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위의 숟가락(미리보기)

Page 1

1


2



밥상 위의 숟가락 김정희


인사말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부족합니다 마음 주머니에 있던, 아끼던 것을 담았지만 쏟아 놓고 보니 빈약합니다 글을 쓰다가 막막할 때가 있었습니다 언저리에 있으면서도 도대체 보여주지 않는 시절의 그림들을 꺼내 달래보기도 했습니다 나를 나로만 바라보고 응원해주던 들풀이 있었습니다 휘파람을 불며 깨닫게 하던 바람도 있었고요 그리고 감성을 주신 하나님도 계십니다 격려해준 가족들, 여러 벗들도 계십니다 가까이에서 보아주실 분들이라 믿고 조심스레 인사드립니다


차례

1부 그물

나의 노래   10 양귀비 꽃   11 씨앗 생각   12 언덕에서 만난 바람비   13 임진강   14 삶   15 지리산 자연휴양림에서   16 너의 웃음은 무지개를 닮았구나   18 들꽃   19 그 애   20 황혼   21 그물   22 사월   23 담쟁이   24 짝사랑   25 겨울 편지   26 절골 빨랫돌   27 그리움 그리고 이별   28 가로등   29 빨래터   30 잠자리   31


어제와 오늘, 내일   32 재수생   34 눈을 처음 본 날   35 언제나 말 없으신 울 아버지   36 가을, 문턱에 와 있지?   37 꽃샘    38 숟가락 위의 날들   39 망원동   40 여름휴가   42 밤하늘의 진주    44 새벽 기도 가는 길   45 두 여자   46 비둘기 사랑   47 초겨울 아침에   48 내가 눈을 감는 것은    49 봄을 그리워할 때    50 멀어지는 당신   51 2월의 봄   52 노을   53 나에게 온 별들   54 가을 1   55 동반자   56 검은 대륙   57 파도   58 내 마음 자리에 뿌려진 씨앗   59 편지   60 연가   61 사랑   62


시를 읽다가    63 사월의 향기   64 부부    65 모정   66 가을 2   67 쉰아홉 개의 구름   68 그때 그 여름비   69 알레르기   70 눈   72 철없던 시절   73 그리움   74 미련   75 시어머니를 생각하며    76 흔들리는 영혼   78 엄마와 아들   79 둥지   80 너를 만나고   82 바람의 눈물   83 행복의 몸짓   84 눈 속에 묻혀 살잔다   85 시골 정류장   86 강가에 서서   87 망원동에서   88 바람 부는 숲   89 야생화   90 속삭임    91 민들레   92 겨울꽃    93


2부 여인의 고백

춤추시는 주님   96 인생은 십자가로부터    97 하나님의 소유   98 아름다운 이스라엘이여   99 저를 보여주시려면   100 소망의 강을 향해   101 여기에서 조금만 더   102 여인의 고백   104 나의 하나님   105 왜 이제야   106 마음을 움직이시는 주님   107 어린아이 마음을 주세요   108 계시록을 묵상하며   110 하나 되지 않으면   112 주님 이 밤에   114 나는 하나님의 작품   115 기도 1   116 가을 편지   117 주님 손에 들린 보리떡   118 희망을 뿌리는 아이   119 주님의 빛이 가득하게 하소서   120 가난한 마음   121 이름 속에 담긴 이슬   122 나는 몰랐습니다   123 벧엘로 올라가자   124


너의 가치를 회복해라   125 호스피스 사역   126 연애하는 까닭에   127 참사랑    128 동영상   129 승리   130 용서하게 하소서   131 4월의 신부    132 저녁노을   133 엎드리게 하소서   134 구조선   135 주님은 스토커   136 기도 2   137 다 보고 계시지요   138 아침에 눈뜨게 하시니   140 열방이 하나 되는 그날   141 믿음의 길   142 설렘   143 저의 실체를 아시는지요   144 하늘길   146 집으로 가는 길   147


1부

그물


나의 노래

책상에 앉아 창문을 열었더니 냉큼 뛰어들어와 마음을 헤집어 놓는 바람의 웃음에 잘못된 문장을 타고 생각은 먼 나라로 날아간다 꼭 있어야 할 말은 붙들고 이것저것 떼어내면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어설픈 소나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생각들 돌보지 않아 꼭꼭 숨어버렸나 애써 더듬어도 소용이 없다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니 눈앞에 아른거려 벌떡 일어나 책상 앞에 앉는다 기다리면 오는 것을 애태우며 찾았다 12


양귀비 꽃

가고 싶다 너에게 고민하지 않고 메마른 세상에 너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나가는 건달들이 히죽거려도 흔들리지 마라 가고 싶다 너에게 바람이 되어

13


씨앗 생각

봄비가 오시는데 지난 가을볕에 해맑게 웃던 친구 땅 틈새로 스며드는 봄비 따라 한줄기 바람으로 마음 적시겠지 불안과 공포에 이것이 죽음인가 어둠 속에 웅크렸던 절망 벗어나려 애쓰지 않아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를 바로 세우던 디딤돌 계절 바뀌기를 기다리며 작은 몸에 솟는 힘으로 겨우내 침묵을 깨고 일어서자 봄비가 오시는데

14


언덕에서 만난 바람비

길을 걷다가 넘어졌다 아무 일 없는 듯 일어났지만 언덕에서 또 넘어졌다 엎드린 채 연갈빛 바람에 안겨 붉게 물든 단풍 길을 휘돌아 바람꽃 이는 먼 산을 본다 폭풍이 지나간 길 따라 밤새 잠 못 이룬 침상 위로 지샌 달빛이 고달피 떠 졸고 있다 언덕 중턱에 선 흔들리는 마음 흐느끼는 걸음걸음 눈 시리게 하늘을 바라본다 인생의 언덕을 넘다가 바람비를 만난 호스피스 병동 환우들 차지게 달라붙은 병균들을 끌어안고 논개의 마음 담아 하늘을 날며 고운 무지개 따라 가기를

15


임진강

북한강 물줄기를 타고 이른 저녁 북녘에서 불어온 바람이 허기져 비틀거려도 여울목마다 요동치는 은빛들의 노을빛 저 황홀한 춤사위 석양을 등지고 견지를 즐기는 그대의 미소는 아무도 끼어들 수 없는 작은 평화가 다시는 절망을 읊조리지 않으리 민통선을 오가는 자유야 메아리로 돌아가는 울부짖음에도 검은 돌들이 바닥을 뚫고 일어나 낄낄 비웃어도 몸속에 끓고 있는 피를 분수처럼 토해라 네 살이 찢기고 비늘이 갈라져도 붉은 강을 건너는 우리는 하나라고

16


한숨이라는 것이 호흡이랴 그건 아픔이어서 드러내지 않아도 아프다고 한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삶의 줄기가 힘들게 버티고 선 내 작은 공간에 비집고 들어서지만 아픔은 그냥 그렇게 아픔으로 남아 있기를 삶이 아름답지 않아도 곁눈질 하지 않기를 새벽 잠 설치며 일그러진 세상 원망하기보다 아침이 밝아 오면 모든 절망은 씻기어져 가기를

17


지리산 자연휴양림에서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산으로 갔다 그 가운데 서서 눈을 감는다 아 빈 마음으로 큰 산에 안기니 온 세상이 고요하여라 지리산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새들은 목소리도 순하구나 숨죽이며 잠자던 계곡물은 아침이 되었다고 조잘거리는구나 시간도 거울도 보지 않아도 그냥 이대로가 좋은 것을 나무들의 거친 숨소리 사람들 지친 걸음 비명 속에 살아가는 메마른 도시의 새들

18


지리산에서 살고 싶다 난 늘 이런 풍경을 그렸어 생각이 행동이 녹아드는 여유 이 느낌 오래 기억되길 오늘은 내가 나에게 큰 상을 주었어

19


너의 웃음은 무지개를 닮았구나 너의 웃음은 무지개를 닮았구나 네가 해맑게 웃으면 흐물거리던 내 세포가 춤추고 네가 울면 영양실조로 힘이 녹는다 스쳐가는 행동 하나에도 감사가 넘친다 너는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너의 손짓 발짓 하나에도 감동의 바보가 된다 장난스러운 너의 목소리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나를 흥분시키는 것과 같다 너의 영특함을 누가 따라가랴 나에게 너는 천재다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다 “하머니” 하며 고사리손으로 내 목을 힘주어 꼭 껴안은 넌 입을 크게 벌려 침을 내 얼굴에 비벼대는 넌 하나님의 비밀 주머니를 품고 있나보다 너를 처음 만난 날 새하얀 모자를 쓰고 눈을 반짝이며 엄마 가슴에 파묻혀 있던 너 환희로 솟아오르는 엄마 심장 소리에 정신이 없던 너 2012년 9월 11일 태어난 날부터 넌 무지개를 닮았구나 20


들꽃 나는 긴 사다리에 올라간다 빗물에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일어서야 하는 이유에 힘을 얻는다 오물오물 장난치던 풀피리가 새파랗게 울고 살아야 하는 줄기는 물병에 꽂았다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안개 너머 무거운 내 발걸음에 잣나무 잎이 숨죽이며 뒤척인다 지치고 힘들게 사다리에 올랐다 숨소리는 희미해지고 눈동자는 한쪽으로 기울어 쓰러질 때 잡아주던 작은 돌멩이와 얼핏 보였던 들풀의 슬픈 얼굴이 내내 그리워 일어서지만 칼날 같은 회오리가 고달픈 내 심장을 훑고 지나간다

21


그애

풀잎을 스치는 바람 따라 정겨운 오솔길을 따라 가을이 왔다 나를 좋아하던 그 차가운 밥에 김장 맛있게 먹던 입이 가을을 보니 문득

애 김치를 쭉 찢어 큰 머스마 생각난다

어릴 때 엄마를 잃고 재혼한 아빠와 살던 애 그 아빠도 천국 가고 새엄마와 살던 깡마른 그 애의 깊은 눈은 항상 젖어 있었고 청바지가 잘 어울렸다 하늘을 날고 싶은 들풀들의 희망 전도사로 섬김의 삶을 산다는 소식에 우수에 젖은 눈빛이 떠올라 가을 풀잎에 살짝 귀띔해 줘야겠다 그때 나도 널 좋아했다고

22


황혼

하늘 곁에 앉아 있는 잿빛 여울에 황혼은 점점 기울어가나 엉겅퀴 꽃 닮은 발 살짝 적시니 콧노래 바람 타고 날아간다 흐흐 하하 웃어야 어울리는 나이지만 적막히 흐르는 여울 곁에 기대어 포릉포릉 뛰는 새를 보며 눈을 감으니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느냐 묻고 있구나 오늘은 그저 웃고 마련다

23


그물

참 평안하다 얼마만의 여유인지 얼마만의 느린 걸음인지 앞만 보고 걷느라 보지 못했던 내 이웃들 허리를 구부려 만져본다 나뭇잎 바람 강물 그리고 하늘 보도 블럭 사이를 바쁘게 걷는 개미 이 봄이 비집고 찾아오기까지 때로는 바보 같은 모습 들추어져 지나온 자리에 비명으로 남아있어 변화의 그물을 준비한다 오랜 시간 기다린 작은 여유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보기 위해 초록 형광색 안경을 썼다 신선한 그림자를 건지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그물을 물고 있던 갈매기는 떠나고 없지만 생각날 듯 노랫말을 더듬으며 하늘 바람을 타고 신나게 내려오는 내 이웃을 만난다

24


사월

햇살 눈부신 사월 파아란 풀섶에 앙증맞고 고와라 노란 민들레 청명한 하늘가엔 봄이 흐르고 혼탁한 이 세상 작은 함성과 기쁨을 안겨주는 너흰 차라리 찬란이라 꽃잎 하나하나 신의 솜씨 놀라와 한없이 너희만 바라보고 싶다

25


담쟁이

새벽 공기 톡톡 잠을 깨운다 촉촉한 이슬에 목 축이고 두 팔 벌려 조심스럽게 발을 뗀다 친구들이 달려와 밀어주고 끌어주고 말없이 내어준 마음 절망 속에서 합창을 한다 한 포기 풀도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죽음의 도시를 서로 꼭 잡은 손 서두르지 않고 걸어간다 회색 도시는 점점 초록으로 춤추고 나무들은 덩달아 피리를 분다 어느새 붉게 물든 아침 햇살이 환하게 웃는다

26


짝사랑

만날 때마다 순결한 봄 햇살 향기 뿜어 할아버지 하회탈 눈빛 끝이 없고 아쉬움은 머뭇. 온몸에 걸터앉는다 이것이 짝사랑인가

27


겨울 편지

너를 보내고 아픔을 만지작거리다가 차가운 달빛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지친 어깨에 내려앉은 찬 서리도 온기가 그리워 떨고 있는데 내가 의식하지 못할 때도 넌 항상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입을 꼭 다물고 웃었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웃던 네 모습이 참 슬펐다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날 찾았다고 그냥 흘러가려 애써도 북서쪽에서 불어온 이름 없는 봉투를 열어보니 눈꽃이 쏟아진다 소리 없는 마음 쏟아진 눈꽃에 담아 보낸다 내 안에 숨어 있던 한가닥 공허가 작은 신음 소리를 내지만 당황스러운 마음 살며시 접는다 어제 불기 시작한 남풍에 몸을 맡긴 흰 나비처럼 홀가분하게 흘러가려고 28


절골 빨랫돌

이 말 저 말 말도 많다 여자들이 모이면 빨래들이 춤춘다 골짜기를 따라 굽이쳐 내려오는 실개천을 따라 밤새 찰랑거리는 물소리에 까칠해진 내 얼굴 침도 튀기고 때 구정물도 뒤집어씌우지만 조금씩 구르던 빨래들은 상쾌하게 일어선다 늘어난 그리고 나뭇잎 스르르

샤쓰, 속옷, 구멍 난 양말, 수건 무릎 나온 바지 들이 위에 누워 따가운 초가을 햇살에 잠이 든다

골짜기에 온통 오색 꽃이 피었다 맑은 물속에 빨간 실뱀들의 춤이 피고 여자들 목젖에 웃음꽃이 핀다 웃음이 휩쓸고 간 내 얼굴에 산 그림자 내려오고 나는 적막한 초록 하늘을 바라보며 하품을 한다

29


그리움 그리고 이별

엄마가 돌아가셨다 얼음 같은 노동을 몸으로 승화시키고 한없는 용서로 다독이시던 흔들리는 들풀처럼 가난을 삼키던 삶은 자식들 무명옷에 희망의 수를 놓는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림에 지친 어느 추운 겨울 하얀 눈 속에 빨간 피를 토하고 아무 말 없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30


2부

여인의 고백


춤추시는 주님

열두 해 혈우병엔 희망도 죽어 가족도 친구도 외면했던 여인 썩어가는 우주를 움켜 싸고 어둠 속에서 울고 두려움에 떨며 부끄러워 숨었던 여인 주님만 만나면 주님만 만나면 파도치는 무리 속에 뛰어들어가 죽을 힘 다해 손을 뻗었던 여인 떨리는 손끝에 주님의 옷자락이 닿고 숨지 않아서 용기를 내주어서 돌아서신 주님 가슴에 눈물이 박혔다 보석 같은 그 믿음에 먹먹해하시고 파도에 휩쓸려 떨고 있는 여인을 보배로운 딸이라 선포하셨다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들어올리시며 딸아 평안히 가라

98


인생은 십자가로부터

오, 주님 제게 있는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사랑도 섬김도 아니고 용서와 정직함도 아니고 긍휼히 여김도 아니니 귀를 열어주시고 눈으로 보게 해주십시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인생은 십자가로부터 시작됨을 제 하루를 눈여겨보아 주십시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다 보이겠지만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음을 알게 해주십시오 시기와 질투가 눈을 가리고 있어 사랑하겠노라 섬기겠노라 마음 다져도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은 남보다 낫다는 착각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99


하나님의 소유

모든 나라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잠재워 증거를 보여 주시고 너는 내 소유 내 거룩한 땅이라 그분이 거처하실 땅 이스라엘 열망이 그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땅으로 들어가리라 하나님이 정하신 땅 영원한 땅 그 안에 들어가면 그분의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 400년 동안 노예로 살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던 긍휼의 이스라엘아 쫓기고 쫓겨 하늘 끝에 바다 끝에 있어도 너는 내 소유 내 거룩한 땅이라 인류의 모든 민족이 하나되는 날 애굽에서 시리아로 오고 가며 백성은 울고 웃으리라

100


아름다운 이스라엘이여

작은 나라 이스라엘은 선택되어 장자의 이름으로 희생의 도구가 되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천 년을 방황한다 사랑하시기에 쓴잔을 던져도 사랑하신다 가지에 접붙여 싹을 틔우고 그 사랑 돌고 돌아 죄 속에 살던 내게로 왔다 오, 아름다운 이스라엘이여 말씀의 예언이 움직이고 마음이 열리고 방황하던 장자가 집으로 돌아오니 그 감동 눈물겨워 함께 울리라

101


저를 보여주시려면

누군가 저의 삶에 들어와 보고 싶다면 불편한 마음 안고 돌아가게 하소서 세상 즐거움을 선물한다면 단호히 그러나 부드럽게 거절하게 하소서 주님을 향한 나의 발돋움이 평화로 녹아있음을 보고 자신과 다른 것에 부러워하게 하소서 저에게 가장 친숙한 깨끗함으로 살게 하소서 그 누군가 혹 주님을 보기 위해 까치발로 기웃거린다면 주님, 그를 포근히 안아주소서

102


소망의 강을 향해

어수선한 마음을 끌어안고 낯선 도시에 홀로 선 그대 어둡고 스산한 터널을 지나면 사월의 햇살에 반사되는 여린 은행잎을 바라보리라 누군가를 만나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도 보고 그대가 절망이라는 삶을 돌아보면서 말씀에 의지하여 한 발짝 옮기면 다음 발걸음은 주님이 인도하시리라 봄을 알리던 들풀이 시샘의 끝자락에 파르르 떨고 있지만 미래를 향한 소망이 있어 꿋꿋이 견디는 모습이 예쁘고 아름답듯이 유난히 여린 마음을 지닌 그대가 강 저편에 준비된 소망의 뜰로 향할 때 방향은 주님께서 잡아주시리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하심에 주 앞에 엎드리며 그대를 여기까지 지켜주신 은혜 감사의 두 손을 모은다 103


여기에서 조금만 더

당신은 왜 날 울리시는지요 울게 만드는 당신이 미워져야 맞는데 왜 밉지 않고 더 울게 해줬으면 좋겠는지요 당신은 왜 날 웃게 하시는지요 길을 걷다가 실실 입이 벌어져 혹 미친 여자가 아닌가 사람들이 쳐다볼까 입을 꼭 물어도 왜 피식피식 웃음이 비어져 나오게 하는지요 당신은 왜 날 숨 막히게 하시는지요 마음으로도 찬양은 즐겁고 기쁜데 주위는 아랑곳없이 크게 찬양하고 싶어 안달이 나다 못해 숨까지 막히게 하는지요 지금 여기에서 조금만 더 숨을 깊이 몰아쉬면 당신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왜 그 조금 더가 쉽지 않은지요

104


나의 나는 나의 주의

하나님 하나님의 것입니다 마음을 만져주셔서 신실한 신부가 되게 하소서

105


여인의 고백

한 여인의 부르짖음에 간청에 그 믿음에 반해 버리신 주님이 귀신들린 딸을 품고 산을 넘는 어미에게 찾아가신 주님이 저는 개 같은 죄인이니 개가 맞습니다 당신 자녀들이 먹던 부스러기도 잘 먹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언제나 나의 주님이십니다 흉내낼 수 없는 여인의 고백에 감동하시고 제자들 돌아보시며 어깨춤을 추신다 이천 년이 지나 나에게도 찾아오셨다 말씀을 붙잡고 달려보지만 여전히 허공을 맴도는 헛된 고백뿐 주님이 주신 땅에 발 들여 놓았으니 기뻐하시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데 오늘도 죄송한 얼굴로 무릎 꿇는다

106


나의 하나님

아버지, 내 아이가 “엄마” 하고 처음 불렀을 때 내 가슴은 터질듯 아이 목소리로 꽉 찼었습니다 다 커서도 한밤중 잠결에 “엄마” 하고 소리치면 내 몸은 튕기듯 일어나 달려갑니다 문을 꼭 닫아서 그 소리가 아주 작아도 나에겐 크게 들립니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부를 때 아버지 마음도 기쁘시지요? 내가 너무 힘겨워 “아버지, 아버지-” 목이 메일 때 아버지 마음은 녹아내리시지요?

107


집으로 가는 길

지금은 너무 멀리 나왔나 한 걸음 한 걸음 돌아보며 걸었는데 어느 땐가 보이지 않는다 나올 때는 선명하던 길이 무심히 돌아보니 작은 돌들이 흩어져 혼란스럽다 얼마큼이나 나왔는지 왜 헤매고 다니는지 이제 돌아가고 싶어 무릎을 꿇고 눈을 감으니 꺽꺽 목이 아프고 텅 빈 가슴에 눈물만 채워진다 집으로 간다는 바람의 유혹이 좋아 손을 뻗어 살며시 잡았다 강 건너에서도 바람이 손짓을 한다 우리도 집으로 가고 싶다고

149


초판 1쇄 발행 2016년 12월 30일 지은이 김정희 발행 말랑 편집 및 디자인 준가 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1동 461번지 전자우편 malang.pub@gmail.com 홈페이지 www.facebook.com/malang.pub 트위터 @malangbooks

※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와 출판사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