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스토리텔링 사업결과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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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유망 10대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발굴사업 결과보고서

2012.7.23.

한국외국어대학교 산학협력단



제출문 한식재단이사장 귀하 본 내용을 <세계화 유망 10대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발굴사업>의 결과보고서로 제출합니다.

2012. 7. 23. 한국외국어대학교 연구산학협력단 단장 신정환 (인) 연구책임자 박치완 (인)



<목 차> 1. 사업개요 ………………………………………………………………………………… 1 2. 원천소재 발굴 현황 …………………………………………………………………… 9 3. 추가제안 사항…………………………………………………………………………… 9 4. 최종결과물 ……………………………………………………………………………… 10 (1) 세계화 유망 10대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발굴소재 ………………………… 10 1) 텍스트 ① 고조리서 ………………………………………………………………………… 10 ② 역사 지리 ……………………………………………………………………… 18 ③ 민속 ……………………………………………………………………………… 18 ④ 문학 ……………………………………………………………………………… 21 2) 이미지 ① 이미지 …………………………………………………………………………… 100 3) 동영상 ① 동영상 …………………………………………………………………………… 117 4) 음성 ① 음성 ……………………………………………………………………………… 128 (2) 추가제안 개발물 …………………………………………………………………… 195 1) 웹툰 …………………………………………………………………………………… 195 ① 이야기로 요리하는 한식 (스토리텔링 개설) ……………………………… 195 2) 캐릭터 ………………………………………………………………………………… 202 3) 시놉시스 ……………………………………………………………………………… 204 4) 컨셉이미지 …………………………………………………………………………… 232 5) 한국음식문화상징사전 ……………………………………………………………… 235


5. 부록 (1) 사업팀 회의록…………………………………………………………………………… 251 (2) 각종 보고서……………………………………………………………………………… 272 (3) 별첨 - ① 한식재단 스토리텔링소재발굴사업 학술대회 자료집, ② 데이터수록 DVD


1. 사업개요 (1) 사업기간 • 2011년 9월~2012년 5월 31일 (2) 사업비용 • 오천삼백사십육만원(₩53,460,000) (3) 참여자 구분 • • • •

사업책임자 프로젝트관리자 수석연구원 공동연구원

• 자문위원

성명 (소속)

역할

박치완 (한국외대 교수) 김근태 (한국외대 연구원) 정혜경 (호서대 교수) 우나리야 (호서대 교수) 김현정 (수원여대 교수) 김미혜 (호서대 교수) 김정희 (선문대 교수) 박진희 (우송대 교수) 유제상 (한국외대 강사) 류승권 (아리마루CS 대표) 권동욱 (아리마루CS 이사) 배은석 (에코뮤지엄연구소 소장) 신정아 (다큐멘터리 작가) 이찬욱 (중앙대 교수) 진성규 (중앙대 교수)

사업 총괄 사업 기획및 진행 실무 음식문화사료 수집팀 총괄 고문헌수집 근대문헌수집 영상수집 스토리 분류 및 시놉시스 집필 영상수집 및 분석 현장 인터뷰 및 분석 웹툰 개발 및 시놉시스 집필 캐릭터 및 컨셉이미지 제작 음식 사료 제공, 콘텐츠 품질 검수 콘텐츠 활용안 제시, 콘텐츠 품질 검수 스토리텔링 방향 제시, 콘텐츠 품질 검수 역사사료 검토, 콘텐츠 품질 검수

(4) 사업의 목적 1) 세계화 10대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를 체계적으로 전수 조사 발굴 • 메뉴선정의 기준과 근거제시로 타당성 보증 • 기존의 식품학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인문학적 관점 제시, 자료검색으로 확장 2) 한식 스토리텔링 소재를 DB로 구축하여 공공 서비스 • 저작권을 확보하여 공공 서비스로 개방 • 다양한 검색 방식 적용하여 이용성 증대 3) 한식의 마케팅을 위한 다양한 활용 방안 제시 • 한식 스토리텔링의 조합과 창작 방식 예시 • 한영 홈페이지 개발을 위한 활용 방안 제시

- 1 -


(5) 발굴 소재의 범위와 결과물 계획 발굴 소재의 범위 상위 분류

한식메뉴 가나다순

(

)

1.

갈비

수집 결과물의 수량

중위 분류

하위 분류

세부메뉴명

식재료 쇠갈비 간장 파 마늘 배 참기름 돼지갈비 고추장 생강 파 마늘 참기름 배추 무 고춧가루 새우젓 생강 마늘 소금 ,

쇠갈비구이 돼지갈비구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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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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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 고춧가루 새우젓 생강 마늘 소금

5

35

5

2

5

52

10

2

1

10

2

1

2

15

5

2

1

1

9

,

,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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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갓 생강 쪽파 고추 소금 배 무 고춧가루 새우젓 생강 마늘 소금 배추김치 밤 배 무 실고추 소금 새우젓 생강 마늘 무 미나리 배추 고춧가루 생강 마늘 소금 배추 무 낙지 배 갓 미나리 밤 대추 잣 굴 석이 표고버섯 소금 새우젓 쇠고기 양파 간장 파 마늘 참기름 돼지고기 부추 된장 마늘 ,

김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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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

,

동치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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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박이

5

,

,

배추김치

음성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수집 발굴 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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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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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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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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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박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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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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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5

3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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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고기

불고기 맥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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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

5

3

1

12

5


쇠고기 양파 간장 배 파 마늘 참기름 쌀 고사리 호박 쇠고기 달걀 참기름 고추장 쌀 황포묵 육회 콩나물 표고버섯 숙주 고사리 시금치 무 애호박 당근 잣 김 호도 은행 상추 부추 고추장 쌀 숙주 고사리 도라지 육회 청포묵 고추장 김 ,

너비아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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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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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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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5

1

1

7

10

1

1

12

3

1

1

5

10

1

1

12

10

2

1

1

14

3

2

1

10

1

1

13

17

10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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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빔밥

2

,

,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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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비빔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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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비빔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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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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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숙주나물 시금치나물 고사 리나물 무나물 소고기산적 동태전 간장 ,

,

,

헛제사밥

,

,

,

,

쌀 콩나물 무 취 오이 호박 굴싸리 오야지 삿갓나물 고추나물 닭 인삼 대추 황기 마늘 쇠머리 쇠족 쇠 고기 뼈 내장 마늘 파 순두부 조개 달걀 고춧가루 고추 파 ,

,

,

산채비빔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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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6.

7.

삼계탕 설렁탕 순두부 찌개 8. 쌈

삼계탕

,

,

·

설렁탕

,

,

·

·

·

,

1

7

,

,

순두부찌개

,

,

,

,

쌈 나물

상추, 콩잎, 취나 물, 호박잎,배추 속대,미역,김,마 른취

- 3 -


당면 오이 도라지 달걀 표고버섯 쇠고기 간장 설탕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 녹두 배추김치 돼지고기 고사리 밀가루 파 홍합 새우 밀가루 배추김치 ,

9.

,

,

잡채

잡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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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1

1

5

1

1

3

1

3

1

21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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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8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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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대떡 10.

해물파전 김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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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

4

18

• 검색어 목록

1. 한식을 만든 사람들

■불고기[적(炙)]

■요리사

•너비아니

•선부(膳夫)

•맥적(貊炙)

-주인(廚人, 廚子)

-쇠고기

-옹자(甕子) •숙수(熟手)

■비빔밥[골동반(骨董飯)]

■포정(庖丁) -푸줏간 주인

■삼계탕

-백정(白丁)

-닭고기

■객주(客主)

-백숙(白熟) -찜닭[蒸鷄]

2. 한식을 즐긴 사람들 •대식가(大食家)

■설렁탕

•소식가(小食家)

-곰국

•탐식가(貪食家)

-곰탕(空湯) -육탕(肉湯)

3. 한식 메뉴와 식재 ■갈비

■순두부(豆腐)

•닭갈비[鷄肋]

-숙유(菽乳)

-달걀(계란)

-두부

-닭고기 ➜ 삼계탕 -백숙 ➜ 삼계탕

■쌈

•돼지갈비

-배추잎(菘葉) 숭자(菘子), 백숭채(白菘菜)

- 4 -

5

25

290


-돼지고기

-복쌈

•쇠갈비[牛肋]

-상추쌈(와거(萵苣) 와엽(萵葉))

-쇠고기  설렁탕

-취나물 -콩잎

■김치(沈菜, 醃菜)

-호박잎

-나박김치[蘿葍葅] -동치미

■잡채

-배추김치[菘菹]

-당면

-순무김치[葅葑] -신김치[酸菹]

■전(煎)

-염제(鹽虀)

-밀전병

-제(虀)

-부침개(麪, 烹煎, 豆麪)

-엄채(淹菜)

-빈대떡 -전병(煎餠)

-파산적(파전)

■탕(湯)

-화전(花煎)

-미역국(藿湯) -잡탕[골동갱(骨董羹)]

■곡식 -녹두(綠豆)

■해산물

-보리(麥)

-김[해태(海苔)]

-쌀(벼, 밥(飯))

-다시마(塔士麻)

=누룽지

-미역[해채(海菜), 감곽(甘藿)]

=세미(稅米)

-조개

=공물(供物) -콩(숙(菽)

■기타 -인삼(人蔘)

■양념

-배(梨)

-간장(醬)

-버섯

-고추 -고추장(椒醬, 苦椒醬) =초고추장 -된장(豉醬, 豆醬) =막장[末醬] -마늘 -생강 -소금 =깨소금 -참기름[향유(香油), 진유(眞油)]

- 5 -


-청국장(淸國醬. 청국장(淸麴醬)) -파[총(蔥)] ■채소(菜, 소채(蔬菜), 남채(南菜)) -갓[개손(芥孫)] -고구마 -고사리 -나물 =비름나물(苜蓿) -무[나복] -미나리 -오이[고(苽)] -호박

(6) 사업 경과 1) 사업공모

……2011년 8월

2) 사업선정

……9월 9일

3) 계약체결

……10월 6일

4) 공동착수보고회의

……10월 11일

5) 제1차 착수회의

……10월 19일

-일 시 2011년 10월 19일(수) 19:00시~20:00시 -장 소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8호 6) 수행계획서 제출

……10월 21일

7) 선급금사용계획서

……10월 31일

8) 제2차 사업진행회의……12월 22일 -일 시 2011년 12월 22일(목) 17:00시~18:00시 -장 소 대학원 406호 연구룸 9) 제3차 월례보고 및 중간보고서, 자문회의 관련 임시회의 -일 시 2011년 12월 6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10) 제4차 월간 경과 보고 및 수집 자료 점검, 팀별 향후 업무 내역 분장회의 -일 시 2011년 12월 22일 -장 소 대학원 406호 11) 제5차 월간 경과보고 및 중간보고 준비회의 -일 시 2012년 1월 10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 6 -


12) 제6차 월간 경과 보고 및 수집 자료 점검, 팀별 향후 업무 내역 분장회의 -일 시 2012년 1월 18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13) 제7차 중간보고서 작성 관련 회의 -일 시 2012년 1월 27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14) 제8차 중간보고 결과 점검 및 2차 연구비 사용계획서 작성 -일 시 2012년 2월 14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15) 해외 한식문화 답사 -일 시 2012년 2월 7일 ~ 2012년 2월 11일 (4박 5일) -장 소 타이페이 (정치대학 외) -참여자 : 박치완 16) 제9차 누락자료 입력 건 토의 및 학술대회개최 기획회의 -일 시 2012년 3월 5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17) 제10차 학술대회개최 기획회의 및 현지조사 계획 수립 -일 시 2012년 3월 22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18) 지역 음식문화 답사 -일 시 2012년 3월 29일 ~ 2012년 3월 30일 (1박 2일) -장 소 경상북도 영양군 일원 (음식디미방 체험관 외) -참여자 (총 8명) - 박치완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주임교수) - 김근태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 - 유제상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강사) - 송종인 (한국외대 철학과 강사) - 이영미 (여행레저신문 수석기자) - 임준철 ((주)글로컬미디어 대표) - 구모니카 (도서출판 M&K 대표) - 김기홍 (애니센스 대표) 19) 제11차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개최 관련 종합 점검 -일 시 2012년 4월 3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20) 제12차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예비발표회 -일 시 2012년 4월 26일 -장 소 대학원 508호 21) 지역 음식문화 답사

- 7 -


-일 시 2012년 5월 1일 (1일) -장 소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조선족 거리’ 일대 (음식점 3개소, 식재료 판매점 5개소 방문) -참여자 (총 5명) - 박치완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주임교수) - 김근태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 - 유제상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강사) - 임준철 ((주)글로컬미디어 대표) - 김기홍 (애니센스 대표) 22) 제13차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예비발표회 및 종합 점검 -일 시 2012년 5월 2일 -장 소 대학원 607호 23) 제14차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최종 점검회의 -일 시 2012년 5월 8일 -장 소 교수회관 637호

- 8 -


2. 원천소재 발굴 결과 매체별

텍스트

유형별 역사 민속 지리

계획

210

문학 풍속화 무속화 인터넷 영상 방송 영상

이미지 동영상

37 18

구비설화 음성

결과 고조리서 73 역사 및 지리 10 민속 37 문학 217 기타 17 사진 24 풍속화 23 5 56

354

47 61

22 25

민요 인터뷰

비고

36 14

총계

290

498

498

3. 추가제안 사항 (1) 추가제안의 목적 • 본사업에서 수집한 소재의 활용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성이 있음. • 본사업으로 수집한 스토리텔링 소재를 다양한 매체로 활용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유형별 예시 콘텐츠를 추가로 개발함. (2) 추가제안의 내용 유형별 웹툰 캐릭터 시놉시스 컨셉이미지

내역

한식 소재를 스토리텔링으로 개발하는 방식과 과정을 만화로 보여주는 내용 한식과 관련된 주요 인물 유형(대식가, 식도락가, 요리 사 등)을 캐릭터로 개발 만화, 애니메이션, 동화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의 시놉시스 개발 삽화로 활용할 수 있는 이미지 컷 개발

수량 1식 5종(15컷) 20종 5컷

한국 음식 문화(식재, 메뉴 포함)에 대한 의미와 상징을 한국음식문화상징사전

사전식으로

20항목

서술 총계

- 9 -


4. 최종결과물 (1) 세계화 유망 10대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발굴소재 1) 텍스트 ① 고조리서 번호

명칭

출전

내용

1

가리적

시의전서

큰 갈비 3대를 같이 붙여서 오리는데, 길이는 적 틀에 경양하여 자 른다. 칼집을 넣어 재웠다가 육적과 같은 방법으로 굽는데. 사지를 하 나 감는다

2

가지김치

시의전서

3

고사리

규합총서

4

고초닙 찌

5

고추

규합총서

가지는 껍질을 벗기고 꼭지 쪽이 붙어있게 가운데를 열십자로 자른 다. 오이김치의 소를 넣는 것처럼 넣고 가지껍질로 어금막게 동여서 실고추와 파를 넣어 익히는데, 여기에 열무를 섞으면 좋다. 주먹같이 연한 것을 쪄 내어 마른 재를 묻혀 볕에 말린 뒤, 재를 씻 어 다시 말렸다가 겨울에 더운물에 담갔다가 (쓰면) 연하고 새롭되, 이 나물이 양기를 줄이니 남자는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고춧잎을 깨끗이 따서 데쳐 말렸다가 장아찌를 할 때 또 데쳐 담가 여러 번 물을 갈아 우려서 건져 말린다. 고춧잎이 뽀득해지면 말린 무도 섞고 파와 마늘을 다져 고춧가루․지령에 버무려 항아리에 꼭꼭 눌러 넣는다. 고춧잎과 연한 줄기와 잔 고추 달린 채 딴 것을 큰 항아리에 단단히 눌러 넣고 돌로 지질른 후, 냉수를 부어 두면 연하고, 소금에 절이면 맛이 쓰다.

6

곰취쌈

시의전서

7

과동침채

요록

8

국화잎화전

시의전서

9

굴김치

증보산림경제

10

굴김치

시의전서

11

기타김치

규합총서

장앗

시의전서

생곰취쌈은 깨끗이 씻어 줄기를 잘라버리고 잎을 개서 쟁반에 담는 다. 곰취를 삶아 우려서 줄기는 잘라버린다. 쇠고기를 다지고, 파‧마늘 ‧고춧가루‧깨소금‧기름을 넣고 양념하여 잎을 두어장씩 합하여 펴서 뚝 배기에 담는다. 이때 깨소금과 고춧가루를 뿌려가며 뚝배기에 담아서 밥할 때 같이 넣어 찌고 화로에 끓인다. 곰취쌈은 접시에 담고 깨소 금을 뿌린다. 무를 깨끗이 씻어서 발 위에 펴서 놓고 소금을 뿌리는데 눈을 맞은 것 같이 뿌려 항아리에 담아 놓고 물을 붓는다. 3일이 지나서 건져내 어 다시 씻고 발위에 널어 잠깐 말린 다음 큰 독에 담아 놓는다. 소 금물을 끓여서 식은 후에 독에 붓는다. 익은 후에 먹는다 국화잎은 소금물에 잠깐 적셔, 찹쌀가루를 듬뿍 묻혀 기름에 띄워 지 진다. 굴을 깨끗하게 씻은 다음 소금을 뿌리고 순무, 파의 흰 부분을 채로 썰고 또 소금을 뿌려둔다. 소금이 스며들면 소금물을 쏟아내어 끓여 항아리에 담근다. 미지근해지면 굴, 순무, 파의 흰 부분을 함께 담그 는데 반드시 굴과 소금물의 양을 알맞게 한다. 따뜻한 곳에 두고 옷 이나 이불로 덮어 하룻밤 지나서 먹는다. 초가을에 좋은 배추를 깨끗하게 씻어 반듯반듯하게 잘라 소금에 살 짝 절였다가 실고추․미나리․파․생강 마늘을 모두 채쳐서 넣어 굴젓을 가려 한데 버무리고 굴들을 심심하게 익힌다. 쑥갓․향갓․배추를 합하 여 양념하여 익히면 좋다. 외도 혹 섞는다. 전복김치 - 전복을 추겨 칼로 넓게 저민다. 유자 껇질과 배를 가늘 게 썰어 전복을 주머니처럼 만들고 그 소를 넣고, 소금물을 슴슴히 하여 김치를 담가 익히면 신선같은 맛이 있다고 약천집에 하였으니 무와 생강·파붙이를 더 넣어서 담그면 더욱 기이하다.

- 10 -


12

김쌈

시의전서

13

꽃전

규합총서

14

꿩김치

음식디미방

15

나박김치

규합총서

16

닭구이(사철)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17

당귀잎화전

시의전서

18

돈전병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19

동아석박지

시의전서

20

동침이

시의전서

21

마늘

규합총서

22

마른 송이

규합총서

김쌈은 김을 손으로 문질러 잡티를 뜯는다. 손질한 김을 소반위에 펴 놓고, 발갯깃으로 기름을 바르며 소금을 솔솔 뿌려 재워 구웠다가 네 모반듯하게 잘라 담고 복판에 꼬지를 꽂는다. 냉수에 반죽하면 빛이 누르고 기름이 많이 드니, 소금물을 끓여 더운 김에 반죽하여 가루를 쥐어치쳐 헤어지지 않을 만치하여, 반반한 접 시에 국화모양으로 빚고 밤소넣어 족집게로 가는 살을 잡아 쓰라. 진달래·장미는 많이 넣어야 좋고, 국화는 너무 많이 들면 쓰다. 국화 송이를 푸른 꼭지 없이 하고 가루 묻혀 지져도 좋다. 간이 든 오이짠지를 껍질을 벗겨 속은 도려내고 가늘게 한치 길이만 큼 도독도독하게 썰어 물에 우려 둔다. 꿩을 삶아서 그 외지 같이 썰 어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김치 같이 담아 삭혀 쓴다. 입춘 때 무를 가늘게 쳐 깎고, 미나리·순무 엄과 (파) 움 신감채를 넣어 맹물을 끓여 슴슴한 나박김치를 담가 더운 곳에 둔다. 그 김치 가 익을만 하거든 산갓을 가리어 깨끗이 씻어 뿌리째 굽없는 그릇에 담는다. 더운물을 끓여, 산갓이 데어 익지 않을 정도로 서너 번 주어 물과 산갓을 넣고, 입으로 불기를 한참 동안 겨자 개듯하여 두껍게 여러 번 종이로 덮는다. 그 위에 옷이나 솜 둔 것을 눌러 더운 데 묻 어 김이 조금도 나지 않게 하여 반시간쯤 후에 내어 먼저 담근 김치 에 섞어 검은 장을 타 먹되 이 김치가 김이 나면 쓰고, 산갓이 좀 자 라면 즉시 쇠고 맛이 좋지 못하다. 봄뜻이 먼저 있는 고로 이름하여 보춘저라 한다. 닭을 잘 준비해 가지고 살을 얇게 저미고 뼈 붙은 곳은 적당히 토막 을 내어서 약간 칼등으로 두드려놓고, 간장에 파 마늘 생강을 곱게 이겨서 넣고 깨소금 기름 호추가루를 치고 설탕을 조금 넣어섞은 후, 닭을 넣어 잘 주물러서 석쇠에 굽나니 상에 놓게될 때에 구워서 뜨거 운 김에 식사하게 할 것이다. 당귀잎은 소금물에 잠깐 적셔, 찹쌀가루를 듬뿍묻혀 기름에 띄워 지 진다. 찹쌀 전병과 꼭 같은것인데 모양만 적게 하고 대추를 얇게 저며서 전 병에 꽃모양으로 붙여가지고 지지는 것이니 종자아구리 만큼씩 지져 서 접시에담 꿀이나 설당을 찍어서 먹나니라 크고 싱싱하고 서리 맞은 분빛 같은 동아의 위를 얇게 자르고 속을 모두 긁어 낸후 좋은 조기젓국을 가득이 붓는다. 청각․생강․파․고추를 함께 섞어 가루가 되도록 곱게 찧어서 동아 속에 넣고, 베어낸 동아 의 딱지를 맞추어 덮는다. 그 다음에 종이로 틈 없이 동아를 단단히 발라 덮고 먼지 안 나는 곳에 세워 둔다. 겨울에 동아를 열어보면 맑은 국물이 고여 있으니 그것을 깨끗한 항아리에 쏟고 동아를 썰어 국물에 담가두고 먹으면 절미하다. 잘고 모양 좋은 무를 깨끗이 껍질 벗겨 간을 맞추어 절인다. 하루가 지난 후 무를 깨끗이 씻고 독을 묻어 무와 어린 외를 함께 절여 넣는 다. 배와 유자는 껍질을 벗기고 썰지 않고 통째로 넣는다. 흰 파는 1치 길이씩 잘라 위를 4쪽으로 내고, 생강 얇게 저민것과 고추 썬 것 을 위에 많이 넣는다. 좋은 물에 간을 맞추어 그것을 가는 체에 밭 쳐서 항아리에 가득히 붓고 항아리를 두껍게 봉하여 익은 뒤에 먹는 다. 배와 유자는 먹을 때에 썰고, 국물에 희 빛깔의 좋은 꿀을 타고 석류와 잣을 띄워서 먹는다. 마늘은 껍질 벗겨 좋은 초에 담갔다가 오랜 후에 말리면 냄새가 없고 산뜻하고 새롭다. 마른 송이는 진흙에 담그면 생것 같다. 화한삼재도회에 이르되,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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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동치미

증보산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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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순김치

증보산림경제

25

무염침채

요록

26

시의전서

27

묵은 닭 삶는 법 믜쌈

28

밀전병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29

박김치

시의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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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구이( 우 육구이)(사철)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31

배추속대쌈

우리나라 음식

시의전서

를 쌀궤(뒤주) 속레 넣었다가 이튿날 먹고 온집안이 다 죽은 일이 있 으니 극한 상극이나, 밥과 반찬에는 해롭지 않고, 뜨물에 끓이면 맛 이 아름다우니 그 까닭을 알 수 없다. 늦가을과 초겨울에 날씨가 매우 추워지면 크기가 칼자루만한 연한 무 를 가져다가 칼로 그 껍질을 긁어내고 깨끗이 씻어 항아리에 넣고, 오래 끓인 물을 식혀서 소금을 묽게 탄 다음 항아리에 붓고, 볕짚으 로 항아리를 감싸서 땅에 묻는다. 이에 앞서 늙지 않은 오이, 연한 가 지, 이슬 맞은 송이버섯 등을 각각 때에 맞게 소금물에 담그는데 아 주 짜게 한 다음 이즈음에 이르러서는 모두 꺼내어 찬물에 담가 소금 기를 빼내고 또 생강, 파의 흰 대, 청각 및 씨를 뺀 산초를 가지, 오 이 등과 함께 섞어 땅에 묻은 항아리에 담고 단단하게 틀어막은 뒤 흙을 덮는다. 익으면 꺼내어 먹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다만, 너무 많이 먹게 되면 천식이 생길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정월에 움에 저장하여 둔 무를 꺼내다가 무순을 자르고 얇게 채썬 무 와 파를 함께 버무려 김치를 만들어서 먹으면 사람이 갑자기 봄기운 을 느끼게 된다. 무 잎, 줄기를 깨끗이 씻어서 항아리에 담고 맑은 물을 가득 부은 후 에 4일이 지나면 흰 거품이 나고 물이 뒤집히거든 다시 맑은 물을 덧 붓는다. 묵은 닭은 암수를 가리지 않고 삶을 때 앵두나무를 넣으면 즉시 무르 고, 굴뚝 옆의 기와를 한 조각 넣어 삶으면 연하다. 좋은 해삼을 물에 담가 불거든 푹 삶아 쪼개어 속에 모래와 해감과 잡것을 버리고 깨끗이 씻는다. 쇠고기‧숙주‧ 미나리는 다지고 두부를 섞어 갖은 양념을 넣어 주물러 해삼의 배속에 가득 넣은후 가루를 묻 히고 달걀을 씌워 부친다. 밀가루를 냉수에 개일 때에 덩어리지지 않도록 물을 조금씩 쳐가면서 힘써 저어서 가루를 다 물어놓고 애호박이나 오이를 넣으려면 채를 썰어서 소금에 약간 절였다가 꼭 짜가지고 반죽한 밀가루에 섞어서 전병을 붙이나니 작은 접시만큼씩 붙여서 먹나니 반죽은 묽은 죽과 같이 하면 되나니라 미나리를 넣으려면 한 치 길이씩 잘라서 정하게 씻고 소금에 잘 간만 절였다가 꼭 짜서 밀가루 개인데 함께 섞어서 붙이고, 파를 넣으려면 한 치 길이씩 잘라서 굵은 것은 대강 채쳐 넣어 붙이고, 풋고추를 넣 으려면 씨를 빼고 채쳐 가지고 반죽에 섞어서 전병을 붙이면 맛이 비 상히 좋으며, 배추김치를 넣을때는 김치를 빨지 말고서 그대로 채쳐 서 반죽에 섞어 부치나니 모두 소금으로 간을 맞혀서 하여야 맛이 잇 나니라 연한 박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다 긁어 버린다. 그리고 박을 네모반 듯하고 도독도독하게 썰고, 옆을 열십자로 잘라서 절인다. 절인 박에 오이김치 소처럼 소를 하여 넣고, 실고추와 파를 채 쳐서 넣고, 국물 의 간을 맞추어 부처 익힌다. 연한 살코기를 얇게 저며서 칼로 자근자근 약간만 이겨 가지고, 먼저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잠깐 놓아두고, 기름에 호추가루와 소금을 섞 어서 설탕에 버무린 고기에 넣고 잘 섞어서 석쇠에 구워가지고 적당 히 썰어서 더운 김에 식사하게 할 것이니라. [비고]이렇게 소금에만 구은 고기는 간장에 여러 가지 양념쳐서 구은 것보다 맛이 별미라고 한다. 배추속대 노란 속잎을 골라서 잘 씻어서 마지막으로 씻는 물에는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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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철)

여름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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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통김치

시의전서

33

비빔밥

시의전서

34

빈자떡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35

빈자병( 빈자 법)

음식디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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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자

규합총서

37

산갓김치

음식디미방

38

삼계탕

요록

39

상갓침채

시의전서

기름을 한 큰사시를 쳐서 배추잎을 헤워건저서 접시에 담아놓고, 고 추장을 맛있게 준비해서 싸서 식사할지니라. [비고]고추장찌개에 생선 웅어를 넣어서 찌는 것이 쌈에는 격에 맞 고, 볶은 고추장으로 싸도 좋고 찌개는 물을 좀 바특하게 하는 것이 좋다. 좋은 통배추를 절여서 실고추․흰파․마늘․생각․생률․배는 모두 채치고 조 기젓은 저며 넣고 청각․미나리․소라․낙지 등을 섞어 넣은 다음에 간을 맞춘다. 무와 외지는 4절로 썰어 켜켜 넣었다가 3일 후에 조기젓국을 달여 물에 타서 국물을 부으면 좋다. 밥을 잘 짓고, 고기는 재웠다가 볶아서 넣고, 간랍을 부쳐 썰어넣고, 각색 채소도 볶아넣고, 좋은 다시마 튀각도 튀겨 부숴넣고,고춧가루 ․ 깨소금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 위에는 잡탕거리처 럼 달걀을 부쳐 골패쪽만하게 썰어얹고, 완자는 고기를 곱게 다져서 잘 재워 구슬만하게 빚어 밀가루를 약간 묻히고 달걀을 씌워 부쳐 얹 는다. 비빔밥상에 장국을 잡탕국으로 하여 놓는다. 녹두를 매에 타서 물에 하룻밤 불려서 잘 불은 후에 껍질이 하나도 없도록 여러번 씻어서 모래 없이 일어가지고 맷돌에 되직하게 갈아서 미나리를 한 치 길이씩 썰어넣고 소금을 간 맞게 넣은 후 번철에 기 름을 바르고 작은 접시만큼씩 얇판하게 부치나니라 또 녹두를 이와같이 갈아서 배추김치를 채썰어 넣고 섞어서 번철에기 름을 바르고 부치나니라 녹두를 뉘없이 거피하여 되직하게 갈다.(번철에) 기름을 빈자떡이 잠 기지 않게 부어 끓이고 녹두 간 것을 작게 떠 놓아 거피한 팥을 꿀에 반죽하여 소로 넣고 또 그 위에 녹두 간 건을 덮어 빛이 유자빛 같 이 되도록 지져야 좋다. 녹두를 되게 갈아라. 즉시 번철에 기름이 몸에 잠길만치 붓고, 녹두즙 을 수저로 떠 놓고, 그 위에 밤소 꿀 버무린 것을 놓고 녹두즙을 위 에 덮고, 수저로 염정하여 눌러가며 소를 꽃전 모양같이 만들고 위에 잣 박고 대추를 사면으로 박아 지진다. 산갓을 다듬어 찬물에 씻고, 다시더운 물에 헹궈 작은 단지에 넣고물 을 따뜻이 데워서 붓고 구들이 아주 덥거든 의복으로 싸서 익힌다. 사납고 덜 더워서 익지 않아도 사납다. 또 찬물에만 씻고 더운 물에 아니 헹구면 맛이 쓰다. 닭의 털을 깨끗이 제거하고 내장을 빼고 깨끗이 씻어 놓는다. 깨끗이 씻은 회향과 부추와 조피와 간장 1숟갈과 참기름 1숟갈을 넣고 저어 서 항아리에 붓고 위의 닭의 배속에 넣고 꿰맨다. 다시 청장에 물을 적당히 섞고 참기름 1숟갈을 넣고 섞어서 닭과 함께 항아리에 넣고 유지로 항아리를 잘 봉한 후 솥 위에 나무를 걸어 놓고 여기에 항아 리의 주둥이를 매어달고 중탕을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끓이기도 하고 또는 저녁부터 아침까지 끓여서 등기 터지게 익으면 쪼개어 후 춧가루를 찍어서 먹는다. 입춘날 무를 가늘게 채치고, 무순, 미나리, 순무, 움신검초를 넣어 백 비탕을 끓여, 나박침채를 심심하게 담가 더운데 둔다. 이것이 익을 때 가 되면 상갓을 뿌리째 깨끗이 골라 씻어 그릇에 담고 끓는물에 상갓 이 익지 않을 정도로 3~4번을 넣었다가 뺀다. 그 다음에 물에 상갓 을 넣고 입으로 불기를 겨자 개듯 많이 분 다음에, 종이로 두껍게 여 러벌 덮고 솜옷을 눌러 김이 조금도 나지 않게 한다. 이렇게 반시(1 시간)정도 지나서 상갓을 꺼내어 먼저 담았던 침채에 섞어 검은 장을 타서 먹으면 된다. 김이 나면 상갓이 맛이 쓰다. 상갓이 지나치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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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쌈

시의전서

41

상치잎쌈( 여 름철)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42

석류병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43

석박지

시의전서

44

설렁탕(사철)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45

소루쟁이

규합총서

46

송이적

요록

47

송이찜

규합총서

48

쇠꼬리 곰

규합총서

라서 쇠게 되면 잘 쉬고 맛이 좋지 못하다. 상추를 깨끗하게 씻어 다른 물에 담그고, 기름을 쳐서 저으면 기름이 흠뻑 상추에 배니, 잎을 펴서 개어담는다. 고추장에 쇠고기를 다져넣 고, 위어나 까나리나 다른 생선을 넣어 파를 갸름하게 썰고, 기름을쳐 서 쪄내고 물에 끓여 쌈으로 먹는다. 쌈에는 세파와 쑥갓과 상갓을 곁들여 담는다. 상치잎을 한잎씩 볕에 비추어보면 하얗게 벌레줄이 있으니 골라내고 아무 흔적이 없이 깨끗한 것으로 골라서 잘 씻어가지고, 마지막번 씻 을 물에는 기름을 한 큰사시쯤 쳐서 섞어가지고 상치를 헤워내어 접 시에 놓고, 웅어 고추장 찌개를 해서 먹거나 또는 볶은 고추장을 놓 아 싸서먹으라. 찹쌀가루를 끓는 물에 되게 반죽을 해서 도토리알만큼씩 떼어서 둥글 게 빚어가지고 손가락 끝으로 구멍을 파서 골무처럼 만들어 가지고 손가락끝에 꿰어들고 겉으로 두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집어서 우툴두틀 하게 하여 꽃봉오리와같이 만들어서 기름에 띄워 지저서 설당을 뿌리 나니 반죽할 때에 여러가지로 색을 들여서 지지나니라 연하고 좋은 무를 얌전히 썰고, 좋은 배추를 잘 절인다. 진어․준치․소 라․조기젓․밴댕이를 물에 담가서 하룻밤을 재운다. 무는 둥글게 썰고, 배추와 갓은 적당히 썰어 물에 담근다. 외와 가지는 석박지를 담그는 날 물에 넣고, 덜 익은 동아는 과줄만하게 썰어 벗기지 말고 속을 긁 어 없앤다. 생복․소라․낙지는 머리에 골만 뺀다. 독을 묻고 무와 배추 를 먼저 넣고 가지와 동아 등을 넣은 다음에 젓을 한 벌 깐 후, 마늘․ 파․고추 등을 위에 많이 펴고 채소를 차례로 떡 안치듯 한 뒤에 무 껍질을 독 위에 충분하게 덮는다. 단단한 나무로 독 속 좌우를 단단 히 지르고 누른다. 좋은 조기젓국에 맛난 굴젓국을 조금 섞어 간을 맞추어 항아리에 가득 부어 익히면 석박지의 맛이 자별하다. 날이 더 우면 석박지가 쉬니 때를 맞추어 하도록 한다. 생복과 낙지는 그때그 때 필요한 때에 썬다. 절인 동아는 껍질을 벗겨 넣으면 빛이 옥과 같다. 여러 가지 재료들을 다 깨끗이 준비해서 솥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붓고 생강과 마늘을 넣고 오래오래 과서, 뼈는 다 꺼내고 살만 잘게 썰어 펄펄 끓여서 그릇에 푸고, 접시에 파 채친 것과 소금 고춧가루호추가 루를 곁들여 상에 놓으면 식사할 때에 국에 가미해서 먹는 것이다. 구·시월 사이에 뿌리를 많이 캐어 빽빽이 틈없이 움 속에 심고 흙을 덮어 움문을 흙으로 막았다가 정월에 열면 은같은 줄기가 움에 가득 할 것이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보드라와 좋되, 좀 신맛이 있으니 살 짝 데치면 더 아름답다. 잣을 자루에 넣고 방망이로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그릇에 담아 다시 간다. 이 가루에 약간의 소금물을 넣고 송이버섯에 묻혀서 적으로 부 쳐먹으면 그 맛이 매우 좋다.

송이껍질 벗기고 얇게, 줄기는 도려 벗기고, 우 핀 것은 넓게 저민 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곱게 두드려 두부 섞어 기름장 맞추어 갖은 양념을 섞어 크기는 뜻대로 되게 하여 소를 만든다. 이 소를 송이 저민 것으로 덮어 싸서 고운 밀가루를 묻혀 달걀 씌워 지진다. 국을 꾸미 많이 넣고 밀가루와 달걀 풀어 끓이다가 송이 지진 것을 넣어 다시 끓여 회고 노란 계란 채와 후추·잣가루를 뿌려 쓴다. 쇠꼬리 살찐 것을 부리의 살째 무르녹게 삶아 잘게 찢어 쐬약가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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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어전

음식디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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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기악탕

규합총서

51

알쌈

시의전서

52

어육침채

시의전서

53

열젓국지

시의전서

54

오이김치

시의전서

55

잡채

음식디미방

56

장김치

시의전서

부아(폐)삶은 것을 썰어 함께 기름장에 후추붙이 깨소금을 섞어주무 르고, 삶은 파를 많이 넣어 청장에 고추장을 약간 섞어 국을 만들면 개국과 같되 맛이 특별하다. 대개 고깃국을 끓임에 먼저 국이 끓은 후 고기를 넣어야한다. 냉수에 끓기전 지레 넣으면 맛이 아름답지 않다.생선국도 또한 그렇다. 살찐 숭어나 아무 고기(생선)라도 가시가 없이 저며서 간장 기름에 밀가루로 넉넉히 하여 기름에 지져쓴다. 살찐 묵은 닭의 두 발을 잘라 없애고, 내장을 꺼내 버린 뒤, 그 속에 술 한 잔·기름 한 잔·좋은 초 한 잔을 쳐서 대꼬쟁이로 질러 박오가 리·표고버섯·파·돼지고기 기름기를 썰어 많이 넣고, 수란을 까 넣어 국을 금중감 만들듯 하니, 이것이 왜관 음식으로 기생이나 음악보다 낫다는 뜻이다. 달걀을 번철에 얇게 조금 떠 놓고 편다. 해삼 소를 한편으로 조금 놓 고, 다른 한편을 접어서 덮은 다음에 송편처럼 지진다. 다 익으면 가 장자리를 가지런하게 모양을 만들어 접시에 담고 초장을 곁들인다. 대구․북어․민어류를 쓸 때마다 두골과 껍질을 많이 모아둔다. 서리가 처음으로 내리고 날이 차거든 김장을 하는데, 이때 좋은 무와 연한 배추와 굵은 갓을 깨끗이 씻어 간을 맞추어 절인다. 외와 가지는 법 대로 절이고, 아이 주먹만한 호박도 절인다. 고추는 어린 것을 잎이 달린 채로 따서 서리 내리기 전에 미리 골라두는데 소금에 절이면 질 기고 맛이 좋지 못하다. 그러므로 고추를 항아리에 넣고 돌로 단단히 누른후 냉수를 부었다가 쓸 때 내어서 여러번 깨끗이 씻으면 연하고 좋다. 김치 담기전 기일(忌日)을 피하여 고기 삶은 물을 두어 동이 사다가 그전에 모아둔 건어를 많이 넣고 쇠고기도 넣어 진하게 달인다. 처음 독을 묻은 후 절인 채소에 청각․마늘․파․생강․고추 등속을 켜켜로 넣고 마늘은 갈아넣고, 미나리는 깨끗이 씻어 사이사이에 넣은 다음에 그 위를 두껍게 덮는다. 어육 달인 물이 싱거우면 거기에 무 절인 물을 체에 밭쳐 가득이 붓는다. 그 다음에 항아리를 두껍게 싸고, 항아리위 를 흙으로 덮었다가 세말 춘초에 어육침채를 먹으면 훈감하고 절미하 다. 침채는 무와 배추를 썰지 않고 통째로 담근다. 좋은 무를 네모 반듯하고 도독도독하게 썰어 절인다. 배추가 있으면 섞어 넣고, 고추․흰파․마늘․생강은 채치고 미나리는 갸름하게 썰어 넣 어 버무린다. 김치국은 좋은 젓국을 조금 쳐서 간을 맞추어 익힌다. 어린 오이를 소금으로 문지르고 물에 깨끗이 씻은 후 꼭지를 자른다. 외의 가운데를 열십자로 잘라 소금을 뿌려 절이고, 흰 파와 마늘을 다져서 고춧가루와 섞어 절인 외에 소를 넣고 국물은 간을 맞추어 붓 는다. 오이. 무. 댓무. 참버섯, 석이, 표고, 송이, 녹두기름(숙주나물)은 생으 로 하고, 도라지, 거여목(목숙), 박고지, 냉이, 미나리, 파, 두릅, 고사 리, 시금치, 동아, 가지와 생치를 삶아 실실이 찢어 놓는다. 생강이 없으면 건강, 초, 후추, 참기름, 진간장, 밀가루로 각색 재료를 가늘게 한치씩 썰어 각각 기름 간장에 볶아 섞거나 또는 분리하여 임의로 한 다. 좋은 배추를 씻어서 1치(3~4cm) 길이씩 썰고, 무는 껍질을 벗겨 반 듯반듯하게 썰고, 배는 같이 썰어서 좋은 진장에 절인다. 고추․흰파․마 늘․생강․생률․표고는 모두 채로 썬다. 전복․해삼․양지머리․차돌박이는 모 두 얇게 저며 넣고 잣을 넣어 버무린다. 절인 지령을 따라 달인 뒤 물을 타고 간을 맞춘 다음에 흰 빛깔의 좋은 꿀을 타서 장김치에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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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볶이

규합총서

58

전복쌈

시의전서

59

전유어

규합총서

60

젓국지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61

족편

규합총서

62

지럼김치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63

진주좌반

규합총서

64

참새좌반

요록

65

채김치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물을 부어 익으면 먹는다. 여름철에는 어린 외를 장에 절여 오이김치 소를 넣는 것처럼 한다. 맛 좋은 고추장을, 고기 두드려 거른 것과 숱이 같게 하고, 꿀을 식 성대로 치고, 파뿌리 흰 데와 생강을 다져 조금 넣고 기름을 -많이 볶는 그릇가에 고이게-쳐 숯불에 뭉근한 불로 복되, 자주 저어 눋 지 않게 하여 기름에 끓여 스스로 잦을 만하거든 고운 실깨를 조금 넣어 섞어 볶아 쓰라. 좋은 전복을 흠씬 불렸다가 건져서 베보자기에 싸서 물기를 없앤 후 얇게 저며 잣을 싸서 작은 송편 만하게 가장자리를 가지런히 모양을 만들어 쓴다. 달걀을 한 번 부쳐 내어 바로 지지면 초초하여 빛이 곱지 못하다. 달 걀에 구멍을 작게 뚫어 흰자위를 죄 쏟은 후, 생선을 넓게 저며 밀가 루를 묻혀라. 번철을 달게 하고 흰자위·노른자위를 각각 기름 많이 쳐서 먼저 수저로 떠서 고루고루 펴 지지되, 밑은 익고 위는 채 엉기 지 않을 때 생선을 달걀에 잠가 그 위에 놓으면 합하여 익을 것이니 뒤집어 또 그렇게 하면 황·백이 유난히 빛나고 윤지다. 게를 검은 장 만 모아 기름 섞고 달걀을 약간 섞어 꽤 젓고 번철에 전 법대로 떠 놓아 지진다. 게 누른 장은 계란에 섞어 생선이나 꿩 저민 데나 가루 위에 묻혀 번철의 것이 반만 익은 데 놓아 합하여 지지면 빛이 주황 빛 같고 야들야들하다. 이 젓국지라는 것은 조기젓국으로나 메루치젓국으로나 그 외에 맛좋 은 젓을 넣어서 담는 김치를 젓국지라고 하나니 이위에 석박지나 쌈 김치나 또 통김치에다가 국물을 부을 적에 젓국으로 간을 맞추어 서 부어 만드는 것이니, 재료 준비에 대해서는 다른 김치와 꼭 같이 해 가지고 국물을 젓국으로 붓고 또 위에도 조기젓이나 혹은 마른 명태 나 낙지같은 것을넣어서 만들라. 족편에 소를 하려면, 족을 고을 때 기름을 걷으면 빛이 묽고 곱지 못하니, 하나도 걷지 말고 편편한 그릇에 먼저 한 벌을 얇게 고르게 떠 붓는다. 그것이 어린 후에 꿩고기를 곱게 두드리고 후추·잣가루· 기름장 섞어 맛을 맞추어 그 위로 한 벌을 펴고 족 곤 것을 그 우에 두께를 알맞게 한 벌 얹은 후, 계란 흰자위, 노른자위를 부쳐 가늘게 채 치고 잣가루, 후추가루를 뿌려 쓰라. 이것은 김장 김치를 위해서 담으는 것이니 겨울 김치를 익기 전에 먹 기 시작하면 맛도 변하고 여러가지로 손해가 되는고로 겨울김치 헐기 전에 먹을 준비 김치니라 식구 예산해서 적당히 할 것이오 법은 대 개 같은 법이니라 쇠볼기를 얇게 저며 가늘게 썰어 또 가로 진주같이 썰어 번철에 볶 으면 고기가 반만 익어 누린 즙이 다 바지거든 그제야 특별히 맛 좋 은 진한 간장을 간 맞추어 치고 기름을 많이 치고 꿀 조금 쳐 다시 볶아 강정깨를 한데 섞어 다 볶은 후, 후춧가루 넣어 쓰라. 참새의 털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서 뼈가 없을때까지 잘 다져서 단 간장을 치고 갈아 엽전만한 크기로 만들어서 볕에 말려 저장하였다가 쓸대에 기름을 발라서 구워가지고 쓴다. 간장을 섞을 때 밀가루와 조 피가루를 함께 섞으면 그 맛이 매우 좋다. 이것을 참새좌반이라 한다. 절은 배추와 절은 무를 잘게 채치고 실고추와 파를 한치 길이로 잘러 서 채치고 갓을 같은 길이로 잘러서 채치고 마늘과 파를 잘 이겨서 다 함께 섞고 조기젓국을 잘 끓여서 체에 밭여 씩혀가지고 간맞도록 부어서 두었다가 겨울에 먹나니 이것은 노인을 위하야 매우 적당 하 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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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출전

요록

좋은 출 1섬을 먼저 물로 깨끗이 씻어서 검은 껍질을 벗겨낸 다음 잘게 썰어서 물 3섬에 넣고 끓이는데 1섬이 될 때까지 끓인 후 찌꺼 기는 버린다. 기장쌀 3말을 갈아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 앞서 창출 끓인 즙에 넣고 연한 불로 끓이며 저어서 떡을 만든다. 떡의 크기는 직경이 3치 정도의 둥글고 넓적하게 만든다. 매번 한번에 1개씩 먹 으면 모든 병이 없어지고 몸이 가볍고 눈이 밝아지며 오랫동안 복용 하던 곡식을 안 먹고도 살 수 있으며 수명이 연장되어 오래 살게 된 다. 살찌고 묵은 암탉을 깨끗이 튀하여 아래로 구멍을 내고, 내장을 빼어 속을 깨끗이 씻어내라. 삶은 도라지 한 뿌리, 생강 너덧쪽, 파 한자 밤·천초 한자밤·지령 한 종주·기름 한종주·초반종주 이 일곱가지를닭 속에 넣고 남은 양념을 한데섞어 오지항아리에 넣고, 유지로 부리를 동이고 사기접시로 덮고 솥가운데 중탕하여 쓰라. 본초에 이르기를, 안으려는 닭은 유독하고, 겨자·자총이·개간·잉어·파· 오얏·찹쌀과 닭고기와 같이 먹지 말라하였다. 배추를 깨끗이 씻어 한 동이에 소금 3홉씩 넣고 하룻밤 지난 후에 다 시 씻고 또 소금을 전과 같이 뿌려서 독에 넣고 물을 알맞게 부어 놓 는다. 주먹같이 어리고 연한 호박을 갓 따 두께를 알맞게 썬다. 돼지고기는 얇게 저미고, 쇠고기는 곱게 두드려 많이 넣고, 파·고추·석이버섯을 넣어라. 노구를 먼저 싸게 닳이고 기름을 많이 부은 후 호박과 고기 를 넣어 재게 볶아 고운 깨소금 뿌려 쓰고, 안주 하려면 찰전병을 돈 짝 만큼씩 지져 섞어서 볶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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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향계

규합총서

68

침백채

요록

69

호박나물

규합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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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쌈( 여 름, 가을철)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호박순에서 어리고 연한 속잎을 따서 물에 두세번 씻어가지고 마른행 주로 꼭꼭 눌러 물을 씻어 물기 없이 해서, 줄거리를 조금씩 꺽으면 서 잡아당겨 잎에 있는 실을 떼서 낸후에, 밥솥에 얹어서 찌든지겅그 레를 놓고 찌든지 해서, 고추장을 놓고 밥을 싸서 먹는 것이다.

71

화전

시의전서

72

화전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

73

화전

음식디미방

반죽이 질면 못 쓰게 되므로 반죽은 바슬바슬하게 한다. 냉수에 반죽 하면 기름이 많이 들므로 소금물을 끓여 뜨거울때 반죽한다. 화전 접 시 굽에 명주 수건을 펴서 반죽의 모양을 만든다. 이것을 집어 밤소 를 넣고 족집게로 가는 살을 잡아 지져 즙청하여 계피와 잣가루를 뿌 린다. 또 한 가지는 찰전병을 크게 붙이고 대추를 채쳐서 약간 뿌리고 국화 잎사귀나 두견꽃이나 장미화나 펴붙여서 지저가지고 한 치 길이와 닷 푼 넓이로 썰어서 설당을 묻히나니라 이렇게 전병을 적은 보시기 아구리만큼씩 붙이고 밥을 삶아서 곱게 찧어가지고 계피가루를 좀 넣어서 섞고 설당을 조금씩 섞어서 전병에 놓고 둘에 접어 가장자리를 맞붙여 반달모양으로 해서 합에 담아놓고 설당이나 꿀을 찍어먹나니라(이것을 부꾀미라고도 하나니 거피 팥소 를 만들어서 설당과 계피가루를 섞어 소를 넣나니라) 두견화(진달래꽃)나 장미화나 출단화(죽도화, 황매화)나 찹쌀가루에 거피한 메밀가루를 조금 넣고 꽃을 많이 넣고 눅게 만든다. 기름을 끓이고 적적이 떠 놓아 자주자주 센불에 지져서 한 김 나가면 꿀을 얹는다.

② 역사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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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명칭

출전

내용

1

고기 반찬

고려사절요

2

도라지, 타리

세종실록지리지 (경기)

3

백미

고려사절요

4

쇠고기

고려사절요

5

쇠고기

고려사절요

낭장 황서를 원나라에 보내어 금화를 그린 자기와 꿩과 탐라의 쇠고 기를 바쳤다.

6

고려사절요

7

고려사절요

8

고려사절요

원나라의 선정원에서 사람을 보내 와서 배 드는 것을 독촉하였다. 그때, 황태후가 절을 짓고자 하니 홍복원의 손자인 중희·중 등이 아 뢰기를, “백두산에 아름다운 재목이 많습니다. 만약 심양의 군사 2천 명을 충돌시켜 벌채하여 압록강으로 흘러내려오게 하고, 고려로 하여 금 배로 수송하게 한다면 편리할 것입니다” 하여, 이에 요양성선사 유현 등을 보내 와서 배 백 척을 만들고 쌀 3천 석을 수송하게 하니 폐해가 말할 수 없었다. 황씨는 만호 원길의 딸인데, 용모가 아름다워 융이 항상 이를 안방에 가두어 두고 친척도 서로 보지 못하게 했는데, 융이 죽고, 환관 최화 상이 그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더니, 왕이 밤에 그 집에 가서 간통하고 황씨에게 금은으로 만든 그릇과 채백 10필, 저포 1백 필, 쌀과 콩 1 백 석을 주었다. 장양공 지가 송덕시를 올리니 쌀 30 석을 하사하였다.

9

고려사절요

10

고려사절요

무인일에 신효사에 거둥하였다가 왕륜사까지 들렸는데 주지 인조가 차를 드리고 고기 반찬을 올렸다. 토공(土貢)·모과[木瓜]·개암씨[榛實]·상수리[橡實]·밤[栗]·감[柿]·대추 [棗]·느타리[眞茸]·싸리버섯[鳥足茸]·황각(黃角)·산삼(山蔘)·도라지 [桔梗]·마른멧돼지고기[乾猪]·토끼젓[兎醢]·물고기젓[魚醢]·숭어[水 魚]·민어(民魚)·젓[醢]·질그릇[陶器]·사기그릇[磁器]·목기(木器)·버들 그릇[柳器]·갈소쿠리[蘆簞]·참빗[省帚]·왕골속[莞心]·노화지(蘆花紙)· 잡깃[雜羽]·갓[常笠]·새[草]·마의(馬衣)·짚[藁草]·꼴[芻藁]·새끼[藁 索]·삼노[麻索]·소나무그을음[松煙]·송진[松脂]·주토(朱土)·갈탄(葛 炭)·향나무[香木]【백단향(白檀香)·자단향(紫檀響)·역목(櫟木)이 있 다.】·굴가루[蠣灰]·명아주재[藜灰]·황회(黃灰)·지초(芝草)·단풍나무잎 [楓葉]·영선잡목(營繕雜木)·자작나무[自作木]·은행나무[杏木]·피나무 [椵木]·뽕나무[黃桑木]·앵도나무[櫻木]·장작[燒木]이다. 왕이 효수의 청백함을 가상하게 여겨 은병 50개와 백미 1백 석을 주 어서 학사연을 마련하게 하였다. 11월에 장군 이백초를 원나라에 보내어 탐라의 쇠고기를 바쳤다.

진제도감을 설치하고, 왕이 음식수를 줄이어 그 비용에 보충하고, 또 유비창의 쌀 5백 석을 풀어내어 진제도감으로 하여금 굶주린 사람들 에게 죽을 먹이게 하였다. 한광한은 백성의 포 1백 필, 쌀 20여 석과 해산물 등을 걷우어 드린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고, 박현은 도적이 준 뇌물 베 1천 5백 단 과 말 한 필을 받았다.

③ 민속 번호

명칭

출전

1

개장국

조선세시기

2

고기

세시풍요

내용 경금(庚金)의 기운이 화기(火氣)에 굴복해 점차 더워지니 이때의 즐거운 일 설날 납일(臘日)과 같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삭음 즐길줄 알아 개장국 좋은 맛에 여러 손님 흥겨워하네 …집집마다 세시에 빚은 술 모두 잘 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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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기

동국세시기

4

고기

동국세시기

5

곰취쌈

조선세시기

6

김장

조선세시기

7

김장

동국세시기

8

나물

세시풍요

9

난로

동국세시기

10

난로회

동국세시기

11

동국세시기

12

동국세시기

13

돼지고기

세시풍요

14

두부찌개

동국세시기

선홍빛 살찐 고기 온거리에 가득하네… 돼지고기에다 호박을 썰어서 함께 볶으면 맛이 좋다. 거기에다 마른 조기의 머리를 넣으면 여름의 조촐한 반찬이 된다. 전립투(氈笠套)라는 냄비가 있는데, 그 생김새가 꼭 벙거지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움푹하게 들어간 가운데 부분에다 채소를 데치고 그 가장자리에다는 고기를 굽는다. 안주를 만들거나 혹은 밥 을 짓는데 퍽 편리하다. 곰취에 쌈을 싸고 김으로도 쌈을 싸 온집안 어른 아이 둘러앉아 함께 먹네 세 쌈을 먹으면 서른섬이라 부르니 올가을엔 작은 밭에도 풍년이 들겠지 9월9일 노란 국화 처음 따다 둥근 전 지져놓고 작은 지게미 떠있는 상락주도 처음 걸렀네 단풍든 가을동산에 고아한 모임 가지니 이 풍류 어찌 억지로 등고하는 것과 같으랴 단풍든 정자 아래로 취화가 돌아들어 국제에 친히 임하시니 어좌를 마련했네 맑고 뛰어난 자질을 지닌 신하를 얻고자 등고하는 좋은 시절 춘대에 오르시네 성밖 마을에서 가을채소 수확하니 푸르고 푸른 배추와 흰 무뿌리라네 집집마다 항아리에 가득 담근 김장은 삼동의 정갈한 반찬 준비한 것이라네 가을걷이 한창 바쁜 타작하는 마당 단풍숲에 앉은 객은 바쁜지 한가한지 누런 닭과 막걸리로 타작관을 대접하니 구월구일의 타향은 고향보다 낫네 서울 풍속에 무, 배추, 고추, 마늘, 소금 등으로 독에다 김장을 담근 다. 여름의 장담기와 겨울의 김장담기는 일반 가정에서 1년 중에 아 주 중요한 행사이다. …푸른 씀바귀와 냉이 향기로운 목숙 이른 봄 새로 돋은 나물 매우 맛있네… 생각건대 <세시잡기(歲時雜記)>에 “서울[北京]사람은 一○월 초하루 에 술을 걸러 놓고 저민 고기를 화로 안에 구우면서 둘러앉아 마시며 씹는데 이것을 난로(煖爐)라고 한다”고 하였다. 서울 풍속에 숯불을 화로 가운데 훨훨 피워 놓고 번철(燔鐵)을 올려 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 계란, 파, 마늘, 고춧가루에 조리(調 理)하여 구우면서 화롯가에 둘러앉아 먹는다. 이것을 난로회(煖爐會) 라 한다. 아무리 벽촌의 가난한 집에서라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 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장만한다. 복날 개고기에 파의 흰 부분을 썰어 넣고 국을 끓인다. 그 국에다 닭 고기나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한 밤중에 양옥에서 돼지고기 구우니 오고가는 사람들이 냄새맡고 찾아오네… 지금 먹는 반찬 중에 가장 좋은 음식이 두부이다. 두부를 잘게 썰어 서 꼬챙이에 꿰어 기름에 부치다가 닭고기를 섞어 국을 끓인 것을 연 포탕(軟泡湯)이라 한다. 여기에서 포(泡)란 두부를 말하는데, 회남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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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막김장

동국세시기

16

막김장

동국세시기

17

막김치

동국세시기

18

무김치, 추김치

동국세시기

19 20

묵은 나물 반유반(비빔 밥)

세시풍요 동국세시기

21

복쌈

동국세시기

22

복쌈

동국세시기

23

봄나물, 빔밥

24

산나물, 김

세시풍요

25 26

산적 이 굳히는 산적[固齒]

세시풍요 조선세시기

27

이 굳히는 산적[固齒]

조선세시기

28

잣, 호두

세시풍요

29 30

장김치 전병

동국세시기 동국세시기

31

동국세시기

세시풍요

(淮南王)이 처음 만든 것이다. 막김장은 새우젓을 끓인 국물에 무, 배추, 마늘, 고춧가루, 소라, 전 복, 조기 등을 독 속에다 섞어 버무려 겨울을 묵힌 것으로 맛이 몹시 맵다. 막김장은 독 안에다 새우젓국, 무, 배추, 마늘, 고춧가루, 소라, 전복, 조기 등을 섞어 버무려서 한겨울을 묵힌 것으로 그 맛이 몹시 맵다. 새우로 젓을 담가 결이 삭은 뒤 무, 배추, 마늘, 생강, 고추, 청각(靑 角), 전복, 소라, 굴조개, 조기, 소금으로 막김치를 만들어 독에 넣어 오래 두었다가 겨울이 지나 꺼내어 먹으면 몹시 매운 것이 먹을 만하 다. 메밀국수를 무김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冷 麵)이라고 한다. 또 잡채와 배, 밤, 쇠고기, 돼지고기 썬 것과 기름, 간장을 메밀국수에다 섞은 것을 골동면(骨董麵․비빔국수)이라 한다. 평안도 냉면이 최고다. …오곡밥 짓고 묵은 나물 무쳤으니… 중국 양자강 이남의 사람들은 반유반(盤遊飯)이란 음식을 잘 만든다. 생선젓, 포, 회, 구운 고기 등을 밥 속에 넣어 비빈 것으로, 이것은 곧 밥의 골동이다. 그러므로 예부터 이런 음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 다. 김과 참취나물 등속에다 밥을 싸서 먹는데,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한 다. 이것을 복쌈[縛苫]이라 한다. 이것 역시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뜻 이다. 보름날에는 취나물이나 배추잎, 혹은 김에 밥을 싸서 먹는다. 이것을 복쌈[福裹]이라 한다. 검푸른 파와 무 그리고 노란 겨자 차려놓은 봄나물에 온 소반이 향기롭네 매운 고추장 넣고 나물 섞은 비빔밥 따르는 술은 당연히 백엽주라네 …산나물로 싸고 김으로도 싸서 먹네… …평양의 냉면과 개성의 산적은 흉내내기 어려워 어떻게 할수없네… 옛 풍속에 정월대보름날이면 집집마다 고기를 구워먹으니,이를 ‘이굳 히산적’이라고 한다. 해마다 이를 굳혀도 이는 점점 빠지니 이 굳히는 신통한 방법 쓸 필요없네 고기 먹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빠져버린 이를 황금으로 만들리라 정월대보름날 6수 오늘은 집사람이 아침 일찍 일어나 쇠한 이 몸 걱정하며 두 음식 권하네 술을 권하면서 귀밝이 술이라 하고 고기 권하면서 이굳히산적이라 하네 딱딱한 잣씨와 단단한 호두열매 재갈물듯 깨뜨리는 소년들의 아하네… 또 무, 배추, 미나리, 생강, 고추로 장김치를 담갔다가 먹기도 한다. 밀가루를 반죽해 놓고 콩이나 참깨로 소를 만들어 넣어 찐 것을 상화 병(霜花餠)이라 한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판위에 놓고 방망이로 밀어 서 넓게 펴 만든 다음 기름에 지지거나, 나물로 소를 만들어 넣거나, 콩과 참깨를 섞어 소를 만들어 꿀을 발라 만든 떡을 연병(連餠)이라 한다. 싱싱한 생선을 잘게 썰어 오이나물, 파, 석이버섯, 그리고 익힌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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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세시풍요

33

탕평채

동국세시기

34

탕평채

동국세시기

35

화전

동국세시기

36

화전

동국세시기

37

화전놀이

조선세시기

명칭

출전

과 달걀을 부쳐 잘게 썬 국화잎과 함께 버무린 다음 기름과 초를 쳐 서 먹는다. 이것을 어채(魚採)라 한다. 목좋은 국수집과 탕을 파는 집 세도가의 문전처럼 사람들이 들끓네… 녹두로 청포묵을 만들어 잘게 썰고 돼지고기, 미나리, 김에 초장을 쳐 서 봄날 저녁에 차게 해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음식을 탕평채(蕩平 菜)라 한다. 탕평채(蕩平菜)는 녹두로 만든 제물묵[綠豆乳], 돼지고기, 미나리싹을 실처럼 잘게 썰어서 초장에 묻힌 것인데, 맛이 매우 시원해서 봄밤에 먹기가 좋다.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와 반죽하여 둥근 떡을 만들어 참기름을 발라 지진 것을 화전(花煎)이라 한다. 이것이 곧 옛날의 오병(熬餠) 의 한구(寒具)이다. 또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다음 가늘게 썰어서 오미자(五味子)국 물에 띄우고 꿀물을 섞고 또 잣을 띄운 것을 화면(花麵)이라 한다. 혹은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하여 만들기도 하는데, 또 녹두로 국수를 만들어 붉은 색으로 물을 들이기도 하는데, 그것을 꿀물에 띄 운 것을 수면(水麵)이라 한다. 이것들은 모두 시절음식이고 제사에도 사용한다. 노란 장미꽃을 따다 떡을 만들어 기름에 지져서 먹기도 하는데, 마치 삼짇날의 화전(花煎)과 같다. 옛 풍속에 3월3일이면 화전을 지져서 차례를 지낸다. 또 숲속에서 화 전을 지져 먹으며 상춘놀이를 하니, 이를 ‘화전놀이’라고 한다. 곱고 따스한 날씨에서 봄빛을 느껴 금빛 수양버들 수만가지 드리웠네 곳곳에서 꽃전을 지지니 봄맛 좋고 온산 가득 두견화가 활짝피었네

④ 문학 번호 1

구두쇠

권별, 권4

해동잡록

2

궁녀

이긍익, 연려실 기술( 練藜室記 述) 권23, 인조 조 고사본말(仁 祖朝故事本末), <광해군을 안치 하다>

내용 한 수령이 있었는데 손님 접대에 음식을 3등급으로 정해놓고 항상 읍인들과 약속하기를 “후하게 대접할 사람에게는 눈썹을 문지르고, 그 다음은 코를 만지고, 마지막은 턱을 쓰다듬겠다, 음식 대접의 후 하고 박함은 이렇게 시행할 것이다”라고 했다. 어떤 손님이 있었는데 수령이 보더니 턱을 만지는 것이었다. 손님은 정중히 말하기를 “예전 에 교분이 있었으니 원컨대 눈썹으로 해주십시오.”하니 수령이 얼굴 을 붉히더니 음식을 매우 잘 대접했다. 개똥이[介屎]는 전 선조(宣祖) 때의 늙은 궁인이었다. 선조에게 사 랑을 입었는데 사람됨이 흉악하고 교활하였다. 선조가 세자를 바꿀 뜻이 있었기 때문에 광해가 스스로 불안한 것을 추측하여 알고는 은 밀히 광해와 접촉하여 뒷날의 계획을 세웠다. 약으로 선조를 시(弑) 하는 참변도 그 손에서 나왔으나, 광해는 실로 미리 음모에 관계한 사실이 없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전하기를, “당시의 사초에 바로 쓰 기를 ‘약밥이 동궁에서 왔는데 얼마 안 되어 승하하였다.’ 하였다. 이 약밥이란 것은 지금 시속에 과일을 섞은 찰밥으로 대개 선조가 오랜 중병 끝에 동궁에서 올린 약밥을 먹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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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급한 성격

권별, 해동잡록

4

대식가

일연, 삼국유사 제1권, 태종 춘 추공

때문에 한때 혹 의심하는 말이 있었으나, 소위 당시의 사관이란 반 드시 유영경(柳永慶)의 무리일 것이니 기록한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 하였다. 또 전하기를, “인조가 일찍이 이 말을 힘써 물리쳐 이 르기를, ‘당시 선조께서 위독하실 때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상세히 알고 있다. 선왕께서 병을 앓으신 뒤 에 맛있는 음식을 생각할 즈음, 동궁의 약밥이 마침 왔기 때문에 지 나치게 잡수시고 기(氣)가 막혀서 이내 돌아갔을 뿐이었다. 중간에 어떤 농간이 있었다는 말을 실로 밝히기 어렵다.’ 하였다. 인조의 말 이 이와 같으나 대비가 광해의 죄를 헤아릴 때, 군부를 시해(弑害) 했다는 대목을 분명히 들어서 말하였기 때문에 감히 이 사실을 아주 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일월록》 광해가 탐욕스럽고 음란하였으므로 개똥이가 안팎에서 제 마음대로 하며 이첨과 한 마음이 되어 어울렸다.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아 기 강이 전연 없었으니, 대궐 안의 모든 일이 그의 손에서 한결같이 결 정되었다. 궁녀가 광해의 잠자리를 모시는 것도 광해가 개똥이의 허 락을 얻어야 되었기 때문에 개똥이가 여러 계집에게서 뇌물을 받았 는데, 그 값의 많고 적음에 따라 광해로 하여금 동침하게 하면 광해 가 감히 거스르지 못하였다. 하루는 광해가 개똥이를 데리고 잠자리 에 들려 하였는데, 박씨라는 옛 상궁이 땅에 꿇어앉아 간하니 광해 가 부끄러운 빛이 있었다. 또 개똥이의 말을 어기는 일이 있을 때는 성내어 말하기를, “큰 덕을 감히 잊는단 말이오. 내 입에서 말이 나 올 것 같으면, 임금이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이오.” 하니, 광해가 당황하고 부끄러운 빛이 있었다. 이 때문에 추한 소문이 바깥에 퍼 져 나가게 되었다. 개똥이가 음탕하고 교활한 상놈 정몽필(鄭夢弼) 이라는 자를 매우 사랑하여 양아들이라 하고 바깥에 따로 거처를 마 련하여 두고 몽필을 살게 하였는데, 만금의 재물을 쌓아 두었다. 몽 필이 드디어 세력을 크게 행하여 백성들의 전답과 노비를 강제로 빼 앗아 문서를 바치게 하였는데,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제집에 사사로 만든 옥에 가두니, 이름을 □궁(□宮)이라 하였다. 개똥이가 밤과 새벽에 드나들며 몽필과 거리낌 없이 거처하니,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들의 음란한 행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개똥이가 몽필에게 빠져서 겸하여 윤 소의(尹昭儀)를 중매하여 몽필과 음행하게 하였다 는 말까지 있었다. 《일월록》 한 선비가 성질이 급해서 식사를 하다가 젓가락으로 마늘을 잡으려 고 하니 둥글둥글해서 잘 잡히지 않았다. 어찌도 화가 나는지 일어 나 발로 밟아버렸다. 또 다른 날 더운 국을 마시다가 입술을 데니 일어나서 신을 신고 국그릇을 발로 차버렸다. 이 국물이 부인의 얼 굴에 씌워지니 부인이 천천히 말하기를 “오늘 내 얼굴이 국 한 그릇 을 다 먹었구나”라고 했다. 화가 난 남편이 “네가 날 놀리느냐?”하면 서 밥상을 차니 그릇이 다 깨지고 음식이 날려 흩어졌다. 부인이 천 천히 손으로 쓸면서 “하늘이 준 음식을 이렇게 버리니 정말 두렵다” 고 했다. 이웃사람이 “물과 불은 상극이니, 부부의 완급이 서로 잘 조화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웃었다. 왕은 하루에 쌀 서 말과 꿩 아홉 마리를 잡수셨는데, 경신년(660)에 백제를 멸망시킨 후로는 점심진지는 그만두고 다만 조석만 들 뿐이 었다. 그러나 하루를 계산해보면 쌀 여섯 말, 술 여섯 말, 꿩 열 마 리였다. 성중의 물건값은 베 한 필에 벼가 30섬, 혹 50섬이었으니, 백성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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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가

서거정, 필원잡 기(筆苑雜記) 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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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가

서거정, 필원잡 기(筆苑雜記) 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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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가

계서야담(溪西野 譚) 59 (김현룡 2-[434]일승복 (一升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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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식가

속제해지(續齊諧 志) 57 (김현룡 6-[16] 이덕우 (李德宇))

성군(聖君)의 시대라고 불렀었다. 왕이 태자로 있을 때에 고구려를 치려고 군사를 청하러 당나라에 들어갔다. 당나라 황제가 그 풍채를 보고 칭찬하여 신성한 사람이라 하고는 기어이 머물게 하여 시위(侍 衛)로 삼으려 했으나 굳이 청하여 본국에 돌아왔다. 이사철은 몸집이 크고, 식사 때면 큰 그릇의 밥 한 그릇, 찐 닭 두 마리, 한 항아리의 술을 같이 먹었다. 등에 종기가 나서 죽게 되니 의원이 불고기와 독주를 피하라고 했다. 이에 이공은 “안 먹고 살기 보다는 먹고 죽겠다”고 하고 여전히 술과 고기를 먹었는데 병이 나 았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먹는 것 역시 다르다”고 말했다. 이공이 젊었을 때 친구들과 삼각산 절에 유람을 갔었는데 술은 가져갔으나 술잔이 없었다. 그때 권지(權枝)가 새로 만든 말가죽 신을 신고 있었는데 이공이 먼저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나머지도 따라서 모두 그것으로 술을 마시면서 서로 보고 크게 웃으 면서 “말가죽 신발 술잔은 내가 만들어낸 방법이야. 그렇지 않은가” 라고 했다. 뒤에 이공이 출세하고 나서 권공을 만나 술을 마시면서 말하기를 “오늘 금술잔으로 좋은 술을 마시는 것이 지난날 삼각산에 서 놀 때에 말가죽 신발 술잔으로 마신 것보다 못하구나”라고 했다. 홍일동이 진관사(眞寬寺)에 유람하여 떡 한 그릇, 국수 세 그릇, 밥 세 주발, 두부국 아홉 그릇을 먹고 내려와서 다시 찐 닭 두 마리, 생 선회 한 쟁만, 술 40여 바가지를 먹었다. 보던 사람들이 장사라고 했 다. 다음날 세조가 이를 듣고 일동을 불러 말하기를 “정말 그렇게 먹 을 수 있는가?” 하니 일동이 그렇다고 했다. 세조가 장사라고 인정하 자 항시 대궐을 출입하게 되었다. 홍일동은 단지 미숫가루를 탄 전 술을 먹었을 뿐이고 밥은 먹지 않았다. 뒤에 홍주에 이르러 폭음을 하고 죽었으니 사람들은 그의 창자가 결딴나지 않았을까 의심했다. 뜻은 있었으나 펴지 못하고 벼슬이 능력과 맞지 않았으니 아깝도다. 김여물(金汝岉) 집의 건장한 종 하나는, 보통 종들이 7홉의 쌀에 해 당하는 식사를 하는데, 이 종은 한 되에 해당하는 식사를 해 일승복 이라 불렀다. 김 공이 의주 목사로 있을 때 죄에 몰려 파직되고 귀 양살이 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왕이 백의종군으로 공을 세워 속 죄하라고 해 석방되어, 충주 신립(申砬) 장군의 휘하로 출전했다. 충 주로 가면서 따라갈 종을 가리니 일승복이 자원했다. 충주에서 탄금 대에 배수진을 쳤는데, 처음 보는 조총에 의해 병졸들이 싸워 보지 도 못하고 다 쓰러졌다. 김 공이 군복으로 갈아입고 칼을 차고 활을 챙긴 다음, 임금에게 장계를 올리고, 또 장남 김류(金瑬)에게도 편지 를 써서 집안 일을 부탁하고는,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김 공의 소재를 놓친 일승복은 탄금대로 와서 “내 목숨을 아껴 공의 은혜를 잊는 것은 장부가 아니다”하고는 창을 들고 진중으로 뛰어들 었다. 3진 3퇴를 거듭하면서 몸에 수십 군데 상처를 입고, 탄금대 아 래에서 김 공의 시체를 발견했다. 곧 시체를 엎고 나와 산비탈에 묻 었다가, 뒤에 선영에 안장했다. 이러한 용기는 오로지 의리에 입각해 서만 발휘되는 것이다.(선조) 이 얘기는 우참찬을 지낸 이덕수(李德壽,1673~1744)가 <이덕우 전>으로 쓴 것이다. 이덕우는 안변(安邊) 사람인데, 처음에 덕원(德源)에서 살 때 결혼 해 한 딸을 낳고는 아내가 외간남자와 사통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아내와 사통한 그 남자를 잡아 묶으니, 그 남자가 살려달라고 빌었 다. 이에 이덕우는 “한 여자 때문에 너를 죽일 수가 없으니, 네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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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살꾼

어수신화(禦睡新 話) 28 (김현룡 1-[466] 백문 선(白文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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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명엽지해(蓂葉 志諧) 김354 ( 김 현 룡 7-[293] 노목 궤(櫨木櫃))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말하고, 아내와 재산 모두를 그 남자에게 주고 집을 나갔다. 그리고 자기의 딸은 잘 길러 시기를 놓치지 말고 시집을 보내야 한 다고 부탁하고, 황룡산(黃龍山)으로 가서 암자를 짓고 거처했다. 이 덕우는 늘 산에서 황장중(黃腸重, 소나무의 종류)을 채취해 지고 와 서 팔아 돈을 마련해 자기 딸의 양육비로 하라면서 갖다 주었는데, 이덕우가 집에 오면 그 남자는 매우 극진히 대했다. 뒤에 더 늙어서는 산의 높은 곳에 토굴을 마련하고 거처하면서, 밤 마다 북두성을 향해 절했다. 이때 밤에 호랑이와 표범이 와서 늘 주 위를 지켜주고는 아침에 갔다. 그리고 길에서 호랑이가 이덕우를 만 나면 멀리 피했다. 이덕우는 한 번에 한 말의 쌀로 지은 밥을 다 먹 었으며, 그리고 수일씩 굶었다. 이덕우는 나이 80세에 아직까지 건강 하며 높은 언덕을 나는 듯이 오르내리니, 가히 이인(異人)이라 할 수 있다.(조선 후기) 비밀 도축(屠畜)을 하는 사람이 있어, 관청의 단속반이 그 집 근처 에서 고기 운반하는 것을 잡으려고 숨어 있었다. 비밀 도축자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도감포수(都監砲手)로 있는 백문선에게 가서, "우 리 집 근처 단속 관리를 피할 수 있게 해주면 많은 고기로 사례하겠 다"하고 간청했다. 이에 백문선이 이 집에 가서 술지게미를 유지에 잘 싸서 겨드랑이에 끼고 대문을 나서서 두리번거리다가 곧바로 달 렸다. 그러니까 숨어 있던 단속 관리들이 붙잡으려고 달려오는데, 백 문선은 계속 달려서 남대문 밖 반송지(盤松池) 못을 몇 바퀴 돈 다 음에 얼음을 밟고 못 가운데 섬으로 들어갔다. 단속 관리들이 나오 라고 소리치다가 섬으로 들어가서 잡아 보니, 가지고 있는 것이 술 지게미였다. 단속 관리들이, "고기가 아닌데 왜 도망했느냐?"하고 물 으니, 백문선은 "술을 금하는 관리인 줄 알고 도망했다"라고 대답하 고는 유유히 떠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비밀 도축자는 고기를 모두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옮겼다.(조선 말기) 한 시골 노인이 좋은 사윗감을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했다. 55두 (斗) 들이 ‘노목궤’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선언하기를, “이 궤가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는지와 또 곡식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고, 점점 세월이 흘러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 집 딸이 생각해 보니, 이러다가는 시집도 못 가고 늙을 것 같아,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어리석은 총각을 불러, 다음의 얘기를 해주었 다. “그 상자는 노목으로 만들어졌으며 곡식이 55두가 들어가는데, 부친에게 이렇게 말하면 나와 결혼할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총각 은 노인에게 가서 처녀가 시키는 대로 말하니, 노인은 기뻐하고 곧 딸과 결혼을 시켰다. 이후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모두 사위에게 물었다. 이때 한 사람이 암소를 팔겠다고 하므로 장인이 사위를 시켜 소를 살펴보라 했다. 사위가 소를 보더니 “이것은 노목궤이고 55두는 들어가겠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남편을 나무라면서, “소의 입술을 열어 보고는 나이가 어리다고 말해야 하고, 꼬리를 들어보고는 새끼를 잘 낳겠네” 하고 말해야 되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튿날 장모가 병이 들어 사위를 들어와 보라 하니, 사위가 들어와서는 장모 입술을 열어 보 고 “나이가 어리구먼”이라 말하고, 이불을 들쳐 뒷부분을 보고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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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닭)

교수잡사(攪睡雜 史) 39 (김현룡 1-[463] 상번 향군(上番鄕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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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쌀)

동소만록(桐巢漫 錄) (김현룡 1[464] 관서무인 (關西武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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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적

어우야담(於于野 譚) 440 (김현 룡2-[401] 경 성 사인(京城士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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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도둑

교수잡사(攪睡雜 史) 77, (김현룡 1- [441] 미도 실탁(米盜失橐)

끼를 많이 낳겠네”라고 말했다. 사위의 이런 행동을 본 장인과 장모는 화를 내면서, “소를 보고 나무 로 알고, 사람을 보고 소로 아니 아마도 미친 것 같다”고 말하니, 듣 는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한 교활한 상번향군(시골에서 차출되어 근무하러 온 군사)이 닭전을 지나다가 보니 수탉 한 마리가 특히 뛰어나게 컸다. 가까이 가서 그 닭을 만지다가 주인에게 "이것이 무엇이요?"하고 물었다. 주인이 보 니 닭도 알아보지 못하는 바보 같아 거짓으로 "봉(鳳)이요"하고 대 답했다. 그러니까 상번향군이 사겠다고 하면서 값을 묻기에 20냥을 받고 팔았다(시세로 7, 8냥 정도임). 닭을 산 상번향군이 비단 보자 기에 싸서 상자에 담아, 형조(刑曹) 판서 집을 찾아가 바치면서, "봉 을 한 마리 샀으므로 임금에게 바치려고 가지고 왔습니다"하고 말했 다. 판서가 열어 보니 수탉이어서 상번향군을 꾸짖으니, 닭전에서 봉 이라 하여 50냥에 사왔다고 하면서 원통함을 호소했다. 곧 닭 판 사 람을 불러 심문하니 닭 장수는, 어리석어 보여 봉이라 속이고 20냥 에 팔았는데 변상해 주려고 생각하고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상번향군은 50냥을 20냥으로 속인다고 소리치면서 억울해 했 다. 판서가 닭 장수에게 7, 8냥 가치인 닭을 봉이라 속였으면서 또 50냥을 20냥으로 속인다고 호통치고는 50냥을 변상하라고 판결했다. 곧 닭 장수는 50냥을 주고 물러갔다.(조선 말기) 관서의 한 무인이 방납(防納: 나라에 바칠 물건을 대신 바치고 그 수고료를 받는 것)을 위해 왔다고 하면서, 의관이 선명하고 말재주 가 뛰어나 서평(西平) 공자(公子)의 집에 의지하게 되었다. 하루는 급히 바쳐야 할 돈이 2백 냥인데, 와야 할 돈이 오지 않았다고 걱정 하기에, 서평 공자가 그 돈을 마련해 주었더니, 며칠 후에 2백 20냥 을 갚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공자의 신임이 점점 두터워지니 여 러 가지로 돈 벌 계획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즉, 강원도가 쌀이 귀해 쌀값이 비싸니까, 값이 싼 서울에서 쌀을 사서 국가에 바쳐야 할 강 원도 세금을 대신 납부하고, 강원도에 가서는 거기 쌀값으로 백성들 에게서 징수하면, 좀 감해 주더라도 비용을 제하고서 3배의 이익은 남는다고 했다. 그래서 서평 공자가 돈 3천 냥을 마련해 주었더니, 서평 공자의 마부들을 다 따돌리고 은을 싣고는 다른 길을 통해 가 버렸는데 찾을 길이 없었다.(영조) 선조 28년(1595), 전국에 기근이 심해서 서울에 쌀을 구할 수가 없 었다. 한 선비가 시골에서 쌀 한 짐을 구해 말에 싣고 오는데, 산고 개에서 칼을 가진 도적을 만났다. 말 앞에서 절을 하고는 쌀을 달라 는 것이었다. 종이 반만 주겠다고 하니, 무리가 많아서 다 주어야 한 다고 했다. 그래서 말에 실은 채 쌀을 다 실어다 주니까, 말은 돌려 주고 호위해서 산 아래까지 데려다 주었다. 골짜기에 이르니, 또 한 무리의 도적이 있어서 해치려 하는데, 호위해 온 도적이 “이 선비는 우리들에게 쌀을 주어 장군께서 호위하라 했다”고 말하니 무사히 통 과했다. 양민들이 살길이 없어서 모여 도둑이 되었으므로, 물건만 뺏 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선조) 한 도감(都監) 포수가 배급 쌀을 받아 와서 들창 아래의 뒤주에 넣 어 놓았다. 밤에 부부가 자고 있는데, 이웃집 사람이 배급 쌀 타 온 것을 알고, 자루를 가지고 와서 들창에 허리를 걸치고는 자루 한 끝 은 입에 물고 또 한 끝은 왼손으로 잡아 자루를 벌리면서 오른손으 로 뒤주 속의 쌀을 퍼 담고 있었다. 잠을 깬 남편이 모른 체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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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도둑

청구야담(靑邱野 談) 정 131 (김 현룡 2-[408] 시골 농부(一村 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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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가

한고관외사(寒皐 觀外史) 39권 효빈잡기 상(效 顰雜記上), 극히 적게 먹으면 가 는 똥을 싼다

으니, 이어 잠을 깬 처가 겁이 나서 남편을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그러나 남편은 전혀 반응이 없어 자고만 있기에 처도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있었다. 도둑이 자루에 쌀을 거의 채워 갈 무렵에 갑자기 남 편이 일어나서 소리치니 도둑이 엉겁결에 자루는 두고 몸만 빠져 도 망갔다. 처가 먼저 잠을 깨운 사실을 말하니 남편은, "나도 잠을 깨 어 알고 있었는데, 자루에 쌀을 채운 뒤에 도둑을 쫓으면 좋은 자루 를 얻어 요긴하게 쓰게 될 것 같아서 가만히 기회를 보았다"하고 대 답하면서 둘이 함께 웃었다.(조선 후기) 시골의 한 농부가 집이 넉넉한데도 항상 남의 물건을 훔치는 버릇이 있었다. 하루는 이웃 가난한 양반 선비 집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솥 을 훔치러 들어갔다. 마침 선비 아내가 죽을 끓여 큰 그릇에 한 그 릇 담고 나머지 약간의 국물은 작은 그릇에 부어 부뚜막에 놓고 바 가지를 엎어 덮은 다음, 죽을 갖고 방에 들어가 선비에게 드리는 것 이었다. 선비가 죽을 보고 쌀이 어디서 났느냐고 추궁하니, 아내는 “마침 집 앞 농부의 논에 벼가 익어 있어서 밤에 몰래 5홉 정도 훑어 죽을 끓 였는데, 뒤에 얘기하고 그 집 바느질을 해주어 갚겠다.”고 대답하면 서 죽을 권했다. 곧 선비는 “남의 물건을 훔쳤으니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 빨리 매를 만들어 오라”고 호통쳤다. 아내가 만들어 온 매로 아내에게 세대의 회초리를 친 다음, 죽을 내다버리라고 했다. 죽을 모두 버리고 온 선비의 아내는 서러워 울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농부는 마침 그 논이 자기 집 논이었는데, 선비의 행 동에 너무 감동되어 자신의 행위를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집 에 돌아와 아내에게 좋은 쌀로 죽 두 그릇을 쑤게 해 갖고 선비 집 으로 가서 바쳤다. 농부는 명분 없는 죽을 안 먹으려는 선비에게 자 초지종을 얘기하고, 죽을 먹지 않으면 자신의 행동이 고쳐질 수 없 다고 간청했다. 이렇게 해 선비가 죽을 먹으니, 농부는 선비 아내에 게도 한 그릇의 죽을 드렸다. 이후 이 농부는 자진해서 종이 되어 선비 집 행랑으로 이사하고, 열심히 일을 해 선비 집도 점점 넉넉해 졌다.(조선 후기) 속담에 "극히 적게 먹으면 똥을 가늘게 싼다"고 하는데, 이 말은 극 히 이치가 있다. 대개 음식을 절제하지 않으면 질병이 이로 말미암 아 생긴다. 이런 까닭에 한무제(漢武帝)거 병이 적었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먼저 먹는 것을 절제하였기 때문이었다. 세 노인이 나이 들 어 관직을 사임하고 배를 헤아려서 절제하여 받는 것을 으뜸으로 하 고 진실로 능히 먹되 배부른 것을 구하지 않았고 또 날 것과 찬 것 을 꺼렸으니 병이 어찌 생기겠는가? 일찍이 이를 시험하였는데, 우 연히 진기한 찬을 얻게 되어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그러자 배가 잔뜩 부른 것이 무척 심하였고 비위(脾胃)가 견디지를 못하여 이윽 고 곤한 잠에 빠졌다. 곽란(藿亂)이 되지는 않았으나, 반드시 설사가 되었다. 하물며 오랫동안 기름진 고기와 곡식(穀食)으로 만든 맛있 는 음식을 누리되 한번 악성 종기가 나면 백약으로도 구할 수가 없 으니 더욱 두려운 것이다. 서인(庶人)은 병이 없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그가 빈천(貧賤)하여 다만 채소와 궂은 쌀을 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이다. 슬프다! 만약 서인(庶人)의 배처럼 하고, 군자의 마음처럼 한다면 염 증이 날 뿐이니, 크게는 천하요 작게는 나라에 반드시 배와 마음에 병이 없을 것이므로 어찌 다스리지 못하는 근심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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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사

한고관외사(寒皐 觀外史) 39권 효빈잡기 상(效 顰雜記上), <소 금 장수 부인이 된 기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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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스님

필원잡기(筆苑雜 記) 8 권1 (김 현룡 6-[446] 도선(道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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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학산한언(鶴山閑 言) 398 (김현 룡 6-[245] 채 삼인 김씨(採蔘 人金氏))

낙동강 일대는 영남(嶺南)의 중심지로, 상산(商山)에서부터 김해(金 海)에 이르기까지 조운을 통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일선군에 소 금배가 폭주한다. 일선군에는 예로부터 이름 있는 창기가 많았다. 기 생들은 이익을 중하게 여겨 소금상인에게 시집가기도 하였다. 일부 (一府)에서는 측은하다고 여겨 술과 고기를 준비하도록 하여 죄를 속(贖)하게 하였다. 기생이 소를 잡고 손님을 불러 모았으나, 술안주 에는 소금 맛이 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감히 하근(下筋)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어찌 소금을 쓰지 않는가?" 하니 기생이 말하기를, "나는 소고기와 술을 소비하는 사람이다. 소금 장수의 부인이 되었 다. 어찌 내어다 파는 소금을 써서 나의 잘못을 무겁게 하겠는가?" 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사례하며 말하기를, "믿는다. 소금은 백미의 으뜸이다. 채소가 달지 않음이 없고, 고기가 맛이 없겠는가 만은 많은 물품으로 장사할 때는 소금을 장사하는 사 람에게 미치지 않는다. 우리들은 지금 이후 비로소 똑똑하지 못함을 알았다." 고 하고 다른 날 크게 갖추어 사례하였다. 이 기생은 자신의 처지 변화에 맞추어 대처를 잘 하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도선 스님은 백제 사람이다. 처음에 도선 모친이 결혼하기 전 처녀 일 때 시냇가에 나가 놀았는데, 아름답게 생긴 큰 오이를 하나 발견 하고 이것을 먹었더니, 갑자기 임신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부모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고 냇가에 버렸더니, 이때는 매우 추운 겨울이었 는데 수천마리의 갈매기[鷗]가 날아와 아이를 아래로 겹겹이 덮어, 10일 이상 지나도 죽지 않았다. 그래서 부모가 신이하게 여기고 거 두어 기르게 했다. 도선은 자라서 출가해 스님이 되었고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 천문· 지리·음양의 비법이 적힌 책을 주었으며, 뒤에 당나라에 들어가 일행 스님에게서 법술을 배웠다. 세상이 전하는 도참들을 모두 도선 스님이 지은 것이라 한다. 근래 (조선 초기) 당본『성요』 한 질을 얻어보니, <고려국사부>가 실렸 는데 매우 정밀해 도선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 나 거기에 함께 논의하고 있는 사람 야율초재는 도선과 시대가 많은 거리가 있는 사람이니 의문의 여지가 있다. 또 고려국사라는 사람이 도선의 비술을 전수 받았으면 어찌 우리나 라에 전하지 않고 중국에 전했는지 알 수 없다. 지금 영암현 도갑사 에 도선의 비석이 있고, 거기에 구림이란 지역이 있다. 영평(永平) 사는 김씨는 산삼 캐는 일을 했는데, 하루는 친구 두 사 람과 셋이서 백운산(白雲山)에 들어가니, 깊은 절벽 아래 좋은 바위 사이에 산삼이 보였다. 그래서 풀을 뜯어 광주리를 만들고 칡넝쿨로 줄을 만들어 매어, 두 친구를 위해 줄을 잡게 하고 김씨가 광주리에 타고 내려갔다. 10여 뿌리의 산삼을 캐서 광주리에 넣아 올려보내니, 두 사람은 산 삼만을 가지고 광주리는 던져버린 채 김씨를 끌어올리지 않고 가버 렸다. 김씨가 올라오지 못하고, 남은 산삼을 캐먹으며 6, 7일간 버티 니, 하루는 길이가 10여 장(丈)이나 되는 큰 구렁이가 나타나, 앞에 오더니 절벽을 이어올라 꼬리를 아래로 떨어뜨린 채 가지 않고 꼬리 를 흔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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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선부 (膳夫))

기대승(奇大升), 고봉집 제2권, <낭서(郎署)로 서의 상소>

김씨가 생각하니 혹시 자기를 구제해 주는 것으로 알고 허리띠를 풀 어 자기 몸을 구렁이 꼬리에 동여매니, 순식간에 구렁이가 기어올라 김씨를 바위 위로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 구렁이는 어디론가 사라졌 다. 김씨가 길을 찾아 산 아래로 내려오니, 앞서의 두 친구가 산삼을 가 진 채 집에 가지 않고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김씨는 어찌도 반가 운지 뛰어가면서, “아직 집에 가지 않고 여기 있느냐?” 라고 말하고, 가까이 가보니 이미 며칠 전에 죽어 굳어 있었다. 김씨는 곧 집으로 돌아와 두 사람의 가족에게, 두 사람이 돌아오다 가 무엇에 중독되었는지 갑자기 죽었다고 말하고, 산삼을 그 가족들 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다. 두 사람 가족은 본래 김씨를 믿고 있 어서 별의심 없이 장례를 치렀다. 이후 김씨는 가정이 윤택했고 자손이 번성했다. 김씨는 끝까지 사실 얘기를 숨기고 있다가 임종할 때 자녀들에게 얘기하고, 정직하게 살 아야 함을 강조했다. 김씨는 본래 이담석(李聃錫) 집 종이었는데, 값 을 내고 면천했고, 100세 가까이 살다가 병 없이 사망했다. 신등이 삼가 보건대 윤원형(尹元衡)은 음흉하고 남을 해치는 자질에 다 탐욕스럽고 포악한 행실까지 겸하여 권력을 독단하고 멋대로 행 동하였으니, 분수를 범하고 예를 파괴하며 국가를 해치고 백성들에 게 피해를 입힌 실상은 옛날에 견주어 보아도 일찍이 없었던 바입니 다. 그런데도 온 나라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속을 썩이면서 감히 말 하는 자가 없으니, 전하께서는 구중궁궐에 깊이 계시면서 어찌 이것 을 다 아시겠습니까. 그의 죄악이 쌓여 하늘과 인간이 서로 견책하게 되었으며, 하루아침 에 공론이 나와 위로 임금께 아뢰었으니 이는 수십 년 동안 심화되 고 고질이 되었던 화근을 제거하여 바로잡고자 한 것이니, 그 기관 (機關)이 또한 너무도 크다 하겠습니다. 조정의 선비로부터 시골에 있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전하께서 반드시 불끈 노하시고 엄히 결단하여 그 죄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다린 지 열흘이 넘도록 아직까지 그러한 유음(兪音)이 없으시니, 여러 사람들이 더욱더 답답해하여 길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신등은 종묘사직이 끝내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르겠습니다. 윤원형이 저지른 죄악의 실상은 양사(兩司)와 시종관(侍從官)들이 논열했사오니, 그의 작은 죄악은 일일이 들어서 성상께 번거롭게 말 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큰 죄악으로 말하면 또한 감히 거듭 아뢰고 지극히 말씀드려 전하께서 한번 깨닫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 습니다. 윤원형은 위치는 폐부(肺腑 외척)에 속하고 임무는 태부(台府)에 있 어 위세가 등등하니, 신료들이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 번째 로 강상(綱常)을 어지럽혀 첩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실로 인 륜의 큰 변고인데도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감히 이것을 비난한 자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위엄과 복을 마음대로 행사해 온 지가 오래인 것입니다. 그의 불타오르는 욕심이 위로 올라갈수록 그치지 않아서 심지어는 왕손(王孫)과 혼인하기를 도모하기까지 하였으니, 그가 속에 품은 심술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천한 첩을 궁중으로 마음대로 데리고 들어오고 자기 집에다가 사사로이 선부(膳夫 궁중 요리사)를 두었으며, 역적 무리들과 혼인하여 이들을 거두어 서용했으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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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이유원(李裕元), 임하필기 제29 권, 춘명일사(春 明逸史), <황내 고사(黃嬭故 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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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

이유원(李裕元), 임하필기 제20 권, 문헌지장편 ( 文獻指掌編) , 육진(六鎭)의 설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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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청구야담(靑邱野 談) 정 218 (김 현룡 3-[195] 박언립(朴彦立) 이시백 처가 종 (李時白妻家奴))

속으로 군주를 무시하고 불경한 죄가 이보다 더할 수 없는 것입니다. 궁궐 안에 있는 잉첩(媵妾)들과 사귀고 후하게 은혜를 베푼 다음 이 들과 결탁하여 이목(耳目)을 삼아 전하의 일동일정(一動一靜)과 일 어일묵(一語一默)을 모두 사찰(伺察)하였으니, 그의 마음이 또한 혹 독하다 하겠습니다. 정묘(正廟)가 일찍이 행재소(行在所)에서 요리사에게 어자반(魚子 飯)과 별군탕(鱉裙湯)과 해채갱(海菜羹)을 올리라고 명하였는데, 요 리사가 그 명칭을 알지 못하여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에게 물었 다. 그가 말하기를, “해채는 미역[甘藿]이고, 어자는 좁쌀인 듯하고, 별군탕은 모르겠다.” 하였다. 그래서 다시 금대(錦大) 이공 가환(李 公家煥)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황내고사에서, ‘햇좁쌀을 쪄서 어 자반을 만들고, 동과(東瓜)로 별군탕을 끓인다.’ 하였으니, 어자는 햇 좁쌀을 뜻하고 별군은 바로 동과를 일컬은 것이다.” 하였다. 세종 19년에 김종서(金宗瑞)가 육진을 설치하였는데 다스림이 매우 엄하여 관리나 군사들이 괴롭게 여겼다. 그래서 요리사들이 누차 음 식에 독을 넣었지만 죽이지 못하였다. 하루는 밤에 잔치를 열었는데 화살이 술동이에 적중하였다. 그래도 얼굴빛을 바꾸지 않으면서 이 르기를, “간사한 사람들이 나를 시험하는 것이다. 저들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완성되고 나서 장사(將士)들과 함께 지키면서 는 무릇 한 번 잔치를 열면 비장(裨將) 1백 명에게 모두 우족(牛足) 의 큰 고깃점을 베푸니, 어떤 사람이 그 절도 없음을 규간(規諫)하 였다. 이에 답하기를, “북쪽 변방은 나라의 왕이 흥기한 땅이다. 조종 (祖宗) 때 넓히고자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다행히 강 토를 개척하였다. 장사들이 10년이나 멀리서 수자리를 섰으니,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위로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는 야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비록 하나의 우족을 쓰지만 다 시 십수 년이 지나면 닭다리도 넉넉지 못할 것이다. 장사들이 모두 노래를 부르며 돌아가기를 생각한다면 누구와 더불어 굳게 지키겠는 가” 하였다. 박언립은 이시백 처가의 종이다. 모습이 험상궂고 힘이 세었으며, 하 루에 한 되 곡식을 먹었다. 항상 배가 고파 일을 잘 못했으며, 배만 부르면 나무를 뿌리째 뽑아 지고 왔다. 주인이 그 식사를 제공하기 어려워 내보냈으나 가지 않고 있었다. 앞서, 바깥주인이 사망하니 부인과 어린 딸이 울기만 하고 장례 준 비를 하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본 박언립은 안주인에게 돈이 될 만한 옷가지를 달라 해 팔아서, 장례 물품을 마련하고 이웃의 도움을 입 어 장례를 주관해 입관성복을 마쳤다. 그리고 자관에게 가서 묏자리 를 봐 달라 해서, 지관이 속이는 것을 알아 애기하고, 좋은 자리를 얻어 장례했다. 이후 안주인은 집안의 모든 일을 종 박언립에게 맡 기고, 그가 하자는 대로 따라 했다. 박언립은 안주인을 설득해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힘이 세고 농사일을 잘 알아 남보다 10배의 수확을 올리니. 5,6년 사이에 재산 이 넉넉해졌다. 박언립은 안주인에게 “아가씨 결혼을 해야 하는데 시 골에서는 신랑감을 구할 수 없으니, 서울 모댁이 주인 집안의 척손 이니까. 마님이 편지를 써주면 제가 가서 부탁을 하겠습니다”하고 했 다. 그래서 안주인이 편지를 써주는 갖고 가서 신랑감을 부탁했다. 이 집은 조정대신 집으로, 부탁을 받고 여기저기 알아봐도 마땅한 곳이 없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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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가

태평한화(太平 閑話) 고금소총 본(古今笑叢本) 85 (김현룡 7-[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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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砲手)

청구야담(靑邱野 談) 김46 (김현 룡 6-[320] 박 천 포수·우(博川 砲手·禹))

박언립은 곧 배를 한 짐 사서 지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다니면서 직접 신랑감을 찾았다. 마침 서소문밖에 어느 가난한 집 앞에 가니 한 총각이 나와서, 배를 몇 개 깎아먹고는 또 10여 개를 소매에 넣 고 가면서 배 값을 뒤에 받으라 했다. 그래서 아이를 불러 물으니 이평산(李平山, 李貴) 댁의 아들 이시백이었다. 박언립은 곧 주인 친 척집에 와서 얘기를 하고, 그 집과 혼인 주선을 해 달라 했다. 이렇 게 해 이시백과 주인 딸과의 결혼이 성립되었다. 그리고 주인 집을 서울로 이사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뒤에 이귀 부자(父子)와 김류 등이 반정을 모의하면서, 이시백 처갓 집 종 박언립이 영특하다는 애기를 하니, 모의하는 여러 사람들이 그를 초빙해 일의 성패를 물었다. 박언립은 “신하가 임금을 내쫓는 일이라, 제공들의 인격에 달렸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시백은 박언립 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고 상황을 보라 했다. 박언립은 얼마 후 일 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고, 그러나 자기는 여기서 빠지겠 다고 한 다음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달쯤 지나 박언립이 돌아와,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한 섬을 물색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배를 준비했으니 반정 당일 일이 실패하면 두 집식구가 타고 도피할 수 있게 배를 대기하고 있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조반정이 무사히 끝나고 이귀 3부자는 영귀하게 되었다. 박언립은 “이제 저의 일이 끝나 영원히 떠납니다. 주인댁의 후손이 없으니 외손봉사를 부탁드립니다.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것은 저의 자식이 하나 있는데. 주인댁 선산 묘지기를 시켜주시면 감사하겠습 니다”라고 말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선비 이필(李佖)은 장(醬)을 즐기고 민의(閔宜)는 초(醋)를 좋아하 며, 이중원(李重元)은 겨자(芥)를 좋아했다. 세 사람이 청량사(淸凉 寺)에서 밤에 모여 술을 마시는데, 안주가 떨어지니 세 사람이 각각 가서 절에 있는 것 중 안주가 될 만한 것을 훔쳐 오기로 했다. 세 사람이 훔쳐 온 것을 내놓아 보니, 장과 초와 겨자를 각기 훔쳐 왔 다. 세 사람은 박장대소하고, “하늘이 우리들에게 즐기는 음식을 각 기 다르게 점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로다”라고 말했다. 박천의 한 포수가 묘향산에서 사슴을 쫓아, 산속 깊이 들어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날이 어두워 한 집에 들어갔다. 이 집은 12간의 길다 란 집인데, 11간은 안에 벽이 없이 길게 복도처럼 되어 있고, 끝 1 간만 부엌이 붙은 방이었다. 이 부엌 방에서 한 여자가 나와 맞고, 남편은 사냥하러 갔다고 했다. 여자의 안내로 방에 들어간 포수는 충정이 발동해 여인을 유혹해 호 합하니, 여인도 그대로 순순히 응했다. 그리고 순전히 맛있는 고기로 된 저녁밥을 대접받았다. 밤 2경이 되니 남편이 많은 짐승을 사냥해 돌아왔는데, 키가 어찌도 큰지 집안에서는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곧 손님을 잘 대접했느냐 고 묻고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11간의 맨 끝에서 머리를 넣어 기어 들어오니, 길이가 11간에 가득 찼다. 그리고 천장에 부딪히기 때문에 앉지 못하고 누워서 애기했다. 포수에게 하루 종일 사슴을 쫓다가 여기까지 왔느냐고 묻고, 저 여 자와 사랑을 나누었느냐고도 물었다. 포수는 이 괴물이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바른대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괴물은 모두 알고 있 다면서 상관없다고 말했다. 여자에게 저녁식사를 가져오라 하는데, 여자가 나가 지금 잡아온 멧돼지 한 마리를 산 채로 잘라 오니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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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庖丁)

어우야담(於于野 譚) 170 (김현 룡 6-[268] 소 와 닭(牛·鷄))

을 다 먹었다. 그리고 포수에게 여자와 함께 자라고 하고 자기도 그 대로 누워 잤다. 이튿날 이 괴물은 집밖으로 나와 몸을 펴고는 포수에게, “어제 내가 사슴을 보내 당신을 유인해 왔다”고 말하고, 여자는 아직 자기와 접 촉하지 않은 처녀이니 가지라고 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산짐승을 잡아 가죽 벗겨 놓은 것을 석굴 속에 산더미처럼 갖고 나와, 이것도 힘센 자기가 배타는 나루까지 운반해 주겠으니 가지고 가라고 말했 다. 그래서 나루에 닿으니, 괴물은 이 짐승 가죽을 팔아 재산을 마련해 살라고 하고,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5일째 되는 날 소 두 마리를 잡 고 소금 100석을 함께 싣고 와 여기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이렇게 해 포수는 괴물과 해어져, 여인과 함께 짐승 가죽을 운반해 집으로 돌아왔다. 5일째 되는 날, 그가 말한 대로 준비해 나루에 가니, 괴물은 또 많은 짐승가죽을 지고 왔다. 괴물은 소 두 마리의 고기를 다 먹고 소금을 지고 가면서, “다시 5일째 되는 날 소금 100석만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5일째 되는 날, 포수가 다시 소금 100석을 가지고 가면서, 이번에는 소 두 마리 말이 없었지만 자기가 생각해 소 두 마리도 잡 아서 함께 가지고 갔다. 괴물은 역시 많은 짐승가죽을 갖고 와 주고 는, 소금만 받고 이번에는 소를 안 먹겠다고 말했다. 포수가 가지고 온 정성을 생각해 먹으라고 하니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5일이 늦어지겠구먼” 하고는 소를 다 먹고 영원히 작별한다면 서 떠나갔다. 포수가 따라가, “당신이 귀신이냐, 산신이냐, 요괴냐?” 하고 물었다. 이 괴물은 “내년 단옷날에 낙동강 나루에서 청포를 입 고 검정나귀를 탄 초립동에게 물어 보라” 하고는 떠나갔다. 포수는 짐승가죽을 팔아 부자가 되어 그 여인과 함께 잘 살았다. 이 듬해 단옷날에 낙동강 나루에 가니 정말 애기한 대로 초립동이 있기 에, 그 애기를 하고 물어 보았다. 초립동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는 우(禹)인데, 세상이 평온하여 영웅 호걸이 필요 없는 시대에 는, 영웅호걸이 될 순양의 기운을 세상이 못 나가게 하고, 거두어 저 로 만들어 깊은 산속에 가두어 두는데, 세상이 어지러워 영웅 호걸 이 세상에 나가야 하게 되면 저를 죽여 그 기운을 가지고 영웅 호걸 의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세상이 30년 안에 어지럽게 될 것 이기 때문에. 그를 죽여 영웅들을 만들어야 하니, 복록이 있는 자네 를 유인해 여인과 재물을 넘겨준 걸세” 하고 말했다. 그리고 또 “세상 남자는 ‘양기 속에 음기’를 내포하고 있고, 여자는 ‘음기 속에 양기’를 역시 내포하고 있어서 남녀의 교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저 ‘우’는 ‘순양(純陽)’이기에 남녀 교합이 불가능해, 정말 자 네 여자와는 접촉한 일이 없으니 숫처녀였네” 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초립동은 자신이 정몽주라고 말하고 배를 타고 떠났다. 이후 3기가 못되어 세상이 크게 혼란해졌어도, 영웅 호걸이 쏟아져 나왔 으니, ‘우’의 화신 들인 것 같았다. 그러나 포수는 아무 피해 없이 잘 살았다. 홍봉서 집에서 잔치에 잡을 소를 사와서 매놓고, 포정(庖丁:소 잡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마침 종의 아들 수손(水孫)이 과천 (果川)에서 소에 많은 장작을 싣고 와 소를 기둥에 매놓았는데, 건 물에서 가로지른 큰 나무가 떨어지면서 과천에서 온 소의 등을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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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삼국유사(三國遺 事) 권5 감통 (感通)(김현룡 7-[44] 김현 감호(金現感虎))

쳐 척추가 부러졌다. 그래서 이 척추 부러진 소를 바꾸어 잡아 고기 로 쓰고, 잡으려고 사다 놓은 소는 과천으로 몰고 갔다. 유몽인(柳夢寅) 집에는 검정색과 붉은색 수탉이 있었는데, 검정색 수탉이 힘이 세어 모든 암탉을 거느렸다. 그러니까 붉은색 수탉은 항상 쫓겨 암탉 근처에 가지 못했다. 하루 낮에 닭을 잡을 일이 생 겨서, 이웃집 종에게 활로 붉은 색 수탉을 좀 쏘아 잡아달라고 부탁 했는데, 잘못 듣고 검정색 수탉을 쏘아 죽였다. 이후로 붉은색 수탉 이 대신 암탉들을 거느리고 사니, 미물들의 생사 운명도 이러하여 마음대로 되지 않는데, 사람들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사람의 생사 운명은 모두 하늘에 달려있도다. 신라 풍속에, 4월 8일부터 15일까지 도성사람들이 다투어 흥륜사(興 輪寺) 전탑(殿塔)을 돌면서 소원을 비는 복회(福會)가 열린다. 원성 왕(元聖王) 때 총각 김현은 이 행사에서 쉬지 않고 밤늦도록 전탑을 돌았는데, 이때 한 처녀도 염불을 하면서 김현을 따라 도는 것이었 다. 이렇게 해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맞아, 탑돌이가 끝난 후 김현은 그 처녀를 한적한 곳으로 끌어들여 정을 통했다. 그리고 처녀가 돌아갈 때에 김현은 거절하는 것을 뿌리치고 억지로 처녀를 따라가니, 처녀 는 서산(西山) 기슭의 한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그 어머니인 노파가 김현을 보고 딸에게 같이 온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처녀가 사실 얘기를 모두 들려주니, 노파는 “비록 좋은 일이 긴 하지만 없었던 것만 못하다”고 말하고, 그러나 지나간 일을 어쩌 겠느냐고 했다. 그리고 “너의 형제들이 오면 해칠 것이 두렵다”고 말 하고 김현을 데리고 가서 깊숙한 곳에 숨겼다. 얼마 후 3마리의 호랑이가 소리치며 나타나서, 사람의 말로 말하기 를, “집안에 누린내가 나니 요기를 할 수 있어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노파와 딸이 “너희들 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집 에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때 하늘에서 소리하기를, “너희들 이 생명을 많이 해쳤기 때문에 너희 중에 하나를 죽여 징계하겠다” 는 천창(天唱)이 들렸다. 이에 세 호랑이가 두려워하니 호녀(虎女)가 나서서 자기가 죽임을 당하겠다고 말하고, 오빠들은 멀리 가서 스스로 징계로 삼으라 했다. 이 말을 들은 세 호랑이는 머리를 숙이며 꼬리를 늘어뜨리고 어디론 가 사라졌다. 호녀는 곧 김현에게 들어와, “처음에 따라오지 못하게 한 것이 바로 우리 무리들의 부끄러움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랬습니다. 비록 사람 이 아닌 몸이지만, 하룻밤의 맺은 인연은 그 의리가 중요한 것입니 다. 세 오빠의 악과 가정의 재앙을 나 혼자 감당하고, 또 모르는 사 람의 손에 죽는 것보다는 낭군의 손에서 죽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더 없는 행복입니다. 그러니, 내일 내가 시중(市中)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면 사람들이 나를 처치하지 못할 것이고, 그때 왕이 반드시 큰 벼슬을 주겠다는 현상을 걸고 호랑이를 잡으라 할 것이니, 그때 낭 군은 두려워하지 말고 성북(城北) 숲 속으로 나를 쫓아오면, 내가 거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고 일러 주었다. 이 말을 들은 김현은 “사람과 동물이 인연을 맺은 것은 정상은 아니 지만, 그러나 인연을 맺은 것은 천행(天幸)이었다. 그런데 어찌 아내 를 팔아 죽여서 벼슬을 얻겠는가?”라고 말하고 거부했다. 그러니까 호녀는 “저의 명이 본래 짧으며, 하늘의 명령이고(天令), 자기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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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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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안정복, 동사강 목 제12하, 임진 년 충렬왕 18년 (원 세조 지원 29, 1292) 고려사절요 제 32권, 신우 3 (辛禑三), 을축

원한 바이며, 낭군의 경사이고, 우리 족속의 복이 되고, 나라 사람들 이 기뻐하는, 이 다섯 가지 이익(五利)이 있으니, 어찌 피하겠습니 까? 다만 소원은 절을 지어서 내 명복을 빌어주면 낭군의 은혜는 그 위에 더할 것이 없겠습니다”하고 말했다. 이렇게 울면서 헤어졌다. 이튿날 호녀의 말대로 시중에 맹호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니, 왕이 ‘작이급(爵二級)’의 현상을 걸고 호랑이를 잡게 했다. 이에 김현이 자원하니 왕은 미리 벼슬을 내리고 격려했다. 곧 호녀가 시킨 대로 칼을 들고 성북 숲 속으로 가니, 호랑이 처녀는 사람으로 변화해 웃 으면서, “어젯밤 낭군과 함께 나눈 애정을 부디 잊지 마십시오. 그리 고 오늘 나에게 물린 사람들은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고 절의 나발 (螺鉢) 소리를 들으면 모두 완쾌됩니다”하고 말했다. 곧 이어 호녀는 김현이 차고 있는 칼을 뽑아 자기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렇게 하여 김현은 나가 호랑이 잡았음을 알렸고, 호랑이에게 물린 사람들에게 치료법을 일러 주었으며, 관직을 얻은 다음 서천(西川) 변에 절을 지어 호원사(虎願寺)라 했다. 그리고 항상 범망경(梵網經) 을 외어 호랑이의 명복을 인도했다. 김현은 이 일을 숨기고 있다가 사망할 무렵에 이를 전(傳)으로 꾸며 ‘논호림(論虎林)’이라 이름했다. 5월 26일(정사)에 세자는 장(醬)을 시가에 베풀고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먹였다. 사흘 뒤에 세자가 왕과 공주에게 축배를 올리는데 제왕(諸王)과 양부(兩府)의 원로들이 시연(侍宴)하였다. 세자가 일 어나서 춤을 추고 왕과 공주는 흐뭇하게 즐기고 끝냈다. 계림군 이보림(李寶林)이 죽었다. 사람됨이 엄하고 굳세며 바르고, 행정하는데 재능이 있었다. 일찍이 경산부를 맡았을 때, 길에 나갔다 가 어떤 부인이 우는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이 여자의 우는 소리가 슬프지 않고 기뻐하는 것 같다" 하고 잡아서 심문하니, 과연 간부와 짜고 남편을 죽인 여자였다. 또 한 사람은 이웃 사람이 자기 소의 혀를 잘랐다고 몰아댔는데, 이웃 사람은 부인하였다. 보림이 그 소 를, 사람을 시켜 오래 목마르게 한 다음, 간장을 물에 타 놓고서 마 을 사람을 다 모아 놓고 명령하기를, “너희들이 차례로 소에게 물을 마시게 하되, 소가 마시려 하거든 그만두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 주 라" 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명령대로 하여 차례가 그 피의자에게 이 르니, 소가 놀라서 달아났다. 그래서 그 피의자를 잡아서 심문하니, 과연 자백하기를, “이 소가 내 벼를 뜯어 먹었기 때문에 그 혀를 잘 랐다"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말을 내 놓아서 다른 사람의 보리를 거의 다 뜯어먹어버려 보리밭 임자가 말 임자를 고소하려 하니, 말 임자가 사정하기를, “나도 보리밭이 있으니, 보리가 익으면 당신에게 주겠소. 그러니 관청에 고소하지 마시오" 하여, 보리밭 임자가 허락 하였다. 여름이 되어, 그 말이 뜯어먹은 보리가 다시 싹이 돋아 그래 도 수확할 것이 있자, 말 임자가 말하기를, “당신의 보리도 여물었으 니, 내가 반드시 당신의 보리를 갚아줄 이유가 없다" 하여, 보리 임 자가 고소하였다. 보림이 두 사람을 앞마당에 불러 말 임자는 앉히 고 보리 임자는 세워 놓고 말하기를, “동시에 빨리 달려서 못 따라가 는 자는 벌을 주겠다" 하였더니, 말 임자가 따라가지 못하였다. 따져 물으니 대답하기를, “저 사람은 서고 나는 앉았으니, 어떻게 따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보림이 말하기를, “그 보리도 마찬가지다. 뜯어 먹은 뒤에 다시 싹이 났으니, 제대로 여문 보리를 따를 수 있겠느냐. 네가 처음에 말을 내놓아서 남의 밭에서 뜯어먹게 한 것이 첫째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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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윤증(尹拯), 명 재유고 제38권, 묘갈명(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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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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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장)

이색, 목은시고 제27권, 시 (詩), 가동(家 童)을 보내서 나 잔자(懶殘子)에 게 차(茶)를 얻 어 오게 하고, 가동이 떠난 뒤 에 한 수를 읊어 이루다.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간장[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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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촌담해이(村談解 頤) 3 (김현룡 7-[317] 청부 독과(菁父毒果))

요, 사사로이 그 주인한테 빌어서 관청에 고하지 못하게 한 것이 둘 째 죄요, 꾀를 내어 약속을 어기고 보리를 주지 않았으니, 셋째 죄 다. 법을 어지럽힌 백성은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드디어 곤장 을 때리고, 그 밭보리를 고소한 자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정사를 엄 하고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대사헌이 되었을 때에 자못 집정 대신의 뜻에 맞추어 평소의 지조가 없으므로, 세상 에서 대단찮게 여겼다. 적순공이 70세에 중풍에 걸려 5년 동안 남의 부축을 받아야 앉거나 누울 수 있었다. 공이 근심 어린 낯빛으로 부지런히 모시면서 침을 맞을 때는 반드시 먼저 맞아 보았고, 대소변으로 더렵혀진 옷이나 이불들은 손수 세탁하였다. 병이 갑자기 위독해졌을 때는 손가락에 피를 내어 드시도록 하여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적순공이 병으로 음 식을 폐하였을 때에도 회(膾)만은 여전히 좋아하였으므로 공이 몸소 물고기를 잡아서 올렸는데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돌아 가시자 다시는 회를 먹지 않았다. 상을 치를 때 슬퍼함이 예에 지나쳐서 졸곡(卒哭)이 지나서도 여전 히 물에다 거친 밥을 말아서 먹고 나물이나 간장도 먹지 않았다. 제 사를 지낼 때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관 대를 벗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削竹串穿蕎麥餻 대로 깎은 꼬챙이에 메밀떡을 꿰가지고 仍塗醬汁火邊燒 거기에 간장을 발라서 불에 구워 먹으니 玉川欲得茶來喫 옥천자의 차를 얻어 마시고 싶어지네 香積何憂食不消 어찌 향적반이 소화 안 될까 걱정하랴 汗滴火雲初下種 땀 흐르는 한여름에 처음 씨 뿌릴 텐데 呈祥臘雪又藏苗 상서로운 납설이 또 곡식을 보호했으니 明年往試田家樂 내년엔 가서 농촌의 즐거움을 맛보면서 鼓腹長歌謝聖朝 배 두들기고 노래하여 성조에 감사해야지

煮豆爲甘末 鹹藏滿甕中 爛色琉璃赤 澄光琥珀紅 掘底探金粟 穿心發玉封 烹羹與膾炙 無處不宣功

콩을 삶아서 가루로 만들고 소금을 넣어서 독에다 채우면 유리 보석인 양 붉은 빛 띠고 빨간 호박인 양 맑은 빛 띤다 바닥을 파서 금알갱이 뒤지고 속을 뚫어서 옥봉함을 연다 국이나 회와 불고기 만들 때 어느 곳이건 간장이 필요하지

충주의 한 절에 주승(主僧)이 욕심이 많아, 데리고 있는 사미(沙彌) 에게 음식을 잘 주지 않고 인색하게 했다. 닭을 길러 그 계란을 삶 아 사미가 잠들기를 기다려 먹는데, 사미가 자는 체하다가 일어나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주승은 “무 뿌리이다.” 하고 대답했다. 하루는 주승이 자다가 일어나 사미를 불러, 밤이 얼마나 깊었느냐고 물었는데, 그때 마침 새벽닭이 울었다. 곧 사미가 기지개를 켜면서 말하기를, “밤이 이미 깊어서 ‘무 뿌리 아비(靑父)’가 울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절 정원의 감나무에 감이 익었다. 주승이 따서 홍시를 만들려고 광 주리에 담아 들보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홍시를 주승이 혼자 하 나씩 내려 먹으니, 사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주승이 “이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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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성수패설(醒睡稗 說) 24 (김현룡 3-[108] 계란 겹쳐 세우기(卵 上加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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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태평한화(太平 閑話) 고금소총 본(古今笑叢本) 76 (김현룡 6-[255] 강일 용(姜日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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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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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닭갈비 [鷄肋]

태평한화(太平閑 話) 금서룡본(今 西龍本) 98 (김 현룡 7-[465] 계란 삶기(烹 卵)) 정약용, 다산시 문집 제6권, 시 (詩) 송파수작 (松坡酬酢), 앞 의 운을 다시 사 용하다[ 再疊] ,

독과(毒果: 독이 있는 과일)인데 아이들이 먹으면 혀가 헐어 죽는다” 하고 속여 말했다. 하루는 주승이 외출한 사이에 대막대기에 고리를 걸어 들보 위의 홍 시 광주리를 끌어내려 마음대로 먹고, 차(茶) 잎을 가는 맷돌로 꿀 단지를 때려 깨뜨려 놓고, 뜰의 나무에 올라가 있었다. 주승이 돌아 와 깨진 꿀단지와 내려져 있는 홍시 바구니를 보고 화를 내며, 막대 기를 들고 나무 밑에 와 빨리 내려오라고 재촉했다. 이에 사미는, “맷돌을 옮기다가 실수해 꿀단지를 깨고는 두려운 생각에 자살하려 고, ‘독과(紅枾)’를 내려 먹었으나, 죽지 않아 나무에 올라와 죽으려 고 합니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주승은 웃으면서 사미를 용서 했다. 한 대감이 죄를 입어 귀양 가게 되었다. 떠나는데 부인이 슬피 울면 서, “지금 가시면 언제쯤 돌아오시게 될까요?” 하고 물었다. 대감이 대답하기를, “혹시 계란 위에 계란이 겹쳐 서게 되면 돌아올지 몰라 도 그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걸세” 하고 떠났다. 이후로 부인이 매일 상 위에 계란 두 개를 올려놓고, “계란이여 겹쳐서 주십시오” 하고 수없이 빈 다음에 계란을 포개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굴러 떨 어지면 또 빌고 하여, 이 일을 매일 계속했다. 이러기를 여러 해 했 는데, 한 번은 임금이 미복으로 몰래 민간을 수행하다가 우연히 이 집 창문 밖을 지나가게 되어. 이 부인의 비는 소리를 들었다, 궁으로 돌아온 임금은 사람을 시켜 그 부인이 비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 오라 했다. 이에 부인은 사실대로 남편이 하던 말을 설명해 줬다. 애 기를 들은 임금은 부인의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 이튿날 바로 그의 남편을 석방했다. 석방되어 돌아온 대감을 임금이 불러들여 그 동안 고생한 것을 위로하고, “대감이 어떻게 해 석방되었는지를 아느냐?” 하고 물었다. 대감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하해와 같은 성은으로 석 방된 줄 아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임금은 웃으면서, “아니니라. 계란 위에 계란을 겹쳐 세운 덕분이니라” 하고 말했다.(조선 말기) 강일용 선비는 집이 매우 가난했다. 임금이 그에게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려고 어느 날, “서울 도성 4대문에 하루 동안 들어오는 모든 재물을 강일용 집으로 실어다 주도록 하라” 하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 날은 아침부터 장대 같은 비가 종일 내려 사방에 길이 막 혀, 서울로 물자를 싣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오후 늦게 오직 한 사람이 계란 몇 꾸러미를 지고 들어왔는데, 그 계란도 모두 속이 굳 어 뼈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속담에 복 없는 사람을 ‘강일용’이라 하더라. 계란을 삶을 때 시간이 너무 지나면 딱딱해지고, 시간이 짧으면 액 체가 흘러 좋지 않다. 그래서 ‘아미타불’을 20번 외우면서 삶으면 알 맞다고 하니, 한 사람 왈 “그건 안 된다. 유지(庾智) 목사(牧使) 같 은 사람은 말이 빠르고, 최덕지(崔德之) 직관(直館) 같은 사람은 말 이 느린데 어찌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休將韻事度霖炎 霧裏看花似隔簾 頭上壁皆千仞立 眼前山忽九疑尖 欲捐鷄肋仍無肉 將謂蛾眉亦有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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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짓는 일로 장마 염천 보내지 말아야지 안개 속 꽃구경은 주렴 가린 듯 희미하여라 머리 위의 절벽은 다 천 길이나 높이 서 있고 눈앞의 산은 문득 구의산이 뾰족하구려 닭갈비를 버리는 건 살이 없기 때문이나 장차 미인에게도 수염이 있다 이를 것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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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닭갈비 [鷄肋]

갈비, 닭갈비 [鷄肋], 흰배 추[白菘菜]

우일사운(雨日射 韻) 황현, 매천집 제 1권, 시(詩)○기 축고기축고(己丑 稿)1889년(고종 26), 매천의 나 이 35세 때 지 은 것이다.(己丑 稿), 방 상사 하 규를 곡하다 4 수〔哭房上舍夏 圭 四首〕

서거정, 사가시 집 제40권, 시냇가에서 간단 히 한잔하면서 즉사(卽事) 2수 를 읊어 옥여(玉 如)에게 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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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닭갈비 [鷄肋],

서거정, 사가시 집 제29권, 시 류(詩類), 삶은 노루 머리를 보 내준 이평중(李 平仲)에게 사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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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닭갈비 [鷄肋]

박지원, 연암집 제4권, 영대정잡 영(映帶亭雜咏), 재실(齋室)에서 제릉 영(齊陵令) 으로 있을 때 지 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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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쇠갈비 [牛肋]

정약용, 다산시 문집 제1권, 시

縱使今人能夙悟 外孫虀臼却難拈 幾年場屋汗成漿 鷄肋功名鬢已蒼 恨煞鄕閭榮錦日 淵明足疾早相妨

지금 사람이 아무리 일찍 통달했다 하여도 좋은 시구는 도리어 집어 내기 어려우리라 그 몇 해나 과거장에서 땀을 줄줄 흘렸던고 닭갈비 같은 공명 속에 귀밑이 진작 세었지 한스러워라 그대 금의환향하던 날에는 연명이 발병이 있어 찾아보질 못했었네

賣盡山田病不除 金丹歲暮欲何如 似聞自覿南宮榜 日勑溪丁引我驢

산전을 다 팔고도 병을 고치지 못했구려 금단은 이미 늦었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듣자 하니 진사방에서 서로 만난 이후로는 날로 뱃사공 시켜 날 나귀 태워 오라 했다지

客中雙鯉蓼溪秋 無限黃花隔夜愁 早識來函成絶筆 肯敎傳玩任人收

요계 가을에 객중의 두 잉어가 당도했으니 수많은 국화들이 밤을 새워 시름했으리 보내온 서신이 절필임을 진작 알았다면 남들이 갖다 서로 완상토록 맡겨 두었으랴

沙溪亭角墮長虹 入夜松杉肅有風 擧手謝人人不識 橫天笙鶴月明中 下馬溪邊坐石沙 此時觥飮味尤加 肉羹自好白菘菜 魚膾偏宜紅蓼芽

사계정 모서리에 긴 무지개가 떨어지더니 밤중에는 송삼 숲에 엄숙한 바람이 일었지 손 들어 인간을 하직해도 인간은 몰랐는데 생학 타고 달 밝은 하늘을 훨훨 날아갔구려 말에서 내려 시냇가의 자갈을 깔고 앉으니 이때의 큰 술잔은 맛이 더욱 좋고말고 고깃국에는 절로 흰 배추나물이 좋고 생선회에는 유독 여뀌 싹이 제격이구나

落日看看下晩汀 半酣相勸不須醒 鷄餘盤上兩黃肋 酒盡沙頭雙白甁 鷄肋食微人自惜 鹿頭烹爛我何辭 思君更進一杯酒 獨坐浪吟千首詩

지는 해는 점차 저녁 물가를 내려가는데 거나하여 서로 권해라 굳이 깰 필요 없네 닭고기는 쟁반에 누런 갈비 두 대만 남았고 술은 백사장 머리 두 병 탁주를 다 비웠구나 닭갈비는 하찮은 거지만 사람이 아꼈는데 노루 머리 삶은 걸 내가 어찌 사양할쏜가 그대를 생각해 다시 한 잔 술을 들이키고 홀로 앉아서 천 수 시를 낭랑히 읊조리노라

淺酌村醪獨自寬 蕭蕭霜髮不勝冠 千年樹下蒼涼屋 一字啣中冗長官 레 都付鼠肝閒計小 猶將鷄肋快抛難 逢人盡說前冬苦 最是齋居却忘寒 南雪或雪或霏微 雪花壓竹風不飛

한두 잔 막걸리로 혼자서 맘 달래노라 백발이 성글성글 탕건 하나 못 이기네 천년 묵은 나무 아래 황량한 집 한 글자 직함 중에서 쓸데없이 많은 능관(陵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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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은 일 시시하여 신경 쓸 일도 적지마는 그래도 닭 갈비처럼 버리기 아깝구려 만나는 사람마다 지난겨울 괴로웠다 말하는데 나는 마침 재실에서 되려 추운 줄 몰랐다네 남쪽 지방 내리는 눈 눈 오다가 비 오다가 대나무에 쌓인 눈꽃 바람에도 아니 날려


(詩), 눈 내리는 밤에 조 사마와 함께 술을 마시 며[雪夜同曹司馬 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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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나손소장본(羅孫 所藏本) 2 (김 현룡 3-[188] 이주서 첩(李注 書妾))

槐身半駮素練挂 검은 홰나무 반쪽엔 명주필이 걸리었고 松頂一羃靑針稀 둥그런 소나무 머리 푸른 바늘 듬성듬성 深堂大丳燒牛肋 깊숙한 안채에선 큰 석쇠로 쇠갈비를 불에 굽고 火酒倒寫紅霞色 소주 부어 따르니 붉은 노을 빛이로세 / 酒酣喉焦思復飮 취기 돌자 목이 말라 자꾸 더 마시고픈데 橙橘梨榴恣所噉 귤이며 유자 배 석류 이것저것 먹어보네 金生吹笛崔生唱 김생은 젓대 불고 최생은 노래 부르자 曹公擊節聲悲壯 조공은 박자 치며 감탄 소리 비장하다가 忽作白眼怒睢盱 갑자기 노기 등등 흰자위를 부라리며 叱呵公相如虜奴 공경 재상 질타하길 오랑캐와 종놈저럼 公無妄言且安睡 공이시여 망언 말고 잠이나 한숨 자소 牕明雀噪還相呼 밝은 창 앞 참새들 짹짹 서로 부르네 이씨 선비가 과거길에 한 집에 들었다. 밤중에 보니 한 부인이 시어 머니 방에 가서 고담 책을 읽었다. 그 다음에 나와서 여자 종을 불 러 등불을 들게 하고 밖에 나와, 사랑에 든 손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여자종이 과거길의 선비가 묵어가려고 들어왔노라고 대답했다. 부인 은 방이 차고 저녁밥 대접이 없었음을 걱정하고 들어갔다. 이 선비는 곧 숨어서 부인 방으로 들어가니 독약 그릇이 놓여 있기 에 약을 쏟아버리고 숨어 있었다. 부인이 들어왔다가 둘러보고 나가 는 것을, 이 선비가 나가 붙잡았다. 부인은 남자가 안방에 들어왔음 을 꾸짖었다. 이 선비는 과거에 계속 떨어지고 점을 쳐 점쟁이의 말 을 듣고 행동했음을 말하고, 왜 자살을 시도했냐고 물었다. 부인은 15세에 13세의 신랑을 만나 청춘과부가 되어 시어머니와 5 년간 살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용이 몸을 감는 꿈을 꾸고, 과부의 몸 으로 가당치 않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해 두 사람은 운명임을 얘기하고, 곧 이어 부인은 인연을 맺 은 후 버리지 않을 것을 다짐받은 뒤, 이 선비와 동침해 그윽한 정 을 나누었다. 아침에 부인이 백금 몇 근을 주면서, “지금 가면 급제할 테니, 급제 후 말 두 필과 가마를 준비해 이리로 와서, 밖에 가까운 친척으로 저를 만나보러 왔다고 하면, 그 다음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떠나라 했다. 그래서 이 선비는 과연 급제하고 3일만에 말과 가마를 준비해 그 집 으로 가서, 사촌 여동생인 부인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곧 부인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시부모께 절한 다음, 3일 전 밤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고 떠나겠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시부모는 울면서 보내주 었다. 부인은 이 선비가 아내 있는 몸으로 첩을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근 심하는 것을 보고, 혼자 먼저 이 선비의 고향집으로 갔다. 부인은 뜰 에 멍석을 깔고 이 선비와의 지난 일들을 애기하고 처분을 내려달라 고 했다. 이 선비 집에서는 부인의 사정 애기를 듣고, 또 그 거동이 정숙함을 보고 첩으로 받아들이고 했다. 부인은, 급제는 했지만 벼슬을 얻으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시골집을 정리해 서울로 와서 홍 재상 집 앞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 리고 이 선비에게는 출입을 하지 말고 항상 앉아서 독서만 하라고 일렀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이 집을 ‘글 읽는 선비 집’으로 불렀다. 얼마 후 홍 재상 집 여자 종이 부인에게 놀러 왔다, 부인은 종에게 밥을 주면서 자기가 담근 순창 고추장을 내놓았다. 부인은 순창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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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계압만록(鷄鴨漫 錄) 32(김현룡 2-[346]이태중 (李台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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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계서야담(溪西野 譚) 400 (김현 룡2-[393] 한 양 최생(漢陽崔 生))

추장 담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여자 종이 고추장을 먹어보 고는 집 마님에게 드린다면서 먹지 않았다. 그래서 부인은 고추장을 그릇에 담아 주면서 먹고 가져가라 했다. 여자 종이 갖고 온 고추장 을 먹어본 홍 재상 부인은 그 맛의 특이함에 놀라고 대감에게도 맛 보게 하니, 이 후로 대감은 이 고추장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부인은 홍 재상 집에서 고추장이 떨어졌다. 하면 늘 조금씩 보내주 었다. 얼마 후 며칠간 소식이 끊어지니, 부인은 홍 재상이 찾아올 거 라 했는데, 과연 하루는 홍 재상이 밤중에 종 하나만 데리고 이 선 비 집을 방문했다. 선비와 얘기를 나눈 홍 재상은 그 인품에 감탄하 고 돌아갔다. 부인은 마침 전라 감사 자리가 빈 것을 알고 이 선비를 시켜 그 자 리를 부탁하라 했다. 홍 재상은 웃으면서, 다른 자리는 몰라도 전라 감사는 안 된다고 거절했다. 이 선비가 어찌 문벌이 낮다고 관직을 안주느냐고 정색을 하니, 홍 재상은 곧 뉘우치고 전라감사 자리를 이 선비에게 임명했다. 이 선비는 전라감사로 부임해 3년을 지나고, 홍 재상의 생일날 많은 손님이 모인 앞에서 절교 편지를 제출했다. 홍 재상은 물론 모인 손님들이 모두 놀랐다. 뒤에 홍 재상이 패하여 형벌을 받았을 때, 그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화를 당했으나, 이 선비 만은 절교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무사했다. 이태중이 평안 감사일 때, 관청 창고 관리를 맡아 곡식을 축낸 사람 에게 죄를 물어 장살(杖殺)하려 했다. 이때 많은 백성이 몰려와 울 면서, 그가 축낸 곡식은 우리 백성들의 어려움을 구제하기 위한 것 이었고, 개인 착복이 아님을 들어 선처를 호소했다. 이 감사는 사정 을 참작해 살려 주고, 그 대신 자신이 3천 냥을 낼 테니 나머지는 모두 힘을 합쳐 축난 곡식을 변상하라 했다. 이렇게 해결하고 난 뒤 에, 그 관리도 차차 넉넉해졌다. 이태중이 관직에서 물러나 삼산(三山)에 은거하는데, 하루는 평양에 서 살려 준 그 관리 아들이 찾아왔다. 옛날 부친 살려 준 은혜로 대 감의 묘자리를 보아주겠다고 제의하는 것이었다. 곧 삼산에 올라 묘 자리를 정해 주고, 책 한 권을 주면서 병이 위독할 때 펴 보라 했다. 뒤에 죽음에 임박해 펴 보니, 장례 날짜 등과 또 앞으로 자손들 아 홉 명이 급제 할 것이라 적혀 있었다.(영조) 대대로 공경(公卿) 가문의 최생은 과거에 계속 낙방하여 어렵게 살 았다. 맹자를 읽다가, 게을러 부모 봉양 못하는 것이 첫째 불효란 구 절을 보고, 자기가 불효라고 생각하고는 모든 책을 불살랐다. 그래서 부모를 모시고 처자와 함께, 남자 종 두 명과 여자 종 세 명을 데리 고 제전(祭田)이 있는 청주로 내려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최생은 서울서 집과 물건을 팔아 마련한 5백 냥으로 곡식을 샀는데 마침 풍 년이라, 많은 곡식을 살 수 있었다. 이듬해 또 풍년이 드니, 농사 지 은 것과 제전 판 돈을 합쳐 3천 냥으로 4천여 석의 곡식을 샀다. 이 듬해 흉년이 드니 굶는 사람이 많았다. 마을 노인들을 불러 가구를 적어 오라 해, 5백여 가구에 천 삼백여 명에게 곡식을 고르게 나누 어주었다. 이렇게 해 이듬해 모두 농사를 잘 지으니, 마을 사람들은 최생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6만여 석의 곡식을 싣고 최생 집으로 왔 다. 최생은 받지 않겠다고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받으니, 이후로 최생 은 큰 부자가 되었다. 최생은 처음 약속한 대로, 노비들에게도 백 냥 씩의 돈을 나누어 주고,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면서 잘 살았다.(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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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계서야담(溪西野 譚) 89 (김현룡 3-[229] 강릉 김 선비(江陵金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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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청구야담(靑邱野 談) 정61 (김현 룡 4-[382] 경 포호(鏡浦湖))

강릉에 김씨 성을 가진 선비가 노모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모친이 아들에게 말하기를, “호남의 섬에 가면 옛날 우리 집 종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가서 추쇄(推刷:임무를 버리고 간 사람을 추적하는 일)하도록 하라” 하면서 종 문서를 내주었다. 김선비가 호남 섬에 가니, 옛날 자기 집 종들의 자손들이 100여 호 나 집단으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노비문서를 내놓고 애기하니, 그 사람들이 수천 금을 모아 몸값으로 주는 것이었다. 곧 김 선비는 갖 고 갔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돈을 가지고 떠나 금강에 이르렀다. 강가에서 보니, 노부부와 젊은 부인이 물 속에서 붙잡고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김 선비가 가까이 가서 노인에게 그 까닭을 물어보니, 노인의 대답은 이러했다, 외아들이 금영(錦營) 관리로 있었는데, 잘 못으로 관청 곡식을 축내어 옥에 갇히었고, 그 곡식을 내일까지 변 상하지 못하면 아들이 죽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변상할 길은 없고, 외아들의 죽음을 보는 것보다 먼저 죽는 것이 낫다 하고 물에 빠졌는데, 아내 와 자부가 이렇게 구제해 붙잡고 우는 것이라 했다. 김 선비는 그 액수를 물어보니 수천 금이라 하기에, 추노(推奴)로 받은 돈을 모두 그 노인에게 주어 관청 빚을 갚도록 하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노모가 반기면서 추노 갔던 일을 묻기에, 돈을 받아오다 금강에서 딱한 사람에게 주었다고 설명했다. 모친은 김 선비의 등을 만지면서 “정말 장한 내 아들이구나” 하면서 칭찬했다. 김 선비 모친이 사망해, 지관을 데리고 묏자리를 보러 이산 저산 다 니다가 좋은 곳을 하나 발견 했다. 그러나 그 바로 아래에 부잣집이 있어서 허락을 받는 일이 고민이었다. 날이 저물어 일단 그 집으로 들어갔다. 젊은 사람이 안내해 사랑방에 들어가 저녁밥을 대접받고 앉아 있으니, 안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나와 김 선비를 붙잡고 울면서 은인을 만났다고 좋아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전날 금강에서 구제해 준 그 사람들이었다. 관청 곡식을 변상하고 나온 젊은이는 집을 옮기고 열심히 일하니 곧 큰 부자가 되었고, 성명을 모르는 은인을 찾으려고 밤이면 부인이 매일 향을 피우고, 신에게 은인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집에 오는 손님을 부인이 유심히 살피고 있었는데, 오늘 만나게 되 었다는 것이었다. 김 선비에게서 모친 장례 관계 얘기를 다 들은 젊 은 부부는, 곧 자기 집 종을 시켜 그 장례를 다 잘 마쳤다. 그리고 집과 종들을 김 선비에게 넘겨주고, 자신들은 근처에 따로 마련해 둔 집으로 간다면서 떠났다. 이후 김 선비 집안은 대대로 번창했다. 강릉 경포호는 본래 옛날 큰 부잣집이 있던 집터였다. 그 부잣집은 재산이 많아 곡식을 곳곳에 노적(露積)으로 쌓아 놓은 부자였으나, 성품이 인색해 곡식 한 톨도 남에게 주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대문에 늙은 스님이 와서 동냥을 달라 했다. 그러나 부자 사 람은 줄 곡식이 없어서 못주겠다고 하니, 스님은 이렇게 곡식이 많 은데, 동냥 줄 곡식이 없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부자 사람은 곧 화 를 내고, “중놈이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하면서, 똥을 한 바가지 떠 서 스님에게 갖다 주었다. 스님은 아무 말도 않고 바랑을 열어 그 똥을 받아 가지고는 절을 하 고 갔다. 그러자 곧 큰 비가 내리더니, 그 부잣집은 점점 가라앉아 물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호수로 변했다. 그리고 거기 쌓였던 곡식은 모두 조개로 되어 호수에 살았으며, 흉년이 들면 이 조개를 주워 굶 어죽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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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

신증동국여지승 람(新增東國輿地 勝覽) 권32 칠 원(漆原) (김현 룡 6-[233] 윤 환(尹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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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청각, 우 뭇가사리, 다 시마

박상연(朴尙 淵), 금곡집(金 谷集), 잡저, 후 당서실( 後堂書 室), 1976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 윤환은 본래 무인이었는데, 다 섯 임금을 섬기면서 세 번이나 수상(首相)의 자리에 올랐다. 그래서 칠원백(漆原伯)에 봉해졌고 재산이 매우 많았다. 늙어서 칠원으로 물러나 유동리(柳洞里)에 살았다. 마침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서로 잡아먹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윤환이 그 많은 곡식을 풀어 사람들에게 꾸어 주고 는 그 기록한 문서를 불태워 없앴다. 그렇게 하니 갑자기 윤환의 논 에서 물이 솟아올라, 주위의 논에까지 물을 대주어 가을에 곡식을 잘 거두었다 그래도 경상도 백성들의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해의국(海衣國)은 서남 큰 바다 가운데에 있는데 땅의 넓이가 구만 여리로 천지처럼 광활했다. 이곳을 다스리는 천자의 성은 장(張)씨 이고 이름은 첩(貼)이며 자는 속지(束之)인데 스스로 짐(朕)이라 하 고 했으니 태곳적 혼돈씨의 후예였다. 장씨는 대대로 하빈(河濱)에 살았는데, 혼돈의 일을 수행하여 십대 를 넘어 첩에 이르렀다. 첩이 어려서 어머니 박씨가 수렴청정을 하 다가 자라자 정사를 돌려주어 첩이 천자가 되었다. 침천자는 현묵(玄黙)을 숭상하지만 예절은 침중하지 못했는데, 어려 서부터 황제의 후손으로 자부심이 많았다. 짐천자는 서남바다에 도 읍을 정하고 물을 으뜸으로 삼고 검은 색을 숭상하며 여섯 숫자로 기원을 삼았다.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썼는데 이때부터 짐천자의 영향이 사해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고 이름이 널리 퍼졌다. 짐천자는 현묘(玄妙)한 담소를 좋아하고 불법을 믿어 스님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속인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러 사람들이 재계하 고 부르면 갔는데 경박하여 관대함이 없었다. 사람됨은 천박했으나 첨렴하고 욕심이 적었으며 검소하여 나라가 망한 적은 없었다. 짐천자는 진시황과 함께 나라를 세워 해의국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 때부터 해의를 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불(徐市)이 불사약을 구 히러 갈 때 함께 가서 동해에 놀았다는 것이 진나라의 기록에 있다. 짐천자에게는 감태(甘苔)라는 재상과 곽동(藿同)이라는 장수가 있었 다. 짐천자는 일찍이 ‘유연(流連)으로 나라를 잃고 연안(宴安)으로 목숨을 잃는다’라는 소동파의 시를 읊조렸는데, 이를 거울 삼아 태만 한 적이 없었다. 진(晉)나라 시절에 강동왕 하순(夏淳)이 처사인 창한의 부추김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하순은 청태(靑苔)로 재상을 삼고 스스로 대택황 제라고 하고 이름도 순우연(淳于淵)으로 바꾸고 짐천자의 연호를 없 애고 순(淳)으로 고쳤다. 변방 신하인 백빈이 달려와 하순이 반란한 사실을 짐천자에게 알렸 다. 승상인 감태는 소식을 듣고 짐천자의 젓가락을 빌려 전쟁 계획 을 세웠다. 곽동을 복파장군으로 황각(黃角)과 청각(靑角)을 좌우종 사관으로 삼고 다사마(多士麻)를 표고장군으로, 우모(牛毛)를 전봉 도독으로, 고발(高勃)을 후장군으로, 갈발(葛勃)로 기병을 삼았다. 이때 곽동이 가사리(佳士里)를 기실참군으로 삼으니 이가 곧 수염이 아름다운 염참군(髥參軍)이었다. 유세객(遊說客)인 부평초(浮萍草) 가 돌아와서 강동땅이 작지만 험하고 장강(長江)이 있으니 서둘지 말 것을 보고했다. 짐천자가 부평초로부터 하순의 장수인 문조(文藻) 와 도아리(都阿里), 대아리(大阿里), 미나리에 대해 듣고는 걱정 없 다며 공격을 명령했다. 목앵(木罌)으로 군대를 실어 강동 땅으로 들어가 배수진을 친 하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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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鹽薤]

김치[沈葅], 무 배추,상추

이숭인, 도은집 제3권, 시(詩), 글자를 분류한 당시의 운을 써 서 지은 절구 20수를 민망 대 제에게 기증하다 〔絶句二十首用 唐詩分字爲韻寄 呈民望待制〕

서거정(徐居正), 속동문선 제4권, 칠언고시(七言古 詩), 채소밭을 돌아보고 짓다 (巡菜圃有作)

의 군대를 싸워 크게 이겼다. 침천자는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공훈 (功勳)에 따라 분모(分茅)를 나누어 주었다. 짐천자는 강동의 망한 태부 장한을 초빙하고자 했으나 거절하고 떠나니 강동은 이 해에 완 전히 망하고 말았다. 대부가 하순의 아들인 추모(秋茅)를 맞이하여 강동의 땅을 회복하자 짐천자가 정벌하고자 했으나 감태가 말려 신하로 삼고 왕으로 봉해 주었다. 건봉 말년에 짐집천자가 어부의 손에 죽어 초상 때 먹는 반찬이 되 었다. 황태자인 세모(細毛)가 있었으나 아직 어려서 삭발하고 스님 이 되었다. 이로부터 자손들이 중국 각지에 퍼지게 되었고 진시황과 같이 짐이라고 불러도 참람(僭濫)으로 여기지 않았다. 짐천자는 미천했지만 훌륭한 평판이 있었기 때문에 사해를 살찌워 만능의 권세를 누렸었다. 짐천자가 오랫동안 나라를 지키고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어진 재상인 감태와 장군인 곽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님의 반찬이 되고 인군으로서의 국량(局量)이 부족하여 말년에 그 물에 걸려 사람에게 죽었으니 슬프다. 또한 아들에 이르러 상가(喪 家)의 반찬이 되었으니 이 또한 짐천자로 인한 것이다. 古郡人煙少 오래된 고을에 밥 짓는 연기도 드물고 蕭蕭樹木荒 쓸쓸히 수목만 황량하게 서 있을 뿐 謫來日月久 귀양 와서 세월이 오래 흐르다 보면 恐此卽吾鄕 여기가 바로 나의 고향이 될는지도 柴門向溪水 水上有靑山 看山復看水 日日閑往還

사립문 앞에는 시냇물 시냇물 위에는 푸른 산 푸른 산 보다가 시냇물 보다가 날이면 날마다 한가로이 왔다 갔다

憶昔出京國 時序屬初秋 淹留曾幾日 北風吹弊裘

전에 도성 문을 나올 때에는 시절이 초가을에 속했었는데 머물러 지낸 날이 얼마나 되었다고 해진 갖옷에 어느새 북풍이 몰아치네

鹽薤足療饑 偃仰散腰膝 今日已如斯 何須問來日

김치 깍두기로 배고픔 면할 수 있고 다리 뻗고 허리 펴고 쉴 수 있나니 오늘 이렇게 지냈으면 그만이지 내일을 물을 필요 뭐가 있으리오

達士亦多憂 통달한 인사도 걱정이 많은 법인데 流人不耐苦 귀양 온 사람이 고통을 어찌 참으리 寬恩若放歸 관대히 용서받아 고향에 내려가면 朝眠直到午 아침잠을 정오까지 내리 자리라 (이하 생략) 君不見早韭晩菘周顒興 그대는 못 보았는가. 이른 부추 늦은 배추의 주옹의 홍과 菰菜蓴絲張翰樂 고미나물 순나물의 장한의 낙을 又不見文仝太守饞筍脯 또 못 보았는가. 문동 태수가 죽순을 즐겨 먹고 易簡學士愛虀汗 이간 학사가 부추즙을 좋아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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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鹽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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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鹽虀]

서거정, 사가시 집보유 제1권, 시류(詩類) 정미 년(1487, 성종 18)에 손수 정 리한 시고[丁未 手稿], 스스로 읊다 서거정, 사가시 집 제40권, 묵은 김치를 강 진산 (姜晉山)에게 보 내면서 장난삼아 28자를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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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서거정, 태평한 화(太平閑話) 금 서룡본( 今西龍 本) 137 (김현 룡 3-[461] 묵 은 김치 종(黃菜 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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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虀]

서거정, 사가시 집보유 제1권, 시류(詩類) 정미 년(1487, 성종 18)에 손수 정 리한 시고[丁未

人生適口是眞味 인생이 입에 맞으면 그게 진미지 咬菜亦自能當肉 채소를 씹어도 고기만 못하지 않다네 我園中有數畝餘 내 집 동산에 몇 이랑 공지가 있어 年年滿意種佳蔬 해마다 넉넉히 채소를 심네 蕪菁蘿蔔與萵莒 배추랑 무우랑 상추랑 靑芹白芋仍紫蘇 미나리랑 토란이랑 자소랑 薑蒜蔥蓼五味全 생강 마늘 파 여뀌 오미 양념을 갖추어 細燖爲羹沈爲葅 데쳐선 국 끓이고 담가선 김치 만드네 我生本是藜藿腸 내 식성이 본디 채식을 즐겨 嗜之如密復如糖 꿀처럼 사탕처럼 달게 먹으니 畢竟我與何曾同一飽 필경 내나 하증이나 다 같이 배부른데 不須食前方丈羅膏梁 식전방장 고량진미를 벌일 필요가 없네 曾同叔夜一生慵 예전의 숙야와 같이 일생을 게으르거니 無物能來芥我胸 아무것도 내 가슴에 걸릴 물건 없고말고 轉覺老懷增鶻突 늙은 회포는 갈수록 흐릿해짐을 깨닫겠고 早知病骨自龍鍾 병든 몸은 절로 노쇠했음을 진작 알았네 多時官興鹽虀淡 많았던 시간 벼슬할 뜻은 김치처럼 무미해지고 長日歸心豆粥濃 기나긴 날 돌아갈 맘은 팥죽처럼 농후하네 書几琴床聊自適 책과 거문고로 애오라지 유유자적하면서 高吟豪笑坐高舂 석양까지 앉아서 읊조리고 웃고 하노라 吾家一兩甕鹽虀 우리 집엔 한두 항아리 묵은 김치가 있어 相勸朝昏有老妻 늙은 아내가 조석으로 나에게 권한다네 肉食如君將底用 육식 먹는 그대야말로 이걸 어디에 쓰랴만 白餻黃菜故應迷 흰떡과 묵은 김치는 본디 미혹되는 법일세 자주(自註) : 옛날에 한 늙은이가 계집종을 훔쳐 잠자기를 좋아하여 어느 날 밤에 남몰래 계집종의 침소로 들어갔는데 계집종이 간(諫) 하여 말하기를, “마님께서는 부드러운 살결이 마치 흰떡〔白餠〕같은 데, 어찌하여 이 추악한 계집종을 훔치려 하십니까?” 하므로, 그 늙 은이가 말하기를, “흰떡에 묵은 김치[黃菜]를 곁들이면 더욱 좋으니 라.” 했다는 얘기가 있어, 세속에서 이것을 인하여 계집종을 묵은 김 치라 호칭한다. 옛날 한 노인이 여자 종 넘보기를 좋아해, 어느 날 밤 가만히 여자 종이 자는 방에 들어갔다. 여자 종이 노인에게 말하기를, “어르신은 살결이 하얀 백설기 떡같이 아름다운 부인을 두고, 우리같이 못생기 고 누추한 것을 무엇이 좋다고 와서 이러십니까?”했다. 노인이 말하기를, “백설기 떡을 먹을 때는 누런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어야 맛이 훨씬 더 나는 법이거든.” 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속담 에 여자 종을 ‘묵은 김치 종’이라 부르고 있다. 한 사람이 다음 같은 묵은 김치 시를 지어 친구에게 주었다. “우리 집 묵은 김치 한두 항 아리, 늙은 아내 아침저녁 서로 권하네. 육식하는 자네들은 밑반찬에 알맞으리, 흰떡에 묵은 김치 예부터 어울렸네. 小園如掌棘籬低 손바닥만 한 정원에 가시울타리 나직해라 爲種佳蔬一兩畦 여기에 좋은 채소 한두 고랑을 심었으니 綠薤靑菘香更妙 청록빛 부추 배추는 향기 또한 절묘하고 紫蘇紅蓼味應齊 붉은 차조기 여뀌는 맛이 서로 비슷하네 茄瓜佐酒仍共飯 가지 오이는 술안주에 밥반찬도 괜찮고 芹芋宜羹亦可虀 미나리 토란은 국도 좋고 김치도 좋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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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稿], 채소를 심다 서거정, 사가시 집 제50권, 시류 (詩類), 몽촌(夢 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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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黃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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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葅菜]

성현(成俔), 속 동문선 제5권, 칠언고시(七言古 詩), 이춘천 게서 멧돼지 머 리 보낸 것에 감 사하며[謝李春川 送野猪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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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沈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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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沈菜)

이색, 목은시고 제13권, 시 (詩), 유 개성 (柳開城) 구(玽) 이 우엉과 파와 무를 섞어서 담 근 침채(沈菜)와 장(醬)을 보내오 다. 동패낙송(東稗洛 誦) 291 (김현 룡 2-1[191] 정충신(鄭忠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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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淹菜]

이익, 성호전집 제1권, 시(詩), 석화(石花)

肉食廟堂如昨日 閑居數載夢還迷 夢村無奈浣花村 生事雖微樂事繁 橘柚是奴魚是婢 篔簹生子竹生孫 黃虀已熟分磁椀 綠酒新篘滿瓦樽 且喜朝昏滋味足 一瓢五鼎不須論 將軍馬上神臂弓 一發五羓誇豪雄 磊磈載入明光宮 饔官承命分臘紅 自離鑾坡今廾載 盂鉢凄涼困葅菜 春川太守寄書札 忽然覩此吾猳艾 當初應作人立啼 畢竟未免遭屠刲 山中美味不獨享 白茅純束來相携 剛毛底虱相弔哭 煙湯翠釜豐胹熟 棘匕拘出香滿盤 鸞刀紛紛如截玉 多謝老饞今得飽 半醉逍遙自捫腹 天生衆味益吾人 浹骨淪肌養粹眞 製造巧來尤有力 吟哦飽後動如神 春風下種形初茁 秋露收根體自津 工部一聯時三復 回頭錦里不全貧

묘당에서 육식 먹은 지가 어제만 같은데 한적한 생활 수년에 꿈이 되레 헷갈리네 몽촌이 바로 완화초당 마을임을 어찌할꼬 생활은 곤궁하지만 즐거운 일은 하 많구려 감귤은 남자종이요 고기는 계집종이요 왕대는 아들을 낳고 솜대는 손자를 낳네 누런 김치는 익어서 사발에 담아 내오고 파란 술은 새로 걸러 항아리에 가득해라 조석으로 풍족한 자미에 우선 기쁘거니 일표나 오정을 의당 논할 필요 없다마다 장군이 말을 타고 귀신 같은 활솜씨로 ‘한 발에 다섯 돼지’로 명수를 자랑하여 듬뿍한 것을 명광궁에 실어 들어가면 옹관이 어명을 받아 납일 고기를 나눠 주네 내가 난파를 떠난 지 이십 년 밥상에 처량하게도 나물ㆍ김치도 없더니 춘천 태수가 편지를 보내 와서 문득 이 멧돼지 새끼를 보게 됐네 당초엔 필시 사람처럼 서서 웃었으리만 필경 잡혀서 도살을 당했구나 산중의 좋은 맛을 혼자 자시기 무엇하여 ‘흰 띠[白茅]로 묶어’ 멀리 보내 왔네그려 빳빳한 털, 돼지 이가 조상하며 울고 가마에 삶아 내니 물씬ㆍ푸짐 잘 익었네 작살 숟갈로 끌어 내니 소반에 가득한 향기 난도로 점점이 저며 내니 옥인 듯 고마워라, 늙은 게걸이가 이제야 배불러서 얼근하여 건들건들 배를 쓸고 앉았네 하늘이 여러가지 맛을 내어 사람을 유익케 하니 뼈와 살을 흠뻑 채워서 진수를 길러 주네 교묘하게 만들면 더욱 효과가 있어 배부른 뒤엔 귀신처럼 시가 읊조려지네 봄에 씨 뿌리면 형상이 처음 터 나오고 가을에 뿌리 거두면 몸통에 진액이 찬다네 두보의 한 싯구를 수시로 되풀이 읊으면서 가난하지 않았던 금리를 떠올리네

이항복이 북청으로 귀양 갔는데, 그곳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늘 미 정수(尾井水)와 왕십리 채소 김치가 생각났다. 정충신이 천기를 보 니 백사가 위급하기에 급히 이 두 가지를 갖고 달려가서 먼저 음식 부터 드리라 했다. 그 음식을 본 백사는 "정충신이 왔는데 어디 있 냐?" 했다 한다. 無情物發有情花 무정물이 정이 있는 꽃 피웠으니 色苞眞同未綻葩 빛깔과 껍질이 피지 않은 꽃잎과 꼭 같구나 蒼海爲根催長養 푸른 바다가 뿌리 되어 잘 자라라 재촉하고 靑春無跡尙繁華 푸른 봄은 자취 없어도 성한 꽃을 피우도다 登槃不必時成實 소반에 오르지만 제철에 결실할 필요가 없고 入口偏能助味奢 입에 들어가면 몹시 입맛을 돋우어 주누나 細和蕪菁作淹菜 순무에 잘게 섞어 김치를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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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酸菹]

정약용, 다산시 문집 제6권, 시 (詩) 송파수작 (松坡酬酢), 족 제 공예의 회갑 을 축하하다[族 弟公睿回甲之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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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酸菹]

이행(李荇), 용 재집 제5권, 남 천록(南遷錄) 을 축년 봄 정월, 함안(咸安)으로 배소(配所)를 옮 긴 뒤에 지은 시 들이다. ,술 취 한 뒤에 길게 읊 어 주인 노인에 게 사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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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신증동국여지승 람 제3권, 비고 편 - 동국여지 비고 제2편, 한 성부( 漢城府) , 【전야(田野)】 홍덕전(弘德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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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갓김 치)

이육, 청파극담 (靑坡劇談) 38 ( 김 현 룡 3-[462]) 갓김 치

呼來伴酒旺脾家 飛騰六十一秋回 溲餠酸菹勸客杯 盡室今依參奉祿 先祖曾許翰林才

안주로 내어 술을 마시면 비위를 왕성케 한다 육십일 년의 나이가 어느새 돌아와 떡과 김치로 손에게 술잔을 권하누나 온 가족은 지금 참봉의 녹에 의지하는데 선조 때엔 한림의 재주로 허여받았지

年如逝水洄能住 身似寒花晩始開 弱弟眼看成大老 曾孫聊抱慰衰頹

나이는 머물게 할 몸은 늦게야 피는 어리던 아우가 내 증손을 품에 안고

수 없는 유수와 같고 가을 꽃과 같도다 눈앞에 큰 늙은이 되어 쇠퇴함을 위로하누나

老翁知我夜無睡 내가 밤잠이 없는 줄 노인께서 알고 爲挈村醪勸我醉 막걸리를 가져와 내게 마시라 권하네 村醪甚薄意甚厚 막걸리야 텁텁하지만 후의가 고마워 脫巾解帶聊揚觶 두건 벗고 띠 풀고 술잔을 기울이노라 中庭明月不開戶 뜰에는 밝은 달빛 문을 열지 않았고 四壁靑燈照憔悴 네 벽엔 푸른 등잔 초췌한 날 비추누나 冬菹甘酸飽下筯 잘 익은 겨울 김치 실컷 젓가락질하니 未信豪門有臠胾 부잣집에 고기반찬 따위야 나는 몰라라 醉後忘機雜諧笑 취한 뒤 기탄없이 농담 웃음 주고받으니 野話山談皆可記 들 얘기며 산 얘기 모두 기억할 만해라 問翁閱歲七十餘 묻노니 노인께선 칠십여 년을 사셨는데 曾見窮厄今日比 지금 나 같은 액운을 보신 적 있으신지 朋舊反眼若將浼 벗들도 반목해 더러운 물건처럼 보는데 獨此相親了翁意 홀로 친근히 대해 주는 노인의 뜻 안다오 春宵欲半春寒重 봄밤은 깊어 가고 봄추위는 더 심한데 興酣更作象馬戱 주흥이 무르익어 다시금 장기판 벌이니 得失紛紛頃刻內 잠깐 사이에 득실이 분분히 뒤바뀌어 百年人事還一喟 백 년이라 인간사도 한 번 한숨거리일 뿐 明朝酒醒恐茫然 내일 아침 술이 깨면 아득히 잊을까 봐 七字長吟拜翁賜 칠언시 길게 읊어 노인의 은혜에 절하오 나인(內人 궁중의 여관) 홍덕(弘德)이 병자란(丙子亂)에 포로가 되 어 심양(瀋陽, 봉천(奉川))에 들어갔는데, 김치를 잘 담가서 때때로 효종(孝宗)이 인질로 있는 집에 드렸다. 효종이 왕위에 오른 다음, 홍덕도 이어서 돌아왔는데, 다시 김치를 담가서 나인을 통하여 드렸 다. 임금이 맛을 보고 이상히 여겨 그 출처를 물으니 나인이 사실대 로 아뢰었다. 임금이 놀라고 신기하게 여겨 곧 홍덕을 불러 들여서 후하게 상을 주려고 하니, 홍덕이 굳이 사양하면서 감히 받을 수 없 다고 하였다. 임금이 이에 명하여 낙산(駱山) 아래 밭 몇 경(頃)을 하사하여 그 수고를 갚아 주었다. 지금도 그 밭을 홍덕전(弘德田)이 라고 한다. 맹씨 성을 가진 한 재상이 밤마다 부인이 잠들면 여자 종 방으로 갔 다. 하루는 부인이 거짓 자는 체하고 코를 고니, 재상이 살짝 빠져나 가기에, 부인이 뒤를 밟아가니 여자 종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곧 여자 종이 재상을 꾸짖기를, “절병 떡같이 허연 부인을 어디 두고 이 누추한 종을 찾아옵니까?” 하고 말했다. 이에 재상은 “내 너를 절 병 먹을 때 겸해 먹는 갓김치로 생각한다” 라고 했다. 재상이 종 방에서 나와 섬돌 위에 앉아 있으니 밑이 차서 설사가 나 오려 했다. 곧 부인 자는 방으로 들어가 배 아프다고 소리치면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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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나박김 치[蘿葍葅])

안정복, 순암선 생문집 제16권, 잡저(雜著), 함 장록(函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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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나박김 치[蘿葍])

이덕무, 청장관 전서 제69권, 한 죽당섭필 하(寒 竹堂涉筆下), 상 산찬(商山饌)

소에 가서 한참 앉았다가 나왔다. 이 때 부인이 “대감은 이렇게 복통 이 심한데 왜 그 갓김치를 계속 드십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대감이 웃으면서 “부인은 정말 영이하구려” 라고 말하더라. 한 번은 비오는 날 재상이 살그머니 나가 부엌에서 바가지를 갖고 와서 쓰고 여자 종 방으로 가는 것이었다. 돌아올 시간에 부인이 문 뒤에 숨어 있다가, 재상이 문을 여는 순간 방망이로 재상 머리 위 바가지를 내리쳤다. 깜짝 놀란 재상은 한참 주저앉았다가 일어나 방 에 들어와서는 부인에게, “우리 집이 부자가 될 것 같아” 라고 말했 다. 부인이 무엇을 보고 아느냐고 물으니. “내가 지금 변소에 다녀오 다 암벼락(雌霹靂)을 맞았거든”이라고 했다. 노부부는 마주보고 웃었 다. 조금 있다가 저녁상이 들어오는데 계집종이 내 앞에 밥상을 먼저 올 렸다. 나는 약간 몸을 굽히고 물러나서 감히 먼저 받을 수 없다는 뜻을 표하니, 다시 선생 앞에 상을 올렸다. 선생이 수저를 들고는 식 사를 권하므로 나도 수저를 들었다. 선생은 제반(祭飯)하였고 나는 제반하지 않았다. 선생이 먼저 진지를 들기 시작한 후에 나도 식사 를 시작했다. 밥은 그릇에 차지 않았으며, 반찬은 새우젓이 흰 사기 접시에 조금 담겨 있고, 나박김치[蘿葍葅]가 한 접시였으며, 또 토호 갱(土瓠羹) 반찬이 있었는데, 맛이 모두 짰다. 이것을 통해 그 절약 의 뜻을 알 수 있었다. 또 상과 그릇들이 모두 깨끗하였다. 물도 나 에게 먼저 올리고 상을 물리는 것도 역시 그랬으니, 모두 손님과 주 인의 예(禮)로 한 것이다. 선생이 웃으며 말하기를, “우리집이 가난해서 반찬이 초라하기 때문에 손님의 입맛에 맞지 않 다 보니 더러는 자신이 가지고 온 반찬을 먹는 사람도 있다네.” 하였다. 전에, 정모(鄭某)라는 사람이 와서 식사를 할 때 자기가 가 지고 온 반찬을 들여와서 먹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마음 아파하는 탄식이 대개 이러하였다. 그러나 선비라면 응당 가난하게 사는 것으 로 법도를 삼아야 할 것이다. “나물을 씹는다면 모든 일을 할 수 있 다”는 말은 그 뜻이 매우 좋다. 일상 생활 중에서 먹는 일보다 더 긴 요한 것이 없으니, 가장 긴요한 일에서 먼저 자신의 사욕을 이기는 공부를 해나가서 오랫동안 습관이 쌓인다면 마치 본성과 같이 편안 해질 것이다. 내가 사근역(沙斤驛)에 부임했을 때 우공(郵供)이 충분치 못했을 뿐 아니라 내 자신의 식생활도 매우 박하게 하였다. 하루는 손님이 나 의 식사하는 것을 보고는, “왜 음식이 그리도 담박하오?” 하기에 내가 장난삼아, “이것은 상산찬(商山饌)이오.” 하였다. 손님이, “나박김치[蘿葍]만 있고 영지(靈芝)가 없는데 어찌 상산찬이라 하 오.” 하기에 내가, “신김치[酸菹] 짠김치[醎菹]에 익힌 나물과 국이 모두 나박(무)이니, 이 어찌 사호(四皓)가 아니오?” 하였다. 하루는 또 손님이 나의 식사하는 것을 보고는, “오늘 음식은 무슨 찬(饌)이오?” 하기에 내가, “이 음식은 풍년찬(豐年饌)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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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동치미 국물)

성대중(成大中), 청성잡기(靑城雜 記)제3권, 성언 (醒言), 오랑캐 를 죽인 절름발 이 서자(庶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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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배추김 치[靑菘])

서거정, 사가시 집 제52권, 시 류(詩類), 앓고 나서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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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배추김 치[菘虀])

서거정, 사가시 집 제50권, 시류 (詩類), 촌주 팔 영(村廚八詠)

하였다. 손님이, “금년은 흉년이 들었는데 어째서 풍년이라 하오?” 하기에 내가, “이 음식은 신김치ㆍ짠김치ㆍ생채(生菜)가 모두 나박(무)이니, 이는 삼백(三白)이오. 옛말에 이르기를 ‘납일(臘日) 전의 삼백은 풍년의 징조이다.’ 했소.” 하였더니, 손님이 마침내 껄껄 웃으며, “동파(東坡)의 효반(皛飯)에 비하면 그래도 뜻이 심오하오.” 하였다. 신풍 장씨(新豊張氏)의 서자 중에 어려서 몸이 날랬던 자가 있었는 데, 일찍이 고양이를 쫓아 담을 뛰어넘다가 칼날을 밟아 그만 절름 발이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온 집안 식구가 피난을 갔으나, 그는 따 라갈 수가 없어서 도성 안에 숨어 있었다. 마침 설이 임박한 때였으 므로 부잣집 부엌에는 남기고 간 음식이 가득하여 굶주리지 않을 수 있었고, 낮에는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곳을 골라 숨어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랑캐 두 놈이 먹을 것을 약탈하기 위해 뜰에 뛰어 들었다. 뜰에는 김칫독을 줄지어 묻어 두었는데 태반은 비어 있었다. 오랑캐들은 김치를 허겁지겁 배불리 먹고 갈증이 나자 동치미 국물 을 마시려 하였지만 국물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퍼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손을 땅에 짚고 머리를 독 속에 넣고 마시니, 시원 하고 새콤한 것이 입맛에 맞아 - 이 맛을 누가 알랴. - 벌컥벌컥 마셔 댔다. 절름발이는 문틈으로 이 광경을 엿보고 있다가 손바닥이 근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갑자기 문을 뛰쳐나가 덮치니, 오랑캐들 은 모두 독 속에 거꾸로 처박혀 그대로 젓이 되고 말았다. 난리가 평정된 후 두 오랑캐의 귀를 잘라 바치니, 조정에서는 그에게 무공 (武功)으로 벼슬을 내렸다. 절름발이 서자도 적을 죽일 수 있는데, 절름발이가 아닌 서자 홍계 남(洪季男) 같은 자는 그 공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病餘無可口 병든 나머지 입에 맞는 음식 없어 飯饌只隨宜 반찬은 단지 편의함을 따를 뿐이네 白粒間紅豆 흰 쌀밥엔 붉은팥을 섞어서 먹고 靑菘共綠葵 배추김치엔 아욱국을 곁들여라 飪烹從老婢 삶는 일은 늙은 여종에게 맡기고 喫著似嬰兒 어린애처럼 자근자근 씹어서 먹네 蔬筍適吾性 채소와 죽순이 내 성질에 맞거니 膏粱非所期 고량진미는 기대할 바 아니고말고 西風吹送晩菘香 서풍이 늦가을 배추 향기를 솔솔 불어오자 瓦甕鹽虀色政黃 항아리에 김치 담아라 색깔이 한창 노랗네 先我周顒曾愛此 주옹이 나보다 먼저 이것을 좋아했거니와 嚼來滋味敵膏粱 씹어 먹으니 맛이 고량진미와 맞설 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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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배추김 치[菘葉])

허균, 성소부부 고 제20권, 문 부(文部) 17 ○ 척독 상(尺牘 上), 제강공자 (霽江公子)에게

몇 달을 이웃하여 지내다가 갑자기 작별하게 되니 섭섭한 마음을 스 스로 금하지 못합니다. 우리 소랑(小娘)과 마주하여 늘 장흥동(長興 洞)에서의 옛일을 이야기하며 잠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팥 섞은 밥 에 배추김치[菘葉]를 먹으면 그 맛이 엿처럼 달았는데 지금 다시 그 러한 맛을 볼 수 있겠습니까. 비록 그 맛을 다시 보려하나 나같은 늙은이가 어찌 하겠습니까. 처절함을 감당치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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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배추김 치[菘菹])

보냄 신축년 (1601) 3월 정약용, 다산시 문집 제3권, 시 (詩), 장난삼아 서흥 도호부사 임군 성운에게 주다[戲贈瑞興都 護林君性運] 그 때 수안 군수와 함께 해주(海州) 에 와서 고시관 (考試官)을 하고 돌아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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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순무김 치[葅葑])

성대중(成大中), 청성잡기(靑城雜 記) 제4권, 성언 (醒言), 강물에 몸을 던진 변약 순(邊若淳)의 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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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항아 리)

김정희, 완당전 집 제2권, 서독 (書牘), 세 번째 [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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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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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비름나 물(苜蓿)

신흠, 상촌선생 집 제19권, 시 (詩)○칠언절구 (七言絶句) 175 수, 새로 난 나 물을 보내온 이 실지에게 감사를 표하다[謝李實之 送新蔬] 2수 중 1수 이규보, 동국이 상국전집 제10 권, 고율시(古律 詩), 복고가(腹 鼓歌)로 친구가

瑞興都護太憨生 曲房銷妓如籠鸚 金絲煙葉斑竹袋 倩妓燒進作風情

서흥의 도호는 너무나 어리석어 조롱에 새 키우듯 방에 기생 가둬두고 금실 같은 담배와 반죽설대 담뱃대로 기생 시켜 태워 올리라 그것이 멋이라네

西關十月雪盈尺 複帳軟氍留欸客 笠樣溫銚鹿臠紅 拉條冷麪菘菹碧

시월 들어 서관에 한 자 되게 눈 쌓이면 이중 휘장 폭신한 담요로 손님을 잡아두고는 갓 모양의 남비에 노루고기 전골하고 무김치 냉면에다 배추김치 곁들인다네

聖朝恩愛屬君家 二十專城衆所嗟 三十分符至四五 韶顔猶是半開花

성조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대 집안 이십 당년 성주 된 것 뭇 사람이 감탄이라네 삼십 되어 부절 받고 사십 오십 다 되어도 아직도 젊은 얼굴 절반쯤 핀 꽃이로세

변약순의 누이가 영평(永平) 김씨네 자제와 혼인하였다. 김씨의 집 은 강가에 있었는데, 시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지아비가 물에 빠져 죽었다. 변씨는 줄곧 자결하여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식구들이 극구 막아서 그러지 못하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차츰 방비가 허술해졌다. 한창 추울 때에 변씨가 순무김치[葅葑]를 담그면서 시누이에게 농담 처럼 말하기를, “이 김치 먹을 때에 아가씨 내 생각할까요?” 하였으니, 기어코 죽겠다는 뜻을 말한 것이었다. 식구들은 무심하게 들어 넘겼는데, 밤이 되자 변씨는 몰래 나가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시신을 꺼내 보니 새끼로 온몸을 묶고 있는 것이 신호(宸濠)의 처 누비(婁妃)의 고사와 흡사하였다. 변약순은 박학하고 시를 잘 하는 사람이었으니, 아마도 누비의 얘기를 누이에게 들려주었나 보다. 세선(歲船) 편에 부친 김치 항아리[ 缸] 등속은 과연 아무 탈 없 이 도착하였네. 그래서 몇 년 동안에 처음으로 김치의 맛을 보게 되 니, 매우 상쾌함을 느끼어 내 입에는 너무 과람한 듯하였네. 나주 목 사(羅州牧使)가 또 이번 인편에 약간의 김치 항아리를 보내 왔는데, 이 또한 지난번처럼 패손되지 않아서 위장을 틔워줄 수 있을 듯하네. 浮世悠悠蟻慕羶 누린내를 좋아하는 개미 같은 세상 인심 故人情貺豈徒然 친구가 정으로 준 물건이야 유별나지 稀鹽淡醋陽坡菜 소금에 초를 친 양지쪽에서 난 나물이 絶勝何家食萬錢 하씨 집 만전 상보다 훨씬 더 낫지 뭔가

君不見豪家子弟宴華屋 그대 부호 자제들 화려한 잔치 보지 못했나 撾鍾擊鼓間絲竹 종 치고 북 두드리며 간간이 줄 퉁기고 피리 부는 것을 城西先生獨不然 성서 선생은 홀로 그렇지 않아 醉後高歌鼓大腹 취하면 노래 부르며 큰 배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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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술 마심을 조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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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부들 순)

서거정, 사가시 집 제29권, 시류 (詩類), 제학(提 學) 조승춘(趙承 春)이 포순(蒲 筍)을 부쳐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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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박경리, 토지 14 권, 114, 나남출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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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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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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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박경리, 토지 18 권, 나남출판사, 272 박경리, 토지, 19권, 나남출판 사, 101 박경리, 토지 20 권, 나남출판사, 30

是中可容數百人 이 안에는 수백 사람 들어갈 수 있고 亦能貯酒三千斛 또 삼천 섬의 술을 저장할 수 있다네 膏田得米釀醇醅 기름진 밭의 쌀로 좋은 술 빚었기에 數日微聞香馥馥 며칠 만에 맡아보니 향내가 물씬물씬 何必壓槽絞淸汁 하필 틀로 걸러 진국물을 짜낼 것이 뭔가 頭上取巾親自漉 머리 위의 두건 벗어 내 손으로 거르지 一飮輒傾如許觥 한번 마실 땐 문득 양껏 마시는데 佐以辛蒜或腥肉 야채나 고기로 안주를 하네 腹爲皮鼓手爲搥 배는 북이 되고 손은 북채 되어 登登終日聲相續 둥둥둥 종일토록 소리가 이어 난다 隴西窮叟得酒少 언덕 너머 궁한 늙은이 얻은 술이 적어서 矮屋低頭鶴俛啄 납작집에 머리 숙여 학이 쪼듯 한다오 腹如椰子猶未充 배는 야자 열매만하건만 채우지 못하니 只見靑盤堆苜蓿 보이는 것은 푸른 소반에 비름나물뿐이로다 暫盛水醬俄復空 잠시 간장물로 채우지만 이내 곧 고파져 有如蹶鞠氣出還自縮 공에 바람이 빠지면 쭈그러짐과 같구나 那將雷吼飢腸聲 어찌하면 주려서 꾸르륵거리는 이 소리 가져 다가 往和先生鼓腹太平曲 선생이 배 두드리며 부르는 태평곡에 반주 맞 출까 蒲筍全勝竹筍香 포순의 향기는 죽순보다 월등히 낫거니와 軟於薇蕨白於霜 고사리보다 연하고 서릿빛보다도 희구려 年來食肉吾無分 연래에 나는 고기 먹을 분수가 안 되기에 野菜山蔬味自長 야채와 산나물도 맛이 절로 좋기만 하네 急喚女奴滿意烹 長刀細切十分精 煎油合醬加薑桂 絶勝東坡玉糝羹

급히 여종 불러서 문드러지게 잘 삶아 긴 칼로 가늘게 썰어 십분 정밀히 하여 기름에 볶고 장 치고 생강과 계피로 양념하니 동파의 옥삼갱보다도 월등히 낫구려

年來口業野僧同 연래엔 먹고사는 게 승려와 똑같으니 蔬筍功高蒭豢功 나물과 죽순의 공이 짐승 고기의 공보다 높구나 我是前身文與可 나는 바로 전신이 여문동이니 廣陵千畝在胸中 광릉에는 천묘의 대나무가 가슴속에 있다네 환갑, 진갑을 지낸지 십 년이 넘었으며 이미 상배(喪配)까지 한 길 노인의 생신을 뭐 그리 번폐스럽게 벌일 것도 없었을 터인데, 자반 고기나 몇 마리 굽고 조갯살 넣어 나물 무치고 미역국을 끓여 식구 끼리 먹으면 족할 것이요…… 기다리는 손님은 안 오고 음식은 만들어놨고, 식구들이 와서 숙이 말마따나 포식을 하여 미안했던지 아침 일찍 새터장에 간 숙이는 볼 락 두 마리, 조개며 미역, 그리고 나물거리를 사왔던 것이다. 마른 가자미가 두 마리, 볼락이 한 마리, 조갯살 조금, 그리고 푸성 귀며 콩나물 미역 등이 들어 있다. "시굴이라 찬이 이래서 어떡허지요? 날시가 추워서 생선 한마리 구 경할 수도 없고." 주인여자는 밥살을 놓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겨우 양현이 말했다. "찬이 없어도 많이 드십시오." 보리 섞은 밥과 우거짓국에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치 한 보시기, 계란 찐 것, 무를 채 썰어서 볶은 나물, 배가 잔뜩 고파 있던 두 사람에게는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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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박경리,토지 1 권, 나남출판사,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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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박경리, 토지 2 권, 나남출판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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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박경리, 토지 7 권, 나남출판사,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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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박경리, 토지 13 권, 228~330. 나남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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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태평한화(太平 閑話) 금서룡본 (今西龍本) 166 ( 김 현 룡 7-[318] 암수 만두(雌雄饅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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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태평한화(太平閑 話) 고금소총본 ( 古今笑叢本)

찬이었다. 도시에서는 아무리 후하게 돈을 지불한다 하더라도 이런 점심을 사먹을 수는 없다. “그러세, 고비 너물(나물) 생각이 나네.” “혹시 모르겄소. 당산에 가 믄 아직 덜 센 기이 좀 있을란가.” “보시락보시락 살아난께 별눔으 기이 다 묵고 접네.” “동지 섣달에 죽순도 구해온다 카는데, 가서 좀 캐보끼요.” 조급한 농가에서는 아낙들 아이들이 들판을 쏘다니며 벌써 쇠어버린 비름을 뜯고, 나물밥, 시래기죽을 쑤었다. 칡뿌리를 캐어다 칡가루 를 만들어 저장하기도 했다. “아따 방정 고만 떨어라! 들어오는 복도 나가겄다.” 해물 도부꾼에게 미역을 바꾸었다가 무르려고 쫓아나온 봉기에게 두만 아비 이평이가 타박을 주는 것이다. “그런 소리 마라. 숭년 들믄 니가 내 믹이살릴 것까!” “그라믄 애시당초 바꾸지나 말 일이지.” “내가 바깠나! 제집년이 하늘 치다보지도 않고 곡식을 퍼줬 이니 복통할 일 아니가!” 봉기는 미역단을 들고 도부꾼을 부르며 헐레벌떡 둑길로 쫓아간다. 저녁상은 성찬이었다. 말갛게 장만한 채소, 산나물로만 된 찬들의 가 짓수가 여간 많지 않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 산나물의 향기가 콧가 에 스친다. 혜관의 목구멍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난다. 침 넘어가 는 소리를 듣자 관수 눈에 장난기가 어린다. 방에서 밖을 내다보며 부엌 쪽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보래! 이보래!” 대답이 없는데 다 시 “개기국은 와 안 끓있노오!” 역시 대답은 없었지만 ‘아이구 참, 짓궂기도 하다. 시님보고 우예 개기국 잡수라카노.’ 아낙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업은 아이를 앞으로 돌려 안고 부뚜막에 걸터앉아 젖을 물린다. “과해도 모자라는게야. 대덕도 아닌 중놈한테 고기라니, 소 리 한번 더 지를까? 또 칼부럼 나게. 하하핫핫.” “하하하핫… 얼른 대덕 되십시오. 백정네 개기 좀 팔아묵게요.” “씨가 말랐으면 말랐지 혜관이 대덕 되겠나.” 혜관은 밥 한 숟가락에 밥 분량만큼 나물을 듬뿍 입 속에 집어 넣는다. 입 속이 굴 안만큼이나 깊고 넓은 것만 같다. 반주 한잔을 마신 영팔 노인은 숟가락을 들어 간장부터 떠먹는다. 판술이는 홍이 술잔에 술을 붓고 홍이는 술병을 받아서 판술이 술 잔에 술을 붓는다.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조기, 산뜻하게 무쳐 낸 고사리, 시금치, 콩나물, 마른 가자미는 실고추를 발라 쪄내었고, 대 구 아가미젓엔 반듯반듯한 무조각, 굴젓 그리고 조갯살을 넣어 걸쭉 하게 끓인 된장국, 그밖에 생선전, 햇김치 계란 찐 것, 모두 먹음직 스럽다. 한 노승이 닭을 길러 시간을 알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놓고, 사실은 그 고기를 먹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공연히 남이 알게 먹을 수 가 없어서, 두 가지 종류의 만두를 만들고 닭고기가 든 것은 ‘암만두 (雌饅頭)’라 하고, 채소로만 만든 만두는 ‘숫만두(雄饅頭)’라 했다. 그러고 손님이 오면 숫만두를 내오고,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암만두 를 먹었다. 하루는 손님이 불당에 왔는데, 사미가 실수해 암만두를 가지고 나와 대접했다. 이를 본 노승은 “오늘 손님이 귀한 분 같아서 고기를 넣어 만두를 빚었으나, 부처님에게는 죄가 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때 손님은 “닭도 암놈 수놈이 있는데, 만두에 어찌 암만두 와 숫만두가 없겠습니까?”라고 말하니, 노승은 크게 부끄러워하더라. 김 선생(金先生)이 담소(談笑)를 잘 했다. 하루는 친구 집에 가니 술상을 내왔는데, 안주가 채소뿐이었다. 그리고 주인이 “집이 가난하 며 시장 또한 멀어 안주가 담박(淡泊)해 부끄럽습니다.” 하고 사례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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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김현룡 7-[356] 차계 기환(借鷄騎還)) 87

닭고기

이긍익, 연려실 기술( 練藜室記 述) 제18권, 선조조 고사본말 ( 宣祖朝故事本 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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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병진정사록(丙辰 丁巳錄) 11 (김 현룡 2-[324] 어세겸(魚世謙))

89

닭고기

고상안, 한고관 외사( 寒皐觀外 史) 40권 효빈 잡기 하(效顰雜 記下), 내응방 (內鷹坊)을 없앤 유래(罷內鷹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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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용재총화(慵齋叢 話) 권 9 (김현 룡2-[371] 어 효첨(魚孝瞻))

다. 김 선생이 뜰을 보니 몇 마리의 닭이 모이를 쪼고 있기에, “대장부는 1천금을 아끼지 않으니, 내 말을 잡아 술안주로 하겠다.”라고 말했 다. 주인은 곧 크게 웃고 닭을 잡아 대접하고 함께 즐겼다. 우복룡은, 자는 현길(見吉)이며, 호는 동계(東溪), 또는 구암(懼庵) 이며, 본관은 단양(丹陽)이다. 계유년(1573)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기축년에 용궁현(龍宮縣)의 원으로 나가 임진왜란에 전공(戰功)이 있었다. 공은 지혜가 많고 유학을 겸하여, 관에 있을 때 엄하게 하지 않아도 일이 이루어졌다. 한번은 촌 백성 하나가 조세(租稅)를 체납하고도 너무 가난해서 갚지 못하고 있으니, 공이 말하기를, “네가 아무리 가 난해도 나라의 곡물을 어찌 납입하지 않을 수 있느냐. 네 집에 있는 물건으로 대신 바칠 수 있겠느냐?” 하자, 백성이 말하기를, “가난하 여 다른 물건은 없고 다만 닭 한 마리가 있습니다.” 하니, 공이 말하 기를, “닭을 삶아 오너라. 내가 먹고 네가 갚을 곡식을 감해주마.” 하 였다. 백성이 이 말을 믿고, 다음 날 닭을 삶아 바치니, 공 말하기를, “내가 장난한 것이었다. 어찌 원으로서 백성의 닭을 먹고 국가의 곡 식을 축내는 자가 있단 말이냐. 속히 가거라.” 하여 백성이 문밖으로 나가니, 여러 아전들이 모두 나누어 먹어버렸다. 조금 있다가 공이 백성을 불러 말하기를, “다시 생각하니, 이미 너로 하여금 닭을 잡아 오게 하고 또 받지도 않는다면 이는 너를 속이는 것이니, 네 닭을 도로 가져오면 마땅히 약속대로 하겠다.” 하니, 백성이 사실대로 고 하자 공이 드디어 여러 아전의 성명 밑에 분배하여 그 조세를 징수 하니 즉시 모였다. 이에 여러 아전이 놀라서 굴복하고 속이지 못하 였다. 어세겸은 성격이 소탈했다. 나이 많은 재상으로서 상주가 되니 성종 이 연로함을 들어 고기를 먹도록 명령했다. 어 공이 상중에 손님들 과 얘기하면서 태연히 고기를 먹으니, 대신들 사이에 비난 소리가 높았다. 어 공이 듣고, "나를 비난하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남이 안 보는 데서는 먹으면서, 남이 보는 데서는 안 먹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내 모르겠노라."고 말했다. 김계운(金季雲)이 거상에 몸이 약해 누가 권하지 않았는데도 닭을 잡아먹으면서, "내 일찍이 재상의 거상에 고기 먹는 것을 비난했는 데, 오늘 내가 도리어 고기를 먹을 줄 몰랐다."고 하더라.(성종) 옛날 내응방(內鷹坊)은 임금의 노침(路寢) 가까이에 있었다. 어느 날 응사(鷹師)가 닭을 잡아 다리 하나를 베어 매에게 먹이고 그 나 머지를 그대로 놔두자 죽었던 닭이 새벽에 다시 소생했다. 이때에 임금께서 그 소리를 들으시고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응사(鷹師)는 성상께 실상을 그대로 고했다. 그러자 성상께서는 갑자기 측은지심 (惻隱之心)이 생겨 마침내 내응방을 혁파했다. 이것은 곧 우임금이 죄인을 가엽게 여기고, 탕임금이 그물을 열어 금수를 놓아준 마음이 다. 국운이 오래도록 계속되는 것[國祚靈長]은 이것에서 시작한다. 어효첨이 내자(內資)판사일 때, 부정(副正)이 여기서 기르던 닭 한 마리를 손님 접대로 잡아먹었다. 어판사는 매일 아침 조회 때 회계 장부를 낭독하게 하고, “부정이 닭을 먹었다”고 말했다. 부정이 변상 하겠다고 하니, 어판사는 “다만 간 곳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라고 했 다. 형조참판 때는 첫날 나가서 부근(附根, 관청에 딸린 사당)을 불살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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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태평한화(太平閑 話) 고금소총본 56 (김현룡 3-[148] 고양 현 부인(高陽縣 婦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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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청구야담(靑邱野 談) 김 135 (김 현룡 3-[189] 광해조 재상 사 위(光海朝宰相女 壻))

고, 공조참판이 되어서는 지금까지 참판들이 한 달에 한두 번 출근 하던 관례를 깨고 매일 아침 출근해 저녁에 퇴근했다. 공조관리들이 일이 없는데 출근해 거북해 하니, “관직에 있으면 당연히 이렇게 해 야 한다. 만일 문제가 생겨 보고하라 하면 무엇이라 답하느냐?”라고 했다. 어공은 맑은 날도 늘 우산을 갖고 다녔다. 고양 현의 한 양가집 부인이 나이 40이 넘어서 개가했다. 그런데 얼 굴에 이미 주름살이 있어서 새 남편이 보고 좋아하지 않을 것을 걱 정 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냈다. 새벽이면 반드시 잘 울어 잠을 깨우는 수탉이 있었는데, 첫날밤 그 닭이 울면 재빨리 빠져나 가 새 남편이 당분간 주름진 얼굴을 못 보게 하려고 계획을 꾸몄다. 새 남편이 와 얼굴을 숙이고 들어가 첫날밤 일을 황홀하게 잘 마치 고 깊은 잠에 빠졌는데, 아침에 해가 떠오른 뒤에 잠이 깨였다. 밝은 아침에 새 남편이 얼굴을 보고는 너무 늙었다고 좋아하지 않았다. 그 길로 나와 닭이 울지 않은 까닭을 물으니, 어린 종이 어젯밤에 그 닭을 잡아 새 남편 반찬으로 했다는 것이었다. 부인이 종에게 회 초리를 치면서 “내 일을 망친 것은 닭이고, 닭을 망친 것은 너로다” 하고 화를 냈다. 광해조 때 대북(大北)중 한 재상이 권력이 강했고, 아들 또한 승선 (承宣)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 사위 김 선비는 가난하고 무능해 처가에 의지하고 살았다. 처가의 장인과 장모, 그리고 처남과 모든 종들까지 그를 멸시했다. 모두들 고량진미로 음식을 잘해 먹으면서 김 선비에게는 채소에 썰렁한 상을 올렸다. 그러나 그 아내는 극진 히 남편을 보살피고 음식을 챙겨드렸다. 김 선비는 항상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돌아오는데, 아내는 부모의 꾸중을 들으면서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가 몰래 뒷문으로 데리고 들어오곤 했다. 하루는 부모에게서 야단을 맞은 아내가 나가 숨어 있다가 들어와 남편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여자 종이 밥상을 차려 왔다. 밥상에는 닭다리가 놓여 있는데, 아내는 그 닭다리를 먹지 말 라고 했다. 낮에 닭을 잡아 삶았는데, 고양이가 물고 가 다 먹고, 헛 간에 한 다리만 남은 것을 어머니가 김 서방 주라고 했으니, 그 더 러운 곳에 있던 것이라 했다. 이 얘기를 들은 김선비는 장모가 주는 것인데 먹어야 한다면서 맛있게 먹었다. 이날 밤, 김 선비가 밤중에 집을 나가면서, “종칠 무렵 놓은 데 올라 가 궁궐 근처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릴 텐데, 그 소리가 오래도록 계속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결하고, 그 소리가 곧 진정되면 잘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나갔다. 아내는 밤중에 뒤편 높은 데에 올라가 바라보니 사람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리고, 간간이 불빛이 치솟고 하더니 얼마 후 잠잠해졌다. 이날 밤 부친과 오빠는 모두 숙직으로 궁중에 나가고 없었다. 아침에 여자 종이 대감 아침밥을 싸서 대궐 쪽으로 가니 군인들이 막아 못 들어가게 했다. 아무 대감 집 종이라고 말하니, 더 내쫒고 때리고 했다. 종의 얘기를 들은 모친은 아마도 김 서방이 말썽을 부 린 것 같다고 하면서 일꾼을 시켜 자세히 알아보라고 했다. 일꾼이 가서 알아보니 밤새 임금이 쫓겨나고 새 임금이 들어섰고, 대감과 도령님이 잡혀 문초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김 서방이 높은 자리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모친이 믿지 않고 다시 가서 알아보라고 해, 갔다 온 일꾼은 김 서방이 이조판서에 어영대 장 등 여러 관직을 겸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대감과 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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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어수신화(禦睡新 話) 89 (김현룡 3-[304] 시부 모 공경(媤父母 恭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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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豉醬)

정약용, 다산시 문집 제2권, 시 (詩), 남고에게 편지를 부치고 아울러 된장을 보내주다[簡寄南 皐兼貢豉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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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豆醬)

홍대용, 담헌서 (湛軒書), 외집 2권, 항전척독 (杭傳尺牘), 건 정동필담(乾淨衕 筆談)

님은 매를 맞아 몸이 다 부서졌다는 애기도 했다. 모친은 딸에게 그 동안 김 서방을 잘못 대접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부친과 오빠를 살리라고 부탁했다. 곧 아내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남편에게 전했다. 편지를 받아본 김 선비는 이튿날 임금에게 사직서 를 제출하고 죄를 청하면서 장인의 관대한 처분을 간청했다. 이렇게 해 장인은 죽음을 면하고 귀양가게 되었다. 박문수(朴文秀)가 어사가 되어 영남에 갔다. 들을 지나다가 점심때 가 되어, 한 논두렁에 앉아 농부들과 함께 한끼 얻어먹기로 하고 기 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래위 다른 논에서 이미 부인들이 점심을 이고 와 먹고는 있는데, 이 집만은 해가 기울어지도록 점심밥을 내 오지 않았다. 모두들 배가 고파 마을 쪽을 쳐다보면서 불평하고 있 는데, 많은 시각이 경과된 뒤에야 주인 아내가 밥을 이고 나왔다. 주 인과 일꾼들은 부인에게 늦게 온 것을 추궁하며 꾸짖었다. 식사를 빨리 주선해 주고 나서 주인아내는, 죄송하다고 말한 다음 애기를 들어 보라 했다. 점심밥을 지어 놓고 그릇을 가지러 안방에 가니, 80연세의 시부모께 서 마침 문을 닫고 호합하면서, 대낮인데도 바야흐로 기분이 상기되 어 한창 몽롱하여 인사불성 상태였다. 그래서 끝나기를 기다리다 생 각하니, 우리 젊은이들도 그 작업을 하고 나면 한동안 힘이 빠져 나 른한데, 80노인이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에, 닭을 잡아 보신해 드려야 하겠다고 마음먹고, 닭을 잡는데 알 낳는 암탉은 쉽게 잡혔 지만 놓아주고, 다시 수탉을 잡으려고 쫓아다니다가 시간이 많이 지 체되었다. 기어이 수탉을 잡아 닭곰을 해 올리고 밥을 챙겨 오다보 니 부득이 늦었으니 용서해 주기 바란다는 설명이었다. 애기를 듣고 있던 농부들은 모두 감동하고, 배고파 지쳤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부인의 효성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점심을 얻어먹은 박 문수 어사는 영남 수행을 마치고 상경해, 이 부인 일을 임금께 주 달하니, 임금은 이 부인에게 효부 정문을 세워주고, 또 돈과 곡식을 상급하라 하더라. 頗愧朱登蟹 주등이 준 게장엔 부끄럽지만 殊非仲子鵝 중자 먹던 거위는 전혀 아니네1) 和齊貧未易 간맞춤도 가난해 쉽지 않으니 呴沫意如何 곤궁한 생활 형편 과연 어떤지 芍藥調黃豉 작약으로 된장의 맛을 내고요2) 葫蘆透白鹺 바가지에 흰소금 걸러낸다네 遙和杏園側 행원의 주변에서 장검을 치며 長鋏有悲歌 슬피 노래하는 자 지금도 있구나 내가 또 양생을 향하여 “북경 사람인가? 저가 하는 말은 내가 알고 내가 하는 말을 저도 아는데 두 분의 하는 말은 참으로 전혀 모르겠 다” 하니 양생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노복은 알아듣고 다시 내 말을 설명해 주니 양생이 비로소 알았다. 역암이 웃으며 “남만격설(南蠻鴂舌)의 사람이라” 하였다. 나도 알아 듣고 웃었다. 양생이 밥에 육(肉)이 없음으로 접대가 소홀하다고 한 하였다. 내가 “제가 평생에 육(肉)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이 먹으면 반드시 복통을 면하지 못한다. 나올 때 여행 중에 쓰던 초장(炒醬) 한 통을 덕유(德裕)에 맡겼더니 이에 이르러 개봉하고 내놓으며 동국의 된장 [豆醬]으로 밥반찬으로서 사용하는데 속(俗)에서 상미(上味)라 일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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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청장(淸 醬))

동패낙송(東稗洛 誦) 329 (김현 룡 3-[131] 이 퇴계 자부(李退 溪子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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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청장(淸 醬))

이순록(二旬錄) 하(下) (김현룡 3-[428] 이전 인(李全仁))

는다. 식성이 같지 않으니 당신들에게는 맞지 않을지 모른다.” 난공이 “남방의 메주 맛도 이와 같다. 다만 존자(尊慈)가 안 계셔서 흠이다” 하고 난공이 죽순 한 쪽을 주는데 우리나라의 표육과 같았 다. 씹어보니, 용안(龍眼 약초 명)의 맛이 있다. 또 작은 것은 우리나라의 마른 죽순과 흡사했다. 난공이 “작은 죽순은 항주 천목산(天目山)에서 나고, 큰 죽순은 괄창 산(括蒼山)에서 나는데, 맛은 아마 좋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퇴계 선생 장자가 일찍 사망하고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자부 는 친정이 9대 독자의 딸이었다. 선생은 아들 잃은 슬픔 못지않게 그 자부의 청상과부를 더 슬퍼했다. 그래서 친정으로 보내면서, “9대 독자의 딸로 우리 집에 시집와 절손됨을 차마 볼 수 없으니, 너의 절행을 알지만 다시 돌아오지 말고 친정부모 명령에 따르도록 해라” 하고 타일러 보냈다. 그리고 수십 년 후, 선생이 단성(丹城) 지역을 지나다가 한 양반 가 정에 묶게 되었다. 주인이 저녁식사를 아주 풍성하게 잘 차려 왔는 데, 보니까 청장(淸醬)을 큰 그릇에 가득 담아 올려놓았었다. 선생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 인척관계를 물으니, 주인은 주부가 어느 집안 의 딸이라고 일러 주었다. 곧 이 집은 선생의 옛날 자부가 개가한 집이었고, 이 날 선생이 유숙한 것을 안 주부는 선생이 늘 좋아하던 청장을 만들어 상에 올린 것이었다.(명종) 이전인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첩의 아들이다. 이언적이 남쪽 지방에서 한 기생을 가까이 했는데, 임신된 상태에서 그 기생이 조 윤손(曺潤孫)의 첩이 되었다. 그래서 기생이 아이를 낳아 이름을 조 옥향이라 하고, 조윤손의 아들로 되어서 자라 관역에 종시하고 있었 다. 이어 조윤손이 사망하니, 조옥항이 칼을 갈아 가지고 모친에게 들어 와, “부자는 천륜인데, 겉으로 곡을 하지만 마음속으로 전혀 부친 잃 은 슬픔이 일어나지 않으니, 저는 목석과 같은 놈입니다. 어찌 하늘 아래 머리 들고 살겠습니까?” 하면서 자살하려 했다. 그래서 모친은 사실 조윤손 아들이 아니고 이언적의 아들임을 일러 주었다. 이야기 를 들은 아들은 슬픔이 느껴지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언 적 집으로 찾아갔다. 이언적 집에 가니, 대감은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강계(江界) 로 귀양가고 부인만 있으면서, 대감에게는 평소에 첩이 없었음을 들 어 의심하고 받아주지 않았다. 이에 모친 애기를 하고 엎드려 통곡 하며 자결하려하니, 부인이 마루로 불러올려 식사를 권하고, 방안에 서 살펴보았다. 식사를 시작하면서 숟가락을 들자마자 청장(淸醬)을 세 숟갈 먼저 떠 마시는 것이었다. 이를 본 부인이 물으니, 원래부터 습관적으로 식사 때마다 청장 세 숟갈을 먼저 떠먹는다고 대답했다. 부인은 곧 발을 걷고 가까이 오라 해 아들로 인정했다. 이언적이 언 제나 식사 때 청장 세 숟갈을 먼저 떠먹고 밥을 먹기 때문에, 이 습 관의 내림을 가지고 아들이라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부인의 편지를 갖고 강계로 대감을 찾아가, 사정을 애기하고 부인 편지를 전하고 부자가 상봉했다. 그리고 이름을 이전인으로 고 치고, 대감 밑에서 3년간 수학해 이전인은 큰 학자가 되었고, 강계에 있는 동안 부자가 유학에 대해 담론한 『관서문답론』이 전한다. 이 언적이 강계에서 사망하고, 이전인이 지성으로 부친 신원을 호소해, 이언적은 신원되었으며, 다른 아들이 없어 이전인이 집안 대를 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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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청구야담(靑邱野 談) 김 421 (김 현룡 2-[260] 정효성(鄭孝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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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이긍익 연려실기 술(練藜室記述) 권6 (김현룡 4-[370] 장순 손(張順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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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교수잡사(攪睡雜 史) 7 (김현룡 7-[190] 도부 와 애인(挑符艾 人)·돼지(猪))

다. 옛날 한 사람의 아들이 친구가 많아, 모두 깊은 정이 있다고 하기에 부친이 시험해 보자 했다. 곧 돼지를 잡아 삶아 거적에 싸서 아들에 게 짊어지게 한 다음, 아들 친구 집에 가서 살인을 해 시체를 지고 왔으니 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 친구들은 여러 곳을 가도 모두 거절했다. 곧 부친의 오래 못 만난 친구 집에 가서 같은 말을 하니, 부친 친구는 자진해 빨리 묻어야 한다고 하면서 삽을 들고 구 들을 파려 했다. 부친은 곧 돼지임을 보여주고 내력을 설명한 다음, 술을 가져오게 해 그 돼지를 안주로 실컷 마시고 돌아오니, 아들이 부끄러워했다.(조선 후기) 장순손(1453~1534)은 성주(星州) 사람으로 그 얼굴이 돼지를 닮아, 친구들이 ‘돼지머리(猪頭)’라고 놀렸다. 연산군이 성주 기생 하나를 궁중으로 뽑아 들여와 매우 총애했다. 하루는 종묘 제사를 마치고 그 제사음식을 궁중으로 가지고 왔는데, 거기에 얹힌 돼지머리를 보 고 이 성주 기생이 웃었다. 연산군이 성주 기생에게 웃는 이유를 물으니 기생은. “성주 사는 장 순손이 그 얼굴이 돼지머리같이 생겨 모두들 ‘돼지머리’라고 하기 때 문에, 지금 상 위의 돼지머리를 보니 생각이 나서 웃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곧 연산군은 화를 내면서, “장순손이 너의 사랑하는 남편 이구나”라고 말하고, 빨리 장순손의 머리를 베어오라는 명령을 내렸 다. 이때 장순손은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잡으러 온 도사에 의해 끌려서 길을 떠났다. 함창(咸昌)에 이르렀을 때, 공검지(恭檢地) 호수 아래 두 갈래 길에서, 고양이가 길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순손이 자기를 잡아가는 도사에게, “내 평생에 과거 할 때에 고양 이가 길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보면 급제했다. 오늘도 고양이가 길 을 가로질러 건너는 것을 보았으니, 그 고양이가 건널 그 길로 가게 해주시오.” 하고 부탁했다. 그래서 도사의 허락을 받아 그 길로 갔는데, 함창 고을 관부(官府) 에 이르러 들으니, 선전관(宣傳官)이 장순손 목을 베어오라는 명령 을 받고 상주(尙州)로 내려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연산군이 왕의 자리에 오래있지 못하리라는 소문을 얻었으므로, 일부러 시간을 지 연시키려는 술책을 쓴 것이었다. 이렇게 해, 멀리 돌아 조령(鳥嶺)에 이르니, 그를 죽이려는 선전관도 조령에 도착했는데, 이때는 이미 중 종반정이 일어난 뒤여서 장순손은 죽음을 면했다. 한 사람이 소·개·닭·돼지를 길렀다. 소를 보고 “내 고기를 못 먹어 기 력이 빠졌으니 너를 잡아먹겠다” 하고 말했다. 이에 소는 “저는 주인 을 태워 다니고 힘들여 쟁기질도 하는데, 어찌 저를 잡아먹으려 하 십니까?”라고 말했다. 주인은 “네 말이 옳다”고 말하고, 개에게 가서 잡아먹겠다고 했다. 개 역시 집을 지켜 주고 도적도 막는데 어찌 잡아먹으려 하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그 말도 옳다고 하고, 이어 닭에게 가서 잡아먹겠다 고 말했다. 닭 또한, “밤이나 낮이나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는 공적이 있는데 어찌 저를 잡아먹으려 하십니까?” 하고 말했다. 주인은 그 또한 맞는 말이라고 하고, 끝으로 돼지에게 가서 잡아먹 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돼지는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저 는 아무 공적도 없이 주인님 은혜만 입었으니, 저를 잡아먹으십시 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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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하, 세계사, 34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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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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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76~77

그들이 밤에 만난 선술집은 태남이네 가게에서 멀지 않은 태남이의 단골집이었다. 주모는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 배천으로 시집가서 소생 없이 과부가 된 후 친정 연줄로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다고 했다. 옥호도 배천옥이라 붙이고 주모는 배천댁으로 통했다. 여편네 됨됨 이나 음식맛이 똑같이 두루뭉실 특색이 없어서 번창하는 편은 아니 었지만 태남이는 그 집을 좋아했다.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말 씨나 음식맛이 얼추 개성 쪽하고 비슷한 거 같아서였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안주로 제육이 나왔다. 역시 짱궤허구 다닐 만허다니까. (중략) 그러면서 마도섭은 소증난 사람처럼 연신 시커먼 김치이파리 에 돼지비계를 싸서 아귀아귀 처넣었다. 태남이는 그의 사발 가득 히 막걸리를 부어주면서 가끔 느닷없이 그가 싫어지는 자신의 변덕 에 대해 수치심과 가책을 느꼈다. 육기를 탐하는 마도섭이 그렇게 순수하고 측은해보일 수가 없었다. 조선 안 시국은 어드렇습니까? 나 같은 사람이 뭐 아나, 겉으로 보기엔 점점 살기 좋아지는 것 같 드라만… 마도섭은 말끝을 흐리고 급히 술과 안주를 탐했다. 형님 무 슨 말씀을 그렇게 허시니까. 나라를 빼앗긴 백성이 살기 좋아져봤 댔자죠. 글쎄, 그렇게 외곬으로 생각허면 조선백성 다 목숨을 끊던지 산골로 숨어서 고사리를 뜯다가 죽던지 해야지 살아 있을 건 또 뭔 가. (중략) 배천댁 아지머이, 여기 제육 한 접시 더 주고, 부침개도 몇조각 부쳐주구려. 태남이는 반성 끝에 오는 도덕적 만족감 때문 에 기분좋게 호기를 부렸다. 녹두 갈아놓은게 다 떨어져버렸는데 뭐 부친담. 밀가루에다 파허구 돼지가죽이라도 송송 썰어넣고 부치면 쫄깃쫄깃 먹을 만허지 않겠수. 관두게. 제육 두 접시면 목구멍 먼지 는 깨끗이 씻겨내렸을 테니까. 부침개보담은 국밥이나 한 그릇 잘 말아주소, 배천댁. 알았소, 아재. 남들은 탁배기 몇사발이면 너끈히 요기가 된다던데, 아잰 한번도 끼니를 거르는 걸 못 봤다니까. 배천 옥은 밥장사가 본업이 아니어서 약간 귀찮은 듯 찬밥에 얹을 국거 리가 될 만한 걸 주섬주섬 챙기면서 중얼댔다. 그건 다 집에 가면 기를 쓰고 끼니 챙겨줄 마누라 있는 녀석들의 흰소리구, 나 같은 홀아비야 내 끼니 내가 챙겨야지 어쩌겠소. 그 무렵 처만네도 일곱 번째 아기를 낳았고, 처만은 심지가 굳고 말 수가 적고 뼈마디가 어른처럼 굵어 한몫의 일을 거뜬히 해내는 열 두살의 소년이었다. 처만네는 생원댁 안방마님처럼 노산은 아니었지 만 첫국밥도 배불리 먹을 형편이 못되는 지라 젖이 달려 갓난아기 가 숨넘어가는 소리로 울어대는 소리가 사립문 밖까지 들렸다. 생원 댁 쉰동이도 젖이 달려 아랫것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젖도는 데 좋 다는 온갖 귀물을 구해들이느라 솟을대문이 미어졌다. 그러나 전복, 홍합, 쇠꼬리, 돼지족발, 펄펄뛰는 잉어, 숭어, 늙은 청둥호박, 심산 유곡의 석청 등 온갖 욕지기가 나게 장복을 해도 안방마님의 말라붙 은 젖가슴은 불어날 척도 안했다. 그때 행랑것의 간사한 목소리가 소곤소곤 안방마님의 귓전에다 대고 속삭였다. 더군다나 이제 살림을 주관해도 좋을 맏며느리인 머릿방아씨를 손끝 한번 까딱하게 하기 화중미인 부려먹기보다 더 힘드니 홍씨부인의 신역 고된 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몸 편하면 되레 삭신이 쑤시는 증도 섣달 초승께부터 엿 고랴, 부두 만들랴, 떡 치랴, 다식 박으랴, 약과 지지랴, 강정 만들랴, 돼지 잡으랴, 설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해 서 보름께까지 계속되는 손님 차다꺼리에서 버릇됐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설을 유난하게 쇠는 것과는 딴판으로 전영감의 생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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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하, 세계사,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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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하, 세계사,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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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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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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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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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

박완서, 미망 하, 세계사, 139

나 혼인잔치는 큰살림에 걸맞지 않게 검소하게 치르는 것 또한 전씨 집의 특이한 가풍이었다. 그날부터 태임이는 더욱 부산해졌다. 떡 치랴, 두부 하랴, 엿 고아 강정 만들랴, 설음식 장만도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게 할 작정이었 다. 샛골에다 급히 연통해서 돼지까지 한 마리 잡게 했다. 태남이 내 외를 잘 멕이고 싶기도 했지만 태남이댁에게는 뭔가를 과시하고 싶 은 허영심도 없지 않았다. 경우는 경성서 내려올 높은 사람 일행을 영접하기 위해 몇 년만에 다시 인삼장을 예약했다. 물자의 궁핍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라 인 삼장도 겉만 번드르르할 뿐 실속은 하나도 없었다. 이름난 경성의 미쓰고시 양식부에서도 라이스카레 한 그릇 얻어먹으려면 온종일 줄을 서야 할 때였다. 없는 사람은 환장을 하게 배고프고, 돈 있고 세도 있는 사람도 헛헛하고 소증날 때였으므로 흠빡 기름지고 질탕 하게 대접할 필요가 있었다. 경우는 샛골에서 사람을 시켜 몰래 어 린 돼지와 암탉을 잡게 하고 야미로 쇠고기도 넉넉히 구해 인삼장 주방에다 공급했다. 하다못해 어머니가 작년 가을에 담근 게장까지 퍼갔다. 그때 이생원은 무슨 생각에선지 하인을 시켜 주안상을 내오게했다. 주안상은 조촐했으나 석쇠를 얹은 화로가 딸려나왔다. 이생원은 자 작으로 약주잔을 기울이며 노비를 시켜 석쇠에다 고기를 굽게했다. 고기는 비계가 많은 제육이어서, 불꽃과 연기와 함께 양념이 타는 냄새와 누린내가 진동을 했다. 아버님 제육 좀 드십시다요. 솜씨 칭찬에 언제나 자상하던 시바어비 가 오늘따라 맛을 알고 드는지 모르고 드는지 분간을 못하게 무덤 덤한 식사를 하자, 며느리가 참다못해 이렇게 채근을 했다. 그녀가 삶아서 눌렀다고 썬 제육편육을 전영감은 특히 좋아해서 도당 고기 보다 맛있다는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영감은 제육소리에 눈살을 찌푸리더니 화를 버럭냈다. 치워라, 썩, 꼴보기 싫다. 그러더니 편수도 반그릇이나 넘어 남기고 수저를 놓는 게 아닌가. 시아버지의 젊은이 못지 않은 식탐을 아는지라 곧 한 그 릇 더 대령할 수 있도록 불을 아주꺼뜨리지 말고 양지머리국물을 밍근히 끓이고 있으라고 일러놓고 있던 며느리는 크게 실망하고 행 여 뭘 잘못했나 싶어 어쩔줄을 몰랐다. 잘먹었다. 상 물리거라. 아 버님 편수 소 간이 안 맞았으면 진지를 조금이라도 잡수시지요. 곰 삭은 그이장(게장)이 여간 별미가 아니올시다요. 아니다. 편수 소 간이 안 맞긴. 누구 솜씨라고. 어머니 점심때가 겨웠나봐. 뭣 좀 주세요. 오냐 오냐. 암 먹어야구말 구. 뭐가 구미가 당길 것 같는? 뭐든지 해줄 테니까 말만 하려무나. 된밥에 호박김치나 푹 무르게 끓여주세요. 제육 몇 점 넣으면 참 맛 있겠다. 꼴깍 소리가 나게 침까지 삼키며 말하고 나서 돌아눕는 딸 을 보고 박씨는 가슴이 천길만길 내려앉는 것 같았다. 저게 정말 죽 을 병이 들어 이제 저승 갈 양식을 챙기려고 저러지, 저 꼴을 해가 지고 된밥에 호박김치가 아랑곳인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서둘러 밥 을 앉히고 제육 몇 점 썰어 넣은 호박김치 뚝배기를 화로에 얹어놓 고 이것저것 밑반찬을 챙기는 사이에, 다시 아까의 의심이 흉한 그 림자처럼 박씨의 마음을 어둡게 차지했다. 말만 허구 또 곤두박질쳐 들어오지 말구 자네가 거들게. 그 눈치 읎 는 게 찬밥뎅이나 차려오면 어드럭허나. 김치도 설김치로 새로 나오 고 젓갈도 골고루 내오게나. 찬간에 제육 눌러놓은 것도 있으니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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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이익, 성호사설 제4권, 만물문 (萬物門), 두부 (豆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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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

어우야담(於于野 譚) 259 (김현 룡 3-[158] 민 반 부인(閔泮夫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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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숙유 (菽乳))

정약용, 다산시 문집 제6권, 시 (詩) 송파수작 (松坡酬酢), 한 암자숙도(寒菴煮 菽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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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일연, 삼국유사 제1권, 고조선

양 내서 썰게. 맑은 장국은 늘 준비돼 있는 거니까 지단이나 띄우 구… 누님, 호박김치두요. 태남이가 싱긋 웃으며 참견을 했다. 지금 식품(食品) 중에 두부(豆腐)란 것이 있다. 콩을 매에 갈아서 끓여 익혀서 포대(布帒)에 넣어 거른 다음 염즙(鹽汁)을 넣으면 바 로 엉키게 되고, 두장(豆醬)은 조금만 넣어도 삭아서 엉키지 않는다. 염즙이란 것은 소금에서 흘러 나오는 붉은 즙이고, 두장 역시 끓인 콩을 소금에 섞어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염즙을 넣으면 두부가 제 대로 엉키고 두장 물을 넣으면 삭아져서 엉키지 않으니, 그 이치를 궁구하기 어렵다. 쌀뜨물(米泔) 역시 삭아지게 하는 까닭에, 두부를 먹고 체증이 생긴 자는 쌀뜨물을 마시면 바로 낫는다고 한다. 《군쇄록(群碎錄)》에 이르기를, “두부는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이 만든 것이다”고 했는데 소동파의 주에는, ‘증중수(曾仲殊)가 화식 (火食)을 않고 꿀만 먹었는데 두부ㆍ국수ㆍ우유 따위를 꿀에 적셔 먹고, 이름을 밀수(蜜殊)라 했다’ 하였다. 근래에 어떤 사람이 해수 병(咳嗽病)을 앓는데, 뜨거운 순두부 물에 꿀을 타서 먹고 낳았다고 하니, 의술(醫術)하는 자로서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민반 부인 박씨는 박거소(朴去疎) 딸이고, 소헌(昭憲) 왕후의 조카 다. 성품이 명민하고 예법을 엄격하게 지켰다. 한 번은 부모의 여묘 (廬墓) 제사를 위해 마련한 두부가 없어졌다. 여러 여자 종들을 불 러 추달해도 차례로 입에 물을 넣어 양치질해 항아리에 토하도록 하 니, 한 여자 종의 입에서 두부 흔적이 물에 섞여 나왔다. 뒤에 민반이 살던 집을 정사웅(鄭士雄)이 사서 들어갔는데, 며칠 동 안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산비(山婢)야 지금 우리 집에 누가 들 어 왔느냐?” 하고 소리쳤다. 그래서 옛 주인에게 물으니 이 노인은 민반이었고, 산비는 그가 부리던 종이었다. 桑鵝菽乳雪中山 산중의 눈 속에서 상아와 숙유3)를 먹으니 蒲塞風情在此間 포새의 풍치가 바로 이 사이에 있구려 準備香虀醒胃府 향기로운 부추 있어 위장을 깨끗하게 할 뿐 絶無硬骨撼牙關 뼈 있는 고기 먹다 치아 흔들릴 일 전혀 없네 紺珠百串堆盈案 감주 일백 꿰미는 책상에 가득 쌓여 있고 紅露三甌助解顔 술 세 사발은 얼굴을 펴기에 도움이 되도다 御賜臇羹如夢境 임금이 내린 고깃국은 꿈속의 일만 같아라 老僧髹鉢可同班 노승의 검붉은 바리때나 같이할 뿐이로세 <위서(魏書)>에 이런 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 검(壇君王儉)이 계셔 아사달(阿斯達)―경(經)에는 무엽산(無葉山)이 라 했고, 또는 백악(白岳)이라고도 했는데, 백주(白州)에 있다. 혹 개성(開城) 동쪽에 있다고도 하는데 지금의 백악궁(白岳宮)이 바로 이것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불렀는데 요(堯)와 같은 때였다고 한다. <고기(古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제석(帝釋)을 이른다―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계셔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 산(三危太伯山)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했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 사람을 다스리게 했다. 환웅은 그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지금의 묘향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서 이곳을 신시(神市)라 불 렀다. 이 분을 환웅 천왕(天王)이라 한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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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수명·질병·형벌·선악 등을 주관하고, 인간의 3백60가지나 되는 일을 주관하여 인간 세계를 다스려 교화시 켰다. 이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 雄, 桓雄)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때마침 신[桓雄]이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날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었다. 곰은 기(忌)한 지 21일 만에 여자 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능히 기하지 못했으므로, 사람이 되지 못했 다. 여자가 된 곰은 그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축원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 혼해주었더니, 그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일렀다. 薑桂非無貴 생강도 계피도 귀한 것이지만 無踰此味長 이 맛보다 더 나은 것은 없어라 衆玉扶金柱 많은 옥이 금기둥을 떠받치고 群珠拆素房 여러 구슬이 흰 씨방에서 터진 듯 硏肌瓜炙美 갈아서 넣으면 오이 부침이 맛있고 添汁水漫香 즙을 내어 넣으면 물이 향긋하지 葷氣雖云濁 훈초(葷草) 기운 비록 탁하다 하지만 參書却暑方 더위 물리치는 처방에 들어 있다네 有意何難屛五辛 뜻이 있으면 오신 물리치는 것 어찌 어렵겠는가 亦思漸斷內中人 점차로 중인(中人)과의 관계 끊을 것을 생각한다 那敎鬼舐五脣舌 어찌 악귀로 하여금 내 입술 핥게 하랴 請見楞嚴說助因 부처에게 설법으로 인연(因緣) 없애주기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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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蒜]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 만물편(萬 物篇) ○소채류 (蔬菜類), 마늘 [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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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

이규보, 동국이 상국후집 제5권, 고율시(古律詩) 89수, 처음으로 오신(五辛)을 끊 고서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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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 동국이 상국후집 제4권, 고율시(古律詩) 98수, 집 안 채 마밭의 여섯 노 래 -무

得醬尤宜三夏食 漬鹽堪備九冬支 根蟠地底差肥大 最好霜刀截似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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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서거정, 사가시 집 제20권, 시류 (詩類), 푸른 미 나리와 흰 파를 보내 준 안 동린 (安同鄰)에게 사 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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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해채 (海菜)]

이색, 목은시고 제22권, 시(詩), 민자복(閔子復) 이 해채(海菜)를 보내오다.

蔬食甘吾分 채소 음식도 내 분수엔 하니 膏粱不自謀 고량진미는 아예 바라지 않네 芹靑宜病口 푸른 미나리는 병든 입에 맞고 蔥白愈風頭 파의 흰 밑둥은 두풍도 치유한다네 細切調甛醬 가늘게 썰어 달콤한 장에 조리하고 閑烹揉滑油 살짝 데쳐선 기름에 무치기도 하네 平生聊自足 평생에 이만하면 스스로 만족하니 何羨鯖五侯4) 어찌 오후청을 부러워할까 東海出異菜 동해에선 특이한 나물이 나오니 色黑膚理薄 색깔은 검고 살갗은 얄팍하고 長可數尺餘 길이는 두어 자 남짓 되는 데다 有頭仍有脚 머리가 있고 또한 다리도 있는데 美醋可當膾 초를 치면 회에 대신할 수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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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곁들이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을 넘긴다 땅속에 서린 뿌리가 살찌면 날 선 칼로 배 쪼개듯 자르면 좋지


香羹亦堪剝 云補腸胃衰 止血扶經絡 雖然性稟冷 不入溫平藥 錭胡爛炊飯 足以供咀嚼 119

배[梨]

이색, 목은시고 제32권, 시 (詩), 증리(蒸 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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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야담기문(野談奇 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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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보릿가 루)

계서야담(溪西野 譚) 300 (김현 룡 2-[382] 제 주 목사(濟州牧 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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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계서야담(溪西野 談) 권2

국 끓이면 또한 찢어 먹을 만하네 쇠한 위장을 보하는 건 물론이요 지혈시켜 경락도 보한다 하누나 비록 그 성질이 워낙 한랭하여 온평한 약용엔 들어가지 못하나 난질난질 잘 퍼진 고미밥에다 넉넉히 곁들여 먹을 만하고말고

瓦甑蒸梨出 배를 시루에다 푹 삶은 뒤에 書堂盡意嘗 서당에서 마음껏 맛보노라니 微酸生齒舌 약간 신맛이 입 안에 시큼시큼 餘熱入肝腸 남은 열기가 뱃속에서 뜨끈뜨끈 食氣俄消歇 배고픈 느낌도 어느새 사라지고 眠魔便走藏 졸음귀신도 곧장 줄행랑치누나 燕京欲深夜 생각나네 깊어 가는 연경의 어느 날 밤 曾記叫門墻 이 배 먹고 싶다고 문간에 소리치던 일이 통영(統營) 통제사(統制使)의 아들이 통영으로 부친을 뵈러 통영으 로 오다가 길에서 보리타작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보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여 “이것도 사람이 먹는 것이냐?”하면서 거만하게 굴었다. 보리타작을 감독하던 시골 양반이 통제사의 아들을 불러 “부모덕으 로 호의호식하면서 농민의 고통과 곡식의 소중함을 모른다”고 하면 서 야단을 쳤다. 통제사의 아들이 집에 가서 부친에게 모욕당한 것 에 대한 문책을 요구했다. 통제사는 아들을 꾸짖고 그 양반을 불러 자신이 자식을 잘못 가르쳤음을 사지하고 이후로는 노인과 가까이 지냈다. 한 무인이 궁궐 후원에서 왕을 모시고 있으면서, 마침 제주 목사 자 리가 비게 됨을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무인이 “내 제주 목사가 되면 만고 제일 명관(名官)에 천하제일의 이재(理財)를 할 수 있다.”고 소 리쳤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안 되면 벌을 주기로 하고 무인 을 제주 목사에 임명했다. 무인은 떠나기 전, 보릿가루를 치자물에 담가 누렇게 뭉쳐 떡을 만들어 상자에 숨겨 갖고 갔다. 일 년 동안 반주 외에는 술을 안마시고, 또 어떤 재물도 안 받고 열 심히 민정을 살피니, 백성들이 만고 제일의 청백리라고 칭송이 대단 했다. 하루는 병이 났다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읍민이 몰려와 증세를 일러 주면 약을 구해 오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몇 번을 사양 하다가, 온몸에 단독이 올라 붉은 점이 솟았으니 우황(牛黃)을 발라 야 낫는다고 말했다. 아전들이 “우황쯤은 제주도가 주산지니까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하고는 하루 사이에 수백 근을 구해 왔다. 곧 우 황을 상자에 넣고, 갖고 간 치자물 든 누런 떡을 몸에 발랐다가 밖 에 내가 땅에 묻고는 독이 있다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멀리서 보면 마치 우황덩이처럼 보였다. 며칠 후 병이 나았다 하고 는 또 열심히 민정을 살피니, 임기를 망치고 올라올 때에는 비석을 세워 찬양했다. 제주도 소는 10마리 중 8,9마리에 우황이 들어 있어서, 우황 구하기 가 쉽다는 것을 미리 알고 준비했었다. 무인은 서울에 와 그 우황을 팔아 수천만 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조선 후기) 이익저(李益著)가 의성(義城)의 읍재(邑宰)로 있었는데, 여름에 잔 치하는 중에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곧 잔 치를 중단하고 관찰사에게 가서 남창(南倉)의 돈 5천 냥을 빌려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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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豆 麪)

서거정, 사가시 집보유 제1권, 시류(詩類) 정미 년(1487, 성종 18)에 손수 정 리한 시고[丁未 手稿], 한가로이 제(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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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油 餠)

이색, 목은시고 제28권, 시(詩), 배 고파 우는 아 이를 보고서 1 수(一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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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침개(麪 裹)

이색, 목은시고 제7권, 시(詩), 술을 가지고 찾 아 준 한평재(韓 平齋)에게 사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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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炙]

성현, 용재총화 제6권, 용재총화 제6권

리를 사서 각 동에 보관하도록 했다. 이때는 보리가 풍년으로 값이 매우 쌌다. 얼마 후 7월 한 밤중에 문득 잠을 깨어 사람을 시켜 뒤 뜰의 풀잎을 뜯어오라고 하여 보니 삶아 놓은 것 같았다. 이튿날 아 침에 들에 나가 보니 때 아닌 서리가 내려 푸른 잎이 하나도 없이 모두 말라 죽어있었다. 그래서 이해 가을에 보리 값이 전보다 10배 로 비싸졌으며, 보관해두었던 보리를 팔아 돈을 갚고 나머지는 모두 백성을 구제하는 데에 썼다. 數載封君霑厚祿 수년 동안 봉군되어 후한 녹봉 받으면서 官閑無事少奔忙 직무는 한산해 분주할 때가 드물다 보니 竹君蓮友尋常到 죽군이랑 연우에겐 늘 찾아가 놀거니와 菘子芥孫次第嘗 배추랑 갓은 차례로 뜯어 먹기도 하네 豆麪尖新聊可口 두면은 얄팍하여 입에 넣어 먹기 알맞고 桑茶香潤更搜腸 상다는 향기로워 다시 창자를 더듬누나 一生眠食餘何管 일생에 자고 먹는 일 밖에 그 무얼 관섭하랴 小醉題詩老更狂 거나하여 시나 쓰는 데 늙을수록 미치는걸 稚子啼呼索點心 어린애가 울며불며 먹을 것을 졸라대니 老婆吹火石鐺深 할머니가 돌솥 걸고 불을 호호 불어 대네 醬湯油餠烹來軟 장국이며 부침개를 먹음직스럽게 데워 오자 □□尋常驕語音 울던 아이 평소처럼 귀엽게 재롱을 떠는구나 道味生時須自驗 도의 참맛 느낄 때를 스스로 징험해야 할 터 天機動處有誰尋 천기가 발동하는 곳을 그 누가 찾아보았을까 老翁日用眞無事 노옹은 날마다 살아가며 진정 일이 없는지라 遇興悠然試一吟 흥이 일면 유연히 시 한 수 읊조려 보노매라 上黨還朝日 상당군이 조정에 돌아오던 날 東鄰臥病餘 동쪽 이웃은 병들어 누웠었네 芳樽傾綠蟻 좋은 술은 푸른 거품을 기울이고 鮮食炙靑魚 좋은 안주는 청어를 구웠구려 麪裹脂如截 부침개는 끊어 놓은 기름 같고요 盤堆味可書 쟁반엔 기록할 만한 감미가 쌓였네 頹然成卯困 해장술로 거나하게 취하고 나니 有興愜幽居 흥취 있어 그윽한 삶이 쾌족하구나 신수(信修)라고 하는 중은 나의 향리 파주(坡州)에서 생장하여 낙수 (洛水)의 남쪽에 초가를 짓고 살았다. 성품이 방탕하고 익살맞아서 말만 하면 포복절도(抱腹絶倒)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또 재물을 쓰는 데 인색하고 물건을 아끼는 법이 없어서 가산(家産)과 전지(田 地)를 모두 여러 조카들에게 나누어주었는데 보습과 호미로 밭갈지 아니하고도 여름에 항상 쌀밥을 먹었다. 중이 늙어서 얼굴이 탈바가 지[假面] 같았는데, 머리를 흔들고 눈을 굴리며 16나한(羅漢 부처의 제자들)의 형상을 하되,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고, 또 다른 사람의 행 동거지를 보면 문득 그 모양을 시늉하며, 비록 평소 알지 못하던 높 은 벼슬아치도 한번 보면 구면인 것같이 이름을 부르며 서로 너, 나 하였다. 절 앞에 사는 늙은이에게 젊은 아내가 있어 중이 그 여자와 더불어 서로 정을 통하였다. 늙은이가 집안이 어려워서 중의 덕을 입고자 하여 아내를 데리고 절 속에 와서 붙여 살았는데, 중도 또한 늙은이를 사랑하여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많이 주었다. 세 사람이 한 이불을 덮고 함께 자되 서로 시기하지 아니하여 사내아이 하나와 계 집애 하나를 낳았는데 중은, “노인의 자식이다”하고 “노인은 또한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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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炙]

서거정, 사가시 집 제7권, 시류 (詩類), 여양(閭 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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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炙]

서거정, 사가시 집 제2권, 시류

상(和尙)의 자식이다” 하였다. 중이 절에 있으면 노인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밭에서 채소를 가꾸었으며, 중이 만약 길을 떠나면 노인이 짐을 지고 그의 종이 되곤 하였다. 절에서 산 지 몇 해 만에 아내가 죽었는데, 여전히 중을 따라 살았으니 그 의(義)가 형제와 같았다. 노인이 죽자 중이 업고 가서 장사를 지내주었다. 중이 술마 시기를 좋아하여 엄청난 양의 술을 고래가 물마시듯 하였다. 사람들 이 혹 속여서 심지어 쇠 오줌이나 흙탕물 같은 다른 것을 갖다주어 도 한번에 쾌히 마시고 나선, “이 술은 아주 쓰다” 하였다. 또 밥을 잘 먹어 마른 밥이나 단단한 떡이라도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잠깐 동안에 먹어 치웠다. 여러 사람이 모인 가운데서도 공공연히 어육 (魚肉)을 먹었으므로 사람들이 보고 비웃으면, “이것은 토(土 오자 (誤字)인 듯하다)이다. 내가 죽인 것이 아닌데 먹는다고 무슨 상관 이 있겠느냐” 하였다. 경인(庚寅) 연간에 내가 상(喪)을 당해 파주에 있을 때 중이 항상 왕래하였는데, 나이가 70을 넘었는데도 기운은 여전히 정정하였다. 혹 어떤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아내를 두고 고 기를 먹느냐”라고 물으면 중은 말하기를, “이 세상 사람은 망령되이 사념을 일으켜서 이욕(利慾)으로 서로 싸우며, 혹은 마음속에 포악 함을 감추고 혹은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저 이름난 출가자 (出家者)들도 또한 모두 이와 같아, 향기로운 고기 냄새를 맡고서도 억지로 침을 삼키며,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도 흔들리는 마음을 힘써 바로잡는다. 나는 이와 달라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먹고 여색(女色)을 보면 취하기를 물이 쏟아지듯이 하며, 흙이 구덩이를 메우듯이 하여 물건에 마음이 없고 작은 사심도 모두 없앴으니, 내가 내세(來世)에 여래(如來)가 되지 못하면 반드시 나한(羅漢)이 될 것이다. 세상 사 람들이 제 재물을 아껴서 축적하는 데 힘쓰는데, 이 몸이 한번 죽으 면 곧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것이니, 생전에 맛있는 음식 먹고 즐김 만 같지 못하다. 대개 남의 자식이 되어 그 아비를 섬김에 있어서 모름지기 큰 떡을 만들고, 맑은 꿀 한 되와 빚은 술과, 썬 고기로 아 침저녁으로 올릴지니, 죽은 뒤에 마른 것과 마른 과일, 남은 술잔과 식은 불고기를 관 앞에 놓고 울며 제사지낸들 죽은 사람이 이를 먹 겠느냐. 자네는 미처 이렇게 어버이를 섬기지 못했을지라도, 자네 자 식에게는 이와 같이 하여 자네를 섬기도록 함이 좋을 것이다” 하였 다. 때로 밥을 앞에다 놓고 방울을 흔들어 경(經)을 외면서 스스로 혼을 부르기를, “신수(信修) 신수여, 죽어서 정토(淨土)에 태어나거 라. 살아서는 비록 도리를 어기고 날뛰었으나 죽어선 마땅히 진실하 여라”하고, 곧 소리 내어 크게 울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처량하였다. 그 후 손뼉을 치며 크게 웃고는 주인에게 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바랑을 메고 사라져버렸다. 又到閭陽驛 또 여양역에 당도하여 望望海嶠雲 멀리 해산의 구름을 바라보노라 炙曾長日冷 불고기는 허구한 날 썰렁했는데 席不蹔時溫 자리는 잠시도 다슬 겨를이 없네 雁外靑山近 기러기 너머론 청산이 가까웁고 鴉邊白雨昏 까마귀 가엔 소낙비가 자욱한데 詩成還忘却 시를 지었다가 도로 잊어버리고 乘醉過前村 거나한 채로 앞마을을 지나가네 士龍蜚步入雲間 사룡은 날아올라 구름 속에 들어갔는데 齷齪從來我獨頑 종래에 국량 좁은 나만 홀로 완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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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類), 근보, 윤보가 화답해 왔으므로, 다시 앞의 운을 사용 하다. (제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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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牛心 炙 소 염통 불고기)

서거정, 필원잡 기 제2권, 필원 잡기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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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炙]

이긍익, 연려실 기술 제12권, 선 조조 고사본말 ( 宣祖朝故事本 末), 선조의 아 름다운 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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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炙]

조선왕 조실록 , 인조 22년 갑신 (1644,순치 1), 10월27일 (신 사), 황헌을 불 러서 만나 심기 원의 모반에 대 한 정상을 묻다

嗜學還同嗜美炙 학문 즐김은 되레 좋은 불고기 즐김과 같고 得詩猶勝得高官 시 얻음은 오히려 고관 얻은 것보다 낫다네 人心料理顔先赧 인심에 대처하자면 얼굴이 먼저 붉어지고 世事商量鼻欲酸 세상일을 상량하자면 코가 시큰해지누나 夜久小窓渾不寐 깊은 밤 작은 창 아래 잠 못 이루노라니 東峯月色爛銀盤 은쟁반 같은 달이 동봉에 둥실 떠오르네 (1, 3수 생략) 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은 총명이 뛰어나 널리 경사(經史)에 통 하였고, 더욱이 사학(史學)에 능하였다. 《자치통감강목》이 환하게 뱃속에 있어, 역대의 고사(故事)를 묻는 자가 있으면 말이 떨어지기 가 무섭게 곧 응답하여 말하기를, “몇권 몇째 장에 있다.” 하여, 한번 도 실수하는 법이 없었다. 세종 때에 사정전 훈의(思政殿訓義)를 짓 는데, 공의 공로가 많았으며, 국조 이후로 사학에 능통한 자를 손꼽 는다면 공을 으뜸으로 삼았다. 세종의 총애가 날로 높더니, 일찍 죽 어 그 포부를 크게 펴보지 못하였다. 공은 술을 잘하였는데, 일찍이 집현전에서 동료들과 더불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송나라 여러 학사들이 차[茶]의 품질을 논하는데 자소탕 (紫蘇湯)을 제일로 삼았고, 《사림광기(事林廣記)》에는 궁중의 아 름다운 요리로는 증계(蒸鷄 닭찜)를 제일로 삼았다.” 하니, 공이 미 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자소탕(紫蘇湯)이 어찌 새로 익은 술의 맛 만하며, 증계가 어찌 우심적(牛心炙 소 염통 불고기) 만하랴.” 하니, 온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왕은 강하고 굳세고 과단스러우며,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천성이 효 성스러우며, 영기(英氣)와 지혜가 출중하며, 성품이 검소하여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사냥하는 등의 오락에 마음을 두지 아니하며, 음식에 두 가지 맛을 하지 않으며, 의복은 새것만 입지 않고 빨아서 입으니, 비빈(妃嬪)들도 역시 사치한 의복을 감히 입지 못하였다. 난 리를 겪은 뒤에는 더욱 검소한 것으로 바탕을 삼아, 궁중에서 밥알 하나라도 땅에 떨어뜨리지 못하게 하며 이르기를, “이것이 모두 농부 들이 고생해서 얻은 물건인데, 편히 앉아 먹는 것도 이미 사치스럽 거늘, 하물며 함부로 없앨 수가 있느냐.” 하였다. 언젠가 한번은 나인 (內人)이 불고기 먹는 것을 보고,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짓지 못하는 데 사람이 소를 죽이는 것도 매우 불인(不仁)한 짓이거늘, 하물며 지금은 깨끗이 패한 뒤니, 비록 소 잡는 것을 엄금하여도 오히려 번 식시키지 못할까 두려운데, 어찌하여 임의로 도살하게 둘 수 있느 냐.” 하였다. 황헌이 부총관으로 도총부에 입직했는데, 상이 그를 불러서 만나보 고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에 대한 정상을 물으니, 황헌이 일체 당초 고변할 때의 공사(供辭)와 같이 그 일을 죽 진술하였다. 상이 이르 기를, “모르겠지만 무슨 일로 나를 원망하여 이런 흉모를 꾸몄던가?” 하니, 황헌이 아뢰기를, “상을 원망했다는 말은 신이 듣지 못했습니다마는, 흉패한 말에 대해 서는 차마 듣지 못할 것이 있었습니다. 또 회은군(懷恩君)이 날마다 와서 모였던 것을 보고, 신이 정형(鄭蘅)에게 묻기를 ‘회은군도 이 모의에 참여했는가?’ 하니, 정형이 말하기를 ‘회은군은 미처 알지 못 한다. 거사하는 날에야 그를 맞이하여 옹립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역적 심기원의 말을 들으니, 회은군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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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에 참여한 것 같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의 뜻은 과연 회은군을 옹립하려 했던 것인가, 아니면 한(漢)의 왕망(王莾)·동탁(董卓)과 같이 역성 혁명을 하려 했던 것인가?” 하니, 황헌이 아뢰기를, “오로지 회은군에게만 뜻이 있지 않았던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역적 심기원이 평소에 무슨 일을 하였던가?” 하니, 황헌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해 12월부터 비로소 그의 문하를 출입하게 되었는데, 무 사(武士)가 왕래하는 것을 볼 수 없었고, 문사(文士)도 출입하는 것 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문사를 가장 미워하여 매우 심하게 거절 하였는데, 흉역의 모의는 실로 문사에게 죄를 얻음으로 인하여 분이 나서 발단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의 집에 무슨 재이가 있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심기원이 지난해에 자기 집 뒤에 연정(蓮亭)을 짓고, 정자 가운데에 소나무를 심기 위해, 채문형(蔡門亨)을 사산 감역(四山監役)으로 삼 아, 금년 정월에 채문형으로 하여금 남산의 어린 소나무 한 그루를 정자에 옮겨 심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심기원의 온 가족 이 모두 꿈에 그 소나무를 보았는데, 그 소나무가 사람처럼 말하기 를 ‘너희들은 모름지기 나를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그 렇지 않으면 의당 너희 집을 멸망시킬 것이다.’ 하였답니다. 그 꿈을 깨고 나서는 온 집안이 놀라 두려워하여, 다시 그 소나무를 본래 있 던 곳으로 옮겨 심었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임경업(林慶業)이 망명한 후로 항상 역적 심기원의 집에 있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그 집에 두지 않고 승사(僧舍)에 숨겨두었었다고 하는데, 일찍이 보 니, 역적 심기원이 중들과 사귀어, 그의 집에는 항상 중 한두 명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역적 심기원이 일찍이 무기를 만드는 일이 없었는가?” 하니, 황헌이 아뢰기를, “무기를 만드는 것을 신은 보지 못했으나, 사람들이 모두 ‘심기원·심 기성(沈器成)의 집에 활과 화살 및 전건(戰巾)이 많이 있었다.’고 하 였습니다. 김연(金淵)·김집(金潗)·나영록(羅永祿)·김대수(金大守)가 모두 그의 심복인데, 그중에도 김연·김집이 가장 신임을 받았으니, 황해도 지방의 무뢰배들을 불러 모은 것은 모두 김연·김집이 한 짓 입니다. 또 김연이 체포되던 날에 그의 집을 수색해보니, 소를 잡아 불고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 매우 많아서, 군졸에게 나누어 먹인 흔 적이 현저했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군관 가운데 양반이 많았는가, 상놈이 많았는가?” 하니, 황헌이 아뢰기를, “군관이 거의 6백 명에 달했는데, 대다수가 무뢰한 상놈이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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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고기[炙]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 불고기[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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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骨 董]

이익, 성호전집 제2권, 시(詩), 국밥[澆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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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박동량(朴東亮), 기재잡기 1(寄 齋雜記一), 역대

“군관은 본디 일정한 규칙이 있는데, 어찌 이렇게 많을 수가 있는 가?” 하니, 황헌이 아뢰기를, “외방에서 그 정해진 숫자를 모르고 이문(移文)에 따라 보냈기 때문 에, 공역(公役)을 기피하는 자가 모두 투신해 들어옴으로써 저절로 많은 수에 이른 것입니다. 여러 적들이 사실을 자복한 것이 마치 한 사람 입에서 나온 것처럼 똑같았고, 서로 끌어댄 사람이 전혀 없었 습니다. 이는 역적 심기원이 재물과 비단을 주어 모두 심복으로 만 들고 늘 한 사람씩 불러서 감언 이설로 꾀어, 그들로 하여금 각기 혼자만 그 사실을 알도록 하였으므로, 여러 적들이 서로 알지 못하 여 다른 사람을 증거로 끌어댈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 계책이 흉악하고 비밀스럽기가 과연 이렇게까지 극도에 이르렀 었구나.” 하였다. 승지 이지항(李之恒)이 아뢰기를, “사대장(四大將)에 소속된 군관에 대해 혁파해야 한다는 논의가 전 부터 있었습니다. 계해년 이후로 변란이 일어날 때마다 한번도 군관 으로 힘을 얻은 적이 없었는데, 신도 수령으로 있으면서 일찍이 보 니, 무사 중에 조금 재예가 있는 자는 모두 대장의 집에 이름을 붙 여버렸기 때문에, 여러 고을에는 장관(將官)에 합당한 자가 없었습 니다. 지금 비록 군관을 모조리 혁파하지는 못하더라도, 여러 대장으 로 하여금 사적으로 군관을 거느리게 하지 말고, 별도로 호위청(扈 衛廳)을 설치하여 그들을 소속시켜서 숙위(宿衛)에만 대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역적 심기원의 일을 또한 거울삼을 만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숫자를 정하라는 뜻을 이미 하교하였으니, 병조로 하여금 다시 더 자세히 조사하도록 하라.” 하였다. 물러가려고 하자, 상이 황헌을 더 있으라고 명하고 술과 안 주를 내렸다. 食前羅衆具 밥상에 음식이 널려 있지만 珍勝炙莫加 불고기보다 더 좋은 건 없어라 甲第燔蒭豢 부잣집에선 가축 고기를 굽고 田廬用菜瓜 농가에선 나물로 전을 굽는다 悲辛工部句 슬프고 서럽다는 건 두보의 싯구요 單設晏嬰家 돼지고기만 놓은 건 안영의 집일세 悅口同天下 입이 좋아함은 천하가 다 같은데 衰翁嗜獨多 이 늙은이는 유독 많이 좋아한다 骨董吾無厭 골동은 내 아무리 먹어도 좋은데 塡腸澆饡佳 창자를 채우기로는 국밥이 제일일세 下嚥惟己分 목에서 삼키면 바로 내 뱃속에 있으니 鼓腹是生涯 배를 두드리며 사는 태평한 생애로세 妄欲輕陶䱥 망녕되이 도제를 가볍게 여기려 하고 聊將當庾鮭 애오라지 이를 유해와 맞먹는다 하노라 誰方時混混 누가 시국의 혼란함에 비겼는가 稻菜合淸齋 쌀밥과 나물이 청재에 제격이로세 포도부장 전임(田霖)이 어느 날 당번으로 도적을 잡으려고 재인암 (才人岩) 곁에 잠복하고 있었는데, 인성부원군(홍윤성(洪允成))의 집 근처에서 대여섯 사람이 어두운 밤중에 갑자기 덤벼들면서 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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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의 옛이야기 1[歷朝舊聞一], 세종(世宗)

아무개 집 사람인데 우리를 어떻게 할터이냐고 하였다. 전임이 그들 을 손수 잡아서 묶으면서, “공(인성군)이 어찌 너희들을 풀어 관법을 범하게 했겠느냐.” 하였다. 그 무리들이 마구 욕지거리를 하여도 대꾸하지 않고 더욱 심하게 결박하자 한참 만에야 비명을 지르면서 조금 늦추어 달라고 애걸하였으나 끝내 용서하지 아니하였다. 날이 밝자 그들을 몰고 가서 공을 뵙고, “이놈들이 세력을 믿고 망령된 행동을 한 것이지 참으로 도둑질 한 것은 아니니, 바라건대 이후로는 잘 단속하여 주십시오. 공에게 누가 미칠까 두렵습니다.” 하니, 공이 크게 기뻐하며 뜰에 내려와 그의 손을 붙잡아 끌어 올리 면서 말하기를, “이런 좋은 사람을 어찌 서로 알게 되기가 늦었을까. 자네 술은 얼마 나 마시며, 밥은 얼마나 먹는가?” 하였다. 전임이 대답하기를, “오직 공께서 명하시는 대로 먹겠습니다.” 하니, 곧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비 빔밥과 같이 만들고 술 세 병들이나 되는 한 잔을 대접하니, 전임이 두어 숟갈에 그 밥을 다 먹어 치우고 단숨에 그 술을 들이켰다. 공 이 더욱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자네가 무슨 벼슬에 있는가?” 고 물으므로, “벼슬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내금위에 보직되어 있습니다.” 하니, 공이 드디어 임금께 아뢰어 선전관에 발탁시켰다. 이로부터 왕 래하기를 친밀하게 하여 거리낌없이 드나들었다. 어느 날 전임이 찾아가 공의 문 밖에 당도하였는데 공이 마침 호상 (胡床)에 걸터 앉아 어린 계집종을 뜰 아래 나무에 거꾸로 묶어 놓 고 활을 가득이 당기어 막 쏘려하고 있었다. 전임이 꿇어 앉으며 그 까닭을 물었더니, 공이 말하기를, “한번 불러서 대답을 하지 않기에 쏘아 죽이려 하는 참이다.” 하였다. 전임이 공수(拱手)하면서 “죽이는 것보다는 소인에게 주시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하니, 공이 웃으면서 그러하라 하고, 곧 주어 버리므로 전임이 종신 토록 데리고 살았다. 공이 언젠가 달밤에 홀로 앉아 있다가 이웃 사람이 말재주가 있어 익살을 잘 부린다는 말을 듣고 곧 불러다가, “지금 달은 밝고 바람은 고요하며 안석도 서늘하여 자려 해도 잠이 오지 않는데, 자네가 무슨 말을 가지고 나의 심심함을 풀어주고 내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겠는가?” 하였다. 그 사람이 두서너 번 굳이 사양하므로 공이 뒤따라 말하기 를, “말해 보라. 내가 담 밖에 있는 조그만 집을 너에게 줄 터인데, 자네 가 종신토록 편안히 지낼 것이다.” 하였다. 그 사람이 사양하고 한참 있다가 일어나 절하고 말하기를, “이 말은 소인이 지어낸 것인데 속되어서 대인께서 들을 만하지 못 할 것 같습니다.” 하였다. 공이 “너무 사양하지 말고 빨리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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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박경리, 토지 7 권, 나남출판사,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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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박경리, 토지 10 권, 나남출판사,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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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박경리, 토지 11 권, 나남출판사,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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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고기포

이육, 청파극담 (靑坡劇談) 47 ( 김 현 룡 1-[449] 함흥 민부사)

하니, 그제야 꿇어 앉으며, “못가 수양버들 대여섯 그루가 2,3월이 되자 긴 가지가 휘늘어져 초 록 장막을 두른 것 같고, 4,5월에는 붉고 흰 연꽃들이 흐드러지게 피 고, 6,7월에는 수백 개의 수박이 푸른 구슬이나 조롱박처럼 주렁주렁 매달리는데, 찌는 듯한 여름날에 따다가 쪼개면 빛깔은 주홍 같고 물은 찬 샘물 같으며 맛은 꿀 같도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이 손을 저어 말리면서, “말하지 말게, 말하지 말어. 입에서 침이 질질 나와 못 견디겠다.” 하면서, 급하게 아이를 불러 그 문서를 가져다 주었다. 그 사람이 돌 아가 문서를 보니, 장획(臧獲)과 재산이 그 속에 가득하였다. 대개 공의 천성이 엄하고 혹독하여 법도를 지키지 않는 일이 많았으 나 가끔 하는 일이 기발하기가 이와 같았다. 청파(靑坡) 동리 사람 들이 지금도 공의 전해 오는 사적을 말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두만이 아버지는 잘산다 하던가요?” “두만이가 야물어서 땅도 사고, 진주 가서 산다 카더마는.” 월선은 쪼깐이집이라던 비빔밥집 얘기는 하지 않는다. 자기 처지와 흡사한 얘기여서 말하기 민망스러운 것이 다. “하필 두만이 아버지 얘기는?” “…” “죽은 정한조 그 사람 식구 들이 진주서 고생을 한다 카더마. 그라고 나는 잘 모리지마는 관수 라고,” 관수와 연학이는 쪼깐이 비빔밥을 찾아들었다. 잔주름이 생기고 좀 늙은 서울네는 완연하게 싫은 표정을 지었다. 가게는 텅 비어 있었 다. 아침나절이어서 손님이 없었던 것이다. 관수가 먼저 자리에 앉으 며 “여기 머 좀 안 줄라요, 아지마씨?” “아직 준비를 못했어요. 아침 아니예요?” “설마 김치도 없다 하겄소? 술도 엎어지믄 코 닿을 곳에 얼매든지 있일 기고, 아 참 술 가지로 보내거든 두만이 좀 보자카 소.” 쪼깐이집이 어디냐고 물어서 강쇠는 찾아갔다. 마당 한구석에 짐을 내려놓고 가겟방으로 들어간 그는 “여기 비빔밥 한 그릇 주소.” 서울 네가 힐끗 쳐다본다. 심부름하는 아이가 밖을 향해 “비빔밥 하나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니 술부터 먼저 주소. 무신 술이 있노.” 아 이한테 묻는다. “소주, 정종, 탁배기도 있소.” “소주를 도라.” 소주를 마시고 날라온 비빔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드는데 연락이 나타났 다. 강쇠가 뭐라 하려는 순간, 외면을 한 연락은 “안녕하십니까, 사부 인.” 하고 서울네한테 말을 건다. 사부인이라는 말에 당황한 서울네 는 “어서오세요. 오래간만입니다.” “바깥사돈은 안 계시네요.” “늘 점 방에 계시지요. 약주 드시겠어요?” “예, 한잔만 주이소.” 그새 살이 쪄서 그런지 서울네는 별로 늙은 것 같지 않았다. 따뜻한 정종을 마 시며 연학은 “지나가다가 술 생각이 나서 들맀는데 사돈간에 서로 보기가 어렵소.” “왜 아니겠어요. 가끔 오십시오.”연학이 수작을 하는 동안 강쇠는 비빔밥 그릇을 비우고 물러나 앉으며 “잘 묵었다. 꿀맛 이구마는.” 하고 너스레를 떤다. 여흥민씨가 함흥부사가 되었는데 권모술수에 능했다. 당시에 덕원 부사가 사슴육포를 함경도감영에 바치는데, 늘 맛이 없고 잘못 만들 었다고 감사에게 퇴송을 당했다. 덕원부사는 이를 매우 걱정했는데 아전이 방책을 올리며 말하기를 “함흥감사는 늘 함흥의 육포가 좋다 고 칭찬하니 그곳에 가서 만드는 방법을 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덕원부사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늙은 아전을 함흥에 보내 비 단을 가지고 가서 육포 만드는 법을 배우게 했다. 민부사가 그 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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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고기

동각잡기(東閣雜 記) 상(上) (김 현룡2 -[ 3 7 4 ] 심정(沈貞)ㆍ일 내시(一內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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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萵苣]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 만물편(萬 物篇) ○소채류 (蔬菜類), 상추 [萵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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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生薑)

서거정, 사가시 집 제12권, 시류(詩類), 김 자고(金子固)가 만두(饅頭)를 보 내준 데에 사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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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生薑)

어우야담(於于野 譚) 365 (김현 룡 4-[343] 올 공금 팔자(兀孔 金八字))

에게 밥과 술을 대접하고는 말하기를 “이 방법은 매우 쉬운 것이야. 덕원에 대추나무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있다고 하자 민부사는 “덕 원에 있는 가장 큰 대추나무를 구해서 그것을 베어다 가운데를 사용 해서 방망이를 만들고, 사슴고기를 잘게 찢어서 자루에 넣고 반쯤 삶은 다음 포판에 넣고 대추나무 방망이로 그것을 다지는 거지. 그 러면 맛있고 쫄깃하게 되는 거야. 대추가 많이 열리는 나무로 해야 더욱 쫄깃해져.”라고 했다. 덕원에서 민부사의 말대로 육포를 만들었 더니 비록 만개의 방망이로 다져도 사슴고기는 부스러지고 응결되지 않았다. 감사의 책문일이 되자 덕원부사는 병을 핑계로 시간을 끌며 사람을 보내 다시 민부사에게 만드는 방법을 물었다. 민부사는 웃으 면서 “네 방법은 아주 잘못된 거야. 누가 고기를 삶으면 응결된다고 했느냐?”고 했다. 민부사는 대추가 많이 열리는 아주 큰 대추나무가 덕원의 자랑거리인 것을 알고, 이를 베어버리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형조(刑曹)에서 판결을 신속히 잘해 옥에 죄인이 없이 비면 왕에게 보고하고, 그러면 상을 받는다. 강희맹(姜希孟)이 형조 판서 때 판결 을 명민하게 해서 옥이 비니, 관리들이 보고하려는 것을 강희맹이 말렸다. 그런데 심정이 형조 판서일 때 마침 옥이 비어 막 보고하려 하는데, 그 순간 한 포교가 소를 잡아 금육법을 어긴 범인을 잡아 옥에 가두려 했다. 심정이 늙은 관리에게 “사슴고기가 꼭 쇠고기와 비슷하니라”하고 살짝 귀띔했다. 곧 늙은 관리가 눈치 채고 그 범인 을 조사한 다음 “쇠고기가 아니고 사슴고기였다”고 판결해 석방하고, 바로 옥이 비었음을 보고하여 상을 받았다.(중종) 萵苣名旣著 상추란 이름이 이미 알려져 葱蒜品相齊 파 마늘과 나란히 일컬어지지 露葉敷新圃 이슬 젖은 잎이 채마밭에 크고 風莖長夏畦 바람 부는 여름밭에 줄기 자란다 饁彼盈筐採 들밥을 내갈 때 광주리에 담고 供賓滿掬携 손님 대접할 때 한 움큼 뜯는다 蒙君能少睡 상추 덕분에 잠을 줄일 수 있는데 耕種趁晨鷄 파종은 이른 새벽에 해야 하네 朱榼初開見 붉은 통을 처음 열어보니 饅頭白似霜 만두가 서릿빛처럼 희어라 軟溫宜病口 보드라움은 병든 입에 딱 알맞고 甛滑補衰腸 달착지근함은 쇠한 창자를 보하네 甕裏挑梅醬 항아리엔 매실 간장을 담았고 盤中搗桂薑 쟁반엔 계피 생강도 찧어 넣었네 居然能啖盡 어느덧 다 먹고 나니 厚意儘難忘 후한 뜻을 참으로 못 잊겠구려 속담에 '올공금 팔자‘라는 말이 있는데, ’올공금‘은 장구의 줄을 양쪽 가죽에 거는 갈고리, 즉 용구철(龍鉤鐵)을 뜻하고, ’팔자‘는 음양오행 설에서 말하고 있는 운명관을 나타내는 말이다. 옛날에 전주(全州) 상인이 생강을 한 배 싣고 평양 대동강에 정박했 다. 생강은 남쪽 지방에서 생산되고 관서 지방에서는 나지 않는 물 건이라 값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1천 펄의 베, 또는 1천 석의 곡식 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었다. 상인은 평양의 한 기생과 친분을 가져, 수년 사이에 그 생강 한 배 를 모두 그녀에게 바쳤다. 상인의 재물이 다 떨어지니 기생은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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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生薑)

월정만필(月汀漫 筆) (김현룡 7-[283] 생강 나무( 生薑樹上 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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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生薑)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 만물편(萬 物篇) 소채류(蔬 菜類), 생강(生 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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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湯)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 탕(湯)

을 내쫓았는데, 상인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부끄럽고, 그리고 머물 곳 이 없어서 그 기생집에 머물면서 머슴살이를 자청했다. 말에게 먹이 주는 일과 땔나무 마련하는 일 등 힘든 일을 하면서 고통을 감수했 다. 기생이 다른 남자와 안방에서 잠잘 때 부엌에서 불을 때며 쭈그 리고 앉아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러다가 하루는 상인이 돌아가야 하겠다고 기생에게 말하니, 기생 이 노자(路資)로 돈을 주기는 아깝고 해, 오랫동안 방치해 둔 못 쓰 는 장구를 꺼내어, 거기에 걸려있는 16개의 ‘올공금’을 주면서, 갖고 가서 쌀과 바꾸어 양식으로 하라고 했다. 상인은 그것을 받아 좋아하면서 가지고 오다가 길가 모래에 문질러 녹을 닦아 보았다. 그랬더니 검정색이 빛나 윤이 나면서 보통 쇠와 달랐다. 상인은 황강(黃岡) 장날에 이것을 가지고 가서 펼쳐놓고, “1 백만 냥으로 팝니다”하고 외쳤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와서 그 올공 금을 자세히 보더니, “이것은 보통금의 10배 값이 넘는 ‘오금(烏金: 검정색 금)’이다.”라고 말하고 사겠다고 했다. 상인은 그 사람과 함께 전주로 와서 1백만 냥을 받고 그것을 팔았 다. 곧 상인은 옛날의 생강 본전을 갚고도 동방 갑부가 되었으니. 사 람들은 그를 ‘오금장자(烏金長者)’라 불렀다. 그리고 사람 운수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올공금 팔자’라는 속담이 여기에서 나왔다. 윤근수(尹根壽, 1537~1616)가 병인년(丙寅年, 1566)에 중국에 가 서, 중국 국자정(國子正)인 육광조(陸光祖)에게 다음 사항을 질문했 다. 즉, 강절 선생(康節先生: 邵雍)이, ‘생강이 나무에서 난다’고 한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육광조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말은 중국 속담으로 그 유래를 갖고 있다. 옛날 한 사람이 잘 모르고 생강은 나무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사람이 “생강은 땅에서 나며 나 무에서 난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하고 말하니, 나무에서 난다고 말 한 사람은 기어이 자기 말이 맞다고 하면서 맞섰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이 생겨, 틀린 사람이 나귀 한 마리를 주기로 내기를 했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 확인하니, 생강이 어찌 나무에서 나느냐고 하니, 나무에서 난다고 한 사람이 틀린 것으로 되었다. 이 사람은 나귀를 건네주면서, “내 나귀를 주기는 준다마는 그러나 생강은 나무에서 난다는 내 말이 맞다”라고 우기고, 끝내 자기 주장 을 굽히지 않았다 한다. 이런 얘기로 인해 그 속담은 식견이 좁아 무엇을 잘 모르면서, 끝까지 자기 말이 맞다고 고집하는 사람을 비 꼬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라 했다. 卓彼畦中物 우뚝해라 저 밭에 있는 식물 能殊衆菜形 다른 채소와는 형체가 달라라 剛堅同玉朮 단단하고 굳기는 옥출과 같고 連結類黃精 연이어 맺힌 모양은 황정을 닮았네 喫罷胸先豁 먹고 나면 가슴이 먼저 후련하고 餤多體自平 많이 먹으면 몸이 절로 평안하지 通神且去穢 정신이 통하고 탁한 기운 없애니 曾著聖人經 일찍이 성인의 경전에 드러났네 齒决雖云美 씹어먹는 고기맛 좋다지만 湯煎味亦滋 탕으로 끓여도 맛이 좋아라 羔豚元絶勝 염소와 돼지는 물론 매우 맛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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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현진건, 운수좋 은 날, 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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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정약용, 다산시 문집 제9권, 책 문(策問), 염책 (鹽策)

魚蟹亦新奇 물고기나 게도 또한 별미이지 適口調鹹淡 입맛 맞추려 소금으로 간 맞추고 充腸酌飽飢 창자 채우려 떠서 배불리 먹는다 只嫌殷帝號 단지 은나라 왕 이름을 꺼려 當食每遲遲 먹을 때마다 천천히 떠서 먹노라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 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 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 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살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묻는다. 소금은, 모든 일에 필수적인 것이요 만백성들이 원하는 것이 다. 백성의 식생활(食生活)을 돕고 국가의 재용(財用)을 넉넉하게 하는 것치고 소금보다 더 중대한 것은 없다. 칡베와 소금을 조공(朝 貢)한 사실이 요(堯) 임금 시대에 처음 보였으니, 불로 밥을 짓던 최초에는 바닷물을 끓여 소금을 만들 줄 몰랐던 것인가. 강노(剛鹵 간석지(干潟地))의 상(象)이 《주역(周易)》의 설괘전(說 卦傳)에 이미 기록되었으니, 복희씨(伏羲氏)가 괘(卦)를 그리기 전 에 간석지(干潟地)가 있었던 것인가. 제사(祭祀)에는 반드시 아름다 운 물건을 귀하게 여기는 것인데 반대로 고염(苦鹽)을 쓰는 것은 무 슨 뜻인가. 손님 접대에는 기름진 음식을 마다 않는 것인데 유달리 형염(形鹽)을 쓰는 것은 무슨 예(禮)인가. 제어(齊語)에는 ‘관이오(管夷吾)가 어염(魚鹽)의 판로(販路)를 열어 제후(諸侯)들을 이익되게 하였다.’ 하였고, 《관자(管子)》에는 ‘관이 오가 염철(鹽鐵)의 이권을 독점하여 만민(萬民)에게 해독을 끼쳤다.’ 하였다. 두 사람의 훼예(毁譽)가 이렇게 틀리니, 두 책의 시비(是非) 를 분명히 말할 수 있겠는가. 진(秦) 나라는 제(齊) 나라를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나라를 잃었으 니, 동중서(董仲舒)가 ‘소금의 이익이 옛적의 배나 되었다.’ 한 말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오왕(吳王 유 비(劉濞))이 한(漢) 나라를 찬탈 할 뜻을 본디부터 품고 있었는데도 반고(班固)가 ‘소금의 이익이 오 왕으로 하여금 반역을 일으킬 마음을 싹트게 하였다.’ 한 것은 엉성 한 말이 아닌가. 염관(鹽官)은 원수(元狩 한 무제(漢武帝)의 연호) 연간에 창설하였으나 국고는 비었고, 소금 값은 지절(地節 한 선제 (漢宣帝)의 연호) 연간에 감하였으나 군국(郡國)이 매우 풍부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소금이 진실로 국가의 재용(財用)을 돕지 못하는 것인가. 우책(禺筴)은 어떤 법이고 뇌분(牢盆 소금 굽는 가마)은 어떤 물건 인가. 논란을 제기한 문학자(文學者)들의 설은 무엇이고, 염관(鹽官) 을 회복시키자고 간(諫)한 이는 누구인가. 경서(經書)에 의하면 지 염(池鹽)ㆍ석염(石鹽)ㆍ정염(井鹽)ㆍ지염(地鹽)은 이미 성주(成周) 때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하였고, 사서(史書)에 의하면 못에서 석염 을 파내고 바닷물을 말려 소금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후위(後魏) 때 처음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 소금 만드는 여러 방법이 진한(秦漢) 때 와서 폐지된 것이 아닌가. 염지(鹽池)와 염정(鹽井)은 모두 몇 구멍이나 있고 수염(水鹽)ㆍ애염(厓鹽)은 모두 몇 종류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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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염(靑鹽)ㆍ녹염(綠鹽)ㆍ백염(白鹽)ㆍ홍염(紅鹽)ㆍ흑염(黑鹽)은 그 색깔이 같지 않고, 잠염(蠶鹽)ㆍ난염(欒鹽)ㆍ봉염(蓬鹽)ㆍ냉염(冷鹽) ㆍ맥염(陌鹽)은 그 이름이 각기 다르다. 이것들이 생산되는 지명(地 名)과 쓰이는 용도를 모두 가리켜 말할 수 있는가. 견침(甄琛 후위(後魏) 때 사람)이 염관(鹽官)의 혁파를 힘써 주장한 것은 어쩌면 너무 지나친 의논이 아닌가. 유동(劉彤)이 전적으로 백 성에게 이익이 된다고 말한 것은 어쩌면 말과 실제가 부합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유안(劉晏)의 상평법(常平法)은 마땅한지 마땅하지 않 은지가 분명하지 않고, 한유(韓愈)가 관(官)에서 전매하자는 의논에 대해 공박한 논장(論狀)은 너무 엄격하다. 희령(熙寧 송 신종(宋神 宗)의 연호)ㆍ원풍(元豊 송 신종(宋神宗)의 연호) 연간의 염법(鹽 法)은 하북(河北)까지 아울러 전매하였고, 《대명률(大明律)》에는 참형(斬刑)으로까지 판결하였다. 이에 대한 시비(是非)와 곡직(曲直) 을 모두 상세히 말할 수 있는가. 한염(寒鹽)은 무슨 책에 보이고 유 염(乳鹽)은 어느 지방에서 생산되는가. 대저 소금은 백성들이 늘 먹어야 되는 것이다. 비록 오곡(五穀)이 있어도 맨밥을 먹을 수는 없고 비록 여러 가지 나물이 있어도 나물 을 그냥 절일 수는 없다. 소금으로 초와 간장을 만들고 소금으로 육 장(肉醬)을 담근다. 소금으로 나물을 무치고 장조림을 만들며, 소금 으로 국의 간을 맞추고 약성(藥性)을 조화(調和)시킨다. 날마다 먹 는 음식 가운데 한 가지라도 소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없다. 백성이 필요로 하는 것이 이미 간절하니 국가의 권장이 의당 후하여 야 될 터인데, 한(漢) 나라 이후로부터 소금에 대한 행정(行政)을 까다롭게 하여 그 이익을 독점하였다. 관(官)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고 형벌이 지나쳐 코와 발꿈치를 베면서도 딱하 게 여길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천지(天地)의 정리(正理)를 해치고 백성들의 원망이 쌓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대대로 독점 행정을 계승 (繼承)해 오면서 끝내 고칠 줄을 몰랐으나 재용(財用)은 더욱 침체 되어 경비(經費)를 이어대기 어려웠다. 선왕(先王)의 세대(世代)에 는 소금에 대한 이익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국가가 부강하고 백성이 풍족한 것이 오늘날보다 훨씬 나았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리나라는 법도(法度)를 세운 것이 여러 왕조(王朝)보다 훨씬 뛰어 나서 염장(鹽場)이 혹 궁가(宮家 대군(大君)ㆍ왕자군(王子君)ㆍ공주 (公主)ㆍ옹주(翁主)의 집)에 소속되어 있기도 했고, 염세(鹽稅)는 군현에만 바치게 하였으므로, 탁지(度支 호조(戶曹))의 경비(經費) 를 소금에 의지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러다가 일단 균역법(均役 法)이 설치됨으로부터 한 조각의 사전(私田)도 모두 관(官)의 토지 대장에 흡수됨에 따라 몇 개의 소금가마까지도 모두 무거운 세금을 물게 되었다. 세액(稅額)을 충당하기가 어렵게 되자 염업(鹽業)에 종사하는 사람이 더욱 적어졌으니 손해와 이익이 서로 어긋나 백성 들이 잘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영남(嶺南)은 뱃길이 중간에 통하였으므로 관(官)에서 염창(鹽倉)을 설치하였고, 관북(關北)은 소금가마의 이익이 적은데도 백성은 염세 (鹽稅)를 바쳐야 한다. 반대로 내륙(內陸)의 산골은 소금이 금옥(金 玉)같이 귀하므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협잡하는 방법과 폐단의 조목을 낱낱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이제 그 세금을 공평하게 하 고 병들고 여윈 백성을 소생케 하여, 위로는 국가의 재용(財用)에 모자람이 없고 아래로는 백성의 식생활이 곤궁하지 않도록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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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어우야담(於于野 譚) 464 (김현 룡 6-[30] 묘 향산 별천지(妙 香山別天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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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어우야담(於于 野譚) 503 (김 현룡 7-[37] 용신(龍神))

어떤 방법을 써야 하겠는가. 여러 선비는 반드시 본디부터 가슴에 쌓아 둔 경륜(經綸)이 있을 것이니, 각자 마음껏 기술하라. 우리나라는 산지가 험준해서 중국 도잠(陶潛)이 쓴 <도화원기(挑花 源記)>에 나오는 별천지 같은 곳이 많이 있을 수 있다. 특히 묘향산 북쪽에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다. 가정 융경(嘉靖隆慶) 사이에 한 백성이 송아지를 지고 길도 제대로 없는 산속으로 들어가 고 있었다. 관청에서 도적으로 알고 잡아 추궁하니, “송아지가 걸어갈 수 없는 험한 산속에 송아지를 지고 들어가 좀 넓은 곳에 풀어놓고 길러 그 힘을 빌어서 땅을 개간해 곡물을 심어 가꾸려 한다.”고 대답했다. 그 래서 그 근거지가 어디인지 가보자고 해, 산속에 들어갔으나 길을 찾지 못했다. 곧 이 백성은 고의로 관청을 속인다고 해 죽음을 당했 다. 천계(天啓) 2년(1622) 유몽인이 송천사(松泉寺)에서 법환(法環)스 님을 만나니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젊을 때 묘향산 향로봉 북쪽 아득한 곳에 옛날 향산(香山)의 별세계가 있어서 사람이 살았고, 지 금도 세상을 피해 들어가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 말 을 들은 법환은 소나무 껍질과 잣나무 잎으로 양식을 만들어 그곳을 찾아 들어가니 8일 만에 삼림이 울창한 한 곳에 닿았다.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땅에 조를 심었으며, 말꼬리같이 큰 조 이 삭이 곳곳의 시렁에 많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바위 위에 나무를 연 결해 큰절을 지었으며, 방마다 온돌로 따뜻한데 100여 명의 승려들 이 살고 있었다.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고, 소나 말이 없으며 수레도 물론 없었다. 다만 소금을 구하기 위해, 나가는 길에 표시를 하며 나갔다가, 그 표 시를 보고 돌아온다고 했다. 소금은 세 번을 볶아서 열 번 볕을 쪼 여 넓은 잎으로 단단히 싸서 비를 맞아도 물이 스며들지 않게 해 지 고 온다고 했다. 여기에서는 소금이 없어 가장 큰 고통이었으며 나 무의 즙으로 음식맛을 내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100세를 넘 겨 살고 있어서 정말 별천지라 할 만했다. 법환은 이곳에서 한 달쯤 있다가 돌아왔는데, 소금을 못 먹어 몸이 말라 뼈만 남았다. 옛날 만호(萬戶) 황유(黃裕)가 여연·무창(閭延茂昌) 지역에서 4월에 산속에 들어가 빙설(氷雪) 진흙구덩이에 빠졌었는데, 얼음 속에 큰 물고기들이 많아, 손으로 잡아 나무에 걸어 말렸다가 갖고 나왔다고 했다. 이 옛날 향산이 거기와 가까운 곳이어서 풍토가 비슷해 토질 이 좋은 것 같았다. 황유가 그 산속의 얼음 진흙구덩이에 빠졌다가 나온 후로 다리의 관절염이 완전히 나았다. 만력 무오(萬曆戊午, 1618) 여름 5월에 10장(丈)이나 되는 상선(商 船)이 장사하기 위한 소금을 가득 싣고 용산(龍山) 강에 정박해 있 었다. 이때 갑자기 모진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치더니, 적룡(赤龍) 이 나타나 그 배 위를 가로질러 걸쳤다. 적룡의 머리는 물속에 잠기고 꼬리 부분만 물 위에 나타나 있는데, 꼬리 끝은 넓고 매끈했다. 허리는 배 크기만 하고 길이는 수십 척이 나 되었다. 꼬리가 물결을 일으키는데, 물이 설산(雪山)처럼 일어 배 에 실린 소금을 모두 흩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배가 뒤집혔다가 수일 후에 바로 되었다. 선인들이 선주(船主)를 꾸짖으면서, “선주가 재물을 아껴 섬을 지날 때에 다른 배들은 성황신(城隍神)에게 제사하는데, 이 배만은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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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간수)

박지원, 연암집 제10권 별집, 엄 화계수일(罨畫溪 蒐逸), 박 열부 (朴烈婦) 사장 (事狀) 예조에 바치기 위해 찾 아와 청하므로 대신 지어 준 것 이다.

로 지나쳐서 화를 당한 것이라 했다. 지난번에는 해룡(海龍)이 배를 따라 한 강의 잠두(蠶頭) 아래에까지 와서, 배를 엎고 뒤집어서 선 인들이 많이 죽었고, 이번에는 배에 실린 소금을 모두 물속에 빠뜨 린 것이라고 했다. 이때 용산 사람들이 많이 나와 구경하고 혀를 내 둘렀다. 옛말에 “용의 성품은 인간의 재물을 탐낸다”고 했는데, 그 말이 거짓 이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포로가 되어 가서 남만(南 蠻)으로 장사하는 사람을 따라가 보니, 배를 귀갑(龜甲)으로 둘러싸 이게 만들어, 바가지가 속이 빈 것처럼 물에 뜨게 해 파도에도 침몰 하지 않게 한 것이 있었다. 바다에는 용사(龍蛇)가 많아 배에 부딪히면 배를 전복시킨다. 뱀은 구불구불 헤엄치지만 용은 똑바로 헤엄친다. 용의 형태도 여러 가지 여서, 뿔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또 어떤 것은 날개가 있고 어떤 것은 말처럼 생겼다. 용사(龍蛇)가 배에 접근하면 모두 징을 쳐 소리를 내고 닭털을 불살라 냄새를 피운다. 그러면 용과 뱀들은 코를 움츠 리면서 고개를 들고 달아난다. 남부(南部 한양의 오부(五部) 중 하나)에 사는 아무 직책을 맡은 아 무개 등은 작고한 사인(士人) 김국보(金國輔)의 아내 밀양 박씨가 절사(節死)한 사실을 삼가 정장(呈狀)합니다. 저희들은 박씨의 이웃 에 살고 있는데, 이달 열아흐렛날 밤 삼경에 이웃집 문지게를 누차 두들기며 급한 목숨 구하라는 소리가 있으므로, 위아래 여남은 집이 일제히 놀라 일어나 급히 그 까닭을 물었더니, 바로 박씨가 독약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되어 그 집안이 허둥지둥 어찌할 줄을 모르고, 이웃에 이에 대한 경험방(經驗方)을 여기저기 물어보아 만의 하나나 마 살릴 길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이 일제히 그 집에 모여 그가 마신 독약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바로 간수였습니다. 그래 서 방약(方藥)을 이것저것 쓰게 하고 쌀뜨물을 여러 번 퍼먹여 보았 으나 이미 어쩌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에 온 집안이 슬피 부르짖어 차마 듣지 못하도록 참혹했습니다. 대개 박씨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에 대한 효순(孝順)이 천성에서 우 러나와, 의복과 음식의 범절에 있어 부모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으 며, 몸 한 번 움직이고 발 한 번 옮기는 사이에도 반드시 어른의 뜻 을 받들어 중문 밖을 내다보지 않고 바깥 뜰에는 노닐지 않으며, 단 장(端莊)하고 근칙(謹飭)하여 매사에 여자의 법도를 따랐으니, 비록 이웃집의 계집종이나 물건 팔러 다니는 할멈도 그 얼굴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닐곱 살 때에 벌써 소문과 칭송이 무성하여 사방에서 딸 가진 자들은 누구나 박씨의 어린 딸을 칭찬하는 것으로써 자기 딸을 가르치고 타일렀습니다. 나이 열여섯 살이 되자 김씨에게 출가하였는데, 그 지아비가 불행히 도 병에 걸렸고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약물 치료도 계속하기 어려웠 으므로 비녀와 가락지 등속을 다 팔았으며, 병간호를 할 사람이 없 었으므로 천역(賤役)을 자청하였으며, 모진 추위 심한 더위에도 허 리띠를 풀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잠 한숨 붙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 리고 점치고 기도하기를 극진히 아니한 적이 없어 매번 자신이 대신 죽게 해 달라고 칠성님께 빌었는데, 그 말을 마음속으로 하면서도 행여나 남이 알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급기야 지아비가 죽어 초혼(招魂)하게 되자 크게 한 번 부르고는 까 무라쳤다가 겨우 깨어났으며, 그 이후로는 입을 다물고 한 숟갈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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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마시지 않은 채, 죽어서 지하로 따라가기를 맹세하였습니다. 때때 로 정신을 잃고 숨이 넘어가려 하여 친정 부모나 시부모들이 백방으 로 달래고 타이르며 천 가지로 간곡히 권하자, 겨우 죽을 마음을 늦 추고 억지로 부드러운 얼굴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친부모와 시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서 그렇게 한 것이지, 죽으려는 마음은 이미 굳어져 있었습니다. 그 형제들이 처음에 가끔 말을 걸 어 의중을 떠보면, 그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목이 막혀 하는 말이, “내가 김씨 집안에 들어와서 이미 한 점의 혈육도 둔 바 없으니 삼 종(三從)의 도리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살아서 또한 무얼 하오리 까? 한낮의 촛불같은 목숨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아 오래도록 부모님 께 근심만 끼쳐 드리고 있으니, 이 역시 큰 불효입니다.” 하였습니다. 항상 조그마한 방에 따로 거처하여 발걸음이 뜰을 내려 가지 않으니 사람 얼굴을 보기가 드물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 집안 사람들이 무언중 그 뜻을 살피고서 극력 방비하여, 비록 화장실 가 는 사이에도 반드시 그 동정을 살폈으며 잠시 동안이라도 감히 방심 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반년이 되어 방비가 조금 풀어지자, 이달 초열흘경에 턱밑에 갑자기 조그마한 부스럼이 생겨 그다지 아픈 지경까지 이르 지도 않았는데, 박씨는 그 오라비에게 청하여 의원에게 물어 고약을 붙이곤 하므로 그 집에서는 더욱 방심했던 것입니다. 열아흐렛날 밤 화장실에 가는 길에 그 어머니가 따라가다가 앞과 뒤가 조금 떨어졌 는데 갑자기 대청 위에서 넘어져 거꾸러지는 소리가 들리기에 놀라 쫓아 나와 보니 삽시간에 이미 구완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리라 생각하고 그 곁을 두루두루 살펴봐도 칼 이나 비단 같은 도구들은 없고, 간수만 대청에 흥건하였습니다. 대개 그 집안에서 막 침장(沈醬)을 하려고 소금을 달아매어 짠맛을 빼고 있었으므로, 몰래 그 액체를 마시고서 기절하여 토했던 것입니다. 워 낙 일이 경각에 일어났기 때문에 먼저 살피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 일을 목격하고 서로 돌아보며 화들짝 놀라고는, 모두 말하기를, “놀랍도다, 이렇게 정말 죽다니! 평소에 효순하다는 소문이 이미 저 와 같이 자자했고, 오늘 절개를 지켜 죽은 결백한 모습이 또한 이와 같이 우뚝하니, 한 마을에 사는 정의로 보아 어찌 관청에 소지(所志) 를 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니, 그 아버지가 울며 중지시키면서 하는 말이, “내 딸이 저의 뜻을 이룰 수 있었으니 열녀라 이를 수는 있지만, 나 에게 지극한 슬픔을 끼치고 죽었으니 효녀라고 이를 수는 없소. 지 금 일을 크게 벌인다면 이 역시 죽은 자의 본뜻이 아닐 것이오.” 하였습니다. 저희들이 일제히 말하기를, “이 일은 친청집과는 관계없는 일이오.” 하고서 물러 나와, 마을 안의 제일 어른의 집에 일제히 모였으며, 소 지를 올려야 마땅하다는 데에 아무도 이의가 없었습니다. 이에 그동 안 듣고 본 바를 주워 엮어 일제히 예조의 문밖에서 부르짖는 바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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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국역조선왕조실 록, 숙종 1년 을 묘( 1 6 75 , 강희 14), 9월24일 (기유), 사헌부 에서 사재감 하 인들이 재살한 소의 정육을 훔 친 것을 종중 추 고토록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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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송천필담(松泉筆 譚) 권3

아아!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감동하여 분발하게 하는 방법은, 진실로 남다르고 정숙한 행실을 포상하고 정표(旌表)하는 은전을 베푸는 데 에 있습니다. 영화(榮華)를 탐하거나 은혜를 바라서가 아니라 실은 풍속을 돈후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옛날에 남녀간에 권고하고 충 고하는 말은 여항(閭巷)에서 부르는 풍요(風謠)의 가사에 지나지 않 았지만, 그것이 성정(性情)에서 나와 풍속의 교화에 도움이 된다면 시를 채집하는 신하들이 이를 왕국에 바치고 악(樂)을 맡은 관원들 이 음악으로 전파하여 사방을 교화하고 민심을 감발(感發)시켰는데, 지금 박씨의 아름다운 행실과 곧은 절개는 보통을 훨씬 넘었으며 담 담하게 의(義)에 나아가고 결백하게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는 국가가 백성을 교화하고 좋은 풍속을 만들고자 하는 정책에 비추어 볼 때 실로 빛이 나는 일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빨리 임금님께 아 뢰어 정려(旌閭)의 은전을 얻게 하여, 이로써 풍속의 교화에 조금이 라도 도움이 되게 하고 정렬(貞烈)을 지킨 죽은 이의 넋을 위로한다 면, 저희들이 다행히도 열녀와 한마을에서 산 덕분으로 본받는 바 있을 것이며, 그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헌부(司憲府)에서 말하기를, “지난번에 사재감(司宰監)에서 포(脯)를 만들 소 13척(隻)을 재살 (宰殺)하여 머리·발·내장·갈비·뼈·껍질·기름을 팔기를 허락하고 금하 지 말게 하는 일을 본부(本府)에 보고하였는데, 이제 본감(本監)의 하인(下人)들이 정육(正肉)을 훔쳐서 본감 안에서 굽고 삶다가 어수 선하게 붙잡혔으니, 일이 지극히 놀랍고 해괴합니다. 청컨대, 종중 과죄(從重科罪)하고, 입직(入直)한 관원은 먼저 파면한 뒤에 추고 (推考)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하인을 나문(拿問)하고 수금(囚禁)하여 중하게 처벌하 도록 명하였다. 고례(古例)에는 비록 열 마리의 소를 잡을지라도 반 드시 소 한 마리를 제조(提調)에게 바쳤는데, 윤휴는 열 세 마리의 소에 다만 한 마리만 바친 것이 적다고 하여 성을 내어 꾸짖고, 이 동규(李同揆)를 부추겨서 나가 금란(禁亂)하여 죄를 얽게 하였으며, 내장과 껍질·기름이 백간(白簡)에까지 오르니, 보는 자가 전하여 웃 었다. 윤휴가 탐오(貪汚)의 심함이 재부(宰夫)와 더불어 소 머리를 다투면서 사람을 중상(中傷)하니, 사람들이 모두 침을 뱉고 더럽게 여겼다. 김안국 김정국 형제는 어려서 속리산에서 공부했다. 그곳에서 나오 다가 김정국이 길가의 풀을 가리키면서, “형님은 저 풀을 뜯어먹은 말이 왼쪽 눈이 멀고 앞니가 빠진 것을 알지요?”하고 말했다. 이에 김안국이 안다고 했다. 마침 말을 도둑맞은 사람이 숲속에 숨어있다 가 자기 말의 특징을 말하는 것을 듣고, 자기 말을 훔쳐간 사람으로 관청에 고발했다. 관장이 말의 특징을 알게 된 내력을 두 사람에게 물으니, “풀을 뜯어먹었는데 왼쪽은 남아있고 오른쪽만 뜯어먹었으 며, 풀이 뜯긴 자국을 보니 양쪽만 뜯기고 가운데가 남아있어서 알 았다.”고 대답했다. 관장이 기특하게 여겨서 냉면에 쇠고기를 넣어서 대접했다. 대접을 받고 나오면서 김안국이 “너는 지금 먹은 냉면의 메밀이 무덤 위에서 자란 것을 알지?”라고 물었다. 이에 김정국은 “알지요. 또한 그 쇠고기는 사람의 젖을 먹고 자란 소의 고기임도 현 도 알고 있지요?” 하고 되물었다. 김안국은 “일고 말고. 그런데 그 관장은 어떤 사람이지?”하고 다시 물으니, 김정국이 “스님의 아들이 지요.”하고 말해 두 소년은 함께 웃었다. 아 이야가를 들은 관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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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이순록(二旬錄) 상(上) (김현룡 2-[364]민진후 (閔鎭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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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차산필담(此山筆 談) 333 (김현 룡 3-[187] 홍 장이 딸(洪長貳 女))

관장에게 보고하니, 관장이 관리들에게 메밀과 쇠고기를 조사해보라 고 했다. 과연 메밀은 허물어진 무덤 위에서 자란 것이었고, 쇠고기 는 어미가 호랑이에게 물려갔으므로 사람 젖을 먹고 자란 송아지의 고기였다. 관장은 두 소년의 영특함에 놀라 서 집에 돌아와 모친에 게 자기 부친의 내력을 물었다. 그러자 모친은 어떤 모르는 스님과 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을 고백했다. 관장이 자신의 처지를 임금 에게 보고하니, 임금은 특별히 배려하여 승(僧)씨 성을 내려주었다. 민진후가 형조 판서일 때 누이동생인 홍우조(洪禹肇) 집에 갔다. 누 이동생은 남편 생일이 어제라면서 좋은 술을 내왔는데, 안주가 김치 뿐이었다. 술을 한 번 더 내온 누이동생은, “오빠가 이해만 해주면 안주도 가져오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제 생일에 송아지를 잡 아 고기는 있으나, 금육(禁肉) 명령 때문에 오빠가 형조 판서이므로 조심스럽다는 것이었다. 민 공은 웃으면서 고기를 가져오라 해 잘 먹었다. 그리고 나가면서, 군사를 시켜 이 집이 법을 어겼으니 종을 묶어 구속하라고 명했다. 홍씨 집에서는 하나뿐인 종이 구속되어 불 편했지만, 돈 28냥이 없어서 석방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 공이 그 돈을 대납하고 종을 빼내 주었다.(숙종) 만력 연간에 강릉에서 넉넉하게 사는 홍장이에게는 20세 된 딸이 있 었다. 부친이 시집보내려 하니 딸은 건너 주점의 머슴을 남편으로 맞겠다 했다. 부친이 말려도 소용없어, 그 머슴이 집안 쓰레기를 거 두려고 온 것을 보고 올라오게 해, 성씨를 물으니 이씨라고 하기에 이름을 익(益)으로 지어주고, 사위 삼겠다고 말하고는 목욕시켜 결 혼식을 올렸다. 딸은 부친에게, 곡식이 잘 안되는 한 섬지기 밭을 10년 기한으로 집 터로 빌려주고, 매일 양식 한 되씩과 가재도구 약간을 주면 족하다 고 했다. 부친이 허락하니, 그 터에 집을 짓고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 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일 길가에 널려 있는 짐승 똥 한 삼태기와 땔나 무 한 짐을 해오고, 집신 한 켤레씩을 삼으라고 했다. 이렇게 해 집 터 남은 부분에 거름을 잘해 참깨를 심어서 친정에 값을 받고 제공 하고 나머지는 팔았다. 그리고 아내는 열심히 길쌈을 해서 재산을 모으니, 10년 만에 큰 부자가 되었다. 곧 친정에 그 밭을 돌려주고 다시 집을 지어 살았고, 그동안 두 아들을 두었다. 아내는 다시 훈장을 두 사람 초빙해, 한 사람은 남편을 가르치게 하 고, 한 사람은 두 아들을 가르치게 했다. 이렇게 십 년을 노력하니, 이익은 학문을 이루어 진사급제도 했다. 이 때 부부는 40세가 되었 다. 아내는 아제 남편의 옛날 머슴으로 있었던 그 이름을 면해야 한다고 했다. 곧, 태어난 지 4,5년 된 소 일곱 마리를 잡아, 네 마리의 고기 는 계피·생강·마늘·참기름·간장 등에 절여 살짝 더운물에 데쳐 포를 만들고, 세 마리의 고기는 후추·꿀·궁궁(芎藭)이·겨자 등을 묻혀 소 금에 절여 젓을 담가 준비했다. 그러고는 남편과 같이 여자 종 둘만 데리고 서울 이이첨(李爾瞻) 집 뒷담 붙은 집을 사서 거처했다. 남편은 매일 의관을 갖추고 외당에 나와 옛 성현들의 전적을 보고 앉아 있게 하고, 누가 와서 애기를 하면 경서에 관한 것은 대답하고, 조정 정치에 관한 것은 일절 모른다고, 대답하라 했다. 한 달쯤 지나니 이이첨 집 종이 아이를 업고 놀러 왔다. 아내는 다 정하게 대하고, 마련해 두었던 그 쇠고기 포를 아이에게 주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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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차산필담(此山筆 談) 323 (김현 룡 3-[232] 김 번 부부(金璠夫 婦))

포를 아이가 갖고 갔는데, 이이첨 부인이 맛을 보니 생전 먹어 보지 못하던 진귀한 맛이 있었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맛을 보았으나 전 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이첨 부인이 종을 시켜 그 포를 조금 나누어 달라 했다. 부인은 정중하게 인사말을 전하고 매일 약 간씩을 올리겠다고 대답했다. 이이첨도 이 포를 먹어보고 감탄했다. 이이첨이 훌륭한 선비가 뒷집에 산다는 말을 듣고 하루는 찾아왔다. 정중히 인사하고 자리를 같이해 경서에 대한 얘기를 나누니 막히는 데가 없어 감탄했다. 이때 아내는 술상을 차려 내오면서 예나에 준 비한 그 쇠고기 젓을 술안주로 올려 보냈다. 이이첨이 이 젓을 맛보 고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진미라, 감탄하고 돌아가 부인에게 얘기했 다. 이이첨 부인이 또 여자 종을 보내 그 젓을 좀 나누어 달라 했다. 그 래서 아내는 매일 그 젓을 조금씩 보내주었다. 이이첨 집 뒷담이 무 너져 두 집이 통하게 되니, 이이첨 부인이 이익 아내를 그 담 무너 진 사이로 살짝 다녀가라 했다. 이익 부인은 한 번도 인사하지 않은 사이에 담 무너진 사이로 오가는 것은 비례(非禮)라고 거절하니, 이 이첨 부인은 부끄러워하고 사과 했다. 이이첨이 이익을 비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부인이 이런 사 람을 왜 추천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이이첨이 이익을 낭침(郎 寢)으로 추천했는데 불응하니, 다시 영시(令市)로 추천했다. 이익이 다시 불응하니, 다음은 남대(南臺)로 추천해 왕의 부름을 받았다. 이 익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관복을 입고 들어가 숙배하고, 그런 다음 에 선비 복장으로 바꾸어 입고 준비해 간 상소문을 읽었다. 그 내용 은 이이첨이 붕당을 만들어 나라 정치를 그르친다는 것이었다. 궁궐을 나온 이익 부부는 이날 밤 관직을 사직하고, 서울 집을 정리 해 시골로 내려가 훈장 노릇을 하며 살기로 했다. 이익은 나이 50에 공명을 이루었고, 얼마 지나 인조반정이 일어나니, 이이첨에 대한 상 소문 올린 것 때문에, 발탁되어 높은 관직을 맡았다. 이후 자손들이 융성했고, 장인 홍장이 집안도 해로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 영가인(永嘉人) 김번은 서울 남산 밑에 살았는데, 매우 학행(學行) 이 높았다. 그 부인 역시 현숙해, 남편이 독서에만 열중하도록 부인 이 가정을 꾸려갔다. 하루는 한 손님이 아침에 그 집 앞을 지나니, 종이 쇠고기를 소 한 마리 통째 지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손 님이 그 집에 들어갔는데, 아침밥 차려온 것을 보니 온통 채소 반찬 뿐이었다. 이상해 쇠고기 지고 들어간 것에 대해 물으니, 주인은 모 르고 있어서 종을 시켜 아내에게 물으니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다. 즉 오늘이 남편 생일이어서 쇠고기를 조금 사 와 구웠는데, 그것을 개가 물어가 먹더니 곧 죽었다. 그래서 그 고기에 독이 든 것을 알 고, 종에게 또 다른 사람이 그 쇠고기 사가는 것을 보았느냐고 물으 니 아니도 없었다고 하기에, 다른 사람이 사가서 피해를 입기 전에 그 고기를 온통 사 와서 뒤뜰에 묻었다는 설명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안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절하고, “부인의 이러 한 음덕은 뒤에 반드시 복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손님 역시 주인에게 절하면서, “이 일은 옛날 중국 초(楚)나라 재상 손숙오(孫 叔傲)가 어릴 때, 두 머리 달린 뱀을 죽여 사람들에게 음덕을 끼친 것과 같으니(당시 兩頭蛇를 보면 죽는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손숙오 가 양두사를 보고 자신은 죽더라고, 남이 또 보고 죽을까봐 뱀을 죽 여 묻었다는 얘기), 그 쇠고기 값이 헛되지 않고 반드시 복을 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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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청파극담(靑坡劇 談) 김 155 (김 현룡 3-[455] 관동 곽생 동비 (關東郭生童婢))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후 김번 집은 점점 구차해져 세 아들 중 장자가 기한(飢寒)을 못 이기어 죽었다. 이에 아내가 남편에게, “글만 읽어 아들이 굶어 죽었 으니, 친구인 평안감사에게 가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돈을 좀 얻어오 십시오.” 했다. 망설이던 김번은 할 수 없이 시장의 아는 사람에게 편지를 써서 40냥을 빌렸다. 이 돈 중 10냥은 아내에게 주어 생활하 게 하고, 30냥으로 종과 말을 세내어 타고 평양으로 행했다. 김번의 사정을 들은 감사는 돈 50냥을 주고, 7천 냥 수표를 써주면 서 시장에 가서 바꾸어 쓰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임진강에 이르 니, 한 부부가 붙잡고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했다, 김번이 이들을 말리고 까닭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의 동생이 개성에 바치는 상납전을 끌어서 소금장사를 했는데, 두 차례에 걸쳐 장마를 만나 소금이 다 녹아 7천 냥의 빚을 지고 죽고 말았다. 이 돈을 형 인 자기가 갚아야 하는데, 갚을 돈은 없고 내일이 기한이니 잡혀서 목숨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자살하려 한다는 설명이었다. 이 애기를 들은 김번은 평안감사가 준 7천 냥짜리 수표를 주면서 빚을 갚으라 했다. 집에 돌아온 김번은 아내에게 임진강에서 있었던 딱한 사람 애기를 하고, 그러나 돈을 주지 않고 오려니 가슴이 아팠다고 거짓말을 했 다. 이어 사랑방에 나와 있으니 아이들이 소리치면서 어머니가 자살 한다는 것이었다. 급히 들어가 구제하고 자살하려는 까닭을 물으니 아내는, “남편이, 돈이 없어 자살하는 사람을 보고 돈을 갖고도 구제 하지 않았으니, 우리 가문은 앞으로 자손에게 복이 없을 것이므로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죽으려 했습니다.”고 대답했다. 이 에 김번은 사실 돈을 주었으나 거짓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내는 같이 갔던 종을 불러 사실을 확인하고 자살을 단념했다. 김번은 평양에서 갖고 온 돈 50냥으로 빌린 돈을 갚고 나머지로 근 근히 살았다. 몇 달 후, 관청 군사들이 돈섬을 지고 김번 집에 들어 왔다. 이유를 물으니 내용은 이러했다. 강가에서 수표 받은 그 사람 이 현금으로 바꾸려고 시장에 가니, 시장 사람이 의심해 평안감사에 게 확인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김번이 친구에게서 받은 수표를 집에 갖고 가지 않고 어려운 지경의 사람을 구제했다는 사실을 안 평안감 사는 이 아름다운 일을 조정에 보고 했다. 그래서 임금이 알고 포상 으로 7천 냥을 김번에게 주라는 명령이 내린 것이었다. 관동 곽생은 문벌 가문으로, 한 스님과 친했다. 곽생이 사망하자 스 님이 묘지를 정해주었으나 곽생 아들이 거부했다. 스님이 다시 다른 곳을 정하니 곽생 아들이 좋아해 묘를 썼는데, 스님이 “군수밖에 나 지 않는다.” 했다. 따라갔던 여자 종이 자기 모친에게 얘기해, 스님이 먼저 정한 자리에 부친 묘를 이장하게 하게했다. 여자 종이 도망해, 모친에게 가서 양반 가문의 우둔한 총각에게 시 집갔다. 남편에게 글을 가르쳤으나 남편은 글을 깨치지 못했다. 남편 과 서울로 이사해 이이첨 집 이웃에 자리잡고, 남편을 매일 책상 앞 에 앉아 있게 했다. 여인은 소를 한 마리 사서 잘 먹이고 있다가, 이 이첨이 병이 나 입맛이 떨어졌을 때, 그 소를 잡아 포를 만들어 드 렸다. 이이첨이 그 쇠고기 포를 먹고 병이 나으니, 이이첨이 이 집을 방문했다. 그 때 책상 위에는 주역을 올려놓고 있었다. 이이첨이 여 인의 남편에게 관직을 내리게 했는데, 거부하고 시골로 내려갔다. 이 부부에게 세 아들이 있어서 모두 좋은 가문에 장가들고 학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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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천예록(天倪錄) 508 (김현룡 4-[102] 연산 군(燕山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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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겨)

금계필담(錦溪筆 談) 273 (김현 룡2-[376] 이 위경(李偉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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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명미)

용재총화(慵齋 叢話) 120 (김 현룡 7-[314] 봉사 따라 하기 (經師指示))

깊었다. 하루는 모친이 아들에게 이이첨의 비행을 적어 상소하라 했 다 아들들이 세력 강한 이이첨을 상소했다가는 큰 벌을 받는다고 거 절하니, 모친은 우겨서 상소하게 했고, 이로 인해 아들들은 벌을 받 았다. 얼마 후 인조반정이 일어나니, 이 아들들은 이이첨을 비난해 상소한 일로 큰 관직을 얻었다. 하루는 세 아들이 한 재상을 논박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여인 은 밤에 조용히 아들들에게 자신의 옛날 곽생 집 종이었던 신분을 애기하고, 남을 논박하는 일을 못하게 했다. 마침 도적이 이 얘기를 듣고 곽생 집에 연락하니, 곽생 아들이 가난하게 살다가 찾아왔다. 여인은 친척 오빠가 왔다하고 반갑게 맞아 잘 대접하고 아들들의 힘 으로 벼슬을 내리게 하니, 앞서 스님 말과 같이 관연 군수 자리를 얻었더라. 연산군이 말년에 황란(荒亂)이 심해, 환관이나 군중 노비를 시켜 조 정 대신들의 아내 중 자색이 있는 여인이 있으면 모두 불러들여 강 제로 음행했다. 하루는 하교(下敎)하기를, “재상 박순의(朴純義) 처 는 포요(抛腰:성행위 때 허리를 안음)와 감창(甘唱:성행위 때 感歎聲 을 발함)을 잘하고, 궁중에 머물기를 원하니, 정원(政院)에서는 그렇 게 알고 처리하라”라고 명했다. 앞서 한 소년 명사 아내는 연산군의 부름을 받고 크게 당황하지 않 고, 태연하게 얼굴을 꾸미고 대궐로 들어갔다. 연산군이 불러보고는 심한 악취가 풍기므로, 부채로 코를 가리면서 더럽다고 빨리 나가라 했다. 그래서 절개를 지킬 수 있었는데, 이 부인은 쇠고기 두 덩이를 썩혀 양쪽 겨드랑이에 넣어, 연산군 앞에 나아갔기 때문에 악취가 풍겼던 것이다. 그 가문에서는 모두 이 부인을 칭찬했다. 광해조 때 폐모론이 일 무렵, 이위경은 성균관 유생으로 폐모론을 반대했다. 이위경이 남산 밑에서 가난하게 사는데, 하루는 아내가 쌀 겨를 얻어 음식을 만들려고 불을 지피다가, 나무를 쪼갠다는 것이 손가락을 자르고 외마디소리와 함께 기절했다. 달려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면서, “대장부가 세상에 나서 처자 하나 못 먹여 살리고 이 지경이냐?”하고는 이이첨에게 달려가 협조할 것을 자원했다. 이렇 게 해 이위경은 인목대비 유폐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일에 앞장섰고, 이후 급제도 하고 벼슬이 부제학에 이르러 6,7년간 부귀를 누렸다. 인조반정이 일어나 형을 받고 사형장으로 나가는 수레 위에서, 손가 락질하는 구경꾼을 향해 이위경은 “세상 사람들이여, 배고픔을 좀 참 아다오”하고 외쳤다. 이위경은 배고픔을 못 참아 이렇게 끝맺으면서 후회했으니, 뒷사람들에게 경계가 되도다.(인조) 옛날 한 사람이 잘 우는 집비둘기를 몰래 숨겨가지고 시골로 가면서 중간에 한 집에서 자고 갔다. 이 사람이 시골에 가서 그 비둘기를 날려보냈는데, 비둘기는 반드시 자신이 투숙한 곳을 들렸다가 빙 돌 고 가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 비둘기도 일전에 묵었던 집에 들려 방울 소리를 내며 울고 세 바퀴 돈 다음 날아갔다. 이 집에서는 못 보던 새가 집에 와 울고 돌다가 날아가는 것이 무슨 재앙인 줄로 착각하고 봉사에게 가서 사실 얘기를 한 다음 점을 쳤 다. 봉사는 점괘를 보더니 재앙이 들었으니 경을 읽어 물리쳐야 한 다고 말했다. 이튿날 봉사가 와서, “반드시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더 커진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명미(命米: 神에게 바치는 쌀)를 내놓아라.” 하고 말했다. 봉사는 쌀을 가져와 상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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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손소장본(羅孫 所藏本) 139 ( 김 현 룡 6-[470] 이응 허(李應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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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총화(奇聞叢 話) 소 196 (김 현룡 1-[6] 이 덕중·이태중(李 德重·李台重))

려놓으라는 뜻으로 한 말인데, 집안사람들은 그 말을 ‘따라 하라’는 것으로 알고, 큰소리로 “명미를 내놓아라.” 하고 따라 외쳤다. 다음에 봉사가 “명포(命布: 神에게 바치는 베)를 내놓아라.” 하고 말 했다. 그러니까 집안사람들은 역시 말을 따라 하라는 것으로 알고, “명포를 내놓아라.” 하고 또 크게 따라 말했다. 이에 봉사는 “왜 이러느냐?”라고 말했다. 역시 모두 “왜 이러느냐?” 하고 따라 하니, 봉사는 화를 내고 일어나 나가다가 문 위의 가로지 른 나무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러니까 집안사람들도 모두 달려와 그 나무에 머리를 부딪쳤고, 키가 작은 아이들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서 머리를 부딪쳤다. 봉사가 대문으로 달려나가다가 묽은 소똥에 미끄러져 넘어지니, 집 안사람들이 다 나와 소똥에 미끄러지는데, 뒤에는 소똥이 다 없어지 니까 소똥을 다른 데서 가져와 얹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봉사가 당황해 동아(冬瓜) 넝쿨 속으로 들어가 숨으니, 역시 집안사 람들이 따라 들어갔는데, 장소가 좁아 아이들이 못 들어가니 “아빠 엄마, 우리들은 어디로 가요?” 하면서 울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말 하기를 “너희들은 남산 기슭 칡넝쿨 밑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더라. 서울 남촌(南村) 사는 이응허는 대대로 이름 있는 가문의 후손이었 고, 언행과 학문이 출중했지만 집이 너무 가난했다. 그 아내도 명문 가정에서 자라 남편을 잘 받들었다.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친구와 친 척이 약간의 쌀과 돈을 보내 주어서 아내가 말하기를, “이웃들이 떡 을 하고 소를 잡고 하지만, 우리들도 얼마의 쌀이 마련되었으니 떡 을 해먹을 수는 있다.”고 말하고, 몇 되의 쌀을 가지고 나가 찧어 부 엌에서 불을 때고 있었다. 이때 방안에 앉아 있던 이응허는 방이 따뜻해지자 노곤하여 잠이 들 었다. 갑자기 밖에서 말달리는 소리와 고함소리가 어울려 천지를 진 동하더니, 이상하게 생간 북방 오랑캐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 이고 잡아갔다. 이에 이응허도 밖에 나갔다가 아내와 헤어져 그 병 사들에게 포로가 되어 갔다.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 땅에 가니, 청나라 황제가 포로들을 하나씩 불러들여 심문하는데, 이응허의 청수(淸秀)한 모습을 보고 청나라에 서 관직을 맡아 벼슬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허락하니 황제는 글을 하느냐고 묻고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이응허 가 청산유수 같이 대답하니, 황제는 좋아하고 낭중(郎中) 벼슬을 시 켰다. 이후 이응허는 몇 년간 여러 관직을 거쳐 경대부가 되어, 고대광실 좋은 집에서 종들이 앞에서 시키는 일을 해주는 행복한 생활을 누렸 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편안히 앉았다가 낮잠이 들었는데, 누가 옆에 와 깨워 일어나 보니 아내가 떡을 만들어와 먹으라고 깨 우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지금까지 누렸던 부귀공명은 일장춘몽이 었음을 알았다. 이덕중은 집이 가난했다. 과거를 보러 가는 날 새벽에 그 부인이 이 웃에서 쌀 한 되를 빌려다가 나무그릇에 담아 놓고 잠이 들었는데, 꿈 속에 그 쌀의 낟알 모두가 용으로 변해 그릇 속에서 우글거리고 있었다. 곧 꿈을 깨어 그 쌀로 밥을 지어 막 상을 차리는데 덕중의 3종형 이태중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시골에서 과거 보러 걸어 올라온 것이었다. 덕중의 아내는 그 밥을 남편에게만 주려고 했다. 그래서 독중의 꾸중을 듣고, 아내는 꿈 얘기를 했다. 덕중은 쓸데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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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성호사설 (星湖僿說) 인사 문(人事門) (김 현룡2 -[ 4 8 8 ] 유춘(兪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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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야담(於于野 譚) 436 (김현 룡 2- [400]생 활고(生活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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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떡)

허균, 성소부부 고 제2권, 시부 2 추관록(秋官 錄), 오정(梧亭) 이 큰 떡을 보내 오므로 노래하다

는 소리라고 야단치고, 그 밥을 둘이 나누어 먹고는 가서 함께 급제 했다.(영조) 유춘은 정사공신 백증(伯曾)의 아들이다. 벼슬이 별제(別提)에 이르 렀으나 계모 서씨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 마침내 강가에 신을 벗어 놓고 멀리 도망했다. 뒤에 그 집에 한 시주승이 와서 쌀을 주니 머 뭇거리다가 그릇을 엎어 쌀을 쏟았다. 이렇게 하기를 두세 번 하기 에 보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용모를 자세히 얘기해 보니 곧 유춘이었다. 세월이 흐른 후 단산 동림사에 늙은 스님이 죽으면 서 진사급제한 백패와 관직 제수한 교지를 내놓고 불사른 뒤 죽는 것을 보았다.(조선 후기) 봄이 되면 한강 얼음이 녹으면서 얼음 위로 건너는 사람이 익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의금부의 일꾼이 쌀을 지고 얼음 위를 건너는데, 얼음이 꺼져 몸이 반쯤 물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같이 가던 사람이 “짐을 벗어 버리면 살아 나올 수 있다.”하고 소리쳤다. 짐을 지고 얼 음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사람이, “이 쌀을 벗어 버리고 살라고 하지 만, 굶으면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쌀을 지고 빠져 죽겠다.”라고 말하 고 물 속으로 사라졌다. 加林美稻白如玉 가림이라 좋은 쌀 하도 희어 옥 같은데 君家歲致三百斛 그대 집은 해마다 삼백 곡을 생산하네 擣炊軟飯勝雕胡 밥 지으면 난실난실 조호보다 썩 나으니 甘滑流匕飡不足 달고도 미끄러워 입에 절로 넘어가라 君言此米最宜餠 그대 말이 이 쌀은 떡에 가장 알맞으니 洗浸寒泉經一宿 찬 물에 담가 불려 하룻밤을 지낸 후에 細舂霜杵納大甑 서리같이 가늘게 빻아 큰 시루에 안쳐 놓고 文火濃蒸候至熟 느린 불에 슬슬 쪄서 농창하게 익거들랑 瓊膚滃析十字香 열십자로 쪼개 놓으면 경부마냥 향기로워 芳臭氤氳盪廚屋 맛난 냄새 뭉게뭉게 주방에 풍기거든 平昌石蜜甘勝蔗 평창이라 석밀은 설탕보다 훨씬 달고 東坪芹芽雜肥葍 동평이라 새미나리 살진 무 뒤섞어서 飣以花瓷薦佳客 꽃 자기에 곱게 차려 귀한 손님 대접하니 象筯紛紜恣飽腹 상저는 바빠바빠 실컷 배불리네 大饅牢九不足嘗 큰 만두 뇌구 찌면 맛을 보아 무엇하리 今我饞誕垂口角 나는 문득 군침이 입가에 흐르누나 歸來詑向細君說 집에 와서 자랑삼아 아내에게 말했는데 俄有叩門之女僕 이윽고 계집종이 바깥문을 두들겨라 方盤大笥陳中堂 사각 소반 큰 석짝 대청에 벌여 놓으니 雪糕燦然驚滿目 하얀 떡이 빛나빛나 눈에 가득 놀래이네 渾舍歡喜兒女顚 온 집안 기뻐하고 아들 딸 환장하여 環坐大嚼女塡谷 둘러앉아 먹어대라 골짝을 메우듯이 今秋不登俸未給 금년 가을 흉년들어 봉급도 모자라니 盤中闌干惟苜蓿 밥상에는 너울너울 다만 김치가닥 得此今始□兼食 이 떡 얻어 비로소 두 몫 밥을 먹게 되니 何須方丈羅腐肉 썩은 고기 한 길 넘게 고여 봤자 필요없네 感君恩重欲報君 소중한 은혜 느껴 갚아주고 싶고말고 吾有一語君試聞 내 이 한 말 그대는 시험삼아 들어보게 君持此物造相門 이 물건을 가지고 정승 문에 나아가면 相公嘗之亦感恩 정승님이 맛을 보고 역시 은혜 느낄 걸세 高官厚祿可力致 높은 벼슬 후한 녹을 힘껏 입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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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고려사(高麗史) 권 18, (김현룡 3-[103] 역졸 처(役卒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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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이원명,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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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어우야담(於于野 譚) 439

동야휘

終使餘澤流兒孫 마침내는 남은 복택 아손에게 흘려 주리 君不見幸州相公柄天官 그대는 못 보았나 행주의 정승님이 천관을 쥐고서도 東隣雜果充朝飧 동녘 이웃 잡과일로 아침 끼니 채우는 걸 執杯之臂不曾折 술잔 잡은 팔목도 꺾이지를 아니하고 朝自春坊夕薇垣 아침이면 춘방이자 저녁이면 미원일레 고려 의종은 온갖 놀이에 정신이 팔려 백성들을 많이 괴롭혔다. 그 21년 3월에 미행으로 금신굴(金身窟)에 가서 나한재(羅漢齋)를 올리 고 돌아오는 길에 중미정(衆美亭) 남쪽 연못에서 뱃놀이를 하며 즐 겁게 술을 마시고 놀았다. 처음 이곳 청녕재(淸寧齋) 남쪽 기슭에 중미정을 지을 때, 남쪽으로 흐르는 강을 흙을 쌓아 막아 인공 저수지를 구축했다. 그리고 여기 에 정자들을 짓고 오리와 기러기가 날아와 놀게 하며 갈대 숲이 우 거지게 했으니, 꼭 중국 강호(江湖)의 모습과 흡사하게 꾸몄다. 그래 서 이곳이 배를 띄워 노래하고 즐기며 놀기 좋은 곳으로 되었다. 이 공사가 진행되었을 때, 많은 동원된 역졸들은 각자 자기 집에서 밥 을 싸 가지고 와 먹으면서 일했다. 그 중 한 역졸은 집이 가난해 밥 을 싸 오지 못하고, 다른 친구들이 싸 온 밥을 한 숟갈씩 얻어먹었 다. 그런데 하루는 이 사람 아내가 밥을 싸 와서 그 동안 신세진 친 구들을 불러 같이 먹으라고 했다. 이 친구가 이상하게 여겨 아내에 게, “어디에서 곡식이 나 밥을 해왔느냐? 혹시 다른 사람에게 정조를 팔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도적질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 이에 아내 가 “내 얼굴이 못생겼으니 누구에게 몸을 팔며, 내 성품이 옹졸하니 겁이 많아 어찌 도적질을 했겠소? 내 이 머리를 깎아 팔아서 마련했 습니다.” 하고 머리에 쓴 수건을 벗어 보였다. 이 모양을 본 남편은 목이 메어 밥을 먹지 못했고, 옆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 다.(고려 중기) 윤원형은 그 첩을 쫓아내고 기생첩인 난정을 정경부인으로 봉했다. 그래서 윤원형과 이권관계를 가지려는 사람들은 난정과 많은 관련을 맺었다. 난정은 많은 쌀로 밥을 지어 말에 싣고 두모포 등지의 한강 변에 가서 물에다 던져 고깃밥을 주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나쁜 짓 한 것을 물고기에게 은혜 베풀어 후생의 죄를 면하려는 것이었다. 한번은 두모포에서 큰 고기가 잡혀 궁중에 바쳤는데, 윤원형의 이름 자인 ‘衡’자가 ‘行魚’로 풀이되므로 어떤 사람은 이 큰 고기의 잡힘은 곧 윤원형이 죽을 징조라 했다. 만력 47년(광해군 11년),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스님 다섯 명이 저자에 가다가 식사 부탁을 위해 마을의 한 집에 들 러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사랑채에는 아무도 없고 안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 쌀을 들이밀면서 5인의 식사를 지어 달라 했다. 스님들 이 한참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기에 독촉하니, 부인 목소리로 “우리 집은 선비집안으로, 종들이 다 죽고 또 흩어져 여자들과 아이들 일 곱 사람만 있는데, 밥을 굶은 지 5,6일이 되어서 밥을 보니 참을 수 가 없어, 우리들이 다 먹었으니 이 치마를 대신 가져가 팔아서 쓰시 오.”하고 비단치마를 내밀었다. 스님들이 거절해도 받아들이지 않아, 그 치마를 가지고 저자에 가서 쌀과 바꾸니 겨우 쌀 다섯 되밖에 되 지 않았다. 스님들이 쌀두 되로 식사를 하고, 나머지 서 되를 가지고 그 집에 갖다 주려고 가니, 이미 모두 다 쓰러져 죽어 있었다. 오래 굶은 창자는 천천히 죽을 먹어 움직이게 한 다음에 밥을 먹어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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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계서야담(溪西野 譚) 396 (김현 룡 4-[9] 박문 수(朴文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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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옥담시집(玉潭詩 集), 밥[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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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계서야담(溪西野 譚) 179 (김현 룡 3-[431] 이 병태(李秉泰))

는데, 갑자기 밥이 들어가 질식하여 죽은 것이었다.(조선 중기) 박문수가 암행어사로 나가 한 읍에서 날이 저물어 민가에 들어갔다. 15, 6세 된 총각이 나와서 가난해 며칠째 굶어 손님을 대접할 수 없 다고 거절했다. 박 어사가 허기에 지쳐 머뭇거리니, 총각은 천장에 걸려 있는 종이봉지를 몇 번 쳐다보더니, 봉지를 내려 가지고 모친 을 부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박어사가 밖에서 들으니, 이것으로 손님 밥을 지어 드리겠다고 말하 는 아들 보고, “그러면 네 부친 제사에는 무엇으로 밥을 짓느냐?”고 했다. 총각의 간청에 모친은 그 쌀로 밥을 지어 내왔다. 박 어사가 사정을 물으니, 양식이 떨어져서 부친 제사를 위해 쌀을 한 봉지 매 달아놓고 굶어도 그것은 손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러고 있는데, 밖에서 한 종이 와서 “박 도령은 빨리 나오라.”고 독 촉했다. 얘기를 들으니 그는 이 고을 좌수 집 종으로서, 이 총각이 좌수 집 처녀에게 청혼했다고 하여, 좌수는 가난한 것이 좌수를 모 욕했다고, 종을 보내 몇 번을 총각을 끌어다가 수모를 겪게 했는데, 오늘 또 끌고 가려고 왔다는 것이었다. 박 어사가 사정 애기를 듣고는 자기가 나서면서, “나는 박 도령의 삼 촌인데 내가 대신 가서 좌수를 만나겠다.” 하고는 그 종을 따라나섰 다. 박 어사가 곧바로 좌수가 앉아 있는 마루로 올라가서, “내 조카 는 양반인데 청혼을 거절하면 그만이지 왜 매양 욕을 보이느냐?” 하 고 따졌다. 이때 좌수는 종을 꾸짖으면서, “박 도령을 데리고 오라 했지, 이 미치광이 삼촌을 왜 데리고 왔느냐?” 라고 말하고 종을 벌 주려 했다. 곧 박 어사가 소매에서 마패를 내보이니, 좌수는 놀라고 뜰 아래로 내려가 엎드렸다. 그래서 박 어사는 좌수에게 3일 후에 바로 딸을 박도령과 결혼시키라고 명하고, 읍내에 들어가 암행어사 출도를 알 린 다음, 관장에게 조카의 결혼 준비를 모두 책임지고 갖추라고 명 했다. 결혼식 날, 박 어사는 박 도령의 상객으로 따라갔고, 관장이 또 이웃 고을 관장들을 많이 불러 이 결혼식에 참가하게 하니, 이날 마을이 떠나가는 것 같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고는 다시 좌수를 불러내 꿇어앉히고, 좌수 집 재산과 종들의 절반을 나누어 사위에게 주도록 명하고, 그 문서를 꾸며 어사 이름을 쓰고 마패로 도장을 누 른 다음, 관장 역시 증인으로 서명하고 도장을 누르게 한 다음 박 도령에게 주었다. 相彼香粳米 저 향긋한 쌀알을 보건대 能專粹美姿 그 모습이 너무도 곱구나 炊成凝玉雪 밥을 지으면 옥설을 모은 듯 餤破嚼瓊麋 밥을 먹으면 옥죽을 씹는다 飫口延軀命 입에 넣으면 목숨을 연장하고 充腸助乏飢 창자 채우면 굶주림을 달래지 顔淵無竊食 안연이 훔쳐 먹지 않았음을 非聖豈能知 성인이 아니면 어찌 알았으랴 이병태가 암행어사로 동부 지역에 갔는데, 한 읍을 지나쳐 마을에 이르니 배가 고파 어느 집에 들어가 요기할 것을 요청했다. 그 집에 서 한 여자가 나와 집이 가난하고 가장이 없어서 줄 밥이 없다고 했 다. 이공이, 남편은 어디 가고 없느냐고 물으니, 여자는 욕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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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동패낙송(東稗洛 誦) 250 (김현 룡 4-[43] 양 사언 모(楊士彦 母))

남편이 고을 이방인데, 기생에게 빠져 기생과 살면서 아내와 노모를 구박해 쫓아냈다고 말했다. 이 때 방안에서는 노파가 쓸데없이 남편 욕을 아무에게나 한다고 나무랐다. 얘기를 들은 이 공은 그 집을 나와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지나친 고을로 들어갔다. 이방 집을 물어 찾아 들어가니 마침 이방이 마루 에서 식사하고 있고, 기생첩이 옆에 있었다. 이 공이 시장하니 밥을 좀 달라고 했다. 이방은 이공을 아래위로 흝어보고는, 종을 불러 조 금 전에 새끼 낳은 개를 주려고 끓인 개죽이 남아 있느냐고 물어, 있다 하니 그 죽을 이 손님에게 주라고 했다. 이 공이 개죽을 앞에 놓고 말하기를, “당신이 비록 넉넉하게 살아도 아전 무리인데, 나는 밥을 얻어먹지만 양반 선비이다. 배가 고파 밥 을 좀 달라하면, 남은 밥을 주던지 당신 먹는 밥을 좀 덜어 주는 것 이 옳거늘 이 무슨 개죽을 준단 말이냐?” 했다. 곧 이방은 눈을 부릅 뜨고, “네가 양반이면 너의 집 사랑에 앉아 있어야지, 이 흉년에 왜 밥을 빌러 다니느냐?” 하면서 개죽을 이 공 얼굴에 집어 던졌다. 이 공이 이방 집을 나와 읍으로 들어가서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고, 고을 장부를 조사하니 관장도 흉년 구휼 곡식을 남겨 팔아 돈을 서 울로 송금한 것이 발각되었다. 곧 관장은 봉고 파직하고, 이방과 기 생첩은 매를 쳐 죽였다. 한 여인의 원망이 이런 지경에 이르게 했으 니, ‘한 여인의 품은 원한은 5월에도 서리치게 한다.’는 말이 맞도 다. 양사언 부친이 영광(靈光) 군수가 되어, 서울에서 영광으로 가다가 어느 마을 집에서 아침밥을 지어먹으려고 들어가니, 십이 세 가량 된 여자아이 혼자 있었다. 공방(工房) 아전들이 밥을 지으려 하니, 그 여자아이가 자신이 손수 진지를 지어 올리겠다고 했다. 또 군수 님 진지는 자기집 쌀로 지을 테니, 하인들 몫의 쌀만 달라고 했다. 그래서 아침밥을 지었는데, 정말 깔끔하게 잘 차려왔다. 군수가 기특해 부모에 대해 물으니, 아비는 고을 본관(本官) 장교이 고 어미는 밭에 나갔다고 했다. 군수는 청색과 홍색 부채를 선물로 주면서 농담으로,"이것은 내가 주는 폐백(幣帛)이다." 라고 말했다. 여자아이는 폐백을 맨손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방에 들어가 붉은 보자기를 갖고 나와 받았다. 군수가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려 할 무렵에 한 장교가 와서 아뢰었다. "군수님, 몇 해 전 어느 시골집에서 소녀에게 청·홍 부채를 폐백이라 하면서 주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 말을 듣고 군수가 기억한다고 말하니, 장교가 다시 아뢰었다. "그 아이가 바로 제 딸인데, 나이 십 육 세가 되어 시집을 보내려 하니, 군수님으로부터 이미 폐백을 받 았으므로, 군수님 아내가 되지 않으면 결코 다른 데는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고 아뢰었다. 군수는 곧 날을 받아오면 첩으로 맞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 처녀를 첩으로 데리고 왔다. 마침 군수의 본처가 사망하게 되자, 이 첩을 안 방으로 들여보내 집안일을 다스리게 했더니, 가정의 제반사를 완벽 하게 잘 처리했다. 이 첩에서 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아들이 양사 언이다. 그 뒤 군수가 죽자 집안 친척이 다 모였다. 첩은 장남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서 불러 앉히고 말했다. "뒤에 내가 죽게 되면 자네는 내 상복을 서모의 복으로 입게 될 것이다. 또 내가 낳은 자 식은 서자로 알려져 벼슬길이 끊어질 것이다. 그러니 내 지금 스스 로 자결하여 영감님과 함께 장례를 치르고, 상주들 역시 함께 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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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

태평한화(太平閑 話) 금서룡본(今 西龍本) 145 ( 김 현 룡 7-[210] 지불 배(池佛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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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 성호사설 제5권, 만물문 (萬物門), 생채 ㆍ괘배( 生菜掛 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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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상추

이덕무, 청장관 전서 제27~29 권, 사소절 1(士 小節一), 복식 (服食)

175

쌈,

정약용,

상추쌈

다산시

복을 입어주면, 내 아들은 적자와 구별이 없어질 테니, 그렇게 해다 오." 이렇게 말하고는 곧 칼로 자결을 했다. 장남과 친척들이 그 갸 륵한 뜻을 받들어 양사언도 적자처럼 대접하고 영감님과 함께 첩의 삼년상을 지내었다. 이렇게 서자가 아닌 것으로 된 양사언은 뒤에 과거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했다. 양사언이 서자라는 말이 있는데 참 말인가 보다. 고려의 높은 관직에 있던 지불배는 해학을 잘 했다. 일찍이 임금이 여러 신하들과 잔치를 열었는데, 임금이 지불배에게 한잔의 술을 하 사하니,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 좌우(左右)에서 일보는 사람을 불러 큰 술독을 가져오라고 했다. 임금이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저기 뜰에서 지키고 있는 제랑(諸 郞)들이 추운 날씨에 고생하니 함께 마시려고 그럽니다.” 하고 말했 다. 이 말을 들은 임금은 기뻐하고 위사(衛士)들에게 술을 내려 주 었다. 다른 날 임금이 신하들에게 밥을 하사했는데, 지불배는 먹지 않고 종이에 싸서 품속에 감추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임금이 그 까닭을 물으니, “금년이 흉년이라 백성들이 밥을 굶고 있으니, 그들과 나누 어 먹으려고 그럽니다.”하고 대답했다. 이에 임금이 기뻐하고 백성들 에게 곡식을 풀어서 진대(賑貸: 비축미를 꾸어 주어 백성을 구휼함) 하라고 명령했다. 원(元) 나라 사람 양윤부(楊允孚)의 시에, 更說高麗生菜美 고려 식품 중에 맛 좋은 생채를 다시 이야기하니 摠輸山後藦菰香 향기로운 새박나물과 줄나물을 모두 수입해 들여온 다 하고, 스스로 주하기를, ‘고려 사람은 생나물로 밥을 쌈싸 먹는다.’ 하였다. 우리나라 풍속은 지금까지도 오히려 그러해서 소채 중에 잎 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는데, 상치쌈을 제일로 여기고 집집마 다 심으니, 이는 쌈을 싸 먹기 위한 까닭이다. 장광필(張光弼)의 궁사(宮詞)에도, 宮衣新尙高麗樣 궁중의 옷차림은 고려의 모습을 새로 숭상하여서 方領過腰半臂裁 방령은 허리에 지나가건만 어깨는 반밖에 덮이지 않 는다 하였다. 지금 풍속에도 오히려 이런 제도가 있는데, 길이는 무릎까지 닿지 않고 넓이는 어깨까지 닿지 않으며, 양쪽 옷자락은 서로 싸이 지 않고 방령은 겨우 마주 닿는 것이 학창(鶴氅)처럼 생겼다. 양쪽 옆으로는 구슬과 가락지를 달아서 마주 끼우게 되었는데, 옷 이름을 괘배(掛背)라고들 한다. 광필의 시에 말한 것이 즉 이 괘배라는 것 인데, 풍속으로 되어 전해 온 지가 이미 오래다. 요즈음 이 괘배를 도복(道服) 위에다 덮어 입는 이도 약간 있으니, 추측컨대 고려 시대에도 역시 이와 같이 했고 원 나라 사람은 본떠 서 만들었던 것인 듯하다. 상추ㆍ취ㆍ김 따위로 쌈을 쌀 적에는 손바닥에 직접 놓고 싸지 말라. 설만(褻慢)한 행동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쌈을 싸는 순서는 반드시 먼저 숟가락으로 밥을 뭉쳐 떠 그릇 위에 가로 놓은 다음 젓가락으 로 쌈 두세 잎을 집어다가 뭉쳐 놓은 밥 위에 단정히 덮은 다음 비 로소 숟가락을 들어다 입에 넣고 곧 장을 찍어서 먹는다. 그리고 입 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서 볼이 불거져 보기 싫게 말라. 麥嶺崎嶇似太行 보릿고개 험한 고개 태산같이 험한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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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萵葉). 배추 잎(菘葉), 고 추장(椒醬)

문집 제4권, 시 (詩), 장기 농가 (長鬐農歌) 10 장(章)

순두부

계서야담(溪西野 譚) 165 (김현 룡 1-[489] 유 상(柳常))

天中過後始登場 단오명절 지나야만 가을이 시작되지5) 誰將一椀熬靑麨 풋보리죽 한 사발을 그 누가 들고 가서 分與籌司大監嘗 주사의 대감6)도 좀 맛보라고 나눠줄까 秧歌哀婉水如油 못노래는 애절하고 논에 물은 넘실대는데 嗔怪兒哥別樣羞 아가7)가 유별나게 수줍다고 야단이야 白苧新襦萬苧帔 하얀 모시 새 적삼에 노란 모시8) 치마를 籠中十襲待中秋 장롱 속에 길이 간직 추석 오기만 기다린다네 曉雨廉纖合種煙 부슬부슬 새벽비가 담배 심기 알맞기에 煙苗移揷小籬邊 담배 모종 옮겨다가 울밑에다 심는다네 今春別學英陽法 올봄에는 영양9)에서 가꾸는 법 따로 배워 要販金絲度一年 금사처럼 만들어 팔아 그로 일년 지내야지 新吐南瓜兩葉肥 호박 심어 토실토실 떡잎이 나더니만 夜來抽蔓絡柴扉 밤 사이에 덩굴 뻗어 사립문에 얽혀 있다 平生不種西瓜子 평생토록 수박을 심지 않는 까닭은 剛怕官奴惹是非 아전놈들 트집잡고 시비 걸까 무서워서라네 鷄子新生小似拳 작기가 주먹만한 갓 까놓은 병아리들 嫩黃毛色絶堪憐 여리고 노란 털이 깜찍하게 예쁘다네 誰言弱女糜虛祿 어린 딸 공밥 먹는다 말하는 자 누구더뇨 堅坐中庭看嚇鳶 꼼짝 않고 뜰에 앉아 성난 솔개 보는 것을 檾麻初剪牡麻鋤 어저귀 베어내고 삼밭을 매느라고 公姥蓬頭夜始梳 늙은 할멈 쑥대머리 밤에야 빗질하고 蹴起僉知休早臥 일찍 자는 첨지10)를 발로 차 일으키며 風爐吹火改繅車 풍로에 불 지피고 물레도 고치라네 萵葉團包麥飯呑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 合同椒醬與葱根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 今年比目猶難得 금년에는 넙치마저 구하기가 어려운데 盡作乾鱐入縣門 잡는 족족 말려서 관가에다 바친다네 不敎黃犢入瓜田 송아지가 외밭에 뛰어들지 못하도록 移繫西庭碌碡邊 서편 뜰 고무래 옆에 옮겨 매 두었는데 里正曉來穿鼻去 새벽녘에 이정이 와 코를 뚫어 몰고 가며 東萊下納始裝船 동래 하납11) 배를 챙겨 짐 싣는다 하더라네 菘葉新畦割半庭 마당을 절반 떼어 배추를 심었는데 苦遭蟲蝕穴星星 벌레가 갉아먹어 구멍이 숭숭 났네 那將訓鍊臺前法 어찌하면 훈련대12) 앞 가꾸는 법 배워다가 恰見芭蕉一樣靑 파초 같은 배추잎을 볼 수가 있을까 / 野人花草醬罌邊 시골사람 꽃이래야 기껏하면 장독 가에 不過鷄冠與鳳仙 맨드라미 봉선화 그것이 고작이지 無用海榴朱似火 쓸모없는 바다석류 붉기가 불 같기에 晩春移在客窓前 늦은 봄날 옮겨다가 객창 앞에다 심었다네 유상은 두창 치료에 특별히 이름이 났다. 한 2대 과부 집안의 독자 가 6, 7세 되도록 두창을 앓지 않아서, 유상 집 근처로 옮기고는 이 웃으로서 친근히 지냈다. 그런데 이 아이가 두창을 앓으니 유상이 특별히 치료를 하는데, 남달리 병이 심하여 많은 정성을 쏟았다. 하 루는 유상의 꿈에 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는 이 아이와 오랜 원수가 맺어져 있어서 꼭 죽일 것인데, 당신이 기어이 살리려고 하느냐?" 하 면서 따졌다. 유상도 결코 지지 않고 꼭 병을 고칠 것이라고 말하고 는 꿈을 깼다. 이렇게 20여 일을 버티는데, 또 꿈에 그 사람이 나타 나서 "이래도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을 것인가? 두고 봐라."하고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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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苽)

이규보, 동국이 상국후집 제4권, 고율시(古律詩) 98수, 집 안 채 소밭의 여섯 노 래 -오이 이색, 목은시고 제17권, 시(詩), 점심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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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苽)

179

오이(苽)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 만물편(萬 物篇) 소채류(蔬 菜類), 오이[黃 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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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장아찌

이색, 목은시고 제13권, 시 (詩), 즉사(卽 事)

라졌다. 잠에서 깨니까 밖에서 여러 사람 소리가 나더니, 숙종 임금 이 두창에 걸려 유상을 불러오라고 하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이래서 유상은 궁중으로 들어가 며칠을 나오지 못하니, 그 아이는 얼마 후에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다. 유상은 숙종의 두창에 저미고(猪尾膏)를 약으로 사용해야 하겠기에 명성(明聖) 대비전에 아뢰니, 명성 대비는 상감에게 그렇게 독한 약 을 쓰려고 한다고 꾸짖고 절대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유상 이 저미고 그릇을 소매에 숨기고 들어가 사용하여, 숙종의 병이 곧 나았다. 이 공로로 유상은 풍덕(豊德) 부사를 제수받았는데, 하루는 숙종이 순두부를 먹고 체하여 유상을 급히 불러 올렸다. 유상이 밤 중에 풍덕에서 달려와 성밖에 도착했는데, 성문이 아직 열리지 않아 서 성밖의 작은 오두막집에 들어가 잠시 쉬게 되었다. 이때 노파가 방안의 소녀를 향하여, "조금 전 쌀뜨물을 어디 두었느냐? 두부에 들 어가면 안 된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유상이 그 내 용을 물으니까, 쌀뜨물을 두부에 부으면 두부가 풀어져 녹아 버린다 는 설명이었다. 곧 성문이 열려서 궁중에 들어가니 숙종이 순두부에 체한 것이었으므로, 빨리 쌀뜨물을 만들어 따뜻하게 하여 마시게 하 니, 곧 체한 기운이 사라졌다.(숙종) 園苽不灌亦繁生 오이는 물 안 주어도 많이 열리고 黃淡花間葉間靑 엷은 노랑꽃 사이 잎 간간이 푸르네 最愛蔓莖無脛走 가장 사랑스럽기는 덩굴이 다리 없이 벋어 勿論高下掛瑤甁 높고 낮은 데 가리지 않고 옥병처럼 열리는 것

白麪香湯滑 흰 국수는 향기론 육수에 미끄럽고 衰腸冷氣纏 쇠한 창자엔 찬 기운이 서리어라 苽涼宜少嚼 찬 오이채는 조금씩 먹기 알맞고 韮軟且微煎 연한 부추 잎은 또 살짝 데쳐졌네 五味甘生稼 오미 중 단맛은 곡식에서 나오고 三時熱稟天 삼시 중 하늘서 열을 받는 때로다 孟光憐老病 맹광이 병든 나를 불쌍히 여겼어라 自覺午湌便 점심이 이에 맞음을 절로 느끼겠네 隙地開新圃 빈 땅에 새로 채마밭을 만들어 鋤瓜寄興深 오이를 가꾸는 데 재미를 붙였어라 數寸垂碧玉 몇 촌 길이 푸른 옥이 주렁주렁 盈尺耀黃金 일척 크기로 황금빛이 빛나누나 短斫宜燔炙 총총 썰면 전 부쳐 먹기 좋고 全盛可水沈 통째로는 김치 담그기 좋아라 最愛關當暑 무엇보다 좋은 건 더운 여름철 餤嚼滌煩襟 씹어 먹으면 답답한 가슴 시원해져 夜深腰痛睡難安 깊은 밤에 요통으로 잠을 편히 못 자다가 瓦片熨來心稍寬 달군 기와로 허리 눌러 마음 약간 편해지네 月上東窓鷄又叫 동창에 달 뜨고 닭이 또 울어대니 爽然如脫死生關 생사의 관문을 벗어난 듯 상쾌해지네 病裏醬瓜如蜜稀 병중에 오이 장아찌가 꿀처럼 먹고 싶어 老年堂姉小相依 노년의 당내 누이에게 약간 부탁했네 凌晨赤脚擎來送 새벽에 하녀가 장아찌 보내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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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해동기어(海東奇 語) 588 (김현 룡 2-[356]윤 지완(尹趾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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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동야휘집(東野彙 輯) 김 34 (김 현룡 3-[458] 오석량(吳碩樑))

旅舍荒涼日照扉 쓸쓸헸던 객사엔 해가 사립문을 비추네 윤지완은 병으로 한쪽 다리를 잘랐다.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이 다리 병은 이유가 있다.”고 했다. 즉, 그가 일본에 사신으로 가면서 바다 가운데 이르러 배 안에 선언하기를, “개인적으로 인삼을 가지고 가는 자는 목을 벨 것이다.”라고 했다. 얼마 후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바다를 보니 인삼 봉지가 수없이 떠 있었다. 인삼을 가지고 가 장사 하는 것은 죄가 되는 일이지만, 자신의 그 한마디로 얼마나 많은 사 람이 약을 못 얻어 죽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한쪽 다리 잘린 재앙은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숙종) 양산 사람 오석량은 우둔하면서 몸집이 컸다. 신을 삼아 파는데, 신 이 거칠어 아이들이 서울에 가서 팔면 1백 전 받겠다 했다. 오석량 은 신 일곱 죽(한 죽이 열 켤레임)을 삼아 서울에 올라와 길가에 앉 아, 신값을 1백 전이라 하니 모두 웃었다. 한 재상집의 영리하고 예쁜 여자 종이 늘 자기 남편감은 자신이 고 르겠다 했다. 이 여자 종이 신장수 소식을 듣고 와서, 모두 70냥이라 는 신값을 다 줄테니 집으로 가자고 해 데리고 왔다. 여자 종은 그 날 밤 오석량을 목욕시키고, 자기와 결혼하자고 제의해 동침하고 부 부가 되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재상에게 인사시키는데. 결코 뜰 아래에서 절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당에 올라가 인사드렸다. 며칠 후 여자종은 남편에게 돈 1백 전을 주면서 나가 쓰고 오라 했 다. 오석량은 점심값과 술값 1문밖에 쓰지 못하고 돌아오니, 아내는 누구에게 나누어주면 되지 않느냐 했다. 이후로 오석량은 매일 돈을 갖고나가 거지에게 나누어주고, 또 활터와 가난한 선비들에게 다니 면서 음식을 사 주고 문방도구도 사 주었다. 이후 아내는 글을 배우게 하고 ,또 활쏘기를 익히게 하여, 과거를 보 아 무과에 급제하게 했다. 아내는 무과 급제한 홍패(紅牌)를 감추고 아무도 모르게 한 다음, 돈이 떨어졌다면서 장사를 하게 했다. 먼저 보은청산 지역의 대추를 다 샀다가 값이 오른 다음 팔아 3배 이익을 남겼다. 그 돈을 흉년이 든 호서 지방에 가서 구제하고 본전만 갖고 돌아오니 아내가 잘 했다고 칭찬했다. 또 전국이 목화 농사가 흉년 인데 해서 지방만 목화가 잘 되어, 해서에 가서 목화 장사를 해 남 은 돈을 역시 흉년 구제에 썼다. 아내는 다시 본전만큼 돈을 더해 주면서, 이번에는 헌 옷을 사서 관 북 지방으로 가 인삼과 짐승가죽으로 바꾸어 오라 했다. 오석량이 헌옷을 사서 관북지방에 가니 모두 옷이 없어 고통당하기에 갖고 간 옷을 다 나누어 주고 오직 한 벌만 갖고 산골로 들어갔다. 한 노파가 옷이 낡았기에 갖고 온 옷을 주니 기뻐하고 저녁밥을 지 어 주는데 반찬에 인삼이 있었다. 노파에게 물으니 길경전(吉更田, 도라지밭)에서 캔 나물이라 했다. 식사를 마치니 노파 아들이 돌아 왔다. 노파는 아들 겨드랑이에 날개가 있어서 날기도 하는데, 부친께 서는 사람들 눈이 두려워 데리고 산 속에 들어와 살았다고 설명했다. 이튿날 길경전에 나가니 인삼이 수없이 많았다. 이것을 캐어 아들이 지고 원산까지 운반해 주어서, 원산에서 다시 말을 세내 싣고 집으 로 돌아왔다. 여자 종은 이 인삼 큰 것 열 뿌리를 재상에게 드린 다음, 남편의 무 과 급제한 사실을 알렸다. 재상이 기뻐하고 생일 잔치에 손님들에게 인삼을 자랑했는데, 이 때 여자 종은 여러 손님에게 인삼 세 뿌리씩 을 나누어주니, 재상은 오석량을 친구들에게 인사시키고 무과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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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어우야담(於于 野譚) 83 (김현 룡 6-[47] 성 현(成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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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하, 세계사,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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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하, 세계사,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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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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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상,

한 사실도 알렸다. 이후 인삼을 팔아 수천만 냥의 돈을 벌었고, 이 돈으로 여자 종을 속량해 부부가 행복하게 살았다. 그리고 재상 친구들이 추천해 관직 을 얻어 마침내 수사(水使)에까지 몰랐다. 성현(1439~1504)이 급제하기 전 교외에 나갔다가, 도중에 냇가 나 무 밑에서 말을 내려 쉬고 있었다. 이때 나귀를 탄 한 손님이 역시 같은 나무 밑에 와서 쉬기에, 성현이 보니까 모습이 보통 사람과 달 라 공손하게 예를 표했다. 얼마 후 손님은 데리고 온 동자를 시켜 아침식사를 준비해 오라 했 는데, 동자는 붉은 피에 올챙이를 둥둥 띄운 것 한 그릇과 어린아이 를 삶은 것 한 그릇을 가지고 왔다. 성현이 보고서는 놀라 피하는데, 손님은 성현에게도 그 반을 나누어주면서 먹으라 했다. 성현은 사양 하고 못먹는다고 하며 피하니, 손님은 맛있게 그것을 먹었다. 성현이 이상하게 여기고 소변보러 간다고 하며 옆으로 피해, 그 동 자에게 저 손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동자는 자기도 길에서 만나 따 라왔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고, 천보 14년(天寶14 年,755)부터 따라다녔으니 그 동안 몇 년이나 되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다시 성현이 묻기를. “조금 전에 먹은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었다. 이에 동자는 “한 그릇은 자지(紫芝)이고 다른 한 그릇은 인삼입니 다.”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성현은 그 손님에게 와서 예를 표하고 조금 전에 먹은 음식을 좀 나누어 달라고 말했다. 손님이 동자에게 그 음식이 남아 있느냐고 물으니, 동자는 자기가 배가 고파 다 먹었 다고 대답했다. 조금 후 손님은 동자에게 “점심은 충주 달천에서 먹고 저녁은 조령 을 넘어가서 먹어야 하니 부지런히 가자.”라고 말하고 나귀를 타고 떠났다. 성현이 말을 타고 쫓아갔지만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놓 치고 말았다. 성현이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손님은 천보 14년 에 태어난 당(唐)나라 신선 여동빈(呂洞賓)인 것 같았다. 여란이의 경성 가는 보따리는 거창했다. 아이들 키만한 가죽 트렁 크말고도 그만 못지 않게 무서운 고리짝과 책가방이 딸려 있었다. 고리짝 속엔 적선댁에 보낼 백삼, 홍삼, 인삼차 등 귀물과 함께 큼 지막한 놋양푼이 들어앉아 있었다. 여름에도 쉬지 않도록 조청에다 버무린 찰경단 양푼이었다. 고려의 왕궁터인 만월대로 해서 부산동, 자하동, 채화동, 백수동, 천 동에 이르는 유람도로는 소문대로 절경이었고 그 중간에 들린 개성 갑부의 산장이라는 최신식의 이층 석조건물에서 먹은 점심은 입에는 진미였고 눈에는 사치였다. 특별한 손님한테만 내놓는다는 홍삼엑 기스차와 인삼정과는 식후의 나른한 식곤증을 산뜻하게 풀어줬을 뿐 아니라 과연 개성땅에 왔다는 감동마저 자아낼 만한 별미였다. 생전 처음 보는 은자는 기절초풍하게 놀란 처만네는 동네방네 불고 다녔다. 곧 땅도 사고 삼포도 살 거라는 허풍은 며칠이 안 가 당시 개성상인 사이에서 성행하던 홍삼의 청국 밀무역에 전서방도 가담했 을 거라는 그럴듯한 소문이 되어 마을에 자자하게 퍼졌다. 보부상 으로 떠돌면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건 장사보다는 농사라는 걸 뼈 저리게 느끼고 오로지 땅뙈기 장만할 희망 하나로 온갖 고초와 수모 를 견디고 환향한 전서방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문이었다. (중략) 여 기서 백냥어치 인삼을 청국놈한테서는 삼백냥, 사백냥씩 받는다며? 지금 한창 세도하는 외척 아무개네선 말도 약식을 약비나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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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62 188

인삼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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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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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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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하, 세계사,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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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상, 세계사,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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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박완서, 미망 하, 세 계 사 , 212~213

는 둥 아무개 대감 댁에선 노비들도 인삼을 무유(무)처럼 짓씹는관 다는 둥허는 소문은 믿습니다요. 믿고말굽쇼. 무엇 때문에라니요? 그들이 어드렇게 말이 약식에 물리고, 종이 인 삼을 채소처럼 먹을 만큼 잘살 수가 있겠시니까? 우리들의 피땀 흘 린 소득을 협잡질 하고 수탈해다가 잘사는 게 아니겠니까? 그건 우리가 농사지은 삼이 홍삼이 되고 포삼이 됐을때의 값이 아닙 니까요? 은과 맞먹는 것만치 호시탐탐 수탈을 노리는 눈이 좀 많시 니까? 채 일년 앞도 못 내다보게 바뀌는 인삼정책만해도 어떡허면 중간에서 협잡질이 용이할까만 생각했지 삼농가의 이익을 생각해서 바뀐 적이 어디 한번이나 있었시니까? 도라지값처럼 싸게 수매하고 나서도 뒤탈이 없으면 좋게요. 부정 인삼을 끼워넣었다고 모해를 잡아 곤장을 치곤 돈을 써야 풀어주는 일까지 있답니 평안히들 주무셨시니까요. 독삼탕이올시다. 식기전에 드세요. 특별한 삼으로 다린 거니까요. (중략) 글쎄… 최상품의 삼을 기생삼이라고 하는데 아마 그렇게 아닐까. 기생삼? 최상품의 이름이 왜 그리 요망 한가? 삼을 인삼이라고도 하는 건 생긴 게 인체와 비슷하기 때문이 라고 하잖우. 그중에서도 여자의 몸을 연상할 만큼 예쁘게 잘생긴 삼을 기생삼이라고 해서 양기를 도웁는 효험이 특히 뛰어나다고 예 로부터 쳐왔지만 그게 믿을 만한지 아닌지는 낸들 알겠수. 나도 생 전 처음 먹어보는게니까. (중략) 승재는 대추와 인삼을 넣고 하룻 밤에 달였음직한 그 진한 액체를 한모금 마시고 나서 사방탁자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나 마음먹고 부엌에 내려서면 막히는 게 없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다 해놓은 밥도 태임이가 푸면 윤기가 잘잘 흘렀고 같은 보쌈 김치도 태임이가 보시기에 담아놓으면 신기한 꽃송이처럼 화려해졌 다. (중략) 태임이는 그 이상 참견하는 건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하고 맑은 장국 간을 보고 찬광의 오밀조밀한 항아리의 곰삭 은 갖가지 젓갈을 각각 거기 맞는 기명에다 모양내서 담고 김치와 동치미도 손수 꺼내왔다. 삽시간에 꽃밭처럼 어여쁜 점심상이 차려 졌다. 술도 집에서 증류한 독한 소주에다 인삼을 담아 해를 묵힌 극 상품으로 내갔다. 마침내 한 자루의 돈과 작은 동고리를 가지고 광을 나오는 그는 몹 시 지치고 슬퍼보였고, 야윈 뺨에는 저승꽃조차 나타나 보였다. 그 는 동고리의 밑바닥과 둘레를 백지에 싼 홍삼으로 두르고 작은 돈자 루로 가운데다가 심을 박고 나서 역시 홍삼으로 위를 덮었다. 뚜껑 을 덮고 나서 동고리를 몇 번 들어보는데 그만이가 문밖에서 세숫물 대령했다고 아뢰었다. 태임이의 숨겨놓은 욕망에 대해 알 리 없는 산식이가 보기에도 태임 이가 돈벌이 될만한 것이라면 너무 이면체면 안 가리고 샅샅이 해 먹는 것 같아 민망할 적이 있었다. 홍삼 백삼 수익만 해도 엄청날 텐데 태임이는 삼포에서 나는 거라면 삼이파리까지도 팔아먹을 궁 리를 해냈다. 그런 방면의 책도 구해 읽는 듯했지만 제약업자나 신 식 약학이나 가공식품을 공부한 사람들과 제휴해서 수납해서 제외된 퇴각삼이나 미리 가려놓은 후삼, 미삼 등도 즙이나 정, 차로 만들었 고, 또 분말을 만들어 무슨 산이니 정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보약의 원료를 삼기도 했다. 하다 못해 삼이파리나, 삼꽃이 개화할 때 충실 한 씨를 받으려고 일부러 따버리는 꽃심 부분까지도 목욕물에 넣으 면 살결이 예뻐질 뿐만 아니라 여름에 물 것을 안 탄다고 선전해서 돈 받고 팔 수 있게 상품화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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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雜菜)

이긍익, 연려실 기술 제23권, 인 조조 고사본말 ( 仁祖朝故事本 末), 광해군을 안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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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

박경리, 토지 5 권, 나남출판사,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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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채(雜菜)

신흠, 상촌선생 집 제52권, 구 정록 상(求正錄 上), 춘성록(春 城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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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

성수패설(醒睡稗 說) 54(김현룡 7-[409] 흉악 젓갈 장사(凶惡 醢商))

광해를 옮겨 안치시킬 때 따라간 궁비 중에 성질이 모질고 교활한 자가 있었는데, 모시는 데 삼가지 않으므로 광해가 꾸짖었다. 계집종 이 소리를 지르면서 말하기를, “영감이 일찍이 지극히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온갖 관청이 다달이 올려 바쳤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염 치없는 더러운 자들에게 반찬을 요구하여 심지어 김치판서[沈菜判 書]ㆍ잡채참판(雜菜參判)이란 말까지 있게 하였소? 철에 따라 비단 용포와 털옷을 올리었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사사로 올리는 길을 크 게 열어 심지어는 장사치ㆍ통역관으로 하여금 벼슬길에 통할 수 있 게 하였소? 후궁의 의복과 음식은 또 각각 그 맡은 관청에서 올려 바쳤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벼슬 구하고 송사하는 자들에게 뇌물을 요구하여 민심을 크게 무너지게 하였소? 영감께서 사직을 받들지 못 하여 국가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해놓고, 이 섬에 들어와서는 도리 어 나에게 모시지 않는다고 책망하니 속으로 부끄럽지 않소? 영감께 서 왕위를 잃은 것은 스스로 취한 것이지마는 우리는 무슨 죄로 이 가시덩굴 속에 갇혀 있단 말이오?” 하였다. 이에 광해는 고개를 숙이 고 한 마디 말도 없이 다만 탄식할 뿐이었는데, 이것을 본 자는 그 패악하고 교만한 말에 분개하지 않은 이가 없어 이르기를, “반드시 이 계집종에게 하늘의 재앙이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다른 일로 인 하여 과연 좋지 못하게 죽었다 한다. 《공사견문) “이제 고만 먹구, 자아 아주방이가 고기 줄게. 호떡은 싸달라 해서 집에 갖구 가자.” “응.” 아이는 미련이 남는 듯 베어먹던 것을 손에 든 채 접시에 남은 것을 내려다본다.“이봐요.” “예, 예.” 하고 사내가 쫓아온다. “접시에 남은 호떡, 종이에 싸주시오. 서너 개 더 넣고.” “예, 예.” “자아 고기.” 길상은 잡채 속의 고기 한 점을 집어 아이 입 에 넣어준다. “아주방이.” “응.” “날 어찌 알지비? 어망이도 아능 기 야?” ‘“알구말구.” 무신년(1608, 광해군 원년) 이후로 큰 옥사(獄事)가 해마다 일어났 는데, 집안을 일으키고 벼슬길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고변 (告變)을 하거나 내통(內通)하는 방법을 쓴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크게는 피를 나눠 마시고 맹세를 하여 경(卿)이나 상(相)이 되고, 작게는 청색 인끈과 자주색 인끈을 차고는 득의양양하게 횡행하였다. 이런 길을 통하지 않은 자는 모두 험난한 지경에 떨어지고 심한 경 우에는 죄를 얻어 법망에 걸렸는데, 죽음을 면한다 할지라도 거의 대부분이 유배되거나 방축(放逐)되곤 하였으므로 이끗만 좋아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임금과 가까운 간인(奸人)에게 빌붙어 못 할 짓이 없이 날뛰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잡채 상서(雜菜 尙書)니 침채 정승(沈菜政丞 침채는 김치임)이니 하는 말들이 세상 에 나돌았는데, 이는 대체로 잡채나 침채 등을 바쳐서 총애를 얻었 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옛날의 양두 관내후(羊頭關內侯)만 어 떻게 나무랄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이 집에서 아침 늦도록 이불을 쓰고 누워 있으니, 젓갈 장사 여자가 젓갈 사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 남자가 젓갈 장사를 불러 집 으로 들어오게 해, “병으로 못 일어나니 방으로 들어와 2푼 어치의 젓갈을 담아 달라”라고 말하고 그릇을 내밀었다. 젓갈 장사가 의심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오니, 남자는 갑자기 끌어 눕히고 옷을 벗겨 맹렬하게 눌러 환정(歡情)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여자는 처음에는 몸을 빼면서 이 무슨 흉악한 짓이냐고 하다가, 차 차 정감(情感)이 고조되어 좋아지니, 오직 숨 가쁜 목소리로 “흉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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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흉악해” 소리만 연발했다. 작업이 끝난 다음 여자는 젓갈 통을 이고 나가면서, “흉악한 젓갈 사 소.”를 연속으로 외치며 걸어가더라.(조선 말기) 198

참깨

어수신화(禦睡新 話) 22 (김현룡 1-[395] 낭전 낙임(囊錢落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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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난실만필(蘭室漫 筆) 권10

200

참기름

용천담적기(龍泉 談寂記) 37 (김 현룡 7-[139] 진주 강씨 선비

한 양반 선비가 시장에 갔는데, 이웃에 사는 상민(常民)이 마침 깨 를 한 자루 사 가지고 오다가 만났다. 상민이 선비에게 별 일 없으 면 이 깨 자루를 잠시 맡아 지켜주면, 자기는 다른 볼일을 좀 보고 오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선비가 승낙하니 상민은 선비에게 술을 사 주고는, 다시 허리에 차고 있던 돈 4, 5냥을 깨 자루 속에 넣고 묶은 다음, 선비에게 맡기고 볼일 보러 갔다. 상민이 돌아와 보니까 깨 자 루 속에 넣은 돈이 1냥밖에 없어서 나머지 돈을 선비에게 추궁했다. 선비는 양반을 모독한다고 하면서 꾸짖고 상민을 고소했다. 고소를 접한 관원이 상민을 무례하다고 하여 가둔 다음에 선비를 잘 대접하 고는, 선비의 주머니 속을 조사해 보니 돈이 나오고, 또 주머니를 터 니까 깨 낱알이 돈 꾸러미 속에서 섞여 나왔다. 그런데 주머니에서 나온 돈과 깨 자루를 넣은 돈이 차이가 있어서, 이번에는 선비의 몸 을 수색하니까 베 몇 자를 사서 바지 속에 감추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베 값을 계산하여 더하니 깨 자루 속에 넣은 돈과 액수가 부합되 었다. 이에 관장은, "양반이 이런 짓을 하면 되느냐?"하고서, 관장 자 기의 돈으로 깨 자루 속 돈을 맞추어 변상한 다음 돌려보내니, 선비 는 부끄러워 도망 쳤다.(조선 후기) 용산(龍山)의 강촌 사공이 친한 정희량에게 운수를 물으니 다음과 같은 시구를 주었다. ‘강풍을 만나면 배를 멈추지 말고(遇風莫停舟), 기름을 만나도 머리를 씻지 말라(逢油莫梳頭), 한 말의 벼에 세 되 의 쌀이요(一斗三升米), 파리가 붓끝을 싸서 안는다(靑蠅抱筆頭).’ 라는 내용이었다. 한 번은 바다에서 큰바람을 만나 이 시가 생각나 서 힘껏 달렸더니 무사하였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밤중에 돌아와 작은 방문을 굽히고 들어가다가 선반 위의 기름병을 떨어뜨려 머리 에 뒤집어썼는데 , 다시 정희량의 시가 생각나서 그냥 머리를 쓰다 듬기만 하고 아내 옆에서 잤다. 이때 아내의 간부(姦夫)가 몰래 들 어와 남편을 죽이려고 머리 부분을 살피다가, 머리 기름 냄새가 많 이 나는 것을 여자의 머리인 줄 알고, 그 옆에 누워있던 아내를 남 편으로 여겨 목을 찌르고 달아났다. 아내가 남편 옆에서 죽임을 당 하자 사공은 처가 사람들에 의해 살인죄로 고발을 당했다. 사공이 변명할 길이 없어 꼼짝없이 사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판관이 사형집 행을 위해 죄인 이름 위에 표시를 하려고 먹물을 찍으니, 파리떼들 이 감자기 붓 끝에 모여 붙어 점을 찍을 수가 없었다. 이때 사공이 하도 원통하여 정희량의 시를 내보이고, 첫째 시구는 맞았는데 둘째 시구는 왜 억울한 죽음을 당하느냐면서, 셋째와 넷째 시구를 해석해 달라고 했다. 판관은 붓 끝에 파리가 모여든 것은 넷째 시구인데, ‘一斗三升米’는 는 무슨 뜻인가 하고 며칠을 고심한 끝에 드디어 알 아냈다. 즉, “벼 한 말에 쌀 세 되면, 거기에 겨[糠]가 일곱 되[七升] 이다. 그러니 ‘강칠승(康七升)’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고을에 강칠승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하여 진범을 잡았고, 사공은 무 사이 석방되었다. 진주에 강씨(姜氏) 선비가 살았는데, 과거 보러 서울에 왔다가 실패 하고, 한 일꾼을 얻어 책상자를 지우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초점(草岾)을 넘다가 날이 저물어 산속을 헤매는데, 멀리 불빛이 보 여 찾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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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州姜姓儒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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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태평한화(太平 閑話) 고금소총 본(古今笑叢本) 75 (김현룡 7-[246] 한 협 객(一俠客))

동굴이 마치 집같이 생겼고 주위에 풀이 우거지고 황폐해 있었다. 한 작은 노인이 혼자 앉아 있는데, 바위틈에서 은은한 빛이 비치고 있었다. 그래서 선비가 하룻밤 자고 가기를 요청하니, 노인은 누구인 가를 물어 사실대로 답하니까 “자고 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조금 후 내 건장한 세 아들이 사냥에서 돌아오면 서로 저촉될까 두려우니, 속히 떠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비는 얼른 떠나 풀숲에 숨어 날이 밝기를 기다리니, 곧 산골짜기가 진동하고 풀과 나무가 넘어지면서 세 마리의 큰 구렁이 가 굴속으로 들어가더니 건장한 세 사람으로 변해 노인 앞에 앉는 것이었다. 노인이 아들에게 차례로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니, 첫째와 둘째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고 대답하는데, 셋째만 피를 빨아먹은 좋 은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노인이 그 내용을 말해 보라 하니 셋째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용궁현(龍宮縣)의 어떤 집 우물 옆 숲 속에 숨어 있으니, 관청의 높은 지위에 있는 관리(官吏)인 그 집 주인이 술에 취해 급히 신선 한 우물의 찬물을 찾았다. 그러니까 그 집 여자가 물동이를 이고 우 물에 나왔는데, 내가 곧 그 여자의 발뒤꿈치를 물어, 그 혈기 있는 피를 배부르게 빨아 기분이 좋습니다.“ 하고 말했다. 얘기를 들은 노인은 탄식하면서 이제 우리들은 다 죽게 되었다고 말 했다. 아이들이 까닭을 물으니, 노인은, “고을의 높은 지위에 있는 관 리라면 무엇이든지 다 구할 수 있을 텐데, 정월 첫 번째 돼지날(上 亥日)에 짠 참기름(胡麻油)을 끓여 그 상처에 바르고, 또 낫(鎌)의 자루 구멍에도 그 기름을 발라 울타리에 꽂아 놓으면, 우리들은 다 죽고 상처는 곧 낫게 된다.”는 설명을 하면서 슬퍼했다. 이 말을 들은 강씨 선비는 곧바로 용궁현의 그 집으로 달려가 물으 니, 과연 여자가 뱀에 물려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방법 을 일러 주니, 그때는 마침 2월이기에 정월 첫 번째 돼지날 짠 참기 름을 구할 수 있어서, 일러 주는 대로 해 상처가 낳았다. 그리고 뱀 의 굴을 찾아가 보니 큰 뱀 네 마리가 서로 뒤엉켜 죽어 있었다. 어쩌면 1천년 묵은 늙은 뱀의 정령(精靈)이 사람으로 변형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바위틈에서 빛나던 것은 야광주(夜光珠)였을 것 이다. 이웃 선비가 남부 지방 사람이어서 그 방문(方文)을 자세히 전해 주었다. 이후 정월 첫째 돼지날에 꼭 참기름을 짜서 두었다가 뱀에게 물린 사람에게 발라 주면 정말 모두 상처가 나았다. 그러나 뱀이 죽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무릇 약은 모두 상극성(相剋性)을 가졌다. 그래서 생선 가시 걸린 데는 고기 그물 태운 재를 사용하고, 말에게 물린 곳은 말채찍 태운 재를 바른다. 돼지는 뱀을 잘 잡아먹기 때문에 뱀이 돼지를 무서워 하므로, 돼지날에 짠 기름이 약이 되는 것 같다. 민씨(閔氏) 성을 가진 한 협객이 붉은색 말인 자류마(紫騮馬)를 샀 다. 한 짓궂은 짓 잘하는 호사자(好事者)가 말하기를, “말은 검은색 몸체에 이마와 발이 하얀색인 말이 좋은 말이고, 당신 말 같은 붉은 색 말은 노마(駑馬)이다.” 하고 나쁘게 평했다. 이 말을 들은 민씨는 다시 전국에 그런 말을 구하니 구할 수가 없고, 다만 검은색 몸에 발만 흰색인 말을 비싼 값으로 샀다. 이에 호사자 가 다시 말하기를, “이마를 하얗게 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말이나 나귀의 몸 상처에 참기름을 바르면 흰 털이 난다.” 하고 일러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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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고상안, 한고관 외사( 寒皐觀外 史) 39권 효빈 잡기 상(效顰雜 記上), <남편 죽은 후 채소로 연명한 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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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고상안, 한고관 외사( 寒皐觀外 史) 39권 효빈 잡기 상(效顰雜 記上), <채소와 바꾼 관직>

다. 그래서 민씨는 말의 이마 털을 깎고 참기름을 발랐는데, 흰 털이 나 지 않았다. 이에 민씨는 하얀 털을 가진 개를 잡아 그 흰색 가죽을 오려 풀을 발라 말 이마에 붙였다. 그런데 하루는 외출했다가 소나 기를 만나니, 풀로 붙였던 개가죽이 물에 젖어 떨어져 버렸다. 이 모 습을 보고 기생들이 웃으니까, 민씨는 화가 나서 말을 활로 쏘아 죽 여 버렸다. 강섭(姜涉)은 나(고상안)와 같은 마을 사람으로, 백부의 후사가 되 었다. 계사년 봄에 양모의 뜻을 어기지 못하고 장차 삼산(三山)에서 취식하려고 하여 밤에 일가를 거느리고 가는데 적로(賊路)를 지나려 고 하였다. 적이 그것을 알고 매복하여서 기다렸으나 섭(涉)은 그것 을 알지 못하고 가다가 적에게 포위되었다. 적이 먼저 양모를 해쳤 는데, 섭이 모를 구하려다 죽었다. 둘째 아들이 이어서 아버지를 구 하려다가 죽었다. 그의 처 홍씨는 허백당(虛白堂)의 후예로 어린 아들을 안고 뒤에 있 다가 당황하다가 서로 잃어 다른 길에 있다가 겨우 면하였다. 지아 비가 비명에 간 것을 알고 통분하여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였다. 3년 후에 소복을 벗지 않고 채소와 나쁜 쌀로 평생을 보냈 다. 사람들이 혹 위로하면서 말하기를, "어찌 스스로 이같이 고생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내 남편이 밝은 데서 죽어 내가 이처럼 미망인이 되었음으로 실로 소수(疎水)로 다하여야 하거늘 하물며 적에게 죽었는데도 나는 복수 할 길이 없으니 어찌 하루라도 잃을 수가 있겠는가. 이를 생각하니 차마 스스로 편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향리에서 소문이 조정에 전해졌다. 금년에 명이 내려졌는데, 다만 공섭에게만 정려가 내려지고 그 부인에게 미치지 못했으니, 이 는 가히 한스럽다. 예전에 채소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전장(銓長)이 있었는데, 세속 에서는 이름하여 "추이(趍伊)"라 하였다. 운봉 땅에 한 사람이 있었 는데, 그 성명은 잃어버렸다. 우연히 전장이 연한 채소를 지나치게 좋아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가방 하나의 바깥 면에는 '아무읍 의 아무개로 훈도(訓導)를 구하는 자'라고 쓰고는 이판(吏判) 집에 이르러서 주면서 말하기를, "길에서 판서의 얼굴을 뵈었는데, 판서께서 집에 가져다 놓으라고 해 서 가져왔을 따름입니다." 고 하였다. 부인이 웃으면서 그것을 받아서는 아침저녁으로 올리니, 판서가 말하기를, "도대체 어떻게 이것을 얻었는데,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인가?" 하니 답하기를, "지난번에 한 사람이 와서 주인의 명령이라고 하며 가방 하나를 바 쳤기에 쓰고 있을 뿐입니다. 가방의 위에는 10여자가 써 있었는데, 청컨대 취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그것을 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판서가 속이는 것을 알아차렸 으나 별일이 있겠는가 하고 계속해서 그것을 먹었다. 반 달이 지나 서 허(許) 판서가 조정에 나아갈 때 앞서의 사람이 반드시 말 앞에 서 배알하며 말하기를, "저는 아무읍의 아무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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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니 판서가 가만히 생각하고는 말하기를, "물건은 비록 뇌물이 아니므로 이미 다 먹었다" 고 하였다. 그러나 매일 쫓아와서 배알하니 사람들이 모두 의아해하 면서 말하기를, "수중(受重)하였으니 실로 그 원하는 바를 따르는 것과 같지 않으나 뒷길을 끊어야 한다." 고 하므로 즉시 관에 부임한 후에 장관을 아첨하고 섬겼으며 사방 이웃의 수령에 이르러서도 예의를 곡진하게 하니 장관이 사랑스럽게 대하였으며, 이웃 읍 역시 버리지 않았다. 이웃 관에서 하루는 큰 잔 치를 열고는 그 수령을 맞이하였고, 또 광문(廣文)과 함께 오도록 하였다. 수령이 광문에게 말하기를, "모주(某州)에서 편지가 온 것이 이와 같으니 자네도 함께 가야겠 다." 고 하니, 대답하기를, "비록 참여하고 싶지만 의복을 어찌 입고 가야합니까?" 하였다. 수령이 말하기를, "내가 철릭과 단령, 반비의(半臂衣) 각 한 벌씩을 빌려줄 테니 자네 는 착용하고 어기지 말라" 고 하였다. 그 말대로 하고 함께 가니 저녁에 도착하였다. 주인이 차 비를 보내 맞이하였다. 그 말대로 하고 같이 가서 저녁에 도착하니 주인이 차비(差備)와 기생을 보내 맞이하였다. 다음 날 잔치에 참석 하였는데, 먹지는 않고 눈물만을 흘리고 있으니 한 좌석에서 그 까 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소관이 성대한 찬을 만난 것은 일신의 다행이지만 집에 있는 부모 는 죽과 미음도 계속 잇기를 어려우니 슬플 따름입니다." 하였다. 모두 효자라고 말하면서 힘써 궁한 것을 구할 수 있는 방법 을 연구해보자고 하며, 각기 첩자(帖字)를 써주고 증여한 것이 심히 후하였다. 잔치가 파한 후 입었던 옷을 돌려주어야 하나 즉시 돌려 주지 않았다. 때에 수령이 이를 괴상히 여겨 물으니, 나아가 사죄하 며 말하기를, "하관(下官)이 술잔 도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집에 엎어져서 구토를 하였는데 방에 가득해서 옷이 모두 젖었으나 빨지 못해서 지체되었 습니다." 하였다. 수령이 이 말을 듣고는 갑자기 번위(反胃)의 증세가 생겨서 그런 것이라고 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나에게는 소용없는 것이고 지금은 이미 땀에 젖었으니 돌려 받고 싶지 않으니 자네가 가지도록 하라" 고 하였다. 아아! 이 사람은 마른 채소 한 가방으로 글 가르치는 관직을 얻었다. 부임하여 이웃의 읍 잔치에서는 황화(黃花) 꺾을 것을 계획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눈물을 흘리는 배우가 되어 여러 공(公)에게 은혜를 받고 또 속여서 상관의 옷을 빼앗았다. 이 같은 사기는 비록 장의 (張儀, ?~BC 309,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의 모사(謀士))가 초나라를 얻은 것과 금설용(金薛用)이 상마(象麻)를 얻은 것과 같은데, 이들 이 다시 온다고 하여도 이 사람보다 더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예 전 사람은 하늘이 다행하게 탄생시킨 반면, 후세 사람은 간교함을 더 했으니, 모두 사리의 옳고 그름이 있다면 심심풀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일찍이 백장사(白場寺)에서 생원 김협(金鋏)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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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이색(李穡), 목 은시고 제24권, 시(詩), 유두회 (流頭會)에 대하 여 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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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

태평한화(太平閑 話) 고금소총본 ( 古今笑叢本) 44 (김현룡 4-[339] 김가 칙(金可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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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행과 반)

태평한화(太平閑 話) 금서룡본(今 西龍本) 116 ( 김 현 룡 7-[271] 행과 반(行果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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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 청파극담 (靑坡劇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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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안, 한고관 외사( 寒皐觀外 史) 39권 효빈 잡기 상(效顰雜 記上), 김우수의 옥바라지를 성심 껏 한 계집종의

게 들었다. 자장(子長)은 그의 자이다. 爽然今日自無邪 기분 상쾌한 오늘은 절로 나쁜 기운 없어 冷徹肝腸絶滓査 뱃속까지 시원하고 티끌 한 점도 없는데 灩灩玉盃傾竹葉 넘실넘실 옥술잔엔 죽엽청을 기울이고 深深銀鉢吸瓊花 깊디깊은 은사발엔 좋은 차를 마시자면 宛如明月雙溪水 완연히 밝은 달밤 쌍계의 물과 흡사하고 絶勝淸風七椀茶 맑은 바람 칠완의 차보단 월등히 나으리 爲問菜園羊在否 위하여 묻노니 채소밭에 양은 있었던가13) 氷漿雪餅亂交加 찬 음료랑 흰 떡만 어지러이 놓여졌겠지 별시위(別侍衛)에 소속된 김가칙은 한 기생을 사랑해 정이 깊었다. 하루는 기생과 술상을 앞에 놓고 술을 마시는데 기생이 말하기를, “양반집 자제들은 기름진 안주를 안 먹고 주로 채소와 과일을 좋아 하더라.”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김가칙은 “속살이 쪄서 자연히 그렇지.”라고 말하고, 자기도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술안주로 먹 었다. 그리고 기생이 많은 술을 권하니, 김가칙은 술이 취하면서 배가 아 프기 시작했다. 김가칙이 변소에 가려니까 기생은, “양반집 자제들은 대변이 시원하게 안 나와 변소에 가 오래 있더라.” 하고 말했다. 김 가칙이 변소에 가서 일부러 오래 있다가 나오니, 그 사이에 기생은 모든 값진 물건을 다 훔쳐 도망가고 없었다. 무릇 잔치에 있어서 손님을 접대하는 음식상을 베풀어 놓고 먹은 다 음에, 따로 상을 마련하여 수륙진미(水陸珍味)와 과일 채소 등의 별 미 음식을 차려 대접하게 되어 있다. 이 별미의 상을 ‘행과반’이라 하며, 잔치를 여는 집에서는 서로 경쟁적으로 이 행과반을 잘 차려 칭찬 받으려 하기 때문에, 매우 사치스럽게 차리는 풍습이 있었다. 한 존귀한 집안에서 평소 잔치에 이 행과반을 호화롭게 잘 차렸는데, 마침 모친 상(喪)을 당하니, 자식들이 제사상을 그득하게 차렸다. 상 주가 제상을 둘러보고는 자식들에게, “왜 행과반은 가져오지 않느 냐?”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자식들이 말하기를, “상제(喪祭)는 법도에 맞게 해야 하기 때문에 행과반을 들일 수가 없습니다.” 했다. 그러니까 상주는 “사람 은 죽으나 사나 마찬가지인데, 왜 행과반을 폐한단 말이야?”하고 화 를 내고는, 제사가 끝난 뒤에도 그 화가 풀리지 않더라. 정승 남재가 재상에서 물러나 묵사동의 본가에서 한가하게 있으면서 날마다 바둑으로 일을 삼았다. 묵사의 노승이 늘 와서 바둑으로 상 대해 주었는데 노승이 일부러 져주니 남공은 매우 좋아했다. 바둑으 로 옷벗기 내기를 하여 스님이 관을 벗고 또 웃옷을 벗었는데 심지 어 바지까지 벗게 되니 노승이 거듭 애걸하여 바지만은 벗지 않게 되었다. 날이 저물어 스님이 절로 돌아갈 때에는 남공이 여종 두세 명을 시켜 쌀과 콩과 반찬을 가져다 주었다. 그래서 스님은 옷을 벗 지 않는 날이 없었고 나날이 얻어가는 것이 많아졌지만 남공은 알지 못했다. 무인 김우추(金遇秋)는 북변(北邊)에서 나서 생활하면서 의금부에 체포되어 수감되어 형을 받은 것이 백여 차례였다. 한 계집종이 그 이름을 잊지 않고 호남에서 와서 옥바라지를 하였다. 목 놓아 울면 서 시장에서 구걸하였다. 간절하고 측은한 정에 감동한 사람들이 시 장에서 쌀과 콩, 소금과 된장, 죽, 어육(魚肉), 채소 등을 팔아 여유 가 있으면, 말하기를, "이는 마땅히 모 계집종에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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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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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안, 한고관 외사( 寒皐觀外 史) 39권 효빈 잡기 상(效顰雜 記上), 관찰사 [방백(方伯)]의 요구를 거부한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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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奇聞) 44, 선을 쌓으면 경 사가 있다.(적선 유경(積善有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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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湯)

이색, 목은시고 제3권, 시(詩), 서경(西京)

고 하였다. 이를 보관해서 그를 대접하니 김우추가 비록 오랜 동안 묶여 있었으나 공양이 풍부한 것이 경상(卿相) 등과 같았다. 사람들 이 계집종에게 시집갈 것을 권하니 말하기를, "나는 시집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살펴서 생각해보면 지아비가 있으 면 나는 성심으로 할 것이지만, 삼가 주인을 섬기는데 전념할 수가 없습니다." 고 하였다. 김우추가 거의 출옥할 즈음에 호남으로 돌아가면 말하기 를, "주인집이 파산한 지 오래되어 바야흐로 굶주림 중에 있으므로 돌아 가 여주인을 봉양할 따름입니다." 하였다. 이것은 가히 임금을 섬기는 긍식(矜式)이다. 예전에 관찰사(방백)가 한 읍을 순찰하면서 잘 아는 사람을 주려고 선물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첩지에 글을 쓰고 술과 닭, 쌀·콩 등 물 건을 그 관에 명하여 보내게 하였다. 그런데 주관하는 관리가 이를 거부하고는 다만 빈 첩지만을 보내었다. 답서를 줄 것을 요구하니 그 사람이 웃으면서 답을 주며 말하기를, "청주(靑州)에 종사하다가 오유선생(烏有先生, 한나라 문인 사마상여 가 그의 글 가운데 가상으로 쓴 인물)이 되었고, 실력은 없으면서 높아진 명성이 하늘에 닿으니, 쌀장자(米元章子)와 콩아저씨(太叔) 가 가난한 선비를 보기 싫어 두문불출하였다. 서생의 배고프고 목말 라서 바라는 것에 부응하기가 어렵다." 고 하였다. 비록 그 성명을 알지 못하지만 재주가 대개 상상된다. 해서(海西) 읍에 한 착한 부자가 살았다. 아우가 있는데 살림이 넉 넉하지만 성품이 착하지 못했다. 이 부잣집에 안손님이 드나들었는 데, 음식과 돈을 나눠주고 너그럽게 대접했다. 하루는 그 손님이 부 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남쪽하늘의 다섯별을 가리키며, 각각 쌀·콩·팥·조·피를 맡고 있는 별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매년 정월 초하 룻날 이 별들을 보고 가장 빛나는 별의 곡식을 심으면 수확이 몇 배 증가한다고 하고는 그 동안의 후한 대접에 보답하는 뜻으로 알려준 다고 했다. 부자는 그 손님이 가르쳐준 대로 하여 더욱 큰 부자가 되었는데, 몇 년 후에 그 사람이 다시 나타나서 이제 영원히 떠난다 고 했다. 즉 자신은 일본 첩자인 평의지(平義之)인데 8년간을 조산 땅에 있었고 이제 들어가면 3년 후 어느 날 일본이 조선을 쳐들어오 게 되어 있으니, 그때가 되면 구월산(九月山)에 들어가 피하되 악한 사람은 함께 가면 안 된다고 일러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부자는 이 말을 아들에게만 일러주니, 아들은 방탕하여 재산을 탕진하는 것 처럼 꾸미고는 돈을 빼돌려 구월산 속에 은신처를 마련했다. 이때 마음씨 나쁜 아우가 와서 형님에게 아들을 단속하지 않는다고 행패 를 부렸으나 잘 타일러 돌려보냈다. 재산이다 떨어진 부자 부부는 아들을 찾아 간다고 집을 나서니 봉 부부가 따라나섰고, 조카 또한 마음씨 나쁜 부친을 버리고 따라 왔다. 이렇게 하여 깊은 산속에서 아들을 만나 산을 넘어가니 아들이 준비해 놓은 마을과 집이 있었기 에, 그곳에서 임진왜란을 잘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씨 나쁜 아 우는 전란으로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다. 方舟容與水如空 창공처럼 맑은 물에 두 배 나란히 띄우고 驛騎飛塵一瞬中 역마에 먼지 날리며 일순간에 당도하였네 辦得兩湯雖甚易 두 가지 탕국을 마련하기는 아주 쉬우나 哦成七字却難工 일곱 자 시구 읊는 덴 잘 짓기 어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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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각잡기(東閣雜 記) 상(上) (김 현룡 2-[94] 권람(權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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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葱]

이희겸(李喜謙), 청야만집(靑野謾 集)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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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葱)

이규보, 동국이 상국후집 제4권, 고율시(古律詩) 98수, 집 안 채 마밭의 여섯 노 래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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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葱]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 集), 만물편(萬 物篇) ○소채류 (蔬菜類), 파 [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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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군청 문화관광 홈페이 지, 전설과 설화 , 파를 먹게 된 유래

城頭老樹猶遮日 성 머리 늙은 나무는 아직 해를 가려 주고 山頂高樓遠引風 산 위의 높은 누각은 멀리 바람 끌어 오네 聞說朝天曾有石 듣자 하니 옛날 여기엔 조천석이 있었고 檀君英爽冠群雄 단군의 영걸함은 군웅의 으뜸이었다 하네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니, 여덟 대군들이 강성해 인심이 안정되지 못한 틈을 이용, 세조가 정난의 뜻을 가졌다. 이때 권람이 세조의 집 을 드나들면서 매우 은밀한 얘기를 해, 항상 늦도록 물러가지 않으 니까 준비된 저녁상의 국이 늘 식어서 다시 데워야만 했다. 그래서 궁인들이 권람이 나타나면 "국 식히는 사람(寒羹郞)이 또 왔다."고 수군댔다. 성종 때 후원에 파가 나서 한 줄기에 아홉 가지가 달리니, 상서로운 일이라고 여기고 서총(瑞葱)이라 부르며 축대를 지어 길렀다. 연산 군이 즉위하여 여기에 누대를 짓고 서총대라 했다. 이 누대를 지을 때 백성들에게 고역을 시키고 베를 거두어들였는데 백성들이 가난해 바지 속의 솜을 타서 베를 만들었으므로 베가 굵고 길이도 짧았다. 그래서 굵은 무명베를 서총대베라고 부르게 되었다. 纖手森攢戢戢多 고운 손처럼 가지런히 모여 수북하게 많고 兒童吹却當簫笳 아이들은 불어대는 호드기를 만드네 不唯酒席堪爲佐 술 자리의 안주 구실뿐 아니라 芼切腥羹味更嘉 비린 국에 썰어 넣으면 더욱 맛나네

睠彼南畦菜 저 남쪽 밭의 채소를 보니 春葱鬱且森 파릇한 봄파가 무성하여라 根鬚專素質 뿌리 수염은 온통 흰 바탕이고 叢葉茁蒼琳 떨기 잎은 푸른 옥과 같아라 味苦溫腸胃 맛은 매워 위장을 따뜻하게 하고 津甘補腎陰 진액은 달아서 신장 기운을 돕는다 田翁長取食 시골 늙은이 오래 이것을 먹으니 居下病難侵 미천한 몸이지만 병이 들지 않아라 옛날 사람이 소로 보이던 때가 있었다 한다. 어제까지도 사람으로 보이던 것이 갑자기 소로 보이므로 사람들은 날마다 사람을 잡아먹 었다고 한다. 더구나 잡아먹는 것은 몰랐던 사람만이 아니고 한 마 을 사람이나 심하면 한 집안 일수도 있었다. 이럴 즈음 마을의 한 청년이 늙은 황소 한 마리를 잡아먹었는데 맛 있게 먹고 나서 보니 그것은 바로 자기의 아버지였다 한다. "아버지 이 천하에 머리를 들지 못할 불효놈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 저 모든 것은 이 두 눈 때문입니다. 이 두 눈에 아버지가 소로 보였 기 때문입니다." 청년은 땅을 치며 목을 놓아 통곡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찾아보자 어디고 한없이 가면 반드시 사람이 소로 보이지 않고 사 람으로 보이게 하는 약이 있을 것이다. 나는 목숨과 바꾸더라도 그 약을 구해다 이 불행한 마음을 건지고야 말리라" 청년은 굳게 결심하고 이튿날 길을 떠났다. 집을 떠난 청년은 걷고 또 걸어서 한 없이 갔다. 그러나 청년이 가는 곳에 어디에도 그런 약이 없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도 사람을 소로 알고 날마다 잡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실망하지 않고 계속 찾아 다녔다. 이렇게 하는 동안 세월이 흘러서 청년은 어느 덧 늙은이가 됐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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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

박경리, 토지 13 권, 나남출판사, 212~213

렇지만 그가 찾는 약이 있는 마을은 띄지 않았다. 눈이 어둡고 다리 는 힘이 빠져서 이제는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어떤 고요하고 아득한 마을에 이르렀다. 푸른 산과 맑은 냇 물을 끼고 집들이 총총히 들어서 있었다. 그는 마을 어귀에 이르러 늙은 소나무 아래에서 다리를 쉬었다. 근처에는 밭이 있고 거기서는 알 수 없는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 왔다. "그 냄새가 좋다. 무슨 풀이기에 저렇게 좋은 냄새를 풍기는 것일까" 그는 자기가 정처 없이 약을 구하러 다니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이 야기를 다 듣고 난 노인은 가엽다는 뜻이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우리 고장에서도 옛날에는 사람이 소로 보여서 날마다 잡아 먹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다가 저기 저 밭에 심은 풀을 먹은 후부터 비로소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소는 소로 보여서 그런 잘못 이 없어졌소" 이 말을 듣고 그는 놀랐다. "이제야 소원을 풀었습니다. 나에게 그 풀을 나누어 주십시오" 그는 너무나 기뻐서 땅에 꿇어앉아 노인에게 간청을 했다. 그리하여 풀씨를 한 봉지 얻어 품속에 깊이 간직했다. 가슴에 기쁨을 한 아름 안고 고향에 돌아 온 그는 남향 밭 기름진 곳을 골라서 곧 그 씨를 뿌렸다. 그리고는 즐거움을 참지 못해 마을 로 들어갔다. 그러나 슬픈 일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그가 소로 보였기 때문에 모두 쟁기를 들고 덤벼 들었다. "아니오 나는 소가 아니라 사람이요" 그는 아무리 소리쳐 외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 놈의 소 크게도 운다." 하며 마을 사람들은 마침내 그를 잡아먹어 버렸다. 밭이 우거진 것 을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풀이 하도 향기로와 먹 어보니 맛도 또한 좋았다. 사람들은 그 맛에 끌려서 날마다 반찬으 로 먹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파였다. 파를 먹게된 사람들은 비로소 사람을 소로 보는 일이 없게 됐고 마을은 편해졌다 한다. ‘“이제 겨울은 다 가는개비야. 멀잔아 냉이국을 찾겄제잉?” “사람이란 늙어갈수록 봄이 좋고 기다려지기도 허고, 금년에는 너가 있인께 나물 캐러 가볼 것이여.”“참꽃 따다가 화전도 맨들고, 어디 생청이 좀 남아 있을 것인디.”“참꼿술도 그게 기침에는 영양인디.”“이삼 년 묵힌 술은 천만(喘滿)병도 고친다 혔인께.” ‘노릿노릿하게 탄, 기름이 흐르는 화전 하나, 반으로 갈라서 동생 한쪽 누이 한쪽, 오래오래 씹어 먹을 수 있는 화전, 시장기를 달랠 수도 있었으련만 진달래꽃 은 따먹어도 따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다. 천만병을 고친하는 진 달래술,’

- 98 -


⑤ 기타 번호

명칭

출전

내용

1

갈비

장자백 창본 춘 향가

…이게 웬일이요 저 갈비 한 대 주오 운봉이 홧김에 망발을 하여 여 보 갈비를 달나면 고이 달라지 남의 생갈비를 빼라하시오…

2

갈비찜

박흥보전

3

갈비찜

4

갈비찜

5

김치

심정순, 곽창기 창본 수궁가 백성환 창본 춘 향가 장자백 창본 춘 향가

…나는 아무 것도 말고 정절편에 영계찜 갈비찜 육만두 설산적 화전 냉면 지지개 골탕을 많이 하여놓고 어머님은 매를 들고 저 놈을 못먹 게 휘두르어 금지하고 나 혼자 먹었으면 잘 먹는가 못 먹는가 굿 좀 보아 주옵소서… …벙거지ㅅ골 넙이할미 가리찜 양복기가 십상이오 가죽은 벗겨내어…

6

김치

7

8

…매추리 자반 생치 구어 첨장 수육 제육이며 대양판 갈비찜 소양판 제육찜 뻑벽기 조란하고… …부엌으로 통통 들어가 먹던 밥 제리짐치 풋고추 단간장 냉슈 써 소반에 받쳐 들고 서방님전 드리오며 더운 진지할 동안에 우선 요기 나 하옵소서…

신재효 심청전 읍내본 신재효본 적벽가

…네 정경이 저리 되랴 끌끌 탄식 혀를 차며 담었던 밥이라도 아끼잖 고 덜어 주며 김치 졋갈 건개 등물 고로고로… …개 잡고 닭 잡아셔 호군(護軍)을 질끈하고 연환(連環)한 끈 전선 (戰船)을 대강 중앙(大江中央) 덩실 띠워…

대추, 밤

이선유 창본 심 청가

…오미자 감자 대추 생율 능금 오앗 차도 석과 각색 화초 가진 과목 칭칭이 심었는대 …

9

돼지, 굴

서긍, 고려도경, 고기잡이

10

비지국

박흥보전

고려에는 양과 돼지가 있지만 왕공이나 귀인이 아니면 먹지 못하며, 가난한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는다. 미꾸라지, 전복, 조개, 진주조 개, 왕새우, 무명조개, 대게, 굴, 거북이다리가 있고 해조인 다시마도 귀천 없이 즐겨 먹는데, 구미는 돋구어 주지만 냄새가 나고 짜므로 오래 먹으면 싫증난다. 어부들은 썰물이질 때마다 배를 섬에 대고 고기를 잡는다. 그러나 그 물은 잘 만들지 못하여 거친 천으로 고기를 걸러낼 뿐이어서 힘은 크 게 쓰나 많이 잡지는 못한다. 다만 굴과 대합들은 조수가 빠져도 나 가지 못하므로, 사람들이 주워 모으는데 힘껏 거두어 들여도 없어지 지 않는다. …배부르기는 비지국이 상이였다…

11

설렁탕

12

쇠고기

심정순, 곽창기 창본 수궁가 신재효본 적벽가

송아지로다 송아지라니 더욱 좋다~ 너를 잡어 두 족 앞 뒷다리 선지 내장은 설렁탕 집으로 보내고… 조조(曺操)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여 술 많이 거르고 떡 많이 치 고 소 만이 잡고 돼지 많이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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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쇠고기

14

어전, 육전

15

16

조락산적

17

참깨, 쌀

이선유 창본 화 용도 장자백 창본 춘 향가 심정순, 곽창기 창본 수궁가

호군취태 즐겨 놀 제 소도 많이 잡고 도야지도 많이 잡고…

장자백 창본 춘 향가 서긍, 고려도경, 농업

…조락산적 웃짐쳐 양회 간천엽 콩팥 양편에 벌여놓고 청단 수단에 잣박이며… 고려의 토지는 메조, 옻, 기장, 좁쌀, 참깨, 보리와 밀 등을 재배하는 데 알맞다. 쌀은 멥쌀이 있으나 찹쌀은 없고, 쌀알은 특히 크고 맛이 달다.

…오도동 포도동 외초리탕 꼬끼요 연계찜 어전 육전 지지재며… …사명일 기제사에 적감으로 실컷 쓰고…

2) 이미지 ① 이미지 목록 번호 1

명칭

출전

내용

설명

과자화(瓜字 장서각

가례(嘉禮) 진연의례(進宴儀禮) 등에 쓰인 의물(儀物)

花)

장식품으로 조화(造花)의 하나이다. 가는 구리 철사로 가지를 만든 뒤 여기에 깁을 감고 비단조각 등으로 만든 오이 및 그 꽃송이와 잎 등을 꾀어 장식하였다.

2

금산인삼백 문화재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

주 (錦山人 청

금산 금녕 김씨 문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술로 쌀

蔘白酒)

과 통밀·솔잎·쑥·인삼을 사용하여 만들며, 완성된 술 은 인삼향기가 나고 색깔이 부드럽다. 양조방법은 김씨 문중에 내려오는『수문록』이나『잡 록』에 전해온다. 이에 의하면 끊인 물을 식혀 준비 하고 통밀과 인삼을 섞어 3개월을 누룩으로 만들어 준비한다. 별도로 고두밥을 만들어 두었던 누룩과 인 삼, 양조용 물을 섞어 밑술을 만든다. 여기에 다시 양 조용 물과 약쑥·솔잎·인삼·고두밥을 섞어 40∼60일간 숙성시킨 후 이것을 증류하면 백주가 완성된다. 금산 금녕김씨 문중에 전해오고 있는 전통양조법 기 능에 대한 지정이다. 인삼의 종주지 충남 금산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인삼주(人蔘酒)가 있다. 흔히 "인삼주"라 하면 인 삼을 소주에 담궈 우려낸 침출주(浸出酒)로 알려져

- 100 -


있는데 "참"인삼주는 전통의 술 빚는 방법으로 인삼 을 저온 발효시킨 양조주(釀造酒)이다. 인삼 특유의 알싸한 청향(淸香)이 담장을 타고 넘는 금산인삼주는 신비의 영약 인삼의 식용수단을 술이라 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발현시킨 것이다. 한국 최고 의 특산품 인삼과 풍요의 상징인 쌀에 인삼의 향을 돋우기 위해 조화성이 뛰어난 솔잎 및 약쑥을 청정지 역 금산의 맑고 깨끗한 물탕골 샘물로 빚었다. 주조법에 대한 문헌으로는 김씨 문중에 내려오는 수 문록이나 잡록에 전해온다. 쌀과 통밀, 솔잎, 쑥과 인삼을 사용하여 16%의 청주 를 만들고 다시 이 술을 증류하고 고리를 써서 43% 의 백주를 만든다. 예부터 사대부 집안에서나 빚은 가양주(家釀酒)로 적 당량을 장복하면 사람의 기를 높여주는 약용주(藥用 酒)의 대명사 금산 인삼주는 이제 생활의 활력주로 3

김장용

우리들 곁에 소중히 다가올 것이다. 잎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자라는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이며 속은 황백색, 겉은 녹색임. 봄에 십자 모양 의 노란 꽃이 핌. 잎·줄기·뿌리를 모두 김치 등을 담

4

김제 리

부거 문화재 옹기가 청

는 데 사용. 세는 단위는 포기·통·단·접(100통) 등록문화재 제403호 부창 마을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이

마 (金堤 富

만든 마을이다. 2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옹

巨里

기가마가 6개가 있었으나 모두 소실되고 이 옹기가마

甕器

가마)

와 작업장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직접 장작을 피 워 사용하는 전통 방식의 가마로, 구릉지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가마가 놓일 자리를 마련하고 전통적인 수 제 흙벽돌을 쌓아 가마를 구축하였다. 측면 구멍을 통하여 불을 땔 수 있어 가마 전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으며 긴 형태의 가마임에도 균일하게 굽

5

김치광

장서각

기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김치각’ 혹은 ‘김치움’이라 불렸던 김장 김치를 저장하는 광. 주로 경기도 지방에서 쓰였다. 김치는 온도 변화가 비교적 적은 지하에 저장해야 하 는데 항아리를 묻어 두고 자주 드나들기에 불편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자연히 움보다는 큰 집의 형태가 되었다.

- 101 -


6

나 물 캐 는 장서각

농가월령가에는

미나리·고들빼기·씀바귀·소로쟁이·물

모습

쑥·달래김치·냉이국 등의 들나물과 두릅·고사리며·고 비·도랏·어아리 등의 산나물, 그리고 무·배추·아욱·상 추 등의 밭작물 같은 온갖 나물이 등장하여 우리 민

7

담북장

장서각

족이 예로부터 나물을 즐겨 먹었음을 알려준다. 입춘을 전후한 봄철에 먹는 한국 된장. 향기와 맛이 독특하여 이른 봄에 먹기 알맞은 별미장.

8

메주

장서각

콩, 보리, 밀, 쌀 등을 익혀 띄워 만드는데, 장에 따 라 메주 만드는 법이 다름. 간장용 메주 만드는 방법 은 콩 → 수침(실온에서 12시간) → 삶음 → 절구에 찧음 → 성형 → 겉말림(2~3일간) → 재우기(짚을 포 개어 씌움, 4주간) → 햇볕에 말림 → 다시 재우기(2

9

미나리

장서각

개월) 순. 미나리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물 속이나 물 이 많은 진흙 속에서 뻗어 자란다. 데쳐서 나물로 무 쳐먹는 등 식용으로 쓰인다.

10

봉수당진찬 문화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6호

도 (奉壽堂 청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봉수당진찬도는《화

進饌圖)

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8폭 중의 한 폭으로《화 성능행도병》은 정조가 1795년(정조 19년) 윤2월 9 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에 걸쳐 화성에 있는 부친 사 도세자(1735-1762)의 묘소인 현륭원에 행행(行幸)했 을 때의 주요 행사를 그린 병풍으로 그 중 <봉수당 진찬도>는 현륭원 행차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로 혜경궁 홍씨의 탄신 일주갑을 기념하여 베풀어진 진 찬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진찬례는 화성행궁에 도착 한지 사흘째인 윤2월 13일에 봉수당에서 거행되었으 며, 이 연회에는 친인척 82명이 초대되었다 한다. 그림은 화면 상단에 봉수당을 포치하고, 중량문을 지 나 하단의 좌익문을 연결하는 행각과 담장으로 구획 되어 있다. 그 안쪽으로는 진찬광경이 그려져 있다. 봉수당 앞 계단에서 뜰에 이르기까지 임시로 덧마루 를 설치하고, 대형 차일이 쳐진 백목장(白木帳)을 둘 러 공간을 구분하였다. 봉수당 온돌방에 마련되어 있 는 혜경궁과 내외명부의 자리는 주렴으로 가려져 있 고, 보계의 왼편 앞쪽에는 병풍을 둘러쳐져 있으며, 그 안쪽에는 호피보료방석이 보이는데, 이는 정조의 자리임을 암시한다. 물론 위대한 인물을 그려 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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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는 조선시대 기록화방식을 따라 정조의 모습은 그 려져 있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호피방석이 2006년 보물 제1498호로 지정된 <조선후기 문인초상>의 방 석과 유사하다는 점으로서, 정조 년간 상층계층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덧마루 위에는 융복(戎服) 차림의 의빈(儀賓)과 척신(戚臣)들이 좌우로 나누어 쭉 앉아 있으며, 그 중앙에는 여령(女姈)들이 음악에 맞추어 일종의 공연을 펼치고 있다. 중앙문 밖에는 어가를 호위해 온 백관(百官)들이 융복(戎服)차림으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데, 찬탁(饌卓)위에는 술잔과 함께 하사받은 꽃(종이꽃)이 꽃혀 있다. <봉수당진찬도>는 동국대학교 소장본 외에도 국립중 앙박물관과 리움삼성미술관, 고궁박물관, 일본 교토대 학 문학부 박물관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전체적인 형 식은 같지만 세부묘사에 있어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동국대학교본은 다른 진찬도에 비해 채색의 농도가 짙고, 묘사가 대체로 정밀하며 마치 위에서 본 듯 축 약된 병풍 화면형태나 병풍 폭의 꺽이는 부분묘사, 인물들의 실감나는 동작 표현 등은 여타본 보다 뛰어 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와나 함 등에 명암이 절묘하게 구사되어 있는 점 등은 행사가 행해졌던 시 기보다는 좀 더 후인 19세기 경에 제작되었을 것으 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비록 단폭(單幅)으로만 전해오지만,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가필의 흔적이 없고 19세기 11

부여저동리 문화재

기록화로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산중 턱에 있는 높이 30m의 거대한 자연석 바위로,

쌀바위 (扶 청

일명 ‘쌀바위’라 불리는데, 이렇게 불리는 데에는 다

餘苧洞里쌀

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바위)

예전에 한 노파가 대를 이을 손자를 얻기 위하여 미 암사라는 절에 찾아와 지성으로 불공을 드렸다. 그러 던 중 꿈에 관세음 보살이 나타나 호리병에서 쌀 세 톨을 꺼내어 바위에 심고 끼니 때마다 여기서 나는 쌀을 가져다 밥을 지으라고 하였다. 노파가 꿈에서 깨어보니 바위에서 쌀이 나오고 바라던 손자도 얻게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후 욕심이 생긴 노 파는 더 많은 쌀을 얻기 위해 부지깽이로 구멍을 후 벼 파고 말았으며 그 후로 더 이상 쌀은 나오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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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핏물이 흘렀다고 한다. 후대인들에게 욕심이 지나치면 결국 화를 부른다는 교훈적인 내용을 전하고 있으며, 쌀바위라는 명칭 이 외에도 음겨석, 촛대바위, 부처바위 등으로도 불리고 12

서울

선농 문화재

있다. 사적 제436호

단 (서울 先 청

선농단은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고 일컬어지는 고대

農壇)

중국의 제왕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를 주 신으로 제사지내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선농제는 삼국 신라시대 때부터 행해졌다 는 기록이 있다. 이때부터 이미 농사의 삼신(三神), 즉 선농과 중농, 후농에 제사를 지내는 등 선농제향 을 행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도 선농제는 행해졌는데 중국 의식을 따라 정월 해일에 적전(籍田)에서 신농씨와 후직에게 제사 를 지냈다. 성종 2년(983) 정월 신미일에는 환구단에 서 기곡제를 지내고 같은 달 을해일에 적전에서 제사 를 지내고 친경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전반적으로 불교나 팔관회와 같은 고유 전통에 의존 하는 바가 컸기 때문에 이 시대의 선농제는 극히 제 한된 상황에서 시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 예법에 의거한 선농제가 국가의 주요 전례(典禮)가 되었고 그 의미도 강화되었다. 태 종은 선농제의 제향일을 정월 길(吉) 해일에서 경칩 이후 길한 해일로 바꿔 거행하고 친경의계를 제정하 였다. 중농?후농제를 폐지하고 대신 삼신을 대표하는 선농제만 모셨다. 태조 1년(1392)에는 한양 근교에 왕이 친경(親耕)하는 전지(田地)인 동적전을 설치하고 경작하였으며 이를 관장하여 경작과 수확을 살피는 고직인 적정령이 내려지고 승(丞)이 설치되었다. 태종 14년(1414)에는 선농제를 위한 제단의 단과 유의 설 치 규정이 마련되었다. 세종 재위 당시에는 친향선농 의와 친경의주를 제정하고 《국조의례의》, 《길례》 에 선농단과 경작에 대한 의식을 규정하였다. 성종은 《국조오례의》의 친경의례의 내용을 수정 보완하였 으며 성종 7년(1476)에는 친경대를 신축하고 처음으 로 친경례를 거행하였다. 영조 43년(1767)에는 친경 의궤를 편찬하고 권농과 고례를 특히 회복하고자 하

- 104 -


였다. 일제강점기 직전인 순종 3년(1909)에는 사직단 으로 위패가 옮겨지고 선농단 일원이 국유화되면서 제향이 폐지되었다. 이후 일제는 선농단이 위치한 곳 에 청량대(淸凉臺) 공원을 조성하고 숭인보통학교(현 서울종암초등학교)를 세워 선농제의 역사 문화적 의 미를 말살하였다. 폐지된 제향행사는 1979년에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선농단친목회에 의해 비로소 재개되었으며 1992년부 터는 동대문구에서 인수받아 매년 선농제를 모시고 있다. 선농단에서 제례를 마친 후 참석했던 사람들이 소를 잡아 탕을 끓여먹었다는 데에서 설렁탕이 유래되었다 13

서총대친림 문화재

고 전한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연회도 (瑞 청

조선 명종 15년(1560) 9월 19일 왕이 문과와 무과의

蔥臺親臨宴

여러 신하들을 불러 창덕궁 서총대에서 연회를 즐기

會圖)

는 광경을 묘사한 그림이다. 화면을 3등분하여 나누어 맨 윗부분에 ‘총대친림연회 도’라는 그림의 제목과 함께 연회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려 놓고, 가운데에는 당시 의정부 좌찬성으로 있던 홍섬의 글을 실었으며, 아래에는 연회에 참석했던 문 신과 무신 74인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 이 연회에 대하여는『명조실록』에도 기재되어 있는 데, 당시 연회에서 왕은 손수 시의 제목을 내리니 이 에 문신들은 시를 짓고, 무신들은 활을 쏘아 그 기량 을 보였으며, 왕은 술과 안주를 내리고 또 성적에 따 라 호랑이 가죽, 말 등의 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튿날 신하들이 다시 모여 연회 장면을 기념하기 위하여 예 조에 맡겨 그림을 그리도록 하였는데, 4년 뒤인 명종 19년(1564)에 이 그림이 완성되었다. 그 모습이 간략하게 도식화되어 그림 자체로서의 예 술적 의의는 찾기 어려우나, 왕이 친히 참석하여 베 푼 연회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점과 그림과 글씨가 어우러진 16세기 중반의 진본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14

순창고추장 장서각

가치를 지닌다. 찹쌀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군 순창읍내의 고추장 상

골목

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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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신사임당초 문화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호

충도병 (申 청

병풍은 율곡 이이 선생을 모시는 송담서원에 있었는

師任堂草蟲

데, 순조 4년(1804) 강릉에 산불이 나면서 이 서원까

圖屛)

지 불이 번지게 되어 분실되었다. 후에 강릉의 민가 에 보관되어 오던 것을 후손인 이장희가 입수하여 율 곡 기념관이 건립되자 1965년 기념관에 기증한 것이 다. 그림은 자연의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하여 각 폭마다 꽃과 관련된 풀벌레를 중점으로 그렸으며, 그 종류가 20여 가지나 된다. 오이나 가지는 풍요한 느낌을 갖 게 하고, 벌레나 잠자리 등은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생동감을 가져다 주며, 풀꽃들에 날아드는 나비나 벌 의 표현도 재미있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이 그린 8폭의 유색(有色) 초충도 (草蟲圖)의 병풍(屛風)으로 각 폭마다 각기 다른 초화 (草花)와 벌레를 그렸기에 초충도(草蟲圖)라고 부르고 있다. 신사임당의 자녀인 이매창이나 이옥산의 그림 들은 묵화(墨畵)로 되어 있으나, 이 병풍화는 채색(彩

16

신안

증도 문화재

色)으로 되어 있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1648에 있는 이 건물은

석조소금창 청

태평염전 조성 당시 이 지역 석산에서 발파한 돌을

고 (新安 曾

사용하여 건립한 소금보관 창고이다. 80년대 후반 목

島 石造 소

재 창고가 만들어지면서 자재창고로 사용하였다가

금倉庫)

2007년 7월, 석조 소금창고의 바깥쪽과 안쪽을 그대 로 활용하면서 일부 개조하여 소금박물관으로 개관하 였다. 석조로 만들어진 소금창고 초기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염전 역사와 석조건축사에 있어서도

17

신안

증도 문화재

그 의의가 크다. 등록문화재 제360호

태평염전 청

이 염전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 구제와 국내 소금

(新安 曾島

생산 증대를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전증도와 후증도

太平鹽田)

를 둑으로 연결하고 그 사이 갯벌에 조성한 국내 최 대의 단일 염전으로,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의 1공 구가 북쪽에, 2공구가 남쪽에, 남북 방향으로 3공구 가 조성되어 있다. 염전 영역에는 목조 소금창고, 석 조 소금창고, 염부사, 목욕탕 등의 건축물이 있으며, 자연 생태의 갯벌, 저수지와 함께 천혜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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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신축진연도 문화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06호

병 (辛丑進 청

1901년 7월 고종황제의 오순을 기념하여 거행된 진

宴圖屛)

연을 그린 8폭의 병풍으로 제1·2폭에는 7월 26일의 함녕전외진연(咸寧殿外進宴), 제3·4폭에는 27일의 함 녕전내진연(咸寧殿內進宴), 제5·6폭에는 같은 날 밤의 함녕전야진연(咸寧殿夜進宴), 제7폭에는 29일의 함녕 전익일회작(咸寧殿翌日會酌) 등 네 장면이 그려져 있 다. 마지막 폭에는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한 진연청 당상 과 낭청의 좌목이 쓰여 있어서 이 병풍이 진연청(進 宴廳)에서 만든 계병임을 알려준다. 진연청 당상에는 원수부(元帥府) 군무국총장(軍務局總長) 임시서리(臨 時署理) 민영휘(閔泳徽, 1852~1935), 의정부(議政府) 찬정(贊政) 겸 규장각(奎章閣) 학사(學士) 김성근(金聲 根,

1835~1919),

의정부

찬정

이지용(李址鎔,

1870~?), 낭청에는 탁지부(度支部) 주사(主事) 이규 백(李圭白, 1863~?), 영친왕부(英親王府) 전위(典衛) 안필용(安必瑢), 내부(內部) 주사(主事) 서병염(徐丙炎, 1852~?), 통신원(通信院) 주사(主事) 이범신(李範信), 태복사(太僕司) 주사(主事) 서상경(徐相璟), 탁지부 주 사 윤태길(尹泰吉), 교방사(敎坊司) 주사 임건상(林健 相), 의정부 주사 윤형구(尹逈求) 등 11명이다. 마지 막에는 “광무오년신축칠월일(光武五年辛丑七月日)”이 라고 진연의 일시가 명시되어 있어 1901년에 제작되 었음을 알 수 있다. 1848년 <무신진찬도병(戊申進饌圖屛)>부터 진찬·진 연도병의 첫 번째 장면에는 진하도가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진하 장면이 생략되 고 연향 장면으로만 꾸며져 있어 이례적이다. 또한 1901년 7월의 진연에 대해서는 신축진연의궤(辛丑 進宴儀軌)가 남아 있어서 자세한 내용 고증이 가능 하다. 첫 번째 장면인 함녕전외진연도(咸寧殿外進宴圖)는 대한제국기에 처음 거행된 외연의 모습을 보여주며 고종이 주인공인 외연으로서 행사장 설비가 나머지 장면과 달리 개방적이다. 황색으로 치장된 휘장과 상 탁보, 외보계(外補階) 위에 세워진 태극기와 신식 군 복을 입은 군졸에서 대한제국기의 변화를 느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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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두 번째 장면인 함녕전내진연도(咸寧殿內進宴圖) 에는 황후(명성황후)가 공석이었으므로 주인공은 고 종황제뿐이었다. 세 번째 장면인 함녕전야진연도(咸 寧殿夜進宴圖)에서는 유리등(琉璃燈)과 촛대, 사롱등 (紗籠燈)이 걸린 모습에서 시각이 밤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장면인 함녕전익일회작도(咸寧殿翌日會酌圖) 는 황태자가 주인공이 되어 행사 준비와 진행을 맡았 던 내명부와 진연청 당상들을 위로하는 연향을 그린 것이다. 황태자가 연향의 주체였으므로 실내의 상탁 보는 붉은 색으로 바뀌었다. <신축진연도병>의 치밀하고 아름다운 세부묘사는 화 려한 궁중연향의 분위기와 고급스런 치장을 잘 전달 하고 있다. 화면 구성, 매우 가늘고 성긴 비단 바탕의 종류, 배채법에 의한 설채 방식, 금채(金彩)의 사용, 명암법의 구사 등 19세기 이래의 전형적인 궁중연향 도병의 형식과 기법, 양식을 보여준다. 뚜렷하고 곧은 윤곽과 배채법에 의한 채색은 선명하면서도 깊은 맛 을 주고 있으며, 장황도 개장되지 않은 원래의 형태 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의 우수성과 함께 현 재까지 알려진 1901년 7월의 진연을 그린 병풍으로 19

여주이포리 문화재

는 유일한 예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11호

옹기가마

이 통가마는 현재까지 주로 옹기류를 생산하는 방식

으로 남아 있으며 긴 것은 30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옹기가마는 보통 통가마라고 하며 뺄불통가마, 용가 마, 대포가마라고도 불리운다. 미국의 Tube Kiln, 일 본의 아나가마 등으로 불리는 통가마는 우리나라에는 신라시대에 들어와 주로 신라토기와 질그릇(도기) 등 을 구워왔다.

작은 가마는 3~4m,

큰 가마는

40~50m의 긴 터널 형태로서 20~30˚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며, 가마 밑부분이나 옆부분 1, 2군데에 자리 잡은 문을 통해 기물을 재임하고 밑에서부터 예열하 여 소성을 시작한다. 천장에 있는 작은 화구(창솔구 멍)을 통해 나무를 투입하여 가마 전체의 온도를 일 정하게 조절하므로 가마가 길어도 균일한 소성이 가 능하며, 경사진 언덕에 가마를 짓기 때문에 경사 기 울기 그 자체가 굴뚝역할을 하여 자연스럽게 온도가 올라간다. 이 이포리 옹기가마는 작업장의 오른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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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며 그 용도에 따라서 가 마의 형태와 규모가 다르다. 이 가마들은 각각 통가 마, 뫼통가마, 단가마(질가마)로 불리우며 통가마(길 이 24.5m, 폭 2.4~2.8m, 높이 1.53~1.75m)는 주로 큰 항아리를 소성할 때, 뫼통가마(길이 10.73m, 폭 1.5m, 높이 1.1~1.15m)는 소품이나 반오지그릇을 소성할 때,

단가마(길이 7m,

폭 1.95m,

높이

1.15~1.27m)는 시루나 푸레기 그릇을 소성할 때 사 20

옹기장 (甕 문화재

용한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0호

器匠)

옹기장 배요섭 씨(중랑구 신내동 거주)는 잿물 없이

구워낸 “푸레토기”를 제작하고 있다. “푸레토기”는 흙으로 빚어낸 그릇에 아무런 유약(잿물)을 입히지 않고 장작가마에 구워낸 전통 옹기를 말한다. 한미요 배씨 토가의 배요섭 씨(1926년生)는 4대째 이어오는 옹기 장인이다. 배요섭 씨의 고조부도 많은 옹기장인들이 그러하듯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 속에서 생업으로 옹기 굽기를 시작했다. 배요섭 씨는 “논 서마지기 물려받는 것보다 낫다”는 할머니 의 권유로 옹기장이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둘째 아들 배연식 씨와 함께 우리 도자기사에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푸레토기”를 재현시켰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 21

옹기장 (甕 문화재

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6호

器匠)

옹기장이란 독과 항아리 등을 만드는 장인을 가리킨

다. 옹가장이 만든 옹기는 우리민족이 다함께 애용해 왔으며 앞으로도 애용되어야 할 생활용기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고 계승되어 왔고, 외래문화에 오염 되지 않은 유일한 용기이기도 하다. 옹기장이 활동하는 곳을 옹기점(店)이라 하며 이 곳 에는 움이라는 작업장과 그릇을 굽는 가마굴로 구분 되어 있다. 전통적인 옹기는 자기와 쌍벽을 이루는 민요기(民窯 器)로서 사회적 계급의 귀천을 막론하고 다같이 애용 되는 초벌구이로서 표면에 잿물로 옷을 입힌 다음 이 를 구워서 만든 소박한 모습의 그릇이다. 40~50년 전까지만 해도 전국 곳곳에 옹기점이 산재해 있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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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1968~9년도에 조사한 바로는 5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과학문명의 발달과 서양문 화의 전파에 따라 고유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있다. 옹기는 원래 옹기표면에 잿물유약을 사용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근래에 와서 ‘광명단’이라는 산화연으로 제조된 연유를 배합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연유(鉛釉) 를 사용함에 따라 옹기의 질이 낮아지고 납 성분이 베어들게 되어 옹기점은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었고 (1984년도에는 250여점으로 감소) 스테인리스와 플 라스틱 용기의 출현으로 옹기점의 몰락이 촉진되었 다. 이와 함께 시설면에서도 개량식 칸가마인 뫼통가 마의 출현으로 구조변화가 나타났다. 또한 수레질 하 지 않고 석고성형 후 가마구이 함으로써 저화도(底火 度)의 옹기가 나오는 등 원형대로의 옹기는 찾아보기 22

옹기장 (甕 문화재

힘들게 되었고 하고자하는 이들도 사라졌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

器匠)

옹기(甕器)는 점토와 천연잿물을 사용하여 1,200℃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토기로서 신석기시대부터 발달 해 온 토기 제작 기술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의 전통공예이다. 옹기는 질그릇(지사독, 진흙만으로 반죽해 잿물(柚藥) 을 입히지 않고 번조(燔造)하여 광택이 없는 그릇)과 오지그릇(질그릇에 잿물을 입혀 번조하여 광택이 나 고 단단한 그릇)을 총칭하는 말이었으나 근대 이후 질그릇의 사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오지그릇을 지칭 하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옹기는 찰흙을 빚어 구운 그릇으로,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있어 공기와 습기는 통과되지만, 입자가 굵은 물분자는 통과되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래서 옹기는 숨을 쉴 수 있으며, 담긴 내용물은 새지 않고 23

이경석

궤 문화재

신선하게 보존될 수 있다. 보물 제930호

장 및 사궤 청

조선시대에는 70세가 넘는 신하에게 공경의 뜻으로

연회도

나라에서 지팡이 <장 (杖)>와 의자 <궤 (几)>와 가마

화첩 (李景

등을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에 따라 왕이 내린 물

奭 几杖 및

품이다. 현종 9년(1668) 11월 왕이 당시 원로대신이

賜几杖

었던 이경석에게 공경의 뜻으로 내린 궤 1점과 장 4

會圖 畵帖)

점 그리고 이를 받는 장면을 그린 그림 1점 등 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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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의 유물이다. 궤장을 내릴 때에는 반드시 잔치를 열었는데 의정부 의 동서반을 비롯한 대신들을 참석하게 하고 예문관 이 작성한 교서를 낭독하게 하였다. 이 그림은 바로 이런 장면들을 3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것이다. <지병 궤장도>는 임금이 내리는 궤장을 맞아들이는 장면, <선독교서도>는 임금이 내린 교서를 낭독하는 장면, <내외선온도>는 궁중에서 보낸 악사와 무희들이 연 주하고 춤추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벼슬이 정승까지 올랐어도 70세까지 수를 누린다는 것은 드문 일로 그에 따라 임금이 내린 이 물품은 매 우 귀중한 유물이다. 궤장은 조선 중기 국가에서 운 영하던 공전에서 제작된 것으로 그 당시 제작규정과 양식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조선시대 공예품이며 『연회도첩』은 당시 풍속도로 회화적 가치가 큰 작 24

장 식 음 식 문화재

품이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42-1호

(粧飾飮食)

전남의 서남부지역인 무안의 서용기씨는 집안 대대로

의 의례음식과 예법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 서용기 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함평군 해보면 금계리에서 서연섭(連燮, 1878~1935)과 창녕 조씨 사이의 6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相國)는 각종 의 례의 예법과 문어오림을 비롯한 의례음식에 매우 해 박했는데, 조부 때부터 내려오는 의례음식의 제조는 가통이 되어 상국(相國, 조부) → 연섭(連燮, 부)ㆍ순 섭(順爕, 숙부) → 용기(龍基)로 3대째 이어진다. 일상식과 달리 의례음식에서는 남녀의 음식영역이 일 정부분 나뉘어져 있어 어느 한 쪽이 없으면 상차림이 온전할 수 없다. 서용기의 경우, 남자이면서도 특별히 의례음식에 정통하다. 제사상차림 등 상차림의 격식 과 폐백닭ㆍ문어오림ㆍ과일고임ㆍ상화만들기 등 장엄 이 필요한 의례음식에 특장이 있다. 서용기씨의 의례음식 중에서 폐백닭 만들기와 문어오 림은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법을 찾기 어려울 만큼 독 특하다. 폐백닭은 털을 제거한 후 삶아서 만드는 방 법과 한지로 만드는 방법 등이 있지만, 서용기의 경 우 내부는 삶은 닭, 외부는 원래의 털로 복원하는 기 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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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 하나로 봉황ㆍ사군자ㆍ송학 등을 오려내어 의 례상에 포(脯)로써 올리는 문어오림은 각종 고임과 더불어 장엄을 나타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평면 에 약간의 양감을 주어 표현하는 일반적인 형식과 달 리 오려낸 한 무리의 꽃조각으로 좌대를 삼아 주 대 상물을 곧추세워 입체적인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섬 세한 손놀림과 예술적 감각으로 오려낸 문어오림은 전국적으로 최고의 ‘장식음식’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서용기씨는 타향에 나가 살지도 않았고, 60세가 넘어 서 기능을 세상에 내놓았던 만큼 때묻지 않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승과정에서 학습되거나 보태어지지 않았어도 기능은 수준급에 이르고 있다. 전남 서남부 지역의 의례음식과 상차림을 온전히 전 25

장화리쌀뒤 문화재

승하고 있는 것이다. 쌀을 담기 위해 만든 대형 뒤주이다. 보통의 뒤주가

주 (長華里 청

통나무나 널빤지를 짜서 궤짝의 형태로 만드는데 비

쌀뒤주)

해, 이 뒤주는 크고 외형도 독특하다. 크기는 너비 2.1m, 높이 1.8m로, 널빤지를 짜 맞추어 벽체를 구 성하고 볏짚으로 지붕처럼 뚜껑을 만들어 씌웠다. 이 고장 출신인 정준섭은 당시의 큰 부자로, 이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매일 수백 명에 이르자 작은 궤짝으로 는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안마당에 이러한 초대형 쌀 뒤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 고종초에 제작된 이 뒤주는 70가마 정도의 분 량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고 독특한 건조물로서, 집을 찾는 사람들을 소홀하게 대접하지 않았던 당시 의 훈훈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민속자료이

26

부치는 장서각

모습

다.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재료를 얄팍하게 썰어 밀가루 를 묻혀서 지진 음식의 총칭. 전유어(煎油魚)또는 저 냐라고도 함. 육류·어패류·채소류 등 각종 재료가 넓 게 쓰이며, 반상 또는 잔치상·주안상에 두루 잘 어울 리는 음식. 종류로는 재료에 따라 감자전·게전·대합 전·부아전·육전·생선전·굴전·애호박전·파전·부추전·김

27

제주도

옹 문화재

치전·연근전·표고전 등.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4호

기장 (濟州 청

제주에서 식수 운반도구로 사용되는 허벅을 만드는

島 甕器匠)

기능이나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허벅은 전통적으로 제주에서 사용되는 식수 운반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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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제주의 자연 환경과 인문적 배경에서 자연 발생 된 특유의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특히 유약을 바르지 않고 제주도에서 나는 점토만을 사용하여 독특한 제 작기법과 감각으로 실용성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점 차 기능에 따라 독특한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색깔이 나 문양에서도 제주도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제주의 옹기를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나 15세부터 옹 기 만드는 기술을 익힌 신창현 씨는 허벅의 원형 보 28

콩나물시루

장서각

존과 그 기술의 전승에 힘쓰고 있다. 콩나물을 기르는 전래적 방식으로 떡을 찌는 시루를 이용하여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보자기를 씌우고 수

29

30

통나무김치 장서각

시로 물을 주어 콩나물을 길렀다. 예전에는 피나무 등의 통나무 속을 파내 만든 김치독

에 김장을 담기도 했다.

김 홍 도 의 국립중

18세기경,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9.7×26.7cm,

풍속화

보물 527호

중 앙박물

점심

식사중이거나 식사를 마친 일꾼들의 다양한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점심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돌아앉 아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아낙이나 따라온 듯한 개 등도 모두 그림에 정취를 더해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31

김 홍 도 의 국립중

1781년, 한국화, 비단 위에 담채, 122.7×47.9cm

모당

홍이 앙박물

김홍도(金弘道, 1745-1816 이후)는 조선후기 화원

상공

평생 관

(畵院) 화가로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 단

도의

회혼

구(丹邱), 서호(西湖)이며, 연풍 현감을 지냈다. 산수

는 물론 인물, 풍속, 짐승, 꽃과 새 그림 등 모든 소 재의 그림에 능했다. 평생도는 높은 벼슬을 지낸 사대부의 일생 동안 기념 이 될만한 일들을 골라 그린 풍속화이며 기념화이다. 이 작품은 모당(慕堂) 홍이상(洪履祥, 1549∼1615)의 일생을 그린 여덟 폭 병풍이다. 내용은 돌잔치, 혼례 식,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동안 시험관과 선배, 친척 등을 방문하던 삼일 유가(三日遊街) 장면인 응 방식(應榜式), 한림겸수찬(翰林兼修撰), 송도유수도임 식(松都留守到任式), 병조판서시(兵曹判書時), 좌의정 시(左議政時), 회혼식(回婚式)의 여덟 폭으로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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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제8폭 윗쪽에 ″辛丑九月士能畵于瓦暑直中″ 이라 는 글을 통해1781년 9월 김홍도가 와서(瓦署)에 근 32

김 홍 도 의 국립중

무하면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경,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27×22.7cm

풍속화

중 앙박물

<벼타작>은 신분적 갈등과 대립 관계에 있는 사람들

벼타작

을 한 장면에 그린 그림이지만 이 그림에서는 서구의 사실주의 회화에서 볼 수 있는 현실 부정이나 격렬한 대립감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김홍도가 해학과 중용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33

김 홍 도 의 국립중

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경,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9.7×26.7cm

풍속화

중 앙박물

여인들이 모여 있는 우물가에 품행이 방정하지 못한

우물가

남정네가 등장했다. 남정네는 거리낌 없이 가슴을 드 러내고 물을 들이 키고 있는 반면, 여인들은 수줍어 하면서 고개를 돌리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34

김 홍 도 의 국립중

조선시대 남녀유별의 풍속을 보여준다. 18세기경,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9.7×26.7cm

풍속화

중 앙박물

발로 둘러친 어장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아내는 광

경을 그린 것이다. 고기떼를 따라 물새들이 날아들고

고기잡이

독을 실은 배 가운데는 솥까지 걸려 있어 풍성한 어 장의 분위기를 실감케 한다. 배 안에 독을 싣고 직접 35

김 홍 도 의 국립중

와서 생선을 받아 운반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18세기경,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9.7×26.7cm

풍속화

중 앙박물

여행 중에 중년부부가 간이주막에서 요기하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국자로 막걸리를 떠내는 주모의 모습이

주막

나 부뚜막 위의 밥 양푼과 술사발들이 당시 주막의 풍경을 잘 전해준다. 앞쪽의 풍경에는 역원근법을 적 36

김 홍 도 의 국립중

용해 화면 속으로 들어간 듯한 현실감을 살렸다. 18세기경,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9.7×26.7cm

풍속화

중 앙박물

김홍도(金弘道, 1745-1816 이후)의 풍속화들은 대체

논갈이

로 소탈한 서민생활의 단면과 생업(生業)의 모습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또 당시 사람들의 생활 감정을 한국적인 해학과 정취를 곁들여 생생하게 나타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김홍도 풍속화의 대표작《단원풍속화첩》에는 각 계 층의 생업 장면, 생활 모습, 놀이 풍습 등을 담아내고 있는데 김홍도의 인간과 삶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예 리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주변의 배경을 생략하고 인물이 취하는 자세와 동작만으로 화면을 구성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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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잘 부각시켰다. 연습 삼아 그린 작품처럼 보 이면서도 투박하고 강한 필치와 짜임새 있는 구성의 솜씨는 김홍도 회화의 특성을 보여준다. 김홍도가 이 러한 풍속화들을 언제부터 그렸는지는 분명하지 않지 만 대체로 30대 후반이 아닌가 싶으며, 이 풍속화첩 의 제작 시기는 40대 전후로 추측된다. <논갈이>는 한 쌍의 소가 쟁기를 끌고 두 명의 농군 이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대 각으로 솟구치고 있는 소라든지 쟁기를 잡은 농부의 37

김 득 신 의 간송미

몸짓 등이 힘든 농사일을 말해준다.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2×36 cm, 저작권 미해결

풍 속 화 첩 술관 중 38

작 긍재

추수타 김득

/

제작연도

미상,

한국화,

종이에

신(兢齋 金 암미술

35.4×94.7 cm, 저작권 미해결

得臣)의 풍 관

제3폭 김장을 하며 겨울채비하는 모습

엷은

색,

속8곡병(風 장 俗8曲屛) 중 김장

39

김 득 신 의 간송미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2×36 cm, 저작권 미해결

풍 속 화 첩 술관 중

천렵도

( 風俗畵帖 40

중 川獵圖) 김 득 신 의 개인

18세기, 한국화, 종이에 엷은 색, 32×41 cm, 저작권

풍속화첩

미해결

농촌풍

일 (風俗畵 帖 중 農村 41

風日) 공재 윤두 개인

제작연도 미상, 비단에 수묵(水墨), 25×30.2cm, 저작

서 채애(採

권 미해결

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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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43

조영석

촌 간송미

가여행

술관

조영석

점 개인

심 44

45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엷은 색, 23.5×24.4cm, 저작 권 미해결

조선 18세기 초, 종이에 엷은 색, 20.5×24.5cm, 저 작권 미해결

조영석

사 개인

제작연도 미상, 종이에 엷은 색, 28.5×44.5cm, 저작

제첩 중 우

권 미해결

유짜기 신윤복

18세기, 종이에 채색, 28.3x35.2cm, 저작권 미해결

화 간송미

첩 중 무무 술관 도(畵帖 중 46

巫舞圖) 신윤복 저 국립중

조선 후기, 비단 위에 채색, 29.7×28.2cm

잣길

앙박물

얹은머리 위에 생선 함지박을 이고 채소가 든 망태기

를 옆구리에 낀 채 이야기하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 으며, 이러한 장면은 신윤복(申潤福, 1758?-1817 이 후)의 풍속화에서는 보기 드문 서민의 생활상이라 할

47

전(傳) 신윤 국립중

수 있다. 조선 후기, 종이에 엷은 색, 27.2×15.0cm

봄날이 앙박물

이 그림은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으로 남녀

영원하 관

사이의 사랑을 담은 풍속화이다. 나무에 살짝 가려진

라( 四時長

호젓한 건물, 그리고 닫힌 방문, 마루에 놓여 있는 신

春)

발 두 켤레로 보아 방안에는 두 명의 남녀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술병을 받쳐 들고 망설이듯 멈칫한 소녀의 자세는 방 안 남녀의 춘정을 암시하며, 기둥 에 붙인 ″사시장춘(四時長春)″이란 글씨와 흰 꽃나무 는 남녀 사이에 흐르는 봄날과 같이 따스한 정감을 전해준다. 화면 왼쪽 위에는 혜원의 도장이 찍혀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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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영상 ① 동영상 번호 1

명칭

출전

내용

URL

불고기

SBS, 결정 맛대맛-1 회

흑돼지 농장주인, 요리사 야생약초를 먹고 자란 홍천흑돼지 소 개 인삼, 사과, 배 등 15가지 양념이 들 어간 고추장 소스 소개

http://nbbs3.sbs.c

특기사항

o.kr/index.jsp?cmd =read&code=tb_m at3&top_index=000 000349998&field= &keyword=&catego ry=&star=&no=1&p

2

갈비

3

갈비

4

갈비

5

갈비

6

갈비

MBN, 소 상공 i n 아 시아-한 국돼지갈 비VS중국 휘궈VS일 본닭꼬치 MBN, 재 밌는 정보 신 나 는 TV-오감 만족, 가 격만족! 쪽갈비 & 소고기 전 문점 MBN, 팔 도 소상공 인- 남도 맛의 진 수! 광주 송정 떡갈 비골목 팔도 소상 공인-고 향을 닮은 맛, 진안 흑돼지 등 갈비 골목 재밌는 정 보 신나는 TV-수원 갈 비 의 원조 화춘 옥을 가다

34년 돼지숯불갈비집 주인 돼지 숯불 갈비집 운영의 비결 소개

age_no=24 http://mbn.mk.co.kr/ pages/vod/programC ontents.php?progCo de=480&menuCode= 1945&bcastSeqNo= 2023

09: 29-13: 45 (돼지숯불갈비집 사장의 성공노하 우 소개

쪽갈비, 소갈비 전문점 소개

http://mbn.mk.co.kr/ pages/vod/programC ontents.php?progCo de=332&menuCode= 961&bcastSeqNo=1 2237

2대 떡갈비집 주인 광주 송정 떡갈비의 유래 30년 이상 된 떡갈비 원조집 소개

http://mbn.mk.co.kr/ pages/vod/programC ontents.php?progCo de=479&menuCode= 1937&bcastSeqNo= 8910

17: 11-19: 00 (떡갈비 만들기 설명)

흑돼지 등갈비집 주인 진안 흑돼지와 인삼을 이용한 등갈비 소개 인삼 등갈비 훈제구이 소개

http://mbn.mk.co.kr/ pages/vod/programC ontents.php?progCo de=479&menuCode= 1937&bcastSeqNo= 8910 http://mbn.mk.co.kr/ pages/vod/programC ontents.php?progCo de=332&menuCode= 961&bcastSeqNo=6 910

02: 30-04: 15 (인삼등갈비 조 리법 설명

3대 화춘옥 주인 수원갈비의 유래, 유명하게 된 사연(박 정희 대통령 화춘옥 방문) 수원갈비의 특징과 독특한 조리법 소 개. 포천이동갈비, 해남떡갈비, 해운대 떡 갈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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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3-9:20(화 춘옥의 역사 소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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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갈비

갈비

갈비

갈비

갈비

MBN, (브 라보∼) 해피라이 프 -돼지 가 장독에 빠진 날? 돼지갈비 먹는 날 MBN, 재 밌는 정보 신 나 는 TV-담백 하고 부 드 러 운 맛, 참숯 과 화로가 만나다 KBS, VJ 특공대맛있는 재 발견!갈비 이야기

KBS, VJ 특공대이보다 더 맛있을 순 없다! 국 가대표 갈 비열전 VJ특공대 -국민음 식 갈비의 별별 변신

SBS, 결정 맛 대 맛 -192회

흑돼지 갈비집 주인 양념한 돼지갈비를 장독에서 숙성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1: 54-02: 28 ( 장독돼지갈비 조리법 설명)

rogCode=403&men uCode=1385&bcas tSeqNo=4883 참숯화로구이 전문점 숯: ‘신선한 힘’이라는 뜻을 지닌 순수 우리말 참숯화로의 장점 소개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3: 31-03: 48 ( 참숯화로구이 장점

rogCode=332&men uCode=961&bcast SeqNo=12344

갈비 전문점 가장 즐겨 먹는 갈비를 이용해 다양한 조리법으로 만든 음식소개 소꼬리를 얇게 저며 갈비양념으로 버 무려 숯불에 구워먹음. 갈비요리 및 코 스요리 등장. 갈비 스파게티, 젓국 갈 비전골 외 최고급 갈비를 구하러 다니는 백화점 바이어, 대구 동인동 찜갈비집, 전남 담양 떡갈비찜 외식메뉴로, 명절음식으로,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은 갈비 소개 갈비찜용 냄비를 양은냄비 사용. 인삼 갈비 소개. 담양 대나무로 만든 이색불 판 소개 이색갈비전문점 갈비찜 외 참치갈비, 문어갈비전골, 고래갈비찜, 양갈비 등 등장 대나무 찜기에 고구마, 호박, 양념한 소갈비, 찹쌀가루를 넣고 쪄 낸 이색 갈비찜 소개 한방갈비집 주인 경주버섯한우에 한방약재를 넣어 만든 갈비찜 소개 한방육수와 된장, 갖은 양념으로 갈비 를 24시간 숙성시킴

http://www.kbs.co. kr/2tv/sisa/vj/index .html

http://www.kbs.co. kr/2tv/sisa/vj/index .html

http://www.kbs.co. kr/2tv/sisa/vj/index .html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read&code=tb_m

19: 25-21: 00 (특허낸 소꼬리 갈비구이)

40: 00-43: 00 (인삼과 한약재 로 재운 갈비구 이)

02: 00-03: 05 (이색갈비찜 소 개)

30: 16-34: 10 (한방갈비찜 조 리법)

at3&top_index=000 002449999&field= &keyword=&catego ry=&star=&no=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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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SBS, 결정 맛 대 맛

수원갈비전문점, 포천이동갈비집 갈비구이의 변천사와 각 지방의 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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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_no=4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04: 00-11: 06 (갈비구이의 변


-15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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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SBS, 결정 맛 대 맛 -18회

소개(수원갈비,포천갈비,해운대갈비,담 양떡갈비) 수원갈비의 특징 소개. 갈비포 뜨는 방 법 소개(양갈비,외갈비,다이아몬드갈 비) 개성식 돼지갈비찜집 주인, 궁중식 갈 비찜집 주인 갈비찜 최고 부위 소개

=read&code=tb_m

천사)

at3&top_index=000 002449999&field= &keyword=&catego ry=&star=&no=165 &page_no=8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read&code=tb_m at3&top_index=000

36: 32-38: 03 (개성식 돼지갈 비찜 & 궁중식 갈비찜 조리법)

000349998&field= &keyword=&catego ry=&star=&no=18& 15

갈비

SBS, 결정 맛 대 맛 -33회

돼지갈비집 주인, 한우전문점 1950년 마포일대에는 제재소가 많아 먼지가 많았음. 일이 끝난 근로자들이 막걸리와 돼지고기로 목을 씻어냄. 마포돼지갈비의 유래 소개. 토종한우 소개

page_no=22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read&code=tb_m

10:45-11:4(마 포돼지갈비의 유래)

at3&top_index=000 000349998&field= &keyword=&catego ry=&star=&no=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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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SBS, 결정 맛 대 맛 -79회

광주 송정리 떡갈비 전문점 주인 떡갈비 조리법과 맛의 비결 소개

page_no=21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33: 38-41: 43 (떡갈비 조리법)

=read&code=tb_m at3&top_index=000 001389999&field= &keyword=&catego ry=&star=&no=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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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

갈비

김치

KBS, 제 30회 뼈 대 있는 맛의 내력 함양 안의 갈비 EBS, 손 끝 으 로 이 어 온 맛, 담양 떡갈비

동아일보,

소를 키우는 농민, 한양의 가난한 선 비, 갈비 관련 요리사 외 함양 우시장, 효자백정비, 갈비의 세 계화 함양 우시장에서 갈비문화가 성행한 이유, 해외 셰프가 갈비에 주목한 이유 설명 푸드스타일리스트, 3대째 담양에서 떡 갈비집을 운영하는 가게 주인 전남 담양의 5일장, 담양 떡갈비 골목 죽향 담양의 떡갈비 문화를 소개, 담 양이 광주 송정리와 경기도 동두천 제 치고 떡갈비의 본산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설명 김치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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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_no=16 http://www.kbs.co. kr/1tv/sisa/table/vo d/1735217_37157.

10: 40-11: 43 ( 효자백정비의 유래)

html

http://home.ebs.c o.kr/reViewLink.jsp ?command=vod&cl

02: 02-02: 40 (전통 있는 떡 갈비 가게 소개)

ient_id=food&menu _seq=3&enc_seq=3 019714&out_cp=na ver http://etv.donga.c

02: 56-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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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김치

김치

김치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주) 한성식품 김순자 사 장을 만나 다 MBN, (글 로벌시대) 브랜드파 워-묵은 김치, 세 계의 입맛 을 사로잡 다 MBN, 정 보가 돈이 다!. 우리 몸 에 좋은 김치

보쌈김치의 단점을 보완하여 만든 미 니롤 보쌈김치 미니롤 보쌈김치 개발

MBN, 재 밌는 정보 신 나 는 TV-도전! 김치 만 들기

김치 제조업체 체험행사의 목적 소개 김치 만들기 체험행사 소개

조선일보, 부자가 된 괴짜들 김치전문 가 이하연

김치전문가, 김치를 배우는 외국인 전통방식으로 김치제조 김치를 담글 때 계란 흰자를 넣으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더욱 맛있음.

om/view.php?idxno =20111006004756

(특허낸 미니롤 보쌈김치)

6&category=00300 1

묵은지 제조업체(고향미가), 묵은지 음 식점 주인 묵은 김치용 배추는 가을배추와 월동 배추가 좋음. 독특한 맛과 향으로 여 름철에 입맛을 되찾아 줌. 묵은지 김치 담그는법 설명

http://mbn.mk.co.

전통음식연구가 남한김치와 북한김치의 차이점 소개, 전국 향토김치 소개 김치를 맛있게 담그는 법 소개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4: 00-04: 20 (묵은 김치용 배 추 설명)

rogCode=383&men uCode=1265&bcas tSeqNo=3865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5: 11-06: 11 (김치 담글 때 주의점 설명)

rogCode=277&men uCode=737&bcast SeqNo=5274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3: 25-04: 52 (어린이 김치체 험 소개)

rogCode=332&men uCode=961&bcast SeqNo=14094 http://keywui.chos un.com/contents/s ection.view.keywui

05:13-6:13(계 란흰자를 넣고 담는 김치 설명)

?mvSeqnum=1631 24&cateCategoryId =103&cateSub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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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김치

MBN, 팔 도 소상공 인-대한 민국 명품 젓갈 광천 토굴 새우젓 마 을 KBS, VJ 특공대사스 잡는 김치, 중 국 평정

토굴젓갈가게 주인과 손님 고려 때 서해 5도에서 잡은 각종 생선 과 새우잡이배가 광천 옹암포구에 들 어오면서 새우젓장터로 유명 광천읍 옹암리에 있는 토굴(폐광)에서 새우젓을 저장․숙성하여 판매

중국슈퍼에서 김치를 구입하는 중국인, 김치를 즐겨먹는 중국가정, 중국한국음 식점 김치가 사스 감염에 걸리지 않게 한다 는 믿음으로 중국에서 한국 김치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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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ryId=88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1: 40-02: 35 (옛 광천 옹암포 구 설명)

rogCode=479&men uCode=1937&bcas tSeqNo=8910 http://www.kbs.co. kr/2tv/sisa/vj/index .html

40: 00-42: 16 (다양한 김치메 뉴를 선보이는 중국에 있는 한 국음식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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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Q채널, 한 중일 문화 삼국지김치, 파 오차이, 쯔께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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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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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농수산식 품신문사, 밥상위의 보약: 한 국의 전통 음식-김 치와 전 통음식 MBN, 행 복한 삼촌 : 농촌·산 촌·어촌소 금 의 왕, 천일 염의 귀환 KBS, 세 계 인 의 건강식품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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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닭갈비

불고기

불고기

MBN, 팔 도 소상공 인-넉넉 한 인심이 있는 곳 춘천 닭갈 비 골목 MBN, (브 라보∼) 해피라이 프 -당신 을 위한 특 별 한 맛! 불고 기 세상 속으로 초 대합니다 SBS, 불고

기 중국가정에서도김치를건강음식으로즐 겨먹음 김치찌개전문점 주인, 일본 시가현 김 치마을, 사찰김치 담그는 사람들 사찰김치에는새우젓,마늘이들어가지않 음.무와다시마삶은물을사용하여양념을 만듬.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42: 36-46: 40 (사찰김치 담그 기)

김치의 유래와 향토김치 소개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3: 51-21: 17 (지역별 김치 소개)

소금연구소 전남 신안군 소금의 우수성 소개 미네랄성분이 해외산(프랑스, 중국, 일본, 베트남, 호주, 멕시코)보다 훨씬 높음

http://mbn.mk.co.

01: 44-02: 19 ( 국산천일염의 우수성)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rogCode=484&men uCode=1977&bcas tSeqNo=2706

김치를 먹고 건강해진 사람(황미선, 이영문, 산도르) 김치와 건강, 세계 속의 김치 인기 김치와 건강의 상관관계 및 김치 관 련 세계인 이야기 수록 춘천닭갈비집 주인 1960년대 닭을 숯불에 굽다가 1970 년대 이후부터는 연탄불과 철판에 구 움. 춘천닭갈비골목 소개

http://www.kbs.co. kr/1tv/sisa/health/v iew/vod/1491013_ 941.html

30: 38-31: 50 (김치 노래를 부르는 일본 어 린이)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rogCode=479&men uCode=1937&bcas tSeqNo=8910

불고기 전문점 조리사 사각형 모양의 언양식 불고기 소개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2: 03-02: 38 (언양불고기 조 리법)

rogCode=403&men uCode=1385&bcas tSeqNo=14990

불고기를

즐기는 일본 내 한인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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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v.sbs.co.kr/

06: 30-06: 56


기 혹은 야끼니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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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MBN, 맛 있는 블루 오션, 향 토음식을 먹다

본인, 이를 조리하는 사람 일본의 불고기 문화, 불고기를 중심으 로 한 일본과 한국의 문화교류 일본에 불고기가 야끼니꾸란 이름으 로 정착하게 된 과정을 일본 내 한인 사와 연계하여 설명 헛제사밥 파는 식당주인 안동 헛제사밥 유래 설명 헛제사밥은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 래, 고추) 사용하지 않음. 참기름, 깨소 금, 간장으로 간을 해서 비벼먹음

collection/sbs_revi ew_list.jsp?vod_id= V0000256753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일본 내 고기 문화가 자리 잡 게 된 배경에 관 한 설명)

17: 01-18: 34 (헛제사밥 유래, 조리법 설명)

rogCode=461&men uCode=1801&bcas tSeqNo=6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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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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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Q채널, 우 리는 이렇 게 먹었다 -자연을 담은 맛 향토음식 SBS, 결정 맛 대 맛 -217회

헛제사밥 파는 식당주인 헛제사밥은유생들이야참을먹기위해가 짜제사를지낸것에서유래 헛제사밥은 고추장 대신 간장으로 비 벼서 먹음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8: 59-19: 40 (헛제사밥 유래)

산채비빔밥집 주인 산에서 직접 따온 나물로 비빔밥을 만 듦 산나물의 종류에 따라 양념을 달리함

http://nbbs3.sbs.c

43: 40-51: 56 (산채비빔밥 조 리법 소개

o.kr/index.jsp?cmd =read&code=tb_m at3&top_index=000 002449999&field= &keyword=&catego ry=&star=&no=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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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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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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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

Q채널, 우 리는 이렇 게 먹었다 -우리맛 천년 내 림의 비밀 MBN, 행 복한 삼촌 : 농촌·산 촌·어촌농촌순창 의 장한 도전, 장 류 세계화 를 꿈꾸다 SBS, 결정 맛 대 맛 -15회

음복문화가 비빔의 문화 형성

순창고추장제조기능인, 순창장류연구소 순창고추장 임금님께 진상. 자연환경과 만드는 방법이 특별함. 순창고추장의 우수성, 제조법 소개

&page_no=2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5:51-12:08(비 빔밥의 유래)

01: 45-02: 07 ( 순창고추장의 차별성 설명)

rogCode=484&men uCode=1977&bcas tSeqNo=2834

전주비빔밥집 주인 사골육수로 지은 밥, 순창고추장, 25 가지 나물, 육회, 쥐눈이콩으로 5일 키 운 콩나물 사용.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read&code=tb_m at3&top_index=000 000349998&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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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35-22: 48 (전주비빔밥 조 리법)


&keyword=&catego ry=&star=&no=15& 39

비빔밥

MBC, 한 국의 맛, 비빔밥, 전통을 넘 어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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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MBN, 브 라보∼ 해 피라이프 -기운 펄 펄 나게 하는 탕중 의 탕. 삼 계탕 SBS, 결정 맛대맛-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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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전주 비빔밥 조리 전문가(주연자), 비 빔밥을 먹는 외국인들 전주 외 비빔밥 명가와 해외로 진출 하는 비빔밥 문화 설명 시의전서의 ‘골동반’에 대한 유래 설 명 상황버섯삼계탕집 주인 상황버섯삼계탕을 만들게 된 사연 소 개 약수에 상황버섯과 한방약재 농축소스, 영계를 넣고 끓인 삼계탕 소개

page_no=22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9: 02-10: 20 (비빔밥의 유래 와 변천과정)

01: 24-02: 20 (상황버섯삼계탕 조리법 소개

rogCode=403&men uCode=1385&bcas tSeqNo=14990

오골계농장주인 충남 연산 오골계 유명. 임금님 보양 식으로 올라감 오골계탕의 유래(조선 숙종 임금이 병중에 있을 때 오골계탕을 먹고 벌떡 일어남. 연산군은 본인 이외의 다른 사 람이 먹는 것을 금지시킬 정도로 귀한 보양식. 동의보감에 효능 기록.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read&code=tb_m

28: 50-31: 15 (오골계탕의 유 래)

at3&top_index=000 000349998&field= &keyword=&catego ry=&star=&no=9&p age_no=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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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SBS, 결정 맛 대 맛 -105회

삼계탕 전문점 방목해서 키운 토종닭 소개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43: 17-43: 50 (삼계탕 효능)

=read&code=tb_m at3&top_index=000 001389999&field= &keyword=&catego ry=&star=&no=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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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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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Q채널, 한 중일 문화 삼국지건강과 보 양식 KBS, 제 25회 귀 한 대접, 한 그릇의 성찬 -

&page_no=13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고려조삼계탕 전문점 고려조삼계탕 소개

인삼을 재배하는 사람, 닭을 키우는 사람, 닭의 효능을 설명하는 의사 외 풍기의 인삼 재배, 계룡산의 오골계 사육 삼국유사, 무영총, 본초강목의 닭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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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bs.co. kr/1tv/sisa/table/vo d/1727815_37157. html

19: 19-20: 45 ( 고려조삼계탕 소개)

12: 05-12: 35 (닭을 먹기 시 작한 유래를 고 서에서 찾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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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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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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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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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MBN, 행 복한 삼촌 : 농촌·산 촌·어촌명품한우 의 아름다 운 비상! MBN, 브 라보∼ 해 피라이프 -정성과 맛이 함께 하는 시원 한 설렁탕 Q채널, 우 리는 이 렇게 먹었 다-우리 맛 천년 내림의 비 밀 KBS, 수 라 간 의 비밀, 왕 의 요리사 는 남자였 나 MBN, 브 라보∼ 해 피라이프 -우리 몸 안을 깨 ∼끗하게 푸짐한 돼 지 보쌈

련 내용 설명 횡성한우 : 전국 최초 국가명품인증 명품 한우소 소개(종모우, 미스 횡성 소)

KBS, vJ 특공대한입의 유 혹!쌈요리 열전

쌈 전문점 주인과 손님, 쌈 재배하는 사람 겨우내 잃었던 입맛 돋워주고, 춘곤증 깨워주는 음식! 쌈 캐비어쌈, 타조쌈, 양고기쌈, 쭈꾸미 쌈, 오리쌈, 더덕제육쌈 소개 쌈농장주인,쌈밥전문점 지방마다 쌈의 재료와 쌈장, 쌈에 싸 먹는 재료도 다양함 무등산의 봄동쌈, 충북 충주 쌈채소 전문 농장, 해물쌈장, 씨앗쌈장, 멸치젓 쌈장, 제주도의 방풍쌈, 숙쌈 전문점 전라도식 시골쌈밥 주인, 경상도식 숙

KBS, VJ 특공대봄을 잡아 라!팔도 ' 쌈'요리열 전 SBS, 결정

http://mbn.mk.co. kr/pages/vod/progr

02: 30-03: 26 (명품한우 소개)

amContents.php?p rogCode=484&men uCode=1977&bcas tSeqNo=2028

설렁탕집 주인 진한 맛을 내기 위해 한우머리뼈, 우 설, 양지, 사골을 넣고 10시간 끓여 기름을 제거하고 40시간을 끓임.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1: 34-02: 11 (설렁탕 제조법 설명)

rogCode=403&men uCode=1385&bcas tSeqNo=14990

탕 문화의 배경과 선농제에 대한 설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2: 10-14: 00 (설렁탕 유래)

각색장(남자 요리사), 정조, 고종 조찬서 외 수라와 관련된 문헌 수라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이 에 대한 설명, 숙수에 대한 이야기

http://www.kbs.co.

11: 19-11: 47 (각색장에 관한 문헌)

kr/end_program/1t v/sisa/tracehistory/ vod/review/155838 2_28170.html

보쌈전문점 주방장, 한의사 몸속을 깨끗하게 해주는 돼지고기 삼겹살과 목살 삶는 방법 소개

http://mbn.mk.co. kr/pages/vod/progr amContents.php?p

01:21-1:32(돼 지고기가 몸에 좋은 이유)

rogCode=403&men uCode=1385&bcas tSeqNo=14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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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bs.co. kr/2tv/sisa/vj/index .html

http://www.kbs.co. kr/2tv/sisa/vj/index

45: 20-45: 56 (짜지 않고 고소 한 쌈장)

22: 45-23: 53 (제주도방풍잎)

.html 27:6-28:45(숙 쌈, 묵은김치쌈) http://nbbs3.sbs.c

46: 18-47: 27


맛대맛-7 회

쌈전문점 주인 유기농 쌈채소와 쌈추 소개. 경상도에 서는 쌈채소를 익혀서 싸 먹음. 양배추와 상추의 교잡을 통해 육성된 새로운 쌈채소인 쌈추 소개

o.kr/index.jsp?cmd

(경상도식 숙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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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SBS, 결정 맛 대 맛 -215회

한의사 내성적-붉은색 채소, 산만한 성격초록색, 터프한 성격-진한 초록색 성격에 따라 쌈채소를 골라 먹음

age_no=23 http://nbbs3.sbs.co.k r/index.jsp?cmd=rea d&code=tb_mat3&to

34: 40-35: 57 (성격에 따른 쌈채소)

p_index=000002449 999&field=&keywor d=&category=&star =&no=229&page_no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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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 32회 어 우러짐의 미( 味) 학 쌈

쌈 채소를 재배하는 사람, 쌈을 조리 하는 사람, 임금 쌈에 얽힌 이야기와 쌈의 세계화 수랏상에 올린 쌈에 대한 이야기 수 록

SBS, 결정 맛 대 맛 -45회

이색파전집 주인, 4대째 이어온 동래 파전집 주인 부산금정산주변의파와 해물이 유명하 여 임금님께 진상. 파전 반죽의 비법 소개

=2 http://www.kbs.co. kr/end_program/1t v/sisa/hansik/vod/

02: 54-03: 05 (쌈을 즐긴 고 종과 순종)

1672101_32816.ht ml http://nbbs3.sbs.c o.kr/index.jsp?cmd

14: 30-14: 45 (동래파전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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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결정 맛 대 맛 -69회

전전문집 주인 임금님이 드신 전 소개(건해삼전, 골전, 패주전, 청포묵전) 일본인이 좋아하는 빈대떡 소개

page_no=19 http://nbbs3.sbs.c 등

o.kr/index.jsp?cmd =read&code=tb_m at3&top_index=000

35: 49-36: 40 (임금님 수라상 에 올라간 전 소개)

001389999&field= &keyword=&catego ry=&star=&no=70& 57

58

지 역 음식

KBS, VJ 특공대추석맞이 팔도 이색 부 침 개 총집합 김부전, 젓국갈비 대표

부침개전문점주인,전을좋아하는외국인 손님 지역특산물을 이용한 이색부침개 소 개(바지락전, 재첩전, 대합전) 전북 부안 대합(백합, 생합)전 소개

page_no=17 http://www.kbs.co. kr/2tv/sisa/vj/index .html

2012년 2월 7일(일) 10시 ~ 13시, 인

58.김부전(젓국갈비대

천시 강화읍 신문리 105

표 20120207).mov

20여 년 전에 군청의 권유로 지역 전

- 125 -

39: 20-41: 10 (대합의 또 다른 이름과 대합 고 르는 방법)


래 름식인 젓국돼지갈비를 상품화했음. 어린 시절 강화에서 즐겨 먹던 음식이 기에 이 지역에서는 잘 알려져 인지도 가 높은 음식임. 유사 메뉴를 상품화한 점포가 10여 호까지 있었으나 최근에 59

지 역 음식

김민자 영 양군청 문 화해설사

는 5호 정도만 남아 있음 2012년 3월 29일(일) 10시 ~ 13시,

59.김민자(영양군 문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군청길 37

화해설사20120329)

- 음식디미방 체험관 : <음식디미방> 에 수록된 340년 전 반가음식을 재 현해 내는 곳으로, 고풍스러운 한옥 에서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mov

- 음식디미방 교육관 : 체험프로그램 중 ‘전통음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하는 공간이다. 동아선, 동아누르미, 동아적 등 동아를 활용한 건강음식 에서 석류탕, 어만두, 대구껍질 누르 미 등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여러 음 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시식해 볼 수 있는 곳이다.

60

지 역 음식

조귀분,

- 음식디미방 전시관 :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음식 중 석이편, 잡과편, 대 구껍질누르미 등 51종의 음식을 실 물모형으로 제작하여 현대적으로 재 해석한 자세한 조리법과 함께 전시 하고 있으며, 4개 국어(한, 일, 중, 영)로 제작한 ‘음식디미방 영상자료’ 를 제공한다. 2012년 3월 29일(일) 13시 ~ 14시

60.조귀분(재령이씨종

두들마을

30분,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

부 20120329).mov

음식디미

을길 66(원리리 303)

<음식디미방> 체험관의 경우 전형적인 한옥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운 데 큰 홀에서 답사 당일 16명의 손님 을 접대함. 현재 단체예약을 받는 신규 체험관이 증축 중이며, 답사시 방문한 곳은 조리시설과 맞붙어 있는 곳으로 외빈을 모시기 위한 공간임. 4인 1상 차림으로 총 네 개의 상이 서로 맞닿 아 있으며, 메뉴는 소부상(30,000원)/ 정부인상(50,000원)의 두 가지로 나뉘 어 있음. 당일 체험한 메뉴는 정부인상 임. 2012년 5월 18일(금) 10시 ~ 10시

61.권대영(한국식품연

40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구원20120518).mov

대표,

재령이씨 종부

61

식 품 연구

권대영, 한국식품 연구원 미 래기술전 략기술연 구본부장

산46 권대영 본부장은 임진왜란 당시에 고 추가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었다는 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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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설을 각종 문헌과 고추의 품종자 료를 기반으로 비판한 <고추이야기>의 저자임. 그의 연구 결과 고추는 임진왜 란 이전부터 북방을 통해 전래된 것을 증명했으나, 구체적인 시기와 전래 경 로는 추정을 하고 있다. 고추의 전래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그간 주장되어 온 남방전래설이 지닌 문제점을 극복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음식 문 화에서 고추가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음식문화의 실상 을 밝히는 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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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음성 ① 음성 번호

명칭

출전

내용

URL

그렁게잉 간담(間談)으로잉 이거 우슴에 소리도 허는 것도 [조사자:예. 아니요.] 상부자이 인자 모를 심습니 다. 모를 심는데 물론 어머니 되는 사람께서는 정심(점 심)을 내갖고 왔겠지요 잉. 정심을 서로 같이 요렇고(이렇게) 노놔 먹는디 곳추장 을 내왔어요. 그렁게 곳추장을 삼부자판이 그것이 거 내림이로 부전자전으로 다 질거허든(즑 먹던) 모냥이 요. 그런디 밥을 먹다가 밥을 거짐(거의) 다 먹게 되는 데 즈그 아부지가 아그덜보고(아이들 보고) 허는 말이. “가서 물을 떠갖고 오이라.”(오너라) 물론 밥 먹은 디는 인자 물을 마셔야 하잉까 말이요. 서로 니가 가그라 내가 가그라 말이여. 서로 미룰 거 아잉가? 질 막둥이란 놈이 헐 수 없이 엇쩔 것이요? 인 자 가는디 감시러 엇뜩게 했냐 하먼 고추장을 월간(워 낙) 질거허닝까 고추장을 이렇고 따악 요렇고 요렇고 금을 젖갈로 따악 쳐놨어요. [조사자:예, 못 먹게.] “곳추장 요 발로 먹은 놈은 내 아들놈이다.” [일동: 웃 음] [청중:그 아들놈이.] 어흥 막둥이란 놈이 말이여, 곳추장을 질거헝게. “엇뜬 놈이든지 내 금쳐 놓은 발로 안에 떠먹는 놈 내 아들놈이다.” 그러고 갔어요. 가서 인자 물을 떠억 떠갖고 와서 보닝 까 아 좀 띄어 먹었거든요. 떠어 먹어 농게, [437 쪽] “엇뜬 엇뜬 내 아들놈이 요 꼬치장을 먹었냐?” 그렁게, 그 큰 아들놈이 있다가, “아부지가 좇만치 띄어 먹었단다.” [일동: 웃음] 그나저나 안 될 이얘기지요. 옛날에는 대학을 가주고 과게(과거(科擧))라 그랬는데, 그래 어떤 한 집에는 참, 아주 대감집인데 인제 참, 아 들이 과게를, 장개를 가고 과게를 하러 갔그던 [576 쪽] 요. 과거를 가만 [큰 소리로] 요즘매로 그래 자주 오지 도 안한다 그대요. 일년에 한 번 올 때도 있고 뭐, 안올 때도 있고, 그래 참 집에를 한번에 댕기로 왔어요. 댕기 로 와가주고, 인제 보께 참 마누래가 뭐 참 좋그덩요. 보이 좋아서 그래 이래 하루 이틀 가이 [큰 소리로] 뭐 방이 있니껴, 마누래 방이 없고 만날 한테 자이께로. 그 래 인제 낼은 참, 올 지녁만 머마낼은 갈판인데, 마누래 방이 없으이 뭐 뭐 마누래를 보지를 못해. 그래가주 지 녁을 먹으마 고이 생각하이, 어째야 저 마누래를 참 놀 방에 드가보꼬. 방이 없으이, 그래가주고 인제 저녁을 먹골랑 인제 설겆이 다 핼라 글때 이 사람이 나갔어요.

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1089 &uu20no=Q_10 89_1_F_016

1

고추장

지춘상 조 사, 김재복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6집 2책 [ 전라남도 함평군 나 산면 설화 16], <고추 장 좋아하 는 삼부자>

2

김치독

임재해, 한 양명, 김명 자, 최인경 조사. 이옥녀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7집 18책 [ 경상북도 예천군 호 명면 설화 23], <김치 둑이 아들 을 낳고 오 해 받은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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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1997 &uu20no=Q_19 97_1_05A


느리>

인제 나가만 설겆이를 다 했지 싶어서 나가이께네, 그 래 마누래가 인제 또 그 남편 이얘기하는 소리, 그 듣 구져가주고(듣고 싶어서) 문 앞에 고 섰네요. 그 정지 대문 옆에 이래 붙어 손을 딲으면서 치매에 [손닦는 시 늉을 하면서] 이래 붙어 섰다. 낼이면 인제 여 남편이 갈 판인데 [큰 소리로] 그 남편을 구경을 못하고 떠날 라 그마 얼매나 서로 안됐잖니껴? [본래 소리로] 그래 서 이 참 뭐 과게하던 그 분도 마누래 한번 더 보고 갈 라꼬. 그래 나가이께로 옆에 있어. 그래 델고 손목을, 마누래 손목을 잡고 끌고 뒤안으로 갔어요. 뒤안으로 가이께 옛날에 왜, 옛날이나 시방이나 시방이나 왜, 짐 치둑(김치독) 짚이(땅에 김치독을 묻어 놓고 그 주위에 볏짚을 둘러 놓는데, 그 볏짚을 일컫는다.) 있지 왜요. 김치하고 짠지하고 묻어놓고 우에 이래-, 거 인제 데루 가가주고 그래 마누래를 봤어요.(부인과 성행위를 했다 는 말이다.) 보고 그래 인제 그 이튿날 인제 서울 과거 하러 갔지요 뭐. 그래 간 후로는, 그래 뭐 이 어른들은 모르지요. 전혀, 그래 서르 차차 차차 참 몸이, 참 임신 달이 다 오네요. 그르이께로(그러니까) 옛날에는 부끄 럼도 많찮니껴? 또 그래 어른들도 생각을 해보이께 만 구천지 참 본 일, 일이 없그던요.(신랑과 같이 잔 일이 없다는 말이다.) 자기 며느리가, 그래서 보이께로 참, 대감의 집에 만개 뭐 누가 드나드니도 없고, 하지도(드 나들지도) 안하는데 그르이께로, 그래 [큰 소리 [577 쪽] 로] 이 고마(그만) 어른들이 고마 미움을 줬어요. 며느 리를 [본래 소리로] 미움을 주고, 참 이 대감의 집에서 는 ‘우리가 참 이른 일이 워데 있노?’ 싶어가주 며느리 를 고만에 얼매나 영 고마 시집살이를 디게 씨켰어요. 종들을 만판 부리든 것도 종들도 고만에 크기 안 머식 하고 며느리를 다 시켰어요. 이 며느리가 고통을 얼매나 받겠어요. 그래도 이 뭐 오 새매로 뭐 편지를 해서르 이래 뭐 참 부칠라 그래도 어 데 뭐 우체통이 뭐, [빠르게] 지금은 여 뭐 마실에도 있고 하지만, 옛날에는 워데 그래요? 몇 리를 가도 없 제. 이래서 참 편지도 못하고 이른 딱한 일이 없제. 이 래서 참 편지도 못하고 이른 딱한 일이 없그든요. 그래, 그래다 보이께네 하마 고만에 참, 놀 때가 됐네요. 놀 때가 되이께로 구체 없이 놨지 뭐. 놓이께로 [큰 소리 로] 아들인지 딸인지 어른들이 분간을 해요? [본래 소 리로] 보지를 안하이께요. 그래 보지를 아하이(안하니) 이래놓이 뭐, 그래 뭐 참 매란없이(형편없이) 대우를 받았지요 뭐. 그르이 그 애가 천명으로 워에가지고 [큰 소리로] 우지도 않고 젖도 하루 점도록(저무도록, 종 일) 안줘도 우지도 아하고 [본래 소리로] 저녁으로 한 번 빨아 멕였다꼬 먹고 자고. 이래도 아가 그케 잘 커 요. 그릏게 잘 크고. 그릏게(그렇게) 밉상일(잘 생긴 얼 굴을 두고 하는 반어법이다.) 수가 없어. 옷이 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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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치(나박 김치)

이수자, 강 문순 조사, 목수희 구 연, 한국구

되마, 옷이 뭐가 있을시껴. 거지 긑이 입히 놓고, 이래 이래 세월을 보냈코 나이, 그래도 아가 하마 기발을 하 네요.(5)[주]제 발로 기어 다닌다는 말이다. 엉금 엉금 기댕기고 이래. 그래 그래 참 한번은 그래 이웃사람하고 같이 과게를 하러 간 사람이 있다 그래요. 그래 이 남편이 집에 갈 라 그이께르, “그래 가거들랑 우리집에 들려 옸나. 우리 어른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내가 편하게 있다 그고(그러고) 들러 온 나.” “그라지(그렇게 하지)!” 하고, 그래 인제 그 사람이 인제 자기집에 들리러 왔어 요. 보이께 이 부인도 참 언나(아기)를 나가주 그랬으 이 고통이 얼마나 심해요. 만날 애원 [578 쪽] 을 해도 그르이 참 편지를, 연락을 할 수가 없었는데, 마침 그 사람이 오이께로, 그래 인제 방에서 이얘기하 는 도중에서 부뚜막에다 놓고 그맀어요. 그리서 편지를 해서르 나오는 걸음에 인제 부디 가서르 전해 달라꼬. 그래 사연을 적어서 그래 인제 남편이 그걸 펴 봤지요. 피 보이께로 참 앗차! 싶우그덩요. 직시에 내려왔다. 직 시에 그 언나 옷을, 백일 옷을 사가주고 그래 오이께로, 방에 드가이께로 뭐 애기는 놨단 소린데 [큰 소리로] 언나가 어디 보이요? 안보이거등요. [본래소리로] 그래 서 인제 남편이 하는 소리가 있다가, “[작은 소리로] 우리 김치뚝이가 하마 날 때가 됐을 터 인데, [본래 소리로] 왜 안보에냐꼬?” 이래부이께네(이렇게 말해 버리니까) [큰 소리로] 어른 들이 어때요? [청중 : 웃음] 마캉 눈이 동그랗지요. 그 래서 그래 어른들이 시어마님이 가서르 언나를 데루 와 요. 데루 와서르 그 절에, 복판에다 갖다 놓이께로 애가 이래 이래 인제 기발이 해서르 이래는게 [큰 소리로] 암만 떠딩겨(떠다 밀어) 놔도 아버지한테로 오드래요. “어, 우리 짐치뚝이가 하마 벌써 하마 이렇게 컸구나!” 그맨서 들고 노대이, 어른들이 뭐 뭐 참 기가 맥히거등 요. 참 메느리 그 압박을 주던 일을 생각을 해보이, 그 르이 메느리한테, 며느리를 불러다 앉히놓고 백배 사과 를 하드라 그래요. 요새 긑으마 메느리들이 그런 구박을 안 받지요. 그래 가주골랑 그래 참 그 메느리를 그 자리에서 그런 사과 를 드리고, 그 이튿날부터 메느리를 얼매나 영 칭찬을 하는동 새로 고마 금사망을(몹쓸 죄값으로 덮어 쓴 험 악한 모습이나 탈을 일컫는다.) 베꺼서르 그렇기 그래 하드라니더. 옛날에 인제 한 사람이 사는데 장개(장가)를 가가꼬, 장개를 갔는데. 아, 그 저기 나막김치, 배김치를 못 먹 어 봤던가 봐여. 아, 그래 인제 가서 처가집에 가서 첫, 그 색씨더러 첫날 밤에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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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0507


비문학대계 2집 6책 [강원도 횡 성군 공근 면 설화 18], <미련 한 사위 (1)[나막김 치가 먹고 싶어]>

“여보, 그 국물이 박죽하고 납작납작하게 쓸은 것, 그 달콤한 게 그게 뭐냐?” 구 그러니까, 가마히 있더니, “나막김치.” 그러니깐, “아, 그게 나막김치냐.” 구. “그거 어디 있는지 좀 먹었으면 좋겠네.” 그러니깐, “그게 아마 부엌 부뚜막에 백항아리에 해 넣었을 거라.” 구. 인제 손님상에 놀라구 백항아리에다 조금 해 넌거 야. 그래서 그거 지가 나가 좀 떠다 주었으면 좋은데, 첫날 밤에는. 아, 그러니까 이 녀석이, [595 쪽] “내가 나가 좀 떠 먹겠다.” 고 그래니까. “가 먹으라.” 그러거든. 그래 나가 보니 백항아리가 있어. 그래 손을 이래 디밀어 보니까 그게그든. 그니까는 아, 그 미련한 놈이 그릇에다 움켜 담아 와다가 먹었으면 좋을걸. [청 중 : 그냥 마셨군 또.] 아이구, 두 주먹을 꽉 들이대구 서느 잔뜩 움켜 줬으니까는 나와야지 항아리서. [청중 : 항아리서?]그럼. 안 나오니까는 고만 헐 수 없이 항아릴 주먹에다 끌구 나와서 냅다 미친다는게 장인의 대가리에다, 이마빡에 다 미쳤지. [일동 : 웃음]아, 장인의 대가리에다 미쳐 장인의 대가리가 깨졌지 뭐. 아, 그래 장인이, 여름이던 가 보이 아마 잔치가. 그래 장인이, “아, 도둑놈 들었다.” 구 소릴 지르고, “불 대려 가지고 나오라.” 구. 색씨가 가만히 생각해, 즈이 신랑이 나갔는데 아마 그 러는 것 같으니까, 에이 얼른 뛰어 나와서는, “아버지 왜 그러슈.” 그러니까, “아, 도둑놈이 들었으니 불 데려 갖고 나오너라. 내가 지금 붙들고 있다.” 사우 다리빽을 잔뜩 붙들구 있지. 아, 그러니깐, “아이 아버지, 아버지가 베구, 내가 붙들구 있으니까 아 버지가 불을 데려 가지 오우.” 그러니까 아버지가 가서 인제 불 데려 가지고 나올 동 안에 즈이 신랑을 방으루 디려(들여) 보내구. 인제 청 삽살이가 있는데, 청삽살이를 이미 끌어 앉고 앉았지. 그러니까 아, 장인이, 즈이 아버지가 나오더니, “아, 도둑눔이 어디루 있느냐?” [596 쪽] 에이구 개를 끌어 앉구 개를 가지구 도둑놈이래. 아, 개 가 대가리를 깨트릴 수가 있나. [일동 : 웃음] 그래니까, 그래니 딸두 남이야, 딸두 남. 거 딸두 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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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물(콩나 물)

성기열, 최 명동 조사, 양덕환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1집 8책 [인천시 남 구 선학동 설화 19], <콩나물 죽 으로 부자 된 이야기>

니 벌써 신랑 빼돌려. 신랑 감싸 주느라구 장인, 즈이 아버지를 천치 만들어. 개를 도둑놈이라고 그랬으니. 그 럭 허드래 그 옛날에 한 눔은. 어떤 사람이 아들이 형젠데 작은 아들을 시간(세간)을, 결혼을 시켜서 지간(세간)을 낼 텐데 재산이 넉넉치 않 어. 겨우 뭐 가지구 이거 건부, 그러니 큰 아들이 욕심 이 좀 많단 말이야. 아이, 지금 노인네들 하구 아이들 하구 인제 자기 소망을 냄(남)한테 얘기할 수는 없구. [115 쪽] 사람이 시간(세간)을 나가지고 고해가지구서 자기도 자 식이 있고 한데 장차 그 자식들을 길르고 잘, 좋은 데 살자. 자기집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고장을 두루두루 돌 아댕겨 보니깐 아닌게 아니라 골짝마다 이렇게 있는데, 이런데 같이 젊은 사람이 글쎄, 뭐, 개간이나 해가지구 살 만큼 한 가족 잘 살 수 있게 되었다. 결국에는 자기 아내가 이사를 해가지구. “이사를 가면 어디로 갑니까?” 인제, 갈 데가 있어? 남편이 허재는 대로 할 수 밖에 더 있나? 그러니 그 사람이 인저, 두 내외서 그저 보따 리 싸서 걸머지구 아버지께 어디로 간단 말도 안 하구, 혼자, 둘이서 떠났으니까, 떠나가, 가야 먼저 본데니까 그 고장을 가서 산골에 가서 보아 존 데 가서 자릴 잡 고 그 뭐, 그때 시절에야 나무를 베이는 것은 수가 좀 심한 수지만, 많이 베면 모를까 쬐께(조금)베도 말 안 하구. 또 지금 모냥으루 산림법 저촉이 되니 뭐니, 허가 니 뭐니, 이런 거이 없으니까, 지금은 집이 없는 사람이 오면은 비닐하우스 여러 가지루, 그때 그게 아니야. 땅 을 못 잡구 한 서너달께 그렇게 해구서 둘루면 그 안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그 움집이라는 거야 움집. 그런 움막집을 짓고서 두 내외가 사는데 뭘 결심했냐 하믄, “우린 젊은 나이니까 한 십년동안을 그리(그러) 모으 자.” “먹는 것도 하루 세끼 그냥 콩나물 죽을 먹구 살자.” “십년만 하면 인제 내년부터 아이가 나두 열살 될 거, 조금씩 먹구 인제 그렇게 해서 살자.” 구. 그래, “돈을 와 보자.” 구. 그이 사람 내외서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뭐라고 약 속을 했냐므는, “만약에….” 며느리가, 처가 하는 소리가, “우리 측에서, 친정 측에서 누가 우릴, 날 보러 오거든 말이지, 자기가 [116 쪽] 굶구, 자기 몫을 손님 대접 하구, 남편 측에 손님이 오 면은 남편이 굶구, 대접하기.” 루 했단 말이야. 자기 식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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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0269 &uu20no=Q_02 69_1_F_019


“십년 되도록 네 식구가 되든, 다섯 식구가 되든 두 식 구대루 살던, 한 식구 앞에 하루 콩나물죽 세 그릇 밖 에 없어. 그 이상은 더 끊이면 안돼.” 약속을 하구서 그 사는데, 콩나물이라는게 전부 콩 하 나 요거 만큼씩 그렇게 생각하구, 에 뎀벼서 하는 사람 에는 잘 되게 돼 있거든. 그래 그제서 그걸루다가 약속 을 하구 사는데, 아, 몇 몇 해를 세월가는 줄을 몰라. 이 사람들은 저 내기서 산 파구, 모 심구, 그냥 곡식 심 구, 발전만 맹길어서 뭐든지 해서 남는 건 전부 싸 두 구, 자기 먹구 사는 건 그냥 콩나물 죽 콩허구 콩에 늘 (넣을) 곡식만 해 먹구 쉬시믄 되요. 그러니 아니할 말루 외출을 하나? 술, 담배가 있나? 몇 해를 했는데, 저 닭 같은 거 길러서 산골에서 그냥 놔 두면은, 그리 저희들이 돌아다녀 줏어 먹구 자라서 그 놈이 또 알 낳으면 또 생겨서 또 많이 번성하구, 팔구. 또 인제 돈이 있으니까 땅을 사, 그 사람네 돈이 다 소 문 나니까, 먹구 쓰구 남은 돈이 다 다는 거야. 먹는 건 다른 사람도 모른 거야. 자기네 가족만 알지, 아이가 나 서 칠, 팔세 되도록 밥이 뭔지 몰라. 그냥 그 콩나물죽 이 그 인자 항시 먹는, 그 주식 그걸루만, 알아 이제 하 루는 소문을 들으니까, 그 작은 아들이, 에 이사 가서 잘 산다는 소리가 들리거든. 그래 남부여대(男負女戴) 해가지구서 보따리 싸 가지구 나가서 그래 갔는데, 뭐 으뜨게(어떻게) 잘 살 갔냐 말이야. 그래 부모 자식 사 이라는 거이 우정이 다르니까, 아버지가 찾아가 봤어. 찾아가 보니까, 집두 그 때는 다시 지었구 커다랗게 짓 구 사는데, 아버지가 가니까, “아버지 왔냐?” 구. 그래 인제 반가이 인사를 하더만, 아버지는 소행이 가 꽤씸했지. 자식 [117 쪽] 이 가서 이렇게 저기 지가 밥 먹구 살구 하면서, 아버 지두 참, 명일 여차에도 안 오구 부모를 보러도 안 댕 기구, 그러는 거야. 그 놈이 꽤씸히 생각을 허구, 나무를 해오구 인저 그러 는 순간 공기를 들어 마셨는데, 가서 보니까 그 뭐 참 예전에 시골길을 걸어가는 거니까, 해가 다 갔는데 저 녀 식사 때가 됐단 말이야. 그래 아버지를 들어 앉히구 서 저녁 상이 들어 왔는데, 콩나물죽이랑 갖다 준단 말 야, 손주를 따루 주는 것두 보니까, 콩나물죽이랑두 심 구 닭 심구, ‘아마 이 콩나물죽을 쒔다가 내가 오니까 그냥 주나부 다.’ 하구 먹었어. 먹구서 하루에 걸어서 간 사람이 콩 나물죽을 한 그릇 먹으니까 시장할 거지 괜찮았는데 아 들은 아버지가 식사를 할 동안 바깥에 나가서 뭘 치우 구, 그렇지 안으면 모처럼 만에 온 아버지를 보구선 어 떻게 일을 허구, 저녁상이 끝나니까, 며느리가 내다 싹 치워 버린다. 아들이 어째 저녁을 안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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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어찌 저녁을 안 먹니?” 그러니까, “전 먼저 먹었읍니다.” 그런단 말야. 이 사람이 그 저녁에 자면서 인저 아들더 러, 그, 그런 얘기를 했어. “그렇게 살면서 애들을 데리고 말이지 와서 가족들두 만나 보구, 친구도 만나 보구 허지, 왜 오지도 않고 그 러냐?”고. “인저 가야지요.” “제가 인저 갈 때가 있읍니다.” 그래 갈 때면 간다고 이따위 소리나 하구 있으니 점점 꽤씸하단 말야. 그래 자리 나서 아침에 또 식사를 들여오는 데 여전히 콩나물죽 한 그릇이야 아뭏든 그냥 나가 버려, 나가서 그냥 마당도 쓸구 인제 이루구 푸른 간밭에 곡식은 많 구, 부잔데 이 놈이 이래그든. 아, 그러니까 아버지가 생각에 ‘에이, 내가 미워서 이 놈이 이러나 보다’ 말야. ‘이 괘씸한 놈한 [118 쪽] 테, 며느리도 괘씸하구 아둘도 괘씸하다’ 이 그 식사 안 하구서 그냥 왔어. “나 간다.” 그루구 고약한 놈이라구 나무래구서 왔는데, 와서 그걸 큰 아들이 물어 본거지, 그래, “동생이 잘 지내드냐?” “잘 있드라.” 아, 그 뭐 이러니 저러니 신통한 얘기를 안 해줘, 이 놈 혼자 꿍꿍 욕을 하다가 마누라하구 얘기를 했단 말야. 그런데 그 얘기가 나 가지구 소문이 퍼졌어. 아들이 부 잔데 그 자기 아버지가 왔는데 콩나물 죽을 쒀 주구, 괄쎄를 했다구, 그 아버지 푸대접하구 괄쎄를 한 셈이 됐단 말야. 그 사람네 목표를 달성치 못했어. 그 목표 달성에는 생각을 다른 사람 전혀 모르는 거야. 자기 부 부끼리만 약속하구 사는 거니까. 소문이 났어. 꽤씸한 것들이라구 해가지구 아, 그 뭐 그 일대에 정말 참, 음, 부자 소릴 듣두룩 모았는데 소문이 그렇게 났거든. 그 인저 지끔이나 그 때나 돈 있는 사람이 좀 뭐라구 하기는 으레 이약하다, 그 신분은 말이 많거든. 암행어 사가 그 고을엘 들어 서니까, ‘아주 부모한테 불효허구 저 저희만 살려 그르구. 나쁜 사람이 있다‘구 소문이 났 어. 그 사람이 누군가 허구 찾어 갔어요. 찾아가서 그 아버지의 집을 가 찾아가니까 아버지가 내 손님이라구. 암행어사는 그 자초지종을 물어 볼라구 그럴게 아냐? 그래 물어보니까는 그런 일이 있었다. “나간 지가 몇 해 되는데 그 아들을 보러 가니까, 그렇 게 해서 내가 저녁에는 뭘루 콩나물죽 한 그릇을 먹구, 아침에다 어찌 괘씸한 지 콩나물 안 먹구, 굶구 와서 아주 고생을 무척 했느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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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그것을) 혼을 내지 가만 두냐?” [119 쪽] 구. 그래. “혼을 낼 생각이라.” 구. 그래, “큰 아들하구두 얘길 못 해서 하는데 어떻게 말이 퍼졌 냐?” 그러니까, “근 한 달 후에 이제 소문이 많이 퍼졌다.” 구. 그래 큰 아들 내외보군 얘길 못했다 그거야. 그쯤 됐으면 큰 아들에 내외들도 들었갔지. 알지 그래 암행 어사가 인저 내일은 이 놈을 가서 찾아가서 혼을 내구, 인제 그 재산을 한 반 뺏어다 자기 아버지를 주리라 생 각을 하구, 인저 앉아서 그리 뭐 그 때 시절엔 암행어 사가 나가서 빼면 그대로 했지 뭐, 끔짝하나? 그놈 아 주 된 적 콩나물죽 생전 먹게 한 번 멩길어 보겠다 하 구 그 작정을 하구 있는데, 아, 해가 저 어둡도록 들에 서 일을 하구 들어오니까, 닭을 볶아 놨어. 마누라가 아, “이거, 왠 닭이냐?” 구. 아니, “어쩌다가 족제비라는 놈들이 닭을 물고 가는 걸 뺏어 서 죽었길래 볶았다.” 구. 아니, 이 사람이 빙빙빙빙 돌더니 가만히 생각 생각 들 하구 돌더니, 뭘 지끈 하나 꺼내서 들쳐봐. 어저께가 십 년 된 날이야. 대 그 사람들은 닭이구 그저 개구 돼 지구 소구 뭐든지 길르기만 하면 잘 되구, 병아리 열 생기면 열, 겨란 열 넣주면 열 까서 열배로 자랐는데, “그런 것이 있다.”구. “아, 우리 인저 우리 재산이 다 불었다.” 구. 그리구 약속한, “밥을 하라구. 흰 밥을 주라.” 구. 아, 무슨, 아 글쎄, “오늘부터 흰 밥 먹는 날이라.” 구 다시, “콩나물죽을 물리구 어저께까지 먹은 거니까 밥을 하 라.”구. [120 쪽] “때가 됐다.” 구. 그 부인이, 참 에 잘 되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순진 하든지 쑤는 콩나물죽을 놔 두구, 다시 인저 다시 밥을 짓는 기라. 아, 나가드니 남편이 식구 있는대루 닭을 해 줘. 죽여 가지구 와 으른(어른)두 하나, 아이두 하나, 식구대루, 아, 그걸 죽여 가지고, 자 같이 인자 죽여설 라무네 먹는단 말야. 아, 먹구 나드니, “안 되겠다.”구. “어서 치구 닭 끓이라.” 구 아, 그리구 또 닭을 잡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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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밥 먹었시면 그렇게 한꺼번에 먹으면 되냐?” 구 말야. 부인이, “과하지 않느냐?” 하니까, “아니라.”구. “헐 일이 있으니까 헐 일은 해야 한다.”구. “당신은 밥을 또 지라(지으라).” 구. 게. “왜 그러냐?” 하니까, “밥을 지라.” 구. 게, “밥을 지면 얼마나 질려?” 하니. “그리 몇 그릇 되두록 지라.” 구. 그래서 부인은 밥을 짓구, “닭을 잡아 달라.” 구. 닭간에 들어가지구 싫어시리, 삶아 익으니까, 막 다 됐구. 아, 부인드 [121 쪽] 라(더러) 아, 이구 가재네, 같이. 그래 삶아 지구 부인 이 밥을 지구, “어딜 가냐?”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가자” 그래. “아, 그믄(그러면) 밝으면 가지, 왜 밤에 가냐?” 니까, “아, 밝으면 여보 일을 해야지 무슨 소리요?” 밤에 가자구. 아, 밤에 어둠, 해가 진데 저녁 먹구 인제 또 저녁 해가지구 이 놈을 닭을 헤이쳐가지구 갔어. 아 버지한테, 아. 에, 늦은 밤이 됐지, 늦은 밤이 됐는데, “아, 그만 쉬자.” 구. 아버지가 손님보구 자릴 깔구, 그러는 중에 누가 찾 아, 아 자제니까. “누군가?” 하니까는, “저요, 저올습니다.” 하는데, 물론 아들의 음성 모르갔어? 아들 음성이다. “아, 이 밤중에 왜 왔냐?”구. “가라.” 구. 으트게(어떻게) 생전 아주 안볼라구 볼라구 마음을 먹었어. 아버지가, “가라.” 그니까, “아, 그렇지 않다.”구. “아버님 드릴 말씀이 있으니까 문 좀 열어 주시라.” 구. 아, 손님이 인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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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아들이 왔는데 그럴 수가 있냐?” 구. 그래 인저 으사(어사) 암행어사는 그 아들이 들어 와 어떻게 하는가 행 [122 쪽] 동을 볼래니까 인저, “들어 오라.” 구. 그래서 문을 열고 절을 뜩 허구, “아, 누구시냐?” 구. 그러니까, “손님이 오셨다.”구. “인사하라.” 구. 그러구선 부인을 불르거던 부인은 안으로 들어 갔 는데 안으루, 안채로 들어 갔는데, “아이, 손님 오시는 줄 알구 모르구서 한 마리 적게 해 왔으니 어떡하냐?”구. “가서 다시 해와야지 않냐?”구. “그 무슨 소리냐?” 그래서 인제, 자기 처가 그 먼데 가래.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간다구. 시장하시겠다구, 해서 갖다 두 손 들여 닭을 들여 닭을 들여오는데 도대체 가니까 콩나물죽 쒀 주던 놈이 왠일이야, 이거 이상하거든. “어서 잡수라.” 구 권하니까 게이 거 암행어사라는 사람은 그쯤 지위가 되면은 머리 쓰는 것이 비상하지. “자, 들자.”구. “그러나 손님 댁에 걸 안 해왔다.”구. “또 가 해올 것 없이 주인인 나하구 노나 먹자.”구. “한 마리를, 한 마리를 노나 먹어두 충분할 거라.” 구. 그 자기 형네 식구, 여 저 식구들 아부한테나 하나 씩 해 먹이구, 하나 뭐 손님 줄 때는 뭐 글루다가 인저 그만 먹구서, “이 댐에 오실 때 해갖구 오갔다.” 하구서, 그래 먹구 앉아서 아버지는 화두 나구, 이상두 하구 거 맛이 없 [123 쪽] 거든. 그러니까 으사가 물어 봤을 때, 자초를. “당신이 으트게 해서 아버지를 갔을 제에(때에) 그래 괄세를 했으며, 오늘 날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닭을 잡 구 이 밤에 밥을 하구 해가지고. 왔느냐?” 그러구 물어 보니까, 그 아들이 자기 결심하구 떠난 바 를 얘기 서거든. “그래, 떠나서는 정착을 하면서 부인허구 약속하기를 ‘십년을 콩나물 죽을 쑤어 먹구 와서, 우리두 부자로 살 어 보자’ 약속을 하구 어저께가 십년입니다.” 그거야. “그래 올랐드니 오늘 저녁때 닭을 족제비가 물어 죽여 서, 하루 짐승 하나라두 실패한 일이 없구 어린앨 나두 실패한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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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어린앨 나면 아마, 오 잘 되는 집은 안 그렇 겠지만 칠할은 죽었을 거야. “게 몇 자매 몇 남매를 두고 사는데, 아 결과적으로 이 렇게 오늘 이렇게 일이 생겨서 책을 내가 적어둔 날짜 를 보니까, 어저께 다시 우리두 밥을 해먹구 우선 시장 해서 먼저 먹구, 잘 못한건 아버지를 낭중(나중에) 갖 다 대접한 것을 죄송하게….” 생각하니까, 아니 이 나쁜놈커녕 효자거든. 그래 그러니 까, “그러냐?” [124 쪽] 구. 그래 아버지를 이해시켰어. 그것은 사람이 살려무는 그런 결심두 없구 또 사람보다믄 상을 줘야 할 사람이 라구. 그냥, “당신이 아들에 집에설라무네 한 이틀만 묶어 왔다면 아 당신 아들이 그 때 분명히 죽었어.” “그래 콩나물 죽이나 하루 세 끼씩 먹구 사는 사람을 한 이틀 굶겨 봐. 그러니 잘 했다.” 구. 그래 화가나서 온 아버지두, “잘 했다.” 구. 그 아들도, “결심하구 한 일은 잘 했다.” 구. 그래 두 사람을 다 칭찬을 하구설라무네, 그 이튿날 어사하구, 아버지하구 같이 동행을 해서 아들네 집에, 작은 아들네 가 보자구 사실은 이 사람이 얼마나 재물 을 모았으며 뒤에서 한 번 가 보자구. 아, 가니까는 이 아들들은 아버지 어머니 손님들도 대접을 하구, 그들은 인제 밤에 저희집을 갔는데 나중에 손님이 아, 오니까 그땐 뭐 있는 거 없는 거 대접을 하면설라무네 굉장하 거든. 그래 어사가, “얼마나, 토지는 얼마나 장만을 했느냐?” 하니까, “진지 잡숫구 돌아보러 하시자.” 구 허드니, 그 놈이 지금 말로 노트지 한 장 들구서 뒷 산으로 올라가더니 “여기서 이렇게 보이는 건 역시 다 제 토진데 너머 요 짝꺼 요거는 아버지 겁니다.” 그거야. “어째 아버지 꺼냐?” 물으니까, “아버지가 그날 죽 한 그룻 안 잡숫구 가신 거 그걸 계 산을 해서, 몇 해를 불려설라무네 토지를 더 샀더니 이 게 아버지가 죽 한 그릇 안 잡숫구 번 땅이라.”구. “이, 다 아버지 꺼니?” 이 사람이 그 고을에 들어가서, 그 사람드러, “그 사람 높은 상을 내리라.” 구. 아 그래 작은 아들이 상을 받구, 그 고을에서는 효 자에 부자루다가 호칭을 받았다는 그런 얘기를 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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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임재해, 한 양명, 김정 숙, 권순자 조사. 이점 순 구연, 한 국구비문학 대계 7집 17책 [경 상북도 예 천군 용문 면 설화 53], <겨울 에 산나물 을 구한 서 모의 딸 >

서, 사람이 결심을 하구, 그 자기가 작심삼일이라구 해 서 지어 먹은 마음을 삼년을 넘어가면 변한다구 그랬 어. 그래 친성적으로다 자기 심성에서 우러나야지, 가다 가 이렇게 먹구서, 에이 [125 쪽] 내가 공부를 아주 싫어 하는데, 부모들이 억지로 시켜 서 하는 공부 그 인제 자기가 인제 여느 때 같으면 에 이 좀 공부 좀 잘 해야지. 꼭 마음 먹은 것 사흘만 넘 어가면 사흘 동안은 잘 하는데 그 이후에는 또 잊어버 려 또 놀러 댕기구 그래 작심 삼일이라는 게, 지어 먹은 마음은 흔들리지 않고, 천생적으루 자기가 우러나는 마 음은 생전 두번 다 믿고 살아야 만이 지어 먹지 않구 자기 천상에서 우러나서 한 일이 효과를 얻었다. 그런 얘기도 하시는 노인네도 있었어. 사람이 어딜 가서 거 친척의 집엘 가든지해서, 괄세를 받는다는 거, 게, 그걸 을 에 그냥 무의미하게 냉기구 에이, 괄세하갔지. 왜 욕 을 하냐구, 괄세한 사람을 욕을 헐 수가 없구. 거기서 인저 뉘우쳐 가지구 내가 무엇 때문에 괄세를 받았냐? 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사람은 탓이지. 예전에 서모가 있었는대요. [제보자:할라 그이 목이 꺼끄럽어 글치요.] [조사자:괜찮습니다 보통 이바구 하듯이 하소.] 참 인제 딸을 형제를 놔 놓고 죽었그던요. 저 참 딸 형 제가 아이라 남매를 놔 놓고 죽었는데. 이제 서모 [558 쪽] 가 들어 와서 딸을 하나 놓이께, 똑 같이 같이 크이, 똑 같이 크이 어마이가, “오늘 나락 한 가마이 찧고, 또 물은 밑없는 두머이(두 멍에)(부엌 구석에 땅을 파고 반 정도 묻어놓은 물독) 물을 한 두머을 여어 놓고 오늘 다 해 놔라.” 그고 어마이가 어데 잔채(잔치) 보러 갔그던요. 그리이 이 밑없는 두머어 물을 여 부이 어에가주고, 물 여부이 어에가주고 물 여부이 물이 되니껴? 울고 앉았다이 두 께비가 밑에 들가가주고, 가서 뚜께비 밑에 까이(깔리 니) 물을 부이 있잖니껴? 있고 또 밑없는 솥을 돌불에 때라 그이 되니껴. 돌불을 때라 그이 그래 밑없는 솥을 돌불에 때고, 어데 참 방엘 드가이 옷이 한 벌 있드라 이더. 옷을 한 벌 입고 참 신을 신고 간다, 잔채 보러 가는데 따라가이 그이, “요마한(요망한) 년 니가 으이 오늘 다 저거 해가주고 쌀 바쳐가주고 옷을 해 입었지?” 이래 그며 어마이가 야단을 치고 하이, 고만에 참 집엘 돌아와서러 아바이한테 뚜디려 맞고 쫓기나가주 있다 이, “산에 가가주 나물을, 나물을 해가주 옸나. 동지섣달에 산나물을 해 옸나.” 동지 섣달에 산나물이 어데 있을니껴. 동지 섣달에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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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임재해, 한 양명, 민경 모, 김용진 조사. 류수림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7집 18책 [ 경상북도 예천군 풍 양면 설화 45], <나 물바구니를 날라다 준 호랑이>

나물이 없어가주 산밑에 가서 엉엉 우다이, 엉엉 앉아 우다이께로 새가 한 마리 나오디, “방구 옆에 가서 돌순아 돌순아 부르다.” 그러. “돌순아 돌순아!” 시 마디 부르이 확 열리드라 그래요. [강조하여] 그 안 에 드가이 없는 거 없이 있어.(돌문 안에서 총각을 만 났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빠뜨렸다.) 그래 또 나물 을 해가주 온다. 해가주 와서 요새 저울(겨울)에 삶아 놓이 맛 있으이께로 어마이가 또 해오라 그그던, 또 나 물을 또 하러 [559 쪽] 가이 가이께로, 어마이가 뒤를 따라 갔어. 뒤를 가이, “[작은 소리로] 돌순아 돌순아 문 열어다고, 문열어다 고.” [본래대로] 그래 참 문을 열어다고 소리를 듣고 어마이 가 가가주, “[신경질적으로] 요년아, 인지는 내가 가마! 니가 못한 다 내가 가마.” 가가주 ‘돌순아 돌순아’그면서 문 열어 달라 그이, 고 가가주 고마 총각을 쥑있부랬어요. 그 안에. 속에 장수 를 죽였부리고, 그래 이게 또 어마이가 와가주 나물해 온나 그이 또 가가주, “돌순아 돌순아 문 열어다고 문 열어다고.” 그리 생전에 열리는가? 고마 그카다 보이 자꾸 앉아 우 다 보이 새들이 와서 뭐 우에 짹 짹 짹 그래가주 그 문 이 열맀다 그래. 열리가주 그안에 드가가주 가보이 모 간진 잘라서 대들보 걸고, 챙이(창자)는 걸어서 [웃으 면서] 다 옛날 말이시더. 다 거이, 뒤안에 가이 피살이 꽃, 살살이꽃이 다있어. 천마디를 오우이께네(외우니까 는) 기지개를 뿌듯이고 일어더라니더. 그래가주 고마 이 총각하고 그래 참 결혼해가 잘 살았다니더. 옛날에 참 호랑이가 명물이래요. [조사자 : 옛날에 호랑 이가 명물이지요.] 명물이지요. 요 간단하게. 우리 부모 님은 우리 부모님 모도 저머식 클 때요. 장성을 하실 직에, 그 나물을 뜯으러 거길 갔다 그래요. [청중 : 학 게산에?](학가산(鶴駕山)을 일컫는다. 안동군 서후면, 북후면과 예천군 보문면의 접경지역에 있는 이 지역 최 고(80m)의 산이다) 학게산에 그래 갔는데. 아 점심을 마카 요만큼쓱 싸가주 갔는데, 바우 밑에 앉아서 밥을 먹을라 그다이요, 호랭이 새끼가 알룽달룽한게 두 [189 쪽] 마리 나와, 그키 예쁘드라네. 그래가주고 영, 호랭이 새 끼를 [손으로 쓰다듬는 흉내를 내면서] 요래 요래 씨다 듬으면서 니(네) 마리드란다만. 그래가 자꾸 이래 이래 쓰다듬으며, “아이구, 곱다! 요거 한 마리는 내 가주 가지. 한 마리 는 내 가주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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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

최정여, 박 종섭 조사, 형기순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8집 5책 [ 경상남도 거창군 거 창읍 설화 9], <똥된 장 이야기>

우리 모친이 얘기해요, 그때. 우리 클 때. 그래가주, “내 가주 가지. 내 가주 가지.” 밥을 먹다이 호랭이가 바우 우에서 지 새끼 곱다 그이 웃드라네. [청중 : 웃음] “[웃으면서] 어흐흥!” 그마 웃더라 그래요. [일동 : 웃음] 하이고 내 죽겠다고 고만에 나물 보태이(보퉁이) 다 놨두고 고만 챙겨가주 고 고마 집엘 왔다 그래. 그래 모친은 참 과일(동명) 사램인데 그래 왔는데, 아직에 그 나물 대래끼 다 갖다 놨다 그래. 집집매동, 다 각자 찾아서 다 갖다 놨드라 그래. 그 명물이라. 그래 이얘길 들었어. [청중 : 그 곱 다 그기만 하고 가주 오진 안했구만?] 가주 와지 이.(2)[주]제보자가 청중의 질문을 잘못 알아들었다. 청중은 호랑이 새끼를 가져 왔느냐고 묻는데 제보자는 나물 다래끼를 가져 왔느냐고 묻는 줄 알고 가져 왔다 고 대답한 것이다. 그 호래이가 그 바우 우에서, “어허헝!” 그마 웃는데. [청중 : 가주 왔으만 해를 보일낀데.] 지 새끼 곱다 그런다고. 그런 이얘기를 옛날에 들었네요. 이얘기라 글 것도 없어요. 잇날에(옛날에), 어리숙한 영감 할멈이 살았던 모양이 지. 이 할마이는 집에서 밥하고, 영감은 나무하러 가고 이랬는데, 한날은, 할마이가 인자 빨래를 가고 영감은 인자 산에 나무하러 갔는데, 아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보니, 아이, 똥이 누럽단 말이라. 똥이 누러바서, 음, 참, 또랑가에 누도 되도 안 하는 기고, 산에 누도 되도 안 하는 기고, ‘에이 물에다 놉비리라’고 신문을 하나 피 가지고 똥을 노. 똥을 노가지고, 똘똘 말아가지고 갱고랑에다가 떠내 려 보내는 기라 물에……. 할마이가 인제 빨래를 한께네로 신문지가 하나 니리오 거던. ‘이 무슨 신문지가 내리오는고, 돈뭉티나 안 생기 는가’ 싶어서 반가바서 이걸 끌러 보는 기라. 주가지고 꺼낸께, 노란 된쟁이 쌔있어. ‘하이가! 이거 왠, 가져가 서 찌져가지고 낮에, 씩은밥을 우리 영감하고 갈라 묵 어야 되러다’ 싶어서[청중들이 녹음에 방해가 될까봐 웃음을 참느라고 야단이다.] 어찌 좋던지 빨래를 해가 지고, 영감 오기 전에 인자 딘장을 찌지 놓는다고,[청중 들이 참다 참다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인자 빨래는 씻거다 놓고, 빨래는 안 삶고, 딘장부터 찌지는 기라. 딘장을 보골보골 찌진게, 영갬이 나무를 한짐 해 가지 고 오거던. “아이구, 영감 무겁지요. 내가 오늘 낮에 딘장을 맛있게 찌져 놔서, 씩은밥하고 맛있게 찌져 놨는데, 오늘 낮에 딘장하고, 우리 영감 할마이 맛있게 묵읍시다.” “하! 거, 된장이 어데 나서 찌졌는고? 허! 그거 참 아이 그라세.” 거카거던.(그러거든) 그래 인자, 딘장을 찌진 걸, 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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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白 丁)

조희웅, 유 지현 조사, 홍종은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1집 9책[경 기도 용인 군 포곡면 설화 7 ] , <이장곤(李 長坤)과 백 정의 딸>

씩은밥하고 갖고 나와서 영감 할마이 묵는다. 영갬이 한 번 떠묵고, 암만 케도 이상하게 꾸룽내가 나거던. “할마이, 이 딘쟁이 어데 났는고? 청상 이 딘장이 똑 내 꾸룽내 겉은 내가(냄새가) 난다.”[청중:웃음] [97 쪽] “아이고 영감, 내가 깽문(강물)에서 오늘 빨래를 한께 네로, 신문지에서 된쟁이, 노란 된쟁이 내려와서, 내가 주 가지고 와서, 오늘 낮에 영감 줄라고 내가 이래 맛 있게 찌졌다.” 칸께, “헤이꺼야! 이 사람아, 그게 내 똥이네. 내가 나무하러 가가지고, 똥이 누루바서 그 신문지에다 싸 가지고 떠 니리 보냈디, 자네가 그 주다 찌졌나? 이게 내 똥이 네.”[청중:웃음] 연산군때 덕진 이씨에 이장건(이장곤(李長坤)의 잘못 임), 마른 건(乾)자. 이장건이란 분이 있는데 그분이 시 방으루 이르면 무신 장관급에 속했던 모양이여. 그런데 연산군이 어떻게 폭군으루 나쁜 짓을 하는지 장관에 부 인은 오히려 더 하나두 빼놓지 않구 몽조리 욕을 뵌다 이말에요. 그래 인저 차례루- 차례차례 오 [102 쪽] 늘 저녁은 누구 낼 저녁은 누구 차례차례 요렇게 나가 다가, 낼 저녁쯤은 이장건이 부인의 차례다 이말이야. 그래서 나와서 이장건이 머릴 싸구 드러누워서 머리를 싸서 꿍꿍 앓지. 그래 그 부인이 하는 말씀이, “그 대감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우째 그렇게 좋잖으시 니 우짠 일입니까?” 그러니까 말을 그래두 안 한단 말이야. 그래더니 얼마 있더니 하는 소리가, “큰일났읍니다.” 말이여. “그래 뭐이 큰일이 났단 말이요?” 그래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시방 상감께서 그런 짓을 하고 내려오는데, 내일 저녁 엔 우리 차례다 이말이야. 우리 차례니 이걸 내가 살아 서 눈으루- 현재에 보는 도리에 이걸 어떡게 그냥 있 을 수가 있느냐 말이야. 그래 차라리 이거 죽는 게 낫 지. 이걸 이런 꼴을 어떻게 보느냐?” 그래니까 그 부인이 있다 하는 소리가 ‘염려마십쇼’ 말 이야. “제가 다 감당하것읍니다.” “그래 부인이 어떡게 감당을 하오?” “네! 내가 감당을 하죠.” “그럼 내일 저녁에 틀림없이 약조를- 약속합시다.” 말이여. “안 나간다는 약속을 합시다.” “어떻게 무신 수단을 쓰든지 안 나가것다.” “그럼 좋다.” 이말이여. 그래 들어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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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떻하것소?” 그러니까 치마를 아홉자를 입는데, 하나- 치마 하나 입 고 아홉번을 붙 [103 쪽] 들어 매. 치마끈을 또 하나 입구 또 아홉번을 붙들여 매. 또 하나 입고 또 아홉번을 매. 그러면 아홉 개를 입 으면 구구 팔십 일, 여든 한번을 붙들어 맨다 이말야. 그러면 이거 속도루 붙들어 매면 이거 잠깐 되겠지마는 시방으루 일르면 열두시 쯤이나 해서- 들어가서 치마 하나 입구 아홉번 붙들어 매구. 그래서 구구 팔십 일, 여든 한번을 붙들어 맬 시간이면 해가 거반 날이 샐꺼 아닙니까 말이여. “그렇게 해(하여) 이걸 피하구 나오것읍니다.” 그래 참 그럴 듯 하거든. 그래서 인제 들어갔는데- 입 궐을 했는데, 입궐을 하구 보니까는- 들어가 보니깐 그 게 아니다 말이야. 아 이게 뭐 연산군이 그 폭군이구 뭐 그런 걸 신사적으루 그렇게 할 사람이 아니다 이말 이야. 이건 뭐 그냥 그래서 그냥 당했다 이말이야. 그래 당했는데 아침에 퇴궐을 해서 집엘 뜩 왔거든. 오니깐 벌써 그 대번 물을 거 아니요. “그 어떻게 됐소? 대관절 어떻게 되었소? 부인?” 아무 소리도 안하거든. “거 왜 말씀을 안하시오?” “말할 수가 없읍니다.” “그럼 당했다는 얘기냐?” 이말이야. 그래두 아뭇 소리 안해. 그 당했다 그래, 어 떡해? 얘길 못하는거지. 그래 연산군을 헐어서 ‘이걸 임 금이라군 있다가 내가 집안이 멸망하구, 나 망하는 거 는 낭중이구 세상이 다 망할테니까 나는 어디루 갈 수 밲에 없다’구선 부인을 두구서 그냥 내뺏어요- 나갔어 요, 집을 떠나서. 나갔는데 나간 뒤루 발써 그 얘기가 대궐에 들어갔다 말이에요. “이장건이는 부인 대녀간 뒤루 안 셈기것다구 나갔십니 다.” 말이야. “그러냐? 잡아들여라.” 말이야. “그 놈을.” [104 쪽] 그래 발이 상당히 참 길은데, 그 사람이. 이장건이라는 사람이 다리가 그렇게 길다- 크구. 그래 나가면섬 그 이런 보통 옷을 입구 농군들 농사 짓는데, 가서 일두 하구 흙두 묻히구 형편없이 뭐 밥두 얻어 먹구, 돈이 없이 나갔으니까. 아 근데 이제 길을 많이 걷구 그러니 깐 괴롭다 이말이야. 그래 낭구 밑에 가서 이렇게 여름 같은데 한삼(한숨) 잘라구 하니까, 그 순라꾼이 이렇게 지나가다가 시방으루 이르면 경관이지, 순사가 이렇게 지나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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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발 큰 거 보니까 이장건이 같은데? 그 놈 이장 건인가 보다, 아마.” 다 듣는다 이런소리야. ‘아! 이거 큰일났구나. 발 큰 건 이장건인데 이장건이 잡으래거던 발 큰 놈을 잡으면이장건이라는 영을 내리구서 잡으러 다니는데 이거 큰 일났구나.’ 아무래도 이래 가지구 안되겠다구. 어디루 피해야 되겠다구, 그래 얼마쯤을 내빼니까 목이 말라 죽것더래요. 그래 목이 말르는데, 우물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렇게 보니깐 버드낭구 밑이 하나 있었는데, 가보니까 거기 버드나무 밑에 우물이 있다는구먼. 그래 우물 앞에서 이렇게 물을 좀 떠 먹으 래니, 바가지가 있어야 떠 먹지. 그래 거기서 주저하구 있는데, 참 커단 색시가- 그전엔 시방은 머리를 죄 깍 아서 이렇게 했지만, 그전엔 머리꼬리가 치렁치렁한 색 시가 물됭일 이구 온다 이말이야. 그래 물동일 이구 다소곳 하구선 그 우물에서 물을 푹 푹 푸더니 이구 들어 갈라구 하거던. “그래 그 규수- 뉘댁 규순진 모르겠으나 내 이렇게 목 이 마르니- 도리가 없으니까 그 물 한 모금 얻을 수가 없느냐?” 그러니깐 아뭇 소리두 안하구 다소곳하니 물을 한 바가 지 뜩 뜨더니 버드나무잎을 죽 뜯어가지구선 바가지에 다 떡 너준단 말이야. 그래 후후 불구는 물을 마셨어요. 마시구 보니까는 참 들 밉다 이말이야, 색시가. 그래 이 제 물었어요. 말을 시켰어요. [105 쪽] “그래 이제 한 가지- 물을 줘서 잘 먹었는데, 이 물 가 지에다 버들 잎을 훝어 넣는 뜻은 이거 무슨 뜻이요?” 하구 물으니깐, “네! 그거 별 이유가 없었구요. 손님의 행색을 보니깐 좀 급한 걸음을 걸으시는 것 같아서 그 숨 좀 돌리시라 구 그 훑이 넣었읍니다.” 아, 그 소리를 들으니깐 생각이 달라진다 이말이야. ‘아 이거 참 보통여자가 아니로구나!’ 그래 이렇게 보니깐, 집이 고 앞인데- 집이 큼지막한 집이니까, 거길 쫓아갔 어요, 색시집을. 그래 다시 불렀어요. 불르니깐 그 색시 가 역시 또 나오거던. “그런게 아니라 내가 이거 시장끼가 나니 그 나 밥 한 그릇 줄 수가 있소?” 그 여자는, “아 그거 무슨 말씸이냐?” 구. 아주 기가 막히게 밥을 한 그릇 대접을 한다 이말 이야. 한 상- 그러더니 사랑에다가 뜩 갖다가 대접을 한다 이말이야. 그래 밥을 먹었지. 먹구선 그 여자하구 거기서 정이 들었어요. 그래 가지 않네. 어디 갈래야- 나가야 나갈 때가 없구 그러니깐, 아 거기서 밥 잘 주구, 또 그 색시가 잘 해주구 그래니 깐, 거기 떠날 맴이 없단 말야. 아 그러다간 둘이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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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됐다 이말이여, 연애가 돼서 거기서 사는데, 그 자기 아버지가 뭐하는 집이냐 하면 키 맹기는 집이여. 시방 으루 하면 백정집이란 말이여. 그래두 아니꼽지. 밥을 얻어 먹어도 똑똑한 집에서 얻 어 먹어야 하는데, 그 백정집에 가서 밥 얻어 먹구선 안될건데, 그렇게 못하겠지. 나가면 붙들리기만 하면 죽 을 지경이니깐- 그러니깐 그 부인한테다- 색시한테다 그런 얘길 했어요. “내가 나가면 죽어. 그러니깐 당신집이 될 수 있으면 나를 몸을 피해 달라.” 구. 그래 사랑에다 묻어놓구, 아침 저녁으루 뭐 삼시 밥 을 꼭 해서 바친다 [106 쪽] 이말이여. 그래 인저 자기 아버지한테두 아주 그리루 시집가기루 그렇게 했는데, 그 부모는 아주 적극 반대 여. “그래 나이가 저렇게 많구 불쪽밲에 없는 놈한테 뭣 때 문에 니가 거기를 가려 드느냐?” 구. 적극 반대하는 것두, “어머니, 그 무슨 말씸이냐? 아 그런 말씸하지 말라.” 구. 영 해가지구서, 결국 인저 거기서 예를 일러 가지구 사는데, 제가 무슨 논을 맬 줄 알어? 시방 일르면 장관 이 무슨 뭐 할 줄 알어? 농사일은 전혀 못하거던. 그러 니깐 장인이 하는 소리가, “이거 봐. 거 아무 날에….” [그 저 시방이면 공출을 바칠 때 그 키맹기는거. 이런 걸 공출이라하는데] “이거 갖다 관가에다 바치구 와.” “걱정말어. 내 가서 바칠테니 걱정 말아요.” 그래두 뻣뻣하게- 장인한테두 뻣뻣하게 해. ‘네 그랬읍 니까, 이랬읍니까’ 소리 안하구, 어정쩡한 소리를- 양 반 그 티를 한다 이말이야, 그 장인한테다가. 그래두 어 쨀 수 없이 들었지, 어떡햐? 그래 하루는 그 키, 고리 짝, 이런 걸 맹길은 걸 짊어지구서 관가루 그걸 바치러 갔는데, 다른 사람은 갖다 접수를 해 가지구선 ‘어디서 왔읍니다- 어디서 사는 누가 왔읍니다.’ 하구서 접수를 해다 갖다 바치는데 이 사람은 이걸 짊어지구 가서 그 동헌(東軒) 대청에다 그냥 들메쳐요. 대청에다 냅다 와르르 하구 들메치니까는, 그 원이 앉 았다 이렇게 문을 열구 보니깐, 아 자기 외사춘이여. 이 장건이가. 아 그래 버선발루 그 동헌에 쫓아가서, “아 형님! 이거 우짠 일이요? 우짠 일이쇼?” “허 그런데 자네 어떻게 된 일인가?” “하 나 여기 와- 왔읍니다. 그래 그런데 형님은 어떻게 되신거요?” “그래 알잖나? 자네 형수허구 이번에 그 알잖나? 그래 서 나를 잡아서 [107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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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

김영진 조 사, 조동호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3집 1책 [ 충청북도 중원군 주 덕면 설화 10], <양반 이 된 백 정>

죽일라구 하길래 내가 피해 와서 백정집엘 와서 장가 들었어. 그래 그 집 밥을 얻어 먹으니까 밥 얻어 먹는 구실을 해야지. 그래서 이걸 가져 왔거든.” 다른 사람은 검사를 하구 기래는데, 이건 그냥 검사두 안 맞구 그냥 무조건이여. “하매 며칠만 더 계시라.” 구. 그래 인저 평소에두 거길 관가엘 들어가지. 들어가 면 참 내외종 사춘들끼리 서루 만나서 얘기두 하구 그 래는데, 하루는 집에 와서 인제 있으니깐- 이장건이가 그 처가집에 와서 있으니깐, 가마하구 인마를 갖추어서 가마 뭐 사린교 이런 걸 가지구 왔더라 이거여. 자기네 집- 백정집엘 왔더랴. “그래 아 이거 우쩐 일이냐?” 그러니까는, “관가에서 모셔 오라구 두 분 모셔 오라구 그래서 왔읍 니다.” 그래서 그 관가에 들어가서 대울 받구 결국 그 때가 연 산군이 몰려서 나갈 무렵에, 그래 다시 내중에 들어가 서 그 원 하던 그 벼슬을 또 다시 맡아 가지구 했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요. 서울서 이진사라고 살아요. 사는데 그렇게 어려워. 그래 굶으며 먹으 [297 쪽] 며 그러며 살지, 사는데. 그런데 마누라 보기가 딱해여. 그래 남의 식구를 데려다 저 고생을 시키나하고 싶어져 서 아주 딱해 못견디겠어. 그런데 할 도리가 없어, 예전 엔 서울서 이제 그 벼슬깨나 하구 하던 이러던 사람이 어려우면 팥죽할미라고 있어요. 팥죽 쒀서 파는 사람. 그것을 자주 팔어요. “나를 하루 죽 한 그릇씩을 주면 내일 낭중에 내가 잘 되면 후이 갚어 주마.” 그래서 그 죽을 한 그릇 줘서 연명을 해 나갔다. 어떻 게 벼슬만 하면 그땐 팔자를 고치는거야. 팥죽 할미가. 그러니까 이제. 쭉 마님께 하듯이 그 자를 바로 대주는 이가 있어. 그래 남자는 그저 얻어 먹지만 여자는 뭐 백지 손가락도 못 벌려. 이래 살라니깐 마누라가 한날 은 그래. 그 앞에 백정놈이 벳섬이나 하는 놈이 있어. 그 동성동본(同姓同本)이야. 그러니까 마누라가, “여보. 그저 오늘일랑은 그 백정놈의 집에는 가 보쇼.” “아 거기는 뭐하러 가?” “아 좀 가 봐요.” “아 글세 거긴 뭐하러 간단 말요?” “아 글세 가보오.” 허 어떻게 권하는지 안 가 볼 수가 없어. 그래 한날은 거길 가느라고 가서 골목에 서서 이래 사방을 살피니 이 아무리 둘러봐도 누가 있어. 그래니께 못 들어가 보 니까. 마침 사람이 비었어. 그래 쫓아 들어갔어. 그래 주인이 백정놈이 깜짝 놀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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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들어 오시느냐?”고. “사랑에 들어 가시라”고 해서 사랑에 들어갔어. 그래서 그날은 잘 먹었어. 점심 저녁 이래 잘 먹었지. 그날은 하루종일 견디다가 혼이 났어. 꼼짝도 못하고. 이래 컴컴하기 전에 나와서 집에를 왔어. [298 쪽] “오늘은 잘 잡수셨지요.” “잘 먹긴 잘 먹었네만 종일 아주 내가 죽을 욕을 봤네.” “왜요?” “챙피스러워서….” “내일 또 가오.” “아이, 다시는 안 가!” 아침 먹고 또 자꾸 가라는겨. 그래 또 갔어. 또 가니깐 그날도 역시 그려. 하루 이틀 한 십여일 댕기니께 그제 는 백정놈이 들어 와서 뭐 이야기도 더러 하고 그래. 그전엔 들어오지도 못 했는데. 얘기를 하구 그러더니 한 20일 그래 댕기니께 이젠 댕기기 신이 나니께 처음 과 같이 그렇게 창피스럽지는 안 해. 그래 들어 와서 백정놈이 들어 와서 얘기도 더러하고 이래. 같이 저녁으로. 오는데 한날은 저녁먹고 갈려고 하는데 못 가게 붙잡어. “더 놀다 가세요.” 그래 더 앉아 있자니까, 술을 밤에 내 왔는데 참 별다 른 안주를 해서 내와서 그래. 둘이서 얼근히 수월찮이 먹고서 이제 왔었드란 말여. 그 이튿날 또 그래. 그러더니, “내가 여쭐 말씀이 있는데 좀 들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들어 주실는지 모르겠어요.” “아 무슨 얘긴가? 한번 들을만 하면 듣지.” 그 이래 가지고선 말을 못해. 얼마 있으니까. “그 족보…” 이랜단 말여. “아 저 놈이 그여 날 곤욕을 주는구나. 아 간다”고. 하고 왔어. 왔는데 집에 와서, “그예 자꾸 가라고 하더니 가서 창피를 본다”고 그런단 말여. “무슨 챙피요?” “그 놈이 족보……그러는 것 보니까. 필연 족보를 해 달 라고 하는 말인 [299 쪽] 데 그런 챙피가 세상에 어디 있어?” “아이구 딱도 하오. 그 족보 한 질, 많은 것 한질 그리 주면 그 사람도 잘 되고 우리도 잘 살것 아니요? 그렇 다고 해서 그리 주었다고 그 놈이 말을 낼테오 우쩔테 오? 당신이나 알고 그 사람이 알면 그만이 아니요? 근 데 우릴 누가 상놈이라고 할테요. 내일 또 가오.” “아이 안 가. 내일 또 해달라고 할 걸.” “해 달라 하거든 한 질 줘요. 주면 무슨 대가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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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두 그렇단 말여. 그 한 질 주기로 욕되는건 아녀. 동성동본(同姓同本)이고 그러니께. 그래 들어 갈 때. 아주 반가이 더 반가이 한단 말여. 그래 들어가 앉으니까, 그날 저녁 참 그래. “댁에서 참, 족보를 한 질 저를 해 주시면 내 몸뚱이는 빨게 쫓아 주어도 내 땅을 다 댁을 드려.” “그러니까” 그래, “바뀝시다.” 그래. “그렇게 하오.” 그래 집에 와서 그 이튿날 인저 파보를 한 질 내 놓아 서 그 사람들 이름을 해 서댁이나 한 자손으로 해다 놓 았지. 이튿날 저녁에 그 놈이 땅문서를 짊어지고 왔어. 그래 그걸 줬어. “내가 내일은 못 가고 모래는 내일 저녁은 어디로 갈텐 데, 가거든 모래 아침에 일찍이 이 집으로 이사를 하시 오. 내가 몸뚱이나 가지면 뭐 솥비 장독도 건건이도 양 식이고 뭐고 상도 하나도 못 가져 갑니다.” “그래, 그러라.”구. 그래 이튿날 안 갔지. 그래 이튿날 식전에 일찍이 말대로 가 보니까 집이 텅 비었어. 그래 그리로 이사를 했으니 누가 알어? 거기서 사니까 새로. 그게 부귀공명이여. [300 쪽] 이제 잘 사니까 벼슬을 하게 됐어. 벼슬을 하게 되서 이제 이것 저것 하다가서 경상도 어사가 됐단 말여. 이 저 경상도로 내려 가는겨. 이제 편을 박어내 가지고 몇 놈 총총이 감을 엮어 놔서 경상도 저 경산을 갔더래. 갔는데 큰 고개가 있는데 고개를 올라가서 보니까 그 밑에 잘 사는 모양이여. 그래 올러오는 사람더러, “저기 저 큰 집이 누구 집이요?” “거 서울서 내려 온 이진사 사촌들 집이요.” “서울서 내려 온 이진사 사촌들 집인가? 거기가서 찾아 봐야 되겠다.” 들어가구 보니까 백정 놈이 거기 앉았어. 근데 견상관 자에 죽 모여 앉았는데 저 그 대문간에 가서, “여봐라.” 그라니께, 아 백정놈이 좋아 나오더니 버선 발에 쫓아 나와. “형님, 어쩐 일이요?” 하구, 아 모셔다 놓고서 절을 넙죽 하더래. 그러니까 그 앉았 던 사람들이 보니께 그 분은 분명하고도 양반여. “아, 저 우리 종내 양반되는 분이니까 인사하라”구. 죄다 인사를 하고 그래 게 그래 놀다가 전부 다 간뒤에 저녁에 저녁을 해서 줘 먹고 앉았으니께 아 이놈 식구 하고 집이 조융해. 집이 글쎄. 안에도 집이 있어. 이래 앞문을 문틈을 내다 보니께 아 이놈들이 죽 와서 엎드 려 있어. 거적을 깔고. 그 주인들이 백정 놈들이지. 그 래 쫓아 나가서 붙잡아 드렸어. “너 이거 무슨 짓이냐? 니나 알고 나나 아는데 나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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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

김선풍, 김 기설, 김기 현 조사. 김 효신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2집 5책 [강원도 양

사촌이고 형이라 했으면 니나 알면 그만이지, 왜 일가 까지 알리냐? 구. 당체 치우라.”구. 그래서. 인저 사촌이 됐지. 그 인저 그 한테는 자초지종 얘기를 했어. “내가 경상도 어사가 되서 왔는데 내일부터 본거에 출 동할테니 그런 줄 알아라.” [301 쪽] 거기서 인저 잘 사는 사람, 벳집이나 나오고 하는 사람, 다 잡아 쥐었어. 거 돈 오면 내 줄거 아녀? 그 인저 본 거를 가서 출처를 하니까 어떻게 생야단이 났지. 그 인 저 괜히 돈푼이나 있는 사람 자꾸 자꾸 들이 더라 이거 여. 잡아 들이니 할 수 없이 모두 아랫자락 사촌이라 그라 니까 거기와서 청을 대. “저이 좀 살려 달라.”고. 그래서 돈을 갖다 줘도 모자라니까 내중에는 아주 골이 바짝 말러. 땅문서를 자꾸 갖다 주는데 참 몇 백 모아 놓았단 말여. 그래 며칠 그라고서 인저 저녁에 나왔어. 나와서, “어떻게 됐나?” 이라니까 “아 몇백섬 한채해서 갖다 줘야 되겠다.”고 그래. “이걸 서울에 올리나요?” “올리긴 뭘 올리니? 나 인저 살만 하니 너 인저 이것 갖고 살어. 그런데 잔치를 한번 해야 된다.” “아 하지요.” “그러면 얼마든지 니 돈대로 잘 해라.” “걱정 마시요.” 참 큰 소 잡고 서로 술을 섬세를 하고 떡도 섬세로 하 고 이래서 잔치를 푸짐히 장만했단 말여. 게 아무날 어사가 그 집에 간다. 그래니까 뭐 그 골 수 령 방백들이 모두 모이니까 양반 부스러기 죄 모인단 말여. 게 가서 진종일 먹고 놀다가 해거름에 이제 어사 가 나서서 말을 하는겨. “내 사촌이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어디를 갔는지 몰 랐더니 지금 와 보니까 여기 있어. 다 모두 그런 줄이 나 알라.”고. 그래서 그날 부자가 됐잖어. 부자가 되고 대번 양반이 좋은 양반이 됐지. 어사 사촌이니까. [302 쪽] 그래서 올라와서 두 집이 다 잘 살더랴. 예전 중엽이지 그러니까 어느왕 시댄지 모르나 중엽이 요.[조사자 : 이조 때인가?][제보자 : 그렇지요.] 그런 데 선생이 글을 가르키고 이렇게 해서 지내가는데 아주 노래가 됐어. 두 부부가 그러니까 아들도 없구 그런데 그 이후에 그 선생님한테 공부를 하던 그런 일파가 그 저 쌀 한 두 짐씩 쌀말을 갖다 공양해서 그걸로 생명을 이 양반이 보존해가 지내가요. 그 지내가는데 그 고을 에 백정이 떠억 생각을 해 보니 그 노인부부를 갖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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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군 서면 설화 51], <선생의 꿈 으로 공부 잘 한 백정 아들>

봉양을 하면은 자기 자식은 공부를 시키기겠단 말야. 공부 시키기니까 백정이 뭐, 그리 또 백정의 자식은 우 리 주위 자손들 가르치는덴 와서 받아주지도 않고 선생 이 가르치지도 않거든. 그러니깐 그 백정은 영 백정은 공부도 못하고 백정이 라. 그리니 이제 봄이 되 가지고 생각을 하니까 그 노 인이 이제 노래가 됐으니 글을 가르킬 봉양만하면은 글 을 가르킬 수 있거든, 그래 봄 밑에 좋은걸 이제 몇 간 해서 가지고 선생님한테 갔어요. 가 가지고서는 뜨락에 다가 거죽을 깔고서 앉겠지요. 그러니 선생이 떡 내다 보니깐 백정이 와서 부복을 하고 있단 말야. 그러니, “여보게 왜 그렇게 부복을 하는가? 그 일어나서 뭔 말 인지 여기 들어오라.”구. “아이고, 선생님 어디 이 미천한 기 들어가겠읍니까 소 인이….” [436 쪽] “아 그게 사람이면 한 가지지 짐승은 아니지 않느냐? 그 쌍눔이라고 해서 남은 사람이 아닌 게 아니다 그러 니까 이르자면 한 가지니 들어오느라.” 그러니까 선생은 선생이지 말이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지. 그러니 쑥 들어와서 부복을 싹 하니까, “그 어찌 왔느냐?” 그래 얘기 싹 하니, “선생님 평생을 지가 봉양을 해 드릴테니 제 자식을 그 저 공부를 그저 가르켜 주십시요. 그게 소원이 되어서 왔읍니다.” 백정의 자식을 글 가르킨다고 해서 자기는 쌍놈이 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이게 내가 늙은 게 사람이 이제는 허락할 수 없구, 또 허락을 해서 내가 근본 떨어질 건 없으니, “아, 그럼 그렇게 하라.” 구, 그래 이제 이 백정이 참, 기분이 좋아서 이제 이 두 분을 이제 모셔요. 수원 별당에다가 깨끗하게 이제 채린 상에다가 모셔놓고 날마다 이제, 이제 주는 밥 먹구서, 그저 응, 백정 아들 그저 그것 하나 글을 가르키니 아, 학생이 많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놈이 어떻게 정신이 총명하든 지 하늘 천, 따 지를 갖다서나므네 날마다 하늘 천 따 지를 외우지 못하는 거라. 그 이렇게 지나가던 것이 몇 해를 지나가는데, 지나가다가 하루는. “야, 널 가르키느니 내가 소 가르키지 내가 몇 해 동안 에 그 책을 몇 권을 뗐겠다.” 백정이 이렇게 바깥에서 들으니깐 자기 자식을 소만도 못하다고 꾸지람을 하거라. 아, 화가 잔뜩나서, “아, 선생님 그래 내 자식이 그래 소만도 못하다는 말 씀입니까?” “응, 소만도 못하지. 그래 소를 갖다가 여태껏 가르쳤으 면 하늘 천, 따지는 알거 아니냐?” “아, 그럼 어디 가르켜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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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 쪽] “으, 그래” 나가서는 소 코꾸리를 떡들고서는, “하늘 천.” 하고 번쩍들고. “따 지.” 하면 푹 수그리고, “하늘 천, 따 지.” 이럭허면 하늘 천 하면 번쩍들고, 따 지하면 고개 푹 숙이고, 이러는 거라.[조사자 : 소가.]응, 한참하고 나니 까 이놈의 소가, “하늘 천” 하니, 고갤 번쩍 들구, “따 지” 하니까, 또 푹 숙인단 말이야. [일동 : 웃음] “이것 보라구 소만도 못하지 않으냐?” 아, 백정이 떡 보니깐두루 과연 선생님이 애를 썼거든, 그렇게 애를 쓰니 수가 있으랴. 자기 자식이 정신이 아 둥해서 배우지 못하는 거야. “아, 선생님 참 과연 뇌가 참 많이 썩었수다. 아이, 그 러니 새벽 구경이나 가십시다.” 그래 선생님을 위로하는 거라. “아 이놈의 세대주를 내가 종살이를 해서던지 가지고서 는 음식을 해서는 해야겠다.” 이렇게 저녁을 가는거야. 가니까 아니 누가 백정을 쫓 아갈 사람이 있어. 백정이 아니면은 아니면 갈 사람이 없지 않으냐 말이야. 갈 사람이 없지 않으냐 말이여. 그 래 학생이라는 게 그 아들을 학부형이라는게 즈 부부 지, 그래 선생님과 부부 그래 갔지. 여기 그래 아마 처 녀산 같지 아마 경치가 좋던 모양이라. 가서는 쓱 펴 놓고서는 앉아서는 선생이 이 아주 산천 경치가 참 절 경하니깐 글을 한 수 떡 써서는 탁상에 써서는 붙이구 서는 이거 [438 쪽] 혼자서 이것도 상대가 있어야 맛이 있지 혼자서 글을 암만 잘 짓고 뭐, 이렇게 해도 누가 뭐, 응하는 사람이 없으니깐 무익이지.[조사자 : 네.] “한 잔 잡수시요, 한 잔 잡수시오 “ 하니깐 고기야 안주해서는 몇 잔 먹으니 술이 취했단 말이야. 뜨럭뜨럭 자는 거라. 자는데 허얀 노인 두 분이 떡 오더니, 백정의 아들을, “이놈의 새끼가 이렇게 빽빽하니….” 두 늙은이가 한 짝 손은 다릴 쥐고 한 짝 손은 팔을 쥐 고 개울로 뚝 간단 말야. 가더니 칼로 다가서는 배지를 푹 찔러서는 북 끄니까 배지가 확 나오는 거야. 아, 두 노인이, “아, 이놈의 새끼 이렇게 빽빽해….” 아, 이놈의 배를 갖다가 이렇게 자꾸 훑어서나므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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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니 뭐이 이런 기 물로다가 뿌옇게 이리 빠져나가는거 라. 뭐 배지에 훑듯이 똥 훑듯이 그리니 조심 조심해서 나므네 두 노인이 떡 이래보니 아, 이놈으 걸 찍어낸단 말야, “아, 이제 이만하면 되겠지. 음, 이만하면 돼.” 두 노인이 둘이서 그러면서는 깨니까 꿈이란 말야. 세 상에 이런꿈은 처음 꽤 본 거라, 뭐. 꿈이 뭐, “아 그것 참 꿈도 고약하다.” 그래 앉아서 자기가 글을 지어서 벽상에 붙인 걸 떡 보 고선 이리곤 앉았는데 이 망할 것들 두러눠서 자기 곁 에서 잤단 말야. 자다가 또 일어나거든 인나드니 눈을 번쩍 번쩍 뜨더니만서두 앉아서 선생 그걸 글 지어서나 무네 그쪽 방에다가 쭉 둘러보더니, “선생님.” “왜 그래.” “저근(저것은) 이러이러허구 이렇지 않읍니까?” “그래 글을 알겠니? 니가 배우지 않았는데 알겠니?” “아, 글쎄 자세히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439 쪽] “그래 맞다.” “이건 이러이러하고 이랜데요.” “그래 그건 맞어.” 아, 이리 있다가 선생이 생각해보니깐 이놈이 통신을 하지 않으냐. “그럼 내가 운자를 낼 테니 글 질 수 있느냐?” “아, 선생님 그럼 어디 운을 내 보시기요?” 아, 우선 운짜를 허구서난 내놓구선 글을 줬지. 아, 이 놈이 글을 짓는 데는 자기 뭐, 이상이라 아주 참 문장 이야 글이 환하단 말이야. “넌 이젠 글 다 배웠다.” 이러니 아주 칭찬을 했어. 어떻게 잘하는지 선생이 아 주 편하게 됐어. 이놈이 배를 콱 끊구선 똥을 훑어낸 것이 이걸 집어닌 거라. 정신을 쏟아 내구서는 맑은 걸 집언넌 거라. 그 다 섞은 그래니깐 통하지. “넌 이젠 글 다 배웠다. 배울끼 없다.” 그래 그 그렇게 글을 가르쳐서 출세한 일은 없구, 그걸 로 끊나서 그 선생님 부부연민 하니깐 두루 장살백정이 잘 융통해서 평생을 그 봉양을 했데 그런 얘기가 있어 요. 그 이 조선 이래는 여 여러 독립이기 때문에 참 역 사적로으 참 몇 천 년 잘됐죠. 그랬는데 그 이 한나라 걸주때의 얘긴데, 즉 강태공이가 그기 역사지 이제 강 태공이가 공부를 어디서 했느냐 해며는 구천, 응원, 내 성, 보화천존의 제자다. [조사자 : 누구의 제자요?]구 천, 응원, 내성, 보화천존의 제자야. 그러니 이 도사니 도승이니 이르지만 이건 천존이니깐 두루 즉 말하자면 모근이나 한 가지지 천신이지. [조사자 : 아, 천신.]그러니 그 천존의 제자로서 모근산 성서 공부를 했어요. 그러니 공부를 해 가지고서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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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팔십에 나와 가지고서는 한나라 걸주가 한참 이제 득세를 헐 때요. 근데 이때에 한 나라가 망할 때니깐두 루 에, 걸주가 상처를 하고 후처를 이제 우리 식으로 말하면은 재추를 하게 됐어요. 그래 이제 각도에, 이젠 고을에 조서를 내려 가지고, [440 쪽] “황후의 자격되는 신부를 선택해라.” 이렇게 이제 선포를 했어. 그래 그걸 조사를 하고 보니 깐 달기라는 샥시 친구가 황후의 자격이 있어. 그래서 이제 그 달기를 황후를 천거를 해서 궁내로 이제 모셔 가게 됐어. 그런데 그때 당시에 한나라의 걸주가 사당 에 들어가서 춘추로 행사받드는 사당이 어느 양반을 갖 다가서 모시느냐 해면은 아황 여영, 아황 여영은 즉 순 임금의 부인이예요. 그 사당 그 위폐모신데 춘추로 장 사하는데 걸주가 응, 들어가서 이렇게 인제 천자라고 해서 아황 여영의 그 화상을 맞부리 사람으로는 맞보고 인사를 올리지만은 이렇게 맞보질 않고서 옆으로 보고 서 그 화상 이렇게 면좌해서 이렇게 보질 않습니다. 그런데 걸주가 그 행사를 치룰 적에 들어가면서 전후를 흘끔보니깐두루 아황 여영이 천하미인이라 그러니깐 “나는 일국의 천자로서 저런 이쁜 여자를 갖다가 황후 를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하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러니 행사를 치루고 나왔는데, 아황 여영의 영혼이 말이지, “일국의 천자로서 만인지부로서 그런 못된 음란한 마음 을 먹는 것이 괘씸하다. 이 요놈을 망케해야 되겠다.” 그래서 천년 묵은 그 여우, 그 달기를 황후로 내보내서 가는 도중에 천년 묵은 불여우를 보내면서 부탁하기를, “네, 가서 걸주를 망케 해라.” 이렇게 이제 부탁을 했어요. 그래 여우가 그걸 부탁을 받고서는 황후를 보내서 달기가 오는 도중에 모진 아픔 을 부리고 하인의 팔을 갖다가 땅에 재끼고 정신없이 이렇게 맹글고 그 이틈에 달기를 잡아서 먹고 달기의 모습을 딱 쓰고서는 장구 뒤에 앉은 거라. 그리고서는 그 풍운을 갖다가 벗구선 그러니 하인이 가다가 발이 땅에 붙고 천지를 거냥 분간치 못하게 되고 하인의 정 신이 어떻게 됐는지 호문천지지 뭐, 이렇게 돼서 허다 가 자다 [441 쪽] 가 깨는 것 모양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니까 발이 떨어 지고 바람도 다 잔잔하고 그러니 하인으로서 황훈에 하 물며 황후로 가는데, 문을 열고 들여다 볼 여지가 어디 있느냐 말이야. 그러니 들어갖지. 궁내에 들어가선 걸주 가 떡 방을 꾸며놓고서는 신방에 들어가니 천하미인이 라 달기가, 그런데 달기가 자기 혼자만 그런기 아니고 옥석비파 옥으로 맹글은 벼릇들, 비파 옥으로 악기, 그 때 쯤 말하자면 순임금이 거문고를 맹글었거든요. 그리 이제 그 걸을 거기다가 신을 접해 가지고서는 여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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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이제 농탄을 분내에서 허는 거야. 근데 걸주가 신 방에 들어가도 평생에 달기가 천하 미인이지만은 웃지 를 않아요. 웃는일 없어. 그러허고 지가내다가 하루는 무엇인지 사형을 처해야 되겠거든. 나라에 죄를 진 것이니 그러니 이제 죄인을 갖다가 사 형을 대꺽쳤오. 치고보니깐 달기 그걸 보고선 생끗 웃 는 거라. 웃는 거는 장개간 후 우리네로 말하면은 장개 간 뒤로 부인이 웃는건 처음 봤단 말이지, 아, 어떻게 기분이 좋은지 말이지, “아 부인은 그 뭘 보고서 그렇게 기뻐서 웃느냐?” 하니까, “국법이 밝아서 죄 지은 백성을 갖다가 저렇게 엄중하 게 사형을 하니깐 두루 이건 국법이 밝은 것이 확실하 지 않느냐. 그러니깐 이것이 기뻐서 웃노라.” “그러냐.” 고 말이지. 이 걸주가 이게 마누라 웃는걸 보기 위해서 웬만한 죄인을 죽이지 않을 죄인도 처형을 하는 거라 말이지, 그러면 웃어, 그런데 여우니깐 밥은 안 먹거든. 밤이면 나가서 송장을 이제 파 먹고 그래 자기 밥이니 깐 웃는 거지 국법이 밝아서나므네 이제 처형해서 웃는 건 아니지. 자기먹을 음식이니깐두루 웃는거지. 걸주가 이걸 모르지. 그 이러고 지나가는데 그 때 당시에 강태 공이가 태공이가 아니죠. 태공이는 벼슬입니다. 다 앱니 다[다 애입니다], 이름이 강 다애. 그래 인제 정 [442 쪽] 부가 그런 이제 내란이 이제 자꾸 생기게되는 처진데 다애가 이제 공부를 마치고서 삼파집에 돌아온 거야. 참 먹을 게 있소, 먹을건 없는 데라, 그래도 근심 안하 고 있는데 다애의 처형이 처가 맏이의 집으로다가 장개 를 다애가 그 마부의지, 그 마부인 처이지. 처형이지. 다애에게 양식도 보태 주고 이러니 일일이 당할 수가 있소?아, 그래니, “이런 장사를 남대문 밖에 다가서 방을 써 붙이고서 면 장사를 하면은 그 사람이 지나가면서 사 먹어서 그것이 생계가 될듯하니 그걸 해 보라고 그리니까 그렇게 하겠 느냐? 아, 그렇게 해보라.”고 그래 그 처형이 그걸 대줘서 이제 나가서 면 장수를 떡 하니 자 이제 방을 써 붙이는데, 그때에 걸주가 나라의 이제 국사를 이룩하게 됐어요, 그래 많은 백성들이 그 냥 부역으로 다가서 갖다가서는 이제 일을 시키는 거 야, 배는 고프지, 이래 일하다가서는 아, 보니깐 파는게 있단 말야. 돈은 없지만은 배고프니까는 우선 먹고 볼 거다. 아, 이제 우루루 달려서나므네몽땅 다 먹었단 말 이야. 돈 한푼이나 주나 그 뭘 돈 가지고 거냥 이제 주 었다. 그냥 째로 그렇게 돌아왔어. [이때 제보자 옆에 있던 청중 한 사람이 말을 거든다.]부인이, “이제 얼마나 팔았소?” “아, 그 뭐 돈 받을게 있냐고 배고픈 백성이 아,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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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먹으니 배가 여북 고팠느냐고 돈을 어떻게 달라 그러겠느냐고 그래 그냥 왔다.” 그래 그러니 처형이 뭐, 할 도리가 없지, “아, 그러면 광주리를 저다서는 남대문 밖에 갖다 놓고 있으면 그걸 인제 돈을 주고 삽니다. 그렇게 팔아서 직 장을 하시죠.” “아, 그럼 그렇게 하지.” 아, 이느머 광주리를 떡 져다서는 지고서는 남대문 밖 에 떡 갖다가 놓고 있으니 아, 이놈의 종들이 뭐, 지나 가면서 보니까는 광주리가 참 이쁘단 말야. 그래 가지 가고 돈 한푼이나 주나 그래 그리됐지, “아, 어떻게 됐느냐?” [443 쪽] “아 지네들이 쓸라고 가져가고 돈을 줘야받지, 응, 가져 갔으니 돈도 못 받고 그랬다고 말이야.” 아, 그러니 이거 처형이 일일이 대 줄수가 있느냐 말이 지. 가세가 빈한 한데, “자네가 처형의 신세를 갚을 수가 있오.” 그런데 그 근처에 나무 숲이 잔득 우거졌는데 밤이면은 요물이 와서 노는 것이다. 근데 요물이란 게 뭐냐?사 자도 있고 범도 있고 거금에 노루고 뭐이고 같은 짐승 들이 와서 욱씰욱씰하고 노는곳이야. 처형더러 하는 말 이, “저 근데 다가서나므네 집을 질 거 겉으면은 부자로 잘 살 끼라고 부귀공명할 자리니, 거기다가 집을 짓게 하 라고 내가 신셀 갚을 수가 없다.”고. “아 그거 요물이 득씰득씰한데 어떻게 집을 짓고 사느 냐.” 고. 말이야, “내가 조금 배운 기 있으니 그 요물은 내가 물리치겠으 니 거기다 집을 짓도록 하라.” “그 요물이 어디서 완 지 알 수 있겠느냐?” “이리 오라구” 그 처형을 데리고 가서, 거기 갖다가서는 데리고 가서 다애가 소매에서 부적을 하나 떡 맨져보니가 자! 짐승 이라는 짐승이 전부 와선 다애 앉았는 앞에 와선 전부 꿇어 엎드려 있단 말야. “나는 오늘부터는 내가 여기서 사는데 느는 여기 오지 말구서 다신 이젠 멀리 가서 이제 살아라. 여긴 다시 오지 말아라. 가거라.” 하니까 아, 이것들이 고개를 돌리고서나므네 아무튼 내 뻔단 말이야. 그러니 다애가 처형마지가 떠억 보니깐두 루 그 다애의 그 기술이 상당하거든. “아, 그러면 그 남대문 밖에다가서나므네 백성의 기술 을 봐준다고 그리고 방을 써 붙이면 백성들의 신술을 봐 줄겁니다. 그리면 돈이 생계 유지가 될 겁니다.” [444 쪽] 그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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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면 그렇게 하자.” 그래 남문 밖에 다가서 방을 써 붙혀 백성의 신수를 봐 준다 방을 써 보니까 그걸 보고, “신수를 봐 달라.” 고 봐주는 거야. 그리 이 사람들이 전사후사 일을 빤하 게 맞추니깐 백성들이 정하러 들어오는 거지. 인사태야. 아주 그냥 잔뜩 미는거야. 그래 이제 생계유지가 그때 에 달기가 나가서 유람을 쭉하고 들어오다 보니까 사람 이 잔뜩 밀려 있거든. “그래 저기 뭐하는 것이냐?” “그 백성의 신수를 봐 주는 노인이 봐준다고 말야,” 그래 안다고 그래 달기가 있다가서는, “저 노인이 내의 근본을 어찌 알겠느냐?” 그리구서는 나갔어. 열 없이 거기 들어가서는, “저두 신수를 좀 봐 주시오.” 다애가 떡 보니깐두루 요물이라, 그그. “내가 신수도 보것지만 손금부터 봐 주마.” 그래 달기가 서슴치 않고선, “저 늙은이가 내 근본을 어찌 알겠느냐? 알 사람은 없 다.” 그래 그커니 서슴치 않고 손을 떠억 내들었지 내들으 니….달기가 손을 이제 내드니 다애가 달기의 손을 딱 잡고서 놓질 않아. “아 어진 선생님이 미색을 탐해서 이렇게 손목을 잡고 선 놓지 않으니 놔 주십시오. 노십시오.” “아니라고 그대는 사람같지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못 놓겠다. 많은 백성을 내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서 내가…,” “놓지 않고 분명히 사람이지 어찌 그런 노라고 말야.” “아니라.” 고 인제, [445 쪽] “그대는 내가 그댈 위해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놓지 않으니 관여치 말라,”고, “아, 분명히 사람이라,” 고, 그러자 이말이 차차차차 떠돌아서는 걸주가 알게 됐죠. 고 다앨 불러, 그리 들어가서 그 여잘 손목을 놓 지 않고선 끌고들어가, 걸주가 내다 보니깐두루 아, 이 쁜 여자를 갖다가서는 끌고, “그래 내가 볼 적기는 여잔데, 어찌 그렇게 손을 놓지 않고선 그런 무례한 것을 어찌 허느냐?” “이게 사람이 아니라 요물이기 때문에 많은 백성을 피 해를 줄이길 위해서 내가 이래 손을 놓지 않고 있읍니 다.” “아, 그기 그럴 수가 있나? 그러면 어디 그게 본색을 내 어디 시험을 해 봐라. 그러면 된다.” 그럼 술을 가지고 오시요. 나무를 갖다가서 나내 쌓아 놓구서는 거기다 불을 확 질르니 불이 불꽃이 천둥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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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부적을 한 장을 써서나므네 발바닥에 딱 붙이더니 이건 뭐, 꼼짝 없이 뭐, 결박을 해야지. 허지 않아두 꼼 짝 못하구 쑥 들어갔는데 하나 타는 게 없어. 털 하나 타는 게 없어. 그거 보니깐두루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그 불에는 들어가면 탈 텐데 타지 않고서 그냥 있으니 깐 요물이건 요물이지. “야, 그거 요물이 분명하니 그거 없애라.” 예 소매 안에서 나므레 화주 세 개를 집어넣으니,[조사 자 : 화주라구요?] 이 화주는 하늘의 번갯불과 한가지 지. 천지이별 전깃불이다. 그 불길에 들어가면 지금이 전기보다 더하지. 그걸 돕는 그 불이라. 그 불 속에 들 어가면 이 불에는 인제 뭐 세상에 안 녹을 수 없고 아 거 탈 수 없는 거지. 그러니깐두루 그땐 벌떡 일어나더 니, “자네는 나와고 운수가 없는데 왜 날 이렇게 하느냐?” 고 벌렁 자빠져 있는데 여우라. 걸주가 보니까는 여우 거든. [446 쪽] “아, 참 그대가 그거 요물이 맞다. 그대가 백성을 얼마 나 피해를 했겠느냐?” 그래 인제 내보내. 그 여우를 내다가서는 파 묻었지. 그 러나 옥석비파라는 것이 더불어 가지고 살지 않았소. 옥석비파가 수생단을 가지고 가서나므네 여우를 먹여서 도루 살려서 궁내로 들어온 거라. 여우가 생각을 달기 가 생각을 해보니깐 다애를 두었다가서는 자기가 죽겠 다는 잡히 죽겠다는 거라. 그러니깐 자기가 역모로 몰 아서 다애를 죽일 수밖에 없는 거라. “그 요물을 갖다가서는 만백성을 위해서 그 요물을 죽 게 했으니 다애의 공이 크지 않습니까?” “아 과연 그렇다.” “그러니 다애를 갖다가서나므내 공을 제수하십시요.” “아, 그개 어저의 말이 옳다.” 그래 다애를 불러, 불러들여 가지고서는 벼슬을 주는 것이 태공 벼슬을 주었어요. 걸주가 그래 강태공이야. 태공 벼슬을 떡 주니 내각에 지금으로 말하면 내각에 장관이지. 그래 이제 달기가 그렇게 해서 놓구서는 역 모의 벼슬을 주어야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역모의 몰 아서 죽이나 하고선 연구하다 생각하니깐 그러니 대궐 에 불러 들었단 말이야. 그래 대궐에 인제 화잔주과에 산호주주에 있는걸 대궐에 잘 복은을 쳐서 떡 걸주를 주었더니 이대로 대궐에 딛고 여금에서 천자께선 계시 면 천상선녀가 하강을 해서는 평생을 호위하게 모실 겁 니다. 아, 이예 걸주가 딱 받아보니 아,참 찬란하단 말 이지. “아, 그래 누리면 이 역사를 이룩하겠느냐?” “다애 아니면, 태공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래 태공이를 불러들여 태공이가 들어가니, 들어가니 그 도건을 떡 내 놓구서 보키구선 이렇게 받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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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이룩해라. 태공이가 떡 보니까두루 그걸 지시하면은 한나라 백성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지라. 이걸 배필을 받치고서 다시 망명해야 되겠단 말이지. [447 쪽] “이건 삼십 년 이랜대두 이 역사를 뒤에지 못하겠으니 그렇게 하다보면은 백성의 도탄에 들어서나므내 백성을 살릴 방책이 없읍니다. 못허겠읍니다.” “나라의 은혜는 생각을 안하고 태공 벼슬까지 증저하게 됐는데 이걸을 반대하니 내다 묶어라.” 달기 그렇게 허는 거야. 그러니깐 태공이가 난처했지. 태공벼슬을 그냥 받치고선 그냥 나갔어. 저어 구룡교라 는 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에 떡가서는, “그대는 부질없이 나를 따라올 것 없구 내가 가서나므 내 내가 죽을 거 없구 이 물에 빠져서 죽으면 그 뿐이 니깐 돌아가라구 말야.” 이렇게 오자 다리에 뚝 떨어지더니 물속으로 쑥 들어가 는 기야. 그래 물에 빠져 죽잖우. 태공이가 수중법을 해 가지고서는 집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와 가지구서 이제 마주보구선, “우리가 인제는 성주, 성주를 찾아가자 주 나라로 가 자.” “아, 그대는 태공 벼슬까지 하구서나므내 으 충신은 불 사이군이지 어디 그렇게 부근을 생각 안하구서나므내 외국을 갈라고 그러니 어디 그런 역적이 어디 있느냐 고. 나 그대 같은 사람 상대 안한다.” 고, 부인이 반대야. 만가지를 달래도 말을 안들어. 태공 부인 마씨 부인이 그래 고만 이것도 한 천시초문이라 할 도리가 없다. 마지막에 하는 말이, “내가 이듬해 중국에서 이곳을 갔다 올적에 그대가 날 잊지를 말라.” 고. “아, 나 조금도 내가 생관 안한다.” 고 그리 작별을 했거든, 작별을 하구서는 주 나라 국경 지대 장안의 백성이 아주 위했어. 위해 가지고 서로 붙 들고 우는 거라. “느 우째 우느냐?” “지금 나라에사나므내 대궐을 이룩하는데 조금 처저도 사형이야. 시간을 조금만 어겨도 사형이야. 늦게 가도 사형이야. 이것 도저히 살 수가 없읍니다. 그러니 잘못 을 기왕이면 있게 해 주십사.” [448 쪽] “아 그러냐.” 고, 고 말이지. 이 다애가 인제 지나가는 길에 구름이 한 떼 구름이 오는 거야. 그래 그 백성을 구름 속에 싸 가지고서는 그 나라 넘겨다 주었어요. 여기는 주나라니 안심하고서 가서 잘 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 그 백성 이, “내가 여기까징 와 가지고 선생님 은덕으로 주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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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성기열, 최 명동 조사, 이춘석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1집 8책 [경기도 옹 진군 영종 면 설화 44], <방구 와 오이씨>

오긴 했으나 누길 찾아가야 저가 살겠읍니까?” “산해창을 찾아가면 자연히 살거니 그러지 말고 산해창 을 찾아 가거라.” 산해창 죽남의 아들이요. 그 이제 백성들이 아지 못하 지. 산해창을 이제 찾아가고 그래 인제 이사람이 백성 들을 다 보내고 태공이는 이리저리 산천 구경을 유람하 지 한 군데가니 이숫가라. 그 이숫가에서 가서 보니깐 두루 그 갱변이 깨끗하고 째충해 여기 내 은거할 곳이 로구나. 그래 거금에서 나무내 은거해. 이제 한 아들하고 어머니, 두 식구가 살았데요. 그래서 이제 그 자식을 길르니까 이제 바느질 품팔이를 해서 먹고 사는데, 애가 어릴 전 몰랐는데, 좀 자라고 나니 깐, 나가니깐 동네 나가서 놀면은 애들이, 저거는 아버 지도 없는 새끼라고 자꾸 놀린대요. 그래 하루는 들어 와서 그냥, “어머니, 어머니. 우리 아버지는 왜 없느냐?”고. “딴 애들은 다 아버지라고 있는데 우리는 아버지가 왜 안 계시냐?” [428 쪽] 고 울면서, “왜 그러냐?” 그러니깐, “나가서 노니깐 동네 애들이 자꾸 ‘저거는 애비도 없는 새끼‘라고 놀리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유나 알 자.” 고, 그랬더니 그 때는 사실 어머니가, “사실 아버지가 안 계시는 거이 아니라 너희 아버지가 계신다.” “그래 어디 계시냐?” 고. “아무 동네 계시는데 ….” “그믄 왜 같이 못 사냐?” 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이제 출가해서 시집간 첫 날 밤 에 방구를 꼈대요. [웃음] 그래서 이제 ‘여자가 버릇없이 방굴 꼈다’고 소 박을 맞아서. “그래서 혼자서 사는 거다.” 그래. “그럼, 아버지가 살아 계십니까?” 그러니까, “살아 계신다.” 고 그랬대요. “그래, 그럼 어머니 내일 아침에 오이씨를 일전어치만 사다고.” 오이씨를 사달라고 그러드래요. “그래 그거 뭐 하냐?” 그러니까는, “하옇든 자기 했든데로 오이씨만 사달라.” 고. 그래서 오이씨를 사다 줬대요. 긴 오이씨를 가지구 서 자기 아버지가사시는 동네를 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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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김영진

“오이씨 사시오, 오이씨 사시오.” 하고 소릴 질른거야. 그래 바로 그 집에서 나와서, [429 쪽] “야, 오이씨 사자.” 그랬더니낀, “얼마냐?” 이러니까, 엄청난 가격을 불렀대요. 오이씨 하나에 그냥 몇 백원 한다고 엄청난 가격을 불르니까, “이놈아, 오이씨가 그렇게 비싼 오이씨가 어디 있느냐?” 그랬대요. 그러니깐 [청중: 아 그러니깐 자기 치마 를….] 그럼 그럼, 그러니까, “이거는 이유가 있다.” “왜 그러냐?” 니깐, “응, 거는 비, 특별한 오이씨라.” 니깐, “어떻게 특별한가?” 하니깐, “아침에 심으면은 저녁에 따 먹고, 저녁에 심으면은 아 침에 따 먹는 오이씨라.” 고 그랬더니, “그런 오이씨가 세상에 어디 있냐?” 그러니까, 이건 틀림없이 그렇게 됩니다. “이유가 있읍니다.”하고 그러니까, “무슨 이유야?” 그러니까, “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방구 한 번도 안 뀐 사람이 심 어야만 그렇게 따 먹지, 방구 한 번이라도 뀐 사람이 심으면 오이 못 따먹는다.” 고. 그랬더니, 그때서 아버지가, [430 쪽] “이놈아, 이 세상에 나서 방구를 안 뀌고 어떻게 사느 냐?” 그럴 수 밖에, 그러낀, “그러면 왜 ….” 그 때서는, “왜 아버지는 어머닐 방굴 뀌었다고 소박을 해서, 내가 이제 아버지 정도 모르게 하고 살게 사르냐?” 그랬대요. 그 때는 문득 자기 자신 생각이 날 거 아녜 요? 잊어버렸댔지요. 여지껏은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그러낀, “네가 몇 살이야?” “암만살입니다.” 하니깐 그땐 연수만 따져 보니깐, 자기가 결혼해서 소 박했던 그 생각이나서 그래서 어머닐 찾아다가 아버지 하고 잘 살았대요. 에― 서울 뚝섬 건너가면 봉은사(奉恩寺)라는 절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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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김종현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3집 4책 [ 충청북도 영동군 영 동읍 설화 10] <팔자 고친 오이 장사 파계 승과 새우 젓장사 선 비>

는데요. 그 봉은사에서 어느 스님이 어떡하다 그 여승 방(女僧房)에 있는 여승(女僧)하고 친하게 지냈단 말씀 이야. 그 비밀이라는게 있것읍니까? 열 네살에 중이 돼 가지구 삼십이 넘어서 그 여승하고 이제 가까이 돼가지 구. 서로 정을 통하고 보니 그야말로 참 다시 띨 수 없 는 그런 깊은 정이 들었던 모양이죠. 그러나 비밀이란 건 없는 게야. 결국은 그게 소문이 나가지구 전부 그 여승방은 물론 그 대중이 전부 다 알게 돼서 인제 거서 내쫓기게 됐단 말씀이지. 그런데 그전 절에서 풍속이 만일 그렇게 서로 남승과 여승이 가까이 파계(破戒)하 게 되면 왕겨 서말을 입으로 불어서 전부 날린다는구먼 요. 입으로 입으로 불어서 왕겨 서말을 날리게 되니깐, 남승과 여승이 여섯말을 불어서 날리고 나니께 막 호홉 기관에도 지장이 있고 아주 배가 그만 허리에 붙다싶이 이렇게 됐어. 그걸 다 인저 날리고 난 뒤에 인제 등에 다가 북을 지워가지구 두 내외 [68 쪽] 를 갖다가 [마당을 가르키면서] 이렇게 큰 마당을 [손 으로 원을 그리며] 이렇게 돌고 결국 일주문(一柱門) 밖에 나가서 인제 승복(僧服)을 베끼고 속복(俗服)을 입혀서 내보낸답니다. 그 참 그렇게 내쫓겼단 말씀이지. 내쫓겨가지구 인제 문안(서울 사대문안)에 들어와서 속인 생활을 할라고 하니 그 돈이 있나요? 그 승려루 있으면서 어떻게 뭐 돈푼 몇푼 있는 거 가지고 남의 집 협방(俠房)을 하나 얻어가지고 바가지속을 둘이 해 덮어쓰고(깎은 머리를 감추기 위해) 한 사나흘 가만―히 지내보니깐, “이거 어찌타가 이거 잘못돼가지고 이거 승려로서 본의 아닌 일을 이렇게 파계해서 이런 고통을 받는가?” 서로 그 참회라고 하나 이미 저지른 물은 어떡할 도리 는 없고, 인저 앞으로 살아나갈 생계를 생각해 보니깐 속수무책이여. 게 남대문 시장으로 인저 떡 인제 그 남 승이 인저 남자가 바가지속을 해지고 쓰고 남자가 시장 을 나가보니깐, 마침 그때가 초여름이던가 그 모두 오 이 채소전에 나가 나가서 보니깐 그 채소같은 거 사가 지고 팔고 밑천밖엔 안 되겠어요. 지개 하나 사고, 밑천 있는 것이 그 오이, 그래 그 한 몇접 받아서 한짐 지니 깐 마치맞게 됐어요. 그 인제 오이장살 시작했지요. 지개 하나 사고 인저 오 이 한짐을 사고 해서 전 밑천 들여가지구 오이 팔러, 인저 떡 남대문시장에서 사짊어지구 어디로 나간고 하 니 저― 아현동(阿峴洞) 애고개라고 그러지, 그때는. 염 천교 지나서 인저 아현동 그리 가면서, 그때는 지금은 그런 게 없을거야. 우리 클 때도 우리 보면 두렁이라고 햐. 오이면, “오이드렁― 사오.” 수박은, “수박드렁― 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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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든. 그때는 모두, [69 쪽] “생선 준치드렁― 사오.” 하는데 인저 이 사람이 절에서 뭐 있었으니께, 염불이 나 할 줄 알지 그건 할 줄 모르나 다른 사람 보니까 드 렁 드렁하거든. 자기두 그 짊어지구 땀을 흘려가며, “오이드렁― 사오. 오이드렁― 사오.” 그 염춘교 지내서 애오개, 아현동 그 애오개 고개에 올 라가는데, 아 어떤 자기 그 뒤에서 쓱 하나이 나오더니 이 사람이, “오이드렁― 사오.” 이러면, “새우젓도 사고.” “오이드렁― 사오.” 하면 또 뒤에서, “새우젓도 사고.” 그건 또 어느 선비가 [웃으면서] 그 과거에 몇번 낙방 을 해, 해먹고 살 도리가 없어서 참 조석이 간 데가 없 는데, 그 아는 친구들이 어떻게 새우젓 도가(都家)에 가서 새우젓을 한짐 외상을 얻어줬던 모양이여. “팔아가지고 남는건 그― 하고 본전 갖다주라.” 고 이렇게 했던 바, 처음으로 새우젓 장사를 해노니 이 그, “드렁―.” 소리두 안 나오구 선비로서, “사쇼―.” 소리두 [웃으면서] 양반으로서 안 나오고 그래 앞에 사 람이, “오이드렁― 사오.” 하면 뒤에서 반말로, “새우젓도 사고.” 하니까 누가 살 사람이 있느냐 그 말씀이여. [웃음] 이 래 전진 전진해 간 것이 애오개 저기 아현동고개 마루턱에 떡 올라가서 생각하 니까 거 오이 [70 쪽] 살 사람도 없구 새우젓 사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상벽 (맨꼭대기)에 올라 가서 오이짐을 떡― 받혀놓고 땀을 팔뚝으로 [팔뚝으로 이마에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면서] 이렇게 닦고 생각해 보니깐 그 새우젓장사, 그 선비가 또 자기 오이짐 받혀논데 거기다 새우젓 짐을 떡 받혀 놓거든. 하도 화가 나서, 그 중으로서 있었으니까 말은 한심으로 해서 그 나무래도 책(責)은 안하고 속으로, “어라 내가 어떻다가 이런 고생하나. 파계해서 이런 고 생하는고? 과거에 절에 있을 땐 이렇지도 안했고 편하 고 또 의식주에 대해서 구별이 없었는데 이런가?” 하고 신세한탄을 하고 그전에 염불하던 염불송(念佛頌) 을 한번 해여. 염불송 하는데 뭘하는고 하니 떡 거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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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떡 한단 말씀이지. 하도 화가 나고 옛 생각 절에서 생각이 간절해가지고, 이걸 내 청으로 한번 해 보겠읍 니다. 거불청인데, “나~에~ 에헤 에이호~어화~ 오이드렁~ 사오.” 이랬단 말씀이야. 이제 인저 절에서 부른 거불청이 이 래. 거 선비가 생각하니까 듣기 좋거든. 에이 내가 질세 라 맹자(孟子)로 읽는다. “[옛날 책읽는 소리로] 맹자왈 언인지불선(言人之不善) 이면 당여후환하(當如後患何)오.” 허 맹잘 읽었단 말이야. [웃음] 아, 중놈이 점점 그 오 이장사가 화가 났어. 고만 또다시 인제 끝에 가서 그 거불청을 하죠. 삼창에 가서는 조금 부르는게 달쵸. 이 것도 고청인데, “나~ 에~ 에이~ 호~ 오호~ 오~ 오이드렁~ 사오~.” 아 이래 뚝 끊어지니께, 고 앞뒷집에서 우쩐 여자가 나 오더니만도 아 오이장살 불러. “이리 오라.” 고. 오이 산다고 말여. “그 얼마나? 아 다 지고 오라.” [71 쪽] 고. 하 그 다 지고 갔다. 가니까, “얼마나 사실랍니까?” “아 그 전부 다 사겠읍니다. 다 세쇼.” 값도 묻덜 안햐. “아 그러나 값이나 해야죠?” “아 값이야 오이 지금 남대문시장 얘기 들으니까 아무 한다는데, 그렇게 뭐 다 다른 사람 주는거 줄테니까 시 (세)라.” 고. 아 그래 신다, 이 사람이. 시는데 신명이 나가지고 인제 그 염불청으로 시는거요. 염불청으로. 이래 시니깐 여자는 마침 설거지하다 나왔던가 식기 대접을 들고 나 왔던가, 이 사람은, “[염불가락으로] 다―섯―하고 열―이―로다.” 천수(千手)(천수경(千手經). 바라치듯 세거던. 그러니까 이건 등풍등풍 [손벽을 치면서] 춤을 춘단 말이여. 아 그 남자가(새우젓 사러온 여자의 남편) 떡 그 세수하다 말구 들으니까루 밖에서 이 사람 내다보니깐 아 마누 라, 저 사람은 오이를 시는데 천수바라식으루 시구, 마 누랜 막 식기 대접을 아주 그리 장단을 둥둥 치구 다닌 단말여. 이 사람이 그만 얼른 낯도 안 닦고 세수대야를 들고 나 와서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지장―보살― 지장보살.” [웃으면서] 하나는 천수바라경을 치고 마누라는 바라춤 을 추고 이 사람은 사십구제(四十九齊) 들었다고 지 지 장보살(地藏普薩)을 찾고, 후딱 다시 시었단 말씀이야. 아 이 선비가 가만히 있으니 웃으운 일이여. 아 저거 어떻게 된 일이지 통 모르겠단 말이여. 게 들어가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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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고. 주인이 하는 말이, “그 당신 어쩌다 그렇게 됐오?” [72 쪽] 그런데 그것도 중 속화(俗化)한 이였는데 내외가, 역시 그이도 중 속화한 이로서 참 퇴속(退俗)해 가지고 나와 서 무수한 고생을 다 하다가서루 다시 남대문시장에 장 살해가지고 지금은 거부가 되서루 퍽 큰 포목상을 하는 사람이여. “여보 나도 이만저만 이렇게 돼서 지금 이렇소. 그러니 께 당장 그만 치우고 우리 상점에서 점원노릇이나 하 오.” 이렇게 했드랍니다. 그래 팔자가 피었단 말씀이야. 아, 그런데 새우젓 새우젓 장사가 생각해 보니까, 이전 차 라리 나도 저런걸 배웠더라면 저거 저럴걸 맨날 [웃으 며] 맹자 공자 이것만 찾다, 공자 맹자만 찾다 이거 벼 슬 하나 늦게까지 못하고 이거 새우젓, 이거 생명과 같 으나 하나 살 사람 없고 장사 종일 뭐 도시 안 되고 막 막하단 말씀이야. 그래 이저 하는 일 없고해서 인제 이 거 팔아야지. 팔아가지구 저 좁쌀이래도 좀 사가지구 가야 조당숙이라도 끊여서 풀칠이라도 할 거인데, 뭐 하나도 팔던 못하고 주르르 간 것이 어디까지 갔냐하면 저 마포(麻浦)까지 갔던 모양이여. 마포가서 한강(漢 江) 변에 떡 가가지구 생각하니께 다른 도리는 없어. 죽을 죽는 도리 밖에 없어. 그래 떡 강가에 가서 새우젓을 지고 가서 신세타령을 하는거지. 전번 과거에 그 고 얼마전에 대과(大科)가 있었는데, 거기서 물 수(水)잘 몰라가지구 이 사람이 고만 낙방이 됐단 말이여. 그래서 고만 한강을 쳐다보 구 “물아, 물아. 네 이꼴로 날 죽이느냐?” 고. 신세타령을 하고 하는 차제(此際)에 인저 숙종(肅 宗)(조선 제 19 대 왕)께서 야순(夜巡)을 떡 도시는데, 대과 끝나고 난 뒤에 얼마 후에 숙종이 요번 때 과장 (科場)에서 무슨 그 불평불만이 있는가 싶어서 인저 야 순을 도시는데, 숙종께서 마침 미복(微服)으로서 아애 그 시종무관(侍從武官) 하나만 데리고 지나다 볼 때 어 서(어디서) 곡소리가 난단 말씀이야, 어두운 달밤인데. 게 숙종께서 그래 떡 가셨지. [73 쪽] “그 여보 어떤 분이 이렇게 곡을 하고 이 밤중에 이렇 게 울고 있소?” “예 난 나한텐 뭐 물을 것도 없소. 당신 볼 일이나 보 시오.” “아 그렇지만 사람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데 이 밤에 당신이 여기서 곡을 하고 있는 그 필유곡절(必有曲折) 이, 무슨 곡절이 있을터인즉 그 왜 그렇게 냉, 냉담하 오?” “글쎄 알구보면 하두 기가 차서 그럽니다. 지가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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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차 참 나갔읍니다만두 한번두, 자신은 글은 자신이 있는데 거기만 들어가면 그만 그 충동이 일어나 가지구 그만 떨려서 심장이 약해 가지구, 게 요번 과거엔 물 수자를 몰라서 쓰덜 못해서 떨어졌읍니다. 그래서 이 물이 하도 원망스러워서.” 자기 생각을 모두 얘기했어. “그래 빠져 죽을려고 합니다.” 그러자 솔개가, 지금은 솔개가 없지만 우리가 클 때만 해도 솔개가 굉장히 많었답니다. 솔개가 ‘뾰―’ 하고 허 공을 돈단 말씀이지. “저게 무슨 소리요?” 이 숙종께서 물으시니까 그 새우젓 장수가 하는 말이, “그게 솔개 소리입니다, 솔개.” “그 솔개 소리개라고 어떻게 써?” “아 솔개 연(鳶)자 [웃으면서] 모르시오? 당신.” 숙종 아무 소리도 [웃으며] 않더래요. 솔개 연자 어떻 게 써요 해놓고. “근데 여보, 실은 나도 요번에 춘당대시(春塘臺試)에 나가서 나도 수삼차 봐서 떨어진 사람이오. 나도 울화 가 울적하고 해서 소풍하러 나왔오. 당신 보니께 나와 같은 사람이오. 보니께. 나는 당신과 같이 그 의식주에 는 구애가 없는 사람인데, 얘길 듣고보니 당신은 상당 히 참 그야말로 모든 가정환경이 곤란한 것 같여. 그런 데 내가 아 비밀을 하나 알아뒀오.” “무슨 비밀이요?” [74 쪽] “내일모래 별과(別科)를 보이는데, 그 상감께서 내일모 래 별과를 보이는데 거기 한번 당신 나가보라.” 고. “별과, 그 별과를 보인다고 해서 또 가서 뭐 글자 잊어 버리고 또 거기가면 뭐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뭐 안 될 걸 난 포기한다.” 고. “아 그게 아니고, 아 내가 얘기 들으니까 아까 얘기한 솔개 연자 그걸 백보(百步) 밖에다가 앞에다 써놓고 백 보 뒤에 서서 한쪽 눈 감고 글자를 맞추기랴. 내가 알 었으니깐 그러니깐 당신 모래 별과나 한번 봐보소.” 그 사람이 그렇게 죽지, 죽지해도 그 죽음에 이르면 생 에 애착심이 생긴다고, [웃으며] 있는 건 자연인데 아, 그 솔깃한 말이 생각이 난단 말이야. “아 그러냐? 그렇다면 나도 한번 가보겠다.” 고. 그래 참 돌아서고 말었어요. 그래 그날 자고 그 이 튿날 보니까 방(榜)이 써붙힌게 아닌가 아니라 그날 저 녁에 만난 선비 말과같이, 그 숙종이거든. 바로 숙종대 왕이란 말이야. 그 사람 살려 준다고 아 별과를 보인다 고 하거든. 참 그날 자고 그 이튿날 별과에, 떡 춘당엘 가니깐 그 땐 시골 선비들은 다 모두 내려가고 인제 인제 서울 있 는 선비들 그 뭐 도로 떨어진 이런 사람들. 그전 모두 별과를 할 땐, 보일 때는 반드시 누구 하나 살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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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

박계홍, 황 인덕 조사, 장성춘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4집 4책 [ 충청남도 보령군 대 천읍 설화

하는 이 때에 그 뭐 가나마나 모르는 사람은 헛일이지 만 그래도 욕심에 가고 가고싶어. 그래 모인 것이 수 삼십명이 모였던 모양이여. 춘당대에(6)[주]창경궁에 있는 과거 보는 곳. 모였는데 그 참 그날 저녁에 말한 그이, 그 그 선비 말과같이 아닌게 아니라 운자(韻字) 맞게 쓰는게 아니고 글자 알아 맞추는 거여. 백보 밖에 서 앞에 있는 글잔데, 아주 세서(細書)로 써놨겠지. 한 짝 눈을 가려 그 맞추긴데 그 아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있어요? 그래 쭉― 차례차례, “그 무슨 자(宇)냐?” 물어. 못 맞추면 빠져나오고 빠져나가는데 아 자기 차 례, 벌써 서넛 남았 [75 쪽] 는데 사뭇 가슴이 두근거려 더 못 견디겠단 말이여. [웃는다] 게 뒷사람 보고, “저게 다른 자가 아니라 솔개 연짜여. 솔개 연짜니께 난 내가 비밀을 알긴 아는데, 난 건망이 끼여서 또 혹 잊어버릴 찌 모르니까 내가 모르거든 당신이 맞추오.” 약속을 했어. 그래 그 이 사람 앞에 떡 자기 차례 당해 서, “무슨 자냐?” 물으니까, 아 또 건망증이 있어 얼른 나온다는 [웃으 며] 소리가, “삥삥 연짜입니다.” 이래거든. 솔개가 빙빙 돌거든. 솔개 연짜 소리를 삥삥 연짜라고 그랬단 말이여. 그래 밀어내지. 그 다음 사람 도, 그 다음 사람, 가르쳐 준 사람 그 사람 앞에 이르러 서, “이것이 뭐냐?” 물으니까, “에 그거 시골 글짜로 아뢰오릿까? 서울 글짜로 아뢰오 릿까?” “아 글짜가 시골 글짜 따로 있고, 어 서울 글짜 따로 있는가?” 하니깐, “아 그건 향토 방언이 있기 때문에 저희 고을에서는 삥 삥 연짜라고 합니다. 그러나 솔개 연짜입니다.” 보니까 둘 다 맞거든. 그 둘다 베실(벼슬)을 줬드래요. 그런 야사(野史)가 있지요. 우리나라에 전설루서 누구던지 다아 입에 오르는 무학 대사에 얘기. 무학대사에 어머니는 본래 양반 집 딸루서 시녀들허구 빨래를 허러 낵갈루 가다가 시녀들은 다아 도망하구 혼 자만 익게 되는디, 오이 하나가 떠네러 와. 물외 하나가 떠네러 와서 그 물외를 집어서 먹었더니 결국이 [179 쪽] 그것이 애기가 됐어. 잉태했는데. 시집을 간 첫 날 밤에 애기를 났더라 이게여. 그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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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오이 먹고 잉태 된 무학대 사>

그 신랑이 워낙이 순진허셨던 분이라. 그 애기를 자기 옷이 속옷에다 싸다가서 밖이다 내다 놓고, 와서, 처갓 집이 말해기를, “나는 밤이는 멱국허구 밤참을 먹으야 잠을 자니, 멱국 을 끓여 와라.” 그래서 멱국을 끓여다 주니까 그 부인에게 주면서, “자고루 혹이 그런 수가 있으니 멱국을 먹으라.” 구. 신부에게 얘기허니 그 신부는 어찌할 바를 모르구, ‘자기가 부정두 아니구 먹은 죄라능 것은 외 하나 먹은 죈디 이럴 수가 있나’허구. 그 신랭이 그대루 간곡히 말 하기 때미려…(마지못해 신랑의 권유에 응했다는 말과 신랑이 꾀를 내서 버려진 아기를 주은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밤에 나가 아기를 길 옆에 놓고 오기로 아내와 공 모했다는 대목이 생략됐다.) 있는 차에 날두 새기 전에 하인덜과 같이…. “나는 아버지가 내일 일찍 왔으닝깨 가야한다.” 가다가서 그 애기를 둔 지점에, 하인덜보구 말해기를, “야, 저기서 무슨 소리 난다. 저기 가 봐라.” 하인덜이 가봤던들 어트게 알 수 욱기 때미려, “야 느덜 안 돼. 모르능구나.” 자기가 가서 그 애기를 품에 안고, “야, 이런 일이 익구나아…? 느덜 몹 봤지만 나는 봤어.” 자기 집이럴 돌아 가다서 딴 사람덜이 자기 집 밑이 자 기 젖얼 멕여 [기침] 키워주신 부모가 계시는디, “아이구 이거 워쩐 일이냐구. 이게 왜 이러냐.”구. “아 날 샌 뒤에 오다 보니 이렇게 됐이요. 이 애기를 좀 키워 주시오. 키워 주시먼 나 킨 은혜는 안 해두 얘 키워준 은혜를 각겠읍니다.” 그 후에 그 부인헌티 아들 형제를 또 낳구 본 즉은, 팔 년이 됐더라 이거여. 그래 큰아들보구서, [180 쪽] “이 밑이 가서 아무개 좀 데리구 오너라.” 그 큰아들이 가서 그 애를 데리구 오닝깨, “느덜 절 혀. 이게 느이 (형)여.” 자기 부인보구(에게서) 첫 날 저녁이 난 아들이. 그러 니 그어머니가 아아무 말두 안 하시구, “사실은 나는 아무 죄두 웂다.” 그러니 자기(무학대사를 가리킴.)루서는 출처가 없는 부인(어머니)이었더라 이거여. 그래서 그대루 떠나서 참 절루 들어가서 중이 되구. 공 부를 허는 도중에. 워쨌던 자기를 출생시킨 아버지는 아니지만 자기를 구해 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거여. 돌아 가신 후에. 옛날에는 빙수(빈소(殯所)를 모셔 가 지구, 산을 구해서 장사를 지내기 때미려 빙수를 모시 못 모셨기 때미려 그냥 빙수에다 시신을 뒀는디. 하루 는 와서, 어떠헌 중이 와서 책기에(찾기에) 그 상주 덜 이 나가서 보니 중인디, “대감께서 돌아 가셨다구 허니, 대감과 소승은 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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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헌 분이니 그 빙수에 가서 일면 대곡이래두 허겄읍 니다. ” 그러니 상제루서는 워트게 할 도리가 웂이, 생전에 기 시던 아버지와 친절헌 분이라구 허니 헐 수 웂이 빙수 에 가니까, 거기 가서 통곡얼 허는디 상주가 오히려 물 러날 정도여. 어얼마를 통곡얼 하다가서 울음을 그친 뒤, “나 모르겄지. 내가 아무개여. 내가 형여. 그러니 너 아 버님 빙수 모실 산소를 잡었느냐?” 물으닝개 자기가, “못했읍니다.” “그레면 나는 그 때에 떠나서 졔우 지리학을 위했어(공 부했어). 그러니 나를 따러서 산을 귀경허자.” [181 쪽] 구. 가다(가)서 꿩만 날러두, “여기두 좋다.” 까치만 널러두, “여기두 좋다.” 워디 가서 쉬, 다리가 아퍼서 쉬어가게 뒈두, “여기두 좋다.” 그러니 그 상주 말이, “형님, 이게 무슨 말씀이요?” “아녀, 내 말 곧이 안 들을 테닝깨 때미러 내가 이런 짓을 항 게여. 내가 이 아버님 산소 자리를 다아 준비 해 놓고 그 산소에, 에를 어, 모실 텐디 꼭 득겠느냐?” 그러닝깨, 아우가 허는 말이, “형님이 허시는 일이라먼 저이(희)들이 워찌 복종 안 하겠소? 갑시다.” “그러먼 낼 행차겸….” 그 이튿날, 배 타구 가게 돼애서 배를 딱 준비해 놨는 디, “내가 올르라는 대루 올르야 혀.” 시신만 배에다 올려 놓고오? 다른 상주덜언 올르지 않 했는디 삿대루다 싹 밀구 배만 도망가니, 그 상제들은 자기 아버지 신체를 빽깅 거여. 욕을 허니 뭣해며 불른 들 워터겨? 그대애루 도망가더라 이게여. 그 뒤에 큰 상주가 중국 사신을 갖다가 돌아 오는 길에 풍파를 만나서 워느 섬에 가 몰렸어. 몰려 가지구 거기 서 돼 있는디 저녁 꿈이 자기 아부지가 현몽해셔서, “네가 여까지 와서 나를 안 보구 갈래?” 그런 꿈을 뀌구 나서 주막 쥔보구, “여기 어떠헌, 이만저만헌 분이 산소가 있읍니까?” “예. 대감님 산소가 여기 있읍니다.” 그래 가 본 즉은, 비, 석물꺼지 해서 자알 모셨더라 이 게여, 그러니까, [182 쪽] 그럼 그분이 누구냐? 무학대산디. 무학대사의 그 어머 니가 시집간 디는 어디냐? 한양조씨. 그래서 무학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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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서대석 조 사, 심명섭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1집 2책 [경기도-여 주군 북내 면 설화 17], <선생 님댁 닭잡 아 먹은 이 야기 >

의 승이 조씨라구허는 분이 있는 것은 거기에 나온 것 입니다. 예전에 선생님이 계시는데, 선생님이 저 양짓말도 선생 님이……젊잖은 선생님이 계시구. 음달말도 젊잖은 선생 님이 계시는데, 아 애들이 글을 읽다 말고, “얘 어느 선생님이 제일 젊잖으시니?” 그러니깐, “우리 어느 선생님이 점잖으신지 우리 좀 오늘 저녁에 한번 좀 댕겨보자.” “그래 우리 가보자.” 아 음달말 선생님한테 갔지. 가서 보니까. 이 양반이 밤 에 글을 떠억 가르치시다 말고, “느(너희)들 글들 부지런히 읽어라.” 이러고선 안으로 들어가신단 말야. 안으로 들어가는데 내시로 떠억 들 [220 쪽] 어가는데, 들어가니깐, ‘에헴’ 기침을 하면서 들어가. 들 어가 문을 여니깐 아 이분이(부인)베를 짜다 말고선 홍 선(紅扇)을 이래 가리고서는, “아이구 들어오시느냐?” 고 이러고선 그래 인제 떠억 아랫목에 앉으니깐, 아 이 분도 참 앉아서 대우가 놀랍단 말야. “야 그 선생님 참 젊잖으시다.” “아 그럼 우리 선생님두 좀 보자.” 아 자기 선생님두 인제 자러 들어갈 것 아냐. 들어가는 데, 떠억 들어가더니만, 들어가니까 그 부인이 홍선이구 뭐구 일어나는 법두 없구 벨르 떨거덕 떨거덕 짠단 말 야. 짜더니 이이가 뭐냐 할 것 같으면 뭘 꿈지럭 꿈지 럭 고깔을 하나 접는단 말야. 고깔을 접더니만 자지 끝 에다 갖다 거기다 씌워 [청중 및 구연자: 하하하하……] 하필이면 이놈이 끗덕 그래거던. 그래니깐 아 에미 여 자가 빙그레 웃는단 말야. 그러니깐, “에이 동냥하러 왔군.” 그래 이제 하는 말이 선생님이, “에 양달골 막바지 소승이 문안드립니다.” 아 또 끗떡 한단말야. [웃음]아 그러니깐, “동냥을 달라니 줘야지.” 아 그러니 제자들이 문 옆에서 가만보거던 아 그래더 니, “에 우리 선생님 점잖지 않다 얘.” 아 나와서 그 집에 닭이 많은데 닭을 죄 붙들어다가 그 저 해 먹지. 막 볶아서 해먹자니까 선생님이 나오셨어. 나오셔서, “너들 뭘 먹느냐?” “아 어디가 닭서리를 좀 해왔는데 닭을 지금 볶아 먹는 중이올시다.” 이래거든. 그러니까. “아 선생님두 잡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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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고기

최정여, 강 은해, 박종 섭, 임갑랑 조사, 박대 제 구연, 한 국구비문학 대계 8집 5 책 [경상남 도 거창군 가조면 설 화 25], <잡아 먹은 닭>

한모금을 드렸겠다. 드리고선 이 녀석이 책상 밑에다 뭐 고깔을 하나 떡 [221 쪽] 접더니 발가락에다 꼽는단 말야. 쓰윽 선생님 앞으로 내놓곤, “양달골 막바지 소승 문안드립니다.” “끄덕.”[웃음] 아 그러니까는 선생님이 그 참 엄척(엄청) 미안하거던. “소승 문안드립니다. 양달곤 막바지 소승 문안드립니 다.” 또 끗떡 하거던. 자기 한 일은 있구 그거 참 미안하단 말야. 그 이튿날 아침에 떠억 나와 보니까 자기 닭을 다 잡아 먹었네. 선생님댁 닭을. 그래 뭐라고 말할 수가 있어. 미안해서. 그래 애들 야단도 못치고 꼼짝없이 닭만 잡 아 먹었지. 그런데 시방은 모도 핵교(학교)를 보내만 어찌 그리 잘 댕기는고 공부도 그리 잘하고 육학년 어 국민학교 육학 년 학생이 지각 한 분 안하고 결석 한 분 안하고 그렇 게 하는데 예전에(한문이) 서당글 읽을때는 아 열댓이 나 모다가지고 이럴 때는 어찌 거리 서당가기가 그리 모도 싫던고. 부모들이 서당에 보내노만 중간에 가 놀 고 오고, 혹 어떨때는 술도 받아묵고 이런 짓이나 하고 이런 하는 중에 하루는 이 십명이 한 서당에 모다가지 고 이 동네 저 동네 글읽는 선비들이 모아가지고 글을 일르다가 한날 저녁에는 그 선생님이 자기 친지가 제사 들어서 제사지내로 가고 없어 고만 이 글읽는 사람들 이, “자 오늘 저녁에는 잘 놀아보자.” 하고 선생님이 없구나 선생님 안 계실 때 우리 좀 얘기 도 하고, “음 그래 보자.” 아 이놈의 거 구질구질한 이얘기 머 첫 번에 장개간 이 얘기, 어젠 또 머 집에 가서 거 주모하고 히야까시하고 술 사먹은 이얘기 이런 후지끼리한 이얘길 해 쌌다가 자 밤도 오런되고 우리가 오늘 저녁에는 그저 넘길 수 가 없고 닭을, ‘우리 잡으로 가자.’ ‘닭을 잡으로 어두로 가꼬?’ 아아 어데를 가 [1091 쪽] 든지 가만 넘의 집에 달구통(닭통. 옛날에는 닭집을 짚 으로 엮어서 처마 밑이나 헛간 같은 곳에 매달아 놓았 다) 띠오만 고만 닭이 열마리든 수무마리든 메고 오자.” 그런 한 사람이 있다, “그래 되나? 너거집에 너는 너거 집으로 가고 나는 우 리집으로 가고 이런 닭을 그런 닭을 잡아다가 술이나 사고 그러구로 볶아가지고 안주로 해서 재미있게 놀아 보자.” “어 그거는 재미없다. 넘의 닭을, 닭을 잡아다 그런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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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최내옥, 이 강철, 한흥 수 조사, 윤 윤대

우리가 머머 아무 그런 것도 아니고 장난삼아 그래보 자.” “아 그래보자.” 큰 동리로 한군데 간 기라. 이놈이 한 열댓명 가가지고 담너머 섰는 놈도 있고 삽작(대문)에 섰는 놈도 있고 및 놈이 들어와서 닭을 잡을라꼬 할 즈음에 그집 주인 부인이 하 소변을 하고 시퍼서 오줌을 누로 나왔던 모 넁이지. 나와가지고 어땐 줄 알아 그그 그전에는 버리 밭에 거 오줌을 모다가지고 버리밭에 가따주만 버리 잘 된다 하고 아 무슨 장군이 있는데 그때 그 그 얼어서 설아래이던 모넁이라. 그래 거 장군은 어지 마라 하고 짚으로 가지고 나락열매 그거는 떨어뿌리고 짚으로 가지고 장군을 머 툭치기 해서 장군 몬어르구로 우리논 기 있어 아. 이놈들 닭을 잡다가 어짤 수 없어 서 사람은 나오지 아 이놈 됐다하고 장군 덮어논 그 놈 을 어 둘퍼섰다. [청중:둘퍼썼다. 웃음.] 아 웃지마. 그래 떡 둘퍼쓰고 있은께네 아 그거 인자 그 부인도 어든 곁에 나와가지고 거 오줌누만 된다 하 고 그전에는 거 오줌눈 데라 하고 거서 오줌을[일동:모 두 웃음.] 아 이놈의 오줌을 누는데 아 고만 뜨뜻하이, 머리가 대갈배기 이 부인이 오줌을 많이 눠. 많이 누는 데 오래도록 있다가 많이 누는데 전딜 수가 있나, 뜨겁 어서. 아라 이놈의 거 배텄지. 고만 그 부인이 낙담을 해갖고 고만 마당에 자빠졌뿌맀네. 고만 이런 괴변이 있나 거인지 마당에 사람이 자빠졌거던. 그래 밖에 놈 들은 모두 삽짝에 섰는 놈 [1092 쪽] 이 놈의 ‘저 사람이 죽지 않았나’ 싶어서 낙담을 하고 마 고만 달아나 뿌렀지. 다 고만 달아났뿌리고 자 이놈 도 그거는 베끼내보이(덮어쓴 우리를 벗기고 보니) 저 부인은 마당에 자빠졌네. ‘이거 어떻게 해야 되겠나. 에 라 고만 아 도망하는기 상책이다.’ 그래 이놈들도 그만 뛰나오는데 그때사 인자 도둑놈이 닭 잡으로 온 줄 알았던 모넁이라. 방에서 그 남편이 방에 자다가 들은께네 밖에서 머시 소리가 나거던. 저 태(곁에) 본께 사람이 없다. ‘이거 어찌됐노, 어찌되는 판고’ 하고 나가본께 거 자기부인이 마당에 뻐드러졌단 말이라. “아 이 사람아 머 어찌되다 이래 됐노?” “아이고 아이고 고만 나는 죽겠소.” 거 어째됐는고 물어 봐. 그 얘길 하로 와서 소문을 들 은께네 그 부인이 고만 낙담을 해서 고만 죽어뿌맀어. [청중:아이고, 아이고.] 지금 허는가? [조사자: 예.] 나 이 얘기는 고담도 고담이지만 실화나 다름 없네. 네. 그 정객이 그대로 서 있네. 나 사는 곳 여기서 오십리 거리에 떨어져 있네.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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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5집 2책 [ 전라북도 완주군 이 서면 설화 4], <개똥 속의 보리 쌀을 씻어 드린 효부>

면 이십킬로 이내에 있는 사실여. 만경이라구 있경 만 경(萬頃). [조사자: 만경유?] 응, 만경. 여기서 오십리 거리백이 안뎌? 만경을 가면 만경 가서 으믑타믑이라는 동네가 있어. 으믑타믑, 만경 가서 으믑타믑이라는 동네가 있어. 으믑타믑. 거기 가면 지금 최씨가 아주 번성하게 살고 있어. 최씨 말은 그곳 에서들 경주최씨라고 허지먼, 거기가 만경최씨라구 해 서 과언이 아녀. 기런 최씨가 있어. 최씨라는 사람 한 사람이, 옛날에 지금으로 봐서 한 200년 전에 최씨라는 분이 에-, 지금 만경 가서 살고 있는데, 본래에 그분이 선비여, 그런 말을 들었어. 그런디 자기가 환관(홀아비) 을 혀. 성처를 허구 혼차 살어. 그런디 외아들 하나를 두고 있어. 그 아들을 여워서 메누리허구 아들허구 자 기허구 세식구가 살고 있는데, 그 때에 다른 디에서 어 느 산중에서 살고 있었는디 살 길이 없었어. 그 때 당 시는 만경 가며는 어딘고 허니 강변여. 만경강 강변여. 강변에 가며는 고기잡이 헤서 먹구 살어. 요새는 품팔 이감이 있지먼, 그 때에는 품팔이가 없어. 거기가머는 굴을 딴다든가 새우를 잡는다든가 고기를 잡어서 그걸 로 품팔이를 헤서 생활근거지로 삼고, 만경 우믓이라는 곳으로 이거(移居, 이사)를 헸어, 최씨라는 사람한 분 이. [조사자: 아들허구 메누리는유?] 으, 메누리허구 세이. 거기서 살고 있는데 거기는 아무 생활이 없어. 농사도 못져. 왜 못지느 [813 쪽] 냐- 강물이 들어오면 농사짓는디, 간수가 들어 와서, 염수(鹽水)가 들어 와서 농사를 못져. 그러니까 아직도 나오기 전에는 그 근동 농사를 못진게, 그 근방 사람들 은 뭘 먹고 사느냐, 좀 돈이 있는 사람은 멀리 배를 타 고 나가서 고기를 잡어다 먹고 팔어 먹고, 그것이 없는 때는 굴따기나 새우 잡기나, 그저 고기를 잡어서 물이 빠지는 대로 들어 가서 그걸 잡어다가 그걸 까서 먹고, 물 들어오면 안 나가고, 그 이튿날 물이 빠지면 그걸 잡어다가 먹고, 그걸 생활 근거지로 헤서 살고 있더랍 니다. 잘 들어요? 하하하… 그 아버지라는 사람은 학자요. 본래, 글을 많이 배워서 학잔디, 사람은 본래, 학자라는 것은 일을 모릅니다. 일 을 몰라서 언제나 놀고 있고, 늘 일삼는 것이 글 읽는 거, 독서, 서책 보는 것이, 일삼는 것이 선비의 본업입 니다. 그래 글만 읽고 있어요. 그러잔게 가서 그 강물이 오늘 은 빠지면, 내일 아침에, 오늘 저녁때 들어오고 내일 아 침에 빠지면 저녁 때 들어 오고, 그 물이 하루하루 빠 지는 순간만 이용해서 고기를 잡아다가 생활하고 있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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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그 생활이 넉넉한 생활이 아니라 비참한 생활이 지. 고기 잡어서 먹고 사는 사람여. 고기 잡이를 헤서.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은 고기를 많이 잡아서 돈도 많이 버 는디, 그냥 이런 옹박지는(물동이) 다래를 갖고 나가 단일장(五日場)에 팔아다가 쌀 한데(되)나 반데 팔면 그백이(그밖에) 못먹는 것이 손으로 잡는 것은 그백이 못먹습니다. 그렇게 세월을 지내는디 하루는 날이 궂었다고 말여. 날이 궂은 것은 비가 와. 비가 오며는 고기 잡이를 못 갑니다. 메나리가 가서 고기를 잡어야 먹고 사는디 고 기를 잡으러 못가고 있으니까, 그 이웃에서 품이라구 있어요. 품 품을 왜 내는고 하니 나중에 보리밭을 베준 다든지 콩밭을 메준다든지 허고 전제를 허고 미리 달래 서 먹는 것을 품이라고 헙니다. 그 품을 그때 당시는 요샛 돈으로 가령 백원 헌다면 20 원 활헤서 80원백이 안줍니다. 가사(가령). 그 헐헌 돈 을 받고라도 우선 굶어 죽게 생겼은께 [814 쪽] 품을 내다 먹어요. 그렇게 세이서 살던 중 불행히도 그 남자가, 그 아들이, 그 영감의 아들이 죽게 되었어요. 그 아무리 허더라도 살지를 못허니께, 그래서 결국이는 불행이도 그 사람이 죽고야 말았어요. 그래서 이우지(이웃이) 이웃돕기와 마찬가지로 동네에서, 지금 이웃돕기만 있는 것이 아 녀? 그전 옛날에도 동네에서, 동네에 불쌍한 사람이 초 상이 나면 쌀 한되박, 돈두 몇푼씩 거둬서 그 치상 치 루는 것이 요새로 말하면 이웃돕깁니다. 그 얘기가 옛날에 있었읍니다. 그래서 상을 치루었는디, 그 아씨가 그러걸랑 애기나 낳고 서방님이 죽었으면 존 디(좋은데). 애기는 한개도 안났어. 두개는 고만두고 한 개도 안났어. 남녀간 하나도 안낳고, 그냥 돌아가셨단말 여. 그런개 홀아버니, 시애비 홀애비를 둔 시아버니허고 홀애미된 메누리 허구 둘이 살어. 세상 참 우습지. 그러나 그 가정은 빈곤한 가정여. 참 막대(莫大)허게 곤란한 가정여. 그렇게 살게 되니까 이우지 그 인가(隣 歌)에서, 그 이우지에서 남들이 부녀자들이 말하기를, 그 젊은 여자 보고, “날 봐 새댁, 시아바니가 돈이 있어? 서방님이 애기를 낳고 죽었어? 애기도 하나 읍지(없지), 시아바니 볼것 도 읍지, 학자로서 글만 읽고 앉았지, 밥 안갖다주면 밥 안갖다 준다고 글만 읽고 앉았지. 자네가 벌어다 멕이 면 뭣이고, 씨하나 있으면 뭔 재미로 사는가? 그런게 자네 시집가서.” 그 이웃집 부녀자들이 자꾸 권을 혀. 자기가 생각해 본 게 그게 옳거든. 서방님이 있으면 서방님이라도 있어 씨라도 퍼친다지, 서방님 죽었으니 소득도 없지. 자, 늙 은 시아바니 글만 읽고 앉았지. 뭘 보고 사냐 이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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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여자가 가서 품팔어야 괴기 잡어야 먹고, 괴기 못잡으면 굶는다 말여. 그러잖으면 품내서 먹고. 그리두 이 여자는 지성으로 그 시아바니 되시는 분을 봉양을 혀. 불행을 나고 그럭저럭 먹고 사는디, 그냥 품 매다 먹고 괴기 잡어다 먹고 사는디, 어느 여름이랍디 다. 장마가져서 비가 오기 시작허는디, 하루 이틀만 오 는 [815 쪽] 것이 열흘도 오고 심나까(심란하게) 오네. 이런 웬순놈 (원수놈)의 노릇이 있어? 고길 잡으러 갈 수 있어야지. 품팔러 갔어. 그런게 농사 많이 짓는 집한데 모심어 주 마고 품사고 한 끄니 한 요기를 혀구 있어. 그것도 어 느 한도지. 갑으네 집에 갔으면 을으네 집에 가서 그 다음에 병으네 집으로 가야지. 다시 갑으네 집으로 가 면 다시 안 준다고 그렇잖습니까? 그러니께 그 메누리 되는 사람은 그 참사가 오직 허리요? 안 굶어 죽겄다고 그 애를 쓰고 다닌단 말여. 이 무상헌 하느님께서는 그 야속한 사정을 몰라주고, 비는 계속 내려서 고기잡이를 못가고 김매줄 디도 없지, 양식 꿀 디도 없지, 어떻게 살어? 그래 홀로 있는 시아바니허구 홀로 있는 메누리 허구 목구녕을 못 이겨서 죽게 됐어. 품매러 가먼 옆에 품매주지 않는다고 주들 않어. 안주는 게 아니라 사실 못 가는 거거든. 아 그런디, 아 이거 환장할 일아녀? 아 그리서는 계속 비는 오고 헐 수 없지. 그런디 시아버니는 돈을 벌라구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본래 학자라는 것은 돈을 멀리 하는 것입니다. 글만, 서책만 읽는 것이 학자입니다. 굶 어두 책만 읽고 앉었어 굶어두. 마당에다 배를 띠워두 모르구 앉았어. 그냥 글만 읽구 앉었어. 이러니 아, 아 하루는 글을 읽는디 시아바니가 기진해서, 가사 말하자 면 맹자왈 공자왈 [힘차게 구술.] 헐 텐데 맹자 왈 공 자 왈 [아주 힘없이 구술.] 헌단 말여. 왜 그런가, 배가 고파서 기진해헤서 먹을 것이 없은게, 창자가 안 찬게 기진헤서. 메누리가 보니께 너무도 안 타까워 내가 어떻게 하면 글읽는 시아바니를 좀더 멕여 드릴 수 있는가? 비는 억수같이 쏟아져 그참 별일이지. 헐 수 없이 낮이 점싱 때가 됬는디, 시아바니가 글을 읽는디, 맹자왈 공자왈 [힘없이 구술.]하더니 그 날은 맹자왈 공자왈 [아주 힘없이 구술.] 이러고 있단 말여. 죽을 지경이다. 너무도 안타까운게 그 메누리가 지긋지긋허게, 서방이 있어? 자식이 있어? 아무것두 없는느무 집구석에서 그 메누리가 시아바니 생각해서, “내가 시암에 가서 우물에 가서 물이라두 지러다가 깨 까시(깨끗이) 해서 [816 쪽] 다습게 되서 따스운 물이라두 드려서 맹자왈 소리라두 한 마디 더 듣게 해야것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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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는 물동이를 이고 갔네. 때로는 물을 많이 지르 면 여기다 [머리를 가리키며] 이고, 물을 지르지 않으 면 옆이다 이렇게 찝니다. 빈동이루 우물을 갈 적이는 이렇게 옆에다 찌고 물이 가득들 때는 이렇게 이고 갑 니다. “시암에 가서, 우리 시아버님이 저렇게 글읽는디 고통 허시니” [청중: 잘 들어봐덜.] “정성스럽게 물이라도, 집에 있는 물도 있을 테지만 기 왕이면 샘에 가서 새물을 떠다가 따습게 해드려야것다.” 하는 그러한 정성하에서 동이를 들고 시암에 가드랍니 다. 그때가 어느 땐고 하니 여름이더랍니다. 여름에 요즘인 게 그러지, 그전에는 보리방아를 찧습니다. 보리방아를 찌을 때 디들방아라구 있어요. 덜커덩 덜커덩, 그 다음 에 연자방아라고. 이제 말이 이렇게 끄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초벌 재벌 찌야지 한번 찌면 못 먹습니다. 초벌 재벌 찌는디, 초벌 쩌서 널어 말렷다가 그들그들 말린 뒤에 그늠을 쩌야 재벌이 잘 쪄집니다. 그런게 그것 널 어놔요 사방에다. 아 개덜이 와서 먹을게 별반 없은 게로 그냥 초벌 찐 걸 개란 늠이 퍼먹는단 말여. 싫건 줏어 쳐먹고 배대지 가 절구통만해갖꾸는 여기다 똥 싸고 저기다 똥싸고 야 단이다. [좌중이 웃음.] 아 이늠이 그날 부잣집 보리방아 찧는데, 보리쌀을 몽 땅 훔쳐 먹은개 한 마리가 있던가 보데. 이늠이 잔뜩 흠쳐먹고 배지가 툭 터지게 먹구 헐수가 없은게 물질러 가는 도중에 시암 옆에 가서 똥을 싸 놨는디, 지나 감 서 그 여자가 허는 소리가, ‘시상에 저 보리쌀을 건져다가 우리 시아바니 밥을 지 었으면 우리 시아바니 굶주림을 면헐건디, 세생, 개똥 속에서 나온 보리 밥을 지을 수가 있는가? 남으집에 가 보리 쌀을 훔치면 도둑놈이고, 다른 데 가 품싹을 달라 니 품싹 안 주고 고기를 잡을라니 고기잡이도 못허고, 개란 늠이 [817 쪽] 입으로만 쏟었으면 시아비니 갖다 주것는디, 똥구멍으 로 쏟은기라, 그러니 시아바니를 저느무걸 갖다가 먹였 으면, 얼마나 아까운가?’ 생각만 허구 물을 질었어, 물 을 지러서 갖고다가 생각헌게, 그 여자가 생각헌게, 내 가 지(罪)를 한 번 더 지더라도 한 걸음 나가 생각헤야 것다. 빗지락을 갖고 갔어. 개똥이란 눔이 안 삭고 그냥 생걸 루 나왔어. 똥구녕으로만 나왔지. 보리쌀은 그대로 있는 기라. 빗지락으로 쓸어서 담아 갖고 가서 씻어. 씻는데 어떻게 씻는고 허니, 그냥 손바닥으로 문데서 맡어보면 구룬네가 나. 이것이 보리쌀이 이만치 하던 것을 이맨 치 되도락 문대도 그래도 구룬네가나. 똥구멍으로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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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라. 이 보리쌀이 그래 나중은 구룬네가 안나도록 씻쳤으니, 10분지 1백에 안되더랍니다. 그 개똥이 한 되라면 한홉백끼 안되더랍니다. 다시 맛아본게 구룬네 가 안난게, 시암물로 정스럽게 씻어서 밥을 지었읍니다. 밥을 지어서 시아바니 드릴라고 밥을 지어서 밥을 지어 놓고 시아바니 밥을 갖다드릴라고 생각허니, 죄를 짓는 거 같혀. 세상에 아무리 깨깟이 씻어더라도 개똥을 갖 다가 시아바니 밥을 짓는구나. 안됐다. 시아바니가 정지(부엌) 옆으로 이렇게 난 문이 있어. 정지에서 밥상 드려가는 문이 있어. 세상에 다른 때는 물이라두 갖다 주는디, 그래 시아바니가 목이 막혀서 공자왈 맹자왈 [죽어가는 시늉으로 구술.] 허는디, 물두 안주거든. 가만히 뚫어 본게 메누리가 밥을 퍼먹어. 다른 때는 물 이라두 갖다 주더니, 메누리가 밥을 먹어. 시아버니가 생각할 적에, “오냐, 세상에 나를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식두 죽 고 메누리가 혼자 사는디, 메누리가 날 뭘 믿고 세상 난. 그리두 메누리 없으면 물 떠다 줄 사람두 없는디 어떻게 우리 메누리가 밥을 먹구 있는가?” 메누리만 믿는디 메누리가 밥해 놓고 저 혼차만 먹거 든. 메누리는 밥해놓고 생각해본게, 시상에 시아버니한 테 개똥을 갖다가 드렸단 말여. 그럴 수가 없은게, 아 옛날부터 음식을 그 전에 세번을 떠 먹고 부모를 드리 면 [818 쪽] 죄가 안된다더라 이랬어. 자기가 먹고 싶은 밥을 먹는 게 아니라, 그지꼴로 세번을 떠 먹는디, 그 찰라에 시아 바니가 문 틈으로 봤다 이거여. 시아바니가 본게는 메누리가 밥해 놓고 먹는 사람이고, 메누리는 시아버니 밥을 갖다 줘야는디, 죄송스러워서 죄책감에서 세번 떼먹은 차에, 그러나 시아바니가 날보 고 그대로 있지. 그대로 있을 거 아녀? 조금 있다가 밥 을 퍼 갖고 시아바니 밥상을 갖고 갔어. “아버님긴지 잡수세요.” 시아바니가 안 먹어. 괘씸히서 저혼자 다 처먹고 배부 른게 나 갖다 준다 해서 먹지 않아야 되는 건디, 이 놈 의 창자가, 메누리 소해(所行)를 생각하믄, 괘씸헌 년, 저 혼차 밥먹는 생각허문 안 먹어야는디, 목구멍이서 승강기(昇降機)가 왔다갔다허네, 아 헐 수 없이 그 밥 을 먹는디, 밥을 안 먹을라고 주저주저허는거, “아버님 긴지잡수시오.” 이란게 안 먹을라도 헐수읍시니께. 다 먹었는디. 나중에 메누리가, “아버님 제가 죄를 젔읍니다.” “오 저년이 나 먹기 전에 밥 지가 처먹었다 소리구나.” 그런 줄 알았단 말여. 그런게 아니라. “아버님, 시장을 못이기시니고 좀 기한이 너무도 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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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아서, 제가 품을 낼라야 낼 띠도 없고 품팔 띠가 없고 죽기 아니면 살긴디, 아버님 위해 물이라도 한 그 릇 떠다 드릴라고 우물을 가는 차, 간게, 다행이도 개양 반이 똥을 싸셨는디, 으뜨게 싸셨는디 널박지로 한아 (하나 가득)를 싸셨읍니다. 그 널박지로 한아를 싸논 것을 닦아 논게, 종살도(종지쌀로) 한 종자백에 없어. 개똥 냄새가 없어요. 아버님 진지를 드려야건는디, 진지 를 지 놓고도 아버님 드릴란게 그래도 지가 하도 죄되 는 것 같아, 지가 먼저 세 번 떠 먹고 아버님을 디리면 지 안된다 해서 떠먹었읍니다.” 시아바니가 생각한게, [819 쪽] “그 찰라봤는디 메누리가 맘 변해서 밥 먹는줄 알았더 니, 날 개똥 밥을 해 주느라고, 죄 될까미 먼저 떠 먹는 것을, 내가 그렇게 착하고 어질은 메누리를 욕했구나!” 그때는 기멕히지.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효부인줄 누가 알았는가? 그 뒤에는 메누리를 뭘로 베는고 허니 하느 님! 땅님여! 그럴거 아녀? 그렇게 살더랍니다. 그런디 이 여자가 어떻게 품을 많이 내 먹었던지, 두가랭이 백 게 안되는디 여덟가랭이두 모자르더랴. 오늘 안헐라구 품사거든. 갑(甲)두 오라, 을(乙)두 오라, 병(丙)두 오 라. 그래서 그냥 불철주야 일을 허는디. 하루는 남의 품을 갚으러 갔어요. 품을 갚으러 갔는디, 그때는 여름이라. 콩밭을 매러 가 콩밭. 콩밭을 매러 가 는디 주인이 품삯(일꾼)을 많이 얻었더래. 얻어서 죽허 니 앉아서 매넌디, 아 매가니라구 매간게, 아 그냥 느닷 없이 비가 오구 천둥이 치는디 정신을 못차리겄어. 그 런게 그 비를 그실라고(3)[주]피하려고. 헌게 동네는 좀 멀고 마침 그 옆에 가서 원두맥이라구 있어. 원두맥 이란 것은 외를 놓고 지키는 막 보고 원두맥이라 그러 는거. 본래 원두막이란 높으게 짓는거라, 위로 올라 가 니 밑이서 대가리부텀 전부다 디민단말여. 몸띵이는 맞 거나 말거나 우선 비부텀 안 맞을라고, 막 비는 억수 장마가 퍼부은게, 아 그렇게 퍼 부우슨게(붓으니까) 그 여자 한 사람 못 들어 가고, 싹 다 들어 갔어. 아 느닷없이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고 비는 야단스레 오는디, 정신을 못차리겄어. 아 조금 있으니께 호랭이 한 마리가 턱허니 나타났어. 호랭이, 호랭이 보고 범이 라고 않는가? 아 범이란 놈이와서 원두막을 막 도네. 그러니 비가 개도 못나가겄고 비가 안개도 누가 나가겄 어? 갬히, 호랭이란 놈은 바싹 뒤를 돌아, 그래서 똑똑 헌 여자가 하나 있던 개벼. “자, 우리가 이렇게 앉았으믄 다 죽는다. 그런개 비는 갰은게, 호랭이 밥은 이 속에 들었어. 우리가 다 죽을 순 없어. 그런개 가상이부텀(가장자리부터) 호랭이의 의사를 들어보자. 그런디 적삼을 벗어서 호랭이를 주머 는 호랭 [820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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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받으먼 호랭이가 잡어 먹을 사람이고, 호랭이가 안으면 피할 사람이니 우리가 다 죽을순 없으니 한쪽이 서부텀 채곡채곡 호랭이다가 적삼을 던져 보자.” 그런게 그말이 옳다하고 그대로 시행을 허넌디, 한 사 람씩 적삼을 던지게 됩니다. 호랭이다 적삼을 던지는디, 던지머는 딱 받아 갖고 도 로 싹 던저버려. 적삼을 받어 땅바닥이다 놓지 않고 도 로 딱던져. 그 전부 그려. 그런디 제일 끄트머리 가서 그 여자던개비녜. 그여자가 생각해 본게 자기가 아냐? “내가 죄가 하나도 없다. 우리 시아바니 개똥을 쌀미서 시아바니께 준거 백게 없는디 그질로 호랭이가 나 잡으 로 왔구나. 다 안 먹고 나하나 남었는디, 안받었으먼 자 기는 받을 것을 전제허고, 내가 지은 죄는 시아버니 개 똥쌀머 준 죄밖에 없다.” 그러니께 선언을 했어. 적삼을 던지기 전에, “나는 던지먼 틀림없이 받는다.” 그 여자들은 몰라. 시아바니를 개똥을 쌀마(삶아) 줬는 지, 쇠똥을 쌀마 줬는지 알 턱이 있어? 모르니까 그 얘 기를 다 했어. “내가 아무때 이러구 저러구 해서 여차여차해서, 시아 바니한테 개똥을 쌀머 준 죄밲이 없는디, 오늘 호랭이 가 와서 잡아 갈라는 것은 내가 그 질로 오늘 가. 그러 니께나 죽는 건 서럽지 않은디, 서방님두 읍구 늙은 시 아바님 혼차 물하나 떠 줄 사람 없이 내가 그대로 죽 어. 부디 내 사정을 봐서라두, 우리 시아바니에게 물 한 그릇이라두 떠다 드리고, 배가 고프면 밥이라두 한 그 릇 보내주시라고.” 그렇게 부탁을 혀. 그 동네 부인네들보고. 그러먼서, “나는 죽는다.” 고 적삼을 탁 던지니께 틀림없이 받곤 주들 아녀, 그 여자 적삼을. “나는 시아바니 개똥 삶어 준 죄로 죽으니깐, 우리 시 아바니 물 한그릇이라두, 여가 있는데로 좀 딜여다 보 고 부탁헌다.” [821 쪽] 허고 죽으러 간다고, 옛날 심청이가 우는 식이라 가며 는, 처음에는 닿지 않고 도망가뻐려. 도망가는디 양쪽 피구름이, 막 호랭이가 그여자를 실어 가는지 물어 가 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암흑천지로 만들었어. 다시 여자들은 밭을 맬꺼 아닌가. 비 안오는데 저녁땐 아직 못되고 밭을 매는데 가면서 뭐라고 그런고 허니, 아이고 아무개는 그렇게 죄졌다고 호랭이가 물어가니, 그것이 화제라 밭 메면서 그럴꺼 아녀? 아, 밭을 매면서 얼마큼 갔는디, 아 이 여자가 호랭이가 물어 간뒤 얼마큼 있다가 다시 칵 엎어다가 그 밭에다 누여 놨단 말여. 그여자를 갔다 놓고는, 아 자기가 호랭 이한테 물려 갔는디, 어떻게 살어서 놨는가. 그렇잖여? 참 이거 불몽사몽만 같으지. 꿈같으지. 그런디 여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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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 가고 있는디, 그 사람들은 멀리 갔을꺼 아녀? 이만 침 흉을 보고 얘기를 허고 앞으로 가는디, 아 다 와서 아 뒤 돌아 보니께, 호랭이 물어 간 여자가 또 와서 섰 아. “이구 저절 봐. 호랭이가 금방 물어 갔는디 또 왔네 그 려. 호랭이가 안물어 가고 갔다왔다.” 고 점심 때가 됐더라나. 진작에 더 헐 얘기가 있는디 고만 허지. [조사자: 아니 더 해 주세요.] 점심 때가 됐으니 그 사유를 물어 봐얄 거 아녀? 금방 호랭이가 물어갔는디, 어떻게 왔냐? 그런게 우리 모여 서 얘기허자고 그러니까,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나는 그냥 꿈을 꿨는지 모르는 일이라고, 그한테 전부 집중 되 있단 말여. 아 점심 때도 됐고 그런게 집이 가자고, 그냥 예나 지금이나 일반이구 옥신각신 했을꺼 아녀? 호랭이가 물어갔다가 돌아 왔으니께, 아 그 여자를 돌 려 세놓고 보니께 적삼으가 뭔 글자를 박었어. [조사자: 아하, 글자를요?] 여자들이 전부 무식헌게 뭔-자를 박은지 몰라. 색카마 니 글자를 싹 박아 놨는디, 어떻게 뭔 잔지 몰라. 그러 니께 뭐라고 허니, “자 이 사연도 알으려니와 너 시아버니가 학잔게 한문 으로 썼으니, 우 [822 쪽] 리는 한문을 모른게, 너의 시아바니한테가서 글자를 물 어보기 위해서 가자.” 그럴꺼 아녀? 글자를 우선 모른게. 그래 죽허니 즈이집 이 갈 턱이 있어? 가. 시아바니 보고, “학자 어른, 아 메누리가 아까 호랭이가 물어 갔는디, 호랭이가 잠깐 물어갔다더니 아 이렇게 뭐라고 썼는 가?” 허구 메누리를 이렇게 돌려 센단 말여. 이렇게 보니께 ‘출천지대효’(出天之大孝)라고 썼단 말 여. [조사자: 아하.] 그런게 이것이 화제라 인근에서. 암디 사는 아무개는 여차여차 해서 호랭이가 물어 갔넌디, 출천지 대효(出 天之大孝) 그러니께, 그냥 인근 원근을 막론허고 구경 꾼이 와서 관광지가 됐어, 하하하. 오는 사람마다 기냥 오는 것이 아녀. 시상 얼마나 부모 에게 효도했으면 호랭이가 와서 출천지대효(出天之大 孝)라고 했을꼬, 하다 못해, 쌀 한 주먹이라두 갖고오지 공수(空手)로 오는 사람이 없어. 디리 밀리기 시작허넌 디, 돈이야 쌀이야 밀리기 시작허넌디, 채곡채곡 작은 방 큰 방 노랑 방 샛방으로 들이 챈단 말여. 막 채여. 요놈이 막 뻐쳐서 면도 군도 도도 국가까장 알게 됐단 말여. 국가까장 알게 됐다니께, 국가에서 그런 사실이 있다니께 그냥 두겄어? 국가서 알아서 전라도 진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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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밥

류종목, 성 재옥 조사, 안판주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8집 13책 [ 경상남도 울주군 두 동면 설화 39], <보리

(金堤) 진봉면에 열녀문을 세워라 해서, 열녀효비를 세 움과 동시에, 나라에서 쌀 백섬 콩 백섬 돈 백섬 그렇 게 줬드라네. 그런게 그놈 가지고 먹고사는디, 관광지가 돼서 얼마나 훈륭한 여잔가, 허구서 구경허는 사람이 쌀 백섬 돈 백섬 또 구경 오는 사람이 쌀 백섬, 그래서 쌀이 삼백섬, 돈이 삼백섬, 금이 삼백섬, 그래 구백섬을 갖고 있는디 훈륭허게 잘 살었지. 다만 원한이 있어 그 여자가, “내가 만일 죽게 되머는 우리 시아바니는 홀로 있으니, 이집 가문을 막는거 아니냐?” 말여. 자손이 없는거 아니냐 말여, 내가 이만큼 잘 됐는 디, 나라에서 알 [823 쪽] 만큼 효도를 힜는디, 맨 끄트리 우리 시아바님, 우리 서 방님 끝트르로 손(孫)을 둬야 허것는디, 자기가 서방질 해서 나면 남의 자식이구, 누구로 나야 그 집안 자식 여? 시아바지로 나야 되는디, 시아바니 늙어서 못낳지. 누구보고 자식을 나서 계자(繼子)를 시키느냐 말여 계 자를. 그래 그걸로서 날마다 걱정, 먹고 사는 거, 괴기 잡는 거, 품팔이 걱정이 아니라, 부자는 됐는디 이집 손을 안 끄쳐야 되는디, 손을 둘 수가 없어. 요새로 말허먼 광고를 냈어. 내기를, “우리 시아버니허구 살어서 아들 하나만 나주면, 내 이 재산 전부다 제공허겄다.” 하는 현상을 붙혔어. 현상을 부쳐 놓고는 그날부터 시 아버니에게 뭘 먹이는고 허니 용, 삼, 개괴기, 쇠괴기, 돼지괴기 늘 멕여서, 그냥 몸띵이를 호박농짝만허게 맹 길었어 시아버니를. 시아바니가 맨들어야 그 자손이 되 거든. 자기가 나면 안되어. 그냥 으트게 쳐먹었었던지, 양돼지 오백 근 짜리만치로 피적 피적헌겨. 가만히 생 각헌게 젊은 각시 하나 읃어 주먼 근사허게 손을 하나 볼 것 같혀. 그 찰나라. 그 근방 불쌍헌 홀어마니에게 전 재산 주기로 허구 시아바니하고 찰싹 붙혔어. 붙어 서 아들을 낳다고. 아들 하나 낳고, 아들 둘 낳고, 아들 셋 낳고, 만경지세가 삼형제판이 짐대등양(金堤땅 得 勢)을 한다고. 그런께 훌륭헌 여자가 있다고, 그 고을에 있었어. 옛날에 두 형제간에 이래 살았는데, 형은 아주 살림이 요부(饒富)하고 잘 묵고 잘살아요. 사는데, 동생은 죽도 잘 몬 묵는 이런 처진데, 그래도 뭐 형이 동생을 좀 살 도록 해 주는 그것도 모르고, 그 몬 사는 시정(실정)을 전연히 몰라요. 몰라서, 동생이 형보고 달라 쿨 수도 없 고, 자기는 죽만 묵고 이래 사는데, 형 집에 하문썩(한 번씩) 이래 가머 동생보고 형이, “팔진미가 그렇게 맛 이 좋다는데, 팔진미 그거로 하문 구해 묵을 수 없나?” “구할 수 있지요.” “그러머, 팔진미 있는 델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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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2666 &uu20no=Q_26 66_1_04A


밥 팔진미>

“알지요.” “다음에 그러머 나캉 같이 하문 가자. 거어 가서 팔진 미로 하문 구해 맛을 보자.” “그렇게 합시더.” 그래 그 뒤에 여름철이라. 아주 날씨가 덥고 이런데, “그 팔진미 구하러, 저, 맛 보러 갑시더.” 그래 형제간에 나섰는데. 그래 마 그 형은 말이지 잘사 는데, 밥도 뭐 반찬 없으머 맛 없고 이런 처지지마는, 동생은 죽도 마 꿀맛이라. 이런 처진데, 그 인자 둘이서 떡 간다. 가는데, 저 높은 산으로 가. [363 쪽] “산에 가머 구할 수 있다.” [청중:에 속았다. (웃음)]그래 가는데, 형은 마 아침에 밥마 좀 묵골랑 그냥 나섰고, 동생은 아주 보리밥 요기 라. [웃음]요래 똑 주먹만침 요래 삼베 수건에 요래 딱 싸가지고, [청중:웃음]요거 꽁무니에 딱 미리 이래 찼거 등. [청중:웃음]찼는데, 그 형캉 둘이 같이 간다. 동생 은 뭐 몬사자 카이(못살다 보니) 노동도 하고, 죽을 묵 어도 노동도 하고 운동도 하이 산에 갈 힘도 있고 이런 데, 형은 가만 그저 여름에 덥으머 그늘 나무 밑에 앉 았고, 방에 앉았고 이러이 몸을 안 쓰이까네 산에 올라 가기 되거등요. 둘이 올라가는데, 좀 올라가이 덥지러, 날은 덥고 하이 동생보고, “아이, 동생, 그런 기 아이라, 여어(여기) 좀 쉬가 가자. 쉬가 가자.” “쉬가 갑시더.” 그래 인자 씨기(많이) 쉬가지고 올라가거등. “팔진미 있는 데가 다 돼 가나?” “아직 좀 멀었읍니더. [일동:웃음]아직 좀 멀었읍니더.” 그래 또 올라간다. 올라가이 동생은 또 올라가는데 형 은 못 견디. “하이고, 이 사람아, 팔진미가 저 저 아직 멀었나?” “멀었읍니더.” 그래가지고, “얼매나 더 가머 뇌노?” “아, 조끔마 더 가머 됩니더.” 그래 또 둘이 올라가지요. 올라가는데, 형이 몬 견딘다 말이지. 산에 잘 몬 올라가고 그래. 그래 낸중에는 올라 가다가, 날은 덥지러, 산에 올라가이 되지, 배는 고파서 못 견딘다 말이지. “아이고, 동생, 나는 안 되겠다. 배가 고파 인자 도저히 갈 수 없다.” 그러이 인자 동생이, “그래요?” [364 쪽] 그래가 인자 자기 꽁무니에 찬, 삼베 수건에 딱 싼 보 리밥 똑 주먹 만한 거로 인자, “그러머 이기라도 잡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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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장사

박순호 조 사, 서타관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6집 4책 [별량면 설 화23], <소 금장수의 복>

그래 형이 인자 그거로 묵는다 말이지, ‘동생 이거 좀 묵자’ 말도 없이, 배가 고프이 말이지. 그 평소에 겉으 먼 말이지 그거 입에도 안 대는데, 묵으이 이넘이 맛이 있기로 그래 있어요. [테이프 뒤집음 그래가지고 혼자 서 그 형이 그거로 말이지 보리밥 한 덩어리 다 묵고, 그거로 아주, “아, 동생, 이기 맛이 이렇게 있을 수가 있나?” “그래요? 그기 팔진밉니더. [청중:그기 바로 팔진미다. (웃음)]팔진미라고 딴 기 없읍니더. 맛 있기 묵으먼 그 기 팔진밉니더.” [청중:그기 바로 팔진미다.]그라니 그 형이 가마 생각하 디 깨달았어요. ‘옳지, 나는 너무 호사시럽어서 쌀밥도 맛이 없다꼬 이래 했는데, 오늘 묵어 보니까 이 보리밥 이 이렇기 맛이 있으이, 참 맛이 좋아 묵는 기 이기 팔 진미구나. 그러니 동생 처지가 말이지 아주 살기가 곤 란한데, 나는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 살았으니 앞으로 가서 인자….’ 집에 내려왔다. 내려와가지고는 그 동생 을 말이지 봐 줘요. 묵고 살도록 저 그 재산도 좀 노나 주고. 그래서 그 뒤는 그 형이 인자 깨닫고 그 저 형제간에 살림을 살도록 노놔 주고, 그래서 서리 인자 몬 사는 시정도 알고, 그래서 그 뒤에는 말이지 형제간에 둘이 가 다 잘살았답니더. [청중:그 소새끼 겉은 넘은 깨닫지 도 몬하는 기라.] 옛날 한 사람이 소금장사를 해. 참 옛날에는 참 곤란했 든가 소금장사를 헌디 하루는 짚세기 신발을 신고 설라 무네, 소금짐을 짊어지고 저- 산고개를 아조 짚은 산고 개를 넘어간디 밤에 넘어간디 뭐이 뒷발에 와서 탁 채 이고 탁 채이고 그런담말여. 설라무네, 아 그래서 ‘이거 이 뭐이다냐.’ 또 갖다가 소금짐을 갖다가 받쳐놓고 설 라무네 이놈을 요롷고 집어갖고 잘 본께 아 그래 나중 에 알고 봉께, 뒤골쪽박이라 그말여. 사람의 해골여. 인 자 귀신이 둔갑을 해갖고. 그래 인자 소금짐을 딱 받쳐 놓고 설라무네, 요놈을 짊어지고 아 이제 짊어지도 안 허고 거따 받쳐놓고, 밤낮 소금짐을 지먼 뒷발에가 채 이고 채이고 헝께 하도 귀찮해서 요놈을 딱 소금짐을 받쳐놓고 요놈을 들어갖고 저-그 갖다 던져불고 얼름 와서 소금짐을 짊어지고 밤에 산고개를 넘어간디 아이 어느새 와서 이렇게 뒷발을 챈단말여. ‘아, 이거 이상허다’ 고놈을 딱 좋게 해서 종이에다 싸 가지고 설라무네 좋은 베, 베를 있든가 미엥베(무명베) 라도 거 잘 거시기 해갖고 깨-끗허니 해서 간칠허니 해서 우게는 기상 오빠같이 해서 딱 쌌다 그말여. 그래 딱 소금짐을 우게다가 탁 짊어지고 설라무네 한 동네를 들어간디 참 아주 동네가 크드라요. 그래서 그 동네를 들어가서 제일 부자집으로 딱 들어가 갖고 설라무네, 마당 갓에다 받쳐놓고 설라무네 인자 거그서 하루저녁 자고 가자고 그랬어. 하 그 인자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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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차. 옛날에는 사랑이 있었든가 밥상을 내와서 밥을 묵고 마당가에서 딱 그 부자집 앞마루에다가 소금짐을 딱 받촤 놨는디 인자 이 소금장사는 참 죙일 질을 걷다 보니 피곤헐건 사실여. 그래 잠을 자는디, 쥔 쥔양반이 안방에서 봉께 마당갓이가 둥글둥글허니 퍼런 불이 써 졌그덩. ‘하 소금짐이 틀림없이 저거이 금덩이다.’ 퍼런 불이 써졌응께. 아 쥔양반이 거 저 이상허니 볼 거 아 니요? 아 소금짐 우게가 퍼런 불이 있응께. 아 긍께 옛 날부터서 꿈을 꿔도 소금 꿈을, 방에서 소금이 만장같 이 있으먼 그 재수꿈이라고 말이 안 있소. 그래 그 말 을 들었든 모넁여. 그 쥔이. 부자여, 고래등 갈은 지와 집을 짓고 설라무네. 아 그래서 인자 그 뒷날 아침에 떡 앉었는디, 소금장사가 딱 앙겄는디, 사랑에가 앙겄는 디 아 딱 안으로 들어가드라 그말여. “들오라.” 고. 들오라고 해서 밥을, 그나저나 닭을 잡고 설라무네 밥을 걸게 해서 진수성찬을 탁 해다가 아랫목에다 모셔 놓고 설라무게, ‘아이고 나 뭔죄, 이거 나가 이거 제미 도깨비한테 홀렸냐. 이거 어쨌냐’ 그거 속으로 간이 도 끈도끈 허그덩. 아이 놀래지 말고 밥 잘 자시라고 하 술도 갖다주고 기양 권해요, 쥔양반이. 그래 다 묵고 나 서 인자 담배를 피고 앙겄응께, “예, 소금장사 저 소금을 나한테 파쇼.” “팔지요.” 그래 인자, “얼마나 주겄소.” 헝께 그때 돈이로 좌우간 어마어마허니 불렀어. 불리기 도. 그 소금장사가 틀림없이 그 추칙을 했어요. 그 사람 이 자기 마음에 ‘뒤골쪽박을 써놨잉께 틀림없이 저거이 불이 써졌을 거이다’ 허고 ‘저 쥔양반이 틀림없이 금덩 어리다 허고 이걸 살라고 헌 가비다’ 허고. 이 미련헌 속에도 그 영리했든 모넁여, 그래 소금장사 비로소 헐 망정 영리했든 모냥여. 그래 설라무네 인자. “아 나는 그렇게 주고 안 파요. 아 나는 펭생 먹을 보 화가 들었어요.” 그 사람이 한번 딱 둘러부쳤어. 그렁께, 그때 돈으로 얼 마를 준다고 해도, “나 안 팔라요.” 아 그 소금 그 까짓거 그 몣푼 아치나 될거여. 소금 거 팔아파야. 아무리 자기가 지고 그 먼 기 깊은 산골짜기 로 들어가갖고 아 다리는 아프고 그런디 얼마나 졌을 거여. 지먼. 소금을 불과야 소금 한나 대두말이나 짊어 졌지. 그저 뒤골쪽박을 싸놨다 그말여. 뒤골쪽박을 싸놨 는디 거그서 새파런 귀신이 한밤중에 귀신이 떡허니 불 을 써갖고가 있잉게 금덩어린 줄 알았던 모냥여. 아 쥔 이. 그래서 인자, “그렇게 팔아라.” 안팔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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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환, 윤 석달, 양희 찬 조사, 이 영래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4집 1책 [ 충청남도 당진군 면 천면 설화 6], <쌀 나 오는 바위>

“그러먼 논 열마지기 값을 주께 파시요.” 그래 못 이긴 체 허고 팔았다 그말이여. 못 이긴 체 허 고 그 놈을 팔아 갖고 이거 인제 뭐라고 헌고이는 이 양반이 뭐라고 헌고이는 꾀는 그대로 들었든가 좌우간, “한달 이상이 돼야 이걸 끌러보제. 끌러봐야 당신 복이 제 나 간 뒤에 기양 끌러보먼 안돼.” 꾀가 있어. 그 사람이, 그래갖고 요놈은 돈을 인자 어디 로 부쳐주라고 그래 갖고 부쳤든가 어쨌든가는 몰라도 그 옛날에 엽전시대여. 고놈 한짐을 짊어지고 됐다 있 다 지미 ‘참 부자가 되었구나’ 허고 설라무네 요놈을 짊 어지고 기양 막 들고 와부렀어. 뒤돌아서 인자 에- 참 말에다 이걸 어따 놓든, 말에다가 놔랐든 모넁여. “쌀 쟁여논디 두지 우게다 올려노시오. 글고 인자 한달 후에 보시요 끌러 보시요.” 그랬든 모넁여. 아 그래 자녁마도 봉께 아 불은 아 그 귀신이 뒤골쪽박잉께 불이 훤허니 새파런 불이 안있을 거요? 불을 켜갖고 있그덩. ‘아따 인자 부자가 되겄다. 금덩어리가 저그가 있으니. 아 인자 그 소금장사 복이 다’ 그래서 인자 저녁마동 봉께로 그 그래갖고 있그던. 인제 한달이 거반 됐어. 그러는 동안 이 사람은 기양 논을 사갖고 기양 부자가 돼붓담 말여. 인제 잘 산디 아 이거 거반 한달이 딱 돼가지고 설라무네, 가서 또 싸고 또 싸고 그랬는디 속에는 끌러봉께 뒤골쪽박이 들 었다 이말여 [일동:[웃음] ] ‘이런 세상에 그 나가 빠끔 이한테 속았구나’ 속아도 이만저만 속았단 말이. 아 그 래갖고 기양 그 사람을 찾을라니 찾이거여? 아 그래가 지고 요 사람은 기양 소금장사 한번 해갖고 잘 살았다 네. 요렇게 바짝 요렇기 큰 산이 이렇기 됐는디 [두 손을 세워 모양을 나타내었다] 그리 냇가 거 있구 그리 저어 도로가 있구 그렇게 돼서 당진을 간단 말여. 여기서 가 자문 승전목이라 한 디. 왜정 때 왜정 때가 아니지, 임 진병란 쩍이 그리 왜군이 그리 지나가는 동시에, 응, 산 꼭딱지 양 짝(쪽) 산은 굉장히 높히유. 높구 이 가운데 물 내려가는 딘 좁구. 그래서 왜군들이 그리 지나가는 디 양 짝 산꼭딱지다가 돔막을 이런 돔막을 갖다 쏴놨 다가 왜놈을 전부 해서라무니 쳐부셔서라무니 이게 이 름이 승전목이라 그러거든. [청중: 돌맹이를 밑으로 던 져서] 잉, 던져서 석전질 해서라무니 그 왜놈들을 잡아 서라무니 그 왜놈들을 잡아서라무니 이름이 승전목이라 그러는디. 거기 절 하나가 있었어. 음, 쬐그만 암자 하나가 있었는 디. 후원으 담뿌락에서 바위뜽에서라무니 쌀이 늘 하나 씩 둘씩 떨어져. 떨어지는데 하루에 얼마나 떨어지느냐 하믄, 한 사 홉 정도, 요런게 떨어져. 하나씩 하나씩 떨 어져. 그런디 거기 중 늙은 중 하나 하구 상좌 중 하나 하구 둘이 그 놈 가지구 갱신히 죽 쑤든지 해야 연명해 나가, 응, 요런 바위서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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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종목, 성 재옥 조사, 김주악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8집 2책 [ 경상남도 거제군 동 부면 설화 20], <쌀 서 말로 산 이야기>

[416 쪽] 니 쌀 하낙씩 하낙씩 떨어져 하루에, 지금 말하자믄 사 홉 정도 떨어진단 말여. 고 눔(놈)으로다가 늙은 시님 하구 젊은 상좌 하구 밥해서라무니 갱신히 먹구 살어. 배고푸게. 그런디 그 스님이 워디 간 새 그 상좌가 가 마이 생각을 허니께 쌀 나오는 구녁을 좀 쇠꼬챙이로 뚫어서 크게 뚫었이면 두어 되라두 쏟아지믄 [청중: 쌀 이 많이 나올 줄 알고] 많이 나왔인께 먹겄더라 그런 말이여. 그래 나간, 시님 나간 새 소꼬챙이로 그 눔을 뚫었네. [말끝을 올린다] 에 뚫어인께 하나두 안 쏟아 져. 그래서 그대루 지금 폐절 됐다는 이런 얘기가 있지. 옛날에 영감 할멈 둘이 삼서로(살면서), 영 이박(이야 기)이 없어서로(없어서) “영감, 이박을 한 자리 하이소.” 이라이(이러니), “할멈이 네가 해라. 나가(내가) 이박이 있나?” “나도 어데 이약이 있읍니꺼? 그란께(그러니까) 이박을 가서 사가(사서) 오소. 그라마(그러면) 당신이 가서….” 그래 쌀로 서 말로 짊어지고 인자, 이박 사러 갔다. [청 중:쌀 많던가배(많던가봐), 서 말이나 지고 가고로(가 게).] 부자라 [청중:웃음], 그래서 간께(가니까), 그란 께, “아이, 이 좀 자고 갑시다.” “자고 가는 건 어렵지 않은데, 밥을 해 믹일(먹일) 양 식이 없어서로 몬재어(재워) 보내겠다.” 쿤다 말이다. “그럼 이박만 한 자리 해 주모 내가 쌀로 서 말로 주꺼 마(줄께).” [청중:잘 됐다] 쌀 서 말로 내라(내려) 놓고, 저 들에 저 나간께네, 바리(바로) 어데 참 냇가에 저런 데 어데 살던 기라(것이라). [고개를 기웃거 [298 쪽] 리며] 황새가 거웃거웃(기웃기웃)하고 걸어온단 말이 다. 황새, 황새, 두루미 아이요(아니요)? 걸어서 더덕더 덕, 거웃거웃 이래 쌓거둥. 인자 고동(고둥)이 해나(행 여나) 있는가 싶어서. 그란께 인자 그만 이박이 없어서 저사람도, “황새가 성금성금(성큼성큼) 걸어 오는구나.” 이걸 이박이라고 좋아서 이 영감이 당신도 따라서로 마, “황새가 성금성금 걸어 들오는구나.” “거웃거웃하는구나.” 또, 이 영감(이야기를 사러 간 영감)도 이박이라고, “거웃거웃하는구나.” “꾸욱 찝는구나.” [청중:웃음] 또 이 영감도 따라서 또 그란다(그런다). “찝어 달리는구나.” 인자 묵는단 말이제. 그란께 또 이 영감도 또 그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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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여, 임 갑랑 조사, 정택환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8집 5책 [ 경상남도 거창군 거 창읍 설화 76], <쌀 한 알이 황 소 된 이야 기>

인자 마, 안 하는 짓은 안 한단 말입니더. 그 황새를 보 고 저 영감(황새를 보고 이야기를 꾸민 영감)은 하(하 도) 얘기가 없어서 그 소리 했는데, 이 영감(이야기를 사러 간 영감)은 그것을 딱 사 갖고, 쌀 서 말 주어서 르, 좋아서 죽겄다. 어찌 좋은지 집으로 온단 말이지. [청중:웃음] “[궁금한 듯이] 아이고, 영감 이박 사가(사서) 오요?” “이박 사 왔다. 밥을 일찍이 하게. 저녁 일찍 묵고 우리 이박하고로(하게).” 그래서, 인자 저녁밥을 묵고. 집이 외딸던갑데(외따로이 던가 보데) 그 사는…. 저녁밥을 묵고 인자 이박을 할라 꼬(하려고) 불로(을) 써(켜) 놓고 인자 있은께(있으니 까), 도둑놈이, 화적이 인자 그 날 저녁에, 그 집에 떨 로(털러), 인자 사람 직이고(죽이고) 떨로 들온단 말입 니다. 방에서 그 영감 [299 쪽] 이 인자 이박을 한다. “성금성금 걸어 들어오는구나.” [청중:웃음] “찌웃찌웃 하는구나.” 똑, 제 하는 형상을 한단 말입니더. 도둑놈이. [청중:도 둑놈이 제 하는모습?] 응, 응, 제 하는 형상을 똑 말로 한다. “꾸욱 찝어 달리는구나.” 그래서 그만 도독놈이 [청중:제 보고 하는 줄….] 도독 질도 몬 하고 사람도 몬 직이고, ‘아이구, 천기를 마 보 는데 도독질을 할 수가 없다.’고 집에 가. 쌀 서 말로 갖고 그 화적을 막더랍니다. [일동:웃음]. 한 사람이 참 아들을 삼형제 돘는데, 미(묘)는 다 보고, 살림을 맡길 아들이 시원찮아. 그래서 미늘(며느리) 셋 을 불러다 놓고, 쌀을 한 알, 냇기로(낱개로) 주면서, “내가 환갑이 되면 이것으로 무엇을 하라.”(작은 쌀알 한 낱으로 무슨 큰 표적을 할까보냐 하는 생각이 있어 서) 하니, 큰며누리가 받아서 가주고 나오다가 버릿부고(버 리고), 다음 며누리도 “내가 진갑 때 한 가지 무슨 표적을 하라.” 하니, 나오다가 버릿부거든. 작은 며느리가 받아가지고 나와서, 집에 와서 앉아서 보니 여울간에서 새가 날아와서 앉았다 날았다 하거든. ‘애라 돟(덫)을 나아 새를 잡아야겠다.’ 쌀을 놓아 돛을 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그러구로 새가 한 마 [346 쪽] 리 잡혀서, 아기가 실을 매어 놀고 있거든. 이웃에 할마시가 와서 그 새를 병에 좋다고 일전 주고 돌라 하거든. 그래서 일전 받고 팔았다. 일전 주고, 팔 아가지고 할 것이 없어. 그래서 그때쯤은 일전 주고 삐 가리(병아리) 한 마리는 살 수가 있어. 그래 삐가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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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풍 조 사, 엄병주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2집 8책 [강원도 영 월군 영월 읍 설화 84], <콩 그림의 뜻 을 알아 낸 며느리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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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풍, 유 기태 조사, 김금자 구

에 가서 사서 키우니 잘 커거든. 그래 알을 자꾸 놓는 걸. 이십 마리가 잘 커. 열 마리 파니 송아지를 한 바리 사겠거든. 서서 키우는데 진갑이 닥치거든. 송아지를 몰 고 슬슬 들어가니, “야야 송아지를 왜 몰고 오니?” “내가 아버님이 주신 쌀 한 냇기로 새를 잡아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니, “니가 내 살림을 지닐 수 있구나.” 해서 맡겼단다. 한 사람이 며느리를 봤네, 영감이 며느리를 보지, 며느 리를 봤는데 농사를 잘 못 졌어. 어, 며느리를 봤는데 농사를 잘 못 졌어. 콩을 아주 못했어. 그래 사둔내 집 에, 며느리 친정에 가서 콩을 둬 말 얻어 와서 메주를 쑬라고 했어. 편지를 했어. 편지를 했는데, 한 모서리다 콩을 점을 둘을 찍고 보냈다 이기여. 사둔이 받아 보니 콩을 두말 달란 말이거든. 백지 종이에다 찍으며는 그 사둔이 콩지삼이는 했는데 돈이 아쉬워 팔아 먹고 메주 는 쒀야겠고 아, 봄에 거추(거의) 팔아 먹고 콩 줄께 사둔내 주고 딸내 줄께 없다 이기여. 백지 조가 너른데 콩 점을 두 개 찍었으니 작대기 내려 긋고서 또 찍었 어. 점을 답장을 했지. 아, 그 며느리 사둔이 받아 보니 콩을 준다드니 안 주 니 모른다 이기여. [428 쪽] 아무리 봐도 알 도리가 없어. 하, 두 늙은이가 큰 근심 을 하지. 사둔내 집에 우리 콩이 없어 콩 두 말 달라고 콩 둘을 찍어 보냈는데, 짝대기에 콩을 하나 더 찍어 보냈으니 모른다 이기여. 그래서, 자기 며느리가 그짝 사둔의 딸이지. “아버님, 아버님, 뭘 그러십니까?” “아유, 야야, 그 친가에다 콩을 두 말 달라고 내가 편지 를 했다.” “편지를 어떻게 했읍니까?” “콩을 두 갤 찍고 보냈다.” 그 며느리 하는 말이 즈 친정이지. 그러니까, “그 뭐, 어떻게 됐읍니까?” 하니까, “몰라, 그래 놓고 콩을 또 찍었다, 그 콩을 두 말 줄지 그건 모르겠다.” 이렇게 말해 며느리가, “콩 틀렸읍니다. 콩은 안 옵니다.” “그래, 어째 안 오느냐.” 이 콩을 둘을 찍어 늙었단 말이야. 콩 또 찍었어. ‘콩콩 조잘 콩 없다’ 그래는데…. 그전에요, 옛날에는 꼭 한 사람밖에 없어요. 그래, 인제 대감이 딸을 시집 놓을라고 생각을 하니요, 대감이 딸 이 하난데 대감질을 하면서도 평생에 콩죽만 쑤어 먹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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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2집 8책[강 원도 영월 군 영월군 영월읍 설 화 244], <콩죽 서 말 먹은 사 위>

대요, 콩죽만. 밥은 일절 아주 없고. 그래서, 딸은 과년 [849 쪽] 차니깐 놓아야 할 판이니 그래 가만 평상(평생)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콩죽 밖에 먹을 줄을 모르니요. 그래 서, 밥을 해 먹으면 대감질을 못하겠거든. 그래서, 그분 이 딸을 놓으라고 생각을 하니 아주 간판에 써 붙였단 말이야. “콩죽 서 말을 먹는 사람이래야 내 사위 자격이 되지, 콩죽 서 말 못먹는 사람이 내 사위 될 자격이 안 된다.” 이렇게 간판을 써 붙여 놨단 말이야. 그런데, 수 천명이 드나 들었으나 그 집에서 콩죽 서 말을 먹어낼 장사가 없더란 말입니다, 콩죽 서 말을. 어느 세월에 다 먹어 그걸. 그래서, 오래, 있다가 보니까 참, 간판을 써 붙이 고 그래 있다 보니, 어느 총각이 하나 들어 오더니 짐 을 갖다 벗어 제치더니 대감 앞에 와서, “이 집에 콩죽 서 말을 먹는 사람이면 이 집 사위 자격 이 된다죠. 그래서 제가 먹겠읍니다.” 그래서, 종들을 시켜서 콩죽을 쏘라 이랬단 말이야. 그 래서, 콩죽을 서말을 쒀가지고서는 마당에다가 멍석을 깔고요, 옛날 질동이 있지요. 거기다 반반 말 가웃 딱 덜어서 양쪽에 놓고서 앉아서 다 먹었어. 그래서, 이 분 이 책상 다리를 착하고 들어 앉더니만 그 집의 대감의 사우질을 할랴구 말이야. 이 쪽으로 되 보고 저 쪽으로 되 보고 자꾸 동이만 끌거 먹는기야. 이 쪽으로 자꾸 되 보면서 그러니 그 끌거 먹는 시간은 배가 안 불러 요. 닷 말을 먹는 데도 배가 안 불러요, 자꾸 되며는. 그래가지고서는, “서 말을 다 먹었는데, 더 먹어야 되겠읍니다.” 이래. “아, 이제 그만 먹어도 장개 갈 자격이 있다.” 고. 장개 갈 자격이 된다고 했으니 허락이 다 된 것이 아닙니까? 세 말을 다 먹고 더 먹는다 했으니까. 그래 서, 이 사람이 그 결혼식을 하는데요. 그래서, 궁리를 했대요. ‘이놈의 집이 대감집을 하면서는 주야로 콩죽을 쑤어 먹으니까, 내가 결혼을 하되 처가집에 와도 콩죽 을 또 쑤어 줄 것이다. 이래니, 어떻게 버릇을 가르키느 냐’하여간 궁리를 했죠. [850 쪽] 그래서, 결혼날이 다가오는데 찰떡을 이 만큼씩 해가지 고요, 간난애기들 똥 누는 것처럼 해가지고 요렇게 찰 떡을 이 만큼씩 해가지고 꿀에다 담아가지고, 그래서 꿀에다 담궜다가 또 밀가루를 묻히고 꿀에 담궜다가 노 랗게 콩가루, 노란 콩가루가 있잖읍니까? 고걸 묻히고 요걸 주머니에다 싸서 넣고 첫날밤에, 그래 버릇을 가 르칠라니 착 잡아야 버릇이 되거든요 그래서 자기는 잠 을 안 잤지, 총각이. 각시는 뭐, 가매를 타 오니 얼마나 된고(피곤한다). 그래 얼마나 자다가 한 밤중 돼서 벌 떡 일어나서 각시를 흔들어 깨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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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디 쿤내(구른내)가 나니 자네가 오늘 시집 을 오느라고 되서 똥 싼게 아닌가.” 말이야. 각시가 자다 말고 정신 없이 벌떡 일어나가지 고서는 있으니, “자네, 그 옷 좀 흔들어 보라.” 고. 고 놈의 신랑이 각시의 옷 속에다 넣었단 말이야, 속옷 가리에다. 넣으니 흔들으니 그게 우르르 쏟아진단 얘기지. 그러니, 노란 기 정말 똥 같지. 이러니, “자네, 첫날 저녁에 똥을 쌌으니 이것 챙피해서 어떡하 느냐?” 이거여. “우리 시가에서 알기만 하면 자제 시집살이 못하고 쫓 겨 가네.” 이말이야. 꼬박 서박(소박) 맞는다 이말이야. “그래, 내가 첫날 저녁이니 내가 다 먹는다” 이말이야. 신랑이 다 주서(주워) 먹었거든. 다 먹고서, [청중: 또 먹어요. 지금도 먹는지 모르지.]그런데, 다 먹었는데 그래 신랑이 재앙양을 가는데, 새콩알 그 봉 다리에 조금 싸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타 먹는 것 있잖 읍니까? 그래, 타 먹는데, 그놈을 찬물에다 타 먹고서 두러 누워 자니 얼마나 배가 아플 것이오. 그렇지오. 설사가 막 나 는 거지요. 고만 같이 자다 보니 신랑이 고만 막 똥을 싸 놓고 이래니 큰일 났거든. 각시를 가만 깨 [851 쪽] 워서, “자네도 첫날 저녁에 시집을 와가지고 똥 싼 것은 내가 아무도 모르게 내가 다 먹었는데 자네도 온 저녁에 다 먹어야 되네.” 참, 가만 생각해 보니 기가 맥히거든요. “자네가 다 못 먹겠으면 남이 알면 챙피하잖나 이거.” 왜 난 첫날 자네 똥 산 거를 먹었는데 자네는 왜 안 먹 느냐 이거여. 생각을 하니 기가 맥혀. 자기가 조금 먹어 보니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 신랑이 그래 놓고 보니 속 으로 얼마나 우습겠어. 그래, 이걸 아버지 다 불러서 다 먹여라 이말이여. 이러니 각시가 나가 이런 사연을 얘 기했네. “제가 시집을 와가지고 남편이 똥 싸는 줄도 모르고 첫 날 저녁에 똥 싸 가지고 아뭇 소리도 안하고 다 먹었는 데 엄마, 오늘 저녁에 똥을 쌌는데 그걸 다 먹으라 하 니 엄마 어떡해야 되나.” 고. 엄마한테 얘기를 했죠. 그래, 얘기를 하니 엄마, 아 버지가 나와가지고 그리고 딸이 똥 싼 것을 신랑 사위 가 다 먹었다는데 자기 식구가 지체없이 다 먹어야 되 거든. 그래서, 엄마, 아버지가 나와서 좀 먹어 보니 냄 새가 얼마나 납니까. “아이구, 이 사람아 내 다시는 콩죽을 안 쒀 줄 테니까 아이구, 다시는 콩죽을 안 쒀 줄 테니까 다시는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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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김우진/이경 엽/ 김혜정 조사, 조공 례 구연, 진도군 의 신면[ 경상 남도 지산 면 민요 2], 고사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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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박계흥/황인 덕 조사, 김 정형 구연, [이인면 민 요 1], 시집 살이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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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류종목, 김 현수, 성재 옥 조사, 전 갑순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8집 11 책 [경상남 도 의령군 봉수면 민 요 10], 김 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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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강문순, 이 수자 조사, 김근식 구 연, 한국구

먹으란 소릴 하지 말게. 다시는 콩죽을 안 쓸 테니.” [일동: 웃음] 껑자//껑자//고사리 대사리// 껑자//유자꽁꽁//재미나 난다// 아장장장//벌이여 껑자// 껑자//망부 대사리//껑자// 송쿠껑꺼//웃집엱고//대 산이나//넘자 껑자//껑자//고사리 대사리// 껑자//고사리 껑꺼//바구리담고// 아 산이나//넘자 강강술래//강강술래 술래술래 강강술래//강강술래 비야 비야//오지마라//우리 사촌 성님//시집간다 아봐복색//무소가이면//공단 댕기//얼룩지고//비단 치만 //얼룩진다. 성님 성님//사촌 성님//시집살이//워떠터노 야야야야//그말마라//고추밭이 매울소냐//부경어서//핫동 매//끼고서 모라더라//여치고 노소//영지국이//가이키고세 모라더라//동생일랑//가지마소//가는 낫도//고생이요 부모 밑이//부간무할빈//시집 갈땡//조리마러 미나리짐치 담아마(담그면) 미생이가(미생이, 돈생이, 쑥새, 쪼생이 등은 모두 새의 이름이라고 하나 어떤 샌지 확실하지 않다.) 다묵고 돈나물 김치 담아마 돈생이가 다묵고 쑥짐치 담은 께 쑥새가 다묵고 [제보자 : 또 배치 짐치(배추 김치) 담은께 뭐이 다 묵 는다 쿠더라? 내 및(몇) 가지밲이(밖에) 모른다. 쪼생 이가 다 묵고.] [조사자 : 쪼생이?] [제보자 : 응, 쪼.] 쪼가리짐치 담아서 쪼생이가 다묵고 [제보자 : 잊어뿌리(잊어부려) 그거. 및 가지….] [청중 : 잊어뿌리서 몬 해.] 안덜미 던덜미 씨러진 골로 뒷집에 김도령 꼴비러 가세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재기 나중이 맛만 같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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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msu_545 5&uu20no=044 0_21_5455

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0916 &uu20no=Q_09 16_1_M_004

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2403 &uu20no=Q_24 03_1_1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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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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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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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비문학대계 2집 7책 [강원도-횡 성군 서원 면 민요 7], < 나물 노 래> 김승찬, 김 석임 조사, 조흥순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6집 3책 [ 전라남도 고흥군 점 암면 민요 2], <나물 캐기 노래>

강은해 조 사. 배상철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7집 4책, [ 경상북도 성주군 대 가면 민요 202], < 약 나물캐는 노래>

최정여, 박 종섭 조사, 이선이 구 연, 한국구

그것만 뜯어 먹어두 봄살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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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드레(고려엉겅퀴) 만드레 씨러진 골로 우리야 삼동세 봄나물 가세 [제보자:아 이거 멋적어서.] 철산절정 높은 봉에 절로돋은 가랜취(취나물), 산나물야 어느 신선이 가꾸더냐 신선이가 안가꾸고 앤개(안개구름) 자진골에 [591 쪽] 찬술(찬이슬) 묵고서 내가 컸네 헤에이 황해도라 봉산 구월산 밑에 주치 캐는 저 아가야 너의 집은 어데인데 날 저물도록 주치 캐노 남의 집을 아실라커든 삼신산 안개속에 초가삼간이 나의 집이요 오실라면 오시고 가실라면 가시오 몸은 비록 화류곌망정 절개조차 없실소냐 아들맥이(아들처럼 즉 작은 풀) 가는 탈에 싸라진(쓰러진) 골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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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1676 &uu20no=Q_16 76_2_11A

http://yoksa. aks.ac.kr/jsp/ uu/VolView.j sp?uu10no=t


비문학대계 8집 5책 [ 경상남도 거창군 웅 양면 민요 35], <나물 뜯기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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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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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고사 리)

정상박, 김 현수, 성재 옥 조사, 허 갑녀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8집 10 책 [경상남 도 의령군 의령읍 민 요 21], <나물 불리 는 노래> 천혜숙, 임 갑랑 조사, 정채봉 구 연, 한국구 비문학대계 7집 8책 [화서면 민 요 13], <고사리 노 래>

나물이나 나거던 뜯어로 가세 나물랑 뜯어서 강으리(소쿠리) 담고 날나래미(억새) 꺾어서 바지게 담세 나물랑 삶아서 둘이 묵고 [759 쪽] 날나래미 때연방에 단둘이 자세 당산네 할맘(堂山 할머니)네 작기도 말고 많이도 말고 요 소쿠리 종꽁 눌리(꽁꽁 눌러서) 두 소쿠리만 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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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 꺾으로 올라가니 올라가미 올고사리 니리오민 늦고사리 줌줌이 뜯어서 가락지담욱에 담았네 집이라고 찾아오니 우경천지 가신낭군 오싰구나 반갑기도 반가웨 고사리나물을 따듬아서 새발겉은(샛별같은) 동솥에 다밀찦겉은 해장작에(햇장작에) 말패겉은 전장물에(묵은 장물에) 오복조복 뽂아놓고

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1792 &uu20no=Q_17 92_1_0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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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2359 &uu20no=Q_23 59_1_1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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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여, 박 종섭, 임갑 랑 조사, 정 을순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8집 6책 [ 경상남도 거창군 북 상면 민요 9], <닭노 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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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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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권오경 조 사, 김순달 구연, 경상 북도 군위 군 우보면 우보2, 도라 지타령 류종목, 신 창환 조사, 김봉금 구 연, 한국구

허연전(하얀) 니밥에다가(쌀밥에다가) 유동팥을 던지서 밥을 해서 낭군님을 채리주고 술을 한잔 [1071 쪽] 동배주를(동백주(冬栢酒)를) 받어다가놓고요 임오임오 잡수시오 마누라 잡수시오 서로서로 희롱하다 날이 샜읍니다 [제보자 : 다 했읍니데이.] 닭아닭아 쟁피닭아 쟁피호장 접저구리 학실비단 짓을 달아 자지고름 살폰달아 낱낱이라 흔친곡석 씨없이라 다주묵고 은꼭지에 은꽃피고 노꼭지에 노꽃피고 뒤안에를 돌아가니 술에미는 술거르고 물에미는 세간살고 미븐놈은 퉁수불고 [“그래.” 하면서 웃고 끝맺는다.] 한두 뿌리만 캐여도 대감님 반찬이 철이철철 넘네 에헤 이요 데헤이요

[말] 전에는 보이까네 마당아다가 이래 턱 보리로 뭣이 놓고 그래 도리깨로가 이래 이라대요. [노래] 여루여루 홍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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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2215 &uu20no=Q_22 15_1_09A

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1686 &uu20no=Q_16 86_1_08A 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2645


비문학대계 8집 12책 [ 경상남도 울주군 강 동면 민요 23], <보리 타작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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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

김승찬, 강 덕희 조사, 서대아지 구연, 한국 구비문학대 계 8집 14 책 [경상남 도 하동군 악양면 민 요 19], <콩잎따기 노래>

여게쳐라 홍해여 깨구리겉이 뛰는보리 여루여루 홍해여 물라쳐라 홍해여 [409 쪽] 디리쳐라 홍해여 봉호재에 비묻았다 물라쳐라 디리쳐라 여루여루 홍해여 밭너르고(녹음 안된 부분) 사래진밭 콩잎따는 저처녀야 네 그리 곱게도 생깄느냐 어따 총각 그말 말아 나를 보고 곱다허요 우러 집이 우리성(형, 언니를 뜻함)은 날보담도 더 곱다요 우리 성을 못 보거든 샘이뚱천(둑) 복송꽃을 보고나 가소 복송꽃은 가지 높아서 몬꺾건네(못 꺾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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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oksa.ak s.ac.kr/jsp/uu/ VolView.jsp?uu 10no=tsu_2615 &uu20no=Q_26 15_1_01A


2) 추가제안 개발물 (1) 웹툰 ① 이야기로 요리하는 한식 (스토리텔링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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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캐릭터

대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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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아조리사(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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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놉시스 ① 인조반정(仁祖反正)의 비화(秘話) ▮원천 자료 : ㉠이긍익,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광해군을 안치하다> ▮갈래 : 역사교양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 분할형 ▮스토리텔링 방법 : 김개시에 관련된 원천 자료에서 김개시 부분만을 분할하고, 다른 역사자료를 추 가하여 인조반정의 숨은 내막을 소개하는 스토리로 개작

인조반정이 일어난 날 상궁인 김개시의 목을 베었다. 김개시는 낙산 중턱의 정업원에서 태연히 불 공을 드리던 중에 반정 소식을 듣고는 민가에 숨어 있다가 반정군의 수색에 사로잡혀 현장에서 즉결 처분되었다. 김개시는 한미한 선비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나 개똥이로 불렸다. 얼굴은 못생겼지만 어릴 때부터 총명하였다. 가난한 집안에 도움을 주고자 스스로 궁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김개시가 세자궁의 시녀였을때, 세자 광해가 우연히 보고 잠자리를 갖게 되어 상궁의 직첩을 받았 다. 미모가 없는 김개시가 광해를 모시자 사람들은 어떤 숨겨진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김상궁이 세자 광해와 가까워지자 세자빈과는 당연히 사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자빈 박씨 는 처음에 김상궁을 돌봐주고, 김상궁도 여러 가지로 세자빈이 궁중에 적응할 수 있는 계책을 세워 주던 사이였지만 세자를 중심으로 드디어 반대편에 서게 된 것이다. 세자빈 박씨가 궁에 들어올 때 이이첨이 조국필(趙國弼)과 은밀히 왕에게 아뢰어 선발했다. 박씨가 세자빈이 되자 친정할아비인 박승종과 친정아비 박자흥이 왕에게 총애를 받게 되었다. 두 사람은 더 나아가 유희분(柳希奮)과 더불어 세력을 끼고 이이첨을 견제하게 되었다. 이이첨은 배척을 받자 원한을 품고 박씨 집안을 무너뜨리고자 하였다. 그가 생각해낸 것은 세자빈 과 대립하던 김상궁에게 접근하는 방법뿐이었다. 이 방법의 하나로 제일 먼저 김상궁의 아비와 친분 을 맺는 데 성공하였다. 드디어 김상궁과 연결된 이이첨은 김상궁을 통해 왕의 의중을 항상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최고 권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선조 임금은 왕통을 누구에게 전할지 결정하지 못한채 병석에 누워 있었다. 잠시 병이 나았을 때, 김상궁은 약밥에 독을 넣어 광해로 하여금 올리게 하였다. 사람들이 세자를 의심했으나 권신들의 도 움으로 광해는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광해가 임금이 된 후, 권력을 잡은 대북파의 전횡에 불만을 품던 소북파는 은밀하게 모임을 갖고 정권을 무너뜨릴 방책을 세우게 되었다. 그중의 하나가 광해군의 귀와 눈을 가리는 방법이었다. 김상궁은 양아들인 정몽필을 통해 궁궐 밖의 민심 동향을 항상 파악하고 있었다. 한 밤중에 궐밖 을 나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동이 트기 전에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이러한 김상궁의 행동에 주 목한 것은 사돈 관계였던 이귀와 김자점이었다. 이귀는 김자점의 동생 자겸(自兼)의 아내였던 자신의 딸을 통해 김상궁을 매수하는 계획에 착수한다. 이씨는 일찍 과부가 된 후에 정조를 잃고 절간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간음한 일이 발각되어 심문을 당하게 되었다. 그녀는 광해군에게 청하여 궐밖 자수궁(慈壽宮)에 거처하게 되었는데, 자수궁은 앞으 로 새로운 왕이 나타날 곳이라는 전설 때문에 광해군이 두려워하여 절을 짓고 여승들을 거처하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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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곳이었다. 이씨는 궁중에 출입하며 인심을 얻고 대궐 안 사람들로부터 모두 생불(生佛)이라 일컬 어졌다. 이씨는 더 나아가 김상궁과 사귀어 모녀 간을 맺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항상 말하기를, “아버 지 이귀와 시숙인 자점의 충성을 불행하게도 대북(大北)이 질시하여 항상 모해를 받는다”고 하소연 하였다. 이씨가 김상궁을 비롯한 다른 궁인들에게까지 수많은 뇌물을 바치게 되자 모든 궁인들이 기뻐하여 모두 자점을 좋은 인물로 알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김자점을 비판하는 상소가 광해군에게 올라와도 김상궁의 말하기를 “김자점은 지극히 충성스런 사람이며, 더구나 한미한 선비에 불과한데 무슨 권력이 있어서 다른 모의를 할 것입니까.” 하니 광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상궁은 한미한 처지에서 궁녀가 되어 왕의 총애를 받는 상궁이 되었으나, 지나친 권력욕과 뇌물 로 인해 반정군의 계략에 넘어가고 만 것이었다.

② 약밥 살인사건 ▮원천 자료 : ㉠이긍익,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광해군을 안치하다>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 조합형 ▮스토리텔링 방법 : 김개시에 관련된 원천 자료와 창작된 현대 부분을 조합하여 과거와 현대를 오가 는 스토리로 개작

선조는 평소 약밥을 즐겨먹었다.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약밥은 거르지 않을 정도였는데, 선조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던 날 세자빈 유씨는 황급히 선조의 침소로 달려가 왕이 침소를 들기 전 먹던 다 과상의 약밥을 들지 말 것을 당부하는데…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인목대비가 폐대비되고 임해군과 영창군 등 친인척이 죽음을 당하 는 살육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선조를 독살한 김개시는 이를 눈치 챈 왕비 유씨를 죽이려 한다. 김개시의 음모로 김제남 일파로 몰려 죽음을 당할 상황에 몰리게 되지만 광해군의 도움으로 몰래 형 장을 빠져나와 도망을 치게 된다.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형장을 도망쳐 나온 유씨는 추쇄꾼에 몰려 그만 낭떠러지에 떨어지고 마는 데... 현대, 평소 약밥을 즐겨먹는 아버지 덕분에 매일 퇴근길에 떡집을 들려 약밥을 사가는 광희(광해군)는 중 소기업의 대표다. 오랜 지병으로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 때문에 결혼도 미루고 있다. 오래전부터 사귄 지영(김개시)은 얼마 전부터 아버지를 요양원에 보내고 결혼을 하자고 조르는 중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가 병석에 누우면서 아버 지 회사에 회장권한대행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엄연히 아버지의 회사이기 때문이 다. 광희네 집 앞마당에 왕비 유씨가 떨어진 것은 때 아닌 천둥 비바람이 내리치던 순간이었다. 서재 - 205 -


에 책을 읽다가 놀란 광희는 뛰어나오고 첫눈에 유씨는 광희가 자신의 남편임을 알게 된다. 선조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현대로 넘어간 왕비 유씨가 현대를 사는 조선시대의 후신들을 만나 사 건의 진상을 알게 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만, 선조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고, 선조 역시 자신의 독살 음모를 알고 있으면서도 아들인 광해군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을 지 켜보게 된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김개시는 궁중 일을 마음대로 했다. 바깥에서는 이이첨(李爾瞻)이 조정 일을 천단하여 둘이 안팎으로 호응해 온갖 행패를 자행했다. 궁녀들이 김개시에게 뇌물을 바쳐 야만 왕의 침소에 갈 수가 있었고, 광해군도 이 지시대로 해야만 했다. 한 번은 광해군이 김개시를 데리고 침소로 가니, 상궁 박씨가 땅에 주저앉아 부당함을 호소하여 왕이 부끄러워했다. 광해군이 김개시의 말을 듣지 않으면 김개시는, “왕은 나의 은혜를 잊었느냐? 내가 입을 열면 왕의 자리가 무 사할 것 같으냐?” 하면서 협박했는데, 왕은 이 말에 두려워했다. 김개시는 교활하고 미천한 정몽필(鄭夢弼)을 양자로 삼아, 외부에서 뇌물 받기와 백성들 재물 수탈 의 일을 맡겼다, 김개시는 밤에 정몽필의 거처에 드나들어 음란한 짓을 했고, 또 윤소의(尹昭儀)를 정몽필에게 소개해 추문이 일기도 했다. 그 후 왕비 유씨는 김개시의 음모를 만천하에 밝혀내고 김개시를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지 만, 이미 광해군과 김개시의 폭정과 수탈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날로 원성이 높아가고 군신들이 작당 하여 반정을 일으켜 인조를 즉위시키게 된다.

③ 아내의 기도 ▮원천 자료 : ㉠청구야담(靑邱野談) 김 135 <광해조 재상 사위(光海朝宰相女壻)>, ㉡성수패설(醒睡稗 說) 24 <계란 겹쳐 세우기(卵上加卵)>, ㉢차산필담(此山筆談) 323 <김번 부부(金璠夫婦)> ▮갈래 :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 조합형 ▮스토리텔링 방법 : ㉠홀대받는 사위 이야기, ㉡불가능한 소원, ㉢지혜로운 아내와 착한 남편 등 서 로 다른 3편의 원천 소재들을 조합하여, 광해군 때의 정치적 억압과 극복을 주제로 스토리를 재창 작

광해군 때 대북파(大北派)의 한 재상이 권력이 강했고, 아들 또한 승선(承宣) 자리에 있었다. 그러 나 그 사위인 김 선비는 가난하고 무능해 처가에 의지하고 살았다. 처가의 장인과 장모, 그리고 처 남과 모든 종들까지 그를 멸시했다. 모두들 고량진미로 음식을 잘해 먹으면서 김 선비에게는 채소에 썰렁한 상을 올렸다. 그러나 그 아내는 극진히 남편을 보살피고 음식을 챙겨드렸다. 김 선비는 항상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돌아오는데, 아내는 부모의 꾸중을 들으면서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가 몰래 뒷문으로 데리고 들어오곤 했다. 하루는 그의 아내가 부모에게 야단을 맞고 나서도, 자신은 남편을 존경하며 언젠가는 높은 자리에 오를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혹시 계란 위에 계란이 겹쳐 서게 되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전에는 어림도 없을 걸”이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내는 마음이 상해서 울며 밖에 나가 숨어 있다가 남편을 기다려 함께 귀가했다. 이때 여자 종이 밥상을 차려왔다. 밥상에는 닭다리가 놓 여 있는데, 아내는 그 닭다리를 먹지 말라고 했다. 낮에 닭을 잡아 삶았는데, 고양이가 물고 가 다 - 206 -


먹고, 헛간에 한 다리만 남은 것을 어머니가 김 서방 주라고 했으니, 그 더러운 곳에 있던 것이라 했다. 이 얘기를 들은 김선비는 장모가 주는 것인데 먹어야 한다면서 맛있게 먹었다. 이후로 아내는 매일 상 위에 계란 두 개를 올려놓고, “계란이여 겹쳐서 주십시오.” 하고 수없이 빈 다음에 계란을 포개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굴러 떨어지면 또 빌고 하여, 이 일을 매일 계속했다. 처가 식구들과 종들은 이런 아내를 비웃었다. 김 선비는 그런 모습을 안타까이 지켜보기만 하였다. 그러던 김 선비가 며칠 간 집을 비우는 일이 생겼다. 아내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며칠 밤을 지새 웠다. 집에 돌아온 선비에게 아내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지만 스스로 고백하기를, 실은 평양감사로 있는 친구에게 돈을 빌리러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임진강에서 딱한 사람을 만난 이야기도 들려주 었다. 한 부부가 붙잡고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했다. 그가 이들을 말리고 까닭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의 동생이 개성에 바치는 상납전을 끌어서 소금장사를 했는데, 두 차례에 걸쳐 장 마를 만나 소금이 다 녹아 7천 냥의 빚을 지고 죽고 말았다. 이 돈을 형인 자기가 갚아야 하는데, 갚을 돈은 없고 내일이 기한이니 잡혀서 목숨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자살하려 한다는 설명 이었다. 사정을 들은 선비는 돈을 주지 않고 오려니 가슴이 아파서 빌린 돈을 다 주고 왔으니, 부인 에게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아내는 오히려 선비를 격려했다. 돈이 없어 자살하는 사람을 보고 돈을 갖고도 구제하지 않는 사람이 남편이라면 차라리 자살하겠다고 했다. 김 선비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김 선비는 밤중에 집을 나가면서 아내에게 은밀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종칠 무렵 놓은 데 올라가 궁궐 근처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릴 텐데, 그 소리가 오래도록 계속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결하고, 그 소리가 곧 진정되면 잘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아내 는 이유도 묻지 않고 남편의 말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밤중에 뒤편 높은 데에 올라가 바라보니 사람들의 소란한 소리가 들리고, 간간이 불빛이 치솟고 하더니 얼마 후 잠잠해졌다. 이날 밤 부친과 오빠는 모두 숙직으로 궁중에 나가고 없었다. 아침에 여자 종이 대감 아침밥을 싸서 대궐 쪽으로 가니 군인들이 막아 못 들어가게 했다. 아무 대감 집 종이라고 말하니, 더 내쫒고 때리고 했다. 종의 얘기를 들은 모친은 아마도 김 서방이 말썽 을 부린 것 같다고 하면서 일꾼을 시켜 자세히 알아보라고 했다. 일꾼이 가서 알아보니 밤새 임금이 쫓겨나고 새 임금이 들어섰고, 대감과 도령님이 잡혀 문초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김 서방이 높은 자리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모친이 믿지 않고 다시 가서 알아보라고 해, 갔다 온 일꾼은 김 서방이 이조판서에 어영대장 등 여러 관직을 겸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대감 과 도령님은 매를 맞아 몸이 다 부서졌다는 얘기도 했다. 모친은 딸에게 그 동안 김 서방을 잘못 대접한 것에 대해 사과하고, 부친과 오빠를 살리라고 부탁 했다. 곧 아내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남편에게 전했다. 편지를 받아본 김 선비는 이튿날 임금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죄를 청하면서 장인의 관대한 처분을 간청했다. 이렇게 해 장인은 죽음을 면하고 귀양을 가게 되었다.

④ 잔꾀 부리기의 명수들 ▮원천 자료 : ㉠어수신화(禦睡新話) 28 <백문선(白文先)>, ㉡태평한화(太平閑話) 고금소총본(古今笑 叢本) 44 <김가칙(金可則)>, ㉢계서야담(溪西野譚) 300 <제주 목사(濟州牧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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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 : 만화 ▮스토리텔링 유형 : 옴니버스형 ▮스토리텔링 방법 : ㉠비밀 도축자, ㉡기생에게 속은 김가측, ㉢제주목사가 된 무인 등 3편의 서로 다른 원천 자료를 옴니버스형으로 연결하여, 입담 좋은 전기수가 청중을 앞에 놓고 구연하는 스토 리로 재구성

어느 날 전기수 하나가 저잣거리에서 이야기책을 읽어주고 마을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그 이야기 를 듣고 있다. 제1화 : 비밀 도축(屠畜)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관청의 단속반이 그 집 근처에서 고기 운반하는 것을 잡 으려고 숨어 있었다. 비밀 도축자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도감포수(都監砲手)로 있는 백문선에게 가 서, "우리 집 근처 단속 관리를 피할 수 있게 해주면 많은 고기로 사례하겠다."하고 간청했다. 이에 백문선이 이 집에 가서 술지게미를 유지(油紙)에 잘 싸서 겨드랑이에 끼고 대문을 나서서 두리번거 리다가 곧바로 달렸다. 그러자 숨어 있던 단속 관리들이 붙잡으려고 쫒아오는데, 백문선은 계속 달 려서 남대문 밖 반송지(盤松池) 못을 몇 바퀴 돈 다음에 얼음을 밟고 못 가운데 섬으로 들어갔다. 단 속 관리들이 나오라고 소리 치다가 섬으로 들어가서 잡아 보니, 가지고 있는 것이 술지게미였다. 단 속 관리들이, "고기가 아닌데 왜 도망했느냐?"하고 물으니, 백문선은 "술을 금하는 관리인 줄 알고 도망했다."라고 대답하고는 유유히 떠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비밀 도축자는 고기를 모두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옮겼다. 사람들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숨죽여 듣다가 음모의 전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전기수는 다음에는 남녀 간의 애정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제2화 : 별시위(別侍衛)에 소속된 김가칙은 한 기생을 사랑해 정이 깊었다. 하루는 기생과 술상을 앞에 놓 고 술을 마시는데 기생이 말하기를, “양반집 자제들은 기름진 안주를 안 먹고 주로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더라.”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김가칙은 “속살이 쪄서 자연히 그렇지.”라고 말하고, 자기 도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술안주로 먹었다. 그리고 기생이 많은 술을 권하니, 김가칙은 술이 취하면서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김가칙이 변소 에 가려니까 기생은, “양반집 자제들은 대변이 시원하게 안 나와 변소에 가 오래 있더라.” 하고 말 했다. 김가칙이 변소에 가서 일부러 오래 있다가 나오니, 그 사이에 기생은 모든 값진 물건을 다 훔 쳐 도망가고 없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웃어댔다. 이건 애정이야기가 아니라 첫 번째 이야기와 같이 잔꾀 를 부린 이야기였다. 전기수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것을 보고,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니 들어 보겠느냐고 했다. 사람들이 다음 이야기를 독촉하자, 그는 동전 몇 닢을 더 던져주어야 이야기를 시 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은 동전을 더 내어놓았다.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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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인이 궁궐 후원에서 왕을 모시고 있으면서, 마침 제주 목사 자리가 비었다는 보고를 엿들었 다. 무인이 “내 제주 목사가 되면 만고 제일 명관(名官)에 천하 제일의 이재(理財)를 할 수 있다.”고 소리쳤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안 되면 벌을 주기로 하고 무인을 제주 목사에 임명했다. 무인 은 떠나기 전, 보릿가루를 치자물에 담가 누렇게 뭉쳐 떡을 만들어 상자에 숨겨 갖고 갔다. 1년 동안 반주 외에는 술을 안 마시고, 또 어떤 재물도 안 받고 열심히 민정을 살피니, 백성들이 만고 제일의 청백리라고 칭송이 대단했다. 하루는 병이 났다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읍민이 몰려 와 증세를 일러 주면 약을 구해 오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몇 번을 사양하다가, 온몸에 단독이 올라 붉은 점이 솟았으니 우황(牛黃)을 발라야 낫는다고 말했다. 아전들이 “우황쯤은 제주도가 주산지니까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하고는 하루 사이에 수백 근을 구해 왔다. 곧 우황을 상자에 넣고, 갖고간 치자물 든 누런 떡을 몸에 발랐다가 밖에 내가 땅에 묻고는 독이 있다고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이것이 멀리서 보면 마치 우황덩이처럼 보였다. 며칠 후 병이 나았다 하고는 또 열심히 민정을 살피 니, 임기를 망치고 올라올 때에는 비석을 세워 찬양했다. 제주도 소는 10마리 중 8,9마리에 우황이 들어 있어서, 우황 구하기가 쉽다는 것을 미리 알고 준 비했었다. 무인은 서울에 와 그 우황을 팔아 수천만 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이야기에 감탄하였다. 몇몇은 동전을 더 내어놓고 그 자리를 떠났다.

⑤ 맛의 비밀 ▮원천 자료 : ㉠계서야담(溪西野譚) 59 <일승복(一升僕)>, ㉡차산필담(此山筆談) 333 <홍장이 딸(洪 長貳女)> ▮갈래 :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 조합형 ▮스토리텔링 방법 : ㉠대식가인 종, ㉡지혜로운 아내 등 2편의 서로 다른 원천자료에서 내용을 추출 하고 조합하여, 음식을 이용하여 출세하는 스토리로 재구성

어떤 마을에 새로 집을 지어 이사한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있었 다. 아내는 뿌듯한 마음으로 새 집을 둘러보고 있고 남편은 아내가 부탁한 이런저런 일들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이르길 “여보 10년 동안 당신이 열심히 일해서, 이제 우리가 친정에서 빌린 밭도 돌려주고 이렇게 새집도 지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라고 했다. 남편은 모든 것이 아내가 자기에게 시집 와 주어 시킨대로 한 덕분이니 앞으로도 아내의 뜻을 따르겠다고 말했다. 여자 종이 부엌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이삿짐 나르다가 쉬고 있는 일꾼들에게 갖다주니, 막걸리를 한 사발 마시며 한 일꾼이 말했다. “남자는 역시 여자를 잘 만나야 해. 나도 아씨 같은 여인을 만났 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일꾼이 “예끼, 말 조심하라”고 했다. 여자종이 궁금하여 일꾼에게 자기 주 인 부부에 대해 전후 사정을 물어보았다. 일꾼은 목소리를 낮추며 재미삼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 금은 큰 부자가 되었지만 자네 주인 양반은 말이야 원래 머슴 출신이었네. …” (이어지는 회상) 남편은 원래 마을의 한 주점에서 머슴으로 일하고 있었다. 아내는 근처에 사는 홍장이라는 부자의 딸로서, 스무 살이 넘도록 혼인할 생각을 않고 있었다. 하루는 아내가 부리던 여종이 수다를 떨면서 - 209 -


건너 주점의 머슴이 얼마나 많이 먹는지 하루에 한 되 곡식을 먹으며, 충분히 먹지 않으면 힘을 못 쓰고, 대신 배만 부르면 무슨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거뜬히 해내니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다. 어느 날 그 머슴이 쓰레기를 거두려고 왔다는 얘기를 들은 아내는 여종에게 시켜, 밥을 큰 그릇에 그득히 담고 닭 두 마리와 불고기, 국 한 사발 등 무리하게 많은 음 식을 차려 머슴에게 내어놓았다. 머슴은 군소리 없이 모든 그룻을 깨끗이 비우고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돌아갔다. 아내는 아버지에게 이제 시집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아버지는 크게 기뻐하며 대체 어 찌 그런 마음을 먹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아내는 시집은 가겠으나, 절대로 자신이 원하는 상대하고 만 혼인하겠다고 선언했다. 아버지는 마침내 딸이 마음을 정한 상대가 건너 주점의 머슴인 것을 알 고 실망했지만, 딸을 혼자 늙혀서 남들에게 망신당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머슴을 데려다가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성이 뭔가 물어보니 이씨라기에 이익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딸에게 장가들도 록 했다. 아내는 아버지에게 곡식이 잘 안 되는 밭 한 섬지기를 집터로 빌려주고, 매일 양식 한 되 씩과 약간의 가재도구만 부탁했다. 이익은 성실하게 일하여 그 터에 집을 짓고 아내를 데려다 살았다. 아내는 남편에게, 매일 길가에 널려있는 짐승 똥 한 삼태기와 땔나무 한 짐을 해오고, 짚신 한 켤레씩을 삼으라고 했다. 아내는 음 식 솜씨가 뛰어나 남편은 매일 만족하면서 아내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을 했다. 이렇게 해 집터 남은 부분에 거름을 잘 해 참깨를 심어서 친정에 값을 받고 제공하고, 나머지는 팔았다. 그리고 아 내는 열심히 길쌈을 해서 재산을 모으니, 10년 만에 큰 부자가 된 것이었다. (회상 끝) 새로 지은 이 집에 어느 날 낯선 두 사람이 들어왔으니, 바로 훈장이었다. 아내는 장래 계획에 대 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남편을 공부시키기로 결심했다. 훈장 한 사람은 남편을 가르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아들 둘을 가르치도록 했다. 날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해가 거듭하여 10년이 흘렀다. 어느덧 아이들도 청년으로 자랐다. 남편 이익은 그 동안 노력의 결실로 진사급제를 했다. 아내는 이제 남편의 옛날 머슴으로 있었던 그 이름을 면해야 한다고 했다. 곧, 태어난 지 4,5년 된 소 일곱 마리를 잡아, 네 마리의 고기는 계피·생강·마늘·참기름·간장 등에 절여 살짝 더운물에 데쳐 포를 만들고, 세 마리의 고기는 후추·꿀·궁궁(芎藭)이·겨자 등을 묻혀 소금에 절여 젓을 담가 준비했 다. 그러고는 남편과 같이 여자 종 둘만 데리고 서울 이이첨(李爾瞻) 집 뒷담 붙은 집을 사서 거주했 다. 남편은 매일 의관을 갖추고 외당에 나와 옛 성현들의 전적을 보고 앉아 있게 하고, 누가 와서 애기를 하면 경서에 관한 것은 대답하고, 조정 정치에 관한 것은 일절 모른다고 대답하라고 했다. 한 달쯤 지나니 이이첨 집 종이 아이를 업고 놀러 왔다. 아내는 다정하게 대하고, 마련해 두었던 그 쇠고기 포를 아이에게 주었다. 이 포를 아이가 갖고 갔는데, 이이첨 부인이 맛을 보니 생전 먹어 보지 못하던 진귀한 맛이 있었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맛을 보았으나 전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이첨 부인이 종을 시켜 그 포를 조금 나누어 달라 했다. 부인은 정중하게 인사말을 전하고 매일 약간씩을 올리겠다고 대답했다. 이이첨도 이 포를 먹어보고 감탄했다. 그 다음 아내는 쇠고지 젓을 새로이 이이첨 댁에 선보였다. 이이첨은 이 젓을 맛보고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진미라, 감탄했 다. 이이첨 부인이 또 여자 종을 보내 그 젓을 좀 나누어 달라 했다. 그래서 아내는 매일 그 젓을 조금씩 보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이첨 집 여종이 여느 때처럼 젓을 얻으러 왔으나 아내는 젓이 다 떨어졌다고 했 다. 빈손으로 돌아간 여종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다시 왔지만 아내는 젓을 주지 않았다.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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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이이첨 부인이 직접 찾아왔다. 남편이 그 젓을 먹지 못해 그만 병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이첨 부 인은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다시 그 젓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다시 며칠을 기다렸 다가 여종을 시켜 육포와 쇠고기 젓을 이이첨 댁에 보냈다. 며칠 후 어느 날 이이첨이 훌륭한 선비가 뒷집에 산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이익을 찾아왔다. 정중 히 인사하고 자리를 같이해 경서에 대한 얘기를 나누니 막히는 데가 없어 감탄했다. 이때 아내는 술 상을 차려 내오면서 그 육포와 쇠고기 젓을 술안주로 올려 보냈다. 이이첨이 이익을 비상한 사람이 라 생각하고, 이런 사람이 왜 관직에 추천되지 않았느냐고 의아해했다. 그래서 이이첨이 이익을 낭 침(郎寢)으로 추천했는데 불응하니, 다시 영시(令市)로 추천했다. 이익이 다시 불응하니, 다음은 남대 (南臺)로 추천해 왕의 부름을 받았다. 이익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관복을 입고 들어가 숙배하고, 그 런 다음에 선비 복장으로 바꾸어 입고 준비해 간 상소문을 읽었다. 그 내용은 이이첨이 붕당을 만들 어 나라 정치를 그르친다는 것이었다. 궁궐을 나온 이익 부부는 이날 밤 관직을 사직하고, 서울 집을 정리해 시골로 내려온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인조반정이 일어나고 이이첨에 대해 상소문 올린 것 때문에, 이익이 발탁되어 높은 관직 을 맡았다. 이후 자손들도 융성하여 이름난 가문이 되었다.

⑥ 호원사 간장의 맛 ▮원천 자료 :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감통(感通) <김현 감호(金現感虎)> ▮갈래 : 동화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 재구성형 ▮스토리텔링 방법 : 원천 자료인 삼국유사에 나오는 김현과 호랑이 이야기를 현대의 상황에 삽입하 여 액자형 동화로 재구성

호원사의 절 마루에 꼬마가 심술 난 표정으로 앉아있다. 스님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다. 잠시 꼬마는 지루한 듯이 몸을 비비 꼬며 스님을 방해한다. 스님은 “니가 말을 안 들어 엄마 아빠가 절에 버리고 갔으니 너는 여기서 스님하고 평생 살아야겠다”고 말했다. 꼬마는 할아버지는 핸드폰 없냐, 컴퓨터 없냐, 텔레비전 어디있냐고 떼를 쓰기 시작한다. 스님은 대꾸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불경을 펼쳤다. 스님이 소박한 밥상을 들고 들어와 꼬마에게 권하자 꼬마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긴 피자 도 없느냐, 짜장면을 시켜달라고 또 떼를 썼다. 스님은 먹기 싫으면 그만 두라고 혼자 맛있게 식사 를 하셨다. 꼬마에게 간장만 하나 있어도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꼬마는 콧방귀 를 뀌며 방구석으로 가 누워버렸다. 스님은 이윽고 숟가락을 놓으시며 꼬마에게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 줄까 물어보았다. 꼬마는 반응이 없다. 스님은 너 호랑이 본 적 있니? 라고 물었다. 꼬마는 돌아 누운 채 예전에 동물원에서 본 적 있다고 말했다. 그래? 호랑이가 아가씨처럼 꾸미고 나타난 이야기 인데... 꼬마는 고개를 슬쩍 돌리며, 근데 정말 호랑이인 줄 어떻게 알아요? 라고 따졌다. 그럼 이야 기를 한번 들어볼래? 하고 스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흥륜사라는 절이 있었다. 거기에 부처님오신날 탑돌이가 유명한데, 한 총각이 쉬지 않고 밤늦도록 탑을 돌고 있었다. 그때 눈에 띄게 아리따운 한 처녀도 염불을 외면서 탑을 돌고 있 었는데, 그러면서 둘은 서로에게 반해 사랑에 빠졌다. 처녀가 총각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와 어머니 - 211 -


에게 소개했다. 처녀의 어머니는 딸의 혼인을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앞섰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너희 오빠들이 와서 해칠까봐 걱정이 되는구나”고 말했다. 혼인을 앞둔 어느 날 밤중에 이집 마당에 호랑이 세 마리가 나타났다. 아가씨는 총각에게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호랑이들은 아가씨의 오빠였다. “집안에 누린내가 나는데 요기할 거리를 내어오느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너희들의 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말하고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거짓말했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는데, “너희 호랑이 가족은 지금껏 사람들을 많이 해쳐왔으니 너희 중에 하나를 죽여서 죄를 다스리겠다”는 말이었다. 그러자 세 호랑이들은 겁에 질 려 머리를 숙이고 슬그머니 산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가씨는 총각에게 와서 고백했다. 사실 자기 가족은 호랑이며, 어머니와 자신은 인간이 되기 위 해 마을로 내려와 살육을 삼가고 100일 기도를 올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100일째 되는 날 혼인을 올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가씨는 자신의 운명이 가련하지만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로 했다. 또한 이왕 목숨을 잃을 바에야 사랑하는 총각 손에 죽고 싶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다고 했다. 아가 씨는 자신의 계획을 총각에게 알려주었다. 아가씨가 호랑이로 변신해 마을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자 신을 처치하지 못할 것이고, 분명히 큰 벼슬을 주겠다는 현상금이 걸릴 것이니, 그에게 자신을 죽이 라는 것이다. 총각은 어찌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한 아가씨에게 그럴 수 있냐며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가씨는 막무가내로 성의 북쪽 숲속으로 나를 찾으러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다음 날 총각은 아가씨를 다시 찾으러 마을로 내려가 보았다. 그러나 이미 알아볼 수 없는 사나운 호랑이로 변신하여 행패를 부리니 사람들이 무서움에 떨고 있었다. 나라에서는 높은 벼슬을 걸고 호 랑이를 잡도록 했다. 총각은 눈물을 흘리며 전날 들은대로 칼을 들고 숲속으로 아가씨를 만나러 갔 다. 그러자 숲속에는 예전처럼 아리따운 모습으로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원래 태어날 때 부터 명이 짧고, 하늘이 내린 운명이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도련님께 은혜를 드리고, 저희 가족을 구하는 일이니, 저의 소원입니다” 아가씨는 총각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자신의 목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저에게 물린 사람들에게는 흥륜사의 간장을 바르면 낫게 될 거예요” 그리고 자결했다. 스님은 꼬마에게 이 절의 이름이 왜 호원사인줄 알겠냐고 물었다. 호랑이의 소원이라는 뜻의 이 절은 그 총각이 후에 벼슬을 얻고 내려와 호랑이 아가씨를 위해서 지은 절이라고 설명했다. 꼬마는 밥상 위에 놓인 간장을 쳐다보았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스님은 인자하게 웃으며 꼬마에 게 간장 맛 좀 보겠냐고 했다. 꼬마는 밥에 간장을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있으니 꼬마를 맡 기고 간 엄마 아빠가 찾아왔다.

⑦ 이야기로 즐기는 맛 ▮원천 자료 : ㉠태평한화(太平閑話) 고금소총본(古今笑叢本) 85, ㉡나손소장본(羅孫所藏本) 2 <이주 서 첩(李注書妾)>, ㉢이육, 청파극담(靑坡劇談) 47 <함흥민부사>, ㉣성대중(成大中), 청성잡기(靑城 雜記), <강물에 몸을 던진 변약순(邊若淳)의 누이> ▮갈래 : 만화 ▮스토리텔링 유형 : 옴니버스형 ▮스토리텔링 방법 : ㉠세 사람의 탐식가, ㉡지혜로운 아내, ㉢사슴 육포 ㉣자결한 변약순 처 등 서로 다른 4편의 원천 자료를 연결하여, 세 사람의 탐식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로 내기하는 상황을 연출하여 옴니버스형으로 재구성 - 212 -


어느 봄날 밤에 호숫가에서 절친한 사이인 선비 이필과 민의, 이중원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흥에 겨워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안주가 바닥이 났다. 술이 아직 남았으니 절에 가서 안주를 구해 와 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세 사람은 서로 미루다가 누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내기를 해 서 지는 사람이 안주를 구해오기로 약속했다. 먼저 평소에 장을 좋아하는 이필이 고추장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현명한 아내가 남편을 출세시키기 위해 시골집을 정리해 서울로 이사 와서, 홍 재상 집 앞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 선비에게는 출입을 하지 말고 항상 앉아서 독서만 하라고 일렀다. 그래 서 주위에서는 이 집을 ‘글 읽는 선비 집’으로 불렀다. 얼마 후 홍 재상 집 여자 종이 부인에게 놀러 왔다, 부인은 종에게 밥을 주면서 자기가 담근 순창고추장을 내놓았다. 부인은 순창고추장 담는 특 별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여자 종이 고추장을 먹어보고는 집 마님에게 드린다면서 먹지 않았다. 그 래서 부인은 고추장을 그릇에 담아 주면서 먹고 가져가라 했다. 여자 종이 갖고 온 고추장을 먹어본 홍 재상 부인은 그 맛의 특이함에 놀라고 대감에게도 맛보게 하니, 이 후로 대감은 이 고추장이 없 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부인은 홍 재상집에서 고추장이 떨어졌다. 하면 늘 조금씩 보내주었다. 얼마 후 며칠간 소식이 끊어지니, 부인은 홍 재상이 찾아올 거라 했는데, 과연 하루는 홍 재상이 밤중에 종 하나만 데리고 이 선비 집을 방문했다. 선비와 얘기를 나눈 홍 재상은 그 인품에 감탄하고 돌아 갔다. 부인은 마침 전라 감사 자리가 빈 것을 알고 이 선비를 시켜 그 자리를 부탁하라 했다. 홍 재 상은 웃으면서, 다른 자리는 몰라도 전라감사는 안 된다고 거절했다. 이 선비가 어찌 문벌이 낮다고 관직을 안주느냐고 정색을 하니, 홍 재상은 곧 뉘우치고 전라감사 자리를 이 선비에게 임명했다. 그러자 듣고 있던 민의가 말하기를,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고추장이 아니라 육포로 들은 적이 있 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평소에 육포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육포에 관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고 했다. 여흥민씨가 함흥부사가 되었는데 권모술수에 능했다. 당시에 덕원부사가 사슴육포를 함경도감영 에 바치는데, 늘 맛이 없고 잘못 만들었다고 감사에게 퇴송을 당했다. 덕원부사는 이를 매우 걱정했 는데 아전이 방책을 올리며 말하기를 “함흥감사는 늘 함흥의 육포가 좋다고 칭찬하니 그곳에 가서 만드는 방법을 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덕원부사도 좋다고 했다. 그래서 늙은 아전을 함흥에 보내 비단을 가지고 가서 육포 만드는 법을 배우게 했다. 빈부사가 그 아전에게 밥과 술을 대접하고 는 말하기를 “이 방법은 매우 쉬운 것이야. 덕원에 대추나무가 있는가?”하고 물었다. 있다고 하자 민부사는 “덕원에 있는 가장 큰 대추나무를 구해서 그것을 베어다 가운데를 사용해서 방망이를 만들 고, 사슴고기를 잘게 찢어서 자루에 넣고 반쯤 삶은 다음 포판에 넣고 대추나무 방망이로 그것을 다 지는 거지. 그러면 맛있고 쫄깃하게 되는 거야. 대추가 많이 열리는 나무로 해야 더욱 쫄깃해져.”라 고 했다. 덕원에서 민부사의 말대로 육포를 만들었더니 비록 만개의 방망이로 다져도 사슴고기는 부 스러지고 응결되지 않았다. 감사의 책문일이 되자 덕원부사는 병을 핑게로 시간을 끌며 사람을 보내 다시 민부사에게 만드는 방법을 물었다. 부사는 웃으면서 “네 방법은 아주 잘못된 거야. 누가 고기 를 삶으면 응결된다고 했느냐?”고 했다. 민부사는 대추가 많이 열리는 아주 큰 대추나무가 덕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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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거리인 것을 알고, 이를 베어버리게 하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라며 술잔을 부딪치던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김치를 좋아하는 이중원의 이 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변약순의 누이가 영평(永平) 김씨네 자제와 혼인하였다. 김씨의 집은 강가에 있었는데, 시집에 들어 가기도 전에 지아비가 물에 빠져 죽었다. 변씨는 줄곧 자결하여 따라 죽으려 하였으나 식구들이 극 구 막아서 그러지 못하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차츰 방비가 허술해졌다. 한창 추울 때에 변씨가 순무 김치[葅葑]를 담그면서 시누이에게 농담처럼 말하기를, “이 김치 먹을 때에 아가씨 내 생각할까요?” 하였으니, 기어코 죽겠다는 뜻을 말한 것이었다. 식구들은 무심하게 들어 넘겼는데, 밤이 되자 변씨 는 몰래 나가 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세 사람은 참으로 애잔한 이야기라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누가 안주를 훔쳐올 것인가? 세 사람은 재미도 재미지만 이야기 속에 나왔던 고추장, 육포, 김치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국은 각자 자신 이 좋아하는 안주를 하나씩 구해오기로 결정하며 껄껄껄 웃었다.

⑧ 산신의 선물 ▮원천 자료 : ㉠청구야담(靑邱野談) 김46 <박천 포수·우(博川砲手·禹)>, ㉡학산한언(鶴山閑言) 398 <채삼인 김씨(採蔘人金氏)>, ㉢계서야담(溪西野譚) 396 <박문수(朴文秀)> ▮갈래 :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 조합형 ▮스토리텔링 방법 : ㉠사슴을 통해 만난 인연 ㉡ 착한 심마니 ㉢ 효저 선비 이야기를 조합하여 효성 으로 인해 잘 살게 된 선비 이야기로 재구성

어느 고을에 가난한 선비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길을 지나던 손님이 식사를 대접받으려고 이 집을 들렸을 때, 방안에서는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힘없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양 식이 바닥나버린 어머니는 손님에게 차마 거절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선비는 방안 천정에 걸려있는 종이봉지를 몇 번이나 쳐다보았다. 결국 밖으로 나가 종이봉지를 어머 니에게 건네며 밥을 지어드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무척 놀라는 기색을 보이며 봉지를 받아 부엌 으로 갔다. 손님이 돌아간 밤에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 제사상에는 무엇으로 밥을 지어 올리느냐고 하며 눈물을 훔쳤다. 아무리 굶어도 손대지 않았던 쌀 봉지를 뜯었으니 이제 어떡하냐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선비는 어떻게 해서든지 양식을 구해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저잣 거리로 나가보니 많은 상인들이 물건을 내다팔고 있었지만 선비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떡이며 전들을 보며 군침만 삼키고 지나가는데, 장사꾼 서넛이 모여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 렸다. 그중 하나가 며칠 전에 근처에 있는 백운산에서 산삼 10여 뿌리를 발견했는데 너무 깊은 절벽 아래 바위 사이에 있어 할 수 없이 그냥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방도를 마련해 산 삼을 캐러 갈 모양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었다. 선비는 조심스레 다가가 자기도 동참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장사꾼들은 선비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젊잖게 보이는 사람이 왜 차려진 남의 밥 - 214 -


상에 숟가락을 얹느냐고 비아냥거렸다. 선비는 위험한 일은 자기가 맡을 것이고 산삼을 나눌 때에도 자기는 절반만 갖겠다고 애원했다. 깊은 산중으로 들어간 일행은 선비에게 칡덩쿨로 만든 줄을 허리에 묶고 풀로 만든 광주리를 가지 고 절벽으로 내려갔다. 어렵게 산삼을 캔 선비는 장사꾼들에게 줄을 당기라고 했다. 그러자 그들은 우선 산삼을 담은 광주리부터 안전하게 올려보내라고 했다. 선비는 아무 의심 없이 광주리를 줄에 묶어 보냈다. 그러자 장사꾼들은 손 안대고 코 푼 격이라며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선비는 자기 차례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줄을 나무기둥에 묶어놓고는 달아나버렸다. 선비가 구사일생으로 줄에 의 지해 산길로 올라왔을 때는 어둑어둑 해질녘이 다 되었다. 선비는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허기가 느껴지고, 비참한 기분이 되어버려 울음이 나왔다. 그때 선 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가 있었는데 바로 사슴 한 마리였다. 사냥꾼이라면 사슴을 쫓아 가서 잡았겠지만 선비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사슴도 선비를 보고 도망하지 않고 선 비가 울 동안 한참을 옆에 서 있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사슴은 천천히 어딘가를 향해 가는데 어 쩐지 선비에게 따라오라는 듯 보였다. 깜깜한 산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 선비는 그냥 사슴이 가는 길을 터덜터덜 따라가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선비의 눈앞에 으리으리한 가옥이 나타난 것이다. 사슴은 그집의 대문 앞에 멈추 어 섰다. 선비는 자기도 모르게 대문을 밀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사슴은 사라지고 없었다. 선비는 마 당을 건너가 집 앞에서 사람을 불렀다. 그러자 눈부시게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타나 어서 오라며 선 비를 환대했다. 아가씨는 마침 식사를 준비해놓았다고 말하며 따라 들어오라고 했다. 길고 긴 복도 를 지나 맨 끝에 있는 방에 이르니 각종 고기와 나물이 가득한 상이 차려져있었다. 선비는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 들다가, 문득 집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도 보이지 않았다. 선비는 음식을 싸서 봇집에 몰래 숨겨놓았다. 그러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배도 부르고 방안의 온기도 느껴지자 선비는 갑자기 노곤해졌다. 멀리서 쿵쿵 발자국 울리는 소리에 놀라 선비는 잠이 깼다. 아가씨는 태연하게 부엌에서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가 멈추더니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 맨 끝방으로 커다란 얼굴이 하나 쑥 들어오는 것이다. 키가 너무 큰 거인은 긴 복도에 몸을 누이고 겨 우 얼굴만 방안으로 집어넣었다. 선비는 기겁을 했다. 하지만 아가씨를 보호하면서 용기를 내어 물 었다. “너는 귀신이냐, 요괴냐, 사람이냐?” 거인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밥상에 관심을 보였다. 아가 씨는 호호호 웃으며 “아버지 다녀오셨어요?”라고 반갑게 인사했다. 거인의 얼굴은 매우 젊어보였다. 그는 멧돼지 한 마리와 닭 5마리, 밥 한 솥을 먹고 술을 한 말 마셨다. 그러고서야 딸에게 손님 대 접은 잘 했는지 물었다. 그리고는 금새 잠이 들어버렸다. 코를 고는 소리에 집이 들썩들썩했다. 두 사람은 공중으로 붕 떴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아가씨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계속 까르르 웃었다. 거인의 코골이가 잠잠해지자 선비는 아가씨에게 정말 아버지가 맞는지 물어보았다. 아가씨는 아버지 는 이 산을 지키는 산신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비가 아가씨에게 오늘 입은 은 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아가씨는 내년 단오날에 낙동강 나루에 놀러오지 않겠느냐고 선비에게 도로 물었다. 선비는 얼떨결에 그러마 하고 약속했다. 선비는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숲속에서 눈을 떴다. 어제 울다가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어제 보았던 사슴이 옆에 있었다. 선비는 아무 생각 없이 사슴이 인도하는 대로 산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런데 어제 산삼을 가지고 도망갔던 사람들이 나무 밑에 앉아있어, 가까이 가보니 벼락이라도 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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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이 죽어서 굳어있었다. 선비는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더욱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 다. 이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길에서 사슴은 멈추었다. 더 이상은 위험해서 내려갈 수 없는 듯했다. 사슴은 어쩐지 아쉬워하는 눈빛이었다. 선비가 이윽고 집에 당도하니 노모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선비를 맞았다. 밤새 걱정에 한숨도 자 지 못하고 산신령에게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선비는 아무 것도 구해온 것이 없으니 죄송하다고 하 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바깥에서 봇짐을 풀다가 깜짝 놀라며 이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선비는 어제 싸 넣은 음식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건 꿈이었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산삼 10여 뿌 리를 내밀었다. 선비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면서 기뻐했다. 그 후 아버지 제사도 잘 모시고 어 머니를 봉양하며 살다가, 1년이 지나 선비는 문득 단오날에 아가씨와 한 약속이 떠올랐다. 선비는 낙동강 나루에 어머니를 모시고 구경을 나갔다가 아가씨를 다시 만났다. 선비는 그제야 모든 것이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산신의 딸인 아가씨와 결혼을 하여 어머니께 효도를 하게 되었다.

⑨ 생강에 얽힌 이야기 ▮원천 자료 : ㉠이응희(李應禧), 옥담시집(玉潭詩集), <생강(生薑)>, ㉡이색, <서경(西京)>, ㉢월정만 필(月汀漫筆) <생강나무(生薑樹上生))>, ㉣어우야담(於于野譚) 365 <올공금 팔자(兀孔金八字))> ▮갈래 : 학습 ▮스토리텔링 유형 : 옴니버스형 ▮스토리텔링 방법 : 생강에 관한 한시와 이야기를 옴니버스형으로 연결하여, 주제별 학습을 위한 스 토리로 구성

제1화 : 이것은 무엇일까요? 卓彼畦中物 우뚝해라 저 밭에 있는 식물 能殊衆菜形 다른 채소와는 형체가 달라라 剛堅同玉朮 단단하고 굳기는 옥출과 같고 連結類黃精 연이어 맺힌 모양은 황정을 닮았네 喫罷胸先豁 먹고 나면 가슴이 먼저 후련하고 餤多體自平 많이 먹으면 몸이 절로 평안하지 通神且去穢 정신이 통하고 탁한 기운 없애니 曾著聖人經 일찍이 성인의 경전에 드러났네 方舟容與水如空 창공처럼 맑은 물에 두 배 나란히 띄우고 驛騎飛塵一瞬中 역마에 먼지 날리며 일순간에 당도하였네 辦得兩湯雖甚易 두 가지 탕국을 마련하기는 아주 쉬우나 哦成七字却難工 일곱 자 시구 읊는 덴 잘 짓기 어려워라 城頭老樹猶遮日 성 머리 늙은 나무는 아직 해를 가려 주고 山頂高樓遠引風 산 위의 높은 누각은 멀리 바람 끌어 오네 聞說朝天曾有石 듣자 하니 옛날 여기엔 조천석이 있었고 檀君英爽冠群雄 단군의 영걸함은 군웅의 으뜸이었다 하네 - 216 -


제2화 :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생강은 나무에서 난다네. 옛날 한 사람이 잘 모르고 생강은 나무에서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사람이 “생강은 땅에서 나며 나무에서 난다는 말은 틀린 것이다.” 하고 말하니, 나무에서 난다고 말한 사람은 기어 이 자기 말이 맞다고 하면서 맞섰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분쟁이 생겨, 틀린 사람이 나귀 한 마리를 주기로 내기를 했다. 여러 사람에 게 물어서 확인하니, 생강이 어찌 나무에서 나느냐고 하니, 나무에서 난다고 한 사람이 틀린 것으로 되었다. 이 사람은 나귀를 건네주면서, “내 나귀를 주기는 준다마는 그러나 생강은 나무에서 난다는 내 말 이 맞다.”라고 우기고, 끝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다. 이런 얘기로 인해 그 속담은 식견이 좁 아 무엇을 잘 모르면서, 끝까지 자기 말이 맞다고 고집하는 사람을 비꼬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라 했다. 제3화 : 올공금 팔자 옛날에 전주(全州) 상인이 생강을 한 배 싣고 평양 대동강에 정박했다. 생강은 남쪽 지방에서 생산 되고 관서 지방에서는 나지 않는 물건이라 값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1천 펄의 베, 또는 1천 석의 곡식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었다. 상인은 평양의 한 기생과 친분을 가져, 수년 사이에 그 생강 한 배를 모두 그녀에게 바쳤다. 상인의 재물이 다 떨어지니 기생은 상인을 내쫓았는데, 상인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부끄럽고, 그리고 머물 곳이 없어서 그 기생집에 머물면서 머슴살이를 자청했다. 말에게 먹이 주는 일과 땔나무 마련하는 일 등 힘든 일을 하면서 고통을 감수했다. 기생이 다른 남자와 안방에서 잠잘 때 부엌에서 불을 때 며 쭈그리고 앉아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러다가 하루는 상인이 돌아가야 하겠다고 기생에게 말하니, 기생이 노자(路資)로 돈을 주기는 아깝 고 해, 오랫동안 방치해 둔 못 쓰는 장구를 꺼내어, 거기에 걸려있는 16개의 ‘올공금’을 주면서, 갖 고 가서 쌀과 바꾸어 양식으로 하라고 했다. 상인은 그것을 받아 좋아하면서 가지고 오다가 길가 모래에 문질러 녹을 닦아 보았다. 그랬더니 검 정색이 빛나 윤이 나면서 보통 쇠와 달랐다. 상인은 황강(黃岡) 장날에 이것을 가지고 가서 펼쳐놓 고, “1백만 냥으로 팝니다.”하고 외쳤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와서 그 올공금을 자세히 보더니, “이 것은 보통금의 10배 값이 넘는 ‘오금(烏金:검정색 금)’이다.”라고 말하고 사겠다고 했다. 상인은 그 사람과 함께 전주로 와서 1백만 냥을 받고 그것을 팔았다. 곧 상인은 옛날의 생강 본전을 갚고도 동방 갑부가 되었으니. 사람들은 그를 ‘오금장자(烏金長者)’라 불렀다. 그리고 사람 운수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올공금 팔자’라는 속담이 여기에서 나왔다.

⑩ 올공금 팔자 ▮원천 자료 : ㉠어우야담(於于野譚) 365 <올공금 팔자(兀孔金八字)>, ㉡태평한화(太平閑話) 고금소총 본(古今笑叢本) 76 <강일용 (姜日用)> ▮갈래 :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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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유형 : 옴니버스형 ▮스토리텔링 방법 : ㉠기생에게 탕진했다가 우연히 올공금을 얻은 이야기 ㉡임금의 배려에도 운이 없었던 이야기를 연결하여 사람의 운수는 알 수 없다는 주제로 스토리를 재구성

마을 한곳에 위치한 주막. 대낮부터 젊은이 두 명이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 젊은이 1은 얼마 전에, 10배로 재산을 불려준다는 한 장사치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 그만 전 재산을 몽땅 잃고 말았다. 자신과 사기꾼 장사 치를 한탄하며 친구인 젊은이 2와 술을 마시고 있던 중……. 젊은이 1 : 아- 나란놈, 정말이지 재수가 없는 놈! 젊은이 2 : 그만하게나. 언제까지 이리 술만 마시고 있을 순 없지 않나. 젊은이 1 : 말리지 말게! 내 이리 살아 뭐하겠나? 박복하기 짝이 없는 팔자라니… 크흑~ 한숨을 쉬는 젊은이 2 젊은이 2 : 그리 말하지 말게나. 사람 팔자 어찌 될지 알 수 없는 것 아니겠나? 내 얘기 한 번 들어 보시게… 젊은이 2의 이야기가 시작 된다. 옛날에 전주(全州)상인이 생강을 한 배 싣고 평양 대동강에 정박했다. 생강은 남쪽 지방에서 생산 되고 관서 지방에서는 나지 않는 물건이라 값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1천 펄의 베, 또는 1천 석의 곡식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었다. 상인은 평양의 한 기생과 친분을 가져, 수년 사이에 그 생강 한 배를 모두 그녀에게 바쳤다. 상인의 재물이 다 떨어지니 기생은 상인을 내쫓았는데, 상인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부끄럽고, 그리고 머물 곳이 없어서 그 기생집에 머물면서 머슴살이를 자청했다. 말에게 먹이 주는 일과 땔나무 마련하는 일 등 힘든 일을 하면서 고통을 감수했다. 기생이 다른 남자와 안방에서 잠잘 때 부엌에서 불을 때며 쭈그리고 앉아 밤을 새우기도 했다. 이러다가 하루는 상인이 돌아가야 하겠다고 기생에게 말하니, 기생이 노자(路資)로 돈을 주기는 아깝 고 해, 오랫동안 방치해 둔 못 쓰는 장구를 꺼내어, 거기에 걸려있는 16개의 ‘올공금’을 주면서, 갖 고 가서 쌀과 바꾸어 양식으로 하라고 했다. 상인은 그것을 받아 좋아하면서 가지고 오다가 길가 모래에 문질러 녹을 닦아보았다. 그랬더니 검 정색이 빛나 윤이 나면서 보통 쇠와 달랐다. 상인은 황강(黃岡 장날에 이것을 가지고 가서 펼쳐놓고 “1백만 냥으로 팝니다” 하고 외쳤다. 그랬더니 한 사람이 와서 그 올공금을 자세히 보더니, “이것은 보통 금의 10배 값이 넘는 오금(烏金:검정색 금)이다” 라고 말하고 사겠다고 했다. 상인은 그 사람과 함께 전주로 와서 1백만 냥을 받고 그것을 팔았다. 곧 상인은 옛날의 생각 본전을 갚고도 동방 갑부가 되었으니, 사람들은 그를 ‘오금장자(烏金長者)’라 불렀다. 그리고 사람 운수 알 수 없다는 뜻으로. “올공금 팔자‘라는 속담이 여기에서 나왔다. 술잔을 상 위로 내려놓으며 젊은이 1은 눈을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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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1 : 올공금 팔자라… 그래… 사람 팔자 한방이지! 그렇지! 젊은이 2 : ……. 젊은이 1 : 그래서 말인데 여보게나, 이번에 아랫마을에 온 장물아비가 하는 얘기를 들어 보았나? 그 자 말대로 하면 크게 한 밑천 잡을 수 있겠던데 어디 자네가 한번... 젊은이 2 : 어허~ 이 사람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그때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혼자 술을 마시던 남루한 차림의 노인이 말을 붙여 온다. 강일용 노인 : 듣다보니 올공금 팔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늙은 내가 한 마디 참견 해도 되겠는가? 젊은이 1 : 거 술맛 떨어질 소리라면 하지도 마슈! 쳇! 젊은이 2 : 무슨 일이십니까 어르신. 말씀하십시오. 노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강일용 노인 : 이것은 강일용이라는 어느 가난한 선비의 이야기라네… 강일용 선비는 집이 매우 가난했다. 임금이 그에게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려고 어느 날, “서울 도성 4대문에 하루 동안 들어오는 모든 재물을 강일용 집으로 실어다 주도록 하라” 하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 날은 아침부터 장대 같은 비가 종일 내려 사방에 길이 막혀, 서울로 물자를 싣고 들어 오는 사람이 없었다. 오후 늦게 오직 한 사람이 계란 몇 꾸러미를 지고 왔는데, 그 계란도 모두 속 이 곯아 있었다. 그래서 속담에 복 없는 사람을 “강일용” 이라 하더라. 강일용 노인이 젊은이 1에게 술을 권한다. 강일용 노인 : 기회가 오면 뭐하겠나, 내 이리 하고 사는 게 바로 그 지지리도 박복한 팔자 때문이 아니겠나? 그냥 그리 사는 것이네, 헛헛헛~ 젊은이 1 : ……. 젊은이 2 : …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말없이 술을 마시는 젊은이 1. 세 사람이 앉은 등 뒤로 석양이 물든다.

⑪ 무 뿌리와 독이 든 과일 ▮원천 자료 : 촌담해이(村談解頤) 3 <청부독과(菁父毒果)> ▮갈래 : 만화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 분할 ▮스토리텔링 방법 : 욕심 많은 주지 이야기를 분할하여, 사미를 속이려던 주지승이 오히려 사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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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다는 논리적 반전을 꾀하도록 이야기를 상세하게 재구성

충주의 깊은 산골에 한 절이 있었다. 암자나 다름없는 이 작은 절에는 주승과 사미만이 기거하고 있었다. 주승은 예순이 다 된 노인이었는데, 욕심이 매우 많아 데리고 있는 어린 사미에게 음식조차 잘 주지 않고 인색하게 대하였다. 그들은 단 둘 만 사는 고요한 절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닭을 몇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하루는 이 주승이 계란이 먹고 싶으나, 사미가 보면 함께 먹자 할 것 같아 사미가 잠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란을 몰래 삶아 먹었다.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자는 척 하 고 있던 사미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스님, 드시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으니, 당황한 주승은 “이것은 무 뿌리이니라” 하고 답하였다. 그 날 새벽, 주승이 자다가 깨어 사미를 불렀다. 시간이 어느 정도 되었는지 궁금하여 “밤이 얼마 나 깊었느냐” 하고 물으니, 마침 그 때 새벽닭이 꼬끼오 하고 우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미가 일어나 앉아 기지개를 켜면서 “밤이 이미 깊어서 무 뿌리 아비가 울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주승은 일어나서 나가는 사미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가을이 깊어 절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익어갔다. 주승은 홍시를 만들려고 대나무 가지로 감을 하나씩 따고, 그 감을 광주리에 담아 들보위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지나 맛깔스런 홍시 가 되고, 주승이 이를 하나씩 들보에서 내려 먹었다. 이것을 본 사미가 “스님, 드시는 것이 무엇입니 까”하고 묻자, 사미에게 홍시를 나눠 주기가 아까웠던 주승은 능청스레 “이것은 독과(毒果)인데, 아 이들이 먹으면 혀가 헐어 죽느니라” 하고 속여 말했다. 며칠 뒤 주승은 외출을 하고, 혼자 절을 지키며 부엌일, 대웅전 청소를 마치고 앉아 쉬던 사미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들보를 바라보았다. 사미는 한번 씨익 웃고서는, 대막대기에 고리를 걸어 들보 위의 홍시 광주리를 끌어내려 여러 개의 홍시를 배불리 먹었다. 그러고선 잠시 생각하더니, 차 잎 가는 맷돌로 꿀단지를 때려 깨트리고, 뜰의 나무에 올라갔다. 이어 주승이 절로 돌아와 깨진 꿀단지 와 홍시바구니를 보고 화를 내며, 막대기를 들고 나무위에 올라가있는 사미를 향해 빨리 내려오지 못하겠냐며 재촉했다. 그러자 사미는 짐짓 슬픈 표정으로 “맷돌을 옮기다가 실수해 꿀단지를 깨었는데, 두려운 생각에 자결하려고 독과를 내려 먹었으나 혀가 헐지도 않고 죽지도 않아서, 나무에서 뛰어내려 죽으려고 올 라와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승은 멍하니 보다가 껄껄 웃으며 사미를 용서했다.

⑫ 닭고기 세금 ▮원천 자료 : 이긍익,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제 18권, 선조조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 ▮갈래 : 만화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어느 작은 고을에 현감이 새로 부임해온지 얼마 안되어, 대대적인 탈세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현청 마당에 추국장이 열렸다. 조세를 체납한 촌부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 아리고 있고, 현청 앞에는 현감 우복룡이 삐딱한 모습으로 앉아있었고, 그의 좌우로 도열한 아전들 이 촌부를 취조하고 있었다. 그 촌부는 인근의 대지주의 집에서 소작농을 하는 자였는데, 조세를 반 - 220 -


년이나 체납했음에도 식솔이 많고 너무 가난해서 갚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전후 사정을 들은 우복룡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네가 아무리 가난한다 한들, 어찌 나라의 곡물을 납입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네가 집에 있는 물건으로 대신 바칠 수 있겠느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촌부가 황망 한 표정으로 현감을 바라보다, 잠시 생각하더니 “가난하여 다른 물건은 없사옵고, 다만 닭 한 마리 가 있습니다.” 하였다. 우복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닭을 삶아오너라. 내가 그 닭을 먹고 네가 갚 을 곡식을 감하여 주겠다.”하고 말하였다. 촌부는 크게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닭을 잡았다. 노부모 와 어린 자녀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닭을 삶는 모양을 바라보았으나, 촌부는 이것은 나라에 바칠 반 년어치의 세금이라며 딱 잘라 말했다. 이윽고 다음날이 되어 촌부는 삶아진 닭을 그릇에 담아 보자기로 잘 묶어 현청으로 들고 갔다. 현 감 우복룡 앞에 그 닭을 내어 놓으니, 현감이 미안한 표정으로 “내가 장난한 것이었다. 어찌 현감으 로서 백성의 닭을 먹고 국가의 곡식을 축낼 수 있단 말이냐. 닭을 가지고 돌아가거라.” 하였다. 촌부 는 힘이 쭉 빠져 터덜터덜 현청을 나오는데 문 옆에 서 있던 아전들이 촌부를 향해 손짓을 하여불렀 다. 촌부가 가까이 다가가니 아전들이 우악스러운 표정으로, “그 닭은 현청에 바치기로 한 것이니 이리 내어라.” 그 말에 촌부는 당황한 표정으로 순순히 닭을 아전들에게 건네었다. 아전들은 그 닭 을 받아 현청 한 쪽으로 가더니, 자기들끼리 맛있게 닭을 뜯어먹었다. 촌부가 힘없는 모습으로 걸어 집으로 가고 있는데, 나졸 하나가 뒤쪽에서 달려와 촌부를 잡았다. 현감이 급히 다시 부른다는 말을 전해들은 촌부는 가던 길을 되짚어 현청으로 향했다. 현청에 도착해 숨을 헐떡거리는 촌부를 본 우복룡은 짐짓 웃으며 말했다. “내 다시 생각해 보았는 데, 이미 너로 하여금 닭을 잡아 오게 하고, 또 받지도 않는다면 이는 애먼 너희 닭만 잡고 너를 속 이는 것인 즉, 네 닭을 다시 가져오면 마땅히 어제의 약속대로 하겠다” 하였다. 황망함과 서글픔 때 문에 촌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나리, 실은 조금전 아전 나리들이 그 닭을 바치라 하여 다 드렸습니다. 아전나리들이 닭을 다 먹었을 텐데 이를 어찌합니까.” 그 말을 들은 현감 우복 룡은 아전들을 불러들였다. “그대들이 먹은 닭은 세금조차 내지 못하는 이 가난한 촌부의 가장 큰 재산이었다. 그 값을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하자, 아전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릴 뿐 아 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각자 골고루 먹었을 터인 즉, 먹은 부위와 양에 따라 이 촌부에게 값을 지 불하라.” 아전들은 저마다 이 자가 다리를 먹었네, 이 자가 날개를 먹었네 하며 한참을 옥신각신 하 더니, 마지못해 조금씩 추렴해 모은 엽전 몇 냥을 촌부 앞에 내려놓았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엽전과 우복룡을 번갈아 보는 촌부를 향해 현감 우복룡이 말했다. “이제 너 는 닭을 팔았고, 그 돈으로 밀린 세금을 낼 수 있겠구나.” 하였다. 촌부는 감사한 마음에 넙죽 절을 하였고, 아전들은 새 현감의 재치 있고 명쾌한 해결에 놀라, 그 뒤로 현감에게 복종하고 감히 속이 지 못하였다.

⑬ 천일간의 한식 이야기 1 ▮원천 자료 : 해동잡록 권4 외 다수 명엽지해(蓂葉志諧) 김354 (김현룡 7-[293] 노목궤(櫨木櫃))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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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이야기 변형) : 나는 눈썹으로 해주시오. 한 수령이 있었는데 손님 접대에 음식을 3등급으로 정해놓고 항상 읍인들과 약속하기를 “후하게 대접할 사람에게는 눈썹을 문지르고, 그 다음은 코를 만지고, 마지막은 턱을 쓰다듬겠다, 음식 대접 의 후하고 박함은 이렇게 시행할 것이다.”라고 했다. 어떤 손님이 있었는데 수령이 보더니 턱을 만 지는 것이었다. 이런 구두쇠 행위를 이방으로부터 몰래 전해들은 손님은 정중히 말하기를 “사또 눈 썹위에 묻은 누런 것은 무엇입니까?”하니 수령이 무심코 눈썹을 만지는지라 읍인들이 이를 알아차리 고 진수성찬을 내오는데, 아차 싶은 수령은 황급히 수염을 만져봤으나 이미 업질러진 물이었다. 제2화 : 말가죽 신발과 금술잔 이사철은 몸집이 크고, 식사 때면 큰 그릇의 밥 한 그릇, 찐 닭 두 마리, 한 항아리의 술을 같이 먹었다. 등에 종기가 나서 죽게 되니 의원이 불고기와 독주를 피하라고 했다. 이에 이공은 “안 먹고 살기보다는 먹고 죽겠다”고 하고 여전히 술과 고기를 먹었는데 병이 나았다.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 를 “부귀를 누리는 사람은 먹는 것 역시 다르다”고 말했다. 이공이 젊었을 친구들과 삼각산 절에 유 람을 갔었는데 술은 가져갔으나 술잔이 없었다. 그때 권지(權枝)가 새로 만든 말가죽 신을 신고 있었 는데 이공이 먼저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나머지도 따라서 모두 그것으로 술을 마시면서 서로 보고 크게 웃으면서 “말가죽 신발 술잔은 내가 만들어낸 방법이야. 그렇지 않은가”라고 했다. 뒤에 이공 이 출세하고 나서 권공을 만나 술을 마시면서 말하기를 “오늘 금술잔으로 좋은 술을 마시는 것이 지 난날 삼각산에서 놀 때에 말가죽 신발 술잔으로 마신 것보다 못하구나”라고 했다. 제3화 : 우매한 사위 한 시골 노인이 좋은 사윗감을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이 했다. 55두(斗) 들이 ‘노목궤’를 만들고 사 람들에게 선언하기를, “이 궤가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는지와 또 곡식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아는 사 람을 사위로 삼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고, 점점 세월이 흘러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이 집 딸이 생각해 보니, 이러다가는 시집도 못 가고 늙을 것 같아, 장사를 하고 있는 한 어리석은 총각을 불러, 다음의 얘기를 해주었다. “그 상자는 노목으로 만들어졌으며 곡식이 55두가 들어가는 데, 부친에게 이렇게 말하면 나와 결혼할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총각은 노인에게 가서 처녀가 시 키는 대로 말하니, 노인은 기뻐하고 곧 딸과 결혼을 시켰다. 이후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모두 사위에게 물었다. 이때 한 사람이 암소를 팔겠다고 하므로 장인이 사위를 시켜 소를 살펴보라 했다. 사위가 소를 보더니 “이것은 노목궤이고 55두는 들어가겠다.” 하 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남편을 나무라면서, “소의 입술을 열어 보고는 나이가 어리다고 말해야 하고, 꼬리를 들어보고는 새끼를 잘 낳겠네.” 하고 말해야 되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이튿날 장모가 병 이 들어 사위를 들어와 보라 하니, 사위가 들어와서는 장모 입술을 열어 보고 “나이가 어리구먼.”이 라 말하고, 이불을 들쳐 뒷부분을 보고는 “새끼를 많이 났겠네.”라고 말했다. 사위의 이런 행동을 본 장인과 장모는 화를 내면서, “소를 보고 나무로 알고, 사람을 보고 소로 아 니 아마도 미친 것 같다.”고 말하니, 듣는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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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 이 닭이 봉황이요. 한 교활한 상번향군(시골에서 차출되어 근무하러 온 군사)이 닭전을 지나다가 보니 수탉 한 마리 가 특히 뛰어나게 컸다. 가까이 가서 그 닭을 만지다가 주인에게 "이것이 무엇이요?"하고 물었다. 주 인이 보니 닭도 알아보지 못하는 바보 같아 거짓으로 "봉(鳳)이요."하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상번향 군이 사겠다고 하면서 값을 묻기에 20냥을 받고 팔았다. 닭을 산 상번향군이 비단 보자기에 싸서 상 자에 담아, 형조(刑曹) 판서 집을 찾아가 바치면서, "봉을 한 마리 샀으므로 임금에게 바치려고 가지 고 왔습니다."하고 말했다. 판서가 열어 보니 수탉이어서 상번향군을 꾸짖으니, 닭전에서 봉이라 하 여 50냥에 사왔다고 하면서 원통함을 호소했다. 곧 닭 판 사람을 불러 심문하니 닭 장수는, 어리석 어 보여 봉이라 속이고 20냥에 팔았는데 변상해 주려고 생각하고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 은 상번향군은 50냥을 20냥으로 속인다고 소리치면서 억울해 했다. 판서가 닭 장수에게 7, 8냥 가 치인 닭을 봉이라 속였으면서 또 50냥을 20냥으로 속인다고 호통치고는 50냥을 변상하라고 판결했 다. 곧 닭 장수는 50냥을 주고 물러갔다.

⑭ 이첨지의 지혜 ▮원천 자료 : 용재총화(慵齋叢話) 120 (김현룡 7-[314] 봉사 따라 하기(經師指示))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옛날 꾀많은 한사람이 봉사와 짜고 어리숙한 이첨지를 속이기로 하였다. 한 사람이 잘 우는 집비 둘기를 몰래 숨겨가지고 이첨지댁으로가서 하루밤을 묵었다. 다음날 이 사람이 봉사에게 돌아가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비둘기는 반드시 자신이 투숙한 곳을 들렸다가 빙 돌고 가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이 비둘기도 전날 묵었던 집에 들려 방울 소리를 내며 울고 세 바퀴 돈 다음 날아갔다. 이 집에서는 못 보던 새가 집에 와 울고 돌다가 날아가는 것이 무슨 재앙인 줄로 착각한 이첨지는 봉사에게 가서 사실 얘기를 한 다음 점을 쳤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봉사는 점괘를 보는 척 하더니 “재앙이 들었으니 경을 읽어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튿날 봉사가 와서, “반드시 내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더 커진다.”라 고 말했다. 그러고는 “명미(命米: 神에게 바치는 쌀)를 내놓아라.” 하고 말했다. 봉사는 쌀을 가져와 상에 올려놓으라는 뜻으로 한 말인데, 집안사람들은 그 말을 ‘따라 하라’는 것으로 알고, 큰소리로 “명미를 내놓아라.” 하고 따라 외쳤다. 봉사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번엔 더 큰소리로 “명포(命布: 神에게 바치는 베)를 내놓아라.” 하고 말했다. 그러니까 집안사람들은 역시 말을 따라 하라는 것으로 알고, “명포를 내놓아라.” 하고 또 크 게 따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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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봉사는 “왜 이러느냐?”라고 말했다. 역시 모두 “왜 이러느냐?” 하고 따라 하니, 봉사는 화 를 내고 일어나 나가다가 문 위의 가로지른 나무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러니까 집안사람들도 모두 달려와 그 나무에 머리를 부딪쳤고, 키가 작은 아이들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머리를 부딪쳤다. 봉사가 대문으로 달려 나가다가 묽은 소똥에 미끄러져 넘어지니, 집안사람들이 다 나와 소똥에 미끄 러지는데, 뒤에는 소똥이 다 없어지니까 소똥을 다른 데서 가져와 얹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봉사가 당황해 동아(冬瓜) 넝쿨 속으로 들어가 숨으니, 역시 집안사람들이 따라 들어갔는데, 장소가 좁아 아이들이 못 들어가니 “아빠 엄마, 우리들은 어디로 가요?” 하면서 울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남산 기슭 칡넝쿨 밑으로 들어가라.”고 말하더라. “걸음아 날살려라”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 봉사는 꾀많은 사람에게 하소연을 했다. “이첨지의 어리 숙함에 우리가 당했소.” 그 뒤로는 다시는 이첨지를 얕보지 않았다고 한다.

⑮ 한식의 달인 ▮원천 자료 : 이규보, 동국이상국후집 제4권, 고율시(古律詩) 98수, 집 안 채소밭의 여섯 노래 –오이

등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한시를 통하여 식재료의 특징을 전수하는 한식장인과 수제자의 이야기 한식의 식재료들은 각 재료마다 고유의 맛과 특징이 있다. 이 재료들의 맛과 특징을 한시로 풀어 스 토리텔링 한다. 한식으로 유네스코 음식 창의도시로 선정 된 전주의 일류 식당 중 하나인 홍류관의 한식요리사는 명인이란 칭호가 붙은 전통 한식의 계승자다. 자신이 불치의 병에 들어 죽게 되자 수제자를 다 가르 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한시로서 음식의 비법을 남기게 된다. 수제자는 3년마다 치러지는 전국 요 리명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스승이 남긴 한시 요리비법책을 펼친다. 요리의 기본은 바른 식재료의 선택에 있다. 각 식재료의 특성은 한시에 잘나와 있다. 예를들어 園苽不灌亦繁生 黃淡花間葉間靑 이말은 오이는 물 안 주어도 많이 열리고, 엷은 노랑꽃 사이 잎 간간이 푸르네 란 뜻으로 수분이 많은 재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를 보면 苽涼宜少嚼 찬 오이채는 조금씩 먹기 알맞고 韮軟且微煎 연한 부추 잎은 또 살짝 데쳐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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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味甘生稼 오미 중 단맛은 곡식에서 나오고 三時熱稟天 삼시 중 하늘서 열을 받는 때로다 孟光憐老病 맹광이 병든 나를 불쌍히 여겼어라 自覺午湌便 점심이 이에 맞음을 절로 느끼겠네 오이채는 여름철 점심에 알맞은 음식이란걸 알 수 있다. 파의 특징을 노래한 한시도 있다. 纖手森攢戢戢多 고운 손처럼 가지런히 모여 수북하게 많고 兒童吹却當簫笳 아이들은 불어대는 호드기를 만드네 不唯酒席堪爲佐 술 자리의 안주 구실뿐 아니라 芼切腥羹味更嘉 비린 국에 썰어 넣으면 더욱 맛나네 이 시를 보면 파는 술안주에도 제격이지만, 비린국맛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시요리비법책에 나와 있는 식재료의 특성을 모두 알게 된 수제자는 명인자격을 지키기 위해 드 디어 요리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⑯ 한식 속담 ▮원천 자료 : 이규보, 동국이상국후집 제4권, 고율시(古律詩) 98수, 집 안 채소밭의 여섯 노래 –오이

등 ▮갈래 : 학습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한식과 관련된 속담을 알아본다. 속담 1 : 오이 밭에선 신발 끈도 고쳐 매지 않는다. 오이는 밭에서 자라는 줄기식물이다. 이 속담은 괜한 오해를 사는 행동을 하면 안된다는 뜻으로 배 밭에서 갓끈 고치지말라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속담이다. 園苽不灌亦繁生 오이는 물 안 주어도 많이 열리고 黃淡花間葉間靑 엷은 노랑꽃 사이 잎 간간이 푸르네 最愛蔓莖無脛走 가장 사랑스럽기는 덩굴이 다리 없이 벋어 勿論高下掛瑤甁 높고 낮은 데 가리지 않고 옥병처럼 열리는 것 이규보, 동국이상국후집 제4권, 고율시(古律詩) 98수, 집 안 채소밭의 여섯 노래 –오이<인용> 속담 2 : 떡줄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남의 속도 모르고 제 짐작으로 지레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행동한다는 뜻으로 떡과 궁합이 맞는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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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국물과 관련된 속담이다. 西風吹送晩菘香 서풍이 늦가을 배추 향기를 솔솔 불어오자 瓦甕鹽虀色政黃 항아리에 김치 담아라 색깔이 한창 노랗네 先我周顒曾愛此 주옹이 나보다 먼저 이것을 좋아했거니와 嚼來滋味敵膏粱 씹어 먹으니 맛이 고량진미와 맞설 만하네 서거정, 사가시집 제50권, 시류(詩類), 촌주 팔영(村廚八詠)<인용> 속담 3 : 작은 고추가 맵다. 체구가 작아도 끈기와 인내심이 강해 무슨 일이든 해낸다는 뜻으로 보는 것과 내면의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속담이다. 속담 4 : 계란으로 바위치기 도저히 승산이 없는 것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속담이다. 강일용 선비는 집이 매우 가난했다. 임금이 그에게 넉넉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려고 어느 날, “서울 도성 4대문에 하루 동안 들어오는 모든 재물을 강일용 집으로 실어다 주도록 하라.” 하고 명령했 다. 그런데 이 날은 아침부터 장대 같은 비가 종일 내려 사방에 길이 막혀, 서울로 물자를 싣고 들어오 는 사람이 없었다. 오후 늦게 오직 한 사람이 계란 몇 꾸러미를 지고 들어왔는데, 그 계란도 모두 속이 굳어 뼈가 들어 있었다. 그래서 속담에 복 없는 사람을 ‘강일용’이라 하더라. 태평한화(太平閑話) 고금소총본(古今笑叢本) 76 (김현룡 6-[255] 강일용(姜日用))<인용>

⑰ 지혜로운 부인 ▮원천 자료 : 나손소장본(羅孫所藏本) 2 (김현룡 3-[188] 이주서 첩(李注書妾))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이자겸이라는 선비가 과거길에 날이 저물어 한 집에 들었다. 밤중에 보니 한 부인이 시어머니 방 에 가서 고담책을 읽었다. 그 다음에 나와서 여자 종을 불러 등불을 들게 하고 밖에 나와, 사랑에 든 손님이 누구냐고 물었다. 여자종이 과거길의 선비가 묵어가려고 들어왔노라고 대답했다. 부인은 방이 차고 저녁밥 대접이 없었음을 걱정하고 들어갔다. 선비는 집이 곤궁하여 대접 못함을 수치로 여길까 염려하였다. 이 선비는 곧 숨어서 부인 방으로 들어가니 상위에 독약 그릇이 놓여 있기에 약을 쏟아버리고 숨 어 있었다. 부인이 들어왔다가 둘러보고 나가는 것을, 이 선비가 나가 붙잡았다. 부인은 남자가 안방 에 들어왔음을 꾸짖었다. 이 선비는 왜 자살을 시도했냐고 물었다. 부인은 박씨인데 15세에 13세의 신랑을 만나 청춘과부가 되어 시어머니와 5년간 살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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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용이 몸을 감는 꿈을 꾸고, 과부의 몸으로 가당치 않는 꿈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했 다고 대답했다. 이씨는 이것이 두 사람은 운명이라 알고 곧 이어 부인은 인연을 맺은 후 버리지 않 을 것을 다짐받은 뒤, 이 선비와 동침해 그윽한 정을 나누었다. 아침에 박씨부인이 백금 몇 근을 주면서, “지금 가면 급제할 테니, 급제 후 말 두 필과 가마를 준 비해 이리로 와서, 밖에 가까운 친척으로 저를 만나보러 왔다고 하면, 그 다음은 제가 처리하겠습니 다.”라고 말하면서 떠나라 했다. 그래서 이 선비는 부인의 예언대로 과연 급제하고 3일 만에 말과 가마를 준비해 그 집으로 가서, 사촌 여동생인 부인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곧 부인은 아름답게 치장하고 시부모께 절한 다음, 3 일 전 밤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고 떠나겠다고 작별인사를 했다. 시부모는 울면서 보내주었다. 부인은 이 선비가 아내 있는 몸으로 첩을 데리고 가는 것에 대해 근심하는 것을 보고, 혼자 먼저 이 선비의 고향집으로 갔다. 부인은 뜰에 멍석을 깔고 이 선비와의 지난 일들을 애기하고 처분을 내 려달라고 했다. 이 선비 집에서는 부인의 사정 애기를 듣고, 또 그 거동이 정숙함을 보고 첩으로 받 아들였다. 박씨부인은 남편이 급제는 했지만 벼슬을 얻으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시골집을 정리해 서울로 와서 홍재상 집 앞에 거처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 선비에게는 출입을 하지 말고 항상 앉아서 독서만 하라고 일렀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이 집을 ‘글 읽는 선비 집’으로 불렀다. 얼마 후 홍재상 집 여자 종이 부인에게 놀러 왔다. 부인은 종에게 밥을 주면서 자기가 담근 순창 고추장을 내놓았다. 부인은 순창 고추장 담는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여자 종이 고추장을 먹어 보고는 집 마님에게 드린다면서 먹지 않았다. 그래서 부인은 고추장을 그릇에 담아 주면서 먹고 가 져가라 했다. 여자 종이 갖고 온 고추장을 먹어본 홍 재상 부인은 그 맛의 특이함에 놀라고 대감에 게도 맛보게 하니, 이후로 대감은 이 고추장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 부인은 홍재상집에서 고추장이 떨어졌다고 하면 늘 조금씩 보내주었다. 얼마 후 며칠간 소식이 끊 어지니, 부인은 홍재상이 찾아올 거라 했는데, 과연 하루는 홍재상이 밤중에 종 하나만 데리고 이 선비 집을 방문했다. 선비와 얘기를 나눈 홍재상은 그의 인품에 감탄하고 돌아갔다. 부인은 마침 전라감사 자리가 빈 것을 알고 이 선비를 시켜 그 자리를 부탁하라 했다. 홍재상은 웃으면서, 다른 자리는 몰라도 전라감사는 안 된다고 거절했다. 이자겸이 어찌 문벌이 낮다고 관직 을 안주느냐고 정색을 하니, 홍 재상은 곧 뉘우치고 전라감사 자리에 이자겸을 천거했다. 이 선비는 전라감사로 부임해 3년을 지나고, 승차하여 한양 길에 오를 때 박씨부인은 천기를 읽고 한양에 당도하는 즉시로 홍재상과 절교하라고 이른다. 박씨부인의 말을 들어 안되는 일이 없던지라 그러하리라 약속을 하고, 한양에 당도하자 때마침 홍재상의 생일인지라 홍재상의 많은 손님이 모인 앞에서 절교 편지를 제출했다. 홍재상은 물론 모인 손님들이 모두 놀랐다. 홍재상을 이자겸을 괴씸 히 여겼다. 그 일이 있은 뒤 당파에 밀려 홍재상이 실권하고 형벌을 받았을 때, 그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화 를 당했으나, 이자겸만은 절교한 사실이 널리 알려져 무사했다. 이러한 일들이 박씨부인의 말대로 척척 맞아 떨어지자 이자겸은 자못 부인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 다. 하루는 이러한 궁금증을 박씨부인에게 묻자 부인은 놀라며 황급히 그런 궁금증일랑 아예 마음에 서 지우고 혹여 궁금증을 캐려 든다면 큰 화를 당하게 될거라 경고를 한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란 끝이 없는 것인가. 권세를 얻은 이자겸이 권세를 이용해 은밀히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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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과거를 알아보려 수하들을 처음 박씨부인을 만났던 산골로 보내는데, 그 곳에는 집이라곤 터 조차 없는 산중 동굴이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이자겸은 동굴 속을 뒤져 소의 간을 찾아와 부인에게 내어놓고 자초지종을 묻는 다. 이에 박씨부인은 절규를 하며 “사흘을 못 참고 미천한 인간이 천기를 흐트려 나의 환생을 막는 구나”하고 영험한 여우로 변신하여 그만 사라지고 만다.

⑱ 해의국 이야기 ▮원천 자료 : 박상연(朴尙淵), 금곡집(金谷集), 잡저, 후당서실(後堂書室), 1976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서남쪽 큰 바다 속에 해의국(海衣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해의국은 땅의 넓이가 9만여리로 천지 처럼 광활했다. 이곳을 다스리는 천자의 성은 장(張)씨이고 이름은 첩(貼)이며 자는 속지(束之)인데 스스로 짐(朕)이라 하고 했으니 태곳적 혼돈씨의 후예였다. 장씨는 대대로 하빈(河濱)에 살았는데, 혼돈의 일을 수행하여 10대를 넘어 첩에 이르렀다. 첩이 어려서 어머니 박씨가 수렴청정을 하다가 자라자 정사를 돌려주어 첩이 천자가 되었다. 짐천자는 현묵(玄黙)을 숭상하지만 예절은 침중하지 못했는데, 어려서부터 황제의 후손으로 자부심 이 많았다. 짐천자는 서남바다에 도읍을 정하고 물을 으뜸으로 삼고 검은 색을 숭상하며 여섯 숫자 로 기원을 삼았다. 곤룡포를 입고 면류관을 썼는데 이때부터 짐천자의 영향이 사해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고 이름이 널리 퍼졌다. 짐천자는 현묘(玄妙)한 담소를 좋아하고 불법을 믿어 스님과 친하게 지내면서도 속인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러 사람들이 재계하고 부르면 갔는데 경박하여 관대함이 없었다. 사람됨은 천박했 으나 첨렴하고 욕심이 적었으며 검소하여 나라가 망한 적은 없었다. 짐천자는 진시황과 함께 나라를 세워 해의국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해의를 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불(徐市)이 불사약을 구 히러 갈 때 함께 가서 동해에 놀았다는 것이 진나라의 기록에 있다. 대륙 지나(차이나의 한자 발음)의 변방에 짝퉁이라는 왕이 있어 호시탐탐 해의국을 넘보자 해의국 의 바다는 고기 씨가 마르고 백성들은 짝퉁의 불안감에 떠는지라 짐천자는 이에 분노를 금할 수 없 어 감태(甘苔)라는 재상과 곽동(藿同)이라는 장수를 보내 지나를 토벌하도록 명령한다. 재상인 감태는 짐천자의 젓가락을 빌려 전쟁 계획을 세웠다. 곽동을 복파장군으로 황각(黃角)과 청 각(靑角)을 좌우종사관으로 삼고 다사마(多士麻)를 표고장군으로, 우모(牛毛)를 전봉도독으로, 고발 (高勃)을 후장군으로, 갈발(葛勃)로 기병을 삼았다. 이때 곽동이 가사리(佳士里)를 기실참군으로 삼으 니 이가 곧 수염이 아름다운 염참군(髥參軍)이었다. 유세객(遊說客)인 부평초(浮萍草)가 돌아와서 강 동땅이 작지만 험하고 장강(長江)이 있으니 서둘지 말 것을 보고했다. 짐천자가 부평초로부터 하순의 장수인 문조(文藻)와 도아리(都阿里), 대아리(大阿里), 미나리에 대해 듣고는 걱정 없다며 공격을 명 령했다. 결국 지나의 짝퉁국은 스스로 망하게 되고 해의국의 발아래 두게 되었다. 건봉 말년에 짐천자가 어느 어부의 손에 죽어 초상 때 먹는 반찬이 되었다. 황태자인 세모(細毛)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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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으나 아직 어려서 삭발하고 스님이 되었다. 이로부터 자손들이 중국 각지에 퍼지게 되었고 진시 황과 같이 짐이라고 불러도 참람(僭濫)으로 여기지 않았다. 스님의 반찬이 되고 인군으로서의 국량 (局量)이 부족하여 말년에 그물에 걸려 사람에게 죽었으니 슬프다. 또한 아들에 이르러 상가(喪家)의 반찬이 되었으니 이 또한 짐천자로 인한 것이다.

⑲ 꾀많은 소금장사 ▮원천 자료 : 박순호 채록, 서타관 구연

한국구비문학대계 6집 4책 [별량면 설화 23]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효심 많은 청년이 병든 노모를 극진히 모시다 병사하자 3년상을 치르고 돈을 벌어 볼 요량으로 소금장수를 하기로 했다. 도매로 구한 소금을 짊어지고 산고개를 넘다 날이 저물었다. 뜻하지 않게 밤을 만난 청년은 급한 마음에 발길을 재촉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자세히 보니 돌부리가 아닌 해골바가지였다. 놀란 청년은 걸음아 날 살려라 라고 도망치지만, 그때마다 해골바가지는 유령 같이 다시 나타나 소금장수의 앞길을 방해한다. 도망치기를 몇 번 반복하던 소금장수는 좀 이상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골바가지가 자기를 따라오는 건 아마도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일 것이다. 사연을 알아볼 요량으로 해골바가지에 종이를 두르고 무명베로 잘 싸서 소금짐 위에 올려 싣고 산을 넘게 되었다. 드디어 큰 동네에 도착한 소금장수는 마을에서 제일 큰 부자집에 들어가 소금을 팔 요량으로 하루 밤을 청한다. 사랑방 앞에 소금짐을 받쳐놓고 잠을 자는데, 주인양반이 안방에서 보니 마당가 사랑 방 앞에 새파란 불이 켜져 있어 자세히 보니 낮에 온 소금장수의 소금짐이었다. “저것은 소금짐이 아니다 야밤에 빛을 내는 것을 보니 틀림없이 금덩이가 들어있는 것이다.” 그날밤 꿈속에 나타난 노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집은 과거 집안의 재물을 빼앗아간 욕심 많은 양반집이니 소금을 팔 때 아주 비싼 값에 팔아야 한다.” 꿈결에 놀란 청년은 노모의 말을 새겨 담았다. 다음날 아침 주인양반은 사랑방에 투숙한 청년에게 진수성찬과 술을 넉넉하게 대접하고 소금의 전 량을 자신에게 팔 것을 묻자 눈치 빠른 청년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는 소금값을 터무니없게 흥정 하게 된다. “얼마나 주겄소.” “아 나는 그렇게 주고 안 파요. 아 나는 평생 먹을 보화가 들었어요.” “그러먼 논 열마지기 값을 주께 파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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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한 지게 값치고는 어마어마 한 값을 못 이긴 체 하고 팔게 된 소금장수는 주인양반에게 이렇 게 말했다. “이 소금짐 안에는 신령한 물건이 들어있어 한 달 전에 열어보면 복이 다 사라지고 말제. 끌러봐 야 당신 복이제 나 간 뒤에 기양 끌러보먼 안돼.” 이 말을 철썩같이 믿은 주인양반은 해골바가지 보따리를 신주단지 모시듯 모셔놓고 한달이 지나기 만을 기다리고, 꾀많은 소금장수는 그 길로 멀리 도망가 땅을 사서 농사를 짓고 살게 되었다. 한달이 지난 후 주인양반은 기대감을 가지고 보자기를 풀어보니, 아뿔사 보자기 속에 든건 해골바 가지라. 속았구나. 욕심 많은 주인양반은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해골바가지를 논열마지기에 값에 사는 꼴이 되버린 것이다. 뒤늦게 후회를 해봤지만, 이미 떠나버린 소금장수를 찾을길이 없었다. 꿈속 노모의 도움으로 욕심 많은 양반에게 소금을 팔아 번 열마지기 논을 처분하여 종자돈을 모은 청년은 한양으로 올라가 소금 점포를 크게 열었다고 한다.

⑳ 왕의 만찬 ▮원천 자료 : 해동잡록 ▮갈래 : 웹툰 ▮스토리텔링 유형 : ▮스토리텔링 방법

광희군은 폭군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할머니인 대비를 폐대비하고 왕위를 넘본다는 핑계로 형제를 때려죽이는 등 폭정을 일삼았다. 광희군은 식탐이 심해 매일 맛있는 수라를 만들게 하고 그 맛을 자 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 나누기 싫다는 이유로 요리사를 죽이기도 했다. 살벌함이 도를 넘어 감히 광 희군에게 수라조차 올리려는 나인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군왕에게 수라를 거르게 할 수 없는 법. 매일 수라 올리는 나인을 뽑는 것이 수라간의 공 포스런 일과였다. 수라를 올린 나인은 어김없이 밤이 되어 죽음을 면치 못하자 아무도 임금의 수라 를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괴팍한 폭군에게 또다른 한가지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수라를 들면서 이야기를 듣 는 것이다. 수라상이 오르면 수라를 올린 나인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가 구 미가 당기고 재미있으면, 다음날 죽음을 면해 주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야 기로 왕의 환심을 사 죽음을 면한 나인은 없었다. 반촌 사는 천인 소화는 이야기를 잘하는 재간꾼이었다. 이를 전해들은 수라간 제조상궁은 소화를 수라간 나인으로 삼아 왕의 환심을 사는 스토리텔러로 영입하는데... 수라를 들인 소화는 광희군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하 지금 올린 수라는 눈썹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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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눈썹이라? 그게 뭔고?” 이야기를 시작한 소화는 해동잡록에 나오는 구두쇠의 손님대접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를 다 들은 임금님은 “고놈참 고약한 놈이로군. 그렇다면 내일은 짐의 수라를 턱으로 내오너 라. 짐은 눈썹뿐만 아니라 턱의 맛도 궁금 하구나.” 광희군 보위 후 처음으로 무사한 수라간 나인이 탄생하자 수라간은 술렁거렸다. 다음날이 되어 다 시 수라상을 들인 소화는 이렇게 말하였다. “전하 분부 받자와 오늘 수라는 턱으로 대령 하였나이다.” 그러자 광희는 대뜸 화를 내면서 “내 이년 나를 뭘로 보는 것이냐?! 이 수라는 어제와 다를 바 없지 않느냐?!” “아니옵니다. 전하 이것은 분명 어제와 다른 턱이옵니다.” 이야기를 시작한 소화는 어제의 수라와 오늘의 수라가 식재료도 같고 모양과 맛도 같지만, 먹는 이의 마음이 귀하나 천하냐에 따라 눈썹처럼 진수성찬도 돠고 턱처럼 하찮은 음식도 된다는 말을 했 다. 즉, 맛은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것으로 광희군의 비뚤어진 수라상과 나인들의 죽음을 비꼰 것이 었다. 이에 광희군은 느낀바 있어 후로는 수라간 나인들을 죽이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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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컨셉이미지 ① 쇠똥을 퍼주는 부자

② 나물 캐는 아가씨와 나무하는 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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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서총대와 연산군

④ 꾀 많은 밀도살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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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학동들의 닭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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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한국음식문화상징사전

▌표제어의 선정 •한국 음식 메뉴와 식재 중에서 한국문화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을 선정했다. •표제어는 고유어로 정하고, 이칭을 병기했다. •다른 표제어와 관련 있는 것은 서술의 균형을 고려하여 분할하여 서술했다. ▌항목의 서술 •민간의 속담, 금기.1) 설화와 민요 등 기층문화 부문의 용례를 설명하고 가치를 정리하여 서술했다. ▌예시 항목

① 고사리 (궐채(蕨菜), 미궐(薇蕨), 월천초) 고사리는 오래전부터 어린 잎과 줄기를 나물로 식용해왔는데, 비빔밥(규합총서)과 잡채(음식디미방), 전 등에 주로 넣는 식재료였다. 규합총서에는 고사리 나물이 양기를 줄이니 남자는 많이 먹지 말아 야 한다고 기록했다. (1) 작고 앙증맞은 것 고사리가 쇠기 전에 작고 연약한 모습은 흔히 어린아이의 손으로 비유되었다.(고사리 같은 손) (2) 부드러운 음식 고사리 나물은 부드러운 감촉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몹시 즐겨 먹는 음식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북한에서는 제상(祭床)을 받으러 온 귀신도 다 좋아해서 제상에 빼놓지 않고 올려놓았다는 데 서, “고사리는 귀신도 좋아한다.”는 속담이 통용되고 있다. (3) 적시(適時) 고사리는 햇빛을 받으면 억세지기 때문에 동틀 무렵에 채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사리도 꺾 을 때 꺾는다”는 속담은 무슨 일이든 정해진 적시에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4) 선비의 절개, 청빈(淸貧)한 삶 고전문학에서 고사리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했다는 백이 숙제(伯夷叔 弟)와 결부되는 소재이다. 신하의 도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 만으로 연명했다는 것에서 고사리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의 시조작품에서는 번잡한 세상에 거리를 두고 유유자적하는 청빈한 삶을 상징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송산리(松山裏) 벽계변(碧溪邊)의 절로 자란 고사리를 / 일 없이 노닐면서 꺾고 꺾고 다시 꺾어 / 조석(朝夕)에 브로 1) 속담 자료는 송재선, 음식속담사전, 동문선, 1998., 최래옥, 한국민간속신어사전, 집문당,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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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니 주릴 줄이 있으랴. (김기홍, 관곡선생실기(寬谷先生實記))

② 고추 (초(椒), 고초(苦椒)  고추장➜장(醬) 고추는 날것으로 식용하거나 말려서 가루를 내어 다른 음식에 첨가하는 양념으로 사용한다. 한국 음 식의 가장 대표적인 양념으로 김치, 비빔밥, 잡채, 전 등에 널리 사용되는 식재이다. 감기가 걸렸을 때 감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먹기도 했다. (1) 본질 고추의 본질은 매운 맛에 있기 때문에 맵기만 하면 외모는 작고 볼품이 없어도 제 구실을 한다는 뜻 에서 “고추가 커야만 맵나.” “작은 고추가 더 맵다.” 같은 속담이 통용된다. (2) 사납고 독함 고추가 맵게 익은 것을 “약이 올랐다”고 하고, 살을 에는 듯 매섭게 부는 차가운 바람을 ‘고추바람’ 이라고 한다. 못마땅하게 여겨 씁쓸해 하는 말이나 불만스러운 투로 하는 말을 “고추먹은 소리”라고 하는 것도 고추의 매운 맛에서 연상된 표현이다. 고추가 지닌 매운 맛은 사람의 성미가 사납고 독한 경우에 흔히 비유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누이는 고추보다 맵다”든가, “고추가 매운들 시집살이 보다 더 매울까(시집살이 민요)” 같은 표현이 대표적인 예가 된다. (3) 남자 아이의 성기 고추는 남자 아이의 성기를 은유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출산한 집 입구에 붉은 고추와 숯으로 얽은 금줄을 치는데, 남자 아이를 출산하면 금줄을 고추로 엮었던 것도 붉은 색의 고추가 벽사(辟邪)와 남 성의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에서는 아이의 출산을 기대하면서 “곰보 종놈이면 어때, 고추만 달고 나오면 됐지.”라고 표현했다.

③ 김치 (엄채(醃菜), 엄채(淹菜), 염제(鹽虀), 염해(鹽薤), 침채(沈菜)) 김치는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역사가 깊을 뿐만 아니라 각종 채소로 담글 수 있는 다양함을 지닌 발효 음식이다. 한글로 표기되기 전에 한문 기록상으로 이미 숭저(菘菹, 배추김치), 나복저(蘿葍 葅, 나박김치), 저봉(葅葑, 순무김치) 등 다양한 김치의 종류가 나타나 있다. 현대에는 냉장고가 보급 되어 김치의 숙성도를 유지하여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게 되어, 묵은 김치를 이용한 요리도 개발되 고 있다. (1) 소박한 반찬 김치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만들고 평소의 밥반찬으로 늘 섭취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김 치가 맛깔스러우니 밥도둑이 따로 없다.”는 속담처럼 김치 한 가지가 밥반찬으로 손색이 없다고 인 식한다. 김치를 소재로 많은 한시를 남긴 서거정은 <촌주 팔영(村廚八詠)>에서, “씹어 먹으니 맛이 고량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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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맞설 만하네(嚼來滋味敵膏粱)”라고 김치를 극찬했다. 서민들의 삶을 다루는 현대 소설에서 유독 김치에 관한 묘사가 빈번한 것도 소박한 반찬으로 김치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기는 없으나 씹을수록 고소한 조밥에다 시원한 열무김치를 얹어서 맛있게 먹다 말고 불쑥 물었다.” 박완 서, <미망>, “안주는 김치 깍두기에 봄나물 한 접시만 달랑 올라 있었다.” 송기숙, <녹두장군>) (2) 선물 맛있는 김치를 선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에 항아리에 담아 선물하는 풍 조가 있었다면 월남전에서는 통조림으로 가공하여 보내졌다. 유배당한 추사 김정희는 제자로부터 항 아리에 담긴 김치를 받고 즐거워 했으며(김정희, 서독(書牘), 세 번째), 광해군 때에는 권력자에 빌붙 기 위해 잡채와 김치를 뇌물로 바쳐 잡채상서, 김치정승이라는 말이 횡행했다고 한다(신흠, 춘성록 (春城錄)). 안정효는 <하얀 전쟁>에서 “고국에서 위문품으로 보낸 깡통 김치가 도착해서 느끼한 전 투 식량에 물린 병사들이 포식을” 했다고 묘사했다. 김치를 맛있게 담가야 한다는 것과 달리 맛없게 담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재상의 집 김치가 그러했다. 재상 집의 김치는 간이 무척 짰는데 그 까닭은 하인들이나 식객이 싱거운 김치를 마구 먹 을까 겁을 냈기 때문이었다(조풍연, <청사 수필>). (3) 숙성과 변질 김치는 적당히 익혀서 먹어야 하는 발표 음식이다. 설익거나 너무 익으면 그 가치가 현저하게 떨어 진다. 서거정은 “많았던 시간 벼슬할 뜻은 김치처럼 무미해지고(多時官興鹽虀淡)”라고 하여 젊은 시 절의 포부가 김치 맛처럼 변했다고 표현했다(<스스로 읊다>). 요즘에도 사용되는 “열무김치 맛도 안 들어서 군내부터 난다.”는 속담은 사람이 장성하기도 전에 못된 버릇부터 배워 바람을 피우는 경우 를 비꼬는 말로 쓰인다. (4) 생활의 고단함, 답답함 묵은 김치(또는 갓김치)는 조선 초기 문인들 사이에서 계집종을 은유하는 것으로 통했다. 부인이 하 얀 백설기라면, 못생기고 누추한 묵은 김치같은 존재가 계집종이라는 것이다(서거정, <묵은 김치 종 (黃菜僕)>, 이육, <갓김치>). 그러나 묵은 김치가 한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군내’라는 후각적 이미지에서 환기된다. 예를 들면, 박완서는 묵은 김치에서 나는 역겨운 군내를 통해 생활의 고단함에 찌든 인물을 형상화하였다 (“할머니는 내 몸에서 나는 구진한 묵은 김치 냄새를 부엌데기 냄새라고 싫어했었다.” <도시의 흉 년>, “김칫독마다 고춧가루가 말라붙어 구진한 묵은 김치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바닥에 빗물이 괴 어 있어 독독이 하늘을 담고 있었고…”, <도시의 흉년>). 그리고 한승원은 군내를 통해 인물의 궁핍 한 생활상을 보여준다(“그는 군내 나는 김치를 밥 머금은 입속에 넣고 씹으면서 톡톡 소리를 내며 타는 접싯불을 바라보았다.”, <해일>). 반면에 한무숙은 김치 냄새를 통해 일상성에 안주되어 있는 답답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방문은 노상 열려 있는데도 방 안은 앓는 사람의 열기와 김치 된 장 냄새, 알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엉겨 후텁지근하고…”, <어둠에 갇힌 불꽃들>). (5) 연중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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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먹기 위해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김장은 한 가정의 연중 행사로 중시되었다(“서울 풍 속에 무, 배추, 고추, 마늘, 소금 등으로 독에다 김장을 담근다. 여름의 장담기와 겨울의 김장담기는 일반 가정에서 1년 중에 아주 중요한 행사이다.” 홍석모, <동국세시기>). <조선세시기>에는 음력 9 월 9일 김장 담그는 장면을 축제를 연상시키듯 묘사하고 있다(“성밖 마을에서 가을채소 수확하니 / 푸르고 푸른 배추와 흰 무뿌리라네 / 집집마다 항아리에 가득 담근 김장은 / 삼동의 정갈한 반찬 준 비한 것이라네”, <조선세시기>)

④ 나물 (남새, 소(蔬), 채(菜))  고사리, 도라지, 미나리 등 주요 나물 별도 서술 나물은 풀이나 나뭇잎 따위 등을 날것이나 데처거나 말려서 먹는 것을 넓게 이른다. 봄철부터 가을 에 걸쳐 산이나 들에서 채취하며 그 종류도 매우 다양하여 한국인들은 친숙한 식재로 사용해왔다. (1) 청빈(淸貧)한 삶 나물은 주변에서 쉽게 얻어 조리할 수 있어서 흔히 고기반찬과 대비되는 소박한 반찬으로 인식되었 다(“나물과 죽순의 공이 짐승 고기의 공보다 높구나(蔬筍功高蒭豢功)”, 서거정, <제학 조승춘이 포순 (蒲筍)을 부쳐준 데 대하여 사례하다>, “채소를 씹어도 고기만 못하지 않다네(咬菜亦自能當肉)”, 서 거정, <채소밭을 돌아보고 짓다>). 나물을 먹는 행위는 더 나아가 가난한 삶을 즐기는 삶의 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확대되기도 했다(“나물 먹고 물 마시는 장부의 청빈이 군함과 대포를 막을 수 있겠 소?”, 박경리, <토지>). (2) 조화 나물은 밥이나 다른 반찬들과도 잘 어울리는 식재이다. 흔하게 사용하는 속담으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서로 격이 어울리는 것끼리 짝이 되었을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들 중은 소금을 먹고 산 중은 나물을 먹는다.”는 속담도 각각 처한 상황에 따라 조화롭게 살아야 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어떤 행위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경우에는 “도끼를 들고 나물 캐러 간다.(북 한어)”는 속담을 사용한다. (3) 구황식(救荒食) 나물은 식량이 고갈되는 보릿고개(춘궁기)나 기근이 들었을때 구황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땅의 농촌은 언제쯤 춘궁기를 면하며, 저 나물밥과 나물죽을 안 먹게 될는지, 심찬수가 입속말 로 중얼거렸다.”, 김원일, <불의 제전>). 나물을 넣어 죽을 끓이거나(“명색이 죽이었으나 죽이 아니 라 숫제 나물국이었다. 나물 사이에 쌀알이 간혹 몇 알 보일 뿐이었다.”, 송기숙, <녹두 장군>), 나 물과 곡식가루를 섞어 풀처럼 만든 나물범벅을 만들어서 허기를 때웠다(“황년을 당하여 우리 대정 고을에 양식이 떨어져 나물범벅 먹는 집이 절반이 넘는데….”, 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4) 풀이 죽음 나물을 조리하는 방식 가운데 끓는 물에 데치는 것은 많은 양의 나물을 효과적으로 섭취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 데쳐진 나물이 풀이 죽어 시들해진 모습은 흔히 폭염으로 시들해진 나무나 생기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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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을 연상시킨다(“그네들은 누구나 데쳐 놓은 나물처럼 생기가 없는 것이었다. 기거 동작이 찬 서리를 맞은 풀잎처럼 후줄근하고 말하는 것까지 갑갑하리만큼 느릿느릿하다.”, 심훈, <영원의 미 소>). (5) 여성들의 노동 봄철의 나물 캐기는 주로 여성들 고유의 일로 인식되었다(“여자들은 나물을 뜯고 무릇을 캤으며 사 내들은 논밭 둑이나 산자락에서 느릅나무 껍질을 벗기고 칡을 캤다.”, 송기숙, <녹두 장군>, “계집애 가 나물을 캐러 가면 갔지 남 울타리 엮는데 쌩이질을 하는 것은 다 뭐냐.”, 김유정, <동백꽃>). 그 래서 “처녀 때 나물 캐듯(북한어)”이란 속담은 일을 쉽게 함을 비유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⑤ 달걀 (계란(鷄卵), 계단(鷄蛋), 계자(鷄子)) 달걀은 날로 섭취하거나 삶아서 먹거나, 또는 흰자위와 노른자위를 따로 지단으로 만들어 비빔밥과 불고기 등에 넣어서 다양하게 활용한다. 김치를 담글 때 계란 흰자를 넣으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 고 더욱 맛이 있다고 한다. (1) 간식 달걀은 영양학적으로 완전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어서 간식으로 즐겨 이용되었다. 윤흥길의 <묵시의 바다>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관심으로 달걀 간식이 등장한다(“내가 책상을 마주하여 뭘 한다고 오랫 동안 전등을 끄지 않는 밤이면 삶은 달걀이나 간식을 들여보내 주기도 했다.”). (2) 연약함, 불완전성, 불가능성 달걀은 얇은 껍질 속에 들어 있어서 깨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로 인식된다(“달걀 섬 모시듯”, “달걀 로 바위 치기”, “그에게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다루어도 아이들이란 생달걀처럼 늘 위태롭고 어색한 존재였다.”, (홍성원, <육이오>)). 뿐만 아니라 아직 병아리가 되기 전의 상태이므로 불완전한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북한에서 사용하 는 관용어 중에서 ‘닭알 통변’이란 아직 닭으로는 되지 못하고 달걀 상태에 머물러 있는 통역이라는 뜻으로, 외국 말을 겨우 조금 할 수 있는 정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편 달걀의 모양이 곧바로 세울 수 없다든가, 상한 달걀이 부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속성 을 지닌 것으로 비유되었다.(“곤달걀 꼬끼오 울거든.”) 관용적으로 “달걀로 쌓은 가리(더미)”라고 하 면 달걀로는 가리를 쌓을 수 없다는 뜻에서 쓸데없는 공상을 한다는 비유이다. <성수패설>에 전하는 설화는 이 말의 의미를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어서 흥미롭다. 귀양 간 남편을 위해 매일 계란을 쌓으 며 빌던 아내를 민간을 순시하던 임금이 발견하고 그녀의 소원을 성취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지성이 면 감천이듯, 불가능한 상황을 아내의 정성으로 가능하게 바꾸었다는 주제를 전달하는 설화이다. (3) 중요한 것 달걀은 전반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중에서 노른자만은 유독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물을 비 유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달걀로 치면 노른자다.” “먹음직스러운 육회 접시 한가운데 달걀 노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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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동그랗게 얹혀 있었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4) 예쁜 얼굴형 달걀의 갸름한 모양은 흔히 여성들의 예쁜 얼굴형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그렇다, 달 걀 같이 뽀얗고 갸름하게 생긴 소녀, 그녀는 정순이나 옥란이를 그때부터 언니 언니하고 지냈지 만,……”, 김동리, <까치 소리>, “달걀 껍질처럼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쌀분이의 얼굴과도 같이 잔조 로운 강 위에는 돛단배가 한가롭게 오르내릴 뿐이었다.” 송기숙, <자랏골의 비가>).

⑥ 닭고기 (계륵(鷄肋), 백숙(白熟)) 닭고기는 소나 돼지보다 흔하고 값이 싼 육류로 굽거나 찌거나 끓이는 백숙으로 이용해왔다. 그리고 다른 음식의 식재료도 널리 활용되어 왔다. 중국의 삼국시대 위(魏)나라 양수(楊脩)의 말에서 비롯된 ‘계륵’이란 말은 쓸모없는 애매한 사물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다. (1) 버리기 아까운 것 닭의 갈비인 계륵(鷄肋)은 그다지 큰 소용은 없으나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을 이르는 말이다(“대저 닭갈비란 버리자면 아까운 생각이 들고, 먹자면 또한 먹을 것이 없다(夫雞肋 棄之如可惜 食之無所 得)”, 삼국지 위서(魏書) 무제기(武帝紀)). 한국 고전 작품에서도 동일한 의미로 관용어처럼 널리 사 용되었다. 그러나 한말의 시인인 황현은 부귀 공명을 닭의 갈비로 비유한 바 있다(“닭갈비 같은 공 명 속에 귀밑이 진작 세었지(鷄肋功名鬢已蒼)”, <방 상사 하규를 곡하다 4수>). (2) 손님 대접 닭고기는 손님이 왔을 때 대접하기 위한 고기반찬으로 인식되었다(“돼지고기는 설하고 추석 때나 썼 고 생일이나 손님이 왔을 때는 닭을 잡았기 때문에 닭 잡는 것은 어려서부터 봐 왔다.”,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조선 초기 서거정의 <태평한화골계전>에는 채소 안주를 내온 친구 에게, 김선생이 자신이 타고 온 말을 잡아 안주로 삼고 뜰에 있는 닭을 타고 돌아가겠다고 하는 이 야기가 전한다(<차계기환(借鷄騎還)>). 대접을 소홀히 한 인색한 친구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북한에서는 “닭 한 마리를 잡아먹어도 인끔이 있어야 잡아먹는다”라는 속담이 사용되는데, 작은 음 식이라도 이웃과의 정(情)을 중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3) 중품(中品)의 고기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서 닭고기는 값이 낮은 것으로 인식될 뿐만 아니라(“닭 잡아 할 제사 소 잡아 하게 된다.”, “동네가 구열(俱悅)하면 소를 잡아먹고 집단이 구열하면 닭을 잡아먹는다(북한)”), 맛은 꿩이나 참새 같은 새고기보다도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꿩 대신 닭”). 값싸고 쉽게 섭 취할 수 있는 식재이지만, 진기한 풍미는 별로 없는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육류로 인식해온 것이다.

⑦ 도라지 - 240 -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도라지는 뿌리를 양념에 무쳐 나물로 이용되거나, 잘게 찢어서 갖은 양 념을 하여 볶은 뒤에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 푼 것을 씌워 조각을 만들어 지진 ‘저냐’로. 이용되었다. (1) 대표적인 산나물 최근에는 도라지를 재배하지만, 예전에는 도라지를 대표적인 산나물로 인식해었다. 그래서 산촌 지 역에서는 주요한 생산물이었을 뿐만 아니라(“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 리 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김동리, <역마>), 겨울 식량의 하나였다(“순이는 전에 현보가 하 던 모양대로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패고, 틈틈이 겨울 준비로 도라지, 고사리 같은 산나물도 캐 모았 다.”, 정비석, <성황당>). (2) 여성의 노동 조선 후기에 유행한 <도라지타령>에는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 강원도 금강산 백도라지, 도라지 캐는 아가씨들 손맵시도 멋들어졌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도라지 캐기는 일반적인 나물캐기와 같은 여 성들의 노동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여성들이 적당한 핑계를 대고 제 볼일을 보러 가 는 경우를 “핑계 핑계 도라지 캐러 간다”는 속담으로 비유하곤 한다.

⑧ 두부(豆腐) 두부는 콩을 활용해서 만든 음식인데, 민간에서는 영양식과 제수(祭需)로, 사찰에서는 부처에게 올리 는 공물(供物)로 진상되었다. (1) 부드러운 살집 콩으로 만드는 두부는 영양식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두부는 우리가 알고 있던 최상의 영양식이었 다. 계란과 고래고기를 제외하고 나면 그보다 양질의 식품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었다.”, 이동하, <장난감 도시>). 이런 인식은 부드럽고 하얀 두부의 느낌과 결부되어 통통한 살집을 연상시킨다(“그 리고 부지런한 그녀 오빠들 덕분에 그녀는 값비싼 두부를 아침저녁으로 먹어서 두부처럼 부드러운 살집과 허연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장난감 도시>). 그래서 두부는 종종 아기의 피부를 연상시킨 다(“생긴 것부터가 품속에 안아 기른 듯 두부살에 바늘뼈로 허여멀끔한 상판하며….”, 송기숙, <녹두 장군>). (2) 조심 두부는 부드러운 음식의 대명사로 어린아이나 노인들이 섭취하기에 알맞다. 그러나 아무리 부드러운 음식이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뜻에서 “두부 먹다 이 빠진다”, “두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이 사용된 다. (3) 조급함 두부는 만드는데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 슬로우푸드이다. 두부 만드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모습은 흔히 성급함이나 조급함을 뜻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콩밭에 가서 두부 찾는다.”, “콩밭에 간수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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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다.”). (4) 결단성 부드러운 두부를 칼로 자르면 쉽고도 반듯하게 두부모를 가를 수 있다. 그래서 흔히 “두부모 자르듯 하다”는 속담은 어떤 일을 결단하는 행위로 비유되어 왔다. (5) 액땜 두부는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른 음식을 먹기 전에 곧바로 먹는 음식으 로 알려져 있다(“감방에 갔다 나온 사람한테는 두부부터 먹여야……”, 김원일, <불의 제전>, “아버지 는 당시 마을에서는 구하기 힘든 두부를 한꺼번에 세 모나 날것으로 먹어 치웠다.”, 윤흥길, <장 마>). 더 큰 재앙을 두부를 먹는 행위로 대신한다는 점에서 액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⑨ 마늘(산(蒜)) 백합화의 여러해살이 식물인 마늘은 잎과 줄기 뿌리를 각각 조림이나 장아찌 등의 식재로 사용해왔 다. 특히 마늘의 뿌리는 매운 맛과 독특한 향으로 중요한 양념으로 취급되어 고추와 함께 한국 음식 이면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첨가물로 이용되었다. 마늘은 파, 부추, 달래, 무릇(흥거)과 함께 오훈채 (五葷菜, 또는 오신채(五辛菜))라고 하여 자극성이 강한 다섯 가지의 채소에 속했다. 오훈채는 궁중 에서 '오신반(五辛盤)'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불가(佛家)와 도가(道家)에서는 이것을 먹으면 음욕(淫慾) 과 분노(憤怒)가 유발(誘發)된다고 하여 금기시되었다. (1) 금기 일연의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의 건국신화에는 호랑이와 곰이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금기하는 내용이 나온다. 곰이 이를 지켜내고 웅녀가 되어 환웅과 혼인하고 단군을 탄생시켰다. 여기에서 마 늘은 행위의 제약을 상징하는 것으로 존재론적 변신에 이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2) 세속적 욕망 매운 맛과 독특한 향이 있는 마늘은 강렬하게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기 때문에, 말초적인 감각을 조 절하고 정신적 수련을 도모하는 불교와 도교에서는 금기시되던 식재였다. 여기에서 훈채(葷菜)나 신 채(辛菜)는 세속적인 감각을 뜻하는 동시에 더 나아가 세속적인 욕망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고려시대의 문인인 이규보는 오신채를 먹지 않는 것을 통해 세속의 권력자와 관계를 끊는 것으로 비 유했다(“뜻이 있으면 오신 물리치는 것 어찌 어렵겠는가(有意何難屛五辛), 점차로 중인(中人)과의 관 계 끊을 것을 생각한다(亦思漸斷內中人)”, 이규보, <처음으로 오신(五辛)을 끊고서 짓다>). 현대에 이르러 마늘은 무미건조한 맛에 생기를 불어넣는 식품으로 인식이 변모되었다. “파와 마늘이 들어가지 않은 짐짐하고 느글거리던 음식으로 늘 비위 거슬려 해야 했던 것이다.”(이문구, <장한 몽>), “그는 파, 마늘, 고춧가루 양념이 짙은 음식이 얼마나 먹고 싶었다는 얘기를 이렇게 둘러댔 다.”(박완서, <미망>)와 같은 사례에서 보듯 마늘은 맵고 강렬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의 입맛을 결 정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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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쁜 여자 껍질을 제거한 마늘의 희고 아담한 모습은 흔히 하얗고 반반하게 생긴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른다. “팔다리가 짧은 게 어쩐지, 어디가 어떻달 수 없는데 밤톨 같지가 않고 마늘각시랄까….”(박경리, <토지>)같은 표현에서 ‘마늘각시’는 마늘과 각시의 시각적 연상작용에서 형성된 표현이다.

⑩ 미나리 미나리는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사철 내내 서민들의 식탁에 오르는 채소이다. 날것으로 초장과 함께 섭취하기도 하고, 볶음이나 김치와 짠지로도 이용되고 잡채 등에 식재료로도 활용된다. (1) 상록(常綠) 미나리는 사시사철 심지어 얼음이 어는 겨울에도 적당히 물이 고인 논에서 생장한다. 그래서 미나리 는 흔히 늘 푸른 상록의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조선 숙종 때에 유행하던 구전 민요로 <미나리요 (謠)>가 있었다. 숙종의 계비(繼妃)인 민비(閔妃)와 장 희빈(張禧嬪)을 각각 미나리와 장다리에 비유 하여 부른 노래인데, 장희빈이 봄철 한때 피는 장다리라면 민비는 사철 푸른 미나리하고 하여, 궁극 적으로 숙종의 사랑이 민비에게 돌아올 것을 암시한 내용이다. (2) 대표적인 재배 나물 도라지가 대표적인 산나물이라면, 미나리는 대표적인 재배 나물이었다. 서민들은 물이 고인 곳에서 자라는 미나리를 통해 항상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다. “겨울날 다스한 볕을 님 계신데 비추고자 / 봄 미나리 살진 맛을 님에게 드리고자”(작자미상, 진본 청구영언)와 같은 시조에서 살진 미나리 맛은 님에게 드릴 수 있는 서민의 소중한 선물로 묘사되었다.

⑪ 미역(감곽(甘藿), 해채(海菜)) 갈조류의 바닷말인 미역은 날것으로 초장과 함께 섭취하거나 무침과 국 등으로 활용되었다. 미끄러 운 느낌이 있어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역국은 한국인이 평소에 즐겨먹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산모들에게 약효가 있어 해산 후에 먹는 음식으로 인식되어 있다. (1) 낙방(落榜) 미역은 미끄러운 촉감이 있기 때문에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는 연상으로 인해 시험을 보는 날 에는 미역국을 먹지 않는 속신(俗信)이 있다. 관용어로 “미역국(을) 먹다”는 표현이 시험에서 떨어지 다는 비유로 쓰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2) 의례(儀禮) 음식 미역은 출산시나 생일날 먹는 의례 음식이다. 미역에는 산모의 원기를 빨리 회복시켜준다고 하여 아 이를 출산한 산모들에게는 미역을 먹이는 습속이 있다(“아내의 산월이 임박했는데 아직 미역 한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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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장만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절로 암담해졌다.”, 이북명, <질소 비료 공장>, “배가 앞 으로만 툭 불거진 게 또 딸이다 싶어 기저귀 할 무명 자투리 하나, 첫 국밥 지을 미역 한 닢 마련하 지 않고 몸만 친정으로 쫓아 보낸 시어머니는 이 기쁜 소식에….” 박완서, <도시의 흉년>). 출산한 산모가 먹은 미역국은 그날 태어난 사람의 생일상에도 오른다(“생일날은 미역국을 맛깔스럽 게 끓이고 내 바리에다 흰 밥을 제일 먼저 소복이 퍼담았다.”. 박완서, <도시의 흉년>, “제 생일날 미역국을 고기꾸미 없이 소로 끓였다고 해서 대뜸 밥상을 박차고 절구통을 번쩍 쳐들고 씨암탉을 쫓 는데….” 박완서, <미망>). 산모의 회복을 위해 먹었던 미역국이 영양적 측면에 의미가 있다면 생일 날 먹는 미역국은 반복되는 행위를 기념하기 위한 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⑫ 비빔밥(골동반(骨董飯)) 비빔밥은 고기나 나물 따위와 여러 가지 양념을 넣어 비벼 먹는 밥의 종류로, 남은 음식을 활용하거 나 짧은 시간 내에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기의 종류와 채소는 지방마다 차이가 있으 며, 식재료를 취향에 따라 조절할 수 있어서 사람들의 인가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1) 간편식 비빔밥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의 하나이다. 조선후기에 지규식(池圭植)이 쓴 <하재일기(荷齋 日記)>(고종 28년(1891)~1911년)에는 외출 중에는 점심을 비빔밥으로 흔하게 먹었던 내용이 기록 되어 있다. 현대소설에도 비빔밥이 간편식으로 묘사되었다.(“그녀들은 아무도 아침을 먹지 못했고, 점심을 맵고 짠 국수나 비빔밥으로 때웠다.”, 이문열, <그해 겨울>). (2) 뒤범벅, 혼탁함 조선시대에는 비빔밥을 골동반이라고 했는데, 이것저것 넣어서 만든 밥을 뜻했다. 그래서 비빔밥은 순수하지 않은 뒤범벅된 것이나 혼탁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유되었다(……도신의 계사와 형조의 언 의(讞議)는 여전히 이것저것 뒤섞어 놓은 강남의 골동반(汨董飯)과 같아 애당초 실인에 구타와 찔린 것이 섞여 기록된 것에 마음을 쓰지 않았으니……“, 정조, 심리록 제31권, 무오년(1798) 경상도, <영덕(盈德) 김득손(金得孫)의 옥사>). 비빔밥이 뒤범벅된 것을 비유하는 것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지 속되고 있는 인식이다(”익살스러운 말에 괘사를 부리는 행동이 곁들게 되고, 괘사스러운 행동에 이 죽거리는 익살이 따라서, 말과 제스처는 뒤범벅이 되고 비빔밥이 된다.“, 이희승, <먹추의 말참견>).

⑬ 보리(맥(麥)) 볏과의 두해살이풀인 보리는 쌀과 더불어 중요한 곡식으로 인식되었다. 죽, 범벅, 떡 등으로 이용되 지만, 대개는 쌀과 섞어 밥으로 섭취한다. 예전에는 씹는 촉감이 거칠고 미끄러워 싫어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건강식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아지고 있디. (1) 조급함 보리는 씰보다 밥을 만드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그래서 “보리밭에 가 숭늉 찾는다”는 속담처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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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밥은 흔히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을 가리키는 비유로 쓰인다. 북한에서 사용되는 “보리밥 한 솥 짓기”라는 속담은 보리밥 한 솥을 지을 정도의 시간이라는 뜻으로, 심리적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보리는 금년에 심으면 다음 해에 수확하는 작물이다. 한 해를 넘겨 수확해야 하므로 상대적으 로 재배 기간이 긴 것처럼 인식된다. 이로 인해 빨리 결과를 얻으려고 성급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 리 갈아 놓고 못 참는다”라고 하고, 이듬해에 가서 거두어 먹는 것은 정해진 이치라는 뜻이니 으레 정해져 있는 사실을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보리 갈아 이태 만에 못 먹으랴”라는 속담을 사용한다. (2) 어리석음, 무지함 콩과 보리는 생김새가 워낙 달라 누구나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래서 “콩과 보리를 분간하지 못한 다” 또는 “숙맥(菽麥)도 모른다”는 속담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도 분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고 못 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숙맥이 상팔자”란 속담은 모르는 것이 차라리 마 음 편함을 자조적으로 비유하는 말이다. (3) 보릿고개, 춘궁기(春窮期) 보릿고개는 햇보리가 나올 때까지의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거의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음력 4월경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눈 속담은 한 해 동안 농사지은 식량을 가지고 다음 해 보리가 날 때까지 견디어 나가기가 매 우 힘들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고, “정신이 보리동냥 갔다(북한어)”는 속담은 먹을 것이 귀한 보릿고개에 보리를 동냥하러 갔다는 뜻으로, 정신없이 허둥지둥 돌아다니는 경우를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다.

⑭ 소금(염(鹽)) 소금은 천연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조미료이다. 채소를 절이거나, 음식 맛을 조절하는데 없어 서는 안되는 요소이다. (1) 필수적 조미료 소금은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필수적인 조미료이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 같은 속담 은 아무리 필수적인 요소가 있다 해도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비유한다. 소금의 용도와 관련하여 “소금 먹은 푸성귀”란 기가 죽어 후줄근한 사람을, “소금도 없이 간 내먹다”는 속담은 준 비나 밑천도 없이 큰 이득을 보려 하는 경우를 비꼬는 말을 각각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2) 정결(淨潔)함, 불변성(不變性), 부정(不淨)의 제거 소금은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하고 자체로도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소금이 쉴 때까지 해보자”는 속담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어떤 일에 대해 반드시 끝장을 내겠다는 말로 쓰인다. 북한 지역에서 사용되는 “사람 속은 소금 서 말을 같이 먹어 보아야 안다.”는 속담도 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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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쉬운 사람과 변하기 어려운 소금을 견준 것으로, 그 사람과 오랫동안 생활해 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소금의 속성을 적용한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소금도 곰팡 난다”(북한어)는 속담 은 절대 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소금도 상할 때가 있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절대 탈이 생 기지 아니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물질적인 소금의 속성이 정신적인 측면으로 전의(轉意)되면 부정을 제거하는 의미로 상징화된다. “소 금 들고 덤비다.”는 속담은 어떤 상황에 부정(不淨)한 것을 대하듯 한다는 뜻인데, 소설 작품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찾을 수 있다. “대문 밖에 소금 뿌리고, 금줄 치고, 가시 많은 찔레 덤불을 베어다 앞 을 막았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는 표현은 소금이 부정을 제거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한 것이다.

⑮ 쇠고기 (우육(牛肉)) 쇠고기는 양념을 하여 구워먹거나 다양한 음식의 주재료로 사용되었다. 또한 돼지나 닭에 비교하여 맛과 질이 고급한 것으로 여겨졌다. 최근에는 수입 쇠고기가 유통되어 상대작으로 한우에서 얻은 쇠 고기의 인기가 높다. (1) 상품(上品)의 육류 쇠고기는 한국인이 최고로 선호하는 육류이다. 북한에서는 “소고기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싸움 붙이 는 고기다”라고 하여 맛좋은 쇠고기로 인식되고 있다. “소 팔아 소고기 사 먹는다”는 속담 역시 북 한에서 사용되는 속담인데, 값이 나가는 짐승인 소를 팔아서 그 돈으로 더 비싼 쇠고기를 사 먹는다 는 뜻으로, 큰 것을 희생하여 적은 이익을 보는 경우를 비꼬는 말로 사용된다. (2) 제수(祭需) 예전에 쇠고기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육류였다. 그러나 조상의 제사에는 필수적인 제수품(祭需 品)이었다. “값진 쇠고기는 우리의 식탁을 장식할 뿐 아니라 제사 때에는 경건한 제물이 되어 왔 다.”(임동권, <끈 떨어진 뒤웅박>)

⑯ 쌀(미(米), 벼, 밥(飯))  죽과 누룽지 포함 서술 한국인의 주식인 쌀은 죽과 밥, 떡 등으로 조리하여 주로 섭취해왔다. 그러나 밥은 죽이나 누룽지와 는 구별해서 상품(上品)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도정(搗精)하기 전의 벼는 자체로 물물교환의 수 단과 세금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1) 죽-저급한 음식 쌀로 만든 밥이 보통식이라면, 죽은 저급한 음식으로 인식되어 있다. 건강을 위해 일부러 죽을 만들 어 먹는 경우가 있지만, 예전에는 구황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이 들어간 관용구는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 많다. “죽 끓듯 하다”는 표현은 화나 분통 따위의 감정을 참지 못하여 마음속 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죽도 밥도 안 되다”는 어중간하여 이것도 저것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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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상황을 비유한다.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른다‘나 ”죽이 되든 밥이 되든“도 무관심하거나 결과만을 생각하는 태도를 문제삼고 있다. “밥 빌어다가 죽을 쑤어 먹을 놈”이라면 무능한 사람을 가리킨다. 2) 밥-식복(食福) 예부터 한국인들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밥을 인식해 왔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든가, “밥그릇이나 축내다.”, “비싼 밥 먹고 헐한 걱정 한다”같은 속담과 관용어가 매우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밥을 먹는 자세나 심지어 얼굴에 나타난 관상에서도 “밥이 얼 굴에 더덕더덕 붙었다”같은 속담을 즐겨 사용했다. 그리고 밥을 더 이상 먹지 못하는 경우는 죽음을 비유했다. “밥숟가락(을) 놓다.”는 관용어가 그러한 예가 된다. 3) 누룽지-가난함, 별식(別食) 밥에 비하면 누룽지도 죽처럼 저급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평생소원이 누룽지”라고 할 때에는, 기껏 요구하는 것이 너무나 하찮은 것임을 비유적으로 쓴다. 하지만 마땅한 간식이 없던 시절에 누 룽지는 어른이나 아이할 것 없이 즐길 수 있는 별식이었다(“아이들은 하나 둘 주머니에서 누룽지를 꺼내 볼이 메도록 씹기 시작했는데 종세는 홀로 열린 화차문 앞으로 다가가 보았다.”. 최인호, <지구 인>).

⑰ 쌈 (복쌈, 박점(縛苫), 복과(福裹), 복포(福包)) 쌈은 밥이나 고기, 반찬 따위를 상추, 배추, 쑥갓, 깻잎, 취, 호박잎 따위에 싸서 먹는 음식이다. 육류 와 채소를 함께 먹어 건강식으로 알려져 세계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음식이다. (1) 긴밀함 쌈에는 대부분 고추장이나 된장을 함께 섭취한다. 그래서 “상추쌈에 고추장이 빠질까”라는 속담에는 상추쌈에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이나 사물이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경우를 비유한 다. (2) 복(福)의 기원 한국인들은 음력 정월 보름날에 김이나 배추 잎과 같은 넓은 잎에 밥을 싸서 쌈으로 먹었다. 복을 싸서 먹는다는 뜻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풍속이다. 신년초에 복을 기원하면서 먹던 쌈의 의미를 되새 기면서, 사시사철 쌈을 먹으면 그 의미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⑱ 장 (醬, 간장, 된장, 고추장) 한국 음식 문화에서 ‘장(醬)’이라 할 때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을 통칭하는 것으로 흔히 사용한다. 그리고 식혜, 소금, 김치 등과 연결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장’이 관련되는 상황을 의미의 범주로 구 분하고 각각의 의미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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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요한 반찬 장(醬)은 한국 민족에 있어서 주된 조미료이지만 더 나아가 반찬을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밥 은 3장(醬)만 있으면 먹는다. 된장 아까워 개도 못 잡는다.) 고려시대 충렬왕 때에 세자가 굶주린 사 람들에게 장을 베풀었다는 사실에서 주식인 밥과 대등한 정도로 인식한 것을 알 수 있다.2) 2) 내면적 가치 장(醬)은 그것을 담는 용기(容器)와 비교하여, 겉의 외형보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를 뜻한다. (꾸 러미에 단 장 들었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다.) 가난한 집이라도 장맛이 좋을 수 있고(움막에 단 장이 다.), 반드시 잘사는 집이라 해서 장맛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반어적 표현이 종종 사용된다. 3) 가문의 정체성 장은 한 집안에서 대대로 담가오며 대물림 되는 것이므로 종종 그 집안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그 집 장 한독을 다 먹어 보아야 그 집 일을 잘안다.) 그래서 장맛을 통해 그 집안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믿었다.(장 맛 단 집에 복이 온다. 장 맛이 좋아야 집안이 잘 된다. 집 안이 망하려면 장 맛부터 변한다.) 그런데 그 집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언어예절이라는 점은 주의를 기울일 만하 다. (말 많은 집 장맛이 쓰다. 장 단 집에는 가도 말 단 집에는 가지 말랬다.) 고추장단지가 며느리들끼리는 그 집안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상징한다는 인식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맏동서 죽으면 고추장단지가 내 차지고, 시어머니가 죽으면 아랫목이 내 차지다.) <이순록(二旬錄)>에는 장이 집안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밥상을 받고 장을 떠먹는 습관으로 헤어진 혈육을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3) 4) 불변성과 항구성 장은 보관하는 정성에 따라 몇 백년을 불변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어 항구적인 가치를 띠는 것으로 인식된다.(3년 묵은 장이 변하겠나? 장과 의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 장은 묵을수록 값이 오르고, 처녀는 묵을수록 값이 떨어진다.) 그러나 장을 보관하는 정성이 없거나 그 집안에 큰 변화가 생기면 장의 가치는 훼손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10년 묵은 장맛도 변한다. 장맛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 5) 주술적 효능 간장은 식품뿐 아니라 주술적인 효능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에는 호랑이에 게 물렸을 때 호원사의 간장을 바르면 낫는다고 하였다.4) 이러한 주술성을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선조 임금이 영변으로 파천할 것을 논의하는 중에 미리 합장사(合醬使)를 파견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5) 국가적인 대사에서도 간장의 준비는 가장 중시되었던 사안이었던 것 이다. 2) 1292년 5월 26일(정사)에 세자는 장(醬)을 시가(市街)에 베풀고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먹였다. 사흘 뒤에 세자가 왕과 공 주에게 축배를 올리는데 제왕(諸王)과 양부(兩府)의 원로들이 시연(侍宴)하였다. 세자가 일어나서 춤을 추고 왕과 공주는 흐 뭇하게 즐기고 끝냈다. 안정복, 동사강목 제12하, 임진년 충렬왕 18년(원 세조 지원 29, 3) 이순록(二旬錄) 하(下) (김현룡 3-[428] 이전인(李全仁)) 4) 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감통(感通), 김현 감호(金現感虎) 5) 허균, 성소부부고 제23권, 설부(說部) 2, 성옹지소록 중(惺翁識小錄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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⑲ 콩(숙(菽)) 콩은 콩과의 한해살이풀로 열매인 콩은 자체로 죽이나 밥, 떡 등으로 섭취하고 두부의 원료로도 사 용된다. (1) 저급한 식사 콩으로 밥을 하면 딱딱하고 식감이 거칠다. 그래서 콩밥은 저급한 식사로 인식되었다. “이 아픈 날 콩밥 한다”는 속담은 곤란한 처지에 있는데 더욱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빌어먹는 놈이 콩밥을 마다할까”라는 속담도 한창 궁하여 빌어먹는 판에 콩밥이라고 마 다할 수 없다는 뜻으로, 자기가 아쉽거나 급히 필요한 일에는 좋고 나쁨을 가릴 겨를이 없음을 비유 적으로 이를 때 사용한다. (2) 감옥살이 콩밥은 저급한 식사인데 주로 형무소에서 먹는 밥을 은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콩밥(을) 먹이다”는 속담은 감옥살이를 하게 감옥으로 보내다는 속어의 뜻을 담고 있다. (3) 무지 콩과 보리도 분간하지 못한다 (4) 성급함 콩밥은 쌀로 조리하는 것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흔히 콩밥이 익기까지 기다리기가 어려 워 성급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가마 속의 콩도 삶아야 먹는다”는 속담은 가마 안에 들 어간 콩도 끓여서 삶아야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성급한 사람의 성미를 비유하는 말이다. “이도 아 니 나서 콩밥을 씹는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겠다”라는 속담은 시간이 걸려야 하는 일을 지나치게 빨리 처리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5) 망함 콩가루와 팥가루는 떡의 고물로 활용된다. 그런데 콩을 갈아서 만든 콩기루가 맛있는 것으로 변화된 다는 것보다는 전보다 못한 것이 되고 만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콩가루(가) 되다”는 관용어는 흔히 집안이나 어떤 조직이 망하다는 비유로 사용된다..

⑳ 파(총(蔥) 파김치 포함 파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매운 맛이 있어 오훈채 또는 오신채에 속한다. 날로 먹기도 하지만 김치와 설렁탕을 비롯한 상당히 다양한 한국 음식에 양념으로 사용된다. (1) 조심 파밭은 매우 밀식(密植)하므로 관리하기에 조심스럽다. 그래서 “파밭 밟듯”이란 관용어가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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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 파밭 두드리듯”이란 관용어는 분수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뜻이다. (2) 지침 파로 김치를 만들면 풀이 죽어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파김치(가) 되다”란 관용어는 몹시 지쳐서 기운이 아주 없이 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3) 이성(理性) 파는 매운 맛으로 인해 감각을 일깨우고 정신을 집중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 강원도 양구군에 전하 는 설화에는 사람들이 파를 먹게 된 유래를 담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소로 보고 잡아먹었는데, 파를 먹게된 이후로 사람들은 비로소 사람을 소로 보는 일이 없게 됐고 마을은 편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파는 사람들에게 이성을 찾아주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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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록 1) 사업팀 회의록 ① 제1차 사업착수회의

1. 일

■2011년 10월 19일(수) 19:00시~20:00시 2. 장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8호

장소 약도 추가 3. 참석자

■박치완(과제책임자), 정혜경(수석연구원), 김근태(프로젝트관리자), 배은석(자문위원) 김미혜(공동연구원), 김정희(공동연구원), 유제상(공동연구원), 장정희(보조원) 위임-우나리아(공동연구원), 김현정(공동연구원) 박진희(공동연구원), 신정아(자문위원) 4. 사업개요

1) 사업의 목적 및 범위 ① 사업의 목적 ㉠ 세계화 10대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를 체계적으로 전수 조사 발굴 ■메뉴선정의 기준과 근거제시로 타당성 보증 ■기존의 식품학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인문학적 관점 제시, 자료검색으로 확장 ㉡한식 스토리텔링 소재를 DB로 구축하여 공공 서비스 ■저작권을 확보하여 공공 서비스로 개방 ■다양한 검색 방식 적용하여 이용성 증대 ㉢한식의 마케팅을 위한 다양한 활용 방안 제시 ■한식 스토리텔링의 조합과 창작 ■한영 홈페이지 개발을 통한 현장 활용 2) 사업의 범위 - 251 -


㉠원천자료의 수집과 발굴 (총 290건) ■텍스트 - 역사 민속 지리 문학 등 210건 ■이미지 - 풍속화, 무속화 등 37건 ■동영상 - 인터넷영상, TV방송 등 18건 ■음성

- 구술설화, 민요, 인터뷰 등 25건

㉡스토리텔링을 위한 소재의 분류 ■한식 메뉴(식재) ■관련 사항(유래, 민속, 상징, 일화) ■캐릭터 ■상황 ■시간과 장소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웹서비스용 DB를 위한 ASP 기반 SQL 데이터베이스 작업 ■통합검색을 위한 테깅(tagging) 작업 ■향후 스마트폰 앱서비스를 위한 방안을 포함, ‘유연한 DB’가 되도록 설계

5. 업무 분장

1) 사업책임자

사업책임자

사업 총괄 ㉠ 사업의 발주 및 종료에 대한 최종 책임

박치완 한국외대 교수 (

)

㉡ 사업진행에 따른 업무보고(월별보고, 중 간보고, 결과보고) ㉢ 참여연구원의 임면 ㉣ 수집 과정의 자료 보안 책임

2) 수석연구원

3) 프로젝트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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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연구원 정혜경 호서대 교수 (

성명 우나리야 김현정 김미혜

음식문화사료 수집팀 총괄

)

㉠음식사 문헌 중 스토리텔링 소재 탐색 ㉡지역음식 내역중 스토리텔링 소재 탐색 ㉢영상사료 중 스토리텔링 소재 탐색 ㉣소유 저작권 허용

수집팀 수행 업무분야 직급 담당업무 연구원 고문헌수집 연구원 근대문헌수집 연구원 영상수집 프로젝트관리자

■고문헌(조리서, 민속지, 지리지, 향토지) 검

01

색 ■근대문헌(신문 잡지 논문) 검색 ■영상사료(인터넷, TV, 박물관) 검색

02 03

■수집팀 자료 정리, 연락 관계 ㉠사업 일정 및 보고 관리 ㉡사업진행에 따른 업무보고(월별보고, 중간 보고, 결과보고)

김근태 한국외대 연구원 (

성명 주영하 진성규 이찬욱 배은석 신정아

)

㉢사업 내역 조정 관리 ㉣문학서(운문(한시, 시조), 산문(설화, 야담, 소설)) 검색

자문과 품질관리 직급 담당업무 교수 음식문화사 교수 역사학 교수 스토리텔링 학예사 음식 콘텐츠 코디네이터 작가 콘텐츠활용 +

■음식문화사료 검토, 콘텐츠 품질 검수 ■역사사료 검토검토, 콘텐츠 품질 검수 ■스토리텔링 방향 제시, 콘텐츠 품질 검수 ■음식 사료 제공, 전문가 섭외, 콘텐츠 품질 검수 ■콘텐츠 활용안 제시, 콘텐츠 품질 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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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정희 박진희 유제상 장정희

콘텐츠팀 수행 업무분야 직급 담당업무 연구원 스토리분류 연구원 영상수집 연구원 스토리텔링 보조원 관리

■수집된 문헌 자료에서 스토리텔링 요소

04

추출 정리, 샘플 스토리텔링 개발 ■수집된 영상 자료에서 스토리텔링 요소

05

추출 정리, 샘플 스토리텔링 개발 ■콘텐츠 분석, 분류체계, 활용방안 연구 ■콘텐츠팀 자료 정리, 연락 관계

06 02

DB

개발팀 수행 업무분야 성명 직급 담당업무 류승권 연구원 콘텐츠개발 권동욱 연구원 구축 DB

■스토리텔링 만화 매뉴얼 개발, 샘플 스토 리텔링 개발 ■정리된 자료를 XML문서로 전환, 재단 홈페이지에 탑재

DB

6. 업무일정

1) 일정표

단계

수행업무

인력 투입계획 2011 10

기획연구

기획내용 공유

18/18

1차조사

문헌사료 조사

3/8

월간보고 1차 정기 보고 월간보고 2차 정기 보고

영상사료 조사

11

12

2012 01

02

05

비고 체 회의 운영위원3인

3/8

3/8

연구원 8인 운영위원3인

2/8

2/8

2/8 5/5

월간보고 3차 정기 보고

자문위원 5인 운영위원3인

중간보고

5/5

2차조사

2/8

월간보고 4차 정기 보고

운영위원3인, 보조원2인 2/8 운영위원3인

2차검수

5/5

월간보고 5차 정기 보고

자문위원 5인 운영위원3인

데이터가공

최종 결과보

04

참여 인원 전

1차검수

월간보고 1차 정기 보고

03

2/6 운영위원3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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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 참여 인원 전


2) 자료수집과 공유 웹하드 www.webhard,co,kr => 아이디 foodcontents => 비밀번호 story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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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 확인란 구분

전화번호 자택(연구실) 핸드폰

성명

과제책임자

박치완

(인)

수석연구원

정혜경

(인)

김근태

(인)

베은석

(인)

김미혜

(인)

김정희

(인)

유제상

(인)

장정희

(인)

프 로젝트 관 리자 참 석

자문위원

공동연구원

보조원

위 임

공동연구원

우나리야

(인)

공동연구원

김현정

(인)

공동연구원

박진희

(인)

- 256 -


② 제2차 사업진행회의

1. 일 시 ■2011년 12월 22일(목) 17:00시~18:00시

2. 장 소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406호 연구룸

3. 참석자 ■박치완(과제책임자), 정혜경(수석연구원), 김근태(프로젝트관리자), 김미혜(공동연구원), 김정희(공동연구원), 유제상(공동연구원), 박진희(공동 연구원) 위임-우나리아(공동연구원), 김현정(공동연구원)

4. 경과 개요 1) 사업공모

……2011년 8월

2) 사업선정

……9월 9일

3) 계약체결

……10월 6일

4) 공동착수보고회의

……10월 11일

5) 제1차 착수회의

……10월 19일

6) 수행계획서 제출

……10월 21일

7) 10월 월간보고

……10월 27일(목)

8) 선급금사용계획서

……10월 31일

9) 10-11월 연구비 지급… 11월 7일 10) 11월 월간보고

……11월 24일(목)

11) 제2차사업진행회의 ……12월 22일 12) 12월 월간보고

……12월 29일(목)

13) 12월 연구비 지급

……

14) 제1차 자문회의

……

15) 1월 연구비 지급

……

16) 중간결과보고

……1월 26일(목)

- 257 -


5. 수집 자료를 통한 스토리텔링 방안 점검 1) 문헌팀의 자료 ① 고조리서 속 한식 자료 208건 ② 지리지 속 한식 자료 69건 ③ 민속지 속 한식 자료 37건 ④ 근대자료 속 한식 자료 164건 2) 콘텐츠팀의 자료 ① 신문사영상 및 VJ특공대 100건 ② 결정!맛대맛 52건 ③ 공중파 외 237 건 3) 향후 업무 내역 ① 문헌팀-근대자료 수집 및 스토리텔링 가능한 자료 선별 (텍스트 20건 이상) ② 콘텐츠팀-이미지 및 영상 자료 수집 및 스토리텔링 가능한 자료 (6건 이상) ③ DB개발팀-스토리텔링 시안 구상(15건 이상) 4) 논의할 사항 ① 연구관리상의 문제점들 ▪일정 공유 및 업무내용 전달 ▪자료수집 방식과 범위에 대한 이견 ② 수집과정상의 문제점들 ▪ ▪ ③ 기타 ▪월간보고일 : 매월 4주차 목요일 오전 11시 ▪웹하드에 자료공유 : 아이디 foodcontents => 비밀번호 story2011

- 258 -


제2차 사업진행회의 참석자 확인란 구분

자택 연구실 (

과제책임자

박치완

(인)

수석연구원

정혜경

(인)

김근태

(인)

김미혜

(인)

김정희

(인)

박진희

(인)

유제상

(인)

프 로젝트 관 참

성명

리자

석 자

공동연구원

공동연구원

우나리야

공동연구원

김현정

(인)

위 임 (인)

- 259 -

전화번호

)

핸드폰


③ 제3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월례보고 및 중간보고서 자문회의 관련 임시회의 회의일자 년 월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

,

2011

12

6

637

회의참석자 박치완 김근태 배은석 유제상 김정희 명 단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

,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월 월례보고 및 중간보고서 자문회의 관련 임시회의 1. 12

,

예산실행변경 요청서에 관한 설명 및 변경안 작 회의내용 성 회의 방학 중 한식 관심 대학원생 스터디 참여와 관 련 학술대회 기획 준비에 관한 토의 2.

3.

연구 관련 자료 복사비용 지출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일

2011

12

:

첨부 관련영수증 :

- 260 -

6


④ 제4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월간 경과 보고 및 수집 자료 점검 팀별 향후 업무 내역 분장회의 회의일자 년 월 일 회의장소 대학원 호 :

:

:

,

2011

12

22

406

정혜경 김근태 김미혜 김정희 회의참석자 박치완 명 단 박진희 유제상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

1.

2.

회의내용

3.

월례보고 결과 보고 수집 자료의 스토리텔링 방안 점검 팀별 향후 업무 내역 분장

유제상 연구원의 한식 스토리텔링 영상자료 데이터 수집 및 검토 에 대한 발표 ※

<

>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 일

2011

12

:

첨부 관련영수증 :

- 261 -

22


⑤ 제5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월간 경과보고 및 중간보고 준비회의 회의일자 년월 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2012

1

:

10

637

회의참석자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명 단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1.

회의내용

2.

3.

팀별 수집자료 점검 및 분석 박물관 탐색 자료 검토 및

구축

DB

중간보고 준비에 관한 논의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 일

2012

1

10

:

첨부 관련영수증 :

- 262 -


⑥ 제6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월간 경과 보고 및 수집 자료 점검 팀별 향후 업무 내역 분장회의 회의일자 년월 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

,

2012

1

18

637

회의참석자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명 단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1.

중간보고 준비회의

팀별 수집팀 콘텐츠팀 수집자료의 점검 및 스 회의내용 토리텔링화 방안 모색 중간보고서 작성을 위한 업무 분장 2.

(

,

)

3.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 일

2012

1

18

:

첨부 관련영수증 :

- 263 -


⑦ 제7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중간보고서 작성 관련 회의 회의일자 년월 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2012

1

:

27

637

회의참석자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배은석 자문위원 명 단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

,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1.

회의내용

2.

3.

중간보고서 작성 점검회의 팀별 수집팀 콘텐츠팀 연구자료 종합 (

,

)

참여 인원의 윤독회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 일

2012

1

27

:

첨부 관련영수증 :

- 264 -


⑧ 제8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중간보고 결과 점검 및 차 연구비 사용계획서 작성 회의일자 년월 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

2

2012

회의참석자 명 단

2

14

637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1.

회의내용

중간보고에서 지적 받은 내용 점검 차 연구비 사용 계획서 작성

2. 2

3.

한식 관련 학술대회 기획에 대한 토의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 일

2012

2

14

:

첨부 관련영수증 :

- 265 -


⑨ 제9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누락자료 입력 건 토의 및 학술대회개최 기획회의 회의일자 년월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2012

회의참석자 명 단

3

:

5

637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1. DB

입력 자료 건과 관련 책임 분담 ,

한식 관련 학술대회 기획에 대한 토의 및 발표 회의내용 자 선정 기획 안내문 공동 작성 2.

3.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일

2012

3

:

첨부 관련영수증 :

- 266 -

5


⑩ 제10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학술대회개최 기획회의 및 현지조사 계획 수립 회의일자 년월 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2012

회의참석자 명 단

3

:

22

637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한식 관련 학술대회 발표자 확정 외대 박치완 김근태 교수와 호서대 정혜경 김미혜 교수가 주축 으로 추가 인원 섭외키로 1.

(

,

,

).

현지조사 관련 장소 및 방문지 확정 경북 영양 회의내용 군 음식디미방 을 중심으로 월 일부터 월 일까지 2.

(

/ 4

29

4

30

).

3.

현지답사 시에 필요한 장비 및 자료 준비 체크

작 성 자 유제상 

.

년 월 일

2012

3

22

:

첨부 관련영수증 :

- 267 -


⑪ 제11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개최 관련 종합 점검 회의일자 년월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2012

회의참석자 명 단

4

:

3

637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

,

전원의 서명 도장 을 필히 받을 것 날자 및 장소 확정 월 일 토요일 교수회관 강연실 (

1.

)

(4

28

/

).

2.

회의내용

발표자 및 주제 확정

.

- 발제1: 이야기에 나오는 음식문화와 상징 장류를 중심으로/ 김근태(연구팀) - 발제2: 글로컬문화와 음식콘텐츠/ 박치완/유제 상(연구팀) - 발제3: 애니메이션과 한식 신한류/ 김기홍(한 성대 강사, 애니센스 대표) - 발제4: 한식세계화를 위한 전시기획 연구/ 배은석(한국에코뮤지엄연구소장) - 발제5: 한국음식과 문화콘텐츠/ 정혜경/김미혜 (연구팀)

학과 및 학회에 안내문 발송 건 논의 유제상 연구원 담당 3.

:

.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일

2012

4

:

첨부 관련영수증 :

- 268 -

3

회의 영수증 부착란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⑫ 제12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예비발표회 회의일자 년월 일 회의장소 대학원 호 :

:

2012

4

:

26

508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김기홍

회의참석자 명 단

,

,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위군 권윤경 양인화 ,

1.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학술대회 외대 측 예비발표회

.

- 오전 1팀, 오후 2팀 2.

발표자 및 주제

1) 김기홍: 애니메이션과 한식 신한류

회의내용

2) 위군/양인화: 중국·대만 한식문화콘텐츠 비 교 분석 - 북경, 상해, 타이페이를 중심으로 3) 권윤경: 쿨재팬과 일본 와쇼쿠 세계화 전략

한식재단과 공동 주최 건으로 대회일정 조정 월 일에서 월 일로 시간과 장소 변경 없 음 (4

3.

28

5

12

/

)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 일

2012

4

26

:

첨부 관련영수증 :

- 269 -


⑬ 제13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예비발표회 및 종합 점검 회의일자 년월일 회의장소 대학원 호 :

:

2012

회의참석자 명 단

5

:

2

607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배은석 ,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1.

회의내용

2.

학술대회 외대 측 예비발표회 제 회 (

2

)

발표자 및 주제

- 배은석: 한식세계화를 위한 전시기획 연구 3.

학술대회 종합 점검 주차권 현수막 대회보 등

작 성 자 유제상 

(

,

,

)

년 월일

2012

5

:

첨부 관련영수증 :

- 270 -

2


⑭ 제14차 회

사업책임자 대학 인문대학 학과 철학 성명 박치완  위탁기관 한식 세계화재단 사업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연구과제명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회의주제 한식세계화 학술대회 최종 점검회의 회의일자 년월일 회의장소 교수회관 호 :

:

2012

회의참석자 명 단

5

:

8

637

박치완 김근태 유제상 ,

회의 영수증 부착란

,

*

회의비 영수증은 반드시 이곳에 첨부하여 주십시오

.

1.

-

회의내용

-

학술대회 최종 점검회의

발표자 원고 수합 체크 및 편집 사회자 및 토론자 확정 연락 ,

- 학회 당일 도우미로 활동 가능한 조교 연락 등. 2.

학회장 점검 및 식당 예약

작 성 자 유제상 

년 월일

2012

5

:

첨부 관련영수증 :

- 271 -

8


2) 각종 보고서 ① 한식 스토리텔링 영상자료 데이터 수집 및 검토 성자: 유제상

1. 개요 - 한식재단 주관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의 영상자료 수집을 위하여 - 수집기간은 2011년 10월 초부터 동년 12월 말까지 약 3개월 소요 - 수집 및 분석대상은 공중파 4개사(MBC, KBS, SBS, EBS)와 케이블 방송 7개사(신문사 제작 영상자 료 포함)의 한식 관련 영상으로, 총 237편의 영상자료를 대상으로 함 - 수집한 자료는 방송사 / 프로그램명 / 제목 / 방영일 / 내용 / 관련음식1 / 관련음식2 / URL / 연락처 의 항목으로 정리하여 엑셀파일로 저장 및 웹하드 ‘자료실’ 폴더에 업로드 함(* 파일명: 한식스토리_영 상물(통합).xlsx) - 상술한 영상자료의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분류

방송사 KBS EBS MBC SBS

공중파 합계

MBN KTV Q채널 조선일보 기타

케이블

합계 총합

편수 124 22 20 9 175 39 12 5 3 3 62 237

2. 데이터 내역 - 한식스토리_영상물(통합).xlsx의 ‘관련음식’ 항목에 과제의 대상이 되는 10개 음식명(갈비, 김치, 불고 기, 비빔밥, 삼계탕, 설렁탕, 순두부찌개, 쌈, 잡채, 전)을 명기하여 분류 - 분류 결과 과제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영상의 수는 총 70편으로, 각각 갈비 23편, 김치 23편, 쌈 9편, 불고기 8편, 삼계탕 4편, 전 2편, 비빔밥 1편, 설렁탕 1편임 - 이들 영상의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 272 -


1) 갈비(23편) 방송사

KBS

EBS

MBN

프로그램명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VJ특공대 VJ특공대 VJ특공대 한국인의 밥상 요리비전 요리비전 소상공 in 아시아 소상공 in 아시아 재밌는 정보 신나는 TV 재밌는 정보 신나는 TV 재밌는 정보 신나는 TV 재밌는 정보 신나는 TV 재밌는 정보 신나는 TV 팔도 소상공인 팔도 소상공인 팔도 소상공인 브라보∼ 해피라이프 브라보∼ 해피라이프

제목 대구 중구 - 매운찜갈비 경기 수원 - 수원갈비 강화.양평 - 매운탕&젓국갈비 광주 광산구 - 송정떡갈비 전북 진안 - 돼지등갈비 맛있는재발견! 갈비이야기 국민 음식 갈비의 별별 변신 이 보다 더 맛있을 순 없다! 국가대표 갈비열전 제30회 뼈대 있는 맛의 내력 - 함양 안의 갈비 손끝으로 이어온 맛, 담양 떡갈비 우직한 맛의 내력, 안의 갈비찜 숯불갈비 VS 연탄갈비 1부, 2부 한국 돼지갈비 VS 중국 휘궈 VS 일본 닭꼬치 1부, 2부 참을 수 없는 갈비의 유혹 갈비의 이유있는 변신 쫄깃쫄깃한 맛 그대로 등갈비 전문점 수원 갈비의 원조 화춘옥을 가다 오감만족, 가격만족! 쪽갈비 & 소고기 전문점 외 넉넉한 인심이 있는 곳 춘천 닭갈비 골목 고향을 닮은 맛, 진안 흑돼지 등갈비 골목 남도 맛의 진수! 광주 송정 떡갈비골목 돼지가 장독에 빠진 날? 돼지갈비 먹는 날 최고의 웰빙 스테미너 소갈비의 무한도전

방영일 2011.08.30 2011.09.14 2011.09.15 2011.10.19 2011.11.02 2011.09.30 2009.06.12 2003.08.29 2011.08.11 2009.04.06 2010.12.10 2010.03.03 2010.04.14 2005.11.17 2006.01.12 2006.03.22 2006.03.01 2006.07.18 2010.09.07 2010.11.16 2010.11.02 2007.04.10 2007.03.13

제목 한국의 맛, 묵은지 경북 영덕 - 대게김치 강원 평창 - 곤드레김치,장아찌 전남 광주 - 전라도 김치 전북 부안 - 주꾸미,소금,젓갈,김치 등 너 없인 못살아 이색 김치요리 납시오 5천만 국민메뉴, 김치요리 열전 사스 잡는 김치, 중국 평정기 세계인의 건강식품 김치 남도맛기행, 삭힘과 절임의 미학 스시, 똠양꿍, 김치 2℃ 숨쉬는 김치를 만들어라, 코리안 김치 일본 진출기 제6회 뼈대있는 민족, 우직한 맛 - 소갈비 제43회 대한민국 맛의 고향, 겨울김치 한국의 전통음식 - 김치와 전통음식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주)한성식품 김순자사장을 만나다 김치전문가 이하연

방영일 2007.10.31 2011.01.27 2011.07.26 2011.10.17 2011.11.17 2010.11.05 2008.12.05 2003.06.20 2007.11.27 2006.10.04 2008.06.01 2004.04.23 2010.02.18 2010.12.03 2009.00.00 2011.10.6 2010.06.03

김치가 삼겹살을 만났을 때!

2006.02.16

도전! 김치 만들기! - 행복 충전 체험여행8 외

2006.10.31

우리 몸에 좋은 김치

2005.11.16

두산 종가집 : 한국의 대표김치

2003.08.16

묵은 김치,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다 김치, 파오차이, 쯔께모노

2006.11.10 2006.00.00

2) 김치(23편) 방송사 MBC

KBS

농수산 동아 조선

프로그램명 9사 공동기획 다큐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VJ특공대 VJ특공대 VJ특공대 생로병사의 비밀 수요기획 스페셜 신화창조 한식탐험대 한식탐험대 밥상위의 보약 다큐 부자가 된 괴짜들 재밌는 정보 신나는 TV 재밌는 정보 신나는

MBN

Q채널

TV 정보가 돈이다! 월드 베스트 made in Korea 글로벌시대 브랜드파워 韓中日 문화삼국지

- 273 -


3) 쌈(9편) 방송사 MBC

KBS

MBN

프로그램명 9사 공동기획 다큐 6시 내고향 6시 내고향 VJ특공대 VJ특공대 신화창조 한식탐험대 한식탐험대 브라보∼ 해피라이프

제목 한국의 맛, 생기활인의 식문화, 쌈 경남 산청 - 쌈약초 충북 충주 - 우렁쌈밥 한 입의 유혹! 쌈 요리 열전 봄을 잡아라! 팔도 '쌈' 요리 열전 놀부 해외시장 개척기 제23회 한입의 미학, 보쌈 제32회 어우러짐의 미(味)학 쌈 우리 몸 안을 깨∼끗하게 푸짐한 돼지 보쌈

방영일 2007.10.17 2010.04.21 2011.08.23 2010.05.07 2004.03.26 2006.09.03 2010.07.02 2010.09.10 2007.04.12

제목 불고기 혹은 야끼니꾸 한국의 맛, 불고기 울산 울주 - 봉계불고기 제20회 불이 빚은 진미, 불고기 닭불고기 VS 닭튀김 1부, 2부

방영일 2003.09.10 2007.12.24 2011.08.16 2010.06.04 2010.03.31

4) 불고기(8편) 방송사 SBS MBC KBS

MBN

프로그램명 추석특집다큐 9사 공동기획 다큐 6시 내고향 한식탐험대 소상공 in 아시아 재밌는 정보 신나는 TV 팔도 소상공인 브라보∼ 해피라이프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 참숯과 화로가 만나다 외

2006.07.25

한우의 진미가 살아있는 언영, 봉계 불고기 특고 당신을 위한 특별한 맛! 불고기 세상 속으로 초대합니다

2010.10.05 2007.05.21

5) 삼계탕(4편) 방송사

프로그램명

제목

한국인의

제25회

귀한 대접, 한 그릇의 성찬 - 삼계탕

2011.07.07

한식탐험대

제21회

옹골찬 서민의 맛, 닭!

2010.06.11

EBS

요리비전

남도의 미를 맛보다, 광주 오리탕

MBN

브라보∼ 해피라이프

기운 펄펄 나게 하는 탕 중의 탕. 삼계탕

KBS

밥상

방영일

2009.04.29 2007.07.10

6) 전(2편) 방송사 KBS

프로그램명

제목

방영일

VJ특공대

추석맞이 팔도 이색부침개 총집합!

2003.09.12

다큐멘터리 3일

사라져가는 골목길의 추억 종로 피맛골 72시간

2009.03.21

7) 비빔밥(1편) 방송사 MBC

프로그램명 9사 공동기획 다큐

제목 한국의 맛, 비빔밥, 전통을 넘어

방영일 세계로

2007.11.11

8) 설렁탕(1편) 방송사 MBN

프로그램명 브라보∼ 해피라이프

제목 정성과 맛이 함께 하는 시원한 설렁탕

- 274 -

방영일 2007.07.31


3. 주요 영상물 분석 - 2. 데이터 내역에서 추출한 영상 7편과, 한식 전반을 다루었으나 주요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영상 1편 을 선정하여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음 방송사

KBS

프로명

제30회 뼈대 있는 맛의 내력 - 함양 안의 갈비

음식

갈비

관련 인물 소를 키우는 농

문화

특이점 함양 우시장에서

민, 한양의 가

함양

우시장,

갈비문화가 성행

10:40~11:43

난한 선비, 갈

효자백정비, 갈

한 이유, 해외 셰

(효자백정비의

비 관련 요리사

비의 세계화

프가 갈비에 주

유래)

목한 이유 설명 죽향 담양의 떡 갈비 문화를 소

푸드스타일리스 EBS

손끝으로 이어온 맛, 담 양 떡갈비

갈비

트, 3대째 담양

전남 담양의 5

에서 떡갈비집

일장, 담양 떡

을 운영하는 가

갈비 골목

김치

강해진 사람(황 미선,

이영문,

산도르) 쌈 채소를 재배 KBS

제32회 어우러짐의 미 (味)학 쌈

하는 사람, 쌈 을 조리하는 사 람, 임금

SBS

불고기 혹은 야끼니꾸

불고기

김치와

건강,

세계 속의 김 치 인기

제25회 귀한 대접, 한 그릇의 성찬 - 삼계탕

삼계탕

을 넘어 세계로

중심으로

이를 조리하는

일본과 한국의

사람

문화교류

풍기의

키우는

재배, 계룡산의

비빔밥을

먹는 외국인들

부르는

이야기 수록

어린이)

일본에 불고기가 야끼니꾸란 이름 으로

정착하게

된 과정을 일본 내 한인사와 연

인삼

오골계 사육

삼국유사, 총,

수라간의 비밀, 왕의 요 리사는 남자였나

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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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초강목의

닭 관련 내용 설 명

노래를 일본

밥 명가와 해

시의전서의 ‘골동

외로 진출하는

반’에 대한 유래

비빔밥

설명

문화

02:54~03:05

06:30~06:56 (일본 내 고기 문화가

자리

잡게 된 배경 에 관한 설명) 12:05~12:35 (닭을 먹기 시 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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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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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10:20 (비빔밥의 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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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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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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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 비빔밥, 전통

(전통 있는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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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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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총평 - 수집 및 분석결과 대상이 된 영상의 상당수가 지역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었고, 과제 관련 음식과 관계 있는 영상도 갈비와 김치에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함 - 순두부찌개와 잡채 관련 영상은 찾기 어려웠음 - 고조리서, 민속지, 지리지, 근대자료에 대한 자료 수집도 이루어진 바, 영상자료와 이들 자료를 연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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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함 - 아울러 스토리텔링 자료 정리를 위한 항목을 빠른 시일 내에 선정하여, 이에 대한 분류 작업을 진행하 는 것이 과제 수행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될 것임. 끝.

- 276 -


② 대만(타이페이) 현지답사 보고서 책임교수: 인문대학 박치완

1. 현지답사 개요 ○ 과제명 : 한식재단의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 답사기간 : 2012년 2월 7일 ~ 2012년 2월 11일 (4박 5일) ○ 답사장소 : 타이페이 (정치대학 외) ○ 참여자 : 박치완 ○ 답사목적 : 2011-2012년도 한식세계화재단의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의 최종보 고를 보완하기 위해 지근거리에 있는 대만의 한류와 한식 현황을 파악해보기 위해 출장방문 실시. ○ 답사내용 - 대만 정치대학에서 오정길(吳靜吉) 명예교수의 <대만문화콘텐츠의 현황>에 대한 특강에 참여 - 한식당 현황 파악 및 한류 관련 내용 시장 조사 - 현지의 한식당 운영자와 심층 인터뷰 ○ 전체 일정 및 답사 내용

날짜 주요 일정 출발 및 타이페이 도착 현지시간 기준 도착 월 일 한국 서문정거리 용산사 타워 야시장 방문 관광 및 소수민족인 아미족의 민속공연 참관 대학가의 한류 열풍 월 일 화련 조사 참관 및 대만 정치대학에서 실시하는 대만 문화콘텐츠의 현 월 일 고궁박물관 황 특강 참여 월 일 지우펀 딴수이 지역 방문 한식당 방문 및 한식 관련 심층 인터뷰 실시 월 일 중정 기념관 방문 및 출국 현지시간 기준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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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과제 관련 현지답사 개관 음식의 천국 대만에서는 중국 각지의 요리 특히 광동요리, 사천 요리, 지방요리(객가 요리 등)를 비 롯해서 전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일본 요리점이 많이 눈에 띠었다. 이는 일본과 오랫동 안 정치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스시보다는 주로 익힌 생선 요리 또는 조개가 주로 식재료로 쓰였다. 대만에서는 ‘날 생선’을 먹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유럽 관 - 277 -


광객 및 일본 관광객의 증가로 생선 요리를 찾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의 음식 가격은 한국에 비해 저렴한 편(약 70% 수준)이다. 대만에는 간식도 발달되어 있어서 특히 시장 주위에는 일반적으로 먹거리가 풍부한 편이다. 김치전과 떢볶이, 김밥 등이 ‘서문정거리’ 의 야시장 주위나 대학가에서 대만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식품인 것도 이러한 간식문화의 일종으로 이해하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일성 싶다.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대만의 젊은이들이 한국과 관련해 찾는 것은 결국 한국음식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음식은 맛보는 수준에 그친다고나 할까. 게다가 중국이나 미국 등 다른 지역 에 비해 대만은 한식관련 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한 곳이라고 보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식당은 주로 화교가 운영하고 있었으며, 메뉴도 대만 현지화를 위해 대만(중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져 있었 다. 결국 나름의 현지화에 성공한 케이스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 주체가 한국인이 아니라 이미 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관심 있게 보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요리도 화교(대만인)가 직접하고 있는 실정 이었다. 식재료의 경우도 100% 현지에서 조달하고 있었으며, 양념 정도를 수입하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본인이 짧은 기간 동안 타이페이를 답사를 마치고 전체적으로 드는 느낌이었다. 물론 한류는 한국음식에 비해 대만인들의 더 관심이 많았다. 이는 관광객 비율이 한국인의 대만 방문에 비해 대 만인의 한국방문이 400% 정도 많은 것으로도 증명된다. 그렇다면 대만인이 한국에 방문하여 찾는 음식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삼계탕, 닭갈비, 돌솥비빔밥 등이 주라고 한다. 모두 영양식이며, 드 라마에서 소개된 음식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귀향하여 대만에서 과연 이와 같은 음식을 다시 찾느 냐? 그것은 아니다. 우리가 대만을 방문하여 한국음식보다 되도록 대만음식을 맛보고 싶은 것과 같 은 생리라고나 할까. 특히 고기, 면 등을 주로 기름에 볶고 강한 향신료를 쓰는 요리가 많기 때문에 평소에 한국의 담백하고 매콤한 음식들이 그들의 입맛에 맞을 수 없다. 전체적으로 대만에서 소비되 는 음식들은, 한식이라고 해도, 주로는 ‘퓨전형’이었다. 한류 열풍는 한국음식보다는 화장품 광고나 의류, 핸드폰 광고에서 자주 보였다. 한국의 아이돌 그 룹이나 탤런트들이 직접 사인회도 갖고 이들의 사인이 찍힌 가방 등 물건을 팔기도 했다. 어떤 가게 에서는 아예 한국 음악을 틀어놓고 대만의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이번 대만 방문은 다음 5가지를 본인에게 교훈으로 던져주었다. i) 대만에서의 한식은 아직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정부의 무관심도 그 원 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 관광객은 물론이고 중국 관광객이 대만을 많이 찾기 때문에 일본, 중국에서와 같은 전략을 대만에도 적용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들에게 한류는 공통분모이 기 때문이다. ii) 판매되고 있는 한식들도 ‘퓨전형’이 주를 이룬다. 때문에 ‘웰빙시대’를 맞아 이제는 전통한국음식 점이 고급화 전략으로 접근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대만인들에게 있어서도 건강식은 매우 중요한 삶의 화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iii) 한류와 한식이 연계되어 있지 않았다. 이 둘을 연계시킬 수 있는 보다 획기적 발상이 필요해보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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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외국인이 많이 묶는 호텔의 조식 메뉴에 한식을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전복죽이나 갈 비, 미역국 등. 현재로서는 거의가, 세계의 모든 나라의 고급호텔이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특 히 유럽인, 일본인 관광객을 배려한 메뉴가 주였다. 이는 우리가 동남아를 방문해 호텔 조식을 먹을 때 선택의 폭이 넓은 것과 비교할 때와는 아주 다른 점이었다. v) 대만의 한식당 운영자들을 위한 교육 또는 지원 프로그램개발이 필요해보였다. 화교가 대부분인 이들의 관심은 한식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식당을 찾는 손님이다.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한식 홍보와 메뉴 개발 지원 및 교육 등이 시급해보였다. 3. 과제 관련 자료 소개

날짜 활동 야시장 답사 목적 한류 및 한식당 현황 조사

장소

2012. 2. 7

타이페이 서문정거리

젊은이들이 찾는 거리에서 한류 열풍을 한 눈에 볼 수 있었음 한식당보다는 주로 아이돌그룹이 등장하는 기념상품 화장품 광고 의류 판 매가 주를 이루고 있었음 한식 메뉴의 경우는 돌솥비빔밥 떡볶이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해물탕 불 고기 덮밥 등을 팔고 있지만 매운 맛이 약한 퓨전식이었고 타이페이의 경 우는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이 주라고 했음 한국식당은 대만 젊은이들 중 주로 한국 드라마에 심취한 적이 있는 부류 가 가끔 찾는 편이라고 함 부산식당의 경우는 공간이 넓지 않아 한국 관광객이 소수로 타이페이를 방 문한 경우 인터넷 등을 통해 사전에 조사하고 찾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는 내용 경우가 많다고 함 ※ 부산한국식당 주소 대북시 무창가 번지 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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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389-6539)

그림 81 : 한류의 유행을 볼 수 있는 간판

그림 80 : 서문정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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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3 : 서문정거리의 ‘부산식당’ 간판

그림 82 :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인쇄된 상품 판매점

타이페이 날짜 활동 심층인터뷰 장소 장수식당 대만 정치대학교 목적 타이페이에서 운영되는 한식당 전반에 관한 심층 인터뷰 및 특강 참관 2012. 2. 9~2.10

/

타이페이에서 한식당은 주로 화교가 운영한다고 함 장수 식당의 사장의 경 우도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음식점을 찾는 고객에 따라 메뉴를 달리한다고 함 찌게 볶음밥 덮밥 등 대만인들이 좋아하는 단품 위주의 식 당 한국관광객을 상대로 한 식당 소주와 막걸리 비치 대만 직장인들이 저렴 가격에 맛볼 수 있는 뷔페식당 코스요리가 나오는 고급식당 등 식재료는 대부분 현지에서 조달하고 양념만 한국에서 수입하는데 양념이 한국음식 맛을 내는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함 장수식당의 경우 다양한 메뉴를 구비하고 있었는데 불고기 갈비 삼겹살을 비롯해 뼈없는 닭다리 요리 종합해산물찌게 볶음밥 덥밥 비빔밥 찌개 등이 준비되어 있었음 이곳은 주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한 체인점 중 하나라고 함 타이페이에서 가이드를 하는 화교 출신의 주로 소개하는 식당 내용 장수식당은 이었음 ※ 장수식당 주소 대북시 장안동로 번지 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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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4 : 대만 정치대 오정길 명예교수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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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541-4322~3)

그림 85 : 특강 후 대만 정치대 교수님들과 기념 촬영(필자는 앞줄 외쪽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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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6 : 장수식당의 반찬(김치, 미역무침, 무채 등)

그림 87 : 다양한 야채와 계란을 곁들인 비빔밥 메뉴

메뉴 장소 부산한국식당과 날짜 활동 한식당 소개 장수식당 목적 대상에 따라 메뉴를 달리한 한식당의 전략 구분 2012. 2. 7,

2012. 2. 10

그림 는 장수식당의 메뉴로서 전적으로 한 국의 관광객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음식이 한국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그림 는 부산한국식당 메뉴로서 다소 퓨전 형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락 메뉴가 눈에 띤 점이다 그림 은 서문정거리에 있는 한 떡볶이 전문 점이다 가지 메뉴를 파는데 떡볶이 치즈떡볶 이 라면 떡볶이 김치전 해물전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으며 대만의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서서 떡볶이와 전을 사고 있었다 그림 와 그림 는 대만의 한 간이 식당 에서 유일하게 소고기덥밥을 팔고 있었다 고기 와 계란을 곁들인 것이라서인지 대만의 젊은이 들도 가끔 주문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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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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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8 : 장수식당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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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9 : 대만 식당 전경

그림 92 : 부산한국식당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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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1 : 서문정거리의 떢볶이집

그림 90 : 대만 식당의 한식 메뉴(불고기 덥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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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경상북도 영양군 ‘음식디미방’ 답사 보고서 책임교수: 인문대학 박치완

1. 현지답사 개요 ○ 과제명 : 한식재단의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 답사기간 : 2012년 3월 29일 ~ 2012년 3월 30일 (1박 2일) ○ 답사장소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원 (음식디미방 체험관 외) ○ 참여자 (총 8명) - 박치완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주임교수) - 김근태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 - 유제상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강사) - 송종인 (한국외대 철학과 강사) - 이영미 (여행레저신문 수석기자) - 임준철 ((주)글로컬미디어 대표) - 구모니카 (도서출판 M&K 대표) - 김기홍 (애니센스 대표) ○ 답사목적 : - 2011-2012년도 한식세계화재단의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의 완성 도 높은 최종보고를 위해, 민관이 합심하여 전통 음식과 관련된 문화콘텐츠 소재 발굴 사업을 진행 하는 경상북도 영양군의 과업 내용과 성과를 파악하고자 출장방문 실시. ○ 답사내용 - 17세기 중기에서 말기까지 작성된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 ‘음식디미방’을 재현한 프로그램 (시식과 설명)에 참가 - 체험관, 전시관, 교육관, 고택 등 관련 시설물과 운영실태 파악 -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과장 등 관계자들과의 미팅을 통해 전통음식 발굴사업현황 취재

○ 전체 일정 및 답사 내용

월일 /

시간 15:30~17:30

3/29 17:30~23:00 3/30

09:30~10:30

일정 탐방 준비 세미나 개최 한국외대 서울캠퍼스 현지로 이동 약 시간 소요 두들마을 탐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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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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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12:00 12:00~13:00 13:00~14:00 14:00~16:00 16:00~18:00 18:00~23:00

음식디미방 교육관 및 전시관 탐방 전통복원음식 체험 영양군청 관계자 미팅 고택 등 관련시설 탐방 및 관계자 인터뷰 시행 주실마을 등 인근 시설 탐방 서울 한국외대 캠퍼스 로 이동 (

)

2. 과제 관련 현지답사 개관 이번 답사는 전통음식의 복원과 관광상품화가 한식 세계화의 바람직한 전략이라는 전제하에서, 관련 프로그램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선택 하여 그 실태를 파악하고 효과와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기 획되었다. 경상북도 영양군의 음식디미방 프로그램은 수 백 년 전 양반가의 안주인에 의해 작성된 조리와 음식 관리 서적을 바탕으로 음식을 복원하고 관련 체험교육 시설을 설치, 운영한다는 특수성 과 기 시행된 홍보의 효과 덕분에, 내부 회의결과 큰 이견 없이 선택되었다. 영양군이 나름대로 야 심차게 준비하고 발전시킨 이 프로그램의 개요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음식디미방은 ‘좋은 음식 맛을 내는 방문(方文)’이라는 뜻을 담은 조리서로서, ‘지미방(知味方)’을 고 어발음법에 맟춰 저자가 ‘디미방’으로 표기한 것이다. 17세기 중기에서 말기 사이 안동에서 태어나 영양으로 출가한 사대부가의 안주인 장계향(張桂香, 1598~1680)이 집필한 것으로서, 음식의 조리법 과 저장 발효식품, 식품 보관법 등을 담고 있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 책이 동아시아 최초로 여성 이 쓴 조리서이자 한문이 아닌 한글로 써진 최초의 조리서라는 것, 그리고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라는 점 등이다. 그밖에 영양군측이 제시하고 있는 <음식디미방> 음식의 특이점과 의미는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 겉표지 제목은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인데, 이는 장씨의 남편이나 후손들이 책의 격식을 갖추고 의미를 더하기 위해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 1600년대 중엽과 말엽, 경상도 양반가의 음식 조리법과 저장, 발효 식품, 식품 보관법 등 146가 지를 소개하고 있다 - 내용이 한글로 되어 있고 각각의 음식에 대한 조리법과 조리기구 등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 어 34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을 따라서 요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이다. - 전체 146항목 중 술 만드는 법이 51항목으로 가장 많은데, 이는 당시 상류층 가정주부가 하는 일 중 술빚기의 비중이 상당히 컸다는 것을 알려준다. 곧, 접빈객(接賓客)이 중요한 덕목이었음을 보여 준다. - 복숭아, 가지, 생포 간수법 등을 보면 냉장고가 없던 시절 어떻게 음식을 보관했으며 제철이 아닌 나물 쓰는 법 등을 보면 비닐하우스 재배와 같은 방법으로 겨울철에도 야채와 과일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 만두와 국수도 재료나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으며 앵두와 설탕을 응고시킨 젤리와 같은 음 식도 있다. 농사에 소가 귀하게 쓰이던 시절, 개와 꿩이 소고기를 대신했음을 알 수 있다. - 284 -


- 조선시대 궁중연회를 그린 <기사경회첩(耆社慶會帖)>을 보면 상차림에 ‘음식디미방’에서 볼 수 있 는 자라탕이나 해삼, 전복 등의 요리가 나타나 있는데, 이는 궁에서 먹어본 요리를 다시 재현해서 별미로 먹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음식디미방>은 장씨 부인의 아들 종택에 보관되어 오다가 1958년 경북대학교 도서관에 기 증되었고, 같은 대학 국어국문학과 김사엽 박사가 1960년 논문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특히 경상북도 북부 유교문화권 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영양군에서 2006년부터 이 음식들에 대한 복 원사업이 본격화되었고, 체험관, 교육관 등 관련 시설물들이 잇달아 설치되었다. 언덕마을이라는 뜻의 ‘두들마을’ 현장에서는 현지인 가이드의 안내로 마을 곳곳에 산재한 음식디미 방 교육관, 음식디미방 전시관, 정부인장씨 예절관, 유물전시관 등을 둘러보았고, 음식디미방 체험관 에서 점심식사를 겸한 시식회를 가졌다. 임진왜란 전의 조리법이라, 복원음식에 고춧가루가 첨가되 지 않았고, 대체로 정갈한 느낌인 가운데 창의적인 요리도 있었으며 복원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현지에 설치된 시설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 음식디미방 체험관 : <음식디미방>에 수록된 340년 전 반가음식을 재현해 내는 곳으로, 고풍스러 운 한옥에서 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 음식디미방 교육관 : 체험프로그램 중 ‘전통음식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이다. 동아선, 동 아누르미, 동아적 등 동아를 활용한 건강음식에서 석류탕, 어만두, 대구껍질 누르미 등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여러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시식해 볼 수 있는 곳이다. - 음식디미방 전시관 :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음식 중 석이편, 잡과편, 대구껍질누르미 등 51종의 음 식을 실물모형으로 제작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자세한 조리법과 함께 전시하고 있으며, 4개 국어 (한, 일, 중, 영)로 제작한 ‘음식디미방 영상자료’를 제공한다. 답사의 전반적인 느낌은, 음식 복원과 요리, 서비스에도 나름의 공을 들여 일정한 성과와 체제를 갖 추었고, 민관이 합심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세계화의 전단계라 할 수 있 는 상품화, 대중화를 위한 대책마련은 걸음마 단계였다. 음식의 경우에도, 그 자체로 흠잡을 데 없는 담백하고 정갈한 요리들이었으나,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 밋밋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 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전략으로 어필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대체로 다 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i) 대중화 전략의 문제 전통 한식 고급화 전략 자체는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대중화 전략은 요원해 보였다. 지역 관광코스의 하나의 특이한 체험 정도로 남기엔 아까운 아이템이다. 이를 위해 전통복 원한식은 그것대로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보존하는 한편, 퓨전화 연구에도 공을 들여 대중적인 음식 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이를 위한 지방자치단체, 관련기관의 지원이 필요해 보였다. ii) 상품화 전략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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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인 상품화는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루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보인다. 메뉴를 좀 더 세분화 하고 모듈화 하여 유상으로 식당에 제공하거나, 혹은 프랜차이즈화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된다. 이 지역까지 와서 특정한 지정 장소에서만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현행의 체제로는 계속성 담보가 어려워 보인다. 필요하다면 인원과 시스템을 보충해, 인근 지역, 나아가 전국에 거주하는 국민들에게 이 음식의 존재와 가치를 알리는 ‘찾아가는 복원한식 서비스’도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희소성이 가치 를 창출하는 유형의 문화유산이 아니기 때문에, 상품화와 홍보가 다각도로 맞물리며 상승작용을 낼 필요가 있어 보였다. iii) 세계화 전략의 문제 한국을 대표하는 유교음식문화를 표방하였고, 340여 년 전의 음식을 힘들여 복원한 이상, 한식 세계 화라는 대의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대만과, 특히 한류가 영향을 미치는 전 지역을 대상으로 메뉴나 노하우를 판매 하거나 프랜차이즈를 통해 직 접 진출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해 보였다. iv) 음식체험 경비의 문제 음식 체험에 소요되는 경비는 1인당 3만원, 5만원, 7만원 등으로 다양하기는 하나, 개인에게는 부담 스럽게 느껴졌다. 가격이 복원음식 경험을 일회성 이벤트로 만들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번 경험한 사람을 다시 찾도록 만드는 가격정책이 아쉬워 보였다.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하나로 묶어 패키지로 제공하는 노력에 좀 더 신경을 쓰거나, 인근의 식당에 메뉴를 나눠줘 말 그대로 영양 지역 어디에서 나 경험할 수 있는 ‘지역특산물화’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v) 관광지로서의 입지의 문제 영양군은 관광지로서 접근성이 좋은 곳은 아니다. 서울에서 5시간 가량이 소요되고, 인근 대도시인 대구에서도 3시간 가량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답사팀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여러 곳에서 도 로와 터널 공사 현장을 발견할 수 있어, 접근성 문제 해결을 위한 지방정부의 노력이 엿보였다. 또 한 음식관련 시설이 밀집한 두들마을 이 외에도 인근에 주실마을, 대티골 황토방 체험장 등의 관광 자원이 있고, 봄철의 산나물축제와 가을의 고추축제 등과 연계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 ‘산간 오지’ 를 ‘천혜의 자연경관에 둘러싸인 마을’로 달리 보도록 만드는 지혜를 발휘할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과제 관련 자료 소개

경북 영양군 날짜 활동 두들마을 답사 장소 두들마을 일원 목적 전통한식 관련 시설 탐방 및 영양군 관계자 미팅 2012. 3. 29

내용

음식디미방 전시관 음식디미방 과 저자인 정부인 장씨 책에 소개된 음 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곳 석계고택 음식디미방 의 저자 정부인 장씨가 말년에 기거했고 음식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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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방 이 집필되었던 곳으로 경북 북부의 전형적인 입구 형태 대신 석 삼 형태로 지어졌고 대청마루 일부를 할애해 음식 보관 광을 마련하는 등 역사 스토리텔링과 전통한옥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석천서당 여 년 된 고풍스러운 건물로 장씨가 안동으로부터 이 지역으 로 시집와 살던 곳으로 이조판서를 지낸 자손 덕분에 터가 좋은 곳으로 소개되는 곳 >

(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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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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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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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디미방 체험관

영양군청 관계자 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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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청 남재진 과장 문화관광과 박승길 계장 전통음식육성담당 음식복원 및 전반적인 사업시행과 성과에 대한 정보들을 얻음 사업의 성공적 진행과 계속성 담보를 위한 조언과 홍보를 부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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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두들마을 내 석계고택 좌 과 남악정 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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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목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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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전통복원음식 장소 체험 여 년 전 조리법에 따라 재현된 음식 체험

)

음식디미방 체험관

2012. 3. 29 340

전채 단호박죽 감향 진사주 ※ 특히 감향 진사주는 쌀로 빚은 술임에도 요거트같은 질감의 떠먹는 술로 서 이채로웠다 주요리 대구껍질누르미 가제육 연근채 ※ 특히 대구껍질누르미는석이버섯 표고버섯 꿩고기 등을 잘게 다녀넣고 꿩고기 즙으로 누르미 소스 를 만들어 맛을 낸 음식으로 얇게 벗겨낸 대구 껍질 속에 재료들을 낸 것이 이채로웠다 주요리 잡채 수증계 어만두 동아누르미 ※ 특히 잡채는 일반에 인식된 것과 같이 당면이 있는 잡채가 아닌 말 그대 로의 채소로서 오방색을 내기 위해 맨드라미 등의 천연재료를 사용한 것 이 이채로웠다 한상차림 밥 국 찌개 고등어구이 대구조림 마른반찬 물김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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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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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 석이편 오미자 화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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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재령 이씨 종부 조귀분 여사의 음식디미방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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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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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음식답사 보고서 책임교수: 인문대학 박치완

1. 현지답사 개요 ○ 과제명 : 한식재단의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 ○ 답사기간 : 2012년 5월 1일 (1일) ○ 답사장소 :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조선족 거리’ 일대 (음식점 3개소, 식재료 판매점 5개소 방 문) ○ 참여자 (총 5명) - 박치완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주임교수) - 김근태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연구원) - 유제상 (한국외대 문화콘텐츠연계전공 강사) - 임준철 ((주)글로컬미디어 대표) - 김기홍 (애니센스 대표) ○ 답사목적 : 2011-2012년도 한식세계화재단의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사업>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하여, 조선족이 다수 거주하고 있는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을 방문하여 한국의 음식문 화가 해외 거주민에게 어떻게 변형되고 또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탐사함 ○ 답사내용 - 대림동 일대 음식점 중 조선족이 운영하는 3곳을 선정하여, 판매되는 메뉴의 특징과 더불어 한식 과의 연계성 파악 - 식재료 판매점 5개소를 방문하여 국내의 다른 유사업소와 어떠한 차이점을 보이는지 방문 조사 - 업소주와 점원 외 관련 인원을 인터뷰하여, 대림동 내 음식문화의 실정과 외부인의 시선에서 본 한식의 현황을 진단함 ○ 전체 일정 및 답사 내용

월일 /

시간 17:00~17:30 17:30~19:00

5/1

19:00~19:30 19:30~20:00 20:00~20:30

일정 대림동 도착 및 업무 분장 회의 음식점 방문 곤륜대주점 식재료 판매점 곳 방문 음식점 방문 고향개고기 식재료 판매점 곳 방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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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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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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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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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 방문 일심샤브양꼬치 답사내역 정리 및 해산

20:3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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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0~23:00

3>

(

)

2. 과제 관련 현지답사 개관 이번 답사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기초 조사이다. 본 답사팀은 한국 음식을 외국인이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 서울 내에 위치해 있고 한국인과 문화적인 공통분모를 다 수 지니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답사 장소는 최근 다수의 조선족이 거주하여 흡사 연길과 유사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로 정했으며, 사전 연락을 거 쳐 3개 음식점과 5개 식재료 판매점을 선정하여 조사하였다. 이중 <세계화 유망 한식메뉴의 스토리 텔링 소재 발굴사업>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2개 음식점에 관한 주된 내역을 본 보고서에 수록 하였다. 주된 조사 내역은 현장방문 인터뷰 양식에 따라서 음식의 유래, 음식점 이야기, 재료 및 조리법과 관련 자료에 관한 것들이며, 여기에 덧붙여 조선족들은 어떠한 음식을 선호하는지, 그 중 한식에 분 류되는 것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함께 조사하였다. 많은 조선족들이 중국음식점, 사천식마라탕(생선을 주재료로 하는 샤부샤부의 일종) 등을 취급하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식품상 또한 다수 운영 중이었다. 또한 한국음식의 경우, 조선족이 선호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감자탕을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대림역을 내려 조선족 거리를 들어오는 초입에는 큰 규모의 감자탕집이 있는데, 점원과 주된 고객이 조선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사결과 대림동 일대에 위치한 조선족 식당은 주로 일반적으로 다루어지는 중국음식·한국식중국음 식과 양꼬치, 중국식 샤부샤부를 판매하며, 반찬으로 연변식 김치를 함께 내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이 선호하는 한국음식은 주로 삼겹살과 감자탕으로, 다른 외국인과 선호하는 음식의 품종이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전반적으로 돼지고기 위주의 기름진 식단을 즐기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조선족은 한국과 중국 양측의 식문화가 뒤섞인 양상을 직접적으로 보이는 계층인 만큼 한식 세계화 를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3. 과제 관련 자료 소개

영등포구 활동 곤륜대주점 방문 장소 서울시대림동 대림동 일대 조선족 음식점 방문 및 한식에 대한 인식 조사

날짜 목적

2012. 5. 1

식당의 특징 조사 대상이 된 식당 곤륜대주점 은 금년 월 말에 개업한 것 으로 중국에서 어머니가 음식장사를 오래한 것에 착안하여 만들어졌음 기존 중식당 조선족 식당이 위생과 서비스에 대한 부족함이 있어 이를 보 완하려 노력하였음 처음 개점할 때 주된 대상은 중국인 조선족이었으나 낮에는 한국인 손님이 많음 다만 식당이 위치한 곳이 중국인 조선족이 다 수 거주하는 대림동이다 보니 좀 더 이들의 입맛에 맞도록 식사를 꾸미고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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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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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0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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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주 인터뷰 점주 김예근 년생 는 한국에 온지 년 정도 되었으며 조선 족 출신임 주방장은 한족 출신으로 조리경력이 년임 식당개점과 동시에 점주가 초청하였음 경기문제로 식당운영이 생각보다 어려움 벽지와 등을 비롯한 내부 인테리어 자재는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 것임 조선족이 운 영하는 다른 식당과는 경쟁관계라 서로 교류가 많지는 않음 다만 어디에 어떠한 식당이 위치하며 업주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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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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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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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관한 특이점 음식은 서울의 강남 일대에서 일한 중국동포에게 배웠 음 짬뽕 짜장 같은 한국식 중국요리는 한국에서 처음 배웠으며 한국인은 보통 이러한 한국식 중국요리를 선호함 한국인의 경우 한국식 중국요리에 일반적으로 김치를 곁들이는 반면 중국인은 식사에 반드시 볶음채를 곁들 임 점주는 연변식 김치를 직접 담가서 음식과 함께 내어 놓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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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 외 기타 조리법의 경우 새우젓이나 까나리 액젓을 조금씩 음식에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함 음식 맛은 전반적으로 많이 맵고 향이 강한 편이며 이때 매운 맛을 내는 고춧가루는 중국에서 직접 수입하고 있음 점 주는 최근 연변식 음식점이 많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조선족의 음식 문화가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하는 의견을 제시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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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목적

영등포구 활동 곤륜대주점 방문 장소 서울시대림동 대림동 일대 조선족 음식점 방문 및 한식에 대한 인식 조사

2012. 5. 1

내용

그림 식당 곤륜대주점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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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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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점원 한가운데 와 답사팀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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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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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활동 일심샤브양꼬치 장소 방문 대림동 대림동 일대 조선족 음식점 방문 및 한식에 대한 인식 조사

날짜 목적

2012. 5. 1

식당의 특징 식당 일심샤브양꼬치 는 최근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중국식 샤 브샤브와 양꼬치를 주로 판매하는 식당임 대로변에 위치하여 접근이 용이 한 탓에 답사시간 내 다수의 손님이 방문하였음 대부분의 손님은 중국인 조선족들이었으나 일부 한국인도 존재 한국인 손님의 경우 연령대가 높 다는 점에서 중국인 조선족 손님과 차이를 보임 식당 내 테이블은 총 개 였으며 등받이가 옆으로 긴 형태의 의자를 함께 배치 다수의 인원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고안되어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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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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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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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특이점 주로 다루는 메뉴는 전술한 바와 같이 샤브샤브와 양꼬치이 지만 한국인들도 자주 드나드는 한국화된 연변음식점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이한 메뉴도 찾을 수 있었음 일례로 돼지의 내장을 야채와 볶거나 훈제 한 돼지귀를 초무침한 메뉴도 발견됨 대부분의 메뉴는 식사보다 술안주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간을 짜거나 달고 향이 강한 편임 곁들이는 볶은 땅 콩이나 자차이 작채 는 다른 식당과 큰 차이를 보이진 않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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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炸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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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식당 일심샤브양꼬치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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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영등포구 날짜 활동 일심샤브양꼬치 장소 방문 대림동 목적 대림동 일대 조선족 음식점 방문 및 한식에 대한 인식 조사 2012. 5. 1

내용

그림 양꼬치를 조리하는 점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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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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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숯불 위에 양꼬치를 조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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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등은 한 선제(漢宣帝) 때 동해상(東海相)을 지낸 인물인데, 그가 동해상이 되자 그 지방의 특산물인 게장을 장창(張敞)에게 선물한 일이 있었고, 중자는 전국시대 제(齊) 나라의 청렴하기로 이름난 진중자(陳仲子)인데 그의 형님 집에서 거위 고기를 먹다가 그것이 어떤 사람으로부터 예물로 받은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가 토해 버렸다 한다. 곧 남고 윤규범(尹奎範)에게 보 내주는 된장이 별미는 아니지만 떳떳한 것이니 받아달라는 것이다. 2) 작약으로 …… 걸러낸다네 : 된장과 소금을 이용하는 법을 말한 듯하나 자세치 않다. 3) 상아는 뽕나무 위에 생기는 버섯을 말하고, 숙유는 두부(豆腐)의 별칭이다. 4) 오후는 한 성제(漢成帝)의 외구(外舅) 5형제로서 동시에 봉후(封侯)된 왕담(王譚), 왕상(王商), 왕립(王立), 왕근(王根), 왕봉(王 逢)을 가리키고, 청(鯖)은 어육(魚肉)을 섞어서 끓인 진미(珍味)의 요리를 말한다. 언변이 좋았던 누호(婁護)가 오후의 집을 두루 다니면서 그들 각자의 환심을 얻은 결과, 그들이 서로 다투어 진미를 대접하였으므로, 누호가 오후의 음식들을 모두 합 해서 오후청이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5) 원주-사월이면 민간에 식량이 달려 시속에서는 그때를 일러 보릿고개라고 함. 6) 원주-방언으로 재상(宰相)을 대감이라고 함. 7) 원주-방언에, 새 며느리를 아가라고 부름. 8) 원주-~노란 모시베는 경주(慶州)에서 남. 9) 원주-영양현(英陽縣)에서 좋은 담배가 생산 됨. 10) 원주-방언에, 자기 집 영감을 첨지(僉知)라고 부르는데, 아무 직첩(職牒)이 없어도 그냥 그렇게 부르고 있었음. 11) 원주-하납(下納)이란, 영남 세미(稅米) 절반을 일본으로 실어 보내는데, 그것을 이름하여 하납이라고 하였음. 12) 원주-서울 배추도 훈련원(訓鍊院) 밭의 것이 가장 좋음. 13) 옛날 어떤 사람이 항상 채소만 먹다가 갑자기 한 번 양고기를 먹었더니, 그날 밤 꿈에 오장신(五臟神)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양이 채소밭을 밟아 망가뜨렸다.[羊踏破菜園]”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전하여 채소만 먹던 사람이 우연히 고기를 먹는 데에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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