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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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march
“내가 지코 형이나 바비와 다르다면, 되게 불안하
죠. 왜 나를 욕할까. 그런데 그다음에 이해하게 됐
큐멘터리를 보며 힙합과 영어를 함께 배웠다. 로
다는 거 같아요.” 방탄소년단의 리더 랩몬스터는
어요. 그 사람들이 그럴 수 있겠다고. 진심으로.
우톤에 독특한 억양을 가진 그의 랩도, 머리 좋은
“방황이 심했던” 2년을 보냈다. 데뷔 직후 있었던
그러고 나서 생각했죠. 내 안에 집중해보자.” 그
남자 연예인으로 tvN [문제적 남자]에 출연할 만
행사에서는 언더그라운드 래퍼 비프리가 얼굴을
리고 발표한 믹스테잎의 첫 공개곡 ‘각성’. “아이
큼 화제가 된 영어 실력도 그때 익혔다. 그래서 음
보며 그를 비난했고, Mnet [4가지쇼]에서는 언더
돌인지 아티스트인진 사실 중요한 적 없었지 니
악과 공부 사이에서 갈등했고, 마음껏 음악을 하
그라운드 출신 래퍼와 아이돌 사이의 정체성에
들이 날 보는 시선 그게 나일 뿐이었었지 타이틀
면 불안은 끝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데뷔를 기
대한 질문을 받았다. 지난해 연말 iKON의 바비와
에 연연하고 수식어에 목맸네.”
다리는 시간은 길었고, 언더그라운드 시절 알고
섞인 이 여정의 클라이맥스였다. “굉장히 화가 났
지냈던 누군가는 ‘각성’의 가사처럼 “회사 가더니 나스를 통해 랩을 알았고, 래퍼들의 인터뷰와 다
병신 다 됐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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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던 디스전은 성공과 불안이 혼란스럽게 뒤
이너, 아우터, 팬츠 모두 아크로메틱
은 랩 괴물. 하지만 쏟아지는 남들의 이야기에 불 안해지는 20대 초반. “농담으로 그런 말이 있어 요. ‘I don’t give a fuck’ 하는 사람들이 사실 가장 ‘I do give a fuck’ 한다고. 남 신경 안 쓴다는 사 람이 제일 신경 쓴다는 거예요. 제가 그랬죠.”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는 문학이 결국 “나 는 누구인가?”를 말하는 작업이라는 장면이 나온 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 질문에 답 하지 못한 채 사라지게 됐지만, “나는 누구인가?” 는 언제나 창작의 시작이다. 랩몬스터가 좋아하 는 뮤지션들의 사운드를 바탕으로 랩을 한 믹스 테잎을 내기로 한 것도, 믹스테잎의 커버 이미지 를 흑과 백으로 꾸민 것도 “나는 누구인가?”에 답 하기 위해서였다. “전략 같은 것 다 집어치우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만 생각했죠.” ‘I don’t give a fuck’과 ‘I do give a fuck’ 사이. 그래서 인디아 아 리의 ‘Just Do You’를 듣고 ‘Do you’라는 표현이 계속 마음에 남아 ‘Do You’를 만들었다. “내가 추 락하는 그 순간 내가 손잡아줄 건가”라던 ‘각성’ 이 “그러니까 그냥 너는 니 걸 해”라는 결론의 ‘Do You’로. 쉼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 속에서 10곡이 넘는 믹스테잎을 만드는 것은 어쩌면 오기일 수 도 있었다. 그러나 불안을 바탕으로 시작된 작업 은 하나 하나 곡을 만들어가는 성실함이 더해져 불안한 마음 밑바닥에 붙어 있는 희망을 찾아내 도록 했다. “믹스테잎은 최후의 보루 같은 거예 요. 누가 뭐라고 해도 누구도 이 안쪽으로는 들어 올 수 없는 거예요. 이 선 바깥에서는 계속 고민하 겠지만요. 좋은 음악들을 듣고 좋은 음악을 갈망 한다는 나만의 기준을 갖고 만들었으니까요. 어 쨌든 좋잖아? 그래서 그냥 괜찮아라는 거.” 믹스테잎을 만들면서 [문제적 남자] 같은 예능도 눈치 보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연할 수 있게 됐다. 랩몬스터가 존경하는 타이거 JK가 새 앨범 피처링을 제안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든 ‘농 담’에서 자신의 팬을 ‘빠순이’라 했던 이들에게 그 대로 맞받아쳤다. “홍대 예능쇼에 몇 안 되는 힙수 니들이 느이 그 고정.” “힙합 신도 많은 여자분들 이 음반을 사고 공연을 보러 가잖아요. 그런데 아 이돌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것에 대해 뒤집 어서 말하고 싶었죠. 시장의 현실을 봤을 때 너희 도 크게 다르지 않고, 그분들이 없으면 너희들도 존재할 수 없다고.”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듣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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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은 사람이 스키니 진을 입고 스모키 화장을 한
다는 이유로 비난을 했었다. 그때 랩몬스터는 감 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꽁해” 있었다. 믹스테잎 을 거치며 스스로에 대해 알고 난 후, 그는 이 모든 시선들을 ‘농담’으로 받아칠 수 있었다. ‘각성’에서 자신의 현재를 인정하고, ‘I Believe’처럼 불안 속 에서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본질에 대 해서도 탐구했다. 피아노 하나에만 의지한 ‘목소 리’처럼 형식적인 시도도 했다. 그렇게 자신에 대 한 뜨겁고 혼란스러운 마음을 “차갑고 치밀하게 만든 음악”으로 표현한 뒤에야, 아무런 부담 없 이 ‘농담’을 만들 수 있었다. 하고 싶은 말들을, 구 성은 신경 쓰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자존감이에 요.” ‘각성’으로 시작해 ‘농담’까지, 아이돌 스타가 시간을 쪼개가며 정식 발매되지 않는 믹스테잎을 만들며 얻은 것. 랩몬스터는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Top 2 안에 드 는” 드레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신나 했다. 그 의 새 앨범은 “쉴드는 못 치겠지만” 여전히 좋아 한다. “노래를 잘하지 않아도 보컬을 할 수 있다 는 희망을 줬죠. 하하. 처음 들었을 때 뭐 이런 노 래가 다 있지? 이랬어요. 랩을 잘하기도 하지만 음악으로서 좋아요. 음악을 그림처럼 하나의 느 낌으로 펼쳐놓는 거. 저도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 요.” 언더그라운드 시절에는 좋은 랩에 집중했지 만, 방탄소년단을 함께하며 한 곡으로서의 음악 을 생각하게 됐고, 이제는 랩을 쓰면서도 자신이 그리는 곡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랩으로 가득한 믹스테잎의 곡들에서도 기승전결을 갖춘 드라마 틱한 구성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돌 그룹을 하 며 대중적인 곡 쓰기에 대해 익힌 결과였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때문에 불안했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대신 타인의 시선에 또 불안했다. 불안 과 상처는 고민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고민은 종종 상상치 못한 도약을 가능케 한다. 2년 전,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 혼란 스러웠던 아이돌 그룹의 리더가 ‘Do You’라고 선언할 수 있을 만큼. “불안, 방황, 혼란, 외로 움. 그게 저인 거예요. 팀이 성공하고 솔 로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다른 방황이 시작되겠죠. 그런데 그게 뭐 어때 요? 저는 받아들였는데. 그리고 계속 곡을 쓰겠죠. 불안하지만 그래도 나를 믿으면서.”
이너, 아우터, 팬츠 모두 아크로메틱 스타일리스트 이하정 헤어 건형, 손은희 메이크업 강미, 한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