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사 학 위 논 문
거다 러너의 전체사를 위한 전략 Gerda Lerner’s Strategy for a Holistic History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역사문화학과 서양사전공
안
세
원
석 사 학 위 논 문
거다 러너의 전체사를 위한 전략 Gerda Lerner’s Strategy for a Holistic History
지도교수 김 형 률 이 논문을 문학 석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함 2016 년 6 월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역사문화학과 서양사전공
안
세
원
안세원의 문학 석사 학위 청구 논문을 인준함
거다 러너의 전체사를 위한 전략 Gerda Lerner’s Strategy for a Holistic History
2016 년 6 월
심사위원장
(인)
위
원
(인)
위
원
(인)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감사의 글
여성임에도 또한 여자대학에서 4 년간 여성리더십을 배우면서도 여성 억압의 역사와 여성주의 운동의 역사를 진지하게 살펴보지 못했는데, 마땅히 생각해보아야 할 그 역사를 배울 기회를 주신 김형률 지도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2 년 이라는 대학원 기간 동안 항상 사랑과 응원으로 지원해 준 부모님과 언니, 친척들, 파평교회, 친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성경적 관점의 역사를 배우고 싶었지만, 생각지 못했던 여성사를 연구하게 하심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더 큰 뜻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목차 목차 ........................................................................................... ⅰ 표 및 그래프 목차 ...................................................................... ⅱ 국문요약 ..................................................................................... ⅲ
I.
서론 ...................................................................................... 1
II.
본론 ................................................................................ 13
1.
거다 러너의 소명의식 ........................................................................... 13 1.1.
전체사를 위한 여성사........................................................................ 14
1.2.
역사가 문제가 된 삶 ......................................................................... 22
2.
가부장제에 맞선 여성사 ........................................................................ 33 2.1.
학문적 전략 ....................................................................................... 34
2.2.
사회변혁 활동 .................................................................................... 60
III.
결론 ................................................................................ 68
IV.
참고문헌.......................................................................... 72
ABSTRACT ............................................................................ 81
i
표 및 그래프 목차 [그래프 1] 1975-2015 년 역사학 전문 분야 증가 추세 .................................. 5 [표 1] 1981-1987 년간 여성사 저서 291 권 분석표 .................................... 42 [표 2] 1981-1987 년간 여성사 학위논문 312 권 분석표 ............................. 42 [표 3] 1998-2000 년 미국 여성사 저서 ........................................................ 44 [표 4] 1998-2000 년 미국 여성사 학위논문 ................................................. 45 [표 5] 1998-2000 년 미국 여성사 트렌드 .................................................... 46 [표 6] 역사학과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남·여 비교 ..................................... 53 [그래프 2] 역사학 교수 및 박사 중 여성 비율 ............................................. 54 [그래프 3] 1980-2007 년 여성 교수 비율 .................................................... 54
ii
국문요약 거다 러너는 미국 사학계에 여성사를 최초로 독립된 학문분야로 확립시킨 인물이다. 미국사 교원에 대한 미국 역사 협회(AHA)의 자료에 따르면, 1975 년부터 2015 년 사이 역사학 전문분야에서 ‘여성과 젠더' 분야는 797%의 증가를 보인다. 이와 같은 여성사의 제도화와 괄목할 만한 성과에는 이를 위해 애쓴 선구자들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특히 거다 러너의 업적은 여성사의 흐름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 본고에서는
거다
러너가
말년에
저술한
글들과
사후에
동료
역사학자들이 쓴 글들을 통해 전체사 속에서의 여성사를 지향한 러너의 소명의식과 전체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인 여성사의 전문분야 확립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동한 러너의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유대인으로서 20 세기의 비극을 몸소 체험하고, 사회주의 사상의 실현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러너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인종차별, 전쟁, 제국주의, 빈곤, 종교적 편협성 등에 관심을 갖는다. 1940 년에 이르러서는 가부장제를 가장 큰 적으로 삼았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 여성사를 무기로 상정한다. 러너는 1963 년 43 세의 늦은 나이에 역사학자의 길에 들어서 은퇴하기까지 20 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성사를 전문분야로 확립하기 위한 계획을 실천한다. 첫째로 실질적인 조사와 저술을 했고, 둘째로 사료의 존재를 입증했으며, 셋째로 전문가로서의 여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으로 여성사에 대한 학생 수요를 입증하고 교과과정과 대학원과정 설계를 했다. 러너는
글을
쓰고
가르치는
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가부장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 활동을 조직하고 예리한 전략을 세워 실천했다. 이러한 러너의 생각은 역사학자가 되기 전부터 20 여 년간 가정주부로서 지역사회의 모임을 조직해 사회변화를
iii
위해
활동해
온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러너는
가부장제적
사회구조가 학문체계에도 스며들어있음을 인식하고, 이는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켜
학생들과
사회
전체에까지지
손실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러너는 이론과 실천을 함께하는 것이 여성주의자가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이라는 확신을 갖고, 역사학 연구와 여성주의 이론, 젠더 연구를 통합시키고 학문과 교내·외 활동의 조화를 장려했다. 이러한 러너의 열정과 전략적 대항은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그룹, 억압받는 계층에 대한 연구를 통해 전체사로서의 역사기술을 목표로 한다. 즉, 러너는 역사 이래 인류의 절반을 구성했던 여성들에 대한 연구 없이는 전체사로서의 역사기술이 불가능하다고 인식했다.
주제어: 거다 러너, 역사학자, 전체사, 여성사, 가부장제, 여성주의
iv
I. 서론
거다러너, 미국 여성사학계의 거장 2013 년 1 월 3 일, 뉴욕타임즈에 거다 러너(Gerda Lerner)의 부고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 러너의 업적은 여성과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를 역사학의 전문분야로 확립시킨 점과 미국 내에 여성사 대학원 과정 창설로 요약되었다. 러너는 콜롬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1972 년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여성사 대학원 과정을 처음 설립했으며, 여성사 연구를 위한 사료집을 발간함으로써 여성사를
학문의
주요영역으로 of
대학(University
1980 년에는
편입시켰다.
Wisconsin–Madison)에서
여성사
위스콘신 박사과정을
창설하였다.1 러너가
작고한
후,
미국역사가협회(Organization ‘거다
회의에서는 제목으로
러너를
러너를 기억하고
러너가 of
회장을
American
Historians:
OAH)의
연례
Gerda
Lerner)
라는
기억하며’(Honoring 회상하는
역임(1981-1982)했던
시간을
가졌으며,
슐레진저
도서관(Schlesinger Library)의 70 주년 기념 행사에서도 러너가 활동했던 50
년동안
미국
여성사의
변화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기념행사에서 사회를 맡은 슐레진저 도서관 관장이자 하버드대 미국사 교수인 낸시 콧(Nancy F. Cott)은 러너와 이 도서관이 함께 성장했음을 언급했다. 이 도서관이 세워지는데 큰 기여를 한 메리 비어드(Mary Ritter Beard)의 업적과 비어드가 이루고자 한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는
1
William Grimes, "Gerda Lerner, a Feminist and Historian, Dies at 92," The New York
Times, January 3, 2013.
1
작업에 영감을 받아 이를 완성하고자 한 러너의 업적을 언급했다. 메리 비어드는 1920 년대 여성 선거권 운동가로 남편 찰스 비어드(Charles Beard)와 공동으로 『미국사』(US History)를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30 년대 세계여성기록센터(World Center for Women’s Archives)를 설립하고자 했으며, 센터의 일부 수집품을 슐레진저 도서관에 기증했다.2 현재 슐레진저 도서관은 하버드 대학의 레드클리프 인스티튜트(Radcliffe Institute)의
도서관으로
미국
여성사
연구를
위한
선별된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곳에 러너의 글과 기록들이 기증되었다.3 또한 토론토에서 열린 버크셔 컨퍼런스(Berkshire Conference)에서도 러너의 삶과 업적을 기렸으며, 러너의 삶을 다룬 스위스 다큐멘터리 영화 ‘왜 여성이 산을 올라야 하는가’(Why Women Need to Climb Mountains)가 현재 제작 중에 있음을 소개했다. 북아메리카 지역뿐 아니라 러너의 80 년대 저서 『가부장제의 창조』(The Creation of Patriarchy)와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The Creation of Feminist Consciousness)는
유럽에서도
대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러너는
오스트리아와 그 외 독일어권 지역에 자주 초대되었으며, 1996 년에는
2
"Wrapping Up the 2013 OAH Annual Meeting," Organization of American Historians. http://www.oah.org/meetings-events/2013/wrapping-up-the-2013-oah-annualmeeting/; The Schlesinger Library. "Why History Matters," 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t Harvard University. http://www.radcliffe.harvard.edu/event/2013why-history-matters-symposium 3
The Schlesinger Library. "About the Library." 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t Harvard University. http://www.radcliffe.harvard.edu/schlesinger-library/aboutlibrary April 3, 2016); 슐레진저 도서관에 보관된 러너의 글과 기록은 이력서와 가족과 관련된 자료, 학술 및 교육활동과 관련된 자료 등이 Papers, 1950-1995, Papers, 1924-2006, Additional papers of Gerda Lerner, 1916-2013 으로 나뉘어 보관되어 있으며, 온라인상으로는 대부분 목록만 볼 수 있고 일부 가족과 관련된 자료가 디지털화 되어있는 상태이다.
2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명예롭게 여겨지는 과학·예술상(the Cross of Honor for Science and Art)을 수상했다.4 국내에는 거다 러너의 저서들 중 3 권 -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가부장제의 창조』, 『왜 여성사인가』 - 이 번역되었으며, 최재인은 2014 년 서양 여성사 연구 동향을 살펴 보기 위한 특집논문에서 10 년간의 미국여성사 연구 동향을 정리하며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미국사학자 중 하나로 거다 러너를 소개했다. 최재인은 러너가 2 세대 여성운동가이자 동시에 1 세대 여성사학자로서, 1 세대 여성운동가들이 여성의 참정권 추구를 위해 노력했던 19 세기 말과 20 세기 초의 성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학에 여성사 과정을 공식적으로 제도화함으로 물적 기반을 이룬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러너가 작고한 다음 해에 쓰인 기계형의 논문에서는 러너의 저서들을 소개하며 이를 바탕으로 러너의 삶과 사상을 정리했으며, 이성숙은 러너의 연설문과 연구논문, 에세이 등 12 편의 글이 실린 『왜 여성사인가』의 서평을 통해 책에 담긴 러너의 삶과 추구하는 바를 보여주었다.5
4
"Living History: Documenting Gerda Lerner’s Life and Work," Berkshire Conference on the History of Women; Renata Keller, "Why Women Need to Climb Mountains.” http://berks2014.com/2014/02/18/thursday-documentary-premiere/; K. K. Sklar, “For the Future of Women's Past,” Journal of Women's History 26, no. 1 (2014), p. 15. 5
Gerda Lerner, The Creation of Feminist Consciousness: From the Middle Ages to Eighteen-Seventy, 김인성 역,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중세에서 1870 년까지』 서울: 평민사, 1998; 2 판. 서울: 평민사, 2007;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강정하 역, 『왜 여성사인가: 한 역사가의 치열한 삶과 사상을 들여다보며』, 서울: 푸른역사, 2006; Gerda Lerner, The Creation of Patriarchy, 강세영 역, 『가부장제의 창조』 서울: 당대, 2004; 최재인,「지난 10 년 미국여성사 연구 동향 - 하나의 시각」 여성과 역사 21, (2014/12), pp. 91-119; 기계형, 「서구여성사의 위대한 개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를 추모하며」여성과 역사 19, (2013/12), pp. 331-341; 이성숙, 「서평: 거다 러너 / 강정아 역, 『왜 여성사인가: 한 역사가의 치열한 삶과 사상을 들여다보며』(푸른역사, 2006)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 Life and Thought (New York, 1997) 역사 속의 여성과 역사학계 속의 여성」西洋史論 91, (2006), pp. 344-349.
3
특히 주목할 만한 연구는 2002 년 김정화의 석사학위 논문으로, 여성사의
논점과
러너의
저서에
나타난
주장을
비교하여
1960-
70 년대에 시작되어 80 년대 이후 심화된 러너의 여성사 인식을 분석하고 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초기 러너의 여성사 인식은 여성만의 문화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80 년 이후 가부장제 성립의 총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여 ‘차이를 지배로’만들었던 가부장제 이론을 전개한다. 러너는 여성사 연구 초기에 여성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인식했다. 여성이 가부장적 제도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고 희생만 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자율성과 창조성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러너가 여성의 사적 공간과 활동 보다는 노예제 반대 운동, 사회적 변화가 여성의 지위에 미친 영향, 흑인 클럽 여성들의 공동체 활동과 같은 공적 영역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음을 들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수천 년 동안 내재화
되어온
가부장적
가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너는
여성의
관점으로 사료를 분석하고 기존의 시대구분과 가치를 다시 규정하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이 논문에서 김정화는 80 년대에 심화된 러너의 여성사 인식을 설명하며 ‘억압’(oppression)이라는 말 대신 ‘종속’(subordination)이라는
말을
사용한
점을
강조했다.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들이 보호와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 이 제도를 받아들여 왔다는 것, 그리고 여성주의 의식이 잦은 역사적 단절을 겪었음에도 계속해서 발전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러너는 가부장제의 원리를 근원적으로 파헤침으로 여성사를 통해 역사와 인간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공하였다고 한다. 이전에는 독립적 범주로 여겼던 인종, 계급, 젠더 간의 차이들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면서 가부장제라는 위계적 질서에 맞서 싸우고자 했다고 결론짓는다.6
6
김정화. "거다 러너의 여성사 인식."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pp. 14, 19, 44-45, 62-63.
4
60 년대부터 시작되어 80 년대 이후 심화된 러너의 여성사 연구는 여성사의 제도화와 함께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다. [그래프 3]은 1975 년부터 2015 년사이 미국사 교원에 대한 미국 역사 협회(AHA)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이 시기 역사학 전문 분야는 환경과 문화, 종교 등의 분야가 주목을 받는 가운데 여성과 젠더 분야(797%증가)가 독보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7 이러한 눈에 띄는 변화는 러너와 당시 여성사의 발전을 위해 애쓴 선구자들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래프 1] 1975-2015 년 역사학 전문 분야 증가 추세
Source: Robert B. Townsend, "The Rise and Decline of History Specializations Over the Past 40 Years." Perspectives on History 에서 재인용.
7
Robert B. Townsend, "The Rise and Decline of History Specializations Over the Past 40 Years." Perspectives on History. https://www.historians.org/publicationsand-directories/perspectives-on-history/december-2015/the-rise-and-declineof-history-specializations-over-the-past-40-years
5
서구에서의 여성사연구 흐름
러너에 의한 여성사의 제도화와 성장을 파악하기 위해 여성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는 여성사의 시작점을 유럽의 고대로 잡았으며, 20 세기 초 클라크(Alice Clark)와 아벤수어(Leon Abensour)의 주목할 만한 연구가 등장 한 후, 1960-70 년대에 이르러 방법론과 주제에 있어 보완되고 개선된 다수의 연구성과들이 나왔다고 정리했다.8 유럽에서의 여성사는 덕망있는 여성들의 전기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의 문인
플루타르크(Plutarch)
영웅전으로
부터
시작하여
14
세기
이탈리아의 작가인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와 프랑스의 여성작가 피잔(Christine de Pizan), 15 세기 영국의 수도사 보크남(Osbern Bokenham), 17 세기 영국의 극작가 헤이우드(Thomas Heywood), 18 세기 영국의 전기작가 발라드(George Ballard), 19 세기 작가 스트릭랜드 자매들(Strickland sisters) 등에 의해 쓰여졌다. 일부는 진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졌지만 그 외에 것들은 신화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으며, 이러한 저작들의 공통된 목적은 여성의 능력이 교육을 통해 개발될 수 있음에 대한 예시를 제공함으로써 논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학적인 형태는 특정한 목적에 의해 쓰였으며 여성의 역사를 왜곡하는 한계가 있었다.9
8
Natalie Zemon Davis, "Women's History" in Transition: The European Case,”
Feminist Studies 3, no. 3 (1976), p. 83; Alice Clark, Working Life of Women in the Seventeenth Century, London: Routledge, 1919; Leon Abensour, The Feminism Under The Reign of Louis Philippe and in 1848, Paris: Plon-Nourishes, 1913. 9
Natalie Zemon Davis, "Women's History" in Transition: The European Case,”
Feminist Studies 3, no. 3 (1976), p. 83. “The genre of women’s history is no newcomer on the scene. In one form it goes back to Plutarch, who composed little biographies of virtuous women, intended to show that the female sex could and should profit by education. Taken up again by Boccaccio in
6
반면에 또 다른 형태의 여성사인 여왕이나 수녀와 같은 종교적·정치적 개인의
전기를
통해,
문화와
사회의
맥락
안에서
개인의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도 수행되었다. 전기적 서술은 역사 속의 여성을 보여주는
주요한
형태로
지속되어왔으나,
성
역할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지 않아왔고, 20 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성 역할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형성했는가와 같은 중요한 질문들이 제기되었다.10 18
세기말과
19
세기에
이르러서는
사회의 여러
변화와
함께
연구주제의 외연을 확장하던 사회사가들에 의해 여성사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11 사회사가들은 소수의 정치적·사회적 엘리트 집단을 대상으로
the fourteenth century, the collective memorials of “Women Worthies: continued in an unbroken line - from the city of Ladies of Christine de Pisan through Madame Briquet’s 1804 Dictionary...of French Women...known for their Writings; from seventeenthcentury Gynaikeion of Thomas Heywood to the eighteenth-century British Ladies...Celebrated for their Writings of George Ballard. Sometimes the subject had talents in many fields; other times they were all religious, as in Osbern Bokenham’s medieval Legends of England by the Victorian Strickland sisters. Some studies were seriously researched; others mixed the mythical with the real. But all of them had a polemical purpose; to disclose the range of female capacity, to provide exemplars, to argue from what some women had done to what women could do, if given the chance and the education. Indeed, a certain part of women’s history today is still in the tradition of Women Worthies.” 10
Natalie Zemon Davis, "Women's History" in Transition: The European Case,” pp. 83-84. “The nun Baudonivia wrote about her queen, the Merovingian Radegundis; The royal herald William Camden wrote about his queen, Elizaberh 1; In the seventeenth century a French religious of the Visitation composed the life of her foundress Saint Jeanne de Chantal. On occasion, the religious biographies fanned out into institutional histories of a whole house or order, as with Hroswitha’s history of the Abbey of Gandersheim and Chaugy’s Lives of the nuns of the Visitation, thus providing the first European accounts of female collective experience and association.” 11
Natalie Zemon Davis, "Women's History" in Transition: The European Case,” p. 84. 데이비스는 다음의 저서들을 예로 제시한다: Louis-Sébastien Mercier, Tableau de Paris, 12 vols. (Amsterdam, 1782-1788). Frederick Morton Eden, The State of the
Poor or, An History of the labouring classes from the conquest to the present period (London: J. Davis, 1797). Friedrich Engels,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in 1844 (first published in German in 1845). Henry Mayhew, London Labour and the London Poor (London: Griffin and Co., 1861-1864).
7
기술하였던
독일의
처음으로 다수의
전통적
민중들을
역사
서술에서
역사서술의
벗어나,
주체로
19
세기
포함시킴으로써,
“밑으로부터의 역사(a history from below)”를 서술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사는 여성을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여성주의적 관점을 도입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점차 과거의 가족제도와 성간의 관계가 항구적인 것이 아님을 인식하게 했다. 특히 바호펜(J.J. Bachofen)과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인류 역사의 각각의 시기에 있어 성과 그 특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론들을 제시했으며, 19 세기 말과 1 차세계대전 후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에서 여성의 지위와 활동, 의식이 연구되어 논문으로 발행되었다.12 1929 년 블로흐(Marc Bloch)와 페브르(Lucien Febvre)에 의해 창간된 사회경제사연보(Anales d’histoire économique et sociale) - 약칭 아날(Anales) - 을 중심으로 모였던 프랑스의 역사가들은 무엇이 역사를 구성하고 누가 역사를 만드는가에 대한 개념들을 크게 변화시키며 20
세기
역사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랑케(Leopold
von
A. J. B. Parent-Duchatelet, De la prostitution dans la Ville de Paris (Paris: Bailliere, 1836) with an important historical section. Paul La Croix, Histoire de la prostitution chez tous les peuples du monde (Paris: Seré, 1851-1853). A. P. E. Rabutaux, De la prostitution en Europe depuis l'antiquité jusqu'à la fin du 1 be siècle (Paris: Seré, 1851). Henri Klimrath, Travaux Sur l'histoire du droit français (Paris: Joubert, 1843), with material on family, marriage, divorce, inheritance, and the like. Henry Bourne, Antiquitates Vulgares; or the Antiquities of the Common People (Newcastle: J. White, 1725). John Brand, Observations on Popular Antiquities (Newcastle and London: J. Johnson, 1777). Joseph Strutt, Glig-gamena angel-deud. Or the Sports and pastimes of the people of England (1st ed.; London, 1801). Jacques-Antoine Du Laure, Des divinités generatrices, ou du Culte du phallus chez les anciens et les modernes (Paris: Dentu, 1805). Memoires de l'académie celtique
ou Recherches sur les antiquitês celtiques, gauloises et françaises, publiés par l'Académie Celtique, I-VI (1807-1812). 12
Natalie Zemon Davis, "’Women's History’ in Transition: The European Case,” p. 84;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From Scientific Objectivity to the Postmodern Challenge. Hanover, NH: Wesleyan University Press, 1997, p. 7.
8
Ranke)로부터 마르크스(Karl Marx)와 베버(Max Weber), 미국의 사회 과학 지향적 역사가들은 모두 역사를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단선적인 것으로 인식해 온 반면, 아날의 역사가들은 시간의 상대성과 다층성을 강조함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그들은
하나의
학파를
구성하지는 않았으나, 역사 연구에 있어 새로운 방법과 접근 방식에 대한 개방성을 특징으로 하였다. 13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날은 가족과 여성을 주제로 한 연구도 포함하게 되었고, 1936 년 처음 가족에 관한 논문을 게재했으며, 페브르는 1944 년 여성에 관한 중요한 첫 연구를 발표하였다.
14
특히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이전에 다루지 않던
문학과 예술 사료에 의존하여 근대 초 유럽의 망탈리테(mentalities)를 연구했으며 이를 통해 아동기(childhood)의 발견과 가족의 구조, 사회 계층,
경제,
인구변화와
연관해
가족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15
13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p. 51. 이거스는 아날의 역사와 관련해 다음의 책들을 추천한다: Perter Burke, The French Historical Revolution, Stanford, Calif.: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Traian Stoianovich, French Historical Method,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76. 14
Natalie Zemon Davis, "Women's History" in Transition: The European Case,” p. 85; Natalie Zemon Davis, “Women and the World of the ‘Annales,’ History Workshop no. 33 (1992), p. 127. 이 논문에서 데이비스는 20 세기 초반 아날에 학자로서 혹은 남성학자들의 배우자로서 기여한 여성들을 보여주며, 페브르가 여성에 관해 쓴 논문 “Autour de l’Heptameron, amour sacré, amour profane” 이 그러한 여성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15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p. 60; Tamara K. Hareven, “The History of the Family as an Interdisciplinary Field,” The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2, no. 2 (1971), p. 402; 아날 제 3 세대를 대표하는 역사가 조르주 뒤비(Georges Duby)와 프랑스 여성사 연구를 대표하는 미셀 페로(Michelle Perrot)가 총 편집을 맡은 『여성의 역사』(Histoire des femmes en Occident)는 아날의 여성사 연구흐름을 잘 보여준다. 75 명의 역사가들의 글을 엮은 것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구 여성의 역사를 총 5 권에 걸쳐 개괄했다. 미국에서는 아서 골드해머(Arthur Goldhammer)에 의해 5 권의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조형준, 권기돈, 정나원에 의해 3 권과 4 권이 번역되었다.
9
특히 1950 년대에 발달한 컴퓨터 기술이 계량적 연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역사학의
프랑스와 한
영국에서
분야인
역사인구학(historical
계량사학으로
demography)이
확립되었다.
무엇보다도
교구기록(parish records)이 컴퓨터를 통해 분석되었고, 가족 구성, 출생, 결혼, 죽음, 재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학술적 연구가 시행되었다. 16 이러한 흐름은 역사연구에 있어 인류학, 인구통계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다학제적 관점을 갖게 했고, 주제에 있어서도 가족과 여성, 이혼, 산아 제한 등을 다루게 되어 성 역할과 성별의 의미변화에 대한 연구로 이어져17 여성사는 20 세기 초와 비교해 방법론과 주제에 있어 보완되고 개선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18 프랑스의
아날
역사가들이
전근대·전산업화
시대를
주제로
하며
정치적인 내용을 배제한 반면, 1960 년대 독일의 새로운 사회사가 세대는 정치를 주제로 하되, 이전 세대와 달리 정치를 사회 세력과 근대화로 인한 문제들과 연관시켰다. 여성사와 관련해서는 벨러(HansUlich
Wehler)가
Gesellschaftsgeschichte)에서
『독일 여성의
위치를
사회사』(Deutsche 법적·경제적
차원에서
다루었고, 니퍼다이(Thomas Nipperdey)가 1800 년부터 1918 년까지의 독일사를 서술하면서 젠더를 포함한 일상생활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19
16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p. 44.
17
Tamara K. Hareven, “The History of the Family as an Interdisciplinary Field,” p. 413. 18
Natalie Zemon Davis, "Women's History" in Transition: The European Case,” p. 85.
19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p. 67, 72; Thomas Nipperdey, Deutsche Geschichte 1800-1866: Bürgerwelt Und Starker Staat, Volume 1. München: C.H. Beck, 1983; Deutsche Geschichte, 1866-1918. München: C. H. Beck, Band Ⅰ. Band Ⅱ. 1995 3 권 중 첫 번째 저서만 영어로 번역되었다: Germany from Napoleon to Bismarck, 1800-1866.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10
또한 20 세기 초 전시 산업현장에는 남성들의 역할을 대신한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노동사의 발전은 곧 여성사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20 세기 초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지역에서 여성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어서 1960 년대와 70 년대 여성사 연구에서는 산업화 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그 후, 점차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연구가
증대되었으며,
대표적으로는
1987 년 비어링(Dorothee Wierling)의 독일 중산층 가정에서의 하녀에 대한 연구가 있다.20 1976
년
사회주의
역사가들의
학술지(Journal
of
Socialist
Historians)라는 부제로 창간된 『역사작업장』 (History Workshop)은 영국
옥스퍼드
칼리지(Ruskins
대학교의 College)의
노동계급을 역사가들이
10
대상으로 년
동안
한
러스킨
추진하였으며
여성들도 기고자일 뿐 아니라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창간호의 권두언에서는 ‘페미니스트 역사’(feminist history)에 전념할 것임을 선언했다. 이 학술지의 관심영역은 산업 노동 현장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정적·사적 영역으로 이동하였고 점차 성별에 대해 많이 다루게 되었다. 젠더관계라는 큰 틀에서 여성에 대한 착취를 다루었고, 남성의 정체성 규정에 있어서 폭력의 역할과 같은 주제도 다루어졌다.21 20 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역사서술에 있어 국가, 시장, 계급과
같은
거시역사적·거시사회적
개념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거부하고 미시적인 일상생활의 역사서술을 추구하게 했으며, 권력 및 권력과 지식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푸코(Michel Foucault)의 이론이 지배적이게 되었다. 특히 스코트(Joan W. Scott)는 『젠더와
20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p. 77; Dorothee Wierling, Mädchen Für Alles: Arbeitstag Und Lebensgeschichte Städtischer Dienstmädchen Um Die Jahrhundertwende, Berlin: Verlag JHW Dietz, 1987. 21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pp. 89-91.
11
역사서술의 정치학』(Gender and the Politics of History)에서 데리다의 언어개념과 전개하였다.
푸코의
권력개념을
지지하며
여성주의
역사읽기를
22
이렇듯 긴 여성사의 흐름 속에서 러너의 업적은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전환점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로서 러너의 소명의식과 전략적 접근을 상정했다. 전체사 속에서의 여성사를 지향한 러너의 소명의식과 전체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계인 여성사의 전문분야 확립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동한 러너의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러너의 학문적 탐구와 사회변혁적 활동들은 러너 자신이 말년에 저술한 글들과 사후에 동료 역사학자들이 쓴 글들에 나타나 있었다.
22
Georg G. Iggers,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 p. 99, 131.
12
II. 본론 1.
거다 러너의 소명의식
거다러너는
여성사를
최초로
독립된
학문분야로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실제로 러너가 여성사 연구를 평생 해온 이유는
무엇보다도
대한 연구
없이는
역사
이래
인류의
전체사로서의
절반을
역사기술이
구성했던
불가능하다는
여성들에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체사적 인식하에 러너는 여성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그룹과 억압받는 계층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론과 실천이 함께 되어야 한다는 신념하에 이들에 대한 부당한 억압에 열정적이고도 전략적으로
대항하였다.
1984
년부터
2000
년까지
위스콘신 대학에서 16 년간 러너와 함께 했던 뉴욕대(New York University) 인문학 교수인 린다 고든(Linda Gordon)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러너는 여성에게서 교육과 그들의 역사를 빼앗는 것은 여성을 종속시키는 근원이며, 여성사는 여성의 자유를 위한 열쇠라고 말했다. 이러한 주장은 여성 종속의 원인이 여성의 경제적 종속과 남성에 대한 의존의 결과라는 주장을 약화시키기 때문에, 유물론적인 주장은 분명 아니다. 게다가 많은 역사가들은 지배의 근원을 한가지 요인으로 말하기를 꺼려할 함에도 러너는 이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러너는 학계에서 뿐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 러너는 여성사가 전문가들만의 분야가 되지 않기 위해, 청중들이 원하는 가슴 뛰고 힘을 주는 교훈적인 연설을 통해 여성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러너는 전체사(holistic history)가 쓰여지길 원했으며, 모든 형태의 불의를 알 수 있게 하는 역사가 쓰여지길 원했다.23
23
Linda Gordon, “Gerda Lerner: Leftist and Feminist,” Journal of Women's History 26, no. 1 (2014), p. 36.
13
러너의 이러한 의식은 그녀가 은퇴 후에 정리한 자신의 삶과 학문에 관한 회고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1.
전체사를 위한 여성사
최근까지 역사는 전문 역사가로 훈련된 남성 지식인이라는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해 배타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그들만의 이미지와 그들만의 목소리로 과거를 해석해왔다. 40 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여성학자들은 이러한 부당한 역사적 가정에 반대해왔고, 인류의 반을 구성하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타당한 이야기로서 지속적으로 보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당한 모든 그룹의 사람들은 그들의 유산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 왔다. 세계사 속에서 이러한 발전은 계속되어 왔고, 이러한 사건은 진정한 역사의 이정표이다. 우리는 학계에서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방향의 많은 전진을 이루어왔다. 우리는 이전에 “이름 없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말 할 수 있게 해왔다.24
러너가 자신의 삶과 학문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한편 러너는 20 세기 역사학의
개념을
크게
변화시킨
아날을
창간한
프랑스
역사학자
블로흐(Marc Bloch)의 아래와 같은 글에서 과거의 실재를 나타내는 작업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전체사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내가 있는 창에서 바라볼 때, 각각의 과학자들은 전체에 대해 큰 고민 없이 연구주제를 선택하는 것 같다. 물리학자는 파란 하늘에 대해, 화학자는 개울의 물에 대해, 식물학자는 나무에 대해 설명한다. 그 풍경을 내가 본대로 재구성하는 일은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예술가에게 맡겼다. 전체로서의 그 풍경은 사실 오직 나의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 . . . 마지막 분석은 인간의 의식이고 이는 역사학의 문제가 되는
24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Chapel Hill, N.C.: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9, p. 36.
14
주제이다. 인간 의식의 상호연관성과 혼동, 타락은 역사이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25
러너에 의하면 블로흐는 역사가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사건과 특정한 순간의 직접적인 경험 사이를 오갈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까지 범주로
나누어
놓은
각
영역별
역사가
아닌
‘전체사’(holistic
history)에는 여러 원인이 있으며 다층적이고 여러 힘의 상호작용과 모순이 충돌한다고 보았다. 역사의 등장인물들 각각은 문화와 신앙체계, 미신, 관습, 사소한 일들 속에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건도 2 차원 혹은 3 차원 적이지 않으며, 어떤 사건도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지 않고, 삶의 한 단면은 실재를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26 블로흐의 역사관에 영향을 받은 러너는 과거의 단선적인 역사가 아닌 아날의 많은 역사가들이 추구했던 상대성과 다층성을 강조했다. 즉, 러너가 추구한 여성사는 단순히 여성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가려졌던 여성들의 역사를 복원함으로, 항상 존재했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던 더욱 실재에 가까운 전체사를 쓰고자 함인 것이다. 러너와 함께 사라 로렌스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운영했던 조안 캘리(Joan Kelly) 역시
자신의
에세이집
서문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남성중심의
역사학계에서 연구하며 본 르네상스에 대한 그림이 부분적이었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르네상스에 대해 가장 거부할 수 없고 문제가 되었던 것은 내가 알고 있었던 모든 것 들이었다. 그 바뀐 그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나는 새로운 책과 기록, 어떤 새로운 정보도 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내가
25
Marc Bloch, Apologie pour l'histoire ou Métier d’historien, Translated by Putnam Peter, The Historian's Craft: Reflections on the Nature and Uses of History and the Techniques and Methods of those Who Write it, New York: Alfred A.Knopf: Division, 1953, pp. 150-151. 26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170.
15
지금껏 알던 르네상스에 대한 상은 부분적이고, 왜곡되고, 제한적이고, 이러한 제한으로 인해 깊이 금이 가있음을 알게 되었다.27
전체사를 위한 전략으로 여성사의 증진을 설정한 러너는 역사 속의 여성에 대한 일반 이론(general theory)를 만들고자 8 년간의 연구 끝에 출간한 여성과 역사 시리즈 두 권 - 『가부장제의 창조』와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
기초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가 마르크스주의(Marxism)
역사이론에
러너는 『가부장제의 창조』에서 자신의
이론이 다음과 같은 엥겔스(Frederich Engels)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을 근간으로 하며, 이는 사유재산제의 발달이 여성의 역사적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28
남성은 전쟁에서 싸우고 사냥과 고기잡이를 가고 음식의 원재료를 조달하고, 이런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마련한다. 여성은 가족을 돌보고 음식과 의복을 준비하고 조리하고 옷감을 짜고 바느질을 한다. 남성은 숲에서, 여성은 집에서 그들은 각기 가지 영역의 전문가다. . . . 집, 정원, 길쭉한 배(boat)처럼 공동으로 만들어지거나 사용되는 것은 29 공동재산이다.
27
Joan Kelly, Women, History & Theor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ⅹⅲ; 이 책에 수록된 에세이 “Did Women Have a Renaissance?”에서 켈리는 르네상스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탐구한 후, 여성과 남성의 역사적 경험은 다르다며 전통적인 시대구분에 의문을 제기했다. 켈리는 르네상스 시기 문학작품에 나타난 여성의 수동성과 처녀성을 강조한 우아한 사랑(courtly love)의 개념을 통해 남성의 선택권은 확장된 반면 여성은 그 반대였음을 주장한다. 28
Linda Gordon, “Gerda Lerner: Leftist and Feminist,” p. 33; Lerner, Gerda. The
Creation of Patriarch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 21. 29
Friedrich Engels,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김대웅 역,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서울: 두레, 2012, p. 277. 엥겔스의 이 책은 마르크스가 모건(Lewis H. Morgan, 1818~81)의 40 여년간의 연구 성과를 유물론적 역사 연구의 결론에 따라 서술한 것으로, 엥겔스가 죽은 마르크스를 대신해 정리한 것이다.
16
마르크스(Karl Marx)의 유물론은 역사를 규정하는 결정적 계기를 궁극적으로 생활의 필요에 따른 직접적 물질의 생산 및 재생산이라 여기며, 이러한 생활수단과 종족의 번식은 노동의 발전단계와 가족의 발전 단계에 의해 특정 시기와 지역의 사회를 규정한다. 30 엥겔스는 그리스인, 로마인, 게르만 인 등의 예를 들어 씨족제도가 분해되는 과정을 고찰한 후, 이러한 씨족적 사회조직을 파괴하고 그 조직을 완전히 제거한 문명기의 경제조건을 연구하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엥겔스는 여성과 남성이 가정과 삼림에서 각각 가족 내에 필요한 분업을 하던 형태가 가족 외의 분업인 사회적 분업으로 변화되었고, 이는 가족 내의 관계를 전복했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여성의 가사노동은 남성의 사회적 분업으로 얻어지는 생활필수품 획득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기에 이르렀고, 그러므로 여성의 해방은 사회적 분업에 참여함으로 가능해질 것이라 했다.31 여성의
종속에
대한
전통적인
가부장적
대답은
종교적
혹은
생물학적인 입장을 취한다. 남성과 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사회에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신이 부여한 자연적인 질서이므로 여성의 불평등을 당연시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에 반대하며 당시의
여성주의자들은
엥겔스의
이론을
근간으로
여성의
해방을
촉구했으며, 러너도 자신의 여성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던 여성 종속의 기원에 대해 엥겔스의 이론을 근간으로 역사적인 증거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 질문에 대한 러너의 대답이 여성과 역사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가부장제의 창조』이다. 이 책을 서술할 당시 러너는 구좌파(Old Left) 정치에
점점 환멸을 느꼈지만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ev)의
범죄행위
스탈린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만
30
Friedrich Engels, 김대웅 역,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pp. 7-9.
31
Friedrich Engels, 김대웅 역,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pp. 275-282.
17
해도
마르크스 사상에 헌신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1950 년대 이후로는 인종과 민족에 관한 마르크스 사상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사상은 계급이 모든 것을 포함함을 고집하며 경제적인 억압만 다루기 때문에 여성의 위치를 설명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음을 인식했다.32
더욱이 여성은 삶의 여러 측면에서 매우 다른 지위를 가진 것처럼 보였는데, 가령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전적으로 남성에 의해 통제되었던 기원전 2 천년 바빌론에서는 어떤 여성들은 대단한 경제적 독립성을 향유했고 많은 법적 권리와 특권을 누렸으며 사회적으로 중요한 각종 고위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전통적 기준(엥겔스의 이론)에 의거해서 판단해 볼 때 여성에 관한 역사적 증거가 설득력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혼란스러웠다. 통상적인 경제적 질문보다 여성의 생식력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에 더 초첨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나는 그러한 성적 통제의 원인과 결과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퍼즐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하였다. 나는 남성에게 진실인 것은 여성에게도 진실이라는 전통적 가설을 남녀 모두에게 적용하여 계급의 형성을 살펴 보려 했기 때문에 내 앞에 놓여 있는 역사적 증거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계급사회의 태동기에 계급에 대한 정의가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어떻게 다른가를 질문하면서부터 내 앞에 놓여 있던 역사적 증거들이 이해되었다.33
러너는 마르크스주의가 인종과 민족의 문제를 계층의 범주에 속하게 하는 오류를 범했고, 이와 더불어 젠더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며 가부장적 지배로 인한 문제보다 경제적 지배로 인한 문제의 해결만을 중요하게
다루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은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노동자를 해방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여성의 권리와
32
여성의
해방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34
러너는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34.
33
Gerda Lerner, The Creation of Patriarch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p. 8. 34
Gerda Lerner, Fireweed: A Political Autobiography, Philadelphia, Pa.: Temple University Press, 2002, pp. 370-371.
18
『가부장제의 창조』를 저술하며 남아있던 마르크스 사상까지 산산이 부서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질문들 - ‘어떻게 여성들은 가부장제에서 생존했는가’, ‘어떻게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저항했는가’ 을
제기하며
여성과
역사
시리즈
페미니스트』를 통해 답하게 되었다.
두
번째
책인『역사
속의
35
나는 여성들이 당시의 사회 속에서 발전시킨 의식들 중에서 몇 가지 기본적인 주제들에 집중할 것이다. 이러한 주제들을 따라감으로써 필연적으로 어떤 이론적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이론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 역사적 과정과 정신적 구조의 생성에 대해 갖는 관계에서 나타나는 차이이다. 이러한 차이가 정의되고 인식되면, 우리는 마침내 기존의 남성중심의 역사와 여성사가 통합된 새로운 역사를 구성할 36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러너는 이 책에서 여권 의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개념이 계급 의식에서 나온 말이며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억압을 당하는 집단이 그 억압에 맞서서 투쟁하기 위해 집단 자각을 갖기 위한 수단임을 설명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이러한 억압 모델이 어떻게 사회에서 작용하고 사회구조화 되는지에 대한 복잡성을 적절히 설명할 수 없으며, 어떻게 여성들이 억압당하면서 동시에 다른 집단의 억압자가 되기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게 됨을 언급했다. 37 즉, 러너는 이러한 계급중심의 분석틀을 가진 사회주의 사상을 넘어서서 계급과 인종, 민족과 같은 모든 차이들을 포함함과 동시에 가장 큰
35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35.
36
Gerda Lerner, The Creation of Feminist Consciousness: From the Middle Ages to Eighteen-Seventy,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p. 14. 37
Gerda Lerner, The Creation of Feminist Consciousness, p. 284.
19
범주의 분류인 남성과 여성간의 갈등을 해결해고자 평화주의적으로 싸워온 여성주의가 그 역할을 대신할 때가 왔음을 언급하기에 이른다.
공산주의와 그 근간을 이루는 사회주의적 비전이 몰락한 이후, 미래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성주의가 바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그런 시스템이 될 것이다. 태도와 관습의 평화적인 변혁은 여성주의가 150 년간 이뤄온 성과로 그 힘과 실제적인 가능성을 38 증명한다.
한편 러너는 세상을 떠나기 4 년 전 89 세의 나이에 1969 년부터 줄곧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질문 39 이었던
“전체 역사에서 여성사는 얼마나
중요한가? 앞으로 여성사는 역사학자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에 답하기 위해 40 여년간의 여성사를 개괄하고 미래를 전망한다.40 남성 중심의 역사는 1970 년대의 여성사 운동을 통해 도전을 받았고 여성사는 전문분야로서 확산되게 된다. 러너는 역사학자들의 사고와 행동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온 이 시기를 돌아보며 다섯 가지 주요한 성취를 강조한다. 먼저 역사적 사료로 여겨지지 않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함으로 역사학의 주제를 확장시켰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여성사의 시대구분에 있어 기존의 세계사의 시대구분의 중요한 사건들 - 전쟁과 혁명 - 과 여성에게 있어 중요한 사건들 -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피임과 의학의 발달로 인한 출산 시 사망률 감소 등 - 은 다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세 번째는 여성사가 젠더적 사회구조를 폭로함으로 다른
범주의
사회구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38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18.
39
Gerda Lerner, “New Approaches to the Study of Women in American History,”
Journal of Social History 3, no. 1 (1969), pp. 53-62. 40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163.
20
영향으로 생물학적 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레스비언, 게이, 트렌스젠더의 역사도 학문분야가 되었다. 네 번째는 1980 년대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가들에 의해 두 인종 나아가 여러 인종의 관점을 수용하게 되었고, “차이”에 대한 토론을 통해 엘리트들이 권력을 유지 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과의 구별을 통해 형성된 사회구조화된 정체성임을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성취는 가부장적 성 역할의 정의에
따라
구분되었던
남성들의
공적인
일과
여성들의
사적인
일이라는 구분선을 허물어 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여성사를 통해 제시된
새로운
관점들은
법,
외교,
노동의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41 러너는 이러한 성취들 중 특히 여성사가 역사학에 끼친 영향으로 젠더가 분석 도구로써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강조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은 시간과 장소, 문화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전에는 남성과 여성이 어떤 다른 결정을 하는 지와 성간의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는데 쓰였다면, 이제는 더 넓은 범위에서 사회의 권력관계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개인적인 의사결정뿐
아니라 공공정책과 법 제정으로까지 젠더적 설명이 확장된 것이다. 42 이러한 젠더적 설명을 제안한 스콧(Joan Wallach Scott)은 젠더가 사회관계를 조직하는 다양한 방식이며 역사적 변화 및 다양성의 분석에 유용한 범주임을 제안하며, 여성이라는 범주가 만들어진 역사적·정치적 사건에 대해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결과들이 분석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즉, 이러한 분석은 그 사건의 시작점으로 돌아가 “어떻게 성적인 차이가 사회의 원리와 실천으로 명료해졌는가”를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젠더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는 정치적
41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166-168.
42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170-171.
21
동원(민족주의, 계급투쟁, 민족적 혹은 종교적 연대)과 정치적 변혁(혁명, 법 개정, 민주화), 젠더(남성과 여성에게 주어진 규범적 역할, 생물학적 실재의 사회적 구성)의 관계에서 “그 중 하나는 다른 하나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로 이어진다.43 아울러
러너는
여성사의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젠더학과의
지적·제도적 독립을 강조하면서 젠더가 유용한 도구임은 입증되었지만 아직은 여성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유기적이고
기능적이며 젠더 중립적인 여성사로서의 장기적 목표를 놓고 볼 때, 여성들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은 오랜 기간 계속되어야 하며 2000 년 이상 지속된 남성 중심의 기록에서 진정한 전체사의 이해로 나아가기 위한 선행작업으로 여성의 잃어버린 역사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러너는 아직도 많은 시기와 지역과 집단의 여성사가 복원되고 기록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아직 완전히 답변되지 않은 여성사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했다.44
1.2.
브랜다이스
역사가 문제가 된 삶
대학(Brandeis
University)의
교수이자
미국
유대인
여성사 컨퍼런스(Conference on US Jewish women’s history in 1993)를 창설한 조이스 앤틀러(Joyce Antler)는 이 컨퍼런스를 조직하며 나눈 러너와의 대화를 회상했다. 당시 이 컨퍼런스를 위해 가장 먼저 러너를 연사로
초청했던
앤틀러는
러너에게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여성사학자로서의 업적과의 연관성에 대해 연설해 줄 것을 요청했다. 43
Joan Wallach Scott, “Some More Reflection on Gender and Politics,” 배은경 역, 「젠더와 정치에 대한 몇가지 성찰」, 『여성과 사회』, no. 13 (2001/9), p. 224. 44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175-176.
22
러너는 그 요청에 대해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으며 전화를 끊었으나 몇 분 뒤에 다시 전화해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가장 심오한 질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컨퍼런스에서
러너는
“나는
유대인으로서의 경험 때문에 역사가가 되었습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삶과 학문과의 연계성을 요약하였다.
45
이러한 맥락에서 아래에서는
거다 러너(Gerda Lerner)의 유대인으로서의 삶을 간단히 살펴보겠다. 거다 러너는 1920 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러너는 유대인이었지만 그 종교적 관습에는 어린시절부터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성약(聖約)에 따른 목적론적 역사와 선택된 선민으로서 다른 민족과 구별되었다는 의식을 갖기보다는 평범한
오스트리아인으로서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와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의 작품을 읽었고, 독일 동화와 옛날 북유럽인의 무용담을 통해 세계관을 형성했다. 오히려 러너는 유대교의 남성중심적인 관습을 거부하고, 유대교 여자아이들의 13 번째 생일에 행해지는 바트-미츠바(Bat-Mitzvah)라는 성년식도 거부하였다.
46
하지만 스스로 유대인이기를 거부했음에도 당시 나치
세력의 성장과 유럽대륙에서 점점 더 강력해지던 반유대적 분위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러너는 당시를 회고하며 “나의 가족은 오스트리아에
대한 독일 제국의 침입 위험과 불안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안전한 둥지 안에서만 살았다”고 말했다. 러너는 자신이 가톨릭 국가에서 유대인으로
45
Pat Harrison, "Celebrating the Schlesinger’s First 70 Years,” 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t Harvard University. http://www.radcliffe.harvard.edu/news/innews/celebrating-schlesingers-first-70-years 46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pp. 5, 8.
23
태어나고
자라면서
여겨졌다고 한다.
민족적으로
구별되는
평범할
수
없는
존재로
47
오스트리아에서뿐 아니라 중세시대부터 유대인들은 유럽 대륙에서 소수자이자 이방인이었으며, 기독교 사회에서 신을 살해한 민족이라 여겨졌다. 유대인들의 독특한 종교적 규례로 인해 이질감을 형성했고, 생계를 위해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며 왕의 보호를 받기위해 시종을 자처하다가 착취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를 사왔다.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문학과 예술, 유명인들의 글을 통해 전파되었고, 특히 19 세기에 『시온산 현인들의 의정서』 (Protokolle der Weisen von Zion)의 확산은 인종주의적이고 사회진화론적인 근대적 반유대주의로 발전되었다. 나치의 반유대주의는 이미 존재하던 유대인 혐오관념을 새로 포장하고 재배치
하였고,
이는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으로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48 1938 년 러너가 18 세되던 해에 오스트리아는 나치독일에 합병된다. 러너는
6
주간의
밤”(Kristallnacht)
수용소 이전에
생활에서 미리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으로
간신히
도피해 망명할
있던 수
벗어나 아버지가 있었고
“수정의 있는 다행히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러너의 가족에 대한 기록은 이 비극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러너의 어머니 일로나(Ilona Kronstein)의 여동생 마르키트 노이어(Margit Neuer)는 의사였으나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일로나의
두번째
여동생
클라라(Klara
Newmann)는 알렉산더 뮬러(Alexander Mueller)와 결혼하였으나 여러 나라에서 입국을 거부당해 무국적자로 있다가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다.
47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24.
48
Wolfgang Benz, Bilder vom Juden, 윤용선 역,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 서울: 푸른역사, 2005.
24
그러나 나치의 네덜란드 점령 후, 이 부부는 부타페스트로 도망했고 소련 공습과 아이히만(Eichmann)의 죽음의 행진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게 된다.49 1988 년 68 세의 러너는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케터 라이히터(Käthe Leichter)를 기념하며 매년 수여되는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라이히터는 1920-30 년대 유대인이자 사회민주주의 운동가로서 1942 년 가스실에서 숨지기까지 노동계급 여성들에 대해 연구하고 이들을 조직화하는데 헌신했다.
러너는
이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라이히터의
사회계혁적이고 여성주의적인 활동을 기리는 한편, 라이히터와 같이 가스실에서 죽은 가족과 동족들을 잃은 슬픔과 이를 기억해야 할 의무를 언급했다.50 러너는 역사 서술을 통한 기억과 집단기억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박해와 인종적 증오의 폭풍을 직접 경험하고 그 와중에 살아남은 이들로서 이러한 경험을 평생 기억해야 할 의무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으로
이
목격자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며,
후대인들에게 ‘독이 든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기억을 물려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을 정당화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지를 잊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도덕적 교훈들을 우리 머릿속에 반복해서 주입하는 것이 역사의 기능은 아니며, 집단기억으로서의 역사를 통해 ‘행동은 결과를 낳고 한 번 한 행동과 선택은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사건의
49
Gerda Lerner, "Gerda Lerner Family Collection, 1939-1978,” Leo Baeck Institute Center for Jewish History. http://www.lbi.org/digibaeck/results/?qtype=pid&term=476133 50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p. 50-52; Harriet Freidenreich, "Käthe Leichter,” Jewish Women's Archive. http://jwa.org/encyclopedia/article/leichterkaethe
25
어두운
면을
집단적으로
망각하게
되면
사회
전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롭고, 지난 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면 상처를 치유할 수도, 미래에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고 했다. 51 이어서 러너는 기억해야 할 역사로서 인류의 절반을 구성해 온 여성들의 역사를 강조했다.
거대한 망각, 바꿔 말하면 선택적 기억은 여성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여성들은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세상의 일과 의무의 절반을 수행했고, 역사에서 능동적인 동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인류 발전 과정에서 단지 주변적인 공헌만을 한 존재들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것은 남성 역사가들이 가부장적 가치들을 근거로 해서 내린 선택적 기억입니다. 그런 가치들은 남성의 활동을 여성의 활동보다 본질적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전쟁과 정치가 인류 역사에서 자녀 양육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가치들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절반을 전체로 파악하고 다른 절반을 망각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여성들에게 부당할 뿐만 아니라, 특히 여성이나 남성 모두 52 과거에 대한 진실한 상을 재구성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러너는 유대인으로서 겪은 인종차별로 인해 미국사회에서 흑인들의 억압에 대해서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낄 수 있었다. 러너는 1973 년 흑인
여성에
대한
사료집을
출간하는데,
이는
당시만해도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지던 것이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할 것 없이 전문가들은 모두 흑인들은 문맹이고 기록이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의 억압적인 상태는 미국의 삶과 문화에 기여할 수 없었다며 러너의 시도를 만류했다. 그러나 러너는 노예제 반대 운동을 연구하며 상당한 흑인 여성 운동가들의 자료를 발견했고, 오늘날 흑인 여성사발전의
51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 52.
52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p. 52-53.
26
기초를 놓았다.
53
러너는 자신이 유대인 여성의 역사는 연구하지
않으면서 당시 존재하지도 않았던 흑인 여성사라는 분야를 발전시키는데 온갖 노력을 쏟아 부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경쟁하는 집단들의 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에는 한 소수집단이 제도화된 인종차별주의에 가담함으로써 그들의 동화, 말하자면 친미주의를 표방하게 만드는 함정이 존재한다. 따라서 평생 유색인을 본적이 없는 일부 유럽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에 동화되자마자 인종차별주의를 체득했다. 나는 미국인이 되고 싶었지만,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인종차별주의라는 악에 동화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학자로서 인종 문제와 여성에 대한 개인적 관심 때문에 흑인 여성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것은 필연이었다.54
유대인으로서의 경험과 함께 러너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회주의사상이다. 청소년기 좌파 학생활동에 참여하며 관련 서적을 읽던 러너는 1936 년 16 살 때, 6 주간 영국으로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자 원래 배정된 교외의 집을 떠나 사회주의자이자 유명한 생화학자인 홀데인(J. B. S. Haldane)이 운영하는 사회주의자 청소년 캠프에 참여한다. 러너는 당시를 회고하며 “나는 그들의 매력적이고 따뜻하며 세계를 품은 듯한 가슴 뛰게 하는 대화에 압도되었다”고 말했다. 옥스포드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듣게 된 러너는 그 새롭고 금지된 사상들을 “목마른 사람이 시원한 음료를 마시듯” 삼켰다고 한다.55
53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4; Gerda Lerner, ed. Black Women in White America: A Documentary History, New York: Vintage Books, 1972; 2nd ed. New York: Vintage Books, 1992. 54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 16.
55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25, 28; Linda Gordon, “Gerda Lerner: Leftist and Feminist,” p. 32.
27
1939 년 홀로 미국으로 이민 오게 된 러너는 미숙련 노동자로서, 최저임금을 받는 이민자로서 마르크스 사상에 더욱 공감하게 한다. 러너는 미국에 도착해 한 달에 50 달러인 남자친구 바비(Bobby Jerusalem)의 수입에 의존해 살며 방세 15 달러를 내고 최소한의 식량으로 살았다. 일자리를 찾아 미숙한 영어와 이민자의 복장을 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 당했고, 6 개월 만에 망명자라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것을 숨기고서야 일을 할 수 있었으며, 그 후 가정부와 사무보조, 판매직, 그리고 1 년의 훈련 후에 방사선 기술자로 일했다. 그러나 당시 러너는 항상 최저임금과 고용불안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56 그 가운데 러너는 반파시즘 망명자 모임에서 사회주의자이자 영화 감독인 칼 러너(Carl Lerner)를 만나 결혼하게 되어 주부로서의 삶을 살면서 1946 년 딸 스테파니(Stephanie)와 1947 년 아들 댄(Dan)을 낳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57 할리우드로 이사한 후에는 급진적 좌파에 가담하게 되는데, 1946 년 공산당에 가입할 당시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이 이루어지기 전이라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러너는 회상한다. 그 후 매주 모임에 나가면서 공산당과 관련된 신문(People’s World)과 잡지(Political Affairs)를 읽었지만, 나중에는 일상과 관련 없는 모호하고 과장된 내용들이 많아 실망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 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여성국제민주연맹(Women’s
40
개국
여성
International
대표들이
Democratic
참가한
Federation:
WIDF)대회가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WIDF 의 목표는 여성의 권리와 어린이
보호,
세계평화,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내용은 전후 파시즘(Fascism)에 반대한 소련과 서구 56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2; Fireweed, pp. 156157. 57
Linda Gordon, “Gerda Lerner: Leftist and Feminist,” p. 33.
28
민주주의국가들의 동맹을 유지하고자 함에 있었다. 당시 미국 신문에는 공산당이 이 대회를 주도한다고 보도되었지만 러너는 이러한 주제들에 모두 관심이 있었기에 WIDF 의 미국지부인 미국여성의회(Congress of American Women: CAW)에서 LA 지부를 맡아 여전히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58
그러나 1949 년 정부기록문서는 미국여성의회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미국여성의회(CAW)는 핵심적인 공산당원들, 그리고 이들과 가까운 동조자들이 주를 이루며, 숫자는 몇 천 명 정도라고 하지만 매우 강렬하고 열성적으로 반미국적 친소비에트적 선전활동을 해왔다. 따라서 미국 여성들은 이들의 진정한 특성과 목표가 무엇인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59
러너는 공산당 소속의 미국 여성 의회(Congress of American Women: CAW)의
전국지도자가
되었으며,
공산당
활동을
하며
남성적
쇼비니즘(male chauvinism)과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게 되었다. 막시스트 페미니스트인 메리 인맨(Mary Inman)의 『여성의 방어에서』(In Woman's Defense)를 읽기 시작 하였으며, 미국사회의 깊은 인종주의에 대해서도 알아가게 되었다. 러너는 메리 인맨이 제기한 문제들을
더
널리
알리고자
했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여성해방을 위해 여성 노동자의 동일한 임금과 동일한 기회 등을 위해
58
Gerda Lerner, Fireweed, p. 254.
59
Report on the Congress of American Women, “Washington: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 U. S. House of Representatives,” 1949, p. 110. http://www.riss.kr/link?id=M6827050 “The Congress of American Women is composed primarily of a hard core of Communist Party members and a circle of close sympathizers, and although it numbers but a few thousand members all told, it has been highly articulate and energetic in its anti-American, pro-Soviet propaganda. Hence it is all the more necessary that American women be alerted to its true character and aims.”
29
투쟁하며, 주부들은 계급의식이 없고 연대를 이루지 않음을 문제시 했던 반면, 인맨은 주부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음을 주장하며, 자본주의 경제에서 주부들이 임금을 받지 않도록 구조화된 방식을 정교하게 분석했다. 인맨은 단순히 남성들만이 여성의 주부로서의 무임금 노동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고용주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데, 만일
여성들이
이러한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게
되면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러너가 속해있던 여성 위원회에서는 이러한 인맨의 글들을 놓고 토론하며, 주부들을 조직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아동보호소와 건강,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나
러너는
매카시즘(McCarthyism)에
의한
헐리우드
블랙리스트(Hollywood blacklist) 사건으로 두 자녀와 함께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 후 40 여년간 공산주의자로서의 과거를 숨겨야만 했다.60 결론적으로
러너의
이러한
삶의
경험들은
사람들
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더 나은 개념을 발견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러너는 차별의 다양한 체계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젠더와 계급, 인종은 독립된 범주들이 아니라, 계서제와 지배체제의 서로 다른 측면이라고 보았다. 그것들은 기원과 기능 모두에서 서로 의존하고 상호관계를 맺고
60
Gerda Lerner, Fireweed, pp. 263-264; The Schlesinger Library, "Inman, Mary, 1894-1986. Papers, 1940-1983: A Finding Aid." 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at Harvard University. http://oasis.lib.harvard.edu/oasis/deliver/~sch00646; Mary Inman, In Woman's Defense, Los Angeles: Committee to Organize the Advancement of Women, 1940.
30
있어 분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61 러너는 계급과 젠더와의 역사적 관계를 다음 세가지로 요약한다. 1. 여성의 성적 능력과 생식 능력의 상품화는 사유재산을 창조하는 주요한 원천들 가운데 하나였는데, 계급은 그런 사유재산에 기초를 두고 형성되었다. 역사에서 볼 때 계급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이로운 젠더 관계들을 통해 구축되었다. 2. 계급은 젠더화 된 결혼 협정과 상속 관행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었다. 3. 계급은 남녀에 따라 언제나 다르게 규정되어야 하며, 역사에서 남성의 경우와 여성의 경우는 언제나 달랐다. 남성과 여성은 결코 동일한 계급에 동일한 방식으로 속하지 않는다. 계급이 말해주는 것은 성, 인종, 민족, 생애주기의 단계에 따라 다른 다층적인 위치와 관계, 경험들이다.62 특히 인종과 관련해서 생물학적 인종은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범주임을 강조하며, 인종이라는 범주는 어떤 집단을 열등자로 지정하여 분류하려는 목적에서 구성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러너는 젠더·계급·인종 등 차이를 지배로 정당화해 온 인류의 역사와 그 지배가 구축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61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 153. 11 장의 ‘패러다임 다시 생각하기’는 1985 년 12 월에 열린 미국역사학회에서 처음 발표되었으며, 그 뒤 여러 번의 토론과 논평을 거쳐 수정한 것이다. 62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 154. 이러한 이론적 고찰에 대해 러너는 자신의 저서 여성과 역사 시리즈 두 권 - 『가부장제의 창조』와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의 결과임을 언급한다. 또한 지배체제의 다양한 측면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연관성을 증명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 위해 ‘계급 문화’는 고려 대상에서 제외했음을 명시한다.
31
1. 먼저 임의의 어떤 “차이”가 선택된다. 이는 차이를 지정하는 집단과 다른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특징이다. (여성, 검은 피부, 보스니아인, 유대인 등) 2. 집단 정체성을 강요하며 부정적인 특징들이 그 집단에 첨부된다. (라티노들은 모두 게으르다. 유대인들은 모두 수전노이다.) 3.
법률과
관행
등의
제도화된
차별이
수립되면서
권력과
자원,
특권에서 배제한다. 이는 그 집단에 열등성을 심화시킨다.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반유대주의, 동성애혐오 등) 4. 제도화된 차별에 희생된 집단은 지배집단과는 다른 역사적 현실을 경험하며, 이는 한편으로 생존과 저항하는 원천이 된다.63 러너는 유대인으로서 20 세기의 비극을 몸소 체험하고, 사회주의 사상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삶의 문제들과 직면하였다. 이 문제들의 근원을 역사적으로 돌아보고 그 근원과 형성과정을 파헤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론적으로 러너는 다음과 같은 인식을 우리 모두 마음에 새길 것을 요청한다. 차이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정당화하는 것, 그것이 문제다.64
구축된
차이들에
63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p. 185-186, 195-196.
64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 198.
호소하여
지배를
“It is not “difference” that is the problem. It is dominance justified by appeals to constructed differences that is the problem.”
32
2.
가부장제에 맞선 여성사
예일대
린다
고든(Linda
Gordon)
교수는
“러너는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인종차별, 전쟁, 제국주의, 빈곤, 종교적 편협성 등에 관심을 가졌으나 1940 년에 이르러 가부장제를 가장 큰 적으로 삼았고, 이 적을 물리치기 위해 여성사를 무기로 삼았다”고 가부장제에 맞선 러너를 평가했다. 또한 고든은 러너가 글을 쓰고 가르치는 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가부장제와 맞서 싸우기 위해 활동을 조직하고 예리한 전략을 세웠음을 확인해 주고 있다.65 실제로 러너는 1962 년 40 대 초반에 뉴 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중단했던 학문을 다시 시작한 후, 1965 년 콜롬비아 대학(Columbia University) 대학원에 입학해 2013 년 92 세의 나이로 서거하기까지 전기에서
학문에
『백인
America)이라는
정진했으며,
미국에서의 제목의
그림케
자매(Grimké
흑인여성』(Black
다큐멘터리
역사서
Women
출간에
sisters)의 in
이르기
White 까지
지속적으로 여성의 역사를 탐구해 왔다. 러너는 여성사를 전문분야로 확립시키기
위해
당시의
무관심한
역사가들을
설득해왔고,
록펠러(Rockefeller)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라 로렌스 대학의 여성사 석사과정을
창설하였다.
1980
년에는
위스콘신
대학으로
옮겨
박사과정을 창설하였다. 러너는 여성사 발전을 위해 젊은 학자들의 여성사 연구를 장려하고, 다양한 학술 기관의 저널과 학회에서 여성을 주제로 다루도록 독려 했을 뿐 아니라 1969 년 여성 역사학자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위원회(Coordinating Committee on Women in the
65
Pat Harrison, "Celebrating the Schlesinger’s First 70 Years.” http://www.radcliffe.harvard.edu/news/in-news/celebrating-schlesingers-first-70years
33
Historical
Profession:
Historical
Association:
CCWHP)를 AHA)와
구성해
미국역사학회(American
미국역사가협회(Organization
of
American Historians: OAH)에 참가 하도록 했다. 이러한 학문활동과 연계된 사회활동을 바탕으로 러너는 17 개의 명예 학위를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으며, 13 권의 저서를 남겼다.66
2.1.
학문적 전략
그림케 자매(Sarah and Angelina Grimké)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던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1963 년 43 세의 나이에 역사학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콜롬비아 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백인 노예제 폐지론자 그림케 자매』(the white abolitionist Grimké sisters—children of South Carolina slaveholders)에 대해 연구하였다. 러너는 이를 책으로
출판하고자
했으나
계속되는
좌절을
맛보았고,
겨우
찾은
출판사의 편집장은 The Grimké sisters: Rebels against Slavery and Pioneers for Woman’s Rights 라는 책의 제목에서 뒤의 다섯 단어를 지울 것을 요청한다.
67
이 사건은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의 15 년 동안 여성들은 현모양처가
66
Linda K. Kerber, and Alice Kessler-Harris, “In Memoriam - Gerda Lerner,” on History,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April 2013. https://www.historians.org/publications-and-directories/perspectives-onhistory/april-2013/in-memoriam-gerda-lerner; Gerda Lerner, "Gerda Lerner Family Collection, 1939-1978,” Leo Baeck Institute Center for Jewish History. http://www.lbi.org/digibaeck/results/?qtype=pid&term=476133;
Perspectives
67
Gerda Lerner, The Grimke Sisters from South Carolina.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4: ⅹⅴ-ⅹⅵ; 초판은 1967 년 The Grimké sisters from South Carolina: rebels against slavery 라는 제목으로 Houghton Mifflin Co.에서 출판되어 1971 년 New York: Schocken Books 에서 다시 출판되었다. 러너는 2004 년 그림케 자매의 여성주의와 관련된 글들을 추가해 개정판을 출판했다.
34
되기만을 꿈꾸었고, 해방(emancipation)이나 전문적(career)라는 말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 68 이러한 1960 년대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러너의 책 부제 ‘여성의 권리(Woman’s Rights)’는 삭제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러너는 박사과정 입학 인터뷰에서 “왜 역사를 공부하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역사 속에 있었던 여성들을 돌려놓고 싶다. 메리 비어드(Mary Ritter Beard)가 시작한 작업을 마무리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69
비어드는 『역사의
원동력으로서의 여성』(Woman As Force In History: A Study in Traditions
and
여성운동가로서
Realities)을 비어드의
이
저술한 책은
1920 당시
년대
대학
노동운동가이자
서평자들에
의해
웃음거리가 되고 무시되었다. 그러나 비어드는 여성들은 항상 역사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하며 여성이 역사이며 역사를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비어드는
수년간
세계여성문서보관소(World Center for Women’s Archives)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다. 1940 년대 후원부족으로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때 모은 자료들을 통해 당시 래드클리프(Radcliffe College)대학 - 오늘날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 래드클리프 인스티튜트(Radcliffe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
의
슐레진저
도서관(Schlesinger
Library)과
프린스턴대학(Princeton University)의 미리암 홀든 콜렉션(Miriam Y. Holden Collection)이 생겨났다.70
68
Betty Friedan, The Feminine Mystique, 김행자 역, 『여성의 신비』 서울: 평민사, 1996, pp. 25-26. 69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29.
70
Gerda Lerner, The Creation of Feminist Consciousness, p. 271; Mary R. Beard, Women as Force in History, New York: Macmillan, 1946; 러너는 비어드와 관련된 연구로 Nancy F. Cott, ed. A Woman Making History: Mary Ritter Beard through Her Letters,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91; Ann J. Lane, ed. Mary Ritter Beard:
35
비어드의 뒤를 잇기로 결심한 러너는 여성운동과 여성학이 활기를 띠기전인 1966 년에 이미 여성사를 전문분야로 확립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당시 46 세였던 러너는 은퇴하기까지 20 년의 시간이 있음을 행운으로 여기며 아래와 같은 4 가지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 실질적인 조사와 저술 둘째, 사료의 존재 입증 셋째, 전문가로서의 여성의 지위 향상 넷째, 여성사에 대한 학생 수요 입증 및 교과과정과 대학원과정의 설계 러너는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미리 설정함으로써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감으로써
대상으로
결과물로서
방어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답하는
그저
묵묵히
목표를
길을
걸어갈
수
향해
있었다고
말했다.71
첫째, 실질적인 조사와 저술
러너가 여성사를 연구하던 초기 10 여년 간은 기존의 남성중심적 역사서술에 대한 보충적인 접근법을 사용했다. “과거에 여성이 한 일과 경험한 것,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행동은 역사에 어떤
A Sourcebook, New York: Schocken Books, 1977; Bonnie G. Smith, “Seeing Mary Beard,” Feminist Studies 10, no. 3 (1984), pp. 399-417 를 소개하며, 세계여성문서보관소(World Center for Women’s Archives)의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한 여성들로 메리 비어드(Mary Ritter Beard)와 엘리자베스 슐레진저(Elizabeth Schlesinger), 미리암 홀덴(Miriam Holden), 유지니 레나드(Eugenie Leonard)를 소개한다. 관련 소장품이 있는 곳으로 스미스 대학(Smith College)의 소피아 스미스 콜렉션(Sophia Smith Collection)을 소개한다. 71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31.
36
기여를 했는가”와 같이 이미 남성 중심의 편견이 담긴 전통적인 역사의 질문들이었다. 동시에 러너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을만한 여성들의 잊혀진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여성사를 통한 기존 역사서술에 대한 보완적 역사를 쓰고 가르치던 10 여 년이 지나자 러너를 포함한 여성사학자들은 그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고 새로운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독자적인 여성 조직들은 역사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여성들은 남성들과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있었는가”와 같은 전통적인 역사 서술의 틀에 입각한 질문들은 1973 년 창설된 사라 로렌스 대학의 대학원 과정에서 초기에 러너가 가르치던 주된 질문이었다. 러너는 인류학과 문학 전공자들과 함께 다학제적인 접근을 하며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정의함에 있어서의 복잡성과 여성의 의식 및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72 이러한 여성사 발전의 초기에 여성사의 개념적 틀과 이론적 원리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는 수업교재를 위해 쓰인 『미국사에서의 여성』(The Woman in American History)와 『다수들 과거를 찾다』(The majority finds its past)에 실린 12 편의 글들, 『여성의 경험』(The Female Experience)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수들 과거를
찾다』에 실린 「미국역사에서 여성연구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New Approaches for the Study of Women in American History)은 19 세기와 20 세기 여성억압의 역사를 밝히고 여권투쟁에 집중했던 선구자들의 글 - 엘레노어 플랙스너(Eleanor Flexner)의
72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4-5; 러너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데 있어 1971 년 출간된 Edward T. James 와 Janet Wilson James, Paul Boyer 가 편집한 Notable American Women, 1607–1950: A Biographical Dictionary 시리즈 3 권이 유용했다고 한다. 이 책은 1359 명의 요약적 전기를 편집한 것으로 1930 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성주의적 활동을 위해 가정을 이루지 않거나 자녀양육을 마친 후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4 권은 9 년 후에 442 명의 전기가 더해져 Barbara Sicherman 과 Carol Hurd Green 에 의해 편집되었고, 5 권은 500 여명의 다시 더해져 Susan Ware 과 Stacy Braukman 에 의해 편집되었다
37
『투쟁의 세기』(Century of Struggle /1959) - 을 바탕으로 1969 년의 새로운 질문들과 도전들을 제시했다. 중요한 질문으로 “여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어떻게 그것을 하고 있었는가?”, “당시 여성들은 그들이 있는 위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가?”와 같은 문제들을 제기하며
특히
인종과
계급을
중요한
요소로
삼았다.
「숙녀와
방적여공」(The Lady and the Mill Girl)은 다른 계급의 여성들이 어떻게 역사를 다르게, 때로는 정반대로 경험하는지를 보여주는 비교사이다. 73 미국에서
민주주의의
진보와
평등주의가
확산되던
시기인
잭슨
민주주의의 시대(Jacksonian age)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전문직 자격증 취득에 있어 여성들이 배제되었고, 산업화로 인해 가정에서 하던 일들이 공장화 됨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여성들이 꿈꾸는 숙녀(Lady) - 여가를 즐기며 적절한 행동과 복장과 독서 취향을 갖는 - 의 이미지가 미디어를 통해 가공된 한편 방적여공(Mill Girl)들은 이주노동자와 기계화의 영향으로 낮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게 되었으며 상류층 여성들 중 일부가 차별에 대항해 여권운동을 하게 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이
글은
당시
여성주의
운동의
중심이었던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이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를 통해 말하고자 한 여성을 옭아매는 여성의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와 그 당시 여성들의 실제모습은 어떠했는지를 두 계급의 관점에서 보여주기 위해 쓰인 것이었다.74 1969 년 당시 러너는 위의 두 논문에서 다음과 같은 개념적 틀을 정립하고자 했다. 1) 당시 주로 다루어지던 여성의 정치적 지위뿐 아니라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탐구해야 한다. 2) 남성 중심적 기록 외에 각 시대의 여성의 기여에 대한 기록을 복원해야 73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Chapel Hill: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05, pp. ⅹⅹⅵ-ⅹⅹⅶ. 74
The Lady and the Mill Girl in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38
한다. 3) 여성 억압이라는 측면에만 집중한 여성주의적 접근의 한계를 넘어 여성들의 활동을 통한 사회 개혁과 같은 여성의 영향력을 입증해야 한다. 4) 상당한 기간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과 이와 같이 특정 소수집단에
의해
교육
기회를
박탈
당한
집단에
대한
문화를
비교연구한다. 5) 여성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관해 그 신화와 실재를 고려한다. 6) 여성의 평등을 위한 노력과 여성의 남성과 다른 문화·사상·활동적 차이로 인한 긴장에 대해 질문한다.75 이러한
틀에
입각해
1971
년
쓰인
『미국사에서의
여성』은
수업교재로 쓰인 것으로, 식민지 시기부터 20 세기에 이르는 전통적인 미국역사의 흐름에 따라 여성이 역사의 동력임을 강조한 메리 비어드의 행로를 따랐다. 미국사에서 무시되어 왔던 여성의 기여를 밝히고자 각 시대의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보여줌과 동시에 각 시기의 큰 공헌을 한 여성들, 여성교육의 형태, 여성이 했던 일들 등 각 시대의 특징에 따른 여성의 삶의 모습들을 정리하고 있다.76 『다수들 과거를 찾다』의 두 글 - 여성주의 운동 1 세대와 2 세대를 비교한 글(The Feminist: A Second Look / 1970)과 여성의 권리와 미국의 여성주의와 관련해 그 용어를 정교하게 정의한 글(Women’s Rights and American Feminism / 1971) - 에서는 여성주의 운동의 기본이자
가부장제에
맞서고자
한
전략으로서
여성사의
근간을
확립시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수들 과거를 찾다』에는 『백인 미국에서의 흑인여성』을 엮으며 파생적으로 쓰인 글들 이론적 고찰(Black Women in the United States: A Problem in Historiography and Interpretation / 1973)과 흑인 여성들의 공동체 75
Gerda Lerner,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Journal of
Women's History 16, no. 4 (Jan-1, 2004), p. 11. 76
Gerda Lerner, The Woman in American History, Menlo Park, Calif.,: AddisonWesley Pub. Co, 1971, pp. 5-6.
39
활동(The Community Work of Black Women / 1974), 흑인과 백인 여성의 상호작용 및 대립(Black and White Women in Interaction and Confrontation / 1976) - 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여성의 억압에 대한 일반화는 인종과 계급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으면 불충분함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다수들 과거를 찾다』에는 이 전과 같은 틀에 입각해 반노예제 활동에서 남성과 여성이 다른 방법과 다른 중점을 두었음을 보여준 글(The Political Activities of Antislavery Women / 1976)과 그 동안 무시되어온 여성의 가사일에 대한 역사를 보여주는 글(Just a Housewife / 1977)도 포함되었다.77 1974 년에서 1978 년에 쓰인 글들은 중요한 지적인 발전을 담고 있다. 러너는 1973 년 『백인 미국에서의 흑인여성』을 출간한 후, 『미국을 건설한 여성들』(Women in the Making of the Nation)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완과
기여의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통적인 시대구분에서 벗어나 여성의 생애(어린 시절, 젊은 시절, 결혼 등)를 바탕으로 다시 구성된 『여성의 경험』(The Female Experience)을 쓰게 된다. 이 책을 저술하며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다수들 과거를 찾다』 - 러너는 이 책의 제목을 수록된 글의 제목과 같게
하였다
것」(Placing
-
에
Women
실린 in
에세이
History)과
「여성을
역사에
포함시키는
「다수들
과거를
찾다」(The
Majority Finds Its Past), 「여성사의 도전」(The Challenge of Women’s History)에 반영되었다.78 그 후, 러너는 역사 속의 여성에 대한 일반이론(general theory)을 만들고자 8 년간의 연구 끝에 여성과 역사(Women and History) 시리즈 두
권을
저술한다.
두
권은
가부장제의
기원과
2000
77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pp. ⅹⅹⅶ-ⅹⅹⅹ.
78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p. ⅹⅹⅹⅰ.
40
년동안의
형성과정을 다룬 『가부장제의 창조』(The Creation of Patriarchy)와 중세부터 19 세기까지 여성주의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다룬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The
구성된다. 환영받지는
이러한
Creation
러너의
못했는데,
러너
of
저작은 자신의
Feminist 전통적인
Consciousness)로 역사가들
전문분야인
모두에게
여성사가
아닌
인류학이나 고대사, 중세사를 다룬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79
1980 년부터 1996 년까지의 연구 및 활동 결과물들을 묶어 출판한 『왜 역사가 중요한가』(Why History Matters)는 여성주의 학자로서 연구와 삶이 융화되는 과정이 담긴 글과 연설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11 장의 「패러다임 다시 생각하기: Ⅰ계급, Ⅱ인종」은 초기 연구 「숙녀와 방적여공」(The Lady and the Mill Girl)과 「백인미국에서의 흑인여성: 역사 서술과 해석의 문제」(Black Women in the United States: A Problem in Historiography and Interpretation)에서 일찍이 제기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 볼 수 있다.80 러너는 이러한 저술활동과 동시에 여성사의 현황을 파악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 관련 저서와 논문 등을 조사 및 분석해왔는데, 1972 년 사라 로렌스 대학원 학생들을 위해 정리한 참고문헌 목록을 출판하였고, 두 번의 개정을 거쳐 1978 년 3 번째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1986 년 출판된 4 번째 개정판에서는 조교인 마리 라버지(Marie Laberge)와 함께 1,358 개의 저서 및 논문을 정리했다. 러너에 의하면 1960 년대 여성사가 학문분야가 되기 전 미국여성사 관련 책은 13 권이 출판되었다. 여성사가 학문분야가 된 초기 1970-1975 년에는 여성사 저서가 21 권 출판되었고, 1976-1980 년는 36 권, 1981-1987 년에는
79
Linda K. Kerber, and Alice Kessler-Harris, “In Memoriam - Gerda Lerner.” https://www.historians.org/publications-and-directories/perspectives-onhistory/april-2013/in-memoriam-gerda-lerner 80
Gerda Lerner, Why History Matters, p. ⅹⅴ.
41
40
권이
출판되고
312
개의
학위논문
-
학위논문은
미국역사학회(AHA)의 목록에 따른 것이다 - 이 쓰여졌다. 1987 년 미국역사학회(AHA) 모임에서 이를 기반으로 발표한 논문에서 러너는 291 권의 책을 분석했는데, 시기적으로는 1920 년대에 편중되어 있었고, 전기 서술에 있어서도 특정 인물 - 마가렛 풀러(Margaret Fuller), 엘레노어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 마가렛 생어(Margaret Sanger),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 에 편중되어 있어 다양한 시기와 다른 중요한
인물들도
다뤄야
함을
강조했다([표 1]
참조).
312
개의
학위논문은 전기가 48 개, 노동과 일에 관한 주제가 47 개였으며, 그 뒤를 이어 교육(40)과 문화(32)가 있었다([표 2] 참조).81 [표 1] 1981-1987 년간 여성사 저서 291 권 분석표
시기
식민지시기
19 세기1880
진보의 시기
20 세기
일반
총계
권수
21
34
101
116
19
291
[표 2] 1981-1987 년간 여성사 학위논문 312 권 분석표
주제
전기
노동 과 일
개수
48
47
교육
문화
사회
종교
의학
40
32
15
21
14
참정 권
현대 여성 주의
19
19
여성 조직
급진 적 소수 자
그 외
총계
13
25
19
312
[표 1][표 2] Source: Gerda Lerner,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p. 12.
81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51; Bibliography in the History of American Women, 2nd ed. Bronxville, N.Y.: Sarah Lawrence College, 1978; 러너는 이 책의 서두에서 유럽 여성사와 관련해서는 조안 캘리(Joan Kelly)의 참고 문헌 목록을 볼 것을 권고한다;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pp. 10-12.
42
1987 년 이후에는 흑인 여성사가 급격히 증가하였고, 더불어 다른 민족의 여성사도 더해졌으며, 여성들 사이의 차이가 논의의 중점이 되었다. 레즈비언/게이 연구와 성 정체성의 구조화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였고,
젠더
연구는
여성사의
일반화에
혼란을
야기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연구와 같은 문학적 연구(literary studies)는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표현(representation)과 옮겼다.
사회사(social
미디어(media),
history)에
대한
대중문화(popular
관심을
culture)로
82
2004 년의 논문에서는 1998-2000 년 발간된 미국사 저널(Journal of American
History:
JAH)에
인용된
720
개의
저서(150
권)와
논문(280 개의 학위논문과 290 개의 논문), 추가적인 97 권의 책을 추가해
이전의
조사를
보완했다.
러너는
책과
학위논문,
논문을
구별하였는데 이는 책은 숙련된 학자들과 최근 5-10 년 간 훈련 받은 학자들의 학위논문이 출판된 경우를 포함해 두 세대에 걸친 작업이며, 학위논문은 최근 3 년동안 훈련 받은 학자들로서 최근의 교육적 관심과 새로운 세대 학자들의 강점을 보여주고, 논문은 학위논문의 일부이거나 추후 저술할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앞으로의 연구 관심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분석을 통해 개념적 틀을 벗어난 다양하고 역동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으며,
사회적·정치적·조직적
여성사에서
표현과
정체성, 문화에 중점을 둔 연구로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고 러너는 분석했다([표 3], [표 4], [표 5] 참조).83
82
Gerda Lerner,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pp. 12-13.
83
Gerda Lerner,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pp. 13-17.
43
[표 3] 1998-2000 년 미국 여성사 저서 리뷰 된 여성사 저서 (흑인 여성사 제외) 전기
#
% 리뷰 된 흑인 여성사 저서
#
12
17 참정권
2
문화/표현
6
8 전기
1
정치
6
8 의학
1
문학
5
7 인종
1
역사
5
7 노예
1
성
5
7 일반
1
젠더
5
7 여성사
1
일
4
6
미디어
3
4
민족
3
4
인종
3
4
복지
3
4
그 외
12
17
총 계
72
100
8
Source: Gerda Lerner,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p. 15, 19; 러너는 흑인 여성사를 다루는 학자들이 여성 조직과 계급, 인종, 혼혈, 노예 등과 같은 관심에 있어 뚜렷이 다른 특징이 있으므로 구분하였다.
44
[표 4] 1998-2000 년 미국 여성사 학위논문 여성사 학위논문 초록 (흑인 여성사 제외)
#
% 흑인 여성사 학위논문 초록
#
%
전기
34
19 조직
9
23
문화/표현
27
15 전기
5
13
문학
15
8 문학
5
13
종교
12
7 표현
4
10
조직
12
7 젠더
3
8
일
10
5 일
2
5
성
9
5 노예
2
5
젠더
9
5 의학
2
5
미디어
8
4 가족
2
5
교육
7
4 그 외
5
13
의학
6
3
정치
4
2
가족
4
2
모성
4
2
인종
4
2
법
4
2
그 외
14
8
총 계
183
100
39
100
Source: Gerda Lerner,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p. 15, 19; 러너는 흑인 여성사를 다루는 학자들이 여성 조직과 계급, 인종, 혼혈, 노예 등과 같은 관심에 있어 뚜렷이 다른 특징이 있으므로 구분하였다.
45
[표 5] 1998-2000 년 미국 여성사 트렌드 전기, 문학, 표현
#
%
리뷰 된 저서
24
27
학위논문 초록
90
41
170
59
리뷰 된 저서
9
10
학위논문 초록
39
18
논문
20
7
리뷰 된 저서
27
31
학위논문 초록
98
44
170
59
논문
표현, 문화, 미디어(영화, 드라마, 미술, 음악)
전기, 문학, 문화, 미디어
논문
Source: Gerda Lerner, “U.S. Women's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p. 20.
러너는
2009
년에는
여성사의
성장과
다양한
접근의
확산에
놀라면서도 여성사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파편화 됨을 염려했다. 당시의 학자들이 사회 운동과 과거 여성의 삶의 경험에 관심이 적어지는 것을 염려하며 전체사를 위한 여성사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된다.84
84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163.
46
둘째, 사료의 존재 입증 러너는
초기
논문
「미국역사에서
여성연구를
위한
새로운
접근법」(New Approaches for the Study of Women in American History)에서 사료의 현황과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여성사 관련 저서들은 사회사의 발달로 여성의 가족에서의 역할과 사회적 지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몇몇 역사학자들 85 과 미국사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여성주의자들 86 에 의해 기술되었다.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은 전문 역사가로 훈련 받지 않았으며, 이들은 조금이라도 단지 대중의 주목을 받은 여성들을 여권신장에 기여한 여성으로 칭송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목록에 추가하기도 하였다.
당시
여성의 역사에 대한 자료는 1920 년대 여성 참정권 운동이 있은 후 메리 비어드(Mary Ritter Beard)와 엘리자베스 슐레진저(Elizabeth Schlesinger), 미리암 홀덴(Miriam Holden), 유지니 레나드(Eugenie Leonard)에
의해
모아졌고,
세계여성문서보관소(World Center
for
Women’s Archives)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1940 년대 후원부족으로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 때 모은 자료들이 래드클리프 인스티튜트의
85
러너는 다음 글을 참고할 것을 제시한다: Arthur Meier Schlesinger, New Viewpoints in American History, New York: Macmillan, 1922; Edward Norman Saveth, American History and the Social Sciences, New York: Free Press of Glencoe, 1966. 86
러너는 여성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쓰인 것으로는: Charles Brockden Brown, Alcuin: A Dialogue, New York: Grossman Publishers, 1798, Sarah Moore Grimké, Letters on the Equality of the Sexes, and the Condition of Woman, Boston: Mass.: I. Knapp, 1838; Margaret Fuller, Woman in the Nineteenth Century, New York: Greeley & McElrath, 1845 등이 있으며, 여성운동 당시에는 너무 많아 다 쓸 수 없으나 대표적인 수집물을 S. B. Anthony, Matilda Joslyn Gage, and Elizabeth Cady Stanton, History of Woman Suffrage, Vols. 1-6. New York: Arno, 1969 에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47
슐레진저 도서관과 프린스턴 대학의 미리암 홀덴 콜렉션 스미스 대학의 소피아 스미스 콜렉션에 소장되어 있었다.87 한편 식민지 시기 여성의 전기는 정리된 자료가 있었지만, 19 세기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성들의 각각의 이야기에 대한 사료가 없었는데 1971 년 17 세기부터 20 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1359 명의 여성에 관한 요약된 전기를 편집한 『주목할 만한
미국
여성』(Notable
American
Women,
1607–1950:
A
Biographical Dictionary) 시리즈 3 권이 출간되어 이를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88
이
책을
편집하던
중에
있던
제임스(Janet
James)는
스콧(Anne Firor Scott), 디글러(Carl Degler), 챔버(Clarke Chamber), 러너와 1971 년 미국역사가협회(OAH) 대회 중 모여 ‘여성에 대한 연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논의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성에 관한 자료가 남성 가족의 이름에 따라 분류되어있는 등 숨겨져 있으므로 아카이브에
대한
설문조사와
함께
1972
년
미국역사가협회(OAH)
워크샵을 기획하였다. 같은 시기에 러너는 록펠러 재단(Rockefeller Foundation)의
사무관이었던
역사학자
피터
우드(Peter
Wood)의
초청으로 여성사와 여성학 증진에 대한 특강에서 소규모의 컨퍼런스를 제안하였고, 컨퍼런스의 결과로 1972 년 여성사 사료 조사(Women’s History Sources Survey)에 대한 자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더불어 인문학 국가 기금 (National Endowment for the Humanities)과 미네소타
87
New Approaches for the Study of Women in American History in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p. 3. 88
Eugenie Andruss Leonard, Sophie Hutchinson Drinker, and Miriam Young Holden,
The American Woman Colonial and Revolutionary Times, 1565-1800, Westport: Greenwood Press, 1962; New Approaches for the Study of Women in American History in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p. 7; Edward T. James, Janet Wilson James, and Paul S. Boyer, eds. Notable American Women, 1607-1950: A Biographical Dictionary;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4-5.
48
대학(University of Minnesota)의 지원으로 4 년간 전국적인 조사가 이루어 졌으며, 그 결과는 『여성사 사료』(Women's History Sources: A Guide to Archives and Manuscript Collections in the United States)라는 2 권의 책으로 정리되었다. 이 조사로 인해 미국전역에 산재해 있던 여성관련 아카이브 목록이 체계화되는 변화가 있었다.89
1975 년부터 1979 년까지 미네소타 대학의 사회복지역사 아카이브는 11,000 개의 기록보관소를 전국적으로 조사하여 식민지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미국의 수 만 명의 여성들의 1 차 사료와 아직 발행되지 않은 사료들을 정리하였다. 『여성사 사료』(Women’s History Sources)는 1,586 개 보관소의 18,026 개의 컬렉션에 대한 설명을 각 주와 도시별로 지리적으로 배열한 조사의 결과였다.90
또한 러너는 1972 년 『백인 미국에서의 흑인여성』이라는 사료집을 출판함으로 흑인 여성사를 개척한다. 미국 역사 속에서 흑인여성들은 인종적·성적 차별이라는 이중적인 억압을 겪으며, 그들의 기록은 묻히고, 읽혀지지 않고, 해석되지 않았지만, 러너는 그들의 기록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다. 많은 1 차 사료가 개인기록과 교육기관 혹은 종교기관의 기록 속에 숨겨져 있었고, 예외적으로 국회 도서관의 메리 처치 테럴(Mary Church Terrell)의 사료와 뉴욕 공공 도서관의 스콤버그 콜렉션(Schomburg Collection), 하워드 대학(Howard University)과
89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48-49; Fireweed, pp. 371-372. 90
Andrea Hinding, ed. Women's History Sources: A Guide to Archives and Manuscript Collections in the United States, Vol. 1-2. New York: R. R. Bowker, 1979, p. ⅸ. “From 1975 to 1979 the Social Welfare History Archives at the University Minnesota conducted a nationwide survey of 11,000 archives and manuscript repositories for collections of unpublished (or primary) sources pertaining to the history of tens of thousands of women in the United States from the colonial period to the present. Women’s History Sources, which contains description of 18,026 collections in 1,586 repositories, arranged geographically by state and city, is the result of that survey.”
49
피스크 대학(Fisk University)이 흑인 여성과 관련된 자료를 소장하고 있었다. 흑인 역사에 관해 이러한 기초 작업을 해 놓은 역사가로는 카터 우드슨(Carter Woodson), 몬로 워크(Monroe Work), 두보이스(W. E. B. DuBois), 찰스 존슨(Charles Johnson)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이 정리한 자료에도 흑인 여성들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91 러너는 이들의 사료를 정리하며 단순히 희생자와 무력한 피해자로 쓰여있는 교과서 속의 흑인 여성들이 아닌 ‘흑인 여성들이 정말로 하고 있었던 것, 경험했던 것, 성취했던 것은 무엇인가?’,
‘흑인 남성들은
백인 여성들과 어떤 경험을 했나?’, ‘어떤 여성사의 이론을 끌어 올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들을 스스로 했다. 또한 러너는 그 사료들을 통해 흑인 여성들이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라 그들의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도덕적·영적 기여를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뛰어난 지도력을 보인 아이다 비 웰즈(Ida B. Wells) 등 은 여성 운동과 참정권자로서 활약했고, 여성사의 이론정립에 있었서도 비교의 관점을 제공하였다고 언급하였다.92 『여성의
경험』(The
Female
Experience:
An
American
Documentary)은 러너의 여성사 연구 초기 10 년의 보완사로서의 여성사를 너머 새로운 시각으로 쓰여진 여성사 사료집이다. 러너는 이 책을 편집하고 서술하면서 ‘여성의 눈으로 본 역사는 어떻게 보일까’, ‘여성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따라 배열된 역사는 어떨까’를 질문했다. 1 차 사료를 통해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경험을 보고자 했으며, 주목 받지 못했던 1 차 사료들을 위주로 엮었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삶의 단계들을 따라가는 부분과 91
Black Women in the United States: A Problem in Historiography and Interpretation in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pp. 49-50. 92
Black Women in the United States: A Problem in Historiography and Interpretation in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pp. 51-62.
50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의 경험을 다룬 부분,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역할에 도전함으로 여성주의 의식이 발전되는 부분으로 구성되었다.93
셋째, 전문가로서의 여성의 지위 향상 러너는 1963 년 대학원 과정에 입학해 미국역사가협회(OAH) 대회에 처음 방문했을 때를 회상하며 당시 대다수의 남성들 사이에 여성은 매우 적었으며, 대부분의 취업이 공고 없이 개인적 친분으로 이루어지던 관행 속에서 남성들끼리의 네트워킹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당시에는 대학원생들이 전문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컨퍼런스 세션에 참가하거나 논문을 발표해야 하는데 이는 지도교수를 통해서만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50-60 년대에는 컨퍼런스 참여자는 물론이고 전문가 조직 위원회에도 여성 역사학자는 없었다고 한다.94 상황은 1969 년 여성역사학자지위향상위원회(Coordinating Committee on Women in the Historical Profession: CCWHP)가 조직되면서 변했다. 1969 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국역사학회(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AHA)대회에서 캐롤(Berenice Carroll)의 제안으로 17 명의 역사학자들이 모였고, 여성역사학자지위향상위원회(CCWHP)가 구성되어 캐롤과 러너가 공동 의장직을, 스미스(Hilda Smith)가 회계를 맡았다. 95 위원회의 3 가지 목표로 1. 여성 역사전문가의 고용 장려 및 전체적인
93
Gerda Lerner, ed. The Female Experience: An American Documentary, 2nd ed.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p. ⅹⅹ, ⅹⅺ, ⅹⅹⅲ. 94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40.
95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40; Gerda Lerner, “A View from the Women's Side,” The Journal of American History 76, no. 2 (1989), p. 448.
51
여성의 지위 향상 2. 전문가집단 내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 반대 3. 여성사 분야의 연구와 교육 장려가 결정되었다.96 1969 년 10 월, 여성역사학자지위향상위원회(CCWHP)의 22 명의 역사가들은 미국역사학회(AHA)에 공식적으로 여성 역사가들의 지위를 조사할 것을 요청하였고, 12 월 특별 위원회(ad hoc Committee)가 구성되었다. 후에 이는 상임 위원회가 되었으며 1970 년 보고서가 발간되어 이를 기반으로 여성 역사가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아젠다가 설정 되었다. 곧 미국역사가협회(OAH)에도 같은 역할을 하는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이 두 위원회를 통해 제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여성역사학자지위향상위원회(CCWHP)는
공정한
고용을
위해
미국역사학회(AHA)와 미국역사가협회(OAH)에 결의문을 보냈으며, 저널 자문
위원회에
여성을
배치할
여성역사학자지위향상위원회(CCWHP)는
전문가
것을 조직의
요구했다. 작동방식과
프로그램 구성 및 위원회 선정 등 실용적인 정보들을 아는 즉시 공유했고, 생존 매뉴얼(Survival Manual)을 만들고 활발한 교류의 장을 제공하였다.97
96
CCWHP Newsletter, 1(Spring 1970), 2 (Gerda Lerner, “A View from the Women's Side,” p. 448 에서 재인용.) CCWHP Newsletter 는 2003 년 발행된 것부터 웹사이트에서 열람할 수 있다. 97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42-43; “A View from the Women's Side,” p. 451.
52
[표 6] 역사학과 정교수, 부교수, 조교수 남·여 비교 1959-1960
1985-1986
남
여
남
여
연구대학(Research universities/10)
284
4
395
52
남녀공학(Coed liberal arts colleges/10)
51
4
87
20
여자대학(Women’s colleges/10)
43
23
50
24
Source: Excerpted from Patricia Albjerg Graham, “Revisiting the Rose Report,” CCWHP Newsletter, 18 (Feb. 1987), 7-10 (Gerda Lerner, “A View from the Women's Side,” p. 452 에서 재인용.)
이러한
노력은
여자대학(Women’s
[표
6]에서
보듯
Colleges)에서는
긍정적인 비슷한
결과로
수준의
나타났다.
증가를
보였고
여전히 남성 교수보다는 적은 숫자이지만, 1960 년에서 1986 년 사이에 여성 교수의 수가 연구 중심 대학(Research Universities)에서는 약 12 배, 일반대학(Liberal Arts Colleges)에서는 5 배의 증가를 보였다.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여성의 비율을 비교하면 1969 년 11%에서 2008 년 42%([그래프 2]에는 2007 년과 2008 년 자료만 나와 있다)로 현저한 증가를 볼 수 있다. [그래프 3]에서도 여성 교원의 비율이 1998 년 29.9%에서 2003 년 30.4, 2007 년에는 35%로 수치적으로는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98
98
Robert B. Townsend, “What the Data Reveals about Women Historians,” Perspectives on History, May 2010. http://www.historians.org/publications-and-directories/perspectives-onhistory/may-2010/what-the-data-reveals-about-women-historians; Nupur Chaudhuri, and Barbara Ramusack, "The Coordinating Committee on Women Historians: Accomplishments and New Goals,” Perspectives on History. https://www.historians.org/publications-and-directories/perspectives-on-
53
[그래프 2] 역사학 교수 및 박사 중 여성 비율
[그래프 3] 1980-2007 년 여성 교수 비율
[그래프 2][그래프 3] Source: Robert B. Townsend, “What the Data Reveals about Women Historians.”
history/september-2010/the-coordinating-committee-on-women-historiansaccomplishments-and-new-goals
54
한편 1970 년 CCWHP(여성 역사학자 지위 향상 위원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2 명 중에 38%는 전문가로서의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관심이 있어서 가입했다고 대답했으며, 12%는 여성사에
관심이
있어서
가입했고,
36%는 둘
다
관심이
있어서
가입했다고 답했다. CCWHP 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45%가 여성의 전문적 지위에, 25%가 여성사에 집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99
이렇듯 CCWHP 의 주요 관심은 여성사보다는 전문가로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있음을 러너는 알고 있었지만, 러너에게 있어 더 중요한 것은 여성사를 활성화하는 작업이었다. 러너는 1970 년 CCWHP 의 지원으로 미국역사학회(AHA)와 미국역사가협회(OAH) 프로그램에 여성사 관련 패널을 넣을 수 있게 된다. 1970 년 미국 역사 협회(AHA) 대회에서는 “여성주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Feminism - Past, Present, and Future)라는 패널을 조직하였고, 대회 중 “역사 속 여성의 경험: 교육적 문제”(Women’s Experience in History: A Teaching Problem)패널 토의에서는
프로그램
위원회의
의장인
레이먼드
그류(Raymand
Grew)교수가 참여하게 되었다. 100 여개의 세션 중 2 개의 여성 관련 패널은 자체가 큰 성과였으며 활발한 참여도 이루어졌다. 1971 년 미국역사학회(AHA) 대회에서는 5 개의 여성사 패널이 구성되었고, 1972 년에는 미국역사가협회(OAH) 프로그램 위원회에 유일한 여성으로 러너가 참여하게 되었다. 러너는 50 여 통이 넘는 편지를 보내며 여성들이 조직한 패널을 구성하고자 했으나, 2 개의 패널로 만족해야 했다. 특히 당시의 한 패널인 “사라진 숙녀들의 사례”(The Case of the Missing Ladies)는 주요 대학 교재에서 여성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문제점을
다루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99
다음날
뉴욕타임즈에
CCWHP Newsletter, 1(Summer 1970), 6 (Gerda Lerner, “A View from the Women's Side,” p. 447 에서 재인용.)
55
실리기까지 했다. 1972 년 이후로는 매년 역사학 대회에서 여성의 전문적 지위와 여성사를 다루는 패널과 워크샵이 포함되었다.100
넷째, 여성사에 대한 학생 수요 입증 및 교과과정과 대학원과정의 설계 1968 년 12 월 러너는 당시 록펠러 재단의 사무를 맡고 있던 역사가 피터 우드의 초대로 여성해방운동과 관련해 조언을 해주었다. 여성주의 교육가 쉴라 토비아(Sheila Tobias), 그리고 60 년대 여성주의 운동의 리더였던 플로렌스 하우(Florence Howe)와 전국적인 여성사 프로그램 증진에 참여하고 있었던 러너는 하우가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의 후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보고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고자
했다.
러너는
우드와
여성
참정권
운동과
새로운
여성
해방운동의 차이에 대해 논하며, 새로운 여성 해방운동이 마르크스주의, 급진적인 성적 개혁, 레즈비언, 종교적 여성주의에 이르는 여러 양상을 띠고 있음을 설명했다. 러너가 여성사에 가장 관심이 있다는 말에 우드도 동감하였고, 이를 도모하기 위한 모임을 열고자 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1972 년 6 월 8 일, 이 모임을 통해 자금 지원을 위한 항목들이 정해졌으며, 첫 번째는 여성사 사료 조사(Women’s History Sources 프로그램을
Survey)였고, 만드는
두
번째는
것이었으며,
사라
로렌스
세
번째는
대학에 여성사
여성사 여름
인스티튜트(Summer Institutes in Women’s History)로 구성되었다.101
1973 년 래드클리프 슐레진저 도서관과 여성사 버크셔 컨퍼런스, 사라 로렌스 대학 대학원의 다학제적 여성학 프로그램, 하버드 신학 대학원의 여성과 종교 프로그램에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여성학 연구를
100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46-47.
101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54.
56
지원했다.102
1969 년 사라 로렌스 대학의 총장이 바뀌면서 러너는 새 총장과의 갈등으로 정교수 임명이 거부되었으나 지속적인 저술활동과 학생들, 교수들의 지지로 1972 년 정교수가 되었다.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도 여성사 석사과정을 설립하고자 하는 생각을 포기 하지 않았고, 1971 년 10 월 12 일 러너는 교직원 공지를 통해 다학제적 여성주의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있는 교수들을 점심식사에 초대한다. 14 명이 참여한 가운데 에바
콜리히(Eva
Kollisch),
쉐리
오트너(Sherry
Ortner),
엘피
스톡(Elfie Stock)외에 다른 교수들은 러너의 의견에 동의는 하지만, 참여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바빴다. 그 가운데 저명한 르네상스 학자인
조안
켈리(Joan
Kelly)도
포함되어
있었다.
켈리는
르네상스시기는 여성에 대한 자료가 없다고 했지만, 러너는 켈리와 단둘이 이야기하며 대학원 시절 자신이 정리한 자료가 있음을 들어 설득했다. 이를 계기로 켈리는 여성의 관점으로 르네상스 시기를 다시 보게 되었고, 후에 2 년 남짓 러너와 공동 책임으로 여성사 대학원 과정을
이끌게
된다.
그리고
그
후에도
여성지위위원회 회장으로서 지속적인 지원을 한다.
미국역사학회(AHA)의 103
1970 년 여름, CCWHP 는 22 명의 회원들이 전국적으로 최소한 1 강좌의 여성사 강의를 했고 4 개의 여성학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있음을 보고했다. 104 그 후, 1972 년 러너는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라
102
"Our Storyline,” The Rockefeller Foundation. https://www.rockefellerfoundation.org/about-us/our-history/ 103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54-56.
104
러너는 이 수치에 대해 Karen Kidd, and Ande Spencer, eds. Guide to Graduate Work in Women's Studies, 2nd ed. College Park, MD: National Women's Studies Association, University of Maryland, 1994.의 목록에 따른 것으로 정확한 여성사 대학원 과정의 수는 파악할 수 없으며, 기관 수가 다소 적게 기록된 것 같다고 했다.
57
로렌스 대학의 석사과정을 설립하게 된다. 러너는 여성사가 전문분야로 받아 들여지기까지는 전문가로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려고 했던 노력보다
더
힘들고
오랜
과정이었다고
회고하고였다.
여성사가
전문분야로 받아 들여지기 위해서는 4 가지를 동시에 이뤄야 했는데 1. 여성사 연구의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한 적절하고 흥미로운 사료를 보여주고, 2. 이러한 사료를 기반으로 일차적인 연구 성과를 내며, 3. 교사를 양성하고 참고문헌 정리와 강의계획서를 개발함과 동시에 4. 행정담당자들과 동료 교수들에게 학생들의 수요가 있음을 알려 설득해야 하는 것이었다.105 여성사 사료와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한 스콧(Anne Firor Scott), 디글러(Carl Degler), 제임스(Janet James), 챔버(Clarke Chamber)등과 함께 4 년간 전국적인 조사로 정리된 『여성사 사료』 2 권의 시리즈가 있으며, 러너가 엮은 경험』이
있다.
이를
『백인 미국에서의 흑인여성』과 바탕으로
한
연구성과는
『여성의
『다수들
과거를
찾다』와 『왜 역사가 중요한가』에 실린 각각 12 편의 글들, 여성사의 일반적인 이론의 성립을 목표로 저술한 여성과 역사 시리즈 두 권 『가부장제의 창조』와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에 기술되어있다. 이제 러너의 교과과정 개발 및 대학 측을 설득하는 과정을 살펴 보겠다.
1972
년
가을,
‘여성:
신화와
실재’(Women:
Myth
and
Reality)라는 새 교육과정이 개설된다. 대학으로부터 약소한 금전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러너와 켈리(Joan Kelly: Renaissance Studies), 콜리히(Eva
Kollisch:
Literature),
오트너(Sherry
Ortner:
anthropology)는 이 교육과정의 개발을 위해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고, 점차 다른 교수들의 관심도 이끌어 내게 되었다. 교육과정은 먼저 모든 학생과 교수가 참여하는 주당 2 시간의 강좌 - 오트너의 ‘야만에서
105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47.
58
문명으로는 여성에서 남성으로를 의미하는가?’(Is Female to Male as Nature Is to Culture?)와 켈리의 ‘여성에게 르네상스가 있었나?’(Did Women Have a Renaissance?), 러너의 ‘다수들 과거를 찾다’(The Majority Finds Its Past) - 에서 강의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각각의 교수가 주당 2 시간의 세미나를 진행하며, 교수 개인 혹은 그룹으로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강좌와 세미나의 주제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개발하게 했으며, 교육과정의 후반 1/3 은 학생들 각자의 세미나 프로젝트를 전체 학생들에게 보고하는데 할애하였다. 82 명이 이 과정에 등록한 가운데, 특히 강의가 진행될 때는 6 명의 교수와 더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보였고 타대학의 교수들은 자신의 소속대학에서 관련 교육과정을 개발하기도 했다.106 러너는 이론과 실천이 분리되어 학생들과 사회 전체에까지 손실을 초래하는
당시의
가부장적
학문체계를
경계하며,
이론과
실천을
함께하는 것이 여성주의자가 학계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107 이러한 러너의 생각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사라 로렌스 대학은 이 프로그램을 “1972 년 거다 러너에 의해 설립된 여성사 석사과정은 미국 내에서 처음 개설된 것으로 역사학 연구와 여성주의 이론, 젠더 연구를 통합시킨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학문과 교내·외 활동의 조화를 장려하며, 매년 여성사의 달 컨퍼런스(Women’s
History
Month
Conference)를
강조한다.108
106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56-57.
107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59.
108
"Master of Arts in Women's History,” Sarah Lawrence College. https://www.sarahlawrence.edu/womens-history/
59
지원함”을
뉴욕타임즈 의 보도로 인한 명성과 입소문에 의해 1973 년 가을에는 56 명이 사라로렌스 대학 여성사 석사 프로그램에 지원하였고, 지원자 중 8 명만이 선정되었다. 그 후 매년 수 백건의 문의와 많은 지원자가 있었으나 자원과 장학금의 부족으로 다 받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다양한 컨퍼런스와 여성사 여름 인스티튜트(Summer Institutes in Women’s History)가 주목을 받으며, 프로그램은 점점 성장했고, 러너가 8 년간의 석사과정 책임자의 자리를 내려놓고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으로 옮길
당시,
사라
로렌스
대학
여성사과정은
120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3 명의 여성사 박사과정 진학자가 수학하고 있었다. 러너는 “여성사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배경에는 당시 헌신적인 선구자들의 지혜와 열정, 과로, 저임금이 있었다”고 회고한다.109
2.2.
사회변혁 활동
거다 러너는 학자의 길을 가기 전부터 20 여 년간 가정주부로의 삶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글을 쓰고 지역사회의 모임을 조직해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
해왔었다.
지역여성들을
아동보호소와
조직하고,
학교
앞에
더
나은
정지신호를
공립학교를 세우는
위해 세심한
일에서부터 부패한 교장을 제제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을 모아 함께
했다.
러너는
Association)를
통해
1950
년대에
UN(United
지역
PTA(Parent
Nation)의
활동을
Teacher 지원하고
UNICEF(The United Nations Children's Fund)의 일을 구체화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 언급하면서 추상적인 것, 도덕적인 원칙들,
109
거창한
해결법은
노동자계층을
설득할
수
없다는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58, 62-63.
60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러너는 흑인들과 함께 주택문제와 학교통합문제, 인종차별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백인들과는 다른 그들만의 리더십과 장기적인 헌신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110 러너는
학문의
길을
가면서도
지위향상위원회(CCWHP)를
통해
다양성을
도모하는
인정하며
침목을
계서제적인
여성역사학자 학계의
분위기로
분위기에서
바꾸었으며,
고용과
관련된 기존의 부당한 관행을 개선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롱 아일랜드 대학(Long Island University-Brooklyn)에서 사라 로렌스 대학으로 옮긴 후에는 그 대학의 여성학 분야의 선구자적인 위치를 강조하며 대학 구조개혁(Restructuring the College)과 평생교육원(Center of Continuing Education: CCE)을 제안하여 받아들여진다. 특히 평생교육원(CCE)은 결혼과 육아로 학문을 중단한 여성들이 1 년간의 프로그램을 마치고 대학원 과정에 지원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는 혁신적인 것이었고, 다른
대학들도
이와
같은
기관을
설립하는
등
사회주의
풀뿌리
운동가로서의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111 러너는
자신의
여성사학자로서
이론과
실천을
술회하였다. 여성사학자로서
병행하게
하는
삶의
경험들이
기반이
되었다고
『백인미국에서의 흑인여성』을 저술하게
된 것도 여러 인종이 함께하는 공동체에서 거주문제를 놓고 투쟁했던 CAW(Congress of American Women)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술적 지식이 지역공동체에 실용적인 지식으로 확장되도록 여성사 여름 인스티튜트(Summer Institute in Women’s History)을
진행하며
당시의
참여자들이
‘여성사의
달’(Women’s
110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3-4.
111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53-54.
61
History Month)을 전국적인 행사로 만들기까지 이르렀던 것도 과거의 조직적 활동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112 특히 러너는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여성사 석사과정을 주도하면서 학문과 실천을 강조한 다양한 활동을 이끌었다. 러너는 초창기 가장 흥미로웠던
활동으로
‘여성이
조직하는
여성’(Women
Organizing
Women)이라는 교육과정을 들었다. 대학 본부가 대학은 조직하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며 반대를 해서 교육과정 이름을 “여성의 커뮤니티 활동”(Women in Community Activities)으로 바꾸게 되었지만, 이름과 관계없이 12 번의 모집에서 100 명이 넘는 지원자가 있었다. 이 과정은 3 년간만 지속될 수 있었으나, 학부생과 평생교육원(CCE)생, 커뮤니티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10 학점의 세미나가 열려 다양한 활동가들의 참여로 모두가 유익한 배움을 얻었다고 한다. 러너는 자신의 모든 수업에 커뮤니티 활동을 연계하도록 했으며, 그 활동들 중에는 초등학교 여성사 수업 개발과 AT&T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노동자의 역사’ 강의, 브론스빌(Bronxville) 고등학교에서의 ‘여성의 관점’(Perspectives on Women) 강의 등이 있었다.113 또한 많은 컨퍼런스가 열려 여성주의 학자들과 커뮤니티와의 교류와 친목이 이루어졌다. 1975 년 3 월에는 “여성사 연구를 위한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s for Studying Women’s History)이라는 주제로 가부장적 틀을 탈피하기 위한 다양한 관점이 280 여명의 참여자들간에
교류되었다.
1977
년
“가사,
주부의
역할
그리고
육아분담의 미래”(The Future of Housework, the Role of the Housewife, and Sharing Arrangements for Child Care)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는 인종과 민족, 계급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사회의 주요 문제를 위해
112
Gerda Lerner, Fireweed, pp. 371-372.
113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58.
62
이론과 실천을 병행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다. 러너는 당시 여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친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의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로 인해 가정주부의 역할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잘못된 태도가 확산되었다고 생각했고, 젊은 여성들이 주부와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러너는 자신의 저서 『여성의 경험』에서 다룬 가사일에 대한 이론적 고찰이 당시 여성운동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었는데, 이 컨퍼런스를 통해 처음 다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114 이 컨퍼런스에서 러너는 산업화로 인해 여성의 가정에서의 역할에 변화가 왔음을 언급하며, 여성의 가정일이 남성의 경제활동과 비교해 하찮게 여겨지게 된 이유를 역사적으로 설명했다. 산업화 전에는 남성과 여성이 가정과 농장 등에서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일하며 존중했으나 산업화는 여성이 가정에서 하던 생활필수품의 제작과, 교육, 복지, 건강과 관련된 자부심을 주는 일들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또한 70 년대 자료에 의하면 당시 미국 여성들은 주당 105 시간 가정일을 했으며, 이러한 무보수의 가정일의 혜택을 보는 것은 단순히 남성이 아니라 그 남편의
고용주라고
주장했다.
고용주는
자신의
고용자가
가정에서
이러한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지 못할 경우 이러한 지원을 해주어야 하므로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을
착취하고
있다는
마르크스주의 여성주의자인 메리 인맨(Mary Inman)의 주장에 동의했다. 한편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 사상 혹은 종교 등에 입각한 여러 노력이 있어왔음을 보여준 후, 스웨덴과 쿠바의 가정일에 대한 인식 전환을 예로 들며 중요한 것은 새로운 커뮤니티의 형성과 전체적인 제도의 변화라고 주장했다.115
114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59, 60-61.
115
Just a Housewife in Gerda Lerner, The Majority Finds its Past, 2nd ed.
63
무엇보다도
전국적으로
여성사를
확산시킨
계기는
여성사
여름
인스티튜트(Summer Institute in Women’s History)일 것이다. 1976 년 고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는 43 명의 교사가 참여하여 강의과 세미나, 워크샵,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등학생 수준의 참고문헌과 함께 9 개의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참가한 교사 중 5 명이 여성사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미국역사학회(AHA)의 여성지위위원회는 이 프로그램을 모델로 하여 스탠포드(Stanford), 노스케롤라이나(North Carolina),
미네소타(Minnesota),
럿거스(Rutgers)
대학교에
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 결과 수백명의 고등학교 교사들이 여성사를 교과과정에 반영하게 되었다.116 1979 년 진행된 여성조직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여성사 여름 인스티튜트는 여성활동연합(Women’s Action Alliance)의 총감독인 루스 아브람(Ruth Abram)의 제안으로 열렸는데, 아브람은 다양한 교육수준과 인종·민족·계층·문화적으로 다른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에게 인식과 태도
가치를
변화시킬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다.
참여한 43
명의
여성들과 교수들 - 러너(Gerda Lerner), 케슬러 해리스(Alice KesslerHarris), 스워들로우(Amy Swerdlow) - 그리고 6 명의 대학원생들은 캠퍼스에서 15 일을 함께 지내며, 한 학기 세미나 분량의 과업을 수행했다. 미국 여성사와 관련된 3 가지 주제 중 하나를 정한 후, 소그룹으로
나뉜
학생들은
읽기
자료를
읽고
짥은
글을
쓰며,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발표가 있었다. 러너는 인스티튜트가 끝날 무렵 더 큰 그룹 프로젝트를 장려했을 때, 한 그룹이 전국적으로 여성사 주간을
기념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정했다고
하자
너무
웅장한
프로젝트를 정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 되었고, 대통령의
116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60.
64
승인을 받아 지속적으로 여성사 주간이 기념되고 이는 후에 여성사의 달로 미국에서 가장 큰 풀뿌리 역사운동이 되었다.117 여성사
주간
프로젝트를
주도한
맥그레거(Molly
Murphy
MacGregor)는 고등학교 교사로서 수업시간에 여성운동에 대해 묻는 학생에게 대답해 주지 못한 일을 계기로 미국 여성의 역사를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고, 러너의 저서들을 읽으며 답을 찾아 갔다. 이전에 지역적으로 여성사 주간을 기념한 경험이 있었던 맥그레거는 이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바람으로 여성사 여름 인스티튜트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고,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March 8)을 중심으로 여성사 주간을 기획했다. 1980 년 2 월, 카터(Jimmy Carter) 대통령의 초청과 선언으로 1980 년 3 월 2-8 일이 첫 여성사 주간이 되었으며,
러너가
고문이
되어준
전국
여성사
프로젝트(National
Women’s History Project: NWHP)는 교사와 사서, 커뮤니티 조직가 등을 위해 여성사 교과과정과 미디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118 1980 년 여성사 박사과정을 설립하기 위해 위스콘신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으로 옮긴 러너는 정치학과 교수이자 위스콘신 주 여성 지위 위원회(Wisconsin Governor's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회장, 전국여성협회(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NOW) 창립자 겸 첫 회장인 케스린 클라랜베시(Kathryn Clarenbach)를 만난다. 러너는 클라랜베시를 비롯한 미국 중서부 위스콘신의 현대 여성운동의 근간을 이룬 인물들을 알게 되었고, 당시 미디어 보도가 시카고와 동서부의 해안을 중심으로 한 젊은 대학생들과 백인 중산층이 현대 여성운동의 주역이라고 소개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117 118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65-67. M. M. MacGregor, “Gerda Lerner-Inspiration-Counselor-Friend,” Journal of
Women's History 26, no. 1 (2014), pp. 17-19.
65
러너는 1920 년대와 1960 년대의 여성운동을 잇는 1950 년대 중서부 현대 여성운동의 지도자들은 주로 40 대였으며, 흑인과 수녀 등도 포함되어있었고, 노동자 계층과 자녀를 둔 주부들이 많았음을 강조한다. 러너는 이들을 역사화하기 위해 구술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1989 년 3 년간의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는 처음 24 명을 인터뷰하고자 했으나 자금지원 문제로 1 년의 기간이 유예되고 그 사이 2 명의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다. 22 명의 구술자 자료는 위스콘신역사협회(Wisconsin Historical
Society)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러한
러너의
프로젝트와 더불어 위스콘신의 여성들의 역사를 디지털화 한 “역사를 만든 위스콘신 여성들”(Wisconsin Women Making History) 웹사이트가 만들어졌다.119 러너는 이들을 “다리를 놓은 자들”(bridge-builders)이라 했다. 이들 중 10 명은 대통령 혹은 주 소속의 여성지위 위원회(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 회원이었고, 이들 모두는 지역사회에서 풀뿌리 조직원으로서
활동했다.
전국여성협회(NOW)의
이들
중
창립자들
9
명은
이었다.
1966
년
창립된
전국여성협회(NOW)는
이전보다 더 급진적인 요구를 했는데, 남성의 육아 책임과 낙태권, 레즈비언의 시민권 증진과 같은 문화적인 변화를 요구했다.120 러너는 이 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현대 여성운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119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 85; "Documenting the Midwestern Origins of the Twentieth-Century Women's Movement, 1987-1992,” Wisconsin Historical Society, Library-Archives Division. http://digital.library.wisc.edu/1711.dl/wiarchives.uw-whs-mss00823; "Their Stories. our Legacy,” Wisconsin Women Making History. http://womeninwisconsin.org/; Gerda Lerner, "Midwestern Leaders of the Modern Women’s Movement: An Oral History Project,” The State of Wisconsin Collection. http://digicoll.library.wisc.edu/cgibin/WI/WI-idx?type=HTML&rgn=div1&byte=1778372051 120
Gerda Lerner, Living with History / Making Social Change, pp. 98-99; “Founding,"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http://now.org/about/history/founding-2/
66
잡았을 뿐 아니라, 이를 위해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온 여성들의 업적을
드러냈다.
이들은
어머니로서
노동자로서
삶의
현장에서
투쟁했으며, 계층과 인종을 넘어 여성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 인물들로 이들의 이야기는 많은 여성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67
III. 결론
오늘날 역사를 서술하는 목적은 역사가 처음 쓰여지기 시작할 때와 상당히 달라졌다. 오늘날의 역사 서술은 소수의 엘리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성별과 계급과 인종에 따라 전문역사가로서 훈련 받을 자격을 제한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을 기술할
수는
없기에
인류가
마땅히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들은
역사가들에 의해 신중히 선택되어야 한다. 거다 러너는 이러한 균형 잡힌 전체사를 지향하며 2000 여년 간 남성 엘리트에 의해 쓰여진 역사 속에 여성을 포함시키기 위해 여성의 경험과 관점을 중심으로 여성사가 쓰여져야 함을 학문과 삶의 영역에서 일생의 소명으로 실천하였다. 유대인이자 사회주의자로서 20 세기의 비극들을 목도한 러너는 역사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인식했고, 인종차별과 전쟁, 제국주의, 빈곤, 종교적 편협성 등에 반대하며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면서 가장 큰 적으로 가부장제를 상정하기에 이른다. 러너는 한편으로는 가부장제를 물리치는 무기로서 여성사를 증진시키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 속의 여성에
대한
일반이론(general
theory)을
정립하고자
『가부장제의
창조』와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러너는 마르크스주의(Marxism) 분석을 주요 골자로 하되 계급 중심의 한계를 넘어 인종과 민족, 젠더문제를 포함한 여성주의적 이론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러너는
여성주의는
태도와
관습을
평화적으로
변혁하는
것으로 150 년간 역사 속에서 그렇게 해온 실재적인 힘과 가능성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68
러너는 이러한 여성사의 이론과 여성주의적 전망을 제시하기까지 사회와 학계 두 영역에서 분명한 전략을 세우고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러너는 20 여 년간 가정주부로의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글을 쓰고 지역사회의 모임을 조직해 사회변화를 위해 활동했고, 40 이 넘은 나이에 학문의 길을 가면서 여성사를 전문분야로 확립하기 위한 명확한 계획을 세워
실천하였다.
전체사로서의
여성사
확립을
학문적
소명으로
인식하고 은퇴하기까지 주어진 20 년의 기간 동안 실질적인 조사와 저술, 사료의 존재 입증, 전문가로서의 여성의 지위 향상, 여성사에 대한 학생 수요 입증 및 교과과정과 대학원과정의 설계라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여성사 연구 초기의 10 여년 간은 남성중심적 역사서술에 대한 보완과 함께 여성사의 이론 정립을 위해 끊임 없는 고민을 했다. 특히 「숙녀와 방적여공」을 통해 다른 계급의 여성들이 어떻게 역사를 다르게, 때로는 정반대로 경험하는지를 보여주어 당시 미국사회의 중요한 사안이었던 민주주의와 여성주의에 대해 역사적 관점과 계급적 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1974 년에는 보완적 역사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전통적인 시대구분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과 여성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역사기술을 하게 된다. 당시 여성사학자들은 이러한 러너의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바탕으로 여성사의 시대구분에 있어 기존의 세계사의 시대구분의 중요한 사건들과 여성에게 있어 중요한 사건들은 다름을 명확히 함과 동시에 가부장적 성 역할의 정의에 따라 구분되었던 남성들의 공적인 일과 여성들의 사적인 일이라는 구분선을 허물어 가게 되었다. 러너의 인종에 대한 관심은 『백인 미국에서의 흑인여성』이라는 사료집 출간으로 이어져 인종적·성적 차별이라는 이중적인 억압을 겪는 흑인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했으며, 이들은 단순히 희생자와
69
무력한 피해자가 아닌 그들의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도덕적·영적
기여를
했음을
보여줌으로써
흑인
여성사를
개척하였다. 이렇듯 러너는 삶의 경험과 학문적 연구를 통해 차이를 다루는 개념을 정립했다. 러너에 의하면 차별의 다양한 체계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젠더와
계급,
인종은
독립된
범주들이
아니라,
계서제와
지배체제의 서로 다른 측면으로 기원과 기능 모두에서 서로 의존하고 상호관계를 맺고 있어 분리할 수 없다. 러너는 여성의 성적 능력과 생식 능력의 상품화는 사유재산을 창조하는 주요한 원천들 가운데 하나로 계급은 그런 사유재산에 기초를 두고 형성되었다는 것과 계급은 젠더화 된 결혼 협정과 상속 관행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었다는 것, 계급은 남녀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야 하며 계급이 말해주는 것은 성, 인종, 민족,
생애주기의
단계에
따라
다른
다층적인
위치와
관계,
경험들이라고 강조한다. 한편 러너는 이론과 실천의 병행을 강조함으로 학계와 커뮤니티, 미국 전역에
여성의
지위와
여성사의
확산을
이루었다.
먼저
여성역사학자지위향상위원회(CCWHP)를 통해 여성 역사전문가의 고용 장려 및 전체적인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전문가집단 내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반대했으며, 여성사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장려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었다. 사라 로렌스 대학의 여성사 석사과정을 주도하면서는 수업과 워크샵, 컨퍼런스를 통해 가부장제를 탈피하기 위한 연구와 활동이 있었다. 특히 여성사 여름 인스티튜트에서는 고등학교 교사들과 커리큘럼을
만들며
미국역사학회(AHA)의
여성지위위원회를
통한
확산으로 수 백 명의 고등학교 교사들이 여성사를 교과과정에 반영하게 되었고, 여성조직의 리더들을 대상으로 열었을 때는 참여 그룹의 여성사 주간 기념 프로젝트를 통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지속적으로 여성사 주간 - 후에 여성사의 달 - 이 기념되기에 이르렀다.
70
러너의 목표와 비전에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방어하기보다 그저 묵묵히 목표를 향해 감으로 결과물로서 그들에게 답하고자 했다. 또한 러너의 여성사 일반이론(general theory)에 대해 전통적인 역사가들 의 비난도 있었지만 러너는 여성주의의 평화적 변혁을 통한 유토피아적인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론을 고수했다. 러너는 ‘차이’를 ‘지배’로 정당화하는 가부장적인 태도와 관습을 여성주의를 통해 평화적으로 변혁하고자 하였다. 러너의 학문과 삶에 대한 헌신과 열정은 인류의 역사가 전체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나아가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평등하게 인식하고 공평한 제도가 정립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성사 확립이 필수적 이라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71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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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Gerda Lerner’s Strategy for a Holistic History
Sewon Ahn Department of History and Culture The Graduate School Sookyung Women’s University
According to the listings of US history faculty in the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AHA)’s Directory, among eleven of topical fields grew in the past 40 years, the growth of women and gender specializations were up 797 percent. It means that there had been an exceptional effort of this field’s pioneers. Especially, Gerda Lerner was a pioneer in the field of women’s history. She founded the first graduate program in Women’s History at Sarah Lawrence and created the Ph.D. program in Women’s History at the University of Wisconsin. This thesis provides a life story of Gerda Lerner who had strived to write a holistic history and her strategy through her wri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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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her colleagues’ records. As a Jew and a socialist, she experienced the tragedy of 20th century. She was concerned about racism, war, imperialism, poverty, and religious intolerance. But starting sometime in the 1940s, patriarchy became her chief enemy, and her weapon of choice was Women’s History. At age forty-six, Lerner figured she had twenty years in the profession ahead of her. She reasoned she would have to have an impact on the academic world in a number of ways in order to make Women’s History accepted: by actual research and writing, by proving the existence of sources, by upgrading the status of women in the profession, and by proving that there existed student demand in this subject and moving from there to designing courses and graduate programs. Lerner had no illusion that she could change the world simply by writing and teaching. She was an organizer with a very keen sense of strategy. During two decades as a mother, housewife, writer, and community organizer, she gained much practical wisdom that would later influence her academic practice and thought. Lerner asserted that the academic system, built as it was on patriarchal principles, promoted the separation of theory and practice to the detriment of its students and of the community as a whole. She firmly believed that bringing
theory
and
practice
together
was
one
the
biggest
contributions feminists could make in the academy. She established the graduate degree program to immerse students in a combination of historical studies, feminist theory, and gender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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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rner thought that all kinds of groups who have been previously denied the past have reclaimed their human heritage. This development has been and is truly a landmark event in world history. She had asked for the writing of holistic history by developing Women’s History. And it brought a hitherto neglected and forgotten group into historical consciousness, thereby broadening the field of historical scholarship.
Key words: Gerda Lerner, Historian, Holistic History, Women’s History, patriarchy, fem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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