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PERU
Wonder Life in Highland
안데스 산맥의 품에 안긴 고산 도시에 올랐다. 콜카 협곡과 티티카카 호수, 쿠스코와 마추픽추에서 잉카의 정신을 이어가는 페루인들의 삶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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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카 협곡, 고산지 사투기 “이제 본격적으로 고산지대에 들어서게 됩니다. 해발 고도 3000미터가 넘는 곳에선
게 물었다. 4910미터. 파토팜파 패스Patopampa Pass에서 그가 나직이 뱉은 그 아찔
반드시 명심하세요. 갓 걸음마 뗀 아기처럼 걸을 것. 물을 많이 마실 것. 초콜릿이나 사
한 숫자. 아레키파에서 콜카 협곡으로 가는 여행자는 애쓰지 않아도 몽블랑Mt. Blanc
탕을 자주 먹을 것.”
이나 로키 마운틴Mt. Rocky의 최고봉보다 높은 고도를 정복할 수 있다.
페루 남부 도시 아레키파Arequipa에서 콜카 협곡Colca Canyon으로 향하는 길. 가
고산병의 고통을 감수하는 이에게 안데스 산맥Andes Mts.은 경이로운 풍광을 선사한
이드 조지가 미리 사둔 코카 잎을 내놓으며 신신당부를 거듭한다. 해발 고도 2300미터
다. 5822미터의 미스티 마운틴Mt. Misti, 6075미터의 차찬니 마운틴Mont. Chachani과
에 위치한 아레키파에서도 비아그라 타령을 하며 엄살떨었는데(비아그라가 혈관을 확
같은 어마어마한 고봉. 그 아래 과자 부스러기처럼 나뒹구는 싱싱한 화산석들. 한라산
장시켜 인체에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한다는 설이 있다). 3800이라는 숫자는 실감도,
(해발 1974미터)을 3개쯤 쌓은 높이의 산속엔 신비로운 생명도 산다. 비쿠냐Vicuña. 산
엄두도 안 난다. 코카 잎을 질겅질겅 씹으며 초조함을 달랬다.
소가 산 아래의 절반밖에 없는 3000~5000미터 고산지대에서 캥거루처럼 뛰어다니
시내를 빠져나온 차는 곧장 산길로 들어선다. 듬성듬성 보이던 초록색마저 사라지고
는 야생 라마다. 얼핏 사슴처럼 보이는 비쿠냐는 국제자연보호연맹이 지정한 멸종위기
황야가 지속된다. 그 척박한 땅에도 집이 있다. 벽돌을 대충 쌓아 시멘트를 바른 후 페
종이다. 1974년엔 개체수가 6000마리까지 줄었다가 지금은 1만 2000여 마리로 늘었
인트로 쓱쓱 칠한 게 전부인 몇 평짜리 공간. 그런 집 앞에서 도시인들의 집은 얼마나
다. 비쿠냐가 멸종 직전까지 간 건 ‘안데스의 황금’으로 불리는 털 때문. 비쿠냐의 털은
호들갑스러운가? 지구에 이렇게까지 다른 형태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지구에서 가장 가는 동물 섬유다. 제품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근 독일의 의류 브
아레키파에서 콜카까진 155킬로미터에 불과하다. 그런데 4시간이나 달려야 한다. 낡은
랜드 팔케가 내놓은 비쿠냐 양말 한 켤레의 값은 1백25만원, 비쿠냐 털로 만든 풀오버
미니버스는 산자락의 비포장 도로에서 경운기처럼 탈탈거린다. 차라리 그래서 다행이
스웨터는 3천4백50만원이다. 섬유 전문가들은 감촉, 무게, 윤기, 밀도, 탄력, 보온성에
다. 실조증, 의식 저하, 혼수상태 같은 봉변을 만나지만 않을 수 있다면 8시간도 괜찮다.
서 비쿠냐의 털을 능가하는 소재가 없다고 평한다. 2년에 한 번 정부의 허가 아래서만
고도 상승은 몸이 귀신처럼 알아챈다. 가장 먼저 숨 쉬기가 답답해진다. 누군가 숨통
털의 채집이 가능하기 때문에 희소성도 높다. 제 엉덩이 털 한 줌이 10원인지 1백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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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난 구멍에 코르크 마개를 박으면 이런 기분일까? 입은 마르고 머리는 깨질 것 같
인지 모르는 저 순진한 생물은 우리의 눈앞에서 태연자약 풀만 뜯었다. 우아했다. 털은
다. 제일 괴로운 건 방광. 고산병 예방을 위해 먹은 약이 이뇨제였단 사실을 까먹고
금사처럼 빛났고 하얀 가슴팍은 스칼렛 요한슨처럼 토실했다. 아, 저 보드랍고 여린 목 1 콜카 협곡의 날카로운 산세. 저 주름 어딘가에 콘도르가 숨어 있다. 2 콜카로 가는 길에 만난 알파카들. 초원마다 방목된 알파카가 한가로이 노닌다. 3 해발 4000미터 고산지대에서 개 한 마리와 함께 사는 알파카 목동. 4 5000미터 이상 고봉이 화산 활동을 할 때 내뱉은 흔적들. 이 화산석을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온단다.
1시간 동안 물을 1.5리터나 마셨다. 다행히 휴게소가 나타나서 방뇨의 참사는 면했다. 코카차 한 잔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증세는 점점 더 심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코카 나무를 통째로 씹어 먹고 싶었다. “지금 고도가 몇 미터예요?” 짜증을 억누르고 조지에 THE TRAVELLER JA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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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미를 끌어안을 수만 있다면 고산병 할아버지가 와도 참을 수 있을텐데.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에서 최선을 다해 승객의 멀미를 유도하던 버스가 드디어 치바이 4
Chivay에 닿았다. 해발 고도 3600미터에 자리한 안데스의 작은 시골 마을이다. 콜카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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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치바이의 시장에서 감자를 팔던 페루 여인. 2 페루에서는 감자와 옥수수, 콩 같은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먹어봐야 한다. 3 코카 잎과 민트를 비롯해 각종 허브를 으깨 넣고 만든 고산병 특효차. 4 장사가 잘 안 되자 일찌감치 파장하고 돌아가는 치바이의 장돌뱅이. 5 15세기 잉카 제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페루의 식량고가 되어준 계단식 논. 페루에선 ‘잉카 테라스’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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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 여행자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여장을 푼다. 이런 척박한 오지에도 식당과 호텔이
자는 줌도 안 되는 카메라를 전장의 M16 소총처럼 품에 안고 난간 최전선에서 콘도르
들어서 있다. 맥주도 못 마시고 샤워도 못하는 처지였지만-없던 고산병도 생기는 행위
를 기다린다. 그 비장한 뒤통수에 감명받아서 우리도 포기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콘
다-먹을 것과 쉴 잠자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송했다.
도르는 30분이 지나도 코빼기도 안 비친다. 기다림에 슬슬 지쳐갈 때쯤 초조하게 목을
다음 날 아침. 콜카 협곡으로 가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빼고 있던 조지가 비장한 얼굴로 다가왔다. “저쪽을 주시해요. 콘도르가 나타났어요.”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10킬로그램이나 되는 육중한 몸뚱이로 4000미터 상
극적으로 나타난 콘도르는, 환호하기엔 너무 먼 곳에서 비상하고 있었다. 행여 이쪽으
공을 나는 새, 콘도르Condor를 보기 위해서다. 안데스 산맥의 바위 절벽에 둥지를 틀
로 날아오진 않을까 목을 뺐지만 뭐가 마뜩찮았는지 협곡의 주름 사이로 곧 사라져버
고 썩은 고기나 병든 양을 잡아먹는 이 외로운 새 역시 전 세계에 40여 마리밖에 남지
렸다. 고작 이거나 보자고 이 고생을 했나? 부아가 나서 조지에게 심통을 부렸다. “도대
않은 멸종위기종이다. 콜카 협곡의 크루즈 델 콘도르Cruz del Condor는 남미에서 콘
체 왜 저 못생기고 뚱뚱한 새에 열광하는 거예요?” 지혜의 요정 간달프 같은 얼굴로 그
도르를 그나마 자주 볼 수 있는 전망대. 콘도르가 먹이를 찾으러 슬슬 나오는 오전 8시
가 나지막이 말했다. “잉카인들은 콘도르를 영웅이 죽어 환생한 새로 여깁니다. 그 영
전에 가면 조우 확률이 훨씬 높아진단다. 전망 좋은 마루마다 참견꾼처럼 멈춰서 딴짓
웅이 죽어서도 자기들을 지켜준다고 믿고 있죠. 신성한 존재예요. 그리고 콘도르라는
을 한 우리는 9시가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크루즈 델 콘도르엔 먼저 온 인파로 가득
말은 잉카인들 사이에서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했다. 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게다가 검버섯 핀 살가죽 위에 눈, 코, 입
조지의 입에서 ‘프리덤’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콧등이 괜시리 시큰했다. 300년 동안 스
이 제멋대로 붙어 있는 콘도르는 오매불망 고대할 만큼 아름답지도 않은데. 조지가 명
페인에게 영혼까지 빼앗긴 잉카인에게 콘도르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았다면 대머리에
당이라고 알려준, 흘기기만 해도 오금이 찌릿한 절벽 가장자리로 향했다. 난간에 몸을
못생겼다고 잔뜩 흉보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텐데. 저 콘도르가 잉카 독립을 위해 투쟁
최대한 붙이고 주인공을 기다린다. 모기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고요한 협곡. 정수리를
하다가 스페인군에게 사지가 찢겨 처참하게 처형된 영웅 콘도르칸키의 환생일지도 모
뚫을 기세로 내리쬐는 직광에 절반은 중도 포기하고 걸음을 돌린다. 그 와중에 어떤 남
른다. 정수리가 타오를 것 같았지만 콘도르의 다음 비상을 기다려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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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호수 위에 사는 사람들 우로스 섬Uros Is.에 사는 조엘과 아이다 부부의 하루는 매일 새벽에 시작된다. 물고기
1968년, 호수에서 잉카의 유적을 탐사하던 탐험가 자크이브 쿠스토가 티티카카의 존
끝난 후엔 여인들이 옷깃을 잡아끈다. 움막처럼 생긴 집 안을 보여주겠단다. 아, 우린
은데 손을 잡거나 팁을 위해 가짜로 웃어 보이지 않는다. 토토라로 엮은 배 발사Balsa
를 잡으러 가는 날엔 새벽 2시, 그렇지 않은 날엔 4시에 눈을 뜬다. 배는 동력이 좋은 편
재를 세계에 알렸을 때 조엘이 사는 우로스 섬도 함께 베일을 벗었다. 토토라totora라
좀 특별한 ‘아미고’인가? 기꺼이 초대에 응한다. 집 안은 생각보다 말끔하다. 침대와 탁
위에서 8백원과 사탕 1개를 받고 행복한 얼굴로 한 곡조 더 뽑아준 리디아를 보며 느꼈
이 아니라 반경 2킬로미터 이내를 벗어나진 못한다. 대여섯 시간 동안 조엘은 며칠 치
는 갈대를 쌓고 엮어 만든 인공 섬 우로스는 지금 티티카카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상, 작은 TV가 세간의 전부. 벽에 걸어놓은 직물 장식에 정신이 팔려 있는데 여자가 갑
다. 해 질 녘, 밥짓느라 핀 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바람에 춤추는 토토라, 오렌지빛
식량을 정성스럽게 수렵한다. 물고기를 잡지 않는 날엔 새를 사냥한다. 11시쯤 집으로
찾는 섬. 약 73개의 크고 작은 갈대 섬이 촌락을 이루고 있다. 섬 하나엔 4~6가구가 모
자기 이름을 묻는다. 아, 내 이름까지 기억해주려는 건가? 감격에 겨워 스펠링까지 적
하늘이 어우러진 티티카카 호수 위에서 나는 우로스를 탓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와서 점심을 먹은 후, 둘은 관광객들에게 팔 수공예품을 만든다. 섬 주변에서 갈대
여 산다. 학교, 식당 등 공공을 위한 섬도 있다. 2900여 명, 800여 가구가 이 부유하는
어가며 알려줬다. 안타깝게도 감동은 오래가지 않는다. 약 10분 후, 그녀가 왜 내 이름
다음 날. 이번엔 좀 더 긴 항해(?)를 하기로 한다. 푸노에서 1시간가량 호수를 가르면 닿
를 채취해 집을 정비하거나 음식으로 저장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 오후 5시쯤, 그날 잡
갈대 덩어리 위에서 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작은 텃밭까지 가꾸며 평생을 보낸다, 고
을 물어봤는지 알게 됐다. “쥐인. 쥐인. 이리 와. 이것 좀 사. 쥐인! 싸게 줄게!”
는 낙도, 아만타니Amantani와 타킬레Taquile가 오늘의 목적지. 오전 8시 30분. 보트
은 것으로 저녁을 지어 먹는다. 아이들과 시간을 좀 보내다가 다음 날을 위해 일찍 잠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30퍼센트가량의 우로스인들
그래도 아이들은 순수한 얼굴로 달려와 손을 잡고, 까르르 웃으며 매달린다. 양 볼이 빠
가 아만타니에 닿았다. 설렘을 품고 내렸는데 마을 어귀에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 앉
자리에 든다. 족히 보름은 안 씻었을 게 분명한 얼굴로 활짝 웃으며 자기 일상을 말하
은 사는 행세만 한다고 해요. 낮엔 섬으로 출근해 관광객을 받고 저녁엔 집이 있는 푸노
알갛게 튼 조엘의 딸 리디아가 노래를 불러준다고 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감격했다. 바
아 있다. 표정을 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공개 비난회라도 열렸나? 자초지종을 알
는 조엘을 보며 생각했다. 행복할까? ‘해피’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는지 통역된 말이 채
시로 돌아가는 거죠.” 가이드 안토니오의 귀띔에 모두 돈 떼인 사람의 표정을 짓는다.
람 잔잔한 호수 위에서 어린 소녀가 고 조그만 입술을 붙였다 뗐다 하며 불러주는 잉카
아보니 다행히 경사란다. 페루 정부가 푸노의 위상을 높인 아만타니 주민들을 격려하
닿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푸노Puno 같은 도시에서 사
티티카카에서 가장 능란한 상업가의 기질을 보이는 우로스 사람들은 우리의 상상만큼
의 노래라니. 낭만에 젖어 아련한 눈빛을 쏘고 있는데 단풍잎 같은 손바닥이 시야에 쑤
기 위해 가스 1통과 부엌 세트를 하사한 것. 눈앞의 풍경은 그걸 어떻게 나눠 가질지 의
는 것보단 훨씬 좋아요. 조용하고 평화롭거든요. 무엇보다 어머니 같은 티티카카 호수
순전한 인디오가 아니다.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받고 배를 태워주고 물건을 파는 일에
욱 들어온다. “쥐인! 솔레! 솔레!(돈 줘!)”
논하기 위해 모인 마을 사람들의 집회. 공짜 선물에 신난 아줌마, 저만 못 받을까 봐 노
Titicaca L.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니까요.”
밥줄이 달린 생활인이다. 그래서 응대에 매우 익숙한데, 우로스를 찾은 이라면 섬에 발
그렇다고 해서 우로스의 아이들에게 손가락질을 해야 할까? 하루에도 수십 팀씩 찾아
심초사한 아저씨, 마치 제가 주는 양 거드름 피우는 공무원의 표정을 뜯어보느라 시간
조엘과 만난 이곳, 티티카카는 해발 3825미터 고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
을 들이자마자 그걸 알 수 있다. 갈대 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우로스 사람들은 뭘
오는 관광객 행렬 속에서 우로스 사람들이 순결하길 바라는 심보가 더 세속적인 건 아
가는 줄 몰랐다. 더 있고 싶었지만 섬 저편에 있는 배를 타려면 길을 나서야한다.
다. 여행자들 사이에선 ‘하늘 호수’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길이 170킬로미터, 폭은 60킬
먹고 사는지 따위를 매우 능숙하게 브리핑하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갈대 섬 원주민과
닐까? 팁으로 2솔레(약 8백원)를 받아 쥔 아이들이 천진한 얼굴로 안녕, 배웅하고는 뒤
시작부터 언덕. 산책자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아만타니에서 가장 낮은 지대
로미터로 호수라기보단 바다에 가깝다. 잉카인들은 태초의 호수로 신성시 여긴다.
의 만남을 기대했던 여행자들은 이때부터 떨떠름한 얼굴을 숨기지 못한다. 브리핑이
돌아서 “아이 씨. 2솔레? 나랑 장난해?” 했다면 실망은 마땅하다. 아이들은 적어도 싫
의 높이는 티티카카의 고도, 즉 3825미터다. 20~30분가량 언덕을 오르다 보면 4000
청정한 골목. 들리는 소리라곤 발소리와 양 풀 뜯는 소리, 일행의 카메라 셔터 음, 그리
는 좌에서 우, 우에서 좌로 향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여자의 일이 된 거죠.” 그러니까 타
고 개미 소리만 하게 ‘솔레’ 나 ‘캔디’를 속삭이는 아이들 목소리뿐. 평화로운 정취에 취
킬레에선 울끈불끈한 힘줄이 드러난 팔뚝으로 1시간에 모자 하나쯤 거뜬하게 짜내는
해 하염없이 걷다 보면 길 곳곳에서 뜨개질하는 남자들을 만난다. 안토니오가 설명을
총각이 UFC 선수만큼이나 섹시한 남자인 거다.
곁들인다. “타킬레에선 오직 남자만 뜨개질을 합니다.” 왜지? 할 일이 없어서 그런가?
티티카카 호수에 사는 섬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여러 번, 여행자의 허를 찌른다. 어느 도
아니면. 고립된 지리 조건이 이들에게서 남성성을 앗아갔나?
시에서나 통용됐던 관념들이 이 섬들에선 편견이 된다. 나는 우로스의 조엘이 가난하
“그 반대예요. 타킬레 사람들은 뜨개질을 남성적인 행위라고 여깁니다. 산, 폭포와 같
기 때문에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아만타니와 타킬레의 할머니들이 입은 전통 복장은
은 수직적인 형상들은 남성성을, 대지나 호수와 같은 수평적인 형상들은 여성성을 의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조엘은 “행복하다.”고 했고 할머니는 “이것
미하거든요. 뜨개질은 위에서 아래로 실을 뜨는 행위이기 때문에 남자의 일, 베틀 짜기
만큼 편한 옷이 없다.”고 말했다. 그 대답 앞에서 내 알량한 질문들이 참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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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터를 훌쩍 넘는다. 어김없이 찾아온 심장 통증. 출산 임박한 산모처럼 라마즈 호흡을
알파카 실로 짠 수제 담요, 전망 좋은 방, 알록달록한 정원. 슬쩍 엿본 뒷마당엔 파라솔
하며 마을을 둘렀다. 아만타니는 잘 정돈된 슬로 시티 같다. 반듯한 벽을 가진 붉은 흙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베 짜는 엄마와 그 옆에서 장난감에 심취한 아기가 있었다. 아,
집과 계단식 논이 어우러진 풍경은 유럽의 교외 도시만큼이나 단정하다. 페루의 다른
아무도 모르는 고립된 섬에도 이렇게 어여쁜 일상이 있다.
도시들과 달리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꽤 품위가 있다. 사진을 찍어도 싱긋 웃어 보일
점심을 먹기 위해 옆 섬, 타킬레로 이동한다. 타킬레는 4000여 명이 10여 개의 부락을
뿐 ‘솔레’ 타령은 하지 않는다. “아만타니 섬 사람들은 티티카카에서도 비교적 경제적인
이루고 사는 아만타니보다 좀 더 작고, 낡고, 고요하다. 이 섬사람들은 21세기에도 잉카
여유가 있는 편이에요. 감자와 옥수수 농사가 잘돼거든요. 관광 수입으로 겨우 생활하
시대처럼 공동 생산, 공동 소비 체제로 산다. 교대로 일을 하고 수확물은 나눠 갖는다는
는 우로스와는 좀 다르죠.” 안토니오가 귀띔한다. 모험심이 좀 더 강한 여행자들은 아
뜻이다. 그래서 타킬레엔 저 혼자 부자인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없다.
만타니에서 홈스테이를 경험한다. 안토니오에게 민박집을 구경하고 싶다고 했더니 안
옥수수와 퀴노아로 만든 수프에 생선 구이로 차린 소박한 상을 비우고, 마을로 들어갔
달루시아의 예쁜 시골집 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집안에는 꽃 타일로 꾸민 소담한 부엌,
다. 고만고만한 집과 고만고만한 사람들. 자동차나 오토바이 같은 것을 전혀 볼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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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티티카카 호수 섬사람들의 일상.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아낙은 베를 짜고, 노인은 모자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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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페루에 있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컬러풀한 옷차림과 거리는 맑은 날씨만큼이나 기분을 돋운다. 5 우도만 한 타킬레 섬은 2~3시간면 한 바퀴 휘이 둘러볼 수 있다. 호수와 계단식 논이 어우러진 서정적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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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만타니 섬의 중심 광장. 구멍가게, 기념품점, 민박집 같은 곳이 몰려 있다. 7 깊고 큰 눈, 삼단 같은 머리, 붉은 치마. 아름다운 페루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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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루인들은 자신이 매력적인 피사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2 쿠스코의 매력은 좁고 긴 골목을 걸을 때 드러난다. 3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 시설이 좋은 건 몇 개월 전에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4 페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할머니다. 모자부터 구두까지 예쁘지 않은 것은 입지 않는다. 5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 정면에 보이는 건축물이 갈색 예수상을 만날 수 있는 대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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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아직도 아무도 모른다 여기는 쿠스코Cusco. 마추픽추Machu Picchu를 찾은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에 와
리를 지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거지요. 페루인들은 흥이 넘치는 민족이에요. 슬픔
있다. 가벼운 시티투어 중 들른 쿠스코 대성당Cusco Cathedral에서 흰 치마를 입은
에 매여 있기보단 노래를 부르고, 오늘 유쾌한 하루를 보내는 데 더 집중하며 살죠.” 서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인을 봤다. 300여 년 전 이 도시를 파괴시킨 침략자
울에 사는 페루 친구 라파엘이 어설프게 ‘한’ 같은 걸 운운하는 내게 해준 말이다.
들의 신은 이제 90퍼센트 이상의 페루인들이 숭배하는 신이 됐다. 잉카 제국의 수도였
역사를 빼고 쿠스코를 바라볼 때 이 도시는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던 쿠스코엔 이렇게 파괴의 잔재들이 넘친다. 침탈의 잔인한 흔적이 빈번히 발견되는
광장 한쪽에 있는 스타벅스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석양을 보면 누구라도 동의할 거라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교회와 성당이다. 쿠스코 시내 중심 광장에 위치한 산토도밍고
생각한다. 그날 밤, 젖은 눈으로 언덕 위에 가지런히 늘어선 붉은 콜로니얼 건축물을 감
교회Santo Domingo Church는 그중에서도 으뜸. 스페인군은 잉카 제국이 태양신을
상하다가 환상적인 세비체로 배를 채우고 밤거리로 나섰을 때 이 도시를 향한 피사로
모시는 신전이었던 이곳을 사정없이 때려 부수고 지금의 교회를 세웠다. 신전의 황금
의 야욕이 아주 조금은 이해됐다.
을 약탈한 것은 둘째 치더라도, 한 나라 국민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장소를 어떻게 이렇
다음 날 아침. 마추픽추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옆은 물론 천장까지 창을 낸 마추픽추
게까지 망가뜨릴 수 있을까? 11대 황제의 궁전 위에 세웠다는 라 콤파냐 데 헤수스 교
행 특급열차에선 쿠스코 외곽 시골 마을의 경치를 천천히 즐길 수 있다. 창 밖에 펼쳐진
회La Compañia de Jesús Church까지 본 후 황금에 눈이 멀어 이 모든 일을 꾸민 침
쟁기를 끄는 밭 위의 말들, 우리나라의 기와집을 꼭 닮은 시골집, 집 안 마당에서 아이
략자 피사로의 극악함에 새삼 혀를 둘렀다.
를 안고 기차가 지나는 순간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남자의 얼굴 같은 것을 감상하다 보
그런 연유로 어떤 여행자들은 측은지심을 갖고 쿠스코를 바라본다. 불쌍한 도시, 슬픈
면 어느새 마추픽추에 닿는다.
도시. 정작 페루인들은 수세기 전에 지나간 일을 부여잡고 적개심을 품거나 불온한 감
2001년부터 마추픽추를 100년 이상 오른 베테랑 필드 가이드 하비에르의 능숙한 안내
정에 빠져 있지 않은데. “그 역사를 잊었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슬픈 일이 다행히도 우
를 따라 드디어, 불가사의한 공중도시 앞에 섰다. 마추픽추는, 수없이 많은 사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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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첩첩이 겹친 고봉과 우르밤바 강을 철옹성처럼 두른 공중 요새, 마추픽추. 2 마추픽추를 걷는 것은 생각보다 더 고단하다. 바위와 계단 곳곳엔 지친 여행자를 위한 쉼터가 있다.
속에서 소모된 전형적인 풍광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신비로웠다. 해발 2350미터 높이 의 마추픽추 산과 2690미터의 와이나픽추 산Mt. Waina Picchu 사이에 위치한 공동 요새를 두고 수많은 추론들이 분분하다. 입증된 사실은 하나뿐. 1911년 7월 25일 미국 예일대의 고고학자인 하이럼 빙엄이 잉카 제국의 마지막 요새 ‘빌카밤바’를 찾다 우연히 발견했다는 것. 어떤 학자들은 마추픽추 가 바로 빌카밤바라고 주장하지만 마추픽추가 잉카인들에게 버려진 시점이 스페인 통 치 훨씬 이전이라는 점을 들어 반박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쪽에선 태양의 신에게 바칠 젊은 여성의 수도원이었다고 주장한다. 도시 아래에 있는 한 동굴에서 발견된 185구의 유체 중 109구가 여성의 유체라는 점이 근거. 잉카 왕의 여름 별장이라는 설, 아마존 정 복을 위한 거점 도시라는 설 등, 제각각인 이론과 소설들이 마추픽추를 둘러싸고 있다. 오늘날에도 가설은 새롭게 일어나고 있다. 안데스 문명을 연구하는 브라이언 바우어는 마추픽추가 1450년에 세워졌다고 주장한다. “발견된 유골을 분석했을 때 페루 해안 지 역뿐 아니라 고원까지 여러 곳에서 모인 종족들이 이곳에 거주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심지어 티티카카 호수 지역에서 사용하던 도자기가 이곳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물음표를 뒤로하고 벽과 담 사이를 걸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구엔 인간이 알지 못하는게 너무 많다. 상기할수록 짜릿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그 사실을 즐기면서 감상하는 이들이 그다지 많은 것 같진 않았다. 마추픽추에 들어설 수 있는 2000명의 현대인 중 1800명 정도는 오늘이 지구상에서 카메라를 쓸 수 있는 마지막 날인 것처럼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필사적으로. 어떤 여인은 화장실로 추측되는 방 앞에서 허 리에 손 얹고 한 번, 전신 컷 한 번, 앉아서 한 번, 총 세 번을 찍었는데 찍어주던 이도 앞 선 피사체와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마추픽추의 모든 방마다 그러고 있는 인도 여인 2명을 보고 폭소하지 않기란 힘든 일이었다. 신전 앞에 앉아 햇빛을 쐬는 이들도 있다. 차라리 그 편이 마추픽추를 즐기는 괜찮은 방 법이라고 생각한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뭔가가 떠오르게 마련인데, 지금 내가 앉은 이 바위 덩어리가 잉카인들의 변소였는지 부엌이었는지 상상하는 일은 의외로 흥미롭다. 아무도, 누구도 마추픽추의 진짜 정체를 모른다. 수천 명의 지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 자가 한 세기 동안 달라붙어 연구했는데도. 고대 도시를 걷는 내내 마추픽추 산과 와이 나픽추 산, 사자死者가 된 잉카인들에게 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마조히스트처럼 그 사실에 흥분이 됐다. 변태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1
에디터 류진 포토그래퍼 이혜련 취재 협조 페루정부관광청 www.promperu.gob.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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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VELLER JAN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