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목상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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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떼 냄새 나는 목자와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교회 인가 2016년 2월 15일 서울대교구 제1판 1쇄 발행 2016년 2월 15일 지은이 · 조민현 신부 발행인 · 채은현 발행처 · 히스웨이(His Way Inc) 등 록 · 2012년 5월 1일 등록 번호 · 제2012-16호 주 소 · 01416 서울시 도봉구 노해로 70길 12, 5-302(창동, 동아A) 전 화 · 010-2262-4501 e-mail: Ihopeter@never.com ⓒ히스웨이, 2016. 정가 10,000원 ISBN 978-89-969071-6-9 03230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에 관한 사목 단상

양 상

떼 냄새 나는

자와

처받고 더러워진

조민현 신부 지음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3



차례 책을 펴내며 |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네 _13 본문 읽기에 앞서 _16

1.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의 가슴과 삶은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 찬다(8항). _19 2. 복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141-143항) _21 3. 그런데 왜 부활은 없고 사순절만 있는 듯 인상 쓰고 살아가느냐?(6항) _23 4.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20-21항). _26 5. 복음화 일꾼들은 장례 미사에서 막 돌아온 듯 슬프고 불행한 듯 보이 면 결코 안 된다(14항). _29 6. 목자에게는 양 떼의 냄새가 나야 한다(24항). _31 7. 무사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대담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목표와 구조, 양식과 방법을 다시 생각하여라(33항). _33 8. 로마의 주교로서 나부터 먼저 겸손하고 충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 침을 실천하겠다(32항). _36 9. 자기만을 생각하고 혼자 서 있는 교회보다 길거리에 나가 상처 나고 더 러워진 교회가 낫다(49항). _38 10. 교회는 돈을 걷어 내는 관세청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고통받고 힘든 이 들의 안식처인 아버지의 집이다(46-47항). _40 11. 지나친 중앙 집권은 교회의 삶과 복음화에 오히려 해가 된다(16항). _42


12. 복음화 활동은 본당의 시스템이 아니라 사제들과 공동체가 얼마나 융 통성 있게 창조적으로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27-28항). _44 13. 가장 아름다운 법은 바로 사랑과 자비이다(39항). _46 14. 다양성은 혼란을 일으키는 듯하지만 오히려 복음의 샘솟는 생명력의 다양한 요소를 드러내고 발전시키는 요소가 된다(40-42항). _48 15. 고해소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는 곳이지 고문실이 아니다(44항). _50 16.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자 오셨다는 사실을 잊고 교회 법령 으로 신자들의 삶에 짐을 지우고 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43항). _52 17.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복음 선포의 가장 첫 번째 대상이며, 가난한 이들에 게 복음이 선포됨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표징이다(48항). _54 18. 집 없는 노인이 길거리에서 죽은 것보다 월스트리트 주식이 2%포인트 떨어진 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53-60항). _56 19. 가난한 이와 나누지 않는 것은 가난한 이에게서 훔치는 것이다(54항). _59 20.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사회 구조적인 악도 부패와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는다(60-70항). _61 21. 결혼은 사랑이라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배우자들이 서로 자신의 전 삶의 일치를 약속하며 행하는 심오한 헌신이다(71-72항). _63 22. 복음을 전달하려면 먼저 문화를 복음화해야 한다(73-74항). _65 23. 복음의 실천은 바로 우리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한 다(74-75항). _68 6 양목상교


24. 교황인 나도 기쁘게 자신의 삶과 인생을 바치는 이들을 보면서 더 노력 하게 된다(76항). _70 25. 교회의 일꾼들이 기도하지만 지나친 개인주의와 정체성의 혼란으로 복 음화의 열정을 잃어 가고 있다(85항). _72 26.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서 마치 안 계신 것처럼 복음을 마치 모르는 사 람처럼, 가난한 이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자기만 생각하며 살아간다 (80항). _74 27. 교회가 무덤 안의 미이라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박물관에 소장된 골동품 같이 되어 간다(83항). _77 28. 하느님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살려는 것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의 뿌리 조차 부인하고 그리스도교를 모든 공적 장소에서 부인하면서 인간의 삶은 메마른 사막으로 변한다(86항). _80 29. 육화는 얼굴을 갖고 있는 구체적인 만남이고 관계이다. 곧 어디로 도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관계 형성이다(87-89항). _82 30 하느님과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자신의 이익을 먼 저 챙기는 이기적인 행위들이 교회 안에 만연해 있다(93-95항). _84 31. 육화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보이지 않 고, 내부적으로 폐쇄된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교회 안에 형성되었다. 복음에 대한 열정도 없고, 알맹이 내용도 없고, 텅 비고, 즐거움이나 태만함, 자기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95항). _87 차례 7


32. 이웃을 섬기라고 부르시는 하느님께 스스로 투신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분리 고립되는 것은 하 느님 안에 있을 수가 없다(90-91항). _90 33. 자신의 이익이나 당면한 현실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자신의 죄도 못 깨닫고 남을 진정으로 용서하지도 못한다. 바로 이것이 선을 가장 한 가장 무서운 교회의 부패이다(97항). _92 34. 세상이 갈라지고 찢어지고 자신만의 이익과 안위를 추구할 때 그리스 도인들이 사랑이 넘치는 형제적 공동체를 건설한다면 얼마나 빛나며 매력적인 증거자들이 될까(98-99항). _94 35. 교회 안의 적대감, 분열, 비방, 인신공격, 질투들은 보기에 참으로 괴로 운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여라(100-101항). _96 36. 교회 안에서 어느 특정한 이를 다른 이의 위에 놓는 차별적인 우월성을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의 가장 큰 존엄성은 모든 이가 받은 세례에서 나온다(103-104항). _98 37. 성직주의가 지나치게 강하면 평신도들이 설 자리가 없다(102-103항). _100 38. 아무리 성소가 없을지라도 사제 후보자들을 선출하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권력과 인간의 영광, 경제적인 보장, 또는 자신감의 결 핍 같은 이유로 사제직을 지망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107항). _102 39. 은총이 무엇보다 앞선다.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부르심 이 먼저 있었고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 8 양목상교


야 한다(112항). _104 40.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도 세상 곳곳의 사회 와 문화와 공동체 안에 강생해야 한다(115-117항). _106 41. 모든 민족과 문화의 사람들을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문화적으로 형성된 유럽의 전통에 맞추라고 강요할 수 없다(118항). _109 42. 모든 이는 세례를 통해 성령의 힘으로 복음화를 위해 불리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세례받은 모든 이의 투신이 필요하다(120항). _112 43. 기도에서 성령을 부르는 첫 단계는 성경 구절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구절의 의미를 찾고 이해하는 것이 진리에 대한 공경 행위이다(146항). _114 44. 신자들은 진정성에 목말라하며 말씀을 전하는 이가 자신이 이미 알 고 개인적으로 친근한 하느님을 나누어 주길 바란다(149항). _116 45. 말씀으로 충분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목자들은 한마디로 “거짓 예언 자이며 사기꾼이며 얄팍한 광대”일 따름이다(150항). _118 46. “주님, 이 성경 구절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이 성경 구절로 내 삶을 어떻게 바꾸길 바라시나요?”(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151항) _121 47. 복음화는 자신의 삶 안에 하느님의 계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내적 성장의 과정이다(160항). _123 48. 모든 순간과 모든 관계에서 가장 먼저 몇 번이고 거듭 선포되어야 할 차례 9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164항). _125 49. 잘 듣는 것은 예술이다(171항). _127 50. 성경이야말로 복음화 활동의 원천이다. 그리고 교회가 먼저 복음화되지 않으면 세상의 복음화에 나설 수 없다(174항). _128 51. 성경 공부는 모든 신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복음화는 하느님 말씀과 친밀함을 전제로 한다(154항). _130 52.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비이다. 형제자매들이 바로 하느 님 강생의 연장선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사랑이다(179항)._132 53. 합리적인 시민 의식과 정치 생활의 참여는 윤리적 책임이다(220항). _134 54. 옛날에는 좋았는데 지금이 어렵다고 하지 마라! 오히려 우리를 앞서가 며 그 시대의 어려움에 맞서 싸운 성인들에게서 배워라(263항). _137 55. 가장 깊은 목마름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된다(265항). _139 56. 예수님께서 우리 삶 모든 것의 중심이 되셔야 한다(264항). _141 57. 우리 자신의 적합성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의 작은 한계나 소망을 떠나 우리의 이해와 동기를 뛰어넘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267항). _142 58.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272항). _144 59.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빛을 밝혀 주고 복을 빌 어 주고 활기를 부어 주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여 해방시키기 위해 서입니다(274항). _146 10 양목상교


60.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핑계로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메 시지인 복음을 묻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276항). _149 61. 인간 생명은 거룩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생명 발달의 어느 단계에서도 침해될 수 없다(낙태)(213항). _151 62.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행동은 하나도 헛되지 않다(279항). _153 63.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 습니다(280항). _155 64. 자기만 생각 말고 다른 이를 위한 자리도 마련해 보자.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셔야 한다(281항). _157 65. 끊임없이 감사합시다(282항). _159 66. 간절한 전구는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283항). _161 67. 성모님께서는 복음화하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다(285항). _163 68. 마리아께서는 믿음으로 사시고 믿음으로 걸어가신 믿음의 여인이십니 다(286항). _165 69. 마리아 방정식은 곧 사랑의 혁명이다(288항). _167 70.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_169

차례 11



책을 펴내며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은 꼭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지금까지 사제

로 살아오면서 내가 겪은 일들, 나의 십자가, 사제직의 위기, 영적 시련 등 모든 것에서 꼭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 같았다. 또한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가 내가 맡고 있는 교회를 두고 하시는 말씀만 같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사목자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아실까? 우리 의 유혹과 시련 도전 현실을 이렇게도 잘 아실까? 교황 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목자이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너무도 잘 아신다는 생각이 든다. 교황님은 교회 내 행 정가로서 또는 신학교 교수로서 계시기보다 날마다 우 리처럼 신자들과 함께 웃고 울며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 과 부대끼며 살아가시는 사목자이시기에 그러하신 듯 하여 더욱 고맙다. 「복음의 기쁨」을 읽으면서 마음이 다시 꿈틀거림을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3


느꼈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따뜻해지고 복음에 목 숨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을 전하고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 겠다는 생각과 함께 마침내 사명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뉴욕 가톨릭방송의 라디오와 인터넷 텔레비전으로 일 년 가까이 「복음의 기쁨」에 대하여 나누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겠다고 신 학교에 들어가 지금까지 넘어지고 일어나고 또 쓰러지 고 다시 일어나며 예수님 바라기로 열심히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내 마음은 차가워지고 무엇 하나 들어올 수 없는 돌처럼 딱딱해져 기쁨과 슬픔에 무디어 있었다. 순수함을 잃어버렸다.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가 슴과 삶이 기쁨으로 넘쳐나야 하는데, 복음이 바로 기 쁜 소식이어야 하는데, 나는 어느새 인상을 쓰고 다녔 고 신자들 앞에서는 겸손을 몰랐으며, 나아가 사제직이 짐이 되었고 복음이 기쁘지 않았다. 복음화를 위하여 살아가는 교회는 그 스스로 기 쁨이 가득 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 경쟁심, 시기와 질투, 미움이 도사리고 있을 때, 또 물질 소비주의로 돈이 삶의 큰 자리를 차지 1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할 때, 그 누구도 이웃을 생각하기 힘들게 될 때, 빛으 로서 제구실을 할 수 없다. 특히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병들고, 약한 이들은 보이지도 않게 된다. 나아가 하느 님 목소리는 저만치 멀어지고, 말씀에 잔잔한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늘 불안해하며 화나 있고, 분노를 조절 하지 못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인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새롭게 만나야 한다. 날마다 매순간 삶 속에서 그분을 만나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 나 우리가 주님을 향하는 모험을 택한다면 주님은 우리 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이 글을 통하여 모든 이가 다시 설레었으면 좋겠다. 「복음의 기쁨」이 모든 이에게 하신 말씀이시기에.

2015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뉴저지 성마이클 성당 사제관에서 조민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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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읽기에 앞서

이 책을 읽기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복 음의 기쁨」을 읽기 바란다. 이 책의 모든 것은 거기 서 나왔기 때문이며, 한편으로 저자가 「복음의 기쁨」 을 잘못 이해하거나 드러내야 할 부분을 제대로 드러 내지 못하고 그럼으로써 교황님 뜻을 옳게 전하지 못 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의 기쁨」 한국어판은 한 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2013년에 발행하였으며, 한 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http://www.cbck.or.kr)에 전문 이 실려 있다. 「복음의 기쁨」을 몇 쪽 읽고서 저자는 그 책에 흠뻑 빠져 버렸다. 한마디로 그분과 생각의 지점이 맞는 것을 느끼며 교황님 말씀에 깊이 감동하였다. 그래서 저자로 서 이 책을 썼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복음의 기쁨」에서 그대로 따왔으며, 저자인 내가 이해하는 교황님의 의도 를 중간 중간 부연 설명하는 형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한편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을 모두 1항에서 288항 으로 나누어 쓰셨다. 1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저자는 교황님의 모든 말씀이 사랑과 자비에서 나 오고, 또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믿으며 모든 것이 사랑 임을 스스로 깨달음으로써 이 글들을 써 내려 갔다. 교 황님의 생각은 혁명적이다. 어떤 면에서 교황님은 참으 로 혁신적이시고 진보적이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교 회에 분열과 어려움이 닥칠까 두렵기도 하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교황님을 통하여 일을 이루고 계심을 믿는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분이심을 믿는다. 이 책에 저자의 편견과 오류가 담겨 있음을 인정한 다. 「복음의 기쁨」의 많은 내용들이 신학적으로 매우 민 감하며, 따라서 어떻게 읽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현실적 파장이 클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저자는 「복음의 기쁨」이 나온 지 일 년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 이 책에 관하여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사목자 로서 책임을 느꼈고, 그래서 책을 쓰기로 작정을 하였 다. 그러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저자가 이해하고 바라는 대로 적고 편집하였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이에 저자의 해석과 부연 설명과 편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도 꽤 있으리라 짐작한다. 그래서 「복음의 기쁨」으로 다시 돌 아가 교황님의 뜻을 늘 되물어 보기를 거듭 당부한다.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7


「복음의 기쁨」의 인용이 대부분 저자의 번역임을 밝힌다. 처음에 영어로 보다가 나중에 한국말 번역본이 나온 것을 알고, 끝마무리는 한국말의 책으로 하였다. 비록 번역에서 한국말 번역과 비교될 수 있을지라도, 교황님 마음을 읽었기에 그대로 만족스럽고 뿌듯하다. 이 책을 통하여 모든 이가 교황님의 마음을 만나기 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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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의 가슴과 삶은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 찬다(8항)1.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앎 은 올바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식이 늘고 논리적 으로 설명할 수 있어 교리교사도 하고 성경 공부도 잘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할지라도 진정 그분을 만나 체험하 지 않으면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수가 없게 된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이의 가슴과 삶은 복음의 기쁨 으로 가득 찬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 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죄와 슬픔, 무의미와 외로움에

1.  이하 항 번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2013.11.24., 『사도좌 관보』(Acta Apostolicae Sedis: AAS), 105(2013)〕의 항 번호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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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자유로워지며,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이 끊임없이 새 롭게 샘솟는다. 「복음의 기쁨」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게 미래를 향한 교회의 새로운 여정을 이 같은 기쁨이 넘쳐나는 복음화로 나아가자고 재촉하고 있다. 오늘날 소비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 살다 보면 지금의 삶에 만족하기보다 자꾸만 더 가지려 하고, 순간의 쾌락을 좇으며, 점점 더 편한 것만을 찾아 나태해지게 되고, 이에 따라 양심은 무뎌지며 영혼은 점차 메말라가게 된다. 이처럼 내적 관심이 모두 자신과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빠져 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남을 위한, 특히 가난한 이웃을 위한 마음을 쓸 수가 없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그분의 사랑을 느낄 때 넘쳐나는 잔잔한 기쁨도 사라지고 선한 일을 하겠다는 아무런 의지도 생기지 않는다. 불만과 심통 만 남아 날마다 불평만 가득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높은 이상이나 윤리적인 결정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구 체적인 사건이다. 이러한 만남으로, 비좁기만 한 우리 자신을 넘어 하느님 안에서 사랑으로 우리 자신이 변하 게 된다. 〠 2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2 복음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가?(141-143항)

복음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 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끌리고 있는 것을 깨 닫게 된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예 수님께서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시는 것을 즐기셨고, 그 들을 기쁘게 받아들이셨으며, 마음으로 통교하셨기 때 문이라 생각한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도 예수님과 같은 기쁨으로 만 나는 이들과 기꺼이 대화하고, 그들을 진심으로 받아 들이며, 마음으로 통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화는 진리의 선교 그 이상이다. 이는 말로써 자신의 사랑을 서로 표현하며 성장과 내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 다. 내적인 성장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안에서 이루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21


어진다. 윤리적인 가르침이나 교리 또는 성경 주석의 강 의는 일방적인 설교이지 가슴과 가슴이 만나는 대화가 될 수 없다(로마 10,17 참조). 신앙은 들음에서 일어나고 우리가 듣는 것은 그리 스도께서 선포하신 복음이다. 우리가 선포하는 진리는 아름다움과 선함과 함께 이루어진다. 난해하거나 차가 운 논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용하신 비유처럼 쉬우면 서도 너그럽고 온화함으로 이끌어야 한다. 마리아께서 하느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셨듯이, 신자들의 마음에도 하느님의 말씀 과 사랑이 깊숙이 파고들어 마침내 넘쳐나야 한다. 사 랑의 기쁨과 희망이 가슴에 넘쳐날 때 성경 말씀이 선 물로 느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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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런데 왜 부활은 없고 사순절만 있는 듯 인상 쓰고 살아가느냐?(6항)

몇 해 전, 뉴저지 지역의 ‘청년 성령 운동’에서 주최 하는 성령 미사에 여러 신부님들과 함께 참여한 적이 있 다. 청년들의 성령 기도회답게 미사는 청년 성가로 신나 고 힘차게 시작되었고 진행되었다. 그런데 미사가 끝나고 나서 한 청년이 나에게 말하였다. “다들 기뻐서 박수치고 신나하는데 입장하는 신부님들은 어쩐 일인지 인상이 굳 고 기쁜 일 하나 없는 듯 들어오셨어요.” 그 순간 한 방 크 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복음이 참으로 기쁜가? 예수님이 좋아 죽겠는가? 이사야의 하느님 구원에 대한 기대와 기쁨, 즈카르야 예언자의 설렘이 있는가? 시온아 예루살렘아, 기뻐 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23


뛰어라. 기쁨이 넘쳐날 때, 하느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 시고 전사가 승리하고 큰소리로 노래 부르고 잔치를 벌 일 때처럼 기쁨이 넘쳐나는 것이다(이사 40,9 참조).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첫마디도 기뻐하라는 것이 고, 마리아의 응답도 자신의 영혼이 기뻐 뛰논다고 했 다.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보고 자신의 기 쁨이 완성되었고(요한 3,21 참조), 예수님께서도 성령 안 에서 기뻐하신다고 했다(루카 10,21 참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당신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 기쁨이 완전해지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15,11 참 조). 제자들에게도 지금은 슬프겠지만 그 슬픔이 곧 기

쁨으로 바뀔 것이며(요한 16,20 참조), 아무도 그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고(요한 16,22 참조), 제자들이 기뻐 날 뛰리라고 하셨다(요한 20,20 참조). 복음은 말 그대로 온통 기쁜 소식인데, 우리는 왜 부활이 없고 사순절만 있는 것처럼 오만상을 찌푸리며 힘든 듯 살아가는 걸까? 그러나 가만히 나 자신을 들 여다보면 욕심이 인상의 주름을 만들고 있다. 마음속 온갖 바람들이 맞아 떨어질 때 겨우 얼굴을 펴고 웃으 며 기뻐한다. 그 전에는 불만이 가득하여 좀처럼 웃지 2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못한다. 왜 마음속에 솟아나는 기쁨이 없는 것일까? 언제 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거운 짐이 되어 있는 것일 까? 그리스도인의 길,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닌가? 〠

자비의 희년 (2015.12.8.~ 2016.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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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20-21항).

사목을 하면서 사제나 수도자들이 “안 된다.” “못 한다.” 하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몇 배의 힘과 노력이 들고 또 성공한 다는 보장도 없다. 고생만 하다가 실패하기가 일쑤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의 성공률도 20%가 안 되 는 듯하다. 가만히 되돌아보며 그 까닭을 찾아보니, 일 을 할 때 치밀하게 계획하고 온몸으로 투신해서 어떤 역 경을 뚫고서라고 해내고야 말겠다는 열의와 희생이 부 족하였던 것 같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하면 되지라 며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의 전부를 걸고 일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셨 2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다. 아브라함에게도 새 땅을 향하여 나아가라고 하셨 으며, 모세에게도 “내가 너를 보낸다.”고 하시며 사람 들을 이끌어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셨고, 예레미야 에게도 “내가 너를 보낼 때 가야 한다.”고 하셨으며, 예 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복음을 선포하라고 파견하셨다. 이처럼 교회의 복음화는 언제나 새로운 사건이며 도전 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도록 불리었다. 주님께서 가 리키시는 길을 식별해야 하고, 우리의 편안함과 안락함 을 넘어서 복음의 빛으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비추도록 그분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한다. 복음의 기쁨이 넘치는 예수님 제자들의 공동체는 선교사들의 기쁨의 공동체이다. 72명의 제자들이 기쁨 에 차서 하느님을 찬양했으며, 예수님께서도 성령 안에 기뻐하시며, 가난하고 작은 이들 안에 당신을 드러내신 아버지를 찬양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새롭게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매일 매일 그분을 만나야 한다. “나는 아니겠지.” “나 하고 상관없겠지.” 하며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 안 된다. 일어나 모험을 해야 한다. 하느님은 실망시키시지 않는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27


다. 하느님께 끊임없이 되돌아가야 한다. 그분은 지칠 줄 모르시고 우리를 받아주시니, 우리도 지칠 줄 모르 고 그분께 용서를 청해야 한다. 우리가 순간순간 주님을 향하는 모험을 선택한다 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시지 않는다. 결 코 지치지 않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바로 우 리의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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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복음화 일꾼들은 장례 미사에서 막 돌아온 듯 슬프고 불행한 듯 보이면 결코 안 된다(14항).

기쁨은 번져 나간다. 고립되고 안일한 삶은 시들어 가지만, 내어주는 삶은 성장한다. 위험을 무릅쓰며 삶 을 진정으로 즐기며 나아갈 때 바로 복음의 기쁨이 샘 솟는다. 복음화를 위해 살아가는 이는 장례 미사에서 막 돌아온 듯 인상 쓰며, 슬프고 불행한 듯 보여서는 결 코 안 된다. 눈물로 씨를 뿌리더라도 복음화의 기쁨으 로 즐거워해야 한다. 지치고 좌절하고 불안해하고 조급 해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기쁨을 받아 열정으로 불타 올라야 한다. 무엇보다 복음의 메시지는 언제나 같아야 한다. 다 른 것을 좇으면 안 된다.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29


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 무한한 사랑을 보 여 주셨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복음”(묵시 14,6)이시고,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히브 13,8) 새로움이시고 젊 음이시다. 참된 복음화는 늘 이 같은 새로움이고, 예수님께 서 첫 번째이며 가장 위대한 복음화 일꾼이셨기에 모 든 복음화는 그분을 통해 그분과 일치 협력해 나아가 야 한다. 교회의 삶은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 셨고(1요한 4,19 참조), 그분만이 우리를 성장시키신다는 것(1코린 3,7 참조)을 깨닫는 데 있다. 이러한 깨달음이 아무리 어려워도 힘들어도 기쁨의 정신을 가질 수 있 는 근거가 된다. 예수님의 살아 있는 체험과 역사를 기억해 내는 것 은 성체성사이다. 나눔의 기억들, 예수님께서 깊이 감 동시키신 그때를 결코 잊지 못하며 예수님과 맺은 뜨거 운 체험을 기억하는 이가 바로 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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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목자에게는 양 떼의 냄새가 나야 한다(24항).

복음화는 더 이상 떠밀려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 니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끌려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교회는 교회 안에서 집안 단속과 보 존에만 급급하지 않고 선교적인 사명으로 불타올라 자 꾸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예수님과 일치하여 그분과 공동 운명체로 서 깊은 관계를 맺을 때만 가능할 것이다. 주님에 대한 충성으로 복음을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어느 때나 망 설임 없이 두려움 없이 거리낌 없이 선포하려면 먼저 그 분과 일치해야 한다. 또한 이집트 탈출의 해방과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 의 역사를 기억하고 나누어야 가능할 것이다. 바로 그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31


기억, 곧 사도들이 예수님을 만나 감동한 그때 그 순간 을 잊지 않고 그분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 신앙인은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그때 그 순간을 계속해서 기억해 내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당신 자신 을 내어 놓으셨듯이,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만 나고 함께하는 이들과 일치하여 그들 속에서 예수님을 발 견해야 한다. 그래서 목자에게서는 양 떼의 냄새가 나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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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사 안일한 자세를 버리고 대담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목표와 구조, 양식과 방법을 다시 생각하여라(33항).

어느 기업 경영인이 자신의 사원들에게 아내와 자 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 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세상이 빨리 바뀌고 있고 사람들 의 의식 또한 그에 따라 변하고 있으며, 기술 혁신과 변 화의 속도는 더욱 빠르게 전개되고 있으니 조금만 나태 해도 뒤처지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세계 최고라던 기업들이 어느 순간 뒤쳐지고 도태되기까지 하는 것을 보며 다 바꾸라는 말 을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러한 세상에서 교회는 어떠한가? 적어도 교회는 변화에 아주 느려 보인다. 아니 변화에 부정적이다. 뭐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33


라도 하나 바꾸면 아주 큰 일이 나는 줄 안다. 뭐가 하 나 바뀌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하느님을 크게 거 스르는 줄로 여긴다. 절대 진리, 불변의 계시는 결코 바 뀔 수 없지만 그 불변의 진리를 변화하는 세상과 사람 들에게 전달하는 교회는 바뀌어야 한다. 세상과 신자 들이 상상하지 못할 만큼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변하 고 있는데도 교회는 그 변화를 알아채지도 이해하지 도 못한다. 거룩하고 흠 없는 그리스도의 신비로서 교회 자 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늘 날 세상에서 교회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세상 사람들 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짚 어 보아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집착으로, 무섭 게 도전해 오는 듯한 현실에 스스로 문을 닫고 대화를 거부하며 고립되어 지나치게 전통에 집착하게 된다. 이 러한 교회에 교황님께서는 스스로 열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며 변해 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선교에 대한 선택은 교회의 관습과 관행, 시간들 계획들 언어들 제도들이 더 이상 자기 보존이 아니라, 3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오늘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변모해야 한다는 복음적 인 열정에 근거한다. 사목적인 변화에 따르는 제도의 쇄신은 소명과 일상 사목 활동이 더 열려 있고 더 수용 하고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사목자들을 촉구하는 데 있다. 교회 안의 모든 쇄신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앞 으로 나아가는 데 있지, 교회 자신에 대한 집착의 희생 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2

2.  「복음의 기쁨」, 28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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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로마의 주교로서 나부터 먼저 겸손하고 충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겠다(32항).3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도록 불리었다. 교회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가운데는 “내가 잘못했다.” “내 잘못이오.”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 그럴 듯한 핑계와 어쩔 수 없는 상황 으로 둘러대면서 책임을 회피한다. 그래서 일은 망치고 계획은 엉망이 되었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 는다. 무사안일에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니 복음화 사업 이 잘될 리가 없다.

3.  교황님께서 이러하시니 어느 누구도 열외이고 예외일 수 없다. 나부 터 회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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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를 외 우면서 매번 제 가슴을 치지만, 전례의 한 형식일 뿐 잘 못된 일에서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는 이는 드물어 보인 다. 그런데 교황님께서 당신 먼저 반성하시고 회개하시 겠단다. 정말 그분을 사랑하게 된다. 교황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다른 모든 이에게 쇄신 하고 변화하기를 촉구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교황직의 회개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로마의 주교로서 당신 자 신부터 먼저 겸손하게 듣고 충실하게 예수 그리스도께 서 원하시는 것을 실천하며 복음화의 필요성을 달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우리 신자들의 회개를 그 무엇보다 먼저 요구하였던 교회는 이제부터는 교황직만이 아니라 보 편 교회의 핵심 조직과 구조들의 사목적인 회개를 먼 저 촉구하는 교황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스스로 먼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앞에서 회개는 어느 누구도 예외와 면죄일 수 없다. 교회 지도자부터 먼저 회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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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자기만을 생각하고 혼자 서 있는 교회보다 길거리에 나가 상처 나고 더러워진 교회가 낫다(49항).

교황님께서는 자주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의 사 제들과 평신도들에게 자기 자신을 지키겠다고 자기만 을 생각하고 분리되어 혼자 서 있는 교회보다, 오히려 상처받고 아프고 길거리에서 가난한 이들과 뒹굴며 흙 이 묻고 더러워진 교회가 더 낫다고 강조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교회는 모든 일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며, 교회 안의 질서나 절차에 집착하기보다, 오히려 많은 우 리 형제자매들이 힘도 희망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나 누는 우정과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신앙 공동체의 협 조도 얻지 못하며, 인생의 의미와 목적도 없이 살아가 는 것에 더 집착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3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교황님께서는 또한 교회는 무엇인가 잘못하 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대신에, 자기 울타리 안에 머 무르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규칙만을 따지면 서 가난한 형제들을 법과 율법으로 심하게 판단하 며, 두터운 성직자들의 옷을 입고 자신들은 안전하 다고 하면서 가난한 형제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고 도 그들과 분리되는 것을 가장 큰 위험으로 여겨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그 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하시며, 굶주 린 이들을 돌보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 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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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교회는 돈을 걷어 내는 관세청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고통받고 힘든 이들의 안식처인 아버지의 집이다(46-47항).

교황님께서는 교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교회는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아버지의 집이 라고 불리지 않는가? 언제부터 우리가 단죄만 했는가? 열려 있음의 표시로 우리 교회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 어야 한다. 그래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오는 이는 누구 도 닫힌 문을 보아서는 안 된다. 교회의 다른 문들도 닫히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 든 모든 이가 교회의 삶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이가 공동체의 일원이기에 어떤 이유로도 성사의 문이 닫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성사 생활의 4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문이라고 여겨지는 세례에서 더욱더 그렇다. 특별히 성체성사는 성사 생활에서 가장 충만하지 만, 완벽한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약한 이들의 양식이 며 효능 있는 치료제임을 알아야 한다. 이 같은 믿음 을 가지고 신중하면서도 대담하게 사목을 해 나가야 한 다. 우리 사목자들이 자주 자신을 은총의 중개자로 생 각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오히려 우리는 은총의 협력 자이다. 교회는 세금을 걷어 내는 관세청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문제를 안고 다가오는 이들의 안식처인 바로 아버 지의 집이다.” 정말 큰일이다. 교회의 문을 24시간 열어 놓고 있 어야 할 분위기이다. 그리고 성체성사는 은총 상태에 놓인 영적으로 잘 준비된 이들만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고결한 성사로 믿어 왔는데, 오히려 상처받고 아프고 죄 지어 고통받는 이들에게 강력한 치유제라니. 도대체 성 사의 문을 닫지 말라고 하시면 교황님께서는 무엇을 바 라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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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지나친 중앙 집권은 교회의 삶과 복음화에 오히려 해가 된다(16항).

물이 고이면 썩는다. 물은 흘러야 한다. 샘솟는 물 은 썩지 않고, 새로운 물이 올라와 언제나 맑다.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모든 일에서 자신만 한 사람이 없 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자신이 없으면 어떤 일도 안 되고, 누군가 하다 못한 일마저 꼭 자신이 끝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집착이 생기고 욕 심도 생겨 자꾸만 모든 일을 자신이 다 하려고 한다. 나 또한 인간인지라 본당 신부로서 일하면서 사람들에 게 힘을 실어 주지 못하는 때가 많다. 가만히 돌이켜 보 면 그 속마음에는 잘못된 내 자신의 열등감이 자리 잡 고 있다. 내가 무시당하고 어쩌다 뒤탈을 감당해야 할 4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것 같은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본당 신부로 살아가면 서 반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필요하고 또 은혜로운 일인지 알면서도 잘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을 자신이 다 관 여하고 결정하고 실행해야 하는 줄 안다. 하지만 그것 은 어쩌면 내적인 불안, 자신에 대한 자존감의 부족에 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교황님께서, 우리 교회의 지존이신 교황님께서 먼저 지나친 집중화의 문제점과 해악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당신은 건전한 분권화가 좋 다고 하신다. 귀 기울일 만한 말씀이다. 교황님께서는 지역 교회의 주교들의 자리까지 대신 해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생겨나는 모든 문제를 식별할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건전한 분권화, 중앙 집권 대신 에 분권화를 지향하고 싶다고 하신다. 지나친 권력 집중화는 교회의 삶과 세상 속으로 나 가려는 의지들에 도움보다는 해가 된다. 사목은 함께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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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복음화 활동은 본당의 시스템이 아니라 사제들과 공동체가 얼마나 융통성 있게 창조적으로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27-28항).

미국에 문 닫는 성당이 많다. 엄청난 규모의 아름 다운 교회가 음식점이 되고 찻집이 되어 버린다. 그래 도 그것은 차라리 낫다. 어떤 경우는 아무도 찾는 이 없이 풀만 무성하고 돌 벽에 잡초가 자라 참담하게 무 너져 내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같이 무섭게 변하 는 이 세상에서 중세식 구조의 본당 모습으로 우리 교 회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세상은 무서 운 속도로 그 규모 또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변하고 있는데, 지역 교회의 구조는 몇 백 년 전과 크게 달라 지지 않았다. 4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중세처럼 지역 봉건 영주가 자기 지역을 통제 관할 하는 본당 구조로 오늘날 세상 속에서 복음화의 전진 기지가 될 수 있을까? 지금 같은 세상에서 복음화의 전 진 기지가 되기는커녕 존재 자체가 걱정될 정도다. 그 런데 교황님은 복음화 활동에서 본당의 시스템을 탓하 지 않으신다. 본당 사제와 그 공동체가 얼마나 열려 있 고 융통성 있게 창조적으로 해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구조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것 이다. 교황님은 선교를 최우선의 사명으로 선택해야 한 다는 선교 제일주의의 꿈을 꾸신다. 만약에 본당 공동 체가 스스로 쇄신해 나가고 세상 한가운데서 교회의 삶 이 지속적으로 현실 적응을 해 나간다면 무엇이든지 이 룰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선택된 소수가 자신만이 선택되고 자신만이 옳다 고 하고 자신에게만 도취해 있는 엘리트 교회가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삶에 일치되어 있는 교회 공동체라면 교 회가 바로 그 지역의 복음 선포와 선교의 기지로서 하 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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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가장 아름다운 법은 바로 사랑과 자비이다(39항).

복음이 우리에게 참으로 좋고 무엇과 비교할 수 없 이 가슴 설레는 것이라지만, 다른 이들에게도 그대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복음에 끌리고 빠지려면 복음의 핵심이 제대로 분명히 전달되어야 한다. 무엇이 그 핵심일까? 그것은 하느님 의 구원과 사랑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 하여 드러났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진리의 단계, 다시 말해 진 리에도 급수가 있다고 가르쳤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진 리는 갈라티아서 5장 6절에서 말하는 “사랑으로 행동하 는 믿음”이라고 했다. 곧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새 법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며 성령의 은총이라는 것이 4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다. 가장 아름다운 법은 바로 사랑과 자비라는 것이다. 다른 모든 덕목이 자비를 통해 드러난다. 자비가 빠지 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의 사랑에 응답하고, 다른 형제자매들 안에서 활동하 시는 하느님을 알아보고, 다른 이들의 선함과 아름다 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만약에 쉽게 남을 단죄하면서 잘못만을 열거해 그 들을 두려움에 빠트리거나, 교리나 윤리 신학적인 입장 만을 고집한다면, 자비와 사랑을 담은 복음의 신선함 을 잃을 수 있다. 들을 귀 있는 이들은 들어야 한다. 윤리 규정들이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윤리 덕목 들은 사랑의 응답이어야 한다. 복음 대신 윤리 규정만 선포되고, 특정한 입장만 강조되어 복음의 기본 정신 인 사랑과 자비가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다면 교회의 선 교 노력은 헛되기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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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다양성은 혼란을 일으키는 듯하지만 오히려 복음의 샘솟는 생명력의 다양한 요소를 드러내고 발전시키는 요소가 된다(40-42항).

뉴욕에 나가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다. 브루 클린 교구에서 사용되는 언어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 고 하니 전 세계가 거기에 다 모여 있는 것이다. 그만 큼 삶의 모습도 아주 다양하다. 우리나라의 어디에서 든 줄맞추어 서고 이름 대신 번호 부르고 교복 입고 머 리도 정해진 몇 가지 형태에 맞춰야 하는 것과는 대조 적이다. 교황님께서는 모든 것이 통일되어 모든 이가 똑같 이 지키는, 어떠한 느낌도 없이 일관된 교리를 찾는 이 들을 보면, 다양성은 혼란을 낳고 문제를 일으킬 것 같 4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지만, 이러한 다양성이 복음의 샘솟는 생명력의 다양 한 요소를 드러내고 발전시키는 요소가 된다고 말씀하 신다. 세상이 너무도 빨리 변하기에 늘 새롭게 복음을 선 포하려면 불변하는 진리를 현실 안에 담아내려고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말씀대 로, 불변하는 복음의 진리를 오늘날 급속도로 변화하 는 문화 속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그들의 정서에 맞게 다가갈지 그 방법과 언어 문화 체계를 찾아야 한다. 신앙의 전승은 있는 그대로를 똑같이 전하는 것만 이 아니라, 현대의 흐름에 맞게 표현하는 새로운 도전 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표현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질 수 있음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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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고해소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나는 곳이지 고문실이 아니다(44항).

신자들은 하느님에게 이끄는 사목자들이나 평신도 들은 많은 형제자매들에게 사회적인 환경이나 심리적인 장애, 무질서한 집착들, 습관, 버릇, 두려움, 압력, 무지, 실수 등으로 생겨나는 행동들의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35항 참조), 그것은 무효임을 알아

야 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성장이 단계적으로 이루 어지도록 자비와 인내를 갖고 신자들을 대해야 한다. 특히 사제들은 고해소를 고문실이 아니라, 신자들 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이끄시는 하느님 자비를 만나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한다. 모든 인간적인 나약함 속에서도 한 발짝씩 내딛는 작은 걸음들이, 아무런 어 5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려움 없이 거리낄 것 없이 살아가는 이들보다 하느님을 더 기쁘게 한다. 사제들은 자신의 잘못과 실수를 넘어 서, 각자에게 신비로이 머물러 활동하시는 하느님 구원 의 사랑을 따뜻하고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모든 이를 초 대해야 한다. 곧 예수님께서 당신의 양들을 치라고 하 셨다 하여 너무 심하고 모질게 대하지 말고 사랑과 자 비로 너그러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님의 자비로운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서 이 말 씀들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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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자 오셨다는 사실을 잊고 교회 법령으로 신자들의 삶에 짐을 지우고 그들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43항).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이 하 느님 백성에게 준 법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우 구스티노 성인은 교회가 정한 법령들은 신자들의 삶 에 짐이 되지 않아야 하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자유롭 게 하시고자 오셨다는 사실을 잊고 사람들을 억압해서 는 안 되기에 중용과 절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수백 년 전, 천 수백 년 전에 있었던 이 경고가 오늘날에도 여 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모두 복음을 선포할 때 모든 이가 다 받아 5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들일 수 있도록 더 분명하고 더 확실하게 하려고 하지 만, 사실 모든 이가 다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앙은 늘 그 안에 십자가를 담고 있다. 신앙으로 응답하기에는 어렵고 불분명한 그 무엇을 담고 있다. 분 명한 이성과 논쟁을 넘어서는 사랑에 버금가는 신앙의 자세에서만 이해되는 불분명함이 있다. 이럴 때, 곧 좀처럼 안 풀리는 숙제처럼 애매모호 하고 답답한 그 무엇이 있을 때 법이나 율법으로 하지 말고 신앙과 사랑의 응답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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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가난한 이들이야말로 복음 선포의 가장 첫 번째 대상이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선포됨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표징이다(48항).

뉴욕 라디오에서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뉴욕 교구 주교좌 패트릭 성당을 보수하는 데 몇 백만 불이 들었 고 그 돈을 뉴욕 월스트리트의 큰 부자들이 댔는데, 그 들이 얼마 전 뉴욕 교구 추기경님을 만나 교황님의 사 회 경제 가르침이 자본주의에 어긋나고 건전한 경제 활 동을 방해한다고 항의를 한 모양이다. 그때 추기경님은 그렇지 않으며, 교황님은 부자들도 사랑하신다고 둘러 대셨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그 라디오 쇼에 나오는 앵 커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추기경님이 종교 지도자가 아 5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니라 이제 정치인이 되었다고 강하게 비난하면서, 왜 그 몇 백만 불을 부자들 얼굴에 집어던지면서 “너희 돈 필 요 없다. 다 돌려 주마.” “난 교황님을 따른다.”라고 말 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교회가 선교적인 사명을 수행하고자 모든 이에게 다가가야 하지만, 과연 맨 먼저 누구에게 다가가야 할 까? 교황은 모든 이를 사랑하시지만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먼저 존중하고 도와야 한다고 일깨워 주신다. 복음을 읽을 때마다 아주 분명해지는 것은, 우리 가 사랑해야 할 이웃은 돈 많고 부유한 이들이 아니라, 남에게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등한시되는 가난하고 병 든 이들이라는 것이다. 곧 우리에게 받고서도 되갚지 못하는 이들이다(루카 14,14 참조). 그렇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복음이 선포되는 가장 우선적인 사람이 바로 가난 한 이들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표징이다. 우리의 신앙과 가난한 이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 는 일치감과 연대가 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섬기 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잊거나 포기해서는 결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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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집 없는 노인이 길거리에서 죽은 것보다 월스트리트 주식이 2%포인트 떨어진 것이 뉴스가 되는 세상이다(53-60항).

교황님은 복음적인 식별을 위해 시대적 징표를 더 욱 날카로운 눈으로 살피라고 말씀하신다.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실, 하느님의 창조 계획에 거 스르는 세상의 열매들에 맞서기 위해 식별뿐만이 아니 라, 악령에 맞서 선을 택하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세상 은 의료와 교육과 통신 부분에서도 눈부신 발전을 했 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겨우 버티고 있고, 질병 이 번져 가고,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도 정신적인 고통 으로 절망과 좌절을 겪고 있다. 나아가 인간의 기본적 인 존엄성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살아간다. 5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오늘날 경제생활이 사람 을 죽이는 세상이 되었다. 집 없는 노인이 길거리에서 죽은 것은 뉴스가 안 되고 월스트리트 주식이 2%포인 트 떨어진 것은 뉴스가 된다. 한쪽에서 사람들이 굶어 가는데 한쪽에서는 음식을 마구 버리고 있다. 불평등이 세상에 가득 찼다. 모든 것이 경제 논리 로 이루어지고, 더 잘 버티고 더 잘 싸우는 이들이,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이들 위에 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외되어 직업도 없고 가능성도 없고 벗어날 길 없이 갇혀 버린다. 요즘은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착취와 억압의 대상 이 아니다. 버려지고 쫓겨나는 소외된 대상도 아니다. 그들은 더 이상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회의 찌꺼기로 전락해 버렸다. 그동안 자유 시장 경제에서 주장되어 왔던 논리가 있다. 소수의 사람에게 많이 축적된 부가 조금씩 저절 로 떡고물처럼 떨어져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지 고,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다 잘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낙수(洛水) 효과이다. 이는 막강한 힘과 특권을 가진 부유한 사람들의 선한 의지만을 믿는 순진한 논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57


리일 따름이다. 그들은 남을 배제하고 무시하면서, 자신들만의 이 상 추구를 위하여 주변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고, 세 계화 위에 이기적인 삶의 방식으로 가난한 이들의 울 부짖음과 고통에는 눈과 귀를 닫고 있다. 특히 가난하 고 약한 이들의 고통을 다 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태 도는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한 인류로서 크게 잘못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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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가난한 이와 나누지 않는 것은 가난한 이에게서 훔치는 것이다(54항).

통화 하향 침투설이란, 무한 자유 경쟁으로 부가 축적이 되면 그 부가 빗물이 아래로 떨어지듯이 하층으 로도 내려오게 되어, 자동적으로 사회 정의가 실현되고 평등한 사회가 건설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교황님은 비판하신다. 이는 한 번도 증명되지 않았으며, 현재의 경제 기득권층이 선하고 자유 경쟁 구조 자체가 옳다는 순진한 발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보의 허상과 시장 경제에서 팔고 사는 상품에 눈 이 멀게 되면서 어두운 그늘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의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다. 문제의 뿌리 는 다 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돈이 우리와 우리 사회를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59


지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는 근본적으로 인 간성의 위기, 곧 인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인 하는 것이다. 곧 탈출기의 금송아지처럼 돈이 또 하나 의 우상이 된 것이다. 돈이 군림하다 보니,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 템인 경제가 가장 중요한 인간을 무시하고 있다. 소수 가 엄청나게 벌어들이고, 그들과 대다수 사람의 격차 는 점점 더 벌어지고, 이 같은 격차는 절대적인 시장 논 리와 재투자를 통한 부풀리기로 더욱더 심화되어 공 동선을 위한 어떠한 통제도 거부하면서 자본의 논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독재가 되고 있다. 빚과 이자 로 경제적 자립은 불가능해지고, 광범위한 부패와 세 금 포탈이 자행되며, 권력과 소유를 향한 욕심은 끝이 없다. 시장 제일주의는 시장이 신격화된 것이다. 돈을 벌고 힘을 축적하는 데 하느님과 윤리는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일 뿐이다. 그러나 언제고 가난한 이와 나누지 않는 것은 가난 한 이에게서 훔치는 것이며 그들의 생존 기반을 빼앗는 것이다. 돈이 사람을 위해 쓰여야지 사람 위에 군림하 게 해서는 안 된다. 〠 6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20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사회 구조적인 악도 부패와 죽음이라는 열매를 맺는다(60-70항).

전쟁을 해 온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었는데도 또 IS 에게 지상군이 파견된다는 보도를 보면 전쟁을 애초부 터 끝낼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테러가 가장 두렵다. 조용하다 싶고 안심할 만하다 싶 으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또 터지고 또 터지니, 미국에 서도 유럽에서도 세계 모든 곳에서 테러에 단단히 대비 하지만 완전한 안전은 애초부터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경제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이 극에 달하 고 그 편차 또한 더욱더 커지고 있으며, 불평등하고 가 난한 이들이 배척당하는 상태에서 진정한 평화와 안전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61


은 있을 수 없다. 가난한 이들에게 동등한 대우와 기회를 만들어 주 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그들을 사회의 불안과 폭력의 원 인으로 모는 사회에서 진정한 안전과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악함이 빛이 퍼져 나가듯 끝을 모르고 번 져 나가고 있다. 모든 악에는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그 열매가 맺히는데, 악한 사회 구조의 열매는 바로 부정 부패와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사회 구조가 썩고 병들었 을 때 결국 국민들의 삶은 고통스럽고 더 이상 희망과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지도자가 되든 어느 정당이 정권을 잡든지 간에 광범위하게 깊이 뿌리박고 있는 부정부패를 보면 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은 좌절 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무관심이 만연해 있고, 네가 좋으면 나도 좋으니 무슨 일이든지 괜찮다는 상대주의 와 어떠한 사상과 이념과 체제에 대해 무조건 불신하는 풍조가 우리 교회뿐만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전반을 위 협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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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결혼은 사랑이라는 일시적 감정이 아니라 배우자들이 서로 자신의 전 삶의 일치를 약속하며 행하는 심오한 헌신이다(71-72항).

오늘날 결혼은 단순히 감정을 만족시키는, 자의적 으로 좋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 프랑 스 주교들의 말을 빌리자면, 결혼은 일시적인 사랑의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바치는 배우 자 간의 깊은 책임과 의무, 신뢰와 헌신에 대한 확인과 약속을 포함하는데 이러한 것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10년은 “글로벌, 글로벌” 하면서 세계화가 무 섭게 진행된 날들이었다. 세계화가 되면서 좋은 것도 많고,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것도 맞다. 그런데 각 나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63


라의 고유한 문화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으며, 경제적으 로 강대하지만 윤리적으로 약한 나라의 문화와 사고, 행동방식이 전 세계에 무서운 속도로 무분별하게 전해 지고 있다. 다국적 대중매체와 할리우드의 영화 노래 텔레비 전 등의 흥행 문화가 전통적인 가치와 특히 결혼과 가 정의 가치를 아직도 갖고 있는 여러 나라들의 문화 사 회 윤리 도덕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는다. 이로써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가족과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가정 안에서 자식을 낳는 것은 세대의 연장과 존속만 이 아니라 각 국가와 민족의 전통적인 가치와 윤리 신 앙을 전달하는 측면이 있는데도 이것이 무너지고 있다. 요즘 전 세계에서 종교가 가르치는 윤리보다 할 리우드의 가치와 삶의 방식, 그 윤리 기준이 더 힘 있 게 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미래에 어떤 결과들을 낳을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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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복음을 전달하려면 먼저 문화를 복음화해야 한다(73-74항).

서구가 그리스도교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문화임을 우리는 잘 안다. 곧 그리스도교가 그들의 문화적 전통 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양상이 바뀌어, 교회가 현대 사회의 문화에서 영향을 받고 있 다. 이는 그만큼 세상의 문화 상징 구조가 교회의 그것 보다 강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전과 달리 사 회적 문화 흐름 안에서 우리 삶의 의미와 구조와 상징 과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된다. 이 같은 엄청난 변화가 그리스도교를 배제하고 분 리시키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엄 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65


이 어떻게 새롭게 창조적으로 또 매력적이고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을지 연구해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었다면 하느님을 만나 고 체험하고 관계 맺는 데에 새로운 삶의 이야기와 방 식이 필요하다. 교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키우고 강 화하고 치유하는 방향으로 가며, 교회 안에서 다양 한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관계를 맺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문화는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와 그 문화를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 삶을 온통 이끌어 간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회 문화를 교회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의롭고 신뢰할 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회는 늘 깨어서 지켜보아야 하고, 진리가 실현되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교회에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복음 전파일 것 이다. 세상과 사회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면 그 문화도 복 음적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장과 치유를 가져오리라 고 믿는다. 모든 문화와 사회단체들은 그에 따라 정화되 6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교회는 그 사회의 문화 안에 내재하는 죄와 맞서고 상처를 치유하고 갈라진 형제들 사이에 다 리를 놓아야 한다. 서로 힘이 되고 서로 짐을 져 주면 서 인간관계를 두텁게 하고 예수님을 만나도록 나아가 야 한다. 〠

자비는 모든 것을 이겨 내는 힘으로 드러나며 마음속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고 용서로 위로를 가져다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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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복음의 실천은 바로 우리 삶의 현장 한복판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74-75항).

나는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 파크(Palisades Park)에서 산다. 다 알지는 못해도 여기처럼 재미있고 흥미로운 동 네도 없을 것이다. 이곳은 마을 전체에 한인이 50%가 넘게 살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미국에서 아마 가장 높 은 한인 밀집 지역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힘세고 영향 력 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과 일만하고 아무런 보장 도 못 받는 가난한 히스패닉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과 한데 엉켜 살아간다. 이렇듯 다민족 다문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삶에 대한 열정과 꿈은 다 같다는 것이 그들 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이유이며, 교회에는 기회인 듯 6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하다. 다양한 문화와 민족들이 갈등을 겪을 때 교회가 그들 사이에서 대화를 이끌고 만남을 주선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교회는 자신의 역할을 충 실히 한 것이다. 지금 도시는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이 되었다. 그 도시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일치와 연대 를 이끌어 사람들의 진정한 만남을 끌어내는 대신, 서 로 고립시키고 서로 불신하게 하고 있다. 도시 속 건축 물은 사람을 연결하기보다 오히려 분리하고 단절시킨다. 복음의 실천은 사람들을 떠나서 사람들과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바로 우리 삶의 한복판 이 현 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예루살렘은 바로 우 리가 살아가는 팰리세이즈 파크, 플러싱 메도(Flushing Meadow), 그 어디든 바로 도시의 한복판이라는 것이다.

곧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우리 가정 안에 우리가 걷는 거리와 시장과 상가와 직장에 현존하시도록 해야 한다. 교황님께서도 인간이 살아가는 마을에 대해 말 씀하신다. 곧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마 을 안에 새로운 예루살렘과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세 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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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교황인 나도 기쁘게 자신의 삶과 인생을 바치는 이들을 보면서 더 노력하게 된다(76항).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우리 죄 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오셨다. 죄는 교회 안에 서도 예외이지 않는다. 우리의 죄를 맞닥뜨리면 부끄 럽고 아프지만 그렇다고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교회가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해 왔었고 지금도 곳곳에 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의 기 도와 복음적 삶은 그대로 우리의 본보기가 된다. 그들 이 헌신적으로 지켜온 사랑과 희생은 누구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각자가 해 온 일 또한 대단하다. 어 7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떤 이들은 수많은 이들이 평화 속에 치유받고 숨을 거 둘 수 있도록 오지에서 봉사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세 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의 봉사를 하 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젊은이와 어린이들을 위한 교 육에 봉사하며, 어떤 이들은 가족에게조차 잊힌 노인 들을 돌보고, 어떤 이들은 적대적이고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서 정의와 올바른 가치를 지키며 실천하고 있다. 이처럼 사랑으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뜻을 따 라, 인류를 위한 사랑에 스스로 온몸을 바치는 이들이 많다. 또한 기쁘게 자신의 삶과 인생을 바치는 이들이 더욱더 많아지고 있다. 하느님 보시기 참 좋은 일이다. 교황님께서도 교황인 당신도 이런 이들을 볼 때마 다 자신의 이기심과 안락을 버리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고자 노력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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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교회의 일꾼들이 기도하지만 지나친 개인주의와 정체성의 혼란으로 복음화의 열정을 잃어 가고 있다(85항).4

모든 사목자가 이기심을 이기고 자기 자신을 온 전히 내어줄 수 있도록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 다. 그러나 오늘날 그렇게 하기에 견뎌 내야 할 유혹들 이 있다. 그 하나는 사제와 수도자가 개인의 자유와 신상 의 문제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로써 하느님 앞에 바쳐 진 자신의 삶과 사도직 본분을 잃게 되고 나아가 자신

4.  원문에서 교황님께서 쓰신 sourpusses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나? 아 마 늘 삐져 있고 뚱하고 불평만 하는 사람일진대, 표현이 참 재미있 고 사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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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정체성마저 혼란을 겪는다. 그러한 이들은 영신 생 활을 마치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만족과 평화를 이루는 자기만의 개인적인 영적 훈련으로 여기고, 세상 안에서 복음화의 열정으로 몸부림치며 이웃과 만나 대화하고 더불어 살아가며 사회에 투신하는 일을 꺼리게 된다. 또 하나는 열정과 대담성을 죽이는 가장 심각한 유 혹으로 패배주의이다. 이는 우리 자신이 알게 모르게 빈정거리고 환멸을 느낀 패배주의자, 곧 늘 무언가에 삐 져 있는 이(sourpusses)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삐지기 잘하 고 빈정댄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가지지 못한다. 자신도 확신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무슨 일 을 하든 시작부터 반은 진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재능 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전장에 나 가면서 100%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다. 사목자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 수님을 향한 신앙을 늘 새롭게 체험해야 한다. 쇄신과 예수님 체험으로 자신의 삶을 복음의 빛으로 식별하고 치유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아름답고 선한 복음의 목표를 위해 자신을 바치고 내어주는 삶을 공동체와 함 께 실천해 나가야 한다. 〠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73


26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서 마치 안 계신 것처럼 복음을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가난한 이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자기만 생각하며 살아간다(80항).

때때로 미디어나 몇몇 지식인들이 교회의 메시지에 대하여 의심하고 심지어는 조롱하듯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교회의 일꾼들도 기도하며 열심히 신 앙생활은 하지만 왠지 모르는 열등감으로 그리스도인 의 정체성과 확신을 숨기면서 복음을 절대적인 것이 아 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놀라 운 것은 깊은 교리와 영적인 확신을 갖고 있는 이들조 차도 자신의 삶을 교회의 사명을 위해 바치는 것이 아 니라 자신의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고 권력과 인간적 7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인 영화를 찾는 데 쏟고 있다. 그래서 마치 하느님께서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하고, 가난한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무엇이든 어 디에서든 자신과 자신의 일이 최우선시되어야 하는 이 기적인 생각으로 삶의 목표를 세우고, 복음을 모르는 사람처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곧바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자신의 삶과 사명에 대해 행복해하지 않으며, 복음화를 위한 헌신과 투신도 약해지는 것이다. 남들 이 하는 대로 해야 하고,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자기 도 가져야 하고, 복음화 활동도 자발적이기보다 남의 의지에 이끌려 함으로써 열정과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특히 사목자들의 영적 생활과 사고방식이 복음의 절대적 진리에서 벗어나 상대주의에 빠져 버린다면 이는 교리의 혼란보다 더 큰 해악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이 교 리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까닭은 영적 생활과 사고방식 이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방향에 가장 깊이 영향을 미 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사라 져서도 사라지게 해서도 안 된다. 사목자들 스스로 십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75


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쇄신되고, 매일의 체험이 복음의 빛으로 식별되고 치유 될 수 있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한다. 〠

자비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형제 자배를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근본 법칙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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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교회가 무덤 안의 미이라처럼 그리스도인들이 박물관에 소장된 골동품같이 되어 간다(83항).

사람들이 “파리의 노트르담 교회를 보고 왔어. 참 대단해.” 하며 감탄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사실 프랑 스 파리의 노트르담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성당인가? 길고긴 역사와 전통, 엄청난 규모와 파리 시민 안에서 차지하는 놀라운 위상. 그런데 가끔 그런 교회들이 교 회로서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 생각한다. 마치 박 물관처럼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우려도 된다. 뉴욕의 크고 오래된 교회들을 보면, 관광객이 많고 그들은 교 회를 자신의 여행지로서 자신의 기억에 남기는 데만 열 중하는 것을 보며, 교회는 그들에게 어떻게 ‘교회’로서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77


다가가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노트르담 교회가 다행히도 미사를 거행하며 교회 의 본분을 다하고는 있지만, 이제 다시는 그 옛날의 시 간을 되찾아올 수 없을 것 같다. 교회가 점점 생명력을 잃어 가고 현실과 분리되어 파리 시민들의 삶의 한부분 이 못 되고 있음이 안타깝다. 교회가 현실에 굴복하여 무덤 안에 사는 것처럼 서 서히 죽어 가고,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박물관에 소장 된 골동품같이 되어 간다. 사목자들도 교회의 일꾼들 도 교회와 자신의 현실에 실망하고, 희망도 없이 마치 마귀의 술잔에 취한 듯이 희미한 향수와 같은 감정에 이끌려 살아간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고 생 명을 나누라는 부름을 받았는데, 결과는 내적인 불안 과 어두움, 그러면서 서서히 사도직을 향한 열정을 잃 어 간다. 이는 교황님의 엄청난 예언자적인 말씀이다. 모두 복음의 열정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사도직을 하면서도 자신의 시간을 빼앗 길까 봐, 책임지기 싫어서 피하려 한다. 교회에 봉사자 들이 없고 교리교사가 없다. 사제들도 자신의 자유 시 간을 누리는 데 급급하여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하지 7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않는다.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의 은총이 네 안에 충분하고 나의 힘은 약한 데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언제나 십자가이고, 십자가는 악 과 맞서 싸우는 승리의 깃발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승 리의 깃발이다. 십자가는 패배이고 죽음인데, 그게 오 히려 우리의 승리의 깃발이다. 참으로 기가 막힌 말씀이다. 십자가 없이는 아무것 도 할 수 없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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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하느님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살려는 것 자신들의 그리스도교의 뿌리조차 부인하고 그리스도교를 모든 공적 장소에서 부인하면서 인간의 삶은 메마른 사막으로 변한다(86항).

요즘 지구의 많은 지역이 황폐화되고 나무도 물도 말라 버려 사막화가 엄청난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 다. 사막화는 지구 기후에도 영향을 미쳐 많은 이상 증 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영혼도 이처럼 삭막해지고 메말라 가고 있다. 영혼의 사막화이다. 이렇게 생동감이 없는 생활은 제맛을 잃은 열매처럼,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처 럼 우리 인생을 우리 가족을 우리 사회를 우리 공동체 를 서로 찌푸리고 갈라지게 한다. 8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하느님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살려는 것, 자신들이 갖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뿌리조차도 부인하려는 태도, 심지어는 공적인 장소에서 십자가를 없애고 교회의 모 습도 지우려고 하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삶은 이 처럼 그리스도교를 공적인 장소와 직장과 가정 안에서 부인하면서 메마르게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여기서 비롯한 메마름과 목마 름 때문에 복음의 기쁨이 점점 더 필요해지는 것을 깨 닫게 된다. 이 세상에는 살아가는 데 있어 놓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음을 알고 그 중요한 가치를 찾아가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모 두 하느님에 대한 목마름, 인생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 에 물음들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막에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넘치는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희망을 주어야 한다. 모 든 이가 마실 수 있는 생명의 물은 십자가에 매달려 돌 아가신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넘쳐 나오는 생명의 물임 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희망을 잃지 말자. 복음을 들 은 이는 희망을 잃을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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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육화는 얼굴을 갖고 있는 구체적인 만남이고 관계이다. 곧 어디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관계 형성이다(87-89항).

활동을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적 절한 동기 부여와 영적 생활이 기반이 되어 기쁘고 즐 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는 지치고 싫 증나고 불만스러우며, 짜증나고 견디기 힘들게 된다. 또는 즉각적인 결과를 내려고 조급해하고 조금만 의견 이 달라도 공격으로 받아들이며 작은 실패에 좌절하여 쉽게 굴복한다. 진정한 그리스도교의 영성은 공동체 안에 대중적 인 문화 안에 육화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육 화하셨기 때문이다. 자기가 바라는 모습대로 예수님을 8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조각내어서 자기만의 영성으로 공동체와 분리되어 존 재한다면, 형제애로 일치를 이루고 참된 치유와 해방을 맛보기보다 오히려 병적인 영성을 만들게 된다. 그리스도의 육화는 애매모호하고 분명하지 못한 영적인 힘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느님과 예수님과 마 리아와 성인들과 맺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곧 육화 는 얼굴을 갖고 있는 구체적인 만남이고 관계라는 것이 다. 분명한 관계 형성이다. 공동체 삶에서 분리되어 형 제자매들에 대한 책임감 없이 자기를 초월하는 영적인 체험만을 강조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이기심과 자기애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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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하느님과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려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이기적인 행위들이 교회 안에 만연해 있다(93-95항).

교회에 몸담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입으로는 하느님 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면서, 종종 인간의 영 광과 개인의 안위를 위해 비밀리에 또는 밖으로 드러내 지 않고 교회의 사목을 행할 때가 있다. 이는 하느님과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자 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것이다. 교황님께서는 이러한 이기적인 행위들이 내적인 형 태로 은밀하게 드러나서 곧바로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교회 안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여러 단체 안에서 여러 사람 안에서 만연해 있다고 하시며, 이는 세속화되고 8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상업화된 영성이라고 말씀하신다. 겉으로는 잘 계획되고 번드르르하게 행해지기에 좋아 보이고 아무런 문제를 찾을 수 없지만, 드러나지 않는 영적인 세속화와 상업화가 교회 전체에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윤리적인 죄보다도 훨씬 더 교회 에 위험하고 해가 될 것이다. 이는 두 가지 형태로 드러난다. 첫째는 순전히 개인 적인 신앙으로 어떤 특정한 체험을 강조하고 생각이나 이론에 치중하는 것이다. 곧 개인에게 도움이 되고 영 적으로 성장한다고 하지만 결국 개인의 생각과 느낌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둘째는 특정한 신심 활동의 실천이 나 교회의 전통과 법규에 의존하여 자신의 능력을 과신 하며 남보다 우월하다고 교만을 떠는 것이다. 이 같은 태도들은 이웃 형제들을 하느님 은총으로 초대하는 복음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병적인 자기 집 착과 자기애 또는 권위적인 엘리트주의가 되어 남을 분 석하고 판단하는 데 모든 시간을 다 쏟는다. 이것이 바 로 하느님은 사라져 버리고 인간이 중심에 선 전형적인 인간중심주의 사고방식이다. 이렇게 희미해진 그리스도교로는 세상 안에서 참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85


다운 복음화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교황님 말씀이다. 이웃을 섬기라고 부르시는 하느님께 자기를 던지는 투 신과 관계 맺음을 빼고는 다른 해결책은 없다. 이웃 안에서, 다른 이들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서, 그들의 필요 속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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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육화하시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내부적으로 폐쇄된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교회 안에 형성되었다. 복음에 대한 열정도 없고, 알맹이 내용도 없고, 텅 비고, 즐거움이나 태만함, 자기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95항).5

세상의 해로운 영향이 교회 안을 채우고 있다. 어

5.  누구도 밑에서 손에 때를 묻히고 일을 하려 하지 않고 뭐가 필요하 고, 뭐가 되어야 한다고 위에서 말만 하는 무슨 계룡산 도사처럼 변 해 버렸다는 것이다. 교황님께서 계룡산 도사들을 어떻게 아실까? habriaqueismo라는 스페인 말을 교황님께서 인용하셨는데 이는 자기 땀과 피를 흘리지 않고 손에 때를 묻히지 않고 위에서 말만 하는 이들 을 가리킨다. 로마에 비대해진 교회 관료 계층을 두고 하시는 말씀일 까? 우리 식의 계룡산 도사가 그 뜻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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떤 이는 전례에 집착하고, 어떤 이는 교리에, 어떤 이 는 교회의 존엄성에 집착하지만, 복음이 사람들과 시 대의 구체적인 필요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는 누구 도 잘 묻지 않는다. 또 다른 해로운 영향은 사회적 정치적 이득이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만과 함께, 자기 계발, 자기실 현 같은 프로그램에 열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목자 들도 비지니스맨처럼 변하게 하여, 교회가 하느님의 백 성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거대한 조직이나 기업처럼 되 어 가도록 한다. 여기에는 육화하시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 하신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내부적으로 폐쇄된 소수의 엘리트 그룹이 형성된다. 밖으로 나가 그리스도를 목말 라하는 수많은 이들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복음에 대 한 열정도 없고, 알맹이도 없고, 속이 텅 비고, 즐거움 이나 태만함, 자기애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고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작은 부 대의 말단 병사는 싫고, 패배한 부대라도 장군이 되어 사는 게 낫다는 식으로, 쥐꼬리만 한 힘이라도 가진 것 에 만족하면서 헛된 영화에 취해 살아가는 사고방식을 8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갖게 된다. 전쟁에 진 패장처럼 자꾸만 옛날의 영화로울 때의 일들에 젖어 있는 것은, 우리의 영광이 오로지 십자가 를 지고 희생하며, 매일같이 복음을 위해 투쟁하면서 자신을 바치고, 지치더라고 모든 일을 이마에 땀 흘리 며 하는 데 있음을 잊은 것이다. 실천 없는 꿈만 꾸다 보면 사람들의 어려움과 일상의 실제적인 연결고리를 놓치게 된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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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웃을 섬기라고 부르시는 하느님께 스스로 투신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 자신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분리 고립되는 것은 하느님 안에 있을 수가 없다(90-91항).

육화된 예수님은 바로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며 봉사하시고 화해하셨다. 자기 자신의 독립 성을 주장하면서 분리 고립되는 것은 하느님 안에 있 을 수가 없다. 이웃을 섬기라고 부르시는 하느님께 스스로 투신 하는 관계 말고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곧 다른 이들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에서 그들의 필요 속에서 예 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따 라 불의를 견디고 참아 내는 것이다. 진정한 치유는 이 9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같이 진정한 형제애와 연대 속에서 나온다. 형제들 안 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 을 찾으며 삶의 어려움과 아픔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이는 양 떼 냄새가 나야 한다. 하늘의 아버지처럼 하느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열 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찾아주는 것, 이것이 바로 세 상의 빛이고 소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공동 체를 떠나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복음에 충실하 게 살아가는 것이다.

하느님 자비는 결코 끝이 없습니다. 이 샘물을 둘러싸고 있는 신비의 깊이는 그 샘물에서 샘솟는 풍요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2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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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자신의 이익이나 당면한 현실만을 생각하는 마음으로는 자신의 죄도 못 깨닫고 남을 진정으로 용서하지도 못한다. 바로 이것이 선을 가장한 가장 무서운 교회의 부패이다(97항).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공동체가 갈라지고 찢어지고 싸우고 다투고 있는가? 질투와 시기심으로 얼마나 많 은 그리스도인들이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가? 이러한 아 픔이 곳곳에 있는데도 자기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 럼 다른 이의 잘못만 끄집어내고 자기 겉모습만 번드르 르하게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이익이나 당면한 현실만을 생각하는 좁은 마음 때문에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진정으 9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로 용서하지도 못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선을 가장한 가장 무서운 교회의 부패이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집중이 아니라, 자신 밖으로 나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신의 사명과 삶의 초점을 맞 추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희생과 봉사에 자신 을 바쳐야 한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얄팍한 영성과 사목자들이 빠 지게 되는 함정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세속화되어 복음이 숨을 못 쉬는 현실에서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 는, 겉모습만 번드르르한 종교 행위에서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넘어서 다른 이들과 일치하는 것은 참으로 건강한 일이다. 자기 자신 안에 싸여 있을 때 점점 차가워지고 이기적인 삶으로 더 불행해지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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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세상이 갈라지고 찢어지고 자신만의 이익과 안위를 추구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이 넘치는 형제적 공동체를 건설한다면 얼마나 빛나며 매력적인 증거자들이 될까(98-99항).

하느님 백성 안에서, 우리 이웃 공동체 안에서 질 투와 경쟁심으로 얼마나 많은 싸움이 일어났는가? 영 성이 세속화되어 좀 더 많은 권력을 명예를 특권을 쾌 락을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려고 같은 그리스도인들 끼리 얼마나 많이 싸웠는가?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 원으로 사는 것을 만족하지 못하여, 자신만의 특수한 작은 모임을 만들기도 한다. 다양하고 광범위한 전체 9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교회의 일원으로는 자신의 명예와 공명심을 채우지 못 하기에 자신들만의 특별한 작은 모임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세상이 전쟁과 폭력으로 찢어지고, 개인주 의로 사람들이 갈라지고, 서로 싸우고 자신만의 이익 과 안위를 추구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이 넘치는 형제적 공동체를 건설한다면 얼마나 빛나며 매력적인 증거자들이 될 것인가. 다른 이들이 서로 돌보아주고 서로 격려하며 살아 가는 우리를 보고 놀라워해야 한다. “너희가 서로 서로 사랑을 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 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 아버지께 바치신 기 도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 하나 되도록 기도하셨다. 질투와 경쟁의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타고 있고, 또 같은 목표 곧 같은 항구를 향해 나 아가고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은총에 다 같이 진심 으로 기뻐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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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교회 안의 적대감, 분열, 비방, 인신공격, 질투들은 보기에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하여라(100-101항).

교황님께서는 적대감, 분열, 비방, 인신공격, 질 투,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박해 까지 하는 종교인들 심지어는 성직자들을 보는 것은 괴 로운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 고 살면서 누구를 복음화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시며, 우리가 사랑의 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하신다. 사랑의 법이라니 얼마나 은혜로운가? 무슨 일 이 있더라도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참 아름답다. 교황님께서는 결코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켜”(로마 12,21)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9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우리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다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때 적어도 “하느님 내가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해 주십시오.” 하며, 화가 나 있는 그 사람을 위해 제가 기 도하는 것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길 또 복음화의 행위 일 것이다.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 복음화를 향하 는 형제애적인 사랑을 빼앗겨서는 결코 안 된다. 사랑 만이 답이다. 〠

교회는 자비를 고백하고 선포할 때에 본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비가 창조주와 구세주의 가장 놀라운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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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교회 안에서 어느 특정한 이를 다른 이의 위에 놓는 차별적인 우월성을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의 가장 큰 존엄성은 모든 이가 받은 세례에서 나온다(103-104항).

교황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성체성사를 집행하는 사제직이 남자에게만 제한된 것은 더 이상 토 론의 주제가 될 수 없다.”라며, 폭풍의 눈을 살짝 넘어 가신다. 그리고 다시 “성사적인 권한이 교회 안의 일반 적인 권한과 너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특별 히 문제이다. 성사적인 권한을 말할 때 이는 기능의 차 원이지 거룩함과 존엄의 차원이 아니다. 사목직을 수행 하는 사제직이 예수님에 의해 그의 백성을 섬기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가장 큰 존엄성은 모든 이가 9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받은 세례에서 나온다. 사제를 왕이신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것은 사제를 모든 이의 위에 놓는 것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어느 특 정한 이를 다른 이의 위에 놓는 차별적인 우월성을 선 호하지 않는다. 사실 여자인 마리아가 주교보다 더 중 요한 위치에 있다. 사목적인 사제직이 교회 제도로 인 정되지만 이도 역시 그리스도 구성원의 거룩함에 속할 뿐이다. 권력이 지배가 아니라 성체성사를 집행하는 능 력이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 백성에 대한 봉사요 모든 권 한의 시작임을 아는 것이 핵심이며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교회 안의 모든 권한이 주교의 대리자인 본당 신부 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교황님께서 는 권한은 사제 서품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이가 받은 세례에서 나오며, 성사 집행은 기능이지 거룩함과 존엄 의 차원이 아니라고 하신다. 물론 성사를 집행하는 이 가 거룩하고 존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는 봉사와 섬김의 차원이지 어떤 특정한 차별적인 우월 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매우 놀라운 말씀이다. 이는 모 두 교황님 말씀이다. 〠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99


37 성직주의가 지나치게 강하면 평신도들이 설 자리가 없다(102-103항).6

교회에는 평신도들이 대다수이며 성직자들의 수는 적다. 그 적은 수의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을 위한 봉사 자로 불린 것이지 그들 위에 군림하라고 불린 것이 아니 다. 신앙생활과 교리 교육, 자선 사업, 공동체 건설 등 많은 일들에 평신도의 힘이 필요하며, 평신도들의 사명 과 정체성에 대한 인식도 커져 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평신도들이 세례와 견진성사로 받은 자신들의 책임에 대하여 확실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하 6.  교황님께서는 성직자들 안의 출세 지상주의 같은 태도들은 교회 안 의 나병이라고 말씀하셨다. 2013년 6월 6일 바티칸 외교관 학교 사 제들에게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의 봉사에 나서야 한 다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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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또한 성직주의가 지나치게 강한 곳에서는 평신도들 이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 지 않고 있다. 평신도 사도직이 중요하고 크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 정치 경제적인 면에서 더 깊이 교회의 가치가 실 현될 만큼 평신도들의 투신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 는 않다. 평신도들이 여전히 교회 안에서만 머물고 있 으며, 사회의 변화를 위해 복음을 실천하는 진정한 투 신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전문적이고 능력 있는 평신도의 양성과 복음화를 위한 사목적인 요구와 도전이 매우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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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아무리 성소가 없을지라도 사제 후보자들을 선출하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권력과 인간의 영광, 경제적인 보장, 또는 자신감의 결핍 같은 이유로 사제직을 지망하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107항).

많은 곳에서 사제직과 수도직의 부족함을 겪고 있 다. 사도직을 향한 열정이 식어 가고 그 매력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리스도를 다른 이에게 전하겠다는 열정 과 의지가 있을 때 진정한 성소가 일어날 터인데 그 열 정이 식어 가고 있다. 사제들이 헌신적으로 기쁘게 살지 않는다면 젊은 이들에게 복음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성소가 일어나기 10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는 어렵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 안에 형제적인 사랑과 열정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 젊은이들이 하느님을 위해 또 복음 선포를 위해 자신을 바치도록 그들의 열정을 일 깨울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가 영적으로 살아 있으려 면 지속적으로 성소를 위해 기도하고 젊은이들이 용감 하게 특별한 성소의 삶을 택하도록 권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성소가 없을지라도 사제 후보자들 을 선출하는 데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권력과 인 간의 영광, 경제적인 보장, 또는 자신감의 결핍 같은 이유로 사제직을 지망하는 이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도전이 있다면 극복하면 된다. 아주 현실적으로 문 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다. 우리는 기쁨과 대담성, 희망 넘치는 헌신과 투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복음화와 선 교를 위한 열망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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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은총이 무엇보다 앞선다.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었고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112항).

복음 선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선포하며 예수님 을 모든 것 위에, 가장 최상의 것으로 놓는 것이다. 요 한 바오로 2세 성인도 복음화는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고 인내하며 기쁘게 선포하는 것이 라고 하셨다. 복음화를 위한 도구인 교회는 성직 제도 나 다른 어떤 교회 조직보다도,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향해 순례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복음화와 순례의 사 람들의 역사 안에 삼위일체의 신비가 뿌리내리고 존재 하기 때문이다. 10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누가 뭐라고 해도 구원은 하느님의 자유롭고 은혜 로운 부르심에 궁극적인 근거를 둔다. 하느님께서 주시 는 구원은 자비의 역사이다. 사람의 노력이 아무리 좋 다고 해도 하느님의 선물에 견줄 수 없다. 그분은 성령 을 보내 자녀들을 부르시고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주신 구원의 성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것이다. 곧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하느님의 부르심이 먼저 있었고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복음화도 그분과 함께 그리고 그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분의 은총이 그 무엇보다도 앞 선다는 것이 복음화를 이끄는 우리의 지침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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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도 세상 곳곳의 사회와 문화와 공동체 안에 강생해야 한다(115-117항).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도 세 상 곳곳에 자기만의 사회와 문화와 공동체 안에 강생 한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들의 다양한 삶의 표현이 문화 안에서 드러난다. 이러 한 문화는 사회 안에서 삶의 방식, 서로서로의 관계, 하느님과 모든 생명체의 관계도 결정한다. 문화가 사람 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결정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은 본성상 공동체의 삶을 지향한다. 사람은 늘 문화 안에 있고 삶의 다양한 현실도 문화 안에서 표 현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과 문화는 아주 긴밀하게 연 10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결되어 있다. 하느님의 은총도 문화 안에서 표현되고 하느님의 선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문화 안에서 구체화된다. 이천년 동안 수많은 이들이 신앙의 은총을 자신 의 고유한 문화와 언어로 일상생활 안에서 표현해 왔 다. 이처럼 한 공동체가 구원의 메시지를 들었을 때 성 령께서 복음의 힘으로 여러 고유한 문화를 풍요롭게 해 오셨다. 복음이 많은 문화와 사람들에게 전파되지만 복음 은 여전히 고유한 진리를 지키면서 선포되어 왔다. 수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자신의 문화에 맞게 경험하고, 교회는 자신의 얼굴을 다양하게 드러 내면서도, 진정한 가톨릭의 정체성을 지켜 왔다는 것 이다. 교회는 토착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문화 와 공동체 안에 복음의 긍정적인 가치와 삶의 방식을 전달한다. 이로써 교회는 다양한 문화의 가치를 받아 들여 아름다운 보석으로 단장된 신부가 된다. 복음화의 기쁨이 다양한 선물과 보물로 교회 안에 넘쳐난다. 만약 그리스도교를 단일 문화와 숨 막히는 획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07


일성으로 생각한다면 육화의 참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물론 어떤 특정한 문화가 복음 선포와 기독교 사상의 형 성에 처음부터 깊이 관련된 것은 사실이지만, 계시는 그 어느 것과 일치되는 것이 아니며 그 내용은 문화를 넘어 서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특별히 죄인이나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병자들, 고통 받는 이들에게 행하신 모든 기적은 자비를 보여 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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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모든 민족과 문화의 사람들을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문화적으로 형성된 유럽의 전통에 맞추라고 강요할 수 없다(118항).

“로마, 로마” 하지 마라. 예수님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니었다. 유다인이었다. 내가 사는 교회에는 이탈리아 사람, 크로아티아 사람, 아일랜드 사람, 그리고 한국 사람, 또 많은 남미 사람이 함께 한 지붕 서너 가족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살기에 누가 잘 났고 누가 못났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그 생활은 엉망이 된다. 다 함께 모여 우리 교회가 한층 더 아름다워지고 풍요로워진다고 생각한다. 다양성 안에서 진리가 빛을 얻고 참된 아름다움이 실현되는 것 같다. 우리가 가톨릭이고 그것도 다른 가톨릭이 아니라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09


로마 가톨릭이기에 로마의 전통과 영성을 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은 정해진 문 화 이전의 분이셨으니, 복음을 오로지 딱 하나의 문화 안에서만 표현하고 이해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잘 못이다. 교황님께서는, “아시아의 주교들이 그리스도의 진 리를 이해하고 가르치는 데 있어 다양한 지역의 문화와 전통에 맞게 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의 삶과 진리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조화를 이루며 표현되어야 한다. 모든 민족과 문화의 사람들을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문 화적으로 형성된 유럽의 전통에 맞추라고 강요할 수 없 는 것은, 신앙은 어느 한 문화의 표현과 이해에 제한되 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구 원의 신비를 단 하나의 문화가 완전히 드러낼 수는 없 다. 그러므로 아직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은 문화에 복음을 전할 때 특정한 문화적인 양식이 아무리 아름답고 복음과 함께 표현된 것이 아무리 오래 되었다 하더라고 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선 포하는 복음은 늘 어떤 문화적인 옷을 입게 되는데, 만 약에 자신의 문화만 우수하다고 주장한다면 참된 복음 11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화의 열정보다 광신적인 맹목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 씀하신다. 문화적인 다양성은 교회의 일치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파견한 성령이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 복된 삼위일체 안에 함께하는 것처럼, 우리 도 복음 안에서 다양한 문화와 이루는 일치를 발견한 다. 곧 하느님 백성 안에서 일치와 조화를 찾는다. 다 양하고 풍요로운 선물을 주시지만 하나의 일치를 언 제나 잃지 않는데, 그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하고 매력적인 조화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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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모든 이는 세례를 통해 성령의 힘으로 복음화를 위해 불리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세례받은 모든 이의 투신이 필요하다(120항).

세례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된 모든 이는 본질적으 로 선교를 위해 불린 제자들이다. 교회 안에서 어떤 역 할을 맡든지 세례받은 모든 이는 복음의 선포자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데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세례받은 모든 이가 투신해야 한다.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을 진실하게 체험한 이는 그 사랑을 전하는 데 특별히 시간과 훈련도 필요치 않다.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만큼 모 든 그리스도인이 바로 복음 선포자가 된다. 또한 단순 11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한 전달자가 아니라 제자가 된다. 세례를 받은 이는 모 두 다 성령의 힘으로 복음화를 하도록 불렸다. 세례로 써 하느님 백성이 된 이들은 기름 바름으로 거룩해지 고 나날이 성장하며, 성령의 이끄심으로 진리와 구원 에 이른다. 우리는 복음 선포자로서 끊임없이 훈련되어야 하 고 깊은 사랑과 복음의 증거로 성숙해져야 한다. 그래 서 우리 자신부터 복음화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가 성숙해질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전달하는 방법을 먼저 찾아나서 야 한다. 우리가 불완전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에게 힘과 의미를 주신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깨달은 것을 주님의 구원과 사 랑과 함께 전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얻어 완전해져서 가 아니라 여전히 노력하지만 예수님께서 당신 것으로 당신 자신을 만들었다고(필리 3,12 참조) 말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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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기도에서 성령을 부르는 첫 단계는 성경 구절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구절의 의미를 찾고 이해하는 것이 진리에 대한 공경 행위이다(146항).

기도에서 성령을 부르는 첫 단계는 성경 구절에 우 리의 모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 구절 의 의미를 찾고 이해하려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대한 공 경 행위이다. 우리는 주인도 소유자도 아니며, 오히려 종이고 선포자이고 안내인일 따름이며, 우리를 초월 하는 말씀이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겸손한 마음을 지녀 야 한다. 말씀에 대한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은 말씀 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겠다는 거룩한 두려움이기도 하 11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다. 성경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려면 다른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모든 집중과 관심과 시간을 내어 인내해야 한 다. 다른 급박한 일에서 벗어나 맑은 마음으로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에 쉽고 빠르고 즉 각적인 내용을 찾으려고 성경 구절을 읽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일에 조용히 시간을 내어놓듯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바라시는 하느님과 우리가 사랑하는 하느님께 조용히 찬찬히 듣 고 또 말씀드려야 한다. 그분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시간들을 바치며 참된 제자답게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하고 말씀드려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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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신자들은 진정성에 목말라하며 말씀을 전하는 이가 자신이 이미 알고 개인적으로 친근한 하느님을 나누어 주길 바란다(149항).

설교자는 하느님 말씀과 아주 가까운 개인적인 친 밀성을 계발해야 한다. 성경의 언어나 주석을 아는 것 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말씀을 향 해 열려 있고 기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 써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새로운 전망 과 입장에 담아 나눌 수 있다. 따라서 매일 또 매주일 강론을 준비할 때 설교해야 할 말씀을 향한 애정과 사 랑이 자신 안에 솟아나는지 살피며, 열정을 새롭게 해 야 한다. 11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그리고 말씀을 선포하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영향 은 설교자의 거룩함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 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 는 것입니다.”(1테살 2,4)라고 말씀하셨다. 진정 설교해 야 할 말씀은 먼저 들으려는 열망이 있다면,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그 열망이 전해지며, 넘쳐나는 열망이 입으 로 말해지는 것이다(마태 12,34 참조). 요즘 사람들은 진정성에 목말라하며, 설교자가 자 신이 알고 친근해 있는 하느님을 마치 눈앞에 펼쳐 보이 듯이 말해 주길 바란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무엇보다 도 먼저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자 신을 구원하셨으며 그분의 사랑만이 언제나 모든 것의 중심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이신 하느님의 아름 다움을 만나면 자신의 삶이 하느님을 온전히 찬미하지 못함을 깨닫게 되면서 그 큰 사랑에 깊이 진정으로 응 답하려는 열망이 솟구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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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말씀으로 충분히 기도하지 않는다면 사목자들은 한마디로 “거짓 예언자이며 사기꾼이며 얄팍한 광대”일 따름이다(150항).

종교인의 직업병은 위선이라고 한다. 늘 좋은 말만 하고 살아야 하기에 행동이 따르기가 어렵다. 예수님께 서 자신은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 남에게 짐만 지우고 요구하는 자칭 스승이라는 자들에게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 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마태 23,4)라며 분노하셨다. 그리고 야고보 사도는 “나의 형제 여러분, 많 은 사람이 교사가 되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여러분 11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도 알다시피, 우리는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야고 3,1)라고 말씀하셨다.

설교하려는 이에게는 먼저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 의 삶 안에 깊이 들어와 육화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설교가 강렬하고 풍성해지며, 자신이 깊이 깨달은 것을 다른 이와 통교할 수 있다.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사람 속을 꿰 뚫어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는 칼과 같다 (히브 4,12 참조).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이가 먼저 그

말씀에 열려 있어야 다른 이도 깊이 꿰뚫을 수 있다. 그런데 열린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고, 그 말씀이 자신의 삶을 이끌고 자신을 도전하도 록 허락하지 않으며, 그 말씀으로 충분히 기도하지 않 는다면 한마디로 “거짓 예언자이며 사기꾼이며 얄팍한 광대”일 따름이다. 본당 사목자의 가슴 속에 그 주일의 독서들이 뜨겁 게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 설교되는 말씀들이 신자들 의 가슴에 살아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신자들은 진정성에 목말라하며 설교자가 자신이 알고 친근해 있 는 하느님을 나누어 주길 바란다.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19


자신을 바치는 열정을 키우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 정할 때 언제나 자신을 그리스도께 내어놓을 수 있다. 베드로처럼.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 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사도 3,6). 〠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신다. ……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일으키시고 악인들을 땅바닥까지 낮추신다”(시편 147[146-147],3.6)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6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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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주님, 이 성경 구절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이 성경 구절로 내 삶을 어떻게 바꾸길 바라시나요?” (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151항)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하고, 편한 대로 성경 말씀을 남용한다면 이는 하느님의 거룩한 말 씀을 개인의 이익과 편의에 맞추어 쓰는 것으로 하느 님 백성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다. 악마가 빛의 천사처럼 가장할 때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2코린 11,14 참조).

따라서 늘 “주님, 이 구절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요? 이 구절로 내 삶을 어떻게 바꾸길 바라시나요? 이 구절로 내 안에 무슨 어려움이 생기고 또 어떤 위로 를 받을 수 있나요? 어떤 말씀이 나를 감동시키고 이끌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21


고 또 왜 그런가요?” 하고 물어야 한다. 말씀을 들을 때 언제나 유혹이 따른다. 왜냐하면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며 살아가기는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이 다른 사람들에 게만 적용되고 자신 밖의 것이라 생각하여 어떻게 해서 라도 그 의미를 축소하고 쉽게 만들려고 한다. 말씀이 힘들고 어려운 것을 요구해서 자신은 준비도 성숙도 되 어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말씀을 만나 기쁨을 찾지 못 하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 아버지가 사랑과 인내로 기 다리심을 모르는 이의 생각이다. 하느님께서는 한 발자 국씩 더 나아가도록 기다리시며,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나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다만 진 정으로 우리 삶을 바라보고 정직하게 자신을 내보이며 아버지께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에 용기를 청하며 성장 해 가기를 바라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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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복음화는 자신의 삶 안에 하느님의 계획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내적 성장의 과정이다(160항).

사람이 변하기는 참 어렵다. 스스로 변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할 수도 없다. 사제 생활을 수십 년 해 오면서, 나를 비롯해 우리는 참 변하지 않는다는 생 각을 때때로 한다. 어릴 적 학창 시절의 모습과 성향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관계는 살아 있으며, 살아 있기에 변화하고 성장한다. 신앙도 관계이다. 특히 신앙은 하느님과 우리 가 갖는 관계로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정 체되고 생동감을 잃으며 성장할 수 없다. 주님의 선교 는 우리가 신앙 안에서, 주님 안에서 성장하기를 요청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23


한다. 곧 지속적인 신앙 성숙과 양성을 요청한다. 복음 화는 자신의 삶 안에 하느님의 계획을 진지하게 받아들 이는 내적 성장의 과정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인 역사와 시공 속으로 강생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삶과 공동체 역사 의 지평 속에 강생하는 것이 바로 복음화의 길이다. 바 로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 속에 그리스도를 살게 해 드리는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서 사시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갈라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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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모든 순간과 모든 관계에서 가장 먼저 몇 번이고 거듭 선포되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다(164항).

복음 선포의 첫 번째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당신의 삶을 내주시어 우 리를 구원하셨고, 날마다 우리를 이끌고 우리에게 힘 을 주시며,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자 우리와 함께 계 신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이 가장 먼저, 또 몇 번이 고 반복해서 선포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순간과 모 든 관계에서 복음을 선포할 때마다 그분의 사랑을 반 드시 전해야 한다. 복음 선포는 언제나 삼위일체적이다. 성령의 불이 혀 모양으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죽음과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25


부활을 믿는 이들이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깨 닫고 믿고 드러내도록 이끈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세 분의 위격으로 드러나는 삼위일체가 완벽한 사랑의 일 치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들은 교회의 다른 모든 구성원과 함 께 스스로 복음화되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복음화 는 다름 아닌 사랑과 자비의 모습이다. 복음을 선포하 는 이는 말씀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겸손함, 인내와 너그러움, 온화함, 쉽게 판단하지 않는 반응,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는 열린 태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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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잘 듣는 것은 예술이다(171항).

마음을 열고 귀 기울여 듣는 통교 없이는 진정한 영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고, 친밀한 관계도 없다. 이를 위해 스치듯 듣지 않고 귀 기울여 듣는 연습을 해 야 한다. 귀 기울여 듣는 것은 올바른 태도로 좋은 관 계를 이끈다. 잘 들을 줄 아는 것은 예술이다. 다른 이들과 관계 속에서 서로 존경하며 자비로운 태도를 가져야만이 참된 성장의 길로 갈 수 있고, 그리 스도인의 이상을 실천할 수 있으며, 하느님 사랑에 응답 하고, 우리 삶 안에 뿌려진 씨앗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 같은 성숙한 단계에 이르려면 오랜 시간을 몇 번 이고 반복하며 인내하고, 자유롭게 또 책임 있게 하느 님께 응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27


50 성경이야말로 복음화 활동의 원천이다. 그리고 교회가 먼저 복음화되지 않으면 세상의 복음화에 나설 수 없다(174항).

모든 복음화 활동은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섬기 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데서 시작한다. 성경이야말로 복음화 활동의 원천이다. 따라서 성경을 날마다 읽고 또 그 말씀을 잘 듣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복음화 활동을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복음화되어야 한다. 곧 하느님 말씀이 모든 교회 활동의 심장부에서 먼저 충만히 드러나야 한다. 성체성사 안에서 선포되고 거행되는 하느님 말씀 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상생활에서 복음을 증언할 수 있도록 내적 힘을 준다. 128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말씀의 선포는 성사를 더 효과적으로 살아 있게 받 아들이도록 준비시키고, 그 말씀은 성사 안에서 완벽 한 힘을 발휘한다. 〠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외침이 우리의 외침이 되고 우리의 위선과 이기심을 감추려고 기꺼이 빠지는무관심의 장벽을 모두 함께 무너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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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성경 공부는 모든 신자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복음화는 하느님 말씀과 친밀함을 전제로 한다(154항).

복음화가 하느님 말씀과 친밀함을 전제로 하고 따 라서 성경 공부가 모든 신자에게 열려 있으려면, 교회 의 모든 교구와 본당과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성경 공부 를 제안하고 신자들이 개인적으로든 공동으로든 성경 을 읽고 묵상하고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계시된 말씀은 큰 보물이다. 하느님을 맹목적으로 찾거나 그분께서 응답하시기까지 기다리기 전에 하느님 께서 이미 모든 것을 말씀하셨기에, 우리가 더 알아내 야 할 것도 더 궁금해할 것도 없다. 우리는 말씀을 성찰하는 것처럼 자신이 복음화해 13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야 할 대상을 성찰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생각 이나 경험, 한계나 열망을 알아채고, 그들의 기도와 사 랑과 삶을 이해하며, 그들의 언어와 표현 방식으로 답할 수 있다. 〠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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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비이다. 형제자매들이 바로 하느님 강생의 연장선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사랑이다(179항).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비이 며, 우리의 사명은 사랑이다. 구원의 선포와 진정한 형 제적 사랑은 분리될 수 없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바로 하느님 강생의 연장선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 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 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 셨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아주 초월 적인 입장이 담겨 있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마태 7,2).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13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서 벗어나 다른 형제자매들에게 나아가는 것이며, 그 리스도인의 가장 위대한 계명은, 모든 윤리적인 가르침 과 하느님께 드리는 영적인 응답의 표징으로, 다름 아 닌 형제자매들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자비의 봉사가 교회의 사명과 교회 자체를 드러내는 핵심 요소이다. 우리의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 특히 가난한 이 웃에 대한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꾸만 나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리스도의 삶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 놓으신 사랑의 삶인데, 교회의 초점이 우 리의 초점이 자꾸만 다른 것으로 쏠린다. 이러다가 예 수님 없는 교회가 될까 두렵다. 언제부터 왜 그렇게 우리는 판단만 하려고 하는 가? 왜 그렇게 가르치려고만 하는가? 물론 세상에 대 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밝힐 필요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우리가 먼저 서로 사랑하고 세상을 향해 희생 과 봉사와 자비를 실천할 때만 가능하다. 사랑과 자비 를 먼저 세우면 다른 것도 다 따라오게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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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합리적인 시민 의식과 정치 생활의 참여는 윤리적 책임이다(220항).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이는 자기 삶의 현장에 서 냉철하게 투신하는 삶으로 자신의 사회 환경을 향 상시킨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합리적인 시민 의식은 덕목이며 정치생활에 대한 참여는 윤리적 책 임이다. 예전에 종교가 종종 말했던 개인적으로 영혼만 잘 살아 하늘에 올라가면 된다는 것은 오늘날에는 더 이 상 통용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천상의 영원 한 생명을 그리며 살기를 바라시지만, 이 세상에서도 모두 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사회 정 의와 공동선은 그리스도인들이 실현해야 할 중요한 회 134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개의 한 부분이다. 누군가 종교는 개인적 삶과 내적인 거룩함이고, 사 회나 민족, 제도나 조직과는 상관없으니 사회의 정의 문제에 대해 교회는 입 다물고 있으라고 한다면 크게 잘못된 말이다. 그 어느 누가 프란치스코 성인과 콜카타의 마더 데 레사를 침묵시킬 수 있겠느냐 말이다. 진정한 신앙은 결코 개인적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머물 수 없으며, 세 상을 변화시키려는 깊은 바람으로 하느님의 가치가 실 현되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살게 해 주신 이 지구를 사랑하고, 함 께 사는 모든 인간 가족들, 그들의 아픔과 투쟁, 바람, 장점과 단점을 우리 모두 함께 사랑해야 한다. 지구는 우리 공동의 집이고 우리 모두 형제자매이 다. 만약 사회와 나라를 질서 잡고 안정시키는 것이 정 치라고 한다면 교회가 정의를 위한 싸움에서 결코 빠 져서는 안 된다. 성직자를 포함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더 나은 세 상을 건설하도록 부름받았다. 교회의 사회에 대한 입장 은 긍정적이며, 전향적인 변화를 지향하고 예수 그리스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35


도의 사랑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희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7

7.  여기서 교황님께서는 우리도 정치하라고 하시는 것일까? 결국 세상 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이기에, 더 이상 방관자로 남아 있지 말고 과 감하게 변화와 정의를 위해 싸우라는 말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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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옛날에는 좋았는데 지금이 어렵다고 하지 마라! 오히려 우리를 앞서가며 그 시대의 어려움에 맞서 싸운 성인들에게서 배워라(263항).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살다간 무수한 그리스도인들 을 기억해 보자. 충만한 기쁨과 지칠 줄 모르는 용기와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어떠한 어려움에도 그들은 적극적으로 맞섰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예전만큼 쉽지 않다고 하며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스스 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 제국이 복음 선포와 정의를 위 한 투쟁과 인간 존엄의 수호에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음 을 알아야 한다. 역사의 모든 시기마다 인간적인 나약 함, 자기도취, 안주하려는 이기심, 또한 우리를 위협하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37


는 탐욕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언제나 여러 가지 형태로 위장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 같은 어려움은 어떤 특정한 상 황보다는 인간이 가진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한 다. 따라서 오늘날 모든 것이 옛날보다 더 힘들다고 말 하지 말자. 오히려 우리를 앞서가며 그 시대의 어려움에 맞서 싸운 성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

교회의 으뜸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교회는 용서와 헌신으로 이끄는 이러한 사랑의 봉사자요 전달자가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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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가장 깊은 목마름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된다(265항).

복음화의 첫 번째 동인은 우리가 받은 예수님의 사 랑, 그분께 구원받은 우리의 경험이다. 예수님께서 우 리가 당신을 더욱더 사랑하도록 이끄신다. 그분을 사랑 하는 것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먼저 우리 를 부르시고 이끄시는 것이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이를 더 알고 싶고, 보고 싶 고, 그에 대해 더 말하고 싶고, 자신을 더 보여 주고 싶 고, 더 알리고 싶어진다. 사랑하기에 더 깊이 갈망하 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해소되지 않는 목마름과 갈망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과 이루는 친교와 우리 형제자매들에 대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39


한 사랑을 위하여 창조되었기에 복음만이 우리의 가장 깊은 목마름을 채울 수 있다. 그 끝없는 목마름은 끝없 는 사랑만으로 해결된다. 우리는 감출 수 없는 사랑과 생명의 보화를,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는 생명과 사랑의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가장 깊 은 곳에서 진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응답할 때,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드러낼 수 있다. 〠

교회는 복음의 뛰는 심장인 하느님의 자비를 알려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자비가 모든 이의 마음과 정신에 가 닿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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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예수님께서 우리 삶 모든 것의 중심이 되셔야 한다 (264항).

개인적인 체험을 통한 확신이 없이는 복음화를 열 정적으로 꾸준히 수행할 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 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선교사는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걸어가시고 그에게 말을 거시고 그와 함께 숨을 쉬시며 함께 일하신다는 것을 안다. 예수님께서 선교 활동의 중심에 계시다는 것을 알 지 못하면 우리의 노력은 곧 시들해지고 우리가 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힘 과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다. 확신과 열정과 신념과 사 랑이 없는 사람은 그 누구도 설득하지 못한다. 예수님 께서 우리 삶의 모든 것에서 중심이 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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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우리 자신의 적합성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의 작은 한계나 소망을 떠나 우리의 이해와 동기를 뛰어넘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267항).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궁극적이고 가장 깊고 가 장 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와 의미는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 지상 생애의 모든 순간에 추구하신 것이 아버지의 영광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도 아버지 의 뜻을 물으셨으며, 당신 자신을 지키려 하시거나 혼 자 안위를 누리려고 하시지 않았다. 우리 자신의 적합성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달리 말 하자면, 우리의 작은 한계나 소망을 떠나, 우리의 이해 142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와 동기를 뛰어넘어,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참 많다. 못 나고 못되고 한심한 일을 많이 했다. 가끔 그런 부끄러 운 일이 떠오르면 자책감으로 몹시 괴롭다. 그러나 어 쩌랴? 못나고 모자라고 좁은 속을 다 인정하고 여기서 부터 새로 출발하면 되지 않을까? 다 준비되고 다 완성 되었다고, 그래서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한 다면 이 또한 이미 나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것 이리라. 어떻게 보면 오히려 깨질 수 있고 흠 많은 것이 하느님을 섬기기에 더 나을 수 있다. 오로지 아버지의 영광만을 위해 나아가고 거기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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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웃에게 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습니다 (272항).

우리는 결코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필리 2,3 참조) 여겨야 한다.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귀

족들처럼 다른 이들을 깔보는 자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셨다.8 다른 이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를 하느님과 일치시 켜 주는 영적인 힘이다. 참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1요한 2,11) “죽음 안 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1요한3,14) “하느님을 알지 못 한다”(1요한 4,8). 베네딕토 16세 교황님도 “이웃에게 8. 「복음의 기쁨」, 271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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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으면 하느님도 볼 수 없다.”9고 말씀하셨다. 또 한 사랑은 결국 “어둠에 싸인 세상을 언제나 밝혀 주고 우리에게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용기를 주는”10 유일한 빛 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하 느님에 대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 이 열린 마음이 기쁨의 원천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사도 20,35)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위 에 갇혀 있다면 그 누구도 더 잘살지 못한다. 그러한 삶 은 서서히 이루어지는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

9.  베네딕토 16세,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 2005.12.25., 16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3(제1판 16쇄), AAS 98(2006), 217면. 10.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39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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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빛을 밝혀 주고 복을 빌어 주고 활기를 부어 주고 일으켜 세우고 치유하여 해방시키기 위해서입니다(274항).

우리가 벽을 허물고 우리 마음이 다른 이들의 얼 굴과 그 이름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충만해진다. 평생 나만 생각하고 살았다. 다른 사람을 만날 때도 내가 좋아서 나에게 이득이 될까 만났다. 내 안에 나만 가 득 차 있다. 그런데 교황님께서는 자기 안에 다른 이들 의 이름과 얼굴이 가득할 때 오히려 충만해진다고 말 씀하신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우리 삶을 나누고 우리 자신을 그들에게 내어주라고 불렸다. 모든 이가 하느님께서 손 146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수 빚으신 작품이고,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우리는 어 느 누구도 빼놓지 않고 모든 이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 들의 외모, 능력, 언어, 사고방식 때문이 아니고 우리 가 얻는 만족감 때문도 아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 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가슴과 가슴으로 통교하며 살아가 는 것은, 우리가 싫으면 하지 않고 좋으면 하는 내 삶의 일부도 한순간도, 부록도 치장도 아니다. 그것은 그리 스도인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의 실존이다. 이것을 잃으면 우리 자신도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땅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사명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 는 이유이다.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들에 게 빛을 밝혀 주고 복을 빌어 주고 활기를 부어 주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치유시키고 해방시키는 일을 하 라고 도장 찍혔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영혼의 간호사, 영혼의 스승, 영혼 의 정치인으로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겠다고 마음속 깊이 결심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이 같은 우리의 사명을 자신의 사생 활에서 분리시킨다면 우리의 모든 것이 잿빛으로 바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47


뀌면서 자기만 인정해 주기를 바라고 자신에게 필요 한 것만 주장하면서 더 이상 하느님의 사람이 아니게 된다.11

11.  「복음의 기쁨」, 273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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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핑계로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인 복음을 묻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276항).

사목을 하다 보면 자꾸 정치를 하게 된다. 복음의 원칙은 사라지고 인간들의 이해관계, 보상 심리, 직책 에 대한 집착, 인간적인 공명심에 사로잡혀 있다. 복음 말씀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미 문전 박대당해 문밖 으로 버려지고 사목자들은 장사꾼처럼 거래를 한다. 그 러면서도 어느 때는 남의 인정과 박수갈채, 보상과 지 위 같은 출세지상주의와 자기만을 생각하는 좁은 마음 에 질려 버리기도 한다. 새로운 어려움도 계속 나타난다. 실패도 겪고 인간 적인 나약함으로 많은 고통도 겪는다. 성과는 거의 없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49


고, 변화는 더디고,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받기 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핑계로도 이 세 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인 복음을 묻어 버릴 수 없다. 안락함과 게으름과 막연함, 불만과 공허 한 이기주의에 갇혀 벗어나지 않으려는 나쁜 핑계는 자 신을 해치는 태도이다. 인간은 희망이 없으면 살 수 없 다. 희망이 없다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삶이 힘들어진다. 인간은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 늘 다시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힘이고 복음 을 선포하는 이는 부활하는 힘의 도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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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인간 생명은 거룩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생명 발달의 어느 단계에서도 침해될 수 없다(낙태) (213항).

교회가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이들 편에 섰는데, 오늘날 가장 가난하고 약하면서 우리의 도움을 가장 필 요로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바로 뱃속에서 나와 볼 기 회도 없이 무참하게 외과수술로 몸 안의 종양인 양 제 거되는 태아들이 아닐까? 인간 생명은 어떤 경우에도 생명의 발달 단계의 어 느 부분에서도 언제나 거룩하며 침해될 수 없다. 인간 은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며 그 어떤 것의 수단이 되 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뱃속의 아기는 엄마 몸 밖으로 나오기 전까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51


지는 인간이 아니므로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 다. 임신한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 이 세상의 법이다. 그리고 이를 막으려는 교회의 노력 은 시대착오적이며 구닥다리 종교의 융통성 없는 교리 라고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다. 인간 생명을 없애 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는 그들이 주장하는 만큼 결코 진취적이지도 진보 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강간이나 극도의 가난 속에서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성 또는 미혼모로서 극심한 불안을 겪는 여성들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도우려는 어떤 구체적인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이러한 여성 들에게 낙태는 간단한 해결책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 들의 아픔과 고통을 들으면서 안타깝고 아픈 마음이 생 기지 않을 이가 어디 있겠는가? 교황님은 단죄와 판단 보다 이들의 절박한 상황과 아픔에 함께 동참하자고 하 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들의 아픔을 나누려고 무 엇을 했으며,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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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행동은 하나도 헛되지 않다(279항).12

우리에게 내적인 확실성 곧 하느님께서는 모든 상 황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활동하신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다” (2코린 4,7).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행동은 어느 하나도 헛되지 않다. 다른 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관심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해야 한다. 아낌없는 노력은 무의미하지 않 으며 고통스러운 인내가 쓸모없지 않다는 것이다.

12.  우리 주변에 꾸르실료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 울뜨레아(ultrea)라 는 말은 바로 ‘앞으로 나아가자, 전진하자’는 뜻을 지닌다. 우리가 받 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결코 저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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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생명의 힘으로 세상을 감돌고 있다. 이따금 우리의 노력이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인 다. 그러나 선교는 거래나 투자가 아니고 인도주의적 활동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창의적이고 아낌없는 헌신 속에, 아버지의 따뜻한 품 안에서 쉬는 법을 배우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자. 〠

자비의 육체적 활동은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며, 헐벗은 이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나그네들을 따뜻이 맞아주며, 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가 주며,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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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습니다(280항).13

‘내일 일은 난 몰라요’라는 성가가 있다. 하루하루 산단다. 처음에 들었을 때 참 무책임한 노래라는 생각 이 들었다. 계산하고 따지고 악착같이 해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어떻게 하루하루 사냐는 말이다. 그런데 보 이지도 않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어 맡기 는 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단다. 하느님과 깊이 친교하 고 그분을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내어 맡기는 삶이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신다”(로마

13.  교황님도 갈피를 못 잡고 심연에 빠져 무엇을 찾을지 모르는 경험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성령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말씀하신다. 참으로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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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우리는 이 믿음을 키워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께 간청해야 한다.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분에 대한 이 믿음 때문에, 우리는 갈피를 못 잡는 것처 럼 느낄 수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심연에 깊숙이 빠져 무엇을 찾을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교황님도 자주 이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자신을 내어 맡기 는 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다. 이제 모든 것을 마지막 하나까지도 계획하고 통제하려 하지 말고, 성령께서 바 라시는 대로 우리를 이끄시게 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계신다. 우리는 이를 신비롭게 결실로서 얻는다. 자기 의사도 걱정도 근심도 없이 다 맡기고 산다니 제 정신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나는 십자가에서 죽었 다.”라는 바오로의 말씀이 바로 그 말인 듯싶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이제 그분이 산다.14 이제 나는 없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말이다. 〠 14.  갈라 2,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 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 으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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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자기만 생각 말고 다른 이를 위한 자리도 마련해 보자.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셔야 한다(281항).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많다. 자기로만 꽉 차 있 어서 남이 들어가려야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는 자기 를 비우고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내어주는 신앙의 신비 를 깨닫기에는 너무 아둔하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예수님과 같이 못 박아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셔야 한다.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도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 입니다”(필리 1,4.7). 여기에서 우리는 참다운 기도 생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57


활은 우리를 이웃에게서 멀어지게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관상에는 언제나 다른 이를 위한 자리가 있 다.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다른 이를 위한 자리도 마련 해 보자. 〠

자비의 영적 활동은 의심하는 이들에게 조언하고,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며, 죄인들을 꾸짖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 우리를 모욕한 자들을 용서해 주고,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인내로이 견디며,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15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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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끊임없이 감사합시다(282항).15

내 영적 지도 신부님이 한때 교구의 은퇴 사제들을 돕는 책임을 맡은 적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해마다 몇 십 명씩 사제가 배출되었으니 은퇴 사제도 동시에 수 십 명이 되었을 때이다. 은퇴하고 나서 살 집이라든지 연금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챙겨 주면서 자신이 꼭 물 어 보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평생의 사제직에 대해 말 해 달라는 것이다. 어떤 노사제는 눈이 둥그렇게 커지면서 너무 좋고

15.  감사만 잘해도 된다. 평생을 수행하는 구도자들이 모든 것을 다 내 걸고 하느님을 찾고 깨달음을 얻지만, 사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 음만 잃지 않으면 이 세상에 살아가는 어느 누구도 쉽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처럼 은혜롭고 생명 충만한 인간 행위 도 달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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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고 은혜로워서 다시 하라고 하면 똑같이 다시 하겠다고 한단다. “먼저 여러분 모두의 일로, 예수 그 리스도를 통하여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로마 1,8).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

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 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1코린1,4 참조). 이는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쏟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감사이다. 반면에 어떤 노사제는 주교님이 불공평하고, 동료 사 제가 괴팍하고 보좌 신부가 말을 안 듣고 무시하고 신 자들이 불평했다고 질색하면서 은퇴해서 속이 시원한 듯 말을 한단다. 복음 선포자가 모든 것을 기도에서 출발할 때, 그 들의 마음은 더 활짝 열리고, 자기에게서 벗어나 선행 을 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싶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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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간절한 전구는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283항).

기도하시나요? 간절하게 바라시나요? 간절한 바람 을 갖고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대로 이루어지기를 또 바라시나요? 하느님의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전구자들 이었다. 이것은 아버지 안으로 들어가 현실의 구체적인 상황들에 복음의 빛을 비추고 이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의 전구로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 다. 우리의 전구까지도 그분의 이끄심이다. 우리가 우 리의 전구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힘과 그분의 사 랑과 그분의 성실하심을 사람들 가운데에서 더 분명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61


히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간절한 전구는 삼위일체 의 깊은 일치 속에서 모든 것을 부풀려 가능하게 하 는 누룩과 같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아름다운 것도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 구원의 열매를 모든 이에게 전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가 땅 끝까지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얼굴」, 2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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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성모님께서는 복음화하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다 (285항).

성모님께서 안 계시면, 우리는 결코 새로운 복음 화의 정신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십 자가 위에서 세상의 죄악과 하느님 자비의 극적인 만남 을 당신 몸으로 이루셨다. “이분이 네 어머니이시다”(요 한 19,27).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에

서 중요한 것은 당신 어머니를 향한 그분의 헌신과 관 심의 표현만이 아니다. 이 말씀은 특별한 구원 사명의 신비를 드러내 주는 계시의 한 양식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주셨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이 “다 이루어졌다.”(요 한 19,28)고 말씀하셨다.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63


십자가 아래에서, 새 창조의 절정의 이 시간에, 그 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마리아께 이끄셨다. 마리아에 대 한 이해와 깨달음이 없다면, 그분의 삶과 그분의 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복음화의 구체적인 삶 의 양식과 방법을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어머니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픔과 고통이고 인내이며 하느님에 대한 신뢰 이다. 말씀을 깊이 받아들여 묵상하며 하느님 나라에 평생을 바치며 구원의 신비를 온몸에 담는 것이다. 바 로 이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며 그래서 마리아가 복 음화의 어머니이신 것이다. 마리아처럼 살라는 소리이 다.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여 그분을 본보 기로 삼으라는 말이다. 마리아께서는 복음화의 구체적 인 징표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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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마리아께서는 믿음으로 사시고 믿음으로 걸어가신 믿음의 여인이십니다(286항).

어두운 밤을 거쳐야 하나 보다. 달콤하고 좋고 은 혜롭기만 하면 좋을 텐데, 쓰고 아프고 목마르고 메마 른 사막을 지나야 한다. 우리가 이 복음화의 여정을 가 다 보면, 아무런 결실도 없고 앞은 캄캄하고 막막하기 만 하며 그래서 지쳐 버리는 때가 수도 없이 많을 것이 다. 그런데 이때가 바로 기쁜 소식인 복음의 시작이라 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교황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복음화의 여정을 가다 보면, 우리는 아무런 결실도 없고 앞은 캄캄하고 지쳐 버리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기쁜 소 식인 복음의 시작이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표현을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65


사용하면, 일종의 ‘신앙의 밤’과 연결된 특별한 마음의 부담, 곧 보이지 않는 분께 다가가 신비와 친교를 이루 려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일종의 ‘장막’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길은 마리아께서 여러 해 동안 아드님의 신 비와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시고 당신의 ‘신앙의 순례’를 계속해 나가신 바로 그 길이다.” 칼에 꿰찔린 마음을 지니신 마리아께서는 우리의 모든 고통을 이해하시는 여인이시다. 모든 이의 어머니 이신 마리아께서는 정의를 낳을 때까지 산고로 고통받 는 사람들을 위한 희망의 표지이시다. 마리아께서는 우 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시어 우리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주시고 당신의 모성애로 우리 마음을 믿음으로 열어 주 시는 선교사이시다. 마리아께서는 어두운 밤에 신앙을 지키며 견디어 내는 모든 이의 위로자이시다. 마리아께 서는 믿음으로 사시고 믿음으로 걸어가신 믿음의 여인 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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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마리아 방정식은 곧 사랑의 혁명이다(288항).16

마리아 방정식은 곧 사랑의 혁명이다. 교회의 복음 화 방식에는 마리아 방정식이 있다. 마리아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온유한 사랑의 혁명이 지닌 힘을 믿게 된다. 우리는 겸손과 온유가 나약한 이들의 덕이 아니라 강 한 이들의 덕이라는 것을 그분에게서 알게 된다. 강한 사 람은 자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려고 다른 이들을 홀대 하지 않는다. 마리아께서는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루카 1,52)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시는”

16.  교회의 많은 문헌을 보면 마리아에 대한 전구와 묵상으로 끝을 맺 는 것을 자주 본다. 「복음의 기쁨」도 예외가 아니다. 마리아께서 우 리 신앙의 본보기이며 길잡이시다.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67


(루카 1,53) 하느님을 찬양하셨다.

살다 보면 남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만난다. 함부로 반말을 하고 깔보고 무시하고 짓누르려고 한 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자기가 더 위에 선다고 생각하 는 것일까?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 찮게 볼 수 있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주 변 사람을 짓누름으로써 자신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비추어 볼 때, 마리아의 겸손과 온유가 너무 도 아름답다. 이 같은 겸손과 온유를 닮고 싶다. 온유 한 사랑의 혁명이라니 얼마나 놀라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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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마태 6,21).

돈에 자유로운 사람!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 른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 도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생에서 돈이 전부가 아 니라고 설교하면서도 결국은 신자들에게 돈 더 내놓으 라고 으름장을 핀다. 이것도 참 모순이다. 결국 교회 도 신부도 돈에서 자유롭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 을 것 같다. 사실 세상 살아가면서 돈처럼 어렵고 힘든 것도 별 로 없다. 도를 닦는다는 신부도, 수행한다는 스님도 마 찬가지다. 어디서는 성당도 팔아먹고 절도 팔아먹는다 고 하니, 모두 이유야 있겠지만, 결국은 돈 문제다. 어 떤 사람들은 양심도 팔고 몸도 팔고, 아예 신체 일부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 169


를 팔기도 한다. “돈, 돈” 하다 돌아 버린다는 말이 있다. 우스 갯소리이지만 뼈 있는 말 같다. 돈 때문에 형제 사 이도 갈라지고 친한 친구 친척도 갈라지고 부부끼리 도 원수가 되는 경우를 주변에 흔치 않게 본다. 부 부였던 사람들이 서로 무섭게 싸워 어떻게 한 푼이 라도 더 가져갈까 하니 이제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 니라 철천지원수다. 신부들도 마찬가지다. 뉴욕 대 교구에서 몇몇 몬시뇰들이 성당 돈을 빼돌리고, 횡 령 협의로 경찰에 잡혀 가기까지 했다니 정말 돈 앞 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 다. “사실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도 있다” (마태 6,21).

한번은 결혼식 때 성당에 내는 돈에 대해 심하게 항의하는 예비부부를 보았다. 성당에 왜 돈을 내야 하 냐는 것이다. 꽃이니 사진이니 식당이니 차 빌리는 데 는 돈을 펑펑 쓰면서도, 성당에 내는 그 돈이 아까운 것 이다. 결국 그들은 6개월도 못 가서 갈라섰다. 마음이 돈 밭에 가 있으니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신의와 사랑’이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사 170 양 떼 냄새 나는 목자


람에게 ‘보물’은 ‘신의와 사랑’이 아니라 ‘돈’이므로, 마 음이 돈에 가 있는 것이다. 어디 나가서 몇 백 불씩 펑 펑 쓰면서 하느님 앞에 바치는 성당 헌금엔 십 불에 벌 벌 떤다. “부족하다, 부족하다” 하면 평생을 부족하게 사는 것이고, “넉넉하다, 충분하다.” 하면 평생을 넘쳐 나게 해 주시는 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긍정 과 믿음의 힘이다. 하느님은 쩨쩨한 분이 아니시고, 온갖 복을 넘치게 내려 주는 분이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 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에페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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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 10계명 

프란치스코 교황

1. 내 방식의 삶을 살되, 타인도 자신의 삶을 살게 두자. 2. 마음을 타인에게 열자. 3. 조용히 전진하자. 4. 삶의 여유를 찾자. 5. 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쉬자. 6. 젊은 세대에게 가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 줄 혁신적인 방법을 찾자. 7. 자연을 존중하고 돌보자. 8. 부정적인 태도를 버리자. 9. 개종시키려 하지 말자. 10. 평화를 위해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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