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째 뉴스레터입니다.

Page 1

This is 28th..

Letter from Banteay Prieb

Vol. 28 반티에이 쁘리엡 2017. 6월에서 8월



Contents [Letter from BP]크리스토프 [BP Focus] 특수교육반 졸업식 [BP Talk] 학생 쏙지엇 [Interview] 윷 선생님과 아웃리치 팀 [Photo] 꼼뽕싸옴 나들이 [BP News] 6월부터 8월까지 [BP Information]

발행인 권오창 S.J. 편집인 김여름 저작권 JSC(Jesuit Service Cambodia) 반티에이 쁘리엡


[Letter from BP]

두 달 전 캄보디아에 온 후로 거의 매일 밥을 주식으로 먹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음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함께 먹었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바뀌었죠.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지내 는 지금도 밥을 먹는 것는 여기 지내는 모든 학생들과 가까워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 다. 때때로 저는 학생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합니다. 제가 캄보디아 어를 더 잘했다면 좀 더 많 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겠지요. 더욱 알맞게도 저는 학생들이 요리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특 수 교육 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 일과 중 하나는 학생들이 정성으로 만든 음식을 맛보고 평가 하는 겁니다. 제가 정말 즐기는 일이죠. 그렇다고 봉사자로 와서 온종일 먹으면서 시간 을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소반’과 ‘마오’라는 두 학생을 주로 맡아 일하고 있습니다. 두 학생 다 대하기 쉬운 편 입니다. 소반은 말을 잘 못하지만 제가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캄 보디아 어 실력을 고려하면 오히려 소반을 만난 게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캄보디아에 오면서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 기 위해 최대한 오픈 된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여 지적 장애인분들과 일해 본 실제적인 경험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언어를 배우지 않 은 상태에서 제 의도를 말하고 소통해야 했죠. 사실 이 모 든 게 어떻게 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끝에 가 선 그게 잘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이지만 편안해졌고 소반 과 마오와는 친해져서 페이스 북으로도 친구를 맺었습니 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한테도 제가 그렇게 큰 짐이 되는 건 아닌 거 같네요.


프의 편지 -부제: 음식의 중요성

r

e t s n o M Food

독일에서 온 봉사자 크리스토프 호프만(19살)은 오자마자 한 끼에 5 그릇의 밥을 먹어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특수 교육반의 소반과는 서로 주먹을 나눌 정도로(?) 가까워 보입니다. 현재 오 전엔 특수 교육반에서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일하 고 있습니다.

브쭘번이 다가오면서 요 며칠 동안 축하파티가 자주 열렸습니다. 학생들은 즐거워하며 곧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죠. 특히 소반은 집에 가서 요리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저와 함께 요리책을 준비했습니다. 소 반은 매순간 신나있었고 심지어 휴가 전에 열린 댄스파 티에서 전 소반을 춤추게 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 다. 끝에 가서 소반은 춤을 멈추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저 를 춤추게 하려고 하더군요. 사실 저는 캄보디아 음악 에 춤추는 것보다 캄보디아 음식을 먹는 걸 훨씬 즐깁 니다만, 소반이 끈질기게 고집했기 때문에 결국 제 최 선을 다했습니다. 보아하니 소반과 다른 사람들을 전혀 만족시킨 것 같진 않지만요.

요즘 소반이 계속 제 긴 머리를 지적해 서 결국 이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 고 지금 전 금방이라도 스님이 될 것처 럼 보이네요. 뭐, 소반은 행복해 보입니 다. 그게 제가 이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이유이니 됐죠. 그리고 운 좋게도 아직 까진 제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나는 중입 니다. 전 소반과의 우정이 지금처럼 순탄하 게 지속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게 제가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하는 일들을 더욱 즐겁게 하거든요! 소반 & 크리스토프 & 마오


[BP Focus]

5월 31일, 특수교육반 (지적장애반)에서 첫 졸업생들을 위한 송별 2015년에 입학하여 무사히 2년 동안의 교육을 마친 7명의 학생들 직원들과 선생님들, 신부님들이 자리했습니다. 같은 기수로 입학했 Farm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티응과 라비도 참석했습니다. 지적 상으로 하는 교육은 BP애서 처음이었기에, 그리고 단순히 기술교육이 선생님들이 함께 생활하며 교육이 이뤄졌기에 2년 반은 모두에게 쉽 때문인지 졸업식이 더욱 감동스럽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학생들을 들과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속삐, 뽀이, 취본, 리훠, 나로, 티응, 라 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특수 교육반 첫 기수 졸업식 2017.05.31. ▲왼쪽부터 나로, 리훠, 티응, 쏙삐, 취본, 뽀이, 라비.


◀ 화이트보드에 함께 입학했던 다른 학 생들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졸업생에게 요리책과 농업책을 만들어 선물해 주시는 '팔라' 선생님.

◀미용반 학생들의 도움으로 오늘따라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뽀이', '쏙비' 두 여 학생입니다.

▶2년동안 동거동락한 친구들입니다.

◀ 많은 선생님들과 직원들이 함께 축하 했습니다.


◀ '나로'가 그동안 집에서 따 뜻하게 돌보아주신 '타' 선생님 께 큰절을 올리고 감사의 인사 를 합니다.

▶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에 정이 많은 '쓰레이 온'의 눈에선 눈물이 흐릅니 다.


입학 이후 입학 했을 당시 모든 특수 교육 반 학생들이 일상 생활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습니 다. 대부분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그런 교육이나 기회를 주지 않았기에 간단한 빨래, 청 소, 샤워, 이닦기 등 기본적인 것들을 혼자서 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3개월동안 학생들은 집중적으로 일상 생활 교육을 받았습니다. 3개월 후 학생들이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선생님의 지도가 필요했지만 스스로 청결을 유지하고 청소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습니다. 기본적인 일상 교육은 계속 받으면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밥을 짓는 것부터 시작하여 간단한 요리를 배우고 본인이 좋아하는 요리 위주로 만들어서 시식했습니다. 학생들 개개인의 역량에 맞춰 요리 난이도를 조정 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좀 더 전문적인 기술들을 배웠습니다. 농업 교육은 모든 학생이 참가했지 만 리훠나 라비, 티응 처럼 잘 따라가고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은 더 전문적으로 배웠습 니다. 커피를 만들고 파는 일도 배웠습니다. 돈 계산을 하고 배달하고 손님들과 소통하는 법을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뽀이와 쏙삐가 카페 일을 배웠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학생들이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과 의 소통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취본의 경우 이제 눈도 마주치고 질문에 대답도 하고(언 제나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길에서 마주치면 말을 걸기도 합니다. 눈 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전혀 하지 못했던 전에 비하면 아주 큰 변화입니다. 뽀이, 리훠, 라 비의 경우 가장 큰 변화를 보여줬습니다. 나로 또한 발전이 큰 학생입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노래를 좋아함) 특히 요리를 아주 잘했는데 문제는 한가 지 일에 집중을 못하고 또 청결을 유지하는 데 약했습니다. 티응은 특수 교육반에서 배 우는 속도가 아주 빨랐습니다.


졸업 이후(3개월 후) 티응과 라비의 경우 1년동안 NEW FARM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3개월간 매주 하루 동안 선생님이 NEW FARM을 방문하여 라비와 티응이 어떻게 일하는지 관찰하 고 질문하고 같이 일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가르쳐줍니다. 3개월 후엔 이주에 한번씩 방 문하고 반나절 동안 시간을 함께 보내며 follow up합니다. 농업에 필요한 기술도 알려주시 지만 일상 생활도 체크합니다. 뽀이는 졸업 후 Hagar organization 에서 커뮤니케이션에 관련된 3개월 코스 트레이닝을 받고 있습니다. 쏙삐는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취본 다음으로 지적 장애 정도가 심했던 쏙삐지만 집안일을 잘 해내고 이제 조카들을 돌보며 지낸다고 합니다. 나로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두 분이 일을 나가실 때 문을 잠그고 가기 때문에 주 로 집안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취본은 어머니와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닭장 청소도 하고 있습니다. 특수 교육 반에서 농업 기술을 집중적으로 배운 리훠는 집에서 작은 밭을 가꾸고 있습니 다. 닭들을 기르고 채소들을 밭에 심어서 기르는 중입니다. 지적 장애 학생들은 졸업 후 학생들의 상태가 교육 받기 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계속해서 세세한 지도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때문에 졸업 이후 초반에 정규적으로 방문하여 살펴보 고 피드백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아직 특수교육반 졸업생들을 집중적으로 follow up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졸업생들을 방문하 는 아웃리치 팀이 있지만 워낙 일이 많기 때문에 따로 특수 교육반 졸업생들을 follow up 하려면 집을 방문할 수 있는 차와 인력이 필요합니다. 졸업생들을 위해 세웠던 졸업 후 계 획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걱정이 됩니다.

by 팔라 선생님

◀졸업 후, 물리치료사와 농업반 선생님과 함게 리훠집에 방문하여 피드백해주시는 팔라 선생님.



Hopeful


[BP Talk]

학생 쏙찌엇 첸 쏙찌엇은 10번 집에서 가장 맏언니 입니다. 성실하고 동생들을 잘 챙겨서 다른 여학생들이 엄마라고 부르면서 따릅니다. 재봉 반 학생인 쏙찌엇과 함 께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통역은 쏙 찌엇의 집 선생님이신 씨야 선생님 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인터뷰어: 가족들 소개를 해주세요. 쏙 찌엇: 저는 5자매 중 둘째입니다. 부모님은 꼼퐁톰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 사를 지으세요. 농사짓는 땅은 작아서 비가 많이 오면 벼들이 다 쓸려가곤 해 요. 다른 자매들은 다 결혼해서 가족들과 함께 태국으로 건너가 일하고 있어요. 2년에 한번씩 명절 때만 다같이 모여요. 가족들과 사이가 아주 좋아서 멀리 있 어도 전화로 자주 연락을 하죠. 인터뷰어: BP에 오기 전 생활은 어땠어요? 쏙 찌엇: 여기 오기 전엔 집에서만 있었어요.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 는 등등 집안일을 도왔죠. 공부는 배운 적이 없어요. 학교는 멀리 있고 가려면 작은 강을 건너야 했어요. 다리가 있지만 오래된 것이라 잘 흔들려서 걷지 못하 면 건널 수 없었어요. 인터뷰어: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쏙 찌엇: 마을 사람들과는 다같이 가깝게 지냈어요. 같이 밥도 자주 먹고 많은 걸 함께 나누는 사이에요. 쫄츠남(캄보디아 새해명절)때 집에 돌아가니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못 봤다며 밥 먹고 가라고 많이들 집으로 불렀어요. 마을에 살며 장애를 가졌다고 차별을 느껴본 적은 없어요. 씨야 선생님: (인터뷰어에게 영어로) 쏙지엇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이렇게 마 을 사람들이 잘 대해주는 게 흔치 않아요. 다른 학생은 장애를 가졌다고 마을 사람들이 차별하고 잘 대해 주지 않아 힘들어 했어요.



인터뷰어: 장애는 언제 갖게 되었나요? 쏙 찌엇: 한 살쯤 됐을 때 열이 나고 토를 하며 크게 아팠어요. 병원에서 다리 쪽에 주사를 맞 았는데 그게 잘못된 건지 그 다음부터 걷질 못 했어요. 다리에 감각은 있는데 힘이 들어가질 않아요. 인터뷰어: 어떻게 BP에 대해 알게 됐나요? 쏙 찌엇: JSC(캄보디아 예수회 봉사단) 꼼퐁톰 지부를 통해 휠체어를 지원 받으면서 BP에 대 해 듣게 되었어요. 한 직원이 장애인을 위한 기 술 학교에서 공부해 볼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 죠. 부모님께 여쭤보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지 만 전 쉽게 결정을 못하고 망설였어요. 그러던 중, 아웃리치팀 윳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셔서 저와 부모님께 BP에 대해 더욱 상세히 설명해 주셨어요 그 얘길 듣고 여기 오기로 마음을 정 하게 됐어요. 인터뷰어: 다른 기술 수업 중에서 왜 재봉반을 선택했어요? 쏙 찌엇: 집에 있을 때 어린 조카들을 위해 바 느질을 해 옷을 만들어왔어요. 재봉기가 없어 서 손으로 직접 재봉했지요. 재봉 기술을 따로 배운 적은 없고 그냥 기존 옷을 보고 따라 만들 었어요. 다른 일 안하고 꼬박 하루 종일 바느질 하면 어린아이 옷 하나가 완성 됐어요. 재봉틀 은 BP에 와서 처음 사용해봤어요. 기계를 사용 하니 훨씬 쉽고 빠르지만 재봉틀을 돌릴 땐 좀 무서워요. 잘못 하단 손이 다칠 수 있거든요. 잘 하진 못해도 배우고 싶었던 재봉기술을 배우는 게 정말 행복해요. 가장 기분 좋을 때는 천을 자 를 때에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천을 쭉 가위 로 잘라내는 느낌이 좋아요.

인터뷰어: 처음 BP에 왔을 땐 어땠어요? 쏙 찌엇: 많이 힘들었죠. 처음엔 제 이름 적는 법도 몰랐어요. 글을 배운 적이 전혀 없었으니 까요. 문해 수업이 따라가기 벅차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어요. 그때마다 선생님들께서 많이 위로해주고 조언해주셨어요. 지금은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아주 뛰어나게 하진 못해도 수 학도 배우고 있고 재봉 반 수업도 잘 따라가고 있어요. 인터뷰어: 지금 여기서 사는 건 어떤가요? 가장 좋을 땐 언제인지? 힘든 건 없는지? 쏙 찌엇: 힘든 것은 없어요. 처음엔 다 낯선 사 람들뿐이라 같이 사는 게 무섭고 집으로 돌아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점점 알아가면서 지금 은 아주 친해졌어요. 다른 학생들이 행복해하는 걸 볼 때가 제일 좋아요. 다른 친구들이 춤추거 나 놀거나 웃을 때 나도 따라 즐거워져요. (웃으 며) 인터뷰어: 학교에서 선생님 다른 친구들과 관계 는 어때요? 쏙 찌엇: 다른 친구들은 형제 자매고 선생님은 부모님 같아요. 인터뷰어: BP에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이나 행사는 무엇인가요? 쏙 찌엇: 꼼뽕싸옴에 피크닉 갔을 때가 제일 기 억에 남아요. 처음으로 바다를 본 거였어요. 바 다를 바라보는 것도 좋았지만 다같이 물에서 노 는 게 제일 좋았어요. 전에는 제가 꼼퐁싸옴 바 다에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바다 사진이나 다른 사람들이 바다로 놀러 가는 것은 봤지만 걷지 못하는 제가 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했죠.


쏙찌엇이 직접 만든 드레스들. 입고 있는 파란색 드레스를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인터뷰어: 힘들 때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쏙 찌엇: 예전엔 제가 장애인이라는 게 절망스 러워서 죽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돌보던 어린 조카가 제게 살 이유를 줬어요. 언니네 부부가 일 하느라 바빠서 어릴 적부터 제가 대신 키워 서 무척 예뻐했어요. 그 어린 조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지금은 20살이 된 청년이에요. 저랑 함께한 시간이 많아서인지 제 부모님보다 저를 더 좋아하고 챙겨요. 저번 쫄츠남 때는(캄보디 아 새해 명절) 집안에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자 면서 같이 놀러 나갔어요. 제 핸드폰이 고장 났 을 땐 핸드폰 수리 샵에 가져가서 고쳐 왔고요. 인터뷰어: (조카 사진을 보며) 오 잘생겼네요. 씨야 선생님한테 소개시켜주는 건 어때요? 씨야 선생님: (웃으며) 됐어요. 속찌어: (진지하게) 안돼요. 이미 여자친구가 있어요. 모두: (웃고) 인터뷰어: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쏙 찌엇: 재봉 기술을 더 배우고 싶어요. 아직 모르는 게 많거든요. 나중엔 개인 샵을 열고 싶 지만 자본 없이 어떻게 열 수 있는지 몰라서 막 막해요. 씨야 선생님: (속찌어에게) 아웃리치 팀에서 재 봉기계와 돈을 빌려줘요. 나중에 되갚으면 되 요. 쏙찌어: 개인 샵을 못 연다면 재봉공장에서 일 하고 싶어요. 제 막내 여동생이 제가 여기서 기 술을 배워 졸업하면 기계도 사주고 개인 제봉 샵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걱정 말라고 했 어요. 하지만 여동생은 이번 해에 결혼을 했어 요. 한 가정을 부양하기도 벅찰 텐데 과연 저까 지 경제적으로 받쳐줄 수 있을지…걱정이 되요.

인터뷰어: 마지막으로, 쏙찌어에게 Banteay Prieb은 어떤 곳인가요?

쏙 찌엇: 새 빛(light)이요. 제게 새 인생을 준 곳이에요. 여기 와서 더 자유로워졌어요. 전 장 애를 가져서 스스로에게 불만족스럽고 자신감 이 없었어요. 남들처럼 누릴 수 있는 게 많지 않 고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 자신이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우물 안의 개구 리 같았어요. 하지만 BP에 와서 문해 교육과 재 봉기술을 배우고 받고 놀러 나가기도 하고, 새 로운 인생을 살고 있어요. 훨씬 자유롭고 행복 해요. 제가 변하고 새로운 삶을 살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게 좋아요.


매일 아침 문해수업을 가는 쏙찌엇. 일주일에 한번씩 기초 농업 기술도 배웁니다.


On the road



[Interview]

맨 윷 , 4 8 세 , 껀 달 주 거 주

신 입 생 을 직 접 선 발 하 러 찾 아 다 니 시 는 중


아웃리치 팀과 윷 선생님 7월부터 시작된 신입생 선발기간이 올해 유독 길어지고 있습니다. 학교 주변 지역에서 학생들을 찾지 못해 더욱 먼 곳까지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일이 많은 아웃리치 팀 중 유난히 더 바쁘신 분이 팀장이신 윷 선생님입니다. 직원들 모두가 건강을 걱정할 정도로 일중독자이시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시는 분입니다. 오랜 세월을 BP와 함께하신 윷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 았습니다.

BP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무엇이지요? 1993년도에 BP에 친구 소개로 처음 입학했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적이었습니다. 당시에 소야 신부님이 계셨는데 외국인이 장애인에 관심을 가지고 언제나 응원하고 용기 를 북돋아 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소야 신부님이 했던 것처럼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도 그래야겠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돌아가 농업도 하고 전기 배터리 충전하는 일도 했습니다. 일년이 지난 후에, 잡 신부님이 학교로 불러 새로 만들 전자반(Electronics Class)을 위한 서류를 준비하고 확인하라고 하셨습 니다. 그때가 전기반(Electricity Clsass)을 폐강하고 전자반을 새로 만드는 과정 중이었 습니다. 저도 전자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서 6개월 동안 독학하고 그 후에 전자반 선생님 이 되었습니다. (웃으시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공부했지요. BP에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제 생각이 변했습니다. 오기 전에 저는 희망이 없고 자존감이 아주 낮았지만 지금은 희 망이 생겼고 자존감이 높아졌습니다. 제가 장애가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다 할 수 있다 (able to do)고 믿기에 제가 장애인(the disabled)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부를 향 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용기가 생겼고요. BP에 온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라 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원한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 이 바뀌지요.


아웃리치 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아웃리치 팀은 신입생을 선발하고 졸업생을 follow up 하는 일을 합니다. 졸업생들을 방문하여 개인 사업에 필요한 물품이나 종잣돈을 빌려주거나 생활에 필요한 것들(집, 화장실, 우물, 쌀, 긴급 돈등)을 지원해줍니다. 제가 전자반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아웃리치 팀이 따로 없고 몇 사람씩 그룹을 만들 어서 마을을 방문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신입생만 찾아 다닐 것이 아니라 졸업생 들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JSC(캄 보디아 예수회 봉사단) 사무실 직원들과 상의를 했고 이후, 1998년도에 캄보디아 직 원들과 데니스 수녀님, 잡 신부님, 혹키 신부님, 키케 주교님(당시 신부님) 또뗏 신부 님(당시 BP책임자)이 세미나에 참여하여 의견을 나눈 결과 아웃리치 팀이 정식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저는 아웃리치 팀 책임자로 임명됐습니다. 처음엔 학교와 분리해 일 하다가 혹키 신부님이 BP책임자가 되었을 때 학교 산하로 들어가 같이 일하기 시작했 습니다. 저희는 깜퐁스프 주 Po Saet 구역에 있는 졸업생을 시작으로 점점 더 넓혀갔 습니다. 아웃리치 팀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정보를 모두 모으는 것입니다. 졸업한 학생이든 미처 졸업하지 못한 학생이든 마음을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힘 들어하는 부분을 도와줍니다. 아웃리치 팀은 중간 전달자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쏙클랭 선생님의 경우 신입생 으로 학교로 데려오기 쉽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화를 내며 아주 강하게 반대했습니 다. 하지만 학생 본인은 공부하고 싶어했고 결국 집을 세 번 방문하고 설득한 끝에 BP 에 입학시킬 수 있었습니다. 쏙클랭 선생님은 전자반에서 공부했는데 열심히 하는 모 습을 제가(당시 전자반 선생님) 눈여겨보다가 졸업 후엔 혹키 신부님과 클레완 교장선 생님에게 집 선생님으로 추천했습니다. 그 당시 여자 집선생님이 없어서 남자 선생님 만으론 여학생들을 관리하기 쉽지 않았고 쏙클랭 선생님께선 첫번째로 여자 집선생님 이 되셨습니다. (아직까지 집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돌보고 계신다.) 이처럼 아웃리치 팀은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받아서 학생들의 능력이 필요한 곳에 보내는 역할을 합 니다. 학생이었고 선생님이었고 현재는 아웃리치 팀의 director입니다. 각 역할의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이지요? 더 좋아하는 위치가 있나요? 각 역할이 다릅니다. 학생 때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따라가기만 하면 됐지만 선생님 이 되고 팀장이 되면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의견을 내서 리드해야 하지요. 훨씬 주도적입니다. Director라는 지위를 좋아하진 않지만 아웃리치 팀에서 하는 일을 좋아 합니다. 신입생, 졸업생, 재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한테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지요? 장애를 가진 사람들, 특히 BP 학생들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장애인들은 빈곤층 중에 빈 곤층입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잃고 살고 있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만 제 아들들과 아내는 장애인이 아닙니다. 제겐 장애로 인해 더욱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 을 돕는 일이 중요합니다. 제게 BP은 병원이고 학생들은 약입니다. 그리고 아웃리치 팀은 제 사랑입니다.


졸 업 생 집 을 짓 기 위 한 목 재 사 는 중

신 입 생 집 을 방 문 하 여 인 터 뷰 중


캄보디아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거기서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이지요? 1986년 17살에 전쟁으로 끌려가 군인으로 싸우다 지뢰를 밟고 한쪽 다리를 잃었 습니다. 두 다리가 있을 땐 쉽게 걸었지요. 한 다리를 잃고 나서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의족이 없어서 쇳 대를 다리에 대고 천을 감아 사용했습니다. 2,3일 에 한번씩 빼고 쉬어야 했습니다. 아프고 냄새도 심했습니다. 친구들은 제게 다가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절 무서워했습니다. 장애를 가지게 되 면서 늘 혼자였고 그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22살 때였나, 하루는 위인전을 읽고 있는데 한 친구가 책을 빼앗으며 "너는 장애인인데 뭘 읽고 뭘 배우려 하느냐 어 차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데" 라고 말했습니다. 전 거기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 지만 그때 받은 상처를 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좋아하지 않았고 제 가 할 수 있는 일은 구걸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집을 떠나 절 도와줄 수 있는 곳 을 찾아나섰습니다. 뿌삿에서 한 단체가 기술훈련을 제공했는데 거기 사는 주민만이 할 수 있었습니 다. 군부대 차를 얻어 타고 군인이 주는 음식을 얻어 먹으며 여러 지역을 돌아다 녔습니다. 희망을 잃은 채 지쳐있는데 프놈펜에서 제 삶을 구해준 분을 만났습니 다. 그분은 제게 도끼를 주었습니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이 제게 준 물건이었습니 다. 우리는 3~4개월 정도 함께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자르고 그걸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그분은 장애가 없음에도 장애를 가진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이 후에 그를 만나고 싶어서 찾아 다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가 아직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릅니다. 배운 것이 있다면 인생은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처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겠단 것입니다. 사회도, 그들의 가족마저도 차별하고 사람취급 하지 않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습니 다.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 안엔 숲이 있습니다. 숲에선 언제나 필요한 땔감을 찾을 수 있듯이 제겐 기술 이 있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장 애인을 돕는 일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만약 BP이 문을 닫더라도 장애를 가진 학 생들이 농업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센터를 만들 것입니다. 후원자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 학교를 후원하고 도와주시는 분들 이 없었다면 장애인을 돕는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저희가 하는 일이 결코 충분하지 않음을, 때문에 계속해서 후원해 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캄보디아엔 여전히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고로 인한 장애를 갖게 된 사람, 마약 중독으로 인해 문제 가 있는 사람, 지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어느 마을에 가나 볼 수 있지만 캄보디 아 정부나 사회는 사회 약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움이 여실 히 필요함에도 그냥 방치되어있는 것이지요. 그들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외국인임에도 캄보디아인을 위해서 일하는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캄보디아인이 캄보디아인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V오락 프로그램에서 장애인을 흉내내며 사람 들을 웃기는 것을 볼 때 아주 고통스럽습니다. 그건 장애인을 비웃고 폄하하는 행위입니다."

" 가끔,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일 하나 회의감이 들 때 가 있습니다. BP이 제 진짜 집입니다. 때 문에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 다."


[Photo]

꼼뽕싸옴 바


6월 23일, 전교생이 꼼뽕싸옴으로 바 다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바람이 강 해 파도가 높았지만 바다를 본 학생들 의 설렘이 더욱 컸습니다. 휠체어와 목 발 의족들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 들어 물살을 가르고, 모래를 파 친구의 몸을 덮고, 서로에게 물을 끼얹으며 물 싸움을 했습니다. 움직이기 힘든 친구 를 보면 휠체어를 끌어주거나 부축을 하며 도왔습니다. 점심은 학교에서 직 접 가져간 연 잎 위에 돼지고기 덮밥을 얹어 먹었습니다. 즐겁게 놀고 난 후엔 해변을 돌아다니며 플라스틱과 쓰레기 를 주워 청소를 했습니다. 일정은 음악 을 크게 틀고 해변에서 신나게 춤을 추 고 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8월 26일, 미용반의 새 입학생들도 꼼뽕싸옴으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BP News]

반티에이 쁘리엡

소식

6월 4일. 캄보디아 지방 선거날. 학생들은 교향 으로 돌아가 선거를 하고 왔습니다. 장애인이라 는 이유로 민증이 없는 학생들은 선거를 하지 못 했습니다. 6월 23일. 꼼뽕싸옴 바닷가로 전교생이 피크닉 을 다녀왔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P. 7월 2일. 집선생님들이 가까운 프놈 엄빼로 아웃 팅을 다녀왔습니다. 희의를 열어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점심을 먹으며 친목을 다 졌습니다. 7월 17일. 예수회 총원장이신 Aruto Sosa'신부 님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직원들과 학생들을 격 려하고 리치 수사님의 죽음을 애도하셨습니다. 7월 20일. 특수교육반에서 다른 반 학생들을 대 상으로 관찰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특수교육 반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과 도움이 필요한 일 을 직접 보고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지적 장애 학생들이 만든 음료와 간식을 함께 나눠먹 기도 했습니다. 8월 26일. 7월부터 새로 입학한 10명의 미용반 학생들과 집선생님들이 꼼뽕싸옴으로 피크닉을 다녀왔습니다. 사진은 P. 8월 30일. 특수교육반 학생들이 쯩아익 대학살 센터와 뚜얼슬랭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선생 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크메르루즈 정권 당시 일 어났던 고문과 대학살의 현장을 견학하고 희생 자들을 애도했습니다. 9월 7일. 박진영, 이상로, 이종호, 이태수, 정도 영, 정상일, 정윤실, 정찬헌 총 8분께서 컴퓨터 10대와 노트북 3대를 기증해주셨습니다. 휴대폰 수리반과 특수교육반 등 필요한 곳에 쓰이고 있 습니다.


반티에이 쁘리업은..

반테에이 쁘리업 은 전쟁 이후 캄보디아 사회에서 경제적 빈곤과 편견의 테두리 에 고통받아온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기위해 설립되어 현재 JSC(예수회봉 사단)가 운영하는 장애인 기술학교입니다. 캄보디아 장애인들이 직업기술 훈련 을 통해 경제적 자립능력을 강화하고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립자존감과 사회성 을 회복하여 이 사회의 적극적인 공동체 일원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Contact us at:

우편주소: P.O BOX 880, Phnom Penh, Cambodia 전화번호: +855 12949710 이메일주소: banteayprieb@gmail.com 웹사이트: facebook.com/banteayprieb facebook.com/craftpeacecafe www.youtube.com/user/banteayprieb

[BP Information]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개인 후원자 (6월에서 8월):강경임, 강동주, 강선희, 고금석, 고운용, 고전숙, 곽영숙, 구본찬,권기영, 권도경, 권민선, 권복순, 권성복, 권영규, 권영숙, 권영욱, 권오규, 권오창, 권용호, 권은자, 권인경, 권인순, 권정숙, 권정철, 권춘미, 권태옥, 김금열, 김광자, 김덕순, 김동환, 김병옥, 김상동, 김선자, 김송자, 김시수, 김애식, 김영모, 김영미, 김영지, 김옥희, 김용명, 김유선, 김윤옥, 김익우, 김인현, 김정란, 김주연, 김주월, 김지영, 김진영, 김한솔, 김현옥, 김희영, 남명자, 남미조, 노외순, 노희철, 도미자, 류성준, 문승희, 박기범, 박동분, 박서령, 박세린, 박순희, 박정미, 박재인, 박주완, 박찬익, 박혜정, 박효진, 서명순, 서은선, 서정희, 서형교, 성민주, 손금화, 손순영, 손홍점. 송경희, 송순열, 송진기, 신금옥, 신선자, 신순덕, 신정식, 신헌진 신후재, 신희건, 안재야, 안점자, 양인선, 여승현, 염순이, 오난희, 오미란, , 왕병욱, 요셉의집, 유영애, 윤덕순, 윤민정, 윤석렬 , 윤영화, 윤원만, 윤원태, 윤정희, 윤지홍, 이경숙, 이경자, 이귀자, 이동수,이동원, 이명진, 이상미, 이수연, 이수형, 이용선, 이윤성, 이은경, 이은철, 이인숙, 이인혁, 이재원, 이재창, 이정훈, 이준승, 이증옥, 이춘명, 이한양, 임대옥, 임용성, 임이택, 임정임, 임창률, 장경희, 장서규, 장성옥, 장원희, 장유진 , 장현석, 정규산, 전광민, 전대일, 전영숙, 정백금, 정선희, 정성미, 정옥희, 정은순, 정은욱 , 정은정, 정치수, 정현주, 조미경, 조성욱, 조성태, 조영숙, 조옥희, 조윤희, 조창권, 진상현, 천상영, 최난희, 최동원, 최동화, 최명수, 최양순 , 최영준, 최은희, 최윤자, 최정희, 표한화, 편경현, 피옥경, 한기복, 한성민, 한영호, 한영희, 한향숙, 한희수, 한희주, 허윤정, 황원희, 황정숙 방문 후원 (6월에서 8월): 프놈펜 깔멜수녀원, Ms.Angela & Mr.Martin, 인천교구 신부님들, Togni Cristina, Kim Yun Jung, Wah Yan College Hong Kong, St.Ignatius College Riverview, 대구 욱구 성당 청년회, Saint Ignatius College, Cagliero Project Group from Australia, Holy Redeemer Church from Hong Kong, Sophia University students, Eguipe Magis Promesse Earnlodge, 예수회 한국 관구 제3수련자들

후원안내

후원계좌 안내입니다.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캄보디아 내 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한 사업에 쓰여집니다. -예금주: (재) 기쁨나눔 -신한은행: 140-009-252855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운영되는 직업사업장의 제품을 구매하시는 것으로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제품은 다음 웹사이트와 이메일 연락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issuu.com/banteayprieb/docs/production_catalog Email. banteayprieb.production@gmail.com



The end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