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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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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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4, 2012 Vol. I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은... 열림의 대화, 나눔의 영성, 자유의 복음을 지향합니다. 주일 기도 모임: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목요 대화 카페: 매주 목요일 오후 7시~9시 Chromatic Coffee, Lawrence & Stevens Creek, Santa Clara 한편, 사회에서 리버럴은 그 독특한 개인주의와 결 합하면서 사회적인 관심은 있지만, 실제로 공동체 적인 가치에 헌신하지는 않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자기주장을 좀처럼 양보하지 않을뿐더러, 헌신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목요 카페 풍경 이번에는 소위 리버럴 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리버럴과 종교 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 었습니다.

헌신의 내용이 무엇이냐를 두고 설왕설래했지만, 선뜻 결론이 안 났지요. 다만, 꾸준한 끈기, 자기 성 찰이 겸손한 태도로 이어지는 일,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경청하는 일, 공동체를 위해 실제로 자신 의 일부를 내어 놓는 일 등을 나눴습니다.

사회 안에 진보를 외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어느 울타리 안에서 목소리만 크지 힘은 별로 없습 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리버럴한 신앙인이 있지만, 비판의 소리가 크지도 않을뿐더러 어떤 대 안을 세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종교 안에서는 또 영적인 갈급함에 대한 문제가 중 요하게 떠오릅니다. 사람은 다 다르지요. 종교적 심성이랄까, 영적인 갈급함에 관한 문제를 세속의 리버럴, 그리고 종교 내 리버럴마저도 자주 간과하 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진단이 쉽지 않아서 서로 다른 의 견이 오갔습니다. 현실을 보면, 종교 안의 리버럴 은 세속으로 점차 떠나고, 종교 안에 남아 있는 분 들은 숨죽이며 기존 종교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사이에 근본주의자들은 더욱 보수화되며 더욱 막강해집니다. 그나마 남은 비판적인 신앙인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집니다. 이쯤 되면 기존 종교 틀 안에서 새롭고 대안적인 신앙 공동체를 세우는 일 은 몹시 어렵게 됩니다.

세속 사회든 종교든 보수파나 근본주의자들은 이 틈을 잘 파고듭니다. 소위 리버럴은 여기서 내내 취약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과거에 리버럴 이나 진보를 자처했던 이들이 왜 갑자기 보수 진영 에 투항할까? 이 부분에 대해 사려 깊게 살펴야 하 겠습니다. 1


주일 기도 모임 이 이콘(ikon)은 하느님의 삼위일체(Trinity)를 표 현한 것입니다. 떠도는 세 명의 나그네를 환대한다 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들이 음식을 대접받고 함께 나누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교회 전 통은 이를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하느님, 하느님의 영이 나누는 관계라고 해석합니다. 그들은 음식을 나누고 대화하며 서로 경청합니다. 주일 기도 모임 은 이렇게 서로 환대하며 음식을 나누고, 서로 경청 하며 대화하는 모습을 닮으려 합니다.

정지 - 자유 - 의식

의식 - 하느님이 사랑으로 우리 와 함께하시니, 현재의 자신을 생 각하며 사랑의 눈으로 과거의 상 처를 돌아봅시다. 우리 마음에는 그늘과 어둠이 있지요. 그러나 그 어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건 넵니다. 치유를 찾으라고, 용기를 내라고, 그리고 용서하라고.

성서 대화 길잡이 정지 -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 십니다. 아니, 그보다 더, 하느님 이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며, 그 리하기에 우리의 존재가 거룩하 다고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안 에 머물며, 우리 몸, 우리 생각, 우리 마음, 우리 삶 전체에 새로 운 생명을 주십니다. 자유 - 하느님은 우리를 속박하 지 않고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 다. 하느님의 영을 우리에게 숨처 럼 불어넣어 우리의 욕망을 새롭 게 합니다. 이기적인 욕망을 넘어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선한 것 을 꿈꾸게 하십니다. 그 영에 이 끌려 자유로워기를 청합시다.

복음 - 마르코 10:46~52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엇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 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 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 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를 깨달은 사람은] 하 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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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와 실천 은 단연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 의 병렬법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랑의 대상에서 하느님과 이 웃이 나란히 자리합니다. 좀 더 신학적으로 풀면, 사랑의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닌 타자, 곧 전적인 타자입니다. 그러나 그 타자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웃의 얼굴은 하느님 얼굴의 흔적"이라고 레비나스(E. Levinas)라는 철학자가 말했죠. 종교를 갖거나 신을 찾는 일과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신의 흔적 을 보는 일은 별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 들 사이에서 하느님을 보고 그들과 더불어 정의롭 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애쓰는 일은 당연한 의무요 실천입니다.

돌 같이 차고 가진 것 없는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은 빛과 사랑으로써 채우러 오시네. 우리는 주님 발자취를 이웃에서 보네. 가련한 우리 형제들을 위로하심에서 돌 같이 차고 가진 것 없는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은 빛과 사랑으로써 채우러 오시네.

*** 기도 모임을 마치면서 "우리는 주님 발자취를 이웃 에서 보네"라는 성가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주님 발자취를 이웃에서 보네. 정의를 위해 젊음을 바친 분에게서. 돌 같이 차고 가진 것 없는 우리 마음 속에 주님은 빛과 사랑으로써 채우러 오시네.

우리는 주님 발자취를 이웃에서 보네. 가난한 우리 위한 사랑 불태우심에서

다는 믿음에 따라 제정한 교회의 전통적인 축일입 니다.

모든 성인의 날, 모든 별세한 영혼의 날

그 믿음은 "성도의 교제"(communion of saints)라 는 신학으로 새겨졌습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맞이 하는 하릴없는 이별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그리 움이 이런 믿음과 신학을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어떤 연유든 그 사랑의 기억과 그리움은 고귀합니 다. 그래서 교회 전통은 그 그리움을 고마워하고 되새기는 축일을 마련한 것이지요. 사람은 자리를 달리할 지언정, 크신 하느님의 품 안에 있기에 완 전히 이별한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연대요 친교입니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 더라도 기도를 통해서 늘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승 이든 저승이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삶에 대한 믿음이 바로 "성도의 교 제"(communion of saints)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안에서 주님께서 택하신 이들을 연합하여 서로 친교 를 누리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 어, 우리가 성인들의 유덕하고 거룩한 생활을 본받으며,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무 량한 복락을 누리게 하소서.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11월 1일을 모든 성인의 날 (All Saints' Day)로, 11월 2일을 모든 별세한 영 혼의 날 (All Souls' Day) 로 지킵니다. 세상에 남은 이들과 세상을 떠난 이들이 서로 기도하며 친교한 3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 정진범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엊저녁, 어느 모임에서 만나 40세 된 사람이 저녁을 같이하자고 했 다. 모인 사람은 네 사람이었는데, 그 중 내가 제일 연장자 60대 초반이 고, 한 사람은 40대 중반의 성공 회 신부, 또 한 사람은 40세의 개 신교 목사, 그리고 다른 한 사람 은 50세 여자 분으로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이었다. 믿는다는 사람들이 대개 존대하 느라 여념 없는 목사와 신부, 그 리고 연륜이 지극한 삶의 문 앞에 서있는 여인과 함께 자리가 마련 된 것이었다. 내게는 참으로 희한한 모임이었 지만, 얼마나 화기애애하고 즐거 웠고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이 지역에서 제일 괜찮은 순대국 집에서 모였는데, 소주를 서로 주 거니 받거니하면서 거의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제는 그냥 세상 사는 이야기. 여기에 정치 문제와 종교 문제에

관하여 각자 자신의 의견도 나누 었다.

“거, 괜찮네요. 그 쪽으로 한번 생 각해 보시지요.”

개신교 장로라는 이명박 대통령 은 어쩌면 그렇게 장로라면서도 거짓말을 거리낌 없이 하고, 뻔들 거리는가. 이런 모습은 요즘 많은 기독교인들이 돈에 굶주리며 자 기 이득만 추구하여 그런 방향으 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내 목사, 장로, 집사, 권사, 전도사 의 직분이 일종의 과시와 출세한 것 처럼 목에 힘주는 직함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서로 술잔을 나누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막힌 담 없이 나누니 참 살만한 세상이다 싶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종교가 우리 에게 무엇인가를 물었다. 참으로 마음 좋게 생긴 신부는 종 교를 간단히 표현했다. “종교는 마음의 고향. 버리고 떠 났지난 언제든지 어떤 모습으로 든지 돌아가도 기다리며 거리낌 없이 받아주는 고향.”

그 자리에 참석하려고 차를 타고 오면서 들은 라디오를 들었었다. 직접 육성을 들려준 강간당한 젊 은 여인의 목소리가 맑았다. “그 일을 당하고 난 후, 나는 세상 을 싫어했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 들이 나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 었고, 또 치유 모임을 통해서 좋 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깨달은 것은 실제로 나쁜 사람들 보다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신부와 목사와 이렇게 일반 성도 가 함께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여 유와 교제!

이야기할 때마다 심각하게 말하 던 목사는 동의하며 가만히 듣는 다.

아무 간격이 없고, 스스럼 없이 믿음이 없다고 말해도 아무 탓하 지 않고, 자신의 직함을 내세워 더 나은 인간이라며 티내려거나 과시하려 하지 않는다.

지천명 줄에 들어선 여인은 도저 히 교회를 다니려 해도 그리 되지 않는다 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 예 의를 지키면서 마음을 주고 받는 대화의 공간.

나는 그에게 불교를 권했다. 종교 를 갖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데 참 좋고 쉽게 할 수 있다는 이유 로.

아마도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그 분도 술 한 잔 부으라고 하셨을 듯 싶다. ***

옆에서 목사는 맞장구 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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