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시간속에만난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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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한국문단 반세기 사진전

2008


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기획의 변

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한국문단 반세기 사진전

빛이 기록한 침묵의 증언, 사진 한 장에 담긴 것은 사실 얼굴 몇몇이거나 그 뒤의 흐린 배경 혹은 지극히 좁은 세상의 한 구석이겠지만 그것은 그 어떤 기록물보다 생생한 현재성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955년 늦가을, 덕수궁에서 열린‘전국 고교 백일장’ 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헌구 문학평론가, 모윤숙 시인, 양주동 국문학자, 노천명 시인과 함께 웃으며 렌즈에 잡힌 표정, 1956년 명동 거리에서 이봉구 소설가, 천경자 화백과 함께 외투 깃을 날리는 모습 등 반세기 전 빛이 기록한 흑백의 증언에서부터 1999년 백담사 객사 툇마루에 김남조 시인과 나란히 앉은 고요한 미소…… 그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보기 위하여 조병화문학관에서 기획 사진전을 마련합니다. 조병화 시인이 시의 생애 반세기 속에서 만난 사람들, 한국 문단을 조병화 시인과 함께 걸어온 명망 높은 문인들, 그동안 우리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기도 했던 여러 문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진귀하고 다채로운 사진을 통해 공개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거대담론과 이념에 얽매여 온 문학사적 평가와는 달리, 문학의 본질이‘인간’그 자체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08년 5월 조병화문학관 관장 조 진 형


기획의 변

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한국문단 반세기 사진전

빛이 기록한 침묵의 증언, 사진 한 장에 담긴 것은 사실 얼굴 몇몇이거나 그 뒤의 흐린 배경 혹은 지극히 좁은 세상의 한 구석이겠지만 그것은 그 어떤 기록물보다 생생한 현재성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1955년 늦가을, 덕수궁에서 열린‘전국 고교 백일장’ 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헌구 문학평론가, 모윤숙 시인, 양주동 국문학자, 노천명 시인과 함께 웃으며 렌즈에 잡힌 표정, 1956년 명동 거리에서 이봉구 소설가, 천경자 화백과 함께 외투 깃을 날리는 모습 등 반세기 전 빛이 기록한 흑백의 증언에서부터 1999년 백담사 객사 툇마루에 김남조 시인과 나란히 앉은 고요한 미소…… 그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보기 위하여 조병화문학관에서 기획 사진전을 마련합니다. 조병화 시인이 시의 생애 반세기 속에서 만난 사람들, 한국 문단을 조병화 시인과 함께 걸어온 명망 높은 문인들, 그동안 우리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기도 했던 여러 문인들의 생생한 모습을 진귀하고 다채로운 사진을 통해 공개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거대담론과 이념에 얽매여 온 문학사적 평가와는 달리, 문학의 본질이‘인간’그 자체임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08년 5월 조병화문학관 관장 조 진 형


04 05

나는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서울고등학교 물리 선생으로. 그것이 1949년 2 월 7일인가 그러했다. 올라오자마자 편석촌(김기림)을 만났다. 그때 편석촌이 시 집을 내자고 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망설였다.…… 그날 나는 장만영 시인에게 인계되었다.…… 시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전혀 모르 는 이야기들. 장 시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으로 추진이 되었다. 책의 장정 만은 편석촌이 추천한 김경린 시인이 맡기로 했다.…… 제1시집『버리고 싶은 유 산』 이 드디어 출판이 되었다. 1949년 7월 1일 인쇄, 7월5일 발행. 1000부 중 특제 (번호 기입) 300부, 병제(번호 무기입) 700부. 책이 나오자 장 시인이 몇몇 가까운 문인들을 소집했다. 나를 위한 출판기념회라는 것이다.…… 그때 모인 문인은 편 석촌, 김광균, 양병식, 이봉구, 김경린, 장만영.…… 이러했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23~25

1950년대 명동성당 앞에서 장만영 시인과


04 05

나는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서울고등학교 물리 선생으로. 그것이 1949년 2 월 7일인가 그러했다. 올라오자마자 편석촌(김기림)을 만났다. 그때 편석촌이 시 집을 내자고 했다.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망설였다.…… 그날 나는 장만영 시인에게 인계되었다.…… 시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전혀 모르 는 이야기들. 장 시인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으로 추진이 되었다. 책의 장정 만은 편석촌이 추천한 김경린 시인이 맡기로 했다.…… 제1시집『버리고 싶은 유 산』 이 드디어 출판이 되었다. 1949년 7월 1일 인쇄, 7월5일 발행. 1000부 중 특제 (번호 기입) 300부, 병제(번호 무기입) 700부. 책이 나오자 장 시인이 몇몇 가까운 문인들을 소집했다. 나를 위한 출판기념회라는 것이다.…… 그때 모인 문인은 편 석촌, 김광균, 양병식, 이봉구, 김경린, 장만영.…… 이러했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23~25

1950년대 명동성당 앞에서 장만영 시인과


06 07

1952년 8월 18일, 나는 피난 내려온 부산에서 정음사 최영해 사장의 호의로 제3시집『패각의 침실』 을 출판했다. 그리고 부산 광복동 네거리 <녹원>다방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 비가 내리는 늦은 여름밤이었다. 피난지에서의 모임이라 그 랬는지 참으로 많은 시인, 소설가, 예술가, 학교 동료들이 가득히 참석을 해 주었 다. 김소운∙오상순∙안수길∙이하윤∙이헌구∙한노단∙손소희∙ 김말봉∙이한 직∙운용하∙이진섭∙이인범∙이해랑∙김윤성∙이명온∙김환기……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44

1952년 부산 광복동 녹원 다방,『패각의 침실』출판기념회장에서


06 07

1952년 8월 18일, 나는 피난 내려온 부산에서 정음사 최영해 사장의 호의로 제3시집『패각의 침실』 을 출판했다. 그리고 부산 광복동 네거리 <녹원>다방에서 출판기념회를 했다. 비가 내리는 늦은 여름밤이었다. 피난지에서의 모임이라 그 랬는지 참으로 많은 시인, 소설가, 예술가, 학교 동료들이 가득히 참석을 해 주었 다. 김소운∙오상순∙안수길∙이하윤∙이헌구∙한노단∙손소희∙ 김말봉∙이한 직∙운용하∙이진섭∙이인범∙이해랑∙김윤성∙이명온∙김환기……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44

1952년 부산 광복동 녹원 다방,『패각의 침실』출판기념회장에서


08 09 1950년 중반 명동시절, 다방에서 만나곤 했던 문우들과 왼쪽부터 윤고종(문학평론가)∙ 조병화∙노천명(시인)∙ 이진섭(수필가)∙조애실(시인)∙ 박계주(소설가)

왼쪽부터 유호(극작가)∙조경희(수필가)∙조병화∙김광주(소설가)∙이해랑(연출가)∙가수 현인의 동생

1950년대 중반 명동에서 명동백작 소설가 이봉구 그리고 화가 천경자와

그 시절은 제대로 집필실 같은 걸 가지고 있었던 문인들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다방이 집필실이요, 응접실이 요 원고와 고료를 서로 교환하는 곳이었다.…… 전화들도 집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이렇게 다방이나 술집은 모든 구실을 해 주었다. 근방에 있었던 작은 술집, 큰 술집들이 거진 돈들이 달랑달랑하는 문인 예술가들로

이봉구씨는 명동에서 살다 명동에서 죽은 애수적인 소설가였습니다. 명동을 사랑해서 매일 매일 밤낮을 명동의

우글거렸다. 그리고 그곳에 가득히 차 있었던 대화들은 문학이요, 음악이요, 그림이요, 연극이요, 예술들이었

술집, 다방, 거리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 이봉구 씨의 별명은 명동백작이었습니다.…… 지금 명동은 이래저래 상인들

다.…… 그 시절의 명동은 하나의 예술과 인생의 대학촌이었다.

의 거리로 변해 버렸습니다만, 그 시절의 예술인들의 향기는 좋은 추억으로 우리들 가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247~248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95


08 09 1950년 중반 명동시절, 다방에서 만나곤 했던 문우들과 왼쪽부터 윤고종(문학평론가)∙ 조병화∙노천명(시인)∙ 이진섭(수필가)∙조애실(시인)∙ 박계주(소설가)

왼쪽부터 유호(극작가)∙조경희(수필가)∙조병화∙김광주(소설가)∙이해랑(연출가)∙가수 현인의 동생

1950년대 중반 명동에서 명동백작 소설가 이봉구 그리고 화가 천경자와

그 시절은 제대로 집필실 같은 걸 가지고 있었던 문인들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다방이 집필실이요, 응접실이 요 원고와 고료를 서로 교환하는 곳이었다.…… 전화들도 집에 가지고 있지 못했던 시절이어서 이렇게 다방이나 술집은 모든 구실을 해 주었다. 근방에 있었던 작은 술집, 큰 술집들이 거진 돈들이 달랑달랑하는 문인 예술가들로

이봉구씨는 명동에서 살다 명동에서 죽은 애수적인 소설가였습니다. 명동을 사랑해서 매일 매일 밤낮을 명동의

우글거렸다. 그리고 그곳에 가득히 차 있었던 대화들은 문학이요, 음악이요, 그림이요, 연극이요, 예술들이었

술집, 다방, 거리에서 살다시피 해서 그 이봉구 씨의 별명은 명동백작이었습니다.…… 지금 명동은 이래저래 상인들

다.…… 그 시절의 명동은 하나의 예술과 인생의 대학촌이었다.

의 거리로 변해 버렸습니다만, 그 시절의 예술인들의 향기는 좋은 추억으로 우리들 가슴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247~248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95


10 11

그저 그리워서, 서운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서로 찾아들었다간 마음에 맞 는 사람들끼리 술집을 찾아들곤 했다. 소위 문단적인 섹트의 냄새가 전연 없는 외 로운 혼자들이었다.…… 김광주∙한노단(극작가)∙이해랑∙이봉구∙윤용하(작곡 가)∙이인범(성악가)∙전봉초∙박인환∙이진섭∙김수영∙조영암∙조지훈∙박연 희∙김진수∙박고석∙김환기(화가)∙장욱진(화가)∙유호∙김영주(삽화가)∙이순 재(삽화가)∙이명온(수필가)∙조애실∙조경희∙최요한(방송작가), 그리고 이헌 구∙안수길∙이하윤∙박진(연출가)∙김광섭, 때때로 이무영∙박계주∙김내성∙ 유두연(영화감독) 그리고 수많은 문화부 기자들, 잡지사 기자들, 이런 분들이 우 리들 인생의 외인부대처럼, 명동을 끼리끼리 이리 어울리고 저리 어울리고 실로 조직이 없는 인간가족처럼 배회하며 깊은 술, 깊은 밤을 시대를 응시하며 뜬눈으 로 그 슬픈 시대, 슬픈 역사를 살았던 거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230

1955년 명동 밤거리에서 최영해(정음사 사장)∙정비석(소설가)∙조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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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리워서, 서운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서로 찾아들었다간 마음에 맞 는 사람들끼리 술집을 찾아들곤 했다. 소위 문단적인 섹트의 냄새가 전연 없는 외 로운 혼자들이었다.…… 김광주∙한노단(극작가)∙이해랑∙이봉구∙윤용하(작곡 가)∙이인범(성악가)∙전봉초∙박인환∙이진섭∙김수영∙조영암∙조지훈∙박연 희∙김진수∙박고석∙김환기(화가)∙장욱진(화가)∙유호∙김영주(삽화가)∙이순 재(삽화가)∙이명온(수필가)∙조애실∙조경희∙최요한(방송작가), 그리고 이헌 구∙안수길∙이하윤∙박진(연출가)∙김광섭, 때때로 이무영∙박계주∙김내성∙ 유두연(영화감독) 그리고 수많은 문화부 기자들, 잡지사 기자들, 이런 분들이 우 리들 인생의 외인부대처럼, 명동을 끼리끼리 이리 어울리고 저리 어울리고 실로 조직이 없는 인간가족처럼 배회하며 깊은 술, 깊은 밤을 시대를 응시하며 뜬눈으 로 그 슬픈 시대, 슬픈 역사를 살았던 거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230

1955년 명동 밤거리에서 최영해(정음사 사장)∙정비석(소설가)∙조병화


12 13 1955년 늦은 가을 덕수궁에서 전국고교 백일장 심사위원들과 왼쪽부터 이헌구(문학평론가)ㆍ모윤숙(시인)ㆍ양주동(시인, 국문학자)ㆍ노천명(시인)ㆍ조병화

1955년 8인 합동 출판기념회 왼쪽부터 김종문(시인)∙양명문(시인)∙안수길(소설가)∙박계주(소설가) 백철(문학평론가)∙조병화∙박인환(시인)∙곽하신(소설가)


12 13 1955년 늦은 가을 덕수궁에서 전국고교 백일장 심사위원들과 왼쪽부터 이헌구(문학평론가)ㆍ모윤숙(시인)ㆍ양주동(시인, 국문학자)ㆍ노천명(시인)ㆍ조병화

1955년 8인 합동 출판기념회 왼쪽부터 김종문(시인)∙양명문(시인)∙안수길(소설가)∙박계주(소설가) 백철(문학평론가)∙조병화∙박인환(시인)∙곽하신(소설가)


14 15

시집『사랑이 가기 전에』 를 정음사 최영해 사장이 출판을 해주었다. 나로서 는 슬픈 작별의 인사였다. 그런데 그 시집이 그렇게 많이 팔리다니. 숨가쁘게 인 지에 도장을 눌렀다.…… 중국집 아서원. 이 집이 그땐 장안에서 제일 크고, 좋고, 소문난 중국요리집이었고,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었다.…… 실로 많은 문인 들이 운집을 했다.…… 문둥이 시인들도 많이 왔다. 한하운 시인이 데리고 온 것 이다. 나는 슬프고도 고마웠다. 죽을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님이 옆 에 계셨다. 사랑은 가고 슬픔만 남은 자리, 참으로 인생처럼 쓸쓸했었다. 그날 나 는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밤을 잃었었다. 조병화, 『나의 생애 나의 인생』P. 146

1955년 가을 제5시집『사랑이 가기 전에』출판기념회장 아서원에서 왼쪽부터 최영해(정음사 사장)∙미상∙한하운(시인)∙조병화∙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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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랑이 가기 전에』 를 정음사 최영해 사장이 출판을 해주었다. 나로서 는 슬픈 작별의 인사였다. 그런데 그 시집이 그렇게 많이 팔리다니. 숨가쁘게 인 지에 도장을 눌렀다.…… 중국집 아서원. 이 집이 그땐 장안에서 제일 크고, 좋고, 소문난 중국요리집이었고,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었다.…… 실로 많은 문인 들이 운집을 했다.…… 문둥이 시인들도 많이 왔다. 한하운 시인이 데리고 온 것 이다. 나는 슬프고도 고마웠다. 죽을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님이 옆 에 계셨다. 사랑은 가고 슬픔만 남은 자리, 참으로 인생처럼 쓸쓸했었다. 그날 나 는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밤을 잃었었다. 조병화, 『나의 생애 나의 인생』P. 146

1955년 가을 제5시집『사랑이 가기 전에』출판기념회장 아서원에서 왼쪽부터 최영해(정음사 사장)∙미상∙한하운(시인)∙조병화∙미상


16 17

1957년 마종기(시인)와 함께. 당시 서울고등학교 문예반 지도교사와 문예반 학생으로서

1950년대 후반 강릉에서. 왼쪽부터 신봉승(극작가)ㆍ조병화ㆍ박고석(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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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마종기(시인)와 함께. 당시 서울고등학교 문예반 지도교사와 문예반 학생으로서

1950년대 후반 강릉에서. 왼쪽부터 신봉승(극작가)ㆍ조병화ㆍ박고석(화가)


18 19

1957년 9월 일본 동경 국제PEN클럽대회장에서 왼쪽부터 김종문(시인)∙구상(시인)∙이경순(시인)∙송지영(소설가)∙스펜더(영국 시인)∙ 샹송(프랑스 소설가, PEN클럽 회장)∙고은(시인)∙전숙희(수필가)∙정비석(소설가)∙조병화∙조경희(수필가)

1959년 7월 제29차 국제 PEN대회에 참석하고 첫 유럽여행 중 파리에서. 왼쪽부터 조병화∙권옥연(화가)∙주요섭(소설가)

1957년 9월에 일본 동경에서 제27회 국제PEN클럽대회가 열렸습니다. 동양 에서 처음 열리는 펜대회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19명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

에펠탑이 있는 부근에 호텔을 잡고, 지도와 안내지로 길잡이를 삼아 매일 도

런데 어디 패스포트가 나옵니까. 참으로 더럽게 관리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던 이

보로 파리 구경을 다녔습니다. 주요섭 선생은 길눈이 어두웠습니다. 심심풀이로

승만 대통령 치하였습니다. 끝끝내 패스포트가 안 나오고 있다가 대통령 비서로

놀리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내가 그렇게 당시의 주요섭 선생처럼 길눈이 어두워

있던 김광섭 시인이 서대문 경무대의 이기붕 씨에게 부탁을 해서 출발 전 하루 만

지고 말았습니다.…… 파리는 참으로 넓고 시원시원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에 패스포드가 나왔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일본 작가들하고 말을 하지 말라는 조

우연히, 실로 우연히 화가 권옥연 씨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지,

건이 붙어서,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동경으로 갔던 겁니다.

개구리가 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97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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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9월 일본 동경 국제PEN클럽대회장에서 왼쪽부터 김종문(시인)∙구상(시인)∙이경순(시인)∙송지영(소설가)∙스펜더(영국 시인)∙ 샹송(프랑스 소설가, PEN클럽 회장)∙고은(시인)∙전숙희(수필가)∙정비석(소설가)∙조병화∙조경희(수필가)

1959년 7월 제29차 국제 PEN대회에 참석하고 첫 유럽여행 중 파리에서. 왼쪽부터 조병화∙권옥연(화가)∙주요섭(소설가)

1957년 9월에 일본 동경에서 제27회 국제PEN클럽대회가 열렸습니다. 동양 에서 처음 열리는 펜대회라고 해서 우리나라에서도 19명이 가기로 했습니다. 그

에펠탑이 있는 부근에 호텔을 잡고, 지도와 안내지로 길잡이를 삼아 매일 도

런데 어디 패스포트가 나옵니까. 참으로 더럽게 관리들이 위세를 떨치고 있던 이

보로 파리 구경을 다녔습니다. 주요섭 선생은 길눈이 어두웠습니다. 심심풀이로

승만 대통령 치하였습니다. 끝끝내 패스포트가 안 나오고 있다가 대통령 비서로

놀리곤 했습니다만, 지금은 내가 그렇게 당시의 주요섭 선생처럼 길눈이 어두워

있던 김광섭 시인이 서대문 경무대의 이기붕 씨에게 부탁을 해서 출발 전 하루 만

지고 말았습니다.…… 파리는 참으로 넓고 시원시원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에 패스포드가 나왔습니다. 일본에 가서도 일본 작가들하고 말을 하지 말라는 조

우연히, 실로 우연히 화가 권옥연 씨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지,

건이 붙어서,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동경으로 갔던 겁니다.

개구리가 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97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107


1959년 경부터 나는 나의 내면세계의 어둠을 밤의 이야기로 해서 일기처럼 연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실로 나는‘밤’ 을 살아온 것입니다. 국민학교 시절, 중학 교 시절, 동경유학 시절, 줄곧 전쟁, 전쟁, 전쟁으로 이어진 시대적인 역사의 밤이 었습니다. 그리고 6∙25 동란 이후에도 끊임없는 시대적인 혼란 속에서, 그리고 내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 8∙15 해방이후 줄곧 이어지던 꿈의 좌절,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갈등, 사회에 대한 비판, 염세적인 우울 등 개인의 숙명적인 밤. 이러한 나의 시대적인‘역사의 밤’ 과 개인의‘숙명의 밤’ 이 합친 그 밤의 이야기를 써 내 리고 있었습니다. 조병화, 『세월은 자란다』P. 111

1961년 12월 11일 <호수그릴>에서 시집『밤의 이야기』출판기념회. 왼쪽부터 조병화∙어머니 진종 여사∙황순원(소설가)

1960년 1월 19일,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왼쪽부터 오종식(언론인)과 3인의 수상자 오영수(소설가)∙조병화∙김춘수(시인)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었던 송지영 선생의 청탁에 의해서 나는‘그림과 시 구라파 기행’ 이라는 작품을 거의 매일 조선일보에 연재를 했습니다. 이것을 출 판사 성문각에서 출판하자고 해서『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이라는 이름으로 시집 을 묶었습니다. 나의 제8시집이 됩니다. 좀 분량이 부족해서 그 시집 뒤에「밤의 이야기」5편을 첨가했습니다. 그 첨가한 5편의 시가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의 영광을 나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실로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이 아세아문학상은 그 당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아세아재단에서 한국문인들을 위해서 설정한 가장 큰 상이었습니다.…… 문단 밖에서 빙빙 큰 소외감으로 명동 생활을 하고 있던 나 에겐 큰 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조병화, 『세월은 자란다』P.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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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경부터 나는 나의 내면세계의 어둠을 밤의 이야기로 해서 일기처럼 연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실로 나는‘밤’ 을 살아온 것입니다. 국민학교 시절, 중학 교 시절, 동경유학 시절, 줄곧 전쟁, 전쟁, 전쟁으로 이어진 시대적인 역사의 밤이 었습니다. 그리고 6∙25 동란 이후에도 끊임없는 시대적인 혼란 속에서, 그리고 내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 8∙15 해방이후 줄곧 이어지던 꿈의 좌절, 결혼생활에 있어서의 갈등, 사회에 대한 비판, 염세적인 우울 등 개인의 숙명적인 밤. 이러한 나의 시대적인‘역사의 밤’ 과 개인의‘숙명의 밤’ 이 합친 그 밤의 이야기를 써 내 리고 있었습니다. 조병화, 『세월은 자란다』P. 111

1961년 12월 11일 <호수그릴>에서 시집『밤의 이야기』출판기념회. 왼쪽부터 조병화∙어머니 진종 여사∙황순원(소설가)

1960년 1월 19일, 반도호텔 다이너스티룸,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왼쪽부터 오종식(언론인)과 3인의 수상자 오영수(소설가)∙조병화∙김춘수(시인)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있었던 송지영 선생의 청탁에 의해서 나는‘그림과 시 구라파 기행’ 이라는 작품을 거의 매일 조선일보에 연재를 했습니다. 이것을 출 판사 성문각에서 출판하자고 해서『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이라는 이름으로 시집 을 묶었습니다. 나의 제8시집이 됩니다. 좀 분량이 부족해서 그 시집 뒤에「밤의 이야기」5편을 첨가했습니다. 그 첨가한 5편의 시가 제7회 아세아자유문학상의 영광을 나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실로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이 아세아문학상은 그 당시 가장 권위있는 상으로 아세아재단에서 한국문인들을 위해서 설정한 가장 큰 상이었습니다.…… 문단 밖에서 빙빙 큰 소외감으로 명동 생활을 하고 있던 나 에겐 큰 놀라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조병화, 『세월은 자란다』P.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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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소운을 알게 된 건 먼저 책이었다. 동경 유학시절이었다. 그 유명한 암 파문고에 끼어있던『조선동요선(1933)』 과『조선민요선(1933)』그리고『조선시집』 (상,중, 홍풍관, 1943), 그것이 나를 먼저 놀라게 했다. 조선에도 이런 시인이 었었 나? 하는 존경의 마음이었다.…… 그 김소운을 피난지 부산에서 처음 대면했고, 매 일 밤을 술로 같이 지내게 되었다. 문학에 젖어서, 인간에 젖어서, 산다는 그 어두 운 낭만에 젖어서. 김광주∙이진섭∙한노단∙이해랑∙이인범∙이명온, 때론 이한 직, 때론 조영암, 때론 임긍재, 때론 윤용하 서로 뒤섞여서 거의 매일 국제시장의 술집을 돌며 객지, 그 나그네살이를 견디어내고 있었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42

1960년대 시인 김소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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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소운을 알게 된 건 먼저 책이었다. 동경 유학시절이었다. 그 유명한 암 파문고에 끼어있던『조선동요선(1933)』 과『조선민요선(1933)』그리고『조선시집』 (상,중, 홍풍관, 1943), 그것이 나를 먼저 놀라게 했다. 조선에도 이런 시인이 었었 나? 하는 존경의 마음이었다.…… 그 김소운을 피난지 부산에서 처음 대면했고, 매 일 밤을 술로 같이 지내게 되었다. 문학에 젖어서, 인간에 젖어서, 산다는 그 어두 운 낭만에 젖어서. 김광주∙이진섭∙한노단∙이해랑∙이인범∙이명온, 때론 이한 직, 때론 조영암, 때론 임긍재, 때론 윤용하 서로 뒤섞여서 거의 매일 국제시장의 술집을 돌며 객지, 그 나그네살이를 견디어내고 있었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42

1960년대 시인 김소운과


24 25

1963년 12월 <낭만> 술집에서, 제13시집『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출판기념회 피천득(수필가)∙주요섭(소설가)∙조병화∙임명방(교육자, 출판인)과 함께

출판기념회라 하면 다방이나, 양식홀이나 그런 곳에서들 했지만 비어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진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평소에 한 120~30명의 좌석이 있는 자리를 칵테일로 차려서 근 200명의 인사들이 모여 들었다. …… 이 출판기념회가 있은 다음부터는 좀 늦게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가득했다.…… 수많은 교수들, 수많은 문인들, 수많은 예술가들, 수많은 언론계 인사들, 수많은 사회명사 들이 수없이 저녁이면 찾아들곤 했다. 그러니까 명동에서 상업에 쫓겨난 인사들이 모두 이 넓은 비어홀로 모여들게 된 거다. 이렇게 <낭만>은 장안의 명물 <개방종합 대학>처럼 문화분위기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1960년대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시절 김진수(희곡) 양주동(고전) 박노춘(국문학) 유창돈(국어학, 중세국어) 교수가 보인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142


26 27

미국에서 열렸던 국제PEN대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여행사에 ‘$99, 99일’ 이라는 여행 쿠폰을 팔고 있었습니다. $99을 내면 99일간 버스로 미 국 전 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는 표입니다. 되도록 보다 인생을 많이 살기 위하여 몸을 가지고 이 눈에 보이는 자연의 세계를 보다 많이 여행한다는 소년 시절의 꿈 과, 책을 통해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보다 많이 여행을 한다는 역 시 소년 시절의 꿈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쿠폰을 사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비 행기로 날고, 그곳부터 줄곧 버스를 타고 우선 대회장이 있는 뉴욕까지 가고, 대 회가 끝나곤 줄곧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동으로, 북으로, 남으로, 서부로, 약 60일 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고생은 했지만 즐거운 지상 여행을 했습니다.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152

1966년 7월 뉴욕에서 국제PEN대회에 참석하고. 왼쪽부터 차범석(극작가)∙전숙희(수필가)∙윤이상(작곡가)∙ 권려성(안무가)∙조병화∙<포엠>마담∙조경희(수필가)∙김생려(지휘자)


26 27

미국에서 열렸던 국제PEN대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여행사에 ‘$99, 99일’ 이라는 여행 쿠폰을 팔고 있었습니다. $99을 내면 99일간 버스로 미 국 전 지역을 여행할 수 있다는 표입니다. 되도록 보다 인생을 많이 살기 위하여 몸을 가지고 이 눈에 보이는 자연의 세계를 보다 많이 여행한다는 소년 시절의 꿈 과, 책을 통해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를 보다 많이 여행을 한다는 역 시 소년 시절의 꿈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 쿠폰을 사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비 행기로 날고, 그곳부터 줄곧 버스를 타고 우선 대회장이 있는 뉴욕까지 가고, 대 회가 끝나곤 줄곧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동으로, 북으로, 남으로, 서부로, 약 60일 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고생은 했지만 즐거운 지상 여행을 했습니다. 조병화,『세월은 자란다』P. 152

1966년 7월 뉴욕에서 국제PEN대회에 참석하고. 왼쪽부터 차범석(극작가)∙전숙희(수필가)∙윤이상(작곡가)∙ 권려성(안무가)∙조병화∙<포엠>마담∙조경희(수필가)∙김생려(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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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2월 <낭만> 술집에서, 제13시집『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출판기념회 피천득(수필가)∙주요섭(소설가)∙조병화∙임명방(교육자, 출판인)과 함께

출판기념회라 하면 다방이나, 양식홀이나 그런 곳에서들 했지만 비어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진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평소에 한 120~30명의 좌석이 있는 자리를 칵테일로 차려서 근 200명의 인사들이 모여 들었다. …… 이 출판기념회가 있은 다음부터는 좀 늦게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가득했다.…… 수많은 교수들, 수많은 문인들, 수많은 예술가들, 수많은 언론계 인사들, 수많은 사회명사 들이 수없이 저녁이면 찾아들곤 했다. 그러니까 명동에서 상업에 쫓겨난 인사들이 모두 이 넓은 비어홀로 모여들게 된 거다. 이렇게 <낭만>은 장안의 명물 <개방종합 대학>처럼 문화분위기를 형성해 나가고 있었다. 1960년대 경희대학교 국문과 교수시절 김진수(희곡) 양주동(고전) 박노춘(국문학) 유창돈(국어학, 중세국어) 교수가 보인다.

조병화,『떠난세월 떠난사람』P. 142


1968년 12월 <호수 그릴>에서. 왼쪽으로부터 김운학(평론가)∙서정주(시인)∙박봉우(시인)∙조병화∙윤병로(평론가)

1967년 문학 강연 차 떠난 부산에서. 왼쪽부터 이주홍(소설가)∙이호철(소설가)∙주요섭(소설가)∙한노단(소설가)∙조병화∙한 사람 건너 박목월(시인).

28 29


1968년 12월 <호수 그릴>에서. 왼쪽으로부터 김운학(평론가)∙서정주(시인)∙박봉우(시인)∙조병화∙윤병로(평론가)

1967년 문학 강연 차 떠난 부산에서. 왼쪽부터 이주홍(소설가)∙이호철(소설가)∙주요섭(소설가)∙한노단(소설가)∙조병화∙한 사람 건너 박목월(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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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1

1970년 2월 28일 인천 올림포스호텔에서 그해 7월에 열릴 제37회 서울국제PEN대회 준비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가졌다. 앞줄 왼쪽부터 조애실(시조시인)∙모윤숙(시인)∙박종화(소설가)∙정인섭(문학평론가)∙백철(문학평론가)∙조병화∙조경희(수필가)∙송지 영∙전숙희(수필가) 뒷줄 왼쪽부터 전광용(소설가)∙김종문(시인)∙신상웅(소설가)∙김용호(시인)∙곽복록(독문학자)∙최창호(영문학자)∙ 문공부 관계자∙구상(시인)

1970년 4월 어느 전람회장에서 신석정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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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월 28일 인천 올림포스호텔에서 그해 7월에 열릴 제37회 서울국제PEN대회 준비위원회 위원들이 회의를 가졌다. 앞줄 왼쪽부터 조애실(시조시인)∙모윤숙(시인)∙박종화(소설가)∙정인섭(문학평론가)∙백철(문학평론가)∙조병화∙조경희(수필가)∙송지 영∙전숙희(수필가) 뒷줄 왼쪽부터 전광용(소설가)∙김종문(시인)∙신상웅(소설가)∙김용호(시인)∙곽복록(독문학자)∙최창호(영문학자)∙ 문공부 관계자∙구상(시인)

1970년 4월 어느 전람회장에서 신석정 시인과 함께


32 33

1970년 10월 한국일보사 회의실에서, 제3회 세종아동문학상 최종심사가 열렸다. 왼쪽부터 조풍연(아동문학가)∙조병화∙이헌구(문학평론가)∙박목월(시인)

1972년 7월 17일 경복궁에 있던 예술원 앞에서. 왼쪽부터 이어령(문학평론가)∙백철(문학평론가)∙최정희(소설가)∙조병화


32 33

1970년 10월 한국일보사 회의실에서, 제3회 세종아동문학상 최종심사가 열렸다. 왼쪽부터 조풍연(아동문학가)∙조병화∙이헌구(문학평론가)∙박목월(시인)

1972년 7월 17일 경복궁에 있던 예술원 앞에서. 왼쪽부터 이어령(문학평론가)∙백철(문학평론가)∙최정희(소설가)∙조병화


34 35

1973년 5월 점보 747기 대한항공 취항기념 초청여행. 왼쪽부터 최정희(소설가)∙조병화∙모윤숙(시인)∙박종화(소설가)∙이진섭(수필가)∙전숙희(수필가)

1974년 11월 월탄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앞줄 왼쪽부터 김기진(문학평론가)∙박종화(소설가)∙수상자의 부인 이명희(수필가) 뒷줄 왼쪽부터 조병화∙수상자 윤병로(문학평론가)∙이범선(소설가)


34 35

1973년 5월 점보 747기 대한항공 취항기념 초청여행. 왼쪽부터 최정희(소설가)∙조병화∙모윤숙(시인)∙박종화(소설가)∙이진섭(수필가)∙전숙희(수필가)

1974년 11월 월탄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앞줄 왼쪽부터 김기진(문학평론가)∙박종화(소설가)∙수상자의 부인 이명희(수필가) 뒷줄 왼쪽부터 조병화∙수상자 윤병로(문학평론가)∙이범선(소설가)


36 37

1978년 7월 편운재 야유회에서 왼쪽부터 조병화∙김종삼(시인)∙박재삼(시인)∙한 사람 건너 전봉건(시인)

1978년 12월 23일 한국일보사 13층 <청미회> 창립 15주년 기념 동인집『청미』출판기념회에서 여성 시인들과 함께. 왼쪽부터 허영자∙김선영∙김후란∙조병화∙이경희∙김혜숙∙추영수∙임성숙


36 37

1978년 7월 편운재 야유회에서 왼쪽부터 조병화∙김종삼(시인)∙박재삼(시인)∙한 사람 건너 전봉건(시인)

1978년 12월 23일 한국일보사 13층 <청미회> 창립 15주년 기념 동인집『청미』출판기념회에서 여성 시인들과 함께. 왼쪽부터 허영자∙김선영∙김후란∙조병화∙이경희∙김혜숙∙추영수∙임성숙


38 39

1982년 제6차 세계시인대회(마드리드)에 참석하고 어느 식당에서 왼쪽부터 박현령∙박정희∙성춘복∙허영자∙김원중 (이상 시인)∙오학영(극작가)∙ 조병화∙신동춘∙김양식∙김영태∙김선경∙최화국 (이상 시인)

1980년대 어느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김동리(소설가)와 함께

세계시인대회로 해서 실로 많은 한국 시인들이 해외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런대로 많이 해외에 자기들의 시를 뿌렸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세계시인들하 고 친교를 맺어왔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세상 구경을 하고, 견문을 넓히고, 촌

수요회라는 모임이 있다고 했다. 예술원 회원 중에서 술을 멋있게 마시는 사

냄새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자기들의 작품세계를 알고, 그 수준을 알

람들로 구성된 친목회라고 했다. 가입하라고 했다. 술을 멋있게 마시는 사람이라

고,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대로 해외에 초대도 되고, 작품 청탁도 받

는 말에 귀가 쏠렸다.…… 가입하기로 했다. 참으로 술들을 많이 했다. 소문 그대

게 되고, 세계와 그 시로서의 같은 호흡을 하게 되었다. 영어는 영어대로, 불어는

로 대호주가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김동리 선생은 그야말로 정확한 대호주가이었

불어대로, 서반아어는 서반아어대로 높은 장벽이 우리들 시인들 앞에 가로 놓여

다. 제일 많이, 그리고 제일 정직하게, 그리고 제일 맛있게, 그리고 제일 술을 아

있지만, 있었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인간으로 통하는 점들이 있었다.

껴가며.

조병화,『떠난 세월 떠난 사람』P. 195

조병화,『나의 생애 나의 사상』P. 197


38 39

1982년 제6차 세계시인대회(마드리드)에 참석하고 어느 식당에서 왼쪽부터 박현령∙박정희∙성춘복∙허영자∙김원중 (이상 시인)∙오학영(극작가)∙ 조병화∙신동춘∙김양식∙김영태∙김선경∙최화국 (이상 시인)

1980년대 어느 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김동리(소설가)와 함께

세계시인대회로 해서 실로 많은 한국 시인들이 해외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런대로 많이 해외에 자기들의 시를 뿌렸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세계시인들하 고 친교를 맺어왔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세상 구경을 하고, 견문을 넓히고, 촌

수요회라는 모임이 있다고 했다. 예술원 회원 중에서 술을 멋있게 마시는 사

냄새를 닦아냈다. 그리고 그런대로 많이 자기들의 작품세계를 알고, 그 수준을 알

람들로 구성된 친목회라고 했다. 가입하라고 했다. 술을 멋있게 마시는 사람이라

고,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대로 해외에 초대도 되고, 작품 청탁도 받

는 말에 귀가 쏠렸다.…… 가입하기로 했다. 참으로 술들을 많이 했다. 소문 그대

게 되고, 세계와 그 시로서의 같은 호흡을 하게 되었다. 영어는 영어대로, 불어는

로 대호주가들이었다. 이 중에서도 김동리 선생은 그야말로 정확한 대호주가이었

불어대로, 서반아어는 서반아어대로 높은 장벽이 우리들 시인들 앞에 가로 놓여

다. 제일 많이, 그리고 제일 정직하게, 그리고 제일 맛있게, 그리고 제일 술을 아

있지만, 있었지만, 그건 또 그런대로 인간으로 통하는 점들이 있었다.

껴가며.

조병화,『떠난 세월 떠난 사람』P. 195

조병화,『나의 생애 나의 사상』P. 197


40 41

1983년 5월 한국시인협회 회원들 이곳에 한국시단을 이끌어온 시인들이 모두 모였다.

1988년 1월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식장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함께.


40 41

1983년 5월 한국시인협회 회원들 이곳에 한국시단을 이끌어온 시인들이 모두 모였다.

1988년 1월 <한국문학 작가상> 수상식장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과 함께.


42 43

1988년 늦가을 일본 홋카이도 여행 중에 최화국(시인)∙김영태(시인)∙김재홍(문학평론가)∙이일향(시조시인)∙조병화∙성춘복(시인)

1988년 11월 중국 계림에서 장석주 시인과 함께


42 43

1988년 늦가을 일본 홋카이도 여행 중에 최화국(시인)∙김영태(시인)∙김재홍(문학평론가)∙이일향(시조시인)∙조병화∙성춘복(시인)

1988년 11월 중국 계림에서 장석주 시인과 함께


44 45 1992년 5월 예술원 야유회 구상 시인(제일 오른쪽)과 함께

1990년 박인환의 시비 앞에서 박태진 시인과 함께


44 45 1992년 5월 예술원 야유회 구상 시인(제일 오른쪽)과 함께

1990년 박인환의 시비 앞에서 박태진 시인과 함께


46 47

1992년 한용운 생가에서 박두진 시인과 함께

1993년 4월 안성 김유신 시인의 꽃잔치가 열린 청류재에서 김규동∙최광호∙임한철 시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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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한용운 생가에서 박두진 시인과 함께

1993년 4월 안성 김유신 시인의 꽃잔치가 열린 청류재에서 김규동∙최광호∙임한철 시인과 함께


48 49

1995년 5월 2일 제5회 편운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나는 이상하게도 인생을 공짜로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나의 고독과 생존을 철학하던 시들이 많은 상을 타게 되고 평생을 돈하곤 먼 인생을 살아 왔습 니다. 조선장학회(매월 삼십원), 학교 관비(매월 이십원), 장충단에 있는 고계학원 장학생으로 매월 오십원, 이렇게 많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했던 겁니다.…… 일생을 이렇게 돈 모르는 학창생활, 사회생활을 해 오면서, 내가 생각을 해도 성 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에, 내가 고희를 맞이하여 나의 호 편운을 따서 편운 문학상을 하나 만들었던 겁니다.…… 나는 수상자를 뽑을 때 시도, 평론도 좋으면 서 우선 인간적으로 좋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시인다운 인간, 문인다운 인간, 그러한 인간으로 이어져 가길 바라고 있는 겁니다. 1995년 5월 대천행 열차 안에서 김종길 시인과 함께

조병화,『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P. 174-175


48 49

1995년 5월 2일 제5회 편운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나는 이상하게도 인생을 공짜로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나의 고독과 생존을 철학하던 시들이 많은 상을 타게 되고 평생을 돈하곤 먼 인생을 살아 왔습 니다. 조선장학회(매월 삼십원), 학교 관비(매월 이십원), 장충단에 있는 고계학원 장학생으로 매월 오십원, 이렇게 많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했던 겁니다.…… 일생을 이렇게 돈 모르는 학창생활, 사회생활을 해 오면서, 내가 생각을 해도 성 공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생각에, 내가 고희를 맞이하여 나의 호 편운을 따서 편운 문학상을 하나 만들었던 겁니다.…… 나는 수상자를 뽑을 때 시도, 평론도 좋으면 서 우선 인간적으로 좋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던 겁니다. 시인다운 인간, 문인다운 인간, 그러한 인간으로 이어져 가길 바라고 있는 겁니다. 1995년 5월 대천행 열차 안에서 김종길 시인과 함께

조병화,『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P. 174-175


50 51

2002년 2월 11일 진해에서 황금찬 시인과

황금찬 : 조병화 시인하고는 1954년부터 가까웠어요. 술도 많이 마셨죠. 조 병화 선생은 시를 쓰는 마음이 컸어요. 조병화나 송욱이나 천재병이 있었죠. 나는 천재적 다툼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 오는 날 송욱과 차를 마시다가 조병화 시인을 불러내 술을 마시자고 했어요. 조병화 시인이 나왔다가‘혼자가 아니잖 아.’하고 그냥 가버렸어요. 난 평생 그렇게 못해봤어요. 자격이 있어야 하죠. 난 그들을 존경해요. 시인은 교만한 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자존심 까지 잃으면 뭣 때문에 살겠어요. 조병화 시인은 너무 빨리 가서 안타깝죠. 난 그 의 시가 외국 사람이 아니, 인류가 좋아할만한 시라고 생각해요. 조병화 시인은 시를 많이 썼지만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시들이 참 많아요. 쉬우면서도 아름답거 든. 인간의 본질을 떠나진 않았어요. 1999년 8월 14일 백담사 <제1회 만해축전>에서 김남조 시인과

계간『꿈』2007년 봄호「황금찬 시인의 육성을 듣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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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2월 11일 진해에서 황금찬 시인과

황금찬 : 조병화 시인하고는 1954년부터 가까웠어요. 술도 많이 마셨죠. 조 병화 선생은 시를 쓰는 마음이 컸어요. 조병화나 송욱이나 천재병이 있었죠. 나는 천재적 다툼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비 오는 날 송욱과 차를 마시다가 조병화 시인을 불러내 술을 마시자고 했어요. 조병화 시인이 나왔다가‘혼자가 아니잖 아.’하고 그냥 가버렸어요. 난 평생 그렇게 못해봤어요. 자격이 있어야 하죠. 난 그들을 존경해요. 시인은 교만한 데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이 자존심 까지 잃으면 뭣 때문에 살겠어요. 조병화 시인은 너무 빨리 가서 안타깝죠. 난 그 의 시가 외국 사람이 아니, 인류가 좋아할만한 시라고 생각해요. 조병화 시인은 시를 많이 썼지만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시들이 참 많아요. 쉬우면서도 아름답거 든. 인간의 본질을 떠나진 않았어요. 1999년 8월 14일 백담사 <제1회 만해축전>에서 김남조 시인과

계간『꿈』2007년 봄호「황금찬 시인의 육성을 듣다」중에서


조 병 화 (1921. 5. 2 - 2003. 3. 8)

趙炳華, 시인, 호는 편운片雲. 1921년 5월 2일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에서 부친 조두원과 모친 진종 사이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미동공립보통학교, 경성사범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 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 화학을 수학하다가 일본 패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45년 경성사범학교 물리 교유로 교단생활을 시작하여 인천중학교를 거쳐 서울중고등학교 에 재직하면서 1949년 제1시집『버리고 싶은 유산』 을 출간하여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경 희대학교로 옮기어 문리대학장, 교육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고, 1981년부터는 인하대학교에서 문 과대학장, 부총장, 대학원장으로 재직하다 1986년 정년퇴임했다. 이와 같은 교육과 문학의 업적을 인정받아 대만 중화학술원에서 명예철학박사, 중앙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캐나다 빅토리아대 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창작시집 53권, 선시집 28권, 시론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화 집 5권 등을 비롯하여 총 16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외로운 도시인의 실존적 모습, 허무와 고독으로서의 인간존재가 꿈과 사랑으로 자아의 완성에 이르는 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쉬운 낭만의 언어로 그려냈다. 그의 시집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웨덴,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25권이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

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면서 세계시인대회 국제이사, 제4차 세계시인대회서 울, 1979

대회장을 맡아 시인들의 국제 교류에 힘썼다. 1981년 제5차 세계시인대회에서는 계관시인

桂冠詩人으로 추대된 바 있다.

그는 아세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대한민 국문학대상,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 5∙16민족상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공로상 과 감사패를 받았다. 이러한 상금과 원고료를 모아 후배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1990년 편운문학상을 제정했고, 2008년까지 18회에 걸쳐 53명의 시인, 평론가들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도 겸하여 초대전을 여러 차례 가졌다유화전 8회, 시화전 5회, 시화-유화전 5회 등. 그의 그림은 그의 시 세계와 흡사하여 아늑한 그리움과 꿈이 형상화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등장인물 고은 곽복록 곽하신 구상 권옥연 김광규 김광주 김규동 김기진 김남조 김내성 김대규 김동리 김삼주 김생려 김선영 김소운 김양식 김영태 김용성 김용호 김운학 김원규

1933~ 1922~ 1920~ 1919-2004 1923~ 1941~ 1910~1973 1925~ 1903~1985 1927~ 1909~1957 1942~ 1913-1995 1952~ 1912~1995 1938~ 1907-1981 1931~ 1936~2007 1940~ 1912~1973 1934~1981 1904~1968

김원중 김재홍 김종길 김종문 김종삼 김진수 김춘수 김혜숙 김후란 노천명 마종기 모윤숙 박계주 박고석 박노춘 박두진 박목월 박봉우

1936~ 1947~ 1926~ 1919~1981 1921~1984 1909~1966 1922~2004 1937~ 1934~ 1912~1957 1939~ 1910~1990 1913~1966 1917~2002 1912~ 1916~1998 1916~1978 1934~1990

시인 독문학자, 번역가 소설가 시인 화가 시인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시인 소설가 시인 지휘자 시인 시인, 수필가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평론가 교육자, 전 서울고 교장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시인 시인 극작가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소설가 화가 교수 시인 시인 시인

박이도 박인환

1938~ 시인 1926~1956 시인

이봉구 이어령

1916~1983 소설가 1934~ 문학평론가

박재삼 박정희 박종화 박태진 박현령 백철 복효근 샹송 서정주 성춘복 손소희 송지영 스펜더 신달자 신동춘 신봉승 신상웅 신석정 신창호 안수길 양명문 양주동 오상순 오영수 오종식 오학영 유경환 유종호 유창돈 윤고종 윤병로 윤이상 유호 이가림 이경순 이경희 이근배 이명희 이범선

1933~1997 1936~ 1901~1981 1921~2006 1938~ 1908~1985 1962~ 1900~1984 1915~2000 1936~ 1917~1987 1916~1989 1909~1995 1943~ 1931~ 1933~ 1938~ 1907~1974 1919~ 1911~1977 1913~198 1903~1977 1894~1963 1914~1979 1906~1976 1937~1988 1936~2007 1935~ 1918~1966

이일향 이주홍 이진섭 이하윤 이해랑 이헌구 이호철 임명방 임성숙 임헌영 장만영 장석주 전광용 전봉건 전숙희 정비석 정인섭 조경희 조애실 조태일 조풍연 주요섭 진종 차범석 천경자 최광호 최영해 최정희 최창호 최화국 추영수 피천득 한노단 한하운 허영자 황금찬 황순원

1930~ 1906~1987 1922~1983 1906~1974 1916~1989 1905~1983 1932~ 1930~ 1933~ 1941~ 1914~1977 1954~ 1919~1988 1928~1988 1919~ 1911~1991 1905~1983 1918-2005 1920~1998 1941~1999 1914~1991 1902-1972 1882~1962 1924~2006 1924~ 1966~ 1914~1995 1912~1990

1936~2005 1917~1995 1921~ 1943~ 1905~1985 1935~ 1940~ 1938~ 1920~1981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프랑스 소설가 시인 시인 소설가 소설가 영국 시인 시인 시인 극작가 소설가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시인, 국문학자 시인 소설가 언론인 극작가 시인, 아동문학가 문학평론가 교수 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작곡가 극작가, 소설가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수필가, 윤병로의 아내 소설가

1915~1997 1937~ 1910~2007 1912~1985 1920~1975 1938~ 1918~ 1915~2000

시조시인 소설가 수필가 시인 배우, 연출가 문학평론가 소설가 교육자, 출판인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수필가 시조시인 시인 아동문학가 소설가 조병화의 어머니 극작가 화가, 수필가 시인 정음사 사장 소설가 영문학자, 번역가 시인 시인 수필가 소설가 시인 시인 시인 소설가


조 병 화 (1921. 5. 2 - 2003. 3. 8)

趙炳華, 시인, 호는 편운片雲. 1921년 5월 2일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에서 부친 조두원과 모친 진종 사이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미동공립보통학교, 경성사범학교를 거쳐, 일본 동경 고등사범학교에서 물리, 화학을 수학하다가 일본 패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1945년 경성사범학교 물리 교유로 교단생활을 시작하여 인천중학교를 거쳐 서울중고등학교 에 재직하면서 1949년 제1시집『버리고 싶은 유산』 을 출간하여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경 희대학교로 옮기어 문리대학장, 교육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하고, 1981년부터는 인하대학교에서 문 과대학장, 부총장, 대학원장으로 재직하다 1986년 정년퇴임했다. 이와 같은 교육과 문학의 업적을 인정받아 대만 중화학술원에서 명예철학박사, 중앙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캐나다 빅토리아대 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창작시집 53권, 선시집 28권, 시론집 5권, 수필집 37권, 번역서 2권, 시 이론서 3권, 화 집 5권 등을 비롯하여 총 16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외로운 도시인의 실존적 모습, 허무와 고독으로서의 인간존재가 꿈과 사랑으로 자아의 완성에 이르는 생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쉬운 낭만의 언어로 그려냈다. 그의 시집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웨덴,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25권이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

협회 이사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면서 세계시인대회 국제이사, 제4차 세계시인대회서 울, 1979

대회장을 맡아 시인들의 국제 교류에 힘썼다. 1981년 제5차 세계시인대회에서는 계관시인

桂冠詩人으로 추대된 바 있다.

그는 아세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대한민 국문학대상,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 5∙16민족상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공로상 과 감사패를 받았다. 이러한 상금과 원고료를 모아 후배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돕기 위해 1990년 편운문학상을 제정했고, 2008년까지 18회에 걸쳐 53명의 시인, 평론가들에게 이 상을 수여했다.

그는 시뿐만 아니라 그림도 겸하여 초대전을 여러 차례 가졌다유화전 8회, 시화전 5회, 시화-유화전 5회 등. 그의 그림은 그의 시 세계와 흡사하여 아늑한 그리움과 꿈이 형상화된,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등장인물 고은 곽복록 곽하신 구상 권옥연 김광규 김광주 김규동 김기진 김남조 김내성 김대규 김동리 김삼주 김생려 김선영 김소운 김양식 김영태 김용성 김용호 김운학 김원규

1933~ 1922~ 1920~ 1919-2004 1923~ 1941~ 1910~1973 1925~ 1903~1985 1927~ 1909~1957 1942~ 1913-1995 1952~ 1912~1995 1938~ 1907-1981 1931~ 1936~2007 1940~ 1912~1973 1934~1981 1904~1968

김원중 김재홍 김종길 김종문 김종삼 김진수 김춘수 김혜숙 김후란 노천명 마종기 모윤숙 박계주 박고석 박노춘 박두진 박목월 박봉우

1936~ 1947~ 1926~ 1919~1981 1921~1984 1909~1966 1922~2004 1937~ 1934~ 1912~1957 1939~ 1910~1990 1913~1966 1917~2002 1912~ 1916~1998 1916~1978 1934~1990

시인 독문학자, 번역가 소설가 시인 화가 시인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시인 소설가 시인 지휘자 시인 시인, 수필가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평론가 교육자, 전 서울고 교장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시인 시인 극작가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소설가 화가 교수 시인 시인 시인

박이도 박인환

1938~ 시인 1926~1956 시인

이봉구 이어령

1916~1983 소설가 1934~ 문학평론가

박재삼 박정희 박종화 박태진 박현령 백철 복효근 샹송 서정주 성춘복 손소희 송지영 스펜더 신달자 신동춘 신봉승 신상웅 신석정 신창호 안수길 양명문 양주동 오상순 오영수 오종식 오학영 유경환 유종호 유창돈 윤고종 윤병로 윤이상 유호 이가림 이경순 이경희 이근배 이명희 이범선

1933~1997 1936~ 1901~1981 1921~2006 1938~ 1908~1985 1962~ 1900~1984 1915~2000 1936~ 1917~1987 1916~1989 1909~1995 1943~ 1931~ 1933~ 1938~ 1907~1974 1919~ 1911~1977 1913~198 1903~1977 1894~1963 1914~1979 1906~1976 1937~1988 1936~2007 1935~ 1918~1966

이일향 이주홍 이진섭 이하윤 이해랑 이헌구 이호철 임명방 임성숙 임헌영 장만영 장석주 전광용 전봉건 전숙희 정비석 정인섭 조경희 조애실 조태일 조풍연 주요섭 진종 차범석 천경자 최광호 최영해 최정희 최창호 최화국 추영수 피천득 한노단 한하운 허영자 황금찬 황순원

1930~ 1906~1987 1922~1983 1906~1974 1916~1989 1905~1983 1932~ 1930~ 1933~ 1941~ 1914~1977 1954~ 1919~1988 1928~1988 1919~ 1911~1991 1905~1983 1918-2005 1920~1998 1941~1999 1914~1991 1902-1972 1882~1962 1924~2006 1924~ 1966~ 1914~1995 1912~1990

1936~2005 1917~1995 1921~ 1943~ 1905~1985 1935~ 1940~ 1938~ 1920~1981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프랑스 소설가 시인 시인 소설가 소설가 영국 시인 시인 시인 극작가 소설가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시인, 국문학자 시인 소설가 언론인 극작가 시인, 아동문학가 문학평론가 교수 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작곡가 극작가, 소설가 시인 시인 시인 시인 수필가, 윤병로의 아내 소설가

1915~1997 1937~ 1910~2007 1912~1985 1920~1975 1938~ 1918~ 1915~2000

시조시인 소설가 수필가 시인 배우, 연출가 문학평론가 소설가 교육자, 출판인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 시인 소설가 시인 수필가 소설가 문학평론가 수필가 시조시인 시인 아동문학가 소설가 조병화의 어머니 극작가 화가, 수필가 시인 정음사 사장 소설가 영문학자, 번역가 시인 시인 수필가 소설가 시인 시인 시인 소설가


*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공간활성화 지원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한 국 문 단

반 세 기

사 진 전

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2008. 5. 9 ~ 10. 31 조병화문학관 주 최Ⅰ안성시, 조병화문학관 후 원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 일신문화재단 발행일Ⅰ2008년 5월 9일 발행처Ⅰ조병화문학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337 Tel. 031-674-0307, 02-762-0658 http://www.poetcho.com E-mail: poetcho@naver.com 기 획Ⅰ조병화문학관 편 집Ⅰ김용정, 박준 디자인ⅠGNA Communications 인 쇄Ⅰ(주)프린팅하우스

ⓒ 조병화문학관 2008 이 책에 담긴 모든 자료는 무단으로 복사, 전재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 Cho Byunghwa Literary Hall 2008 All rights reserved including the right of reproduction in whole or part in any form.


* 이 책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공간활성화 지원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한 국 문 단

반 세 기

사 진 전

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2008. 5. 9 ~ 10. 31 조병화문학관 주 최Ⅰ안성시, 조병화문학관 후 원Ⅰ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조병화시인기념사업회, 일신문화재단 발행일Ⅰ2008년 5월 9일 발행처Ⅰ조병화문학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337 Tel. 031-674-0307, 02-762-0658 http://www.poetcho.com E-mail: poetcho@naver.com 기 획Ⅰ조병화문학관 편 집Ⅰ김용정, 박준 디자인ⅠGNA Communications 인 쇄Ⅰ(주)프린팅하우스

ⓒ 조병화문학관 2008 이 책에 담긴 모든 자료는 무단으로 복사, 전재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할 수 없습니다. ⓒ Cho Byunghwa Literary Hall 2008 All rights reserved including the right of reproduction in whole or part in any form.


조병화의 시간 속에서 만난 얼굴들 한국문단 반세기 사진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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