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CMC 이념실천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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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CMC

핵심가치실천공모전 (舊 이념실천공모전)

행동규범 Action Plan Story 당선작 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당선작


행동규범 Action Plan Story 당선작 대상

어린이병동의공감간호이야기 (김이자・의정부성모병원5동Unit) / 06

우수상

한국에서 찾은 새 생명의 희망 (서울성모병원 대외협력팀) / 12 마음으로부터나오는진정한선물, 영적돌봄 (배영란・서울성모병원간호2팀 70Unit) / 16

응급상황에서피어났던생명존중 (강슬기・여의도성모병원분만병동) / 20 믿음주는영성간호의실천 (서울성모병원 162Unit) / 23 우리할아버지를잘돌봐주셔서감사합니다! (성바오로병원외과중환자실) / 28


장려상

봉사를 통한 내적 충만의 만남 (신영동・서울성모병원 간호부 211병동) / 31 25명의 임종환자가족과 함께 하다 (곽수연・서울성모병원 161병동) / 35 외국인향한이념실천-국제적인사랑전하기 (김동연・서울성모병원신생아중환자실) / 38 아기 예수님을 보듯이 (오윤빈・서울성모병원 신생아중환자실) / 41 기도하는 생활 (위유신・성바오로병원 간호부) / 44 겨자씨 (김지연・서울성모병원 영양팀) / 47 그순간 (곽수연・서울성모병원 15층 2병동) / 51 ‘진희 할머니 힘내세요’ 프로젝트 (이동숙・여의도성모병원 7층 서 Unit) / 54 “네, 제가 바로 가 보겠습니다.” (조미진・여의도성모병원 분만실 Unit) / 57 외래간호팀의 따뜻한 사랑나눔 (유재분・부천성모병원 외래간호팀) / 60


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당선작 대상

널사랑한단다. 아주많이!! (의정부성모병원노아의집) / 64

우수상

호스피스에서 보낸 마지막 휴가 (명재영・부천성모병원) / 68

고맙습니다! 희망을 찾았습니다 (송산옥・여의도성모병원) / 72


장려상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이현서・부천성모병원) / 75 수영이를사랑하는분들에게 (정수영・서울성모병원) / 78 예수님고맙습니다 (김현미・여의도성모병원) / 82 행복한세상은더불어사는세상 (박윤태・서울성모병원) / 85


Action Plan Story 대상

어린이병동의 공감간호 이야기 의정부성모병원 | 5동 Unit | 김이자

나이팅게일 선서를 굳게 다짐하면서 나는 간호사가 되었습니다. 간호사가 되어 내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신생아실이었습니다. 신생아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수많은 어린 생명들과 울며 웃었 던 소중한 시간들을 뒤로 하고 2011년 2월 나는 병동으로 이동하라는 명을 받았고 5동 소아병동 으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소아병동으로의 발령은 오랜 시간 아기들을 잘 돌보았다는 부서장님 들의 최고의 배려였음을 항상 가슴 깊이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신생아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만 지내던 나에게 개방된 일반병동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나 날이 전쟁터가 따로 없었습니다. 낯선 병동 환경, 환아와 보호자들……. 어느 것 하나 만만한 부분 6∙


이 없었고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마냥 움츠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병동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주인장이니까요.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낯선 병동을 바라보았던 나의 첫 시선은 병원 생활을 처음 경험하는 환아나 보호자들의 마음과 같으리라. “그래 이것이 공감의 시작이겠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듯 우리 간호부의 비전 또한 공감간호 실현이었습니다. 어린 이 병동에서 내가 공감간호를 실천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 끝에 나온 생각은 “눈높이=공감” 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어린이 병동에서는 “눈높이=공 감”을 실현하고자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들이 행복해지자는 “행복한 5동 만들기” 프로그램을 계 획하였고 이를 실천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행복한 5동 만들기” 프로그램은 친근하고 안전하며 깨끗한 병동을 만들어 환아들과 보호자들에게 쾌적함과 편안함을 제공하고 그들과 좀 더 가까이 함께 하고자 함이며, 환아들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 서비스를 통한 공감간호를 실천하고자 하는 취지였습니다.

1. 친근한 병동 만들기 - 환아들의 눈높이에 맞는 병실 이름을 만들어 보자! 병원이라는 낯선 환경은 환아들에게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켜 치료에 악영향 및 정서발달에 지 장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이에 대한 노력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처음 병동에 왔을 때 가장 헷갈리고 힘들었던 것은 병실 구분이었습니다. 우리 병동은 5101호부터 5109호 총 9개의 병실이 있으며 1인실, 4인실, 5인실, 7인실의 다양한 병실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5101, 5102, 5103호… 이 숫자들이 어찌나 어색하고 입에 붙지 않던지 항상 불편하게 느껴졌습 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아들과 보호자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을 알았습니다. 정보 확인 차 병실을 물어보면 환아는 물론 보호자들까지 병실을 제대로 기억하 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드물었고, 똑같은 모양의 병실로 인해 병실 혼동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병실 이름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아이들과 보호자들, 간호사들에게 병실 이름을 공모하였습니다. 꽃 이름, 과일 이름, 동물 이름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많은 고민 끝에 병실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 갔습니다. 일단 캐릭 터는 아이들과 친숙한 동물로 결정하였고 병실 번호와 연관성이 있는 동물이름을 연결하여 처음 에 누가 봐도 쉽게 병실번호와 연관이 되어 기억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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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1호=하마방, 5102호=둘리방, 5103호=새우방, 5104호=사슴방, 5105호=오리방, 5106호=여우방, 5107호=치타방, 5108호=팬더방, 5109호=악어방

이렇게 새로운 병실 이름이 탄생하였습니다. 새로 만든 동물 캐릭터 병실 이름을 캐릭터 그림 과 함께 병실 입구 번호 옆에 붙여 놓았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우리 병동에서는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울던 아이들도 엄마 아빠와 함께 병실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웃 음을 찾았고 마치 유치원에 놀러 온 듯 표정도 밝아졌습니다. 이제 우리병동에서는 똑 같은 병실 모양 때문에 헷갈려 다른 병실로 들어가던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환아도 보호자도 병실을 기억하지 못해 헷갈려 하지도 않습니다. 놀이방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소개합니다. “나는 오리방 OOO입니다. 너는 어느 방에서 왔니?” 보호자들도 이제는 “둘리방 OOO입니다. 주사 좀 봐주세요.”라고 이야기 합니다. 병실 이름을 바꾸고 이어 실시한 고객만족도 평가에서 많은 부분 점수도 향상이 되었습니다(상반기 병동부문 3위). 병실 이름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이렇게 작은 실천 하나가 모두를 행복하게 하였다는 것이 무엇보다 보람되고 행복하였 습니다.

2. 친근한 병동 만들기 - ‘간호사를 꿈꾸다!!’ 아주 특별한 체험 ‘간호사를 꿈꾸다!!’ 5동 어린이 병동에서는 아주 특별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소아병동에 입원하고 있는 9세 공주님 기민이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간호사 를 꿈꾸는 기민이에게 좋은 이벤트가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기민이와 우리가 역할을 바꾸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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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간호사) 체험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기민이는 간호사가 되고 우리는 환자가 되어 체온 재 주기, 호흡기 치료 해주기(nebulizer), 약 먹여 주기 등을 체험하게 해주었습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오던 간호사의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간호사에 대한 좋은 이미지도 심어 주 고 꿈도 심어 주고…… 무엇보다도 기민이와 많이 가까워질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기민이와 어머니께서는 기민이에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며 즐거워하셨고 할머니께서도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병원이 어디 있냐고 하시며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하셨습니다. 체험을 통해 모두들 행복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우리 병동 식구들도 참 행복했습니다. 나의 모습을 보며 많은 아이들이 간호사를 꿈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지혜롭고 전문성 있는 간호사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민이와 멋진 체험……. 우리는 오늘도 아름다운 “공감” 하나를 얻었습니다.

3. 안전한 병동 만들기 - 환아들을 위한 맞춤형 낙상교육을 만들어 볼까!! 많은 시스템의 개선과 수많은 시간을 통한 낙상교육을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환아들의 낙상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으며 본원 낙상의 제일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좀 더 효율적이 고 효과적인 낙상 예방 방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낙상예방 교육을 좀 더 효과적으 로 할 수 없을까?’ 고민하였고, 낙상 예방 안전송과 동영상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아이들과 보호자들이 친근하게 들을 수 있는 “멋쟁이 토마토”라는 동요의 곡을 선택하여 낙상 예방 수칙을 가사로 낙상예방 안전송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난생 처음 작사가가 되 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환아가 직접 노래를 불러 녹음을 하였고, 낙상예방 수칙에 맞는 환아들 의 사진으로 동영상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병원 행사인 “환자 안전의 날” 공모를 통하여 우수 상도 수상하였습니다. 우리 병동에서는 매일 아침 행복한 낙상예방 안전송이 울려 퍼집니다. 환아들과 보호자들은 원 곡 동요 가사는 어느새 잊은 듯 낙상예방 안전송을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올해 낙상 건수도 작년 Action Plan Story ∙ 9


대비 10% 가까이 감소하였습니다. 환아들과 보호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교육이 낙상 예방 에 효과적이었음을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환아들과 함께하였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였습니다.

4. 깨끗한 병동 만들기 - 어린이 병동을 깨끗하게 바꾸어 보자!! 어린이 병동의 환아들은 면역력이 약하고 감염에 취약하므로 침상 주변이 청결해야 함에도 불 구하고 병실의 침상에는 개인용 일반 쓰레기통이 1개씩 배치되어 있습니다. 소아병동은 어린 환 아들이 많아 기저귀 사용이 많으며 개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사례가 많아서 감염 우려와 불쾌한 냄새로 병실 환경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에 침대 밑에 있던 개별 쓰레기통을 모두 제거하고 병실 입구에 중형 일반 쓰레기통과 감염 성 폐기물 쓰레기통을 1개씩 배치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환아들의 감염 우려도 감소하였고, 침상 주변 및 병실 바닥이 몰라보게 깨끗해졌고, 불쾌한 냄새도 감소하였습니다. 쓰레기 분리수거 또한 잘되었고, 쓰레기통의 감소로 미화 자매님들의 청소 시간이 감소하였으 며 쓰레기 비닐봉지 사용량 감소로 비용 절감에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쓰레기통의 개선은 쾌적한 치료환경을 만들어 감염에 취약한 환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행복한 병동 만들기”란 프로그램을 통해 친근한 병동, 안전한 병동, 깨끗한 병동을 만들고자 환아들과 보호자들, 간호사들이 하나가 되어 많은 시간 노력을 하였습니다. 환아의 눈높이에 맞는 차별화된 시스템 개선을 통해 공감간호를 실현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고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 들이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던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작은 실천 하나 하나가 모두에게 이렇게까지 크나큰 행복을 주리라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 다. 앞으로도 어린이 병동에서는 환자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 간호를 통해 공감간호를 실현하고 환아들이 행복한 마음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병동으로 거듭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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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존중을 위한 고귀한 실천을 통해 치유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어린이 병동이 되겠습니다. 나의 CMC……. 이 기관에 몸담은 지도 어언 20년……. 기관의 정체성과 이념에 대해 확고히 하 고자 내 스스로가 그 동안 얼마나 노력해 보았는지 새삼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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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우수상

한국에서 찾은 새 생명의 희망 서울성모병원 | 대외협력팀

야윈 얼굴의 13세 소녀는 오랜 병실 생활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애써 밝은 미소를 보이며 병상 앞에서 선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지난해 9월 27일 정형외과 정양국 교수의 집도 하 에 성공적으로 우측 상완골 골육종 제거 및 뼈 이식을 받은 후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어 매우 대견하고 기특하다. 한국에서 처음 맞았던 낯선 크리스마스와 새해맞이 그리고 서울성모병원의 식구들도 그녀에게는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라 믿으면서 따뜻한 손을 잡아 주었다.

기적의 소녀 “하이디” 페루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이 먼 이국 땅, 서울성모병원까지 초청되어 온 하이디 로리아니 (Jaidy Loriani)는 기적과 같이 본원의 나눔 의료 자선환자로 초청되어 새로운 생명의 희망을 찾 12 ∙


게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작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날 오후 의료원 의료협력본부 오 승민 국장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페루에 계신 어느 한국 신부와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골육종을 앓고 있는 어린 환자를 알게 되었는데, 페루 의료수준이 낙후되어 종양이 있는 환자의 오른팔을 잘라야 한다며, 서울성모 병원에서 혹시 팔을 자르지 않고 치료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였다. 당시 12세인 어린 소녀의 사정이 안타까워 일단 정형외과 정양국 교수에게 환자의 의무기록과 진단검사 사진을 보 내 자문을 구하였다. 초조한 마음으로 답변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정 교수는 적절한 치료와 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면 팔의 절단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답변을 주었다. 단 종양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 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시간” 그리고 “비용” 한국의 의료수준은 이제 선진국과 어깨를 견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이슈 는 이 좋은 의료기술을 전 세계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해 줄 수 있는가 이다. 하이디의 경우도 한국에 와서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온전한 두 팔을 가지고 건 강한 삶을 살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최대한 빨리 한국에 데려 오는 것과 막대한 치료비용을 감당하는 것. 이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되 면 한 소녀의 행복한 삶을 되찾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초청 방법을 다각도로 고민하였다. 마침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는 한국의 우수한 의료수준을 전 세계에 알리고 한국 의료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2011년도부터 국내 유수의 병원과 함께 해외 환자를 초청하여 무료로 치료해주는 “Medical Korea 나눔 의료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우리 서울성모병원도 진흥원과 파트너가 되어 매년 적합한 외국인 환자를 초청하여 사업을 진행 하고 있었다. 하이디가 이 사업의 환자로 선정될 수만 있다면, 보호자를 포함한 왕복항공료와 체재 비는 진흥원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치료비 전액은 우리 병원의 자선진료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숨 막히는 열흘간의 초청 과정 시간이 없었다. 종양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정 교수의 말씀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진흥 원 책임자와 직접 연락하여 하이디를 나눔 의료 환자로 초청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특히 감사한 것은 이 때가 “나눔 의료 사업” 선정기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디의 상황을 전해 들은 진흥원 책임자가 복잡한 공문 결재 과정을 뒤로 하고 사업을 구두로 승인하여 빠른 진행이 가능했던 점이다. Action Plan Story ∙ 13


그동안 대외협력팀은 우리 병원 사회사업팀을 통해 하이디가 나눔 의료 자선환자로 초청 가능 한지 검토를 요청했다.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최초 그녀를 소개한 페루 선교 사제인 최종환 신부 에게 한국 입국과 관련한 여권, 비자 등 행정 서류 준비를 신속히 준비하도록 말씀 드렸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여러 프로세스를 한 번에 진행시켜 놓고, 현지에 있는 최 신부와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인 “카카오톡”을 통해 24시간 연락을 주고받으며 진행사항을 공유했다.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진흥원과 서울성모병원에서 나눔 의료 환자로 초청할 수 있는 최종 승인 이 났고, 페루 현지에서도 단 하루 만에 여권과 비자가 발급되었다. 그리고 미리 확보해 둔 항공권 으로 드디어 하이디와 그녀의 아버지가 함께 한국에 오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의료협력본부 오 국장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은 6월 11일 이후 단 열흘만인 6월 21일에 하이디가 한국에 도착하 여 입원하였으니 이 모든 과정은 하느님의 은총으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잇따른 도움의 손길 이국적인 얼굴과 상냥한 미소가 사랑스러운 하이디는 입원하자마자 병원의 스타가 됐다. 소아 청소년과 정낙균 교수는 여러 검사 이후 전반적인 치료 계획을 세웠다. 수술 전후 항암치료 기간 을 포함하면 약 6개월 이상의 진료기간이 소요되는 장기 치료였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환자가 긴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지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하이디는 참으로 복이 많은 아이다. 조선일보의 인터뷰 기사가 나간 이후 평화방송, 평 화신문, 아리랑TV, KBS 등 여러 언론을 통해 하이디의 사연이 소개 되었으며, 이후 각종 단체와 개인들이 하이디를 방문하여 많은 격려와 관심을 보내 주었다. 또한 하이디는 본원의 치료비 지 원과 진흥원의 항공료 및 체재비 지원 이외에도 대내외적으로 많은 금전적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의료원 이념구현팀은 의료원 발전기금팀을 통해 마련된 ‘마리나 불우환우돕기 기금’을 하이디 의 게스트하우스 이용료와 생활비로 지원해 주었고, 한국인체조직기증지원본부는 수술에 필요한 인체조직(뼈)을 기증하였으며, 인터넷 기업인 다음(Daum)은 하이디의 귀국 후 생활비와 재활보 조비를 마련하는 기금 마련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 과정이야 말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 겠는가?

성공적인 수술 그리고 힘겨운 항암치료 지난해 9월 이루어진 하이디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지금도 서울성모병원에서 힘겨운 항암 치료의 과정을 겪고 있다. 타국에서의 오랜 병실 생활로 인해 마음도 우울하고 몸도 지쳐 있는 상태다. 그래도 한국에 머물고 있는 페루 및 남미 국적의 친구들이 종종 찾아와 마음의 안식을 주고 있다. 14 ∙


최종환 신부가 페루로 떠나면서 하이디에게 선물로 준 아이패드는 환자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 자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다. 최종환 신부가 맡아주었던 통역은 페루 대사관 직원들이 전화로 해결해주고 있다. 최종환 신부는 하이디의 성공적인 치료로 인해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페루사람들에게 한국의 높은 의료수준과 더불어 나눔 의료의 정신이 널리 알려졌다며 자랑스러 워하였다. 전 세계 환자를 위한 우리의 의료 기술과 대중교통을 통한 외국인 환자의 접근성은 급속도로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프라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경을 초월하여 “치유자로서의 예 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재현하여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열린 마음과 적극적 인 실행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것이야 말로 우리 기관의 이념을 실천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새삼스레 느낀다. 하이디는 앞으로도 몇 개월간의 치료를 더 받아야 한다. 그녀에게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힘든 과정이 언제 어떻게 펼쳐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위의 많은 사랑과 관심만큼 씩씩하게 남 은 치료 과정을 잘 견뎌낼 수 있기를 바라며, 건강한 모습으로 페루로 돌아가 그녀의 소망대로 꼭 훌륭한 의사가 되어 그녀가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언젠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 기를 진심으로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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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우수상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선물, 영적 돌봄 서울성모병원 | 간호2팀 70Unit | 배영란

1병동도 2병동도 아닌 0으로 끝나는 7층의 0병동, 70병동. 2011년 5월 1일, 본원 최초로 최 첨단 음압격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결핵환자 및 법정1종 전염병, VRE(vancomycin-resistant enterococci) 검출 환자를 격리 치료하여 다른 환자에게 전파하는 것을 차단하는 서울성모병원 의 유일한 격리병동이 오픈하였습니다. 오픈 병동이 그렇듯 제대로 된 둥지를 틀기까지 많은 시 행착오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각자 다른 환경(부서)에서 일하다 연합군처럼 모이게 된 우리는 간호업무를 표준화하고 서로의 업무 패턴을 이해하고 맞추기까지 많은 갈등과 조율이 필요했지만, 신혼부부처럼 새 보금자리를 가꾸는 설렘과 꿈들도 있었습니다. 병동을 다 꾸리기도 전에 병실을 채우기 시작한 환자들의 대 부분은 다제내성균이 가장 빈번한 중환자실에서 전실한 수술 환자, 혹은 면역력이 떨어지는 항암 치료 후의 암 환자, 혈액내과의 백혈병 환자 분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주요 과가 없이 다양한 과에서 오는 환자들을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또 해당 병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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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문의도 하면서 배워나가야 했습니다. 인공호흡기를 다루지 못했던 병동에서 온 간호사들을 위해 인공호흡기 강의를 마련하고, 혈액내과 전담간호사를 초빙하여 교육을 함으로써 지식을 쌓 고 안정된 환경 조성에 만전을 기하고 있을 무렵, 병동에 여러 불미스럽고 힘든 일들이 참 많았습 니다. 백혈병 환자들처럼 내가 감염될 까봐 격리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남들을 위해 내가 격리되 어 있다는 피해의식은 너무도 환자들을 불만스럽게 해서 인권 침해니 감금이니 하면서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하거나 병원장을 찾아가 따지겠다고 하며 치료에도 불응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간 호사들이 교육하는 격리 보호 장구 착용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가족들이나 친지들조차 꺼리는 감 염환자라는 인식으로 대부분 간병인들이 간호를 했고 환자들은 격리된 환경에서 병마와 싸워가 며 더 우울해하고 외로워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1인실 음압방의 결핵환자인 할머니께서 새벽에 혼자 있는 상황에서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동안 간호지식을 쌓기에 급급했던 우리병동 간호사들 중 그 누구 도 주 보호자 없이 1인실의 이중 격리 방에서 갇혀 계셨던 할머니의 심적 갈등 및 고독, 외로움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감해주지 못했음에 마음 아파했습니다. 이 사건은 cure(치료)에만 급급해서 간호지식에 집중했던 우리에게 care(보살핌)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하나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과연 진정한 간호란 무엇일까?라는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건네준 일이 된 것이죠. 간호사의 가 장 고귀한 일은 바로 간호대상자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하고 한 인간으로서 다시 서도록 돕 는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CPR로 인한 임종간호를 연이어 치르면서 심폐소생술에 정신이 없어 죽음의 터널 안에서 꺼져가는 마지막 촛불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방법을 몰라 임종간호 후 알 수 없는 죄책감과 후회, 슬픔도 밀려왔습니다. 이런 응급상황을 통해 내린 결론은 우리들이 지성, 감성,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음의 훈련, 즉 영적 훈련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하여 ‘영적 돌봄 리더십 프로그램(SCLP)’ 및 영적 돌봄 활동 을 적극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영성간호 대상자 선정 툴을 만들어 매달 적합한 영성간호 대상자를 1명씩 선정하여 기분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하여 간호진단을 잡고, 그에 적합한 영적 돌봄 활동을 수행했습니다. 아침에는 희망이 담긴 좋은 글귀를 읽어줌으로써 하루를 긍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주고, 환자 개별 기도문을 제작하여 상황에 맞는 기도문을 읽어주거나 성경구절을 낭독해주며, 불 안함을 느낄 때는 환자에게 핸드폰의 명상음악을 이어폰으로 들려주거나 ‘거룩한 이름(Holy name)부르기’ 기도를 알려주어 평안한 느낌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실제로 전보다 평화 점수가(1-10점에서 평온함을 더 많이 느낄수록 높은 점수) 높아짐을 알 수 가 있었습니다. 타 병동에 비해 장기재원 환우가 많아 라포 형성이 더 수월하기에 영적 돌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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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긍정적인 효과를 더욱 잘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 예로 2012년 여름, 저희 병동에 온 박OO 남자 환자분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20여 년 동 안 만성 신부전으로 복막투석을 하고 당뇨로 인해 발가락이 괴사되어 발가락 절단수술을 받은 후 VRE가 검출되어 저희 병동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랜 간병생활에 지쳤는지 부인은 몹시 예민했 고, 환자는 무기력한 상태였습니다. 복막투석에 인슐린을 섞을 때마다 보호자는 본인이 의사인 듯 인슐린 단위를 정하며 복막투석을 잘 모르는 연차 낮은 간호사들에게는 선배 간호사마냥 호통을 치거나 매사에 신경질적이었습니다. 힘들고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이럴 때마다 간호사들 또한 홀리네임을 외치며, ‘내가 환자라면? 내 가 20년 동안 간병만 한 보호자라면? 나는 과연 어떨까?’ 라는 측은지심과 이타심으로 그들을 대 하고 환자 및 부인의 손을 잡고 기도해주며 영적 돌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한 달 반,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끔은 가족이 되어주고, 지팡이가 되어주고 상쾌한 공기가 되어주고 잠시 앉아 서 쉴 수 있는 돌이 되어 갔습니다. 이것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였습니다. 저희 병동에서 환자안전에 대한 동영상을 제작할 때 환자와 보호자는 흔쾌히 촬영을 도와주시 겠다며 등장해 주셨습니다. 특히 보호자는 우리 유니폼을 입고 함께 플랜카드를 들고 에스컬레이 터와 엘리베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힘든 촬영을 너무나도 즐겁게 임해주셨습니다. 아마도 길 고 긴 병원생활에서 동영상촬영이 그분께는 일종의 삶의 활력소가 되었나 봅니다. 환자와 보호자 는 퇴원하는 날 우리에게 장문의 감사편지와 함께 친절병동으로 저희 병동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저희 간호사들 모두 마음이 무척 따뜻해진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몇 달 뒤, 환자분은 복막투석으로 인한 복막염이 패혈증으로 진행되어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진 상태로 저희 병동에 다시 오셨고, 밝게 웃으며 집으로 가셨던 부인은 우리에게 다른 건 다 괜찮으니까 아프지만 않게 해달라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 예쁜이 들이 그 동안 좋은 기 도 많이 해줘서 우리 영감이 그래도 좋은 곳으로 가겠지? 그렇지? 이제 하느님께 돌아갈 때가 된 거지?”라고 물으며 몹시 슬퍼하면서도 점점 환자의 죽음으로 가는 길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셨습 니다. 보호자는 심폐소생술 포기각서를 쓰고 환자의 임종을 조용히 지켜보며 영혼 깊은 곳에서 외치 는 새로운 길로 가는 희망의 신음에 공감하고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처음 우리가 그분들에게 행 했던 영적 돌봄의 씨앗이 뿌리를 뻗어 사랑하는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조용히 울며 기도 하는 부인의 기도를 통해 열매를 맺은 것 같았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병들어 꺼져간다 해도 사람의 영혼과 마음은 몸과 같이 사그라지지 않을 수 있 음을 믿으며, 간호사로서 환자의 죽음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큰 인연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도 해줄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병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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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아무도 그들을 대신해 줄 수 없고 자신만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 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환자에 대한 관심과 연민의 마음으로 내 자신의 전 존재를 선물로 내놓을 때 바람직한 영적 돌봄이 가능하다고 보며, 진심이 담긴 영적 돌봄을 통해 우리 또한 환자 및 보 호자들에게 인생의 너무 소중하고 값진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격리병동에 입원하는 환자들은 상태가 위중한 경우가 많고 재원일수도 우리 병원에서 가장 깁 니다. 오랜 기간 동안 격리된 환경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위로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마음 을 저희들은 느낍니다. 그래서 앞으로 더욱 노력하여 자신들을 채우는 활동과 환자에게 나누는 영성간호 활동을 계속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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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우수상

응급상황에서 피어났던 생명존중 여의도성모병원 | 분만병동 | 강슬기

나는 입사 6년차인 간호사이다. 하지만 5년 동안은 마취과에서 근무하였고, 분만병동에서 일을 하게 된 지는 3개월밖에 안 된 신규 같지 않는 신규 간호사이다. 내가 그 동안 간호사로 근무를 하 면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가슴 벅차게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때는 2011년 가을, 당시 마취과 간호사였던 나는 수술실 당직근무 중이었다. 수술실 당직의 경 우 수술이 없어도 수술대기를 하고 있었기에 그날도 언제 생길지 모르는 수술을 대비하며 당직근 무를 서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트라우마 환자로 간 열상으로 인하여 응급수 20 ∙


술을 한다는 전화였고, 이에 나는 수술마취를 준비하였다. 수술마취를 준비한지 5분도 되지 않아 환자는 수술실 문을 열고 다급히 들어왔다. 우리가 수술, 마취 준비를 다 하기도 전에 환자가 들어올 정도로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간 열 상 및 장파열, 골반 뼈의 골절, 두 눈의 시퍼런 멍과 함께 얼굴의 열상 및 치아가 다 부서지고, 팔 다리가 다 부러진 10대 소녀는 입과 장기 내에서 피를 뿜어대고 있었다. 수술부위를 절개하자마 자 피는 샘처럼 솟아올랐고, 우리는 출혈을 막기 위해서 정맥주사 라인을 온 몸에서 확보하며 심 폐소생술에 가까울 정도로 약과 혈액을 공급하였다. 알고 보니 그 소녀는 길을 걷던 중 반대쪽 도로 주변 공사장에 있던 크레인이 쓰러져 그 아래에 깔리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20팩 이상의 수혈, 고농도의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 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계속되는 출혈에, 나와 마취과 당직의, 외과 의료진들은 매우 난감해 하였다. 나 또한 지금까지 마취과 간호사 생활 중에 이러한 일을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간호사로서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난관에서 마냥 어렵다고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의료인이기 이전에 그 소녀에게 나는 아는 동네언니가 되고 싶었고, 아는 동생으로서 동생의 생명은 꼭 지켜주고 싶었 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수혈과 약을 담당하였고, 나뿐만 아니 라 그 수술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의 방법을 동원하여 그 소녀의 생명을 지키고자 노력하였다. 다행히 출혈이 발생되는 혈관을 찾아 결찰을 하였고, 복강 내 있던 다량의 피는 우선 거즈를 복 강에 넣어 흡수한 후 봉합, 다음날 다시 재수술을 하도록 일단락되었다. 소녀에게 들어간 피는 총 40여개, 즉 소녀는 자신의 몸에 있는 피를 두세 번이나 갈은 셈이었다. 다행히 그 소녀의 심전도, 활력증후는 잘 유지되었고, 그 동안 피를 타오고, 수치를 확인하고, 약을 공급하느라 땀을 흘리던 나에게 마취과 당직의 선생님은 한 말씀 해주셨다. “강슬기 간호사 때문에 소녀가 살았어요.” 다음날 정규수술 시간이 되어 그 소녀는 재수술을 하였고, 이후 약 4~5개월 동안 골절수술 및 외과적 수술을 거쳐 소녀는 점차 회복되어 갔다. 그리고 마지막 수술인 골반 뼈 골절수술 이후 소 녀와 나는 회복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날은 내가 회복실 회복환자 업무를 하였고, 소녀의 수술 마취를 담당했던 의사는 그때 그 당직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께서 소녀를 데리고 회복실에 나왔을 때 나와 소녀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학생은 이 간호사 언니 때문에 살았어요.” 당시 소녀는 마취에서 깬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 말 을 들은 후 소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나도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때까 지 마취과 간호사로서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지극 히 테크니션에 가까울 정도로 기술적인 일이라고만 치부해왔다. 그런 내가 한 생명을 구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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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그 소녀의 생명을 구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그 당시 같이 있었던 당직 마취의, 외과 의 료진, 수술실 간호사, 그리고 중환자실 간호사 등등 여러 명의 의료인들이 그 소녀의 생명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소녀의 눈물은 나에게 많은 의미를 주었다. 그 동안 안일하게 일 을 하던 나에게 진정한 생명존중이 무엇인지, 간호사라는 직업이 무엇인지를 알려 준 것이다. 그때 그 일을 통하여 나는 앞으로도 세상에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겠다는 결 심을 하였고, 지금도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환자를 그냥 환자로만 치부하 기보다는 내 가족, 친구, 동생, 언니-오빠로 생각하고 대한다면 진심은 언젠가 통하게 된다는 것 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된 것이다. 오늘도 우리 병동에는 나의 오빠와 올케 언니가 예쁜 조카를 만 나기 위해 입원하고 언니와 형부가 조카를 안고 기쁘게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 옆에는 엄마와 아 빠가 대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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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우수상

믿음 주는 영성간호의 실천 서울성모병원 | 162Unit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이념실천을 위하여 서울성모병원의 간호부와 간호1팀은 ‘믿음 주는 영성 간호’라는 비전을 실천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영성 간호!’ 처음에는 현재 하고 있는 간호와는 특 별히 다른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부담스럽고 어려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 는 영성 간호를 환자들은 어떻게 느낄까?’를 미리 생각하며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불 편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담스럽고 어색하지만 계속 반복하다 보면 조금 씩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자연스럽게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옮겨져 좋은 습관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용기를 가지고 영적 간호를 준비하기 위한 작은 실천을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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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은 실천의 첫 번째는 기도와 다짐의 시간입니다. 우리 병동 간호사들은 다 함께 모여 사랑으로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하느님께 주님을 본받아 환자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치료와 돌봄을 할 수 있도록 건강과 마음의 평화, 지혜와 은총을 구하 는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병동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쁘기도 하고 감정 조절을 어렵게 하는 여러 상황이 반복이 되지만 최선을 다해서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열정과 힘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서 오늘도 하느님이 축복하여 주신 새 날을 감사히 생각하며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에 이어 서로에게 협조적이며 지지할 수 있는 CMC 간호사가 되기를 바라며 다짐 문을 낭독합니다. 우리가 낭독하는 다짐문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합니다. 우리는 항상 밝게 인사합니다. 우리는 환자 우선의 마음으로 협력합니다. 우리는 시간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미루지 않고 책임을 다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도 나의 일처럼 합니다.

처음엔 바쁜 아침시간에 모여 다짐문을 낭독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반복해서 하다 보니 말로만 낭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낭독하며 오늘 하루 근무 시 나는 어떻 게 행동하고 간호해야 할까?, 그동안 나는 기관에서 어떤 직원, 환자와 보호자에게 어떤 간호사, 동료들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나를 다짐문의 내용과 같이 변화해야겠다는 다짐과 변화된 모습을 상상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우리들 모두 조금씩 변화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기관에 대한 자부심 과 주인의식을 갖게 되었고 간호 업무 시에도 항상 미소와 친절을 잃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환 자를 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근무하였습니다. 동료들과는 서로 이해하고 협동하여 병동과 기관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긍정의 의견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매 근무 시작 전 간호사들이 모여 다짐문을 낭 독하고 근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다짐문을 형식적으로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기 도와 다짐의 시간은 우리의 마음에 기적과 같은 변화들을 전해 주었습니다. 작은 행동과 실천이 큰 소통의 장이 되고 영성 간호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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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작은 실천의 두 번째는 감사의 시간입니다. 팀장님의 권유로 ‘감사한 일 찾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하루에 한 번 지난 시간 동안의 감사한 순간을 떠올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들은 환자들을 돌볼 수 있는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고, 가 족이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무사히 출근하여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신입간호사가 잘 적응해 주는 것에 감사하고, 오늘 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감에 감사하고, 안전사고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 음에 감사합니다. 또 함께 근무하는 동료 간호사가 업무를 도와주어 감사하고, 환자가 고통스럽지 않게 가족의 사 랑을 받으며 임종하는 것에 감사하고, 수술한 환자가 잘 견디어 내는 모습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를 보냈습니다. 처음 시작보다 이제는 감사한 일을 찾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리 고 감사하며 사는 삶이 우리를 따뜻하고 긍정적으로 변하게 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3. 작은 실천의 세 번째는 SCLP과정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영성 간호 실천을 위한 준비로 올해도 우리 간호사들은 ‘영적 돌봄 리더십 프로그램(SCLP)’ 과 정을 이수하며 ‘거룩한 이름 부르기’ 기도를 통해 나의 마음 다스리기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 을 확산하였습니다. 간호사는 24시간 환자 곁에서 간호를 하며 환자의 간호뿐 아니라 환자의 진 료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협력하고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내/외부 고객 과 연결되어 있는 복잡하고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를 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해야 하며 많은 순간 감정 조절이 필요합 니다. SCLP 과정은 ‘거룩한 이름 부르기’ 기도를 통한 나의 마음 다스리기 방법을 통해 긍정적인 CMC인이 되는 것을 지지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병동 간호사들은 좋은 마음의 밭을 만들 기 위해 노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우리 병동에서는 영성 간호 실천으로 수술 전, 후 환자들에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 다. 수술실로 이동하기 전 담당간호사들이 기도를 합니다. “OOO님, 마음 편히 잘 다녀오세요. 기 도 해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환자의 손을 잡고 보호자와 함께 수술 전 기도문으로 진심을 담아 기도를 합니다. 쉼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이 기도하는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바라게 됩니다. 간호사들은 수술 전이라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위로와 힘을 주기 위하여 정성껏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면 어느 새 환자, 보호자와 간호사는 함께 수술이 잘 이루어 지길 소망하며 간절해지고 마음이 평안해 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때때로 눈물을 글썽이며 수술 잘 받고 오겠다며 “큰 힘이 되어 주어 고맙다”라고 표현을 하는 환자와 보호자들, 수술 후 다음날 혹은 중환자실에서 병동으로 전실한 후에도 잊지 않고 “이 간호사가 수술실 가기 전에 기 Action Plan Story ∙ 25


도해 준 간호사야, 정말 고마운 사람이야.”라고 다른 가족들에게 소개하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을 통해 간호사로서 일하는 보람과 가치를 느낍니다. 진심을 담은 우리들의 작은 기도가 환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느끼며 영성 간호를 하기 위한 거창한 수식어나 형식은 필요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심을 담은 마음 과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수술 환자 를 위한 기도는 계속 되었습니다. 주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그 주에 수술을 한 환자와 보호자 에게 수술을 하고 회복 중인 환자의 쾌유를 소망하며 수술 후 기도문으로 기도를 합니다. 처음으로 암을 진단 받고 검사와 수술을 받고 수술 후 회복하기까지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도 많이 지쳐 있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환자도 있었 고, 수술 후 무기력과 우울함을 보이며 치료에 잘 따르지 않던 환자도 기도 후에는 수술 후 회복 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 수술 후 기도를 시행할 때에는 바쁜 업무 중 기도를 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 는 숙제와 같이 어렵게 느껴지고 먼저 기도를 해 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조차 어색하고 힘들었습니 다. 그러기에 수술 후 기도를 하는 시간은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며 시작하였지 만, 기도를 통해 바쁘게 반복되는 병원 업무로 지쳐있던 간호사들에게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환 자와 소통하며 함께 치유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오히려 환자들에게 사랑하는 마음과 축복의 선물을 받는 감사한 시간이었습 니다. 지금은 “수술 받으시고 많이 힘드시죠? 수술 후 기도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다가가 마음을 나누는 것이 자연스러운 우리 병동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선배 간호사들을 따라 신입 간호사들도 조금씩 이런 마음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원 후 3년 동안 간호사들이 병동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영성간호를 실천하기 위해 노 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병동에서도 담당하는 환자들에게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 영성간 호를 시작하였습니다. 간호업무를 하기도 바쁘지만 우리들은 영성 간호가 좀 더 필요한 환자에게 ‘거룩한 이름 부르기’ 알리기, 기도하기, 말씀사탕 전하기, 격려하기, 손잡아 주기 등 환자들이 어 렵고 힘들어 하는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였습니다. 이러한 환자를 위하는 마음과 실천으로 수술, 항암치료를 마친 후에도 병동에 간호사를 보러 오는 환자, 보호자들과 최근 암 투병을 하다가 병동에서 임종한 환자의 딸들이 마지막까지 귀 기 울여 주고 따뜻하게 마음 써 주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온 것을 보고 우리들 은 임종 후 남은 가족들이 오히려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감사의 편지까지 보내준 보호자에게 도 리어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더욱 진실되게, 마음을 다해 간호해야겠다 는 생각과 간호사로서의 자부심과 소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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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간호사들은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마음의 밭이 되어 항상 환자들을 가족과 같은 마 음으로 대하고 최선의 간호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오늘도 근무하는 우리들은 환자들 의 쾌유를 진심으로 바라며 정성껏 간호하며 서울성모병원 간호사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영성 간호의 실천을 위해 조금씩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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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우수상

우리 할아버지를 잘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바오로병원 | 외과중환자실

“영서야!! 영서야!!! 빨리 할아버지한테 와. 할아버지가 영서 보고 싶어 하잖아.” “여보, 여보! 사랑하는 여보!! 빨리 와. 나 여기 너무 싫어!! 나 데려가!! 여보!!”

뇌경색으로 외과중환자실에 입원한 윤OO 할아버지는 눈만 뜨면 큰소리로 가족들을 애타게 찾 는 모습에 우리 간호사들은 더욱 안쓰러워했다. 유난히 체구가 크고 목소리도 크신 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족들을 애타게 찾으시니 안정이 안 되어 혈압조절도 어렵고 여러 가지로 너무 힘 든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곧 무언가 다른 대 28 ∙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보호자 분에게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의 상태를 설명해 드리면서, 면회시간마다 꼭 오시도록 당부를 드렸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애타게 찾는 ‘영서’에 대해서도 여쭈어 보니, 가슴 뭉클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윤OO 할아버지는 직장 다니시는 따님을 대신해 매일매일 외손녀인 영서를 돌봐주셨는데, 둘의 사이가 아주 각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환자실은 감염의 우려로 일곱 살인 영서는 중환자실 면회가 불가능하였다. 영서도 매일매일 할아버지를 찾으며 운다고 가 족들도 마음 아파했다. 영서와 할머니가 면회를 온다고 하여 할아버지의 큰소리가 잦아든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손녀 에 대한 그리움은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손녀와의 면회를 추진해 보기로 하였다. 중환 자실은 만 14세 이하의 어린이의 경우 감염의 우려로 면회가 제한되는 규칙이 있고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고려해야 했다. 담당교수님과도 상의 후 손녀와의 면회를 계획하여 윤OO 할아버지의 안정과 치유과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하였다. 당일 날 면회 시작 전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보호자 분들에게 윤OO 할아버지 사연을 설명하니, 순순히 이해해 주셨다. 그래서 담당간호사는 영서에게 손을 씻도록 하고, 마스크와 일회용 가운을 입혀 주었고, 혹시 영서가 중환자들을 보고 놀라지 않도록 미리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일곱 살 의 어린 영서도 비장하고 설레는 표정으로 면회를 준비하였다. 드디어, 입원 하신지 일주일 만에 그토록 애타게 찾던 외손녀 영서와의 면회가 이루어졌다. 영 서를 보시고, 너무나 기뻐 눈물을 흘리시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아픈 할아버지의 손과 발을 만져 주는 영서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지켜보는 우리 간호사들의 마음과 눈시울도 뜨겁게 했다. 저녁 면회시간에 종종 영서가 면회를 왔고, 윤OO 할아버지와 우리 간호사들도 귀엽고 깜찍한 영 서를 기다리게 되었다. 윤OO 할아버지의 혼돈증상은 계속되었지만, 본인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정 도로 조금씩 호전되었고, 큰소리를 내시다가도 영서가 온다고 하면 웃으시며 안정을 찾으셨다. 그 리고 할아버지는 간호사 각각의 특징이나 외모에 맞추어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했는데 체구가 작 은 간호사들에게는 “땅콩” 이나 “쥐콩” 또 어떤 간호사에게는 “small tiger” 라고 별명을 붙여주 곤 하셨다. 이렇게 윤OO 할아버지를 돌봐 드리고 함께 지내다 보니 정도 쌓이고, 웃음을 나누는 기회도 많아졌다. 드디어 윤OO 할아버지가 일반병실로 이실하기로 한 날이 되었고, 그날이 마침 할아버지의 생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 인계를 마치고, 할아버지의 아침식사를 챙겨 드리던 간호사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아침식사 메뉴가 미역국이었던 것이다. 중환자실 간 호사들은 할아버지 곁에 모여 생신 축하 노래를 불러 드렸고, 할아버지는 미역국을 맛있게 드시

Action Plan Story ∙ 29


며 “고맙다! 고맙다!” 인사를 해 주셨다. 할아버지의 미소와 그 마음은 늘 긴장하고 스트레스 많은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일반 병실에서 재활 치료에 전념하고 계신 윤OO 할아버지!!! 며칠 전 삐뚤삐뚤한 글씨 와 그림으로 채워진 영서의 감사 편지까지 받게 되어 우리 간호사 모두 다시 한 번 할아버지를 기 억하며 힘을 얻게 되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 어떤 약물이나 처치보다 소중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할아 버지와 영서를 우리는 아주 오래 기억 할 것이다. 윤OO 할아버지의 빠른 회복을 기원하며, ‘환자 우선의 전인치료’로써 환자를 내 가족처럼 대한다는 CMC 이념과 섬김의 실천이 우리 모두를 얼 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 영서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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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장려상

봉사를 통한 내적 충만의 만남 서울성모병원 | 간호부 211병동 | 신영동

병원 생활을 하면서 나이가 많아진다는 것은 아쉬움보다 충만함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일상은 매일 바쁘게 움직이고, 지친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일들이 잦아질 때 나는 새로움과 보람된 일들을 하기 위해 주위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늘 게시판을 통하여 보던 ‘사랑실천 봉사단 자원봉사 활동 안내’를 보면서 왠지 가슴이 뛰며 설레기 시작했다. 나의 시간을 나누어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며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봉사에 참여하 는 것이 나 스스로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치매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성심의 집, 본원 호스피스센터, 강남사회종합 복지관. 이 장소들이 봉사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매달 1번 토요일 마다 미리 신청한 곳에 봉사를 나가게 되었다. 세 곳에서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감회는 매 우 남다르다. Action Plan Story ∙ 31


성심의 집은 여자 치매 어르신들을 돌봐 드리는 곳이다. 어느 날은 온 방안을 수세미로 비누칠 을 하여 구석구석 땀이 나도록 청소를 하기도 하며, 청소로 인해 젖은 나의 양말을 대견스럽게 쳐 다보는 나의 시선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은 어르신들 식사준비를 위한 주방에서 추운 겨울에 구수한 입담으로 음식 장만하는 직원의 과거사를 들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춤형 식 사를 준비하는 모습에서 프로다운 면을 발견한다. 새삼 작은 일에도 최선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직원에 머리를 숙이기도 한다. 직원은 나에게 브 리핑을 하듯 김00 어르신은 고기를 좋아하시니 고기 양을 많게, 이00 어르신은 요즘 혈압이 높아 짜지 않고 싱겁게, 김00 어르신은 치아가 좋지 않으니 잘게 다지기 등. 정말 망설임 없고 확실하 게 식사 상을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정성과 사랑으로 음식에 좋은 기운으로 넣어주니 6개월이 지 나 다시 찾아도 어르신들의 피부에는 윤기가 흐른다. 어느 날은 어르신들이 화환을 만드는 특별시간이다. 다정함이 넘치는 자원봉사자의 태도와 어 르신들을 수없이 칭찬하는 말에서 어르신들은 느린 속도 속에서 본인의 화환을 만들어 머리에 쓰 고 서로 아가씨 같다며 예쁜 화환을 만든 성취감에 웃으신다. 때론 치매 어르신이어서 옆에 앉아 있으면 반복되는 질문을 20번은 되풀이한다. “집이 어디유? 내 집은 석관동이야.” 반복되는 질문 속에서 직원들은 같은 대답을 똑같이 해준다. 어느 날은 외부로 외출하는 나들이 날이다. 한강 코스모스 축제에 버스와 휠체어를 타고 거리 를 나오시는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는 분, 나가기 싫다고 응석을 부리는 분, 환한 가을 하늘과 수많은 사람들, 거리에 활짝 핀 코스모스……. 이날은 1년에 몇 번 안 되는 외출날이다. 집 에 와서도 즐거워하며 천진하게 웃으시던 모습들이 아련히 남아 있다. 며칠 동안 생각이 날 때마 다 기도를 드린다. 다음에 봉사 올 때도 이 분들이 건강하게 그대로 계시기를 기원한다. 강남사회 종합복지관에서는 영세민들을 돕는 사업에 많이 동참한다. 초등학교 아이들 방과 후 시간에 특별수업으로 케이크 만들기를 하는데 우리의 손길이 필요로 하다. 2명의 아이와 내가 한 조가 되어 케이크를 각자 멋있게 만들었다. 최대한 생과일과 초콜릿으로 장식하면서, 아이들과의 2 시간 정도의 만남에서 나는 마음이 아파 동정이나 안쓰러움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많이 애를 썼다. 두 아이 모두 이유는 모르지만 엄마가 안 계신다. 영세민 아파트에서 아픈 할머니와 아빠와 살 고 있단다. 그리고 방과 후 교실에 너무 오기 싫지만 갈 곳이 없어 온다며 서슴없이 나에게 말을 하는 아이들이 순수하면서도 안쓰럽다. 나도 모르게 만 원짜리를 선뜻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맛있는 것 사먹으라고. 그러나 이것은 도움이 안 되는 동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 슬그머니 가방 에서 손을 뗀다. 케이크가 완성되니 아이들은 케이크박스에 서슴지 않고 넣는다 할머니 갖다 드린다며 즐거운 얼굴로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나는 화살기도를 한다. 아이들이 계단 끝까지 내려가 발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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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질 때까지 기도를 올린다. 순수하게 자라 자신들의 꿈꾼 미래를 꼭 이룰 수 있는 성인으로 성 장할 수 있도록 말이다. 김장하는 날은 너무 힘들었다. 몇 포기를 담그는지 알 수 없지만 거대한 숫자의 배추를 담은 박 스들이 수없이 쏟아지며, 몇 시간을 쪼그리고 앉아서 배추 속을 넣는다. 집에서 김치 한번 제대로 담그는 적이 없었건만, 봉사자들은 서로 서로 힘들어도 쳐다보며 열심히 양념 속을 넣는다. 뒤풀 이로 삶은 돼지고기와 막걸리는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노동의 참 대가로 보상받은 선물이다. 한두 잔 먹은 막걸리 취기에 집을 향하는 몸과 마음은 너무나 행복하다. 또한 구정을 앞두고 만 두를 정성스레 만들어 삶고, 20개씩 그릇에 넣어 직접 아파트로 배달한다. 틈도 없이 구획정리가 된 아파트는 너무 작다. 어느 집에 만두를 배달하러 문을 열면 작은 집에서 4-5명이 나온다. 배달 된 적은 수의 만두에 즐거워하며 감사하는 이분들에게 난 다시 머리가 숙여진다. 다음은 본원 호스피스센터이다. 함께하는 호스피스센터의 정기적인 봉사자들은 호탕하며 군대 처럼 선후배 군기가 살아있다. 모임의 시작은 환자의 변화된 상태, 최근에 있었던 상황에 대한 인 계를 받고 오늘 할 일들이 정해진다. 7호 이00 환자 발 마사지, 10호 김00 환자 목욕, 11호 신00 환자 이발 등 할 일들이 정해지면 환자가 입원한 전체 병실을 라운딩한다. 병실 마다 방문하여 환자분들이 원하시는 대로 노래를 불러드린다. 성가에서 찬송가, 트로트, 가요 등. ‘노래를 잘 하지 못하면 봉사도 못하겠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로들이다. 아침부터 트로트와 신나는 가요를 부르면서 쑥스러움에 미소를 짓고 즐거워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병실에 방문 시 안타까워하는 가족들과 마음 모아 기도 드리는 정중한 마음도 연습 이 되어 바로 바로 의식의 단추를 꾹 누르면 이제는 저절로 정중하고 진심어린 기도가 나오는 힘 이 생기기도 한다. 봉사자와 함께 환자 목욕을 시켜드리는 시간이다. 깡마른 몸에서 배어 나오는 고통을 느끼며 목욕 시 환자의 몸을 소중히 만져주는 봉사자들을 보면서 나의 겸손의 고개는 다리 끝을 쳐다본 다. 현 직장에서 나는 간호사라는 본분을 갖고 환자를 때때로 소중히 대하지 못한 나의 모습에 미 안하고 죄송함에 나를 위한 기도가 저절로 나오기도 한다. 정말 오랜만에 목욕을 하니 이제 죽어 도 여한이 없다는 환자의 말에 우린 기쁨의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며 흐뭇해한다. 진정으로 봉사하는 봉사자들에게서 나는 그들의 진정성을 보고 나의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찾을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근 2년 동안 봉사를 하면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위 한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를 통하여 나는 나의 순수함을 되찾고 봉사로 인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나를 찾을 수가 있었다. 또한 나는 마음에 충만함을 얻었다. 봉사를 받는 이들의 처지와 마음도 느 낄 수 있으며 봉사를 하는 다른 이들의 진정성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도 알 수 있었다. 나만 잘살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내가 아니라 남을 위해 나를 내어놓을 때 나는 더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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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짐을 봉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다.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면서 그 생활 안에서 내가 보람을 갖고 겸손함을 갖게 한다. 즉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지금 여기에 이 순간을 느끼고 있는 내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고 남의 고통도 진 심으로 함께하며 지금의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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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장려상

25명의 임종환자가족과 함께 하다 서울성모병원 | 161병동 | 곽수연

161병동은 두경부암, 유방갑상선암, 비뇨기암 등의 수술환자 및 말기 암 환자를 돌보고 있습니 다. ‘암’이라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월 평균 2~3회 발생하는 임종환자의 가족들에게도 영적 지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환자 및 그 가족 중심의 영적 간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대상으로 영성간호를 하고, 각 상황에 따른 기도를 하며 임종 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카드를 발송하고 있습니다. 영성간호는 각 간호사마다 분기별 대상자를 한 명 이상 선정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간호 중 재 적용 시트’를 이용하여 가능한 환자가 중복되지 않도록, 더 많은 환자들이 영성 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쁜 간호 업무 속에서 마음을 열고 환자들의 말을 경청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인해 위로가 되고 조금이나마 안심하는 환자들을 보며 직업에 대한 자긍심과 보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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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낍니다. 다음으로 각 상황에 따라 환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매 근무 전 간호사들이 함께 모여서 ‘환자 를 돌보는 이의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하루 일을 시작합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오늘 저희의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이 당신의 사랑 받는 자녀이며 그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 당신께 봉사하는 길임을 잊지 말게 하소서. 저희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에서도 병자들의 고통을 먼저 돌보며 이웃을 기꺼이 도우셨던 성모님처럼 그들을 위해 당신 은총의 전달자 되게 하소서.”

저희 병동은 갑상선유방외과 수술 건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포켓용 수술 전 기도 시트를 지니 고 다니며 수술실 내려가기 전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고마워하고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수술 전 기도를 하면 진심으로 수술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고, 기도 덕분에 불안감이 완화되었다고 말하는 환자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낍니다. 임종환자를 위한 기도는 모든 임종환자를 대상으로 임종간호 후 가족들과 함께 시행합니다. 환 자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님을, 오랜 병고로 힘겨워하는 환자가 이제 편히 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이별의 시간을 함께 합니다. 말기 암 환자가 임종하기까지 수일 혹은 몇 개월 긴 시간 간호사는 그들과 함께 하게 되므로 환자의 임종은 가족뿐만 아니라 간호사 도 상실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래서 저희 병동에서는 임종으로 돌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추후 가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필 요하다고 생각되어 임종환자 가족을 위한 카드를 발송하게 되었습니다. 카드를 받는 대상자는 161병동에서 간호를 받으시다 임종하신 환자분들의 가족으로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셔서 임종하 신 분까지 포함하여 2012년 총 25명의 고인 가족들에게 카드를 발송하였습니다. 카드는 49제에 맞추어 도착하도록 하였고 카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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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 37


Action Plan Story 장려상

외국인 향한 이념 실천 - 국제적인 사랑 전하기 서울성모병원 | 신생아중환자실 | 김동연

사실 우리는 외국인들을 강자로서 생각합니다. 심지어 그들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두렵게 생각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외국에 갔을 때의 두려움을 생각하면 알듯이 그들은 한국에 오면 약자가 되게 됩니다. 왜냐면 우리는 대학까지 영어를 배웠지만 외국인들에게 “전 영 어를 못해서 통역을 불렀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 후 의사가 자세히 설명해 줄 거예요. 앉으세 요.” 이런 간단한 말조차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도 통하지 않은 채 눈만 보고 들어가는 의 료진에게서 불안한 상황을 늘 겪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은 제가 겪은 어떤 일화에서였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출근하며 1층 엘리베이터에서 우왕좌왕하는 러시아 환자를 발견했습니다. 그녀 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러시아어를 하며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뭔가 길을 잃은 듯했습니다. 전 제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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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신분증을 보여주며 “May I help you?” 하고 물으니 영어를 못하는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제 직원신분증을 보더니 안심이 되는지 제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수액백에 환자 이름과 13층 병실이 라벨이 되어있었습니다. 환자를 모시고 그곳으로 모셔다 드 렸더니 러시아 가족도 병실에서 횡설수설 러시아어를 하면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흉부사진을 찍으러 2층에 갔다가 이송요원이 기다리라고 한 말을 못 알아듣고 1 층으로 내려와 버려서 미아 가 된 것이었습니다. 두 분은 서로 포옹하며 숼라숼라 러시아어로 말하며 가족상봉을 기뻐하였습 니다. 전 “Thank you. Thank you.” 허리를 90도로 굽혀 하는 감사를 연거푸 들으며 그 방을 나 왔습니다. 그 일 이후 이제 외국인들을 보아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들이 약자임을 알았고 사랑으로 대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으니까요. 그 후 간호사들에게 인사말을 코팅해서 신분증에 달아주었습니 다. 이제 신생아실 간호사들은 능숙하게 영어로 자기소개도 하고 비닐 가운을 입고 들어오라고 합니다. 유창하게 영어 후 손을 씻고 나면 우습게도 “I am sorry, I can't speak English very well. I call the interpreter for you. And then, the doctor in charge will explain more in detail. Have a seat.” 하며 영어로 응대합니다. 그러면 외국인들은 웃습니다. 같이 웃으며 그런 말로도 우리의 마음은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병동이나 외래에 외국인은 당일 방문이거나 길어야 일주일 정도 옵니다. 그러나 저희 신생아중환자실은 900그램의 미숙아로 입원 오면 한 달을 키우다 퇴원합니다. 그 한 달 동안 아 기는 한국말을 못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호자는 다르죠. 우린 미국인 보호자의 방문을 안내하고 아기 상태를 설명해야 하고 전화 면담도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우리 간호사들도 국제 진료 센터에서 올 때까지 외국인들을 방치했었습니다. 물론 기다리란 말도 안하고 눈치만 보았죠. 심지어 비닐 가운 입고 들어와서는 손 씻으란 말도 몸짓으로 했었습니다. 안전요원은 면회가 끝났으니 나가란 말을 못하고 그 앞에 서 왔다 갔다 하였습니다. 올해 1월에 의정부에서 근무하는 원투원병원(121부대 소속)에서 미국 군인이 극소미숙아기를 낳았습니다. 아기는 초극소 미숙아였고 인공호흡기도 달았습니다. 그 후 아기는 인공호흡기를 떼 고 수유를 진행 중입니다. 정말 불안한 보호자에게 우리는 사랑으로 그냥 대했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물어보면 아는 문법 생각하지 않고 그냥 알아듣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외국인과 정이 들었습니다. 이제 미국인 엄마는 문자로도 아기 상황을 물어봅니다. 집이 의정부라 오시기 힘들기 때문입니 다. 우리는 문자로 아기 사진과 답을 보내줍니다. 그녀의 문자에서 “Thank you J.” “I have been so worried about her and haven’t been able to come so I was stress out.” “Good job.”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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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안심과 안도, 감사가 느껴집니다. 오늘도 아기는 이제 1.009kg입니다. 우리 신생아실은 우리 병원이 가톨릭 이념으로 아기를 사 랑하고 생명을 존중하고 가족들을 보살핀다는 것을 외국인에게도 열심히 전할 것입니다. 감사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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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장려상

아기 예수님을 보듯이 서울성모병원 | 신생아중환자실 | 오윤빈

우리 병원은 가톨릭 병원입니다. 가톨릭 병원은 다른 기업 병원이나 대학병원과는 달라야 한다 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개원한 지 4년이 지난 우리 신생아중환자실과 신생아실을 돌아보면 우리 가 가톨릭 이념실천의 중심에 서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러한 우리 부서를 소개하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 신생아중환자실은 1년이면 500명, 신생아실은 1년이면 1,200명 정도의 신생아가 다녀갑 니다. 그 가족까지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만나게 됩니다. 개원한 지 4년째이니 6,800명 정도 의 가족이 다녀간 것입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이념의 전파가 참 빠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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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생아중환자실이 다른 병원과 다른 점은 사랑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입니 다. 예기치 못한 미숙아 분만으로 인해 아기를 낳게 되는 산모들과 그 가족은 불안감과 고통을 경 험하게 되고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일단 급하게 아기를 받아 응급 처치를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고 나면 그다음 날엔 병실에서 아기도 못 보고 울고 계시는 산모를 찾아갑니다. 그다음 아기 현재 사진을 보여드려 얼굴을 보여주며 첫 대면을 시킵니다. 대부분의 엄마는 아 기에게 미안한 마음과 걱정에 우십니다. 그러면 엄마의 잘못이 아님을 강조해주고 안심시켜 드립 니다. 이런 일들은 보호자와 간호사간의 유대감을 형성하며 우리가 한 가족이고 아기 치료를 위 해 함께 간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아기들이 다 상태가 호전되어 집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일 년에 10 여명 정도의 아기는 하느님께 다시 돌아갑니다. 슬퍼하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 우리는 같이 울어 드립니다. 아기와 같이 아빠가 영안실로 내려가시면 혼자 있을 엄마를 위해 원목실 수녀님을 엄 마에게 보내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엄마에게 참 많은 도움을 주십니다. “아기에게 미안하죠. 우리 다 미안해요. 엄마도, 아 빠도, 의사도, 간호사도 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기를 못 지켰으니 얼마나 미안해요. 그러나 우리는 아기에게 감사해야 해요. 아기가 살아서 자기 존재감을 알려주고 나 여기 있다고 얼굴 보여주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니 얼마나 감사할 일이에요. 우리 아기 보내주며 기도합시다.” 하며 수녀 님에게 배운 위로를 가족들에게 해주면 참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위안을 U.M.선생님이나 저도 받습니다. 사실 아기를 잃는 것은 의료진에게도 상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기를 보내던 날 하늘을 보며 이 넓고 커다란 우주에 우리 인간은 하나의 미물 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는 인생은 우주에서 하나의 찰나에 불과할 거고 난 먼지로 사라 지겠거니 합니다. 그러나 이런 찰나의 순간을 살면서도 열심히 사는 우리들은 참 의미있는 존재 인 것 같습니다. 우리 신생아중환자실 간호사들은 마음이 참 예쁩니다. 신생아중환자실 구석구석을 돌아보면 어 디에서든지 하트나 모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빌은 근무시간 후 간호사들이 집에 가지 않고 종이에 흑백 그림을 출력하여 만들어 달아주는 것입니다. 보기엔 손으로 만든 거라 부실해 보이지만 그 마 음을 생각해 줘서인지 미숙아들이 귀여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쳐다 봐 주는 것 같습니다. 아기 보육기 이름표에 적혀있는 “사랑해 ○○아” 또는 흉부 물리요법을 하는 팡팡이에 적혀 있 는 “힘내라~!” 등의 글귀들은 정말 같은 마음으로 아기를 응원하고 간호하는 우리 신생아중환자 실 간호사들의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병동에는 성령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매일 아침 아기를 돌아보면서 기도하시는 U.M.선생님과 함께 우리는 이미 하나입니 다. 여기서 태어난 수많은 1,000그램 미만의 초극소 미숙아들이 걷기 시작할 때, 말하기 시작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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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엄마들은 우리에게 아기를 자랑하러 오십니다. 참 이런 사랑과 감사가 계속 생겨나니 우리가 바로 이념 실천의 선두주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듭니다. 매일 바쁘지만 들에 핀 꽃이 눈도 비도 바람도 당연히 맞아가며 이겨내듯이 당연한 일 이려니 하고 열심히 살게 됩니다. 이렇게 희생과 사랑으로 자기를 비우는 일은 자신을 참 아름답 게 채우는 것 같습니다. 이런 곳에서 일하게 해주신 하느님과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앞 으로도 모든 아기를 예수님 대하듯이 대하며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이념을 실천하겠습니다.

Action Plan Story ∙ 43


Action Plan Story 장려상

기도하는 생활 성바오로병원 | 간호부 | 위유신

어느 날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나는 인공신장실이라는 낯선 곳으로 부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나는 만성 신부전 환자가 내원하게 되면 가장 힘들었다. 만성질환자들을 많 이 접하지 못하고 그 환자들의 심리를 이해하기에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만성 신부전 환자 가 내원 후 나는 “투석실 간호사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며 같이 근무하는 선배에게 물어 보았다. 선배는 “그래서 신장내과 교수님하고 신장실 간호사들한테 ‘진짜 천사야’라고 하지…….” 하며 대 답 하였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인공신장실이라는 부서는 상당히 부담 되는 곳이었다. 인공 신장실로 첫 출근 하는 나는 발걸음도 무거울 뿐만 아니라 가슴도 답답했다. 인공신장실의 출근 시간은 병동 아침근무보다 훨씬 빨랐다. 이것 또한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병동의 아침근무보다 44 ∙


분주히 움직이는 선생님들과 새벽부터 기다리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한숨만 나왔다. 하지만 시 간이 지날수록 나는 출근 시간도 익숙해져 내가 나올 수 있는 한 빨리 출근 하였다. 응급실에서는 환자들과 마음을 나누거나 이해하기보다는 빨리 환자 치료를 위해 분주히 움직 이며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인공신장실에서는 그러하지 못하였다. 환자들과 이틀에 한 번씩은 항상 만나야 하고 정말로 ‘이념’에서 말하는 것처럼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마음의 아픔 까지 돌봐야 하는 곳이었다. 암 환자라면 완치라는 기적이라도 믿지만 투석을 받는 환자에게는 그 기적마저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환자들은 낙담과 원망, 좌절, 가족에 대한 미안함, 인간의 기본 욕구조차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었다. 환자들은 투석이 생명이기에 초보인 나에게 선뜻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이런 환자들에게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나의 부족함을 환자들 핑계 로 덮으려고 했던 것이. 한번은 환자에게 주사를 놓았는데 환자가 하나도 안 아팠다며 편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위 선생님은 행복이 무엇인지 아세요?”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갑자기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말하는 게 부끄러워졌다. 처음 10년 가까이 가톨릭 병원에 다니면서 한 번도 나는 하느님과 예수 님을 찾지 않았으며 기도를 하지 않았다. 인공신장실에 와서 처음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하게 되 었다. ‘하느님 제가 돌보고 있는 이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느님 저들에게 평 화를 주세요.’ 라고……. 병원에 다닌 지 15년여 만에 나는 세례를 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도와 감사밖에 없었다. 환자에게 물을 떠다 주면서도 예전의 툴툴거림보다는 이렇게라도 움직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 감사했다. 어떻게 보면 환자들은 투석실 간호사를 자식보다 더 많이 만나게 되고 더 많은 대화를 한다. 이런 환자들에게 따듯한 미소와 경청만으로도 환자들은 위안을 삼고 간호사들을 신뢰하게 된다. 환자들은 육체적 고통보다 마음의 상처로 인한 아픔이 더 컸기에 이런 것들을 품어주는 간호사 들의 마음이 전해져 서로에게 의지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보 다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고 많은 것을 배웠으며 내가 간호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길을 잡아 준 환자에게 감사하다. 8년여의 투석실 생활을 마치고 마지막 날 환자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환자 들이 손을 꼭 잡고 그 동안 고마웠다며 건강하라는 말, 안 가면 안 되냐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들에게 해준 것은 기도밖에 없었는데…….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가는데……. 그래 서 부끄러웠다. 이 많은 도움으로 나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예전과는 달리 환자의 말을 경청 하게 되고 나에게 맡겨진 환자가 입원을 하게 되면 병실로 찾아가 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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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가족이 온 것처럼 반갑게 맞아주시고 고마워하며 주머니에 귤을 한 개씩 넣어 주기도 한다. 환자에게 교육을 시킬 때도 의무적으로가 아닌 내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하는 것처럼 하게 되 었다. 이런 감정들이 환자에게 전해지는지 환자들도 내가 하는 말을 믿어 주고 마음속에 있던 고 민들까지 말해주고 함께 고민해 주는 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느님 감 사합니다. 나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하고 기도하며 지금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이념 실천 내용 을 다시 보게 된다. 혹시 무심코 위배된 행동을 하는 게 아닌가……. 이념 실천만 해도 간호사로서 부끄러운 모습은 안 보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다. 성모님은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계신 것을 믿었으며 온 몸으로 느끼고 살았다고 한다. 나 또한 성모님처럼 살고 싶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떳떳이 말하기에 부끄러워 소심하 게 성호경을 그어 보지만 생명을 존중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씩 느끼며 실천하면 나도 떳떳하 게 큰 성호경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돌아가는 환자에게 “다음 달에도 오늘처럼 건강하게 뵈어요.” 라고 인사를 하며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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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서울성모병원 | 영양팀 | 김지연

어느덧 내 삶을 CMC와 함께 한지도 10여 년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작은 겨자씨로 점철(點綴)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겨자씨가 한 그루의 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은 CMC의 이념이리라.

1. 생명존중과 의료선교, 정체성 서울성모병원의 개원과 JCI 인증이라는 거대한 항해를 거친 후, 짧지만 소중했던 휴직기간을 보내고 나서, 내 일과 내 삶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Action Plan Story ∙ 47


나는 왜 영양사가 되었는가? 나는 왜 병원에서 영양사를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곳 CMC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는가?

물론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아이들 책 속에 등장하는 소위 ‘community helper’, 즉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속한 공동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며,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CMC는 이러한 내가 할 수 있 는 일이 잘 되도록 장(場)을 마련해 주었다. 아픈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언제나 도움의 손길을 내미셨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CMC의 정체성은 내가 왜 이곳에서 일하는 것 이 더 큰 의미인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서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주었기 때문 이다.

2. 환자우선의 전인치료, 진료 단순히 내가 알고 있는 전문지식을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는 전인치료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입원 병실에서, 외래에서 만나는 몸과 마음이 고단한 이들에게 내 전문지식을 성형하여 그들에게 맞는 모습으로 선보이고, 그들이 작지만 강렬한 희망의 눈빛으로 답을 줄 때, 나는 이곳에 있음이 행복하다. 육아에 지친 30대 주부가 체중조절을 하고플 때 어떻게 장보기를 해서 어떤 식단으로 밥상을 차려야 하는지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너무 어려 장을 보고 원하는 대로 식단 조절을 하기 어렵다고 호소하면 간편 조리법 을 알려주거나, 영양소가 비슷하면서도 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그마저 여 의치 않으면 동네 반찬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는 목록을 알려주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환자가 식습관이 이렇게 좋아졌다고 이야기해주며 건강해진 본인의 모습에 좋아하면 덩달아 함께 기뻐 했다. 환자마다 적절한 목표를 세워주고, 목표에 맞추어 잘 했을 때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뻐하 는 것이 의료인의 참된 행복이며, 이것인 진정한 전인치료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3. 성숙하고 역량 있는 전문인력 양성, 교육 짧은 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CMC에서 접했던 ‘영적 돌봄 리더십 프로그램(SCLP: Spiritual Care Leadership Program)’은 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었다. 늘 빠르게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는 생각으로 가득찼던 내 삶에서 SCLP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주었다. ‘거룩한 이름 부르기’ 기 도를 하면서 삶의 균형을 찾아보고, 한 번에 하나의 일에 집중하며, SCLP를 통해 영적 성장에 상 호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모임을 유지하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참기름의 역할 48 ∙


을 해주었다. 동료들과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었고, 환자들에게 집중하여 그와 하나 된 마음으 로 상담할 수 있었다. ‘Peace be with you’ 마음이 바빠지면 되뇌는 이 ‘거룩한 이름’은 작은 자극에 쉽고 빠르게 반응하던 내 마음의 속도 를 늦추는데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질병으로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황폐해진 이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말들에 상처를 받지 않고, 진심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면 많은 부분을 공감해 낼 수 있었다. CMC는 영양사로서 내 사회적 존재감을 느낄 수 있 을 뿐 아니라 성숙한 인간으로 한 번 더 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는 나 스스로 보다 성숙하고 역량 있는 인재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서의 후배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 전체적인 CMC의 인재상을 다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4. 상호신뢰와 윤리경영, 경영 누군가와 함께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는 “관찰(觀察)보 다는 애정(愛情)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連帶)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立場)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하다 했으며, 관계의 최고 형태는 입장의 동일함”(「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저)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의 입장을 동일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CMC의 이념일 것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와 우리 서로 일을 함께 하니 이 일이 더 재미있고 보람차며 조금 더 힘든 일 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동일한 입장이 바 로 이념이 될 수 있다. 입원환자의 먹을 거리를 고민하면서 위탁급식 업체와 협의를 할 때 “환자 의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종종 이런 말을 나눈다. 얼마 전, 위 절제 환자들의 식사가 맛이 없다는 불만 글을 받은 적이 있다. 위탁급식의 선생님들 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환자들은 암이라는 병을 진단 받고 위를 잘라낸 환자들입니다. 물 한 모 금 간신히 삼키기 연습하고는 미음 먹고, 그 다음에 죽과 함께 이 반찬들을 먹어야 해요. 조금 더 부드러우면서도 맛있게 만들어 봅시다.” 환자의 입장이 되어 치료에 도움이 되는 식사를 만들어 보 자는 간절함은 서로에게 쉽게 공감이 되고,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찾아낼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내가 환자의 불만이 듣기 싫어서도 아니고, 위탁급식 업체에서도 개선의 번거로움을 귀 찮아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더불어 일하며 이념을 실천하고픈 입장의 동일선상에 있기 때문이 다. 하루를 구성하는 작은 일상들, 그 일상들이 모여 각자의 삶을 만들고, CMC에 근무하는 각자 의 삶이 모여 CMC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내 작은 기쁨들이 CMC의 기름진 흙에 묻혀 가지 많은 나무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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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서울성모병원 | 15층 2병동 | 곽수연

“가족들을 부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병실 밖 복도에서 보호자에게 입을 뗀다. 몸을 굳히고 긴 장된 표정으로 복도로 따라나선 보호자는 몸을 떨면서 주저앉는다. 한번쯤 TV에서 본 듯한 막장 드라마의 한 대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암 환자를 보는 병동의 특성상 그 어려운 얘기를 꺼내는, 다소 냉정해 보이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나다. 막장드라마처럼 ‘주인공은 극적으로 고비를 넘 겨 다시 소생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이야기로 끝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현 실과 드라마의 차이라고 할까……. 즐거운 소식, 기쁜 소식은 누구나 빨리 전하고 싶은 마음에 줄을 서도 듣고 또 듣고 싶겠지만, 나쁜 소식,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Action Plan Story ∙ 51


을 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렵고, 듣지 않으려는 가족과 이해시키려는 의료진이 부딪치는 상황 이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얼마나 남았어요? 하루? 이틀? 1주일?” 이라고 물으면서 정확한 임종시간을 알려주기를 원한다든가, 임종하시기 전에 미리 말하지 않아서 가족들이 임종을 못 지켰다고 원망을 하시기도 하고, 소식을 전하고 예견했던 시간이 지나면 “어제를 넘기지 못한다더니 어떻게 된 거에요?”라 며 따지듯 묻는 가족들의 말에는 참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정말 그 누가 100% 알 수 있으랴. 그 분 만이 아시는 시간을……. 사람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이승에서는 교수, 고급공무원, 사장, 디자이너를 꿈꾸던 유학 생, 경비원 등 다양한 모습이지만, 마지막 가는 모습도 그처럼 귀천이 있을까……. 서울성모병원 간호부에서는 선종하신 환자와 가족이 마지막을 나누는 시간 동안 고인의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 을 기억하고 보내드리고자 ‘임종간호’를 시행하고 있다. 몸에 삽입되었던 모든 관을 제거하고 몸 을 닦은 다음, 깨끗한 옷과 시트로 감싼 후 꽃 한 송이를 올려놓고 가족과 함께 마지막 기도를 같 이 올린다. 임종간호를 시행하면서 그동안 투병과정을 같이 했던 간호사들도 고인과 작별의 시간을 갖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때론 보호자를 껴안고 울기도 한다.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주렁주렁 달았던 줄 들이 하나하나 정리되고, 모니터들이 꺼지면, 사람을 살려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또 한 분을 보내드렸다는 자괴감도 들지만 또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다면, 완벽한 ‘무(無)’다. 오랫동안 괴롭혀 오던 고통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순간에 대한 불안에서, 가족에 대한 걱정 에서 떠난 이의 모습… 그런 고인의 옷을 갈아 입히고, 옆을 정리하면서 그 인생의 일부를 정리하 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경건해진다. 혹시 정리하지 못한 일이 있더라고 마음 가볍게 떠나시길…. 간 호사들과 임종간호를 시행하다 보면 고인들은 오랜 투병생활로 마른 몸과 창백한 병색 등이 비슷 비슷하지만, 고인을 떠나보면 가족들의 모습은 살아온 사연만큼이나 각양각색이다. 오랫동안 옆에서 잠 못 이뤄가면서 병수발을 하셨던 분이 부인이 아니었다든가, 생전 찾아오지 않던 친척이 나타나 ‘어떻게 했기에 사람이 이 지경이 되었냐.’며 그 동안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반쪽이 된 보호자를 혼내기도 하고, 재산문제로 고인을 앞에 두고 집안싸움이 나기도 한다. 찾아 오는 형제친척 하나 없이 자녀 혼자서 마지막 시간을 지키기도 하고, 마지막 시간이 예정보다 길 어져 1인용 병실비를 낼 수가 없는 부인이 남편에게 “애쓰지 말고 그냥 가”라고 말하며 눈물짓기 도 한다. 준비하는 것, 마음을 비우는 것에 대해 시중 서점에서는 ‘버킷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많은 책은 우리가 그만큼 ‘비우고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이리라. 초등 학교 5학년 그 어린 것이 간암 말기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유학을 준비하던 20대 꽃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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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홀어머니에게 어떻게 주님의 큰 뜻을 이해하고 준비하라고 말할 수 있을 까……. 어느 날 모 병원 간호부장 이력을 가진 분의 아버님이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호스피스 치료를 위해 본원에 입원하셨다. 선종하신 후 간호사가 임종간호를 시행하고 퇴원하셨는데, 본인 이 퇴직한 병원을 찾은 자리에서 “우리도 임종간호를 해야 한다”며 감명 받은 이야기를 전하셨을 때 참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선종하여 신체는 우리의 의료적 처치를 필요로 하는 시간이 지났지만, ‘그 순간’ 우리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낸 환우와 슬픔에 젖은 유가족과 함께 하고 있었구나. 우리가 그 자리를 외롭게 해드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맘이 들어 간호사로서 내가 있는 보람을 느끼게 된 다. 어차피 삶과 죽음은 연장선이 아닌가. 오늘도 한쪽에서는 “코드블루, 코드블루” 응급방송이 나오고, 또 한쪽에서는 수술을 들어가며 불안한 얼굴로 기도하기도 하고, “치료반응이 좋아서 다음엔 외래로만 오세요.”라는 담당교수님 의 말에 활짝 웃는 가족이 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치밀어 오르는 구토와 불 안과 싸우면서도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가 하면, 마지막 시간을 기다리며 눈물짓는 가족들이 있다. 그렇기에 완쾌하는 환자를 보지 못하고 가망 없는 말기환자들을 간호하는 좌절감 보다는 그 다양 함 속에서 ‘그 순간’에 우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 드린다. 오늘 하루도 근무시작 전 성호를 긋는다. ‘오늘 하루 모든 사건과 사고에서 우리 간호사들을 지 켜주시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환우와 가족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해주소서.’ 그리고 바라게 된다. ‘그 순간’ 내가 그 옆에 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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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 할머니 힘내세요’ 프로젝트 여의도성모병원 | 7층 서 Unit | 이동숙

저는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든 7층 서병동 간호사입니다. 내과 병동에 있다 보면 참 많은 환자, 보호자를 접하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합니다. 어느새 4년 차 간호사가 되고 보니 실수투성이였던 신규 간호사 시절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어엿한 간호사로서 착실하게 병원 생활 을 해왔다는 자부심도 들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주치의들의 지시만 따르는 도우미인 것 같 다는 생각에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있는 내과병동은 내분비내과가 주임상과인 병동이기 때문에 당뇨병으로 많은 환우들이 입원하여 치료를 받습니다. 대부분의 당뇨환자들은 합병증 검사 및 당뇨조절을 위해 입원하기 때 문에 병동에서 병상을 지키기보다는 병원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운동을 하거나 다른 환자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지내곤 합니다. 일하는 보람은 찾지 못하고, 힘들고 스트레스만 잔뜩 쌓이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시기에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우리들은 이분을 진희 할 머니라고 불렀습니다. 54 ∙


진희 할머니께서는 아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 10년째 홀로 사시느라 당뇨조절과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입원하셨습니다. 병실에 가면 할머니께서는 언제나 홀로 기운 없는 표정으로 침상에 누워계셨습니다. 간호사들이 말이라도 걸면 할머니께서는 “기운 없어.”, “입맛 없어.”라며 눈물을 보이곤 하셨습니다. 어느 날 병실 순회를 하던 주치의는 할머니에게서 우울증양상이 보이는 것을 확인하였고, 간호 사들에게 진희 할머니를 잘 돌봐 달라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우리 병동 간호사들은 할머니가 안 쓰럽기도 하고, 자상한 마음을 표현해주는 주치의의 부탁도 있어서 ‘진희 할머니 힘내세요.’ 프로 젝트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희 할머니의 주치의도 할머니의 상태를 체크하면서 이 프로젝트 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병실을 순회할 때마다 손 한 번 더 잡아드리기, 식사 때 도와드리기, 인계 시 그날의 기분변화, 대화내용 등을 인수인계하기, 주치의에게 오늘의 환자 상태 메시지 보내 공유하기, 원목실 수녀님 연결하기 등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실행하였습니다. 주치의도 할머니가 홀로 사시다 보니 마음의 병이 생긴 것 같다며 정신건강의학과에 협진을 의뢰하였고 항상 순회 시마다 말동무가 되어 드렸 습니다. 우리들은 인계 때마다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달라고 하였고, 할머니와 주고받았던 대화를 카덱스에 적어서 서로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우리 병동의 간호사들은 손녀처 럼 사근사근하게 대화를 나누며 할머니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우 리들이 근무에 지쳐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기에 부족함을 느끼고 우리 병동 담당 원목실 수녀님께 부탁을 드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기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작은 관심은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항상 식사를 못하시고 받 은 밥상 그대로 반납하시던 할머니의 밥그릇이 1/3, 1/2 씩 비워져 갔고,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 분들과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셨습니다. 우리가 당뇨조절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씀 드리니 할머니께서는 병동을 도시거나, 간호사 스테이션에 나오셔서 근무 간호사들 번표도 체크하시면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입원 후 며칠 만에 병실에 방문한 할머니의 아들은 변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지내며 상태가 호전되신 진희 할머니께서는 무사 히 아드님의 손을 잡고 퇴원하셨고, 우리가 준비한 ‘진희 할머니 힘내세요.’ 프로젝트는 성공을 거 두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병동에서 실천하다 보니 진희 할머니처럼 건강이 좋아져서 퇴원하시는 환자분들의 모 습을 볼 때면 참 이 길에 들어선 저의 선택을 스스로 칭찬하며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곤 합니

Action Plan Story ∙ 55


다. 항상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만 투여하던 간호사라고 생각을 같던 시간을 진희 할머니 덕분에 의사와 동반자가 되어 가족과 같은 마음을 지니면서 환자를 우선으로 치료하는 치유에 도움을 주 는 존재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번 일을 되돌아보면서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놓치고 지나가지는 않았는지, 그저 주어진 일만 하면서 실수하지 않으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지는 않았는 지 나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어 감사 드리며 더욱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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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on Plan Story 장려상

“네, 제가 바로 가 보겠습니다.” 여의도성모병원 | 분만실 Unit | 조미진

늘 의문이었다. 고위험 임신으로 절대 안정이 필요하여 입원해있는 대상자에게 보호자가 없어 도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을 받아주고 냉장고에 반찬 심부름을 하고 세발간호를 서비스하고 상 황이 허락하는 한 모든 편의를 봐주도록 대상자의 편에서 서비스를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칭찬합 니다’ 게시판에 분만실 직원이 올라가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이유가 뭘까? 요즘 산모들은 모두 여왕님 같은 대우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서 비스를 잘해도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내 같은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 스스 로 설명하며 결론을 짓곤 했다. 규모가 작았던, 리모델이 되기 전의 분만실에서는 콜벨이 울리면 병실문 옆 벽면에 있는 콜알림 등에도 점등이 되어 스테이션까지 가지 않더라도 콜벨을 누른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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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을 확인할 수 있어 다른 일을 하다가도 바로 가서 환자를 응대할 수가 있었다.

“어머, 어떡하죠? 아이가 실수로 눌렀네요.” “아, 괜찮습니다.”

응급 상황이 수시로 발생하는 분만실에서는 콜벨이 울리면 무조건 그 일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 문에 하던 일을 멈추고 뛰어갔던 다급한 마음이 허무함으로 변해, 장난친 꼬마에게 꿀밤이라도 한대 주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되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리모델링이 된 새 분만실에는 수화기를 통해 콜벨을 누른 대상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하여 미리 요구사항이 파악된 상태에서 준비 를 하고 병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새 콜벨 시스템은 업무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요긴한 방법 이라고 한동안 여겼다. 그러던 중 여의도 성모병원의 서번트 포럼을 통해 ‘디즈니병원의 서비스’라는 책을 접하게 되 었는데, 책을 읽고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의무감에 책을 대강 훑어보다가 그대로 실천만 해도 좋 을 병원 서비스와 관련된 내용이 마음에 들어 처음부터 메모를 해가면서 정독을 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책을 통해 알게 된 대상자를 존중하는 진정한 병원 서비스에 대한 내용들을 실천하게 되었고, 그 중 가정 먼저 시행하게 된 것이 콜벨 응대 방법이었다.. 콜벨이 울리면 스테이션으로 가서 수화기를 들고 대상자의 요구사항을 듣는 것이 아니라 수화 기를 들어 바로 가겠다고 답을 하는 것으로써 콜벨을 받았음을 확인시키고 바로 대상자에게 가서 필요한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이전에 해왔던 것처럼 대상자의 요구사항을 미리 알고 가 면 두 번 발걸음을 해야 하는 일은 줄겠지만, 대상자와 내가 주고받는 대화는 대상자가 입원해 있 는 다인실의 다른 대상자에게는 휴식을 방해하는 요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운딩 시 대상자 곁에 있는 보호자에게 더욱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좋은 말을 건넬 수 있는 칭찬거리를 찾거나 묻지 않아도 대상자의 현재 상태나 앞으로의 경과에 대해 더 많은 설명 을 해주는 등 한 번 병실을 방문했을 때 상황이 허락하는 한 되도록 많은 것을 제공해주고 나올 수 있도록 하였다. 대상자 프라이버시 보호 활동 시에도 더욱 중점을 두게 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대상자가 프라 이버시 보호를 위한 간호를 현재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 동안 프라이버 시 보호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닌데 대상자는 우리가 그것을 말로써 표현하지 않으면 알 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큰 충격이기까지 했다. “프라이버시 보호 를 위해 커튼을 쳐서 가려드리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면서 활동을 하는 경우 대상자는 간호사 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 주기 위한 활동을 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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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스테이션에서 가까운 병실의 문이 열려있어 인계 시 소음 차단을 위해 열려 있던 병실 문을 닫는 경우, 우리의 의도는 소음을 차단해 주는 것이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이 행동만 있는 경우 대상자는 간호사들이 자신의 험담을 하기 위해 문을 닫는 것이라고 불쾌 하게 여길 수도 있다고 한다. 또, 감기에 걸린 간호사가 대상자 보호를 위해 마스크를 착용하고 간 호 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제가 감기가 걸려서 마스크를 했습니다.’와 같은 설명이 없다면 대상자 는 ‘나에게 악취라도 난다는 것인지…’와 같은 오해를 할 수도 있다. 아는 것만 보인다고 늘 같은 관점에서는 알지 못했던, 어쩌면 당연히 해왔어야 하는 병원 서비 스의 예시들에 적잖은 충격을 받으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안목에서 간호서비스를 제공 하는 것이 대상자가 느끼는 병원에 대한 만족도 향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알 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껴 변화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간호를 제공하는 것 자체에 큰 보람을 느낀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인데, 큰 보람도 함께 느낄 수 있어 행복하고 이런 나에게 간호 받는 대상자도 서비스에 대한 만족감과 더불어 건강도 빨리 회복할 수 있어 행복해진다면 나와 대상자, 우리 병원, 우리 기관까지 행복해지는 긍정적인 연쇄작용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Action Plan Story ∙ 59


Action Plan Story 장려상

외래간호팀의 따뜻한 사랑나눔 부천성모병원 | 외래간호팀 | 유재분

부천 지역의 특성상 어렵고 힘들게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된 부천성모병원 외래간호팀은 CMC 이념 실천의 한 가지로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사랑 나누기를 시작하게 되었 습니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온 외래간호팀의 아름다운 사랑 나누기를 소개하고 자 합니다.

1. 독거 어르신들의 반찬 및 김장 봉사를 통한 사랑 나누기 소외된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수호천사가 되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외래간호팀의 작은 봉사가 씨앗이 되어 이제는 그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독거 어르신들을 위해 집안을 청소하고 목욕 봉사를 하면서 이 일이 일회성 봉사 60 ∙


가 아닌 지속적인 봉사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도당동 지역주민센터, 한사랑 노인복지센터 와 연계하여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맛있는 반찬 한 가지를 해서 드리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반찬 봉사가 2009년에는 김장 봉사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100가구로 시작된 것이 400가구로 확산되었고 본원 사회사업 팀, 부천시청 등의 도움과 후원으로 올해는 2,000kg의 김장과 1,000kg의 쌀을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여 그들이 춥고 매서운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2. 의료 봉사를 통한 지역주민과의 사랑 나누기 외래간호팀은 병동의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목욕 및 발 마사지를 실시하여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의 마음을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었고, 일 년에 두 번 부천역에서 혈압과 당뇨 체크를 해 주 기도 하며, 성당과 연계하여 무료이동진료를 시행함으로써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생명존중 실 천과 의료선교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거어르신들에게 혈압과 당뇨 체크 등 의료봉사까지 실시하여 그들의 건강 관리자 역할 을 하고 있습니다. 외래간호팀의 사랑에 찬 의료 봉사와 대화를 통한 심리적 고통까지 나누는 전 인치료는 CMC 이념을 몸소 실천하는 행동으로 환자들로부터 사랑의 수호천사라는 칭찬을 듣고 있습니다.

3. 카네이션 달아드리기 및 한마당 축제를 통한 사랑 나누기 크고 작은 봉사를 계속하던 외래간호팀은 2010년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작은 기쁨을 드리고자 카네이션 달아드리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죽은 자식이 돌아온 것 같다고 좋 아하시던 할머니부터 주름진 얼굴에 환한 웃음을 보여주시는 할아버지까지 카네이션 한 송이가 얼마나 큰 사랑임을 깨닫게 해 준 행사였습니다. Action Plan Story ∙ 61


2011년에는 휠체어에 의지하여 집안에서만 생활하시는 어른들을 모시고 작은 야유회를 실시 하여 어르신들에게는 행복감을, 참석자들에게는 뿌듯함을 안겨주었고, 2012년에는 도당동 장미 공원에서 외래간호팀과 그의 가족들, 외로운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한마음축제를 실시하여 마음 껏 웃고 즐기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작은 야유회로 서로가 더욱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었고 축제를 통해 가족의 따뜻함을 느끼면서 부천성모병원은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병원임을 믿게 되었고 외래간호팀의 작은 노력이 환자로 하 여금 믿고 찾을 수 있는 병원,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4. 일일찻집과 바자회를 통한 사랑 나누기 외래간호팀은 매년 일일찻집을 무료로 운영하여 질병으로부터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차 한 잔 을 대접함으로써 마음까지 따뜻하게 녹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생명존중바자회’에서 직접 만든 김 밥과 우동을 판매하여 얻은 수익금을 성가자선회를 통해 가난하고 어려운 형편에 있는 지역주민 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환자들과 지역주민으로 하여금 이윤을 추구하는 다른 병 원과는 다르게 사랑을 실천하는 병원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부천 지역의 대표적 의료기관으로서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5. 2013년 외래간호팀 사랑 나누기 계획 올해에는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는 지역 특성상 일교차가 심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신생아들이 많은데 사랑의 모자를 씌우면 온도 2도가 올라 가서 신생아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외래에 근무하는 모든 간호사들이 실 한 올 한 올에 사랑과 정성을 담아 사랑의 모자를 떠서 신생아를 살리는 재능기부를 하고자 합니다. 사회사업 팀과 연계하여 매월 첫째 주 수요일 무료이동봉사에 참여하고 10월 ’노인의 날‘에는 도당동 독거어르신들과의 잔치를, 11월에는 김장봉사를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2006년 62 ∙


작은 사랑을 전하고자 시작된 외래간호팀의 봉사가 이제는 부천 지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 망을 주는 큰 울림으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독거 어르신을 위한 반찬과 김장 봉사, 의료 봉사를 통한 지역 주민과의 화합, 카네이션 달아 드리기 및 한마음 축제를 통한 마음의 교류, 일일 찻집을 통한 환우들의 마음 어루만지기 등은 CMC 이념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듯 외래 간호팀의 작은 사랑이 밀알이 되어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Action Plan Story ∙ 63


자선진료 수혜수기 대상

널 사랑한단다. 아주 많이!! 의정부성모병원 | 노아의 집

노아의 집은 포천에 자리 잡은 장애인 복지시설로 현재 63명이 생활하고 있는 곳으로 난치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최별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엄지공주는 단장증후 군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12살 여자아이로 노래 부르기, 퍼즐 맞추기, 인형놀이를 좋아하 는 예쁘고 사랑스런 아이랍니다. 별이는 선천성 단장증후군으로 태어나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적에 수술을 하여 일반적 인 길이인 5m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30~50cm정도의 장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장이 짧은 영향으 로 먹는 것을 잘 소화 흡수 시키지 못해, 일반 아동들의 평균적인 몸무게 45Kg보다 적은 12Kg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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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의 기능저하로 인하여, 음식물을 섭취하면 장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아 바로 설사를 하고, 소 화 흡수 기능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담석(몸 안에 돌이 생기는 현상)이 생길 확률이 높아 가려야 하 는 음식도 참 많습니다. 땅콩, 카레, 우유, 시금치, 브로콜리……. 그리고 초콜릿 등 언니, 오빠, 동 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고 절제하면서 먹어야 하는 현실이 얼마나 가혹 한지 아시죠? 그러나 별이는 자신이 못 먹는 음식을 잘 인지하고 있어서 잘 참아내고 있었습니다. 정기적인 진료와 지속적인 관찰을 병행하고 있던 어느 날, 단장증후군의 합병증인 잦은 구토로 인해 체중이 급격히 저하된 별이에게 간접적으로라도 몸의 기능을 회복시켜야겠다는 생각에 병 원의 진료를 받고 아픈 주사를 잘 참아가며 링거를 맞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엄마(기관의 사 회복지사, 간호사를 부르는 호칭). 화장실 가고 싶어요.” 라고 하여 근처 은행 화장실에 들러 볼일 을 보는데 갑자기 많은 혈변을 보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너무 놀라 별이를 안고 가까운 경기도립 포천의료원 응급실에 가서 응급조치를 취했지만 혈압 과 맥박은 현저히 떨어지고 혈변이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종합병원에서 정밀치료를 받아야 한다 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바로 구급차를 타고 의정부성모병원으로 가는 길. 포천의료원에서 의정부 성모병원까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퇴근시간이라 막히는 차들 사이에서 구급차 안에 누 워 의식을 잃은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바짝바짝 타 들어갔습니다. 간절한 기도 속에 의정부성모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여 긴박한 상황 속에 응급처치 및 치료가 이 어졌습니다. 별이는 아직도 의식이 없었습니다. 혈압과 맥박은 거의 잡히지 않았고 의식도 돌아오 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시간이 넘게 분주한 응급실에서 우리 기관의 원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은 안절부절하며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요.……. 중간 중간 의사 선생님이 별이의 상태를 설명하십니다. “장 에서 계속적으로 출혈이 생기고, 전체적인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 고 원인을 찾을 예정이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후에도 의료진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계속되 었고 기도 확보를 위해 입 안에 설압자를 물리고 코에 줄을 넣는 순간, 별이가 눈을 뜨며 작은 몸 이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의식이 돌아온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의 중환자실에 입원 후 추후 검사 및 관찰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고 응급실에서 병실로 이동을 하기 위해 이동침대를 밀고 나오는 순간 12월의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별이가 말을 합니다. “엄마~ 추워요.” 그 말이 너무나 감사하게 들렸습니다. 별이가 다시 태어난 것 같고, 캄캄했던 터널을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에 지켜보던 모든 가족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눈 물을 흘렸습니다. 그 후 별이는 의정부성모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별이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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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위해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검사가 필요했고, 매일 누구와도 말 할 수 없으며 오로지 의료기 및 많은 줄들이 얽혀있는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약물에 의존해 근 10여일을 그렇게 아픔과 외 로움과 힘든 시간 속에서 잘 버텼습니다. 유일한 낙이 하루 2번 면회시간에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들(기관의 직원들)의 얼굴을 볼 수 있 다는 희망으로…….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지내는 동안 별이에게는 특별한 친구가 생겼답니다. 처 음 응급상황에서 진료를 담당하셨던 배라미 의사 선생님과 중환자실의 간호사 언니, 오빠들이 친 구가 되어 별이가 심심해 할 때면 바쁜 와중에 별이가 가장 좋아하는 뽀로로도 보여주고, 함께 클 레이놀이도 하고, 예쁘게 머리도 땋아주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 덕분에 별이는 서서히 회복되 어 드디어 일반병실로 옮겼습니다. 예쁜 별이는 소아과 병동에서도 인기 최고였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섬세하고 따뜻한 치료, 수녀님들의 기도, 노아의 집의 엄마 아빠들의 간절한 마음, 그리고 별이의 강한 의지 속에 날로 건강이 회복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 많은 검사와 치료로 또 하나의 치료비 걱정을 하며 의정부성모병원 사회사업팀의 문 을 두드려 별이의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구비해 간 서류를 검토하고 회의를 연 끝에 최종적으로 별이의 치료비를 지원해주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더없이 감사하고 감 사했습니다. 중증의 중복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치료비가 부담이 되는 터라 모든 비용을 별이만을 위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형편이었거든요.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별이는 병원에서 11번째 생일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만 해도 구강 섭취가 전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아이의 마음만을 흔들어 놓을 작은 케이크 하나 마저도 준비하지 못하고 우리 직원들이 둥글게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던 기억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주위 많은 분들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에 힘입어 12월 25일 성탄절에 별이는 퇴원을 하게 되었 습니다. 별이는 이번 일을 통해 많이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지만 별이는 분명히 알고 있어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별이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해 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별이는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습니다. 병명만 알 뿐 딱히 치료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혈변 에 대한 원인은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향후 지속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들과 함께 눈 맞추며 웃을 수 있음에 하루하루 감사와 행복으로 살아갑 니다.

별아~! 널 사랑한단다.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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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 67


자선진료 수혜수기 우수상

호스피스에서 보낸 마지막 휴가 부천성모병원 | 명재영

하얀 눈이 펑펑 내려도, 그래서 예쁘게 눈 쌓인 풍경을 보려 해도 나 혼자 보기엔 아직도 어색 하기만 합니다. 언제나 당신과 손잡고 재잘거리며 함께 걸어 다니는 것이 익숙한 나! 그러기에 당 신의 자리가 더욱 크고 넓습니다. 모든 일상 속에 아빠가 항상 곁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 는 큰 딸 진경이! 아빠 냄새 맡으며 행복하게 잠드는 작은 딸 아송이! 벌써 8개월이나 지났지만 아 직도 우리들만의 시간이 익숙하지 않은 나와 두 딸들. 남편은 2년 전 설암 진단으로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병행했지만 암세포는 두경부까지 퍼져 말 을 하는 것은 물론, 먹는 것, 숨 쉬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쪽 귀까지 들리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뇌압으로 인해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며 끝까지 싸워보았지만 예후가 좋지 않 은 악성 암세포로 인해 점점 더 남편의 몸과 정신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퉁퉁 붓고, 턱과 목 쪽으로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너무나 아파 보이는 암 덩어리가 혹처 럼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고 진물이 흘러 하루에도 수 차례 소독을 하고 거즈를 68 ∙


갈아주어야만 했습니다. 아프기 전 건강하고 잘생겼던 내 남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모든 육체를 점령해 버려 끊임없이 지속되는 통증과 낮과 밤 구분 없 이 찾아오는 환각 증세에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져 갔습니다. 남편이 하루라도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히 하늘나라로 가기를 원하는 간절함으로 9층 혈 액 종양 내과병동에서 5층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겼습니다. 남편의 평화로운 마무리를 준비하며 큰 결심을 하고 호스피스에 어렵게 발걸음을 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감정은 두려움, 패잔병 같은 초라함, 무거운 슬픔만 남아 있었습니다. 달라진 병실에서 체념한 듯 기운 없이 물끄러미 나 를 바라보던 남편……. 남편의 맑은 눈에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남편의 둘레에 누구도 볼 수 없도록 커튼을 치고, 저 또한 나날이 드리워진 커튼처럼 마 음의 장벽이 두터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호스피스병동에서 하루, 이틀, 여러 밤을 보내면 서, 서서히 마음의 빗장도 열려 굳게 닫힌 커튼을 걷어냈습니다. 그리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다 가와 위로해 주던 환자분들과 보호자들, 수녀님과 간호사들은 그렇게 우리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밝은 햇살과 함께 시작되는 수녀님과 간호사들의 인사 소리와 혈액종양내과 의사 팀의 회진 시간은 밤새 힘들어 했던 환자분들과 보호자 분들을 아름다운 미소로 위로해주는 감사 한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통증으로 힘들 어 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의사, 간호사, 수녀님과 봉사자 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낄 때 나의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호스피스 생활의 정확한 끝을 알 수 없었기에 저희에게 병실비용은 엄청난 부담이었습 니다. 1주, 2주 시간이 흐르며 차곡차곡 쌓이는 병원비의 무게는 앞으로 사랑하는 두 딸들과의 생 계를 책임져야 하는 저에게 또 다른 삶의 무게로 어깨를 짓눌러 왔습니다. 다행히 우리 가족의 상 황을 아시게 된 수녀님의 배려로 호스피스에 있는 동안 호스피스를 후원하시는 고마운 분들의 마 음을 모아 병원비를 도움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회사업팀을 통해 고3으로서 우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입시를 코앞에 두고 부모님 걱 정때문에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작은 딸 아송이의 고등학교 등록금과 급식비를 전 액 지원받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경제적인 고통에서 벗어나 오롯이 남편을 위해 지낼 수 있는 시 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남편이 걱정할까 봐 남몰래 한숨만 쉬던 저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한 짐 덜어놓을 수 있다는 것은 남편을 위해서, 저와 두 딸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도움이었습니다. 그 외에 도 매주 미술 치료사 선생님이 방문하여 남편의 시야에 놔둘 아기자기한 동물, 꽃 장식, 액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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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들며 잠시나마 시름을 놓을 수 있었고, 매일 빠트리지 않고 찾아오시는 자원봉사자님들의 보살핌은 저를 병간호의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정말 잊지 못할 따뜻함이었습 니다. “내 동생이라 생각하고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켜줄 테니 걱정 말고 바람 좀 쐬고 와.”라며 항 상 남편 곁을 지켜야만 하는 저를 위해 자기 시간을 내어주신 언니 같은 봉사자님, 시간이 될 때 마다 5층까지 오셔서 기도해 주시던 원목실 수녀님. 병원에서 간단한 샤워만으로 만족하던 제가 스쳐 지나가듯 “찜질방 가는 것이 소원이에요”라고 흘린 말에 차비와 목욕비까지 챙겨주시며 환 자는 물론 가족까지 두루두루 배려해주신 호스피스 수녀님,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말만 하라며 도 시락을 싸다 주시던 언니 같은 봉사자님. 그분들은 저와 두 딸들에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한 따뜻한 배려를 받으며, 마지막 까지 아내와 딸들을 보기 위해 버텨주던 남편을 제 온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청 난 고통 속에서도 하루만 더 가족 곁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아프지 않고 평 안히 하느님의 품에 안기기를 기도하게 되었고, 천국에서 행복하기를, 남은 우리를 더 이상 안쓰 러워하지 않고 하늘에서 지켜주기를 기도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우리 걱정 하지 마. 당신이 평안하기를 기도하고 있어”라고 남편에게 말해주었습 니다. 그 마음을 느꼈는지 아내와 두 딸을 위해 사경을 넘나들면서도 끊어질 듯 하루하루를 사투 를 벌이던 남편은 지난 2012년 5월 10일 새벽 2시에 그렇게 원하던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비록 창백하고 일그러진 모습이었지만,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편안하게, 힘들지 않 은 모습으로 저의 마지막 입맞춤을 받으며 그렇게 천국으로 갔습니다. 더 이상 그 엄청난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숨을 거둔 후에 남편은 평소에 가지고 있었 던 소신대로 의학 발전을 위해 가톨릭대학교에 시신기증을 하게 되었고 시신 기증은 호스피스 병 동에서 받은 큰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는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시는 호스피스병동 관계자님들, 자원봉사 자님들의 아낌없는 희생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진심으로 감 사 드립니다. 저와 제 두 딸들에게 가장 슬프고 힘들었던 시간을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 호스 피스 병동에서 함께 할 수 있던 것은 큰 은혜이자 축복임을 시간이 갈수록 느낍니다. 그렇게 남편 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외롭지 않게, 아름답고 평화롭게 모두와 함께 했습니다. “이제는 아프 지 않아서 행복해. 나 이제 다 나았어! 교수님 모시고 와.” 꿈속에서 남편이 제게 한 말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정말 이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하다는 것을……. 지금 저와 제 두 딸들은 남편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잠시 출장 가서 지금 곁에는 없지만, 항상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받았던 관심과 사랑과 배려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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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에게 나누어 드리는 것이 저와 제 두 딸들의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제 작은 도움과 응원의 메시지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바라며 지금도 병마와 싸우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 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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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진료 수혜수기 우수상

고맙습니다! 희망을 찾았습니다 여의도성모병원 | 송산옥

어느덧 201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 아침 우리 어머님께 새 생명을 덤으로 주신 여의도 성모병원 전체 가족 일동 여러분께 새해 첫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행복시대를 열어갈 최초의 여성대통령께도 생명을 존중하고 어려운 이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고 소리 없이 치료해주시는 원목 신부님과 의사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님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꼭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 니다. 저는 함경북도 길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님 슬하에서 가난에 시달려 생활하다가 가난 이 싫어 자유를 찾아 부모님 손목에 이끌려 두만강을 건너 탈북한 평범한 여성입니다. 탈북한 첫 해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님께서 돌아가시자 오매불망 그리고 그리던 한국 행은 물거품이 되고, 중국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추억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어렵게 한국에 정착할 무렵, 어머님께서 홀로 시름시름 앓 고 계시다 결국 드러눕게 되셨습니다. 2012년 5월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종, 짧으면 한 달 72 ∙


길면 3개월이라는 시한부 통보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기적같이 완치된 상태로 날마다 행복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건강하게 잘 보내고 계십니다. 이 기쁨, 이 행복은 바로 여의도성모병원의 따뜻한 사랑과 훌륭한 의술을 갖춘 한치하 교수님, 사회사업팀 선생님, 간호천사들의 따뜻한 정성과 마음 덕분입니다. 그 따뜻한 손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우리 어머님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당시 어머님의 혈액암이 많이 진행되어 암세포가 뼈를 녹여 갈비뼈 8대가 부러지고 척추 또한 패혈증으로 숨질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의 병원치료비를 댈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남편도 당뇨병으로 시름시 름 앓다가 겨우 건강이 조금 회복된 상태였고, 어머님까지……. 너무너무 기가 막혔습니다. 대한 민국에 병원은 수없이 많고 많아도, 돈 없고 가난한 우리를 받아줄 병원은 없었습니다. 눈물과 한 숨으로 하루하루 세월을 보내다가 지인에게 사랑의 손길로 어려운 이웃을 최우선으로 돕고 베풀 고 있다는 여의도성모병원과 의술 높은 한치하 교수님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푸라기라 도 잡는 심정으로 우리 내외는 병원에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병원비! 입원할 때는 남편 카드로 나누어 300만원 으로 할부 결제하였으나, 하루 이틀 지날 때마다 엄청나게 불어나는 병원비……. 천만 단위로 늘 어난 병원비는 우리부부의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병 간호로, 남편은 하루 15시간씩 운전하며 버텼지만 당뇨가 있는 남편은 일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느님께 불쌍한 우리의 어머니 병원비 문제로 치료를 중단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날마 다 기도를 하였습니다. 또 병원 사회사업팀에 찾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살려달라고, 받은 은혜 평 생 갚으면서 살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속사정을 헤아려보신 원목 신부님께서는 선뜻 어려 운 결정을 내려 병원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사회사업팀 직원들을 보내주시고, 어머님의 병실에 날마다 찾아오셔서 어 머님과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천사 같은 간호사 선생님들도 날마다 해맑은 웃음으로 일일이 환자의 병 상태를 체크해주시고 약도 챙겨주셨고, 심지어 기저귀까지 갈아주시며 딸처럼 챙겨주셨습니다. 정말 한입으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운 분들이었습니다. 특히 한치하 교수님께서는 어머님의 병 치료가 끝나 퇴원하는 그날, 바쁜 일정에도 어머님의 손목을 잡아주시고 병원 문밖까지 나와 배웅하면서 건강 조심하라는 격려의 말씀까지 해주셨습 니다. 정말 집에 있는 동안에도 가정간호사 선생님들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으로 잘 보내고 있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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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어머니의 병 치료는 물론이고, 저의 마음속에 사랑의 나눔도 심어주시고, 마음의 상처까 지 치료해주신 원목 신부님과 여의도 성모병원 가족들……. 지금도 저는 변함없는 성모병원의 훌 륭한 본보기를 바탕으로 그날 이후로 장기기증신청을 하였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 작은 금액이지만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불우이웃돕기 모금행사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올해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지만 여의도성모병원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은 모든 환자분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만들어주고, 감동과 감화를 받는 사연들을 많이 만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 다. 저의 글을 통해서 우리처럼 사랑과 나눔의 자선치료를 받고 새 생명을 되찾은 많은 환자분들 께서도 여의도성모병원의 자랑을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널리 알려주셨으면 하는 바 람입니다. 끝으로 2013년에도 여의도성모병원의 가족 일동 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축복받는 한 해가 되시 기를 기원하며 대한민국에서 1등으로 손꼽히는 병원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선생님들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2013년 1월 초. 김숙자 보호자 송산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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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 부천성모병원 | 이현서

엄마가 된다는 것,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기쁘면서도 힘든 일인 것 같 습니다. 기쁘면서도 힘들 일이었던 우리 현서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006년 5월 기다리던 둘째 임신 소식, 게다가 쌍둥이 임신이라는 담당 선생님 말씀에 놀랐고 우리는 너무 기뻤습니다. 기쁨도 잠시, 예정일을 3개월 앞두고 갑작스런 출혈에 놀랐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병원으로 향했 습니다. 하지만 이미 진통이 시작한 뒤라서 큰 병원을 권유하는 선생님의 말씀에 소견서 한 장을 들고 가톨릭대학교 부천성모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너무나 무섭고 힘든 마음에 겁이 났지만 쌍둥이를 생각하여 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 렇게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2006년 11월 3일 새벽 갑자기 진통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26주 3일 만에 우리 쌍둥이 현서와 영서가 세상의 빚을 보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너무 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 75


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우리 쌍둥이들의 첫 만남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지면 부서질 만큼 작은 체구에 온갖 주사 바늘과 기계로 뒤덮여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함에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일주일 후 영서가 신장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주치의 통해서 전해 들었고, 보름 만에 영서는 저의 곁을 떠나 하늘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영서의 빈자리를 슬퍼할 겨를이 없이, 아직 우리 곁에 현서 가 있었기에 현서가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현서도 영서처럼 신장, 혈소판 등 건강이 많이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인큐베이터 안에 서 100일을 지내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게 되었고 재활치료를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재활치료를 받은 지도 올해로 7년, 2013년 입학 통지서가 나왔지만 아직까지 현서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학교 유예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현재까지 현서와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장기간의 재활치료를 지속 하다 보니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부채는 점점 증가하였습니다. 혹시나 도움이 될 수 있 을까 하여 주민 센터나 지역사회 기관을 방문하였지만 지원대상이 될 수 없었고, 현서의 재활 치 료를 더 하고 싶어도 형편이 안 되다 보니 재활치료 횟수를 줄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부천성모병원 소아운동실에 붙여진 유당복지재단 의료비 지원 공문을 보게 되 었고 사회사업 팀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현서의 상황 및 의료비 지원 여부에 대해 상담을 하였으나 저희보다 더 어렵고 더 힘든 가정이 많기에 안 될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들어 크게 기대는 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당시 담당 선생님의 인상이 아직도 인상 깊 었던 점이 의료비 신청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어떻게든 도와주시려고 하시는 모습이 고맙게 느껴 졌습니다. 너무도 감사드리고 싶은 선생님…….^^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현서 재활치료비를 지원해주신다는 기쁜 소식 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저희에게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당시 재활의학과 교수님 께서 현서에게 보톡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지원금으로 현서 보톡스와 집중치료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기뻤고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현서 보톡스 시술 때 담당 선생님이 재활의학과 외래로 오셔서 현서의 상황을 지켜봐 주시고 힘이 되어주셨고, 현서와 저희에게 하시는 한마디 한마디에 더 감사하고 힘이 되었습니다. 보톡스 시술 후 현서는 재활 집중치료를 열심히 받아서 예전보다 부드러워진 움직임을 보게 되었고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현서가 재활치료를 지원 받는 도중에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으로 현서처럼 혼자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척추가 휘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말에 재활보조기 구를 알아봤지만 보조기구 가격이 너무도 비싸 포기를 하였는데 유당복지재단에서 재활보조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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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지원해 주신다는 소식에 정말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이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 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활보조기구를 지원 받아 현서는 지금 어린이집에서 재활보조기구를 착용하여 밥 먹기 연습, 그림 그리기 등 여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현재까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활보조기구에 앉아서 양치질도 하고 그림 그리기도 하는 현서를 보면 이젠 현서의 몸이 휘어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서 편안히 마음을 놓고 지내고 있습니다. 처음에 재활보조기구를 보고 울었던 현서는 이젠 어린이집 같은 반 친구들이 재활보조기구를 만져도 소리를 지르는 등 이젠 재활보조기구가 자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애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쁜 와중에 사회사업팀 담당 선생님을 통해서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현서의 장기간 진료비에 대해 병원 자선진료를 통해서 도움을 주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현재 유당복지재단 통해서 치료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 이후에 어떻게 또 재활치료비를 감당해야 할 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이렇게 또 다시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천성모병원 사회사업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담당 선생님, 너무너무 감사 드린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많은 힘이 되어 주신 점에 정말 정말 감사 드립니다. 끝으로 이렇게 후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저희 같은 재 활아동을 둔 엄마들이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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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진료 수혜수기 장려상

수영이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서울성모병원 | 정수영

어제부터 추위가 2~3일 계속된다고 한다. 그동안 방안에서만 지내다가 아이들과 함께 조금이 라도 걷고자 집을 나섰다. 모양성을 한 바퀴 돌면 피자한판 큰 것으로 사주기로 하고 같은 반 아 이 종모도 불렀다. 귀가 빨개지도록 쌀쌀하고 춥지만 피자를 사주겠다. 하니 따라 나선다. 추운 날 씨인데 주말이라서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성 안쪽 솔 숲 속 길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올 때마다 이렇게 좋은 곳이 내가 사는 고창에 있 어서 감사하다. 여름에는 이 솔숲이 정말로 시원하다. 무더운 여름날에는 야간에 조명이 설치되어 서 저녁에도 걸을 수 있다. 어쩔 땐 성곽으로 한 바퀴 돌고 또 어느 날에는 성 밖으로 한 바퀴를 돈다. 멀지 않으면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아도 언제든지 나설 수 있는 길이다. 조금 올라가서 의자에 앉아 뜨거운 물을 한잔씩 마셨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치료하느라 집을 떠나 있던 시간이 거의 2년이었으니까 오랜만에 와보니 반갑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를 해주 는 것처럼 솔 향기가 우리 아이들을 맞아준다. 수영이가 전에는 이곳에 오면 힘들다고 중간쯤 오 78 ∙


르면 화를 내고 내려가고자 했는데 오늘은 잘 따라 온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뛰어도 숨이 차지 않다고 기뻐했다. 4학년 때 코피가 멈추지 않아서 병원으로 한의원으로 다니면서 치료를 했다. 잘 지내는가 했는 데 중학교 입학하기 전에 또다시 코피가 나고 멈추지 않아서 힘들어 했다. 학교를 다니던 중 보건 선생님의 권유로 큰 병원에서 검사를 했다.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여러 가지 치료 방법이 있겠지만 수영이는 중증 재생불량성 빈혈이라 당장 이식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단다. 놀라고 두려워서 당황스럽고 아픈 마음으로 어찌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검사 결과 를 보면서 일주일 혹은 2주일에 한 번씩 수혈을 받았다. 동생이 맞는지 검사를 했고 다행히 100% 일치를 해서 참으로 감사했다. 그러면 이식은 언제쯤 해야 할까. 당장 이식을 하려면 아이가 너무 약하다. 우선 학교에 휴학원 을 제출하고 병원과 한의원이 가까운 친정 집으로 아이를 데리고 왔다. 아이가 체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수혈을 하면서 한방치료를 겸했다. 체력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병원 에서도 식구들도 당장 서둘러야 한다고 하지만 자꾸만 뒷걸음을 하게 되었다. 이대로 아이에게 더 나빠지면 어찌할까, 이식을 한다 해도 그 과정이 어떠할까, 많은 양의 항암 제가 투여된다고 하는데 그 항암제를 아이가 이겨낼 수 있을까, 이식 후 후유증은 또 어찌할까, 골 수기증을 해야 하는 작은 아이의 건강은 또 어찌할까……. 하루에도 수 없이 갈등하고 염려하고 눈물을 흘렸다. “하느님 제가 대신 할 수는 없을까요 이 아이들을 어찌 해야 합니까?” 끊임없이 하느님께 애원 을 해본다. 내가 아이들을 잘 못 키운 것은 아닐까, 내가 살기 바빠서 아이들에게 잘못했는가보다 한없이 후회하고 안타까워하지만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장 이식을 한다 해도 그 많은 치료 비를 어찌할까. 그러면서 자꾸만 지나가는 시간과 거듭 수혈을 해야 하는 아이가 걱정되었다. 몇 개월을 보내고 작년 2월쯤 또다시 코피가 멎지 않는 날이 왔다. 꾸준히 수혈을 한 덕분에 전 처럼 심하지는 않아도 멈추지 않았다. 급하게 응급실로 가서 3~4일 수혈을 하면서 마음을 다시 잡았다. 이식을 한다 해도 위험하고 아니 해도 위험하다지만, 절반의 위험성이 있다 해도 치료비 가 얼마나 되더라도 이식을 하자, 작은 아이에게 위험하다 해도 하자,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염려 하지 말자, 강하게 마음먹고 퇴원을 하면서 이곳 담당선생님이 휴가 중이시라 서울성모병원으로 바로 올라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다시 하고 이식 준비를 했다. 담당 교수님이 급하다고 먼저 이식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빠른 일정을 잡아주셨다. 이식을 하기로 결정하니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아이 의 생명을 맡길 곳이니 내가 먼저 믿음을 갖자. 간호 선생님도 친절하고 담당 교수님을 뵈니 안심 이 되고 믿음이 갔다. 이제부터는 뒤로 물러서지 말고 당당히 맞서서 이식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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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강한 항암제라도 이길 수 있다.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수영이는 누구보다 도 강한 아이니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다짐하고 기도하면서 걱정하는 아이에게 가능성 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게 빠르게 이식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식하는 날 많은 분들의 기도와 염려 덕분에 무사히 마쳤다. 입원하면서부터의 일들은 지금도 잘 표현할 수가 없다. 그냥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죽기 직전까 지 가서 다시 일어서야 하는 일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인지 생각하면 가슴에 무거운 돌이 나를 누 르는 것 같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내가 이런데 아이는 얼마나 힘겨웠을까. 힘겨운 싸움을 무사히 마치고 날마다 새로운 시간들이다. 잘 이겨낸 아이가 대견스럽다. 몇 번을 해야 하는 골수검사는 힘들지만 이렇게 치료를 받으러 오가는 시간들이 정말로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담당하신 김학기 교수님께 감사하고 항상 친절한 간호 선생님과 입원하는 동안 세 심히 살펴주신 20층 간호사실 선생님께 감사한다. 날마다 병실을 깨끗하게 해주신 어머니들께 감 사하다. 아이들로 인해 눈물짓던 환우 어머니들과 서로 위로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내 아이만 아 픈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의 골수까지 주면서 아이를 살리고자 했 고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치료에 임하는 어머니들을 보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 병원 어린이학교에서 수업하던 일들도 감사하고 헌신적인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수영이처럼 같은 병명으로 치료를 받고 완쾌되어서 열심히 활동하고 병원에 와서 아이들에게 운동도 가르쳐 준단다. 우리 수영이도 저렇게 건강해질 날이 멀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기쁘고 힘이 되었다. 수영 이가 치료하면서 농수산홈쇼핑의 후원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을 통해서 받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수영이에게 힘든 과정을 이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입원 중에도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지금도 이렇게 고맙고 감사한 일도 있구나. 내 가족만이 우선이었던 나에게 놀라움과 부끄러움을 알게 해주었다. 열심히 살면서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살면 잘 사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들을 넘어서 베풀 수 있 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시간 예배당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었지만, 항상 나만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 다. 이렇게 도움을 받고 보니 부끄러움뿐이다. 수영이를 도와주신 분들은 그리 넉넉지 않으면서도 큰 힘으로 도와주셨다. 식사를 하면서도 이야기를 하면서도 항상 우리를 도와주신 분들을 생각하 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남을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수영이가 열심 히 기타도 잘 배운다. 언제인가는 환우들을 위해 멋진 연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 작은 아이 수종이는 이렇게 말한다. “그 고마운 사람들 중에 내가 제일 고마운 사 람이거든요”, “맞다 우리 수종이가 가장 고마운 사람이지” 함께 모인 사람들은 웃으면서 박수를 쳐준다. 엄마가 할 수 있었으면 좋았는데 형제간의 이식이 가장 이상적이라서 당연히 골수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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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하는 것으로 여겼는데 형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미리부터 준비를 했단다. 먹고 싶은 튀김도 소시지도 먹지 않고 좋은 것만 먹으려고 노력했단다. 형에게만 신경 쓰느라 작은 아이는 잘 살피지도 못했는데 고맙고 미안하다. 엄마보다 형을 더 사랑하는구나. “어떻게 너 의 고마움을 잊을 수 있겠니 정말로 고맙구나. 사랑한다. 수종아” 그리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위해서 가발을 맞춰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퇴원하고 등교할 때 짧 은 머리가 걱정되었는데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었다. 사이버학교 선생님께도 감사하고 수업일수 가 부족했는데 수업도 재미있고 수영이도 열심히 했다. 우리 수영이가 여기까지 오는데 참으로 많은 분들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에 새삼 감사드린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모양성에도 자주 오가면서 좀 더 걷기를 늘려가고자 한다. 선운사로, 지 리산으로, 제주 올레로, 산티아고로 옮겨볼까 한다. 남을 돕기 위해서 우선 건강해야 하니까 걸으 면서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우리 아이들이 받은 큰 사랑을 남에 게 베풀 수 있도록……. 이 시간에도 치료에 임하는 많은 아이들이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을 통해서 큰 힘을 얻고 완쾌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아직도 많이 남은 치료기간이지만 항상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치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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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진료 수혜수기 장려상

예수님 고맙습니다 여의도성모병원 | 김현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마철에 제 발의 마지막 발가락에 무엇에 찔린 듯 한 상처가 보였습니 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삼 일이 지나면서 곪고 사흘쯤 지나자 발등이 부풀기 시 작해서 신발을 신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상처가 보이면서부터 소염제를 사다 먹고 있었기에 괜찮을 거라 생각했기에 병원은 생각도 안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도 부기는 빠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날 밤새 열이 나기 시작했고 다음날은 추위와 함께 열을 감당할 수 없어 응급실로 실려 갔고 그날부터 두 달이 넘게 염증 치료와 수술을 하느라 여름 한 계절을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아이가 아홉 살 되던 해 저희 모녀를 버린 남편을 대신해 가장이 되었지만 전 이미 당뇨합병증 82 ∙


으로 한쪽 망막에 손상을 입었고, 심근경색때문에 혈관에 풍선을 넣었습니다. 그도 모자라 뇌경색 으로 한쪽 몸마저 불편했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도저히 살 방법이 없는 것 같아 여러 번 죽을 결 심도 했습니다. 하지만 뇌성마비인 아이를 두고 죽는다는 건 오히려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사 무소에 찾아가 사정을 상담했고 여러 심사를 거쳐 기초생계 가정으로 지정을 받고 생계비를 받는 대신 5년 가까이 경로식당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도중에 생계비가 모자라 한 달에 30만원을 받는 새벽 학원청소를 했습니다. 제 병에 대한 무지 와 무식으로 멋도 모르고 맨발로 바닥 물걸레질을 하고 더러운 걸레를 발로 밟아 짜는 일들을 반 복하다 약간의 발가락 상처에 균이 침범했던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은 했지만 교수님은 심각한 상태라 하고 발가락을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는데도 전 그 말씀보다 병원비가 더 걱 정이었습니다. 회진을 마치고 바로 한 발로 휠체어를 끌고 사회사업팀으로 내려갔고 저희 상태를 호소하고 도 움을 청했습니다. 그때부터 사회사업팀의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염증 치료하는 비싼 기계도 한 달 가까이 쓸 수 있었고 수술비와 입원비도 전액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청소 일을 그만둘 수 없었던 저는 그 뒤에도 계속 일을 해야만 했지만 저의 병에 대한 무지와 무식은 그 고통을 겪 었음에도 다음 해 여름 또 한 번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발가락을 잘라야 했습니다. 그때는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 저의 상태를 지켜보시던 사회사업팀 선생님들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는 다시 한 번 살아야 할 힘을 주었습니다. 내과 치료도 열심히 받았지만 혈당 조절이 잘 안 되어 입원 치료 중 우연히 오전 회진 때 교수님께서 흘리듯 제안해주신 위 우회술이 저의 당뇨 치료에 적당하겠다는 말씀은 제게는 먼 나라 얘기였습니다. 천만 원이 넘는다는 그 수술은 꿈속에서라도 이뤄질 수 없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그러나 제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가능성을 가지고 준비하자는 사회사업팀 선생님의 말씀으 로 오랜 시간의 인터뷰와 서류 준비를 했고, 인터넷 방송 촬영도 하면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 뒤 수술 날짜를 잡고 입원해서 아무 부작용 없이 두 달 가까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습 니다. 매일 3번의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절대 익숙해 지지 않는 주사를 한 번만 맞아도 된다 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저의 체중은 88kg이였는데 지금은 76kg으로 줄었습니다. 체중은 더 줄어들 것이고, 혈당 수치 도 공복 180정도 유지하는데 더 내려 가리라 믿습니다. 이젠 절대로 당뇨합병증으로 죽지는 않을 것이고 더 이상 수족을 자르지 않으리라는 것과, 저의 우울증도 치료가 잘 되어 자신을 자학하고 학대하며 상처투성이인 제 심장을 향해 찔러대던 칼끝을 이제 그만 접게되면 그 상처가 아물고 쿵쿵 새 희망을 쏟아낼 것입니다.

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 83


어떻게 이런 기적이 제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제게 늘 쌀쌀 맞으셨던 주님이 마지막 동아줄을 내려주신 까닭은 뭘까 생각했습니다. 저 같은 저렴한 인생 하나 뭐 그리 아쉬우실까 하는 생각 뒤 에, 이 보잘것없는 인간에게도 쓰임을 희망하시는 걸 알아냈습니다. 우선 저의 아이가 이번에 춘 천에 있는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합격을 했습니다. 장애아이로 그동안 겪지 않아도 될 많은 아픔들 상처들, 고통들을 잘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던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고자 하는 저의 아이가 무사히 공부를 마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잘 해주 어야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방법으로든 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좋으신 주님께서는 절 잘 아십니다. 그릇이 작음을, 그래서 여기까지만 해도 잘 살고 있다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성모병원 원목 신부님과 교수님들, 간호사님들, 특히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께 꼭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하시는 사회사업은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을 바로 세워서 그 가정에 서 자란 한 사람으로 하여금 사회에 봉사하여 많은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게 할 것입 니다. 선생님들은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이십니다.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그 길을 계속 걸으세요.

예수님 고맙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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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진료 수혜수기 장려상

행복한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 서울성모병원 | 박윤태

수술하고 퇴원한 후 재임, 퇴원을 6번이나 거듭하면서 파란만장한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미소 천사, 행복전도사, 홍보대사라는 아름다운 수식어가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겁니다. 지난해 1월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다 다시 찾은 곳이 서울성 모병원 간담췌외과 유영경 교수님이었습니다. 진료결과 암세포가 수술하기 어려운 부위에 있어 간 이식을 권유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술비가 4천여만 원이 있어야 하는데 1년 전 지병으로 직장도 그 만두고 17평도 채 안 되는 빌라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저희 두 부부에겐 너무도 엄청난 액수였습 니다. 잘못했다가는 행복의 꿈이 있는 집도 팔아야겠고, 결국엔 가정파탄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 각에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 소문에 겨우살이가 “암”에 좋다는 말을 듣고 지인이 사는 지리산 청 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 85


학동 골짜기에서 평생에 걸쳐서도 못해볼 죽을 고생을 하며 이틀간 채취한 것이 겨우 한 포대 (5~6kg)……. 이것도 못할 일이다 싶어 포기하고 다시 교수님을 찾아 어려운 형편을 말씀 드렸더니 사회사업 팀으로 주선해 주셨고 이인은 선생님과 몇 차례의 상담과 심사를 거쳐 기증자(사위)의 모든 비용 은 병원 측에서 부담해 주기로 하고 또한 기부천사로부터 팔백 만원을 추가로 지원 받게 되었습 니다. 그리고 친척 및 지인들로부터도 칠백여 만원 후원 받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무보증 신용대 출로 충당하여 수술보증금을 수납하고 드디어 4월 3일 12시간에 걸친 긴 간이식 수술을 받았답 니다. 물론 수술 후 담도 문제로 수차례 입, 퇴원을 거듭하며 마음고생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저를 지 켜준 게 행복전도사의 밑거름이 되어준 “왕관”이었답니다. 덕분에 홍보대사라는 호칭도 얻게 되 었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외래 갈 때는 “왕관”을 꼭 쓰고 간답니다. 심리적 지주가 되어준 왕관 덕분에 이제는 몸 상태가 아주 좋아 졌거든요….

더불어 사는 세상은 행복한 세상….

서울성모병원 사회사업팀이야말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선구자”가 아닐까요. 형편이 어 려운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등불이 되어주는 아주 좋은 부서인 것 같아요. 지금도 간경변과 간암 으로 실의에 빠져있는 전국의 중증환자 여러분과 형편이 어려워 수술을 포기해야만 하는 환우 가 족 여러분 뜻이 되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습니다. 망설이지 말고 사회사업팀을 찾아 상담을 해보 신다면 분명히 길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끝으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수술도 망설이고 마음고생하고 있을 때 희망과 행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해준 서울성모병원 사회사업팀 모든 관계자 분들께 감사 드리고, 또한 물적으로 도움을 주신 김남호 복지재단과 정주용님 그리고 사회복지 후원에도, 홈런왕인 삼성프로 야구단의 국민 타자 이승엽 선수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6개월간 生과 死의 갈림길에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모든 걸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 과 제2의 삶을 찾아 도약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어주신 유영경 교수님과 나건형 선생님 또한 저의 수술에 참여하셨던 모든 의료진과 5층 외과 중환자실 선생님과 11층 2병동 모든 선생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새해 福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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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파이팅!

2013.1. 행복전도사, 홍보대사 박윤태

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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