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집_20210514_일본국손해배상청구소송 2차 토론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청구 각하 판결 어떻게 볼 것인가 다양한 쟁점을 중심으로

Page 1


[2차 소송 판결 2차 토론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청구 각하 판결, 어떻게 볼 것인가? :다양한 쟁점을 중심으로

일시

2021년 5월 14일(금) 15:00~18:30

형식

Zoom webinar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주최 및 주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위안부’연구회

1


목차

Ctrl 키+목차를 클릭하시면 자동으로 이동합니다.

프로그램 ...................................................................................................................................................................... 3 <세션 1> 주제 발표 .............................................................................................................................................. 4 4. 21 판결의 문제점 – 보편적 인권을 중심으로 이상희(변호사, 소송 대리인단)................... 4 국제인권법 시각에서 바라본 4.21 판결의 문제점 백범석(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 15 4.21 판결에 내포된 부정의 논리와 방법 강성현(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20 국제관습법은 여성인권 위에 있는가? 김나영(미국 변호사, 김박법률사무소) ........................ 27 <세션 2> 주제 토론 .......................................................................................................................................... 31 2 차 판결이 제기하는 문제들 국가면제-주권행위-천황의 책임/여성인권-기본권-사법정의 윤명숙(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소장 직무대리) ................................................................................ 31 ‘2015 한일합의’의 틀로 회귀한 판결의 논리 –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 마침표’ 시도인가 길윤형(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장)............................................................................................ 38 응답불능의 법 앞에서 – 4.21 판결에 대한 단상 장수희(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 44 4.21 판결의 헌법적 문제점 오동석(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47

2


프로그램 시간

내용 개회 사회: 한경희(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

15:00~15:10

이나영(정의기억연대 이사장·중앙대 교수) 사회: 조영선(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 “4.21 판결의 문제점 - 보편적 인권을 중심으로” <세션1> 주제 발표 15:10~17:00

이상희(변호사, 소송 대리인단) "국제인권법 시각에서 바라본 4.21판결의 문제점“ 백범석(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4.21 판결에 내포된 부정의 논리와 방법” 강성현(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국제관습법은 여성인권 위에 있는가?” 김나영(미국 변호사, 김박법률사무소)

17:00~17:10

휴식 사회: 이나영(정의기억연대 이사장·중앙대 교수) “2차 판결이 제기하는 문제들 국가면제-주권행위-천황의 책임/여성인권-기본권-사법정의”

<세션 2> 주제 토론 17:10~18:10

윤명숙(일본군‘위안부’ 연구소 소장 직무대리) “‘2015 한일합의’의 틀로 회귀한 판결의 논리 –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 마침표’ 시도인가” 길윤형(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장) “응답불능의 법 앞에서 – 4.21판결에 대한 단상” 장수희(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4.21 판결의 헌법적 문제점” 오동석(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종합 토론 18:10~18:30

질의 & 응답 폐회

3


<세션 1> 주제 발표

4. 21 판결의 문제점 – 보편적 인권을 중심으로 이상희(변호사, 소송 대리인단)

1. 들어가며

◆ 서울중앙지법 민사15부(재판장 민성철, 판사 이미경, 홍사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16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외국 국가(일본)에 대한 한국법 원의 재판관할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보아 소 각하 판결을 하였음. 재판부는 국가면제 이론을 적용하여 각하 판결을 하였지만 판결의 전체 취지는 2015한일합의로 일본군’위안 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임. 재판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2015한일합의로 해결되었다는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하여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무시한 논거들을 제시하였 고 피해자들의 의사까지 왜곡하는 위험을 감수함. 판결의 형식으로 위안부 문제의 정치 적 해결을 시도한 판결임.

◆ 일본군‘위안부’ 제도가 반인도적인 범죄이고 전쟁범죄라는 점은 국제사회의 상식이나,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추상적인 피해자의 지 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음. 일본법원은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 자체를 봉쇄했고 한 일 양국은 2015년 피해자를 배제한 채 국가차원에서 위안부 문제의 타결을 선언했음. 피 해자들의 인권은 선언 수준에 머물렀고, 이들은 존재하되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피해 자의 지위에 머물렀음. 일본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피해자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음. 지난 1월에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05092 판결 은 최후적 수단으로서 제기된 소송에까지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은 재판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법질서 전체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음.

◆ 이번 판결은 다시 한번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무엇이고 피해자의 권리 는 무엇인지, 국제질서 속에서 개인의 기본권은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법원의 역할은 무 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음.

4


2.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인권조차 고민하지 않은 판결

◆ 재판부는 선고기일에 원고들 중 유일하게 참석한 당사자를 ‘호명’도 하지 않고 판결문 을 낭독하였는데, 이는 피해자에 대한 법원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줌. 이 소송은 반인 도적 범죄의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주장하면서 일본국에 법적 책임을 구하는 사건인데, 재판 절차부터 판결문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나 ‘피해자의 인권’에 재판부의 고민을 찾아 볼 수 없음. 재판은 위법행위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실과 위법성을 적시함으로써 피해자들의 권리(진 실, 배상의 권리) 실현에 기여해야 함. 그런데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음. 1 피해자들의 피해에는 귀국 이후 일본군’위안부’ 피 해자로서 당한 고통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나, 재판부는 ‘어린 시절’의 피해로 제한함.2 재 판부는 ‘일본국의 행위는 인권 관련 조약을 위반한 행위로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적 인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국제인권조약을 위반하였는지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고, 3 판결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고에 대한 실체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이 있음을 부정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나 손해배 상청구권의 내용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았음.

◆ 재판부는 재판관할권의 문제(국가면제)가 선행 판단의 문제이므로 인권침해 여부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겠다고 하였음. 그러나 2015한일합의가 대체적 권리구제수단인지,

1

지난 1월에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05092 판결에서는 일본 제국이 전쟁 수행을 목

적으로 성폭력 방지 및 성병예방을 위해 군에 위안소를 설치하여 위안부를 동원, 관리하고 위안 소를 운영한 사실, ‘위안부’ 동원에는 납치, 기망, 모집, 징병, 공출 등의 수단이 사용된 사실, 피해 자들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성적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며 사실상 감금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 그러나, 4월 판결에서는 피고(일본국)의 위안소 설치를 인정하면서, ‘피고 군대의 요청에 따라 총독 부가 각 도에 동원할 위안부의 수를 할당하면 경찰이 모집업자를 선정하여 위안부를 동원하는 등 행정조직 또는 지역 조직 등을 통한 동원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는 사실만 인정함. 피해자들의 구 체적인 피해 사실을 ‘차출’이라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에 포섭하고 별도로 판단하지 않음. 2

“위안부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 피고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판결문 79쪽).

소송대리인이 다수 피해자들의 피해 내역과 귀국 이후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1990년 초반부터 피해자들을 만나 피해 내역을 조사하고 직접 피해 사실을 목격한 증인을 신청했으나 법 원이 채택하지 않음. 3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의 실현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이라는 표현은 헌법재판

소 2006헌마788 결정을 인용하면서 사용함.

5


더 나아가 피해자들의 재판청구권을 ‘사익’으로 보고 ‘공익’과 비교형량 하여 사익을 제한 하기 위해서는 배상청구권의 내용이 되는 불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과 중대성에 대한 판 단이 선행되어야 함.

◆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전쟁범죄와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한 ‘사죄’와 가해국의 책임을 묻기 위하여 30년 이상 ‘손해배상청구’를 주장하였고, 2015한일합의에도 불구하고 일본국 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함.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 리고 신체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요구했음. 진실을 알 권 리, 배상을 받을 권리, 그리고 실효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는 유엔도 인정하는 공권력 피 해자들의 기본 권리임. 이러한 권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므로, 어느 하나를 배제 하는 방식으로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 그런데 일본 정부는 2015한일합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에의 타결을 선언하면서도 위안부 피해 사실과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 지 않았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참의원에서 2015년 한·일 합의가 전쟁범죄를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했고, 기시다 후미오 당시 외무상도 ‘성노예’는 사실에 반하고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다고 했으며 2016년 2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일본 정부는 강제동 원의 증거가 없고 ‘위안부’는 조작된 것이며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도 잘못된 개념이라 고 주장했음.

◆ 피해자들이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단지 2015한일합의가 단지 ‘충분히 만족 하지 않아서 4 ’(또는 일본 정부나 미디어의 주장대로 표현하자면 ‘정서적’인 문제로)가 아 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실현을 위한 것임. 지난 1월에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05092 판결은 ‘외교’나 ‘안보’를 중시하던 국가중심의 국제법 질서의 한계를 벗어나 인권중심의 국제법 질서로 도약하는 국제인권 법의 발전 방향을 무겁게 받아들인 결과임.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판결을 통해 비로소 법 의 보호를 받는 온전한 시민권을 취득하였다고 볼 수 있음. 특히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 대해서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와 의견, 세계정상회의의 선언, 지역 인권 기구

4

재판부는 판결문 마지막 부분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 권리구제수단이 된다고 본 2015.12.

28. 한·일합의도 이들이 지난 시간 겪어야 했던 고통에 비하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피해자들이 피고에 대한 실체법상 손해배상청구권이 있음을 부정하지 아니한다’, ‘2015 한일합의에 의하여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되었다거나 소멸되었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고 적고 있음.

6


들의 법리, 유엔 특별절차를 통해 국가가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폭력을 금지할 의무가 있 다는 것이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되었음. 재판부는 적어도 피해자들의 인권을 규명하고 국 제인권조약에서 규정한 국가의 의무를 해명해야 했음.

3. 국가면제와 관련한 국제인권법의 성과를 무시한 판결

◆ 유엔 국가면제협약이나 EU 국가면제협약은 행위 목적을 가리지 않고 주권행위이든 업무관리행위이든 ‘영토 내 불법행위의 예외’를 인정하여 법정지 내의 생명권과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음.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도 입법을 통해 법정지국 영토(법정이 있는 국가)에서 발생한 사망, 상해, 재산상 손해에 대하여 국가면제의 예외 를 인정하고 있음. 각 국가에서 고문, 납치 등의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국가면제 이론 을 어떻게 해석,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발전, 진화하고 있음. 미국은 1996년 자국 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납치, 고문, 테러 등의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테러지원국에 대해서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 록 법률을 개정하여 자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면제의 예외를 확 대하고 있음. 재판부는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9.2%만이 영토 내에서 발생한 불법행위에 관해 국가면 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국가면제를 둘러싼 국제관습법은 변화하거나 발전하지 않았다고 보았음. 그러나, 국제관습법은 산술의 문제도 아니고 만고불변의 원칙도 아님. 국제관습법의 요건 중 하나인 ‘관행’은 그 포문을 열어 젖히는 한 국가의 실행에서부터 시작됨.

◆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인정한 사례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그 반대로 반인 도적인 범죄에 대하여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들을 제시하 였음. 강행규범과 국가면제의 충돌을 다룬 대표적 사건인 AL-Adsani v. United Kingdom U.K. 사 건에서 유럽인권재판소는 9:8의 근소한 차이로 쿠웨이트에서 발생한 고문 피해 사건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면서도, ‘국가 관행과 국내 입법의 발전으로 국가가 강행규범의 성격을 가진 인권 규범을 위반하여 사망, 상해를 야기하는 경우 국가면제가 부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증가하고 있다.’는 ‘국제법위원회(International Law Commission )의 의견을 명시하였음.

7


이탈리아 페리니 사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판결에서 다수 의견을 밝힌 재판관들5도 국가면제의 예외를 원천 봉쇄한 것이 아니라 페리니 사건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여 재 판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임. 벤누나(Bennouna) 재판관 - ‘법관은 항상 법과 정의에 궁극적인 우선권이 주어지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법률가의 발언을 인용, ‘책임을 완전히 부정하는 국가 는 국가면제를 요구할 수 없다’, ‘국가면제 요구에는 의무가 따른다. 국가는 적절한 방 법으로 국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하면서, 독일은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했기 때문에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함. 키스(Keith) 재판관 - 유엔 국가면제협약 제12조와 관련하여 유엔 국제법위원회 (Internatioanl Law Commission)의 국가책임 초안에 대한 주석에서 불법행위 규정이 적 용되는 상황을 교통사고 등 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국제법위원회 는 정치적 암살에 대해서도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유엔 국 가면제협약 제12조는 국제관습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하였음. 코로마(Koroma) 재판관 - ‘특정 유형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국가면제의 법이 진화해온 것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다’고 하면서, ‘유엔 국가 면제협약은 발효되지 않았지만 현 단계의 국제관습법을 반영한 것’이라고 보았음. 특히 ‘오늘의 재판소 판결이 국가면제법의 계속적인 진화를 막을 수 없다. 20세기를 통해 국 가면제법은 국가면제의 향유를 현저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크게 진화했다. 미래에 국가 면제의 예외가 계속해서 더욱 발전하는 것은 가능하다. 재판소는 오늘 존재하는 법을 적용할 뿐이다’고 하여 국제법의 발전, 진화에 따른 국가면제 이론의 변경 가능성을 열 어 놓았음.

소수의견을 낸 유스푸(Yusuf) 재판관 6 - ‘국가면제는 다른 구제 수단이 이용될 수 없는 경우에 장벽으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국제관습법은 상대 다수의 문제가 아니다. 각 사건 의 사정이나 성격, 그 배경 사실이 검토되어야 한다. 국가면제의 기능과 기본적 인권과 인도법 현실화의 균형도 형량해야 한다. 관습법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경우에는 국가면 제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형평성과 적법성을 검토해야 한다.’, ‘국가면제법의 발전은 자주 국내 법원의 고립된 판결에서 시작되어, 서서히 주류가 된다. 국내법원의 관할권 주장은 국가면제에 대한 새로운 예외를 현실화시킨다. 국내법원은 모든 국제인도법 또는 인권침

5

재판부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12:3으로 국가면제가

6

2018~2021 국제사법재판소 소장

8


해에 대한 보상청구에 대해서 국가면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른 구제 수단이 없다는 예외적인 상황 하에서 국가면제의 부당한 적용을 배제하고 관할권을 주장하는 것은 국제 인도법의 보다 엄격한 준수에 기여한다’

◆ 재판부는 페리니 사건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의 다수 의견을 원용하면서, 이 사건도 무력분쟁 중 발생한 사건이라고 보고 국가면제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함. 이 사건을 ‘무력분쟁 중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개별 조약으로 해결할 문제로 볼지, 또는 국제 인권법 위반에 중점을 둘지에 대하여는 판단의 문제임.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가합 505092 판결에서는 강제동원의 장소를 기준으로 ‘무력분쟁 중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함.

◆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외교정책과 국익에 잠재적인 영향 을 미칠 것처럼 판단하고 있지만, 이미 영미나 유럽에서는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여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고 있음. 미국 콜롬비아 지방법원 Letelier vs. Chile 사건7, 미국 D. C. 지방법원 Von Dardel vs.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사건8, 미국 콜롬비 아 지방법원 Hugo Princz vs. Federal Republic of Germany 사건9, 미국 제9연방 항소법원 (CA, 9th Circuit) Liu v. Republic of China 사건 10 , 캐나다 대법원 Schreiber vs. Federal

7

1980년 미국 내에서 칠레 국가정보요원에 의하여 살해당한 Letelier(칠레 경제학자)의 유족이 칠

레 국가에 대하여 손해배상청구를 한 사건에서 법원은 칠레가 단지 주권국가라고 하여 이러한 강 행규범 위반행위에 대해서도 주권을 이유로 면책을 주장할 수 없다고 판단. 참고로 재판부는 위 판결에 대해 ‘강행법규 위반 일반에 대한 국가 면제 인정 여부에 관한 국제관습법에 관한 판결이 아니라 미국 국내 FSIA 1605조 (a)(5)(A)가 정한 '재량적 기능(discretionary function)의 해석에 관한 판결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음. 그러나 이 판결은, 암살을 정부의 재량행위가 아니라 엄중한 범죄 행위(국제 및 국내법이 승인하는 인도에 반하는 죄)로 보고 칠레 정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사건임. 8

2차 세계대전 중 소비에트 연방(USSR)에 의해 위법하게 체포, 구속되었다가 사망한 피해자의

동생이 러시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강행규범’의 대세적 효력(erga omnes)에 의하여 강행규범을 위반한 행위는 국가면제의 일반적인 예외에 해당한다고 보았음. 9

유대인이자 미국인 Hugo Princz가 현 슬로바키아 영토에서 독일 경찰에게 체포되어 강제수용소

에 감금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콜롬비아 지방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미 국시민에게 가한 야만적 행위에 대해서는 미국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음. 그 러나 항소심에서는 미국의 FSIA를 적용하여 당해 사건이 미국 영토 내가 아닌 현 슬로바키아 영 토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라는 점을 이유로 각하 판결을 하였음. 10

대만 정보부 국장이 화교 작가를 살해하도록 명령한 사건에서 미국법원은 국가면제를 인정하

9


Republic of Germany and the Attorney General of Canada 사건11 등의 사건에서 불법행위 에 대하여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했거나 그 가능성을 열어 놓음.

◆ 피해자들은 힘의 논리가 지배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인간’으로 존중받고 ‘인권’을 회복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했음. 국제사회도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인권 의 질서로 발전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음. 유엔은 국제인권조약을 제정하여 주 권의 행사와 긴장관계에 있는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는데, 세계인 권선언 제8조,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 제2조 제3항, 인종차별철폐협약 제6조, 고문방지 협약 제14조 등에서 실효적인 권리구제를 받을 귄리를 규정하고 있음. 이번 재판에서 변 호사들은 7차에 걸친 변론에서, 국제인권조약에 따라 피해자들이 권리실현을 할 수 있도 록 재판청구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함. 그러나 재판부는 국제인권조약에 대하여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음. 판결문 곳곳에서 대한민국도 국제질서를 존중하여 항구적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하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인류가 피땀 흘려 어렵게 쟁취 한 국제인권조약은 무시로 일관했음12.

4. 2015한일합의에 대해 사법의 영역을 넘은 오판

◆ 재판부는 2015한일합의에 대하여 ‘대체적 권리수단’이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하 였으나, 이 판결을 통해 2015한일합의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정치적 선 언’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임.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2015한일합의에 일본군’위안부’ 피 해자가 입은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대한 국가책임이 적시되어 있지 않고 일본 군의 관여의 강제성이나 불법성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점, 일본 정부가 합의 이후에도 계속하여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해결되었으므로 법적 책 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 점 등을 볼 때 합의에 나오는 ‘사죄’의 표시는 일본 군’위안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음. 뿐만 아

지 않음. 11

독일 검찰이, 캐나다, 독일의 이중국적을 가진 Schreiber에 대하여 캐나다 정부에 신병요청 하

면서 체포영장을 발부하여 캐나다 정부가 8일간 구금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Schreiber가 체포의 위법성을 주장하면서 독일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건. 대법원은 구금이 적 법하다는 이유로 기각했지만, 국제범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의 예외가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함. 12

재판부는 오히려 판결문(73쪽)에서 마치 원고들이 ‘국내법 질서에 반한다는 이유만을 들어’ 국

가면제의 예외를 주장하는 것처럼 적고 있음.

10


니라 재판부는 이러한 논리과정에서 1965년 청구권협정의 의미를 왜곡하고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을 위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의사마저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피해 자들에게 씻길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음.

◆ 재판부는 이 사건을 ‘무력분쟁 중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한 뒤, 헤이그 육전협약과 제 네바 협약을 제시하면서 개별적인 소송이 아니라 한일 정부 사이의 별도의 협정에 의하 여 해결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보았음. 법원은 자신의 이러한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1965년 협정까지 끌어들임. 조선에서 발생한 피해자들에 대한 ‘강제동원’이 왜 ‘무력분쟁 중 발생한 불법행위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분쟁 중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a) 에서 한·일간 별도의 협정에 의하여 재산상 채권, 채무관계가 해결될 것으로 예정하고 있 었고 이에 따라 청구권협정이 이루어졌다는 것임. 게다가 법원은, ‘피해자들도 자신이 손 해배상청구권 문제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될 다툼임을 전제로 헌법재판소에서 소송 을 제기한 거 아니냐’고 하면서, 피해자들이 마치 청구권협정에 따라 ‘위안부’ 문제가 해 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함.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른 청구권협정은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손해배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13

, 국가의 분리를 전제로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임(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3다61381 전원합의체 판결). 게다가 피해자들은 일본군’위안부’ 문 제의 해결에 관한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한국 정부에 1965년 청구권협정 제 3조에 다른 분쟁해결절차를 이행하라고 주장했던 것임. 한편, 법원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 양국간의 합의로 실현되었 는지 여부를 심리한 것이 아니라, ‘한일 양국간 합의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당위를 전제로 하여 2015한일합의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 ‘대체적 권리구제수단’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함. 주권국가가 외국과 교섭을 하여 자국국민의 재산이나 이익에 관한 사항을 일괄적으로 해결하는 이른바 일괄처리협정(lump sum agreements)이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포 기)시킬 수 있다고 보려면, 적어도 해당 조약에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함. 그러나

13

특히 1965. 3. 20. 대한민국 정부가 발간한 ‘한일회담백서’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가

한·일간 청구권 문제의 기초가 되었다고 명시하고 있고 나아가 ”위 제4조의 대일청구권은 승전국 의 배상청구권과 구별된다. 한국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조인 당사국이 아니어서 제14조 규정에 의한 승전국이 향유하는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일간 청구권문제에는 배상청구를 포함시킬 수 없다’는 설명까지 하고 있음(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11


한일 양국은 1965년 청구권협정을 물론 2015한일합의에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은 포 기된 것이 아니라고 명확히 하였음. 2015한일합의는 한일 양국의 문제임. 한일 양국 역시 합의에서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다루지 않았다고 했음. 그런데도, ‘대체적 권리수단’으로 해석하여 배상청구권의 실현을 위한 피해자들의 법정투쟁을 가로 막는 건 재판부의 지나 친 해석임.

◆ 재판부는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피해자들의 의사까지 왜곡하였음. 재판부는, ‘생존 피해자 35명, 사망 피자 64명에 대해 화해치유재단의 현금 지원이 이루어졌는데 연도별 생존 피해자 수가 최대 40명, 최소 25명인 점을 고려하면, 생존 피해자들 중 상 당수가 재단으로부터 현금을 수령하였으므로 이 합의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에 명백 히 반하는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함. 그러나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50%가 안된 피해자들이 화해치유재단에서 현금을 수령하지 않은 점, 2015한일 합의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타결이 선언된 이상 생존 피해자뿐만 아니라 재판부조차 추정한 20만명 피해자들의 의사도 중요하다는 점, 이 사건 소송은 2015 한일합의를 인정 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제기했다는 점, 2015한일합의에서 진실·정의·배상의 권리가 충족되 지 않았다는 점에서, 2015한일합의가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판단 은 매우 심각한 오판임.

5. 국가주의에 기반한 판결

◆ 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서 개인에 대한 불신과 절대적인 국가주의를 드러냄. 예를 들어,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소하면 일본 정부와의 외교관 계에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고 정부가 이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헌법 이 정한 국제 평화주의와 국제법 존중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았음. 강제동원 피해 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으로 보임. 특히 법원 은, 이탈리아 법원이 그리스 디스토모 판결을 승인함에 따라 강제집행이 된 독일의 재산 이 독일과 이탈리아 사이의 ‘문화 교류’를 위한 시설이었음을 강조하였음. 국제 교류를 통해 양국간의 안정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함. 그러나, 개 인의 인권이 희생된, 힘의 논리로 유지되는 평화를 ‘평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게다 가 외교관계 충돌의 문제는 법원 소관 사항이 아니고 정부(외교부)가 해야 할 외교의 영 역임. 강제집행에 대한 염려로 재판관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는 ‘절대적 국가면제 론’에서나 가능한 주장임. 강제집행을 부착적인 문제임. 강제집행 가능성 여부가 소송의 12


전제 조건이 될 수 없음

◆ 재판부는 국제질서 속에서 피해를 입은 국민에 대한 사법부의 보호 의무를 사실상 포 기하고 있음. 재판부는, 국력이 약해 외세의 침략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청 구 소송을 제기한다면 정부의 외교적 조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대한민국의 외교정책과 국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로 판결함.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결정 이 선행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봄. 사법적 판단으로 나아가기 전에 국가가 먼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여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음. 이 사건 소송에서도 피해자들은 ‘최후 수단성’이라는 점이라는 강 조해서 국가면제의 예외를 주장했음. 그러나, ‘최후수단성’ 여부나 그 기준에 대해 판단도 하지 않고 ‘외교 정책과 국익’을 내세워 국민의 재판청구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판단은 법치주의나 민주주의 원리에도 반함. 행정부와 입법부가 제 역할을 못할 때 사법부가 적 극 나서야 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요구이기도 함.

◆ 한편, 재판부는 정부의 실책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일본 정부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있음. 문재인 정부는 2015한일합의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고 보아 화해치 유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14하였음. 한국 정부가 2015한일합를 파기하거나 무효를 선언 하지 않았지만 합의의 핵심인 재단의 설립허가를 취소함으로써 사실상 합의를 무효화 시 켰음.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나서야 함, 피해자들이 대한 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한국정부는 국내외 노력을 하겠다고 하였음. 헌법재판소도 2015한일합의로 인해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은 소멸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 음.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재단에 출연한 기금 10억엔을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 고자 양성평등기금에 103억원을 출연함. 이는, 2015한일합의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는 피해자들의 주장과 시 민사회의 운동의 결과임. 재단이 정관상 목적 15 사업을 수행하지 못한 것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과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임. 그런데 재판부는

14

여가부가 재판부에 제출한 사실조회서에 따르면, ‘재단이 정관상 목적사업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향후 재개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되어 설립허가 조건 위반이 처분사유였다’고 하였음. 15

재단의 목적 사업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명예와 존엄 회복 및 상처치유를 위한 각종 사업’,

‘재단 목적에 부합하는 기타 사업’으로 되어 있음.

13


2015한일합의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재단설립허 가를 취소하였더라도 피해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피고에 대해 국가면제를 부정할 수 없 다고 보았음(한국 정부의 책임으로 화해치유재단이 사업을 하지 못한 것이니 그 책임을 일본 정부에 돌릴 수 없다는 것임). 피해자에게 그 피해를 전가함. 더 나아가 재판부는, ‘합의에서 정한 급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상당 부분 현실적으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국가면제를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하면서 ‘일본 정부로 하 여금 국가면제의 법리를 “방패막이” 삼아 자신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배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하였음. ‘상당 부분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판단16이 사실도 다르거니와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해외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나선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지적하지 않고 있 음.

6. 나가며: 정의에 대한 희망

이번 판결은, 법원이 숭고한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국제인권법의 역 사적인 성과를 무시하고, 오히려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체결된 2015한일합의로 피해 자들의 인권 실현을 방해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임. 피해자들의 소송 투쟁은 일본군’위 안부’피해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보편적 인권의 실현을 위해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음. 지난 1월에 선고된 서울 중앙지방법원 2016가합505092 판결은 전쟁과 학살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권리장전으 로서 빛을 발하고 있음. 이탈리아에서 나치 범죄의 책임을 묻는 법률가도 위 판결에 대 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우리 역시 지지하는 원칙이 추 구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덜 외롭게 만들고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정의에 대한 희 망을 갖게 함'이라고 평가함.

16

굳이 피해자에게 지급된 금액을 계산하자면 47억 8천만원(생존 피해자 35명, 사망 피자 64명)

임. 그런데도, 재판부는 ‘합의에서 정한 급부 상당 부분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수치를 왜곡 하고 있음. 재판부는 판결문 곳곳에서 이처럼 수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판단의 근거 삼고 있 음. 2015한일합의와 관련해서는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를 기준으로 50%도 안되는 피해자들이 화해 치유재단의 돈을 수령하였는데 마치 위 합의를 ‘피해자’의 의사인양 과대 대표성을 부여하였고, 영토 내 불법행위에 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은 국가의 비중을 평가할 때에는 지나치게 과소 평가하는 자의적인 태도를 보였음.

14


주제 발표

국제인권법 시각에서 바라본 4.21판결의 문제점 백범석(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I. 국제법 존중주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헌법

제6조

제1항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ㆍ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라고 정하여 국제법 존중주의를 천명하고 있고, 국제 관습법상 인정되는 국가 면제의 법리는 민사소송에서 외국에 국가

면제를 부여함으로써

타국의 주권을

존중하여 국가간의

선린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러한 국가 면제는 헌법이 정한 국제법 존중주의라는 헌법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라고 적시한다. 이와 같이 수차례에

걸쳐

국제법

존중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재판부가

말하는

국제법에

국제인권법은 포함되지 않았다. 당연히 피해자의 권리와 피해자 중심주의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가입 비준한 주요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인권법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었다. 전통적인 국제법 하에서 권리 주체는 오로지 국가이고 개인은 권리 주체로 인식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국가책임 규정 초안』은 개인을 국제법상 권리 주체로 인정하고 있는 현대 국제인권법의 발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국제법체계에 대한 전통적 접근에 머무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개인이 타국의 국제위법행위로 인한 피해 구제를 모색할 때 이러한 국가 중심의 전통국제법적 사고는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외교적 보호권 행사 역시 국적국 재량에 속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 해석이며, 이는 외교적 보호권이 개인의 인권 보호에 기여하는 데 한계점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언제까지 국가 위주의 전통국제법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일반 국제공법 차원의 제도들은 심각한 인권침해 피해자 개인의 권리를 무시해야만 하는 것일까?

개인이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의

권리는

국제법으로

보장하지

않다고

단정지으며, 오로지 국가간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는 완고한 입장을 반복적으로 취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개인도 다양한 국제인권조약 및 관습법상의 권리 주체임이 분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인권선언을 시작으로 한 국제인권법의 발달에 따른

15


것이다. 그리고 국제인권법이 주창하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국가 중심의 전통적인 국제법질서를 극복하고 구제에 대한 피해자의 인권을 실현할 수 있는 국제법상의 절차와 방법이 강화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반영되어 왔다. 유럽인권협약 제41조 및 미주인권협약 제63조를 비롯하여 『국제형사재판소 설치에 관한 로마규정』

제75조

위법행위로 피해를

다수의

입은

국제법조약들도

개인에게

이미

배상을 포함한

2000년대

적절한

초반부터

구제조치를

국가의

취할 것을

규정함으로써 국가 대 국가가 아닌, 가해국 대 피해자 개인의 관계를 다루어 왔다. 더

나아가

자유권규약,

국제인권조약은 공히 인권

사회권규약,

고문방지협약,

침해 피해자 개인이

여성차별철폐협약

권리 구제를 청구할

등 수

주요 있도록

진정제도를 도입하였으며, 동시에 인권침해 피해에 대해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을 권리를 독립적인 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자유권규약 제2조 제3항의 ‘실효성 있는 구제에 대한 권리’는 의무이탈이 불가능한 권리라는 것이 자유권위원회의 해석이다. 국제인권법상 피해자의 권리는 실효성 있는 구제를 제공해야 할 작위의 의무와 실효성 있는 구제에 대한 피해자의 권리 실현을 저해하지 않아야 할 부작위 의무, 두 가지 모두를 국가의 의무로서 요구한다. 일차적인 인권침해로 국제인권법을 위반한 국가가 그 피해에 대해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에 기반해 실효성 있는 구제 제공의 의무를 다해야 함은 기본이다. 일차적인 인권침해 가해국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떠한 국가든 자국 관할권 내에 있는 피해자들의 실효성 있는 구제에 대한 권리를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국 관할권 내에 있는 피해자들이 효과적 구제를 받지 못 한 채 인권침해로 인한 피해로 계속 고통을 받고 있다면, 피해자의 정의에 대한 권리, 배상에 대한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를 존중,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적극적 의무도 지게 된다. 이와 같이 정의, 배상, 진실에 대한 권리가 실현되고 피해자의 존엄이 회복되지 않는 한, 인권침해는 과거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사건이 된다는 점을 이번 재판부는 무겁게 인식했는지 다소 회의적이다. 요컨대 국제인권법 하에서는 인권의 침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해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피해자의 권리가 인정되며, 그러한 권리를 존중, 보장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부과된다. 따라서 국제법이 기본적으로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며, 피해자의 구제가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외교적 조치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일정부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국제인권법상 규정된 국가의 의무를 위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법 규범들 간의 충돌을 피하는 조화적 해석이라 할 것이다.

16


다시 말해 국가가 원할 때, 그리고 국가가 원하는지 여부에 따라,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권리라는 것은 더 이상 오늘날 국제인권법상 용인될 수 없다. 인권조약의 당사국이 관할권 내 모든 사람에게 협약상 권리의 침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보호를 보장하고 더 나아가 적절한 구제수단을 제공해야 할 것이 요구된다면, 자국민이 외국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했을 때 국적국은 해당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이러한 점을 외면한 채 기존의 국가중심의 법실증주의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국제법 시각만을 반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법실증주의 방법론에 근거한 이번 판결은 국제법의 화석화를 야기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국제법의 지속적인 발전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언제까지 외국의 국가선례, 예를 들어 유럽인권재판소, 미국 연방대법원 등의 판결이 변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지, 그리고 국가중심의 전통국제법 시각에 매몰되지 말고 먼저 선도적으로 우리 법원이 인권중심의 국제관습법을 만들어갈 순 없는지 안타깝다.1

2. 피해자의 실효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 – 이번 재판이 가지는 최후수단성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2015 한일) “합의는 앞서 본 외교적 보호권 행사의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한 피고 정부 차원의 조치를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재판이 가지는 최후수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변호인단의 주된 주장이었던 “국제범죄 피해자의 실효적인 구제를 막고, 다른 구제 수단이 없는 매우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상황에서만큼은 최소한 피해자의 사법에 접근할 권리(Right to Justice) 내지 자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받아야 하며, 이 경우 기존의 불완전한 주권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은 그 적용에 있어 예외를 인정함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전면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권면제 법리로 인해 피해자의

1

이미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1 년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 3 조 부작위 위헌확인 사건에서 외교적 보호초안 제 19 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하였다. 그리고 해당 조문을 기초로 하여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갈 의무를 인정한 바 있다.

17


구제를 실현할 만한 다른 형태의 분쟁해결수단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즉 피해자들의 배상 문제가 미해결인 채로 영구히 남게 만드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는 국가면제론의 예외로써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그러한 예외적인 상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번 판결의 핵심 문제점도 여기에 있다. 이번 판결은 지속적으로 변화 발전해온 국제인권법은 반영하지 않은 채, 정말 안타깝지만 현 국가 중심의 국제법 체제에서는 아무런 다른 구제수단을 제공해 줄 수 없다는 답변만을 여전히 2021년 현 시점에서도

심각한

인권

침해

피해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마지막

구제수단으로 국적국에서의 재판청구권마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들 피해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더 이상 없다는 점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재판부가 상세히 살핀 2012년 관할권 면제에 관한 국제사법재판소 독일-이탈리아 사건의 핵심도 다른 구제 수단이 없어서 이탈리아 법원에 청구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현실적 상황인데 이에 대한 고려는 판결문에 담겨 있지 않다. 왜 피해자가 보상을 받지 못하는지, 국가면제 부정에 의해 대체 배상수단 제공이 가능한지 등의 쟁점들은 판결에서 완전히 무시되거나 사실상 간과되었다. 특히 2015년 한일합의에 방점을 두고 판시한 것은 법에 기초한 적절한 구제책을 제공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사법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한국 외교부는 2015년 합의 당시부터 이 합의가 조약이 아니라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일본 정부도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15년 합의는 판결문에도 적시되었듯이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국제법상 조약이 아니라고 해서 이 합의를 무시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엔 인권메커니즘 즉 헌장상 특별절차와 조약기구 공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는 2015년 합의에 강한 유감을 표하였다. 예를 들어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의 제7차-제8차 정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효과적인 구제가 없는 이상 ‘위안부’ 문제가 이들의 권리에 계속적 효과를 미치는 심각한 위반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고문방지위원회는 한국의 제3차-제5차

정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2015년

합의를

개정(revise

the

agreement)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으며,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의 제10차제11차

정례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일본

정부에

대하여

피해자

중심의

접근방법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속적 해결(lasting solution)’을 보장할 것을

18


권고하였다. 간단히 말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결코 2015년 한일합의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마련되었다고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합의는 현재도 대한민국과 피고와 사이에 유효하게 존속”하고 따라서 “대체적 권리구제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며, 국가 면제를 인정하는 것은 “국제법 존중원칙이라는 또다른 헌법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재판부가 언급한 국제법에는 한국과 일본이 공히 가입 비준한 자유권규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인종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등은 포함되지 않는 것일까? 국가 간의 선린관계 및 국제평화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법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피해자의

국제법(국제인권법 포함)이 존중되어야 한다.

19

실효적

구제를

보장하고

있는


주제 발표

4.21 판결에 내포된 부정의 논리와 방법 강성현(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1. 들어가며

 80여 쪽에 달하는 서울지법 제15민사부 판결문(2016가합80239)은 크게 보면 기초 사실 관계(1-31쪽), 원고 주장 요지와 사건 쟁점(31-37쪽), 소의 적법 여부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37-80쪽)으로 구성되어 있음  기초 사실 관계 

원고들의 지위를 시작으로 일본 군대의 중일전쟁 및 태평양전쟁 수행 중 위안소 설치, 종전 후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및 한일청구권협정,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제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미국 법원에서의 손해배상청구소송 경과, 위안부 문제 해결 관련 한국 외교부 부작위 위헌 헌법재판소 판결 (2011.8.30.), 2015.12.28. 한일합의 관련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음. 다만 2015한일합의 관련 내용은 12-20쪽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 지난 1월 8일 인용판결(2016가합505092)을 내린 김정곤 재판부와 대조적으로 민성철 재판 부의 방향타가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음

이어서 국가면제 관련 국제협약 및 개별 국가 입법 내용(유엔/유럽 국가면제협약, 미국 FSIA, 일본민사재판법률, 영국 SIA), 국가면제 각국 법원 판결(이탈라아 페리 니판결, 그리스 디스토모판결, ICJ판결 등)을 요약 정리하고 있음

기초 사실 정리만 보더라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민성철 재판부의 인식 과 이해 수준을 반영한 용어 선택의 문제를 드러냈고, 김정곤 재판부와 비교할 때 원고(‘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위안부 ’동원‘과 위안소 경험 등)에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음. 민성철 재판부가 원고를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고 있는지는 최종 각하 판결을 내린 날 민성철 판사의 행태를 보면 알 수 있음. 원고 변호인단 중 한 명인 이상희 변호사의 글1이 이를 단적으로 포착하고 있음

1

〈93 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법 밖으로 몰아낸 재판부〉, 《한겨레 21》 2021.4.30.

20


그 외에 기초 사실의 내용 정리 자체에 두드러지는 오류나 왜곡은 없고, 문제를 둘러싼 경과나 기존 자료의 내용과 관련 판례 분석을 개괄적으로 제시하고 있음

 원고 주장 요지와 사건 쟁점 

재판부가 원고의 주장과 사건 쟁점을 일부 곡해한 부분(제8회 변론기일에서 원고 주장 부분)이 있지만, 그 외 오류나 왜곡은 없음

곡해한 부분을 간단히 요약하면, 원고 변호인단의 주장은 국가면제가 고정된 항 구적 권리가 아니라 계속 변화해가는 관습국제법이고 지금도 새로운 국가실행을 통해 변화해가고 있으니, 국내법원도 이번 소송의 중대성과 그 의미를 고려할 때 이번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제한하는 국가실행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음. 그러나 재 판부는 기존의 제한적 면제론 외에 새로운 국가면제 법리가 국제관습법으로 변 경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만 검토하였음2

이 곡해에서 이미 재판부의 판단 방향이 예정돼 있었던 것으로 보임. 법정지국 영토 내(한국)에서 발생한 피고(일본)의 주권적 행위는, 그게 불법이든 강행법규 위반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이든 상관없이, 국가면제라는 판결로 나아갈 논리를 예비하고 있었음. 사실상 1월 8일 인용판결을 부정하는 각하 판결을 내렸 음

재판부는 기초 사실 관계를 확인하면서 시작하지만, 거의 맹목적일 정도로 ICJ 다수의견과 국가면제라는 ‘도깨비 방망이’에 기대면서 기초 사실을 선별 재단했 고 원고들의 여러 주장에 반박했으며, 2015한일합의의 의미를 자의적이고 편향된 논리와 방법으로 곡해하면서 피해자들을 부정하고 있음

2. 민성철 재판부의 인식, 논리, 방법: 무엇을, 어떻게 부정했나

1) 용어와 표현  피고의 불법행위를 서술할 때, “위안부로 차출”(43쪽), “강제로 성행위를 종용당하였 음”(5쪽), “군인들과 성관계를 갖도록”(7쪽) 등 ‘차출’, ‘성행위’, ‘성관계’ 같은 재판부의 부적절한 용어 사용과 표현. 예컨대,

2

양성우, 〈일본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2 차 소송의 1 심 판결 분석〉, 《2 차 소송 1 차

토론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구 각하 판결, 어떻게 볼 것인가: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 2021.4.30, 6 쪽; 2021.4.21.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15 민사부 판결(2016 가합 580239), 35-36 쪽.

21


“피고는 성병 감염으로 인한 전투력 상실을 방지하고, 점령지역에서 병사들에 의 한 강간 등 성범죄 발생을 예방하며, 전장에서 긴장과 우울감 등을 느끼는 군인 들의 심리적·성적 욕구 해소를 통하여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안소 를 설치하였고, 위안부들로 하여금 위안소에서 군인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하였 다.”(판결문 6-7쪽)

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정의에 따라, “강제로 동원되어 성적 학대를 받으며 위안부로서의 생활을 강제당한” 이라고 표현해야 함.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런 용어 사용과 표현 에 내포된 재판부 인식·이해의 문제가 피해자를 대하는 재판부의 태도와 연동되어 있다고 생각함  1월 8일 판결과 비교할 때, 피해자가 체계적으로 당한 종합적 피해의 내용, 성격, 중대함 등에 대해 몰이해 또는 무관심이 엿보임. 재판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상관없 이, 결과적으로 ‘성노예제’를 부정하기 위한 용어 사용과 표현과 유사하게 되었음

2) 인권과 대립하는 주권론: 강행법규 위반을 덮는 국가(면제)절대주의  민성철 재판부는 “국가의 군대, 그리고 그 군에 협력하는 국가의 다른 기관이 저지 른 행위”를 ‘주권적 행위’로 보고, 이를 전제로 “무력분쟁 과정에서 이루어진 행위” 는 (군의 행위이므로,) “주권 행사로서의 성격이 가장 강한 행위”라고 판단했음. 

재판부에 따르면, 일본군의 “위안부 차출”은 “전투력 보존을 위한 군사적인 목적 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는 “무력분쟁 과정에서 이루어진 행위”이므로, ‘위안부’ 차출은 주권적 행위가 됨. (아울러 법정지국 영토 밖인 점령지에서 위안소를 운영 한 것도 주권적 행위가 됨) 참으로 ‘대단한’ 논리

 재판부는 무력분쟁 과정에서 이루어진 국가 행위가 불법적이거나 심지어 인권에 관 한 국제조약 등 강행법규를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라 하더라도, ‘주권적 행위’라면 국 가면제에 해당해 이 사건의 소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음 

무력분쟁’(armed conflict)은 재판부의 설명과 다르게, 20세기 들어와서 국가간 전 쟁이나 정규 군대간 전쟁의 양상에서 점차 벗어나 전지구적 내전과 비정규전 양 상을 띠고 있음. 이런 ‘더러운 전쟁’(dirty war)에서 가장 피해가 큰 집단은 ‘비무 장 민간인’들이고, 국제인권법레짐은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왔으며, 전시국제법도 그 취지를 받아들이고 조문에 점차 반영해왔음

22


그럼에도 민성철 재판부가 국가 또는 군의 행위가 불법이더라도, 또는 심각한 강 행법규 위반이더라도, 주권적 행위이므로 국가면제가 존재한다고 판단한 것은 국 가면제를 사실상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 인식을 드러낸 것임.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국가 실행으로 일반 관행이 법적 확신을 얻게 되어야만 관습국제법 으로 성립된다는 논리 등) 국가면제는 고정되고 항구적인 것으로 절대 영원불멸 해야 하는데, 실상은 국가면제의 예외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상황임. 어떤 입법, 어떤 법원 판결은 그 변화를 주도하고 만들어가고 있고, 1월 8일 김정곤 재판부 의 판결은 그런 맥락에 있었음

민성철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예외로 두는 국제협약, 개별 국가 법률과 법원 판결 을 검토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독일 대 이탈리아)의 다수의견만을 금과옥조로 삼아서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과 위안소에서의 성 적 학대, 성노예제로서의 위안부제도 운영 등의 심각한 강행법규 위반 사항을 국 가면제로 덮어버렸음

재판부가 “강행법규 위반으로 인한 중대한 인권 침해 여부는 필연적으로 본안 심 리를 다한 이후에야 판단할 수 있”(판결문 28쪽)는 문제라고 한 대목과, 설령 소 가 적법하고 재판 결과 인용 판결이 이루어지더라도 피고(일본)를 상대로 사실상 강제집행이 불가능하고 우호적인 외교 관계를 해치게 되므로 이를 경계해 국가 면제라는 관습국제법이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대목에 이르면, 이 미 결론(판결)부터 정해 놓고 국가면제의 예외(원고) 주장을 반박했구나 라는 생 각이 들 정도임

재판부는 유엔/유럽 국가면제협약과 개별 입법을 통해 불법행위 등에 대해 국가 면제 예외를 입법한 국가가 총 37개국이니, 유엔 회원국 193개국 중 19.2%에 불 과해 국가면제 예외 관련 개별 국가 실행이 일반적인 관행에 이르지 못했다고 판단함.(판결문 52쪽) 이는 어설픈 통계 수치를 만들어 나열하면서 자의적인 해 석을 실증적인 사실인 것처럼 논하고 있음. 37개국이 어떤 국가고, 어떤 배경과 이유에서, 어떤 논리와 방법으로 국가면제 예외를 실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맥락 적 검토를 일순간에 지워버리고, 단지 유엔 회원국 193개의 균질적인 비교 수치 가 되어 버렸음. 재판부의 기준 수치는 무엇인가?

 국가면제를 적용한 최초의 법원 판결이 “국가실행으로 일반 관행이 법적 확신을 얻 게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립되었듯이, 국가면제 예외를 인정한 최초의 법원 판결 도 그렇게 성립했음. 개별 국가의 국내 재판부가 주어진 사건에 대해, 특히 불법행

23


위나 심각한 강행규범 위반 케이스에 대해 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어떤 판결을 내리 는가가 하나하나 쌓이면서 그 일반 관행과 법적 확신이 사후 만들어지는 것임3 

1월 8일 김정곤 재판부는 국가면제에 관한 법리를 계속 변화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았고, 불법 행위나 심각한 강행법규 위반 케이스의 경우 국가면제 예외의 인정 이 더 확장될 것이라고 판단했으며, 국가보다는 원고인 피해자들을 위해 사법적 극주의의 태도를 취했음

3) 손해배상청구 대신 대체적 권리구제수단: 피해자를 외면한 사법소극주의  민성철 재판부는 피고(일본정부)에게 국가면제라고 판단(소 각하로 귀결될 판단임) 한 것이 원고(‘위안부’ 피해자들)의 절차적 권리인 재판청구권을 침해(게다가 과도하 게 제한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함. 심지어 각하되어 본안 판단을 받지 못하더라도 재판청구권 침해가 아니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대목도 있음, 판결문 62쪽)하는 것이지 실체법적인 손해배상청구권 그 자체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함 

재판부는 2015한일합의을 염두하고 “대한민국 외교적 보호권 행사에 의하여 피 해자들을 위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객관적으로’, 판결문 63쪽) 존재한 다”(62쪽)고 함

재판부는 한일합의의 문안을 두고 “피고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 의 내용을 담고 있”(판결문 66쪽)고, “그 이전 외교적 노력의 결과로 이끌어낸 피 고의 조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67쪽)다고 판단함

재판부는 한일합의에 따라 탄생한 화해치유재단의 “현금지원사업”이 “피해 회복 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판결문 65쪽)이라고 판단함. 생존 피해자 35명, 사망 피 해자 64명에 대해 현금 지급/수령이 이루어졌다면서, 한일“합의가 위안부 피해자 들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단정하기 어”(67쪽)렵다고 판단함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한일합의가 “외교적 보호권의 행사에 관한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지 않았다(판결문 67쪽)고 판단함. 또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 하지는” 이면 합의에 “피해자 단체의 활동을 제약하는 내용이 포함”(66쪽)돼 내용 과 절차에 일부 문제가 있지만, “피해자들의 국적 국가가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

3

김창록, 〈2021 년 4 월 21 일 일본군 ‘위안부’ 판결에 관한 메모〉, 《2 차 소송 1 차 토론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구 각하 판결, 어떻게 볼 것인가: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 2021.4.30., 14 쪽.

24


여 가해국가와 피해 회복을 위한 외교적 협상을” 할 때 최종 합의안에 피해자들 의 의견을 고려는 해야겠지만 반드시 “피해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 외 교적 보호권 행사의 방식에 구속력 있는 법규범으로 확립되었다고 보기 어렵 다”(68쪽)고 판단함 

재판부는 한일합의가 “‘정치적 합의’로서의 한계”가 있지만, 이에 대해 현 행정부 가 합의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주무부처 인 외교부장관은 한일합의가 공식적인 합의임을 인정했고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이게 지금도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이 합의는 여전히 피고와 한국 정부 사이에 유효하게 존속되고 있다고 판단함(판결문 69쪽)

 민성철 재판부의 위 판단은 자의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들을 선별/누락하는 방식으 로 곡해하고 있고, 근거 없는 일방의 주장이 섞여 있으며, 무엇보다 역사수정주의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음 

재판부의 판단의 시각, 논리, 방법을 하나하나 반박할 수 있는 연구논문과 저서 들, 기타 글들이 차고 넘치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구구절절 논의하지는 않겠음. 다만 현금지원사업의 실상을 애써 보지 않고, 피해자들의 현금 수령의 의미를 한 일합의를 인정한 것처럼 판단한 것은 현재 원고 구성을 보더라도 일차원적으로 곡해한 것임을 알 수 있음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재판부의 판시는 ‘정치적 합 의’에 대한 정치 논리의 곡해를 법률적 판단으로 위장한 것이라는 점은 강조하고 자 함. 그 근거는 지난 김창록의 발표에서 다루었다고 생각해 넘어가겠음

피해자들을 뺑뺑이 돌리는 판결. 일본 정부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종결, 2015 한일합의로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다 하고, 한국 정부는 2015한일합의가 공식적 합의이고 일본에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 해서, 피해자들이 30년 동안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호소한 수단이 국내 법원인데, 다시 외교에 호소해 보라 함. 재 판부는 피해자의 손해배상재판청구권을 거부함으로써 인권과 피해자를 재차 죽 이고 있음. 재판부는 왜 피해자들이 재판을 청구했는지, 단지 현금 다발을 ‘보상’ 받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건지, 전혀 고민이 없음

 재판부는 외교적 충돌과 갈등을 너무 고려한 나머지, 이 사건의 소를 제기한 것을 사익으로 바라보고, 외교관계 문제를 공익으로 전제하고 비교하는 일차원적 인식의 문제를 드러냄 

재판부는 피해자의 고통을 언급하지만 사실 전혀 공감하지 않았고, 공판에서 그 25


목소리를 듣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무시를 넘어 모독에 이르렀음. 반인도범죄 등 중대한 (여성)인권 침해의 문제를 사사로운 이익으로 보고, 한일 외교관계라는 공 익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했는데, 이게 왜 문제인지 전혀 자 각이 없음

3. 나오며

 국가면제 인정은 국제법 존중주의, 국제평화주의를 추구하는 것이라 주장했지만, 왜 피해자를 외면하고 불법행위 또는 심각한 강행규범 위반 행위에 대해서까지 국가면 제라는 관습국제법만 존중하는지, 누구를 위한 국제평화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음 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거의 배제돼 있고, 개괄적인 사실 정리 외에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형해화된 논리가 펼쳐져 있으며, 그 뒤에 부정의 관점과 논리, 방법이 도사리고 있음

26


주제 발표

국제관습법은 여성인권 위에 있는가? 김나영(미국 변호사, 김박법률사무소)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제관습법의 상위 절대규범인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한 반인도적, 반인권적 범죄행위에는 국가 면제를 적용할 수 없음을 이유로 일본국에 대한 국가 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다. 불과 석 달 뒤, 같은 법원 민사합의15부는 비슷한 소송에서 국가 면제에 관한 ‘제한적 면제론’에 입각한 국제관습법을 이유로 일본국에 대하여 국가 면제를 인정해 대한민국 법원에 일본국에 대한 재판권이 없다고 보아 소를 각하했다. 1차 소송 재판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개인, 특히 여성의 인권 보호를 중심으로 진보해 온 국제법의 현재와 미래를 적극 반영하고 국가폭력 피해 여성이 가해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를 받아들여 여성 개인이 진정한 국제법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한 반면, 2차 소송 재판부는 국가가 잔혹한 범죄행위를 통해 여성인권을 침해하고도 그 피해 여성 개인의 요구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과거의 국제질서를 수호했다. 그동안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은 일본과 미국, 한국에서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왔다. 현재 국제사법재판소는 개인에게 당사자능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분쟁의 주체로 제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만이 분쟁의 주체이고 국제사법재판소에 분쟁을 제소할 수 있는 것은 분쟁 당사자국 간에

합의가

있는

경우에

한한다.

한일

양국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기로 합의하지 않는 이상 성노예제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국제사법재판소의 구제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2차 소송 재판부는 피해를 입은 개인의 국적국가가 가해국가를 상대로 자국민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외교적 보호권 제도를 언급하며 2015. 12. 28 한일 합의와 이에 따른 화해치유재단의 사업으로 인하여 피해자들을 위한 대체적 권리구제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하고 이러한 사정을 일본국에 대한 국가 면제 인정 여부 판단에 고려했다. 그런데 이 외교적 보호권은 피해를 입은 당사자 개인의 권리가 아니라 그 개인의 국적국가가 갖는 권리이다. 국적국가가 피해자의 권리를

27


보호하고자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국가는 국익과 외교관계라는 정치적 계산에 매여 있기 때문에 피해자 중심적 접근으로 피해자의 권리를 충실히 보호하지 못할 위험도 있다. 더군다나 재판부에 따르면 국가는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함에 있어서 그 방식과 내용의 선택에

관하여

광범위한

재량이

허용된다.”

그렇다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가

대한민국 정부를 통하지 않은 채 일본 정부를 법 앞에 세워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직접 청구하고 정의를 요구할 방법은 개별 국가의 민사소송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민사소송은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가해자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통제권과 피해자 중심성이 높은 법률 메커니즘이다. 일본군 성노예제를 국가의 주권적 행위로 보고 국가 면제를 인정해 피해자 여성 개인의 재판청구권을 박탈하는 것이 국제관습법이라 함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조약과 함께 국제법을 이루는 주요한 연원인 국제관습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일반 관행이라는 객관적 요소와 법적확신이라는 주관적 요소가 필요하고 이 때 법적확신은 어떤 관행을 지킬 의무가 있다는 믿음이다.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수천 년의 인류 역사상 국가의 일반 관행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자면 사실 성차별과 성폭력, 성착취, 젠더에 기반한 여성폭력과 여성살해를 비롯한 여성인권 침해가 모든 국가의 일반 관행이었다. 외국과 자국이 저지른 여성에 대한 국가폭력과 전쟁범죄는 물론이고 공권력이 아닌 일반 남성이 자행한 여성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모른 척 방관하고 은폐하고 온갖 핑계를 갖다 붙이며 피해자가 정의를 찾아나서는 행위에 훼방을 놓고 차단하는 것 또한 모든 국가의 일반 관행이었다. 그리하여 온 세상 여성들이 몇 세대에 걸쳐 질문을 던져온 것이다. 여성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여성은 국민인가? 여성은 인간인가? 여성은 어디에서 정의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전지구적 가부장제 패러다임 속에서 움튼 국제관습법은 여성인권 위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이다. 오늘의 국제관습법은 여성인권을 하찮게 여기던 가부장제 패러다임을 넘어섰다. 우리는 현재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시작된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있으며 이 패러다임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여성인권과 성평등, 차별금지, 젠더에 기반한 여성폭력 철폐는 이제 그 자체로 국제관습법이

되었다.

국제관습법이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국가의

일반

관행과

법적확신의 존재의 증거의 예로는 조약, 정책, 정부 공식문서, 유엔 결의, 성명서 등이 있다.

유엔

헌장과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은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차별의

1948년

형태로

세계인권선언,

명시적으로

젠더에

기반한

정의했고

1966년

국제법상

성평등

여성폭력을

2017년에는 28

자유권과 원칙을

사회권규약,

1979년

강조한다.

1992년

여성차별철폐협약

젠더에

기반한

제1조에

여성폭력

따른 금지가


국제관습법으로까지 발전했다고 권고했다.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정의에 따르면 젠더에 기반한

여성폭력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이루어진

폭력

또는

여성에게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폭력”이고 “물리적, 정신적 또는 성적 피해나 고통을 가하는 행위 및 그 위협”을 포함한다. 1993년 유엔 세계인권대회는 살인과 조직적 강간, 성노예제, 강제 임신을 포함한 여성인권 침해가 국제인권법 위반이라는 내용의 비엔나 선언을 결의했고, “무력 분쟁 시에 여성인권에 대한 침해는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의 기본 원칙에 위반된다”고 선언했다. 1995년 제4차 세계여성대회는 “분쟁 중 발생하는 젠더에 기반한 여성폭력이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범죄이며 이에 대한 조사, 범죄자의 기소와 처벌,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구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2019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여성,

평화

안보에

관한

결의

제2467호에서

“무력분쟁과 분쟁 후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을 예방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피해자

중심적

접근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성폭력

피해자들의

사법접근성을

강화하도록 촉구한 바 있다. 여성인권과 피해자 권리 보호, 피해자 중심주의가 중요한 국제관습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차 소송과 2차 소송의 두 재판부는 모두 일본국이 위안소를 설치해 피해자들을 심각하게 유린한 행위가 국제법을 위반한 반인권, 반인도적 행위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전시 성노예제를 일본국의 주권적 행위라고 보았다. 성노예제를 주권적 행위로 보지 않았다면 비주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 면제를 적용하지 않는 제한적 면제론에 입각해 2차 소송의 재판부 역시 피고 일본국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1차

재판부는

“이

사건

행위로

인하여

일본제국이

달성하려던

목적은

일본군인들의 신체적, 정서적 안정, 군대의 효율적인 통솔과 통제 등으로 보이며, 군대의 보유와 지휘는 국가의 행위 중 가작 권력적 행위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말로, 2차 재판부는 “점령지를 확장하고 전장이 확대됨에 따라 피고는, 성병 감염으로 인한 전투력 상실을 방지하고, 점령지역에서 병사들에 의한 강간 등 성범죄 발생을 예방하며, 전장에서 긴장과 우울감 등을 느끼는 군인들의 심리적, 성적 욕구 해소를 통하여 전투력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였고, 위안부들로 하여금 위안소에서 군인들과 성관계를 갖도록 하였다”는 말로 일본군 성노예제를 주권적 행위로 보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위안소를 설치하고 운영한 일본국과 위안소를 이용한 일본군인들의 일방적 관점만을 반영한 논리이다. 위안소에서 수년에 걸친 성폭력과 고문을 겪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관점은 찾아볼 수 없다. 여성인권과 국제법 전문가 크리스틴 친킨 런던정경대 명예교수는 2차 소송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반인권, 반인륜범죄이자 사법적, 29


상업적 행위인 성노예제를 주권적 행위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전쟁 중 군대를 동원해 식민지와 점령국의 여성과 아동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자행한 성노예제와

전쟁범죄,

인권

침해를

주권

면제

법리에

입각해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존중하고 보호해야할 주권적 행위, 즉 통치행위이자 국가기능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은

자체로

반인권적,

반여성적이고

폭력적이다.

군대의

전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군인들의 신체적,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군인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식으로 국가를 위한 변명을 해준다면 군대와 관련된 주권적 행위라는 명목으로 타국의 재판권을 회피하지 못할 범죄가 있는가? 국가와 주권을 이해하는 데에도 성인지 감수성과 여성인권 관점,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 필요하다. 1991년 김학순 여성운동가가 대한민국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하고 일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후 지난 30여 년 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은 자신이 식민지 여성으로서 경험한 폭력에 대해 말하고 가해국가에게 정의를 요구하며 세계여성인권운동의 새 길을 내왔다. 그들 중 대다수가 고인이 되었고 이제는 14명만의 피해자가 생존하고 있을 뿐이다. 전시 성폭력과 성노예제의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인류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그들의 세계사적 사명은 후세에

남았다.

조약으로,

국제관습법으로

국제법과

국제사회질서에

확고히

자리매김한 여성인권과 피해자 권리 보호,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그 길을 밝혀줄 것이다.

30


<세션 2> 주제 토론

2차 판결이 제기하는 문제들 국가면제-주권행위-천황의 책임/여성인권-기본권-사법정의 윤명숙(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소장 직무대리)

31


32


33


34


35


36


37


주제 토론

‘2015 한일합의’의 틀로 회귀한 판결의 논리 –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강제 마침표’ 시도인가 길윤형(한겨레신문 통일외교팀장)

1. 서울중앙지법 제15 민사부가 4월21일 내린 판결(이하 4월 판결) 자체에 대해선 원고 대리인으로 직접 소송을 수행하신 이상희 변호사님의 발제 등도 있으니 관련 언급을 가급적 짧게 줄이려 합니다. 저는 좀 더 폭넓은 논의를 위해 지난 30여년 동안 이어진 일본군 ‘위안부’ 운동사에서 이 판결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현실 외교적 관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이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소개합니다. 판결이 나온

당일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판결)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언급은 삼가겠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이틀에 걸친 내용 검토가 끝난 뒤 일본 정부가 내놓은 견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23일 오후 진행된 정례 기자회견에서 기자와 다음과 같은 문답을 주고받습니다.

아사히신문 기자=21일 한국에서 나온 위안부 소송 판결의 영향에 대해 묻겠습니다. 앞서 일-미 공동성명(4월16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 후 나온 공동성명-인용자)에서 일-미-한 3개국 협력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만, 이번 판결 결과나 나왔으니, 그 협력에 대한 영향과 또 협력을 어떻게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까. 다시 한번 대신의 소견을 묻겠습니다. 모테기 외무상=미안합니다. 질문의 취지를 모르겠습니다. 나로서는. 아사히신문 기자=판결이 21일 나왔습니다만, 모테기 외무상=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것과 일-미 정상회담에서 일-미-한이 협력을 해 나간다, 그것의 중요성에 대해 표명했다는 것,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다 안다는 전제 아래서 질문의 의미를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아사히신문 기자=그 양자의 관계, 일-미-한이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이번 판결이 영향을 줄 것이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모테기 외무상=그건 무슨 소립니까. 잠시만요. 내 사고의 범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38


해석을 하자면, “이런, 이런 점에서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한-일 관계 개선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 같은데 나는 모르겠으니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설명해 주시면, 그에 대해 답하겠습니다. 아사히신문 기자=알겠습니다.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위 문답을 보면, 일본인 특유의 논점 회피로 인해 일본 정부가 정확히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순 없습니다. 그러나 추정해 보면 다음의 두 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첫번째,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 자체가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전환점’으로 받아들이고 있진 않습니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 ‘다행스런 결과’임엔 틀림없지만, 여전히 위안부 문제와 같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국제 관습법상 ‘주권 면제’의 적용을 거부한 1월8일 판결(이하 1월 판결)이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일본 정부는 원고의 항소 포기로 이 판결이 확정된 직후인 1월23일 외무대신 담화를 내어 “이번 판결은 국제법 및 일-한 양국 간 합의에 명백히 위반하는 것으로 지극이 유감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스스로 책임지고 즉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다시금 강력히 요구”한 바 있습니다. 즉, 1월 판결이 여전히 존재하고, 그에 대해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적절한 조처’가 이뤄지고 있지 않으니, 이 판결을 적극 환영하기 곤란합니다. 게다가 한-일 사이엔 진실로 ‘난제 중의 난제’라 할 수 있는 2018년 10월 대법 판결 문제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에 명확한 답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한국 정부에 대한 비난 역시 삼가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지난 2월 초 취임한 정의용 외교장관과 전화회담마저 거부하던 모테기 외무상은 5월5일 오전 주요7개국(G7) 외교장관 회담이 열린 런던에서 양자 회담에 응합니다. 일본 언론들인 모테기 외상이 이번 회담에 응한 이유를 “미국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것”(5일 <아사히신문>, 7일 <요미우리신문>)이라 설명하고 있지만, 4월 판결이 1월 판결과 동일하게 나왔다면 이 회담에도 응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결은 한-일 관계가 추가적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은 하나의 계기가 됐다(판사는 이 부분을 명확히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합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합니다. 즉, 일본 정부는 크게 안도한 것입니다.

2. 이런 안도감은 판결 당일 한국 정부가 내놓은 짧은 입장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39


ㅁ 금일 판결 관련 상세 내용을 파악 중인바, 관련 구체 언급은 자제코자 함. ㅁ 다만, 우리 정부는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임. ㅁ 아울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전시 여성의 인권유린이자 보편적 인권 침해의 문제로서, 일본정부가 1993년 고노담화 및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등에서 스스로 표명했던 책임통감과 사죄, 반성의 정신에 부합하는 행보를 보일 것을 촉구함.

지난 4월 판결과 ‘정부 입장문’이 지향하고 있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위안부 운동을 그동안의 성과인 1993년 고노 담화와 2015년 12·28 합의 수준에서 봉합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1월 판결과 달리 4월 판결은 일본 정부가 저지른 ‘반인도적 불법행위’, 즉 전시 여성에 대한

악독한 국가

범죄였던

위안부 제도에

대해서도 주권 면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어느 국가의 주권 행위가 강행규범에 위반했다면, 그 행위는 위법한 주권행사가 될 뿐이지, 그 행위의 주권적 행위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님”-판결문 58쪽)고

결론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판단한

지점에서

판사는

원고들의

소청을

‘각하’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판사에게는 이런 판결을 내려도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있는 도피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름 아닌 12·28 합의의 존재입니다. 판사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로 볼 수 있는 2015. 12. 28 한-일 합의에 의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대체적인 권리구제수단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면서 “이 합의와 이에 따른 후속 조치에 의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을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대체적인 권리 구제수단이 마련되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결론을 내린 판사의 내면까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이후 전개된 한-일 갈등 △문재인 대통령의 1월18일 “당혹스럽다” 발언 △“12·28 합의에 대한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다”는 2018년 1월 한국 정부의 입장 표명 등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 판결 전에 일본 정부를 상대로 12·28 합의 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한국 정부였습니다.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은 2017년 12월 12·28 합의에 대한 정부의 재검토가 끝난 직후인 2018년 1월9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2015년 합의가 양국 간에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를 감안하여 우리 정부는 동 40


합의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 대해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합니다. 결국 이 판결은 12·28 합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정부의 입장을 사법적 차원에서 계승한 판결이라 할 수 있으며, 나아가 12·28 합의의 벽을 뛰어넘어 이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받으려는 정의기역연대 등 위안부 운동의 도전을 꺾고, 기존의 합의 틀 속에 ‘봉합’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조금

시선을

넓혀보면,

위안부

운동의

‘봉합’은

한-일

양국

정부의

기본적

실명

고발한

자세였습니다. 30년

전인

1991년

8월14일,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처음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첫 외침이 나온 뒤,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명예를 회복하며, 일본 정부로부터 올바른 사죄를 받아내는 일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시대적 과제’로 자리 잡게 됩니다. 처음엔 여성들이 “업자들에게 속아 간 것”이라는 불성실한 답변에 머물던 일본 정부는 1993년 8월4일 위안부에 대한 군의 관여와 동원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65년 체제의 벽은 굳고 높았습니다. 일본 정부가 처음 시도한 것은 ‘정치적 해결’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1995년 7월 ‘아시아 여성기금’을 만들어 이 문제에 해결을 꾀하지만, 65년 체제 탓에 정부 예산은 투입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국가 범죄임을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받아들이는 대신,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데 그친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아시아 여성기금을 거부하고 기약 없는 대일 투쟁에 나섰습니다. 일본 정부가 시도한 ‘정치적 해결’의 길이 실패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일본 법원에서 소송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병행적으로 추진됩니다.

한국인·조선인

피해자들은

김학순

할머니가

포함된

1991년

12월

소송(2001년 3월 1심 기각, 2003년 7월 2심 기각, 2004년 11월 최종심 기각) 관부 재판이라 불린 1992년 12월 소송(1998년 4월 1심 부분 승소, 2001년 3월 2심 패소, 2003년 3월 기각), 재일동포 송신도 할머니의 1993년 4월 소송(1999년 10월 1심 기각, 2000년 11월 2심 기각, 2003년 3월 최종심 기각) 등 세 건의 재판을 시도하지만, 모두 패소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통해

일본

법정을

통한

‘법적

해결’의

길이

사실상

막혔습니다. 그러자 한국 내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됩니다. 일본 법원이 기각의 이유로 제시한 한-일 협정에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 공개하라는 한-일 협정문서 공개 운동이 시작된 41


것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2005년 8월 위안부 문제는 “65년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그 후에도 일본을 상대로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 교섭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를 지적하는 위헌 소송이 전개됐고, 헌법재판소는 2011년 8월 일본 정부와 교섭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뻔뻔한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결정합니다. 이후 2013년부터 박근혜-아베 정권 사이의 처절한 위안부 외교가 시작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선 조처’ 등을 요구하며,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강수를 둡니다. 하지만, ‘중국의 부상’에 맞서 한-미-일이 공동 대응해야 한다는 미국의 압력에 밀려 2015년 말 12·28 합의를 삼키고 맙니다. 이 합의를 통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자신이 인정하는 것이 ‘법적 책임’인지 ‘도의적 책임’인지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책임을 통감한다’고 선언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그동안 꾸준히 거부해 왔던 10억엔(약 108억원)의 정부 예산 지출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대신 한국 정부가 약속한 것은 이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었습니다. 그러나 12·28 합의는 큰 국내적 반발에 부딪혔고, 2016년 말 촛불집회를 통해 최소한 한국 국내적으로는 폐기되기에 이릅니다. 한-일 정부가 시도한 ‘외교적 해결’ 역시 성공에는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엔 합의의 파기와 재협상을 약속했지만, 2018년 1월 일본 정부에 재교섭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며 12·28 합의를 사실상 추인합니다. 누가 차기 정권을 담당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

정부가

방침을

바꿀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베 총리는 일찍이 12·28 합의에서 “단 1㎜도 움직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었고, 이후 등장한 스가 요시히데 정권은 “아베 외교의 계승”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재교섭을 요구하지 않는데 일본이 자발적으로 추가적인 조처를 취할 리가 만무합니다. 현실 외교적 차원에서 보자면, 위안부 운동은 2021년 4월21일이 아닌 2019년 1월9일에 사실상 봉합된 것입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여기 모인 한국 시민사회는 한국 법원을 통한 ‘법적 해결’이라는 또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됩니다.(개인적으로 한국 법원을 통한 법적 해결은 다시 한번 한-일 사이에 외교적 긴장을 만들어낸다는 차원에서 진정 해결이 될 수 있을지 조금 판단을 유보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지난 4월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역사적 정의’와 ‘외교적 현실’이라는 두 가치 가운데 법원이 2011년 8월 헌재 결정 이후 처음으로 ‘외교적 현실’을 선택한 분기점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2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으나 지난 1심 결과는 법원의 매우 의미심장한 태도 변화로 읽힙니다. 그래서 이 판결에 대해선 위안부 30년 운동을 12·28 합의의 수준으로 42


봉합하려는 ‘강제 마침표’를 찍으려는 시도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3


주제 토론

응답불능의 법 앞에서 – 4.21 판결에 대한 단상 장수희(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강사)

법 앞에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 게 해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을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사 람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 들어갈 수 있게 되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 하고 문지기는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되오’ (중략)법이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개방되어 이어야 마땅한 것이거늘 하고 생각하지만,(중략) 문지기가 그에게 등받 이 없는 걸상 하나를 주고 문 곁에 앉아 있게 한다. 여러 날 여러 해를 거기에 그는 앉 아 있는다.(카프카, 「법 앞에서」 중)

카프카의 『소송』에 삽입된 짧은 소설인 「법 앞에서」는 일본군‘위안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장면들을 한꺼번에 떠오르게 한다. 먼저, 30년 동안 일본대사관 앞에서 마주보고 올 려다보고 있었던(누군가 내려다 보았을) 일본국 대사관 건물과 그 앞의 경찰들. 이 자리 에서 피해자들은 일본과 한국이라는 ‘국가’를 향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해 왔다. 문 안의, 펜스 뒤의 대사관 건물의 실체는 알 수 없다. 또 다른 장면 하나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인공 ‘나옥분’과 구청 공무원들이다. 옥분은 구청장이 5명이나 바뀌는 2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민원을 무려 8천 건이나 제기 하는 인물이다. 영화의 앞부분에 새로 발령받아 출근한 공무원과의 대치 상황은 4월 21 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의 데자뷰 같다. 동네 방범등을 고쳐달라 는 옥분의 민원에 구청공무원은 “민원신청서는 제출하셨나요? 준비 안 되셨으면 서류부 터 작성해서 제출하세요.”라고 말하며 옥분을 돌려보내기도 하고, 옥분이 모아 온 재개발 기업의 부당행위 증거를 읽지도 않고 파쇄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행 정 절차상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절차상의 이유로 구제요청은 ‘각하’되고 범죄는 계속 된다. 구제요청의 ‘각하’는 결과적으로 영화 속 기업의 부당행위를 보호한다. 일본군‘위안 부’ 피해 구제를 위한 소송의 ‘각하’는 절차상 이미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심각한 인권침 해 피해 실태와 반인도적 범죄를 파쇄하는 판결이기도 하다. 이 판결이 보호하고 있는 것은 젠더기반폭력과 반인도적 행위를 한 일본국에 대한 국가면제의 원칙과 한국의 정권 교체의 한 계기가 되기도 했던 한일 정부간의 합의이다. 법원은 성노예제라는 젠더기반

44


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각하시킴으로써 한국 사회가 성범죄 불처벌을 지속시키 는 법적 시스템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는 국내 성범죄 불/비처벌 판결, 피해자 처벌의 역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법원은 이미 피해자들의 구제요청에 응답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은 아닌가? ‘법이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개방되어 이어야 마땅한 것이거 늘’ 식민지 여성들의 법적 보호를 받을 권리, 주권자로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국가면제라 는 특권 앞에 침해당하고 있다. 다시 카프카의 「법 앞에서」로 돌아가 보자. 문득, 저 법 앞으로 왔다는 ‘시골 사람’이 여성으로 상정된 적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이 소설에서 ‘시골 사람’은 단 한 문장으로 단 숨에 법과 법 앞의 문지기를 마주보고 설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골 사람’이 오랫동안 피 해를 침묵하고 있었던 고령의 여성이라면 단 두 문장으로 법 앞에 설 수 있을까? 아마도 비명과 울음, 절규와 침묵이 먼저 도착하고, 고령의 여성들이 함께 겨우 모습을 드러내고 (comparaître) 법 앞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법으로의 입장을 불허한 문지기는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등받이 없는 걸상을 제공한다. 고령의 여성들은 몸을 기댈 수도 없는 등 받이 없는 걸상에 앉아 기다리며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본다. 여러 날 여러 해를 거기에 그녀들은 앉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영화에서 구청장이 몇 번이나 바뀌는 것처럼 대통령 이 몇 번이나 바뀌고, 함께 앉아 있던 여성들이 하나, 둘 스러져갔다. 「법 앞에서」의 시 골 사람도 끝끝내 법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시골 사람이 죽기 전에 문지기는 시골 사 람의 “스러져가는 청각에 닿게끔 고함질러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다른 그 누구도 입장 허가를 받을 수 없었어,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이 짧은 소 설이 비극 같지는 않다. 시골 사람은 법 앞에서 편히 앉지도 못하고 법 안으로 들어가기 를 기다리다가 죽음을 맞았지만, 나는 법의 문이 오직 그만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4.21 판결이 법 앞에서 각하되었지만 이 법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것은, 문지기의 말대로 ‘지금은 안되’었지만 이 소송과 법의 문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확신 이 생겼다. 라고 생각하니 시가 하나 떠올랐다. 재일조선인 김시종의 <니이가타>에 70년이 넘는 분단과 국가의 거절, 역사의 끊어진 길을 돌파해 같은 위도의 일본 니이가타에서 “숙명 의 위도”를 시로서 넘어서려1 했던 도전, 어색한 일본어로 국가주의를 넘어서려한 도전을 떠올린다.

1

곽형덕, 「옮긴이 후기」, 김시종, 『니이가타』, 글누림, 2014, 189 쪽.

45


아크등을 무서워하며 지층의 두께에 울어던 숙명의 위도(緯度)를 나는 이 나라에서 넘는 거다.2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옥분은 영어를 배우고 말하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역 사의 증언을 전달한다. 그리고 더욱더 가열차게(!) 민원을 제기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쉽지 않은 재판 준비와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이지만, 재판을 준비한 모든 분들께 감사 와 마음의 힘을 전달하고 싶다.

2

김시종, 같은 책, 31 쪽.

46


주제 토론

4.21 판결의 헌법적 문제점 오동석(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헌법 제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법관의 책무를 다하여 헌법을 최고규범으로 상정하고 판결했느냐의 문제다. (2)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규정하면서,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국가는 물론 헌법보다도 상위의 규범으로서 헌법이 확인한 규범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판단은 헌법 규범에 부합하는 한 모든 법관이 존중해야 할 헌법해석 규범이다. (3) 인간의 존엄성은 최고의 헌법적 가치이자 국가목표 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기관을 구속하며, 국가는 인간 존엄성을 실현해야 할 의무와 과제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권력의 한계’로서 국가에 의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개인의 방어권일 뿐 아니라, ‘국가권력의 과제’로서 국민이 제3자에 의하여 인간존엄성을 위협받을 때 국가는 이를 보호할 의무를 부담한다.1 (4) 일본군‘위안부’ 피해는, 일본국과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고 그 감시 아래 일본군의 성노예를 강요당한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달리 그 예를 발견할 수 없는 특수한 피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의 특수성은 국제사회는 물론이고 일본의 재판소도 확인했다. 1994. 9. 2. 발표된 유엔의 NGO 국제법률가위원회의 보고서와 1996. 2. 6. 공표된 유엔 인권위원회 ‘여성에 대한 폭력 특별보고자’ 쿠마라스와미의 보고서는 이를 “군사적 성노예”라고 정의했다. 1998. 8. 12. 공표된 유엔 인권소위 ‘전시 성노예제 특별보고자’ 게이 맥두걸의 보고서는, 일본군위안부를 강요한 행위는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라고 단언했다. 2007. 7. 미국 하원이 채택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도 일본군위안부를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 군대 매춘제도이자 잔학성과 규모면에서

20세기

최대의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1

인신매매

범죄”로

규정했다.

그리고

1998.

입법부작위책임을 인정하여 손해배상을 명한

4.

27.

일본의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 3 조

부작위 위헌확인(헌재 2011. 8. 30. 2006 헌마 788).

47


야마구찌

지방재판소

시모노세키

지부

판결은,

피해를

“철저한

여성차별․민족차별사상의 표현이며, 여성의 인격의 존엄을 근저에서부터 침해하고, 민족의 긍지를 유린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2 (5)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무자비하고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한다는 의미다. 3 재산권의 측면은 현행 법제 한계에 기인하는 최소한의 사법적 정의(司法的 正義)다. (6) 헌법은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의 계승을 천명하고 있는데, 헌법이 제정되기 전의 일이라 할지라도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말살된 상태에서 장기간 비극적인 삶을 영위하였던 피해자들의 훼손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시켜야 할 의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지금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부담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호 의무다.4 (7)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서 인간 존엄성과 권리를 규정한 것은 국가가 주권의 명목으로 저지른 전쟁 등 폭력에 대한 사후적 정의 회복의 인류 보편적 규범이다. 인류의 과거청산을 통한 이행기 정의의 최상위 근거규범이다. (8) 헌법 제6조제1항에 따라 헌법에 근거하여 체결․공포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헌법이 확인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규범 아래에서 국내법적인 효력을 가진다. 또한 헌법 제60조에 따라 체결하는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국가의 주권을 제약하는 헌법규범이다. 헌법 제5조제1항에 따라 국제평화의 규범적 토대이기도 하다. (9) 헌법재판소는 유신헌법 일부 조항과 긴급조치 등의 판단 기준을 현행헌법에서 찾는다. 그 근거는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하였다는 반성에 따른 헌법 개정사, 국민의 기본권의 강화·확대라는 헌법의 역사성, 헌법재판소의 헌법해석은 헌법이 내포하고 있는 특정한 가치를 탐색·확인하고 이를 규범적으로 관철하는 작업인 점”에 따른 것이다.5 일본군‘위안부’ 피해는 현행헌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2

헌재 2011. 8. 30. 2006 헌마 788.

3

헌재 2011. 8. 30. 2006 헌마 788.

4

헌재 2011. 8. 30. 2006 헌마 788.

5

구 헌법 제 53 조 등 위헌소원(헌재 2013. 3. 21. 2010 헌바 70, 132, 172(병합)).

48


(10) 헌법재판소는 국가긴급권의 행사라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으로 삼았다. 6 전시의 국가행위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헌법규범의 심판대상이다. 과거 힘의 논리에 따라 전시에 법이 침묵했지만, 오늘날에는 전시라 해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규범 앞에서는 인권과 헌법의 이름으로 국가의 주권을 침묵하도록 해야 한다. (11) 인권적 정의(正義)와 헌법적 정의(正義)는 거의 언제나 사후적 정의(事後的 正義)다. 인권침해와 헌법 파괴는 사실상의 힘의 우열 관계에서 파생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가

다른

나라와

지역의

주민에게

법의

이름으로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을

법리적으로 분별해야 한다. 국가면제 또는 주권면제를 인정하는 전제조건은 모든 국가가 서로 평등하고 독립적이어서 일방적인 지배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면제 또는 주권면제는 국가폭력의 변명일 뿐이다. 일제의 불법적인 지배에서 해방한 대한민국의 헌법의 이름으로 반인권적 국가범죄를 옹호하는 것은 사법권력의 중대한 헌법침해다. (12)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당할 당시의 정의는 규범적으로 존재한다. 다만, 그 정의의 실현이 사후적일 뿐이다. 법관이 국가범죄에 대한 사후적 정의의 심판을 외면하면, 법관이라는 사법적 정의의 권력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범죄의 공범이 된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회복하는 문제에서 법관의 부작위가 가지는 헌법적 의미다.

6

헌재 2013. 3. 21. 2010 헌바 70, 132, 172(병합).

49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