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ROADSHOW: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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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 대한민국


로드쇼: 대한민국 기획 기획지원 진행 홈페이지 출판기획 편집 디자인 교열 ISBN 펴낸곳 주소 전화 홈페이지

최태윤, 신보슬 토탈 미술관 아이빔 아트 앤 테크놀러지 센터 신윤선, 유경아, 이여운, 홍승호

http://roadshowkorea.net/

이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1 국제문화예술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이용해서 도움주신 곽수정, 이충선, 장지아, 전병국 님께 감사 드립니다.

Math Practice & New Normal Business

최태윤 강이룬 우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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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 미술관

121-111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465-16 02 379 3994

http://totalmuseum.org/

Roadshow: South Korea Organized by Taeyoon Choi and Nathalie Boseul Shin

Publication managed by Math Practice & New Normal Business

Organization team Yoonsun Shin, Kyung Ah Yoo Yeowoon Lee, Seungho Hong

Edited by Taeyoon Choi Copyedit by Areum Woo Design by E Roon Kang / Math Practice

Support from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Eyebeam Art and Technology Center

Published by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465-16 Pyeongchang-dong, Jongno-gu, Seoul, Korea +82 2 379 3994

http://roadshowkorea.net/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 경금지 3.0 Unported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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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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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 일정

19

로드쇼 다이어리

57

참여작가

99

옥인 콜렉티브

100

박은선

112

이여운

120

연미

122

김선형

126

노바 쟝

130

김승범

136

구지윤

138

소원영

144

매리 매팅리

148

존 코어스

154

프란 일리히

158

이솔

162

신윤선

170

최태윤

176

신보슬

180



로드쇼를 시작하며



1. 로드쇼를 시작하며

로드쇼:대한민국 참여 작가님들께.

Dear artists.

안녕하세요? 이미 연락을 드린 대로 로드쇼:대한민국에 정식으로 초대하는 이메 일을 보냅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이빔 아트앤테크놀러지 센터Eyebeam Art and Technology Center에서 저와 함께 지원 작가Fellow로 활동하는 외국 작가

4명과 한국 작가 10

명 그리고 토탈미술관 기획자 5명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함께 이동하면서 강과 도

시, 늪과 저수지, 육지와 바다 등의 다양한 지역에서 도시화와 공동체에 대한 리서 치, 퍼포먼스 그리고 워크숍을 할 기회를 만들고자 마련한 행사입니다.

Hello? This is Taeyoon Choi. As I told most of you already, I would like to invite you to <Roadshow:South Korea>. We will be touring from Seoul to Busan, visiting rivers and cities, swamps and reservoirs, land and the ocean, meeting different communities at varying stage of urbanization. We are travelling along with five fellows from Eyebeam Art and Technology Center, 10 Korean artists and five curators from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in Seoul.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목적은 도시화라는 주제 안에서 문제 의식을 느끼고 그것을 의미 있는 활동으로 흥미롭게 표현하는 작가들 간의 교류입니다.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외국인 작가들과 함께 도시와 자연의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면 시선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시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도시화와 함께 다가오는 문제들에 대해 조금 더 새로운 방법의 개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초대한 외국 작가들은 뉴 미디어,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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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적 공공미술, 넷아트 등 각자의 분야에서 많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 지만 그들에게서 기술이나 새로운 지식을 얻기보다는 서로의 다른 시선에 대해서 알아가는 자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The first objective of the project is a cultural exchange between artists who are concerned about urbanism at large and create interesting projects related to the issues. When we are travelling with international artists, we might rediscover something from familiar things. Then we can intervene in the issues of urbanism in a new way. The artists we’ve invited have been producing interesting works in new media, environment, participatory public art, net art and etc. It is not our intention to learn new technique or information, but to understand different perspectives.

두 번째, 도시가 아닌 곳에서 도시화에 대해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지난 몇 년 동 안 많은 기획 전시와 도시 리서치 프로젝트들은 주로 대도시와 신도시 그리고 사회 적인 쟁점이 되는 곳에 집중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초대하는 한국 작가 분들 대부분은 그런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경험이 많이 있는 분들이기에 이번 로드쇼: 대한민국에서는 도시와 도시 사이의 시골, 관광지로 개발될 지역 그리고 댐 건설 로 곧 수몰될 지역 등, 도시 개발로 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지역을 가고자 합니다. The second reason is to research about urbanism outside of urban space. In past few years, many exhibitions and urban research projects in Korea have focused on large cities and newly constructed cities and places of social contradictions. Many of the South Korean artists who we’ve invited have done works in such area. Therefore, Roadshow:South Korea will travel to country between cities, tourism development, towns that will soon submerge due to dam constructions, and areas that are marginally affected by urban developments.

세 번째, 도시 디자인과 자원 개발의 명목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공사들의 사회적 그리고 환경적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의문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다른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청계천과 한강의 도시 브랜딩, 동대문과 용산의 재개발 그리고 4대강 사업 같은 거대한 개발사업 등 그 모든 사

건과 사고에는 일관된 흐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 흐름에 대 해서 함께 고민하고 대화한 것들이 각자의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경험으로 축적되어 그 모든 것이 공동 작업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Thirdly, we would like to share specific thoughts and questions regarding large scale


1. 로드쇼를 시작하며

urban design and development of natural resources and its impact on social space and environmental consequences. Upon preparing for this trip, we had a chance to talk with many artists and realized there is a consistent flow in only in urban branding of Chunggyechun and Han river, Dongdaemun and Yongsan redevelopment, and Four Major Rivers project. It is our hope that we problematize and agitate, hopefully it will lead to advancement in individual projects and the experience will be accumulated for beginning of a collaboration.

한국 고유의 시대적 상황을 외국 작가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의 도시 경제학이나 마이크 데이비 스Mike Davis의 도시 공간의 생산 이론을 한국에 바로 적용 시켰을 때 유용한 연구를 할 수 없듯이, 외국 작가들이 그동안 해온 작업과 리서치 방법론을 한국에 적용 시 키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 한계의 지점에서 생기는 이질감이 무관심으 로 변하지 않고 호기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 는 과정에서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지대인 티후아나Tijuana 출신인 프란 일리히Fran Ilich 는

두 나라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콜로라도 강Colorado river 을 통해서 미국의 쓰레

기가 멕시코에 흘러 오는 상황과 원주민들이 자유롭게 생활하던 지역이 사유화 되 는 과정 등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어쩌면 이해가 아닌 공감은 생각보다 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 희망합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함께 여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도 시 개발의 영향을 받는 공동체와 자연환경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런 상황에서 더 욱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엑티비즘Activism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 보는 것 입니다. To explain every detail about South Korean politics and social situations. Similar to how foreign studies on urbanism, such as Jane Jacob’s urban economic or Mike Davis’ theory of spatial production can not be applied to South Korea, the strategy and tactics that were successful in other situations can not be applied to South Korean situations. On that point, I think the difference from limitation may lead to curiosity, not an utter disinterest. Fran Illich is from Tijuana, a city on the border between Mexico and the United States. Colorado river, which runs through two countries, has been delivering toxic waste down the stream and many indigenous populations have been taken advantage of due to privatization of the rivers. Somehow, maybe sympathizing will be easier than understanding.

궁극적인 목적은 함께 여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도시 개발의 영향을 받는 공동체와 자연환경의 영향을 이해하고, 그런 상황에서 더욱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엑티비즘 Activism

의 가능성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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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tually, I want to understand affects of urbanism on communities and natural environment, and the think of ways to engage in more effective and creative activism.

로드쇼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간단한 식사를 하고 낮에는 여러 현장을 방문하고 지역 주민과 교류하며 우리 주제에 대해서 함께 리서치하는 것입니다. 각자가 편 한 방식으로 그 과정을 기록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매일 저녁 시간 에는 작가들간의 아티스트 토크와 작은 워크숍을 하려고 합니다. 워크숍의 대상 은 같이 여행하는 작가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지역 작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어도 됩니다. On a typical day in the Roadshow, we will have a quick breakfast, visit sites in the afternoon, interact with local residents and collaboratively research on our shared topic. You will be free to documet the process in any way. Every night there will be time for presentation, artist talks and workshops. The workshop can be designed for local communities as well as other artists.

최태윤 드림. From Taeyoon Choi.


1. 로드쇼를 시작하며



로드쇼:대한민국 작가님들께,

Dear everyone,

안녕하세요. 토탈미술관 큐레이터 신보슬입니다. 진작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좀 늦었네요. Hello. This is Nathalie Shin from Total Museum. Sorry for the belated email.

8월15일 2,000 광복절 맞이(?) 답사를 떠났다 조금 전에 돌아왔답니다.

비도 많고 후덥지근한 이상한 여름날씨 탓에 많이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저희의 답사를 하늘도 막지는 못했나봐요.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마자 엄청나게 비가 왔답니다. 정말.. 다행이었지요. 물론, 운전하셨던 노순택 작가님과 여운씨가 많이 힘들었지만... I’ve just returned from the preparation trip to Yeongju. As the Korean summer is always as such, the weather is extremely humid, accompanied by lots of rain these days. But even the weather—or the god?—could not stop our trip: the sky was clear during our stay there, and only started pouring on our way back to Seoul. Of course I am thankful for those who drove through rain (Noh Suntag and Yeowoon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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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생각했어요.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사실 계획을 짤 때에는 무척 신이 났었고, 날짜가 다가오고 다른 일들과 겹쳐지면서 슬슬 후회도 했고, 태윤씨가 들어오고 정말 코앞에 닥치자 (안 그런 척 했지만) 걱정도 되었었죠. 그런데, 15일, 16일. 답사를 다녀오고

마음이 많이 바뀌었답니다.

우리 뭔가 멋진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I was thinking on the way back to Seoul: wow.. it’s the beginning now. To tell you the truth, when I was planning the roadshow, my mind was filled with excitement. Excitement only. As mid-August approaches, and especially when Taeyoon arrived in Korea, however, I started feeling worried. But after the trip on August 15 and 16, I am quite certain that we will have an amazing time together.

아마도 다들 뭐하는 프로젝트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바쁜 시간 쪼개는 건데 뭔가 얻는게 있어야 할테데 하고 생각하신 분도 있을 꺼고. 저랑 다들 아는 사이라서 마지 못해 한다고 하셨던 분도 있을 것 같아요. You all joined the project with different ideas in mind. Some might be simply curious, some might expect to get much out of it, some might have said yes simply because they know me personally.

어쩌면, 저도 답사를 다녀오기 전까지 확실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엄청난 운동가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환경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으니까요. I myself was not sure what this could generate, until the two day-long trip, because I never considered myself as an activist or someone who cared about environment on a daily basis.

하지만, 예술계에 있으면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대강 프로젝트에 대한 거창한 반대도 아니고요. 우리가 하는 일들이 이미 완공단계에 들어선

4대강 프로젝트를 뒤엎을 수 있을 거라고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1. 로드쇼를 시작하며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이슈를 가지고 함께 하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What I knew was that those in the arts need to do something. What we do here does not pose a direct opposition to the Four Rivers Project. I don’t expect that our project will reverse—or put a stop on—the Four Rivers Project, which is already almost complete. However, we must have time to re-consider these issues.

강은 어디에도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도 매일 한강을 건너 출퇴근을 하네요. 하지만, 한강의 예전 모습을 본 적도 없고, 그다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던 것 같아요. There is a river everywhere. And now I think about it, I cross a river—the Han River—everyday to commute to work. But I’ve never seen what the Han River looked like before its massive development; and moreover, I was never curious about it.

1박2일, 짧은 답사.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떠나서 상황의 증인이 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야 겠다는 아주 나이브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정말 열심히 운동하시고, 지키고자 하시는 분들을 만나가면서 우리가 함께 할 시간들이 참 소중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Two days and one night. It was a short visit. Without knowing much, I arrived there and became a witness to the changes. What might be seen as a naïve idea— that we ought to talk about this—has become a concrete plan, as I began discussions with activists who express concerns and desire to protect the area. Now I am so certain that the time that we will spend together for the next few days cannot be more precious.

우리가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게 될 곳들은 허름한 시골의 폐교, 오래된 서원의 옆에 있는 작은 한옥집 이런 곳들입니다. 침대도 없고, 우루루 한꺼번에 봄 부대끼며 지내게 될 꺼예요. A dilapidated, shut-down school, a small Korean traditional house next to a premodern village school. These are places where we will sleep and share food. S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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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no bed, we will have to all sleep together next to each other.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때까지, 그리고 어쩌면 꿈속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목격한 것들과 우리가 생각한 것들을 함께 나눌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행을 마쳤을 때 쯤이면 우리는 아주 많은 사진과, 아이디어 스케치, 영상, 낙서 등등 그리고 엄청난 추억을 함께 갖게 되겠지요. From the moment we wake up till we sleep, and even in our dreams, we will share our ideas about what we witness. And. When we finish the trip, we will have lots of pictures, sketches of ideas, videos, hastily jotted down notes. And of course we will have a considerable amount of invaluable memories.

그리고 어쩌면 의외의 작품을 남기고 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뜨겁고 비 많은 2011년의 여름 끝자락을 함께 한 일주일이니까요. And we might be able to produce works that are completely unexpected, because it’s the last week of an extremely, and unexpectedly, steamy and rainy summer.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의 결과물들을 잘 정리하고, 공유하고, 나누어 다음 걸음을 걸었으면 합니다. And I would like us to make the next step, as we are sharing, compiling, and organizing what comes out of our time together.

여러 작가분들과 함께 하는 이번 여행은 그래서... 그냥 로드쇼입니다. 재즈처럼 다양한 즉흥변주의 가능성을 한껏 안은 그런 로드쇼. 어쩌면, 우리는 길가다 전시를 할 수도 있을 거예요. As I want to say, this trip is simply… a road show. Like a show that has a range of surprising, unpredicted possibilities.


1. 로드쇼를 시작하며

Perhaps, we can do a small show while we are walking on a street in the countryside.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hank you for participating in this project.

첫 모임은 8월18일(목) 오후 1시. 신촌과 홍대 사이에 있는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있습니다.

혹 변동사항이 있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리며, The first meeting is at 1 PM on Thursday, August 18 at Munji Cultural Center between Sinchon and Hongik University. Again with much appreciation,

신보슬 Nathalie



일정



2. 일정

8–15/1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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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마을 장씨 고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3호 영주댐,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1031 경진교 강변.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동송리 상주보 주변, 경북 상주시 도남동 경천대, 경북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병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사전답사

1 엄격하게 경비 되는 영주댐 공사장 하단과 비교해서 금광 마을 뒷 산을 넘어가면 쉽게 댐의 한가운데로 갈 수 있다. (사진: 최태윤)

2 금광 마을 장씨 고택의 주인 할머니와 선발대: 이여 운, 노순택, 신보슬. (사진: 최태윤)

3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후 며칠 사이 에 비가 많이 와서 강의 모습이 이렇게 고요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사진: 최태윤)

4 지율 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사진: 최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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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역 주민이 주신 옥수수를 삶다가 깜빡하고 잊어 먹 어서 약간 탔지만 아주 맛있었다. (사진: 최태윤)

6 상주 지역 공사 현장에 같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공 무원들이 현장 답사를 하고 갔다. “저기에 자전거 도 로가 들어올 것이고…” (사진: 최태윤)

7 로드쇼:대한민국 일정의 절반 이상을 사전 답사했 다. (사진: 노순택)

8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사진: 최태윤)

9 상주보 근방 (사진: 노순택)


2. 일정

8–18–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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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1 경복궁내 교보문고 광화문점, 서울 종로구 세종로 1 문지문화원사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 184-24 카페 마리, 서울 중구 을지로 저동 옛 중앙시네마 옆 청계천, 서울 종로구 서린동 148 가옥,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52-4

로드쇼 발대식

1 서울에 도착해 관광 중인 아이빔 작가들. (사진: 노바 쟝)

2 전통 박물관에 간 작가들. (사진: 존 코어스)

3 교보문고의 지구본.(사진: 노바 쟝)

4 하루 늦게 뉴욕에서 서울로 오는 프란 일리히. (사진: 프란 일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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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가들이 서울에서 아침 식사를 먹은 안국동의 한 카 페. 화려한 인테리어와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종업 원 등이 그들에게 익숙하다고 했다. (사진: 최태윤)

6 디자인 서울과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과 리슨투더시

7 첫 회의에 참석한 한국 작가들과 아이빔 작가들. (사진: 최태윤)

8 분식점에서 이정민, 프란 일리히, 아론 마이어스 작 가. (사진: 노바 쟝)

티의 활동을 소개하는 박은선 작가. (사진:최태윤)


2. 일정

8–18–2011

9 성형외과의 비포 앤드 애프터 광고는 변신을 약속한 다. (사진: 노바쟝)

10 청계천 투어. (사진: 프란 일리히)

11 명동 마리 스쿼팅 장소. (사진: 프란 일리히)

12 서울 어디에서나 도시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최태윤)


13 채식주의자들을 배려한 바베큐 파티. (사진: 최태윤)

14 안국동 가옥에서 늦은 밤까지 이어진 바베큐 파티. (사진:최태윤)


2. 일정

8–19–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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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머셋 팰리스 서울, 서울 종로구 수송동 85 괴헌고택,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877 이산 강변,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좋은 식당,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금광리 장씨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3호, 경상북도 영 주시 평은면 금광리 840 영주댐,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1031 무섬마을,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선몽대,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백송리 쌀아지매 경진학교, 경북 예천군 개포면 가곡1리 679-3

로드쇼 첫째날

1 버스에 참여자들이 탔는데 외국 작가들이 가장 뒤쪽 에 앉고 한국 작가들은 중간에 앉고 기획자들은 앞에 앉았다. (사진: 최태윤)

2 작가들은 이동 중에 컴퓨터로 자기 작업을 했다. 가 끔 간식을 먹거나 이야기를 할 때는 이야기가 있었 다. (사진: 최태윤)

3 45 인승 버스와 기사님 5 박 6일 비용 총 2,838,000만 원. (사진:최태윤)

4 금광마을 입구에서 본 한일 시멘트의 채석장. 영주댐 에 물이 차오르면 평은역은 이전해야 하고 산 꼭대기 에 인공 분수가 들어온다고 한다. (사진: 최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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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강에 들어간 사람들을 사진 찍는 로드쇼:대한민국 참 가자들과 환경 운동가들. (사진: 존 코어스)

6 존 코어스와 로드쇼:대한민국 참여자. (사진: 최태윤)

7 고택 안을 사진 찍는 로드쇼:대한민국 팀. (사진: 신보슬)

8 금광마을 김기일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진: 박은선)

9 영주댐 공사장 (사진: 노순택)


8–19–2011

2. 일정

9 영주댐 공사장에 무단으로 들어가서 경비원의 호통 에 버스 기사 아저씨가 곤욕을 치루고 있다. (사진:존 코어스)

10 영주댐 공사 현장. (사진:존 코어스)

11 사진 찍는 사람을 찍은 사람을 찍는 사람. (사진:심재경)

12 무섬마을 앞 강가. (사진:최태윤)

13 이동 중 여러 지역에 멈춰서 잠시 강의 변화를 관찰 했다. (사진:신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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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금강 마을에서 휴식 중인 이정민 작가와 연미 작가. (사진: 존 코어스)

15 신윤선 큐레이터. (사진: 신보슬)

16 동화를 쓰시는 김평 작가. (사진: 노을)

17 선몽대 (사진: 노순택)

18 첫날 워크숍 시작. 노바 쟝의 작가 발표가 있었던 후 그날 일정과 경험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외국에서 온 지 얼마 안되는 작가들은 많이 피곤해 했다. (사진: 이승범)


2. 일정

8–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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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사,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산54 경진교 강변.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동송리 청호 한우촌,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소화리 913-1 낙동강10경(경천경)-상주보우안, 경상북도 상주시 도남동

로드쇼 둘째날

1 아침 일찍 들른 내성천. (사진: 노을)

2 곧 개발될 예정인 마을 앞 표지. (사진: 노을)

3 노을이와 노순택 작가. ( 사진: 최태윤)

4 상주보 공사 현장으로 가는 길. (사진: 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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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주보 위에서 사진을 찍는 작가들. (사진: 구지윤)

6 (사진: 김화용)

7 (사진: 신보슬)

8 아론 마이어스와 노바 쟝. (사진: 최태윤)

9 봉지 날리기 퍼포먼스 중인 심재경. (사진: 김화용)


2. 일정

8–21–2011

»» 안동하회마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 병산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 병산민속식당,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23번지

로드쇼 셋째날

1 남은 식재료로 만든 아침 식사. (사진:신보슬)

2 출발 전 일정 검토와 짧은 회의. (사진:노바 쟝)

3 방문할 장소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박은선 작가. (사진:심재경)

4 하회마을로 가는 배. (사진: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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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안동 하회 마을에서 로드쇼:대한민국 (사진: 노순택)


8–21–2011

2.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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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고가 날뻔한 순간. (사진: 신보슬)

7 선빗길로 가는 길. (사진: 박은선)

8 선빗길의 냇물. (사진:신보슬)

9 예상외로 긴 산행 후에 완전히 지친 작가들. (사진: 토탈 미술관)

10 병산 서원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노을)


8–21–2011

2. 일정

11 많은 작가가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긴 장소. (사진:이승범)

12 병산서원 앞 강가에 모인 작가들. (사진:박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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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미 작가의 가판대 퍼포먼스 (사진: 노순택)

15 김화용 작가 (사진: 노순택)

16 지율 스님 (사진: 노순택)

17 옥인 콜랙티브 김화용의 작가 발표. (사진: 신보슬)

18 모기장을 친 심재경, 김화용 작가. (사진: 신보슬)


2. 일정

8–22–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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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교.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신림리 왜관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을숙도,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 공간 초록,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89-53 국제밀면, 부산 연제구 거제1동 242-23

로드쇼 넷째날

1 출발하기 전 단체사진. (사진:노을)

2 사진을 찍어준 노을이. (사진:토탈 미술관)

3 멕시코에 있는 여자친구와 화상통화 중인 프란 일리 히. (사진:최태윤)

4 리슨투더시티가 디자인한 티셔츠를 입은 박은선 작 가. (사진:최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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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상주보 근방 (사진: 노순택)


8–22–2011

2.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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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상주보 근방 (사진: 노순택)

7 4대강 공사장 조감도. (사진:노바 쟝)

8 공사장 주변에 흔히 보이는 광고. (사진:김화용)


2. 일정

8–22–2011

9 성베네딕수도회 왜관수도원 고진석 신부님. (사진:김화용)

10 스테인드 글래스 공방 (사진:최태윤)

11 왜관. (사진:노바 쟝)

12 왜관. (사진:김화용)

13 (사진:김화용)

14 (사진:노바 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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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부산 (사진:신보슬)

16 (사진:김화용)

17 을숙도 도착 (사진: 노순택)

18 홍승호 님 (사진: 노순택)

19 (사진:최태윤)


2. 일정

8–23–2011

»» 낙동강 하구 아미산 전망대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1548-1 »» 한진중공업,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 »» 자갈치 시장,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4가 37-1번지 길호 횟집, »» 고삼 저수지,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지문화원 사이, 서 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동 184-24

로드쇼 다섯째날

1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최하구 을숙도. (사진:신보슬)

2 공장지대. (사진:신보슬)

3 자갈치 시장 식당 아주머니. (사진:신보슬)

4 한진 중공업 크래인을 지켜보는 작가들. (사진:최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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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진숙씨가 점거하던 85호 크레인 (사진:프란 일리히)


8–23–2011

6 (사진: 신보슬)

8 (사진: 최태윤)

2. 일정

7 한진중공업 퇴직근로자 (사진: 존 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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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존 코어스. (사진:최태윤)

11 던킨 도너츠와 콜라를 먹고있는 프란 일리히 (사진:최태윤)

10 간식을 먹는 연미 작가, 기획팀, 매리 매팅리. (사진:최태윤)


2. 일정

8–23–2011

12 도시 근교 풍경 (사진:최태윤)

13 (사진:최태윤)

14 (사진:최태윤)

15 (사진:김화용)

16 (사진:최태윤)

17 (사진:최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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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매리 매팅리 (사진:최태윤)

19 아이패드로 영화를 보고 있는 존 코어스와 아론 마이 어스 . (사진:최태윤)

20 아이패드로 일하고 있는 신보슬 큐레이터 (사진:최태윤)

21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 프란 일리히 (사진:최태윤)


2. 일정

8–24–2011

»» 고삼 저수지,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

로드쇼 여섯째날

1 침체된 모습의 고산 저수지. (사진:신보슬)

2 영화 <섬>의 배경이 되었던 좌대와 낚시터. (사진:신보슬)

3 마지막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는 작가들. (사진:신보슬)

4 작가 발표중인 프란 일리히.(사진:신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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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발표중인 김선형 작가. (사진:신보슬)

6 휴식중인 아론 마이어스와 존 코어스. (사진:노바 쟝)

7 촬영중인 신윤선 큐레이터와 최태윤 작가. (사진:신보슬)

8 퍼포먼스 중인 연미, 노바쟝, 김선형 작가, 그리고 촬영하는 존 코어스와 매리 매팅리. (사진:신보슬)

9 서울에 돌아온 작가들. (사진:노바 쟝)

10 홍대앞.(사진:노바 쟝)


2. 일정

8–25/26–2011

»» 스페이스 모래, 조계사.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45 »» 문 토탈미술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465-16 »» 플라툰 쿤스트할래,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97-22

최종발표

1 조계사 앞 스페이스 모래에서 설치된 전시를 보고 놀 란 매리 매팅리와 존 코어스.(사진:최태윤)

2 오프닝 공연. (사진:최태윤)

3 작가 발표와 통역. (사진:존 코어스)

4 웨어러블 홈 퍼포먼스.(사진:존 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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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토탈미술관에서 리셉션. (사진:최태윤)

6 작가 발표중인 노순택 작가와 통역중인 최태윤. (사진:토탈미술관)

7 로드쇼: 대한민국 참여 작가들. (사진:최태윤)

8 <강,원래> 상영. (사진:최태윤)




로드쇼 다이어리



로드쇼 다이어리

최태윤

<로드쇼:대한민국>을 준비하면서 종종 어린 시절의 기억에 되돌아가 가고자 하 는 욕심이 들었다. 생각나는 장소를 가보고 싶었지만 계속 뉴욕에서 있었기 때문 에 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를 찾아 보면서 내 기억과 영

화에 기록된 풍경을 비교해 보았다. 로드쇼가 시작되면서 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기억이 아닌 미래의 기억이 될 장소들에 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면서 각자 다른 생각을 했겠지만 일주일 정도의 시간과 공간을 나누면 서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책의 구성을 편집하면서 모든 이의 기억을 담을 수 없지 만 참여자의 작업과 글을 한 자리에 묶음으로 로드쇼 진행 중에는 다 하지 못한 대 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아래의 글 ‘로드쇼 다이어리’는 여행에 참여한 스무 명 남 짓 한 사람들 중 하나인 나의 시선에 집중했으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마무리까지 어떠한 생각이 있었나 주관적인 생각을 기록하고 싶다. ‘기획을 하기 전까지’ 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많은 참여자들이 나에게 “어떤 생각으로 이 프로젝 트를 기획하고 왜 자신을 초대했으며 결과적으로 어떤 목적이 있는가?”에 대해 여 러 번 질문 했지만 정확한 대답을 한 적이 없었고 로드쇼 기간 내내 나는 끊임없이 통역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내 의견을 표현하기 보다는 문화적 차이를 통과할 수 있 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Politically correct 언어를 찾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두 번째 꼭지부터는 로드쇼의 진행을 느슨하게 따라가지만 순차적인 나열이 아닌 주제 별 로 묶어서 참여자들과 다 나누지 못한 생각을 정리하고 이 글을 읽는 분들과 우리 의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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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드쇼 다이어리

기획을 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68혁명이 일어나고 상황주의자들Situationist Intenational 이 도시 공간의 전

복을 위한 배회를 시도하던 시기에, 미국에서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Martin Luther King Jr가 총살 당하고 많은 도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미국의 민주당 전당대회Democratic Convention 후

시카고에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가 터졌을 때, 베트남에서는 미군의

비행기가 고엽제를 뿌리며 날아갔다. 북한과 휴전을 한지 15년이 되던 그 해 남한

의 대통령은 박정희였고 그는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사 자금은 미 국으로부터 베트남 전쟁 파병 대가로 받은 자금으로 조달했다. 일각에서 우려와 반대도 있었지만 군인 출신의 대통령답게 2년 만에 서울과 부산을 동일 생활권으

로 만들며 ‘국토의 대동맥’을 완공했다.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1980년

5월에는 나의 부모님이 결혼하셨는데 당시에 모든 매체가 장악되어서 그런 일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고 하셨다. 내가 태어난 1982년에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

건이 일어났다. 그 피의자들의 변호사 중에는 후에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도 있었 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서울의 공공 공간과 거리는 순식간에 변하

고 있었는데, 한편 1987년 6월에는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 그동안 계속 대통령을

하던 전두환은 물러갔고 노태우는 올림픽 호스트의 영광을 얻었다. 열 살배기 윤 태웅이 굴렁쇠를 굴리며 올림픽 경기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러움을 느끼던 동네 꼬마들 중 하나였던 나는 한동안 굴렁쇠 연습에 완전히 몰 입했다. 당시 유행하던 TV 만화 시리즈 <달려라 하니>를 보면 올림픽 전후의 긴

장된 서울 거리의 느낌을 기억할 수 있다. ‘주택 200만 호 건설계획’이후 2 차로 발

표된 지역 중에는 성남 분당과 고양 일산이 있었다. 서울의 작은 아파트에 살던 많 은 중산층들은 신도시가 완성되자 그곳으로 이사를 갔다. 만화 <아기공룡 둘리> 의 배경이 되는 단독 주택에 거주하는 가족의 모습과 신도시의 고층 아파트에 살 면서 학원 버스를 타고 단지를 뺑뺑 도는 친구들의 생활은 너무 달라 보였다. 새만

금 방조제 공사가 시작된 1991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해 랩 음악의 세계 를 선보였다. 당시 살던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조금만 가면 대전 엑스포가 열릴

논과 밭이 있었다. 1993년 그 벌판에 갑자기 미래 도시가 만들어지고 각국에서 온

아름다운 누나들이 내 엑스포 패스포트에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온 세계가 한 곳에 모인 별천지였다. 당시 뉴스에는 세계화라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그게 나에 게 미친 영향은 학교에서 더 이상 한문을 안 배우고 영어를 배워서 과외로 한문을 따로 배워야 했다는 정도였다. 성수 대교와 삼풍백화점 사건을 겪으면서도 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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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OECD 국가가 되었지만 1997년에는 IMF 구제 금융 위기를 겪게 되었다. 한

껏 풀이 죽은 것 같았던 97년 겨울의 서울은 힘겹게 봄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방황 하는 10대가 숨을만한 공간은 없었다. 당시 살던 아파트에서는 마포대교가 보였

는데 빨갛고 작은 다리 아래의 작은 섬에는 안전 지대가 있을까 생각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는 1998년부터 서울 시민들이 겪었던 스펙터클한 변화를 자축하는

시민들의 환호성이 서울 광장을 가득 채웠다. 청계천 복원 공사가 한참이던 2003 년 여름, 친구들과 청계천에 가서 사진과 영상도 많이 찍었다. 당시 유행하던 씨

비매스 뮤직비디오의 오프닝 장면에 청계 고가도로가 나오고 영화 <초록 물고기 >에서는 주인공이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기도 한다. 2005년 7월 양아치 작가의

소개로 신보슬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를 의정부에서 하게 되었고 미군 부대 주변 을 리서치 하며 좁은 골목길과 허름한 술집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 해 겨울 양아

치 작가와 신보슬 큐레이터는 몇몇 작가들과 함께 ‘미들코리아 Middle Corea’라는 개 념의 전시를 준비해 독일을 포함한 몇몇 나라에서 전시를 했고 좋은 반응을 받아서 작업에 탄력을 받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었다. 뉴스에는 당시 공사 중이던 KTX

가 뚫고 가게 될 천성산의 도룡뇽 습지를 보호해야 한다는 지율 스님의 단식 시위 가 매일같이 보도됐고 이해찬 총리와 문재인 수석 등이 스님에게 찾아가는 모습 등 해당 인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체에 보도 되었다. 2006년 여름, 청계천이

개방되었다. 젊은 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그곳으로 모여서 데

이트를 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복원된 청계천에는 물고기들이 보였고 약간 은 인공적인 풍경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서 걷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2007 년 10 월, 신보슬 큐레이터와 한스 크리스트Hans D. Christ, 스티브 디에츠Steve Dietz 등 외국 기획자들과 한국 작가들과 일현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양양 연수원으로 여행

겸 워크숍에 참여했다. 후에 덴마크에서 개인전을 초대해준 아네트 피네스도티르 Annette Finnesdotir

등을 만났고 신윤선씨와도 알게 되었다. 탈북자 화가로 이름을 알

리기 시작하던 선무 작가와도 대화를 한 첫 기회였다. 하룻밤만 자고 온 짧은 여행 이었지만 일반적인 전시나 워크숍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 경험이었 다. 강렬한 작업과 다르게 온화한 인상이 기억에 남는 노순택 작가도 비슷한 시기 에 처음 만났다. 그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줬고 나는 퍼 포먼스로서 통역과 번역에 대해서 생각을 시작했다. 2007년 12월, 이명박 서울 시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다양한 개발 사업을 가장 큰 프로

젝트로 내세운 현대중공업 전 사장에 대한 우려와 기대는 극단적으로 나뉘었지만 경제 발전에 대한 희망은 절대적으로 우세했다. 나는 몇 일 후 뉴욕의 레지던시에


3. 로드쇼 다이어리

참여하게 되었는다. 2008년 1월, 온라인으로 생중계되던 남대문이 불탔는 모습

은 비현실적이었다. 한 도시의 상징이 사라지는 모습에는 극단적인 괴기함이 있 었다. 혹 9/11 테러로 국제금융센터가 무너지는 모습이 매체에서 반복해서 재생

되면서 폭력에는 무뎌지고 숭고함을 느끼게 되듯이 파괴에서 오는 스펙터클은 잔 인하리만큼 허구적이었다. 2008년 7월, 광우병에 대한 우려로 미국산 소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던 촛불시위가 한참이라고 인터넷 신문에서 난리가 났다. 유튜브와 뉴스로 보는 시위 현장은 시선의 전쟁처럼 보였다. 흔들리는 휴대전화와 웹 스트 리밍 이미지, 잘 연출된 뮤지컬의 한 장면 같아 보이는 신문 이미지, 그리고 멀리 서 축구 경기를 중계하듯 관조적인 시선의 뉴스 영상들이 오가는 동안 사건과 나

의 거리는 더욱 멀어져 갔다. 정치적인 이슈와 예술가의 액티비즘에 호기심을 갖 게 되고 크리티컬 아트 앙상블Critical Art Ensemble, 더 예스 맨The Yes Men, 스티브 램버트 Steve Lambert

등의 작가와 교류를 시작했으며 그 해 겨울 서울의 상상마당 갤러리에

서 박소현 큐레이터가 기획한 <실험실1: 사회적 개입> 이라는 전시에서 시위와

D.I.Y 기술에 대한 <도시 프로그래밍 워크숍>을 진행했고 최빛나, 송호준, 소

원영, 신기헌, 박준표 작가 등을 만나게 되었다. 2009년 1월, 이스라엘이 팔레스 타인 하마스 지구에 마구잡이로 폭격하던 시기에 재개발을 앞둔 용산구에서는 철 거민들과 특수경찰이 강제 진압 도중 사망했다. 당시 아침에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고 바로 그곳으로 갔다. 아직 탄 냄새가 가시지 않은 건물의 잔해에서 자본의 논 리에 동반되는 속도의 폭력을 느꼈다. 특수 경찰을 태운 컨테이너를 중장비로 들 어올려 건물 옥상에 헛간을 올린 철거민들을 제거하는, 극단적으로 기계적인 상상 력에서나 나올 수 있는 잔혹극의 한 장면이, 왜 만들어지는지, 누구의 지시인지, 무슨 목적인지 의문이 생겼다. 추상적인 기계로서 도시는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와 다를바 없는 파괴력을 생산한다. 도시 공간의 공포를 피부로 느끼게 된 이 상 액티비스트로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시인했다. 용산 사건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 갈 수록, 전국철거민연합과 같은 집단이나 약자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활 동하는 이들의 모순을 보았다. 또한 폭력을 부동산과 도시 개발의 경제적인 장치 로서 보았을 때 그 이유에 대한 의문은 명확한 도식이 그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 런 고민들은 이미지와 글로 정리했고 최빛나 씨가 디자인한 『도시프로그래밍101

』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다시 뉴욕에서 활동하다가 2009년 여름에 서울에서 한 달 반 정도 시간을 보냈다. 노무현 대통령 사망 후 서울 광장은 다시 한번 완전히

다른 억압과 고통의 분위기로 가득 찼다. 몇년이 지나고 2011년 1월에 집에 일이 있어서 잠시 서울에 들어왔다. 내가 자리를 지켜야 했던 병실에는 하루 종일 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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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을 켜놨는데 소말리아 해적을 저격한 한국 특수부대원들의 영웅화 작업이 한 참이었다. 용산 참사 2주년 기념 상영회가 있어서 종로의 영화관에 갔다. 문정인

신부가 늦게 들어오셔서 계단에 앉으시길래 자리를 비켜드렸다. 며칠 후 심재경 과 김화용과 함께 한강 새빛둥둥섬, 당시 이름은 플로팅 아일랜드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음향 녹음을 했다. 이정도 시기에 신보슬 큐레이터가 여름에 아이빔과 교류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외국 작가와 한국 작가들이 함께 도시와 자연 환경을 거치 며 여행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마치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가 <It is what it is:

Conversations about Iraq1> 작업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 참전 미군과 이라크인 통역자와 함께 미국 일주를 했듯이, 혹은 폴 챈Paul Chan이 허

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스에서 <고도를 기다리며2> 연극을 연출 해서 미국 정부가 약속한 조치를 하지 않는 것에 문제를 제시했듯이, 개발과 도시 화에 대한 의문을 직접적인 비판이나 추상적인 감상이 아닌 대화의 방식으로 풀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토탈미술관의 스태프들은 아이빔 로드쇼 Eyebeam Roadshow의

형식이 좋을 것 같다고 했고 한국 작가들과 함께 여행하며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지역을 탐방하자고 했다. 애초에 생각한 일정은 서울 부터 부산까지 여러 상태에 있는 도시 개발 현장에 가보는 것이었다. 당시 공사 중 반을 넘어가던 4대강 사업은 사람들의 인식에서 이미 흐릿해진 상황이었다. 사업

초기에 넘치던 비판과 옹호의 양 진영도 수그러들었고 가끔 신문에 언급되기는 했 지만 천안함 침몰 사건, 연평도 폭격 사건, 구제역 확산 등 더욱 시급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한쪽에서는 이미 늦었다는 시선이 강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문 제없이 잘 진행되는 공사에 무슨 답사를 가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국제 교류 워크 숍과 세미나의 명목으로 문화예술진흥위원회에 기금을 신청해서 받았다. 당시에 는 정치적인 목적 보다는 예술가들이 여행하며 지역 공동체와 만나는 퍼포먼스라 는 생각이 더 컸다. 아이빔 쪽에서는 금전 적인 지원은 못해주겠다고 했고 그곳의 큐레이터와 디렉터 등 여러명이 이직하던 시점이어서 외국 작가의 초대와 프로젝 트 운영은 내가 전담하고 한국 쪽의 기획은 토탈미술관에서 하기로 했다. 시간은 빨리 지나갔고 7월에 기금을 받고 5명의 비행기 표를 샀다. 총 만 불 정도가 들었

다. 전체 예산의 가장 큰 부분이었다.

1 Jeremy Deller, Conversations About Iraq, 2009 http://www.conversationsaboutiraq.org/ 2 Paul Chan, Waiting for Godot, 2007 http://www.nationalphilistine.com/nola/index.html


3. 로드쇼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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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자를 찾습니다.

7월 초. 내 또래의 사람을 보고 유난히 사회와의 거리가 크다고 한다. 나 또한 한

국과 미국에서 절반 정도씩 살아 오면서 나와 두 나라의 사회적인 상황은 거의 무 관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도시와 주변 환경은 개인적인 선택과 기회로 결정 되었다고 생각했지 그것이 사회라는 큰 기계 안에서 작동하는 부품처럼 사회와 연 결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모든 사회적인 사건을 인터넷 뉴스와 소문으로 듣는데 진절머리가 날 정도의 시기에 로드쇼:대한민국 작업을 기획했다. 새롭게 생겨나는 도시 공간이 궁금했고 직접 가서 보고 느끼는 경험을 다른 작가들과 함 께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쟁점이 되는 4대강 사업 지역으로 우리와 함께

갈 줄 동행자를 찾아야 했다. 많은 인원이 다양한 지역을 방문하는 거대한 여행

을 기획하기에는 현장 정보와 한국에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 환경 운동 단체 나 진보 매체에서 공개하는 온라인 정보에 의존해야 했는데 그 중에는 비판의 색 이 너무 진해서 문제의 요지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정부에서 공개하 는 정보 또한 정치적인 목적이 뚜렷할 뿐 여행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예술가 단체 중에는 리슨투더시티가 거의 독보적으로 4대강 사업에 대한 연

구와 방문을 지속적으로 이어오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그 외에는 2010년 여

름에 진행된 ‘4대강 대방랑3’ 프로젝트의 블로그에 기록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 최빛나 씨와의 대화로 이런 여행의 어려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4대강 대방랑’은 4개의 강을 한 번씩 다 갔고 매

번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인도를 받았는데 환경 운동 단체에서는 너무 극단적으 로 비관적인 시선으로만 보고, 정부 단체의 안내원은 기술적인 정보를 교과서 읽 듯이 말할 수 밖에 없는지 누구와도 솔직한 대화를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영화 감독 최진성씨가 만든 윈디시티의 <저수지의 개들4> 뮤직비디오도 현장의 분위 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다. 최진성 감독도 촬영팀과 같이 로드쇼: 대한민국에 참여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예산 부족과 일정등의 문제로 참여할 수 없었다. 한국의 작가들에게는 전체 일정이 어느 정도 잡힌 7월에 연락을 시작했다. 옥인콜

3 대방랑: 4대강에 대한 사적 대화 http://debangrang.tistory.com/ 4 최진성, [저수지의 개들 take 1. 남한강 (with 윈디 시티)] ‘위하여’ http://www.youtube.com/ watch?v=-z7lgTLIvSo


3. 로드쇼 다이어리

렉티브의 김화용 작가와 이정민 작가, 그리고 가옥의 심재경 작가가 가장 먼저 참 여에 동의했다. 두 콜렉티브의 작업에 종종 참여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겸 교육 자인 김승범 님도 참여 했다. 신보슬 큐레이터가 연미 작가를 추천했고 양아치 작 가와 송호준 작가도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결국 일정 중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 다. 노순택 작가가 참여한다고 해서 기뻤다. 뉴욕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되던 구 지윤 작가도 참여하기로 했다. 아이빔의 스테파니 바딘Stephanie Bardin이 함께 대학 원에서 공부 한 김선형 작가를 추천했다. 디자인 그룹 FF와 몇몇 작가 그룹에게

도 초대 이메일을 보냈는데 대답을 듣지 못했다. 아이빔 작가들은 1월부터 계획 을 시작했는데 실제로 모두가 만나서 이야기를 한 것은 3번 정도에 그쳤다. 프로

젝트의 의미와 일정에 대해서 당시로는 최대한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나중에는 사 전에 정보 공유가 부족했다고 지적하는 작가도 있었다. 그 외에 독일의 사샤 플로 팹Sascha Pohflepp 과 이스라엘의 무숑 젤 아비브Mushon Zer-Aviv 작가도 참여의 의지를 보 였으나 개인 일정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펠로우쉽에 참여하고 있던 작가들

4명이 함께 가기로 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공동체에서 개개인의 동참 여부

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지만 공동체는 개인의 집합이기 때문에 한 두 명의 참여자에 따라서 여행의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결국 여행은 동행자가 가 장 중요한 것 같다.

로드쇼:대한민국을 준비하기 위해 서울에 돌아가기 몇 일 전에 강남에 큰 홍

수가 났고 ‘디자인 서울’로 브랜딩한 오세훈 시장은 이미지에 직격탄을 맞았다. 외 국 작가들이 인터넷 신문에 올라온 홍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것 때문에 한국에 강이 문제냐고 물었지만 정확히 대답할 수 없었다. 그 대답은 맞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은 프로젝트 내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한때 서울 어디서나 보이던 ‘디자인 서울’ 과 ‘한강 르네상스’라는 단어는 곧 잊혀지게 될 것을 느꼈다.

8월 13일. 리슨투더시티의 사무실에 다녀왔다. 처음 만난 줄 알았는데 4년

쯤 전에 내가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개인전을 할 때 만난 적이 있었다. 둘 다 지금 과는 많이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를 떠올리며 서로 자신의 작업이 어설

펐다며 웃었다. 몇 년 후에도 지금의 협업에 대해서 유쾌하게 웃을 수 있으면 좋 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업실은 서울의 한가운데 위치한 재래시장 안 지하상가 의 일부분을 예술가에게 무상으로 임대하는 신당창작아케이드 였다. 일정을 검토 하기에 앞서서 이 프로젝트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작 업실에는 깔끔하게 디자인된 책자, 티셔츠, 포스터 등이 있었다. 그날 나눴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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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에서 4대강이나 환경에 대해 발언하는 이 들이 자신과 지율 스님 그리고 주변의 몇 명 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두리반 이후

명동 마리에서 스쿼팅을 하고 있는데 평소에 같은 이슈에 관심을 보이던 주변 작 가들도 연대를 요청할 때마다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의 당사 자들도 이주 보상이 끝나면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더 이상의 교류가 없어서 섭 섭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시기에 로드쇼:대한민국의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받아 반가운 마음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실제로 로드쇼:대한민국의 진 행 일정은 박은선 작가와 지율 스님의 영향이 가장 컸다. 나와 신보슬 큐레이터가 임의로 계획한 일정에는 제천 예마네, 우포늪과 부산의 대안공간반디 등에서 다 양한 공동체를 만나고자 했다. 예마네는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라는 이름의 약자로 제천에 있는 한 폐교에서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을 중심으로 시작 된 단체이다. 우포늪은 1997년 람샤르 협약으로 국제보호습지로 지정된 곳이다.

대안공간반디는 부산의 대표적인 대안 예술 공간인데 당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 이었다. 박은선 작가와 지율 스님은 5일의 시간동안 위 일정을 다 소화하기 보다

는 낙동강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처음 1박 2일은 리

슨투더시티와 지율 스님의 가이드로 낙동강 상류에서 답사를 하고 그 후는 기획팀 이 일정을 이끌어 가기로 했다. 갑작스러운 협업 제안에 선뜻 참여해서 많은 정보 와 의견을 나눈 두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제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는 지점도 있었

고, 한 명의 동료라도 더 만들고 싶은 활동가의 마음에 참여 작가들이 전적으로 부 합하지는 못한 지점도 있었지만, 동행자에 대한 고마움과 존중은 처음부터 끝까 지 이어졌다.


3. 로드쇼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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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관광Counter-tourism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여행

관광의 형식 안에서 있지만 경험의 일방적인 소비가 아닌 생산

8월 15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기획팀인 신보슬 큐레이터와 이여운 씨 그리고

노순택 작가를 만났다. 이때까지는 유경아 씨가 업무를 담당했는데 이때부터 행정 업무는 이여운 씨와 신윤선 씨가 맡았다. 몇 시간 전에 서울에 도착한 존 코어스는 광화문 주변에 시위를 막기 위해 벽을 세우듯이 일렬로 서 있는 전경들의 모습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그가 다음날 DMZ에 답사를 가겠다고 해서 표를 예약해 주

고 기획팀은 렌트카를 타고 서울을 빠져나갔다. 가는 길에 노순택 작가에게 궁금 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있었던 사회적 사건과 문제

들, 시민운동과 그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이후 강정 미군 부지 건설, 그리고 4대강과 새만금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는 사건 을 바라보는 일관된 시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그가 찍은 사진에서도 비슷하

게 드러나는데, 풍경을 형성하는 조건들과 사물의 표면을 날카롭게 기록함으로 그 이면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그의 사진을 보고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찍은 사진 같다”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쓰기도 했다. 정치적인 목적과 예술의 중간에 서 있는 것 같은 낯선 시선은 사실 정치적인 대상과 관계를 맺기 위함인 것 같다. 날카로운 사진과 다르게 겸손하고 포용력이 넓은 사람이라는 것을 대화를 하면서 조금씩 알 게 되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국수를 먹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기대와 긴장감 때문인지 순식간에 다 먹었다. 얼마를 더 달려서 영주 금광리 장씨고택으 로 갔다. 금광마을은 영주댐 건설로 곧 수몰될 지역이다. 국가기록원같은 단체에 서 나온 사진기자가 장씨고택의 할머니를 촬영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슬렁거리자 신경에 거슬렸는지 촬영하고 있으니 잠깐 비키라고 했다. 그는 큰 카메라를 들고 할머니가 밭에서 잡초를 뽑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나 그거 또 해야 해? 이렇게 하면 돼?” 하시면서 연신 뽑을 잡초도 없는 땅을 꼬집고 계셨다. 다른 사진사는 집의 구석구석을 스캐닝하듯이 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나가면서 “할머 니께 허락 받고 구경하세요”라고 툭 던지듯 말하고 나갔다. 노순택 작가는 할머니 께 말을 걸고, 전에 왔었던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집 안으로 들어오 라고 하셨다. 거대한 집의 외형에 비해서 집 안은 아늑했다. 그곳에는 시간이 흐르 면서 자연스럽게 더해진 간이문과 사다리, 그리고 냉장고 같은 전자 제품과 생활


3. 로드쇼 다이어리

용품들이 있었다. 대청마루 위에 있는 신문은 1990년대 말의 신문이었다. 할머니

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이 집으로 시집을 오게 된 게 60년 전인가 더 오래

되었던가 하셨고, 한때는 몇십 명이 한 집에 함께 살았지만 이제는 혼자 산다고 하

셨다. 우리는 한동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낯선 사람들에게 이야 기 하는 것을 즐기시는 듯 했다. 할머니는 기억력이 상당히 좋으셨고 사람들의 이 야기도 다 이해하셨다. 몸이 자유롭지는 않으셨지만 거동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 었다. 할머니와 집은 하나의 객체로 느껴졌다. 한때 아름다웠을 모습에 비해서는 많이 지치고 시간의 흔적도 드러나지만 아직도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 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서 ‘이전-복원’될 예 정이었다. 전통 한옥은 자연적인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대 건축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손상이 적게 해체되어 재건축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건축이 다른 장소 로 이동한다면 그동안 공간에 밴 생활의 흔적과 개인의 역사는 많은 부분 사라진 다. 그리고 박물관이 그렇듯, 어떠한 인위적인 가치관에 따라 선별되어 복원, 보 존되는 동안 생활 공간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진 관광지가 될 것이다. 런 생각 끝에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게 가 장 좋은 것인가? 방치와 보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하회마을처럼 보존되어 관 광지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가?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 는 우리는 국가기록원의 사진기자들, 혹은 하회마을의 관광객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도 사라지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액티비즘으로서의 관광은 생태 관광 Eco tourism, 재난 관광Disaster tourism, 기부 관광Charity tourism 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금광마을 뒤로 잡초가 넝쿨진 야산을 걷다 보니 영주댐의 안쪽으로 가는 길

이 나왔다. 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기획팀 사람들의 발에 상처가 많이 생겼 다. 대낮의 공사장에는 관리자가 하나도 없었다. 곧 물로 가득 찰 지역이었다. 탈 식민주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C. Spivak이 월가점령 시위Occupy Wall Street 에 서 했던 말 중에 “야수의 뱃속Belly of the beast 에서 저항을 시작한다5”는 표현이 있었 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짐승의 뱃속에 있는 것인가? 몇 일 후 로드쇼 팀들 과 왔을 때 우리는 이 댐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그곳은 공사가 바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살벌한 감시가 있었다. 그것에 비해 댐의 안쪽에는 아무런 운동이 없었 다. 어쩌면 저항과 시민운동도 고유의 연극적인 코드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생각

5 Gayatri Spivak, http://vimeo.com/3077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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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연극이 열리기 전의 무대 뒤편 같던 댐의 내부는 나비와 매미 소리가 가득한 야산일 뿐이었다.

그 후 로드쇼에서 경유할 지역을 두세 군데 더 방문하고 스님을 만났다. 서서

히 지는 해와 경주하듯이 바쁘게 좁은 길로 들어가다보니 내성천에 도착했다. 이 날 느낀 그 작은 강의 아름다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낮은 강의 모래를 밟는 느낌, 작은 물고기의 움직임, 물이 흐르는 소리는 정말 포근했다. 며칠 후 로드쇼: 대한민국의 일정으로 방문한 강의 풍경은 장마가 가까이 오면서 순식간에 바뀌어 있었다. 스님의 댁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막걸리를 마셨는데 모든 게 맛있었다. 몇년 전 천성산 시위를 하면서 보수 매체로부터 당한 공격과 조롱에 대해서 자세하 게 이야기를 하셨는데 노순택 작가는 모든 상황을 잘 아시는 것 같았지만 나는 자 세히 이해 하지는 못했다. 그날 밤 노순택 작가의 가족은 문정인 신부와 강정마을 에 있었는데 전화로 연락이 되지 않아 많이 걱정하셨다. 미군기지가 들어올 제주 도의 강정 마을, 새로운 관광지가 될 낙동강, 곧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을 방문할 우리들, 모든 것이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8월 18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문지문화원 사이 강의실에서 작가들

을 위해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목적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만난 자

리에는 어색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국어와 영어로 동시에 진행을 하기 어려워서 영어 위주로 진행했다. 시차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빔 작가들이 집중해 서 참여하는데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박은선 작가가 디자인 서울과 4대강 사업

의 시각적인 브랜딩에 대해 발표했다. 외형적인 성과에만 집중하는 도시 디자인 사업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사건의 영향과 4대강 사업에 대해서 자신과

동료들이 갖는 의심과 비판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그 후 청계천과 명동 마리 등의

지역을 걸으며 근래에 진행된 개발과 도시 디자인 정책에 대해 설명했다. 안국동 가옥에서 진행된 발대식에는 다양한 먹거리를 준비했고 로드쇼:대한민국 참여 작 가뿐 아니라 주변의 작가, 활동가, 관객 등을 초대해서 교류하는 장을 만들었다. 다큐멘터리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만든 김준호 감독과 미디어아티스트 최승 준 씨 등 로드쇼:대한민국에 관심이 있었으나 참여하지는 못한 작가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3. 로드쇼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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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위험!

8월 19일. 아이빔 작가들이 머무는 섬머셋 호텔의 로비에서 집합했다. 원래 머물

던 창경궁 앞 호텔의 예약 일자가 잘못되어서 토탈미술관 스태프의 재량으로 고급 레지던스에서 하루 머물게 되었다. 작가들은 호텔에 아주 만족했지만 아침에 뷔 페에 식사 하러 가니 지배인이 와서 식사는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신경전을 벌 였다고 했다. 간단한 빵과 음료를 준비해서 오는 사람들과 먹으며 기다렸다. 전날 뉴질랜드에서 떠나는 비행기를 놓쳐서 급하게 다시 비행기표를 예약해 간신히 시 간을 맞춰서 매리 매팅리가 도착하고 경기도에서 택시를 타고 오신 노순택 작가의 가족이 도착해서 예정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다.

서울을 빠져나와 경상남도 여주로 향했다. 참여 작가 외에 토탈미술관에서

소개한 홍승호님, 노순택 작가의 가족이신 동화 작가 김평님, 노을이 어린이도 같 이 출발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괴헌 고택이었다. 그곳에서 지율 스님과 환경 연대 분들을 만났다. 이산강변에서 두월교 물길을 따라 걸어갈 예정이었으나 장마 로 물이 불어서 몇 명만 강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그때 물길이 세서 사고가 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아무 일도 나지 않았다. 폐교를 식당으로 사용하는 ‘좋은 식당’ 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금광리 장씨고택에 갔다. 토탈미술관을 통해 소개받은 이 솔 씨가 뒤늦게 합류했다. 뉴욕주의 한 대학에서 시각문화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 는 그는 동시 통역에 도움을 줬고 김선형 작가 등 영어가 편한 몇몇 작가들과 같이 외국 작가들이 적응하는데 큰 도움을 줬다.

버스는 영주댐 공사 현장으로 향했다. 아무런 사전 신고 없이 무작정 관광

버스가 공사장으로 들어갔다. 경비원들이 놀라서 나가라고 하는데 외국 작가들은 상황을 잘 모르고 사진을 찍었고 한국 작가들은 분위기가 험상스러워 지는 것을 느끼며 버스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지율 스님은 이렇게 쳐들어가지 않으면 공사 장을 볼 수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잘 판단하지 못했지 만, 나는 참여자들의 안전을 계속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중장비가 빠른 속도로 다 니는 공사장에 사전 신고 없이 들어가는 것은 안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도 이런 일이 있을지 준비가 안된 상황이어서 욕설을 내던지는 관리자 들 때문에 당황해 하셨다. 존 코어스는 그곳에 있는 엔지니어에게 어떤 공사중이 냐고 물어보고 그로부터 영어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있다가 경비원들이 달려와서 쫓겨났다. 당시의 사진을 보면 우리는 공사장을 배경으로 서로의 사진을 찍는 ‘관 광객’과 사건 현장에 무단 침입한 ‘시민 기자단’ 사이의 어떤 모습이다.


3. 로드쇼 다이어리

그 후 수도리 무섬마을과 선몽대를 거쳐 지나가며 낙동강의 상류에서부터 조

금씩 내려가며 강이 넓어지고 깊어지는 변화를 보았다. 로드쇼:대한민국을 준비 하며 관련 기사를 찾아 보면서, 한겨례 등의 신문은 상류의 영주댐 공사와 하류의

4대강 사업으로 소중한 모래 강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보수 신문과 국토 해양부

웹사이트는 그런 비판을 반박하는 기사를 많이 다루고 있음을 알았다. 강에는 일 반인도 느낄 수 있는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으나 그것이 장기적으로 어떠한 영향이 있고 어느 정도 자연적인 회복resilence 이 가능할지 궁금했다. 로드쇼:대한민국 기 획 팀 중에 하천 전문가나 기술적인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엔지니어가 몇 명 있었으 면 하고 바랬다. 그리고 개발로 인해서 직접적인 이득을 받는 집단이 누구이고 그 것을 지지하는 것은 어떤 단체냐는 외국 작가들의 질문에 일차적이거나 추상적인 답 밖에 할 수 없어 답답했다.

저녁 시간이 지나서 숙소인 경진학교에 도착했다. 폐교를 민박 시설로 만든

곳으로 부담 없는 가격에 깨끗하고 넓어 많은 인원이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첫날을 동행한 환경 연대 분들이 지율 스님과 함께 카레와 짜장밥을 만들어 주셨 다. 설거지를 할 때는 몇몇 참여자들이 거들어서 여러 개의 대야에 쌀 씻은 물을 넣고 몇 번에 걸쳐 씻었다. 작가들은 피곤한 몸을 추스려 회의에 참가했다. 사람 들의 노곤함을 고려해서 한 명의 발표만 듣고 그날에 대한 토론을 하기로 했다. 노 바 쟝이 자신의 작업에 대한 발표를 했다. 도시의 공적 공간에 설치와 퍼포먼스로 유머러스한 참여를 만들어 내는 작업과 간단한 카드 게임 같은 소프트웨어로 두 가지 물건을 조합해서 새로운 발명품을 만드는 작업을 소개했다. 그 후 그날의 일 정에 대한 회고와 다음날을 위한 건의 사항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 는가?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서 외국과 한국 의 비교, 접근 방식의 차이, 이 여행에서 작가들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날 영주댐에서 일어난 사건을 시작으로 여러 번 느낀 것이 있다. 저 항의 대상이 대중에게 숨기려고 하는 것이 있다면,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즉흥적 인 해킹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숨기고자 하는 것 만을 진실로 보고 나머지를 다 거짓으로 치부한다면 사건의 전체를 볼 수 없다. 로드쇼:대한민국을 준비하면서 만난 환경 운동가들은 국가가 보여주려고 하는 4대강에 대한 정보는

모두 꾸며진 것이어서 외국 작가들과 공유할 필요도 없다고 단정했다. 정부가 포 토샵으로 만든 유토피아적인 조감도만 전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민운동이 그 것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만 집중해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이야기 하는 것 또한 단 면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작가들 경우에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이미 4대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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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정보를 많이 접해봤기에 도시화와 생태계의 변화를 직접 손과 발로 느끼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외국 작가들은 로드쇼 기간 동안 환경 운동가의 시선에 지배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 것에 불편함을 보이며 좀 더 다양한 시선과 정보를 얻고 싶다고 했다. 그날 저녁 회의에서 몇몇 한국 작가 작가들 또한 다양한 시선과 속도의 필요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함께한 환경 운동가 중에서는 그것을 비판으 로 들으시고 기분이 약간 상하신 분들도 있었다. 기획자들의 회의에서 나도 여러 작가들이 교류하며 함께 나누는 경험을 디자인하고자 한 목적을 다시 이야기 했는 데 다른 기획자들은 프로젝트가 진행이 된 이 시점에서는 큰 변화 없이 일정을 따 라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했다. 애초 기획 단계에서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외국 작가들 중에 매리 매팅리와 존 코어스 같이 환경에 관한 작업 을 많이 해 온 작가들은 이런 충돌과 오해가 아주 익숙한 상황이라고 했고 큰 불편 함이 없다고 했다. 그에 비해 뉴미디어 작업을 주로 해오던 아론 마이어스는 로드 쇼:대한민국의 방향이 애초에 예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고 했고 프란 일리히는 답사는 그만하고 인터넷이 되는 작업실에서 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3. 로드쇼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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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티스타 커피

8월 20일. 경진학교가 있는 곳은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경진리이다. 부엌에서

프란 일리히가 자파티스타Zapatista 에서 갖고 온 커피와 함께 서울에서 사온 파리바 게트 빵에 잼을 발라 먹었다. 프란 일리히가 갖고 온 커피는 멕시코의 원주민들의

인권 운동인 자파티스타에서 작농한 것으로 그가 운영하는 대안 경제 시스템인 스 페이스뱅크Space bank의 일부로 유통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승범씨가 여러 번에 걸 쳐 드립 커피를 내려 줬는데 곧 갖고 온 커피를 다 먹었다. 사람들은 샤워와 양치 를 하고 하나 둘 길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밀가루를 먹지 못하는 사람이 몇 명 있 었는데 아침을 대신할 것의 준비가 부족했다.

버스를 타고 장안사 전망대로 갔다. 비가 와서 등산을 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주변의 풍경을 보았다. 안개가 많이 껴서 잘 안보이지는 않 았지만 회룡포의 형상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논-아트라는 아이러니한 이 름으로 색깔이 다른 벼로 무늬를 낸 곳도 있었다. 가이드 팀에서 하는 설명은 어 제의 담론과 이어지는 것이었다. 원래 자연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 환경이 조화로 웠는데, 관광지로 개발을 하면서 다 망가졌다는 것이다. 반복되는 이야기들에 사 람들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외국 작가들은 이렇게 많은 곳이 관광 자원으로 변하는데 관광지의 수요가 어느 정도 되는지 물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연미 작 가가 그룹에서 뒤쳐져 전망대에 가는 골목을 지나처서 한참을 더 걸어갔다. 우리 가 내성천으로 가고 있을 때 그에게 전화가 왔고, 한참을 고생을 해서 택시를 타고 우리를 찾아왔다. 멤버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출발한 것은 정말 큰 불찰이었다.

내성천은 사전 답사로 왔을 때보다 훨씬 더 물이 많았고 물길이 셌다. 불만

가득한 성난 어른의 모습을 한 강물과 하늘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래도 작가들은 처음으로 들어와 본 모래 강에서의 기분을 특별하게 느꼈다. 어떤 사람들은 신이 나서 여기 저기 구경하고 유심히 들여다 보러 갔고, 어떤 사람들은 서로 농담을 건 네며 이야기하는데 더 집중했다.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당시에는 모든 사람 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나는 집중할 여유도 없어서 영상을 찍었다. 아예 그것까지 포기하고 기분 좋게 사람들과 어울릴 걸 그 랬다. 비가 내렸다. 비 오는 소리가 아름다웠다. 불교 연대 분들과 함께 온 아이들 은 신나게 물장난 치고 있었다. 지율 스님은 그들이 강을 보지 않는다고 답답해 하 셨다. 나는 그들이 그때 강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물장난


3. 로드쇼 다이어리

치는 아이의 시선에서 강을 보는 것이다. 그것만큼 이들에게 의미 있는 기억이 있 을까? 즐거울 수 있다는 것만큼 소통이 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예촌의 한우촌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소원영이 후발로 도착했다. 상주

보 공사 현장 인근으로 향했다. 보를 쌓는 공사가 마무리 되고, 골재가 쌓여 산처 럼 만들어진 모습이었다. 상주보의 공사는 거의 다 완성되었다. 내리쬐는 땡볕에 아주 더웠다. 사전 답사 때는 멀리서 봤던 곳에 직접 와보니 놀라웠다. 상주보는 주변 광경과 어울림에 대한 배려 없이 가상의 이미지를 거대한 중장비와 빠른 회 전력을 지닌 자본으로 현실로 옮긴 것 같았다. 이곳에서 작은 사건이 있었다. 보 위에서 사진을 찍던 프란 일리히가 보의 중앙까지 걸어가려고 한 것이다. 나와 기 획자들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돌아오라고 했는데 그는 우리의 외침을 무시하고 더 욱 멀리 걸어 갔다. 어쩔 수 없이 화가 났는데, 그의 안전이 가장 걱정되었고 경비 가 올까 봐 염려되기도 했고 우리의 외침을 무시한 것에 이유가 있기도 했다. 그와 다른 작가들은 한동안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작은 언쟁이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었다. 참여와 공동체에 대한 내 욕망이 극도의 불안과 배신으 로 전이된 순간은 극적인 사진으로 남겨졌다. 그 다음날 이 아주 작은, 실제로는 아무런 사건이 없었던, 사건에 대해서 그와 이야기 해봤다. 나는 기획자의 입장에 서 예민하게 대응한 것도 있지만 다음날 안전 사고가 있기도 했고, 충분히 가능한 일에 대한 예방이라고 생각했다. 프란 일리히는 자신의 방식으로 참여하려고 주 장했다. 그에게 참여는 순응이 아닌 사소한 곳에서 시작하는 저항이고, 아주 작은 저항일 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언어인데, 그 언어를 쓰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기적인 욕심이다. 같은 언어들 끼리만 소통이 가능하다면 세상에 대화를 할 수 있 는 사람이 너무 적을 것이고 결국에는 혼자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상주보의 다른 쪽에서는 옥인콜렉티브가 어린이 참가자 노을이와 함께 봉지 연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언뜻 보면 장난을 치는 것인지 작업인지 구분하기 어렵 지만 오랜 기간 동안 해오던 작업의 연장선상이었다. 일부 환경 운동가들은 그 모 습을 보며 상가집에 가서 춤추고 노는 것같이 심각한 상황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 라고 비난했지만 그것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해석하기에 적당한 상황은 아니었다. 골재가 싸인 언덕에서 관광 버스가 우리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며 지율 스님과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 사업은 이전부터 준비되었던 일이고, 기업과 권력의 공통 관심사와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까지도 그 책임이 있으므로 꼭 현 정권만의 문제 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렇게 같은 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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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었다. 뉴스 등 온라인 매체에서 짧게 보이는 강의 모습, 홍수나 사고가 있 을 때면 보이는 헬리콥터에서 미끄러지듯이 지나가며 찍은 풍경, 환경운동가들이 블로그에 올리는 감성적인 사진들, 그리고 정부 기관의 웹사이트에 의학적 분류로 정리되어 전시된 사진들, 그리고 실제 장소를 멀리서 바라보며 카메라의 줌렌즈를 통해서 본 모습, 직접 가서 발을 담그고 손으로 모래를 만지며 바라본 강의 모습까 지 여러 경험들이 매번 다른 느낌을 주고 다른 이야기를 해준다.

도시와 강 개발은 전세계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 중 4대강 사업의 특

징을 뽑으라고 한다면 첫째는 개발의 빠른 속도와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스펙터클

이고, 둘째는 그것이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인지 영역에 내밀하게 스며들어 있다 는 점이다. 물론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댐을 짓는 중국 양쯔강 사업이나 신기루같 은 꿈의 도시를 만드는 두바이 건설에 비하면 작은 공사이다. 하지만 이미 도시화 가 많이 진행된 한국에서 진행되는 도시화 프로그램은 동시 다발적으로 강 주변이 일률적인 도시공간Unitary urbanism이 되도록 개발한다. 그 개발에 따른 경제적 효율 성과 사회 복지적인 측면이나 환경의 영향을 긍정이나 부정적이라는 잣대로 판단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로드쇼:대한민국의 참여자들에게는 각자의 다른 의견이 있 었고 나 또한 개인적인 생각은 있다. 하지만 의견이 양극으로 충돌할 때 진실은 그 중간이 아니라, 양쪽에 조금씩 나눠져 있는 것 같다. 환경 운동가의 입장에서 쓴 글을 읽으면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정부 공식 자료나 보수 매체의 입장에서 쓴 글 을 보면, 뻔하게 보이는 프로파간다적인 요소들을 어느 정도의 필터링을 거쳐 읽 는다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한편 부동산 가격의 변동을 추측해 큰 소득을 얻거 나 도시 계획의 결정권을 가진 집단과 정보를 공유하는 자들이 투자를 통해 소득 을 얻는 것은 이 사회의 부끄러운 전통 중에 하나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한국의 문 화 지형이라고 본다면 예술가-활동가가 저항할 구체적인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 은 정부인가 기업인가 그들을 지지하는 다른 시민들인가? 아니면 4대강은 반대하 면서 우리 집 집값은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우리 자신인가? 또한 혹시나 활동가

의 저항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집단이 있는가? 표적을 잘못 잡은 저항은 엉뚱한 사 람들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 또한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생각과 의견들이 초현실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오갔다. 우리는 인상파

화가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 가 그린 그림에 나오는 파리 근방으로 나들이간 부르주아들처럼 양산을 쓰고 거친 공사장을 따라 걸었다. 칼로 자른 듯 정리되어 있는 대지와 물이 만나는 곳에는 보가 세워져 있었다. 댐이 아닌 보를 세우는 이유 는 홍수와 가뭄을 예방하고 물이 넘칠 수 있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목


3. 로드쇼 다이어리

적에는 누구나 표면적으로나마 동의할 만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린 뉴 딜Green New Deal이나 친환경Eco Friendly 등의 단어들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해 보면 산업사회 이후에 어떠한 것의 생산이라도 이런 식의 언어의 의도적인 오용을 동반하지 않겠냐는 반론을 할 수 있다.

지리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는 자본주의와 도시공간 개발의 연

결에 대한 연구에서 모든 것이 똑같아지고 어디에서나 시기만 다를 뿐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의문을 제시하며 그 안에서 생산되는 미세한 차이들에 주목한 다.6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강이 흐르듯이 스치는 공간을 일률적인 패턴으로 자 기복제를 하며 도시를 생산한다. 한국의 강들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흥미로운 이 유는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도시의 프로그램이 곧 다른 곳에서 반복될 것이 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도 쉽다. 한 세기 전 로스엔젤레스의 강 개발과 고속도로 건설 그리고 서버브suburb의 탄생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서 있던 강가는 어쩌면 미래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모습 일 수 있기 때문에 기이하게 느꼈다. 지금 현재가 달려가고 있는 미래는 이미 과거에 다른 곳에서 실현되었기 때문에, 비선형적으로 이동하는 시간 속에서 작고 큰 도 시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가 파괴되고 다시 만들어진다. 골재가 쌓여 산이 되고, 산이 깎여 콘크리트가 되면서, 현재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자연의 모습은 만들어 진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여건habitablity이 점점 까다로워 지면서 더욱 많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도시가 만들어 진다. 외국 작가들 중 몇몇은 반복되는 답사와 반복되는 담론에 지루함을 느끼는지 자신 의 안전 지대를 훨씬 벗어나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자기들끼리 대화를 많이 했다. 한 쪽에서는 컴퓨터 게임, 인터넷 유행어,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의 이야기고 오가 고 다른 쪽에서는 4대강 사업과 ‘나꼼수’ 등의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작가 중에

는 어디에 있든지 간에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프로를 계속해서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고 나는 그의 무관심에 관심이 갔다. 나 또한 다른 상황에서는 완벽하게 무관 심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해서 그도 관심이 있 을 것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한 이상 어느 정도는 관심을 보일 줄 알았다. 그가 때로 농담을 섞어 거만한 미국인의 시선으로 말하는 것이 불편했는데, 그것이 개인적인 불만의 표시였기 보다는 문화적으로 다양성을

6 David Harvey, The Enigma of Capital: And the Crises of 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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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보하지 못한 편협한 시야에서 오는 무지함이라 생각했다. 그것보다는 미디어와 커넥티비티connectivity의 의미에 관심이 갔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첫 에피소 드에는 비행기가 무인도에 불시착한 후 시디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기 위해 건전지 를 찾아 다니는 사람이 나온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장치를 사용자의 수동 적인 역할을 비꼬는 의미로 교외용 컴퓨터suburban computers 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 디어 장치가 소통이 아닌 몰입을 위해 사용될 때는 현실 도피를 위한 효과적인 묘 약이 된다. 계속해서 무관심해 보이던 작가는 4대강 사업이나 로드쇼에 대해서 흥

미로운 반론을 제시했다. 환경이 파괴된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인 것 같고 결국에 는 새로운 공공장소들이 생겨나서 도시 외각에 사는 노동자 계급의 공동체가 휴 식할 여가 공간이 생기는 것인데 그것이 이렇게 반대할 것인지 의문을 제시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보수 매체나 대다수의 사람들의 의견과 흡사한 생각이다. 대 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 일에만 반응을 한다. 평소에 전 혀 관심이 없던 것도 자기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불편함이 생기면 아주 적극적으 로 대응하고 궁금해 한다. 켜져 있다가 꺼지는 스마트폰처럼 사람들의 관심은 조 금씩 없어 진다.

선몽대까지 가는 무리한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미역국과 파전

등을 직접 만들어서 먹었다. 전날 환경 연대 분들이 사놓고 가신 쌀과 식재료를 썼 기 때문에 큰 지출 없이 많은 인원이 식사할 수 있었다. 식사 후 존 코어스와 연미 작가가 발표했다. 저녁 발표 시간은 몸이 피곤하긴 했어도 가장 흥미로운 시간이 었다고 말하는 참가자들도 많았다. 빠듯한 일정과 통역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화 를 하거나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 중요했다.

8월 21일. 원래 계획에는 스님은 이날 오전까지 동행하시고, 우리는 따로

일정을 가고자 했는데 스님이 하루 더 도와 주시겠다고 했다. 기획팀은 길을 몰랐

기 때문에 그분의 안내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의 파괴에 대 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무거운 분위기로 가라앉기가 십상이어서 로드쇼:대한민 국의 분위기에 예상보다 많은 영향을 주시는 게 과연 좋은가 걱정이 들었다. 기획 자로서 좀더 확실한 일정을 정해놨더라면 하고 반성했고 사공이 많은 배라는 느낌 이 들었다.

아침 일찍 남은 빵을 먹고 부용대를 향해 떠났다. 그 중간 중간 4대강 정비 사

업이 진행되는 곳들과 관광지 개발 사업장을 들렸다. 점차 넓어지는 강과 변화하 는 풍경을 보았다. 부용대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내려다 보고 나룻배를 타고 들어 갔다. 배를 관리하는 사람들이 깡패처럼 험상궂었다. 이것이 미래의 관광지의 모


3. 로드쇼 다이어리

습일까? 관광지 개발을 통해 자연과 문화를 보존하고 컨텐츠 개발을 통해 관광 수 입을 올리고자 하는 지역 개발 전략의 미묘한 영역에 대해서 한참 고민하던 차에 방문한 안동 전통 마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 지역의 특색을 경험-상품으로 파 는 관광지가 된다는 것의 한계는 수동적인 소비로서의 관광을 통해서는 지속적인 수입구조를 갖기 힘들다는 것과 전국의 모든 강과 마을이 관광지가 된다면 그것을 소비할 잠재 고객 또한 고갈된다는 데 있다. 만약 모든 국민이 여가를 즐기는 유한 계급이 되고 아시아의 모든 관광객이 한국의 지방으로 단체 관광을 온다고 상상을 해도, 지역 공동체가 관광 소득에 의존한다면 그 공동체의 형태는 급격히 변형되 어 또 하나의 민속촌이 될 수도 있다. 하회탈춤 공연을 기다리는 관광객들 사이에 서 비슷한 길을 걸어온 미국 남부 원주민 인디언들에 대해서 외국 작가들과 이야 기를 나눴다.

이곳에서 구지윤 작가가 마을 버스에 치어 다칠 뻔한 사고가 발생했다. 큰 사

고로 이어지지 않고 작은 외상에 멈춰 천만다행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안 전사고가 발생해 당사자는 물론 나를 비롯한 기획팀은 크게 놀랐다. 응급 치료를 받던 구지윤 작가와 나를 뺀 다른 작가들은 지율 스님을 따라 선비길을 걸어 병산 서원을 향해 걸어갔다. 기술과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풍경이 정말로 아름 답기는 했지만 더운 날씨와 무리한 일정에 많은 작가들이 지쳤다. 병산서원에서 식사를 하고 휴식을 했고, 몇몇 작가들은 강가로 내려가서 수영을 하고 쉬었다. 로드쇼 일정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으로 기억된다. 연미 작가가 ‘신문 가판대’를 설치하고 퍼포먼스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작가들과 방문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 다. 저녁에는 옥인콜렉티브와 구지윤 작가의 발표가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데 식탁에 메뚜기 한 마리가 껑충 뛰어와서 음식 위에 앉았

다. 떨어지라고 손짓을 하다가 메뚜기의 다리를 잡게 됐는데, 메뚜기가 대뜸 다리 를 띠어버리고 한쪽 다리만 단 채 식탁 아래로 뛰었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노을이 어린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나한테 살인마라고 했다. 나는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고 변명을 했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 노을이의 미움을 독차지 했다. 노을이는 로 드쇼:대한민국에서 큰 활력소였는데 작가들에게 거스름 없이 다가가서 이야기 하 고 장난을 쳐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대한민국에서 노을이처럼 이 나라 의 현대사를 몸으로 직접 경험하며 자란 아이도 없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대추리 에서 살았고, 많은 시위에 부모님과 같이 갔고, 강정 마을에 가서는 문정인 신부와 친손녀처럼 노는 아이가 본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외국 작가들도 노을이를 아주 좋아했는데 액티비스트 차일드Activist child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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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아침 식사 후 소원영 작가와 이솔 님이 서울로 출발했다. 소원영

작가는 텀블벅 사업 일정이 있었고 이솔 님은 북한으로 여행을 가는 길이었다. 버

스는 부산을 향해 움직였다. 중간에 공사장을 몇 군데 더 들렀으며 구미를 지나며 폭우로 무너진 일선교를 보았다. 로드쇼를 진행하며 다양한 공동체로부터 각별한 환대를 받았는데 지율 스님의 소개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점심을 초대 받게 되었다. 처음 만난 신부님들과 함께 이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수 도원의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였다. 70~80년대 민주화 시기에서 많은 중

요한 책을 출간한 분도출판사의 공장 내부를 보기도 했다. 왜관수도원의 건너편 에는 당시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미군부대 캠프 캐럴Camp Carol 이 있었고, 신부 님들은 고엽제 매립에 대한 시민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분들과의 대화는 딱딱한 정치의 언어나 목적 위주의 운동으로 다가오지 않고, 서로에 대한 자상한 배려와 관심으로 느껴졌다.

몇 시간 더 이동해서 부산의 환경운동 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들’을 운영

하시는 분의 인도로 을숙도를 탐방했다. 낙동강의 최하류인 이곳에서 도시 개발 과 지역 공동체의 연관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가이드를 해주신 분이 부산 토박이여서 그동안 지역에 일어난 변화와 그 영향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 주셨다. 저녁 식사를 하고 노순택 작가와 가족 그리고 구지윤 작가가 서울로 떠났다. 지율 스님이 운영하시던 공간 초록에서 숙박했다. 환경 운동가의 시선으로만 이 사건을 본다는 것에 문제 제기를 하고 다른 시선이 궁금하다는 외국 작가들에게 정부의 홍 보 영상을 보여 줬다. 파스텔 색조로 렌더링된 4대강 풍경에는 기술에 대한 절대

적인 확신과 공상과학 같은 시각적인 상상력이 담겨 있었다. 일부 작가들은 그 영

상을 보여주는 당시의 상황과 통역에도 정치적인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고 불평했 다. 짧은 회의 후, 도시에 돌아온 것이 흥분된다는 아론 마이어스를 대리고 김선 형 작가, 연미 작가 그리고 가이드 아저씨와 함께 주변 유흥가로 갔다. 바에 가고 싶다는 아론의 욕심을 충족시킬 만한 술집이 없어서 호프집에서 골뱅이와 생맥주 를 시켜놓고 이야기를 했다. 닭이 기름에 튀기는 냄새와 담배 연기 그리고 억센 부 산 사투리가 공간을 채웠다.


3. 로드쇼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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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힌 자국이 있는 세계지도

8월 23일. 또 하루의 긴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모두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작

가들은 그동안 축적된 피로에 많이 지쳐있었다. 아침 식사는 편의점에서 사온 빵 과 우유로 간단히 먹었다. 버스는 우리를 을숙도 전망대로 데려다 주었다. 원래 계획은 낙동강 하류의 섬에 가려고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서 배를 타고 바다로

들어가는 것은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갓 지은 듯한 전망대가 있었다. 2010년대의 전형적인 건축 스타일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반-광택 은빛 표면의 건물이다. 실내의 서서히 색갈이 바뀌는 LED 불빛이 가장자리에 있고 인

터랙티브의 요소가 있는 키오스크와 도시 모형들이 진열되어 있다. 몇몇 작가들은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구경하는데 나는 가이드 아저씨를 따라서 서둘러 전망대로 갔면서 왜 여행 내내 우리는 서둘러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지역의 조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이드 아저씨는 지금은 공단이 된 지역이 다 갯벌이었 고 철새가 많이 있었다고 했다. 공단은 주로 섬유와 염색 관련 일을 했다고 한다. 그것 또한 근래에는 많은 변화가 있다고 한다. 어제 직접 갔던 을숙도를 멀리서 보 니 낙동강 하구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부산의 항구들의 모형이 있 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항구뿐 아니라 여러 항구가 어떤 위치에 있으며 그것들 각 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그런 항구를 만들 때마다 지역의 환경운동가들이 반대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항구 건설은 물론 극소의 영역에 집중한다면 환경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거시적인 시선으 로 어떠한 경제적 효과와 사회적 의미가 있고 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생 각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전망대의 커피숍에서 잠시 휴식했다.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기타 등등, 이

작은 커피숍의 유리 항아리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커피가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 가 세계지도를 펴놓고 마음대로 점을 찍어서 그곳에 있는 보물들을 끌어 온 것 같 았다. 작가들은 카푸치노 도피오 마키아토 등을 마시면서 휴식했다. 이제 참가자 의 수가 현저히 적어져서 작가들 사이의 분열도 더 확연해졌다. 한국 작가들, 기 획자들, 그리고 외국 작가들, 모두가 따로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나는 외국 작가 들과 한국 작가들의 테이블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야기에 끼려고 했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동안 쉴 새 없이 통역을 하면서 언어를 이해하고 대화 로 소통하는 방법을 완벽하게 잊어버려서인지, 아니면 지난 일정 동안 나의 역할 이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혹은 요구사항을 표현하는 중간자의


3. 로드쇼 다이어리

입장에 고립되어 버려서 인지는 모르겠다. 커피숍 벽에 걸려있는 세계지도를 보 며 부산의 항구에서 시작해서 태평양을 표류하는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버스를 타고 부산 시내를 한참 내달려 김진숙씨를 보러 갔다. 한진 중공업 파

업으로 몇백 일째 거대한 타워 크레인 위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로드쇼: 대한민국의 일정에 한진 중공업 방문을 포함하자는 기획팀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도 한진 중공업, 노동조합, 그리고 김진숙 씨의 관계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했 다. 신보슬 큐레이터가 관련 책과 동영상을 보여줬지만 그것만으로는 현재의 사 회적 상황과 노동운동의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당한 해고에 대응하 여 자신의 몸을 기계의 심장부로 가지고 갔다는 것에 관심이 갔다. 한 대기업의 생 산직으로 일하던 친구의 이야기로는 2000년대 이후의 한국의 노동운동은 그 전

에 비해 와해되고 형식적인 모습만 가진 채 정체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 다. 그것이 피상적인 관찰이었거나 아니면 대중매체에서 그런 모습만을 집중적으 로 보여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체를 알고자 했다. 그런 고민을 품고 비

오는 부산 시내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우리를 한진 중공 업 앞으로 데려다 주셨다. 관계자들이 다급하게 나오는 모습을 보시고 건너편 아 파트 단지 앞에서 내려주셨다. 철조망 뒤의 타워 크레인들은 괴수처럼 보였다. 85

호 크레인 주변에는 꽃과 걸개그림이 있었다. 그림에 대해서 묻는 프란 일리히에 게 걸개그림의 목판화 같은 스타일은 민중 미술에서부터 이어진다고 말했더니 큐 레이터들이 바로 정정 해주기를 동학 운동에서부터 그 뿌리가 있다고 했다. 김진 숙씨의 운동에 대해서 외국인에게 설명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액티비스 트계의 히로인이냐, 아니면 실제로 노동자들의 대변인이냐는 질문에 한국 작가들 은 각기 다른 대답을 했다. 외국 작가에 따라서 지역 사회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흥미롭게 느끼거나 때로는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적게는 몇 년에서 많게는 십여 년 넘도록 운동을 하고 있다는 분들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과 한국의 노조 관계와 노동자들의 대우, 외국인 노동자들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 집 중적으로 물어봤다. 한국 작가들도 신문으로는 종종 보고 사람들과의 이야기에서 언급되지만 직접 마주했을 때는 어떤 것을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고, 그런 구체적인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경우는 없었다. 진행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건 에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난처한 상황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평소에 알 고 있던 추상적인 배경만 반복해서 말하다 보니 대화의 진전이 어려웠다. 프로젝 트의 진행자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인 틀 안에서 몇 가지의 주관적 인 의견과 시선이 흐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여행에서는 그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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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외국 작가에게 설명하기 쉽지 않았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등의 사회적 이슈 와 맞물려 있는 시민운동의 맥락에 대해서는 한국 작가들끼리도 이해의 공감대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매리 매팅리는 타워 크레인에 새처럼 집을 짓고 유목민 같은 생활을 하는 플

락 하우스Flock House 작업을 준비하고 있던 시기라 김진숙 씨가 크레인 위에서 생활 하는 공간에 관심을 가졌다. 아파트 계단에서 타워 크레인을 찍다가 작가 몇 명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존 코어스가 민주노총 소속으로 운동하시는 분들에게 말을 걸 었고 그분들이 김진숙씨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김진숙씨와 전화 통화가 연결되었고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표면적인 정보 외에 아는 것이 없었 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왜 이곳에 왔는지 설명을 했 고, 그분은 찾아 주셔서 고맙다고 했다. 전화가 잘 들리지 않았고 태양열 건전지 로 충전해서 간신히 트위터를 하고 통화를 하시는 분에게 전화 통화 시간은 소중 한 것이었다. 급하게 존 코어스와 프란 일리히에게 질문이 있냐고 물었다. 존 코 어스는 없다고 했고 프란 일리히는 그다운 질문을 했다. 우리가 만약에 당신을 돕 기 위한 예술-액티비즘 작업을 하는데 한진을 이용해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 냐고. 그것은 대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었다기 보다 그의 관심사를 잘 나타내는 한 마디 코멘트였다. 그분은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하셨고 곧 전화를 끊었다. 난 혼돈 스러운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다시 버스를 향해서 갔다. 건널목을 건너며 프란 일리히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값싼 노동력 을 찾아서 제3세계로 공장을 이동하고, 그러다 보면 그 기업이 성장하는 동안 노

동력을 제공한 공동체가 거주하는 공간(제2 세계라고 호칭할 수도 있는)에 있던 노

동자 계급은 순식간에 실직이 된다. 이것은 여러 곳에서 패턴적으로 일어나는 현 상이고, 신자유주의에서 파생되는 현상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2 세

계의 노동자들이 노동 운동을 할 때, 자신의 일자리를 다시 돌려달라는, 즉 노동 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것이 과연 가장 의미 있고 효과적인 요구일까? 라는 생 각을 나눴다. 과연 자본가가 그 노동자의 권리에 실제로 신경을 쓸 것인가도 의심 스러웠지만, 그것보다도 운동의 방향이 현시대와 미래에 적합하냐는 의문에 집중

했다. 과거에는 집단으로 파업을 하고 단식을 하는 것이 효과적인 시기도 있었지 만, 현재에는 다른 식의 저항과 표현이 더 효과적이기도 하다. 걸개그림과 트위터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냐는 의문이 아니라 트위터이건 걸개 그림이건 간에 어떠한 구호를 제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프란 일리히는 대답과 공감의 중간 정도의 반응을 했다. 자기가 문제 제기하는 것도 같은 지점이고 그래서 남반구들


3. 로드쇼 다이어리

간의 협업South to South Collaboration 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 표현에서의 남반구란 지 리적으로 남쪽 국가들, 미국의 아래 멕시코, 중국의 아래 한국을 가리키기도 하지 만,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적 헤게모니의 아래에 있는 국가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는 또한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예술가-활동가들 중 일부는 신자유주의 를 비판하면서도 그 핵심국가인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의 기관과 협업을 하려고 하고, 그곳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시각미술과 독립/다큐멘터리 영 화 같은 경우에 관객과 목적이 그쪽으로 향하는 것은 그것 또한 신자유주의의 인 지 산업7Consciousness Industry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다. 그렇다면 남반구들간의 협업을 생각해 보면 필리핀 수빅 제철소에서 일하는 현지 노동자들과 멕시코에서 한국 기업의 하청을 하거나 용역에 고용된 노동자들 끼리 연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술적, 언어적, 문화적인 차이로 그 연대 는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면이 있지만 멀리 보는 시선으로 이 문제를 본다면 이런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자갈치시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바로 경기도 안성 고삼저

수지로 향했다. 둑어둑해져서야 도착했는데, 오면서 작은 도시들의 변두리와 중 심, 그리고 다시 변두리를 거쳐가기를 반복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마지막 워크숍 을 진행했다. 로드쇼 일정 리뷰와 아카이브의 목적의 키워드를 정하기 위한 워크 숍을 했지만 그다지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저녁은 닭도리탕을 먹었는데 낚시터의 식당이어서 그런지 만만한 가격은 아니었다. 맥주와 소주 몇 잔을 들이키니 그동 안의 긴장이 풀리며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한국 작가들과 기획자들 그리고 외국 작가들과의 간격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언어가 만드는 벽의 한계와 문화적 차 이는 이런 여행에서 더욱 드러나기 마련이다.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된 만큼 그 차이 또한 알게 된 것이 큰 배움 중 하나이다. 그동안 묵묵히 버스를 운전해주신 기사님 의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조용한 낚시터에서 작가들은 삼삼오오 산책을 하며 밤 을 맞이했다. 저수지 주변 풍경은 침체라는 단어가 가장 정확한 것 같다. 맥주 몇 잔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하루의 일정이 더 남은 것이다. 끝이 보인다는 데서 뭔가 안도의 한숨을 쉴 여유가 생기는 만큼, 앞으로 남은 일정이 이전의 어떤 날보다 쉽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걱정도 되었다.

7 Enzensberger, Hans Magnus, The Consciousness Industry, trans. Stuart Hood. New York: Seabury Press, 1974. Constituents of a. Theory of the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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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드쇼 다이어리

후기 관광지

8월 24일 아침에 일어나니 외국 작가들이 밖에서 아침을 사먹을 곳이 없다고 불 만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난처해진 나는, 아 여관 주인이 길가에 가면 있다고 하

던데, 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애들아 조금만 참자, 어제 저녁 거하게 먹 었잖니, 하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큐레이터와 한국 작가들이 주섬주섬 라면을 끓였다. 드디어 프란 일리히와 아론 마이어스 그리고 김선형 작가의 발표가 있었 다. 일정의 마지막까지 그들의 발표를 미룬 게 약간 서운했었나 보다. 프란 일리 히는 멕시코 티후아나 출신의 소설가 겸 미디어 작가이다. 그는 실험적인 금융 구 조를 대안현실로 운영하는 ‘스페이스 뱅크’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그의 말 을 풀어서 하면 가상의 은행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증권과 채권 등 일반 은행 이 갖고 있는 기능들을 새로 구성하는데, 그 과정에 있어서 은행을 사용하는 이들 과 함께 결정하고 조금 더 공정한 방법을 찾는다. “은행을 미워하지 말고 은행이 되어라 Don’t hate the banks, Be the Banks!”라는 선언을 한다. 그는 로드쇼 내내 평소에 비 해서 유난히 말이 없었는데 몇 번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불만이나 문제점으로 보 이는지 물었다. 그는 로드쇼가 진행되는데 있어서 자신과 작가들의 역할이 일반 적으로 따라다녀야 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이미 짜진 투어를 관광객처럼 소비하 기가 싫다고 했다. 그는 서울이 상파울루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공항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오는 길, 유리와 거울로 꾸며진 베이커리 내부, 지나가는 사람들 이 입은 옷, 길거리와 텔레비전 속의 광고 등… 모든 것이 상파울루를 연상시킨다 고 했다. 그는 남한에서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에 대한 욕망을 아주 작은 곳에서 가장 큰 영역까지 느꼈다고 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그가 자라난 곳 이 샌디에이고와 국경에 붙어있는 티후아나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티후아나에 서 생활하며 샌디에이고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작은 버스를 타고 매일 국경을 건넌 다.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는 사람은 자본의 흐름을 역류하듯이 어렵게 출근을 한다.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미국에서 일을 하고 생활비가 적게 드는 멕시코에 서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만난 환경 운동가들의 저항 방식은 적을 더욱 살찌우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종교의 갑옷을 걸치고 그 뒤에 숨어서 개인의 이데 올로기를 주입 시키는 것은 속이 다 보이는 행위라고 했다. 그는 환경 운동가들에 게서도 서구를 향한 절대적인 동경을 느꼈다고 했는데 우리의 활동이 ‘푸른 눈의 예술가들이 본 내성천’이라는 제목으로 한겨례 신문에 기사가 나오는 것에서 절정 이었던 것 같다. 그 기사에는 작은 의도하지 않은 정보의 왜곡과 이해의 차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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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오해가 있었다. 그는 외국 작가들을 초청해서 같이 다니며, 그들에게 아이 디어를 달라고 하는 이 로드쇼 프로젝트도 그런 후기 식민지주의적인 발상이 아니 냐고 질책했다. 나 또한 기획자의 입장에서 ‘참여’와 ‘국제 교류’ 같은 단어에 대 한 의심이 하늘을 찔렀다.

많은 사람들의 비판은 환경 운동가들의 주장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

런 비판을 받는 것에는 액티비즘의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효과적인 비판을 위해 구체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다 보면, 작은 이슈에 집중하는것으로 보이고 일반인이 참여할수 있는 가능성에 한계가 생긴다. 존 코어스의 시선은 달 랐다. 그는 4대강 사업의 제도적인 결점과 권력에 동반하는 문제점들은 이제 익숙

히 들어서 알겠고, 이 사업이 문화적으로 왜 이슈가 되는지도 어렴풋이 알겠다고 했다. 허나 사업의 구체적인 문제제기에서 벗어나, 댐과 하천 공사가 진행된 후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있을 때 어떤 영향이 있을지, 가뭄과 홍수 대비책과 수자원 확보는 가까운 미래에 전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될 텐데 국가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또 제1세계에서는 작은 공사를 진행

하기도 너무나 어려운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빨리 일이 진행되는 것이 놀랍다고 했 다.

통역을 한 후에는 언제나 기진맥진해진다. 아론 마이어스와 프란 일리히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두 시간 정도도 발표를 하고 김선형 작가의 발표도 들었다. 잠시 후 떠다니는 낚시터인 좌대로 자리를 옮겨서 로드쇼의 내용을 정리하려고 했 다. 작가들은 마지막 날까지 빠듯한 일정에 상당히 지친 것 같았다. 유쾌한 분위 기가 아니고 누군가에게 의해 끌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모두의 노력으로 회 의는 비교적 잘 진행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좌대에 둘러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한 다는 낭만적인 상상과는 다르게 그곳은 너무 비좁았고, 양반자세로 앉는 것에 익 숙하지 않은 외국 작가들, 특히 남자들은 좌대의 밖에서 이야기를 들어서 소통 하 기가 어려웠다. 그 후 기획팀 내부회의를 하고 탈출하듯이 밖으로 나오니 매리 매 팅리가 다른 작가들과 배를 타고 촬영을 하고 있었다. ‘아 드디어 이 짧은 틈새 시 간에 새로운 작업이 만들어 지는구나!’ 하고 뿌듯했다. 웨어러블 홈Wearable home을 입은 김선형 작가, 노바 쟝 그리고 연미 작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노를 짓고 있 었다. 나는 서둘러 배를 타고 가서 촬영을 도왔다. 길고 어려운 여정의 끝부분에 창작의 시도가 시작되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자유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익숙한 고속도로 풍경이 이어졌다. 대형마트. 교


3. 로드쇼 다이어리

회. 아파트 단지. 톨게이트. 비닐하우스. 논. 모텔 그리고 주차장. 인터체인지. 이런 소도시 프로그램은 반복된다. 서울로 들어와서 한강을 건너 창경궁 옆에 호 텔에 작가들을 내려줄 때까지 익숙한 풍경이 이어졌다. 맑던 하늘은 곧 노을이 되 고, 긴 여름 저녁에 서울 근교를 따라 땅거미가 길게 늘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 위에 누웠다. 아직도 몸이 이동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지 난 2주일간 쉬지 않고 이동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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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로드쇼 다이어리

미술의 이름으로

8월 25일. 이틀 일찍 서울로 올라온 박은선 작가가 조계종 앞 스페이스 모래에서

존 코어스와 매리 매팅리의 2인전 <뉴욕, 내성천 그리고 우리의 호흡>을 열었다.

그와 동료 디자이너들이 밤을 새워가며 전시를 준비했다. 엄청난 기동력이다. 발 표의 통역을 하러 시간에 맞춰서 갔다. 작은 콘테이너에는 그들의 작업과 여러 정 보물들이 있었다. 일반 시민들과 불교 환경운동 관계자들이 꽤 있었는데 작가들 의 발표에 호응이 좋았다. 조금이라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정 말 좋은 일 같았다. 굴국밥을 먹고 청계천과 명동 근처를 걷다가 맥주 한잔을 하 고 작가들은 돌아갔다.

8월 26일. 토탈미술관에서 마지막 회의와 공개 발표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완벽히 지쳐 있었다. 회의에서는 작가들과의 의견 충돌이 또 있었 다. 발전 방향에 대해 묻자 그동안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는 작가들이 있었다. 문화적 차이와 기획 미숙의 문제로만 정리하기에는 불편한 지점이 있었다. 공개 행사의 시작에 노순택 작가의 발표가 있었고 박은선 작가가 소개한 <강, 원래>의 영상 작업도 보았다. 그 중에는 4대강 공사 사업장에서 일

하는 분들에 인터뷰도 있었다. 끝나고 신사동 플래툰쿤스트할레에 가서 그곳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도 만나서 술을 마시며 놀았다. 작가들이 너무 즐겁고 행복 해 보였다. 그냥 이곳에서 워크숍을 했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 는 생각이 들었다.

8월 27~29일. 뉴욕주에 허리케인 아이린Irene의 영향으로 항공편이 모두 취

소되어서 작가들의 귀환이 불확실해졌다. 이틀간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항공권의 예약을 변경해야 했다. 그러면서 작가들과 작은 마찰들이 있었다. 괴로운 마무리 였다. 공동체의 불가능함은 다른 사람이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길 바라는 욕망에서 시작한다. 참여는 불가능한 요구이다. ‘공공, 참여, 리서치, 과정 중심 작업’ 이딴 단어가 들어간 작업이 문제인 이유는 자신이 갖지 못한 능력을 보유한 다른 사람이 내 관심사에 대한 작업을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 이 아닌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다음 날, 버몬트 주에는 폭풍으로 많은 피해가 있었 다. 맨해튼을 중심으로 뉴욕 시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일부 작가들은 항공편을 바 꿔서 돌아갔고 몇 명은 이틀 정도 더 있다가 출발했다.

여행을 진행한지 시간이 넉넉하게 지났다. 여행의 끝에서 4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에 로드쇼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9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동안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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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전문 서적도 찾아보고, 부족한 지식에 답답해서 어떠한 정보가 더 있어야 판단 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식이 가장 절실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과도한 신중함이나, 용기 없음일 수도 있지만, 판 단을 하지 않음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동의하지 않는 것이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기처럼 무엇 을 봐주기를 바라는 기대, 공감을 요청하는 마음은 쉽게 호응받기 어렵다. 같은 곳 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동료가 아닐까 생각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선 자기 자신의 시선과 의견도 존중 받아야 한다. 무관심까지도 참여의 한가지 방 법이며, 그것도 존중해야 한다. 관심의 방법과 시선의 중심이 약간 다른 것일 뿐 완벽한 부정은 아니다. 무관심한 자들은 내부의 적이 아니라 어쩌면 동지가 될 가 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서로 존중하는 방법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접근하는 방법도 다르고. 하지만 많은 일정을 짧은 시간 안에 소 화하려다 보니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입장에서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사물을 보는 것과 직접 보고 느끼고 경험을 같이 하는 것은 많이 다르다.

로드쇼:대한민국은 아카이브 작업과 참여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계속 진

행하고 있다. 2012년 1월에는 경인 아라 뱃길에서 퍼포먼스를 했으며 옥인콜렉티

브와 함께 라디오 방송을 녹화했고 4월에는 매리 매팅리와 존 코어스와 함께 버몬

트 주에 있는 베닝튼 대학Bennington College 에서 <저항과 복원Resistance and Resilience>이 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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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 콜렉티브 옥인아파트에 거주하던 한 작가의 초대와 그에 대한 동료 작가들의 응답(2009년 7월)에서 시작 된 ‘옥인아파트 프로젝트’는(okinapt.blogspot.com) 옥인아파트의 급작스런 철거 과정에서 남겨 진 세입자들이 처한 난감한 상황과 이미 떠나버린 거주민들의 흔적, 근대적 건축물이 지닌 상징 성과 주변지역의 역사성 등이 뒤얽힌 공간에 대한 탐사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같은 프로 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성된 것이 옥인 콜렉티브이다. 언제나 개발 중인 도시에서 급작스레 사망 선고를 받게 되는 공간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정황은 도시민 누구에게나 항 시 대기 중이며, 이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개발에 대한 이원론적인 찬반이나 커뮤 니티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의 폭을 넓히는 것이었다.

okin.cc

1 리버사이드 잔혹극, Theater of Cruelty on the Riverside


옥인 콜렉티브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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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사진 작가. 지나간 한국전쟁이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전쟁과 분단을 고정된 역사의 장에 편입시킨 채 시시때때로 아전인수식 해석잔치를 벌이는 ‘분 단권력’의 빈틈을 째려보려는 것이다. 분단권력은 남북한에서 작동하는 동시에 오작동하는 현 실의 괴물이다. 그 괴물의 틈바구니에서 흘러나오는 가래침과 탁한 피, 광기와 침묵, 수혜와 피 해, 폭소와 냉소, 정지와 유동을 이미지와 글로 주워 담았다가 다시금 흘려보내는 짓을 하고 있 다. 그러한 훼방질, 항구적 예외상태를 꿈꾸는 괴물의 틈을 헤집어 간섭함으로써 오늘의 정치성 을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게 쉽지가 않다.

suntag.net

1 내성천_사람_Nova_Jiang


노순택

2 내성천_사람_연미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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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성천_사람_Fran_Ilich

4 내성천_사람_Jon_Cohrs


노순택

5 내성천_사람_Aron_Meyers

6 내성천_사람_Aron_Meyers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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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성천_사람_모르는

8 내성천_사람_모르는


노순택

9 내성천_사람_모르는

10 내성천_사람_박은선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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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선 리슨투 더시티는 예술가의 새로운 역할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더니즘 예술은 예술 자체 에 대한 질문 즉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예술로 대답해가는 과정이었다. 메타(meta) 예술의 강박 적 자기 성찰은 예술가의 역할을 개인적 대답에 골몰하게 하여 예술 밖의 조건들과 유리되었다. 리슨투더시티는 예술 외부적 조건들을 조금 더 자유롭게 사유하기 위해 조직된 창작/비평 공동 체이다. 또한 현대미술의 신자유주의화는 갤러리나 큐레이터 비평가에 대한 작가들의 의존도를 더욱 높게 하였다. 리슨투더시티는 이러한 조건하에서 예술가들이 좀 더 자발적으로 사유하고 표현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장치이다.

listentothecity.org

내성천 모래에서

나는 리슨투더시티 라는 예술-액티비즘 그룹의 일원으로 한국 정 부의 ‘4대강 공사’가 시작되던 2009년부터 계속 강에 대한 일을

해왔다.

강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2009

년 겨울 크리스마스에 강에 내려갔을 때 강이 너무 아름다워서 잊

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 겨울은 4대강 공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정부가 죽었다고 하던 낙동강은 아

주 맑고 아름다웠다. 정부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 보다 이 렇게 아름다운 강에 처음 와 본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큰 충격 이었다.

3년 넘는 시간 동안 강에 대한 개발을 막으려고 여러 가지 방

법으로 일을 해왔지만 결국 강에는 흉측한 콘크리트 댐이 22개나

들어서게 됐다. 강에 처음 내려갔을 때는 이 비극이 모두 대통령

과 그 측근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일에 좀 더 깊게 관 여할수록 지금 이 시대의 욕망이 강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 달았다. 한 사람의 탐욕 때문에 방향이 잘못 된 것이라면 그 사람 을 제거하면 되겠지만 강에서 일어난 일은 물질의 획득이 그 어떤 가치보다 앞서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 누구를 탓할 수


4. 참여작가

박은선

1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래

3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웹사이트

2 내성천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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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내성천 땅 한 평 사기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5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래 <뉴욕, 내성천, 그리고 우리의 호흡> 오프 닝 퍼포먼스


박은선

4. 참여작가

도 없었다.

2010년 봄 이후로 강은 너무나 많이 훼손되었고, 강의 일을

하던 몇몇 사람들은 내성천으로 눈을 돌렸다. 회의와 낙담만을 내 뱉는 것 보다 지금이라도 지킬 수 있는 곳을 찾아내고자 하는 결의 로 찾은 곳이 아름다운 모래 강, 낙동강의 상류 내성천이다. 내성천은 내가 태어나서 가 본 곳 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소였지만 상류에는 영주댐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하류에는 자전거 도로공사 가 예정되어 있어 언제 개발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강은 무슨 방법으로든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성천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릴 때, 정부와 싸우는 일을 넘

어, 사람들의 감수성에 잠재된 자연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중요함을, 그리고 그것이 감성과 감응으로 촉발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예술의 창조성과 자율적인 힘을 액티비즘과 균 형있게 끌고 나가는 것이 강의 문제를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는데 매우 중요했다.

오랫동안 낙동강을 관찰해온 지율 스님과 리슨투더시티는

작은 프로젝트 스페이스 ‘모래’를 만들고 많은 문화행사를 기획했 다. 작은 공간이지만, 파장이 크지 않더라도 강에 대한 많은 이야 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누고 싶었다.

지난 8월 더운 여름 미술 하는 사람들이 강에 내려온다는 소

식을 전해 들었다. 절반은 뉴욕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이고 절반은 한국 작가들이었다. 강에 대해 3년 동안 여러 일을 하면서

순수미술 하는 사람들이 강에 내려오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반갑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왜냐하면 모두 가 강에 관심이 매우 많아서 여행에 참여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여 행이 즐겁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이 런 문제’, ‘근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많은 타인과 함께 이야기 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강에 다녀갔지만 그 이후에도 강에 지속적

으로 마음을 쓰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강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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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파괴된 상태이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소모적으로 끝나 지 않을까 고민도 많이 되었다. 혹은 강의 문제는 크고 복잡해서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로, 강의 이미지만을 소비하고 끝날 수도 있 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강에 누군가 관심을 가 져주는 것은, 그 강도(强度)에 상관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여행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관심사도 다르고 예술에 대한

관점도 다른 다양한 작가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유람하는 것은 다 른 작가들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지율 스님 이 여행에 참여해 주셨는데, 스님과 낙동강의 상황을 잘 이해 할 수 없는 작가들은 스님의 존재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하였 다. 강을 한 가지 시선으로만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시선으로 강을 본다면 그것은 더 나았을까 하는 의문, 그리고 한편으로 그 불편함이 정말 한 가 지 시선으로만 강을 보는 데서 생겼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 리 여행에 스님을 초대한 것은 스님이 연장자 이거나 스님이기 때 문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강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4 대강 공사 처음부터 지금까지 강의 곁에서 강을 계속 지켜본 사람

은 지금 단 한 사람, 지율 스님 밖에 없다. 스님의 안내는 강을 보 는 한 가지 시선일 수도 있지만 가장 정확한 시선일 수도 있었다. 보라고 강요한 사람은 없었지만 강요로 느끼는 사람들은 있었다. 이것은 예술가에 대한 진정성의 강요가 아니라 한 사람의 동지라 도 더 만들고 싶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한 사람의 호소였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평소 관심이 많던 문제가 아닌 것에 핵심부터 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느꼈다.

여러 작가들이 강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반응할지 궁금했는

데, 다들 강 자체 보다는 여행의 과정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기 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강에 친숙해져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장마철이 아니었으면 사람들이 더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내내 아쉬웠다. 날이 아주 맑았던 하


박은선

4. 참여작가

6 4대강 반대 티셔츠

7 병산서원 앞

8 <강이 도시가 된다>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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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병산서원 앞의 안동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물을 즐기던 장면 이 머리에 선명하다.

미국에서 온 작가들과 멕시코에서 온 프란은 여러 가지 아

이디어를 쏟아냈다. 그중 튜빙(튜브를 타고 강을 내려가는 것)도 있었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설업자들을 암살하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 중 튜빙은 9월에 정말 실천했다. 8월 이후 내성천 한

평 사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진행해서 현재 600명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600평 정도의 땅을 구입했다. 그리고 땅을 구입한 사람

들에게 내성천 모래가 담긴 병을 증서로 보냈고, 그 병에는 낙동 강을 재자연화 하는 날 그 병을 들고 내성천 하류에 와 달라는 문 구가 적혀있다.

지금 평화로워 보이는 강이지만 봄에 만약 공사가 시작된다

면 막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공사가 시작되면 그곳에서 스쾃을 하기 위해 주소를 얼마 전 내성천으로 옮겨놓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지율 스님은 내성천 공식 홈 페이지, naeseong.org 를 개설했다.

지금 영하 16도로 내려간 내성천 강가에 와있다. 얼어붙은

강은 춥지만 아름답다. 내성천의 문제는 강이라는 기본적인 지구

의 요소이자 문명이 시작된 근간이 위협받는 사건이지만 강의 문 제를 도시의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강이 제대로 넘치고 마르면서 구불구불 흐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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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운 토탈미술관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1 내성천 한 평 사기 증서

2


이여운

3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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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미 신문이라는 매체는 사건의 수집, 분류, 편집, 인쇄, 유통, 구독의 과정을 가진다. 지금까지 본 인이 해 온 신문 작업은 신문이 가지는 편집방식을 뒤틀거나 전복시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유통 과 구독의 과정은 설치와 퍼포먼스로 표현해왔다. 전시장에서 힘있게 보여주기도 하고 직접 거 리로 나가서 신문을 읽어주듯 작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동형 신문가판대는 지역따라 시간따라 다른 구조로 발행되는 신문으로 작업해 온 작품을 다른 지역과 다른 시간에서 직접 보여주고 관람자의 반응을 접하는 공간이다.

mindsize.kr

1 오직 모래길 (Only Sandy Course), 안내책자에 테이핑. 도시에서 자라서 강을 몰랐다. 이번 로드쇼에서 강을 걸 으면서 강의 모래 길이 나를 부드럽게 기분좋게 만들 줄 몰랐다. 강 모래 길을 느끼게 되어서 기뻤던 기억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테이프로 봉했다.


연미

2 바라보다 (Look), 안내포스터위에 스티커

로드쇼를 출발하면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안내책자와 4대 강이 그려진 포스터를 받았다. 로드쇼를 마치고 돌아와 그 포스터에 스티커를 붙였다.

3 8월 20일 저녁을 먹고 난 후 회의를 하면서 우리를 안내해준 스님에게 불편 한 의견을 내놓고 맘이 편하지 않아서 모두들 잠든 시간에 숙소를 나와 편지를 썼다. 결국 전하지 못 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쓴게 아 닐까하는 의심때문에…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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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스스탠드 (Newsstand), 병산서원 앞 백사장

병산서원앞 강가에서 신문가판대를 펼쳤다. 사람보다 나무가 많 은 곳에 서, 건물보다 물이 많은 곳에서 가판 대를 펼치니 관람자 들도 여유있게 보 고 차분하게 대화를 하게되었다.

5 뉴스스탠드 (Newsstand), 강남역


연미

6 스캔 부산 (Scanned Busan), 신문위에 드로잉

8월 23일, 부산 번화가에서 나눠주던 무가지 신문이다.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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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형 복합매체 설치와 퍼포먼스를 통해 시각적, 청각적 변화를 정형화 되지 않은 상호작용으로 창조 하고 신체행위와 감각의 전환, 재배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allcoo.net

1 흐름 흐르다 보면 깎이고 쌓이고 변화한다. 흐르다 보면 치유되고 회복되기도 한다. 흐르다 보면 만나기도 하 고 멀어지기도 한다. 시간도 강물도 인연도 그것이 살아 움직인다면 돌아서 흐르는 것 이 이치이다.

3 물놀이 가족인 듯 아이들이 물놀이를 한다. 우리도 발을 담궈 보고. 옷 을 입은 채로 물놀이를 해본다. 물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모래 를 움켜쥐어보고 비벼본다. 아이가 강에서 우렁이를 건져 보여준 다. 생명체를 소중히 쥔 아이의 손이 조심스럽다. 물속을 노닐며 자연을 알게 된다.

5 가옥 문지방에 걸터앉아 쉬어 가기도 하고 마치 그 이전의 가객인양 들 어가 어르신께 실례를 무릅쓰고 오랜 동안 제자리를 지켜 온 물 건들을 들여다 보기도 한다. 고택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서 지내 보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풍경과 환경에 거스르지 않는 건 축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로 공존하고자한 세심함과 배 려를 엿볼 수 있다.

2 모래 내성천 모래톱을 걸어 본다. 모래톱에 가볍게 찰랑거리는 강물. 반짝거리는 표면. 오랜 시간 동안 깨지고 다듬어져 왔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굴러가는 모래의 소리들이 들리는 듯... 다시 모래톱에 찰랑거리는 물위를 걸어본다

4 동행자 어느 여행이든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용기를 준다. 지도의 좌표지 점을 찾아가긴 하지만 관광지를 찍고 돌아서는 것과는 사뭇 다르 다. 우려와 열정이 공존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6 풍경 여행중 산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슬리퍼에 짧은 바지들을 입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는 산행길이였고 아무렇게나 자라난 풀숲 과 나무 아래 산딸기를 발견하고 옆에 걷는 이에게 건네본다. 산 길을 가다보면 습지를 만나고 또 다른 생태들을 관찰 할 수 있다. 그리고 뱃사공이 노를 젓는 강을 건너 오래된 마을에 도달한다. 강물의 흐름이 구비구비 돌아 만든 지형이 만들어낸 풍경과 마 을...하회마을... 세월이 지켜온 곳...


4. 참여작가

김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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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 대한민국>에서 채집된 소리와 영상, 사진들을 11개의 단순화 된 키워드를 통해 청각적 시각적 경험으로 재구성했다. 이 키워드들은 특 정적인 장소에서 감흥과 목격을 통해 기록한 것이며 이 물성과 기록에 대한 표면적인 묘사는 공간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다. 시각적으로 변형되거나 재생된 영상물과 회고를 통해 생산된 사운드는 상호작용과 상관관계를 통해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현존하는 가치에 대한 직시와 재생과 회복의 염원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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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여작가

김선형

7 무덤 안동을 떠나 구미로 가는 길에서 강에서 퍼 나른 토사들이 수만 평의 논바닥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수천 개의 봉분들을 만들 어 놓은 듯한 그 풍경은 황량하게 버려진 무덤들을 마주한 것과 같다. 예전 모습으로 돌리기는 늦어버린 듯한 막막함이 전해져 와 마음이 답답해졌다.

9 길위에서 어느 여행보다도 이동이 많았던 여행이었다. 버스는 강을 내려다 보면서 달리고 우리는 또 다시 씁쓸한 마음을 뒤에 두고 떠난다.

11 하구 낙동강의 하구 낙동강의 끝.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 강의 표정들 이 그리고 감정들이 모이는 곳, 을숙도 철새 관측소가 있어서 철마 다 찾아오는 다양한 새들을 볼 수 있던곳, 생태의 보고, 하지만 이 미 많은 산업발전과 도시계획들이 훼손하고 덮어버린곳.

8 콘크리트 강줄기 산자락들은 이제 반듯하게 잘려나가 버리고 푸르러야 할 황토 빛 둑들은 회색 콘크리트를 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씁 쓸한 광경을 보고 우리가 지나오는 순간에도 계속 깎임과 파헤쳐 짐에 급격히 사라질 그곳들을 보면서 건강한 사람의 몸을 인공장 기들로 대체해 버린듯한,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안타깝다. 이젠 스스로 키워내던 강의 푸르름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다.

10 순례 무덤덤한 마음으로 시작해서 지극한 마음으로 지역들을 둘러보 는 것은 순례와 같다. 인간중심적인 개발이 휘몰아치는 현장들 을 목격하고 의문들을 확인해 본다. 그리고 간절히 빌어 본다. 그 대로 흐르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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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쟝 노바 쟝은 중국 다롄에서 1985년에 태어났고 현재 뉴욕에서 활동한다. 노바의 작업은 촉각 적이 고 창의적인 장치를 통해서 개방적인 시스템을 만들어 즐겁고 때론 혼란스러운 즉흥적인 참여를 유발한다. 그는 UCLA에서 미디어 아트로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Skowhegan, Sculpture Space, Wave Hill 레지던시에 참여했으며 2011년 Eyebeam 펠로우로 활동했다. 또한 선댄스, 01SJ 비엔 날래 등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novaji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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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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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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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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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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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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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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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범 생명과학을 전공했으나 앨런 케이 (Alan Kay)를 만나고 엔드유저를 위한 컴퓨팅 환경에 대해 고 민하기 시작했다. 스몰토크 (Smalltalk) 한국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대안언어축제와 같은 컴퓨 팅 커뮤니티 활동을 하였고, 애자일 (Agile)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협력과 ‘매일매일 개선하기’에 대한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작가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그들의 생각과 표현방식을 어깨너 머로 관찰하면서 배우고 있고, 현재는 핵폭발보다도 무섭다는 정보과학의 폭발 아래 나약한 개 인이 되지 않으려는 방법들을 찾아 나가고 있다.

xenbio.net

강의 느낌

처음으로 가깝게 만난 강의 모습은 빗물에 불어 조금 빠르게 흐르는 흙빛의 물이었다. 그런 강물 앞에서는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진다. 왠지 다가가서는 안 될 대상이다. 나와 강 사이에 벽이라도 세워야 안심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만난 어떤 강도 내 발로 걸어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된 적이 없었다. 강이란 나에게 그런 느낌이었다. 강 밖에서는 한두 문장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눈으로 보고,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는 일은 익숙하다. 하지만 강바닥을 밟는 일은 최초의 경험이다.


김승범

4. 참여작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은 매 순간이 새롭다. 한두 문장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각각 느낌을 적다 보면 내가 접한 강의 모습이 그려질지도 모르 겠다. 모래 안으로 발이 파묻힌다. 모랫바닥으로 발을 넣을 때와 뺄 때의 느낌이 다르다. 약간은 거친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를 메운다. 깊은 모랫바닥에선 무릎까지 움푹 빠진다. 강바닥의 모래 언덕을 올라가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두 다리에서 흐르는 강물이 갈라지면서 피부를 긁고 지나간다. 강바닥 위에서 뛰려고 하면 몸은 엉거주춤 기운다. 늪의 바닥에선 질퍽하게 발이 잠긴다. 발이 들어간 모래 안에는 차가운 지하수가, 그 위는 따뜻한 강물 이 흐르기도 한다. 얕은 물 위에 몸을 띄우면 강이 귀를 덮어 조용해진다. 천천히 몸이 떠내려가면서 엉덩이가 모랫바닥에 끌린다. 흐르는 강물 위에 서 있으면 내 몸이 움직이는 듯 느껴진다. 물 따라 내려가는 길에서는 몸이 가벼워진다.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서는 몸에 힘이 들어간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은 포근함을 준다. …… 그러나, 나는 다시 강 밖으로 나와야 했다. 밟을 수 없는 강을 바라만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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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윤 구지윤은 회화작업을 매개로 개인이 한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그 안에서 생기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현재 뉴욕과 서울을 중심으로 회화, 퍼포먼스, 워크샵, 전시 기획 을 하고 있다.

jihaekoo.com

1 100 Folding Paintings No.14


구지윤

2 100 Folding Paintings No.14

3 100 Folding Paintings No.14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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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 그 이후

한강 다리를 건널 때 내려다 보이는 콘크리트 계단과 제방이 괜히 낯설게 느껴진다. 나도 여태껏 그래왔지만, 서울 시민들은 한강 물에 발을 담궈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콘크리트 제방 바로 밑으로 출렁거리는 강물을 보면 한 발 자국 뒤로 물러나게 된 다. 그리고 한강 수면위의 죽은 물고기들과 피부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수질 오염 기사를 떠올린다. 한강이라는 곳은 내가 어렸 을 적 윈드서핑을 하시던 아빠를 따라 주말마다 놀러왔던 아련한 기억이 있는 곳이며, 연인과 손을 잡고 함께 걸었던 낭만의 장소 임과 동시에 지금은 멀리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아야 하는 불안과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강물에 발을 담근다는 것’.. 로드쇼 당시, 강만 보면 너나 할것

4 100 Folding Paintings No.14


구지윤

4. 참여작가

없이 신발을 벗어던지고 사박사박 모래를 밟으며 강으로 걸어들 어갔는데, 역시나 그런 유희는 한강에선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 가 발을 담그고 사람들과 물장난을 치며 놀던 낙동강도 이렇게 변 할 것이라고하니…. 다시 그 곳에 갔을 때에는 멀찍이서 제방밑으 로 떨어지지않게 거리를 유지하며 빠른 물살을 눈과 귀로만 체감 해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난 여태껏 한강을 보기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의지에 의한 것 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진다. 안타깝지만 한강은 철저 하게 ‘바라 보아야 하는 관조의 대상’이기에… 다른 말로 말하자면 우리는 강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온갖 자본과 권력을 끌어다가 만든 한강에 띄워놓은 괴물과도 같 은 건축물 혹은 상징물은 시선의 강요이며, 폭력이다. 나는 그 앞 에서 가장 손쉽게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위, 나의 그림을 접 는 것을 통해 나의 실패작을 바꿔놓았다. 이 행위는 거대한 시각 적 스펙터클에 저항하는 가장 무력한 행위로 보일지 몰라도, 고요 하고 개인적이었으며 눈에 띄지않는 투명한 시위였다. 100 fold-

ing paintings 기록 영상물에서 사람들은 행위자(나)를 보지못하

는 듯 무심하게 지나가지만, 나와 그 공간은 서로를 응시하고 있 는 듯 묘한 긴장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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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00 Folding Paintings No.17

6 100 Folding Paintings No.17


구지윤

7 100 Folding Paintings No.17

8 100 Folding Paintings No.17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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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영 소원영은 입자의 단순한 패턴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시스템과 사람이 도시공간을 구성하는 방 식을 웹 등 대안적인 공간을 통해서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 (tumblbug.com)의 설립자이며 로드쇼 프로젝트의 펀딩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의 작업은 Adobe, Lift Conference 등에서 수상 및 전시되었다.

tiia.kr

1 구제역 매몰지 위험 감시 지도 FMDN (fmdn.tiia.kr) FMDN은 2000년, 2002년에 이어 2010년 말부터 크게 창궐 한 구제역 매몰지에 대한 시각화 지도 작업이다. 구제역은 갈라 진 발톱이 있는 가축에게 치명적인 증상을 가져오는 바이러스 로 퍼지는 것을 막았다 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번질 수 있는 위험 한 바이러스이다.

구제역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이 묻혔는 데, 이들의 사체는 매몰 후에는 사체가 썩어 침출수로 바뀌어 우리들에 게 직접적인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 해 구제역 매몰지의 침출수에 대한 다양한 층위의 데이터를 모아 모니 터링할 수 있는 지도를 만들었다. 구제역 매몰지의 위험도를 여러 방향 의 데이터(하천, 지하수 오염, 토양오염 등)를 통해 감시하고 그것을 개 선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소원영

2 구제역 매몰지 위험 감시 지도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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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FMDN 시간별 확산 현황

로드쇼는 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해준 여행이었다는 것은 내가 조금은 덤으로 얻은 경험이랄까. 한국과 미국 작가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이들과 같이 먹고 자고 숨을 교류하고 속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찬스를 잡았음에 일단은 그것만으로도 큰 경험이 되겠구나 싶었다. 분명 도시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바쁜 일상속에서 튀어나와 물을 가까이 하고 약간은 불편한 잠자리를 함께 해결하고 진지하게 작업에 대해 오랜 기간동안 이야기한다는것 자체가 이 여행의 핵 심이겠거니... 나는 일관되게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자라온 사람이고 한강에 대한 추억은 있지만 이미 내가 다 자라고 생각이란 것을 정리할 때 가 되어보니 이미 한강은 콘크리트로 꽉 막힌, 굉장히 도시적인 강이 되어있었다 - 어떻게 보면 엄청 서울스러운 강이기도 하겠


소원영

4. 참여작가

지만. 강과 자연에 대해 굉장히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내 가 현재 이런 마음에서 더 나은 환경에 대해 사람들에게 주문한다 면 그건 굉장한 위선일 것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다면 절대 그런 메시지는 던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왔다. 사정이 있어 여행에 조금 늦게 합류하고 조금 빨리 해산했다. 익 숙하지 않은 강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보다, 진실되게 풍경을 마주하고 같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 된 노력ㅡ혹은 다수가 그렇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믿음일 수 도ㅡ이 생각들을 모아 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뻔한 이야 기일 수도 있지만 강을 직접 느끼는 여러 프로그램들은 특별할 수 밖에 없기도 했다. 살에 강물이 닿고 모니터가 아닌 직접 눈으로 보는 강과 이야기들은 힘이 넘치고 신선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강물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투어 자체가 주는 매력도 컸 다. 작가들은 강을 둘러보고 돌아와 각자의 진지한 작업 세계를 이야기하고, 느낀 점을 쉴 새 없이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직접 강 을 보고 오는 것보다 어쩌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반바지를 입고 평상에 걸터앉아 양파링을 까 먹으며 모 기를 쫓아가며 작업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평생 잊을 수 없 는 기억이 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주시하고 표현하고 싶어하는 나에게, 미디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그 것을 수치화 하는 것 보다도 어떤 현상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프로 그램이 짜이고 약간은 오랫동안 관찰하는 것이 시각에 얼마나 변 화가 올 수 있을지에 대한 체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이 로드 쇼가 의도하는 바이기도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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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 매팅리 매리 매팅리는 퍼포먼스, 조각, 건축과 다큐멘테이션을 통한 작업을 한다. 그의 작업은 유목 생 활을 주제로 웨어러블 건축과 자생적인 생활 공간을 만들어서 미래에 환경 변화와 정치적인 상황 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을 준비한다. 매리는 Pacific Northwest College of Art를 졸업하고 2009 년에 바지선 위에서 최소의 외부 도움으로 생활할 수 있는 Waterpod 프로젝트를 시작해서 그해 200,000명 이상의 관객이 방문했다. 2011년부터 Eyebeam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다.

marymattingly.com

1 Wearable Home, 고삼 저수지에서 퍼포먼스


매리 매팅리

2 Waterpod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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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리 매팅리

3 로드쇼: 대한민국 4대강 주변의 개발과 준설은 그동안 자연스럽게 서서히 변화해 오던 생태계와 주거지를 급격하게 바꿔 놓을 것이다. 서서히 변 하는 생태계를 보전할 방법은 없을까? 어쩌면 거기에서 금전적 인 가치를 찾을 수도 있다. 공원이라고 해 보자. 신설된 강 한가 운데 있는 섬 같은 공원은 생태 관광 (eco-tour) 을 나온 이들 을 유혹한다.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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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플락 하우스


4. 참여작가

매리 매팅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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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락 하우스는 모든 기반시설이 이동을 기반으로 하고, 부품들은 교체 및 변환 가능한 세계를 제안하는 물리적인 표현이다. 그곳 에는 일상의습관적 행위를 위한 공간도 있고 섬이라는 한계에 대 한 생각은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집 안에서 하던 행위와 의식, 식 사, 목욕, 휴식을 위한 공간이 있고, 개인적인소유의 욕구는 사라 진다. 사용자는 그저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할 때만 빌리고 소유 하지 않는다.

사회 전반적인 평균화와 한 개인에게 부여되는 사회경제적, 윤리 적, 성적 역할의 감소는 도시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책임감을 키운 다. 아파트가 거주지로서위상을 잃고 도시 공간 자체가 사람들의 거주지가 된다. 거주자는 어디에든 살 수 있고, 개인의 소유권을 더 넓은 영역에서 부릴 수 있게 된다. 여기에 더해 전세계적으로 자유로운 이민이 가능해짐에 따라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 할 때 영토적인 제약을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남는 물건을 끌고 갈 필요도 없다.

이동 가능하고 자가 충족적인 생활 유닛이 미래 도시를 구성하는 단위가 된다면 어떨까? 플락 하우스는 도시공간의 미래를 반영 하면서 이미 있는 것을 짓는다. 이주하는 공공 조형적 생활 공간 으로서, 이동 가능하며 모듈식으로 합체 가능하다. 늘어난 도시의 인구가 환경, 정치, 경제적인 불안정에 직면하고 이탈과 재정착을 고려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해질 때, 플락 하우스는 미국의 도 시 중심에 위치를 옮겨가며 이동하고, 세가지 생활의 지대 (지하, 지상 그리고 공중)에서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플락 하우스는 선물 경제 안에서 찾은 재활용, 재-디자인, 그리

고 재-고려된 재료들로 여러 사람과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진 다. 플락 하우스는 자연 생태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 로 활용하는데, 예를 들면 빗물의 정수 시스템, 도심 내의 농경, 태 양열 기술 등을 활용할 장비가 준비되어 있다. 플락 하우스의 모 양은 현재 지구의 인구 이동, 이민 그리고 순례자 등의 패턴에서 영감을 받았다. 워크숍과 행사, 인터랙티브 웹사이트 그리고 휴대 전화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투어 등을 통해서 이 프로젝트가 구 현하고자 하는 것은 공동체의 자율성을 증대시키고 자원의 활용 과 배움, 호기심, 창의적인 발견을 장려하는 것이다.

일부는 환상적이고 일부는 실질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식 플락 하 우스의 생활 체계는 틈새적인 것으로, 때로는 자율적이고 때로는 그 지역 공동체와 사람 간의 관계에 기대서 협업하고 나눈다. 실 제 생활 체계로서 플락 하우스 거주자들은 형식적이지 않은 분야 를 넘나드는, 경계와 국경, 한계, 소유와 예절의 선을 넘나든다. 플 락 하우스는 도시의 생태계의 일부로 이동하는 구조가 된다. 움직 여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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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코어스 존 코어스는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음향 기술자이자 시각예술가이다. 존의 작업은 유머와 터 무니없는 상상력을 통해서 참여하는 장소 특정적인 작업을 한다. Ars Electronica, FutureEverything, Ditch Projects 등의 페스티벌에서 작품을 전시했다. 2010년에는 Eyebeam 팰로우로 활동 했으며 Parsons, The New School for Design과 SUNY Purchase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splnlss.com

1 All-Salt


4. 참여작가

존 코어스

2 All-Salt 제작과정

북쪽 뉴저지 습지 근방에 있는 인공 조미료 공장지대만큼 현대 사회에 서 음식과 생산지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곳은 없다. 습지는 오랜 기간 동안 여러 공장들이 폐기물을 버리는 곳이었으나 근래에는 인공 조미료 공장이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모여있는 지역이 되었다. 한 때는 활발한 자연 시스템이 있던 곳은 환경 복원 시설 부지로 사용 되 다가, 후기 산업화 풍경,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는 도시적인 황무 지, 자연, 이 되어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대부분의 “자연적인 맛”의 생 산지가 되었다. 뉴저지 습지는 그곳에 내재된 깊은 역사와 괴기한 생태계, 그 안에 있는 공업 단지, 그리고 미국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도시에 바로 옆에 있 는 장소성 등으로 탐험하기에 아주 흥미로운 장소이다. 이 습지는 오랫 동안 모기가 들끓는 쓰레기장으로, 재개발하거나 뉴욕에서 가까운 장 소를 개발하려던 여러 번의 시도에 실패했다. 1960년대 정도에는 습 지는 많이 오염되었고 해캔색 강 (Hackensack River) 근방의 강가에 는 쓰레기 더미가 상습적으로 불탔고, 어떤 곳은 몇십 년간 계속해서 방 화/불법 소각로로 사용되었다. 1970년 클린 워터 액트 (Clean Water Act) 가 통과한 후에 습지는 서서히 그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사 라졌던 자연은 다시 돌아왔고 헝클어진 습지대 중 일부는 수퍼펀드 (Superfund) 지역으로 지정되어서 다시 회복되었다. 산업 지대는 아직 도 그대로 있지만, 많은 기업은 남쪽으로 내려가서 많은 공장과 이전에 공장으로 쓰이던 건물의 구조들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후기-산업화 의 황무지는 계속해서 복구되고 있지만 작은 지류인 파사익 강 (Passaic River) 등은 아직도 미국에서 가장 오염된 강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이 곳은 몇만 명이 사는 대도시 바로 몇 마일 옆에 있지만 계속해서 삭막한 풍경으로 유지된다. 오염과 위험한 쓰레기, 그리고 어쩌면 짐 호파 (Jim Hoffa) 의 시체가 버려졌을 수도 있는 것을 빼면, 이 습지도 지금처럼 황 무지의 모습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3 All-Salt 퍼포먼스

인공 조미료 산업이 이 습지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00년대 초기로, 케 첩과 같은 첨가제와 식초를 기본 재료로 한 첨가제가 방부제가 인기를 모은 시기였다. 점차 조미사들은 더 많은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복 잡한 방법을 통해 구체적인 맛을 만들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인공 조미 료의 목적은 단 한가지였다. 음식의 맛을 좋게 오래 보존하는 것이다. 그 후 이 분야는 당시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고도의 과학 기술이 되었다.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인공 조미료는 이 습지에서 만들 어 진다. 푸르트롬 (Frutarom), 카길 (Cargill), 타카사고 (Takasago) 등 과 세계에서 가장 큰 조미료 회사인 인터내셔널 플레이버스 (International Flavors) 와 프래그랜스 (Frangrances) 는 둘 다 연구 시설과 생 산 시설을 습지 근방에 두고 있다. 2005년에서 2009년 사이에 뉴욕 시민들은 종종 등장하는 뜬금없는 메이플 시럽 냄새를 두고 불평했다. 9-11 테러 직후의 주변 환경은, 예 측에 없던 냄새까지도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굉장 히 다른 기억을 불러냈는데, 편안하고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냄새가 유 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우리가 평생 알고 지냈던 어떠한 냄새가 사실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할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나 쁘게, 노스탤지어의 냄새가 치명적인 환경 재앙일 수 있을까? 메이플 시 럽의 냄새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고 유머러스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 습지에 있는 푸르트롬 회사의 공장에서 나는 냄새이고 바람이 특정 한 방향을 향하면 그 냄새가 맨해튼으로 건너오게 된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음식은 때로 내가 자연과 통하는 유일한 연결 점이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할 때는 특히 내가 살아있고 숨 쉬는 생명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연결점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유기 농 음식과 지역 생산 음식을 먹고자 하는 것은 이런 연결점을 찾고자 하 는 무의식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은유적인 것이 있다. 우리 의 음식 시스템은 복잡해서 우리가 그 시스템에서 빠져 나와서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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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생산된 음식만 먹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어떻게 지역에서 생산된 음 식을 정의할 것인가? 왜 이곳에서 4마일 떨어진 곳에서 만들어진 음식 은 로컬로 인정하지 않고, 백오십 마일 떨어진 곳에서 생산된 오이는 로 컬로 부르는가? 우리는 일년 내내 바나나를 먹기 원하면서 왜 보존된 음 식은 섭취하기를 거부하는가? 특히 그것이 몇 마일만 이동하면 되고 더 오랫동안 먹을 수 있고 도착하면 썩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또한 혼란스 러운 것은 채식주의자들이 건강과 환경을 위해서 고기를 먹지 않으면서 고기의 맛을 인공적으로 낸 가짜 고기는 먹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피하고자 하는 것을 바로 모방해 놓은 것인데도 말이다. 결국 콩 과 옥수수 필러 (Corn filler) 와 인공 조미료로 만들어진 것을 먹으면 자 신이 느끼는 맛과 그 느낌은 실제로 섭취하는 것이 아닌 허구의 형상임 을 알면서도 말이다. 이 작업은 카누를 타고 여행하는 탐험가의 시선으로 후기-공업화 풍경 을 바라보며 습지 근처에서 캠핑을 하며 인공 조미료 공장을 찾아 간다. 나와 함께하는 팀은 공장을 찾아가서 인간의 맛에 대한 감각과 그것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것이 만들어진 기술적인 과정을 가리는 것을 더욱 이 해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습지의 근처에서 밥을 먹고 캠핑을 하며 그 주변 환경과 그곳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더욱 이해하고자 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는 것은 이 주제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는 다 양한 시선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식사를 직접 만들어야 하며, 모 든 생활의 배경에는 삭막한 풍경, 예를 들면 거대한 배라든지, 공항, 철 도 등, 인공 조미료의 유통을 지원하는 인프라와 산업 장비들이 있고 이 런 풍경이 중첩되면서 “자연스러운” 것과 인공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 한 지각과 혼란을 잘 보여주고, 이는 우리와 음식의 관계를 비춘다.

이 작업은 리서치 프로젝트이자 자연스러운것에 대한 미학과, 그것이 우 리의 감각에 의존하는 것과, 우리가 진짜 라고 정의하는 것, 그리고 그것 에 속고싶은 우리의 욕망에 관한 것이다. 또한 이것은 산업과 도심의 황 무지들의 장소 특정적인 관계를 쳐다보면서 지속 가능함에 대한 의문 을 제시한다. 많은이들은 황야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이 그것을 건드 리기에 너무 두려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체르노빌이나 DMZ는 어떤 장소에 사람이 살 수 없다면 어떤 자연 환경이 되는가를 . 이 습기는, 그 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특정한 파괴의 역사가 있기에 그런 장소가 존 재할수 있는 것이다. 2011년 초반에 나는 6일간 현장 리서치 탐험을 떠났다. 우리는 해캔 색 강의 입구 (Headwaters) 에서부터 강으로 내려갔다. 그것은 주변 풍 경과 다른 공장의 위치를 알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또한 그 경험은 예고 편을 만들수 있었으며 내가 갖고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할수 있 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준비 과정이 어떤 것 인지 알수 있었다.


존 코어스

4 Spice Trade

5 Spice Trade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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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 일리히 프란 일리히는 멕시코 출신 소설가이자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의 작업은 주로 서사 매체에 대한 이론과 실험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0년 초반에 Contra-Cultural 그룹을 공동 설립했으 며 티우화나를 중심으로 사이버 펑크와 독립 미디어 씬에서 활동했다. 그는 Transmediale, Ars Electronica 등의 패스티벌에서 전시했으며 오스트리아에 있는 Donau-Universität Krems 대학에 서 석사과정을 마고 2011년에 Eyebeam 펠로우로 활동했다.

sabotage.tv

1 LA 한인타운


프란 일리히 집단지능국Collective Intelligence Agency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일 은 쉽지 않다. 적은 임금이나 난해한 임무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 어지는 일이 언제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방대한 분량의 정보들, 예를 들면 종이 문서, 여러 가지 형식의 디지털 정보, 길에서 채집한 먼 지 등, 특정한 목적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집되기 때문이다. 하지 만 그 불가능한 지점에서 연금술 같은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집단 정보국의 정보원이 수집한 정보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레디메이드 Readymade 같아서 하나의 목적에 한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특 정한 책이나 영상, 혹은 전시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아카이브된 후 다른 정보원이 사용할 수도 있고, 리믹스되어 새로운 목적을 만들기 도 한다. 어떤 중요한 정치적인 투쟁도 그 사회의 경제적인 흐름과 분리 된 것은 없으며, 어떤 경제적인 흐름도 그 고유의 의지가 없는 경우는 없 다. 이러한 이유에서 집단지능국이 존재하는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아무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집단이라고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 ‘또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라는 비 밀 어젠다에 동의하는 사람들만이 우리에게 접근할 수 있으며 이 데이 터베이스를 활용하고 내용을 추가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보수를 바라 보지 않고 자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지역 정보를 수집 해 세계적인 저항 운동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분포하는 우리의 네트 워크 작전은 2010년 라틴아메리카 독립 2세기를 기념하는 흐름 속에 시작되어, 반구에서 반식민주의 투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2 미국 콜로라도주의 그린랜드

4. 참여작가 집단지능국은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이자 지역 정보원들의 분산된 인적 네트워크로서, 정보원들은 정보 수집 활동에 동참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 는 역사적 사실과 서사, 반식민지적인 저항, 그리고 현대의 해방 운동에 관한 파일에 접근한다. 정보원의 활동은 각자의 전술에 따라서 흩어진 퍼즐 조각을 맞추거나 다중의 생존을 위한 기술이 되기도 한다. 서명하 기, 파일을 열기, 새로운 리포트를 제출하기, 질문을 제시하기, 지속되고 있는 사건에 관련된 단서의 해석을 비판하기, 진행중인 사건들의 신경적 이고 역사적인 연결점을 만들기 등의 활동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 제나 완성되고 닫힌 사건이란 없으며 계속해서 과거의 사건들이 새로이 해석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활동은 2009년 봄에 미국 콜로라도Colorado주의 버려진 마을 인 그린랜드Greenland 에서 시작됐다. 그곳은 현재는 미합중국의 영 토이지만 그전에는 멕시코,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여러 원주민 부족들 의 땅이었다. 그리고 2010년에 북극해에 위치한 그린란드Greenland 의 수도인 누크Nuuk에서 끝날 예정이다. 그린란드는 2009년부터 독 립 국가로서의 위치를 갖기 위한 과정중에 있지만 현재까지는 덴마크 의 영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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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태윤의 초대를 받고 아이빔 로드쇼 대한민국에 참여했다. 지역 을 정찰하고 ‘남반구들간의 연대'를 도모하는 것 이외에 특별한 생각이 나 임무가 없이 참여했다. 나는 강을 살린다는 것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서 깊게 들어가고 싶지는 않다. 이 문제의 정치적인 지형을 형성하는 힘 은 오즈의 마법사와 같아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최면을 걸어서는, 그들 이 상상해 온 지속가능하지 않은 삶의 방식에 따르도록 하는데 성공해 왔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는 남과 북을 나누기도 했다. 아무것도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강은 문명의 기초이고, 강이 없 으면 현재의 도시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란 것이다. 확실한 것은 정 보화 시대와 네트워크 자본주의는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으며 천연자원 에 대한 전쟁은 어느 때 보다 치열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라 는 종교를 갈망하며 아이패드나 인공적인 수평성에 만족할 것인가? 분 산된 권력에 저항하는 전쟁에서는 어떠한 방식의 조직이 효율적일까? 19세기에 마크 트웨인은 점령된 멕시코령의 리오 콜로라도Rio Colorado에 대해서 말하며 “위스키는 마실 것이고 물을 싸워서 얻어야할 것 이다" 라고 말했다. 2세기가 지났는데 많은 것이 변하지는 않았다. 물론 콜로라도는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 미합중국의 영토로 흡수되었고 그 지역에 아직까지 살고 있는 멕시코인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더 이상 중 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영토 전쟁의 타깃이 되었었다. 물론 그것은 캘 리포니아, 아리조나, 네바다, 뉴멕시코, 그리고 텍사스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그리고 물을 위해서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 대기업들이 물의 소유 권을 갖고 있으며 시민들은 그것을 저장하지 못하게 제한되어있다. 캘리 포니아 걸프의 하류로 흐르는 강은 유만Yuman 인디언들이 3000년 이 상 낚시하던 곳이지만 더 이상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주로 아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이유는 미국의 농공산업과 가정에서 사용하기 위해 물의 흐름을 바꿨기 때문이 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야생생물기금World Wildlife Fund같은 단체들 은 유만 부족들이 멸종 위기의 종자들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고 해서 그 들은 더 이상 낚시를 하지 못한다. 몇 세기에 걸친 전쟁과 압박을 통해 사막의 가장자리와 아리조나로 쫒겨 난 그 낚시꾼들을 돌봐준 건 자연 이다. 그곳을 점령한 힘은 남아있는 소중한 자원을 착취하고 집에 가서 텔레비전을 보며 구글에 단어나 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와일드 웨스트Wild West이다, 2세기가 넘게 지속되고 있는 서부의 끝자락에서 는 점령자들이 아직도 자연과 그곳의 사람들을 길들이려 한다.

집단 지능원 001과 002는 아리도아메리카Aridoamerica의 같은 지역 에서 자라났다. 메소아메리카 제국의 위쪽의 영토에는 문명이 번창했던 곳이다. 집단지능원 001과 002는 거대한 철로 만들어진 벽의 반대편 에서 자랐는데 그 벽은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후 미합중국이 멕시코 와 자신을 가르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에이전트 001은 산 위의 빙하와 눈이 녹아 무한한 물이 되어 자유로이 흐르다가 겨울에는 얼음이 되는 강의 상류에서 살았다. 에이전트 002는 그곳에서 몇 킬로미터 남쪽의 하류에서 살았는데 그 강이 생산하는 전기가 밤에 몇 개의 길거리를 간 신히 밝혔는데, 그곳은 삼성 티후아나 공단에서 값싼 노동력을 사용해 생산해낸 전자제품들을 미합중국으로 수출하고, 한진 컨테이너가 태평 양을 건너와 물건을 옮기는 곳이다. 언젠가 선박들이 멕시코, 남한, 미국 의 예술 활동가들의 연대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면 어떨까. 한 곳에 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며 오래 유지되는 관계와 체인을 생산한다면, 거기서 발생되는 거래는 현재의 자유무역, 상품은 무료로 거래되지만 사 람들에게는 비싼 값을 물리는 현재의 거래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명확하다. 정보원 001과 002가 처음으로 공유한 주소가 로스엔젤레스의 코리아타운이라는 것도, 캘리포니아가 기사도 소설 『아마디스 데 가울라』의 허구적인 땅을 본받았듯, 멕시칸 타운이 아직 스페인의 예언을 성취하며 제국의 권위 아래 있는 것도 할리우드의 드림타운과 디즈니랜드의 가상 세계가 total sense를 이루는 것도. 이런 것들이 디에고 라 베가, 우리들의 친숙한 복면 친구 엘 조로의 시대부터 유지되어 온 농공 경제를 기반으로 세워졌다고 해도 말이다. 이해해야 하는 것은 없다. 이제 파일을 공유해야 할 시간이다. 파일은 공 유할 때 의미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사회를 의미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 킬 수 있는 물질이다.


4. 참여작가

프란 일리히

4 diegodelavega.net

3 www.spacebank.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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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 서울과 미국 각지를 오가며 비평 및 큐레이팅 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 University of Rochester의 Visual and Cultural Studies의 학제적 프로그램에서 한국 현대 미술의 정치성에 대한 박사논문 을 집필 중이다. 2012년 여름부터 1년간 Andrew Mellon Foundation에서 후원하고 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 운영하는 International Dissertation Research Fellowship (IDRF) 의 펠로우로 서 울에서 논문 연구를 하고 있다. 한동안 중단했던 남도 소리 배우기에 열공하고 싶다.

sohl.lee@gmail.com


이솔

1 하회마을을 굽어보며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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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

2 개성 시내를 굽어보며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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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성천에 발을 담그며

4 고려항공에서 북녘의 모래강을 훔쳐보며

내성천을 경험하며-그리고, 그냥 그렇게 흐르게 놔두면서 Experiencing the Naesongchon And Letting It Flow

소문으로 들어보고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 는 곳을 처음으로 “경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 장소 의 새로움은, 혹 보다 정확하게는 내 경험의 새로움은 지극히도 감각적이고도 신체적인 면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렇게 내 몸의 모 든 감각을 통해 내성천을 처음 경험했다. 버드나무 가지 살랑거 리는 소리, 여름 산골짜기의 상쾌한 향기,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 는 때로는 미지근하고 또 때로는 시리도록 차가운 내성천의 수온, 물길을 역행할 때 무릎 사이로 느끼는 몸의 불균형, 발바닥에 느 껴지는 까끌까끌한 모래 알갱이들. 나는 이 답사 전에는 지극히 시각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내성천을 보아왔다. 오늘날의 이미지 포화 상태의 사회와 시각성의 독재가 나와 내성천의 관계를 이미 그렇게 결정 한 듯 싶다. 4대강 사업 전과 그 후를 비교하는 사진 들을 너무 많이 보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 극심한 차이점을 효과

적으로 보여주는 사진들에서 느낀 감정은, 직접 강 물 속에 발을 담그면서 느끼는 슬픔과 분노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내가 내성천에서 느낀 그것은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경 험이었다. 하지만 내성천의 구불구불한 모래사장을 걸으면서 느


이솔

4. 참여작가

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은 노스탤지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 다. 즉 이 상실감은 한 도시인이 인류의 원천인 “대자연”에 투영 하는 그런 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율 스님께서 최근 내성천 상류 중류 하류의 급격한 생태 변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정부가 당장 이 순간 댐 건설을 중지하고 생태 파괴의 책임자들을 추궁한다고 할지라도 난 만족하지 못 할 것이라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쓰라린 불만이 내 마음 뿐만 아니라 내 발, 무릎, 코, 눈, 그리고 손끝까지 가득 채웠다.

며칠 후에 또 다른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탔을 때야 이 이상

한 불만의 정체를 깨달았다. 사실 난 다른 로드쇼 참가자들보다 답사를 일찍 종료해야 했다. 또 다른 새로운 영토를 “경험”하기 로 이미 오래 전 여행 계획을 짰기 때문이다.나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38선에서 수십 킬로미터도 차마 떨어져 있

지 않은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그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전 세계를 돌아 보았지만, 한반도 북쪽 반 토막은 항상 내 활동 범주 밖에 놓여져 있었다. (정부는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대한민 국 국민의 방북을 금지하지만 나는 현재 외국 여권을 갖고 있기에 관광객의 자격으로 방북할 수 있었다) 베이징발 비행기가 평양국 제공항에 도달할 차에 나는 유리창을 너머 아름다운 모래강을 살

짝 엿볼 수 있었다. 비무장 지대의 양쪽을 수놓는 구불구불한 모 래 강을 말이다. 이 북한의 모래강 모습 위에 남한에서 보았던 콘 크리트 블록으로 덮인 상주보의 모습이 겹쳐졌다. 통일이 이루어 진다면 한국 개발자들이 눈 깜짝할 새에 이 북한 모래강도 관광 운 하로 바꿔놓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또 다른 생각이 머리 속 을 스쳤다. 반공산주의와 국수적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내 평생 “또 다른” 한국으로의 국경 넘기를 불가하게 만들었다면, 남한 사회의 뼛속까지 배어든 도시화의 충동과 도시 중심의 라이 프 스타일이 자연을 몸으로 경험할 권리를 나에게서 안타깝게도 빼앗아 간 것이다. 내성천을 비롯한 남한의 모래강들은 이제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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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되어 이미 많은 이들이 강을 신체적 직접 경험 할 수 있는 기 회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너무도 가깝지만 다가 갈 수 없는 곳은 북한뿐만 아니라 내성천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및 이념 적 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씁쓸한 좌절감이 바로 내 가 내성천에서 당혹스럽게 느낀 불만의 원천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로드쇼에 잠시나마 참여하는 동안 함께한 외국 작가들의 존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인 참가자들 스스로 ‘내부인’이 된 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그렇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우리들은 도로 표 지판 및 수교 이름을 읽을 수 있었고, 통역 없이 스님의 설명을 이 해했고, 심지어는 건설현장 노동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 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 모두가 ‘외지인’이었다. 우리 모두는 이미 도시화 된 몸을 이끌고 낯선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이 처 음 경험하는 세계는 문화 코드 뿐 아니라 시간성까지 달랐다. 마 치 나에게 평양 거리가 세계 어느 곳보다 이질적으로 다가온 것처 럼, 내성천 또한 낯설게 다가왔던 것이다. 아마도 로드쇼의 참가 자 모두가 이와 비슷한 소외감과 무력감을 느꼈으리라 사려된다. 메가 규모의 인간 재해를 마주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지를 내세워서 신속하게 상황을 변경할 수 없음을, 우리 자신의 그런 무능력을 고통스럽게 인정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 또한 든다. 속수무책의 상황과 무력함이 우 리가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coming together해 주는 것은 아닐까. 손가락질은 이명박 정부에게만 향해서는 아니 되고 대 한민국과 세계 다른 곳 구석구석 박혀있는 신자유주의식 개발론 에도 향해야 될 것은 아닐까. 이 출판물은 일종의 하나되기coming together 실천의

미미한 몸짓을 암시한다고 본다. 이런 출발을 맘에

두고 있다면, 또 어떤 가능성이 우리에게 열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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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선 자기소개가 필요합니다.

preparat.org

로드쇼: 대한민국

처음부터 같이 준비하지는 못했다. 사전 답사에도 참여하지 못 했다. 4대강은 눈으로 훑어 보기에도 너무 방대했으니 그냥 어린 시절 강을 따라 여행했던 단편의 기억들을 4대강이라고 생각하

고 여정을 시작했다. 첫 번째 플래쉬

우리 모두를 태운 전세 버스가 중부 고속 도로를 출발해 1시간 남

짓 달려 여주에 도착했다. 여정 중 리슨투더시티의 박은선이 마이 크를 잡고 여주 이포보의 현장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그 때가 바로 도로 양쪽으로 쌓아놓은 모래들이 이포보 현장을 위해 퍼 올려져 아무 기능 없이 마냥 산처럼 쌓여 있을 수 도 있는 그 모래라는 자각을 처음 했던 순간이었다.

로드쇼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고, 다시 계절이 바뀌어 회상

을 해보니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서른 중반, 내 삶의 변화가 시 작된 지점 말이다. 더욱 엄밀히 말하자면 나의 서른 넘어 삶에 지 진과 해일이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지각 하지는 못했었다. 단 지 목을 옥죄는 것이 나 스스로의 무능함 내지는 내 운명이라고만


신윤선

4. 참여작가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잠재된 지진과 해일은 로드쇼, 혹은 4 대강 사업에 대한 분노로 쓰나미가 되어 찾아왔다. 여러 물 줄기

의 강을 은유 삼아 사회를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강은 우 리의 생명이고 호흡인데 그것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난 여름 에서야 자각하게 된 것이다. 나의 이포

어린 시절 경기도 이천에서 자랐던 나는 여름이면 가끔 이포로 물 놀이를 갔었다. 그때는 이포 대교가 만들어지기 전이었고 고무 타 이어가 잔뜩 달려있는 공업형 나룻배가 강의 양쪽 나루를 오가며 사람과 차를 실어 나르던 때였다. 강가에서는 수영도 하고 그물로 고기도 잡았으며, 조금 깊어진다 싶으면 아버지들이 낚시도 던졌 다. 80년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여름 휴가 풍경이다. 그때는 물 이 맑았던지 잡은 고기를 강가에서 바로 민물 매운탕으로 끓여 먹

곤 했다. 강은 그냥 차를 조금 타고 나가서 배를 한 번 더 타면 나 오는, 온 몸을 퐁당 담글 수 있는 휴식처였다.

이후 이포에는 으리으리한 이포 대교가 들어섰다. 강 양쪽

을 지나다니는 활발한 차들과 주변 지역의 빠른 공업화로 인해 더 이상 휴가의 풍경은 공존할 수 없었다. 이는 비단 이포의 이야기 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 개발 도상 시기의 전반적 현상일 것이다. 어느 날인가 이포 대교가 완성되었다. 이포 대교는 어린 나의 몸 짓에 비해 거대하게 컸다. 사람들은 갑자기 다리 아래로 몰려들어 다리 그늘에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했다. 이포 대교는 다리의 기 능 보다는 해 아래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가림막의 기능을 먼저 한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폐허의 미래 도시와 같이 아직 채 냄 새도 가시지 않은 육중한 시멘트가 허허벌판에 서있는 꼴이었는 데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었다. 그 낯설음과 생경함은 2011년의

낙동강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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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왜 하는가?

나는 여주 근교의 고속 도로를 지나는 동안 아주 짧게 위와 같이 이포를 회상했다. 하지만 낙동강 여기 저기에 있는 흙더미들을 인 식하게 된 순간 나의 어린 시절 회상은 온데 간데 없고, 이유 모를 분노가 끓고 있었다. 아직은 강도 보이지 않아 차 안이 어수선할 때도 나는 애써 생각했다. 도대체 4대강 사업은 왜 하는가? 왜 강

은 파대는가? 왜 모래를 이유 없이 쌓아 놓는가?

그 옛날, 이포 대교 하나 놓일 때에도 마을을 찾는 새들과 사

람들, 그 풍경과 강의 소소한 기능까지 모두 달라졌고 강 주변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들이 전면 달라졌거늘, 심지어 어린 눈으로 바 라보는 나의 마음에도 이제 더 이상 이포로 물놀이 오지 않겠구나 하는 것을 알았을 정도로 다리 하나가 많은 것을 변화 시켰다. 그 런데 그 이상의 큰 변화, 그것도 뻔히 보이는 위험한 변화를 앞두 고 도대체 강을 왜 건드리는 것인가? 평화의 댐과 4대강 사업, 환경이라는 허울의 사기

정부에서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수자원 확보, 홍수 예방, 관 광자원개발, 시민들의 휴식처 등의 이유를 전면으로 내세운 (정

치적) 선전을 한다. 하지만 이 사업이 시작되던 때부터 그 타당성 검토에 있어 많은 학자들과 전문가들은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전두환 시절 북한에서 댐을 만들어 물을 저장해 놓았다가 한 번에 물을 방 출하면 남한은 홍수로 망하게 되거나 그 혼란한 틈을 타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이유 때문에 우리도 댐을 만들자고 하는 선전이 있었 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 정말 저금통 다 털고 부모님께 용돈 까지 받아서 댐을 짓는데 기부했다. 사람들은 그 성금을 내기 위 해 줄을 섰고 텔레비전에서는 그런 것들을 매일 같이 보도했다.


신윤선

4. 참여작가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고, 어처구니가 없는 시 절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도 학자와 전문가들은 그 런 방식으로 홍수가 날 수 없다는 것을 전두환 앞에서 피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가 어떤 시절인가?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인생 이 힘들어질 수 있는 시기이니 다들 큰 목소리 못 냈을 것이고 그 렇게 대국민적 사기는 크게 성공하여 그 많은 현금은 전두환 주머 니 속으로 들어 갔다.

4대강은 멀쩡한 강을 파서 병신을 만들어 놓는 사업으로 수

자원 공사와 대기업 건설사들, 그리고 그 밑의 쪼무래기 들이 이 명박과 함께 돈 나눠 먹기를 하는 대국민 사기이다. 로드쇼 이후

언젠가 ‘나는 꼼수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4대강 사업의

핵심은 강바닥을 계속 파내는 것에 있다라는 것이다. 강바닥의 모 래를 끝없이 파내는 동안 많은 돈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간

단한 논리는 아니고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주장인데, 그 맥락 자체는 전두환 시절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댐 건설과 매우 유 사하다. 보다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돈이 힘들게 벌어서 족족 나가는 세금인 것인데, 나는 누려보지도 못하는 그 돈으로 이명박 은 4대강 사업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 호주머니 속으로 넣고 있

는 중이라는 사실은 나를 분노케 하는 것을 넘어 나의 삶을 무기력 하게 만든다. 사실상 국가 산업으로 토목 공사를 한다라는 발상이 야말로 6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는 절대적 전지적 ‘가카 시점적 발

상’이다. 웃기다.

강은 우리의 귀한 삶의 터전

현재 4대강은 저수지화 되어 강의 흐름이 막힌 그곳에서는 녹조

현상과 악취가 나고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철새를 비롯한 많은 생태계 현상들이 전부 파괴되었다. 지류 근처의 강기슭은 다 무 너지고 모래가 휩쓸려 내려가 어딘가에 쌓이면 그로 인하여 물살 이 빨라지게 되고 강 속 먹이 사슬 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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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살 곳을 잃고 철새들은 쉬어갈 곳을 잃고, 농민들은 삶의 터 전인 농경지를 잃었다. 그 농민의 수가 3만 명이 넘는다. 게다가

언론에서도 밝혔듯 수자원 공사의 부채 비율이 2007년 4대강 사 업을 시작한 이례로 6배가 증가해 30 조가 되었다. 그 부채를 탕

감하기 위한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 수도세 3% 인상이다. 공기업 은 빚더미에 앉았고 이로 인해 물가는 올라갔다는 결론이 난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지만 이 우스꽝스러운 사업을 멈추어야만 한 다. 나의 로드쇼는 이런 나의 생각을 더욱 명백하게 해주었고 나 를 행동하게 해주었다. 행동하는 사람을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 게 해주었다. 강이여 이제 안녕

낙동강 지천에서부터 부산의 을숙도까지 우리는 지율 스님과 강 을 따라 걸었고 우리의 이야기를 강 옆에서 했다. 많은 시간들이 머리 속에 남았고 많은 사진과 기록물들이 책으로 편집된다. 그 안에 녹아 있는 많은 이미지들과 각자의 글들은 여러 생각이 모인 집단적 발상이 되고 발화가 된다. 강과 함께한 시간들이 그 기록 들을 보며 되새겨질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찰랑찰랑 발목까 지 강물을 담그고 까끌한 모래 위를 걸을 수 있었던 시간은 그 때 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더 이상 그 강을 만날 수 없 다. 모두 저수지가 되었고 강과 강변은 복원하기엔 또다시 너무 많은 돈과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로드쇼가 나에게는 흐르는 강의 느낌을 보여준 마지막 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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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윤 최태윤은 뉴욕과 서울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이자 문화 기획자이다. 그는 모바일 미디어를 사 용한 사회 참여적 퍼포먼스 및 도시 개입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또한, 조그만 작업실 다른 한편에서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만들고, 상상 속의 커뮤니티와 협 업을 한다.

taeyoonchoi.com

서울을 연기하는 서울Seoul plays itself 은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다수 의 영화에 대한 주석이다. 서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분석하 고 재해석함으로서 서울의 도시공간에 대한 의문과 희망을 제시 한다. 로드쇼:대한민국의 진행 전후에 90년대와 2000년대 한국

영화를 보면서 습관처럼 노트하던 내용을 이어가고 있다. 후에는 영화 상영회와 워크숍의 형식으로 발전하고자 한다.


최태윤

[1]

서울의 도시와 미디어 공간을 언제나 점령하고 있 는 이영애, 김태희, 고소영, 김연아, 지진희, 배 용준 등이 나오는 아파트와 휴대폰 광고 등에서 반 복 묘사되는, 선택 받은 중산층의 사적 공간과 의사 소통 방식은 외부인의 접근이 차단된 공동체 Gated communities 안에서의 일일 드라마이다. 매회 조금

씩 다른 이야기가 비슷한 상황에서 연출되는 드라 마처럼, 도시공간 안에도 미세한 차이를 쉴 새 없이 생산해내는 장치들이 작동한다. 동일 인물이 여러 광고에 나오기 때문에 그 광고에서 물건만 빼고 본 다면 신자유주의 풍경화가 완성된다. 압구정 지하 철역에 틈새 없이 붙어있는 성형외과 광고의 비포 앤 애프터가 착용하고 있는 시각적인 언어는 4대강 사업 전후 비교 사진과 같아서 이 성형 혹은 도시화 의 프로그램이 작동한다면 기존에는 가치가 없었던 것이 어떻게 더욱 신자유주의적인 맥락에서 경쟁력 이 있어지는가를 설명한다. (자기)개발과 (도시)개 발은 공통점이 있어서 끊임없이 비교 대상이 만들 어지고, 자기를 재개발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 어지는 것이다.

[2]

45인승 버스는 한남 대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비가

약간 오는 여름날의 한강 풍경은 영화 <괴물>의 한 장면같이 보였다. 그 영화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주인공은 미스테리한 질병의 보균자로 지명되어 누 구라도 죽일수 있는 [a1] 초국가적 공공의 적 호모 사케르 Homo sacer가 된다. 괴물에게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송강호의 아버지는 전 재산을 들여 지 하세계의 파수꾼들로부터 한강 배수구의 지도를 얻 고 온 가족이 그를 찾아 해맨다. [a2] 영화 <괴물> 은 제도의 모순과 권력의 부조리함, 그리고 미디어 의 폭력을 괴물 이라는 픽션의 형상을 통해서 이야 기한다. 하지만 괴물이 드리운 공포의 그림자는 허 구라기에는 너무나 익숙하다.[a3] 영화는 괴물에 대한 이야기 만큼이나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와 아 파트 숲을 사이에 두고 서울의 유일한 공공장소인 한강에서 휴식하고 시위하고 도주하는 2000년대 서 울 시민의 초상이기도 하다.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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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파트 숲이 다시 시야를 가렸다. 영화 <플란다스

의 개>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욕망이라는 엘리베 이터를 타고 수직과 수평의 운동을 하며 아파트 평 수에 따라서 행복의 양과 질이 정해지는 것을 지적 한다. 이성재와 배두나가 연기한 주인공들의 일시 적인 우정과 배신의 추격극은 순식간에 동료가 적 이 되고 적과 연대를 맺을 수 밖에 없게 되는 미로 의 모습을 연출한다. 흡사 예셔 MC Escher의 판화

같이 보인다. 가정의 사적 공간 안에서는 성적인 역 할과 돈에 대한 욕구가 그것에 무능하기 때문에 벗 어날 수 없는 무력함으로 채워져 있다. 주인공은 영 화의 마지막에 결국에는 대학 강단에 서게 되지만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학문’을 가르치는 자기복제 적인 사이클로 끝난다. 사적인 영역도 공적인 영역 도 아닌 아파트 지하실과 옥상에서만 자신의 욕망 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이들은 한국의 전역에 반복되 는 수많은 아파트에서 지금도 추격을 하고 있을 것 이다.

[4]

김기덕의 영화 섬의 배경이 되었던 고삼 저수지는 현재 어떻게 변했을까? "안성의 고삼저수지 주변 56만516㎡가 안성 특산물인 포도와 수변경관을 연 계한 ‘바인 빌리지(Vine Village)’로 조성된다. 1일 안성시에 따르면 지난해 ‘농업생산기반시설 및 주 변지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한국 농어촌공사가 1천94억원을 들여 고삼저수지 주변 에 바인 가든(Vine Garden)과 바인 팜(Vine Farm), 버퍼 존(Buffer Zone) 등 다양한 체험시설을 갖춘 ‘ 바인 빌리지’를 2014년까지 조성키로 했다."


최태윤

[5] 아파트 숲이 다시 시야를 가렸다. 영화 <플란다스

의 개>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욕망이라는 엘리베 이터를 타고 수직과 수평의 운동을 하며 아파트 평 수에 따라서 행복의 양과 질이 정해지는 것을 지적 한다. 이성재와 배두나가 연기한 주인공들의 일시 적인 우정과 배신의 추격극은 순식간에 동료가 적 이 되고 적과 연대를 맺을 수 밖에 없게 되는 미로 의 모습을 연출한다. 흡사 예셔 MC Escher의 판화

같이 보인다. 가정의 사적 공간 안에서는 성적인 역 할과 돈에 대한 욕구가 그것에 무능하기 때문에 벗 어날 수 없는 무력함으로 채워져 있다. 주인공은 영 화의 마지막에 결국에는 대학 강단에 서게 되지만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학문’을 가르치는 자기복제 적인 사이클로 끝난다. 사적인 영역도 공적인 영역 도 아닌 아파트 지하실과 옥상에서만 자신의 욕망 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이들은 한국의 전역에 반복되 는 수많은 아파트에서 지금도 추격을 하고 있을 것 이다.

4. 참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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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슬 중학교 3학년 때, 미술선생님께서는 “그림을 못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되기에는…” 하 시면서 아티스트의 꿈을 무참히 짓밟으셨다. 그리고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소개해 주었다. 큐레 이터가 뭔지는 몰랐지만, 사람들과 더 많은 작품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어찌 되었던 미술계 안에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 맘에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후로 다른 직업들은 돌아보지 도 않았다. 그리고 어느덧 현장 큐레이터로 활동한지 14년차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일 년에 대 여섯 개의 전시를 해온 지 수년 째. 이제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할수록 어렵다. 아마 현대예술 이라는 것이 회화나 조각처럼 하나의 장르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무수히 많은 다양한 매체들 과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공부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들을 펼쳐놓을 수 있을까, 어떤 작가와 관객을 만나게 될까 늘 설레기에 하루도 지루할 틈이 없다. 아직 내겐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들이 많이 있으니까.

@nat_seoul

지난 여름, 낙동강에서의 예술살기

춥다. 입춘이 지났건만 오후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춥다. 몸 도 마음도 시린 겨울 한 가운데가 분명하다. 그렇게 미친 듯이 휘 날리던 눈발이 그칠 무렵, 뉴스 속보를 알리는 팝업창이 열렸다. “부산고등법원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인 ‘낙동강 살리기’사

업이 국가재정법을 위반했다고 선고했다. 그러나, 사업이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업을 취소할 수는 없다는 판결 을 내렸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꼼꼼히 기사를 읽어내려 갔다. 왜냐하면

그 기사는 지난 여름 작가들과 동거동락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담 겨 있는, 수달의 발자국을 보며 놀라워 했던, 강 한가운데 모래톱 위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는 철새들이 놀랄까 걱정하는 지율 스님 과 함께 조근조근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했어야 했던 바로 낙동 강에 관한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신보슬

4. 참여작가

<로드쇼> 프로젝트의 시작에 대한 명확한 기억은 없다. 이야기 를 주고 받고 상황이 맞아떨어졌고 뭐 그러다 보니 어느새 프로젝 트를 하고 있었다. 어쩌면 시작에 대한 기억은 그리 중요하지 않 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마음이 맞았고, 그리고 함께 떠났다는 것이었다.

‘예술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라고 브루스 나우만이 말했

단다.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지 만, 그 무렵 나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예술들’안에서 질식 할 지경이었다. 번듯하게 생긴 전시공간에서 조용하게 앉아서 관 객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은 만나고, 그런 전시를 만드는 일을 지 겨워하고 있었다. 갑갑증에 어떻게든 뛰쳐나가고 싶었던 차였다. <로드쇼> 말만 들어도 설레 일 수 밖에 없었다. 미술관이 아닌,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작가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니.

<로드쇼>의 장대한 계획은 4대강을 돌아보자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 홍보들 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판단을 유보하고

있던 와중이었기에, 작가들과 함께 4대강을 둘러보고 나면 뭔가

우리들이 보고 느낀 바대로 판단 할 수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적 어도 세상에 작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처음 생 각이었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은 우리가 강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 가를 보여주는 계획이었다. 1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4대강을 돌

아본다니, 보나마나 수박 겉핥기일 수 밖에 없을 터였다.

계획은 급 수정되었다. 4대강 모두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

라, 낙동강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다행히 그동안 낙동강 지천 살리기에 열심이었던 ‘리슨 투 더 시티’의 박은선 작가가 있었고, 지금도 내성천 살리기에 열심이신 지율 스님이 계셨다.

미국에서 들어온 최태윤 작가, 그리고 4대강 사진 작업을 해

온 노순택 작가, 이여운 큐레이터, 이렇게 네 명이 먼저 지율 스 님을 만나러 떠났다. 지금 생각해봐도 첫 답사의 설레임과 기억 은 생생하다. 인원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처음 만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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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고운 민낯과 그와 대조되는 공사장의 폭력스러움, 그리고 정 말 오랜만에 만난 시골의 따스함. 뭐 이런 것들이 강렬했기 때문 이었던 것 같다. 지율 스님과 함께 찾았던 내성천과의 첫만남. 도 시 촌 것이 머뭇머뭇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강바닥 모래밭을 거닐었 다. 스스륵스스륵 모래들이 발바닥을 간질이면서 흘러내려갔다. 깊지 않은 강 바닥. 중간중간 쌓인 모래톱. 그 모래톱에 앉아 스님 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앉아있던 모래톱 위에 남아 있는 수 달의 발자국. 어느새 뉘엿뉘엿 석양이 저물 무렵, 하늘 저 켠에서 는 마치 연하장에 나오는 장면처럼 새들이 집을 향해 날아가고 있 었다. 스님께서는 목소리를 낮추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물들이 행여 놀라 돌아갈까 봐 하는 따뜻한 염려에서 나온 배려였다.

강에 들어가 보기 전까지 강은 밖에서 바라보는 것이었다.

강 안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강은 강 위에 놓은 다리로 걸어가는 것이지, 강물 안을 걸어가는 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차 잘차잘 종아리를 스쳐가는 강물이 얼마나 반갑고 싱그러운지 몰 랐었다. 강 안에서 서서 바라보는 산과 들과 하늘이 그렇게 예쁜 줄 몰랐었다.

아무리 현란하게 설득한다 해도, 강물에 발을 담가본 사람

이면 이렇게 강을 개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닫기 어 렵지 않다. 때론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여행길이 언제나 즐거웠던 것 만은 아니다.

개성 강한 작가와 기획자 스무 명 남짓이 함께 숙식하며 떠나는 여 행은 예상했던 것처럼 녹록치 않았다. 뚜렷한 정치적 명분이나 사 회의식에서 시작된 여행길이 아니었기에, 보이는/보이지 않는 갈 등이 떠나질 않았다. 한편으로는 불편한 잠자리와 여정은 별일 아 님에도 불구하고 종종 신경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 기도 했다. 내성천을 지키시기 위해서 삶을 던진 지율 스님, 지율 스님과의 인연으로 오랫동안 내성천 살리기를 했던 박은선 작가 는 제한된 일정 안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전해주고자 하다 보니 본


신보슬

4. 참여작가

의 아니게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두들 알고 있다. 그런 소소한 갈등은 그저 지나는 바람 같은 것이었음을. 지 율 스님과 박은선 작가가 없었었다면, 우리의 여행은 꽤나 헛헛했 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난 여름의 일주일은 나의 일상과 생각의 방향을 많이 바꾸

어 놓았다. 뉴스에서 나오는 많은 사회적인 이슈에 좀 더 예민해 졌다. 좋다 나쁘다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 전에 좀 더 신중해졌다. 기사와 보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 이다. 고작 일주일이었을 뿐인데, 웃고 땀 흘리고 갈등하며 바라 보고 들어 섰던 낙동강의 추억은 뭔가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출퇴근길에 한강 다리를 건너면 나도 모르게 내성천의 모래

톱을 떠올리며, 한강의 과거를 생각해본다. 한강 역시 예전에는 사람들과 친근한 강이었을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외치며 개발의 바람이 스쳐가기 이전 한강은 물장구치며 건너 다닐 수 있는 그런 강이었을 것이다. 지금 한강은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서려고 한 다. 접근성을 높이고, 공원을 만들고. 그러나 그 모든 계획들은 어딘가 어색하고 멋이 없다. 잘 꾸며 놓았음에도 어딘가 핏기 없 는 쇼윈도우의 마네킹처럼 말이다. 언제가 우린 다시 후회할지도 모른다. 깊이 파 놓은 강바닥에 다시 모래를 넣고, 일직선으로 흐 르는 강물을 다시 억지로 S 자로 흐르게 하기 위해서 애꿎은 우리 땅과 강을 귀찮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좀 더 신중해야 하고,

좀 더 천천히 해야 한다. 자연을 상대로 하는 개발은 더욱 더.

낙동강 여행의 마지막에서 만났던 한진중공업 크레인 85와

의 만남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트윗을 팔로우하게 하였고, 그 동안 나와는 무관하다 여겼던 노동운동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었다. 외국 작가들과 부산에 도착하여 크레인 85를 찾았던 그 날엔 비가

내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외국작가들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통 화를 했다. 그저 뉴스에서만 보았던 풍경이었다. 희망버스를 함 께 했던 작가들도 있었지만, 나는 늘 변두리에서 소심하게 그들을 응원할 뿐이었다. 물론 지금도 소심한 응원만을 보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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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조금 더 깨어서 세상을 보려 노력하게 되었다.

그 여름의 짧은 여행은 살면서 겪게 되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그런 에피소드라 하기엔 그 시간이 남긴 흔적이 너무 크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그 때 예술을 살았다. 이렇다 할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니고, 그럴싸한 전시를 만들지도 않았다. 4대강 현장에 뛰어 들어가 도둑질하듯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고, 안동 고택에 앉아 서로의 작품을 나누었 다. 예술은 천사가 만든 것이 아니기에, 감히 그 때 우리는 순간순 간 세상을 재발견 하면서 예술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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