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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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위로하시는 주님 (장종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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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최혜선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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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김기현 형제)
한국교회 한 대 동 강 서 인 수 안 오 하 분 대
국 방 부 남 부 천 원 산 산 남 당 전
총 교 교 교 교 교 교 교 교 교 교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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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 (02) (02) (02) (02) (032) (031) (031) (031) (031) (031) (042)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김언수 형제) 638-6611~3 815-1344 966-4294 459-8557 355-8851 468-9156 293-3504 408-2301 373-2641 762-2541 709-0191 283-3865
청 주 교 회 천 안 교 회 서 천 교 회 보 령 교 회 전 주 교 회 남 원 교 회 삼 계 교 회 서 도 교 회 쌍 치 교 회 장항서부교회 광 주 교 회 목 포 교 회 광 양 교 회
(043) 284-3705 (041) 568-0568 (041) 953-0725 (041) 935-6254 (063) 223-6451 (063) 625-6219 (063) 642-7619 (063) 634-8430 (063) 652-0785 (041) 956-5746 (062) 951-2363 (061) 283-5732 (061) 76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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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 (061) (053) (054) (054) (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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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방황을 끝내다 (김정옥 자매)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 (윤희원 형제)
(055) 681-3550 (033) 651-2025 (033) 766-1348 626-442-3438 972-479-9899
각국총회 미 국 총 회 1(714)533-8889 대 만 총 회 886(4)2243-6960 미 국 1(714)533-8808 대 만 886(4)2243-6960 일 본 81(72)954-5896 홍 콩 852-8200-6337 싱 가 폴 65-6875-0479 호 주 61(2)9633-2388
뉴 질 랜 파 독 영 오스트리 러 시 캐 나 베 트
드 리 일 국 아 아 다 남
64(9)625-7795 33(1)6468-7995 49(6221)164081 44(1343)564-056 43(650)702-5140 7-903-5880-432 1(416)755-6052 84(8)845-6281
미 안 마 인도네시아 사 바 피 지 태 국 서말레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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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칼럼|수명을 늘려주는 약 (오정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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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로마서 강의(ⅩⅩⅥ) (이엘리사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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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만화|그 사랑 (이희송 형제)
42
만나칼럼|온전한 띠 (글 : 빈센트 양, 번역 : 김경남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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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기행문 |1차 바울 선교지 성지순례 후기 (이선화 자매)
95(1)643625 62(21)6530-4150~1 60(88)230-327 679-6660-445 66(2)897-6215, 6218 60(3)7784-2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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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방문기 |간셰주! (김혜원 자매)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 (안지윤 자매) |더 큰 원을 향하여 (채희욱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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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장학회
발행일 : 2015. 1. 1. 발행・편집인 : 김 흰 돌 발행처 : 빛처럼 도서출판 The General Assembly of True Jesus Church 대전광역시 동구 대동 14-6 Tel : (042)638-6611~3 Fax : (042)638-6614 1999. 4. 7. 등록 등록번호 : 서울 바 0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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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한국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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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예수교회 한국총회
여는 글
위로하시는 주님 장 종 규 목자(인천교회)
분명 절대적인 위로가 필요함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성 경은 진정한 위로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라고 증거 하고 계신다. 왜 주님께서 진정한 위로자가 되시는지 두 가지 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죽은 외아들을 장사하는 과부, 죽어가는 딸을 둔 아버지, 흉악히
첫째는 주님은 각 사람의 형편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 이들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
사람이 어떤 어려운 형편에 처하면 누군가가 자신의 처지를 알아만
다.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깊은 위로이
주어도 위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아픔과 고통을
다. 유일한 소망이었던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하는 과부, 불치의 병
당한 사람이 자신의 손만 잡아주어도 큰 위로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
으로 사랑하는 딸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알고도 손을 쓸 수 없는, 그
것이다.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다. 모든 사람의 형편을 누
리고 흉악한 귀신에 들려 자주 거품을 흘리고 쓰러지는 아들을 옆에
구보다도 잘 아는 분이시기에 그런 분이 내 어려운 형편을 알고 있다
서 지켜보고 있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위로였
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다. 어느 누구도 위로가 될 수 없었고, 슬픔과 절망만 남은 그들에게
대만에서 신학할 때 들었던 간증이다. 어떤 목자 사모님이 오해를
진정한 위로와 기쁨이 주어지는 모습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된다. 어떻
받아서 어떤 교인으로부터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누구에게도 말
게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주님을 만났기 때문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주님께 눈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다.
데 기도 가운데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다 알고 있단다.” 그 사모님
성경이 이러한 사실들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주님을 만 날 때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있음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은 주님께서 자신의 모든 사정과 아픔을 다 아신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주님은 모든 사람의 고통을 아신다. 특별히 주님의 백성들의 고통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
을 아시고 위로하신다. 성경에 요셉이라는 사람은 그의 삶 가운데 많
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은 아픔과 상처가 있었다. 그는 같은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낯선 땅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롬15:4)
에 팔려 노예로 죄수로 오랫동안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데 그런 그도 주님의 위로를 받았음을 알게 된다. 요셉이 애굽에서
2 빛처럼
인생을 가리켜 고해라고 한다. 그 만큼 우리 삶은 수많은 고통과
총리가 된 후 첫 아들을 낳았을 때 그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짓는다.
괴로움이 있다. 그렇기에 그 만큼의 큰 위로가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그 이름의 의미는 ‘잊어버린다’라는 뜻이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
하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 살기 좋은
의 모든 고난과 과거의 모든 것을 잊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창
곳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아픔도 많고 문제도 많다. 우리는
41:51). 위로라는 말 속에는 어루만져 괴로움을 잊게 한다는 의미가 51호 3
여는 글
있는데, 요셉은 주님을 통해서 그런 위로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주님이 진정한 위로자가 되는 이유는 모든 어려운 형편을 바꾸어주시기 때문이다.
도 나의 그런 상황을 어떻게 도와줄 수 없었다. 통증으로 앉아 있을 수도 없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 밖에 없었다. 간신히 기도 를 마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놀 랍게도 아무런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할렐루야!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30:11).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고 나의 베옷을
주님은 우리 각 사람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계시는 것뿐만 아니라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
그것을 기쁨과 희망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
영광으로 주를 찬송케 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들도 주님의 이와 같은 능력으로 위로를 받았다. 즉, 주님은 과부의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시30:11-12).
죽은 아들을 살리셨고, 죽어가는 딸아이의 생명을 다시 살리셨으며, 흉악한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주셨다. 주님은 이와 같이 각 사람의
아이가 아프면 엄마 품속을 더 파고들게 된다. 그러면서 엄마 품을
형편을 모두 아실 뿐 아니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시는 능력
더 깊이 느끼듯이 우리 성도들도 큰 고난과 고통 속에 있을 때 주님
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을 진정으로 만나게 되고, 주님의 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깨달아 주님
그럼 어떻게 해야 주님을 만날 수 있는가?
의 위로를 더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게 되며, 주님을 진정으로 찬양하 고 감사하게 된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마지막으로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
의 백성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되지만 완
라”(렘29:12-13).
전한 위로는 이 땅에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라는 사실이 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을 만날 때 바로 완전한 위로가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을 만나게 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 도 위로를 얻게 된다. 얼마 전 영은회 강사를 앞두고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픈 적이 있었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각자의 삶 속에 말 못할 고통과 아픔이 있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때 하나님 나라에서 주어질 그 위로를 바라 보며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복통으로 몹시 고통스러웠고 괴로웠 다. 다음날 영은회 강사로 가야 하는 상황인데 자정까지 배가 아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
상황이 계속 되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난감했다. 옆에 있던 아내
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 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4 빛처럼
51호 5
칼럼
자신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었을 때, 당시의 유명한 의사를 청한 것이 아니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라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이 능동적으로 몇몇 유대인 장로들을 청하여 그 종을 구원해주시길 청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11절부터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한 성에 들어가시는
최 혜 선 자매(총회)
데, 이곳에서는 성문 가까이 가셨을 때 과부를 만나신 일 외에는 특별한 용 무가 있었다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는 왜 나인이라는 성
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에게는 매우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으로 가시려고 했을까? 혹시 슬픔에 빠진 이 여인을 위로하기 위해서 나인
어느 날 여인의 아들이 죽었다. 사람들은 그 여인을 과부라고 불렀다. 그 여
성으로 가시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장례 행렬을 만난 것은 우
인은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여의고 유일하게 의지하던 아들, 성경에서는 이
연이었을까?
아들을 그 여인의 독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아들이 지병
주께서 성에 가까이 가셨을 때, 원어에는 "바로 그 때에" 한 무리의 사람들
으로 죽었는지, 아니면 급사를 했는지, 혹은 그 여인의 아들의 연령대에 대
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는 것을 보시고 ; 즉, 주께서 성에 가까이 가신 그
한 언급은 없다. 다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나인이라
때에, 때마침 사람들이 관을 메고 나온 것은 예수께서 우연히 장례 행렬과
는 성으로 가실 때, 마침 성문 가까이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한 죽은 사람
마주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섭리가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주께서
을 메고 나오는 것을 보았고, 그 성의 많은 사람들도 이 과부와 함께 나오는
능동적으로 그 여인을 보고 불쌍히 여기시고, 친히 여인에게 다가가 위로하
모습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셔
시고,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셨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몇몇의 제자들만
서, "울지 말아라"고 위로하시고, 여인의 아들이 누워있는 관에 직접 손을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허다한 무리들이 있었고, 그 성의 많
대고, 그 죽은 자에게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고 말씀하
은 사람들이 그 여인과 함께 따라나오는 상황이었다. 예수님은 과연 왜 이
셔서 즉시 그 여인의 아들을 부활시키셨다(눅7:11-17).
렇게 행동하셨을까? 사실 예수께서 원래 그 여인과 어떠한 친분 관계가 있
이 기적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었거나, 아니면 그 여인이 능동적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슬픔을 고 하였다면 이해가 되지만, 단지 성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마침 장례 행렬과
첫째,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
딱 마주쳤다. 일반적으로는 그냥 상여가 나가는가보다라고 지나칠 수 있는
누가복음 7장 1-10절의 내용을 보면,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에 관하여
그러한 상황이었는데, 주님께서는 일면식도 없는 그 여인을 보시고, 곧 여
볼 수 있다. 그는 비록 이방인이었으나,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으므로
인의 필요를 아셨다. 그리고는 그냥 멀찍이 서서 그 여인의 아들에게 청년
6 빛처럼
51호 7
칼럼
아, 일어나라! 하셨어도 그 청년이 살아났을 텐데, 굳이 사람들이 메고 가는
는 이미 여인의 슬픔을 아시고, 먼저 다가가 그 여인의 마음을 어루만지시
그 관에 다가가 친히 손을 대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고 위로하신 것이다.
사실 유대인의 정결례를 본다면 죽은 시신이나 무덤 또는 주검에 관계되
홀로 사는 과부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독자인 아들밖에 없는데, 그 아들이
는 것을 만지는 것은 부정한 것인데(레22:4; 민19:11, 16), 이는 유대인의 관
죽어서 장사하러 가는 그 길에 여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
념에서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죽은 자에게 손을 대는 것 자체로도
어쩌면 여인은 그 마을에서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 받는 사람이어서 허다
부정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과,
한 무리가 장례 행렬을 따랐을 수도 있다. 혹은 유대인의 장례법을 보면,
상여를 메고 나오는 수많은 무리가 있는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능동적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선행은,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장례를 돕는
가만히 다가가 관(여기에서 말하는 관은 시체를 지탱하는 들것이나, 작은
일이라고 한다. 죽은 사람을 돕는 일은 보상을 바랄 수 없는 선행이기에 유
버들가지로 만든 뚜껑이 없는 위가 뚫려있는 관을 의미함)에 손을 얹으신
대인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선행으로 여겨진다. 많은 선행이 경우에 따라서
것은 과부를 매우 불쌍히 여기시어, 예수께서 그 관 위에 손을 얹으시는 모
는 보상이 가능하나, 죽은 사람에게 하는 선행은 보상을 전혀 바랄 수 없기
습으로, 그녀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하시고, 또 한편으로는 그 장례 행렬을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죽은 사람을 운구하는 일이나, 시신을 땅에
멈추라는 무언의 의사 표시를 하신 것이다.
묻는 선행을 으뜸으로 여기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장례 행렬을 뒤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록 상여를 메고 나가는 길이나, 아들의 죽음을 믿고 싶
요한이 예수님께 대해 기록하길 :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
지 않았을 이 때에, 여인에게 가장 큰 위로는 그녀가 의지하면서 살아왔던
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이 아들이 다시 자신의 곁에서 전처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을 텐데, 바로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이 순간 주님께서 그 여인의 마음을 아시고, 여인의 아들을 살리시어, 여인
(요
2:24- 25).
에게 돌려주셨다.
그렇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
내가 대만에서 예배시간에 참석했을 때, 설교하시는 분께서 간증을 하셨
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해 누구의 얘기도 들
다. 미국의 퍼시피카(태평양)교회에 한 젊은 부부가 있었다. 이 부부에게는
을 필요 없이 그 사람의 마음 속의 고통과 슬픔, 기쁨, 즐거움, 평강을 아시
자녀가 둘이 있었는데, 첫째가 딸이고, 둘째가 아들이었다. 아들이 아직 돌
므로, 나인성의 과부가 그녀의 독자 아들을 잃고 슬퍼하며 상여를 메고 장
이 안 되었을 때, 어느 날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엄마 품속에서 잠을 자고
사하러 가는 그 길에서, 여인이 주님께 나아와 간청하기도 전에, 주님께서
있던 아이가 갑자기 숨을 쉬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에 급히 연락해서, 아이
8 빛처럼
51호 9
칼럼
가 다시 숨을 쉬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렸다. 혹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
어주시어, 아이가 다시 숨을 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끝내 숨을
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
쉬지 않았고, 젊은 엄마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이
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지나고, 퍼시피카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 시간이 되어, 이 젊은 부부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가 최근 아들을 잃었는데, 그들을 위해 기도 부탁을 드린다고 인도자가 말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
하고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날 처음 나온 구도자 한 분이 그 자리에 있었는
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데, 본인도 여성이고, 어린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를 생각하며, 어떻게 기도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하는 기도가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릎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
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본인
가 된 것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후1:1-7)
이 극장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앞을 보니 무대 같은 곳에 강 한 빛이 한 어린 아기를 비추고 있었는데,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느낌으
때때로 사람이 깊은 절망에 빠지거나 어떠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다른
로 그 아기가 남자 아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음성이 들리며,
사람의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
"He is good"!이라고 말했다. 그 구도자분은 마음 속에 위로를 받고, 기도를
면, 이 간증처럼 사람에게 받는 위로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없는, 깊은 절망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기도를 마쳤는데, 그 때 그 분이 성령을 받았다. 만약
이나 슬픔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때, 우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환상 중에 본 아기가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그 아기라면 "He is fine"이라고
주님께서 먼저 나에게 손을 내미시며 이렇게 위로하신다. "He is good"!
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은 선하시다"는 메세지를 주었고, 온 교회 는 이 환상을 통해서, 그리고 새로 오신 분이 성령 받음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다고 설교하시는 분께서 이 간증을 하셨고, 예배를 마치고 기도할 때, 그 날 처음 예배에 참석하신 한 구도자 분(여성)이 계셨는데, 이분도 그 날 성령을 받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둘째, 주님께서는 절망 속에 있는 자로 그 절망이 기쁨이 되도록 위로하 신다! 이 기적을 통해서 가장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는 누구일까? 예수님에 의 해 죽음에서 부활하게 된 이 청년일까? 아니면 그의 어머니 과부일까? 아니 면 그 자리에 모인 회중일까? 우리는 때때로 눈앞에 닥친 환경의 영향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소망을 잃어버리기도 하는 데, 현재 가장 절망과 비탄에 빠져 있고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은
10 빛처럼
51호 11
칼럼
바로 그 청년의 어머니, 과부였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하고
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주님께서 내 절망과 고통, 슬픔을 해결해주실 것이라
살아가던 사랑하는 아들을 자신보다 먼저 보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말
는 믿음이 있으므로 그 믿음이 나의 절망과 슬픔, 고통을 기쁨으로 바꾼다.
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예수 님께서 친히 다가오셔서, 절망 중에 있는 그녀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소망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을 주셨다. 그것은 주께서 여인의 외아들을 살리시고, 그 어미에게 돌려주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신 것이다. 가장 극심한 슬픔이 한량없는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러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여 찬
므로 이 기적을 통해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바로 이 과부이다. 사랑
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하는 아들이 다시 자신의 곁에 돌아와 예전처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사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61:1-3).
실이 정말 꿈만 같고,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이나, 극심한 고난을 당하거나, 소망이 없고 낙심될
이 부분의 이적을 기록할 때 누가는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 특별히 묘사하
때, 사람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가장 잘 아시고
고 있는데,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13),
위로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겠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여인의 사랑하는, 독자인 아들을 살리시고,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주셨다.
는 우리에게 재 대신 희락으로, 슬픔 대신 찬송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게 하
이 여인이 주님께 은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주께서 그 여인을 보시고 곧
신다고 한다.
"불쌍히 여기사"라는 것인데, 원어적인 의미로는 "창자까지 뒤틀려지는 것"
여러분! 나는 매일 주님을 바라보고, 그 분과 동행하고 있는가? 세상의 많
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는 다른 말로 주께서는 그 과부가 슬픔을 동일하게
은 근심과 걱정이, 고통과 절망이 눈앞에 있을 때 혹시 사람을 의지하고 있
느끼셨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극심한 슬픔을 얘기할 때, "창자가 끊어지
지는 않는가?
는 고통"이란 표현을 쓰는데, 그 과부의 마음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슬픔을 느낀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
적이 있는가? 우리는 할 수 없으나, 주님은 우리에 대하여 그러한 마음을 가
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
지고 계시다는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 상황이 극심한 절망이나 고통에
다. 가라사대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여늘, 나여늘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있더라도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위로하심을 받으면 그 슬픔이 기쁨으로 변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인자를 두려워하느냐」 (사51:11-12).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장 눈앞의 상황이나, 절망, 고통이 변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주
12 빛처럼
51호 13
우물가에서
뭔가를 할 때면 스스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고, 또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
적으로 할 수 있을까하고 요령을 피우고 있었다. 게다가 졸업을 앞두고 취 업을 걱정하면서 여기저기 알아보느라 바쁜 친구들의 모습이 나를 압박하 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역들을 먼저 마무리 한 후에 취업 하자는 다짐은 마음속에서 슬금슬금 피어나는 조바심으로 조금씩 흔들리고
김 기 현 형제(청주교회)
있었다. 문득 이런 제 모습을 발견했을 땐 어쩌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 리고 무뎌졌는지, 굳게 다짐했던 마음이 어느새 흔들리고 요동하는지, 하나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한다! 나는 청주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대학생활 4년을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생각해왔다. 처음 청주에 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을 땐 부모님 곁을 떠나 낯선 환경에 적응이 되지 도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해 놓으셨고 그 길로 인도해주셨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집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그 길은 언제나 탄탄대로였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이끌어 주신다 는 생각이 내 마음에 자리하면서 공부할 때나 교회의 사역을 할 때, 그리고 무엇을 하든 나를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하자라는 생각이 가득했 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학교에서는 교수님과 친구들 이 나를 인정해주었고, 교회에서는 여러 사역을 맡으면서 섬기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러 해가 지나면서 마음이 점점 무뎌진 것 같다. 나를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점점 잊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 는 모습은 점점 사라졌다. 그리고 처음부터 내 능력과 힘으로 했던 것인 냥, 14 빛처럼
님 앞에서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했다. 그러면서 다시 예전처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인지, 왜 나를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더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예배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을 통해서 십자가에 대해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시간이 될 때마다 십자가와 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 십자가에 대해 묵상을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 지 않아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을 떠올려 보았고, 왜 그 렇게 돌아가셔야 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에, 그리 고 나 때문이었다.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고 천국으로 가 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결론지으니 자연스레 죄에 대해 생 각하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올려보니, 세상 사람들에게 죄 란 법을 어기는 것, 그리고 작은 법을 어기는 죄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무단횡단을 하거나 과속을 하는 것 등 말이다. 그리고 좀 더 죄에 대해 무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들키지 않는 한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51호 15
우물가에서
반면에 그리스도인에게, 즉 나에게 죄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나에
회개하는 마음, 그런 상한 심령을 받으신다는 말씀이 와닿았다. 그리고 그
게 죄란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굉장히 엄
런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하고 꽉 막혔다고 생각하며 자유가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에
채워주시고 평안을 주시며 위로해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하나
겐 그 정의가 당연한 것이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나 때문에 오셨고, 나
님께서는 내가 죄 때문에 멸망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잘되길 바라시
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영벌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나를 천
고 내게 복주시길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자, 세상에서 내가 하는 일이 잘되
국으로 인도해주시려고 말이다. 나는 이것을 깨닫고 믿는 사람이라면 당연
든 잘되지 않든 그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내게 일어나는
히 그 엄청난 사랑과 용서를 받았다고 느낄 것이고, 그 삶은 더 이상 내 삶
여러 상황들과 처한 환경들을 통해서 무언가 깨닫길 바라신다는 생각이 들
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삶, 즉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삶이 될 것이라
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내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원하는 것
고 생각했다.
들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하나님을 위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지켜야
이런 생각을 갖자 어느 누가 했던 ‘나의 나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
하는 삶?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삶이란? 나는 여기서 ‘죄’
는 고백이 떠올랐다. 이미 내게 있는 많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고
라는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라고 했는데,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창조하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
그렇다면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그럼 그 누구도 하나님의
했다. 하지만 아직 내게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없다. 다만 졸업을 앞두고 다
말씀을 붙들고 사는,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는 것인가? 아
시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나에게 이런 생각과 깨달음을 주셔서 인생의
마 그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아
크고 작은 선택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결
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전혀 죄를 짓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
지 않는 순전 무결한 삶을 사는, 그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는 않을 것
엇이든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
이다. 죄를 지어도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죄로 여기고 회개하는 삶, 날마다
고 보호하심을 믿고, 나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이 이루어지도
죄와 싸워 승리하는 삶을 바라실 것이다.
록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아무렇지 않게 죄를 짓고 형식적으로 회개하는 삶
짐했다. 모든 영광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다.
은 당연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또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 인생 이 좀 힘들고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 는 존재인데,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죄를 지으면 회개해야 한다 는 것이, 무언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 이 지나면서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고 더 생각할수록 하나님은 죄를 짓고 16 빛처럼
51호 17
우물가에서
식일 예배와 중고등부 영은회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중학교 3학년 졸업할 무렵 겨울 중고등부 영은회에 참석했는데, 영은회의 주제가 ‘성경’이었다. 지금 다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영은회에서 가 장 인상 깊었던 말은 강의 중에 목자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물건에 사용 설명서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사용설명서가 있다. 그 사용설명서는 성경책
김 언 수 형제(강남교회)
이다”라는 말씀이었다. 당시 신앙이 아주 없지는 않았기 때문에 중학교 3학 년 졸업할 때쯤에는 내 삶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 말씀 을 듣고 무엇인가 해결책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렐루야! 나의 모든 부족함을 넘치게 채워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함 께 나누려고 부족하지만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현재 강남교회를 다니고 있는 23살의 형제로, 모태신앙인이다. 동부교회에 다니셨던 故 김위방 집사 님(외증조할머니)의 전도로 어머니께서 참예수교회를 다니셨고, 다닌 지 얼 마 되지 않아서 나를 임신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나와 누나들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 도록 엄하게 가르치셨다. 그 덕분에 나는 큰 어려움 없이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신앙에 기초를 두었다기보다는 어머니의 영향력과 교회에 가면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가 오면서부터 내 생활은 그다지 바 람직하지 못했다. 교회에서는 좋은 선생님들과 친구들도 있고, 오래 뵈었던 어른들도 계시기 때문에 바르게 행동했지만, 학교와 밖에서는 세상의 보통 친구들보다도 못한 생활을 했었다. 나는 허영심이 굉장히 컸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때문에 학교에서 잘나가 는 친구들처럼 되고 싶어서 그들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술, 담배까지는 하 지 않았지만, 내 생활은 교회와 밖에서가 너무 달랐다. 그런데 다행이도 안 18 빛처럼
그래서 영은회가 끝난 후 방학기간에 성경을 매일 10장씩 읽기로 작정했 다. 집에서 어머니나 누나들이 성경읽기 하는 것을 보기만 했지 직접 해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한다는 생각으로 읽기보다는 어떻게든 읽어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읽었던 것 같다. 한 40일 정도 안식일 과 주말을 제외하고 꾸준히 읽었고, 10장씩 읽기를 그만둘 때에는 잠언 부 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에 나와 가정에 기분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아!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가 바뀌 려고 노력하니까 주시는 선물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에 성경 을 더 열심히 읽었다. 고등학교는 내가 지원한 곳이 아니라 부모님께서 나 몰래 신청하신 곳으 로 배정을 받았다. 그 학교는 성적 우수자들을 대상으로 기숙사 입사 인원 을 뽑았다.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들어갈 수 있다는 큰 기대도 없 었으나, 기숙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신청자 미달로 운 좋게 기숙사 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학교 열람실에서 자율학습을 하 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공부 양이 많아서 성경을 10장씩은 못 읽을 것 같아 3장씩은 읽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처음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 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읽었다. 조금 지나서는 야간 자율학 51호 19
우물가에서
습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 시작 전, 먼저 성경책을 읽기
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고쳐가는 시간들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로 했다. 그 때 내가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것은, ‘내가 하루에 이 성경 읽는
되었다. 이전까지 헛된 것들 사이에서 허우적대며 의미 없는 인생을 보냈던
시간만큼은, 한 30분 정도는, 하나님께 드리자’였다. 중학생 시절 많이 망가
것과는 달리, 이제는 정말 삶다운 삶을 사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CCM 듣기
졌던 신앙을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하루 24시간 중 30분은 굉
도 그 시간에 포함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공부에 대한 압박은 심해졌지만
장히 적은 시간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내 영성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쓰고
오히려 내 ‘신앙타임’은 늘어갔다. 특별한 기도제목들이 생겼을 때에는 며칠
싶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성적 우수자들이었고, 한 학
씩 굶으며 금식기도를 할 용기도 생겼다. 고3이 되어서는, 안식일이 시작되
기마다 성적에 따라 다음 학기에 기숙사에 들어올지 못올지를 평가했기 때
는 금요일 밤부터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하던 것을 내려놓고 대신 성경을 읽
문에 주변 친구들보다 30분 공부를 덜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마태
거나 CCM을 들었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조금씩 신앙
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
인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변해갔다.
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는 말씀을 의지하고, 그 시간을 하나님께
내 성적은, 신앙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고3 시절에 가장 높았다. 입
드려도 하나님께서 능히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시리라 믿었다.
학 당시에는 빈자리 덕분에 겨우 기숙사에 들어갔던, 어떤 선생님도 기대하
그렇게 두 달 정도가 흘렀을 때 첫 번째 중간고사를 봤다. 중학생 때는 아 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전교 50등 이상을 하지 못했다. 자율학습을 시작
지 않았던 학생이었지만, 3년이 지난 뒤 나는 분에 넘치는 대학에 합격하여 많은 축하를 받으며 졸업하였다.
하고 30분, 남들보다 공부를 덜 했다. 그런데 나는 생전 처음으로 전교 5등
고등학생 시절은 나의 삶에서 가장 특별한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진정
을 했다. 이전까지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처음으로 강하게 느꼈
으로 원하시는 것은 먼저 신앙 안에서 바로 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
다. 그 후로는 더욱 편한 마음으로 그 30분을 내 신앙을 위해 투자할 수 있
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른 모든 것들까지도 부족하지 않게, 넘치게 채워주
었다. 성경읽기뿐 아니라, 자율학습이 시작될 때 하루를 되돌아보며 반성하
시는 분이심을 깨달았다. 지금은 대학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또 군인
고 다짐하는 기도도 하기 시작했다. 읽기만을 위한 성경읽기가 아니라 성경
이라는 신분으로 있으면서 예전의 경험을 잊어버리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공부에 대한 압박
현실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종종 있지만, 고등학생 때 경험했던 하
과 싸우기는 했지만 그래도 끈기 있게 읽었다. 그러자 시간이 갈수록 그 시
나님이 나를 멀리 벗어나지 못하게 하심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내가 살아갈
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하나님께서 학업에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을 것이고, 더 많은, 또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때도
서는 부족하지 않게 꼭 알맞게, 때로는 넘치게 채워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상상 이상으로 나의 길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
었다. 공부는 더 이상 성경을 읽는 30분, 그 시간을 압박하는 요인이 되지
며 어느 때나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도록 노력할 것
못했다. 공부하고 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도 좋지만, 기도로 하나님을 만
이다. 아멘!
나고자 했고, 성경을 통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자 20 빛처럼
51호 21
우물가에서
그분이 수시로 찬송가를 부르며 기쁘게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어느 날
믿음의 방황을 끝내다
“예수님이 기뻐하라고 했는데, 나는 기쁨이 없네요. 교회 다니는 것이 그리 기쁩니까?”라고 물었다. 집사님은 함께 성경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 하셨다. 내가 좋다고 허락하여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성경공부가 진 행되는 동안 나는 구원받기 위해서 반드시 올바른 세례와 성령을 받아야 한
김 정 옥 자매(수원교회)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토록 성경 말씀을 자주 읽어 보았는데, 왜 그렇게 깨닫지 못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었다. 구원에 대한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는 집사님께 “이렇게 성경대로 실행하는 교회
나는 본래 안산에 있는 안산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곳
가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집사님은 여전히 참교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에서 교회학교 교사를 맡아 열심히 봉사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마음에
없으셨다. 다만 어떤 목사님을 초청하여 좀 더 깊은 말씀을 공부해보지 않
는 기쁨이 없었고, 항상 의무적으로 일요일(주일) 예배에 참석하거나 급한
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내가 수락했고, 김세한 목자님을 직장으로 초청
일이 생기면 예배에 불참하기도 했다. 그렇게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이 방
하게 되었다.
황할 때였다.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에서 근무할 무렵 같은 청에서 근무
목자님이 공부를 인도하러 오신 첫날, 그분께 혹시 담당하시는 교회 이름
하던 참예수교회 수원교회 신도인 김학정 집사님을 통해서 참예수교회를
이 무엇이냐고 여쭈었다. 김세한 목자님은 ‘참예수교회’라고 대답하셨다. 나
소개받았다.
는 참예수교회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인터넷 검색을
당시 기독교인이신 검찰청장께서 안산지역 성시화운동을 전개하셨는데,
해보고 알게 된 사실은 일부 사람들이 이 교회를 이단으로 여긴다는 것이었
안산지역의 각계 리더 중 기독교인들과 안산 지역을 대표하는 교회 목사님
다. 그런데 성경말씀에 비추어보았을 때 이단이라고 하는 근거가 모호하다
들로 구성된 모임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모임의 책임을 맡으면
고 생각했다. 그 후 수원교회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 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그러면서 여러 분들로부터 자신이 다니는 교
얼마 후 수원교회를 출석했는데, 살펴보니 교회 분위기는 가족적이었고
회로 오라는 권면도 받았지만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거나 구원에 관
일반 개신교회 성도들과는 다르게 모두 성령 받은 분들처럼 보였다. 일반
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거나 권력을 형성하는 데
개신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믿음과 행위가 일치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 관심이 있어 보였다.
내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참예수교회의 성도님들을 살펴보니 믿음
그러던 중 내 옆방에 근무하던 김학정 집사님과 대화할 기회가 많았는데,
22 빛처럼
과 행위가 일치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일반교회에서 오래 전에
51호 23
세례를 받았지만 교회를 옮기기로 결심하고 성경말씀대로 참예수교회에서
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경을 묵상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일반 개신교회에
다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고 난 후 나의 주홍 같은 죄가 모두 사함을
다닐 때와는 전혀 달라진 내 변화된 모습을 보고는 점점 참예수교회에 대해
받았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하던지! 세례 받던 날 나는 감사한 마음과
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현재는 나와 아들, 둘만 참예수교회를 다
감격에 겨워 대성통곡했다. 지금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을
니고 있지만 조만간 남편도 전도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그 외에도 과거에 교류했던 안산지역 일반 개신교 성도들로부터 현재도
세례를 받고 보니 일반교회에 다닐 때는 사단의 방해란 것은 인식하지도
많은 공격을 받고 있지만 나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지금
못했고 겪어보지도 못했는데, 참예수교회에 들어와서는 사단의 방해가 심
까지 사단의 방해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나는 성경말씀대로 실천하는 참예
했다. 김학정 집사님은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저에게 가정
수교회가 오히려 이단으로 공격받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왜 그렇게
을 위해 오전예배만 참석하고 집에 일찍 들어가도록 권하셨는데, 어느 안식
많은 사람들이 성경 말씀의 참 뜻을 바르게 보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운 심
일 성도님들의 강권으로 오후예배를 참석하고 저녁식사까지 하고 귀가하게
정이 있다. 부디 하나님께서 나에게 속히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지혜
되었다. 귀가했더니 남편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화난 남편은 “이단교회
로 주변의 안타까운 영혼들을 구원의 좁은 길로 인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
를 다니는 사람은 가정도 팽개치더라”고 하면서 당장 참예수교회에 다니길
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주님께 감사하다.
그만두라고 했다. “집 근처에 교회도 많은데 꼭 수원까지 갈 필요가 있어?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틀에 갇혀 있지 않아!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성경문헌 도 있을 수 있다고. 우리가 믿음만 있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참예수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전에는 친구를 만 나거나 다른 업무로 늦게 귀가해도 그렇게까지 화를 낸 적이 없었는데, 남 편은 이상하게도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김학정 집사님께서는 앞으로 사단의 방해가 심할 것이라고 하셨고, 평소에도 권면 의 말씀을 많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평소와 달리 분노하는 남편에 대해 맞대응하지 않았다. 순종적으로 고분고분 남편을 시중들면서 설득했다. 내 가 참예수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진정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고자 작 정하고는 회사 회식자리에서도 일체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고, 아침저녁으
24 빛처럼
51호 25
우물가에서
지금 가면 교회 앞에서 페이스 페인팅이랑 레인보우 타투 무료로 체험할 수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을래?”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와서 예쁘 게 그림도 그려주고 교회문도 활짝 열어놓고 예배당이 어딘지, 분반은 어디 서 어떻게 하는지 등등 교회를 소개시켜주는 식으로 했다. 교회가 좁은 골
윤 희 원 형제(동부교회)
목 안에 있고, 또 초대장을 나눠주던 선생님들이 남자 3명이어선지 아이들 이 잘 따라오려고 하진 않았지만 페이스 페인팅과 레인보우 타투의 반응은 좋았고, 첫째 날에는 11명의 아이들이 왔다.
나는 미용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지금 헤어샵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그런데 그날 어떤 2학년 여학생이 집에 가서 엄마한테 교회에서 나온 사
있는 19살 윤희원이다. 동부교회에서는 부족하지만 아동반 교사로서 아이
람들이라는 사실은 빼고 오늘 학교 앞에서 어떤 남자들이 “사탕 주면서 같
들을 섬기고 있다.
이 가자~”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학교에 찾아가서 교감 선생님과 보안관 아저씨들을 불러놓고 학교 앞에서 이런 일이 있어도 되는
2014년 7월 첫째주에 아동반 친구 초청잔치가 있어서 아동반 선생님들과
거냐고 주의를 주고 가셔서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길거리에서 주는 사탕
6월에 미리 동네 아이들에게 참예수교회의 위치를 알릴 수 있는 전도활동을
은 받아먹지 말고 낯선 사람은 따라가지 말라고 아침방송을 했다고 한다.
하기로 했다. 항상 초대장만 뿌렸는데, 이번에는 초등학교 하교시간에 교회
우리는 학교 경비가 더 강화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다음 주 금요일에도
앞에 천막을 쳐놓고 페이스 페인팅과 레인보우 타투(tattoo) 체험하기를 하
똑같이 전도행사를 준비했다.
면서 초대장을 뿌리기로 했다(레인보우 타투는 반짝이 가루를 이용한 1회용 문신).
그런데 아이들 하교시간이 다 되었는데, 그날따라 대학부랑 선생님들이 늦게 오셨다. 하교시간에 아이들을 놓칠 순 없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선
전도활동은 6월 셋째주 금요일과 넷째주 금요일에 했고, 교회 앞에는 햇
생님 한 분이 천막을 지키고 나 혼자 초대장과 비타민을 들고 학교로 갔다.
빛을 피할 수 있는 천막과 시원한 요구르트를 준비해 놓고 대학생 형 누나
학교 앞에 서서 아이들한테 초대장을 나눠주고 있는데, 보안관 아저씨 두
들과 선생님들이 학교 앞에 찾아가 아이들에게 비타민과 초대장을 주면서
분이 나를 데리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들어가서는 이름, 주민
“우리 참예수교회에서 친구 초청잔치를 하는데, 와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등록번호, 집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신분증과 가지고 있는 초대장이랑 비타
26 빛처럼
51호 27
민을 다 뺏겼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였는지 무슨 방법으로 어디에
없었던 저번 주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페이스 페인팅을 하면서 교회의 위
데려갔는지 조사하고, 다시는 학교 앞에서 이런 일 하지 말라고 하면서 보
치를 알아갔다. 실제로 친구 초청예배 때 6명의 새로운 친구들이 와서 함
내주었다. 그런데 교회에서 열심히 만든 초대장이 너무 많이 남은 게 아까
께 예배를 드렸고, 그 중엔 여름 성경학교까지 참석한 아이도 있었다. 모
워서 보안관이 안 보이는 주차장 쪽이랑 문방구에서 아이들과 친한 동네
든 행사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도우셨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께서는 가
형인 척 다가가서 초대장을 계속 나눠줬다. 문방구 아줌마가 나오셔서 나
끔 고난을 허락하시지만 자신의 자녀가 당하고 있을 때 내버려두지 않은
한테 실컷 나눠줘도 애들은 어차피 읽지도 않고 버리는데, 청소하기 힘드
것 같다.
니까 그만 나눠주라고 하셨지만 계속 나눠줬다. 드디어 여자아이 3명이 페 이스 페인팅하러 가고 싶다고 해서 교회로 데려가려 했는데, 갑자기 문방
우리 교회에 서현이와 많은 아이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구 아줌마가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잡으셨다. 문
보안관들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다음에 전도활동 때도 참여해서 전도지
방구 아줌마가 너무 크게 말씀하셔서 주변에 있는 학부모들이 모두 나를
를 더 열심히 뿌리겠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것을 믿고 좀더 많은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전도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졸지에 나쁜 사람으로 몰려서 일단 교회로 돌아가려고 할 때 뒤에서 한 여
돌린다.
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르는 사람 아니에요. 우리 교회 선생님이에 요~.” 그 아이는 바로 저번 주 금요일에 내가 손등에 그림을 그려줬던 초등 학교 2학년 서현이라는 친구였다. 딱 한 번 만나본 나에게 우리 교회 선생님 이라고 해주는 서현이를 나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서현이 덕분에 학부모들의 차가운 시선도 사라지고 서현이의 친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와서, 15명의 아이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초대장을 받 아갔다. 보안관과 문방구 아줌마의 방해로 새로운 친구가 한 명도 없이 전 도행사가 끝날 줄만 알았는데, 하나님이 보내주신 서현이 덕분에 방해가
28 빛처럼
51호 29
건강칼럼
수명을 늘려주는 약
30분~60분 정도씩) 꾸준히 계속하면 남성은 평균 6.2년, 여성은 5.6년 수명 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비록 수명을 연장 오 정 일 집사(안양교회)
할 수 있는 고가의 약을 살 수는 없지만, 적절한 운동을 통해서 비싼 약보 다 더욱 훌륭하게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 좋은 운동도 잘못하면 도리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실제 로, 진료하다 보면 운동을 잘못해서 도리어 병을 얻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운동할 때 어떤 것들을 조심해야 할까? 어떻게 운동해야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간단히 알아보겠다.
1) 운동은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분은 운동을 거의 안하다가 밀린 숙제하듯이 몰아서 한다. 이렇게 하면 몸에서 꼭 탈이 난다. 특히, 나이가 많을수록 유연성과 적응력이 떨 어지기 때문에 급격한 운동이 무리가 된다. 그래서 운동은 가볍게 시작하 여 차츰차츰 강도를 올려가야 한다. 예를 들어 60세 이상인 분이 운동을 안 만약 내가 여러분에게 건강한 수명을 5-6년 늘려주며, 건강에도 좋은 약
하다가 처음 한다면, 처음에는 한 번에 15분~20분 정도 가벼운 운동(빠르
을 판매한다면 그 약을 사겠는가? 만약 산다면 얼마를 받아야 할까? 재산
게 걷기, 등산 등)으로 시작하여 매 2주마다 2~3분씩 운동 시간을 늘리고,
이 많은 분이라면 1억원을 달라고 해도 기꺼이 살 것이고, 돈이 부족한 분
강도도 천천히 늘리는 것(가볍게 달리기 등으로)이 좋다. 운동을 해서 한
들은 발만 동동 구르지 않을까? 그런 약을 팔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한 푼
달쯤 되면, 운동 후에 땀이 약간 나면서 상쾌한 느낌이 나는 정도의 강도
들이지 않고도 그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소개해드리겠다.
로 운동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때 그때 몸의 상태에 맞게 조절을 해주
덴마크 비스페베요대학병원 피터 슈노르 Peter Schnohr 박사가 1976년 부터 약 2만명(20-93세)의 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코펜하겐 심장
는 것이 좋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는 평소보다 좀 가볍게 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해도 좋다.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이다. 이 연구를 통해 슈노르 박사는 숨이 크게
특히 몸이 피곤하거나 과로를 하는 분들은 운동보다 휴식이 더 필요한
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달리기를 매주 2-3회에 걸쳐 1-2.5시간(한 번에
경우가 있다. 이런 분들이 운동을 하면 도리어 더 피곤하고, 몸이 아파진 다. 운동한 전후에는 반드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운동할 때 자극을
30 빛처럼
51호 31
칼럼
받은 몸이 휴식을 취하며 튼튼해지는 것이다. 휴식 없이 운동을 하면 도리
로마서 강의(ⅩⅩⅥ)
어 몸이 더 피곤해지거나, 상하는 경우가 많다. 이엘리사 목자(대방교회)
2) 운동은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 운동도 모두 몸에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운동은 도리어 건강을 해치기 도 한다. 예를 들어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을 치는 동작만 반복한다면 반 드시 건강을 해치게 된다. 왜냐하면, 몸을 균형 있게 사용하지 않고 척추 를 비트는 동작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니스, 배드민턴,
제3부 구원론
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탁구 등도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몸을 한 쪽으로 치 우쳐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수영, 달리기, 걷기, 등산, 축구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
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2.성화(6:1-8:17)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
등 몸을 균형 있게 사용하는 운동을 환자에게 주로 권한다.
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
3) 운동을 할 때, 처음에는 부드럽게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심한 운동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근육과 관절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중 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근육이 당기거나 통증을 유발할 수 있고, 관절에도 무리가 갈 수 있다. 그래서 운동 전후에 준비운동과 마무리 운동을 해주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격렬한 운동을 하지 않고 가볍게 시작해서 점차 강도
라.
(1)성화의 배경과 근거
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3) 죄(罪)의 종과 의(義)의 종
(롬 6:15-23)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것이 중요하다.
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한다.
죄의 삯은 사망
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 에 있는 영생이니라.』
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자유의 본질
너희 자신을 종으로
(롬 6: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
그럴 수 없느니라.』
16
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 에 이르느니라.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
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 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18
19
죄에게서 해방되
너희 육신이 연약
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
32 빛처럼
23
(롬6:15-23)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
통하여 미리 몸을 더욱 튼튼히 만들어두는 지혜로운 분들이 되기를 기도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
를 올리고, 끝낼 때도 갑작스럽게 끝내지 않고 점차 강도를 줄여서 끝내는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아프기 전에 운동을
22
<롬6:14>의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말씀의 의미를 제 대로 이해하지 않고서 엉뚱하게 잘
51호 33
돋보기
못 해석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
될까? 그는 분명 다음과 같이 주장할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
게 틀림없다. 신약시대의 성도는 그
없느니라.”(롬6:15)
느니라.”(롬 6:17-18)
점에 서있는 용어다. (ⅰ)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 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
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는 정죄함이 없는 완전한 구원을 받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우
으니 이제는 무슨 죄를 지어도 그것
리에게 죄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의
이 율법에 의해 정죄되지 않는다고.
자유를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
그러면서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는 <갈5:13>의 말씀처럼, 육체의 정욕
사람들마저 비진리와 죄악의 길로
을 따라 죄악의 삶을 살기 위한 방종
인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까
의 기회로 삼으라는 자유가 아니다.
② 우리가 누구의 종이 되어야 마땅 한가.
가 알지 못하느냐”(롬6:16前) 영적인 안목으로 보면 세상에는 단 2종류의 주(主), 즉 하나님과 사단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 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 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마귀)이 있고, 두 종류의 권세, 즉 의(義)와 죄(罪)가 있을 뿐이다. 그런 데 그 둘 중에서 우리가 자신을 종으 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
지 일반 기독교계에서 있었던 실상 을 자세히 한번 살펴보라. 자신의 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
본 절에서 말씀하는 ‘죄의 종’과 ‘순
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롬6:16).
신앙과 불순종으로 죄악을 범했고
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
종의 종’은 어떤 관계에 있을까. ‘죄(罪)
한 사람이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기지
또 범하면서도 그것들을 교묘하게
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의 종’은 다른 말로 ‘불법을 행하는 종’,
못하며(마6:24), 두 주인 사이에서 중
정당화하는 근거로서 본 절을 금과
서로 종노릇 하라.”(갈 5:13)
‘불순종의 종’이다. 하나님 앞에서 불
립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
법을 행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불
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죄의
우리가 주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로
순종하는 것이 곧 죄이므로(요일3:4)
종’이 되든지, 아니면 ‘순종의 종’이
말미암아 얻은 「자유」란 우리를 ‘죄(罪)
‘죄의 종’은 ‘순종의 종’과 대조를 이룬
되든지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그런데 본 절 <롬6:15>은 전절(前
의 종에서 벗어나 의(義)의 종이 되게
다. 한편, ‘순종(順從)의 종’은 ‘의의 종’
한다. 그 둘 중에 어느 것도 선택하
節, 롬6:14)의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하신 것’을 뜻한다. 이로 보건대 이 세
이다. 순종이 곧 의(義)이고(약2:21)
지 않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말씀이 ‘죄에
상에 사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의도하
불순종은 불의(不義), 곧 죄(罪)이므
그래서 만약 순종의 종이 되지 않으
서 구속받은 성도가 마음대로 죄를
든 혹은 의도하지 않든 크게 두 부류로
로 ‘순종의 종’은 ‘죄의 종’과 대조를 이
면 필연코 죄의 종이 되고 만다는 것
지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님을 먼저
나뉜다. ‘죄(罪)의 종’이 아니면 ‘의(義)
룬다. 그러므로 ‘죄와 종’과 ‘순종의 종’
이다.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
의 종’, 바로 그것이다(롬6:17-18,20).
은 서로 상반되는 의미를 갖고 대척
옥조(金科玉條)처럼 악용하는 이단(異 端)들이 적지 않게 등장했던 것이 사 실 아닌가.
34 빛처럼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자유의지를 51호 35
돋보기
부여받았다. 그 자유의지란 사람에게
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기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그 결과로서 의(義)로 인정받고, 그 의
각자 자신의 자유로운 판단과 결정에
때문이다.
8:34)
(義)의 결과로 생명(生命), 즉 영생(永
따라 죄의 종이 되든지 아니면 의의
生)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종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로 인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
죄의 종으로 사는 사람의 종국적인
결과는 극단적으로 갈라진다. 죄의
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
결과는 사망(死亡)이다(롬5:21). 그런
종이 되면 그 결국은 사망(死亡)이고
니라.”(딤전 2:4)
데 이 사망은 단순히 육체적 죽음만
(롬6:16), 그 반대로 순종의 종이 되
(ⅲ) 우리는 무엇에 순종해야 하며, 어떤 종이 되어야 하는가.
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육신의 죽음
본 절의 말씀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
면 그 결국은 의(義)에 이르는 것이기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
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임하는
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을
때문이다(롬6:16). 그러므로 최종적
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것이기 때문이다(롬5:12). 이 사망(死
누구에게 드리는가에 따라 그 드리는
인 결과가 사망인가, 혹은 의인가는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亡)은 영원한 죽음, 즉 하나님의 심판
자의 종이 되는 원리를 통해 범죄하
결국 사람이 누구의 종이 되느냐에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을 받고서 처해질 영원한 불못(지옥)
지 않는 비결을 성도에게 가르쳐주시
달려있다. 그러므로 둘 중에 어느 것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의 형벌을 의미한다(마10:28, 18:8-9,
려는 것이다.
을 선택하기 전에 반드시 그로 인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
25:41-46, 막9:47-49, 계20:12-15).
결과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된다.1)
죄(罪)의 종은 자신을 죄에게 바친
한편 ‘죄의 종’과 대조해서 ‘의(義)
자로서 그 마지막은 사망(死亡)이다.
의 종’이라 하지 않고 ‘순종(順從)의
사람이 죄에게 종이 되면 그 죄는 자
여기서 하나님이 사도 바울을 통해
(ⅱ) "혹은 죄(罪)의 종으로 사망(死
종’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
신을 바친 자에게 왕노릇하고 지배하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핵심은 무엇
亡)에 이르고 혹은 순종(順從)의 종으
말씀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의(義)’이
면서 그를 마음대로 부리게 된다. 한
인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로 의(義)에 이르느니라.”(롬6:16後)
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망’과 대조해서
편 죄에게 종 된 자는 죄를 왕과 주인
순종해서 의(義)에 이르러야 한다는
‘죄(罪)의 종’은 세상 끝날 하나님의
‘생명(生命)’이라 하지 않고 ‘의(義)’라고
으로 섬기면서 그의 모든 요구와 명
것이다. 그래야 이 세상 후에 펼쳐질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되는 자들을 가
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께 ‘의(義)’
령을 거절할 수가 없고 순종해야 한
영원한 두 세계(천국과 지옥) 중에서
리킨다. 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생명(生命)’에
다. 우리가 전에 옛사람 아담과 연합
이르는 길이며, ‘영생(永生)’이기 때
되어 있을 때는 죄로 물든 영혼과 육
문이다(롬6:22). 그러므로 이를 요약
체를 가진 존재였으므로 우리 자신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죄에게 주지 않는다는 것이 원천적으
틀림없이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사망 1) 謝順道, 로마서 p.63
36 빛처럼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51호 37
돋보기
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롬6:17>에서
적인 순종임을 뜻하는 게 바로 그 때
로 행하는 사람을 뜻한다. 하나님은
적인 신분이 그렇게 변경되었다는
도 우리 모든 자들이 본래 죄의 종이
문이다.
그런 자를 의롭다고 하신다. 그 순종
뜻일 뿐이고, 실제로 우리의 속사람
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본
과 우리의 삶 모두가 죄에서 벗어나
절에 이어지는 <롬6:17>에서 밝히고
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라는
있다.
것이다.
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지난날의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우리가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
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
도와 연합한 자들이 되었고, 옛사람
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
아담에게서 벗어난 자들이 되었다.
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③ 성도는 죄(罪)에서 해방되어 의 (義)의 종이 된 사람이다(롬6:17-18).
이란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우리 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이는 곧 종전처럼 죄(罪)의 종으로 살 아서는 안 되며 의(義)의 종으로 살아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
성도란 마귀의 수하에서 해방되어
(롬 6:17-18)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 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
야 하는 신분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고 죄에서
씀이다.
벗어나 의의 종이 된 자를 가리키는
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에게서 해방 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말씀’, ‘구원의 참 복음’을 가리킨다(갈 1:6-9, 엡2:20, 유1:3). “마음으로 순종하여”는 ‘사람이 마 음으로 믿어 의(義)에 이르고 입으로
본 절에서 말씀하는 ‘죄의 종’과 ‘순
말이다. 우리가 성도로서 하나님의
종의 종’에서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
자녀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시인하여 구원(救援)에 이르느니라’
것은 ‘순종(順從’)이다. 왜 그런가. 순
이제부터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말
죄(罪)의 종이었고, 불법(不法)을 행
(롬10:10)는 말씀과 동일한 맥락의 말
종이야말로 종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씀과 뜻에 순종해서 살아야 한다. 만
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
씀이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약 종이 그의 주인에게 순종하지
약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해서 옛 주
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
구주로 인정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
않는다면 그는 생사여탈권을 가진 주
인인 마귀와 죄에게 종노릇을 하며
속한 사람이 되었다. 이는 다시 말
하여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인에 의해 처분되고 만다. 따라서 어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고 배반
해, 주 예수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순종’이
떤 종이라도 종은 자기 마음대로 자
하는 것이며, 다시 죄의 종으로 돌아
중생(重生)함으로 인하여 ‘죄(罪)의
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무엇
유롭게 행동할 수 없고 주인의 명령
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종’에서 ‘의(義)의 종’으로 우리의 신
보다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는 것, 즉
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종노릇한다
순종(順從)의 종이란 하나님께 절
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롬6:17). 그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자
는 것이 다름 아닌 주인에 대한 절대
대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말씀대
런데 여기서 반드시 주의할 점이 있
신을 위한 구원의 말씀, 생명의 말씀
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법
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따르겠다는
38 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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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찬송만화
결단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선적으로
의 개념을 가진 용어다. 의(義)에게
필요하다.
종이 된다는 것은 <롬6:19>에서 말씀
그러나 그렇다고 ‘마음의 순종’이
하고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지체를
사람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
의(義)에게 드려서 거룩함에 이르도
에 대해 단지 마음으로만 감동하고
록 하는 것이다.
Ĝ#Ә̖
이 희 송 형제(강남교회)
동의하는 것에 머무는 것만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 씀을 실행하는 것, 즉 하나님의 말씀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 느니라.”
에 순종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도 포함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그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어 죄의 속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박에서 벗어났고 의의 종이 되어 의
것으로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이후로
없는 죽은 믿음이기 때문이다(약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다시
2:22,26). 믿음은 이처럼 순종과 서
죄의 노예가 되어 죄의 사슬에 매이
로 필수불가결한 관계로 연결되어
고 죄 중에서 사는 사람이 되어선 안
있다.
된다.
따라서 <롬6:18>은 우리가 하나님 께 온전히 순종할 때 ‘죄(罪)의 종’ 된 상태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의(義)에 게 우리를 드리는 ‘의(義)의 종’이 된 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이 미 언급한 바와 같이 ‘죄(罪)의 종’과 ‘의 (義)의 종’은 완전히 대비되는 정반대
40 빛처럼
51호 41
만나칼럼
온전한 띠
다시 사는 삶을 얻은 이후에는(골3:1) 새사람을 입으라고 권 면한다(골3:10). 바울이 정의하는 새사람이란 헬라인이나 유 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
글 : 빈센트 양(영국 캠브리지 교회) 번역 : 김경남 자매(동부교회)
나, 종이나 자유인을 분별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골3:11). 옛 사람은 역사, 인종, 이념, 생활방식, 국가, 신분으로 구분하였 으나 이러한 옛사람의 습성을 내어버리고 새롭게 하심의 옷 입기를 권유한다(골3:10).
우리는 화해와 화합이 불가능해 보이는 분열되고 파괴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런 분열은 가볍게는 스스로를 고립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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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것부터 사회적 갈등으로 격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 등 여
사람은 배경과 문화, 직업, 신분이 비슷한 사람들과 유대
러 형태로 나타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촉발되는
하고 집결하려는 본성이 있다. 이렇게 연합된 구성원끼리 생
갈등, 북한과 남한 국경 사이의 충돌, 중국의 한족과 서부 소
각과 이념을 교류한다. 인종, 이념, 생활방식, 국가, 신분으
수민족인 위구르족 간의 내전 등은 이러한 분열을 잘 보여주
로 인한 서로의 차이점이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고 있다. 이뿐 아니라 종교와 정치적 이념과 인종 사이를 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쉽
로지르는 선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은 정치적으로 적대적인
지 않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편안한 곳에 있길 원한다. 익숙
환경을 조장하게 된다. 특히 사회의 지도층은 자신이 속한 정
하지 않은 영역을 모험하는 것이 망설여지고 거절을 당하거
당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계층을 구분 짓고, 이에 불만을 품은
나 좌절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의 사고나
자들은 고소득자를 시기하고 비난한다. 그 이면에는 정치가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보다 심지어 낫게 여기기도 한다. 우리
들이 일하는 자와 태만한 자로 개념화하여 이를 주입시키고,
의 경험을 통해 우리 삶이 바르게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기
게으른 자를 “자격이 없는 빈곤자”로 낙인찍어 그들의 가난
때문이다.
이 마치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에서 초래된 것으로 여기게 만 든다. 이런 현상은 현대적 삶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근본적으로 인간이 지닌 본성의 약점에서 비롯된 것일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42 빛처럼
사도들은 관습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예 루살렘을 떠나 모든 민족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없었다(마 28:19, 행1:8). 오직 하나님의 개입과(행 10:11-12, 10:47)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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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칼럼
나님의 뜻을 따르려 할 때(행 11:18) 주님의 사역은 반드시 결
일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매우 억울한 감정을
실을 맺는다.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시야를 초월할 수도 대
드러냈다(눅15:29-30).
신할 수도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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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부러워한다(행13:15).
성경에는 자신들이 정의를 추구하고 바른 삶을 산다고 주
그리고 자신이 특별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여(벧전 5:5–6)
장하는 인간의 성향을 보여주는 많은 예들이 있다. 용서할
타인으로부터 월등함과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막 9:34).
줄 모르는 종의 비유에서 보듯이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신보다 약한 자를 무시하거나(약 2:3–4) 혹은 부적합하다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은 것을 발견
고 판단하여(고전12:21–25) 업신여기기도 한다. 그런 행동들
한다(마 18:28-30). 한 아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아버지의 유
은 교회에서 질투, 다툼, 분열을 초래한다. 로마서는 교회 내
업을 공평하게 나눠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본다(눅 12:18). 고
에 존재하는 구분짓는 두 그룹을 기록하고 있다. 한 쪽은 육
린도 성도들은 불의한 일에 대해서 세상 법정에 송사하여 판
식을 먹는 것이, 다른 쪽은 채소를 먹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
결을 받으려고 하였다(고전 6:1-8). 헬라파 유대인들은 헬라
다(롬 14:1–3). 이런 생활 방식의 차이는 한 쪽이 다른 쪽을
파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
판단하고 업신여기게 만들었다. 경건치 못한 인간의 본성은
망했다(행6:1). 이런 불만은 헬라파 과부들이 헬라인이라는
가족, 조직, 사회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의인들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은 교회 안에도 이러한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을 인식하였고,
이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온전하 심을 본받으라고 각인시켰다.
이 세상의 물질적 부당함에 대한 개념을 영적인 세계에 적
44 빛처럼
용하면 그 의미가 흐려진다. 포도원의 비유에서 품꾼들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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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원망한다. 왜냐하면 늦게 와서 적게 일한 자도 동일한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의 몸에 대한 개념이 녹아 있다(롬
삯을 받았기 때문이다(마20:11). 탕자의 비유에서도 큰 아들
12:1, 5, 고전 10:17, 고전12:12–13, 20, 엡2:16, 엡4:4, 골
은 동생인 탕자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받는 것을 부당하
3:15). 많은 지체가 모여 한 몸을 이루고 각 지체는 고유의 기
게 여겨 원망을 토로한다. 형은 아버지가 자신이 충성을 다해
능과 역할을 한다(고전 12:21–24). 각 구성원 간의 차이점으
51호 45
만나칼럼
로 인해 타인을 배척하고 수용치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
가 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다면 남들이 고의적으로 자신을 음
지체가 서로를 격려하고 도우면서 몸의 기능을 잘 발휘하게
해한다고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된다(롬 12:4–8).
또한 신도들은 지목 설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의 구별하려는 본성을 흡수하고 이
그러나 설교자의 의도를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 하나님의 말
를 통해 주님의 몸을 이뤄나갈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권면하
씀을 지켰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기분이 상할 때 상대
는 새로운 사람이란 겉모양만 새롭게 변화된 것이 아닌 긍휼
를 보복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서 자신을 돌아
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관용과 용서와 오래 참음을 겸비한
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
사람이다(골 3:12–13). 이러한 특성은 사랑의 표출이다(골
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3:14). 인간의 구별하려는 본성과 반대되는 것이다. 사랑은 모 든 것을 수용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분이 상
우리는 끊임없는 어려움과 괴로운 상황 속에서 인내, 착
하고 무시를 당할 때 일어나는 적대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함, 소망, 참음을 통해 내면의 평화와 고요함을 지켜낼 수 있 다. 블레셋 사람들로 인해 직면한 어려움 가운데(창 26:14,
우리의 지각은 생각을 통해 결정되는데, 드러내놓고 모욕
15, 20, 21), 이삭은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여 대적하지 않
적인 표현들을 아무렇지 않게 삭힐 수도 있고, 반대로 악의
았다. 오히려 이삭은 한 걸음 물러났고 하나님은 그를 축복
없는 표현들로 인해 상대방의 화를 돋구거나 자극적이고 악
하셨다. 이삭은 넓은 장소의 중심이 되었다. 이는 그의 지경
의 있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사울 왕은 여인들이 본
을 넓혔기 때문이다(창 26:22,우물의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
인과 다윗을 찬양하는 노래 소리에 반응하여 매우 분노하였
였으며 이는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음이라). 형제를 사랑
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하고 불쌍히 여김과 겸손한 마음은(벧전 3:8) 시기와 교만과
18:7). 사울 왕은 이런 찬양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과는 반대이다. 이런 덕은 상대의
다윗에 대한 분노를 키우게 되었다. 성경은 사울의 눈이 악에
화를 평정하게 한다(고전 13:4-7). 그리고 악을 악으로 욕을
찬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삼상 18:8). 이는 파괴적인 일들을
욕으로 갚지 않는다(벧전 3:9). 사랑 안에서 모든 덕목을 통
도모하는 계기가 된다. 사울이 이런 찬양의 소리를 하나님의
해서 악을 이기고(롬 12:21) 우리는 하나의 띠로 연합할 수
광대하심과 긍휼하심을 찬양하는 쪽으로 받아들였다면 그에
있게 된다(골 3:14).
게 임하는 재난과 많은 고통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46 빛처럼
51호 47
만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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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강권함을 받길 권면한다(고후 5:13–14). 새로운 피조물
한 분이신 하나님, 하나의 믿음, 하나의 성령, 하나의 소망,
로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자신을 내어주
그리고 하나의 부르심은 모든 성도들의 공통점을 나타낸다.
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우리는 하나로 연합하였지만 각자가 다양한 은사를 지니고
삶은 무조건적인 사랑 앞에서 굴복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진
있으며 다른 점들이 존재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확장
정으로 그리스도와 같아지려고 노력할 때 우리를 온전케 여
하기 위함이다(엡4:10–12). 우리의 생각과 믿음과 그리스도
기실 것이다(마 5:48).
를 아는 지식이 하나가 될 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 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를 때(엡 4:13; 빌 2:2,5) 온전함을 이룰
온전함은 즉각적인 변신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에서 얻어지
수 있다.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버릴 때 새사람을 입을 수 있
는 것이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을 버려
다(골 3:9-10; 엡4:22–24).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
야 온전케 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도의 형상을 닮길 원하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빛”에서 그리
상대방을 섬기는 것을 배우고 사람에게 인내하고 참음으로써
스도와 같아져야 한다.
(벧전 4:8, 엡4:2) 사랑을 배우고 원망없이 서로 내어주면서 사랑을 배운다(벤전 4:9). 믿음 안에서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형상은 자기를 비우는 것(빌2:7)과 자기 희생으
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면, 우리는 화평할 수 있다(엡4:3).
로 표현된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고
외부의 환경과 압박이 우리를 나누려 해도 우리는 동요하지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띠로 매여 있기 때문
(막 10:45). 주님의 사랑은 누구를 막론하고(마 9:36) 우리가
이다.
무엇을 하든지(마 5:45) 우리가 어디에 있건 문제되지 않는 다. 주님의 사랑은 사람의 상대적인 사랑법과 다르다(요
그리스도는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5:44,마 5:46,48).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우리 상황에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롬 5:8).
셔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으셨다(엡 2:14–15). 우리 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속죄함을 얻는 값없는 은혜를 받
48 빛처럼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았다(롬3:2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혈육의 의미가 없다(
위해(고후 5:17)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감동
갈 3:28, 6:15).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내 안에 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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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칼럼
성지순례 기행문
도가 사신다(갈 2:20). 주님의 값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는 그의 가족이 되어 주 안에서 화평과 만족을 누리게 되었 다. 그의 은혜로 상대방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을 기대하 기보다는 내가 남을 위해 살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명령 에 따라 그 말씀에 거하고 그의 사랑으로 주 안에서 하나가
1차 바울 선교지 성지순례 후기
되어야 한다(요15:7, 10). 주님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삶 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으셨다(요13: 34). 그러므로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자,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
이 선 화 자매(청주교회)
을 초대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이다(눅14:13–14; 벧전3:9). 그리스도의 몸은 각 지체가 모여 밀접하게 결합1) 되어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게 자라게 한다(골2:19). 예수 님의 사랑과 그를 향한, 그리고 형제를 향한 사랑이 우리를 결합하게 만든다(골2:2). 혈육과 인종과 이해관계와 지역으 로 결합된 띠가 아니라 오직 온전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우 리는 연합하고 함께 모이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 간의 장벽 을 진정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 자신을 비우는 것이 매
2013년 이스라엘, 요르단 지역 성지순례 이후 두 번째 가는 성지순 례. 작년에도 적잖은 감동과 은혜를 받고 왔음에도 이번 바울 선교지 성지순례는 신청공문이 왔을 때 ‘바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기보다는 주저주저하고 망설였다. 솔직히 말하면 비용 문제가 컸다. 그런데 시 간이 안 되어 못 간다, 돈이 없어서 못 간다 하면 그 사람은 평생 여행 을 못다닌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같이 가자고 한 언니들의 권유
우 중요하다. 그럴 때 주님의 사랑의 띠로 온전함을 이룰 수
에 못이기는 척, 또 나 스스로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가보겠느
있다.
냐는 생각에 신청서를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덕스러운(?) 신청과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도 많은 데, 나는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도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가겠어!” 하고 믿음의 결단을 속히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지 순례 여정 첫날부터 ‘와, 안 왔으면 어쩔 뻔했지.’ 하는 생각이
1) 그리스 원어 [ 시키다, 함께 묶다, 애착이 있다.
50 빛처럼
], 연합하게 만들다, 함께 붙이다, 합하다. 일치
끝나는 날까지도, 아니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면 정말
51호 51
성지순례 기행문
가길 잘 한 것 같다. 올해 내 인생의 선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의 하나
30%도 안 되는 비율이 기독교인데, 정말 앞으로 우리가 부지런히 복
로 여길 만큼 말이다.
음의 씨앗을 전파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또는 지금 하고 있
물론 작년에도 그러긴 했지만, 매일이 기대되고, 하루하루 시간
는 신앙생활도 바르게 이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도 지금의 터키
가는 것이 너무 빠르게만 느껴지고, 끝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커지
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나는 지금
던 그런 성지순례 여행이었다. 또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이스라엘
과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지, 또 가르치는
요르단지역 성지순례에 비해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성지들을 둘러
자로서 바르게 전승하고 있는지 되물었을 때 역시나 부끄러운 나의
보는 성지순례의 성격’보다는 ‘견문을 넓히는 여행의 성격’이 컸던
모습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성지순례였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 끼고 체험한 여행의 성격! 이 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히 쓰일 것 을 믿는다.
첫날, 터키시각으로는 저녁 7시 30분 (한국은 새벽 1시 30분정도)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우리는 카이세리로 이동했다. 3시간 남짓 걸렸 다. 교통 체증이 심각했는데 다리가 두 개 뿐인데다가, 유동인구가 많
이스라엘지역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아서 그렇단다. 첫
많았지만 상대적으로 터키와 그리스 지역은 그렇지 않았다. 길거리
날은 호텔에 들어
에 듬성듬성 있는 돌덩이들을 보고 2천 년 전의 모습을 상상해야 했
가서 자기 바빴다.
고, 이미 지금은 이슬람권이 되어버린 황무한 지역에서 사도 바울의 자취를 마음속으로 따라가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터키는 ‘정말 이
둘째 날엔 카파
곳이 사도 바울이 그렇게도 종횡무진으로 복음을 뿌리고 다녔던, 그
도키아(성경의 ‘갑
곳이란 말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아니 ‘기독교’라는 것을
바도기아’)로 이동
떠올리는 것조차 어색할 정도이다. 전 국민의 99%가 이슬람교도이
하여 신기한 암석
고 기독교는 단 1%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략
들이 있는 곳으로
52 빛처럼
51호 53
성지순례 기행문
갔다.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들은 화산폭발에 의해 두꺼운 화산재가
은 사람들이 그저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쌓여 굳어져 그 후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 인 지층이 몇 차례의 지각 변동을 거치며 비와 바람에 쓸려 풍화되어
지금이야 종교의 자유가 있어서 지하 동굴에 숨어살 만큼 탄압이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쉽게 굴을 팔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는 것이 어불성설일 수 있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괴레메 골짜기를 조망하며 낙타처럼 생긴 낙
지만 그래도 지금 내가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타바위, 버섯바위 등을 보았다. 굉장히 희한하고도 재미있게 생긴 암
것이 감사했고, 내가 저 시대의 사람이라면 나 또한 그런 불편한 생활
석들을 보며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파샤바 계곡은
을 감수할 만큼 신앙을 지켜냈을까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상 깊었
특히 버섯모양의 암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스머프 마을이라고 불리
던 것은 지하 동굴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서 그 안에 예배당이니, 교육
기도 한다.
실, 식당, 부엌, 심지어는 마구간과 포도주 제작소까지 필요시설을 완
괴레메 계곡은 화산재로 형성되어 4세기경부터 기독교인들이 살 았으나 탄압이 심해지자 이 계곡의 바위들을 파서 동굴을 만들어 교
비해 두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그 안에서 어떻 게든 살아가는 것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를 짓고, 집을 지어 살았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 어 지낸 지하도시인
다음 날, 콘야(성
하 데린구유도 방문하
경에서 ‘이고니아’지
였다. 어두컴컴한
역)에서 아침을 맞
곳에서 빛도 제대로
이한 후 ‘버가’ 지역
보지 못해 답답했을
을 순례하였다. 바
앙 텐데 어떻게든 신앙
울이 전도한 ‘버가’
을 지켜내기 위해
라는 지명은 지금의
않 이런 생활도 마다않
곳 ‘페르게’이다. 그곳
54 빛처럼
51호 55
성지순례 기행문
에서 역시 남아있는 돌무더기들을 보고 버가의 거리와 도로, 시
묵칼레였다.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목화의 성’이라는 의미로 경사
장을 상상해야 했다. 그저 머리로 ‘이랬을까?’ 어렴풋이 상상할
면을 흐르는 온천수가 빚어낸 눈부시게 하얀 장관 때문에 붙은 이
뿐이었는데, 후에 공항 면세점에서 파는 한 책자에서 이곳의 옛
름이라고 한다. 석회성분을 다량 함유한 이곳의 온천수가 수 세기
날 모습들을 상상하여 복원해놓은 그림들을 보고 대략 윤곽이 잡
동안 바위 위를 흐르면서 표면을 탄산칼슘 결정체로 뒤덮어 마치
히었다.
하얀 목화로 만든 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굉장히 멋진 장관에
그리고 원형극장이 있는 아스펜도스 지역을 둘러보고 항구도시
눈과 마음이 즐거울 따름이었다.
인 안탈랴(성경의 ‘앗달리아’)로 이동하였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를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정말이지 이곳은 눈을 돌리는 곳마 다 사진작품이 되겠구나 싶었다.
이 후 일정을 이곳에 모두 다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에베소 지 역’과 계시록에 나오는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순례 등 성경에 서 눈으로만 읽던 곳들을 직접 방문하는 감회는 참 남달랐다.
다음 날 간 곳은 히에라폴리스(성경의 ‘히에라볼리’)였다. 그곳
무엇보다 크루즈 여행이 나에겐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는
에 남은 황폐한 땅 위에서 우리는 빙 둘러서서 찬양을 부르기 시
데, 서두에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견문을 넓히는 여행의 성격’이 컸
작했다. “이 땅위 황무함을 보소서~”라는 가사가 정말 딱 들어맞
던 성지순례라고 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거대한 크루즈를 타고 사
을 만큼 그곳은 황무지와도 같았다. 이어 부른 찬양이 “믿음으로
도 요한의 자취가 남아있는 밧모섬을 둘러보고, 사도 요한의 수도
서리라”였는데 정말 이럴 때일수록 내가 찬양의 가사처럼 주님이
원과 계시록 동굴을 순례하였으며, 사도 요한의 기사들에 의해 세
맡기신 하나님 나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하늘의 뜻이 이 땅
워진 중세 성벽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또 선상 위에서 맞이하는 일
가운데 완성될 그날까지, 하나님 나라는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믿
출과, 일몰의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이후 신화로 잘 알려져 있는
음을 가지고, 믿음을 다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그 나라를 세워가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과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산섬 산
는 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토리니 방문도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또 그리스 신화로 물들어 있는 그리스에 도착해서는, 사진에서
그리고 우리가 가본 곳은 목화의 성이라 불리는 온천 휴양지 파
56 빛처럼
만 보던 파르테논 신전을 직접 눈앞에서 보니 참 멋지다는 생각을
51호 57
성지순례 기행문
하기도 했지만, 하나님 외에 인간들이 만들어낸 신들로 가득했던
들과의 교제와 대화의 시간도 나에겐 참 값진 시간들이었다. 나보
곳임에 안타까움이 들었고, 또한 ‘인본주의’에 대한 경각심도 다시
다 앞서 본을 보여주고 가신 신앙의 선배님들을 보며 많은 귀감이
일깨우게 되었다.
되고, 자극이 되었으며, 나와 지금도 함께 하는 신앙의 동역자들이
고린도 지역의 박물관과 유적지를 둘러보면서는 고린도전후서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면서 힘이 되었다. 다음에 또 2차 바
맥락 내지는 배경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어 ‘아-그래서 바울이
울선교지 성지순례가 생긴다면 다른 분들께 강력 추천해드린다.
이런 말씀을 기록했던 것이구나.’ 하는 것도 있었다.
다른 말 필요 없이 정말 즐겁고 유익했던 성지순례였음을 고백하 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마지막 날은 터키로 돌아와 이스탄불 관광으로 마치게 되었는데, 타국에서 듣는 한국말이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엔 익숙해질 정도 로 거리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순례 내내 든 생각은(지난 순례 때도 그러긴 했지만) 성경에 너 무 무지하다는 생각과, 세계사를 정말 더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바라보는 세계 관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하나님의 역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또 미래까지 이어지는 이 선상에서 세계의 역사가 어떻 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를 좀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도 참 중요 한 것 같다. 이번 성지순례를 위해 모인 성지순례단 형제, 자매님
58 빛처럼
51호 59
대만방문기
가기 전에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나는 1조였는데, 예배당에서 대만
간셰주!
에 있는 시장들이나 교회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대만에 다녀온 오빠들의 간증도 들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사진들도 보았는데, 그 사진들을 보면서 기대감이 더 부풀었었다. 간증을 듣고 나서는 나도 김 혜 원 자매(강남교회)
오빠들처럼 은혜를 충만하게 받고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1조 여자 친구들과 같이 잠을 잤는데, 세상이 말세 같다는 이 야기도 하고 대만 가서 은혜를 많이 받고 건강히 잘 갔다 오고 싶다 는 이야기를 새벽 늦게까지 하다가 기도를 하였는데, 여러 이야기와
대만에 무사히 다녀와서 이 소감문을 작성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함께 오랫동안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처음 대만방문지원서를 작성했을 때는 대만
60 빛처럼
에 다녀온 후엔 믿음의 성장과 더욱 변화된 삶을 살고 싶었고, 교
7월 28일 교회에서 기도하고 인천공항에 가서 출국수속을 했는데,
회 언니오빠들의 대만에 다녀온 간증들과 은혜로운 이야기를 듣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약간 힘들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고 빨리 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뽑히고 나서 막상 갈 날
얘기도 해서 힘든 것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비행기가 대
이 얼마 안 남았을 때 교통수단들의 사고들이 무척 많이 일어났
만 도원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후 제5차대만방문단 플랜카드를
다. 그래서 속으로 걱정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했다. 비록 그런
들고 4박5일 동안 동행하실 황형제님께서 사진을 찍어주셨는데, 그
일들이 슬픈 일이긴 하지만 평소에 긴장을 하지 않거나 좋은 일이
때까지만 해도 대만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숨이 막
있으면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들떠 있는 나에게 하나님께서 미
힐 정도의 탁하고 더운 날씨와 이층버스, 그리고 사람들이 자동차보
리 경고하시는 것 같았다.
다 오토바이를 훨씬 많이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아, 진짜 대만이구
7월 27일 일요일에 대만 방문을 위해 각 교회 또래 친구들이 모두
나’라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총회를 겸한 북대중교
강남교회에 모였다. 그 동안 카톡 단체 채팅방이 있어서 처음 만난
회였다. 언니오빠들에게 들었던 것처럼 교회가 정말 컸는데, 기도하
것 치고는 활발하게 인사도 했고, 선생님들과 함께 게임도 하면서
기 위해 예배당에 들어가니 종이컵 하나 없이 깨끗하였다. 이것을 보
51호 61
대만방문기
고 한국교회에서 가끔 목이 말라 물컵을 얹어놓고 주보를 치우지
있어서 다른 데보다 약간 쌀쌀했다. 쌀쌀해도 산지라 그런지 특이하
않은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대만에서 처음 간 뷔페에서는 한
고 처음 보는 벌레들이 많았다. 낙야교회에서도 찬양교류를 하였는
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다. 노란 수박,
데, 성도님들이 무척 활발하셔서 호응도 크게 해주셨고, 교류가 끝
처음 보는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보았다. 밥을 먹고
난 후 직접 잡은 멧돼지 고기도 먹으라고 쌈장과 상추와 함께 준비
북대중교회에서 처음 찬양교류를 했다. 그런데 처음이라서 그런지
해주셨다. 마찬가지로 먹으면서 서로 명함을 나눠주며 교류하였는
쭈뼛쭈뼛하기도 하고 가사도 틀리고 실수를 많이 했지만 북대중교
데, 낙야교회의 우리 또래들은 수줍어하며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회 성도님들께서 좋게 반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렸다. 교류와 예배
그래서 우리가 먼저 다가가서 명함을 나눠주고 사진도 먼저 찍자고
가 끝나고 성도님들께서 맛있는 과일들과 버블티를 준비해주셨는
해서 겨우 몇십 분만에 친해진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도 낙야
데, 버블티가 살짝 밍밍하긴 했지만 과일도 그렇고 정말 맛있었다.
교회는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정말 성도님들의 정성과 진심
과일을 먹으며 각자의 명함을 나눠주고 서로 이름과 이메일을 공유
을 느낄 수 있었던 교회 중의 하나였다. 이번 방문단의 자매나 형제
하며 사진도 같이 찍었다. 말은 안 통해도 영어나 몸으로 표현하는
모두 대만음식들을 정말 잘 먹었는데, 우리가 더 먹고 싶어하는 것
것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이 있으면 먼저 오셔서 음식들을 더 주시고 우리를 무척 위해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둘째 날에는 아리산에 갔다. 아리산에 갔을 때는 안개도 많이 끼고
62 빛처럼
비도 살짝 와서 쌀쌀했지만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에 친구들,
셋째 날에는 지진박물관에 갔다. 대만의 지진을 통해서 믿음이 약
선생님들, 목자님, 그리고 동행하셨던 천일송 장로님, 황형제님 가
해진 성도들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살아계
족들과 기차 안에서 찬송을 부르며 올라가서 정말 은혜로웠다. 황형
셔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지진박물관 다음
제님 아들 10살짜리 시언이 일정 동안에도 항상 그랬지만 특히 아리
에는 점심을 먹고 기독양로원이라는 곳을 갔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산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다. 시언이 영어를 잘해서 우리가
들이 낮잠을 주무실 시간이라고 하여 조용히 다녔다. 계단을 올라가
관광을 하다가 모르는 것은 쉽게 설명을 해주었고, 가이드 역할도
다가 다른 곳보다 조금 많은 인원의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휠체어를
많이 했다. 아리산 다음에는 낙야교회를 갔는데, 낙야교회도 산지에
타고 앉아계신 곳에서 찬양과 율동을 보여드렸는데, 몸이 불편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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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방문기
더라도 우리의 찬양하는 모습을 보시고 처음에는 무표정이셨다가
도 하고 목소리가 약간 작기도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점점 해맑은 웃음을 지어주시고, '손을 높이 들고'라는 찬양에서 하
우리의 진심이 성도님들께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인애교
이 파이브 하는 것 대신 그 부분에서 손을 잡아드렸는데, 흐뭇한 표
회에는 우리 또래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찬양교류가 끝나고 40분의
정으로 내 손을 꽉 쥐어주신 그 표정과 따뜻했던 할아버지 할머니
교류시간 외에도 인애교회 성도님들의 부탁으로 조별모임을 하지
손의 온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양로원에 다녀온 후 푸리양조장을 견
않고 그 시간에 인애교회 청년들이랑 조별로 게임을 하였다. 역시
학했는데, 그곳에서 황형제님이 오렌지맛 아이스크림을 사주셔서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긴 하지만 몸으로도 설명하고 다양한 표현으
더운 날씨에 잠깐이나마 시원하고 맛있었던 생각이 난다. 견학을 마
로도 설명하며 이런 것들을 통해 더욱 친해지고 대만의 게임문화와
친 후 인애교회에 도착했는데, 인애교회까지 가는 동안에 시간이 너
한국의 게임문화까지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 짧아서 찬양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64 빛처럼
그래서 저녁식사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짐을 올려놓고 연
넷째 날 인애교회를 떠날 때 성도님들이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나
습을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인애교회 형제님들께서(청년들) 우리의
오셔서 방문단이 끝나는 일정까지 무사히 진행될 수 있도록 같이 기
짐을 올려다 주셨다! 간셰주! 형제님들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들을
도해주시고 밝은 표정으로 가는 길을 배웅해주셨다. 인애교회에서
옮겨주신 것은 너무 감사하고 죄송한 일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는 옛거리를 갔는데, 그곳에는 다양한 음식들과 물건들이 많았
하나님께서 마치 시간에 쫓기지 말고 찬양교류에 할 찬양을 열심히
다. 홍영석 목자님께서 우리 조와 같이 다니셨는데, 대만에 오면 꼭
연습하라는 계시였던 것 같다. 그 감사함을 생각하며 우리 형제자매
먹어봐야 할 음식들을 사주셔서 소세지, 작은 바나나, 고소한 깨랑
들은 더욱더 열심히 연습하였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 우리는 일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음식 등 여러 가지를 먹어볼 수 있었다. 다
층 식당에 앉아서 밥을 먹었는데, 인애교회도 우리 방문단을 위해서
음으로 담수교회를 방문하였는데, 이곳은 교회가 정말 궁전처럼 으
김치와 깍두기를 만들어주셨다. 비록 조금 짜긴 했지만 오랜만에 먹
리으리하였다. 찬양 세미나를 하고 있어서 찬양교류도 못하고 구경
어보는 김치라서 그런지 진짜 맛있었다. 우리 자매들은 밥을 다 먹
도 못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괜찮다고 해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많
자마자 단체티로 갈아입고 바로 예배당에 가서 예배시작 5분전까지
이 찍었다. 크고 예쁜 오르간이 있는 곳에서 대만분들 8~9명이 화음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하였다. 실제 찬양교류 때에는 단체로 실수
을 넣으며 합창을 하고 계셨다. 워낙 교회가 커서 마이크를 굳이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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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방문기
지 않아도 울리기 때문에 중간쯤에서 들어도 찬양소리가 고왔다. 찬
고 느껴지지 않고 마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친근한 느낌을
양을 듣고 그냥 가는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 그 앞에서 찬양을 할 수
받았다. 교회에 도착했을 때부터 교회를 떠날 때까지 항상 웃어주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래서 찬양세미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다
시는 모습을 못 잊을 것 같다.
른 교회보다는 적은 수지만 그래도 담수교회 성도님들 앞에서 찬양 을 불렀다. 이렇게 큰 교회에서 찬양을 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찬양세미
사진을 찍고 엽서를 제일 많이 남겼다. 그리고 과자공장도 갔고 마
나 때문에 오래 있지는 못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그 다음에 야시
지막 교회인 난칸교회를 방문하였다. 난칸교회에서 찬양교류를 하
장에 갔는데, 야시장은 대만에서 매우 유명한 시장이라고 한다. 역
고, 우리 방문단, 선생님, 목자님만 남아서 시상식과 폐회식과 동그
시 홍영석 목자님께서 함께 다니셨기 때문에 야시장에서 유명한 음
랗게 손을 잡고 목자님의 기도로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내가 목자
식들도 거의 다 먹었다. 저녁으로 스테이크 비슷한 것과 게튀김, 새
님의 왼쪽 손을 잡고 있었는데, 목자님께서 기도하실 때 울컥하셔서
우튀김 등을 먹었고 후식으로 빙수를 먹으러 갔다.
나도 덩달아 울컥해져서 손을 꽉 잡아드렸다. 난 결국 축복의 통로
우리 1조가 목자님과 필선 선생님까지 10명이어서 빙수를 5개 시켰는데, 빙수가 망고빙수, 커피빙수, 과일빙수 등 다양했다. 그
66 빛처럼
마지막으로 다섯째 날 우리는 충렬사를 가서 가만히 있는 군인과
를 부를 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만 정말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 사히 대만에서의 일정을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드렸다.
빙수들의 맛이 한국빙수랑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만큼 맛있어서
난칸교회분들과의 교류에서도 함께 게임을 하다가 형제님들이 기
몇 분만에 다 먹어버렸다. 우리는 다 먹고도 아쉽다는 생각을 똑같
타연주를 해주신다고 하여 그때부터 찬양교류가 즉석에서 한 번 더
이 하였는지 숟가락만 빨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목자님께서는
있었는데, 난칸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에서 많은 은혜와 믿음을
그런 우리를 보시고 2개를 더 시켜주셨는데, 진짜 너무너무 감사
얻었고, 공항까지 배웅해주신 난칸교회 성도님들, 모든 일정 내내
드렸다! 야시장에서 우리는 대만에서 마지막 잠을 잘 대동교회로
인도해주시고 많은 것을 알게 해주신 천일송 장로님, 황형제님 가족
갔다. 대동교회는 담수교회 못지않게 컸다. 교회 분위기라기보다
분들께 너무 감사드린다.
는 호텔의 느낌이 났다. 대동교회에서는 찬양교류를 할 때 어른들
도원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오는 도중에 비가 오고 바
께서 찬양을 하셨는데,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남의 나라 사람이라
람도 많이 불어서 비행기가 정말 많이 흔들리고 위아래로 왔다갔다
51호 67
대만방문기
해서 비행기 안에서 친구들과 같이 기도하고 잠이 들었는데, 다행히
다음날부터는 중국어 찬양도 그렇고, 한국어 찬양도 그렇고, 너무
하나님께서 마지막 길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셔서 무사히 도착했다.
잘하였다고 생각한다. 채린이 수연이가 오카리나 연주를 하였는데, 연주를 듣는 내내 소름과 동시에 은혜로웠다. 버스를 타고 계속 이
이번 대만방문을 통하여 얻은 것과 깨달은 것이 정말 많다. 먼저
동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조구호를 짜고 중국어를 익히고 대만 찬양
대만 성도들과 인사할 때 "할렐루야!"라는 말로 인사를 하였는데, 할
을 외우고 조별 휴게소 미션 등을 하면서 찬양도 많이 알아가고 친
렐루야는 어느 나라에서나 어느 교회에서나 어느 성도들이나 모두
구들과도 좋은 추억을 만들었으며 북부 친구들보다 남부 친구들이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할렐루야라는 말로 밝게 인사를 나누었
훨씬 많았는데, 그래도 서로서로 친하게 지내고 아무일이 없어서
다. 두번째로는 "간셰주!"라는 말이다. 간셰주를 한국말로 하면 '주님
다행이었다.
께 감사드린다' 라는 뜻인데, 대만 성도님들은 언제 어디서나 '간셰
우리 방문단을 인도해주시고 이끌어주시고 너무 애써주신 필선
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시고 나와 방문단 친구들도 대만에서 '간셰
선생님, 은혜 선생님, 혜선 선생님, 홍영석 목자님! 가끔 말 안 듣
주!'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였다. 간셰주라는 말은 이 단어의 뜻과
고 장난치고 이랬는데,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이런 좋
의미를 알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은 경험과 많은 은혜를 얻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간셰주!
이외에도 서로 공통의 언어들이 있지만 이 '할렐루야'와 '간셰주' 만으로도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이지만 정말 참예수교회 안에서 우 리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만 성도들에게 배울 점 도 정말 많았다. 경건한 마음과 자세, 그리고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 배드리는 것을 느꼈다. 한국교회에 가서도 대만 성도님들의 자세를 본받고 그 본받은 것을 실천하는 것과 더불어 교회 사람들에게 알 리고 올바른 것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찬양교류를 할 때 첫째 날에는 처음 하는 거라서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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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중을 나오셨다. 그 기사님이 모는 버스는 2층버스여서 가는 길이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 버스로 대만총회, 북대중교회를 방문했 다. 우리는 숙소를 배정받은 뒤 다시 버스를 타고 샤브샤브뷔페로 갔 다. 대만 음식이 안 맞을까봐 우리를 배려해주신 대만 성도님들께 너무 안 지 윤 자매(하남교회)
감사했다. 그 덕에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가 끝난 뒤, 북대중교회 로 가서 연합예배로 찬양교류를 하였다. 그곳에서 신기했던 점은 우리 가 중국어와 대만어를 배워온 것처럼 북대중교회 분들도 한국어를 조 금 배우셔서 찬양하실 때 사용하신 것이다. 찬양교류가 끝나고 교류시
우리는 출발하기 전 날 강남교회에 모여서 대만에 대한 간증도 듣고,
간을 가졌는데, 성도님들께서 우리에게 버블티를 대접해주셨는데, 버
그곳에서 할 찬양들을 연습했다. 또 대만교회에 가서 지켜야 할 것들을
블티는 대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연히 맛있을 줄
들으니 대단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리고 선생님 3분 중 2분은 중국어
알고 먹었지만, 그냥 그럭저럭한 맛이었다. 성도님들께서 또 다른 것을
를 잘하신다는 점에서 놀랐고, 목자님도 중국어를 잘하시는 것에 대해
대접해 주셨는데, 그것은 백향과라는 열매인데, 씨가 매우 많았다. 맛
놀랍고 부러웠다.
은 있었지만, 씨가 너무 많아서 그것 역시 그럭저럭했다. 교류를 하면 서 서로의 Face book도 알려주고, 대화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정말
출발하는 당일 날, 출발하기 바로 전에 “Amazing grace”라는 팔찌를
좋은 교류시간을 가졌다.
받았다. 그 뜻은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이다. 이 팔찌를 받은 후 인천
70 빛처럼
공항으로 향했다. 일찍 출발했는데도 출국심사가 거의 2시간이나 걸려
둘째 날에는 어제 일정이 촉박하여 하지 못했던 대만총회 건물에 대
서 놀랐다. 인천공항에서 대만의 도원공항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
한 설명을 들었는데, 역시 대만총회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설명을
렸는데, 그때가 점심시간이어서 기내식을 먹었다. 처음으로 가는 해외
다 듣고, 단체샷을 찍고 버스에 올라 손을 흔들며 대만총회, 북대중교
와 처음 먹는 기내식이 모두 신기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만의 도원공항
회 성도님들과 헤어졌다. 중간 중간에 미션이 있었는데, 이번에 갈 곳
에 도착했다. 그 도착한 곳에는 총회에서 형제분과 장로님, 운전기사님
인 아리산의 미션은 구원열차를 표현해서 찍고, 기차를 표현해서 찍는
51호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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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이었다. 미션을 할 때 정말 재미있었고, 좋은 추억이었다. 아무튼
일어난 진도 7.3규모의 지진이 일어난 학교를 박물관으로 한 것이다.
아리산 신목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신목이 있는 데까지 갔는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지진이 일어났었을 때가 하교 후였기 때문에 학
데, 신목은 옛날에 벼락 맞고 쓰러졌다고 했다. 아무튼 사진도 찍고,
생들은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지진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무엇보다도 안개라고 해야 될지 구름이라 해야 될진 모르겠지만 정말
있었는데, 체험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이 너
뿌연 게 신비로웠다.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와 버스로 가는 길에 기념
무 많아서 결국 남자들이 양보를 해서 여자들만 지진체험을 했다. 그런
품가게에서 기차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신기해서 사갔다. 그리고 낙야
데 그곳에서 어느 한 외국인을 만났는데, 영어가 조금 되니까 서로 대
교회로 향했다. 낙야교회는 원주민 부족이라고 했다. 대만이 신기했던
화도 하고 하다가 헤어졌다. 박물관 다음으로 간 곳은 포리기독인애양
점은 2가지였는데, 하나는 오토바이가 매우 많다는 점이고, 두번째가
로원이라고, 대만 참예수교회에서 지은 양로원이다. 그곳은 60%가 참
원주민이 있다는 점이었다. 도착했을 때 낙야교회 성도님들께서 저녁
예수교회 성도님들이고, 40%는 그렇지 않은 분이라고 하셨다. 그곳에
을 해주셨는데,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김치가 나와서 정말 우
서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아드리고 하이파이브도 같이 하면서 찬양을
리를 배려해주신 것에 감사했다. 같이 간 친구들 중 몇몇이 ‘대만에서
불렀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인애교회인데, 그곳도 마찬가지로 찬양교
제일 맛있는 것은 볶음밥이고 두 번째가 낙야교회 성도님들이 해주신
류를 하고, 찬양교류가 끝난 뒤, 교류를 했다. 교류는 언제 어디서 하든
식사다!’라고 할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고 나서 찬양교류를 하는데, 낙
지 정말 좋았다.
야교회 성도님이 어떤 찬양을 알려주셨다. 그게 부족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그 찬양이 정말 좋은 것 같다. 또 찬양교류가 끝나고 교류시간
넷째 날 인애교회에서 버스를 타고 지우편 옛거리라는 곳으로 갔는
에 어떤 성도님이 흑돼지를 잡아서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말을 듣고 정
데, 그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3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센과 치히로의
말 감동했다. 같이 고기를 먹으면서 친해졌다.
행방불명’에 나오는 홍등거리가 이 지우편 옛거리라는 것이 매우 기억 에 남았고, 두 번째는 지우편 옛거리로 올라오면서도 보이고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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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아침은 역시 낙야교회 성도님들이 해주신 식사를 맛있게 먹
도 보이는 태평양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점심을 이곳에서 먹기로 했는
고 사진을 찍고 버스에 타서 손을 흔들며 아쉽지만 헤어졌다. 그 다음
데, 우리 조는 태평양이 보이는 볶음밥카페로 가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
에 간 곳은 921지진박물관이었다. 921지진박물관은 1999년 9월 21일에
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지우편에서 다음 목적지인 담수교회로 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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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기다리며 만난 외국인이었다. 길이 약간 올라가는 S자였는데,
데, 그곳은 원래 찬양교류가 잡혀있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정해져서
우리가 위쪽에 있었고, 그 외국인은 아래쪽에 있었다. 그 외국인은 공
찬양교류를 했다. 하지만 매우 좋았다. 이 교회에서 기억에 남는 것
동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가 좀 되었는데, 우리는 그 외국인이랑
은 야경, 숙소인데, 여자숙소는 호텔이고, 남자숙소는 거의 군대여서
영어로 어떻게든 대화를 했다. 그러다 그 외국인이 우리를 사진 찍었는
매우 웃겼다. 아무튼 저녁에 라면파티를 하고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
데, 아마 먼저 말을 건 우리가 신기해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그곳에서
을 보냈다.
담수교회로 가는 길에 엄청난 것을 들었다. 그건 바로 담수교회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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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장인 학
마지막 날 대동교회에서 아침으로 햄버거를 먹고 헤어졌다. 그리고
교가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정말 대만은 엄청나다는 것을
간 곳이 충렬사라고 대만의 영웅들이 있는 곳으로 매일 교대식을 한
느꼈다. 또 이 담수교회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는 것에 신기했고,
다고 한다. 그런데 교대식을 하다가 어떤 한 사람만 계속 틀려서 그
직접 보니 더욱더 신기했다. 듣고 싶었지만 찬양세미나 하는 기간이라
사람이 들어가면서 자기가 엄청 많이 틀렸다고 선생님이 통역해서
듣진 못했지만, 성악세미나 하는 분들의 찬양을 들어서 매우 좋았다.
알려주셨을 때 정말 웃겼다. 그 다음에 과자공장에 갔는데, 아이들이
그래서 우리도 찬양을 불렀다.
쿠키와 케익을 만들고 있었는데, 너무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담수교회는 성처럼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 고층건물들
예약을 해야 된다고 해서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방문지이자 마지막
이 많아져서 교회가 안 보인다고 담수교회 성도님들이 그 주변의 땅
교회인 남감교회로 가서 찬양교류를 하고 폐회식을 하는데, 정말 아
을 다 사신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에 대한 일에는 정말
쉽고 헤어지기 싫고 한 달은 더 있고 싶었다. 폐회식을 마치고 교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을 겸 쇼핑할 겸해서 사림야
를 하는데 성도님들이 기타도 쳐주시고, 장기자랑도 해주셨다. 남감
시장에 갔다. 그곳에서 제일 기억에 남은 3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교회 성도님들과 헤어지고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탔다. 역시 돌아
는 망고 빙수! 정말 맛있었다. 두 번째로는 병아리솜사탕인데, 너무
올 때도 기내식을 먹었다. 그런데 대만으로 오던 태풍 2개가 한국으
달았지만 멀리서 보면 풍선 같을 정도로 대단했다. 마지막으로는 게
로 방향을 틀어서 안 그래도 작은 비행기가 많이 흔들려서 친구들과
임종류가 많았다는 점이다. 정말로 게임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진짜
함께 기도했더니 정말 한국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영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대동교회인
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51호 75
대만방문기
지 많이 들어왔었기에 직접 눈으로 보고 은혜 받는 시간을 누리고 싶
더 큰 원을 향하여 향하
었다. 대전교회에서 강남교회로 일요일 아침 출발하였다. 선우 이모가 비 올 때마다 쓰라고 주신 우의를 받고(하나님 은혜로 방문 일정 내내 날 채 희 욱 형제(대전교회)
씨가 너무 좋았다.) 대전교회에서 같이 대만을 가게 된 예진, 경현, 혜 선 선생님과 함께 고속버스에 올랐다. 강남교회에 도착했더니 삭막함 이 느껴졌다. 얼굴을 처음 보는 북부 친구들과 남부 친구들이 한 방에
먼저 2주 전에 함께 은혜 나누고 돌아온 대만방문 이야기를 꺼내려니
있어서 그런지 어색함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때 내가 느꼈던 은혜와 감동을 이 소감문에 제
또 활동하며 친해져서 첫날 잠 잘 때 이미 모두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
대로 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그 때 느꼈던 은혜의 변화를 2주 동
런데 북부에서 온 남자친구들이 2명밖에 없어서 북부에 같은 또래들이
안 잘 간직하고 지켜왔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있다. 그러나 천천히 그
많이 전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잠을 자고 아침을 먹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정성스런 아침을 준비
우리가 다녀온 대만방문 기간은 강남교회에서 하루, 대만에서는 5
해주시며 강남교회의 한 모매님께서 “너희들 대만 가면 이렇게 매콤하고
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목자님, 조별 선생님들과 친구들
얼큰한 음식 못 먹어.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둬. 그리울 거야”라고 하
끼리 밴드를 만들어 소통한 것은 학기초인 3월이었다. 3월에는 서로
시며 웃으셨는데, 대만 방문 사흘째부터 아마 모두들 그 말을 깊이 되새
낯설어 밴드에 댓글 하나 남기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친구들, 어쩌면
겼을 것 같다. 탑승 수속하고 짐 부칠 때마다 항상 잘 두고 놓고 잃어버
처음으로 전국 TJC 중3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도 대만방문을 가슴
리는 성격이라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별탈없이 잘 챙기고 다녔다.
뛰게 한 큰 이유였다. 또 얼마 전 대만을 여행하고 대만 여러 교회들을
76 빛처럼
방문하신 대전교회 성도님들과 먼저 방문하고 와서 자랑을 늘어놓던
도원공항에 내리자마자 한국보다 더 덥고 습한 대만 날씨가 반갑게
형, 누나들 덕분에 대만 교회들이 얼마나 발달했고 믿음으로 성장했는
맞아주었다. 목자님, 선생님들, 친구들 모두가 땀을 흘렸지만 서로의
51호 77
대만방문기
짐을 버스에 다 함께 싣고 대만 총회(북대중 교회)로 출발했다. 이때부
도님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시간이 시작된 것이기도 했다. 그 다음은
터 황희연 형제님과 그분의 아들, 시연도 일정에 동행했는데, 우리의
대만총회와 북대중교회 임원들 소개 말씀을 들었고, 이어서 우리가
대만방문을 더 알차고 은혜롭게 만들어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며, 특
준비했던 찬양교류를 나눴다. 2조에서는 중국어 찬송으로 ‘당신은 하
히 우리 2조와는 조별미션도 함께 해주셨다.
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율동찬송으로 ‘걸작품’을 했는데, 첫날이라
총회(북대중 교회)로 가는 버스에서 함께 찬송연습을 했다. 난 2조
많이 부끄러웠는지 소리가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의 조장이었는데, 우리조가 많이 조용하고 적극적이지 않아서 걱정
교류가 끝난 뒤에는 정말 모든 교회에서 방문단을 위해 다과를 준비
하며 첫날 강남교회에 모여 함께 선곡한 찬송들을 연습했다. 서로 얼
해주셨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었어야 하는데, 아니 다과를 나눌
굴 붉히며 쑥쓰러워하던 시간들이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얼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항상 저녁식사 뒤에 먹어야 해서
마나 아쉬웠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 연습하자 맛있는 뷔페에 데
많이 남겼다. 다과만 먹은 것은 아니고 대만의 또래들과 함께 사진
려가주셨다. 자신이 먹을 고기를 가져와 먹는 샤브샤브 식당이었는
도 찍었다. 추억을 나누며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일정을 위해
데, 정말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식사를 한 뒤 방문일정 중 처음으
서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로 대만총회를 방문했다. 대만총회(북대중교회)를 보고 먼저 그 크기
78 빛처럼
에 놀랐다. 가깝고 친숙해서 많이 가본 한국총회와 달리 7,8층 건물
다음날은 아리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대표적인 대만의 관광명소로
로 이루어져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3대나 있어서 짐을 나르고 오르내
목자님께서, “아리산을 가지 않으면 대만을 간 것이 아니다”라고 하셔
리기에도 편리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서 짐을 내릴 때부터 도와
서 많은 기대를 품었는데, 산에 오르는 길부터 많이 독특했다. 옛날 광
주고 맞아주신 북대중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함을 많이 느꼈다. 짐
부들이 탔을 것 같은 기차를 타고 올라가서 오래된 고목들과 우거진 숲
을 풀고 숙소를 배정받은 뒤, 긴바지로 갈아입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을 보는데,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아리산에서 즐겁게
서 찬양교류 시간이 시작되었다.
시간을 보낸 뒤 낙야교회로 가서 찬양교류를 나눴다. 대만은 평지교회
처음에 가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대만 찬송가들을 듣는 시간이
와 산지교회로 나뉘는데, 낙야교회는 산지교회로 원주민교회였다. 그
지루하고 긴장되기도 했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전혀 알지 못했던 성
러다보니 첫날 방문했던 북대중교회보다 성도들이 더 활발하셨고, 우
51호 79
대만방문기
리도 더 즐겁고 화목한 분위기에서 교류를 나눴다. 물론 분위기로 성도
할 것 하나는 이 마을에서 하나님의 화가 있음으로써 떠나갔던 우리
님들의 우리를 향한 정성과 우리에게 베풀려는 마음을 판단할 수는 없
교인들 더러가 다시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무서
지만 정말 따뜻한 분위기에 있다보니 받은 감동과 사랑이 더 컸던 것
운 능력을 보고 우리는 포리양로원(참예수교회 부설 양로원)에 갔다.
같다. 은혜로웠던 찬양교류 이후에 낙야교회에서 숯불에 고기를 구워
거기서 여러 어르신들과 인사를 나누고 찬양을 드렸다. 연로하신 분들
서 바비큐를 해주셨다. 정말 감사했고 맛있게 야식까지 먹은 후에 잠
이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찬송을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어른들을 뵈며
자리에 들자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북부, 남부 어울려서 함께 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
고 자는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또 둘째 날 아리산 가는 길에 진행한
다. 다음으로 포리 양조장으로 향했다. 우리가 술에 관심이 있는 것이
미션들도 기억에 남는다. 중국어로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데, 성조를
아니어서 차와 육포, 과자 등을 사고 바로 인애교회로 갔다. 인애교회
모르니 말하고 또 해도 알아듣지 못해서, 그 때는 너무 답답해서 잘 알
로 가던 버스 안이 너무나 기억에 남는다. 피곤한 일정이었음에도 함
지도 못하는 영어를 막 사용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또 하나의 소중
께 모여 찬양을 준비하고 웃고 떠들던 그 시간이 너무나 그립다. 인애
한 추억이 되고 활동이 되었다.
교회에서 보여드릴 그 모습에, 아니 목자님 말씀처럼 하나님께 드릴 찬양에 정말 모두들 밝게 웃으며 찬송연습을 했다. 하지만 발표할 때
정말 대만에서의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셋째 날은 지진 교육관
너무 힘이 빠진 걸까? 연습 시간만큼 인애교회 성도들 앞에서 잘 되진
에 갔다. 1999년 9월 21일 발생한 이 지진은 사망자가 2000명 이상, 부
않았지만 그 웃으며 찬양하던 과정을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겨주실 것
상자가 8000명 이상 되는 끔찍한 자연재해였으며, 100년 동안 대만에
이다.
서 발생한 지진 중 그 위력이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무너지는 학교에
80 빛처럼
학생들이 없었던 것을 정말 주님의 은혜라고 여기며, 아무리 발달한
넷째 날은 지우펀 옛거리를 구경했다. 정말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
우리 인간의 과학기술, 생각, 기계라도 하나님의 노하심 앞에서 조금
이었는데, 다행히 우리 조원들이 너무 착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
이라도 서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이
다. 함께 오카리나도 사고 옛거리에서 파는 땅콩아이스크림, 국수,
NO임을 지진 교육관을 통해 경험했다. 안타까운 지진 발생 중에 감사
팥빙수 등을 맛봤는데,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리고 담수교회로 향했
51호 81
대만방문기
다. 비싼 파이프오르간과 성처럼 멋지게 지어진 교회였는데, 때마침
위에 방해받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얼굴 뻘개지며 서 있는 그런
찬송세미나가 열리고 있어서 멋진 찬송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나
자세를 유지하는지, 아니 조금이라도 가지려 하는지 스스로 되묻게
가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정말 멋지다고 자랑했는데, 아쉽게도 우리
되었다. 충렬사에서 근위병 교대식을 구경하고 과자공장을 들린 뒤
에게는 기회가 허락되지 않았다. 작년 영은회 때 조별선생님이셨던
마지막인 난칸교회를 방문했다. 함께 기타도 치고 준비해주신 맛있는
혜은 선생님을 거기서 뵈었다. 선생님과 1년 전, 대만방문에서 얼굴
점심도 먹으며 하나 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시상식을 진행
보자고 약속했는데, 그 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정말 반가웠
하고 함께 손을 잡고 서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의 손을 잡았
다. 그리고 스린야시장으로 향했다. 맛있는 스테이크로 저녁을 먹고
을 때, 정말 이 손을 잡은 우리들이 끝까지 하나님 앞에서 이 손을 놓
기념품들을 사고 망고 생과일주스를 마셨다. 아쉽게도 기념품 고르
지 않고, 아니 더 큰 원을 그리고 설 수 있도록, 대만교회 성도님들의
는 데 시간이 지체되어서 망고빙수는 먹지 못했다. 그리고 대동교회
믿음과 헌신을 눈으로 본 우리가,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손을 잡을
로 향했다. 모두들 빡빡했던 일정들로 많이 힘들어 보였지만 가서 짐
수 있게 되기를 기도드렸다. 성도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도원공
을 정리하면서 서로 웃고 격려해주어서 피로가 덜했다. 마지막 조별
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버스 시간을 빠르게 잡아놓아서 급
활동 시간은 서로들 편해했지만 웃지만은 않았다. 모두(특히 남부와
하게 나오느라 친구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 정말 북부
북부) 이렇게 함께 자리할 수 있는 교회 행사가 많지 않은 것을 알기
친구들은 반드시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미안하고 많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넷째 날도 가고 정말 아쉽게 마지막 날을
이 아쉽다.
기다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인천공항에서 대전으로 오는 3시간 남짓 동안 정말 많은 생각에 잠겼
82 빛처럼
마지막 날은 충렬사를 가는 것으로 일정이 시작됐다. 대만 국민혁
다. 이번 대만 방문단을 통해 처음 본 우리 방문단을 사랑으로 맞아주
명과 대일 전쟁 중에 전사한 애국지사를 위해 세워진 충렬사의 군인
시고 오래 있지 못하고 뵙지 못하는데도 교회까지 오셔서 환대해주시
들은 정말 곧은 자세로 자신들의 책임을 다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저
는 대만 성도님들을 보고 느낀 것이 많았다. TJC란 이름 앞에서 우리가
런 태도를 가지는 군인들,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는 주
정말 한 가족이 될 수 있고, 우리가 매일 찬송하던 ‘짜이예수리’를 외칠
51호 83
대만방문기
수 있음을 깊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던
럼 안식일을 이유로 친구와 어울리는 것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진리
‘간셰주’의 모습도 큰 인상이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간셰주’는
문제로 분명히 친구들과 말을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 함께 대만을
우리 조원들이 걸작품을 찬송드리며 외치던 구호이기도 했다. 정말 하
가고 찬송 준비를 하며 손을 잡을 친구가 있었고, 또 여전히 있다는 것
나님께서 나의 삶에 큰 도움이 되셔서가 아니라 단지 주님이 나와 함께
이 아마 가장 큰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 안에서
계심을 느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칭찬했을 때, 성도분들은 그 영광을
정말 소중한 친구들이고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할 친구들임을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해 간셰주라고 외치셨고, 정말 일상에 배어있으
알기에 더 이별이 힘들고 혼자 왔었다면 받지 못했을 은혜를 다 함께
셨다. 나의 삶이 감사주를 외치도록 풍족한 삶이 되게 기도하는 것이
함으로 받은 것 같아 고맙다.
아니라 나의 삶에서 감사주를 외치는 나의 모습을 기대하는 내가 되었 으면 좋겠다.
방문단끼리 잡았던 손이 차갑고 따뜻함을 떠나서 대만방문단 친구들
또 아침 기도회 때 해주셨던 목자님 말씀처럼 정말 변화가 필요한 나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으리라 믿는다. 아마 우리 모두
의 모습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변화되는 모습은 은혜라고 부르며, 성도
의 공통된 사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님들의 사랑과 주님 안에서 하나됨을 느꼈던 느낌은 감동이라고 하셨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목자님께서 우리를 참예수교회의 미래의 일꾼
다. 내가 대만에서 받은 것이 감동인지 은혜인지는 앞으로 돌아가서의
들이라고 하셨을 때 많이 속상하고 눈물이 맺혔던 것은 맞잡은 손의 원
생활에서 비춰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너무 작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무슨 일이든지, 특히 주님의 일 이라면 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구
84 빛처럼
끝으로 대만방문단 친구들끼리의 추억은 정말 셀 수 없는 것 같다.
원하시려 하신 것 때문이라면 우리는 더욱 그 공통된 사명을 기억하며
처음으로 얼굴을 본 북부 친구들과 영은회 때 함께 만나지만 서먹서먹
실천해야 한다. 나부터가 친구들에게, 안 믿는 친척들에게 용기를 내는
했던 남부 친구들 모두가 함께 가까워지는 시간이었고 은혜 받는 시간
자세를 가질 것이고, 모두가 그렇게 해서 나중에 고3 수련회 때 다시
이었다. 아직 중3밖에 되지 않았지만 참예수교회를 오해하고 잘못된
본 친구들이 너무나 많아져서 누가 누군지조차 잘 모르는 행복한 고민
생각으로 말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을 안다. 나의 방문지원 계기에서처
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간셰주!”
51호 85
에덴장학회
에덴장학회 활동보고서
께 할 수 없어서 새로운 일꾼들을 섭
칙적으로 자비부담이지만 단기신학을
외하는 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홍영석
2회 이상 수료한 청년들에게는 순례경
목자의 뒤를 이어 이 사업을 이끌어주
비의 약 20%를 장학회가 지원하고 있
실 후임 목자를 찾고 있습니다.
습니다. 금년 바울선교지 순례단에는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제감각을 익히며, 대만 및 국내 또래
2014년도 사업보고를 드립니다. 금년
들과 어울려 유대감을 다지고 리더십
셋째 사업은 청년성지순례단 파견
명이 장학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도에 에덴장학회는 세 가지 사업을 완
을 키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금년에도
입니다. 에덴장학회에서는 차세대 교
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총 일천오백십
료했습니다.
학생 24명과 인솔 목자 및 교사 4명 등
회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대학생
만 원(15,100,000원)입니다. 김세한 목
16개 교회에서 총 28명이 4박5일간 대
성지순례(이스라엘, 이집트, 요르단)
자가 인솔했습니다.
첫째 사업은 장학금 지급입니다. 금
만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선발된 학
와 사회청년부 사도 바울 선교루트순
년에는 신학생들이 모두 졸업한 관계
생들에게는 방문경비의 50%를 지원하
례(터키, 그리스)를 격년으로 번갈아
넷째 사업은 어른 성도들을 위한 성
로 전업성업인 자녀와 교회 청년 일꾼
였습니다. 이 사업에 사용된 총예산은
가며 실시하고 있습니다. 대학생 성지
지순례입니다. 원칙적으로 에덴장학회
들인 봉사장학생 20명에게 장학금을
일천팔백십만 원(18,100,000원)입니다.
순례는 총회에서 실시하는 단기신학
는 인재양성이라는 기타, 일반 성도들
수여하였습니다. 장학생들에게는 150
금년부터는 다음해에 파견할 학생들
을 3번 이상 참여한 대학생들에게 참
을 위한 자비 성지순례를 계획했으나
만원의 장학금이 지급되었습니다. 금
을 미리 선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러
가기회가 주어지며, 여행경비의 50%
참가를 희망하는 성도들이 적어서 무
년에 지급된 장학금 총액은 삼천만 원
한 방침에 따라 2015년에 파견할 학생
를 장학회가 지원합니다. 사회청년부
산되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에 기회
(30,000,000원)입니다.
25명을 선발하였습니다. 실제 대만 방
바울 선교루트순례는 사도 바울의 선
가 되면 다시 한 번 추진하겠습니다.
문은 2015년 여름방학이지만 미리 선
교여행지를 순례하면서 신앙적 결단
2015년도에도 장학사업과, 학생부(
둘째 사업은 학생부(중3학생) 대만
발해서 6개월 동안 사전교육을 철저하
을 유도하는 과정입니다. 터키의 소아
중3) 대만 파견 사업은 계획대로 진행
파견입니다. 에덴장학회에서는 매년
게 시켜서 교육효과를 높이려는 의도
시아 지역과 그리스의 아테네, 고린도
됩니다. 그러나 대학생 성지순례사업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선발해서 대만
입니다. 이번에도 홍영석 목자가 인솔
지역, 그리고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밧
은 2016년으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이
교회를 방문하도록 파견합니다. 어린
할 예정이며, 지금까지 수고해준 지도
모섬 등 사도 바울과 관련된 지중해의
유는 이집트에 이어 이스라엘의 정치
시절부터 신앙심을 돈독하게 하고, 국
교사들이 개인사정으로 이번에는 함
중요한 섬들을 순례하는 것입니다. 원
적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여 테러가 빈
86 빛처럼
총 18명이 참여하였습니다. 그 중 15
51호 87
에덴장학회
㺎㡞㑮ᾦ䣢 ₆⽎㔶㞯
발하는 관계로 안전문제가 심각해
체상태입니다. 현재 약 8천만원이 모
서 일단 연기하고 사태를 지켜보기
였습니다. 신학자양성기금은 개인보
로 하였습니다. 사태가 호전되면 바
다 교회 단위로 교회예산의 약 1%정
로 추진하겠습니다.
도를 기부해주시도록 권장하고 있습
1. 예수 그리스도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죄인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 승천하신 인류의 구주시며 천지의 주재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2014년도 에덴장학회 재정은 약 5백
니다. 현재 꾸준히 신학자양성기금
2. 신 구약 성경을 하나님이 계시하신 유일한 경전으로 믿는다.
만 원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을 보내고 있는 교회는 강남교회뿐
현재 에덴장학회 후원자는 약 170명
입니다. 다들 어려워서 그러시겠지
3. 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늦은 비 성령으로 세우신 사도교회가 부흥한 참 교회임을 믿는다.
수준으로 매우 적은 편입니다. 열심
요. 하지만 미래를 준비해 두지 않으
히 하는 분들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
면 항상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에
다. 후원자가 꿈의 숫자인 천사(1004)
덴장학회를 후원해주실 의향이 있는
명만 된다면 정말 우리 자녀들을 위
분은 지금 바로 거래은행에 가셔서
해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차세
자동이체를 신청해 주십시오. 후원
대를 키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
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
니다.
립니다. 주님께서 몇 배로 갚아주실
세계선교와 앞으로 설립할 신학대 학원 교수 요원이 될 신학자를 양성 하기 위한 신학자양성기금조성도 정
것을 믿고 기도합니다. 이상이 금년 사업성과와 2015년 사업 계획을 보고드렸습니다.
✽܃ୋฎ บծஆ 농협중앙회 020-01-042101, 국민은행 208601-04-036033 신학자 양성기금 신한은행 5620-1572-440019 동명이인이 더러 있으니 후원금을 보내실 때는 성함 뒤에 소속교회를 써주십시오.
88 빛처럼
4. 물세례는 죄를 사하고 중생하는 예전이며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통하여 받아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전신이 잠기는 침례를 행해야 함을 믿는다. 5. 성령 받음을 천국 기업을 얻는 증거로 믿고 영언을 말함으로 성령을 받는 증거로 믿는다. 6. 세족례를 주님과 관계를 맺으며 사랑, 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을 주는 예전으로 믿는다. 세례를 받는 자는 반드시 주의 이름으로 세족례를 일차 행하며 서로 간에 발을 씻는 것은 필요시에 행한다. 7. 성찬례를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주의 살과 피에 동참하여 주와 연합하고 영생을 받으며 말일에 부활하는 예전임을 믿는다. 필요할 때마다 거행하며 반드시 한 개의 누룩 없는 떡과 포도즙으로 거행한다. 8. 안식일(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로 믿는다. 단, 은혜 아래서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념하며 내세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면서 지킨다. 9.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반드시 성령을 의지하여 성결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성경 교훈을 실천해야 한다. 10. 주 예수를 세상 끝 날에 반드시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만민을 심판하시되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벌하시는 심판 주로 믿는다.
빛처럼 51호 / 발행일 : 2015. 1. 1 / 발행・편집인 : 김 흰 돌 / 발행처 : 빛처럼 도서출판 / 대전시 동구 대동 14-6 / Tel : (042)638-6611~3 / Fax : (042)638-6614 / 1999. 4. 7. 등록 / 등록번호 : 서울 바 02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