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 야 기 열매를 나누고, 열매를 맺고, 열매를 나누다.
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 야 기 열매를 나누고, 열매를 맺고, 열매를 나누다.
| 여는 글 |
“함께 한 10년의 희년 이야기”
재단 설립 11년째를 지내오며 지난 10년간 재단의 희년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이 책의 발간을 기획하였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예수 그리스도가 공적 사역을 시작하며 나사렛에서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 위에 설립된 재단이 이젠 제법 여러 이웃의 자립과 자활을 돕는 기관으로 성장하였 습니다.
함께 한 10년은 우리 이웃들의 희년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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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북한이탈주민들의 우리 사회 정착 이야기, 한부모여성가장의 자립 이야기, 쪽방 주민분의 한여름 지내는 이야기, 아침밥을 먹게 된 초등학생 이야기, 더나일네일에서 인턴으로 훈련 받고 취업한 미혼모 이야기, 마이크로크레딧에 격려받아 다시 일어선 샌드위치 사장님 이야기,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에 성공한 사회적기업가 이야기...
재단 설립부터 아낌없이 격려하고 지원해 주신 후원자 여러분들의 사랑이 있었기 에, 또 임원 분들의 지도와 편달이 있었기에, 그리고 모든 직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함께 쓰는 일이 가능했습니다. 재단을 대표하여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올립니다.
이제 함께 한 10년을 감사하며, 더 나은 열매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10년을 소망 해 봅니다. 초행길 떠나올 때의 첫 마음으로 계속 동행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열매나눔재단 대표이사 이장호
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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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의 글 |
열매나눔재단이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 취약계층과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을 지원하고, 사회적경제의 실현을 위해 걸어온 세월이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에 재단에서는 지난 10년간 진행한 사업들에 담긴 재단의 또 다른 주인공들인 수혜자들 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이야기 카테고리는 사업의 성격별로 크게 네 개의 묶음으로 편집되었습니다. 첫 번째 묶음 ‘사회소외계층과 함께 한 10년’에는 저소득여성가장을 위한 ‘메리맘 (MerryMom)・여성가장 네일아트 직업훈련’ 사업,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쪽방촌 지원
・아동 조식지원’ 사업 그리고 재단의 창립 정신이 담긴 ‘씨앗은행’ 사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본 사업은 재단의 출범 동기이자, 재단 모토인 “빈곤을 넘어 자립으로” 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긴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소외계층의 자립과 필수 적인 부분들에 지원하고자 했던 재단의 노력과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묶음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한 10년’에는 재단 창립부터 현재까지 지속되 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지원사업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일자리를 제공한 희망기업, 북한이탈주민들이 창업을 통해 자립하도록 돕는 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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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타트(Merrystart), 북한이탈 대학생들에게 숙식을 포함한 전인적 돌봄을 지원하는 메리 메이트(Merrymate), 북한이탈주민 자녀들과 그 가정에 교육비와 긴급의료비 등을 지 원하는 메리패밀리(Merryfamily) 등 재단의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은 청년, 아동, 가정 에 맞춤형 지원을 함으로써 북한이탈주민들이 정주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묶음 ‘공공기관·기업과 함께 한 10년’에는 사회적경제 생태계 구축을 위 해 사회적기업(가) 양성 및 지원에 힘써 온 재단과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조직의 이 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네 번째 묶음 ‘정부·지자체와 함께 한 10년’에는 재단이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기 금을 수탁하여 저소득 취약계층의 자립을 위한 소액창업지원사업을 지원한 수혜자 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를 통해 지난 10년간 재단을 믿고 후원해 주신 후 원자분들, 아낌없는 도움 주신 협력기관과 유관기관 담당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 니다.
열매나눔재단 모금홍보팀 서나래
편집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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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2 편집자의 글 4
1. 아동 조식지원 10
사회소외계층과 함께 한 10년
2. 쪽방촌 지원 18 3. 씨앗은행 24 4. 한부모여성가장 창업지원 : 메리맘MerryMom 30 5. 여성가장 네일아트 직업훈련 : 더나은네일 38
1. 희망기업 44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한 10년
2. 북한이탈주민 창업지원 : 메리스타트MerryStart 50 3. 북한이탈대학생 자립지원 : 메리메이트MerryMate 56 4. 북한이탈주민 가정통합지원 : 메리패밀리MerryFamily 62
1.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70
공공기관·기업과 함께 한 10년
2. 사회적기업 시설·운영비 지원사업 82 3. 사회적경제 지원사업 90
1. 희망키움뱅크·서울희망드림뱅크 106
정부·지자체와 함께 한 10년
2.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112
사회소외계층과 함께 한 10년
1 아동 조식지원
열매나눔재단은 아동,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 및 학교생활 만족도와 학업성취도 향상을 돕고자 2016 년부터 아동조식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6년 용산구 초등학생 40명으로 시작해, 2017년 1학기에는 4개 학교, 1개 모자원 108명이, 2017년 2 학기에는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 중부교육지원청과 연계 협력하여 2018년 현재까지 초·중·고 14 개 학교 400여명 학생들이 재단의 지원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따스한 아침밥을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빈곤 가정의 아동들은 일반 가정에 비해 아침 결식률이 3배가 높으며 빈곤 가정 아동의 53%가 영향불균형으로 저체중이거나 지나친 인스턴트 섭취로 과체중인 것 으로 보건복지부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 통계자료에 의하면 12세~18세의 아침 결 식률은 2008년 25.8%에서 2015년 32.6%로 증가하였습니다. 6세~11세의 아침 결식 률도 9.9%에서 14.9%로 매년 증가세입니다. 재단에서는 2018년 현재 14개 학교, 400여명의 아이들에게 따끈따끈한 아침 도시 락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도시락은 사회적기업 ‘행복도시락’과 ‘샤론푸드’에서 매일 아침 신선한 재료로 직접 조리하여 각 학교로 배달됩니다. 이 한 끼가 아이들의 하루 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을까요?
매일 아침 선생님의 돌봄 속에 따뜻한 아침밥을 먹습니다.
사회소외계층과 함께 한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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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자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선생님에 후원 덕분에 아침밥을 먹게 해주 셔서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항상 맛있고 건강한 아침밥을 보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침밥이 너무 맛있어서 음식을 안 남기 게 되는데 이것 덕분에 밥을 남기는 나쁜 버릇을 고치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또한 맛있는 아침밥 덕분에 수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고 아침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적이 많이 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정말정말로 감 사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찍 오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평소에는 늦고 그랬는데 아침에 밥 먹으러 와야 하는데 일찍 오는 습관이 생기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맛있 는 음식 부탁하겠습니다.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2018. 9. 대성중학교 3학년 김민준(가명)
안녕하세요? 열매나눔재단 이사장님과 후원해주시는 섬김이 여러분! 먼저 무한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희 대성중학교 스물다섯명의 남자아이들이 한창 자랄 사춘기(청소년) 시기에 아침밥을 매일매일 먹을 수 있도록 사랑으로 후원해주셔서 진 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청소년기의 남자아이들은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돌아서면 배고파할 시기이고 게다가 가정형편이 조금 어렵거나 맞벌이 부모님이 계신 학생들은 집에서 더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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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김 받기가 어려운데, 재단의 후원으로 저희 학교 아이들이 큰 사랑을 받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남자 중학생들의 얼굴을 마주 보면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아 서 감사 편지를 쓰자고 해놓고도 내심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아이들이 받은 사랑에 대해서 감사의 표현을 할 줄 아는 모습을 보며 대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의 11주년을 축하하며 축복합니다. 앞으로도 축복의 통로로 귀하게 쓰임 받는 재단이 되길 응원 드립니다. 온 마음으로 감사드리며... 2018. 9. 대성중학교 지역사회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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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침 한 끼의 기적을 보고 있습니다
최동희 교장: 공적영역에서 채우지 못하는 아이들의 아침 을 열매나눔재단 같은 민간 기관이 나서서 채워주셔서 정 말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열매나눔재단: 선일여고가 특히 저희 조식지원 사업에 대해 만족도가 높아요. 교장선생님께서는 아침 식사 지 원 사업의 효과를 어떻게 보시나요? 최동희 교장: 표면적으로는 작은 한 끼지만 교육현장에서 제가 느끼는 그 밥 한 끼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는 정말 엄청납니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등교해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서 힘들었다는 아이가 이제 집중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합니다. 나는 관심 밖에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구나를 아이들이 알게 된 거죠. 이렇게 사랑을 받아 본 아이들 이 나중에 사랑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이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앞으로 우 리 사회 구성원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침 한 끼의 기적인 거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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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희 아이들 중에 챙겨주는 아침밥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이 사업을 통해서 처 음으로 챙겨주는 아침밥을 먹게 된 아이들도 있거든요. 열매나눔재단: 낙인감 같은 부분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최동희 교장: 막상 현장에서 진행해보면 아이들이 밥을 즐겁게 먹을 수 있게 하는 다 양한 방법들이 있더라고요. 우리 학교는 보편적 복지 개념으로 접근해서 학교 복지 사 선생님이 여러 가지 이벤트를 열고 누구나 편하게 복지실에 놀러올 수 있게 합니 다. 아침 식사는 그 중의 한가지라 아이들은 이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정말 즐겁 게 밥을 먹어요. 그리고 고등학생쯤 되니까 실리적으로 현실을 보는 눈도 생겨서 고 맙게 생각하며 밥을 먹죠. 처음에는 아이들이 밥 먹는 복지실에 롤스크린을 다 설치 했어요. 아이들이 밥 먹으면서 불편할까봐. 그런데 얼마 안 되서. 애들이 그걸 다 걷 어버리더라고요. 답답하게 왜 치냐며. 열매나눔재단: 사실 고등학생 정도면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 아니냐, 밥 정도 는 챙겨 먹을 수 있지 않냐, 그런 질문도 있습니다. 최동희 교장: 밥을 챙겨먹고 해먹고 하는 것도 엄마밥을 먹어 본 아이들이 할 수 있 습니다. 집밥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쌀을 지원해줘도 밥을 해먹을 줄 모릅니다. 아침을 안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은 정말 다릅니다. 열매나눔재단: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으신가요? 최동희 교장: 3학년 학생인데, 담임선생님이 도움을 요청한 학생이 있어요. 애가 아 픈 건 아닌 것 같은데 자꾸 결석하고 학교에 오면 보건실에 가 있다, 상담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했더니 영양실조더라고요. 그 아이 가 밥을 먹으면서 건강도 그렇고 심적으로도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밝아졌고요. 한 학기 마치면서 복지사 선생님한테 그랬대요. ‘선생님, 제가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이 렇게 열심히 학교를 나온 건 올해가 처음이에요.’ 이 말이 정말 많은 걸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학 지나고 왔는데 아침에 복지실 앞에 일찍 와서 기다렸다고 해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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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식사 시간이 기다려져서 빨리 개학했으면 했다고. 열매나눔재단: 마지막으로 우리 학생들이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시는지요? 최동희 교장: 저는 우리 아이들이 원대한 꿈보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는 아이들이길 바랍니다. 다른 친구를 딛고 일어서기보다 함께 손잡고 독려해 같이 살아가려고 애 쓰는 아이들이길 바라고요. 아침 먹는 아이들 중에 같은 반에 자기보다 더 어려운 친구 가 있는데 그 친구도 같이 아침 먹었으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같이 식 사를 하며 서로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요. 사실 이런 거 학교에서 따로 가 르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침 지원을 받으면서 아이들 마음속에 자연스레 자라기 시작한 거죠.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열매나눔재단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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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아침 먹는 아이들 중에 같은 반에 자기보다 더 어려운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도 같이 아침 먹었으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같이 식사를 하며 서로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요. 사실 이런 거 학교에서 따로 가르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아침 지원을 받으면서 아이들 마음속에 자연스레 자라기 시작한 거죠.
선생님과 함께하는 아침식사를 통해 사회를 배웁니다.
2 쪽방촌 지원
재단 설립 초기부터 이어온 쪽방 주민들과의 인연은 2015년 여름 생수지원사업을 통해 재개되었습니 다. 쪽방촌 생활지원은 지원 첫해부터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이에 재단은 사업의 규모를 매년 확대하여 주민들의 실질적 필요에 맞춘 지원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시원한 생수 한 병, 쪽방촌의 여름을 책임집니다
서울역에만 900명 이상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쪽방촌.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한 평 공간에는 대부분 의지할 곳 없는 어르신들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이우현 할아버님 (가명, 70세): “선풍기를 한 시간 정도 틀면 모터 있는 부분이 뜨거워 지고 바람도 더운 바람이 나와요. TV도 그렇고, 그러니까 가급적 전기제품 사용 안 하는 게 지혜예요.”
이우현 할아버님께서 사는 쪽방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여름의 열기를 그대로 머금 은 방안은 바깥 온도보다 더 높을 때도 있습니다. 식수는 수돗물을 받아 버너 등을 이 용해 끓여야 하는데, 더운 여름 방안에서 물을 끓이는 것은 언감생심입니다. 더운 여 름이면 시원한 물 한 모금이 절실해집니다. 열매나눔재단은 무더위에 지친 쪽방촌 주민들의 해갈을 위해 2015년 부터 서울지 역 쪽방 주민들에게 매년 여름 10주간 생수를 전달해 왔습니다. 2017년에는 500ml 생수 78,000병을, 2018년에는 108,000병을 전해 드렸습니다. 각 지역 쪽방상담센터와 협업해 재단 직원과 봉사자들이 직접 방문을 두드리며 주민들에게 생수를 배달합니다. 시원한 생수를 받는 방마다 반가움과 고마움의 소리가 연신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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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부터 매년 여름 10주간 생수와 함께 쪽방촌을 찾았습니다.
“어르신, 계세요? 생수 드리러 왔어요.” “어이쿠, 힘든데 여기까지 올라오고. 미안하고, 정말 고마워요.” “괜찮아요, 어르신. 건강하시고 다음 주에 또 봬요.” “매주 오는 줄 아니까 수요일만 되면 언제오나 기다려져…” 지역상담센터 전익형 실장: “여름에 쪽방에서 밥을 하면 방안 온도가 30도를 넘어갑 니다. 이럴 때 생수는 목을 축이게 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방안 온도를 낮추고, 얼음 마사지를 하는 등 용도가 다양합니다. 매주 찾아오는 생수는 물 한 그릇을 넘어 이분 들 삶에 즐거운 기다림이 되었을 겁니다.”
여러 후원자 분들이 보내주신 값진 관심과 나눔으로 쪽방촌의 더위와 외로움을 달 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쪽방촌 생수지원은 후원자분들과 직접 생수 전달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분들이 있는 한 매년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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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이웃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쪽방촌 문패의 힘
“계세요? 밖에서 작업하는데 조금만 양해 부탁드려요~ 1분이면 됩니다~” 눈발이 매섭게 날리던 2015년 12월, 이날 열매나눔재단은 남영동 주민센터 직원 및 자원봉사자와 함께 서울역 쪽방촌의 각 방문 위에 거주지를 구분할 수 있는 문패 를 부착했습니다. 생수나 음식, 양말도 아닌 문패 달기라니, 갸우뚱하시는 분들도 있 을 것입니다. 쪽방촌의 방 문패, 왜 중요할까요? 이러한 궁금증은 쪽방촌에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해소됩니다. 서울역 쪽방촌 에는 950여 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반세기 동안 형성된 쪽방촌은 대개 집합 건물로 지어져, 그 주소가 매우 복잡합니다. 1개의 주소지에 여러 세대가 거주하는 데다가 호수와 지번을 관행적으로 정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주민이 아니면 원하는 주소지를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서울바닥에서 김서방 찾기처럼 쪽방촌에서는 누군 가를 찾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각종 복지급여 서비스 안내와 확인 조사에서 누락되고 우편물 전달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거주환경 특성상 자주 일 어나는 화재, 응급환자 발생, 범죄신고 등 긴급 상황으로 출동하게 되더라도 미로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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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하나에 문패 하나씩 달았습니다.
은 건물로 인해 제때 대응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례 또한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재단에서는 서울역 쪽방촌의 문패 부착을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쪽방 촌의 각 건물주와 협의를 거친 후 문패를 제작하여, 자원봉사자들과 지역 주민센터와 의 협력으로 각 방마다 문패를 부착하였습니다. 이제 서울역 쪽방촌으로 불리는 동자 동 및 갈월동 일대 52개 집합건물 안에 ‘층별 방호수 안내도’와 937가구를 대상으로 방호수를 표기한 ‘문패’가 달려있습니다. 이 작은 문패를 통해 쪽방촌 주민들의 생활 이 한결 더 편안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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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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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3 추석음식나눔: 풍성한 명절 보내시라고 맛있는 음식에 마음을 담아 전했습니다. 4-6 겨울양말나눔: 따뜻한 겨울나기를 응원하며 겨울양말세트를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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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씨앗은행
씨앗은행은 2003년부터 열매나눔재단의 뿌리인 높은뜻숭의교회의 밑천나눔운동에서 시작된 취약계 층 소액창업지원사업입니다. 재단은 밑천나눔운동의 정신을 이어 받아 2007년 설립 후 바로 희망씨 앗터(씨앗은행 자금으로 세워진 창업 공동체) 사업을 지원하였습니다. 창업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터 전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 외 쪽방탈출 전세자금 융자 및 응급 금융 지원사업을 통해 소외된 취약계층 의 자립을 도왔습니다. 2008년까지 23호의 창업지원을 끝으로 본 사업은 종결되었습니다. 이후 재단의 취약계층 소액창업지 원사업은 2009년 보건복지가족부 및 서울시의 예산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방식(희망키움뱅크/서울희망 드림뱅크)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넉넉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_우렁쌈밥
이미연 사장은 2008년 10월 성실함을 밑천으로 우렁쌈밥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5 년 전, 남편과 이혼하고 막막한 생활을 하던 이미연 사장은 중구지역자활센터에 일자 리를 문의하던 중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알게 되었고, 12명의 모자 가정 어머니들 과 함께 대출을 받아 김밥천국을 창업했습니다. 이미연 사장: “전 단 한 번도 지각, 결석한 적이 없어요. ‘내 가게다, 내 것이다.’ 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했지요. 그리고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어요. ‘지금은 힘들 지만 언젠가 마음 편할 날이 오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어요.”
처음엔 주문을 어떻게 받고 음식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몰랐을 만큼 서툴렀 지만 이미연 사장은 늘 반갑게 손님을 맞으며, 부딪히면서 식당운영을 배워갔습니다. 하루하루 땀 흘려 일한 결과 5년 만에 대출금을 모두 상환할 수 있었고, 이후 다시 대 출을 받아 서울역 3번 출구 근처에 우렁쌈밥을 열었습니다. 공동체를 떠나 비로소 홀 로 음식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이미연 사장: “아직도 가게 오픈하던 날이 잊히지 않아요. 얼마나 설레는지 그 전날 잠도 못 잤어요. 가게를 구하러 다닐 때 순간순간의 감정들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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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쌈밥_이미연사장
희망이라는 걸 포기하지 않았더니 이렇게 내 삶이 되어 살아가고 있잖아요. 손님들 이 맛있게 한 그릇 싹 비우는 모습을 보면 내 배가 다 불러, 세상 열 부자도 안 부럽 다니까요. 이제 우리 딸 시집보내고 대출금도 다 갚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살아가 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부자 엄마 보고 힘내서 살라고 이야기하고 싶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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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세빈이와 할머니의 쪽방 탈출 이야기
지독히 추운 겨울 어느 날, 한 할머니께서 눈도 못 뜬 갓난아이를 업고는 찾아와 애절한 도움을 청합니다. 아이의 부모는 사업실패와 빚 독촉으로 100일도 안 된 갓난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며 손주를 살려달라고 밑천나눔공동체를 찾 아오신 것입니다. 0.5평의 부엌도 없는 작은 방, 30가구가 2개의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쪽방촌은 어리고 연약한 생명이 자라기에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를 위해 어떻 게든 씻고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방을 구하고 싶어 하셨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할머 니께서 밥도 거르며 온종일 파지를 주워 팔아 봤지만 손에 잡히는 돈은 불과 1만 원 정도였습니다. 분윳값 마련도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세빈이네의 어려운 환경을 보고 높은뜻숭의교회 식구들은 밑천나눔공동체를 통 해 전세자금을 대출해 주고,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대출자금이 씨 앗이 되어 각 후원처에서 세빈이를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작은 부엌이 딸린 전셋집으로 이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엌도 있고, 물 안 새고… 따뜻한 방에서 세빈이를 키울 수 있게 해줘서 너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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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살 무렵 세빈이 모습입니다.
마웠어요. 우리 세빈이를 키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힘들 때 도와주시고, 자원봉사로 우리 손녀를 공부시켜 주시고 키워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세빈이네와 밑천나눔공동체의 인연은 5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전 세자금 대출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팀을 통해 공부도 가르치며 세빈이에게 따뜻한 마음 의 안식처를 제공했습니다. 여러분의 나눔과 사랑으로 세빈이는 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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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전 단 한 번도 지각, 결석한 적이 없어요. ‘내 가게다, 내 것이다.’ 하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했지요. 그리고 늘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 마음 편할 날이 오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았어요.
12명의 모자 가정 어머니들이 공동창업한 김밥천국에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방문했습니다. 1 가정식백반집을 창업해 자립한 진정자 할머니의 사연이 조선일보를 통해 기사화 되었습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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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부모여성가장 창업지원 : 메리맘MerryMom
한부모여성가장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를 양육하는 동시에 경제적 자립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메리맘 (MerryMom)사업은 한부모여성가장들의 창업을 지원하여 그 가정을 지켜주는 것을 목표로 2015년 시
작되었습니다. 메리맘에 선정되면 창업자금 대출(최대 2500만원 창업자금 무이자로 지원), 창업교육 및 컨설팅, 홍보비 등 창업 과정 전반을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사업 4년 차가 되면서 선배 어머니와 신입 어머니들 간의 네트워크도 큰 지지가 되고 있습니다.
따끈한 면발과 엄마의 손맛으로 일어서다 _면발의 정석
2015년 가을의 문턱에서 방학동에 메리맘 2호점을 개점하신 김미자(가명) 어머니 의 면발의 정석 오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김미자 어머니: “안녕하세요. 메리맘 지원을 받아 방학동에서 면요리 전문점 면발의 정석을 준비하고 있는 김미자예요. 예정대로라면 벌써 오픈했어야 되는데… 처음이 다 보니 이런 저런 시행착오들을 많이 겪었어요. 메뉴개발도 병행하다 보니 욕심이 더 생겨서 자꾸 미뤄지게 되었네요. 다음 주에 드디어 오픈합니다.”
김미자 어머니께선 창업이 처음이었기에 오픈 전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김미자 어머니: “결정하고 또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한 부담이 제일 힘들었어요. 가지고 있는 자금 내에서 꾸려야 하는데 잘못된 결정을 하면 그것이 고스란히 금전 적인 부담으로 돌아오잖아요.”
재단의 메리맘 지원사업을 통해 창업하신 김미자 어머니는 재단에 고마움을 전했 습니다. 자신을 믿고 지원금을 대출해주고,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항상 함께해준 점 들을 하나하나 꼽으며 어머니는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으로 창업을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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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맘 2호점 면발의 정석 오픈 직후 모습입니다.
할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합니다. 김미자 어머니: “처음 받아본 창업교육도 저한테는 생소한 것들 투성이라 들으면서 ‘저게 무슨 소리인가’하면서 들었거든요. 그런데 개점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득문득 그때 들었던 것이 생각나면서, ‘아 이게 그 얘기구나. 아 이렇다 했었지…’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고요. 재단에서 왜 이런저런 과정과 교육을 준비했는지 그 중요성을 직접 오픈 준비하면서 알았어요. (웃음)”
어느덧 개점 3년 차가 된 면발의 정석은 동네에서 인심과 양이 푸짐하고 맛있기로 소문난 면요리 전문점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주고객의 80%가 인근 고등학교 남학 생들인 면발의 정석은 오전부터 학생들의 예약전화와 주민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입 니다. 개점 이후 김미자 어머니는 이대로 가게를 유지해야 할까 라는 고민으로 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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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 정도로 어려웠던 날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김미자 어머니: “처음에 자리 잡기가 어려웠어요. 그렇지만 내 제품(서비스)에 하자 가 없으면 3년은 해봐야 아는 것 같아요. 고정 고객이 오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리더 라고요”
김미자 어머니는 2015년 10월 상환 개시일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의 연체 없이 성 실 상환 중입니다. 가게도 월 매출 600~700만원을 낼 정도로 탄탄하게 운영이 되고, 삼형제 중 막내아들이 가게 일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김미자 어머니: “지인에게 빌린 돈은 7번, 재단에 빌린 돈은 상환이 10번 남았어요. 이 빚 다 갚고 나면 이제 내 노후자금 번다고 생각하고 또 열심히 벌 거예요. (웃음) 예전에는 친구들이 만나자고 하면 돈 쓸까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친구가 만나자고 해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어요. 그 친구가 밥 한 번 사면 나도 살 수 있으니까 행복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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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거절하지 않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_테라스크린 명일점
2015년 12월 메리맘을 통해 세탁・수선 전문점을 창업한 테라스크린 명일점의 임 현주(가명) 어머니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임현주 어머니: “12월에 오픈했는데 세탁・수선은 겨울이 비수기에요. 그래서 욕심 안 내고 한 3개월은 월세만 냈으면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단골도 생기고 목표했던 것보다 매출이 좋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근황을 이야기하는 임현주 어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웃음 이 있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이 있었습니다. 경력단절과 나이, 자녀 양육 등의 현실로 경리 보조 자리도 쉽게 구할 수 없으셨다고 합니다. 그때 임현주 어머니는 젊은 시절 부터 해 왔던 봉제일로 창업을 해볼까란 생각을 했지만, 창업 자금을 구할 곳이 없었 습니다. 절실한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보기 시작한 임현주 어머니에게 메리맘(MerryMom)은 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지다가 본 사업
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메리맘 2기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임현주 어머니: “(여러 곳에) 지원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어요. 수선 사업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였어요. 그렇게 창업을 결심하고 4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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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크린_임현주(가명)대표
때, 메리맘과의 인연이 닿았어요. 꼭 창업하고 싶었던 자리가 있었는데 인연인지 메 리맘 2기 서류심사 발표가 나는 날에 그 자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딱 나온 거예요.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거 같아서 부동산에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합격자 발 표만 맘 졸이며 기다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자리에서 3개월을 꽉 채워 일했네 요. (웃음) 제가 살면서 참 거절을 많이 당했거든요. 그런데 열매나눔재단 메리맘은 제 손을 잡아주셨어요. 가게 오픈 날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아직도 그 날을 생각 하면 눈물부터 납니다.”
첫 창업이라 모르는 것도 참 많았습니다. 재단의 창업 교육과 전문가 컨설팅을 통 해 가게 운영에 대해 단계별로 배울 수 있었다는 임현주 어머니는 오픈 이후 가게 운 영이 안정되었지만, 틈틈이 동영상을 보면서 수선 공부를 하며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임현주 어머니: “내가 만족해야 손님들도 만족하기 때문에 1mm의 차이가 작을지도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덕분에 집에 가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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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 생각뿐이라 몸은 좀 고되지만 그래도 잘 고쳤다고 좋아하는 손님들이 있으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웃음)”
임현주 어머니의 세탁・수선 가게는 단골 고객도 확보했지만, 수선으로 사업을 유 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1년간의 사업운영을 냉정히 평가한 결과, 재단과 어머 니는 모두 사업을 정리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로 취업을 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습 니다. 현재 임현주 어머니는 취업하여 일하시며 정기후원으로 재단과 인연을 이어가 고 있습니다. 임현주 어머니와 가정의 행복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재단이 항상 응원하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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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맘 3기 어머님들이 창업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1 2,3 가족들이 함께 하는 메리맘 리프레시데이에 참석해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내가 만족해야 손님들도 만족하기 때문에 1mm의 차이가 작을지도 모르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덕분에 집에 가서도 수선 생각뿐이라 몸은 좀 고되지만 그래도 잘 고쳤다고 좋아하는 손님들이 있으니 마음이 뿌듯합니다.
5 여성가장 네일아트 직업훈련 : 더나은네일
2017년 4월 열매나눔재단은 네일아트 전문가가 실제로 운영하는 네일숍 ‘더나은네일’ 매장을 오픈했 습니다. 네일아트 자격증을 소지한 저소득여성가장에게 일자리(인턴)를 제공하고 매달 인턴 훈련장학 금과 창업자금적립을 지원하며 실전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턴 어머니들이 기술코칭, 창업교육, 트렌드 교육 등 네일숍에서 1:1 맞춤 코칭을 받으며 6개월의 과정 수료 후, 취업하거나 직접 네일숍을 창업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품은 보금자리 _더나은네일
김선희(가명) 어머니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의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린 후에는 아흔이 넘으신 조부모를 모시고 있습니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일을 하며 열심히 생활비를 벌었지만, 임신과 출산으로 일을 쉬게 되자 형편은 눈에 띄게 어려워졌습니다. 매달 전세자금대출 이자와 월세만으로도 생활은 항상 빠듯합니다. 김선희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정부지원교육을 받아 네일아트 자격 증을 취득했습니다. 하지만 갓 자격증을 취득한 김선희 어머니를 받아주는 네일숍은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눈칫밥으로 지내야 했기에 실력을 쌓기가 어려웠습니다. 소 규모 네일숍 창업을 꿈꾸고 있던 김선희 어머니는 교육기관의 소개로 열매나눔재단 ‘더나은네일’을 알게 되었고 인턴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김선희 어머니: “다른 곳에서는 눈치껏 배울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원장님이 실 습을 통해 기술을 가르쳐 주시니 너무 감사하죠.”
‘더나은네일’의 김향영 원장은 인턴 어머니들의 의지와 열정을 높이 평가합니다. 김향영 원장: “창업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인지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고, 기술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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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1층에 자리한 더나은네일 전경/ 임직원이 함께 해 오픈을 축하하였습니다.
득을 위한 노력도 많이 하세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있지만,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손님 응대 요령도 실력도 늘고 있어요.”
김선희 어머니는 6개월간의 인턴 기간을 마치고 집 근처 작은 네일숍에 취업하였 습니다. 출근하여 적응하고 자리를 잡기에도 바쁠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재단은 정 성스러운 손 편지를 받았습니다.
to 열매나눔재단 안녕하세요? 지난여름부터 겨울까지 재단에서 네일아트 인턴으로 지냈을 때가 생각나네 요... 원장님과 인턴 동료 샘과 즐겁게 생활하며 네일 교육 및 실습을 했던 그때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케어부터 컬러링, 쏙오프 등 다양한 실무경험이 토대가 되어 지금은 새로운 직장에서 고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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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들은 원장님께 기술 코칭을 받고, 직접 고객도 응대하며 실전 경험을 쌓습니다.
을 대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던 것 같아 참 감사합니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용기와 후원을 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동네에 작은 숍에 취업해 하나하나 다시 배우며 일하고 있어요. 만약 실무경험이 없 었다면 취업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겠지만 6개월간의 실무경험 덕분에 지금 일하는 곳에 서도 어렵지 않게 고객을 응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아직도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열심 히 배우고 익혀서 자립할게요. 원장님과 재단 사무실 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소외된 이웃을 위한 선한 일들 많이 해주세요. 2018. 1. 선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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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망기업
열매나눔재단은 빈곤층의 자립이라는 생산적 사회복지를 지향합니다. 이는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에 도 반영되어 북한이탈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희망기업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비영리법인(열매 나눔재단), 정부(고용노동부, 통일부), 사회공헌기업(SK에너지)의 매칭펀드를 통해 2008년부터 2010년까
지 5개의 희망기업이 세워졌습니다. 재단은 희망기업으로 우리 사회에 북한이탈주민지원사업에 대한 새 지평을 열었으며 북한이탈주민들 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고 자립과 자활의 의지를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
희망의 기지개를 펴다 어느 새터민의 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북한의 함경남도에서 살다가 온갖 시련과 고난 끝에 제3국을 거쳐 대 한민국에 2008년 9월 입국한 탈북자 출신 정혁수(가명)입니다. 김일성 사후 일명 ‘고난의 행군’이라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삶을 겪을 대로 겪다가 더는 살아도 산 목숨 이 아닌 그 땅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돈 벌어 곧 데리러 오마’라는 약속만을 남기 고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단독 탈북하였습니다. 중국 땅에서 공안의 눈을 피해 산속에서 며칠씩 굶으면서도 오로지 살아서 자유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는 일념 하 나로 살았습니다. 한국에 입국하여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늦은 저녁,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외로운 마음에 무언인가 의지할 곳을 찾고자 라디오 방송을 듣던 중‘높은뜻숭의교회’김동호 목사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의 처지를 이해하고 일자리를 주신다는 그 말씀에 다음날 바로 찾아갔습니다. 그곳이 바로 열매나눔재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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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재단의 메자닌아이팩 박스공장에서 합지기계를 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 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어린아이 같았던 제가 이곳에서 1년 5개월 동안 일을 배우면서 박스기술자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을 하여 월급을 받아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꿈에도 그리워 보고 싶던 사 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한국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 꿈은 제 고향 북한에도‘메자닌 아이팩’같은 공장을 세우는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저희를 위해 노력해 주신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끝까지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2011. 5. 정혁수 드림
한창 작업중인 정혁수씨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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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비 4만원의 출근
방화동에서 파주까지 통근 버스를 놓쳐서 택시비 4만원을 내고 출근했다는 이야 기는 두고두고 희망기업과 재단 식구들에게 회자되었습니다. 김순녀 씨: “열매나눔재단에서 우리 사람들(북한이탈주민들)을 믿고 이렇게 뽑아 주었 는데, 내가 빠지면 우리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봐…”
택시비 4만원의 주인공 김순녀 씨는 하루쯤 쉴 수도 있었을 텐데 택시까지 타고 출근했냐고 묻는 질문에 부끄러운 듯 대답했습니다. 아침마다 이용하던 통근버스를 놓친 김순녀 씨는 잠시 당황했지만, 택시를 바로 잡았습니다. 하루 일당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출근을 한 것입니다. 김순녀 씨: “3년 전에 한국에 왔는데, 정말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중국에서 도 망 다닐 때는 한국에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국에 와 서 보니 정말 의지할 데 없고, 외로웠어요. 북한에서부터 아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해 보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한국 와서도 마찬가지였죠. 파출부, 청소, 식당일, 봉제공 장까지 정말 여러 곳에서 일했던 거 같아요. 북한에 있는 식구들에게 돈을 보내야 했 거든요. 그런데 어디서도 오래 일하지를 못했어요. 식당에서는 말귀를 잘 못 알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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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며칠 일했던 노임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기도 했어요. 어떨 때는 탈북자라고 하 면 사장이 싫어해서 그냥 탈북자라는 걸 숨기고 조선족이라고 하면서 식당일을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너무 심한 육체노동은 우린 견디지 못하거든요. 탈북하면서 얻 은 병들이 많아서… 일주일 일하고 열흘 아프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이런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김순녀 씨에게 희망기업의 일자리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북 한이탈주민이라고 편견으로 대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직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더불어, 같은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굳 이 말하지 않아도 뜻이 통하는 동료가 생겼습니다. 김순녀 씨: “여기서 멈춰 있고 싶지 않아요. 목숨을 다해 힘들게 남한으로 왔어요. 굶어 죽는 게 싫어서 사람처럼 당당하게 살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해서 잘 살 거예 요.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우리 탈북자들도 잘할 수 있다는 거 보여줄 거예요. 그래서 사장도 되고, 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고용할 거예요.”
북한이탈주민으로서 남한 사회에 정주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고난의 연속일 것 입니다. 재단은 그 곁에서 묵묵히 지켜주며 온기의 손길을 내미는 존재로 북한이탈주 민의 동반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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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메자닌 아이팩: 열심히 작업중인 직원과 공장 벽화 작업에 한창인 봉사자들의 모습입니다.
3,4 메자닌 에코원: 직원들이 담소를 나누며 블라인드 수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블리스&블레스: 북한이탈주민 청년들을 바리스타로 고용하기 위해 문을 연 5 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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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이탈주민 창업지원 : 메리스타트MerryStart
본 사업은 북한이탈주민이 창업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창업자금을 지원합니다. 또한 창업교육과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자유와 소망의 노래를 부르다 _요벨
북한이탈청년 최초로 사회혁신기업 ‘㈜요벨’을 설립한 박요셉 대표는 17살에 너 른 꿈을 펼치기 위해 함경도를 떠나 홀로 탈북을 합니다. 중국 생활 5년 동안, 불법체 류자 신세로 양치기, 웨이터, 일용직 등 온갖 일을 한 박요셉 대표는 한국행을 결심합 니다. 박요셉 대표: “처음 6개월 정도는 문을 걸어 잠그고 꼼짝 않고 지냈던 거 같아요. 내 20대를 가치 있게 보내려 한국에 왔는데 낯선 환경과 사람들의 시선에 무엇부터 해 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북한이탈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에 입학하여 영어교사였던 미국인 친구와 룸 메이트를 하게 되면서 박요셉 대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박요셉 대표: “그 친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북한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데 충격 을 받았어요. 나는 탈북을 결심했을 때도, 한국에 왔을 때도, 여명학교에 입학할 때 도 나의 성공만을 생각했지 남을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 친 구를 통해 사랑하는 나의 민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박요셉 대표는 북한이탈청년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로 사내카페 모델을 만들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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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기업에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거절이었습니다. 박요셉 대표: “어느 날 지인이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탈북민을 도와야 한다’는 사설 을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저자가 기업은행장님이셔서 ‘하늘이 주신 기회다’ 라는 생 각에 사업계획서를 들고 권선주 은행장님을 직접 만나 제 꿈과 생각, 계획을 말씀드 렸죠. 그리고 이렇게 기업은행 사내카페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요벨(Yovel, 이스라엘 민족이 50년에 한번씩 빚진 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빚을 탕 감해 줄 때 불던 숫산양의 뿔로 만든 뿔나팔 이름)의 꿈과 비전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십시일
반으로 2014년 12월 기업은행 수지센터 내에 사내카페 1호점 카페 레드 체리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이어 2015년에는 기업은행 한남동 사옥에 2호점 스페이스 요벨을 오픈했습니다. 재단은 북한이탈주민 창업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요벨의 기업은 행 사내카페 2호 한남점 개설을 지원했습니다. 박요셉 대표: “대부분의 운영은 직원들의 자율에 맡깁니다. 저의 역할은 질문을 던 지는 거예요. 왜 에스프레소 머신은 이 제품을 선택했는지, 이 커피 원두는 어떤 제 품인지 등 그러다보니 직원들이 스스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웃음)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우리 윗동네(북한) 청년들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 는 기반을 다질 수 있으니까요. 서비스업이 북한이탈청년들에게 맞지 않을 것이다 라는 편견이 있어요. 하지만 전 교육과 경험을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요 벨의 직원들이 그 증거잖아요!”
박요셉 대표는 이후 사내카페 모델과 생태순환농업 회사인 요벨팜을 통해 북한이 탈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있습니다.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 3만 1천여 명, 박 요셉 대표는 이들을 통해 통일 후를 바라볼 수 있기에 이들을 ‘먼저 온 미래’라고 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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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밑바닥은 없습니다. 수리의 연속일 뿐입니다 _서강잡스
휴대폰수리전문업체 서강잡스의 설립자인 김학민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고향과 어린시절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김학민 대표: “저는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 출신입니다. 7살 때부터 전자제품 을 뜯어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왜 이런 걸 만들까, 어떻게 만드는 걸까 이런저런 호 기심이 많았죠. 덕분에 사고가 많이 났는데, 배터리 충전을 하다 폭발사고도 나고 감 전 쇼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와 어른들은 꾸짖지 않고 늘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 환경에 더 신나게 부품을 뜯어보았던 것 같습니다.”
전자 제품 수리 솜씨가 남달랐던 김학민 대표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는 스스로 먹 고살 길을 찾았습니다. 자신의 처지도 어려웠지만, 가난한 이웃에게는 수리비를 받지 않아 근방에서 수리공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김 대표는 우연히 한국드라마를 접하면 서 한국행을 결심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지인들과 감옥에 수감되어 갖은 고초를 겪습니다. 이제 죽겠구 나 싶었을 때, 김학민 대표는 석방됩니다. 이웃들이 그를 살려달라고 청원을 넣고, 백 방으로 손을 썼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됩니다. 돈을 안 받고 수리를 해주는 수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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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위해, 이웃들은 그의 목숨을 살리는 것으로 보답한 것입니다. 2011년 25세 되던 해 두만강을 넘어 어렵게 한국에 온 김학민 대표는 새로운 고초 를 겪게 됩니다.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던 것입니다. 김학민 대표: “우울증이 와서 고시원에서 2년간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정말 밑도 끝 도 없는 방황을 하다가,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실패가 망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망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죠.”
삼수 끝에 서강대에 진학했지만 여전히 삶은 고단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뚝딱 해치우는 과제를 밤을 새도, 1주일을 해도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스마트폰이 깨져 부품을 구해서 10분 만에 수리를 했는데, 옆에서 지 켜보던 룸메이트가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합니다. 그 조언에 힘입어 2015년 김학민 대표는 학교 근처에 서강잡스를 창립합니다. 다른 업체에서는 3일에서 일주일이 걸 리는 수리를 단 10~15분 만에 수리한다는 입소문은 금세 퍼져나갑니다. 스마트폰에 관한 못하는 수리가 없었기 때문에 서강잡스는 기반을 잡게 됩니다. 서강잡스는 북한이탈청년을 고용하여 현재 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며 사업을 확장하여 2018년 6월에 의정부에 2호점을 오픈했습니다. 열매나눔재단에서는 서강잡스의 사업 확장 및 서비스 업그레이드를 위해 창업지원 금을 지원하였습니다. 김학민 대표: “삶은 수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수리를 통해 제 삶을 일으켰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수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지금의 삶은 그에 대한 보답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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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요벨 박요셉대표(우)와 직원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비 전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3,4 서강잡스 김학민대표(우)와 직원들은 제2의 애플을 꿈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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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한이탈대학생 자립지원 : 메리메이트MerryMate
북한이탈대학생 기숙사 ‘메리메이트(MerryMate)’는 서울 소재의 대학을 다니는 북한이탈주민 출신 대 학생들의 성공적인 정착과 자립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2015년 3월 여학생 기숙사, 2016년 3월 남학생 기숙사를 열고 북한이탈대학생들에게 제2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우리 사회 적응을 돕고 있습 니다. ‘메리메이트’에서 지내는 학생들은 대학 재학 동안 안정적인 주거와 식생활, 상주 생활지원교사의 상담, 학습 멘토링, 졸업 후 정착을 위한 진로 지도와 취업 연계 프로그램 등을 지원 받습니다. 2018년 상반기까지 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2018년 9월 현재 9명의 학생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재영이가 만난 또 하나의 가정
재영(가명)이는 18살 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과 태국을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정착 을 하고 대안학교에 입학한 재영이는 학업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대학에 합격했 습니다. 혼자 서울에 와 한 평 반 고시원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대학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낯설었고, 하루에 8~9시간 공부를 해도 학 업은 따라가기 벅찼습니다. 그러던 중, 대안학교 선생님의 소개로 메리메이트(MerryMate)에 들어온 후 숙식이 해결되면서 재영이는 학업에 전념하며 대학 생활에 적응하
게 되었습니다. 재영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역사, 경제 교 육 그리고 멘토링 등도 도움이 많이 돼요. 대학 생활을 넘어 한국에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신미숙 생활지원교사: “학생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학업의 어려움을 가장 많이 이야기해요. 기초지식이 남한 학생들과 다르기 때문에 하루에 10시간 이 상 공부해도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벅찹니다. 진로와 취업에 대한 고민도 크고요. 탈 북민은 대학에 들어가면 국가 장학금 지원을 받지만, 기초지식의 차이로 수업을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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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지 못해 휴학을 하거나 학기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과 학기가 되면 장 학금 지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많은 탈북대학생들은 감당하지 못하 고 학업을 포기하기도 하죠.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게 되면 앞으로 자립해 한국사 회에서 생활해 나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재단에서는 이러한 북한이탈대학생들에게 기숙사 지원뿐만이 아니라 생활지원교 사의 돌봄과 지원, 진로 및 학습 멘토링, 각종 특강 교육, 건강검진, 문화생활 등을 지 원하며 이들의 미래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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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메리메이트MerryMate의 막내였던 지영이가 졸업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메리메이트(MerryMate)의 막내 지영(가명)입니다. 한국에 온 후 어려웠 던 점은 영어 등 모든 학과목을 기초부터 다시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집은 춘천에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합격했지만 지낼 곳이 없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시는 담당 형사님을 통해서 메리메이트 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 주 운 좋게 메리메이트 기숙사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기숙사가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와 얼마 멀지 않아 저는 항상 여유롭게 학교를 갈 수 있었습니다. 사감 선생님께서는 처음에는 저희 입맛을 모르셔서 자극성 적은 건강식으로 반찬을 많이 만 들어 주셨지만 저희 입에는 반찬이 너무 밍밍하고 싱거웠습니다. 그래서 반찬을 먹지 않아 자주 반찬이 상했고 선생님은 너무 속상해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갈 때쯤 선 생님이 저희 입맛을 따라오셔서 어느새 반찬은 매콤해지고 선생님도 북한 음식에 적응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반찬이 상할 날이 없이 아주 잘 먹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가서 ‘이게 먹고 싶어요. 저게 먹고 싶어요’ 하고 말합니 다. 그럼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알았다고 말씀하시고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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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저는 이렇게 넓고 깨끗한 기숙사는 처음 살아봅니다. 처음에 기숙사에 들어왔을 때에는 말도 안 나올 만큼 기뻤습니다. 살 곳이 생긴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기숙사에 필요한 것들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기숙사에서도 많이 살아 봤지만 개인 용 책상과 침대를 사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 어떻게 이런 사소한 것 까지 준비하셨냐고 계속 질문하곤 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선물을 제공해 주신 것도 후원자 라고 하셨고 선생님은 기숙사를 준비하기까지 여러 사람의 노력과 기도의 시간이 있었고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후원해주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모든 환경이 너무 감사했고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했지만 점점 감 사를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시면 잔소리처럼 들리고 선생님은 왜 저 한테만 그러시나하고요. 그렇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떠올랐습니다. 제가 처음 감사했던 마음이 익숙함과 당연함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걸요. 앞으로는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한 걸 하나하나 말씀 드리려면 밤을 새야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집에 갈 수 없을 것 같 아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희를 후원해 주시는 여러분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러분들 덕분에 저와 언니들은 따뜻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으며 학교생활 을 잘 하고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열심히 살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2015. 12. 막내 지영 올림
메리메이트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막내였던 지영이는 뷰티아트 전공 후 2017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헤어디자이너로 취업을 했습니다. 앞으로 멋진 헤어디자이너가 될 지영이의 앞날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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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새로운 꿈을 찾아 베트남으로 비전트립을 다녀왔습니다. 꼼꼼한 면접을 통해 지원이 꼭 필요한 학생을 선발합니다. 3 4 헤어디자이너가 꿈인 막내 지영이가 졸업을 했습니다. 5 제주도 여름 캠프로 공부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랬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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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북한이탈주민 가정통합지원 : 메리패밀리MerryFamily
열매나눔재단은 2017년 2월부터 북한이탈주민의 자녀에게 태권도, 피아노, 발레, 미술 등의 특기 적성 학원비를 지원하는 ‘아동꿈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17년 9명, 2018년 18명, 모두 27명의 아동이 ‘아동꿈지원 사업’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사업 2년 차에는 지원 영역을 아이와 그 가정까지 확대하였습니다. 가정통합지원은 가족 관계에 어려 움을 겪고 있는 가정에 외식 및 나들이 지원, 가정방문 프로그램, 심리정서지원을 합니다. 또한 의료, 주거 등의 문제로 위기에 처한 북한이탈주민가정을 돕는 긴급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남한이 낯선 형제에게 마음 비빌 언덕이 생겼습니다
13살 태준(가명)이와 11살 태민(가명)이는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을 겪 으며 2014년 북한을 떠나 아버지와 한국에 왔습니다. 현재 아버지는 폐결핵을 앓고 있으며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취직이나 다른 경제활동을 시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이들 양육에 신경 쓸 여력도 없습니 다. 태준이와 태민이의 얼굴에서는 엄마의 빈자리가 아주 많이 느껴집니다. 2017년 태준이, 태민이는 하나센터의 추천을 통해 재단의 가정통합지원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고 간절하게 소원했던 태권도 학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태권도장 사범: “처음 왔을 때는 고삐 풀린 망아지였어요. 어른한테 반말도 예사로 하고, 성격도 행동도 거칠었고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법을 몰랐어요. 지금은 정말 많 이 바뀌었죠. 결석이 거의 없고, 혹시 아프면 못 온다고 전화를 하고 보충수업까지 들어요. 친구들이랑도 잘 어울리고, 자신감도 정말 좋아졌죠.”
4년 전 남한에 온 이후 게임에만 빠져 있던 형제는 태권도 실력도 일취월장하여 학 원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띠인 빨간띠를 받았답니다. 사범님은 아이들이 실력은 충분 하니 하반기쯤 나중에 자격증으로 활용도 할 수 있도록 품띠를 딸 것을 권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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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태준이는 학교에서 대학생 형과 누나들이 가르치는 방과 후 수업을 빠지지 않 고 듣고 있습니다. 태준이가 점차 공부에 자신감을 갖고 책상에 앉아있게 된 건 주변 의 따뜻한 관심과 작은 정성 덕분입니다. 재단의 본 사업을 함께 돕고 있는 하나센터 담당자는 특기적성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고 말합니다. 하나센터담당자: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은 탈북 과정에서 제3국 출생이 많아 한국말 이 서투릅니다. 그래서 학교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렵고 원활한 교우관계를 만드는 데 도 큰 어려움이 따릅니다. 본 사업을 통해 한국어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자연스레 한 국말이 늘면서 공부에도, 교우관계에도 큰 진전이 있습니다. 특기적성의 경우,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다 보니 부모님께서는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어렵습니다. 그런 데 재단에서 아이들의 교육비를 지원해주면서, 아이들에게 교육경험에 대한 공평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에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부 연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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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은 특기 적성 교육을 받으며 또래관계 와 세상을 배우고 있습니다.
서 벗어난 친구들에게도 혜택이 제공되었으면 합니다.”
재단은 이에 매년 조금씩 지원 대상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며 최초 1년 지원 예정 이었던 규정을 완화하여 지원 효과가 명확한 아동들을 대상으로 추가 지원하고 있습 니다. ‘먼저 온 통일’이라 불리는 우리 아이들이 특기 적성 활동을 통해 여느 아이들처럼 마음껏 꿈을 꾸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따듯한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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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었던 현경 씨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습니다
북한을 떠나 2005년 한국에 온 현경(가명) 씨는 오붓한 가정을 꾸리고 예쁜 딸 은 영(가명)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은영이가 2살 때 희귀난치성 질환 판정을 받으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온종일 인공호흡기를 끼고 생활하는 은영이는 합병증으로 척추와 팔이 휘고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을 수도 없습니다. 몸이 극도로 약해져 하루 에도 두세 번씩 피를 토하고 이 출혈이 잘 멈추지 않아 언제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모 릅니다. 현경 씨의 헌신적 간호로 은영이는 어느덧 12살이 되었습니다. 24시간 은영이 곁 을 지켜온 지 10년째, 현경 씨는 7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지금도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자신은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현경 씨: “은영이 병은 낫는 병이 아니래요. 끝나지 않는 터널을 지나가는 것 같지 만… 포기할 수는 없죠.”
현경 씨의 경제적 부담은 날로 늘어갑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 은영이 아빠가 보내는 비용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열매나눔재단은 은영이네 가정에 필요한 의료비와 생계비, 의료소모품비를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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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현경 씨는 은영이 곁을 24시간 떠날 수가 없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은 이 땅에 연고가 없고 경제적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 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중 누군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하거나 심각한 병을 앓게 되 면 가정 경제가 순식간에 어려운 상황에 빠집니다. 재단은 사고나 병으로 경제적 어 려움에 처한 북한이탈주민 가정이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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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기업과 함께 한 10년
1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은 사회적기업 및 사회적기업가에게 일정 기간 동안 사회적기업 창업에 필요한 인큐베이팅 공간, 사업비, 멘토링 등을 제공하여 체계적으로 사회적기업가 를 육성하는 사업입니다. 열매나눔재단은 2012년부터 본 사업의 중간지원단체로 선정되어 사회적경 제 인큐베이팅 센터를 운영하며 국내 사회적기업(가) 육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2015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서 글로벌 특화부문을 신설하였고 재단의 글로벌 부분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여 본 사업을 위탁하였습니다. 이에 재단은 2015, 2016년에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 글로벌 특화 위탁운영기관으로 본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2017년부터는 국내권역 과 글로벌 특화 부문을 모두 담당하는 위탁운영기관으로 사회적기업(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두 손만 있다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_두손컴퍼니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두손컴퍼니 박찬재 대표는 2011년 서울역 노 숙인 강제 퇴거 조치를 보면서 노숙인들 만큼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비록 사회 경험 없는 대학생이지만,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겠다 는 열정으로 노숙인을 위한 사회적기업 만들기를 시작합니다. 2년 동안 두손컴퍼니 멤버들은 노숙인들을 꾸준히 만나고 한 편으로는 노숙인 관 련 자료를 연구하면서, 사회 제도가 자립하려는 이들을 길거리로 몰고 있다는 것을 알 았습니다. 그래서 박찬재 대표는 노숙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안정적인 일자리 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 두손컴퍼니가 탄생했습니다. 자활을 꿈꾸며 일하고자(Do) 하는 노숙인의 손과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자 돕는 손, 두 손이 만났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두(Do)손컴퍼니는 특별한 기술 이 없는 노숙인도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자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친환경 옷걸 이를 첫 사업 아이템으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열매나눔재단을 통해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박찬재 대표는 옷걸이로 마케팅을 하는 아이템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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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컴퍼니_박찬재대표(왼쪽)
신감이 있었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습니다. 사업 아이템을 무단으로 카피하는 업체 도 있었고, 기업 입장에서는 두손컴퍼니도 수많은 광고매체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노숙인에게 희망을 주고, 두손컴퍼니를 통해 “착한 기업이 강한 기 업이 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나아가며 도움의 손길 또한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재단의 인큐베이팅센터에서 만난 멘토들의 조언을 통해 부족한 부분 을 채워가며 상품과 기업 시스템을 발전시켰습니다. 그 결과 두손컴퍼니는 우수 사회 적기업을 뽑는 H-온드림 대회 인큐베이팅 부분에서 상을 받을 만큼 성장하게 되었 습니다. 재단과 함께했던 10개월의 인큐베이팅 기간이 박찬재 대표에게는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요. 박찬재 대표: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가면서 이것이 얼마나 큰 가치인지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치는 오로지 실천을 통해서만 느 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이 아니었다면 아마 시작도 못 했을 겁니다. 좋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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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패기만을 가지고 시작한 사업을 재단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가끔 지 친 창업팀들을 위해 식사를 제공해 주시기도 했고 열정적인 멘토링으로 저희 팀이 발 전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한창 힘든 시기에, 함께 하시는 노숙인분께서 농담처럼 ‘찬재형, 일감 많이 가져와’ 라고 하셨는데요. 그 말이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진흥원 사업이 종료되는 시점에 서 H-온드림에 인큐베이팅팀으로 당선되었는데 그때의 기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두손컴퍼니는 (사)서울노숙인시설협회와 정식으로 MOU를 맺으면서, 사업체의 일 거리를 서울 전역의 노숙인 쉼터에 분배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여러 판매처에 납 품하였습니다. 이후 여러 시행착오와 경험을 쌓은 결과 2015년에 소규모 제조업체 를 위한 전자상거래 물류대행사업을 시작하며 브랜드 ‘품고’(Poomgo)를 론칭했습니 다. 2017년엔 크라우드펀딩 전용 배송대행 플랫폼 브랜드 ‘두윙’(Dowing)도 론칭했습 니다.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두손컴퍼니의 2015년 2억 원이던 매출액은 2017년 17억 원으로 급성장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걸어가는 사회적 기업 두손컴퍼니의 길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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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여행을 떠나다 _베트남스토리
베트남스토리는 재단의 2015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글로벌특화 분야를 통해 선발된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현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는 공정한 여행을 만들 어가는 기업입니다. 관광객이 10만원을 소비하면 현지인은 그 중 5%, 즉 5천 원 정도 를 소득으로 가져갑니다. 그래서 연간 10억 명 이상이 해외여행을 다니는데 현지의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 베트남스토리의 시작입 니다. 김정식 대표: “베트남스토리에서 모든 상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 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여행상품과 더불어 봉사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볼룬 투어 상품이 있습니다.”
볼룬투어는 현지 소수민족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좀 더 밀접하게 현지생활 을 체험하고 주택개보수, 농사, 환경정리 등 자원봉사 활동도 함께 진행하는 상품입 니다. 볼룬투어의 경우 수익을 최소화하고 현지 마을에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합니다. 김정식 대표: “베트남스토리는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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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스토리_김정식대표
든 여행은 프라이빗 투어가 기본입니다. 여행자와 함께 여행을 디자인해 자신의 계 획대로 자유롭게 여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쇼핑, 노옵션으로 별도로 제공되 는 커미션을 없애 최대한 여행자가 만족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베트남 네트워크의 경우 사회적기업으로 등록되어 있는 책임 여행사와만 연계해 직거래로 운영하고 있 습니다. 노커미션이 원칙이다 보니 한국여행사로는 유일하게 그들과 일하고 있답니 다. 베트남스토리의 가이드는 현지 관광대학을 졸업하고 책임여행교육을 이수한 전 문 가이드들로만 구성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 가이드 만족도가 높은 편입니다.”
공정여행의 원칙을 고수하다보니 베트남스토리는 상대적으로 다른 여행사보다 저 렴하지는 않습니다. 김정식 대표는 여행자의 선택의 문제라고 본다고 소신을 밝혔습 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행사 대표이지만 초기에 사업에 도통 감을 못 잡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웃으셨습니다. 김정식 대표: “무작정 달려들었는데 처음부터 난관의 연속이었죠. 항공기 좌석을 잡 는 것조차도 몰랐으니까요. (웃음) 열매나눔재단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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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인프라를 지원받고 전문 멘토링을 받을 수 있어서 사업기획, 마케팅 등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요즘은 세무회계 파트의 전문가분들께 도움을 받고 있는데 수시로 연락해 귀찮을 법도 한데 여러모로 조언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답니다.”
또한 사업 성장과 함께 수익의 최소 10%는 사회공헌기금으로 조성하여 베트남 사회에 환원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베트남 공정여행가이드 교육센터의 설립비 용을 전액 지원하였으며 2018년 2월부터 소수민족 4명을 채용하였습니다. 그 외에 도 전쟁피해 마을과 학교, 소수민족 마을과 학교 지원, 한국의 결혼이주민 자녀 어린 이집 지원 등 설립 초기의 원칙들을 실천하여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이 러한 베트남스토리의 고집은 여행자들의 긍정적인 피드백과 현지인들의 호응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김정식 대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게다가 현지 볼룬투어 프로그램으로 참여하는 소수민족 마을의 주민들의 삶이 조금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더 노력해야 겠구나 싶더군요. 베트남스토리는 베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프로젝트입니 다. 앞으로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까지 확대해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만들어보고 싶 습니다!”
베트남스토리는 2018년 현재 라오스, 미국, 일본으로 영역을 확장하였습니다. 2016년 매출 약 50억 원에서 2018년 상반기 매출이 50억 원 상당이 될 정도로 성장 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스토리의 세상에 없는 여행이 계속되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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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게는 최선의 대우를, 소비자에게는 정직한 상품을 _히든테이스트(HIDD_N TASTE)
히든테이스트(HIDD_N TASTE)가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는 바로 ‘코코넛에 숨겨진 (hidden) 가치를 찾아 소비자에게 정직하게 전달하고 코코넛을 생산하는 농부를 돕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히든테이스트가 코코넛 열매에서 찾은 첫 번째 보물은 코코넛 오일입니다. 우준석 대표: “코코넛 오일은 라우릭산(Lauric Acid) 성분을 50% 이상 함유하고 있어 요. 흔히 모유에 들어있는 성분으로 많이 알고 있는데, 항바이러스 작용을 합니다. 아이들이 모유를 먹으면 면역력이 높아지는데, 코코넛 오일이 유사한 역할을 해요.”
이렇게 보물같은 코코넛을 채집하기 위해서는 20~30미터 높이의 나무에 올라가 야 합니다.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하지만 임금은 일당 3천 원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코 코넛 농부들이 깊은 가난으로 신음하는 이유였습니다. 우준석 대표: “농부들 95% 이상이 소작농이고, 유통 또한 중간상인을 거쳐 대기업 에 납품해요. 중간상인이 운반비 등을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기 때문에 농 민들은 오히려 중간상인에게 제대로 된 코코넛 값을 받을 수가 없어요. 중간상인이 부르는 게 값이 되니까요. 또 농민들이 이자를 갚지 못하면 종신계약으로 이어져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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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테이스트_우준석대표(우)
예처럼 일하게 됩니다. 2013년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코코넛 농가들의 소득을 보고 했는데, 내용이 나오지 못했어요. 임금 자체가 너무 열악해 보고서를 낼 수 있는 상 황이 아니었던 거죠.”
종신계약으로 노예처럼 사는 코코넛 농부. 아이들은 아버지의 삶을 물려받아 가난 은 대물림됩니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산에서 마을단위로 가족이 모여 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정규교육을 시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현지의 문제를 알게 된 우 대표는 코코넛 사업을 시작하면서 제품의 품질은 물론 코코넛 농부들의 처우 개선에 함께할 현지 파트너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지만 대답은 모두 ‘노(No)’였다고 합니다. 우준석 대표: “필리핀코코넛협회(PCA)가 있는데, 협회에 등록된 모든 업체에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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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어요. 그 중 회신이 온 회사들에 제조 공정 공개를 요청하자 노하우를 공개할 수 없다며 거절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필리핀 현지에 가서 무조건 부딪혔어요.”
각고의 노력과 기다림 끝에 2017년에 히든테이스트의 미션과 일치하는 파트너를 찾았습니다. 우준석 대표: “코코오일(KOKO OIL)이라는 회사였는데, 모든 공정을 보여줄 수 있으 니 언제든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때 열매나눔재단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으로 자금 지원을 받아 다녀오게 되었어요.”
우준석 대표는 코코오일 대표 피터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릴레이 회의를 계속한 끝에 서로가 그토록 찾던 파트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코코오일이라는 든 든한 파트너쉽으로 2017년 11월 제품 출시를 한 히든테이스트. 우준석 대표: “제품 소개 홈페이지인 ‘히든빌리지’에서는 코코넛오일 생산 공정의 모든 것을 담았어요. 히든테이스트의 타켓 고객인 0~4세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아 이에게 먹이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많이 궁금해 하거든요. 그러한 것 들을 전부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는 제품입니다.”
히든테이스트는 2017년 육성팀으로 선정되어 재단 인큐베이팅 센터에서 10개월 간 함께한 뒤 사회적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서울혁신파크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현재 히든테이스트의 코코넛 오일은 프리미엄 온라인 식료품점인 ‘마켓컬리’에 입점할 정 도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성장과 더불어 히든테이스트가 추구하는 미션 또한 더 단단해지길 믿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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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협약식 현장, 모두 함께 희망과 1 승리를 다짐합니다. 우리의 사업이 어떻게 사회를 변화시킬 2 수 있을지 육성팀들의 고민은 계속됩니다. 재단 인큐베이팅 센터는 창업팀들의 사무 3 실이자 아지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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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창업팀 대표들의 포토타임, 서로를 응원하며 각자의 포부를 밝혔습니다.
2 사회적기업 시설 운영비 지원사업
열매나눔재단은 서민금융진흥원(舊 미소금융중앙재단)에서 수탁한 자금으로 2009년부터 사회적기업시 설·운영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은 자금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적기업 에 사업장 임대자금, 시설비, 운영자금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저금리로 최대 5천만원까지 지 원합니다. 2018년 기준 총 90개 사회적기업에 80억 2천만원을 지원하였습니다.
제 휠체어가 넘지 못할 문턱은 없습니다 _한국장애인자립협회
휠체어에 앉아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한국장애인자립협회 이혜영 회장의 첫 인상 은 참 단아하고 따뜻합니다. 이혜영 회장: “사고가 났었어요. 그 후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이동조차 할 수 없는 1급 장애인이 되었어요. 모두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그저 조용히 살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산으로 가게 되었어요.”
12년 전 고향인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이혜영 회장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구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장애인이라는 이유 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혜영 회장: “긴 시간 동안 너무 힘들었죠. 그런데 저는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 생 각하거든요. 1%의 희망만 있으면 무조건 돌진하는 타입이에요.”
이혜영 회장은 부산척수장애인협회 부회장직을 시작으로 지역사회 장애인들의 권 익을 위한 일을 하던 가운데 일자리를 만들어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사업을 계획 하게 되었습니다. 종량제 비닐을 제작하는 한국장애인자립협회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혜영 회장: “함께 시작한 멤버들은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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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애인자립협회_이혜영회장
고 말할 정도로 처음에 정말 힘들었어요. 제조업의 쓴맛을 제대로 봤지요.”
처음 기계 3대를 가지고 시작한 공장은 2009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면서 열매 나눔재단의 자금을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자금 사정이 조금씩 풀리면서 2009 년 1억 원에 그쳤던 매출은 2010년 6억 원가량으로 늘었고, 2013년에는 18억 원 규 모로 성장했습니다. 이혜영 회장: “아직 이익을 내는 단계는 아니에요. 그동안 공장 짓고 기계 사고 하느 라 진 빚이 많아서 벌면 빚 갚기 바빠요. 우스갯소리로 죽을 때 되어야 이 빚 다 갚겠 네 한답니다. 그래도 남은 게 딱 하나 있어요. 바로 매년 조금씩 늘고 있는 우리 장애 인 직원들이죠. 그리고 앞으로 우리 공장이 성장할수록 이 직원들의 수가 늘어날 것 이고요. 공장 식구들을 위해서라면 제 휠체어가 넘지 못할 문턱은 없습니다.”
한국장애인자립협회는 2014년 기준으로 25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는데 그 중 80%가 장애인입니다. 함께 일하기 위해서 장애인의 경우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 의 훈련이 필요하고 작업이 숙달되기까지는 비장애인보다 시간도 훨씬 오래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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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합니다. 이혜영 회장: “답답할 때가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그 부족함을 잘 알고 있기에 기 다려주는 거지요. 직원들 모두 각자가 어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장 애유형별로 서로 보완해 가며 일하고 있어요. 솔직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실하게 공장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점수를 주고 싶어요. 이 친구들과 서로 믿고 의지하며 같 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최고의 성과에요. 책임지고 이 친구들을 사회구 성원으로서 당당하게 자립시킬 겁니다.”
한국장애인자립협회는 쓰레기종량제봉투 제조 사업으로 2017년에는 매출 50억 원까지 달성했습니다. 부산을 넘어 경상도, 충청도와 전라도까지 납품을 하게 되면서 이혜영 회장과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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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상생하는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꿈꾸고 일구다 _함께일하는세상
사회적기업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2002년,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망설 임 없이 이 길에 도전장을 내민 함께일하는세상의 이철종 대표는 그래서 사회적기업 의 시니어라고 불립니다. 함께일하는세상은 흔히 청소용역업으로 알려진 종합주거환 경관리 사업을 진행하며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사회적경제 생태계 조성사업을 추진 하고 있습니다. 이철종 대표는 자활센터에서 취약계층 자립 지원업무를 하면서 제도적 지원의 한 계를 여실히 체험하게 됩니다. 정부 지원기간이 끝난 후 취약계층이 자립을 하긴 어 렵다고 생각되자 종합주거환경관리 사회적기업인 함께일하는세상을 설립하기로 합 니다. 청소는 취약계층이 접근하기 쉬운 분야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편견과 열악한 노동 환경 등으로 제대로 대우를 못 받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철종 대표는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제공만이 아니라 이들을 전문가로 양성하여 근로자 스스로 청소 전문가라는 직업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청소관리 에 관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시장 전체의 저변을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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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일하는세상_이철종대표
2005년 함께일하는세상이 학교 화장실 청소사업 유료화 모델을 제시하여 사업예 산이 국회를 통과해 2007년 ‘깨끗한 학교만들기’ 사업을 전국에서 시행한 일이 대표 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약 6천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으며 지금까지도 지역자활센터의 청소자활공동체, 청소자활기업 등에서 이 사업수행을 통해 성장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공시장의 사회적기업 제한경쟁입찰시장의 문을 열어 후발 사회적기업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이면서 사회적기 업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함께일하는세상 같은 노동통합형 사회적기업은 노무 관리와 사례 관리가 병행되 는 경우가 많아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고령의 근로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노무 관리 와 사례 관리는 분리해야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많다 보니 복지 관점의 마인드로 직 원들을 관리해 냉정히 분리되기 어려운 일들이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이철종 대표: “80세까지 일하신 최고령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3일 전까지 일하셨 어요. 몸이 안 좋다고 조퇴하시더니 입원하시고는 사흘 만에 돌아가셨죠. 지금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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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계신 70대 할머니는 혼자 손자를 돌보고 키워야 하기 때문에 꼭 일을 하셔야 해요. 하지만 허리도 굽고 나이가 있으니 업체에서는 근로자를 바꿔달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을 옮겨가며 계속 일을 드리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렇게 받는 월급 이 이분들의 유일한 희망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지요. 일반기업이었다면 아마 있 을 수 없는 일이겠죠?”
열매나눔재단과 함께일하는세상의 인연은 2010년 사회적기업 시설・운영비 지원 사업 때 시작되었습니다. 꿋꿋이 사회적기업의 길을 개척하던 이철종 대표에게도 파 산 위기가 닥쳐온 것입니다. 이때 재단의 지원금 등을 통해 극복하여 현재는 회복기 에 있습니다. 이철종 대표는 신념을 위해 파산 위기 속에서도 구조조정만큼은 하지 않고 자신의 월급을 반납하면서 회사를 이끌어왔습니다. 또한 조직의 관리 단계를 최 소화하여 현장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며 조직원들을 성장시켜 계열사의 리더로 세웠 습니다. 이철종 대표, 그는 단언컨대 사회적기업계의 작은 거인입니다. 함께일하는세상은 파산 위기를 극복한 뒤 2014년부터는 순이익을 내기 시작했고 2015년에는 10년 만에 10억대의 매출을 회복하였습니다. 이철종 대표는 현재 ‘사회 적경제조직 생태계 조성’이라는 2020 비전을 세우고 국내의 사회적기업들에 경영비 법과 컨설팅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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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와 응원의 마음을 지원금에 담아 전합니다. 1 협약식 때 만나 사업을 공유하며 협력의 기회도 찾습니다. 2 3,4 협약서에 서명하면서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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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회적경제 지원사업
커피맛도 일품, 마음씨도 일품 _커피창고
한국수출입은행 북한이탈주민 사회적기업 지원사업 본 사업은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수탁하여 북한이탈주민 사회적기업의 운영 활성화를 목적으로 진행하였 습니다. 북한이탈주민이 대표자이거나 북한이탈주민 근로자가 고용되었거나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서비스를 주 사업으로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을 지원대상으로 합니다. 선정된 사회적기업에게 사업에 대한 경쟁력과 지 속가능성 향상을 위해 운영자금 및 경영컨설팅을 제공하였습니다.
전순영(가명) 어머니: “2012년 12월, 딸아이 하나 데리고 남한에 왔어요. 하나원에 서 만난 친구한테 이곳을 소개 받았어요. 면접을 보고 첫 출근을 한 후부터 정말 매 일 아침 출근이 즐거워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고, 또 전문적인 교육까지 받을 수 있어 저도 성장하니 좋고, 일한 만큼 인정도 받으니 보람도 있고요.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서 좋아요. (웃음)”
커피창고의 전신은 김유리 대표가 운영하던 카페였습니다. 그곳 커피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소규모 납품을 시작하게 되고, 2011년 법인을 설립하여 지금까지 약 140여개 기업과 전문커피 매장에 커피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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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cg.com)을
통해 개인에게도 원두를 판매하고 더불어 OEM도 함께 진행하고 있
습니다. 우연히 시작된 커피창고의 설립처럼, 커피창고가 사회적기업이 된 것도 인연이 자 연스럽게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김유리 대표는 말합니다. 커피창고는 2013년에 북한 이탈주민지원재단 컨소시엄 사업자로 선정되어 북한이탈주민 한 명을 고용하게 되 면서 기업의 사회적 기능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김유리 대표: “로스팅을 담당하는 여사님들 모두 북한이탈주민이에요. 혹시 북한이 탈주민을 직원으로 고용해서 어려움은 없냐 그런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이 냐의 문제일 뿐 북한이탈주민이라 문제되는 건 없어요. 가끔 회식할 때 여사님들이 ‘여기 오길 잘했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럴 땐 뭉클하죠. 그렇게 고용을 늘려가다 보 니 현재는 직원의 90%가 취약계층이에요. 무조건 취약계층만 고집하는 건 아니지 만 동일한 직무를 놓고 고용을 할 때 같은 능력이라면 취약계층을 고용하려고 해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예비사회적기업이 되어있더라고요. (웃음)”
로스팅을 세 분의 북한이탈주민 어머니들께 맡길 만큼, 어머니들의 실력은 날로 향상되어 어느새 커피 전문가가 되었고 김유리 대표는 식구 같은 직원들과 함께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며 커피창고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유리 대표: “2014년에는 전년도 대비 2배 이상 성장할 만큼 좋은 일들이 많았습 니다. 그때 열매나눔재단과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 운영자금과 컨설팅을 지원받고 거래처를 늘리고 내실을 다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2015년은 메르스 여파로 6개월 정도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이렇게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대처하는 게 작은 기업으 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회적 가치가 좋다고 해도 기업이 무너지면 그 가치 또한 이루지 못하잖아요. 흔들리더라도 굳건히 버틸 수 있게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 도록 직원들과 앞으로의 사업을 고민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업으로서 경영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 커피창고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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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창고_김유리대표(좌)는 펀딩 수익금 일부를 재단에 후원해주셨습니다.(좌) 자부심을 담아 원두를 로스팅하고 있는 전순영 어머니의 모습입니다.(우)
질 보장입니다. 커피창고는 적정량의 생두만 공급 받아 적재율을 최소화하고, 좋은 생두를 사용하여 당일 로스팅해서 공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유리 대표: “좋은 일 하는 기업이니 제품을 써 주십사 영업하지는 않아요. 반드시 제품으로 승부하려 했고 그러다가 나중에 저희가 예비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셔서 좋게 봐 주시는 경우가 많지요. ‘제품이 좋아서 거래했는데 좋은 일 하는 회 사였네’ 하면서요.”
2017년 커피창고는 해피빈 공감펀딩의 수익금 일부를 재단에 기부하였습니다. 또 한 2018년 여름에는 재단의 2018년 사회적기업 시설·운영비 지원사업을 통해 운영 자금을 추가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원을 토대로 커피창고가 북한이탈주민 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 가치를 향긋하게 펼치는 탄탄한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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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패션을 새롭게 재미있게 올바르게 선도하다 _더뉴히어로즈
JP모간 글로벌 사회적기업(가)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2016년 글로벌 금융 회사 JP모간의 후원으로 초기 단계 사회적기업(가)의 글로벌 진출 및 비즈니스 안정화를 돕고자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실무 교육, 업종별 전문 멘토링이 제공되는 1단계, 현지 언어 교육, 국가별 맞춤 컨설팅, 해외 워크숍이 진행되는 2단계, 모의 펀딩 대회 등을 통해 투자로 연결되는 3단계 로 구성됩니다. 선발된 팀은 맞춤형 지원을 제공받아 해외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더뉴히어로즈는 지속가능한 패션 시장의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꿈꾸는 사회적기 업입니다. 첫 번째 영웅 후보는 콘삭스(CORNSOX)입니다. 이태성 대표: “친환경 소재인 옥수수로 만드는 양말이 워낙 이슈가 되다 보니 양말 만 만드는 회사로 이미지가 고착된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더뉴히어로즈는 양말 회사는 아니에요. 더뉴히어로즈는 양말뿐 아니라 가방,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패션 아이템을 가지고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회사입니다. 그 첫번째 히어로가 콘삭스였던 것이죠.”
이태성 대표는 패션산업 이면의 노동력 착취, 환경파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후 콘삭스, 쥬트백 등 환경을 생각한 윤리적 패션산업을 일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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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 대표: “쥬트백은 방글라데시의 주요 생산 작물이자 친환경 소재인 쥬트(황마) 로 만들어졌습니다. 쥬트백은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지는데요. 2013년 수많은 의 류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붕괴사건의 피해자와 희생자 가족들의 지 속가능한 자립을 위해 2014년 설립된 사회적기업 봉제공장인 뷰티풀웍스(Beautiful Works)에서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태성 대표가 재단의 JP모간 글로벌 사회적기업(가)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참 여하게 된 동기도 진행 중인 방글라데시 사업 때문이었습니다. 글로벌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재단의 글로벌 지원 프로그램이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이태성 대표: “12주 교육 때 오셨던 강사 중 한 분이 양말 무역하시는 분이셨어요. 그 전부터 한번 뵙고 싶었거든요. 덕분에 함께 비즈니스 연계까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굉장히 좋았어요.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세요. (웃음)”
이태성 대표는 글로벌 진출 외에 로컬 스티치라는 프로젝트도 시작했습니다. 서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조금은 삐딱한 시선으로 로컬 중심 프로젝트를 해보자 라는 생각을 갖고, 고향인 춘천에서 창업하였습니다. 그렇게 5년이 흐르는 동안 더뉴히어 로즈의 유쾌하면서도 옳음을 추구하는 그 길은 어땠을까요. 이태성 대표: “지금도 어려워요. (웃음) 요즘 소비가 많이 위축되어 있다는 걸 느껴 요. 또 백화점, 마트 등 입점 논의를 할 때 가격 경쟁력 부분에서 많은 고민이 있죠. 옥수수 섬유를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다 보니 원가 비중이 높거든요. 그래도 우리 직 원들은 천연 염색을 해야 한다 더 좋은 원재료를 써야 한다 고집합니다. 사회적 가치 하나는 확실한 직원들이라 참 뿌듯한데 제 마음도 좀 알아주면 좋겠어요. (웃음) 대부 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첫 제품이 출시되고 텐바이텐에서 메 인에 저희 상품을 걸어주신 거예요. 그런데 저희 홈페이지 트래픽을 너무 작게 잡아 놔서 오전 10시에 저희 쇼핑몰이 다운되었더라고요. 복구하는 법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 그 황금 같은 기회를 그대로 날려버렸던 적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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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히어로즈_이태성대표
차츰 회사가 알려지면서 대기업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도 많이 들어오고, 입점 논의도 꾸준히 진행되는 등 더뉴히어로즈는 한창 성장 중입니다. 팀원들이 주도적으 로 이끌어가는 회사인 더뉴히어로즈는 성장과 매출에 대한 압박과 사회적 가치 고수, 강한 리더십과 민주적 리더십이라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수익창출과 사회 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적기업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이태성 대표: “원래 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사회적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똑같이 가치 있는 일입 니다.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주목받을 뿐이지요. 기업의 존재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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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곳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라 생각합니다.”
더뉴히어로즈 사무실에 벽에는 ‘옳은 일을 재미있게,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벌자’ 라는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마다 무엇이 옳은 지, 남들하고 다른 게 뭐냐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더뉴히어로즈는 오늘도 윤리적 패션 시장을 개척하고자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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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의 활기를 이끄는 청년창업가 _바글바글
기아차X그린카 남대문시장 청년창업 지원사업 본 사업은 기아차, 그린카가 함께 남대문시장 청년창업가들이 꿈을 펼치도록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그린카 와 기아자동차가 진행한 ‘청춘, 내:일을 그리다’ 캠페인은 그린카에서 지정한 기아차를 이용할 경우 주행거리 1km당 50원씩 남대문시장의 청년창업가들에게 지원되는 캠페인입니다. 기아자동차에서는 열매나눔재단을 통해 ‘청년창업발전기금’으로 1억 5000만원을 기부하였습니다. 재단은 2017년부터 기부금으로 남대문시장 청년창업가들의 브랜딩 및 판로개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바글바글은 남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를 제조하고 도매하는 신생 업체입니다. 최 예진 사장은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가장 큰 자산은 자신감이라고 말합니다. 최예진 사장: “프로그램 참여 후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막 창업을 시작한 청년들이 개인적으로 실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경험해 볼 수 있어서 굉장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표면적인 도움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세세한 피드백과 관심을 가져주어 난항이 있었을 때 빠르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 니다. 전체적으로 정말 만족했고, 감사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청년들이 창업할 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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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글바글_최예진대표(부스 안 여성)
일 것입니다. 아이디어는 있지만 사업을 실행하기까지 참 막연한 것들이 많고, 그러 나 이에 대해 배우거나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나 엄혹한 시장의 흐름은 청년들이 성장하기까지 기다려주지 않는 것도 현실입니다. 최예진 사장: “프로그램을 들어가기 전 창업 초창기인 저에게 따로 고객이 존재하지 않았고, 또한 매장에서의 판매가 수익의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후 매장뿐만 아니라 다른 루트를 통해 수익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 판매를 위한 다른 루트를 개척 할 수 있었습니다. 지원 프로그램이 끝난 지금도 경험을 살려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홍콩페어와 동대문페어에 참여했던 경험은 사업에 큰 원동력을 불어넣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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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되었습니다. 프로그램 마감 시점을 앞두고 최예진 사장에게 막연했던 사업의 미 래는 구체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예진 사장: “견문을 넓히며, 국내와 해외고객 유치, 시장조사 등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유행에 민감한 액세서리라는 제 사업 아이 템의 특성상,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바글바글’이 그 이름처럼 흥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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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 모두 차별 없이 소통하는 플랫폼 _다누온
한전 사회적경제조직 해외판로 지원사업 본 사업은 한국전력의 후원으로 해외판로개척을 희망하는 사회적경제조직(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 활기업)에 자금과 컨설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선발된 사회적경제조직들에 사업비를 지급하고 이를
활용하여 해외판로 지원사업을 진행합니다. 한국전력이 소재하는 광주, 전남 지역의 사회적경제조직을 일정 부분 선발함으로써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도모하며, 국내 사회적경제조직들의 해외 판로 확대와 매출 증대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누온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회 사입니다. 2013년 창업하여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도 사용 가능한 모바일 게임 개발을 기반으로 웹과 모바일 접근성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 스마 트폰 사용자를 위한 모바일 플랫폼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였습니다. 김용태 대표: “다누온은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모두 동일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개발자들도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때 시각장애인까지 자연스럽게 고려 할 수 있는 문화를 창조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꾸준히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 인 간의 소통의 통로를 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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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누온은 사회적경제 분야에 대한 기여도를 인정받아, 2016년 대한민국 소프트웨 어 기업경쟁력 대상,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표창장 등을 수상하며 기술력을 쌓 아가고 있습니다. 김용태 대표: “최근에 별도의 마케팅도 하지 않았는데 인도에서 11만개 이상의 다운 로드가 되고 매일 평균 5600개의 다운로드가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인기 에 대응을 제대로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벤치마킹을 할 수 있는 사례도 없어 서, 발로 직접 뛰며 대응을 했지만, 인도 현지 문화를 모르니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런 시기에 열매나눔재단의 한전 사회적경제조직 해외판로 지원사업을 알게 된 다누온은 망설임 없이 바로 지원을 하였습니다. 지원금으로 운영 중인 플랫폼을 현 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고, 2018년 5월 두 차례 인도 방문을 통해 현지 장애인 교육기관 및 콘텐츠 업체들을 추가로 만나 협업할 기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김용태 대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저희 플랫폼이 해 외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것은 그만큼 이에 대한 시장의 잠재적인 수요가 크기 때문이에요. 저희의 다음 목표는 중국 시장입니다.”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시각장애인 인구가 많은 나라로 그 숫자는 63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자체개발한 플랫폼이 향후 약 7500만 명에 달하는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나아가 전 세계 2억 8천 5백만 명의 시각장애인들의 플랫폼이 되길 다누온 은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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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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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기아차X그린카 남대문시장 청년창업 지원사업 : 지원금 전달식 2 한전 사회적경제조직 해외판로 지원사업 : 성과 공유회 3 한국수출입은행 북한이탈주민 사회적기업 지원사업 : 지원금 전달식 JP모간 글로벌 사회적기업(가)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 : 성과공유회 대상팀 스페이스선 엄수정대표(우), 4 한국JP모간 박라희 부분장(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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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희망키움뱅크 서울희망드림뱅크
희망키움뱅크와 서울희망드림뱅크는 모두 저소득층,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한 무담보 장기저리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이자 정부에서 최초로 시작한 소액창업지원사업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재단 에서는 본 사업들이 시행된 2009년부터 희망키움뱅크는 보건복지부, 서울희망드림뱅크는 서울시로 부터 수탁하여 운영하였습니다. 희망키움뱅크는 2014년에 중앙자활기관으로 이관되었으며, 서울희망 드림뱅크는 사업기간이 마감되어 정리 중에 있습니다.
양보 없는 원칙으로 떡 장인이 되다 _명가의 떡
명가의 떡(舊신종로떡방) 이성영 사장과 재단의 만남은 2009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이성영 사장은 당시 떡집 직원으로 일하며 배우고 익힌 기술을 가지고 본인의 가게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초기 자금부족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제도권 금융마저 외면한 그때, 취약계층을 위한 창업자금 지원 및 운영컨설팅을 제공하는 희망키움뱅크의 대상자로 선정되어 이성영 사장은 돌파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재단의 도움으로 떡집을 연지 어느덧 5년 차, ‘명가의 떡’은 새벽 6 시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준비로 분주히 하루를 맞습니다. 이성영 사장은 2014년 9월 재단 지원금 상환을 모두 마쳤습니다. 좋은 떡에 대한 신념과 떡방에 대한 나름의 운영철학을 갖고 계신 이성영 사장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잠시 명가의 떡 원칙을 들어 볼까요. 명품떡 원칙 하나! 첫째도 재료, 둘째도 재료, 좋은 재료가 맛을 좌우합니다. 이성영 사장: “재료만큼은 정말 자신 있습니다. 떡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는 쌀인 데 질이 나쁜 쌀로 떡을 만들면 절대 맛있는 떡이 나올 수 없어요. 국내에서 생산된 좋은 쌀을 쓰는 건 양보할 수 없는 일이지요. 혹시 대추고라고 아세요? 대추를 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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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의떡_이성영대표
서 만든 원액인데 약식 등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보통 원가절감을 위해서는 카라멜 색소를 사용하거나 흑설탕을 사용해 만드는데 우리는 대추고를 이용해서 설탕을 적 게 쓰고 색과 맛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재료를 100% 국내산으로 쓸 순 없습니 다. 하지만 수입산을 쓸 수밖에 없는 경우는 떡 협회의 정식 수입절차를 받은 재료만 고집하고 있습니다.”
명품떡 원칙 둘! 노세일 원칙, 5년간 한 번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보통 떡집들에서 는 마감 시간이 되면 2~3팩을 묶어 싸게 판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특이 하게도 명가의 떡은 세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성영 사장: “초기부터 세일은 하지 않았어요. 1팩에 1~2천 원 하는 떡을 세일해 서 팔면 지금 고집하는 재료들을 사용할 수 없어요. 세일하면서 일정액의 이윤을 남 기려면 결국 재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픈 초기부터 이 원 칙은 절대 깨지 않았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그때는 알아주는 손님들도 없었고 그날 만든 떡은 그날 팔아야 하기 때문에 남는 떡은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지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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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경찰서, 소방서 등에 맛보시라고 드리면서 그렇게 일 년을 버텼습니다. 어느새 손 님들이 떡 맛을 알아주기 시작했고, 저녁 때 오시면 먹고 싶은 떡을 살 수 없기 때문 에 미리미리 와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후에는 떡이 많이 팔리고 없 답니다. (웃음)”
명품떡 원칙 셋! 부창부수, 서로가 있어 가장 든든합니다. 이성영 사장: “전 떡을 만드는 것밖에 할 줄 모릅니다. 손님을 상대하고 떡을 포장하 는 일은 모두 아내의 몫이죠. 그 힘든 시기를 묵묵히 함께 견디며 가게를 위해 애써 준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저희 가게 소박하죠? 어찌 보면 오래되고 낡고 초라해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떡은 가게가 만드는 게 아니라 사 람이 만드는 거니까 한번 믿어보세요.”
명가의 떡은 안정적으로 방배동에서 사업을 했지만 골목상권의 한계에 부딪혀 좀 더 나은 상권(마곡)을 찾아 이전했습니다. 가게를 이전하면서 초기 운영비가 필요했 던 이성영 사장은 2016년 5월 재단에서 추가로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자금 3000만 원을 대출로 지원받았습니다. 그리고 2018년 8월에 이 지원금까지 완제하였습니다. 단기간에 두 번의 완제와 사업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했던 것은 2가지 비결이 있었 습니다. 주인 부부의 성실과 정직 경영 원칙. 그리고 재단 측에서 19회의 사후관리로 지원사격을 꾸준히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명가의 떡이 앞으로 지속 번창하여 재단과 함께 소외된 이웃들의 자립을 돕는 ‘씨앗가게’ 역할을 해 줄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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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기에 늦은 때란 없다 _하하장마켓
여기 30년의 긴 기다림 끝에 가슴에 묻어둔 꿈을 이룬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박성순 사장: “나이가 있으니 몸이 고되긴 하지요. 하지만 힘든 것보다 기쁨과 감사 가 더 커요. 꿈을 이뤘으니까요.”
육 남매를 둔 박성순 사장은 젊은 시절부터 동대문에서 옷 만드는 일을 배웠고 이 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식구가 많다 보니 형편은 늘 녹록하지 않 았지만 열심히 일한 결과 어느덧 본인의 공장을 열 수 있었고 집도 장만하면서 상황 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2009년 이제 좀 한숨 돌리고 살 수 있겠다 싶을 즈음 남편이 사기를 당해 그간 이 룬 것을 모두 잃고 길바닥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을 때, 박성순 사장은 재단의 서울희 망드림뱅크를 통해 자금을 지원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금 확보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경기불황으로 사람들은 가장 먼저 옷 구매를 멈추기 시작했고 공장들이 줄줄이 폐업을 할 때였습니다. 박성순 사장도 일거 리가 없어서 동동 발을 굴렀습니다. 박성순 사장: “파산 상태였어요. 집도 경매로 넘어갔고요. 생활도, 마음도 너무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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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충격으로 쓰러진 남편이 1년 정도 투병 생활을 하다 세 상을 떠나다 보니 형편은 더 나빠졌지요. 아이들을 봐서라도 다시 일어서야 하는데 누가 돈을 빌려줘요. 열매나눔재단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어찌 살고 있나 싶어요.”
육남매를 보며 다시 일어선 박성순 사장은 뜻밖에도 자신의 꿈을 이루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박성순 사장은 지난 30년 동안 남이 디자인한 옷만 만들면서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옷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딸의 블 로그를 통해 ‘하하장마켓’을 오픈하고 직접 만든 옷을 판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박성순 사장: “하하장마켓에서 판매하는 옷은 주로 아기 옷이에요. 천이며 디자인이 며 고무줄 꼬임까지도 고려해 불편함 없이 입을 수 있도록 세심하게 만들고 있어요. 요즘 트렌드를 반영하기 위해 시장조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기 옷뿐만 아니 라 패밀리룩도 제작하고, 엄마들의 주문을 받아 맞춤으로 제작하고 있어요. 국내산 원단을 사용하고 자체 제작이다 보니 가격도 매우 착하답니다.”
서서히 재기에 박차를 가하는 박성순 사장의 나이는 60세입니다. 꿈을 이루기에 늦은 때란 없다는 격언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박성순 사장: “돌이켜보면 엄마, 아내 그리고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삶이 녹록 하지 않아 여행 한번 제대로 못 해본 것 같네요. 60세가 되어서야 이룬 꿈을 잘 가꿔 서 남은 삶은 박성순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여유있고, 풍성한 삶을 만들어가고 싶 어요. 앞으로 20년은 더 일할 생각이에요. 제 이름을 걸고 매장을 내는 것이 이제 저 의 다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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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서울시 지원으로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된 저소득층 및 영세 자영업자 분들에게 무담보 장기저리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입니다. 열매나눔재단은 2012년부터 서울형 마이크 로크레딧 사업을 운영하였으며, 자금지원, 창업교육 맞춤형 컨설팅 등을 제공하여 영세 자영업자의 자립기반을 만들기 위해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본 사업을 통해 2012년도부터 2017년까지 누 적 집계 328개 업체의 창업을 지원하였습니다.
머리도 마음도 매만지는 아름다운 숍 _낭띠헤어
낭띠헤어의 구경선 사장은 2013년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으로 재단과 인연을 맺 었습니다. 구경선 사장: “24살부터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해 20대 후반부터 직접 헤어숍을 운 영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참 힘들었는데… 이렇게 평생 직업이 되었네요. (웃음)”
10대 때부터 구경선 사장의 삶의 무게는 가볍지 않았습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스스로 생계를 꾸린 17살, 후회 없는 삶을 위해 노력했던 10여년의 세월 끝에 나만의 숍을 열었습니다. 마냥 햇살이 비출 것 같았던 앞날이었 는데, 어두운 또 다른 10년의 세월이 다가옵니다. 구경선 사장: “미용일을 하다가 애 아빠를 만났어요. 결혼도 하고 귀한 아들도 하나 얻었고요. 사랑만 주고받아도 모자랄 시간이었는데… 남편의 폭력이 시작되었어요. 너무나도 길었던 10년이네요. 참 무섭고 두렵더라고요. 그래도 아들을 위해 가정을 깨고 싶지가 않아 신앙으로 버티며 많이도 참았는데, 어느 날 어린 아들에게까지 폭 력과 폭언을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정말 잘못된 선택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어렵게 남편과 이혼을 했지만 갈 곳이 없더군요. 내가 가진 거라곤 아들의 책과 옷가지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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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어요.”
그렇게 모자원에서 두 모자의 홀로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막막했지만 다시 과거 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의지가 큰 밑천이었습니다. 구경선 사장: “2013년에 다시 헤어숍 창업을 준비했어요. 먹고 살기 바빠 가진 자금 은 없지만 잘할 자신은 있었거든요. 어려운 시기를 겪은 만큼 어디든 길은 있으리란 생각에 찾다 보니 열매나눔재단을 알게 되었고 상담을 받았죠. 그때 지원받은 자금 으로 ‘낭띠헤어’를 오픈했어요. 가끔 재단에서 담당 선생님들이 장사 잘 되는지 보러 오시고 얘기도 들려주시고 하니까 스스로 돌아보게 되고 잘하고 있나 긴장감도 생기 고 그래요. 자주 오세요~ (웃음)”
20대에서 50대까지 폭 넓은 연령층이 찾아온다는 ‘낭띠헤어’는 어김없이 아침 10 시면 하루를 시작합니다. 홀로 운영하는 만큼 육체적으로 힘에 부칠 때도 있습니다. 구경선 사장: “직원을 둘까 생각도 했는데 공간이 좁아 동선이 부딪혀 손님들이 불 편할 거 같아서 접었어요. 그리고 손님들은 원장이 직접 해주길 원하거든요. 손님 한 분마다 허투루 할 수 없으니 주로 예약으로 운영해요. 뒷손님을 잡기 위해 무리하진 않아요. 매출은 오르지 않아도 그게 더 중요하니까요.”
우여곡절 많은 인생이었지만 구경선 사장은 내일의 희망을 본다고 합니다. 구경선 사장의 원래 꿈은 외로운 노인들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고아원과 양 로원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구경선 사장: “낭띠헤어를 하면서 잠시 잃어버렸던 꿈을 다시 꾸고 있어요. 어려운 형편에 금전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못하지만 출석하는 교회에서 봉사활동도 하고요. 앞으로 지금 제가 하는 나눔이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웃음)”
재단 측에서는 낭띠헤어의 창업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총 17회에 걸쳐서 사후관 리를 진행하였습니다. 구경선 사장은 2013년 5월에 1500만원 창업자금 대출 지원을 받아, 2016년 8월 모두 상환을 완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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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정성스런 수제 샌드위치 _빨간리본
빨간리본의 샌드위치를 맛본 고객들은 열에 아홉은 두 번 놀라게 됩니다. ‘어 이거 정말 맛있는데?’ 맛에 한 번 놀라고, 단돈 2천 5백 원이라는 가격에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마력의 샌드위치를 파는 심미연 사장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심미연 사장: “세상이 온통 회색빛이고 모든 게 끝난 것만 같았어요.”
규모 있는 피아노 학원 원장이었던 심미연 사장은 남편 또한 사업을 했기에 두 자 녀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1998년 금융위기는 심미연 사장 가정에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날로 학원 운영은 기울었고, 건물주에게 사기까지 당합 니다. 거기에 더해 남편의 사업도 문을 닫아 한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충격 과 스트레스로 안면마비가 왔지만 치료할 여유가 없어 불편한 얼굴로 피아노 레슨을 다니며 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 시절 심미연 사장에겐 절망뿐이었다고 합니다. 심미연 사장: “함께 죽자고 했었습니다. 지금은 너무나 미안한 말이지만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요”
절박했던 심미연 사장에게 딸아이 도시락으로 샌드위치를 싸주었던 날, 딸이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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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리본_심미연사장
준 ‘너희 엄마 샌드위치 장사해?’란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습니다. 선물 살 돈이 없 어 손수 만든 파이와 샌드위치를 주변에 선물했는데 맛에 대한 반응이 좋았고, 주문 까지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피아노 레슨비로 그때그때 재료를 사서 주문 받은 샌드위치를 집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입소문이 나고 주문량이 늘면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허름한 가게를 얻 어 수제샌드위치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심미연 사장: “창업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어디서 용기가 나왔는지 무작정 가 게를 얻었는데 오븐, 냉장고, 작업대는 고사하고 재료조차 구입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때 지인이 보내준 중고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정말 우연히 열매나눔재 단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뛸 듯이 기뻐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돌아온 남편의 말 은 ‘우리 같이 파산한 사람들한테 누가 돈을 빌려주냐’였습니다. 심미연 사장: “그런데 (재단에서는) 우리 같은 파산한 사람들한테 돈을 빌려주셨잖아 요. 그래서 오늘의 저희가 있고요. 파산 상태인 저희에게 지원금은 생명줄과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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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재단은 정말 중요한 시기에 선물같이 다가온 인연이었습니다.”
그렇게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통해 2012년 재단과 인연을 맺고 창업 초 기자금을 지원받게 된 사장님은 필요한 집기를 구매할 수 있었고 빨간리본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절망뿐인 삶에서 모든 것이 선물처럼 다가와 주었기 때문에 선물의 의 미를 담아 빨간리본을 상호로 정했습니다. 신선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당일 제작할 수 있는 양만 주문 받아 판매하는 빨간리본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내 가족이 먹는 다는 생각으로 좋은 재료를 고집하고 배달도 심미연 사장께서 손수 하고 계십니다. 심미연 사장은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으로 대출받은 지원금 1500만원을 총 5년 의 상환기간을 거쳐 2017년 6월 상환을 완료하였습니다. 빨간리본은 현재 하루 최대 매출이 600만원을 기록할 정도로 매우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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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없는 창업은 실패의 지름길, 창업지원에 1 교육은 필수입니다.
2-9 서울형 마이크로크레딧, 희망키움뱅크, 서울희 망드림뱅크 사업으로 기회를 얻어 자립의 길을 걷고 계신 대표님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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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 사회소외계층과 함께 한 10년
더나은네일 홈페이지 https://betternail.modoo.at - 북한이탈주민과 함께 한 10년
요벨 홈페이지 http://yovel.co.kr 서강잡스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SMe5Xu-W-o - 공공기관·기업과 함께 한 10년
두손컴퍼니 홈페이지 https://dohands.com 베트남스토리 홈페이지 http://www.vietnamstory.co.kr 히든테이스트 홈페이지 http://hiddntaste.com 한국장애인자립협회 홈페이지 http://www.scanme.or.kr 함께일하는세상 홈페이지 http://seintro.co.kr 커피창고 홈페이지 http://www.coffeecg.com 더뉴히어로즈 홈페이지 http://www.cornsox.co.kr 다누온 홈페이지 http://www.danuon.co.kr - 정부·지자체와 함께 한 10년
명가의떡 블로그 https://blog.naver.com/myungga-dduk 미션임파서블, 김동호 (2009)
함께 한 10년, 열매나눔 이야기 : 열매를 나누고, 열매를 맺고, 열매를 나누다. 발행일 | 2018년 10월 30일 발행인 | 이장호 발행처 | 사회복지법인 열매나눔재단 주소 | 서울시 중구 퇴계로 20길 37 열매나눔빌딩 302호 전화 | 02-310-9508 팩스 | 02-310-9504 홈페이지 | www.merryyear.org 페이스북 | facebook.com/merryhouse.merryyear 블로그 | blog.naver.com/merryyear09 이메일 | csmerry@merryyear.org 열매나눔재단은 UN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특별 협의지위를 획득한 자립개발 NGO이며, 기획재정부가 승인한 성실공익법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