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천의 소책자 2호) 오늘 하루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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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배우러 온 당신에게 2

이현주 목사와 정목 스님이 환우들과 나눈 치유의 대화

‘오늘 하루’라는 선물 매일 먹는 밥, 매일 만나는 가족, 늘 바라보던 풍경도 오늘뿐이라고 생각하면 달리 보입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기세요. 오늘은 오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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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라는 선물 2013년 1월 5일 초판 1쇄 발행. 백천문화재단에서 발행했습니다. 이현주 목사와 정목 스 님이 환우들과 함께 짓고, 도서출판 샨티가 기획 및 디자인, 제작 등을 총괄 진행하였습 니다. 본문 및 표지 그림은 박만희가 그렸습니다. 필름 출력은 한국커뮤니케이션, 인쇄는 영프린팅, 제본은 쌍용제책에서 각각 하였습니다. 이 책에 대한 저작권은 백천문화재단(T.031-426-0337)과 도서출판 샨티(T. 02-3143-6360)에 있으므 로 원고 재사용 등에 관해서는 반드시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 책자를 여러 환우분들과 나누고 싶은 병원 및 단체는 백천문화재단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 이 책은 비매품이며, 백천문화재단의 재원과 여러분들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져 배포됩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271201-04-152090(예금주: 백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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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목사와 정목 스님이 환우들과 나눈 치유의 대화

‘오늘 하루’라는 선물

백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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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간사

‘사랑을 배우러 온 당신에게’시리즈 두 번째 책을 발간하면서

저희 백천문화재단에서는 2012년 여름, ‘사랑을 배우 러 온 당신에게’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나는 날마다 나 아지고 있다》 를 출간, 무료 배포해 왔습니다. 이 책에는 먼저 아파본 사람들, 그리고 아픈 이들과 오랜 시간 함 께 지내온 사람들이 병을 통해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 병으로 인해 잃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져다준 선 물이 있다는 걸 체험한 이야기 등 지금 몸이 아파 고통 스러워하는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 아홉 편이 실려 있습니다. 현재 이 책은 병원에 계신 환우 및 개인 들에게 무료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아픈 지인을 만나러 병원에 갔다가 도서비치대에서 우연히 이 책을 읽고 병에 대한 생각과 삶을 바라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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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가 바뀌게 되었다는 사연, 암 치료로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상황에서 힘을 얻게 되었다는 사연, 아내는 루 프스 병에 걸리고 자신과 아이는 갑상선 치료로 힘들어 하던 중 책을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아빠의 사연, 29세 나이에 뇌수막염으로 두 번 수술한 언니가 병원에서 이 책을 읽고 좋아서 다시 책을 신청했다는 사연 등 힘을 얻고 위안을 얻었다는 분들의 사연을 책을 배포하며 만 났습니다. 불현듯 찾아온 병, 그로 인한 고통과 외로움은 누구에 게나 힘든 상황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치유해 가느냐에 따라 아 픈 당사자나 가족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다를 수 있습 니다. 또한 몸은 아프지만 마음의 평화까지 빼앗기지 않 을 수는 있지요. 저희 책을 신청해 주시고 또 이렇게 사 연을 보내주시는 것을 보면서, 비록 몸에는 병이 왔을지 라도 오히려 마음은 더 깊어지고 치유될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처 그것을 깨달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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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의 작은 바람은 그렇게 치유될 준비가 되어 있는 많은 분들의 마음에 다가가 스스로 치유의 길로 온전히 들어서는 데 이 시리즈의 책들이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 면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이 책들을 통해 그동안 병으 로 인해 힘들어지고 소원해진 관계가 회복되고, 궁극적 으로는 병이 치유되면서 삶의 행복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일 것입니다. 이번에 출간하게 된 ‘사랑을 배우러 온 당신에게’ 시리 즈 두 번째 책인《‘오늘 하루’라는 선물》또한 여러분에게 따뜻한 치유의 손길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자들을 읽고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사랑을 배우러 온 당신에게’ 시리즈 책 출간에 전액 사 용되고 있음을 밝힙니다. 앞으로도 이 책들을 읽고 이어 질 여러분의 치유 이야기와 후원금은 또 다른 환우들의 마음 치유를 위해 쓰일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1월 백천문화재단 이사장 조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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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는 글

서로의 아픔에 따스한 볕과 바람이 되어준 자리

“바람도 없는데 괜히/ 나뭇잎이 저리 흔들리는 것은// 지구 끝에서 누군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기 때문.” 최종진 시인의 ‘사랑’이라는 시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 랑으로 연결되어 공명하고 있음을 노래한 거겠지요? 지 구 끝에서 누군가 울어도 이곳의 나무가 흔들린다는데, 하물며 내 곁에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아파하며 울고 있 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어떠할까요? 아픈 가족을 지 켜보는 일도, 또 아픈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가족을 바라보는 일도 때론 우리를 통째로 흔들리게 합니다. 그 러나 그렇게 함께 흔들리고 공명하는 사람이 없다면 우 리의 아픔은 배가 되겠지요? 지난 2012년 6월 15일, 이현주 목사와 정목 스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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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을 모시고 환우들과 그의 가족들이 모여 몸과 마음의 병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병으로 인해 혹은 장애로 인해 느끼는 육체적·심리적 고통, 또 가족으로 서 느끼는 슬픔과 걱정, 경제적인 어려움, 그로 인한 관 계의 어려움 등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참여한 이들 모두가 아픈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의 상 처와 아픔을 마음 놓고 드러내며 마음 놓고 흔들릴 수 있 는 자리였습니다. 그만큼 진솔한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 지요. 울면서, 또 웃어가면서 마음속에 꽁꽁 묻어두었던 슬픔과 상처를 드러내고, 그래서 그 슬픔과 상처에 밝은 볕도 쬐어주고, 바람도 쐬어주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이현주 목사와 정목 스님은 끊임없이 “괜찮다”고, “당 신 잘하고 있다”고, “자신을 사랑하라”고 “자신과 접촉하 라”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왔 을까가 아니라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묻자”고, “이 일을 통해 우주가 나에게 주려고 하는 진짜 선물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고 말하며, 때론 따뜻한 어루만짐 과 위로를, 때론 단호한 목소리로 힘 있게 설 수 있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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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를 나눠주었습니다. ‘사랑을 배우러 온 당신에게’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오늘 하루’라는 선물》 은 이렇게 하여 탄생했습니다. 편 안함과 따듯함 속에서 솔직하고 자유롭게 펼쳐진 대화 를 읽어가다 보면, 비록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분들 이라도 여기에 참여했던 환우들이 느끼고 경험한 감동 과 깨달음, 치유를 맛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백천문화재단과 샨티출판사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 모임에 참여해 주신 두 분 성직자와 일곱 가족 여러분께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아울러 이 책자에 실린 환우 이름은 모두 가명 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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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발간사 :‘사랑을 배우러 온 당신에게’시리즈 두 번째 책을 발간하면서 | 4 여는글 : 서 로의 아픔에 따스한 볕과 바람이 되어준 자리 | 7

● 이현주 목사와 정목 스님의 인사 | 12

● 차소현 씨와의 대화 | 20

“아기는 많이 건강해졌는데 제가 엄마 노릇에 지친 것 같아요”

● 남은숙 씨와의 대화 | 42

“안면마비가 온 뒤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 오성한 씨 부부와의 대화 | 60

“왜 제 남편에게 뇌종양이 생겼는지…… 인생의 계획이 다 틀어진 것 같아요”


● 김희정 씨와의 대화 | 78

“제가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김한일 씨 부부와의 대화 | 88

“아픈 아이를 돌보다 보니 마음도, 가정 경제도 다 흔들립니다”

● 김진 씨 부부와의 대화 | 110

“숨 쉬는 매순간이 고통스럽습니다”

● 이은정 씨와의 대화 | 134

“방탕하게 살았어요. 쓸모없는 인생 같아서……”

정목 스님과 함께한 자기 사랑 명상 | 150 이현주 목사가 아픈 아내와 함께하며 쓴 기도 일기 몇 편 | 155


이현주 목사와 정목 스님의 인사

여러분,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현주라고 합니다. 목사라는 이름표가 잘못된 건 아닙니다만, 오늘은 목사 라는 타이틀을 떼고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주 셨으면 합니다. 여러분, 많이 힘드시죠? 제 아내가 작년 9월에 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아내가 떠나기 전 우리 부부는 자주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함께 살다가 둘이 동시에 가는 경우는 드무니까, 한 사람이 먼저 가고 다 른 한 사람이 나중에 가게 된다면 누가 먼저 가고 누가 나중에 갈까?” 그런데 제 아내가 생각해 보니 자기가 혼자되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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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제가 혼자되었을 때가 더 불쌍하더래요. 그래서 저 보고 먼저 가라고, 자기가 수습하고 나중에 오겠다고 하 더군요. 제가 듣기에도 괜찮더라고요. 그게 더 낫겠다 싶어서 그렇게 하자고 했지요.(일동 웃음) 저희는 둘 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니까…… 이렇게 기도했어요. “어 차피 둘 중에 하나가 먼저 가야 된다면 저를 먼저 불러 주시고, 제 아내는 나중에 불러주십시오.” 진심으로 그 렇게 기도했어요. 그러나 깨끗하게 거절당했죠. 제 아내가 먼저 갔습니 다. 그 사람이 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는 왜 저보다 제 아내를 먼저 데려가셨는지 이해가 안 됐어 요.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시는 거야 제가 불만할 게 못 되 지요. 기도는 내 몫이지만 응답은 내 몫이 아니잖아요? 그래도 왜 아내가 저보다 먼저 가야 했는지 그게 이해가 안 되고 해석이 안 돼서 조금 힘들었어요. 이제 한 8개월쯤 지났는데, 반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조 금씩 정리가 되더군요. 뭐냐 하면, 그 사람이 저에게 마 지막으로 엄청난 선물을 전해주고 갔구나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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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는 거예요. 아직 선물 꾸러미 안에 있는 내용을 전부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가 먼저 가지 않았으면 저 에게 전달될 수 없는 선물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제 아내는 많이 아팠어요. 말기암 환자가 겪는 통증 이 얼마나 심한지 다 아시잖아요? 밤에 지독하게 아플 때면 저더러 자기를 좀 아프게 해달라는 거예요. 지금 아픈 것보다 더 아프게…… 지금 이 통증을 잊을 수 있 게…… 그러나 그걸 어떻게 합니까? 자기 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겠다는 겁니다. 저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내가 그렇게 할 수만 있고, 그 렇게 해도 된다면, 나도 당신을 아파트에서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어요. 그 아픔과 고통이 멈출 수만 있다면 말 입니다. 제 아내는 환자니까 통증을 견디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었겠지만 저도 참 힘들더군요. 어떻게든 저 고통을 덜 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한테 기도했지요. 저 사람의 통증을 절반만 덜어서 저한테 달 라고요. 하지만 그 기도도 거절당했어요. 그렇게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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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아픈 사람을 지켜봐야 하는 고 통도 만만치 않더군요. 그런 아픔을 경험하면서, 세상의 모든 아픈 사람들에 게, 왜 아프냐고, 왜 그렇게 아파하는 거냐고 묻지 않기 로 결심했어요. 아픈 건 아픈 겁니다. 왜 아프냐고 따질 것 없이 아픈 거예요. 그 사람이 아프지 않게 해줄 무슨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써보는 거고 아니면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겁니다. 그게 다예요. 제발 성한 사람들이 아 픈 사람 앞에서 자기 얘기를 길게 늘어놓지 않았으면 좋 겠어요. 이런 마음으로 살다보니까 오늘 이런 인연으로 스님 과 여러분을 만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여 기서 무슨 얘기가 오고가고,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모릅 니다. 저도 아무런 프로그램 없이 여기에 왔어요. 아마 스님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님이나 저나 (사 회자를 바라보면서) 어떤 한 사람 생각에 놀아나는 것 같

습니다.(일동 웃음) 그가 누군지는 모르지만(웃음) 아마도 그 사람이 세상의 아픈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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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읽을거리를 제공하면 좋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겠 지요. 그 생각이 새끼를 쳐서 오늘 여기까지 오게 된 거 겠지요. 생각의 힘이라는 게 참 대단하죠? 한 사람의 생각이 역사를 만들고 사건을 만듭니다. 어쨌든 처음 누군가에 게 찾아온 한 생각이 저와 여러분을 오늘 이 자리에 이 런 모양으로 있게 한 거예요. 이 특별한 인연을 소중하 게 생각하고 이 시간 우리 모두 잘 보낼 수 있으면 좋겠 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방금 이현주 목사님께서 되 는 대로, 흐름에 맡기며 진행하자고 말씀하셨는데요, 저 도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사실 오늘 제가 이 공간, 이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했습니다. 이 만남의 자리는 백천문화재단과 샨티출판사에서 만들었지만 어 느 장소로 모실지 장소를 물색할 때 어떤 분들이 오실지 는 모르나 편안하게 계실 수 있는 곳, 도시의 병원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은 곳, 서울에서 가깝지만 깊은 숲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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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어 이곳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이곳은 많은 분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마음 공부의 길 을 안내하고 있는 유나방송입니다. 저도 이곳에서 방송 을 하며 기여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마음의 평 화를 얻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오프라인 강좌도 하는데, 그때 사용하는 공간으로 ‘담마홀’이라는 곳입니다. 사실 이 장소는 일반인에게 열려 있는 곳은 아니지만 오늘은 왠지 여러분을 이곳에서 뵙고 싶었어요. 이현주 목사님은 오늘 처음 뵈었습니다. 늘 책을 통해 서만 접했지요. 목사님의 글 속에는 절집 안의 분위기가 한껏 녹아 있는 것을 종종 느꼈습니다. 그런 친근함 때 문인지 저도 흔쾌히 목사님과 함께하는 이 자리에 참여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더러 여행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요? 여행은 지금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곳으로부 터 나를 다른 곳으로 슬쩍 데려갑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이 공간으로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고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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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와서 보니 내가 굉장히 축복받은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도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고 해서 긴장하거나 눈치 볼 것 없이 편하게 이 순간을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 역시 여러분에게 가르칠 것도 없고, 제가 여 러분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목사님 말씀 중에 제가 공감하는 것 한 가지는 그냥 똑같은 사 람으로서 서로의 아픔을 만났을 때 “그게 왜 아파?” 하 고 묻는 것이 아니라 “그래, 아프구나” 하며 함께 다독거 려주는 그런 자리였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 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5년간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법사로 있었습니다. 환자들의 생과 사를, 다시 말해서 그들의 생로병사를 늘 곁에서 보고 지냈지 요. 돌아보면 스물여섯 살부터 서른 살까지, 출가자로서 제 인생에서 가장 혈기왕성한 시기를 병원에서 환자들 과 같이 살았습니다. 어쩌면 그분들 곁에서 제가 수행을 한 거죠. 그분들을 통해 제 삶과 제 자신이 성장하고 깨 달음을 얻어나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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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쉰을 넘으면서 이젠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 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오늘 이 자리도 그런 마 음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편안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질문이 있다면 마음껏 하시고요. 질문이 거 창할 필요는 없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음을 나눠주시 면 좋겠어요. 여기에는 정답도, 해답도 없습니다. 저도 목사님도 무슨 대답이 나올지 예측하지 못해요. 오직 오 늘 이 순간, 넓은 망망대해에서 같이 파도치면서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환영하고요, 와주셔 서 감사합니다. 그럼, 오신 분들과 한 분 한 분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 눠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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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소현 씨와의 대화

“아기는 많이 건강해졌는데 제가 엄마 노릇에 지친 것 같아요”

“괜찮아요, 괜찮아,

지금 잘하고 있어요”


차소현_ 저는 30대 중반의 엄마입니다. 임신 6개월 때

아이에게 심장병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첫 수술을, 5개월 만에 두 번째 수술 을 받았습니다. 좀 어려운 심장병이어서, 1차 수술 후에 산소 호흡기를 달고 지냈고, 병원 입원을 반 복하면서 살았어요. 아이 상태가 나아지고 입원 횟수도 줄어들다가 어느 날, 열감기로 병원 응급실을 가게 되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의식을 잃었어요. 여러 번 심 장이 멈추었고 오랜 사투 끝에 겨우 심박동이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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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습니다. 저산소증으로 인해 뇌출혈과 장기 손 상이 왔고요. 생명이 얼마나 유지될지, 생명은 유 지하더라도 의식이 돌아올지, 의식이 돌아와도 장 애는 없을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 니다. 사흘이 지나 아이가 가늘게 눈을 떴지만 눈 동자는 초점을 잃은 채 허공만 바라봤습니다. 아이가 조금 성장은 했지만 모든 것이 그때 거의 제로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경기가 일어날 때 먹는 약 외에도 여러 가지 약을 계속 먹고 있어요. 아직 발달이 되지 않아서 재활 치료도 계속 받고 있는데요. 어떤 특별한 장애가 있을 거라고 확정을 받은 것은 없지만 언어가 많이 늦습니다. 올해 말에 수술이 한 번 더 남아 있어요. 수술이 라는 게 항상 위험성이 있으니까 수술이 잘될지, 수술로 인한 부작용 같은 건 없을지 사실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겪었던 일의 심각성 에 비하면 지금 상태는 꽤 좋아요. 그런데 문제는 제가 너무 힘이 든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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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정도의 위험한 상황 이었을 때는 오히려 굉장히 의연한 마음으로, 제 가 겪어야 될 일이니까 겪나보다 하며, 다시 신神 도 만나게 되고, 저한테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서 ‘엄마 되기’를 선택했는데, 그러는 동안 제 내면 은 많이 힘들었나 봐요. 요즘 와서 애가 훨씬 건강 해지고 잘 지내고 있는데도, 애 키우는 게 싫고 힘 들다는 느낌이 들어 도망가고 싶어요. 아이를 수용하고 사랑하는 제 마음의 에너지가 아이의 마음과 건강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는 느낌 이 드는데, 그래서 힘들고 귀찮고 아이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더 죄책감이 듭니다. 다 른 애들보다 면역력도 약해서 감기 한 번 걸려도 입원을 해야 하니까 늘 긴장하고 신경 쓸 수밖에 없고요. 그런 생활을 3년 가까이 하다 보니 긴장감 과 피로로 많이 힘이 듭니다. 정목_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으신 거예요? 차소현_ 네. 애랑 애 아빠랑 두고 혼자 나가서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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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자유롭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애한테 너무 미안하죠.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도 한편으로는 내가 꾸리고 있는 이 가정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가정이 돌아가는 것도 제 바람과 반대고, 남편은 남편대로 힘들어하고 있고요. 제가 결혼이나 가정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게 많았 는데, 아픈 아이 키우면서 남편한테 실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모든 소망이 다 어렵게 느껴져요. 좋 은 엄마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사 는 것도 싫어요. 이게 현재 가장 힘든 점입니다. 제가 상담 심리 공부를 시작했는데 요즘은 그 공 부 하러도 다니고 스윙 댄스도 배우면서 좀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렇게 해서 제가 조금 에너지가 올라왔을 때 애를 만나면 아이 도 제 상태에 맞게 반응을 하더라고요. 제가 좋은 마음으로 가서 놀아주고 사랑해 주면 아이도 정말 편안하고 좋은데, 제가 너무 지쳐서 의무감과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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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으로 ‘혹시 아이가 또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하 는 불안한 마음 상태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가 그 기운을 그대로 받아서인지 힘들어하더라고요. 제 상태를 아이가 그대로 느끼고 있는 게 바로바로 보 여요. 하루 좋았다, 하루 힘들었다 하는 이 생활이 과연 언제 끝이 날지…… 정목_ 예전에 비해서 아이가 훨씬 건강하고 좋아졌는

데, 오히려 지금은 엄마의 마음이 힘들다는 거지 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는 거고요. 그런데 그게 갈등을 가질 만큼 어려움이 있나요? 자기 시 간을 가지는 데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나요? 차소현_ 누군가가 아이를 봐줘야 하니까요. 도움을 받

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고. 많은 이에게 요청해서 제 시간을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지만 그러 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아요. 또 마음 한 구석에 ‘애 아빠랑 헤어져야 하나?’라는 생각을 담고 있으 니까, 답은 쉽게 안 나오면서 마음만 불편하네요. 정목_ 혹시 그 불편한 마음의 방향을 알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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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방향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경제적인 것? 아 이나 가족에게 묶여 있어서 답답한 마음? 엄마라 는 이름? 내 시간이 없어서? 불편한 감정의 중심에 어떤 생각이 있는지요? 그냥 죄책감인가요? 차소현_ 일단은 많은 것을 제가 책임지고 해야 되는 것,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이 긴장되고 부담되는 일이라서 많이 힘들고요. 그 리고 또 저는 사랑받고 또 사랑하고 싶은데, 지금 남편과는 그게 안 돼서 그것도 제게는 힘든 주제입 니다. 정말 이 사람과는 여기서 끝내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고요. 정목_ 아이를 간병할 때 남편의 도움을 못 받으시나요? 차소현_ 그렇지는 않고요. 도움을 받긴 하는데, 워낙 외

부 활동이 많은 사람이고 바빠요. 같이 있는 시간 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남편이 도와준다고는 해 도 제가 정말 힘들 때 옆에 있어줬으면 싶은데 거 의 언제나 늦게 들어오거든요. 게다가 겨우 애를 재웠는데 늦게 술 먹고 들어와서는 애를 깨워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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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자버린다거나, 아이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갔 는데 거기에 술을 먹고 와서 간호사에게 시비를 걸 려고 한다거나, 그런 것들을 보면서 실망을 많이 하게 됐어요. 파트너라 생각했는데 가정에는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냥 숙소를 공유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를 사랑하고 나름 저를 도와주려고는 하 지만 마치 마음씨 좋은 손님으로 와서 제가 ‘도와 주세요’ 하면 그때 ‘아, 네, 도와드릴게요’ 하는 정 도랄까요? 이 집에서 같이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 이 아니고 그냥 손님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목_ 남편이 가족에게 좀 더 협조를 해주고, 이 모든

것을 반반씩 나누고 협력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지 금보다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차소현_ 남편이 가정이라는 것에 진짜 관심을 가졌으

면 좋겠어요. 외부에서 좋은 일 하는 것에만 그렇 게 관심두지 말고, 가정을 생각하면서 ‘아, 이런 것 도 해보고 싶다. 저런 것도 해보고 싶다’ 하는 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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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정에 대해서는 의무감과 책 임감과 두려움만 있지, 신이 나서 ‘내가 뭘 해보고 싶다’ 하는 게 없어 보여요. 저를 나름대로 사랑하 고는 있지만 미안해하면서 사랑하고, 가정에 대해 서 굉장히 두려움이 많은 사람 같아요. 정목_ 마음이 좀 통했으면 하는 거지요?

목사님, 지금 소현 씨 고민 들어보셨잖아요? 정 말 엄마 노릇을 잘하고 싶은데, 좋은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 또 다가 올 미래가 불안한 것 같습니다. 나대로 좀 잘 살아 보고 싶은데 아이와 가족이 마음에 걸리면서 죄책 감도 드는 것 같고요. 계속 긴장감과 피로감이 누적 된 상태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마저 들면서 위기에 와 있고 요. 목사님께서 해주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지요? 이현주_ 지금 내 어깨로 쌀을 두세 말쯤 멜 수 있는데

다섯 말을 어깨에 얹으면 힘이 안 들 수 없지요. 힘 들면 쓰러지기도 하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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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운 것을 다른 사람이 내 어깨에 얹어놓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자기가 자기한테 짐을 지우는 경우 가 많아요. 자기가 얼마만큼 질 수 있는지를 잘 몰 라서 너무 무거운 짐을 스스로에게 지울 때가 있거 든요. 사람이 다들 그렇다고요. 아마 남편분도 그럴 수밖에 없는 무슨 이유가 있 을 거예요. 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 데에 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저도 제 아내를 지켜보며 많이 괴로웠어요. 아까 말한 대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데 방법은 없 고, 그래서 힘들어한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거 뭐 내가 힘들어해 봤자 나만 괴롭지 되는 건 아 무것도 없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한테 정직하게, ‘나는 여기까지야. 여기까지밖에 힘이 없어’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더군요. 자신한테뿐 아 니라 남들한테도 정직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어요. 우선 자기를 좀 사랑하고 아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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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살다가 갈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100퍼센트로 자기 수명 을 다 살다가 간다고 생각해요. 제 명에 죽지 못했 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고, 몇 해를 살다가 가든 지 간에 자기 삶을 100퍼센트 다 살다가 가는 거예 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 집 아이도 자기 인생을 충실하게 살고 있는 거라고 봐요. 아무리 엄마지만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 있거든요. 그 점을 솔직하 게 인정하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정목_ 맞아요. 자기 삶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아이의

삶을 엄마가 대신할 수 없다는 목사님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 소현 씨는 아이가 아플 때 다른 것은 돌아볼 정신도 없이 모든 힘을 아이에게 쏟았잖아 요. 그러다 이제 아이의 상태가 조금 호전되고 나 니까 주변을 좀 돌아볼 수 있게 된 거고요. 그렇게 주변을 보다보니까 갑자기 내 삶이 공허하고, 나라 는 존재가 사라진 것 같고, 내 시간을 빼앗긴 것 같 고, 그런 마음이 자기한테 생겼을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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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엄마 노릇을 계속 해야 하는가 고민한다고 했잖아요? 불가에서는 관세음보살, 자비의 어머니 모습을 얘기합니다. 사람들이 모성에 대해 말할 때 는 사랑이다, 보살핌이다, 이렇게 말들 하는데, 저 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어머니의 성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심을 갖는 거죠. 귀를 기울인 다는 것은 엄청난 기다림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데, 귀를 기울이다 보면 아이가 아파하는 심장의 고통 이 엄마에게 전해집니다.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필 요로 한다는 것도 전해질 테고요. 그러다 보면 그 아 이의 피로감과 슬픔과 고통을 엄마가 느끼게 되죠. 그런데 그렇게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 에 때론 이런 생각도 들게 됩니다. ‘이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내 아이에게, 또 이 많은 사람 중에 왜 내가 이 고통을 겪어야 하나?’ 사실 우리가 ‘왜’ 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살다보면 ‘왜’라고 하는 것 에는 답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왜’라고 하는 것은 우주에게 하는 질문인데, 우주는 거기에 대한 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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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않더라고요.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왔어? 왜 내 시간을 다 빼 앗겨가면서 엄마 노릇을 해야 돼? 내가 왜 모든 걸 희생해야 되지?” 이렇게 모든 것을 ‘왜’라는 것으로 귀결시키면 공격적이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세상 모든 것들이 내 것을 빼앗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요.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내 가까이에 있는 존재들이 나를 해치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나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기 위해 여 기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제가 37년 가까이 아픔을 지닌 분들을 상담하고 그분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면서 지내는 동안 저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건 소아 환자들이었어요. 어 린이 병동 중에서도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로 옮 겨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중환자실에 있으면 면회 시간 외에는 부모도 들어갈 수가 없어요. 중환자실 밖에 서서 부모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기도뿐이지요. 그때 당시 성당을 다니던 부부가 있었어요.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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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동 지하에 법당과 성당과 교회가 있는데, 마침 성당에 수녀님이 안 계셔서 제가 있는 법당을 찾아 왔어요. “제 첫아이가 지금 아파서 중환자실에 누 워 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중환자실에 가서 기도 좀 해주십시오. 스님은 들어가실 수 있지 않 습니까?”라고 청을 하더군요. 그때 당시 서른한 살밖에 되지 않은 그 아버지의 청이 너무나 간절했어요. 제가 병원 원장님께 부탁 해서 초록색 가운을 입고 중환자실로 갔습니다. 아 이가 누워 있는 침대에 가보니 손바닥만한 아이가 누워 있고, 바늘 하나 꽂을 데도 없을 것처럼 작은 아이의 몸에는 예닐곱 개의 주사 바늘이 꽂혀 있더 라고요. 살이 야들야들해서 마치 터질 것 같은 핏 줄에 바늘을 꽂아놓은 걸 보니 제 몸이 오그라드는 거예요.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제가 그 아이 앞 에 서 있는데 아이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더군 요. 제 손이 그 아이 몸에 닿으면 애가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아서, 손을 대는 것도 피해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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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아 내 손에 아이의 손가락을 살포시 걸쳤어요. 그러고는 제가 기도를 했지요. “네 부모가 지금 여기에 들어오지 못하고 저기 문 밖에서 오직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엄마 아빠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는 알 거다.” 그렇게 제가 엄마 아빠 대신 사랑의 마음을 전하 면서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아이 가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저와의 인연으 로 불교에 귀의하면서 아이의 천도제를 해달라고 해서 인연이 됐지요. 지금 그들 부부는 다시 아들 둘을 낳고 지리산으로 내려가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스물여섯, 피 끓는 청춘이었는데, 그 렇게 생로병사의 현장에 있다 보니까 마음의 고통 이 심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고통은 정말 힘 들더라고요. 하루에 40~50명 가까운 환자들의 요 청으로 병실마다 다니면서 기도를 했어요. 새벽에 수술실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새벽에 기도를 해달라고 하고……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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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으로도 지쳐갔어요. 밤 11시까지 일을 하고 들어왔는데, 12시에 내일 수술 들어가니까 와서 기 도 좀 해주십사 하는 전화를 받으면, 너무 지쳐서 정말 못 갈 것 같은 거예요. 제가 갈등을 하다가 전 화 코드를 빼둔 적도 있어요. 빨래할 시간도 없는 거예요. 누가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그때 저는 장작불을 때는 곳에서 지내고 있었거든요. 그 밤에 개울에서 빨래하고 장 작 떼고 했어요. 결국 두어 번 코드를 빼놓은 적이 있는데, 사실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질 않아요. 그분 들이 나를 기다릴 걸 생각하면…… 그럼 다시 두루 마기 입고 병원에 갑니다. 그때 제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시간에 함께하자. 그것이 낮이면 어 떻고, 밤이면 어떻고, 새벽이면 어떠랴.’ 낮과 밤을 구분하면 내가 편한 시간밖에는 못 가잖아요. 그 사람이 나를 원하는 시간은 새벽인데 말예요. 그 래서 아무 때나 잘 수 있을 때 자고, 부르는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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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그렇게 몇 년을 했지요. 그런 생활 속에서도 아픈 애기들의 모습은 저에게는 뼈를 쑤시고 들어 오는 고통이었습니다. 괴로울 때면 서울역으로 가서 목적도 없이 기차 를 타고 부산까지 갔어요. 누가 오라는 사람도 없 는데, 그렇게 달려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정신을 가 눌 수가 없을 것만 같았어요. 갓 태어난 아기가 도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 너무 힘들어 종교적인 회의마저 들기 도 했고, 그러면서 여러 교리들을 실전에서, 현실 에서 탐사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소현 씨, 저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누군 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됨으로써 우리의 인격을 완성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그 길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저처럼 수행자가 되어서 모든 사람의 고 통을 통과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 길이 아니고서 는 우리의 삶이 완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하려고 하면 오히려 엉키는 것 같아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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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순간을 피해서 저리로 갔는데, 모퉁이를 돌면 저 끝에서 이 고통이 또 기다리고 있어요. 여 기서 내가 해결하지 않으면 길목의 끝자락에 그 일 이 또 서 있단 말이죠. 내가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 는 과제인데, 그걸 못 본 척하면 결국 다시 돌아오 기 때문이에요. 지금 이 순간의 아픔이 잠시 유보 될 뿐이지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아마 소현 씨도 머리로는 다 아실 거예요. 저는 소현 씨가 고통을 피하는 것보다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그 고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용 기를 가졌으면 해요. 내가 용기를 가지면 뜻밖에 가족 전체가 바뀔 수 있거든요. 아이와 남편이 해 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걸 해결해야 해 요. 두려워하면 할수록 몸은 더 긴장하게 되고, 마 음은 더 위축되잖아요.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죄책감 없이 했으면 좋겠어요. 죄책감이라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반복하는 거 거든요. 쓸데없는 생각으로 두고두고 자신을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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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죄책감이에요. “너는 엄마 노릇 하나 제 대로 못하면서, 애도 하나 제대로 못 키우는 게, 가 족도 하나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게 뭐가 힘들다 고?” 이런 식으로 계속 자기를 나무라는 목소리가 자기 안에서 들려옵니다. 그걸 버리세요. 그리고 스물네 시간 중에 두 시간만 아이 돌봐줄 사람을 찾아 부탁하세요. 하루 중에 두세 시간쯤 소현 씨 자신을 위해 쓰는 거 죄 아니에요. 오히려 그것이 모든 가족을 구원하는 길이 될 수 있어요. 아까 목사님도 그런 말씀하셨잖아요. 자신을 충분 히 사랑해 주세요. 죄책감은 결코 나를 성장시키지 못해요. 뉘우치는 것과는 달리 죄책감은 끝이 없이 계속 나를 블랙홀로 끌고 들어갑니다. 어느 순간 죄책감이 들 때 마음속으로 교통 정리 를 해보세요. 마음속에 파일 정리를 해보는 거예 요. 몇시에는 뭐하고, 몇시에는 뭐하고…… 하루 중에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겠다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충분히 그럴 자격 있고, 그거 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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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걸 남편에게도 말하고요. 본인만의 시간 을 가져야 억울함이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계속 피해 의식을 갖게 됩니다. 저는 지금 현재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 지 말라는 메시지를 소현 씨에게 전하고 싶어요. 당신의 삶을 남에게 맡기지 마세요. “나는 이런 고 통과 슬픔이 있어요. 나는 이렇게 괴로워요. 내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계 속 표현하는 것은 내 삶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 는 거예요.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지요. 내가 스스 로 책임져야겠다고 생각이 들면 고통과 슬픔에 대 한 표현도 중단됩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끓어오르 는 이야기를 남에게 반복해서 말한다고 해서 해결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잖아요? 소현 씨가 스스 로에게 “나는 다 괜찮다”라는 말을 해줬으면 좋겠 고, 자신의 삶을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용기를 가졌 으면 좋겠어요. 이현주_ 아내가 한참 아플 때, 아침에 일어나서 서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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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던 인사가 “괜찮아, 괜찮아. 당신 지금 잘하고 있 어”였어요. 그 말 한 마디가 우리에게 많은 힘을 줬 지요. 지금 똑같이 말하고 싶어요. 소현 씨, 잘못한 거 없어요.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요. 당신 아주 잘 하고 있어요. 정목_ 맞아요.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은 자기

성장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잖아요. 아이한 테만 빠져 있는 게 모성은 아니에요. 애만 잘 돌보 는 것이 진정한 엄마는 아니에요. 엄마가 자기를 바로세울 수 있을 때 진짜 모성이 나오는 거잖아 요. 아기만 쳐다보며 일생을 보내는 건 사랑이 아 니라 집착이에요. 지금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소 현 씨의 마음이 오히려 아이를 제대로 사랑하는 길 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봐요. 끝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는 살아가 면서 고마운 일이 있고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고 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하는데요, 이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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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원리가 하나 있더라고요. 딱히 고맙거나 감사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그냥 “고마워, 감사 해” 하면 희한하게도 고마워하고 감사할 일이 내게 로 온다는 거예요. 저도 체험한 겁니다. 기독교에서도 그것을 가르치더군요. 부처님도 고맙지 않은 상황에도 고마워하라고 하셨지요. ‘고 마움’이라고 하는 은행 잔고에 고마움이 하나 더해 져서 부자가 되는 거예요. 마음의 부자가 되려면 “아가, 네가 있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엄마 라는 것도 해봤다. 고마워. 당신이 곁에 있어서 내 가 아내 역할도 해봤어. 고마워. 그리고 지금 이 힘 든 시간을 겪음으로 해서 내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정신 차리게 해줘서 고마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소현 씨가 춤을 배운다고 했는데, 저는 계속 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그러나 죄책감 없이요. 육체 속에 있는 에너지를 다른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데에 춤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 합니다. 춤을 배우면 감정이 다시 살아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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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숙 씨와의 대화

“안면마비가 온 뒤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자기 자신과 접촉하세요. 남의 눈치 보지 말고……”


남은숙_ 열 달 전쯤, 자고 있을 때 안면마비가 왔어요.

지금도 완전히 회복은 안 됐습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워요. 빨리 말할 때는 발음이 정 확하게 안 되거든요. 병원에서는 100퍼센트 회복 이 안 될 수도 있대요. 아직도 침 치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처음 한두 달은 침 맞고 잠자는 것밖에 못했어요. 매일 침 맞고 잠만 잤어요. 살림은 시어 머니께서 오셔서 해주셨고요. 이후 두 달은 일어나 서 텔레비전도 보고 했어요. 눈과 이마, 입에 마비 가 와서 눈도 조금만 뜨고 있으면 힘들고,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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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났거든요. 지금도 치료를 계속 하고 있는데, 100퍼센트 회복이 안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정목_ 100퍼센트 회복 안 된다는 건 의사의 말인가요? 남은숙_ 네. 한의원에서도 그러고, 병원에도 가서 검사

를 받았었거든요. 정목_ 그 말을 100퍼센트 믿으세요? 남은숙_ 네. 그런데 지금은 100퍼센트 회복이 안 돼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에요. 지금 상태로 봐서는 생활 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기도 하고…… 몸 상태만 좋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처 음에는 거울도 보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고, 일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는 직 장 생활을 쉰 적이 없었는데, 온종일 일하는 건 무 리일 것 같아서 지금은 교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 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대부분이 예전과 비슷한 상태로 돌아와 서 정말 감사한 마음이 큰데요, 그러면서도 힘든 건 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확 떨어져버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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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예요. 제가 그간 일을 하면서 자신감이 없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 병을 겪고 났더니 무엇을 결정하거나 의견을 내거나 약속을 정할 때 제 마음 대로 할 수가 없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컨 디션이 좋으면 오늘은 무엇무엇을 해야지 하다가 도, 두어 시간 뒤에 몸이 힘들어지면 다시 회복하 기 위해 잠을 잘 수밖에 없으니까 아침에 계획했던 것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까 거의 반년 동안 사람도 못 만나고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다시 일을 시작하긴 했는데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 지요. 주변 사람들은 괜찮다, 달라진 것 없다, 여전 하다고 말하지만 제 마음은 자신감이 너무 많이 떨 어져서 그게 힘이 듭니다. 또 아프면서 너무 게을러지고 이기적이 되어간 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 경우 안면마비 의 발병 원인은 아주 오래된 피곤, 과로의 누적, 혼 자 삭히는 습관 등으로 온몸의 흐름이 정체되고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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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이 바닥나면서 오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약간 게을러지고 약간 이기적이 되는 것 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지금은 상태 가 호전되었고 다시 일도 시작했는데, 다시 기운을 모아야 하는데 ‘난 아프니까!’ 하면서 회피하려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제가 아프니까 아들들이 안 하던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고 알아서들 하더라고요. 그렇게 되니까 굳이 일을 하면서 힘들게 살고 싶지가 않은 거예 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는 게 다가 아닌데 하는 생각 때문에 불편하기도 하고요. 정목_ 그게 다가 아니면 뭐가 더 있다고 보시나요? 남은숙_ 일을 하면서 느끼는 성취감 같은 것도 있잖아

요. 제가 가진 능력이 크진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 과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 나 혼자만 편하게 살아도 되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 루는 이 생각이 들었다가, 하루는 저 생각이 들면 서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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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두고 살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정목_ 써주신 글 보니까 교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신다

고…… 남은숙_ 봉사는 아니고요, 재정 관리와 지역 관리 사업

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목_ 다른 데 아픈 데가 또 있나요? 남은숙_ 네. 제가 완전히 종합 병원이에요. 당뇨랑 자

궁근종이 생긴 지 한 5~6년 됐어요. 자궁근종의 경 우에는 처음에 너무 커서 수술을 하라고 하더라고 요. 그런데 저는 수술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서 집에서 관리를 했어요. 지금은 자궁근종 크기가 많 이 줄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고요. 당뇨도 처음 2년 동안은 약 안 먹고 스스로 관리를 잘했는데 좀 해 이해져서 잠시 입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혈당이 높거나 그렇 게 위험한 정도는 아니고요. 정목_ 목사님, 남은숙 씨의 고민이 하나로 압축되는데

요, 자신감이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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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_ 나는 자신감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요.(일동 웃음) 교회에서 일을 한다니까 하느님 얘 기를 해도 될 것 같은데, 하느님이 당신 몸을 사랑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인정하시나요? 남은숙_ 네. 이현주_ 정말이에요? 하느님이 당신 몸을 사랑하시는

만큼 당신이 당신 몸을 사랑하고 있는 겁니까? 기 독교의 말로 하면, 남은숙이라는 사람 몸은 하느님 의 것이죠. 하느님의 소유란 말이에요. 그러니 하 느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손댈 수 없는 거예요.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두실 만큼 아끼는 당신 물건이니까요. 따라서 내 몸에 일어나는 일 은, 그게 어떤 일이든 간에, 그분의 재가를 받지 않 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진짜 내’가 허락하지 않은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진짜 내’가 불러들인 일이 아 니면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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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안면마비라든가 자궁근종이라는 병을 얘기 했는데, 그것이 실은 은숙 씨에게 아주 값지고 소 중한 선물을 전달해 주는 배달꾼입니다. 사도 바울 이 자기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을 때 주님이 대답 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베푼 은혜가 넉넉하다”라 고 하잖아요? 바울은 그제야 자기 몸에 있는 병은 ‘병’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은혜’라는 것을 알았 던 거죠. ‘은혜’라고 말한 것은 그 병이 바울에게 주 시는 하느님의 선물이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그 질병이 아니었으면 미처 몰랐을 뻔한 세계를 알 수 있고. 그렇죠? 선물을 받았는데 포장을 안 풀고 있으면 어떤 선 물인지 몰라요. 집배원이 뭘 전달하러 왔는데 수취 인이 집에 없으면 다시 가져가서 있을 때 또 오잖 아요? 받아야 비로소 집배원이 다시 안 오죠. 그러니까 지금 말했던 병은 소포 꾸러미 같은 거 예요. 그 속에 어떤 선물이 들어 있는지를 들여다 봐야죠. 그걸 통해서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는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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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세상에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이 두 가지 종류밖에 없다고 봐요. 하나는 뭔가 나에게 깨달 음을 주고, 내 삶에 변화를 주고, 나를 좀 더 성숙 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병이고, 다른 하나는 죽을병 이지요. 죽을병이다 싶으면 죽음을 잘 받아들이는 게 좋겠고, 그렇지 않은 병은 그걸 통해서 전혀 모 르던 세계를 알거나 훨씬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볼 때 은숙 씨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선 물에 해당하는 것 같네요. 그러니까 이것이 어떤 선물인지, 전에 모르던 무엇을 알려주고 있는지, 나보고 어떻게 달라지라는 건지를 깨닫고 적극적 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목_ 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면 목사님과 제 생각이 일

치하는 부분이 참 많아요. 남은숙 씨 얘기를 들으 면서 남은숙 씨가 남한테는 잘 베푸는데, 자기 자 신한테는 좀 못마땅해 하고, 불평하고, 자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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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무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 스로에 대한 존중감이 없으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그 스트레스는 사람마다 다른 양상으 로 나타나는데, 특히 안면마비 같은 것은 자기 자 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는 내가 아닌 모습 을 원할 때 많이 나타난다고 해요. 아까 목사님께서도 바로 당신을 정말 사랑하느 냐, 즉시 대답할 수 있느냐고 물으시잖아요. 만약 다른 사람이 지금 남은숙 씨와 같은 모습으로 있다 면, 특히 가족 중에 누군가가 그랬다면 남은숙 씨 는 분명히 두발 벗고 나서서 도왔을 거예요. 그렇 지 않나요? 그것처럼 다른 사람이 그럴 경우 도와 주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 자신을 돌보면 돼요. 그리고 완전히 낫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는 말, 그것은 버리세요. 그건 의사의 의견이에요. 그 말 을 최면에 걸린 것처럼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 다. 본인의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의사들은 나을 병이라고 해도 다 낫지 않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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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가 일정 부분 있어요. 그러니 목사님께서 말씀 하신 것처럼 그냥 하느님께 맡겨봐요. 그분이 그 몸 안에서 역사를 하고 있는 중인데, 다른 거 뭘 간 섭할 게 있나요? 다른 사람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내가 그 를 부축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자신을 그렇게 부축 하고 돌보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 은 지금 자신에게 닥친 상황, 그 상황을 인정하는 게 필요한데, 몸이 쉬어가 달라는 거잖아요? 쉬라 고 말하는데 건강할 때 일했던 것처럼 똑같이 일하 길 요구하다 보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못마땅해지 는 거죠. 마음은 내가 건강하던 시절에 해왔던 그 모습 그대로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럴 때 자기가 바보 같아지고 사회의 부적격자 같고 뒤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죠. 내가 건강하던 시절에 일하던 모습을 요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고,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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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행사하는 겁니다. 아까 본인이 말씀하셨잖아요. 좋은 걸 얻었다고 요. 아프니까 아들과 남편이 도와주고 시어머니가 도와주잖아요. 모든 일을 나 혼자 하지 않아도 된 다는 것을 지금 보고 있잖아요. 나누어서 협력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고마움도 느끼고 가족의 특별한 애정을 느끼시는 거 아니에요? 그게 내가 건강하던 시절에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경험하지 못했던 일일 거 아니에요? 그렇죠? 내가 몸이 아픈 관계로 그런 일이 온 거예요. 그 런데 그 일을 자신감이 없는 쪽으로 결부시키는 것 은 건강했던 시절 때와 똑같이 가고 싶어 하는 욕 망 때문이에요. 지금 이 상황을 인정하자는 거죠. 우리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어져버리면 지 금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절망감이 오게 돼 요. 좌절하죠. 이 절망감은 ‘더 이상 나를 변화시 킬 수 없어’라는 생각을 불러옵니다. 절망은 곧 그 말과 연결되는 겁니다. ‘나 같은 게 더 이상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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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겠어? 어떻게 내가 완전히 나을 수 있겠어? 의사도 못 고친다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말이 죠. 절망감을 당연한 것처럼 수긍하고 있지만, 사 실 우리가 수긍해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 이 있어요. 내 병을 고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의사 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면 그건 무력감이 온 거잖아요? ‘공부를 많이 한 의 사도 못 고친다는데 나 같은 게 뭘……’ 이건 무기 력이에요. 이렇게 될 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용 기가 생기지 않으니까 판단도 잘할 수가 없는 거 예요. 지금 남은숙 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첫째 자 신이 건강했던 시절에 일했던 모습을 자신에게 요 구하지 말 것, 둘째 가족들과 함께 자신의 일을 나 누는 것에 대해서 행복하고 감사한 일로 받아들일 것, 셋째 자기 자신과 접촉할 것, 이 세 가지입니 다. 남의 비위 맞추지 마시고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다 들어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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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습관을 갖게 되면, 그러면서 그 말을 여기저기 서 하게 되면 정말로 그 말에 힘이 생겨버립니다. “이 병은 완전히 낫기가 힘들대요”라는 말을 한 번 발설하고 두 번 발설하고 백 번 발설해 보세요. 몸 안에서 신께서 역사를 해서 완전히 낫게 해주려고 해도 본인이 최면을 걸어둬서 그렇게 할 수가 없 게 되어버려요. “완전히 나을 수 없대”라는 말을 경 상도 가서 하고, 전라도 가서 하고, 충청도 가서 하 고, 이렇게 하면 이 말은 확언이 되어버립니다. 우주는 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들어줘요. 우주는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의 소리만 듣고 있어요. 좋 고 나쁜 것을 판단하지 않은 채 말이죠. 본인이 용 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기와 방향성을 잃 게 될 때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게 됩니다. 남의 말이 더 중요해지죠. 그런데 남의 말은 정말 보조 일 뿐이에요.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내 인생에, 내 삶에 관여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개입할 수 없어 요. 기독교 식으로 얘기하자면 신만이 개입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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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불가에서는 불성만이 그것을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해요. 다른 사람들도 다 나와 비슷한 고통을 가지고 있어요. 의사도 남은숙 씨와 비슷한 고통과 고민 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책임져 줄 수 없어 요. 그런데 그 사람의 말을 내가 온전히 들을 이유 가 뭐가 있어요? 남은숙 씨에게 드리고 싶은 메시 지는 남의 비위 맞추지 마시고, 자기 자신과 접촉 하시라는 겁니다. 자기와 만나세요. 제가 볼 때 그 게 가장 중요해요. 그러면 안면마비는 완전히 나아 요. 한 사람이라도 완전히 나은 사람이 있으면 나 도 나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마음이 그것을 가로 막지만 않는다면요. 반드시 낫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 회복된 거 보면 100퍼센트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분 많이 봤어요. 저는 100퍼 센트 나은 사람 말고는 오히려 만나보질 못했어요. 그래요, 다른 사람의 비위 맞추지 말고 자기 자 신과 접촉하시고, 자기 자신의 몸과 가까워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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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낫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신 말씀이 어쩌 면 굉장히 순응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수동적인 공 격이에요. 총칼을 들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공격하 는 거와 다르지 않거든요. 막 성질내면서 공격하는 것도 있지만, 전혀 화를 내지 않으면서 ‘그래, 어쩔 수 없어’라는 것도 공격이에요.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믿으세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남의 비위 맞추고 다른 사람 눈치보다 보면 안면마비가 와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이에요. 심리가 그렇게 작용을 해요. 자 꾸 다른 사람의 일이 중요해지는 거예요. 내 일은 중요하지 않고. 그러면 그 스트레스가 심장으로 가 고, 열 받고, 그 열이 어깨로 뻗치면서 뇌혈관으로 가는 기관이 다 막혀요. 그러면 얼굴 근육이 굳어 버리게 되는 거죠. 인간의 근육 중에 제일 많은 근 육이 얼굴에 다 있잖아요? 70퍼센트의 근육이 얼 굴에 있거든요. 많이 웃으시고, 거울을 자주 보세 요. 거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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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의사는 아니지만 제가 오늘 가르쳐드리는 것을 해보세요.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쇄골 끝에, 쇄골 밑으로 옴폭 들어간 부분을 살살 비벼주시거나 톡톡 두드려주세요. 두드리면서 “비 록 나는 부족한 게 많지만, 나는 나를 용서한다. 비 록 나는 부족한 게 있지만,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 고 말해보세요. 이 옴폭 들어간 쇄골 타점은 우리 가 과거로부터 가져온 기억을 저장한 저장 탱크예 요. 우리 몸에는 기억이 저장된 탱크가 있는 열두 타점이 있어요. 안면마비는 그 기억점의 하나인 쇄 골 타점을 두드려주면 일부 풀려요. 저 이거 비싼 돈 주고 의사 선생님한테 배운 겁니다.(일동 웃음) 부정적인 생각이나 기억을 먼저 말하고, 뒤에는 반드시 긍정으로 마무리합니다. 그러면 한 번 할 때마다 기억이 하나씩 지워져요. 파일을 지울 때 컴퓨터에 있는 휴지통에 버린 뒤 완전히 삭제해야 다시 꺼내 쓸 수 없죠? 이것도 기억 자체가 공空이 돼야 해요. 그래서 이 타점을 두드리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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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 나눈 차소현 님도 쇄골 타점을 풀어 주면 예민해진 신경이 가라앉으면서 굉장히 편해 지고 안정감이 들 거예요. 심장이 들뜨면 자꾸 쓸 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산만해지면서 내 위주의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이기적인 생각이 발동이 걸리고, 또 양심이 있으니까 죄책감이 들 고, 그래서 그것이 나를 붙들고…… 이렇게 계속 반복되거든요. 그런데 그 기억점들을 지우면 안정 이 되고 편안해집니다. 이현주_ 아멘!(일동 웃음) 정목_ 할렐루야! 나무 관세음보살!(일동 웃음) 아무튼 남

의 눈치 그만보세요. 남의 비위 맞추지 마시고, 본 인에게 관심 가져주세요. 자신을 많이 사랑해 주 세요. 아까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핵심이에 요. “당신, 정말 자신을 사랑해요?” 이 말에 확실히 답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요. 저는 그거면 충분 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공격하지 마시고, 자신을 돌보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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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성한 씨 부부와의 대화

“왜 제 남편에게 뇌종양이 생겼는지…… 인생의 계획이 다 틀어진 것 같아요”

“왜 내게 이런 일이 왔을까가 아니라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를 물으세요”


오성한_ 머리 수술 자국 때문에 외모상으로는 여기 계

신 분들 중에서 제가 가장 아픈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네요. 제 상황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두 달 전 급작스럽게 뇌 CT를 찍게 됐는데 뇌종양이 의심이 된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특별한 자각 증 세도 없었어요. 뇌종양일 경우 두통이 생기는 게 가장 대표적인 자각 증세라고 하던데 전 두통을 느 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 검사 결과를 믿지 않았어요. 의사 선생님도 더 정확한 결과를 위해 MRI를 찍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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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서 MRI를 찍고 그 다음날 확인을 해봤는데, 확실 히 뇌종양이고 불행히도 악성이라고 했습니다. 뇌종양은 양성과 악성이 있는데, 악성의 경우는 종양과 뇌의 다른 부위와의 경계가 불분명해서 외 과적 방법으로 완전히 제거하기가 힘들다고 하더 라고요.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받는 것이 제일 좋 고, 그것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그 이후에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13년째 직장을 다니고 있고, 발병 당시 급 여도 많이 받게 된 시기였어요. 꼼꼼한 성격은 아 니지만 정년퇴직을 하기 전까지의 재정 설계도 다 해뒀는데 이렇게 된 거지요. 아이는 둘이 있는데 이 두 아이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힘이 되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올 1월에 아이들 교육과 자신의 공부를 위 해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갔어 요. 2년 계획을 잡고 갔는데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 을 해야 하니까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해서 결국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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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월 만에 돌아왔습니다. 일단 수술은 계획대로 잘됐고, 이제 2주 뒤부터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 가 굉장히 낙천적인 성격이에요. 사실 수술을 집도 했던 의사도 이 병이 완치될 거라는 얘기를 하지는 않더라고요. 나중에 회사에 복귀해서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하지 않고요. 병원 에서는 늘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게 마련이니까요. 희망적인 얘기를 했다가 만에 하나 잘못될 수도 있 으니까 그렇겠죠? 그렇긴 하나 저는 “다시 복귀해 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싶 어요. 믿고 싶고요. 사실 의문이 드는 것은 왜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거예요. 저는 제 몸 관리를 잘했다고 생각했 어요. 먹는 것도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육류보다 는 채식 위주로 했고, 운동도 병행을 했기 때문에, 그런 병에 걸릴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겼는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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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도 믿어지지가 않아요. 또 제가 염려되는 것은 가족들이 저 때문에 너무 걱정을 한다는 겁니다. 걱정이 되니까 먹는 것도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서 암에 좋다고 하는 채식이 라든가 기타 민간 요법 등을 찾아서 알려주고, 제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혹시라도 제가 아이들 때문 에 화나 나거나 충격을 받을까봐 아이들을 주의시 키는데, 사실 저는 그런 것이 더 불편하거든요. 저 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주변 에서는 곧 무슨 일이 생길 사람처럼 대한단 말이죠. 오늘 이 자리도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집사람 지인의 소개로 오게 된 거거든요. 내가 왜 남들 눈에 측은하게 보여야 하는지…… 안 그랬으 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곧 시작될 항암 치료 가 더 힘들다고 하던데, 아직 젊으니까 지금 상태 라면 충분히 긍정적인 의지를 가지고 이겨낼 수 있 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걱정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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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요약하자면, 주변에서 저를 불쌍하게 보 지 않았으면 하는 것과, 곧 시작될 항암 치료를 잘 받고 이겨낼 수 있었으면 하는 것, 그게 제가 바라 는 겁니다. 정목_ 네. 오히려 아내분이 더 마음을 졸이는 것 같군

요. 아내분이 미국에 유학을 갔는데 그걸 포기하고 들어와야 했다고요? 오성한 아내_ 나름 계획을 잘 세워서 준비를 많이 하고

갔어요. 저도 공부가 좀 필요했는데, 지난 4개월 동안 그곳에서 나름대로 이룬 게 많았어요. ‘아, 여 기에 하느님의 뜻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생활했는데 갑자기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 왔습니다. 이게 도대체 하느님의 계획인 건지, 우 연히 일어난 불행인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정목_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속상하신 거죠? 오성한 아내_ 이게 하느님의 계획이라면 하느님이 원

하시는 대로 앞으로 살 테니까 신랑이 건강하게 됐 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신랑은 잘할 수 있다고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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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으로 생각하는데, 저는 좋지 않은 상황도 자꾸 상상하게 되고, 하느님을 더 찾게 돼요. 도대체 하 느님이 바라시는 게 뭔지 잘 모르겠고, 그 바라시 는 대로 제가 해서 신랑이 나을 수만 있다면 그렇 게 할 수 있겠다 싶어요. 계속 그게 뭔지를 찾게 되 더라고요. 이현주_ 저는 오성한 씨보다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금 듣자니 무엇을 공부하러 미국에 가 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 은 마음으로 미국엘 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 이 하시라는 대로 할 테니까 남편만 건강했으면 좋 겠다고 하셨죠? 오성한 아내_ 네. 이현주_ 부인이 아시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보기에 부

인은 지금 하느님이 원하시는 걸 하고 있어요. 아 니, 이미 했어요. 만일 부인이 남편을 사랑하지 않 았다면 자기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겠 지요? 그런데 자기의 계획과 하고 싶은 일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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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남편 곁으로 달려온 것, 그것을 ‘사랑’이 라는 단어 말고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 요? 그리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게 ‘사랑’ 말고 다른 것이 뭐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신 하느님이라고 배웠지요?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하 느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을 실현하시는 겁니다. 그 것 말고 뭘 원하시겠어요? 부인이 지금 그 사랑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럼 답 나왔네요. 남편은 건강해지겠네요. 하느 님이 원하시는 걸 하고 있으니. 방금 밥 먹어놓고는 나 밥 안 먹었다고 하는 거랑 똑같군요.(일동 웃음) 정목_ 그렇지요.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어학 연수

를 갔는데, 남편이 갑자기 수술하게 된다고 하니까 이게 무슨 벼락 치는 소린가 하고 많이 당황하고 놀라셨을 거예요. 이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고. ‘인 생에 대해 계획을 짜둔 것이 있는데 왜 계획대로 안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시는 것도 같아요. 그런데 혹시 이거 아세요?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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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 그치요? 그리고 인생이 계획대로 된다면 그건 너무 재미없는 삶이라는 거요. 이현주_ 재미없지…… 정목_ 정말 재미없죠. 예측 불허인 것이 인생이거든요. 이현주_ 싱겁지…… 정목_ 정말 싱겁죠. 그러면 우리가 태어날 이유가 없는

거예요. 계획대로 살고, 말한 대로 살 것 같으면 우 리가 태어나서 경험해 볼 이유가 없어요. 인생은 갑자기 뒤집어지고, 갑자기 엎어지죠. 그래서 어느 누가 그랬지요. “우리가 가는 인생길은 산을 오르 는 산행길이 아니라 사막길이다.” 산행은 코스대 로 가면 돼요. 정상이 있죠. 그러나 사막은 언제 도 착할지, 동서남북 구분도 안 되거든요. 그래서 인 생길은 사막을 가는 것과 같아요.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옳은 방향인지 알 수가 없죠. 그런데도 걸 어가야 하거든요. 그 사막에서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누구냐? 바 로 나 자신이에요. 자신이 중심체가 되어 걸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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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예요. 순간순간의 선택도 내가 할 수밖에 없고 요. 어디에서 답이 주어지진 않죠. 지금 오성한 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왔을 까?’라는 의문이 생긴다고 하셨는데, 아까 제가 말 씀드렸죠. 왜라고 하는 질문에는 누구도 답을 할 수가 없다고요. 왜라고 하는 것에는 답을 할 수도 없거니와, 거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가는 문제가 풀리지가 않아요. 부처님께서도 왜라고 하는 질문 에는 한 번도 답을 하신 적이 없어요. “고통이 왜 와요?” “왜 우리가 괴로워야 해요?” 이에 대한 답을 주진 않고 이미 태어난 게 고통이라고 하셨고, 그 리고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만 가르쳐주셨어요. 왜 고통이 왔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는 거죠. 오늘부터 이렇게 한번 질문해 보세요. 질문이 바 뀌면 인생관이 바뀌더라고요. ‘왜 나한테 이런 일 이 왔을까?’가 아니라 ‘나한테 이런 일이 왔구나. 그렇다면 이 순간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이렇게 바꿔보세요. 이건 부부가 다 마찬가지예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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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은 왔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하 면 되는지를 물어보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될지를 물으면 그때부터 방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막 에서 방향이 보이기 시작하면 용기를 내서 모든 것 을 할 수 있게 되죠. 더구나 오성한 님이 낙천적인 성격을 가지셨다 면 굉장히 플러스가 됩니다. 오히려 주변 분들이 더 걱정을 하시는데, 아까 오성한 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 아내분이 편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어 요. 어떤 병에 걸렸든 그냥 일상적으로 봐주세요. 평상시와 똑같이 대해주시면 돼요. 아무렇지도 않 은 거거든요. 갑자기 이 사람이 중병에 걸린 것처럼 음식을 비 롯해서 모든 것에 유난을 떨면 어떻게 되겠어요? 이 뇌종양이라는 암세포가 “야, 이 집에 오니까 굉 장히 대접 잘해준다” 이럴 거 아니에요? 쉽게 말 해서 그렇게 훌륭하게 대접해 주는데 왜 나가겠어 요? 주위와 에너지를 계속 그 방향으로 끌어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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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만큼 비대해지게 되어 있어요. 대접해 주지 않고 무심해지면 암세포도 빨리 나가기로 결정을 합니다. 그런데 자꾸 이상 기후가 나타난 것처럼 별나게 행동하고, “당신 조심해. 그거 먹지 마, 이 거 먹어. 당신 얼른 자. 당신 신경 쓰지 마” 이렇게 대하면, 이 뇌종양이 “내가 다녀본 중에 이 집 대접 이 최고다. 난 계속 여기 붙어서 살래” 이럴 수 있 어요. 이거 우스갯소리가 아니가 의학적으로 밝혀 진 내용이거든요. 내가 자꾸 관심을 두면 관심 두 는 그 상황은 실제로 더 커져요. 무심하고 담담하 게 평소처럼 해보세요. 더구나 남편이 스스로 걱정 하는 마음이 없고 자신감을 갖고 계시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뇌종양을 대접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예전에 제가 책에서 봤는데, 거기에 “최악의 시 나리오를 쓰지 말라”는 말이 있었어요. 모든 것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 그 시나리오대 로 가버립니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는 내가 쓰는 거거든요. 각본을 내가 써놓고, 내가 연극도 하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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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 그러니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지 마세요. 그리고 ‘내가 미국 가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미 래 계획이 다 망쳐졌네’ 하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 히고,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에 대해 공격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내가 나가야 하는 방향에 모두가 방해가 됐으 니까 인상 쓰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분노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행동에 합리화가 되 는 거예요. 그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내가 불행하 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자체가 나를 피해자로 만드 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자꾸만 ‘내가 해야 될 중요 한 일들을 다 놓쳤어. 내 삶은 엉망진창이 된 거야’ 이렇게 되거든요. 그런데 엉망진창된 것 하나도 없 습니다. 티베트 땅인데 인도 쪽으로 연결된 라다크 지방 이 있어요. 라다크라는 곳은 태양만 내리쬐는 굉 장히 척박한 땅이고 인간이 살기 어려운 지역입니 다. 이 라다크 지방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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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대요. 다만 당장 해야 할 ‘우선 순위’만 있을 뿐이래요.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는 중요하 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열심히 하다가 다른 일 이 터지면 그 일이 나를 방해한다고 느끼지요? 그 런데 이 라다크 지방 사람들에게는 만약 이웃 주민 이 아프면 이웃을 돌보러 가는 게 우선인 거예요. 순위만 있을 뿐이에요. 먼저 할 일, 뒤에 할 일, 이 것밖에 없어요. 그게 바로 우리의 인생길이더라고 요. 우리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순 위를 나누기 때문에 자꾸 자신이 지치는 거예요. 바로 자신의 생각이 지치게 하는 거더라고요. 지금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 뭘까를 생각해 보 세요. 남편을 돌보는 일이겠죠. 미국에 가서 아무 리 영어를 잘하게 되고, 박사 학위를 받아왔다고 해도 말짱 꽝이에요. 남편을 간호하다 보면 아픈 사람을 어떻게 돌봐야 하며, 서로 어떻게 마음을 나눠야 하는지 배우게 될 거예요. 뇌종양에 관한 정보도 찾아보게 되면서 유식하고 똑똑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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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영어 잘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 아닌가요? 내 주변이나 친인척이 뇌종양에 걸렸을 때 얼마나 많이 도와줄 수 있겠어요? 말하자면 영어 몇 마디 잘하는 것보다 뇌종양 수술한 사람한테 도움의 말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인생이 더 가치 있는 것이 아 닌가요? 지금 밀어둔 그 일은 중요하지 않아서 밀려난 것 이 아니라 우선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밀려난 거예요. ‘내 남편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내 일이 망쳐졌을까’가 아니라 사실은 이 일이 더 급하기 때문에 당신을 불러들인 거예요. 그것은 나 중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두 분이 부부라고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 지금처 럼 애틋하게 대화하고 서로 가깝게 지냈던 순간이 얼마나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각 자가 성취를 위해 막 달려가진 않았는지, 서로 평 행선만 달리진 않았는지…… 이제 그만 헤쳐모이 라는 말일 수도 있어요. 생텍쥐페리의《인간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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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는 책을 보면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다. 한 방향을 보는 것이다”라 는 말이 있죠? 부부가 마주보게 될 때는 서로 다른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한 방향을 보면 비슷한 것을 보게 되잖아요? 지금 두 분에게 는 한 로프에 매달려서 같은 방향을 보라는 메시지 가 온 것뿐이에요. 그게 뭐가 잘못됐겠습니까? 이현주_ 잘된 거지. 정목_ 잘돼도 보통 잘된 게 아니죠. 사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우리가 스님이고 목사님이라서 저런 소릴 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이게 사실이 아 니라면 비싼 밥 먹고 왜 이런 소릴 하겠습니까? 인 류가 오랜 동안 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 서 훨씬 더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에요. 우리에게 벌어진 일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 안에 담긴 선물이 뭔가를 보세요. 제가 볼 때 두 분은 별 문제 없고요. 상대방을 더 이해하는 쪽으로, 상황을 더 이해하고 바라보는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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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갔으면 합니다. 머릿속은 생각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생각에 생 각을 보태서 계속 가지를 치다보면 어깨가 무거워 져요. 그래서 생각도 어느 순간에는 확 잘라버려야 돼요. 그리고 지금 오성한 씨의 아내분은 당장은 힘들지 모르나 이 시간이 흐르고 보면 세상을 훨씬 더 관대한 눈으로 보게 될 거예요. 누군가 암에 걸 렸다는 소리만 들어도 도와주고 싶어질 거고, 정보 를 주고 싶어질 거예요. 인간적으로 얼마나 행복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에요? 나는 영어 잘하는 사람 보다 뇌종양 걸린 사람한테 따뜻한 가슴으로 정보 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인간적일 것 같아요.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대한 눈으로 사람들을 보 게 될 것이고,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하는 사람 이 될 거예요. 암에 걸린 사람이 있을 때 당신이 얼마나 따뜻한 위로를 해줄 수 있겠어요. 그것뿐이겠어요? 손길 도 부드러워질 거예요. 아픈 사람 있으면 왠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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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주고 싶어질 것이고. 모든 것들이 달라져요. 당신의 모습이 바뀐다는 거죠. 그게 얼마나 아름다 운 모습입니까? 지금 오성한 씨 아내분은 최고로 아름다워질, 미인이 되실 준비를 하고 계신 거예 요. 그리고 두 분은 분명 아름다운 모습으로 지금 이 순간을 극복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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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정 씨와의 대화

“제가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만 살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봅시다”


김희정_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제 얘기는 별

게 아닌 것 같네요. 저는 지금 갑상선 기능항진증 이 재발해서 앓고 있습니다. 대략 12년 전쯤 발병 했고요. 그때 당시 남편과도 힘들고, 하는 일도 잘 안 되고, 늦게 결혼한 제가 애를 키우면서도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병원에 가고 약물 치료를 하고…… 그 부작용으 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병원을 옮겼으나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무기력과 우울이 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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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좋지 않은 상태로 끌고 갔고요. 그 후 시골로 내려가 1년 요양을 했습니다. 텃밭도 가꾸고 운동 도 하고 매일 산을 올랐어요. 그렇게 해서 편한 몸 으로 돌아오는 데 3년이 걸렸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다시 넘치게 일하고 혹사 시킨 끝에 작년에 재발해 오늘까지 왔습니다. 병원 은 정말 가기 싫고, 약 먹기도 싫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니지만, 온몸 이 열과 화에 싸여 무기력하게 처져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뒤 남편이랑은 별거 상태입니 다. 아들과 함께 남편으로부터 독립했어요. 이혼을 하자고 했으나 남편이 거부했고, 아들을 만나러 남 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 병의 원인이 남편에게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을 하다 보니 지금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할일을 다한 것 같아서 그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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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_ 집사람이 아파서 내가 한참 힘들어할 때 우리

가 자주 했던 말 중에 하나가, “그래, 오늘 하루만 살자”였어요. 이 말을 자주 했어요. 사실 내일이라 고 하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관념이지 실제로는 없 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오늘 저녁에 당장 내가 죽 을 수도 있잖아요? 모르는 일이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몸으로는 느끼지 않는 거죠. 그 얘기를 자꾸만 자 신에게 들려주니까 효과가 조금 있습디다. “오늘 하루만 살자” 그러니까 오늘 할 일이 조금 분명하 게 보여요. 어떻게 할지도 감이 잡히고. 내가 김희정 님하고 얘기를 하는데, 내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답이 나와요. 밥 먹는데 오늘 내가 이 밥을 먹고 죽어요.(웃음) 그럼 이 밥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저절로 나와요. 그런데 이걸 자꾸 까먹는 게 문제죠. 너무나 분명하고 오묘한 진실이거든요,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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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불확실한 것과 확실한 것이 각각 하 나씩 있는데, 확실한 것은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 불확실한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이 확실한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어요. 사 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은 오늘 밤에 죽을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티베트에는 이런 말이 있대요. 밤에 자려고 눈을 감는데 이 눈을 저승에서 뜰지 이승에서 뜰지 모른 다고요. 그 말이 맞아요. 그런데 자꾸만 까먹어요. 그래서 이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상기시켜 줬으면 좋겠어요. “오늘 하루만 살자!” 이 한 마디 말이 우 리 부부에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내일 걱정은 내 일에 맡기자. 오늘은 오늘밖에 없으니까…… 그것 보다 더 짧아지면 한 시간만 살자, 그렇게 순간순 간을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의 지혜라고 생각해요. 김희정_ 순간순간 살 생각이 안 드니까요. 이현주_ 그러니까 스스로에게 하루만 살자는 말을 자

주 들려줄 필요가 있어요.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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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해주는 겁니다. “나, 내일은 못 볼 수 있어.” 거짓말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이런 말을 좀처럼 하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면 그게 힘이 됩니다. 그러면 무 기력한 것도 없어져요. 이번 한 번만 하고 마는 거 니까, 사람 대할 때도 달라지고, 일하는 태도도 달 라지고, 내 몸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질 거예요. 정목_ 갑상선 기능항진증을 앓고 있고, 재발했다고 하

셨는데, 제가 병원에서 오래 일을 하다 보니까 거 의 반의사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웃음) 갑상선 증 상이 있고, 기능항진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평소의 삶에서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데, 혹시 맞나요? 완벽하지 않으면 내가 못 받아들이는…… 뭔가 비뚤어져 있거나 깨끗하게 정리가 안 되어 있 으면 못 보고, 깔끔해야 되고 쾌적해야 되고…… 좀 그런 거 있으시죠? 김희정_ 네.(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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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_ 더러운 거 잘 못 보고,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

분들 중에 갑상선기능증이 오기도 하더군요. 쉽게 말하면 갑상선은 그것에 대한 노이로제거든요. 놓 아줘야 되는데 못 놓는 거죠. 그러니까 상황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으면 다 걸 리는 거예요. 외모를 딱 보면 상당히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분인데도 불구하고 남하고 잘 어울리지 못 하실 거예요.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닌데 잘 안 섞이 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든지. 이러다 보면 예민해 집니다. 갑상선기능증이라는 증상은 예민한 성품 과 관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 부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은 삶 속에서 마음이 푸근하거나 넉넉하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지 몰라요. 얘기를 듣다 보니 남편한테 억울하고 분한 마음 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짐작하건대 아마 김 희정 님의 남편분은 밖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분이 실 거예요. 제가 그런 분들을 많이 봐왔는데요, 제 가 아는 분도 남편이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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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인데 아내 마음에만 들지 않아요. 그분도 갑상선 이에요. 평생 약을 드시더라고요. 우리 희정 님한테는 한 마디의 메시지만 드리고 싶어요.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지 마세요! 그냥 사랑을 주는 자리에 가 계세요! 누군가의 사랑을 기다리면 하염없고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 길은 너무 지루해져요. 다른 사람의 사랑을 기다리 지 말고, 당신이 사랑을 주는 자리에 가시길 바랍 니다. 아무것도 문제없습니다. 괜찮아요. 그러다 보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넉넉해지면서, 갑상선 증상은 쏙 들어가요. 이건 심리적인 상태에서 증상 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거든요. 조금 편안해지면 괜 찮아져요. 그랬다가 예민해지면 확 뒤집어져요. 그러니까 이런 성격을 깔딱 성격이라고 해요. 팍 나왔다가 팍 들어가죠. 성격도 급합니다. 항상 급한 건 아니에요. 어쩔 때는 너무 느려서 주변 사람들이 답답해할 수도 있어요. 이런 것들이 공존합니다. 어쨌든 사랑을 기다리지 말고 사랑을 주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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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가 계시면 희정 님이 보지 못했던 세상의 넓은 것을 볼 것이고, 더욱더 아름다워지실 거예요. 그리고 때로는 더러운 것도 괜찮습니다. 깨끗하 지 않은 것도 그냥 봐주세요. 이렇게 갑상선 증세 가 있는 분들은 전염병 같은 것에도 굉장히 예민합 니다. 누군가 감기 걸린 사람이 옆에 있으면 신경 이 곤두서게 되죠. 그럴 수 있어요. 이런 반응이 뭘 말하느냐면, 좀 더 깊이 들어가 봐야 하겠지만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보호 받았어야 하는데, 내가 오히려 부모나 형제를 보호 했던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고, 어린 날에 내가 가 진 에너지 이상의 힘을 써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 것들이 계속 긴장감으로 반응해 서 갑상선 항진증이나 기능 저하로 반응이 오게 돼 요. 이 말은 내 마음에 남은 모든 기억이나 트라우 마를 용서하고 떠나보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용서…… 쉽지 않겠지만 용서만큼 좋은 방법도 없어요. 용서에 대한 명상, 용서에 대한 마음을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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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떠올리다 보면 기어이 용서가 이루어질 거예 요. 그러면 스스로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져서 갑상 선으로 병원에 갈 일은 없을 거라 여겨집니다. 이현주_ 아까 한 얘기를 희정 씨한테도 다시 들려드리

고 싶어요. 희정 씨한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나름 대로 희정 씨를 돕기 위해서 일어나는 겁니다. 이 해가 잘 안 되더라도, 인생을 깊게 체험한 믿을 만 한 우리의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니 잘 새겨들어 보세요. 이 모든 일들로 말미암아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얻었는지 살펴보십시오. 이때 ‘해석’을 잘해야 해요.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 게 돼서 결혼에 실패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인 간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건지 배울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겁니다. 나한테 일어나는 일들을 어떻게 보는 것이 나와 이 웃의 행복에 도움이 될까, 이렇게 생각할 줄 아는 것에, 그러니까 현실을 잘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데 삶의 지혜가 있다고들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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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한일 씨 부부와의 대화

“아픈 아이를 돌보다 보니 마음도, 가정 경제도 다 흔들립니다”

“흔들리면서 안 흔들리는 방법은 흔들림과 하나되는 거예요”


김한일_ 저희 부부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는데요, 그

중 막내가 아픕니다. 출산 예정일을 한 달쯤 앞둔 어느 날, 집사람이 넘어졌는데, 사흘 정도 계속 배 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어요. 예정일 한 달 전 이면 분만을 할 수도 있었는데, 병원에선 분만은 권하지 않고 분만 이완제를 놔주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부작용이 일어나서 대학 병원을 가게 됐고, 또 시간이 지체되고, 막상 제왕절개를 해서 보니까 아이에게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애가 태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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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째부터 경기를 일으켰어요. 그때 담당 주치의 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이야기해 주었는데, 최 악의 경우는 한 달 이내에 사망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죽을지도 모른다고 하니까 독한 약을 썼을 때 일으킬 부작용 같은 건 아예 생각도 못하고 선 택의 여지없이 약을 썼지요. 병원에선 부작용에 대 한 정확한 설명도 없이 약을 쓰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차후에 다른 약을 투여해야 하는데, 자기들은 능력이 없다면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라고 했어요. 병원에서 드러눕던지 다른 인맥을 이용하든지 하 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대학 병원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도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어요. 애가 경련을 일으키니까 애한테 많은 양의 약을 쓰는데, 의사가 현상에 대 한 정확한 파악 없이 약을 끊기도 했다가 다시 애 한테 쇼크가 오니까 저희랑 상의도 없이 주치의를 바꾸기도 하고…… 그렇게 입원해 있는 4개월 동 안 저희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죠. 아이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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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두세 번 정도 경기를 일으키면 아내 혼자 감당 할 수도 있겠지만, 많을 때는 하루에 3백 번 넘게 경기를 일으키니까 잠을 잘 수도 없는 거예요. 저 도 같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퇴원한 뒤로 두 달 만에 경기가 재발했어요. 병 원에서는 약을 바꾸는 데에만 급급한 것 같더라고 요. 사실 항경련제는 치료약이 아니라 경련을 막아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보니 애는 더 안 좋아지 는 것 같고, 발달은커녕 오히려 퇴행이 된 상태입 니다. 사람들 소개로 이곳저곳 다니다가 지금 다니 는 한의원을 선택했는데요, 집에서 한의원까지 가 서 치료받고 돌아오면 반나절은 그냥 지나갑니다. 또 애 증상이 그냥 경련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몇 달 동안은 하루 온종일 먹기만 하고, 또 몇 달은 먹 기만 하면 쏟아내고 하니까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가 없는 거예요. 이런 상태로 한 2년을 보내니까 경제적인 문제까지 오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서로 의지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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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순간순간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빠져나 오지 못하고, 누군가 건져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자꾸 생기니까 가정마저 흔들리는 것 같아 요. “아이의 인생은 아이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면 서도 그런 생각이 혹시 부모로서 아이가 정상으로 되는 것을 포기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심리적으로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입니다. 최근엔 아기를 장애인 등록 신청을 했는데, 이것 도 아내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아서요. 동 시에 이렇게 예쁜 내 아기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받 아들일 수가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아내는 장애 신 청을 어렵사리 했지만, 아직도 마음으로는 받아들 이지 못하고 아이의 ‘정상화’에만 온통 초점을 맞추 고 있습니다. 왜 내 아이가 정상이 아닐까를 생각 하면 우울하기도 하고 감정적 기복이 심해집니다. 때론 내가 죄를 지었나 자책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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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은데……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이 상황 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 니다. 저희 부부에겐 이 아이 말고도 세 명의 아이 가 더 있으니까 그 아이들도 신경을 써야 하고, 그 러려면 저희가 여러 가지로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하거든요. 머리로는 알고 있음에도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저나 아내나 마음속 깊이 흔들릴 때가 많습 니다. 이 흔들림이 결국 저나 아내를 일이나 부모 로서의 역할을 조금씩 포기하는 쪽으로 끌고 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저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하고는 있지 만 사실 그보다 더 걱정이 되는 건 아내가 흔들릴 때 잡아줄 마음의 여유가, 다독거려 줄 여유가 제 게 없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내게 그럴 힘이 없다” 는 것 자체가 두려운지도 모르겠어요. 평생을 함께 가야 할 사람이 그런 흔들림을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흔들리지 않 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가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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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저희가 건강해져야 애들을 잘 키우고 보호해 줄 수 있을 텐데, 저희가 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계속 흔 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힘이 듭니다. 정목_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빠가 그 정도의 판

단력을 가지고 있고, 또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이 보여서 개인적으로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현주_ 방금 흔들린다는 얘기를 자주 하셨어요. 그러

면서 좀 안 흔들렸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습니 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우리는 지금 굉장히 빠르게 돌고 있는 지구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실 제로 그 속도를 조금도 느끼지 않죠. 그건 우리가 지구와 하나가 되어 지구와 함께 돌고 있기 때문이 에요. 그래서 돌아가면서 안 돌아가는 겁니다. 흔 들리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은 흔들리는 세상과 하나되어 함께 흔들리는 거예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흔들림과 하나되는 겁니다. 사람들이 롤러코스터를 타잖아요? 애들은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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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 나서 또 타려고 해요. 신이 나거든. 그런데 어 른들은 한 번 타고 “에이, 다시는 못 타겠다” 하지 요. 타면서 멀미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그러죠. 그 게 왜 그러냐 하면, 애들은 롤러코스터가 내려갈 때 같이 따라서 내려가고, 올라갈 때는 같이 신나 게 올라가고, 그러니까 멀미가 안 나는 거예요. 지 구가 빠르게 돌아가지만 멀미가 하나도 안 나는 것 처럼. 그런데 어른들은 내려갈 때 안 내려가려고 저항하고, 올라갈 때 안 올라가려고 저항하지요. 흔들림에 저항을 하는 겁니다. 상황에 저항을 하는 거예요.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습니다. 저 아이가 아픈 것이 내가 시켜서 그런 게 아니잖아 요? 그 병원에 간 것도 그렇고, 흘러온 과정 전부가 내 의지하고는 관계없이 진행된 일이에요. 바람이 불어서 배가 흔들리는 것처럼. 그렇게 흔들리는 상 황에 같이 흔들리면서 그 상황을 타면 어지럽지 않 을 수 있는데, 그걸 자꾸 마음으로 거절합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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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이러면 안 되지, 이러는 게 아니지.’ 이렇게 저 항하는 마음 때문에 흔들리면서 더 흔들리는 거예 요. 오죽했으면 도종환 시인이 “흔들리지 않고 피 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랬겠어요. 지금 아이를 돌보면서 두 내외가 걸어온 길, 힘 들어하면서 흔들리면서 걸어온 길, 지극히 당연한 겁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누구라도 그랬을 거예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요. 아, 그럼 바다가 요동치는데 어쩔 거예요? 내가 요동친 게 아니잖아요. 흔들리는 상황과 함께 같이 흔들리면, 그러면 마음고생 하지 않을 수 있어요. 흔들리면서 고요할 수 있단 말이지요. 육체는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마음은 참 평화로 운 사람을 저는 봤어요. 한참 아플 때는 소리 치고 몸을 뒤집고 야단법석이야. 그러다가 통증이 가시 니까 한숨을 푹 쉬며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고, 죽 는 줄 알았네” 하는 거예요. 그것이 흔들릴 때 같이 흔들리는 모습이에요. 악! 하고 소리 지르는 걸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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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옆에서 봤잖아요, 그러면 끝나고 나서 조금 부 끄러울 것 같죠?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럼 아픈데 소리를 안 지 르나, 소리를 지르지. 그래 놓고는 다 끝나고 나 서, “아이고, 죽는 줄 알았네”라고 한 마디 하고 마 는 거지요. 그렇게 불편한 상황을 편안하게 받아들 였으면 좋겠어요. 본디 세상은 그렇게 생겨먹었어 요. 흔들려도 괜찮습니다. 아니, 흔들리는 게 오히 려 당연하지요.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온 저 마다의 목적이 하나 있답니다. 모든 아이들이 말 이죠. 그게 뭐냐면 부모 사람 만들기래요.(웃음) 그 러니까 지금 두 분의 아이는 특별한 방법으로 두 분을 성숙시키고 있다고 봐요. 그 아이 아니었으 면 몰랐을 뻔했던 세상, 그 아이 아니었으면 얻을 수 없었던 사랑, 부부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 저 아이 혼자서 아픈 게 아니라 온 가족이 치유되 기 위해서 그런 과정을 겪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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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그래요. 그러니까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요. 물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그러나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평온하 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유명한 기도문 하나 소 개하지요. “하느님,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평 온히 받아들이게 하시고,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은 용감히 하게 하시고, 이 두 가지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정목_ 목사님께서는 지금 상황에 대해서 저항하지 말

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현실적으로 다가 오진 않을 겁니다. 그게 핵심인데 아직 두 내외한 테는 남의 말처럼 생각될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방금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건 부모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 잘못 도 아니고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그냥 장 애예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다간 수많은 성자 중에도 장애인이 많았어요. 그러면 온 세상을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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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구세주의 역할을 했던 그런 깨달은 자들에게 왜 장애가 왔을까? 그걸 어떻게 해석하겠어요? 그 분의 잘못이겠어요? 그분들 부모의 잘못이겠어요?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면 부 모나 아이의 잘못이라고 덮어 씌워놓고 보니까 엄 청난 고통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무거워지는 거 죠. 가장 먼저 아셔야 하는 것은 부모의 잘못도 아 이의 잘못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 대학 병원에서 소아암 어린이를 돌보는 의사 선생님이 가끔 이런 말씀을 하세요. 제가 일 년에 두 번, 사월 초파일과 크리스마스 때 성금이 모아 지면 아이들 수술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때마다 교회 장로님이기도 한 그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사람을 물건에 비유하는 게 조금 그렇지만, 자동차나 물건이 공장에서 나올 때 불량 품이 하나씩 나오죠? 생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발생하듯이 사람도 장애가 오거나 백혈병 에 걸리는 인자들이 하나씩 나오는 거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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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그러니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고, 따 라서 사회 전체, 공동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 예요. 특히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소아암을 앓는 아이들이 그들 부모의 몫만은 아니라는 거죠.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국가가 그런 것을 다 해 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거의 전신마비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 다고 생각했던 아이였는데, 뇌 말고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이 부모가, 특히 엄마가 어떤 결단을 내렸느냐 하면요, 이 엄마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만 돌보기로 한 거예요.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죠. 아이가 자기 힘으로 해내도록 한 겁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에게 올인해야 한다는 생 각을 하고 있잖아요? 그것이 부모로서 최고 점수 를 받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러나 사실 “밥은 네 가 떠먹도록 해” “이 옷은 네가 입도록 해” “똥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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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가서라도 싸도록 해” 이런 역할만 가르치면 되는 거예요. 그 나머지는 애가 하도록 기회를 주는 거 죠. 그래야 그 아이는 자신의 장애를 어떻게 극복 할지 터득하게 된다는 거죠. 그건 부모 몫이 아니 에요. 부모는 보조만 해주면 됩니다. 그런데 이 모 든 것을 부모가 해결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결 국 마음이 고갈되는 거죠. 마음 안에 산소가 모자 라게 되는 거예요. 어려우시겠지만 그 부분을 그렇 게 정리를 해보시면 좋겠다 싶어요. 어떻게 하다가 아이가 그렇게 태어났지만 그것 을 탓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미 이런 모습으로 태 어난 것이 우리 아이예요. 장애가 있고 보기 싫게 태어났다고 해서 내 자식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 부모에게 장애가 있다고 해서 자식이 “내 부모 아 니야” 하고 말할 수 없는 거고요. 이미 두 분은 아이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지쳐가면서도 서로 격려하고, 저는 그 힘만으로도 충분히 지금의 그 난관을 헤쳐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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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이 세상에는 완벽한 가정이란 것은 없거든요. 비록 완벽을 꿈꾸 지만, 완벽할 수 없습니다. 완벽은 그저 신기루와 같은 거예요. 환상이죠. 내 아이가 완벽한 아이였 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고통을 불러들인다는 것 을 인식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두 분께 아이로부터 객관적으로 떨어지라 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픈 아이를 위해서 온전히 정신을 다 쏟느라 세 명의 나머지 아이들을 돌볼 여력이 없게 된다면 지혜로운 게 아닙니다. 장애가 있건 없건 모든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 아야 해요. 똑같이 관심을 주세요. 아픈 아이에게 도 똑같이 관심을 주세요. 네 등분을 하세요. 똑같 은 사랑을 받아서 저 아이가 살아남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할 때는 본인의 몫인 거예요. 야멸차게 들릴지는 모르나 그게 법칙이에요. 네 명의 아이에게 20퍼센트씩 똑같이 분배를 해 서 사랑을 주시고, 나머지 20퍼센트는 두 분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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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으로 쓰세요. 그게 현명한 처사라고 저는 생각 해요. 울면 젖을 줄 수는 있지만, 울어도 안 될 때 는 멈출 줄도 알아야 하고, 부모에게 요구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픈 아이도 터득해 가야 합 니다. 아까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말씀드렸던 외국의 그 아이는 1급 장애아였어요. 그 아이가 매우 성 공적인 삶을 살고, 철인 3종 경기까지 출전해서 상 까지 받았는데 그 아이 엄마가 인터뷰에서 그러대 요. “나는 모든 걸 아이가 하도록 했습니다. 자기 몫이니까요.” 이처럼 우유 줄 시간에 우유 주고, 옷 빨아줘야 하면 옷 빨아주고, 재워야 되는 시간에는 재우고, 그 나머지는 다 아이 스스로 해야 되는 거 예요. 아이는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었고, 그러는 동안 자기 안에 있던 엄청 난 힘이 솟구쳐 나온 거죠. 그 힘이 김한일 님 아이 에게도 잠재력으로 숨어 있을 거예요. 그 힘이 나올 수 있도록 보조 역할만 해주시면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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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끔찍한 일, 상상하기 싫은 일, 불행한 일 을 마주할 때에는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 인 태도잖아요? 불가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정 말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텐 데…… 하는 일이 생기면 공을 들여라.” 언제 공을 들이겠어요? 그런 순간에 공을 들이라는 겁니다. 애가 건강하고 예쁘면 공 들일 일이 없잖아요. 자 기가 알아서 잘 커갈 테니까요. 지금 두 분에게 남이 하지 못할 일이 왔다는 것 은 공을 들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한 마 음으로 공을 들이세요. 공을 들이면서 이것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지, 그러다 보면 참모습이 드러날 겁니다. 세상을 향해 원망하거나, 부부 사이에 자 꾸 금이 가거나, 자꾸 빗나간다는 것은 탓을 한다 는 거잖아요? 너 때문에, 나 때문에 하고 탓을 하 는 거예요. 그 탓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탓을 하다보면 신神에게까지 분 노하게 돼요. “당신이 뭔데 내 자식을 이렇게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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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게 한 거야? 당신 능력 있다며? 전지전능하다며? 그렇게 전지전능한데 왜 내 아이는 이렇게 태어나 게 한 거야?” 이렇게 신한테 화풀이하게 되는 거예 요. 그러면 만사가 다 불행해집니다. 신에게 화풀이할 정도의 일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에게 닥친 일, 내 아이에게 닥친 일 을 고통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세상에는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지만, 그것들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 들이 많아요. 아까 목사님이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 잖아요. “당신들 성장시키기 위해서 왔다!” 그것 외 에는 없어요. 그렇지만 고통의 한가운데 있을 때 는 이런 말이 안 들리죠. “성장은 무슨? 내가 이렇 게 마음이 쪼그라들어 있는데. 밥도 못 먹고, 소화 도 안 되고, 우울하고, 잠도 못 자는데, 무슨 성장 을 해?” 아마 이런 마음이 드실 거예요. 그러나 본 인들 앞에 ‘성장’이라는 메시지가 당도해 있는데 못 보고 있는 겁니다. 우편배달부에게 우편이 왔는 데 못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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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제가 두 분께는 20퍼센트씩 분배를 하시라 고 했는데, 두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말과 행 동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라는, 남에게 전가하지 말라는 거예요. “내가 임신했을 때 당신이 나를 속 상하게 해서 이렇게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 거 야.” 이렇게 남편을 원망할 수도 있고요, 또 남편은 “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더 잘해? 뭘 더 잘해야 하 는데? 그게 내 탓이야?” 이렇게 되는 거죠. 우리는 아무 영양가 없는, 서로에 대한 공격을 반복하며 살기 쉽습니다. 이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두 분은 이렇게 하세요. “음, 우리 아이 가 장애가 있어. 장애 있는 거 사실이고, 많이 아 파.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 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어.” 이렇게 하는 것이 책임지는 겁니다. 그리고 두 분에게는 이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네 요. 티베트에서 수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명상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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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법인데, 통렌tongren 수행법이라는 게 있어요. 빛 과 사랑을 주고받기인데요, 숨을 들이쉴 때 고통스 러운 상황을 다 빨아들인다고 상상하며 숨을 쉬는 거예요. 아이가 겪고 있는 고통을 숨을 쉴 때 다 빨 아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뇌와 고통이 내 호흡 에 다 빨려 들어오게 말이지요. 그리고 숨을 내뱉 을 때는 온 세상에 빛과 사랑을 내뿜는다고 상상하 세요. 이게 공을 들이는 겁니다. 지금 내게 닥친 일 로 인하여 내가 들일 수 있는 공. 흔히는 들숨을 쉬 면서 좋은 것을 빨아들이라고 그러죠. 그리고 숨을 내보낼 때 내 안에 있는 온갖 나쁜 것을 내보내라 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통렌 수행법은 반대예요. 그냥 고통을 다 빨아들이는 겁니다. 엄마 아빠가 마주앉아서 동시에 숨을 쫙 빨아들 이세요. 남김없이 온전히 다 빨아들이세요. 그리 고 숨을 내쉬는 순간 온 세상을 향해 빛과 사랑만 을 내보낸다고 상상하세요. 그걸 매일 반복해 보세 요. 그렇게 하다 보면 신이 감동합니다. 모든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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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자신이 다 빨아들이겠다는데 어떻게 신이 안 돌 봐줄 수 있겠습니까? 부처는 바로 그 자리에 있습 니다. 모든 고통을 다 내가 받아들이겠다는 사람에 게는 고통을 주지 않아요. 고통을 안 받아들이겠다 고 도망가는 사람에게 고통이 오는 거죠. 내가 지금 겪는 고통과 고통을 겪는 대상에게 집 중을 하면서 올라오는 감정은 이렇게 처리해 보세 요. 불쾌하고, 나쁘고, 속상하고, 속이 터질 것 같 고, 분노심이 일고 하는 그런 감정을 우선 다 빨아 들인 뒤 새어나가지 못하게 모든 구멍을 다 막아 요. 눈, 코, 입, 항문까지 불기운이 나가지 못하도 록 완전히 막으세요. 그러고 난 뒤 숨을 내쉴 때 모 든 불기운이 피부를 통해서 사방으로 다 빠져나가 게 하세요.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머릿속에서 맴 돌던 고통들이 몸을 통해서 땀구멍으로 다 빠져나 가게 됩니다.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아주 작은 양만큼 의 사랑만으로도 온 세상을 치유할 수 있어요.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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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쉴 때 들이마시고 내쉬는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이 공기를 무게로 따지면 몇 그램이나 되겠어요? 그러나 그 작은 한 줌의 호흡만으로도 저 아이의 고통도, 모든 세상의 고통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두 분이 빛과 사랑을 주고받기―통렌 수행법으 로 모든 고통, 분노, 서로 지쳐가는 것, 피곤한 것, 힘든 것, 인생 그만두고 싶은 것 등 모든 감정을 들 이마셔 보세요. 탓하지 말고요. 아까 목사님께서 저항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중요한 포인트 예요.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세요. 온 호흡으로 다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내보내는 것은 오직 사랑 과 빛만 내보내세요. 물론 지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두 분에 게는 그런 능력이 있어서 저 아이가 온 것이고, 세 분이 합작품으로 그 일을 일구어가야 함으로 해서 인연이 되신 겁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말씀 나누도 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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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씨 부부와의 대화

“숨 쉬는 매순간이 고통스럽습니다”

“미워하고 저주할 것인가 한 줄기 희망의 동아줄을 잡을 것인가, 선택은 내게 달렸습니다”


정목_ 네, 김진 님은 사연 적어주신 것을 보면서 제가

직접 이야기를 해볼게요. 본인이 쓰신 대로 말해도 될까요? 아니면 하지 말까요? 김진_ 하십시오. 다 지나간 일인데요, 뭐. 정목_ 저런 분을 남편으로 맞이하고 계신다는 것은 굉

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잘못과 허물 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굉장히 부끄러운 일임에 도 남에게 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여러분 들 잘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이런 사람, 살면서 만 나기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제가 상담하면서도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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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은 많이 못 봤어요. 제 인생에서 지금까지 딱 세 명을 봤는데, 오늘 이분까지 네 분을 뵙게 되네 요. 외도를 하신 적이 있으셨어요. 그렇죠? 김진_ 그래도 그건 좀 작게 이야기하셔도 되는데…… (일동 웃음)

정목_ 아, ‘삐리리’ 처리를 할까요?(웃음) 하여튼 그러다

보니까 아내분이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그래서 자궁내막증 수술을 하셨어요. 김진 아내_ 네, 두 번 했습니다. 첫 번째 수술이 7년 전,

두 번째 수술을 한 것이 5년 전이에요. 정목_ 네, 남편분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

요. 또 빚까지 지게 돼서 아내분이 속상하고 배신 감을 느껴서 몸에 병으로 나타난 것 같은데요, 지 금 빚이 계속 남아 있는 상태인가요? 김진_ 네.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다단계 사업을 한다고

하다가 억대의 빚을 지고, 집에 차압도 들어와서 유체동산有體動産을 모두 가져가는 사이 아내는 첫 번째 자궁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하 단칸방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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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와서 두 번째 수술을 받았고요. 지금은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활 은 해야 하니까 집사람이 대출을 좀 많이 받았죠. 지금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는 분의 도움으로 취직도 했고요. 어쨌든 저 때문에 아내에게 병이 생겼고, 아내는 더더구나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해 마음의 병까 지 깊어진 듯합니다. 제가 미안하다고 말을 하지 만, 마음속 깊이 응어리진 것이 쉽게 풀리지는 않 겠지요. 게다가 이 나이에 지하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것도 싫을 거구요. 이른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거죠.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얼마 전에도 가슴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가자 고 하니까 안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혹시라도 결 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또 돈이 들어가니까 그렇겠 죠, 뭐. 정목_ 지금 제일 힘드신 게 돈이에요? 김진_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하지만 집사람은 그렇게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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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살면서 계속 나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못해지고 있으니까요. 이현주_ 그건 뭐, 삶의 기준에 따라 다른 거니까……

지금 얘기를 듣다보니까 생각나는 게 두 가지 있 어요. 하나는 우리 어머니 얘긴데, 어머니가 남편 을, 그러니까 제 아버지죠, 서른다섯에 여의시고, 그 뒤에 제 형이 또 사고로 죽었어요. 맏아들이 죽 자 남편을 떠나보낸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상처를 어머니가 받으셨던 것 같아요. 굉장히 괴로워하셨 어요. 매일같이 형 생각뿐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가난해서 형한테 못해준 것들이 생 각나셨던 모양이에요. 추운 겨울에 따뜻한 옷 못 입힌 것, 공부 잘하는 애를 상급 학교에 못 보낸 것, 이런 것들이 가슴에 꽉 차 있어서 몇 달이 지났는데 도 힘들어하셨어요. 여북했으면 내가 하루는 어머 니 무릎을 치면서 “엄마, 나도 있잖아”라고 했다니 까요. 내 밑으로 동생이 둘 있는데, 삼남매가 안 보 이는 거예요, 머리에 죽은 자식만 꽉 차 있어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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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까 이미 없는 건데, 없는 것이 머리를 꽉 채우 고 있고, 그래서 있는 것들이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때가 되니까 다시 어머니가 우리에게로 돌아오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시 생활이 정상으 로 돌아간 것 같아요. 형에 대한 어머니의 슬픔도 많이 줄어들고요. 우리가 보통 과거지사, 과거지사 하는데 사실 과거는 없는 거거든요. 혹시 지금도 ‘그런 거’ 그 ‘삐리리’ 하고 있나요? 김진_ 지금은 안 합니다. 이현주_ 지금 하고 있다면 문제가 돼요. 그럼 내가 다

른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일동 웃음) 그러니까 그 것도 기억이라는 형태로만 남아 있을 뿐이에요. 우 리 형이 죽어서 없는 것처럼. 없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이 우리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어요. 아마도 부인의 머릿속에도 계속 남아 있을 거예 요. 없는 것이 있는 것을 몰아내는 거죠. 지금 자기 남편이 옆에 있는데, 잘생기고 몸도 튼튼하고 돈도 잘 벌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옆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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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데, 과거의 일로 인해서 지금의 남편이 안 보이 는 거죠. 또 하나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도 마흔 살 때 한 번 ‘삐리리’를 했거든.(일동 웃음) 한 석 달을 그 랬는데, 그러면서 내가 아주 큰 걸 배웠어요. 그게 뭐냐면 세상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관계를 맺지 만 사랑 아닌 것이 많다는 겁니다. 그 중에서 가장 고약한 것이 가짜 사랑이에요. 가짜 사랑의 특징이 뭐냐면 상대방을 움켜잡으려는 거다, 그걸 내가 배 웠어요. 그것을 배우는 데 비싼 등록금을 치렀지요. 이건 사랑 같지만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잘 배웠 기 때문에 정리할 수 있었어요. 그래도 그게 쉽지 는 않더군요. 상대적인 거니까. 내가 놓는다고 해 서 놓아지는 게 아니야.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서 아내에게 돌아왔지요. 사실 돌아왔다는 말도 나한 테는 억울해. 나는 떠나본 적이 없거든.(일동 웃음) 그래도 돌아온 건 돌아온 거죠. 그때 아내가 나를 받아줬어요. 그때 아내에게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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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않았고, 당신이 어떻게 나를 다시 받아줬는 가 하는 직접적인 대화를 한 적도 없어요. 그러나 그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는 걸 내가 들었어 요. 뭐냐 하니까 “나는 내 남편하고 맞지 않는 것도 많고, 가치관도 다르고, 여러 가지가 참 묘하게 다 른 인간들끼리 만났다. 하나도 일치되는 것이 없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남편 곁에 있어야 하 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저 사람은 다른 건 몰라 도 진실하게 살려고 한다. 정직하게 살려고 한다. 되든 안 되든 자기가 말한 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이다. 그것 하나만은 인정 안 할 수 없다.” 이 런 얘기를 어떤 후배한테 하는 걸 내가 엿들은 적 이 있거든.(웃음) 우리가 용서라는 말을 하죠? 용서라는 말이 뭐냐 하면 과거가 나를 붙잡고 있는데 더 이상 못 붙잡 게 내가 놓아버리는 겁니다. 내가 X를 잡으면 내가 그 X한테 잡혀요. 그게 바로 집착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이 집착에서 해방되는 것이 용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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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요. 용서라는 과정을 통해서 집착에서 벗어나는 거죠. 그게 얼마만큼 좋은 건지는 해본 사람만이 알아요. 말로 충분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부인이 어떻게 해서든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목_ 그래요. 지금 사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

들이 대한민국에 많은 걸로 알아요. 제게 상담받은 분들 중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정 하는 분들은 제가 잘 보지 못했어요. 올드 팝송 중에 〈스탠드 바이 유어 맨stand by your man〉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 노래 가사가 남편

이 살짝 외도를 했거나 잠깐 한눈을 팔았을 때 진 정으로 이 사람을 사랑한다면 당신 옆에 있도록 하 라, 이해하라는 내용이에요. 결국 그 사람은 당신 의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고 쉽게 말해서 남자들은 좀 철이 없다는 식이에요. 결혼을 하면 아내는 여자이기만 한 것이 아니죠? 아이에게는 엄마이면서 남편에게는 아내고 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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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겐 며느리가 되면서,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경험 하게 됩니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여자, 남자예요. 결혼 전에는 여자라는 아이덴티티가 더 크죠. 그러 나 결혼을 하고 나면 어머니의 품성이 더 커집니다. 여성은 그렇게 자신을 완성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 결혼을 하는 순간 남편은 또 하나의 아들이 됩니다. 큰아들이죠. 다들 그렇게 말하잖 아요? 남자들이 굉장히 똑똑하고 유능하고, 그래 서 사회에 나가서 뭘 잘하는 것 같지만 어떤 일을 저질렀을 때에는 여성들이 그걸 감당하고 해결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사실 김진 님뿐만 아니 라 누구랄 것도 없이 세상의 모든 남성들이 다 그 렇다고 보면 될 거예요. 그건 죄도 아니고, 나쁜 것 도 아니고,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만 우리 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보니까 도덕적으로 윤 리적으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사람이 사람 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이게 도덕과 윤리와는 관계 없이 일어나는 거예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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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괜찮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순간에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 겁니다. 절에 오는 보살님들이 그런 상담을 많이 하시는 데, 그럴 때 제가 이런 말을 해요. 여자이기를 포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어 머니의 품성으로 돌아가라고요. 물론 내 남편에게 아름다운 아내이고 싶고 매력적인 여자이고 싶겠 죠. 그런데 그런 것을 통해 무언가를 완성해 가는 것보다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완성해 가게 된다는 것을 여성들은 해가 갈수록 느 끼시리라 봅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팝송에서도 그 런 남편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라고 하죠. 그래서 ‘스탠드 바이 유어 맨’, 당신 옆에 서 있는 그 남자를 이해하라, 그리고 감싸주라는 겁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만이 할 수 있다는 거죠. 김진 아내_ 저희 신랑은 자신의 외도 때문에 제가 힘들

어하는 거라고 오해를 하는데요, 물론 원인은 그것 때문이기는 해요. 보통의 경우는 빚을 지거나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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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하거나 그런 일들이 따로따로 발생하는데 저 희는 그것들이 동시에 왔어요. 소설 속에서나 보 던 일들이 제게도 일어난 거죠. 압류가 되고 차압 이 들어와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 제가 법원을 쫓 아 다녔고, 집달관이 와서 경매 붙이는 순간까지의 시간은 정말 온몸에 피가 다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 어요. 아이들이 알까 늘 긴장했어요. 당시에는 무 슨 정신으로 견뎌냈는지를 모르겠어요. 정말 꿋꿋 이 잘 견뎌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인 것 같아요.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까지 남아 있 어요. 그 상처가 너무 깊어서 모든 순간들이, 숨 쉬 는 순간순간마저 고통이고 지금도 밤에 잘 때는 제 발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라게 돼요. 그렇다고 어디다 얘기를 할 수도 없어요. 결혼도 반대가 심했는데 제가 우겨서 했기 때문에 친정에 는 더더구나 말을 못했고, 사실 더 상처를 받았던 것은 시댁과의 관계 때문이에요. 신랑한테는 더 퍼 부었겠지만, 제가 일하는 직장으로 시누이가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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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지. 왜 내 동생을 건 드리냐?” 거의 이런 식이었거든요. 그래도 그런 건 다 괜찮아요. 다 지나갔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으 로서는 제가 그 트라우마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는 게 문제예요. 작년에 저희 회사 직원이 자살을 했어요. 그 뒤 로 딱 일 년이 지난 날, 그 동료의 후배가 똑같이 자살을 한 거예요. 그것도 곧바로 발견된 것도 아 니고 한 달이 지나서야 발견이 됐어요. 수의를 못 입힐 만큼 상한 채로. 그런데 그 사건이 저한테는 크게 와 닿았나 봐 요. 차마 얘기는 못했지만 두 주 전에는 제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를까봐 너무 무서운 거예요. 직장에 출근하려고 현관문 앞에 섰는데, 현관문을 못 열겠 더라고요. 그렇다고 집에 있으면 아이들에게 절대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 같은 행동들이 나올까봐 겁 이 나고…… 나가지도, 집에 있지도 못하겠는 상태 로 한동안을 서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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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성당을 나가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무언가 다가갈 수 없는 마음의 벽 같은 게 느껴져서 그걸 깨기가 쉽지 않아요. 밝게 행동을 하려고 하는데도 사람들과 말 한 마디도 섞기가 싫고요. 사람들이 얘기를 시키면 웃으면서 말하지만 어떤 때 보면 또 다른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너는 가짜 다. 내가 진짜다. 너는 가짜다. 내가 진짜다’ 이러 면서요. 저의 본모습이 보이질 않아요. 살아있는 송장이에요. 이렇게 숨 쉬는 순간순간이 너무 고통 스러워요. 극복하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 르겠어요. 정목_ 숨 쉬는 매순간이 너무 고통스럽고 앞이 하나도

안 보이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잘 아시겠 지만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그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빛은 더 반짝이잖아요. 극도 의 고통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복도 따로 떨 어져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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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힘들게 해서 병도 났고, 시댁 식구들의 모욕적인 말, 비판적인 말 때문에도 많이 힘들어하 셨어요. 한마디로 용서가 안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용서가 안 되는 분노심을 자기 안에 가둬놓고, 자 기가 교육받은 대로 혹은 양심으로 그걸 꾹 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분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착한 사람, 괜찮은 사람 콤플렉스를 버리시라고! 착하지 않아도 되고요, 인정받지 않아도 돼요. 그런 것 아 니어도 지금 충분히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요. 자기 가 만들어놓은 괜찮은 사람의 이미지에 끌려가다 보면 어깨가 무거워질 뿐 아니라 만에 하나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면 혼란이 옵니다. 제가 볼 때는 지금 다른 고통을 겪고 계시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놓은 자기 자화상이 무너지 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앓고 계시는 걸로 보여요. 그것 무너뜨려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자식도 부모 가 어떤 고통 속에 있는지, 화가 나고 힘들 때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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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들려주고 보여줘야 차라리 두렵지 않아요. 물론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안 하는 게 좋지만, 자신의 한계 상황을 넘어서고 있을 때 그걸 누르려 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본인 안에서 폭발하려는 마 음이 커집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어디로 몰고 가느 냐, 바로 죽음으로 몰아가요. 어리석은 행동이 될 수 있어요. 제가 보기에 굉장히 열심히 살아오신 분으로 보 입니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그래요. 성실 하게 살아오셨을 것 같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지 도 않고, 남한테 싫은 소리 듣지도 않을 분으로 보 여요. 성실하게 살아온 것만큼 일가를 이루었던 분 인데 한순간에 재산이 다 날아갔어요. 다 잃어버 리니까 지금 눈앞이 얼마나 깜깜하겠습니까? 정말 하나도 안 보이죠. 재산이 우리 인생에서 다는 아 니라고 하나 그것이 우리 인생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지요. 그런데 그것이 내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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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으로 없어진 것이 아니라 내 옆에 있는 다른 사 람의 잘못으로 없어졌을 때 분노가 폭발하는 거예 요. 너무 마음이 아프죠. 자, 그러나 이미 상황은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식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지요. 내가 여기서 분노하면서, 나를 미워하면서 저 사람을 저 주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가운데서도 내 스스로 한 줄기 희망의 동 아줄을 잡을 것인가, 이 선택은 내가 해야 하는 겁 니다. 쓰나미가 오고, 지진이 일어나고, 일본의 경우는 원전 사고까지 겹쳐 모든 것을 다 잃었어요. 건질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온 국민이 불안해하고 초조 해하고, 전 재산을 잃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 요. 가진 것은 고사하고 자기 생명줄 또한 연명할 수 있을지조차 보장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웃음 을 잃지 않고 다시 하나씩 일구어가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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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서 살면서 많 은 것을 일굽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 릴 수도 있어요. 목사님 말씀처럼 우리에게 확실한 건 죽음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살면서 한순간 에 이룰 수도 있고 또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습니 다. 그런데도 그것을 붙드느라고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고 그러죠. 이미 떠났어요. 차압 들어왔고 다 나가버렸습니 다. 내 것 아니에요. 중요한 사실은요, 내가 잘 살 았든 못 살았든 관계없이 이 우주는 내 것이 아닌 것은 전부 회수해 갑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을 깨 닫게 하기 위해서…… 그 사람이 지금 재산이 있으 면 안 될 시기이면 재산을 회수하더라고요. 그 재 산이 사라졌을 때 다른 걸 봐야 하는 거예요. 그 능 력이 바로 당신에게 있는 거예요. 우주는 그 능력 을 보고 있는 거예요. 이현주_ 아멘!(일동 웃음) 정목_ 우주는 당신의 모든 재산을 다 가져가고 이런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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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린 고통과 아픔을 주면서 그걸 극복해 나아갈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는 겁니다. 당신 은 원전 피폭을 당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런 상 황 속에서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에게 절 체절명의 고통이 올 때는 나보다 더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겨보세요. 이게 기도예요. 그 기도는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문제에만 빠 져 있으면 온 세상이 하나도 안 보여요. 이것도 안 보이고, 저것도 안 보입니다. 손해예요. 극도의 고 통이 밀려올 때 그 어둠은 지금 별을 보라고 하는 메시지입니다. 게슈탈트 이론이라는 게 있는데, 이 이론은 별 다른 게 아니라 낮과 밤을 한 덩어리로 보는 겁니 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은 더 밝잖아요. 고통이 몰 려올수록 당신 안에 사랑과 이해와 용서의 힘이 솟 구쳐오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비집고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당신이 분노라고 하는 것으로 눌러 놓고 있어서 그래요. ‘적어도 자식에게 부모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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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모습을 보이면 안 돼. 내가 재산도 잃었는데 이 미지까지 버려? 이것은 버릴 수 없어’ 하는 그 집착 만 버려보세요.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버리면 됩니 다. 그러면 소생하실 수 있습니다. 능력 있어 보이시고요, 잘하실 수 있습니다. 맨 땅에서 시작하세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그리 고 남편과 다시 손을 잡고 가세요. 남편의 잘못을 용서한다 해도 기억에는 남아 있을 거예요. 기억 자체를 없앨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기억은 있지 만, 이 사람 데리고 가야 됩니다. 손잡고 가셔야 돼 요.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인 것이 좋잖아요? 그리 고 그 힘든 시간을 견디어왔고, 지금 같이 살고 계 시잖아요. 그것은 용서를 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 예요. 제가 볼 때 이 남편분 객관적으로 괜찮은 분입니 다. 당신도 아주 괜찮은 사람이고요. 자기에게 “나 는 점점 성장하고 있다”라고 긍정의 힘을 주세요. 빚에 떠밀리고, 숨이 막혀오고, 현관문조차 열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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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두려움이 몰려올 때, 물 한 방울 없는 아프리 카 같은 곳에 사는, 이 지구촌 10억 명이 넘는 인구 를 한번 떠올려보시고, 원전 사고 때문에 모든 것 을 상실하고도 그 땅을 벗어날 수도 없는 사람들을 떠올려보세요.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는데, 나는 이것만으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내가 이 세상 에 올 때 뭘 가지고 온 게 있기나 한가? 그래,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다시 시작해 보자. 내 안에는 그런 힘이 있지. 겸손하고 겸허한 자세로 하나씩 이루어 가 보자’ 이렇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엄마가 고통을 겪고 있 다는 사실을 남편과 자식에게도 말씀하세요. “엄 마가 죽을 만큼 힘들다. 우울하고 그만 살고 싶다 는 생각마저 든 때도 있다”라고 말하세요. 그런데 “내가 너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산다”는 말은 절 대 하지 마세요. ‘너희들 때문에’라는 말을 자식들 은 전혀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냥 나를 위해 사 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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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세상은 연극 무대라는 말이 있어요. 당신에게는 아주 괜찮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한순간 재산을 다 잃어버리는 각 본을 연기중에 있어요. 그리고 다시 일구기 시작하 는, 지금 그 시점에 와 있는 겁니다. 두 분은 멋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새롭게 다시 시작한다는 건 또 다른 희망 이지요. 절망이 아니에요. 장미꽃을 볼 때 가시를 먼저 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들은 “세상에, 저 가시 좀 봐” 이러지요. 하지만 그 수많은 가시를 뚫 고 장미를 보는 사람이 있어요. 두 분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웃으니까 무척 이쁘잖아요. 자기 가슴에 희망 의 불을 밝혀주세요. 당신은 별보다 꽃보다 아름 다운 사람이에요. 얼마나 당신이 소중한 사람인지 를 다시 한 번 일깨우면서 손을 잡고 함께 일어나 세요. 두려울 게 없습니다. 가족이 함께하잖아요. 그것만 기억해 주세요. 착한 사람 되려고 노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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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요. 인정받으려는 사람이 되지 마세요. 그 콤 플렉스가 자신의 발목을 자꾸 붙잡습니다. 있는 그 대로의 모습을 보여도 괜찮아요. 이현주_ 잠깐, 하나 말씀드릴 게 생각났는데, 아까 부인

이 말하기를 남편이 실수한 것 때문에 아픈 게 아 니라고, 남편이 오해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남편분 이 그 오해를 이제 풀었으면 좋겠어요. 부인께도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 의 외도 혹은 경제적인 바탕이 나를 아프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봤을 때는 어디 가서 실 컷 울고 싶은데 그걸 못해서 아픈 것 같아요. 소리 도 지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체했을 때 따기 도 하고 약도 먹지만 그걸로 해결이 안 될 때 다 토 하고 나면 괜찮아지거든요. 어디 가서 토하고 싶어 도 토할 데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남편분에게 한 말씀 드립니다. 앞으로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투정을 부릴 때, 그 말이 터무니없어 보이고 듣기에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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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어도 그냥 말없이 듣기만 하셔요. 나는 쓰레기통 이다, 아내가 지금 속에 든 독을 토해내는 중이니 아무 판단 없이 저항하지 말고 그냥 받아주자, 다 토해내면 아내가 달라질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 겠어요. 제발 옳은 소리로 설교나 훈계를 늘어놓지 말고요. 내가 목사로 생활하면서 지난날에 저지른 가장 아픈 실수가 바로 그겁니다. 오물을 토하러 온 사 람에게 성경 말씀을 들먹이며 온갖 설교를 늘어놓 아 그 입을 틀어막은 거예요. 얼마나 미안하고 후 회스러운지 몰라요. 우리 제발 그러지 맙시다. 정목_ 그래서 가족이 있는 거지요. 나눌 수 없다면 그

게 어떻게 가족이에요. 고맙습니다. 어려운 이야 기인데 이렇게 공개적으로 나눠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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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정 씨와의 대화

“방탕하게 살았어요. 쓸모없는 인생 같아서……”

“자기 자신과 화해하세요. 부모님을 용서하세요”


이은정_ 저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마흔

한 살 여성입니다. 작년에 종양 진단을 받았어요. 제가 일하는 직종이 야근과 철야가 잦은 편인데, 어제도 새벽 4시까지 일하다가 좀 자고 여기에 온 겁니다. 저희 쪽 일을 하는 프리랜서들이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유방암 환자도 있고, 뇌종양 환자도 있고, 신장에 문제가 있는 사람도 있 고…… 작년에 저랑 동갑인 친구는 급사를 했고요. 저도 몇 년 전부터 속이 답답하더라고요. 먹든 안 먹든 속이 꽉 찬 듯한 느낌이 들고, 특히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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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그나마 건강하게 지내겠다고 스트레칭을 좀 하면 헛트림을 계속 하게 되고, 몇 년 전에는 교통 사고를 당해서 허리 디스크가 생겼어요. 체하는 것 도 이틀에 한 번꼴로 체하고 이렇게 이상 증세가 있고 신호를 자꾸 보내오길래 안 되겠다 싶어서 작 년에 병원에 가서 거금 80만 원을 들여서 검사를 했어요. 생각지도 못하게 직장 쪽에 종양이 발견됐 는데 다행히 초기라서 수술을 했고, 전이는 안 됐 다고 하더라고요. 그랬는데도 건강이 지금 악화일 로로 치닫고 있어요. 사실 제가 그간 좀 방탕하게 살았거든요. 술도 많이 마시고, 스트레스받는다고 줄담배 피워대 고……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죠. 만으로 마흔 살이 되니까 건강관리공단에서 좀 더 많은 검사를 무료 로 받을 수 있게 해주길래 몇 가지를 더 검사해 봤 는데, 유방에 있는 종양이 꽤 커졌다고 해서 조직 검사를 했고요, 위도 지금 암 전 단계라고 해서 헬 리코박터 제거 치료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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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도 다 그러고 살고, 다행히 저는 모든 게 초 기라서 잘 관리하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도 해보지 만 이래저래 안 좋은 상황이다 보니 많이 우울해지 더라고요. 사실, 저는 인생 자체가 좀 평탄하지 못했습니 다. 저는 제 부모님이 누군지도 몰라요. 지금 홀어 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데, 지금 어머니는 저를 키 워주신 분이세요. 저희 아버지가 외도를 하셨는데,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어머니와 살다가 외국을 가셨어요. 그 전에도 아버지가 외도를 하신 것 같 아요. 어머니 말로는 제가 아버지 자식이 맞다고 하는데, 자세한 언급은 피하시더라고요.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평탄하지 못하게 살았어 요. 부모님 이혼하시고, 중학교 때 그런 사실을 알 게 됐고, 고등학교 때 호적등본을 떼서 사실 관계 를 자세하게 파악을 하고, 성인이 되자마자 호적을 파버리고 내 멋대로 살겠다 그러면서 방황도 많이 했고요. 대학교 때 시위대에 참가해서 화염병도 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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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보고 그랬는데, 어찌 보면 제 주변 상황 자체를 인정하기 싫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계속 그런 식으로 도망 다니면서 저희 어머니 속을 많이 썩혀 드린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도망만 다니면 안 되 겠다 싶어서 취직을 했고, 직장 다니다가 프리랜서 생활을 하게 된 거고요. 제 상황은 어찌 보면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갑갑한 마음이 듭니다. 목사님 말 씀처럼 사람은 태어난 이유가 다 있다고 하는데, 저는 중학교 때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도 대체 나는 이 세상에 왜 왔을까? 아무런 쓸모도 없 는 인생 같은데.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이 런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은 아 직까지도 얻지 못한 상황이고, 그리고 프리랜서로 10년 가까운 시간을 일하다 보니 고민을 나눌 만 한 직장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많이 외 로워요. 어머니의 인생도 많이 힘들었던 터라 어머 니와 상의하기에도 좀 그래요. 이해를 잘 못해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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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오히려 “너는 나보다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잖 아”라고 얘기하시니까요. 저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디서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답답하고 외롭고…… 그렇습니다. 이현주_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년 전 읽은 책이 생각

나는데, 미국 사람이 쓴 거예요. 그 사람이 카터 대통령 때인가 미국을 움직이는 열 사람 중 한 명 으로 뽑힌 사람이에요. 책 제목이 뭐냐면 A Boy Called It인데, 번역을 하자면《이트it로 불린 아이》 입니다. 생모가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다른 형제 는 다 사랑해 주는 것 같은데 자기 이름은 한 번도 안 불러준 거예요.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저 물건’ 이라고 부른 거죠.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이고, 이게 만화책도 아닌 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학대를 해 도 보통 학대를 하는 게 아니에요. 엄마가 뜨거운 난로에 아들 머리를 막 집어넣으려고 한 때도 있었 어요. 그러면 아이는 그 상황에서 버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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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면 때리니까, 일어나는 시간을 최대한 늘려 천천히 일어나며 버티는 거예요. 그렇게 자란 아 이가 미국을 움직이는 열 명 중 한 명이 된 겁니다. 어떤 환경에 처했다고 해서 전부 다 잘못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정목_ 제가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자기 자

신과 화해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70억이 넘는 인구 모두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정 씨 가 가지고 있는 사연은 사실 이 수많은 인구 중에 아마 몇십억은 될 거예요. 자기의 호적에 오른 사 연이 너무 드라마틱하고, 내 삶이 너무 싫고, 그리 고 내가 내 삶을 비난하고 싶고, 내 모습 자체가 싫 으니까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망가뜨리고 싶은 거죠. 자기도 모르게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또 바 로세우고 싶은 욕구도 있습니다. 이것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은 마치 사랑을 찾 으면서 다가오는 사랑에 저항하는 것과 같아요. 지 금 은정 씨의 마음은 욕망과 저항이 동시에 작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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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있어서 한쪽으로는 욕망하면서 끌어들이려 하 고, 다른 한쪽으로는 저항하고 있어요. 그러면 외 로워집니다. 사람이 필요한데 막상 사람이 다가오 면 싫은 거예요. 내 스스로가 도망가는 거예요. 내 모습 자체가 싫기 때문에 누가 내 곁에 가까이 와 서 나에 대해 알까봐 두려운 거예요. 알아도 아무 상관없는데 혼자 비밀인 거죠. 여기에 와서 본격적 으로 얘기를 할 정도인데도, 속으로는 ‘이건 비밀 이야’라고 하는 거죠.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서 알 게 될까봐, 알고 나서 내가 싫다고 떠날까봐, 또 버 려질까 두려운 마음이 자기 안에 자리한 거예요. 그런데 은정 씨, 세상에는 누구도 버릴 사람이 없고, 버려진 사람도 없어요. 부모를 만났건 만나 지 못했건…… 오바마 대통령도 부모님과의 관계 가 원만하거나 평탄하지 않았어요. 어려움 속에 서 자라왔지요.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됐습니 다. 또 오프라 윈프리도 우리가 알다시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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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잠깐 미국에 있을 때 오프라 윈프리에 대해 전해 들었어요. 자기가 강간을 당하고 있을 때 너 무 외로워서 도망가지를 않았대요. 강간당하는 것 이 싫으면서도 그 자체가 또 위로가 되었다는 거 예요. 그러던 어느 날 그렇게 계속 강간을 당하다 가 자신의 의붓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대요. 그러나 너무 커 보이고 무서워서 그럴 수가 없었는데, 자 신이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의붓아버지의 뒷모습 을 보는데, 그렇게 거대하고 엄청난 파워를 가지 고 있는 것 같던 사람이, 자신은 절대 이길 수 없다 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더 래요. 그 초라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 기 자기 아버지를 미워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 답니다. 그때부터 자기 자신을 걱정하기 시작했대 요. ‘내 인생을 성공시켜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결 국 전 세계의 대통령들이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가 는 것이 소원이 될 만큼 멋진 사람으로 자신을 만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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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사실 우리가 정할 수가 없어요. 이런 일 이 왔으면 좋겠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럴 순 없잖아요? 상황은 그냥 왔어요. 그런데 그 상황에 서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내 의지로 정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강간을 당하고 짓밟히면서도 진정한 나를 꽃피울 것인지, 아니면 뿌리째 뽑아 버려서 ‘아이고, 나 같은 게 이 세상에서 무슨 빛을 보겠냐?’며 자신을 그냥 다 무시해 버리든지. 자신 을 고귀하게 하는 건 본인이 하는 거예요. 은정 씨, 자기 자신과 화해했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병이 오는 것은, 아까 자업자득, 인과 응보라는 말을 했는데, 물론 병이 오는 것은 그래 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만 해석할 수도 없어요. 질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굉장히 착한 사람도 많아요. 태어나서 일생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고 사는 사람도 많고요. 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우리의 영적인 성숙과 육체적 성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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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상한 음식을 드시고 식중독 걸려서 토 사곽란 만나서 돌아가셨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의사들이 봤을 때는 너무 웃기는 이야기예요. “완 전한 성자인 붓다가 다른 병도 아니고, 아니 음식 이 상했는지 어땠는지도 못 알아봐? 그 정도의 눈 도 없어? 냄새만 맡아도 알 텐데.”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그런데 그 음식을 먹고 토사곽란을 만나 계 속 설사를 하다가 당신이 돌아가실 곳으로 걸어가 요. 40일을 걸어가서 당신이 돌아가시게 될 쿠시 나가르에 도착을 합니다. 그렇게 걸어가시면서 자신의 상수 제자인 아난 존자에게 “내가 등이 너무 아프다. 도끼로 찍는 것 처럼 아프다”라고 하셨어요. 그 아픔을 호소하시 면서 가사를 깔고 누우시는 모습이《열반경》에 나 와요. 등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프다는데, 그런 붓 다의 아픔이 우리 일반인의 아픔과 어떤 차이가 있 을까요? 부처님에게 아픔은 아픔일 뿐이에요. 그 아픔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진 않아요. 그런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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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은 통증이 나를 괴롭히고 우리는 그것에 저 항합니다. 이게 나를 죽이려고 왔다고 생각해요. 이 해석 때문에 고통스러운 거예요. 부처님은 그렇 게 식중독으로 돌아가셨어요. 뭔가 더 멋있게 돌아 가셔야 할 듯한데, 설사하다가 돌아가신 거잖아요. 성인의 죽음 치고는 너무 평범하잖아요.(일동 웃음) 그리고 성 베르나데르라고 하는 수녀가 발견한 기적의 샘물, 그 기적의 샘물은 먹기만 하면 병이 다 낫는다는데 그것을 발견한 그 성녀는 골암으로 돌아가셨대요. 뼈에 암이 다 퍼져서 파손성 결핵으 로, 그것도 서른다섯 살 젊은 나이에 말이죠. “샘물 만 마시면 병이 낫는데 왜 당신은 안 마셔요?” 이 러겠죠. 왜 암으로 죽느냐며 의아해할 거예요. 20세기 인도의 최고 성자라 불리는 크리슈나무르 티는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또 일본의 스즈 키 선사는 미국에 선禪 풍을 날리셨던 분이에요. 스 즈키 선사는 선불교의 선구자인데 간암으로 돌아가 셨습니다. 그리고 라마나 마하리쉬라는, 제가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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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인도의 성자이기도 한데, 위암으로 돌아 가셨어요. 세상의 성자들이 거의 모두 암으로 돌아 가셨어요.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우주에서 일어나는 이 육체적 질병과 영적인 성 숙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육체라는 건 병 에 걸리기 쉽잖아요. 유전자 자체가 말이죠. 병의 논리는 몸뚱이에요. 이걸 이해해야 해요. 이 몸뚱 이가 황금 몸뚱이가 아니라는 거예요. 머리카락부 터 발끝까지 모든 세포가 다 병에 걸릴 수 있지요. 지금 은정 씨가 걸렸다고 하는 병도 림프종이거 든요. 임파선을 타고 다니면서 혈액이 탁해져서 오 는 병이에요. 혈액만 맑게 해주면 다시 건강한 상 태로 돌아올 수 있는 증상이에요. 무엇보다 은정 씨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을 미워하면 세상에 아무도 당신을 예뻐할 사람이 없어요. 내가 나를 예뻐해야 돼요. 아시겠죠? 은정 씨는 예뻐요. 굉장히 아름다운 사 람이에요. 당신한테는 광이 나고 있잖아요. 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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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있잖아요. 그 빛이 빛나도록 하고 그 사랑의 빛이 다른 사람에게도 뻗어나갈 수 있도록 어머니 와 아버지를 용서하세요. 당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 어요. 또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도 말 못할 사연들이 있었어요. 은정 씨가 여기서 끈을 놓아야 어머니 아버지도 끈을 놓을 수 있어요. 용서는 거 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걸 깨달은 사람이 그 끈을 놓아야 그 끈으로 연결된 조상들도 거기에서 풀려 나면서 모든 문제가 한 번에 끝이 납니다. 당신과 화해하세요. 그 말을 꼭 전해드리고 싶어요. 이현주_ 아까도 말했지만 용서는 있지도 않은 과거의

속박에서 풀려나 오늘의 나를 자유롭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에요. 과거와 미래라는 망상의 세 계에서 헤매고 있는 마음을 인간의 유일한 현실인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틱 낫한 스님은 말씀하셨지요. 부모를 용서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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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용서하라는 거예요. 요 즘 명상 수련을 가르치는 데가 많이 있으니 그런 데서 도움을 받더라도 명상을 깊이 하셨으면 좋겠 네요. 아까 정목 스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지만, 틱낫한 스님도 부모를 용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 은 명상법 하나를 우리한테 소개하셨어요. 틱낫한 스님은 “모든 부모가 한때는 부서지기 쉽 고 상처받기 쉬운 꼬마였다. 우리 부모 또한 어렸 을 때 많은 고통을 겪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들 은 자기 고통을 어떻게 다룰지 그 방법을 몰라서, 그래서 자녀들을 괴롭혔다. 그들은 자기가 겪은 고 통의 희생자였고 그들의 자녀 또한 같은 고통의 희 생자다”라고 하면서, 우리 안에 있는 그 고통을 다 른 것으로 바꿔놓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도 같은 고통을 겪게 될 거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숨을 들이쉬며 내 안에 있는 꼬마 사내아이인 아버지를 보고, 숨을 내쉬면서 내 안에 있는 꼬마 사내아이 인 아버지를 보며 다정하게 웃어주라고 합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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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다시 숨을 들이쉬며 꼬마 사내아이인 아버지 를 보고, 내쉬면서 또 다정하게 웃어주고요. 은정 씨도 이런 방법으로 계속 명상을 한번 해보세요. 아마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진실의 품에 깊이 들어갈수록, 세상에 나를 해치 는 존재는 없고 모두가 나를 돕는다는 사실을 깨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실 용서할 부모라는 게 없는 거지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나를 도운 것일 뿐이니까요. 이런 내용을 말 몇 마디로 다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러니 한 번 용기를 내어 명상의 문을 들 어서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감옥에서 살아본 사람만이 너른 들판의 자유가 어떤 건지 알 수 있 습니다. 은정 씨는 이제 참 자유가 어떤 건지를 배 울 자격을 얻은 것 같아요. 말하자면 자유를 가르 치는 학교의 입학 시험에 합격한 거지요. 앞으로 잘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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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과 함께한 자기 사랑 명상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으세요. 허리를 죽 펴고,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게 하여 양손을 무릎 위에 가볍게 내려놓으세요. 턱은 살짝 숙이시고요. 턱이 허공을 향하면 공상이 밀려오고 지나치게 고개를 숙이면 졸음이 옵니다. 턱을 살짝 당겨서 안쪽으로 밀어 넣으세요. 그러면 서른세 마디 척추가 좍 펴져서 숨이 단전까지 잘 내려갑니다. 다리는 가부좌로 위로 올리시든 내리시든 자유롭게 하세요. 아랫니와 윗니의 긴장을 푸세요. 윗니와 아랫니를 딱딱딱 부딪쳐서 긴장을 풀어보세요. 눈은 조용히 감으셔도 좋고 떠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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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당신의 몸으로 주의를 모아봅니다. 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천천히 숨을 다 토해내세요. 이번에는 숨을 들이마실 때 온몸이 숨을 쉰다고 생각하세요. 온몸으로 호흡하세요. 그리고 온몸으로 숨이 빠져나가게 하세요. 통째로 숨을 쉬고 통째로 내뱉습니다.

남성분들은 코끝으로 주의를 가져가서 숨을 들이쉴 때 바람의 기운이 코로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내쉴 때 바람의 기운이 코로 나가는 걸 느끼세요. 여성분들은 배꼽 밑 단전이 있는 아랫배가 불룩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을 내쉴 때 아랫배가 꺼지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깨의 긴장을 풀고, 앞가슴을 좍 펴세요. 허리와 엉덩이와 허벅지의 긴장감을 살며시 풀어놓으세요.

이 우주 안에 당신 혼자 앉아 있습니다.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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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으로 만든 미소가 몸을 편안하게 이완시켜 줍니다. 몇 번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합니다. 각자의 호흡에 맞춰 숨 쉬는 걸 알아차리세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제가 하는 말을 따라서 속삭여봅니다. 나와 내 가족이, 내 피붙이가, 내 조상이 당신과 당신 가족, 당신의 피붙이, 당신의 조상에게 예부터 지금까지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으로 상처와 고통을 주었다면 부디 용서바랍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금의 그 느낌이 당신이 앉아 있는 주변 사람에게 퍼져나간다고 상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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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화로운 느낌이 이 공간을 지나 이 나라 전체로 퍼져나간다 상상하며 의식을 확대하십시오. 이제 그 느낌이 지구촌 전체로 퍼져나간다 상상하십시오.

당신은 무한한 존재이며 무한한 빛입니다. 당신이 쏘아 보내는 그 빛이 온 세상을 향하여 퍼져나갑니다. 이 우주 안에 있는 생명들 하나하나 모두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하고 행복을 찾고 싶어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다 생각해 보십시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충분히 내쉬십시오. 다시 한 번 온몸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온몸으로 숨을 내쉬어줍니다.

자, 이제 눈을 뜨되 사방을 살피지 마시고, 고요하게 머무는 당신 자신과 함께하세요. 고요히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내려다보세요. 마치 우주 전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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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을 가진 신이 당신을 내려다보듯이.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지금 내가 무엇을 겪고 있든 아무 관계없다고, 그리고 안전하다고, 사랑으로 속삭이고 자비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그 눈길을 느껴보세요.

다시 한 번 온몸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온몸으로 숨을 내쉽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 머물고 있는 그 공간에서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경험하는 자신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모든 것들, 정말 다 괜찮습니다. 자신에게 기회를 주시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의 공간을 넓혀주세요. 당신 자신을 나무라지 마시고. 모든 가능성을 향해 격려와 용기를 보내주시고, 당신을 감싸고 사랑으로 안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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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목사가 아픈 아내와 함께하며 쓴 기도 일기 몇 편

아시다시피 저 오늘 좀 헷갈렸어요. 의사한테서 좋은 소식 들을 거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의사 입에서, 병이 재발했고 이 상태로는 이태쯤 살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저는 ‘좀’이 아니라 ‘많이’ 헷갈렸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예배당에 가서 기도드리자는 생각이 났고, 아내도 동의했지요. 예배당에 꿇어 앉아 기도드리는데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방 네가 기대한 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실망하는 거냐? 그러면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겼다고? 무엇이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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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당신 계획을 이루시는 것이니 오히려 기뻐하라고 사람들에게 말한 자가 누구냐? 그 말은 그냥 한번 해본 소리였더냐?’ ‘예, 압니다. 제 머리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정말 이것이 어째서 좋은 소식인지를 제 몸이 알 수 있도록 주님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리고 저뿐 아니라 집사람도 그걸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네 아내는 내가 알아서 한다. 넌 네 걸음이나 챙겨라.’ ‘예. 주님.’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떠 돌아보니 빙그레 웃음 띤 얼굴로 조용히 앉아 있는 아내가 보였어요. “어떻게 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마음은 많이 슬픈데 그래도 편안해. 앞으로 얼마를 더 살려주실는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안 ‘저’를 맘대로 쓰시라고 말씀드렸어. 이제 비로소 당신이 말하는 ‘영적 수술’이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드네. 식구들한테, 당신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난 괜찮아.” 아내의 이 말을 듣는데, 저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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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그래서 좋은 소식이었구나!”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래, 사실 이태는 관두고 이틀 뒤를 보장할 수 없는 게 우리 목숨이잖아?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 말 그대로 오늘 하루만 살자. 당신 늘 그러고 싶다고 했잖아? 날마다 그날 하루치만 사는 거야. 그리고 우리 몸을 백 프로 당신 뜻대로 쓰시라고 하자.” 주님, 이 모든 일이 당신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좀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저희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주님. 오늘 좋은 소식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주님, 제가 진정한 기적 속에 살면서 수상한 기적을 보려고 했습니다. 두 발로 땅을 걷는 참된 은총 가운데 살면서 물 위로 걷기를 꿈꾸었어요. 밤중에 깨어나지 않고 잠자는 것, 아픈 다리로 절름거리지 않고 산책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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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없이 두 팔 벌려 아이들 껴안는 것, 새벽에 성경 읽으면서 밝아오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 숨 한 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 이 모두가 고맙고 놀라운 기적이요 값없이 주시는 은총이었음을 이제 겨우 짐작합니다. 예, 주님.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의 품을 그리워했네요. 세상에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요? 주님, 고맙습니다.

• 흔히 결혼식장에서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말을 듣는데, 그 말이 잘못되었음을 이제 알겠어요. 죽음은 결코 사랑하는 두 사람을 갈라놓지 못합니다. 어떻게 죽음이 손과 손바닥을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연출인가요? 저는 여전히 지켜봅니다. 저와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눈물 글썽한 두 눈으로 이렇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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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제게도 무엇이 어떻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로 아니 되어도, 주님이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 않아도, 그래도 이제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저와 세상을 위한 최선의 길일 테니까요! 제가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에 구애받는 일 없이 당신이 제게서 이루기로 작정하신 뜻은 이루어질 테니까요. 제가 촛불 하나 밝힌다 해서 태양이 더 밝아질 리 없고, 촛불 하나 끈다 해서 그믐밤이 더 어두워질 리 없으니까요. 무엇이든지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어떤 운명이 저를 기다리고 있든 간에 가슴 열고 기꺼이 받아들이겠나이다. 저를 이럴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든 분 또한 주님이십니다.

• 포천 모현의료센터에 오늘 입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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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여기를 나갈 때 눈을 감고 있을지 뜨고 있을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쪽이든 주님의 결정일 터인즉 저는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내가 이곳을 떠날 때에는 당신이 뜨게 해주려고 세상에 오셨다던 바로 그 ‘눈’을 맑게 떴으면 합니다. 그 ‘눈’ 하나 뜨려고 저희가 세상에 왔고 이런저런 고생을 경험한 게 아닌가요? 저희를 이리로 데려오셔서 고맙습니다, 주님.

• 아무 바라는 것 없습니다, 주님. 당신이 저희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게만 해주신다면, 그것이 의심할 나위 없이 믿겨만 진다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그건 상관없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아 걷는 것 말고 다른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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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비매품입니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다 읽으신 뒤 주위 분들과 돌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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