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1709

Page 1

vol.218 2017.09*10


Who You Are When No One’s Looking

성숙한 인격의 8가지 자질

세상의 시선이 모두 거두어졌을 때 나는 누구입니까?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진정한 인격이 드러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20주년 기념 확대개정판에서는 개인의 인 격뿐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키는 부르심에 관한 가슴 뛰는 이야기를 더 새롭고 알찬 내용과 더불어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선보입니다. 저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사람을 얼마나 매력적인 인격과 미덕으로 성숙시키는지에 대해 독자를 부드럽게 설득합니다. 이 중요한 책이 새로운 옷을 입고 더 풍성한 내용으로 세상 에 나온 것을 반기며 축하합니다.

_김영봉 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목사

이 책은 구체적이고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깊이로 읽는 이를 기쁘게 합니다. 겸손하고 친절하게 일러 주는 저자의 설법은 잘 숙성된 포도주의 향기처럼 독자들의 내면에 스며듭 니다.

_이해인 시인

원서 자체의 전면 개정판으로 초판 한정 양장본입니다! 빌 하이벨스 지음 ㅣ 박영민 · 김명희 옮김 ㅣ 284면 ㅣ 13,000원

www.ivp.co.kr



CONTENTS

나 와너

p. 12

04

My House _ 이유현

06

우리들의 행복한 공간 _ 정대은

08

사람 장소 환대 _ 나정수

10

공간과 압박 _ 배성우

12

나와 너 사이 _ 이지현

14

공간나눔

17

내가 꿈 꿀 수 없는 공간 _ 한지선

20

보통의 세계로 오시다

22

하나님 나라의 공간성 _ 최규창

26

계명대 벙커 이야기 _ 김재훈

28

따로, 또 같이 _ 이상영

30

다양한 공간에 대하여 _ 최지은 외

32

발행일, 발행처

2

_ 나정수

우리들의 행복한 공간 p. 06


따로, 또 같이 p. 28

나 와 너 사이 p. 12

계명대 벙커 이야기 p. 26

다양한 공간에 대하여 p. 30

공간나눔 p. 14 3


GOODBYE MY HOUSE

4


“집을 팔게 되었다고요?” 놀라웠다. 그 낡고 낡은 집이 팔리게 될 줄이야……. 오랜 기간 매 물로 내놓았던 집이 계약을 맺게 됐다는 엄마의 표정은 밝았지만 내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나와 함께했 던 그 집이 팔린다니…….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라는 생각만 하 고 움직이지는 않았는데, 그 집이 철거가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작별인사를 하러 옛날 집을 찾아갔다. 13년 만에 들렀지만 우리 집이 차도보다 낮은 위치에 있어서 단 번에 찾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이 집에 살고 있는 삼촌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원래부터 이 집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예전 에는 우리 집 주변에 다른 집들도 있었는데 도로확장사업 때문에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알려주셨다. 사진에서처럼 인도에 서 우리 집을 훤히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렸을 때 내가 마당 에서 놀고 있으면 길가에 걷는 사람들이 동물원 우리를 보듯이 신 기하게 쳐다보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자라서 그런 걸까? 오랜만에 방문한 집은 어렸을 적에 누 나와 같이 뛰놀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이 작아져 있었다. 마 당에는 풀과 나무가 무성했다. 여기서 금붕어를 키웠던 연못을 구 경하다가 문득 누나랑 자전거를 타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에게 는 재밌는 추억으로 남았는데 정작 누나는 엄마의 부탁으로 내 자전거를 밀어주느라 힘들었다는 후문이……. 낑낑대며 나를 위 해 자전거를 밀어주던 누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미안하면서도 웃

우리 가족이 이사할 때 챙겨야 할 짐들을 대부분 가져가서 그런 지 집 안의 모습도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많이 변해있었다. 마당 과 함께 달라진 집 모습에 아쉬워하고 있을 때, 이사할 때 무거워 서 가져가지 못한 책장 옆에 덩그러니 있는 가족사진이 눈에 들 어왔다. 내가 몇 살인지도 모를 만큼 어릴 적의 흐릿한 사진이었 다. 사진에 담겨진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의 웃음이 낯설게 다가 왔다. 엄마, 아빠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었다니. 가까이 있으면서 느끼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사진으로 마주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예전에 살던 집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어느덧 내가 이 집에 서 살았던 시간보다 이사 온 곳에서의 시간이 더 많게 되었다. 13 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던 나는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보 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만큼 많은 것을 변하게 하는 시간이다. 마 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지난 시간에 종종 예전에 살던 집을 떠올 리곤 했다. 지금 사는 집에 비해 냉난방도 되지 않고, 비 오면 천 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열약한 환경이었지만 그 집이 생각나는 이 유는 나의 처음을 함께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무엇이 좋고 별로 인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어렸을 적에 이 집은 나의 처음이었 고, 묵묵히 나와 함께하며 내 기억에 자리 잡았다. 아쉽게도 처음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는 법. 사용 연한이 끝난 이 집은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면 철거가 진행될 예정이다. 안녕. 내 처음을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이제 더 이상 눈으로 널 볼 수 없 겠지만 마음으로 널 기억할게.

음이 나온다. 이유현 총신대14 학생기자

5


우.행.공 우리들의 행복한 공간

66


큰모임이(LGM) 끝난다. 몇몇 형제들이 서로 눈을 맞춘다. 검은

해주었다. 관계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끈적하게 해줬다는 게 함정

그림자들이 움직이다. 한 건물 앞에서 멈춘다. 파인힐. 이내 그들

이긴 하지만. 그 때 형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집에서 1시간 거리

은 지하로 모습을 감춘다.

인 학교로 오라고. 바닥과 결별할 때를 직감한 나는 옷을 챙겨 입 고 학교... 근처의 PC방에 도착했고 그렇게 지금까지 PC방에 머

분위기가 싸늘하다. 뚜, 뚜, 뚜, 뚜. 전쟁은 시작되었고 들리는 것

무르게 되었다.

은 바쁜 키보드 소리뿐. 본진에 스톰이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 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프로토스에게 드랍쉽 한 방,

그렇다고 우리의 모임은 “항상 PC방, 게임을 위한 것이냐?” 하면

저그에게는 탱크로 한 방... 아! 폭탄드랍이냐?

그것도 아니다. 우리의 큰그림은 사실 PC방 이후에 시작하니까. 3:3 게임이 끝나고 나면 항상 승자와 패자가 가려진다. 승자의 특

요즘 오버-워치인가 하는 신종 게임이 판을 친다고 한다. 그러나

권은 치느님을 값없이 영접하는 것. 근데 사실 다들 가난해서 웬

우리가 누구인가. 민족경북대학교 IVF가 아닌가. 우리는 유구한

만하면 더치페이하기는 한다는 게 함정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명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의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속칭 우

목상 치느님을 걸고 게임을 한다. 게임이 끝나곤 자연스럽게 치느

주전쟁)를 문화로 지켜가고 있다. PBS는 IVF가 자랑하는 귀납적

님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연구의 줄임말이지만, 우리학교에서 (아주 소수에게만) PBS 는 ‘Pc Bang and go Starcraft’로 통한다!

아, 그렇다고 치느님이 목적은 아니고. 그 이후 자취방에서 형들 과 나눴던 대화가 지금 이 자리에 나를 있게 했다. 아벱에 대해 일

PC방을 상상하면 어둡고 담배연기 자욱할 것 같지만 요즘 PC방

년차가 품었던 고민, 대학생으로서 가지게 되는 생각, 하나님 나라

은 그렇지 않다. 흡연실도 구분되어 있고, 음식도 시켜먹을 수 있

에 대한 상상, 공동체에 대한 이해 등. 그 이야기를 형들과 밤늦도

고. 게이머를 위한, 게임만을 위한 우리의 안락한 공간이랄까. 게

록 떠들었던 이야기가 좋았다. 알코올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새벽

임만큼 사람을 쉽게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건 없다. 생각해보

감성에 취하고. 몽롱한 느낌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삶을 나

자. 처음 만나는 사람이 카페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한다면? 그것

누었던 그 시절의 분위기와 감정이 깃든 그 곳에서의 추억 때문에

만큼 어색한 것도 없다. 옆자리에 앉아 TV를 같이 본다면? 그 또

여전히 리더의 자리에 서있는 것 같다. 그 공간의 분위기가 아니었

한 어색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PC방은 이런 어색함을 깬다. 게임

다면 이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있었을까. 우리만의 공간,

은 우리에게 협동심, 경쟁심, 슬픔, 기쁨, 분노, 유대감 등등 다양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었기에 우리는 밤새 하나님 나라에

한 감정을 선물해주는 감정의 테마파크이기 때문. 게임 한 판에

취할 수 있었다. (물론 자취방이 우리에게 침범당했다는 게 함정.)

울고 게임 한 판의 승리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기도 한다.

P.S. 이 런 우리의 문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침입자들 vs 집주인으로 집과 치킨매치를 구상중.

1년차 여름방학 때였다. 집에서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떨어질 줄 몰랐고, 대프리카의 더위는 이런 나와 바닥 사이를 더욱 끈끈하게

정대은 경북대13 학생기자

77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는 '사람'의 문제를 다룬다. ‘우

그러나 머지않아 내 대답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다른 이들

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

이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말이다. 적합한

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

대답은 ‘사람’이 아닌 ‘군인’이었다. 군인은 군대라는 장소에

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라는 묵직한 질

들어가서 겪는 절차들과 훈련을 통해 한 개인의 인격은 부정

문으로 시작한다.

되고, 자아자체는 군번으로 또는 조국의 방위자로 대체된다. 그렇기에 엄밀하게 본다면 군대는 우리의 사람됨이 사라지

이 책은 위의 질문에 대해 사람·장소·환대라는 키워드로 풀

는 장소로 볼 수 있다. 즉, 나는 군 복무 시절 사람으로 인정

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

받지 못했던 것이다.

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 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라고 설명한다. 이 세 가

이 책은 우리의 공간과 장소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하

지의 키워드가 하나로 엮여 재해석되며, 생각에 생각이 이어

게하고, 현재 지구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장소에 대한 투쟁을

지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자 흥미로운 지점이다.

돌아보게 한다. 실례로 갈 곳 없이 떠도는 난민들, 골프장·원 전 건설반대를 외치는 시민들,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들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공간, 장소를 의미- 안으로 들

의 농성, 최근 개봉한 영화 ‘택시 운전사’의 배경이 된 5·18

어가야 하고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민주화 운동이 그렇다. 이들의 투쟁은 장소에 대한 투쟁이었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때 비로소 사람의 개

고, 이것은 존재에 대해 인정을 요구하는 투쟁이었다. 장소

념에 내포된 의미를 알 수 있다. 사람의 개념은 장소의존적

를 위한 투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장소가 우리의 정체

임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

성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임을 보여준다.

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 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 닐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위치한 공간에서 매일 사람대접을 받고 있는 가? 소속감과 살아있음을 경험하는 공간과 공동체는 어디인

이 개념을 보고 떠오르는 것이 있다. ‘내가 위치하는 장소

가? 저자가 힘주어 제시하는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

에 따라 나란 존재는 어떻게 변할까?, 실제로 사람됨이 사라

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 즉 절대적 환대’를 우리는 어디

지는 장소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이다. 나는 현재 결혼을 한

에서 경험해보았는가? 더 나아가 내가 위치한 공간에서 ‘공

유부남이지만,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갔을 때는 변함없는 ‘

간’을 갖지 못한 사람은 누구인지, 이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아들’로 존재한다. 그리고 담당하고 있는 대학에 갔을 때는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지 차분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이후에

학생인 듯싶지만 어딘가 아닌 것 같은 ‘간사’로 존재한다. 장

비로소 칸트가 말했던 ‘지구는 둥글고 그 표면적이 제한되어

소에 따라 내 존재에 대한 정체성은 달라진다. 그렇지만 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

정체성의 변화가 나의 사람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변화

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제한 된 공간에서 함

하는 장소마다 나를 받아들여주는 누군가가 내 자리를 만들

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음식을 나누는 환

어 주기 때문이다.

대를 서로 주고, 받는 상상을 해본다.

반대로 나의 사람됨을 부정하는 공간도 분명히 있다. 7년 전 군 생활을 할 때였다. 이등병이던 나는 한 선임에게 한참을 혼났었다. 그 선임은 혼내는 도중 내게 ‘네 정체는 뭐야?’라 고 물었다. 나는 곰곰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사람입니다.’라 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선임은 심한 멸시와 욕설을 남 겼다. 내게는 ‘사람이다.’라는 답이 유일한 정답이었다. 8

나정수 간사 춘천지방회 춘천교육대 한림성심대


함께 나누어 보자 · 우리에게 소속감·안정감을 주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인가? 그 공간의 특징을 찾아보자. · 우리가 속한 곳-IVF, 교회, 학교, 일터 등-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는가? 각각의 공간에서 경험한 것을 나누어보자.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 지성사, 2015

99


공간과 압박

1010


공간은 경험하게 한다 대부분의 구기종목은 한정된 공간에서 원하는 대로 공을 움직이기 위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공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경험과 그곳이 가지 고 있는 메시지에 대한 동의일 것이다.

어떻게 다루느냐가 경기의 승패를 가른다. 그래 서 그렇게들 공을 뺏기 위해 안달인 것이다. 구 기종목과 유사하게 우리가 속해 있는 모든 공간 에는 일종의 압박이 존재한다. 물리적인 공간이 든 관계가 만들어낸 공간이든 그러하다. 그 압박 은 공간에서의 경험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공간 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이 제공하는 경험을 받아 들이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E BS 다큐프라임 ‘아파트중 독’ 시리즈 -제 임스 스미스, ‘하나님나라를

이때 상대방의 행동을 제어하거나 일정한 방향 으로 통제하기 위한 압박이 행사되는데 이것을

<유용한 자료들>

공간창출을 위하여 모든 공간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 리는 각 공간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경험이 어

욕망하라’(IVP) -세 바시 18회 ‘하승창-상상력 이 세상을 바꾼다’ - ‘모드리치 스페셜’, youtube

떤 것인지 관찰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만약 내 가 원치 않는 것들이라면 벗어나려는 노력을 해 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공간이 가진 메시 지와 경험을 알 수 있을까. 나의 비법을 나누겠 다. 삐딱선을 타고 겉돌면 보인다. 아웃사이더에 게는 지배적인 공간의 억지와 틈이 보인다. 적절 한 거리두기의 효과다. 절대적인 흐름과 대세에

공간에서의 경험은 욕망하게 한다 백화점 1층의 무거운 문을 열어젖히는 순간, 다 양한 색과 향이 내게로 와 기싸움을 치른다. 대 부분 나는 그곳의 화려한 모습에 기선제압을 당 하고 만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공간과 사람들 사 이에서 비춰지는 나를 보며 내가 얼마나 무색, 무취의 사람인지 절감하게 된다. 곧이어 나를 다 듬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 트랜디한 카페나 편 집샵에 가면 그곳의 속도와 유행에 맞춰 걸어야 할 것만 같은 조급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기호가 얼마나 근본 없는 것인지를 확인하며 구원의 기회를 제안 받는다. 그러나 예 쁘다 싶은 건 죄다 비싸다. 가격표 앞에 흔들리 는 동공을 겨우 돌려서 나온다. 미니멀한 삶을 위해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겠다. 학과생활 은 어떠한가.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온 수직적 문 화는 내게 순응을 요구한다. 학과가 가지고 있는 전통이나 문화, 그곳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다 보면 결국 그곳 세계가 지닌 가치관이나 태도가 나의 것이 된다. 어느새 ‘요즘 애들 개념없네’ 라 고 읊는 자신을 발견한다. 공간 안에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경 험한다. 공간에서의 경험은 무언가를 선망하도 록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이러한 자극은 우리 가 형성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주의 깊게 살 펴본다면 모든 공간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발

서 한발 물러서보라. 나는 이것을 교회와 학과에 서 터득했다. 공간의 틈을 발견하는 순간 일방 적인 압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공간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공 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가진 이야기와 신념 을 지지받을 공간이 필요하다. 물리적인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시대에 어떻게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공간은 사람들이 만들어낸다는 것을 기억하자. 시대의 지배적인 공간의 영향력 에서 거리를 둔 사람들이 모여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곳은 공간의 압박에서 벗어난 새로 운 공간이 될 것이다. 대세에서 물러나 있는 외 로운 싸움이다. 이를 격려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틈을 만들 수 있다. 나에게 대학생활은 눅 눅한 동아리방에서 만난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 간에서의 배움이었다. 바다와 산 사이에 위치해 습기 가득하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그곳에서 만 난 각 사람의 세계는 정말 컸다. 그곳에서의 경 험과 욕망은 원치않는 압력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기도 하고, 만들어 가기도 했다. 우리 공동체 가 만들어낸 공간에서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 며,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지 생각해보자. 유력 한 공간들과 우리는 어떻게 다른지(혹은 얼마나 유사한지). 우리의 공간이 제공하는 경험이 세 상을 향한 메시지다. 배성우 간사 부산지방회 고신대 고신의대 해양대

11


나와 너 사이,

괜찮은 거니?

너와 너 사이 공간을 채우는 기쁨. 우리가 찾아야 할 기쁨이란 무엇인가. 12


사람 이야기는 지겹고 지루해도 창세기에서

는 피상적인 대상으로만 ‘너’를 마주하게 된다.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아담의 돕는 베

마르틴 부버는 자본주의, 경쟁사회, 개인주의

필로 하와를 창조하신다. 아담을 남성보다는

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이런 사

하나님이 창조한 한 사람으로 먼저 생각한다

회 속에서 진정한 만남의 기쁨과 즐거움을 상

면, 하나님은 혼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필

실하고, 피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관계의 방식

요하다고 생각하셨다. 돕는 베필의 원어 ezer

에 지배되어버린 우리 인간이 회복해야 할 것

Kenegdo 는 ‘마주봄과 같은 도움’ 이라는 의

은 무엇인지 말한다.

미라고 한다.1) ‘아담을 마주본 것 같은 상황에 서 오는 도움’인 것이다. 그런데 그 도움이란 내

수심 깊은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려도 먼저 한

가 주고 싶은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마디 말을 붙이기 어려운 것은 당장 내일까지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다. 결국 상대를 제대로

완성해야 할 과제나 일이 있기 때문이다. 대화

마주볼 때에야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

가 길어지면 나의 초조함도 깊어지니까. 나에

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 목적인 ‘서로 돕는

게 분노를 뿜어내는 사람에게 미움과 증오로

것’을 이루려면 상대를 제대로 마주하는 것, 있

되갚게 되는 것은 내가 다칠 것 같은 두려움 때

는 그대로 보는 것, 진정으로 만나는 것에서 시

문이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에게 알아서 하

작해야 한다.

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책임질 수 없기 때문 이다. 꼭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수많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마주보지 못한

은 이유들로 거리를 둔 채 사람과 만난다. 이런

다. 아예 마주보지 않기를 선택하기도 한다. 우

거리두기로 인해 우리는 상대의 아픔에 먼저

리는 외딴 섬처럼 살아간다. 타인을 끊임없이

손 내밀어 위로하는 기쁨을 잃어버렸다. 누군

의식하면서도 정작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깊

가의 분노 앞에 잠잠히 거했을 때, 그의 분노를

은 관계를 원하면서도 그 관계를 위해 치러야

혐오하지 않게 되는 경험을 잃어버렸다. 함께

할 값은 지불하지 않는다. 진정한 만남 대신 그

선택하고 고민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자리에는 피상적인 만남, 성취, 적당한 오락, 지 위, 명예 같은 것들이 앉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기쁨을 되찾아 보자. 이 기쁨 은 ‘너’를 마주보는 기쁨이다. 나의 온 존재를

마르틴 부버는 그의 책 ‘나와 너’에서 이런 인

기울여야 하기에 번거롭고 익숙하지 않아 많은

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나’만으로서는 존

노력이 필요하지만, 터져 나오는 ‘너’의 진짜 마

재하지 못하며, ‘나-너’이거나 ‘나-그것’의 ‘나’

음을 듣는 기쁨을 한 번 경험해보면 속이 시원

라고 말한다. ‘나-너’로 맺어지는 관계는 나의

해질 것이다. 이 기쁨은 단지 상대만을 위한 기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할 수 있으며, 가장 인

쁨이 아니다. ‘나’도 ‘너’로 인해 ‘나’다울 수 있

격적이고 깊은 관계다. 반대로 ‘나-그것’의 관

는 나를 위한 기쁨이기도 하다.

계는 ‘너’가 ‘그것’이 된다. ‘너’가 인격적인 대 상이 아닌 나의 수단이나 사물로 대상화되는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는 어렵지만 읽어봄직

것이다.

하다. 다만 절반 이상 이해가 안 될 수 있으니 나를 원망하지는 말아요.

인간이 ‘나-너’를 말하는 기쁨을 잃어버리고 ‘나-그것’의 방식에 지배될 때, 우리는 인격의 대상을 비인격화 시키고 자신이 이용할 수 있

이지현 간사 북서울지방회 성신여대

1) 백소영 교수님의 ‘페미니즘’ 강의에서 참고한 내용

13


공간나눔 공간을 빌려드릴게요. 이 공간의 주인이 되어주세요.

14


D : 목사님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 : 안녕하세요. 춘천 나눔교회에서 담임으로 사역하고 있는 박유식 목사입니다. 교회 사역과 더불어 ‘공 간나눔’이라는 이름으로 공간을 같이 나누어서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D : 공간을 활용해서 사역하시는 건가요? 박 : 특별한 사역은 아니고 그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개념으로 공간을 나눠온 거예요. D : 공간을 나누는 이유나 동기를 알고 싶어요. 박 : 내가 교회를 개척할 때 해비타트라는 단체 건물에 있었어요. 복지 용도로 사용할 공간이 잘 사용되지 않고 있어서 내가 그 공간을 무상으로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이 교회는 무상으로 사용하는 공간에 서 개척된 거죠. 그때부터 고마운 마음이 있었어요. 또 내가 청년 때 교회 모임이든 동아리 모임이든 특별히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던 걸 생각하며 ‘나도 과거에 필요했었는데, 지금도 누군가 가 그런 공간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감사하게도 우리교회는 그때 와 다른 곳에 있고, 우리도 공간이라는 것을 가지게 됐기 때문에 나눌 수 있게 됐어요. D : 공간마련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박 : 이 건물이 제 아버지 집이에요. 처음에 우리 가족이 여기에 이사 올 때 ‘공간나눔’은 술집이었다가 나 간 지하였어요. 그래서 비어있는 그 지하 공간을 아버지한테 달라고 했어요. 어차피 술집 밖에 줄 게 없으니까요. 그렇게 얻어서 술집 인테리어 그대로 두고 제가 하던 연합 찬양팀 연습실로 썼던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나눔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공사를 결심하게 됐죠. 내가 교회를 개척할 당 시, 어릴 적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성도님들이 보태주셨던 돈 등으로 공사를 했고요. 사람들이 여길 들어왔을 때, ‘오 괜찮다’, ‘여기서 뭘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간 소한 공연이나 소그룹 모임 등이 가능한 공간이요. 오픈을 2012년 3월에 했으니까 이제 5년 됐네요. D : ‘공간나눔’의 특별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박 : ‘공간나눔’을 예배장소나 락 공연장 등 여러 가지로 빌려주지만, 의미 있었던 몇 가지 특별한 것이 있 어요. 여기는 프로포즈 성공률이 100%에요. 그중 한 커플은 여자친구가 병에 걸려서 얼마 못 살게 됐는데, 얼마 남지 않은 삶을 끝까지 함께 하는 의미에서 프러포즈를 했었어요. 또 춘천에 ‘꽃돼지분 식’이라고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몇 십 년 동안 가격을 안올리시고 분식집을 운영해오신 분식집 이 있었어요. 그런데 길이 새로 생기면서 꽃돼지분식이 없어지게 될 상황에 처했어요. 그 때 몇몇 분 들이 꽃돼지분식을 살리려고 공연을 기획했죠, 하지만 공간을 못 찾아서 어려움을 겪다가, 수소문 끝 에 이 곳을 발견하고 할머니를 모셔서 공연했어요.

15


D : 공간의 의미란?

은, 빌리는 분들이 이 공간을 빌릴 때마다 되게 미안해

박 : 여기서 망년회를 하고 누군가는 피아노를 연습하러 오

해요. 특히 무료로 빌려서 사용하는 분들이 더 그렇고

기도 하고 우쿨룰레 동아리도 모이고 예배도 드리고.

요. 어차피 우리가 나누기로 결정했고 또 우리가 사용

공간이라는 게 굉장히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 같

하고 남은 시간에 비어있는 것을 쓰는 거니까 돈 안내

은데,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통해서 그 공간의 의

고 쓰는 분들이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주

미가 지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인이 되어주시면 좋겠어요. 누군가 가지고 있는 것을

특정한 공간이 필요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공간은 무엇

공유하게 됐을 때 고마운 마음이 있잖아요. 그 고마움

을 하든 가능하고 무엇을 하든지 거기서 사람들이 만들

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어내는 것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인 것 같아요.

어요. 그게 꼭 공간이 아니더라도 그냥 내가 가지고 있

추억이 쌓이는 것도 공간이고요.

는 무언가를 나눌 수 있으면 나누는 마음. ‘공간나눔’을 만든 사람으로서 드는 마음이죠.

D : ‘공간나눔’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박 : 처음 2년 동안 일반 공연이든 기독교 관련된 공연이든

D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어요?

많이 하려고 애를 썼는데 한계가 있었어요. 춘천이라는

박:제 2의 <공간나눔>을 계획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어

지역적 한계인 것 같기도 한데, 누군가를 초청해서 공

느 정도 결정된 것은 아예 공간을 기독교적인 공간으

연을 기획하고 공연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잘 안 왔어

로 만드는 거예요.

요. CCM 공연도 20명 모으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교회 다니는 분들이 질문이 있어도 답을 찾을 데가 별

또 5년 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춘천에 작은 공연이

로 없어요. 교회들이 그 역할을 못해주는 상황이거든

나 모임을 할 만한 곳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5년 동 안 예쁜 카페도 많이 생기고 공연도 많아져서 ‘공간나 눔’의 필요성이 조금씩 떨어졌죠. 저도 약간 지쳐서 공 간만 대여해드리고 있고요. D : ‘공간나눔’ 사용자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요. 그래서 춘천 안에서 교회 때문에 힘들다거나, 뭔가 기독교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질문이나 문제가 있는 사 람들을 위한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필요 를 채울 기획을 해도 빨리 진행이 잘 안되네요. 혼자 하 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협력하거나 생 각을 나눌 만한 사람들을 만나는 중입니다.

박 : 예배모임이나 선교단체 모임은 무료로 빌려드리고, 그 외의 공연이나 소그룹 모임 등은 운영을 위해 조금의 사용료를 받고 있어요. 공간을 빌려주면서 느끼는 것 16

인터뷰 나정수 간사 춘천지방회 춘천교육대 한림성심대


지상에서 마음 편한 집 한 채 이 땅에서 맘 편히 누울 나만의 공간이란...

어떤 모임에서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그려보라고 했다. 둘러앉

에 들떴다. 겨우 누울 공간과 책상이 전부였어도 마냥 좋기만 했

은 사람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니 높고 화려한 건물들이 종이 속

다. 창문도 없었지만, 낮엔 집에도 잘 없을 테니 그깟 창문 따위라

에서 세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집도 좋고 저런 집도 좋고 이러쿵

고 생각했...던 건 큰 오산이었다. 실낱같은 빛 줄기 하나 없는 방

저러쿵 신나게 떠들었지만 정작 어떤 집을 지어야 할지 생각나지

에 지내다 보니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우울해질 것 같았다.

않았다. 그저 떠오르는 것은 ‘지상에서 마음 편한 집 한 채’였다. 그 이후 조금씩 더 좋아 보이는 고시원 생활을 전전하다가 IVF지 나의 집 이야기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초

체들과 함께 월세로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나의 첫 자매하우스였

등학교 때부터 이사 한 번 없이 같은 집에서 부모님과 살아왔던

다. 처음으로 부모님 집이 아닌 내 집이 생겼다. 고시원에 살 때,

나는 대학생이 되어 드디어 나만의 방 한 칸을 만나게 되었다. 왕

우리집은 따로 있고 잠시 머물다 가는 공간 같았는데, 이젠 계약

복 통학시간만 5시간이었던 나는 학교 앞에 고시원을 구했다. 집

을 통해 온전히 책임감을 느끼는 집에 살게 된 것이다. 하지만 8

이라고 하기엔 겨우 방 한 칸이었지만 처음으로 독립했다는 생각

명이 함께 북적이는 자매하우스는 온전히 내 집처럼 마음편한 곳

17


은 아니었다. 여전히 서울 한구석엔 맘 편히 누울 나의 공간은

그 집은 아주 오래된 마당이 있는 2층짜리 주택이었다. 50대

없었다. 그렇게 자취의 시절도 지나가고 졸업과 동시에 다시 집

주인 아저씨가 학생일 적에 당신의 부모님이 직접 지으신 집

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으로, 구석구석 꼼꼼하게 만들어진 집이었다. 우리가 오기 전 부터 집 앞마당에 제집인양 드나들던 고양이들과 9명이 함께

얼마 후 취업을 하게 되었고, 왕복 4시간이나 되는 출퇴근을 시

어울려 살 수 있는 매우 따뜻한 집이었다. 그때가지만 해도 마

작했다. 지옥철과 함께하는 4시간은 정말 끔찍했다. 수많은 사

당이 있는 2층집이 로망이었다. 20년을 넘게 아파트에서만 살

람들이 외곽에서 서울 도심으로 쏟아져 들어갔다가 쏟아져 나

아와서 마당 있는 주택 집에 살아보고 싶었다. 푸른 잔디와 나

온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불쾌하게 기대서서 피곤함을 나누

무들이 신선함을 내뿜고 테라스에 앉아 자연을 만끽하는 여유

는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주거문제를 고민하는 청년

로운 삶을 기대할 수 있으니까. 물론 그 로망은 순식간에 싹 지

들이 모여서 만든 주거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되었

워져버렸다. 관리해주지 않으면 금방 정글이 되어 버리는 마당

고, 그 곳에서 운영하는 쉐어하우스에 입주하게 되었다.

과 마당에서 온갖 벌레들이 출몰해 집안에서 마주치곤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간을 사용하다보니 불편한 점도 이만 저

18


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낡은 2층집은 함께 사는 집사람들과 부

신없는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낯선 동네의 텅 빈 방에서 멍하

대끼며 울고, 웃고 서울에서 만나는 따뜻한 집이 되어 주었다.

니 새해를 맞이하였다.

그렇게 집 걱정 덜 하고 지내나 했는데 시련은 언제나 그렇듯

의도치 않게 하루아침에 쫓겨난 나는 철거이주민이 되었다. 물

갑작스레 다가왔다. 내가 살고 있던 지역이 재개발 구역이라서

론 나는 당장 돌아갈 집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하루 동안 쫓

집을 철거하게 됐다고 했다. 왜 오래된 것은 다 없어져야 하는

겨나는 철거이주민의 심정을 겪고 나니 참으로 끔찍하고 두려

걸까. 아쉬운 마음도 잠시, 재개발 조합 측과 집주인, 그리고 협

웠다. 그 곳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고 그 어떤 대안도 없는 사람

동조합과 입주자조합원들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 간의 소통 구

들에게 정말 나의 집이란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조가 문제였을까. 집을 나가야 하는 날짜가 정확하게 공지되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12월 31일 아침, 집을 비우러 온 이삿짐센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이사했던 건물에서 다시 방을 배정받고

터를 통해 당일 3시까지 집을 비워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 이사를 또 한 번 겪은 후에야 당분간 쫓겨날 걱정 없는 집 을 가지게 되었다. 또 언젠간 이사를 가야겠지만 말이다. 방송

재개발 조합 직원은 나에게 웃으며 “여기서 3시 이후에 머물면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나만의 공

집주인이 곤란해져요”라고 말했다. 웃으면서 말했지만 왠지 모

간을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사람들을 초대해 도란도란 이야기

르게 그 말은 무서웠다. 순식간에 가스와 전기가 끊긴 낡은 집

나누기 좋은 집. 그런 아담한 집 한 채면 충분할 텐데... 마음편

은 입주자들이 급하게 떠난 흔적들만 남게 되었다. 그날따라 제

한 집 한 채 혹은 그저 내 방 한 칸 만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집이라고 항상 우리를 째려보던 고양이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 지상에서 가장 마음 편한 집

않았다. 다행히 협동조합에서 운영하게 된 빈집이 있어 급하게

한 채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초대할 날을 기대해본다.

이사를 했다. 입주가 시작되지도 않은 텅 빈 건물에 급하게 담 아온 이사 짐을 풀어놓았다. 내 집 없는 서러움이 이런 걸까. 정

한지선 학사 경희대07

19


보통의 세계로 오시다

20


그분은 지구상에서 별로 중요해 보이지

만일 그분이 그때처럼 오늘 오셔야 한다

않은 지역 중 한 곳의 변두리 시골길을 타

면, 나쁜 일이 아니고 유익한 일이기만 하

고 우리 의 세상에 들어와서, 인류 역사를

다면, 그 분은 그 어떤 직업을 통해서도 사

향한 자신의 프로그램이 수십 세기를 더없

명을 감당하실 수 있다. 전자제품 가게의

이 느릿느릿 펼 쳐지게 두셨다. 그분은 하

점원이나 경리, 컴퓨터 수리공, 은행원, 편

나님의 언약과 교제의 부요한 전통이 있음

집사원, 의사, 웨이터, 교사, 농장 일꾼, 실

에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나라의 사회

험 연구원, 건설 노동 자 등 무엇이든 될 수

적으로 하찮은 무리에 끼여 30년을 사셨

있다. 청소 대행업을 할 수도 있고 자동차

다. 나사렛이라는 중동의 한 작은 마을의

를 수리할 수도 있다. 다른 말로 만일 그분

목수 집에서 자라났다. 아버지 요셉이 죽

이 오늘 오셔야 한다면, 그분은 우리가 하

은 후에는 “가장”이 되어 어머니를 도 와

고 있는 일을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얼

남은 가족을 거두었다. 그분은 보통 일꾼

마든지 우리가 사는 아파트나 주택에 살

이었다. ‘블루칼라’ 노동자였다. 이 모든 것

수 있고, 우리의 직장에서 일할 수 있고 우

이 오직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 가운데 하

리 의 교육과 인생 전망을 그대로 공유할

나가 되며 자신의 삶을 우리에게 ‘전할 길

수 있고, 우리의 가족과 주변 환경과 시간

을 찾기’ 위해서였다. 인간으로 하여금 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조건 가운데

원한 질의 삶을 받게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어떤 것도-본질상 그분의 것이지만- 이제

일일 수 없다. 그러 나 F.W.페이버의 한 심

그분을 통해 우리의 것이 되는 그 영원한

오한 저서 서두에 나오는 말처럼 “예수는

질의 삶을 조금도 방해할 수 없다. 결국 우

우리에게 속해있다. 그분 은 자신을 우리

리 인간의 삶은 하나님의 삶에 의해 파괴

의 처분에 내어맡기신다. 그분은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그리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전부를 우리 에게 내

고 그 안에서만 충만하게 된다.

-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복있는 사람, 2000, p.43~44

어주신다.”

21


하나님 나라의 공간성 일상 속에서의 하나님 나라 공간 구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왔다'(눅11:20)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올 해 초 개봉된 <콘택트(Arrival)>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현 존하는 최고의 SF작가로 인정받는 테드 창의 단편소설이다. 어느날 지구에 도착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면서 언어학자인 루이즈 뱅크스는 고도로 발달된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 는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흔히 언 어와 인식능력의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게 말이 되나'하고 의아해할 수 있겠 지만, 사실 현대 인식론에서는 언어가 의식에 선행한다는 것은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 고 있다. 타고난 의식에서 언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가 의식을 형성하 는 것이다. 테드 창에 의하면, 우리가 3차원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이유는 우리의 뇌가 아 직 시공간을 3차원으로밖에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세기 초에 발터 벤야민은 카메라나 영화의 발명을 목격하며 '광학적 무의식'이라는 개 념을 만들어냈다. 당시 절정에 달했던 근대도시의 빠르고 복잡한 삶은 당대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지적 충격을 주었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정보량과 시각적 충격(높은 빌딩, 빠르게 움직이는 기차와 자 동차)을 소화하기에는 인간의 감각기관이 너무 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진기나 영사기 의 필름은 작고 사소한 것까지 모두 잡아낼 뿐 아니라, 장면을 멈추게도 할 수 있고, 빠르 게 움직이게 할 수도 있고, 보존도 가능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르코르뷔지에처럼, 많은 화가들은 회화의 한계를 절감하고, 대상을 보다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진기술이 나 상상을 표현할 수 있는 건축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벤야민은 인간 시각의 무의식적 힘 은 카메라 이상의 능력이 있어서 계속 자극에 단련되면 이전에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 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불과 백 년이 지나지 않은 오늘날 우리는 세대마다 이러한 광 학적 무의식이 시각능력에 탑재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현대 도시인들은 고밀도의 복 잡한 거리나 만원 지하철에서도 전혀 현기증을 느끼지 않으며, 작은 스마트폰으로 영화,

22


게임, 독서를 즐기는데도 대뇌피질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는

의 실수였다면, 오늘날은 IT기술의 발달이 그런 역할을 하고

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과 전화가 연결되는 곳에서는 효율성 은 있을지 몰라도 휴식과 평화는 없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흔히 시간을 '크로노스'(연대기적 시간), '카이로스'(결정적으

도 대화 없이 스마트폰만 쳐다본다. 그러나 개별 인간은 각자

로 중요한 시간)로 구분하지만, 사실 바울이 사용했던 또 하나

자기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의 시간 개념 중 우리가 잘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아이

약간의 '개선'을 이루어낼 뿐, 그것이 가고 있는 방향을 전체적

온'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이 선, 카이로스의 시간이 점이라면,

으로 보는 인간은 없다.

아이온의 시간은 원이다. 그 안에서 모든 시간은 하나이고 동 시적이며 순환적이다. 마치 '천년이 하루 같고' 과거, 현재, 미

이런 한계는 공간의 문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한 공간에

래에 동시에 계신 하나님의 시간개념처럼, 아이온은 현재를

서의 변화가 다른 공간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보기란 매우

언제나 종말론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성도들의 삶을 잘 표현

어려운 일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

해주는 시간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인간의 의식이 언어

간이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

를 진화시키고, 고도로 발달된 언어가 다시 의식을 발전시킨

가 일상이라고 부르는 '분절된 시간'과 '분절된 공간'은 그저 무

다면 그 의식은, 영화 <콘택트>에서 표현하듯이, 시간을 동시

의미하게 소모될 뿐, 큰 그림(방향과 목적)을 보여주지 않기

적으로 인지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많은 철학자, 과학자들의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라는 초월적 시공간을 일상에

상상이었다. 영화 <루시>에서도 주인공이 마약의 힘으로 뇌

서 유의미하게 드러낸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러한

의 기능을 거의 완전히 사용하는 단계까지 올라가자 시간과

이유로 기독교 신학은 지난 2천년간 하나님 나라를 이해시키

공간을 초월하는 장면이 묘사된다. 그러나 이것은 개연성 있

는 가장 편리한 방식, 즉 그것을 '외부의 절대적 진리'로 상정

는 상상일 뿐 현재 우리는 명확히 시간과 공간에 제약된 삶을

하고 그것을 찾는 것이 신앙이라고 규정하는 단편적 관점만을

살 수밖에 없다.

강요해 온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보게 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류 최대의 실수 중 하나

모든 사물에 적절한 자리가 이미 주어져 있으며 그 자리를 찾

는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옮겨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

는 것이 질서(cosmos)요 조화라는 공간관념은 고대의 공통

작이 시작되면 땅이 중요해지고, 사람들은 계속 일해야 하고,

된 우주관이었다. 따라서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존재

욕망의 노예가 되며, 사회와 국가가 탄생하면서 계급, 억압이

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 당연했고, 하나님의 나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결국 인간은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삶

라 역시 지구 바깥 어딘가 무한한 세계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의 질을 포기한 셈이 되는 것이다. 삶이 점점 힘들어졌으나 당

공간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공간관념이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

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

는 계기는 데카르트였는데, 그는 만물의 물질적인 속성을 연

든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살았고, 약간의 개선

장(extension)으로 정의하고 그 연장을 공간상의 위치, 즉 대

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 개선이 합쳐지면서 사람들의

수적인 수의 조합 또는 수학적 좌표로 대치함으로써 전통적

삶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갔다. 기껏해야 수 십

공간의 특성을 추상화, 상대화 해버렸다. 칸트는 이런 공간을

년을 사는 인간은 자신들의 결정이 가져올 큰 그림을 전체적

시간과 더불어 경험이 그 안에서 가능하게 되는 어떤 선험적

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농경생활

인 직관형식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주관의 내부로 끌어들였다.

로 삶이 더 힘들어지고 전쟁도 빈번해졌고, 범죄도 급증했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시공간 속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만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 이전에 어떻게 살았는

것을 구분하고, '인식가능한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밀 재배'가 고대인들

것은 알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뉴튼 물리학에 고무

23


되었던 칸트로서는 우주의 비밀과도 같은 수학법

하나님 나라에 대해 이러한 '구성적 관점'이 중요

칙을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이 모

한 이유는, 앞서 강조한 언어-의식의 관계처럼,

든 사람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믿었던 것

공간-의식의 관계 역시 실재적인 영향력을 지니

이다. 이후 훗설의 현상학은 시간과 공간을 구체

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의식을 형성하는것처

적인 체험의 양상 속에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럼, 공간 역시 의식을 형성한다. 유럽에서 '사적

재정의함으로써, 그 체험의 양상을 통해 작용하

인'(private) 것에 대한 의식이 생긴 것은 인간이

는 본질을 '의식의 지향성'이라는 형태로 재발견한

사적 공간을 가지기 시작한 19세기 이후였다. 오

다. 이제 공간은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체험의 대

늘날 우리가 모두에게 천부적으로 평등하게 주어

상이 된 것이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의 창출이

졌다고 믿는 '인권'이라는 개념 역시 3백년 전 사

가능해지게 되었다. 예컨대, '집'이란 어떤 주소지

람들의 의식 속에는 보편적으로 들어 있지 않았

에 존재하는 콘크리트 건축물이 아니라, 나의 체

다. 우리는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거기에 준하는

험의 지평 속에서는 내가 희노애락을 겪으며 자라

의식을 개발해냈다. '여대생'이라는 호칭이 '여성

나고, 나를 보호해주며, 가정을 유지시켜준 일종

혐오'라고 주장하는 오늘날 사회 분위기는 10년

의 '피난처'이자 '안식처'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쟁에 시 달리지 않음으로써 내부의 긴장이 누그러지는 사

이러한 경향은 하이데거를 거쳐 실존주의, 마르

회의 일상은 분명 여성적 공간이 생산되는 좋은

크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광범위한 해

여건을 만들어낸다. 바슐라르의 말대로 '우리의

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어떻게 보면 모든 절대

상상력의 근원은 바로 공간'이라고 믿는다면, 우

적인 것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지배하는

리는 언어와 함께 공간이 우리의 의식(의미창출

오늘날의 '의미'의 문제는, 역설적이게도 의미의

의 주체)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점

재구성, 개인적 지평의 해석, 역사적 발생이라는

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가

방법론으로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실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외부의 절대적 공간에 존재하는 진리를 찾

그것은 체험을 만들 수 없고, 의미를 생성할 수 없

아가는 전통적 기독교 신학의 입장과 충돌을 야기

을 뿐 아니라, 삶의 변화를 불러오지 못하는 공허

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적 관

한 이론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점이 현재적 시점에서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살 아가야 하는'(의미를 생성해야 하는) 오늘날 우리

우리는 그 나라를 하나의 실재하는 공간으로 받

의 딜레마를 해결하는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

아들이기 위해 성서를 나의 체험의 컨텍스트로 가

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상학적, 실존적 관점

져오는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나라를

의 하나님 나라 인식은 분명 우리에게 특별한 의

영토, 국민, 주권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은 근대

미를 지닌다. 20세기 초 신학자 불트만이 '실존적

민족국가의 관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성서읽기'를 통해 과학시대에 막혀버린 신학적 통

관점으로 끼워 맞춰 해석할 책임은 없다. 모든 세

로를 새롭게 열고자 했던 것처럼, 하나님 나라의

계가 하나님의 영토이고, 그 분의 주권이 미치지

의미 역시 오늘날 우리의 일상의 체험과 그 공동

못하는 곳은 없다. 다만 나의 체험 속에서 제한된

체적 집합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구성되어가고 있

시각적, 인지적 의식이 영적 무의식을 끌어내지

는 것이다.

못하기 때문에, 그 나라가 일상 속에서 포착되고 구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의 하

24


나님 나라 공간 구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리에 대한 두 관점이 조화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왔다'(눅11:20)라는 말의 의

를 이루어야 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없

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어떻게 나의 상상력을 깨

는 외부의 진리(하나님 나라라는 절대 공간)를 너

우고, 나의 한계를 넘어가게 하며, 겨자씨처럼 작

무 강조하면 그것을 찾는 것 자체가 신앙의 본질

은 사건 속에서도 그 나라의 도래를 목격하게 하

이 되어 우리의 생활세계가 희생된다. 반면, 자기

는가. 이 방대한 주제를 이 글에서 논할 수는 없지

완결성을 지닌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너무 구

만, 나는 마지막으로 '배치'와 '계열화'라는 들뢰즈

성주의적 입장에 매몰되면(하나님 나라 공간의 상

와 푸코의 개념을 적용하면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

대화) 진리의 기준이 사라지고 수렁에 빠져버릴 수

보고자 한다.

있다. 우리의 비극은 너무 전자의 경우에 치중해왔 다는 데 있다. 우리의 일상은 반드시 공동체적 공간

우리의 삶의 공간과 시간은 철저하게 분획되어 있

의 배치와 계열화를 필요로 한다. 사방이 기능적 공

고, 그 분리된 공간들은 이웃하며 배치되고 계열화

간으로 둘러싸인 기계적 배치의 삶은 오래 지탱될

되어 있으며, 그 양상이 반복되는 형태로 우리의

수 없으며 의미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

삶은 이어진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지하철에서 쏟 아져 나오고, 9시 이전에 회사 사옥으로 밀려들어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는 과정은, 우리

가고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에는 다시 쏟아져 나와

의 인식에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공동체적 실천을

식당, 극장, 버스, 교회, 집으로 다시 밀려들어간다.

통해 조금씩 가능해진다. 오직 공동체적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은 이러한 배치와 계열화의 결과물이다.

서 아이온의 시간이 구현되며, 하나님 나라의 그림

심지어 예배 역시 특정 시간대와 특정 공간의 배치

자가 드러날 수 있다. 그 나라는 보이지 않으면서

의 일부분이다. 들뢰즈는 이러한 근대적 시공간을

도 보이고, 가장 크지만 숨겨져 있고, 아기처럼 아

이항대립하는 기계의 결합으로 환원한다. 우리는

무 것도 욕망하지 않는 자들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

오전에는 회사-기계에 접합했다가 다시 떨어져 나

내는 초월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또한

와 집-기계에 접합되며, 일요일에는 교회-기계에

캠퍼스라는 기계적 공간 속에서도 작동하고 움직

접합하여 종교적 행위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며, 지극히 작은 자의 모습으로 임하시는 실존적 예수를 영접하는 이들의 공간실천을 통해, 변화되

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고, 근대적 공간으 로부터 탈주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우

어 가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 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리는 이러한 배치와 계열화의 본질을 들여다볼 필 요가 있다. 결국 배치는 인근하는 것들과의 관계를 통해 '공간실천'을 낳고, 그에 적합한 주체를 생산 하고, 그러한 양상을 반복시킴으로써 사람들을 지 배하는 공중권세(엡2:2)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에 있을 때 이러한 양상으로부 터 자유로워지는가. 우리는 언제 영적 무의식이 제 대로 작동하여 가난한 이웃을 비로소 보게 되는가. 우리는 언제 그 기계들을 움직이는 자본이라는 윤 활유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가.

최규창 학사 서강대87

25


계명대 벙커 이야기 변화하는 공간 우리는 학교 공간을 자주 사용했었다. 학생의 권리로 좋은 공간에서 여러 모임을 할 수 있었 다. 그 누구의 제약도 없었고, 우리가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학교 관계자들이 우리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을 불편해 했다. 결국 우리는 매주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면서 모임을 하게 되었다. 모일 장소를 구하기 어려운 시간이 반복될수록 점점 힘들어했 고, 특히 장소를 빌리는 역할을 담당한 친구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본인들이 구하지 못하면 공동체 전체가 방황하게 되니 책임감이 더 컸다. 때마침 공동체 내부적으로 변화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세대변화와 더불어 사회적인 차원에 서도 많은 어려움이 밀려왔고, 캠퍼스 속의 IVF라는 우리 정체성에 고민이 생기던 역동적인 시기였다. 우리는 이 변화를 기존의 틀로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리더 회 의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결정했다. 기존에 해오던 모임을 철폐하고 중요한 것, 우리의 정체성 을 살릴 수 있는 형태로 모임을 바꿨다. 또 이것들의 장이 될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기로 했다.

26


새로운 공간 우선, 말씀을 우리 모임의 중심에 두기로 했다. 또 말씀으로 일상을 어떻게 살지 대화하 고 기도했다. 그래서 매일 공동체가 함께 저녁을 먹고, 그 후에는 함께 그날 큐티 본문을 묵상하고 나누고 기도하기로 했다. 그리고 겨울방학 동안 학교 마치고 주변에 모임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러 다 녔다. 공간을 찾는 일은 몇 사람이 2개 조로 흩어져 여러 부동산을 다니며 시작되었다. 얼 마간 시간이 지나 지하에 40평정도 큰 크기의 공간을 찾았고, 계약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가 단지 편하게 사용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모임방을 마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체가 편히 쉴 장소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애써 함께 공간을 구한 이 유는 변하는 세대에 대한 응답으로써 기존의 틀을 벗고 새 옷을 입기 위해서였다. 장소를 계약한 후 우리가 사용하기 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일들을 시작했다. 페인트 칠을 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살렸다. 의자와 탁자를 가져다 놓고 여러 가지 기구도 사서 넣고 데코도 하면서 얼추 제대로 된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그 공간 두근두근! 개학을 하고 우리는 개강 첫 모임을 이곳에서 가졌다. 우리의 출발은 우리가 그 렸던 그림보다 훨씬 좋았다. 이곳은 식사교제를 통해 신입생들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장소 가 되었고 기존의 지체들과도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또한 함께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 즉, 안식일의 기능처럼 잠시 멈춰 서서 반추 하고 사색하고 계획하는 공간이었다. 더 이상 장소를 빌리기 위해 스트레스 받지 않았고, 누구도 우리에게 눈치 주거나 제한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이 되지 못했다. 공동체는 이런저런 어 려움에 부딪히며 지쳐갔다. 우리가 마련한 공간 또한 우리의 생각과 달리 많은 불편함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런 한계 앞에서 결국 모임방 사용하기를 주저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반갑지만은 않은 공간이 되었다. 이런 결과가 어쩌면 누군가에겐 그저 실패 혹은 씁쓸한 기억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 지만 그 당시 공동체 안팎의 변화의 문제에 그 공간으로 응답한 것은, 공간이 그 때에 알 맞았던 옷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나라 운동 을 위해 또 무엇으로 어떻게 응답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한계에 마주했던 기억 은 분명 더 나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바탕이 될 것 같다.

김재훈 계명대10 대구가톨릭대 활동학사

27


청춘문화싸롱

따로, 또 같이 얼마 전, 단국대학교 대나무 숲에 예술이 특정 인물들만의 문화처럼 느껴진다는 글(#23238번 째올림)이 올라왔다.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예술로 느껴지는가?’ 라는 질문은 도발적이지만 예술에 관심이 없는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자아냈다. 화투패를 그려놓 은 듯한 그림 한 점이 무려 1000억 원이 넘는다는데, 그렇게 큰돈을 쉽게 만지고 즐기는 사람들 로부터 오는 박탈감 때문에 분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마크 로스코나 존 케이지 같은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은 사전지식이 없으면 이해하 기가 쉽지 않고,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보단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서 의미가 한 눈에 들어오 지 않는다. 물론 팍팍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 예술은, 관심을 갖는 것조차 사치일지도 모른다. 몇몇 예술가들은 대중이 느끼는 예술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고민했고, 마침내 특정 공간 에 그들의 삶과 문화를 녹여냈다. 그래서 누구나 함께 예술을 향유하고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바로 한 공간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홍대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인 ‘청춘문화싸롱’은 자신을 페이스북에 이렇게 소개한다. ‘홍대, 괜찮은 목에 쉼터가 하나 생겼 습니다. 앉아서 혹 누워서 만화도 보고 때론 강연, 공연도 즐기세요. 볕 좋은 날, 테라스에서 햇 살도 만끽하구요. 문화의 문턱을 낮춥시다.’ 달콤한 맛이 나는 공간이다. 이 외에도 시원한 음료

28


와 갤러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도 있고 맛있는 음식, 시원한 음료, 신나는 음악 그리 고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공간도 있다. 대문짝만하게 ‘우리 같이 놀아요’라고 쓰여 있는 가 게에서는 주인의 발랄함을 엿볼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당사자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저항하는 공간도 있다. ‘그 문 화 다방&갤러리’라는 곳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해 마을의 예술가들이 함께 연 대하여 토크 콘서트를 열기도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이곳은 거창한 곳이 아 니라 평범한 카페다. 지나가다 보게 되면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는 가게들도 있다. ‘어쩌다 가게’라는 곳이다. 이름대로 어쩌다 모이게 된 작은 가게들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열 곳 이상의 다양한 가게 들이 함께하고 있다. ‘따로 또 같이’라는 표어를 소개글을 내세운 이곳은 소상공인들이 함 께 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 문화 다방

우체국통폐합으로 인한 유휴공간이었던 우체국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탈영역 우 정국’도 있다. 이곳은 전시, 공연 프로그램들을 통해 다양한 영역의 예술 작업을 선보이고 있으며 많은 예술가들이 워크샵, 상영회, 소셜 다이닝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소개한 공간들과 소개하지 못한 수많은 공간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 공간에서 다양 한 문화와 쉼을 즐길 수 있고 ‘사람’과 함께한다는 점이다. 문화 공간은 바쁜 현대인들에

탈영역 우정국

게 뒤돌아볼 수 있는 쉼을 선사한다. 예술가의 향기가 남아있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치열 한 경쟁사회 때문에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정을 만끽한다. 다양한 삶을 사는 이들과 어울

<사진출처>

리다보면 어느새 공간 속에 예술가로 녹아든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 어쩌다 가게의 표어

- Facebook '청춘문화싸롱'

인 ‘따로, 또 같이’처럼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우리는 하나의 공간에서 더불어 사는 것

- Facebook '그 문화 다방'

을 경험하며 함께 예술을 누린다.

- Facebook '탈영역 우정국'

예술이 어렵다는 이유로 향유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예술이 어려운 이유는 더 많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변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사람에 대해 표현한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이 한 예가 될 수 있겠다. 자극이 없

*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 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 리는 현상

는 일상 속에서 하나의 자극을 줄 수 있는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기를. 꼭 서울에서만 즐 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복합문화공간은 전국 곳곳에 있다. 이번 주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쉼이 기다리고 있을 문화 공간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이상영 강원대13 학생기자

29


다양한 공간에 대하여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는지의 태도의 변 화가 가르침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람이 성숙하

한국사회의 관습적 교육에서 교실은 어떤 것을

도록 돕는다.

‘실천하는’ 장소로 여겨지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전달된 내용을 보고, 쓰고, 외우는 등 눈에 보이

교육의 영성을 배우면서 얻은 통찰과 지혜들로

는 내용에만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교실

교회공동체나 IVF 공동체 등 우리가 익숙하게 마

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재에 주목하며 가르침과

주하는 공간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배움에서의 진리의 규칙을 찾아간다.

공간이 창조되고 있는지 비춰보며 실제로 이 가 치들을 적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교실 또는 여러 공동체 모임의 공간에서 교사와 리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앎과 가르침과 배

최지은 간사 대전중부지방회 충북대 청주대

움을 통해서 진리의 공동체가 되도록 돕는 것이 다. 저자는 '가르침이란 진리에 대한 순종이 실천 되는 공간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정의하면서, ‘공 간을 창조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집’은 아늑함, 안전함, 편안함, 자유를 주는 공 간이다. 때때로 여러 이유들로 그렇지 못 할 때

30

가르침의 변화는 교사(리더)의 마음의 변화에

도 있지만. 최소한 기대하는 바는 그렇다. 세상

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왜곡된 우리들의 마음

편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곳이 바

과 성향이 아니라 사랑과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로 ‘집’이다. 그래서 난 집이 좋은 ‘집순이’다. 나

재형성시키도록 하는 훈련을 실천하고, 가르쳐

만의 멋으로 집을 꾸미고, 가꾸는 것은 즐겁다.

야한다. 일방적인 내용 전달이 아니라 배움의 공

가구나 물건의 위치를 생활 동선과 기분에 따라


바꾼다. 그러다 보면 자주 손이 닿는 곳이 생기고, 그렇

1) 공간은 사람의 정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지 못 한 곳도 생겨난다. 그런 곳에는 버리긴 아까우나

2) 사람은 공간에 대한 각자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언젠가는 쓸 것 같은 물건들이 쌓인다.(당장 눈에 띄지

3) 욕 구는 각 사람이 과거에 머물렀던 공간에서의 경

않도록. 슬쩍 밀쳐둔다) 그렇게 나의 습관과 스타일에

험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 공간은 채워지고, 변한다. 나만의 규칙과 약속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위의 세 가지 명제가 이 책의 핵심이다. 누구나 쉽게 수긍할 만한 내용일 것이다. 이 책은 거의 주거공간에

가장 나답게 있을 수 있는 ‘나의 집’에 변화가 일어나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만, 핵심 명제들은 일터, 학교 등

는 것. 이 것은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

어느 공간에나 적용 가능한 개념이다.

이다. 똑똑. 그리스도가 집 문을 두드리신다. 그 소리에 문을 열 것인가?

나는 새로운 집에서 살려고 한창 준비하던 때에 이 책 을 읽게 됐고, 쏠쏠한 도움도 받게 되었다. 저자가 꼽

그리스도께 마음의 ‘집’을 허락했다면, 우린 어쩔 수

는 집에 대한 주요 욕구 6가지 중에 내게는 ‘휴식욕구’

없이, 아니 자연스레 집 소개를 하게 될 것이다. (문 앞

가 가장 많았다. 그동안 부모님 집에서나 공동체 하우

에 같이 서있기만 한다면 더 뻘쭘할 수 있으니!) 그렇

스에서 이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못했기 때문에 스

게 같이 집을 살핀다. 가장 ‘나답게’ 있던 모든 곳을.

트레스를 받았고 동거인들을 미워했다는 사실도 발견

처음에는 적당히 집을 둘러보는 정도라 예상할지 모

했다. 그리고 지금껏 거쳐 왔던 집들을 떠올리며 마음

른다. 그러나 그는 집 곳곳을 가리켜 아이처럼 질문하

에 들었던 점들을 새 집에 구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 나의 이야기를 친구처럼 들으신다. 모든 공간이 이 야기가 된다. 은밀하게 숨기고 싶었던 것을 쌓아둔, 애

저자는 ‘공간 심리학자’로서 독자에게 주거에 대한 불

써 눈길을 주지 않았던 벽장 뒤 까지도. 그와 함께 지내

만족과 욕구를 파악하고 거기서부터 해결책을 찾도록

며 청소와 정리가 필요한 곳, 이전보다 더 풍성해진 곳,

조언한다. 공동체 하우스에서 분쟁이 일어날 때, 혹시

뜯어내고 새롭게 할 필요가 있는 곳이 보이기 시작한

주거공간에 대한 욕구가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이 책

다. 철저히 ‘나’만의 공간이었던 집은 ‘그’와 더불어 사

을 활용해 대화를 나눠 보길 추천한다. 혹은 책을 활용

는 곳이 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나는

하여 동방이나 각자의 집을 “영혼이 편안한 공간”(원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요14:23) 그리스도

제)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의 이 약속은 신비롭게도 현실이다. 실화다. 나만의 규 칙과 약속만 존재했던 나의 집은 그의 약속으로 인해

이슬기 간사 서서울지방회 서강대 서울신대

풍성하게 채워진다. 이 책을 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리스도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문을 열기를. 그 리고 그와 함께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집순이들’이

- 로버트 멍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IVP, 2004

되기를 바란다.

- 바바라 페어팔, 공간의 심리학, 동양북스, 2017 - 파커팔머,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 IVP, 2006 정다은 간사 대구지방회 경북대(복현)

공간의 심리학 ‘성격 심리학’을 배우지 않아도 사람의 성격에 관심을 갖고 유형을 나누고 싶어하듯, ‘공간의 심리학’도 우리 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31


누구에게나 ‘나만의 공간’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방이든 자신만 알고 있는 장소든 꼭 한 곳 이상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 곳은 자신이 무장해제할 수 있는 편안한 곳이죠. 또는 즐거운 곳일 수도 있 고요. 그게 어떤 곳이든, 누군가에 의해서 파괴되거나 방해받지 않는 곳일 겁니다. 만약 그 공간이 훼

편집실에서

손된다면 화가 나거나 무척 슬프겠죠. 그만큼 자신의 애정이 가득한 곳일 겁니다. 자신만의 특정 공간을 정해놓고 아끼는 건 이기적인 결과가 나올 때가 있지만, 공간을 사랑하는 것 자체는 하나님에게서 온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도 공간(세상)을 만들고 사랑하고 있으니까 요.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죠. 그리고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머리 둘 곳도 없이 지내시 며,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공간을 제한해서 독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공간 전체에 사랑 으로 가득 채우셨죠. 우리의 공간에는 물건뿐 아니라 빛, 소리, 중력, 분위기, 추억 등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 보이 지 않는 것들 중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우선으로 찾아 채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곳은 누구에게나 편하고 따뜻한 곳일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모임처럼요. 사실 이 주제로 정했을 당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이때까지 공간에 관한 주제가 나온 적도 없어서 감이 잡히지 않았죠. 아마도 이번 주제가 저뿐만 아니라 기획회의에 참여하는 간 사님들에게 가장 어려운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이 주제가 어려웠던 이유는, 앞서 사랑으로 공간을 채운다는 말처럼,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인 곳을 뜻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하나님 나라와 내면세계, 관계 등 다 양한 카테고리로 나누어봤습니다. 실험적인 주제였던 만큼 어려운 글도 있고 아쉬운 글도 있을 겁니다. 무언가 더 이야기해보고 싶 은데 더 나가지 않은 답답함이 느껴질 수도 있고요. 그 어느 때보다 학생들의 피드백이 궁금한 대 학가입니다.

* 대학가를 보고 아래의 메일 주소로 의견을 보내주시면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엄창근 <대학가> 편집인 | daehakga@ivf.or.kr

<대학가>는 IVF 공식 회보로서 학생 운동 전반과 그리스도인

발행일 | 2017년 9월 1일

대학생의 신앙생활을 위한 읽을거리를 싣고 있습니다.

발행처 | (사)한국기독학생회 우)0403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56-10

한국기독학생회(IV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는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비전을 가진 복음주의 선교단체입니다.

전화 | 070-8275-6335 팩스 | 02-333-7361 E-mail | daehakga@ivf.or.kr 발행인 | 주상윤 편집위원장 | 박종서 편집인 | 엄창근 디자인 | 문이선 김아롬새미 표지 | 전해운 제작 | 김효영 인쇄 | 예원프린팅

편집위원 | 김민영 나정수 배성우 이슬기 이지현 정다은 최지은 32

학생기자 | 강주은 김율 김은미 김하영 손석현 이상영 이유현 정대은


사랑을 실천하면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사랑에 몰두하다

정의로운 사랑은 가능한가

정의를 허물지는 않을까?

정의를 세우려다 사랑을 잃지는 않을까?

불의한 세상 한가운데서 사랑과 정의, 정의와 사랑이 충돌하는 듯한 문 제에 직면해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세계적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모호한 사용에 숨어든 인간의 불의 하고 악한 관행과 폐단을 정면으로 해부하고, ‘정의로운 사랑’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사랑에 대한 현대 기독교의 문헌 중 가장 중요한 책이라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_임성빈 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이 책은, 통상의 피상적 이해와는 달리 왜 사랑과 정의가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결코 배타적 범주가 될 수 없는지를 정밀하게 드러내 보인다. 복음이 일상적으로 왜곡되고 교회가 깊은 혼돈에 휩싸인 이 시대에 계몽적 성찰을 자극하는 책이다.” _고세훈 고려대 공공행정학부 명예교수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지음 | 홍종락 옮김

www.ivp.co.kr

양장 500면(예상) | 25,000원(예상)


IVF 공식 회보 : 한국기독학생회(IVF: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는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비전을 가진 복음주의 선교단체입니다.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