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wards Mysterious Realities
현실비경 現實秘境 Towards Mysterious Realities
2018. 04. 26 – 06. 24
02
TOTAL MUSEUM
현실비경 Towards Mysterious Realities
기간
2018. 04. 26(목) – 06. 24(일)
토탈미술관
작가와의 대화
2018. 04. 19(목) 15:00
관장
노준의
큐레이터와의 대화
2018. 04. 28(토) 13:00
실장
문형민
기자간담회
2018. 04. 26(목) 11:00, 토탈미술관
책임큐레이터
신보슬
오프닝파티
2018. 04. 26(목) 15:00, 토탈미술관
코디네이터
이태성
네트워크파티
2018. 04. 26(목) 18:00, 스페이스 55
인턴
이하은ㆍ정수언ㆍ홍지수
주최 장소
토탈미술관(한국)
더큐브 프로젝트 스페이스(TheCube Project Space)
TheCube Project Space(대만)
디렉터ㆍ큐레이터
에이미 청 Amy CHENG
토탈미술관, 스페이스 55
매니저
제프 로 Jeph LO
어시트턴트 큐레이터 쑨 이전 SUN Yi-Cheng 큐레이터
에이미 청 Amy CHENGㆍ신보슬
코디네이터
이태성(토탈미술관)ㆍ
전시 어시스턴트
쑨 이전 SUN Yi-Cheng(TheCube)
스페이스 55
인턴
이하은ㆍ정수언ㆍ홍지수
디렉터
공간디자인
제로랩ㆍ한알기획(한국)ㆍ 아트 워 컴퍼니 Art War Company(대만)
❶
데일 동 Dale DONG
안종현
토탈뮤지엄프레스 편집장
고윤정
❷-1
참여작가 어우 슈이 AU Sow-Yee
협력
프란시스코 카마쵸 Francisco CAMACHO
작품설치
박근수(미지아트)
장 쳰치 CHANG Chien-Chi
디자인
샤우바 장 Shauba CHANGㆍ손혜인
친 정더 CHIN Cheng-Te
작품운송
선진아트ㆍ통인아트
훙 쯔 James T. HONG
보험
ACE Insurance Company
허우 쥔밍 HOU Chun-Ming
번역
최수영ㆍ양이녕 Ernie YANGㆍ 성츠 왕 WANG Sheng-Chih
쉬 쟈웨이 HSU Chia-Wei 임흥순 IM Heung-Soon
인쇄
• 스크리닝 프로그램
조동환+조해준 Donghwan JO+Haejun JO 도움주신 분들
옥인 콜렉티브 Okin Collective
국순당ㆍ광명동굴 와인연구소ㆍ오르티가ㆍ
프라작타 포트니스 Prajakta POTNIS
❶
후사르드 왕 Hussard WANGㆍ사티 탕 Satie TANGㆍ
National Culture and Arts Foundation(NCAF)
김도영ㆍ김근원ㆍ임태준ㆍ임대식ㆍ원광식ㆍ원보현ㆍ원천수
,2012 〈후아이 모 마을 Huai Mo Village〉
❷ - 2 쉬 쟈웨이 HSU Chia-Wei ,2015 〈정보국의 흔적 Ruins of the Intelligence Bureau〉
RC Culture and Arts Foundation
❸
서울특별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❹
Please use the QR code for EN/CH booklet
훙 쯔졘 James T. HONG
,2015 〈어느 중국 남자의 기회 A Chinaman’s Chance〉
❷ - 1 쉬 쟈웨이 HSU Chia-Wei
타냐 천 Tanya CHENㆍ청 리천 CHENG Li-Chenㆍ 호 위콴 HO Yu-Kuanㆍ수 팡쩌 HSU Fang-Tzeㆍ
후원
❸
임흥순 IM Heung-Soon /〈위로공단 Factory Complex〉,2015
정원 프로세스
리 랴오 LI Liao
❷-2
04
05
친 정더 CHIN Cheng-Te
,2016 〈아메리칸 파이 American Pie〉 프란시스코 카마쵸 Francisco CAMACHO
,2018 〈평행 이야기 Parallel Narratives〉
❹
TOTAL MUSEUM
SPACE 55
❺ 옥인 콜렉티브 Okin Collective
,2017 〈프랙티스 02-막간극 Practice 02-Interlude〉
❻ 리 랴오 LI Liao /〈봄바람 Spring Breeze〉,2011 ❼ 어우 슈이 AU Sow-Yee
〈크리스 프로젝트 I: 마리아, 주석광산, 향신료,
그리고 호랑이의 끝없는 이야기 The Kris Project I: The Never Ending Tale of Maria, Tin Mine, Spices and the Harimau〉,2016
❿
BASEMENT
❻
❾
⓫
⓫
❼
⓫
❽
❿
❽ ❾
❽
❺
❿-2
허우 쥔밍 HOU Chun-Ming
〈아시아 아버지 인터뷰 프로젝트 : 서울, 방콕 The Asian Father Interview
Project:Seoul(Korea)and Bangkok(Thailand) Series〉,2008-현재
⓫
조동환+조해준 Donghwan JO+Haejun JO
, 2002-2009 〈미군과 아버지 U.S. Army and Father〉
⓫
장 쳰치 CHANG Chien-Chi
,2009 〈탈북 Escape From North Korea〉 프라작타 포트니스 Prajakta POTNIS
,2014 〈키친 디베이트 The Kitchen Debate〉
❿ - 1 장 쳰치 CHANG Chien-Chi /〈결코, 없었던 전쟁 The War that Never Was〉,2017 06
07
space 55. 서울특별시 은평구 증산로 19길 9-3
현실비경 現實秘境
Towards Mysterious Realities
큐레이터. 에이미 청
1 “Shaping a Subtle Historical Point of View: Re-orientating the Disorientated History—An Exclusive Interview with Mo-Lin Wang,” in Art and Society: Introducing Seven Contemporary Artists, ed. Amy Cheng (Taipei: Taipei Museum of Fine Arts, 2009), pp. 40-41. 참조
은 세계와 아시아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고찰해보고자 하는 전시이다. 본 《현실비경》 전시에 초대된 12명/팀의 대다수는 아시아 출신이다. 그들은 역사적 단편과 삶의 경험에 대한 고민을 통해 본 전시를 시공간적으로 다양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적 상황과 현시대의 현실 사이의 관계를 정립하고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2 Asia Art Archive, “Mapping Asia,” Field Note, issue 3, 2014, p. 9.
전시에 소개된 모든 작품들은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하거나 혹은 특정 집단의 관점에 기초해 있으며, 우여곡절이 많은 정치적 사회적 세력에 의해 점철된 다양한 역사적인 궤적들과 관계되어 있다. 그것이 때로는 근대적 민족의식 혹은 생활권 Lebensraum의 재정립만큼이나 거대하게 보일 수도 있고, 개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나 가족사이기에 예민하고 사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비경》전시는 특히 20세기 후반에 걸쳐 있었던 불안정했던 냉전의 경험들을 다루고 있으며, 일상생활에 묻혀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며 망각하고 있었던 이데올로기와 가치의 충돌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덧붙여, 본 전시는 지난세대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현실을 이해하고 재해석하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깊이 심사숙고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을 서술하기 narrating realities’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현실’은 현재 일어나는 사건들을 단편적으로 엮어 어떤 선형적인 인과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여러 사건과 경험들이 다양한 시공간의 축에서 상호작용하며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을 구성하는 것에는 눈에 보이는 지리적 혹은 물리적인 세상 외에도 인간의 의식속에 지각되어 있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까지도 포함되어
3 Ashis Nandy, Shamans, Savages and the Wilderness: On the Audibility of Dissent and the Future of Civilizations in Nationalism, Genuine and Spurious: Ashis Nandy Reader (Chinese-English), eds. Tsong-Zung Chang, Kuan-Hsing Chen, and Shi-Ming Gao (Shanghai: Shanghai People’s Publishing House, 2011), p. 264(영어 원문).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전시에 소개된 각각의 작품을 특정 개인이나 단체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눈에 보이든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든 연결과 단절을 통해서 동시대 아시아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연극 연출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왕 모린 WANG Mo-Lin은 사람들이 “역사적인 자료(예를 들어 고고학적 증거나 문서, 기록)를 접할 때 흔히 인간의 지적 기능 즉, 지식창출의 능력을 활용한 ‘역사’라는 단어보다는 더욱 개념화된 ‘기억’이라고 하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언급했다. 이 경우에, 지식 창출의 능력을 가진 역사란 무엇인가? 왕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역사학자들은 특정한 역사의 단편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진실이 거짓과 뒤섞인 진창 속에 있었던 것이다.” 왕이 우려한 바와 같은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역사 속에 숨어 있는 “미묘한 정신적 활동”에 대해 탐구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1 이 전시는 아시아에 대한 현실을 재해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왜 아시아인가? 여기에서 아시아는 단지 지리적 장소나 문화정치적 공간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역사속에서 나타났던 정신적 경험과도 연관되어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홍콩에 있는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Asia Art Archive는 2013년과 2014년 사이에〈맵핑 아시아 Mapping Asia〉라는 제목의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08
09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들과 아시아 아트 작품에 대한 연구자료 및 아카이브 정리자료 등이 소개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출판물에 실린 편집장의 논평에는 다음과 같이 내용이 있다. 〈 “ 필드 노트 Field Notes〉의 제 3판의 제목인 라는 명칭은 맵핑과정과 같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복잡한 현실의 〈맵핑 아시아〉 상태를 잘 묘사해준다. 2 아시아는 수세기 동안 “타자”에 대한 상상과 끊임 없이 자아를 정립해온 과정이 포함된 복합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시아를 단편적으로 정의할 수 없으며,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도 당연시 여길 수 없다. 그렇다면 앞서 설명한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의 차이 différance를 아우르는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실용적인 방법이 존재하는가? 인도 학자 아시스 낸디Ashis NANDY는 “샤먼, 야만, 그리고 황무지: 이의의 가능성과 문명의 미래 Shamans, Savages and the Wilderness: On the Audibility of Dissent and the Future of Civilizations”라는 글에서, 우리가 근대적 국가의 경계에 속박되어 있고, 주류 소비문화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국가와 지역사회, 그리고 문화조차도 “공유된 자아shared self”를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달리 설명하면, 우리가 현 시대에 막다른 골목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고 다양한 문화와 신앙과 언어와 역사적으로 겪은 트라우마가 아시아에 공존하기는 하지만 마음을 열고 숙고하면 상호간의 유사점과 공통적인 기원과 과정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대 역사에서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준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공통적인 원동력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공유된 자아”를 식별하기 위한 출발점임을 암시해 준다. 최근 들어 아시아는 이러한 역사적인 원동력간의 다툼으로 인하여 지정학적으로 이슈가 되는 곳으로 급부상했을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언뜻 보면 별개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연관되어 발생했으며 새로운 정치적, 경제 및 문화적 경쟁의 기류를 망각한 채 “냉전 경험”이라는 망령을 부활시키게 되었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과거처럼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역사적인 “잔여물들”을 돌이켜 볼 때 “아시아에 대한 이해를 재정립”하고 “자아를 확립”하는 것이 왜 위기를 의식한 조처이며 최근 들어 반드시 필요한 과제가 되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아시아를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일어난 일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 전시는 냉전 시대와 냉전 후 시대에 대한 고찰을 통해 냉전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을 다룬다. 국가의 권력과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 및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형상화된 이미지에 더해 “근대 아시아를 인지하는 지도”로 아시아를 정의한다면 아시아의 생존과 정체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전시가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이 이처럼 미묘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들을 통해 어떻게 미래에 대한 좀 더 수준 높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공유하고자 한다.
훙쯔
James. T. HONG
훙은 20여년 넘게 영화와 비디오를 만들어 온 영화제작자이자 예술가이다. 그는 하이데거, 스피노자, 일본 생체실험, 아편전쟁, 인종차별 주의에 대한 다수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민족주의와 동중국해에서 발생한 영토분쟁 논쟁과 관련된 작품을 완성했고,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2016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상영하였다. 최근에는 동아시아에서의 도덕적 개념에 대하여 탐구하고 있으며,2016년 타이페이 비엔날레에서 니체와 윤회사상을 다룬 새로운 실험적인 멀티미디어 작품을 선보였다. 훙은 가끔 이-플럭스 e-flux나 다른 다양한 지면을 통해 글을 쓰기도 한다.
훙의 영화와 비디오 작품으로는〈아시아를
주목하라: 어떻게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되는가
Behold the Asian: How One Becomes What One Is〉 ,
〈콘도르: 캘리포니아, 절대주의적 자본으로
부터의 영화 Condor: A Film from California, Suprematist Kapital〉 ,그리고
HSU Chia-Wei
, 2채널 비디오, 컬러, 00:12:30, 2015 〈어느 중국남자의 기회〉
쉬 쟈웨이
일본은 독도와 센카쿠 열도에서 양극화 문제를 역으로 겪고있다. 센카쿠 열도에서는 중국과 대만, 독도에서는 한국 행정부와 대립하고 있다. 독도의 주권을 주장하는 한국의 행정부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센카쿠 열도에서는 반대로 일본이 중국과 대만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두 분쟁은 수십년 동안 계속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신흥강호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아시아의 중재 역할을 하고 있는 미국이 개입되면서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에 관한 충돌이 고조되고 있다. 이 작품은 두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첫 번째 장소는 한국정부는 ‘독도’라고 부르고,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곳이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논쟁은 실제로 섬을 둘러싸고 있은 바다에 대한 이름으로 확장되어, 일본정부는 ‘일본해’로, 한국정부는 ‘동해’로 부른다. 두번째 장소는 동중국해 퍼져 있는 열도로 중국은 ‘댜오위다오’, 대만에서는 ‘디아오유타이’ 라고 부르는 반면, 일본에서는 ‘센카쿠 열도’라고 불린다.
분석되기도 했다.
〈731: 지옥에 대한 두 개의 버전 731Two Versions of
교훈
수상의 영예를 이어갔다.
2012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종주의자가 쓴 미국 소설〈터너 다이어리 the Turner Diaries〉를
기반으로 한 단편영화〈터너 영화 다이어리〉를 제작했다.
이외에도 훙 작품은 가장 최근에는 광주아시아
문화 전당 ACT 센터에서 있었던〈중단된 측량:
깨어진 근대의 신화 Interrupted Survey: Fractured Modern Mythologies〉 , 홍콩
역사와 현재를 엮어내는 날카로운 감성을 잘 드러낸다. 쉬는 현대예술과 필름 언어를 혼합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허구와 현실 사이에 있는 신화적 서사를 만들어내는 영상을 통해 현실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는 촬영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영화를 만드는 힘을 통해 예술을 박물관 밖의 장소로 옮기고 정치적 관행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2015년 네덜란드 반 아베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2013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 타이완 파빌리온에 초청되었으며, 같은 그 해 그는 휴고 보스 아시아 아트 어워드 Hugo Boss Asia Award의 최종후보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쥬드 폼므, 2012 리버풀 비엔날레, 2012타이페이 비엔날레, 제8회 대만국제영화제, 퐁피두센터, 베를린
•국공내전Chinese Civil War은 1927년 이후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을 말한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해방전쟁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1927년에서 1936년까지를 제1차 국공내전, 1946년부터 장제스의 중국 국민당이 타이완 섬으로 옮긴 1949년까지를 제2차 국공내전으로 구분한다. 전쟁의 결과로 본토에는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은 난징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페이로 이전하였다. 이후에도 1958년 진먼 포격전까지 하이난 섬 등 중국 대륙 부속 도서에서 양측 간의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었다. 양안兩岸 사이에 정전停戰에 관한 공식 합의는 없었으나, 1979년 1월 1일 미·중 국교 정상화로 중국인민해방군이 진먼 섬에 대한 포격을 멈춘 이후 사실상 정전 중이다. (위키피디아)
훙은 2007년 일본 731부대를 다룬 다큐멘터리
Lessons of the Blood〉 로
밖 장소에서 사건의 순회를 통해 현실과 환상,
많은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전시되었다.
등이 있다.〈MH의 비非나치화〉는〈영화-철학
Hell〉 으로 상을 받았으며,이어 2010년〈피의
그의 작품들은 화면 밖의 사람들과 역사의 화면
세계문화회관,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등
하이데거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非나치화 The Denazification of MH〉 Film-Philosophy〉 저널에서
쉬는 아시아의 잊혀진 냉전역사에 관심이 있다.
파라/사이트 아트
스페이스 Para/Site Art Space에서 소개된
〈수치스러운 100년-저항의 노래와 중국의 나라
들을 위한 시나리오 A Hundred Years of Shame-
Songs of Resistanceand Scenarios for Chinses Na-tions〉 ,
독일 베를린에 있는 세계문화의 집 Haus der Kulturen der Welt 과
슈트트가르트의 뷔어템
비르기셔 쿤스트페어라인Wuerttembergischer Kunstverein에서 Bunker》 에서
개최된 전시《티토의 벙커 Tito’s
소개된〈2 혹은 3의 호랑이
2 or 3 Tigers〉 ,필리핀 마닐라의 현대미술
디자인
미술관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and Design
과 태국 방콕의 JT 아트센터에서 전시된〈흙과
돌, 영혼과 노래 Soils and Stones, Souls and Songs〉 를
비롯하여 다수의 국제전시 및 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A Chinaman’s Chance, synchronized dual-channel video, color, 00:12:30, 2015
Huai Mo Village, single-channel video, color, 00:08:20, 2012
10
11
,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00:08:20, 2012 〈후아이 모 마을〉
은 다양한 문화 정체성들을 마주하면서도 〈후아이 모 마을 Huai Mo Village〉
인식되어지지 않는 정체성으로부터의 당혹감을 경험하는 태국과 미얀마 경계 지역에 있는 잔류 부대 이야기를 다룬다. 역사의 망령으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모호함을 만들어낸다. 1949년에는 국공 내전• 시기 KMT(국민당)의 패배로 운남에서부터 미얀마로 위험한 후퇴를 감행한 결과, 20만명 중 단 2000명만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국제적 압박으로,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부대들을 후퇴하라고 지시한다. 부대는 해체된 듯 보였으나, 사실 그들은 비밀리에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세상에게 “지역 병사”는 더 이상 개입하지 않는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그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와 모든 끈을 끊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떠한 국가 정체성을 가지지 않은 노숙자들과 같이 태국의 마을에 남아있게 되었다. 1970년대, 해외에서 생존하고 거주 권한을 교환하기 위해, 실종된 군인 들은 태국 공산 주의자들에 대한 태국 군대의 지원 요청에 응했고, 그 후 태국 북부에서 용병으로서 장기 체류를 결정했다. 이 동안에, 많은 사람들은 수입을 늘려 더 나은 삶 살기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거나 미얀마로부터 마약밀수 판매 업자를 도왔다. 당시 이 지역은 전세계 마약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면서 세계적인 마약거래소로 유명해졌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전직 정보원이나 그들의 가족이었다. 197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가 후아이 모 마을에 다시 들어가 중국 공산주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을 주 목적 으로 하는 ‘중국국방부광위부1920 공작조 District 1920 Guangwu Troop Department of Defense Chinese AffairsTeam’라는 첩보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비밀리에 지원했다. 이 팀의 주요 임무는 중국 공산주의 활동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이 마을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후 아이모 마을은 태국 치앙라이에 있는 후아이 모의 치앙 하우스 Chiang House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사제로 냉전기간 중 39년 동안 중국 정보국의 요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의 정체성은 이 시대의 역사와 변화 과정의 근원을 보여준다. 앞서 언급했듯이 1980년대부터 이 지역은 세계적인 마약 거래소로 변모해 왔으며 현재, 마약 거래와 밀수로 인해 부모가 살해되거나 투옥된 아이들이 약 70명정도 있다. 이 지역의 마약 문제가 아이들을 고아로 만든 것이다. 작품 제작을 위해 작가는 고아가 된 아이들을 초대하여 함께 촬영을 진행했으며, 카메라나 녹음장비, 조명이나 그 밖을 다른 촬영장비나 시설을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아이들이 직접 사제를 인터뷰했고, 그로부터 정보국의 과거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처럼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의 말을 듣는 사람, 그리고 고아로 구성된 촬영팀은 지역의 복잡한 역사를 한 발 떨어져 관찰하고 탐구하는 쉬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HSU Chia-Wei
쉬 쟈웨이
CHIN Cheng-Te
,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00:13:30, 2015 〈정보국의 흔적〉
친 정더
은 후아이 모 마을의 역사적 〈정보국의 흔적 Ruins of the Intelligence Bureau〉
친구들 사이에서는“아-더A-te”라고 불리는 친은
장소에서 촬영되었다. 원래 정보국의 건물은 기초 슬래브를 제외하고는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 태국 군대가 관리하고 있다. 작가는 아직까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전 정보국 직원들을 촬영에 초대했다. 기초 슬래브는 내국의 전통적인 인형극장 스테이지로 활용하였다. 후아이 모 치앙 하우스의 대표 이자 39년 동안 정보국 직원으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진 사람이 내레이션을 담당했는데, 그가 내레이션을 녹음하는 장면 역시 작품 속에 담고 있다. 작품은 정보국 옛 터에서 벌어지는 인형극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인형극 진행자는 검정색 옷을 입고 검정색 마스크를 쓰고 있고, 내레이터는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잘 알려진 원숭이 장군 하누만 Hanuman이 왕국에서 쫓겨난 왕자를 도와 다시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돕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레이터가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인형극을 보여주던 카메라는 스튜디오 장면으로 전환되어 녹음 중에 있는 퇴역직원인 내레이터를 보여준다. 커다란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는 신화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후아이 모 마을 정보국에서 일했던 옛날 직원들이 겪었던 상황이나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에 등장하는 왕자와는 달리 사실 이들은 그들의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시 말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화면이 다시 옛 정보국이 있던 곳으로 전환되었을 때, 화면에는 인형극을 보고 있는 많은 관객들이 보여진다. 그들 중 몇몇은 현재 태국 군대 소속 이거나 이전 정보원들이었다. 그들 역시 검정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들은 역사의 물결 속에서 잊혀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영상만 돌아가고 있는 텅 빈 녹음 스튜디오를 보여주며 끝이 난다. 이 작품은 민속과 현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엮어서 후아이 모 마을 사람들의 기억, 꿈 그리고 복잡한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994년에 대만중국문화대학 미술학과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서 중추적인 인물 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학급 친구들과 함께 “새싹예술아카데미 the Spring Grass Arts Academy”를
만들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을 평생
“새싹 자원봉사자 No. N Grass Volunteer Worker No. N.”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새싹예술아카데미는 대만의 역사적 유물과 서류에서 발췌한 이미지를 담은 엽서를 계속 제작해왔다. 친만의 역사적 기록을 수집하는 것 외에도, 아주 독특한 sui generis 방식으로 지리적 현장 작업 기법을 자신의 예술적 방법론의 일부로 개발하였다. 이러한 기념비적인 활동으로 인해서 대만 역사에 대한 거대서사 안에서 잊혀지거나 무시된 사건이나 단편들을 다시 탐구하고 재현하였다. •친 정더는 1994년 친 정더가 대만중국문화 대학교 순수예술과 학생시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교수들에게 아이러니한 대응으로 “예술 파시즘 Art Fascism”이라는 예술 그룹을 만들었다. 이 같은 행동으로 친은 강제로 제적을 당하게 되었고, 순수예술과 학생들은 데모를 조직하고 한 달 간 동맹 휴업으로 맞섰다. 이 사건은 결국 친이 학교로 복귀하고, 학과장이 해임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학생들은 동맹휴업기간 동안 “새싹예술 아카데미”를 만들었으며, 아카데미를 통해서 외부 작가들과 강사, 동창들을 초청하여 캐주얼한 공개 강연들을 개최하였다. 이 아카데미는 일시적인 움직임이었으나, 이 사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Ruins of the Intelligence Bureau, single-channel video, color, 00:13:30, 2015
American Pie, Historical objects and documents collected by the artist,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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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파이〉글, 역사적 오브제, 작가가 수집한 다양한 자료들, 2016
1987년 고등학생이었던 친은 대만에서 계엄령이 해제되는 것을 목격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520농민운동 520Peasant Movement 의 현장에 있게 되었던 것처럼, 격동의 시기를 거치면서 대중들의 저항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이외에도 교과서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입는 바지는 밀가루 자루로 만들어졌어요”라는 문장은 블랙 리스트 스튜디오 Blacklist Studio의 앨범〈광기의 노래 Song of Madness〉 에 수록된 곡인〈타이페이 제국 Taipei Empire〉의 가사 중 일부인데, 이 가사를 통해서 악수하는 기호가 붙어있는 다양한 상표의 밀가루 자루가 당시 중국과 미국이 협력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증거들을 따라가면서 친은 미국이 2차대전과 한국 전쟁 이후 공산주의 블록을 전면적으로 마주하는 냉전구조 안에서 대만과 주변 섬들을 지배한 빅 브라더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은 인터넷이나 관련 출판물에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역사의 이런 부분들을 파악했다. 그는 자신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 때문이었는지, 십 대 시절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언제부터인가 중국과 미국이 공조한 역사를 증명해 보이는 모든 오브제들을 직접 모으기 시작했다. 양명산에 살고 있을 무렵에는 마치 시간여행에 관한 TV 드라마를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기분이 되어 미국 군인 숙소를 배회하면서 냉전 시기의 대만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흥분과 긴장을 느끼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솔직히 자료와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축적하고 있는 것에 비해, 대만이라는 아름다운 섬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아직도 무지하거나 무신경하고, 뿐만 아니라 (공책),〈대만의 진실 The True Story of the Small Taiwan〉 , 〈아메리칸 파이〉 그리고〈미제국 American , 장 왕조 The Chiang Dynasty〉 〈차가운 섬 Cold Island〉 〈 Empire〉 과 같은 중심 프로젝트들을 진행해 가기 위한 강한 동기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고백한다.
Francisco CAMACHO 평행 이야기 ,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00:47:11, 2018 〈 〉
프란시스코 카마쵸 카마쵸는 콜롬비아 보고타 출생으로,2008-
2009년 암스테르담에 있는 라익스 아카데미 Rijksakademie의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카마쵸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를 행동주의나 사회적 담론으로 엮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 하며, 2007년 퀘벡 비엔날레,2012년 타이페이 비엔날레 등 다양한 단체전 및 개인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2009년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매니 페스트 스피노자 Manifestatie Spinoza》
행사의 일환으로 개최된 SKOR Stichting Kunst en Openbare Ruimte에서
온고잉 프로젝트인〈그룹
결혼 Group Marriage〉 을 퍼포먼스로 선보였다.
이외에도〈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들 The World Book of Records〉 과
뉴 멕시코의 한 마을 주민
들과 함께 만든〈진실 기념비 Truth Monument〉
비디오 조각 프로젝트가 제로니모 온천 박물관 Geronimo Springs Museum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2010년 당시 레지던시로 있던 카지노 룩셈부르크-현대 미술 포럼 Casino Luxembourg-
Forum d’art contemporain 에서《예술의
전당 Entkustung de l’art》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1년에는 파리의 카디스트 예술 재단
the Kadist Art Foundation와
로스앤젤레스의 공립
학교가 함께 기획한《12개의 제스처 12 Gestures》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같은 해에 아인트호벤에 있는 반 아베 미술관에서도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 진행했다. 현재는 www.fulltopia.com라는 소셜 미디어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두 개의 고고학적 예술 작품들의 실체들을 연결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은 과학과 예술의 문화적 기능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중국과 남아메리카의 “유물 antiquity” 사이에 유사점을 살피기 위해서는 시각적 증거들 사이에서 보이는 명백하게 비합리적인 것과 학문적 연구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합리적인 것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세상에는 많은 역사들이 존재한다. 그 역사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인과관계를 설명해 주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역사는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삶의 철학도 알려준다. 역사는 복잡하고 질서 있는 체계가 아니다. 역사는 유동적이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상기하게 되는 세부적인 것들은 변한다. (지금 혹은 과거에) 중요했던 사실이 앞으로 다가올 복합적인 미래에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 되기도 하고, 과거에 숨겨져 있던 사실들이 갑자기 수면으로 튀어 올라 과거를 다시 쓰기도 한다. 우리의 역사는 살아있다. 그것은 하나의 실체이고,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고정된 사건이 아니라, 현재를 이끌어주는 나침반이자 삶을 합리적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우리는 현재에 영향을 미쳤던 어떤 감정 들을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우리의 관점을 변화시켜 현재를 지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변화시킨다. 우리는 역사를 과학자가 연구하듯이 사실에 대한 선형적인 배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방향에서 뻗어 나온 교차점들로 구성된 여러 갈래의 길로 이해해야 한다. 개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완성하는 서사들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서사 중 많은 것들을 무시되고, 잊혀지며, 나아가 개인의 역사를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같은 알려지지 않은 서사들이 우리의 과거를 구성하며, 현재 우리가 따라가고 있는 길을 만든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경제적 다양성과 기술적 진보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분리되어 있으며 심지어 고립되어 있기까지 하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개념적 장벽이 국가 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분리된 문화들 사이의 심연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미지, 우리의 사회 정체성 그리고 우리의 지식은 대체로 일련의 관념들에 기반하고 있다『 . 반시대적 고찰 Ultimately Meditations』에서 니체는 역사에 대해 과학적으로 추구한 결과물들은 불안한 정신을 압도하고 미래 세대들이 문화혁명이나 개혁과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들뢰즈는 역사의 실재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실재와 다르다며 니체의 이론에 답한다. 이러한 논리를 따르면 중국의 항해사들이 세계 반대편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을 찾아 태평양을 건넜다고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방금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히스패닉 이전의 고고학적 유물을 관찰해 보면, 서로 다른 사회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발견되며, 서로 다른 문화에서도 동일한 기술들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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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llel Narratives, single-channel video, color, 00:47: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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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in
옥인 Collective 콜렉티브 이정민, 김화용, 진시우로 구성된 옥인 콜렉티브는 2009년에 열린 첫 프로젝트의 장소이자 지금은 철거된 종로구 옥인아파트의 지명을 딴 작가 그룹이다. 옥인 콜렉티브의 활동은 특정 지역 에서 출발했지만 더 넓게는 우리 사회의 다각적 문제들과 연결되어 있다. 옥인 콜렉티브는 다양한 방식의 예술 형태를 활용하며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든다. 개발 중인 도시에서 쉽게 직면하게 되는 척박한 환경, 사회정치적 딜레마, 문화적 빈곤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옥인 콜렉티브는 커뮤니티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거나 또는 이원론적 시각으로 찬반을 나누기 보다는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상호 약속과 교환, 개입의 방식으로 접근하며 현실인식과 자기성찰을 도모하는 유희의 장으로 전환시킨다.
단독 전시인《옥인 오픈 사이트》(옥인아파트
LI Liao
,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00:10:40, 2017 〈프랙티스 02-막간극〉
리 랴오
옥인 콜렉티브는 여의도 공원을 시간과 사건의 얇은 결들이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겹쳐진 하나의 무대로 삼고 정체불명의 장치와 행위로 이루어진 막간극을 구상했다〈 의 장소인 여의도 공원은 한때 . 프랙티스02-막간극〉 비행장의 활주로였고, 5.16 광장이었다가 지금은 공원이 되었다. 그리고 공원의 한편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한 좌표에 존재하는 민간 수송기 C-47이 놓여있다. C-47이라는 비행물체가 스스로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사건으로 구축된 좌표를 가지고 이 공간에 개입한 방식은 사회정치적 맥락이 역사를 다루는 방법을 환기시킨다. 보편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이 되고 있는 문자 메시지, 감정의 표현을 대신하는 의성어 표기, 일제강점기 이상(1910-1937)의 시에서도 볼 수 있는 구체시 Concrete Poetry의 형식 등을 참조하며 옥인 콜렉티브의 퍼포먼스는 장소와 몸, 몸과 언어, 행위와 행위가 만들어내는 여러 질문 사이를 횡단한다.
리는 2005년 후베이성 예술학교 Hubei Institute of Fine Arts를 졸업한 중국인 퍼포먼스 아티스트이다.
2013년에는 휴고 보스 아시아 아트 후보에 올랐다. 그는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식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기 보다는 공공장소에 터무니없고 어이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사회 규율과 규범으로 가려진 선입견을 드러낸다. 리는 개인경험을 토대로, 예술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조사하고, 예술 구조와 전시 구조에 의구심을 드러낸다. 그의 퍼포먼스는 자신의 일상적 존재감과 정서적 욕구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는 친밀함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 스타일을 만들 뿐 아니라, 일상적인 감정과 공공 장소 사이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충돌을 야기시키고자 한다.
2010),《안녕 없는 생활들, 모험들》(부산시립
미술관 2011),《오픈 앙가 Open Hangar》 (스페인, 2012),《진실은 견고하다 Truth is Concrete》
(오스트리아, 2012),《액츠 오브 보이싱 Acts of
Vocing》 (토탈미술관,2013),페스티벌 봄(2014),
10회 광주 비엔날레(2014), 《아티팩트 페스티벌
15》(STUK, 벨기에, 2015),《뭔가 잘못
됐나요? 게임을 만들자! Rien ne va plus? Faites
vos jeux!》 (드아펠
아트 센터, 2016) 등 국내외
전시와 프로젝트,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2010년 9월부터 “옥인 콜렉티브 인터넷 Spring Breeze, single-channel video, color, 02:07:00, 2011
라디오 스테이션 STU-DIO+82”(http:// okin.cc)를 운영하고 있다.
Practice 02-Interlude, single-channel video, color, 00:10:4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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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02:07:00, 2011 〈봄바람〉
중국 우한에 있는 사무실 건물 1층 계단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 건물에서 일하는 어떤 사람에게 나를 그 자리에 묶어 두고 갔다가 일이 끝나면 돌아와 나를 다시 풀어 달라고 부탁했다.
AU Sow-Yee
어우 슈이
〈크리스 프로젝트 I: 마리아, 주석 광산, 향신료 그리고 호랑이의 끝나지 않는
어우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는 상상의 장소인 멩케랑 Menkerang에서 출발하여 점차 〈크리스 프로젝트〉
중국 문화 대학에서 연극학을 전공한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술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그녀의 작품은 대체로 스스로 이미지를 제작하거나 프로젝터를 활용하는 라이브 시네마 퍼포먼스와 같은 메커니즘적인 부분과 비디오 설치와 그 밖의 매체를 통해 이미지, 이미지 만들기, 정치와 권력 사이의 관계를 확장시켜 질문하고, 탐구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현재 온라인 잡지『프로메테안 파이어 리뷰』와
객원 기자로 활동 중이며, 『노 맨 랜드』
KLEX Kuala Lumpur Experimental Film and Video Festival의
프로그래머로도 활동했다.
이야기〉, 싱글채널 비디오, 다양한 오브제와 자료들, 00:15:00, 2016
선형적 타임라인을 흐트러트리고 역사를 상상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을 통해 말레이시아와 그 주변 지역의 문화적 주관성의 변화와 “타인”의 고립화 alienation를 찬찬히 뜯어본다. 동남아시아라는 단어는 1950-60년대에 등장했으며, 세계 2차대전 후 냉전 기간 동안 나라들 사이에 국경이 그려졌다. 이렇게 생겨난 국경은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인식에 각인되었다. 허구적 산물들과 국가, 종교 그리고 믿음이라는 유령에게 힘을 부여하는 권력자들의 능력이 이 같은 경계들 아래 혹은 그 배후에 숨어있다〈 . 크리스 프로젝트〉는 “영화”라는 방식을 사용하여 역사 안에서 “타자로서의 존재”의 변화하는 구조는 물론 변형에 대한 한 편의 글쓰기라 할 수 있다. 이 작업은 모션 픽쳐 앤 제너럴 인베스트 Ltd Motion Picture and General Invest Ltd., 캐세이Cathay 그리고 더 쇼 브라더즈 The Shaw Brother와 같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영화산업과 냉전의 어두운 관계를 함축하고 있으며, 또한 냉전 이후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국경이 가지고 있는 제약들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 보고자 한다〈 는 식민시기 이전,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 크리스 프로젝트〉 술탄이 성립되기 전에 문화적 주체성의 이동가능성에 대해서 앞서 언급한 영화산업과 역사 사이의 복합적인 대화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기까지 모션 픽쳐 앤 제너럴 인베스트먼트 Ltd와 더 쇼 브라더즈는 홍콩의 대표적인 두 개의 영화사였다. 사실상 케세이는 모션 픽쳐스 앤 제너럴 인베스트 Ltd 의 모회사였다. 그런데 케세이의 회장 이었던 록 완토 LOKE Wan-Tho가 1064년 개최되었던 아시아 영화제 Asian Film Festival에 참석한 이후 타이중에서 항공사고로 사망한다. 록 완토의 죽음은 케세이 영화사의 침체로 이어지고 마침내 영화사가 사라진다. 케세이와 더 쇼 브라더스 모두 2차 대전 이후 말레이시아에 자체 영화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설립했었다.
•말라야 말라야 연방(말레이어: Persekutuan Tanah Melayu)은 말레이 반도의 아홉 주와 페낭, 믈라카 두 영국 해협 식민지로 구성되어 1948년 1월 31일부터 1963년 9월 16일까지 존속하였던 연방 국가이다. 1963년 국명을 말레이시아로 개명하였으며, 2년 후 싱가포르는 독립하였다. (위키피디아)
The Kris Project I: The Never Ending Tale of Maria, Tin Mine, Spices and the Harimau, single-channel video, objects and documents, 00:15:00, 2016
전시에 출품된〈크리스 프로젝트 I: 마리아, 주석 광산, 향신료 그리고 호랑이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멩케랑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상상의 영화 스튜디오에서 시작된다. 라비 Ravi는 영화감독이자〈태양이 없는 멩케랑 에서의 어느 날 A Day Without Sun in Menkerang〉(제1장)에 상상의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실상 말레이시아의 초등학교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인디안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발리우드 영화와 모션 픽쳐 앤 제너럴 인베스트먼트 Ltd, 그리고 뮤지컬 영화제작 스타일을 모방하고, 인도 신화인 라마야나와 모든 종류의 전통문화를 해체하여 대중들의 버전 혹은 ‘이민자 pendatang’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전위적인 “가짜 영화 pseudo film”를 만든다. 자신의 “영화”의 사전제작을 위해 라비가 “모은” 사진, 자료, 스케치, 오브제, 문화적 주체성이 변화되는 시기의 “타자”에 대한 별도의 글과 더불어 의식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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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구축적 이미지를 관람객의 마음에 만들어낸다. 라비가 “수집”한 목록에는 1921년에 말레시아 정글에서 잡은 호랑이와 함께 찍은 마르케스 요시히타 토쿠가와 Marquis Yoshichita Tokugawa의 사진 한 장이 있다. 호랑이 harimau와 아기사슴 Sang Kancil은 말레이시아 전통문화에 자주 등장한다. 특히 호랑이는 말레이시아를 국가의 엠블럼이자, 국민의 용기와 힘을 상징할 뿐 아니라 식민정부에 의해 이식된 말라야•의 서사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도 있다.
HOU Chun-Ming
허우 쥔밍
허우는 국립 미술 아카데미(현 대만중국문화 대학교)를 졸업했다. 허우는 자신의 작품을 ‘류쟈오 마을의 허우’ 스타일이라고 불렀다. 1990년대 초반 금기를 파괴하는 설치와 판화 작업을 선보였는데, 그의 섬뜩하면서도 제의적인 ritual 작품들은 당시 대만의 정치적 사회적인 상황을 진정성 있게 반영해 내었으며,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타이완 파빌리온 등 많은 국제미술전시에 초대되었다. 지난 몇 년 간 허우는 자동기술법 écriture automatique을 이용 하여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프리핸드 드로잉 형상과 발음, 대만의 민속적인
믿음들을 미적으로 즐겁게 뒤섞어 만든 한자를 활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08년부터는 요코하마, 타이페이, 타이중, 방콕, 치아이와 홍콩 등 아시아의 도시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바탕으로〈아시아
아버지 인터뷰 프로젝트 Asian Father Interview
Project〉 를
시작했다. 최근 작품인〈몸 이미지
Body Image〉 에서는
다시 한번 인터뷰를 기반
으로 삼는 방식 뿐 아니라, 육체적 욕망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고유의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 허우는『정령과 불멸자에 관한
일화 Anecdotes about Sprits and Immortals』 (1994),
『36살 사랑에 빠진 이가 남긴 자살 메시지
A suicide Message of Dying on Love at Age 36』 ,
(2002), 『곡우, 애정행각 Grain Rain. Amorous Affair』 (2007), 『거울 속 경고 The Caution in Mirror』 『레전드 허우의 죄와 벌 Legend Hou’s Sin & Punishment』 (2008),『열망에서
오는 고통:
허우 쥔밍 프리 드로잉 Suffer from Desires:
Hou Chun-Ming’s Free Drawing』 (2013)등의
출간했다.
좀 더 강력한 연대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하며, 우리가 이웃나라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버지”란 모두에게 공통된 주제이다. 아버지는 개인사에 관한 것이지만, 거시적인 맥락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의 보편적인 상징성은 다양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다층적으로 드러난다. 인터뷰를 통해서 어떤 보편적인 것을 찾아내고자 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들 사이에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주제로 다루게 됨으로써 거시적인 맥락안에 자리잡은 인터뷰 참가자들의 개인적 삶의 여정을 한번 살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터뷰 글, 드로잉, 페인팅, 2008-현재
1963년 대만 쟈이현 류쟈오 마을에서 태어난
freehand drawing과
, 〈아시아 아버지 인터뷰 프로젝트〉
책을
나는 2008년부터〈아시아 아버지 인터뷰 프로젝트 The Asian Father Interview
Project〉 를 진행해왔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86세였다.
아버지를 볼 때 마다 그가 조금씩 더 늙어가고, 약해지고, 죽음에 다가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내가 걱정했던 것은 내가 시간과 다투어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거의 집에 없었다. 집에 있다 해도 아버지와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아버지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지 어떻게 친밀한 유대감을 만들어가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급속히 늙어갔고, 내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나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친밀한 연대감 같은 걸을 원했던 것 같았고, 그것이 나의 존재의 이유인 듯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일대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 몇가지 질문들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그들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인터뷰 참가자들은 대부분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그들의 아버지 역시 거리감이 있고 친숙하지 않은 존재였다. 인터뷰 참가자들은 사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물론 자신들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의 역할을 동물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은 좀 효과적이라 생각되었다. 결과적으로 인터뷰 참가자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코끼리, 사자, 독수리 등의 동물에 비교했다. 이런 상징적인 묘사와 그림은 참가자들의 생생한 기억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 인해 아버지의 인내심 그리고 자식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경우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아버지로서의 역할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깊은 골이 있음을 알 게 되었다. 태국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비교적 관대한 반면, 대만 아버지는 아들과 딸에게 권위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결론은 흥미롭지만 여전히 편향되어 있다. 신뢰 가능한 데이터와 지표를 제시하기에는 인터뷰 사례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의 범위는 대만에 인접한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으며, 프로젝트 자체가 도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동북/동남 아시아의 인접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확장으로 인해 고통받았으며, 그에 저항했고, 유교와 불교, 도교 및 이슬람교를 해석하고 전파하는데 있어 역사적으로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으로 대만과 불가분으로 연결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대한민국, 싱가폴, 대만, 홍콩)간의 경쟁과 이주 노동자, 다문화 및 중국의 부상과 같은 이슈들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주제들이 아시아 지역의 구성원들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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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sian Father Interview Project: Seoul, artist HOU Chun-Ming with YIM family (YIM Tai-Joon and YIM Gustav Dai-Shik), paintin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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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hwan JO
조동환 Haejun JO 조해준
조동환父과 조해준子은 2002년부터 공동 작업을 시작하여 조동환의 개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드로잉 시리즈,〈1937년부터
,〈1974년부터 2008년까지〉를 1974년까지〉
진행하고 있다. 작가와 관련된 이야기와 작업을 다룬〈박이소〉, 80년대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벌어진 사건과 당시 활동가들의 체험을 다룬 구술 드로잉 시리즈〈놀라운 아버지〉,
한 소시민의 생애를 다룬 연대기 드로잉 시리즈
을 발표하였다. 최근에는 〈뜻밖의 개인사-당숙〉 조해준 개인사를 다룬 코멘터리 드로잉 시리즈
를 〈어깃장 난 아들-1979년부터 1990년까지〉 작업 중이다.
주요 전시로는 2008년 광주 비엔날레,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의《젊은 모색展》, 2005년
다름슈타트 쿤스트할레의《시선의 전쟁 The
Battle of Visions》 , 2003년
광주 신세계 갤러리의
, 2002년 마로니에 《생각하며 일합시다》
미술관의《신세대흐름전》이 있다. 저서로는
『놀라운 아버지-1937년부터 1974년까지』
(조동환&조해준, 저, 새만화책, 2008)과
공저『뜻밖의 개인사-당숙』(조동환&조해준& 조희연 저, 새만화책, 2008)이 있다.
CHANG Chien-Chi
, 드로잉, 텍스트, 2002~2009 〈미군과 아버지〉
장 쳰치
이 작품은 아버지(조동환-父)의 기억과 경험을 통해 한국 근, 현대사 속에서 미군과 관련된 구술을 토대로 구성된 드로잉 기록이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총 89장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아버지가 경험한 식민, 전쟁, 교육, 카투사KATUSA로 이어지는 전쟁 이전과 이후의 풍경들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가 근무했던 카투사는 미군이 만든 일종의 정보탐색과 한반도 지리 안내를 맡았던 미군에도 한국군에도 속하지 않는 병력으로 미군복을 입고 미군들과 군생활을 하며 미군의 지휘를 받았다. 아버지의 카투사 복무를 다룬 내용에서도 언급되지만 미군과의 갈등이나 문화적 차이, 인종문제 등은 미군이 주둔한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는 문제이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되어 남아있는 미군과 관련된 것들은 아직 개별적으로 우리들에게 남아 있다면 사회적인 차원의 기록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거나 남아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아버지의 유년 시절 미군과 관련된 이야기는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일본 홋카이도에서 처음 본 미군 지프 차와 “씨가렛 원 텐엔” 하며 담배를 팔던 미군에 관한 것이다. 이외에도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0년 9. 28 서울 수복 당시 고향마을을 지나가던 미군의 환영 행렬에 참여했다가 마을 공산당 위원장에게 찍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사건이나 전쟁 후 부산에서 고학하면서 알게 된 북한 출신 청년이 미군 창고 주변을 얼씬거리다가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사살된 북한 출신 청년의 이야기들이 있다. 드로잉 안에서 글과 그림은 해방 후 이데올로기의 상흔, 한국전쟁 후 주한미군의 주둔이 가져온 상처와 혼란의 체계를 보여주지만, 다큐멘터리 드로잉의 기술적인 방식 그 이면에는 일제 식민과 미군정 시대를 살아왔던 아버지의 일상과 그 속에서 순응하며 일궈낸 꿈과 희망, 좌절을 떠올리게 한다.
1961년 대만 타이중에서 태어났다. 장은 1984년 수초우 대학 Soochow University 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90년 인디아나 대학 Indiana University에서
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시애틀 타임즈 Seattle Times』의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이후 1991년에서 1994년 사이에는
에서 일했다. 『볼티모어 선 Boltimore Sun』
1995년에는 매그넘 포토스에 선출되었다.
그의 작품은『뉴요커 Newyorker』『 , 내셔널 지오 그래픽 National Geographic』『 , 타임 Time』『 , 뉴스
위크 News Week』『 , 뉴욕 타임즈 매거진New York
Times Magazine』 , GEO』(프랑스 『
및 독일) 및
기타 주요 국제 간행물을 통해 발행되었다. 그는 작품에서 소외감과의 연대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유대관계에 대한 탐구는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의 이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장은 24살에 푸젠성에 있는 가족과 헤어져 중국차이나 타운에 왔고, 그 곳에서의 삶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 작품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2008년 싱가폴국립박물관,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2012년 뉴욕 국제 사진 축제에서 소개되었다. 이외에도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 2014년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하였고, 아트 바젤, 호주 국립예술학교 등에서 개인전 및 그룹전을 진행했다. NPPA 올해의 사진 상, WPP, 비자 뿌르 리마쥬 Visa Pour L’image의 비자도르 Visa d'Or 상을
수상하였다.
작가의 작품은 국립미디어박물관 National Media Museum (브래드포드), 치메이박물관 Chimei Museum(타이난),뉴욕국제사진센터 international Center of Photography(뉴욕), 가오슝시립
미술관 Kaohsiung Museum of Fine Arts(타이중), 퀸즈 뮤지엄 Queens Museum(뉴욕), 동남아시아 사진미술관(데이토나 비치), 타이페이시립 미술관 Taipei Fine Arts Museum(타이페이) 등에 소장되어 있다.
The War That Never Was, single-channel video, color, 00:15:40, 2017
U.S. Army and Father, 89 drawings with texts, 2002-2009
Courtesy of the artist, Magnum Photos and Chi-Wen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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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00:15:40, 2017 〈결코, 없었던 전쟁〉
장은 대만과 냉전에 대한 영상 작업으로 전시에 초대되었다. 어느 날 그는 호기심에서 어머니께 냉전에 대해 아는지 여쭸는데 그녀는 “그게 누구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장의 어머니는 1928년, 타이완 중부지역의 가난한 산동네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교육을 잘 받지 못했고 그의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하고 나서도 한 평생 일을 했다. 대만 역사상 가장 긴 계엄령 1949-1987도 그녀에게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저 가난함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는 것이 어머니의 삶의 전부였다. 마을에 전기가 설치되지 않았을 때에는 낮에 쌀 농사 일이 끝나면 자전거를 타고 가장 가까운 도시에 나가 밤에도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배터리를 충전해야 했다. 뒷자리에 장을 태우고 충전된 배터리를 가지고 돌아오는 길은 으스스하게 무섭고 어두웠고, 도망치듯 어둠속을 달려오면서 몇 번이나 길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이 작품은 장의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장이 인터뷰를 하고, 장의 어머니가 인터뷰에 답한다. 장은 어머니의 인생 전반을 건드리며 질문을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농촌 출신의 가난하고 교육 받지 못한 소녀로 시작해 농부로 일하다가 2000년대 중반까지 세탁부와 가사 도우미로 살아갔던 아내이자 다섯 아이의 어머니에 관한 것이다. 또한 장의 질문은 어머니의 인생과 냉전 시대 동안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과 병치시킨다. 냉전 이후에 벌어졌던 역사적인 사건들에 관한 이미지들은 헝가리의 철의 장막 박물관 Iron Curtain Museum과 매그넘 포토 아카이브에서 가져왔으며 이는 냉전에 대해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장의 어머니에 대한 인터뷰와 섞여 보여진다.
CHANG Chien-Chi
장 쳰치
, 싱글채널 비디오, 컬러, 00:05:40, 2009 〈탈북〉
Prajakta POTNIS
프라작타 포트니스
2300만명의 북한 주민 중 100만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간 심각한 기근이 닥쳤던 1990년대 말, 북한 탈북자들의 중국으로의 탈북이 시작되었다. 일단 국경을 넘으면, 그들은 숨어서 조심스럽게 중국 북쪽지역에서 위험한 탈북 경로로 알려진 지하철도를 통해 라오스까지 이동하고, 메콩 강을 건너 태국으로 이동해서 마침내 한국에 도착한다. 여정이 몇 주가 될지 몇 달 혹은 수 년이 걸릴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중국 경찰은 탈북을 시도하는 북한 주민들을 추적한다. 경찰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도 수백이 넘는다. 그들이 중국이나 라오스에서 잡히게 되면 북한으로 송환된다. 그렇게 송환된 사람들은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히거나 사형에 처해진다. 장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탈북자들과 동행하며 사진으로 남겼으며, 지금도 탈북자들의 시련을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포트니스의 작품은 개인의 친밀한 세계와 때때로 벽에 의해서만 분리되는 외부 세계 사이에 있다. 그녀는 벽을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담겨 있는 역사의 증거라고 부른다. 중산층 가정집의 벽에서부터 수 많은 요소들이 통과하는 막으로 이루어진 기관의 벽에 이르기까지를 맥락화 하여 어떻게 탑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책결정이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고자 벽은 그녀가 사회적 개인적인 열망이나 문제들을 이끌어내는 시작점이다. 포트니스는 작품 활동을 통해 개인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오늘날의 사회의 진실성을 엮어 낸다. 작가는 공공예술 속에 개인 고유의 조각 설치하는 작품을 통해 본인의 생각을 표현한다. 포트니스는 2001년을 기점으로 국내외적으로 본인의 작품을 알려갔다. 2017년 초 더큐브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에이미 청이 기획한
전시에 참여했다. 그녀의 작업은 《현실비경》
또한 줄리아 사리세티아티Julia SARISETIATI와
레난 라루 Renan LARU가 기획한《O.K 비디오-
인도네시아 미디어 페스티벌 O.K Video-Indonesia
Media Art Festival》 에도
참여했다. 아르시야
록핸드왈라 Arshiya Lokhandwala가 독립7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상징적 전시인《인도 재-세계화:
70년 역사에 대한 탐구 India Re-Worlded: Seventy Years of Investigating a Nation》 에도
참여했으며,
마리아 린드 Maria LIND가 큐레이팅한 제11회 광주비엔날레(2016), 뉴욕의 퀸즈 미술관에서
개최된《자정 이후 After Midnight》에도 참여했다.
* 키친 디베이트: 닉슨은 모스크바의 박람회장에서 흐루쇼프 서기장과 마주쳤는데, 그곳에는 가전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때 공산주의자인 흐루쇼프는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닉슨에게 “미국 노동자들이 모두 이런 사치품을 살 수는 없겠죠?”라고 공격하였다. 그러자 반공주의자인 닉슨은 이에 맞서 “우리 철강 노동자들이 현재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파업 중인 걸 아시겠지요? 그런 노동자들도 누구나 이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이에 흐루쇼프가 곧 완공될 소련의 주택에는 이런 것들이 완비될 것이며 앞으로 어느 누구든지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그런 집에서 살 수 있다고 되받았으며, 이 논쟁 이후 미국에서 닉슨의 인기는 높아졌다. (위키피디아)
Escape from North Korea, single-channel video, color, 00:05:40, 2009
The Kitchen Debate, multimedia installatio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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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티미디어 설치, 2014 〈키친 디베이트〉
작품 제목은 1959년 7월 24일 무역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소련의 모스크바를 방문 중 리처드 닉슨 Richard NIXON 미국 부통령이 박람회장에서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 Nikita KHRUSHCHYOV와 벌인 설전에서 이름을 따왔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식날 닉슨 부통령과 흐루쇼프 서기장은 가전제품 전시장에서 만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열띤 논쟁을 벌였다. 소위 “키친 디베이트 Kitchen Debate•”라 불리는 이 사건은 냉전 시대의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가 되었다. 2014년 베를린 퀸스틀러하우스 베타니엔 Künstlerhaus Bethanien에 레지던스 작가로 있으면서 설전에 대해서 다시 세심히 조사하고, 이 사건이 현재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내부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하부기관의 역할이 작가에게 “키친 디베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주방을 연구장소로 제안함으로써, 오늘날의 현대적 삶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가정용품의 틈을 들여다보았다. 씻고, 섞고, 냉장고에 물건을 넣는 일상적인 활동을 재연함으로써 일상적인 활동을 일상적이지 않게 만들고, 이를 통해 부엌 한가운데에서 핵폭탄 제조라는 주제를 이끌어내었다. 유전자가 조작된 꽃 양배추와 같은 야채를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유독성 생명체를 은연중에 암시한다. 포트니스는 작품활동을 통해서 과거에서부터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까지 꿰어가고 있다.
IM Heung-Soon
임흥순
〈위로공단〉다큐멘터리 영화, 컬러, 01:35:00, 2015
임흥순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미술작가이자
은 66여명의 실존인물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와 〈위로공단〉
영화감독이다. 노동자로 살아 온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정치•사회•국가•자본으로 부터 주어진 삶을 영위하는 이들의 여러 문제들에 관심을 가져왔다. 작가는 사회•정치적으로, 때론 감성적으로 사진, 영상, 설치미술, 공공미술, 커뮤니티아트, 영화 등 다양한 시각매체를 통해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최근 HKW(2017), 타이페이비엔날레(2016), 테이트모던(2015), 링컨센터(2015), MoMA PS1(2015),퐁피두센터(2016),
• 스크리닝 프로그램
픽션, 과거와 현재, 한국과 캄보디아,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드는 표현형식을 실험한다. 감각적이며 혁신을 지향하는 영상은 각각의 독립적인 미디어아트 작품이 되고, 이 작품들이 모였을 때에는 하나의 서사구조를 갖춘 영화가 된다. 노동과 여성을 바라보는 이념적 굴레에서 벗어나 여성 노동계의 현실을 구체적, 실험적으로 심도 깊게 묘사하면서 현대적, 보편적인 시각에서의 일의 의미와 가치를 포착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이다. 56회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품이다.
샤르자비엔날레(2015), 광주비엔날레(2010)와 부천판타스틱영화제(2017), 부산국제영화제 (2016), 몬트리올국제영화제(2015), 상하이국제영화제(2015), 라이프치히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2015) 등 국내외 전시와 영화제에 작품이 소개되었고,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2015)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17’ 작가로 선정되어《우리를
갈라놓는 것들-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임흥순 개인전을 개최했다.
Factory Complex, documentary, color, 01:35:0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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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ards Mysterious Rea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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