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5
Herv : Her + Story + Vision ‘페미니스트가 만드는 세상’
2017 한국여성단체연합 페미니즘 캠프 2017 여성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 탐색, 숙고, 행동
❒ 일 시 _ 2017년 8월 24일(목) 오후 1시30분 - 오후 9시30분 ❒ 장 소 _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 ❒ 주 최 _ ❒ 후 원 _ 서울시 성평등기금
목차 ❒ 프로그램 소개 / 4 ❒ <여는 강의> ○ ‘래디컬’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역사적 계보와 함의 _ 이나영 / 7 ○ 당대 여성운동의 좌표그리기 _ 권김현영 / 39 ❒ <이슈별 토론> 1. 낙태 ○ 낙태죄 폐지를 외칠 때 만나는 질문들 _ 제이 / 65 2. 혐오와 차별 ○ 여성혐오, 여성혐오범죄가 되다 _ 남은주 / 79 ○ 그래도 우리는 뭐든지 한다 _ 김동희 / 83 ○ ‘“하던대로”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활동가의 고민 _ 감이 / 90 3. 노동/복지 ○ 성별임금격차, 결정적 장면 #Scene 7 _ 배진경 / 97 4. 대표성 ○ 할당제 아니고 동수 : 남성연대에 균열내기 _ 권수현&이진옥 / 113 ○ 정치와 여성 : 할당제, 대표성, 정치세력화 _ 권수현 / 120 5. 국제 ○ 베이징+20, Post-2015 SDGs 시대, 국제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변화 _ 조영숙 / 135
프로그램 소개 Herv : Her + Story + Vision ‘페미니스트가 만드는 세상’
한국여성단체연합
페미니즘 캠프 2017 여성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 탐색, 숙고, 행동 ■ 일시 : 2017년 8월 24일(목) 오후 1시 30분 - 오후 9시 30분 ■ 장소 :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 ■ 주최 : 한국여성단체연합 ■ 후원 : 서울시 성평등기금 ■ 프로그램 <여는 강의> 오후 2시 - 오후 5시 30분 사회 :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 주제 : 국내외 여성운동의 흐름과 방향 -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이슈별 토론> 오후 7시 - 오후 8시 30분 ○ 낙태 : 낙태죄 폐지를 외칠 때 만나는 질문들 ○ 혐오와 차별 : 하던 대로 또는 새롭게! ○ 노동/복지 : 명백한 차별의 증거, 성별임금격차 ○ 대표성 : 할당 아니고 동수, 남성연대에 균열내기 ○ 국제 : 베이징+20, Post-2015 SDGs 시대의 국제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변화 <종합토론> 오후 8시 30분 - 오후 9시 30분 사회 :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 이슈별 토론 결과를 공유하고 여성운동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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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별 토론> 세부 구성
이슈 1. 낙태 아트컬리지 5
낙태 _ 낙태죄 폐지를 외칠 때 만나는 질문들 ○ 주관 : 한국여성민우회 ○ 발제 : 낙태죄 폐지를 외칠 때 만나는 질문들
(4층)
_ 제이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혐오와 차별 _ 하던대로 또는 새롭게
이슈 2. 혐오와 차별 국제회의장 (1층)
○ 주관 : 한국성폭력상담소 ○ 발제 : ① 여성혐오, 여성혐오범죄가 되다 _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② 그래도 우리는 뭐든지 한다 _ 김동희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③ ‘“하던대로”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활동가의 고민 _ 감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이슈 3. 노동/복지 시청각실
노동/복지 _ 명백한 차별의 증거, 성별임금격차 ○ 주관 : 한국여성노동자회 ○ 발제 : 성별임금격차, 결정적 장면 #Scene 7
(4층)
이슈 4. 대표성 아트컬리지2 (4층)
_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대표성 _ 할당제 아니고 동수 : 남성연대에 균열내기 ○ 주관 :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 발제 : 할당제 아니고 동수 : 남성연대에 균열내기 _ 권수현 &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 & 대표) 국제 _ 베이징+20, Post-2015 SDGs 시대, 국제여성운동과
이슈 5. 국제 아트컬리지3 (4층)
여성정책의 변화 ○ 주관 : 같이교육연구소 ○ 발제 : 베이징+20, Post-2015 SDGs 시대, 국제여성운동과 여성정책 의 변화 _ 조영숙 (같이교육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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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강의
국내외 여성운동의 흐름과 방향 (1) - ‘래디컬’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역사적 계보와 함의 _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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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강의
국내외 여성운동의 흐름과 방향 (2) - 당대 여성운동의 좌표 그리기 _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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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별 토론
(1) 낙태 : 낙태죄 폐지를 외칠 때 만나는 질문들
낙태죄 폐지를 외칠 때 만나는 질문들
제이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활동가) ■ 한국사회에서 ‘낙태’를 한다는 것 한국에서 임신중절은 어떻게 이해되나. 도덕적으로 비난받는가? 상대적으로 쉽게 용인되는 가? 법적 처벌을 받는가? 이 간단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임신중절’을 상정하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임신중절은 형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손가락질을 피해 평생 묻어둘 일로 여겨지는가 하면, 불가피하거나 당연한 선택이라고 암묵적으로 용인되기도 한다. 이 가 치판단에 있어서 종종 ‘어떤 임신중절’인가- 임신중절 사유 란에 어떤 답을 적는가보다 더 관건이 되는 것은 당사자의 연속된 삶의 경험을 얼마나 자세히, 가까이 알고 있는가이다. 비난은 대상을 단순하게 파악할 때에만 가능한 행위다. 임신중절에 대한 비난은 스테레오타 입화된 이미지를 타고 퍼진다. 성적으로 문란한, 부도덕하고 조심성 없는 젊은 미혼 여자. ‘낙태’한 여자를 향한 온라인 댓글들을 보면 임신중절에 대한 비난의 초점이 ‘생명 살해’에 국한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자로서 쾌락을 목적으로 한 성관계를 했다는 것(즐겼으면 결과도 책임져야지), 여자로서 어머니됨이라는 ‘본분’을 위배했다는 것(비정한 모성)이 대가 를 치러야 정의로운 귀결인 양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여성혐오도 지독하지만, 이 ‘전형적 낙태’가 임신중절을 겪는 당사자들의 현실과 너무나 괴리된 이미지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법도 단순하다. 형법상 낙태죄는 ‘아이가 생기면 낳아야 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 재판소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이란 사익’보다 우선하는 공익으로서 ‘태아의 생명 보호’를 그 근거로 인정한 바 있다.
<형법> 제269조(낙태) ①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 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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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① 의사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 경우에만 본인과 배우자 (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 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② 제1항의 경우에 배우자의 사망·실종·행방불명, 그 밖에 부득이한 사유로 동의를 받을 수 없으면 본인의 동의만으로 그 수술을 할 수 있다. ③ 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 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 의를 갈음할 수 있다.
■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은 없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태아의 생명을 분리하여 저울질한 결과로 임신중절을 결정하 는 것이 아니다. 임신과 출산은 단 한 번의 단독적 사건이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의 수많은 상황과 관계에 연속되며 당사자의 신체, 일상, 인생 경로를 좌우하는 광범위한 변화를 초래 한다. 임신한 당사자는 때로 태아의 삶까지 포함하는 장기적 결과에 대해 누구보다 실제적인 고민을 하게 되며, 결정적인 요인은 법이 판단하듯 개인의 준법정신이나 생명존중 정도이기 보다는 어떤 조건에서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을 지지할 공동체와 사회적 인프라의 수준일 것이다. ‘공적인 것’으로서 여성들의 경험에 귀 기울이는 사회라면 진작 법제도 및 당면 과 제를 달리 설정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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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낙태하는 여자들’에 대한 못마땅한 시선이 있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측에선 임신 중절이 빈번해질 것에 대한 우려를 내비친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무엇이 쉬운 선택일까. 임 신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하고 2초 만에 임신중절을 결정한다고 해서 그것을 쉬운 결정이 라고 할 수 있을까? ‘숙고의 여지가 없음’을 ‘선택’으로 볼 수 있을까? 10대 여성이 아이 낳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가? 결혼하지 않은 20대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직 장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 기혼 여성이라도 임신하고 출산하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현실이지 않은가? 저소득층 장애여성이 충분한 의료서비스와 활동보조를 받으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삶을 기획할 수 있는가? 임신의 지속과 중단은 생명에 대한 추상적 판단을 넘어, 구체적 삶의 이슈다. 임신중절에 대 한 논의는 과연 여성들에게 어떤 ‘삶’이 ‘가능한’ 사회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아이를 ‘낳고 싶다’, ‘낳지 않고 싶다’, ‘안 낳겠다’, ‘못 낳겠다’ 는 욕망 또는 체념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고, 국가는 그 욕망의 구성과 실현가능성 모 두에 책임이 있다. ‘낙태죄’는 여성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도덕과 헌신을 강요하며 그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은 없지만 결국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피임 실천율을 높이거나,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임신을 백퍼센트 예방할 수는 없다. 우선 완벽한 피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몸은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 여성들이 임신중절을 결정하는 상황은 다양하다. 몸이 아프거나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아서, 낳고 싶지만 파트너의 반대에 부딪혀서 등 여러 갈등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경우가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불가피한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고도 생 각한다. 우리는 살 수 있는 삶(의 범위를 넓혀가야 할) 뿐만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갈 권리를 가져야 한다. 누구나 아이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다행히, 옳고 필요한 주장으 로 쉽게 받아들여진다. 그러한 제반 조건의 미비함 때문에 임신중절을 결정한 경우 역시 사 회적으로 인정을 획득하곤 한다. 하지만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상관없이, 임신은 1차 적으로 개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그것을 지속할지 여부는 오롯이 당사자가 결정할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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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임신중절을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거니와, 임신중절의 ‘근절’을 지향하는 사회, 임신중절 자 체를 ‘반대’하는 사회는 부정의한 사회이다. 결국 누군가의 삶을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임신중절이라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임신중절의 범죄화, 그리고 재생 산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된 현실 속에서 당사자들의 경험과 사회 적 고통이 제도와 분리된 채 숨죽여져 있다는 점이다. ■ 사문화된 법? 낙태죄는 작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성평등공약을 논하는 자리에서 낙태죄 폐지 요구에 대한 의견을 묻자, “낙태죄는 사문화된 법이다. 사회적 논란을 무릅쓰고 낙태죄 폐지로 갈지 여부는 좀 더 봐야” 한다고 답했다. 사문화란 효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낙태죄로 처벌되는 건수는 한 해에 십여 건에 불과하여 전체 임신중절 추정치에 한참 못 미친다. 또한 대부분의 임신중절 이 범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모르는 시민의 비율도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낙태죄는 법 이 직접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때에도 수많은 여성들의 삶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낳지 않을 권리의 박탈에 더하여, ‘낙태죄가 여성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문장만으론 전달 되기 어려운, 낙태죄의 온존으로 인해 침해되는 여성의 권리가 과연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무 수한 당사자들의 경험이 공론장에서 더 많이 발화될 필요가 있다. # 처벌, 처벌 가능성 ‘1심은 여성에게 벌금 2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내렸고, 2심도 유죄를 확정했다. 남자의 폭 력은 아이를 잘 낳아 키우기로 했던 결혼 관계를 깨뜨렸고, 여성의 심신은 매우 불안정했 다. 하지만 법정에서 법조인들이 던진 질문은 “정확히 며칠부터 낙태를 고민했는지, 결혼 유지에 대한 의지가 있었는지”였다. 임신중절을 결심한 여성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 지는 관심 밖이고, 법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임신중절을 했다는 분명한 사실뿐이었다.’ “파혼하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았습니다. 남자쪽 집 안에서는 임신한 걸 알게 되자 절대 지우지 말라며 낳아서 자기들에게 달라고 했는데, 결 혼이 무산된 이상 절대 그럴 순 없었어요. 그런데 걔가 저와 저희 어머니를 낙태죄로 고 소했어요. 내일 경찰서로 오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네에서도 다 알게 돼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까지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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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낙태죄 관련 기사를 봤습니다. 혹시 저도 고발당할 수 있는 건가요? 병원 기록이 남아서 혹시나 경찰이 찾아와 추궁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 병원 찾기 어려움 “임신 6주라고 합니다. 병원을 다섯 군데 가봤는데 모두 배우자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를 요구했어요. 배우자와는 헤어진 상태인데 임신했다는 걸 알면 다시 매달리고 저를 괴롭힐 거예요. 배우자 동의 없이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은 없나요?” “검색을 해보면 브로커도 많고 병원이 나오긴 하는데, 다 ‘장사’처럼 보여서 괜찮은 곳인지 가 염려됩니다. 혹시 잘못돼서 나중에 임신 가능성에 영향을 미칠까봐.. 믿을 만한 병원을 소개받을 수 없을까요?” # 높은 수술비용 “간신히 찾은 병원에서 415만원을 불렀어요. 모아둔 돈도 없고 주변에 빌릴 수도 없는 상 황입니다. 중국에서 하면 30만 원쯤이라던데 혹시 중국 어딜 가면 수술 받을 수 있을까 요? 아니면 지방 소도시 작은 병원이라도 상관없으니 아시는 곳 있으면 꼭 좀 알려주세 요.” # 고발 협박- 법의 악용 “헤어진 남자가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둘 사이 낙태했던 것을 제 주변에 알리고 경찰에 고 발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신고도 문제지만 주변에 알려지는 게 두렵고, 이 남자랑 더 엮이 는 것도 원치 않는데 어쩌죠.” “전 남자친구한테 빌려간 돈 800만원을 갚으라고 했더니 갑자기 사귈 때 낙태수술 했던 얘기를 꺼내며 그때 자기는 동의하지 않았는데 제 마음대로 아이를 지우지 않았냐며 저와 저희 가족을 신고하겠다고 합니다. 전 남친 말이 사실이긴 한데 빌려준 돈은 잃었다 칠 수도 있지만 계속 저를 협박할 것이 걱정됩니다.” # 저질 의료- 기본적 건강권 침해 “의료 과실로 태아의 일부가 자궁에 남아있어 재수술을 해야 했는데요, 병원에서는 재수술 비용을 고스란히 다 청구했습니다. 수술이 불법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현금을 찾아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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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해야 했고요.” “수술 후 하혈이 너무 심한데도 병원에 다시 가기가 꺼려져서 그냥 집에 있었어요.” “중절수술도 몸조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잘 모르기도 했고, 간신히 휴가 내고 수술 받은 거라 다음 날 바로 출근해야 했어서 몸에 많이 무리가 갔던 거 같아요.” “병원이 너무 비위생적이고 기구가 낙후된 게 보였어요. 그 수술 때문에 혹시 자궁이나 난 소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지 생각만 하면 불안해집니다.” “외국에서 살다 온 제 친구 말로는 초기 임신은 다 약물로도 안전하게 낙태할 수 있다고 하던데, 병원에선 그런 얘기 들은 적 없고 수술밖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 정보와 대화의 제한 “인터넷에서 본 대로 했는데, 괜찮을까요?” “전 남친, 친구 한 명. 그렇게밖에 몰라요.” “남한테 얘기하는 거 오늘 이 모임이 처음이에요.”
구분
모체 생명, 신체 건강
모체 의 정신 건강
강간, 근친 상간
태아 기형
사회 경제적 이유
본인 요청
임신중지율
모성사 망율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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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UN Department of Economic and Social Affairs(2013), World abortion policies
■ 낙태죄 (폐지를 향해 가는) 타임라인 1953년 형법 제정 당시에도 낙태죄를 둘러싼 우려가 제기되었었다. ‘대체로 처별이 어렵 다’, ‘여성 건강을 해친다’, ‘형사 처벌보다는 복지 정책이 중요하다’는 토론이 이뤄졌지만 낙 태죄 삭제안이 과반수 미달로 부결되어 기존안이 제정되었다. 1973년 모자보건법이 제정될 때까지 한국에는 예외적 허용 조항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1964년 모자보건법이 제안될 때부터 주요하게 고려된 것은 그 법이 일본의 우생법처럼 출생율을 격감시킬 수 있다는 점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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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을 다룬 다큐멘터리 <자, 이제 댄스타임>은 중년의 여성들이 둘러앉아 ‘나는 서너 번 했어~ 건넛집 누구는 두 번 했고~’ 라며 거리낌 없이 ‘낙태’ 경험을 이야기하는 장면으 로 시작한다. 애 낳다가 거지 된다는 캠페인부터 지자체 및 보건소의 피임 시술 장려, 낙태 버스 운영, 장애인에 대한 강제 불임수술까지 3-40년 전엔 국가가 강력한 출산억제 정책을 폈고 임신중절을 방조하는 걸 넘어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다 슬슬 ‘저출산 위기론’ 이 대두되면서 임신중절 만연이란 이슈가 새삼 공론장에서 다뤄지기 시작했고, ‘생명존중사 상’을 고취하여 ‘낙태’를 막고 ‘낙태’를 막아서 출산율을 올린다는 기이한 발상의 국가사업이 추진되었다. 즉, 사실 낙태죄는 ‘생명 보호’라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국가 인구정책 기조에 따라, 또한 어떠한 생명이 보호할 만한 생명인가에 대한 우생학적 기준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여성은 곧 모성으로, 인구의 질적‧양적 통제의 도구로 인지되어 왔다. 2010년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의 소속 의사들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한 병원 3곳을 고발하며 일명 ‘낙태 고발 정국’이 닥쳐왔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국정 기조 에 발맞춰 이들의 움직임은 힘을 받았다. 낙태죄가 대대적으로 이슈화된 첫 번째 국면이었 다. 민우회에는 수술 가능한 병원을 애타게 찾는 여성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즈음 한 조산 사가 임신 6주 임부에게서 임신중절을 부탁받고 시술한 행위로 기소되었고, 형법 270조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헌재 판결은 4:4로 합헌이었다. (이 헌재 판결문은 생 명이라는 가치의 절대성을 옹호하면서도 언제나 최우선시되는 것은 아님을 모순적으로 드러 내고 있고, 태아와 여성을 공익 대 사익으로 대치시킨 문장이 특히 읽어볼 만하다.) 여성들은 계속 움직였다. 낙태죄가 이슈화되어 당시 여성들이 불법인 줄도 모르며 받았던 수 술마저 어려워질까 봐 법 개정을 위한 활동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저출산 담론이 부상하고 보수정권이 집권하게 되었고, 낙태 고발정국을 맞아 운동은 다른 전기를 맞 이했다. 여러 단위들이 함께 ‘임신출산결정권 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조직하여, 임신중절에 국한되지 않는 전반적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민우회도 국가인권위에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예방 종합계획의 여성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고, 낙태죄 로 피고인이 된 여성에 대한 법률 지원을 하는 한편, 임신중절 관련 경험 사례를 제보받고, 위헌심판에 영향을 미칠 여론을 모으면서 문화제, 토론회, 인터뷰, 상영회, 캠페인, 포럼 등 을 개최했다. 낙태죄 이슈는 한동안 잠잠한 시기가 있었지만, 2014년, 2015년, 2016년을 거쳐 오면서 큰 변수가 생겼다. SNS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 화력 변수다. 2016년 복지부가 공개한 ‘가임기 여성 지도’는 정부가 늘 고수하고 있던 여성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고, ‘나는 자궁이 아니다’라고 분노하는 수천 명의 여성 개인들을 새롭게 맞닥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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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폴란드의 ‘검은 시위’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2016년 10월, 복지부가 입법예고한 의료 법 시행규칙의 내용에 불법 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의사 처벌 강화가 포함됨에 따라 이에 반 대하는 의사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많은 여성들이 의료 법 시행규칙 철회를 요구하는 데에서 나아가 임신중절이 불법화된 현실에 분노하며 ‘진짜 문 제는 낙태죄’라고 외치는 집회를 열었다. 낙태죄 비범죄화를 위한 형법 개정 청원에 금세 1 만 7천여 명이 서명했다. 매주 낙태죄 폐지를 외치는 시위가 열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모금 으로 만든 지하철 광고가 게시되었다. 대선 시기 여성운동의 주요한 의제 중 하나로 ‘낙태죄 폐지’가 거론되었다. 누군가는 호주제 폐지 이후 페미니스트들이 힘을 결집하여 성취해야 할 과제로 낙태죄 폐지를 꼽기도 했다. 많은 여성들이 국가가 허락하는 임신중단권(일부 허용사유 확대)을 주장하기보다,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쳤다. 새 정부의 국정개혁과제 중 낙태죄 폐지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한편, 저출산 극복을 위한 대책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아직 낙태죄 폐지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찾아 볼 수 없다. 의사회는 의사에 대한 처벌이 과도함을 주장하며 지금도 ‘낙태 전면 중단’이라 는 카드를 한 손에 들고 있다. 종교계는 매년 생명사랑 집회를 열고, ‘낙태’를 죄악시하는 활동을 지속한다. 매일 어딘가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받고 있다. 의사회 내 부 추정치로는 하루 3,000건, 소극적으로 잡아도 1년에 40만 건 정도의 임신중절 수술이 시행된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들의 경험은 여전히 함구되어 있다. 낙태죄만 생각하면 분노가 치솟는 페미니스트들은 낙태죄 폐지 운동에 불을 붙일 계기를, 페미니스트만이 아니라 더 넓 은 시민사회의 요구로서 낙태죄 폐지를 외칠 수 있는 판을 기다리고, 또 만들어가고 있다. ■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해나가면서 이 사회가 오래도록 믿어 온 제도적 합리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의심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몰래카메라, 낙태죄, 생리대 전성분 이슈, 생리컵 도입... 많은 여성들은 이 의심이 음 모론이나 피해의식이 아닌, 합리적 의심임을 알고 있다. 지독히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어 머니’나 ‘딸’이 아닌 여성들 개개인의 안녕 자체가 공공의 관심사이자 ‘법’의 제정 목적일 수 없었던 역사는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 이제 우리에게는 임신과 출산의 도구로 여성을 바라보 는 관점에서 탈피한, 여성들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국가 정책 패러다 임의 전환이 필요하며 지금이 바로 그러한 변화를 요구하고 추진해나갈 기회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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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임 전환하기 생명권 VS 선택권, 프로라이프 VS 프로초이스, ‘낙태 찬반’ 구도는 낙태죄의 필요성을 역설 하는 입장에서 매우 유리한 구도이다. 이 프레임은 태아의 생명과 여성의 삶을 분리하여 양 적 비교가 가능한 것처럼 전제하며, 임신중절의 상황에서 여성의 ‘선택’이 연결된 수많은 사 회적 조건과 경험을 삭제하고 그 선택을 단편적인 권리 주장으로 축소한다. 선택에 비해 생 명이라는 개념의 무게감이 훨씬 크고, ‘낙태’를 ‘찬성’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대부분의 언론 인터뷰가, 학교나 방송에서의 토론이 이 구도를 유지해 왔다. 낙태죄 폐지 운동은 프레 임을 전환해야 한다.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 여성의 선택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 구집단을 구성하려는 국가권력의 여성 몸과 삶 통제'에 반대하는 입장임을 명시하는 게 낫 다. ‘유신의 잔재’이자 ‘구시대의 유물’ 낙태죄는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버 리고 가야 할 것으로 의미화해야 한다. ‘인구(관리)’에서 ‘인권(보장)’으로, 국가주의적 정책 에서 시민중심의 정책으로, 숫자화된 집단의 성장이 아니라 개개인의 고유한 삶의 질 제고에 초점을. # 추상적 생명주의자에 대해 현실주의자의 위치 점하기 2016년 5월 WHO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낙태의 합법, 불법 여부와 관계없이 낙태율이 국가 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낙태 금지가 오히려 불법 낙태를 조장하고 있’고. ‘특히 대부분의 나라들이 낙태를 금지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임신 중인 태아 3명 중 1 명이 낙태되는 것으로 나타나 평균보다 더 높은 낙태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낙태 처벌 강화는 낙태율을 줄이지 못한다’는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루마니아가 독재정권 하에 엄혹한 낙태금지법을 시행한 이후 모성사망비가 7배 증가했듯, 그리고 2010년 한국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임신중절을 엄격히 금지할 때 여성들은 출산을 선택하기 보다는 ‘위 험한 수술’을 선택한다. 또한 임신중절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라고 해서 수술 건수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원치 않는 임신’이 여하간 살아가면서 있을 수 있는 일인 만큼 ‘낙 태’도 그러하며, 임신중절율은 법‧제도보다는 피임에 대한 접근권, 보육 공공인프라 확충 등 다른 문화적/제도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2010년 집계 결과 12주이내 사회경제적 사유 허용한 독일의 경우 1,000명당 7.6명, 한국의 경우 1,000명당 31명) 사실 생명보호를 내걸고 임신중절 불법화를 유지하거나 주장해온 측이 보호하고자 하는 ‘생 명’이 과연 어떤 생명인가, 생명을 내세우면서 구체적 삶의 고통들은 얼마나 모른척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 수십 년간 정부 정책의 증거들이 이런 의혹을 스스로 웅변한다. 생명이라는 절대 가치 앞에서 과연 어떤 생명에 대한 보호인지, 무엇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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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떤 보호인지, 어떤 여성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등의 중요한 문제들은 자꾸 설 자리 를 빼앗기게 된다. 그런데 아예 생명의 보호가 중요하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더라도, 임신중 절 처벌이 임신중절 발생을 줄이지 않으며 오히려 임신중절이 합법화되면 대부분의 임신중 절이 임신 12주 이내에 이루어져 후기 임신중절이 현격히 줄어든다는 사실은, 정말로 생명 을 지키고 싶은 이의 현실인식을 넓혀줄 만한 정보다. # 초기 임신중절 약물 도입 “나는 임신중지 논쟁이 여성에게서 의학 진보의 결과물을 빼앗아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 다. 지금부터 미페프리스톤은 단지 제약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도덕적인 상품 임을 프랑스 정부가 보장할 것이다.” -1988년, 프랑스 보건부장관 초기 임신중절을 위한 약물이 다른 여러 나라에서 상용화되어 안전하게 이용되고 있다. 지난 6월 영국에서는 온라인 상담을 통해 약물을 받아 자가 사용한 여성의 95%가 임신 중단에 문제 없이 성공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프랑스는 이 약물에 보험 적용도 되며, 핀란드에서는 2009년 임신 중단의 84%가, 스코틀랜드는 70%가 약물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대부분의 병원에서 수술만을 유일한 임신중단 방법으로 쓰고 있으며, 임신중절이 불법인 상황에서 그마저도 의료기술 수련과정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다. 임신중절이 불법화된 국가의 여성들에게 신청을 받아 약물을 보내주는 Women on Web에서는 작년 1 년 간 한국에서의 요청이 300건 정도 되었다고 전했다. 임신중절 약물 도입은 여성들이 가깝게 체감하는 이슈이며, 문재인 정부의 공공제약사 설립 공약과 연결하여 추진해볼 수 있는 의제이기도 하다. 또한 임신중절과 관련하여 추상적인 임 신중절 찬반 구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여성 건강권의 문제로 고려하게 하는 사안이라는 점에 서 중요하게 다뤄졌으면 한다. # 내 몸은 나의 것?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여성들이 낙태한 그 날의 산부인과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지금 낙태할 ‘권리’를 말하는 것조차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고작 낙태할 ‘권리’라니요. 수술대에 올려주는 것을 권 리라고 말해야 하는 암담함 말입니다.” - <있잖아, 나 낙태했어…> 중 만약 머지않은 미래에 낙태죄가 폐지된다면? 분명 고무적 성과이겠으나, 그것만으론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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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임신중절 수술을 하고도 처벌을 안 받게 될 뿐이다. 낙태죄가 폐지된다 한들 경제력의 차이에 따라 수술에 대한 접근권이나 받을 수 있는 의료의 질에 격차가 있다면, 응급피임약 이 전문의약품으로 남아 있어 여성들의 피임에 대한 접근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다면, 남 성중심적인 성 문화와 성별권력관계로 여성들이 적극적 피임실천을 하거나 요구할 수 없다 면,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수술 방법이 극히 제한적이라면, 임신중절한 여 성이 낙인을 염려해야 하거나 의료 및 관련 복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 누 군가가 장애나 혼인여부, 경제 상황 등 자신이 처한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아이를 낳아 기 르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사회라면 낙태죄 폐지는 우리의 현실을 크게 개선하지 못 할 것이다. ‘내 몸/자궁은 나의 것’,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라는 주장은 유효하고 중요하다. 나의 몸과 삶을 도구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외부의 영향력에 대항하여 지켜져야 할 나의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태죄 폐지 운동이 이 슬로건으로 수렴된다면, 그때의 지향점이란 결국 각자의 선택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는 다양한 개인들의 세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선 택에 따른 결과는 개인의 책임으로 남게 된다. 억제받지 않을 권리로서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이, 세상이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최대한의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은 전반적인 ‘재생산 정의’, 모든 사회 구성원을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의 구심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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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별 토론
(2) 혐오와 차별 : 하던대로 또는 새롭게!
여성혐오, 여성혐오범죄가 되다
남은주(대구여성회1) 상임대표) 1. 들어가며 최근 여성 BJ를 찾아가 죽이겠다며 협박한 남성은 ‘사안이 경미하여’ 벌금5만원을 내고 나 왔다. 이 커뮤니티에는 82만명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고 한다. 길을 지나가다 갑자기 얼굴을 가격당한 40대 여성, 혼자 운영하던 왁싱샵에서 살해당한 여성 등 언론에 보도되는 뉴스는 내가 어떠한 폭력이라도 당할 수 있는 ‘여성’임을 자각하게 하고 길을 지날 때, 지하 철, 지하주차장 등 일상의 공간에서 엄습해오는 공포와 마주하게 하고 있다. 뼈져리게 ‘여성’ 임을 자각한 혹은 자각당한 우리는 안전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여성혐오와 여성혐오 범죄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혹자는 ‘여성혐오’라는 말이 너무 과격하고 심하기 때문에 여성비하, 여성차별, 혹은 미소지니(misogyny) 라고 해야한 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의 여성운동은 지금까지 이름 없는 여성인권침해에 대해 이름을 붙이고 법을 만들고 대응 시스템을 만들어 왔다. 이미 이러한 여성혐오범죄에 대해 법적인 논의를 하고 있기도 하다. 이 부족한 토론문에서는 여성혐오에 대해 살펴보고 여성혐오와 차별의 역사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함께 논의해 보았으면 한다. 2. 여성혐오의 개념(misogyny·미소지니) 먼저 여성혐오에 대한 책을 펴내어 이 용어를 널리 알린 우에노 치즈코는「여성혐오를 혐오한다」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misogyny는 여성에 대한 멸시를 의미하여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생각하고 여성을 나타내는 기호에만 반응하는 것을 말하며 남성들이 ‘남성 됨’이라는 성적 주체화를 이루기 위해 ‘여성’이라는 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성적으로 ‘남성’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여자라는 시시하고 불결하며 이해 불가능한 생물에게 욕망의 충족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남자들의 분노와 원한이 바로 여성 혐오의 내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1) 대구여성회는 1988년에 창립하였고 대현1동 경찰관에 의한 성폭력 사건 대응, 금복주 결혼퇴직제 사건, 대구교대총장성희롱 사건, 대구은행성추행사건, 대구달서구 성학대동영상강제시청 사건 등의 현장지원을 해왔으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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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누스바움은2)미국의 경우 온라인상의 여성혐오는 대상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하였 다. 대상화는 상대를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여 상대의 감정이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 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며, 대상화된 사람은 오명과 낙인을 뒤집어쓰고 수치심을 느끼게 된 다고 한다. 누스바움이 말하는 구체적인 대상화는 도구적으로 대상을 개념화 하는 것, 대상 의 자율성을 부인하는 것, 대상의 활력을 부인하는 것, 대상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 하는 것, 대상을 어제든지 무너뜨리거나 침해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 사고 팔 수 있 는 것처럼 간주하는 것과 감정이나 주체성을 거부하는 것 등이다. 이 중에서 포르노그라피적 인 이미지, 신체의 일부만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가장 극적인 대상화의 형태이며, 강간위협 역시 대상화와 관련된다고 하였다. 여성혐오는 여성에 대한 찬사와 폄하 모두 해당된다. 예를 들어 ‘사무실의 꽃’, ‘나의 뮤즈’, 미스김, 김치녀 등등 또한 여성혐오는 공기와 같은 것이므로 젠더 인식이 없다면 생물학적인 여성이던 남성이던 ‘여성혐오’적일 수 있다. 3. 여성차별과 여성혐오의 역사성과 현재성 여성혐오와 차별의 역사는 가부장제의 역사와 함께 하는 과정이다. 서양은 물론이고 한국은 유교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와 접시는 내돌리면 깨진 다’, ‘여자는 전생에 죄가 많아 여자로 태어났다’, ‘여자와 개는 맞아야 길이 든다’, ‘매 끝에 정붙는다’ 등의 일상 속에 촘촘히 스며있는 여성차별은 혐오와 함께 말로 관습으로 예의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어왔다. 이런 여성차별과 혐오적 인식은 가정폭력, 성폭력, 직장내성희롱, 성매매의 일상화의 근본원 인이다. 지금까지 한국여성운동의 역사는 여성인권침해에 대해 현장지원을 하고 명명하고 이 를 법제화 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양성평등’(번역과 현실적용에 많은 문제가 있으나)이라는 용어도 사회적으로 쓰이는 말이 되었고 이제 성평등 으로 바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차별적 인식은 바뀌는 듯하였으나 온라인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여성혐오적 발언은 온라인과 말에서 직접적인 행위가 되어 ‘여성혐오범죄’로 나타 나고 있다. 여성혐오에 대해 표현의 자유냐 아니냐를 논하고 규제를 주장할 것인가 말 것인 가를 논하는 사이 피해자가 희생되는 ‘범죄’가 되고 있는 것이다.
2)「불편한 인터넷 : 표현의 자유인가? 프라이버시 침해인가」 (2012) p 119~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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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범죄의 증가는 통계로 살펴볼 수 있다. 2016년 세계 범죄지수에서도 한국은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 함께 '저 위험' 등급이다.3) 가장 안전한 나라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여성은 안전하지 않다. 4대 강력범죄의 피해자중 87%가 여성이다.4) 2017년 8월 8일 경찰청이 발간한 ‘2016범죄통계’5)를 보면, 피해자가 여성인 폭력범죄 건 수는 지난해 10만1320건으로 2015년과 비교하면 3325건이 증가했다. 여성이 피해자인 폭력범죄 사건 수는 2011년 9만1091건에서 2014년 8만4993건까지 감소했다가 이후 빠 른 속도로 늘고 있다. 같은 기간(2011년∼2016년) 남성이 피해자인 폭력범죄 건수는 21만 7357건에서 17만625건으로 크게 줄었다. 온라인의 여성혐오는 혐오의 발화나 주체의 문제 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4.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먼저 법적인 문제로 본다면 혐오표현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범죄’로 규정하여 금지하고 제재 하는 방식과 ‘차별’로 규정하여 제재하는 방식으로 구분한다. 혐오표현을 인격권 침해의 범 3) 2016년 세계 범죄 지수 : 컨설팅업체인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가 198개국의 인구 10만 명당 범 죄 피살률 등을 토대로 정함. 아프가니스탄, 과테말라, 멕시코, 이라크, 시리아, 온두라스, 베네수엘 라, 엘살바도르, 소말리아, 파키스탄이 '최고위험' 등급, 한국은 일본,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 함께 ' 저위험' 등급 4) "4대 강력범죄 피해자 87%가 여성, 체계적 보호필요" 출처 : SBS 뉴스, 2016.05.23 5) 폭력범죄 여성피해자 증가…“사회적 문제 인식계기 돼야” 한겨례신문 2017.08.08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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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규정하면 그에 대한 제재는 형벌인 반면에 혐오표현을 평등권의 침해인 차별로 규정하 면 그에 대한 제재는 형벌, 손해배상, 시정권고, 등 다양한 형태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6) 현재 한국은 명예훼손죄와 모욕죄가 있으나 개인적 법익 침해에 관한 법임으로 집단적 법익 침해에 적용하기는 한계가 분명하다 하겠다. 이에 혐오표현 처벌을 위한 단독법규의 필요성 을 이야기하고 있다.7) 온라인 여성혐오 현상에 주목한 이후 여성혐오범죄로 까지 나아가고 있는 지금,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들은 우리를 절망하게 하기도 하고 분노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필 자는 법률로서 규제하는 방법, 혐오에 맞서는 다양한 개별적, 집단적 방법, 시위, 캠페인, 온 라인에서의 대응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라인과의 접촉을 덜하고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활동을 시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온라인 상의 활동으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존 여성단체들의 지원과 연대는 필수적일 것이다. 이미 우리는 ‘여성혐오’라는 명명으로 도전장을 낸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여성운 동의 역사에서 쉽게 된 일은 없었다. 시작했으므로 흔들리더라도 두려움 없이 끝까지 함께 하자.
6) ‘혐오표현과 표현의 자유’ 이준일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P4 ~ 5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 등포럼 발표자료 7) 「#혐오_주의」혐오표현을 법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준일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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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대로”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활동가의 고민
감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3년차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감이입니다. 저희 상담소는 1991년에 개소하였고, 현재 총 14명의 활동가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상담소는 3개의 팀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여성주의상담팀(2인)은 성폭력피해생존자에 대한 통합적인 상담과 지원을 담당합니다. 또 성문화운동팀(2인)은 우리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개 선하기 위한 인식개선캠페인이나 프로젝트, 각종 연대사업과 회원 및 시민들과의 (온라인) 소 통과 관련한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사무국(3인)은 재정활동가와 소장, 부소장으로 구성되어 상담소 운영과 연대사업, 정부/지자체와의 거버넌스, 그 밖의 많은 대외업무를 총괄합니다. 부 설 기관으로 반성폭력이론을 생산하고 성폭력 관련 법·정책·문화를 분석하는 연구소 <울림(2 인)>과 성폭력 생존자들의 치유와 성장의 여정에 함께 하는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5 인)>가 있습니다. 저희 상담소의 팀별 담당 업무와 활동가 구성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는 이유는, 각 팀별로 고 유한 업무들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페미니즘 리부트에 맞서는 여성혐오 의 거대한 백래쉬가 득세하는 이 혼란스런 시국에 왜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밑밥을 깔아두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2016년 5월 17일에 일어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비롯하여 여성 혹은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 한 사건(범죄)들이 정신을 차릴 새 없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와중입니다. 이 모든 현상을 두고 “여성혐오(misogyny)”라고 통칭하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여성이나 성과 관련된 모든 왜곡된 행태나 접근, 사고를 모두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에는 쉽게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제 가 처음 “성폭력(sexual violence)”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느꼈던 답답함과 관련이 있을 겁 니다. 90년대 초 무렵에 ‘성폭력’이라는 말이 우리사회에 전파되고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을 때 여성과 관련된 모든 사안들을 ‘성폭력’이라고 뭉뚱그리면서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여성/소수자들 의 경험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모두 성폭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지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여성 혹은 여성과 같은 이등시민으로 규정되는 이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모두 여성혐오라는 깔때기로 모아지는 것 또한 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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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발표에서는 성폭력이나 성차별을 포함하는 여성집단(혹은 사회적 약자집단)에 대한 분노와 차별, 멸시를 근간으로 일어나는 사건(범죄)들을 “여성혐오”라고 정의 하려고 합니다. 저를 포함하여, 오늘을 사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성혐오”는 그만큼 애매모호하 고, 힘들고, 무섭고, 분노스러운 일상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최후의?) 개념어이기 때문입니다.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세 1: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할 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단체이니만큼, 다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선 1차 전화상담 이후에 어떤 지원이 필요할지에 대해 여성주의 상담팀 내부에서 먼저 논의가 진행됩니다. 성폭력 상담 뿐 아니라 법적 지원, 의료비 지원, 심리 상담 지원 등 다각도에서 피해생존자가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러나 좀 더 조직적인 지원을 필요로 할 경우에는 사무국과 공동대책위원회 구성 등의 논의로 이 어집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피해자 혼자 싸우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공동 대응이 필요한 사안이 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때 제안됩니다. 연예기획사 대표에 의한 청소녀성폭력사건이나 유명연예인 박00에 의한 성폭력 사건, 영화감독 김기덕사건 등이 최근에 공동대책위원회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건들입니다.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이 되면, 다른 상담소 혹은 관련 기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진행합니다. 유명연예인 박00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더 쉽게 되실 것 같습니다. 2016년 6월, 유 명연예인인 박00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호소한 첫 번째 고소인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4번째 고 소인까지 연이어 나타났고, 그 즈음하여 이00, 엄00 등 유명연예인들의 성폭력 사건이 줄을 이 어 대서특필되었습니다. 이에 남성인 유명연예인들이 자신의 유명세라는 위계위력을 이용하여 다 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일삼아왔다는 것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입니다.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유명연예인들은 언론을 통해 “무고는 큰 죄입니다(이00)”라며 성폭력 피해 호소인들에게 으름장을 놓았고, 곧바로 피해 호소인들에 대한 무고 및 명예훼손 역고소로 전폭적인 공격을 시 작했습니다. 언론과 각종 미디어들도 이에 합세하여, 성폭력 피해 호소인들을 위축시켰습니다. 당 시 저희 상담소에서는 관련 사안에 대해 성폭력 관련 단체들과 여성학 연구자들에 비공개 간담회 를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한 개 단체 차원이 아니라, 여러 관련인들이 모여 대응방향을 모색하기 로 한 것입니다. 저희 상담소 이안젤라홀을 꽉 채운 분들은 해당 사안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 에 대해 공감하고, 각자가 몸담고 있는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어보겠노라 말했습니다. 간담회를 시작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이후에 두 번의 기자회견8)과 네 차례의 성명서9) 발표를 8) 2016.07.28.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및 제대로 된 수사 촉구 기자회견 “ 검찰은 유명연예인에 의한 성폭력사건 제대로 수사하고, 정당한 성폭력 피해 호소 가로막는 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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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경찰과 검찰에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고, 잘못된 통념에 기반한 성폭력 피해자의 무고 및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규탄하기도 하였습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생존자에 대한 심리 및 법적 지 원을 최우선에 두고 활동합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피해자(무고죄 적용 시 피고인) 진술에 동행 하기도 하고, 재판이 진행될 때는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하거나 든든한 응원군으로 방청석을 지키 기도 합니다.10) 이와 더불어 언론의 지면을 활용한 인터뷰나 기고로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무고 죄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였습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서명운동 등을 통해 해당 사건을 공론화하여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공격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한 편, 제대로 된 판결을 유도하기 위해 해당 사건을 판단하는 재판부나 검찰에 의견이나 입장을 표명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안과 관련하여 필요에 따라 토론회나 판례평석회 등 을 개최하여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통념에 기반한 판단이나 판결을 끊어낼 수 있도록 지식과 정보 를 나누는 활동을 함께 진행하기도 합니다.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세 2: 성폭력과 성차별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사안일 때 성폭력과 성차별이 복합적으로 드러나는 사건들은 많습니다. 해군 대령에 의한 성폭력 사건을 예 로 들어 설명해 볼까합니다. 지난 5월 24일 “성폭력피해자인 해군본부 소속 여성군인 A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11) 보도 후, 여성단체들(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 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성폭력상담소)은 재빨리 사건을 파악하 고, 5월 26일 “해군 대령에 의한 성폭력 사건 진상 조사 및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공개요구서”를 발표, 이에 동의하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서명운동을 통해 5920명의 서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공개요구서”와 5920명의 서명지는 6월 1일 기자회견 후, 국회의 국방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에 각각 전달하였습니다. 빠른 대응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를 진행한다는 결정 와 명예훼손 역고소 남발에는 더욱 단호하게 처벌하라!” 2017.07.07.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 사건 2차 고소인의 무고 및 명예훼손죄에 대한 1심 무죄판결 환영 기자회견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남발을 멈춰라!” 9) 2016.08.26. 성명 발표. “유명연예인 엄ㅇㅇ 성폭력사건 언론보도와 관련된 성명서” 2017.01.18. 입장 발표. “유명연예인 박00 성폭력피해자 무고죄 1심 판결에 대한 공동대책위원회의 입장” 2017.04.03. 입장 발표 “유명연예인 박OO 성폭력 사건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 및 무고죄의 올바른 판결을 촉구한다!” 2017.07.05. 성명 발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남발에 경종을 울린 판결을 환영한다!” 10) 국민일보, 2017.7.8.일자, '박유천 무고' 여성 재판 중 방청석서 야유가 터져나온 까닭,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593437&code=61121111&cp=nv 11) 연합뉴스, 2017.5.25.일자, "상관에 성폭행 당했다" 해군 女대위 자살…대령 긴급체포(종합)“,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5/25/0200000000AKR20170525129151014.HTML ?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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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려졌고, 군대 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기존대책 및 재판이 종결된 군대 내 성폭력 사건 들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요구 또한 실행되는지는 계속해서 모니터링 하고 있습니다. 위 사건을 대응하며, 여성단체들은 “군대”, “해군”이라는 조직과 공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젊은 여군포럼> 등 군 조직과 관련된 전문가들과의 간담회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군대 내 성폭력 뿐 아니라 뿌리깊은 성차별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군대 내 성폭력 예방과 대책 마 련과 더불어, 군대 내 여성비율 확보(15%)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는지 심도깊은 논의를 진 행하면서 군 조직 안에서의 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제도와 기준들을 제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성폭력과 성차별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사안에 대한 대응으로는 저희 상담소가 2008년부터 연 대하고 있는 <군관련성소수자인권침해·차별신고및지원을위한네트워크(이하 군네트워크)> 활동도 있습니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는 여성 뿐 아니라 성소수자 역시 차별과 혐오의 대표 적인 대상입니다. 올해 5월 24일 정의당의 김종대 의원이 대표발의 한 군형법 개정안 (92조의6 폐지안)은 군네트워크의 활동에서 최근 두드러진 활동으로서, 군 조직 내 젠더감수성을 높이고 성폭력에 대한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없애는 대중인식개선 캠페인의 일환입니다. 저희 상담소의 성소수자 관련 연대사업은 이 외에도 전환치료근절운동네트 워크와 퀴어문화축제 참여 등이 있습니다.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세 3: 여성“집단”에 대한 혐오에 의한 사안일 때 앞의 두 가지 상황은 ‘성폭력’상담소이기 때문에 당연히 함께 해야 하고, 저희의 업무라고 확신하 게 되는 경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사건들은 “성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사건들이 많습니다. 강남역여성살해사건이나 왁싱샵여성살해사건, 여성유튜버살해 협박사건, 위례별초 페미니즘 동아리 교사에 대한 신상털기와 조직적 보복(?) 사건 등 여성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 협박, 살해는 분명 사회적으로 만들어 놓은 ‘성’에 대한 인식 이 왜곡되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요즘 정신없이 시시각각으로 터지는 여성혐오 사건들을 보 면서 당혹감이나 분노보다는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는 것이 제 솔직한 심경입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쏟아지는 사건과 사안들에 일일이 대처하기란 사실상 어렵기도 합니다. 혹자는 여성단체에서 왜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느냐고 질타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여성혐오의 냉혹한 현실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용기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저희 가 해야 할 본연의 업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기에 뼈아프게 듣고,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래 활동한 ‘여성단체’로서의 위치가 연대의 발목 을 잡기도 합니다. 여성‘만’ 참여할 수 있는 (지정성별 여성이 아닌 시민의 참여를 배제하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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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나, ‘여성단체(꿘 단체)의 참가를 거부하는’ 집회 등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는 장이나 집회에 누군가의 참여를 공식적으로 배제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워 고민스럽기도 하고, 그 누군가가 여성단체일 때는 참가 자체가 거부되기 때문에 개인의 자격으로 함께 하기도 합니다. 26년 동안 굳건하게 그 자리를 지켜온 상담소의 현재를 채워가는 상근활동가로서, SNS 타임라 인을 채우는 많은 여성들의 외침을 매일 보고 듣지만, 연말까지 정해져있는 사업을 진행해야하는 상황에서 이미 짜여져 있는 스케줄과 어렵사리 따놓은 예산을 집행해야하고, 각종 언론사나 성평 등/성폭력 관련 컨텐츠를 생산하는 기관 및 단체들의 자문이나 강의 요청에도 기꺼이 응해야하는 입장에서 현실의 많은 사안들에 모두 함께 하는 것은 요원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그때 연대를 요청하는 성명이나 입장에 연명하는 것으로 그 할 도리를 다 했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안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점이나 대안들을 발 빠르게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프기는 합니다. 여성혐오에 대응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세 4: 잘 할 수 있는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하지 못했던 활동을 더할 때 저희 상담소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성폭력피해생존자에 대한 지원과 상담일 것입니다. 최근 사이버성폭력이 크게 부각되면서 새로 생겨난 단체들이 있습니다. 신생단체들이 가지고 있 는 정보와 기술, 열정과 노력을 보며 저희도 함께 활동하는 반성폭력 단체로서 많은 것을 배웁니 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오프라인에서 면대면으로 일어나는 성폭력과 그 구체적 인 행태나 파급력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만, 근본적인 발생원인(권력 차이, 성적자기결정권의 침 해 등)은 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생존자들에 대한 지원 역시 여성주의상담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하기에, 신생단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생존자 지원 과 관련한 도움을 요청하실 때, 저희도 할 수 있는 한 연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사 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MOU체결을 통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동반자 관계가 되기도 했습니다. 26년 된 여성인권단체로서 그 역사와 활동의 노하우로 축적된 자원(사람, 돈, 정보력 등)을 생각 하면 물론 앞선 걱정이나 고민들은 ‘가진 자의 여유/투정’ 정도로 읽힐 수 있다 생각합니다. 그 렇기에 저희 상담소가 가지는 한계나 상근활동가들의 고민들을 내외부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해결책들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함께 혐오와 차별에 맞서는 여성운동에 대해 논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저희가 잘 하는 활동을 하던 대로 하는 것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반성폭력운동에 그치지 않고, 더 재미있게! 의미있게! 신 나게! 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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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별 토론
(3) 노동/복지 : 명백한 차별의 증거, 성별임금격차
성별임금격차, 결정적 장면 #Scene 7
배진경(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Scene 1. 진입장벽 본격적인 취업철의 막이 올랐지만 주요 대기업의 절반 이상은 아직도 상반기 채용 계획 조 차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나마 신규 채용 방침을 정한 기업들도 이공계 졸업생 (59.3%)과 남성(74.1%) 선발 비중이 높아 인문계와 여성 대졸자의 취업 문은 더욱 좁아 질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52% 상반기 채용 계획 미확정, 여성 인문계 졸업생 더 좁은 취업문, 한국일보, 2016. 03. 16 작년 말 신입 행원을 뽑은 B 시중은행도 남녀 지원자를 분리해 면접을 봤다. 10명씩 들어 간 실무면접, 6명씩 들어간 임원 면접 모두 남녀 따로 조를 편성했다. 이 은행 채용에 합격 한 양모(28)씨는 입행 후 사석에서 만난 면접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일반적으 로 여성 지원자들이 면접을 잘 보기 때문에 남자가 적게 뽑힐 우려가 있어 분리 면접을 했 다"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이 은행 최종 합격자 130여명 중 여성은 30명 정도에 불과했 다. 남녀 ‘따로 면접’… 시끌시끌한 기업 공채, 조선일보, 2017. 3. 17 면접 보러 갔는데 남자 친구 있냐면서 어차피 일 바빠서 헤어질거라고 비아냥거렸어요. 면접 자리에서 키가 어떻다 생긴 게 어떻다 외모 지적질 당했어요. 결혼하고 회사 관둘거냐고 물 어봤어요. 면접자리에서 자기는 원래 여자 안 뽑는다고 그랬어요. 그럴 거면 면접을 부르지 를 말던가.
밤 새는 일이 많은데 여자라서 할 수 있겠냐고 했어요. 한국여성노동자회 팟 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에 접수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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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구조화된 성별분리 직군 자체를 아예 성별로 다르게 뽑아요. 서비스직군인 입출금 업무를 하는, 소위 빠른 창구 는 백퍼센트 여직원만 채용해요. 일단 그렇게 여자를 저임금 일자리로 대량 고용하는 식으로 여자의 일, 남자의 일이 나뉘는 거죠. 직군은 RS라고 불리는 높은 창구랑 행원 혹은 행대리 라고 불리는 정규직으로 나뉘어 있어요. 요즘은 RS에서도 왠만한 건 다 해주거든요. 사실 정규직과의 차이는 대출을 할 수 있냐없냐, 펀드 같은 위험상품을 팔 수 있냐 없냐 차이에 요. 근데 RS는 여자로 다 뽑는 거죠, 고졸출신 여성들이 많고요. 저희 동기 72명 중 6명만 남자에요. 군대도 가야하니 고졸 남자는 RS로 잘 안뽑고 대졸 남자는 RS직에 절대 안들어 와요. 근데 여자들은 대졸이어도 RS로 들어와요. 행원은 여자를 뽑긴 하는데 남성보다 비율 이 작아요. (RS와 행원의 임금 차이가 있는지?) 기본급 RS 초봉은 150(만원)정도, 행원은 200(만원) 넘죠. 아예 기본급이 달라서 상여금이나 그런 것도 확 차이가 나고. 복지제도도 달라요. 행원은 매달 30만원씩 들어와요, 월급 제외하고. 실적할당량은 동일하게 직군에 관 계없이 거의 비슷하게 주어져요. RS 창구에서는 전산이 아예 안되서 신규를 못하거든요. 그 래서 신청서를 다 받아서 행대리쪽 창구에 줘야 하는 거죠. 결국 저희 실적으로는 거의 안 들어가요. 사실 거기에서 임금격차가 나는 거에요. 직군이 달라서 노동이 다르다고 하니까... (소영) 20대 여성노동자가 말해주는 직장 내 성차별과 성별임금격차, 일하는 여성 103호, 2017, 한국여성노동자회 저희 회사는 고졸 여성만 뽑는 직군이 따로 있어요. 고졸 남성은 없고, 고졸 여성만 뽑아요. 부서별로 몇 명씩 배치되서 업무 돕는 역할. 월급도 다르고, 승진도 거의 못해요. 저 같은 경우는, 지난 4년 동안 일을 안 줬어요, 팀 자체가 일이 없기도 하지만요. 저는 뭘 하면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데 직장에서 전혀 그런 것들을 발휘할 수도 없고, 뭘 시키려고도 안 하 고, 그냥 있다 가는 소모품 정도로만 생각을 해서... 제가 작년에 일 좀 달라고 했어요. 그래 서 받은 게 자기들이 하기 싫은 일 그냥 손 많이 가는 일, 뒤처리하는 일, 전혀 제게 도움 되지 않는 일만 주는 거요. 여기서는 업무적으로 성장할 수 없고 그래요. 어려운 일도 직원 으로써 성장할 수 있는 일인데 여성을 배제해요. (지영) 20대 여성노동자가 말해주는 직장 내 성차별과 성별임금격차, 일하는 여성 103호, 2017,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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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통계청 (2016), 지역별고용조사 (상반기, 전국) 원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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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고용율 고용형태별, 연령별 분포 _ 통계청, 2016. 8 경제활동인구조사부가조사
여성 고용율 고용형태별, 연령별 분포 _ 통계청, 2016. 8 경제활동인구조사부가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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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3. 돌봄노동 책임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씨였다. 정대현씨의 직장이 더 안정적이고 수입이 많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이 유를 떠나 남편이 일하고 아내가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중략)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 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 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2016, 민음사 평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여성의 일터 진입의 용이성에 대해서만 걱정할 게 아니라 남성의 일터 탈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략) 우리는 일터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가정과 일터를 연계시키 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만 패자라고 가정해 버리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왜 냐하면 사실 이런 시스템에서는 모두가 패자이기 때문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 는 여자들, 아버지 얼굴을 자주 보지 못 하는 아이들. (중략)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지칠대로 지쳐 있는 슈퍼우먼 세대 또한 낳았다. 이 여성들은 ‘수컷 들’의 노동세계에 제대로 진입하기는 했지만(그에 상응하여) 가정 내 ‘여성들’의 노동 세계 에서는 남성들의 노동 세계에 진입한 만큼 퇴각하지 못 했다. 이들 슈퍼우먼은 그냥 두 가 지를 다 하고 있다. 아내가뭄, 애너벨 크랩, 2016, 동양북스 육아휴직 갔다 온 사람들은 하던 업무 말고 지원업무로 돌리고 그러다 보니 여성임직원분들 이 없어요. 남아있는 여성분들은 지원업무만 있고 현장업무는 대부분 못 버티고... 겉으론 육 아휴직 제도나 이런 게 잘되어 있지만 인사담당 경영지원실 실장 부사장부터 처음 임용되자 마자 했던 말이 ‘경영악화로 힘드니 고졸여직원 먼저 잘라라, 그리고 육아휴직 갔다 온 여성 들 잘라라’ (중략) 남자들은 빠르면 35세, 30대 후반에도 차장 달아요. 여성들은 40넘어도 차장달기 어려워요. 남성보다 7~8년 정도는 늦게 다는 거 같아요. 여성은 차장 이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 어요. …… 남성한테 인사고과 자체를 더 잘 줘요. 부서분들이 면담할 때 ‘이번에는 잘 못주 겠다. 좀 힘들 거 같아, 누구(대부분 남자 또는 한 번 이상 누락된 여성)는 진급을 해야 될 거 같고.’ 이런 식으로 여자는 최소 한 번 씩 누락되요. 남성들 중에서는 육아휴직 사용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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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거의 없고. 게다가 남자가 쓰려면 제정신이냐고 욕을 하면서 남자들에겐 못쓰게 해 요. 20대 여성노동자가 말해주는 직장 내 성차별과 성별임금격차, 일하는 여성 103호, 2017, 한국여성노동자회
#Scene 4. 여성노동의 가치 저평가 : 여성이라서 비전문적?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나이여도 보다 전문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생물학 적 성별이 남성인 사람만 티마스터로 불리며 바 안에서 일할 수 있었던 회사. 나중에 망해 갈 때 쯤에는 직원 월급을 제 때 안 줘서 사람들이 다 나가버리니 남녀, 교육유무에 관계없 이 그 부서 일을 하던데 지금 생각하니 참 웃긴 곳이었네요. 전문성은 남성일때 더 돋보인 다는 이야기 잊지 않겠습니다! 여자는 쳐다만 봐도 전문성이 떨어져 보이는 걸까요. 미안하 지만 전문교육 1도 못 받은 남자가 티마스터랍시고 일하는 거 보고 정떨어져서 이직했네요. 한국여성노동자회 팟 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에 접수된 사연 "니콜과 나는 작은 인력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우리 보스는 항상 그녀가 일을 너무 늦게 한다고 불평했지." "그녀의 상사로서 난 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 난 내가 그녀보다 경험이 많아서 일 을 좀 더 빨리한다고 생각했어." "그렇지만, 보스의 지시 때문에 그녀를 지켜보며 업무 속도를 좀 더 올리라고 잔소리를 해야 했지. 그녀는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빨리해보려고 노력했어. 나도 니콜도 그런 상황이 싫었 지." "하루는 우리 고객 중 하나와 그 사람의 이력서에 대해서 업무 메일을 주고받고 있었어. 정 말 말도 안 되는 사람이더라고. 무례했고, 나를 경멸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내 질문을 아예 무시했어." "자기가 쓰는 방식이 업계의 기준이고(아니거든), 내가 자기 말을 이해 못 한다고 우겼어. (난 다 이해했어)" "어쨌든 그러다가 어떤 사실을 깨닫고 몸서리를 쳤지. 니콜이랑 받은 편지함을 공유하고 있 어서, 내가 그 고객과 이메일을 전부 니콜 이름으로 주고받았던 거야." "그 사람이 무례하게 굴었던 건 내가 아니라 니콜이었던 거지. 그래서 '안녕하세요. 마틴입니 다. 니콜로부터 이 건을 제가 인수했어요'라고 보냈어." "그 순간 태도가 바뀌더라. 내 충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고마워했으며 "좋은 질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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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바로바로 답장하더군. 완벽한 고객으로 변신했어."
"난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어. 바뀐 거라면 남자 이름을 썼다는 것뿐이야." "니콜한테 항상 이딴 식이냐고 물어봤지. 그녀는 '뭐 언제나 그런 건 아니지만, 거의 그래요' 라고 대답했어." "그래서 우리는 실험을 했어. 2주 동안 고객 대응 메일을 보낼 때 이름을 바꾸기로. 나는 그 녀의 이름을 그녀는 내 이름을. 정말 미치겠더라." "악몽 같더라고. 내가 뭘 묻거나 제안해도 반문만 돌아올 뿐. 자면서도 응대할 수 있을 쉬운 클라이언트조차 나를 내려다보더라고. 한 명은 나한테 싱글이냐고 묻기도 했지." "니콜은 입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냈어. 그녀가 지금까지 나보다 더 일을 느리게 했던 이유 는 고객들에게 신뢰를 얻는데 신간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란 걸 알았지." "니콜이 클라이언트에게 일 잘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동안 난 업무의 절반을 끝내 놓을 수 있었던 거야." "내가 그녀보다 일을 잘하는 게 아니었어. 내게 보이지 않는 어드벤티지가 있었을 뿐." "우리 보스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안 믿더라고. 난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다시 는 니콜에게 일 좀 빨리하라고 말하지 않겠다고 말했어." "보스는 결국 인정하긴 했는데, 우리한테 일을 다그치는 다른 방식을 찾아냈지.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지만." "내가 깨달은 최악의 사실 : 나한테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만, 니콜은 이런 일에 익숙하 다는 사실. 그녀는 이런 대접을 자기 일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 한 남자가 여자 이름으로 업무 메일을 보내고 겪은 '흥미로운' 경험, Huffington Post, 2017. 3. 15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시 켜서 시키면 되는 거다.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부가가치나 생산성이 높아지는 직종이 아니다. 정규직 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들의 주장대로 정규직화를 해주면 납세자인 학부모와 국민들이 이들을 평생 먹여 살려야 한다. 미래에 학생들이 줄어들어도 고용 유연성이 없어져 해고를 할 수도 없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조금 보장되는 비정규직', 즉 5년 내지 10년짜리 계약직을 도입하는 게 합리 적이다. 이들의 급여 체계는, 단순 기술직 · 노무직이므로 호봉제보다는 직무급제를 도입해 야 한다. 직무에 맞는 급여를 지급하고 해마다 호봉 상승이 아니라 물가 상승률 정도의 급 여 인상이 적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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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밥하는 동네 아줌마가 왜 정규직 돼야 하나?", 오마이뉴스, 2017. 7. 9
#Scene 5. 주요 업무는 남성, 보조 업무는 여성 어떤 상품의 마케팅을 한다고 했을 때, 꼭 여자애들한테는 특정 업무를 시켜요. 홍보 이런 것만 시켜요. 그런데 사실은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보면, 마케팅 전략 같은 게 핵심이거든요. 그래서 부수적인 게 프로모션, PR 등 저는 그게 전공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애들 을 봤을 때 꼭 여자애들이 해요. 그게 되게 하찮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내부에서는. 그런 데 그런 전략이나 유통, 뭐 이런 조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항상 남자애들 시켜요. 그 런 게 좀 있어요. 진짜 항상 홍보는 여자애들을 시켜요. (선경) 20대 여성, 대한민국에서 생존을 외치다 “Let me in!”, 2010,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사가 바뀔 예정이고 새로 부임할 상사가 성차별적 발언을 했다. “맞벌이고, 나이도 있는데 그 만두지 그러냐? 여직원 2명은 쓸 수 있다. 욕심내지 말고 그만둬라. 그 전에도 나이 많은 여직 원 다니던데 보기 안 좋더라.”라고 했다. 젊은 미혼 여성에게만 잘 해준다. 평등의전화 상담사례집, 2016, 서울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Scene 6. 비합리적 직장문화 : 군대문화, 줄 서기, 지나친 장시간 노동 그쪽엔 남자랑 여자가 비율이 반반이 되는데요. 실장님이 남자잖아요. 그분이 여자 직원들은 그냥 직원으로 봐요. 자기가 키워서 얘를 내 밑에 넣어야지 이런 거 하잖아요. 라인을 만들 어서. 여자들은 아예 그 라인에 끼질 않아요. 본인이 안 끼우는 것도 있지만 그 쪽에서도 여 자들은 아예 그쪽은 안 닿아요. (정은) 20대 여성, 대한민국에서 생존을 외치다 “Let me in!”, 2010, 한국여성노동자회 어려운 일도 직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일인데 여성을 배제해요. 여성이 일을 못해서가 아 니라 대부분 상사가 남성인데 같은 성별이 다루기 쉽다며 업무를 주는 것에 있어서 차별을 둬요. 일 시키기 쉽다는 게 결국 지적하기 더 쉽고 맘먹고 쌍욕을 해도 그냥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쌍욕을 하는 게 맞는 게 아니잖아요. 남성들은 군대문화의 영향인지 그걸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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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하고 고칠 생각 안하고 뒤에서 욕만 하고 그래요. 술자리 데려가기도 편하고 야근시키기 도 편하고. 그래서 남성들에게 더 일을 주는 거죠. (지영) 20대 여성노동자가 말해주는 직장 내 성차별과 성별임금격차, 일하는 여성 103호, 2017, 한국여성노동자회
#Scene 7. 여성에게 요구되는 태도의 내면화 구인이나 승진 공고가 났는데 공표된 열 가지 기준 중 여덟 가지를 갖추고 있으면, 여자들 은 부족한 나머지 두 조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망설인다고 한다. 그러다가 열 가지 기준 중 네 가지만 충족시키지만 나머지는 속여 넘길 수 있다며 철통같은 자신감을 내뿜는 의기 양양한 남성 지원자 무리에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2016, 동양북스 소니 픽쳐스의 시스템이 해킹됐을 때, 내가 동료 남자 배우들보다 적은 출연료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소니 펵쳐스에 화가 나지 않았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내가 일 찍 포기했기 때문에 그들과의 협상에서도 실패한 것이다. 솔직히 두 편의 프랜차이즈 영화 (‘엑스맨’과 ‘헝거게임’)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수백만달러를 놓고 싸우는 걸 원하지 않았다. 솔직히 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원했다. 제대로 싸우지 않고, 그냥 계약하기로 결 정했던 배경에 그런 이유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까다롭거나, 버릇없는 사람 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내가 몇 년 째 고치려고 노력 중인 부분이다. 통계를 보니, 이런 문제를 겪는 여성이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게 사회적으로 결정된 걸 까? 남자들을 ‘불쾌하게’ 하거나, ‘겁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의견을 드러내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는 걸까? 나는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내 의견을 말하고, 남들이 날 좋아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냥 때려치웠다. 나와 같이 일하던 남자들이 어떻게 이야기해야 자신의 의견이 반영될지 고민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이 어 떻게 말하든) 그들의 의견은 늘 반영되니 말이다. 제레미 레너, 크리스찬 베일, 브래들리 쿠 퍼는 모두 (회사와) 싸워서 자신을 위한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사나운 태도로 협상을 했다는 점에 대해 아마도 사람들은 전략적인 행동이었다며 칭찬했을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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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릇없이 보일까봐 걱정하며 내 정당한 몫도 받지 못했는데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이게 내 버자이너와 아무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소니의 어느 프로듀 서가 협상 중인 여배우를 ‘버릇없는 녀석’이라고 했던 이메일이 유출된 걸 보면 내 생각이 아주 틀린 것 같지는 않다. 왠지 누군가가 남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제니퍼 로렌스/배우, 2015
# [정책대안] 성평등노동정책이 필요하다!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니. 하지만 모든 최초가 그렇듯, 모든 선언 이 그렇듯 내용과 힘을 채워가는 일은 만만치 않다. 되어 있는 일이 아니라 되어가야 할 일 이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사회 전반에서의 성평등 관점 정립 매우 시급하 다. 특히 노동시장은 더욱 그러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성들은 일터에서 배제당하고 있고 자신이 일한 정당한 대가를 빼앗기고 있다. 결과적 저임금은 여성 노동자의 숙명처럼 치부되 고 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여성노동자회 는 지난 몇 년에 걸친 연구와 토의 끝에 몇 가지 결론을 내리고 대선국면에서 이를 요구했 다. 성평등 철학, 성평등 노동정책 무슨 일이든 밑그림이 필요하다. 국가의 정책에 있어서 밑그림은 철학이다. 지금껏 한국의 여성노동정책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성을 도구적으로 활용하는 ‘여성인력활용정책’이 었다. 여성노동자는 존중받아야할 국민이나 시민이 아니라 활용해야할 인력이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필라델피아 선언은 ILO가입국인 우리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았다. 주체 가 주어가 되지 못하면 주체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그 결과 여성은 경공업의 역군으로 장시 간의 열악한 노동을 강요당했고, IMF 때는 노동시장에서 강제로 퇴출당했으며, 그 이후 비 정규직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러한 국가의 인식은 성평등 철학의 부재에서 시작된다. 여성노 동의 가치는 저평가되어 왔고, 가사와 육아노동은 언제나 여성의 몫이었다. 이는 노동시장에 서의 여성지위에 크게 영향을 미쳤지만 그 해결책은 늘 성평등 철학이 부재한 파편적 정책 이었다. 대표적으로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시간제 확산정책을 들 수 있다. 가사와 육아를 여성의 기본 역할로 설정하고 남은 시간에 시장노동을 유도한다. 가계의 소득을 남성 1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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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0.5로 설계한 문제정책이다. 그 결과 현재 시간제 노동자 중 73%가 여성이다. 시간제 는 정규직도, 승진도, 적정임금도 기대할 수 없는 저임금의 압축·보조노동이다. 정부는 처음 고용량을 늘리기 위한 정책으로 이를 내세웠다. 지금은 ‘장시간 근로개선 및 일·생활 균형 문화 확산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제 일자 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전자는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이므로 노동 자들 사이에서의 다름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제 노동자는 전일제 노동자와는 전혀 다른 지위에 놓이게 되고 차별적 지위에 놓이게 된다. 또한 일·생활 균형을 여성에게만 요 구하는 것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시간제 확산 정책은 당장 폐기하고 성평등 철학에 기반한 새로운 밑그림을 그려야할 때다. 현재의 심각한 노동시장 불균형은 여성에게 시장 노동을 요구하지만 남성들은 가사·육아노 동으로 진입하지 않은 현실에서 발생한다. 또한 여성을 한 사람의 시민권자로, 노동자로 인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여성의 시각만을 교정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기 울어진 운동장 안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함께 서 있다. 그것이 여성노동정책이 아닌 성 평등 노동정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여성노동정책은 성평등한 철학과 방향을 담아 모든 사회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 노동정책으로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경력단절이 아닌 고용단절 50% 안팎에 불과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흔히들 이렇게 낮은 경제활동참가율의 원인을 경력단절로 지목한다. 경력단절은 주로 결혼 후 출산이나 육아 등의 사유로 노동시장에서 일 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자발, 혹은 비자발적인 이유로 퇴거하여 노동자로서의 경력이 단절되 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 뒤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언제 그만두어도 아쉽지 않 은 보조적인 일, 아이를 맡기는 비용보다 낮은 임금.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차별적인 노동시 장 구조 탓에 여성의 일자리는 대부분 가사와 육아를 하면서 지켜낼 만큼 좋은 일자리가 많 지 않다. 또 주로 영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은 사업장의 휴폐업으로 인해 계 속 일자리를 옮겨 다니고 있다. 게다가 여성의 경험은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나이듦이 연륜으로, 숙성된 노하우로 인정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의 나이듦은 장식 기능을 상실한 쓸모 없음으로 취급된다. 더 이상 부리기 쉬운 어린 여성이 아닌 경험이 축적된 여성들은 수순대 로라면 승진을 해서 관리자로 진출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강고한 유리벽과 유리천정에 부딪힌 여성들은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지 못 하고 퇴출된다. 이는 결혼, 출산, 육아의 사유와는 관 련이 없다. 이런 이유로 경력단절이라기 보다는 고용단절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하고 포 괄적인 설명이 된다. 지금처럼 단순하게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 라 이러한 고용단절의 해법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수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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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을 살펴야 여성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임금이 낮 으며, 각종 혜택에서의 배제되고, 영세사업장으로 집중되며, 보조적인 업무 배치를 받고 있 다. 구체적 수치로 살펴보면 최저임금 미달자 266만 명 중 62.7%가 여성이다. 여성비정규 직은 전체 여성노동자 중 54.5%이며 월평균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123만원이다 (2016. 8월 기준). 여성노동자들은 지나치게 낮은 처우와 근로조건으로 인해 기본적인 생 활마저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여성들의 성취가 전체 여성들의 공통된 성과 인 양 호도되는 경향이 있다. 중요한 것은 가장 낮은 곳을 살피는 일이다. 최저임금 미달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 하는 노동자, 저임금 노동자 등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노 동자들의 삶을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아닌 개인독립생활자 모델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모든 개인은 스스로 자립하여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한쪽 이 어느 한쪽에게 기대는 삶은 종속을 가져올 뿐이다. 또한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고,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모든 여성과 남성이 만나 가정을 꾸린다는 가정 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다. 이후로도 남성생계부양자 모델로 정책을 설계한다면 여성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벗어날 수 없다. 여성이냐, 남성이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모두를 개인독 립생활자로 설정하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모든 국민들이 독립된 개인으로 생활 가능한 존 재여야 하고 국가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이어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노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야근, 회식, 휴일노동으로 구성된 장시 간 노동의 삶은 OECD 2위의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귀결로 이어진다. 장시간 노동은 개인의 생활을 삭제한다. 휴식 시간, 건강한 음식을 해 먹을 시간, 가족을 돌볼 시간, 사회와 정치 에 관심을 가질 시간 등이 삭제된 삶은 몸과 정신, 관계의 피폐를 가져온다. 장시간 노동의 이면에는 3명이 일할 자리에 2명을 채용하는 관행, 하루 8시간 계약을 하고 노동자의 24시간과 계약했다는 착각,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식문화 등 삶에 대한 존중 없는 전근대적 노동문화가 있다. 그러나 ‘죽도록 일하면 죽는다.’ 더 늦기 전에 노동자들에게 삶을 돌려주어야 한다. 전 국민에게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는 삶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삶은 중심 은 노동이 아니라, 회사가 아니라 개인의 삶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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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 법·제도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우리는 일·가정양립 정책에서 특히 그런 광경을 많이 목도하였다. 출산전후휴가가 있어도 육아휴직이 있어도 제도를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제도를 쓰기 위해서는 사업주의 승인 단계를 통과해야하는 데 사업주는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는 노동자를 회사의 이익을 갉아먹는 기생충으로 취급한 다. 우리나라 일·가정양립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만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사 실이다. 남성들은 스스로를 가사와 육아의 담당자로 여기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가사·육 아 시간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회사는 손쉽게 야근과 휴일근무를 담당할 인력으로 남성을 설정한다. 그 이유로 여성의 차별을 정당화 한다. 하지만 남성 역시도 가정 내의 가 사와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양육자이며 가사노동자임을 사회와 개인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여성에게 전담된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나누어야 한다. 이는 제도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사노동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고 이중양육자 모델을 기초로 하여 정책을 설계하고 사회적 인식개선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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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캠프 토론 1. 주제 나누기와 토론조 구성 -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포스트잇에 쓰고 자신의 이름을 쓰세요. - 혹은 다른 사람들이 붙인 주제를 보고 함께 토론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자신의 이름을 써서 주제 포스트잇 밑에 붙여 주세요. - 토론조를 나누어 토론합니다.
2. 토론과 결과 정리 - 사회자와 발표자를 정하고 토론을 시작합니다. - 토론의 결과는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운동의 방식 제안으로 정리해 주세요. - A4용지 5장 이내로 결과를 정리해 주세요.
3. 발표 - 종합 토론 시간에 발표 합니다. - 각 조별로 2분 이내의 발표로 준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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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별 토론
(4) 대표성 : 할당 아니고 동수, 남성연대에 균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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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여성 : 할당제, 대표성, 정치세력화
권수현(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부대표) 1. 1793년의 프랑스와 2017년의 한국 1791년,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1748-1793)는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수많은 여성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남성 정치세력에 저항해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 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of the Woman Citizen)’을 발표했고 제10조에서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법이 규정한 공공질 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성과 동 등한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한 올랭프 드 구즈는 1793년에 연단이 아닌 단두대에서 생 을 마감해야 했다. 그것도 새로운 프랑스 공화국을 만들겠다고 나선 남성 정치세력들에 의해 서. 2017년, 여성(단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취직한 탁현 민의 사퇴를 요구했다. 탁현민은 <남자 마음 설명서>(2007, 해냄), <말할수록 자유로워지 다>(2007, 해냄), <상상력에 권력을>(2010, 더난)과 같은 책뿐만 아니라 강단에서 “여성을 남성의 성적도구로 대상화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와 폭력을 성적 자유와 문화라고 포장 하며, 여성혐오를 실천하는 남성문화를 옹호”해왔고,12) 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기조에 반할 뿐 아니라 성평등한 민주주의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 (화된) 문화에 대한 여성(단체)들의 문제제기는 “철없던 시절 일”(중앙일보 2017.07.06.) 로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되거나 “판단은 국민의 몫”(한겨레 2017.07.16)이라며 시민들에 게 책임이 전가되거나 ‘보수의 기획’에 도움을 준다(NEWSM 2017.07.13.)는 이유로 대한 민국 남성문화에 대한 공론화와 성찰을 저지당했다. 그것도 진보라고 자칭하는 남성(화된) 정치세력들에 의해서.13)
12) 2017년 7월 7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진행된 ‘탁현민 즉각 퇴출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기 자회견문(‘성평등 대통령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 탁현민을 경질하라’)(젠더정치연구소 여.세. 연 홈페이지) 13) 탁현민을 옹호하는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은 <일다>에 게재된 “젠더 문제는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탁현민을 옹호한 ‘진보’가 새 정치의 걸림돌이다”를 참조 (http://ildaro.com/sub_read.html?uid=7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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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은 1790년대 프랑스와 다른가? 1790년대 프랑스보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 그 어느 때보다 현재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특히 20-3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임과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데는 2016년 5 월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여성’이라 는 성별, 그 이유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이 한국사회이고 그 현실에 어느 여성도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져갈수록 이에 대한 반격(backlash)도 만만치 않게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유형의 ‘여성혐오(misogyny)’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여성혐오에 기초한 한국의 남성문화를 비판하는 여성(단체)들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 부터 욕설을 동반한 항의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SNS를 통해 개인정보가 털리고 사생활 이 불가능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더 문제인 것은 정치와 (남녀 불문) 정 치인들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여성혐오가 문제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남녀) 정치인들은 대중/시민들의 여성혐오를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여성혐오를 적극 적으로 드러내면서 가부장적 남성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더 절망적인 (동시에 안타까운) 것 은 여성정치인들의 대응도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다.14) 무반응에 가까운 여성정치인들의 모습은 “(여성/젠더문제는) 나중에”를 외치는 남성정치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최소한 정치영역에서 여성(단체)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2017년 한국의 (남녀)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반응과 대응은 1790년대 프랑스 남성정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2. 부족한 여성과 넘치는 남성 해방 이후부터 한국 여성들은 정치참여를 시도해왔고 정말로 느리지만 정치영역 내 여성의 수와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이 가장 많은 여성들이 정치영역 에 진입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들 여성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적인 문화와 질 서와 제도에 저항하지 않는 것일까? 저항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까? 이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일차적인 원인으로 낮은 수준의 여성대표성(women’s representation)을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는 핵심적 지위에 여성들이 적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에서 다른 성이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에 힘이 실 리기 위해서는 다른 성의 비율이 최소한 30% (임계량: critical mass)가 되어야 하는데15) 14) 물론, 더불어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지난 6월,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대해 ‘조치 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다(중앙일보, 2017.06.22.). 15) 할당제는 임계량 이론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는 여성의원 비율이 최소 30% 또는 35-40%가 되어야지만 여성친화적인 또는 페미니스트적인 정책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Dahlerup 1988; Kanter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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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치영역은 여전히 남성이 전체의 80-90%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이 진출 하지 못한 영역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제20대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은 17%이고,16) (2014년 기준으로) 광역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장 중 여성 비율은 각각 0%와 4%이며, 광 역의회와 기초의회 여성의원 비율은 각각 14.3%와 25.3%이다. 주요 정당의 고위당직자 비 율은 (2015년 기준으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6.5%, 더불어민주당이 10%이다(주재 선·송치선·박건표 2017, 470). <그림 1> 국회 여성의원 비율의 변화: 제헌국회-제20대 국회
정당의 고위직과 의회에서 여성 비율이 30%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성의원을 비롯한 여 성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서구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원의 비율이 절대적으 로 낮거나 초선의원인 여성이 많을 경우에는 여성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정당의 결정 이나
의견을
따르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Debus
and
Hansen,
2014;
Beckwith, 2007). 현재 한국 국회 여성의원들도 이러한 상황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17)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봐야 할 것은 ‘여성의원이 반드시 여성의 이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 을까’의 문제다. 페미니즘이 서구 중산층 백인 여성들에 의해 주장되었을 때 그들은 여성의 이해가 단일하다고 보았고 따라서 여성의 문제는 여성이 더 잘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며 여성대표성의 확대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흑인을 비롯한 제3세계 여성 페미니스트 Studlar and McAllister 2002). 16) 현재 전 세계 의회의 여성의원 비율 평균은 23.5%이며, 아시아 지역의 평균도 197%이다. 한국은 전 세 계 193개 국가들 중에서 117위이다(IPU, 2017.07.25.). 17) 한 연구에 따르면, 정당공천으로 비례대표가 된 여성의원은 정당 구속력으로 인해 개인적 신념이나 소신보다는 당론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따라서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활동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윤이화 2009,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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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 의해 비판받았고, 경험적으로도 모든 여성의원이 여성/젠더이슈에 관심을 갖고 우호적 인 태도를 갖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여성의 이해라는 것은 단일하지 않 으며, 성뿐만 아니라 계급과 인종, 종교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차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여성의원들도 (개인적 요인이든 정치적 요인이든 간에) 여성/젠더이슈에 대한 이해 와 태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한국정치에서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제기나 성찰, 행동이 나타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핵심 행위자들(critical actors)의 부재를 생각해볼 수 있다.18) 여성의 비율 이 적다하더라도 핵심 행위자들이 존재하면, 여성/젠더이슈에 대해서도 사람들 간의 연대와 집단행동이 가능하며, 여성친화적인·페미니스적인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 제16대와 제17 대 국회에서 다양한 여성 관련법들이 제·개정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핵심 행위자들의 존재와 역할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제17대 국회에서 호주제가 폐지된 데는 정치영 역에서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와 여성부)와 여성의원들이 핵심 행위자로서 역할을 했기 때 문에 가능했던 측면이 있다.19) 현재 여성의원 비율은 과거보다 증가했지만 여성/젠더이슈에 대한 여성의원들의 관심과 활 동은 상당히 약해진 것이 현실이다. 제18대와 제19대 국회 기간에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고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진 여성 관련 정책은 없다.20) 제16대와 제17대 만들어진 정책을 수 정·보완하는 선에서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 제18대 국회 때부터 여성/젠더이슈와 관련한 여 야 여성의원들 간의 연대활동은 거의 사라졌으며, 같은 정당 내 여성의원들 간 연대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시민사회 내 여성단체들과의 소통과 연계도 상당히 약해졌다. 물론, 여성/젠더이슈에 관심을 갖는 의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한두 명의 여성의원이 거의 모든 여성/젠더이슈를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 여성 의원에게 모든 여성/젠더이슈를 의제화하고 공론화하고 정책변화까지 이끌어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책결정권을 갖고 있는 다른 의원들과 행정부 관료 등에게 정책결정 책임에 대한 면 죄부를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18) 핵심 행위자 모델(critical actors model)은 기본적으로 모든 여성의원이 여성/젠더의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추구하지 않으며, 남성의원을 비롯해 정당의 구성원, 관료, 장관, 시민사회 집단 등 다양한 행위자들 이 여성의 이해를 대표할 수 있는 행위자가 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Celis, Childs, Kantola and Krook, 2008). 19) 정부 내 페모크라트들(femocrats)과 (특히 여당) 여성의원들 그리고 여성단체들이 삼각연대(triangle alliance)를 형성해 핵심 행위자들로 활동했고, 이들 외에도 정당과 남성의원들의 지지도 호주제 폐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법안은 있다. ‘여성발전기본법’(1994년 제정)을 ‘양성평등기본법’으로 전면개정하는 것과 관련된 것인데 이 법은 내용보다는 명칭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 여성단체들은 ‘양성’이라는 단어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개의 성만을 전제하고 있다며 ‘성평등기본법’으로의 수정 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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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목소리가 힘을 갖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threshold)인 30%라는 비율이 국 회와 정당 어디에서도 달성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의 이해를 대표하려는 핵심 행위자들이 부 재하거나 부족하다는 두 가지 사실은 기층 여성들의 분노와 이해가 정치영역에서 대표되고 있지 않는 이유의 일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한국 국회가 과 연 한국사회의 다양한 시민들과 집단들을 대표할 수 있는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문 제가 있다. 즉 성별만이 아니라 계급이나 계층, 장애, 성적 지향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시민들의 다양한 열망과 이해, 소망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 국회의원들 간에도 다양성이 존 재하는가이다. 언론에 보도된 제20대 국회의원 특징을 살펴보면, 83%가 남성이고, 평균 55.5세이며, 직업 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이 약 200명이며, 재산은 평균 약 41억 412만원이며, 학력은 대학 원 졸업 이상이 90% 이상이다(경향신문 2016.04.04.). 즉 고학력·고소득·고연령 남성들이 국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학적 구성을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이 50.1%이고 남성이 49.9%로 여성인구가 조금 더 많다(매일경제 2017.06.15.). 연령대별로 보면, 20 대가 13%, 30대가 14.5%, 40대가 17%, 50대가 16.4%, 60세 이상이 19.8%이다(내일 신문 2017.03.22.). 그런데 국회의 남녀비율은 여성이 17%이고 남성이 83%이다. 연령대 별로는 50대 국회의원이 전체의 53.67%, 60세 이상이 28.67%로 전체의 80%를 차지하 고 있다. 반면 20대는 0.33%, 30대는 0.67%이다(하승수 2017). 재산의 규모와 관련해서 도 시민과 국회의원 간에 큰 격차가 존재한다. 한 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 보통사 람의 월평균 소득은 283만원, 보유자산은 3억 3천 61만원이다(연합뉴스 2017.03.08). 반 면, 의원들 간 차이에도 불구하고21) 평균적으로 의원들이 시민들보다 훨씬 많은 재산을 보 유하고 있다. 기본적인 인구학적 특징만으로도 현재 한국 국회는 특정 집단이 과도하게 과잉 대표(overrepresentation)되어 있는 상태이다.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의 이해를 대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성원의 동질성 정도가 과도하다. 다양성보다는 동 질성이 강한 상태에서는 다른 목소리와 이해가 대표되는 것 자체가 구조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제대로 대표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3. 여성 할당제와 남성 상한제 고학력·고소득·고연령(과 더불어 이성애 중심의) 남성들로 구성된 국회의 동질성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에서 여성들이 제시한 제도적 대안이 할당제(gender quota)이다. 할당제는 21) 제20대 의원들의 평균재산을 대표 유형별로 살펴보면, 지역구 의원의 경우는 여성의원은 평균 18억 1 천만원, 남성의원은 평균 48억 7천만원(권수현·황아란 2017),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는 여성의원은 평균 14억 9천만원, 남성의원은 18억 1천만원이다(Lee et al.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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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제4회 세계여성대회 이후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한국 에서는 제16대 총선을 앞둔 2000년에 처음으로 법제화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의 개정을 거 치면서 비례대표 50% 할당과 지역구 30% 할당으로 제도화되었다. 한국 선거에서 할당제(gender quota)가 실질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제17대 총선 (2004년) 때부터이다. 이때 비례대표 명부에 여성후보를 50% 공천하고, 여성과 남성 후보 순위를 번갈아 적는 교호순번제가 적용되었다. 이로 인해 제17대 총선 결과, 여성의원 비율 은 한국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10%를 넘어 13%(299명 중 39명)가 되었다. 그러나 할당 제의 제도적 효과는 여기까지였다. 한국의 할당제는 법적 할당제(legislative quota)로 정 당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실시하는 할당제(party quota)보다 제도화 수준이 높음에도 불구 하고 제17대 총선 이후부터 제20대 총선까지 약 16년 동안 여성의원 비율은 4.0%p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이러한 원인은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될 수 있는데 우선은 제도적 차원에서 할당제가 갖고 있는 허점이다. 비례대표 명부 작성(공직선거법 제47조 3항)22)은 의무조항이지만 이를 어 긴다 해도 정당이 받는 불이익이 없다. 그리고 지역구 후보 30% 할당(공직선거법 제47조 4항)23)은 권고조항이기 때문에 정당이 이를 반드시 지킬 의무가 없다. 이로 인해 한국 정 당은 할당제가 도입된 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지역구 후보 30%를 여성에게 할당하지 않 았다. 더욱이 지난(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명부 작성에서도 의무조항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24) 다음은 선거제도 차원의 문제로 한국은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결합한 혼합선거제이지만 비례 대표 의석 비율이 현저히 낮아 비례대표제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할당제의 효 과도 제한적이다. 현재 국회 의석 300석 중에서 비례대표 의석은 47석(15.7%)이다. 더욱 이 현재의 47석은 제19대 국회 때보다 7석 줄어든 것으로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양당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야합에 의해 이뤄졌다. 거대정당들은 지속적으로 비례대표 의 22) ③ 정당이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및 비례대표지방의회의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그 후보자 중 100분의 5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되, 그 후보자명부의 순위의 매 홀수에는 여성을 추천하여야 한 다. <개정 2005.8.4.> 23) ④ 정당이 임기만료에 따른 지역구국회의원선거 및 지역구지방의회의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 는 각각 전국지역구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신설 2005.8.4.> 24) 비례대표 의석수 축소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명부의 60%를 여성으로 채우기는 했 지만 10%의 여성을 당선권 밖에 배치함으로써 여성의원의 실질적 증가는 이뤄지지 않았다. 더불어민주 당은 당선권 경계에 있는 비례대표 순번에 여성을 배정해야 함에도 교호순번제 원칙을 어기고 남성을 배 정했다. 다수의 원외 소수정당들은 교호순번제 자체를 지키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이전 선거에서도 있었 다. 제18대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은 1번부터 3번까지 남성후보를 명부에 올렸으며, 총 12명 후보 가운데 여성은 3명뿐이었다. 친박연대도 홀수 순번 명부를 지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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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수를 축소하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는데 이러한 시도가 지속될 경우, 비례대표 할당을 통한 여성의원 증가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정당들이 지역구 후보 공천에 여성후 보를 30% 공천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현재의 선거제도가 지속되는 한 여성의원 30%는 여 전히 머나먼 일이다. 마지막으로 정당 내부의 저항(backlash), 더 정확히 말해 일부 의원들의 저항이다. 한국에 서 할당제는 여성단체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압력, 정치개혁에 대한 전 사회적인 요구, 할당 제 확산이라는 국제적 흐름 등이 정당과 국회를 압박하면서 채택되었다. 한국의 할당제는 외 부와 위로부터 도입되면서 할당제의 필요성과 유의미성, 효과와 관련해 의원들과 정당들 사 이에 충분한 공유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특히 남성) 정치인들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저항이 노골적으로 나타난 것이 제20대 총선이다. 제20대 총선을 앞 두고 거대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석을 축소하고, 비례대표 명부 작성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 그리고 정당의 대표가 여성후보 모임에서 여성혐오 발언을 거침없이 했던 것25) 등은 할당제 와 여성대표성에 대한 남성정치인들의 저항과 거부감을 잘 보여준다. 할당제를 반대·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반대논리 중 하나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능력 없는 여성이 정치에 진입’하거나 ‘일부 여성 만이 상징적으로 등용’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제20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살펴보면(신기영 2017 참조), 응답한 남성의원 109명 중 27명 (22.3%)이 ‘할당제는 역차별이다’라는 데 대해 (다소 그리고 매우)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 혔다. 반면, 응답한 여성의원 37명 중에서는 한 명도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당제 는 일부 여성들이 상징적으로 등용되는 효과가 있다’에 대해서는 남성의원 122명 중 50명 (41%)이 (다소 그리고 매우)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여성의원(37명) 중에서는 2명 (5.4%)만이 동의한다고 밝혔다. 또한 ‘할당제는 필요 없으며, 능력을 바탕으로 선출하는 것 이 좋다’에 대해서도 남성의원(121명) 중 31명(25.6%)이 (다소 그리고 매우) 찬성했으며, 여성의원(38명) 중에서는 1명(2.6%)만이 찬성했다. 이러한 결과는 할당제와 관련해 남녀의 원 간에 인식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며, (주로 남성)의원들이 할당제(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5) 2016년 8월 20일, ‘국민이 원하는 여성정치인 여성정치참여의 양적·질적 확대를 위한 토론회’에서 새누 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여성 국무위원 숫자는 94위, 여성 최고지도자 숫자는 39위, 합계 93위다. (순위 가) 나쁜 것에 대해서 남성의 책임이라고 미루는 게 사실 아닌가. … 여러분 정신이 거기에 머물러있으면 절대로 여성 숫자가 안 올라간다”며 “정신 차려라. 모두 여성들 책임이다. 떼쓰지 말고 스스로 개발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발언했다(여성신문 2015.09.19.). 2016년 2월 3일, 새누리당 ‘20대 총선 여성예비후보 자대회’에서 김을동 최고위원은 여성예비후보자들에게 “여성이 너무 똑똑한 척을 하면 굉장히 밉상을 산 다”며 “약간 좀 모자란 듯한 표정을 지으면 된다”고 충고했고, 김무성 전 대표는 야당 여성후보를 “꽃꽂 이 후보”로 비하했다(서울신문 20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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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과는 우리에게 할당제나 대표성 문제와 관련해 인식의 전환 필요성을 제시해준다. 그동 안 할당제나 대표성의 문제를 다룬 많은 여성/젠더연구들은 ‘여성’에만 초점을 맞췄다. 즉 할당제가 ‘여성’대표성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여성’대표성의 증가가 ‘여성’의 실질적 이 해를 증진시켰는지 여부를 경험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그런데 여성에만 초점을 맞춘 분석 은 암묵적으로 ‘남성’을 평가의 기준이자 올바른 것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신기영 2017), 남성(과 여성)에 대한 (비교)평가는 실질적으로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페미니 즘 내에 ‘차이의 정치’가 부상하면서 여성들 간의 차이와 다양성,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가 져오는 요인들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강조하는 연구들이 다양하게 등장했지만 이 부분에서도 남성들은 분석과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그런데 여성들이 다양한 만큼 남성들도 다양하다. 여성과 남성 모두 성별만이 아닌, 인종, 민족, 계급, 계층, 종교, 성적 지향, 장애 여부 등에 의해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를 갖는다. 개인의 차이와 다양성을 고려할 때, 할당제에 대한 남녀 의원들의 인식 결과는 남성의원들과 여성의원들 간뿐 아니라 남성의원들 간에도 인식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동 질성에 초점을 맞추든 차이에 초점을 맞추든 남녀가 모두 분석대상에 포함된 필요성을 제기 한다.
할당제는 남성에게 역차별이다
할당제는 유용하지 않으며,
할당제는 필요 없으며,
일부 여성들이 상징적으로
능력을 바탕으로 선출하는 것이
등용되는 효과만 있다
좋다
* 자료: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정치대표성 인식조사> 설문조사 자료(raw data).
그렇다면, 어떤 남성의원들이 왜 할당제에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스웨 덴 남녀의원들의 의정활동 경쟁력을 비교분석한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실마리를 제시해준 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할당제 도입으로 남녀의원들의 경쟁력이 모두 증진되었고, 특히 남 성의원들의 경쟁력이 눈에 띄게 증진되었다고 한다(Besley et al. 2017). 이는 할당제가 남성의원들이 주장하듯이 경쟁력 없는 여성을 국회에 진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경쟁 력 없는 남성을 국회에서 퇴출시키고 경쟁력 있는 여성으로 대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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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ang 2016). 다시 말해, 할당제는 오히려 ‘능력주의’를 강화하고 전체적으로 대표성의 질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할당제에 반대하 는 의원은 경쟁력 없는 의원일 가능성이 높고 할당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한국 남성의원 들도 그러한 의원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할당제는 여성의 저대표성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로 논의되었다. 그런데 실제 문제는 여성의 저대표성이 아닌, 남성의 과잉대표성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할당제보다는 과도하 게 대표되고 있는 남성집단에 대한 상한제(ceiling quota)를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Murray 2014). 왜냐하면 남성 상한제가 도입되면, (주로) 남성들이 (주로) 여성들에게 엄격하게 적용했던 기준을 남성들에게도 적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 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남성이라면, 상한제로 인해 후보가 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며, 시민의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수준 높은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여성 할당제보다 남성 상한제가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4. 여성대표성과 여성의 정치세력화 할당제의 확대와 여성대표성의 증진은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도움이 될까? 여성의 정치세력 화(women’s political empowerment)는 좁게는 여성대표성을 확대하는 것이며, 넓게는 전체 여성들의 여성주의적 세력화를 통해 사회를 성평등한 사회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오 장미경 2004, 259). 여성대표성 확대가 여성주의적 정치세력화의 일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대표성 확대와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둘러싸고 2000년대 초중반에 여성활동가들 사이에 상당한 입장 차이와 논쟁이 있었다. 이러한 입장 차이가 존재한 이유 중 하나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지 않은 여성의원들이 ‘과연 국회에서 여성의 이해를 대표할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원의 수적 증 가를 의미하는 기술적 대표성(descriptive representation)과 여성의원에 의한 여성 이해 의 증가를 의미하는 실질적 대표성(substantive representation) 간 관계를 어떻게 설정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30% 할당의 필요성을 뒷받침해온 임계량 이론(critical mass theory)은 기본적으로 기술 적 대표성과 실질적 대표성 간에 선후(또는 인과)관계와 선형관계(a linear relationship) 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다시 말해, 기술적 대표성이 30% 이상이 되어야 실질적 대표성의 증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술적 대표성이 30%가 되기 전에 실질적 대표성의 증 가는 불가능한 것인가? 그리고 여성주의적 관점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여성들 비율이 30%를 넘게 된다면 과연 실질적 대표성이 증가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임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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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은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한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정치를 뒤돌아볼 때, 한국 여성의원 들은 여성 비율이 10%대인 상황에서도 여성의 이해를 대표하기 위한 다양한 입법활동을 해 왔고 (한계가 있지만) 성과도 내놓았다. 그러나 여성주의적 관점이 부재한 여성들의 국회 진 입이 확대되면서 여성/젠더이슈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낮아졌고 남성성을 강조하는 가부장 적이고 성차별적인 정치 제도와 문화, 환경이 공고화된 측면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광의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대표성과 실질적 대표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향으로 여성대표성 확대가 이뤄져야 한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정치에 더 많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들이 여성주의적 관점 에 기초해 정책을 개혁하고 시민을 대표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만이 아니 라 남성에게도 여성주의적 관점을 요구할 필요가 있고 그러한 남성이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현재 전 세계적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동수(parity between men and women)26)이다. 동수를 도입한 대표적인 국가는 프랑스로 1999년 헌법에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국가와 정당의 의무를 규정했고, 2000년에 동수법을 제정해 남녀후보의 수를 동일하게 공천하도록 했다.27)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랑수와 올랑드 대통령과 올해 취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했다. 이외에도 칠레 의 최초 여성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 스페인의 사파테로 총리, 이탈리아 렌치 총리, 캐나 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 등이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했고, 북유럽 국가들 내각의 여성비율은 이미 45-50%에 이르고 있다(여성신문 2016.02.16.). 동수는 여성 비율의 확대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남녀를 모두 고려함으로써 다양성 확대의 효 과도 가져올 수 있다. 대표적으로 캐나다는 남녀동수 내각을 구성하면서 성별만이 아닌, 장 애, 성적 지향, 종교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말 그대로 무지개 내각을 구성했다. 아랍에미 리트연합(UAE) 세이크 무함마드 총리는 신임 장관 8명 중 5명을 여성으로 임명하면서 22 세 여성을 청년부 장관으로 임명했다(경향신문 2017.05.28).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
26) 일반적으로 동수를 50 대 50으로 인식하는데 이는 기계적인 구분이며, 어느 한 성이 60%를 넘지 않는 것까지 동수로 볼 필요가 있다. 27) 1999년, 프랑스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국가는 여성의 정치참여를 진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제3조)’와 ‘이를 위해서 정당이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다(제4조)’고 명시했다. 그리고 2000년 6월 6일, ‘선거의 기능과 직무에 관한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접근에 관한 법(l’égal accès des femmes et des hommes aux mandats électoraux et fonctions électives, ‘동수법’)’을 제정해 정당공천 시 남녀후 보의 수를 동일하게 하도록 강제하고 이를 어길 시 정당의 국고보조금을 삭감하거나 정당명부 등록을 불 가하게 했다(김민정 2015, 71). 2017년 6월 18일에 치러진 총선에서 총 577명 당선자 중에서 223명 (38.6%)의 여성이 당선되면서 프랑스 의회 내 남녀비율은 동수에 거의 근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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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은 트랜스젠더이자 최저 학력(중학교 중퇴), 최연소(35세)의 천재해커 탕펑(唐鳳·영어명 오드리 탕)을 장관급인 디지털 정무위원으로 임명해 내각의 개방성을 확대했다. 프랑스 총선 에서도 앙마르슈와 민주운동당 연합이 동수 규정에 따라 후보를 공천함으로써 여성과 청년 후보의 비율과 당선율이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최초로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 30%를 달성한 정부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동수 내각이라는 전 세계적 흐름에서는 여전히 뒤쳐져 있다. 더욱이 ‘일개’ 선임행정관이라는 탁현민은 신임 여성부 장관의 해임 건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리 를 보전하고 있고, 10명의 수석 중 여성은 오직 1명이며, 차관급은 여전히 절대 다수가 남 성이다. 그리고 2016년 기준으로 고위직 공무원(5급 이상) 중 여성은 12.6%(2,507명)이 며, 이 중에서 1급은 1명, 2급은 5명, 3급은 20명, 4급은 242명이다(행정자치부 2017). 할당제 확대나 동수의 실현 가능성 여부는 공식 제도의 유무보다는 지도자를 포함한 조직 구성원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 한국에서 할당제 30%가 여전히 요원하고 동 수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은 결정권을 갖고 있는 (다수의 남성과 여성) 지도자와 구성원들이 여성에 대한 편견과 의구심(여성은 남성보다 능력이 없을 것이다, 못 할 것이다 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과 의구심을 스스로 깨우치면 좋겠지만 현재 이들의 자기 성찰은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여성단체들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여성들과 남성들의 지속적인 목소리 내기와 연대와 협력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아래 로부터의 저항과 압력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여성(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정치세력화일 것이며, 이 과정에서 여성대표성의 확대, 대표성의 질적 향상, 성평등한 민주주의로의 진전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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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별 토론
(5) 국제 : 베이징+20과 Post-2015 SDGs 시대의 국제여성운동과 여성정책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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