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9
www.ize.co.kr
2 016 Augu s t
let' s p l ay
! d r a h
사람들이 기대하고 또 예상했던 모습을 유쾌하게 배반하며 자신의 민낯으로 새롭게 사랑받고 있는 배우 윤시윤, 그리고 윤동구에 대한 이야기. photographer Lee Jin Hyuk (KoiWorks) art director jung myoung hee editor Wee Geun Woo
‘1박2일’ 첫 촬영 김준호와의 탁구 대결에서 패배한 이후 탁구를 배운다고 들었다. 기초반에서 레슨을 계속 받고 있긴 한데 JTBC [마녀보감] 후반부 촬영 때 너무 바빠져서 못 갔다. 꼭 준호 형에게 져서 복수하려 시작한 건 아니고, 지금까지 사회체육이라 할 만한 걸 너무 안 해본 것 같아서 기회 삼아 배우고 있다. 외동아들에 배우로서 살다 보니 남들과 뭔가를 같이 하며 노는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런 면에서 생활체육은 남과 함께 하기에 좋은 취미가 될 것 같았다. 가령 탁구채와 탁구대가 있으면 함께 있는 사람에게 탁구나 한 판 칠까, 라고 말할 수 있고 못한다고 빼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면 좋겠다. 그 정도 수준만 되면 탁구를 그만두고 배드민턴을 배울 수도 있고. 혼자 하는 취미를 좋아했던 건 정적인 걸 좋아해서인가 타인과 관계 맺는 걸 싫어해서인가. 사람을 좋아하긴 하는데 혼자 생각하고 그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사람들을 만나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들 위주로 만났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고 다투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다. 그것이 스스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언제, 왜 들었나. ‘1박2일’ 첫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형들이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지고 나도 더 다가가고 싶은데 서로의 교집합이 아직 많지 않았다. 우정이나 사랑 같은 관계가 다 그렇지 않나. 좋아하면 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다양한 교집합을 만들고 싶어지는 것처럼, 나 역시 그런 걸 하고 싶었다. 얼마 전에는 거의 10년 만에 데스크톱 컴퓨터도 구매했다. 형들이 [오버워치]를 한다기에 나도 좀 시작해보려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도 함께 즐길 거리가 없다면 슬프지 않나.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걸로 어울리면 자칫 스스로 생각하는 어떤 기준들이 무너질 수도 있을 텐데. 확실한 건, 내 생각만 그대로 유지하고 살려면 산에 들어가서 글을 써야 할 거다. 직업인으로서 또 대중예술인으로서 부딪히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 부분에 있어 (차)태현이 형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가령 제작진이 요구하는 것 중에 시청자가 보기에도 좀 불편한 게 있을 수 있다. 그러면 태현이 형은 이건 좀 이상하다고 충분히 어필을 한 다음에 제작진이 요구한 것을 또 최선을 다해 한다. 이 사람의 화법 자체가 그렇다. 자기 의견을 개진해도 합치가 잘 안 될 때, 마지막엔 항상 네 생각이 있겠지, 라고 한다. ‘1박2일’은 어느 정도 삶의 방식에 변화를 주는 도전 같은데. ‘1박2일’ 시작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건, 말실수를 해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었다. 나를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해병대 다녀왔다는데 운동에선 굉장히 몸치고,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데 지식은 허접스럽게 얕고. 그런 걸 대중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결국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 익숙해진 촬영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경력을 쌓다가 빵 터지는 작품을 하면 좋겠다는 욕망만 있었던 거지. 그런데 연기라는 것의 첫 번째는 가장 나에 가까운 자연스러움을 카메라에 내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전에는 내 감정과 내 생각이 뭔지 살피기보단 잘해야 한다, 모범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 연기에서도 진짜 내 모습을 못 보여줬는데, 나다움을 보여주기 전에 배우로서 다양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 건 일종의 자만이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을 과감히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가 ‘1박2일’이다. 기대만큼 좋은 동기부여가 되나. 이런 거지. 내가 다이빙을 무서워해서 3m부터 뛰어내리면서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눈 떠보니 10m에서 누가 날 민 거다. (웃음) 첫 촬영부터 예상치도 못하게 집으로 쳐들어와서 내 속옷을 공개하고. 그날 하루는 너무 당황스럽고 아찔했는데, 오히려 그 덕에 내 다짐을 한 방에 실현시켜준 거다. 그날 바로 윤동구가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이 모습 때문에 생기는 미움조차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진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인 건가.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단 생각은 없었지만, 말 그대로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다. 세상에 미움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다만 진짜 내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선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군대에서 그걸 많이 느꼈다.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안에서 이유 없이 미움도 받아보고 철저히 고립되는 경험도 해봤는데, 결국 남에게 미움받고 안 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사랑받는 것이더라. 그게 다수이든 소수이든.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면서 굳이 해병대처럼 힘든 곳을 간 이유가 있나. 사실 군대 가기 싫지. 정말 군대 갈 때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나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 남들보다 편하게 군 생활 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 스무 살 때만 해도 멋지게 다녀오자는 생각을 했는데, 연예인이라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대접을 받다 보니 초심이 많이 흔들리는 거다. 슬슬 주변에서 오는 유혹들이 정말 진지하게 들리고. 그래서 더 반발심에 아, 이러지 말자, 싶었다. 지금 함께하는 소속사 대표님이 나 스무 살 때, 해병대를 다녀오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워낙 겁이 많으니까 그걸 극복하면 좋겠다고. 그때 알았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마음으로 갔던 것 같다. 딱히 멋진 이유는 없다. 배우로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전역할 땐 어땠나. 거의 한 달간은 잠을 못 잤다. 나를 기다려줄까? 당연히 잊었겠지? 연예인으로 활동하던 내 모습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전역 날 잊지 않고 나를 찍으러 와준 기자분들이 너무 감사했다. 와, 이 사람들 바쁠 텐데 뭐 찍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나. 고맙고 부끄러웠다. 그리고 운 좋게 ‘1박2일’과 [마녀보감]을 만나게 된 거고. ‘1박2일’이 새로운 도전이었다면, [마녀보감]은 윤시윤다운 연기를 요구해주는 현장이었다. [마녀보감] 허준의 어떤 면이 윤시윤답다고 느꼈나. 불.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건 불인 것 같다. 타오르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불. 열정은 있지만 그 열정만큼 탄탄한 기반은 부족한, 그럼에도 타고 있는 그런 불완전함. [마녀보감]의 젊은 허준 캐릭터가 내겐 그렇게 보였다. 그 불완전함을 청춘으로 이해해도 될까. 그게 청춘이라고 생각하고, 또한 윤시윤이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난 멋있는 사람이 아닌데 멋있는 척하는 건 아닌 거 같다.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미숙한 청춘이 나이고, 지금의 순간을 잘 살아내고 무르익을 때 어느 순간 멋진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닌데 마치 내가 이미 어른인 것처럼 굴고 어른의 멋을 부리려고 하면 안 되지 않을까. ‘1박2일’에서 이화여자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런 흔들리는 청춘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 오히려 내 또래 중에 너무 안 흔들리는 사람이 많았다. 삶에 대해 다 안다는 것처럼 인생은 원래 이래, 연예인은 다 인맥이야, 회사 빨이야, PD나 국장에게 비비면 돼, 라고 말하고 정작 본인은 별다른 노력을 안 하고, 술 먹고 노는 거에 더 바쁘고. 그런 친구들을 보면서 회의를 느끼다가 군대에 가서 나보다 어린 친구들의 고민을 보며, 아 맞아, 우리 나이란 이런 거지 싶었다. 또 이화여대에 갔을 때 학교를 안내해준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니, 군대 가서 나라 지키는 까까머리 남자애와 똑같은 고민을 하더라. 촬영 30분 전에 강연을 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는데, 딱히 준비할 것도 없이 그냥 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흔들리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됐다. 그렇게 불안한 청춘을 겪어내고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은 뭔가. 내가 정의내리는 어른은,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다. 어릴수록 ‘나’만 중요하지 않나. 내 감정, 내 생각 등등. 어른이라는 건 내가 아닌 이 사람의 마음이 어떨 것인지 고려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난 아직 아닌 거지. (웃음) 여전히 내 세계에 빠져 불안정한 사람이니까
스타일리스트 최정임 헤어 졸리, 소연(에스휴) 메이크업 미주(에스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