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톨릭중앙의료원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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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활동 수혜자 수기 당선작


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Contents 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대상]

든든한 수호천사 / 4

[우수상]

자주색 소원 팔찌 / 7 ‘나눔’이 기적을 실현합니다 / 11

[장려상]

살려고 하면 살 것이요, 나를 믿으면 살 것이니라 / 14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 19 아이를 살린 한 줄기 빛 / 21 안면 상실 구강암 환자 턱 재건으로 새로운 삶 찾아 / 25 꿈을 키워주는 병원 / 29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3


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대상

든든한 수호천사 유○록

벌써 남편이 퇴원한 지도 3개월이 되었습니다. 16년 전 1월 남편은 청계산 등산 도 중 절벽으로 낙상하여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그 사고로 남편이 하던 사업은 졸지에 부도를 맞게 되어 그때부터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는 병원비는 2주만 밀려도 천만 원이 넘었는데, 우리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세 딸(당시 큰딸이 6학년, 둘째 딸 6살, 막내 4살)은 아직 어렸습 니다. 4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결국 반포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전세에서 월세로, 나중에는 병원비가 없어 어린 세 딸을 데리고 남편을 돌보면서 병원 바닥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갈 데 없는 저의 처지를 아시고는 원장님 이하 여러 교수님들께서 어린 딸과 남편을 돌보는 저에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셔서 남편 간 호와 아이들 양육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16년 전 그때 성모병원이 아니었다면 아 마 남편과 딸들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병원 내에 있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많은 기도와 격려로 세 딸들은 잘 자라주어 저에게 기쁨을 주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악재가 끝났으면 좋으련만 또 한 가지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세 딸들에게 진행성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 질병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 병은 커갈수 록 다리에 힘이 점점 빠져 근육에 힘이 없어지는 병이라고 합니다. 저는 차라리 우리 다섯 식구 모두 죽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울면서 매달리고 기도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은 천천히 장애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큰애는 못 걸을 정도로 많이 진행이 되어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고, 두 동생들도 서서히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어려운 상황들을 아시고는 성모병원에서 저희 남편 주치의 선생님을 포함해 여러 교수님들께서 저의 딸들의 병과 치료약을 찾아봐주시 기도 하면서 많은 도움과 희망과 믿음을 주셨습니다.

집에서 남편을 간호하다 응급상황이 생길 때는 또 다시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저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였습니다. 병원비 마련을 못해서 구청, 동 사무소 등 제가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지만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 니다. 그러던 중 담당 주치의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된 사회사업팀에서 항상 남편이 입원할 때마다 크나큰 경제적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병원비를 제때 지불하고 잘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모병원에 계신 이○○ 박사님께서는 쉬는 주말에도 항상 기도해주시고 응 원해주시고 집에 문병도 와주셨습니다. 기도와 힘내라는 응원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5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많은 성모병원 교수님들, 간호사 선생님들, 사회사업팀이 항 상 하나로 뭉쳐 저에게 큰 희망을 주셨고, 저희 가족이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기 회를 주셨습니다. 성모병원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제 곁에 없었다면 가족 모두 아픈 상황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또 무지한 제가 어떻게 남편을 간호하고 또 경제 적인 어려움들을 헤쳐나갈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제가 성모병원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릅니다. 남편과 세 딸과 저는 열심히 하느님 밑에서 기도로 살았습니다. 궁핍은 여전했지만 하느님의 믿음이 제게 있으니 기쁜 마음으로 남편 병간호를 했습니다. 저는 항상 자 랑스럽게 말합니다. 성모병원의 모든 분들은 우리 집의 수호천사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16년 넘게 남편 간병을 했는데 1월 18일 오전 7시에 남편이 잠자듯이 편하 게 하느님의 곁으로 갔습니다. 장례 치를 비용도 없고 남편이 아픈 지 오래 돼서 장례 식에 올 사람도 없었는데 많은 교수님들과 선생님들께서 조문을 와주셔서 마지막까 지 큰 도움 받고 남편을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많은 위로와 힘이 됐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병원에서 받았던 모든 사랑을 남편은 기억하고 안구와 시신을 기증 하였습니다. 남편은 앞을 보지 못했던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주었고, 시신은 의학 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게 기증을 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이 병원에서 많은 도움을 받 은 만큼, 저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베풀며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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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우수상

자주색 소원 팔찌 명○의

벚꽃 축제가 한참이던 2011년 4월, 그 당시 아들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기 다리지도 않고 예상치도 않았던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도 그때입니다. 어제 와 다른 오늘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울성모병원으로 첫 진 료를 가던 날을 기억해 봅니다. 아들은 그로부터 1년 4개월 후 타인공여자분에게 골수를 이식받아 4년 동안 건강 을 회복하면서 직장생활과 학원을 병행하며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7


해 여름휴가와 함께 이식 후 4주년 이벤트를 준비하던 8월에 갑작스런 흉통이 느껴 진다며 근무하고 있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공교롭게도 이식하던 바로 그날 8월 13 일에 우리는 입원장을 들고 여름휴가를 입원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교수님 앞에 서기만 하면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날도 교수님은 ‘재발’, ‘재이식이라는 ’ 단어를 언급하셨습 니다. ‘이럴 수가!!’ 외면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두 번째 하늘이 또 무너졌습 니다.

4년 만에 18층 1병동으로 안내를 받아 찾아갔을 때 초면이 아닌 선생님들을 만나면 서 반가움보다는 안타까움으로 인사를 나누며 “이번에도 잘할 거예요.” “○○아, 할 수 있잖아!” 이렇게 선생님들이 찾아와서 위로해주셨습니다. 또 매일 출퇴근시마다 병실까지 찾아와서 눈인사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관심과 따뜻한 사랑을 받으 면서 항암을 시작하던 첫날, 너무나 갑작스런 상황과 좌절감에 빠진 아들은 치료를 거 부했고, 저는 할 말을 잃고 낙심하면서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 아들에게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한 번만 하자고 하면서 눈물을 감출 때 아들은 마음이 차츰 움직였습니다. 그 후 선생님들이 항암제 를 가져오셔서 기도해주고 위로해주며 그렇게도 원하지 않던 항암제틀 투여 하고 삭 발을 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추석 명절에 송편 하나 먹어볼 수 없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회진 온 교수 님이 “그래, 잘하고 있구나! 이번 주만 지나면 좀 좋아질 거야!” 하시는 것입니다. 1분 도 안 되는 그 회진 시간을 하루 종일 가슴 조이며 기다렸는데, 그 말씀 한마디로 안도 의 숨을 쉬었습니다. 그렇게 교수님과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습 니다. 아들을 치료하는 데 최선을 다하셨으며, 표정으로도 늘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아들이 차츰 회복될 즈음 박 선생님이 어느 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주시고는 “어머 니, 힘내세요.”라고 하면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고 가셨습니다. 가느다란 실로 만든 소 원 팔찌와 엽서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팔찌는 자주색이었습니다. 깨알 같은 예쁜 글씨로 쓴 응원의 메시지, 팔찌 매듭을 만드는 방법과 색깔의 의미가 쓰여 있었습니 다. “잘될 수밖에 없는 당신을 믿으세요”라는 의미를 가진 소원 팔찌였습니다. 씩씩 8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하고 긍정적으로 치료 잘 받는 아들이 멋있고, 자주색에 담긴 의미가 아들과 잘 맞아 서 매장을 지나다가 샀다고 하셨습니다. 근무시간에도 여러 선생님들이 아들을 진심으로 정성껏 간호해주시고, 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지나칠 수도 있는 시간에도 의미를 담은 실 팔찌를 선물하면 서, 곱게 적은 글씨로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마음을 담아주셨습니다.

이후 그 팔찌를 볼 때면 불안과 염려, 우울함과 답답함, 실망감으로 힘든 마음이 사 라지고 실낱 같은 희망이 생깁니다. 저와 아들은 “잘될 수밖에 없는 당신을 믿으세 요”라는 팔찌의 의미를 되새기며 항암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귀한 선물을 받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던 감동적인 시간을 잊을 수가 없어 지 금도 가끔씩 엽서와 팔찌를 꺼내보면서 그때 일을 기억해 봅니다.

답답한 무균실 생활을 힘들어하는 아들은 그곳이 몸이 아닌 마음이 아픈 공간이라 고 했습니다. 그 안에서 혈액 수치와 싸움을 하며 투병 중일 때 사회사업팀 선생님이 찾아가셔서 위로와 용기를 주셨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아들과 나눈 대화는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워주고 자신감을 주셔서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 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 일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때 교수님은 첫 번째 공여자분에게 면역세포를 추가로 받아보는 걸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거절되어 재이식을 준비하시며 공여자를 찾아보고 이식 비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첫 번째 이식 때에도 수술비와 입원비를 사회사업팀을 통해 지원받았는 데 4년이 지난 지금도 수천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는 우리 가정에서 감당하기 힘들었 습니다. 아들과 저는 두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면서 이식이 꼭 필요하다면 그 필요한 물 질도 준비시켜 주실 거라 믿으면서 두 번째로 사회사업팀 문을 두드렸습니다. 첫 면담이 있던 그날, 마음이 울컥하는 아픔을 애써 감추며 절박한 심정으로 선생 님 앞에 앉았을 때 선생님은 차분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말씀하시며 가능성을 보여주 셨습니다. 그 후 소아암협회를 통해 입원비를 지원받아 항암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 중에 있습니다. 우리 모자는 이런 상황을 또 경험하면서 ‘우리는 원망하지 말자. 그래도 감사하자’ 는 말을 구호처럼 외치며 우리를 응원해주시고 지원해주신 분들께 기쁨을 드리는 삶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9


을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으 며 하루하루 보람 있게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또 다른 검사와 결과가 남아있고, 치료도 계속되지만 목적지인 완치라는 관문을 통과할 때까지 어떤 결과와 어려움이 따른다 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이겨 나 갈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 아들을 치료하시는 교수님께 모든 것 맡겨드리고 우리는 믿고 따라만 갈 것입니다. 이번 치료 과정이 잘 마무리되고 건강해지면 지금까지 공부하고 준비한 사회복지 사와 수화통역사 자격을 취득해서 장애인 복지관에 취업하려 합니다. 저희에게 새 생 명 주신 그 은혜를 평생 감사하면서 살 것입니다. 지면을 통해 우리 아들을 6년째 치료하고 계신 교수님과 그 외 여러 선생님들, 도 움을 주신 사회사업팀과 백혈병협회, 소아암협회, 그 외 기도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 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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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우수상

‘나눔’이 기적을 실현합니다 박○윤 필립보 신부

세상에는 기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적을 바란다는 것은 어떠한 것 에 희망을 두는 긍정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그 희망을 기적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기대는 절망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절망의 늪에서, 오직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적뿐인 사람들에게 참된 기쁜 소식은 그 기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이 일어났을 때입니다. 그 래서 2000년 전 많은 군중과 아픈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11


한 일은 지금 현재에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 아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 가장 가난한 곳, 최악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필리핀 타클로반의 비참한 곳에 태어난 아기가 있었습니다. 가난하여 결혼식조차 하지 못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 그것도 모자라 항문이 없이 태어난 이 아기는 매일 배변을 위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잊기 위해서인지 이 아이의 엄지손가락은 항상 아이의 입 속에 있었 고 그 손가락은 퉁퉁 불어 어른 엄지만 하였습니다. 아이의 수술을 위해 아이의 부모 는 사력을 다해보았지만, 가난과 재난의 늪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조차도 버거 웠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시간들이 지속되는 가운데 아이에게 기다리던 도움의 손길이 찾아왔습니다. 태풍 피해 구호의 일환으로 한 NGO가 아이의 항문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돕게 된 것입니다. 수술날이 되어 아이 의 부모와 이 아이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매일 아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함께해야 했던 이들에게 이러한 기회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수술을 앞두고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나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가까스로 피 어난 희망의 불씨가 사그라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에게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희망하고 기다렸던 수술의 기회는 사라지고 다시 고통의 일상 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절망의 순간이 그들에게 찾아왔습니다. 한 번 일어나기도 힘든 이 기적을 두 번이나 기다려야만 하는 희망은 아마도 절망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릅니 다. 그러나 부모는 절망으로 다가올지라도 아이를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절망스러웠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기적이 일어나기 를 다시 기다렸습니다.” 기적은 간절함 끝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간절함이 하늘에 닿는다 하더라도 그의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 손이 있습니다. 아주 보드랍지만 아주 강한 손이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의 노력이었지만 그 손은 그 전체를 대변하기에 충분한 손길이었습니다. 그 손길은 나눔 을 통해 희망과 기적이 되어준 이들입니다. 1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가톨릭서울성모병원 - 나눔의료’ 이 이름이 지니는 힘과 부드러움이 아이를 기적을 이뤄낼 현장으로 이끌어갑니다. 2016년 4월 인천공항 입국장에 커다란 현수막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호 자도 아니고 대상자도 아닌 인솔자의 입장이었지만 그 현수막은 이미 기적이 이루어 졌음을 확신시켜주었습니다. 걱정스러워 비행 중에도 잠 한숨도 이루지 못했던 아이의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참 지 못하고 대외협력팀장님의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병원에 도착한 아이는 바로 각종 검사를 시작합니다. 모두가 한 몸인 양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협 력하는 모습에서 힘을 보았습니다. 모두가 내 아이인 듯이 기도하고 걱정하고 고민하 는 모습을 보면서 드는 생각, ‘여기서 기적이 일어날 수밖에 없구나! 기적이 안 일어 나려야 안 일어날 수 없겠구나!’ 아이의 심장 수술은 당연한 듯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뒤이은 항문 수술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의료적인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전인적인 나눔을 실천한 손길을 통해 기적이 일어 났습니다. 이 기적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가져 다주었고, 나눔의 삶이 어려운 것 아니라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일깨워주어 이 일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적을 가져다줄 수 없지만, 이러한 기적을 통해 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할 수 있게 해주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으면 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 분들께서 하고 계신 일입니다.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하나 의 손길로 다가온 가톨릭서울성모병원에 계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13


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장려상

살려고 하면 살 것이요, 나를 믿으면 살 것이니라 유○화

이 글을 쓰기 전에 ‘아들’이란 단어를 먼저 생각하고 쓰고 싶습니다. 저는 2015년 4 월에 간암과 간경화 판정을 받고 2016년 6월 22일 아들의 간을 받아 이식수술을 받 은 후 지금은 회복 중에 있습니다.

14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저는 24세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행복했고요. 집사람은 참으로 착하고 남에게는 늘 칭찬 받으며 교회도 열심히 다니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사업이 잘못되면서 불행이 찾아왔고, 살고 있 던 집이라도 건지기 위해 위장 이혼까지 하면서 빚쟁이들과 깡패들한테 쫓기고 협박 받으며 정말 너무 너무 힘든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은 같이 온다고 했던가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 다. 저의 집사람이 어느 날 밤, 주검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아침이 돼서 깨웠는데 집사람은 일어나지 못했고, 몸을 만져보니 차갑게 굳었더라고요. 새벽에 심 장마비로 숨진 집사람 앞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람이 죽는데 저는 잠만 잔 것이었습니다. 죽은 본인은 얼마나 죽기 싫고 괴로웠겠습니까. 집사람 의 나이는 고작 35세, 지금도 눈물만 흘러내리네요. 너무나 착하고 예쁜 아내…….

그해 13살인 우리 아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해온 축구를 특기 삼아 서울 모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엄마의 손길까지 대신할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고 살아 야 했는데, 저도 너무 힘들고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날이 갈수록 술과 담배에 의지하 며 살았습니다. 자살도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우리 아들 생각에 포기했습 니다. 아들에게 나마저 없으면 너무 불쌍하고 미안하잖아요.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던 어느 날 갑자기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저야 그렇 다 치더라도 우리 아들은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때부터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아들의 축구회비 2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 주차관리, 식당 설거지, 배달 등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아들만을 생각하며 살아오던 중, 아들은 축구 실력이 월등하지 않고 평범한 수준이 라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하면서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축구를 하지 않 겠다고 하자 저는 또 한 번 세상 살 맛을 잃고 말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축구를 어렵게 시켜놨는데, 이제 와서 그만둔다면 무얼 하고 살 것인가? 정말 너무 허망하고 세상의 삶을 등지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무얼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할지, 나의 인생 을 비관하면서 술을 먹는 횟수가 늘어났고, 건강은 조금도 돌보지 않은 채 죽음이란 것이 오는 줄도 모르고 매일 매일 술을 마시며 생활했습니다.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15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B형 간염 보균자라 조심했어 야 했는데, 수년 동안 술독에 빠져 살았으니 참으로 지금 생각하면 너무 멍청하고 바 보짓을 하고 살았습니다. 복수가 갑자기 차기 시작하면서 겁이 나 병원을 찾았을 때 는 이미 손을 쓸 수가 없는 간암 3기, 간경화로 간이 완전히 굳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고 고칠 수 있는지 알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서 복수가 심하게 찼고, 일주일에 6병씩, 몇 달 동안 복수를 빼면서 급격히 건강이 나 빠졌습니다. 교수님 말씀이 이식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식은 저에 게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돈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였습니다.

그렇게 실망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부천성모병원 사회사업팀 선생님을 만 나게 되면서 이식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너무나 친절하시고 자기 일보 다도 더욱 신경써주시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후원기관, 방송 등에 후원금을 신청해 주시고, 병원 측의 자선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힘써주신 덕분에 뇌사자 이식 받을 날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대도 잠시뿐, 저에게 적합한 기증 간이 나타나지 않았고, 중환자실에서 10일간 정말 괴롭고 힘든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다 퇴원하였습니다. 저에겐 너무나도 길고 긴 10일의 시간이었고, 이후 저는 죽음에 가까워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교수님과 면담을 하면서 얼마나 시간이 남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길어야 3개월, 빠르면 한 달……. 그때서야 정말 죽음이 실감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나이 53 세, 요즘 100세 시대라 하는데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우선은 아들 결혼이 라도 보고 죽자 싶어서 애들 결혼을 서둘러 시키고 저는 죽음이라는 놈과 매일 싸워 가면서 살던 중 교수님 말씀이, 너무 젊지 않으냐, 생체 이식을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이제 막 결혼한 아들에게 어떻게 간을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가시고기도 자식을 위해선 자신의 살을 내어준다는데 아비가 되어서 아들의 배에 칼을 댈 수는 정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잘못되면 저야 죽을 목숨이지만, 한참 창 창하고 막 결혼을 해서 아기까지 있는 우리 아들은…… 정말 생각도 하기 싫었습니 다. 그리고 수천 만 원이나 되는 병원비까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6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그러던 중에 갑자기 저의 머리가 멍해지더니 하늘에서 너무도 생생한 소리가 들려 옵니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나를 믿으면 살 것이니라.” - 아멘 너무도 크고 생생하게 들려서, 아 이제는 환청까지 들리는구나 생각할 때 더욱 더 크고 생생하게 들려 왔습니다. 저는 교회를 나가긴 했지만 믿음이 그리 크지 못하고 어머님과 집사람 권유에 생각날 때와 어려울 때만 다니는, 즉 떡신자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엇 때문에 주님이 어디다 저를 쓰려고 살려 주셨는지…… 남은 시간 열심 히 교회 다니고 봉사하고 전도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저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세상을 참으로 못 살았구나. 어디 가서 혼자 죽고 말지, 얼마나 더 산다고 아들 몸에 칼을 대며 살려는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워 서 아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그래 기도하자. 주님이 알아 서 해주시겠지…….’ 하고 그날부터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여 저를 받아주소서……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한없는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고 한심스러웠습니다. 정말 주 님께 매달렸습니다. “제가 너무 어리석게 세상을 살았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신다면 주님의 말씀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겠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매일매일 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교수님과 아들이 면담을 시행하였고, 한 달밖에 못산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아 들이 결심을 했나 봅니다. 우리 어머님도 찬성도 못하고, 반대도 못하고 있을 때 아들 이 마지막으로 며느리와 상의해서 결정하고, 저보고 “아빠, 우리 열심히 살아요.” 하 는 말에 한없이 눈물만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아들의 결심과 부천성모병원의 도 움으로 여러 후원 기관의 지원금을 연결받아 1,500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해결하고 수술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수술이 잘 되어서 아들도 건강하게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때 당 시에는 얼마나 무섭고 아빠가 미웠겠습니까? 저번에 TV에서 봤는데 이식수술을 잡 아놓고 수술날 아들이 도망을 가서 수술도 못하고 아빠가 사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17


만일 저도 저희 아버님께서 간 이식수술을 하자고 하면 어떨지, 참으로 힘들었을 것 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이식수술이 끝나고 회복 중에도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정말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었고 3개월 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이나 제가 정말로 걱정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약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3개월 만에 폐로 암이 전이 되어 암과의 전쟁이 또다 시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모습이 변해가고 있지만, 저는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아들이 있잖아요. 제가 서두에 ‘아들’이란 단어를 생각하고 펜을 들었지만 정말 행복 합니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주님과 의 약속을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한 인생의 생이 가는데 무얼 얼마나 잘 먹고 잘살려고 남의 눈에 피 눈물 나 게 만들고 남의 가슴에 못을 박고 살았는지 너무 한심한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 면 좋은 일 많이 하고 성질내지 않고 웃으면서 살았을 것을, 못내 아쉽네요. 인생도 영화처럼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다면 어떨까요? 지금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우리 아들, 며느리, 손녀 때문이지요. 우리 아들 잘 키운 거 같지 않나요? 아무튼 너무 형편없는 글, 두서없는 글 읽어주신 분께 감사드 리며, 댁의 가정에 행복과 건강과 사랑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비옵니다. 감사합니다.

18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장려상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장○자 수녀

11월 15일 드디어 8개월 된 네루꾸이는 엄마 품에 안겨 울란바타르에서 서울행 비 행기에 몸을 실었다. 네루꾸이는 태어나서부터 잦은 감기와 호흡 곤란으로 사경을 헤맸지만 원인을 모르 고 몽골의 강한 추위로 인한 감기로만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파랗게 질리고 숨이 고르지 않고 헐떡거리는 네루꾸이를 안고 인근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한 결과 심 장에 이상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울란바타르 모자센터(어린이 병원)로 이송되어 진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19


료를 받아 본 결과 심실중격결손증, 즉 폐동맥 입구가 막히지 않아 빨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다고 하였으나,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몽골에서는 도저히 심실 중격결손증 수술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아 어린 생명을 앞에 두고 부모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안고 슬픈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 2016년 6월 5일 학교법인 가톨릭학원 상임이사 손희송 주교님을 비롯하여 서 울성모병원이 몽골을 방문하였을 때 서울성모병원 병원장님과 국제협력팀장님께 심 장병 어린이 돕기 사업에 대한 내용을 듣고 수소문 끝에 이제 5개월 된 네루꾸이 부 모님이 우부르항가이 아이막에서 422km나 되는 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네루꾸이는 5개월 된 아이치곤 아주 작고 예쁘고 티 없이 해맑은 천사였다. 하느님 께서 이처럼 티 없이 맑고 고운 천사를 통해 무엇을 하시고자 하시는가를 먼저 생각 하게 되었다. 그 아이의 맑디맑은 눈망울은 온 세상의 악을 저버리고 많은 선을 꼭 품 어 안고 있는 천사로 보였다. 입원에서부터 수술까지 많은 스태프들의 노고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특히 한 국 어린이도 아니고 타국에서 온 그것도 8개월밖에 안 된 어린 생명을 살리는 일에 서로의 마음을 이렇게나 쏟다니……. 아이가 회복되기까지 모두는 두 손을 가슴에 모 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주는 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회복이 될 때야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오늘도 몽골의 겨울 날씨는 매서운 강추위가 계속된다. 아침 일찍 7시에 집을 나서면 살얼음 같은 매서운 강추위는 콧등을 칼로 베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언제나, 아무 이유 없이, 어려운 환경에 있는 이웃나라를 돕는 한국의 모든 국민들을 생각하면 가슴을 저 절로 따뜻해진다. 그러면서 “아! 아름다운 대한민국 만세”를 작은 소리로 외쳐본다. “하느님, 인간의 종락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시나이까!”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지금은 네루꾸이의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의 마음 또한 나와 같으리라 믿는 다. 이들이 아무 조건 없이 생명을 살리는 한국의 서울대교구 서울성모병원을 기억하 면서 어렵고 힘든 삶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언젠가는 복음의 기쁜 소식이 이들 마음 안에 자랄 것이다. 특히 네루꾸이를 비롯 해서 심장병 수술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은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서 남을 베푸는 데 한몫을 하리라 희망하며 몽골의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해본다. 20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장려상

아이를 살린 한 줄기 빛 임○련

이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 후 겪은 많은 일들이 생각납니다. 첫 아이를 낳고 3년 만에 생긴 아이를 4개월 만에 하늘로 보낸 후, 그렇게도 생기지 않던 아이가 이제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자 기적처럼 우리 부부에게 와주었습니다. 아 이를 잃는 슬픔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기에 입덧으로 잘 먹지 못해 힘들어도 좋은 것만 먹으려고 노력하면서 태교에 나름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산부인과에서 검사를 할 때마다 긴장하고, 결과가 좋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21


습니다. 다행히 검사결과는 모두 좋았고, 그제야 우리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을 바라면서 ‘똘망이라는 ’ 태명을 짓고 출산준비를 하였 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만만 남았다고 생각한 우리 부부에게 막달로 갈수록 “아이 체중이 잘 늘지 않는다.”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다시금 걱정과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했 습니다. 병원에 갈 때마다 태동검사를 해봐도 이상은 없었기에 아이의 체중이 빨리 늘기만을 기도하였고 아이가 2.5kg을 넘어서고 나서야 우리는 수술날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똘망이는 세상이 너무 궁금했었는지 2주나 일찍 세상 밖으로 나왔고, 다행 히 2.45kg으로 인큐베이터에는 간신히 안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병원과 조리원에서 가장 작은 아이였고, 가뜩이나 안쓰러운 아이는 황달로 인해 2번 이나 엄마와 떨어져 인큐베이터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황달은 모든 신 생아가 겪는 것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다만 엄마 품을 계속 떠나 있어야 하는 아이가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이 모든 것은 앞으로 닥 칠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지속된 황달로 찾아간 소아과에서 아이의 심장 소리가 이상한 것 같으니 큰 병원으 로 가보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앞이 캄캄해져, 우리 부부는 돌아와 서도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무사히 넘기고 이제 안심하고 있었 는데 심장에 이상이라니……. 순간 막달에 아이 체중이 많이 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조리원을 나오자마자 병원을 찾아가서 이제 3kg도 되지 않는 아이에게 온갖 검사 를 할 때마다 제발 별 일 아니기를 기도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이의 심장에는 구멍 이 여러 개 있었고, 그중 2개의 구멍 사이즈가 크기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 를 들었을 때 또 다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그 것도 3kg가 조금 넘는 아이에게 그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고 시련일까요? 내가 태교 중에 무엇을 잘못하였기에 이 아이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안겨주게 되었는지 괜히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22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이런 우리 부부에게 의사 선생님은 수술만 하면 건강해진다고, 이 아이보다 더 작은 아이도 수술하니 걱정 말라고 하셨고, 그 말씀에 그나마 약간의 안심이 되었지만, 갑 자기 큰 수술비와 입원비를 감당해야 되는 현실이 막막할 뿐이었습니다. 아직 핏덩이 같이 어린아이를 수술한다는 것과 들어가는 돈 때문에 망설이는 우리 부부를 보고 의 사 선생님이 서울성모병원 사회사업팀에 진료비 지원 신청을 통한 의료사회사업 서비 스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저희에게 한 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알아보고 사회사업팀에 신청을 하였고, 후원이 된다 고 연락이 왔을 때 저희는 누군지도 모르는 후원자분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습니다. 입원을 하고 2일 후에 있을 수술 준비를 위해 온갖 검사를 하고, 너무 작아 혈관도 잘 보이지 않는 아이에게 바늘을 꽂을 때마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로 인해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달래줄 뿐, 엄마이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플 뿐이었 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도 아직 너무 어린아이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게 안쓰러 우셨는지 많이 보채는 아이를 귀찮아하지도 않고 저와 같이 달래고 조금 더 신경을 써주셔서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대기실에서 같이 있던 아이를 혼자 수술실에 들 여보내고 나오면서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눈물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4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 동안 수술이 잘 되고 아이가 잘 견디기만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상 보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자 마음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 중환자실에서 작은 몸에 여러 개의 튜브를 달고 있는 아 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이 찢어지고 눈물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엄마 목소리를 아는 아이이기에 그저 아이를 어루만져줄 뿐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간호사분께 거 듭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를 드리고 나올 뿐이었습니다. 주변 환경이 낯설었는지 아 니면 고통이 심했는지 분유를 거부하는 아이에게 젖을 짜서 갖다 주면서 잘 먹고 얼 른 입원실에 내려오기만을 바랐습니다. 너무 어린아이이기에 의사 선생님은 만전을 기하기 위해 검사 결과가 괜찮을 때까 지 중환자실에서 며칠 더 지켜보기로 하였고, 그 결과 아이는 4일이나 중환자실에 혼 자 있어야 했습니다. 결국 며칠을 혼자 있던 아이가 모든 것을 거부하고 몇 시간 동안 울기만 한다는 전화에 얼른 달려와 젖을 물리고 안정을 되찾는 아이를 보면서, 이 어 린 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23


입원실로 내려와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들의 정성어린 관심과 보살핌 속 에 아이는 점점 건강 을 되찾아, 3개월 동안 늘지 않던 몸무게가 퇴원할 때는 많이 늘 었고, 지금도 건강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 키우면서 힘들 때도 많지만, 중환자실에 있 는 동안 떨어져 있던 아이를 생각하면 다시금 이 정도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 각이 듭니다. 아이가 또래보다 모든 발달도 늦고 키도 작고 몸무게도 작다 보니 잘 크고 있는지 걱정이 되어 정기검진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면 “잘 크고 있으니 걱정 마 세요.”라는 그 한마디가 저희에게는 늘 위로가 됩니다. 이제 수술을 받은 지 1년하고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 아팠던 아이는 지금도 열심히 크는 중이고 천사 같은 미소를 보여줄 때마다 저희 부부는 행복을 느낍니다. 그때 수 술을 잘 해주신 의사 선생님을 비롯한 의료진과, 금전적으로 힘들었을 저희에게 도움 을 주신 후원자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런 행복은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그때 도움을 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리고, 이런 서울성모병원의 의료사호사업 서비스가 저희처럼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단비 같은 일인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리 고 앞으로도 의료지원이 계속 지속되어 많은 힘든 분들에게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그 동안 저희가 받은 정성어린 도움과 후원에 거듭 감사드리고 저희 아이들도 앞으 로 남에게 베풀 줄 아는 그런 아이들로 키우고 싶습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번창하시고 좋은 일들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바 랍니다.

24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장려상

안면 상실 구강암 환자 턱 재건으로 새로운 삶 찾아 장○자

나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이 극에 달해서야 병원을 찾아갔다. 입 안에 잇몸이 부어올 랐으나 피곤해서 그런가 싶어 약국에서 약을 사서 먹으며 통증을 견뎠다. 잇몸이 약 해 생긴 염증이려니 했지만 날이 갈수록 잇몸은 점점 부어올랐고 통증도 더 이상 참 기 어려웠다.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25


동네 치과 의사 선생님은 상태를 보더니 큰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하였 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선뜻 큰 병원에 가지 못했다. 하루하루 미루며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련만……. 뒤숭숭하고 움츠린 마음을 가다듬어 ‘그래 오늘은 병원에 꼭 가야겠다.’ 다짐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겨우 집을 나섰다.

부천성모병원에 처음으로 간 것은 2014년 2월쯤이다. 치과 교수님이 진료를 보시 더니 구강암이라고 하셨다. 아래턱 절반을 절단해서 제거해야 한다고 하셨다. 순간 내 머릿속은 텅 비어 모든 것이 막막하고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잠시 눈을 감았다. 의료비 걱정으로 초점을 잃고 멍하니 있는 나를 바라보며 기다려주시던 교수님이 내 마음을 읽으신 듯 바라보고 계셨다. 그때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것 인지 절실히 느꼈다. 많은 환자를 진료하시기도 고단하실 텐데 교수님은 ‘우리 병원에 사회사업팀이 있 다’고 친히 지원 요청을 해주셨다. 사회사업팀의 상담을 받으며 적극적인 지원을 받 게 된 나는 ‘선택 받았구나.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이 시청 담당 자와 전화상으로 나의 어려운 형편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에 나는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국가에서 시행하는 긴급복지 의료지원 신청을 할 수 있었고, 300만 원의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훌륭한 교수님과 헌신과 봉사로 희망을 주는 사회사업팀은 가진 게 없으면 마음도 빈곤해지는 것이라 생각하며 무기력하던 초라한 나에게 삶을 변화시키는 경이로운 힘을 주었다. 감사하다는 말조차 나오질 않았다.

예정된 수술 날짜에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수술에 임했다. 무엇보다 교수님을 신뢰 하고 잘될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에 내 몸과 마음을 그냥 맡겼다. 1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끝에 수술이 끝나고 마취에서 깨어나 보니 중환자실이었다. 몸은 아팠지만 중환 자실에서 머무르다가 일반병실로 옮겨갈 때까지 두려움도 사라지고 마음 또한 가벼 워졌다. 병실은 8인실. 쉴 틈 없는 간호사 선생님들, 환자를 찾아오는 방문객들, 이런 저런 세상 이야기도 들리고 호전되어 퇴원하는 사람에게 서로 인사하고 격려해주는 환자 들, 시간은 조금씩 흘러갔고 나도 많이 호전되어갔다.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26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만큼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한 달 정도의 병원 생활 속에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 다. 사회사업팀 선생님은 보호자 없는 나에게 유일한 방문객이 되어주셨다. 부어 있 는 얼굴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요새 기분은 어떤지 등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사람 대하는 것을 기피하였던 나에게 그런 사소함은 연습이 되어갔다. 암덩이는 제거되었지만, 여성으로서 나의 얼굴은 심하게 변형되었다. 교수님은 퇴 원을 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외래로 오라고 하셨고, 절반의 턱이 상실되어 턱과 턱 사 이를 쇠고리로 연결하였으니 재건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안면기형으로 대 인기피증이 생기고 물조차 주르르 흘러내리는 등 음식 섭취가 너무 힘들었다. 재건수 술을 하긴 해야 되는데 거액의 의료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어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또 다시 남의 도움에 의탁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훌쩍 2년을 넘겼다. 교수님과 사회사업팀 분들이 물심양면 도와주셨는데…… 아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아 닌데…….

나는 다시 자신을 가다듬으며 용기를 내서 ‘교수님,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마음 속에서 외치며 2016년 4월에 병원을 갔다. 모든 사정을 아시는 교수님은 이번에도 친 히 사회사업팀을 연결하여 천주교 한마음한몸 운동본부로부터 900만 원이라는 거액 을 지원받아 재건수술을 걱정 없이 하게 해주셨다. 재건수술은 교수님과 성형외과 교 수님이 함께 집도하실 것이라며, 종아리뼈를 떼어 안면부의 혈관에 연결시키는 유리 피골피만술을 실시한 후 떼어낸 뼈를 절골하고 형태를 복원하는, 수술 시간만 12시 간 넘게 걸리는 고난이도 수술을 두 분 교수님 집도하에 받을 수 있었다. 수술은 정말 성공적이었고 수술 결과도 좋았다. 퇴원을 앞둔 내가 혼자 사는 것이 걱정이 되신 것인지 간호사 선생님과 사회사업팀 선생님들이 가정방문을 나에게 제의하셨을 때 그 뜻을 선뜻 받을 수 없었다. 비닐하 우스에 사는 모습이 너무 누추하여 도리어 걱정만 더 끼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녀님과 선생님들의 마음을 언제까지 거절만 하기도 미안해졌다. 내가 음 식섭취가 힘들었기 때문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집에 찾아와 유동식과 음식, 그리고 사 람 사는 정을 나눠주셨다. 사회사업팀 수녀님과 선생님들도 쌀과 김장김치, 난방용품 을 직접 갖다주시며 차가운 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27


앞으로 임플란트 치료 받을 일이 남아 있지만 교수님이 있기에 모든 것이 잘될 것 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제 먹을 수도 있고,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너무 행복했다. 부천성모병원 선생님들이 따뜻하게 내밀어준 손도 잊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의지의 지표가 생겼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부천성모병원 원장님, 의사선생님, 간호사님, 신부님, 수녀님, 모든 직원분들, 자원봉 사자님들께 건강과 하느님의 가호가 있으시길 바란다. 투병 중인 환우님들도 모두 쾌차하시길 빈다.

28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7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장려상

꿈을 키워주는 병원 박○진

안녕하세요. 저는 덕산중학교 3학년 박○○입니다. 저는 부천성모병원 재활의학과에 입원할 수 있는 방학기간이 제일 기다려진답니 다. 이유는 제가 하고 싶은 생활운동부터 재활운동, 생활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부천 성모병원에 다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치료사 선생님들께서도 친형처럼 말도 편하게 해주시고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기에 운동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29


제가 이렇게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려는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입니 다. 저는 세 살 때 사고로 여러 번의 수술과 입원치료를 받았고, 하반신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랐고 불편한 걸 당연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점점 커가면서 친구들과 전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 친구들이 혼자서 하는 것들 을 저는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뭐가 됐든 혼자서 해보고 싶었기에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재활운동을 받으러 다니며 다리가 굳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제 가 가진 장애 때문에 더욱 더 위축되었습니다. 그래서 숨게 되고, 말이 없어지게 되었 습니다. 밖에 나가기 싫었고, 집에만 있고 싶고, 모든 게 하기 싫었지만 아빠, 엄마, 큰형, 작은형이 제 곁에서 늘 응원해주기에 힘을 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걱정하시던 엄마께서 부천성모병원 사회사업팀에 집안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 입원재활치료비를 지원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아빠의 월급만으로 저 희 가족 5명이 생활하고 있었기에 100만 원이 넘는 입원재활치료는 엄두를 내기 어 려워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엄마와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제 마음을 알아챘 나 봅니다. 그래서 이번 겨울방학은 병원비 걱정 없이 부천성모병원에서 한 달간 보 톡스 치료도 받고 더 심화된 치료들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저를 위해 힘써주신 가족들, 병원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하고, 존경스럽다는 말 전 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 용기내고 힘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 또한 많은 분들께 다시 베풀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하고 결심 합니다. 치료사 형, 누나들은 저의 장애를 장애라 말하지 않고, 불편함으로 바라봐주며, 저 도 잘할 수 있다고 따뜻한 말을 해주십니다. 힘들 때마다 한 번만 더 힘내자고, 할 수 있다고 코치해 주실 때마다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병원의 지원 으로 치료받는 입원 기간에는 저 혼자 큰일(?)을 처리하고 뒤처리도 하였습니다. 생 활 재활치료 덕분에 자신감을 갖고 해보았답니다. 엄마도 내심 대견해 보였던지, 칭 찬을 마구마구 해주셨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도와드릴 수 있고, 혼자 할 수 있다는 것 이~!

30 / 2017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저는 꿈이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와 우리나라 행정의 수장인 장관입니다. 문화체육 관광부, 보건복지부, 미래창조과학부 같은 곳의……. 아직은 어려서 좀 더 배우고 익 혀 꿈을 이루어나가려 합니다. 해외에서는 로봇으로 하반신 장애를 이겨냅니다. 로봇 의 도움으로 걷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여러 제작업체끼리 시험하고 경쟁하며 순위를 가리고 상용화하려는 법안까지 준비하며 실용화하려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아무 런 법안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속상합니다. 제 꿈은 이런 모든 꿈 들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되는 새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부천성모병원은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차별 없고, 서로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천성모병원의 마음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세상으 로 이어지길 소원합니다. 그 기운을 얻어 꼭 저의 후대에는 저보다는 편한 세상을 만 들어주겠다고……, 과거 독립투사처럼 저도 약속드립니다. 내 가족, 나의 모든 지인 들 모두 사랑합니다. ♡

자선수혜수기 수상작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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