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조정을 위한 설득과 수사의 자료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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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위원회 교육본부 연구팀 vol. 6 월차보고서 10월호

|제 1주제|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제2주제|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제3주제|질문의 수사학 |제4주제|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기

고|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조정을 위한 설득과 수사의 자료 Persuasion & Rhetoric Report 발 행 인|권 성 편 집 인|오광건 발 행 일|2013년 10월 1일 등 록 일|2013년 2월 21일 등록번호|서울중.라 00532 발 행 처|언론중재위원회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프레스센터빌딩 15층) 편집 실무|언론중재위원회 교육본부장 심영진, 교육본부 연구팀장 구율화, 연구팀원 이정희, 김주연, 이다솔, 임미숙 TEL. 02-397-3114 FAX. 02-397-3069 홈페이지 www.pac.or.kr 디자인․인쇄|(주)계문사 (02-725-5216) • 이 책은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제작한 것입니다. • 저작권법에 따라 본지의 무단 복제와 전재 및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CONTENTS

제 1 주 제 「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1

Ⅰ. 들어가는 말

3

Ⅱ. 공간활용과 설득 커뮤니케이션

4

Ⅲ. 조정을 위한 공간의 구성

8

Ⅳ. 맺음말

14

제 2 주 제 「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제3주제

제4주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15

Ⅰ. 들어가는 말

17

Ⅱ. 󰡔일리아스󰡕 개괄

18

Ⅲ.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과 설득의 기법

20

Ⅳ. 맺음말

27

「질문의 수사학」

29

Ⅰ. 들어가는 말

31

Ⅱ. 공감・존중 표시의 질문 구사

32

Ⅲ. 정보 수집의 질문 구사

34

Ⅳ. 설득의 질문 구사

38

Ⅴ. 맺음말

42

「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43

Ⅰ. 들어가는 말

45

Ⅱ. 일본의 협상 문화와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45

Ⅲ. 일본 ADR 제도의 흐름

51

Ⅳ. 맺음말

54


「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55

Ⅰ. 들어가는 말

57

Ⅱ. 법원 조정처리절차와 새로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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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제도의 내용과 특징

60

Ⅳ. 조정의 활성화를 위한 법원의 노력

65

Ⅴ. 조정제도의 바람직한 운영 방향

67

Ⅵ.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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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주제

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I

제 1 주제

들어가는 말

1968년 5월, 베트남전1)을 종결시키기 위한 회담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다. 이 회담은 시작 부터 난관에 부딪혔는데, 다름 아닌 테이블의 모양 및 좌석배치에 관한 문제 때문이었다. 미국은 직사각형 테이블의 4면에 미국, 북베트남, 남베트남, 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 대 표가 각각 앉는 구도를 제시했으나 남베트남 대표는 민족해방전선 대표와 마주 앉을 수 없 다고 거부했고, 북베트남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대표들은 유리한 좌석과 불리한 좌석이 존 재하는 직사각형의 테이블에서는 대표단의 동등한 지위를 확보할 수 없으므로 회담에 응할 수 없다고 버텼다. 8개월에 걸친 지루한 공방 끝에 결국 회담은 원형의 테이블에 앉아 진 행하는 것으로 합의된 후에야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가기도 전, 자리배치를 두고 8개월이나 줄다리기를 했다는 사실은 설 득에 있어 장소와 공간의 활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어떤 내용을 말하느냐도 중 요하지만 때로는 어떤 장소, 어느 위치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설득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 도 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이 강렬하더라도 연인에게 한여름 쓰레기통 앞에 서 고백할 때와 장미향이 은은한 화원에서 고백할 때의 효과가 전혀 다르듯, 아무리 논리 적인 주장이라도 그 주장하는 바에 걸맞은 장소와 위치를 선택하고 공간을 적절히 이용하 지 않는다면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설득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본격적인 설 득에 앞서 공간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글에서는 조정이라고 하는 설득의 공간을 활용하는 전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선 전(前) 미국 치안판사이자 텍사스 웨슬리언 법과대학의 교수인 제프리 울프(Jeffrey S. Wolfe)의 논문 “The Hidden Parameter: Spatial Dynamics and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2)을 주된 연구의 토대로 하여 서술하되, 그가 논문에서 인용하는 공간과 커뮤 니케이션에 관한 대표적인 이론들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조정의 당사자로 하여금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을 정리할 것이다.3) 1) 1954년의 제네바협정 이후 베트남 민주공화국(북베트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NFL)과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간의 내전에 미국이 남베트남을 도와 개입, 베트남을 중심으로 전개된 전쟁이며 월남전이라고도 한다. 2) Wolfe, J. S., 1997, “The Hidden Parameter: Spatial Dymamics and Aternative Dispute Resolution,” Ohio State Journal on Dispute Resolution, vol.12:3. 3) 공간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는 심리학, 언어학, 사회학, 경영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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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활용과 설득 커뮤니케이션

1. 거리와 커뮤니케이션 (1) 인간관계와 적절한 거리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저서 󰡔The Hidden Dimension󰡕4)에서 사람 사이의 거리를 4가지로 분류하고 각각의 거리가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효과를 정리했다. 홀에 따르면 모 든 커뮤니케이션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관계 및 메시지의 내용에 따라 적절한 거리 에서 이루어져야 상대방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고 한다. 홀이 분류한 4가지 거리는 다음과 같다.5) ① 친밀한 거리는 신체접촉으로부터 45센티미터 내의 거리이다. 맞붙어 싸우거나 위로하고 보호 하는 등의 행위가 일어나는 거리이며, 신체적 접촉이 자주 발생한다. 목소리는 속삭임 수준 으로 작아진다. 가족, 연인 사이에 통용되는 거리이며, 그 외의 사람들이 이 거리에 서면 서 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② 일시적이며 개인적인 거리는 45센티미터에서 1.2미터 사이의 거리이다. 사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는 거리이자 가까운 커뮤니케이션과 가벼운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하다. 가까운 친지, 친구들에게 허용되는 거리이다. ③ 사회적인 거리는 1.2미터에서 3.6미터 사이의 거리이다. 일반적인 업무나 비즈니스가 행해지는 공간이며, 사회적 모임이 이루어지는 거리이기도 하다. 그다지 가깝지 않거

이 글에서는 크게 ① 거리 ② 가구의 모양 ③ 자리배치의 3가지로 나누어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연구를 소개 할 것이다. 보고서 작성의 준거가 된 저서와 논문의 출처에 대해서는 본문의 각 해당 부분에서 상세히 밝히 고자 한다. 4) Hall, E. T., 1966, The Hidden Dimension (NY: doubleday). 5) - 4가지 거리의 분류에 관한 내용은 Hall, E. T. 2002,󰡔숨겨진 차원󰡕, 최효선 역 (서울:한길사) 179-195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 다만 홀은 자신의 연구는 주로 미국 동북부 해안지역 중산계급의 건강한 성인들을 관찰하고 인터뷰한 자료를 정리한 것으로서 언제나 일관적으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며, 상황, 당사자의 성별 및 사회적, 문화적 배경에 따 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여성은 처음 보는 남성과 이야기할 때 더 먼 거리를 유지하 고 싶어하며, 접촉문화권(아랍, 라틴아메리카, 남유럽계 등)은 비접촉문화권(아시아, 인도와 파키스탄, 북유럽, 미국 등)에 비해 보다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자 한다고 설명한다{Hall, E. T.(2002),177-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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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제 1 주제

나 낯선 사람들은 이 거리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잠시 동안이 아닌 상당시 간 유지되는 대화의 경우에는 사회적 거리에서 이야기할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④ 공공거리는 3.6미터에서 가시청(可視聽) 한계 거리까지를 나타낸다. 공식적인 거리이자, 자신의 말과 문장을 다듬어야 하는 거리이다. 이러한 거리에서는 음색의 미묘한 차이 나, 표정의 변화, 움직임으로 인한 예민한 차이는 부각되지 않는다. 또한 말하는 사람 은 몸짓이나 목소리를 과장하거나 증폭시켜야 하며, 공식적인 연설을 할 때의 목소리 로 말하게 된다.

(2) 거리에 따른 설득의 효과 다트머스 대학의 로버트 클락(Robert E. Kleck) 교수는 거리에 따른 설득의 효과를 연구했 다.6) 그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설득의 효과도 높아진다는 가설을 세우고, 몇 쌍의 피실험자들이 각기 다른 위치에서 서로를 설득하도록 했다. 그 결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피실험자들이 상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등 수긍의 몸짓을 보이는 경우가 멀리 있 는 피실험자들에 비해 더 잦았는데, 특히 당사자 사이가 2미터인 경우, 그 거리가 4미터인 경우에 비해 고개를 끄덕이는 빈도수가 두 배에 달했다. 클락은 이에 대해 당사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상대방에게 물리적,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양보하거나 설득 당하기가 쉽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사자 사이의 거리와 설득의 효과가 언제나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다.7) 미시간 대학의 교수인 스튜어트 알버트(Stuart Albert)와 제임스 댑스(James M. Dabbs)는 서로 안면이 없는 사람들을 ① 60센티미터 이내의 가까운 거리, ② 1.2미터에서 1.5미터 이내의 중간 거리, ③ 4.2미터에서 4.5미터 이내의 먼 거리에 각각 위치하게 한 후, 2분에서 5분 동안 서로 대화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1.2미터에서 1.5미터 사이의 중간거리에 있 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게 가장 잘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60센티미터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하는 경우, 듣는 사람이 불 안하거나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알버트와 댑스는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 6) 이 단락의 내용은 Kleck, R. E., 1970, “Interaction Dispute and Non-verbal Agreeing Responses,” British J. SOC.&Clinical Psychol.{Wolfe, J. S.(1997), p.705에서 재인용}을 참조하였다. 7) 이 단락의 내용은 Alvert, S., J. M. Dabbs, 1970, “Physical Distance and Persuas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15, pp. 266-269에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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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킨다고 설명한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의 미묘한 움직임과 표정까 지 포착하게 되고, 그 결과 상대방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 과하게 애쓰게 되며 듣는 사람은 부담감과 저항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2. 가구의 모양과 커뮤니케이션 가구의 모양, 특히 테이블의 모양 또한 커뮤니케이션에 영향을 미친다. 시카고 대학의 프레 드 스트로드벡(Fred Strodbeck) 교수는 모의 배심원 심리에서 배심원들이 앉는 테이블의 모양을 통해, 원형의 테이블과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앉아있을 때 달라지는 사람들의 감정과 커뮤니케이션의 차이를 연구했다.8) 몇 그룹의 배심원들은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앉고, 다른 그룹의 배심원들은 원형의 테이블에 앉았는데,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앉은 배심원들은 심리 에 앞서 그들 중에 리더를 뽑으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자연스럽게 테이블에서 상석(上席, 테이블의 머리 부분 또는 가장 중앙)에 앉아있는 사람을 리더로 선출했다. 이에 반해 원형 의 테이블에 앉은 배심원들은 리더를 뽑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거나, 또는 뽑더라도 앉아있 는 위치가 아니라 경력이나 지위로 선출하는 경향을 보였다. 비슷한 연구에서 미국의 심리학자인 헤롤드 리비트(Harold J. Leavitt)는 한 공간에 여러 개의 원형 테이블과 직사각형의 테이블을 놓고, 각 테이블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내용에 주목했다.9) 그 결과 원형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신변잡기적이거나 편안한 대화를 한 반면에,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업무 등과 관련한 격식 있는 대화를 한 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3. 자리배치(방향)와 커뮤니케이션 거리나 가구의 모양만큼 중요한 것은 당사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향이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은 경우와 등을 맞대고 앉은 경우의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8) 이 단락의 내용은 Strodtbeck, F. L., 1961, “The Social Dimensions of a Twelve Man Jury Table,” Sociometry, vol. 24, pp.397-415{Wolfe, J. S.(1997), p.717에서 재인용}에서 참조하였다. 9) 이 단락의 내용은 Leavitt, H. J., 1951, “Some Effects on Certain Communications Patterns on Group Performance,” Abnormal & Soc. Psychol, vol. 66, pp.38-50{Wolfe, J. S.(1997), pp.718-719에서 재인용} 에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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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제 1 주제

주어진 공간 안에서 당사자들이 어떻게 앉느냐에 따라 설득의 효과가 달라진다.

(1) 자리배치(방향)에 따른 감정의 변화 일반적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사람들이 착석하는 행위는 우연 또는 임의적으로 발생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특정 위치를 선택하는 일은 업무의 성격, 소통하는 당사자들의 성격과 관계 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캘리포니아 대학의 로버트 솜머(Robert Sommer) 교수는 몇 그룹의 대학 생들에게 ① 가벼운 잡담 ② 협동해야 하는 과제 ③ 서로 경쟁해야 하는 과업의 세 가지 과제를 주고 각각의 공간에서 자유로이 앉도록 지시했다.10) 그 결과 학생들은 가벼운 대화 를 위해서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가장자리에 앉거나 옆자리에 앉았으며, 협동해야 하는 과제를 위해서는 옆자리에 앉았다. 반면에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대부분의 피실험자들 이 상대방과 가장 먼 위치에 있는 좌석에서 상대와 마주보는 쪽을 택했다. 솜머는 이에 대 해 누군가의 정면에 앉는 것은 대결, 경쟁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옆에 앉거나 코너를 두고 사이에 앉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고 친밀한 상태를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2) Sociofugal(고립적) 공간과 Sociopetal(소통적) 공간 솜머는 또한 당사자의 자리배치와 행동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이 달라진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연구했다.11) 그는 노인병원의 환자들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을수록 입원 기간 이 길어지고 사망률도 높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어떠한 환경에서 서로 원활하게 대화가 이루어지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환자들 사이의 대화는 모서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환자 들 사이에 가장 많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는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는 환자 들 사이의 대화량보다 세 배나 많았다. 또한 솜머는 입원실 내에 있는 가구, 의자나 책상 등을 고정된 것이 아닌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바꿨을 때, 대화가 원활하게 이루 어진다는 결과를 추가로 도출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솜머는 공간에 대해, 사람들을 구분지으며 고립시키는 Sociofugal (고립적) 공간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Sociopetal(소통적) 공간으로 구분하 10) 이 단락의 내용은 Sommer, R., 1967, “Small Group Ecology,” Psychological Bulletin, vol.67, No.2, pp. 145-152를 참조하였다. 11) 이 단락의 내용은 Sommer, R., 1958, “Social Interaction in a Geriatric Ward,”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vol.4, pp.128-133{Wolfe, J. S.(1997), pp.708-709에서 재인용}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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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개념을 정의했다. 솜머는 고립적 공간이 언제나 나쁘거나 소통적 공간이 항상 좋은 것 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공간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 게 하기 위함이 목적이라면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활발히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하고, 서로의 의사소통에 장벽이 될 만한 가구, 물건 등을 치우거 나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소통에 불편이 없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조정을 위한 공간의 구성

1. 조정심리실의 특성 조정심리실의 특성을 살피기에 앞서, 우선 재판과 다른 조정의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판에서는 주로 변호인이 판사나 배심원12)을 설득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판사 또 는 배심원은 상대적으로 중립적이고 소극적인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당사자와 조정위원 모두가 적극적인 지위를 갖는다. 조정에서 결론을 만드는 사람은 중립적인 판사나 배심원이 아니라 당사자이며, 당사자 스스로가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다. 그 리고 조정위원은 양 당사자가 서로의 주장을 이해하며 의견을 교환하여 양쪽 모두에게 만 족스러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그러므로 조정을 위한 공간을 구성함에 있어서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 번 째, 당사자가 자신이 무시당하거나 불리하다고 느끼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며, 두 번째, 당사자가 협상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13)

12) 살인, 강도, 강간 등 법정형이 중한 범죄 중 피고인이 신청한 사건은 배심원이 참여하는 재판, 즉 국민참여 재판을 받을 수 있다(대한민국,「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5조). 13) Wolfe, J. S.(1997), p.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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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제 1 주제

2. 거리 조정은 대체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지며 사회적, 업무적 성격을 갖는다. 다만 법정과 같은 공식적인 분위기가 지배하는 공간은 아니며, 법정에 비해 친밀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 션이 이루어지는 편안한 공간이어야 한다. 더불어 이미 분쟁으로 발생한 스트레스 외에 또 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언어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인 바바라 마도닉(Barbara G. Madonik)은 당사자 상호간, 또는 당사자와 조정위원간의 거리에 대해 에드워드 홀이 정의한 사회적 거리, 즉 1.2미터에 서 3.6미터 사이가 가장 적절하다고 설명한다.14) 3.6미터 이상으로 멀어질 경우에는 평소보 다 목소리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감정이 격앙되기 쉬우며, 서로 공식적인 언어를 사용하거 나 법정에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어 협상자로서의 태도를 잃어버릴 수 있다. 반대로 1.2 미터 이내로 가까워지는 경우에는 상대방의 몸짓이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심리적 부 담을 갖게 되고, 마치 개인적인 문제와 관심사를 논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으로 인해 스트 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프리 울프(Jeffrey S. Wolfe)도 당사자와 조정위원이 1.2미터에서 3.6미터 사이의 거리 에서 대화할 때 가장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15) 다만 그는 사회적 거리를 더 세분하여, 보다 가까운 거리, 즉 1.2미터에서 2.1미터 정도의 거리는 조금 더 친 밀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으므로 분리심리에 적절하다고 말한다.

3. 가구의 모양 (1) 원형 테이블과 직사각형 테이블의 비교 원형 테이블의 특징은 상석(上席)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도 우월적 지위를 차지함이 없이 당사자와 조정위원 모두가 동등한 거리에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대체로 서로 마주보 기 보다는 비스듬히, 또는 옆을 바라보고 말하게 되어 대립의 감정보다는 협력의 감정을 불러오기 쉽다. 또한 원형의 배열은 구성원들 모두가 어느 일정한 방향(원의 중심)을 보도

14) 이 단락의 내용은 Madonic, B. G., 2001, I Hear What You Say, But What Are You Telling Me? (SA: Jossey-Bass), p.116을 주로 참조하였다. 15) 이 단락의 내용은 Wolfe, J. S.(1997), p.721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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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되어 있으므로,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부여하여 보다 원활한 조 정을 가능하게 한다.16) 반면에 직사각형의 테이블은 권위와 격식을 상징한다.17) 따라서 조정절차의 공식적인 분 위기와 권위를 부각시킬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직사각형의 테이블을 배치하면 효과적이다. 다만 직사각형의 테이블에서 유의할 점은 당사자의 위치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 중 누구에게도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공정하게 자리를 배치하며 조정 위원 역시 어느 일방에게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곳에 위치해야 한다.

(2) 책상과 의자의 높이 책상과 의자는 성인이 앉았을 때 책상이 가슴에서 약간 내려오는 정도의 높이가 적당하다. 그보다 낮거나 높으면 필기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당사자에게 좋지 않은 심리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의자가 너무 낮아 상대적으로 책상이 높으면 당사자는 마치 어 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두려움을 느끼고 위축될 수 있으며, 반대로 의자가 높아 책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때에는 거만함을 느끼게 되어 조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 칠 수 있다.18) 의자는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심리 중에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으로 배치 하는 것이 좋다. 움직이지 않는 의자에 앉아있는 것은 마치 법정의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느낌을 불러일으켜 당사자로 하여금 무력감을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19) 움직일 수 있는 가구를 배치하는 것은 솜머가 설명한 소통적(Sociopetal) 공간을 조성하는 방법 중 하 나이기도 하다.

4. 자리배치 자리배치의 경우의 수는 매우 많은데, 그 중 토론에 유리한 좌석과 불리한 좌석이 존재하 는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특히 문제가 된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교수인 제니퍼 비어 16) Leviton, S. C., J. L. Greenstone, 2004, Elements of Mediation (CA: Wadsworth), p.18. 17) 직사각형의 테이블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부여하기도 한다{Moore, C. W., 2003, The Mediation Process (Sa: Jossey –bass), p.155}. 18) Madonic, B. G.(2001), p.111. 19) Madonic, B. G.(2001),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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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제 1 주제

(Jennifer E. Beer)는 직사각형의 테이블에서 가능한 몇 가지 좌석의 배치와 그 특징을 다 음과 같이 그림으로 나타냈다.20) 거리형 배치 각 조정위원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앉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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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 사이에 당사자들을 마주보고 앉게 한다. 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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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일방이 다른 당사자를 물리적으로 위협할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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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경우에 효과적이다. 다만 당사자들을 서로 마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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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함으로써, 대립하고 경쟁하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원 만한 커뮤니케이션이 방해받을 여지가 있다. 또한 당사

*M은 조정위원(Mediator), P는 당사자(Party)를 나타낸다. 이하 그림에서도 같다.

자 사이의 거리가 멀어 필요 이상으로 크게 목소리를 높여야 하며, 이 과정에서 서로 감정이 격해질 수 있다.

상석형 배치 테이블의 머리(상석) 부분에 조정위원이 앉고, 양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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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들을 마주보며 앉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리 배치에서는 조정위원이 권위와 격식을 갖게 된다. 다 만 상대적으로 당사자들 상호간보다는 조정위원과 대 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조정위원이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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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당사자를 보고 말하는 경우 조정위원의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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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게 되는 다른 당사자는 소외감을 느낌으로써 원만한 대화에 방해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법정형 배치 테이블의 한 쪽에 조정위원들이 앉고, 반대편에 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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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이 앉도록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서로 옆에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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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되므로 대립보다는 협력의 느낌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조정위원이 일방 당사자에게 말을 할 때 다른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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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덜 느끼게 된다. 다만 법 정 또는 교실의 배치와 비슷하여 당사자가 위축되거나 조정위원과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20) Beer, J. E., 1997, The Mediator’s Handbook (Gabriola Island: New Society Publishers),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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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형 배치 당사자들이 테이블의 한쪽 코너에 앉고, 조정위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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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 코너에 앉는 것이다. 이 배열은 당사자들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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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 코너에 서로 가깝게 앉음으로써 우호와 협력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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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느낄 수 있고, 조정위원으로서는 고개를 돌리 지 않고 양 당사자 모두에게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당사자들이 옆에 앉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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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리거나 어느 한 쪽이 위협을 느끼는 경우에는 이러 한 유형의 배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거실형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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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을 치우고 가정의 거실에서와 같은 분위기로 모 여 앉는 것이다. 부부문제, 아동문제 등 가정에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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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는 갈등을 조정하는 데 효과적인 배치이다.

M

5. 기타 (1) 합동심리실과 분리심리실 조정을 진행하는 방식에는 양 당사자가 함께 자리한 가운데 당사자의 주장을 청취하고 설 득하는 합동심리 방식과, 당사자 중 일방이 있는 자리에서 개별적으로 진술을 청취하거나 설득하는 분리심리 방식이 있다. 분리심리의 경우, 상대방이 없는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당사자는 보다 솔직하게 본심을 드러낼 수 있으며, 조정위원도 숨기지 않고 조정기관의 의 사를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조정의 당사자 간에 감정의 골이 깊거나 힘의 불균형이 있는 경우에는 당사자를 분리하여 심리하는 것이 좋다. 분리심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합동심리실과 별도의 분리심리실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때 유의할 점은 분리심리실은 합동심리실에 비해 보다 비공식적, 비권위적이며 친근한 분 위기로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분리심리실은 합동심리실에 비해 심리실의 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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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을 위한 공간활용의 전략

제 1 주제

가구의 크기 등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좋으며, 좌석 또한 조정위원과 당사자가 원형으로 앉거나 코너를 사이에 두고 앉는 것이 좋다.21)

(2) 심리실의 색상, 조명 등 일반적으로 친밀한 사람들끼리 불빛이 흐린 방이나 촛불이 켜진 방에 들어가면 서로 가까 이 앉아 사적인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나 서로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희미한 조명 속에서 대화할 때에는 어색함으로 인해 시선을 회피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며, 낯선 사람들끼리 비즈 니스나 사회적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에는 밝은 조명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22) 심리실의 색상도 당사자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색채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색상이 불 러일으키는 감정에 주목한다. 심리학자 이안 스코트(Ian Scott)에 따르면 붉은색은 보는 사 람에게 불편함을 주고 공격성을 불러오며 노란색은 질투의 감정을 일으킨다고 한다. 또한 청색과 초록색은 평온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며, 갈색, 흑색, 자주색 등은 보호의 느낌을 준 다고 한다.23) 심리실에는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필기구, 계산기 등 당 사자가 심리 중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품과 감정이 격해질 때를 대비한 티슈 등을 사전에 비치해두면 당사자는 조정기관으로부터 배려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24)

(3) 심리전 대기실의 활용 당사자가 심리 전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심리를 준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민한 상황에서 소음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대기실 은 조용한 공간에 마련하는 것이 좋다. 또한 대체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할 때 음 식을 먹으면 긴장이 완화되고 기분이 좋아지며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으므로, 간단한 간 식이나 차 등을 미리 준비하면 좋다.25)

21) Wolfe, J. S.(1997), pp.725-727. 22) Carr, S. J., J. M. Dabbs, 1974, “The Effects of Lighting, Distance, and Intimacy of Topic on Verbal and Visual Behavior,” Sociometry, vol.37, pp.592-600{Knapp, M. L., J. A. Hall, 2012,󰡔비언어커뮤니케이션󰡕, 최양호・민인철・김영기 역(서울: 커뮤니케이션 북스), p.160에서 재인용}. 23) Scott, I., 1969, The Luscher Color Test (NY: Random House) {Madonic, B. G.(2001), p.106에서 재인용}. 24) Madonic, B. G.(2001), p. 108. 25) Madonic, B. G.(2001), p.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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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에드워드 홀은 “인간은 자신들이 공간을 창조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공간에 의해 인격이 형 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현대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용하며 적절한 공간의 설계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는 이상으로 인식과 행동에 있어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특 히 조정의 당사자는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결과 앞에 불안하고 예민한 상태이다. 이러한 당사자를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조정위원이 신뢰와 권위를 보여주고, 논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사자가 편견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조정위원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당사자 사이의 거 리, 책상의 높이, 당사자가 앉는 위치 등 일견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서조차 당사자의 마음 을 헤아리는 조정기관의 태도는 불안하고 초조한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마운 배려가 될 수 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여는 가장 좋은 열쇠는 진심이며, 적절한 공간의 활용은 조정기 관의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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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주제

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I

제 2 주제

들어가는 말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 사이의 갈등이 서사의 요체를 이루며 이러한 갈등을 살펴보 는 것은 신화 읽기의 또다른 재미다.1) 다양한 감정의 골에서 말미암은 갈등은 때로 전쟁으 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그 중 가장 큰 전쟁은 트로이 전쟁이다. 트로이 전쟁의 과정은 고대인들의 문학 작품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고대 그리스 작가 호메로스(Homeros, BC 800?-BC 750)의 󰡔일리아스(Illias)󰡕와 󰡔오딧세이아(Odysseia)󰡕 는 트로이 전쟁에 대한 서사의 으뜸으로 평가받는다. 호메로스의 작품이 오늘날에도 주목받 는 것은 이것이 비단 전쟁과 영웅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인물 간, 세력 간의 크고 작은 다 툼이 해소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그 갈등 해소의 요체가 설득과 토론 및 논쟁의 과정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연 구에 따르면 󰡔일리아스󰡕의 45%는 직접 연설로 이루어져 대중 앞에서의 연설과 공식 석상 에서의 발언을 통한 설득의 순간을 담고 있다.2) 이 글에서는 그의 두 작품 중 󰡔일리아스󰡕를 중심으로 갈등과 설득의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3) 󰡔일리아스󰡕가 그리스의 민주정치, 나아가 서구식 토론 문화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는 점에서4) 이것을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 대화와 설득의 가치를 재고하는 기회가 될 것이 라 기대된다.

1) 언론중재위원회, 2013, 󰡔조정을 위한 설득과 수사의 자료󰡕제4호, 19-30쪽에서 그리스 신화 속 네 가지 이야기 를 중심으로 신들 간의 갈등의 양상과 그 조정 과정을 살펴본 바 있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딸 페르세포 네를 둘러싸고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와 벌이는 갈등,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인간 프시케를 질투하면서 생긴 갈등, 최고의 여신 헤라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르골리스 땅을 두고 다툼 할 때의 강의 신 이나코스의 갈 등 조정, 음악의 신 아폴론과 반인반수 마르시아스의 사슴피리연주 대결이 주요 내용이다. 2) Pernot, L., 2000, “La Rhetorique dans I’Antiquite,” Le Livre de Poche, p.351. Pernot는 여기서 I. J. F. de Jong(1987)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고 있다{손윤락, 2012,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에서 왕과 영웅들의 수사,” 󰡔외국문학연구󰡕 제47호, 38쪽에서 재인용}. 3) 󰡔오디세이아󰡕가 오디세우스라는 영웅 개인을 중심으로 트로이 전쟁 이후에 그가 그리스로 복귀하는 과정을 그 리는 반면, 󰡔일리아스󰡕는 트로이전쟁의 후반부를 중심으로 갈등의 과정을 보다 자세히 담고 있기에 이 글에서 는 후자를 중심으로 갈등과 설득의 순간을 분석하고자 한다. 4) 󰡔매경이코노미󰡕, 제1708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2)아킬레우스, 죽음으로 불멸의 영웅되다”(최효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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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개괄

1. 설득의 원전으로서의 󰡔일리아스󰡕5) 󰡔일리아스󰡕는 단순한 전쟁의 기록이 아니다. 이 작품은 서구 문학의 원형으로 다양하게 해 석된다. 특히 이 작품은 설득의 원전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전쟁의 패권을 둘러싼 왕과 영웅들의 회의에서는 ‘설득하다’라는 뜻의 희랍어 동사 ‘peitho’와 그것의 수동태인 ‘peithomai’가 자주 나온다. 전쟁의 전개 과정에서는 아군의 승리를 위한 전술을 펼치기에 앞서 세력 내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 화자가 자신의 의견을 효 율적으로 피력해 청자를 설득하는 것은 이 과정의 핵심이었다. 원전에 나오는 ‘agoretes’는 대화나 담론이 아닌 대중 앞에서 발언하는 연사를 가리키는 말로 설득의 과정이 전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호메로스가 이 과정을 그려내는 방법에서도 설득 적 기법이 다양하게 쓰였다.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도 호메로스 의 두 작품을 분석하면서 그의 설득적 화법에 대해 말한 바 있다.6) 이런 점에서 호메로스 의 작품을 설득학적 분석의 틀로 접근하는 것은 유의미한 시도라 볼 수 있다.

2. 󰡔일리아스󰡕와 트로이 전쟁 󰡔일리아스󰡕는 BC 900년경 쓰인 작품으로, 10여 년에 걸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격 중 마 지막 해에 일어난 사건을 노래한 그리스 최대의 민족 대서사시이다. 트로이 전쟁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황금 사과가 촉발한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고, 이 전쟁에 그리 스군의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트로이군의 헥토르와 아이네아스 등 숱한 영웅들과 신들 이 얽혀 진퇴를 반복하며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전쟁은 그리스 진영 내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의 갈등, 그리스군과 트로이 헥토르의 대결 및 크고 작은 다툼을 거쳐 결국 트로 5) 이하의 문단은 손윤락(2012)을 주로 참조하였다. 6) 플라톤은 호메로스가 ‘lexis’를 가진 사람이라 평가했는데, 이는 말솜씨로 풀이되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호메로스가 ‘pseude’와 ‘paralogismos’를 설득의 기술로 효과적으로 사용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각각 거짓말 과 오류추론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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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제 2 주제

이 목마로 트로이군이 전멸하며 그리스군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표 1> 트로이 전쟁의 주요인물 진영

그 리 스

트 로 이

이 름

신분 및 역할

아가멤논

미케네의 왕,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메넬라오스

스파르타의 왕,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헬레나의 남편

아킬레우스

프티카의 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 트로이 전쟁 영웅

오디세우스

이타카의 왕, 트로이 전쟁 영웅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트로이 전쟁 영웅

헥토르

트로이의 왕자, 트로이군 최고의 장수

아이네아스

헥토르에 버금가는 뛰어난 장수

프리아모스

트로이의 왕

파리스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나 출생 직후 버려짐, 이데산(山)의 양치기, 트로이 전쟁의 원인

<표 2> 트로이 전쟁의 주요 전개 과정 순서

주요사건

영 향

1

파리스의 헬레나 납치

트로이전쟁의 시발점

2

메넬라오스의 분노

그리스의 메넬라오스는 아가멤논에게 진군 지시

3

그리스군의 트로이 원정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를 중심으로 원정군 조직

4

아킬레우스의 이탈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으로 그리스군 위기

5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그리스의 아킬레우스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옴

6

헥토르의 죽음

트로이의 헥토르의 죽음으로 트로이군 최대의 위기

7

아킬레우스의 죽음

이후 오디세우스가 그리스군을 지휘

8

트로이 목마와 그리스 승리

그리스군의 트로이 목마 작전으로 트로이군 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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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과 설득의 기법

이 글에서는 󰡔일리아스󰡕의 서사 전개 과정을 따라가며 트로이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설득의 순간을 분석해보고자 한다.7)

1. 트로이 전쟁의 발단, 황금 사과를 둘러싼 갈등 <표 3> 트로이 전쟁의 발단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장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 적힌 황금사과 투척 가장 아름다운 여신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다툼 발 단 제우스는 파리스에게 최고의 여신을 선택하도록 함 세 여신은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택하면 파리스에게 특정한 이익을 제공할 것을 약속

세 여신이 제시한 이익

주 체

제시한 이익

최고의 여신 헤라

부와 권력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전쟁의 여신 아테나

군사력과 명예

구 분

내 용

파리스(트로이의 양치기)의 선택

아프로디테

아프로디테의 보상

파리스에게 메넬라오스(스파르타의 왕)의 부인 헬레나를 줌

메넬라오스의 분노

트로이 전쟁의 시작

결 과

7) 이 글에서 정리하고 있는 󰡔일리아스󰡕의 내용은 Bulfinch, T., 2000,󰡔일리아스, 오뒤쎄이아󰡕, 이윤기 편역(서울: 창해)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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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제 2 주제

그리스 테살리아 지역의 프티아 국왕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올림포스 의 모든 신이 초대되었으나 단 한 명,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초대 받지 못했다. 에리스는 따돌림에 대한 앙심을 품고 혼인 잔치 좌중에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적힌 황금 사과 한 알을 던졌다. 최고의 여신 헤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서로 그 사과가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다. 제우스는 이 미묘한 갈등을 해소하고자 이데 산의 양치기 파리스에게 판단을 내릴 것을 명했다. 파리스의 선택에 대해 헤라는 막강한 부와 권력을,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테나는 전쟁에서 막강한 군사력과 명예를 주리라 약속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했고, 이에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 라오스의 부인 헬레나를 파리스에게 주었다. 메넬라오스의 분노는 당연한 결과였고,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서막이 되었다.

(1) 상대방의 욕구에 소구하는 이익 제시하기 각기 서로 다른 매력을 자랑하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이 때 세 여신이 제시한 서로 다른 이익은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 한 유인 역할을 한다. 신화 속에는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이유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파리스가 알력 다툼으로 혼란스러운 신들의 세계가 아닌, 이데 산의 양치기였 다는 점에 주목하여 그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는 부와 권 력, 군사력과 같이 힘의 세계에서 패권을 갖는 것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실질적 이익이 더 소구력이 강했을 것이다. 즉 다양한 선택안 중에서 자신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안을 택한 것이라 해석해 볼 수 있다. 이렇듯 상대방의 이익 관점에 초점을 맞추면 설득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강철왕 카네기는 사람을 움직이는 유일한 방법이 “그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 다.8)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선행되면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핵심 기제가 될 수 있는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인간은 본성적으로 누구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 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 이익 관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지름길이다. 또한 파리스의 사례에서 다양한 선택안이 결정자의 합리적 선택을 촉구할 수 있는 것은 대비효과와도 관계가 깊다.9) 대비는 서로의 차이를 부각시켜 하나의 선택안이 본래의 상태 8) 신강균, 2008, 󰡔1000가지 설득비법󰡕(서울: 컴온북스), 21쪽. 9) 대비효과에 관한 내용은 Patkanis, A., E. Aronson, 2005, 󰡔프로파간다 시대의 설득 전략󰡕, 윤선길․정기현․최환진․ 문철수 역(서울: 커뮤니케이션 북스), 102-105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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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가 제시한 이익도 다른 이들이 제시 한 보상과의 대비 속에서 파리스의 마음을 얻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설득의 상황에서 도 특정한 설득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자는 하나의 안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안을 제시함으로써 그 중 자신이 원하는 안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

(2) 중재자의 역할에 대한 존중 신들의 권력 구조와 전통적 관계를 고려할 때, 최고의 자리에 위치한 세 여신의 다툼에 대 해서는 올림포스 제왕인 제우스가 판결을 내려야 마땅한 상황이나, 그는 이 판결의 권한을 전적으로 파리스에게 위임했다. 파리스의 판결 그 자체의 옳고 그름 에 대한 평가는 논외 로 하더라도, 파리스의 판결이 절대 권력자인 제우스의 통제를 받지 않았으며 제우스가 파 리스의 판결 권한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이 갈등 해결은 유의미하다. 갈등 상황을 가장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중재자를 선택한 다음, 그의 결정을 존 중하는 것은 중요하다. 중재자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온전히 자신의 통제 하에 놓는다는 것은 외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재자는 양 당사자의 입장을 조율하고 그 저울의 수평을 맞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합리적 인 지점에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중 재자가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사건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이라 말할 수 있다.

2. 화해를 거부한 아킬레우스를 전장에 불러들이기 위한 설득 <표 4>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 아가멤논이 크리세이스(크리세스의 딸)를 납치함 발 단

크리세스는 아폴론에게 그리스에 벌을 내릴 것을 간청 아폴론은 그리스에 역병을 돌게 하고 화염이 일게 함 아킬레우스의 주장

아가멤논의 주장

아가멤논이 크리세이스를 방면해야 함

아킬레우스도 여종 브리세이스를 방면해야 함

갈등 구도

갈등의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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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가 전장에서 물러서겠다고 선언


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제 2 주제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은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영웅이다. 이 둘은 크리세이스와 브리세이 스라는 두 여인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게 된다. 크리세이스는 아폴론의 사제 크리세스의 딸 이고,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우스의 전리품인 여종이다. 아가멤논이 크리세이스를 납치하자 크리세스는 아폴론에게 그리스군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아폴론의 분노로 그리스 는 역병과 화염으로 고통 받게 된다. 이에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많은 장수들은 아가멤논이 크리세이스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내놓으면 아킬레우스 또한 그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내놓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아킬레우스는 이 요구에 크게 마음을 상해 자신의 군대를 본진에서 철수시키고 그리스로 돌아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가 멤논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최고의 장수 아킬레우스가 꼭 필요했고 이에 그를 설득하 기 시작한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브리세이스를 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트로이성이 함락되면 충분한 황금과 여인들을 보상금으로 줄 것이며, 고향으로 돌아가 번화한 일곱 개 의 도시를 다스리게 하는 등 많은 보상을 줄 것을 약속한다. 또한 아킬레우스가 매우 신뢰 하는 친구이자 동료인 파트로클로스에게 아킬레우스를 설득할 것을 요청한다. 파트로클로스 는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전장의 비참한 상황을 그대로 전하며 전투에 돌아올 것을 부탁했 고, 그 자신이 아킬레우스의 무구(武具)를 갖추고 전장에 나가는 등 다방면으로 설득의 노 력을 기울였다.

(1) 구체적인 실리의 크기를 제시하기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갈등에서 󰡔일리아스󰡕는 시작된다.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의 지지부진 한 9년 간의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그리스 진영에서 발생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 화는 전쟁의 판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갈등이었다.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최 고의 전사 아킬레우스는 모두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이들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 리스군은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킬레우스가 군대를 철수하는 상황은 곧 그리스군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또한 최고의 장수인 그의 자리는 그 누구도 대체 불가 한 것이었다. 이 심각성을 직시한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를 설득하기 위해 물질적 이익을 제시했다.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 제시하는 보상금은 일반적인 관례보다도 훨씬 더 많 고, 이는 특히 ‘일곱 개의 도시’, ‘내 아들과 동등한 도시’ 등 매우 구체적이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있어 선택의 실리를 구체적이고 산술 가능하게 제시하는 것은 사 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선택에 대한 대가를 단순히 어느 수준에 서 두루뭉술하게 제시하는 것은 불확실성을 주기 쉽다. 정확한 수치로 나타난 보상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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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의 선택에 대한 가치로 바로 환산 하여 생각할 수 있다. 가령 생활용품 업체 P&G의 광고문구 ‘아이보리 비누는 99.44% 순수 합니다’는 100% 순수하다는 문구보다 소비자들에게 더 큰 신뢰감을 준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정확한 수치의 사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네슬레사가 ‘99.7% 무카페인’ 캠페인을 벌 인 것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대체로 숫자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실리 를 보여주는 것이 설득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10)

(2) 설득의 조력자를 통해 설득의 신뢰도 높이기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파트로클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파트로클 로스는 아킬레우스가 가장 신뢰하는 친구였기에 그를 통해 그리스의 참상을 전하고 급박한 상황을 강조하며 아킬레우스가 꼭 필요함을 역설한 것은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이 노력이 아킬레우스를 전장으로 불러들이는 즉각적인 결과를 유도 하지는 못했지만,11) 파트로클로스의 설득에 그의 마음이 움직였고, 이것이 그가 전쟁터로 복귀하는 데 어느 정도 기여했음은 짐작 가능하다.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무구를 주며 본인을 대신해 싸우라고 한 대목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12) 여기에는 두 가지 설득이 있다. 아가멤논이 파트로클로스를 설득한 것과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설득한 것이다. 아가멤논의 측근들은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가 파트로클로스 에게 “연하의 친구인 아킬레우스 장군을 잘 보필하되 혹 미숙한 데가 있으면 바로 잡아 큰 승리를 얻는 데 모자람이 없게 하라”13)고 당부한 것을 상기시켰다. 또한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를 설득할 때에는 동료들의 부상과 적군과의 긴박한 상황을 모두 여과 없이 전 하는 사실 전달의 설득법을 구사했다. 파트로클로스는 중간자로서 설득의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완고한 상대방을 설 득 할 때에는 상대방과 충분한 신뢰를 형성하고 있는 중간자를 통해 설득의 메시지를 전하 는 것이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의견 차로 대립하는 두 당사자가 접점을 찾기란 쉽 지 않다. 조력자의 역할은 설득자가 피설득자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그 소통 10) 위에 제시된 예는 모두 Dawson, R., 2002, 󰡔설득의 법칙󰡕, 박정숙 역(서울: 비즈니스북스), 56쪽을 참조하였다. 11) 아킬레우스는 이후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보고 전장으로 즉시 복귀한다. 12) 파트로클로스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아킬레우스는 전장으로 돌아갈 것을 거부했다. 파트로클로스는 그렇다면 아킬레우스의 갑옷이라도 빌려줄 것을 요청했다. 아킬레우스의 대역을 맡겠다는 뜻이었다. 해석에 따라 아킬 레우스가 마지못해 빌려줬다는 견해도 있으나,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에게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무구를 기꺼이 빌려줬다는 점은 파트로클로스의 설득이 그의 마음에 어떠한 파동을 일으켰음을 암시한다. 13) Bulfinch, T.(2000),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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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제 2 주제

을 원활하게 하는 데 있다. 조력자는 피설득자의 동료나 친구, 상사 등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피설득자와 조력자가 이미 일종의 신뢰 관계 를 쌓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14) 조력자와 피설득자의 관계에 따라 조력자를 통한 설득은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헥토르의 죽음과 부정(父情)의 설득 전장에서 가장 친한 동료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아킬레우스는 엄청난 분노에 사 로잡혀 트로이를 맹렬히 추격하고 공격했다. 그 결과 트로이의 장수 헥토르는 목숨을 잃게 된다. 헥토르는 죽음의 순간에 아킬레우스에게 시체만은 조국에 돌려줄 것을 간곡히 요청했 으나 아킬레우스는 이를 무시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달고 다니는 등 시체를 욕보이며 분을 삭였다. 제우스는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두 사람 모두를 가엾게 여겼다. 제우스는 헥토르의 아버 지인 트로이 프리아모스왕에게,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시체를 돌려주기를 요청하라고 말했 다. 프리아모스왕은 아킬레우스를 찾아가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댁에 계시는 아버님을 생각해 주십시오. 나처럼 이렇게 늙어, 오늘 돌아가실지 내 일 돌아가실지 모르는 당신의 어르신네를. 당신의 어르신네께서 이웃 나라의 압제를 받고 있는데도 노인을 위난에서 구할 자식이 옆에 하나도 없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허나 아 킬레우스 장군께서 살아 계시다는걸 아시면 어르신네께서는 그 소식만으로도 기쁘게 여기 시고, 다시 사랑하는 아드님을 보실 날을 기다리며 어려움을 견디어 내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제 아무 낙도 없습니다. 어르신네를 생각하시는 셈 치고 이 늙은이의 사정을 보아 주세요.”15) 이 말은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고향에 있는 아버지를 생각 하며 눈물을 흘렸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왕이 가져 온 재물을 취하되, 망토 두 장과 옷은 헥토르의 시신을 감싸도록 해 시신을 트로이로 돌려보냈다.

(1) 신들의 세계에서도 통하는 인륜의 정, 감정으로 설득하기 동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인해 아킬레우스의 헥토르군에 대한 반감은 최고조에 달했 14) Diamond, S., 2011,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김태훈 역(파주: 세계사), 298쪽. 15) Bulfinch, T.(2000),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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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파트로클로스의 애석한 죽음에 대한 빚을 갚 았으나, 헥토르에 대한 그의 적대감은 헥토르의 사후에도 여전했다. 이런 그가 마음을 돌리게 된 것은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의 진심어린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프리아모스왕이 무릎을 꿇고 애달픈 아버지의 마음을 이야기하자 아킬레우스는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되었다. 프리아모스왕은 아들을 모두 잃은 아버지의 상실감뿐만 아니라 이 상황을 아킬레우스의 아버지 상황으로 가정해 생각해보라는 역지사지의 가정법까지 사용하 며 아킬레우스를 효과적으로 설득했다. 프리아모스왕의 설득은 감정의 골이 깊어진 두 당사자 사이에서 감성에 소구하는 설득법 의 가치를 일깨운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감정적 설득, 즉 파토스(Pathos)적 설 득이 빛을 발한 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들었다.16)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감정적 설득에서 요체는 상대의 공감을 이 끌어내는 것이다. 청자의 감정적 영역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합리성에 기반한 논리보 다는 청자의 마음을 읽고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메시지를 구성하는 것이 우 선된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기반으로 부정(父情)을 상기시킨 프리아모스의 설득은 이러한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다.

(2) 설득의 순간에서 자존심과 명분 버리기 프리아모스왕은 트로이의 왕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몸소 적군인 아킬레우스를 만나러 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에 입을 맞추는 행동을 했는데, 이는 그의 발화에 앞서 아킬 레우스의 마음을 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 나라의 왕이 적국의 장수를 만나 무릎을 꿇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의 행동은 자 존심을 먼저 낮추는 것이 설득에서 어떠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흔히 설득의 기본 원칙으로 상호 존중을 강조한다. 자신의 의견을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서로의 마음을 얻는 데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한걸 음 물러나 생각해보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역으로 스스로를 낮출 때에도 충분히 가능하다. 스스로의 명분과 지위를 모두 내려놓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16)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에토스적 설득이란 말하는 이의 인품, 지식, 전문성, 경험 등을 설득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으로, 이러한 요소의 총체인 화자의 품성이 청자에게 신뢰감을 줄 때 설득의 효과가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파토스적 설득은 화자가 청자의 마음 상태를 파악하고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설득 메시지를 구성 하는 것을 뜻한다. 로고스적 설득은 논리적으로 잘 구성된 메시지를 통해 듣는 이를 설득하는 것이다{강태완, 2010, 󰡔설득의 원리󰡕(남양주: 페가수스),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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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문학의 효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속 설득의 순간

제 2 주제

스스로를 낮추는 설득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전부터 강조되었다. 중국 도가 사상의 창시자인 노자도 󰡔도덕경󰡕에서 “강과 바다가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잘 낮추기 때문이다. 백성의 위에 서려고 하는 이는 반드시 말로써 자기를 낮추고, 백성의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그 몸을 뒤로 할 것이다.”17)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설득의 순간에서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피설득자를 설득하 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한다. 자존심과 명분이 상대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데 장애물이 된다면 기꺼이 이를 떨쳐버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맺음말

그리스 로마 신화와 󰡔일리아스󰡕는 서구 문학의 효시라는 점에서 작품이 갖는 의미가 크다. 특별히 작품 속에서 첨예한 갈등의 순간들이 인물들 간의 설득과 상호 이해에 의해 해소되 는 장면들은 설득의 힘을 확인하게 하는 인상적인 대목이다. 작품 속 설득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익의 크기를 생각해보고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링커십(Linkership)’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신조어인 이 단어는 중간자(Linker)와 특성을 의미하는 접미사(Ship)의 합성어이다. 파리스라는 중재자를 통한 갈등 해결 과정과 파트로클로스라는 설득의 조력자를 통해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돌리려고 했던 순간이 보여주듯, 중재자, 조력자는 양자 사이의 소통과 이해를 촉진시켜 갈등을 해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은 진심의 설득이다. 갈등과 대립의 순간도 사실은 서 로의 감정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전쟁의 과정에서도 무수한 불화와 갈등, 분노와 복수는 파 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이 화해하고, 헥토르의 죽음 이후 아킬 레우스와 프리아모스가 화해하는 결과로 나아간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불화보다는 화해, 분노보다는 관용에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17) 노자, 연도미상, 󰡔도덕경󰡕 제66장 {박영규, 2005, 󰡔도덕경을 읽는 즐거움󰡕(서울: 이가서), 257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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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기록된 시기와 오늘의 시대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전쟁 과정에 나타난 갈등 해결과 설득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그 울림이 여전하다. 󰡔일리아스󰡕는 단순한 전쟁의 기록을 넘어 갈등 해결과 설득의 혜안을 전하는 설득의 원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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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주제

질문의 수사학



질문의 수사학

I

제 3 주제

들어가는 말

와튼 스쿨의 최고 고위자 대상 협상 워크숍의 책임자인 G. 리처드 셀(G. Richard Shell)은 뛰어난 협상가는 평범한 협상가에 비해 두 배나 더 많은 질문을 한다고 말했다.1) 그는 대 화를 주도하고 상황을 제어하는 힘이 질문에서 파생한다고 생각했다. 수사학 분야에서도 질 문이 지닌 가치는 주목되어 왔다. 수사학자 미셸 메이에르(Michel Meyer)는 일방적인 발화 (發話)에 의하면 상대방이 대화에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에,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대화에 편입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다.2) 따라서 질문을 단순히 대답을 위한 사전절차쯤으로 가볍게 보아서는 곤란하다. 질문은 대화에서 실로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질문은 정보를 수집하려는 목적으로도 구사되 고, 때로는 청자의 행동을 설득하려는 세련된 시도로도 기능하며, 종종 청자를 향한 공감의 창구 역할도 수행한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질문을 구사하는 자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대화 를 지휘할 수 있다. 특히나 조정자에게 질문 구사력은 더욱 중요한 자질임에 틀림없다. 조 정자는 스스로의 발언보다는 양 조정 당사자에 대한 적절한 질문을 통하여 이들이 발언의 기회를 갖고 합의로 나아가게끔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질문 구사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분별 있는 답보다 분별 있는 질문을 하 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페르시아 속담은 질문 구사의 어려움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질문 하는 법에 대해 고민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법정, 상담,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 야에서의 질문법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과 달리, 조정 분야에서의 질문 구사에 대한 연구나 자료는 많이 부족하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조정 시 질문구사 기법에 관해 정리·연구해 보고자 한다. 특히 조정자는 조정 시에 질문을 통해서 (법정의 증인신문에서 처럼) 사실관계 등 정보를 수집하고, (비즈니스 영역에서처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여 상 대방을 설득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공감·존중의 표시’, ‘정보 수집’, ‘설득’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조정에서 적용될 수 있는 질문법을 살피기로 한다.3) 1) Leeds, D., 2009, 󰡔질문의 7가지 힘󰡕, 노혜숙 역(서울: 더난출판), 80쪽. 2) 물음의 가치에 대한 미셸 메이에르의 수사학 내용은 언론중재위원회, 2013, 󰡔조정을 위한 설득과 수사의 자료󰡕 제3호, 46-47쪽에서 살펴본 바 있다. 3) 조정 상황에서의 질문 기법에 대한 연구를 찾기 어려워, 질문에 대한 기존 연구 중에서 조정 상황에서 활용하기 적절한 것을 찾고 이를 정리·응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각 질문법의 좋은 예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있으면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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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존중 표시의 질문 구사

대화 상대방에 대한 공감과 호응은 부드러운 대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다. 상대 를 향한 공감과 존중의 마음은 질문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1. 대화의 물꼬를 트는 질문이 필요하다 미국 CNN의 유명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의 진행자였던 래리 킹(Larry King)4)은 신문기 자에게 “화재 현장 취재 시 소방관에게 어떤 질문부터 하겠는가?”라고 물었다.5) 이에 기자 는 “화재는 언제 발생했습니까?”, “화재의 원인은 무엇입니까?”라고 묻겠다고 했다. 그러자 래리 킹은 “나라면 먼저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곳에서 벌써 몇 시간 째 고생하고 계십니 까?’라고 질문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소방관이 과연 누구에게 호감을 가질지는 분명하다. 래리 킹의 질문은 캐널리제이션(Canalization) 기법에 속한다. 강에 물길(수로)을 내는 것을 의미하는 캐널리제이션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기술을 가리킨다. 우리는 처음의 한두 마디가 물 흐르듯 매끄러운 대화로 이어지는 광경을 종종 목격한다. 조정에서도 당사자와의 대화에 길을 내는 초반 질문이 중요하다. 특히나 조정 당사자가 대체로 긴장된 상태로 조정실에 들어온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캐널리제이션 기법을 활 용한 좋은 질문 예는 “날씨가 꽤 쌀쌀해졌죠?”와 같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질문, “여기 오시느라 힘드셨죠?”와 같이 상대방의 처지에 대한 공감을 표하는 질문 등이 있다. 특히 후자의 예와 같은 질문은 분리심리를 시작할 때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4) 래리 킹(1933- )은 TV 부문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에미상(Emmy Awards)과 두 번의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수상하는 등 미국에서 매우 유명한 TV토크쇼 진행자이다. 1985년부터 2010년까지 래리 킹이 진행 한 <래리 킹 라이브>에는 리처드 닉슨, 넬슨 만델라, 버락 오바마 등 4만 명이 넘는 인사들이 출연했다. 5) 캐널리제이션 질문 관련 내용은 이호철, 2011, 󰡔스텝스피치 55󰡕(서울: 비즈센), 111-113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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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수사학

제 3 주제

2. 상대방 대답을 독려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질문하는 사람이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질문 전후의 질문자 태도는 답변자에게 큰 영향을 준다. 답변자는 ‘말’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질문자의 ‘몸’을 통해서도 질문을 받는다. 존중받는다고 느낄수록 대부분 더 성의 있게 답변한다. 질문자는 질문이 끝나고 상대방 대답이 나오기까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좋다.6)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대방을 다그치거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성급하게 다음 질문 으로 넘어가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상대방은 질문자에게 대답을 하지 않 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결국 답변은 부실해진다. 질문 후 대답 전까지 상대에 게 부여된 시간이 짧을 경우 상대방이 “모르겠다”라고 답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 과도 있다. 질문자의 제스처는 대답을 경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시다. 질문자는 답변자에 게로 몸을 기울이고, 그와 시선을 맞추면서 대답을 듣는 것이 좋다. ‘나는 당신의 말을 성 의 있게 듣고 있다’는 것을 몸을 통해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제스처와 함께 상대가 말한 단어나 어구를 적절히 질문으로 반복하는 것도 상대가 더 자세히 말하도록 하는 데 효과적 이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올해 말에 그만두었어요.”라고 말하면, 질문자는 “올해 말이 요?”라고 되묻는 식이다. 상대방은 질문자가 자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고 느껴서 더 부연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상대방 말을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하기보다는 비슷한 단어를 활 용해서 표현을 변형하는 것도 좋다. 상대의 대답을 독려하는 태도는 상대 마음을 열게 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질문자는 아무리 좋은 질문을 하더라도 답변자로부터 만족스런 대답을 듣 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질문은 질문자의 경청하는 자세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6) 이 단락의 내용은 이태복․최수연, 2011, 󰡔질문파워󰡕(서울: 패러다임), 190-196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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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수집의 질문 구사

조정을 위해서는 먼저 사건에 대한 정보의 습득이 요구되는데, 이를 알아내기 위한 첫 통 로가 바로 조정자의 질문이다. 조정자는 질문을 통하여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렇게 수 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조정안의 큰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1. 광범위한 정보를 얻을 때 (1) 개방형 질문을 한다 개방형 질문이란 상대방이 “네/아니오”와 같은 정해진 답이 아니라 자유로운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이다.7) 예컨대 “어떻게, 왜~?”를 활용한 질문이 대표적으로 개방형 질문 에 속한다. 반면 단답형으로 대답하도록 하는 질문은 폐쇄형 질문이다. 정보 수집의 목적을 가지고 질문할 경우 이미 질문으로 대답 내용을 한정해버린 폐쇄형 질문은 많은 정보를 얻 기에 적절치 않고, 응답자의 자유로운 대답이 보장되는 개방형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 최대 한 많은 정보를 진술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보 수집 측면에서 유리하다. 이러한 질문 구사는 법정의 증인신문과도 유사한 면이 있는데, 플로리다 국제대학의 로날드 피셔(Ronald P. Fisher)와 캘리포니아 대학의 에드워드 가이젤맨(R. Edward Geiselman) 이 집필한 󰡔기억 증진 심문기술󰡕8)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강도의 외모에서 특별한 점이 있었는가?”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이 질문은 단순히 “있었다/없었다”라고 대답해도 충분한 질문이므로 “없었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았다.9) 하지만 “강도의 외모에서 가장 특이한 점이 무엇이었는가?”라는 열린 질문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머릿속에 강도의 인상착의를 그 려보고, 조그마한 특징이라도 말하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사실 등을 알아보 7) 이 단락의 내용은 Booher, D., 2012,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대화사전󰡕, 정지현 역(서울: 토네이도), 325-326쪽 을 참조하였다. 8) Fisher, R. P., R. E. Geiselman, 1992, Memory-Enhancing Techniques for Investigative Interviewing: The Cognitive Interview (Springfield: Charles C Thomas Pub Ltd). 9) 이 단락의 내용은 Fisher, R. P., R. E. Geiselman(1992){Leeds, D.(2009), 96-97쪽에서 재인용}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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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수사학

제 3 주제

기 위한 목적으로 질문을 할 때는 어떤 질문이 답변자의 진술을 최대한 많이 끌어낼 수 있 는 질문일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열린 질문이 상대방이 솔직하게 대답할 확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휴스턴 대학 의 블레어 박사(Ed Blair)와 동료들은 1,2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음주와 섹스같이 솔직히 답하기 힘든 행동에 대해서 여러 형태의 질문으로 묻고 이에 따른 답변의 상관관계를 연구 했다.10) 사람들은 폐쇄형 질문보다는 열린 질문일 때 솔직하게 대답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폐쇄형 질문을 받는 사람은 사실 그대로 말하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평가되는 대답을 하는 경향이 강했다.

(2) 선입견을 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질문 표현에 따라 얼마든지 대답의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다음의 실험은 질문의 표현에 신 중을 가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워싱턴 대학의 로프투스(Elizabeth F. Loftus)와 팔머 (John C. Palmer) 교수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차들이 서로 충돌하는 장면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준 뒤, 한 그룹에는 “그 차들이 서로 심하게 꽝하고 충돌할 때 얼마의 속도로 달리고 있 었습니까?”라고 물었고, 다른 그룹에는 “그 차들이 부딪혔을 때 얼마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 습니까?”라고 물었다.11) 두 그룹은 같은 장면을 시청했지만, 전자 그룹이 말한 자동차 속도 는 후자 그룹이 말한 속도보다 더 빨랐다. 또한 사고 현장의 비디오에는 깨진 유리조각이 나 오지 않았음에도 전자 그룹에서는 깨진 유리조각을 보았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많았다. “심하 게 꽝~”이라는 질문 표현이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다. 응답자는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을 할 때조차 질문 표현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질문자 는 최대한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답변자가 무의식적으로 질문 문구의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10) 이 연구는 Blair, E., S. Sudman, N. M. Bradburn and C. Stocking, 1977, “How to Ask Questions about Drinking and Sex: Response Effects in Measuring Consumer Behavior,” Journal of marketing research, vol.15. pp.316-321. {이태복․최수연(2011), 197-200쪽에서 재인용}을 참조하였다. 11) 이 실험은 Loftus, E. F., J. C. Palmer, 1974, “Reconstruction of Automobile Destruction: An Example of the Interaction between Language and Memory,” Journal of Verbal Learning and Behavior, vol.13, pp.585-589{이태복․최수연(2011), 91-92쪽에서 재인용}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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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라는 질문은 주의한다 열린 질문 중 “왜~?”를 사용한 질문은 주의해야 한다.12) “일을 왜 그렇게 처리했습니까?” 라는 식의 질문은 자칫 비난조로 들려서, 이 질문을 받은 상대방이 대화 참여에 소극적으 로 돌아서거나 자기 입장만 합리화하려고 하여 대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그 러므로 이유가 알고 싶을 때는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 궁금합니다.”라는 식으로 물어, 상대 방에게 일의 책임을 지우는 것처럼 들리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4) 활발한 사고를 유도하는 단어를 사용한다 예컨대 ‘설명’이라는 단어는 상대방이 좀 더 활발히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가졌다 고 한다.13) 그러므로 “취재 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대신 “어떤 과정으로 취재가 이루어지는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설명하라’ 외에도 물음에서 ‘이야기하라, 이 해를 도와 달라, 분석하라, 가르쳐달라’ 등의 말을 활용하면 상대방이 질문의 주제에 대해 스스 로 더 탐색하게 할 수 있다.

(5) 때로는 폐쇄형 질문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정보 수집 측면에서 개방형 질문이 유리하다는 점에 대해 검토하였지만, 때로는 폐쇄형 질문을 구사하는 게 적절한 때가 있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에 소극적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지나치게 장황하게 진술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질문자는 상대가 쉽고 간단명료 하게 대답할 수 있는 폐쇄형 질문을 통하여 대화의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대답을 회피하거나 논의가 지지부진할 때 (1) 대답의 범위를 넓혀 묻는다 상대가 대답을 회피하는 경우 똑같은 질문을 계속 하기보다는 상대가 대답하기 쉽도록 질 문을 바꿔줄 필요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대답의 범위를 넓힌 질문으로 변경하는 것이 12) 이 단락의 내용은 이태복․최수연(2011), 106-107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13) 이 단락의 내용은 Leeds, D.(2009), 65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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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수사학

제 3 주제

다. 상대방은 특정 대답을 요구받을 때보다 부담감이 덜하여 더 용이하게 답변할 수 있다. 예컨대 “손해배상액을 얼마로 생각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대답을 피하면 “대략 생각하고 있는 범위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바꾸는 것은 유용한 방법 이다.

(2) 질문의 틀을 바꾼다 대답이 없거나 논의가 지지부진한 경우에는 질문의 틀을 바꿔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왜 이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언제부터 이 문제가 발생한 것 같나요?”라고 질문을 바꿔볼 수도 있다.14) 질문 의 각도를 바꾸면 의외로 그 곳에 원하는 대답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15) 틀을 바꾸는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비추기도 한다. 다음은 한 대학생의 실제 경험담이다.16) 그는 몇 년 간 섬마을 노인들의 집에 도배를 하는 봉사활동을 해 왔는데, 몇 년에 걸친 도배 봉사활동으로 마을에는 도배를 해줄 집이 더 이상 없었다. 그래서 함께 봉사활동을 해 오던 사 람들 간에는 “올해도 도배를 하러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둘러싸고 의견 대립이 생겼고, 이 들의 의견차는 한참이나 계속 됐다. 이때 “우리가 그 섬에 가는 이유가 무엇이지?”라고 묻는 한 구성원이 있었다. 이 질문을 통해 비로소 구성원들은 섬을 방문하는 목적에 관해 토의했고, 도배가 아니라 봉사를 위해 섬을 방문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들은 도배가 아니라 의료 봉사로 전환하여 봉사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조정에서 질문의 각도를 바꾸고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은 조정자에 게 있다. 그러므로 현명한 조정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법에 관해 고민 해 보아야 한다.

14) 이 내용은 Leeds, D.(2009), 69쪽에 있는 실제 사례를 요약한 것이다. 15) 사법연수원에서 발간한 󰡔증인신문기술󰡕에서도 증인이 원하는 내용의 답변을 하고 있지 않은 경우 질문하는 각도를 바꾸어 신문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가령 특정 토지에 대한 점유시효취득이 쟁점인 사안에서 점 유시효취득 주장 측 증인이 “~의 지시에 따라 해당 토지를 직접 경작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을 경우 “무슨 곡 식을 경작하였는가?”라고 신문했을 때 증언 탄핵이 어렵다면, 이때는 질문 방향을 돌려서 “증인의 집은 어디 에 있는가?”, “증인의 집에서 이 사건 토지는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등의 신문을 해보면 의외로 만족할 만 한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고 한다{사법연수원 출판부, 2010, 󰡔증인신문기술󰡕(고양: 경성문화사), 41-42쪽}. 16) 이 사례는 이태복․최수연(2011), 99-100쪽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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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대방의 의중을 확인할 때 (1) “설마, ~ 아니지?” 질문을 한다 예컨대 “설마 그것을 그만 두시려는 겁니까? 아니죠?”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현재 그만 두 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든 상관없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질문 자가 이미 모든 상황을 파악한 상태에서 질문을 하는 것으로 인지할 가능성이 높다.17) 상 대방은 전부 알고 있는 질문자에게 굳이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위 의 질문은 답변자가 자신의 속내를 더 빠르고 쉽게 털어놓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2)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는 질문을 한다 특정인의 의견을 제시하며 이에 대한 질문 상대방의 견해를 묻는 질문법도 있다.18) 예컨대 조정에서라면 분리심리를 진행하면서 “방금 신청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는 ~라고 생각 하는 것 같더군요. 당신도 생각이 같은가요?”라고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의 특징은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기가 쉽다는 점으로, 질문자는 답변 자체 뿐 아니라 상대방의 표정이나 어투 등을 여느 때보다 더 꼼꼼히 살펴서 상대방 생각을 알아내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질문은 정보가 한정적인 협상 테이블에서 특히 유용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조정의 분리심리 에서도 잘 활용될 수 있겠다.

설득의 질문 구사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질문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조정자의 경우 양 당사자의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 마무리 단계에서 설득 목적의 질문을 주로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조정

17) 이 단락의 내용은 이호철(2011), 104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18) 이 단락의 내용은 Booher, D.(2012), 327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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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수사학

제 3 주제

자가 중점을 두는 부분은 결정을 망설이는 당사자가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과 당사자들이 공정타당한 조정안으로 합의하도록 대화의 흐름을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 으로 구사되는 질문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할 때와 차이가 있다.

1. 상대의 결정을 촉구할 때는 폐쇄형 질문이 좋다 상대가 결단하도록 도울 때는 폐쇄형 질문이 좋다. 예를 들어 “어떤 조정안이 좋겠습니까?” 가 아니라 “A안, B안, C안의 조정안 중 어느 것이 좋습니까?”라는 질문이 상대의 결정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된다. 폐쇄형 질문이 대화 분위기를 경직되게 할 우려가 있는 것은 사 실이지만, 이미 구축된 관계에서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는 폐쇄형 질 문이 효과를 발휘한다.19) 한편 폐쇄형 질문의 형식에 있어 “~라는 안에 대해 동의하십니 까?”와 같이 동의를 묻는 형태가 “예”라고 대답할 확률을 높인다. 조정자는 조정 당사자가 서로 합의하도록 가운데에서 중재하는 역할이지, 특정 주장의 수용 여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는 당사자가 아니다. 따라서 양자에게 광범위한 선택권이 부여되는 질문만 하게 되면, 양자의 의견 수렴은 요원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양 당사자의 내심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난 뒤, 합의를 위한 결심을 촉구하는 단계에서는 폐쇄형 질문 이 효과적이다.

2. 상대방의 부정적 반응을 질문으로 바꾼다 상대방이 늘 긍정적인 답변을 할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다. 아래 대화는 환자를 대하는 두 의사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20)

19) 요코야마 타로, 2011, 󰡔위대한 리더의 위대한 질문󰡕, 홍성민 역(서울: 예인), 110쪽. 20) 아래 대화는 이혜범, 2011, 󰡔사람을 얻는 질문법 38󰡕(서울: 윈앤윈북스), 254-255쪽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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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사례 2>

환자 : 제 병이 꼭 수술을 해야 되는 건가요? 약물로

환자 : 제 병이 꼭 수술을 해야 되는 건가요? 약물로 치료할 수는 없나요?

치료할 수는 없나요? 의사 : 네. 수술은 꼭 받으셔야 합니다.

의사 : 수술이 걱정되시는군요. 수술이 걱정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요?

환자 : 글쎄요. 저는 내키지 않아요. (자신의 걱정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기에 마음을 바꾸지 않음)

환자 : 수술 자체도 그렇고 마취도 무서워요. 의사 : 환자 분의 마음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마취는 사전에 여러 정밀 검사를 하고, 마취과 선생님은 아주 베테랑이셔서.. –하략환자 : 마취가 안전하다면 수술을 하겠어요.

위에서 환자는 수술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지를 궁금해 하면서 수술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 <사례 1>의 의사는 수술은 꼭 필요하다는 대답만 하여 설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사례 2>의 의사는 환자가 수술을 거부하는, 즉 수술이 가장 걱정되는 이 유에 관해 물었다. 이에 환자는 마취가 두렵다고 털어놓았고, 의사는 마취 의료진의 훌륭함 을 설명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환자는 의사에게 꼭 수술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으므 로, 형식적으로 <사례 1>의 의사의 대답은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결국 대화의 단절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상대방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시 가장 부드럽게 설득을 이어가는 방법은 상대방에게 질문 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질문은 부정적인 시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변화시키는 전 환점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가격 때문에 구입하지 않겠다는 소비자가 있을 때 “경쟁사 제품 보다 저희 제품의 가격이 비싼 이유가 궁금하시죠?”21)라는 질문은 설득을 부르는 질문 중 하 나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질문기법은 상대의 거부 반응에 당면했을 때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논의를 세련되게 전환하는 방법이다.

3. “만약에 ~ ?”라는 질문을 해본다 “만약에”를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상황을 가정해 보도록 하는 질문법도 유용하다.22) 답변자 는 질문을 받고 스스로 상황을 그려봄으로써 사안을 좀 더 능동적으로 살피게 되고 적극적 21) Leeds, D.(2009), 201쪽. 22) 이 질문 기법에 대해서는 이호철(2011), 109-110쪽, Booher, D.(2012), 335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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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수사학

제 3 주제

으로 해결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예컨대 “만약에 내가 당신에게 ~을 해 준다면 당신은 어떤 이익을 보게 되나요?”, “만약 에 당신이 ~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면, 당신은 ~을 해줄 용의가 있습니까?” 등과 같은 질 문은 답변자가 스스로 자신의 이익에 대해 검토해 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자발적으로 유 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상대방은 더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약에 다른 회사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마련할까요?”와 같은 질문도 있는데, 이는 사람들의 비교 우위 심리를 활용한 질문법으로, 답변자의 경쟁 심리를 발동시켜서 궁극적으로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는 행동의 반경을 넓히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상대방은 더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생각해 보게 되므로, 질문자의 설득은 탄력을 받는다.

4. 대의를 강조하여 질문한다 결정 앞에서 머뭇거리는 상대방에게는 대의를 강조한 질문이 유용한 경우가 많다. 미국 IBM이 1990년대 초 위기를 타파하고자 거물급 경영자 루이스 거스너(Louis Gerstner)에게 CEO 직을 맡길 때 대의를 강조한 질문은 설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23) 거스너는 지금까 지 쌓아온 경력이 선임직 수락으로 물거품이 될까봐 쉽게 설득에 응하지 못했다. 이때 설 득의 거의 막바지에 거스너가 들었던 질문이 바로 “미국을 위해 수락해주지 않겠습니까?” 였다. 이 질문은 ‘IBM은 미국의 보배와 같은 기업인데, 이 회사가 무너지는 것을 당신처럼 능력 있는 사람이 잠자코 보고만 있을 것인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거스너는 이 질문 앞에서 선뜻 “아니오”라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는 결국 IBM의 CEO 직을 수락했다. 조정에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당사자가 종종 있다. 이때는 대의를 강조 한 폐쇄형 질문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자녀의 행복을 위해 이와 같은 조정안에 동 의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노사 간 화합을 위해 수락하지 않겠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생 각해볼 수 있겠다. 사람들은 대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선택에 부담을 느끼므로, 이러한 질문 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선 사람들에게 효과적이다.

23) 이 사례는 요코야마 타로(2011), 21-30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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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당사자의 마음을 열고, 사건의 정보를 모으며, 종국적인 합의를 이끄는 역할의 중심에 ‘조 정자의 질문’이 있다. 조정자가 각 상황에 맞는 질문을 구사할수록 조정은 더 매끄러워진 다. 조정자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개방형 질문을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며, 폐쇄형 질문으로 당사자들이 빠르고 수월하게 합의할 수 있도록 유 도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조정자의 좋은 질문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루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제시 못지않게, 상황에 걸맞은 질문의 구사는 조정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질 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질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부족 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으로써 조정 심리 중에 했던 질문에 관해서 도 고민해 보고 평소 대화 속에서 했던 질문에 대해서도 반추해 본다면, 조정자는 적절한 질문의 구사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사자의 답변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가 그 대답을 하게 한 시초에는 언제나 ‘조정자의 질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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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주제

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I

제 4 주제

들어가는 말

협상은 둘 이상의 당사자가 상호간의 의사소통을 통해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의점 을 스스로 찾아내는 ADR의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사회의 ADR을 통한 분 쟁해결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협상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의사 결정의 과정과 방식을 주목해야 하며, 나아가 그 나라의 특수한 문화, 민족성, 기질적 특성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의 협상 문화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을 받아 왔고, 이를 일본의 독특한 민족성, 기질적 특성으로 설명하는 연구도 많다. 특히 일본에서는 매우 오래 전부터 당사자 사이의 원만한 합의를 유도하는 오늘날의 ADR제도와 유사한 분쟁해결절차가 있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협상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일본에서의 ADR에 의한 분쟁해결의 양 상을 사례와 함께 살펴볼 것이다. 우선 일본 협상 문화의 특징을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1)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는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일본 에 도(江戶)시대의 전통적 분쟁해결방식 중 하나인 나이사이(內濟) 제도부터 오늘날 ADR법에 이르기까지 일본 ADR 제도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일본의 협상 문화와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1. 일본 협상 문화의 4가지 특징 (1) 집단주의 일본인은 타인과 두드러지게 구별되는 행동을 꺼리며, 되도록 개인보다는 집단의 한 부분으 1) 전영수, 2010, “일본적 협상문화의 배경과 특징 -5대 협상문화와 그 영향력 탐색,” 한국일본학회, 󰡔일본학보󰡕, 제 82호를 주로 참조하였다. 전영수의 논문에서는 일본 협상문화의 특징을 집단주의, 절차주의, 폐쇄주의, 조정주의, 실용주의의 총 5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실용주의를 제외한 4가지로 재분류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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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존재하고 싶어한다.2) 도쿄대 교수이자 사회 인류학자인 나카네 치에(中根千枝)는 저서 󰡔일본 사회의 인간관계󰡕3)에서 일반적으로 집단을 구성하는 원리는 자격(資格)과 장(場, frame),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자격에 의한 구성’은

다른 사람과 구별할 수 있는

개인의 속성(학력, 지위, 직업, 혈연 등)을 기준으로 하여 집단을 구성하는 것이며, ‘장(場) 에 의한 구성’은 자격과 상관 없이 일정한 테두리(특정 지역, 소속기관 등)에 의해 집단을 구성하는 것이다.4) 그 중 일본은 대표적으로 자신이 속한 ‘장’, 또는 테두리가 중요한 사회 라고 볼 수 있다. 전통조직인 이에(家)나 촌락조직 뿐 아니라, 기업 내의 인간관계나 정서 적 유대, 충성심 등은 이러한 장을 중시하는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적 문화에서 비롯된다.5) 일본과 같은 집단주의 문화의 사회에서는 사회 공동의 의사가 개인의 의사보다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1983년 평론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일본은 공기의 나라’라고 주장 하면서 처음 언급한 ‘공기론’(空氣論)은 이러한 일본의 문화를 설명하는 주요한 개념이다. ‘공기론’이란 집단 속의 무언(無言)의 커뮤니케이션이나 분위기를 통해 개인의 행동이 결정 된다는 것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공기론, 즉 다수가 대체로 동의하는 방향으로 이슈를 취합・주장하는 경향이 있다.6) 그러므로 일본의 협상 문화에서 는 집단 전체가 수긍할 수 있는 합의안의 도출을 우선시한다.

(2) 폐쇄주의 일본의 집단주의적 성향에 따른 집단 내부의 결속 강화와 이익 추구는 외부집단에 대한 저 항감, 혹은 폐쇄적 배타의식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7) 일본의 폐쇄적 배타의식은 내가 속한 ‘장’을 지키기 위해 ‘우리’와 ‘남’을 엄격히 구분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집단 구성원이 스스로 ‘장’의 구성원과 외부의 사람들이 다르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구분하지 않으 면 다른 집단과의 구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 사람이 아닌 외부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배타성은 테두리 밖의 사람을 철저히 외면하고 따돌리는 일본 특유의 ‘이지메’ 문화로도 설 명할 수 있다.

2) 3) 4) 5)

전외술․김현종, 2002, “일본기업의 협상문화에 관한 고찰,” 『아태연구』, 제1권, 131쪽. 나카네 치에, 2013, 󰡔일본 사회의 인간관계󰡕, 양현혜 역(서울: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나카네 치에(2013), 20-24쪽. 권숙인, 2003, “일본문화를 보는 세 가지 눈: 루스 베네딕트, 나카네 지에, 노마 필드,” 󰡔국제・지역연구󰡕 제 12권1호 봄호, 55쪽. 6) 전영수(2010), 302쪽. 7) 이하 폐쇄주의에 관한 내용은 전영수(2010), 303쪽에서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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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제 4 주제

한편 이러한 차별적 폐쇄주의에 따라 내․외부를 뚜렷하게 구별하는 태도는, 외부에 대 한 반응에서는 의례적인 대답이나 행태로 나타나며, 내부에 대해서는 진실한 태도로 반응하 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협상의 자리에서는 애매모호하고 소극적인 응답과 침묵, 비공식적 관행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제시된 협상안에 대해 ‘차후에 잘 고려해보겠다’는 취지로 대 답하는 경우 서구 사회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 될 것으로 해석하나, 일본에서는 완곡한 거절의 의미를 갖는다. 즉, 일본식 'No'의 의사표시 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아닌 외부인과의 협상에서는 'No'라고 말 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대결 국면을 피하고, 협상 중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침묵 을 지키는 경향이 있다.8)

(3) 조정주의 일본인은 화합과 어울림을 중시하며, 화합과 어울림을 통해 조화와 평화의 상태인 ‘와’(和) 의 실현을 추구한다. 집단 전체의 화합이 목표이므로 개인은 그 자체보다는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 일본인들은 ‘와’를 해치는 개인의 돌출 적 행동을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경향을 가진다. 에도 시대에는 개인이 사회의 보편적 윤리 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한 경우 마을 공동체가 가차 없이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이를 ‘무라 하치부(村八分)’라고 했는데, 제재 대상자와의 일체의 교류를 끊어 사실상 생계를 꾸리기 힘 들게 만드는 벌이 주어졌다.9) 일본인들은 협상에서도 ‘와’를 중시하여, 공식 회의에 앞서 집단 내부에서 1차적으로 합 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네마와시’(根回し, 사전교섭)라 하는데, 회의를 앞두고 미리 이루어지는 비공식적 교섭을 뜻한다. ‘네마와시’는 특히 정치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정치권에서는 주요 이슈나 쟁점에 대해 파벌 실력자들에게 사전에 돌아가며 사정을 설명하 여 물밑 양해를 얻은 후, 이를 바탕으로 공식 의제로 삼는 것이 보편적이다.10)

8) Van Zandt, H. F., 1970, “How to Negotiate in Japan,” Harvard Business Review, November-December, pp.45-56{김경배, 2001, “조정합의 성립의 결정요인에 관한 실증적 연구,” 경희대학교 무역학과 박사학위 논문, 74쪽에서 재인용}. 9) 김필동, 2005, 󰡔일본의 정체성󰡕(서울: 살림), 8쪽. 10) 전영수(2010),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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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절차주의 일본인은 의사결정을 할 때 절차를 매우 중요시한다. 일본의 조직에서는 직급에 따라 순차 적으로 의견을 모아 수많은 회의를 거친 후 결정권자가 결론을 내리며, 그 과정들은 일일 이 문서나 서류로 남겨진다. 결과물보다는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수직적인 절차를 준수하 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절차주의는 협상자의 대리권과도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는 협상자가 조직 내부에 서 어떤 지위와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권한의 범위가 달라진다. 따라서 협상에 임하면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상대측 협상자의 조직 내 위치나 사회적 지위를 먼저 가 늠하는 것이 필요하다. 낮은 직급의 협상자와 합의한 사항을 나중에 결정권자가 뒤집는 경 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일본의 절차주의는 필연적으로 협상의 장기화를 야기한다. 협상안에 대한 최 종 결정권자의 확답이 있기까지 요구되는 시간의 소요를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여긴다. 반면 서구 사회에서는 의사 결정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경우, 결정권자의 우유부단함이 나 능력 부재를 문제삼는 만큼 되도록이면 시간의 지연을 줄이려고 한다. 절차주의에서 기인한 협상의 장기화는 추후에 협상 내용이 변경되는 등 협상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돌발 상황에 대해 적시의 유연한 대처를 어렵게 만들지만, 때로는 시간이 지체됨에 따라 협상 상대방을 초조하게 만들어 유리한 국면을 끌어내는 장점도 있다.

2. 협상문화로 짚어본 일본의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일본의 공공분야 조정사례 중 하나인 테시마 섬(豊島)의 폐기물 관련 분쟁 조정사례는 앞에 서 살펴본 일본의 협상 문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11)

(1) 개요 1993년 일본 카가와 현(香川県) 테시마 섬(豊島)의 주민 438인은 카가와 현과 폐기물 처리 11) 테시마 섬 폐기물 분쟁 해결 사례에 대해서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2001, “일본의 환경분쟁조정제도-공해 등조정위원회 99연차보고서,” 47-59쪽과 최우용, 2004, “일본 환경분쟁조정제도의 내용과 과제,”󰡔공법학연구󰡕 제5권 제3호 594-596쪽, 한국행정연구원, 2009, “갈등조정 전문가 인증제의 제도화를 위한 탐색적 연구,” KIPA 연구보고서 09-27호, 88-90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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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제 4 주제

업자 등을 상대로 조정을 신청했다. 주민들은 폐기물 관련 업자들이 유해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방대한 양의 폐기물을 위법하게 방치하여 생활상, 건강상, 정신상의 피해가 막심하다 며 일체의 산업폐기물을 철거하고 주민들에게 위자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였다. 조정사건 을 접수한 ‘공해등조정위원회’12)(公害等調整委員會)는 심리를 개최하여 양 당사자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조정 과정에서 폐기물의 실태에 대한 양 측의 입장이 대립되자 조정위원회는 전문위원을 임명하여 산업폐기물의 양, 철거 및 환경보전에 필요한 조치 및 예상 소요 비용에 대해 대 규모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폐기물의 양이 막대할 뿐 아니라 중금속, 다이옥 신 등 환경오염물질도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지 조정을 포함, 총 33회의 조정 심리를 실시한 결과, 카가와 현이 주체가 되어 오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중간처리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중간 합의가 성립되었다. 이 합의서에는 토지 소유자들이 중간처리시설 설치에 필요한 토지를 무상제공 하는 것과, 카가와 현이 폐기물 처리업자에 대한 지도감독을 적절히 수행하지 못해 각종 오염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해 신청인들에게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2000년 6월, 제37차 조정회의에서 양 당사자는 사업자들이 폐기물 처리 및 처리시설 정 비 비용을 공동으로 부담하고, 지하수와 침출수를 정화하며, 주민들에게 보상금을 일부 지 불하기로 하는 내용으로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2) 주요특징 ① 중간 합의의 중요성 조정 과정에서 오염물질 처리시설의 설치에 관한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뤄진 후, 비용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다. 사전 합의는 일본인의 조정주의 특성이 나타난 것으로, 일단 쟁점의 일부 분에 대한 사전 합의가 이뤄진 후 이를 토대로 최종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특히 카가와 현이 중간 합의서를 통해 주민들에게 유감을 표명한 것이 주민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2) ‘공해등조정위원회’(公害等調整委員會)는 환경분쟁의 신속하고 적정한 해결을 위해 1972년 공해등조정위원회 설치법에 따라 설치된 총무부 소속 조정기관으로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소음, 진동, 악취, 지반침하 등 7개 분야에 대한 분쟁을 다루고 있으며, 알선, 조정, 재정, 중재의 4가지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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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역환경 살리기’라는 공동목표의 설정 이 사건의 최종 합의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13) - 쌍방은 기술검토위원회가 요청하는 「공생」의 사고를 바탕으로 이 매립지의 산업폐기물 등을 상 기 3의 방식에 따라 처리하여 테시마 섬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아래 조정 조항대 로 합의하였다. 이로써 이 건 조정은 성립되었다. - 당 위원회는 이 조정 조항에서 정한 것이 신속하고 성실하게 실행되고 그 결과 테시마 섬이 세 토(瀨戶)내해국립공원이라는 아름다운 자연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갈망한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테시마 섬의 환경 보존과 피해의 회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주 민들과 사업자는 조정위원회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조정 결과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공 동의 목표는 상호 신뢰를 낳았고, 신뢰가 바탕이 된 조정은 타협을 끌어내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③ 일본식 절차주의- 절차를 위한 시간의 소요 장기간에 걸쳐 모든 절차를 단계적으로 밟아나가면서 신중을 기하는 것이 집단이익의 최대 화와 갈등의 최소화를 위한 일본 절차주의 협상 문화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협상의 성 과를 신속히 얻고자 하는 서구 사회와 달리 일본은 결과를 도출하는 시간의 소요를 갈등해 결을 위해 필요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해당 사건의 경우 역시 최종 합의에 도달하기까지 수 년에 달하는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이는 환경오염의 실태 파악을 위한 대 규모 실태조사 및 공동체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13) 이 합의서의 내용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2001), 43-59쪽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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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제 4 주제

일본 ADR 제도의 흐름

1. 일본의 전통적 분쟁해결방법 사회 전체의 조화와 화합을 중시했던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당사자 사이의 원만한 합의 를 유도하는 분쟁해결 절차가 존재했다.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한 분쟁해결 방법은 율령시 대(645년부터 헤이안 시대 초기까지의 약 300년 간)에는 ‘시와’(私和)라고 불렸으며, 가마쿠 라(鎌倉) 막부(1192-1333)부터 무로마치(室町) 막부(1336-1573)시대에는 토지 소유에 관한 분쟁에서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한, 혹은 제3자가 개입하는 분쟁해결방법이 있었다. 일본 에도(江戶) 시대(1603-1867)에는 갈등과 분쟁이 생겼을 경우 재판에 의한 판결보다 는 당사자의 합의와 화해를 우선적 분쟁해결수단으로 삼았다.14) 특히 소송 제기 전, 당사자 가 사는 마을의 관리나 장로, 승려 등 지역에서 신뢰받는 사람들이 조정인으로 개입하여 비공식적으로 사건을 해결하였고, 소송 제기 후에도 제3자를 개입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나이사이(內濟)라고 칭하였다. 나이사이는 채권, 채무나 토지분쟁 등 민사사건에서 이용되었으며, 특히 농업용수나 마을 공동 어장 관련 분쟁, 산이나 촌락의 경계에 관한 분쟁처럼 해결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거나, 당사자들이 향후 공동체 생활에서 우호적 관계를 쌓아야 할 필요성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소송보다는 나이사이가 먼저 고려되었다. 나이사이 제도에서 조정인(級い人, 아츠카이닌)은 당사자가 선임하거나 또는 재판관이 선임하였다. 조 정인의 노력으로 양 당사자가 합의에 이르면 그 내용을 문서로 작성하여 관아에 제출하였 고, 제출된 합의서는 판결과 같은 효력을 부여받았다.

2. 현대 일본의 ADR 제도 현대 일본의 ADR은 우리나라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는데, 법원에서 이뤄지는 민 14) 나이사이(內濟) 제도에 대해서는 안성훈․오키자키 마유미, 2012, “나이사이(內濟) 제도에 대한 소고-일본 에도 시대의 전통적인 대체적 분쟁해결방법,” 󰡔피해자학연구󰡕, 제20권 제1호를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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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정, 가사조정 등 사법형 ADR, 행정기관에 의한 각종 분쟁조정위원회에 의한 행정형 ADR, 민간 기관에 의한 민간형 ADR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15) 특히 민간형 ADR 기관 중에서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국민생활센터16)와 각 지역 변호사회의 활동이 활발 한 편이며, 그 외에는 특정 업종에 속한 사업자 단체가 설립, 운영하는 업계형 ADR 기관 (일본방문판매협회, 가전제품 PL센터, 클리닝 배상문제협의회 등)이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ADR이 법원의 민사조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민간기관에 의한 ADR은 그다지 많지 않아 ADR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 ADR협의회의 발족 ADR의 장점과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높아지자 2001년 사법제도개혁추진본부 내에 ADR 협의회가 구성, 약 3년에 걸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였다. ADR협의회는 여러 차례 논의를 거듭한 결과 2003년 ‘ADR 제도 전반의 정비를 위한 보고서’(綜合的なADRの制度基盤の整備 について)17)를 제출하였다. 당시 ADR협의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민간형 ADR 기관 중 국민생활센터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용률이 연간 수 건에 그치는 등 저조할 뿐더러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 않았다. 이용률이 저조한 이유로는 ① ADR의 존재 및 의의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가 부족한 점, ② 민간형 ADR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은 점, ③ ADR의 적극적 이용에 장애가 되는 제도상의 제약(합의를 근거로 강제집행을 할 수 없는 점) 등이 지적되었다. 이에 ADR협의회는 ADR에 관한 기본이념 및 국가의 책무 등을 정할 필요가 있으며, ADR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ADR 기관이나 담당자가 준수해야 할 규칙을 정하여야 하고, ADR의 이용 촉진이나 재판절차와 연계되는 절차를 촉진하기 위한 법제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18)

15) 이 단락의 내용은 함영주, 2010, 󰡔분쟁해결방법론󰡕(서울: 진원사), 374-375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16) 국민생활센터는 각종 상담, 강연, 조정 등 초기단계의 분쟁상담, 완화, 해결기능을 하는 풀뿌리 분쟁해결센터로 기능하고 있다. 17) - 일본 사법제도개혁추진본부 홈페이지 http://www.kantei.go.jp/jp/singi/sihou/pc/0729adr/seibi.html (검색 일: 2013.09.24). - ADR협의회의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최건호, 2006, “일본의 ADR제도”, 󰡔민사소송󰡕 제10권 제1호, 289-290 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18) 함영주(2010), 3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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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협상 문화로 짚어본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

제 4 주제

(2) ADR법의 제정 ADR협의회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었고, 2004년 「재판외 분쟁해결절차의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裁判外紛争解決手続の利用の促進に関する 法律)19)이 제정, 공포되어 2007년부터 시행되었다. 동법 제1조는 ‘분쟁당사자가 그 해결을

도모하는 데 적합한 절차를 용이하게 선택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권리․이익의 적절한 실현 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하여 이 법이 ADR의 확충과 활성화를 위한 것 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법의 내용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민간기관에 의한 ADR의 활성화를 위해 ADR 실시 기관에 대한 사전 인증제도를 도입하여, 일정한 요건을 정하고 국가가 요건의 충족 여부를 사전에 검증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20) 인증받은 사업자는 절차 이용자에게 조정인의 선임, 보수나 비용, 절차진행 순서 등에 대해 사전에 설명할 의무를 가진다. 또한 인증분쟁해결 사업자가 실시한 조정에 대해서는 시효의 중단, 소송절차의 중지 등과 같은 효력을 부여 하고 있다. ADR법에서는 ‘각 ADR 기관이 서로 제휴를 도모하면서 협력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유관 기관 간의 제휴를 통해 지식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의 입체적 논의를 이끌어 궁극적으로는 ADR 제도에 대한 국민의 접근을 용이하게 하겠다 는 취지이다.21) ADR법 시행 이후 2012년 2월 현재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민간 기관은 120여 개로, 인증 기관의 분쟁처리건수는 2011년 기준으로 1,352건이며, 연간 처리 건수가 10건 미만인 기관 이 전체의 24.5%에 달하는 등 민간형 ADR은 아직 뚜렷한 증가 추세를 보이지 않고 있 다.22)

19) 일본 법무부 홈페이지 http://www.moj.go.jp/KANBOU/ADR/adr01-01.pdf(검색일: 2013.09.24). 20) 사전인증제도에 대해서는 정정화, 2012, “공공갈등해결을 위한 ADR의 활성화 방안,” 󰡔한국자치행정학보󰡕, 제26권 제2호, 12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21) 최건호, 2006, “일본의 ADR제도”, 󰡔민사소송󰡕 제10권 제1호, 304쪽{일본,「재판 외 분쟁해결절차의 이용촉진 에 관한 법률」제3조제2항(http://www.moj.go.jp/KANBOU/ADR/adr01-01.pdf)}. 22) 인증기관의 분쟁처리건수에 관해서는 일본법원 홈페이지 www.courts.go.jp/vcms_lf/20522010.pdf(검색일: 2013.09.24.)를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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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이 글에서는 일본의 협상 문화의 특징을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에 비추어 살펴보았으며, 일본의 ADR 제도의 흐름에 대해 간략히 검토해보았다. 일본의 문화는 와(和), 세츠(切), 닌(忍)의 문화로 요약된다고 한다.23) ‘와’는 전체적인 조 화와 규율을, ‘세츠’는 나와 남의 경계를 설정하여 그 선을 넘지 않는 절제의 미덕을, ‘닌’은 인내와 끈기를 뜻한다. 전체의 화합을 위해 개인의 욕망을 절제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신중 한 자세로 인내하는 것이 일본 문화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특히 일본의 전통적 마을공동 체에서는 마을의 평화와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 ‘소송을 하지말라’는 덕목을 강조하기도 하 였다.24) 오늘날에도 다툼을 싫어하고 자기절제에 익숙한 일본 문화의 전통적 가치는 오늘날 협상의 자리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인 합의를 거쳐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한 테시마 섬의 산업폐기물 분쟁 조정사례를 통해 공동체의 화합과 어울림을 중시하고, 절차의 준수를 우선시하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에도 시대의 나이사이 제 도부터 현대의 ADR법에 이르기까지 일본 ADR 제도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이러 한 문화적 특성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3) 󰡔서울신문󰡕, 2011년 3월 26일 26면, “[열린세상] 화․절․인(和․切․忍)” (주창윤). 24) 김필동(2005),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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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이 영 진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전담부장판사



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I

들어가는 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분쟁을 해결하는 기본적인 수단으로 협상(Negotiation), 조정 (Mediation), 알선(Conciliation), 중재(Arbitration), 소송(Judgement) 등이 있는데, 그 중에 서도 우리나라의 민사조정법상 ‘조정’이란 민사에 관한 분쟁을 간이한 절차에 따라 당사자 사이의 상호 양해를 통하여 조리를 바탕으로 실정에 맞게 해결함을 목적으로 하는 분쟁해 결절차이다(민사조정법 제1조 참조). 일반적으로 법원의 조정제도는 ① 법적인 쟁점에 국한하지 않고 분쟁의 원인과 전모를 파악하여 관련 분쟁을 일괄하여 종국적으로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점, ② 인지대 등 해 당 심급의 재판비용은 물론 상소에 따른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고, 법원의 사건부담을 경감 시키는 효과가 있는 점, ③ 비공개로 진행하여 당사자가 자유롭게 내심의 의사를 피력할 수 있는 점, ④ 임의적 분쟁해결을 통해 자발적 이행가능성이 높은 점 등 여러 가지 장점 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민사조정법이 시행된 1990. 9. 1. 이래 법원은 계속하여 조정활성화 정책 을 유지하여 오고 있으나 그 성과는 기대만큼 좋았다고는 평가할 수 없다. 수년 전부터 법 원은 조정제도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변화를 시도해 왔는데, 이 글에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예를 중심으로 법원조정제도의 특징과 활성화 방안 등에 관하여 간략 하게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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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처리절차와 새로운 시도

1. 전통적인 조정사건의 처리절차와 그 문제점 (1) 종래의 조정절차 법원의 조정은 당사자가 직접 법원에 조정신청을 하거나 소송 도중 재판부(수소법원)가 직 권으로 조정에 회부하면 시작된다. 조정에 회부된 사건은 ① 수소법원(재판장이나 수명법 관)이 직접 조정하는 경우, ② 조정담당판사가 직접 조정하는 경우, ③ 수소법원이나 조정 담당판사가 조정장으로서 조정위원회(조정장 1인과 조정위원 2인 이상으로 구성)를 구성하 여 조정하는 경우로 다시 나눌 수 있는데,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①의 경우에 의한 조정 이 대부분이었다.

(2) 조정신청의 저조 조정신청사건은 절차가 간이하고 경제적이며(소제기 시 납부하는 인지대의 1/5에 해당하는 수수료만 납부하면 됨), 접수 즉시 조속히 처리되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보부족 등 의 이유로 일반 당사자들의 이용이 저조했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정신청사건은 그 접수건수가 본안 소송사건 대비 1%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저조하다. 또한 전체 본안 소송사건 중 조정에 의하여 처리되는 사건 수는 8%를 넘지 못하고 있다.

(3) 수소(受訴)법원에 의하여 처리되는 조정사건의 편중 심화 민사조정법에 의하면, 조정사건을 전담하여 처리하도록 정해진 조정담당판사에게 소송사건 을 회부하여 조정담당판사가 직접 조정하거나 조정위원회로 하여금 조정을 하도록 하는 것 이 원칙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 법원의 실정은 조정담당판사나 조정위원회에 의한 조정 보다는 수소법원의 직접 조정 위주로 운영되어 왔고, 그 결과 조정을 시도하는 시기도 변 론을 진행하는 도중이나 변론을 종결한 이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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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같이 조정에 회부되는 사건 중 수소법원이 처리하는 조정사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까 지는 90% 이상을 차지하였다(2011년부터는 점차 그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임). <표 1> 전국 법원 조정신청 및 조정회부 사건 현황 조 정 회 부

연 도

본안 접수

조정 신청

조정 회부

본안 대비 조정 신청 비율 (%)

2007

1,213,805

6,848

49,346

0.56

4.06

2,780

46,566

94.40

2008

1,259,031

9,216

57,824

0.73

4.59

1,546

56,278

97.30

2009

1,074,236

11,382

58,672

1.06

5.46

2,226

56,446

96.20

2010

981,188

10,166

64,935

1.03

6.61

6,369

58,729

90.21

2011

985,533

7,722

67,090

0.78

6.81

9,739

57,474

85.51

2012

1,044,883

8,111

73,992

0.77

7.08

14,530

59,462

80.36

본안 대비 조정 회부 비율(%)

조정담당 판사, 조정위원회 조정

수소 법원 조정

수소법원 조정비율 (%)

이렇듯 변론종결 직전․직후에 수소법원과 법관이 조정을 하는 것은 판결권을 가지고 있 는 재판부에 의하여 효율적이고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판사의 지나친 강요와 협박에 의한 조정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어 형식에 얽매이지 않 고 융통성 있는 해결을 도모할 수 있다는 조정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2. 새로운 조정제도의 마련을 위한 모색 위와 같은 조정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2009년까지는 그에 대한 마땅한 대안 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2009. 4. 서울지방법원과 부산지방법원에 조정센터가 설치되어 전 직 대법관을 비롯한 상임조정위원들이 위촉된 것을 계기로 저조한 조정률을 높이기 위한 조정활성화를 꾀함과 동시에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 다. 이러한 민사조정에서의 새로운 시도는 조정신청률의 저조, 수소법원 위주의 조정 등 기 존의 조정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을 해결하면서 더 나아가 민사조정을 보다 다양화, 전 문화하여 사법에의 시민참여를 확대하고 사법신뢰도를 높이려는 노력도 담고 있다. 이하에서 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운용하는 여러 제도와 제도의 특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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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제도의 내용과 특징

1. 조기조정제도의 시행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0. 3. 전국 법원 최초로 조기조정(Early Mediation)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해 왔다. 조기조정제도란 본안재판부가 변론기일을 지정하기 전에 또는 본격적으로 재 판을 시작하기 전에 사건을 조정에 회부한 다음, 재판부의 관여 없이 조정위원 주도형으로 짧은 기간 동안 진행하는 조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소장 부본을 송달하고 피고가 답변서를 제출한 후 1회 변론(준비)기일에 들어갈 때까지 소요되는 대략 2~3개월의 대기기간을 활용 하여 조정을 시도하는 것이다. 조기조정은 단지 조정 시기를 소송 초기로 앞당기면서 조속한 분쟁해결을 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정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① 조정위원, 즉 비법관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고, ② 기존의 조정기일, 조정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조정(조정위 원이 사전에 당사자에게 전화연락 등 의견청취를 통해 사건파악을 하고, 회합일시․장소도 조정 위원의 사무실 등 법원 밖에서 할 수 있는 등 당사자 위주의 조정을 실현할 수 있게 됨을 의미 함)을 시도하며, ③ 법원 외부의 분쟁해결기관과 전문가 조정위원의 활용도를 높여 사건에 맞는 맞춤형 조정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림 1> 조기조정절차의 흐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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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010년 조기조정을 도입한 이래 조정담 당판사에게 회부하는 조정의 절대건수가 대폭 높아졌으며, 매년 지속적인 증가추세에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조정담당판사는 월 1,000건 정도를 각 재판부로부터 회부 받는 것을 목 표로 하는 내규를 제정하여 시행하는 등 조기조정회부사건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주력 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참고로 2012년도 서울중앙지 방법원의 각 재판부가 조정담당판사에게 회부한 조기조정회부건수 6,243건은 전국 법원의 조기조정회부건수 14,524건의 43%에 해당하는 비율로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조기조정제도 는 사실상 조정전치제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표 2> 조기조정회부건수의 연도별 변화(서울중앙지방법원)

66

376

* 본격적인 조기조정제도는 2010. 3.부터 도입되었음.

2. 조정위원회에 의한 조정의 활성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조정위원회에 보다 많은 사건을 배정하여 조정위원의 조정참여기회를 신장시켜 왔다. 즉 2011년에는 조기조정제도의 시행 초기인 만큼 조정위원회의 구성에 의한 조정보다는 새로 신설된 서울법원조정센터나 외부연계형 조정기관인 대한상사중재원과 서울 지방변호사회에 보다 많은 사건을 배정하여 처리하게 하였으나, 조기조정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한 2012년부터는 조정위원회에 배정하는 사건 수를 획기적으로 증대[52건(2011년) → 563건(2012년) → 534건(2013년 8월 31일까지)]시켜 민간 조정위원의 전문적 식견이나 사회 경험을 보다 충실하게 활용하게 하였다. 이는 민사재판에의 국민의 사법참여 기능을 강화한 것으로서 사법의 민주화에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법신뢰의 고양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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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생각된다. 조정위원회의 조정성공률도 35.7%(2012년)에서 49.1%(2013년 8월)로 획기적으로 증대하였 다. 이는 조정위원회에 배정하기에 적절한 사건을 선별하여 배정하고, 소송내용에 따라 관 련 전문지식(특히 의료, IT, 조세, 노무 건설 부분 등)을 가진 조정위원이나 변호사 조정위 원을 각 사건에 적절히 배정하는 방식을 시행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한편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조정위원의 직업별 현황은 <표 3>과 같다. <표 3> 서울중앙지법 조정위원의 현황 2013. 6. 3. 현재 구 분 인원수 (487명)

변 호 사

법 무 사

의 사

회 계 사

변 리 사

세 무 사

감 평 사

노 무 사

기 업 인

여 성 계

교 육 계

전직 공무원

212

23

38

9

4

3

8

5

19

3

41

22

건축 언론 금 기 기술 방송 융 정보 광고 인 타 통신 연예

5

51

7

37

cf. 조정담당판사 3명(부장 1, 배석 2), 상임조정위원 10명, 직원 13명, 공익 4명, 계약직 3명

3. 서울법원조정센터에 의한 조정 2009. 4. 13. 서울지방법원 내에 조정센터가 설치되었는데, 조정센터에는 임기 2년의 상임조 정위원(법조경력 15년 이상으로서 법원행정처장이 임명함) 10명이 근무한다. 상임조정위원은 조정담당판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지며(민사조정법 제7조제4항), 1인당 월 50건 정도를 배당 받아 처리하고 있다. 상임조정위원은 조정신청사건 및 조정회부사건 중에서 합의나 항소 사 건, 난이도가 높은 사건 위주로 배정받아 처리한다. 이러한 조정센터에 의한 조정은 재판을 하는 주체인 판단자(수소법원)와 조정을 하는 주 체가 분리되는 형태로서 기존의 법관주도형 조정이 가지는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 이다. 법원에 상주하면서 조정에만 전념할 뿐 아니라 오랜 기간의 사건처리경험을 갖춘 법 조경력자인 상임조정위원이 자신의 전문적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조정을 주재한다는 측 면에서 사법신뢰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서울법원조정센터는 2012년에 총 4,779건(조정신청사건 1,238건과 조기조정 회부 사건 3,541건)을 처리하였는데, 조정신청사건의 조정성공률 48.9%, 조기조정회부사건 조정성공률 은 30.3%로 비교적 높은 조정성공률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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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4. 외부연계형 조정제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조기조정제도를 도입하면서 외부연계형 조정을 시행해오고 있다. 외부 연계형 조정이란, 법원에 계속된 조정사건을 외부의 분쟁해결기관(그 기관 내 중요 담당자 를 법원의 조정위원으로 위촉하고, 그 기관의 조정업무를 총괄하게 한다고 하여 ‘총괄조정 위원’이라고 부르고 있음)이나 법원 밖의 비상임 조정위원(대부분 변호사임)에게 보내 조정 사건을 진행하도록 한 다음, 그 결과를 법원에 사무수행보고서의 형태로 보고하도록 하고, 법원은 그 보고에 따라 합의가 성립되었으면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보내어 사건을 종결 시키고, 합의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소송으로 복귀시키는 절차를 말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0. 4. 대한상사중재원, 서울지방변호사회와 협의하여 전국 최초로 외부기관으로 하여금 법원의 조정사건을 처리하게 한 이래 점차 외부분쟁해결기관과의 연 계를 확대하여 2013. 9. 현재 위 두 기관 이외에도 대한법무사협회, 한국공정거래조정원, 한 국저작권위원회 등 총 10개의 외부분쟁해결기관과 관할구역 내의 고려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3개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과 연계하여 조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표 4> 기관별 조정성공률과 처리기간(2013. 1. ~ 2013. 8.) 조정기관

배정건수

서울법원조정센터

월평균

처리건수

성공건수

조정성공률(%) 처리기간(일)

2,793

349

2,627

557

21.2

57.2

상사중재원

537

67

476

155

32.6

37.8

서울변회중재센터

700

88

585

139

23.8

36.0

조정위원회

534

67

517

254

49.1

27.2

상근조정위원(요일제)

671

84

632

222

35.1

32.6

비상임조정위원

312

39

276

81

29.3

35.0

대한법무사협회 서울중앙법무사회 (6월~) 사법연수생(6월~)

306

38

283

124

43.8

27.4

58

7

34

10

29.4

25.2

148

19

110

36

32.7

18.7

공정거래조정원

82

10

59

14

23.7

43.6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78

10

72

32

44.4

44.3

저작권위원회(3월~)

66

8

40

19

47.5

30.3

한국소비자원

38

5

15

4

26.7

33.1

기독교화해중재원

21

3

18

5

27.8

52.9

한국거래소

14

2

7

5

71.4

54.0

로스쿨(6월~)

16

5

4

2

50.0

28.0

합 계(평균)

6,374

797

5,755

1,659

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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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는 전통적인 법원 내 조정위원의 수 부족을 해소함과 동시에 분쟁유형에 따른 각 외부전문기관과 전문가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여 당사자에게 만족을 주는 양질의 조정 을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조정성공률도 높아 당사 자들에게 보다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조정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5. 상근조정위원 제도의 시행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2. 10. 상근조정위원 5인(부장판사 경력 등의 변호사 4인, 건축사 1 인)을 위촉하여 상근조정위원 제도를 시행하였는데, 그 실적이 좋아 2013. 6. 1. 상근조정위 원 5인(30년 이상의 경력 변호사 4인, 건축사 1인)을 추가 위촉하였다. 상근조정위원은 주 1회 요일별로 법원 내에 마련된 조정사무실로 출근하여(그러므로 ‘요일제 상근조정위원’이라 고 부르기도 함) 조정담당판사의 개입 없이 책임조정방식으로 조정을 진행한다. 상근조정위원은 조정 중 합의가 성립되면 그 즉시 조정담당판사에게 연락하여 조정담당 판사가 주재하는 조정기일을 바로 열어 조정 성립을 확인하고, 합의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날의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그 결과를 사무수행보고서의 형태로 조정담당판사에게 보고하 는 형태로 운영된다. 하루에 3~4건을 각 전문분야에 맞게 배정하여 조정기일을 진행하고, 상임조정위원과 같은 효과를 보면서도 다량의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 라 그 비용이 저렴하고 조정성공률이 높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2012년은 34.8%의 조정성 공률을 보였고, <표 4>에서 보듯이 2013년 1월부터 8월까지는 35.1%의 조정성공률을 보이 고 있음).

6. 소액사건의 즉일조정 및 소액사건 상근조정위원제도의 도입 소액사건 즉일조정(Trial-day Mediation)이란 소액사건, 즉, 소가(訴價) 2,000만 원 이하 금 전청구 사건의 담당 판사가 변론기일에 법정에서 재판진행 중에 조정의 필요가 있다고 판 단되는 사건을 따로 조정기일을 지정하지 않고 즉시 조정에 회부하여, 법정 옆 조정실에서 대기 중인 조정위원으로 하여금 조정을 진행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2010. 5. 1. 전직 법원 고위직 퇴직자를 소액총괄조정위원으로 임명하여 소액사건의 조정절차에서 관리자의 역할을 담당하게 하여 오고 있으나, 소액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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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재판부(총 19개 재판부)에 계속 중인 다량의 소액사건(보통 1개 재판부에 5,000건 이상이 배당되어 있으며, 그 중 4,000여 건은 기관사건, 1,000여 건은 당사자 간의 분쟁사건임)을 조정으로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2013. 3. 25. 기존의 재판부별 전속 조정위원제도를 공동조정위원제도로 확대, 개편하는 동시에 재판부로 하여금 재판진행 중 일정 건수를 조정위원회 조정에 회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을 꾀한 바 있다. 그 결과 2012년도 전체의 즉일조정건수가 449건이었는데, 위 개 편으로 인하여 2013년 1월부터 8월까지의 즉일조정건수는 669건으로 대폭 증가하였고, 조정 성공률도 67.7%를 보여 매우 성공적인 제도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또한 2013. 3. 25. 소액사건에 대해서도 별도의 조기조정회부절차를 마련하였는 바, 즉 소액사건 중 조기조정사건을 전담하여 처리하는 소액사건 상근조정위원을 새로 위촉하고 1 인당 1일 4~5건의 조기조정사건을 처리하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였다. 그 결과 2013. 3. 25.부터 8. 31.까지 총 2,033건의 조기조정사건이 회부되어 그 중 1,943건이 처리 되었는데, 조정성공률도 31.2%(양 당사자가 출석한 경우만을 한정한 조정성공률은 70%)를 보여 조정활성화에 매우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나아가 2013. 6. 3.에는 소액사건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보험회사 간 구상금 사건을 전담하여 처리하는 전담 조정위원제도 도 신설하여 운용하고 있다.

조정의 활성화를 위한 법원의 노력

1. 기존의 조정활성화를 위한 노력과 성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2009년부터 앞서 본 바와 같은 여러 가지 조정활성화를 위한 노력 (조정위원회에의 배정사건 증대, 법원조정센터의 개설, 조기조정의 실시, 외부분쟁해결기관 의 확대, 상근조정위원제도와 소액사건 즉일조정 및 소액사건 상근조정위원제도의 도입)을 기울인 결과, 조기조정회부사건이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기존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수 소법원 조정의 비율이 점차 낮아지고 상임조정위원이나 그 밖의 조정위원에 의한 조정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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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높아지는 등 여러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정활성화의 추세를 앞 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2. ‘조정신청’의 증대 유도 조정신청은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신청률이 높지 않고 계속 정체상태(서울중앙지방법 원에 접수된 조정신청건수는 2009년 1,229건, 2010년 1,381건, 2011년 1,093건, 2012년 1,238 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소송 외 분쟁해결제도에 대한 국민의 인식 부족에 근본적인 이유 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홍보 부족도 주요한 원인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서는 2012년 조정신청 활성화를 위한 포스터를 제작하여 관내 관공서 등에 부착하였고, 서 울지방변호사회, 대한법무사협회 등 유관기관과의 간담회에서 지속적으로 인식 전환을 위한 홍보를 강화하고 있으며, 조정신청서 작성과 소장 작성에 있어 법무사 보수에 차등을 두지 않도록 하는 법무사보수표의 개정도 건의한 바 있다.

3. 조기조정회부사건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내규 제정 등 조정의 활성화를 꾀하려면 조정신청 이외에 각 재판부에서 안정적으로 사건을 조기조정에 회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아래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조정담당재판부로 하여금 매월 각 재판부에 조기조정 회부건수와 조정성공률에 관한 자료를 제공하여 각 재판부가 조정회 부 시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내규인 「조기조정사건처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제정하여 2013. 8. 1.부터 시행하고 있다. 위 업무처리지침은 각 재판부가 조 정담당판사에게 매월 회부하여야 할 조정회부 목표건수(민사항소부 20건, 합의부 4건, 단독 15 건, 소액 5건), 조기조정에 적합한 사건의 유형, 조정사건의 처리절차, 조정회부에 있어 참여 관 등 법원 직원의 역할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조기조정에 회부된 기간은 본안 재판부의 장기미제사건을 산정하는 기간에서 제외하 도록 하여 각 재판부가 사건처리 지연에 부담을 느껴 조기조정 회부를 꺼리는 문제점을 일 부나마 개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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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4. 조정위원에 대한 연찬(硏鑽) 강화 조정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매월 앞에서 본 바와 같은 각 외부기관별 조정회부건수, 처리건수, 성공률 등 사건처리현황과 상근조정위원을 포함한 조정위원별 사 건처리현황을 점검하여 조정성공률이 높은 기관이나 조정위원에게 조정사건을 더 많이 배 당하도록 하고 있으며, 조정위원의 조정능력 향상을 위해 바람직한 조정기법 전수를 위한 간담회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등 조정위원 연찬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서울법원조정센터 와 조정위원협의회가 연계하여 정기적으로 조정사례집을 발간하고 있다.

5. 기타 활성화 방안 그 밖에 조정에 열의가 있는 우수한 전문가 조정위원을 발굴하여 위촉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의료사건이나 친족 간 분쟁사건 등 특정 유형의 사건을 해결하기에 적합한 외부의 분쟁해결기 관과 연계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조기조정에 회부하였다가 합의가 성립되지 않아 본 안 재판부로 다시 복귀하는 사건도 이후의 변론에서 조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조정의 진행경과 와 조정실패의 이유를 기재한 사무수행보고서를 작성하여 수소법원에 송부하도록 하고 있다.

조정제도의 바람직한 운영 방향

1. 법원 조정에 관한 패러다임의 변화 추구 우리나라는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소송 이외의 대체적 분쟁해결제도에 대한 인식이 부 족하고 법원 내에서도 판결이 아닌 조정에 의한 사건처리를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는 바, 무엇보다도 분쟁은 소송보다는 가급적 화해나 조정으로 해결한다는 기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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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종래의 수소법원과 법관 중심의 조정에서 비법관에 의한 조정을 강화하는 쪽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 수소법원 중심의 조정제도 운영은 앞서 지적하였듯이 조정주체와 판단주체의 분리라는 조정의 기본 원칙에 맞지 않고 판결의 결론을 토대로 한 수소법원의 압박에 못 이겨 당사자가 비자발적으로 조정을 한다는 비판이 있으므로, 이제는 수소법원 중심의 조정운영에서 비법관, 조정위원이 주도하는 조정으로 그 패러다임을 바꿔 야 할 시기라고 본다. 비법관이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수소법원이 처리하는 것은 사법자 원의 배분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년에 26만 건 정도의 사건이 연방법원에 접수되는데 그 중 약 1.5% 정도의 사건만이 판사에 의한 정식재판절차를 거쳐 종결된다는 통계가 있으며, 비법관에 의한 다종다양한 조정제도를 마련하고 있음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분쟁을 반드시 소송에 의하여 해결하기보다는 민간영역의 전문성과 분쟁해결 노 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판결이 아닌 당사자의 타협이나 화해로 해결 가능한 사건은 가급적 분쟁의 초기에 조정위원이 관여하여 조기조정을 시도하는 것이 저렴하고 효율적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가사사건을 제외하고는 조정전치주의가 법제화되어 있지 않은데, 조기조정을 시도함으로써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은 소송으로 가기 전 에 해결하도록 하는, 조정전치주의가 갖는 장점을 실현할 수 있다.

2. 조정전치주의와 조정전문가의 확보 이제까지는 법원의 조정제도를 살펴보았으나 법원 외 ADR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조정전치 주의에 대한 입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독일에서는 소가(訴價)가 750유로를 넘지 않는 사건, 상린관계사건, 명예훼손사건 등에 대하여 주의 법률에 따라 조정전치를 의무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시행규칙이 이미 시행되고 있고, 일본에서는 「차지차가법」(借地借家 法) 상의 지대, 토지나 건물의 차임증감청구에 대하여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에는 법원 주도형으로 조기조정을 실시함으로써 조정전치주의와 유사한 운영을 꾀하고는 있으나 조기조정에 회부되는 사건 수가 본안 사건 수에 비하여 여 전히 미흡하다. 따라서 교통사고로 인한 구상금이나 손해배상청구사건, 임대차 관련사건 등 처럼 비교적 신속하게 당사자 간의 분쟁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 사건, 그리고 일반 시민들 의 생활 속에서 긴밀하게 발생하는 소액사건 등 비교적 조정성공률이 높다고 평가되는 사 건 등의 경우에 조정전치주의를 채택하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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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정제도의 현황과 조정 활성화를 위한 과제 -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경우를 중심으로 -

2009. 4.부터 상임조정위원이 전국적으로 위촉되고 있으나 그 수가 20여 명에 그치고, 법 원 내에 위촉된 일반 조정위원은 6,200여 명 가량 되나 그 중 법률가는 20%에 불과할 뿐 여전히 명망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정위원 1인당 연간 처리사건 수도 3건 정도에 불과해 조정역량을 쌓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장기적으로는 이웃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민 사조정관 제도(5년 이상 경력 변호사 중에서 주 1, 2회 법원에 출석하여 조정업무만을 전담 케 하는 제도)의 도입을 우리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나(법원정년 퇴직자나 사실상 현업에서 은퇴한 변호사를 찾아 위촉할 수 있을 것임), 그 도입 전까지는 위에서 본 요일제 상근조정위원제도를 확대하여 조정전문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고, 외부의 분쟁해결기관과 연계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를 활용하는 방법도 보다 확충하여야 할 것이다.

맺음말

우리 사회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만연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2009년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평균 사회갈등지수는 OECD 회원국 중 4번째로 갈등이 심한 나라이며, 연간 분 쟁갈등 해소비용도 약 300조 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민사조정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민사조정이 더욱 증가하고, 역시 민사조정에 대한 법원 내외의 관심과 조기조정 등 새로운 조정제도의 시행, 법원조정센터의 설치·운영 등에 힘입어 조정 사건이 양적․질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분쟁은 정식 재판이나 소송보다는 조정이나 화해로 해결한다는 인식 전환이 중요할 것이 고, 향후 민사조정의 증가에 맞추어 다양하고 전문화된 조정제도의 개선, 조정인의 양성이 필요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제도는 비법관에 의한 조기조정 (Early Mediation by Mediator)이라는 명제를 실현하기 위한 시도이다. 아직까지는 과도기 로서 그 결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법원의 조정제도가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분쟁갈등을 신속히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함으로써 국민들에게 큰 만족을 주는 제도로 하루바삐 정착되고, 나아가 여러 분쟁해결기구와 협력하여 우리 사회의 분쟁갈등을 해결함으로써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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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을 위한 설득과 수사의 자료-Persuasion & Rhetoric Report󰡕 과월호 목차 〇 마음을 얻는 조정기법

2013년 3월호 (창간호)

〇 법정의 수사학 - 설득을 위한 변론과 판결 〇 경청으로 시작하여 합의로 매듭짓기 〇 설득을 위한 말하기 전략

2013년 4월호 (vol.2)

〇 설득을 위한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활용 〇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의 기법과 메시지 구성 〇 상대방의 유형에 따른 설득의 전략

2013년 5월호 (vol.3)

〇 난감한 상황에 대처하는 현명한 설득법 〇 대화와 물음의 新수사학 〇 공정한 조정 - 과정에서 결과까지

2013년 7월호 (vol.4)

〇 그리스신화 속 갈등 조정 〇 한비와 귀곡자의 수사학 〇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의 의미와 이념 〇 리스킨(Leonard L. Riskin)의 조정인 유형 분류에 따른 설득의 전략

2013년 8월호 (vol.5)

〇 역사의 순간에서 배우는 설득의 지혜 -고려 최고의 외교가 서희와 남아프리카 화해의 상징 넬슨 만델라를 중심으로〇 공자와 맹자의 인(仁)의 수사학 〇 미(美) 공공갈등 분야의 성공적 ADR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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