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이냐시오의 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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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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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의 벗들

예수회

후원회


표지 글

영원을 향한 소멸 이 땅의 흔적들은 점점 희미해지지만 당신의 존재는 영원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순간의 조각들이었고 순간과 순간의 만남은 지극히도 짧았지만 순간의 소멸은 사라짐이 아니라 궁극의 영원을 향한 발걸음입니다. 당신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사진·글 김우중 스테파노 수사 ‛이냐시오의 벗들’은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지는 순수 종교 잡지입니다. 후원회원과 학교 , 종교기관, 회사 등으로 무료 배포됩니다.

예수회 캄보디아 선교지 방문단 모집 •일

정: 2018년 2월 26일-3월 3일(4박6일)

•방 문 지: 프놈펜 예수회 본부, 뿌삿, 바탐방 주교좌 성당, 시포폰 하비에르 학교 및 예수회 성 당, 시엠립 예수회 센터, 앙코르 와트 등 •예상금액: 125만원(15명기준) •신청마감: 2017년 12월 22일, 선착순 20명 ※상기 여행 요금은 참가인원과 항공료, 환율, 유가 변동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여행 경비에는 세금, 유류 할증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의 및 접수 : 02-536-82266 / 010-9440-8226 유토투어 여행사 김영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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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November

예수회 후원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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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강남) •월례특강(광주) •월례특강(대전) •위령미사 •금요침묵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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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 (분당,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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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단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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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침묵피정

•월례특강 (고양, 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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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부산) •금요침묵피정

•월례특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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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청주) •월례특강(인천) •금요침묵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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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발송작업

C O N T EN T S 04 후원회 동정

행복하여라

임헌옥 신부

06 원로 사제와의 만남

봉사하는 자유

박문수 신부

14 수도자 일기

경계인으로 살아가기

남정수 수사

18 삶의 자리에서

어머니, 이제 하느님 곁에

21 성경대학

사도시대의 삶과 영성

송봉모 신부

24 숨 고르기

인호

배영길 신부

26 캄보디아에서 온 편지

프쭘번 휴가 시작하는 날

권오창 신부

29 일본 그리스도교 역사

일본의 그리스도교 전래 23

구정모 신부

32 이냐시오의 길

카르투시오 수도회와의 인연

김민회 신부

39 교황님 기도지향

아시아 그리스도인들

홍현숙

지형규 수사 3


후원회 동정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그분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자. 행복하여라! 그분의 미소에 웃음 짓는 자. 행복하여라! 그분의 마음에 따뜻해지는 자. 행복하여라! 그대는 그분과 함께하는 자다.

가을이 깊어집니다. 그 깊이만큼 자연의 변화는 확 연해집니다. 푸르렀던 것이 물들고, 물들었던 것이 퇴색 되어집니다. 우리의 삶도 그런 변화에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인생은 지구의 공전 주기인 사 계절의 시간과는 다르게, 더 큰 공전의 주기를 돌고 있 지요. 4


나의 삶은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을까요? 어느 누구는 봄이겠고, 어느 누구는 가을을 맞이하고 있을 것입니다. 생기가 넘치는 봄은 봄의 아름다움이 있고, 여름은 여름의 싱그러움이 있습니다. 알록달록한 수채 화의 가을은 열매들을 거둬들이는 기쁨이 있고, 찬바 람이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겨울도 아름다움을 담고 있습니다. 위령의 날을 준비하며 돌아가신 은인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들은 행복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 니다. 그분들은 주님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삶을 사셨 고, 미소로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가옵 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35-36.40) 임헌옥 가브리엘 신부 | 예수회 후원회 위원장 5


원로 사제와의 만남

봉사하는 자유 - 서강대 이사장 박문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님과 함께

- 신부님께서 한국에 오신지 47 년, 그간 ‘빈민사목 과 거리의 사제 , 거리의 사회학자’로 살아오셨습니다. 이런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준 신부님의 어린 시절이 궁 금합니다. 난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출신인데 그곳은 체코인과 슬라브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어요. 약 300가족 쯤의 보헤미안 사람들이 모이는 본당에 다녔는데, 내가 태어 날 때부터 예수회 입회할 때까지 같은 신부님이었어요. 주임신부님을 정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게 미국식이죠. 신부님도 유럽에서 오신 분이었고, 본당에서 운영하는 8년제 초등학교를 다녔어요. 수녀님들이 가르치셨죠. 6


우리 가족도 그 본당에 오랫동안 열심히 나오는 가족 이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다른 친척들도 있었구 요. 완전히 가톨릭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런 분위기에 서 자랐어요. 친구들도 같은 초등학교 다녔던 친구들 이고 보헤미안 전통과 춤과 노래도 배우고 소풍가서 보 헤미안 전통 음식도 먹구요. 2 차 대전 후에 미국 문화 가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그전엔 민족끼리 뭉쳐 살았지 만, 이젠 다 합쳐서 미국화 되어 가고 있는 시기여서 우 리 세대는 그 흐름을 따라 보헤미안이 아닌 미국인이라 는 인식이 있었어요.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7남매가 한집에 살았 고 옆집에 할머니와 결혼 안 한 고모님 두 분이 같이 살았어요. 고모님들은 프란치스코 제3회에 속하면서 기도하는 사람이었어요. 아버지는 변호사이셨고 젊은 고모님은 비서로 일했 고, 큰 고모님은 할아버지가 만든 보험소개업을 하고 계셨죠. 우리 아주 기쁘게 살았지만 부유하진 않았어 요. 아버지는 특별히 슬라브 민족 노인들의 상속 관련 변호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변론은 시간이 엄청 오 래 걸린 후에 대가를 받아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는 않았어요. 어머니는 독일 계통으로 매우 검소하신 분이 셨어요. 저도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 말다툼하는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무슨 문제 얘기해야 한다면 아이들 앞에서 하지 않고 따로 방에 들어가 하셨어요. 아버지는 법정에서 큰소리 로 변론하는 강하신 분이셨고, 본당 성가대에서 솔로 도 하셨는데 아버지 목소리는 굉장했어요. 어머니는 평 7


화를 만드는 분이셨어요. 제가 7남매 중 5번째인데 형제간의 사이도 좋았어 요. 바로 밑의 남동생과는 처음엔 많이 다퉜는데 큰 경 험이 하나 있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경험을 통 해서 처음으로 하느님을 만났던 거죠. 그날도 동생을 많이 괴롭혀서 동생이 울고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야단 치셨는데 나는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스타일이었어 요. 그런데 그날 밤에 꿈을 꾸었어요. 꿈속에서도 나 는 동생을 계속 때리고 있었고 실제로는 베개를 마구 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꿈에서 깨어나서 울음이 터 진 거예요. 얼마나 울었는지...‘그간 동생을 너무 괴롭 혔구나’비로소 깨달음이 왔어요. 그 순간부터 동생과 싸우지 않았고 친해졌어요. 그게 초등학교 1학년 정도 였을 거예요. 우리 가족은 많이 웃고 함께 있는 거 좋 아했어요. 그 영향을 받아서 갈등 중에 많은 감정이 일 어나고 불안한 것이 없어요. 어릴 때는 상당히 좋았고 매우 행복한 가정이었어요. - 신부님은 초등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 모두 천주교 학교에 다니셨는데 예수회에 입회하겠다고 결심하시 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교구 신부 밖에 보지 못해서 수도자 되는 것은 생 각 못했고, 그 생활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단 순히 신부가 되는 것은 좋은 것이겠다 생각했지만 마음 으로 이끄는 것은 없었어요. 그런데 교구가 운영하는 가톨릭 대학인 세인트 토마스 대학 1학년 때 가르멜 수 8


도회 신부님이 와서 특강을 했어요. 아주 재미있게 얘 기하는 분이셨어요. 그때 캐네디가 대통령 후보였는데 처음으로 가톨릭 신자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고, 그는 평화봉사 단을 만들자고 했었어요. 그것은 상당히 매력적이었죠. 또 천 킬로 이상 먼 곳이어서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킹 목사님에게도 관심이 많았어요. 가르멜 신부님이 특강 에서 현재 세계가 하나 되고 있다고 아주 재밌게 얘기 하시는데, 그때 수도회 성소, 사제 성소가 굉장히 마음 에 깊이 들어왔어요. 그걸 듣고는 갑자기, 다른 생활은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수도자로 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자유, 세계 어디서나 봉사가 필요할 때 봉사할 수 있는 자유, 그것에 상당히 매력을 많이 느꼈어요. 봉사 는 자유예요. 전 세계에 속하는 자유. 하지만 가르멜회 에 입회할 생각은 안 했죠. 그 수도회는 거의 기도 중 심이고 그분은 특별한 영성으로 파견되어 다니고 청소 년 사도직 맡으신 분이셨어요. 저는 사회 한가운데서 직접 활동하는 것을 원했어 요. 그때 문학을 가르치시는 교구 신부님에게 상의했는 데 너는 공부 잘하니까 공부 잘 시키는 예수회나 도미 니코회에 가라고 하셨죠. 아버지는 예수회 피정의 집에 서 여러 번 피정을 하셨고 어머니도 예수회를 아주 좋 아하셔서 그 영향도 받았어요. 그래서 예수회에 입회하 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는데, 고향에 예수회원 거의 없었 어요. 본당 신부님을 통해서 어떻게 예수회원을 만나는 지 알게 되었고 가서 면담했죠. 1960년에 입회했어요. 제 본명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죠. 선교사에 대해 많 9


이 생각하고 있었고, 가르치는 사람인 교사, 둘 다 좋은데 예수회에서는 그 둘 다 가능하다 해서 입회했 어요. -1960년은 예수회 한국관구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때이지요. 신부님은 한국 가톨릭 대학에서 신학을 한 국말로 배우실 만큼, 한국에 대한 강한 열정이 있으 셨던 걸로 압니다. 한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동기가 있으셨나요? 우리 입회는 8월이었는데 입회하던 날에 여러 한 국 사람들을 만났어요. 어떤 나라에 가야한다는 생각 은 없었어요. 입회한 위스콘신 관구는 한국선교를 하 고 있었기 때문에 따랐죠. 수련을 함께한 한국 사람들 과 아주 친했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면 이미 시작한 우 리의 영성과 사명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것으로 생각 했고 69년도 한국에 왔을 때 거의 대부분 사람들을 미 리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어요. 생물 학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서강대에서 생물학 교수 예수 회원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교무처장 신부님이 자연 과학 박사학위가 매우 어려우니까 너무 나이 많아지기 전에 젊을 때 박사학위를 하는 게 좋겠다 하셨어요. 그 래서 그 계획으로 미국에서 신학 과정 1년 빨리 시작했 고 대학원 거치고 한국에 가려고 했는데 계획이 변경되 었죠. 30세 넘은 미국사람 중에 한국말 배운 사람 없 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에서 하고자 하면 먼저 가서 한 국말 배워야한다고 했어요. 그때 총원장이었던 아루 10


페 신부님은 사목하게 될 나라에서 신학을 배우는 것 이 원칙이다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 예수회가 맡았던 광주 대건 신학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바 뀌었어요. 그래서 먼저 한국말 공부하고 2학년부터 신 학과정 들어가는 계획이었는데, 한국말 공부하는 동안 에 광주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었죠. 그 분위기에서 공 부하는 것 힘들었어요. 예수회는 철수했고 다들 다시 세인트 루이스로 돌아가기로 하고 나는 한국어 공부해 야 되서 혼자 남았어요. 결국 서울 혜화동에 있는 가 톨릭 신학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하기로 결정이 났지요. 한국말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물론 어려웠는데 입학 할 때 한국에 온 선교사를 위한 한국어 학당에서 3학 기 공부하고 신학 대학 4학년으로 들어갔죠. 4학년하 고 연구반 1년 2년 했는데 한국말로 공부하는 것이지 만 그 내용은 서양신학이었어요. 아직까지 동양철학이 나 한국의 고유한 신학 없었어요. 도서관의 모든 책이 영어, 라틴어, 그리스어, 불어, 독일어여서 한국 동창들 은 도서관에 거의 안 들어갔고, 그 모든 언어 다 공부 하는 과목이 있었지만 모두 기초 차원에서만 머물러서 책을 볼 수 없었어요. 나는 거의 1년 동안 도서관에서 찾고 공부하고 그런 면에서 오히려 동창들보다 공부하 는 여건이 더 좋았어요. 동창들은 강의 노트를 베끼고 그것을 외웠지만 나는 강의하신 신부님이 원래 유럽에 서 공부한 바로 그책으로 공부를 한 거죠. 열심히 했 으면 더 잘했겠지만 나는 활동적이예요. 앉아서 연구하 고 따지고 논하는 학자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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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부님의 원래 전공이 생물학이셨는데 사회학으로 바꾸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자연과학을 아주 좋아해서 생물학을 선택했죠. 예 수회 안에서도 자연과학 전문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있 었어요. 철학과정 할 때 생물학 과목도 많이 봤고 신학 들어가기 전에 대학원 1년도 했죠. 학위 안 했지만 대 학원 수준까지 생물학 과목을 봤어요. 서강대에서 조 교로도 일했고, 대학원생들과 아주 친해졌죠. 사회학 으로 바꾼 것은 이유가 있었어요. 70년대 초 한국은 노동조합 운동이 시작될 때 였죠. 그것을 하는 사람도 블랙리스트 되어 잡혀 들어가고 취 직 안 되고 고문당하고 그런 일이 계속 생기고 있었죠. 인권유린 사건이 아주 많았고 유신체제 속에서 거의 모 든 건물 도청되고 있었어요. 그 당시 상황에서 실험실 안 에서 실험하고 논문 쓰는 것은 못할 거 같았어요. 그런 사회 상황을 못 본 체 하고 자연학자 될 수 있을까? 그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가 중요시해야 할 큰 이슈가 될 생물학 내용은 약 30년 후였어요, 지금 급한 것은 사회 문제, 그래서 바꿔야 했죠. 서강대 안에서 상의해서 사회 학으로 바꾸기로 결정했어요. 사회학은 하와이 대학교에서 했는데 제일 큰 이유 는 그 대학이 한국에 대한 연구 많이 하고 있는 곳이었 어요. 또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예수회에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었죠. 79년에 끝내고 다시 서강대에 와서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사회학을 공부하는 동안에 정일우 신부님이 청계천 12


에 들어가 살기로 했는데, 나는 그것을 미리 알고 있었 죠. 사실 내 신학과정 때 이미 정 신부님께서는 그 활 동을 시작했어요. 나도 조금 참여했고, 그때 달동네를 만나고 알게 되고 그래서 사회학 공부하는 동안에도 계속 소식 들었어요. 전공은 인구학이어서 그것을 중심 으로 연구해야 했지만, 정일우 신부님과 함께 갈 수 있 기 위해 도시사회학과 주택문제 과목을 특별히 선택 했 고 공부했어요, 활동과 함께 이론적인 것을 같이 갖추 고 싶었어요. 79년도에 와서 즉시 보금자리와 관계를 맺었죠. 주말마다 보금자리에 가서 공소의 미사도 했 고 보금자리 주민들 대상의 사회학 연구도 했어요. 정리_ 한 민 토마스 신부 지민영 디오니시아 *12월 호에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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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 일기

경계인으로 살아가기 남정수 토마스 아퀴나스 수사|철학기

저희 연학기(철학기) 수사들은 방학이 되면 여러 가지 사도직 체험 혹은 실습을 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데 저는 여름 두 달 동안 병원에서 실습 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입회 전에 의사로 일했었고, 외과 세부 전문의 과정까지 마쳤기에, 연학이 끝난 후 의사로서의 소명을 함께 쓸 수 있는 사도직으로 초대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향후 사도직에 다시 쓰일 가 능성을 염두에 두고 방학이라 는 여유시간 을 활용하고 자 실습 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실습 을 준비하면서 저는 다음과 같이 나름의 실습 목표를 설정해 보았습니다. 수 술방을 3년 반이나 떠나 있었기에, 제가 했던 술기(수술)등에 대한 감각과 다양한 수술들을 보고 익히는 기술적인 측면과 무엇보다도 수도자로서 동시에 의사로서 살아가는 법을 시험하는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이번 여름 방학 실습지로 제가 간 곳은 수원 성 14


빈센트 병원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수련 받은 병원도 아니고 전혀 연고도 없었지만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병원이고 또한 가톨릭 성모 병원 산하의 병원이기에 수도 자인 저를 잘 이해해 주실 것이라 기대하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수녀회에서 허락해 주시어 방학 동안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낯선 환경, 처음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실습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외과 과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교수님과 전임의 선생님들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빈센트 병원 원목 사제로 계신 정구평 신부님께서 따뜻하게 배려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 덕분에 비록 신부님과 저 이렇게 두 명뿐이었지만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기쁘게 생활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병원 일과는 7시 40분에 오전 컨퍼런스와 회진으로 시작해서, 그 외의 대부분의 시간은 수술방에서 보냈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만 병원에서 일하는 신분이라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주로 수술을 뒤에서 참관하거나 혹은 교수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수술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불과 3년여의 짧은 시간을 수술방을 떠나 있었는데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수술 기구나 새로운 수술법을 볼 수 있어 의학이라는 분야가 정말 빨리 발전함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에게 도전이 되었던 것은, 실습 기간 동안 제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15


같다는 느낌이 든 것입니다. 때론 다른 선생님들이 수술하시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다시금 외과의사로 일하 는 저의 모습 을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제게 수술 조수로 참여하라는 교수님의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저는 혹시 수련 받고 있는 전임의(펠로우) 선생님이나, 전공의(레지던트) 선생님들의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닐까 나름 수시로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손님이 주인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또한 다른 선생님들이 저를 꼬박 꼬박 ‘수사님’ 하고 부르면서 존대해 주실 때, 감사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분들과 같은 위치-동료 외과의사- 에 설 수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이전에 제가 병원에서 일했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의사의 삶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시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보였고 무엇보다 너무나 바빠 보였습니다. 저 또한 수술방에서 특별히 하 는 것은 없지만 하루 종일 수술방에 서 있다 퇴근하면 지쳐서 일찍 잠자리에 들 정도였으니까요. 아침 일과 전 기도 드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제가 수도자로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의 바쁜 일과였습니다. 제가 만일 다른 선생님들처럼 이렇게 바쁜 일상 속에 산다면 다른 영혼을 돌보기는 커녕, 제 영혼 돌보는 것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매주 주말마다 제가 신학원 공동체로 돌아올 16


때면 동료 수사님들이 병원에서의 삶이 어떠한지, 적응은 잘 하고 있는지, 수술은 얼마나 했는지 등등 이것저것 물어 보았습니다. 그럴 때면 형제들에게 저는 ‘의사’ 였지만, 정작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은 ‘수사님’ 으로 동료 의사들과 경계를 짓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저는 ‘의사’ 도 ‘수도자’ 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 서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아 정말 편하고 행복하다고 느낀 때는 주말이 되어 ‘수사’로서 형제들과 지낼 때, 혹은 퇴근 후 신부님과 ‘주님 안의 벗’ 으로 지낼 때였습니다. 정말 솔직히 지난 두 달의 삶을 돌이켜 보면 실패한 병원 실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사로서 그리고 수도자로서의 삶을 잘 균형 잡아 보겠다던 저의 꿈은 보기 좋게 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감사한 것은 이런 오만한 저의 계획과 꿈을 깨 주시고 ‘수도자’ 로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 느끼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저의 얄팍한 계획을 넘어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하심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끝으 로 양 성 과정 중에 있는 저희 부 족한 수 사 들 을 도 와 주 시 는 후 원 회원님 들 께 정 말 감사하다는 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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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리에서

어머니, 이제 하느님 곁에 편안히 머무세요! 홍현숙 마리나|서울대교구 잠실7동 성당

위령성월이다. 해마다 11월이면 의례 맞이하는 연례 행사다. 신부님들의 강론과 신자의 기도를 통해서도 계 속 상기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나도 예수님을 비롯하여 순교성인과 조상님들, 아니면 최근 문상 다녀온 분들을 위해 기도하곤 했다.‘죽은 이의 영혼을 생각하고 위로 하는 달’ 이라고 적혀있는 딱 사전적 의미 정도로 받아 들이면서... 하지만 이번에는 사뭇 다르다. 위령들 안에 우리 어 머니도 계시다는 생각 때문일까. 어머니는 내가 결혼하 고 6년쯤 지났을 때부터 무려 26년간 환자로 지내시다 지난 2월에 돌아가셨다. 나중 15년 정도는 혼자 걷기 도 어려웠으니 당연했지만 그럭저럭 지내실 만할 때도 18


자식들을 동반하지 않고는 현관 출입도 하지 않으려 해서 늘 누군가가 챙겨드려야 했다. 아주버님과 남편은 바쁘고 아가씨는 멀리 살고 형님은 바깥일이 있으니 자 연스럽게 둘째 며느리인 내가 많은 날들을 어머니와 동 행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은 물론이고 봄이면 꽃구경, 가을엔 단풍구경, 쇼핑, 외식, 드라이브까지 다양한 나 들이를 함께했다. 휠체어를 싣고 간병도우미도 함께, 때 로는 친구분까지 모시고 다닌 날도 많았다. 그분들과 둘러앉아 화투도 치고 말도 안 되는 막장드라마를 매 일 저녁 울고 웃으며 함께 보기도 했다. 10여 년 동안 시간과 돈과 마음을 꽤 들여야 하는 일이었는데도 이 상하게 별 갈등도 없이 이어졌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나의 십자가로 찜했는지 모른다. 남편은 여전히 바빴고 두 아들은 일찌감치 철들어 버리고 친정 부모님은 정정 하시니 어머니를 붙잡고 삶과 죽음, 그리고 하느님 나 라까지 조금씩 배운 것 같다. 환자이며 불교신자인 분 을 6개월간 교리공부에 모시고 다녀서 영세를 받게 해 드리던 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날이었는지.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생전에 별 말씀을 안 해 놓은 상태라 장례절차 문 제로 분분했다. 어머니는 진정한 천주교신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 신이 온전치 않을 때‘스님’ ‘관세음보살’ 을 여러 번 되 뇌는 걸 보았었기에 나도 더 이상 아무 주장도 못하고 19


비겁하게 조용히 물러섰다. 멀쩡하실 때 분명히 대화를 못해 놓은 게 많이 아쉬웠지만‘앞으로 연미사도, 기도 도 열심히 하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진행 했다. 왜 그랬을까. 귓가에 연도를 들으며 무서움 없이 가 도록 해 드렸어야 하는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 라’ 는 복음이 나올 때마다 내 십자가는 확실했고 숱한 삶의 창들로부터 어머니 십자가를 오히려 방패삼으며 살았으면서 왜 좀 더 주장하지 못했을까.‘스님’ 도‘관 세음보살’ 도‘하느님 아버지’ 고‘오 마이 갓’ 임을 지금 은 충분히 알겠는데 말이다. 장례를 치르고 두어 달 후 일본 나가사키로 성지순 례를 갔다. 신앙을 지키려고 순교한 분들의 족적을 따 르다가 드디어 나의 눈물보가 터지고 말았다.‘어머니 죄송합니다! 하느님 죄송합니다!’그나마 지도 신부님 께서 예정에 없던 전대사를 주신다고 하여 얼마나 감사 하던지. 아직 연옥에 계실 것 같은 어머니에게 진심을 다해 바쳤다. 위령기도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까운 가 족들을 떠나보낸 형제자매님들의“기도해주세요!”가 얼 마나 절실한 마음인지,“기도해드리겠습니다”라는 대답 에 얼마나 진심을 담아야 하는지 헤아려 보게 되는 위 령성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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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학

사도시대의 삶과 영성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베드로가 바라보니 하늘이 열리고 커다란 보자기 같은 어떤 그릇이 내려왔는데 네 귀퉁이가 달아 매이어 땅위 에 내려앉았다. 그 속에는 땅의 온갖 네 발 가진 것들 과 기어 다니는 것들하며 하늘의 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 가 들렸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한 번도 속된 것과 더러운 것을 먹은 적이 없습니 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베드로에게 다시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 되다고 하지 마라.” 이러한 일이 세 번 거듭되고 나서 그 그릇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갔다.(사도 10,11-16)

이 본문 마지막 문장은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의 명령, 바구니 속의 짐승을 먹으라는 명령을 완강하게 21


반대했음을 알려준다. 그가 감히 주님의 명령을 거부했 던 것은 음식금기법에 대한 유다교 전통이 진리라고 굳 게 믿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저는 한 번도 속된 것 과 더러운 것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했을 때 그의 말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 있는지 감지할 수 있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해서 움켜쥐고 있는 것이 곧 진 리일 수는 없다. 전통이라고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분 석해 보면 사실 참된 전통이 아닌 경우도 많다. 대개가 우리의 취향, 우리의 선호도를 전통이라고 진리라고 착 각할 수 있다. 이런 우화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저녁 예배를 갖는데, 예배를 주관하던 스승이 키우는 고양이가 예배 분위기를 망쳐놓았다. 예 배시간 내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참석자들을 분심 들 게 만든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 스승은 저녁 예배시간 이 되면 그 고양이를 근처 나무에다 묶어 두었다. 그 스승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마을 사람들은 저녁 예 배를 드릴 시간이 되면 고양이를 나무에다 묶어 두었 다. 얼마 후 그 고양이마저 늙어서 죽었다. 그러자 마 을 사람들은 다른 고양이를 데려다가 저녁 예배 때가 되면 나무에다 어김없이 묶어 두었다. 고양이 없이 저 녁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마을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고양이를 묶어 두는 것은 꼭 지켜야 할 전통이 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공부를 많이 한 이들이‘저녁 예배와 고양이와의 연관성’ 에 대해서 연 구발표를 하였다. 서로 다른 연구논문들이 발표되면서 다양한 학파가 형성되었다. 고양이를 저녁 예배 삼십 22


분 전에 묶어 둬야 하는지 또는 한 시간 전에 묶어 둬 야 하는지가 학파마다 달랐다. 또 고양이를 올리브나 무에만 묶어 둬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나무에 묶어 둬 도 되는지에 대한 견해가 학파마다 달랐다. 또 고양이 를 나무에 묶을 때 예배 장소에서 몇 미터 지점에 있는 나무에 묶어 둬야 하는지가 학파마다 달랐다. 지금은 미사 중에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고 드럼을 치고 밴드를 연주하는 것이 그리 낯설지 않다. 하지 만 처음에는 저항이 컸다. 국악미사도 마찬가지다. 많 은 이들이‘어매이징 그레이스’노래를 들으면 감동하 게 된다. 그런데 본시 그 곡은 스코틀랜드 술집에서 취 했을 때 불렀던 노래다. 본래는 거룩한 성가가 아니었 다. 그런데 그 곡조에 거룩한 가사를 붙이면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호하는 음악이 된 것이다. 우 리가 부르는 많은 성가들이 사실은 세속적인 음악에서 출발되었다. 하느님의 말씀과 우리의 신앙 간증이 가사 로 붙여지면서 거룩한 노래가 된 것이다. 그러니 시대 적 변화 앞에서 경직되지 말아야 한다. 유연성을 가져 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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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기

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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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 성별하여 내 손에 기름으로 축복하시어, 당신의 몫으로 삼으셨습니다. “너는, 내 몫이다.”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바로 나를, 내 임께서 글·그림 배영길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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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온 편지

프쭘번 휴가 시작하는 날 권오창 시몬 신부|캄보디아 반티에이 쁘리업

새벽 4시,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학생들 집에 불을 밝힙니다.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캄보디아 전통 명절 인‘프쭘번’ 을 앞두고 학생들과 직원들이 열흘간의 일 정으로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귀향 을 앞두고 학생들은 벌써 며칠 전부터 마음이 들떠 있 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학생들은 집 별로 음식을 준비 해서 친구들과 인근의 절에 가서 이미 세상을 떠난 자 신들의 가족들을 위해서 스님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 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캄보디아 설인‘쪼울 츠남 트머이’이후 약 5개월만에 그리운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는 설레임에 밤잠을 설친 일부 학생들은 불이 켜 지기도 전에 자신의 짐을 챙겨 학교 마당에 나와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6


새벽 5시, 교장 선생님이 각 집 선생님들에게 학생들 의 교통비를 나눠주고, 이어서 각 집 선생님들이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미리 계산해 둔 여비를 전해 줍니다. 열 흘 후면 다시 만날 텐데도, 서로의 손을 꼭 잡아 주며 다시는 못 볼 사이인 것처럼 애틋하게 작별인사를 나누 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지난 9개월 동안 자기들끼리 서로 많이 의지하면서 지냈구나 싶어 마음이 짠합니다. 가장 먼저 출발하는 팀은 씨엠립에서 온 학생들입니 다. 학생 담당인 쓰리 선생이 4명의 친구들을 학교 차 로 프놈펜 버스 터미널로 바래다 줍니다. 학교 차가 떠 나가고 나자, 이어서 꼼뽕톰 지역 학생들을 태우고 갈 봉고차가 들어 옵니다. 이어서 바탐방 지역, 뿌삿 지역 으로 향하는 봉고차가 줄줄이 들어옵니다. 같은 지역 출신 학생들 수가 어느 정도 되면, 프놈펜에 가서 대형 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그 지역을 오가는‘란또리’ 라 불리는 봉고차를 대절하는 것이 훨씬 편합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수의 장애인 학생들이 혼자 장거리 여행을 해 본 경험이 없는지라 친구들과 함께 고향으로 가는 것을 훨씬 선호하기도 합니다. 바탐방으로 향하는 봉고차 안에는 부부인 핸드폰 수리반 분테잉 선생과 재봉반 다 선생, 그 딸 리타, 그리고 봉제프로덕션 직원인 짠니와 싸롱의 얼굴도 보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다 가, 재봉반 학생인 스레이 레악의 가방에 들어 있는 커 다란 식빵 봉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녀에게“웬 식빵 이니?”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께 드릴 선물이라며 수줍은 27


미소를 짓습니다. 가족들 중에 3명이나 장애를 안고 살 아가고 있는 어려운 가정의 친구이지만, 그녀의 이쁜 마 음 씀씀이에 저도 흐뭇한 웃음으로 응답합니다. 아침 7시, 집 선생님들도 뒷마무리를 한 후, 집열쇠 를 반납하고 각자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아침 햇살 속 에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들과 센터 이곳저곳을 신나 게 뛰어다니는 히은과 찐따, 공동체에서 키우는 두 마 리 개들도 대부분의 학생들과 직원들이 떠나간 반티에 이 쁘리업의 고요함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 고 요함 속에 며칠 푹 잠기고 싶습니다. 모든 학생들과 직원들이 프쭘번 휴가 동안 고향에 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복 귀하길 기도합니다.

반티에이 쁘리업 후원 요청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반티에이 쁘리업은 지난 25년 간 장애와 가난으로 인해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캄보 디아의 젊은이들에게 직업기술교육과 기숙사 생활을 무 상으로 지원해 왔습니다. 저희가 계속해서 이곳의 가난 한 장애인 친구들의 삶에 구체적 희망을 심는 일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도움을 청합니다. 계 좌 : 신한 140-008-696281 (재) 한국예수회 문 의 : 예수회 후원회 02-3276-7777 (입금 후 확인 전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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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리스도교 역사

일본의 그리스도교 전래 23 구정모 마르코 신부 | 일본 죠치 대학교 교수

순찰사 발리냐노 신부의 일본 입국(1579년 7월 25 일)은 일본 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제공하였 다. 많은 역사가들이 하비에르의 입국(1549년 8월 15일) 을 일본 선교의 출발점으로 본다면, 그 30년 후의 발 리냐노 신부의 입국은 일본선교의 중흥中興점으로 생각 한다. 우선 발리냐노 신부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보기 로 하자. 발리냐노 신부 A l e s s a n d r o Va l i g n a n o 혹 은 Va l i g n a n i (1539-1606) 는 당시 스페인 지배 하에 있 었던 나폴리 왕국의 동북부에 위치한 키에티 C h i e t i 에 서 명문 가족의 자제로 출생하였다.1) 베네치아 왕국의 파도바 대학에서 법률학을 공부한 후에 성직자의 길을 준비하게 되었다. 1559년에는 키에티의 주교좌 성당의 참사의원으로 선출되었는데 이는 앞으로 그가 성직자 1) 바오로 4세 (교종재위1555-1559)도 발리냐노가의 한 사람이었다. 29


가 되어 주교나 추기경 등 출세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파도바에서 어느 여성에게 중상을 입히는 사 건이 발생, 약 1년 반의 구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 리고 이 구금 생활 동안 발리냐노는 크게 회심을 하고 고위 성직자로서 출세의 꿈을 접고 수도생활의 길을 모 색하였다. 그리고 1566년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로마로 가서 예수회 입회를 청원, 허락을 받았다. 예수회 입회 후 그는 철학, 물리학, 신학 등을 공부 하고 1570년 사제로 서품되었다. 발리냐노는 1573년 동양 선교(인도, 말레이 제도, 필리핀, 일본 등)지역의 선교 활동을 총감독하는 순찰사 Pa d r e V i s i t a d o r 로 임명되어 인도의 고아로 파견되었다. 1574년 3월 발니 냐노는 동양 선교를 지원하는 41명의 예수회원들을 동 반하고 리스본을 출발, 그해 9월에 고아에 도착 순찰사 로서의 임무를 시작하였다. 우선 인도 각지의 그리스도 교 시설과 선교 상황을 살핀 다음 발리냐노가 내린 결 론은‘적응주의’2) 였다. 적응주의란 그리스도교가 선 교지의 토착 신앙이나 문화를 배척하고 선교지를 서양 화 할 것이 아니라, 선교지의 문화나 종교적 전통을 최 2) 이 적응주의 정책은 중국에서는 발리냐노의 제자였던 마테오 리치(15521610)에 의해 계승되게 된다. 마테오 리치는 그리스도교는 유교의 불완 전한 측면을 보완한다는 관점(補儒論)에서 그리스도교를 설명했는데 이 는 당시 중국인의 조상 숭배 관습 등을 문화의 한 측면으로 인정하였고 이 덕분에 중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17, 18세기 에는 조선의 학자들도 중국에 가서 서학에 관한 서적을 구입해서 읽기 시 작했는데, 이들이 읽은 그리스도교 서적은 대부분 보유론적 관점에서 기 술된 것이었고 그래서 학문적으로 수용되기 쉬웠다. 30


대한 존중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접목시킨다는 소위 토착화 i n c u l t u r a t i o n 를 기반으로 하는 선교 방 법이었다.3) 발리냐노는 우선 예수회원들에게 현지의 문 화와 언어에 대한 존경과 깊은 이해를 선교의 출발점으 로 요구했다. 그 출발점으로 하비에르가 시작했던 교리 서敎理書의 현지화 (교리서를 단지 현지의 언어로 축어역 으로 번역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현지 언어에 새겨진 정신이나 영성을 깊게 이해하여 그에 맞춰서 현지인이 보다 쉽고 보다 깊게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이해하도록 돕는 작업)가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이는 지난 호에서 소개했던 일본의 교리서 <도치리나 기리시탄> 편찬에 도 영향을 주게 된다.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신부

3) 토착화土着化라는 단어가 적절한 번역인지 학계에서는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안으로써 문화의 복음화 혹은 복음의 지역화라는 용 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31


이냐시오의 길

카르투시오 수도회와의 인연, 초기 동료들 김민회 시몬 신부|관구 사무국장

*제목배경: 수도회 내부에 들어가기 전 세 번째 관문이자 성당[카르나발레 박물관 Musée Carnavalet 소재]. 이 세 번째 관문 앞 안뜰에서 이냐시오는 그의 동료들과 자주 만나며 이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였다.

이냐시오는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에 왔지만, 공부 이외에도 여러 다른 과외 활동과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 지 않았다. 오늘날 파리 외방 전교회 본원 바로 건너편 에 위치한 나병환자들을 위한 보호소에서 활동을 했 었고, 현재 뤽상부르그 정원 Ja r d i n d e L u x e m b o u r g 의 남동쪽 끝자락에 옛 카르투시오 수도회가 자리잡고 있었기에 이곳에 드나들면서 초기 동료들과 자주 만나 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늘날 파 리 14구에 카타콤베(지하 묘지)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이곳에 위치한 경당에도 자주 들러 기도를 드렸다고 한 다. 그래도 파리에서 이냐시오의 주된 임무는 늦은 나 이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것이었고, 공부를 하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인연을 맺게 된다. 32


이냐 시오가 파리에 있는 동안 기도하기 위해 자주 드나 들던 파리 14구에 있는 지하 경당 15 세기 당시 파리에 있던 카르투 시오 수도회 전경[위측- 국립 도서관 Bibliothèque nationale 소재]. 3개의 작은 관문을 거쳐서 들어와야 할 정도 로 이 카르투시오 수도회가 외부 세계와는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이냐시오는 팜플로냐에서의 대 프랑스 전쟁에서 큰 부상을 당한 후, 독일 카르투시오 회원이 쓴 《그리스 도전》에 큰 감명을 받은 바가 있으며, 이후에 건강이 회복된 후 세비야에 있는 카르투시오 수도회에 입회하 기를 원했다.(자서전 48쪽)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근처에서 브뤼노 르 샤르트뢰Bruno le Chartreux에 의해 11세기에 세워진 이후 유럽 여기 저 기에 세워진 베네딕도 수도회의 규칙을 준수하는 관상 수도회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영성 과는 완전히 다른 수도회 형태인 예수회를 설립하도록 훗날 이냐시오를 이끄신다. 예수회를 함께 시작했던 초기 동료들 7명의 국적은 애초부터 다양하였다. 그들이 모인 곳은 프랑스 파리였 지만 이냐시오도 프랑스인이 아닌 바스크 출신의 사람 이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스페인의 나바라, 피에 33


르 파브르는 사보이 공국 S a v o i e (15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스위스에 걸쳐 있 던 나라), 시몬 로드리게스는 포르투갈, 디에고 라이네 즈, 알폰소 살메론 그리고 니콜라스 보바디야는 각각 스페인의 카스티야, 톨레도, 그리고 팔렌시아 Pa l e n c i a 출신이었다. 이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를 하며 서로 인연을 맺었으나 정작 이들 중에 프랑스인은 단 한 명 도 없었던 셈이다. 각자가 하던 일, 나이 그리고 성격 또한 천태만상 이었다. 피에르 파브르는 이미 가톨릭 사제였는데 그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이미 파리 상트 바르브 대학에 서 공부를 거의 끝낸 상태였다. 시몬 로드리게즈도 이 냐시오보다 일찍 상트 바르브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 으나 건강상 이유로 학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냐시오(1491년생)보다 나이는 15살이나 아래 였으니(1506년생) 이냐시오가 얼마나 늦게 공부를 시 작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머지 동료들은 이 냐시오보다 거의 20년 이상 어렸는데, 디에고 라이네즈 와 니콜라스 보바디야는 이미 알칼라에서 인문학 석사 를 취득한 상태였다. 이냐시오는 다른 동료들보다 나 이와 경험과 연륜은 많았을지 몰라도, 학문적인 면에 서는 그들보다 부족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국적, 문 화, 지적인 배경, 그리고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냐 시오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이들을 점차 모아 들이기 시 작했다. 이냐시오는 과연 어떠한 인간적인 매력으로 이 ‘초기 동료들’ 을 사로잡고 이들을 이끌었을까? 초기 동 료들 중 디에고 라이네즈, 알폰소 살메론, 니콜라스 보 34


바디야는 1532년 혹은 1533년이 되어서야 파리에 도착 했는데, 이듬해인 1534년 8월 15일에 초기 동료들 모임 에 합류하여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서원을 한 것을 보 면, 이냐시오의 카리스마가 얼마나 독특하고 강렬했는 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1) 그러나 모든 동료들이 처음부터 이냐시오와 찰떡같이 궁합이 잘 맞았던 것은 아니었다. 일례로, 이냐시오보다 나이는 어렸으나 상트 바르브 학교에서는 선배였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주 지하였다시피 당시 학장이었던 페냐 선생의 소개로 이 냐시오와 한방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초기에 이 둘의 사이는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슈가 있었는데, 이냐시오가 속해 있는 바스크는 스 페인 내부에서는 물론 프랑스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바라의 귀족이자 대영주였던 프란치스코 하 비에르가 속해 있던 스페인은 프랑스 군대 뒤에서 물량 을 지원하면서 바스크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러한 두 나라의 정치적인 긴장 상태가 드리운 가운데, 이냐시오 는 훌륭한 가문 출신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 대한 지 적인 열등감까지 지녔을지도 모른다. 초반에는 이냐시 오의 어지간한 카리스마로써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쉽사리 설득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거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이냐시오가 동반하는 영신수련에 참 여하였는데, - 피에르 파브르는 서품 직전에 동료들 중 처음으로 이냐시오가 동반하는 영신수련에 참여하였 으며, 디에고 라이네즈, 시몬 로드리게즈, 알폰소 살메 론 그리고 니콜라스 보바디야 역시 이냐시오의 지도 아 1) Bernard Giliber t, Promenades dans le Par is Ignatien, Guide MédiaSèvres, Paris, 2010, pp.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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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 영신수련을 하였다 - 극적으로 몽마르트르에서 서원 을 하고 나서 이냐시오로부터 영신수련 지도를 받았다. 물론 1530년부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조금씩 이냐 시오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하지만, 이 영신수련을 통해 둘 사이의 앙금과 오해는 완전히 사라지고, 그는 그 누 구보다 이냐시오의 가장 충실한 동료로 거듭날 수 있 었으니, 이것이 바로 영신수련의 힘과 은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 영신수련을 받은 모든 동료들은 하느 님께 봉사하고 영혼을 돕기 위해 그분의 의지가 무엇인 지를 끊임 없이 찾으려 하였다. 그리고 서원을 통해 그 들은‘성스러운 땅’ 인 예루살렘으로 향하기를 원했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로마에서 교황을 알현하고 그 에 맞갖은 소명을 받아 이것들을 수행하기를 다짐하였 다. 당시는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외치던 시기였고 개신 교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던 때였으므로 그 어느 때 보다 가톨릭교회의 회심과 부흥이 절실했는데, 다행히 도 바오로 3세의 예수회 인가가 이루어지고 1545년에 소집된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재정비가 이루어지던 때에 예수회는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초기 동료들 중에서는 특히 디에고 라이네즈가 트리엔트 공 의회에 한 신학자로서 참석하였다. 이냐시오가 1535년 에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교회와 함께 느끼기se nt i r avec l’Église》 를

위한 숨통이 조금씩 트이고 있던 때이다. (영신수련 352-370 참조) 이후에 신부인 파스칼 브로에 Pa sc a l Br o ë t 와 클 로드 제이 C l a u d e J a y, 그리고 문학 학사를 리지외 2) Ibidiem, pp.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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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가르멜 수녀회의 성녀 소화 데레사로 유명한 프랑스 서부에 위치한 도시)에서 취득했던 쟝 바티스트 코뒤흐 Je a n B a p t i s t e C o d u r e 가 초기 동료 그룹에 1535년에 뒤늦게 합류하였다. 파스칼 브로에와 쟝 바티스트 코뒤흐는 프랑스 출신이며 클로드 제이는 피에르 파브르와 마찬가지로 사보이 출신이었다. 이 두 신부, 파스칼 브로에와 클로드 제이는 피에르 파브르 보다 나이도 많고 서품도 훨씬 일찍 받았다. 그리고 프 랑스인이었던 쟝 바티스트 코뒤흐는 훗날 프랑스 지역 의 첫 관구장이 되었는데 1541년에 사망함으로써 예수 회 설립 후 처음으로‘예수회원으로서’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10명의 초기 동료들은 파리를 떠나 베니스로 향 하기로 했다. 그들이 파리에서 서원한 대로 예루살렘으 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예루살렘에서 구원을 필요로 하 는 영혼들에게 봉사하면서 그들의 전 생애를 이곳에서 바칠 참이었다. 만일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것이 불가 능하다면, 로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님께 그 들을 봉헌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냐시오는 스페인에 서 해결할 몇 가지 문제가 있어서 홀로 스페인으로 향 하고, 나머지 9명의 동료들만 우선 베니스로 향했다. 이냐시오는 근 7년 만에 그의 고향인 기푸스코아의 아 즈페이티아를 향해 1535년 3월에 파리를 떠났고 곧 베 니스로 합류하기로 했다.(자서전 123-124쪽) 단순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세상을 떠나 카르투시오의 회 원이 되기 원했던 바스크인 이냐시오는 여러 다른 나라 와 다양한 삶을 살다 온 동료들 즉 신부, 귀족, 군인, 학생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1명의 포르투갈인, 2명의 Lisi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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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인, 2명의 프랑스인, 4명의 에스파냐인과 함께 세 상 안에서 그리고 길 위에서 더욱 복잡하고 위험한 삶 을 살아야 했다. 마치 예수님께서 다양한 직업을 지녔 던 제자들을 만났고 그들을 사도로 키웠듯이 말이다. 다양성과 다름을 받아들여야 했고, 끊임 없이 움직이 면서 예수님의 대리자인 교황님을 섬겨야 했다. 이 초기 동료들이 모여‘하느님의 보다 더 큰 영광 을 위해 A d M a j o r e m D e i Gl o r i a m’미소한 예수회를 세우려는 순간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 글 모음♣ <이냐시오의 벗들>은 여러분의 나눔으로 더욱 풍요로워 집니다. 삶의 이야기, 신앙 체험 등 내용이나 형식에 제한 없이 A4 한 장 정도(원고지 10장 이내)의 글을 기다립니 다. 글이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영적선물을 드립니다. 04111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길 19 예수회 후원회 박수윤 신부 : jbenefac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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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2017년

11월 기도 지향

선교 기도 지향 아시아 그리스도인들: 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이 말과 행위로 복음을 증언하고, 특히 다른 종교인들과 나누는 대화와 평 화와 상호 이해를 증진하도록 기도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하셨 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 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 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그러므로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의 명령에 따라 각자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복음 선포의 사명은 같을지라도, 복음 선포 가 이루어지는 맥락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유럽은 그리 스도교 문화가 뿌리내리고 열매 맺은 곳이지만, 이젠 그 39


힘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그리스 도를 새롭게 체험하는 ‘새복음화’ 운동이 진행 중입니 다. 반면에 아시아는 참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대륙입니다.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 힌두교, 유교, 토 속 종교까지 참 많은 종교가 각자의 색깔을 내고 있지 요. 따라서 아시아에서는 다른 종교와 나누는 대화와 상호 이해가 절대적으로 요구됩니다.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이번 달에 우리 아시아 그리 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초대하십니다. 아시아 그 리스도인들이 ‘종교간의 대화’ 와 ‘상호 이해’ 안에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러한 대화와 상 호 이해가 없다면 종교는 평화를 가져오기는커녕 갈등 과 미움을 낳는 요인이 됩니다. 일부 한국의 개신교 신 자들이 절에 가서 불상을 훼손하거나 가톨릭을 ‘이단’ 으로 규정하는 행위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사회에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대화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줍니다. 교황님께서는 방한하셨을 때 우리에게 진정한 대화 란 어떤 것인지 나누어주셨습니다. 혜안을 지닌 이 말 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번 달 기도지향 해설을 마칩 니다. “진정한 대화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우리의 분명 한 정체성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능력도 요구됩니다.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이러한 공감이 있어야 합니다. 다 른 이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말로 하지는 않지만 전달되는 그들의 경험, 그들의 희망, 그들의 열 40


망, 그들의 고난과 걱정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 화를 위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른 이 들을 받아들이는 사려 깊은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합니 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여는 것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곧,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집에, 내 마음에 들어오도록 해야 하고, 내 마음으로 상대를 맞아들이며,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황님,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개종하 는 사람은 하나도 없거나 거의 없습니다…’그러나 어 쨌든 여러분은 그렇게 하십시오. 베네딕토 교황님은 우 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개종 권유 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매력으로 성장합니다.’ 아버 지 앞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흠 없이 살아갑시다. 정체 성과 열린 마음을 지니십시오. 이것이 더 깊은 이해와 우정과 연대로 가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은총을 베 푸실 것입니다. 그분을 통해 때로는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세례를 청하는 이들도 있을 것 이며,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만 언제나 우리 함께 걸어갑시다. 이것이 대화의 핵심입 니다.” ● 말씀 :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 성찰 : 나의 ­ 삶을 돌아볼 때, 깊은 공감과 이해를 체험했던 대화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글_ 지형규 요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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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 예수회 성소실 ■성소모임 가을도보순례 일 장 대 일

시 : 11월 11일(토) 오후 2시 30분 소 : 5호선 광화문역 9번출구 앞 상 : 예수회 입회를 희망하는 성소자 정 : 도보순례 후 미사(무악동 선교본당)

■예수회 성소모임 주 제 : 예수회 사명 - 신앙의 봉사와 정의의 구현 (조진배 신부) 일 시 : 11월 25일(토) 오후 4시 장 소 : 예수회센터 이냐시오카페 문 의 : 이인제 수사 (010-2874-9203 / vocation.sj@gmail.com) ※ ­ 성소실 연간 일정 및 예수회 성소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예수 회 한국관구 성소실 홈페이지(vocation.jesuits.kr)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후원회원을 위한 감사미사와 영성특강 일 시 : 11월 1일(수) 오후2시 장 소 : 예수회센터 2층 마리아 기도실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후원계좌 예금주 (재) 한국예수회 신 한 329-03-013150 국 민 012-01-0605-325 우 리 018-144089-13-007 문 의 :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02-3276-7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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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 프로그램 ■젊은이 피정 (침묵피정 ) 주 일 장 대

제 : 내 삶 속에 임의 삶이(성탄준비피정) 시 : 12월 22일(금) 오후7시~12월 24일(일) 오후4시 소 : 예수회센터(서강대학교 옆) / 참가비: 10만원 상 : 39세 이하 청년 선착순 마감

■청년 징검돌 오후피정 송년미사 일 장 대 내

시 : 12월 17일(일) 오후4시~7시 소 : 예수회센터 이냐시오카페 상 : 청년 누구나 용 : 주일복음 묵상 및 나눔, 미사

문 의 : 예수회 청년센터 02-3276-7706 / magis.jesuits.kr 010-6592-0731/ 010-2273-9416

♣ 예수회 사회사도직위원회 ■탈핵희망 서울길순례 순례일시: 매월 넷째 토요일 오후 2시~5시 순례구간: 홀수달 신촌 홍대 일대 (14:00 2호선 신촌역 6번 출구 집합) 짝수달 광화문 시내 (14:00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 집합) 문 의 : 조현철 신부 010-7103-8241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02-3276-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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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센터 프로그램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위하여 특화된 일일피정> 시간, 장소 : 토 오전 10시-오후 4시30분, 예수회센터 3층 성당 2018년 겨울피정

1월 27일

레지오 마리애의 사도직: 성모님과 함께 영혼들을 돌보기

정강엽 신부 서강대학교 상임이사

2018년 봄피정

5월 12일

(제목 미정)

안정호 신부 예수회 신학원 원장

* 소정의 수강료가 있으며 김밥을 제공하니 미리 신청바랍니다. (단체 접수 가능)

■예수회 신부와 함께하는 예수회센터 피정 프로그램 - 영신수련에 의한 침묵피정(예수회센터 피정동) 영신수련 2박3일 피정

2017년 11/24(금) 저녁7시 – 11/26(일)

영신수련 3박4일 피정

2018년 05/04(금) 저녁7시 – 05/07(월)

2017년 12/15(금) 저녁7시 – 12/17(일) 2018년 07/05(목) 저녁7시 – 07/08(일) 2018년 01/17(수) 저녁7시 – 01/21(일)

영신수련 4박5일 피정

2018년 02/28(수) 저녁7시 – 03/04(일) 2018년 05/18(금) 저녁7시 – 05/22(화) 2018년 08/14(화) 저녁7시 – 08/18(토) 2018년 10/05(금) 저녁7시 – 10/09(화)

영신수련 8일피정 (9박10일)

2018년 01/05(금) 저녁7시 – 01/14(일) 2018년 02/01(목) 저녁7시 – 02/10(토) 2018년 07/10(화) 저녁7시 – 07/19(목) 2018년 08/03(금) 저녁7시 – 08/12(일)

* 김용수, 신상은, 신원식, 안정호, 이근상, 이재상, 최성영, Kister, 권오면 등 예수회 사제들이 각 일정별로 배정되어 피정지도를 합니다.

-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하는 일일 위탁피정> 신청 받습니다. 대상 : 30명 이상으로 구성된 모든 단체 및 수도회

■대관 예수회센터 시설 - 피정동 : 3개 층 1-3인용 18개, 1-6인용 1개 (최대 60명 가능) - 강의실 : 세미나실 20명, (좌식)모임방 20명, (좌식)기도실 40명, 소강의실 60명, 중강의실 120명, 성당 330명 * 대관이 필요한 단체나 개인은 예수회센터 사무실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신청 및 문의 문 의: 센터 사무실 이메일 홈페이지 44

02-3276-7733 jesuitcenter@gmail.com http://center.jesuits.kr/


2017년 성지순례 안내 ■11월 성서의 땅을 찾아서(이스라엘. 요르단) 일 정 : 11월 11일~11월 22일(11박 12일) 순 례 지 : 이스라엘, 요르단 동반사제 : 하태수 신부 / 예상금액 : 390만원

■12월 일본 규슈(나가사키) 순교자 성지순례 일 정 : 12월 04일~12월 8일(4박 5일) 순 례 지 : 후쿠오카, 히라도, 이키츠키, 소토메, 고토, 운젠, 시마바라, 나가사키 동반사제 : 이훈 신부 / 예상금액 : 140만원

2018년 성지순례 안내 ■1월 성서의 땅을 찾아서 일 정 : 1월 18일~1월 30일(12박 13일) 순 례 지 : 이스라엘, 요르단 동반사제 : 김용수 신부 / 예상금액 : 390만원

■2월 일본 규슈(나가사키) 순교자 성지순례 일 정 : 2월 27일~3월 03일(4박 5일) 순 례 지 : 후쿠오카, 히라도, 이키츠키, 소토메 고토섬, 운젠, 시마바라, 나가사키 예상금액 : 140만원

■3월 발칸반도 지역 4개국 일 정 : 3월 12일 ~ 3월 23일(11박 12일) 순 례 지 : 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 금 액 : 370만 원

■4월 성서의 땅을 찾아서 일 정 : 4월 05일 ~ 4월 17일(12박 13일) 순 례 지 : 이스라엘. 요르단 예상금액 : 390만 원

■5월 이냐시오 성인의 발자취 및 성모 발현성지 일 정 : 5월 11일 ~ 5월 24일(13박 14일) 순 례 지 : 스페인. 프랑스(루르드). 포르투갈(파티마) 예상금액 : 390만 원

■6월 알프스 주변 수도원 순례 및 성모 발현성지 일 정 : 6월 08일 ~ 6월 20일(12박 13일) 순 례 지 :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예상금액 : 39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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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스페인 성지 및 산티아고 도보 순례길 일 정 : 7월 06일 ~ 7월 18일(12박 13일) 순 례 지 : 스페인 전역(산티아고 5일-116km 도보순례) 예상금액 : 370만 원

■8월 성모님 발현성지 일 정 : 8월 10일 ~ 8월 22일(12박 13일) 순 례 지 :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예상금액 : 390만 원

■9월 동유럽 성지순례 일 정 : 9월 07일 ~ 9월 18일(11박 12일) 순 례 지 :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예상금액 : 370만 원

■10월 이냐시오 성인의 발자취 및 성모 발현성지 일 정 : 10월 12일 ~ 10월 25일(13박 14일) 순 례 지 : 스페인. 프랑스(루르드). 포르투갈(파티마) 예상금액 : 390만 원

■11월 성서의 땅을 찾아서(이스라엘. 요르단) 일 정 : 11월 08일 ~ 11월 20일(12박 13일) 순 례 지 : 이스라엘. 요르단 예상금액 : 390만 원

■12월 일본 규슈(나가사키) 순교자 성지순례 일 정 : 12월 03일-12월 09일(4박 5일) 순 례 지 : 후쿠오카, 히라도, 이키츠키, 소토메 고토섬, 운젠, 시마바라, 나가사키 예상금액 : 135만원

※상기 여행 요금은 항공료, 환율, 유가 변동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여행 경비에는 공동경비, 세금, 유류 할증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기 여행 일정은 항공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문의 및 접수 : (주)크로바 여행사 T : 02-722-8366 / F:02-722-8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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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후원회 가입과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9월 예수회 신규 후원회원 국내 (20명) 곽종범 김서혜 김은경 문명숙 신곤식 신영화 어고은 오성환 오은주 유미연 이승연 이희재 정성희 정원윤 조유나 최정자 하정숙 한혜성 홍성민 홍인표

국외 (21명) 김진일 김혜진 박유신 박은숙 박재문 양효준 유미영 유종건 이마리아 이정훈 전새봄 조기란 조숙자 조영길 조정자 차지현 차지훈 최인숙 한부이 황은경 DIANE CLARE JOH

9월 기부금명단 김경란

1,000,000

김현숙

150,000

배혜원

1,000,000

서경원

1,000,000

오복치과의원 허은희 익명

200,000 50,000 2,000,000

기부금 명단은 비정기 후원의 지향을 후원회에 알리신 분에 한하여 게재합니 다. 정기후원과 더불어 비정기후원을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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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후원회원이 되어주십시오! 예수회는 1540년 이냐시오 성인에 의해 창설되어‘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세상 안으로 파견되어 투신하는 활동수도 회입니다. 예수회원은‘활동 중 관상’ 을 하고,‘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 존’을 찾으며 세상의 가장 어려운 곳을 찾아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님들께서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무엇보다 예수회 사제 양성과 캄보디아를 비롯한 선교 기금 그리고 여러 사도직 기금 으로 소중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은 하늘나라에 쌓는 값진 보화가 될 것이며, 추수 할 일꾼을 길러내는 참된 봉헌이 될 것입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선한 뜻을 현장에서 실천하며 하느님의 영광 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며, 여러분은 저희의 협력자이십니다. 따 라서 여러분은 예수회의 동반자이며, 예수회의 벗입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실 분은 후원회 사무실로 연락주시기 바랍 니다. 전화 : 02-3276-7777 홈페이지 : http://benefactor.jesuits.kr

예수회 후원회원을 위한 미사 저희 예수회는 후원회원들을 위해 회헌 309조 및 관련법규 304조에 명시된대로 예수회 모든 공동체에서 항구하게 미사 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본 회에 도움을 주시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 준 정성과 관 대한 후원에 대하여 우리가 보답을 하는 것은 매우 지당하 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매월 한 대의 미사를 영원히 봉헌하도록 한다.” [예수회 회헌 30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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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 알림 ◆영명축일을 알려주세요.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후원회원님들께 ‘책 선물’을 보내 드리 고 있습니다. 축일을 알려주지 않으셨거나 주소 변경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후원회 사무실로 꼭 확인 전화 부탁드립니다.

◆미사신청 전화로도 가능합니다.

미사신청 계좌번호

우리 1005-300-968781 신한 140-006-906328 국민 012501-04-068525 예금주 (재)한국예수회

◆후원회비 입금 계좌번호 국민 012-01-0610-808 신한 140-002-805577 하나(외환) 048-22-02174-9

농협 037-01-309663 우리 844-05-000791 예금주: (재)한국예수회

* 입금 후 꼭 확인 전화 부탁드립니다.

◆ 전화 문의 : 02-3276-7777 예수회 후원회 후원회 업무시간 : 월~금, 오전 9시~오후 5시 (점심시간 : 12:00-13:00)

미국지역 회원 후원 안내 1. 송금봉투가 없으신 분은 수표(check)를 아래 주소로 보내주시면 예수회 한국관구로 입금됩니다. Chicago-Detroit Province of The Society of Jesus 1010 N Hooker Street Chicago, IL 60642 2. Pay to the order 란에는 Jesuit International Missions 라고 써 주세요. 3. Check Memo란에 반드시 후원회원 번호 및 이름을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4. Midwest Jesuits 관구로 직접 수표(check)를 보내주시는 분만 세금공제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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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정 및 교육 프로그램 ♣ ◆금요침묵피정

*미사봉헌

강의와 함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 니다. 일시 : 매주 금요일 10시-15시 10분 장소 : 예수회센터 성당(3층)

*참가비 : 무료(중식제공)

날짜

강사

피정주제

3일

이경용 신부

하느님을 만난 때 4

10일

안세진 신부

너희 마음을 무디게 가지지 말라 (시편 95.8)

17일

이헌준 신부

마음의 힘

24일

정규한 신부

기도 깊이 맛들이기

시간표 10:00-10:50 11:00-11:50 11:50-12:30 12:30-13:20 13:30-14:20 14:30-15:10

강의 기도 점심 강의 기도 미사

1 1

환경을 위해 개인컵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2 2

◆월례특강

*미사봉헌 날짜 11월 1일(수) 오후2:00-4:00

강남 첫째(수)

주제 이근상 신부/치유기적의 뒷이야기

*미사없음

장소

역삼동성당 지하1층 경환당 (서울 강남구 언주로 85길 23-11)

문의 02-3276-7777 날짜 11월 2일(목) 오후 2:00-5:00 광주 첫째(목)

주제 이재상 신부/성모님의 침묵 장소

염주동성당 소성전 (광주 서구 월드컵4강로 129)

문의 010-9884-9988 50


날짜 11월 3일(금) 오후1:30-4:30 대전 첫째(금)

주제 이근상 신부/치유기적의 뒷이야기 예수수도회 교육센터 (성모여고 內 대전 중구 대흥로 62) 문의 02-3276-7777

장소

날짜 11월 8일(수) 오전10:00-오후 1:00 분당 . 용인 둘째(수)

주제 하태수 신부/율법에 대한 또 하나의 이해 장소

성심교육관(목양교회 옆)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로 67번길)

문의 010-7255-8588 날짜 11월 9일(목) 오후2:00-5:00 청주 둘째(목)

주제 최준열 신부/가난으로의 초대 장소

가톨릭 청소년센터 제1강의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중앙로 61번길 16)

문의 010-7426-4132

인천 둘째(금)

날짜 11월 10일(금) 오후2:00-5:00 서석칠 신부/ 주제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다가가기 주안1동성당 지하성당 장소 (인천 남구 경인로 369) 문의 010-6790-5308

서울센터 셋째(수)

날짜 11월 15일(수) 오후1:30-4:30 김민 신부/ 주제 예로니모 나달 혹은 평범한 성인 예수회센터 장소 (서울 마포구 서강대길19) 문의 02-3276-7777 날짜 11월 17일(금) 오후2:00-5:00

부산 셋째(금)

주제 이재상 신부/성모님의 침묵 장소

성분도 은혜의 집 (부산 수영구 수영로 501)

문의 02-3276-7777 고양 . 일산 셋째(월)

날짜 11월 20일(월) 오후1:30-4:30 김민 신부/ 주제 성 베드로 파브르 혹은 새로운 성인 마두동성당 4층 소성전 장소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254) 문의 02-3276-7777 51


발행일 : 2017년 10월 22일 발행처 : 천주교 예수회 후원회 발행인 : 정제천 편집인 : 임헌옥 등록번호 : 마포, 라 00501

예수회 후원회

제12권 11호 [통권139호] 04111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길 19 02-3276-7777 / 팩스 02-3276-7783 http://benefactor.jesuits.kr hoowon10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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