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ntadas:Asian Protoc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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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tadas Asian Protocols


목차

7

서문

8

‘프로토콜’로 읽어보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 신보슬

22

프로젝트 노트 - 안토니 문타다스

24

프로세스와 리서치 - 이주연

7

Introduction

14

‘Protocol’ as a Lens on Korea, China, and Japan: Muntadas’ Asian Protocols - Nathalie Boseul Shin

23

Project Notes - Antoni Muntadas

27

Process and Research - Joo Yun Lee

33

아시안 프로토콜 : 프로토콜 키워드 & 이미지 지도

50

아시안 프로토콜 : 리서치 노트 - 크리스티나 사나후야

33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54

아시안 프로토콜 : 리서치 노트 - 첸 예후아

52

Asian Protocols : Research Notes - Christina Sanahuja

56

Asian Protocols : Research Notes - Chen Yehua

161

아시안 프로토콜 : 단편들

181

번역에 관하여 : 알약

192

한스 D. 크리스트

197

세 개의 프로젝션

204

크리스토퍼 필립스

161

Asian Protocols : Fragments

181

On Translation : Pille

194

Hans D. Christ

197

Three Projections

205

Christopher Phillips

213

공적 / 사적 공간 (서울, 베이징, 도쿄)

222

서울 - 공간연구집단

213

Public / Private Space (Seoul, Beijing, Tokyo)

240

베이징 - 리믹스 스튜디오

225

Seoul - Space Research Group

256

도쿄 - 하루카 호리우치

242

Beijing - reMIX Studio

258

Tokyo - Haruka Horiuchi

273

Blackboard Dialog : Redefining Asian Protocols

295

Jeehyun Kang

301

Artist Biography

273

블랙보드 다이알로그 : 아시안 프로토콜에 대한 재정의

292

강지현

300

4

Contents

작가 약력

5


서문

Introduction

Asian Protocols 6

7


‘프로토콜’로 읽어보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질문의 바탕에는 한국과 중국, 일본이 겪어왔던 이 굴곡 많은 역사와 복잡미묘한 감정을 모르

신보슬

는 이방인이 어떻게 제대로 3국을 아우르는 작업을 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 달리해 생각해보면, 그가 한국과 중국, 일본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 기에 좀 더 중립적이고 새로운 관점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을 바라볼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

1.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줄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이 프로젝트가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을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부른다. 이 표현은 유럽이

한 ∙ 중 ∙ 일의 역사나 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논문이 아닌, 작가의 예술 프로젝트라는 점이었다.

나 미국, 혹은 남미에 비교한다면 분명 물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이지만,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달리 말해 <아시안 프로토콜>은 질문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

돌이켜 볼 때 그저 가까운 친구의 나라라고만은 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관계에 있음을 단적으

아니다. 오히려 질문과 환기(evocation)에 가깝다. 문타다스라는 작가의 눈에 비춰진 아시아의

로 말해준다.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모습에 그가 흥미를 느끼고,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였는지에 대

한반도의 예를 들자면,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국경지역에서는 줄곧 크고 작은 분쟁들이

한 이미지 독해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있었다. 때문에 중국대륙에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한반도는 예민할 수 밖에 없었다. 오랜 시

둘째, 전시 제목에서 이야기하는 ‘아시아’의 정체가 무엇이냐라는 점이다. 근래 ‘아시아’라는 단

간 조공을 바치는 사대관계를 유지했었으며, 적지 않은 침략으로 백성들이 수탈당하거나 죽임

어는 많이 회자되는 만큼 꽤나 민감한 단어가 된 것 같다. 아시아라는 말의 어원이 유럽인의 입

을 당했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이 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었을 무렵, 중공군의

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시아의 역사에서 빈번한 서양 식민지와 굴곡의 역사에

개입은 오늘날 휴전선 존재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과의 관계는

대한 잔재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쩌면 ‘아시아’라는 용어가 상업적으로 마구 혼용되고 있

한마디로 표현하기 더 어렵다. 임진왜란이나 강화도 조약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20

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무엇을 근거로 아시아를 언급하느냐

세기 초반 일제강점기는 한국국민들에게 쉽게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이니 이 자리에서는 접어두기로 하겠다.

독립된 지 어느덧 70여 년이 가까워 오지만, 위안부, 독도 등 아직도 풀어야 할 여러가지 예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를 좀 더 명확하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

한 정치적인 이슈들이 남아 있다.

한다.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이 이야기하는 아시아는 분명 ‘아시아’ 그 전체를 아우르겠

물론, 그렇다고 우리에게 이러한 상처와 갈등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라, 문화예술적으로 서로

다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러기에는 아시아가 너무나 큰 개념이고, 그 안에 너무 많

영향을 주고 받으며 교류하기도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기 전 중국의 문화와 예술이

은 세부적인 ‘다름’들이 존재한다. 아시아에는 한국, 중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가 있

한국과 일본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1998년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는가 하면, 태국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으로 대변되는 동남아시아가 있다. 인도도 있고, 중앙

일본대중문화가 개방되었지만, 그 전에도 일본 망가, J-pop등 일본문화는 암암리에 소개되고,

아시아도 있다.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너무나 다른 이 나라들을 아시아라는 하나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 한류의 열풍은 일본은 물론 중국대륙에도 한국의

의 말로 아우르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오히려 이 프로젝트는 문타다스라는 스페인 작가가

대중예술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바라보는 아시아 이야기의 서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기약된 바가 없지만, (그의 많

이처럼 한국과 중국, 일본은 때론 적으로 또 때론 친구로,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지내왔다.

은 프로젝트가 그랬듯이)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프로토콜’이라는 핵심어로 풀어보고 해석하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더라도, 경제적인 이유에서 손을 잡기도 하고,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서로

는 이 시도는 많은 확장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게 영향을 주고 받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관계에 대해서, 서로를 바라 보는 시각에 대해서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가깝고도

3. 문타다스, 프로토콜 그리고 번역에의 문제

먼 나라이다.

문타다스라는 작가에게 ‘번역’은 주요 키워드였다. 그는 오랫동안 <번역에 관하여 On Transla-

tion>라는 시리즈를 진행해오면서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하여 ‘번역’이라는 이슈를 다루어 왔다. 2.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에 대한 두 가지 질문

그가 이야기하는 ‘번역’은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번역이 되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 국한되

문타다스와 ‘아시안 프로토콜’이라는 전시를 기획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두 가지 질문을 받

어 있지 않다. 하나의 이미지가 어떻게 다른 의미와 맥락으로 이해되는가, 나아가 하나의 문화가

곤했다. 첫째, 왜 스페인 출신의 작가가 아시아에 대해서 하는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가였다.

다른 문화로 어떻게 ‘번역’되고, 이해되고, 해석되는가 하는 보다 큰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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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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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 역시 시작단계에서부터 ‘번역’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했다. 과연

게 비슷하고 다른가와 같은 아주 구체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군사비용에 대한 비교,

<아시안 프로토콜> 제목에 있는 ‘Protocol’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독도나 위안부와 같은 예민한 주제까지 문타다스의 질문은 예리하고도 다양했다. 강지현 연구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서도 ‘프로토콜’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원이 말했던 것처럼 문타다스는 단어로 이루어진 질문들을 통해서 주제에 자유자재로 줌-인

그렇게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프로토콜’은 국가간의 협정, 외교 의례, 관습,

/ 줌-아웃 하면서 세 나라를 살펴보게 했다. 그가 만들어 놓은 입체적인 매트릭스 안에서 세 나

컴퓨터간의 데이터 통신을 위한 통신규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프로토콜이라는

라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강지현 연구원의 리서치

용어 대신 각 분야에서 유사한 의미의 대체할 수 있는 단어로 주로 사용된다. 한국의 경우 한

를 중국인, 일본인이 번역하여 중국어, 일본어로 함께 기록하는 과정이었는데, 전시장에 스페인

글은 거의 모든 외국어를 발음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손 쉽게는 번역하지 않고 ‘프로

작가, 한국인 연구자, 중국인 / 일본인 번역자, 그리고 한국인 기획자가 함께 모여 작가의 질문을

토콜’이라고 표기하여 사용하기도 하지만 컴퓨터 통신 분야를 제외하고는 ‘프로토콜’이라는

듣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서, 강지현 연구자가 제시한 대답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기록

외래어를 직접 쓰기 보다 문맥에 맞는 대체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우리

해 가는 과정은 결과물 못지 않게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러한 경험이 공감대를 형성해서였을

에겐 ‘외교적 프로토콜’이라는 말보다는 ‘외교적 관례’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고 익숙하다.

까. 우려와는 달리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30개의 질문과 답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을 뿐 아

일본어 역시 외국어를 표기하는 가타가나가 있어 ‘Protocol’을 プロトコル라고 쓰기도 하지만,

니라, 간혹 서로 토론을 하거나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는 등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

대체로 문맥에 해당하는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중국의 경우에도 한

이기도 했다.

자의 발음을 차용하여 ‘Protocol’을 쓸 수는 있지만, 각각의 문맥에 해당하는 고유의 단어를 쓰

이어지는 <세 개의 프로젝션>에는 1995년 헬싱키에서 시작한 ‘번역에 관하여’ 시리즈 중 일

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동북아시아 3국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리는 ‘프로토콜’이라는

부인 <번역에 관하여 : 바라보기>(2004), <번역에 관하여 : 듣기>(2005), <번역에 관하여 : 돌아나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낯설고 쉽지 않은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가기>(2013) 세 개의 비디오 작품이 소개된다.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발코니 공간

물론 완벽한 번역은 없다. 번역은 언제나 미끄러지듯 흘러나가 또 다른 번역(혹은 해석)의 여지를

에서 끊임없이 서로 핸드폰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보이기도 하고(<번역에 관하여 : 듣기>), 유리

남긴다. 그래서 하나의 정답이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가 여섯 개의 챕터를 통해

회전문을 통해 들고 나는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번역에 관하여 : 돌아나가기>). 그런

서 아시아의 다양한 모습들을 그려 보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국, 중국, 일본에 대한 이미지

가 하면 공항인지 쇼핑몰인지 모호한 공간의 커다란 유리창 앞에 서서 밖을 바라보거나 무심

의 다양한 모습들은 정확하게 ‘번역되지 않은’ 아니 온전하게 ‘번역’될 수 ‘없는’ 이미지들에 대

히 지나가는 사람들의 실루엣만을 보여주기도 한다(<번역에 관하여 : 바라보기>). 세 개의 비디오 작

한 해석이고 문타다스라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던져보는 질문이다. 그리고 여섯 개의 작은 챕

품에 등장하는 공간들은 모두 머무름의 공간이 아니라, 이동의 공간이다. 그리고 공적 공간

터로 구성된 전시는 ‘단어의 번역’ 과정에서 놓치게 되는 많은 것들을 이미지와 작품을 통해 복

(public space)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적 공간이라고만 단언하기 조심스러운 지점도 있다. 예를

합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들어, <번역에 관하여 : 듣기>의 경우처럼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혼재하기도 한다. 화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딘가로 이동하지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모두 핸드폰을 통해서 사

4. <블랙보드 다이알로그 : 아시안 프로토콜에 대한 재정의>에서부터 <번역에 관하여 : 알약>까

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적 공간 안에 있지만 동시에 사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광경은 현

지 앞서 간략하게 설명했듯이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은 한국 관객들에게 ‘아시아’의 범

대 미디어기반의 사회가 가진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는 특히 한국사회에서 도드라진

주,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세 나라의 관계, 그리고 익숙치 않은 ‘프로토콜’이라는 키워드의 의

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 핸드폰만을 바라보고 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주거나 이야기

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층위의 질문을 던졌다. 따라서 여섯 개의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을 체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도 있고, 게임을 하거나 핸드폰으로 책을 보

적이고 자연스러운 동선의 흐름으로 풀어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기도 한다. 모두 손 안에 있는 작은 장치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자기만의 공간(private space)에

전시는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운 칠판글씨들로 이루어진 <블랙보드 다이알로그 : 아시안 프로

빠져들어 있다.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본다면) 아시아, 특히 한국(그리

토콜에 대한 재정의>로 시작된다. 이미지를 기대하고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을 당황하게 하는

고 나아가 동북 아시아)에서 두드러지는 사회적 현상 중 하나인 듯싶다.

이 섹션은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2014) 전시 전체의 도입부이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

세 개의 비디오 작업으로 던진 공적 / 사적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공적 / 사적 공간 [서울, 베이징,

라를 향해 문타다스가 던진 30개의 질문과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강지현 연구원의 리서치를 기

도쿄] > (2011-2014)에서 보다 전문화되고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시연구

반으로 만들어진 답이 빼곡하게 쓰여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의 음식을 먹는 문화가 어떻

및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 집단인 공간연구집단, 리믹스 스튜디오, 그리고 하루카 호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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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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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는 서울, 베이징, 도쿄의 사례로 보는 ‘공적 / 사적 공간’에 대한 리서치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망하여 언뜻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 여섯 개의 섹션들을 연결시키듯 구성되었다. 그래서 칠판을

서구에 비해 공적 / 사적 공간의 구분이 그리 분명하지 않은 세 도시의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

빼곡하게 메웠던 그의 질문과 우리가 제시한 답에 있었던 이야기들은 텍스트에 머무르는 것이

망점으로 제작된 세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마치 사무실 공간을 연상시키는 <공적 / 사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섹션들 속에서 접혔다 펼쳤다 하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손글씨에

적 공간>에 이어지는 작품은 전시장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의

서 영상으로 그리고 다시 리서치 프레젠테이션으로, 리서치 프레젠테이션에서 오브제 콜렉션

하이라이트 <아시안 프로토콜 : 프로토콜 키워드 & 이미지 지도>(2014) 가 있다. 이 작업을 위해

으로, 다시 이미지로 매체가 겹쳐지지 않도록 변화를 주었고, 내용적인 면에서도 밀도에 있어

한국, 중국, 일본에서 15명이 넘는 사람들이 리서치에 참여했다. 문타다스는 외교, 정치, 질서,

강약을 조절하여 정보에 치이지 않고 가급적 작품을 보는 것은 마치 세 나라를 여행하는 것처럼

명령, 스포츠, 계약, 종교 등 정치, 문화, 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43개의 키워드들을 영어로 제시

느껴지게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여행은 <아시안 프로토콜 : 프로토콜 키워드 & 이미지

했고, 각 나라에서 키워드를 자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착수했다. 그리고 각 키워드에 적

지도>로 수렴되면서도 다시 처음의 질문들로 이어졌다.

합한 이미지들을 찾아 공유했다. 각 나라마다 해당 키워드에 대한 이미지를 이해하고 찾아내는 방식이 상이했다. 예를 들어 ‘계약’의 경우 한국과 일본에서는 사무적이고 서류상의 계약과 관

5. 그리고 다시, ‘아시안 프로토콜 - 한국, 중국, 일본’

련된 이미지들을 주로 찾았는데, 중국에서는 결혼식 사진을 보내주었다. 처음에는 잘못된 이미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을 통해 한국과 중국, 일본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

지 분류라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혼은 어쩌면 인생의 가장 큰 계약의 상황일수도

와 문화를 공유하는 지점이 있고, 지리적으로 인근에 있는 나라의 현재의 모습이 어떠한지, 어

있겠다 싶었다. ‘테스트 / 시험’의 경우도 비슷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시험을 보

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달라진 것은 없

는 광경이나 입시와 연관된 이미지들이었는데, 중국에는 과학 실험실에서의 테스트(실험)에 관

으며, 이렇다 할 만한 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예술을 통해 우리가 언제 답을 얻었던 적이 있던

한 이미지가 많았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원숭이에게 바나나를 주는 장면의 이미지를 보내오기

가. 예술은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늘 더 복잡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도 했다. 이처럼 동일한 단어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영어 단어에 대한 번역된 자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 역시 그랬다. 여전히 우리는 ‘가깝고도 먼 나라’이지만, 더 많은

국어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혹은 리서처 개인의 성향과 배경에 따라서 선택된 이미지는

질문을 가지게 되었다. ‘아시아’라는 단어가 포함하는 범주는 어디인지, 무엇이 한 ∙ 중 ∙ 일간의

다양했다. 같은 말을 쓰면서 서로 이해하거나 소통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착각은 아닐까

차이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서로 비슷하고 어떻게 많이 다른지 그 어느 전시보다 많은 질문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해석과 이해의 범위는 다양했다. 그래서였을까. 관객들이 가장 좋아했

이 생겼다. 문타다스라는 스페인 작가가 제시한 ‘프로토콜’이라는 커다란 판 위에 43개의 키워

던 섹션 역시 <아시안 프로토콜 : 프로토콜 키워드 & 이미지 지도>였다. 43개의 키워드에 맞춰

드로 세심하게 짜인 이미지의 그물망들 사이로 무심히 스쳐 보냈던 것들을 다시 불러오고, 질

만들어진 수백 장의 이미지 지도 앞에서 관객들은 꼼꼼하게 읽어가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서

문하고, 생각하게 했다. 물론 그의 시선을 ‘통해서’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옭아매고 있던 편견과

문타다스가 직접 모은 자료들로 구성된 <아시안 프로토콜 : 단편들> 역시 흥미 있게 보았다. 신

선입견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문 스크랩에서부터 한국, 중국, 일본의 대표적인 개의 사진 비교라던가, 러시아 말로 된 한국어,

분명 달라진 것도 있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작품을 보기 이전과 이후, 그간 무엇을 놓쳤으며,

중국어,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용 카드 수 백장으로 구성된 자료들과 이미지 지도들을 함

어떤 새로운 시각이 가능한지를 보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런 점이 예술을 통해

께 비교하듯 살펴보면서 한국, 중국, 일본에 관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이 유효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무수히 많은 정보와 데이터로 구성된 전시는 <번역에 관하여 : 알약>(2006-2014)으로 마무리된 다. 2006년 문타다스는 자신이 선택한 키워드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일련의 알약작업을 이번 전 시를 통해서 구현하였다. 실제 약이 들어 있는 43개 약병의 레이블에는 이미지 지도에 쓰였던

43개의 영어 키워드가 하나씩 적혀있고, 역시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다. 머리가 아플 때, 두통약을 먹듯이 외교적 문제가 있을 때, 혹은 언어로 고민할 때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알약이 있으면 얼마나 편할까. 농담처럼 슬쩍 던지는 <번역에 관하여 : 알약>은 자칫 무겁 고 가르치려 드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이야기의 압박을 느슨하게 풀어준다. 이처럼 전시는 문타다스가 바라보는 아시아의 이미지들을 때론 가까이에서 때론 멀리에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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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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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ocol’ as a Lens on Korea, China, and Japan: Muntadas’ Asian Protocols Nathalie Boseul Shin

1. So Near, Yet So Far : Korea, China, and Japan “So near, yet so far.” It’s a term that people often use to describe Korea, China, and Japan. It offers a concise way to describe their situation: a complex relationship of countries that are clearly closer geographically than Europe, the U.S., or South America, yet whose history of invasions and predations means they can never simply be called “close friends.” In the case of the Korean Peninsula, the border on China has meant various conflicts large and small in the regions where the two meet. This is why Korea has always had to be sensitive to the arrival of a new dynasty on the mainland. For a long time, theirs was a lopsided relationship, with Korea offering tribute to China, and frequent invasions bringing plunder or death to countless ordinary Koreans. During the Korean War, the Republic of Korea army and UN forces were on the brink of unifying when the Chinese Communist Army intervened – a development that could safely be called the single biggest reason for the the Military Demarcation Line as it exists today. Relations with Japan are even harder to pin down. One needn’t go back as far as the Imjin Invasions of the late 16th century, or the “Treaty of Amity” signed on Ganghwa Island in 1876. The Japanese occupation of the early 20th century left scars on the collective Korean psyche that seem unlikely to heal even today. Even now, as we close in on seven decades since independence from colonial rule, numerous sensitive political issues have yet to be resolved, including recognition of so-called “comfort women” and ownership of the Dokdo. Of course, not all has been pain and conflict. There have also been interaction and mutual influence in culture and the arts. Before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as founded, Chinese culture and art had an undeniable influence on Korea and Japan. And while it took until 1998 and the arrival of the Kim Dae-jung administration for Korea to open itself up belatedly to Japanese popular culture, phenomena like manga and J-Pop were already quite popular as contraband well before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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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Recently, Korean popular culture and art have been both extremely popular and influential in Japan, and even mainland China, in the form of the so-called “Korean Wave.” So this is the history of Korea, China, and Japan : sometimes friends, other times enemies, a shifting web of alliances. Even when their political perspectives have been at odds, they have worked together for economic reasons; in culture and the arts, they have influenced and been influenced in kind. It is difficult to offer any cut-and-dried assessment of their relationships, or of their perspectives on each other. And so we remain – so near, yet so far. 2. Two Questions for Muntadas : Asian Protocols There are two questions I have often been asked when I’ve told people I was planning an exhibition on Muntadas and “Asian protocols”. First, they want to know why a Spanish artist should be focusing on what people have to say about Asia. I’m well aware of what lies underneath this question. They’re concerned about how an outsider, one ostensibly unaware of the turbulent histories and complex emotions at play, could possibly do work that addresses all three in a way that does them justice. My thought was that if we shifted perspective a little, we could see that his not being part of any of them – not Korean, not Chinese, not Japanese – might afford him a more neutral, newer perspective with his platform for viewing the three countries. I also considered that the most crucial thing about this project was that it was an art project by an artist, not a research paper attempting to analyze Korean, Chinese, and Japanese history or relationships. In other words, Asian Protocols is not trying to give an objective or empirical answer to a question. Its goals are more about raising questions, about evocation. And its pieces emerge from a reading of images, an interpretation of how we were reflected in one artist’s eye, what aspects he finds intriguing, and where his interests lie. The second question concerns the identity of the “Asia” mentioned in the title. It’s a word that has been talked about a lot lately, and it’s become quite a sore subject. Part of that has to do with the word itself originating from a European perspective. There are also the lingering shadows of the Western colonization and turbulence that have all too often characterized Asian history. Another factor may simply be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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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ord “Asia” has been thrown around in a very commercial sense. It’s a complex question – just what is the geographical, cultural, or historical basis for this “Asia”? – and one I intend not to address here. I also think there are some things I should get in order before I can approach the project more specifically. The “Asia” mentioned in Muntadas: Asian Protocols is by no means intended to encompass all of Asia. Nor could it: the concept of Asia is too vast, with too many finely grained distinctions within. There’s Northeast Asia, represented by Korea, China, and Japan, but there’s also Southeast Asia, consisting of Thailand, Indonesia, the Philippines, and so forth. We also find India and Central Asia. Different as they are politically, religiously, socially, and culturally, it seems foolhardy to lump them all together under one word, “Asia.” This project, I think, may be more aptly called a prelude to discussing the Asia viewed by Muntadas as a Spanish artist. Nothing is set in stone yet (something that has been true for many of his projects), but the attempt to unravel and interpret Korea, China, and Japan through the “protocol” concept offers multiple possibilities for expansion. 3. Muntadas, Protocols, and the Problem of Translating “Translation” is one of the big keywords for Muntadas as an artist. It’s an issue he has approached through a variety of media as part of his long-running On Translation series. The “translation” that he refers to is not limited to the literal sense of one language being translated into another. It is something that must be viewed in a larger context: the other meanings and contexts by which an image is understood, the process of how something is “translated,” understood, and interpreted from one culture to another. The issue of translation emerged as an important concern from the earliest stages of Muntadas : Asian Protocols. One obvious question had to do with how to even translate the word “protocol” in that title. “Protocol” is not a word that gets used very often in Korea – or in China or Japan, for that matter. Its dictionary definition refers to an agreement between countries, some diplomatic convention, a common practice, or a communications framework for transmitting data between computers. In practice, it is used simply as a substitute for other, similar ones in various areas. Since the Korean alphabet allows nearly every foreign loanword to be written exactly as pronounced, Koreans of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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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 it easiest to use the untranslated peurotokol (프로토콜). But outside of the computer communications context, it’s a loanword, which tends to be used more as a suitable synonym than anything else. It’s much more natural and familiar, for example, to use the word gwallye (관례) in place of peurotokol when talking about diplomatic procedures. In Japanese, the katakana writing system is used for foreign loanwords. “Protocol” is thus rendered as purotokoru (プロトコル), though again it’s supposedly more common for people to use a suitable Japanese word for that context. In Chinese, similar-sounding characters can be put together to approximate the English word; here, too, it’s more common to simply use the indigenous word for that situation. So before talking about the three nations of Northeast Asia, I first ought to address the odd and thorny issue of how we are to translate and interpret the word “protocol”. It goes without saying that no translation is perfect. There’s always slippage, always room for a different translation (or interpretation). The possibility of one “right answer” is foreclosed from the start. But this can also explain why the exhibition uses its six-chapter format to paint different portraits of Asia. The different aspects of the Korea, China, and Japan images are both an interpretation of images that are precisely untranslated – or, better yet, wholly untranslatable – as well as the question posed through the perspective of Muntadas the artist. Consisting as it does of six small chapters, the exhibition is, in some sense, an attempt to use images and works of art to gain a complex perspective on the many things that get omitted in the translation process. 4. From Blackboard Dialog : Redefining Asian Protocols to On Translation : Pille As I touched on before, Muntadas : Asian Protocols asked questions of the Korean viewer that exist in multiple layers – everything from the scope of the “Asia” category to the relationship among Korea, China, and Japan, and the meaning of this unfamiliar keyword “protocol”. The key thing, then, was to unravel these six (slightly) different stories into a systematic yet natural flow of movement. The exhibition starts with Blackboard Dialog : Redefining Asian Protocols (2014), which is made up of blackboard letters filling the gallery wall. This section, baffling as it may be to viewers who enter the gallery expecting to see images, is the introduction to the overall Muntadas : Asian Protoc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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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It is crammed with 30 questions posed by Muntadas on the three countries – Korea, China, and Japan – along with the answers arrived at through research by Jeehyun Kang, a specialist in international political economy. Muntadas’ questions are both trenchant and diverse. They range from such specific and seemingly trivial matters as how eating cultures are alike and different in Korea, China, and Japan, to comparisons of military spending and sensitive topics like the Dokdo islets and the “comfort women.” Kang relates how Muntadas used questions in the form of words as a way of “zooming in” and “zooming out” on certain topics as he examined the three countries. The three-dimensional matrices the artist has created are an opportunity to see their differences as well as their similarities. One especially interesting part was the process by which Chinese and Japanese participants translated Kang’s research and wrote it in Chinese and Japanese on the blackboard. The experience, in this case, was as important as the result: a Spanish artist coming together in the gallery with a Korean researcher, Chinese and Japanese translators, and a Korean curator to hear the artist’s questions, share opinions, and exchange and record opinions on the researcher’s answers. Perhaps it was because of the sympathies thus shaped, but contrary to our worries, visitors to the gallery didn’t simply read through each of the 30 questions and their answers. They had discussions, raised new questions – in short, they reacted actively and assertively. The next section, titled Three Projections, introduces three video projects launched in Helsinki in 1995 as part of the On Translation series : On Translation : On View (2004), On Translation : Listening (2005), and On Translation : Go Round (2013). Viewers witnessed people endlessly chatting on cell phones over the balcony connecting one building to another (Listening), or saw repeated images of people going into and coming out of a glass-walled revolving door (Go Round). In some cases, they saw mere silhouettes looking outside or passing casually in front of a huge glass window in some undefined space – perhaps an airport or shopping small (On View). The spaces that appear in these three video works are spaces not for lingering, but for moving. They are also public spaces – but there are aspects that make one hesitate to define them as such. In the case of Listening, we see a mixture of public and private spaces. The people on screen are moving somewhere, but they do not talk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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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another. Instead, they are having private conversations on their phones. It’s one of the defining images of the modern, media-based society: people existing in a public space, yet simultaneously creating their own private space. And it’s something perhaps even more noticeable in Korea. Ride a subway there, and seemingly everyone you see will be looking at his or her cell phone. Seldom does anyone exchange a glance or words with the person sitting beside. Some riders watch movies or miniseries, play games or read books. All of them sit, head lowered before the tiny device in their hand, immersed in their own private space. It’s a global trend, but (from my own experience, anyway) it also seems to be one of the most salient social phenomena in Asia generally, and Korea (or Northeast Asia) specifically. The ideas that the three video works present about public and private space become more specialized in Public / Private Space [Seoul, Beijing, Tokyo] (2011-2014). Here, the concrete examples afford them even greater clarity. The Space Research Group, reMIX Studio, and Haruka Horiuchi – experts specializing in urban research and architecture – offer their findings on public and private spaces as witnessed through examples from Seoul, Beijing, and Tokyo. It was quite interesting to see the stories of the three cities, and the ways in which the private / public distinction is less clear-cut than in the West. Where Public / Private Space recalls an office space against the backdrop of the three cities’ skylines, rendered in half-tone dots, the next work fills the gallery wall.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2014) is perhaps the highlight of the Muntadas : Asian Protocols exhibition. Over fifteen people in Korea, China, and Japan contributed research for this work, for which Muntadas presented 43 keywords in English, running the full gamut of government, culture, and arts – diplomacy, politics, order, decrees, sports, contracts, religion. After that came the process of translating them into the native languages of the different countries. Suitable images were then found and shared for each word. Each country brought a different method of understanding and locating keyword images. For “contract,” both Korea and Japan came up with images related to clerical or document-based agreements, whereas the photograph sent from China showed a wedding. This seemed at first like a mistake in image classification, but the more I thought about it, the more it seemed like marriage could indeed be the single biggest contract si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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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ion in a person’s life. Something similar happened with “test.” Most of the Korean images showed students taking a test, or images related to the big college entrance exam. But many of the Chinese images showed testing in a science laboratory, while some of the Japanese images showed a banana being given to a monkey. The word was the same, yet different images were chosen, a process determined by the native language translation of the given English word, or the proclivities and background of the individual researcher. So broad were the interpretations and understanding that one might think it a mistake to believe that anyone is truly understanding or communicating, even when the words they use are the same. And maybe that explains it. For Cartographies was also the section that viewers liked best. Standing before this map showing the hundreds of images made for 43 keywords, they read closely and offered their own interpretations. They also seemed to take a great interest in Asian Protocols : Fragments, Muntadas’ own assemblage from all the materials collected. It was an endless torrent of messages about Korea, China, and Japan that emerged from examining, as thought to compare, the materials and image maps created from everything to newspaper scraps and comparisons of representative Korean, Chinese, and Japanese dogs to hundreds of Russian-language flash cards for studying Korean, Chinese, and Japanese. On Translation : Pille (2006–14) is the last section of this exhibition consisting of a truly innumerable array of information and data. In 2006, Muntadas had an idea to use pills for easily understanding of the complicated structure in his works, but it was not happen. After years, he can realize his idea in this exhibition. The 43 English words from the image map are printed, individually, on the labels of 43 bottles containing actual medicine; here, too, they are translated into Korean, Chinese, and Japanese. How nice it would be if there was a pill you could take to solve diplomatic problems or language questions, the way you take an aspirin when you have a headache. With its jokey approach, Pills brings a light touch to something that could easily have come across as ponderous or didactic. The overall structure of the exhibition highlighted Muntadas’ images of Asia, sometimes up close, sometimes from afar, in a way that connects the six seemingly disparate sections into a single whole. In the process, all those questions that cluttered the blackboard, and the mess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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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ained in the answers we gave, seemed not merely to remain as text, but to enter and elude our grasp in the connecting sections. At the same time, an element of change was introduced so that none of the media overlapped: handwriting gave way to images gave way to research presentations, which gave way to object collections, and then images once again. There was also a density of content, an adjustment of emphasis so that one was never overwhelmed by the information; viewing the works was made to feel, as much as possible, like a voyage through the three countries. All of these journeys finally converged on Asian Protocol : Cartographies, guiding the viewer back to those questions they started with. 5. Once Again, from the Top : Asian Protocol — Korea, China and Japan Muntadas : Asian Protocols was a chance to see Korea, China, and Japan, all in one place. There were elements of sharing history and culture, and it was a time to consider how these three geographically close countries appear today, what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they share. Of course, nothing has changed; we have gained no answer to speak of. But then, when have we ever gotten answers through art? Art has always been less about giving the right answers than about asking more complicated questions. So it was for Muntadas : Asian Protocols. We are still the same countries – so near, yet so far – but now we have more questions to ask. More than any exhibition more it, it gave questions about how far the scope of the word “Asia” reaches; what it is about Korea, China, and Japan that creates difference; how they are similar, and how they are different. It made us call back, question, and ponder the things that slipped so casually through that carefully woven network of images from the 43 keywords, the suggestions that Muntadas presented on a big sign marked “protocol”. To be sure, seeing things “through” his eyes was a chance to be free, in some part, from the prejudices and biases that bind us. Nothing has changed. But something obviously has, when we think about it. There is the work together on the project, there is the period before and after seeing the work. I glimpsed what was missed before, and what new perspectives are possible. Maybe art can’t change the world, but here, perhaps, is a reason it is still val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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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노트

Project Notes

안토니 문타다스

Antoni Muntadas

개인적으로, 공적으로 작동되는 각종 프로토콜은 우리 개개인의 삶과 한 사회의 성격을 조직하고 규정짓는다. 이 프로토콜들은 사적, 공적 행위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규정을 만들어 낸다. 각종 의례, 관습, 규칙 등 프로토콜의 범위 안에는 다양한 행동과 절차에 대한 규정이 있다. 따라서 프로토콜은 어떤 식으로든 권력을 사용하고, 규정하고, 통제하고, 실시하고자 하는 속성을 지닌다.

- 문타다스, 2006 -

아시아는 강력한 상상체(想像體 imaginaire)이다. 아시아의 문명은 그 대부분이 고대 중국에 기원 을 두고 있는 여러 문명이 융합된 결과이고, 중국은 서방 세계에서 잘 알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 서양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 이 아시아라는 상상체 속에는 음악, 춤, 건축, 음식, 일러스트레이션, 서예 등을 포함한 문화전통, 정치, 종교와 같은 각종 요 소들이 다양하게 녹아있다. 18세기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이 아시아는 호기심에 가득 찬 여행 자들에 의해 서술되고 “번역”되어왔다. 이 여행자들은, 그들의 낭만에 가득 찬 해석과 한계에 도 불구하고, 오리엔탈리즘과 이국적 호기심(exoticism)의 힘으로 우리가 이 아시아를 서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야말로 “이색적인” 문명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 일조했다. 나 역시 이방인이다. 다만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1인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나의 관심 사는 아시아 주요 3국인 중국, 한국, 일본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다. 나는 지 역 전문가도 아니고, 3국의 언어 중 어느 한 언어도 구사하지 못한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아시아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는 일부로 이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일정한 코드에 이 세 국가에서 발견되는 여러 이미지들을 연결시키고, 외부인으로서의 나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Private and public protocols organize and define society and our lives. They generate a set of regulations that exercise a sustained influence over our private as well as over our public behavior. Rituals, conventions, rules — protocols cover a variety of procedures and, in one way or another, they attempt to use, define, control or exercise power. - Muntadas, 2006 -

Asia is a powerful imaginaire. The result of different civilizations, most of which are founded on that of ancient China, that are known yet not always understood by Western cultures. This imaginaire embraces all kinds of elements and cultural traditions (music, dance, architecture, food, illustrations, and calligraphy), politics and religions. From the eighteenth century to date, this imaginaire has been narrated and ‘translated’ by fascinated travelers who have helped us shape an idea of remote civilizations through Orientalism and Exoticism, despite their romantic interpretations and limitations. I am an outsider aware of these circumstances. I am curious about the similarities and differences between three of Asia’s main countries: China, South Korea and Japan. I am no specialist and I don’t speak any of the three languages, but I am interested in relating images to codes that may or may not be understood as forming part of the stereotypes, and in reflecting the point of view of the outsider. Do stereotypes contain certain truths, repetitions and realities?

고정관념은 진실, 반복, 현실을 일정 정도 반영하는가? <아시안 프로토콜>이 시도하는 것은 이미지와 코드를 시각 경험의 일부로 취급하는 것이고, 이때 ‘더 많은 / 더 적은’, ‘가까운 / 먼’ 등과 같은 상반된 접근 방식을 취해보는 것이다. 3국에 대한 스토리를 함께 공유하고, 각각의 스토리가 전개되는 궤도를 추적함으로써 우리는 일치 와 불일치의 순간들을 엿보게 된다. 각국의 역사는 이 이해와 갈등의 순간들을 보여준다. 회화 에서 건축가까지, 부엌에서 정원까지, 서구의 문화가 어떻게 이 ‘아시아’라는 상상체를 담고 있 는지 지난 200년간 생산된 서구의 문화 산물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나 역시 이러한 문화의 산물 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아시안 프로토콜>을 통해 이러한 사회적 구성체를 공유하고 이에 대 해 좀 더 배우고자 한다.

Asian Protocols is an attempt to deal with images and codes as part of visual experiences, with contrasting approaches: more versus less, near versus far, etc. By sharing stories about the three countries and tracing their different paths of development we get a glimpse of moments of agreement and of disagreement. The history of these countries shows these moments of understanding and conflict. How the cultural producers of the Western world (from painters to architects, from kitchens to gardens) have incorporated this imaginaire is revealed in the cultural products of the last two centuries. I myself am probably a product of these very circumstances, and I would like to learn and share these constructs through Asian Protocols.

문타다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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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Muntadas, 2013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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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세스와 리서치

문화, 관습 속에서 발생하고 축적된 규칙이나 원리로 삶의 방식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란 점

이주연

에 주목한다. 즉, 프로토콜은 상대적인 것으로 그것이 구성되고 생산된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 탕으로 한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시안 프로토콜>은 개념적으로나 방 법론적으로 문타다스의 다양한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요한 주제이자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번

안토니 문타다스의 <아시안 프로토콜>에 대한 구상을 처음 접한 것은 그가 서울을 방문했던

역(translation)’이라는 함수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2010년 봄의 일이다. 당시 문타다스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에서 가르쳐온 ‘퍼블릭 스 페이스에 관한 대화 (dialogues on public space)‘ 라는 수업의 일환으로 그의 학생들과 함께 서울

<아시안 프로토콜>에서 번역의 과정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여기에는 단지 한 언어에서

을 찾았다.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보스톤과 서울이라는 도시를 단순히 비교하기 보다는 두 도

다른 언어로의 번역 이상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번역은 각각의 도시 혹은 지역에서 눈에

시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둔 프로젝트를 발전시킴으로써 미국적인 맥락 혹은 서구의 제한적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구조나 통제의 기제로 작동하는 프로토콜이 언어, 이미지, 사람들의

인 관점에서 벗어나 서울이라는 도시를 이해하도록 했다. 그의 수업에서 무엇보다 강조한 것

행동양식, 그리고 도시의 다양한 퍼블릭 스페이스에 내재되어 있는 양상을 관찰하고 찾아내는

은 어떤 도시나 특정 사회에 대해 일반화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프로토콜에 관한 관찰과 조사는 한 ∙ 중 ∙ 일이라는 관계

그로 하여금 외부인의 관점에서 사회, 정치, 외교적으로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서울을 좀

의 층위에서 또 다른 번역의 과정을 거처야만 한다. 단, 여기서 문타다스는 <아시안 프로토콜>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도록 했고 이를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

의 목적이 관객들에게 작가 자신이나 몇몇의 프로젝트 연구자들이 제안한 한-중-일 관계에 관

하면서 프로젝트는 점차 구체화되었다. 문타다스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서구에서 일반적으

한 한 가지 번역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문타다스는 이 프

로 받아들여지는 아시아에 관한 제한된 관점이나 고착화된 이미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아시아

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열린 번역의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아시아에 대한 고착된 피상

라는 지역에 접근하고자 했다. 그는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한국, 중국, 일본 사이의 친밀하고

적인 이해나 왜곡된 오리엔탈리즘과는 다른 새로운 이해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

도 대립적인 관계에 주목했다. 그리고 4년여의 시간이 흘러 문타다스의 기획은 한 ∙ 중 ∙ 일, 특

서 <아시안 프로토콜>서울 전시를 찾는 관객들은 감상자라기 보다는 참여자로서 동북아시아

히, 서울 ∙ 베이징 ∙ 도쿄라는 세 도시를 규정하고 통제해 온 ‘프로토콜 (protocol)’에 관한 연구로

라는 특수한 지역의 복잡다단한 정치, 문화, 사회적 담론을 해독하는 과정에 초대된다. 이런 관

구체화되었다.

점에서 이 전시는 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번역과 해석, 세 도시 사이의 번역, 그 리고 관객 개개인의 번역이 다층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된다.

<아시안 프로토콜>서울 전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프로토콜’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의 의미 와 프로토콜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타다스가 강조하고자 한 지점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

<아시안 프로토콜>은 나아가 동아시아의 이미지에 대한 번역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현실에 대

다. 외래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외래어 단어의 개념에 상응하는 한글 단어가 없거나 그 뜻이

한 번역을 요청한다. 여기서 문타다스는 아시아인으로서 이 지역에 살면서 아시아의 역사, 문화,

제한적인 경우 외래어를 음차하여 쓰는 경우가 있다. ‘버스’나 ‘컴퓨터’가 그러한 예로, ‘프로토

전통을 일차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의 관점과 이들의 현실을 외부에서 관찰해야 하는 외부인의

콜’ 또한 외래어를 음차하여 번역한 경우이다. 단, 버스나 컴퓨터와 같이 기술적으로 복잡한 사

관점(작가 자신의 입장처럼)이 교차할 수 있는 지점을 포함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번 전시는 아시

물을 칭하는 고유명사를 음차하여 번역하는 경우 그 의미의 손실은 크지 않다. 이에 반해 프로

안 프로토콜이 관찰될 수 있는 다양한 리서치 자료와 아카이브의 유기적인 구성을 시도한다.

토콜의 경우, 본래의 단어가 가지는 다양한 의미가 상당히 소멸된 채 컴퓨터 네트워크 통신을

전시에 포함된 자료들은 문타다스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오랜 시

위한 규약 정도를 뜻하는 기술 용어로 한정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한스 디터 후버(Hans

간에 걸친 조사와 대화를 통해 얻은 것들로, 이러한 연구와 협업은 문타다스가 그의 프로젝트

Dieter Huber)가 밝힌 것과 같이 프로토콜은 중세 라틴어와 중세 그리스어에서 기원하여 오랜 시

를 발전시키는 무엇보다 중요한 방법론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준비한 <아시안

간에 걸쳐 복잡한 의미를 갖는 단어로 진화했다.1 프로토콜은 초기에 중립적인 기록의 의미가

프로토콜>에서 우선, 한 ∙ 중 ∙ 일 삼국의 정치, 문화, 외교 관계를 보여주는 키워드와 이미지들로

강했지만 기록은 곧 긴 역사를 거쳐 진실, 신뢰성, 권위 등의 의미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프로

구성된 거대한 지도를 담고있는 <프로토콜 키워드 & 이미지 지도> (2014) 라는 제목의 월페이퍼

토콜은 점차로 특정 사회 안에서 통용되는 사적인 혹은 공적인 소통의 유형을 결정짓는 사회적

가 관객들을 맞는다. 여기에는 문타다스가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발전시킨 시작점이 된 키워드

위계나 규칙을 뜻하게 되었다. 문타다스는 이렇게 다양한 의미 가운데 프로토콜이 ‘사회, 정치,

들의 얼개가 펼쳐져 있다. 각각의 키워드와 관련된 이미지들은 문타다스와 한국인, 중국인,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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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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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일본인 연구자들이 협업을 통해 조사하고 선별한 것이다. 여기에, <블랙보드 다이알로그 :

Process and Research

아시안 프로토콜의 재정의> (2014) 는 한 ∙ 중 ∙ 일 삼국의 역사, 문화, 정치에 대한 상이한 혹은 유

Joo Yun Lee

사한 인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다이어그램으로, 한 ∙ 중 ∙ 일 관계를 연구하는 정치사회학자 와 문타다스의 대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에는 또한 외부인의 관찰을 통해 발견된 서 울, 베이징, 도쿄의 퍼블릭 스페이스 속에서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문타다스의 비디오 작품 <번역에 관하여 : 바라보기> (2004), <번역에 관하여 : 듣기> (2005), <번역에 관하여 : 돌아나 가기> (2013) 가 포함되어 있다. 병치된 세 편의 비디오는 관객들로 하여금 사회적 문화적 규범 들이 형성한 우리의 행동양식에 내재된 프로토콜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한다. 또한, <공적 / 사 적 공간 [서울, 베이징, 도쿄]>(2011-2014) 는 도시계획과 건축적인 측면에서 세 도시의 퍼블릭 스페 이스에 접근한 연구 프로젝트로 우리의 생활 공간인 도시의 공적 / 사적 공간 속에 깊숙히 자라 잡고 있는 프로토콜과 이것이 우리들의 삶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타다스는 작가 자신이나 연구자 개개인의 주 관적인 관점을 적극 반영하는 것이 아시아의 프로토콜에 관한 일방적인 관점을 전달하게 만들 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아시안 프로토콜에 관한 다층적인 이미지와 리서치 자료들은 어디까지나 서로 다른 관점, 지식과 경험을 가진 관객들의 무수히 많은 새로운 해석 과 대화를 위해 열려있기 때문이다. 문타다스는 이번 서울 전시가 아시안 프로토콜 프로젝트의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라고 강조한 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혹은 아시아인의 입장에서 한국에 대해 혹은 아시아에 대해 소개하고 이야기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너무나 깊고 긴 역사와 전통, 그리고 철학 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뭔가 너무 큰 덩치의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 버거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 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 중에 어느 나라를 더 가깝게 느끼냐는 외부인들의 흔히 할 수 있는 질

Antoni Muntadas’ Asian Protocols has evolved since his visit to Seoul in spring of 2010. That was when Muntadas brought his students to Seoul for on-site research as part of a class titled “Dialogues on Public Space,” which he was teaching at the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MIT). Muntadas encouraged his students to understand Seoul beyond the American context and limited Western perspective by developing their projects to focu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Boston and Seoul rather than simply comparing the two cities. Muntadas’ belief underlying his pedagogy was that it is never appropriate to generalize any particular city or society. This belief motivated him to develop his own project by understanding Seoul ― in its complex social, political and diplomatic contexts ― from an outsider’s perspective and he embarked on collecting and sharing materials to reify a project. In this project, Muntadas wanted to approach Asia in a new way, away from the limited perspectives and fixed images shaped by the West. In Particular, he focused on the close but conflicting relationships among the three East Asian nations of Korea, China and Japan. Four years later, his plan was developed into a research project on the “protocols” in East Asia that have defined and controlled the three countries, and especially their capital cities of Seoul, Beijing, and Tokyo.

문에 현명하게 대답하는 것도 쉽지 않다. 문타다스의 제안은 귀납적이다. 그는 ‘사회적 기억의 저장소(repository of social memories)’인 프로토콜이 텍스트, 이미지, 행동양식 안에 내재된 다양 한 양상들을 관찰함으로써 우리의 현실에 새롭게 접근해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2 문타다스 는 “예술이 세상을 그렇게 크게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도 이야기 한다. 다만 예 술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이러한 변화에 관한 논의로 사람들을 이끌어 오는 일이라는 것이 다. 바로 그런 지점에서 아시안 프로토콜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에 대한 다층 적인 이해와 해석의 과정에 참여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주연

뉴욕 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박사과정 수료, 독립큐레이터

Hans Dieter Huber, “Fixing the Facts, Protocols and Their Social Usage,” in Muntadas - Protokolle, (eds.) Hans Christ, Iris Dressler and Antoni Muntadas, (Artist)(Köln: Walther König, 2007), 250.

1

2

Hub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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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To fully experience the Muntadas : Asian Protocols exhibition in Seoul, viewers are asked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somewhat unfamiliar word protocol and what Muntadas aims to address through his investigation of protocols in East Asia. When a foreign word is borrowed and introduced into Korean, it is often simply transliterated into Korean, especially when there is no corresponding Korean word or when an analogous Korean word does not convey the full meaning of the borrowed foreign word. Examples include beoseu (bus) and keompyuteo (computer); peurotokol for protocol is another case of such transliteration. However, little is lost in translation of foreign words that name technically complex objects, such as bus or computer, the term peurotokol in Korean is often used only with a limited meaning. That is, the word’s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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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ersity of meanings was eliminated in translation into Korean; thus, protocol in Korea is mainly used as a technical term indicating a set of rules and regulations governing the message exchange in telecommunications and computer networking. As Hans Dieter Huber illustrated in Muntadas-Protokolle, however, protocol has origins in Medieval Latin and Greek and has evolved to convey a complex array of meanings over long span of time. Protocol originally carried a neutral sense of recording by means of description and documentation and the recordings, as history accumulated, endowed the term with the meaning of truth, credibility, and authority. Accordingly, protocol has evolved to incorporate the meaning of authorized rules and hierarchies that govern the private and public communication within particular societies. Here, Muntadas emphasizes that protocol is generated and accumulated within a particular society by means of its “living activity and orientation.” Therefore, its “truth and authenticity is relative and in need of interpretation” in the context in which it was constituted and produced.1 Muntadas’ Asian Protocols, in this sense, has conceptually and methodologically specified through “translation” what is construed as one of the most significant themes and keywords penetrating his works. Asian Protocols requires a more complex process of translation, going beyond translation from one language into another. Specifically, translation begins with the process of finding the protocols inscribed in languages, images, human behaviors, and public spaces in the cities of Seoul, Beijing, and Tokyo that operate as visible and invisible structures and controls. Thereupon, the protocols that are identified through extensive research go through another level of translation in consideration of the relationships among Korea, China, and Japan. Here, Muntadas underscores that Asian Protocols does not intend to deliver a single authoritative translation about the complex relationships among Korea, China and Japan either by the artist himself or any project researchers. In other words, Asian Protocols attempts to bring forth a new understanding of Asia ― one that is distant from the distorted Orientalism or the fixed superficial image of Asia ― by inviting a variety of people to take part in an open process of translation. Thus, visitors to the exhibition are asked to become participants rather than viewers and join the process of translation of the the complex political, cultural, and so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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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contexts and discourses in the region of East Asia. In this sense, the exhibition becomes the space in which multiple layers of translation take place : translation of the different studies of protocols that consist of the exhibition, translation of protocols in view of the complex relations among the three cities, and translations of Asian protocols by individual viewers. Asian Protocols further pursues the translation of protocols in East Asia not by glimpsing its images but by approaching its realities. In this respect, Muntadas attempts to encompass a point of juncture, where the perspectives of Asians ― who live in this region and have primary experience with its history, culture, and traditions ― intersect with those of outsiders like the artist himself who must observe the realities in Asia from outside. To achieve this, the exhibition organically incorporates the selected materials and archives of the long-term research and collaboration that are Muntadas’ overarching methodology in all of entire works. First, viewers are confronted with the enormous wallpaper, titled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2014) that contains the cartography of keywords and the associated images from which the cultural, political and diplomatic relations among Korea, China and Japan are observed. This keywords mapping serves as the conceptual frame from which Muntadas further developed this Asian Protocols project and the sets of image materials related to each key word were found and selected in collaboration with researchers from Korea, China and Japan. Blackboard Dialogue : Redefining Asian Protocols (2014) spreads out the extracts of the dialogues between Muntadas and the experts in sociopoli-tics about both different and analogous perception of their history, culture, and politics by Koreans, Chinese and Japanese. The exhibition also includes Muntadas’ video works, On Translation : Go Round (2013), On Translation: Listening (2005), and On Translation : On View (2004), which offer illustrations of behavioral patterns in the public spaces of Seoul, Beijing, and Tokyo that are hardly discernible without an outsider’s observation. The juxtaposed video works attempt to make people discover the protocols internalized in their daily lives shaped by social and cultural norms. Furthermore, the inclusion of Public / Private Space [Seoul, Beijing, Tokyo], (20112014), a research project on public spaces developed by experts in urban planning and architecture, demonstrates the deeply rooted protocols in

Int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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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 private spaces in our urban environment and the ways in which they organize and control our way of living. Here, Muntadas asserts that including subjective perspectives of Muntadas himself and the individual experts never allow the aforementioned projects to instill the limited expert viewpoints on the protocols in the East Asia. Rather, the presented materials resulting from extensive research are left wide open for viewers who have different perspectives, different knowledge and different experiences to offer innumerable new translations and networks of dialogues. Muntadas has affirmed that the Seoul exhibition is not the end of the Asian Protocols Project but rather its point of departure. Whenever asked to say something about Korea or Asia, we, as Koreans or Asians, are often at a loss for words since our histories, traditions, and philosophies are too longstanding and profound to provide a simple answer to such questions. It is also not easy for us to give sensible answers to an outsider’s question, often driven by mere curiosity, asking whether we feel closer to China or Japan. What Muntadas suggests is an inductive way of thinking : By observing protocols as a “repository of social memory” inscribed in texts, images, and the behaviors inherent in our daily lives, we could gain a new perspective on our realities.2 Muntadas has also said that art may not change the world in any great way, but it will contribute to drawing people into discussions of changes. In this sense, the Asian Protocols project is an opportunity for many people ― whether insiders or outsiders of Asia ― to join the process of developing an open translation and a new understanding of Asia. Joo Yun Lee Ph.D. candidat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 Independent Curator

Hans Dieter Huber, “Fixing the Facts, Protocols and Their Social Usage,” in Muntadas - Protokolle, (eds.) Hans Christ, Iris Dressler and Antoni Muntadas, (Artist)(Köln: Walther König, 2007), 250.

1

2

Hub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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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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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프로토콜 : 프로토콜 키워드 & 이미지 지도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Asian Protocols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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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_key words mapping (02. 1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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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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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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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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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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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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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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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프로토콜 : 리서치 노트

의미하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리서치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중국 현지에서의

크리스티나 사나후야

촬영을 진행했다. 이러한 활동과 경험이 중국 문화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가져다 줄 것이라 판단했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수집한 이미지들도 공유해 주었는데 그 이미지들은 기존의 웹 사이트나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이미지보다도 훨씬 선명하고 재미있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

안토니 문타다스와의 첫 인연은 2년 전 작가의 아카이브 작업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최근

라 생각했다.

나는 작가에게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 <아시안 프로토콜 Asian Protocols>에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마침 이번 여름 중국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본 리서치를 진행하며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졌다. 연구하는 동안 중국에 대한 스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곧 문타다스로부터 관련 내용을 공유 받을 수 있었다. 주제에 대해 문타

테레오타입을 재구성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각각의 개별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독해해 나

다스와 다양한 논의를 나눴으며, 관료제, 관습, 국경, 군대, 건강 등과 같은 개념을 통해 서구에

갈 수 있음을 체감했다. 이제 내게 있어 중국은 유머감각이 풍부하고 소양이 있음과 동시에 친

서 생산해 낸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는 연구 목표를 잡았다.

절하고 다양한 전통을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중국인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이웃과의 관계 를 맺는 것을 매우 즐기는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내게 있어 이 물리적으로 멀고 먼 두 문화

이 연구를 위해 작가가 제시한 용어들과 연관된 시각 이미지를 수집함에 있어 부딪친 첫 번째

권의 다양한 관련성을 찾는 작업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접하기 힘든 매우 풍부한 경험을 제

난관은 바로 언어였다. 중국어로 이미지를 찾는 작업 자체가 거대한 장벽이었다. 간체자로 찾

공해 주었다. 나는 예후아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중국인들은 지중해쪽 사람들 같아요.”

아야 하는지, 대륙한자로 접근해야 하는지, 혹은 또 다른 종류의 한자로 검색해야 할지가 난관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직장에서가 아니라면요.”

의 시작이었다. 유럽이 아닌 다른 어떤 지역을 출처로 이미지를 찾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 함도 컸으며, 중국측의 웹페이지를 접속하여 열람하는 것 자체도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타다스가 건네었던 충고는 중국 학자를 만나 도움을 청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시아-유럽간의 교류 플랫폼인 까사 아시아(Casa Asia)에 접속하여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 (La Sagrada Familia)도서관의 중국어과에 대한 정보를 접했고, 곧 중국 남동해안지역인 푸젠성

출신의 학생인 예후아(Yehua)를 만날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바르셀로나에서 통역을 공부해온 그녀는 문타다스의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동안 겪은 언어적 난관, 특히 관용적인 표 현에 대한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녀와의 공동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 다. 일단 내가 해당키워드에 대한 중국의 이미지를 찾으면 그녀는 그 이미지와 용어가 중국의 보편적인 문화적 인식과 일치하는지 검토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의문점이 발생했다. 하나의 키워드에 대해 어떤 용어로 번역을 해야 하는가, 번역한 의미 중 어떠한 의미가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를 향한 의문을 하나씩 풀어가며 하나의 키워드에 대한 중 국어에 내제된 표현력, 즉 한 용어가 내포한 다양한 의미를 최대한 아우르려는 시도를 했다. 반 면에 ‘군대’나 ‘정치’와 같은 용어는 반대로 다양한 의미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리서치 작업은 더욱 생산적으로 진행되었다. 예후아는 나에게 중국과 유 럽의 풍습이 가진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리서치에 대해 참고할만한 이미지를 찾을 수 있는 중국쪽 웹사이트들을 소개해주었고 그렇게 찾아낸 이미지들이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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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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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 Research Notes Cristina Sanahuja

I started to work with Muntadas two years ago when I was asked to carry out his files. Recently, he asked me to participate in his new project : Asian Protocols. I was very much drawn to his proposal since I had plans to travel to China this summer. Our goal was to work on stereotypes created by westerners through concepts such as: bureaucracy, custom, border, military, health, etc. For that purpose, I had to find images that had a connection with the word list he gave me. The first challenge that I found was the idiomatic barrier since it was difficult to find images in Chinese. Which Chinese should I use? Should I use the simple version, the mandarin or another specific one? Where could I find other images that were not only from European sources? The access to Chinese websites was not easy. Muntadas recommended me to contact someone in China who could help me in the search. Through Casa Asia, I signed up to the Sagrada Familia Library classroom in China looking for a way to find some possible collaboration. It was there where I met Yehua, from Fujian, a region located in the Southeast Coast of China. She had been studying Translation in Barcelona for three years. Quickly, she became very interested in the project and helped me solve the language problems.

what these images were representing. To complete the project work, I finished an intensive course on Chinese film studies. I thought that looking to some moving images would help me answer some questions I had about Chinese culture. Yehua was also happy to send me personal images of her. I thought these were more specific and interesting compared to the ones we found in books and websites. At the end of the research, my personal knowledge about the Chinese community had changed a great deal. During the months that this study took place, I built a new stereotype structure different from the one I had initially. This new structure was much more open and straightforward which helped me observe how each culture has different levels of interpretation. I discovered that the Chinese people have a great sense of humour, are very polite and attentive, have endless traditions, care for their families and enjoy interacting with others tremendously. It turned out to be very enriching to find meeting points between the two cultures seemingly so diverse and geographically different. I remember saying to Yeahua: “Chinese people are a little bit Mediterranean”, and she did not quite understand me but replied: “it is possible, except at work”.

At the beginning, I looked for images about China and she checked the image and the word matched to its cultural perception. However, new doubts came up : Which translation should we use? Which meaning is the correct one? In some instances, we looked for the closest meaning possible for the same word in order to show its linguistic richness. On the other ones, other words such as “military” or “politic” did not allow as many variations. As time went by, our meetings became very productive. Yehua explained me about her customs and the differences and similarities between her culture and mine. She suggested me to look on some Chinese websites with good images and she helped me to translate 52

Asian Protocols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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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프로토콜 : 리서치 노트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수집한 중국의 이미지의 출처였다. 중국의 이미지로 찾아낸

첸 예후아

이미지였지만 이들은 중국만의 이미지가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혹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 의 이미지이기도 하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런 문화적 공통요소들로 인해 서구인들이 종종 나 를 한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착각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이러한 유사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

내가 크리스티나를 처음 만난 것은 바르셀로나의 까사 아시아(Casa Asia)에서 진행한 언어 교

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이런 오해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문화적 유사성은 세계

환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녀는 어떤 아트 프로젝트에 참가 중인 연구자라고 자신을 소개

화 흐름 이후 그 효력을 상실했을까 또는 강화되었을까. 개별 국가의 상투적인 이미지만이 소

했다. 그와 관련하여 나에게 중국의 사찰 사진들을 보여주며 이 이미지가 중국의 ‘의례’ 개념에

비되면서 그 문화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내용들은 알려지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번 프로젝트

부합하는지에 대한 확인을 부탁했다. 이 작업을 마친 뒤 그녀는 지금 진행 중인 이 연구에 참여

의 연구를 통해 이러한 의문점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에게 생각치 못했던 많은

할 것을 제안했고 나는 연구주제나 관련내용을 모른 채 일단 합류하게 되었다. 이때의 내 생각

발견과 함께 조국의 언어와 문화를 되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생산적이고 흥미로웠던

은 ‘단순히 이미지만 보고 ‘예, 아니오’라는 답변만 하면 되겠거니’ 였다. 사실 나는 안토니 문

작업임에는 분명하다.

타다스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이후 일주일에 두세 번씩 크리스티나가 선정한 이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한 미팅을 가 졌는데 이 작업은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한 작업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신적 혹사” 로 여겨질 만큼 힘든 작업이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그동안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용어와 개념에 대한 상식적 판단조차 모호해졌다. 연구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비 로소 우리 둘 사이에 용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간략히 정리해서 이야기 해보자면, 우리에게 있어 영어는 일종의 유의어였다. 나는 중국어로 단어와 의미를 떠올렸지만 크리스티나와는 스페인어로 토론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 에 결국 우리는 이 세 가지 언어의 미로에서 헤매일 수 밖에 없었다. 특히 하나의 용어를 해석 함에 있어 의견을 통일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진행 중에 크리스티나는 내가 휴가철에 중국에서 촬영한 사진도 참고해 보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그 사진 중에서 선정된 사 진들에 대한 역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내용을 설명하는 것으로 그녀의 이해를 도왔다. 또한 그 녀가 중국 공동체와 문화에 대해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바르셀로나에서 내 중국친구들 이 주최한 여러 활동들에 초대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해석하는 문 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하나의 용어에 대한 해석은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크리스티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이 특정한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의미가 형성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우리가 모국어를 일상적 환경 에서 습득하고 외국어를 사전적 정의를 통해 학습해 왔다면 외국에서 다양한 언어를 접하고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은 어떠할까, 어떤 한 가지 용어에 대한 여러 개념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를 동반한 여러 질문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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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Asian Protocols : Cart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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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 Research Notes Chen Yehua

I met Cristina in a language exchange activity I took during my internship program at Casa Asia, in Barcelona. She introduced herself to me as a researcher of an art project and showed me some pictures of temples in China to find out if these images matched the concepts of those we had in mind . At the end, she suggested me to work together in the research. I accepted the offer without having a thorough understanding of the subject thinking I should just see the pictures and give an answer, though at that time I did not know who Antoni Muntadas was. We began to meet each other every two or three weeks in order to comment on the images selected by Cristina. The research was not as easy as I had imagined and it rather became a “mental torture� that constantly made us doubt about general concept of different words with wich we deal in our daily life. Shortly afterwards, after starting our research we discovered that there was the issue of our different interpretations of words. These words were synonyms in English. It was almost inevitable for me to interpret these words with a Chinese mind while Cristina and I were discussing about them in Spanish language. That meant we were working in a maze of three languages with no way out. Most of the time, it took us a long time to reach to a common view between different interpretations of one word. Cristina suggested me to look for pictures and even share some of my own photos from my holidays in China. I could explain the content of the image and the story behind so that Cristina could understand the reason for my choices; I also invited her to some activities organized by my Chinese friends in Barcelona for her to better understand the Chinese community and culture. But the problem was the same still. The interpretation of a word can be very personal.

happens with multilingual young-speakers who live abroad? Do we have different conceptions about the same thing? Another interesting phenomenon was when I saw the images collected by Cristina who were not from China but from Korea or Japan, or other Asian countries. It reminded me of when people identified me as Japanese or Korean; the same goes for the cultural elements. There are some Chinese people who take advantage of these similarities among Asian cultures for business purposes but others avoid it. Has cultural differences lost its relevance in the age of globalization or just the opposite? Is it true that country stereotypes are increasingly promoted, so we do not know other aspects of a foreign culture? Although we end up not getting conclusive answers to the above questions, the research process had been very interesting and rewarding as it was a journey of discovery and reflection of my own language and culture.

During the conversations I had with Cristina, some questions came to my mind: do we form concepts through the use of words or vice versa? If we say that we learn a native language through our everyday life and we learn a foreign language by the definitions in the dictionary, what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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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外交 外交 Diplomacy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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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外交 外交 Diplomacy 중국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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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外交 外交 Diplomacy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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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政治 Politics

政治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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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政治 Politics

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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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政治 Politics

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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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军事 Military

軍事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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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军事 Military

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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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军事 Military

軍事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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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条约, 协议 Treaty

条約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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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条约, 协议 Treaty

条約

중국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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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 条约, 协议 Treaty

条約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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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控制 Control

統制, コントロール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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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控制 Control

統制, コントロール

중국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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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控制 Control

統制, コントロール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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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安全 Safety

安全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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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安全 Safety

安全

중국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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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安全 Safety

安全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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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会议 Meeting

会議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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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会议 Meeting

会議

중국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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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会议 Meeting

会議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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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商业 Business

事業, ビジネス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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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商业 Business

事業, ビジネス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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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商业 Business

事業, ビジネス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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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명령 Order

秩序, 命令 順序 規則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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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명령 Order

秩序, 命令 順序 規則

중국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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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명령 Order

秩序, 命令 順序 規則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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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規定 規定 Regulation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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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規定 規定 Regulation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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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 規定 規定 Regulation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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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仪式 Rit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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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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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仪式 Ritual

儀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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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仪式 Ritual

儀式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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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宗教 Religion

宗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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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宗教 Religion

宗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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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宗教 Religion

宗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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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식 礼拜仪式 Liturgy

礼拝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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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식 礼拜仪式 Liturgy

礼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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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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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식 礼拜仪式 Liturgy

礼拝

일본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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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媒体 Media

媒体、 メディ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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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媒体 Media

媒体、 メディ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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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媒体 Media

媒体、 メディ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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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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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建筑 建築 Architecture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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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建筑 建築 Architecture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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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建筑 建築 Architecture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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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공간 公共空间 Public Space

公共空間、パブリックスペース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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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공간 公共空间 Public Space

公共空間、パブリックスペース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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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공간 公共空间 Public Space

公共空間、パブリックスペース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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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공간 私人空间 Private Space

プライベートスペース

한국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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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공간 私人空间 Private Space

プライベートスペー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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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공간 私人空间 Private Space

プライベートスペー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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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프로토콜 : 단편들

Asian Protocols : Frag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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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관하여 : 알약

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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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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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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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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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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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Protocols

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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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약 복용자가 느끼는 효과와, 근본적으로 약을 먹는 행위를 통해 치유되어야 하는 복용자

내부로부터 발산되는 아름다움. 번역에 관하여 : 알약, 2014

가 가진 결핍에의 의존성에 대한 복잡성을 다루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적극적인 참여와 의식 적인 결정, 심지어 향정신적 물질의 환영이 “정신과 환상”의 과잉을 생산하는 경우, 그리고 그

한스 D. 크리스트

것이 “정화의 개별적 수단 5 ” 을 삼킬 필요가 생긴 경우를 미리 가정한다. 이 양보가 실제 포함 하는 것에 대해 조절 없이 모든 것을 용인하는 집단 복용의 자유롭게 부유하는 일부로서의 주 체 소유권과 고전적인 연합 너머에서 상상되는 주체를 세우는 것은 다름아닌 “사적인 의사 결

시적인 농담 1

정” 과 “공적 기준”의 조합이다. 특정 행동 방식으로 축소된, 완전히 권력을 박탈당한 주체에게 반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번역에 관하여 : 알약>에 관계된 문타다스의 키워드는 다음과 같다 : 공범, 희망, 치유, 사변, 순응, 복잡성

그러나 <번역에 관하여 : 알약> 이라는 제목은 또 다른 모티브를 암시한다. 번역이라는 행위는 이것이 너의 마지막 기회다. 이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 네가 파란 알약을 먹는다면 이야기는 끝난다. 침대에서 잠을 깨서, 네가 믿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믿

해독제의 옵션을 의미한다. 그것은 스스로의 게임에서 지배적인 시스템을 패배시킬 가능성과, 묘사력으로의 접근을 반전시키는 시적 농담의 사용 가능성을 내포한다.

으면 된다. 빨간 알약을 먹는다면, 너는 원더랜드 Wonderland에 남게 된다. 그 리고 나는 너에게 토끼굴이 얼마나 깊숙히 이어지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 The Matrix, 1999> 에서 모피어스와 네오의 대화

고전 공상과학 영화 매트릭스에서 나온 이 대화가 보여주듯이, 실재에 대한 의문은 상당히 모순적인 방법으로만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올 법한 동화 속 같은 곳에 있게 해준다는 약속 보다는, 익숙한 환경의 자신의 침대 위에서 악몽으로부터 깨어 날 수 있게 해준다는 약속이 훨씬 더 실재적인 것 같다. 알다시피 매트릭스에서 실재에 대한 약속은 정확하게 반대인 것으로 드러난다. 허구 소설이긴 하지만, 비슷하게 그로테스크한 현 실이 담긴 <The Futurological Congress> 2 는 제약 산업이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들을 유 희적으로 다룬다. 이 소설에서 알약은 개인적 기호에 따라 복용하는 고체의 물질로만 존재하 지 않는다. 마시는 물에 용해되거나, 특별한 수증기 폭탄에 의해 공기 중으로 분사된다. 처음에 는 향정신성 물질을 최소량 복용하는 것이 전체 사회 질서가 정치, (군사적) 전쟁, 외교, 그리고 종교를 발전킬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준다. 스타니스와프 렘 Stanislaw Lem의 소설 “실재적 삶” 에서처럼 제약 회사의 확산은 생명정치적 침투라는 형태를 포함하며, 환각을 만들어내는 것에 서 더 나아가 대신에 입으로 삼킬 때 효과가 있는 필수적인 복용약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여기 서 치유성을 얻기 위한 세 가지 방식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 대량 확산(마시는 물, 먹이 사슬 등)의 영향에 놓이는 것, 의료 제도 안에서 처방을 받는 것, 혹은 “정신화학적 psychemical

3

인 자율 최적화에 대한 환각을 자발적이고 긴급하게 추구하는 것,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1. 이리스 드레슬러 Iris Dressler와 나는 2003년에 도르트문트의 오스트발 미술관 에서 열린 문타다스의 전시, 번역에 관하여 : 미술관 On Translation : Das Museum 를 만들고 나서, 안토니오 문타다스의 작업의 복잡성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알약 – 향정신성 약 학 물질-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지금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 전시에서 당시 생각했던 것이 구현되어져 있다. 좋은 농담 은 주제를 시적으로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계에 어떤 것을 소개하지만, 그것과 또 다른 것과의 관계는 알 수 없 는 것으로 남았다.

있다. 세 가지 방식 중 오직 후자의 두 방식만이 “싸이빌리제이션 psyvilization” 의 선출 가

2. Stanislaw Lem, The Futurological Congress : From the Memoirs of Ijon Tichy, trans. Michael Kandel (New York : Continuum, 1974). 처음에는 Kongres futurogczny (Kraków, 1971)로 출간됨.

능성을 반영한다. “싸이빌리제이션 psyvilization 4 ” 은 예를 들어 민주적인 방식과 상징적으

3. 같은 책, p.66 4. 같은 책, p.66

로 예수의 몸을 먹는 행동을 통해 종교적 추론을 제공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좋은 플라시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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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같은 책, p.66

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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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y Radiating from Within. On Translation : The Pill, 2014 Hans D. Christ

A Poetic Joke 1 Keywords by Muntadas related to On Translation : The Pill : accomplice, hope, healing, speculation, adaptation, complexity This is your last chance. After this, there is no turning back. You take the blue pill—the story ends, you wake up in your bed and believe whatever you want to believe. You take the red pill—you stay in Wonderland and I show you how deep the rabbit-hole goes. Dialogue between Morpheus and Neo in The Matrix, 1999

As this dialogue from the classic science-fiction film The Matrix suggests, the question of reality can only be answered in a downright contradictory way. Indeed, the promise of waking up from a bad dream in one’s own bed amid familiar surroundings seems considerably more realistic than the promise of finding oneself in a fairy-tale-like environment à la Alice in Wonderland. As we know, The Matrix inverts precisely this promise of staying in reality. In a similarly fictitious way, yet invested in reality as the grotesque, The Futurological Congress 2 toys with the opportunities presented by the pharmaceutical industry. Here pills not only appear as solid objects being consumed according to personal tastes; they are also dematerialized in drinking water or are dispersed in the air using special vaporizer bombs. The minimal dosage of psychotropic substances first provides a foundation upon which an entire social order may develop its politics, (military) warfare, diplomacy, and religion. In Stanislaw Lem’s novel, as in “real life” the proliferation of pharmaceutical agents involves forms of biopolitical penetration, extending far beyond the production of illusions to instead offer an essentially consumable promise that works from within when ingested orally. Here it is important to differentiate between the three paths to attaining a sense of healing: being subject to mass dissemination (drink-

ing water, food chain, etc.),

prescribed by the medical system, or voluntarily and urgently pursuing the phantasma of “psychemical” 3 self-optimization. Only the latter two reflect the electability of “psyvilization” 4 which for instance gives religious reasoning for this, both democratically and through the act of symbolically consuming the body of Christ. As with any good placebo, here we are dealing with consumers’ complicity with effect and, essentially, with the dependence on a deficit which must be abrogated through the act of consumption. The latter case presupposes active participation, conscious decision, even when the phantasmagoria of the psychotropic substances produces an excess of “spirit and fantasies” and when it becomes necessary to ingest “the respective means of purification.” 5 It is this combination of “private decision-making” and “public standardization” that establishes a subject which is imagined beyond ownership and class affiliation as a freely floating part of collective consumption that is allowed everything without any control over what these concessions actually involve. It is a fully disempowered subject reduced to certain paths of action, from whom no revolts are prone to arise. Yet the title On Translation : The Pill alludes to yet another motif. The act of translation signifies the option of an antidote. It implies that possibility of beating a dominant system at its own game and of using a poetic joke to reverse the approaches to depicting power.

1. Since Iris Dressler and I realized the 2003 Muntadas exhibition On Translation : Das Museum at the Museum am Ostwall in Dortmund, hope has been simmering that there could be a pill—a psychotropic pharmazeutical substance—that could help decipher the complexity of Antoni Muntadas’s artistic work. Now, in the scope of the exhibition Muntadas : Asian Protocols, an initial prototype has been realized. A good joke poeticizes its subject. It introduces something to the world that we may immediately identify, but whose relations to other things had remained unknown to us. 2. Stanislaw Lem, The Futurological Congress : From the Memoirs of Ijon Tichy, trans. Michael Kandel (New York : Continuum, 1974). Originally published as: Kongres futurogczny (Kraków, 1971). Quotations after Stanislaw Lem, Der Futurologische Kongress, Aus Ijon Tichys Erinnerungen, Suhrkamp, Frankfurt a. M., 2009

3. Ibid., p.66 4. Ibid., p.66 5. Ibid.,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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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ranslation : P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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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프로젝션

Three Projections 번역에 관하여 : 돌아나가기, 2013

On Translation : Go Round, 2013 번역에 관하여 : 듣기, 2005

On Translation : Listening, 2005 번역에 관하여 : 바라보기, 2004 On Translation : On View,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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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 공간

Transitory Spaces

크리스토퍼 필립스

Christopher Phillips

공간, 장소, 상황에 관한 많은 작품들은 일상의 공적 장소를 환기시킨다. 그 곳은 동일한 글로벌 기업에 의해 디자인된 것처럼 보이는 교체 가능한 정체 불명의 공간으로 대부분의 현대적 삶의 배경을 만들어준다. 비디오 설치작품 <번역에 관하여 : 바라보기>(2004) 에서는 큰 열린 공간과 눈에 띄는 커다란 유리 창문이 보여지는데, 검은 프레임으로 나누어져 있어 격자와 같은 효과를 만든다. 우리는 이 창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어떤 풍경 을 응시하고 있다. 다른 행인들은 앞쪽에서 지나다닌다. 창문을 통해 빛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 에 이 형상 모두는 익명의 실루엣으로 서로 닮아있다. 그들의 의상, 헤어스타일 그리고 바디 랭 귀지는 그들의 대부분이 아시아인임을, 그리고 이 장면이 극동의 어디쯤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배경은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 이곳은 공항, 기차역, 박물관, 쇼핑몰과 같이 군중이 끊임없이 오고 가도록 고안된 많은 익숙한 장소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문타다스는 <번역에 관하여 : 바라보기>에서 행인을 사로잡는 감추어진 장면을 절대 밝히지 않 는다. 짝을 이루는 작품인 비디오 설치작업 <번역에 관하여 : 듣기>(2005) 도 동일한 수수께끼 (정체불명 enigmatic)를 보여준다. 여기서 문타다스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에서 우리가 들을 수

없는 것으로 주의를 전환시킨다. 영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일반적인 모더니스트의 공간을 보 여주는데, 이번에는 내부 뜰을 내려다보는 밝게 비추어진 발코니이다. 우리는 대학생 나이 정 도의 아시아 남성과 여성이 주위를 서성이는 것을 본다. 아마도 그들은 수업 사이의 잠깐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대다수는 난간 주변에 서서 휴대전화 통화에 열중하 고 있다. 휴대전화 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 공적 공간에는 먼 거리에 있는 친구와의 사적 대화 를 하고 있는 독립된 개인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그들 주변의 사람들의 존재는 완전히 의식 하지 못한다. 문타다스에게 이것은 바로 우리가 오늘날 살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 풍경의 역설 중 하나이다.1

1. 영화평론가 레이몬드 벨러(Raymond Bellour)는 <번역에 관하여 : 바라보기>와 <번역에 관하여 : 듣기>를 시청각 미디어 작품 의 두 가지 핵심 요소인 시각과 청각을 다룬 뒤섞인 작품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 각각에서, 문타다스는 우리가 접근할 수 없게 만드 는 방식으로 이 요소 중 하나를 강조한다. 절대 충족될 수 없는 호기심을 유발하면서. Raymond Bellour, “Looking, Listening,” in Muntadas, On Translation: I Giardini, catalogue of the Spanish Pavilion, 51st Venice Biennale, 2005, pp.35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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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 of the works in Spaces, Sites, and Situations evoke the everyday public places--interchangeable, unidentifiable, seemingly designed by the same global firms--that provide the settings for much of contemporary life. The video installation On Translation : On View (2004) presents us with a large, open space, notable for the large glass windows that are divided by black frames so as to create a grid-like effect. We see people standing in front of these windows and gazing out onto a vista that remains hidden from us. Other passersby walk to and fro in the foreground. Because of the light pouring in through the windows, all of these figures resemble anonymous silhouettes. Their clothing, hairstyles, and body language hint that many of them are Asian, and that the scene may be somewhere in the Far East. But the setting is never revealed. It could be any one of a number of familiar locations that are designed to accommodate constantly moving crowds of people: an airport, a train station, a museum, a shopping mall. Muntadas never discloses the mysterious sight that so captivates the passerby in On Translation : On View. A companion piece, the video installation On Translation : Listening (2005), proves equally enigmatic. Here Muntadas shifts our attention from what cannot be seen to what cannot be heard. The video shows us another generic modernist space, this time a wide, brightly lit balcony overlooking an interior courtyard. We see, milling about, what appear to be college-age Asian men and women milling about. Perhaps they are taking a short break between classes. Many of them pause near a railing and talk intently into their mobile phones. We cannot hear their voices nor follow their conversations. Thanks to the advent of mobile phone technology, this public space is filled with isolated individuals having private conversations with distant friends, yet completely oblivious to the presence of the people around them. For Muntadas, this is just one of the paradoxes of the new media landscape that we inhabit today.1

1. Cinema critic Raymond Bellour has described On Translation: On View and On Translation : Listening as intertwined works dealing the two key components of the audiovisual media work : sight and sound. In each of these works, Muntadas highlights one of these components by making it inaccessible to us, provoking a never-satisfied curiosity. See Raymond Bellour, “Looking, Listening,” in Muntadas, On Translation: I Giardini, catalogue of the Spanish Pavilion, 51st Venice Biennale, 2005, pp. 35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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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 사적 공간 [서울, 베이징,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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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표현의 결과를 낯선 이들과 함께 소통하며 공유하고자 한다. 중국과

공적 / 사적 공간 - 서울

일본과는 달리 가족주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었던 한국에서 이러한 공적 공간에 대한 요구는

공간연구집단

상대적으로 미약할 수 밖에 없었다.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의 공적 공간은 주로 지배권력 에 대한 저항의 장소로 기능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공적 공간의 표현은 흔치 않았음과 동시에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을 위한 공적 공간 프로젝트에 중국, 일본의 건축가 및 연구자들 과 함께 참여해 달라는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한국의 공적 공간 관광 가 이드 정도로 가볍게 상정했었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공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 들을 수집해 가능한 흥미로운 방식으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소개해 주는 일이었다. 한국적 공적 공간을 규정하려는 시도 따위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다만 한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 서, 그리고 남들 보다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공적 공간의 사용을 관찰해온 연구자의 시각에서, 나름 자유롭게 수집한 한국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한데 엮어 중국과 일본의 그것들 옆에 나란히 배치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광화문 광장의 스 펙터클과 군중, 도시계획에 의해 관리되는 크고 작은 공개공지들, 거리를 어지럽게 채우고 있는 기표들, <마을만들기>나 <담장허물기>같은 자발적 공동체 운동, 찜질방의 공동휴게실, 신발을

언제나 억압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될 뿐이었다. 이러한 공적 공간의 표현 양태가 달라진 것 은 아마도 불과 십여 년 전,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을 계기로 집단적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 발하고 난 이후였을 것이다. 한국의 공적 공간은 더 이상 ‘하나’의 장소로 남아 있을 근거가 없 었으며, 개개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욕망들이 표출되는 일상의 수행적 공간으로 변화해 왔다. 정부의 대응 또한 이와 함께 달라져야 했다. 공적 공간을 공공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공적 공간의 프로토콜은 제도화되어야 했으며, 이를 위해 통치 권력은 끊임 없이 공적 공간의 표현 을 관찰하고, 범주화하며, 효율적인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한국의 공적 공 간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는 무엇보다 이러한 통치 권력이 선택하는 전략의 일관성이란 문제이 다. 정부는 여전히 과거 공적 공간의 획일적 이미지를 현재에 투사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개 개인의 임기응변적 대응은 언제나 초과적이었다.

벗고 앉는 식당 등. 하지만 우리는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그것도 몇 가지 주제로 도저 히 묶일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양의 이질적 자료들에 곧 압도되고 말았다. 선별을 위한 ‘프로

공적 공간은 이처럼 제도화된 권력과 개개인의 욕망이 동시에 얽혀 있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토콜’이 필요했다.

관점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해 보였다. 그들은 종종 충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부 합하기도 한다. 만약 후자라면 정부는 아무런 추가적인 대응도 하지 않겠지만, 이때 공적 공

동시에 동일한 필요가 ‘공적 공간’에도 작동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했다. 공적 공간의 프로토 콜은 왜 필요한가? 이러한 질문은 과연 공적 공간을 ‘공공재’와 같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과도 관련이 있다. 공공재는 ‘비배제적(non-excludable)’이고 ‘비경합적(non-rivalrous)’인 특성을 갖는 재화로 정의된다. 즉, 누구에게나 그 사용이 허락되며 아무리 많은 사람이 사용해 도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공간, 특히 물리적 공간은 공공재가 될 수가 없다는 점 이 분명해 진다. 물리적 공간은 그 규모에 있어서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며, 그 위치에 따라 상 대적 가치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구체성을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을 ‘공적(公的)’으로 사용 하기 위해서는 선별과 가치 평가를 위한 규칙과 원리, 즉 ‘프로토콜’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는 한국의 도시공간에서 이러한 프로토콜이 생산되는 과정의 특수성에 당연히 관심을 갖게 되었 지만, 한 ∙ 중 ∙ 일 공적 공간 프로토콜의 비교와 번역을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 보편적인 구조 안 에 특수성을 펼쳐 보이는 것도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문타다스가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의도

간은 ‘누구나(公共)’를 위한 공간이 되기 보다는 ‘아무도(公空)’ 필요로 하지 않는 공간이 됨으로 써 오히려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특성을 보였다. 이를 우리는 ‘공적 공간의 역설’이라고 불렀는 데, 아무도 걷지 않는 보행 전용도로,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건물 구석에 숨겨져 있는 공개공지 등으로 예시될 수 있는 현상이었다. 개인의 욕망이 공적 공간에서 상충하는 경우, 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여 그 욕망을 억누르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부 개입의 원칙은 미국식 의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가 아니라, 그때그때 사안의 민감함에 따라 관용의 정도에 있 어서 큰 격차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었다. 우리가 가장 흥미롭게 주목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였 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비일관적인 관용의 격차를 통해 공적 공간의 ‘일상적 프로토콜(informal protocols)’과 ‘제도화된 프로토콜’ 사이의 긴장이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

한 관점에서는 제도화된 프로토콜이란 결국 일상적 프로토콜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 기까지 했다.

와 방향이 아마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 것도 바로 이때쯤이었다. 마치 공기와 같은 완벽한 공공재로서의 공적 공간이란 허구적 이미지로 선전될 뿐이다. 살아서 공적 공간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집단적 욕망이 행사되는 장소이다. 그것은 종종 익 명성을 전제로 한 군중의 형태로 현현되며, 그 안에서 개인들은 개인의 공간에서와는 다른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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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동하는 제한적 공공재로서의 공적 공간에는 이처럼 이질적인 프로토콜들이 만들어내는 긴 장이 언제나 내포되어 있다. 그 공간은 비록 불안정할지라도, 긍정적 차별이 인정되고, 자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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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가 유도되며,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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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공적 공간이 생산되고 있는 작지만 무

Space Research Group

시할 수 없는 징후들을 포착하고 또한 이를 가깝고도 먼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 공유해 보고 싶 었다.

When we were first invited to participate, together with other Chinese and Japanese researchers, in a public space project for the exhibition “Muntadas : Asian Protocols”, we presumed our role to be a tourist guide for Korean public spaces. That would be, as it were, to introduce to our neighbours a variety of examples typifying the Korean public domain in a most interesting way. We were not concerned at all with defining what Korean public space is. Yet, as Koreans who live in Korea and also as researchers who have observed how people use public spaces more consciously than laymen, we expected at least our work on Korean public spaces could bring some unexpected values when they were juxtaposed with those on Chinese and Japanese public spaces. Spectacles and crowd in Gwanghwamoon Square, privately funded public open spaces around building forests, flashy signposts filling the streetscape of commercial areas, spontaneous or institutionalised community building movements, public lounges in Jjimjilbang (Korean dry sauna), public restaurants where shoes are to be taken off, and so on. Having started collecting those cases, however, we soon realised ourselves to be overwhelmed by the sheer quantity, diversity and even heterogeneity of materials by which they could be presented. We needed some kind of ‘protocols’ for evaluation and discrimination. We saw at the same time that the same necessity operates for ‘public spaces’ themselves. Why are the protocols of public spaces necessary? This question is also related to a different question of whether public space can indeed be regarded as an equivalent of ‘public goods.’ Public goods have the characteristic of being ‘non-excludable’ and ‘non-rivalrous’ in use. That is to say, they are accessible to anybody, but never exhausted no matter how many people use them simultaneously. It becomes then clear that public spaces can never be a public good, for they, being real, are limited in their dimension and discriminative in their relative locations. Hence a need for protocols arises to assure space can indeed be public, and can be used as a public good. We 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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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course become interested in particular processes in which those protocols are produced for public space in Korean cities, but also thought that they should be sought for within an universal framework to some degree, if for the purpose of comparing and translating them across other Asian cities. It was at this moment that we began to grasp, though vaguely, the intention and direction which Muntadas had set up for this exhibition. Public space is a place where the collective desire of individuals comprising a society is enacted. It is often realised in the form of crowd based on anonymity, by which individuals express themselves in other ways than they do within their private spaces, and share what is being expressed openly with strangers. Unlike China and Japan, Korea still manages to maintain strong familism value, which makes a need for public space seem relatively weak. Public spaces in Korea functioned until the early 90s mainly as a place for protest against the military ruling power, and for that matter, the expression of public spaces was regarded as rare events that should only be oppressed, if happened at all. It was probably through the experience of co-hosting the 2002 FIFA Worldcup with Japan, when the collective energy burst into a swirling storm of cheers, that such an oppressive mode of public space took a new turn. Since then, public space in Korea has lost its ground to remain as such a homogeneous place and started rather to serve everyday performativity of individual desires. The government’s reaction had to change accordingly. New protocols of public space needed to be set up to be institutionalised, for which the governing power has to observe and categorise the expressions of public space,, and in effect, put them under efficient control and management. As we envisage, the problem that deserves our most attention currently with regard to public space in Korea is the inconsistency of strategies the government takes. While the government strategy still fails to get rid of the past monolithic image of public space completely, people’s extemporaneous reactions seem to succeed in nullifying the government action effectively.

al desires. They may collide in pursuing everyday urban lives or conform to each other seamlessly. If the latter is the case, the government will do nothing. However, should such be the case, public space seems to be working successfully often by standing rather for none than for all. This phenomenon we dub as ‘the paradox of public space’ can be illustrated by pedestrian-only road with no pedestrians, playgrounds with no children and public open space hidden in the corners of buildings. By contrast, when institutionalised power and individual desires collide over the uses of public space, the government will intervene by any means to suppress desires. Yet it is not that American-style ‘zero tolerance’ principle that the Korean government takes for its intervention. The government changes, often unnoticeably or sometimes openly, the degree of tolerance for conflicts with no consistent reasons. It is this tolerance gap that we become most interested in, because it is that which is able to disclose the tension between the ‘formal protocols’ and ‘informal protocols’ that are already there among people, independently of the formal one. From this viewpoint, formal protocols can even be seen as nothing more than a shadow of informal ones. Public space as a perfect public good can only be dreamt of through a fictitious image, which is in turn a result of artificial design. On the contrary, public space that is real and lived as a limited public good must involve within itself a tension induced by the co-presence of heterogeneous protocols. We believe that such public space, however unstable, should welcome and embrace positive discrimination, spontaneous participation and movements toward an open society. We hope to capture through this project small but not negligible symptoms that may indicate those irreversible movements occurring in Korean public spaces and share them eventually with our so-close-yet-far neighbours.

It seems therefore most important for us to have a perspective that public space is a social product of institutionalised power and indivi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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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웃 사람들에게 용적을 늘리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자, 어떤 이웃 하나가 우리가 새로 짓

공적 / 사적 공간 - 베이징

는 화장실이 그의 욕실 옆이라며 항의하고 나섰다. 그는 우리의 화장실 때문에 습기가 많이 찰

리믹스 스튜디오 (니콜라 살라디노)

것이며, 그 벽은 그 자신의 벽이기도 하기 때문에 화장실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그 이웃과의 경계에 두 개의 분리된 벽이 있다는 것과 우리는 적절한 방수 층을 덧댈 의지가 있다는 것은 무시

리믹스 스튜디오는 베이징에 근거지를 둔 신생 국제 건축 사무소로 두 이탈리아인과 한 중국인 파트너가 설립하였다. 우리는 항상 비판적 관점을 갖기 위해 필요한 관찰자와 관찰 대상 사이 의 거리를 갖는 방식의 “외국인 사무소”의 조건들을 흥미롭게 여겨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어디에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수단을 가지고 일하는 다국적 기업이 흔히 저지르는 실 수를 피하기 위해 우리가 다루는 문맥 안에 착수하고자 노력한다.

베이징의 공적 공간(public space)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건축가로서 공간 에 주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연히 좋았지만 그보다 더 설레었던 것은 중국에서 “공적(public)” 의 개념이 다양하고 매우 흥미로운 조건들을 광범위하게 포괄한다는 점이다.

하고). 그는 우리 공사 작업자들에게 여러 차례 위협을 가했고,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마당 출입

구를 잠그고 그가 더 이상 들어올 수 없게 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이웃 전체의 많 은 불만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이유가 “소유지에서의 어떤 작업도 공동체 전체의 감시를 받아 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결국에 그 문제는 해결되었고, 그 사건을 길게 봤을 때, 고통스 러웠던 협상의 전과정은 우리에게 매우 교훈적인 경험으로 남았다.

우리의 이웃들이 도시의 일상 속 다양한 문맥에서 비슷한 행동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추측 해보면, 우리는 공적 공간의 정의와 사용에 있어 서로 관여하는 대립적인 이해관계가 잠재적으 로 폭발하기 쉬운 혼합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징은 범죄 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도시이자 폭력 사건의 비율도 매우 낮다. 이것은 강화된 경찰의 강력한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중국에서 가장 놀라는 점은 사회적 규범의 유연성일 것이다. 서구의 관 점에서 바라보는 중국의 단일한 중앙권력은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정치적인 거시 구조에만 적용된다. 좀 더 작은 규모에서는 모든 것이 협상 가능하다.

통제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경찰권은 일단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만 주목한다) 그것은 오히려 유사-무정부주의적 구조 속에서 양극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불균형을 받아들이는 놀 라운 문화적 수용력과 관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것에서부터 도시의 삶을 규제하는 모든 기본적인 규범의 위반 에까지 이르는 회색지대 안에서 끊임없이 이동한다.

동시에 천 년을 이어온 집단주의 전통은 수십 년 동안의 공산주의 체제 안에서 강화되었고 이 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무엇인지에 대해 매우 특이한 이해를 구축하게 하였으며 자주 이 두 개념을 서로 호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러 차례 사람들은 “민영화”의 과정을 통해 공적 공간을 요구하기도 하고, 반대로 사람들을 새로운 공공 활동에 침투시키기 위해 커다란 사적 공간을 “공유화”시킨다.

내가 겪은 일은 아마도 이러한 측면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골목 중간에 있는 마당이 딸린 전통 가옥에 사무실을 열게 되었다. 그 건물은 상당한 개보수 작 업이 필요했다. 이웃 사람들이 보수 공사가 임박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들은 우리가 건물에 새로운 용적을 더할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용적을 늘리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불법이지만, 대부 분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의해 사회적 규제가 이루어지는 지역에서는 그러한 일이 계속해서 발 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웃이 불평하지 않는 한, 나는 어떠한 건축물도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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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 Private Space - Beijing reMIX Studio (Nicola Saladino)

reMIX studio is a young international architectural office based in Beijing, founded by two Italian and a Chinese partners. We have always enjoyed the condition of a “foreign office” in the way a distance between the observer and the object of observation is needed to achieve a critical point of view, but at the same time we try to commit ourselves to the context in which we operate, avoiding the common mistakes of international firms that work with an identical generic tool set everywhere.

We happened to open our office in a traditional courtyard house in the middle of a hutong. The original building needed a deep renovation process. When the neighbours got to know about our imminent construction, they were immediately curious to see if we would add new volumes, something that would be officially illegal but that constantly happens in the area as the social control is mostly based on personal relationships (i.e. I can build whatever I want as long as my neighbor doesn’t complain). Once they were assured that no volume would be added, we had to face the protests of a specific neighbor because we were building a new toilet next to his bedroom. According to him that would create a lot of humidity and we could not do it because that was also his wall (no matter if indeed there were two separate walls along the property boundaries and we were willing to

When we were asked to develop a research on Beijing public space we were thrilled because as architects we are obviously focused on space, but even more because the definition of “public” in China covers a full range of different and very interesting conditions. Coming from Europe, the most surprising aspect about China is perhaps the flexibility in which social rules are applied. The monolithic central power that usually defines the western perspective of Chinese society only applies to the political macrostructure, making it unquestionable, but at the smaller scale everything is negotiable. On an everyday’s basis people constantly move within the grey area that spans from informality to transgression of all the basic norms that regulate urban life. At the same time a millenary tradition of collectivism, strengthened by several decades of communism, has forged a very peculiar understanding of what “public” and “private” are, making them often almost interchangeable. Many times people claim public space through processes of “privatisation” and vice versa force “collectivisation” of large private spaces, infiltrating them with new public activities.

add a proper waterproof layer).

After he threatened in numerous occasions our construction workers, we suggested them to lock the door of the courtyard and not let him in anymore but that created a lot of discontent in the whole neighbourhood because “any work on the property should be supervised by the whole community”. In the end, fortunately, the problem was solved and putting the episode in perspective, the whole painful process of negotiation was a very instructive experience for us. Extrapolating the same type of behaviours of our neighbours to various contexts of daily life in the city, one can easily imagine the potentially explosive mix of contrasting interests that participate together in the definition and use of public space. Nevertheless Beijing is a city with almost no criminality and a very low rate of violent episodes. And this does not seem to have any relationship with a strong reinforcement of police control (which once more focuses only on delicate political issues), but much more with an incredible cultural capacity to accept disparities, making extremes coexist peacefully in a pseudo-anarchic system.

One personal anecdote could perhaps explain this aspect more clear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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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Beij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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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광고판은 불이 밝게 켜있고, 새 것처럼 보인다. 5층에서 내리면 벌레구멍을 여행하는 듯

공적 / 사적 공간 - 도쿄

한 경험을 하게 된다. 카페의 벽에는 만화책과 DVD가 진열되어 있다. 소파와 텔레비젼, 그리고

하루카 호리우치

비디오 게임기가 있는 작은 방들 사이에 컴퓨터가 있는 칸막이 공간이 모여 있다. 커튼의 뒤쪽 공간에는 은밀한 일을 벌일 수도 있는 사적이고 조용한 숨은 공간이 있다. 이 벌집같은 곳을 차 일본의 공적 공간은 확실한 경계로 구분되거나 특정한 목적을 가진 지정된 중앙 광장같은 곳이 아니다. 일본에서의 공적 공간은 그런 알아채기 쉬운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 에 머무는 사람들의 정체성과 활동을 변화시키는 사이 장소이다. 사실, 일본의 공적 공간에 대 한 경험은 주로 임시적으로 이루어지며, 공간의 경계 구분은 일시적이고 유연하다.

축제 행렬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북과 피리 소리가 들렸다. 저 멀리 안개 낀 좁은 길을 따라, 흔들리는 창 끝의 깃발이 시야에 들어온다.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기대에 가득 차서 술렁거린

지한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하면서 내는 작은 클릭 소리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 진다. 인터넷 카페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공간 사이의 중간에 떠있는 혼성 공간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좁은 집과 스트레스 받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제 3의 공간이다. 시 간제의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은 혼자가 되기 위해, 혹은 같이 있기 위해 이 곳에 온다. 공적인 공간인 인터넷 카페는 일본의 도시화에 대한 또 다른 비평 개념인 - 奥(‘안’ 혹은 ‘뒤’를 의미

하는 일본 단어)을 보여준다. 奥(안)는 전통적인 공간 구조의 건축 형태 마치야 (교토의 서민 가옥양식)

다.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도 굉장한 구경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코니 밖으로 목을 쑥 빼고

에 기원을 두고 있다. 마치야는 거리 쪽으로 나 있는 입구에서 뒤 쪽의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공

기다린다. 이곳은 교토에 있는 기온 마쯔리이다. 조용한 거주 지역이 의식이 열리는 공공의 공

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장소로 이어지는 필터의 역할을 한다. 마치야의 방들은 쭉 이어진 미닫

간으로 바뀌었다. 축제의 행렬이 도착한다. 무거운 밧줄을 함께 힘껏 당기며 튼튼한 나무바퀴가

이 창호문들로 구분되면서 좀 더 친밀한 느낌을 준다. 미닫이 창호문들이 움직이면서 형태가

달린 정교한 2층 구조의 배를 끄는 남자들이 열을 지어 들어온다. 이 배에는 연주자들과 무용수

바뀜에 따라, 유동적인 방들은 보다 사적인 공간이 된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내실에는 하늘을

들이 타고 있다. 관중들은 흥을 내며 즐긴다. 소리를 지르고, 북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

향해 열려있는 (그리고 도시 주변의 소리와 냄새를 향해 열려있는) 뜻밖의 정원이 있는데, 이곳은 내부에

럽게 박수를 친다. 그 성스러운 경로를 따라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무용수들이 손짓을 하고 사

서 찾을 수 있는 다소 외부적인 공간, 반은 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다. 이와 비슷

람들은 그들을 쫓아간다.

하게 인터넷 카페도 일반적인 공간 유형에 해당되지 않는 숨겨진 공적 공간이다. 그곳은 가게 전면이 보여지는 곳이 아니라, 외딴 복도를 지나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사회적 장소이다.

사회적 공간으로서의 거리는 일본 초기 도시 구조에서 시작되었고, 그 개념은 현재에도 적용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의례적이든 일상적이든, 일본에서의 공공의 경험은 마당이나 주요 공원 보다는, 골목길이나 주요 도로 위에서 이루어졌다. 오늘날, 집과 학 교, 일하는 곳과 노는 곳을 이어 주는 선적인 궤도를 따라 성스러운 곳과 세속적인 곳이 함께 어 우러진다. 낯선 사람들끼리 기차나 역에서 좁은 공간을 공유하기도 하고, 역에 가는 길에 친구

공적, 사적인 경험의 다양한 층위의 변화가 뒤섞이는 과정 속에서 일본의 도시 공간에 대한 특

정적 경험은 間(사이)와 奥(안)의 개념에 기초한다. 사회적 활동은 목적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사회적인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은 도시의 중심이 아닌, 그 간극 속에 있다.

를 만나 술을 마시기도 하며, 지역 주민들은 사원과 마을 사이의 도로에서 전통적인 축제를 즐 긴다. 더욱이, 이 곳에서 일어나는 間(사이)의 시간과 공간은 개개인의 삶을 엮어서 하나의 사

회적 직물을 짜면서, 도시에서의 공공의 삶을 연결해 주는 결합조직으로서 그 역할을 한다. 게 다가, 이러한 問(사이) 시간과 공간의 부분적 기능은 개개인의 삶을 엮어 사회라는 천을 짜내

듯, 도시에서의 공공의 삶의 조각들을 이어주는 매개로 기능한다. 시간과 공간 모두에 적용되

는 단어인, ‘間(사이)’ – 중간 영역–는 여러 사람들의 특정한 공적 경험과 사회적 만남이 이루어 지는 곳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중충한 엘리베이터에서 발길을 돌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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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 Private Space - Tokyo Haruka Horiuchi

Public space in Japan cannot be found in a fixed central square with clear boundaries and distinct purpose. Often one finds that it is not a recognizable Place at all, but an interstitial space that shifts identity with occupants and their activities over time. In fact, the experience of Japanese public space is frequently a temporal one, and the demarcation of its borders transient and fluid. The drums and flutes are heard long before the procession appears. In the hazy distance along the narrow street, the swaying mast of the hoko comes into view. The crowd gathered in the street shuffles in anticipation. Heads crane out from balconies, eager to catch the first real glimpse of the spectacle. It is the Gion Matsuri in Kyoto, and the quiet residential street has been transformed into a ceremonial public space. The festival arrives: lines of men strung out along a heavy rope chant in unison, straining to pull an elaborate two-story ark on solid wood wheels containing musicians and dancers. The crowd erupts with excitement - shouts and clapping almost drown out the drums. The dancers beckon and the spectators follow the procession as it continues along its sacred route. The street as social space originated in the early urban textures of Japanese cities, and the concept lives on into the present. Historically, formal and informal public experiences occurred on alleys and thoroughfares, rather than in courtyards or central parks. Today, along the linear trajectories that connect home and school, work and play, the sacred with the profane - strangers share tight spaces on trains and platforms, friends meet for drinks on the way to the station, and communities celebrate traditional matsuri along the road between the shrine and the village. Moreover, the interstitial hours and places (間, “ma”) occurring along these vectors function as the connective tissue of urban public life, weaving individual lives together into a social fabric. A word that can mean both time and place, “ma” - the space between - is the zone within which a multitude of distinct public experiences and social encounters can occur.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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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ign advertising the manga kissa is brightly lit and looks new, though unfamiliar visitors might turn back at the dingy elevator. Stepping out on the 5th floor is like traveling through a wormhole. The walls are lined with comic books and DVDs. Cubicles with computers are organized in clusters between mini living rooms complete with sofas, televisions, and video game consoles. At the back of the space is a row of curtains, hiding private quiet spaces that hint at illicit activity. There is a low but constant buzz of clicks and murmurs as the occupants of this hive go about their activities. This Internet cafe is a hybrid space hovering somewhere between the public and private realms; a third space that allows city dwellers to escape their crowded homes and stressful lives. For a modest hourly rate, people come to be alone, together. The manga kissa (internet cafe) as public space illustrates another critical concept of Japanese urbanism - 奥(“oku”, meaning “inner” or “back”). Rooted in historic built form, “oku” manifests itself in the spatial organization of the traditional machiya (townhouse). From the street entrance to the bathroom at the back, the machiya acts as a filter from public to private. Flexible rooms formed by sliding shoji partitions successively become more intimate. Within the innermost sanctum is a surprising courtyard open to the sky (and the sounds and smells of the surrounding city) - a bit of outside found inside, a semi-public private space. Similarly, the Internet cafe is a public space that is hidden behind the expected typology: a social place that is not in a storefront, but is only discovered beyond a secluded passage. Embedded with these concepts of “ma” and “oku”, the distinctive experience of Japanese urban space is of a densely layered gradient of public and private experiences along interwoven trajectories. Communal activities occur along journeys, not at destinations. And social gathering spaces are not at the center of a city, but within its intersti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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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보드 다이얼로그 : 아시안 프로토콜에 대한 재정의

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바탕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강지현 사실 한 ∙ 중 ∙ 일 정치경제 문화에 대한 연구조사자의 역할로 프로젝트에 함께 하기를 요청 받았 을 때만 하더라도, 이 작업이 섹스, 포르노그라피, 부패, 검열, 미디어 또는 언론 왜곡, 조작 등에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 전시의 한 섹션인 <블랙보드 다이얼로그 : 아시안 프로토콜에 대한 재정의>(이하 <블랙보드 다이얼로그>라 칭한다) 에 대한 제안을 받고 흥미로웠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작가와 프로젝트를 함께 한 적이 없었기도 했지만, 그가 제시하는 한국, 중 국, 일본의 프로토콜에 대한 관심이 갔기 때문이었다. 문타다스와 만나기 전 그의 작가노트를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왜냐하면 작가가 제시한 단어 중 몇몇은 한 ∙ 중 ∙ 일 사회에서 또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거나 금기시되어 학문적 공공담론의 형태로 빈번히 다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했던 키 워드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를 함께 한다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졌었다.

읽어보았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중 그 어느 언어도 알지 못하는 스페인 작가가 어떻게 한 ∙

물론 이런 부담은 동시에 프로젝트에 더욱 관심이 가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키워드를 바탕

중 ∙ 일 프로토콜에 대해 작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흥미로운 만큼 당황스럽기도 했다.

으로 한 문타다스의 질문은 구체적이고 지협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다른 범주와 층위를 넘나드는 질문들은 함께 작업하는 사람과 관객에게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문타다스를 만나 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 정을 들을 수 있었다. 문타다스는 비록 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이미지를 해석 하는 뛰어난 능력과 맥락과 핵심을 뽑아내는 특유의 감각을 바탕으로 한 ∙ 중 ∙ 일의 다양한 맥락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아마 문타다스가 작가노트에서 언급했듯이 ‘서술되 고 번역된 상상체 (narrated and ‘translated’ Imaginaire)’에 기반하여 아시아의 프로토콜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되었다.

에서 키워드를 뽑아냈다. 그리고 각각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3국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물 었다. 3국의 관계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하나의 층위에서 유사점과 상이

내가 참여했던 <블랙보드 다이얼로그>는 전시장 초입에 마련된 공간으로서 관객이 가장 먼저

점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나의 답이었다. 물론 문타다스도 이미 3국의 관계의 유사점과

마주하게 되는 섹션이다. 문타다스는 이 공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키워드들에서 시간성을 과

차이점을 한마디로 결론짓거나, 일차원적 공간 안에서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분석 ∙ 표현하는

감하게 생략한 다음 파편적인 사실들을 나열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무질서하고 임의적으로 펼

것은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처럼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내용들을 전시공간 안에 시각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면 작업을 하는 동안 분석 단위의 위계 및 범위를 흩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출처와 자료조사 시기를 표현하기에 는 공간이 너무 복잡해지고 시각적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아닐지 몹시 걱정스러웠다. 문타다 스에게 이런 걱정을 털어놓으려 하는데, 그는 내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한마디로 상황을 정 리했다. “이건 예술이야. 논문 쓰는 게 아니야.” 덕분에 나의 고민과 걱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쳐놓은 것만은 아니었다. 관련된 현상이나 주제에 대해 반복적으로 줌-아웃하거나 줌-인해 들 어감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인식 범위를 확장-축소시키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미시적

(micro)-거시적(macro), 공적(public)-사적(private), 합의(agreement)-갈등(conflict) 등 과 같은 작가 자신의 분석 구조와 미디어, 정치, 검열, 커뮤니케이션, 공포, 번역 등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해 온 키워드들이 입체적으로 교차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교차점에서 질문과 분 석의 강도와 깊이가 증폭된다. 다시 말해 <블랙보드 다이얼로그>의 키워드 질문들은 의도적으 로 수준과 범위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지만 모두 정치, 경제, 문화가 교차하는 지점 내에서 긴밀

문타다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가로서의 그가 가진 입체적 통찰력과 통시적 경험이 한 ∙ 중 ∙

히 연계되어 있는 것들이다.

일 3국 관계도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외부인으로서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예술가인 그가 국제정 치학에서 최근의 글로벌한 구조나 현상의 지역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글로컬리제이션 (glocalization)이라는 개념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은 분명 단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국가와 지 역, 문화원과 관련된 작업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비로소 얻을 수 있는 능력이었다. 바로 이러한 능력으로 인하여 비록 그가 3국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프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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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능수능란하게 주제를 줌-인 / 줌-아웃의 방 식으로 조망하는 과정은, (문타다스의 의도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관객이 특정 키워드 또는 주제를 대 면하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문타다스가 인식하고 있는 한 ∙ 중 ∙ 일 세 나라가 가지고 있는 관계 의 복잡성(complexity)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만든다. 예컨대 작가는 종교, 인권, 부패, 검열, 대 미관계, 대북관계 등의 거시적 수준의 키워드를 제시하는 동시에 독도, 만화, 한류, 힙합, 삼성, 소니, 코로스(Qoros)등 미시적 수준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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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일 수 있는 가족, 사회적 관계(Social connectivity), 침실, 몹(Mob), 성형수술, 섹스, 포르노 등에 대한 키워드를 제시한다. 이러한 일련의 질문을 하나의 공간에 늘어놓음으로써, 작가는 한 ∙ 중

Blackboard Dialog : Redefining Asian Protocols Jeehyun Kang

∙ 일 관계의 복잡성을 관객 스스로의 인식과 사고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한다. 이보다 더 쉽고 영리한 작전이 가능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이처럼 <블랙보드 다이얼로그>섹션은 관객이 수동적으로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을 가지며 각자의 해답을 찾거나 또 다른 질문들을 제기하 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칠판에 쓰여진 키워드들이 가지고 있는 유사성 과 이질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호기심과 고민이 생겨나기도 하고 국적이나 성별, 연령 등 관객이 속한 환경에 따라 더욱 다양한 고민과 해석의 여지가 남기도 한다.

I got really excited when I was invited to collaborate on Blackboard Dialog : Redefining Asian Protocols (herein called Blackboard Dialog), which was part of the exhibition Muntadas : Asian Protocols. It was interesting since I had no experience of participating in such project by an artist. Moreover, it was fascinating because the protocols of Korea, China and Japan as suggested by Muntadas caught my attention. It was astonishing as much as intriguing since the artist does not know any of the Korean, Chinese or Japanese language.

그는 <문타다스 : 아시안 프로토콜>이라는 전시 안에서 첫 장을 장식하는 <블랙보드 다이얼로 그>를 통해 정치학, 외교학, 경제학에서 각각으로 다루어 온 주제들을 성공적으로 한 공간 안에 시각화한 후, 다음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그 동안 학계에서는 통섭을 외치면서도 각 분야 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고, 서로의 영역을 지키려는 가운데 각론을 펼치며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과정은 대중과의 의사소통에서도 큰 괴리감을 만 들어냈다. 그러나 문타다스의 단순하고도 명쾌한 소통(혹은 작업)의 방식은 영역다툼 하느라 정 신 없는 학계에 대한 해학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서 갑갑증을 느끼던 내게는 최고의 카타르시 스였다.

작업하는 동안 문타다스가 오랜 시간 자료를 수집하고 주제에 대해 고민해 온 시간만큼 충분히 치밀한 작업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게다가 지나온 시간을 단순히 축적하여 풀어내는 것이 아 니라 그 시간 속에서 각 키워드에 대한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더해진 작가의 집요한 고민을 함 께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분명 그는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했 지만, 그의 예리한 통찰과 명쾌한 소통의 방식이 보여주는 아시아의 프로토콜 이야기는 지금 한 ∙ 중 ∙ 일 3국의 복잡한 관계망을 바라보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A few days later, I could finally meet Antoni Muntadas and hear about his work and the process of the project. Though he could not speak any of the languages, he pointed out keywords derived from his extraordinary ability of interpreting images and drawing the context and essence from the given resource. Then, he asked questions about the common feature and difference among the three countries. My answer to the questions was that it is difficult to articulate similarity and difference merely on a singular level due to the multilateral and multilayered nature of the relation among Korea, China and Japan. Muntadas surely knew that it would be challenging to make a simple conclusion on the matter or analyze and express the similarity and difference in a comprehensive and inclusive manner via a one-dimensional space. What’s more, the pressure to visualize such multi-layered and complex content in the exhibition space was by no means an easy task. To be honest, I was so worried about whether I was disturbing the hierarchy and range of analytical units or the exhibition space would become too complicated and inefficient to present the source and research period. I was about to confess my concerns to Muntadas, but he wrapped up the situation by telling the one sentence: “It’s art. It’s not writing an academic paper.” My concerns and worries were dissolved instantly. While communicating with Muntadas, I realized that his rich insight and diachronic experience as an artist were well reflected on the map of the relationship among Korea, China, and Japan. Moreover, he w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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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arly aware himself as an outside. More interesting thing was that Muntadas had an accurate comprehension of and appraoch to glocalization, a concept constructed in the field of international politics to explain the recent phenomenon of localization of global structures and phenomena. Despite the fact that he is an artist, such knowledge and approach to a certain concept was clearly not something that could be achieved in a short period of time. It was a capability that one could get after working across diverse countries, regions and cultures around the globe for a long period of time. It was not difficult to recognize that Muntadas is able to address the issue of the Asian protocols despite he does not belong to any of the three countries. Indeed, when I was invited to the project as a researcher on the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of Korea, Japan, and China, I could not even imagine that the project would entail a process where I would investigate the answers to the questions on sex, pornography, corruption, censorship, distortion of media or press, etc. It was because some of the keywords suggested by the artist were those that had not been integrated in the ordinary vocabulary of the three countries: they had not been dealt frequently in the form of an academic and public discourse as they had been considered as taboo to address; there had been no questions raised about the keywords. Thus, I pressured more and more on the collaboration. Of course, such a pressure worked as one of the prime factors that gave me more interest at the same time. Muntadas’s questions, which were based via the keywords, were concrete. They were not focusing on minor details. Rather, the questions seemed to open different possibilities of active thinking and participation from the collaborators and viewers as they crossed different categories and layers. I assumed that it was possible since the project had been conceived from Muntadas’s will to learn the protocols in Asia, based on the “narrated and ‘translated’ Imaginaire” as the artist mentioned in his note. The Blackboard Dialog is a section at the beginning of the exhibition, which the first thing that viewers encounter upon entering the space. Muntadas made a bold decision to omit the temporality from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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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ganically connected keywords presented in the space, providing a list of fragmentary facts. However, it is not a disorderly and arbitrary arrangement of keywords. Viewers are invited to extend-reduce their scope of recognition by exploring the repetitive zoom-outs and zoomins on phenomena or subjects in relation to the keywords. Through such a process, exchanges were made among the analytical structures that the artist has been investigating for a long time, such as the issue of micro-macro, public-private and agreement-conflict as well as the keywords that include media, politics, censorship, fear, translation, etc. On the very point of exchange and intersection, the intensity and depth of the questions are amplified. In other words, the questions that are based on the keywords are intimately connected with each other on the point where politics, economy and culture intersect, despite the fact that they are intentionally expressed in different levels and ranges under the umbrella of the Blackboard Dialog. The process of viewing different subjects through zoom-ins/zoom-outs while crossing the private and public realms without any constraint induces the viewers to unconsciously reach the complexity of the relationship among Korea, China and Japan as recognized by Muntadas. This happens (with no regard to the intention of the artist) as the viewers encounter specific keyword or subjects in the Blackboard Dialog. For example, the artist presents keywords on a macro level, such as religion, human rights, corruption, censorship, and relation between Korea and the United States as well as the two Koreas. At the same time, he also provides keywords on a micro level, ranging from Dokdo, comics, the Korean wave (Hallyu), hip-hop, Samsung and Sony to Qoros. In addition, Muntadas also suggests keywords that can be both private and public, such as family, social connectivity, bedroom, Mob, plastic surgery, sex, pornography, etc. By arranging the questions in one space, the artist leads the viewers to recognize the complexity of the relationship among Korea, China-, and Japan through natural realization and process of thinking. I do not think that there can be an easier and more clever strategy that the one that Muntadas employs. The Blackboard Dialog section thus does not remain in leaving the viewers to appreciate a work of art in a passive manner. Rather, it 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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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s opportunities for the viewers to find different answers, raise other questions, and think about them by contemplating on and inquiring about the given keywords. In the process of finding the similarity and difference of the keywords on the blackboard, new interests and concerns are popping up; they leave more diverse possibilities of concerns and interpretations depending upon the background of the viewers that includes their nationality, gender, age group, etc. Through the Blackboard Dialog, an opening chapter of the exhibition Muntadas : Asian Protocols, issues that have been dealt separately in the realms of politics, diplomacies, and economics are successfully visualized in one space. Then, the issues are connected to the next phase of the narrative. In academia, there have been many cases where no practical outcome was produced despite the emphasis of interdisciplinary approach. In such cases, those from different fields tried to clarify the boundaries and keep their own territories. Such a process has also produced a deep sense of separation in communicating with the public. However, Muntadas’s simple yet lucid way of communication (or working) felt to me as humor towards the academy that is busy to struggle for securing their own territories. It provided the best catharsis to me who has been suffocated experiencing such fields. Working on the project, it was a great pleasure to observe the work that was as elaborate as the time the artist has spent for collecting the sources and investigating the subjects. Moreover, I greatly appreciated the fact that I could be part of the artist’s persistent exploration that has not merely been accumulated upon the progress of time but expanded through meticulous deconstruction and reconstruction of different keywords throughout time. It is obviously that he is too humble so defined himself as an outsider, but I think the narrative of the Asian protocols as shown through his keen insight and explicit way of communication will cast an important question in observing the complex web of relationship among Korea, China and Japan at this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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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약력

Muntadas Biography

안토니 문타다스 (1942 ~ )

Antoni Muntadas (1942 ~ )

안토니 문타다스는 194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으며, 1971년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Antoni Muntadas was born in Barcelona, came to art through painting. Since 1971 he has lived and worked in New York. Muntadas was a Research Fellow at the Center for Advanced Visual Art at the MIT program in Art, Culture and Technology and Professor of ACT/ MIT 1977-2014. Through the internationally well-known early internet project The File Room (1994), long-term project series On Translation (1995- ) and on-going project Protocol, he has addressed social, political, communications such as the relationship between and public and private spaces by video, installation, photography, publication and intervention. His work has been exhibition in numerous museums, including the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Madrid), MoMA(New York), Jeu de Paume(Paris). His works also included international events such as VI and X editions of Documenta Kassel(1977, 1997), Whitney Biennial(1991), The 51st Venice Biennial(2005), Gwangju Biennial(2004) and Taipei Biennial(2002). He also has received numerous awards and grants. In 2009, He awarded the 2009 Velázquez. Prize granted by the Spanish Ministry of Culture.

활동하고 있다. 1977년부터 1984년까지 MIT에 있는 어드밴스드 비쥬얼 스터디 센터 (Center for Advanced VisualStudies) 에서 리서치 펠로우를 지냈으며, 최근까지 ACT / MIT (MIT program in art, culture and technology) 에서 교수직을 역임했다. 잘 알려진 초기 인터넷프로젝트인 <The File

Room>(1994)를 비롯하여 <On Translation>, <Protocols>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작품 들은 주로 정치, 사회, 외교 및 소통 (communication)의 문제는 물론, 사회적 환경에 있어서의 사 적공간 / 공적공간의 관계와 소통, 변화에 대한 이슈들을 사진, 비디오, 방송, 설치 등 특정장르 에 얽매이지 않은 다양한 장르를 통해서 다루고 있다.

MOMA (뉴욕), 르네 소피아 (마드리드), 쥬드 뽐므 (파리)를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으 며, 베니스 비엔날레 (스페인관), 도큐멘타 VI, 도큐멘타 X 와 같은 국제적인 전시에도 수 차례 소개 되었다. 2009년에는 스페인에서 현대예술가에게 수여하는 가장 영예로운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벨라스케즈 상을 받았으며, 지금도 전 세계에서 활발한 전시활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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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tadas Asian Protocols 2014. 8. 25 – 10. 19 토탈미술관

Aug 25 – Oct 19. 2014

큐레이터 신보슬, 한스 D. 크리스트 & 이리스 드레슬러

Curators Nathalie Boseul Shin, Hans D. Christ & Iris Dressler

어시스턴트, 코디네이터 정효섭, 허대찬, 양정선, 안드레아 나카치

Assistant and Coordinator Hyosup Jung, Daechan Huh, Jeongsun Yang, Andrea Nacach

전시진행 유영의, 정다운, 김희은, 김윤아, 하일리 그레넷

Exhibition Team Youngeui Yu, Dawoon Jung, Heeeun Kim, Yunah Kim, Haily Grenet

리서처 한국 : 조인숙, 강지현, 이주연, 공간연구집단(오성훈, 박훈태, 심한별), 박정현, 백지연, 김영민 중국 : 첸 후이롱, 리믹스 스튜디오(니콜라 살라디노), 크리스티나 사나후야, 송 웨이, 첸 예후아 일본 : 하루카 호리우치 디자인 디오브젝트 손글씨 및 번역 최일섭, 공 루, 콘노 유키, 엘리시아 김, 이경희

Tot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Researchers Korea : In-souk Cho, Jeehyun Kang, Joo Yun Lee, Space Research Group (Sunghoon Oh, Hoontae Park, Hanbyul Shim), Junghyun Park, Jiyeon Paik, Yeongmin Adriana Kim China : Chen Huirong, reMix Studio(Nicola Saladino), Christina Sanahuja, Song Wei, Chen Yehua Japan : Haruka Horiuchi Design The-Object Text & Translation Ilsub Choi, Kong Lu, Konno Yuki, Elisia Kim, Kyunghee Lee

그밖에 도움주신 분 임수현, 소피아 첸, 디아나 파르마코브스키, 죠세핀 왓손, 카사 아시아-바르셀로나, 라켈 빌라 페레즈, 히로코 세키, 자우메 나스펠+쿄코 아사쿠라, 에스테반 안두에자, 인마 곤잘레즈 푸이, 행크 불, 페르난다 디’아고스티노, 테레사 마틴 에즈마, 코랄리 머카더, 마르타 모레노 솔레르

& thanks to Soohyun Lim, Sofia Chen, Diana Farmakovsky, Josephine Watson, Casa Asia-Barcelona, Raquel Villar Pérez, Hiroko Seki, Jaume Nasple+Kyoko Asakura, Esteban Andueza, Inma Gonzalez Puy, Hank Bull, Fernanda D’Agostino, Teresa Martin Ezama, Corali Mercader, Marta Moreno Soler

인쇄 으뜸프로세스

Printing Top Process

초판 인쇄일 : 2014. 12. 10 초판 발행일 : 2014. 12. 10 Printed in Korea

First Edition on December, 10, 2014 Printed in Korea on December, 10, 2014 Printed in Korea

토탈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평창32길 8 www.totalmuseum.org

ⓒ 2014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각 저작자에게 있으며, 출판권은 발행인에게 있습니다. 저작자와 발행인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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