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카 계곡으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드넓은 목초지. 털이 복실복실한 알파카가 마음껏 풀을 뜯고 있다.
n a e d S n d A ighlan H
A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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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Magazin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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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고원을 따라 잉카의 땅을 향해 페루 남부의 고원 도시로 향한다. 하얀 도시 아레키파, 콘돌이 사는 콜카 계곡, 하늘을 닮은 호수 티티카카 그리고 잉카의 수도 쿠스코와 마추픽추에서 옛 안데스 인의 흔적을 만난다. 글 심지아 사진 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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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quipa
뚫린 제주도 화산암과 달리 이곳 화산암은 상아색이나
붉은 벽돌색 건물과 수많은 아치형 골목이 이어지
옅은 분홍빛을 띤다. 부드럽고, 비바람에 잘 견뎌 주로
는 이곳은 1580년에 지은 수녀들의 수도원이다. 깨끗하
외벽의 마름돌로 쓴다. 거의 도시 전체를 하얀 화산암
게 비질해놓은 석조 바닥, 코너마다 놓인 풍성한 꽃 화
아레키파
으로 마감할 수 있었던 건 도시를 수호하듯 둘러싼 화
분, 솜사탕 모양으로 완벽하게 조경한 나무까지. 한눈에
산 덕분이다. 공항 활주로에 내릴 때부터 등 뒤에서 엄
봐도 쉴 새 없이 손길이 오가야 나올 법한 정갈한 모습
해발 2,335m
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던 화산 미스티(Misti)를 중심으로
인데, 사람은 커녕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 수녀
하얀 은총이 내린 도시
북서쪽의 차차니(Chachani), 남동쪽의 피추피추(Pichu
는 열네 살에 수도원에 들어와서 평생 동안 밖에 한 발
서서히 고도를 낮춘 비행기가 해발 2,335미터에 있는
Pichu)까지. 도시는 화산에 의해, 화산을 위해 존재하고
자국도 나가지 않아요. 그 때문에 수도원은 400여 년 동
활주로에 안착한다.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레키파의 날씨는 예측할
안 베일에 싸여 있었죠.”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까
여정에서 맞닥뜨릴 고산병에 대비하기 딱 좋은 높이일
수가 없어요. 매일 지진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아침에
지 유창하게 구사하며 수도원을 안내하는 셀리아 수니
것이기에. 비행기가 머나 먼 남아메리카의 땅덩어리에
해가 쨍쨍하다가도, 지진이 난 후엔 또 완전히 바뀌거든
가 베나벤테(Celia Zúñiga Benavente)가 미로 같은 내부
닿기 전, 동그란 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다본 풍경은 충
요.” ‘매일’ ‘지진’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내 몸은 움
를 능숙하게 안내하며 말한다. 지금도 수도원은 같은 규
격이었다. 어릴 적 백과사전을 뒤적이며 사진 찾기 놀
찔대는데, 정작 이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는 천하태
율로 운영하고 있지만, 일부는 대중에게 공개한다.
이를 하다가 본 화성의 표면이 가장 먼저 머릿속을 스
평이다. 심지어 아레키파 사람은 미스티를 도시의 수호
마치 촬영 세트장 같은 수도원은 처음 문을 연 뒤
친다. 45억 살 먹은 지구의 맨 얼굴처럼 주름이 깊게 파
신으로 여기며, 미스티는 늘 이곳 삶의 중심에 있다. 도
조금씩 확장해 지금은 2만 제곱미터가 넘는 규모다. ‘평
인 이 땅은 페루 남부 안데스산맥 한편에 자리 잡은 도
시 이름인 아레키파의 어원 역시 아이마라(Aymara) 족
생 여기서 살아야 한다니 얼마나 답답할까’라고 생각했
시 아레키파다.
(훗날 잉카 족에게 정복당한 남아메리카 인디언) 언어로
는데, 조금 더 둘러보고 나니 생각이 바뀐다. 골목을 지
‘봉우리의 뒤’라는 뜻. 해발 90미터 안팎의 경기도 고양
날 때마다 아담한 안뜰이 나오고, 커다란 분수대도 보인
색이 없다. 카무플라주처럼 도시는 까마득히 파인 계곡,
시에 사는 나로서는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원대한 경외
다. 수녀가 묵었다는 몇몇 방은 집이라 해도 좋을 크기
주변으로 우뚝 솟은 화산의 색을 닮았다. 라 시우다드 블
심이 이곳 아레키페뇨(arequipeño, 아레키파 사람)에겐
다. 수도원 전체는 작은 마을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
랑카(La Ciudad Blanca). ‘하얀 도시’라는 별칭은 아레키파
있는 것 같다.
“스페인 상류층 자제가 대부분이었어요. 부모는 딸을 이
하늘 위에서 봐도, 땅에 내려와서 봐도 도시엔 딱히
곳에 입소시키려고 엄청난 은화를 지참금으로 보내왔
의 자연과 역사를 완벽하게 함축하고 있다. “화이트 시티
전통 복장을 한 인디오 상인이 하얀 화산암 마름돌 벽 앞에 앉아 있다.
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이드 호르헤 사르돈 바스케
베일을 벗은 수도원
죠.” 수니가 베나벤테는 크고 작은 수녀의 방, 곳곳의 예
스(Jorge Sardón Vásques)가 사탕과 초콜릿을 가득 담은
오래전부터 원주민이 살고 있던 아레키파가 도시의 면모
배당, 공동 부엌과 저장고를 보여주며 설명을 잇는다.
봉투와 물을 건네며 차분한 어조로 당부한다. “물과 단
를 갖추게 된 건 1540년 이곳에 온 스페인 군인 가르시
1582년의 대지진은 수도원을 처참하게 무너뜨렸다. 그
걸 수시로 섭취하세요. 고산지대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마누엘 데 카르바할(Garci Manuel de Carbajal)의 공이
럼에도 수녀들 스스로가 ‘영적인 도움을 받아’ 상당 부분
주죠. 수분과 당이 모두 있는 신선한 과일을 먹는 게 최
크다. 이곳이 처음부터 하얀 도시였던 건 아니다. 초기엔
복구할 수 있었다고. 이토록 치열하게 역사와 옛 모습을
고예요.” 낯선 도시에 온 긴장감 탓인지 줄어든 공기 중
주요 교회나 몇몇 가옥만 화산암 마름돌을 사용했고, 나
간직해온 수도원은 이를 품은 구시가지 일대와 함께 유
산소량에 몸이 반응하는 건지 가슴이 콩닥거린다.
오른쪽 ¶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의 내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에 있는 아레키파 대성당.
“도시 건물 외벽은 대부분 화산암으로 마감했어 요. 하얀 도시가 된 건 그 때문이죠.” 검고 구멍이 숭숭
머지는 벽돌과 점토, 나뭇가지와 짚을 사용했다. 이 같은
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돼 있다. 지금도 지진과 붕괴,
옛 건축은 도시의 주요 명소 중 하나인 산타 카탈리나 수
복구 그리고 일상으로의 회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거
도원(Monasterio de Santa Catalina)에서 만날 수 있다.
부할 수 없는, 이 도시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왼쪽 ¶ 아직까지 페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낡은 폭스바겐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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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수호하고 있는 화산 미스티. Lonely Planet Magazine Korea 101
콜카 계곡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새 콘돌을 보려고 전망대 크루스 델 콘도르에 모여 있는 사람들.
Cañon del Colca 콜카 계곡
해발 3,800m
안데스의 초원을 가로지르다
카 계곡을 ‘운명의 산’으로 낙점했을 것이라고 장담하다
하늘에서 본 광대한 계곡은, 혼자 남겨진다면 지구 상
가 눈앞의 풍경을 보는 순간 ‘아차’ 한다. 험준하기론 둘
에서 가장 외롭고 무서운 곳일 것 같았다. 그런 계곡에
째가라면 서럽겠지만 이곳에 인간의 흔적이 있기 때문
도 사람이 산다. 버스를 타고 아레키파 시티에서 북서
이다. 계곡이 가까워지자 정갈한 계단식 경작지가 끝도
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떨어진 콜카 계곡으로 향한다.
없이 펼쳐진다. ‘잉카 테라스(Inca Terrace)’라고 부르는
가장 먼저 고도를 확인한다. 아레키파에서 별다른 고산
이 경작지는 사실 잉카 시대 이전인 프레 잉카(Pre-Inca)
병 증상을 느끼지 못한 탓에 두려움 없이 길에 오른다.
때부터 존재했다(이뿐 아니라 잉카 시대의 업적으로 알
이때까지는 몰랐다. 해발 3,800미터의 콜카 계곡에 닿
려진 상당 부분이 프레 잉카 문화로 밝혀졌다). 지나온
으려면 해발 5,000미터의 고지대를 반드시 거쳐야 한
황량한 고원에 비해 한결 색이 다채로운 계곡이 나타나
다는 것을.
면 어김없이 테라스가 따라온다. “테라스의 기능은 세
버스의 창밖으로 스쳐가는 도시 풍경은 어느새 드
가지예요. 80퍼센트는 농지, 10퍼센트는 산사태 방지
문드문한 상점가로, 허물어진 담만 횅댕그렁하게 남은
그리고 나머지 10퍼센트는 정원 같은 미적 기능을 하지
들판으로 바뀌더니 그조차 곧 사라져버린다. 도로의 양
요.” 사르돈 바스케스가 설명해준다. 잉카 테라스가 파
옆으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야생의 초원이 펼쳐진다. 초
노라마로 펼쳐지는 계곡 가장자리에 서 있던 그가 흥미
원이라지만 조금도 푸르지 않다. 삐죽삐죽 솟은 풀, 지
로운 걸 보여준다며 일행을 계곡 반대편으로 데려간다.
천에 널린 선인장조차 칙칙한 사막색을 띤 채, 메마르고
“저기 높이 있는 붉은색 구멍 보이나요?” 험준한 바위
건조한 고원에서 억척스럽게 자라고 있다. 짧은 건 잔디
언덕 위를 가리키는 그의 손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정
뭉치, 긴 건 갈대 같은 모습으로 지천에 널려 있는 이 풀
말 구멍이 보인다. “프레 잉카 시대의 무덤이에요. 저 위
은 하라바 이추(Jarava Ichu)다. 보통 ‘이추’라고 부르는
쪽에도 구멍이 있지만 붉은색 칠은 없죠? 붉은색은 음
이 식물은 페루를 포함한 안데스고원 전역에 뿌리내리
악가의 무덤이지요.” 하늘의 위대함을 누구보다 절실하
고 있다. “알파카(Alpaca), 야마(Llama), 비쿠냐(Vicuña)
게 알았을 옛 안데스 인은 죽어서도 하늘에 조금 더 가
가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이추지요.” 사르돈 바스케스의
까이 닿으려고 이처럼 높은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리
말대로 이추가 점점 풍성해지는 지대에 이르자 멀리 점
고 구하기도 힘든 붉은색 염료로 음악가의 무덤에 경의
점이 흩어진 동물의 움직임이 보인다. 비쿠냐다! 남아메
를 표했다.
리카에 서식하는 야마의 일종인 비쿠냐는 엄청나게 부
계곡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깊이가 그랜
드러운 털 때문에 밀렵꾼의 표적이 되곤 한다고. “비쿠
드캐니언의 2배에 달하는 콜카 계곡의 전망대 크루스
냐 털은 1킬로그램에 250달러를 호가하지만 보호종이
델 콘도르(Cruz del Condor)로 향한다. 그곳에서 콘돌을
라 주로 암시장에서 거래됩니다. 비쿠냐 털로 만든 스카
볼 수 있다. 안데스산맥에 서식하는 콘돌은 날개 길이
프는 600달러에서 1,000달러 정도 하죠.” 그의 설명처
가 3미터에 달하고, 해발 5,000미터에 둥지를 틀며 계곡
럼 밀렵이 성행해 비쿠냐는 현재 약 6,000마리밖에 남
을 수직으로 하강하거나 날아올라 감탄을 자아내는 새
지 않아 멸종 위기에 처했다. 비쿠냐 보호 구역에 들어
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해요. 콘돌은 쉽게 모습을
선 버스는 겁도 없이 도로를 가로지르는 비쿠냐 무리를
드러내지 않아요.” 마치 콘돌이 바로 옆에서 엿듣기라
피해 다시 계곡을 향해 달린다. 창밖 풍광은 놀랍도록
도 하듯 사르돈 바스케스는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그렇
시시각각 바뀌어 좀처럼 잠을 청할 수가 없다. 눈을 감
게 1시간도 넘게 숨죽여 기다렸건만 콘돌은 끝내 모습
는 순간 다시 못 볼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다.
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도 섭섭하진 않다. 여긴 안데 스고, 대자연이 인간의 뜻을 헤아릴 수 없는 게 섭리니
고원 너머의 계곡에는
까. 같은 연유로 이곳 풍경이 제아무리 경이로울지라도
피터 잭슨 감독이 남미 출신이었다면 두말할 것 없이 콜
나는 희박한 산소에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102 Lonely Planet Magazine Korea
Lonely Planet Magazine Korea 103
티티카카는 면적이 8,372km2에 달하는 남아메리카 최대의 담수호다.
호수에 떠 있는 우로스 섬. 왼쪽 ¶ 수공예품을 파는 우로스 여인. 오른쪽 ¶ 섬의 모든 건물은 토토라로 만들었다.
아만타니 역시 건조한 고원지대여서
Lago Titicaca
페인어와 함께 쓴다. 섬에는 촌락이 10개 있고, 약 3,000
티티카카 호수
것. 어깨에 화려한 직물을 얹은 이들이 한눈에 봐도 대표
해발 3,812m
대표와 투표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마을 사람의 모임인 임을 알 수 있다. 손에 든 채찍 비슷한 도구는 권위를 상
주로 선인장류의 식물이 자란다.
징한다. 가스와 주방 도구를 일렬로 늘어놓은 채 끝나지
가운데 ¶ 직조 기술이 뛰어난 아만타니 여성. 왼쪽 ¶ 마을에서 회의 중인 아만타니 남성들.
호수 위의 삶
라 반드시 기다란 말뚝을 박아줘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않을 것 같은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엔 재미있지
페루에는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한번 가고 싶어 하
페루에서 잠들어서 볼리비아에서 일어난다고요.”
만 이들은 자못 진지하다. 21세기엔 당연히 있어야 할 모
는 마추픽추가 있는데도, 난 꼭 이 호수에 가보고 싶었
지금 우로스는 가이드도 인정하듯 상업화되었고, 이
든 시설이 이곳에선 그리 당연하지 않은 듯하다. 지금도
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호수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지
곳 우루(Uru) 족은 자신의 언어조차 잊은 지 오래다. 하
밤이면 촛불을 켜고 생활하는 일이 놀랍지 않고, 주요 산
만, “티티카카” 하고 발음할 때 나는 어딘가 맑고 청쾌
지만 프레 잉카 시대부터 3주마다 섬의 일부를 교체해야
업인 농업 역시 온전히 사람의 힘으로만 이뤄진다.
한 느낌이 좋았다. 그뿐이다. 티티카카 호수와 맞닿은 도시는 푸노(Puno)지만,
세계 각 도시의 거리가 적힌 타킬레 섬 광장의 푯말. 오른쪽 ¶ 타킬레 섬의 남성은 뜨개질이 주특기다. 왼쪽 ¶ 예쁜 털실 방울을 단 양.
104 Lonely Planet Magazine Korea
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지금 이 자리는 각 촌락의
하는 번거로운 방식을 택한 이들이 설사 관광객의 돈을
모두 광장에 모인 탓인지 텅 빈 거리를 지나 섬에서
노리고 삶을 지속한다 한들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오히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오른다. 언덕을 따라 이어지는 밭은
호수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공항이 위치한 도시 훌리아
려 이렇게라도 살아줘서 고맙다고 다독여줘야 하지 않
남해의 어디쯤을, 얼기설기 돌을 쌓아 만든 담은 제주를
카(Juliaca)와 푸노의 중간쯤에 자리한 높은 지대가 좋다.
을까? 나와 같은 마음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우로스 섬을
떠올린다. 왠지 익숙한 풍경 너머로 드넓고 푸른 바다,
푸노 도심에 들어서는 순간 티티카카는 더 이상 호수로
격려할 수 있다. 10솔의 요금을 내고 토토라로 만든 전통
아니 호수가 펼쳐진다.
느껴지지 않을 만큼 광활하기 때문이다. 보통 취재지가
배에 올라 학교가 있는 근처 섬을 돌아보는 짧은 호수 투
또다시 배를 타고 좀 더 남쪽에 위치한 타킬레 섬으
정해지면 사전에 많은 자료를 찾아보게 마련인데, 이번
어를 즐길 수도 있고, 이곳 여성의 주특기인 자수 물건이
로 간다. 타킬레 섬에선 육안으로 볼리비아 땅이 보인다.
엔 고집스럽게도 사진만큼은 절대 보지 않았다. 누구의
나 공예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어지간히
“저기 보이는 곳이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Copacabana)
시선도 편견도 담기지 않는 나만의 순수한 호수를 만나
뻔뻔하지 않고선 빈손으로 섬을 떠나기 쉽지 않을 만큼
예요. 유명한 휴양도시죠. 브라질보다 훨씬 먼저 그 이름
고 싶었다. 그렇게 멀찍이서 바라본 호수는 예상대로 무
이곳 사람은 호객 행위에 능숙하다. 먼 옛날, 스스로를
을 썼다는 걸 알아두세요!” 코를 찡끗하는 특유의 웃음을
척이나 아름답다. 호수 가장자리의 나지막한 구릉지대,
보호하기 위해 쉽게 이동 가능한 고된 터전을 선택한 사
지으며 카베사스가 말한다. 그에게 타킬레와 아만타니의
그 위에 촘촘히 들어선 레고 블록 같은 도시, 푸른 하늘
람들. 토토라로 닦아 하얀 치아가 유독 돋보이는 우루 족
가장 다른 점을 물으니 대답 대신 저 멀리 손짓을 한다. 그
언저리에 모여 있는 구름 그리고 하늘 색을 똑같이 지닌
의 미소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는 모른다. 아직도 티티
의 손이 향하는 곳엔 막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호수. 미리 상상하지 않았기에 풍경의 면면이 뚜렷하게
카카 호수엔 40여 개의 섬이 동동 떠서 고단하지만 운치
걸어가고 있다. 정답은 바로 남자. 지금까지 여정에서 전
가슴속에 아로새겨진다.
있는 선조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통 복장을 한 인디오 여성은 많이 봤지만, 남성은 전무했
티티카카 호수는 우로스(Uros)라는 독특한 섬으로
다. 아만타니 섬에서조차 남성의 복장엔 특징이 없었다.
도 유명하다. 언뜻 미스터 빈을 닮은 가이드 안토니오 카
진짜 섬을 찾아서
하지만 타킬레 섬은 확실히 다르다. 이곳 남성은 어린아이
베사스(Antonio Cabezas)를 따라 우로스 섬으로 향하는
티티카카 호수는 반 정도가 페루에, 나머지 반이 볼리
부터 백발 할아버지까지 모두 하얀 윗도리와 조끼, 검은색
배에 오른다. “우로스 섬은 인간이 만든 섬입니다. 호수
비아에 속한다. 이 중 페루령에 각자의 고유한 문화를
바지를 입고 머리엔 화려한 자수 고깔을 쓰고 있다. 이게
지천에 널린 토토라(totora)를 엮어서 만든 인공 섬이죠.”
지키며 살아가는 2개 섬 아만타니(Amantani)와 타킬레
다가 아니다. 길을 걷다가 곳곳에 앉아 있는 성인 남성을
그가 우로스와 티티카카 호수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
(Taquile)가 있다. 이 둘이 특별한 건 서로 보일 만큼 가
만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손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
놓는 동안 배는 토토라로 만든 일종의 톨게이트 옆을 지
까운 거리에 있지만 사는 방식과 문화가 상당히 다르다
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뜨개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갖
난다. 입장료를 받는 곳이다. 예전에 우로스 섬을 다룬
는 점이다.
가지 색의 실을 목에 건 채 우리를 보고 웃었지만 손은 기 계보다 정확하게 화려한 무늬 모자를 뜨고 있다. “봤어요?
다큐멘터리에서 섬이 상업화됐다는 내용을 보았지만 지
먼저 방문한 아만타니 섬. 배에서 내려 섬으로 들어
금은 이 광경이 그저 재미있기만 하다. 섬에 도착해 첫
서려는 데 정박장 근처에 100여 명의 사람이 널찍하게
뜨개질하는 남자는 타킬레 섬의 명물이죠.” 카베사스가 말
발을 내디딘다. 그리 생소한 느낌은 아니다. 아주 두텁게
둘러앉아 있다. 일렬로 서거나 앉은 남성의 중절모가 재
하는 전통 직조 방식은 유네스코가 등재한 세계무형유산
깔아놓은 멍석 위를 걷는 듯하달까. 이곳은 땅이며, 집이
미있는 라인을 만들어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이드 카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오직 남자들에게만 전수된다.
며, 배며, 모든 것을 호수 지천에 널린 토토라 줄기로 만
베사스에게 물어본다. “정부에서 섬에 선물로 가스와 주
이 놀라운 볼거리 덕에 요즘은 관광업이 주산업인 농업을
들었다. 역시 토토라 줄기로 만든 벤치에 앉아 섬 만드는
방용품을 보내왔대요. 지금 그걸 어떻게 나누고 사용할
넘어서고 있다고. 하지만 섬은 여전히 한가롭고 조용하다.
과정에 대해 듣는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맞았
지 회의하는 중이라네요.” 카베사스가 물어물어 상황을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작은 식당의 야외 벤치에 앉아 섬의
는지 이곳 주민 호엘 키스페(Joel Quispe)는 능숙하게 농
설명해준다.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메리칸 인디언의
별미인 송어구이를 맛보며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여기는
담까지 섞어가며 설명을 마무리한다. “둥둥 떠 있는 섬이
언어이자 잉카제국의 언어인 케추아(Quechua) 어를 스
바다가 아니고 바다만큼 깊고 푸른 호수라는 것을.
Lonely Planet Magazine Korea 105
왼쪽부터 ¶ 아침 식사를 즐기는 승객으로 가득한 비스타돔 열차의 내부. 붉은 기와지붕으로 가득한 쿠스코 시내의 모습. 가운데
Cuzco 쿠스코
산 프란시스코 광장(Plaza San Francisco)과 성당이 자리한다.
해발 3,360m
잃어버린 도시를 향해 달리는 기차
기대에 잔뜩 부푼 여행자를 태운 비스타돔(Vistadome)
남미의 강렬한 햇살이 습기 하나 없는 공기를 뚫고 내려
열차가 출발한다. 양옆은 물론 천장까지 창을 내어 눈
와 붉은 기와지붕에 부딪힌다. 나는 지금 잉카제국의 수
부신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열차는 웅장한 협곡을 따
도 쿠스코에 있다. 13세기 초부터 16세기 말까지 남아
라 달려간다. 친절한 승무원이 내오는 아침 식사를 마치
메리카의 안데스산맥을 주름잡던 잉카 왕조는 쿠스코
고,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창밖을 응시한다. 열차는 콜카
에 수도를 세우고 지금의 페루를 포함해 에콰도르, 볼리
계곡에선 상상도 할 수 없던 푸르른 정글을 뚫고 내달
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그리고 콜롬비아 일부까지 장악
린다. 꼭대기에 하얀 눈이 덮인 베로니카(Beronica) 산
했다. 오늘날 잉카 왕조가 이토록 신비롭게 다가오는 이
을 지나고, 우르밤바(Urbamba) 강이 흐르는 신성한 계
유는 척박한 안데스산맥을 따라 번성한 왕국이기도 하
곡을 따라간다. 쿠스케뇨(cuzqueño, 쿠스코 사람)인 하
고, 그 역사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오직 구전으로만
비에르 베라(Javier Vera)는 우리를 마추픽추의 신비로
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당시엔 문자를 사용하는 것이
안내할 생각에 한껏 들뜬 듯하다. “페루 지질을 연구하
신의 노여움을 산다고 여겼다).
던 안토니오라는 이름의 학자가 있었어요. 페루의 자연
지금이야 비행기나 열차를 타고 어렵지 않게 이동
이 어떻냐는 물음에 그는 앞에 있던 종이를 손으로 구긴
할 수 있지만, 옛날엔 도시 간 왕래가 무척이나 어려웠
뒤, 페루는 이 구겨진 종이와 같다고 했죠. 그만큼 복잡
을 것이다. 덕분에 페루의 각 도시는 한나라에 속해도
한 자연을 모두 함축하고 있다는 의미였어요.” 고작 10
놀라우리만치 뚜렷하게 다른 분위기를 지닌다. 쿠스코
여 일을 보낸 나도 하루에 사계절을 경험하게 하는 페루
에는 뭐랄까, 유럽의 구시가에서 느껴지는 낡고 고귀한
의 날씨, 복잡 미묘한 풍경을 묘사하기조차 벅차다. 하
분위기가 흐른다. 거기에 잉카의 수도가 내뿜는 오라가
물며 십수 년을 연구해온 그는 오죽할까. 베라의 이야기
더해져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가 공기 중에 녹아 있다.
에 깊이 공감하는 사이 열차가 속도를 늦추더니 피스카
물론 산소는 역시나 희박하지만 말이다. 도시엔 잉카 시대의 태양의 신전 쿠리칸차(Qurikan-
쿠초(Piscakucho) 역에 잠시 머문다. 이곳은 옛 잉카 인 의 길을 따라 마추픽추까지 걸어가는 잉카 트레일(Inca
cha)를 기반 삼아 스페인 통치 시대에 세운 산토 도밍고
Trail)의 시작점이다. 멀리 텐트까지 짐을 한가득 짊어진
교회(Iglesia de Santo Domingo), 프레 잉카 시대의 도시
야심찬 여행자의 행렬이 보인다. 포터와 요리사까지 한
성벽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미스터리한 기법으로 축조
조를 이루는 이들은 앞으로 3박 4일 동안 산 넘고 물 건
한 삭사이와만(Saksaywaman) 등 시선을 압도하는 잉카
너 마추픽추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이 경험할 감동은 열
유적이 여럿 있다. 하지만 쿠스코에 왔다면 영영 잃어버
차 안의 우리와 비할 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딱히 부
릴 뻔한 고대 도시 마추픽추를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럽지도 않은 이유는 여태껏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는
쿠스코 외곽의 포로이(Poroy). 마추픽추를 마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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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병 증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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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곳에서 풀을 뜯는 야마. 위 ¶ 온천 도시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는 마추픽추로 가는 거점 도시다.
마추픽추는 위치만큼이나 신비로운 축조 방법으로 유명하다. 돌을 쪼개서 블록처럼 쌓아 만들었는데, 가장 큰 돌의 높이는 8m가 넘는다.
Machu Picchu
어서 많이 찾지만, 또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운치 있는 곳
러 구전과 정황 증거로 볼 때, 마추픽추는 첫 번째 잉
이곳 주변 사람은 마추픽추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몇
친척이 한두 명쯤 있죠. 저 역시 미국으로 이민 갈 준비
이 마추픽추죠. 전 살짝 흐린 날을 좋아해요.” 비가 오면
카 통치자 만코 카팍(Manco Cápac)이 태어난 탐푸 톡
몇은 이곳에 살며 농사를 지으려 시도한 흔적도 발견된
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서 페루를 떠나는 사
살짝 낀 안개가 신비로움을 더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
코(Tampu Tocco)라고 알려진 곳이며, 그가 잉카제국을
다. 하지만 우물이 없고, 옛 수로마저 세월이 흘러 제 기
람들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됐죠. 그 기사가 가슴에 꽂혀
마추픽추
다. 지금까지 봐온 것보다 훨씬 비옥하고 정돈된 잉카
세운 후에 자신의 고향에 창문이 3개 달린 신전을 세우
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여서 그들은 다시 강 주변에 있
그길로 이민을 포기하고 이렇게 쿠스코에 남아 있는 겁
테라스. 그 사이로 강풍에 지붕이 날아가버린 듯한 돌집
라고 지시했다(창문이 3개 달린 신전은 마추픽추의 핵
는 옛 터전으로 돌아갔다.
니다.” 그는 아주 작고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인다. “제
이 줄지어 있다. 마추픽추 안에 들어오니, 멀리서 볼 때
심 장소 중 하나다). 잉카제국의 세력이 점점 커지면서
그렇게 방치된 수수께끼의 도시는 1911년 호기심
가 페루에 남아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그의 마지막 한
해발 2,430m
잉카의 신비로 안내하는 창
2,430미터에 자리한다. 게다가 건조하고 일교차가 큰
보다 훨씬 현실감이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 역사 문서로
쿠스코에도 여러 신전과 왕궁을 세웠고, 그렇게 쓸모가
많은 미국인 역사가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고, 쿠스코
마디가 오래도록 가슴을 울린다. 사실 그의 감사를 받
열차는 3시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마추픽추로 향하는
대부분 고산지대와 달리 열대 산악림에 있는 이곳은 공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마추픽추를 왜 이런 곳에 지었느
없어진 마추픽추는 수백 년 동안 정글에 덮여버렸을 거
와 페루는 단숨에 세계 최고의 여행지 반열에 오른다.
을 사람은 우리가 아닐 것이다. 놀랍도록 뛰어난 지혜
거점 도시 아구아스 칼리엔테스(Aguas Calientes)에 도
기의 상쾌함부터 다르다. 수세기 전의 사람도 내 느낌과
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다양하다.
라는 설이다. 베라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한
올해까지 마추픽추를 다녀간 방문객의 수는 100만 명
와 기술로 21세기 세계인을 사로잡은 그의 선조여야
착한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아찔한 절벽길을 구불구불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음, 2001년부터 이 일을
잉카 족이 스페인 정복자를 피해 지었다는 설도
눈에 봐도 이곳 토양은 비옥하고, 식물군이 다양해요.
에 달한다. 방문객으로 유적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페
마땅하다.
지나야 비로소 마추픽추에 닿을 수 있다. 드디어 부푼
했으니 아마 100번은 넘을걸요.” 마추픽추에 몇 번이나
있고,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원주민이 아마존 야만족
게다가 옛 선조는 계곡물을 이곳까지 끌어 올리는 기술
루 정부가 하루 입장 인원을 3,000명 안팎으로 제한하
가슴을 안고 약 460년 동안 숨어 있던 산꼭대기의 옛
와봤느냐는 내 질문에 대한 베라의 답이다. 그에게 지겨
을 피해 지었다는 설도 있다. 마추픽추를 세상에 알린
까지 갖췄죠. 그저 풍족한 토양에서 농사를 지으려 여
고 있을 정도다. 쿠스코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베라
도시에 들어선다. 산꼭대기라 상당히 높을 거라고 생각
운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 기
미국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저
기에 터전을 잡았을지도 모르는 겁니다.” 그의 말에도
가 말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페루는 자국민조차 불안
했던 것과 달리 마추픽추는 쿠스코보다 훨씬 낮은 해발
막히네요. 운이 좋은데요? 보통 5월이나 9월이 비가 적
서 〈잉카의 땅(Inca Land)〉에서 밝힌 의견은 이렇다. 여
일리가 있다. 실제 빙엄이 마추픽추를 발견하기 전에도
해하던 나라였어요. 지금도 집집마다 외국으로 이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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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아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조지영은 〈론리플래 닛 매거진 코리아〉의 사진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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