 만들어 보자고 저에게 제의를 했

한 색을 넣지 않고 그레이나 화이트 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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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3

의 기본 색상만을 입혀 시공을 했다. “건축물의 완성은 결국 세입자가 하

층짜리 건물을 얻어 1층은 소통의 장소

줄 겁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이 있다고

로, 2층은 사무실로 쓸 예정이다.

한다면 마을 재생이라고 생각해요. 남은 인생을 마을 재생에 쏟을 겁니다.”

는 겁니다. 세입자가 들어와 가게 컨셉에

“프로젝트의 첫걸음은 건축이 아니라

맞게끔 예쁘게 꾸미는 거고, 저는 기초

주민들과의 소통입니다. 주민들이 원하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칭찬 문

작업만 할 뿐이죠.”

는 발전상을 들어 봐야죠. 무작정 개발

화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고 했다.

하겠다고 하면 주민들도 당연히 반발할

“제가 이렇게까지 해올 수 있던 건 단

카페를 중심으로 옷 가게, 미용실, 일 본식 선술집 등 7개의 점포가 생기면서

겁니다.”

순한 이유에서였어요. 단지 사람들에게 칭

마을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고 입소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남동 마을 사

찬받고 싶어서. 일을 끝내고 고객들에게

이 퍼지며 예쁜 카페들이 연희동 거리에

진전도 계획 중이다. 이 사진전엔 뉴욕의

칭찬받으면 그 이상 행복할 수가 없어요.

속속 생겨났다.

디자인 그룹과 일본 화가 및 광고기획사

한국 사람들이 칭찬에 인색한 편인데, 한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연희동 카페

들이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또한 연남 커

국사회가 칭찬에 익숙해지는 사회가 되었

거리는 자연스럽게 회자되었고 외부 사람

피마을 홈페이지 제작과 마을 월간지 출

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들이 유입되며 연희동은 소비 마을에서

판도 준비 중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연희동 카페 거리의 첫 작품 ‘Cafe

생산 마을로 변모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서울시

129-11’에서 인터뷰를 마칠 즈음, 천장에

“카페거리가 활성화되면서 주민들도

도시 재생 활성화 지역 2단계 사업’에 공

촘촘히 박혀 있는 1만2천개에 달하는 삼

저에게 호의적이 됐어요. 주거와 상권이

모를 해 정부 자금을 유치할 계획도 세우

나무 조각들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디

공존하면서 거리에 활기가 생기고, 돈을

고 있다.

자인 용도뿐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울림

벌 수 있는 마을로 변모하게 되어서죠. 현

“젊은 건축가들, 홍익대, 이화여대,

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방음 역할도 한다

재 카페거리 건물 중 90%는 제가 지은

공주대 등 교수진, 유명 화가들이 이 프

고 한다. 또한 삼나무 향은 카페 내부를

겁니다.(웃음)”

로젝트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어요. 홍대

가득 채워 방향제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

회사 간판을 달아 본적도 없다는 김

라는 벨트 안에 연남 커피마을도 있다는

였다. 삼나무로 천장을 꾸미는 작업을 누

대표는 지금도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

것을 사람들에게 뚜렷이 심어주고 싶습

가 했나 물어보니 역시나 김 대표의 작품

다고 한다. 산적해 있는 일감 중에는 새

니다.”

이라고 한다.

로운 야심작 ‘연남동 카페마을’ 프로젝트

김종석 대표는 연남동 프로젝트가 끝

“쿠움(COOM)이란 회사 명칭은 진공

도 포함돼 있다. 연남동엔 6·25전쟁 당시

나면 또 다른 마을을 개발하기보다는 전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의미에요. 진공상

피난길로 쓰인 길, 일명 ‘피난길’이라고 불

국을 돌며 강의를 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

태에서 점을 찍는 순간 건축은 시작되는

리는 슬럼가가 있다고 한다.

했다.

거죠.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면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그 골

“마을 재생 경험이 없어 실패한 곳이

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지금까지 일해왔

목을 지나게 됐습니다. 3평 남짓한 하코

많아요. 마을 재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고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생활해 왔어

방집(상자 모양의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

제 경험을 전하고, 실패하지 않게끔 도와

요.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고 차도 지나다니기 힘든 좁은 골목에 할 머니, 할아버지들이 나와 장기를 두시거 나 부채질하고 계신 모습이 너무나 인상 적이었어요. 마치 1960년대로 돌아간 느 낌이었습니다.” 이 풍경에 감명을 받은 김대표는 3년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준비해 왔다고 했 다. 오는 4월1일에는 연남동으로 사무실 을 옮겨 본격적인 ‘연남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연남동 피난길 골목 초입에 2

카페 129-11 천장에 촘촘히 박혀 있는 삼나무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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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6

magazine N | 201603

김국헌 군사학박사 국방부 정책기획관 역임

‘제재 풀린’ 이란·‘질 좋은 노동력’ 베트남 그리고 ‘13억 인구’ 인도로 눈돌려야 AP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8천만에 달해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러

동남아에서는 베트남이 힘을 합쳐 중국을

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에 이은 거대경제

견제하자고 제의한 바도 있었다.

권이다. 오랫동안 서방 석유자본의 지배

인도가 극중(克中)을 내세우고 한국

와 서방의 경제제재로 고통을 받아온 이

에 다가오고 있다. 인도는 1950년대에 카

란은 아무런 제국주의적 야심이 없는 한

슈미르 분쟁 등으로 중국과 전쟁을 치른

국에 호감을 가질 수 있다. 이를 활용해야

나라이며 지금도 티베트 독립을 추구하는

한다. 한류의 확산이 기대된다.

중국의 ‘눈엣가시’ 달라이 라마에게 망명

베트남이 중국, 미국에 이어 일본을

정부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다. 인구 13억

제치고 우리의 3대시장으로 떠오르고 있

으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

다. 베트남은 한국기업의 ‘글로벌 생산기

는 14억의 공산독재 중국과는 빙탄불상용

지’가 되고 있다. 베트남인은 중국인보다

(氷炭不相容)이다. 일찍이 숫자 ‘0’을 발명

일은 잘하는데 임금은 중국의 절반이다.

한 인도인들은 수학에 능한 젊은 인재를

베트남 인구 9,300만명 가운데 30세 이하

무궁무진하게 보유하고 미국의 실리콘 밸

인구가 절반을 넘어 질 좋은 노동력이 풍

리를 주름잡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고급

부하다. 우리의 수출물량의 92%가 중간

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모디 총리는 한국

재로서, 지금까지 일본 부품이 한국 제품

과 인도의 경제 협력에 적극적이다.

핵 협상 타결로 이란에 대한 제재가 풀림

의 기반이 되었듯, 한국은 베트남의 공업

에 따라 세계경제가 활기를 띄고 있다. 감

발전에 기반이 되어 서로 보완적이다.

8천만 남북한도 경제공동체 나아가야

소하던 대이란 수출은 증가하고 낮은 단

베트남은 전략적으로도 중요하다. 20

우리도 남북한이 합치고 해외동포를

가의 이란산 원유의 수입 확대가 예상된

세기 들어 프랑스, 미국, 중국을 차례로

더하면 8천만에 육박한다. 우리의 생산

다. 우선, 부분품의 수출 기회가 확대될

이겨낸 베트남인은 독립자존심이 강하다.

인구가 거의 정점을 찍어 늘리기는 어렵

것이다. 이란정부가 향후 의료시설을 확대

1974년 망해가는 월남의 한 도서를 점령

고 하나, 북한동포를 합하면 거대한 경제

하고 서비스 현대화를 추진할 경우 의료

한 이래 스프라트리 제도(남사군도)에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남북 분단상황

기기의 수출이 확대될 것이고, 원유 생산

소요를 일으키고 있는 중국과는 현재도

이 극복되는 것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정

시설 확대에 따라 플랜트 부문 수주도 늘

분쟁 중이다. 세계의 해양자유를 담보하

치적 통일은 후에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

것으로 기대된다.

는 미 해군이 중국이 ‘멋대로’ 영해로 선포

만 유럽이 EEC에서 EU로 가는 방법과 과

이란은 고대 페르시아제국의 후손이

한 해역에 존재(presence)를 과시하려고

정을 거친다면 남북한은 경제통합을 거쳐

라는 자부심이 강하고 지금도 시아파의

항행하고 있다. 따라서 베트남은 안보와

한민족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 북한 핵

맹주로서 수니파의 주도국 사우디아라비

국익 양 측면에서 우리에 중요한 국가다.

의 해결도 필연, 이와 연관되어 있다. 지금

아와 중동의 패권을 다투고 있다. 인구도

베트남 전략가들은 동북아에서는 한국,

이 마지막 고비다.


magazine N | 2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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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돈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

1910년 3월26일, 안중근 참모중장 순국하다 법정은 방청객과 변호사, 그리고 여

거사 직후 러시아 측으로부터 그의 신병

러 나라에서 달려온 기자들로 인산인해

을 인수한 현지 일본총영사관은 그를 여

를 이룬 가운데 일본인 검사 미조부치가

순 지방법원에서 재판받도록 조처했다.

안중근의 정연한 논리에 고전하자 일방

안중근 의사는 “나는 나라를 위하여

적으로 방청객 수를 230명으로 제한하고

생각하고 있던 일을 결행한 것이다. 대한

변호인도 일본인 관선변호사 2명으로 결

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을 하면서

정했다. 그나마도 이후 공판은 방청객들

이토를 죽였는데 여순 일본법원에서 재

을 내보내고 비공개로 진행했다. 결과는

판 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라고 주장하

보지 않아도 능히 짐작할 만한 것이었다.

며 이토를 처단해 마땅한 15가지 죄목을

재판은 2월2일과 8일, 12일에 이어 14일

밝혔다.

에 선고공판이 열렸다. 판사가 사형을 선

뉴시스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하얼빈역

고하자 안중근은 “일본 형법에는 사형 이 ➊ 대한제국 민황후를 시해한 죄

상의 형벌은 없는가?”라며 비웃었다. 참

➋ 대한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으로 놀랍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후 그

➌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는 항소하지 않고 자서전 <안응칠 역사>

➍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와 그가 주창한 ‘동양평화론’을 글로 쓰기

➎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시작하며 이 글의 완성을 위하여 예정된

어머니에 그 아들(是母是子)”이라며 놀라

➏ 철도, 광산과 산림, 천택을 강제로 사용한 죄

사형집행일을 보름 정도 연기해 줄 것을

워했다.

➐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요청했다. 법원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안중근 재판과정에서 수감생활에 이

그러면서도 법원장 등 일본 관리들

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를 알게 된 일본

➒ 교육을 방해한 죄

은 안중근에게 그가 이토를 처단한 것은

관리들, 예컨대 재판장과 감옥의 간수들

➓ 한국인의 외국유학을 금지한 죄

일본의 정책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

은 안중근을 존경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이었다고 말하고 상급법원에 항소할 것

불구하고 재판장이 약속한 형 집행 15일

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

을 끈질기게 설득했지만 안중근은 뜻을

연기는 지켜지지 않고 기어이 3월26일에

계를 속인 죄

굽히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도 두 동생편

집행되고 말았다. 재판에서 형 집행까지

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

에 그가 마지막 길에 입고 갈 옷을 지어

모두 일본의 뜻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아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도 한국이 무사한 것처

보내며 “목숨을 구걸하지 말아라, 다음

안중근 대한의군 참모중장은 대한제

럼 (일본)천황을 속인 죄

에 하늘나라에서 만나자”며 “그렇게 하는

국 침탈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

 동양평화를 파괴한 죄

것이 어미에게 효도하는 것”이라고 일러

고 1910년 3월26일 영웅의 모습으로 생

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태황제를 시해한 죄

주었다. 이를 알게 된 일본의 언론은 “그

을 마쳤다. 31살 젊은 나이로.

➑ 군대를 해산시킨 죄


Perspectives

068

magazine N | 201603

허영섭의 대만 이야기 [ 18 ]

총통부, 타이난으로 옮겨 가나?

선거 직후 수도 타이

대만 총통 선거가 끝난 이후 지역적 이해관계를 앞

사실이다. 기구를 분산시킨다고 해도 남단의 가오

베이를 중심으로 정

세운 갖가지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총

슝(高雄)까지 고속철도로 연결되어 있어 거리에 따

통부와 입법원 청사를 남부의 거점도시로 옮겨야

른 소통 문제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부 중추기관들이 대

한다는 주장이 두드러진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꽤

따라서 이 가운데 총통부부터 타이난으로 이

하기 위해서는 현재 타이베이에 집중된 정치·행정·

전해야 한다고 라이칭더 시장은 주장한다. 차이 당

있으므로 중부 및

경제적 기능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게 그

선자가 선거 공약으로 타이난에 중앙연구원(中央

남부 지역으로 분산

요지다. 오는 5월 취임을 앞둔 차이잉원(蔡英文) 당

硏究院) 남부지원과 그린에너지 기술센터, 국립중

선자의 결단을 촉구하는 은근한 압력이기도 하다.

앙도서관 남부 도서관을 설립하겠다고 내세웠지만

부분 북쪽에 몰려

해야 한다는 주장이 솔솔 나오고 있다.

중앙정부의 기능을 분산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

그 정도로는 지금의 불균형 현상이 해소될 수 없다

서는 타이난(台南)시가 가장 적극적이다. 지역 균형

는 인식이다. 총통부 외에 노동부, 문화부, 환경보

발전을 위해 행정기관들을 지역별로 골고루 나누어

호청도 남부로 이전할 것을 내세운다.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 라이칭더(賴清德) 타이난 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대만 어디에 있는가>, <일본, 조선총 독부를 세우다> 저자

역사적으로 타이난이 정치중심 도시로서의 역

장의 주장이다. 수도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정부의

할을 떠맡았던 시기가 없지도 않았다. 17세기 초반

중추 기관들이 대부분 북쪽에 몰려 있으므로 중부

네덜란드 군대가 처음 대만에 들어와 남부지방을

및 남부 지역으로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치했던 중심지가 바로 타이난이다. 이후 명나라

이런 주장이 아니라도 대만에 있어 지역적 불

부흥운동에 앞장섰던 정청공(鄭成功)도 여기에 근

균형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도시와

거지를 마련하는 등 청나라 점령기를 거쳐 청일전

농촌, 빈부 격차에 이념적인 성향까지 남북으로 뚜

쟁의 여파로 일본 식민통치의 중심인 대만총독부

렷이 갈리는 양상을 보여준다. 굳이 따지자면 동쪽

가 타이베이에 들어서기 전까지 250년 이상 대만의

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중부 지역의 초우수이(濁水)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강이 그 경계다. 북회귀선(북위 23.5도)과 거의 일

이에 비해 입법원 청사는 타이중(台中)으로 옮

치한다는 점에서 기후대까지 구분된다고 할 수 있

겨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린자룽(林佳

다. 그러면서도 인구는 경제 활동을 좇아 계속 북

龍) 시장이 여기에 앞장선 것이 물론이지만 이번에

쪽으로 집중되는 추세다.

새로 구성된 입법원 지도부도 이런 주장에 적극 동

이러한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공공기관

조하고 있다. 쑤자취안(蘇嘉全) 입법원장과 차이치

의 지방분산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진작부터

창(蔡其昌) 부원장은 예산지출 감축 차원에서도 입

제기되어 왔다. 총통부는 물론 대만 통치구조에서

법원 청사의 타이중 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독특한 골격을 이루는 행정·입법·사법·고시·감찰

현재 입법원은 사용료로 타이베이시에 연간 5000

원 등 5원 청사가 모두 타이베이에 몰려 있어 비상

만 대만달러(약 18억원)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다.

사태의 경우 안보 측면에 있어서도 우려되는 것이

임대료 문제를 떠나 청사 자체가 비좁은 게 문


069

magazine N | 201603

제다. 회기 중 동시에 회의가 열릴 경우에는 회의실 확보가 어려울 정도다. 일제 식민지 시절 학교(台北 第二高等女學校)로 사용하던 자리에 입법원이 들 어섰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불편함이 기중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입법원을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간 헐적으로 거론됐으면서도 이미 타이베이 주변에는 땅값아 오를 대로 올라 이전할 만한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국민당 당사도 타이중으로 옮 기자는 얘기가 당내에서부터 제기되고 있다는 점 이다. 국민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것이 지방 여론을 무시한 데 있으며, 따라서 지방 여론을 청취한다는 취지에서도 당사의 지방 이전이 필요하다는 주장 이다. 타이중 지역 입법위원으로 행정원 신문국장 을 지낸 장치천(江啟臣) 등이 이를 주장한다.

천쥐(陳菊) 가오슝 시장도 팔짱만 끼고 있는 것 은 아니다. 가오슝이 철강·조선·화학 등 중화학공 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은 만큼 업무의 효율화를 위 해 국영기업 본사를 이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총통부도 가오슝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협상용 성격이 강하다. 가오슝이 대만의 제 2 도시라는 점에서 타이난이나 타이중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앙정부 기관들의 지방 이전이 성사된 다면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하는 북부 지역은 경제 기능 위주로 특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거점도시 사 이의 기능 분산은 워싱턴이 정치적 기능을 분담하 는 반면 경제적 기능은 뉴욕에 집중돼 있는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오타와와 토론토로 분산된 캐 나다, 캔버라와 시드니로 분산된 호주의 경우도 마 찬가지다. 서울의 행정기능을 세종시로 이전한 한 국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다. 하지만 천쥐, 라이칭더, 린자룽 시장이 모두 민 진당 소속으로, 이번 총통선거 승리에 대한 논공행 상을 요구하는 듯이 비쳐지는 것이 문제다. 여론이 긍정적일 수가 없다는 얘기다. 중앙행정 기능의 지 방분산 필요성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예산상의 문 제도 감안해야만 한다. 결국 마지막 결정권은 차이 당선자가 쥐고 있는 셈이다. 국가 백년대계와 관련 된 문제가 과연 어떻게 처리될지 궁금하다.

네덜란드 통치 시절 건축된 타이난의 한 건물


Perspectives

070

magazine N | 201603

천비키의 명상 24시 [ 16 ]

번잡한 출퇴근길서 찾는 내 마음의 여유 뉴시스

올해 필자에게는 도전적인 일이 생겼다. 정시 출근

적화하는 것이다. 바로 생활명상이다. 고개조차 들

과 정시 퇴근의 일이다. 모 기업에 상주하며 상담을

기 민망할 정도로 서로의 얼굴이 맞닿은 빡빡한 공

맡게 된 나는 9시 반 출근과 6시 반 퇴근, 12시 점

간에서, 아직 숙취에 다 못 깬 이웃 아저씨의 입김

심이라는 짜여진 틀 속에 가둬진 것이다. 물론 필자

이 가까이에서 훈풍으로 불어올 때, 전철에서 사

가 주로 머물렀던 명상센터도 삶의 리듬과 규칙이

람들이 우르르 내려 몸이 회전문처럼 휙휙 돌아갈

있지만, 무엇보다도 재택 근무 수준으로 집에서 가

때, 큰 소리로 떠드는 상식 밖의 이웃으로 인해 불

까운 위치 덕분에 여유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

쾌감이나 짜증으로 오염시키지 않고 어떻게 덤덤하

이기에 출퇴근자의 긴장을 몰랐다. 긴 방학이 끝나

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따뜻한 연민의

고 3월에 학교를 가는 학생이랄까.

마음으로 이웃들에게 미소마저 지을 수 있을까?

고작 30분 가량 전철을 타고 가는 곳인데 푸시

다시 전철을 탄다. 혼잡함과 분주함, 어지러움

맨이 친절하게 차 안으로 밀어주는 시간대라서 그

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선다. 그리고 펼쳐진 거대한

런지, 그 길은 평소와 달리 정말이지 길고 유구하게

삶의 장을 바라본다. 중심을 잡고 온전한 이웃의

느껴진다.

체험을 통해 성숙한 존재의 길을 가보겠노라. 출퇴

나는 과연 이 아침 30분의 금싸라기같은 이동

근의 여정 속에 고결한 삶이 있노라하며 거창한 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재론에 머쓱한 웃음을 짓고 짐짓 마음을 다잡는다.

내 몸이 어디에 있든, 어떤 환경에 처하든 의식의 천비키 본명상 코치 코엑스, LS그룹, 농협하나로유통, 육 군부대 등에서 명상 지도

빛이 밝고 밝다면 제한된 시공을 넘어서 원하는 상

풍경1: 기다림

태를 창조할 수 있지 않는가. 당연히 그 상태는 빛

분주하게 걷고 뛰다가 차 문 앞에 섰다. 줄을

나고 보람된 값진 하루를 보내기 위해 컨디션을 최

서는 기다림에 약간 초조감이 든다. 이내 알아차리


071

magazine N | 201603

고 구겨진 몸을 완전히 펴서 이완한다. 정수리를 들

마음은 사랑으로 충만되어 한결 가벼워지고 열감

어 올리고 후~하고 깊게 내뱉고, 어깨의 힘을 빼

(熱感)마저 느껴진다.

다시 한번 후~하고 이완한다. 두 발도 일직선으로 두고 온 몸에 호흡을 통과시켜 전신에 힘을 뺀다.

풍경4: 관찰하며 이웃만나기

기다리는 동안 하나, 둘, 셋…열 하며 날숨에 맞춰

앉아서 휭 하고 둘러보니 전철 안의 풍경은 고

호흡수를 세면서 마음을 평정히 한다. 어느새 지하

단하다. 앉거나 서거나 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장

철 차량은 도착해 있다. 먼저 타려는 마음을 알아

해보면 두 모습 중 하나이다. 눈을 감고 있거나 핸

차려보며 품격있는 신사숙녀처럼 옆으로 서서 온전

드폰을 보는 사람이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도

히 서 있는다.

귀에는 이어폰이다. 피로하고 잠에서 덜 깬 얼굴들, 무표정한 얼굴로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들 한분 한

풍경2: 중심잡기

분을 보며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짓는다. 마음 속으

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부터 밀리고 부딪

로 ‘모두들 행복하기를’하고 축원을 담고서. 우리 서

혀 가까스로 안으로 들어간다. 주변의 복잡함으로

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그들 속에 내가 있고

인해 인상 쓴 모습을 알아차리고 흐트러진 몸의 중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음이다.

심을 잡는다. 눈을 감는다. 의도적으로 호흡을 하며 얼굴의 근육을 푼다. 어깨의 들어간 힘을 이완하고

풍경5: 공부하기

두 다리에 힘을 주어 균형을 잡는다. 그러면서 순간

조심스럽게 가방 속에서 작은 책을 꺼내 읽는

순간 다리를 이완한다. 두 발의 감각을 느낀다. 정

다. 한페이지 읽기도 쉽지 않지만 오늘 나에게 주는

거장마다 열차가 서고 흔들거린다. 이 때마다 온 몸

선인의 지혜를 되뇌인다. 나는 이 순간 선인과 함께

에 의식적으로 힘을 준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무쇠

하며 현실을 바라본다. 한 단원을 읽고 눈을 감는

처럼 만들어 근육을 단련한다. 흔들림이 심할 때는

다. 음미하며 오늘 나는 세상에 기여하고 살아갈지

손잡이를 잡고 한 발을 살짝 들어올려 균형을 잡는

를 화두삼아 세상살이에 동참한다.

훈련도 해본다. 어느새 나는 지금 헬스장에 있다. 풍경6: 한숨 돌리고 감사하기 풍경3: 자리에 앉기

출퇴근 길 중에 내가 가장 행복해 하는 순간

몇 정거장 지나고 나면 잠시라도 자리에 앉아

이 곧 다가온다. 드디어 한강다리를 건넌다! 넘실거

부족한 잠을 자고 싶다. 본능적으로 앉을 자리를

리는 한강의 물을 바라보기 위해서, 2분 가량 되는

찾는다. ‘누가 빨리 자리에서 내릴까’하며 점을 치는

그 장관을 위해 조는 것도, 읽는 것도, 모든 것을 중

마음. 유치하지만, 빈 자리가 나오자마자 화색이 돌

단한다.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 틈새에 낀 몸을

며 “오, 땡큐!”가 절로 나온다. 앉기가 무섭게 몸이

겨우 빼고 창 밖으로 다가간다. 햇빛에 한강이 반짝

무너져 내린다. 순간, 알아차리고 허리를 곧추 세운

이며 황금이 된 모습을. 더없는 아름다움을 몸과

후 정좌를 한다. 약 3분간만이라도 곧게 펴고 앉아

마음에 담고 싶어 그저 그 자체를 바라보며 호흡한

몸과 마음을 호흡으로 조율한다. 작은 차이가 짝퉁

다. 잡념이 일면 돌로 만들어 저 푸른 강에 호흡으

과 명품을 만들 듯 조율 후 조는 것이 좀더 효과적

로 퐁당~하고 던져버린다. 맑고 투명한 물처럼 오

인 컨디션으로 이끈다. 가끔씩 조는 중에 연세 드

늘의 삶의 의도가 온 몸에 흐른다.

신 분이 들어설 때도 있다. 앉은 자리가 순식간에 가시방석이 돼버린다. 매번 그러진 못하지만 양보한

1초가 아까운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 나는 오늘

다. 그들의 주름진 눈과 이마에서 갈매기가 접힌다.

도 덜컹거리는 전차에서 헬스장으로, 수면실로, 관

그들 마음의 갈매기가 내 마음으로 날아든다. 가슴

광지로, 세상 돌아가는 현장으로, 우리 이웃들과

이 바다처럼 넓어진다. 벌떡 선 보람이 있구나. 내

더부살이를 하며 달리고 있다.


Perspectives

072

magazine N | 201603

박영순의 커피인문학 [ 12 ]

“우유로 ‘묵은 커피’ 숨기려는 자들은 가라!” 커피비평가협회(CCA)

커피테이스터들이 진지하게 향미를 평가하는 것은 산간 오지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재배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예의이기도 하다.

박영순 경민대 호텔외식조리학 겸임교수 커피비평가협회(CCA) 회장

커피를 더욱 감미롭게 즐기기 위해 우유가 가미된

발견된 6~7세기, 커피는 부족의 전사들이 위험에

메뉴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향미적으로 커피

처했을 때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며

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우유다. 물론 단맛을 부

먹던 비상식량이었다. 지금처럼 커피씨앗을 볶아

여하는 설탕도 둘째가라면 서럽겠지만, ‘우유와 커

물로 추출해 마셨던 것이 아니라, 앵두처럼 생긴

피의 만남’만큼 극적인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

커피열매의 과육을 동물기름과 섞어 작은 공 모양

커피에 우유를 넣어 쓴맛을 보다 부드럽게 즐기

으로 만들어 씹어 먹었다. 그러던 것이 각성효과가

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시초였다. 이후

발견되면서 예멘을 거쳐 이슬람교도들에게 전해

중국인들이 차에 우유를 섞어 마시는 것을 따라했

졌다. 15세기쯤부터는 무슬림들이 밤새워 기도하

다가 카페라떼 또는 카페오레의 맛을 깨우치게 됐

기 위해 커피씨를 볶아 가루를 낸 뒤 물에 끊여 마

다다. 커피의 자극적인 향미를 줄이려는 고육책이

시기 시작했다.

라는 견해가 있지만, 진정한 커피애호가들에겐 우

맛을 추구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

유의 향미를 감상하면서 커피와 라떼의 하모니를

다. 1908년 독일의 멜리타 여사가 커피가루를 종이

즐기는 것도 큰 행복이겠다.

필터에 걸러 마시고, 이때쯤 에스프레소 머신이 개

커피는 애초 향미를 즐기는 기호식품은 아니

발되면서 사람들은 커피의 풍미에 매료되기 시작

었다. 에티오피아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커피가

했다. 커피의 향미를 즐기는 문화가 꽃을 피우면서,


073

magazine N | 201603

커피는 전세계적으로도 석유 다음으로 물동량이

카보닐(Carbonyl), 에스테르(Ester), 질소화합물,

많은 ‘원자재’가 됐다.

탄화수소들이 복합된 향을 형성한다.

커피가 세계적 음료가 된 데에는 효능 뿐 아니

따라서 우유 향미평가는 ‘불필요한 요소들이

라 향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효능으로 치자

얼마나 들어있는가’에 중점을 두면 좋겠다. 지방성

면 우유가 커피에 처질 이유가 없다. 바나나맛, 딸

분의 산패로 비롯되는 뷰티릭(Butyric,버터 같은)

기맛, 아몬드맛 등 인공물질을 가미해 억지로 향을

한 리포라이즈드 향미(Lypolized flavor), 미생물

낼게 아니라 우유 자체에서 비롯되는 향미성분을

에 의해 발생하는 신맛-효모냄새 등의 마이크로벌

파악하고, 그 향미를 통해 우유의 신선함과 맛을

향미(Microbal flavor), 산화에 의해 발생하는 종이

평가하는 문화가 조성되면 소비자들과 더 친숙해지

맛-쇳내 등 옥시다이즈드 향미(Oxidized flavor),

지 않을까 싶다. 이를 위해 와인이나 커피처럼 좋은

외양간을 깨끗하게 관리하지 못해 젖소의 폐를 통

우유, 신선한 우유를 구별해내는 블라인드 테이스

해 전이되는 풀맛-비릿내-이끼맛의 트랜스미티드

팅(Blind tasting)을 캠페인처럼 벌여도 좋겠다.

향미(Transmited flavor)를 구별해야 보다 건강하

사실 우유는 수박보다 더 씹어 먹어야 하는 음

고 향미 좋은 우유를 즐길 수 있다.

식이다. 수박의 고형분은 4%(나머지 96%는 물)에 불과하지만, 우유의 고형분은 12%에 달한다. 씹어 먹을 게 수박보다 3배나 많다. 그런데도 수박맛은 알아도 우유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우유와 어우러진 향미 속에서 커피의 본질 즐겨라

항간에는 “진정한 커피애호가라면 원두커피 그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 있다. 일견 타당한 지적

우유의 맛은 젖소품종에 따라 다르고, 계절적

이지만, 그 말을 이렇게 바꾸면 더 멋지겠다. “당신

으로도 가을·겨울에 나오는 우유가 고형성분이

이 진정 커피를 사랑한다면 우유와 어우러지는 향

좀 더 농후하다. 우유는 사실 맛보다는 마우스필

미의 향연 속에서 커피의 본질을 감상할 줄 알아

(Mouthfeel)이라고 할 만큼, 입안에서 느껴지는 질

야 한다.”

감이 매력적이다. 우유를 고소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렇게해야 우유를 섞어 오래 묵은 커피의 결

살균과정에서 열을 받아 생기는 2차적인 맛 때문인

점을 교묘하게 숨기려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베타 락토글로불린

거부할 수 있다. 커피의 향미를 정직하게 평가하고

(β-lactoglobulin)의 설프히드릴기(Sulfhydryl,-

올바로 묘사하는 커피테이스터로서, 커피를 사랑

SH) 성분이 적절히 열을 받으면 고소한 맛을 내게

하는 사람들이 좋은 커피만 유통될 수 있도록 ‘향

된다. 그리고 나머지 한계값 이하의 농도로 존재한

미 지킴이’로 나서주기를 소망한다. 커피비평가협회(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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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s

magazine N | 201603

박명윤의 웰빙 100세 [ 21 ]

‘메르스’ 교훈삼아 ‘지카’ 유입 철저하게 대처해야 청했다. 미국 내 확산 가능성이 낮을 것이라고 예 상했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경보 단계를 최 고 단계인 ‘레벨 1’로 격상하고 비상 대응체계를 강 화했다. CDC가 지금까지 경보 1단계로 강화한 것 은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Ebola virus) 등을 포 함해 단 세번뿐이다. 미국 지방자치 정부도 지카 경 보령을 내리고 나섰다. 미국 플로리다주에선 9건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사례가 발생하여 환자 거주지역 4개 행정구역에 비상사태가 2월3일 선포됐다. 인류 역사상 인간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간 생명

캐나다 당국은 미주대륙은 물론 유럽, 아시아

체는 모기(mosquito)다. 모기에 물려 한 해 70여만

등 지카 바이러스 확산 지역을 다녀온 여행자로부

명이 말라리아(malaria), 뎅기열(dengue fever),

터 감염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귀국 후 3주간 헌

일본 뇌염 등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모기가 사람

혈(獻血)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캐나다 혈액원은 체

의 피부에 머무는 시간은 8~10초에 불과하다.

내에 지카 바이러스가 배양 및 생존 시간을 21일 안

주로 이집트 숲모기(Aedes aegypti)를 통해 전 파되는 지카 바이러스(Zika virus, ZIKV)로 전세

박명윤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아시아엔> 보건영양 담당 논설위원

팎으로 추정하고 이 기간이 지나야 바이러스 보유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가 긴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집트 숲모기 뿐만

오는 8월 5~21일 제31회 하계올림픽이 열

아니라 성(性)관계 또는 수혈(輸血)로도 감염된다

리며, 9월 7~18일에는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카 바이러스 공포’가 확산

Paralympics)이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월2일

(Rio de Janeiro)도 비상이 걸렸다. 리우 올림픽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최근 지카 바이러스 확

(Rio 2016 Olympic Games)을 앞두고 남미 지역을

산국인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사람과 성관계를 맺

중심으로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선수들의

은 사람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확인됐다”

안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브라질을 필두

올림픽위원회(USOC)는 지난 1월 미국 스포츠연맹

로 중남미 국가에서 급속도로 전파중인 지카 바이

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수들이나 스태프가 지카 바

러스가 미국과 캐나다 등 아메리카대륙 전체로 확

이러스 때문에 건강에 위협을 느낀다면 리우 올림

산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픽 불참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지카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버락 오바마

브라질은 연초부터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

(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긴급 자금 18억

는 지카 바이러스의 시작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

달러(약 2조 1555억원)를 편성해달라고 의회에 요

히 지카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지카 바이러스와 소


075

magazine N | 201603

AP

지카 바이러스 환자가 최초로 발견된 브라질 헤시피에서 열린 카니발. 여성들이 방충망으로 얼굴을 가린채 축제를 즐기고 있다.

두증(小頭症, Microcephaly) 환자가 가장 먼저 발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를 선포

견된 항구도시 헤시피(Recife)가 지목받고 있다. 브

한다고 밝혔다. 비상사태 선포에 따라 WHO를 비

라질에서는 작년 10월 이래 약 150만명이 지카 바

롯한 국제 의료기관들의 재원과 인력은 지카 바

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며, 이 중 소두증 의심 사례가

이러스 차단과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집중된다.

4783건, 소두증 확진 사례는 404건으로 파악됐다.

WHO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

지난 2월 초에는 수혈에 의한 바이러스 감염 사례

포한 것은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H1N1) 사태와

도 2건이 보고 됐다. 이에 임신부들은 기형아(畸形

2014년 파키스탄과 카메룬, 시리아 등의 지역에서

兒) 출산 공포에 내몰리고 있다.

확산된 소아마비(小兒痲痺) 사태, 그리고 2014년 에

지카 바이러스는 1930년대 이후 최악의 경기

볼라 바이러스 확산 사태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다.

침체를 겪고 있는 브라질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처럼 지구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지카 바

우선 외국 관광객들이 급격하게 줄면서 브라질의

이러스는 1947년 우간다 지카(Zika) 숲에 사는 붉

핵심 산업인 관광업체 비상이 결렸다. 미국은 브라

은털 원숭이에서 바이러스가 최초로 확인되었으

질을 포함한 남미 24개국에 여행경보령을 내렸다.

며, 인체 감염사례는 1952년 우간다와 탄자니아에

보건관계자들은 많은 해외 관광객들이 찾는 브

서 처음 보고 되었다. 2015년 이전에도 아프리카,

라질 카니발(Carnival)이 2월5일 시작됨에 따라 지

동남아시아, 태평양 섬지역 등에서 발생된 사례가

카 바이러스가 전세계에 폭발적으로 확산될 것을

있었으며, 2015년 5월 브라질에서 보고된 이후 점

우려했다. 브라질 정부는 축제 기간에 성관계를 통

차 유행지역이 확산되고 있다.

한 지카 바이러스 전파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 물리면 3~7일

콘돔 5백만개를 무료로 나눠줬다. 또 전체 군 병력

이 지나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최대 잠복기는

의 60%를 동원해 이집트 숲 모기 박멸에 나섰다.

2주일이다. 주요 증상은 발열(發熱)·발진(發疹)·관

세계보건기구(WHO)는 중남미로부터 확산

절통·눈 충혈 등이며, 근육통·두통·안구통·구토

된 지카 바이러스가 미국과 동남아시아까지 번지

등도 나타날 수 있다. 한편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

자 지난 2월1일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긴급 기

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환자가 80% 정도이

자회견을 열어 지카 바이러스와 소두증 확산 사태

다. 증상이 나타나면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물을

에 대해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Perspectives

076

magazine N | 201603

AP

신경병증(acute inflammatory demyelinating polyneuropathy, AIDP)’이다. 병명은 1916년 프랑 스의 신경학자인 길랭(Georges Guillain)과 바레 (Jean Barre)가 처음으로 이 질병을 기술한 것에서 기인한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환자의 면역체계가 신경세 포를 공격해 전신마비에 이어 사망까지 이어지는 희 귀질환(稀貴疾患)이다. 발생 빈도는 대개 인구 10만 명당 1명 정도가 발병하고 특히 신생아에게만 영향 을 미치는 소두증과 달리 전 연령층에서 발병할 수 있으며, 남녀의 차이는 없다. 진단은 환자의 특징적 인 임상 양상과 진행 양상, 그리고 신경전도 검사 소

소두증에 걸린 태아의 볼에 입 을 맞추고 있는 산모.

견과 함께 뇌척수액 검사 등으로 한다. 치료는 고용 지카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치료와 백신이 아직

량의 면역글로불린 정맥주사, 혈장분리 교환술 등

까지는 없다. 따라서 치료는 증상 관리에 기반을 두

을 치료적 목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 병의 진행이 빠

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는 성인에게는 전신마비를

르기 때문에 대개 집중 치료실에서 치료한다.

유발할 수 있으며, 임신한 여성이 감염되면 두뇌가

국내에서는 해외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후 지카

성장하지 못하는 소두증(小頭症)에 걸린 아이가 태

바이러스 유사증상을 보이는 여성 3명의 검체를 채

어날 가능성이 있으므로 특별히 주의하여야 한다.

취해 2월3일 국립보건원에 검사를 의뢰했으며, 인

소두증(Microcephly)이란 두부(頭部)가 작은

천시는 남동구에 거주하는 여성(42) 1명이 지난 1월

선천성 기형으로 머리둘레가 48cm 이하, 10세 이

태국 여행 후 발진·근육통·관절통 증상을 보여 보

하 소아의 경우에는 평균 머리둘레보다 5cm 정도

건소가 검체를 채취해 국립보건원에 검사를 의뢰했

작다. 원인은 유전적인 것과 태생기(胎生期)에 모체

다. 다행히 이들은 음성으로 판명되었다.

(母體)가 받은 외인(外因)에 의해 일어난다. 소두증

정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는 정신박약(精神薄弱)을 나타내는 것 외에 여

을 제4군 법정감염병으로 1월29일 지정하면서, 아

러 가지 신경증상을 나타낼 수 있다. 소두증은 대

직 이 바이러스가 국내에 침투하지 않았다는 추정

개 앞이마의 발달이 나쁘고 상하로 두부가 작게 보

아래 위기 단계를 ‘주의’ 수준으로 두었다. 지카 바

이지만 안면(顔面)의 발달은 정상이다. 신체발육은

이러스는 ‘이집트숲모기’가 주범이지만, 국내에서

장애를 받지 않지만, 뇌가 발육 부전으로 작아지는

서식하는 ‘흰줄숲모기’도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병이다.

법정전염병으로 지정된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

지카 바이러스가 소두증뿐 아니라 길랭-바레

환자 및 의심환자를 진료한 의료진은 관할 보건소

증후군(Guillain-Barre syndrome, GBS)과도 연

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위반 시에는 200만원 이하

관돼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브라질은 과거에는 길

의 벌금이 부과된다. 환자가 섭씨 37.5도 이상의 발

랭-바레 증후군 환자가 거의 없었으나, 북동부 지

열 또는 발진과 함께 관절통, 근육통, 결막염, 두통

역에서만 554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등의 증상을 하나 이상 동반한다면 신고 대상에 해

남미 엘살바도르에서도 지난해 12월부터 금년 1월

당한다. 지카 바이러스 감염증은 유전자 검사나 혈

까지 46명의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가 발생했다.

액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진단한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말초신경에 염증이 생겨

지난해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호되게 당한

신경세포의 절연물질(수초)이 벗겨져 발생하는 급

‘메르스’를 교훈삼아 ‘지카’ 유입을 철저하게 대처하

성 마비성 질환인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성

여 적극 막아야 한다.


078

Culture

magazine N | 201603

‘청순미녀’ 아라가키 유이, ‘리갈하이’로 톱스타 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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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3

이번 회는 일본을 대표하는 청순미녀를 소개해볼 까 합니다. 그 첫번째로 현재 일본의 탑배우이자 20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아라가키 유이(新垣結 衣)’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의 대표 청순미녀는 영화 <비밀>의 히로인 ‘히로스

에 료코(広末涼子)’였습니다. 이미 세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 지요. 그녀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여배우 5인방이

있으니 ‘아야세 하루카(綾瀬はるか)’ ‘이시하라 사토 미(石原さとみ)’ ‘나가사와 마사미(長澤まさみ)’ ‘토다 에리카(戸田恵梨香)ʼ ‘아라가키 유이’가 히로스에 료코의 뒤를 이었죠. 아라가키 유이를 제외한 4명의 매력적인 여배 우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아야세 하루카 는 최근 국내에도 개봉한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 리>의 주인공이며 1985년생으로 5인방의 맏언니격 이죠. 대표작으로는 드라마 <호타루의 빛> <백야 행> 등이 있습니다.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입술을 가진 이시하라 사토미는 국내에서도 인기였던 드라마 <리치맨, 푸 어우먼>의 히로인이죠. 영화 <우드잡>, 드라마 <프 로포즈 대작전>의 나가사와 마사미는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여배우로 손꼽힙니다. 말괄량이 이미지의 토다 에리카는 <스펙> 시리즈로 유명하지요. 이 5인방 중 토다 에리카와 함께 막내인 아라 가키 유이는 1988년생으로 일본에서는 통칭 ‘각 키’로 불립니다. 보통 일본은 인기 스타에게 애칭 을 붙이는걸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한류 스타 배용준이 ‘욘사마’, 장근석이 ‘근짱’이라 불리 는 것처럼 말이죠.

‘각키’는 ‘아무로 나미에(安室奈美恵)’, ‘나카마

유키에(仲間由紀恵)’로 대표되는 오키나와 출신 스 타입니다. 일본 여배우로선 드문 168cm의 훤칠한 키에 청순하면서도 귀여운 외모의 소유자이지요.

2001년 잡지모델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드래곤 박호경 기자

사쿠라>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에서 조연으로

appleyuki@theasian.asia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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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06년 작인 <마이 보스 마이 히어로>는 정준호 주연의 한국 영화 <두사부

그녀의 많지 않은 영화 출연작을 살펴

일체>의 일본판 리메이크 작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개인적으로 이

보면 <연공> 이후 큰 히트작이 없다는 점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인 ‘나가세 토모야(長瀬智也)’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도 인상적이 었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건 각키의 빛나는 외모였습니다.

2007년 아라가키 유이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작품인 영화 <연공>이 히 트하면서 그녀는 청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국내 관객들의 호불호가

은 좀 아쉽네요. 하지만 <비리갸루>의 ‘도 이 노부히로’ 감독이 2010년 연출한 <하나 미즈키>는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작 품이지요.

극명하게 갈렸던 작품이었지만 일본에선 39억엔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그해 일본영화 박스오피스 6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같은해 드라마 <아빠와 딸의 7일간> 역시 히트하면서 각키에게 2007년은 잊을 수

훗카이도와 유이의 매력이 만났을때

산딸나무란 뜻의 <하나미즈키>는

없는 한해가 되지요. 이 작품은 우연한 사고로 아빠와 딸의 몸이 바뀐다는 참신한 소

2004년 대히트한 히토토 요(一青窈)의 동

재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아빠와 딸의 7일간>은 현재 한국에서 영화 <아빠는 딸>이

명 노래를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일본 특

란 제목으로 리메이크가 확정돼 촬영 중에 있습니다. 배우 정소민과 윤제문이 캐스팅

유의 잔잔함이 묻어나는 영화입니다. 홋

되었으며 지난 무한도전 ‘무도드림’에서 박명수를 캐스팅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입니다.

카이도의 아름다운 배경과 함께 아라가키

이후 드라마 <코드블루 시즌 1,2> <전개걸>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게 되고 2012

유이의 순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며 ‘이

년 그녀의 대표작이 된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법률 코미디 <리갈하이>란 작품이

쿠타 토마(生田斗真)’와의 가슴 아픈 사랑

지요. 이 작품은 일본의 명배우 ‘사카이 마사토(堺雅人)’의 연기변신이 특히 화제였습

이야기를 담백히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

니다. 그에 비해 상대역인 아라가키 유이에 대해선 방영 전부터 우려가 있었지만 두 배

품의 주제가인 ‘하나미즈키’를 각키가 리메

우는 환상의 케미를 보여주며 히트에 성공, 다음해 시즌2까지 방영하게 됩니다. 시즌2

이크해 부르기도 했지요.

는 평균시청률 18.4%를 기록하며 2013년 일본 드라마 시청률 9위에 올라섰고 국내팬 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2016년 아라카키 유이는 별다른 활동 소식이 없습니다. 잠시 휴식기간을 갖는

최근 일본 NTV에서 종영한 드라마 <오키테가미 쿄코의 비망록>은 큰 히트를 하진 못했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를 하루 빨리 브라

지만 각키 특유의 발랄함과 귀여움이 묻어났던 사랑스런 작품이었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기

운관과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길 기대

억이 리셋되는 독특한 배역을 훌륭히 소화해 국내팬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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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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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신작 ‘동주’

윤동주 vs 송몽규 개인사 넘어 한일간 사회사로… 기 위해 흑백 화면을 선택했다”는 감독의 작의부 터가 성공적이다. 색채 촬영보다 훨씬 더 섬세한 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흑백 이미지는 시대적·영화 적 진정성을 확보해준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과 사건들을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부각시켰다. 흥행 에 불리할 게 틀림없건만 위험부담을 짊어질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까. 동주 역의 강하늘은 윤 동주의 현현(顯現)이라 할만하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가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배 역에 그토록 욕심을 냈다는 유아인을 뿌리치고 그 를 선택했다는 감독의 판단은 적중했다. 영화를 본 이들은 윤동주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강하늘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 이순신 하면 최민식, 세종대 왕 하면 한석규를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새로운 길’ ‘별 헤는 밤’ ‘참회록’ ‘서시’ ‘자화 등’ 등 윤동주의 삶에서 결정적인 계기들과 맞물 리는 13편의 시를 낭송하고, 영화의 말미를 장식 하는 주제곡 ‘자화상’을 직접 부르는 솜씨도 일품 이다. 그의 시 낭송은, 목하 이 땅에서 불고 있는 <왕의 남자>와 <사도> 등을 빚어낸 이준익 감독의

‘윤동주 열풍’을 한껏 더 달굴 공산이 크다. 1955

11번째 연출작 <동주>는, 그의 전작 중 최고작이

년 옛 활자체를 그대로 살린 윤동주의 유일한 시

란 평가가 손색없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

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복제 출판본이 출간

인’이라면서도 정작 그 삶(1917∼45)을 “TV나 영

두달 만에 5만부가 팔리고, 2012년 초연과 2013

화에서 본 적이 없던 감독의 의문에서 출발했다”

년 재공연에 이어 세번째로 창작가무극 <윤동

는 영화 <동주>는 “윤동주의 시가 어떤 시대와 사

주, 달을 쏘다>가 3월20∼27일 예술의 전당 CJ

람들을 거쳐 이 땅에 남았는지 그 과정을 온전히

토월극장에서 무대에 오르는 등의 유의미한 열기

스크린에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을 거의 완벽

가 이어지고 있다. 각본을 쓰기도 한 신연식 감독

하게 형상화·음향화·극화시키는데 성공했다.

(<러시안 소설> <배우는 배우다>)이 작사하고 김

“흑백 사진으로만 봐오던 윤동주 시인과 독립 운동가 송몽규의 모습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주

신일이 작·편곡한 주제곡도 명품 OST로 평가받 기에 모자람이 없다.

전찬일 영화 평론가, 부산영화제 연구소장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글로벌문화콘 텐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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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주의 열 등

영화 ‘동주’의 스틸컷 동주와 몽규를 심문하는 고등형사 역으로 열연한 김인우 이준익 감독(가운데)과 배우 강하늘(왼쪽), 박정민이 ‘동 주’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감 내지 종속성은 흥미롭게도 감독의 연 기 연출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강하늘 이 단독으로 나오거나 박정민이 아닌 다른 배우들과 함께 화면에 잡힐 때와는 달리, 박정민과의 투쇼트에서는 거의 늘 그가 압 도당하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단 언컨대 강하늘이 연기를 못하거나, 박정민 에 꿀려서는 아니다. 감독은 인물구도에 부합하는 연기를 체화시킨 것이다. <동주> 몽규 역의 박정민은 또 어떤가? 연기를 위해 “촬영 전 홀로 중국 용정에 있는 윤동

는 따라서 제목이 시사하는 것과는 달리,

주·송몽규 생가와 묘소를 방문했다”는 그 또한 몽규의 모습 그대로다. 강하늘과 마찬

한국 시문학사에 빛나는 위대한 시인에

가지로 황정민 추천으로 캐스팅됐다는 그는 가히 ‘신의 한수’다. 윤동주보다 3개월 여

관한 전기물은 아니다. 영화는 시종 어둠

먼저 태어나고 20여일 뒤 사망한 송몽규는 동주의 고종사촌이자 ‘절친’이며 경쟁자로,

의 시대에 맞서 저항하며 싸웠던 두 청춘

‘윤동주에게 생애 첫 열등감과 질투를 불러일으킨 존재’다. 윤동주는 붙지 못한 동아

의 삶과 관계, 죽음 등에 초점을 맞춘다.

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의 글재주를 지니고 있었으나, ‘시대가 요구하는 혁명가

시 전문 계간지 <시와 소금>의 좌담

가 되려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윤동주는 평생 송몽규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중

‘시, 영화로 읽다’에서도 밝혔듯, 영화 <동

앙일보> 2월16일자 25면)

주>가 남 다르게 다가서는 큰 이유 중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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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것처럼 여겨지)는 유명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아

까지 회유 내지 설득하려 무던히 애쓴다.

는 것이 거의 없는, 상대적 미지의 인물을 조명함으로써, 자칫 통속적 전기물로 흐를

폭력적, 육체적 고문이 아니라 지적·정

수 있을 영화를 비통속적 휴먼드라마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관점·시선의 전환이랄

신적 접근으로 말이다. 영화 <동주>가 동

까? 동주와 몽규 두 주인공에서 더 나아가 제3의 주인공에게 눈길을 던지면, 또 한

주와 몽규를 중심으로 한 개인사는 물론

차례의 관점 전환이 이뤄지면서 영화의 비통속성은 비범함으로까지 비상한다.

한국과 일본의 원한관계를 진단하는 사

대부분 언론 보도가 ‘강하늘/윤동주-박정민/송몽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회사로도 읽히는 건 이 이름 없는 일본을

내 눈길을 가장 강력히 끌어당긴 인물은 다름 아닌 동주와 몽규를 심문하는 고등형

대변하는 상징적 존재, 고등형사를 통해

사 역이며, 그 역을 연기한 김인우라는 배우다. 김인우 그는, 강하늘과 박정민 못잖

서다. 문득 밀려드는 물음. 혹 이준익 감

은, 아니 어느 모로는 능가하는 ‘당당한 주연’으로 열연을 펼친다. <동주>는 1969년생

독이 <동주>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

인 김인우의 첫 주연작이다. 명색이 영화평론가이면서도 그를 배우로서 선명히 인식

는 이 지점에 있는 건 아닐까. 오늘날까지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 해결되지 않고 날로 높아져만 가는 한

<암살>에 조연으로 나왔다는데, 부끄럽게도 기억조차 못했다. 그는 <동주>를 통

일간 긴장, 갈등, 반목, 충돌 등의 근본원

해 비로소 자기만의 얼굴과 이름을 ‘확실히’ 획득한 것이다. <암살>에서 최덕문이 폭

인으로 일본의 지적·정신적 식민화를 제

탄 전문가 황덕삼 역으로, <완득이>에서 박수영이 완득이 아버지 역으로 그랬던 것

시하는 것은 아닐까. 적잖은 한국의 기성

처럼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성취인가. 극 속에서 그 이름이 불리어졌는지 여부는 모르

세대는 식민성으로부터 벗어나기는커녕

겠다. 눈 여겨 봐야할 사실은, ‘보도자료’에 주연이라면서도 이름 없이 그저 고등형사

적극적으로 동경하고 자발적으로 포섭돼

로만 나와 있는 것이다. 이름 없는 주연이라,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 의미심장하지

살아왔다. 효율성·경제성 등의 신자유주

않은가? 내가 이 인물에 특별히 주목하는 연유다. 그는 분명히 악역이면서도, 그간

의적 신념에 사로잡혀서 말이다. 동의 여

우리가 이런 유의 영화에서 목격해온 그런 잔인무도한 악당이 아니다. 그는 투옥 중

부를 떠나 나는 영화 <동주>를 그렇게 해

일종의 생체 실험으로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던 동주와 몽규 두 사람을 최후의 순간

석·수용하고 있다.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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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rphing Human Image Summary

‘대영박물관-영원한 인간 展’ 시대 관통하는 예술의 단골소재 ‘인간’ 예술의 전당에서 오는 3월20일까지 ‘대영박물관-영원한 인간 展’(이하 ‘대영박물관 전’)이 열린다. 이 전시는 세계 3대 박 물관 중 하나인 영국 대영박물관에도 전시되지 않은 미공개 컬렉션 다수를 포함해 기원전 8400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 까지 방대하고 긴 인류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다. ‘인간’을 주제로 3년간의 기획과 준비과정을 거쳐 한국 최초로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아름다움, 인간, 신, 권력, 변신, 사랑 6개로 주제로 회화작품, 유물, 조각 등 170 여점이 넘는 작품들이 대중에 공개된다. 기자는 직접 전시를 방문해 조나단 킹 큐레이터의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했다. 그는 대영박물관 전에 대해 “그간의 역 사와 대륙을 뛰어넘어 인류의 방대한 지식을 총망라한 전시”라며 “인간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각기 다른 모습을 반 영하고 있는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주제별 작품 감상에 앞서 눈길을 사로 잡았던 것은 기원전 8세기 이스라 엘 예리코에서 발견된 사람의 실제 두개골이었다. 특이하게도 눈에 조개 껍질이 씌워져 있었는데, 조상 숭배 의식을 위 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는 이상적인 미의 기준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아름다움’ 전시관 역시 인상 깊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의 모습’은 전세계 모든 예술가들의 단골 소재로 빠지지 않는 영감의 원천이었는데, 서로 다른 배경 을 지닌 작가들이 인체를 완벽하고 이상적인 형태로 묘사하기 위해 시도했던 다양한 방식이 눈여겨볼만했다. 그 중에서 도 그리스 신화의 목축과 정력의 신 ‘판’의 대리석상은 단연 인기였다. ‘신’ 전시관은 모든 종교가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을 재현해냈다는 점에 주목하고 중국의 ‘관음보살 좌상’, 이집트의 ‘하토 르 여신의 부족’ 등 종교와 문화에 따라 예술 속 신의 모습 변천사를 담아낸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권력' 전시관에서 는 로마의 16대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대리석 조각상’부터 이집트의 ‘부서진 파라오의 초상’, 이탈리아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주화’ 등 자신의 우상화를 통해 대중에게 권력을 인정받고자 했던 통치자들의 역사, 그리고 그들이 당시 예술에 끼친 영향에 대해 설명했다. ‘인간’은 우리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에 시대와 종교, 문화적 배경을 막론하고 언제나 늘 다양한 형태의 예술작품으로 묘사 됐다. 이번 대영박물관 전은 다양한 관점에서 인류의 예술을 전반적으로 되돌아보고픈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라드와 아시라프 기자·번역 김아람 기자

Radwa Ashraf radwaashraf@theasian.asia

Since ancient times, humans have created images

most changing idea of human civilization, and

of their distorted bodies. The human figure has

likewise the human body has been depicted in

been an essential theme in visual arts throughout

a variety of art forms from different centuries,

the history. It is the primordial image, created

regions and cultures.

in a boundless variety of formats and used to

An Alaskan wooden figure with fox's teeth,

express fundamental ideas concerning the human

a Mayan maize god with a beautiful head, a real

condition. The human image is considered the

human skull from Jericho, the oldest piece in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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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wa Ashraf

The British Museum’s first exhibition in South Korea presents over 170 artworks that include sculptures, paintings, and unrevealed relics.

museum, from the 8th millennium BC, a skull somehow re-animated with plaster,

and the enduring indigenous civilizations

giving the form of flesh, with shells for eyes, a Gustave Courbet self-portrait - the

of Australia.

young artist smug and sly and self-regarding, a tiny Egyptian ivory figure of a girl, with lapis lazuli eyes, her hands folded across her belly and breasts, are just some of

A trip through history:

what the British Museum’s first exhibition in South Korea has to offer. They deliver

The museum which is curated by

over 170 artworks, which include sculptures, paintings, and unrevealed relics on the

Jonathan King, acts as a history class on a

different representations of the human image through history.

larger scale. According to him, "The exhibit

These artifacts representing god, beauty, individuals, authority and politics,

showcases artworks that encompass our

metamorphosis, and love are the result of three years of extensive and elaborate

collective human knowledge. They reflect

preparation for this specific exhibition. The pieces include sculptures of Greek and

human nature in its past, present and

Roman era, an Egyptian mummy coffin and artifacts that include statues of Isis and

future form."

Amun-Ra, drawings and engravings by Rafaello, Picasso, Rembrandt, and Matisse among others, covering a wide range of ages from BC 8400 to 2012.

The first section “Ideal Beauty” shows works by artists with different

Combining visual spectacle with profound insights, the human image explores

backgrounds and traditions expressing

the varying ways that artists of different cultural traditions have represented the

human body in various ways. "Marble

human body and imbued it with meaning

Statue of Pan" (45-25 BC) was among the

But what sets this exhibition apart is how you navigate its sections through

most anticipated pieces in that section. The

different perspectives, from observing god depiction in art to witnessing the

Marble male nude Statue of Pan, signed

morphing image of the human body. The different sections resemble a jigsaw puzzle,

by M. Cossutius Cerdo, was discovered at

as you start putting the pieces together after taking in each part.

a villa at Monte Cagnolo, near Rome, Italy.

The British Museum had a run of successful exhibitions, as in 2015 alone, they

In Greek religion and mythology, Pan is

held five magnificent exhibits; from defining beauty of the Greeks and analyzing the

the god who symbolizes fertility and male

identity and art of Celts to discovering the change of faith in Egypt after the pharaohs

sexuality. "Marble Statue of Pan" used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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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the Egyptian mummy coffin, visitors can see the timeline of the pieces in the exhibition covering a wide range of ages from BC 8400 to 2012. The human image is considered the most changing idea of human civilization, and likewise the human body has been depicted in a variety of art forms from different centuries, regions and cultures.

identities through African demon masks and paintings lush with illustrations. The exhibition approaches the subject of the human figure in a fresh, accessible and exciting way: iconic works from ancient civilizations are juxtaposed with striking modern artworks; imposing largescale paintings and sculptures are set against more intimate personal images; sleek marble surface to show immortal and masculine beauty. The second section ‘Expressing the person’ shows different types of portraits, and

diverse artistic practices and cultural traditions are compared and contrasted.

how they don’t merely reflect personalities, they reflect souls as well. One of the most

Deities, jokes, ritual objects, symbols,

haunting pieces of that section was the portrait of a woman found in Saqqara, Egypt.

we can only surmise their original

The third section ‘The Body Divine’ offers an opportunity to navigate through various

meanings, the intentions of the hands that

human manifestations of god in different cultures and religions, from Buddhism to

made them. All we know is that the human

Christianity.

image endures, even in the museum, and

The fourth section revolving all around politics presented rulers of history, such as

that a thing no bigger than your fist can be

the likes of the Roman emperor Marcus Aurelius. "Marble Head of Marcus Aurelius"

as resonant and compelling as an entire

offers a portrait bust of the emperor made using the heavily textured details of marble

galaxy. Such items can’t escape being

for his adorned hair and veil to express the authority and prestige of the emperor. While

categorized and historicized, as we cannot

the last two sections showcased the transforming and changing nature of the human

resist the temptation of digging too deep to

body and the ‘human image’ as well as relationships and their role in forming our

know the story behind a certain object.


Tra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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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잔디밭이 에도성의 정청이 있었던 혼노마루 유지이며 뒤에 보이는 축조물이 천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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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명당과 흉지는 어디? 일왕 거처·야스쿠니 신사·미츠코시 백화점을 가다

도쿄는 면적은 서울의 3.5배, 평야지대에 위치한

(大手門)을 통과하여 500여미터 직진하다 좌회전

다. 풍수의 좌청룡 우백호 등의 ‘사신사’(四神砂)개

하면 경비무사가 거주하던 번소(番所)가 있다. 번

념을 적용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그들도 묘

소에서 서쪽으로 200여미터에 맑은 날에는 후지

지를 썼고, 여전히 묘를 쓰고 있다. 우리와 다른 점

산도 보인다는 후지미야구라(富士見櫓)가 나타난

은, 메이지유신 이래 화장(火葬)이 보편화되면서

다. 이곳에서 소로(小路)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도심 한복판에 많은 공원묘원이 자리하고, 묘소를 관리하는 사원(寺院)도 무수히 많다는 점이다.

손건웅 수강 류종근 문하 풍수유람가 <풍수로 세상을 보다> 저자 모택동·장개석·혼다 쇼이치로 및 한국 역대 대통령·기업총수 선영을 풍수로 풀고 있다.

다 보면 추신쿠라(忠臣蔵) 사건의 발단이 된, 아코

번(赤穂藩)의 번주 아사노(浅野長矩)가 칼부림을

어떤 풍수가들은 일본인들의 음택풍수를 신봉

일으켰던 마쯔의 낭하(松の廊下跡) 지점을 알려주

하지 않지만, 양택을 풍수의 법수(法數)에 맞게 지

는 표시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조금만 오른 쪽으로

었기에 경제발전을 이뤘다고 한다. 필자는 다른 생

가면 넓은 잔디밭이 전개된다. 도쿠가와 막부 시절

각을 갖고 있다. 좌청룡 우백호가 없는 공원묘원에

쇼군의 거주처이며 정청(政庁)이었던 혼노마루(本

도 수많은 명당이 있고, 그런 명당에 선영을 모신

の丸)가 있던 장소다. 혼노마루가 자리했던 북쪽에

후손들은 대를 이어 유명 정치인이 되기도 하고,

는 천수대(天守台)의 유지가 남아있다. 지금은 높

100년 넘는 기업을 대를 이어 지속시키고 있다. 도

이 11m, 동서 41m, 남북 45m의 구조물이 남아있

쿄의 유명한 양택 중 세곳을 보자.

지만, 원래는 각대(脚台)를 포함하여 58m 높이의

에도성(江戶城)은 도쿠가와 막부시절 쇼군(將

5층 건물이 있었다.

軍)이 거주하던 성채다. 평지라는 군사상의 약점을

천수대에 올라 혼노마루가 있던 전면을 내려다

보완하기 위해 거대한 화강암을 이용한 성벽과 해

보면, 경관상으로는 이 넓은 섹터가 도쿄 최고의

자로 성채를 둘러쌓았다. 에도성 대문인 오오테몽

명당이라 여길 만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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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가 대부분 흉지다. 혼노마루 초입부터 천수각 뒤

머리를 깊게 숙여 참배한다. 본전(本殿)에는 246

까지 모두 그렇다. 혼노마루는 다섯번의 이재(罹

만6천여 신령의 위패를 모셨다. 그 중에는 조선과

災)를 당하고, 그때마다 복구됐으나 1863년 화재

중국의 침략자 그리고 2차대전을 일으킨 A급 전

이후로는 재건하지 않은 상태이다. 조선의 경복궁

범까지 봉안하고 있으니, 주변국에 재앙을 초래한

보다 더 심한 흉지라는 판단이다.

그들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속마음이 그대로 반

지금 천황이 거주하는 곳은 막부시절에는 에

영된 곳이다. 제1도리이부터 본전까지 모두가 흉

도성의 서원(西苑)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

지로, 배전과 본전은 흉지 중의 대흉지의 핵심에

이 도쿄로 이주해 왔으나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자

자리하고 있다.

서원에 집을 짓고 황거(皇居), 혼노마루가 있는 곳

미츠코시백화점(三越百貨店) 니혼바시본점(日

을 동어원(東御苑)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주객이

本橋本店). 미츠코시는 일본 최초의 백화점으로

전도된 느낌이다. 현 일본 천황이 거주하는 황거

본점은 1935년 준공되었고, 도쿄도 역사기념물로

또한 자리가 될 수 없는 흉지에 불과하다.

선정되기도 했다. 1929년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

천수대를 뒤로 하고 북쪽의 해자를 통과하면

미츠코시 경성점이 개장하였다. 영화 <암살>의 주

기타노마루(北の丸) 지역이다. 이곳에는 1964년 도

인공 미츠코(전지현)가 결혼식을 올리는 곳이 바

쿄올림픽 유도장으로 건축된 부도캉(武道館)이 있

로 이곳(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관)이다. 신세계

는데, 이곳 또한 흉지다. 부도캉을 지나 에도성의

백화점과 미츠코시백화점의 유사한 외관은 이러

북문인 다야스몽(田安門)을 빠져 나오면 바로 이어

한 연고가 있기 때문이다. 미츠코시 니혼바시점은

지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의 초입이다. 초입에 들어

상당한 역량의 대명당 혈처에 자리한다. 게다가 혈

서면 시야를 압도하는 25m 높이의 청동제 제1도리

처의 섹터가 굉장히 넓어, 이 건물 뒤에 있는 일본

이(鳥居)가 나타난다. 제1도리이를 지나면 제2도리

은행 터까지도 미츠코시백화점의 여기(餘氣)로 자

이와 신문(神門)이 나타난다. 신문의 양쪽에 붙여

리가 되었다.

진 1.5m 크기의 ‘평화를 상징한다’는 국화문장(菊 花紋章)이 조선풍객의 실소를 자아낸다. 신문(神門)을 넘어 마지막 도리이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바로 야스쿠니신사(靖国神社) 의 배전(拝殿)이다. 일반 참배객들은 이 배전 앞

에서 걸음을 멈추고 손뼉을 크게 치고는 정중히

풍수 전적(典籍)에서 거론하는 양택의 조건에 는 결정적인 내용이 빠졌다. 음택은 그 혈처의 섹터 가 시신을 안치할 정도로 협소하여도 가능하지만, 양택은 혈처의 면적이 건물을 수용할 정도의 넓이 라야 한다. 풍수가가 혈처의 범위를 가늠할 줄 알 아야 하는 이유다.

미츠코시 백화점의 니혼바 시 본점 건물의 왼쪽이 야스쿠니의 배전이고 오른 쪽 지붕의 일부가 보이는 것이 본전이다.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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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3

터키 비극은 자국민 향한 ‘야만의 민족말살’

‘노아의 방주’ 터키 지즈레,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 1 ]

Welcome to Hell! Welcome to Noah’s Ark! ‘노아의 방주’ 지즈레,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 터키 동남부 시르낙주(Sirnak)에 있는 지즈레(Cizre) 시민들은 자신들을 태초부터 Cizre Nuh, 즉 노아의 후손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장기집권의 걸림돌이라 생각되는 쿠르드 정당이 득세 하자 그들을 탄압하며 희생양으로 삼아 극우세력을 결집시켜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기자는 그간 20여 차례 넘게 터키 동부를 방문하면서 쿠르드 족이 살고 있는 지즈레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 이라 예견하였고 이는 불행히도 현실이 됐다. 지난 3개월간 인근 실로피(Silopi)와 더불어 모든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했다. 시민들은 난민이 되어 떠돌고, 터키 정부군에 저항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어 간 21세기판 노아의 방주…. 글·사진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

그 참혹한 현장을 <매거진 N> 독자들께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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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3

Day 1 터키 동남부 도시 지즈레(Cizre)는 지난해 12월 초부 터 공무원 및 교사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출입이 금지되었다. 나 같은 외신기자는 접근 조차 힘들어, 여정이 시작되기 전부 터 나를 힘 빠지게 만든다. 마음을 잘 추스리고 더 낮은 곳에 임한다는 자세로 취재와 봉사를 하려는 마음을 다잡는다. 애 초에 내가 명예욕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우연히 공항에서 스페인 말라가에 거주하다 우크라이나 친정 에 가는 스베틀라나(Svetlana)를 만나서 서로의 짐을 맡아주며 아침까지 맥주도 같이 마시고 얘기를 나눴지만, 마음 속으로는 ‘내가 관광이나 하러 온 건 아닌지’라는 생각에 점점 마음이 어 두워진다. 날이 밝고 스베틀라나와 작별을 나누고 곧바로 비행 기를 타고 서구여행자에게 유명하기도 하고 몇해전 한국 TV드 라마에서 소개되기도 하였던 마르딘(Mardin)으로 향하지만 관 광객으로 전락한듯한 씁쓸함이 가시질 않는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터키의 지인들과의 약속이나 신경 쓰이 는 난 관광객이 되고 말았다. 그저 둘러보고 놀고 가는 관광객 말이다. 해결하지 못한 여러 상념들이 혼재된 채 나는 어느덧 마르딘에 도착했다.

Day 2 현지 유심칩을 바꿔 끼우고 마르딘 공항에 도착 해 미리 약속한 하키에게 전화를 하니, 어라? 바로 받더니 두 시간여 떨어져 있는 미드얏(Midyat)으로 오라고 한다. 그를 만 나 너무 피곤하니 호텔로 가자고 했더니, 한사코 자신이 얹혀 있는 숙부의 집으로 나를 안내한다. 들어선 빌라에 손님 접대 용 방으로 나를 이르게 하고 인사를 나누는데, 집안에는 숙부 와 아들들 그리고 며느리들 또 그리고 손주 아이들 열명이 기 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지즈레 출신으로, 집과 직장 학교 모든 것을 놔두고 이곳으로 왔다. 터키정부의 PKK 소탕을 위 한 주민 소개령이 한달전에 내려옴에 따라 미디얏으로 피난 와서 빌라를 빌려 거주하는 피난민의 입장이었으며, 집과 직 장 가구 등 살림살이는 물론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파괴된 채 이곳에서 고향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에서 지인들이 모아준 후원물품을 나눠줄 시간 이 되었다. 특히 꿈과 희망으로 살아야 할 어린이들에게는…. 한국에서 후원 해주신 물품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이 너무 귀 엽고 고맙다. 모든 것이 파괴된 그들에게, 지구 동쪽 끝에서의 관심은 나로 하여금 그들이 자라나며 넓은 식견을 지닌 훌륭 한 젊은이로 자라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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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길거리에서 환전을 하고 하릴없이 장터를 걷다 차 이를 길에서 마시고 있는데, 우연히 하키를 만나 본격적으로 미드얏 투어를 시작했다. 난민이 된 지즈레 사람들을 만났다. 각자의 터전이 부서진 사진을 앞다투어 나에게 보여주며 하 소연을 늘어놓는다. 관심조차 없는 유수의 서구 언론과는 달 리 <아시아엔> 분쟁지역 전문기자임을 증명하는 신분증과 명 함을 보이자 고마움을 눈빛으로 전한다. 마음속으로 다짐한 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당신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전하겠노라.’ 터키라는 나라가 오스만투르크 시절부터 주변국에 야만과 참 혹한 대물림의 역사를 남겼듯이, 현재 쿠르드족의 터전인 동 남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쟁은 자국민을 향한 ‘야만의 민족 말살’이라고 되뇌고 싶다. 우천 예보가 있는 다음날 아침 지즈레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늘 그래왔듯, 전장으로 가기 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준비 한다. 우천과 추위에 대비한 항공점퍼·가벼운 러닝화·카메라 충전 여분 배터리 및 충전기·구급약품 및 생수·가상의 상황 을 반복적으로 상상하며 대처하는 시뮬레이션 등. 그리고 빠 질 수 없는 게 눈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대한 공포 를 희석시키기 위한 연민의 시간을 갖는다.

Day 4

지즈레(Cizre)로 향하는 버스편을 알아보니 이딜 (Idil)까지만 운행한다고 하니 일단 이딜로 가기로 결정하고 몸 을 싣는다. 검문소를 통과 하는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살기 어 린, 검은 전술복과 안면마스크로 위장한 이들이 다가온다. 수 많은 살기를 느껴봤지만 이런 살기를 느껴본 적은 드물었다. 2008년 러시아가 그루지아(조지아)를 침공했을 당시 기자는 수도 트빌리시에 있었다. 이방인을 향한 눈빛은 살기가 가득했 고, 수없는 욕설과 광기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돈과 소지품을 강탈, 도난 당했다. 얼굴은 현지인이 뱉은 침으로 범 벅이 됐고, 길거리에서 구타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며칠 후 도시가 봉쇄되고 전쟁에 돌입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한 지금의 이딜은 그루지아와는 달랐다. 순박하고 신실한 무슬림 쿠르드 족은 몇몇을 제외하면 이방인을 대접하는 이슬람의 기본을 잊 지 않았다. 폭력은 없었으며 도난과 강탈도 없었다. 지즈레에서 밀려난 청년들은 이딜 청년들과 합세하여 더욱 거 세게 항전의지를 불태울 것으로 보인다. 지즈레에서 삶의 터전 을 잃은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도가 저항이다. 기자는 터키 동남부 실로피 지즈레에서 시작된 저항은 시르낙주를 넘 어 인근 마르딘과 디야르바키르주 등지로 확산되리라고 추측 한다. 그럼에도 극우 민심을 결집하여 장기집권을 도모하려는 에르도안 정부는 폭압과 인종청소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magazine N | 201603

Day 5 밀린 사진과 기사정리, 그리고 많은 분들이 후원 해 주신 물품 전달과정이 담긴 사진과 내용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야 하기에 오늘은 ‘재정비의 날’이다. 이딜은 내일 다시 찾 아가서 봉쇄 전 주민들의 표정과 폭풍전야를 담기로 결정했다. 지난밤 메르신(Mersin)으로 이주한 메틴하고 통화했다. 그래도 지즈레에서 나온 난민 중 여유가 있었는지 바닷가 카페를 인수 했고, 장사도 잘된다고 한다. 한편으론 친구이긴 하나 그가 조 국을 등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찰나 익살스러운 평상 시의 메틴이 정색한다. “토니! 내가 아무리 돈을 벌어도 난 가 난한 사람이야. 고향 지즈레가 행복하지 않으면 난 행복할 수 가 없어”라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의 진심을 듣고, 나도 그가 행복하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다. 하키에게서 연락이 와 아침을 먹으러 오라기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 받고 왔다. 하키의 아버지는 이딜에 다녀온 얘기를 하면 안전하기를 바란다는 말을 연신 해주신다. 자신들의 고향 지즈 레를 알리는 기자에 대한 믿음과 깊은 마음 씀씀이는 하루 다 섯번 꼬박 기도하는 신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듯 싶다. 응접실에서 티비를 보다가 모레 지즈레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 했다. 폐허가 된 지즈레가 먼저일까? 봉쇄된 채 전쟁에 돌입하 는 이딜이 먼저일까? 이 고민 하나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하다.

Day 6

쿠르드족 지즈레 친구가 만나고자 해서 잠시 망설 였다. 이 저녁시간에 보자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에게 적 군일까? 아군일까?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서구적으로 매장을 꾸민 카페 테라스로 오라고 하길래 ‘그러마’ 승낙을 했다. 담배 연기가 짙게 깔린 카페에 들어서니 그와 친구들이 자리 를 권한다. 그가 메신저로 보내준 사진은 죽은 PKK의 모습이 담겨 있는, 다소 충격적인 사진이었다. 대화를 계속 나누니, 자 신들이 처한 상황과 내가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묻는 일종 의 심문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그의 행동 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봉쇄가 되는 이딜(Idil)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아마도 쿠르드족 애국청년단 PKK에 합류하여 도시 게릴라전을 펼치려 들어간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것은 비장한 결심을 했다는 증명일 수 있다 는 생각이 스쳐갔다. 아쉽게도 미드얏-이딜-실로피(Silopi) 루트는 필자가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드얏-누사빈(Nusaybin)-실로피 구간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누사빈으로 향 했다. 누사빈과 그 너머에 시리아 땅이 보인다. ‘김군이 넘어갔 던 그 땅’ 시리아. 김군을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먹먹해진다. 책임감에 그를 찾아 헤매던 얼마전 내 모습이 오버랩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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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7 누사빈의 집회현장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인파에게 물어보니 금번 동남부 지즈레에서 일어난 전쟁을 멈춰 달라는 즉, 동족 쿠르드인을 위한 평화시위라고 했다. 쿠르드족 여성 대원들, 활동가들 그리고 금번 집 회를 주최한 누사빈의 사라카야 여성시장 등도 참석을 하였다. 참석자 대 부분은 초록·노랑·빨강이 섞여있는 쿠르드 스카프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는 터키사회에서는 금기시되며 당신이 이 스카프를 착용한채 이스탄불 을 걷고 있다면 극우주의자들의 테러대상이 될 것이다. 낙후된 쿠르드의 도시인 누사빈 시내를 한참 걷다 타는 목마름에 차를 한 잔 마시려는 즈음 특수경찰의 장갑지프 문이 열린다. 그들은 손가락 하나 를 까닥 거리며 자신들에게 오라고 한다. 다가가니 “어디서 왔니? 너 누구 니” 물으며 신분증을 요구하길래 주었더니 이번엔 카메라를 달라고 한다. Why? 왜? 무조건 달라고 하길래 “이건 내 프라이버시야. 원하거든 니네 경찰서로 날 데려가렴!”이라며 세게 나갔다. 카메라를 내놓으라는 군경과 실랑이를 하다가 기자의 모자는 땅에 구르고 가방도 땅에 던져졌다. 순간 중심을 잃은 기자는 땅바닥에 구르고 만다. 일어서니 새파랗게 어린 병사가 총을 들이대며 화를 낸다. 누가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인지 헷갈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마침 그때, 본부에서 경찰장갑차가 도착해 샅샅이 몸 수색을 당하고 경찰서로 끌려간다. 천천히 열리는 장갑차의 문에서 손이 보이기 시 작하고, 그 손가락은 까닥까닥 움직여 기자에게 밖으로 나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던진다. why? 왜?라고 했을 뿐인데 그들은 기자를 땅에 구르게 했다. 경찰서 안의 형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나를 취조한다. 때론 툭툭 쳐대고, 가방을 뒤지며 평범한 물건들을 마약과 폭탄류 아니나며 겁박한다. 또한 사생활 이 담긴 모든 것을 낄낄대며 구경한다. 인권은 이 방엔 없다. 한 형사가 카메라에 찍힌 누사빈 현 시장인 사라카야와 참모진의 사진을 보며 마치 악질을 발견했다는 듯한 어투로 비꼰다. 폭격으로 부서진 지즈레의 가옥들 사진도 그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는 기자랑 같이 사진 찍었던 보통의 순수한 쿠 르드 청년 모두를 PKK 대원으로 낙인 찍는다. 진술서를 작성하는 동안 형사들이 음료와 담배 등을 제공하며 온갖 외교적인 발언을 한다. “터키인들은 남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거칠게 대한 것을 유 감으로 생각한다. 단지 우리는 너의 신변이 걱정 되기에 보호 하고자 하는 의미이고 별 뜻 없다.” 형사반장이 나타나 조서에 싸인하라고 한다. “터키어로 된 조서인데 왜 사인을 해야하냐”고 물으니 형사들이 우르르 또 몰려들어 폭력을 휘두르려고 겁을 준다. 그러자 한 형사가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 짚어주 며 영어로 번역을 해주는데 그걸 어떻게 믿겠는가? ‘저는 PKK에 협력하고 터키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지니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차피 폭력에 무너지나, 이런 농간에 무너지나 매한가지일테지만 기지를 발휘했다. 메모지를 꺼내 급하게 영어로 후려 갈겼다. “난 터키 법을 준수 하며 PKK 또는 IS를 도와준 적이 없다” 그리고는 형사에게 “여기에 사인해야 나도 사인 할거야”라고 하자 ‘어디 감히’라는 표정의 형사들이 우르르 덤벼 든다. 그러자 한 형사가 그들을 제지하며 사인을 해준다. 나도 이게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사인을 한다. 이제 내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고….


Com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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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N | 201603

당신은 ‘도박사의 오류’서 벗어나 ‘도전하는 삶’ 살고 있는가 답이 제대로 기입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분명히 각 문제마 다 소위 말해 찍은 것 없이 답을 표시한듯 한데, 특정 문항부터 연속해서 동일한 번 호로 답안지가 체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혹시 내가 문제를 잘못 이해하 고 답을 표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부터 문제를 출제한 분이 같은 답이 연속 적으로 나오도록 출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근거도 없는 추측을 하게 된다. 더 심각한 경우는 이와 같은 생각이나 추측에서 멈추지 않고, 이미 구한 답을 무 시한 채 전체적으로 답의 비율이 맞지 않으니 하나 둘씩 임의로 답안을 조정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4지 선다형 문제로 제시된 20개의 문항 가운데 10개 문항의 답을 1번 으로 표시했다면 스스로 강제 조정에 들어가는 것이다. 1번답이 전체 답의 50%를 차지할리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했을 경우 결과는 대부분 후회로 귀결된다. 그 이유는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자 하는 것으로 채워진 ‘도전의 영역’을 알지 못하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찬 ‘도박의 영역’으로 바 꿔 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도박사의 오류’이다. 도박사의 오류란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짝수와 홀 수가 나올 확률은 매번 50%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수가 연속해서 3번 나왔다면 다음번에 도 홀수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홀수에 돈을 거는 것이다. 거꾸로 홀수가 연속해서 3번 나왔으니 이번 에는 짝수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짝수에 돈을 거는 것 역시 도박사의 오류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순간은 비단 시험문제를 접했을 때만이 아니다. 어딘가에 투자를 하는 경우나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경우에도 종종 이와 같은 오류에 빠진다. 도박사의 오류에 빠 진 이들이 자연스레 “예전에도 그랬다” “원래 그렇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되었으니 앞으로도 잘 될 것이 다” 혹은 “지금까지도 잘 안되었으니 앞으로도 될 리가 없다” 등의 말을 자연스레 내뱉는다.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면 잘 알지도 못하고 확인하지도 않은 영역에서 막연한 기대감을 갖거 나 혹은 지레 짐작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삶으로도 확장된 다. 삶의 목적과 나아갈 방향을 정하지 않거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모른다면 우 리의 삶은 매번 도전이 아닌 도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도박사의 오류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때 내가 잘 알고 있는 영역인지 혹은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인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잘 알고 있거나 알고 싶은 영역이라면 도전해야 하고 만일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면 섣불리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거나 여 러 가지 경로를 통해 해당 영역에 대해 알아본 후 도전해야 한다. 김희봉 교육공학박사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도박사의 오류에서 벗어난 삶은 도전하는 삶이다. 도전하는 삶은 자기 주도적이고 진취적이며 성장하 는 삶이 된다. 또한 도전하는 삶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삶이 된다. 당신은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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