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톨릭중앙의료원 행동규범 Action Plan Story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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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규범 Action Plan Story 당선작


2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Contents 2018 APG 수상작

[대상]

감사가 가져온 중환자실의 기적(홍석진) / 4

[우수상]

너의 작은 소원(백준규) / 7 아름다운 이별 여정(곽지현) / 11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삶 속으로(김지해) / 16 식사의 의미를 찾아서(이환미) / 20 작은 실천에서 찾은 영성간호(박하나) / 23

[장려상]

작은 속삭임은 천사의 기도가 될지니…(한수진) / 27 하이파이브(High five)(조순화) / 31 까르보나라의 추억(최선희) / 36 211병동의 상호 존중 문화(우미란) / 40 급성기치료와 연명치료 간의 오해, 풀리다(윤선희 ․ 백은희) / 45 역지사지의 마음으로(조충희) / 50 이웃과 함께하는 여정(최선애) / 54 환자의 몸을 따뜻하게(김병현) / 58 눈으로 쓴 감사 메시지(이휘호) / 60 영상 CD가 안 열려요(이용성) / 64

APG 수상작 / 3


2018 APG 수상작 대상

감사가 가져온 중환자실의 기적 홍석진(성바오로병원 외과중환자실)

가톨릭대학교 성바오로병원 간호부는 2017년 공식적으로 감사운동의 첫 발을 내 딛게 되었다. 그러나 이전부터 외과중환자실은 ‘땡큐 노트’를 부서에 비치하여 부서 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작은 감사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감사운동을 전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동안 부서원 위주의 감사의 표현에서 더 나아가 환자 및 보호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 오다가 장기 재원 환자를 대상으로 ‘중환자실 다 4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이어리’ 작성을 통해 감사운동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물론 여러 병원에서 많이 시작하 고 이미 시행하고 있는 식상한 사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병원에서 처음 시작 하였고 이를 통해 작지만 감사운동의 불씨를 피운 계기가 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중환자실 다이어리로 감사운동을 시작하다 성바오로병원 외과중환자실은 다양한 외과계 환자들이 입실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중 장기 재원 환자를 대상으로(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선정) 노트를 만들어 중환자 실 다이어리(부제: 감사노트)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간호사 위주의 작성에서 더 나아가 가족들까지 참여함으로써 환자 및 보 호자 만족도의 극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감사노트를 작성한 환자는 병동 전동시 노 트를 보호자에게 전달함으로써 그 만족도는 배가 되었으나, 정작 그 노트를 작성한 간호사들이 더욱 행복감을 느끼고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다이어리를 작성한 환자 중에 사망한 환자도 있어 영안실에 가져다 드린 적도 있었 다. 그 노트를 받은 유족은 우리에게 매우 고마워했으며, 잊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감 사의 표현을 하기도 하였다. 비록 짧은 글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전하고 있지만 그 글 속에 찬란히 빛난 우리 간호사들의 마음은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불씨가 되어 불타오를 것이다.

기적을 만들어낸 중환자실 다이어리 중환자실 다이어리를 작성하면서 가장 잊지 못하는 환자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환자는 새벽에 교통사고를 당해 행인에 의해 발견되어 본원 수술실에서 응급수술 을 받고 중환자실로 입실한 50대의 남자 환자였다. 다발성 뇌 손상으로 인해 생명의 위험이 높았고 생존하더라도 침상생활을 면할 수 없다는 선고가 내려졌다. 우리는 환자가 사망을 앞두고 있음에도 가족의 적극적인 간호와 기도로 인하여 잠 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중환자실 다이어리를 작성하기로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간 호사들의 응원의 메시지가 넘쳐나기 시작하였고, 가족들은 그 응원에 힘을 내서 포기 하지 않았다. 그중 가장 잊지 못하는 간호사의 사진 첨부가 눈에 띄었다. 격리실 밖의 풍경을 사 진으로 담아 다이어리에 붙이면서 ‘밖에 직접 나가서 이 풍경을 보시기를’이라는 메 APG 수상작 / 5


시지를 달았는데, 이들 풍경은 절망 속에서 핀 마지막 잎새가 되어 희망의 불씨가 타 오를 것 같았다. 면역력이 떨어져 격리실에 입실하기를 수십 번, 호흡이 되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장 착하기도 하고 점점 우리도, 보호자도 지쳐가고 있을 때 거짓말처럼 기적이 찾아왔 다. 우리의 응원 메시지를 들었을까? 환자의 상태가 날로 좋아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환자는 휠체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병동으로의 이실 계획이 잡 히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도 이 순간을 기적으로 얘기하곤 한다. 물론 최선을 다한 의 료진, 포기하지 않은 가족, 살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 늘 환자 곁에서 열과 성을 다해 간호한 간호사의 사랑의 손길이 모두 합쳐져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현재 퇴원한 환자는 걸어서 다니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도 가능한 상태라고 한다. 이 러한 일들이 작은 운동에서 시작된 감사운동의 결과라고 우리는 감히 말하고 싶기도 하 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못하는 것은 다이어리를 전달할 때 그 행복한 마음일 것이다.

감사를 낳는 중환자실 다이어리 많은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고 좋은 결과를 보여준 사업을 우리는 처음에는 모방 수 준에서 시행하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처음이었고 그 벅찬 감동은 느껴보지 못한 사 람은 모를 것이다. 물론 환자가 사망을 한 경우도 있지만, 작은 노트가 보여준 큰 사 랑과 기적은 정말 따뜻했고 행복했다. 처음에는 글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느 날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사진이 붙어 있고, 가족들의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또한 관심 없을 것만 같던 의료진의 단 한마디 도 왜 이리 감사한지……. 감사하는 마음과 표현은 매우 중요하며 우리의 삶도 풍요 롭게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우리는 표현에 서투르며 표현하지 않아도 알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

감사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중환자실 다이어리’는 재원기간이 짧은 외과중환자 실 특성상 전 환자에게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활동을 지속적 으로 시행하여 외부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슴이 따뜻한 중환자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행복해하는 환자와 보호자, 웃는 모습 이 예쁜 간호사의 모습이 늘 지속되기를 바라며……. 6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8 APG 수상작 우수상

너의 작은 소원 백준규(서울성모병원 방사선종양학팀)

병원 내 모든 진료과, 병동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선생님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 끼겠지만 방사선종양학과에서 일을 하다 보면 세상은 때로는 너무나도 불공평하다 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아직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은 천사 같은 아가들이 병원에서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숨이 턱 끝까지 차도록 친 구들과 운동장을 뛰어 놀아야 마땅할 못다 핀 꽃들이 삭막한 치료실에서 숨이 차 힘 들어하는 것을 볼 때면 모두에게 공평한 세상이 맞는지 의심이 되곤 합니다. APG 수상작 / 7


그 아이와의 네 번째 만남 많은 아이들 중에 민정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민정이는 언제나 밝고 씩씩했습 니다. 항상 웃으며 다가와 인사를 하고 안부를 건네는 예의바른 아이입니다. 늘 솔직 하고 감정표현에 충실한, 딱 그 나이 때 여느 여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였습 니다. 처음 방사선 치료를 시작할 때 늘 웃던 소녀의 모습은 치료가 중반을 넘어서자 한 숨으로 바뀌었습니다. 항암과 방사선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빠지는 것에 너무나도 스 트레스를 받았고, 방사선 치료를 받은 피부가 까맣게 타는 것에 땅이 꺼져라 한숨 쉬 는 영락없는 여고생이었습니다. 그렇게 투덜대는 아이를 괜찮다며 다독여주고, 실망 감을 없애주려 농담도 건네고 하는 사이 어느덧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힘들고 길었던 한 달간의 치료가 끝나고 우리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다시는 치료실에서 보지 말자고 약속을 하며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약속한 지 1년도 안 돼서 민정이는 다시 병원에 왔습니다. 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이지만 치료실이 너무나 익숙 해 보이는 듯한 민정이의 행동이 마음을 또 한 번 쓸어내리게 했습니다. 다시 한 달간의 치료가 끝나고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길 또 한 번 약속했지만, 1년 반 후에 치료실에서 또 민정이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화장도 하고 꾸미기도 하고 열심히 학교도 다니던 중 병 이 재발하여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민정이의 마지막 방사선 치료가 무사히 끝나고 계절이 바뀔 때쯤 환자복을 입고 찾아온 민정이를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다시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해 있었던 것이었습니 다. 힘든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 선생님이 보고 싶어 내려왔다는 민정이의 마음씨가 너무나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여 볼 낯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내려 오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많은 용기를 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 저도 용 기를 냈습니다. 민정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준비해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때 저를 보고 너무 반가워하던 민정이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창 힘들 때 선생님 이 병문안을 와주어서 힘이 났다는 말에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핸드폰 번호를 8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알려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민정이가 힘들 때마다 저는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좋은 친 구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널 응원할게 한 번은 항암치료를 받던 중 호중구 수치가 떨어져 치료를 중단하고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힘들다고 하는 민정이의 말에 퇴근 후에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민정이 어머니도 계시지 않아 얼음주머니에 얼음도 갈아주고 물도 채워주고 많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밟혔지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민정이 어머니로부터 선생님이 다녀가신 후 민정이가 거짓말처 럼 호중구 수치가 올라가서 컨디션도 많이 좋아지고, 다시 항암을 시작하게 되었다며 감사하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당연히 저 때문은 아니겠지만 민정이의 컨디션도 회복 되어 너무 다행이었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저에게 감사함을 표시해주신 어머니와 민 정이의 마음 또한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병원에서 둘 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나 날이 민정이의 건강은 회복세를 보였습니다. 항암치료를 다 받고 얼른 퇴원해서 선생님에게 소원을 들어달라고 할 것이라며 입 버릇처럼 얘기하고는 했던 민정이가 마침내 지긋지긋한 항암치료가 끝나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정이가 그토록 바라던 소원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기에 또 한 번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민정이가 그토록 원하던 소원은 병원이 아닌 곳에서 같이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항암 후 외부 음식을 먹으면 구토 증세가 있다고 하여 그냥 영화를 보여 달라 고 했습니다. 저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민정이에게는 소원이었다고 생각하니 마 음 한켠이 짠해졌습니다. 약속 장소를 정하고 영화도 정하고 밥은 못 먹지만 차도 마 시고 구경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민정이는 지금은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고 어머니를 도와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앞 으로 민정이가 걸어갈 길이 비단길은 아닐지어도 언제나 꽃길만 걷기를 바라고 또 기 도하겠습니다. APG 수상작 / 9


민정아! 잘해준 것도 없고 더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 늘 미안하게 생각해. 작고 어 린 네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지 만 앞으로 두 번 다시는 너의 앞에 시련이 없기를 바랄게. 못나고 부족한 사람이지만 너로 인해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알게 해줘서 너무나도 고마워. 아마 이 일을 하면서 나에게는 가장 보람찬 순간으로 기억 될 것 같아. 그 동안 너를 힘들게 했던, 그리고 앞으로 너를 힘들게 할지도 모를 아프 고 지쳤던 지난 기억들 중에서 너에게도 내가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는 좋은 기억으 로 남았으면 좋겠어. 네가 지금부터 걸어가야 할 길이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 찬 꽃길이기를 바라는 마음 을 가득 담아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고 응원할게. 꼭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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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PG 수상작 우수상

아름다운 이별 여정 곽지현(부천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국화꽃이 아름다운 계절 10월에 나는 재발성 유방암과 뇌전이로 세브란스 병원에 서 수술을 비롯하여 수십 회의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 후 말기 진단을 받고 가정 호 스피스 케어를 받기 위해 집으로 모신 56세 여자 환자를 의뢰받아 첫 가정방문을 하 였다. 진단명과 3차 상급병원에서 치료받은 점, 그리고 주 돌봄자가 자녀라는 점에서 환 자의 상태와 가족의 심리상태가 대략 예측되는데, 실제로 나의 생각은 퍼즐을 맞추는 APG 수상작 / 11


것처럼 정확히 들어맞았다.

조심스러운 첫 만남 거실에 누워 계신 환자는 간단한 대답은 하였으나 의사소통은 어려웠고 얼마 전부 터 거동이 어려워 자녀들이 거의 들다시피 하여 기대어 앉는 정도였으며, 삼키는 것 도 어려운 상태로 이미 폐렴의심으로 항생제 치료도 하였던 상태였다. 그리고 선천적 인 섬유선종(유방에서 생기는 가장 흔한 양성종양)으로 생긴 온 몸의 크고 작은 멍울 들은 그녀의 삶이 순탄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나를 맞이하는 앳된 딸과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 였고, 10가지 이상의 질문지를 작성하여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3차 상급 병원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중단하고 가망이 없다는 시한부 선고 후 바로 호스피스 이용을 하게 되면 대부분 분노와 거부감과 투사, 의료인에 대한 불신 상태의 마음을 접하게 되어 그들의 심리적 상태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접근하여야 한다. 따라서 나는 시험을 보는 학생처럼 정답을 내놓아야 하는 압박감이 들 정도의 부담감이 컸던 첫 만남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은 내게 이제까지 치료해 온 과정과 현재 상태에 대해서 충분히 전달해주었고, 나 역시 호스피스완화치료와 환자의 상태에 따른 가정에서의 돌봄, 이후 치료계획에 대해서 상세히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환자의 삶과 엄마를 보내야 하는 고 통스러운 시간 안에서의 자녀들의 마음까지도 이어졌다. 딸의 동그랗게 뜬 누 눈에는 슬픔과 큰 딸로서 죄책감이 가득 차 있었다. 선천성 섬 유선종으로 사계절 내내 긴 옷차림만 하셨다는 환자는 오로지 삼남매에게 온 세월을 쏟았다고 했다. 3년의 투병으로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가득하다고 했다. 그 리고 자신들이 간호를 잘 못해서 이렇게 나빠지는 건 아닌지 죄책감에 눈물을 글썽거 렸다.

그래, 동행하는 거야 딸의 눈물을 보는 순간, 23살 무렵 엄마와의 애착에서 이별을 할 때 나는 서울로 올라 오는 버스 안에서 얼마나 울고 또 울었는지 그 기억이 문득 스쳐갔다. 그런데 이 자녀들 은 엄마와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지 않은가? 가슴이 너무나 아려왔다. 12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이별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가 힘겨운 일일지라도 나는 호스피스 마음으로 함께 동행할 것임을 마음으로 약속했다. 이후 가정 방문을 할 적마다 기다 렸다는 듯이 반겨주는 자녀들에게서 부정, 거부의 마음은 점차 옅어지고 수용적인 마 음이 커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나의 간호와 자녀들의 최선의 돌봄이 이루어졌으나 환자는 날 이 갈수록 의식이 감소되고 약도 삼키기가 어려워졌다. 그럴 적마다 자녀들의 불안과 슬픔은 깊어졌고, 나는 방문 외에 24시간 전화 상담을 통해 자녀들과 환자상태에 대 해 소통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공감해주었다. 첫 만남 한 달 후 예상한 대로 38도 이상 고열과 뇌 손상으로 인한 경련이 미미하게 나타나 응급실로 내원하게 되었고, 환자의 여명과 자녀들의 애착 정도를 고려하여 1 인실에 입원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일반 병동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자녀들의 걱정과 불안은 병동 간호사들을 신뢰하지 못함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호스피스는 팀으로 접근시 더욱 더 빛을 발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주치의 선생님과 원목 수녀님, 그리고 호스피스 봉사자님을 연계하여 매일 2-3차례, 어떤 날엔 반나절 이상 머물며 각각의 역할로서 신체적, 영적, 정서적인 지 지를 지속적으로 하였다. 그러한 팀 접근은 불안한 자녀들의 마음을 녹여주고 있었 다. 자녀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혼자였다면 왜 우리 엄마에게 고통과 시련을 줄까 하는 원망과 분노만 있 었을 텐데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감사함과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채우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힘든 시간 안에서 우리가 가지는 선한 마음을 잊었을 뿐이라고……. 우리 자녀들 마음 안에는 사랑과 감사함이 충만하기에 좋은 분들과 인연이 되었다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제가 감사하다고 답하자 울보인 큰 딸은 또 눈물을 흘렸다.

엄마를 보내고… 많은 이들의 기도와 사랑 덕분인지 환자는 큰 경련 없이 안정적으로 상태가 유지되 었고 “천○○ 님!” 하고 부르는 호명에 가늘게나마 “네.” 하며 반응도 잠시 보였다. 큰 APG 수상작 / 13


딸의 목소리도 알아들으셔서 나와 딸은 마주보며 기쁨의 웃음을 지었다. 환의 상의에 원목 수녀님이 달아주신 기적의 패를 보면서 나는 말했다. “보세요. 이게 기적이에요. 기도 안에서는 늘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 걸 잊지 마세 요.” 그리고 11월 24일 환자는 ‘로사’라는 대세를 받고 우리는 기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그 순간, 호스피스 팀과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있는 그 모습 은 한 장의 사진처럼 내 기억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바라보고 계신 하느 님의 모습까지도 보면서 나는 이것이 호스피스의 절정임을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체 감하는 순간이었다. 대세 이틀 후 환자는 혈압 저하와 가쁜 호흡, 입안 출혈 증가 및 간헐적으로 경련도 나며 하느님 곁으로 가시려 준비를 하시는 듯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자녀들과 함께 편 안하게 잘 가시도록 기도를 주로 해드렸지만 임종 단계에 들수록 따님은 자꾸 마음이 무너진다고 하며 “저도 따라 가고 싶어요.”라고 했다. 그럴 적마다 이렇게 힘든데 엄 마가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예쁘게 가시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를 알려주 며 다독거렸다.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끼며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피부간호와 구강간호 등 기본간 호를 제공하고 임종 전 기도를 자주 해드렸다. 그리고 임종하는 그 순간 당황하지 않 고 온전히 자녀들 품에서 가시도록 그 순간을 재연하듯 끊임없이 알려주었다. 11월 30일, 무서운 한파가 찾아들기 전 ‘천○○ 로사’는 눈을 감았다. 가정 방문으 로 외부에 있어 마지막을 보진 못했지만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가셨다고 했다. 병동 의 배려로 온전하고 충분하게 세 자녀들의 품에서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다. 매 순간 순간 힘들 때마다 연락을 해오던 큰 딸은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아 나도 몇 시간 후에 소식을 들었다. 참 대견했다. 슬픔보다는 뭔지 모를 벅참이 올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호 스피스 팀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함께 모여 있었고, 우리는 대세를 받던 그날과 같이 자 녀들과 함께 연도를 바쳤다. 그리고 영성부 신부님께서 장례미사를 하며 자녀들은 엄 마와 안녕을 고했다.

이별 후 남은 가족들의 첫 마음은 실감이 나지 않고 평온함이 찾아들기까지 많은 14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시간이 필요하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와 함께 가정을 방문하여 충분하고 건강한 애 도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마음이 어려울 때 늘 엄마를 위한 기도를 바치도록 했다. 아름다움은 때론 좌절과 고통을 양분삼아 아주 느리게 찾아오는 것처럼 엄마와의 이별 안에서의 자식의 홀로서기도 그렇지 않을까……. 호스피스 안에서의 이별 과정 은 고통, 슬픔, 좌절, 죄책감, 분노 등 환자와 가족이 느낄 그 느린 걸음의 고통에서도 나는 헤아릴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많다.

2018년 새해, 큰 딸은 이렇게 인사를 해왔다. “선생님, 엄마와 잘 이별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언제나 함께 해주셔서 엄마와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었어요. 무너질 때마다 일어설 수 있도록 아낌없이 사랑을 주셔서 엄 마를 더 잘 돌볼 수 있었어요. 감사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마음 잊지 않을게요. 감사합 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천○○ 로사와 자녀들의 이별 앞에 붙인 아름다움이란, 묵묵히 이별을 하면서도 결 코 엄마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여 자녀들의 삶에 녹아들 사랑이라 뜻하고 싶 다. 지금도 어느 누군가는 느린 고통 안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 다. 그 여정 안에서 사랑으로 함께 동행하는 호스피스 간호사, 그것이 나의 삶이자 영 성으로 체현하는 나의 소명이다.

APG 수상작 / 15


2018 APG 수상작 우수상

함께 마음을 나누는 삶 속으로 김지해(성바오로병원 내과중환자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사를 넘나드는 곳이 바로 내과중환자실이다. 그런 곳에는 일하 는 간호사로서 소소한 일상을 통해 희로애락을 느낀다. 내과질환은 만성질환이라 증 상이 완화되면 퇴원했다가 또 악화가 되면 재입원을 하기에 낯익은 환자들도 더러 있 다. 그중 유독 신경이 쓰이던 환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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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멋대로인 환자 그 환자는 50대 후반으로 폐질환을 앓고 있었고, 24시간 산소호흡기에 의지해야만 했다. 매우 까다로운 성향에 이것저것 요구사항까지 많았기에 대다수의 간호사들은 그 환자를 담당하는 것을 기피하곤 했다.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 환자와 80여 일간 중환자실에서 겪었던 추억을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 숨차! 산소 좀 올려줘!” “환자분 많이 힘드시죠? 담당 주치의에게 보고하고 처방이 나면 조절해 드릴게요. 숨을 천천히 쉬도록 해보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져보세요.” “알지도 못하면서 기다리래. 산소 좀 올려주고 가! 내 상태는 내가 더 잘 알아.”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쏘아붙인다. ‘오늘도 자기 멋대로야…….’ 이렇게 속으로 읊 조린다. 간호사인 나도 심기가 불편해졌다. 또 큰소리가 난다. ”주사 좀 잘 놔봐! 만날 꼬붕들만 보내고…… 잘 놓는 사람 좀 보내.” 출근하면 이런 저런 불평들을 듣는 게 하루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환자는 환자대 로, 간호사들은 간호사대로 자신들의 힘겨움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수없이 많은 환자 들을 겪어왔지만 이번은 쉽지가 않다. 나이트번 간호사가 어젯밤 일들을 내게 봇물처 럼 쏟아 내기 시작한다. “세상에 환자분이 회를 주문해서 중환자실로 회가 배달이 왔어요. 초장과 와사비 냄새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한다. 대략 난감한 이 상황을 환자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 끝에 조심스레 환자에게 다가가 밤새 잘 주무셨는지, 불편한 것 없었는지, 다른 소잿거리만 찾아 안부를 여쭤보았다. 그러자 환자가 내게 먼저 말을 한다. “미안해 요!”라고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진다. “내가 회가 너무 먹고 싶어서……. 다음에는 안 그럴게요.” 마음이 찡했다. 찾아오는 가족이 그에게는 없다. 그의 목숨이 다하면 그때 뒷수습은 해주겠다며 말 한마디 전해주고 간 여동생이 그의 유일한 가족이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마음 이 개운치 않았다. 병원 밥을 두 달 이상 드셨으니 얼마나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 얼마 나 그리웠을까! 코끝이 찡하다. 하지만 입원생활에는 환자들이 준수해야 할 지침이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원칙만을 고집하기가 힘들다. 아마도 밤 근무를 했던 간호사도 그의 사정을 잘 아는 터라 제지하지는 못했을 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른 APG 수상작 / 17


환자들도 함께 입원해 있으니 원칙과 연민 속에서 얼마나 고심했을까!

저랑 데이트해요 폐의 기능이 다해가기에 그의 삶이 많이 남지 않았고, 또한 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가족들이 있는 환자들을 알뜰히 환자의 입맛에 맞는 음식들을 준비해서 이것저것 권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도 없다. 어느 날 아침 “이제는 가야지. 미련 없어!” 하면서 고개를 떨군다. “무슨 말씀을 하 세요? 기운 내세요.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라고 힘을 보태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환자분, 산소 연결해서 저랑 1층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 드시러 가시겠어요. 제가 한 잔 대접할게요.” 환자는 쑥스러운 듯 웃는다. “내가 나갈 수 있나…… 힘들어.” 하며 입가에 작은 미 소를 머금는다. “주치의가 허락만 한다면 저랑 바깥바람 쐬면서 커피 한 잔 하시면서 데이트해요.” 라고 말을 건넨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난 바로 주치의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20분간의 외출 허락을 받았다. 나는 설렘을 안고 환자에게 다가가 주치의가 허락을 했으니 지금 산소 연결해서 밖으로 나가자며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환자는 “아니에요. 내가 생각해보니 곧 죽을 사람인데, 괜히 나 데리고 나갔다가 문제가 생 기게 되면 선생님한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갔다온 걸로 할게요. 고마워요.” 라며 환하게 웃는다. 생각해준 마음이 고맙다며 거듭 인사를 한다. 되레 내가 환자 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환자도 얼마나 바깥 공기가 그리웠겠는가! 혹시나 나에게 피해가 갈까 우려되어 짧은 외출을 고사했을 환자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릿해 온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간호사들과의 관계도 한결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어느덧 간호사들과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지내는 사이가 되어갔다. 퇴근길에 간호사들은 “저 보고 싶다고 울지 마세요. 3일 동안 휴가라 목요일에 출근하니 그때까지 잘 지 내고 계세요.” “응, 알았어. 잘 다녀와.” 18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라고 환자가 화답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가까워지게 되었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들 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심스럽게 나를 부르신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라고 했더니 “나 곱게 보내줘. 소생술 같은 거 안 할래. 의사 불러줘. 그거 쓸게.” 심장이 쿵한다, 환자분이 입원해 있는 동안 많은 환자들의 힘든 고비들을 지켜보며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나는 마음이 아팠다. 환자의 요구에 따라 주치의와 면 담을 주선했고 그렇게 심폐소생술 포기 각서는 작성이 되었다. 다행히 그 이후 환자의 상태는 회복이 되었고 일반 병실로 나가게 되었다. “제가 가끔씩 찾아뵈러 나갈게요. 나가셔서 잘 지내셔야 해요.” 라며 손을 잡아드렸다. 그렇게 일반 병실로 나간 지 며칠이 지난 후 급작스럽게 상 태가 악화되어 환자는 더 이상 숨이 차지도 않아도 되는 평온한 곳으로 가셨다. 그의 뜻대로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환자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닌 따뜻한 주님의 품으로 갔을 거라 생각을 하며 그를 위해 간절한 기 도를 했다. 그의 사망소식, 빈소도 차리지 않았다는 소식에 간호사들은 안타까운 마 음을 금치 못했다.

평소 깐깐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환자를 간호하면서 감정적으로 부담스러웠지만 서 로 마음을 나누고 맞추어가는 가는 과정들을 통해 간호사들의 따뜻한 마음을 볼 수가 있었다. 환자의 회복을 위해 의학적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간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톨릭 의료기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가톨릭인으로서 삶을 살게 되었고, 하루하루 의 일상 속에서 큰 문제없이 환자들을 간호할 수 있음에 대해 큰 감사함을 느낀다. 아 직 미진한 부분들 투성이지만 예수그리스도의 이념을 실천해나가는 신앙인이자 간 호사로서, 약자의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마음속 깊은 울림까지 소홀히하지 않는 생 명의 봉사자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내 자신을 끝없이 담금질 해나가겠다고 다짐해본다.

APG 수상작 / 19


2018 APG 수상작 우수상

식사의 의미를 찾아서 이환미(서울성모병원 영양팀)

안녕하세요? 서울성모병원에 입사한 지 갓 5개월이 된 영양팀 직원입니다. 저는 타 병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현재 서울성모병원 21층의 임상관리와 환자급식을 담당하 고 있습니다. 아직 영양사로서는 새내기인 저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식사에 대한 수많은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병원식이라는 거부감부터 음식의 맛과 간의 세기, 외관 등 환자분들 이 주시는 의견은 정말 다양합니다. 각기 다른 환자분들의 입맛을 완전히 만족시키기 20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는 어렵지만 환자분들이 의견을 주시는 만큼 저도 영양사로서의 역량을 키우고 발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새 환자들에게 식사란 참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연예인에 게는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하죠, 마찬가지로 환자분들이 관심이 있기에, 꼭 필 요하기에 저희에게 식사에 관련된 의견을 주시고 변화를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 니다. 아무리 힘든 치료를 받는 환자분들에게도 식사란 애증의 존재와 같다고 할까 요?

어느 외국인 환자 아직 5개월밖에 안 됐지만 저에게도 기억에 남는 환자분들이 있어 이번 행동규범 수기를 통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가장 최근에는 할랄식을 먹는 외국인 환자분이 기억 에 남습니다. 혈액종양 환자로, 늘 제가 방문해서 식사는 잘하는지, 어떤 것을 잘 드 시는지,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지 물어보면 “식사는 잘 나오는데 내가 입맛이 없다. 어 쩔 수 없다“라는 말만 반복하셨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다 시 방문했을 때는 환자가 못 먹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가 보았습니다. 환자는 ” 식욕이 없어서 목에서 넘기기가 어렵다.“라는, 조금 더 구체적인 답변을 했습니다. 저 는 죽 대신 미음과, 환자가 조금이라도 섭취한다고 했던 통조림과일을 매끼 올려드리 겠다고 제시했습니다. 대신 장기 입원인 점을 고려하여 매끼 다른 미음을 먹을 수 있 도록 개별 미음 스케줄을 작성했습니다. 다음 날 환자의 순응도를 살피기 위해 재방문했습니다. 환자와 환자의 아들은 원래 못 먹었는데 지금은 미음 한 그릇과 통조림 과일을 거의 다 먹는다며, 여태까지는 못 먹었었는데 지금은 먹는다며 고맙다고 연거푸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오면서 참 기분이 좋으면서도, 제 관심에 따라서 환자가 조금이라도 섭취할 수도 있고 아예 섭 취를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도 했습니다. 환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아서 입맛이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넘겼더라면 여전히 전혀 식사를 못하고 계셨을 것 같습니다. 타지에 와서 치료를 받 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식사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특히 더 잘 먹는 게 있어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비율이 국내 환자들보다 현저히 APG 수상작 / 21


적습니다. 그렇기에 외국인 환자들의 식사 섭취량은 환자에게 맞춤형 식단을 제공할 수 있는 영양사의 역할이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식사 잘하고 계신가요? 현재도 저는 국내외 입원 환자들을 1주일에 2회 이상 방문하며 식사 섭취 독려를 하고 있습니다. 못 드시는 분들은 반찬을 조정해드리기도 하고, 이것저것 가능한 범 위 내에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정말 컨디션이 저조하여 식사를 못하시는 분들 도 계시지만, 가끔 잘 드신다고 말씀을 해주시면 정말 큰 힘이 됩니다. 특히 앞에 소 개한 외국인 사례처럼 제가 환자분의 식사량 증량에 긍정적인 역할을 주어 환자가 고 맙다고 말할 때는, 참 감동적입니다. 환자는 서울성모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의료진들의 존재 이유입니다. 그렇기에 병 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는 환자 우선, 환자 중심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식사의 대안으로 영양제를 많이 생각하시지만 저는 영양사로서 환자분들이 가능 한 범위 내에서 식사를 최대한 섭취를 하실 수 있도록 조정해드리고 독려해드리는 역 할을 앞으로도 잊지 않고 책임감 있게 수행할 것입니다.

병원에서 진료받는 모든 환자들이 식사를 잘함으로써 치료에 긍정적인 시너지 효 과를 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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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PG 수상작 우수상

작은 실천에서 찾은 영성간호 박하나(서울성모병원 70 Unit)

떨리는 마음을 겨우 다독여가며 첫 출근을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 년 가 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힘든 날도 많았지만, 환자를 돌보고 간호하는 순간 마다 연민과 소중함, 따뜻함, 고마움을 느끼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2017년은 저에게는 잊지 못할 한 해였습니다. ‘영성간호’의 의미를 되새기 고 영적 돌봄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APG 수상작 / 23


작은 대화로 마음을 열다 70병동은 격리병동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곳입니다. 70병동에 온 환자들은 대부 분 VRE(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 감염으로 격리가 필요한 분들입니다. 이○○ 님은 척추협착증을 앓고 계셨던 분이었습니다. VRE균이 검출되어 이실 온 그날부터 환자분은 침상에서 자주 울고 계셨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VRE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오는 이름만 보아도 무시무시한 슈퍼박테리아……. 환자분은 거기서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감염관리 차원에서 검사나 시술 외에는 병동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미 마음이 상처받은 상태로 70병동 에 왔기에 간호사를 마주하는 환자분의 태도는 냉랭하고 차갑기만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70병동, 격리병동 간호사로서 환자에게 영성간호를 제공한다는 것 은 일반 병동보다는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닫힌 환자의 마 음을 열고, 마음의 상처가 잘 아물고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어떻게 영성 간호를 제 공할 것인가 많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던 환자분은 여러 차례 수술에도 결국 걷지 못하 는 상태로 침상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답답한 격리병동 생활, 병동 밖을 나가지 못하고 병실 안에만 계셔야 하는 환자분은 늘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병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환자분에게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하여 가급 적 많은 대화를 나누려 했습니다. 환자와의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 중에 인형, 아기자 기한 소품 등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환자분은 직접 손뜨개질한 인형 옷이나 액세서리를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소녀 감성이 컸던 환자분을 위하여 기도 문구보다는 좋은 시와 글귀로 말씀 카드를 만들어 읽어드리며 영성간호를 하려 노력 했습니다. 종교가 없는 환자에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기도 문구보다는 환자와의 대화를 통한 취미나 관심사 위주로 쉽게 소통, 교감하며 영성간호를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해서입니다.

영성간호의 의미 감염관리로 병동 밖을 나갈 수 없는 환자분이 평소보다 더 우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24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표현하는 날에는 병원 밖 풍경 사진을 찍어 보여드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취미 로 그리던 플라워 드로잉을 선물해드렸습니다. 비록 종이에 그려진 꽃이지만 마음으 로 향기를 맡겠다고 하시며 미소를 짓는 환자분의 모습을 보니, 어느새 저의 얼굴에 도 미소가 번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긴 격리 생활 동안 기력이 없고 지쳐가는 힘든 순간이 올 때면 환자분께 홀리네임(Holy name)을 외쳐보도록 권했습니다. 저 또한 힘든 순간마다 ‘행복하자’ 라는 홀리네임을 통해 마음속 화를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스스로 안도와 평화를 찾았 던 기억이 있어 환자 또한 지칠 때 위기를 넘기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질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홀리네임을 되뇌는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환자분은 침상 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힘든 병원 생활 동안 작은 위 로와 감사를 느끼고, 일상 속 소소함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느덧 환자분은 점점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주일마다 한 번씩 하는 VRE 검체 검사에서 3회 연속 음성이 나와 격리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VRE균 격리해제 되셨어요. 이제 신경외과 병동으로 가실 거예 요. 그곳에서도 치료 잘 받으시고 긍정의 힘 잃지 마세요.” 환자분은 제 손을 붙잡고 한참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실을 가는 날 저는 환자분의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건강해지세 요. 더 이상 70병동으로 오지 마세요.’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습니다. “선생님, 그 동안 고마웠어요. 덕분에 힘든 병원 생활에 조금의 희망을 안고 가요. 앞으로도 치료 잘 받을게요.” 마지막 기도가 끝나고 병동 앞까지 환자분을 배웅해드렸습니다.

저는 격리실 문이 닫히기 전까지 환자분을 싣고 나가는 침대를 바라보고 생각했습 니다. 작은 관심과 공감이 환자에게는 크나큰 희망과 긍정의 빛줄기가 된다는 것을, ‘영성’이란 어렵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작은 실천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이지요. 영성간호를 처음 접했을 때 종교적으로 조금 더 특별한 간호라고 생각했고, 환자에 게 기도만 해주면 되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기도 한 번 한다고 달라 APG 수상작 / 25


지는 것이 있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환자를 돌보고, 간호하면서 이 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귀, 기도뿐만이 아니라, 간호사의 손길 한 번, 상냥한 미소와 말투, 긍정의 말 한마디에 환자들은 위안을 받고 희망을 품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샌가 달라지는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에 간호하는 저의 마음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영성간호를 통해 환자들에게 주는 것보다 더 많은 마음과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이 함께 소중한 우리, 영성간호의 시작이 된다는 것 을요.

26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작은 속삭임은 천사의 기도가 될지니… 한수진(여의도성모병원 10층 서Unit)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오늘 윤○○ 님 수술을 받고자 합니다. 수술이 잘 이루어지고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치유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윤○○ 님. 잘 다녀오세요. 중환자실 가셨다가 다시 병동으로 나오실 땐 저희 병동 에서 만나긴 어려울 것 같아요, 수술 후에도 치료 잘 받고 건강하게 퇴원하세요.” 진심으로 나지막하게 기도를 했지만, 현실적인 인사말은 내 기도를 전해주지 않는 APG 수상작 / 27


것 같다. 다시 부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초조해하는 그녀에게 그의 수술이 잘될 것 이라 기원하며 눈을 맞춰본다.

마음으로 동감하다 그는 43세의 젊은 남자로, 직장건강검진에서 폐암의심 소견을 보였고 며칠 전 호흡 기내과로 입원하였다. 내가 있는 곳은 소화기내과였지만 7층인 호흡기내과에 자리가 없던 연유로 이렇게 환자와 간호사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3명이서 근무하는 병동에서 나는 거의 차지(책임간호사. 수간호사 아래의 직책으 로 병동업무의 흐름을 감독함)를 본다. 그래서 환자를 입원 받을 일은 거의 없다. 그 런데 1월 5일은 차지도 아니고 액팅(펑셔널 간호에서 분류되는 신규 간호사의 직책 으로, 환자에게 행하는 모든 행위가 주업무인 간호사)도 아닌 프라이머리(전담간호. 환자의 모든 간호가 한 사람의 간호사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간호방식)를 하게 되면서 나는 오랜만에 입원을 받았고, 그 환자가 바로 윤○○ 님이었다. 인상이 좋아 보이는 43세 남자와 약간은 차가워 보이는 도시 여자 느낌의 부인이 함께 입원 왔다. 폐암이 의심되어 검사를 하러 온 것이기에 남자는 더 담담하려 애쓰 는 것처럼 보였고, 태평해 보이는 남편이 답답한 듯 부인은 질문이 많았다. “검사는 몇 시에 하죠?”, “검사하면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이 피검사는 왜 하 죠?” 등등 차근차근 환자와 보호자에게 검사 일정을 설명해주었고 그에 따른 금식 및 준비사 항들을 교육하였다. 그는 입원 다음날 기관지 내시경을 시행하였고, 그 다음날엔 폐 조직검사를 시행하였다. 그리고 하루하루 검사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검사처방이 났 다. 복부CT, bone scan…… 더 나아가 수술을 위한 폐기능 검사, 심장초음파 검사까 지……. 검사가 점점 진행될수록 보호자는 더 불안해했다. 그렇게 5일이 지나가고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 되었다. 마지막 검사인 PET CT는 스케줄상 다음 주 월요일에 잡혔다. “검사만 계속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아요. 주말엔 할 일이 없잖아요. 퇴원하고 외래에서 PET CT 찍어도 되는 거잖아요. 퇴원하겠어요.” 부인의 목소리가 격양되고 날카로웠다. “아니에요. 그냥 입원해서 있을게요. 그래야 하루라도 검사결과를 빨리 듣겠죠, 다 28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해결하고 퇴원하고 싶네요.” 차분한 어조의 환자는 의견이 부인과 달랐다. “충분하게 두 분이 말씀 나누세요. 편하신 방향으로 조정해드릴게요.” 부부에게 대화할 시간을 주고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을 복도에서 만났다. “그냥 입원해 있을게요. 집에 가도 아이 보기 그렇다고, 여기 있겠다고 하네요.” “아~ 아이가 있으시군요. 몇 살인가요?” “중학교 1학년이에요.”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딸이요…….” 하는데 부인의 눈시울이 이내 붉어지고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급히 대화를 마 무리하고 나는 간호사실로 돌아왔다. 나는 13년차 간호사이다. 그보다는 적지만 비슷한 나이의 남편과 집에 있는 어린 딸 둘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녀의 눈에서 슬픔을 느끼고 동감했지만, 나의 일인 것처 럼 감정이 동화되어 눈과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 어떤 처방보다 큰 기도의 힘 내가 다시 그를 만났을 때는 환자의 수술날 아침이었다. 6시 40분 아침 라운딩에서 환자 자리에 수술일정표가 꽂혀있는 것을 보았다. 환자와 나는 서로를 보며 눈을 맞 추고 활짝 웃었다. “오늘 수술이시군요. 보호자는 언제 오시나요?” “조금 있다가 올 거예요.(웃음)” 그리고는 일상적인 수술 전 준비사항을 확인하며 라운딩을 마쳤다. 오전 10시가 조 금 넘은 시간에 부인이 도착하였고 그녀는 환자와 함께 미사에 다녀와도 되는지 물었 다. 10시 30분에 시작하는 미사가 끝나고 환자가 돌아오면 11시 30분 정도 될 텐데 수술 예정시간은 12시로 수술을 일찍 부른다면 곤란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며칠 전 부부간의 대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그들의 눈빛은 간절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었다. 미사 중이지만 꼭 핸드폰을 지참하고, 전화하면 바로 받도록 교육하고 그들의 요청을 허락했다. APG 수상작 / 29


11시 30분 수술실에서 병동으로 전화가 왔다. “윤○○ 님 수술실로 내려주세요.” 생각보다 일찍 부른 수술실 전화에 환자 자리로 갔다. 다행히 환자는 미사를 드리 고 자리에 있었다. “덕분에 미사 잘 드리고 왔어요. 시간이 잘 맞았네요.”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며 수술실 갈 채비를 하였다. 정확하게 짚을 수는 없었지 만 그 어떠한 처방보다도 그들에게 안도와 안정을 찾아준 시간이었음을 느꼈다.

2005년 학생간호사 시절 의정부성모병원 산부인과 병동에 실습을 갔었다. 그곳에 서 수술 전 기도를 하는 간호사의 모습을 보았다. 참 바쁜 병동이었는데 그 순간은 마 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잠시 멈춘 것 같았으며, 또렷이 내레이션을 들을 수 있었다. 기도를 하고 있는 간호사와 환자 주변을 천사가 감싸고 있는 것 같은 따뜻한 느낌 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성모병원에 입사하고 싶었다. 내 작은 속삭임이 천사 의 기도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그 꿈을 이루어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13년차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학생 시절 실습하던 병동만큼 지금 내가 근무하는 소화기내과 병동도 바쁘다. 그래 도 꼭 그때의 느낌을 잊지 않으려 수술 전 기도를 한다. 가끔 의무적으로 읽어내려 가 는 날들도 있지만 윤○○ 님의 수술 전 기도는 나에게 참 특별했다. 수술 전 손을 잡고 미사 드리러 가는 다정한 부부를 보며 예전 그날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었다. 미사 후 평온해진 그들의 표정을 보며 나는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 었다. “내 작은 속삭임은 반드시 천사의 기도가 될 것이라…….” 나는 다시 한 번 읊조린다.

30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하이파이브(High five) 조순화(서울성모병원 가정간호Unit)

구로3동 성당에서 근무하는 서울성모병원 간호사입니다. 보건소에서 욕창도 심하 고 어려운 환자분이 있다고 의뢰가 들어와서 찾아갔는데, 뇌졸중 재발로 오른손만 간 신히 움직이고, 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한쪽 팔과 다리는 강직으로 굳어져 있었으며, 경계하는 굳은 표정의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APG 수상작 / 31


삶까지도 치유할 방법을 모색하다 젖은 기저귀 때문에 엉덩이 여러 군데로 욕창이 번져 있었고, 지저분한 몸은 뼈만 앙상하였습니다. 돌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역한 냄새와 좁아서 몸을 돌리기도 어려운 좁은 방에 할머니(배우자)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표 정과 시선, 무거움을 두 배로 느끼게 했습니다. 일류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업한 자랑스러운 외동아들의 사업 실패로 삶의 형태가 달라져 버렸고, 경제적 어려움과 좌절로 할머니는 우울증까지 겹쳐 점점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외롭고 지쳐버린 버림받은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그분들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 의료비도 감면 받을 수 있고 생활지원금도 나오 니, 도움을 받기 위하여 신청을 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 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함은 말할 수도 없었고 오랜 투병에 환자는 물론이고 보호자분도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저는 무조건 온 마음을 다하여 그분들을 치 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서적인 지지와 지역사회 자원 이용 등, 저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하얀 백지 위에 우선순위를 하나씩 밑그림으로 그려가야 했습니다.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하이파이브! 열악한 환경과 돌보지 못한 환자의 몸 상태에 대해 보호자가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손을 꼭 잡아주면서, 어렵고 긴 시간 동안 이 정도면 잘하고 계신다고, 저라면 어림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더 이상의 욕창 진행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하여 공기 침대를 준비해 드렸고 그 외 욕창예방 제품을 복지용구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드리고 무료로 빌릴 수 있었습니다. 소량의 흰죽만을 불규칙적으로 드시고 계셔서 균형 잡힌 영양식 캔을 성당지원금으로 무료로 제공해 드렸습니다. 욕창이 심해서 자주 드레싱을 해야 했으므로 자가 치료를 해야 하는 날에 사용할 수 있게 여분의 제품을 드렸고, 치료 방법도 세밀하게 시범을 보이며 알려드렸으며, 주의 사항도 자세히 설명해드렸습니다. 환자는 인지저하로 아무것도 모르고 말도 못 한다고 하였지만, 방문 때마다 손을 잡아주고 소통이 되는 분에게 하듯이 이름도 여 쭙고 수염을 깎아드리고 미남이라 칭찬도 하고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32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좁은 공간과 강직으로 환자분의 체위 변경을 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상태였으므로 제 허리를 비틀어 가면서 치료를 해야만 했습니다. 아픈데 잘 참았다고 칭찬하며 하 이파이브를 하였고, ‘활짝 웃었다’고, ‘물을 잘 마셨다’고, ‘영양식 캔 드신 약속을 지켰 다’고, ‘자세 변경을 잘했다’고 몇 번씩 손을 마주쳤습니다. 어느 날부터는 칭찬만 하면 손을 먼저 내밀었습니다. 제 소리가 들리면 치아가 없 는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흐흐” 소리 내어 웃으셨고, “이름이 뭐예요?” 하면 “이~~ 름?”, “○○.” 하면 따라했습니다. 쓰러지고 나서 처음 하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씻으려고 몸에 손이 닿거나 죽을 먹이려고 하면 할머니의 손길을 심하게 뿌리치셨 는데, 이렇게 거부할 때는 ‘가정간호 선생님이 세 번 먹으라 했다.’라고 하면 세 번 받 아먹고, 씻지 않아 냄새 나면 ‘선생님이 안 온다.’라고 하면 씻는 것에 협조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유일하게 간호사에게만 호의적이고 다른 방문객에게는 인상을 잔뜩 쓰며 노려본다 고 합니다. 덥수룩한 수염을 처음 사용하는 면도기가 무서워 손을 벌벌 떨며 깎아드 리며 면도 시범을 보였고 물휴지와 수건으로 머리카락과 더러운 곳을 닦는 방법을 시 범 보여드렸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어린아이 돌보듯이 엄마의 마음으로 교육하였습 니다. 목욕 중 위험할 수 있다며 여러 차례 거절하는 이동목욕 담당자를 집으로 직접 모시고 와 목욕도 시켜 드렸습니다.

그 어떤 생명도 존중받아야…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환자 간호와 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기저귀는 소변에 절어 있었고 씻지도 않아서 악취가 심하였었는데 연로하신 할머니(배우자)는 모든 것을 교육 내용대로 실행하고, 밤에도 일어나 젖은 기저귀를 바로바로 교환하 고, 다양한 간식과 죽도 5~6가지 재료를 넣어 맛있게 만들어 자주 먹여드렸습니다. 애타게 기다리던 기초수급자로 선정되어 의료비는 무료였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했습니다. 수급비 대부분을 할아버지 식비와 기저귀 구입에 사용하였습니다. 장 애수당을 받기 위해 장애진단이 필요했으나 진료를 받지 않은 지 3년이 넘어 여기저 기 수소문 끝에 지역 2차병원에서 겨우 진료와 진단서를 발급해 주기로 약속을 받았 습니다. 그러나 병원에 모시고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병원 앰뷸런스로 점심 때 배우자인 APG 수상작 / 33


연로하신 할머니가 먼저 이동하기로 했는데 걱정에 한숨도 못 잤다 하여 업무를 미뤄 두고 동행하여 이 부서 저 부서 다니며 검사와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약까지 타서 집 에 모셔다 드렸더니 퇴근시간이 훌쩍 넘었습니다. 검사결과 뇌 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배뇨장애와 고열과 전신에 다발성 욕창과 상처로 응급입원을 하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경험에 비추어 얼마 못 사실 것 같다고 하였답니다. 입원 중 에 욕창치료를 받았는데 가정간호에서 받던 치료와 비교가 되어 ‘집으로 간호사가 방 문하여 완벽하게 치료를 해주니 대충해도 된다’고 그랬더니 어디 병원에서 오냐고 물 었답니다. 퇴원 후 지속적으로 가정방문치료를 받으며 심했던 상처들은 대부분 치유되고 안 정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남력(시간과 장소, 상황이나 환경 따위를 올바로 인식 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사랑받음을 느꼈기에 기적을 낳았다고 보호자분은 말씀하 셨습니다. 집을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방문 앞에서 환자를 바라보며 아직도 살아있 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곤 하는데, 인간으로서 전혀 가치가 없는, 살아있다고 볼 수 없 는 환자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고 만져주고 칭찬을 하고, 보호자를 존중하고, 열정적 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우리의 모습에 믿음과 진정성이 느껴졌고 감동으로 다가왔다 고 합니다. 그러면서 “직업으로, 일로, 치료하고 가면 그만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배우자)께서도 할아버지 사망 후 후회가 남지 않도록 간호사처럼 최선을 다해 돌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하고 기저귀도 아껴 써야 했던 가정에 서울성모병원 성모자선회에 서 30만원을 지원하여 3개월 분량의 기저귀와 영양식 캔, 치료 제품을 구입하셨습니 다. 방 귀퉁이에 기저귀를 쌓아 놓았는데, ‘보기만 해도 부자가 된 것 같고, 행복하고,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며 ‘좋은 제도와 혜택에 감사하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유일하게 의지하고, 찾아주는 사람이며 일상의 모든 일을 의논하고, 희망을 주는 분’이라며, ‘살아있는 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으며, 아들도 ‘정말 감사하다, 잊지 않겠다’고 하였답니다. 미국에서 온 친척도, 근처에 사는 친척들 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여러 차례 칭찬을 하였다고 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을 뿐인데 칭찬까지 들으니 저도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 34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시기에 당연히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렇습니다.

APG 수상작 / 35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까르보나라의 추억 최선희(서울성모병원 202 Unit)

항상 연말이 되면 ‘올 한해는 다사다난했다’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말들 하지 만 유난히도 환자 안전사고와 병원 관련 기사들이 뉴스를 도배한 한해를 보내며, 서 울성모병원은 JCI 인증(국제의료기관 평가위원회 인증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국 제표준 의료서비스심사를 거친 의료기관에게 발급됨)을 받은 병원이라는 자부심과 그래도 ‘조심 또 조심하자’는 격려와 함께, 수고한 1팀 팀장님과 UM들이 병원 앞 소 박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모여 서로를 격려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 선생님께서 많은 36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맛집 중에서 왜 이곳으로 결정했나는 질문에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너무 너무 좋아 한 (지금도 좋아할 것 같다) 아이 때문에 나도 모르게 이곳을 찾은 듯하다고 말했다.

비○○와의 첫 만남 BMT(골수이식. 조혈모세포를 포함한 골수액을 이식하는 것. 백혈병 등 혈액질환 시 시행) 센터에서 전문간호사로서 소아혈액종양 환자들을 돌보던 2010년 7월 어느 날,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으로부터 도움요청 전화가 왔다. 러시아에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ALL) 치료를 위해 엄마와 단 둘이 치료 받으러 온 7살 남자 어린이가 있는데, 치료 협조가 안 되므로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엄마도 나도 영어가 유 창하지 않은 상태라 국제진료팀의 통역 선생님의 도움으로 간호정보를 얻고,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비○○의 엄마는 미혼모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러시아 에서 백혈병치료를 받으려면, 치료대기 순서를 기다렸다가 순서가 되면 병원에 갈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모스크바로 가야 하는데 블라디보스 토크에서 비행기로 8시간 정도 걸리니, 러시아에서 속수무책 있다가는 진행이 빠른 급성백혈병으로 하나뿐인 아이를 잃을지도 몰라 백혈병 치료를 잘하는 가장 가까운 곳을 알아보시고 서울성모병원을 선택하신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는 백혈병만 진단받은 게 아니었다. 태어날 때부터 선 천성 심장기형이 있어 활발히 뛰어놀아야 할 남자아이임에도 주로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며, 미니카를 가지고 혼자 놀면서, 말이 없고 좋고 싫음의 표현을 잘 안 했다. 그런데 낯선 나라, 낯선 환경에 입원하자마자, 매일 피검사를 하고 연이은 골수검 사, 척수검사와 항암주사 등으로 백혈병을 치료한다는 알아듣지 못하는 설명 아래, 비 ○○는 감당할 수 없는 공포감과 통증으로 의료진의 접근을 모두 거부하는 상태였다.

까르보나라의 추억 먼저 한 일은 영어로 된 안내책자와 인터넷들을 검색하여 소책자를 만들고 구글 번 역기로 러시아어로 번역하여 더듬더듬 설명을 하여 치료 과정을 이해시키는 것이었 다, 그림과 숫자는 세계 공용이라, 한 달간의 치료 기간 동안 얼굴을 마주해 가며 친 해지게 되어 비○○의 협조를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3년간의 ALL(백혈병) 치료 동 APG 수상작 / 37


안, 매 12주 간격으로 - 1주일은 서울에서 주사제 항암치료를 받고, 11주는 블라디 보스토크에서 먹은 약으로 - 항암치료를 병행해 나갔다. 서울성모병원 소아혈액종양 파트에서는 신환이 발생하면, 다학제 접근을 하며, 사 회사업팀과 연계하여 백혈병어린이 재단, ‘메이크어 위시(소원 들어주는 단체)’ 등에 의뢰하여 학습과 사회,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비○○는 국제진료를 통해 입원해서, 거주지가 한국이 아니며, 러시아에는 ‘메이크어 위시’ 지부가 없어 아무것 도 해줄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국 메이크어 위시 재단에 부탁을 했더니, 병원 추천 을 통해 비○○만 예외적으로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비 ○○의 소원 들어주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비○○가 항암치료 할 때에 맞춰, 메이크 어 위시 재단에서 담당팀이 병원에 방문해주셔서 파란 티셔츠를 같이 입고, 노래도 불러주고, 게임도 하고, 선물도 주고 병마와 함께 싸워주셨다. 비○○의 엄마도 한국 친구들께 감사하다고 “Thank you”를 연발하셨다. 항암제의 부작용 중 하나는 오심과 구토인데, 비○○는 오심과 구토가 심한 데다 가, 식사 문화가 맞지 않아 서울에 있는 동안 내내 거의 굶다시피 하여, 러시아에 가 면 살이 쪘다가 서울에 오면 살이 빠지는 게 보일 정도로 치료기간 중 힘들어했다. 1주일의 항암치료가 거의 마무리되어 병원 근처 레지던스에 머물던 비○○를 방문 했을 때, 혹시 먹고 싶은 것이나 보고 싶은 게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비○○가 조심스 럽게 스파게티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병원 근처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안내해서 까르보나라를 시켜주었더니 게눈 감추듯이 한 접시를 폭풍흡입 하였다. 놀 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항암치료 끝날 즈음마다, 작은 레스토랑에 들러 까르보 나라를 먹곤 했다. 2013년 2월 24일 드디어 치료종결 잔치와 함께 비○○의 소원 “스 포츠카 운전을 하고 싶어요.” 메이크어 위시 행사를 끝으로 고국으로 돌아갔다.

바쁜 일상 중에 비○○ 소식을 잊을 즈음, 국제진료센터를 통해 비○○의 몸 상태 가 좋지 않다는 연락과 함께, 비○○네 가족이 병원에 재입원하였는 소식을 접했다. 검사 결과 백혈병이 재발하였고, 엄마는 이미 지난 삼년의 치료비로 전 재산을 다 사 용하여 더 이상 치료받을 수 없다고,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끊임없는 눈물을 흘리셨다. 마치 여전사처럼 씩씩하고 힘든 내색 없던 강한 외국인 엄마의 슬 38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픔을 보며, 손을 잡아주는 것 외에는 큰 힘이 되어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다. 거주지가 없고 의료보험이 없다는 것만으로 사회복지단체에 신청도 할 수 없었기 에 한 NGO 단체에 부탁하여 어느 포털사이트에 사연을 실어 모금을 할 수 있었다. 생면부지 러시아 환자에게 500명이나 되는 고마운 손길이 힘내라는 ‘클릭’을 주셔서 1,759,551원의 거금이 모였고, 병원에서 1,000만원, 한마음 한몸 운동본부에서 1,000 만원, 성모자선회에서 격려금을 모아 주셔서 다시 치료할 수 있게 해주셨다. 세례는 받지 못했지만 성경공부와 기도를 지속해주신 신부님께도 감사드리며, 중 학생이 되었을 비○○가 러시아에서 잘 지내기를 바란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시베리아 바람조차 반갑게 느껴진다.

APG 수상작 / 39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211병동의 상호 존중 문화 우미란(서울성모병원 211 Unit)

우리 211병동은 간호1팀 영성위원회를 중심으로 매달 새로운 주제를 제시하여, 병 동 영성위원회 팀 위원들이 1달에 1번씩 모임을 통해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른 목표 를 달성하여 간호사들의 만족도를 올리는 시간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환자에게만 제 공하는 영적 및 실무에 따른 간호가 아닌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들에게도 즐겁게 간호 를 할 수 있는 활력소가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간호사들 중에는 하루 중 절반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며 그 시간들을 즐거운 직장 40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의 가치 척도로 인식하는 간호사들도 있지만, 환자들의 힘듦을 같이하며 심적 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간호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먼저 간호사들의 직장 생 활 만족도를 올리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간호사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 았습니다.

먼저 인사하기 2017년 1월, ‘먼저 인사하기’를 주제로 선정하여 행동규범을 실행하였습니다. 친분이 깊지 않은 사이인 경우나 갑작스러운 만남에 당황해 불안정한 말투와 어색 한 행동으로 인사하는 모습들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발바닥 스티커를 이 용하여 인사 존(Zone)을 만들고 출근시 인사 존에서 근무자들에게 밝게 먼저 인사하 도록 했으며, 이 외에 간호복을 갈아입고 나올 때, 퇴근시,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날 때 일을 잠시 멈추고 다른 직원들과도 눈을 맞추며 밝게 인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조회시 간단한 복창으로 함께 일할 동료들과 서로 “안녕하십니까? 좋 은 하루 되십시오!”를 복창하고 업무를 시작하였고, 간호사실에 게시판을 설치하여 인사를 제일 잘하는 간호사를 최고의 인사왕으로 선정하여 포상하였습니다. ‘먼저 인 사하기’로 우리는 유대감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는 직장생활의 소통에서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즐거운 인수인계 2월에는 ‘즐거운 인수인계’를 위해 서로 존중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라운딩 인계시 표준화된 의사소통 형식에 맞게 환자와 함께 인계하고, 서로 경어를 사용하여 직장생활에서도 존중받고 있음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 근무 자 퇴근 후에는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인계받은 환자의 일로 전화하지 않도록 서로 배려하였습니다. 인계 전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어깨마사지를 시행하여 경직되어 있던 근육을 풀어 줌으로써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친밀감을 더욱 증대시키는 계기들을 만들었습 니다. 인계 후 전 듀티(Duty, 간호사 근무표) 간호사에게 꼭 한 가지씩은 칭찬 또는 격려를 하여 상대방의 가능성 및 자신감을 얻게 함으로써 업무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고, 간호사들의 긴밀한 유대감 역시 사회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APG 수상작 / 41


수 있었습니다.

칭찬하기 3월의 주제는 ‘칭찬하기’입니다. 먼저 나를 위한 칭찬하기. 본인의 행복지수가 높으면 타인에게도 좋은 감정과 에너 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칭찬을 많이 받을수록 자존감도 높아지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각자에게 스프링 노트를 배부하여 나 자신의 대한 칭찬언어, 즉 ‘잘했어, 훌륭해, 멋져, 굉장해, 착해, 좋았어, 대견스러워, 친절해, 똑똑해, 충분해’ 등을 사용하여 근무 중이나 후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칭찬할 만한 일을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또 근무 전 조회시간에 본인의 칭찬을 나눔으로써 본인 자신이 행복한 사람임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포도송이 종이에 ‘오늘 하루 잘했다고 생각했을 때’ 날짜를 기입하고 색칠하여 지루하지 않도록 즐거움을 더하였고, 병동 워크숍 때 칭찬일기에 충실했던 간호사를 지목하여 포상도 하였습니다.

경어 및 표준 호칭 사용하기 4월에는 ‘마음 담은 경어 및 표준 호칭 사용하기’를 시행했습니다. 선후배 또는 동료 사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인수인계시 올바른 호칭을 사용하여 상 대방을 향한 존중과 배려를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항상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존댓말 사용을 습관화하도록 하였습니다.

감사랑 데이 5월에는 ‘감사랑(감사+사랑) 데이’라는 이벤트 데이를 마련하였습니다. 근로자의 날, 타부서 직원에게 형식적인 인사가 아닌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은 감사 의 말을 전하도록 했습니다. 석가탄신일에는 종교의 화합을 위하여 병동에 입원해 있 던 아부다비 환자들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며,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며 기도를 수행하 였습니다. 이 계기를 통해 아부다비 환자들과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스승의 날에는 함께 일하면서 고마운 동료들에게 메시지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여 42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어버이날에는 부모님께 그 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 의 마음을 담아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하도록 하였습니다.

나에게 선물하기 6월과 8월에는 ‘나에게 선물하기 및 힐링 시간’을 통해 잊고 지냈던 내 시간을 돌아 보게 하였습니다. 각자 선물의 의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영적 선물로 매월 2회 미사에 참여함으 로써 주님께 봉헌하며 매월 2회 묵주기도를 통해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며 주님의 은 총 안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화살기도(하느님에게 순간적으로 느끼는 정과 바라는 생각을 바치는 기원)의 중요 성에 대해 나누며 주 1회 병동 내의 다른 부서원을 위한 응원과 사랑의 화살기도를 시행하였고, 물적 선물로 그 동안 일하느라 수고한 나를 위하여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간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취미 활동 및 배움 활동을 통하여 스스로 힐링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또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선물함으로 써 스트레스를 풀며 결과물을 제출함으로써 즐거웠던 시간들에 대해 웃으며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신입직원 칭찬하기 7월에는 ‘신입직원에게 매일 칭찬하기’를 주제로 신입간호사들의 고충과 힘듦을 나 누었습니다. 신입간호사일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 동료들과의 어색함, 환자들과의 라포(의사소 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 형성, 프리셉터(신규 간호사에게 오리엔테이션을 주는 책임을 지닌 동료 간호사)를 벗어난 후 겪어야 할 막막함과 두 려움을 떠올려 보며, 신규간호사들에게 어떤 것을 해줘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였습니다. 신규간호사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하던 동료들의 의견으로 서로간에 친해지기 어려웠던 시간들을 야유회와 환영회식을 통해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었습니다. 또 신규간호사일 때의 모습을 간직하면 좋겠다고 하여 수시로 신규간호사 의 일상 사진을 남기고 동료들과 1대 1 사진을 찍으며 친밀감을 느끼게 하였으며 포 APG 수상작 / 43


토북과 응원의 메시지를 작성하여 제공하였습니다. 이런 시간들을 통해 신규간호사들은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며, 병동 분 위기가 좋아졌고, 무엇보다 신규간호사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다 소나마 해소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한편 실수했을 때는 채찍보다는 격려와 조 언의 말을 해주어 211병동의 식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하였습니다.

자기 존중구호 외치기 9월에는 ‘자기 존중구호 외치기’를 시행했습니다. 힘들 때, 즐거울 때, 기댈 곳이 필요할 때 자기 존중구호를 선정하고, 매 근무 전 부 서원들과 함께 홀리 네임을 공유하며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작은 문장, 단 어 하나가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 자신의 삶 속에서 긍정의 힘을 발현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부서원들은 이야기하였습니다.

부서원 칭찬하기, 행복한 데이 10월에는 ‘부서원 칭찬하기’, 11월에는 ‘행복한 데이’를 선정하여 영화 관람 및 연극 관람, 식사를 통하여 부서원끼리 친목 도모 및 정서적 교류를 나누었습니다. 이 밖에 자율성, 복지환경, 직장을 통한 자긍심, 체계적인 조직 환경으로 즐거운 직 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월 CMC의 Action plan을 통해 서울성모병원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달려와 준 나의 동료들과 함께여서 2017년 한 해 행복했습니다. 전 직원들이 CMC를 통해 더 소중한 꿈을 꾸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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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PG 수상작 장려상

급성기치료와 연명치료 간의 오해, 풀리다 윤선희 ․ 백은희(서울성모병원 신경계중환자실)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 여름날의 일을 떠올려 본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중환자를 위한 기도’를 마치고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스테이 션으로 나왔다. 전체 환자에 대한 상태보고를 받고 있을 때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 다. 중환자실에 빈 침상 있는지를 확인하는 전화였는데 목소리에서 무척이나 다급함 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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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기를 거부하다 중환자실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지라 그리 놀라지 않았다. 병동에 위중한 환자가 발생하였구나 하는 정도? 그런데 그때 당시 중환자실에는 빈 침상이 없었다. 침상을 마련하기 위해 부랴부랴 오늘 전실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환자에게 양 해를 구한 뒤 급히 일반병실로 전실시켰고, 서둘러 그 환자분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하 였다. 그분의 병명은 뇌경색이었고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아침부터 빠른 호흡과 호흡 부 속근을 사용하는 노력성 호흡으로 산소포화도가 감소되고 있었다. 이에 담당의는 보 호자의 동의하에 환자분을 중환자실로 옮겼고 곧바로 기관내관을 삽입하였다. 객담 을 제거하고 산소를 제공하였더니 산소포화도는 이내 회복되어 95% 이상을 보였다. 호흡기 문제를 가진 환자를 다년간 간호했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인공호흡기 치 료가 예상되어 적응증이 되면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인공호흡기도 준비해놓았다. 객담량이 적지 않았고 배출된 내용물에는 경장영양(환자의 위장관을 이용하는 영 양지원)액이 섞여 있어 흡인이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흡인성 폐렴으로 진행될 가능 성이 다분히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관내관을 삽입한 후 흉부 엑스레이 검사를 하 였는데 폐상태가 썩 좋지 않았고 호흡도 여전히 힘겨워 보였다. 담당 전공의는 이 같 은 사실을 보호자에게 설명하였고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하며 나아가 기관절개술 에 대한 가능성도 설명하였다. 그러나 보호자들은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다가 제거하지 못하고 계속해야 하는 상 황으로 전개될까 봐 우려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일언지하에 거절 하였다. 담당 전공의는 인공호흡기 치료나 기관절개술은 급성기 동안에만 일시적으 로 하다가 상태가 호전이 되면 단계적으로 제거할 것이라는 설명을 하였지만 보호자 들의 생각은 부정적이었다. 다음날 호흡기내과에 인공호흡기를 적용하지 않고도 무기폐와 폐렴을 호전시킬 수 있는 기관지내시경술과 같은 다른 치료방법이 있는지 협진 의뢰하였고, 회신 내용은 기관지경술을 하게 되면 오히려 인공호흡기 치료의 필요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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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한데… 치료방법이 있는데도 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서 의료진들은 멘붕 상태가 되었다. 산소공급, 항생제 사용, 가래 배출 등의 호흡기치료 및 간호를 하는데도 폐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늑막에 삼출액이 고여 피그테일(Pigtail, 돼지꼬리 모양의 관) 삽입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에 대해 호흡기 내과에 협진을 의뢰하였고, 호흡기 내과에서는 피그테일 삽입 이외에도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하며, 이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무기폐는 호전되기 어렵다는 답변을 주었다. 피그테일을 삽입하기 위해 보호자와 면담을 하였다. 그러나 보호자는 이마저 원하 지 않는다고 하였다. 의료진들은 답답함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고 어떻게 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보호자와 자주 만나서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피그 테일 삽입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고 가까스로 피그테일을 삽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인공호흡기로 호기말양압(positive end-expiratory pressure; PEEP)을 적 용해주지 않으면 치료가 불완전할 수 있음을 재차 설명하였다. 피그테일을 삽입한 후 늑막에 고인 삼출액이 빠져나오면서 흉부 엑스레이상 폐상태는 호전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인공호흡기 치료가 병행되지 않아서인지 이내 다시 악화되었다. 하지만 신경 학적으로는 악화되지 않았다.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요함을 매번 설명하였지만 보호 자들은 줄곧 강력하게 거부하였다. 이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다. 치료방법이 있는데도 하지 못하고 마냥 손을 놓고 있 는 것 같아 환자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치료 가능한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것은 아 닌가 노심초사하면서 간호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돌봄을 제공하였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숨을 쉬실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해 드렸고, 폐렴이 악화되지 않 도록 수시로 객담을 제거하였다. 구강도 청결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부 분까지도 구석구석 닦아냈고, 구강간호 마지막에는 입술이 마르지 않도록 바셀린을 바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비록 침상에서 이루어지는 목욕이었지만 침상목욕도 다른 환자분들보다 더 자주 정성껏 해드렸다. 우리 간호사들은 이렇게라도 환자분의 안위를 살펴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 겼다. 보호자를 만나기 위해 늘 면회시간을 기다렸고 면회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환 자 침상 옆으로 가 있었다. 보호자의 생각이 바뀔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 지만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이라며 소생을 위한 모든 치료는 하지 않겠다고 하 APG 수상작 / 47


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보호자는 주치의가 하고자 하는 모든 치료가 불필요하게 생명만을 연장시키는 것 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폐렴이 회복된다고 하더라도 뇌경색 때문에 요양 병원을 전전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호소도 하였다. 뇌경색이 진행되거나 출혈성으 로 변화되면 심한 후유증이 남아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기에 보호자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신경학적 상태가 그 정도의 후유증을 남게 할 정도는 아니었고, 그러한 가능성 때문에 할 수 있는 치료를 안 하는 것은 윤리적으 로 문제가 될 수 있어 보호자에게 설명한 후 윤리위원회에 자문을 의뢰하였다.

필요한 치료 다 해주세요… 윤리위원회에 소속된 교수님과 수녀님이 주치의와 별도로 보호자와 면담을 하였 다. 윤리위원회에서는 인공호흡기 치료를 한다고 해서 완전히 회복된다는 장담은 할 수 없으나 호전의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법이 있음에도 시행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환자는 말기단계도, 임종단계도,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결정하 는 단계도 아니므로 인공호흡기 사용은 선택의 사항이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이렇게 설명하였는데도 보호자의 생각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고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임상윤리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하기로 하였고 보호자에 게도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아침부터 환자에게 Cheyne-Stokes 호흡(호흡과 무호 흡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호흡 이상의 하나)이 의심되고 동맥혈가스검사상 과환 기 소견이 보여 혹시나 뇌경색이 진행되어 나타나는 증상일 수도 있어서 뇌영상검사 를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뇌경색으로 인한 호흡 악화는 아니었다. 보호자에게 인공호흡기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함으로 인해 폐렴과 무기폐가 호전되 지 않아서 나타나는 증상임을 다시 한 번 환기시켰다. 그날 오후에 임상윤리위원회가 열렸고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결이 내 려졌다. 보호자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으며, 보호자는 1시간 후에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환자의 호흡이 악화되고 있어 한시가 급하니 가능한 빨리 결정해달라 고 요청하였다. 48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우리는 ‘주님, 보호자들이 현명한 결정 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화살기도를 정성껏 바쳤다. 정확히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기다리는 1시간이 마치 10년처럼 더디 가 는 것 같아 내내 시계만 쳐다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얼마 후 보호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떨리는 목소리로 받았다. “필요한 치료 다 해 주세요.”라고 짧게 말씀하셨다. 드디어 모두가 기다려왔던 그 말을 듣게 되었다. 우리 의료진의 진심이 통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보호자는 치료과정에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셨다. 이후로도 임상윤리위원회에서는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환자의 치료과정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환자는 적극적인 호흡기치료를 위해 호흡기내과로 전과되 면서 곧바로 내과중환자실로 전실하였다. 그런데 너무 늦었던 탓일까? 내과중환자실 로 옮긴지 약 한 달쯤 되었을 때 환자분이 사망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필요한 치료가 다소 늦게 시작되었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면 호전되시겠지 하 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였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몹시 안타까웠다. ‘늦 지 않았을 거야. 늦지 않았을 거야’를 반복적으로 되뇌며 환자분의 쾌유를 진심으로 바랐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옛말이 맞는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을 맞닥뜨리 게 되었다. 우리는 이를 골든타임이라고 말한다.

웰다잉법이라고 하는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오는 2월 4일이면 발효된다. 자칫 이 법으로 인해 이번 사례처럼 급성기치료와 연명치료를 오인하는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움이 밀 려든다. 비록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이 일로 우리는 생명의 고귀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실천의 중요성을 더욱 굳건히 다지게 되었다. 가톨릭의료원의 영성인 예수그 리스도를 우리 안에 체현하여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우들을 보살피기 위해 끝까지 포 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 안히 잠드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APG 수상작 / 49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조충희(성바오로병원 내과중환자실)

“안녕하십니까!” 출근인사를 하며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눈길이 멈춰 섰다. 창가자리…… 빈 침대를 채우고 있는 가을 햇살이 유난히도 따스하고 포근해서 마음이 더욱 쓸쓸하게 내려앉았다. 눈치를 살피던 후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호자들이 DNR 동의하셔서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1인실 옮길 새도 없이 급 하게 가셨대요. 그리고 이거…….” 50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후배 간호사가 나에게 내민 것은 녹을 대로 녹아 끈적해져버린 청포도 사탕 세 알 과 캔커피 하나였다. 말없이 받아들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아려 왔다.

물 한 모금만… 전날 저 빈 침대 위에는 88세의 아주 작은 할머니가 누워 계셨다. 위암 말기로 온몸 에 이미 전이된 상태였으나 정작 당신에게는 비밀에 부쳐졌고, 단지 기운이 없어서 영양제만 맞고 가실 줄 알고 계셨었다. “물 좀 줘……. 입이 바짝 말라서…… 딱 한 입만 줘…… 왜 물도 못 먹게 햐? 말려 죽일 셈이여?” 할머니와는 매일 물 한 모금으로 실랑이를 했다. 지속적인 통증과 혈변으로 할머니 는 ‘절대금식’ 상태였기 때문이다. 젖은 거즈를 입에 물려 드려도, 입안을 수시로 닦아 드려도 할머니는 만족하지 못 하셨다. 물 좀 달라고 애원을 하시다가, 물이 아까워서 그러느냐며 역정도 내시다가, 퇴원하시겠다고 으름장도 놓으시다가, 그러다 갑자기 조용해지시면 불안한 마음에 심전도와 숨소리를 확인하고 기운에 부쳐 잠든 할머니께 가만히 이불을 여며드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할머니의 그 작은 몸에서 혈변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혈압과 맥박 그리고 숨소리도 많이 거칠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의식만은 꼭 부여잡고 놓지 않으셨다. 가시기 전날까 지도 할머니는 물을 찾으셨다. “애기 엄마…… 나…… 물 한 모금만 주소…… 이젠 틀렸잖우…… 나도 알아…… 그냥 의사 선생님한테는 내가 먹었다고 할라니까…… 응? 나 물 한 모금만 주소…… 늙은이 소원이라 생각하고…….” ‘소원’이라는 말씀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음으로는 이미 물을 드리고 있었지만 차 마 난 그 잘난 물 한 모금을 드리지 못했다. “할머니, 죄송해요……. 이렇게 변에서 피가 나오고 있어서 물을 드릴 수가 없어 요……. 할머니 좋아지시면 제가 물 실컷 드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뻔한 나의 대답. 예전 같으면 이내 버럭 화를 내셔야 할 분이 조용히 내 말을 듣고 APG 수상작 / 51


계셨다. 아니 그분은 이미 화를 낼 만한 기력이 남아 있지도 않으셨다. 그리고는 언젠 가부터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시던 청포도 사탕을 내미셨다. 그 사탕은 며칠 전 손주 가 주고 간 것인데 안 먹고 꼭 쥐고 있다가 나중에 다 나으면 드실 거라고 놓지 않으 셨던 것이다. “늙은이가 곱게 가야제…… 마지막까정 이리 고집을 피워서 미안타…… 나는 틀린 거 같어…… 이건 애덜 갔다 주그라…… 아가 셋이라 했제? 내 땜에 고생했네…….” “무슨 말씀이세요. 할머니 조금만 더 힘내세요. 곧 물도 드시고 이 사탕도 맛있게 드실 수 있을 테니…….” 난 더 이상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아니 마지막을 알고 계신 듯한 할머니 눈을 보며 의미 없는 희망을 드리는 것도, 고작 물 한 모금도 드릴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죄스러 웠다. 하찮은 그 물 한 모금이 뭐라고…….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드릴 수가 없었다.

당신 부모님이라도 그럴 거야? 혈압, 맥박이 더욱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보호자가 병원 인근에 계셨기에 전화를 걸어 할머니 상태를 알리고 병원으로 오시도록 했다. 보호자들은 할머니 면회 를 하고 여러 차례 주치의와 면담을 하며 심폐소생술 시행 여부에 대해 상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 옆에는 온갖 수액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결국 할머 니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시게 되었다.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는 중환자실이지만 환 자 상태를 고려해 면회를 일시적으로 허용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방에서 온 보호 자, 꼭 만나야 한다는 보호자 등 면회 조절이 전혀 되지 않아 다른 환자 간호에도 어 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결국 이런 식으로 면회를 계속하는 것은 곤란하며 상태 변화 가 생기면 간호사들이 먼저 연락을 하겠다고 면회를 통제하니 보호자들이 버럭 화를 냈다. “당신들 부모님이라도 그럴 거야? 당신들이 중환자실 밖에 있는 보호자들 마음을 알기나 해?”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잊고 있었다. 6개월 된 아들을 11시간 동안 심장수술 후 중환자실로 보내고 52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아이가 벗어놓은 내복을 부여안고 문밖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나도 보호 자였다. 아이를 잃을까 노심초사하고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라도 아이 모습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 졸였던 나도 보호자였다. 아! 그랬었다. 나중에라도 지금 이 순간을 잊지 말고 우리 아이에게 다시 건강을 주셨으니 나는 주님의 큰 사랑을 나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나누어줄 것이라고 다짐했던 시간이 있 었구나! 순간 보호자들의 마음을 먼저 보듬어주지 못한 것이 한없이 미안하고 또 미 안해졌다.

근무 시간이 끝나면서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 복잡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편히 보내드릴 자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이젠 조금 무디어질 법도 하건만 마지막은 아직까지도 나에겐 너무 아프다.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어느 누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을까? 어떻게 나에게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를 저 꼬깃꼬깃한 사탕 세 알과 보호자의 마음 이 느껴지는 캔커피 하나가 다시금 “괜찮다, 괜찮다.” 하며 나를 토닥여주고, 최선을 다해 주님의 사랑으로 환자를 보듬어 주라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듯하다.

APG 수상작 / 53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이웃과 함께하는 여정 최선애(서울성모병원 가정간호Unit)

저는 서울성모병원 가정간호센터에 소속된 간호사입니다. ‘새빛평화의 집이라는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산하의 한 단체에 파견되어 비닐하우스나 판자촌을 중 심으로 무료 방문을 시작한 지 약 2년 7개월쯤 되었습니다.

그냥 지켜만 보세요 제가 하는 일은 장애나 만성질환이 있는 50~90 연령대 60여 명을 1주일에 한 번 54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정해진 요일에 방문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독거노인들입니다. 무료 방문을 하다 보니 혈압과 체온 측정, 건강상담 및 안부 등 사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병동 및 중환자실과 특수부서에 근무한 경험이 있던 저는 난감하였습니다. 일을 하 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으니까요. 빈민사목이면 뭘 좀 갖다주든가 아니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건강과 관련된 교육을 하든가 등등 표시나는 것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같이 방문하던 새빛평화의 집 활동가나 구룡마을에 계시는 빈민사목 담당 수녀님 에게 이런 생각을 여쭈면 의아해하시며 “그냥 하던 거 하세요.”라거나 “선생님, 아무 것도 하려하지 마세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지켜만 봐 주세요”라는 답만 되돌아왔습 니다. 그러나 방문하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분들을 보게 되면 제가 무엇이든 해 주어야 할 것 같은 절박감이 드는데, 그에 반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너무 부족하 여 초조함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물론 월, 화, 수, 목, 금요일마다 방문하는 마을이 있었고 많게는 하루 19~23명을 방문하는 날도 있어 오후 5시 퇴근은커녕 6시를 훌쩍 넘어 오후 7~8시는 기본이고 기타 업무가 겹치는 날에는 저녁 9시까지 서류를 정리해야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하 지만 단순하고 반복적인 방문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나 스스로에게 자꾸 의문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옆에서 지켜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만 가지고 가라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고 1년 6개월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한 할 머니 대상자가 방문한 저를 보고 손을 잡으며 아무도 찾지 않는 나를 매번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뇌출 혈후유증으로 앉아서만 지내는 한 할아버지는 한낮에도 제가 들어가 형광등을 켜야 할 정도로 창문도 없는 판잣집 골방에서 방문하는 저와 활동가를 기다리셨습니다. 매번 저를 맞이하던 그 눈빛과 표정은 제가 왜 매주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지 그 이 유를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저 혈압과 체온을 재고,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는지 묻 고, 때론 싱겁게 드셔라, 운동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잔소리만 잔뜩 하였는데도 서울성모병원 간호사가 직접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그 분은 이미 많은 것을 받고 있다 APG 수상작 / 55


며 눈가가 촉촉해지고 얼굴에 웃음이 한가득하여 맞아주곤 하였습니다. 세상 사는 이야기, 신앙 이야기,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제가 무엇을 준비해 가져가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이었던 것입니 다. 그분들은 제가 무엇을 주어서 받아야 하는 대상자들이 아니라 그저 함께 웃고 걱 정하며 함께 느끼는 제 마음이 필요한 이웃이었습니다. 이웃이라는 의미를 이렇게 알 게 되었습니다. 이웃은 평소에 상대방에게 무엇을 일부러 도와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옆에 살면 서 서로 왕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속사정을 알게 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고 때론 무엇이 필요한지 알게 되니 그것을 도와줄 수 있고 그래서 마음이 통하는 사이, 그것이 이웃입니다.

내 이웃이 된 대상자들 그분들에게 이웃의 왕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알게 되었습니다. 매주 같은 요 일에 방문하는 것은 이웃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이 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며 건강상담을 해주고 하는 단순한 행위 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간혹 난방비 등이 필요한 분들은 성모자선회나 서초구 간호사회의 성금을 연결하 여 전달해드리기도 합니다. 다만 마음이 아닌 물질을 전해드릴 때는 조심해야 합니 다. 물질이 마음의 전부인 듯 포장되지 않도록 필요한 만큼 전달되어야 합니다. 이러 하듯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성모자선회비를 받은 분이 그 돈으로 생애 처음 전기압력솥을 사게 되었다 며 솥을 쓰다듬던 그 손을 보는 것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미소를 짓 게 만들 만큼 그분에게도 제게도 아주 큰 기쁨이었습니다. 빈민사목 하는 일은 이웃이 되는 것이랍니다. 가정간호센터에서 수익과 상관없이 무료 방문만을 목적으로 파견된 간호사는 제가 유일할 것입니다. 서울성모병원 간호 사가 그저 혈압기와 청진기를 갖고 방문해도 그분들은 힘을 얻는다고 합니다. 자신이 사회로부터 잊혀지거나 소외되지 않았다는 그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매주 같은 날 방문하는 것이 단순한 것 같지만 그들에게는 서울성모라는 대형병원 에서 한 간호사를 자신에게 파견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서 56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울성모병원을 이웃이 되어주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믿습니다.

그분들이 사는 곳은 북쪽 산기슭에 위치한 데다가 난방도 제대로 못하고 계셔서 춥 고 더 춥지만 양말 두 개에 내복 두 개 겹쳐 입고 그 안에 따뜻한 마음 가득 담아 오늘 도 이웃에게 안부를 전하러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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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APG 수상작 장려상

환자의 몸을 따뜻하게 김병현(서울성모병원 방사선종양학팀)

안녕하세요~ 방사선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방사선사입니다. 방사선치료는 누구에게나 부담되는 치료방법 중 하나입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자분이 방사선치료실에 오시면 느끼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 다. 여기 내가 방사선치료를 받게 되는 곳은 ‘춥구나‘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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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 수밖에 없는 방사선치료실 최신 방사선치료기라는 것이 거의 모두 컴퓨터 칩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본적으로 열을 발생하는 기계이다 보니 고액의 방사선 치료장비를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가 동하기 위해서는 방사선치료실을 항상 실내온도 18도 정도로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 다 보니 실제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모셔야 하는 환자분들은 항상 한기를 느 끼시게 됩니다. 방사선치료 과정이라는 것은 가슴엑스레이를 촬영하듯 잠시 옷을 벗고 바로 검사 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치료실 안에서 치료 부위가 보이게 옷을 벗고 치료대 위에 누운 상태에서 10분에서 길게는 30분을 버텨야 합니다. 그 동안 환자분들은 거 의 모두 추위를 호소하시구요. 암 환자분들은 항암도 하시고 워낙 몸의 면역력이나 체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 체온도 낮은 상태이신데 거기다 추운 방사선치료실에 있어야 할 경우에는 더욱 더 몸 도 마음도 한기를 느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원래 여기는 좀 추운 곳이에요. 그러니 좀 참으셔야 합니 다.”라고 말씀드리곤 했습니다. 이불도 덮어 드리고 하지만 1회용으로만 사용해야 하 는 원칙 때문에 감염관리나 세탁물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냥 그렇게 지 나가곤 했습니다.

환자분들 몸을 따뜻하게… 우리는 조금 더 환자분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조금이라도 환자분 몸 따뜻해지는 방 법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크게 효과는 없을 수도 있고 우리에겐 귀찮은 일만 하나 더 생기는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각 방사선치료실에 소형 수건 온장고 를 준비하고 따뜻한 베개포 린넨을 그 안에 차곡차곡 쌓아 준비하고 따뜻한 온기가 린넨에 베일 때까지 온도를 올려서 환자분이 옷을 벗고 누울 때마다 가슴에, 배에, 시 린 팔에, 차가운 하복부에 따뜻하게 온기를 가진 린넨을 올려드리고 감싸드렸습니다. 그때마다 환자분들이 하시는 말씀, “아, 따시다……. 이건 좋네요…….” 순간 우리 치료방사선사들의 마음도 따뜻해짐을 느낍니다. 작은 행동이지만 우리 가톨릭기관 에서 환자분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정성이 아닐까 싶어 수기 보내 드립니다.

APG 수상작 / 59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눈으로 쓴 감사 메시지 이휘호(서울성모병원 방사선종양학팀)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서 받은 많은 은혜에 감사하기보다는 받지 못 한 한 가지 은혜에 불평, 불만을 더욱 많이 하지는 않았나 우리 자신을 다시 한 번 돌 아보며 생각하게 하는 데살로니카 1서 5장 18절의 말씀입니다. 60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2009년 11월 25일, 저는 드디어 이 말씀의 참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를 살리신 뜻은… 저는 2009년 5월에 군에 입대하여 강원도 인제에서 운전병 복무 중 큰 사고를 겪었 습니다. 초겨울 자정을 넘긴 시간에 응급 급성 맹장 환자가 발생하여 환자와 군의관 을 태우고 이동 중 서리가 깔려있는 급커브 내리막길을 도는 순간 운전미숙으로 차량 전복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폐차 수준의 상황임에도 당시 타고 있던 군의관과 환 자 모두 무사하였습니다. 나의 작은 신음소리까지 듣고 계신 하느님! 눈동자처럼 저와 동승자들 모두 지켜 주심에 충분히 감사드려야 했지만, 그 당시 전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왜 그랬을 까?’ ‘나는 실수투성이에 왜 이리 한심할까?’ 제 자신을 자책하였습니다. 주위 사람들 이 수근대는 것을 볼 때마다 제 욕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반복되는 생활 속에, 저는 결국 심각한 우울증까지 찾아왔었습니다.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성경말씀이 데살로 니카 1서 5장 18절의 구절입니다. 그 구절을 가슴속에 새기며 기도와 신앙의 힘으로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데살로니카 서의 말씀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며 평생 봉사하리라 다짐하였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사전역 후 복학하여 학업에 초지일관(初志一貫)하여 학창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서울성모병원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행복도 잠시, 병원에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 당시 인천에서 출퇴근을 하던 저는 새벽 4시 기상 후 첫차를 타고 출근해야 했고, 밤 9시가 되어서야 귀가하 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의 반복으로 피로가 많이 누적된 상태였습니다. 밀려드는 치료 업무 속에서 환자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환우분들의 쾌유를 바라 며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사랑 없이 업무적으로만 처리하는 제 자신을 볼 수 있었습 니다. 또한, 계약직으로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정규직이 되기 위해 꼭 무언가를 해 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제 자신만 생각하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APG 수상작 / 61


눈 깜박임으로 쓴 감사 메시지 그렇게 반복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저는 평생 잊지 못할 환우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대한민국 30대 중반의 여성분이셨고, 육아휴직 복직 후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한 두통과 발작으로 병원을 찾으셨으나, 이미 교모세포 종(Glioblastoma)이 급속도로 진행된 상태이신 환우분이셨습니다. 감정과 정신은 온전하지만, 마비로 인하여 손가락, 발가락은 물론, 눈 깜박이는 것 이외의 움직임은 불가능하신 상태이셨습니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있는 그분의 첫 모습은 저를 너무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치료하는 과정 또한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거동이 불가하시기에 가족 두 분과 저를 포함한 방사선사선생님 두 분, 총 4명이서 치료 전후로 항상 치료 테이블로 들어서 옮기고 내려야 했었습니다. 치료 고정마스크로 머리를 고정 후 치료를 하셔서 손이나 발을 들어 의사표현을 하실 수 있는 일반 환우분들과는 달리 호흡과 혈압으로만 저희 에게 의사표시를 하셨기에,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야 하여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모니터링과 Saturation(동맥혈 중 산소포화도를 지칭)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며, 환자분이 너무 힘들어 혈압과 호 흡이 불안정해지면 중간 중간 쉬면서 진행해야 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33번의 마지막 방사선치료를 하는 날이 왔습니다. 그날은 남편 분께서 환우분을 닮은 아주 예쁜 아기도 안고 오셨습니다. 마냥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 아기를 보며 흘리시는 그 눈물은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눈시울을 적셨 습니다. 무사히 치료가 끝나고 환우분들과 가족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 순간, 남편 분께서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가방에서 큰 자음 모음 한글 자판을 꺼내 더니 환우분과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음 치료를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양해를 구하고 다시 치료실 로 복귀하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한 시간쯤 지났을까? 남편분께서 ‘정말 감 사합니다.’ 라는 메시지를 적어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환우분이 1시간 동안 남편분과 함께 한글 자판을 꺼내어 자음 하나, 모음 하 나 눈 깜박임으로 적어서 저에게 직접 전해준 메시지였습니다. 메시지를 받는 순간, 전 정말 숙연해지고 그 동안의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반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62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이란 나라는 사람은 단순히 서울성모병원 방사선종양학과의 직원이 아니라 투병하시는 모든 환우 및 환우 가족분들의 기대와 희망, 감사를 받는 사람이고, 저는 그런 분들을 위하여 생명의 봉사자로서 전인적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진심으로 그분들의 건 강을 위하여 항상 기도를 드려야 하는 사람이란 걸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제 자신의 지난날이 너무 후회되며, 스스로가 너무 미웠습니 다. 또한 하느님께 너무나 죄송했습니다. 9년 전 큰 사고에서도 저를 지켜주셨던 건, 힘들어하고 있을 이들에게 더 힘이 되고 매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라는, 저에게 주신 선물이자, 평생 제가 갚아야 할 은혜였는데, 바쁘고 정신없고 몸이 힘들 다는 이유만으로 그 크나큰 선물이자 은혜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 니다. 그 환우분을 계기로 더욱 긍정적 마음으로,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자 치료 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분이 없으셨다면 저는 아직까지도 그저 이 핑계 저 핑 계를 대며 하루만 보고 살아가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그분의 치료가 끝난 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저에게 주셨던 그 메시지와 감동은 아 직까지도 생생합니다. 오늘,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어하고 있을 환우분들과 그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환자의 신음소리가 당신의 목소리임을, 환자의 요구사항이 당신의 뜻임을, 환자의 상처가 당신 십자가상의 상처로 보게 하여 저희의 삶이 오직 당신 안에서만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APG 수상작 / 63


2018 APG 수상작 장려상

영상 CD가 안 열려요 이용성(서울성모병원 영상의학팀)

2017년 11월 21일 오전 11시경에 있었던 일입니다. 부산에 사시는 우○○ 님이 혈액내과 교수님에게 초진을 예약하고 저희 병원을 방 문하셨습니다. 부산대학교병원에서 검사한 영상자료를 CD로 복사하여 가지고 오셨 습니다. 초진 창구에서 영상 CD를 등록하려고 하였으나, 정상적으로 등록이 되지 않 아서 저희 영상정보실을 방문하셨습니다. 저희 부서는 PACS(의학영상 정보시스템) 및 CDIS(검사장비통합관리 정보시스템) 64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와 관련된 의료장비연동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업무 중에 하나로 CD나 USB로 복사해 온 외부영상이 초진창구에서 등록이 안 될 경우 해결해 드리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근무자가 CD를 열어서 확인해 보니 CD 자체 문제로 인하여 영 상을 등록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영상 CD가 안 열려요 보호자로 따님과 아드님이 같이 내원하였는데 많이 당황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나 중에 알았지만 저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에 세브란스병원에도 진료를 예약하셔 서 양쪽 병원 모두에서 영상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예약된 진료시간은 다 되어서 매우 초조해하셨습니다. 부산대 병원에 화가 많이 나셨고 세브란스병원 진료시간에 늦을까 봐 불안해 보였습니다. 보 호자가 영상 CD를 복사한 부산대병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저희 근무자를 바 꾸어 주었습니다. 부산대병원 담당자와 통화하며 영상 CD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니 보호자 동의가 있 으면 이메일로 영상데이터를 보내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부산대병원 담당자가 제 시한 해결방법에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관련이 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부산대병 원에서 검사한 영상을 이메일로 받아서 우리 병원에 등록하고 그 영상을 다시 CD로 만들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지고 가시면 어머님 진료 보시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승낙하셨습니다. 부산대병원에 전화를 하여 담당자에게 이 메일로 영상을 요청하였습니다. 영상 데이터가 워낙 대용량이어서 등록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환자분과 따님은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시라고 하고 아드님이 저희 근무자가 같이 있으면서 이 메일이 오는 대로 저희 부서원 3명이 나눠서 영상을 등록해 드렸습니다. 그 시간이 아마도 40~50분 소요된 것 같습니다. 일이 처리되는 것을 보면서 보호자도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예약된 진료시간은 지났으나 진료실에 양해를 구하여 진료를 보는 데 큰 문제가 없 었습니다. 보호자가 진료를 마치고 저희 부서를 다시 방문하여 저희 병원에 등록된 APG 수상작 / 65


부산대병원 영상을 CD로 만들어 드렸습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 께 진료가 예약되어 있는 세브란스병원으로 가셨습니다. 일처리를 하다 보니 식사시간이 지체되어 저희 부서원은 늦은 점심을 간단히 하고 곧바로 업무에 복귀하였습니다. 오후 늦은 근무시간에 보호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덕분에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진료를 잘 보았다며 서울성모병원에서 CD등록 문제를 잘 해결해주어 어머니께서 원하는 진료를 보고 부산을 가게 되었다며 잊지 못할 경험 을 하고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그 영상이 없었다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신 어머님이 진료도 못보고 내려가셨을 거라면서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희도 어느 병원에서 진료를 하시든 어머님 쾌유를 바라며 저희 병원에 재진을 하 시게 되면 다음에 뵙자고 하였습니다.

그날 경험을 통해서 환자와 보호자의 입장에서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보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함께 소중한 우리”라는 병원의 경영가치를 실천한 것 같아서 뿌듯한 하루가 되었습니다.

66 / 2018 가톨릭중앙의료원 핵심가치실천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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