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운재로 온 편지
- 문인들이 남긴 영혼의 메아리 -
작고문인 육필 서한전
편운재로 온 편지 - 문인들이 남긴 영혼의 메아리 -
작고문인 육필 서한전
문인들이 남긴 영혼의 메아리 현대인은 육필의 가치를 거의 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컴퓨터와 IT산업의 보급은 신속과 대량복사 능 력에 편승하면서 편의지상주의의 풍조를 만연시켰다. 이러한 풍조는 산업 일반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활 속에도 깊숙 이 침투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 해 동안 소식이 없던 사람이 전해오는 안부편지는 물론, 몇 마디밖에 쓰지 않는 연하장도 전자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그뿐이랴. 휴대전화의 전자메시지로 웃어 른에게 새해인사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가 되었다. 현대인은 글씨를 써서가 아니라 자판의 글자를 눌러서 글을 만드는 삭막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작고문인들이 남긴 육필서한을 접하면서 그것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겨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참 으로 의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서한에는 편지를 받는 이와 일치하려고 노력하는 보내는 이의 호흡과 체취와 정감 이 깃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이나 신의나 우정과 같은 것들로 충만하여 있다. 그것은 서로가 하나로 소통하고자 하는 영혼의 울림이요 신호다. 조병화 시인은 일반 독자층을 다양하게 거느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문단에서도 폭넓은 독자들을 확보해왔다. 수많 은 문인들이 조병화 시인 생전에 격조 높은 서한들을 보내온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에 조병화문학관은 2007년 5월 ‘조병화 주간’ 의 기획 행사로‘편운재로 온 편지’제하에 시인ㆍ소설가ㆍ수필가ㆍ문학평론가들 중에서 작고하신 분들 이 생전에 조병화 시인에게 보내주신 귀중한 육필서한을 모아 전시회를 갖기로 한 데 이어 이것들을 책으로 묶어 작고 문인 육필서한집을 내기로 했다. 우리는 이 서한집을 통해 그 분들의 개인사는 물론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의 자취를 되 돌아보고 새로운 문학적 지표를 세워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여기에는 박종화 소설가가 제13시집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 를, 김광균 시인이 제15시집 미국기행시화집 『가을은 남은 거에』 를 받고 감회를 적어 보낸 붓글씨를 비롯하여 여러분이 보낸 조병화 시집 독후감과 독려 및 감사의 육필들, 박봉우ㆍ천상병 시인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의 조병화 시세계에 관한 진술들, 장만영 시인ㆍ전혜린 수필가 등이 자신 의 근황과 함께 보낸 긴 안부편지들, 송지영 소설가의 옥중편지, 조태일ㆍ박정만 제자시인이 스승을 사모하여 올린 글 월 등 36통의 다채롭고 희귀한 서한들이 실려 있다. 더불어 부록에는 이들 고인의 육필서한을 독자들이 보다 쉽게 읽 을 수 있도록 한자에 일일이 음을 달고 오늘날의 맞춤법에 맞게 고쳐 수록했으며 날짜는 모두 아라비아 숫자로 바꿔 썼다. 서한을 쓴 분들의 간단한 약력을 실어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수록한 서한들 가운데 읽기 어려운 한자를 해독할 수 있도록 열의를 갖고 도와주신 조병화 시인의 사돈이자 한국한 시협회 회장인 김기수 선생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번에 수록된 서한들을 집필된 시간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장만영( )ㆍ김소운( )ㆍ박양균( )ㆍ박봉우( )ㆍ 박재륜( )ㆍ주요섭(
)ㆍ전혜린( )ㆍ박종화( )ㆍ
송지영( )ㆍ정비석( )ㆍ안수길( )ㆍ박영준( )ㆍ 오영수( )ㆍ송지영( )ㆍ김광균( )ㆍ이종환( )ㆍ 천상병( )ㆍ조태일( )ㆍ박정만( )ㆍ이하윤( )ㆍ 김구용( )ㆍ전광용( )ㆍ김종문( )ㆍ박화목( )ㆍ 박용래( )ㆍ유치진( )ㆍ정한모( )ㆍ이헌구( )ㆍ 정한숙( )ㆍ한무숙( )ㆍ박재삼( )ㆍ최화국( )ㆍ 이형기( )ㆍ박태진( )ㆍ구상( )ㆍ신석정(연도미상 )
이상 인 편.
2007년 5월 조병화문학관 관장 조 진 형
장만영 (?) 병화炳華 형兄 오늘 주신 긴 글월 반갑게 받아 읽었습니다.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얼마나 형兄의 글월이 나의 이 암담한 마음을 위로해주었는 지, 형은 아마 예측조차 못하실 것입니다. 주간主幹의 자리를 물러나왔던 것입니다.‘깨끗이 살자. 욕 -(편지지 실인즉 저는 형兄의 글월이 들어오던 바로 오늘,『학원學園』 1매 분실)-
병화炳華 형兄. 나는 오늘 울적합니다. 그러나 한편 무한히 행복합니다. 형兄이, 그리고 나를 아껴 주는 몇몇의 좋은 친구들이 멀 리서 나를 생각해주고, 나의 허잘 나위 없는 시詩를 얘기하거니 하면 결決코 외롭지 않습니다. 아아 그러나, 그러나, 어째서 나는 죽지 못하고 이 같은 굴욕된 생활을 계속해야 합니까? 죽음이란 그렇게도 무서운 것일까요? 아니외다. 나는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죄 없는 자식들이 가엾은 것이외다. 병화炳華 형兄, 이제 만나면 많은 얘기를 하기로 합시다. 이 밤 나는 울고만 싶어 더 긴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부인夫人께 부디 안부의 말씀 전해주십시오. 형兄과 더불어 못 잊혀지는 것은 부인夫人의 어지신 모습이외다. 자, 그럼 그만 붓을 놓습니다.
15일 달 없는 밤, 만영 올림
장만영(張萬榮) 시인. 황해도 연백 출생. 경성 제2고보를 거쳐 도쿄 야마자키영어학교山崎英語學校 고등과 졸업.『서울신문』 출판국장 겸 『신천지』 주재. 산호장출판 사와 학생문예지 『신문예』 경영.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1932년 『동광』 에 투고한 시 「봄노래」 가 김억에 의해 추천, 등단. 그의 시는 강한 모더니 즘적 경향을 보이면서도 전원적 세계를 현대적인 형식으로 노래한 점에 특징이 있다. 시집 『양』 『축제』 『유년송』 『밤의 서정』 『저녁 종소리』 『장만영선시집』 등이 있다.
김소운 돈도 없이 어찌 내가 파리까지 왔나金なくて ナンノ おのれが 巴里かな_ 그렇기는 하나 파도波濤 만리萬里 왔던 길이라 듣고 보기 로는 부릴 대로 욕심欲心을 부리고 로마羅馬, 파리巴里 칠주일七週日의 여정종료旅程終了. 11월10일 마르세이유馬塞耳 출항出港, 지금 지중해地中海를 지나는 길이오. 중간中間 소식消息 못 전傳한 태만怠慢 용서하시오. 뱃길은 잔잔하나 인도양印度洋에 들어서는 좀 땀 을 흘리게 될 모양. 12월9일 요코하마橫浜 입항入港, 연내年內로 귀국歸國하리다. 사우詞友들께 안부安否들 전傳하시오. 11월13일 과過 스에즈 운하運河 소운생素雲生
김소운(金素雲)
시인. 수필가. 번역문학가. 부산 영도 출생. 본명 김교중金敎重. 일본 도쿄 가이세중학開成中學 중퇴. 주로 일본에 머물면서 수차례 한국에 드나들며 아동교육기관 을 경영. 1923년 시대일보에 시 「신조」 를 발표. 일역 민요집 『조선민요선』 『조선구전민요집』등의 저서를 펴냈다. 특히 「일본에부치는 노래」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목근통신』 은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의 서간 수필로서 일본의 『중앙공론』 에 전재 되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시집 『출첩出帖』 , 수필집 『하늘 끝에 살아도』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화훈장 은장 수장.
박양균 조병화趙炳華 님께 부산釜山을 드나드는 벗님들의 전傳하는 소식消息에 형兄이 무고無故 하시다니 듣기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일전日前 장張 선생先生께 보내신 글월 읽고 그 서글픔이 형兄에 한限한 것이 아니려니 하였으나 서로들 우울憂鬱함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걸 누 구의 탓이라 할까요? 그날그날을 지워버리고 그 너무나 무료無聊함에 공허증空虛症을 느낄 지경이구려. 그런대로 누구의 위촉委囑도 아니면서 안 쓰고 견디게 더 곤란한 시詩를 써 모아 또 안 내고 견디게 참을 길 없어 흥분興奮 그대로 시집詩集이랍시고 내었습니다. 라 하였습니다. 아마 이 편지片紙와 같은 시각時刻에 책의 구성構成을 장만영張萬榮 씨氏에 부탁하고 제호題號를『두고 온 지표地標』 형兄에 전傳해 질는지 모릅니다. 문단文壇에 지기知己가 적은 저라 몇몇 분分께 나눌 시집詩集마저 형兄의 앞으로 보내오니 수고手苦 하여 주심을 바랍니다. 윤성潤成 형부 형兄께도 몇 부部 보냈습니다. 두 분께 나누는 것은 내 짐작으로 나누기 편의便宜한 분을 가려 한몫 부치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 나오는 시집詩集이라 흥분興奮이 이내 가시지를 않는군요. 실實인 즉 자식을 가진 어버이의 근심 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世上에 대한 출생신고出生申告도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질러 말씀 올리면 형兄에게 귀지貴地 신문新聞에 북 리뷰를 하나 써 주옵소사 하는 것입니다. 되도록이면 형兄의 서명署名 아래 썼으면 합니다만 꼭이 사정事情이 계시다면 다른 분을 택하심 도 어떨까 합니다. 내가 이렇게 무간히 써 주십사 하고 말씀 올릴만한 분은 형兄과 윤성潤成 형兄뿐인가 합니다. 그러기에 부산 김형金兄께도 이러한 사연을 올렸습니다. 한두 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여서입니다. 직접直接 상부上釜코저 하였습니다만 요즘 건강健康이 극도極度로 좋지 못하여 그럴 수도 없고 그저 형兄의 후의厚意만을 바랄 뿐입 니다. 그럼 다시 글월 올리기로 하고 몸 건강健康히 안녕安寧하옵기를 빌며 이만 실례失禮 하겠습니다. 11월 말일末日 밤 박양균朴暘均
추追. 신문사新聞社에 몇 부部 여분餘分을 보내오니 적당適當히 나누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박양균(朴暘均) 시인. 영주 출생.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2년『문예』 에 시「창」 「꽃」 등으로 추천받고 등단. 냉혹한 현실상황과 자연의 생명력을 대비하는 이미지 형상화에 노력했다. 시집 『두고 온 지표』 『일어서는 빛』 『박양균 시집』 등이 있다.
박양균 조병화趙炳華 님께 부산釜山을 드나드는 벗님들의 전傳하는 소식消息에 형兄이 무고無故 하시다니 듣기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일전日前 장張 선생先生께 보내신 글월 읽고 그 서글픔이 형兄에 한限한 것이 아니려니 하였으나 서로들 우울憂鬱함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이걸 누 구의 탓이라 할까요? 그날그날을 지워버리고 그 너무나 무료無聊함에 공허증空虛症을 느낄 지경이구려. 그런대로 누구의 위촉委囑도 아니면서 안 쓰고 견디게 더 곤란한 시詩를 써 모아 또 안 내고 견디게 참을 길 없어 흥분興奮 그대로 시집詩集이랍시고 내었습니다. 라 하였습니다. 아마 이 편지片紙와 같은 시각時刻에 책의 구성構成을 장만영張萬榮 씨氏에 부탁하고 제호題號를『두고 온 지표地標』 형兄에 전傳해 질는지 모릅니다. 문단文壇에 지기知己가 적은 저라 몇몇 분分께 나눌 시집詩集마저 형兄의 앞으로 보내오니 수고手苦 하여 주심을 바랍니다. 윤성潤成 형부 형兄께도 몇 부部 보냈습니다. 두 분께 나누는 것은 내 짐작으로 나누기 편의便宜한 분을 가려 한몫 부치기로 한 것입니다. 처음 나오는 시집詩集이라 흥분興奮이 이내 가시지를 않는군요. 실實인 즉 자식을 가진 어버이의 근심 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세상世上에 대한 출생신고出生申告도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질러 말씀 올리면 형兄에게 귀지貴地 신문新聞에 북 리뷰를 하나 써 주옵소사 하는 것입니다. 되도록이면 형兄의 서명署名 아래 썼으면 합니다만 꼭이 사정事情이 계시다면 다른 분을 택하심 도 어떨까 합니다. 내가 이렇게 무간히 써 주십사 하고 말씀 올릴만한 분은 형兄과 윤성潤成 형兄뿐인가 합니다. 그러기에 부산 김형金兄께도 이러한 사연을 올렸습니다. 한두 분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여서입니다. 직접直接 상부上釜코저 하였습니다만 요즘 건강健康이 극도極度로 좋지 못하여 그럴 수도 없고 그저 형兄의 후의厚意만을 바랄 뿐입 니다. 그럼 다시 글월 올리기로 하고 몸 건강健康히 안녕安寧하옵기를 빌며 이만 실례失禮 하겠습니다. 11월 말일末日 밤 박양균朴暘均
추追. 신문사新聞社에 몇 부部 여분餘分을 보내오니 적당適當히 나누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박양균(朴暘均) 시인. 영주 출생. 성균관대학교 국문과 졸업. 1952년『문예』 에 시「창」 「꽃」 등으로 추천받고 등단. 냉혹한 현실상황과 자연의 생명력을 대비하는 이미지 형상화에 노력했다. 시집 『두고 온 지표』 『일어서는 빛』 『박양균 시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