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톨릭중앙의료원 행동규범 Action Plan Story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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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규범 Action Plan Story 당선작


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Contents 2017 APG 수상작

[대상]

내 인생의 선물(장승남) / 4

[우수상]

헌혈, 축복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건강한 나눔(변용휘) / 10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보람) / 14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치유를…(강지영) / 17 ICU Diary로 찾은 소중함(전금숙) / 21 마지막 기도(권리우) / 24

[장려상]

신생아의 도깨비 수호천사들(김동연) / 28 알록달록 따뜻한 손수건(장미나) / 32 할아버지,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유빛나) / 35 딸이 생겼어요(김진수) / 39 제가 자라나고 있어요!(최은주) / 42 작은 변화도 소중히…(권용주) / 45 자그마한 초콜릿을 보며(허선미) / 48 사랑의 편지(노시원) / 52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자세(강희정) / 55 갑상선암 동위원소치료환자를 간호하며(이명희) / 58


2017 APG 수상작 대상

내 인생의 선물 장승남(서울성모병원 201 Unit)

“다 필요 없어요. 아빠 병만 나으면 돼요.” 초등학교 입학 선물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6살 아이의 대답이다. 아직 너무나 어린 나이에 일찍이 성숙해버린 아이는 급성골수구성 백혈병으로 이 식을 하게 된 38살 박 모 님의 딸이자, 아빠에게 골수를 주는 공여자이다. 안타깝게 형제간에도, 타인도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공여자가 없어 그는 결국 어린 딸에게 골수 를 기증받는 가족 간 반일치 이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4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의료기술의 발달로 가족 간 반일치 이식을 시행하는 발전의 과정을 거쳤지만 유전 자형이 일치하는 이식에 비해 예후나 이식 후 부작용에 대한 것은 확언할 수 없는 부 분이 있다. 하지만 혈액암 환자에게 이식은 유일하게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이며 환자들에게 희망이기에 그는 살아야 하는 이유를 부여잡고 반일치 이식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살아야 하는 이유, 그 절박함 살아야 하는 이유……. 누구에게나 삶을 이겨내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지만 벼랑 끝 에 서 있는 그의 대답에는 딸을 향한 절박함과 간절함 그리고 사랑이 묻어 있었다. 그 를 처음 만나던 날 아침, 6살짜리 딸에게서 골수를 기증받는다는 인계를 듣고 누군가 의 엄마이기도 한 나는 그의 마음에 가득 차 있을 슬픔이 동일시 된 채 그 앞에 마주 서 있었다. 하지만 숙인 고개, 야물게 다문 입, 희망보다는 슬픔에 차 있는 그에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았다. 어린 딸에게서 골수를 기증받기로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서 글픔과 원망이 있었을까? 그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혈액암 병동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환자분들을 접하며 호스피스도 공부하고 숱한 경험을 하였지만 절망에 이를 악무는 모습에서 멈칫거리며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여러 날, 원하던 만남을 가지지 못하고 돌아서며 나는 스스로 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환자에게 다가서는 것인가?’

마음속 상처를 알게 되다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체현하는 모습’ 내가 몸담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영성이다. 그것은 이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 으로서, 누구를 대하든 하느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감히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환자에게 다가서는 일일 것이다. 그 진리가 23년이 지난 지금, 스스로 에게 질문을 던지며 소리 없이 가슴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아픈 이를 돌 아보고 사랑으로, 말씀으로 심장을 울리듯 진심이 전해지는 마음, 그러한 다가섬 ……. 그것이 필요했다. APG 수상작 / 5


나는 우선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욕심을 버린 상태에서 그 를 마주했다. 그리고 환자 침대 옆 의자에 자연스럽게 앉아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 고 도와줄 자세가 되었다는 표현을 하였으며 이식병동에서 근무하는 전문 지식을 갖 춘 간호사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 하루하루 다른 치료적인 설명을 해주며 신뢰를 쌓아 갔다. 마음을 열면 자신의 굳은 의지가 무너질세라 겹겹이 쌓인 아픔을 안고 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좀 늦으셨 네요.” 이제는 그에게 다른 방법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는 자신 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저를 기다리셨다고 생각하니 기쁜데요. 환자분들이 이식병동에 오면 퇴원할 때까 지 전혀 나갈 수가 없으니 감옥 같고 두렵다고 해요. 답답하진 않으세요? 이식병동에 들어오면서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나요?” 그 순간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아이요. 내 딸아이…….” 암으로 투병하던 부인이 딸을 낳으면서 하늘나라로 먼저 가고, 딸은 할머니 품에서 어렵게 자랐다는 이야기, 은행에 다니면서 매일 새벽에 퇴근하며 딸의 얼굴조차 제대 로 볼 수가 없었고, 딸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열심히 돈을 모아 작은 집도 마련했지만 그 어린 시절을 할머니와 보내며 떼쓰거나 힘든 내색하지 않는 아이로 변해버린 딸을 보며 자신의 삶이 지독히도 미웠다는 이야기, 결국은 딸의 골수를 기증받으면서까지 내가 사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결국 자신은 이기적인 모습이 아닌 건지, 골수기증으 로 딸마저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그는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가슴 안 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던 짐들이 풀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였다. 그는 누군가에게 이 렇게 자신이 이겨내야 하는 짐들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고, 그만큼 너무나 스스로를 짓누르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 나는 그가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를 들은 이후 그에게 적극적인 도움을 줄 수 있었 다. 바쁜 중에도 매주 병동을 방문하시는 신부님께 강복을 청하고 함께 기도하거나, 이식 후 환자에 대한 돌봄이나 골수를 기증하고 난 후의 아이의 관리에 대해서도 환 6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자의 부탁을 받고 보호자를 직접 만나 설명해주기도 하였다. 환자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이식을 받기 3일 전, 7살 아이가 촉진제를 맞기 위 해 병원에 왔다. “제가 촉진제를 맞아 봐서 아는데 몸살 난 것처럼 아프고 무섭거든요. 근데 아이가 아빠를 위해 하는 거니 참을 거라며, 울지도 않고 주사를 맞고 집에 간데요. 애어른이 에요.” 이렇게 말하며 다시 이를 꼭 무는 환자를 보며 나는 그저 가만히 어깨를 두드려주 었다. 오후에는 아이가 잠시 병동 출입문을 통해 환자를 보고 갔는데 또랑또랑 밝은 눈으 로 “아빠 힘내!”라고 말하였지만 환자는 웃음 한번 없이 인사만 하고 돌아섰다는 간 호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마디 하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날 그런 환자의 마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드디어 이식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축복의 날로 이식을 받는 환자도 의료진도 모두가 긴장하는 설레는 날이다. 그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게 도움을 청하였다. “제 딸이 우는 아이가 아니에요. 근데 오늘 중심정맥관을 잡으러 휠체어를 타고가 는데 많이 울었대요. 무서운가 봐요. 울었다고 영상통화도 안 하네요.”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직접 아이를 만나기로 약속한 후 나는 4층 성분헌혈실을 방 문하였다. 밝지 않은 조명 아래 가장자리에 누워 있는 아이. 누가 보아도 그 아이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조그마한……, 그의 딸아이에게 다가가는 순간 환자의 마음이 느껴 져 가슴이 울렁거렸다. “안녕, ○○야!” 통통하고 작은 얼굴에 똘망똘망한 눈망울은 오래된 눈물 때문에 퉁퉁 부어 반쯤 감 겨보이는 눈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부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나를 보자마자 “아파. 아파…….”라고 말하였다. 조혈모세포를 채집하기 위해 계속 작동되는 커다란 기계. 가슴 부위 꽂혀있는 중심정맥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두려운 상황이 었을 것이다. “안 아프게 진통제를 줄까? ○○야. 몸에 무언가가 달려 있으니까 무섭지? 그래서 우는 거야?” 나의 질문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다시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는 아이. 나는 괜찮 APG 수상작 / 7


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왜 중심정맥관을 꽂은 건지, 언제 빼고 집에 갈 수 있는지, 그리고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아빠에게 어 떻게 도착해서 소중한 아이의 조혈모세포가 아빠에게 주입되는지 자세히 설명해주 었다. 나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면서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내가 아빠를 낫게 해주는 거죠?” 귀여운 아이의 손을 잡고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며 내일 퇴원하 면 씩씩한 모습으로 아빠를 보러 가자는 약속을 하였다. 그의 이야기처럼 아이는 도 무지 아이 같지 않았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떼를 써도 모자랄 텐데 자기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아빠가 다 나아서 집으로 오면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이가 나의 이야기를 잘 듣고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를 환자에게 전하며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하기 힘들어하는 환자의 곁을 조용히 나왔다.

숭고한 가치를 느끼다 이렇게 가까이에 사랑으로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내가 하는 일의 숭고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내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작지만 의미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다음날 나의 소중한 감정을 간호사들도 느꼈으면 하는 생각에, 함께 방문하여 민서 를 만나보자고 간호사들에게 제안하였다. 뜻밖에 제안에 설레어하는 간호사들을 보 며 법인에서, 병원에서, 간호부에서 큰 뿌리를 중심으로 우리에게 영성을 가르치고 행동규범을 전파하고 교육하는 일들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과자와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문구류를 사서 아이를 방문하는 내내 안쓰러워하고 도 와주고 싶어 하는 간호사들의 모습을 보며, 또 힘들고 의미를 못 찾겠다며 퇴직하겠 다던 어느 간호사가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벅차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바쁜 일상으로 소진되었던 나의 영혼에 건강한 입김이 불어넣어지는 듯했다. 우리 안에는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차오르는 충만함이 삶을 더 건강 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나는 병원에서의 일상을 통해 느낀다. 아이가 퇴원하던 날, 이식병동의 닫힌 문 사이로 아이는 다시 방문해서 건강한 모습으로 아빠에게 손을 흔 8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들었다. 그는 더이상 딸을 외면하지 않고 “사랑해!” 하며 손으로 하트를 그려주었다. 이식 후 면역저하기로 열과 점막염 등의 힘든 과정을 버티어 내는 동안 그는 처음처 럼 이를 악물고 전장에 나가는 듯한 치열한 모습이 아닌, 내 안에 딸의 소중한 세포가 숨쉬고 있다는 감사함으로 어려운 치료과정을 이겨냈다. 그리고 치료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무난하게 이식을 마치고 퇴원하였다. 퇴원 무렵, 아이가 보고 싶다는 말을 자꾸 한다며 퇴원이란 말이 꿈만 같다고 함박 웃음을 짓던 그의 모습이 생각난다. 그들과 함께하던 내내 나도, 우리 병동 간호사들 도 행복했고 이식병동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올해부터 작은 부서사업을 하기로 했다. 스스로 저금하거나 또는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을 때 자발적으로 저금을 하여 공여자가 고등학생 이하일 경우 저금한 돈으로 작은 선물을 마련하여 공여자에게 방문하고 힘을 주기로 한 것이다. 벌써부터 저금통을 보는 간호사들의 입가에 사랑스러운 웃음이 번진다. 참으로 감 사한 일이다. 생명을 소중히 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가톨릭중앙 의료원 서울성모병원에 입사하게 되고 이곳에서 몸담고 일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찬 란한 젊은 시절이 아름답고 가치있을 수 있는 ‘내 인생의 또 다른 선물’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이식통계자료를 정리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고마운 타인에게서 골수를 기증받는 타인이식건수가 여전히 많은 이 세상이 아직은 아름답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며 하루를 정리한다.

APG 수상작 / 9


2017 APG 수상작 우수상

헌혈, 축복받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건강한 나눔 변용휘(가톨릭중앙의료원 인사관리팀)

대부분의 학생이 그러하듯, 저의 첫 헌혈은 고등학교 재학 중 무료 영화 관람권을 받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데이트 비용을 아끼기 위해 또는 내신성적에 반 영되는 봉사활동 점수를 채우기 위해 헌혈에 동참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헌혈 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연히 헌혈 버스를 발견하게 되면 잠 10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시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야 하는 대상이었으며, 군 복무 중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한 강제적이고 불합리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후 가톨릭중앙의료원에 임용된 후로는 의료기관에 소속되어 근무한다는 점에서 헌혈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는 있었지만, 바쁜 일상이 반복되는 사회 초년생 직장인에게 헌혈은 여전히 다소 어렵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활동이었습니다.

헌혈에 관심을 갖다 그러던 중 가깝게 지내던 지인의 부친께서 갑작스러운 암 판정으로 수술을 하게 되 셨고, 제가 그분께 기꺼이 건넨 그 동안 모아두었던 헌혈증 몇 장이 환자분의 쾌유와 의료비 정산에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헌혈이 단순하게 일회성의 봉사가 아니라 나눔을 통해 한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 킬 수 있음은 물론, 헌혈증의 기부를 통해서 한 번 더 나눔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헌혈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정기적으로 헌혈을 통한 사랑의 나눔을 시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등록헌혈 제도에 가입하여 헌혈 가능한 시기를 수시로 확인하였으며, 계속 모이는 헌혈증을 자선단체 등을 통해 꼭 필요한 이웃과 나누기도 했습니다. 직장생활과 결혼 등으로 바쁜 중에도 헌혈은 몇 달에 한 번씩 거의 유일하게 제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봉사였고, 스스로 심신의 건강함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 도록 도와주는 활동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헌혈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해야 할 일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헌혈로 되찾게 된 건강 정기적으로 헌혈을 한 지 8년 정도가 경과했을 무렵, 저는 그 사이 결혼과 두 자녀 의 출생, 발령으로 인한 기관 이동 등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총 헌혈 횟수는 27회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기에 헌혈은 당연히 제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봉사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헌혈 후 도착한 혈액검사 결과지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간 기능 수치 중 ALT 항목의 결과가 정상치를 상회하여, 제가 헌혈한 혈액은 폐기되 APG 수상작 / 11


었고 추후 해당 수치가 정상으로 내려온 것이 확인된 후에 다시 헌혈을 할 수 있다는 안내였습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관련 정보를 검색하고 내과 진료와 초음파 검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비알콜성 지방간이 상당 부분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족해진 운동 량과 늘어난 체중으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 상태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었습니다. 특히 술을 즐겨 마시지 않았기에 간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이 더욱 이해가 되 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헌혈 제한이라는 결과를 받아들여 헌혈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 다. 저는 네 식구의 가장으로, 또 기관을 위해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하는 10년차 직 원으로, 헌혈로 미약하게나마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시민으로 건강을 지켜야 할 의 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헌혈로 봉사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더욱 걱정이 되기도 했 습니다. 혈액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저는 다시 헌혈을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의 협조를 구해 비알콜성 지방간을 극복하기 위 한 식단 조절은 물론, 주말 오전 등산과 조깅을 통해 운동량도 점차 늘려나갔습니다. 되도록 술은 멀리하였고,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이 되는 건강보조 식품까지 구입하여 먹기 시작했습니다.

헌혈로 사랑을 나누다 하지만 생각만큼 효과는 빨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체중조절 또한 쉽지 않았으며, 기관 건강검진 결과에서는 오히려 지난 번 결과보다 ALT 검사(간기능검사 중 간 손 상 유무를 판별하기 위한 검사) 결과가 더욱 좋지 않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대로 헌혈을 다시 할 수 없는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인내심 을 갖고 3개월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한참 뒤 방문한 헌혈의 집에서 혈액검사를 시행한 결과, 마침내 헌혈 가능한 수치 아래로 ALT 수치가 떨어진 것이 확인되었고 저는 정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마침내 30회 헌혈을 달성하여, 영광스럽게도 대한적십자사에서 수여하 는 헌혈 유공장 은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앞으로도 계속 헌혈 가능한 건강 상태를 유지할 것임을 스스로와 가족들에게 약속 하며, 그 사이 다시 모인 열 장의 헌혈증을 기관에 기쁘게 기부하여 꼭 필요한 환우분 들에게 전해지도록 부탁드릴 예정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의 행정직 직원으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성구현 활동은 바로 헌혈일 것입니다. 특히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봉사가 아닌, 축복받은 건강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어렵고 기쁜 봉사라는 점을 우리 기관 모든 교 직원 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게 나눔의 기쁨과 건강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헌혈! 저 스스로와, 제가 속한 가톨 릭중앙의료원과, 저의 헌혈로 조금 더 따뜻해지고 건강해질 사회를 위해 앞으로도 계 속 헌혈을 통한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교직원 여러분께서도 헌혈을 통한 사랑의 나눔에 동참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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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PG 수상작 우수상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이보람(서울성모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오늘도 신생아중환자실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아 픈 아기들이 많은지……. 출근을 하고 환자를 배정받은 후 아기들의 얼굴 한 번 볼 겨 를 없이 일을 하고 나면 어느 샌가 근무시간이 지나가곤 합니다. 근무를 마치면 늘 미 안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바빠서 더 잘해주지 못한 것 같고, 작디작은 몸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기들의 손 한 번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 기 때문입니다. 14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아기와의 만남 그러던 어느 날 출근 후 일할 준비를 하고 병동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아기의 가녀 린 떨림이 발걸음을 옮기게 했습니다. 그 아기는 백일이 다 되어가는 환아로 백일가 량 기관내 삽관을 하고 있다 보니 울고 보채는 일이 많았고, 울 때면 산소포화도 유지 도 되지 않고 금세 땀범벅이 되어 간호사들이 유난히 힘들어하는 아기였습니다. 그때도 울고 난 직후였는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고 있었 습니다. 울어서 땀범벅이 된 아기가 안쓰러워 토닥여주고 옷을 갈아입힌 후에 마침 그 아기를 배정받아 인계는 받았는데 거듭된 재수술과 여러 번의 인공호흡기 떼는 시 도를 실패함으로 인해 부모님께서 의료진들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하루하루 마음 속에서 아기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아기. 언제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아기. 부모 님의 희망은 절망과 두려움으로 바뀌고 아기를 돌보고 있는 나 자신도 두려워지기 시 작했습니다. 그날도 아기의 부모님이 면회를 왔지만 아기의 얼굴만 보고 금세 나가버 리고 의료진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모습을 보고 문득 생각에 잠겼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아기를 힘들어하는데 부모님은 얼마나 힘드실까? 혼자가 아니라 우 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조금 덜 힘드시지 않을까 생각하며 몇 년 전 에 이수하였던 영성간호를 떠올렸습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Holy name[서울성모병원의 SCLP(영적 돌봄 프로그램) 중 사용되는 기도명상으로서, 긍정 적 에너지를 주는 영적 암송]을 암송하며 위로를 받았던 내 자신의 마음이 이 아기와 부모님에게도 전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후 아기가 울면 토닥이며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 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고 그 아기와 함께할 때면 언제든 기억하였습니다. 3교대 간 호사로 모든 시간을 함께할 수 없는 만큼 다음 인계받는 간호사에게 내가 이런 것을 하고 있으니 너희도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 주었고 동료들도 기꺼이 함 께해 주었습니다.

Holy name이 사랑을 찾아주다 그렇게 많은 날이 지나고 여느 날처럼 아기를 보살피던 중 부모님의 면회시간이 되 APG 수상작 / 15


었습니다. 뭐가 불편했는지 울고 있는 아기에게 배를 쓰다듬으며 Holy name을 중얼 거렸고 부모님께서 그게 무슨 말인지 물으셨습니다. 혹여나 저의 낯선 중얼거림이 아 기의 부모님에게 거부감을 주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 우리 아기가 최선을 다하고 있고 부모님도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하며 누군가는 우리를 위해 기도 해주고 있으니 우리 함께 잘 해보자는 얘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 부모님들도 면회를 오면 아기가 힘낼 수 있도록 Holy name을 함께하거나 아기를 위해 아기 일 기장에 편지를 써 보도록 권유하였습니다. 그 뒤 부모님들의 태도가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 색해하였지만 면회를 오면 아기의 손과 발을 만지며 웃음짓고 아기와 한 번이라도 더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의료진과의 면담에도 적극적이며 궁금한 것이 생기면 질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기의 상태가 나빠지더 라도 걱정은 하지만 실망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함께 이겨내려고 하였습니다. 이 렇게 모두가 함께하며, 아직 아기의 상태가 많이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아기를 간호하 는 간호사도 아기의 부모님도 모두 진심으로 백일을 축하해 줄 수 있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거나 악화될 때 보호자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습니다. 보 호자의 신뢰가 떨어지면 환자에게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진정한 치유는 살아서 건강하게 가정에 돌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와 가족이 마음의 평 안을 얻는 것, 그리고 돌보는 나 자신도 치유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질병 을 치료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마음을 담아 함께한다면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 힘겨 워도 서로 일으켜주며 쉬엄쉬엄 천천히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아기들을 위해 또 아기들의 부모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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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PG 수상작 우수상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는 이들에게 치유를… 강지영(여의도성모병원 신경외과중환자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보호자와의 교감을 오랜만에 느끼고 그 감동이 한동안 뇌리에 서 지워지지 않았던 사례를 공유하고자 한다. 그것은 작년 여름, 어느 보호자를 대하 면서 느낀 경험담이다.

APG 수상작 / 17


어느 보호자와의 만남 그녀의 79세 남편은 방에 혼자 있다 넘어지면서 생긴 뇌출혈로 수술 후에 인공호 흡기를 유지하고 중환자실에 17일간 입원 중이었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 도착할 당 시 의식은 전혀 없고, 움직임 및 동공반응도 없는, 한마디로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였다. 부인은 수술 후 충분한 경과 설명을 들어서인지 생각보다 담담하게 환자를 대하였고, 그저 남편이 편안하게 있을 수 있게만 해달라고 했다. 부인은 남편의 사고 당일, 집에 가족들이 다 있었음에도 혼자 방에 있다가 쓰러져 그 순간에 아무도 남편 옆에 있어주지 못한 걸 너무나 마음 아파했고, 누구보다 할아 버지를 잘 따랐던 어린 손녀가 집에서 계속 울고만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지으 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중환자실 입실 9일 만에 가족들의 심한 반대에도 심폐소생술 포기(DNR) 요청서에 사인하면서 부인은 한동안 울었다. 한평생을 함께했던 남편이자, 무척이나 효자인 아 들, 딸의 아버지이며, 초등학교 4학년 손녀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매일 안마를 받으 며 온갖 애교 속에서 젊음을 느꼈을 할아버지셨을 텐데……. 부인이 총대(?) 매고 DNR 동의서에 사인하고는, “이게 맞는 거예요……. 남은 자식들이 일하면서 희망도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생 각하면서 매일 얼마나 힘들겠어요……. 내가 욕을 먹더라도 할아버지는 편하게 보내 고 싶었어요. 보이지 않는 희망을 붙들고 남편 몸에 여기저기 주삿바늘 찌르고 수혈 하면서 아프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가족들의 효도를 받을 만큼 받았고, 나 랑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 지냈으니 나는 이제 저 양반 보내도 후회 안 할 자신이 있어 요…….” 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서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면서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 가는지가 보였기에, 게다가 가족 간의 애틋함과 사랑을 온전히 느꼈기에, 나도 환자 를 볼 때마다 짠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환자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마음의 치유를 드리는 방법 DNR 환자들은 대부분의 의학적인 치료가 중단되기는 하지만, 간호까지 중단하지 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세발간호, 등간호, 전신목욕 등이다. 중환자실에서는 DNR 18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동의서 유무와 상관없이 환자 컨디션(condition)만 되면 전신목욕을 해드린다. 따뜻 한 물을 몇 번이나 바꿔가면서 4명의 직원이 수건에 비누칠하면서 온 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겨드리고 나면 면회시간에 그렇게 보호자들이 좋아할 수가 없다. 우리는 대 신 땀으로 전신목욕을 하지만 보호자들의 기뻐하는 모습과 감사함을 표현해주는 말 한마디에 더 자주 해드리지 못하는 미안함과 동시에 그간의 힘듦을 잠시 잊는다. 그날따라 환자의 심전도 모양이 예사롭지 않았고, 보호자에게 얼마 안 남으신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린 다음날 새벽에 임종하셨다는 소 식을 들었다. 그러나 마음 아픈 시간도 잠시, 중환자실인지라 마음을 추스르고 평상 시처럼 일상으로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면회시간에 얼마 전 고인이 되신 그 환자분 의 부인이 다시금 우리를 찾아오셔서 “삼우제를 끝내고 중환자실 선생님들 얼굴보고 우리 영감 잘 보내고 왔다고 인사드리고 싶었다.”라고 하셨다. 평상시처럼 음료수를 골고루 담아 오신 봉지를 건네시면서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 리면서, 내 양손을 부여잡고 “중환자실에서 할아버지 때문에 간호사들 너무나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하고 덕분에 잘 보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라고 덤덤하게 말씀하 시는데 근무했던 간호사들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 도 매 면회시간마다 남편 상태를 자세히 알려주고, 당신이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봐도 친절히 잘 대답해줬던 우리 간호사들이 계속 생각나셨다면서 꼭 한번 오고 싶었다.” 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우리는 평상시 하던대로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감사해하는 보호자를 보 고,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저 보호자라면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어떻게 해주면 위로가 될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단 병원에 오면 질병 회복이 우선이다. 하지만 질병 치료 외에 환자, 보호자들이 마음의 치유를 받는 것은 성직자, 간호사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물이라도 각자 위치에서 최선의 노력을 보여주면 우리를 찾는 고객들은 표현을 안 해도 분명히 마음으로 느낄 것이다. 나는 DNR 동의서를 받고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는, 특히나 보호자들에 게 환자분이 하느님의 품으로 가시는 그 시간까지 환자의 귀에다 평상시처럼 하고 싶 은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해드리라고 꼭 말씀드린다. APG 수상작 / 19


익숙한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 편하게 이생을 마감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 는 것도 남은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랑이자 배려라고 생각한 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족의 마지막 손길과 함께 하느님 품으로 가실 준비를 하는 이 들에게 마음의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20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7 APG 수상작 우수상

ICU Diary로 찾은 소중함 전금숙(서울성모병원 중환자 간호팀)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경험은 어떨까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무력감과 두려움, 불안, 삽관으로 인한 의사소통 장애를 통해 좌절감까지 겪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음과 동시에, 아니면 오랜 시간 깊은 수면을 통해 하루, 이 틀, 또는 한 달,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환자의 가 족들은 환자가 이렇게 깊은 수면에 빠진 동안 환자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 력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APG 수상작 / 2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ICU DIARY 현재 우리 병원 중환자실은 하루에 2회, 단 20분간 가족들의 면회를 허용하고 있습 니다. 보호자들은 자신의 가족인 환자분들이 보호자를 못 보는 그 시간 동안 잘 지내 고 있었는지 등 상태 변화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에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면회시간에 성심껏 환자의 상태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으나 짧은 20분 동안 간호사로부터 들 은 말은 기억 속에서 곧 희미해지곤 한다고 합니다. 우리 중환자간호팀은 환자의 재활과 그를 돌보는 가족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 아주고 그들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에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환자 개인별 일기장을 기록해놓고 회복되어 병실로 올라갔을 때 전달해주는 것을 실천하 여 보았습니다. ‘ICU DIARY’는 간호사, 의사, 보호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에게 그날의 일상을 간단히 기록하여 퇴실 시 제공하는 일기장입니다. 중환자실에 계신 동안 환자분들의 변화되는 상태, 희망 등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 여 간호사뿐 아니라 보호자, 의사들도 환자를 위한 기도 등을 짧게라도 써주어 함께 병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을 드리고 있습니다. 환자는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이실 후 중환자실에서의 투병시간을 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으며 보호자는 환자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ICU DIARY 활동에는 보호자분들도 적극 동참하였고 저희 간호사, 의사, 보호자, 환자가 한마음이 되어 소통이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간호사의 업 무가 과중되어 간호사가 일기 쓰는 것에 소홀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감이 있었으나 환 자에 대한 진심어린 마음과 사랑이 담긴 글뿐 아니라 그림까지 그리며 환자에게 회 복의 응원 메시지와 기도 등을 써주는 것을 보며 우리 간호사들이 진정 천사라는 수 식어를 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수많은 주사와 처치를 통해서 바쁘고 지친 일상에 환자의 마 음을 들여다보며 공감해줘야 하는 이런 업무는 메마른 마음에 단비가 뿌려지듯이 간 호사에게는 더 활기를 주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ICU DIARY, 그 후 간이식환자의 경우에는 새로운 삶을 얻은 기쁨이 더해져서 병실로 이동 후 중환자 실에서의 본인이 겪은 고통에 대한 것, 회복되는 과정 등의 소중한 기록을 읽고 또 읽 2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으며 기뻐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특히 영아나 소아 환자들은 출생시부터 또는 너무 어린 나이에 보호자와 떨어져서 치료받기 때문에 모아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데 제약이 많고, 아이의 발달 과정을 곁 에서 지켜볼 수 없다는 점이 보호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호자 가 동참하여 ICU DIARY를 육아일기처럼 쓰면서 아이의 일상과 발달과정을 함께 공 유하여 애착관계 형성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보호자가 없는 동안에 아 기가 보여주는 소소한 일들이나 체중 증감량 여부 등 사소한 변화들에 대한 기록을 보고 보호자들이 감동하여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 중환자간호팀은 환자, 보호자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ICU DIARY 활동을 지속 할 것이며 ‘우리는 환자, 보호자를 가족과 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대한다’는 행동규범 을 항상 실천하는 중환자간호팀으로 더욱 거듭나겠습니다.

APG 수상작 / 23


2017 APG 수상작 우수상

마지막 기도 권리우(여의도성모병원 10층 서Unit)

저는 여의도성모병원 10층 서unit 소화기내과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저희 병동은 위장관, 간담도의 내과적 질환을 주로 다루는 곳으로 내시경적 시술과 각종 검사가 많아 병원 내에서도 바쁘기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간담도 질환의 환자들은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많고, 여러 가지 주의하여 간 호해야 하는 부분도 많아, 바쁜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일을 하다 보면 환자들의 세세한 요구를 들어주거나 영적간호를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24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CMC 핵심가치를 늘 왼쪽 가슴팍 이름표 뒤에 꽂아두고 생각하면서도, 정말 우리 가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을 체현하여 환자들을 잘 돌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쯤, 우연히 그것을 실천하고 경험할 기회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우연한 인연 “저 입원하러 왔는데요?” 서울에서는 다소 낯선 경상도 억양의 말이 제 귓가에 들렸습니다. 간호사 스테이션 에서 일어나 환자를 보니 저의 어머니뻘 될 만한 나이로 추정되는 파마머리의 서글서 글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수줍은 듯 서있었습니다. 입원생활이 처음이라는 그녀는 낯선 듯 병실로 가서 짐을 풀고 환자복으로 갈아입 었습니다. 그 뒤 저는 입원생활에 대해 안내문을 제공하고 이것저것 궁금한 점에 대 해서 설명을 하는데, 그녀에게서 전혀 낯선 느낌이 들지 않고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 껴졌습니다. 설명을 마친 후 ‘내가 전에 본 적이 있던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간호사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번에 처음 간암을 진단받고 남편 지인의 추천으로 이곳에 오게 되 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록을 읽다가 제 눈을 멈추게 한 곳은 다름 아 닌 그녀의 주소였습니다. ‘경상북도 OO군 □□면 △△리’ 그곳은 저의 어머니의 고향 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녀의 생년도 어머니와 같았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와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녀에게로 가서 어머니의 성 함을 말하며 혹시 아는 사이인지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그곳에 서 생활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직장을 따라 20년 전부터 생활하였다고 말하며 어머 니는 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집에 계신 어머니 또한 그녀를 모른다고 말하여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인연이구나 생각을 하며 지내던 찰나, 외할머니로부터 그분이 어머 니 고향 읍내의 미용실을 운영하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도 그 미용실의 단골손님이었는데 한동안 주인이 보이지 않아서 궁금하였다고 하는 말 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그녀에게 전했고, 그녀도 동네사람의 손녀를 아 는 이 하나 없는 서울에서 보게 되어 신기하고 반갑다며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지어보 였습니다.

APG 수상작 / 25


힘들고 어려운 치료 그녀는 50세 초반의 나이로 간암을 진단받고 간암세포를 죽이는 시술을 받기 위해 입원과 퇴원을 여러 번 반복하였습니다. 70세 이상의 고령 환자들에 비해 비교적 나 이가 젊은 축에 속했던 그녀는 간암의 진행 속도도 빠르고 약의 부작용도 많은 편이 었습니다. 처음 보았던 서글서글하고 활기찬 얼굴 대신 황달로 노랗게 변해버린 얼굴 과 항암제 부작용으로 인해 손발이 새빨갛게 까진 채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간호사님, 저는 평소에 담배도 안 피웠고요. 술은 입에도 못 대었어요. 열심히 살 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줄 알았는데, 저는 왜 이런 병에 걸려서 이렇게 아파해야하는 걸까요?” 활력징후 측정을 위해 그녀를 방문한 저에게 그녀는 오후의 햇빛이 따사롭게 들어 오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지금 충분히 잘 이겨내고 계세요. 의료진들 모두가 응원하고 있고 하느님도 돌봐 주고 계십니다.” 가슴 속 뜨거운 격려를 담아 그녀의 힘없는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 가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으스러지듯이 제 손을 꽉 잡으며 말했습니다. “정말 그렇겠죠? 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아요. 혹시 수녀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 요? 기도를 하고 싶어요.” 저는 즉시 원목팀의 수녀님과 그녀를 만나게 해주었고, 그녀는 영적 간호 아래 점 차 안정을 되찾아갔습니다.

그녀를 위한 마지막 기도 그녀의 마지막 입원은 제가 그녀를 처음 보았던 때로부터 약 8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였습니다. 병색이 완연해진 그녀는 체중이 급격하게 줄고 복수가 많이 차서 숨 쉬 기가 힘들며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습니다. 다인실에서 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시간 을 지내던 어느 날 밤,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심폐소생술포기 동의서’를 받고 1인실로 옮겨졌습니다. 각종 모니터링 기계가 그녀의 몸에 부착되고 힘겨운 숨을 이어가는 날들이 이어졌 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러 병실에 방문했다가 어떤 보호자가 잠시 저를 보자며 불렀습니다. 그 보호자는 그녀의 딸이었습니다. 병동 복도 구석에서 그 26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습니다. “간호사님. 어머니를 통해 들었어요. 간호사님이 그 동안 잘 돌봐주셨다고요. 그리 고 이곳의 수녀님을 만난 뒤로 성당에도 다니시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던 것 같아 요.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어머니랑 친하지 않아요. 타지에서 오래 살기도 했 고, 어머니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이 없었거든요. 어머니가 이제 저희 곁에 있는 날 도 길지 않을 것 같은데,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어떤 말을 해드리면 좋을까 요? 저렇게 정신이 없으신데 제가 이야기를 한다고 들으실 수 있을까요?” 울먹이면서 말하는 딸의 생각지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딸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인간의 청력은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있는 감각이라고 해요. 마지막까지 어머 니에게 그 동안 못했던 말들, 사랑한다는 얘기를 많이 해주세요. 그러면 어머니도 분 명 좋아하실 거예요.” 딸은 환한 미소를 보이며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내 그녀의 곁으로 가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 지금 내가 하는 말 들려? 엄마 그 동안 너무 고마워요. 엄마 없어도 나 언니랑 같이 서로 의지하면서 잘 살게. 항상 엄마 잊지 않고 살게. 엄마 정말 사랑해.” 그렇게 딸은 그녀의 옆에서 계속 그 말을 반복하며 그녀의 손을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그녀는 하느님의 곁으로 갔습니다.

그녀를 통해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온 마음으로 간호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따금 어머니 고향의 읍내를 방문할 때면 왠지 모를 그녀의 향기를 저는 아직도 느낍니다.

APG 수상작 / 27


2017 APG 수상작 장려상

신생아의 도깨비 수호천사들 김동연(서울성모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서울성모병원의 9층은 늘 분주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공간에 더 작은 환 자들. 하지만 많은 간호사와 의사, 장비들로 북적북적한 그런 장소입니다. 여러 가지 기계음은 들리지만 아기의 울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 그곳이 제가 25년을 일하는 곳입니다. “695. 454. 506. 696. 698. 790. 654. 704. 772. 614. 863g…… 에공…….” 한숨을 푹 쉰 차지 간호사는 오늘도 담당 환자 배분을 시작합니다. 무슨 암호 같지 28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만 이 숫자는 우리가 돌보는 NICU(신생아중환자실) 아기들의 출생 체중입니다. 400g부터 1,000g이 채 안 되는 우리 아기들은 전체 환자의 절반이 넘어 3분의 2에 달 합니다. 부모님들은 우리 아기가 세상에서 가장 작아 눈물이 마르지 않지만 “어머님 698g이 면 여기서 8등 정도 되어요. 가장 작지 않아요. 힘내세요.” 이게 위로였나 하는 아리송 한 마음이 들지만 자꾸 작다고 하시는데 옆에 있는 500g도 안 되는 아기 부모님이 마 음에 걸려서 그랬다며 후회 섞인 듯 돌아서는 간호사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수술이 필요하거나 폐동맥 고혈압 등이 있어, 몸무게가 크다고 사정이 그리 좋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부서나 다른 병원 선생님들은 어떻게 그런 많은 초극소미숙 아를 간호하고 그들은 살리느냐고 하지만 우리 NICU는 최근 방영한 인기 드라마처 럼 촛불을 불면 나타나는 도깨비 같은 수호천사가 많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아기를 살리는 도깨비 수호천사들 첫 번째 수호천사는 황금의 손을 가진 도깨비들입니다. NICU 간호사들은 이상하 게 나이가 많을수록 민첩합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가장 먼저 뛰어가서 받는 사람은 다 8년 이상 NICU 근무한 간호사들입니다. 바로 초극소미숙아를 살리는 황금의 손 들입니다. 중환일수록 자기가 본답니다. 초극소미숙아가 태어나면 뭘 달라고 말할 필 요가 없습니다. NICU로 들어오는 순간 황금의 손들이 모여들어 일사불란 수호천사 가 됩니다. 경력 간호사들의 손은 깨지는 도자기를 만지듯 살얼음을 만지듯 아기들을 핸들링합니다. 사실 이렇게 작게 태어난 아기를 가족에게 잘 돌려보내려면 의료기술 도 필요하지만 전문적인 간호는 필수입니다. 두 번째 수호천사는 NICU의 전문의들입니다. 초극소미숙아가 분만한다고 하면 새벽이든 주말이든 설날이든 분만실로 직접 가서 아기를 받아오는 전문의들이 또 하나의 도깨비 수호천사입니다. 교수님들은 밤이면 전공의 옷으로 갈아입고 병동을 지킵니다. 그래서 누가 보면 전공의인지 전문의인지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낮에 외래를 안 보는 시간엔 NICU를 지키기 때문에 환자 상태 에 따른 의사결정이 빠릅니다. 아주 작은 아기들이 생존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본 인이 전담의도 아니고 당직의도 아닌데 NICU를 떠나지 못하고 항상 아기들을 걱정 하는 수호천사입니다. APG 수상작 / 29


세 번째 수호천사는 Unit Manager인 저입니다. 저는 25년간 NICU에서 사는 도깨비입니다. 또 교수님들처럼 출동 대기조인 도깨 비 수호천사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과 소통하고 모든 신생아를 사랑합니다. 아기나 산모를 보내주는 병원과 소통하고 교수님들과 소통합니다. 면회시간에 보호자들과 소통하며 불안한 보호자들을 파악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줍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부모님이 아기를 너무 사랑한다는 사실만큼 아기도 부모님을 사랑한다 는 사실과, 매일 매일 하나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아도 아기는 잘 자라고 있다 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부모님이 희망을 갖기 시작하면서 사랑의 변화는 시작됩니다. 네 번째 수호천사는 NICU의 사람들 안에 계시는 성령입니다. NICU에서는 누군가 아기를 위해서 항상 기도합니다. 부모님도 그렇고 의사들도 그렇지만, 간호사들도 항상 아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기 상태가 나빠질 때 속으로 계속 응원하며 아기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인지하지 못했었는데 근 무하며 아기한테 사랑한다고 얼마나 많이 말하는지 모릅니다. 한번 의식적으로 간호 사들이 아기에게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면, “아유 예뻐라. 아유 귀여워. 잘할 수 있어. 힘내. 숨 쉴 수 있을 거야. 소화시킬 수 있어. 네가 제일 좋아. 사랑해. 기억해.” 이런 말들을 하면서 흡인도 하고 투약도 위관수유도 하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 니다. 미숙아 다이어리를 써주거나, 백일에 사진을 찍어서 데코레이션을 해주거나, 모빌을 만들어 걸어주는 일 등이 다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퇴원하는 아기들은 방글방글 웃으며 가나 봅니다. 그러니 성령이 함께 계시겠지요. 그러시며 아기들을 지키시는 듯합니다.

오늘도 신생아를 지키는 도깨비 수호천사들 처음 강남성모병원 때는 NICU가 6병상이었고, 서울성모병원을 오픈했을 때는 NICU가 20병상이었습니다. 항상 병상은 모자라고 아기는 많아서 다시 확장하여 30 병상이 되었고, 올해 NICU는 50병상으로 확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모르는 분들은 돈 을 벌려고 NICU를 자꾸 넓히는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모든 수술이 되는 소아외과교수가 전국에 29명, 소아흉부외과 교수가 전국에 12명 인 현실에서 아기들은 계속 다른 병원을 거쳐서 큰 병원으로 수술을 받으러 옵니다. 30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지방에서도 아기가 많이 오는 이유이고 큰 병원 NICU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대학병 원에서도 저희에게 아기를 보내 수술을 받게 합니다. 우리 NICU에 사는 도깨비 수호천사는 전염되기 때문에 영성 구현이 됩니다. 황금 의 손들을 닮아 신입 간호사들도 점점 수호천사가 되어가고, 전문의 교수님들을 닮아 지금 근무하는 세 분의 전공의 선생님들도 도깨비 수호천사가 되어갑니다. 환자가 많 아도 짜증 한 번 부리지 않고 아기를 예뻐하며 일하는 간호사들과 전공의들을 보며 날개가 어디 있나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도 인계시간에 웃음소리가 났습니다. 오늘 초극소미숙아가 퇴원하였는데 꼬까 옷을 입은 아기가 생글생글 웃으며 찍은 사진을 같이 보며 스테이션은 해피바이러스 천지입니다. 엄마가 심한 감염으로 임신을 유지하지 못하셨고 24주에 전원 와서 698g으로 출생한 아기는 첫날부터 장천공과 기흉으로 생사를 넘나들었습니다. 미숙 아 엄마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신 듯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며 연신 감사하다고 하셨답 니다. 젖병을 잘 빨고 집에 가리라고는 생각해보지도 않으셨다며 가슴이 벅차다는 말 씀에 모든 직원들이 보람을 느꼈답니다. 사실 확장을 준비하느라 신입 간호사도 많고 번잡스러울 수도 있지만, 특히 거듭되 는 확장에 모두모두 지칠 때도 되었지만 우리 도깨비들은 이런 기쁨에 신생아를 생각 하면서 오늘도 수호천사를 마다하지 않고 성령 안에서 신생아를 지킵니다.

APG 수상작 / 31


2017 APG 수상작 장려상

알록달록 따뜻한 손수건 장미나(여의도성모병원 8층 동Unit)

“선생님, 이 가방에 묶여있는 건 뭐예요?” 병동 회식 자리에서 신규 간호사가 가방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눈길을 돌려보니 내 가방끈에 예쁘게 묶어두었던 손수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아, 이거? 너는 모르겠구나? 이 손수건은 말이야…….”

3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어느 청춘과의 추억 26살의 젊은 청춘은 뇌종양 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해 있었다. 혈압을 재거나 약을 투약하기 위해 병실에 가면 환자는 언제나 밝은 모습이었고, 학창시절 공부를 잘해 TV 방송에도 출연을 했던 똑똑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병동에 출근했을 때, 그 병실에서 다른 환자들의 귀여움을 받던 젊 은 청춘은 없었고 중환자실 앞 보호자만이 빨갛게 부은 눈으로 서성이고 있었다. 뇌 종양의 크기가 커져, 뇌부종이 생겨 응급으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수술 후 집중 치료를 위해 중환자실로 옮겨졌던 것이었다. 며칠 후 수술로 상태가 호전되어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청춘의 한쪽 팔은 신경 손상으로 힘이 없었고 잔디처럼 길던 머리카락은 수술로 까슬까슬하게 밤톨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예전처럼 밝았고, 입가에는 웃음기 가득했다. 그의 부모님은 그런 아 들을 간병하면서, 넉넉지 못한 형편에도 간호하느라 고생한다면서 우리에게 당신이 좋아하던 음식을 나눠주곤 하셨다. 몇 날 며칠이 흘렀을까? 환자의 머리가 점점 부어 커져가고, 환자는 며칠 내내 고 열을 앓았다. 뇌에 농이 생기면서 수술을 하였고 균으로 인해 수술 부위는 덮을 수 없 을 정도로 좋지 않았다. 주치의와 함께 환부 소독을 위해 병실을 방문할 때면 어머니 는 아들의 곁을 지키다가도 마음이 아파 못 보시겠다며 자리를 피하시고는 했다. 그 럴 때면 우리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는 것 외에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 머니의 손은 거칠고, 한없이 가늘기만 했다. 아들은 어머니가 걱정할까 싶어 아파도 내색하지 않고 괜찮다며, 씩씩하게 소독을 마쳤다.

손수건의 사연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의 몸은 강직이 심해졌고, 의식은 희미해졌으며, 중환자실을 두 번 더 다녀올 때 즈음 기관절개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누워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면서 주치의와 상의 후 부모님은 체념한 듯 설명을 듣고 적극적인 치 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면에 사인을 했다. 그때만큼은 담담해 보였으나, 이후 웅크리 고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우리 모두가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없었 다. 조용히 병실에 앉아 있는 어머니에게로 다가가 간병하느라 하얗게 트고 야윈 손 을 잡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어루만져 슬픔을 덜어 드 APG 수상작 / 33


리고 싶었다. 어느 깜깜하게 어둠이 드리운 밤, 그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눈을 감았고 마음까지 아름답던 그는 차가운 영안실로 옮겨졌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눈 물을 훔치며 그의 마지막길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게 깨끗이 닦아주며 기도를 함께 마 쳤다. 근무를 마친 후 병동 사람들과 같이 장례식장에 갔다. 부모를 두고 떠나야 하는 청 춘의 가는 길이 춥고, 외롭지 않도록……. 장례식장에서 어머니와 나는 말없이 서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아이가 더 이상은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쉴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예전처럼 밝게 웃고 있을 거예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시고서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빨갛게 부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나를 바라 보셨다.

출근해보니 병동에 선물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께서 고맙다고 병동 간호사들에게 선물해 주신 것이었다. 꺼내 보니 알록달록 예쁜 손수건이었다. 손수건을 꺼내 가방 끈에 묶는 동안 그간 청춘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알록달록한 무 늬가 청춘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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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PG 수상작 장려상

할아버지, 다시 일어날 수 있어요! 유빛나(여의도성모병원 12층 동Unit)

양○○ 할아버지와의 인연은 신규 간호사 교육을 마치고 혼자 독립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데 급급하여, 환자와의 라포(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 형성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정신없이 일을 하던 때였습니다. 병동 1인실에 한 할머님이 입원해 계셨는데, 겨우 성함만 확인하고 처치를 했고, 환자 얼굴 한 번 쳐다볼 새도 없이 병실을 빠져나와 다른 일을 하기 바빴습니다. 그래 APG 수상작 / 35


도 생각나는 것은, 항상 병실에 할아버지와 자녀분들을 포함한 보호자들이 계셨던 것 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바쁜 제 모습을 보고 많이 바쁘냐며 말도 걸어주시고 어설픈 간호 처치에도 성을 내시기는커녕 천천히 해도 된다며 격려해주셨습니다.

내 환자의 첫 임종 언젠가 병동에 피자가 배달되어 누가 주신지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었는데, 나중에 야 그 병실의 보호자분들께서 시켜주셨다는 사실을 알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출근했 을 때 할머님이 계시지 않았고, 병실이 비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할머니께서 새 벽에 임종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임종 당시에 직접 환자분을 보내드린 건 아니지 만, 제가 맡았던 ‘내 환자’의 첫 임종이었습니다. 그 힘들고 정신없던 신규 간호사 시절, 할머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드리기 위해 검정색 원피스와 조의금을 챙겨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어설 픈 사회초년생의 모습으로 장례식장을 찾은 저를 할아버지께서 ‘선생님 오셨다’며 챙 겨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해드리지 못해서 할머니께서 떠나셨다는 괜한 자책감 이 들어 인사만 드리고 장례식장을 황급히 빠져나왔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명의 임종 환자를 간호하게 되었 지만 간호사로서 첫 임종이었던 할머니와 그 가족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할아버지와의 재회 입사한 지 3~4년 뒤, 간호사로서의 업무가 익숙해졌을 때, 저는 1인실만 모여 있는 VIP병동으로 발령을 받아 새롭게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환자의 보호자가 반가운 표정으로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바로 신규 간호사 시절 저를 격려해 주시던 할아버지와 그 따님이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입원 치료를 위해 1인실 병동에 입원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따님은 그때 앳된 신규 간호사님이 많이 성장해서 VIP병실로 올라왔다며, 잘됐다고 연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도 저를 알아보시고 인사해주셨지만, 예전 어리숙했던 신규 시절의 모습이 생각나 수줍은 마음으로 조용히 인사만 드렸습니다. VIP 병동에서 근무하는 2~3년 동안 할아버지는 크고 작은 질환과 수술을 위해 여 러 번 입원과 퇴원을 하셨고, 그때마다 할아버지의 따님들은 제가 계속 근무하고 있 36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는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어봐주시고 응원해주셨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이어진 소 중한 인연이라 생각하여 할아버지가 입원하시면 꼭 저의 친할아버지께서 오신 것마 냥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퇴원해서 집에 가셨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중환자 실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기관절개술까지 하셨다는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는 물론, 가족들이 많이 속상해하실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길고 긴 중환자실 치료 후 할아버지의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일반 병동 치료가 가능해졌고, 마침내 제가 근무하는 시간에 이실을 오시게 되었습니다. 중환자 실에 오래 계셨기 때문에 처음 이실을 받을 때는 힘이 들었지만, 내심 할아버지가 많 이 회복되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기쁘게 할아버지를 맞이하였습니다.

할아버지, 기운 내세요! 건강하실 때는 고령의 연세에도 도움을 마다하며 꼿꼿하게 걸어 다니시던 할아버 지는 오랜 중환자실 생활로 많이 지쳐보였습니다. 계속 발버둥을 치고,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두려움에 떠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같이 오신 따님들께도 걱정을 많이 하시고, 저에게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께서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익숙한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걸어주시 고 같이 계셔달라고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손을 잡고 불러도 할아버지께서 는 계속 섬망 증상(심한 과대행동과 생생한 환각, 초조함과 떨림 등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이며 도무지 예전의 모습을 찾지 못하셨습니다. 며칠 뒤 출근해서 할아버님의 섬망 증상이 많이 줄었다는 인계를 받고 병실로 들어 가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저 기억나세요?”라고 인사를 드렸는데, 할아버지께서 제 눈을 보시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마치 신규 간호사 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모습을 기억하신다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때 잠시 눈물이 나와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 니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께서는 여러 번의 위기를 겪으며 긴 치료를 계속하게 되었습니 다. 석션 치료를 강하게 거부하셔서 두 사람이 손발을 잡고 겨우 가래를 제거하기도 했고, 설사증상으로 오랜 기간 금식을 하기도 했으며, 욕창 예방을 위해 억지로 옆으 로 눕혀 체위변경을 하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오랜 치료에 지쳐 밤에 잠도 APG 수상작 / 37


주무시지 못하고 점차 공허한 눈빛으로 변하셨고, 비위관을 뽑거나 침상 난간을 두드 리는 등 행동제어가 되지 않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따님과 제가 얘기를 하는 중 할아버지께서 기관 절개관 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치료될 가망이 없으면 치료를 중단해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와 따님은 크게 펄쩍 뛰며 할아버지를 다그쳤습니다. 저도 여러 번 넘어 졌지만, 할아버지와 같은 분들께서 저를 지켜봐주시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다시 일어 설 수 있었고, 덕분에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었으니 이번에 는 제가 할아버지 옆에서 도와드릴 거라고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저를 기억해주신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셨을 때, 저는 할아버지가 다 시 회복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할아버지께서는 충분히 이겨내실 수 있을 거 라고 용기를 드렸습니다. 이후 할아버지께서 우울증 증세가 보이면 정말 잠깐이라도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고 기운 내시라고 더 크게 웃어드렸고, 재활 운동을 힘들어 하시는 날엔 지금도 잘하고 계시니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격려를 해드렸습 니다. 모든 처치나 행위에 앞서 할아버지께서 잘 알아들으실 수 있게 귀에 대고 천천히, 큰소리로 설명하면서 할아버지가 치료에 참여하실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일 상적인 대화나 TV 내용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침상에만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는 컨디션이 차츰 좋아져서 휠체어를 타실 정 도로 기력을 회복하시고, 고통스러운 석션 치료도 잘 참으시고, 직접 펜을 잡고 글씨 를 쓰며 치료에 대해 이해하고 의사표현을 하실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무엇 보다도 제가 인사를 드릴 때 마다 저를 알아보시고 환한 미소로 답해주시는 할아버지 께 감사했습니다.

오랫동안의 인연으로 할아버지께서는 저의 간호사로서의 성장을 지켜봐주셨고, 저 는 할아버지의 건강이 회복되는 과정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미소를 지 켜보며, 할아버지가 다시 일어서는 그날까지 옆에서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양○○ 할 아버지!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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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PG 수상작 장려상

딸이 생겼어요 김진수(여의도성모병원 12층 동Unit)

2012년, 간호사 5년차가 되던 그해 결혼도 하지 않은 나에게 딸이 생겼다. 그 딸은 막 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간호사로 첫 발을 내딛은 신규 간호사였다. 내가 프리셉터(신규 간호사에게 오리엔테이션을 주는 책임을 지닌 동료 간호사) 자격이 되는지 걱정 반, 설렘 반으로 6주 교육이 시작되었다. 6주 교육과정은 우리 딸 이 어떤 간호사가 될지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부감이 컸지만, 사명감이 생겼다. 그 리고 욕심이 생겼다. 잘 키워 보리라……. APG 수상작 / 39


내 마음가짐이 중요했다. 항상 생각했다. 그들의 간호사로서 시작을 내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내가 내 딸의 든든한 엄마가 되어주자! 그 동안 선배 간호사들 이 했던 프리셉터 교육방법과 나만의 교육방법이 필요할 것 같았다.

너의 엄마가 되어 줄게 내가 프리셉티로 교육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생각했다. 첫째, 간호업무가 끝나면 바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벗어나 병원이 아닌 곳에서 시험도 보고, 하루 일과를 함께 정리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어려웠던 점, 좋았던 점을 속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둘째, 오프 동안에 충분히 쉬고 충전하고 올 수 있도록 과제는 내지 않았다. 대신 일주일 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게 하였다. 배운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셋째,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 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보람된 일임을, 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간호사가 바 로 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섯째, 잘못한 행동이 있으면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소리 지르지 않고 둘만의 공간에서 이야기했다. 여섯째, 학생 간호사 실습 동안에는 학생 간호사들 실습을 관찰하게 하여, 평가나 교육의 대상자가 아닌 평가자 입장이 되게 하였다. 남이 잘못한 행동이나 실수는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 교육 방법은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일곱째, 한 주가 시작되는 날 일주일 동안의 교육 스케줄을 함께 정했다. 금요일은 그 동안의 교육을 함께 정리하고 마무리했다. 이렇게 6주 동안의 교육이 끝났다. 나의 밑그림이 끝나고 이제 내 딸의 채색 시간 이 되었다. 어떤 색으로 어떻게 칠할지 내 딸의 몫이지만, 그래도 영원한 지원자가 되 어주리라. 독립 후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엄마의 심정이 이런 것인지를 그때 느꼈다. 힘들지 않은 신규 간호사는 없을 것이다. 힘들면 언제든지 찾아오도록 했다. 한번 엄마는 영 원한 엄마니까……. 5월의 스승의 날, 어버이날이 되었을 무렵 나의 딸은 내게 카네 이션을 주었다. 정말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그 동안 키워주셔서, 가르쳐 주셔서 감사 하다며……. 40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엄마, 제 딸이에요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서로 다른 부서 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내 딸과 어느 간호사가 나에게 와 인사를 했다. “선생님~ 제 딸이에요. 인사 드려, 우리 엄마야.” 뭔가 처음 느껴보는 뭉클함이었다. 벌써 그 딸이 프리셉터를 하고 있었다. 자랑스 러웠다. 그리고 조용히 내가 와 이야기했다. “선생님, 그때 어쩜 화 한 번 안 내셨어요? 전…… 하하하.”

난 올해로 12년차 간호사가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간호사로서 같은 길을 걷을 수 있었던 건, 12년 전 간호사로서 좋은 시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금 어디선가 신규 간호사를 위해 열일 하는 프리셉터 선생님들 응원한다.

APG 수상작 / 41


2017 APG 수상작 장려상

제가 자라나고 있어요! 최은주(여의도성모병원 7층 동Unit)

제가 7살이 되던 해 친할아버지께서 간암 말기로 편찮으셨습니다. 가족은 할아버 지가 계신 시골로 이사를 갔습니다. 함께 살게 된 곳이 읍내와 멀고, 가정환경이 유복 하지 않아 할아버지가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고 가족들의 간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직장 때문에 바쁜 부모님과 저보다 2살 어린 남동생이 할아버지를 돌보는 것은 무 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할아버지 곁에서 조그만 도움이라도 드리려 노력했습니다. 할아버지를 웃게 해드리고, 안마를 해드리고, 식사를 보조하고, 복수가 많이 차 거동 4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이 불편하신 할아버지를 곁에서 부축해드렸던 것입니다.

간호사로서 초심을 찾다 어릴 적 경험을 통해서 나는 누군가에게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면 먼저 손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또한, 몸이 아파 마음까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웃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밝고 활발한 성격의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꿈을 잊지 않 고 간호학과를 졸업하여, 여의도성모병원 7층 동 UNIT 호흡기내과 병동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꿈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병동에 입원 오는 환자는 폐렴을 앓고 있 는 고령 환자분들과 폐암 환자분들이 대다수였습니다. 대부분 완쾌하지 못하고, 증상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면서 입원과 퇴원이 잦았고,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호흡기와 관 련되어 있기 때문에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들 또한 예민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입사한 지 6개월, 저는 점점 웃음을 잃기 시작했고, 말수도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처럼 대하며 항상 즐겁고 친절하게 일하자고 생각한 초심 또한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입원과 퇴원이 잦았던 한 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2015년에 입사하면서부터 자주 봐왔던 환자분과 보호자분은 저를 반갑 게 알아봐 주셨습니다. 일에 지쳐 있던 저는 힘없는 모습으로 그분들을 맞이하였습니다. 저의 그런 모습에 도 그분들은 요즘도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면서 일하느라 바쁘냐며 안부를 물어주셨 고, 저는 초심을 잃고 있던 제 모습이 떠오르고 너무나도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날 이 후로 저는 출근 전 집에서 웃는 연습을 10번씩 하며 출근하고, 출근해서도 웃음을 잃 지 않고 즐겁고 친절하게 일하기로 하였던 저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할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가게 되었고, 열심히 치료를 받 았으나 임종하게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족보다 더 많이 보는 많은 환자분 한 분 한 분이 너무 소중하지만, 저의 초심을 일깨워줬던 할아버지 또한 너무 소중했 기 때문에 무척 슬펐습니다. 의욕을 잃었고, 병원에서 일을 하며 보람을 찾지 못하며 저 자신을 자책하였습니다.

APG 수상작 / 43


오히려 위안을 받다 그로부터 2주 뒤 임종한 할아버지의 장례를 다 치르고 보호자분이 병동으로 오셨 습니다. 마침 근무하고 있어서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임종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 었다고 괜찮으시냐고,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을 먼저 건넸습니다. 그러자 보호 자분은, “고마워요, 선생님. 그리고 호흡기 7병동 선생님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와 함께할 수 없음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이겠으나 너무도 많은 인연들의 보살핌과 배 려로 곱게 잠드신 아버진 행복하신 분임을 가족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불러 줬던 생일축하 노래도 오래 기억할 겁니다. 마지막 가시는 침대는 장미로 만든 생화 꽃 침대였어요. 누가 봐도 부러울 정도로요. 선생님, 그 동안 애써주어서 진심으로 감 사드려요. 오늘도 이 병실 저 병실 종종걸음으로 뛰고 있죠? 잊지 못할 거예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제가 정말 환자 및 보호자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위 안을 받고 있었고, 잘하는 줄 알고 자만하고 있었다는 마음에 울컥했습니다.

간호는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어떤 간호를 제공할지 머리로 생각하고 손으로 제공하는 과학이지만, 같은 간호 행위를 하더라도 간호사와 환자 사이에서의 의사소 통이라는 예술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전문적인 지식 및 기술을 갖추고, 환자 및 보호자에게 전인적인 간호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저 성숙하고 역량 있는 간호사로 제대로 자라나고 있는 것 맞죠? 감사합니다. 사랑 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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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PG 수상작 장려상

작은 변화도 소중히… 권용주(서울성모병원 영양팀)

똑똑똑! 외래 상담실 문을 두드린 젊은 부부 품에 작고 마른 모습의 아기가 들려 있었습니 다. 다소 상기된 모습의 부부의 얼굴에서 이미 조금은 심각성이 느껴졌고 조심스럽게 환아의 진료 기록을 열어보았습니다. 출생 2일 만에 장꼬임으로 소장 일부만 남겨두고 장을 다 절제하였고, 장루 복원술 까지 생후 3개월 된 아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수술 이력 등 아이의 히스토리는 APG 수상작 / 45


마치 안타까운 사연을 읽는 듯했습니다. 이 작은 생명이 어떻게 이리도 힘든 과정을 견뎌왔을까……. 그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나는 영양상담실을 찾은 이유와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보호자의 마음으로… 3개월이 지났음에도 몸무게가 출생시 3.2kg에서 3.7kg 이상으로 늘지 않아 외과에 서 현재 섭취 상황과 필요량 파악을 위해 영양상담 의뢰를 하신 상황이었습니다. Short bowel syndrome(단장 증후군) 소아의 경우 장에서의 영양흡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히 예상되는 문제일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봐왔던 Short bowel syndrome 진단의 아이들 중에서도 너무 이른 시기였고, 장절제 범위가 커서 영양공 급이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의뢰한 내용에 따라 아이의 섭취 이력을 상세히 조사하고, 현 섭취정도 와 장절제로 인해 흡수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그리고 이를 고려한 필요량까지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이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행히 아이의 부모님은 현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어서 설명을 잘 받아들 이셨지만, 나는 조금이나마 더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날은 퇴근 을 잠시 미루고 정확한 진단과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위해 관련 서적과 연구결과들을 찾아보고 타병원 소아, 소화기 담당 선생님들께도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작은 증상호전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조합하고 고민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내용을 전화로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외래 특성상 계속적인 F/u(추후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기록해 두었 다가 며칠 뒤 피드백 드린 내용에 대한 순응도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드렸습니다. 마침 어머니께서 너무 반가워하시면서 변 양상이 조금 호전되는 듯하고 몸무게도 안 정을 찾은 듯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고 챙겨서 확인 전화까지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뒤로 궁금하신 내용을 문의해 주시고 추후관리를 위해 몇 차례 확인한 결과 4.5kg까지 체중 증가가 있었고 변 횟수와 양상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음 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46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진심으로 돕고 싶은 마음에 최선으로 찾아보고 고려해서 피드백을 드리긴 했지만 저 또한 결과와 효과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어 걱정이 많이 되었던 부분인데, 작지 만 호전된 부분이 있어서 저에게 또한 도전이 되고 감사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어떤 질환과 문제이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한 번 더 확인하 고, 그 상황 가운데 최선의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계속적인 물음과 고민이 반드시 필요함을 느꼈고 작은 변화에도 환우와 가족들에게는 그 이상의 희망 을 줄 수 있음을 확인한 것 같았습니다. 질병의 고통과 어려움 가운데 있는 환자분들에게 힘이 되어 드릴 수 있는 지금의 제 자리가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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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PG 수상작 장려상

자그마한 초콜릿을 보며 허선미(서울성모병원 171 Unit)

“코드 블루, 코드 블루 19-112호 혈액내과, 코드 블루, 코드 블루 19-112호 혈액 내과” 오늘은 바야흐로 2017년 2월 2일, 현재 시각 오후 7시 35분, 서울성모병원에 근무 하는 의료진들이 가장 안 들었으면 싶은 방송이 이 시각에 또 나옵니다. 지금 막 퇴근 하려고 일어서려는데 말입니다. 저는 짧은 찰나에 갈등을 합니다. ‘누군가는 갈 거야. 나는 근무시간이 벌써 끝났고, 올라가면 최소 1시간은 퇴근이 48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늦어지는데?’ ‘지금은 관리자가 모두 없는 시간이야. I&O(섭취 및 배설량 측정, 담당 간호사가 보통 한 duty당 한 번씩은 꼭 시행해야 함)하느라 간호사들이 정신이 없을 텐데. 의 사들이 모였어도 아마도 저 연차 선생님들이겠지.’ 결국 냉정함이 나태함을 이깁니다. 빛이 어둠을 이기고 참이 거짓을 이기는 것처럼 말이죠. 결심을 하고 보니 벌써 19층으로 올라가는 저를 발견합니다. 몸이 먼저 반응 하네요.

퇴근과 환자 사이 지난해 12월 Prize day날이 불현듯 스쳐 지나갑니다. 2016년 12월 8일 Prize day 를 마치고 오후 9시 병동에 복귀해 마무리 못한 사무작업을 하는 중이었는데 오후 9 시 30분 또 방송이 나옵니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16-108호 감염내과, 코드블루, 코드블루 16-108호 감염내 과” 도울 인력이 부족하겠지 싶어 16층 1병동으로 올라갔다가 CPCR(심폐뇌소생술)에 참여하고 ROSC(심박재개)된 후 함께한 간호사들의 진심어린 감사 인사와 감염내과 교수님이 그 시각에 CPCR에 함께하신 것에 감동을 받고 내려오며 정말 가길 잘했다 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번에도 분명히 후회하지 않겠지.’라는 믿음과 함께 19층 1병동으로 올라가니, 병 동 처치실은 이미 난리 난 상황. CPCR을 많이 경험하면 CPCR 현장에서 나오는 아우 라가 있습니다. 내 머리카락이 모두 못처럼 쭈뼛쭈뼛 꼿꼿하게 서 있는 느낌. 많은 의사 선생님들이 이미 도착하셨습니다. Chest compression(흉부압박)은 시 작했지만 아직 Ambu-bag(대상자의 환기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머니 모양의 기구)을 짜는 사람이 없습니다. 벌써 5분 지났는데……. 무의식적으로 저는 간호사에 게 크게 이야기합니다. “Ambu-bag 주세요!” 그런데, Ambu-bag을 받은 우리 전공의 선생님 손이 작네요. 손이 작으면 아무리 남자여도 혼자 하시기 힘들 텐데…….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우 리 선생님은 최선을 다하시네요. “선생님! 제가 Ambu-bag 짤게요!” 도와드리고 싶 은 마음이 절로 듭니다. APG 수상작 / 49


다행히, Intubation(기관내삽관)이 한 번에 성공하여 airway(기도)는 확보가 되었 네요. 의사 선생님이 Ambu-bag를 잡으시니, 제 손이 한가해집니다. 환자 주위를 둘 러봅니다. DC(제세동기)기는 연결이 되어 있으나, 너무 멀리 있어, 여기서는 EKG(심 전도) 리듬이 안 보이네요. 멀티 모니터의 EKG를 연결하여 모양이 좀 더 확실한 EKG 리듬을 볼 수 있도록 합니다. 병동 사원분은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치료실 문 앞에서 서성이고 계십니다. 간호사들은 정신이 없고 마음이 급하여 약처방이 나오면 3명이 쫓아가네요. 기록지 에 기록할 틈이 없어 무균 장갑 봉투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인턴 선생님들은 돌아 가면서 chest compression 중인데 리듬 확인한다고 가슴에서 손을 떼니 심실세동이 뜨네요. DC shock 150J을 친 다음, 전공의 선생님들 머리를 맞대고 심실세동의 원인을 찾 기 시작합니다. 환자가 신장 문제가 있으니까, 고칼륨혈증인가? 근데 저 EKG 리듬이 고칼륨혈증 리듬이 맞아? 그래도 칼슘 줘야겠다. 심실세동이니 마그네슘도 줘야겠 지? 뭐 놓친 건 없을까? 서로 의견을 나누는 3명 의사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10여 년 동안 배우고 익히신 온갖 지식과 경험들이 왔다갔다하시겠죠? 칼슘, 마그네슘이 환자에게 투여되고, 맥박이 잡힙니다. 심장의 자발순환이 돌아왔 네요.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10분 후 환자는 내과 중환자실로 이동하셨네요.

모두 사랑합니다 제가 참여했던 CPCR이 마무리되면, 저는 해당 병동 UM 선생님이 안 계신 경우에 는 항상 현장에서 함께한 간호사들에게 금일 CPCR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리뷰 해줍 니다. 제 나름대로의 원칙이죠. 오늘도 함께한 19층 1병동 간호사들을 불러모아 부족 했던 부분을 이야기하려 하자, 한 명의 간호사가 왈칵 울음을 터뜨립니다. “선생님! 선생님 아니었으면 저희 CPCR 못했어요……. 환자 못 살렸어요.” 진심이 깃든 간호사들의 눈빛에 순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 눈빛들은 수간호사 로서 방황하는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단단하게 해줍니다. “아냐! 오늘 너무 잘했어……. 병동에서는 환자 살려서 중환자실로 보내기만 하면 다된 거야.” 돌아가면서 우리 간호사들 한 번씩 안아주고 싶네요. 제 병동으로 복귀하니 오후 8 50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시 35분. 딱 한 시간 지났네요.

다음날 오후, 교육 때문에 자리를 비운 틈에 제 책상에 조금만 초콜릿 상자가 놓여 있네요. 어제 저녁 함께한 19층 1병동 간호사가 보냈는데, 간호사 어머님이 직접 만 드셨다고 하시네요. 저 이 초콜릿 김영란법(청탁금지법) 생각 안 하고 그냥 받았습니 다. 우리 간호사 마음이 너무 예뻐서요.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그런 초콜릿 상자지만, 저한테는 수간호사인 저를 지탱해 주 는 에너지로 보입니다. 2017년 2월 2일 오후 7시 35분 19층 1병동 치료실에서 함께 한 모든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들, 사원분에게 항상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그리고 초콜릿도 잘 먹겠습니다.

APG 수상작 / 51


2017 APG 수상작 장려상

사랑의 편지 노시원(방사선종양학과)

안녕하세요? ○○○ 님! 환우분의 치료를 담당한 방사선사입니다. ○○○ 님은 2012년 1월부터 3월까지 총 33회의 방사선치료를 마무리하셨습니다. 처음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온 날이 기억납니다. 방사선 치료기기에 누워 20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치료를 받는 것이 어렵다고 눈물을 글썽이셨는데 드디어 치료가 끝났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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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병원에 오지 마시길…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어느 유명한 연예인은 자신의 행복이 웃음에서 온다고 말하곤 합니다. 앞으로 항상 웃으시면서 예쁜 모습 그대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환우분은 이 세상 어느 누구 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특히 활짝 웃는 모습이 더 예쁘실 것 같아요. 항암요 법을 병행하셔서 머리가 남자처럼 스포츠머리가 되었지만 치료가 마무리되면 다시 회복되니깐 걱정하시지 마세요! 최선을 다해 방사선치료를 했습니다. 33회! 인생을 걸고 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환우분을 생각하며 치료했습니다. 이제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왔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뵙고 싶지만 앞으로 암 때문에 병원에 안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정기 면담 때만 오세요!

치료 받는 3달 동안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환우가 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방사선치료를 받게 되었지요. 그녀는 항암치료를 병행하여 긴 생머리까지 남자처럼 스포츠머리를 하였습니다. 방사선치료기기에 누울 때마다 두 눈에는 눈물 이 촉촉했습니다. 항상 치료를 다 받고 나서는 뒷모습에 쓸쓸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마지막 치료가 끝나고 환우분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도망치듯 치료실을 나서고 있었고, 종양학과 입구에서 겨우 ‘사랑의 편지’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환우분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 발갛게 부은 눈……. 그렇게 치료 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렇게 환우분과 헤어졌습니다. 다음 환우분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10분이 지났 을까요? 카메라를 보니 어느 여성분이 소파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펑펑 울고 있었습 니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마지막 치료를 끝내 환우분이었습니다. “괜찮으세요? 오늘 치료가 마지막이라 훨씬 힘드셨나봐요.” 그녀는 자신의 병을 견디지 못하고 펑펑 우는 듯했습니다. 몇 분간 울던 환우분은 진정을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편지에 써주신 말씀처럼 앞으로는 행복하게 살게요.”

APG 수상작 / 53


환우분에게 은총을… 그렇게, 그렇게, 손을 잡아 드리며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이 환우분에게 은총과 축복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 한 명의 환우를 방사선 치료했습니다. 우리는 암 환우와 동거동락합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습니다. 누군가는 저희를 감정노동자라 칭합니다. 하루 수백 명의 암 환 우를 치료하는 방사선사. 이제 편지는 환우분들에게 전해져 없지만 마음속에 ‘사랑의 씨앗’이 있습니다. 그 씨앗을 소중히 여기며 오늘도 치료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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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APG 수상작 장려상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자세 강희정(여의도성모병원 외래Unit)

내가 근무하는 통원치료센터는 ‘당일 입원해서 수술 후 당일 퇴원하는 환자들이 입 원하는 곳’으로 보통 안과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병동 입원 병실이 부족할 때는 이비 인후과, 비뇨기과 등 타과 환자들도 입원하는데, 병동 병실이 생기면 수술 후 병동으 로 이실 보낸다.

APG 수상작 / 55


환자와 보호자를 내 가족처럼… 어느 날 아침 8시 통원치료센터에 이비인후과 편도선 수술을 위해 김○○ 님이 남 편과 함께 병원을 찾아왔다. “여기가 4층 통원치료센터인가요?” 방긋 웃으며 내게 걸어오는 환자가 참 낯익어 보여 덩달아 반갑게 인사를 했다. “네. 어서 오세요. 여기가 통원치료센터입니다. 입원 오셨습니까?” “네. 먼저 정확한 환자 확인을 위해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겠습니다. 이름과 생 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각종 정보를 확인한 나는 입원할 자리로 안내하였다. 오전 10시 수술을 위해 이비 인후과 수술 처방 및 동의서 등을 확인 후, 그녀에게 활력증후와 수액주사를 놓기 위 해 병실로 들어갔다. 수액 주사 및 처치를 하며 얼굴을 보니 어디서 많이 만난 듯 친 숙한 얼굴이었다. “얼굴을 뵈니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많이 어디서 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나의 물음에 환자분은 기다렸다는 듯 생기 있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 셨다. “간호사님, 저 모르시겠어요? 예전에 간호사님이 소아과에 있을 때 우리 아이 데리 고 병원에 몇 번 갔었어요. 좀 오래되었지만, 우리 아들이 열이 39도 이상으로 많이 나서 힘들어할 때, 간호사님이 의사 선생님께 미리 말해줘서 해열제도 먹여주고, 수 건으로 닦아주셨잖아요.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간호사님이 먼저 진료 보도록 배려해 주고, 진료 후 우리 아들을 안고 직접 주사실로 데려다 주어 서 기억하고 있어요. 이 병원은 모두가 친절해서 우리 가족이 다 여기로 다닌답니다.” 하며, 아침에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나를 알아보았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의 일 이 기억에 없지만, 그 순간 나를 먼저 알아봐 주고 예전 이야기를 해준 환자분께 따뜻 한 마음이 고마웠고 ‘우리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대하는 나의 모든 모습이 우리 병원의 이미지가 되고, 나아가 내가 환자를 내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 곧 하느님의 사 랑을 실천하는 모습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음에 감사를… 이윽고 수술실에서 그녀를 보내달라는 전화를 받고, 환자 옆에서 “수술이 잘 되게 56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해주세요” 기도를 드리고, 그녀를 수술실로 보냈다. 수술실로 보낸 지 2시간 후 그녀 는 ‘1박2일’ 병원에 입원하기 때문에 병동으로 이실 갔다. 그날 나는 퇴근하면서 환자분이 입원해 있는 병실을 방문했다. 환자분 손을 꼭 잡 으며 말을 건네 보았다. “수술 받느라 많이 힘드셨죠?” “간호사님,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와 주시고 너무 고맙습니다. 간단한 수술인 줄 알았는데, 많이 아프네요. 방금 진통제도 맞았어요.” “네. 마취가 깨서 지금 더 아플 겁니다. 진통제 맞았으니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겁 니다. 잘 이겨내실 거예요.” 나의 작은 위로에 환자분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네. 간호사님. 너무 너무 감사합니 다.” 인사를 하였다. 우리는 같이 두 손 잡고 “빨리 쾌차하시고, 퇴원 잘 하세요. 하느 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쾌유의 기도를 함께 했다.

그녀를 만나고 집에 오면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주님. 병원에 근무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오늘 환 우분을 통해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계기로 알게 된 나의 자리에 더 큰 책임감이 생기고 그 안에 베풀어야 할 사랑 이 많음을 다시 한 번 느낀 날이었다.

APG 수상작 / 57


2017 APG 수상작 장려상

갑상선암 동위원소치료환자를 간호하며 이명희(서울성모병원 핵의학팀)

갑상선암으로 갑상선 전적출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후 동위원소치료를 위해 핵 의학과로 의뢰된다. 핵의학과는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나 환자에게 참으로 생 소한 진료부서일 것이다. 많은 이들에게 핵의학과는 이미 검사업무를 하는 주부서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진료를 본다는 것을 의아해하고 심지어 꺼려하 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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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끝난 줄 알았더니…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동위원소’, ‘방사성요오드’라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사 용하는 치료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는 거부감과 혐오감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대기 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모습, 그리고 진료 후 ‘방사성요오드 치료 준비 안 내서’를 들고 나오는 환자들의 모습에서 보이는 석연치 않은 넋두리들, 즉 ‘갑상선암 은 수술만 받으면 된다더니……, 갑상선찌꺼기가 남았다고? 수술이 잘못된 건가? 방 사성요오드? 저요오드식이? 뭘 먹으라는 거지? 먹을 게 하나도 없네! 도통 복잡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등의 말을 들으면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대한 그들의 걱정을 바 로 읽어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암 진단에서 치료까지의 긴 터널을 무사히 마치고 일상복귀를 기다 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더니 그것도 잠시, 예상치 않았던 동위원소 치료가 기다리 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그 치료를 위해서는 우선 저요오드식이라는 것을 해야 하 고 때에 맞춰서 약을 바꾸거나 주사를 맞아야 하는 일정들을 포함해 예닐곱 가지의 절차를 짧게는 20일, 길게는 40여 일 동안 일상생활을 하면서 홀로 준비해야 하니 그 중압감에 충분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과연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당 연한 일이리라. 이런 상황의 환자를 접점에서 간호하고 경험하다 보니 치료가 시작되기도 전에 벌 써 지쳐버리면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 그리고 당장 저요오드식이 기간 동안 규정에 맞는 생활을 해야 동위원소치료가 잘 될 텐데 라는 걱정을 내가 먼저 하고 있음을 깨 닫게 되었다. 아마도 상담과정에서 환자마다 개별적인 상황의 다양성에 공감대가 형 성되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과 함께 걱정이 앞서고 있었던 것 같다.

위로의 실마리를 찾다 누구에게나 먹고 사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문제이고 2박3일 이상의 치료기간 동안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의 면회도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큰 스트레스로 작용하게 된다. 게다가 의료진의 회진도 이루어지지 않는 등 일정 기간 사회와 완전 분리되는 철저한 격리의 경험은 그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키게 된다. 가족의 일원인 딸로서, 엄마로서, 사회인으로서 환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고, 더욱이 간호사로서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만 생각하지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APG 수상작 / 59


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환자들을 위로할 실마리가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간호 분야에서도 생소한 핵의학과 업무를 배우며 환자들의 질문에 적합한 응대를 해주지 못해 당황했던 초임시절을 기억하며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해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고 배워가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이를 토 대로 그다음 순서는 동위원소치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남녀노소 누구나 알아들 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는 시나리오로 바꿔 쓰면서 이야기 형식의 교육을 시작했고 식이방법은 가족들의 식사준비를 하다 쉽게 만들 수 있는 저요오드식이를 직접 하나 씩 만들어 먹어보며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주로 상담전화 중 빈번한 질문을 체크하고 식이교육 중 면담을 통한 환자들의 궁금 증과 불안감에 대해 함께 나눠봄으로서 이를 토대로 설명과 실제 사진 등을 기존 교 육자료에 삽입하고, 동위원소 캡슐의 모형과 납으로 만들어진 약통을 이용하여 각자 치료약 복용을 실습해 봄으로서 치료 중 의료진과 보호자를 포함한 철저한 격리의 필 요성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또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50여 가지의 요리 레시피를 만들어 ‘저요오드식이, 어떤 것을 만들어 볼까요?’라는 제목이 붙은 식단을 환자들에게 직접 나눠드리기 시작하 였는데, 지금도 절찬 배부 중이다. 준비기간 동안 동료들과 논의했던 내용들은 나뿐 만 아니라 동료 간호사들에게도 상담전화나 교육시간에 자신 있는 경험담으로 환자 들을 위로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이 작은 수고와 관심에 화답하듯 환자들은 우리 에게 신뢰를 선물해주었다.

1차 치료가 끝나고 후속 검사절차가 남았거나 재치료에 들어가는 환자들이 핵의학 과에 다시 방문할 때면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게 된다. ‘당신이 아는 것을 나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먹거리를 의논하였고 무엇이 맛있는지 압니다. 그리고 그 긴 격리기간 동안의 수고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치료받았습니다.’ 나도 웃고 환자도 웃는다. 착각이어도 좋다. 환자들과 함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나 여서 좋고 우리여서 좋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작은 일에 충실하여 큰일이 이루어 짐을 아시는 주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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