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꽃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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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YANG 2021 vol. 114

SPRING

꽃샘

교지 특집

정책대 건물

2021 vol.114

백신

SPRING

학생회 성적평가

아동학대 리뷰

채식 힙합 사진

꽃 샘

한양교지편집위원회


소다미

최유진

구본성

안녕!

다시 봄

석 달 간 사진 단 한 장

이에스더

황성주

조유민

멀리 보자

지금이 시작이야

열씨미 살자

김지현

이보미

꿈 많던 13살의 나

고등래퍼4 노윤하 파이팅!

편집장_ 소다미 교육공학과 18학번 HYgyoji@gmail.com 부편집장_ 최유진 생명공학과 18학번 userid789@hanyang.ac.kr 편집위원 구본성 국어국문학과 16학번 bagsa1902@hanyang.ac.kr 이에스더 사학과 20학번 esther015@hanyang.ac.kr 황성주 신소재공학부 16학번 saint95@hanyang.ac.kr 조유민 교육학과 18학번 opjum@hanyang.ac.kr 김지현 정책학과 19학번 thejyeon08@hanyang.ac.kr

수습위원 이보미 사학과 17학번 onew524u@hanyang.ac.kr 펴낸이

소다미

엮은이

한양대학교 『한양』 교지편집위원회

주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 222 한양대학교 학생회관 4층 교지편집실

전화

010-3204-5379

디자인

(주)티에스업앤업 02-2285-6846

펴낸날

2021 봄

*학생회비에 포함된 교지 대금 2,000원을 내주신 학우 여러분이 『한양』의 주인입니다. *본지는 한양 학우의 소중한 학생회비와 광고비로만 만들어집니다. *본지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의 무단 전재 및 복사를 금지합니다. *본지가 나올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HANYANG 2021 vol. 114

SPRING


목차

004 여는 글

006 「한양」을 돌아보다

022 한양의 그늘 042 이 시국 성적 평가 052 정책대 건물

064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코로나19 백신 톺아보기

082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108 리뷰 전쟁


122 채식 A to Z 144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162 야 너두 사진 잘 찍을 수 있어

날적이

176 독어독문학과 18학번 전혜진

178 인생이란 183 아홉 권의 편집후기.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186 편집후기


여는 글

올해 첫봄과 함께 학기가 시작된 지도 꽤 되었건만, 아직도 쌀쌀합니다. 그러나 아 무리 찬 바람이라도 피어나는 꽃들을 막을 수는 없겠지요. 겨울의 시샘을 견디고 나 서야 더욱더 싱그럽고 단단해지는 들꽃처럼 말입니다. 『한양』은 이러한 마음을 담아 이번 114호의 제목을 ‘꽃샘’으로 정했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문제들과 새로운 시선들을 담아보았습니다. ‘꽃샘’을 통해 지난 겨울내 추웠던 마음이 따뜻하게 녹아 새 봄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지난해 교지는 쉰 번째 생일을 맞았답니다. 그러나 작년은 잔치를 벌이기엔 너무나 도 혼란스러웠고, 전해야 하는 무거운 소식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호 제목인 ‘꽃샘’의 의미를 살려 늦은 축하를 담아 보았습니다. 짧지 않은 교지 역사 동안 어떤 이야기들 을 전해왔는지, 그간 어떤 고민을 했었는지, 교지의 ‘세상을 보는 한양인의 창’이 되 기 위한 발걸음은 어땠는지, 이번 특집 기사를 통해 엿보실 수 있습니다.

학내에서는 아직도 겨울에 머무르고 있는 학생 사회와 학교를 담았습니다. 총학생 회가 없는 학생 사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요. 익숙해진 부재가 무엇을 뜻하고 있는 지, 우리의 학생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한양인의 시선을 담아 조명해보았 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학교’도 벌써 1년입니다. 작년에 느꼈던 부당함과 분노는 어디로 가버렸는지요? 어쩌면 지금의 학생사회보다도 더 피부에 와 닿을지 모를 성적평가 방식에 벌써 익숙해지지는 않으셨나요? 지난 겨울, 관습과 적응이란 이름으로 잃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요. 같은 이유로 반복되는 문제는 학우들의 학 교 생활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익숙함’이란 찬 바람에 몸 녹일 곳 하나 없었 다는 정책대 학우들의 이야기도 들어보았습니다.

004 여는 글


우리 사회에 봄은 어디쯤 왔을까요? 영영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았던, 또 아직도 그럴 것만 같은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단 몇 개월 만에 전 세계인의 일 상생활을 송두리째 빼앗았던 코로나19의 백신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한양』은 긴 호흡으로 이 녀석의 정체를 뜯어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우리의 봄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지난겨울에는 유난히도 가슴 아린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사랑만 받으며 자랄 수는 없는 걸까요? 그간 유야무야 넘어 왔던 아동학대 사건의 원인과 제도적 허점, 그리고 해결 방안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기술과 ‘시국’이 만나 배달 산업은 더욱더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온기 가 사라졌기 때문일까요, 기계 넘어 또 다른 유형의 ‘갑질’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겨울과 봄은 어디에 있는지 담아보았습니다.

이밖에도 문화에서는 채식, 힙합, 사진이란 키워드로 새로운 봄을 담았습니다. 물 론 이전부터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던 독자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한양』은 교지만의 시선을 담아 어디서 들어본 적은 있으나 막연했던 것들을 소개해보았습니 다. ‘꽃샘’은 올해의 교지가 내놓은 첫 책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독자 여러분의 이야 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또 다른 담론의 장을 열어드릴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을, 한양의 봄이 되는 『한양』이 되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한양』 편집장 소다미 드림

한양 114호

005


01 교지특집 편집위원 이에스더 esther015@hanyang.ac.kr


Special

특집


「한양」을 돌아보다

편집위원 이에스더 esther015@hanyang.ac.kr

‘교지에서 누가,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는 그간 지속적으로 해오던 고민이 었고, 변하지 않을 핵심 비전을 확립해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기로 했다. - 『한양』 55호 여는 글 중에서

008

특집


교지를 되돌아보다

“안녕하세요. ‘세상을 보는 한양인의 창’ 한양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입니다.”

1970년 첫 번째 호를 펴낸 교지는 바로 지난 해인 2020년에 50주년을 맞이했다. 예로부터 50번째 해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했다. 사람의 나이에 비유하자면 ‘하늘의 뜻을 아는(知天命)’ 때이며 영어로는 ‘황금빛으로 빛나는(The Golden Jubilee)’ 시간 이다. 이 같은 표현들에서 ‘오십’이 가지는 성숙함이 드러난다. 그렇다면 교지는 과연 이 멋진 수식에 어울릴 만한 존재라 할 수 있을까? 작년은 교지가 창간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 해이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속 학교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낯선 적막이 감도는 캠퍼스, 그와 달리 소란한 학내 사 정이었다. 교지 역시도 교내언론으로서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지면 에 실었으나 그 기사들이 과연 얼마나 많은 학우에게, 얼마나 적절한 때에 닿았을지 를 생각하면 편집부는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다. 한창 학기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학생 들의 그림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애지문 앞에서 교지는 어느 때보다 쓸쓸하게 독자 들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러한 단절감 속에 교지가 쓰는 기사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기자들의 고민도 날로 깊어졌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50이라는 숫자와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교지에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제는 교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볼 시간이다. 교지는 무슨 글을 쓰는가.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함께 변화하고 있는가. 그 래서 ‘세상을 보는 한양인의 창’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한양』은 지난 50년 동안의 쉼 없이 달려온 발자취를 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의 50년을 위해 『한양』이 나아갈 방 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한양 114호

009


교지란 무엇인가 #교지 『한양』 한양대학교의 교지 『한양』은 일 년에 4번, 계절 에 맞춰 교지편집위원회에서 발간하는 계간지이자 교내 유일의 자치언론이다. 교지는 한양 학우들의 소중한 학생회비1)와 광고비로 제작되며 학교나 교 수 등 외부로부터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다. 아이 템의 선정, 기사의 작성과 편집, 표지 및 내지 디자 인, 회칙 설정, 자금 관리 등 모든 제작과 운영 과 정이 교지 내에서 자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양대 학생 모두가 『한양』의 주인공이다. 지면에는 편집위원이 작성한 학내·사회·문화 등의 기사와 독자들의 기고문 및 인터뷰가 게재된다.

교지는 1970년 여름, 『杏堂』(행당)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간되었다. 당시 총학생 회는 이전까지 나오던 각 단과 대학지와 학회지의 특성을 한데 모아 본교를 대표할 수 있는 종합적인 학술 문예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교지를 탄생시켰다.2) 발간 목적에서 알 수 있듯 최초의 교지는 논문·문학 등이 실리는 학술지의 형태였다. 86 년도에 발행된 16호부터의 교지는 내용과 형식의 큰 변화를 마련했고 제호 또한 『행 당』에서 지금의 『한양』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편집실 자체에서 기획한 장편 의 논설문이 게재되었다. 『한양』은 ‘대학인으로서의 언론운동기능’을 담당하겠다고 선 언하며 이전까지의 교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국제정치, 학생운동, 언론, 통일, 노동 등의 시사적인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교지는 바로 이러한 태초의 정신을 계승하여 학교와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슈를 대학생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조금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긴 호흡의 글로 담고 있다.

1) 학생회비의 약 20%는 교지대금으로 사용된다. 2) 『한양』 교지편집위원회, “세상을 보는 한양인의 창”, 한양백, vol.100, 2017, 15p

010 특집


# 교지 제작과정 교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한 권의 교지가 만들어지는 약 두 달간의 여정을 한 페이지에 담아 소개한다.

1 January 20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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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소한 6 기획서 작성을 통해 글의 뼈대를 튼튼하게 세우는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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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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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및 집필 24

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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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사를 누가 쓸 것인지, 주제 선정과 배분이 이루어진다. #어쩌면_제일중요

아이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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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12.1

20 대한 21 취재·인터뷰 등을 통해 글의 재료를 모은다. 그다음 기획서를 토대로 초고를 작성한다. 27

음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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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이템이 넘치는 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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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비대면는 모습 하

2 February 202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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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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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회의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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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7 18 우수 19 20 원고에 옷을 입혀주는 과정이다. 표지와 내지를 디자인한다. 사진 위치를 바꿔보고, 문단을 새로 나눠보면서 최적의 배치를 찾아낸다.

디자인회의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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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교정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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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피드백과 퇴고의 무한반복이 이루어진다. #철야_필수 #원석을_보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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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4 25 26 디자인사를 방문하여 원고를 최종 검토한다. #교정_최종_진짜최종_이게진짜마지막이야.pdf

설날 / 음1.1

정월대보름 / 음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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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28 민주운동기념일

배포

드디어 교지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날! #그리고_다시_아이템회의 #교지의_회전목마

한양 114호

011


교지는 무엇을 담는가

▲ 표지의 변화

50년, 113권의 책을 펴내는 동안 교지는 안팎으로 많은 변화 과정을 거쳐왔다. 겉 표지부터 속에 담은 이야기들까지 그 당시에 맞게끔 때로는 점진적으로, 혹은 혁명적 으로 모습을 바꾸어왔다. 그러나 그 가운데 변하지 않은 무언가도 있다. 무엇이 달라 졌으며, 또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한양』과 함께 『한양』의 역사를 되짚으며 그 질문의 답을 알아보자.

012 특집


# 한양의 교양 (70년대)

▲ ‘한국근대화와 청소년 범죄현상’, 『행당』 5호(1975년 발간) 중에서

『행당』이던 시절의 교지는 한양인들의 문집이었다. 교지는 1년에 한 권이 나왔고 그 만큼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행당』은 매호 하나의 기조를 가지고 있었고 이에 맞춰 특집 논문 및 평론이 실렸다. 주로 청년문화, 인간학, 현대과학과 인류 등 인문학적인 주제가 기조로 선정되었다. 또한 편집위원이 대부분의 글을 작성하는 지 금과 달리 그때에는 교수, 학교 축구팀 코치, 교양학부 강사, 도서관장, 학생 등 다양 한 학내 구성원들이 직접 교지에 목소리를 실었다. 심지어는 타교 교수의 논문이 실리 기도 했다. 300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교지에 논문만 가득했다면 아무리 뛰어난 학구 열을 가진 독자라도 금세 지쳤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행당』은 시·수필·소설· 희곡 등 문학작품을 골고루 실었다. 모두 독자들의 향기가 베어있는 소중한 기고들이 며, 개중에는 당시 교지에서 심사 및 수상을 하던 ‘한양문학상’의 수상작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교지는 한양인들의 지성과 감성을 한 데 담아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한양 114호

013


# 사회를 향한 뜨거운 목소리 (80~90년대)

▲ 『한양』 23호(1991년 발간) 목차

16호부터 제호가 『한양』으로 바뀌고, 19호부터 한 해에 두 권의 교지를 펴내게 되 면서 글의 형식과 내용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이전과 같이 기고문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편집부에서 작성하는 기사의 양이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학생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인 80년도 후반과 90년대 초반의 교지에는 그 당시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한양』은 당시의 언론탄압에 저항하는 학생사회의 유일한 소통창구였다. 편집부는 ‘애국한양 기획’을 통해 당시 학내의 학원자주화투쟁 운동과 평가, 학생회 활동 모범 사례 등을 교지에 담았다. 또한 한반도의 주변정세, 민족통일, 청년의 공장노동, 군대 가혹행위 등 정치·언론·경제를 주제로 한 사회 비판적인 논설문들이 게재되었다. 이 시기부터 교지는 차츰 학술지의 성격을 벗고 본 격적으로 한양인이자 대학생의 목소리를 전하는 대학언론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014 특집


# 다양한 이야기들 (00~20년대) 세기가 바뀌고 대학도 변했다.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차츰 잦아들고 소위 IMF라 불 리는 경제 위기 속에 사회는 또 하나의 변곡점을 넘어섰다. 변화한 사회 속에서 교지 도 자신의 역할을 고민한 흔적이 그 시절 『한양』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교지는 새로운 밀레니엄 이후 형식적인 부분에서 과도기를 거쳐 지금의 체제와 구 성을 마련했다. 학생운동이라는 강력한 기조가 사라진 교지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특정한 방향성 없이 학내·사회·정치·문화 전반의 다양한 이 야기들을 담았다. 교지는 더 이상 투쟁하던 시절만큼 무겁지 않았다. 조금은 가벼운 무게의 문화와 일상글이 등장하고, 실리는 글, 그 중에서도 기고문의 수가 크게 줄어 든 것이 이 시기이다. 2005년 『한양』의 계간화가 이루어지는 동시에 교지 한 권을 관 통하는 글의 기준인 기조가 부활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학내·사회·문화라는 큰 틀이 갖춰졌고, 2014년 발행된 ‘당연’호부터는 단지 ‘한양’이라고만 불리던 교지가 매 호, 특별한 자신만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지난 20년 동안 교지는 학내에 초점을 맞추되 대학생이 마주할 수 있는 사회의 다 양한 모습들을 기사로 실었다. 학생자치와 대학언론의 위기, 불통의 학교, 취업난, 서 로에게 무관심한 사회……. 놀랍게도 20년 전 교지가 다루었던 주제들이다. 이들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기삿거리로 다루어지고 있다. 한편으론 지겹기까지 한 일들이지만 여전히 대학생들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풀리지 않는 숙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 지는 변하는 듯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모순을 가진 사회 속에서 대학생들의 삶과 고민 을 살피는 데 앞장서고자 했다.

한양 114호

015


# 변하지 않는 고민 교지는 ‘한양인 1만여 명의 발언을 위한 탁상’이 되기 위해 창간되었다.3) 한양인 모 두가 교지의 독자이자 저자였다. 그러나 교지는 어느샌가 편집부의 일방통행에 가까 워졌다. 독자와의 소통이 다시 활발해지는 것은 교지의 오래된 소원이다. 교지는 주 로 기고문과 독자엽서를 통해 독자와 교류해왔다. 때때로 ‘옴부즈맨4)’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독자 비평을 싣거나 독자위원을 모집해 좌담회를 개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폐지되었다. 점점 소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1999년 발간된 39호의 독자 비평란에 는 ‘학우들과 서로 문화를 공유하는 교지가 되었으면’이라는 바람이 실려 있다.

학교 교지라면 학생들의 솔직한 생각과 그들의 생활 모습이 많은 부분을 차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교지를 보면서 어쩌면 편집부원들의 관심사와 얘기 가 많이 쓰여져 있는 것 같아서 단지 보는 책에 불과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지를 통해서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학우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보게 되고 이해 함으로써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 서 학생들의 진실한 의견이나 그들의 작품을 많이 실었으면 좋겠다. ▲ 『한양』 39호(1999년 발간) 옴부즈맨 면 중에서

독자와 생각을 주고받는 일, 즉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교지가 한양인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지에는 활발한 소통을 위해 적극적인 홍보와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서야 할 것은 『한양』의 글이 독자들로부터 자발적인 소통을 이끌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치를 책임지는 것은 오로지 편집부의 몫이다.

3) 『행당』 창간호 창간사 중에서 4) 옴부즈맨은 국민의 권리가 보호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위원을 의미한다. 교지의 옴부즈맨들도 교지가 한 양인을 위해, 한양인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글을 쓰는지를 따듯하고도 날카롭게 평가했다.

016 특집


교지인들의 이야기 교지는 마치 마법처럼 어느 날 갑자기 뚝딱 생겨나지 않는다. 책의 겉표지부터 글 하나의 마침표까지 전부 교지 편집위원들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다. 학생회관 4층의 작은 회의실에서 매주 두 번5), 일고여덟의 편집위원들이 때로는 철야까지 불사 하며 끊임없이 교정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이유는 교지의 글이 그저 ‘보기 좋은 글’ 에 그쳐선 안 되기 때문이다. 교지는 한양인을 위한 글을 싣겠다는 단순하고도 명확 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교지를 거쳐 간 수많은 편집자들의 고민 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무슨 주제’를 ‘어떻게’ 써야 그것이 한양대학생에게 의미있 는 글이 될까. 지금부터는 교지가 한양인의 ‘시선의 기준’이 되게끔 하기 위해, 고민하 고 또 고민했던 교지인들의 이야기이다.

어떻게 교지를 알고 들어오게 되었나요? 교지의 첫인상이 궁금합니다.

편집위원 황성주(이하 황성주): 한양대역에서 올라오는데 여러 권의 예쁜 책들이 쌓여 있던 것에 눈길이 가 한 부를 가져간 기억이 납니다. 처음 교지를 읽었을 때 느낀 점은 생각보다 균형을 잘 잡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학내 기사를 읽을 때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 던 총학생회/총여학생회 선거에 대해 한쪽 편만의 입장이 아닌, 다양한 학우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하게 교지를 읽다다 보니 직접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원했습니다.

13년도 편집장 김준영(이하 김준영): 지하철을 타고 하교하면서 애지문 앞에서 가져온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는 책이 교지라는 것도 모르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전달하고 싶은 확실한 메시지가 있는 콘텐츠였습니다. 이후 교지에 흥미가 생겨 수 습 지원을 했고,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5) 코로나19 상황의 심각도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고려하여 본 호의 작업은 90% 이상 비대면으로 진 행되었다. 한양 114호 017


교지는 어떤 글을 써야 할까요? 기자가 생각하는 ‘교지다운 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06년도 편집장 장헌(이하 장헌): 현역 시절에 생각했던 교지의 컨셉은 하나였습니다. “교지는 대학에 필요한 새로운 담론을 제기하는 곳이다.” 저는 학교 교지가 계몽적이지 않다는 부분 이 답답했습니다. 비교적 기성 사회로부터의 끈이 자유로운 대학생마저 기성언 론·대학산업매체와 같은 논조를 추구한다면 대학 교지에 부여되는 역할을 수행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지는 아마추어의 정리되지 않은, 경쾌한 의견을 담 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08년도 편집장 강지희(이하 강지희): 신문의 주된 목적이 정확한 사실을 빠르게 전달함에 있다면 교지는 사실을 기 반으로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한 편집위원들이 한 번 더 숙고하여 적어냅니 다. 기사는 논리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다양한 사실을 바탕으로 기자가 왜 그 러한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독자가 수긍할 수 있어야 기사입니다. 교지에는 좋은 글이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기자의 기사를 바탕으로 독자가 한 번 더 주제에 대 해 고민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글입니다.

14년도 편집장 이준건(이하 이준건): 교지는 학생회비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교지의 역할, 즉 ‘학내 사안을 한양 인의 시각으로 서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편집위원 개개 인은 한양인을 대표하는 대의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고된 작업이지 만 학내 기사에 힘을 싣고 철저하게 자료를 조사하여 완벽한 논리를 만들기 위 해 노력해야 합니다. 오직 한양교지만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018 특집


기자에게 ‘교지’는 어떤 존재이며, 교지 생활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황성주: 교지에 들어와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다른 편집위원들과 함께 토론을 나누 는 것이었습니다. 편집부는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는 곳이고 그 과정에서 다 른 사람들은 한 가지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공유가 이루어집니다. 이를 통해 주장을 할 때에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는 습관이 생기고, 논리적으로 부 족한 면이 있으면 보완해나갈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힘들지만 즐거운 과정 입니다. 책을 한 권 낼 때마다 글을 쓰는 능력도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 로 ‘제대로 대학을 다니고 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 헌: 하나의 사안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지 생활은 대학교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입니다. 제 경우 인생을 계획하는 터 닝포인트가 되었고, 그때 동료들과 함께 나누었던 비전이 지금도 몸에 아로새겨 져 있어 직장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강지희: 교지와 함께한 모든 날들이 좋았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과학생회, 인문대 밴드동아리, 연극학회, 각종 친목을 위한 교양수업모임, 교내외 공모전, 해외봉 사, CC 등등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정말 많은 활동들을 했었는데 졸업 후 사회에 나와 동문을 만나게 되면 제일 먼저 한양 교지에 대해 물어보곤 합니다. 그만큼 가장 자랑스럽고 기억에 남는 활동입니다.

한양 114호

019


김준영: 교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입니다. 같이 활동했던 선배와 동기, 후배들 모두에게는 ‘교지스러운’ 개성이 있었습니다. 각자의 뚜렷한 가치관이 있 음에도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수용할 부분은 수용하면서 건전하고 깊이 있는 대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사회로 나오면 생각보다 이렇게 심 도 있는 토론을 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지에서 만난 인연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준건: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교지 선배님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손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경험을 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 니다. 교지는 그런 경험들, 특히 ‘책’이라는 종합 콘텐츠를 만드는 데 훌륭한 경 험을 제공해주었습니다.

020 특집


교지는 열린 창 50년은 강산이 다섯 번이나 변하는 긴 시간이다. 그 세월 동안 학교와 사회 그리고 교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행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학술문예지로 출발 한 교지는 『한양』으로의 변혁과 함께 교내 유일의 자치언론으로써 오로지 한양인의 목소리를 싣는 데에 주력하게 되었다. 이후 교지 계간화, 기조 설정 등 계속된 변화 는 전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더욱 잘 담아내고 독자들에게 그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 하기 위함이었다. 교지는 현재의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또 한 번의 변화를 꾀하는 중 이다. 비대면 환경에서도 편안한 독서, 편집부와 독자 사이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지가 당면한 과제다. 이제 다시 ‘교지는 어떤 글을 쓰는가’라고 했던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 가보자. 오 늘날 교지가 마주한 단절이라는 위기 속에서 교지는 스스로의 존재 의미에 대해 찾아 나섰다. 지난 5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았던 여정의 목적은 교지를 찾는 누구에게나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교지는 이런 글을 씁니다.’라는 명쾌한 문장을 얻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교지는 과연 원했던 답을 얻을 수 있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함께 교지의 역할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교지가 추 구하는 방향은 언제나 동일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 는가’를 담아내는 것이었다. 비록 조금은 서투르고, 여전히 미숙한 부분이 많으나 이 역시도 결국엔 교지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나아가 교지가 조금 더 바라는 것이 있다 면 글을 읽은 독자들이 단지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동의 실천에 의지를 보여주 는 것이다. 그럴만한 가치가 드러날 수 있도록 하고자, 『한양』은 앞으로도 끊임없는 고 민과 성찰을 통해 ‘세상을 보는 한양인의 창’으로써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한양』 교지편집위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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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01 학생회 편집위원 구본성 bagsa1902@hanyang.ac.kr 편집위원 이에스더 esther015@hanyang.ac.kr

02 성적평가 편집위원 구본성 bagsa1902@hanyang.ac.kr

03 정책대 건물 부편집장 최유진 userid789@hanyang.ac.kr


Part

1

학내


#학생회

한양의 그늘 편집위원 구본성 bagsa1902@hanyang.ac.kr 편집위원 이에스더 esther015@hanyang.ac.kr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 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024 학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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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x 일상 o 다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다. 지난 한 해 학교의 불통행정과 독단을 겪 으며 어느 때보다 학생대표조직의 필요성을 실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비대 위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비상시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하는 조직인 비대위는 한양대학교에서 이미 일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제는 총학생회보다 비대위의 존재가 더 익숙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 러한 익숙함이 당연하듯 여겨지는 것에 대한 경각심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의 비대위 체제가 길어지는 동안 학생자치 사회 전체에도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총학생회뿐 아니라 각 단과대 및 학과·학부에서도 비대 위는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이다. 선거 후보가 아예 출마하지 않는가 하면, 후보 가 나왔어도 정족수 미달로 선거가 무산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모습들은 오늘날 학생자치가 학생들의 관심 밖에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학생회의 필요 성이 간절했던 것과 별개로, 초유의 비대면 학기 속 학생자치와의 거리는 더욱 멀 어지기만 했다. 2021년 새해, 새로운 봄을 맞이하였으나 한양대학교의 학생 자치는 여전히 겨 울 속에 있다. 이대로 총학생회가 영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 도 더 많은 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한양』은 먼저 비대위 체제에 익숙해져 어 느샌가 학생들 사이에서 잊힌 총학생회의 역할과 그 필요성을 되짚어 보았다. 그 리하여 더 나은 학생사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변화, 이를 위한 태도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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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 비대위 한양대학교 역사상 최초의 비대위는 2008년 횡령 문제로 당시 총학생회가 총 사퇴하면서 일시적으로 출범하였다. 그때의 비대위는 이름 그대로 당면한 비상사 태에 대처하기 위한 임시기구였고, 이후 선거를 통해 새로운 총학생회가 출범하 면서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비대위는 10년이 지나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2017년 총학생회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2018 년부터는 꾸준히 비대위가 학생대표의 역할을 대신해왔다. 현재와 같이 반복되는 선거 무산으로 비대위가 온전히 총학생회의 일을 담당하는 것은 한양대학교 역사 상 처음 있는 일이다. 낮은 투표율에 투표함도 열어보지 못하기를 세 번, 작년에 는 급기야 입후보조차 없었다. 곧 회칙에 근거하여 다시 선거를 진행할 예정이지 만,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2021년 3월 11일 기준 입후 보 미등록으로 총학생회 보궐 선거가 무산되었다.)

연도

결과

기타

2017년 제46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 미달 (36.45%)

재선거 : 입후보 없음

2018년 제47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 미달 (42.94%)

재선거 : 입후보 없음

2019년 제48대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 미달 (44.84%)

재선거 : 입후보 없음

2020년 제49대 총학생회 선거

입후보 없음

재선거 : 입후보 없음

▲ 지난 4년간 총학생회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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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속에서 또다시 해가 바뀌며 새로운 비대위가 들어섰다. 새롭게 출범 한 비대위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고자 『한양』은 올해 자연과학대학 정학생회장이자 방중 비대위를 맡은 박 정언 비대위원장(이하 박정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박정언 비상대책위원장

『한양』 : 비대위가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정언 : 많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시대적으로 강력 한 원동력이 존재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학생회는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 유인 이 부족합니다. 그에 비해 학생회가 갖춰야 할 의무와 책임의 무게는 여전합니다. 이런 무게를 감당할 만한 후보가 없었던 것도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학내에서 발생했던 여러 이슈들로 인해 여전히 학생회에 대한 불신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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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 총학생회와 비교하였을 때 비대위 체제의 고충이 있는지, 또 비대위 체제가 길어지면서 가중되는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정언 : 인수인계가 원활하지 못한 것이 비대위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고민입니다. 전년도에 선거를 치르고 12월부터 인수인계를 시작하는 학생회와 달리, 비대위는 1월 이 되어서야 구성되어 인수인계가 촉박하게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전대 비대위와 차기 비대위의 구성원 간 연속성이 거의 없어 정보가 누락될 수밖에 없 습니다. 비대위 체제가 길어질수록 소실되는 정보량이 많아지는 등 어려움이 가중되 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비대위는 총학생회보다 정당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우들 의 의견과 힘을 모아 일을 추진력 있게 진행하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 들 때문에 비대위는 일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잘’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한양』 : 2021년 한양대학교 비대위로서의 각오, 계획이 궁금합니다. 박정언 : 3월 재선거 이후 학생회가 새로 출범하든 비대위 체제가 지속되든, 다음 학생대표조직이 원활히 출발할 수 있도록 과도기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고 합 니다. 이후로도 매년 새로운 조직이 들어서게 될 텐데, 그때마다 같은 어려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인수인계 체제를 확실히 정비하고자 합니다.

현재 많은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필요성을 실감하지 못하며, 비대위 체제에 만족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대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총학이 아닌 비대위가 가지고 있는 고충과 한계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분명 비대위는 언 젠가 끊어져야 할 고리이다. 그렇지만 총학생회라는 기구를 접해본 학번이 저만치 멀어진 만큼, 많은 학생들이 총학생회가 정확히 어떤 기구이며, 비대위와 총학생회 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총학생회와 비대위는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왜 비대위의 존재에 안주하면 안 되는 것일까. 지난 한 해 총학생회의 공백 을 되새겨보며, 비대위로 충족될 수 없는 총학생회의 필요성을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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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팠던 공백 비대면 학기 동안 학교가 보여준 독보적인 행보는 총학생회의 빈자리를 유독 시리게 했다. 학교는 한 해 동안 단 한 차례도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 다. 1학기 개강 전부터 학사 일정을 어영부영 미루며 불편을 끼치더니, 등록금 반 환이나 평가와 관련된 중차대한 문제에 있어서도 자신들의 입장만 반복해서 표명 할 뿐 이렇다 할 소통의 자세를 보여주지 않았다. 매서운 눈초리는 외면하고 그 저 대외적으로 자신들의 공적을 포장하기에 바빴다. 이 같은 학교에 대응하여 학 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할 기구의 부재는 뼈아팠다. ‘총 학생회가 있었더라면’ 하는 말이 입 안을 맴돌다 목구멍으로 넘어가곤 했다. 비대위는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일상에서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는 예 외적인 상황을 직면하여 긴급하게 대처하기 위해 마련된 조직이다. 설렁 학생회 가 부재한다 해도 학생회가 담당해야 하는 역할은 잔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 상적인 상황이 회복된다면, 즉 있어야 할 학생회가 다시금 세워진다면 사라져야 할 조직인 것이다. 비대위의 구성 근거 자체가 비일상에 근거하고 있는 만큼, 비 대위는 태생적으로 총학생회의 역할을 오롯이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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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으로 비대위는 구성원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기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 에 비대위원장의 말처럼 전체 학생을 대변하는 기구로서의 대표성이 부족하며, 행 사하는 권력의 근거 또한 불확실하다. 결국 비대위는 학교와의 협상 테이블로 나설 때 불리한 위치를 점할 수밖에 없다. 또 인수인계 측면의 문제도 심각하다. 총학생 회는 자신들이 관장한 사업 내지는 업무 전반을 다음 학생회에 인수인계해야 할 의 무와 책임을 갖는다. 비대위 또한 그런 의무에 종속되기는 하지만 총학생회에서 총 학생회로 이어지는 그것과 동일한 조건일 수는 없다. 숙련된 학생회 인원들이 이탈 함에 따라 기존의 체계와 내용의 상당량이 전달되지 못하는 것에 더하여, 비대위 간 의 인수인계가 지속됨에 따라 정보의 유실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비대위는 단과대 회장에서 호선되기 때문에 모든 총학생회가 거치는 선거 준비 기간을 갖지 못한다. 즉 선거본부를 꾸리고 공약을 고민하며 자신들의 존립 이유를 성찰해볼 기 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쏟아지는 회의에 인수인계를 받기도, 새로운 인원을 선 발하기도 벅차다는 비대위원장의 말에 이러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비대위원장으로 호선된 단과대 학생회장 또한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는 개인의 역량만으로 극복되기 어렵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둘을 비 교함에 있어 치밀한 계획의 존재 여부는 그 비교를 무색하게 할 것이다. 이처럼 사 전 준비라는 측면에서 비대위가 갖는 한계는 감당 가능한 업무량의 차이로 이어진 다. 총학생회 후보자는 대개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을 위시하여 각종 국장 및 부국 장과 함께 출범한다. 반면 항시 인력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비대위 개개인의 고충은 심각하다. 특히 단과대 학생회장과 비대위원장을 겸직할 때의 업무량은 살 인적으로 가혹하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비대위 체제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들의 뼈를 가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공동체의 존속 을 개인의 희생에 의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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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학생회의 현주소 그렇다면 우리는 왜 몇 해째 총학생회를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돌아오는 새해마다 총학생회의 부재를 한탄하는 글이 관례처럼 자리하고 있는 지금, 우리 는 보다 다각도에서, 보다 본질적인 의문을 품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선거가 무산되기 시작한 17년도를 돌이켜보면, 총여학생회와 총학생회 선거 를 기점으로 그간 내재되어 있던 학생회에 대한 불만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당 시까지 한양대학교 총학생회는 소위 ‘운동권’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14년도부 터 17년도까지 출마한 후보들은 이전의 총학생회와 함께 활동한 사람들이었고, 일련의 총학생회가 보여주는 성향은 비슷했다. 이에 대하여 기존의 구성원들끼 리 직책만 바꾸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또 한양대학교의 이름을 걸고 학교 바깥의 정치적인 문제에 입장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는 학생 들도 많았다. 이 같은 지난날의 이미지가 총학생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드리 웠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구성원들의 상당수가 새롭게 유입된 현 재까지 그런 잔재가 유효한 영향력을 행사하리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한편 비대위가 충분히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는 인식 또한 어느 정도 기여했 을지 모른다. 선거가 무산된 다음 처음으로 출범했던 18학년도 당시 비대위는 학 생들이 많은 불만을 가졌던 축제를 훌륭하게 마치는 등 여러 측면에서 호평을 받 았다.1) 그 이후 이어진 비대위들도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며 총학생회의 빈자리를 메꿔주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재작년 불거진 비대위 횡령 사건은 다시 한 번 학생회 집단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었다.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선거가 무산 되었을 리는 만무하지만, 학생회에 따라붙는 물음표를 상기시키는 데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을 것이다. 1) 이전의 총학생회는 기업의 스폰서를 받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축제 기간 공 연을 하는 연예인들의 수가 타 대학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비대위는 이를 뒤집어 cass의 후원를 받았고, 성황리에 축제를 이끌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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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러한 반감 내지는 비판적 감정은 부차적인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다수 학생들의 무관심이 그 이유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무관심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일까. 근래 학교라는 하나의 포괄적 공동체는 학생의 내밀한 내집단으로 기능하기보다는 하나의 자격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실제로 학교라는 공동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그 공동체 내에서의 행복을 만끽하는 대학생활은 빛이 바랜 추억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낭만이 머무르던 자리에 현실이 들어찬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생들을 짓누르는 생활에의 고민은 당장 제 앞가림에 급급할 만큼 시야의 폭을 줄여놓기 충분해 보인다. 경선으로 진행되어 기대를 불러 모았으나 투표가 미달되었던 지지난 선거가 무뎌진 감각 속에서 유달리 아팠던 까닭이다. 이는 비단 총학생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다만 얼마나 잘 드러나는가 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단과대 학생회나 각 학과 및 학부 단위의 학생회의 상황도 좋지 않다. 선거가 무산되기 시작한 17년도 당시에는 비대위의 존재를 모르는 학 생이 더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기 중 모종의 사건으로 학생회가 사퇴하 지 않는 이상, 거의 모든 단과대와 학과 및 학부에서 학생회가 출범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4년이라는 시간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가능케 했다. 코로 나의 여파도 있었겠지만, 작년 말 진행된 선거에서 절반에 가까운 단과대 단위 선 거가 무산되었고 비대위의 호선이 공고되었다.2) 어느 정도의 응집성을 유지하고 있는 과 학생회는 그나마 선방한 듯하지만, 안도하기에 상황은 사뭇 심각하다.

2) 건축 계열, 공과대학, 사회과학대학, 사범대학, 인문과학대학 등에서 선거가 무산되었다. 심지어 생활 과학대학은 모든 과학생회가 무산될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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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년도 당시 총학생회와 관련된 대나무숲 글 (출처: 한양대학교 대나무숲)

‘학생사회’라는 말은 공동체의 구성원이 학생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도 가 지겠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는 구성원들이 조직을 통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체처럼 기능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학생 군집을 하나의 사회로 묶어 내는 조직이 바로 학생회이다. 그렇기에 학생회 활동의 의의는 공동체로부터 온 다. 만약 학생들의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학생회 활동에서 오는 보람 내지는 성취감 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학생회가 보람 없는 노동이라는 인식이 만연하게 된 시점 에서, 학생회는 그저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적 실현 내지는 기본 행정업무를 담당하 는 ‘고생하는 사람’ 정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형국에서 선뜻 학생회를 하겠 다고 말하는 것은 거룩함을 넘어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한다. 이제 몇 해가 지나면 한양대학교를 하나의 학생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조차 확신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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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양대학교 대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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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할 수 있는 노력 지금까지 비대위가 가지고 있는 한계, 왜 한양대학교에서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총학생회가 나오지 못한 것인지 그 이유를 고찰해 보았다. 이를 통해 발견 한 학생사회의 문제점들로부터 위기 해결의 실마리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준비된 총학생회 한양대학교의 학생사회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출발하기 위해서는 과 거의 부족함을 채우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할 구체적인 계획과 비전이 필요하 다. 특히 앞으로의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 힘을 써야 한다. 이미 지난 비대위에서 학생회비 횡령 사건이 발생한 적 있다. 많은 학생들 이 비대위나 학생회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회계 관련 추문이 터 져 나왔고, 이는 학생회라는 조직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큰 원인이 되었다. 이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의 총학생회는 어떤 노력을 시 도할 수 있을까? 먼저 학생회비 회계 정보에 대한 학생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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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총학생회 회칙 상 학생회 결산안 보고가 의무이지만, 어디에 어떻게 보고될 것인지 그 구체적인 방식은 뚜렷하게 정해진 바가 없다. 지난 총학생회들의 경우 자체적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결산안을 게시하였지만 비대위가 들어선 이후로 그 맥이 끊겼다. 결국 학생회비 사용 내역이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을 때 우려하던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회계 보고 체계가 허술하면 횡령이 발생하더라도 쉽 게 알아챌 수 없다. 또한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 할 학생회비가 적재적소에 잘 쓰 이는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회계 보고의 주기·형태·방식에 대한 회칙 상의 근 거를 마련하여 모든 학우들이 학생회비 사용 내역을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확 인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회계 감사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현재 한양대학교의 감사위원회 는 중앙운영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일시적으로 구성된다. 이 같은 체제에서는 횡 령 문제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감사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 다는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주기적으로 감사를 실시 하는 독립된 조직을 설치하는 것이다. 숭실대학교에서는 중앙감사위원회가 매 학기 총학생회의 정기 감사를 실시하며, 이때 총학생회뿐 아니라 각 단과대들도 모두 감사를 받는다. 중앙감사위원장은 학생 투표를 통해 세워지는 선출직이며 학생회 소속은 감사위원으로 활동이 불가능하다. 이는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여 감사의 질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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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하는 학생 총학생회를 비롯한 모든 학생회 활동은 기본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의 봉사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학생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개인의 시 간과 노력을 기꺼이 투자하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부여되는 대 가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수준의 직책을 맡게 되면 장학금 감면 등 의 혜택이 주어지며, 각종 정책을 기획하고 타 기관과 협력을 주도하는 일은 장차 사 회에 나갈 때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위하겠다는 열 정과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보람이 학생회를 유지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 력이다. 이러한 가운데 학생회에 무관심한 학생들이 늘고, 그나마 남아있는 관심도 따끔한 질책 위주가 된 상황은 학생회 활동을 그저 고된 노동으로만 여겨지게 한다. 활동을 통해 성취감을 얻기도 전에 부담감에 눌린 학생들이 하나 둘 학생회를 떠나 니 오늘날 학생사회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학우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격려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더 나은 총학생회로의 개선 과정은 필연적으로 총학생회 라는 체제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총학생회가 조직되기 위해서는 선거와 투표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이는 다수 학생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일이다. 학생 자치에 관심을 갖고 바람직한 권리를 행사하는 학생이 많을수록, 우리의 학생사 회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속가능한 총학생회 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활동이 지니는 가치가 회복되어야 한다. ‘나’ 를 대신해 고생하는 자리를 기꺼이 맡아준 학우들을 위해 따듯한 격려를 보낼 때 잃어버렸던 보람과 성취가 돌아오고, 우리는 다시 총학생회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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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요원한, 그러나 더없이 가까운 진부하면서 지겨운 글이다. 매년 반복되는 똑같은 내용의 글에 대한 이 같은 인 상은 곧 우리가 마주하는 지난한 현실의 적확한 표상이다. 한양대학교의 총학생 회의 존립 여부는 ‘설마, 혹시나, 역시나’의 변천을 거쳐, 부재가 기본값으로 여기 지는 지경에 도달했다. 비정상의 정상화, 비일상의 일상화가 한양의 양 어깨를 무 겁게 짓누르고 있다. 그것들이 진정으로 두려운 까닭은 그 현상 자체보다도 현상 에 익숙해져가는 우리의 모습에 있다. 이제 곧 17학번 학우들도 하나둘 캠퍼스를 떠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4년 전 처음 캠퍼스에 발을 디딘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제 손으로 총학생회를 세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실감조차 나지 않는다. 그 렇게 총학생회의 흔적조차 보지 못한 18학번 이후의 학생들도 전철을 밟게 된다 면, 그것이 일상으로 완벽하게 뿌리내린다면, 한양대학교는 예비 사회인 군집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일상을 뒤엎는 변화가 어려운 까닭은 굳어진 타성에 저항하는 힘겨운 싸움을 해 야 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변화는 구성원 각각이 타성에 저항할 것을 요구하기에, 그 어려움은 개개인의 변화가 갖는 그것을 합산한 것만큼이나 거대해 보인다. 바람 직한 방향으로의 모든 제언이 종국에는 개인의 노력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비관론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얼핏 변화를 향한 시도의 한계로 비칠 수 있는 이 지 점에서, 우리는 동시에 모든 문제를 일소할 수 있는 해결책의 희망을 찾을 수도 있 다. 우리가 처한 국면은 단지 나 하나의 발걸음으로부터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의 미약한 힘은 그토록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다. 저마다의 사정이 한 발짝 나아가는 것을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하나의 어려움이 다른 모든 시도를 헛된 것으로 만드 는 것은 아닐뿐더러, 그것이 시도하지 않는 자에게 정당한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 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진부한 말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변화가 가없이 멀게 느껴질 때야말로 진정으로 움직여야 할 때이다.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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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의 전진 한양대학교 학생자치사회의 미래가 언제까지나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느 때보다 낯선 1학년 시절을 보냈을 20학번 사이에서도 무사히 학생회가 구성되었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지난 한 해 학내 활동에 무관심해지기 쉬웠던 환경 속에서도 학생자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열심히 활 동하는 모습이 무척 고무적이다. 특히 올해로 신설된 지 2년 차에 접어든 데이터사이언스학과의 20학번들은 조언을 들려주는 선배도 없이 출발하여 누구보다 어려운 새내기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학생회를 선출하여 올해 21학번 후배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양』은 양성민 데이터사이언스 학과 학생회장(이하 양성민) 과의 만나 20학번 학생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한양』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양성민 : 안녕하세요. 한양대학교 데이터사이언스학과 학생회장 20학번 양성민입니다.

『한양』 : 학과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양성민 : 학교생활을 하며 ‘우리 학과는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회에 관심을 가지고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선배가 없다 보니 신입생 단톡방 개설이나 수강신청 등의 정보를 얻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신설학과의 신입생으로서 겪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더 이상 학우들이 불편을 겪는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040 학내


『한양』 : 학생회를 구성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양성민 : 어렵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학생회를 구성 하기로 동기들끼리 이야기를 한 시점부터 첫 번째 안건을 가지고 학생회의를 하기 까지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 동기들 덕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데이터사이언스학과 20학번 모두가 비슷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함께 뭉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양』 : 학과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양성민 :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회이고, 구체적인 매뉴얼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서툰 면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보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학생회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면이 보여 따끔한 지적을 해주시더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쳐나가겠습니다.

『한양』 : 21학년도 데이터사이언스학과 학생회의 목표와 각오가 궁금합니다. 양성민 : 데이터사이언스학과가 ‘학생이 만들어가는 학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 개개인이 내기 어려운 목소리에 확성기처럼 힘을 실어주는 게 학생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제가 학교에 입학해서 겪었던 고충들 을 앞으로 동기와 후배들은 겪지 않도록, 그리고 학생들이 즐겁게 학과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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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평가

이 시국 성적 평가 편집위원 구본성 bagsa1902@hanyang.ac.kr

042 학내


“학생 여러분, 대학의 의지와 정책을 신뢰하고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대학은 여러분의 안전과 최상의 학업적 성취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 학생들께 드리는 글, 총장 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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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없는 상대평가 학기가 끝난 에브리타임은 여느 학기와 마찬가지로 시끌벅적했다. 비대면으로 진 행된 한 해가 끝남에 따라 학생들은 저마다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많고 많은 주제들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역시 평가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본교는 상황의 특수성 을 고려하여 평소보다 완화된 평가방식을 제시했으나 이는 다만 권고사항에 그칠 뿐 이었고, 그나마도 완화의 폭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학점의 높고 낮음만을 고려했을 때 절대평가를 채택한 타 학교 학생들이 비교우위를 가질 것이라는 걱정을 하는 학생 들이 많았고, 특히 이제 곧 사회로 나아가는 학생들에게 그 걱정은 꽤나 무거운 짐으 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맞서, 단순히 다른 학교 학생들이 학점을 잘 받는 것에 배가 아픈 것이 아니냐는 날선 비판도 있었다. 절대평가라는 제도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학 점을 잘 주기 위함이 아니라는 지적은 분명 타당하다. 절대평가는 공정성과 관련된 걱정을 해소하고 과도한 학점 경쟁을 잠재우는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안적 평 가방식이지 학점 인플레이션을 위한 제도는 아니다. 그러나 절대평가 하에서의 평균 학점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 대체로 사실이기에, 학생들의 볼멘 목소리를 단순한 시 샘 정도로 치부할 수는 없을 듯하다. 학점이라는 지표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 기 때문이다. 과연 학교에서 운운하는 ‘학교의 경쟁력’이 절대평가를 실시한 학교와의 경쟁에서 학점의 높고 낮음을 상쇄하고 학생들의 노력에 보답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 같은 형국에서 어떤 평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최선이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한양대학교는 상대평가를 고수했던 것일까? 학교가 홀로 상대 평가 기조를 유지한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었는가? 주장의 근거는 타당성을 갖는가?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한양』은 두 학기 간 이루어진 성적 평가를 돌아보며, 그러한 선택의 이유와 영향에 관해 심도 있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044 학내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 : 비대면 & 상대평가 한양대학교는 작년 1학기 수도권 대학교 중 거의 유일하게 상대평가-대면 기조를 끝까지 유지했다. 이어지는 학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교는 1학기 종강 직후 2학 기에 예정된 수업 진행 및 평가 방식을 통보했다. 물론 시험 진행은 1학기와 마찬가 지로 대면시험을 원칙으로 하고 완화된 상대평가의 형식을 취했다. 학생공동행동 당 시 주장되었던 절대평가나 선택적 pf제도 도입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러 다 기말고사를 목전에 두고 코로나 감염이 급증하자 그제서야 비대면 시험을 원칙으 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대면시험을 승인 하에 진행하도록 규정을 변경하였다. 뒤늦 은 학교의 대처로 인해 평가를 주관하는 교수들의 결정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학생 들의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런 와중에 대면시험을 강행하는 교과목들도 있어 학생들 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교

성적산정

시험원칙

비고

한양대 상대평가

대면

비대면시험시 혈서 요구

서울대

상대평가

대면

연세대

절대평가

비대면

과제물 대체 권장

고려대

절대평가

대면

2015년부터 절대평가 시행

서강대

절대평가

비대면

선택Pass제 도입 불가피할 경우에만 대면시험 가능

학교

시험원칙

비고

한양대 상대평가

대면

3단계 격상 시 비대면 시험

연세대

비대면

전면 비대면 (과제물 대체or 비대면 원칙) 본부에서 비대면 권고

서강대

병행

비대면 (권고)

경희대

절대평가

비대면

건국대

성균관대

상대평가

비대면

중앙대

절대평가

비대면

경희대

절대평가

대면

비대면시험도 허용/ 시험기간 2주

인하대

서울 시립대

절대평가

비대면

대학장 승인하에만 대면시험 가능

국민대

건국대

절대평가

비대면

등록금 반환 결정

성적산정

비대면

중앙대

절대평가

비대면

외대

절대평가

비대면

서울 시립대

비대면 절대평가

해당 대학 학장의 승인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만대면 평가 가능

2.5단계 격상 후 전면 비대면

비대면 일부비대면

2.5단계 격상 후 50명 이상 수업 대면 시험 불허

▲ 대학교별 평가방식 (출처: 에브리타임)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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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환자가 급증함에 따라 기말 시험 대면/비대면 여부에 집중되었던 학생들의 관심은 시험이 끝나고 성적 산출 기간이 되면서 다시금 평가 방식으로 돌아왔다. 학 생들의 불만은 평가 방식 그 자체보다도, 절대평가 방식을 채택한 타 학교 학생들과 의 유불리를 향했다. 절대평가를 실시한 덕분에 더 좋은 성적을 받은 타 학교 학생들 을 보며 토로할 곳 없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본교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학생들의 입 장을 조금도 이해해주지 않는 듯한 학교의 처사는 울화를 더했다. 이 같은 볼멘 목소 리에 대해 남들만큼 ‘꿀 빨지’ 못해 심술이 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여럿 있 었다. 에브리타임에서는 한동안 해당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1학기와 똑같은 모양새로 2학기를 마무리했다.

▲ 평가 방식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 (출처: 에브리타임)

046 학내


학점은 내수용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다른 학교 평가방식을 가리키며 본교의 평가 방식을 비판하는 것을 단 순히 배아픔 내지는 질투로 치부할 수 있을까? 학교의 생각처럼 상대평가는 학생들의 경쟁력을 충분히 지켜줄 수 있을까? 우리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질문의 기본 전제 가 되는 학점에 대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학점이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학점은 한 학기 동안 학생이 수강한 과목의 성취 도에 대한 평가 지표이다. 다른 평가들과 마찬가지로 학점의 존재는 성취도의 측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끌어올리는 적극적인 성격을 갖는다. 학생 들은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이 학점을 높게 유지하고자 한다. 높은 학점은 본인이 기 울인 노력에 상응하는 정당한 결과 그 자체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학생 들이 학점을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까닭은 학점이 다양한 자격요건으로 활용 되기 때문이다. 그 주요한 쓰임새는 학점 경쟁이 이루어지는 교내보다도 교외에 있다 고 볼 수 있다. 교내에서 학점이 특정한 판단의 지표로 활용되는 경우는 성적 장학금 이나 기숙사 선정 정도이다. 반면 학교 바깥으로 범위를 넓히면 그 활용 폭은 몇 곱절 늘어난다. 당장 생각나는 것들만 꼽아보더라도 취업, 대학원 입시, 약대 입시, 로스쿨 진학, 대외 활동 신청 및 대외 장학 신청, 외부 학사 신청 등 각종 사회 진출에서 학점 이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활용된다. 국민의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나드는 대한민국 에서, 학점은 곧 학생의 주요 경쟁력인 것이다. 따라서 학점을 순전히 교내에서의 유 불리로만 판단하는 것은 다소 좁은 시선이다. 학점의 광범위한 활용 폭을 고려하면, 타 학교와의 학점 상대우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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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평가를 실시한 학교들과 한양대학교 사이에 어느 정도의 차등이 있을을지 정 확히 파악할 수는 없다. 절대평가 방식에서도 학교마다, 나아가 교수마다 성적을 부 여하는 방식에는 크고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상위권 학점 분포 비율이 상승한 것과 하위권 학점 분포가 감소한 비율 중 어느 것이 학생들의 피부에 와닿는 차이를 발생시킬 것인지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절대평가와 높은 학점 사이의 상관관계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인하대 관계자는 기존에 500명 남짓이었던 평점 4.5의 학생이 절대평가를 시행한 1학기에 1000명을 넘어섰다고 말 했다. 중앙대 측도 전년도 대비 1학기 평균 평점이 0.5점 정도 상승했으며, 평점 4.0 을 넘는 학생이 전체의 58%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두 학교는 모두 성적 장 학금 지급 대상을 축소했다.1) 심지어 이번 평가로 인한 후폭풍은 잠정적인 것도 아니다. 학점의 상대적 불리함으 로 인한 피해는 가시적이며, 이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들도 하나둘 속출하고 있다. 올해 로스쿨 입시를 준비 중인 한 학우는 “지난 한 해 동안 다른 학교의 학생들 의 평균 평점이 더 높아져 그렇지 않아도 치열한 학점 경쟁이 한층 더 두려워졌다.”라 고 말했으며,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학사에 거주했던 학생은 “지난 학기에 학사에 합격 했던 학점을 받았지만 이번 학기에는 학사 신청에서 탈락했다. 아마 절대평가의 영향 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중략) 1학기 평균평점 약 0.5점 상승, 평균평점 4.0이상 전체 재학생의 58%, 3.5이상 82%, 평점 4.5 학생수는 1,820명

[대학본부] ▲ 중앙대학교 학교 본부 측 입장 (출처: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1) “4.5점 만점이 2천명?”...전례없는 학점 인플레에 대학생 ‘혼란’, 2020. 8. 14, 박지연, 이데일리

048 학내


통(通)하였느냐 문제는 평가 결과에 의한 유불리에 그치지 않는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라는 이 분법에 간과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내포된 실효성과 학교의 행보이다. 한양대학교 는 1학기와 2학기 모두 상대평가4의 형태를 평가의 원칙으로 제시했다. 상대평가4에 의하면 A학점은 최대 40%까지 부여할 수 있으며, 그 이하 학점 부여에 대한 제한이 없다. 다만 이는 최대 상한선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이하의 비율은 교강사의 자율에 따른다. 즉 기존과 마찬가지의 비율로 성적을 부과한다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 더 군다나 완화된 평가라고는 하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단과대 별로 상이하다. 실제로 코 로나 이전 학기에 이론 교과목에 한하여 상대평가1을 적용하는 것은 공과대학뿐이었 으며, 그 외 대학은 모두 상대평가2를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를 통해 C이하 의 학점에 대한 부담감은 조금 덜어낼 수 있었겠지만, 그것이 성적에 대한 부담감을 충분히 ‘완화’ 할 만큼의 차이인지는 의문이다. 시행

비율

상대평가4

비대면 학기

A 최대 40%, 그 이하 제한 없음

상대평가1

공과대학

A 최대 30%, A+B 최대 70%

상대평가2

공과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과

A 최대 40%, A+B 최대 80%

▲ 평가방식 비교

더 심각한 문제는 한양대학교가 학기 시작 전부터 대면시험 기조를 고집한 탓에, 비 대면으로 진행된 시험에서 공정성을 담보할 대응책을 조금도 강구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만약 대면 시험을 원칙으로 하되 코로나 상황에 따라 비대면으로 진행될 가능성 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일찍이 공정성 담보 방안과 이를 위한 규정에 관해 고민할 수 있 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시험을 목전에 두고 비대면으로 진행 방식을 변경했다 해도 그 토록 혼란이 가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측은 단지 평가방식을 통보했을 뿐 이며, 그로 인한 혼란을 수습하는 주체는 교강사였다. 시험 진행에 관한 교강사들의 공 지가 늦는 데 대한 학생들의 불만이 있었지만, 사실 학교가 대면시험을 꿋꿋이 고집하 지 않았더라면 진즉 그 방안에 관한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터였다. 시험을 고작 며칠 남겨둔 시점에서 학교가 보여준 ‘나 몰라라’ 식의 행보 덕분에 특정 과목에서 는 실제로 부정행위 관련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학교는 방관자에 불과했다.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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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최 왜? 앞서 서술한 모든 내용은 이미 대면-상대평가 기조를 통보한 시점에서 사실상 예 견된 일이었다. 학교는 이렇듯 결과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왜 대면-상대평가라는 평가방식을 고수한 것일까? 학교의 주된 논지는 ‘변별력 있는 학교’로의 분류였다. 즉 학교 경쟁력을 근거로 상 대평가를 정당화하고자 했다. 이는 노골적으로 교육부의 대학평가를 의식한 것이다. 그 러나 교육부는 상대평가 시행 여부를 대학평가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2) 그럼에도 상대평가를 시행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게다가 서울대와 연세 대, 고려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교들이 모두 절대평가를 시행하는 상황에서 한양대 만 상대평가를 한다고 해서 각종 기업 및 기관들이 이를 고려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 명석한 판단일까? 심지어 대학교 블라인드제를 시행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학교 측이 내세우는 논거가 타당한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일각에서는 다이아학과의 장학금을 염려했기 때문이라는 날 선 가담항설들이 공유 되고 있다. 오히려 이 같은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이 현재 한양대학교의 드높은 위상을 대변한다. 지난 학기 학생들의 대화 요청에 뒷문으로 도주한 자랑스런 학교의 얼굴은 이러한 음모론에 한층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평가 방식의 결정 사유 는 오직 학교 본부만이 알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학교 본부만이 공유하고 있는 감춰진 근거가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 다이아몬드학과 장학금 지급률 상승을 언급했던 본부 답변 (출처: 한양대학교 총학생회 페이스북) 2) 교육부 보도자료,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교육 분야 학사운영 및 지원방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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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최선의 선택에 관하여 물론 ‘다른 학교가 절대평가를 하기 때문에 우리도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 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것은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첫째, 학교가 자신들이 고집한 평가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근거는 손톱만큼의 설득력도 없 다. 상대평가를 시행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근거가 억지스러운 것이 나 쁜 것이다. 그리고 애당초 상대평가를 시행하기로 했다면, 예기치 못한 국면 전환에 따른 비대면 평가 상황에서도 공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미리 준비했어야 한 다. 학교는 자신들의 주장을 고집한 것과 마찬가지의 일관성으로 평가의 공정성과 관 련된 책임을 전적으로 학생과 교수에게 떠넘겼다. 둘째, 결과적으로 상대평가 시행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 되었다. 물론 상대적 유불리로 인한 일정 수준의 차이는 당장 객관적으로 검증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마 학생들 개개인의 체감 차에 그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우리는 학점으로 인해 각종 분야에서 발생할 다소간의 불리함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최상의 학업적 성취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총장님의 말씀을 곱씹고 있노라면 그 역설적인 결과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결과적으로 한양대학교는 상대평가에 걸맞은 명분을 세운 것도 아니고, 이에 합당 한 절차를 마련한 것도 아니며, 심지어 그 선택이 학교 전체에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 오지도 못했다. 신영복 선생은 ‘공부(工夫)’를 하늘과 땅, 곧 세상의 이치에 관한 사람 의 탐구라고 풀어냈다. 지난 한 해 동안 한양대학교가 온 힘을 다한 것은 오히려 세상 곳곳에 가닿아야 할 학생들의 시선을 거두고, 애써 그들을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드 는 데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한양은 ‘대한민국의 엔진’이라고 해서 차량 보닛 안에서만 경쟁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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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대 건물

정책대 건물 부편집장 최유진 userid789@hanyang.ac.kr

“새내기 새로배움터에서 선배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대학생활이 아닌, ‘건물 없는 단과대’라는 소개입니다.” - 총장님께 드리는 정책과학대학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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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셔는 법학관, 찾아오는 길은 융합교육관? ▒ 2014년, 사회과학대에 소속되어 있던 행정학과가 2008년에 설립된 정책학과와 함 께 정책과학대학(이하 정책대)으로 재편성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 같 은 행정적인 변화와 동시에 정책대 건물의 필요성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외침이 무색하게 7년이 지난 2021년 현재까지도 건물 신설에 대한 소문만 무 성할 뿐, 어떤 변화도 없었다. 정책대 입학 브로셔에는 법대의 명성을 계승한다며 법 학관 사진을 자랑스레 대문에 걸어놓았지만, 막상 찾아오는 길은 융합교육관으로 안 내하고 있다. 많은 정책대 학생들이 단과대 건물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지만, 기약 없 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양대학교는 매년 건물을 신(증)축 해왔다. 작년 11월엔 간호학부 전용 공간인 미 래교육관이 개관되었고, 서울시 도시관리 문서에 따르면 제3·4 공학관 및 컴퓨터학 습관 신축 또한 계획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대 건물은 신축 계획에 포함되어 있 지 않다. 단과대의 정체성을 가진 공간을 한두 해 동안 요구한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학교의 결정은 정책대 학생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든다. 당장 단과대 건물이 없는 정 책대 학생들을 비롯하여, 우리는 왜 대학교 내에서 ‘우리의’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한 것일까. 『한양』은 대학에서 단과대 건물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정책대 학생들이 외 치는 건물의 필요성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 상반되는 정책과학대학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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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대 건물의 필요성 ▒ # 학업 환경 개선 현재 정책과학대 학생들은 융합교육관과 법학관을 이용하고 있다. 전공수업을 들 을 때에도 건물을 이동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과방과 동아리방, 라운지 등 휴식공간도 각기 다른 건물에 분산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하는 건물 중 어느 공간도 정책 과학대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융합교육관은 한양사이버대를 위한 건물이며 법 학관은 과거에는 법대생, 현재는 법학대학원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정책 대학생의 사물함이 융합교육관의 복도에 방치되어 있는 등 학부생들을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심지어 건물 내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조차 오랫동안 갖춰져 있지 않은 탓에 정책대 학생회장이 학교 측에 요구하여 최근에야 융합교육관 일부를 라운지로 얻어내었다. 대부분의 단과대학이 단독 건물을 갖고 있으며 하나의 학과를 위한 건물 또한 존재한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정책과학대의 학생들은 물리적으로 수업 을 위한 이동에 있어 필요 이상의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자치공간의 부재 건물의 부재는 자치공간의 부재로 이어진다. 대학교는 단순히 지식만 전달하는 학 원이 아니다. 학교에서 우리는 비슷한 관심사를 공유한 학우들과 함께 저마다의 작은 사회를 넓혀간다. 서로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휴식공간부터 전공에 대한 토론을 나누 는 공간, 크고 작은 학과 행사들을 비롯한 자치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까지. 학생들 은 그 안에서 같은 학과의 학우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서로의 정보를 공유한다. 이는 교수와의 관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학생들만의 자율적인 활동만으로 이루어지는 소 중한 경험이다. 그러나 단과대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 정책대 학생들에게는 코로나를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소통의 경험을 제공할 물리적인 공간이 부족하다. 융합교육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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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정책대를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 아니기에 학생들에게 내어줄 공간이 여유치 않기 때문이다.

# 학과의 정체성 및 소속감 건물의 필요성은 단순히 수업 시 이동의 편리함이나 자치 공간 사용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단과대의 독립된 건물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건물이라 는 물리적 공간이 학과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된 단과 대 건물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설을 이용함으로써 학과 학생들이 서로 대면할 시간 을 늘려주고 공통된 추억을 공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건물 하나를 단과대에게 배정하 면서 학과의 모든 학생이 단과대 이름을 들었을 때 명확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특정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각 단과대의 건물이 존재함으로 인해 학과라는 추상적 인 단어를 이미지화하여 학생들은 학과에 대한 명확한 정체성을 이해하게 되며, 소속 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점은 비단 정책대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 리만의 공간’이 없는 정책대의 처지는 학생들로 하여금 학과에 대한 자부심을 약화시 키고 이는 신입생 및 지망생에게 학과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곤 한다. 비단 정책 대 학생들 뿐만 아니라 타 단과대 학생들, 즉 한양대 모든 학생들에게도 ‘정책대’ 자체 의 이미지는 모호하다. 게다가 학과만의 정체성을 지닌 공간의 부재로 졸업생과 재학 생과의 연결고리 또한 자연스레 옅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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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을 위한 정책과학대 학생들의 노력 ▒ 정책대 학생들의 외침은 오랜 기간 계속되어 왔다. 이들이 건물문제에 대해 어떠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그동안 어떠한 목소리를 내왔는지, 건물에 대한 그들의 노력에 대하여 정책대 학생회 ‘별하’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았다.

한양: 정책과학대 건물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별하: 정책과학대학은 대다수의 단과대와 달리 독립적인 건물을 사용하고 있지 못 합니다. 정책대가 사용하고 있는 융합교육관은 한양사이버대학교 소속으로, 정책대가 환수를 받아 사용하는 공간은 지하 1층~4층에 불과합니다. 특히 학생회실과 토론실, 강의실로 사용되는 지하1층의 경우 본래 학생들이 사용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공 간이 아닙니다. 이로 인해 여름엔 습기로 곰팡이가 자주 생기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으며, 겨울에는 너무 건조하여 항상 가습기를 틀어놓고 생활해야만 하는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또한 건물 자체가 저희 공간이 아니다보니 추가로 공간을 필요로 할 시에 편안하게 사용하기도 힘듭니다. 융합교육관에는 대형 강의를 위한 계단식 강의실도 없어 학생 들도 교수님들도 학기 초만 되면 당혹스러운 상황을 종종 마주하곤 했습니다. 학생들 은 학기 내내 융합교육관과 법학관 사이를 바쁘게 오가야 했지만, 어느 공간도 온전 히 정책대 학생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정책대 학생들에게는 ‘이 건물이 우리 단과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만한 공간이 넓은 한양대학교 부지에 한 곳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당연히 학생들의 자존심 문제로도 이어집니다. 학교에서 자랑하는 다이아몬드 학과 소속이라는 우리 학생들의 자부심 그 이면에는 ‘건물 없는 단과대’라는 안타까운 현실 문제가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책과학대학 건물 신설은 학생들의 면학 환경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모교에 대한 애교심과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학생사회 단합의 구심점으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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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정책학과 학생들이 건물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동감하고 있나요? 별하: 정책과학대학의 독립적인 건물 설립은 학생들의 오랜 염원이었습니다. 학부 에 법과대학이 폐지되고 정책과학대학이 신설된 지도 10년이 넘었지만, 온전한 우리 만의 건물이 없다는 사실은 학생들에게 오랜 기간 좌절을 안겨 주었습니다. ‘대외적으 로는 많은 행정고시, 로스쿨 합격자를 배출하는 학과라고 홍보하면서 정작 독립적인 건물 하나 지어주지 않는 것은 학교 측에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알 만한 것 아니겠느냐’는 식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는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정책대 건물 설립을 위한 지속적인 요구는 외면된 채, 다른 건물의 신축 계 획안들은 속속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대다수의 정책대 학생들은 일종의 차별을 당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17년 정책과학대학 개강 총회에서 가결된 건물설립 및 환경개선 촉구에 관한 결의안은 이와 같은 학생들의 마 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양: 독립된 건물을 위해 학생회가 노력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별하: 앞서 언급한 2017년 총회 결의안의 경우 정책과학대학 학생회와 정책학과 학생회, 행정학과 학생회가 모두 뜻을 모아 상정 및 의결된 바 있는 결과물입니다. 2018년에는 6개의 요구안을 담은 정책과학대학 학생회장 명의의 탄원서를 총장님께 제출한 바 있으며, 그 결과로 융합교육관 1층에 정책대 학생들을 위한 전용 라운지가 마련되었고, 2층과 3층 전체가 2020년과 2021년에 차례대로 정책과학대학 소유로 귀속되었습니다. 독립된 건물의 필요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 2019년에는 재차 정 책과학대학 학생회장 명의로 5개의 요구안을 담은 탄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학교 측의 별다른 적극적인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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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설립을 위한 정책과학대학 학생회의 꾸준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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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학대 학생들은 단과대 건물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이를 위해 꾸준히 학 교와의 협상을 시도해왔다. 그 결과 공간에 대한 권리를 조금씩 찾았지만, 아직도 독 립된 건물 신축의 염원을 이루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렇다면 학교는 왜 아직도 건물 신축에 대하여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학교 의 여러 기관에 인터뷰를 요청하였으나 서로가 담당 부서가 아니라며 책임을 넘길 뿐 이였다. 결국 학교로 부터는 어떠한 답변도 받을 수 없었다.

▒ 정책과학대 학생들의 공간은 어디에 ▒ 한양대학교의 법학 대학원은 “다른 학교들이 로스쿨 개원을 위해 한참 공사 중일 때 이미 대부분의 건물을 완성한 학교가 한양대 로스쿨이다”라며 자랑한다. 이에 따 르면 법학관 3개의 건물이 모두 법학대학원 소속이며, 한양대학교가 다이아 학과로 자랑하는 ‘기존의 한양대 법대를 계승한 정책과학대’ 학부생들을 위한 건물은 존재하 지 않는 것이다. 대학교의 건물은 단순히 학업을 위한 공간, 그 이상이다. 수년간 미뤄지고 있는 정 책대의 건물. 학과의 정체성, 그 안의 학생들의 소속감을 위해서라도 더이상 미뤄져 서는 안 될 시급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단과대가 단독의 건물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서 왜 정책과학대만 이토록 오랜 기간 소외되어야만 했는가. 학교는 명확한 이유 없 이 그저 현재 적당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니 언젠가 만들어주겠다는 태도로 학생들 이 공간을 누릴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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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을

향한

한양인의

시선

『한양』에

대한

한양인의

평가

『한양』을

위한

한양인의

비판

지금 『한양』 에게는 한양인이 필요합니다. 114호를 보고 기사에 대한 평가를 HYgyoji@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독자평은 115호 교지에 실리며 독자평을 보내주신 분에게 소정의 상품을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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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백신 편집위원 황성주 saint95@hanyang.ac.kr

02 아동학대 편집위원 조유민 opjum@hanyang.ac.kr

03 리뷰 부편집장 최유진 userid789@hanyang.ac.kr


Part

2

사회


#백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코로나19 백신 톺아보기 편집위원 황성주 saint95@hanyang.ac.kr

“백신은 본인뿐만 아니라 본인의 가족과 그리고 본인이 접촉한 모든 분들을 보호해주는 의약품입니다.” - 2021년 2월 10일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관련 브리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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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에도 이어지는 코로나19 확산 2020년이 끝나고 2021년이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코로나19는 맹위를 떨치고 있 다. 북반구의 대부분 나라들이 겨울을 보냄에 따라 코로나19 확산세는 처음 바이러스 가 전세계로 퍼져나갈 때보다 심각해졌고, 급기야 전 세계 확진자 수는 1억 명을 돌 파하였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겨울철에 있었던 3차 대유행의 정점을 지나 관리 가능 한 수준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소규모 집단감염이 이어짐에 따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의 피로도 는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0년 12월 말부터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 이스라엘, 노르웨이, 독일 등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것이 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코로나19가 곧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하지 만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다시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을지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아직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가 개 발 중이고, 인구의 60% 이상이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면역이 이뤄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올해 1분기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국 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그렇기에 『한양』에서는 백신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각 회사 들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다만, 백 신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만큼, 우선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어떤 바이러스인지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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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넌 누구니? 2019년 12월 하순. 중국 우한지역에서 원인불명의 폐렴 환자가 급증했다. 이에 중 국질병예방통제센터에서는 환자의 폐에서 검체를 채취하여, 한 달여간 분석했고, 그 결과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바이러스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코 로나19 바이러스1)이다. 여러 과학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투과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바이러스 내부에는 RNA라고 부르는 유전물질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바이러스 외부는 유 전물질을 바이러스 막으로 둘러싼 구조로 되어있었으며, 바이러스 막은 스파이크 단 백질이 돌기 형태로 촘촘히 박혀있는 형태였다.

▲ 코로나19 바이러스 실제 사진. 돌기처럼 나와 있는 부분 (화살표로 표시한 부분)은 스파이크 단 백질이다 (출처: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2)) 1) 사실 코로나19(COVID-19)라는 용어는 이 바이러스로 인한 병을 지칭하는 용어이며, 과학계에서 사용 하는 정식 명칭은 SARS-CoV-2(사스코로나바이러스-2, 2019-nCoV)이다. 다만 독자들의 이해를 돕 기 위해 이 글에서는 정식 명칭 대신,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2) Zhu et al, “A Novel Coronavirus from Patients with Pneumonia in China, 2019.”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382:727~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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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의 종류 (출처: 코로나 사이언스3))

이러한 구조는 왕관이나 태양의 코로나4)와 비슷하다고 하여 코로나 바이러스라 명 명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종류는 대표적으로 사스바이러스와 메르스바이러스 가 있으며, 이는 스파이크 단백질의 모양에 따라 분류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스 파이크 단백질은 사스바이러스와 매우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메르스바이러 스와는 다른 모양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 세포에 침입하기 위해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간 세포막의 수용체에 부착시키는 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사스바이러스는 ACE2(Angiotensin Converting Enzyme2) 수용체를, 메르스바이러스는 DPP4 수용체를 이용한다.5)

3) 고규영 외, “코로나 사이언스”, 동아시아, p.25 4) 태양대기의 가장 바깥층을 구성하고 있는 부분 (출처: 두산백과) 5) 고규영 외, “코로나 사이언스”, 동아시아, 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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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침투 과정 (출처: 코로나 사이언스)

▲ 세포 내의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과정 (출처: 코로나 사이언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비말에 섞여서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침 이나 재채기를 통해 침방울이 튀거나 침방울이 묻은 물건을 만짐으로써 코나 입을 통 해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침투하게 된다. 우리 몸에 침투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기 관지의 섬모상피세포나 폐포 안의 2형 상피세포를 공격한다. 이 상피세포에서는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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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나19 바이러스가 잘 달라붙는 ACE2 수용체를 많이 볼 수 있다. 이 수용체에 바이 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이 결합하면 세포 내에 존재하는 단백질 가위(TMPRSS2)가 스파이크 단백질의 일부를 자르고, 바이러스 안의 유전물질이 세포 내로 침투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스바이러스보다 더 빠르게 전염, 확산되는 이유는 스파이크 단백질이 더 강하게 수용체에 결합할 뿐 아니라 단백질 가위로 쉽게 잘리도록 변형되 었기 때문이다.6) 최근 영국과 남아공에서 발견된 변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파력 이 훨씬 강력한 이유도 바로 이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변이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알 려졌다.7) 침투한 바이러스는 세포 내의 여러 기관을 이용하여 증식하고, 증식이 완료 된 바이러스는 감염된 세포 밖으로 분출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바이러스의 수가 우리 몸 안에서 증가하고, 그에 따라 염증 유발 성분인 사이토카인이 분비되면 서 다양한 증상을 일으킨다.8)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기침, 호흡곤란 및 폐렴 등 다양 한 호흡기 증상과 함께 발열, 권태감, 가래, 인후통, 두통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쉽 게 말하자면 독감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 기는 14일 이내로 조사되었으나, 독감과는 다르게 무증상인 상태에서도 전파가 쉽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6) 같은 책, p.25~27 7) 헬렌 브릭스, 코로나 변종: 변이 코로나바이러스란 무엇인가?, BBC News, 2021.01.18 8) 고규영 외, “코로나 사이언스”, 동아시아,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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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의 정의와 코로나19 백신의 개발과정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신종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백신과 치료제가 따로 없었으나 최근 여러 제약회사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 하여 여러 국가에서 접종이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백신은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었 으며, 어떻게 코로나19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 백신이란?9) 우리 인체 내에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와 같이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침입하 면 이를 물리치기 위해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이때, 병원체와 같이 면역 반응을 일 으키는 이물질을 항원이라 부르며, 면역 반응은 이 항원의 종류를 인식하여 특이적으 로 반응하는 림프구에 의해 발생한다. 면역 반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백신의 메커니즘과 관련된 면역 반응은 B림프 구에 의해 나타나는 체액성 면역이다. 항원이 체내에 들어오면, 대식세포10)가 항원을 삼키면서 항원에 대한 정보를 T림프구에 전달한다. 항원의 종류를 인식한 T림프구는 B림프구를 자극하여 B림프구가 형질 세포와 기억 세포로 분화하게 하는데, 이 중 형 질 세포에서 항체라는 물질을 만든다. Y자 모양의 단백질인 항체는 특정 항원만 결합 할 수 있는 부위가 있다. 항체가 생산되면, 항체가 항원과 결합하면서 항원이 무력화 되거나 덩어리를 형성하여 식균작용11)이 일어나 면역 반응이 나타난다. 이러한 체액 성 면역 반응을 1차 면역 반응이라고도 한다. 한편, T림프구의 자극을 받은 B림프구 중 일부는 기억 세포로 분화한다. 기억 세 포는 항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항원이 제거된 후에도 일정시간동안 존재하 9) 참고문헌: 고등학교 생명과학Ⅰ, 비상교육, 2011.03.02, p.192~194) 10) 대식세포: 백혈구의 일종으로 몸에 침입한 세균 등을 잡아먹어 제거하고, 병원체에 대한 정보를 T림프 구에 전달하는 세포이다. (출처: 고등학교 생명과학Ⅰ, 비상교육, 2011.03.02) 11) 몸 안에 들어온 세균을 잡아먹는 작용을 이야기하며, 혈액 속의 백혈구가 하는 작용을 말한다 (출처: 네이버 학습용어 개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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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된다. 이후 다시 항원이 침입하게 되면, 기억 세포가 빠르게 형질 세포로 분화하 여 다량의 항체를 생산해 항원을 제거하게 된다. 이를 2차 면역 반응이라 하며, 이 반 응을 유도하기 위해 병원체를 배양한 후 비활성화하거나 독성을 약화시켜 만든 것이 백신이다. 백신을 신체에 투여하면 병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1차 면역 반응을 일으켜 기억 세포를 생성하게 되고, 그 결과 병원체가 인체 내에 다시 들어오더라도 감염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즉,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치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 몸 속의 면역 반응을 이용하여 감염을 예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 과정이다.

▲ 1차 면역 반응 및 2차 면역 반응 (출처: 고등학교 생명과학Ⅰ, 비상교육)

#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 몸에 투여할 후보 물질을 찾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후보 물질들을 찾아 동물에게 투여하여 효 과가 있는 물질을 선별한다. 다음으로 이 물질이 인체에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 해 임상시험을 거친다. 임상시험은 크게 4단계로 분류된다. 1단계는 임상 1상으로, 20~80명의 건강한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통상 1년여 동안 실시하며 부작용과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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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투여량 등을 파악한다. 다음으로는 임상 2상을 실시한다. 이 단계에서는 100명에 서 300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투약하여 백신이 직접적인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한다. 2상까지 통과하면 1,000명 이상의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에게 투여하여 확인하는 3상 임상시험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이 가장 규모가 크고 평가가 까다롭기 때문에 사실 상 마지막 단계의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통상 3상이 끝날 때까지 5년이 소요된다. 3상을 통과하면 백신을 시판할 수는 있으나, 5년여간 부작용을 추적하는 과정인 임 상 4상을 함께 실시하면서 백신을 사용하게 된다.12)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임상 3상 까지 걸린 시간이 1년도 안되었으며, 만 18세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임상시험을 실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아직 충분히 확인이 되지 않았 고, 성인들에게만 백신을 투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워낙 사태가 심각한 탓에 영국을 시작으로 각국에서 임상 3상이 끝난 백신을 바로 접종하기 시작하였다.

▲ 일반적인 백신개발 기간과 코로나19 백신개발 기간 (출처: BBC.com)

12) 이교준, ‘3상 임상’ 들어가는 美...백신 개발 과정은?, YTN, 2020.06.11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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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의 종류와 그 메커니즘 2021년 2월 기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될 코로나19 백신의 종류와 특성은 다음과 같다. 화이자 백신 종류

모더나

mRNA 백신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노바백스 합성항원 백신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

접종 횟수

2회

2회

2회

1회

2회

접종 간격

21일

28일

28일

-

21일

유통 조건

-75℃±15℃

-20℃

2~8℃

2~8℃

2~8℃

보관 조건 (유통기한)

-75℃±15℃ 에서 6개월 2~8℃에서 5일

2~8℃에서 30일

2~8℃에서 6개월

2~8℃에서 3개월

2~8℃에서 2~3년

개봉 후 사용기한

식염수 희석 후 6시간 이내

실온에서 6시간 이내

2~8℃에서 48시간, 실온에서 6시간 이내

냉장에서 4~6시간 이내

(아직 발표자료 없음)

예방 효과

95%

94.5%

82.4%

72%

89%

도입 물량

1,300만 명분

2,000만 명분

1,000만 명분

600만 명분

2,000만 명분

도입 시기

2021년 1분기

2021년 2분기

2021년 1분기

2021년 2분기

2021년 2분기

위 표에 제시된 물량 이외에도 COVAX를 통해 1,000만 명분의 백신이 도입되어, 모든 국민이 접종 완료할 수 있도록 총 7,900만 명분의 백신을 구입하기로 계약 체결 이 완료되었다. 이에 따라 2월 말부터 COVAX로부터 6만 명분의 화이자 백신이 도 착하여13) 코로나19 의료진부터 백신 접종을 실시했으며, 2월 26일부터 아스트라제네 카 백신 75만 명분이 공급된다. 각 백신들은 타겟 항원의 종류에 따라 크게 세 가지 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각 백신이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자. 13) 보건복지부 공식 유튜브,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 통한 화이자 백신 2월 중순 이후 도착 예정 |2/1(월)|정부 브리핑, 2021.02.01

074 사회


COVAX란? 정확한 명칭은 COVAX facility. 코로나19 백신의 공평한 공급을 위해 싱가포르와 스 위스의 주도로 진행되는 프로젝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영국, 유럽연합 등의 많 은 나라가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보건기구, 세계백신면역연합 등이 운영에 참여한다. 현재 참여국들이 공동으로 출자한 자금을 바탕으로 백신 개발을 지원하고, 여러 백신 회사들과 공급계약을 맺었다. 우리나라에 도입될 5만 명분의 화이자 백신은 COVAX 를 통해 들어올 예정이다. COVAX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정부가 COVAX를 통해 다른 백신보다 중국산 백신을 먼저 들여온다’식의 내용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졌 으나, 이는 전형적인 가짜뉴스이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에서는 중국 백신 회사와 어떠 한 계약도 맺지 않았다(출처: 고재원, [팩트체크] 코백스 백신에 중국산 포함되나, 동 아사이언스, 2021.01.27)

# mRNA 백신 화이자와 모더나에서 만든 백신은 mRNA 백신이다. 이 백신은 타겟 항원으로 코 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 mRNA(messenger RNA)를 사용한다. 이 mRNA는 나노 크기의 지질막으로 둘러싸여 백신 안에서 존재하게 된다. 백신을 투여하면, 세포 내부로 mRNA가 진입하면서 세포 내에서 스파이크 단백질과 단백질 파편들이 생성된다(과정1). 이 세포가 파괴되면 생성된 단백질들이 세포 외부로 빠져 나오면서, 대식세포 등 항원제시세포에 의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T림 프구에 전달한다(과정2). 이후 T림프구가 B림프구를 활성화시켜, 코로나19 바이러스 에 대응하는 형질세포와 기억세포를 생성한다.14)15)

14) J. Corum, C. Zimmer, How the Pizer-BioNTech Vaccine Works, The New York Times, 2021.01.21 15) J. Corum, C. Zimmer, How Moderna’s Vaccine Works, The New York Times,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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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정1. mRNA의 세포 내 작용 (출처: nytimes.com)

▲ 과정2. T림프구의 바이러스 인식 (출처: nytimes.com)

mRNA 백신의 장점은 임상 3상의 데이터 기준으로, 예방 효과가 가장 뛰어나다 는 점이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은 각각 95%, 94.5%의 예방 효과를 보여, 현재까지 는 이보다 높은 효과를 보인 백신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mRNA와 이를 둘 러싼 지질로 구성된 타겟 항원이 상온(25℃)에서 쉽게 분해되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 기 위해 유통과 보관 과정에서 화이자 기준 –70℃를 유지할 수 있는 극저온 냉장 시 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백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다시 해동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개봉 후 6시간 이내 접종을 해야 한다. 아울러 화이자 백신의 경우, 백신 원액과 식염 수를 함께 섞어서 사용해야 하므로 백신을 접종하는 데 있어 매우 복잡하다는 단점도 있다. 무엇보다 mRNA를 이용하여 백신을 개발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기 때문 에,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 등 기존의 방식에서는 예상치 못한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 용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처럼 mRNA 백신은 접종 과정에서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하므로, 평상시와는 다르게 실내체육관이나 시민회관과 같은 대규모 공공시설에 예방접종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이 센터는 시·군·구당 1개 이상, 전국적으로 약 250개소가 설치된다. 또 한 현재까지 보고된 알레르기 반응에 대응하고, 혹시 모를 새로운 부작용에 대해 신 속하게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전담의료진이 각 센터에서 대기한다.

076 사회


#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와는 달리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이 다. 이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DNA형태로 만들어, 인체에 무해 하도록 변형한 아데노 바이러스에 주입한 후, 이 바이러스를 타겟 항원으로 사용한 다. 사람의 팔에 백신을 접종하게 되면, 아데노 바이러스는 세포 안에 진입하면서 얇 은 막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아데노 바이러스는 세포 안의 핵 을 만나면 핵 내부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가진 DNA를 넣어, DNA가 mRNA로 변환되도록 한다(과정1). 이후 이 mRNA가 세포핵에서 나와, 세포 내부에 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과 단백질 조각을 생성하게 되고(과정2), 이를 바탕으로 2차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16)17)

▲ 과정1. 아데노 바이러스의 세포 내 침입 (출처: nytimes.com)

▲ 과정2. mRNA의 세포 내 작용 (출처: nytimes.com)

16) J. Corum, C. Zimmer, How the Oxford-AstraZeneca Vaccine Works, The New York Times, 2021.01.21 17) J. Corum, C. Zimmer, How the Johnson & Johnson Vaccine Works, The New York Times,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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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은 mRNA 백신에 비해 보관·유통이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즉 새롭게 초저온 냉장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기존의 백신 유통·보관에 사용하는 방식을 이용하여 접종을 실시할 수 있다. 또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외국에서 수입 해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안동에 공장이 있는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위탁생산 한 물량을 접종에 사용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공급을 받을 수 있다. 바이러스 전달 체 백신의 예방효과는 아스트라제네카, 얀센이 각각 82.4%, 72%로, mRNA 백신보 다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에서 권고하는 코로나19 백신 임상 유효성 기준인 50%보다는 높아, 코로나19에 대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바이러스 전달체 백신의 단점은 mRNA 백신과 마찬가지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 는지 아직 충분한 임상 데이터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지카 바이러스나 HIV 바이러 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방식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성을 파악하기 쉽다. 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밝혀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

# 합성항원 백신 노바백스에서 만든 백신은 합성항원 백신이다. 나방의 세포에서 코로나19 바이러 스 스파이크 단백질을 합성한 후, 나노 크기의 입자로 만든다. 이 입자를 항원으로 사용하여 우리 몸에 주입하면 면역 반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18)

▲ 노바백스 백신 성분 모식도 (출처: nytimes.com)

18) J. Corum, C. Zimmer, How the Novavax Vaccine Works, The New York Times,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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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방 세포 내에서의 스파이크 단백질 생성 모식도 (출처: nytimes.com)

노바백스 백신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회 사와는 다르게, 노바백스 백신은 독감백신이나 B형 간염, HPV 백신과 같이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과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 더라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백신을 맞을 수 있다. 또한, 냉 장 상태에서 유통이 가능하고, 평상시 사용하던 백신용 냉장고에서 최대 3년까지 보 관할 수 있어 별도의 접종센터 없이 일반 병원에서도 백신 접종을 진행할 수 있다. 마 지막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처럼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위탁생산이 가능하기 때 문에 백신 공급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다. 이상으로 각 회사에서 개발한 백신들의 특징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앞서 언급했듯 이, mRNA 백신은 초저온을 유지할 수 있는 콜드체인을 통해 유통되며, 초저온 특수 냉장고에 백신이 보관된다. 또한, 예방접종센터를 새로 설치하여 접종을 진행하게 된 다. 이에 비해 다른 백신들은 독감백신을 맞는 과정과 유사하게 유통과 보관이 이루 어지며, 백신 접종 또한 일반적으로 지정된 위탁의료기관에서 진행된다. 접종 순서는 다음 표와 같이 진행될 예정이며, 올해 11월 중으로 전국민의 접종 완 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각 백신의 임상시험이 만 18세 이상의 성인을 기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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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실시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미성년자에 대한 접종은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백신 공급 및 부작용 등에 따라 수시로 변동될 수 있다. 또한 백신의 종류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고, 만일 자신이 배정받은 시기에 접종을 받지 않을 경우, 마지막 순위로 조정 되어 접종을 받게 된다.

접종 인원

2021년 1분기

2021년 2분기

130만 명

900만 명

- 고위험 의료기 관 종사자(의사, 간호사 등) - 역학조사관, 구급대 요원 대상자

- 요양병원/ 요양시설 입원/ 입소자, 종사자 - 정신요양원, 재활시설 등 입소자 및 종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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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분기

2021년 4분기

3,325만 명

- 65세 이상 성인 - 성인 만성질환자 (고령자부터 순차접종) - 성인 50~64세 - 노인복지시설 이용자/종사자

- 군인, 경찰, 소방 및 사회 기반시 설 종사자

- 일반 의료기관 및 약국 종사자 - 소아, 청소년 교육, 보육시설 - 장애인, 노숙인 종사자 등 시설 입소자 및 종사자 - 성인 18~49세

2차 접종자 및 미접종자 또는 재접종자


백신을 맞아도 아직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워요. 이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여러 백신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계획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직 치료제가 없는 상황에서 백신이 개발되어 접종이 시작된 것은 분명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기 준 전국민의 60~70%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집단 면역 을 이루는 시점은 빨라야 11월로 예상된다. 그렇기에 언제든 코로나19 대유행이 다시 찾아올 수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접종하고 있는 백신들은 아직까지 장기적으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백신에 문제가 생 기면 곧바로 접종은 중단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만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이가 연구진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타나면, 지금까지 개발한 백신들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아직 우리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완전하게 승리하지 않았다. 따라서 질병관리청에서 공식적으로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하기 전까지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본인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고 하더라도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기에 마스크를 쓰고 언제나 개인위생을 철저히 관리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모두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비교적 잘해온 만 큼, 백신 접종이 진행되면 언젠가는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지 않을까? 부디 2021년에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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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편집위원 조유민 opjum@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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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올려다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말고 자세히 타일러주시오. 그리고 제발 어린이를 때리지 마십시오. - 소파 방정환, 1923 제1회 어린이날 선전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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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하였다. 모든 아동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 랫동안 이어져 온 정언과는 달리 우리나라 아동보호의 현실은 무색할 뿐이었다. 지난 해 11월, 아동보호 체계 점검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 발생했다. 생후 16개월 된 아동이 양모의 지속적인 학대 아래 입양된 지 아홉 달 만에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 것이 다. 해당 사건은 ‘정인이 사건’이란 이름으로 세간에 알려졌고, 많은 국민이 큰 충격과 분노에 빠졌다. 이는 아이를 지키지 못한 아동보호 체계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다. 아동학대는 그 전 부터 이어져 오던 고질적인 사회문제였다. 몇 번의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개인 가정의 문제’로 치부 받던 아동학대가 사회의 해결과제로 떠올라 아동보호 체계가 구축되긴 했지만, 이번 정인이 사건을 통해 우리나라 아동보호 체계의 미비함이 여실히 드러나 고 말았다. 우리 사회는 아동보호에 있어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 무고한 아동들의 희 생이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아동보호 체계의 구축은 아직이며, 지금 이 시간 에도 수많은 아동이 학대의 위험 아래 놓여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아동학대의 본질 적 이해와 보호체계의 실질적 구축은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따라서 이 글은 우선 ‘정인이 사건’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봄으로써 해당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국내 아동학대의 양상을 확장된 시각으로 살펴봄으로써 아동 학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현주소와 개선방안을 고찰해보자 한다.

084 사회


또 지고 만 하나의 별 유난히 희고 맑은 웃음에 복숭아라는 별명을 지녔던 정인이. 아이는 양모의 지속적 인 학대 아래 입양 9개월 만에 아프게 눈을 감아야만 했고, 아이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 들의 가슴을 울렸다. 생후 16개월의 자그마한 아이가 이런 끔찍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정인이가 양부모와 함께 지 냈던 그 9개월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 故 정 인 (2019.06.10 – 2020.10.13) (출처: 시사캐스트)

# 정인이의 9개월 2020년 2월 정인이 입양 양부 안씨와 양모 장씨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생후 8개월의 정인이를 입양한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들의 입양 동기는 ‘첫째 아이에게 동성의 동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2020년 3월 입양기관의 첫 가정조사 입양기관이 가정에 방문하여 입양 아동의 적응상태를 조사한다. 해당 보고서에는 “모든 일상이 아동 중심이 되어 가족애가 깊어지고, 아동이 안정감과 만족감을 누리고 있다.” 라고 적혀 있는 등 당시 입양기관은 어떠한 학대 의심 정황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하지 만 추후 어린이집 교사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인이가 등원하기 시작한 2020년 3월부터 아이의 몸에 상처가 계속해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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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5일 1차 아동학대 신고 정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아이의 얼굴, 배, 허벅지 등에서 멍을 발견하고 사진촬영 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한다.1) 당시 양모는 해당 멍 자국이 양부가 정 인이에게 오다리 교정 마사지를 해주다가 생긴 것이며, 다른 곳의 자국은 정인이의 몽 고반점이자, 심한 아토피로 인해 생긴 것이라 주장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경찰은 신고자 진술과 입양기관의 입양 상담 기록지 등을 확인한바, 해당 상흔을 몽고 반점 및 아토피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여 내사 종결했다.

2020년 7월 3일 2차 아동학대 신고 익명의 신고자가 아동이 30분 이상 차량에 방치되어있는 것을 목격하고 아동보호전문기 관에 신고한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으나 경찰은 사건 발생 장소 를 찾는 데에만 14일을 소요했고, 장소를 특정했을 때에는 이미 현장의 CCTV가 삭제된 이후였다. 따라서 2차 신고 역시 아동학대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어 검찰에 불기소의견 송치되었고, 이후 불기소처분으로 수사가 종결된다. 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양모는 익 명의 신고자를 찾아내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성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2020년 9월 23일 3차 아동학대 신고 돌연 정인이가 어린이집 등원을 중지한 후, 2개월 만에 어린이집으로 돌아온다. 그런 데 한창 성장해야 할 시기의 정인이는 2개월 전보다 체중이 1kg이나 줄어있었고, 어 린이집 원장은 당시 정인이의 상태를 ‘가죽만 남아있었다’고 회상했다. 위태로운 정인이의 상태를 확인한 어린이집 교사들은 아이를 인근 소아과로 데려가 고, 진료를 맡은 의사는 곧장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한다. 하지만 양부모는 이에 대해 아이가 구내염 때문에 잘 먹지 못해 체중이 줄은 것이라 해명하였는데, 아동보호전문 기관은 전문의의 직접적인 신고를 받고도 양부와 정인이를 다른 소아과로 데려가 구 내염 진단을 받아 사건을 마무리한다.

1) 2021년 2월 17일 양부모에 대한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어린이집 원장 A씨는 “정인이가 등원하 기 시작한 3월부터 정인이가 계속 다친 상태로 와 항상 학대를 의심하였으며, 특히 1차 신고 당시에는 전과 달리 다리와 배에 멍과 상처가 있어 학대 신고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086 사회


이처럼 3차 신고자이자 1차 신고 때부터 정인이를 진찰해왔던 전문의의 ‘신속하게 아 동을 분리 조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묵살되었고, 정인이는 신고 때마다 번번이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2020년 10월 13일 정인이 사망 정인이 사망 당일 오전, 덤벨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여러 차례 아랫집을 울린다.2) 그리고 조금 지나 양모는 정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결석을 알렸고, 정인이를 집에 혼자 둔 채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이후 양모는 옅은 숨이 붙어있는 정인이를 구급차가 아닌 콜벤을 불러 병원으로 옮겼고, 병원에 도착한 정인이는 이미 심장이 정 지된 상태였다.3) 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양모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도 벤에 두고 내린 모자를 태 연하게 찾아갔으며, 응급처치하는 의사에게 무릎을 꿇고 아이를 살려달라 애원하다가 도 이내 휴대폰으로 어묵을 공동구매한다.

▲ 콜벤 기사의 증언 ▲ 정인이 사망 당일 양모의 게시글 (출처: SBS ‘궁금한 이야기Y’)

2) 2021년 3월 3일, 양부모에 대한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아래층 주민 A씨는 정인이 사망 당일, 무거운 덤벨을 들었다가 내려놓는 소리가 4~5번 났으며, 큰 진동을 느꼈다고 증언하였다. A씨는 계속되는 굉음에 장씨의 집으로 찾아가 항의하였고, 장씨는 눈물을 흘리며 ‘죄송하다.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다. 이따가 이야기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3) 정인이는 응급처치를 통해 잠깐 의식을 회복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사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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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가 말해주는 정인이의 9개월 사망 당시 정인이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온몸에서는 발생 시기가 각기 다른 골절선들이 발견되었고, 한 방울 없어야 정상인 피가 복부를 온통 채우고 있었 다. 또한 부검 결과 복수의 장기 파열, 두개골 골절, 갈비뼈 골절 등의 사인이 밝혀졌 다. 정상적인 양육을 받은 아이라면 절대 나와서는 안 될 소견이 나온 것이다.4) 아울 러 부검 결과, 치명적인 손상부위 중 일부는 이미 치유과정에 있던 것으로 파악되었 다. 즉 정인이는 사망하기 수일 전부터 위중한 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이다. 특히 많은 사인들 중에서도 결정적인 사망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바로 췌장 절단 으로 인한 복강막 출혈이다. 췌장은 장기들 중에서도 가장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렇기에 췌장이 손상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췌장이 절단될 정 도의 충격이 정인이의 신체에 가해졌다는 것은 ‘실수로 아이를 떨어뜨려 아이가 죽었 다’는 양모의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음을 증명한다.

▲ 사망 당일 정인이의 X-RAY 촬영본. (출처: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공식계정)

4) 정인이 사망 당일 응급처치를 맡았던 전문의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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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이 사건 그 후 정인아 미안해. 지난 1월 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을 통해 재조명된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 회에 다시금 반향을 일으켰다. 방송을 통해 사건의 정황을 알게 된 국민들은 사건에 큰 책임을 통감하며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동참하였다. SNS를 중심으로 확산된 해당 챌린지에는 수천 명의 국내 네티즌이 참여하였고, 인근국가의 네티즌까지 가세 하며 정인이 사건의 공론화에 힘을 보탰다.

▲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다. (출처: 인스타그램 @gina1006z)

수 만 건의 진정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표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 치사죄를 적용하여 양모를 기소하였는데,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내용에 반발하여 법 원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5) 실제로 서울남부지방법원 관계자에 따르면 정인이 사건 과 관련한 진정서가 하루에만 5만 건6)이 넘게 접수된 날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국민 들이 가해자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5) 진정서는 통상 피해자 측에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기 위해 제출하는 문서이다. 6) 지난 1월 6일, 서울남부지법은 정인이 사건 관련 진정서 접수 건수가 직원이 시스템에 일일이 입력하기 어려운 정도에 달해 진정서를 따로 전산입력하지 않고 사건 기록에 바로 편철해 별책으로 관리하겠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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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국민들의 적극적 표명에 서울남부지검은 정인이의 사인을 재감정하고자 대 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소청과의사회)에 자문을 의뢰했다. 소청과의사회는 ‘구체 적인 가해 정황을 알기는 어렵지만 교통사고를 당할 때 가해지는 정도의 충격을 가해 자가 피해자에게 가했다는 점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일상적인 높이에서 떨어지는 경우 췌장 손상 가능성은 거의 없고, 비사고에 의한 둔력이 가해졌 을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그리하여 검찰은 해당 감정서를 바탕으로 양모 장씨에 대한 1차 공판에서 살인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변경하였다.

▲ 정인이 사건 1차 공판에서 가해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시민들 (출처: 서울뉴스)

애먼 곳을 향하는 손가락: 입양가정 낙인 정인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파장이 거세지며, 사회의 눈초리가 본질에서 벗어난 곳 을 향하기도 했다. 정인이 사건이 입양된 아동이 학대로 인해 사망했다는 점에서 입 양가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증가한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입양가정 부모들이 언론 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변인들로부터 불필요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일이 늘고 있다 며 불만을 토로하였다.7) 또한 한국입양가족연대 김지연 국장은 정인이 사건 이후 입 양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확산되어 결연될 아이를 기다리는 예비 입양부모들 사이에서 입양취소를 고민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7) 이재호. 2021-01-08. 대뜸 “아이 잘 있나요?”…정인이 사건 후 입양가정 ‘낙인’에 위축, 한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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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7.3% 대리양육 1.2%

친부모가족 57.7%

친부모가족 외 형태 33.8%

▲ 학대 피해아동 가족유형 (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연차보고서)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전체 아동학대 사 건 3만 45건 중 입양가정에서의 아동학대는 84건으로, 전체의 0.3%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아동학대의 원인을 입양가정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현실과는 괴리된 주장임을 잘 설명해준다. 물론 해당 사건이 부모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입양을 성사시켰다는 점에서 입양 절차 강화의 필요성을 제고하는 계 기가 될 수 있겠지만 입양 그 자체가 표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해당 사건의 본질은 아동학대이며, 질타를 받아야 할 것은 허술한 입양 절차이지 입양 그 자체가 아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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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그리고 수 많은 대한민국의 정인이들

#1 피고인은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는 이유로 7세 남아와 6세 여아를 알몸 상태로 서게 한 후 골프채로 수회 때려 온몸에 멍이 들게 했다. 밥을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건을 입에 물게 한 뒤 1m 상당의 알루미늄 재질의 아동용 목발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수차례 때리기도 했다. 주먹으론 얼굴도 가격했다. (울산지법 2020고단1676)

#2 새벽 4시경 잠자는 12세의 남아와 14세 남아를 깨웠다. 문제를 내고 1문제 틀 릴 때마다 10대씩 때린다고 엄포를 내렸고 실제 문제를 틀리자 알루미늄 재질 로 된 밀걸레로 아동의 엉덩이를 약 50대 때렸다. 손바닥으론 아동의 뺨을 약 5대 때렸다. 아이들의 유튜브 시청, 피시방 방문, 인스턴트 섭취 등이 학대의 이유였다. (광주지법 2020고단333)

#3 술에 취한 상태로 11세 남아의 왼쪽 뺨과 목 부위를 때리고 8세 남아의 목을 졸랐다. 이유는 없었다. (전주지법 2020고단847) (출처: 조선일보)

참혹한 아동학대 사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우 리나라 곳곳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아래 이유 없는 매질을 당해왔던 수많은 아이들 이 있었다. 지금도 가장 믿었던 가족으로부터 가해지는 폭력에 무너져내려가는 수많 은 정인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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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오르막

35,000 30,000 30,045

25,000 20,000

22,367 18,700

15,000 10,000

24,604

11,715

5,000 0

2015

2016

2017

2018

2019

▲ 연도별 아동학대사례 건수 (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연차보고서)

정부가 아동학대를 해결하겠다며 팔 걷고 나선 지가 올해로 20년을 넘겼다.8) 하지 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 사례 건수는 집계를 시작한 2001년 이래로 가 파르게 상승해왔다. 2014년 처음으로 1만 건을 넘긴 아동학대는 2017년에 2만 건을 돌파하였고, 2019년엔 처음으로 3만 건 이상을 달성하였다. 2019년 한 해 동안 매일 평균 80건이 넘는 아동학대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이 아동학대 발생 사례가 늘고 있는 데에는 국민들의 인식 개선과 더불어 아동학대 신고의무부과로 아동학대의 발견이 더 용이해진 점을 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다.9) 그렇지만 아동학대 근절이라는 목표와는 달리 아동학대가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분명한 현실은 큰 씁쓸함을 남긴다.

8) 2000년 정부는 학대 아동에 대한 보호 및 아동안전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아동복 지법을 전부 개정하여 아동학대 대응 인프라 구축을 시작하였다. 9) 박수희.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대응방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 보호자의 아동학대를 중심으로." 한국범 죄정보연구 6.2 (2020): 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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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아동학대의 심각성은 그 유형을 들여다볼수록 더욱 명확해진다. 보건복지부에서 아동학대 사례별 학대유형을 분석한 결과 신체학대와 정서학대가 함께 가해지는 중 복학대가 전체 학대유형 중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아 동학대 사례 중 38.6%에 해당하는 아동들은 정서학대와 더불어 가해지는 신체학대에 극심한 심리적, 신체적 상흔을 입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 외로 정서학대가 25.4%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고, 신체학대는 13.9%로 뒤따랐다. 정서학대의 높은 발생 양상을 보여주는 해당 결과는 정서적 학대 정황 조사 및 아동의 정서적 회복 강화의 필요성 을 역설하기도 한다. 심리·정서적 상흔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른 유형 의 학대보다 더욱 간과하고 넘기기가 쉽다. 따라서 정서학대의 높은 발생 확률에 대 한 인지와 이에 따른 철저한 심리 진단 및 회복 방안의 구축이 시급해 보인다.

정서학대+방임 3.4%

성학대 2.9%

방임 9.6%

신체학대+정서학대 38.6%

신체학대 13.9%

정서학대 25.4% ▲ 아동학대유형 (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연차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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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칠 곳 없는 아이들 발생 장소에 대한 조사 결과 역시 학대 피해 아동들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아 동학대가 발생한 장소를 조사한 결과 ‘가정 내(79.5%)’가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특히 피해 아동의 가정에서 학대가 발생한 경우는 전체의 77.5%로, 대부분의 학대 피 해 아동들은 자신이 가장 의지해야 할 집이라는 공간에서 심리적, 신체적 폭력을 당 했다. 아동학대가 가정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은 동시에 사건 수사의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부분의 학대는 개인적이고 폐쇄된 공간에서 은밀하게 자행되기 때문에 이를 발견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그렇기에 피해 아동이 중상해를 입거나 사망하는 등 의 극단적인 피해가 발생해야만 사회적 쟁점화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 7.6%

어린이집 4.6%

집근처 또는 길가 2.3% 가정 내 79.5%

▲ 아동학대 발생장소 (보건복지부, 2019 아동학대연차보고서)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아동학대는 언제 어디서, 어떤 유형으로 발생할지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에는 공 식이랄 것이 없음을 강조한다. 즉, 가해자의 유형이나 특성, 명확한 가해의 원인 등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변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피해 아 동이 있을 수 있다는 인식 아래 철저한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하며 아동학대에 대한 개개인의 경각심을 기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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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를 지키지 못한 이유: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구조적 고찰 정인이 사건을 비롯한 아동학대의 발생은 비단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분명 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특히 정인이 사건을 되돌아보면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수 차례의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무고한 아이를 잃고 만 사실은 우리나라 아동학대 대응 체계에 분명한 허점이 있음을 방증한다. 허술한 보호망이 아동을 지키지 못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인이가 사망 하기 불과 4개월 전인 지난해 6월, 충남 천안에서 9살 남아가 계모에 의해 여행용 가 방에 7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이 경우 역시 사건 발생 이전에 학 대신고가 접수된 바 있었기에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졌더라면 아동의 사망을 예 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동에 대한 확실한 보호보다는 그들의 희생을 거듭 하기만 하는 우리나라 아동 보호망에는 어떤 허점이 있는 것인지 면밀히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 천안 의붓아들 학대 사망사건 관련 보도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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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구조: 신고부터 대처까지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보호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이 마련한 틀 아래서 이루어진다. 포용국가 아동정책은 기존의 아동학대 대응체계가 공적개입이 부족한 가운데 민간중 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진단 하에 2019년 5월 23일, 보건복지부·교육부·법무부· 여성가족부 등의 관계부처가 협의를 통해 발표한 정책이다. 해당 정책은 아동에 대한 국가의 책임 확대를 골자로 아동의 권리를 4개 영역으로 나누어 그에 따른 10대 추진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아동의 권리

추진 과제 ① 보호가 필요한 아동은 국가가 확실히 책임지도록 시스템 혁신 ➁ 보호 종료 후 안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강화 ➂ 아동학대 대응체계 전면 개편 시군구 사회복지 공무원을 확충하고 민간수행 학대조사 업무를 시군구로 이관, 경찰과 함께 직접 수행

보호권

아동학대 조사 공공화

사례분석 강화 인권과 참여권

현재: 아 동보호전문기관 직원(민간인)이 아동분리, 현장조사 등 강제력 행사 업무 수행 → 조사거부 신변위협 등 한계(美 英 日 등 주요국은 공무원이 수행) 공공화 선도 지역부터 단계적으로 전담 공무원 배치, ’22년까지 전국 확산 →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피해아동 긴급분리 후 재학대 위험 소멸 및 안전확보 시까지 전문적 사례관리* 담당 기관으로 개편 (1인당 사례관리 64건→32건) 매년 사망사건에 대해 발생원인, 대응과정, 조치결과 등을 전수 분석 · 평가하여 개선 사항 도출

④ 누락 없는 출생등록 ⑤ 체벌 금지 노력 등 아동 권리 강화 ⑥ 아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부

건강권

⑦ 아동발달 단계에 맞는 건강지원 강화 ⑧ 마음건강 돌봄 지원 강화

놀이권

⑨ 아동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지역사회 만들기 ⑩ 창의적 놀이를 통해 잠재력을 키우는 학교 만들기 ▲ 2019 포용국가 아동정책 주요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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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정부는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 대한 국가의 공적 책임 강화를 외치며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혁신할 것을 약속하였고, 그 결과 공공에 의한 현장조사와 민간에 의한 사례관리10)를 핵심으로 한 아동학대 대응체계 전면 개편이 이뤄졌다. 종래 아동학대 전문기관이 담당했던 조사업무가 신설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에 이관됨에 따라 아동 학대 사건의 조사는 전담공무원이 담당하고, 그 심층적인 사례 관리는 아동보호전문 기관이 맡는 역할의 분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따른 아동학대 대응 흐름을 정리 하면 다음과 같다.

▲ 아동보호서비스 업무 메뉴얼 (보건복지부)

10) 학대 아동의 치료, 재발 방지 등 사례관리 및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업무. 서비스 제공계획 수립, 대상 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생활비·생필품 제공, 피해자 상담 심리치료, 양육기술·방법 등 부모 교육) 등 이 이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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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나 112를 통해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공무원이나 사법 경찰관리11)가 현장으로 출동하여 학대 정황을 조사하며, 일방의 요구에 따라 둘은 동행할 수도 있다. 이때 아동학대 범죄 현장이 발견되거나 재학대의 위험이 현저하 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피해아동의 보호를 위한 응급조치12)가 이루어지며, 그럼에도 재발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긴급)임시조치13)를 취할 수 있다. 조사 내용을 기초로 아 동학대전담공무원은 학대 여부를 판단하고 피해아동 보호계획을 수립하여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통보한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계획을 통보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이를 기준으로 사례 관리계획을 세워 그에 따른 사례관리를 진행한다. 이후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판단되 면 사례를 종결하며, 아동의 적응상태를 확인하는 등의 사후관리를 수행한다. 이처 럼 매뉴얼만 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보이는 대응체계이지만, 이것이 직접 적용되 는 현실에서는 상당한 잡음이 발생하고 있었다.

# 무엇을 위한 ‘전담’인가. 법이 바라는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현 구조에 따르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24시간 사건 접수에서부터 현장조사, 사후관리까지의 방대한 업무를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그 들의 업무에 비해 각 지자체별로 배치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수는 최소한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11) 수사경찰에는 사법경찰관과 사법경찰리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수사관, 경무관, 총경, 경감, 경위를 사법 경찰관으로, 경사, 경장, 순경은 사법경찰리로 구분하고 있다(「형사소송법」 제196조제1항 및 제5항 참조 12) 응급조치란 아동학대범죄현장에 출동하거나 아동학대범죄현장을 발견한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또는 경 찰이 피해아동의 실질적인 보호를 위하여 취하는 조치로. ‘1.아동학대범죄 행위의 제지 2.아동학대행위 자를 피해아동으로부터 격리 3.피해아동을 아동학대 관련 보호시설로 인도’의 세 가지 조치로 구분된다. 13)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원활한 조사·심리 또는 피해아동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결정으로 아동학대행위자에게 퇴거 및 격리, 접근 금지, 친권 정지, 유치장 유치 등의 조치(이하 “임시 조치”라 함)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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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5개 자치구 중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단 1명뿐인 곳은 6개 지자체로, 전체 지자 체의 4분의 1에 달했다. 그 외로는 2명의 공무원이 배치된 곳이 대부분이었다.14) 아동학 대전담공무원의 배치 현황은 전국으로 시각을 확장할수록 더욱 심각해진다. 전국 228개 지자체 중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배치되지 않은 지자체는 115개로, 전체의 절반을 넘겼 다. 그렇게 파악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수는 전국 262명인데, 그중 52명의 공무원은 그마저도 겸직의 형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 현황 (아동권리보장원, 2020.11.20 기준)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 1명당 연간 50건의 아동학대 신고 할당이 적정 하다는 판단 아래 매년 지자체별 아동학대 건수와 상황을 고려한 권고 인원을 통보한 다. 하지만 한두 명의 공무원이 수백 건의 아동학대 사건을 책임져야 하는 현 형국은 정부의 권고를 현실과는 동떨어진 뜬 소리로 들리게 할 뿐이다. 특히 이러한 인원 부 족으로 인한 업무 과중은 전체 매뉴얼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기에 더욱 적극적인 조치 가 필요하다. 극소의 인원이 과다한 업무를 맡게 되면 이에 따른 담당자의 과로와 업 무 효율 하락으로 인해 모든 사례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 및 관리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매뉴얼의 실질적 작동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인원 확충과 효율적인 업 무 재편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4) 최은경, 김영옥. 2020-01-04. 정인이 동네부터…자치구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인원 미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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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 그런데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인력이 보충된다 하더라도 이들 개개인의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이는 무의미한 시도에 그칠 수 있다. 실제로 현장의 아동학대전담 공무원들은 ‘전담’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심각한 전문성 부족을 보이고 있었다. 현 재 배치되고 있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대부분 사회복지사 자격이 있는 신규 선발 인 원들이거나 타 업무를 맡다 이직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완전히 새로운 업무에 적응 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은 필수이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전무한 수준이다. 현재 아동학 대전담공무원이 업무에 돌입하기 전 받고있는 교육은 2주간의 온라인 교육이 전부이 다. 심지어는 그 기간 동안 현장실습까지 함께 수행한다. 이처럼 일반 행정 업무를 하 던 공무원이 단 2주 동안의 교육을 받고 아동학대 현장 조사에서부터 추후 조치까지 책임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현장의 문제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 니다.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더불어 아동학대 사례를 조사하는 경찰들의 전문성 부족 문제 역시 심각하다.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체 학대예방경찰관 가운데 경사 미만 하 위 직급이 74.4%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15) 심지어는 이제 갓 경찰이 된 순경 비율 도 10.7%였다. 이처럼 아동학대 조사와 조치에 관한 충분한 전문성이 없이 현장에 떠 밀리는 이들은 당황스러움과 무서움에 위축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전문성 부 족은 적절한 초동조치와 학대 피해 아동의 신속한 보호를 어렵게 만들 수 있기에 조속 히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아무리 학대가정이라고 한다지만, 평생을 같이 산 아이와 부모를 격리하기 로 결정하는 것은 큰 부담이에요. 사회복지 직무 경험이 있는 저조차도 학대 아동을 대해 본 적이 거의 없어 이들을 조사할 때마다 당황스럽고 무서워요.” - 아동학대전담공무원 A씨16) ▲ 전문성 부족으로 인한 현장에서의 어려움

15)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실 (2020년 10월 기준) 16) 최은서. 2020-12-14. 달랑 2주 온라인 교육 후 투입...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두렵다", 한국일보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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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들의 전문성 증진을 위해서는 우선 교육의 강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런 데 중요한 것은 그 ‘양’만이 아닌, 실질적인 ‘질’의 향상이다. 아동학대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렇다 할 패턴이 없으므로 사례별 심층분석이 상당히 중요하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했을 때, 보다 사례 중심적이고 참여자들의 능동적 판단이 강조되는 교육 의 확충이 필요해 보인다. 교육의 측면뿐 아니라 전문성 향상을 보장하기 위한 장기근속도 중요한 요소로 지 목되고 있다. 전담공무원 역시 여타 공무원들과 같이 순환 보직 제도 아래 놓여있다. 하지만 아동학대 대처에 있어서는 전문성을 토대로 한 심층적인 분석과 판단이 중요 하므로 장기근속을 도모할 수 있는 제도의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 기관 간 단절 이번 개정으로 인해 민간인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주축으로 이뤄졌던 아동학대 대응 체계 중 상당 부분이 공공으로 이관되었고, 현재는 공공에 의한 사례조사와 민간에 의 한 사례관리라는 이원화된 체계가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분화는 각 기관의 전문성 있는 업무수행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기관 간의 의사소 통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었다. 해당 개정에 대한 국회 입법정책보고서17)에 따르면 실제로 많은 현장 관계자들이 시스템의 분리가 가져오는 소통 및 정보의 단절을 우려하고 있었다. 실제로 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조사 결과를 전달할 때 정보가 누락되어 아동 보호전문기관 측에서 같은 사건을 재조사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연계 부족으로 인한 사례관리 기관의 재조사는 개정의 본래 취지와도 어긋날뿐더러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이중업무로까지 이어져 전체 아동학대 대응에 큰 효율성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17) 박선권.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과제와 개선방향-아동보호전문기관을 중심으로” 입법•정책보고서 51 호 (2020) 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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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사례를 이관할 때 생각보다 정보파악이 제대로 안 되어 기관에서 재조사를 하거나 문제를 새로이 발견하는 경우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 ㉯ 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사례관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조사시 정보가 불충분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심각한 사례에 대해서는 분리보호 등 적극적인 아동보호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례관리전담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조치를 미루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 ㉱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팀장

▲ 기관 간 의사소통 단절로 인한 피해

그런데 이러한 기관 간의 단절 문제는 개정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개정 전 부터 꾸준히 지적되어오던 문제이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사례조사를 분담하 는 체계를 두었던 과거에는 초동수사를 맡은 지구대 측에서 사건을 자체 종료하거나 미흡한 자료를 보내 사례 관리에 어려움을 빚었던 경우가 빈번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하나의 기관이 더 신설되어 버린 현 상황은 더 큰 혼란을 빚을 거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관 간 유기성 증진을 위해 많은 전문가가 입 모아 주장하는 것은 바로 ‘컨트롤타 워의 구축’이다. 각 기관의 전문성을 살리고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독립적 기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기관의 분화로 인해 기관별 책임 떠 넘기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되는 현 상황에서, 3개 주체가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신속한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리는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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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넘어 # 전국민을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아동학대 대응의 선결과제는 피해아동 발견율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는 이상 개입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신고의 활성화는 꼭 이뤄져야 할 과제 이다. 특히 현재에는 일부 신고의무자 중심으로 되어있는 아동학대 신고의무를 전체 국민으로 확대 적용한다면 아동학대 사각지대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그 의무의 특성은 벌칙 없는 강행규정18)으로 입법함으로써 벌을 위한 입법이 아 닌, 아동학대에 관한 국민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특별시·광역시·특별자치시·도·특별자치도, 시·군·구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여야 한다.” 19)

-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제10조제1항 (안)

의무는 결국에는 자연스러운 인식 증진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적극성 증진을 위해서는 신고의무화와 동시에 신고자에 대한 보호의 강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최 근, 신고자에 대한 가해자의 협박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번 정인이사건에서 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신고자 누설에 대한 처벌20)이 법으로 명시되어있긴 하지만 이것 이 제대로 시행되지는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고자는 신변 노출 등의 위 험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으며, 이는 고발 위축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므 로 적극적인 신고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신고자 보호체계 구축 방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18) 벌칙 없는 강행규정의 입법사례로는 어린이 안전사고 관련 ‘신고 및 협조 의무 등’에 관한 규정이 있음. (「어린이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제15조제1항) 19) 박선권. “아동학대 대응체계의 과제와 개선방향-아동보호전문기관을 중심으로” 입법·정책보고서 51호 (2020) 20)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62조 “아동학대 신고자의 신분을 누설할 시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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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인이 사건이 이슈가 되고나서 정인이의 이름을 매달은 법안들이 부랴부랴 쏟아 져나왔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사건 이후에 나온 법안만 20개를 거뜬히 넘긴다. 하 지만 이런 법안들을 보고 든든한 마음보다는 걱정과 의구심이 먼저 드는 것은 지난날 의 반복된 행태에 따른 학습된 반응일 것이다. 우리는 보여주기식 법안에 데인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천안 계모 아동학대치사사건으로 인해 지금 과 비슷한 내용의 법안들이 십수 가지 발의되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이는 것 그 이면, 그 너머를 살펴보아야 한다. 우선 법안의 내용 이 진짜 아동학대를 해결할 수 있는지의 질문이 필요하다. 제출된 법안들의 주된 목소 리는 가해자의 강력처벌과 즉각분리이다. 물론 피상적으로는 그럴 듯한 주장들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넓은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이들이 만사 해결책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 변호사는 피해자 강력처벌의 일환으로 법정형 하한을 올리거나 법정형을 높 이면 기소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높은 형량에 상응하는 증거가 확보되지 않을 시 오히려 무죄판결이 날 가능성이 커진다고도 말이다. 또 ‘즉각 분리’ 역시 현실에 대해서는 눈을 가린 채 하는 이야기이다. 현행법상 즉각 분리는 아동학대 신고가 1회만 있어도 가능하다. 지금까지 아동학대의 손이 수사망을 통과해 아동의 목을 졸랐던 것은 매뉴얼이 없어서가 아니라 매뉴얼이 잘 작동하지 않 았기 때문이다. 또한 즉각분리 그 이후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지금 당장도 원가정으로부터 분리된 아동들로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정원보다 수배가 넘는 입소 희 망자에 부대끼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데 전체적 조망 없이 단편적인 부분만을 바꾸겠 다는 시도는 오히려 피해아동들의 현실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전보다는 현실적합적인 체계의 구축이다. 하지 만 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이제야 공공에 의한 아동보호에 첫발을 뗀 우리나라인 만큼 이는 더욱 더디고 오래 걸릴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이러한 현실을 핑계 삼는 것이 아닌, 아직 갈 길이 먼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특히 정인이 사건이 변화의 끝이 아닌 시작임을 인식하고 이를 계속해서 주 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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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정인이 사건. 또다시 미지근해져 버린 아동학대에 관한 사회적 관심에 불을 지펴주 었고, 아동학대 대응 체계의 구조적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주었다. 그 런데 유념해야 할 점은 아동학대 관련 법제의 개정이나 구조적 변화만이 전부는 아니 라는 것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친권자의 체벌을 암묵적으로 인용 하는 유일한 국가였다. 수십 년간 존재해온 민법 제915조 ‘친권자는 그자를 보호 또 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의 규정은 아동학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미지근한 시선을 방증한다. 하지만 올해 1월, 정인이 사건 이후 부모의 징계 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처리되었고, 법무부는 체벌을 법적으로 명확히 금지하는 민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인식이 바뀔 때이다.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를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동시에 모든 국민이 아동학대 의무 신고자로서의 역할을 다한다면 아동보 호를 위한 구조적 변화는 꾸준히 탄력받을 것이다. 모든 아이는 행복하고 건강하며, 자신의 꿈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 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아이들의 희생에도 손을 놓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 터라도 수많은 정인이들의 희생을 되돌아보며 꼭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지금까지의,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수많은 정인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우리가 미안해. 우리가 바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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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수습위원 지원서 이름 생년월일 학과, 학번 관심분야 경력 주소 연락처 E-mail

지원동기

위와 같이 2021학년도 『한양』 교지편집위원회 수습위원 모집에 지원합니다. 202 년 지원자

일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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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리뷰 전쟁 부편집장 최유진 userid789@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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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쓸테니까’로 시작하면 일단 불안합니다. 별점이 뭐라고 꿈에서까지 나올 것 같아요.” – 자영업자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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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시대

▲ 배달어플 증가 추이

바야흐로 배달의 시대이다. 작년 한 해 동안 배달어플 결제 금액은 12조를 넘어섰 고, 그 성장세는 가파르기만 하다. 배달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어플에 입점된 매장 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동시에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고객들은 수많은 선택 지 중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다른 이용자들의 리뷰를 꼼꼼히 찾아보고 더 높은 별 점을 받은 매장에서 음식을 주문한다. 배달 어플 안에서는 별점과 리뷰가 음식점의 성적표가 되고, 고객에게는 선택의 기준이 된다. 매장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표가 완 전히 오픈되어 있는 배달 어플 속, 그들의 경쟁은 과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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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주들은 ‘리뷰와의 전쟁’을 치른다. 말 그대로 리뷰 하나 에 울고 웃는다.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진을 촬영한 리뷰, 핫치킨을 시켜놓고 너무 맵다며 짜증내는 리뷰, 서비스를 요구했는데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점 1점을 주는 리뷰 등의 이야기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자영업자들 은 혹여나 부정적인 리뷰가 쓰여질까 터무니 없는 요구사항에도 마땅한 대처를 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혹시 손님과 리뷰를 두고 설왕설래 하는 모습이 또 다른 부정적 으로 비칠까 인신공격에 가까운 리뷰를 간판 아래 그저 걸어놓아야만 한다. 때로는 리뷰를 둘러싼 감정의 골이 깊어져 점주와 고객의 살벌한 설전이 법정 싸움까지 이 어지기도 한다. 배달어플은 이용자에게는 한눈에 가게의 평점을 확인할 수 있는 편 리한 도구이지만 그 뒤에서 점주는 습관처럼 리뷰를 확인하며, 다시 별점을 복구할 생각에 한숨만 깊어진다. 리뷰를 사이에 둔 손님과 사장 간의 입장차는 쉽사리 좁혀 지지 않는다.

▲ 리뷰를 둘러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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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 연연하는 이유 # 리뷰란 리뷰는 손님과 점주를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로 쓰인다는 점에서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사장은 리뷰를 통해 소비자의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으며 피드백을 통해 서비스를 개 선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소비자는 자신이 구매한 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남김으로써 다 음 주문 시 더 나은 서비스를 기대하는 동시에 다른 소비자에게 자신이 겪은 경험을 공유 하는 공간으로 리뷰를 활용한다. 예비 소비자들은 이를 토대로 나에게 필요한 서비스인 가를 고민할 수 있으며, 리뷰는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게 하는 믿음직 한 선별 기준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돈을 향한 사람의 욕심은 리뷰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리뷰가 적거나 평점이 낮아 배달 어플에서 노출 순서가 뒤로 밀리면 점주는 절박한 심정 으로 리뷰해 줄 손님을 찾아 나선다. 맛집 블로거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리뷰를 써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그나마 양심적인 수준이다. 자영업 경쟁 속에서, 다른 가게보다 조 금이라도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리뷰를 조작하는 점주마저 생겨났다. 배달어플에서 좋은 평가만을 남기기 위해 업체를 통해 계획적으로 리뷰를 조작하는가 하 면, 심지어는 경쟁 업체에 부정적인 리뷰를 쓸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점주뿐만이 아니다. 리뷰/평점에 연연하는 자영업자의 상황을 알게 된 일부 악성 소 비자는 자신이 갑이 된 양 행동하며 리뷰를 빌미로 터무니 없는 요구를 서슴지 않는 것이 다. 평가하는 손님과 평가받는 점주. 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정당하게 요금을 받 는 관계에 있지만 리뷰 앞에서 점주는 ‘을’로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 리뷰 조작 마케팅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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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에 시달리는 자영업자 여러 업체의 정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포털사이트나 배달어플에서는 리뷰와 평점의 영향력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크게 작용한다. 소비자는 어플 속 평점과 리 뷰를 기반으로 음식점을 선택하므로 마케팅 회사를 이용하여 리뷰를 조작한 업체는 수많은 업체가 있는 리스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여 다른 업체보다 유리한 위치에 서 게 된다. 그렇다 보니 위기감을 느낀 다른 자영업자들은 더욱더 리뷰관리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와중에 부정적인 리뷰는 소수만으로도 평판에 큰 타격을 가한다. 음식점 을 운영하는 A씨는 “배달 앱에 악의적 리뷰가 달릴 때 매출에 영향이 갈까봐 우려된 다”며 “1점짜리 리뷰 하나가 가게 이미지에 큰 타격을 가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 이 받는다”고 밝혔다. 특히 아직 리뷰가 적은 가게의 경우 1점짜리 리뷰 하나로 하락 한 평점을 5점짜리 리뷰 몇십 개로 복구해야 하기에 점주는 부정적인 리뷰 하나하나 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리뷰를 쓰기로 약속하면 서비스를 주는 이벤트 등을 열어보지만 다시 평점을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이렇다 보니 일부 손님은 이를 악용하여 리뷰를 갑질의 장소로 이용한다. 심부름을 시키는가 하면 블로거라고 넌지시 알리며 양을 늘려달라고 멋대로 요구하고, 조금이 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으면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남기기도 한다. 한편 이러 한 갈등이 항상 소비자 때문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점주가 리뷰에 과하게 집착 한 나머지 부정적인 리뷰를 썼다는 이유로 소비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협박하는 사례도 있다. 솔직한 맛의 평가를 남기려 했거나 잘못된 일에 사과를 받고 싶었던 소 비자는 리뷰를 작성하였다가 큰 위협을 받게 되기도 한다. 이렇듯 피드백과 소통의 창구가 되어야 할 리뷰칸이 소비자와 업체 간 갈등의 장 으로 변질되고 있다. 배달 어플은 이를 관리하고자 욕설이 포함된 리뷰를 필터링하지 만, 노골적인 표현이 없는 이상 악성리뷰의 근절에 있어서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 한다. 특히나 점주와 배달 어플 관리자를 더욱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피드백과 거짓 으로 작성된 악성리뷰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있다. 악의적인 리뷰라고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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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그 표현 방식과 별개로 진심 어린 피드백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면 쉽게 리뷰를 삭제하거나 제재하기 힘든 것이다. 구조 속에서 리뷰칸의 갑을 관계는 정해질 수 밖에 없다.

▲ 배달앱 리뷰의 굴레 (출처: 더스쿱뉴스)

솔직한 피드백과, 평가의 권력 그 사이 # 소비자의 시선 앞서 언급했듯이 리뷰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은 솔직한 피드백과 악성 리 뷰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한 만 큼 이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 자신이 구매한 물품의 불만족스러운 점에 대해서 피드 백을 남김으로써 서비스 개선 방향성에 대한 의견을 표현하고 조언을 제공할 수 있 다. 이러한 면에서 리뷰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할 뿐 아니라 매장의 서비스를 개선 시키는 창구로서 기능하곤 한다. 또한 리뷰의 대다수가 긍정적인 리뷰임을 감안하면 리뷰를 통해 가게의 좋은 점을 칭찬함으로써 매장에 긍정적인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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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소비자는 리뷰를 작성함으로서 자신이 구매한 서비스 혹은 물품에 대한 경험을 다른 소비자와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리뷰를 찾아보며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해 합리적인 구매를 할 수 있다. 이처럼 리뷰를 작성하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기에 배 달어플은 엄격한 정책을 마련해 솔직한 리뷰를 작성할 수 있도록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 자영업자의 시선 예의바르고 합리적인 리뷰만 있다면 이런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부 소비자들로 인해 발생한다. 이들은 리뷰를 빌미 로 과도한 요구사항을 써놓는가 하면 그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낮은 별점을 남긴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7명이서 치킨 한 마리를 시키고 양이 적다고 투정하는 리뷰나, 치즈볼을 서비스로 주지 않았다고 3점을 주는 리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러한 터무니 없는 리뷰는 소비자들이 그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했을 때엔 그 황당함을 판단할 수 있지만, 이미 깎여나간 별점은 그 합리성을 판단하기도 전에 가게의 이미 지에 너무나 큰 타격을 입힌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맛에 대해 수위 높은 비난을 남긴 리뷰이다. 많은 사장 들은 “맛에 대한 리뷰는 항상 피드백으로 간주하여 겸허히 받아들여야 함을 알고 있 음에도 자세한 설명 없이 원색적인 비난만 있는 일부 리뷰들을 보면 온종일 리뷰 걱 정만 하게 된다”며 속상함을 토로한다.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진이 포함된 리 뷰를 받은 가게의 사장은 “맛있는 식사를 못 드신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 리고 싶다. 이 리뷰를 보고 어제는 조금 생각이 깊어져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며 “음 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사진을 보니 오늘은 마음이 무너져 죽을 만큼 힘들었다”라고 댓글을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텍스트로 소통하는 리뷰의 특성 상 비난 수위는 더더욱 높아진다. 이러한 악성리뷰는 불만사항을 전달하는 정도가 아 니라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고 업소에 악영향을 끼치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하 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한두 줄의 리뷰가 가게의 이미지를 좌우하니 자영업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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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댓글을 작성해 해명에 가까운 설명을 장문으로 남기곤 한다. 리뷰는 오로지 소비자의 입장만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라는 한계가 있음 에도 그것이 가진 영향력은 다른 요소에 비해 압도적이다.

# 좁혀지지 않는 갈등 배달산업이 크게 성장하고 요식업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짐에 따라 리뷰를 둘러 싼 소비자와 사장 간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간다. 몇몇 업주는 절박함을 담아 리 뷰 하나하나에 과하게 신경을 쓰며 관리하고, 정당한 피드백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리뷰 한두 줄에 울고 웃으며, 고소를 감행하기까지 한다. 일부 소비자는 불만사항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저 타인을 맹렬히 비난하는 것으로 분노를 표출하며 리 뷰를 남긴다. 사실 서로를 조금만 더 배려하면 해결된 문제이다. 점주과 소비자, 두 집단 사이의 소통의 단절과 이로 인해 좁혀지지 않는 입장차가 이러한 문제를 초래했다. 리뷰 칸이 갈등의 장소가 아닌, 다시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 음식을 쓰레기통에 담는 사진을 첨부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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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리뷰를 향해서 리뷰를 둘러싼 논란을 의식한 듯 배달 어플은 AI시스템을 이용해 거짓리뷰를 선별 한다고 자부한다.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리뷰만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다. 그렇지 만 AI 알고리즘도 완벽하게 리뷰를 선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점주의 억울 함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책을 주지 않는다. 대놓고 써 놓은 욕설이거나 리뷰가 사실 이 아니라는 입증을 하지 못하면 점주는 리뷰에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우리는 다시 리뷰를 소통의 장으로 돌려놓을 수 있는 여러 해결책을 생각해볼수 있다.

별점을 없애자 일부 자영업자들은 리뷰는 남겨놓되 별점은 없앴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마음 먹고 한 사람이 1점을 주면, 평점을 다시 좋은 점수로 되돌리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 과 리뷰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평점은 피드백의 의미는 옅어지고, 서비스를 그저 하나의 숫자로 점수를 매기듯 평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부 족한 점은 리뷰를 통해 충분히 전달할 수 있고, 평가하는 대상과 평가받는 대상에서 벗어나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별점을 세분화하자 현재 배달어플의 리뷰가 논란이 되는 것은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는 리뷰 칸에서 인신공격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 점을 보완해 자유 작성란을 없애고 대신 평가항목 을 세분화하여 별점이 피드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평가항목을 맛, 배달, 서비 스 등으로 세분화하는 방법이 있다. 요소별로 평점을 매긴다면 부족한 점을 쉽게 알 아차리고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점수가 아닌 단어로 별점을 표현하자 평가를 점수로 매기는 것이 아닌, 최고예요, 좋아요, 아쉬워요 등의 단어로 표현한 다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조금 더 완곡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의 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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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균을 과하게 감소시키는 현 시스템의 단점도 극복되어 많은 점주들의 불만을 해 소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순히 숫자로 서비스를 평가하는 것이 아 닌 사람에게 의견을 전달한다는 점을 상기시킬 수 있다.

배달어플의 시스템 개선 – 소비자 경고 시스템 자영업자 및 다른 소비자들도 리뷰 작성자를 신고하거나 경고를 줄 수 있는 시스템 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리뷰 작성자가 지금까지 작성한 리뷰를 볼 수 있 도록 하는 제도나 여러 업주와 다른 이용자에게 악의적인 리뷰로 경고를 받은 소비자 는 이용을 금지하는 방식을 도입한다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나 볼 법한 어처구니없 는 리뷰어들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 정성스러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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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시, 소통의 장으로 리뷰시스템은 애초에 점주가 구조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자리할 수밖에 없게 만든 다. 악의적인 리뷰가 아니더라도 소비자는 음식 한 끼 맛이 없어 부정적인 리뷰를 작 성한 것뿐이지만, 점주로서는 리뷰가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보니 그 한두 줄의 악평이 영업에 직격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일대 다수의 구조라는 점에서 점주가 자신의 입장을 당당히 펼치기도 어려운 분위기 또한 형성되어 있다. 시스템의 개편을 통한 규제는 이 같은 불균형을 조금이나마 완화해줄 수 있을 것이 다. 그렇지만, 어떤 방법을 채택하더라도 시스템적인 규제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 밖 에 없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의식 변화만이 답이다. 소 비자와 자영업자는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받는 수평적인 관계일 뿐, 어느 한 쪽 이 갑의 위치가 될 수 없다.

사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갈등이다. 리뷰는, 특히 배달 어 플에서 작성하는 리뷰는 가게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그것도 그 가게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다른 소비자들도 필연적으로 볼 수 밖에 없는, 간판 앞에 붙여놓는 메시지 이다. 핸드폰 타이핑 뒤에는 음식을 위해 노력하는 점주와 직원들이 있다. 오프라인 에서 직원들과 대면하고 있을 때 전할 수 없는 말은 리뷰 칸에서도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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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채식 편집위원 김지현 thejyeon08@hanyang.ac.kr

02 힙합 수습위원 이보미 onew524u@hanyang.ac.kr

03 사진 편집위원 황성주 saint95@hanyang.ac.kr


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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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채식

채식 A to Z 편집위원 김지현 thejyeon08@hanyang.ac.kr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열 명의 ‘비건 지향인’이 바람직하다” –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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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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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용기를 가져!

▲ 유튜브 비건 동영상 댓글

유튜브의 비건 영상 대부분에는 위 사진과 같은 댓글이 달린다. 고기를 먹은 자신 의 하루나 출연진들에 대한 조롱이 대다수고, 영상에 호의적인 댓글에는 언제나 싸움 이 벌어진다. 한국채식연합은 2018년 기준 국내 채식인구를 1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 고, 이는 2008년 추산했던 15만 명에서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이다. 이렇듯 채식을 하 는 사람들은 점차 늘어나는 한편, 이들에 대한 인식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동물성 식품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진행되는 만큼, 채식에 도전할 이 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채식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로 채식을 하고 싶어도 주저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혹은 채식에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육류를 섭취할 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학우들을 위해 『한양』이 채식을 다룬 기사 를 준비했다. 채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채식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를 살피 며 학우들이 채식에 조금더 친근하게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채식을 주저 하는 당신, 야 너두 채식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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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채식!

▲ 유튜브 비건 동영상 댓글

# 채식을 하게 되는 계기 채식을 하게 되는 계기는 매우 다양하지만, 크게 나누자면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건강이다. 동물성 식품 섭취 시 소화에 장애가 일어나거나 동물성 식품에 알레르 기1)가 있는 경우, 당연히 식물성 식품으로 구성된 식단을 짜게 된다. 또는 종목에 요구 되는 운동 능력을 기르기 위해 채식을 하는 선수들2)도 있다. 다음으로는 동물 보호이 다. 고기 섭취를 지양해 동물을 보호하고자 채식을 한다. 특히 동물들을 밀집 사육하여 생산량을 늘리는 공장식 축산업을 소비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체 에 주안점을 두고 채식을 택하기도 한다. 가령 가축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메탄가스, 가 축 사료의 원료를 재배하기 위한 열대우림 파괴 등으로 환경이 오염되기 때문에 이에 기여하는 바를 줄이고자 채식을 선택한다. 마지막으로 불교나 이슬람, 힌두교 등 종교 교리에 의해 동물성 식품 섭취가 금지될 경우, 채식 위주로 음식을 섭취한다.

1) 알·가금류, 유제품, 어패류, 육류 등 2) 울트라 마라톤계의 최정상 선수인 스콧 주렉, 육상선수인 모건 미첼 등 다수의 선수들이 채식을 통해 운 동 능력을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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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왜 가축이 환경오염을 발생시킬까?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축산분야는 대기, 기후변화, 토양, 수질 및 생물 다양성 등 사실상 환경의 모든 측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먼저 대기의 경우, 전 세계의 운송 부문에서 차지하고 있는 배출량보다 높은 수준 으로, 축산분야가 연간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의 18%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인위 적 암모니아 배출은 전체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산성비 및 생태 계의 산성화를 초래한다. 다음으로, 축산분야에서의 물 사용량은 전 세계적으로 인간이 사용하는 양보다 8% 이상 많으며 이들 대부분은 사료작물의 관개를 위한 것이고, 그 과정에서 수질오염을 야기한다. 이 밖에도 축산업이 환경에 끼치는 부 정적인 영향은 매우 많지만, 2013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식용을 위해 생산되 고 있는 농장 동물은 매년 약 700억 마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3)

# 채식 단계별 설명 '섭취'하는 음식에 따른 채식주의 유형 소, 돼지 등 적색육

닭, 오리 등 가금류류

해산물, 생선

달걀

유제품

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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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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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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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X

X

X

락토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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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X

페스코

X

X

폴로

X

채소, 곡물, 과일

X

플렉시테리언

3) 송정은. “축산업의 환경적 영향과 한국 환경법의 대응 ― 밀집형가축사육시설을 중심으로 ―.” 環境法 硏究 39.1 (2017): 4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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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채식주의의 단계는 어떻게 구분될까. 적색육, 가금류, 어패류, 가금류, 유 제품, 채소·곡물·과일 중 섭취하는 음식에 따라 주로 비건, 락토, 오보, 락토오보, 페스코, 폴로, 플렉시테리언으로 나뉜다. 채소만을 섭취하는 비건부터 채식을 하되 가끔씩 육류를 섭취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7개의 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며 이외에도 다양한 구분법들이 존재한다.

# 채식 음식 소개 편의점 라면

CU, GS25, 세븐일레븐 등 각 편의점에서 비건 식품 출시 풀무원의 정면, 오뚜기의 채황라면

아이스크림

나뚜루의 비건 아이스크림

디저트

스무디킹의 케이크와 머핀, 스타벅스의 비건 메뉴

햄버거

롯데리아의 리미라클버거와 스위트어스어썸버거

▲ 각 편의점의 대표적인 비건 상품군

최윤정 세븐일레븐 MD 는 비거니즘 시장이 조용하고 빠르게 확장할 것이라 확신했다. “편의점에서 오래 일해본 사람들은 알아요. ‘당장 판매가 아 주 잘 되진 않을 것 같지만 빨리 출시하자’ 싶은 제품이 있어요.” 실제로 콩불 고기 제품군은 세븐일레븐의 임원 시식회 등에서 큰 이견 없이 출시가 결정된 제품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4)

4) 신소윤.김지숙, “비건인지 모르겠는데”…그게 장점일까?, 한겨레, 2019.12.18.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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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이에 발맞춰 식품업계에서도 채식 상품 을 출시하고 있다. 실제로 풀무원의 비건라면인 정면은 4달 만에 200만 개가 팔리는 등 채식 상품에 대한 호응이 상당하다. 식품 업계 외에도 비건 식당 수도 증가하고 있 다. 천년식향, 다이너재키 등 호평받는 식당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유명 음식 프로그램에서도 비건 특집을 진행한 바가 있다. 채식 시장이 빠르게 확장할 것 이라고 확신한 업계 관계자의 말처럼, 채식 시장에 대한 전망은 매우 좋은 편이다.

채식을 향한 주된 염려 : 영양 # 채식만으로 모든 영양소를 두루 섭취할 수 있을까? 미국 영양학회는 “비건을 포함한 적절하게 계획된 채식주의 식단은 건강에 좋고, 영양학적으로 적합해 특정 질병들의 예방과 관리에 유익하다. 채식은 임산과 수유를 하는 여성들과 영유아기 아이들, 청소년들, 운동선수들까지, 모든 사람에게 적합한 식단이다.”라며 잘 짜여진 채식주의 식단은 모든 이에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다만 동물성 식품을 덜 사용할수록 식단을 계획함에 있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단백질은 이론적으로 식물성 식품 섭취를 통해 온전히 섭취할 수 있지만, 꼼꼼하게 식단을 짜지 않는 이상 필수 아미노산의 결핍이 발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칼슘과 비 타민 B-12 등은 식물성 식품에는 없는 영양소이기에 영양소 강화 식품이나 영양제를 통해 꼭 보충해주어야 한다. 따라서 채식주의자, 특히 비건은 영양제를 필수적으로 챙겨 영양 부족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신경써야 한다.5)

5) Melina V, Craig W, Levin S. Position of the Academy of Nutrition and Dietetics: Vegetarian Diets. J Acad Nutr Diet. 2016 Dec;116(12):1970-1980. doi: 10.1016/j.jand.2016.09.025. PMID: 27886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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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

오메가-3 지방산

완전한 단백질을 구성하는 동물성 식품에 비해 콩을 제외한 식물성 식품에는 1-2개의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한, 불완전한 단백질을 구성함. => 여러 식품을 다양하게 섭취하면 단백질 요구량 충족 가능 해조류, 아마씨, 호두, 카놀라유, 콩 등

아연

콩류, 곡류, 치즈, 넛츠류

칼슘

칼슘 강화 식품이나 영양제를 통해 해결

비타민 D

주로 햇볕에 말린 목이버섯과 표고버섯

비타민 B-12

• 동물성 식품에만 존재하는 영양소 • 우리 몸에서 적혈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며 세포, 신경계, 엽산대사에 필요한 영양소 • B-12 강화 식품이나 영양제를 통해 해결

▲ 채식주의자와 필수 영양소

결론적으로는 식단을 잘 짜고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면 완벽한 비건도 가능하다. 그 러나 영양제가 비건 건강의 전제조건이라는 점에서, 영양학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영양소를 일일이 신경 쓰면서 먹기는 무 척이나 힘들고, 자신의 건강상태에 따라 동물성 식품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도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채식을 하고 싶지만 주저하는, 혹은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채식 요일 혹은 채식끼니를 추천한다. 처음부터 완벽한 채식에 도전하기보다 천천히 채식 과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앞으로 어떤 음식 종류를 섭취할지, 채 식주의자 단계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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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을 넘어서 : 비거노믹스6) 채식주의자들 중 대다수의 비건은 음식 외에도 일상생활에 있어 동물성 원재료를 사용한 제품들을 지양한다. 이러한 비건의 특성에 착안해 근래에는 많은 회사들이 동 물을 이용하지 않은 여러 ‘비건’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출처: 각 홈페이지)

# 패션 동물에서 직접 얻은 가죽 대신 인조가죽으로, 천연 모피 대신 페이크 퍼로 제품을 만드는 등 동물의 희생없이 옷과 가방 등을 판매하는 브랜드들이 떠오르고 있다. 일 례로 ‘cruelty free’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잔혹함이 없는 비건 패션을 제안하는 비건 타이거와 인조가죽을 사용해 가방을 만드는 무르가 있다. 그러나 인조가죽을 생산하 는 데 필요한 화학적 물질들에 관해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가 남아있다. 동물 보호 면에서는 패션 업계의 이러한 행보를 환영하지만, 환경 보호 면에서는 인조 제 품들이 더 낫다고 확신할 수 없다. 폴리 소재를 이용한, 자연에서 분해되지 않는 재료 가 쓰이기 때문에 인조 제품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다.

6) 채식주의자(vegan·비건)에 경제(economics)를 합친 신조어. 채식주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제란 뜻 으로 채식을 비롯해서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고 물건을 만드는 전반적인 산업을 뜻하는 말. (출처: 한경 경제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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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뷰티 CJ올리브영의 ‘클린뷰티’ 선정기준 성분

파라벤, 아보벤젠 등 유해 의심 성분 16가지 배제 플리에틸렌글리콜 등 4가지 성분 배제 권고

동물 보호

동물성 원료 배제 원료 추출 과정에서 동물 학대 최소화

친환경

재활용 용이성 우수 등급 국제산립협회(FSC) 인증 콩기름 인쇄

필수

1개이상 실천

올리브영의 클린뷰티

헬스&뷰티 업체인 올리브영은 성분, 동물 보호, 친환경 세 가지 분야를 고려한 ‘클 린뷰티’ 코너를 만들었다. 클린뷰티에 선정된 브랜드 중 라운드어라운드, 로벡틴, 아 로마티카 등이 비건 뷰티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LF는 아떼, 아모레퍼시픽은 이너프 프로젝트 등 대기업들은 물론, 신규 브랜드들도 비건을 전면으로 내세워 여러 화장품 을 속속히 선보이고 있다. 이렇듯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뷰티 업계의 움직임 이 시작되고 있으며, 많은 소비자들은 이에 응하며 비건 화장품을 구매하고 있다.

# 자동차 자동차 분야에서도 인조가죽을 사용하지 않는 동향이 등장했다. 이러한 점이 적용 된 모델로는 테슬라 모델 3과 현대자동차 넥쏘가 있다. 테슬라 모델 3에는 가죽시트 와 스티어링 휠을 비롯한 차량 내부에 천연가죽을 전면 사용하지 않았고, 현대자동차 넥쏘도 식물성 인조가죽으로 시트를 제작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현재 버섯의 균사 체를 이용한 가죽을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비건 열풍은 패션과 뷰티에서 그치는 것 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좌)테슬라 모델 3 / ▲ (우)현대자동차 넥쏘 (출처: 각 홈페이지)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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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일단 해봅시다 멀지 않은 곳에 채식주의자들이 있지만, 이들을 향한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2018년에 열린 치믈리에 자격시험장에서 고기 섭취 금지 시위가 열 리는 등 극단적인 사건들로 채식주의자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는 사람들 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수에게까지 비난과 조롱을 아끼지 않는 것 은 잘못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채식을 바라보면 이들도 끼니를 채식으로 구성해서 챙길 뿐이고, 채식의 계기가 어찌 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지구 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선으로 인해 채식에 대한 진입 장벽과 고정관념이 만들어지고,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절대 실패하면 안 돼’ 식의 강박감만 안겨준다. 한편, 채식 단계 중 비건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비건이 아닌 ‘비건 지향’이라고 부른다. 비건을 완벽하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비건에 갇혀 동물성 원료를 먹었을 때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 이는 비건뿐만이 아니라 다른 채식 단계에서 도 마찬가지다. 어 떤 계기로 채식을 시작하든지 간에 엄격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스트레 스를 받기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 편하게 채식을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 기에 채식 단계가 아니더라도 채식요일이나 채식끼니를 통해 채식을 할 수 있고, 만약 다른 동물성 음식은 모두 괜찮지만 우유만은 포기할 수 없다면 우유는 마시는 채식을 해도 좋다. 혹은 음식은 시도하기 힘들다면 먼저 일 상상활에서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채식을 두려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건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면 쉬운 일부터 실천해 나가 면 된다. 비거니즘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좋겠다. 식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면 입는 것부터 시작 하면 된다.” - 유튜버 초식마녀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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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7일 생활기 도전 비건! 채식 기사를 기획하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나도 실제로 채식 생활 을 해보면 어떨까? 이전에도 가축이 일으키는 환경오염을 염려하며 채식에 관심을 가졌지만 고기 없는 삶이 쉽게 그려지지는 않았다. ‘언젠가 채식을 하게 된다면 페스코나 락토오보를 해야지’ 정도로 막연하게 생각했고, 행동 으로 옮기자니 실패할 것 같아 주저했다. 하지만 본편 채식 기사에서는 채 식하고 싶지만 머뭇거리는 학우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면서 막상 나 자신 은 왜 주저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채식을 하고 싶지만 머 뭇거리는 사람’ 중 한명으로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7일 동안이라도 비건 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어렸을 때 친척들이 필자만 빼고 고기를 먹었다는 사실에 방에 들어가 눈물을 훔쳤던 적이 있었다. 그정도로 고기를 좋아하 는 사람인데 비건 생활, 무사히 성공할 수 있을까? 먼저 비건 생활에 도전하는 필자는 서울이 아닌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기상 시간이 점심시간대라 아침을 먹지 않음을 밝힌다. 또한 본 기 사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담을 담고 있으므로 모든 비건을 대표하는 것 이 아님을 유의해주시길 바란다. 기자의 경험은 기자의 경험일 뿐 오해하 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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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비건 (feat. 동생)

2021

1

20

요일

비건날씨

?

비건 도전 전날

▲ 카카오맵과 배달의민족에서 비건과 채식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괏값

비건을 시작하기 전에 어떤 식단으로 생활할 것인지 미리 구상해봤다. 비건도 동물 성 재료만 섭취하지 않을 뿐 똑같은 먹고 사는 방식이기에 거창하게 식단을 짜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동물성 재료를 뺀 끼니를 챙기는 것은 사실상 인생 최초였기에 유 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그러던 중, 필자가 비건을 하기에 상당히 까다 로운 환경에 처했음을 깨달았다. 지도, 배달, 비건 등 각종 어플에서 비건 식당을 검 색했을 때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그나마 나오는 곳조차 거주지와 정반대 에 위치한 비건 카페와 비건 샐러드 1종을 파는 샐러드 가게뿐이었다. 결국 외부의 도 움 없이 직접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하는데, 문제는 필자의 요리 경험은 거의 0에 수렴 한다는 것이었다. 자취를 해본 적도 없고, 본가에서는 감사하게도 어머니께서 음식을 해주셨기에 그동안 요리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사실상 조리를 해서 밥을 먹었다. 어떡하지란 말만 반복하다가 결국 별 소득없이 비건 체험 당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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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1

요일

비건날씨

흐림

비건 1일차

▲ 점심 – 롯데리아 스위트어스 어썸버거

전날 아무런 계획도 짜지 못했기에 점심에는 롯데리아 비건 햄버거를 사 먹었다. 소스는 불 고기 버거와 비슷했고 가장 핵심인 패티는 씹을 때마다 콩고기 알갱이 하나하나 느껴졌을 정 도로 자잘하게 부서졌다. 패티 맛은 육고기와 비슷하면서도 누린내와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러 나 소스 맛이 강해서 크게 신경쓰이진 않았다. 다만 부서지는 식감을 좋아하지 않아서 불고기 버거가 더 낫다고 느꼈다.

▲ 저녁 – 시금치 무침과 콩나물국 / 칙촉의 유혹

저녁은 어머니의 도움으로 시금치 무침과 콩나물국을 먹었다. 가족들은 필자가 비건을 한다는 말에 “~은 먹을 수 있어?”를 계속해서 질문했다. 밥을 따로 먹지 않는 이상, 가족 구성원 중 한 명 이 비건식을 시작하게 되면 나머지 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필자의 동생은 우스갯소리로 “언니 때문에 7일 동안 비건으로 살게 생겼어”라며 빈정댔다. 지금까지 밤마다 군것질했는데 집에 있는 빵과 과자에 버터나 우유 등 유제품이 포함되어 서 1일 차 밤에는 과일 말곤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동생은 칙촉을 흔들며 포기하라고 말했 지만 첫날부터 포기할 수 없었기에 참고 귤을 먹었다.

오늘의 한 줄 : 동생 曰

“이것도 못 먹어? 언니 그냥 포기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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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

22

요일

비건날씨

태풍

비건 2일 차 크림파스타

▲ 점심 – 망해버린 크림파스타 / 저녁 – 채소 반찬

더는 요리를 피할 수 없었다.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메뉴 중 그나마 자신 있었던 것이 파스타였기에 심기일전해서 크림파스타 재료를 준비했다. 우유를 사용하지 않고 크림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캐슈넛을 갈아야 했다. 마트에 생캐슈넛이 없어서 볶 음캐슈넛을 사용했는데, 이게 요리 실패의 화근이 되었다. 나름대로 수습해봤지만 말 짱 도루묵이었다. “맛이 정말 ‘없다’. 無맛이다.”라는 동생의 맛평가가 정확했다. 점심 에 진이 다 빠져버려서 저녁에는 엄마가 해주신 채소 반찬을 먹었다. 밤에는 편의점에 가서 간식거리를 샀다. 버터와 우유가 없는 과자 중 좋아하는 제품 은 감자칩이 유일했다. 맥주도 마시려고 했으나 혹시 몰라서 동물성 원료가 포함되어있 는지 검색해봤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맥주 자체에는 동물성 원료가 없지만, 양조 과정에서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물고기의 부레인 부레풀이 쓰인다고 한다. 그래 도 다행히 좋아하던 맥주들 상당수에 부레풀이 없어서 선택지가 크게 줄지는 않았다.

tip : 바니보어 사이트(https://www.barnivore.com/)에서 음료를 검색하면 비건 여부를 알 수 있다. 소주와 막걸리는 대부분이 비건이라고 한다.

오늘의 한 줄 : 비건이

136 문화

힘든 게 아니라 요리가 힘들다


2021 년 1 월 23 일 토 요일

비건날씨

소나기 내리고 무지개 비건 3일차

▲ 눈을 감아야 했던 빵과 초밥 코너 / 비건 정예조

점심시간대에 할 일이 있어서 밥을 먹지 못했고, 오후엔 이마트에서 장을 봤다. 유 튜브에서 본 이마트에는 채식주의 코너가 따로 있어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 겠거니 하고 잔뜩 기대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채식주의 코너가 따로 있는 이마트는 전국에 23개점뿐이었고, 결국 필자는 이마트 곳곳을 쏘다니며 비건 식품을 찾았다. 또 동물성 재료가 포함되지 않은 상품은 예상보다 더 적었으며 기껏해야 있는 상품들 도 가격이 비쌌다. 단적으로 농심의 너구리 라면이 3,650원임에 비해 비건라면인 풀 무원의 정면은 4,980원이었다. 살 수 있는 비건 음식은 다 샀지만 부담스러운 가격에 비해 가짓수는 적어서 입안이 썼다. 저녁으로 풀무원의 정면과 채담의 비건 만두를 먹었다. 정면은 면이 일반 라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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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 정면과 비건 만두 / 딸기와 초콜릿 등반

별점 | 정면 ★★★☆☆ 만두두 ★★★★☆ 동생의 평가 | 맛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어딘가 부족한 느낌. 진라면과 비교하면 진라면의 20%가 부족 / 만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먹어도 꽤 괜찮았다

훨씬 빨리 불었다. 사진 찍기 전까지만 해도 면이 얇았는데, 한 젓가락 뜨는 순간 면 이 후두두 떨어질 정도로 금방 불었다. 국물은 채소 맛이 풍부했다. 또 깔끔해서 식사 후에 속도 더부룩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기가 들어간 라면 맛이 익숙해서인지 정면 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만두는 피가 쫀득했고 안에 채소와 당면이 꽉 차 서 만족스러웠다. 간식으로는 과일과 초콜릿을 먹었다. 피코크의 아몬드 바크씬은 비건을 겨냥해 출 시된 제품은 아니지만 동물성 원료가 포함되지 않았고, 아껴 먹었을 정도로 맛있었 다. 아몬드가 많이 씹히고 끝에는 쓴맛이 나서 크게 달지 않았다. 피코크의 솜절미도 먹어봤는데, 사르르 녹는 식감은 재밌었지만 맛은 취향이 아니었다.

tip : 아몬드 바크씬을 쪼개고 로투스 비스킷에 올려서 전자레인지에 20~30초에 돌려 먹어보세요. 천국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강.추

오늘의 한 줄 : 이마트 돌아다니느라 힘들었지만 이 또한 아몬드 바크씬을 얻기 위함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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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비건날씨

맑음 비건 4일 차

국물 떡볶이 *동물성 재료 제외

▲ 점심 – 두부 부침과 채소 반찬 / 저녁 – 국물 떡볶이

점심에는 두부 부침과 남은 채소 반찬들로 간단하게 먹었다. 저녁으로는 국물 떡볶 이를 먹었다. 어묵이 없었던 게 조금은 아쉬웠다.

▲ 후식 - 아이스크림과 캐슈넛을 올린 호떡

별점 | 계피호떡 ★★★☆☆ / 코코넛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 동생의 평가 | 기름이 조금 없어서 퍽퍽했고, 달지 않았음 / 아이스크림을 30분 동안 밖에 뒀다가 냉장실에 2시간 동안 넣은 다음 냉동고에 넣은 느낌. 이렇게 맛없는 아이스크림은 처음이었다.

피코크의 계피 호떡을 구워서 먹었다. 기름을 두르고 굽기만 하면 돼서 간편했 다. 근처 편의점에서 산 나뚜루 코코넛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곁들였는데 잘 어울 리진 않았다. 코코넛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은 아이스크림과 샤벗 사이 같았다. 사각 거리고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훨씬 빨리 녹았다. 맛은 필자의 취향까진 아니었다. 코코넛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입맛에 맞을 것이다.

오늘의 한 줄 : 2%가

부족한 듯한 오늘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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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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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비건날씨

맑음

비건 5일 차

된장찌개

▲ 점심 – 샐러드 / 저녁 – 된장찌개와 버섯

점심은 요리할 시간이 없어서 집에 있는 과일과 샐러드용 채소에 키위 드레싱을 뿌 려서 먹었다. 사실 들깨나 흑임자 드레싱을 사고 싶었는데 모두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 서 어쩔 수 없이 키위 드레싱을 골랐다. 저녁에는 된장찌개와 구운 버섯을 먹었다. 된 장찌개는 멸치 없이 다시마만 우려서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오늘의 한 줄 :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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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해

요일

비건날씨

흐림

비건 6일 차

떡국

▲ 저녁 – 떡국 / 야식 - 감자튀김

점심으로는 남은 된장찌개와 김을 먹었고, 저녁엔 떡국을 먹었다. 소고기를 안 넣어서 평소 먹는 떡국보단 맛이 심심했다. 후식으로는 감자튀김과 맥주를 먹었다.

오늘의 한 줄 : 내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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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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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비건날씨

맑음 비건 7일 차

감자전 ▲ 점심 – 감자전과 부추전 / 저녁 – 도토리묵

배추전

* 믹서기 대신 * 튀김가루 대신 강판사용 부침용 밀가루 *갈 때 물 첨가 X 사용

별점 | 머핀 ★★☆☆☆ / 파운드케이크 ★★☆☆☆ 평가 | 시간이 없어서 급하게 만든 느낌

▲ 후식 - 빵

점심에는 전을 부치고, 저녁엔 엄마가 도토리묵을 해주셨다. 점심에 전을 많이 해서 저녁으로도 먹었는데, 반찬이 우연하게도 막걸리 안주였다. 하지만 집에 있는 막걸리 의 동물성 원료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서 마시지 못했다. 후식이었던 스무디킹 의 비건 베이커리는 두 개 다 별로였다. 머핀은 밀가루 맛이 강하게 났고 파운드 케이 크는 눅눅해서 떡 같았다. 따지자면 파운드 케이크가 머핀보다 나았는데, 동생은 머 핀이 더 괜찮다고 해서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오늘의 한 줄 : 아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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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단 짜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 만해 # 힘들었던 점 인터넷 쇼핑을 누구보다 귀찮아하는데, 인터넷 없이 괜찮은 비건 음식 을 사는 것은 가시밭길 걷기와 다름없었다. 검색하는 수고로움은 차치하더 라도 ‘비건’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괏값은 한 줌 그 자체였다. 원하는 제 품을 주문하더라도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빨라 봐야 다음 날 아침이었고, 주말에 주문하면 최소 월요일에나 받을 수 있었다. 대도시 가 아닌 필자의 거주지가 문제였을까. 먹고 싶은 건 생각나는 순간에 먹어 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러지 못해서 답답했다. 식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을 맞이했다. 비건 전 가장 걱정했던 고 기는 신기하게도 전혀 생각나지 않았지만, 우유와 달걀이 의외의 복병이 었다. 우유와 달걀 없는 음식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래서 빵을 먹을 수 없었던 게 힘들었다. 비건 빵을 구하려면 비건 식자재보다 훨 씬 더 큰 인내를 필요로 한다. 특정 요일에만 판매 폼이 열리고 그마저도 만드는 시간과 배송을 고려하면 빵을 먹기까지 기본 3~4일이 소요된다. 최종병기는 김치다. 김치에는 최소 젓갈, 최대 생선 자체가 들어가기에 비 건 김치를 따로 담그거나 사야 했다. 일주일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서 김치 를 참겠다고 판단했던 첫날이 원망스러웠다. 편식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비건식에서는 두유와 가지, 표고버섯 등을 자주 사용하는데 모두 정말 싫어하는 음식 재료다. 덕분에 많은 비건 레시 피를 쓸 수 없었고, 식단을 쥐어짜느라 고생 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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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점 비건을 시작하고 소화가 잘되기 시작했다. 짧은 기간에 몸의 변화를 느 껴서 고기를 섭취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그래서 비건 이후 이틀간 고 기만 먹었는데, 첫 끼로 고기를 씹은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배가 찌릿찌 릿했다.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라 당황스러웠지만 저녁이 되자 사그라들었 다. 그 이후에는 통증은 없어도 어딘가 얹히는 듯 소화가 잘 안 되었다. 비건 전후로 필자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고기를 이전처럼 먹기가 꺼려진다 는 것이었다. 어찌 되었던 고기를 먹는 건 곧 소나 돼지 등 가축이 도축된 것 의 결과고, 그 가축을 기르는 동안 환경오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 실을 비건을 함으로써 몸소 느끼게 되자 고기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었다. 저 녁을 고민할 때나 약속 메뉴를 정할 때도 고기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비건을 지속해서 하겠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타공인 육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고기를 멀리하게 되어서 스스로가 낯설었다. 또한 음식의 간이 대부 분 심심해서 입맛이 굉장히 순해졌다. 비건 이후 한동안은 어떤 음식이든지 간에 짜거나 달았다. 다만 이러한 점은 필자의 요리실력으로 인한 것이다. 메 뉴 선정이나 음식 간을 다르게 한다면 얼마든지 자극적으로 먹을 수 있다.

# 소감 체험기를 기획할 때만 하더라도 99%의 확률로 실패할 것만 같았다. 그 렇지만 생각보다 비건은 힘들지 않았고, 칙촉의 유혹을 제외하면 ‘비건 때 려쳐야지!’와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현재는 주로 생선까지만 먹고 있 다. 문제는 개강이다. 기숙사에 살아서 요리를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되지만 앞으로도 최대한 고기 섭취를 줄이며 살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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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힙합

난 슬플 땐 힙합을 춰

“힙합은 삶과 밀접히 닿아있는 장르” - 음악평론가 김봉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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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위원 이보미 onew524u@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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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거대한 하위문화 ‘힙합’ - 음악평론가 배순탁

▲ 비드라마 TV 화제성 TOP10 (출처: 굿데이터)

Mnet의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 시리즈를 통해 힙합은 음지에서 벗어나 대중에게로 왔다. 벌써 9년 째 이어져온 <쇼미더머니>는 대중으로부터 지겹다 는 질타를 받았지만 보란 듯이 비드라마 TV 부문에서 화제성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힙합 음악은 연일 음악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수많은 래퍼들이 실시간 검색어 를 장악했다. 그들은 종종 방송에 등장해 얼굴을 알리고 있으며 <쇼미더머니>를 시작 으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다.1) 이러한 힙합의 흥행은 논란과 궤를 같이한다. 우리나라에서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힙합 의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솔직한 가사와 거침없는 래퍼들의 행동양식은 요즘 세대의 취 향을 저격했다. 하지만 이를 저속하고 도가 지나친다며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러한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내 래퍼들은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이미지와 지속되는 논란에도 힙합의 인기는 시들지 않고 있다. 오 히려 논란이 될 때마다 흥행의 불씨를 지피는 듯하다. 대체 힙합이 뭐길래 이렇게 인기 가 많을까? 시끄럽고 말만 빠르다는 비난에도 건재한 힙합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힙 합을 잘 모르는 초심자들을 위해 힙합의 매력이 무엇인지 힙합씬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관련 예시로 알아보고자 한다. 1) Mnet <언프리티 랩스타>·<고등래퍼>·<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V오리지널 <내 전공은 힙합>, JTBC <힙합의 민족>, MBN <사인히어>, MBC <KILL BILL> 등의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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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이란 무엇인가 힙합이란 무엇일까? 보통 힙합 하면 랩부터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힙합은 하나의 문화로, 랩은 그 하위 범주에 속한다. 백인이 주류였던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의 말은 랩으로, 춤은 비보잉으로, 그림은 그라피티로 발전했다. 랩, 비보잉, 그라피티 이들 요 소가 어우러져 힙합이라는 장르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디제잉이 있다.

# 디제잉(DJing)

▲ DJ가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을 조작하는 모습

디제잉은 DJ가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을 이용해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다. 자 메이카 출신인 DJ 쿨 허크는 1973년 미국으로 이주해 독창적인 디제잉 스타일을 선보 였는데 이것이 힙합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기존 DJ들과 달리 같은 노래를 담은 레코 드판 두 장을 이용해 곡 전체가 아닌 반주만 나오는 브레이크 구간만을 이어서 틀었다. 클럽 안의 사람들은 이 브레이크 구간에 열광했고 쿨 허크의 방식은 다른 DJ들 사이에 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클럽 문화가 발전하면서 디제잉이 힙합의 요소로 포함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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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랩(Rap)

▲ 공연장에서 랩하는 MC

DJ들은 브레이크 구간을 틀 때 흥을 돋우고자 짧은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노래를 틀면서 마이크를 잡기란 쉽지 않았다. DJ들은 선곡에 집중하고자 옆에 친구를 불러 구호를 외치게 했는데 이것이 래퍼의 원조 격인 MC의 첫 등장이다. 인상적인 구호를 전달하기 위해 맞춘 문장의 운은 라임이 되었고 짧은 문장은 가사가 되어 현재의 랩 형태에 가까워졌다. 클럽 안의 사람들은 MC의 공연에 열광했고 MC는 DJ 못지않은 인기를 얻었다.

# 비보잉(B-boying)

▲ 길거리를 무대 삼아 춤추고 있는 비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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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잉은 화려한 회전 기술과 찰나의 멈춤 동작을 자랑하는 춤이다. DJ의 브레이크 구간에 맞춰 춤추는 사람을 브레이크 보이 즉, 비보이(B-boy)라 칭하게 됐다. 10대 비보이들은 힙합 문화를 클럽 바깥으로 끌어냈다. 클럽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그들은 팀을 꾸려 거리로 향했고 다른 비보이팀과 댄스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1970년대 중 반 미국에 들여온 붐박스로 인해 비보이들의 길거리 댄스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 그라피티(Graffiti)

▲ 건물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

그라피티는 건물의 벽이나 시설물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쓴 글씨나 그린 그림을 의미한다. 이는 1960년대 중반 필라델피아 흑인 소년의 낙서로 시작되었다. 이후 그 라피티는 정치사회적인 구호를 나타내거나 갱단들의 구역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됐다. 1960년대 후반부터 뉴욕에서도 그라피티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DJ와 MC는 이 그라피 티가 그려진 야외에서 파티를 주최하곤 했다. 이는 그라피티를 미국의 음악 장르인 힙 합의 한 축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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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힙합의 발자취 힙합은 미국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바탕으로 한 ‘미국적인’ 음악 장르였기에 한국 에서는 이를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가난과 차별에 대한 저항 정신으로 무장한 힙합을 소비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자본이 필요하다는 모 순적인 논리가 작동했다. 실제로 한국 힙합 1세대로 알려진 음악가들은 강남의 중산층 집안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2) 이러한 한국 힙합의 역사는 크게 두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방송 플랫폼을 통해 힙합 장르와 대중성을 결합한 축과 홍대 힙합 클럽 문화를 형성한 축이다. 1997년 힙합 레이블3)인 마스터플랜은 홍대에서 라이브 클럽을 운영했다. 한국 힙합의 1세대 래퍼들 은 모두 이곳을 거쳐 성장했다.

▲ 홍대 클럽 마스터플랜 (출처: 한겨레21)

2) 김수아·홍종윤,『지금 여기 힙합』, 북저널리즘, 9p. 3) 각각 뚜렷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음반 회사를 개별적으로 이르는 말. (출처: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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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 힙합의 메카’라 불리던 홍대 클럽 마스터플랜은 양현석이 운영하는 대 규모 클럽에 밀려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대부분의 힙합은 PC 통신4)과 같은 온라인을 근거지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특히 소울컴퍼니 등 2000년대 중반에 인기를 누렸던 레이블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별도로 운영했는데 힙합 팬들은 여기에 공연 후기, 자작 녹음, 음원 및 음반 비평 게시물 등을 올리며 활발히 소통했다.

▲ 쇼미더머니3 1라운드 공연 모습 (출처: Mnet)

2010년대 이후 한국 힙합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단연 <쇼미더머니>다. 첫 시즌 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시즌 2부터 점점 시청률이 오르기 시작했고 지원자 수도 꾸준히 늘었다5). 그 결과 시즌 3을 기점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시즌 4부터는 프로 그램에서 발표한 곡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차지했다. <쇼미더머니6> 방영 당시 음악평 론가 김봉현은 “<쇼미더머니>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그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 을 수는 없다.”며 “한국힙합의 역사를 쓸 때 <쇼미더머니>를 중요하게 기록해야 한다.” 고 말했다.

4) 개인용 컴퓨터를 정보망이나 다른 컴퓨터에 연결하여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 방식을 가리킨다. 5) 시즌3에 3000명, 시즌4에 7000명, 시즌5에 9000명, 시즌6에 1만 2000여 명이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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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매력 ①내용 앞서 설명했듯 힙합은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랩을 통해 힙합이 널리 알려진 만큼 랩의 내용과 형식을 중심으로 힙합의 매력을 분석해보려 한 다. 먼저 랩의 내용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 사회 비판 주로 사랑을 소재로 다루는 대중 음악 판에서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는 힙합은 대중에게 새로운 감상을 가져다준다. 많은 래퍼들이 가사를 빌려 사회를 비판하곤 했 다. 이 때문에 힙합은 저항적인 장르로 불렸다. 이러한 배경에는 가난과 인종차별로 고 통받은 흑인들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몇몇 래퍼들은 이같은 흑인 사회의 이야기를 랩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소재로 다루는 래퍼들을 컨 셔스 래퍼(Conscious Rapper)라고 부른다.

박근혜 대통령님

손가락질과 저격질

아주 힘드시겠어

판 치는 진흙탕

지금 나라의 원인,

진짜 진흙탕에 빠진 배는

무엇이? Justify later?

조용히 침묵하는데 … 선장도 경찰도 기자도

Seriously 최순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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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다를 뿐 다 먹고 살기 위한

옆에서 뒤흔드니

수단일 뿐이었어

오왼 오바도즈 <Hypocrite> 中

제리케이 <Stay Strong> 中


국내에도 컨셔스 래퍼가 여럿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이슈나 정치적 현안을 가사 에 담아 랩을 통해 비판하곤 했다. 2016년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당시 래퍼 오왼 오바 도즈는 시국선언 트랙인 <Hypocrite>를 발표했다.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컨셔스 래퍼 제리케이는 <Stay Strong>에서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며 본인의 진보적인 정치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 디스문화 힙합 음악에서 디스문화를 빼놓을 수 없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며 화제가 된 디스는 과연 무엇일까? 먼저 디스는 단어 Disrespect에서 파생된 말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폄하하는 행위를 말한다. 실제로 디스는 일종의 배틀이다. 상대방을 향한 욕설과 폭로가 디스의 발단이 된다. 디스 대상으로 지목당한 래퍼가 대응하지 않으면 비판을 받기도 한다. 힙합 팬들은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디스곡을 기다리면서 디스전을 축제처럼 소비한다.

▲ <킹 스윙스> 공개 전 게시글 (출처: 스윙스 페이스북 계정)

국내 힙합에서 가장 화제가 된 디스전은 컨트롤 디스전일 것이다. 컨트롤 디스전 은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가 래퍼 빅션의 곡 <컨트롤(Control)>에 참여하면서 쓴 가사로 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래퍼 스윙스가 이러한 랩 배틀이 흥미롭다면서 <컨트롤> 비트에 국내 특정 크루를 비판하는 가사를 담아 <킹 스윙스>라는 곡을 공개했다. 이어 다른 래퍼들이 같은 비트의 곡으로 대응하면서 한국의 컨트롤 디스전은 이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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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 스웨거(Money Swagger) 또다른 힙합의 특징으로는 부를 자랑하는 ‘머니 스웨거’를 꼽을 수 있다. 국내 힙 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이하 일리네어)6)는 머니 스웨거의 대표 주자였다.7) 이러 한 일리네어의 음악은 사랑이란 주제를 다루고 겸손, 예의라는 집단적 도덕주의 에토 스를 중시하는 한국 대중가요8)와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사랑노래보다 이들의 돈 이야기가 더 진실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머니 스웨거는 점차 래퍼의 노력과 열 정 서사로 읽히게 되었고 이제는 일리네어 소속 래퍼 뿐만 아니라 여러 래퍼들이 돈 이야기를 가사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머니 스웨거는 일리네어의 특성에서 한국 힙 합의 특성으로 확대되었다.

WOO, 난 돈을 벌래 WOO, 니 지갑을 열래 WOO, 그래 그래 더 원해 돈 … 내가 번 돈 몇천만원 기별도 안 가지 절대 이젠 억을 가져 봐야 해 내 바램 안 바뀌어 절대

애쉬비 <WOO> 中

6) 2011년에 래퍼 도끼와 더콰이엇이 설립한 힙합 레이블로서 설립된 지 10년 만인 2020년에 해산되었다. 7) 김수아·홍종윤,『지금 여기 힙합』, 북저널리즘, 128p. 8) 집단적 도덕주의 에토스는 올바른 인성을 핵심으로 하는 케이팝의 구성 원리로 케이팝의 건정성의 핵심 이 된다. 김수정•김수아, 「‘집단적 도덕주의’ 에토스」, 『언론과 사회』, 23(3), 2015,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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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의 매력 ②형식 힙합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랩은 형식적 측면에서도 그 매력을 찾아볼 수 있다. 래퍼들은 많은 단어들을 정교한 방식으로 배치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그들 이 가사를 쓸 때 활용하는 대표적인 기법으로는 라임과 펀치라인이 있다.

# 라임(Rhyme) 라임이란 가사에서 문장의 첫머리나 중간, 끝 부분에 규칙적으로 위치하는 발음이 비슷한 글자를 의미한다. 라임의 사전적 의미는 각운이며 시에서 자주 쓰이는 각운을 발전시킨 형태다. 최근 경향을 살펴보면 라임도 다양한 종류로 나뉘는데 한국 힙합에 서는 원시적인 라임인 ‘완전각운(Perfect Rhyming)’9)이 자주 활용된다.

빛이 나는 Solo라니까 뭘 그렇게 재니 다 드루와 내 패기 170에 60kg도 안 되지만 국보 1호 MC

먼치맨,머쉬베놈,미란이,쿤디판다 (Feat. 저스디스) <VVS> 中

9) 단어 종결부의 모음 발음이 일치하면서 모음에 앞서 오는 음절은 서로 다른 각운. 예를 들어 ‘green’과 ‘spleen’은 완전 각운이지만, ‘leave’와 ‘believe’는 모음에 앞서 오는 음절이 같기 때문에 완전 각운이 아 니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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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쇼미더머니9>에서 화제가 된 <VVS>의 가사를 살펴보자. 위 볼드 처리된 가사 인 ‘재니’, ‘패기’, ‘MC’에는 서로 다른 자음과 같은 모음ㅐ/ㅔ와 ㅣ로 완전각운을 주고 있 다. 또한 인용된 가사 첫 줄인 ‘빛이 나는 Solo라니까 뭘 그렇게 재니’는 블랙핑크의 멤 버 제니의 솔로곡인 <Solo>의 ‘빛이 나는 Solo’를 오마주한 가사이며 ‘재니’는 제니를 언 급한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170에 60kg도 안 되지만 국보 1호 MC’라는 가사는 다이나 믹 듀오의 수록곡 <길을 막지마>의 가사 ‘170에 60kg 국보 1호 MC’를 오마주했다.

잠깐? 오마주(hommage)란?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한다. 영화에서 특정 작품의 장면 등을 차 용하여 해당 작가나 작품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힙합에서 오마주란 기존의 가사를 차용하여 아티스트에게 존경을 표하는 방식이다.

불한당가, 불안감과 억울한 밤 따위 금한다 따분한 감각들 아까운가? 그맘 다 안다, 그만 간봐 붉은 물든 한강과 남산 자락들, 안방같은 서울거리, 놀이판 벌인 불한당, 답을 안단다 용들 꿈틀한다 따분한 판 바꿀 한방같은 노래 받아라, 불한당가

넋업샨, 나찰, 피타입, MC 메타 <불한당가> 中

음영 처리된 가사 중 회색은 모음 ㅜ/ㅡ, 노란색은 ㅏ, 초록색은 ㅓ, 분홍색은 ㅣ로 라임을 맞춰 운율감을 형성했다. 가사들은 모두 서로 다른 자음에 같은 모음으로 완전 각운을 주고 있다. 피타입의 불한당가 가사는 라임과 의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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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펀치라인(Punch line) 듣는 이를 웃게 만들 만한 농담이나 말장난을 뜻하는 힙합 용어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해 중의적 표현을 만드는 언어유희 형태가 자주 쓰인다. 펀치라인 은 가사에 담긴 두 가지 혹은 그보다 많은 의미를 해석하는 재미가 있다. <쇼미더머니 3>에서 기발한 펀치라인으로 유명세를 날린 래퍼 올티의 <OLL’ready>를 살펴보자. 이 곡은 가사 전체가 펀치라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수의 펀치라인을 포함하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급 차이 나지 딱 봐도 Team YDG는 YG 사이에 D급이 낀 모양이지

올티 <OLL’ready> 中

‘급 차이 나지 딱 봐도 Team YDG는 YG 사이에 D급이 낀 모양이지’ 또한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 문자 그대로 YDG는 YG 사이에 문자 D가 끼어있는 모양새를 의미한다. (2) <쇼미더머니3>에서 올티가 속한 Team YG와 상대팀인 Team YDG는 대결 구 도를 이루었다. 이때 Team YDG를 본인의 팀인 YG 사이에 소위 D급 래퍼가 끼어있 는 팀이라고 디스한 것이다. 즉, 본인의 팀이 상대팀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나타낸 가사다. 실제로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게시글 등에서 가사 해석본을 찾아볼 수 있다. 네티 즌들은 가사 해석본을 보며 몰랐던 의미에 놀라기도 하고 정답을 맞힌 스스로를 대견 해 하기도 한다. 이 또한 힙합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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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문화’ 힙합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심심찮게 힙합의 요소를 찾아 볼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각종 미디어에서 송출되는 콘텐츠 모두 힙합과 맞 닿아있다. 우리가 입는 옷 또한 예외는 아니다. 힙합은 사회 전반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 유행어

▲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힙합 용어 (출처: SBS 동상이몽, Mnet GOOD GIRL)

래퍼들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은 어느새 유행어가 되었다. 디스는 이미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플렉스(Flex) 또한 마찬가지다. 플렉스의 사 전적 의미는 ‘구부리다’, ‘몸을 풀다’지만 90년대 미국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부나 귀 중품을 뽐내는 모습을 빗대어 플렉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플렉 스는 ‘과시하다, 뽐내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은 용어는 예능 프로그램과 더불어 기업의 상품명, 뉴스 기사 제목 등에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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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 각각 갤럭시 s21과 스프라이트 광고 (출처: 삼성전자, 코카콜라 코리아)

래퍼 릴보이와 스윙스는 <쇼미더머니9>에 출연해 각각 1등과 4등을 거머쥐고는 곧 이어 광고에 등장했다. 릴보이는 밴드 이날치와 함께 스마트폰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 고 CM송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재치 있는 가사로 화제가 된 해 당 광고 영상은 조회수 1200만회를 웃돌고 있다. 스윙스 또한 유튜버 입짧은햇님과 함 께 음료 광고에 출연하여 CM송을 제작했다. 힙합 음악이 광고에 사용되는 것은 단순 히 관련 프로그램의 흥행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광고처럼 래퍼가 직접 등장하 지 않고 힙합 음악만을 사용한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에듀윌, 현대카드, 미래에셋대우 등 다양한 기업에서 힙합 음악을 활용한 광고를 제작했다. 그렇다면 힙합 음악을 CM송에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의 해답은 랩이라는 장르적 특성에 있다. 말을 빠르게 전달하는 랩의 특성은 짧은 광고 시간 동안 많은 정보를 임팩트있게 전달할 수 있게 한다. 게다가 힙합은 짧은 문장을 반복하는 훅 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쉽다.10) 이것이 각종 광고에서 어렵지 않 게 힙합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이다.

10) 『힙합은 어떻게 힙하게 됐을까?』, 한동윤, 자음과모음, 19-20p,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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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 2019 트렌드로 꼽힌 딘드밀리룩 (출처: 딘, 키드밀리 인스타그램)

힙합은 음악 뿐만 아니라 패션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래퍼들이 입고 나온 옷은 인 기를 끌고 있으며 몇몇 래퍼들은 직접 브랜드를 런칭해 힙합 패션의 유행을 이끌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인 1990년대 초에 등장한 ‘그런지 룩(Grunge Look)’은 너무 크거 나 또는 너무 작은 혹은 낡아 보이는 의상을 착용하는 스타일이다. 국내에서는 이를 두 고 일명 ‘딘드밀리룩’이라 불렀다. 여기서 딘드밀리란 힙합 가수 딘과 래퍼 키드밀리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다. 이들의 트렌디한 그런지룩 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그들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명칭까지 유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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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한 번 들어보세요 국내 힙합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힙합 음악만큼은 굳건히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 다. 그 배경에는 힙합 음악만의 매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위 흔해빠진 사랑 이 야기 대신 사회를 소재로 삼아 공감을 이끌어내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서로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돈 자랑을 서슴지 않는 힙합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일상의 답답함을 해소한다. 힙합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어 시간에 배울 법한 각운으로 짜맞춰진 라임과 동음이의어로 익살맞게 표현한 펀치라인은 모두 우리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는 직접 들어봐야만 알 수 있다. 힙합 음악 한 번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는 어 느새 라임과 펀치라인의 의미를 찾아보고 비교해보며 힙합 음악의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힙합은 음악의 한 장르로 시작해서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로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의 일상을 이루는 음악과 광고 및 패션까지 모두 힙합의 영향을 받고 있다. 미디어 속 에서 유행하던 힙합이 미디어 밖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요즘, 어쩌면 우리는 우리 도 모르게 이미 힙합 안에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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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구도

야 너두 사진 잘 찍을 수 있어

1)

편집위원 황성주 saint95@hanyang.ac.kr

1) 이 글에 사용한 사진들은 모두 필자가 직접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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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진은 카메라의 심도 조절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심도에 의해 좌우된다. – William Albert All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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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사진 잘 찍을 수 있어요?

위 두 사진을 살펴보자. 같은 장소에서 고양이들을 촬영한 두 사진 중에서 어떤 사 진이 핸드폰으로 찍었고, 고가의 DSLR 카메라로 촬영했을까? 정답은 왼쪽 사진이 핸 드폰(galaxy S20)으로, 오른쪽 사진이 DSLR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다. 아마 핸드폰 으로 찍은 사진이 DSLR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훨씬 더 잘 나왔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핸드폰에 탑재된 카메라 기술은 전문 카메라와 비견될 만큼 발전했으며, 과거와 달리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실 제로 2017년 기준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의 수는 대략 1조 2000억 장으로 조사되었다.2) 카메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휴대폰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 고, 자연스럽게 사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우리 주변에서 한번쯤은 “아이 폰이 따뜻한 색감이 들어서 사람이 특히 이쁘게 잘 나와.” “아니야! 그래도 사진 찍는 데는 갤럭시가 더 좋지. 더 선명하게 나오거든” 와 같은 논쟁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 다. 이러한 논쟁이 있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소위 ‘인생샷’이라 불리는 멋진 사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2) 고동진 “전화거는 게 스마트폰 주요기능 아니다”, 아시아경제,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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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사진이 잘 나온다는 최신 스마트폰을 구입하거나 DSLR과 같이 비싼 전문적인 카메라를 구매하고 봐야 할까? 물론 비싼 카메라를 이용하면 좋은 사진이 나올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이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도를 잡는 것이다. 구도만 제대로 잡으면 어떤 기기를 사용하더라도 충 분히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필자는 사진동아리에서 꾸준히 활동을 했고, 적지 않은 시간을 취미로 사진을 찍었 다. 이러한 사진 경험을 살려, 아직 부족한 실력이지만 사진에 관심이 있는 학우들에게 구도에 대한 소소한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구도의 정의와 상황에 따른 구도 잡는 법, 그리고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습관에 대해 살펴보자.

구도란 무엇인가? 구도(構圖)는 원래 그림에서 모양, 색깔, 위치 따위를 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3) 사 진에서의 구도도 이와 유사하게 직사각형 모양의 프레임 안에 자신이 찍고자 하는 대 상을 배치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는 먼저 다음 두 가 지의 기초 구도를 잡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 수평/수직 맞추기 사진을 잘 찍기 위해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방법은 바로 수평과 수직을 맞추는 것이 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사진을 촬영할 때 간과하고 있는 점 중 하나이다. 다음 사진 을 살펴보자.

3)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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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한마당 앞에서 만난 고양이를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수평이 전혀 맞지 않 았기 때문에 무언가 어색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프레임의 가로와 지면, 뒷배경의 가로등과 프레임의 세로가 평행이 되도록 맞추고 다시 촬영을 해보았다.

같은 고양이를 찍은 사진이지만, 앞서 제시한 사진과는 다르게 어색함이 없고 훨씬 더 안정된 모습이다. 이처럼 수평선 및 수직선을 프레임과 평행하도록 맞추면 좋은 사 진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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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분할선 이용하기

평행을 맞추어 균형되게 피사체를 담기 위해서는 3분할선을 이용할 수 있다. 3분할 선이란 프레임의 가로, 세로를 각각 삼등분하는 선을 말한다. 3분할선을 이용한다는 것은 위 그림에 표시된 4개의 점을 중심으로 자신이 찍고자 하는 피사체를 배치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이 방법을 이용하여 사진을 찍으면 아래 사진과 같이 피사체가 거의 황금비를 이루면서 위치하게 된다. 이에 따라 사진에 형성되는 적절한 여백이 전체적 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괜찮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한 3분할선을 활용 하여 수평과 수직을 맞춘다면 앞서 언급했듯 보다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몇몇 카메라들이나 핸드폰에서는 처음 카메라 기능을 켰을 때, 이 3분할선이 보이지 않 을 수도 있다. 따라서 따로 설정해주어야 3분할선이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어 아 이폰의 경우 카메라 설정에 있는 격자옵션을 ON 상태로 해줘야 하며, 갤럭시의 경우 카 메라 설정에서 수직/수평 안내선을 활성화하면 사진 촬영 시 3분할선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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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에 따른 구도잡기 이번에는 앞서 배운 기초 구도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해 알 아보자. 크게 인물사진, 풍경사진, 음식사진을 찍는 방법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 인물사진 인물사진을 찍을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바로 사람이 피사체라는 점이다. 즉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잘 담아내고, 예쁘게 나오게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촬영해야 한 다. 이때도 3분할선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인물을 3분할선이 서로 만나는 지점 근처 에 배치하고, 인물의 시선 방향과 머리 위 공간에 여백을 남기면 보다 나은 사진을 얻 을 수 있다. 만약 기둥이나 표지판과 같은 것이 뒷배경에 위치할 경우에는 사람을 관통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찍어야 한다.

▲ 인물사진 예시 1

인물의 전신을 담을 때에는 발끝이 잘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본인의 시선보다 자 세를 낮춰(로우 앵글, low angle) 사진을 촬영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방법으로 인물을 사진에 담게 되면 다리가 길게 나와 전체적으로 키가 큰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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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더 부각하여 촬영하고 싶다면 인물에 가까이 다가가서 신체의 일부분만 나올 수 있도록 한다. 다만 목, 손목, 발목, 무릎 등 관절 부분에서 잘리지 않도록 유의하면 서 촬영해야 어색하지 않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 인물사진 예시2 - 무릎 윗부분이 나오도록 촬영함

# 풍경사진 풍경사진을 찍을 때에도 3분할선을 많이 활용한다. 맑은 하늘이나 광활한 들판 등 보다 웅장함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아래 사진과 같이 전체 면적의 2/3에 풍경을 배치해 야 한다.

▲ 풍경사진 - 바다와 지면, 그리고 나무와 구조물을 전체면적의 2/3에 담아 해가 지는 바닷가를 표현하고자 함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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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건물을 찍을 때는 지붕이나 성당의 첨탑 등 하늘과 만나는 끝부분이 잘리지 않 도록 유의하면서 피사체를 담는 것이 좋다.

▲ 지붕 부분이 잘린 구본관(좌)과 지붕부분을 다 담은 구본관(우)

# 음식사진 많은 사람들이 음식사진을 찍는 이유는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순간을 기억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음식사진을 찍는 방법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먼저 탑뷰(top view)는 음식의 바로 위에서 찍는 방법으로, 주로 푸짐하게 나온 음식을 표현하거나 전체적인 테이블 분위기를 담고자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때 접시나 컵의 모서리 부분이 잘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촬영하는 것이 좋다.

▲ 탑뷰(top view)로 찍은 돈까스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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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근접뷰이다. 특정한 피사체 하나를 더 부각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으 로, 특히 카페에서 예쁘게 담긴 커피나 빵 등을 촬영할 때 많이 사용한다. 특히 핸드폰 에서 인물사진 모드를 사용하여 근접뷰로 음식사진을 찍으면 주변 배경이 날아가면서 음식을 부각할 수 있다. 또한 음식이 최대한 많은 빛을 받을 수 있도록 방향을 잘 조절 하면 더욱더 예쁜 음식사진을 얻을 수 있다.

▲ 카페에서 근접뷰로 찍은 사진들

많이 보고, 많이 찍어보자 지금까지 간단하게 사진의 종류에 따른 구도 잡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물론 구도 잡는 방법만 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사진을 잘 찍을 수는 없다. 구도 잡는 방법 뿐만 아니라 좋은 습관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사 진 찍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습관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 잘 찍은 사진을 많이 보자 잘 찍은 사진들을 주의 깊게 많이 보면 사진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즉 좋은 사진들을 보면서 어떤 구도로 피사체를 담았는지 파악해보고, 그 구도를 염 두에 두고 비슷하게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 좋다. 좋은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 법 중 하나는 바로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참고하는 것이다. 특히 인스타그램에는 여러 사진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업로드하기에 손쉽게 사진을 접할 수 있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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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사진작가 그룹 magnum photogroup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좌) ▲ 대표적인 카메라 제조회사 캐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우)

캐논, 니콘, 소니 등 여러 카메라 제조사들의 공식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 이를 참고하여 사진을 찍으면 큰 도움 을 얻을 수 있다. 유명한 회화 작품들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앞서 설명했듯이 구도의 본질적인 의미는 사물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사진과 그림에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홍도의 풍속도첩을 보면서 인물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 참조해볼 수도 있고, 반 고흐의 <카페테라스>를 보면서 도시의 카페 거리를 담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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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도 <풍속도첩 中 춤추는 아이> (출처: 국립중앙박물관)(좌) ▲ 빈센트 반고흐 <카페테라스> (출처: The Bridgeman Art Library)(우)

# 사진을 많이 찍어보는 습관 어떤 것이든 잘하기 위해서는 많이 해봐야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처음 초등학교에서 곱셈과 나눗셈을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곱셈과 나눗셈의 원리는 깨우쳤을지라도 처음에는 계산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지속 해서 연습한 결과,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곱셈과 나눗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사진을 얻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까지 배운 구도 잡는 방법을 떠올리면 서 평소에 눈에 띄는 것들을 사진으로 담는다. 이때 찍은 사진 중에서 잘 나온 사진 들을 고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만약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지 못했다면 원하는 사진을 얻을 때까지 다시 사진을 찍어본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서서히 사진 실력이 늘어 멋진 사진을 많이 촬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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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혼자서 사진을 찍기 어렵거나 주변에서 사진 찍을 만한 대상을 찾기 어렵다 면 사진동아리에 가입하여 꾸준히 활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진동아리에서는 정기 적으로 출사를 나가 사진 찍는 연습을 많이 해볼 수 있고, 사진 찍는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사진에 관한 여러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진 촬영을 많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구도 잡는 방법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 굳이 머릿속에 구도를 염두에 두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진을 잘 찍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카메라와 친해지자 마지막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와 친해지자. 요즘 출시한 핸드폰 카메라에는 많은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이 기능들을 활용하면 예전과는 다르게 쉽게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갤럭시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는 대부분 음식사진 모드가 탑재되어 있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더 먹음직스럽고 예쁘게 보이는 음식사진 을 찍을 수 있다. 또한 사진은 그 순간을 담는 과정이다. 특히 고양이나 강아지를 찍거 나 일몰의 순간을 찍을 때 카메라 기능을 찾다가 내가 원하는 그 순간을 놓칠 때가 많 다. 따라서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 기능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내가 원하는 그 순간을 정확하게 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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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즐겁게 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진을 잘 찍고자 꽤 오랜 시간 동안 연습을 하면서 얻은 수확 중 하나는 바로 ‘시 선’이다. 수업이 끝나고 하숙집에 가는 길에 만난 노을, 점심을 먹고 난 후 마주친 작 은 민들레, 그리고 인문대 앞에서 만난 고양이들까지.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공간과 사물로부터 소소한 추억을 나만의 시선을 통해 담아낼 수 있다는 것. 그 것이 사진이 주는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이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자 지금까지 기초적인 구도와 구도 잡는 방법, 사진을 잘 찍는 습관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보았다. 구도란 사물을 프레임 안에 배치하는 것이 다. 수평과 수직을 맞추고 3분할선을 이용하는 방법에서부터 구도잡기가 시작된다. 담고자 하는 피사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구도 잡는 방법은 달라지며, 많이 보고, 많이 찍어보는 습관을 가져야 좋은 사진을 보다 많이 얻을 수 있다. 물론 사진 찍기에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시험공부법이 사람마다 다 른 것처럼 사진을 찍는 습관이나 구도 잡는 방법 역시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당신이 사진찍기를 겁내고 있는 ‘입문자’라면, 여기서 소개한 방법부터 시작해보면 점차 자신만의 사진 찍는 스타일을 구축해가며 사진 찍는 즐거 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를 더 전하고 싶다. 처음 사진을 찍었을 때 본인이 만족하지 못한 사진을 얻거나 주변에서 잘 찍지 못했다고 놀림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들어 사진찍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 는 사람들도, 잘 찍는다고 소문난 사람들도 모두 처음에는 사진을 못 찍는 사람들이 었다. 그러니 그저 즐겁게 피사체를 프레임 안에 담는 과정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꾸준히 사진을 찍었으면 좋겠다. 이제 황량한 겨울이 지나 파릇파릇한 봄이 돌아왔다. 다시 활발하게 사진 찍을 계 절이 찾아온 것이다. 이 글이 여러분의 사진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방역수칙의 준수는 필수다. 그러면 지금부터 즐겁게 사진을 찍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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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한양인이 INTERVIEWE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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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


참혹한 아동학대 사건들이 줄지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정부와 사회 각계각층은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동학대 대응체계는 여전히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양』은 계속해서 그 잔혹함을 더해가는 아동학대에 대한 한양대학교 학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고자 독어독문학과 18학번 전혜진 학우를 만나보았다. 독어독문학과 18학번 전혜진

편집위원 조유민 opjum@hanyang.ac.kr

1.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때문에 피해받는 아이들이 생겨난다고

아동학대 사건은 다른 어느 사건들보다

생각합니다. 또한 사회적 차원의 원인으

도 아프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가장

로는 아동학대의 신고 대처나 예방에 있

예쁨 받고 사랑받아도 모자랄 나이의 아

어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대받

이들이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았을 고통

은 것으로 의심되는 아이들을 그대로 집

을 생각하면 하루, 혹은 그 이상으로 마

으로 돌려보내거나 철저히 수사하지 않

음 한편이 굉장히 무겁곤 합니다. 특히

는 등의 문제는 가해자들을 돕는 것으로

최근 들어 아동학대 사건이 줄줄이 보도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되는 것을 보면서 가슴 속 답답함은 커져 만 갔습니다. 더 답답했던 것은, 저뿐만

3.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으로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분노하고 눈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 흘렸지만, 아동학대는 끊이지 않고,

당연하겠지만, 법과 제도의 변화가 가장

가해자들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최대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패턴 속

보호하면서 작은 조짐이라도 놓치지 않고

사건들을 볼 때면 참 안타깝습니다. 하루

철저하게 수사하게끔 법을 개정한다면

빨리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아동학대 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

살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합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약자인 아이들과 더

2. 아동학대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원인이

불어 주변 이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생각합니다. 작은 관심이 한 생명을 살릴

단순히 원인이라고 하면, 가해자들이 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변을

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둘러보고 관심을 실천하는 우리가 될 때,

저마다 다른 모습과 생각으로 살아갑니

아이들에게 좀 더 안전하고 포근한 사회를

다. 그런데 가끔,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짓

안겨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한양 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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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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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일기(日記, diary)의 순우리말

인생이란 편집위원 김지현 thejyeon08@hanyang.ac.kr

3학년을 앞에 두고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고 있다. 머쓱하게도 1학년 생 일 때 동기에게 받은 책이었다. 이제야 읽는 이유는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 기 때문이다. 여태껏 그러한 고민을 하지 않은 건 전혀 아니다. 단지 코로나19 덕분 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서 그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나’에 대해 생각했던 것뿐이었 고, 인생의 밑그림을 이제는 진지하게 그려보고자 책을 펼쳤다. 이런 나에게 날적이 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열혈 독자 시절부터 교지의 일원이 된 지금까지 가장 재밌는 코너는 날적이었는데, 그간 인생만 생각한 탓에 아무리 해도 가볍고 재치 있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결국 독자 여러분들이 재미없다고 느낄만한 나의 인생사를 풀기로 결 정했다. 언제부터일까, 아빠가 매번 신문을 읽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시사에 관심을 가졌 다. 어지러운 사회상을 보면서 이를 바로잡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 그렇게 초등학 생 시절 갖게 된 꿈은 놀랍게도 문화재청장이었다. 역사는 양파와 같았다. 알면 알수 록 재밌었고, 오늘날의 정치나 사회 현상들이 옛날 옛적 과거에도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 게 신기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무릎팍도사라는 예능 프로에서 유홍준 전 문 화재청장 출연 회차를 보게 되었다. 그의 화려한 입담과 역사와 문화에 관해 고민하 는 모습에 빠져 사회가 역사를 잊지 않도록 역사 분야에서 힘쓰고 싶다는 목표가 생 겼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교육부 장관을 꿈꿨다. 교육제도에 회의를 느끼면서 핀란 드나 독일과 같은 교육시스템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갑자기 철이 들었는지, 정치 인은 정말 아님을 깨닫고 교사를 해서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자고 생각했다. 왜냐 하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훗날 사회의 인재가 되어 사회 곳곳의 문제를 해결할 거 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성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내 성격으로는 아이들에게 바른길은커녕 잘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질책부터 할 게 뻔했다. 그렇게 진로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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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던 차에 영어학원 선생님께서 느닷없이 기자가 잘 어울린다고 하셨다. 기자? 기사 쓰고 욕먹는 사람? 기사를 보는 나조차도 기자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았다. 그 런데 왠지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의 사각지대를 조명하자, 그 래서 사회적 약자들도 안녕을 누리게 하자!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 정리되지 않은 채 있었던 삶의 모토는 수면 위로 떠올라 ‘사회의 부조리를 고쳐 더 나은 세상 만들기’로 정리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렇게 끝이 나면 좋으련만.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께서는 1학년 때 자주 아프고 비 실대던 내가 기자를 꿈꿔서 걱정하셨다. 워라밸이 없는 기자 생활을 감당할 깜냥은 건강한 지금도 없다. 생활은 둘째치고, 어쨌든 기자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써야 하 는데 둘 다 못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삶의 모토는 2학년 2학기를 지나며 간신히 꺼 지지 않은 수준이고 오히려 겨우내 고뇌하는 동안 내가 그간 기획이나 마케팅과 같은 분야에도 흥미를 가졌던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다는 평을 듣 는 내가 일반 기업에 입사한다고 상상하자니 너무나도 어색했고, 여태 고려조차 하지 않은 분야에 발을 딛는 것에 있어서 두려움이 있었다. 이제껏 품어왔던 사회 공헌적 목표와 비교적 이윤추구적인 관심사 간에 간극이 생 기면서 머릿속은 카오스 그 자체였다. 둘 다 할 수 있는 직업으로 무엇이 있는지, 있 다고 한들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도, 아예 새로운 직군을 택 할 수도 있다. 이제 3학년인데, 진로가 좁혀지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통 감도 안 잡힐 지경이니 머리가 아팠다. 고민은 잠들기 직전까지 날 괴롭혔 고, 지친 상태에서 어디라도 의존하고 싶어 책을 집었다. 그렇게 읽게 된 책에서 용 기를 얻었다. 인상 깊었던 대목 중 하나를 발췌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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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일기(日記, diary)의 순우리말

“… 알베르 카뮈의 인생을 생각해보며 자문해본다.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일은 내 삶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는가? 나는 어떤 놀이에서 즐거움을 얻고 살 았으며 어떤 놀이를 더 하고 싶은가?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며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가? 지금 사랑하고 사랑받는 방식이 만족스러운가? 누구와 함께 어디엔가 속해 있으 면서 서로 공감하고 손잡으려는 의지를 충분히 표현하면서 살고 있는가? 그래야만 할 이유도 없이 지레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산 것은 아니었던가?”

인생에 관한 고민은 늘 그래왔듯 다양한 경험에 부딪히고 좌절하고 깨지면서 끝없 이 진행될 것이다. 한 가지 고민을 끝내더라도, 또 다른 고민이 생기기 마련이다. 분 명 언제쯤이면 고민이 끝맺을지 의구심도 들고, 그 고민을 하는 동안 많은 고통이 수 반되겠지만, 위와 같은 물음들을 길잡이로 삼아 계속해서 떠올리며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다. 먼 훗날의 내가 이 글을 다시 읽었을 때쯤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 다.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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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권의 편집후기.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편집장 소다미 coramdeo0127@hanyang.ac.kr

2018년 여름부터 2021년 봄까지. 중간에 잠시기는 했지만, 교지는 틀림없이 저의 대학 생활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습니다. 저와 교지와의 진득한 인연은 배고픔으로 부터 시작되었답니다. 당시 여러모로 여력이 없어 생활비 대출 150만 원을 쪼개 여러 고정 지출을 제하고 나면 제 손에 월 12만 원이 떨어졌습니다. 지갑이 행복을 주는 것 은 아닙니다만, 너무 얇은 지갑은 마음마저 가난하게 만들더군요. 그래도 감사하게 교지와의 첫인상은 꽤 좋았습니다. 주린 배를 안고 오른 애지문에서 만난 18년도 첫 봄호 ‘돈키호테’는 스무 살 인생 최고 업적이 한양대 입학인 저에게 ‘냥대생이 발로 뛰 며 직접 만든 책’은 그 자체로 ‘한뽕’에 취하게 했지요. 배고픈 이야기꾼에게 저녁밥까 지 주는 교지에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수습위원으로서의 교지 첫인상은 대단히 무서웠습니다. 교지를 읽을 때도 느꼈지 만 교지 구성원들의 열정과 열의는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삶 다 제쳐두고 교지 만 하나 싶을 정도로 열정, 실력, 목소리 크기까지 대단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습니 다. 뭐랄까 그 사이 전우애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 덕분에 참 많이 자랄 수 있었 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대단해 보였던 선배들도 어린 나이였습니다. 젊은 20대 몇 명이 모여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펴내는 책, 가까이 보니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편집 권을 보장받은 교지 위원으로서 한양인의 창이 되어야 한다.’ ‘학생회비 값하는 글을 써야 한다.’ ‘중립을 잃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잘 짜여진 논설을 펼쳐야 한다.’ 등의 확고한 신념과 실천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의 선배님들을 보고 배우 며 느낀 것들을 짧은 글에 모두 담을 수 없어 아쉬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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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적이

일기(日記, diary)의 순우리말

그러나 제 개인의 성장과는 달리 지갑의 성장 속도는 너무 더뎠습니다. 개인의 사 정으로 인해 교지를 잠시 쉬었다가 패기롭게 돌아왔습니다만 멤버 구성이 많이 바뀌 어 적응하기까지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저는 이전 편집장님들처럼 대단히 열정적이 거나, 글 실력이 뛰어나거나, 생각이 깊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옛 친구들이 하나, 둘 떠날 때마다 상실감과 함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상당히 많이 느꼈습니 다. 당시 편집장님과 남아 있던 편집위원들, 그리고 새 식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곧 바로 다시 뛰쳐나갔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수고해주신 교지 식구들에게 늘 감사합니다. 지나치게 겸손하 지 못한 사람이기에 쉽게 부담을 내려놓지 못했는데, 끝날 때가 되어서야 여러분(지 금까지 함께 일했던 모든)의 진가를 알아본 거 같아 죄송할 정도입니다. 이전의 선배 님들께서 쌓아 주신 단단한 핵심 기조 위에 여러분과 우리들의 개성이 담긴 새 살을 덮으며 다채롭게 써 내려가는 한양인의 이야기가 참으로 소중하고 기대됩니다. 훌륭 한 이들이 펴낸 책을 보고 메시지를 얻어 새로 지원하는 수습위원들을 볼 때마다 설 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낍니다. 늘 놀라운 느낌을 주는 교지, 그리고 그 교지가 존 재 이유인 한양 독자님들께 감사합니다.

마지막 글입니다. 그만큼 멋있게 적어보고 싶었는데, 짧지만 좋은 메시지를 전달 하기에 저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대신 아홉 권의 책을 발간하며 느낀 소소한 것들을 나누며, 저의 교지 이야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184 문화


한양교지 편집위원회 광고비 사용내역(9,10,11월) 1. 113호 내부원고료 1,396,500원 2. 113호 외부원고료

0원

3. 비품구입비

0원

4. 기타

0원

합계

1,396,500원

* 금액 사용 기준 외부 원고료 : 외부 필진 원고료 및 한양 학우 기고 원고료 비품 구입비 : 사무용품 구입비 및 수리비 기타 : 문화상품권 지급비, 교비 발송비, 복사비, 송금 수수료, 교통비, 홍보비 등

* 2020년 9,10,11월 사용내역입니다. * 정확한 원고료 책정을 위해, 교지가 발행된 이후 pdf 파일을 이용하여 원고료를 책정합니다. * 본 114호의 원고료 책정 내역은 115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양 114호

185


편집후기

202

HAN 1 YAN G Spri n g

186 편집후기


소다미

최유진

또 한 권을 마쳤습니다. 114호와 함께하신

이번 호는 여러 조건으로 인해 다들 참 힘든

모든 기자분들께는 항상 미안하고 고맙습니

환경 속에서 집필한 것 같습니다. 복잡한 상

다. 사실 약속대로라면 다음 호까지 함께 하

황이 겹친 2020년을 돌아보며 잔소리가 얼

는 것이 맞지만, 제 개인의 사정으로 여기까

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습

지 하게 되어 몹시 유감입니다. 그럼에도 응

니다. 누군가의 시선을 감내하면서도 꼭 필

원해주시고 지지해주신 분들. 특히 선뜻 차

요한 말을 도맡아준, 어쩌면 나도 한때 부정

기 편집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받아 들어준

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제 삶의 몇몇 사

유진이에게 너무 고맙습니다. 한 건 딱히 없

람들의 노고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지만, 제 이름이 들어간 9권의 책을 통해 배

익숙함이란 문득 무서운 존재로 다가오곤

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교만하고 게

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자극을 마주하며

으른 저에게 좋은 채찍과 당근이 되어주셨

느낀 신선함이 지나가고 나면 찰나의 패기

던 지난 날의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와 호기심은 점점 옅어져 가고 권태와 의무

한양인 한 명 한 명이 만나 펴낸 『한양』들

감이 서서히 짓누르기 시작합니다. 지금 나

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늘 할 말이 너무 많

의 일상도 한때의 불타는 열정으로 시작한

아 지우고 지웠던 편집 후기인데, 마지막이

일이지만, 점점 그 불꽃이 희미해짐을 자각

라고 생각하니 되려 고맙다는 말 외엔 떠오

하는 순간엔 자책감과 스스로에 대한 불신

르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했던 모든 교지분

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럼에도 동시에 권태

들을 대표하여 제 편집장 바로 윗 선배 경모

감에 의해 흐려진, 항상 옆에서 나를 응원해

님, 후배 유진님, 늘 든든한 본성님, 사랑스

주는 가족과 친구들, 특히 교지 편집위원들

러운 스더님, 듬직한 교버지 성주님, 사기캐

의 존재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지현님, 교지 연예인 유민님, 큰 언니 보미

겨울이었습니다. 다시 봄이 된 만큼, 이번

님 모두 정말 고맙습니다. 선배님들께 배웠

학기는 모두에게 작년보다 조금 더 따뜻한

던 그대로, 양손 무거운 까까로 찾아뵙겠습

순간이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니다. 사랑해요

한양 114호

187


편집후기 구본성

일지, 생활인으로의 일로일지 여전히 가늠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별 다른 수 없이, 황정

부끄럼 많은 생애를 살고 있습니다. 요즈음

은 작가님의 말씀처럼, 계속해보겠습니다.

은 글만 쓰려고 하면 몇 줄 적지도 않아 반

그간 누구보다 힘들었을 편집장, 다미에게

성문이 되어 버립니다. 반성해야 할 행적의

진심으로 고생했다는 말을 전합니다. 그에

소치라기보다는 가닿을 수 없는 이상을 좇

못지않게 힘들, 유진이에게도 고생 많다는

는 낭만주의자의 필연적 비애이리라, 그렇

말을 전합니다. 다만 쓰인 직책만 다를 뿐,

게 한껏 자위해봅니다. 그렇지만 어떤 후기

마찬가지의 고생을 하는 편집위원과 수습위

들을 쓸 때마다 항상 무거워지는 마음을 어

원 모두에게 고생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

찌할 도리는 없는 듯합니다.

다. 늘 잔소리 많고 보태는 말도 많은 저와

어느덧 다섯 권 째입니다. ‘중고신입’이라는

글 쓰느라 힘들었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감

호칭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벌써 일여 년

내해준 교지 식구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

전입니다. 그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어느 정

씀을 올립니다.

도 떨어진 것인지, 코로나는 저희들의 시간 감각을 무디게 만듭니다. 그래도 꽤나 멀리

이에스더

온 것 같은데, 여전히 처음의 마음을 품고 있 는지, 또 처음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글을 쓰

이제 저도 교지실에 살림(?)을 차린 지 1년

고 있는지, 잠시 숨을 돌리며 뒤돌아봅니다.

이 다 되어 갑니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지

마지막 한 고비(?)를 남겨두고 잠시 교지를

난 겨울은 거의 비워두다시피 했지만... 그

떠나게 되었습니다. 4학년이 되어 역마살이

래도 입학하고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꼈을 리도 없거니와 그럴 여유도 없겠습니다

교지실입니다. 어느 순간 어수선한 듯 하면

만, 어찌 보면 역마살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서도 나름의 규칙을 갖추고 있는 그 공간에

저는 신영복 선생처럼 역마살을 ‘아직도 꿈

정이 들었어요. 저는 이번에 나름 제 전공

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꿈 찾아나서는 방랑’

을 살려서 교지의 역사를 좀 공부해봤습니

으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지를 떠

다! 교지실 한 공간에 가득 쌓여있는 과월호

나있는 시간이 과연 꿈 찾아 떠나는 방랑길

들을 하나하나 들춰서 50년 전, 40년 전, …

188 편집후기


또 지금까지의 교지가 어떤 글을 쓰고 싶어

황성주

했는지를 살펴보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었어 요. 어쩌면 이번 호의 특집 기사는 사실 철

수습기간을 거쳐 처음으로 편집위원으로 글

저히 기자 본인의 만족을 위해 쓰여졌던 것

을 쓰게 되었습니다. 편집위원이 된 만큼 더

인지도 모릅니다…….

욱더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되었던 것

항상 한 권의 책을 만들고 나면, 가장 기억에

같아요. 특히 이번호에 실린 글의 주제가 주

남는 것은 역시 고마운 교지 식구들입니다.

제인지라 명확한 사실을 전달하고자 노력했

제가 표현은 많이 못하고 있지만 교지실 사람

습니다. 제 글이 독자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들은 제가 정말 다 좋아하고.. 또 늘 감사한 마

도움이 되었기를 기도해봅니다.

음입니다 ♥ 특히나 이번 호를 작업하면서 교

이번 호는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지의 인연이 정말 귀하다고 느꼈습니다. 특집

집필과 퇴고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했습니

기사 인터뷰를 받기 위해 무작정 교지 선배들

다. 처음으로 온라인에서 모든 회의를 진행

님께 연락을 드렸었는데 그야말로 ‘환대’를

하다보니 부족한 점들도 있었고, 많이 힘들

받게 되어 얼마나 감사하던지!! 저도 언젠가

었지만, 교지 식구들 모두 어려움을 잘 이겨

시간이 많이 지났을 때, 교지실을 지키고 있

낸 것 같아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을 미래의 후배분들께 제가 받았던 것들을 되

지금까지 교지를 멋지게 이끌어준 편집장

돌려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다미에게. 정말 수고많았고, 고마웠다고 전

그리고……. 다미 편집장님!! 진짜 지금까지

하고 싶네요.

너무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정말 최고의 편

대학에 입학하고 별로 한 일도 없는 것 같은

집장 스티커를 붙여드리고 싶어요!! 지금 잠

데 벌써 4학년이라니. 시간은 정말 빠르게

시 쉬어가시는 두 분도 돌아오셨을 때 더 훌

흐르는 것 같아요. 이제는 서서히 학교를 떠

륭하고 멋진 편집위원(혹은 편집장^^)이 되어

날 준비를 해야한다니. 앞으로 바빠지겠지

있을 것이라고 완전 믿습니다! 무엇보다 새

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더 좋은 글을 써

로 편집장 되시는 유진 언니 짱짱 축하드리

보겠습니다.

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이 글을 보시 는 모든 분들 올해도 정말 파이팅입니다~!~!

한양 114호

189


편집후기 조유민

=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편집후기를 마치며 저의 긴 기사를 성심성

괄호를 친 것만 같은 2020년이 흘러가고 어

의껏 피드백해주시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

느덧 새해의 봄이 찾아왔네요. 어쩌면 무의

아갈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주신 모든 편집

미하게 흘려보낼 수 있었던 비대면의 한 해

위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 전합니다♡ 다음

였지만 교지 덕분에 의미 있는 자기 성장의

호에서 봬요!

시간으로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호는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

김지현

다. 코로나 19가 위세를 떨치며 모든 회의 를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고, 기사

더운 여름날 교지실에 발을 디뎠던 때를 지

의 진척에 어려움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럼

나 어느덧 새로운 학번이 입학하는 봄이 되

에도 무사히 114호를 완성해 낸 모든 교지

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난 만큼 글쓰

위원님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기 실력도 쑥쑥 늘어났으면 좋았으련만, 이

이번 호는 저의 ‘교지 사춘기’를 극복하게

번 호 작업 동안 교지실 식구들에게 민폐를

해 준 의미 있는 호이기도 합니다. 교지에서

엄청나게 끼쳐버렸네요. 겨우내 칩거 생활

기사를 작성하며 ‘내가 진정으로 쓰고 싶은

의 영향이 교지에 미친 것 같아 죄송스럽기

기사란 무엇일까’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만 합니다. 좋지 않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튀

하지만 이번 아동학대 글을 작성하며 우리

게 되었네요 됴르륵.. 편집위원분들에게 말

사회에 소외받는 이들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씀드린 사유 외에도, 사실 여러 가지 활동들

내는 기사를 작성할 때 가슴이 울림을 느꼈

을 꾸미고 있습니다. 계획했던 일을 못 할 수

고, 앞으로의 방향을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도, 예상치 못한 일을 할 수도 있지만 1학기

실제로 주제에 몰입하다 보니 많은 내용을

동안 잠시 쉬면서 좀 더 성장해서 오겠습니

전달하고 싶다는 욕심에 역대급으로 긴 기

다. 제가 한 학기를 어떻게 지냈는지 가을호

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교지의

편집후기에 자랑스럽게 쓰길 바라봅니다.

독자님들께서 꼭! 기사를 완독하여 아동학

그리고 몇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

대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공감해보는

니다. 22살이나 먹고 요리 경험 없는 딸래미

190 편집후기


도와주느라 고생한 엄마, 맛 평가하면서 기

고 있어요. 그래도 항상 정성스러운 피드백

자의 피가 흐른다고 자화자찬한 한입거리,

으로 격려해 준 교지 분들 덕분에 글을 무사

한 건 없지만 한 달 동안 줄기차게 싸웠던 아

히 완성할 수 있었어요! 완성이라는 거창한

빠, 교지에 나왔다 ㅋㅋㅋㅋ 부영이들도 고

단어를 붙이기엔 부끄럽지만 어쨌든 마무리

마워 ㅎㅎ 마지막으로, 소다미 편집장님 고

지었으니까요 ^^

생 많으셨습니다. 편집장님과 함께했던 짧지

교지 한다고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있던

않은 시간 속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영

저를 위해 치킨을 가져다 준 남동생과 후식

광이었습니다. 진심으로요! 우리는 김소이팀

으로 키위를 먹여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

으로 다시 만납시다 ㅎㅎ

을 전하고 싶네요. 또 여동생이 만들어 준

그리고 쉬는 동안은 독자 신분이니(아마도)

레몬에이드 덕분에 즐겁게 회의했던 것 같

여름호 읽고 독자엽서나 써볼까 합니다. 제

아요. 글 갖고 징징댈 때마다 위로해준 친구

마음속 베스트 기사를 작성해 주신 기자님에

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제 글은 가족들과 친

겐 밥 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특전 사양하

구들이 없었다면 쓰이지 못했을 거예요. 글

시지 마시고^^ 늘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해

한 편 쓰고 오버했네요. 다음 호는 꼭 두 편

주실 거라 믿습니다. 차기 편집장인 유진 언

을 쓰길 바라며 후기 마칩니다~!

니와 차차기 편집장이 될 귀욤뽀짝 교지의 미래님을 비롯한 교지 사람들 모두 파이팅!

교지 4랑

이보미 교지 지원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호의 편집후기를 적고 있네요. 이번 교지 활동은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되어서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정확히는 제 게으름 때문인데, 코로나라는 핑계가 있어 한층 더 게을러지

한양 114호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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