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조정을 위한 설득과 수사의 자료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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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위원회 교육본부 연구팀 월차보고서 7월호

조정을 위한 설득과 수사의 자료 Persuasion & Rhetoric Report

〇 제1주제 : 공정한 조정 - 과정에서 결과까지 〇 제2주제 : 그리스신화 속 갈등 조정 〇 제3주제 : 한비와 귀곡자의 수사학 〇 제4주제 :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의 의미와 이념

2013. 7.


발행인 권 성 편집인 오광건 발행일 2013년 7월 1일 등록일 2013년 2월 21일 등록번호 서울중.라 00532 발행처 언론중재위원회 (서울 중구 세종대로 124 프레스센터빌딩 15층) 편집 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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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제 1 주 제

「공정한 조정 - 과정에서 결과까지」

Ⅰ. 들어가는 말 ················································································· 03 Ⅱ. 조정에 있어서의 중립성과 공정성 ········································· 04 Ⅲ. 조정절차와 공정성 ····································································· 08 Ⅳ. 조정결과와 공정성 ····································································· 11 Ⅴ. 맺음말 ··························································································· 16

17・제 2 주 제

「그리스신화 속 갈등 조정」

Ⅰ. 들어가는 말 ················································································· 19 Ⅱ. 그리스신화 속 갈등과 갈등 조정자 ······································· 20 Ⅲ. 그리스신화 속 갈등 조정의 특징 ··········································· 26 Ⅳ. 맺음말 ··························································································· 29

31・제 3 주 제

「한비와 귀곡자의 수사학」

Ⅰ. 들어가는 말 ················································································· 33 Ⅱ. 한비의 수사학 ············································································· 33 Ⅲ. 귀곡자의 수사학 ········································································· 38 Ⅳ. 맺음말 ··························································································· 45

47・제 4 주 제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의 의미와 이념」

Ⅰ. 들어가는 말 ················································································· 49 Ⅱ. ADR의 전통적 의미와 현대적 특성 ······································· 50 Ⅲ. ADR의 기본 이념 ······································································· 55 Ⅳ. 맺음말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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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주제

「공정한 조정 – 과정에서 결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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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조정 – 과정에서 결과까지

Ⅰ. 들어가는 말 다음의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자. 동행자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당신에게 누군 가 다가와서 1,0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다만, 동행자와 당신 사이에 분배 의 몫에 대해 일치된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어떤 형태로든 합의가 되면 두 사 람에게 1,000만 원이라는 돈이 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이때 당신의 동행자가 자신이 950만 원을 가지고 당신에게 50만 원만 분배해주겠다고 주장한다면 당신은 이에 응할 것인가?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아무것도 얻지 않는 것보다는 불공평하더라도 50만 원의 이 득을 얻는 편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경우 불공평하게 이득을 얻기 보다는 차라리 공평하게 아무것도 얻지 않는 쪽을 택한다고 한다.1) 사람은 다 른 사람과의 사회적 비교를 통해 타인보다 자신이 손해보지 않았다고 판단해야 비 로소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조정에 있어 공정성의 원칙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정에 참여한 분쟁의 당사자는 상대방을 적이라 생각하며, 그가 취하는 모든 이익은 나의 손해에서 비롯 된다는 제로섬(zero-sum)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임하기 때문에 조정과정에서 시종일 관 공정성에 대해 고민하고 평가한다. 그러므로 조정위원 입장에서 아무리 합리적 으로 조정을 진행하여 결정을 내리더라도 정작 한쪽 당사자가 상대방에 비해 부당 한 대우를 받는다고 인식하거나, 자신의 몫이 상대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을 갖는 다면 성공한 조정이라 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정성은 조정에 있어 출발점이 자 그 종착점이다. 이 글에서는 조정에 있어서 공정성의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조정과정과 결과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온 ‘중립성’의

1) Bazerman, M. H., Neale, M. A., 2007, 『협상의 정석』, 이현우 역(서울: 원앤원북스), 134-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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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에 대해 살펴보고, 중립성의 원칙과 비교하여 공정성 원칙의 개념과 판단 기준 을 살펴본 후, 공정하게 조정절차를 진행하고, 나아가 당사자에게 공정하다고 생각 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다.2)

Ⅱ. 조정에 있어서의 중립성과 공정성 1. 중립성의 원칙 조정위원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과 덕목 중 한 가지는 중립성이다. 조정위원 이 편파적이라면 당사자는 조정위원을 신뢰하지 않으며, 신뢰 없이는 조정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종 조정 관련 법률에서 분쟁의 당사자나 쟁점사항과 관련한 이 해관계를 가진 사람을 엄격하게 배제시키는 이유도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조정위원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립성에 민감하다. 따라서 조정위원은 조정이 시작되기 전, 또는 조정의 시작단계에서 누가 잘하고 잘못했는 지에 관한 예단과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되며, 양 당사자 사이에서 한쪽으로 기울 어짐이 없이 균형있게 대해야 한다. 그러나 조정위원이 엄격하게 중립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조정위원의 중립성을 믿게 하는 것이다. 조정위원이 일방 당사자 에게만 시선을 준다거나, 한 쪽에게 진술기회를 더 부여하거나, 어느 한 쪽을 매섭 게 다그치고 책임을 추궁하는 등의 태도는 당사자를 불안하게 만듦으로써 조정위원 에 대한 신뢰를 깨뜨린다. 조정위원은 절차의 시작부터 종결까지 당사자 쌍방이 동 등하게 자신의 의사와 견해를 주장할 수 있도록 관리할 임무가 있으며, 그래야 당 사자의 신뢰를 얻어 조정을 쉽게 이끌어갈 수 있다.

2. 중립성 원칙의 한계

전통적으로 조정에 있어 중요한 덕목중 하나로 여겨졌던 중립성의 원칙은 오늘날 2) 현재 국내에는 조정에 있어서의 공정성 원칙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본 보고서에서는 주로 외국의 논문과 저서를 참고했다. 보고서 작성의 준거가 된 저서와 논문의 출처에 대해서는 본문의 각 해당 부 분에서 상세히 밝히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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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결 연구와 실천에 있어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립성의 원칙을 강조하 다보면 자칫 조정위원의 소극적인 태도, 책임 회피를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정의 당사자들은 정보력, 조직력, 표현력 등에 있어 불균형을 보이는 경우가 있으 며, 어떤 당사자들은 술책을 쓰거나 일방적으로 자신의 주장만 강요하기도 한다. 이 때 조정위원이 철저하게 중립을 고수한다면 결국 약자이거나 관대한 사람이 항상 양보하게 되는 부조리한 결과가 초래된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의 조정에 있어서는 소극적이며 기계적인 중립성(Neutrality) 에서 벗어나 당사자 쌍방이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고 의견을 교환하여 만족스럽고 지 속 가능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정성(Fairness)의 원칙이 보다 강조 되고 있다. 당사자들 역시 엄격하고 소극적인 중립성보다는 적극적이되 동등한 대우, 즉 공정성을 더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

3. 공정성의 원칙

(1) 공정성의 개념

조정에 있어서 공정성의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공정하다, 또는 불공정하다는 개념은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조정에 있어서 공정성의 정의를 내린 연구를 살펴보면 “조정위원이 객관적인 시 각으로 정확하게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여 사법적 구제의 한계를 넘은 창조적인 해 결안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린 연구4)가 있으며, 다른 한 연구는 “편파적이지 않으면서도 재판절차보다 우호적인 분위기에서의 대화를 통해 전통적인 재판절차에 서 도출할 수 있는 결과보다 효율적이고 만족스러운 결과에 도달하는 것”5)으로 정 의했다. 두 연구를 종합해보면 조정에 있어서 공정성의 개념요소로 객관성, 절차의 공평함, 만족스러운 결과 등을 도출할 수 있다.

3) Beltran, M-P. A., 1999, “Mediator Neutrality and Disputant Perceptions of Fairness in the Community Mediation Setting,” Ph.D., Dissertation, Boston University Graduate School, pp.254-258{김경배, 2001, “조정합의 성립의 결정요인에 관한 실증적 연구,”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78-79쪽에서 재인용}. 4) 김경배(2011), 48쪽. 5) Stulberg, J. B., 1998, “Fairness and Mediation,” Ohio State Journal on Dispute Resolution, vol. 13, pp. 9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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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정에 있어 공정성 판단의 기준

조정에 있어서 공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하여, 콜럼비아 법과대학 교수인 조셉 스 털버그(Joseph B. Stulberg)는 ① 적법한 절차에 의한 진행 ② 당사자의 자율 보장 ③ 당사자에 대한 예의와 존중 ④ 결과에 대한 당사자의 만족의 4가지6)를 들었다. 이 글에서는 이상의 4가지 기준을 토대로 조정의 공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적법한 절차에 의한 진행

조정은 당사자에 의해 절차가 개시되며 당사자가 결과에 대한 결정 권한을 갖기 때 문에 절차의 적법성이 재판에 비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 자가 절차의 개시와 결과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조정이야말로 절차의 적 법성이 엄격하게 전제되어야 한다. 당사자가 최종적으로 조정결과에 대해 수긍하고 합의하기 위해서는 절차에 대한 신뢰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John Rawls)의 절차적 정의이론(Procedural Justice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절차가 공정하다고 인식하면 그 절차에 의해 나온 결 과도 공정하다고 인식한다7)고 한다. 적법하고 공정하게 조정절차를 진행한다면 조 정의 당사자로 하여금 조정과정 및 결과에 대해 공정하다고 신뢰하게 하는 데 도움 이 된다.

2) 당사자의 자율 보장

조정이 재판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당사자의 참여와 자율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조 정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논의사항에 대한 결정권은 당사자에게 있으며, 특히 최종 합의단계에서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조 정위원이 조정과정에서 미리 최종 결과를 예측하거나 정해두고 당사자들을 자신이 6) - Stulberg, J. B.(1998), pp.911-915. - 공정성의 판단 기준에 대해 노스웨스턴 법과대학 교수인 스테판 골드버그(Stephen B. Goldberg)는 ① 치 우치지 않는 절차의 진행과 ② 동등한 결과를 제시했다. {Goldberg, S. B., 2007, Dispute ResolutionNegotiation, Mediation, Arbitration and Oter Processes (Maryland: Aspen Pub), pp.198-199.} 7) 강영진, 2009, 『갈등해결의 지혜』(서울: 도서출판 일빛),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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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한 결과로 유도한다면, 자연스레 조정위원의 개입이 많아져 당사자의 참여와 자율성이 훼손된다. 조정위원은 가급적 당사자가 스스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 좋다.8) 누구든지 자신이 참여하고 주도한 결과에 대해서는 공정 하다고 느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3) 당사자에 대한 예의와 존중

사람은 타인에게 존중받기를 원하는 심리가 있으며, 자신을 존중해주는 절차에 긍 정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조정위원이 조정과정에서 당사자의 존엄성과 자존 감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당사자가 조정절차를 공정하다고 평가한다. 조정위원 은 당사자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깍듯한 경어를 사용하여 당사자가 심리 현장에서 존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양 당사자 모두에게 동등한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며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

4) 결과에 대한 당사자의 만족

조정에 임한 당사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것이다. 당사자가 자신의 공정한 몫을 받았다고 생각할 때 결과에 만족하게 되고, 이는 조정의 공정 성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이어진다. 어느 정도가 공정한 몫인가에 대해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브람스 (Steven J. Brams)와 알랜 테일러(Alan D. Taylor)는 ① 각 당사자의 몫이 균형을 이루고 ② 당사자가 스스로 상대방보다 많이 얻었다고 생각하여 만족하며 ③ 더 이 상 어느 당사자에게도 추가로 이익을 줄 수 없을 정도의 상태9)라고 정의한 바 있 다.

8) 당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조정의 이념이지만, 오늘날의 조정에 있어서는 신속하고 적절한 분쟁 해결 및 피해구제의 차원에서 입법정책에 의해 당사자의 자율성을 일정 정도 제한하기도 한다. 각종 조정절차 에서 조정위원이 당사자에게 적절한 조정안을 제시, 수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며, 민사조정법 및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등에서는 조정위원이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민사조정 법」제30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제22조). 9) Brams, S. J., Taylor, A. D., 1999,『협상과 분쟁해결의 실전 윈-윈 솔루션』, 이종걸 역(서울: 한·언), 40-4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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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조정절차와 공정성 이상으로 조정에 있어서의 공정성의 정의와 판단기준을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조정절차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원칙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공정한 기준과 룰을 제시한다 (1) 조정시작 전 – 절차의 안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문제해결을 위한 공정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하는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절차에 의해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사자는 불안하며 공정성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정이 시작되기 전 에 서면이나 구두로 앞으로 진행될 조정의 절차와 관련 법규에 대해 안내해주면 당 사자는 절차가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지 예측할 수 있어 공정성에 대해 신뢰를 가 지게 된다.

(2) 조정시작 단계 – 조정진행의 규칙을 설명10)

당사자들 사이의 소통에 있어서 지켜야 할 규칙을 미리 제시하면 당사자로 하여금 조정절차를 공정하다고 믿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① 교대로 말하기

② 다른 사람이 말하고 있을 때 끼어들지 말기 ③ 조정위원에게 발언권을 얻은 다 음에 말하기 ④ 당사자의 말을 비꼬거나 공격하지 말기 ⑤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며 비속어, 은어, 위협적인 행위, 모욕적인 말은 하지 않기 등이다.

(3) 조정진행 단계 – 정확한 근거의 제시

당사자의 입장은 주관적인 상황판단을 통해 형성되지만, 이해타산적 분석은 객관적 근거를 토대로 가능해진다. 즉,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면 양 당사자 모두 상대방에 10) 이 단락의 내용은 문용갑, 2011,『갈등조정의 심리학』(서울: 학지사), 48쪽에서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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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근거 없이 완강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려 애쓰 게 되고, 자신에게 유리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 쉽게 불공정하다는 결론을 내려버린 다. 따라서 조정위원은 당사자가 의심을 지우고 최대한 조정위원을 신뢰할 수 있도 록 주장을 데이터와 근거로 뒷받침해야 한다. 법률을 비롯한 규정, 비슷한 사건의 판례나 조정사례, 물가상승률이나 시장가격과 같은 데이터, 전문가의 견해, 증거조 사 결과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11) 특히 정신적 피해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의 경우 객관적으로 계량화하기 어려우 므로, 당사자가 납득할 만한 객관적인 산정기준이 없으면 양 당사자 모두에게 불공 정하다는 비난을 받기 쉽다. 일응의 산정기준 및 유사한 사건의 선례 등을 안내하 여 합리적인 근거를 설명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12)

2. 자율성을 보장한다

진정한 갈등해결은 당사자 스스로 판단하여 주도적으로 합의할 때 이루어지므로 당 사자의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 조정이 조정제도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공 정한 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당사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심해 당사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오히려 공정한 조정의 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힘의 불균형이 조정과정에 실 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따져 적절하고 현실적으로 조정을 진행하는 것 또한 공정한 조정을 위한 조정위원의 몫이다. 조정위원은 당사자 간의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주 며, 언변이나 지식이 부족한 당사자가 불리한 입장에 처하는 일이 없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상대방 당사자에게 특정 당사자를 지원하는 이유 와 방법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13)

3. 당사자의 자기 인식을 돕는다

11) 이 단락의 내용은 이강성, 2005,『협상이론과 전략』(서울: 삼육대학교 출판부), 91쪽에서 주로 참조하였다. 12) 언론중재위원회는 2012년부터 ‘손해배상액 산정 가감표’를 만들어 위자료 산정에 활용하고 있다. 손해배상액 산정 가감표는 침해법익 또는 보도매체의 규모에 따라 기준 금액을 설정한 다음, 침해의 양태, 내용, 그 정도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가감하는 방식의 위자료 산정 기준이다. 13) 이 단락의 내용은 정주진, 2010, 『갈등해결과 한국사회』(서울: 아르케), 302-304쪽에서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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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이것이 굳어져 공정성을 자신에 게 유리하게 왜곡한다. 즉,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그렇지 못한 결과를 얻을 때에는 공정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분쟁을 겪고 있는 당사자 역시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죄’만 보고 자신의 책임은 인식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부 족하므로 상대의 행동이 가져온 결과만으로 그의 의도를 추측하며, 그것도 가장 최 악의 의도로 추측해버린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문제의 해결보다 자신의 승리와 상 대방에 대한 보복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결과가 도출되면 조정이 불공정하다고 믿어버리기 쉽다. 따라서 조정위원은 당사자가 애초 분쟁의 대상이 된 갈등상황과 당사자 자신에 대해 인식하여 갈등을 상대화하고 건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 조정위원은 당사자에게 그의 책임이나 불리한 점 등에 대해 언급해 주고, 상대방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설명해주는 것이 좋다. 생각만큼 자신이 무결하지도 않으며 분쟁에 대해 일정 정도의 책임이 있고 다소 불리한 상황 에 처해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면 당사자는 합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응하게 되며, 조정 절차와 결과에 대해서도 공정하다고 신뢰하기 쉽다.14)

4. 분쟁에 관한 관점을 변화시킨다 당사자는 분쟁에 있어서 분배할 자원의 크기가 확실하게 고정되어 있으며, 승자와 패자가 나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가 승리할지, 패배할지 여부에 대해 예 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상대가 가져가는 몫은 내가 가져야 할 몫을 빼 앗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쟁의 대상은 금전처럼 숫자로 표기할 수 있 는 것도 있지만 권리, 의무, 체면, 감정적 위로 등 측정하기 어려운 가치도 있으며, 이러한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도 않을뿐더러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가 제 각각이다. 따라서 애초에 조정의 테두리 안에 있는 눈에 보이는 가치와 물질적인 이익 외에도 얼마든지 다른 가치를 포함시켜 분배대상을 키울 수 있으며, 양 당사 자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식이 존재함을 알게 하여 당사자의 공정성에 대한 경계를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14) 이 단락의 내용은 법원행정처, 2002, 『조정실무』(서울: 법원행정처) 184-185, 363쪽에서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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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조정결과와 공정성 조정의 당사자가 가장 크게 관심을 두는 것은 조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이익의 크 기, 즉 조정의 결과이다. 합의로 인한 효율성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루 만 족을 가져올 때 공정한 조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하에서는 협상학에서 설명하는 배분적 협상과 통합적 협상의 개념을 빌어 배분적 합의와 통합적 합의로 분류하고, 결과에 있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15)

1. 배분적 합의

배분적 합의는 분쟁의 대상물이 고정되어 당사자가 서로 경쟁적, 공격적으로 배분 해야 하는 경우에 이루어지는 합의이다. 유산의 분배, 이혼 시 재산의 분배, 토지 분할 등의 분쟁에 있어서의 합의, 노사 간의 임금 인상률 합의가 이에 해당한다. 이 하에서는 배분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구조와 방법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배분적 합의의 구조와 진행단계

배분적 합의는 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② 상호제안 및 논쟁을 통해 상대방의 목표점 및 저항점을 파악한 후 ③ 타협을 거쳐 합의의 세단계로 진행된다. ①의 단 계에서 양 당사자는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서로가 원하는 목표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체로 누구나 처음에는 각자 원하는 것보다 약간 더 높은 목표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②의 단계를 거치면서 양 당사자 모두 최초의 요구가 아닌 내심으로 바라는 목표치가 드러나게 되며, 또한 도저히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는 저항점이 함께 드러나게 된다. 합의는 양측의 저 항점이 겹치는 부분에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를 교섭영역, 또는 합의가능 영역이 라 한다.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15)- 흔히 협상학에서는 협상의 종류를 배분적 협상과 통합적 협상으로 이분하여, 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 해내기 위한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다만 본 보고서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인 조정위원의 시각에서 합 의의 측면으로 접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 이하의 내용은 이강성(2011), 109-147쪽의 내용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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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저항점과 합의가능 영역 (합의가능 영역이 존재하는 경우)16)

사용자의 목표점 및 저항점

노조의 목표 및 저항점 12% (T)

8% (R)

합의가능 영역

7% (R)

T = 목표점 R = 저항점

2% (T)

위 그림은 임금 인상률을 놓고 갈등을 겪는 사용자와 노조 간의 조정상황을 나타 낸 것이다. 사용자의 목표점은 인상률 2%이고 노조의 목표점은 12%이다. 둘 사이 의 간극은 매우 크며 합의는 요원해보인다. 그러나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를 면밀히 살펴 저항점을 살펴보니 사용자가 8%, 노조가 7%로 7~8%의 합의 가능한 영역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범주 안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양 당사자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듯 공정한 조정결과를 도출해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겉으로 내세우는 목 표점에 치우치지 않고, 당사자와의 질문, 대화를 통해 저항점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조정이 시작되기 전에 양 당사자와 접촉하여 서로의 저항점을 인식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교섭영역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조정 위원과 당사자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합의 도출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상 황이 악화된다. 다시 한 번 그림을 살펴보자.

16) 이강성(2005),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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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uasion & Rhetoric Report <그림 2>

저항점과 합의가능 영역 (합의가능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17)

사용자의 목표점 및 저항점

노조의 목표 및 저항점 12% (T)

8% (R)

6% (R) T = 목표점 R = 저항점 2% (T)

위의 경우 사측의 저항점은 6% 인상이지만 노조측의 저항점, 즉 파업까지 고려하 게 되는 마지노선은 8%의 인상이다. 이 경우 합의 가능한 교섭영역이 없기 때문에 합의가 어려워진다. 이때에는 양측의 저항점을 낮추어서 합의를 시도하거나 뒤에서 설명할 통합적 합의로 방법을 선회해야 한다. 이하에서는 우선 양측의 저항점을 낮 추어 합의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저항점을 낮추는 방법

1) 기회비용을 강조할 것

당사자의 저항점은 자신이 저항점을 고수함으로 인해 잃게 되는 기회비용이 크다고 느껴질 때 낮아지게 된다. 즉, 저항점을 고수함으로 인해 합의가 결렬되었을 경우, 그 이후에 치르게 될 기회비용이 크다는 사실을 인지시킨다면 당사자가 저항점을 낮추고 합의에 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조정의 경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법원 의 소송절차로 갔을 때 당사자가 겪게 될 경제적, 시간적 손실을 강조하면 저항점 17) 이강성(2005),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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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2) 감정적 요소부터 배제할 것 어떤 당사자는 서운한 감정, 과거의 앙금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이해관계와 상관없 이 감정적인 이유로 실제보다 높은 저항점을 고수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서적 요소 를 무시하고 법적 규정이나 산술적 형평성만 앞세우는 것은 공정한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이 경우 불만이나 서운함에 대해 서로 터놓고 얘기하여 해소할 수 있는 기 회를 마련해준다면 당사자로 하여금 저항점을 낮추게 하는 효과와 결과에 대한 만 족을 가져올 수 있다.

2. 통합적 합의

통합적 합의는 양 당사자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양자의 이 해를 조정하여 공동의 이익에 이르도록 하는 합의의 유형이다. 배분적 합의와 대비 하여 비제로섬(非 zero-sum) 게임이라고도 한다. 통합적 합의는 모든 사람의 절대 최소기대를 만족시켜주므로 양 당사자가 결과에 만족할 가능성이 크고,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의 합의가 아니기 때문에 배분적 합의에 비해 당사자가 결과를 공정하다고 믿을 가능성이 크다. 통합적 합의 의 문제해결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공동의 목표를 제시할 것

분쟁의 당사자는 서로 분쟁의 대상을 두고 대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 사이 에는 공동의 목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임대료를 최대로 받으려는 임대 인과 임차료를 최소화하려는 임차인 사이의 분쟁에 있어서, 둘 사이에는 ① 계약기 간이 안정적이기를 바란다는 점 ② 아파트가 잘 유지되기를 바란다는 점 ③ 상호간 에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18) 그러므로 조정을 통해 양 당사자가 함께 노력하여 공동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하면, 경계심을 완 18) Ury, W., R. Fisher, 2008,『YES를 이끌어내는 협상법』, 박영환 역(서울: 도서출판 장락), 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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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하고 상호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

(2) 이해관계를 파악하여 파이를 키울 것

당사자의 요구나 주장의 이면에는 그러한 요구를 하게 된 욕구, 필요, 희망 등의 이 해가 깔려있다. 요구나 주장을 만족시키기는 어려워도 당사자의 이해를 충족하는 대안을 찾기는 상대적으로 쉬우므로, 이러한 이해관계를 조정대상에 포함시킨다면 파이를 보다 크게 키울 수 있다. 요구 뒤에 숨어있는 욕구는 대체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 즉 안전의 보장,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소속의식 등인 경우가 많다. 당사자의 내심에 숨어있는 이러 한 욕구에 귀를 기울여 가능한 한 신속히 조정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공정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3) 대안의 도출

상호간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였다면 이를 바탕으로 양 당사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대 안을 찾을 수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에는 공통되는 이해관계도 있으며, 복수의 이해 관계에 각 당사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수의 이해관계 상호간에 서로 이익이 되는 것을 교환하며, 공동의 이해 관계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당사 자의 감정, 명분, 동기, 원칙,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등 간과하기 쉬운 이해관계를 세밀하게 조율하면 만족스러운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19) 많은 당사자들이 문제의 해답을 정해놓은 채 조정에 임하며, 때로는 조정위원들 도 그러하다. 그러나 답을 정해놓은 조정은 가능성 있는 수많은 답 가운데서 해답 을 선택하는 현명한 결정과정을 없애버리게 된다. 공정한 조정결과를 도출하기 위 해서는 당사자들의 대화와 의견의 교환을 통해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내심의 욕 구를 파악하고, 애초에 조정대상이 되지 않았던 많은 가치를 조정대상에 포함시켜 19) 법원조정센터의 조정사례 중에는 교회 목사님들 사이의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사건에 있어서, 약간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하면서, 이는 법적 손해배상금이 아니라 목회자로서 하나님과 성도들의 평화 와 사랑을 위한 금원임을 강조하여 조정이 성립된 사례가 있다. 금원을 떠나 전혀 다른 가치인 목회자로서의 사랑과 평화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조정을 이끌어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법원행정처, 2011, 『법원조정센터 자료집』(서울: 법원행정처), 3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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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창출하는 것이 적절하다.

Ⅴ. 맺음말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공정’이라는 단어를 엄격하고 객관적인 법 또는 규정의 적용 과 연관지어 생각한다. 법률이나 규정이 공정의 기본적 요건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조정에 있어서 단지 법과 규정을 앞세운다면 자칫 편협 하고 경직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분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이고, 조정은 대화와 협력을 통해 그들 사 이의 갈등을 치유하여 인간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정한 조정을 위해 서는 법, 규정보다도 우선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조정위 원의 어떤 언행을 보면 공정성을 의심하게 되는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조정에 임하 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분쟁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있으며, 해결책 또한 자신에게서 나온다. 조정위원이 해야 할 역할은 그 역량과 해결책을 지혜롭게 이끌어내는 것이다. 조정위원이 당사자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공정한 기준에 의해 조정을 진행하며, 당사자의 숨겨진 이해관계를 파악한다면 조정위원 및 양 당사자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공정한 조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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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주제

「그리스신화 속 갈등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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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 속 갈등 조정

Ⅰ. 들어가는 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 럼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인간이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건축, 미술, 문학, 예술을 인간 중심으로 해석했고, 사회 제도 또한 인간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본주의는 신화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스신화의 신들은 인간의 모습을 닮았고, 인간의 본성이나 욕망은 신들에게 그 대로 투영되어 나타났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때로는 다투고 화해하는 모습까지도 말이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에 기반을 둔 그리스신화는 갈등이 서사구조의 기본이 된다. 개인 간의 갈등, 세력 간의 갈등, 이것으로 말미암은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신화 는 갈등의 이야기다. 그 복잡한 인물 관계만큼이나 다양한 갈등이 존재한다. 신들의 세계에서 갈등이 어떻게 해결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그리스신화를 즐기는 핵심이다. 이 갈등의 이야기에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보고 삶의 철학과 지 혜를 얻는 것은 신화읽기의 진수다. 이 글에서는 그리스신화 속 네 개의 갈등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갈등의 해결 과정 을 살펴본다. 특히 갈등이 해소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조정자를 중심으로 갈등 의 종국적 해결 과정을 분석한다. 이들이 갈등하는 양 당사자 사이의 소통과 이해 의 매개적 역할을 어떻게 수행해 나갔는지를 알아보고, 갈등 해소의 성공과 실패의 사례에서 조정자가 견지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생각해본다. 이를 바탕으로 신화 속에 나타난 갈등 조정의 특징을 포괄적으로 분석해보고 우리 사회 속 조정자의 중 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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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그리스신화 속 갈등과 갈등 조정자 그리스신화의 수많은 이야기 중 갈등의 해소에 조정자가 중차대한 역할을 한 네 가 지 사례를 발췌하여 정리했다.1) 이 중 두 가지 사례는 갈등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소되었지만 다른 두 가지 사례는 그렇지 못했다. 이들 이야기에서 조정자의 역할 과 함께 조정의 성공과 실패의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조정 성공에 필요 한 자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분노한 모성 – 하데스와 페르세포네

하데스

데메테르

제우스

지하세계의 신

대지의 여신

최고의 신

모녀 부부

페르세포네

저승의 지배자 하데스는 에로스의 화살을 맞아 페르세포네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녀 를 납치한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는 격노해 인간 세상을 돌보지 않게 되었다. 농경과 곡물, 수확의 여신인 데메테르의 분노로 인간 세계는 굶주림으로 허덕이게 되었다. 고통 받는 인간 세상을 보면서 제우스는 대책의 필요 성을 절감하고 딸을 되찾게 해달라는 데메테르의 도움 요청을 수용한다. 사자(使者) 헤르메스가 페르세포네를 데리러 갔으나, 페르세포네는 이미 그녀를 저승 세계에 예 속되게 하는 석류 한 알을 먹은 후였다. 이에 제우스는 협상안으로 페르세포네가 일 년 중 여섯 달은 지하 세계에서 하데스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 여섯 달은 데 메테르와 있도록 했다.2) 1) - 이 글에서는 김원익, 2011,『신화, 인간을 말하다』(서울: 바다출판사); 김원익, 2011,『신들의 전쟁』(서울: 알렙); 이윤기, 2010,『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서울: 웅진지식하우스)를 주로 참조하여 네 가지 이야기를 발췌 및 요약, 정리했다. - 그리스신화의 가장 큰 갈등 구조인 트로이 전쟁과 그 발발을 둘러싼 갈등 양상은 본지 9월호에서 보다 심층 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2) 페르세포네가 먹은 석류알의 수와 제우스가 조정한 지하세계와 지상세계의 체류 기간은 연구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페르세포네가 석류 세 알을 먹었고, 이에 세 달은 지하세계에서, 나머지 아홉 달은 지상세계에서 보내도록 했다는 연구도 있으나, 이 글에서는 이윤기(2010)를 기준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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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우스의 역할

페르세포네를 둘러싼 하데스와 데메테르의 다툼에서 제우스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 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제우스는 이들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페르세포네의 삶의 방향을 정립해야 하며, 둘째로 데메테르의 분노가 인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과 인간계의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 이는 다자간의 이익 관계를 모두 고 려해야하는 매우 복잡한 역할이다. 또한 하데스, 데메테르, 페르세포네의 갈등이 가 족 관계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양자 간의 이익 갈등 이상의 의미 를 가진다.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모녀관계를 둘러싼 갈등을 오늘날 양육권 갈 등과 맞닿아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3) 양자 간의 갈등의 원인과 그 결과가 단순히 두 당사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러한 복잡한 갈등 구조는 현대사회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갈수록 복잡, 다원화되어가는 오늘날의 갈등에서 제우스의 갈등 해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 제우스가 갈등 조정에 성공한 이유

제우스의 조정 성공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수사의 세 가지 기 법,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에 기반해 분석 가능하다.4) 조정자 와 당사자 간의 서로에 대한 호감과 믿음을 의미하는 에토스의 측면에서, 양자의 의 견에 모두 귀 기울이며 편향성을 지양하는 제우스의 태도는 당사자의 신뢰를 형성하 기에 충분했다. 특히 페르세포네를 둘러싼 갈등이 그녀를 향한 하데스와 데메테르의 감정으로 인해 촉발된 것이었기에 정서적인 면에 소구하는 파토스적 설득은 갈등의 종국적 해결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즉, 페르세포네를 향한 이들의 사랑이 궁극적 으로 페르세포네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갈등의 불식을 종용하는 감정적 설득은 효과를 발휘했다. 여기에 논리적 설득 구조인 로고스를 겸비하며 제우스의 조정안은 이성적 토대를 갖춘다. 석류 열매를 먹은 자는 하데스의 지하세계에 머물러 있어야한 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데메테르의 지상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제우스는 페르세포네 가 농사를 짓는 기간 동안은 지상세계에 있고, 그렇지 않은 기간에는 지하세계에 있 3) Gutierrez, A., 2012, “The seasons of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 A study of mediation tactics in the context of ancient greek mythology,” American Journal of Mediation, vol 6, p.68. 4) 강태완, 2010, 『설득의 원리』(서울: 페가수스)를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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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했다. 지하세계와 지상세계 체류 기간을 핵심 쟁점으로 놓고 양자의 입장을 모 두 존중하는 최적의 안을 도출 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이러한 합리성이 있었다.

2. 미의 여신, 질투의 화신 되다 – 프시케와 아프로디테

데메테르

제우스

대지의 여신

최고의 신

아프로디테 미의 여신

고부

모자

에로스 사랑의 신

연인

프시케 인간

그리스 최고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인간인 프시케가 새로운 미의 상징으로 추앙 받자 참을 수 없는 질투심에 휩싸인다. 그녀는 아들인 에로스를 시켜 프시케에게 사 랑의 고통을 줄 것을 명했으나, 에로스의 실수로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아프로 디테의 분노와 저주는 계속되었고, 프시케는 에로스를 찾아 나섰다가 데메테르 신전 에 당도한다. 데메테르는 아프로디테 신전에 찾아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것을 조 언한다. 프시케는 데메테르의 말에 따라 아프로디테를 찾아갔으나, 그녀는 프시케에 게 모진 노동을 시킬 뿐이었다. 이에 에로스는 제우스를 찾아갔고, 제우스는 아프로 디테를 설득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마침내 아프로디테는 박해의 손을 거두었다.

(1)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역할

여자들의 세계에서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 그 세계의 갈등을 조정하는 일 은 신화뿐 아니라 인류의 난제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데메테르는 갈등하는 두 여인을 조정의 장으로 이끄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미궁에 빠진 갈등은 데메테르의 조언으로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된다. 특히 한 당사자에게 포용과 관용의 태도를 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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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할 것을 조언하며 먼저 손을 내밀 것을 권하는 용기 있는 태도가 갈등 해결의 실 마리를 제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제우스는 ‘완고한 당사자’인 아프로디테를 설득하 는 것이 핵심임을 간파하고, 질투의 화신이 된 그녀를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질투와 증오 등 감정의 골이 야기하는 갈등이 인간계의 갈등 양상을 그대로 닮았다 는 점에서 아프로디테와 프시케의 갈등 해결은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두 당사자를 설득하는 혜안을 제시한다.

(2) 데메테르와 제우스가 갈등 조정에 성공한 이유

데메테르는 조정으로 나아가는 교두보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조정자뿐만 아니라 조정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독려하는 조력자의 역할도 중요함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를 바탕으로 제우스는 조정의 시작점을 설정했다. 그는 당사자 간의 의 견 합치를 도모하기 이전에 아프로디테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 것이 선행되어야함을 알았다. 특히 “그대가 인간들의 어려운 사랑의 끝도 아름답게 맺어 주듯이 그대의 아들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도 그 끝을 아름답게 해 주면 좋겠어요.”5)라는 제우스 의 설득의 메시지는 아프로디테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미와 사랑의 여신이 라는 자신의 본분과 모정을 상기시키는 설득법은 근원적 감정을 깊이 자극해 태도 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감정적 대립을 해결하려는 감정 소구의 설득법은 효과가 있 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파토스(Pathos)적 설득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3. 아르골리스의 가뭄 - 헤라와 포세이돈 그리고 이나코스

이나코스 강의 신 부녀

포세이돈

헤라

바다의 신

최고의 여신

부부

제우스

연인

최고의 신

이오 제우스의 연인

5) 이윤기, 2000,『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 1』(서울: 웅진지식하우스), 145-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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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는 아내 헤라 몰래 이오라는 여성을 사랑한 적이 있다. 헤라와 바다의 신 포세 이돈이 아르골리스 땅을 두고 싸움할 때, 아르골리스 땅을 흐르던 강의 신 이나코스 는 헤라 편을 들게 된다. 이나코스가 이오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제우스 때문에 딸 을 잃었기 때문에 제우스를 적대하고 있던 헤라 편을 든 것이다. 강의 신이 바다의 신에 반(反)하자 포세이돈은 매우 화가 났다. 그는 아르골리스 땅의 물을 모두 데리고 바다로 갔고, 아르골리스에는 물이 몹시 귀해졌다.

(1) 이나코스의 역할

이나코스는 헤라와 포세이돈의 영토 전쟁을 조율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분쟁의 대상이 되는 지역의 강의 신으로 일종의 향판(鄕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정부 에서 어느 지역을 대상으로 정책을 실시할 때 그 지역 책임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보다 더 적임자는 없기 때 문이다. 이나코스는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고려할 때, 두 신의 갈등 관계와 더불 어 이것이 지역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 지역이 이들의 분쟁에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르골리스 땅 이 가뭄이라는 극단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지역을 둘러싼 갈등이 원만히 해결되 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2) 이나코스가 조정에 실패한 이유

이나코스는 지역 사정에 정통한 책임자로서 훌륭한 조정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그 기회를 놓쳤다. 이것은 그가 조정자의 기본자세인 중립성을 상실하고 편 파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개인적인 감정이 조정 과정에 개입되었 다는 점이 조정 실패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헤라와 포세이돈의 이익 갈등에 대 한 첨예한 시각이 부재했고, 단순히 이를 헤라와 제우스, 이오의 관계 내에서 살펴 보았기 때문이다. 조정 당사자 및 관련 인물들과 얽힌 과거사에 영향을 받아 헤라 와 포세이돈의 갈등 조정이 제우스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갈 등 조정에서 조정 당사자와 조정자의 과거 관계가 미치는 영향에 주의해야하는 이 유가 여기에 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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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슴 피리, 비극을 노래하다 – 아폴론과 마르시아스 마르시아스

아폴론

반인반수

음악의 신

미다스

토몰로스

프리지아의 왕

산신

반인반수 마르시아스는 우연히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버린 피리를 줍게 되었는데, 그 소리가 매우 오묘하고 매력적이었다. 그의 사슴 피리 연주로 음악의 신 아폴론의 수 금 솜씨가 무색해졌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에게 솜씨를 겨룰 것을 제안한다.6) 산신 토몰로스와 미다스는 이 겨루기에 심판으로 초대되었다. 1차 대결에서 결판이 나지 않자, 아폴론은 마르시아스에게 악기를 거꾸로 들고 연주하자 는 제의를 한다. 아폴론의 수금은 거꾸로 들어도 소리를 낼 수 있었지만, 마르시아스 의 피리는 그렇지 않았다. 2차 대결의 결과, 토몰로스는 아폴론의 승리를 판정했고, 미다스는 마르시아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폴론은 매우 노해 미다스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어버렸다. 대결에서 진 마르시아스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참혹한 벌을 받았다.

(1) 토몰로스와 미다스의 역할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갈등 구조는 힘의 불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면밀히 살펴볼 가 치가 있다. 아폴론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이고, 마르시아스 는 반인반수다. 일방의 힘의 크기가 비대한 갈등 구조에서 원만한 합의점을 모색하 는 일은 쉽지 않다. 또한 갈등 조정이 힘의 논리 속에서 편협하게 전개될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공정한 조정을 위해서는 기존의 세력 관계에서 벗어나 동일 선상 에서 갈등 그 자체를 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하는 이유다. 심판자로 초대 된 토몰로스와 미다스는 단순한 승패의 판결뿐만 아닌, 힘의 균형을 고려한 조정의 장을 마련하는 역할까지도 수행해야 한다. 6) 해석에 따라 마르시아스가 우쭐하여 아폴론에 도전했다는 연구도 있으나, 이 글에서는 이윤기(2010)를 기준으 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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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토몰로스와 미다스가 조정에 실패한 이유

아폴론은 ‘수퍼(super)갑(甲)’이었다. 현대사회의 ‘갑을관계’라는 힘의 논리처럼, 아 폴론의 권력은 조정당사자 간의 힘의 불균형뿐만 아닌, 당사자와 조정자 사이의 종 속적인 관계까지 양산했다. 갈등 당사자, 조정자 등 모든 인물 가운데에서 아폴론의 힘의 크기는 절대적이었다. 아폴론이 미다스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들었다는 대목 은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방증한다. 따라서 토몰로스와 미다스는 아폴론의 권세 앞 에서 매우 표면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에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아폴론과 마르시 아스가 같은 높이에서 갈등을 논하도록 평등한 바탕을 다지는 것도 불가능했고, 갈 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합의점을 모색하는 합리적인 조정자의 역할 또한 수행할 수 없었다. 조정당사자 양자의 관계뿐만 아니라 당사자와 조정자가 세속적 힘의 논리 에 갇힌 채 조정에 임한다는 것은 조정 결과의 공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치명적인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Ⅲ. 그리스신화 속 갈등 조정의 특징

1. ‘법과 정의의 신’보다 ‘조정자’ 그리스신화에는 ‘질서와 율법의 신’ 테미스가 있다. 테미스는 제우스의 고모이자 그 의 두 번째 아내이다. 눈을 가리고, 천칭과 검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불편부당 성과 공정성을 견지해야하는 법관의 지향점과 닮았다. 그녀의 딸은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다. 신화 속에서 그녀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저울을 들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법이라는 절대적 가치로 정의의 실현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오 늘날 사법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신화에는 테미스와 아스트라이아와 관련된 일화가 많지 않다. 오늘 날 인구에 회자되는 ‘법대로 하자’는 말처럼 현대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그 종국적 해결에 사법부가 큰 역할을 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리스신화에서는 갈등 과 분쟁의 해결에 제3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사건의 과정과 인물들의 관계를 충분 히 알고 있는 자가 조정자가 된 것이다. 흔히 신들의 세계에서는 그 특수성으로 인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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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발생하는 힘의 논리가 갈등의 해결에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할 수 있으나, 위 에 소개된 이야기 및 신화 속 다양한 사례는 설득과 협상의 과정도 조정에 중추적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2. 조정자와 당사자들 간의 관계 그리스신화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인물 관계가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혈육관계와 혼인하고 가정을 이루는 일이 허다하고, 일부다처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이러한 관계는 신화 속 다양한 갈등을 더욱 복잡, 미묘하게 만 든다. 특히 제우스는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십여 명의 여신과 결혼했고, 오십여 명 의 자식을 낳았다.7) 제우스만 알면 그리스신화의 절반 이상은 이해한 것이라는 얘 기도 과장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제우스는 관계된 인물이 많았기에 다양한 이들의 갈등 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신화 속 갈등은 혈연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고 적대적 관계나 권력의 종 속적 관계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혈연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그리스신화 의 혈연에 대한 개념이 오늘날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약했기에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이라기보다 단순한 개인 간의 갈등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 이의 갈등의 조정자는 대체로 이들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자였다는 점에서 과 거사가 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각별한 공정을 기해야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신화뿐만 아닌 역사의 무수한 갈등이 그렇듯, 적대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8) 전쟁의 사회적⋅국가적 영향을 고려할 때, 적 대자들 간의 갈등에서 조정자는 이것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원만한 해결을 모색해야 했다.

3. 이해의 충돌 조정자와 조정당사자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해의 충돌은 조정의 공정성을 방해하 는 주된 요인이다. 이것은 당사자의 이익 관계와 조정자 본인의 이해관계가 충돌하 7) Bulfinch, T., 1999,『그리스로마신화』, 손명현 역(서울: 신원문화사)을 주로 참조하였다. 8) 김원익(2011),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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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뜻한다. 즉, 조정의 결과가 조정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계산이 조정 과 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신화 속에서는 갈등하는 자들의 다툼의 결과가 본인의 세력 신장이나 통치권의 확장 등과 직결되는 경우, 이러한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객관적 이고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조정자가 자신의 이익에 대한 고려 가 많아지면 조정은 필시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조정⋅중재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중재인의 제척, 기피, 회피 등에 관한 제도와도 궤를 같이한다. 「중재법」에서는 당사자가 중재인을 기피하거나 중재 인 스스로가 회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9)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 한 법률」은 기피, 회피 외 제척 제도를 명시하고 있다.10) 즉, 분쟁의 당사자나 쟁점 사항과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가진 자를 제척해 조정 및 중재 절차에 관여하지 못하 도록 하는 것이다. 기피, 회피 및 제척 제도는 중재위원과 당사자의 관계가 공정한 집무 집행에 장애가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제도이다. 사람과 사람 간에 일어 나는 일을 궁극적으로 사람이 주체가 되어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 조정자가 사건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4. 힘의 불균형 신들의 세계에서 힘의 우월 관계는 그 세계를 존속시키는 핵심 기제 중의 하나였 다. 다툼과 갈등의 연속인 그리스신화에서 갈등은 대체로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에 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더 큰 권력과 힘에 대한 지향이기도 했고, 외부로부터 인정 받고자하는 욕구이기도 했다. 힘과 갈등의 불가분의 관계는 역설적으로 종래적 기 준에서의 힘의 논리가 갈등의 원만한 해결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포세 이돈과 이나코스의 갈등처럼 ‘바다의 신 - 강의 신’이라는 상하위적 관계에서 갈등 의 축은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고, 아폴론과 마르시아스의 갈등에서는 아폴론 이라는 거대한 신의 권력이 당사자들 간의 불균형한 관계와 당사자와 조정자 사이 의 치우친 관계를 형성해 조정 실패를 야기했다. 힘의 불균형과 기존의 우월 관계가 갈등 해결의 장애가 되는 것은 인간 세계에서 도 마찬가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정치적 동물 인 인간은 사적 동기를 합리화11)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의 장에서 본인 9) 「중재법」 제13조(중재인에 대한 기피 사유), 제14조(중재인에 대한 기피절차). 10)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중재위원의 제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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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힘의 우위를 점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권력을 획득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신들의 세계든, 인간의 세계든 이러한 본성으로 말미암은 갈등을 현명하게 조정 하는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힘과 권력의 불균형으로 서로 다른 높이에 있는 양 당 사자가 그들 사이에 놓인 사다리에서 내려와 서로 같은 높이에서 갈등의 본질을 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정자의 역할이다. 갈등 그 자체를 논하는 데에 기존의 힘의 관계가 적용되는 것은 ‘반칙’이기 때문이다.

Ⅳ. 맺음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페리안드로스는 그리스의 칠현 중 솔론, 탈레스, 비아스를 코 린토스12)로 모신 적이 있다. 어느 날 ‘가장 현명한 철학자에게’라고 적힌 황금 솥을 두고 그는 고민에 빠진다. 페리안드로스는 이것을 탈레스에게 줄 것을 제안한다. 그 러나 탈레스는 이것이 비아스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양보한다. 비아스 역시 이 를 사양하고, 결국 이것을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에 바치는 것으로 갈등은 평화롭게 해결된다. 마치 황금 솥의 세 다리처럼 정립(鼎立)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13) 그리스신화에서 발이 셋 달린 청동 솥은 신성하게 여겨졌다. 디오니소스 제전의 시인 경연대회 우승자에게도 청동 솥을 수여했다.14) 세 점은 면을 이루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두 발솥으로는 서 있을 수 없고, 네 발솥으로 지지하기 위해서는 각 발의 길이가 모두 같은 길이로 대칭 구조를 이루어야한다. 완전한 평면 위에 놓이는 것 이 아니라면 이들은 모두 제대로 솥을 지탱할 수 없다. 그러나 세발솥은 발의 길이 가 조금씩 서로 달라도, 기울어지고 울퉁불퉁한 바닥에서도 완벽하게 정립(正立)할 수 있다.15) 소통과 화해의 매개체로서 갈등의 조정자는 청동 솥의 세 번째 다리에 해당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대립하는 양 당사자는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청 동 솥의 모습이다. 그들과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이등변 삼각형을 이루고, 양자의 11) Lasswell, H. D., 1985,『권력과 사회』, 김하룡 역(서울: 법문사)을 주로 참조하였다. 12) 고대 그리스 코린토스 지역의 명조(名祖)를 뜻한다. 13)『신동아』, 1999년 4월호 “델포이의 세발솥 앞에서”(이윤기)를 참조하였다. 14) 김원익(2011), 337쪽. 15)『신동아』, 1999년 4월호 “델포이의 세발솥 앞에서”(이윤기)를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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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에 따라 다리의 길이와 높이를 조정하는 유연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조정자 역 할의 핵심이다. ‘청동 솥의 미학’은 오늘날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는 참 지혜다. 신 화 속 갈등의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의 그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갈등 해결의 고갱이는 ‘3’의 균형점이 되는 조정자의 역할에 있음을 신들의 세상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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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주제

「한비와 귀곡자의 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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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와 귀곡자의 수사학

I. 들어가는 말 조정위원은 상황에 따라 공자와 맹자처럼 인과 예를 갖춘 선비의 모습을 견지해야 될 때도 있고, 유연함을 갖춘 노자의 모습을 구현해야 될 때도 있으며, 때로는 한비 와 귀곡자처럼 지략가가 될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위 사상가들 중 한비(韓非)와 귀곡자(鬼谷子)의 설득 메시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한비와 귀곡자는 당시의 도덕관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실리적 인 설득법을 제창하였기에 냉혹하고 계산적이라는 질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간의 솔직한 욕망을 근저에 두었던 까닭에, 그 저서인 『한비자』, 『귀곡자』가 다른 어느 고전보다 실리적이고 실용적인 처세를 담고 있다고 일컬어지 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조정을 하다보면 냉정한 접근과 기법이 필요할 때가 있는 데, 이때에 한비와 귀곡자의 사상은 유용한 조언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 서는 『한비자』 및 『귀곡자』 중 설득 관련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하되, 사상가의 생 각이 잘 전해지도록 직접 인용을 많이 실었다.

Ⅱ. 한비의 수사학 한비는 중국 전국시대 한나라 출신으로, 실용적인 통치술인 법(법령 제도), 술(신 하를 다루는 수단), 세(군주의 권위)를 통한 지배의 내용을 『한비자』에 담았다. 또한 『한비자』에는 설득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는데, 이는 살아있는 동안 인정받지 못했 던 한비의 비극적 생애 -그는 한나라에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 진나라에서 계 략에 빠져 죽임을 당한다- 의 소산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그 가 유세(遊說)에 대해 다룬 내용들이 훨씬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하에서는 『한비 자』 중 「세난(說難)」을 중심으로 하여 ‘상대의 내심을 살피는 설득’에 대해, 다음으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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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는 「주도(主道)」를 중심으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설득’에 관해 살피도록 하겠 다.1)

1. 상대의 내심을 살피는 설득 (1) 상대의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 한비는 설득을 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꼽았다. 아래는 『한비 자』 중 미자하의 고사인데, 이 고사에서는 군주가 신하를 탐탁지 않게 여기면 자동 적으로 그 신하의 모든 행동을 고깝게 보는 심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자하라는 사람은 위나라 왕에게 총애를 받고 있었는데, 위나라의 법은 왕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에게는 발이 잘리는 형벌을 내리도록 하고 있었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 들었을 때에 미자하는 슬쩍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왕은 이 일을 듣고 “효자로구 나. 어머니를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벌도 잊었구나!”라고 말하였다. 다른 날 미자하는 왕과 함께 있다가 복숭아를 따먹게 됐는데 그 맛이 달아서 반쪽을 왕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왕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으니까 과인을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 라고 말하였다. 세월이 흘러 왕의 미자하에 대한 사랑이 식게 되었다. 한번은 왕에게 죄를 지었다. 그 러자 왕은 “이놈은 옛날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고, 또 자기가 먹던 복 숭아를 과인에게 먹으라고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으 나 전에는 칭찬을 받고 후에는 벌을 받은 까닭은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비는 한 나라의 군주도 늘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일 수 없다고 보았다. 동일한 행동조차 행위자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는 위 고사의 내용과 같이, 한비는 군주에게 하는 유세가 아무리 그 내용이 좋다고 한들, 신하에 대한 군주의 마음이 닫혀 있으면 설득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보았다. 설득 논리가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설득이 안 되는 상대가 있다면, 상대의 마음이 나에게서 이미 떠나버린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할 때가 있다.

1)『한비자』 원문의 인용은 한비자, 2011,『한비자』, 최태응 역(서울: 북팜)에서 하였고, 『한비자』원문의 해석 은 『한비자』(2011, 최태응 역) 및 한비자, 2012,『한비자』, 김원중 역(파주: 글항아리)을 주로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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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상대의 심리를 살피는 것이 핵심 한비는 ‘상대의 마음에 들려면 상대의 심리를 살펴야 한다’는 접근법을 취하였는데, 이 같은 견해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냉철한 시각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한비의 관점이 잘 드러나는 말 중에 하나는 “수레를 만드는 사람은 수레를 만들면서 사람 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며, 관을 짜는 사람은 관을 만들면서 사람이 요절해 죽기를 바랄 것이다”2)인데, 이는 수레를 만드는 사람이 더 인정이 있음도, 관을 짜는 사람 이 더 몰염치함도 아니고, 인간은 누구나 본인에게 있어 가장 큰 실익을 좇을 뿐이 라는 것이다. 한비는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군주와 신하의 관계도 서로에게 이해 타산이 맞는지가 중요한 계약관계일 뿐, 충과 신의 가치를 중시하는 관점으로 파악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신하된 자는 군주에게 의리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군주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관점에서 설득을 살핀다면, 설득자가 상대방의 내심을 살펴 상대가 좋아 할 만한 것, 그가 실익으로 느낄 것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져야 함은 당연한 수순이 다. 아래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설득하여야 한다는 한비의 말이다. 所說出於爲名高者也 而說之以厚利 則見下節而遇卑賤 必棄遠矣 所說出於厚利者也 而說之以名高 則見無心而遠事情 必不收矣 소세출어위명고자야 이세지이후리 즉견하절이우비천 필기원의 소세출어후리자야 이세지이명고 즉견무심이원사정 필불수의

위의 내용은 설득자는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여 설득의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으로, 만일 설득 상대방이 명예에 관심이 많은데 설득자가 재화로써 상대방을 설 득하려고 하면 설득 상대방은 설득자가 비천하다고 무시할 것이고, 반대로 상대는 재화에 관심이 많은데 설득자 스스로 명예가 더 숭고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상대에 대해 파악도 하지 않고 그저 명예만 앞세워 설득을 하게 되면 오히려 설득 상대방 은 설득자를 아둔한 자로 여긴다는 내용이다. 한편 한비는 설득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할 때 평면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2) 한비자(2012), 김원중 역,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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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말이다. 所說陰爲厚利顯爲名高者也 而說之以名高 則陽收其身而實疏之 소세음위후리현위명고자야 이세지이명고 즉양수기신이실소지

즉 한비는 설득하려는 상대가 속으로는 이익을 좇으면서 겉으로는 명예를 따르는 척 행동할 수도 있으니, 상대방의 겉만 보고 명예로써 설득하여 상대의 마음을 얻 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렀다.

(3) 상대가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설득이 필요

한비는 상대의 심리가 파악되고 나면 상대방이 자랑스러워하는 점은 칭찬해주고, 부끄러워하는 부분은 감싸주는 설득을 하여야 한다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凡說之務 在知飾所說之所矜 而滅其所恥 彼有私急也 必以公義示而强之 其意有下也 然而不能已 設者因爲之飾其美 而少其不爲也 범세지무 재지식소세지소긍 이멸기소치 피유사급야 필이공의시이강지 기의유하야 연이불능이 세자인위지식기미 이소기불위야

위의 인용은 상대방이 사적인 필요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상대에게 아쉬 운 것은 공식적인 명목일 것이므로, 설득자는 상대에게 명분을 안겨주어야 하고, 상 대방이 하기 싫지만 꼭 해야 되는 일이 있을 때는 이것을 미화하고 윤색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다. 한비의 서술을 좀 더 소개해 본다. 有欲矜以智能 則爲之擧異事之同類者 多爲之地 使之資說於我 而佯不知也 以資其智 欲內相存之言 則必以美名明之 而微見其合於私利也 유욕긍이지능 즉위지거이사지동류자 다위지지 사지자세어아 이양부지야 이자기지 욕내상존지언 즉필이미명명지 이미견기합어사리야

한비는 군주가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고 싶어 할 때 유세객3)은 자신의 지혜를 군 주에게 빌려주되 마치 군주가 스스로 의견을 내는 것처럼 보이게 할 필요가 있다고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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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다른 사람과의 협력을 설득해야 할 때는 명분을 앞세우되 안으로는 상대의 사익에도 합치한다는 사실을 꼭 암시해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설득자는 상대방이 가렵다고 느끼면서도 스스로 긁지 못하는 부분을 대신 긁 어주어야 할 것이라 한비는 판단했다. 가령 어떤 일을 사적인 이유에서 도모하려는 자에게는 공식적인 명분을, 과시욕이 있는 자에게는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환경을, 다른 이와의 협력을 목전에 둔 이에게는 개인의 이익 부분을 긁어주어야 한다고 보 았다.

(4) 역린(逆鱗)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

한편 한비는 설득을 할 때 조심해야 할 점에 대해서도 당부하였다. 아래 인용은 상 대의 예민한 부분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夫龍之爲虫也 柔可狎而驥也 然其喉下有逆鱗徑尺 若人有嬰之者 則必殺人 부룡지위충야 유가압이기야 연기후하유역린경척 약인유영지자 즉필살인

위의 글은 용은 유순한 동물이어서 잘 길들이기만 하면 그 위에 타게 해 주지만, 용의 턱 밑에 있는 거꾸로 박힌 비늘인 역린을 건드리는 자가 있을 때는 그 자를 가 차 없이 죽여 버린다는 내용으로, 한비는 사람은 누구나 용의 역린과 같은 민감한 부분을 가지고 있으므로 역린을 건드리는 설득으로는 그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2.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설득 한비는 군주가 신하에게 자신의 속뜻을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아래 인용 은 한비가 군주의 술과 관련하여 「주도」에서 밝힌 부분인데, 이는 설득의 장에서도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보여 소개한다.

3) 유세객(遊說客)은 춘추전국시대에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사상을 피력한 사람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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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無見其所欲 君見其所欲 臣自將雕琢 군무견기소욕 군견기소욕 신자장조탁

위의 인용은 군주가 자신의 뜻을 내보이는 순간 신하는 군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본래 자신이 가진 의도를 왜곡하거나 은폐하므로 군주는 신하의 내밀한 심경을 들을 기회를 놓치게 되니 군주는 자신의 의도를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는 내용이다. 한비는 내가 말을 멈추고 상대에게 나를 감추어 상대로 하여금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모르도록 할 때 상대의 가장 솔직한 내면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설득의 현장에서도 이러한 한비의 통찰이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내밀한 심경을 왜곡 없이 듣기 위해서 설득자의 생각과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선택이 유리 한 순간은 분명히 있다.

3. 소결 훌륭한 설득의 조건에 대하여 한비는 상대의 내심을 읽어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지 않아 상대 마음에 드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본심이 표현 될 수 있도록 설득자의 의견을 감춰야 할 때는 이를 숨길 줄 아는 기지를 발휘하는 것을 들었다. 모든 조정 당사자가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기를 기대할 수는 없고, 성품이 선한 사람이더라도 갈등 국면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정실로 향하는 조정위원들은 한 번쯤 한비의 인간에 대 한 냉정한 통찰과 수사술을 떠올려봄 직도 하다.

III. 귀곡자의 수사학

『귀곡자』는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왕후(王詡, 귀아곡이라는 계곡에 은거하여 후 대에 귀곡자로 불림)가 남긴 책이다. 『귀곡자』는 설득의 총론 격인 「벽합(捭闔)」, 시 작 단계인 「반응(反應)」 「내건(內揵)」 「저희(抵巇)」, 실행 단계인 「오합(忤合)」 「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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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揣摩)」 「비겸(飛箝)」 「양권(量權)」 「모려(謀慮)」, 최종 단계인 「결물(決物)」로 나 누어 설득 기법을 설명하였는데,4) 각 단계에 대해 아래에서 살피도록 하겠다.

1. 설득의 총론 - 벽합(捭闔), 열고 닫기 ‘벽합’의 ‘벽(捭)’은 ‘연다’, ‘합(闔)’은 ‘닫는다’로, ‘벽합’은 ‘열고 닫는다’는 뜻인데, 아래 인용은 「벽합」에서 귀곡자가 한 말이다.5) 捭之者開也言也陽也. 闔之者閉也默也陰也. 벽지자개야언야양야 합지자폐야묵야음야 귀곡자는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는 것이 말하는 것이고 양이며, 닫는 것이 침 묵하는 것이고 음이라고 하였다. 즉 설득의 상황에 따라 마음을 열어 자기 입장을 표현하는가 하면, 때로는 마음을 닫고 속내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고 하면서, 설득에 있어서 말과 침묵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는 능력, 적시에 마음을 열고 닫는 기술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이어서 설득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경청하기, 상대방과 결속하기, 미연에 틈 막 기에 관해 각 살핀다.

2. 설득의 시작 단계 - 반응, 내건, 저희

(1) 반응(反應), 경청하기

설득 단계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반응’ 단계로, 여기서는 경청을 중시한다. 아래 는 상대방이 말하고 움직이는 동안에 설득자는 고요함을 유지하라고 하는 대목이다. 人言者動也, 己默者靜也. 以無形求有聲, 其釣語合事, 得人實也. 4) 설득의 시작·실행·최종 단계의 구조는 박찬철・공원국, 2008,『귀곡자-귀신 같은 고수의 승리비결』(서울: 위즈 덤하우스)의 정리를 따름{다만 설득단계의 몇몇 명칭(‘벽합’, ‘양권’, ‘모려’)의 경우는 신동준, 2012,『어떻게 세 상의 마음을 얻는가-2500년 동양 최고의 설득술, 귀곡자』(파주: 21세기북스)의 정리를 따름}. 5) 아래의 원문 인용을 포함하여 『귀곡자』의 원문은 박찬철・공원국(2008)에서 인용하였고, 『귀곡자』의 원문 해석은 박찬철・공원국(2008) 및 신동준(2012)을 주로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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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언자동야 기묵자정야 이무형구유성 기조어합사 득인실야 위의 글에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가운데(無形) 상대의 말을 탐구하면 상대의 본심 을 파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귀곡자는 설득자의 첫 자세로서 “상대의 진심을 들으려면 오히려 침묵하고 펼치려면 오히려 움츠리며, 높아지려면 오히려 낮 추고, 상대를 취하려면 도리어 주어야 한다”6)라고 하였다. 귀곡자도 설득의 첫 과정 에서 경청을 중히 여겼던 점을 보면 경청이 설득에 있어 핵심 요소인 점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2) 내건(內揵), 안으로 걸어 잠그기

‘건揵’에는 ‘막다, 닫다’라는 의미가 있어 ‘내건內揵’은 ‘안으로 걸어 잠근다’는 뜻으 로, 귀곡자는 설득의 초반에 상대가 나를 같은 편으로 인식케 하는 과정이 필요하 다고 보았다. 귀곡자는 내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군주 앞으로 이미 나아갔지만 쓰이지 못할 수도 있고, 떠나 있어도 오히려 부름을 받을 수가 있다. (내건이 되지 않으면) 매일 앞에 나가도 쓰이지 못할 수 있고, (내건이 되어 있으면) 멀리서 그 소리만 들어도 생각나게 할 수도 있다”고 하였고, 한편 내건을 맺는 방법의 예로서 “도덕으로써 당을 맺거나, 당을 지어 친구가 되거나 심지어 재물이나 여색으로써 맺을 수도 있다”7)라고 밝히기도 했다.

(3) 저희(抵巇), 미연에 틈 막기

귀곡자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상대방과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나면, 혹시 설득 을 저어할 만한 틈이 없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희巇’는 틈이라는 뜻으로 ‘저희’는 틈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귀곡자는 작은 금이 나중에 큰 틈새가 되므로, 좋은 설득자는 틈이 시작되는 조짐을 잘 포착하여 이에 대처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아래는 틈새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법과 관련한 귀곡자의 서술이다.

6) 박찬철・공원국(2008), 57쪽. 7) 박찬철・공원국(2008),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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巇始有朕, 可抵而塞, 可抵而卻, 可抵而息, 可抵而匿, 可抵而得, 此謂抵巇之理也. 희시유짐 가저이색 가저이각 가저이식 가저이닉 가저이득 차위저희지리야 위의 인용은 “틈새의 조짐이 안에서 비롯된 것이면 곧바로 봉합하고(塞), 틈새가 외부로부터 비롯된 것이면 저희술로 제거하며(卻), 공개적으로 드러나면 저희술로 싹을 없애고(息), 아직 맹아 단계면 저희술로 은폐하고(匿), 이미 커져 어쩔 수 없는 단계면 저희술로 대체술을 찾아야(得) 한다”8)는 내용이다. 반응, 내건 단계를 거쳐 미연의 틈을 막는 저희 단계까지 마무리되면, 이제 본격 적인 설득의 실행단계로 접어든다.

3. 설득의 실행 단계 - 오합, 췌마, 비겸, 양권, 모려 설득의 실행 단계에서는 형세를 살피는 오합술,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는 췌마술, 상 대를 칭찬하는 비겸술, 말로 상황을 주도하는 양권술, 전략을 통해 설득을 성공시키 는 모려술이 있는데, 실행 단계에 속하는 위 기법들 간에는 설득의 시작 단계에서 와 같이 정해진 순서는 없고, 각각의 설득 상황에 필요한 기법을 활용하면 족하다. 어떠한 기법이 있는지 미리 체득해 두면, 향후 적재적소의 순간에 활용하는 데 도 움이 될 것이다. (1) 오합(忤合), 형세를 살피고 기세를 타기

‘오忤’는 ‘거스른다’, ‘합合’은 ‘따른다’는 뜻으로, ‘오합’의 단계는 상대의 비위에 맞 춰 순순히 따르거나 혹은 상대와 반대되는 입장을 드러내는 것을 총칭9)한다. 귀곡 자는 무릇 매사에는 두 가지 추세가 존재하며, 이 두 가지 추세는 서로 앞뒤가 맞 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띄는 까닭에, 설득자는 이러한 추세에 맞는 적합한 계책을 세워야 한다고 보았다. 귀곡자에 따르면 설득이 본궤도에 접어들면 설득자는 형국 의 변동에 따라 이에 각각 들어맞는 ‘오忤’와 ‘합合’을 적절히 구사할 필요성이 생 긴다고 보았다.

8) 신동준(2012), 107쪽. 9) 신동준(2012),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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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췌마(揣摩), 상대의 심중을 어루만져 헤아리기 ‘췌揣’는 ‘헤아린다’, ‘마摩’는 ‘어루만지다’는 뜻으로, 귀곡자는 ‘췌마’ 단계에서 상대 의 심중을 어루만져 상대의 본심을 헤아리라고 한다. 귀곡자는 “본심이 안에서 움직 이면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10)이므로, 설득자는 상대의 이러한 본심을 짐작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는데, 귀곡자는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은 밀하게 상대의 내심을 어루만져야 그 본심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故物歸類, 抱薪趨火, 燥者先燃, 平地注水, 濕者先濡, 此物類相應, 於勢譬揂是也. 고물귀류 포신추화 조자선연 평지주수 습자선유 차물류상응 어세비추시야 위의 인용은 “장작 묶음에 불을 지피면 잘 마른 곳부터 타고, 땅에 물을 부으면 낮은 곳부터 고이는 것처럼, 서로 어울리는 부류가 있어서 비슷한 세력끼리 호응한 다는 내용으로, 상대와 비슷한 부류가 되어서 은근슬쩍 본심을 추측하면 상대가 반 응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11)이다. 즉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기 위해서는 설득자 스 스로가 불이 잘 붙는 마른 나무가 되거나 물이 잘 고이는 낮은 지면이 되어, 설득 상대방이 자신도 모르게 설득자에게 마음속을 털어놓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3) 비겸(飛箝), 상대를 칭찬하며 옭아매기 ‘비飛’는 ‘띄운다’, ‘겸箝’은 ‘쇠사슬로 매다’라는 뜻으로, 귀곡자는 ‘비겸’ 단계에서 상대를 칭찬해서 꼼짝 못하게 매어놓아야 한다고 보았다. 아래는 이에 대한 귀곡자 의 서술이다. 用之於人, 則量智能 權財力, 料氣勢, 爲之樞機, 以迎之, 隨之, 以箝和之, 以意宣之, 此飛箝之綴也. 用之於人, 則空往而實來, 綴而不失, 以究其辭, 可箝而縱, 可箝而橫, 可引而東, 可引而西, 可引而南, 可引而北, 可引而反, 可引而復, 雖覆能復, 不失其度. 용지어인 칙량지능 권재력, 료기세 위지추기 이영지 수지 이겸화지 이의선지 차비겸 지철야 용지어인 즉공왕이실래 철이부실 이구기사 가섭이종 가섭이횡 가섭이동 가 섭이서 가섭이남 가섭이북 가섭이반 가섭이복 수복능복 불실기도

10) 박찬철・공원국(2008), 165쪽. 11) 박찬철・공원국(2008),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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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용은 “일단 상대를 칭찬하는 말로 띄워서 환영하고 따르다가 기회를 봐서 꼼짝 못하게 장악한다. 남에게 쓸 때는 내가 빈 것을 보내도(칭찬하는 빈말을 던져 도) 실질적인 것이 돌아오니(상대는 본심을 드러내서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제약하 는 말을 한다), 이를 놓치지 말고 상대의 말을 자세히 탐구하면, (그 마음을) 꼼짝 못하게 묶어서 세로로 갈 수도 있고 가로로 갈 수도 있고, 동으로 서로 북으로 남 으로 끌고 다닐 수도 있고, 되돌아갈 수도 있고, 다시 돌이킬 수도 있다”12)는 내용 을 담고 있다. 귀곡자는 칭찬만으로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다고 보았던 까닭 에, 상대를 칭송함에 반드시 진심을 담지 않더라도 설득 상황에서 그 칭찬의 효용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4) 양권(量權), 말로 상황을 주도하기 ‘양量’은 ‘저울질 한다’는 뜻이고, ‘권權’에는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라는 뜻이 있 어, 귀곡자는 양권 단계에서 상황에 맞는 말의 구사를 강조하며, “유세가는 거침없 이 말에 능해야 하고, 자유자재로 논변을 펼칠”13)줄 알아야 한다 보았다. 아래는 설 득자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응대하는 구체적인 상황을 이야기한 대목이다. 應對者, 利辭也, 利辭者, 輕論也. 成義者, 明之也, 明之者, 符驗也. 응대자 리사야 리사자 경론야 성의자 명지야 명지야 부험야 위의 글은 “상대의 돌연한 질문에는 재치 있는 말로 응대하고, 상대가 의리를 들 먹일 때는 모든 사람이 명백히 아는 이치로 설명하고, 사안을 명백히 드러내고자 할 때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논증한다”14)는 내용으로, 상황에 걸맞은 언변을 강 조한 부분이다. 예컨대, 상대가 사안을 명백히 하고자 하면 논증을 함이 적당하지 재치 있는 말로만 응대하려고 하면 설득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귀곡자는 말의 조리 있는 구사를 위해서 눈과 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눈과 귀는 말로 살피지 못하는 틈을 살피고, 간사한 것을 가려낸다”15)고 보았다.

(5) 모려(謀慮), 전략을 통해 성사시키기

12) 13) 14) 15)

박찬철・공원국(2008), 185쪽. 박찬철・공원국(2008), 211쪽. 신동준(2012), 204쪽. 박찬철・공원국(2008),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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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謀’는 ‘지략, 꾀하다’, ‘려慮’는 ‘깊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귀곡자는 ‘모려’ 단계 를 지략을 써서 일을 성사시키는 과정으로 보았는데, 아래는 이 단계에서의 기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는 대목이다. 夫仁人輕貨, 不可誘以利, 可使出費. 勇士輕難, 不可懼以患, 可使據危. 智者達於數, 明於理, 不可欺以不誠, 可示以道理, 可使立功. 부인인경화 불가유이리 가사출비 용사경난 불가구이환 가사거위 지자달어수 명어리 불가기이불성 가시이도리 가사입공 이는 “대개 어진 사람은 재물을 가벼이 여기므로 이익으로 유혹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일을 할 비용을 쓰게 할 수는 있다. 용감한 자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으 므로 우환으로 겁을 줄 수는 없지만 위험한 곳을 지키게 할 수는 있다. 또 지혜로 운 자는 술수와 이치에 밝으니 속일 수는 없지만 도리를 내세워 공을 세우게 할 수 는 있다”16)는 내용으로, 설득 상대방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에 따라 어떻게 계책 을 세워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귀곡자는 “어리석은 자는 쉽게 속임수에 넘어가고, 미욱한 불초자는 쉽게 겁을 먹으며, 탐욕스런 자는 쉽게 유혹에 넘어가는데, 이것이 여러 유형의 사람을 다루는 인사재인(因事裁人)의 용인술”이라고 보기도 하였다.

4. 설득의 최종 단계 – 결물(決物), 결단 ‘결決’은 ‘결단’, ‘물物’은 ‘일, 만물’이라는 뜻으로, 귀곡자는 ‘결물’ 단계에서 사안 의 결단 문제에 대한 술책을 말하는데, 아래는 결물 단계에서 설득자가 염두에 두 어야 할 주요 내용이다. 爲人凡決物, 必托於疑者. 善其用福. 惡其用患. 至於誘也, 終無惑偏, 有利焉. 去其利則不受也. 奇之所託, 若有利於善者. 隱托於惡, 則不受矣, 致疏遠. 故其有使失利者, 有使離害者, 此事之失. 위인범결물 필탁어의자 선기용복 악기용환 지어유야 종무혹편 유리언 거기리즉불수야 기지소탁 약유리어선자 은탁어악 즉불수의 치소원 고기유사실리자 유사리해자 차사지실

16) 박찬철・공원국(2008),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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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은 “결단을 내릴 때는 반드시 상대가 의심하는 바를 해결해야 한다. 상대 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잘 이용하고 걱정거리와 손해는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은 다른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상대의 이익을 없앤다면 상대는 나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결단을 할 때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우 선해야 하는데, 그 안에 상대가 싫어하는 은밀한 게 있어도 상대는 이를 받아들이 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상대와 나의 관계가 소원해지며, 결국 일은 실패하게 된 다”17)는 내용이다. 귀곡자는 결국 마지막 결단으로 일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보면서 이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는 ‘상대의 이익’이라고 보았다. 상대가 이 익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결단은 결국 상대로부터 거부되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 기 때문이다.

5. 소결 귀곡자는 설득 과정을 세심히 나누고 이에 따른 전략을 제시하였는데, ‘설득의 시작 단계’에서는 먼저 상대방 말을 잘 듣고 상대와의 친밀도를 높이며 방해될 수 있는 것은 미연에 막고, ‘설득의 실행 단계’에서는 상황에 맞게 형세를 타는 전략, 상대 를 은밀히 어루만지는 전략, 상대를 칭찬하여 옭아매는 전략, 상황에 걸맞은 말 또 는 기법을 구사하는 전략 중 적절한 것을 선택하여 활용하며, ‘설득의 최종 단계’에 서는 설득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는 결단을 내리라고 하였다. 모택동과 등소평 등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머리맡에 두었던 책들 중 하나는 『귀곡자』였다고 한다.18) 모택동 등은 귀곡자의 책략을 정치 무대에서 응용했던 것이다. 오늘날 조정(調停)의 자리에서도 귀곡자의 전략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을 수 있다. 대립하는 이해 당사자 사이에서 조정위원은 가끔 모략가가 되어야 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IV. 맺음말 이제까지 『한비자』와 『귀곡자』에 나타나 있는 상대를 설득하는 법에 대해 살펴보았 다. 한비와 귀곡자는 설득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들에 17) 박찬철・공원국(2008), 272쪽. 18) 신동준(2012),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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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논했다. 대표적인 예로 상대의 욕망을 공략할 줄 알고, 상대는 면밀히 살피면 서 자신에 대해서는 드러내지 않기, 형세를 살펴 치고 빠질 때를 계산할 줄 알고, 칭찬으로 상대를 옭아매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제시되었다. 위와 같은 이들의 설득 기법은 때로 권모술수와 모략으로 비난받았다. 하지만 이 들의 설득술은 인간에 대한 냉철하고 현실적인 통찰을 전제로 하였기에, 이토록 오 래 우리 곁에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관념과 가치의 무게에 구속되어 조정 당사자를 설득함에 어려움을 겪는 순간에 한비와 귀곡자의 사상은 촌철살인과 같은 조언이 되어 조정에서의 설득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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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주제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의 의미와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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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의 의미와 이념

I. 들어가는 말 미(美) 대통령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던 A. 링컨은 “가급적 소송하 지 않도록 권하라. 주위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타협하도록 설득하라. 승자가 수수 료, 비용, 시간 때문에 실제로는 패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하라”1)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오랜 시간과 노력 끝에 승소한 사람에게는 과연 그 노력을 들인 만 큼의 이익이 생기는 것일까? 승패를 가리느라 소요된 시간과 감정의 소모, 스트레 스, 비용의 낭비 대신 상대방과 미래의 우호적 관계를 쌓을 수 있는 다른 대안은 그에게 없었을까? 그 해답으로서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사법 시스템 외의 다른 해결책, 즉 분쟁 당사 자 간 타협과 협상, 또는 제3자의 판정 등을 통해 질서와 평화를 효과적, 경제적으로 이루어왔다. 이러한 분쟁해결 방법을 현대에 이르러 ADR(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대체적 분쟁해결제도, 이하 “ADR"이라 한다)로 통칭하여 부르고 있다.2) ADR에 대해 본격적으로 명시한 미국의 ADR법(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ct of 1998)에 따르면 ADR은 ‘중립적 제3자가 조기중립평가, 조정, 간이재판, 중 재 등을 통해 분쟁해결에 조력하는, 수소법원 재판장에 의한 재판이 아닌 과정이나 절차’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대체적 분쟁해결제도’로 주로 표기하며, 형식적으로는 법원에서 행하여지는 소송의 형태 이외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분쟁해결제도를 의 미하고, 실질적으로는 직접 당사자 간의 교섭과 타협으로, 또는 제3자의 관여에 따 른 조정, 중재 등으로 이루어지는 분쟁해결방식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1) “Discourage litigation. Persuade your neighbors to compromise whenever you can. Point out to them how the nominal winner is often the real loser - in fees, expenses, and waste of time." 2)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의 분류법은 학자마다 다른데, 임동진의 ‘대안적 갈등해결방식(ADR)제도의 운영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는 1. 갈등회피, 2. 비공식적 토론, 3. 협상, 4. 중재, 5. 행정결정, 6. 재정, 7. 사법결정(재 판), 8. 입법결정, 9. 비폭력적 직접행동, 10. 폭력 등 10가지로 나누기도 했다. 분쟁에 개입하는 제3자의 권위 와 개입의 정도에 따라, 즉 갈등참여자가 과정과 결과를 통제하느냐 또는 제3자가 통제하느냐 여부에 따라 크 게 협상, 조정, 중재, 소송으로 도식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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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우선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의 전통적 의미와 더불어 현대 사회 에서 변화된 특징을 살펴본 후, ADR의 기본 이념을 7가지로 분류, 검토하여 이를 바탕으로 ADR의 장점과 지향점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II. ADR의 전통적 의미와 현대적 특성 한국과 미국에서 각 분쟁이 있는 상황에서의 제3자의 역할을 검토한 한 연구에 따 르면, 한국인들은 미국인에 비해 중재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있으며, 친 구관계에서는 중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반면 낯선 사람들 간의 중재에는 잘 개 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3) 즉 한국인은 친구들과의 결속이나 감정적인 친밀감 에 민감하고 집합주의적 성향이 강하므로, 충돌을 피하고 화합을 꾀하기 위한 측면 에서 법적인 절차보다는 개인 단계에서 분쟁을 마무리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다. 반면 미국 등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는 사회적 행동을 해석함에 있 어 상대와 자신과의 관계성에 따라 해석의 틀을 달리하지 않으므로 상대방과의 친 밀감에 따른 태도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문화권에 따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뿐 아니라 도덕관념, 집단 의식, 법문화 등의 문화적 토양이 상이하므로 ADR의 태생과 발전 양상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아래에서는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우리나라와 서양의 ADR의 원형을 알아보고, 현대에 이르러 달라진 ADR의 특성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1. 전통적 관점에서 본 ADR (1) 우리나라의 갈등과 ADR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마을의 현인이나 학자가 자신의 지식과 당시의 공동체적 윤 3) Carnevale, P. J., R. Pegnetter, 1985, “The selection of mediation tactics in public sector disputes: A contingency analysis," Journal of Social Issues, 41(2), pp.65-82; Triandis, H. C., 1990, "Cross-cultural studies of individualism and collectivism," Cross-cultural perspectives, pp.41-133; Kim, K., U. Kim, 1997, "Conflict, in group and out group distinction and mediation: comparison of Korean and American student," Progress in Asian social psychology, vol. 1, pp.247-259{최상진, “회의 및 중재에 관련된 심리 학적 연구," 청소년보호위원회 정책정보 기록물, 2000-31, 36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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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준에 따라 분쟁의 해결을 도왔다. 특히 유교문화권에서는 사회의 전체적 화합 을 개인의 권리보다 우선시하여 개개 사건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공개적으로 가리 기보다는 사건의 내용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당사자 간 해결하려는 방식을 선 호하였다. 화합은 자제, 관용, 용서, 타인과의 협력을 통해 성취되며, 깨질 경우 화 해, 상호설득, 양보 등을 통해 회복되는 특성이 있다.4)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 는 말 자체가 이러한 우리의 전통적 법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서, 제3자가 판정하 는 방식인 소송은 기피되고 당사자 간 타협, 또는 제3자가 조정자로서 개입하여 분 쟁을 해결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5) 특히 우리의 전통촌락사회에서의 분쟁해결 과정에서 등장하는 조정자는 주로 마 을의 ‘어른’6)이었는데, 이들은 분쟁이나 사건을 원만하게 처리하여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즉 분쟁 당사자들의 성격이나 입장, 내면의 사정, 해당 분쟁의 근원적인 배경을 두루 파악하고 있어야 모든 요소에 대 해 충분히 고려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합당한 조정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 던 것이다. 어른은 삼강오륜 등과 같은 인간의 도리나 살아오면서 쌓은 자신의 경 험 등 공동체의 구성원이 합의할 수 있는 충분한 규범적 기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권위는 분쟁 당사자에게 확고하게 받아들여졌다. 어른의 말에 따르지 않는 사 회구성원에게는 도덕적 비난과 같은 사회적 제재가 가해졌다. 어른은 분쟁의 승패를 가리는 법관보다는 공동체의 질서유지를 목표로 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주로 수행하 였다. 다음은 1960년대 한국의 전통적 법의식에 대한 연구에서 인용한 것이다.7)

한국인들은 항상 단죄를 내리는 판사보다는 평화유지자로서의 중재자를 선호하 였다. 중재자는 단죄하거나 법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사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사안에 적용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내도록 조장한다. -중략- 종교적 가치들이 우주관과 사회윤리의 핵심에 있는 것이라면 한국인들의 생활관은 이 들로 하여금 신의 은총보다는 인간의 애정을, 구제보다는 무아(無我)를, 정의보

4) 문용갑, 2011,『갈등조정의 심리학』(서울: 학지사), 16쪽. 5) 장문철, 2000,『현대중재법의 이해』(서울: 세창출판사), 222-223쪽. 6) 우리 전통사회에서의 ‘어른’의 역할에 대해서는 황승흠, 2005,『분쟁과 질서의 법사회학』(서울: 성신여자대학 교 출판부) 122-128쪽에서 참조하였다. 7) Hahm, P., 1983, “The Traditional Patterns of Authoritative Symbols and the Judical Process in Korea: A Study in Legal Culture and Legal Development," Korean Jurisprudence, Politics and Culture (Seoul: Yonsei University Press) pp.174-178{김정오, 2006,『한국의 법문화』(서울: 나남출판), 36-38쪽에서 재인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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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평화를, 진실보다는 화해를, 사법적 판결보다는 중재를 선호하게 한다.

그러나 전통적 규범 공동체의 한계 또한 존재하였는데, 공동체 안에서 살고 있는 구성원들 개개인의 자율성이 상당히 제약되었다는 점, 공동체의 일원에게만 적용되 는 등 규범력이 제한적이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한 공동체 내의 규범적 틀은 그 공동체의 범위를 벗어나면 다른 공동체와의 틀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사화(私和)’라는 제도가 존재하여 분쟁 당사자 간의 협상과 화해를 장려하기도 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소송의 건수가 급증하자 지방수령 들이 사화를 장려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8)

(2) 서양의 ADR의 발전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ADR은 다양한 생활 영역에서 활용되어 왔는데, 초기 로마법 시대에 이미 중재제도가 이용되었다. ‘arbiter’라고 불린 중재인들은 분쟁 당사자의 요청으로 집정관이 지명하도록 되어 있었고, 당사자가 허락한 한도 내에 서 실정법에 따라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후 A.D.294년 로마의 디오 크레티우스 황제가 모든 분쟁이 사적 중재인이 아닌 법률가에 의해 심리되어야 한 다는 칙령을 내린 이래 민사소송제도가 발전하게 되었다.9)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는 성직자들이 갈등 당사자들 사이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조 정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에게 조정은 용서와 자비의 정신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성직자의 특성상 엄격한 종교의 교리를 우선시하였으므로 중립적인 조정자 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한편 중세 서부 유럽국가에서는 갈등의 ‘법’에 의한 해결과 ‘사랑’에 의한 해결이 각기 존재하였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법’이란 규제 중심적인 접근법, 또는 적대 적 해결과정, ‘사랑’에 의한 해결이란 협력적, 관계중심적 접근을 가리킨다. 이는 격 언과 성경 구절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법보다는 합의를, 판단보다는 사랑 을”, “사랑은 모든 것을 정복하나니 사랑에 굴복하자”, “판단받지 않으려거든 판단 8) 조윤선, 2002, 『조선후기 소송연구』(서울: 국학자료원), 277-278쪽{안성훈・오카자키 마유미, 2012, “나이 사이(內濟)제도에 대한 小考,” 『피해자학연구』 제20권1호(한국피해자학회), 239쪽에서 재인용}. 9) 로마의 중재제도에 대해서는, Hunter, W. A., 1844,『Introduction to Arbitration』(London: William Maxwell&Son), pp.35, 177, 184를 주로 참조하였다{장문철, 2000,『현대중재법의 이해』(서울: 세창출판사) 191쪽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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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 “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율법을 완성하였다” 등에서 찾아볼 수 있 다.10)

2. 현대의 갈등과 ADR의 특징 (1) 산업화에 따른 분쟁의 다변화와 ADR의 등장

입법을 통한 법원의 구제가능범위가 확대되고, 전통사회에서의 교회, 가정, 지역사 회 어른의 역할이 축소되어 그 빈틈을 사법시스템이 해결하게 됨에 따라 법원의 제 소건수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급격한 산업화, 서구화의 물결에 따라 서구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수용되고 새로운 형태의 규범적 가치관이 사회에 파급되기 시작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손해의 발생이 증가하고 전통 적 규범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이로 인한 규범상실이 생겨나게 되었다.11) 분쟁의 양 상 또한 다변화되면서 명예훼손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권리에 대한 소송 이 빈번해지고 과거에는 이웃 간 상호 용인되었던 생활의 불편함이나 침해에 대해 권리침해, 나아가 물질적 손해로 구체화하여 인식하기 시작했다. 국민의 권리의식은 나날이 신장되었고,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규범체계에 근거한 가치관이나 의식에 따른 소액소송의 급증 등은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과거처럼 손해를 감수하거나 이웃 에 양보하지 않는 성향이 높아졌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소송의 지연과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 다. 사법시스템은 ‘소송폭발(litigation explosion)’ 사태를 맞아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제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각국의 ADR 관련법의 제정, 각종 전문기구의 설립, ADR에 대한 전문적 교육과 조정인 양성 등의 현상은 이러한 사 법시스템의 비효율성을 반영한 것이다.

(2) ADR의 제도화, 법제화

동, 서양을 막론하고 별다른 이름을 붙이지 않고도 분쟁해결의 한 축으로 기능해왔 10) 중세 서부 유럽국가의 갈등 해결에 대해서는, Barsky, A. E., 2005, 『갈등해결의 기법』, 한인영・이용하 역 (서울: 센게이지러닝코리아), 153-154쪽을 주로 참조하였다. 11) 류승훈, 2009,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의 발전과 그 의미,” 『언론중재』제110호(언론중재위원회),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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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ADR은 현대에 이르러 그 의미와 기능, 절차에 대한 연구와 함께 제도화하기 시 작했다. 특히 ADR의 발상지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소송처리의 지연 과 소송비용의 부담 때문에 본격적으로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조정, 중재프 로그램이 만들어졌고, 1990년 행정분쟁해결법(Administrative Dispute Resolution Act)과 1998년 ADR법이 제정되고, 이어 2002년 통일조정법(Uniform Mediation Act)이 제정되는 등 세부적인 절차와 조정인의 자격 등이 규정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66년 독일의 민사소송법을 모델로 하여 제정하였던 중재법을 1999년 대폭 개정하였는데, 개정법은 1985년 유엔무역법위원회가 각국의 중재법의 통일화 를 위해 채택한 모델중재법을 기초로 하였다. 법원이 주재하는 사법형 ADR의 경우 에는 1990년 민사조정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한편, 사법형 외에 행정기관이 주재하거나 또는 행정기관 산하에 독립기관을 설 치하여 운영하는 행정형 ADR기구12)는 분쟁의 종류와 성격, 형태 등에 따라 수십 개로 나뉘어 운영 중인데, 각 기관의 설치근거 법률이 제각기 절차를 정하고 있어 절차의 소요기관과 결정의 효력 등이 모두 상이하다. 특히 최근 증가하고 있는 국제상사분쟁은 대부분 중재기관에 의해 해결되고 있으 며, 최근에는 자국의 중재기관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국가가 늘고 있어 상사중재 기관 또는 조정기관을 국제적인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 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13)

(3) 전문적 조정인의 양성

분쟁의 유형이 복잡, 다양해짐에 따라 각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협상기술을 갖춘 조정인의 선정이 ADR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미국의 ADR법은 각 지방법원이 ADR 절차에 따른 중재인의 이용이 가능하도록 적절한 절 차를 마련하고 중재인 선정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와 기준을 공표하도록 명시하였으 며, 이에 따라 모든 중재인이 적합한 자격을 갖추고 전문적인 ADR 관련 교육을 받 도록 하였다. 12) 우리나라의 ADR기구는 통상 사법형, 행정형, 민간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행정형 ADR이 발달하였는데, 대표적으로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금융분쟁조정위원회, 개인정보분쟁조정 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등이 있다. 한편 민간기관이나 단체가 설치, 운영하는 민간형 ADR 기구는 대한상사중 재원, 한국신문윤리위원회, 한국스포츠중재위원회, 서울지방변호사회 중재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13) 함영주, 2010, 『분쟁해결방법론』(서울: 진원사),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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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각 조정기관의 근거법률 등에서 조정인의 자격을 명시하고 있기는 하나,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갖추기 위한 조항일 뿐 조정인으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교육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조정이나 중재 등을 통한 분쟁 해결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 뿐만 아니라 갈등 조정과 협상기술 전반을 이해하고 있는 전문인 력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14)

Ⅲ. ADR의 기본 이념

ADR은 사적 자치의 원칙 아래 당사자들이 자율적, 자주적으로 분쟁을 해결하여 소 송제도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광범위한 수요에 대응하고 보다 유연하고 평화로운 결 론을 도출하기 위한 절차이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ADR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이념을 7가지로 나 누어 살펴보되,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상영 교수의 『ADR의 이념론』15)을 주로 참조하여 구분하였다.

1. 정의의 실현 미국의 대표적 ADR 비판론자인 오웬 피스(Owen M. Fiss) 예일대 교수는 ‘현행법 에 구현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소송과 달리 조정과 중재는 분쟁의 종결 및 평 화에 그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2차적 정의(Second Justice)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 았다. 즉, 적절한 타협을 정당화하는 것은 소송제도가 우리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고 유의 기능을 버리는 행위이며 대중사회의 요구에 항복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ADR은 사회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의’란 소송제도 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으며, 법원만이 ‘정의’를 판가름하는 유일한 기관이어야 할 것인가? 14) 언론중재위원회에서는 이를 위해 2013년부터 공무원, 교사, 법조인, 언론인, 기업 및 단체의 홍보․법무 담당 자, ADR에 관심 있는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조정중재 전문과정을 개설, 갈등조정 및 커뮤니케이션 기법에 관 한 각종 강의, 교육, 워크숍 등을 실시해오고 있다. 15) 김상영, 2011, “ADR의 이념론,” 『재산법연구』제27권 제3호(한국재산법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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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5대 연방대법원장인 워렌 버거(Warren Burger)는 ADR의 필요성을 역설 하면서 ‘당사자의 스트레스는 덜한 가운데 짧은 시간, 적은 비용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 그것이 곧 정의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상영 교수에 따르면, 판결에 의한 분쟁의 해결이 제3자에 의한 강요된 정의라면 ADR에 의한 분 쟁의 해결은 당사자가 스스로 그 분쟁에 있어서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자각하여 선 택한 정의이다. ADR은 사안의 개별성, 특수성이 고려된 합목적적 판단16)에 따른 정의를 실현하며, 당사자의 주관적인 정의관념에 보다 부합하는 절차이다. ADR을 통한 원만한 합의는 절차적 정의가 아닌 실질적 정의의 구현으로서, 이는 우리의 전통적 철학과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여종들의 다툼에 대해 양쪽 손을 모두 들 어주었던 황희 정승의 일화17)는 중도의 지혜, 즉 대립관계의 양쪽을 조정하여 화합 을 추구하고, 화합이야말로 ‘옳은 것’이라고 여겼던 전통사회의 이념을 여실히 드러 낸다. ADR은 법원의 일도양단적 판결보다 일반인의 법 상식과 자연스러운 정의관 념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2. 자율성의 보장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소송 절차에서는 당사자가 소송을 통해 도출된 결론에 대 해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한 번에 끝나지 않고 최종심까지 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18) 그러나 이와 반대로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분 쟁을 해결함에 있어 당사자의 주체성과 자기결정권, 절차선택권을 보장하여 주도적으 로 절차에 임하도록 하여 근대사법의 기본적 원리인 ‘사적자치’를 보장하는 것이 ADR의 특징이다. 특히 절차의 이용 여부에 대한 자유와 더불어 결과의 수용 여부에 대한 자율성이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되었다는 만족감은 이후 합의결과의 이행에 있어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3. 덕화(德化) 16) 류승훈(2009), 20쪽. 17) 어느날 황희 정승의 여종이 다른 여종과 다툰 후 정승에게 와서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정승은 “네말이 옳다” 하였다. 잠시 후 다른 여종이 와서 아까의 이야기는 사실과 달라 억울하다며 읍소하였다. 정승은 “네말 또한 옳다”고 답변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정승의 부인이 기가 막혀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면 대체 누구의 말 이 옳다는 것입니까?” 하자, 정승은 “당신 말이 옳소” 하였다. 18) 이상돈・양천수, 2010, “현행 분쟁해결제도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언론중재』제114호(언론중재위원회), 11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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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는 공맹학(孔孟學)의 중심이 되는 사상으로서, 내성의 덕을 갖추고 그 감화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바람직한 사회의 형성을 도모하며, 피통치자의 동의와 자발성을 배제하고 강제성을 띠는 모든 형태의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 특 징이다. 공자는 ‘위정자는 백성을 법규와 형벌로 다스리기 전에 스스로가 바르게 섬 으로써 감화시켜야 한다’고 제창한 바 있다. 재판이 법률에 따른 일방적인 판결이라 는 측면에서 법치주의의 실현이라면 ADR은 조정자의 덕에 감화된 당사자가 스스로 합의안을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고차원의 덕치주의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다.

4. 공평무사(公平無私) 전통적 중재자는 사회적 위치나 권위, 대표성 때문에 선택되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조정인을 선정하거나 선발하는 중요한 요인이 바로 중립성이다. 누구에게도 치우치 지 않고 본인의 양심과 법의식에 따라 판단할 것임을 신뢰하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제3자임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해결을 맡기는 것이고, 이는 ADR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ADR에서의 조정인은 자신이 중립을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로 하여금 조정자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기계적 중립보다 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중립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필요하며, 특히 양 당사자 간 의 힘의 불균형이 심할 때에는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중립’이 필요하다. 조정인이 공정성을 기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항상 염두에 두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정인에게 는 선입견, 의사결정 권한이나 결과에 따른 이해관계가 없어야 한다. 특히 절차상의 공정성이 문제가 될 경우 그 결과의 신뢰성이 떨어지게 되며, 현재의 갈등이 해결 되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불공정을 이유로 한 새로운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5. 신속(迅速) 연구결과에 따르면 좋은 갈등해결시스템은 필수적으로 ‘적대적 대치상태가 신속하게 안정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19) 19) Ury, W., J. Brett and S. Goldberg, 1988, Getting Disputes Resolved: Designing Systems to Cut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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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신속한 종결 역시 ADR의 지향점 중 하나이다. 갈등구조가 오래 지속될수 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당사자들은 쉽사리 결론에 승복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 ADR이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소송의 지연을 해결하고 나아가 사법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국민의 사법 액세스의 확충을 꾀하기 위함이었다는 점에서 보듯, 신속하지 않은 ADR 절차는 국민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

6. 미래지향 소송에서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의 인정이 필수적이다. 반면, ADR 절차에서는 분쟁 당사자가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게 될 것인지, 어떤 이익을 얻게 될 것인지에 초점 을 맞추어야 한다. ADR은 인간 본연의 선(善)에 가치를 두고, 분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을 중요시하는 절차이다. 그러나 현재의 갈등을 이해하고 미래 관계에 대한 신뢰 형성을 위해 적정한 선에서 과거를 규명하고 청산할 필요는 있다. 특히 신뢰의 전제조건으로서 양 당사자가 서로 과실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ADR은 평화를 회복하고 미래의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7. 동등한 협상력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보다 많은 정보나 협상 기술, 자원 협상력을 가지고 있을 때 힘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이러한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완고하게 자신의 입장 을 고집하면 이를 이겨낼 만한 시간과 비용이 부족한 상대방이 할 수 없이 강제로 양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불리한 조건을 가진 쪽에 정보와 협 상력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 또는 유리한 쪽의 힘이나 자원에 맞설 수 있는 사람 으로부터의 지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20) 조정인은 단순히 당 사자 간 협상을 촉진시키는 역할 뿐 아니라 이러한 힘의 불균형을 최소화하는 역할 을 수행해야 한다.

Costs of Conflicts (CA: Jossey-Bass){임동진, 2012,『대안적 갈등해결방식에 대한 이론적 논의』(서울: 한 국행정연구원), 21쪽에서 재인용}. 20) Barsky, A. E.(2005),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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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맺음말

이상에서 ADR의 의미와 전통적 관점과 현대에 이르러 변화된 특징, 기본 이념에 대해 살펴보았다. ADR은 소송지연, 비용증가 등의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생겨난 제도이지만 그 자체로서 다양한 이념적 가치를 지니며, 분쟁해결의 주요한 시스템 으로서 독자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재판절차를 보완한다 는 의미를 넘어 사회의 다양하고도 복잡한 분쟁에 대한 해결메커니즘의 한 대안으 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21) 유연하고 평화로운 분쟁의 해결방안인 ADR이 활성화된다면 소송절차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효율적인 분쟁해결의 체계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 상호신뢰 및 건전한 사회질서의 확립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1) 김철, 2003, "대체적 분쟁해결의 신제도론적 분석 : 사회학적 신제도주의를 중심으로," 한국행정학회 2003년 하계학술대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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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는 월차보고서 발간의 그간 성과를 재점검하고 잠시의 숨고르기를 위해 지난 6월호를 휴간하였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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