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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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의 벗들
예수회
후원회
상본 설명
김민철 사도 요한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 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 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 다.(이사 43,1)
여명모 하상 바오로 나를 따라라.(요한 21,19)
김건동 베네딕도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성 이냐시오와 초기 동료들에 의해 1540년에 창설된 예수회 : 로욜라의 교황청립 수도회로 1955년 한국에 진출함. 예수회 사도직
•교육사도직 : 서강대학교, 이냐시오 야학,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파견 등 •영성사도직 : 예 수회센터,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말씀의 집, 순천 예수회 영성센터, 기도의 사도직 등 •사회사도직 : 예 수회 인권연대 연구센터, 이웃살이 이주노동자센터, 한누리 아동센터, 무악동 선교본당, 강정 디딤돌공동체 •청소년사도직 : 청년토크, 젊은이 피정, 수도생활 체험학교 등 •선교 : 캄 보디아, 기쁨나눔재단, 미얀마, 동티모르, 대만, 일본, 해외 한인성당 등 •인터넷 및 미디어 사도직 : 이냐시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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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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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후원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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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강남) •월례특강(광주) •월례특강(대전) •월례특강(청주) •금요침묵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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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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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 (분당·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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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단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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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침묵피정
•월례특강 (고양·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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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부산) •금요침묵피정
•월례특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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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인천) •금요침묵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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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발송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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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서품식
•첫미사(센터)
(명동성당)
C O N T EN T S 04 후원회 동정
너희는 가지다
06 원로 사제와의 만남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메이스 신부
1 1 서품 소감문 1
약속과 꿈
김민철 부제
1 4 서품 소감문 2
나를 따라라
여명모 부제
17 서품 소감문 3
감사함에 대하여
김건동 부제
21 성경대학
24 숨 고르기
임헌옥 신부
사도시대의 삶과 영성
송봉모 신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배영길 신부
26 일본 그리스도교 역사 일본의 그리스도교 전래 6 29 이냐시오의 길 38 교황님 기도 지향
아라곤
구정모 신부 김민회 신부
지형규 수사 3
후원회 동정
너희는 가지다! (요한 15,5)
찬기를 먹은 봄비를 맞고 선 나무들 순간 가지에 새순이 돋아 숲을 이룬다. 세찬 바람맞고 선 나무들 가지들이 흐능청 넘실대도 푸르름만 더해 숲을 이룬다.
신학교 있을 때 어느 신부님께서 신학생들에게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여러분은 신학생인데, 신학생은 열매 를 맺어야 하는 가지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다른 가 지가 열매를 맺도록 일을 하는 농부라고 생각합니까?” “신부가 되려는 여러분, 신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 니까? ”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저는 신부가 된 이후, 많은 시간과 많은 경우에 제 자신이 열매를 맺 4
어야 하는 가지임을 잊고, 마치 제가 농부인 것처럼 착 각하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본당 신부로서 본당 신 자들의 신앙생활을 잘 돌보고, 영성지도 신부로서 신학 생들의 영성생활을 잘 지도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지낸 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남이 열 매를 잘 맺도록 도와주는 일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우 리 자신도 열매를 맺어야 하는 가지임을 잊지 맙시다. 이 점은 신학생인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후원회원 여러분, 여러분이 주신 비와 바람이 결실을 맺는 때가 왔습 니다. 여러분께서 아낌없이 내어주신 후원의 비와 기도 의 바람이 예수회라는 나뭇가지에 성소의 꽃을 피우고 사제라는 결실로 맺게 해 주셨습니다. 2016년 6월 29 일 세 분의 새사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사 랑이 성실한 하느님의 농부로서 또한 충실한 가지로써 살아갈 새사제라는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 사랑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아울러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 또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비와 바람을 맞고 예수회 나무는 더욱더 많은 열매들을 맺어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새사제들이 7월 한 달 국 내 여러분을 찾아 인사를 드릴 것입니다. 함께하지 못 하는 국외 후원회원님들께 송구한 마음을 전하고 새사 제들의 축복을 청해 보내 드리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 서! 임헌옥 가브리엘 신부|예수회 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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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사제와의 만남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 전 서강대 총장을 지내신 존 메이스 신부님과 함께
* 지난 호에 이어 신부님의 인터뷰가 계속 됩니다.
신부님께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필리핀, 동티모르 , 캄보 디아와 같은 동남아에서 오래 사셨는데, 혹시 무더운 기 후를 잘 이겨내는 비법이라도 있으셨는지요 ?
1996년 필리핀에 처음 갔을 때, 너무 더워서 이제 죽을 거라 생각이 들었어요. 죽을 것 같은 더위와 익 숙해지는데 2년이 걸렸고, 그 뒤로는 그 더위 안에서 당연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냈기 때문에 나름 대로의 큰 비법은 없었어요. 필리핀 아루페 국제공동체 원장으로 임명받는 과정에서 전임 총장 신부님이셨던 콜벤바흐 신부님과의 유명한 일 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잠시 소개해 주시겠 어요 ? 6
내가 필리핀 아루페 국제공동체 원장으로 추천 받고, 인도에서 콜벤바흐 신부님을 만났을 때, 아시 아 신학생들을 위해서는 아시아 사람이 공동체 원장 을 맡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신부님께서 “From now on, you are Asian!(지금부터 당신은 아 시아 사람입니다)”하고 말씀하셨어요. 신부님께서 농 담하신 거라 생각했는데 몇 개월 후에 아루페 국제공 동체 원장으로 임명되었지요. 그때뿐만 아니라 동티모 르, 캄보디아로 갈 때도 전부 그렇게 가게 되었어요. 그게 순명이니까요.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도록 해보 는 것이지요. 그러나 억지로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현지적응을 잘 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필리핀 아루페 국제공동체 원장으로 계시면서 국제공동 체의 기틀을 잡는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평가되고 있 습니다. 예수회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더라도 문화 와 생활습관이 다른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일치할 수 있도록 이끄셨 는지요 ?
아루페 국제공동체에 많았을 때는 17개국에서 온 예수회원들과 같이 살았으니,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는 또 달라요. 잘 봐야하고 잘 관찰해야 해요. 그때는 아루페 국제 공동체가 아시아에서 제일 큰 공동체였고, 잘 운영되 었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각 사람들에게 잘 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다른 나라와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 7
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해요. 그건 예수회 뿐만 아니라 어떤 공동체든 다 중요해요. 어떤 때는 한 사람이 자기 나라 방법대로 모든 것을 다 해야 한 다고 주장할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땐 참 어렵고, 할 수도 없고요. 돌이켜보면 큰 문제가 생긴 경우는 다행 히 없었어요. 필리핀에서의 생활을 마치시고 오랜 내전을 치른 동티모 르에서도 장상으로서 약 5 년간 생활하셨고 , 동티모르의 임기를 마치고 또 캄보디아로 가셔서 마지막까지 계셨어 요 . 캄보디아에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
현 총장이신 니콜라스 신부님께서 제게 동티모르 로 가겠느냐고 물으셨어요. 안 갈 이유가 없다고 생 각되어 가겠다고 했지요. 동티모르 문화는 동북아시 아의 문화와 많이 달라서 그것에 대해 많이 배워야 했어요. 제가 동티모르에 가자마자, 성소자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첫 번째 해(2006년)에 여섯 명의 지원자 가 수련원에 들어갔고, 그 여섯 명이 모두 수련을 마 치고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캄보디아에 서는 지역 장상이었던 제병영 신부님의 비서 역할을 했어요. 지금 캄보디아에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몇 명 더 있으면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예수 회원이 많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신부들이 항상 모 자라요. 어떤 나라 사람이건 상관없어요. 이제 오랜 기간 선교사로서의 삶을 마치시고 고향으로 돌아가시게 되셨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떠신지요 ?
지금은 건강이 별로 안 좋으니 그것을 관리해야 하 8
고, 고향인 오마하에 있는 크레이튼 대학교 Creighton Universit y 옆 본당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 인상이 깊었던 일을 말씀해 주세요 .
예수회 회원들이 생각나네요.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았고 통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으니까요. 통하기까 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요. 일례로 동양 사람 들이‘M a y b e’ 라고 하면 한국말로‘아니요’ 입니다. ‘도와주시겠어요? ’ 하고 물을 때‘예’ 하면 승낙하는 거 고,‘두고 보자’ 고 하면 거절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에선 눈치보는 게 중요해요. 잘 알 수 없어서 지켜봐야 했지요.(웃음) 한국에서 선교사로서 사시는 동안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
한국말을 잘 할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거예요. 언 어 문제가 제일 많이 생각나네요. 다른 부족한 것들 도 분명 많았겠지만. 선교사와 후원회원들과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밀접한 관 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관구를 지원해 주시 는 후원회원들에게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우리 예수회원이 모든 것의 책임을 맡아서 다 할 수는 없어요. 도움이 필요해요. 좋은 후원자가 많아 야 해요. 뿐만 아니라 1-2년 동안 기간을 정해서 도와 주는 사람들도 필요해요. 같이 일할 협력자가 필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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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시고 존 메이스 신부님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셨다. 한국, 필리핀, 동티모르 , 캄보디아에서의 신 부님의 삶은, 아시아와 유럽지역으로 3 차에 걸쳐 복음 전파를 위한 먼 여행도 마다하지 않았던 바오로의 삶이 연상되었다. ‘착해라’ 하시며 ‘당신도 착하게 살려고 평 생 노력해 왔다’는 말씀과 건강이 안 좋으신 가운데서도 위트 넘치고 평안한 모습에서는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했던 바오로의 당당함 또한 느껴졌다.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걸어왔을 뿐이라고 하시는 할아버지 신부님, 그 모 습 그대로가 바로 착한 목자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정리_ 유신재 에드몬드 신부
지민영 디오니시아
아루페 국제공동체 수사들과 함께(2003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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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품 소감문 1
약속과 꿈 김민철 사도 요한 부제 | 필리핀 아테네오 데 마닐라 대학교 로욜라 신학교
‘사제서품’ 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 말이 아직 생경 하게 들리긴 하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친숙하게 들 어 온 말이기도 합니다. 교구의 서품식이 있을 때마다,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수품자들의 얼굴과 출신 본당을 유심히 살펴보았고, 축하와 존경의 마음을 품 곤 하였습니다. 아직도 그 빛나는 표정들과 분위기는 기억이 납니다. 저도 얼마 전 같은 공동체에 살고 있는 한 수사님 에게 부탁하여 서품식 초대장에 실릴‘증명사진’ 을찍 었습니다. 실력 있는 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결과 는‘이건 좀 아니다’싶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촬영기 술과는 무관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그 수사님께서 재촬영을 해주셨고, 이번에는 편집기술까지 발휘하신 덕분에 결과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11
단지 용모의 문제만은 아니겠지요. 사실 제가 더 욱 면밀하게 성찰해야 할 부분은 저의 마음일 것입니 다. 생활하면서 가끔씩 제 안에 몇 개의‘겹’ 들이 존재 하는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그것들이 어떤 은폐나 기 만의 정과 연관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보호막으 로 인하여 저의 진짜 모습을 보지 못해서는 안 될 일 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저는 이제 가장 공적이며 동 시에 사적이기도 한 약속을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십 년 전 수련원에서 주님을 만나던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택 을 하지 못하고 있던 제게, 아니 선택을 해 놓고도 불 안해하고 있던 제게 주님이 주신 것은 당신의 약속이 었습니다.‘너는 내 사람이 될 것이다.’저의 가장 깊 은 곳으로 내려오신 주님께서 해주신 말씀,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힘들었어도, 지금껏 저를 지탱해 온 말 씀입니다. 교회 앞에서 사제가 될 것을 서약하면서, 주님의 그 약속과 깊이를 생각해 봅니다. 그 깊이에서 저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온전히 저 자신이며, 주님의 사랑 을 받고 있으며,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람으로서, 저의 모든 지향과 봉사와 기도가 이 깊이로부터 나오고, 또 그리로 수렴될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합니다. 끝으로 일일이 거명할 수 없지만, 저를 위해 삶으 로 기도로 동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형제들 모두 12
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함께해 주신 모든 순간순간들이 제 몸과 마음을 만드셨고, 이 터에 저 의 뿌리가 내리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새 로운 꿈(순례의 기억을 상기하자면, 주님과 함께 우리 모두 다 같이 이 길을 끝까지 걷는 꿈)을 꾸고 또 살 게 해주셨습니다. 이 꿈에 감사드립니다.
♣ 글 모음♣ <이냐시오의 벗들>은 여러분의 나눔으로 더욱 풍요로워 집니다. 삶의 이야기, 신앙 체험 등 내용이나 형식에 제한 없이 A4 한 장 정도(원고지 10장 이내)의 글을 기다립니 다. 글이 채택되신 분께는 소정의 영적선물을 드립니다. 04111 서울시 마포구 서강대길 19 예수회 후원회 박수윤 신부 : jbenefac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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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품 소감문 2
나를 따라라 여명모 하상 바오로 부제|대만 보인대학교 성 벨라르미노 신학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 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요한21,19)하고 말씀하셨다. 13년 전, 그날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세례를 받고 일 년 남짓, 아직 하느님이 누구신지, 기도 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그 시절. 나는 마음 안에 채 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 방황하고 있었 다. 그해 여름 강원도 도미니코 수녀원 피정집에서 첫 예수회 성소피정을 맞았다. 그리고 피정 마지막 날 아 침, 티베리아스 호숫가에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을 묵상하게 되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묵상하고 나서 막 기도를 마치려는데,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 다. 예수님께서 내게“네가 나를 따라오면, (너한테) 이 러저러한 일들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따라올 14
래? ”하고 물으신 것이다.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이러저 러한 일들이란, 당시 성소 여정을 시작하면서 가장 고 민이었던 부분 즉,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었던 아버지 와 관련된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마음속에서 큰 두려 움이 밀려 올라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니 놀라운 것은 나의 반응이었다.“네! 따르겠습니다!”일말의 주 저함도 없이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도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때 과연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난 것인지 지금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 렇게 2년을 더 준비하고, 결국엔 아버지의 축복은커녕 입회 허락도 얻지 못한 채, 도망치듯 입회하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돌아보면 참으 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 던 나는 주님과 장상 신부님들의 인내와 보살핌으로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하였다.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 식은 참으로 놀랍고 신기하기만 하다. 내가 하나를 포 기하자 더 큰 은총을 주셨고, 또한 외적인 실패를 통 해 내적인 성장을 이루어 주시기도 하셨다. 가족들도 한 사람씩 세례의 은총을 받게 되었다. 그중 가장 특별 한 사건은, 재작년에 아버지께서 위암 판정을 받으셨는 데 이를 계기로 부모님께서 함께 세례를 받으신 것이다. 사실 세례를 받으신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앞으로 받으실 수술에 대해서는 조금도 염려되지 않았 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대세만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성소의 여정 시작부터 거의 하루도 빼 놓지 않고 기도 드렸는데, 이렇게 빨리 기도를 들어주 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15
하느님께서 뜻하신 바가 있으셨던 것일까. 지난 부 제품 피정 중에, 우연히도 같은 복음 내용을 묵상하게 되었다. 나는 당시 사제수품 이후의 사도직 진로에 대 해 이런저런 고민과 식별의 과정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 고, 곧 있을 장상 신부님과의 면담을 통해 나의 장래 가 어느 정도 결정될 예정이었다. 기도 중에 예수님께 서는 가타부타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나를 따라 라.”하고 말씀하셨다. 비록 한 마디 짧은 말씀이셨지만, 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 었다.“지난 삶 동안 내가 너를 이처럼 이끌어 오지 않 았느냐? 무엇을 걱정하느냐?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그냥 나만 따라오기만 하면 된단다.”그분은 서 품 후에 나를 어디로 이끌어 가실지 말씀해 주지 않으 셨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난 10년의 수도생활을 통해 얻은 체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믿고 따르기만 하면 주 님께서 다 마련해 주시고, 항상 더 좋은 것을 주신다 는 것이다. 끝으로 한 집안에 사제가 나려면 삼대가 기도를 해 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 은 그럼 나는...? 이었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수많은 은인들의 기도와 후원과 격려가 없었 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영적, 물적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 부모님과 가 족들.“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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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품 소감문 3
감사함에 대하여 김건동 베네딕도 부제|영국 런던 대학교 히드롭 칼리지
사제서품을 앞두고 소감문을 쓰려고 앉아 있다 보니 천천히‘감사함’ 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사실 이 시간, 이 자리에서,‘감사함’ 이라는 말 밖에는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습니다. 먼저 그분을 알도록 처음부터 이끌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입니다.‘신앙은 들음에서 온다’ 는 말처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아버지 하느님을‘발견’ 할수 는 없을진대, 그분께서는 제가 자신의 노력이나 의도 와는 상관없이 유아세례를 받고 어머니와 함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당에 다니면서 그분에 대한 감각 을 지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신자가 아니 셨던 아버지께서 제가 예수회에 입회한 뒤에 세례를 받 으신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신앙의 길은 서로 연결되 어 있나 봅니다. 17
두 번째로는‘거룩함’ 에 대한 열망을 주신 것에 대 한 감사함입니다. 처음부터 수도생활을 의식적으로 추 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 이미 수도사제이신 큰외 삼촌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가끔 참례했던 새벽 미 사의 고요함에서, 그리고 머리 맡에서 묵주기도를 하시 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서, 나름대로 거룩함에 대한 열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하였기에 뒤 늦게 성소가 찾아왔을 때, 이를 감히 청하고 따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다음으로는 삶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에 대한 감 사함입니다. 닮고 싶은 모범을 보여 주신 스승과도 같 은 분들, 일상의 메마름을 우정으로 적셔 주신 분들, 쉽지 않은 관계들 안에서 오히려 제 자신을 성찰하게 해 주신 분들, 모두 주님께서 보내 주신 인연이라고 믿 습니다. 저는 이분들에게 어떤 인연이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또한 예수회로 불러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 뒤늦게 우연치 않은 기회로 알게 된 예수회입니다. 아주‘특별한’사람만 이 성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저 같은 사람마저도 그 분께서 불러서 쓰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곳입 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침묵 피정을 통해 그분을 만나 는 길을 가르쳐 준 곳입니다.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가깝고 먼 곳에서 주님 안의 우정으로 이끌어 주시는 많은 선후배 형제분들을 만 18
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예수회로 불러 주셨기 때문입 니다. 마지막으로 부족한 저를 성직자의 길로 초대해 주 신 것에 대한 감사함입니다. 부제 서품식 이후 성직 의 길에 들어서면서, 예전과는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됩 니다. 무엇보다도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을 섬 길 수 있다는 것은 예전부터 제게 큰 의미를 지녔습니 다. 저는 전례와 성사 안에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위 로와 은총이 참으로 크다는 것을 믿습니다. 처음에 는 그저 미사와 전례, 정해진‘거룩한’공간에서 만나 는 하느님,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회 생활 안에서 전례와 성사에 대해 새로 운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미사들도 많 습니다. 수련원에서 부활 성삼일 전례를 준비하던 기 억, 미얀마 실습기 때 선배 신부님과 양곤과 방콕에서 드렸던 미사, 올해 런던의 어느 수도원에서 드린 성삼 일 미사… 미사에 따라 참례하시는 분들의 모습도 다 양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또한 예수회원은 주님의 벗으로서 이웃에 게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성 당만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는 곳이 바로 전 례와 성사의 장소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사제는 하느 님께서 성사 안팎으로 베푸시는 사랑과 은총을 전달 하고, 이를 겸손하게 증거하는 삶을 살도록 공동체 안에서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이끄심과 더불 어 공동체의 기도와 지지가 없다면 이 길에 들어서지 19
도, 이 길을 걸어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첫 서원 때, 원로 신부님이신 故 진성만 신부님께서 수련원 제대에서 공동 집전하시는 것을 경외의 마음으 로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제가 도대체 그 큰 서원의 은 총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면서 이렇게 응답하고 있는 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서로를 향한 기도 덕분에 가능하다는 것도 나날 이 깨닫습니다. 저의 게으름과 미혹됨 때문에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고 그에 감사할 줄도 모를 때가 많지만, 합당치 못한 저를 당신과 당 신 아드님의 사랑 안에 조건 없이 품어 주시는 그분을 신뢰하면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다시 걷습니다. 그렇게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신앙의 공동체 안 에서 가르쳐 주신 그분께, 그리고 그 가르침의 통로가 되어 주신 예수회 안팎의 수많은 분들과 가족 친척들, 친구들, 지인들, 은인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과 기도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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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학
사도시대의 삶과 영성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 |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바오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감(사도 9,26-27; 갈라 1,18) 사울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였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가 제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 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 씀하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사도 9,26-27)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울 곧 바오로는 부르심 받은 직후 다마스쿠스를 중심 으로 한 아라비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다. 3년 동안 복 음을 전하는데, 유다인들은 그의 열성적이고 강력한 복 음 선포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들은 아라비아 지역 의 통치자인 아레타스 임금에게 로비를 벌여 바오로를 잡아 죽이려 한다. 유다인들의 음모를 알게 된 바오로는 21
다마스쿠스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다른 지역 이 아닌 예루살렘으로 간 이유는, 지난 3년간 복음을 전 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해서 좀 더 알 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제자인 베드로를 만나서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오로가 예루살렘 에 올라가 베드로를 만났던 때는 기원후 37년경이다. 이 본문에 나오는 말씀,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제 자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였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 다.” 에서‘노력하다’ 란 동사는 계속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시제로 쓰였다. 바오로가 예루살렘의 사도들 그리고 신 자들과 사귀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는 의 미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신자들은 바오로의 갑작스런 출현에 모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충분히 이해된다. 세계 역사 안에서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얼마 나 많은 위장 신자들이 있었는지. 산 속에 또는 은둔지 로 피신해 들어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신자들을 붙잡기 위해서 신자인 척하는 정탐꾼을 보내어 정보를 알아낸 뒤 신자들을 붙잡아 간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상상해 보자.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이 속한 아리안 혈통의 사람들이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생각하면서 육백만 명의 유대인들과 오백만 명의 집시들, 폴란드인들, 슬라브인들을 죽인 사람이다. 그런데 소문 이 들려오기를 이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심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바오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예 22
루살렘 신자들이 볼 때, 바오로는 양의 옷을 입고 있는 늑대에 불과하였다. 신자들로부터 호감과 신뢰를 쌓은 뒤에 교회의 핵심 인물들을 한꺼번에 잡아가려는 위장전 술로 보였다. 결과적으로 바오로는 두 집단으로부터 따돌림을 받 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바오로의 과거 동료들 곧 바리사 이들과 헬라계 회당의 유다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있 었다. 그들은 옛 동료인 바오로를 배반자 변절자로 낙인 찍으면서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이 바오로를 의심하면 서 멀리하고 있었다. 양 그룹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면 바오로가 설 자 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세상살이에서 어떤 그룹으로 부터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의심과 불신을 받을 때, 그보 다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바오로는 양 그룹으로부터 의심과 불신을 받으면서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아 마도 바오로는 예루살렘 신자들로부터 계속 거부를 받으 면서 포기하려 했던 것 같다. 이 점은“바르나바는 사울 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에서‘데려가서’ 에해 당하는 동사‘에피람바노마이’ 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동 사는‘강제로 붙들어 데리고 가다’ 의 의미를 갖는다. 예로 서 로마 군인들이 키레네 사람 시몬을 강제로 붙들어 예 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을 때 이 단어가 쓰였다. 바 르나바가 바오로의 팔을 붙잡고 사도들과 신자들에게 데 리고 갔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바오로가 낙심 속에 거의 자포자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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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고르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님께서 바닦에 엎드려 뭔가를 쓰고 계셨다. ‘영길아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그 글을 멍하니 한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쩌라구요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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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닦에 엎드려 내 마음을 쓰기 시작하였다. ‘예 , 제가 당신를 사랑합니다.’ 님께서 흐뭇하게 한참을 보고 계셨다. 그리고 “나를 따라라.” 라고 하셨다. 글·그림 배영길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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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그리스도교 역사
일본의 그리스도교 전래 6 구정모 마르코 신부 | 일본 죠치대학교 교수
일본의 그리스도교 선교사에서 하비에르 이상으 로 중요한 역할을 한 이가 있으니 코스메 데 토레스 Cosme de Torres 신부(1510-1570)이다. 하비에르 성인이 2 년간 일본에 체재하면서 그리스도교의 씨앗을 뿌렸다 면, 토레스 신부는 약 20년간 일본 선교에 전념하면서 일본에서 그리스도교의 기반이 마련되도록 준비한 이 로 평가 받는다. 토레스는 스페인의 발렌시아 출신으로, 20대 중반 에 사제가 되었다.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에게 권유받아 서 처음에는 멕시코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인도네시아의 말루쿠 제도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 가 마침 그곳의 암본 섬에 와 있던 하비에르와 만나게 되었는데 이 만남이 결국 토레스 신부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는 하비에르를 따라 인도 고아로 가 서 예수회원이 된 다음, 이전에도 소개한 것처럼 일본인 야지로 등과 함께 일본으로 들어와서 하비에르의 협력 26
자로 일본 선교를 시작하게 된다. 그가 선종하는 1570년 당시 일본에는 약 3만 명 이 상의 신자가 있었으며, 각지에 40개가 넘는 교회가 세워 져 있었다. 그리고 미세리코르디아(자선단체)를 만들고 알메이다 신부를 예수회에 받아들여 고아원이나 병원 등을 설립해서 직접적인 선교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 체를 위한 문화적 기여도 많이 했다. 동시에 토레스는 일본인들 중에 유능한 인재를 골 라서 선교의 협력자로 함께 일하는 자세를 보였는데 예 수회적인 선교방식의 확신성을 엿보게 하는 일면이었다. 동료 선교사들에게는 항상 일본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 하며 겸손한 자세로 임할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당시의 일본인들이 육식을 죄악시 하는 것을 알고는 자신도 육 식을 포기하고 일본인들처럼 밥을 지어 먹고 야채와 소 금으로 절인 생선을 주식으로 했다. 당시의 일본인들은 명주로 만든 옷을 입는 것을 고상하다고 생각하고 있 었는데, 토레스 신부는 특별히 선승이나 영주 등 정치적 으로 중요한 사람들을 만날 때는 그들의 격식에 맞춰서 명주로 만든 사제복을 입고 만났다고 한다. 당시의 그리스도교 선교는 선교사들과 포르투갈 상인들이 함께 협력해서 이뤄내는 일이었다. 선교사들 은 자신들의 안전한 여행이나 선교지에서의 재정적 후 원을 위해서 상인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상 인들은 안전한 무역을 위해서 선교사와 배후에 있는 국 왕이나 교황청의 정신적 후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또 한 당시 일본의 영주들은 전란으로 인해 서양의 무기가 27
필요했고 군사비 충당을 위해 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익 도 필요했는데 토레스 신부는 이 양자 사이의 훌륭한 중개자가 되었다. 이렇게 차근차근 선교지의 문화를 배우고 사랑하면 서 쌓아온 신뢰는 서민층의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일부 영주들에게도 감화를 주었고 또 불교의 승려들 중에 더러는 이러한 토레스의 삶의 자세에 감동하여 그리스 도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토레스 신부의 선교에서 기념비적인 것은 그가 오오 무라 수미타다大村純忠에게 세례를 준 일이었다. 당시 오 오무라 수미타다는 규슈 남단(현재 나가사키 현)의 작 은 규모의 영주였는데 처음에는 경제 군사적인 이유 때 문에 그리스도교에 접근했다가 나중에는 토레스 신부 의 가르침에 깊이 감화되어 스스로가 신심 깊은 신자 가 되었을 뿐만아니라, 1563년 이후 20여 년간에 걸쳐 영주민 중 약 7만 명이 세례를 받게 되었다. 또 오오무 라 수미타다와 토레스 신부의 노력에 의해 지금은 일본 그리스도교의 상징이 되어 버린 나가사키항이 개항되어 (1571년), 이른바 서양 그리스도교와 일본의 문화가 만 나는 창구가 되게 하였다.
토레스 신부 (일본 상륙 450주년 기념우표) 28
이냐시오의 길
아라곤 Arag´on 김민회 시몬 신부 | 프랑스에서 특수연학 중
21.2k m 28.8k m 26.0k m 33.5k m 25.5k m 23.3k m ´ - Zaragoza - Fuentes de Ebro - Bujaraloz - Cruzanzana - Fraga Gallur - Alagon
전체 약 650k m의 이냐시오의 길 순례 여정 중에서, 나바라와 아라곤 사이의 경계선은 거리상으로 딱 중간 에 해당된다. 그러니 앞으로 온 만큼 더 걸어야 최종 목 적지인 몬세라트와 만레사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지 금까지 걸어온 여정은 대략 320k m. 가유르에서 알라곤 Alag´ on이라는 도시를 향하면서 우리는 거리상으로 중간 을 넘어선다. 가유르에서 알라곤으로 향하는 이 길은 역 사적으로 의미가 있다.‘왕의 길 Camino Royal’ 이라고 불 리는 이 길은, 제법 폭이 넓으면서도 지금까지 모래와 돌 로 덮여 있는 오랜 시간과 역사가 담긴 비포장 길인데, 이 29
냐시오도 바로 이 길을 따라서 몬세라트까지 걸었으리라 고 여겨진다. 이 길과 관련되어 우리는 이냐시오의 자서전에 나오 는 한 일화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이냐시오가 당시 몬 세라트를 향하여 이 왕의 길을 따라 가는데 나귀를 탄 한 무어 Moor인과 논쟁을 하게 되었다.1) 이 무어인은 성 모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하여 이냐시오와 의견을 달리 하 고 그를 반박하였기에 이냐시오의 마음은 겉잡을 수 없 이 혼란스러웠고 급기야 이 무어인을 치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그 무어인이 사라진 이후에도 이냐시오는 성모 마리아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굴하고 불편한 마음이 계속 해서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무어인을 따라 가서 때리 고 싶다는 원의를 지니고, 자기가 타고 있던 나귀에 몸을 그저 맡기고 나귀가 가는 대로 모든 것을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이냐시오가 탔던 나귀는 무어인이 갔던 길이 아닌 사라고사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였고, 결국 이 무어인과 의 물리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는데, 이 나귀가 사라고사로 향했던 갈림길이 있던 지점이 이‘왕의 길’ 위에 있는 오늘날 페드롤라 Pedrola 라고 불리는 마을 근 처에서였다. 페드롤라는 가유르를 떠나 알라곤에 도착하 기 약 10km 정도 전에 위치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알라곤 Alag´on이라는 마을을 거쳐 도착하게 되는 사 1) 무어인은 북아프리카나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이슬람계 아랍 사람들을 일 컫는데, “무어”라는 단어의 어원은 검다는 뜻을 지닌다. 에스파냐 남부 쪽 에는 특히 이 무어인이 지은 건축물에서 그들의 문화의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의 유럽 대륙으로의 이주는 10세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 라간다. 이냐시오와 무어인의 논쟁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냐시오의 자서전 p.53-5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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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사 Zaragoza는 에스파냐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 면서 예전에 아라곤 Aragon 왕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거리 상으로 오늘날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의 딱 중간에 위치하는 사라고사를 이냐시오는 지나가 야 했다.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와 공동체 그리 고 요양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이틀 정도 쉬 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기로 한다.
사라고사 라 세오La Seo 광장에 있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 스도Cateral del Savador’ 성당. 12세기부터 공사가 시작되어서 18세기에 비로소 완공을 보게 된다. 이 성당 건물은 오늘날 사 라고사 대주교좌 성당이면서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건물 이기도 하다. 아마 이냐시오는 이보다는 미완의 성당을 접했을 것이다.
이 사라고사 공동체의 원장 신부님은 영어를 잘 못하 시지만 프랑스어를 하실 수 있어서 다행히 소통하는 데 에는 문제가 없었다. 에스파냐의 나이가 많은 예수회원 들 중에 영어는 못 해도 프랑스어를 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젊었을 때에 유럽에서는 영어보다 독일어나 프랑스어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31
은 상황이 바뀌어서, 에스파냐의 젊은 회원들 중에서 프 랑스어를 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냐시오 는 바스크 사람이니 바스크어에 능통했겠지만, 에스파냐 어는 물론이고 파리에서 7년간을 공부했기에 프랑스어도 잘 구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냐시오는 문화와 언어가 다른 여러 지역을 다녀야 했지만, 소통을 하는 데에는 그 리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사라고사 이후 우리는 푸엔테스 데 에브로 Fuente s de Ebro에
다다르게 되는데, 특히 푸엔테스 데 에브로부 터 몬세라트에 이르는 길 역시 많은 부분이‘왕의 길’ 이 라 불리는 아주 오래된 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냐시오 가 걸었던 길임이 분명하다. 로욜라에서부터 이냐시오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는 매순간 이냐시오가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는 옛부터‘왕의 길’ 이라고 불리는 길을 자주 만나게 되기 때문에, 이냐시 오의 자취와 향기를 최대한 가까이 느끼면서 이 길을 따 라 순례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는 계속해서 바르셀로나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의 길을 거슬러 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라고사에서 푸엔테스 데 에브로까지 약 26k m를 걸었다. 그리고 푸엔테스 데 에브로부터 벤타 데 산타 루시아 Venta de Santa Lucía 로 향하는 약 28k m 길은 우리 순례의 여정 중 가장 사막다운 사막을 수놓는 다. 이날만큼은 새벽 4시 30분에 숙소를 떠난다. 왜냐하 면 사막에서의 한 여름의 열기를 가능하면 피하기 위해서 32
이다. 해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도는 이미 37-38 도에 육박한다. 이 뜨거운 열기는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킬 지경이다. 많이 걷고 싶지만, 이날 만큼은 한 시간에 한 번씩 꼭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보통 한 낮에는 40 도를 훌쩍 넘는데, 오늘은 사막을 지나는 만큼 점심 식 사를 잘 챙기고, 낮잠 또한 충분히 자야 한다. 그런데 푸 엔테스 데 에브로에서 벤타 데 산타 루시아 사이의 길은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오전 11시 이후로는 그늘이 전혀 없는 황무지였기 때문이다. 휴식을 취할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냥 계속 걸어야 했다. 우리가 좀 더 현명했다면, 본격적인 사막을 걷기 전에 피나 데 에브로 Pina de Ebro라는 마을에서 물을 충분히 확보해야 했다. 이 이후부터 벤타 데 산타 루시아까지는 사람 사는 마을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그저 물 한 통 정도만 갖고 있었고, 그만하면 될 줄 알았는데, 얼마 안 가서 물은 동이 났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피나 데 에브로에서 벤타 데 산타 루시 아에 이르는 길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었어야 했다. 걸 어야 할 황무지 길이 생각보다 길었고, 날씨는 생각보다 무척 더웠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도중에 길이 확실치가 않았다. 이정표가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마을이 전혀 없기 때문에 물어볼 수 있는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예전에 바스크 지역 고원 한 가운데에서 길 을 잃었던 아찔한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그때는 그나마 33
숲이 우거져 있고 날씨도 그렇게 덥지 않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햇빛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없었고 날씨는 몹시 덥고, 무엇보다도 마실 물이 전혀 없었다. 목은 바짝 말라가고, 입 안에서는 모래가 씹히는 것이 느껴진다. 앞으로 얼마나 더 길을 가야 하는 지, 그리고 우리가 걷는 길이 확실한 것인지 등의 정보도 전혀 없었다. 이냐시오도 걸었을 이 길 위에서 절박한 상황에 처 한 우리는 이냐시오를 떠올릴 겨를이 없었다. 내 자신이 과연 살아서 이 광야를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뿐이었다. 게다가 우리마저 서로 의견이 갈리면서 긴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형제는 왔던 길을 다시 돌 아가자는 의견을 내놓았고, 어떤 형제는 저 멀리 마을이 보이는 거 같으니 길이 아니더라도 저 마을을 향해 사막 을 가로질러 가자는 의견을 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마 을은 실제 마을이 아닌 신기루였다. 나는 그냥 가던 길 을 걷자고 제안했다. 이 길이 맞는다면, 이론적으로는 한 10~15k m 정도만 가면 벤타 데 산타 루시아에 도착할 것 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확실한 선택 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서로가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두려움과 절망과 긴장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우리의 어깨 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기적과 같이 트럭 한 대가 우리를 향해 오 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의 눈을 의심했다. 저 것이 과연 신기루는 아닌가 의심했다. 그러나 이는 명백 34
한 사실이었다. 이 광활한 황무지를 걸으면서 처음 마주 한 인기척이었으니, 우리는 연신 환호를 외치며 바로 이 트럭을 세웠다. 우리가 걷는 방향이 벤타 데 산타 루시아 로 가는 옳은 방향인지, 그리고 그곳까지 얼마나 멀며 얼 마나 더 걸어야 하는지 물었다. 안타깝게도 이 트럭 운전 수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우리더러 자기 트럭 뒤에 타라는 시늉만을 했다. 그리고는 이 거친 광야를 꽤 빠른 속도로(약 40-50k m /h) 달리니 약 20-30분 뒤 에 벤타 데 산타 루시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그 냥 걸었다면, 3-4시간은 족히 걸어야 도착했을 거리였다. 참으로 아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무지에서의 이 기 나긴 거리를 물 없이 걸어야 했다면, 아마 우리 중 누군 가가 탈진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중간에 길을 잃어버렸 을 수도 있고, 서로가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고 의가 상 해 헤어졌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벤타 데 산타 루시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전혀 아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간이 휴 게소의 이름일 뿐이다. 전체 27단계로 나누어진 프로그 램에 의하면,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잠을 자기로 되어 있 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사람이 전혀 살지 않는 폐가였 다. 그러니 그냥 걸어와서 무사히 도착했다 손치더라도 이곳에서 그냥 노숙을 해야 할 판이었다. 이 트럭 운전수 는 이 벤타 데 산타 루시아에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 니 우리를 좀 더 태우고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좀 더 가 다가, 이 운전수는 우리를 가게가 딸린 주유소에 내려주 었다. 당장 마실 물을 사서 갈증을 풀기 시작했다. 우리 35
는 그렇게 기적과 같이 이 트럭 운전수를 만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벤타 데 산타 루시아를 훌쩍 지나 가 버린 우리는, 차를 얻어 탄 덕분에 시간도 아끼고 했 으니, 다음 날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목적지 부하라 로스 Bujaraloz까지 그냥 냅다 걷기로 결정한다. 확인한 결과 10k m 정도만 더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재 있는 주유소 근처에도 잠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 다. 우리는 꽤 늦은 저녁 부하라로스에 도착할 수 있었 다. 목숨을 건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서야, 우리는 이 냐시오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 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함과, 반면에 목숨을 걸고 순례를 할 정도의 이냐시오의 강직함이 아주 극명하게 비교가 되는 순간이었다. 부하라로스 이후에 우리가 걷는 길은 결코 풍요로운 지역은 아니지만, 그 전날 걸었던 가장 척박한 황무지보 다는 좀 나았다. 이제 날씨가 제법 흐려지기도 하고, 주 변 지형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우 리는 서서히 아라곤 지역을 벗어나, 지중해가 가까이 있 는 몬세라트와 만레사와 바르셀로나로 향하고 있는 것 이다. 부하라로스에서 칸다스노스 Candasnos 까지는 약 20k m 정도인데, 이날 원래 묵으려고 했던 칸다스노스에 서는 숙소를 구할 수 없었다. 이곳은 그저 텅 비어 있는 마을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약 5k m를 더 가서야 라 크루 산사나 La Cruzanzana에서 겨우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36
여기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소나기를 만나게 된다. 시커먼 먹구름이 갑자기 몰려오더니 비가 한 두 시간 정도 억수 같이 내렸다. 그래도 척박한 지역에 비가 왔으니 마음속 까지 시원하였다. 사람들은 오늘 운이 아주 좋은 날이라 했다. 이날의 비는 아란사수에서 만났던 아주 약한 보슬 비를 제외하고, 우리의 순례 중 만난 처음이자 마지막 비 다운 비였다. 중간에 차를 얻어 탔고 숙소를 찾지 못해 더 전진하 는 바람에, 우리는 원래 계획보다도 하루를 앞질러 왔다. 예정보다 빨리 길을 걷고 있는 우리는 조만간 가게 될 예 이다 Lleida에 있는 예수회 공동체에도 하루 일찍 오게 되 었고, 그래서 이곳에서 이틀을 머물기로 한다. 그렇지 않 으면 앞으로 머물게 될 몬세라트, 만레사 그리고 바르셀 로나에서의 숙박 계획을 다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제 아라곤의 거의 끄트머리에 다다른다. 프라가 Fraga는 아라곤과 카탈루냐 Catalunya의 경계에서 얼마 멀지 않은, 아라곤을 떠나기 전의 마지막 도시이다. 그리고 프라가 를 떠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카탈루냐주에 입성한 다. 그러나 카탈루냐에 들어왔다고 해서 벌써부터 최종 목적지를 말하기는 이르다. 일주일의 순례 여정이 더 남 아 있기 때문이다. 그저 무사히 순례를 잘 마칠 수 있기 를 하느님께 기도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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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의 2016년
6월 기도 지향
일반 기도 지향 인간 연대 : 나이든 이들, 소외된 이들, 혼자 사는 이들이 대도시 안에서도 만남과 연대의 기회를 가지도록 기도합 시다.
2013년 7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착좌 후 첫 사 목 방문을 하셨습니다. 그곳은 바로 이탈리아 남부의‘람 페두사’란 섬이었습니다. 이곳은 수많은 이민자들이 아프 리카에서 목숨을 걸고 밀항해 오는 곳인데, 2012년엔 이 곳으로 향하던 이민자들의 배가 전복되어 136명 중 50명 만 구조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이 시대 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소인 람페두사에서 이 웃의 고통에 무관심한 우리 현대인들의 양심을 두드리셨 습니다.“여기 형제·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하고 있 습니까? 누가 이들을 위해 울고 있습니까?”교황님께서는 또 다른 연설에서“추위로 얼어 죽은 노숙자의 이야기, 굶 주리고 있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뉴스조차 되지 않습니 다. 저는 이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 38
픕니다.”라고 말씀하시며,‘연대Solidarity’의 중요성에 대 해 말씀하셨습니다.“연대라는 단어는 무엇보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 가운데 내려오셔서 육신을 취하시고 무엇보 다도 죄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인간과 연대를 이루셨습니 다.”자비가 필요한 우리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미신 예수 님처럼, 우리도 가난한 이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특히 이 시대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노인 들, 소외된 이들, 대도시에 있을지라도 주변에 아무도 없 는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예수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느 낄 수 있도록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시다.
선교 기도 지향 신학생들과 수련자들 : 신학생들과 수도생활을 시작한 이들이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며 그들의 파견 소명을 지 혜롭게 이끌어 줄 스승을 만나도록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자주 강조하시는 단어 중 하 나가‘기쁨’입니다.“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필리 4,4)라는 말씀처럼, 교황님께서도“그리스도인들에겐 예 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 다.”하고 말씀하셨지요. 심지어 고통 가운데에서도 기쁨 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기쁨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만, 한줄기 빛으로라도 언제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는 끝 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개인적인 확신에서 생겨납니다. 저 는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기쁨이 더디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 39
지만 확고한 신념으로써, 극심한 비탄 속에서도 서서히 되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신학생들과 수도생활을 시작하는 수련자들에게도 복 음의 기쁨이 흘러 넘쳐야 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신학 생들과 수련자와의 만남에서“슬픔에는 거룩함이 없습니 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기쁨의 사제, 수도자가 되 길 촉구하셨습니다.“진정한 기쁨은 전염됩니다.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만약 어떤 신학생이나 수련자가 지나치 게 심각하거나 슬프다면 그건 뭔가 잘못된 겁니다! 주님 의 기쁨이 부족한 겁니다. 예수님께서는‘너는 내게 소중 하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게 의지하고 있단다.’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기쁨은 바로 여기에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이 기쁨입니다.” 6월에는 미래의 사제와 수도자들이 바로 이 복음의 기쁨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또한 신학생들과 수련 자들이 그들의 미션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좋은 양성 담당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교황님과 함께 기도합 시다. 글_ 지형규 요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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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 예수회 성소모임 ■예수회 성소모임 (6월) 일 시: 6월 11일, 25일 (토) 오후2시 장 소: 관구본부(서강대 옆)
■예수회 성소식별 피정 일 시: 7월 8~10일 (금~일) 장 소: 강화 마리아니스트 영성센터 (예수회센터에 모여 차량으로 함께 이동) 대 상: 만 30세 이하 남자 청년 (30세 이상은 별도 문의) 문 의: 김우중 수사 (010-6245-1608) 홈페이지 vocation.jesuits.kr
♣ 청년 프로그램 ■New 청년토크 일 강 주 장 신
시: 6월 9일(목) 저녁 8시~ 사: 오세일 대건안드레아 신부(예수회) 제: 청년의 꿈과 욕망 그리고 사랑 소: 이냐시오 까페 (예수회센터 1층) 청: 온라인 신청 혹은 현장등록
■6월 징검돌 무료피정 및 미사 일 내 대 장
시: 6월 26일(일) 오후 4시~ 7시 용: 주일 복음묵상, 그룹나눔, 미사 상: 청년 누구나 소: 이냐시오 까페(예수회 센터 1층) 문 의: 010-9479-0641 / magis.jesiut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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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센터 프로그램 ■예수회 신부와 함께하는 피정 프로그램 영신수련에 의한 침묵피정(예수회센터 피정동) 영신수련 4박5일 피정
2016년 06/24(금) 저녁7시 – 06/28(화) 2016년 07/13(수) 저녁7시 – 07/17(일) 2016년 07/01(금) 저녁7시 – 07/10(일)
영신수련 9박10일 피정
2016년 07/21(목) 저녁7시 – 07/30(토) 2016년 08/11(목) 저녁7시 – 08/20(토)
예수회 신부님이 지도하는 일일 위탁피정 신청 받습니다. 대 상: 30명 이상으로 구성된 모든 단체 및 수도회
■대관 · 대실 예수회센터 시설 피정동 : 3개 층 1-3인용 18개, 1-6인용 1개 (최대 60명 가능) 강의실 : 세미나실 20명, (좌식)모임방 20명, (좌식)기도실 40명 소강의실 60명, 중강의실 120명, 성당 330명 *대 관, 대실이 필요한 단체나 개인은 예수회센터 사무실로 문의하 시기 바랍니다. 문 의: 센터 사무실 02-3276-7733 이메일 jesuitcenter@gmail.com 홈페이지 http://center.jesuits.kr/
캄보디아 예수회 학교
Jesuit Xavier School 건립을 위한 기금 모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더 먼 곳으로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던 하비에르 성인처럼 캄보디아 농촌 지역에 하느님의 사랑을 전 하는 ‘하비에르 학교’를 세우는 데 도움 주실 분을 기다립니다. 문의 : 예수회 후원회 02-3276-7777 (입금 후 확인 전화 부탁드립니다.) 계좌 : 우리은행 1005-102-473710 (재)한국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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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후원회원을 위한 감사미사와 영성특강 일 시: 2016년 6월 1일(수) 오후2시 장 소: 예수회센터 2층 마리아 기도실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후원계좌 신 한 329-03-013150 국 민 012-01-0605-325 우 리 018-144089-13-007 예금주 (재) 한국예수회 문 의: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02-3276-7799, 7794
♣ 예수회 제3수련자들의 영신수련 피정 지도 예수회에서 제3수련을 받고 있는 사제 6명과 수사 1명이 지도하 는 피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후원회원 여러분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일 시: 8/14(일) 16:00 ~ 8/23(화) 10:00 (9박10일) 장 소: 파주 예수마음 배움터 주 소: 경기도 파주시 한빛로 21 (031-946-2337) 피정 책임자: 민기식 신부 피정비: 55만원(예약금 5만원) 입금계좌: 우리 1005-501-908051 예금주 : (재) 한국예수회 인 원: 21명(예약금 납입자 우선) *예약 취소시 예약금은 7/25 이후에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문 의: 후원회 사무실(02-3276-7777, 크리스티나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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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성지순례 안내 ■6월 김대건·최양업 신부님의 발자취를 찾아서 일 정 : 6월 24일 ~ 6월 29일(5박 6일) 순 례 지: 장춘, 길림, 백두산, 연길, 용정, 도문 동반사제: 이인주 신부|예상금액: 135만원
■8월 성모님 발현성지 성지순례 일 정 : 8월17일 ~ 8월29일(12박13일) 순 례 지: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동반사제: 김산춘 신부/ 예상금액: 390만원
■9월 바오로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서 일 정 : 9월17일 ~ 9월29일(12박13일) 순 례 지: 터키, 그리스 예상금액: 370만원
■10월 이냐시오 성인의 발자취와 성모님 발현성지 일 정 : 10월17일 ~ 10월30일(13박14일) 순 례 지: 스페인, 프랑스(루르드), 포르투갈(파티마) 동반사제: 박수윤 신부/ 예상금액: 395만원
■11월 알프스와 함께 수도원 순례 및 성모 발현성지 일 정 : 11월02일 ~ 11월 14일 (12박 13일) 순 례 지: 체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예상금액: 420만 원
■11월 이스라엘·요르단 성지순례 일 정 : 11월 19일 ~ 11월 30일(11박12일) 순 례 지: 이스라엘, 요르단 예상금액: 380만원 ※상기 여행 요금은 항공료, 환율, 유가 변동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여행 경비에는 공동경비, 세금, 유류 할증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기 여행 일정은 항공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문의 및 접수 : (주)크로바 여행사 T : 02-722-8366 / F:02-722-8365 44
예수회 후원회 가입과 후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4월 예수회 신규 후원회원 국내 (23명) 공정삼 김병관 김양미 김연주 김연희 김은자 김진수 김혜경 도명옥 박선정 박선주 박윤주 손동일 송순자 윤주성 이광호 이정현 이회선 정경숙 정영숙 조경숙 최선영 함판순
국외 (2명) 김릴리 정종규
4월 기부금명단 권오승
$300.00
김진경
500,000
박호준
30,000
성주천
500,000
손순금
1,000,000
손필갑
12,500,000
신염순
30,000
유명헌
500,000
정 란
200,000
최주영
100,000
기부금 명단은 비정기 후원의 지향을 후원회에 알리신 분에 한하여 게재합니다. 정기후원과 더불어 비정기 후원을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후원회비는 예수회 사제 양성 기금, 사도직 기금 및 캄보디아, 미얀마 등의 선교 기금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45
예수회 후원회원이 되어주십시오! 예수회는 1540년 이냐시오 성인에 의해 창설되어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 세상 안으로 파견되어 투신하는 활동수도회입 니다. 예수회원은 ‘활동 중 관상’ 을 하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 존’ 을 찾으며 세상의 가장 어려운 곳을 찾아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후원회원님들께서 보내주시는 후원금은 무엇보다 예수회 사제 양성과 캄보디아를 비롯한 선교 기금 그리고 여러 사도직 기금 으로 소중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후원은 하늘나라에 쌓는 값진 보화가 될 것이며, 추수 할 일꾼을 길러내는 참된 봉헌이 될 것입니다. 저희는 여러분의 선한 뜻을 현장에서 실천하며 하느님의 영광 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며, 여러분은 저희의 협력자이십니다. 따 라서 여러분은 예수회의 동반자이며, 예수회의 벗이십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실 분은 후원회 사무실로 전화 주시거나 홈 페이지를 방문하여 신청해 주십시오. 전화 : 02-3276-7777 홈페이지 : http://benefactor.jesuits.kr
예수회 후원회원을 위한 미사 저희 예수회는 후원회원들을 위해 회헌 309조 및 관련법규 304조에 명시된대로 예수회 모든 공동체에서 항구하게 미사 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본 회에 도움을 주시는 모든 사람들이 보내 준 정성과 관 대한 후원에 대하여 우리가 보답을 하는 것은 매우 지당하 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매월 한 대의 미사를 영원히 봉헌하도록 한다.” [예수회 회헌 309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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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회 알림 ◆영명축일을 알려주세요. 2016년 6월부터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후원회원님들께 기존 의 ‘축일카드’ 대신 ‘책 선물’을 보내 드릴 예정입니다. 축일을 알려주지 않으셨거나 주소 변경을 하지 않으신 분들은 후원 회 사무실로 꼭 확인 전화 부탁드립니다.
◆미사신청 전화로도 가능합니다.
미사신청 계좌번호
우리 1005-300-968781 신한 140-006-906328 국민 012501-04-068525 예금주 (재)한국예수회
◆후원회비 입금 계좌번호
국민 우리 우리 신한
012-01-0610-808 018-144089-13-009 844-05-000791 140-002-805577
신한 140-002-726489 농협 037-01-309663 외환 048-22-02174-9 예금주 (재)한국예수회
* 입금 후 꼭 확인 전화 부탁드립니다.
◆ 전화 문의 : 02-3276-7777 예수회 후원회 후원회 업무시간 : 월~금, 오전9시~오후5시 (점심시간 : 12:00-13:00)
호주 후원회 방문 강사 : 임헌옥 가브리엘 신부(예수회 한국관구 후원회 위원장) 강의/피정 주제 : 성심聖心, 그 마음을 읽다. 방문 일정 : 6월 3일(금) - 9일(목) 시드니 6월 9일(목) - 13일(월) 멜번 * 미사, 강의, 피정, 교육에 대한 구체적 일정과 문의 사항은 김상암 스테파노 형제님께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전 화 : +61425254734 - 이메일 : sakim@optusnet.com.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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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정 및 교육 프로그램 ♣ ◆금요침묵피정
*미사봉헌
강의와 함께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 니다. 일시 : 매주 금요일 10시-15시 10분 장소 : 예수회센터 성당(3층)
날짜
강사
*참가비 : 무료(중식제공)
피정주제
3일
이인주 신부
성경의 껍질을 벗고 나온 보화 예수님과 그 협력자들
10일
김영택 신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
17일
김우중 수사
하느님 나라 이야기 6 (사진으로 하는 영신수련)
24일
김용수 신부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시간표 10:00-10:50 11:00-11:50 11:50-12:30 12:30-13:20 13:30-14:20 14:30-15:10
강의 기도 점심 강의 기도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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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위해 개인컵 지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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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특강
*미사봉헌
날짜 6월 1일(수) 오후2:00-4:00 강남 주제 이종진 신부 / 중독과 영성 첫째(수) 역삼동성당 지하1층 경환당 *미사없음 장소 (서울 강남구 언주로 85길 23-11) 문의 02-3276-7777 날짜 6월 2일(목) 오후 2:00-5:00 주제 유신재 신부 / 마리아의 기쁨과 동반자 요셉 광주 첫째(목) 장소 염주동성당 소성전 (광주 서구 월드컵4강로 129) 문의 010-4627-0161 48
날짜 6월 2일(목) 오후2:00-5:00 주제 박도현 수사 / 나그네, 그리고 순례자 청주 첫째(목) 장소 가톨릭 청소년센터 제1강의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중앙로 61번길 16) 문의 010-7426-4132 날짜 6월 3일(금) 오후1:30-4:30 주제 하태수 신부 / 율법에 대한 또 하나의 인식 대전 첫째(금) 장소 예수수도회 교육센터 (성모여고 內 대전 중구 대흥로 62) 문의 02-3276-7777 날짜 6월 8일(수) 오전10:00-오후 1:00 분당 주제 서석칠 신부 / 아름다운 동행 · 성심교육관 용인 장소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로 45번길 38) 둘째(수) 문의 010-7255-8588 날짜 6월 10일(금) 오후2:00-5:00 김정욱 신부 / 문제는 생각이야! 주제 영성생활 기초 세우기 인천 둘째(금) 주안1동성당 지하성당 장소 (인천 남구 경인로 369) 문의 010-6790-5308 날짜 6월 15일(수) 오후1:30-4:30 서울센터 셋째(수)
김학준 신부 /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필리 4,6) 예수회센터 장소 (서울 마포구 서강대길19) 문의 02-3276-7777 주제
날짜 6월 17일(금) 오후2:00-5:00 주제 하태수 신부 / 율법에 대한 또 하나의 인식 부산 셋째(금) 장소 남천성당 소성전 (부산 수영구 수영로427번길 15) 문의 02-3276-7777 날짜 6월 20일(월) 오후1:30-4:30 김학준 신부 /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양 주제 (필리 4,6) · 일산 마두동성당 4층 소성전 셋째(월) 장소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일산로 254) 문의 02-3276-7777 49
예수회 성소를 위한 기도문 저희들을 당신 아들의 벗으로 부르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아버지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죄인이지만, 당신의 자비로써 저희들을 부르시고, 저희들은 약하지만, 당신의 도구로서 저희들을 통해 일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당신께 감화되어서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도록 도와주소서. 주님이 시작하신 예수회를 오늘도 내일도 당신이 이끌어 가심을 믿으며 저희는 다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길의 인도자이신 성모님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예수회 한국관구 성소실 주소 : 04111 서울특별시 마포구 서강대길17 예수회 성소실 전화 : 02-3276-7715 / 010-6245-1608 E-mail : vocsj@hanmail.net Homepage : vocation.jesuits.k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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