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 2013년 11 / 12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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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288-2782

VOL.65 www.kcrc.or.kr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2013 11·12

특집

개성공단 정상화, 무엇이 달라지나


CONTENTS Vol.65 November / December 2013 02 특집

|

개성공단 정상화, 무엇이 달라지나

· 개성공단 정상화, 제도적 개선책은 무엇인가

· 지속성·수익성 확보하여

|

한명섭

쑤저우 공단 능가하는 국제산업단지로 만들어야 | 남성욱 COVER STORY

다시 활기를 찾은 개성공단 일터로 돌아온 북한 근로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연합>

· 북한 대외 개방정책 성공의 열쇠,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다

|

양운철

16 만나고 싶었습니다

문창섭 개성공단기업협회 명예회장

·“개성공단을 남북신뢰를 쌓는

‘통일의 묘목장’으로 키워야 합니다” | 염규현

20 진단

· 다양한 시너지 효과 기대되는 남·북·러 삼각협력

북한의 긍정적 변화 촉진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 | 윤성학

· 2013 통일의식조사, 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 늘어

민관이 함께하는 통일 기반조성이 필요 | 정은미

28 논단

· 더 미룰 수 없는 이산가족문제,

우리가 먼저 푼다는 대승적 자세 가져야 | 김병로

32 공 PD의 북한 취재수첩

· 북한의 시장화 20년, 우리의 과제는?

|

공용철

민족화해 2013년 11-12월호(격월간, 통권 65호) 등록번호 영등포, 마00041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 4 동우국제빌딩 4층 전화 02.761.1213 홈페이지 www.kcrc.or.kr

발행일 2013년 11월 1일 발행인 홍사덕 편집인 이경형 홍보위원장 김영만 편집기획위원 공용철, 김용현, 노태호, 오한샘, 윤법달, 정영태, 정은미, 정진아, 조동호 편집장 이운식 편집부 이현희, 염규현 디자인 및 제작 (주)풍경인소풍 070.7433.1123

02


통일을 준비하는 격월간지

60 민족화해 네트워크

36 시선

·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남북 언론보도를 통해 본 화해의 길 | 이주철

64 현장

38 칼럼

700만 재외동포와 함께 통일기반 조성에 앞장설 것 | 편집부

· ‘DMZ세계평화공원’에 앞서 할 일

40 르포

|

이경형

68 포토 스케치 |

연평도를 가다

· 이 시대, 이 땅의 가장 절실한 종교는 평화!

|

강제윤

44 통일교육·평화교육

·“해외동포와 함께 여는 행복한 통일미래”

|

민화협 2013 통일문화축제

· 정전 60년, 화해로! 평화로! 통일로!

분단 현장을 달리고 걸으며 통일을 꿈꾸다

72 2030통일론

· 탈북자와 우리와의 통합교육

· You are judging me!

|

백경서

북한이탈주민 정서지원과 남북 소통의 장 필요 | 최지혜

74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48 길에서 만나는 평화와 통일

|

강미정

· 남북관계 경색국면 불구,

종교계 교류·민간단체 모니터링 방북 이어져 | 편집부

· ‘바보 온달’로 바라보는 통일의 염원과 미래

· 금강산에 울려퍼진 평화를 염원하는

76 무대 혹은 스크린

·고뇌하는 스파이

|

오한샘

남북 불교도들의 기도 소리 | 일감 스님

78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52 지금 북한은

80 독자 의견

· 북한의 ‘스포츠 정치’, 새로운 리더십 구축과

주변국 관계 개선의 두 가지 목적 있나 장용훈 |

·모란봉악단, 남북문화교류의 효과가 보인다

20

|

오기현

28

68


특집 개성공단 정상화, 무엇이 달라지나

재가동 이후 개성공단

“개성공단은 통일의 마중물” 지난 4월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로 가동이 멈추었던 개성공단. 이후 7차례에 걸친 남북 당국 간의 회담 끝에 8월 14일 정상화에 합의하고 9월 16일 다시 가동에 들 어갔다. 남북 당국은 다시는 개성공단이 어느 일방의 의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 하지 않도록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공단의 현안과 개선점들을 공동 으로 처리해 나가기로 하였고,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위한 3통 문제 해결 등 공단 의 내실 있는 발전을 추구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단이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오기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2013 년 10월 기준으로 전체 공단의 가동률은 70~ 80%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 가 예정되어 있던 외국투자유치 설명회도 무산되어 공단이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 고 나아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난 10월 30일 개성공단의 현황을 살피기 위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여야 국회의원 21명이 공단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은 개성공단 현지에서 홍양 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위원장의 현황보고, 이주태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 회 남측 사무처장의 업무보고 등을 받았다. 이어 현지 기업인들의 고충을 청취하 고 격려하는 자리에서 “개성공단은 남북관계 발전의 교두보, 마중물”이라고 한목 소리를 내기도 했다. 개성공단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여야가 힘을 모으겠다는 메시지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가동에 들어간 개성공단. 이제는 안정적인 제 도화와 성공적인 국제화 등을 통해 더 큰 도약과 발전을 이뤄나가길 바라본다.

01-02 재가동된 개성공단에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는 북한 근로자들. 03 10월 30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국회 외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삼덕통상 공장을 찾아 이곳에 서 생산되는 신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01

0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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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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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삼덕통상(주)


특집 개성공단 정상화, 무엇이 달라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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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정상화,

제도적 개선책은 무엇인가 한명섭 법무법인 한미 변호사

현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매년 해오던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이유로 한반도 정세를 경색국면으로 몰아가 다가 2013년 4월 8일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전원철수 조치를 취하였고, 결국 5·24조치에도 유지되 어오던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후 남북 당국은 난항을 거듭한 협상 끝에 2013년 8월 14일 「개성 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를 체결하여 재가동에 대한 합의를 하였다. 같은 달 28일에는 위 합의서의 이행을 위하여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고, 그동안 개성공단

ⓒ연합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04 05

운영과 관련하여 문제가 제기되어온 각종 제도개선

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법제도 구축

과 현안 문제들을 남북공동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기

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이고, 자연히 여러 가지 제도

로 하였다.

적 미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거론된 대표 적인 미비점으로는 남한 주민의 신변안전보장, 투

개성공단의 제도와 운영체계의 특징

자보장, 분쟁해결 방안,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북한의 경제특구 중

등이 있다.

하나로 남한의 기술 및 자본과 북한의 토지 및 노동

신변안전보장과 관련해서는 비록 남북한 간의 출입

력이 결합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체류합의서에 의해 북한이 공단 내 남한 주민에 대

개성공단은 매우 독특한 법제도와 운영체계를 가지

해서는 원칙적으로 형사사법권을 포기하였지만 구

고 있다.

체적인 후속합의서 체결을 하지 못해 유성진 씨 사

법제도를 보면 개성공단은 북한법과 남한법 및 남북

건에서 본 것처럼 북한이 수사가 아닌 행정적 조사

합의서에 따라 규율되고 있다. 북한법을 살펴보면

를 목적으로 136일간이나 억류하는 사태를 막지 못

개성공업지구법을 기본법으로 하여 북한 최고인민

하였다. 따라서 출입체류합의서의 후속합의서를 체

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제정한 16개 규정과 중앙공업

결해 북측 조사권의 범위와 방법 및 피조사자의 권

지구지도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서 제정한

리 등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분쟁해결과 관련해

시행세칙, 북한법상의 행정기구이면서도 남한 주민

서는 남북한 간에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운영하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제정한

해결하도록 합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재규정 마

사업준칙이 있다. 남북합의서로는 이른바 4대 경협

련 등의 후속조치가 없어 실제로 위 위원회가 전혀

합의서, 개성공단에 적용되는 통행, 통신, 통관, 출

가동되지 못하고 있었다. 투자자산 보호 문제 역시

입, 체류에 관한 합의서 및 남북 경협 전반에 걸쳐

금강산 관광지구 내 자산 동결 및 몰수조치에서 본

적용되는 각종 합의서들이 있다. 남한법으로는 개성

바와 같이 현재의 남북한 합의서만으로는 사실상 보

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남북협력기금법, 남북

장이 어려운 상태이다. 3통 문제도 더 간이하고 신속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와

한 통행 및 통관절차, 인터넷과 이동전화 등 통신수

같은 남북합의서와 북한법, 남한법은 개성공단 출

단 이용의 확보 등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범 이전에 모두 준비된 것이 아니라 상당수는 개성

운영체계를 보면 개성공단은 기본적으로 북한의 중

공단 사업이 진행되면서 수시로 제정·개정을 통해

앙특구개발지도총국의 감독하에 개성공업지구관리

보완되어왔다. 즉, 법제도적 측면에서 개성공단 사

위원회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개성공업지구법상

업은 어느 정도 완비된 체계를 갖춘 상태에서 출범

으로 두 조직 모두 북한의 행정기구이다. 다만 남한 주 민에 의해 운영되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중앙 특구개발지도총국의 하위조직이면서도 사실상 남 한을 대표하는 기구이다. 따라서 그동안 개성공단의

01 1 0월 30일 개성공단 현황을 살피기 위해 남북출입사무소에서 출경을 하고 있는 외통위 소속 여야 국회의원들.

법제도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개성공업지구관 리위원회가 시행세칙이나 사업준칙의 제정·개정을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개성공단과 북한 내수시장의 연계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개성공단과 북한 내수시장이 연계된다면 입주기업은 시장이 확대되고, 북한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통해 보완해왔지만 위와 같은 상하관계 등으로 인해

그동안 개선이 요구되어온 제도적 미비점들을 보완

업무에 어려움이 많았다. 더군다나 남한 주민의 신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변안전보장과 투자보장 및 분쟁해결, 3통 문제는 남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

북합의서에 의해 제도화된 것이다. 따라서 그에 대

의서」에 따르면 남북공동위원회는 남북이 각각 국장

한 미비점 역시 남북합의서를 보완해 해결해야 할

급의 위원장 1명과 위원 5명으로 구성하며(제1조),

문제이다. 하지만 비교적 남북관계가 원만하던 시

개성공단 운영과 관련한 제도 개선 및 현안 문제 등

절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별도의 상설기구

을 협의·해결하는 기능을 담당한다(제2조). 회의는

가 없었고, 남북 당국의 적극적인 해결 노력도 없

분기에 1회 개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쌍방 합

었다. 따라서 이번 남북공동위원회의 구성은 개성

의하에 수시로 개최할 수도 있다(제3조). 구체적인

공단 제도 및 운영체계 측면에서 볼 때 매우 바람직

제도 개선을 협의하고 해결하기 위하여 그 산하에

한 일이다.

출입·체류 분과위원회, 투자보호 및 관리운영 분 과위원회, 통행·통신·통관 분과위원회, 국제경쟁

개성공단 재가동과 남북공동위원회 구성의 성과

력 분과위원회를 두며, 필요한 경우 쌍방 합의하에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실무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

분과위원회를 추가로 구성·운영할 수 있다(제4조).

부가 요구한 것은 개성공단 가동중단 사태 재발방지

또한 남북공동위원회의 원활한 운영을 보장하기 위

책 마련에 초점을 두면서 우리 측 인원의 신변안전

하여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사무처를 두기로 하

보장과 기업들의 투자자산 보호를 위한 법적·제도

였다(제5조).

적 장치 보완, 3통 문제 해결, 국제적 수준의 기업 활

위 합의서 체결 이후 남북은 남북공동위원회 및 각

동 조건보장이 핵심 사항이었다. 위와 같은 요구는

분과위원회 회의를 개최하여 구체적인 제도적 개선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위한 합의서」에 반영되었고,

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9월 10~11일

실질적으로 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북공동위원

개최된 제2차 남북공동위원회에서는 「개성공단 남

회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남북공동위원회는 개성공

북공동위원회 사무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

단 운영에 대해 우리 정부가 통일부의 남북협력지구

「개성공단에서의 ‘남북상사중재위원회 구성·운영

지원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던 기존의 체계에

에 관한 합의서’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를 채택하

서 벗어나 정부가 직접 전면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

였다. 또한 통행·통신·통관 분과위원회에서는 금

한다. 비록 잠정폐쇄 기간에 입주기업들이 받은 고

년 안에 전자출입체계(RFID)를 도입하여 일일단위

통과 손실이 적지 않았지만 남북공동위원회를 통해

상시통행을 실시하며, 인터넷과 이동전화 통신 제공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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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위한 실무적 문제를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

통신·통관 분과위원회 회의도 북측 요구로 연기되

고, 전자출입체계 도입 이전에라도 당일 출입계획자

었고, 10월 31일 개최하기로 한 공동해외투자설명회

의 당일 통행 보장 문제는 해당 분과위원회에서 계

도 사실상 무산되었다. 당분간은 남북공동위원회를

속 협의해나가기로 하였다. 국제경쟁력 분과위원회

통한 개성공단의 제도적 개선 협상이 더디게 진행

에서는 외국기업 유치를 위하여 남측 지역의 외국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

기업과 외국 상공인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설명회를

는 아무리 남북 당국이 합의를 통해 법제도적 장치

10월 중 개최하기로 하였다. 출입·체류 분과위원

를 마련하고 개선을 한다고 해도 지금까지와 마찬가

회에서는 우리 주민의 신변안전을 위해 기존의 남북

지로 북한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파기하거나 위반하

출입체류합의서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면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

안을 교환하고 구체적인 협의를 통해 신변안전보장

은 남북한의 신뢰구축이고, 특히 북한의 일방적 약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로 하였다. 잠정폐쇄기간 중 기

속파기 관행은 반드시 개선되어야만 할 것이다. 북

업들이 입은 피해보상을 위하여 2013년 세금을 면제

한은 지금이라도 남북공동위원회를 통한 제도 개선

하고, 금년 4월부터 발생한 북측 근로자들의 임금에

협상에 적극적인 자세와 의지를 보이고, 우리 기업

대해서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개성공업지구관

들에게 자신들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를

리위원회가 협의하여 처리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은 2013년 9월 16일부터 기업들이 시운전을 거쳐 재

마지막으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를 위해 개성

가동하기로 함에 따라 실제 기업들이 재가동에 들어

공단과 북한 내수시장의 연계방안을 제시하고자 한

갔다. 같은 날 개최된 남북공동위원회 제3차 회의에

다. 이미 개성공업지구법은 공단 내 기업들의 북한

서는 출입체류부속합의서, 전자출입체계 구축 방안

기업소 등과의 위탁가공업을 가능하도록 하는 외에

과 추진 일정, 공동투자설명회, 상설사무처 개소 문

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북한 지역에 판매할 수 있

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하는 등의 성과가 있

는 길을 열어놓았다. 개성공단과 북한 내수시장이

었다. 이후 9월 30일부터 공동위원회 사무처가 업무

연계된다면 입주기업은 시장이 확대되고, 북한 경제

를 개시하였고, 10월 23일 위 사무처 운영과 관련해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남북이 서로 상

업무시간 및 통행·통신방법 등의 내용을 구체화한

계할 수 있는 채권·채무가 발생하여 유사시 상계를

부속합의서를 체결했다.

통해 정산함으로써 우리 기업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볼 위험성이 감소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번과 같

북한의 일방적 약속 파기 관행 개선 시급해

이 북한이 일방적으로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를 방지

하지만 이처럼 남북공동위원회를 통해 전면적인 제

하는 데도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적 개선에 대한 협상이 신속히 추진되어가던 중 북한은 느닷없이 지난 9월 21일 남북이산가족 상봉 을 무기한 연기하는 등 다시 남북관계를 경색 국면 으로 되돌리면서 남북공동위원회를 통한 협상도 답 보상태로 접어들었다. 9월 26일 개최하기로 통행·

한명섭은 검사 재직 시 법무부 특수법령과(현 통일법무과)에서 북한 법 및 통일법 연구를 한 바 있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석 사, 경희대학교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법무법인 한미의 변호사 및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특집 개성공단 정상화, 무엇이 달라지나

01

지속성·수익성 확보하여

쑤저우 공단 능가하는 국제산업단지로 만들어야 남성욱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필자는 2004년 개성공단 입주를 신청한 업체들의 적격성을 심사하는 분양 심사위원을 맡은 적이 있다. 남 북경제협력의 성공적 수행이라는 민족의 염원을 안고 출발한 개성공단은 2004년 6월 시범공단(9,256㎡) 에 대한 분양을 완료했다. 시범공단은 국내의 높은 임금과 토지 비용 및 중국 진출기업들의 철수 등 각종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들의 새로운 돌파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추진되었다. 정부와 토지공사,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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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아산 등 관련 기관과 업체들은 공단의 성공적

이 폐쇄를 명할 수 없다. 국제적 상거래 관행에 위반

수행을 위해 참여의향서를 제출한 업체 136개 중 각

되는 것이다. 이제 개성공단은 갑자기 난폭한 사자

종 조건을 만족시킨 15개 우수업체를 선발했다. 심

의 공격을 받아 다리에 상처를 입은 얼룩말 형상이

사는 작은 밀알을 심고 곧 싹을 틔워 큰 열매를 맺기

되었다. 정치적 공격이 계속될 경우 말이 제대로 달

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중하게 진행되었다. 당시로는

릴 수 없음은 물론이다.

과연 개성공단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을지 내심 불

이제 다시는 이번과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안한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단계적으

공단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로 1단계 전체 공단을 분양한 개성공단은 남측 기업

써 공단의 국제화가 논의되고 있다. 공단에 국제적

들이 참여를 늘리고 북한 근로자들의 고용을 확대하

인 외국기업의 참여를 추진하여 북측의 자의성을 줄

면서 순항했다. 2013년 3월 기준으로 123개 남측 기

이는 방안이다. 남북은 공단이 폐쇄된 지 5개월 후인

업에 5만 3,000여 명의 북측 근로자가 고용되었다.

지난 9월 14일 “개성 기업에 대해 세계적인 기업 활 동 조건을 보장하고 국제 경쟁력이 있는 산업단지로

개성공단발전의 2가지 조건, 지속성과 수익성

발전시켜나가겠다”고 공단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

입주 기업들은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고 북측 지역에

때문에 외국 기업의 유치를 적극 장려하고 산업단지

서 사업을 진행하는 데 대한 긴장감이 없지 않았으

내에서 적용되는 노무·세무·임금·보험 등 관련

나 사업의 본래 목적인 수익창출에는 성공했다. 지

제도를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가기로 합의했

난 4월 초 김양건 통전부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해 공

다. 또한 남북 공동으로 해외 투자설명회를 개최하

단 폐쇄를 선언하기 전까지 개성공단의 학점은 어

고, 생산 제품의 제3국 수출 시 특혜관세를 인정하는

려운 환경에서도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 장학생

등 개성을 국제 경쟁력이 있는 공단으로 발전시켜나

이 받을 수 있는 ‘A’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학점도

가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기로 합의했다. 일단 개성

갑자기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돌발 상황에는 무력했

공단의 국제화 원칙에 합의한 것이다.

다. 9년 전 공단에 한 알의 밀알을 심는 심정으로 시 작했던 경제사업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공단의

공단 환경과 제도의 국제화 선행되어야

존망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기로에 선 것이다. 공단

박근혜 대통령은 개성공단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의

의 속성을 모르는 군부세력이 수년간 쌓아올린 토대

하나로 개성의 국제화에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140

를 일순간에 망가뜨렸다. 공단의 지속성은 수익성

개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노력의 일

확보와 함께 공단 발전의 2대 필요충분조건이다. 국

환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해 러시아

가 간 정당한 계약으로 성립된 합작공단은 경제적으

를 방문한 박 대통령은 이탈리아 레타 총리와 정상

로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 정치적 이유로 어느 일방

회담에서 이탈리아의 개성공단 참여를 요청했다. 한 국의 대통령이 외국 정상에게 개성공단에 투자 참 여를 요청한 것은 처음이다. 한국 최고지도자가 개

01 중국 장쑤성 쑤저우(蘇州)에 있는 쑤저우공업원구(工業園區)의 개발 전과 그 이후의 모습. 1994년 건설된 쑤저우공업원구에는 현재 1만 3 천여 내국 기업과 글로벌 500대 기업 86개사를 포함한 5천 개 가량의 외국기업이 입주해 있다. 남북이 정상화에 합의한 개성공단의 벤치마 킹 대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성공단의 국제화를 향한 본격적인 영업에 움직이는 모습이다. 개성의 국제화는 남북 양측에 긍정적 요 인이다. 한국으로서는 북한이 다른 해외투자 국가


북한은 공단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북측은 개성을 항시 불안정성이 내재되어 있는 절음발이 공단으로 계속 존치할 것인지 공단부지를 2, 3단계 대상지역으로 확장해 한반도의 쑤저우 공단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를 의식하고 통행 차단 및 조업 중단 등의 자의적인

보장 및 이익 창출을 위해 외국기업의 눈높이에 맞

조치를 취할 수 없게 하는 안전판 역할을 기대할 수

도록 제도를 국제규범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남북

있는 반면, 북한으로서는 개방적 의미를 내포하는

협력기금법,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등 외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수단이 된다. 박 대통령은 개

국인 투자유치관련 법·제도를 개정·보완해야 한

성공단을 국제적 기준이 통하는, 즉 경제적 논리만

다. 또한 외국기업의 직접투자 허용 등 개성공단 입

으로도 기업이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공단으로 발전

주 해외투자기업에 대한 다양한 투자방식을 인정해

시키겠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동안 개성공단은 통

야 한다. 기업마다 기술수준이 다르고 업종도 천차

행·통신·통관 3통 문제가 완벽히 해결되지 않고

만별이기 때문에 특수성을 반영하는 제도가 필요하

정치적 긴장이 상존한 상태에서 경제적 논리만으로

다. 둘째,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을 유치할 수

는 해외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이 낮았다. 이제 대통

있는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현재 공단 내 대부분의

령까지 국제회의에서 기업유치에 나선 만큼 공단의

기업들처럼 노동집약적 성격을 띤 외국기업들이 들

국제화는 당면과제가 되었다.

어올 경우 국내 기업 간 임금격차, 인력수준의 정체

수익이 있는 곳에 자본이 있다. 산간 오지라도 예측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최근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

가능한 수익창출이 가능하다면 기업들은 참여한다.

이 외국 법인이 개성공단에 투자할 때 조세감면과

공단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정상의 세일즈 외교 못지

행정지원 등 혜택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개성

않게 공단의 여건과 제도를 국제화하는 것이 중요하

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

다. 외국기업을 유치한다고 해도 기업 활동에 제약

의했는데 개성공단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요소가 많다면 남북이 기대하는 국제화를 실현하기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남북관계의 제도화와 안정이

힘들기 때문이다. 기업을 유치하는 노력도 필요하지

선행되어야 한다. 기업들이 본질적으로 가장 중요하

만 기업이 참여하고 싶은 조건을 구비하는 것이 우

게 판단하는 것은 한반도 안보환경이다. 외국기업들

선 중요하다. 기업들은 모든 재산을 투자하는 등 생

은 공단 내의 여건만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사를 걸고 투자를 결정한다. 그들의 판단기준은 수

정세 전반을 주시한다. 투자에 어느 정도 리스크를

익성 확보와 사업의 안정성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감내하지만 그것이 정치적 요인일 경우 기업들의 판

충족된다면 기업은 투자를 감행한다. 이러한 환경을

단은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국기업들은 개성

조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제도 개선과 정치적

공단이 남북 양측이 군사력을 집중하면서 대치하고

상황 변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있는 특수한 지역이라는 현실을 잊지 않는다. 한국

첫째, 세무 및 노무 등 기업경영과 관련한 자율성

기업들과 위험을 체감하는 지표가 다르다.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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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쑤저우 능가하는 개성으로 거듭나야

하이경제기술개발구(威海經濟技術開發區) 등 산둥

개성공단 국제화 벤치마킹 모델로 싱가포르와 중국

성 3개 경제기술개발구를 방문해 현지 200여 한국

이 공동으로 개발·관리하고 있는 중국 쑤저우(蘇

기업들을 대상으로 60개 항목으로 구성된 입주의향

州)공단이 제시되고 있다. 개성과 쑤저우의 가장 큰

실태 조사를 시행했다. 당시 조사 결과 기업들의 가

차이점은 정치적 불안정성의 유무다. 1994년 중국

장 큰 관심은 역시 남북관계의 안정성이었다. 저임

정부가 토지를 제공하고 싱가포르가 200억 달러를

금 공단인 만큼 다른 여건은 인내할 수 있으나 한반

투자해 조성한 쑤저우 공업지구는 세계 500대 기업

도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기업의 한계를

중 87개 기업이 들어서 있으며 1억 달러 이상 투자

넘는 문제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기업만 1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

최근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상봉 행사 연기와 박

다. 특히 쑤저우 공단에는 세계적인 IT 기업이 대거

근혜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대남 비난 재개 등으로

입주해 있어 ‘동방의 실리콘 밸리’라고도 불린다. 각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

종 지원과 인프라가 가능했던 것은 쑤저우 공단에

도 공단 국제화에 부정적 요인이다. 북한은 10월 들

정부 차원의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 연합이사회가 있

어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박 대통령을 ’괴

기 때문이다. 양국의 부총리로 구성된 이사회는 양

뢰 집권자‘라고 지칭하는 등 비난 공세를 이어갔다.

국을 오가며 매년 1회씩 회의를 열어 공단에 새로이

당초 10월 31일 개성공단에서 개최키로 남북이 합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모색하는 시

의한 개성공단 공동투자설명회도 무산됐다. 이 설

간을 갖는다. 이사회 결정에 따라 공단에서 이뤄지

명회는 박근혜정부가 추진 중인 개성공단의 국제화

는 모든 심사와 허가를 실무를 맡은 관리위원회가

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직접 처리한다. 분쟁 발생 시에도 국제관례에 따라

그러나 투자설명회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국제화를

문제를 처리하기 때문에 쑤저우 공단은 어떤 문제든

위한 진전도 차질이 불가피해진 것 아니냐는 우려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분쟁

가 제기되고 있다. 결국 제도개선과 함께 개성공단

해결 절차 등 제도화 측면에서 최첨단 수준이다. 개

의 정상화도 남북 간의 정치적 관계에 의존할 수밖

성공단은 이런 측면에서 아직 걸음마 단계다. 철저

에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다. 북한은 공단의 미래

한 서비스와 인프라로 국제화에 성공한 쑤저우 공

에 대해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 북측은 개성을 항

단은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고민하는 남북이 눈여겨

시 불안정성이 내재되어 있는 절음발이 공단으로 계

볼 대목이다. 철저히 기업에 의한, 기업을 위한, 기

속 존치할 것인지 공단부지를 2, 3단계 대상지역으

업 중심의 쑤저우 공단과 기업을 부차적으로 중시하

로 확장해 한반도의 쑤저우 공단으로 발전시킬 것인

는 개성공단은 격차가 적지 않다. 쑤저우 공단은 결

지 결단해야 한다. 공단의 씨앗을 심었던 필자의 입

코 중국 군부에서 관여하지 않는다. 군이 정치에 나

장에서 공단의 큰 나무가 성장하여 큰 열매를 맺기

설 수 없는 정치권력구조가 경제발전에 필수적이다.

를 기대해본다.

필자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들의 개성공단 입주의향 및 대책을 파악하고자 2006년 8~9월까지 중국 칭다오경제기술개발구(靑島經濟技術開發區)와 다롄경제기술개발구(大連經濟技術開發區) 및 웨이

남성욱은 미국 미주리주립대학교에서 응용경제학 박사학위를 받 고,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역임 하였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특집 개성공단 정상화, 무엇이 달라지나

01

북한 대외 개방정책 성공의 열쇠,

개성공단이 가지고 있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21세기 세계경제는 지속적으로 효율성을 찾아 진화하고 있지만, 북한은 아직도 실패한 계획경제를 고수 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계획경제는 자국민에게 배급과 기본적인 사회보장마저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급여와 식량배급의 중단으로 근로자의 노동에 대한 참여는 형식적으로 변하고 있고, 자 생적 시장과 생존을 위한 불법행위가 계획경제를 대체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많은 북한 주민이 직 장에 적을 두고 있으면서, 시장 활동과 불법행위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 경제가 침체를

ⓒ연합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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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할수록 북한의 산업은 더욱 황폐화되고 국가의

최근 북한이 공표한 해외투자 유치 전략은 주목할

착취와 주민들의 불법행위는 계속 증가하게 된다는

만하다. 일례로 2013년 5월 29일 최고인민회의 상

것이다. 게다가 일반주민과 국가권력을 불법적으로

임위원회 정령으로 경제개발구의 창설, 개발, 관리

남용하는 소수 특권층과의 경제적 격차는 더욱 벌

및 분쟁해결 등과 관련된 조항을 담고 있는 ‘경제개

어지고 있다.

발구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10월 16일에는 경제

이 같은 북한의 경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은

개발 10개년 계획의 실무를 담당하는 목적으로 신

개혁·개방 정책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설되었던 ‘국제경제개발총국’을 ‘국가경제개발위원

러나 북한은 개방될 경우에 발생할 정치적 혼란을

회’로 격상했으며, 경제특구 개발을 소개하고 실무

염려하여 극히 제한적인 개방만을 선택하여 시행하

에 도움을 주는 민간급 단체인 ‘조선경제개발협회’

고 있다. 아울러 사적 소유권 확립과 같은 자본주의

도 창설하였다.

시장경제에 대한 강한 염려와 영향력 때문에 획기적

그러나 북한의 이런 개방 노력에도 몇 가지 의문점

인 개혁정책을 시도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현실적

이 존재한다. 우선 북한은 개방과 관련하여 왜 남북

으로 북한이 정치적 리스크를 줄이면서 경제를 회생

이 합의한 개성공단을 적극 활용하지 않고, 새로운

시키는 방법은 해외 자본을 유치, 활용하는 방식이

개방법령을 준비하는가의 문제이다. 북한의 개방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외 투자자의

체제유지와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북한은 개

입장에서는 대북투자의 수익성과 안전도가 낮고, 북

방을 강조할 경우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도 변화되

한의 낮은 국가 신용도를 극복해야 하는 문제에 직

고, 한국에 관한 다양한 정보가 확산된다면 결국에

면하게 된다. 과거 북한이 시도한 해외자본 유치정

는 북한사회를 유지해온 결속력이 와해될 가능성도

책이 대부분 실패한 사례는 북한의 해외투자 유치가

높아지게 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한국

얼마나 어려운지를 반증하고 있다.

기업 대신 외국 기업을 유치할수록 북한은 더욱 국 제기준에 맞은 운영방식을 도입해야 하며, 경제의

김정은 시대, 주목되는 북한 경제정책 변화

주체도 점차 국가에서 민간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

이런 시점에서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북한의

다. 예를 들어 민간급 단체로 변신한 ‘조선경제개발

김정은 정권이 해외투자를 유치하려는 노력을 보인

협회’가 개성공단의 국제화나 경제특구의 활성화를

다는 점이다. 김정은 정권은 이미 6·28방침을 비롯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이 기구의 실체는 국가

한 몇 가지 개혁·개방 조치를 시범적으로 시행하

이기 때문에 곧 한계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 있다. 6·28방침은 북한 체제의 개혁을 내포하

또 다른 문제는 북한이 개방정책을 시행하더라도 대

기 때문에 부정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규모로 투자하는 외국기업의 유치는 어려울 것이라 는 점이다. 이는 대북투자의 수익성 창출의 문제로 귀결된다. 북한과 정치적,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 도 수많은 기업이 대북투자에 실패한 사례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높은 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하는 한

01 개성공단 재가동 이후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바라본 공단 전경.

대북투자는 단기간의 이익에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된


개성공단이 국제화되고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면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획득한 자금을 활용하여 점차적으로 북한 기업소로부터 단순 부품이나 원자재를 조달해나가는 방식으로 변환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전반적인 북한 산업의 발전을 가져올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 북한 경제의 핵심인 중공업은 개·보수를 위한

며, 몇 개 기업이 투자할 성격의 프로젝트가 아니

막대한 시설투자 없이는 정상가동하기가 불가능한

다. 현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북한의 개방은 한국

현실이다. 경공업에 대한 투자의 경우도 전기공급

의 자본과 기술로 생산 활동에 적합한 좋은 시설기

및 노동력 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상품의 수익성

반을 제공하는 개성공단을 활용하는 것이다. 외국기

을 위해서는 수출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해외 판매처

업이 투자할 경우 투자 위험성도 낮출 수 있고, 규모

확보나 UN의 경제제재 극복 등과 같은 넘어야 할

의 경제도 달성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개성공단

장벽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개성공

을 중심으로 특구를 확대해나가는 방법을 고려해볼

단에 필요한 노동력의 안정적 공급, 생산제품의 주

수 있을 것이다.

변국과 북한 내에서의 판매, 정치적 간섭 최소화 등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개방에 대한 자세도 더욱 적

과 같은 조치도 필요하다. 그리고 실무 및 연구 차원

극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북한이 해외자본을 유

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개성공단은 궁극적으로는 거

치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조건

대한 임가공단지의 성격에서 벗어나 진정한 경제특

을 구비하여야만 한다. 국제 상거래 관행을 존중하

구로 진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개성

고, 개별기업의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공단에 대한 투자도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되어야 한다. 지난 4월처럼 북한이 정치적, 군

중국의 경우 선전 특구에 상당한 중국의 자본이 투

사적 이유를 들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의 가동을 잠

입되어 자본주의 학습장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좋

정 중단시키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손실만

은 선례이다.

을 가져오게 된다. 북한으로서는 정치와 경제를 분 리하여 적어도 개성공단이나 특구 내에서는 시장경

북한의 해외투자유치전략,

제제도를 부분적이라도 수용하는 정치적 양보가 필

개성공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요하다. 이때 북한의 해외자본 유치 전략은 궤도에

최근 김정은 정권의 개방의지가 과거보다는 높아졌

오를 것이다.

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현 시점에서 개성공단을 능

현재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해외투자 유치

가하는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

전략은 기술과 자본을 가진 한국 및 외국의 기업들

로운 공단을 만드는 작업은 상당한 비용이 추가되

에 개성공단을 임대하여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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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하는 방식이다. 개성공단이 국제화되고 안정적

면 개성공단은 거의 유일하게 수익창출이 가능한 사

으로 운영된다면 북한은 개성공단에서 획득한 자금

업이다. 한국정부가 모든 시설을 제공한 개성공단

을 활용하여 점차적으로 북한 기업소로부터 단순 부

은 단순히 기술이전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통용되

품이나 원자재를 조달해나가는 방식으로 변환을 시

는 상거래, 법을 전수받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

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전반적인 북한 산업의

다. 북한으로서는 해외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투자

발전을 가져올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환경 개선과 같은 세밀한 부분에 대한 전략을 습득

개성공단이 한국의 사양산업과 노동집약적 산업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선순환 과정이 지속된다

북한에 진출하여 재도약하는 사례로 자리매김을 한

면 개성공단의 성공적 운영은 북한의 경제에도 도움

다면 북한은 저임금 중심의 단순 수출 집약 생산기

이 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학습하고 국제규범

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후 북한은 보다 자본집약

을 준수하여 정상적인 국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적인 생산으로 이동할 계기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

수도 있다.

다. 한국의 압축성장 경험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

개성공단은 단순히 남북이 돈을 버는 장소가 아니라

경우 자연스럽게 개성공단도 확장될 것이다. 결국

북한의 개방 전초기지로서 시장경제를 습득하는 새

북한은 개성공단을 활용하여 자국의 경제에도 도움

로운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한국

이 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학습하고 국제 규범

의 성장 경험을 본받아 북한 경제체제가 이행되는

을 준수하여 정상적인 국가가 되는 길을 모색할 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직도 북한의 핵문제가 해결

있다. 이는 북한이 가장 저비용으로 시장경제를 습

되지 않아 남북의 이해 접점을 찾기가 힘들지만, 한

득하는 방법이다.

국은 인내를 가지고 북한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노 력이 필요하다.

개성공단, 북한 경제개혁의 전초기지로 발전해야

지난번 개성공단 중단 및 재가동 사태를 경험삼아

현재 북한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시장의 원리보다

한국의 기업과 정부는 북한의 취약한 투자환경과 정

는 정치적 판단에 기초하여 시행하고 있다. 개방과

치적 제약을 잘 이해하여 그에 합당한 투자 및 지원

관련하여 체제유지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영향을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는 요인들은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북한 진출 한국 기업에 대해서는 남북관계 및 국제 정세와 연동하여 긴장을 유지해왔고 상당한 경계와 함께 까다로운 법규를 적용하여왔다. 개성공단의 확 장을 요구하면서도 한국 기업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 지 않고 방어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북한은 한국 기업보다는 외국 기업을 선호하지만, 외국 기업의 북한에 대한 독자적 진출은 거의 불가능한 현실이라 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만약 북한이 해외투자 유치의 경제성만을 고려한다

양운철은 University of Alabama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겸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 이다. 북한연구소 이사도 맡고 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문창섭 개성공단기업협회 명예회장

“개성공단을 남북신뢰를 쌓는 ‘통일의 묘목장’으로 키워야 합니다” 글

염규현 정책홍보팀 부장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해야죠. 우리 국민들의 응원과 성원에 보답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4월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로 중단되었던 개성공단은 이후 7차에 걸친 남북 당국의 회 담 끝에 8월 14일 다시 정상화에 합의할 수 있 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9월 16일 마침내 재가 동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 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설비들을 재정비하고, 다시 북측 근로자들과 호흡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북 당국의 합의대로 공단 의 원상복구가 아니라 국제화 등을 통한 공단 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개성공단기업협 회 제2대 회장을 지냈고, 현재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과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공단에 서 신발공장을 운영하는 삼덕통상(주) 대표로 열심히 땀 흘리고 있는 문창섭 회장에게 개성 공단의 현재와 미래를 들어보았다.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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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전체로 봤을 때 아직 100% 가동은 하지 못하고 있는

공단 중단 6개월이 준 교훈

상황입니다.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가동

---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공단이 멈

률이 저조한 상황이에요. 이 때문에 북측 근로자들의 인원

춘 뒤부터 다시 가동되기까지의 시간은 그야말로 고

도 중단 전인 5만 4,000명보다 적습니다. 하지만 근로 의

난의 연속이었다. 4월 8일 서울로 올라온 뒤 문 회장

욕이랄까요. 열심히 해보자는 각오가 예전보다 더 커진 것

은 거의 서울에서 살다시피 했다. 본사가 있는 부산

같아요. 모두들 다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열

에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씩 내려가 상황을 점검

심히 땀 흘리고 있습니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공단의 재가동, 정상화를 위해 뛰어야 했다. 또한 공단 중

--- 문창섭 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삼덕통상(주)은

단 이후 거래를 끊으려 하는 바이어들의 마음을 붙

부산에 본사를 둔 신발생산기업이다. 2004년 개성

잡는 것도 시급한 문제였다. 이 때문에 중국이나 국

공단에 공장을 설립한 이후 현재 공단 내 북측 근로

내에 하청까지 주며 대체생산을 이어온 것이다. 사

자 중 가장 많은 인원인 2,600여 명을 채용하고 있

실 9월 26일 문 회장과 함께 공단을 방문해 공장 시

다. 공단이 정상화된 이후에는 독일업체 미앤프렌

설을 둘러봤던 미앤프렌즈사도 10년 이상 삼덕통상

즈사 CEO 마이클 에르틀이 직접 공단을 방문해 삼

(주)과 거래하면서 30만 켤레의 신발을 수입해온 고

덕통상(주) 공장을 둘러보고 합작투자를 검토하기도

객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공단이 잠정폐쇄되자 삼

했다. 또한 미국의 다른 기업에서도 삼덕통상(주)과

덕통상(주)과의 거래를 끊었다.

합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단이 정 상화된 이후 아직 많은 기업이 정상적인 가동률을

“사실 미앤프렌즈사는 2009년에 개성을 방문한 적이 있어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본다면 무척 고무

요. 우리와 거래를 꾸준히 해오던 기업이었는데, MB정부

적인 모습이다.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국면에 접어들자 점차 주문량을 줄 이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 ‘잘 안 팔려서 그렇

“공단이 멈춘 약 5개월 동안 마냥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

다’는 답만 하더군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인도네시아

었어요. 그래서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의 40여개 업체들

에 있는 한국 기업과 새로이 거래하고 있더라고요. 그들 나

에 하청을 주며 대체 생산을 계속했습니다.

름대로 남북관계의 불안정이 못내 불안했던 것이죠. 그러

물론 가만히 있는 것보다 손실이 더 컸죠. 생산단가가 크

다 공단이 멈추니 당연히 거래를 끊은 것이고요.”

게 올랐으니까요.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바이어들을 동남 아 쪽으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당장 손해를 입는다 해도 고객들과의 신뢰를 지켜야 한다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 해외투자나 합작을 위해 필

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 덕분에 다시 공단이 가동된 뒤에

요한 조건이나 기준에 대한 확실한 조언을 얻을 수

도 주문이 멈춤 없이 들어올 수 있었고, 공장도 100% 가동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이번에 다시 개성을

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바이어들을 대부분 놓치지 않고 관

방문한 독일업체의 CEO는 의미심장한 말을 문 회장

리한 덕분이죠.”

에게 건넸다. 그것은 비단 삼덕통상(주)만이 아닌 개

하지만 이런 아픔도 결국 삼덕통상(주)에겐

성공단 전체 기업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01

02

ⓒ삼덕통상(주)

ⓒ삼덕통상(주)

01 지난 9월 26일 개성공단을 방문한 독일 기업 미앤프렌즈의 CEO 마이클 에르틀(우)이 문창섭 회장과 함께 삼덕통상 공장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02 10월 30일 국정감사의 일환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한 국회 외통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삼덕통상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인도네시아에 있는 한국기업은 저도 잘 알고 있는 곳이

개성공단엔 5,000개 기업이 있다?

에요. 그 업체도 저와 비슷한 시기에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 문창섭 회장은 ‘영원한 개성공단의 전도사’라

세웠죠. 저는 개성에, 그쪽은 인도네시아에 새 공장을 차린

불릴 정도로 공단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물론

겁니다. 그런데 독일 바이어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인도네

자신의 공장이 운영되는 곳이니 당연하다고 할 수도

시아에 세운 공장은 해마다 규모가 커지고 인력도 늘어나

있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개성공단이 반

는데, 왜 개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느냐. 그동안 전

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의지와 책임감을 동시에 가지

혀 발전이 없었다는 증거가 아니냐. 개성공단이 남북 당국

고 있는 것이다.

이 하는 말처럼 국제화 수준의 공단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어선 안 된다. 산업별로 선도기업이

“2004년 개성공단에 처음 입주했을 때 공단 부지 주위는

있어야 하고, 그 기업이 성공하는 모습을 세계에 알려야 한

온통 민둥산이었습니다. 나무를 찾기 힘들었죠. 그런데 지

다. 개성공단에 입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적극 알

금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묘목을 많이

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단이 성공하고 각 기업들도 성

심었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자랐을까

공할 수 있다. 해외투자 유치도 비로소 가능하다. 지금 개

하고요. 저는 개성공단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민

성엔 선도기업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둥산을 묘목장으로 키워나가듯, 개성공단 역시 남북경협 의 묘목장, 화해와 통일의 묘목장으로 키워나간다면 10년,

--- 결국 지금은 연기되었지만, 해외투자유치설

20년 후 이곳에서 정말 세계적인 기업이 탄생할 수도 있

명회 등을 통해 외국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 않겠어요? 그런 장기적인 계획 아래 공단의 성공적인

서는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내며 믿음을 줘야 한다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이제는 왔다고 생각해요.”

는 지적이다. 그러자 같이 이야기를 듣던 개성공단 지원재단 홍양호 이사장이 “개성공단은 이제부터 시

--- 문 회장에게 개성공단은 단순히 123개 중소

작이다. 삼덕통상 역시 그렇다. 앞으로 정부가 깊은

업체가 모인 작은 공단이 아니다. 입주한 기업은 123

관심을 갖고 공단 성공을 위해 지원할 것이다. 우리

개 업체일지라도 업체들과 협력하며 상생하고 있는

를 믿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개성공단의 해외

하청업체 등 연관 산업체들은 5,000여 개에 달한다.

투자유치를 위해 민관이 함께(!) 힘을 모은 셈이다.

우리 기업이 중국이나 동남아 등 제3국에 공장을 세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18 19

우면 원부자재를 대부분 현지에서 구매해 사용한다.

통행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루가 다르

하다못해 면장갑 하나, 커피 하나까지 현지에서 공

게 변화하는 기업 환경에서 기동성과 순발력은 반드

급받는다. 하지만 개성은 다르다. 장갑 하나, 커피,

시 필요하다. 정부가 앞으로 개성공단의 발전을 위

초코파이에 이르기까지 100% 국내에서 구입해 사

해 노력하기로 북측과 합의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

용한다. 개성공단이 국내 연관산업의 발전과 생존

을 것으로 믿고 있다.

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제는 알아야 한다

개성공단의 2단계, 3단계 확대에 대해서도 문 회장

고 그는 강조한다.

은 신중한 입장이다. 물론 공단의 발전은 반드시 필

이와 함께 문 회장은 개성공단의 진정한 국제화를

요하다. 하지만 외형적 발전과 더불어 내실도 착실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것이 필요

히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이미 고갈 상태

하다고 말한다. 그중 북측 인력의 전문성 향상이 시

에 접어든 북측 인력수급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확

급하다. 지금까지 북측의 관리 감독 담당자들은 남

장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생활주거 환경을 조성해

측 파견 인원의 지시에 따르는 데 멈춰 있었다. 지시

야 한다. 꼭 개성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타 지역으로

하는 대로 따르지만, 스스로 전문성을 가지고 업무

의 확대도 고려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를 이끌어가는 데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어렵게 다시 문을 연 개성공단. 아직 남북이 협의해 나가야 할 사항들은 적지 않지만, 문 회장은 기업인

“공단의 국제화를 위해서 일단 우리는 산업별 선도기업

의 역할에 충실하며 공단의 성공을 위해 맡은 책임

을 선정해 하나하나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 노하우

을 다한다는 생각뿐이다. 지금까지의 숱한 시행착

를 여타 기업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북

오를 귀한 재산으로 삼고, 이제부터는 개성공단에

측 역시 관리감독자에 대한 독립적인 양성시스템이 필요

서 남북경협의 성공 케이스를 하나하나 만들어나가

해요. 남측 인원이 없는 상황에서도 현장을 지휘하며 차질

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결국 국가 차원에서도,

없이 생산과 업무를 이끌어갈 수 있는 관리 인력 양성이

기업인 개인의 차원에서도 가장 좋은 결과를 낳을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북한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에

수 있기 때문이다.

요. 단순히 지시를 따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북 이 함께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 방향으로 나가야 국제화

“남북경협을 하면 실패한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면 손해만

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본다는 등의 오명에서 이제 벗어나야죠. 북한과의 경협은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는 사업이고, 능력에 따라 얼마든

남북경협의 성공케이스 만들어 가자

지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물론 남북

---

현재 우리 정부는 북한과 협의해 개성공단

관계의 발전이나 개선에 기여한다는 자부심도 있고요. 현

입주기업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3통(통행, 통신,

안에 좌우되어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간

통관)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비록 더디더라도

다면 반드시 그 결실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차근차근 원칙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입장

다시 시작하는 개성공단의 또 다른 도약과 발전을 지켜봐

이다. 문 회장은 3통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는 것

주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좋은 모습으로 국민 여러분들에

도 좋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일단 가장 중요한

게 다가가겠습니다!”


진단

다양한 시너지 효과 기대되는 남·북·러 삼각협력

북한의 긍정적 변화 촉진할 수 있는 최상의 선택 윤성학 고려대학교 러시아CIS 연구소 연구교수

01

최근 북러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다. 2012년 완공된 ‘나진-하산’ 철도의 본격적인 상업적 운 행을 계기로 러시아는 극동개발과정에 북한을 적극 끌어들이고 있다. 당장 러시아는 극동 개발과정에 필요한 건설 인력을 북한으로부터 대규모로 수입하고 있다. 현재 극동에서는 3~5만 명 정도로 추정되는 북한 노동자들이 건설, 벌목, 농업, 수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러시아는 불법체류 가능성이 높은 중국 인력보다는 저렴하고 통제가 용이한 북한 인력을 선호하고 있으며, 북한은 중국으로 경도된 경제관계를 보완하면서 중국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러시아로 노동력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20 21

러시아가 북러관계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푸틴 3

있다. 러시아는 1990년대부터 동북아에서 국제협력

기 러시아 정부의 정책적 과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

의 다자 틀에 참여하고 있지만 영향력은 매우 제한

다. 2012년 대선을 통해 세 번째로 당선된 푸틴은

적이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에서도 중국과의 조정

정책적 과제로 경제 현대화와 ‘강한 러시아(Strong

을 통한 영향력 행사에 머물고 있으며, 북한도 러시

Russia)’, ‘신동방정책(New East Asia Policy)’ 등

아보다는 중국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삼고 있다.

을 제시하였다. 푸틴은 2012년 12월 12일 국정연설

러시아는 극동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고 경제협력의

에서 “21세기 러시아 발전의 방향은 동쪽을 향하고

시너지 효과를 가장 높일 수 있는 국가로 중국이나

있다. 시베리아와 극동은 우리의 거대한 잠재력이며

일본보다는 한국을 보고 있다. 한국은 러시아가 필

이 잠재력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요로 하는 기술력과 경영 능력, 자본을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러시아가 합당

반대로 한국으로서는 러시아의 자원과 원천 기술,

한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러시아 정

그리고 TSR와 북극해 항도 등 물류 기능을 필요로

부는 이를 위해 내각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극동

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는 가스관 연결, 대륙철도

투자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극동개

연결사업, 전력망 연결사업 등 대형 프로젝트를 추

발공사를 설립하였다.

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파트너 국가로 볼 수 있 다. 이러한 한러관계 발전에 가장 큰 장애요인은 북

과거 영광의 재현 꿈꾸는 러시아

한이다. 러시아는 극동의 전략적 가치(자원 공급, 유

러시아가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극동에 적극 투자하

라시아 교통망) 극대화에 가장 큰 장애요소를 북한

고 있지만 구소련 때와 달리 이 지역 사정은 많이 변

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의 개혁

화하였다. 무엇보다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아

및 개방을 적극 촉구하고 있다.

시아 지역의 실질적인 패권국가로 등장하고 있으며

러시아 극동전략의 가장 큰 장애요소의 하나인 북

미국의 군사력과 소프트파워는 여전히 굳건하게 자

핵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공식 입장은 북한의 핵실

리 잡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은 체제생존을 위해 핵

험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지역의 가장 큰 불안요인

서도 북한에 대한 무력제재에 반대하고, 북핵문제

이 되었다. 열강의 이해가 치열하게 부딪치는 극동

는 6자회담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지역에서 러시아는 많은 제약점을 갖고 있다. 러시

것이다. 평화적 해결을 위해 러시아는 자국 개발에

아는 이 지역에서 아시아라는 공통의 역사적 유산을

필요한 북한 노동력을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나아가

갖고 있지 않으며 지나치게 넓은 영토에 낮은 인구

남·북·러 삼각협력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밀도로 경제교류에서 소외되고 있는 가운데, 자원

남·북·러 삼각협력에 대해 우리 정부도 적극 대응

개발과 수출이라는 낮은 수준의 경제적 이해만 갖고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관계 및 통일 방안 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시했고, 취임사에 서도 북핵문제 해결에 더 강력한 제재와 함께 신뢰

01 지난 9월 6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 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를 점차적으로 쌓아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근 혜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관계의 외교적 방안은 대화


남·북·러 삼각 경제협력은 한국과 러시아, 북한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다. 나아가 북한을 경제협력의 장으로 끌어내어 경제협력 증진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바라본 러시아와 북한을 잇는 철교

지역안보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와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러 협력이 더 진전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오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러

면 북한 지역에서 산업 재개발사업에도 남·북·러

한 전략이 확실하고 빠른 진전을 얻기 위해서는 러

3각 협력이 추진될 수 있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로

시아와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을 매개로 한 삼각협력

소련 시절 투자한 비료, 제철, 발전소 등 북한의 기

방안을 적극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장기간의

간산업을 현대화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남·북·러

박근혜정부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시너지 효

협력사업은 북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질적인 신뢰

과가 높은 남·북·러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

프로세스를 제공할 것이다.

된다. 첫째, 철도협력사업이다. 2012년 10월 러시 아는 자체 예산 약 1억 달러를 투자하여 ‘나진-하

다양한 시너지 효과 가능한 남·북·러 경제협력

산’(54km) 구간을 완공하였다. ‘나진-하산’ 철도 연

전통적인 남·북·러 협력 프로젝트는 1990년대 후

결은 유라시아 교통, 물류 협력 프로젝트의 첫 성과

반 러시아 극동에서 나타났다. 1998년, 러시아 극동

물로서 남·북·러 삼각협력의 기반을 조성하고 중

정부는 러시아의 자원과 한국의 자본과 기술, 북한

국의 나진지역에 대한 독점적 진출을 견제하며 나아

의 노동력이 결합한 ‘삼위일체공생농업’을 국가정책

가 TKR-TSR 연결사업의 동력을 부여했다는 의미

으로 채택하였는데 이것이 남·북·러 협력사업의

를 갖고 있다. 북한은 이 사업을 통해 노후한 철도의

기초가 되었다. 이것은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북한의

복원, 나선지역 경제 활성화, 북러협력 강화 등의 실

저임금 노동력과 러시아의 자원과 영토, 한국의 자

익을 기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포화상태의 극동항

본과 경영능력을 결합하는 것으로 극동 연해주 농업

해결, 극동의 물류 활성화, 북중관계 심화에 따른 균

개발과 건설 인프라 개발사업에 적용되었다.

형추 역할과 동북아 국가들에 대한 정치경제적 영항

박근혜정부와 푸틴 3기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력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남·북·러 삼각협력은 북한지역에서 러시

‘나진-하산’ 54km 연결 프로젝트가 현실화된 상황

아와의 협력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으로 가

에서 러시아는 추가 투자(나진항 컨테이너 터미널

스관, 철도, 전력 연결사업 등이 있다. 이 프로젝트

건설)와 물동량 확보를 위해 한국과 적극적인 협력

는 각각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고 러시아가 북

을 추진 중이다. 한국은 유라시아 대륙철도 연결사

한 리스크를 통제함으로써 사업 성공 가능성을 높일

업의 일환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

수 있으며, 북한을 경제협력과 개방의 마당으로 유

하다. 한국은 러시아와 함께 한반도와 유럽을 연결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22 23

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서울-블라디보스톡-모

단순히 가스관 통과만으로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수

스크바-EU) 건설을 적극 추진하여 새로운 유라시

익이 보장되어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북한은 남북관

아 시대를 주도해갈 수 있다. 러시아와 함께 나진항

계를 좀 더 진전시키는 데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공동개발을 통해 러시아의 석탄 수출을 받아들이고

셋째, 연해주 농업투자 방안이다. 러시아 극동지역

이를 바탕으로 유라시아 대륙철도 연결사업을 추진

의 연해주는 총 면적 1,657,000㎢로 한국의 약 1.6배

하는 것이다.

인 데 비해 농업인구는 고작 50만 명으로 많은 경작

둘째, 가스관 협력사업이다. 2011년 11월 한러 정상

가능한 토지들이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1990년

은 남·북·러 가스관 사업의 로드맵에 대해 포괄적

대 이후 연해주에 진출한 유니베라, 현대중공업, 경

으로 합의하고 2013년 9월부터는 본격적인 가스관

남도 등 국내 20여 개 한국 농업기업들은 그동안의

공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북

난관을 극복하고 점차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획재

한의 도발과 가격 문제로 한러 양국은 이 사업을 착

정부도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을 통해 러시아 측

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러시아 천연가스 도

과 연해주 농업 협력방안을 집중 논의하고 있다. 러

입이 주춤하는 사이 한국은 미국의 셰일가스를 그

시아는 한국 영농기업의 연해주 투자를 적극 환영하

대안으로 도입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2011년 말 미

고 있으며 북한도 자국의 부족한 식량문제와 노동력

국의 Sabine Pass LNG 장기도입계약을 체결하였

수출을 위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식량

으며, SK E&S는 2013년 미국 Freeport LNG로부터

자원 확보와 고려인 지원이라는 차원에서 연해주 진

2019년부터 연간 220만 톤의 LNG를 수입하기로 하

출 농업 투자기업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였다. 가스공사가 2017년부터 수입하는 미국의 셰

국내 기업이 생산한 러시아산 곡물에 대해 관세를

일가스 도입 물량 350만 톤은 750만 톤 규모의 러시

낮추어야 할 것이다. 연해주지역 농업부문 투자와

아 물량의 반 이상이나 된다.

교역 활성화는 미래 한국의 경제개발과 북한의 식량 난 해소 그리고 러시아와의 경협을 통한 신뢰 회복

삼각협력, 동북아 경제협력과 지역안보 안정 가져올 것

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은 이제 러시아와 북한의 결정

남·북·러 삼각 경제협력은 한국과 러시아, 북한

에 달렸다. 러시아가 지난 협상처럼 한국에 수출하

이 갖고 있는 잠재력과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

는 가스를 유럽산 수출가격으로 주장하게 되면 셰일

실적인 방안이다. 나아가 이 방안은 동북아 경제협

가스와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러시

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북한을 경제협력

아는 한국으로 수출되는 가스 가격을 유가나 유럽산

의 장으로 끌어내어 경제협력 증진뿐만 아니라 지

가격으로 연동하지 말고 국제시장 가격에 맞는 체계

역안보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

를 요구하고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최

이고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기획되고 추진되어야 할

근 북한 리스크를 고려하여 동해 해저를 통한 가스

것이다.

관 설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가격 적 부담을 안고 동해 해저가스관을 설치할 경우, 북 한은 지정학적인 장점을 잃어버리고 고립되고 만다.

윤성학은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대우경제연구 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고 려대학교 러시아CIS 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진단

2013 통일의식조사, 통일에 대한 부정적 시각 늘어

민관이 함께하는 통일 기반조성이 필요 정은미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이 나날이 냉담해지고 있다. 우리 국민에게는 언제나 북한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반공이데올로기와 통일교육으로 인해 우 리에겐 북한에 대한 ‘우리감정’과 ‘적대감정’이 공존하고 있다. 이 양가적 감정은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바뀌곤 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통일의식이나 대 북정책에 대한 여론과도 상호작용한다. 오랜 기간 축적된 여론조사 데이터의 분석에 따르 면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이 형성되었을 때 통일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고 정부의 포 용적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높았다. 반대로, 북한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적대 적 감정이 높아지면 통일에 대한 회의감이 늘어나고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도 강경한 입장 을 요구한다.

북한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최근에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발표한 ‘2013 통일의식조사’는 박근혜정부 첫해에 이루어진 조사라는 점에서 ‘평가’보다는 ‘기대’가 더 앞선다.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에 대 한 전반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호의적으로 나타났듯이,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 역시 57.6%로 높게 나타났다. 이 응답률은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던 노무현정부의 마지막 해인 2007년에 30.2%, 이명박정부의 첫해인 2008년에 34%와 비교해보면 현저히 높은 수치이다. 더욱이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내용 이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이전 시기임에도 높은 만족도가 나타난 것은 대북정책 자체 에 대한 평가보다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전후 시기에 대북정책의 환경은 좋지 않았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에는 3차 핵실험 을 단행하였다. 또한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은 정전협정의 백 지화를 선언하였으며, 결국에는 개성공단도 폐쇄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남북관계는 벼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24 25

랑 끝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완전

의 다년간 조사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한 남북관계의 파국을 원하지는 않았다. 대북정책

응답은 2007년 63.8%, 2008년 51.6%, 2009년

에 대해 우리 국민의 전반적 의식은 더 강한 채찍

55.8%, 2010년 59.1%, 2011년 53.7%, 2012년

보다는 여전히 당근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

57%, 2013년 54.8%로 변해왔다. 2008년 급락한

로 나타났다.

이후 지난 5년 동안 한 차례도 2007년 수준으로 회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복하지 못했다. 더욱이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박근

2010~2013년 기간에 개성공단사업을 중지해야 한

혜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

다는 견해는 2010년 18%, 2011년 20.1%, 2012년

고 통일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들었

20.3%, 2013년 18%로 크게 변동이 없다. 오히려 개

다. 이러한 의식 추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

성공단이 중단되었던 올해 4월 이후에 실시된 여론

에 통일 회의론 또는 통일 무용론을 확산시키고 있

조사에서는 사업을 중지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전년

다. 통일이 언제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에 대한 질문

도보다 더 낮게 나타났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정

에 지난 몇 년 동안 일관되게 20년 이내에 통일될 것

부가 소극적으로 대하고 있는 대북사업 중 하나인

이라는 견해의 비중이 가장 많았다. 그런데 올해 조

금강산관광에 대해서도 재개되어야 한다는 견해의

사에서는 뜻밖의 놀라운 응답 결과가 나타났다. 통

비중(2010년 60.1%, 2011년 61.4%, 2012년 62.5%,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이 25.8%로 가장

2013년 57.4%)이 재개 반대의 비중보다 더 많게 나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 국민 10명

타났다. 이처럼 장기간 남북관계의 악화에도 불구

중 4명은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

하고 대북정책에 대해 아직까지 우리 국민은 비교적

해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호의적이라 할 수 있다. 왜 이렇게 우리 국민은 대북

더욱이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식의 증가가 10~20

정책에 호의적일까. 모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마

대 같은 젊은 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

도 북한에 대한 양가적 감정 때문이 아닐까. 미워도

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어쩔 수 없는 ‘우리민족’이기 때문이다.

에서 통일의 생동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통일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서 연령별 응답 분포를

남북교류협력은 찬성, 하지만 통일은 불가능?

보면, 30~50대 이상 연령층에서 나타난 응답률은

하지만 우려스러운 일은 최근 몇 년 동안 통일에 대

지난해와 올해 사이에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에 가

한 열망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위

장 젊은 19~29세 집단에서는 지난해 46.7%에서 올

< 통일의 필요성 >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통일필요

63.8

51.6

55.8

59.1

53.7

57.0

54.8

반반

21.1

24.9

23.6

20.8

25.0

21.6

21.5

통일불필요

15.1

24.9

20.6

20.8

21.3

21.4

23.7


해 40.4%로 6.3%포인트 감소하였다. 통일이 불가

로 유연성보다는 원칙을 더 중시하게 된다. 결과적으

능하다는 응답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다른

로 봉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의 출구는 더욱 찾기 어

연령집단에 비해 19~29세 집단의 응답률이 28.4%

렵게 되는 악순환 구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 점

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렇게 젊은 연령집단에서

이 바로 이명박정부 5년의 남북관계가 박근혜정부에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

서도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까. 아마도 북한정권에 대한 실망감 또는 적대적 감 정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자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대상인가’라는 질문에 올해

마지막으로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증가하는 여

조사의 연령별 응답 분포를 보면, 19~29세 집단에

러 원인 중 하나로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내

서 ‘협력대상’으로 보는 응답률이 지난해 47.8%에서

적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알

올해 31.6%로 무려 16.2%포인트나 낮아졌다. 반면

려진 바대로 통일기반 구축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에 다른 연령층에서는 약간 감소를 보였지만 그 감

신뢰프로세스의 3대 목표 중 하나다. 정부의 정책설

소폭은 그렇게 크지 않다. 반대로 북한을 ‘적대대상’

명에 따르면, 통일기반 구축이란 통일을 주도적으

으로 보는 응답률은 크게 증가하였다. 젊은 연령층

로 이끌 수 있고 실질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우리 사

에 속하는 19~29세 집단에서는 지난해 14.5%에서

회의 역량을 확충하는 것이다. 물론 통일기반을 구

올해 20%로 상승했고, 30대에서도 지난해 9.2%에

축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안에서 통일정책에 대

서 올해 17.1%로 적대의식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상

한 신뢰 형성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

의 조사결과가 말해주듯이, 지난 몇 년 간 발생한 여

면 우리 국민은 역대 정부들이 경주해온 통일정책에

러 가지 북한의 도발적 행동들로 젊은 층에서 북한에

대해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신뢰 수준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

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인가. 의식 차원에서는

사회가 바라보는 북한에 대한 인식이 ‘우리감정’보다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통일 이후의 사회와

는 ‘적대감정’이 앞서게 되면 정부로 하여금 보수적이

삶에 대한 기대감 수준을 통해 투영된다고 볼 수 있

고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문하게 되고, 정부 역시 이

다. 하지만 다년간 조사결과가 말해주듯이 우리 국

러한 여론에 호응하거나 아니면 편승하여 정책적으

민은 통일로 인해 발생할 편익에 대한 기대감도 낮

< 통일을 해야 하는 이유 > 같은 민족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50.6

57.9

44

43

41.6

45.9

40.3

이산가족 고통해소

8.9

6.8

8.5

7.0

7.2

9.1

8.3

남북간 전쟁위협 해소

19.2

14.5

23.4

24.1

27.3

25.3

30.8

북한주민 삶 개선

1.8

2.8

4.2

4.0

4.9

4.4

5.5

선진국으로 도약

18.7

17.1

18.6

20.7

17.6

14.5

14.3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26 27

< 통일이 가능한 시기 >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5년 이내

3.7

2.3

2.8

3.4

2.5

2.9

3.7

10년 이내

23.5

13

16.9

17.8

16.3

14.5

13.3

20년 이내

30.8

22.1

27.6

24.1

26.1

25.9

25.3

30년 이내

14.7

15.5

16.2

13.4

14

17.8

13.7

30년 이상

13.8

24.9

16.5

20.8

19.8

19.8

18.3

불가능

13.3

22.3

19.8

20.6

21.3

19.2

25.8

을 뿐만 아니라 통일된 이후 사회상에 대한 기대수

통일에 대한 지나친 경제주의적 접근 또는 실용주의

준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적 접근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또 고통해

올해 조사결과에 따르면, 통일이 우리 사회 전체에

소나 고통부담 물론 그러한 주장에 대해 어느 부분

가져다줄 이익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낸 응답률은

에서는 충분히 공감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일

48.6%로 응답률이 2008년 이후 최저치다. 마찬가

로 발생하는 편익 또는 효용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

지로 통일이 자신에게 가져다줄 이익에 대한 기대감

은 상황에서 통일에 추진력이 생겨나기 어렵다. 세

역시 21.8%로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

대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 문제는 더욱 민감해진다.

다. 또한 통일 이후 주요 사회문제들의 개선에 대한

따라서 통일이 개인과 사회의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기대감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을 수년간 보여주고 있

해결하고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점을 부각하

다. 실업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사회문제들-빈부격

는 통일정책이 필요하다.

차, 부동산투기, 범죄문제, 지역갈등, 이념갈등 등-

아직 현 정부는 한반도 프로세스가 추진하고자 하는

에서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응답률은 10% 안

신뢰형성을 통한 통일기반 구축을 실현할 수 있는

팎에 불과했다. 특히 범죄문제의 개선에 대한 기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때로는

수준이 가장 낮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 국민

단순함 속에서 길을 찾기도 한다. 주위에서 우리 정

의 의식 기저에 통일이 되면 우리 사회가 일탈과 혼

부가 통일영역에서 민간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과소

란 그리고 무질서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막연한 우

평가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를 자주 듣곤 한

려감이 뿌리깊이 박혀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기

다. 통일 영역에서 ‘정부독점주의’를 내려놓는 순간

우(杞憂)는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

통일기반 구축을 위한 신뢰 형성은 자연스럽게 시작

된다고 볼 수 있다.

되지 않을까 감히 제안해본다.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한 불신은 정책적 일관성이 부 족한 데 일차적 원인이 있겠지만 통일정책이 국민 의 삶의 문제에 깊이 천착하지 못하고 당위적 수준 에서 머물러 있는 점이 주효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은미는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통 일평화연구원에서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민화협 정책위원과 민족화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논단

더 미룰 수 없는 이산가족문제, 우리가 먼저 푼다는 대승적 자세 가져야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부교수

지난 8월 14일 개성공단 회담이 극적으로 타결되어 이산가족상봉 문 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원칙과 자존심 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되고 말았다. 북한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고 집하던 상황이어서 걱정은 되었지만, 상봉 대상 이산가족들의 생사확 인도 마쳤고 대상자 명단교환도 이루어졌던 터라 웬만하면 큰 문제없 이 상봉행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9월 21일 북한은 갑 자기 ‘상봉연기’를 선언하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지난 한 달 우리가 모르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개성공단 정상화가 합의된 지난 광복절 때만 하더라도 남북관계의 분위기는 그 열기가 대단했다. 남북당국 대표들은 개성공단 회담에 서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개성공단의 가동 을 유지하기로 의기투합하였고 곧바로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과 북한 근로자의 출근이 별 문제 없이 이뤄졌다. 몇 달 전만 해도 ‘정전 협정 백지화’, ‘기본합의서 폐기’, ‘전면전’을 운운하며 일촉즉발의 험 악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이제 다시는 어떤 정치적 갈등과 대립에 영향을 받지 말고 개성공단을 유지하자는 남북대표들의 결의는 한반 도 통일과 평화에 대한 진한 감동과 질긴 희망을 보여주는 비장의 순 간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일이 터진 것인가? 북한이 9월 21일 조국평화 통일위원회 명의로 발표한 성명서를 근거로 본다면 이번 이산가족상 봉을 급작스럽게 연기한 이유는 “남조선 보수패당의 무분별하고 악랄 한 대결소동” 때문이라고 한다. 대결소동의 구체적인 내용인즉, 이산 가족상봉 성과가 박근혜정부의 ‘원칙론’의 결실이라고 주장했다는 것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28 29

ⓒ연합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과 금강산관광에 대해 “누구의 돈줄이니 뭐니 하고

며 적십자사를 통해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진행하였

중상”했다는 것, 그리고 평양에서 개최된 국제경기

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와 마찬가지로

대회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연주한 것을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강조하며 이산가족문제와 대

“변화니 뭐니” 했다는 것이다. 또 “미국상전과 야합

북지원을 별개 사안으로 다루어왔다. 북한은 이러한

하여 동족을 반대하고 침략하기 위한 전쟁연습소동

원칙을 강조하고 내세우고 있는 박근혜정부에 이산

과 무력증강책동”을 했고 “내란음모사건이라는 것

가족상봉 대가로 쌀과 비료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것

을 (북한과) 억지로 련결”시키고 “모든 진보인사들

을 알아차리고 대신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를 연계하

을 용공, 종북으로 몰아 탄압”했다는 것이다.

며 박근혜정부에 SOS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장황하게 상봉연기 사유를 설명하였

북한은 박근혜정부가 대내정치적 상황 때문에 쌀,

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자존심 상한다는 것이다. 경

비료 지원을 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그래서 ‘원칙’

제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은 당장 필요한 쌀과 비료

을 강조하며 금강산관광 문제를 별개의 사안이라 주

등 경제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이산가족상봉에 임하

장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슬그머니 연계해주기를

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이산가족상봉

내심 기대하였을 것이다. 지난 8월 22~23일 중국

을 위해 매년 각 30만 톤 정도의 비료와 쌀을 지원하

광저우에서 만난 북한학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


남한에게는 ‘보편적’인 듯 보이는 이산가족문제가 북한 안에서는 파괴력을 지닌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이산가족문제를 추진해야 할 하등의 동기도 가질 수 없다. 유일한 동기라면 그것은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뢰프로세스’에 대해 높은 관심과 지지를 표시했고,

전쟁 시기에 조국(북한)을 버리고 떠난 반혁명분자,

이번 정부의 경제지원에 대한 기대를 잔뜩 하고 있

반동분자”로 간주된다. 북한은 ‘월남자가족’ 성분으

었다. 그러나 막상 이산가족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

로 분류된 이산가족들을 대부분 반동분자로 몰아 농

서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남한 측의 어떤 희망도

촌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거나 ‘월남자가족’이란 딱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산가족상봉을 중단한

지를 붙여 대학진학이나 군입대, 정치활동 등 모든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원칙’과 북한당국의 ‘자존심’

영역에서 차별을 가하였다. 아마도 남한에서 오랫

이 충돌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동안 월북자 가족에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국가 적·사회적으로 차별을 가하였던 관행과 비슷한 상

이산가족문제의 양면성

황이라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여러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산가족문제

이러한 구조적 차이 때문에 이산가족문제는 남한보

도 그리 간단치 않다. 언젠가 북한TV에서 이산가족

다는 북한에 매우 불리한 사안이 되고 있다. 북한은

상봉 장면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철저한 성분중심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이산가

북한에서 보여주는 이산가족상봉 소식은 내가 지금

족들에 대한 배려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사회질서를

까지 보아왔던 장면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표적인 예로, 김대중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상봉의 기쁨을 나누며 서

정부 시기에 북한이 자체적으로 추진한 사업 가운데

로 안부를 묻고 오순도순 대화하며 활짝 웃는 모습

생사여부를 몰랐던 460여 명의 가족이 국내외에 생

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통곡하는 장면이나 울

존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이 경우 만약

음바다 같은 장면은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정말 달

‘전사자·피살자’ 성분으로 각종 혜택과 대우를 받던

라도 너무 다른 이산가족상봉 장면이었다.1)

핵심계층이 ‘월남자가족’인 것으로 판명난다면 하루

우리에게는 이산가족들이 공산주의 억압체제로부

아침에 그 혜택이 사라질 수도 있고 잘못하면 ‘반동

터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온 자유의 용사, 자유의

분자’가족으로 몰릴 우려도 있는 터라 사회적 혼란

수호자로 간주되지만, 북한쪽에서 보면 “조국해방

은 감당하기 힘들게 된다. 내부적으로 “반동분자들

1) 김병로 외, 『한반도 분단과 평화부재의 삶: 성찰과 치유를 위한 이산가족 이야기』 (서울: 아카넷, 2013).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30 31

에게까지 상봉의 은혜를 베풀어주는 장군님의 광폭

들의 상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필요로

정치, 인덕정치”로 선전하겠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하는 경제적 보상을 지불해주는 지혜를 발휘할 필

남한에게는 손해 볼 것이 없는 사안이지만 북한으로

요가 있다. 쌀과 비료가 식상한 해답일 수 있고, 아

서는 체제와 정권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매우 민감

니면 농기구나 적십자사에 대한 결핵지원도 방법이

한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될 수 있다. 아직은 신뢰가 부족한 남북관계에서 탄 탄한 신뢰를 구축하기에 앞서 상호 필요한 부분을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교환하는 상호주의로 시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듯 남한에게는 ‘보편적’인 듯 보이는 이산가족

몇 년 전 납북자 가족의 어머니 한 분을 만나서 대화

문제가 북한 안에서는 파괴력을 지닌 정치적 문제인

를 나눈 적이 있다. 1970년대 말 고교생으로 납북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이산가족문제를 추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지금 북한에 살아 있다는 사

진해야 할 하등의 동기도 가질 수 없다. 유일한 동

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고 아들을 찾기 위

기라면 그것은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북한

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박근혜정부가 제안한 이산가족상봉 제안을 덥석

그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자기 아들이

받아 물었던 것도 경제적 지원을 기대하였던 것이고

월북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남한의 인권단체에서는

그것이 금강산관광 사업 재개로 이어질 것을 무척

납북되었다고 주장하며 대립하는데, 사실 본인은 자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기 아들이 납북되었건 월북하였건 별 관심이 없다는

통일 전 서독은 이산가족과 친척들에게 ‘긴급한 용

것이다. 그저 아들이 살아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고,

무’라고 판단되는 경우 언제든지 방문을 허용하였고

단지 아들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소원뿐이라는

1년에 30일 혹은 60일의 체류를 허용하는 등 세심

것이다. 그 어머니에게는 납북이냐 월북이냐를 따지

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통일부도 이산가족

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진실을 파헤치

들에게 접촉과 상봉에 필요한 재정을 각 200만 원,

고 정의를 세우는 작업, 그래서 자존심을 세우는 일

500만 원까지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적 재정

은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에게는 너무 가혹한 것이

지원 외에 조금 더 적극적이며 전면적으로 이산가

다. 지금은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만

족상봉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협

남과 상봉을 최우선으로 배려해야 할 때다. 분단과

상하여 적정의 재정을 지불하고라도 전면적인 가족

전쟁이 만들어낸 이 아픈 역사가 21세기 분단 한반

상봉을 시급히 시작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독

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아물지 않은 채 남

은 동독의 정치범을 석방하기 위해 1인당 약 1억 원

아 있기 때문이다.

상당의 재정을 지불하는 ‘프라이카우프’를 추진하기 도 하였다. 헤어진 가족을 상봉하는 문제는 한시도 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사안이다. 어떤 이유로든, 그 이유가 북 한당국에 있다 하더라도 원칙과 자존심을 지킨다는 이유로 미루어둘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산가족

김병로는 미국 럿거스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통일연 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 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 PD의 북한 취재수첩

북한의 시장화 20년, 우리의 과제는?

공용철 KBS PD

북한 주민들은 식량배급 중단을 미공급이라고 한다. 지역과 계층에 따라 편차 는 있지만 북한이 미공급 사태를 겪은 지 20년이 지났다. 빠른 곳은 1993년부 터 늦은 곳도 1994년이 되면서 대부분 식량배급이 중단되었다. 20년이 지난 현 재까지 가족이 필요로 하는 식량의 일부라도 배급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평양 시민들과 일부 특권층에 국한된다. 대다수 주민들은 미공급을 숙명처럼 받아들 이고 산다. 북한 사회에서 식량배급은 사회질서를 규정하는 핵심이자 주민들의 생존을 보장하던 생명줄이었다. 당국은 배급을 통해서 주민들을 통제했고, 주 민들은 생존을 의지한 대가로 노동력을 제공했다. 식량배급제는 주민들과 당국 이 노동과 양정을 매개로 결합된 가장 기본적인 질서였다.

미공급 시대와 시장화 20년 북한은 1957년 11월 ‘내각결정 96호 및 102호’에 의거해 협동 농장원을 제외한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식량배급제를 실시하였다. 식량배급은 각 직장의 경리 부에서 ‘양권’이라 부르는 배급표를 지급하면 주민들은 매달 1일과 16일에 배급 소에 가서 소정의 가격을 지불하고 배급을 받았다. 식량은 주민들의 성분·직 위·직종·연령 등을 기준으로 구분하여 배급되었고, 그 양과 질은 물론 가격 까지 차별적으로 적용되었다. 일반 주민들에게 배급되는 식량은 유상으로 주로 쌀과 옥수수였고, 배합비율은 평양과 지방, 신분,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3:7에서 5:5 사이였다. 충분하진 않지만 주민들은 배급을 통해서 생존 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당국은 중앙집권적 식량배급제를 통해서 주민들을 효 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32 33

미공급 시대의 도래는 북한 암시장의 팽창을 불러왔 다. 북한의 암시장에 상품을 제공한 곳은 중국이었 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수많은 밀수꾼이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넜다. 고철이나 귀 금속, 수공예품, 골동품에서 고서화에 이르기까지 돈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중국으로 나왔고, 대신

지난 10월 11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서 열린 ‘2013 중·조(북한) 경제무 역문화관광박람회’에서 참가자들이 북한 기업의 상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곡물이나 생활필수품이 북한으로 들어갔다. 2000년 대 이후 무역이 성장하면서 밀수가 줄었지만, 북한

시장화 20년, 북한에서 시장은

의 초기 시장화를 부추긴 것은 북중 간의 밀수였다.

단순히 상품을 거래하는 공간을 뛰어넘어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북한시장에서 거래되는 품목

주민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중국산 제품의

의 80% 이상이 중국산이고,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 도가 높아지게 된 핵심 요인도 지리적인 근접성, 시

유통단계를 벗어나 가내수공업이 발달하고, 초보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된 지도 오래다.

장화의 기원과 관련이 깊다. ‘돈주’라고 불리는 시장 자본가들이 형성된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북한의 돈주를 ‘권력형’과 ‘자생형’으로 구분해볼 때, 시장에 서 성장한 자생형 돈주들은 일찍 장사를 시작했다는

의 미공급 20년은 시장화 20년의 역사이고, 그것은

점, 중국과 관련된 사업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

북한 사회와 주민들의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

격적인 미공급 시대가 도래하기 전인 1990년대 초

화시켰다.

반부터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은 신의주나 혜산, 나 진·선봉, 청진 등 국경 연선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주민의식의 변화, ‘개인’의 등장

많았다. 중국과 밀무역이 성행하는 과정에서 돈을

북한의 시장화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주민들의

번 사람들이다.

의식변화다. 시장화의 진전은 주민들의 삶을 규정했

시장화 20년, 북한에서 시장은 단순히 상품을 거래

던 ‘조직생활’에 ‘시장’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추가시

하는 공간을 뛰어넘어 주민들 생활 깊숙이 침투해

켰다. 가족의 생존, 교육, 의료, 노후보장 등 모든 것

있다. 중국산 제품의 유통단계를 벗어나 가내수공

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력갱생’이 가

업이 발달하고, 초보적인 노동시장이 형성된 지도

장 중요한 규범이 되었다. 조직생활은 마지못해 참

오래다. 집을 담보로 잡히고 장사자금을 빌리는 사

석해야 하는 형식적인 행사가 되었고, 어떻게 돈을

금융이 발달하고, 편법적인 주택거래도 일반화되었

벌 것인가가 주민들의 화두가 되었다. 출범 22개월

다. 당국의 정책의지가 강하게 투영될 수밖에 없는

을 맞은 김정은 체제는 북한의 시장화를 촉진했다.

대외무역이나 국내제조업, 협동농장 등 국영기업까

시장에 대한 규제와 단속을 완화하면서 생겨난 결과

지 시장논리가 깊숙이 스며들었다. 기관이나 기업

다. 2013년 현재 시장은 북한사회를 떠받치는 핵심

의 운영, 주민들의 생존에 이르기까지 시장이 작동

질서가 되었다.

되지 않는 영역을 찾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북한

올해 들어서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부쩍 개인이 중


있다. 청소년들이 이념이나 사상, 조직을 다루는 요 직보다 돈벌이가 되는 무역일꾼을 선호한다는 것은 당이나 국가보다 개인을 중시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 다. 엘리트가 아닌 일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다. 학 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배치받을 때 기술을 배워서 평양시내의 기념품 상점에 중국에서 수입한 의복들이 판매되고 있다.

부업을 할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한다. 남자들은 자전 거 수리를 선호하고 여자들은 재봉 등을 배울 수 있 는 직업을 선호한다. 개인을 중시 여기는 사회변화 의 지표 가운데 하나다.

시되고 있다. 당과 조국, 자신이 소속된 직장보다

시장화 20년,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지 22개월, 북

나와 내 가족이 중요해졌다. 모두가 돈을 벌기 위

한사회의 저변을 흔든 핵심적 변화는 조직이 쇠퇴하

해 혈안이 돼 있는 사회, 시장화 20년이 보여준 북

고 개인이 등장했다는 점이고, 이념이나 사상 대신

한의 민낯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헌법에도 명기돼

돈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있듯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 하여’라는 슬로건 아래 집단주의를 고취해왔고, 조

시장화 20년, 북한의 미래와 과제는?

직생활을 강조해왔다. 북한의 매체들이 ‘개인주의’

북한에서 조직생활의 비중이 축소되고 시장과 돈,

와 ‘기관 본위주의(자사 이기주의)’를 줄기차게 비

개인이 중시되면서 나타난 변화는 긍정적인 요소와

판해온 것도 집단의 가치를 주민들 속에 내면화하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시

기 위해서였다.

장화의 진전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은 북한이 극

개인의 등장은 북한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여유 있는 계층은 주택을

달라진 북한 청소년들의 꿈이 그것을 말해준다. 북

호화롭게 장식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잉여자금

한의 엘리트 청소년들은 외화벌이나 대외무역을 꿈

을 달러나 위엔화로 바꿔서 축장하고 있다. 심지어

꾼다. 영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학습열기가 고조되

중국이나 해외에서 거주하는 친인척이나 친구들 계

고, 중국의 발전상과 세계경제를 공부하려는 열의

좌에 외화를 은닉하는 관행도 오래됐다. ‘달러라이

가 높아진 것도 그 때문이다. 외화벌이나 대외무역

제이션’의 가속화와 개인들의 외화축장은 국가 경제

을 하게 되면 현화(외화)를 만질 수 있고, 개인적인

개발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외화가 사장되고 있다

부도 축적할 수 있다. 평양외국어대학이나 인민경제

는 점에서 북한당국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었다.

대학, 원산경제대학이 뜨는 것도 무역일꾼이 되려는

2009년 북한이 화폐개혁을 한 직후 포고령까지 발

청소년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이나 정치

동해서 개인의 외화거래를 금지한 것도 그런 고민

경제학을 공부한 학생들은 당·정의 핵심요직을 맡

의 일단이 반영된 조치였다. 외화를 만질 수 있는 상

을 수 있다. 하지만 당·정의 핵심요직으로 진출해

류층이 늘어나는 반면에 여전히 하루에 한 끼 해결

서 외국의 대사로 나가는 것보다는 무역회사 사장을

을 버거워하는 계층도 있다. ‘하바닥층’이라고 불리

하는 게 훨씬 돈도 많이 벌고, 가족도 풍요롭게 살 수

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자연재해가 닥치거나 식량파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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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생길 때마다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사람들이다.

견인하는 데 그동안 남쪽이 기여한 부분은 별로 없

북한의 하바닥층은 시장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로

다. 오랫동안 적대적 관계로 서로 문을 닫고 살아왔

서 그들을 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재정난으로

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

국가가 복지로 그들을 구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시장화를 바라보는 견해

어떻게 민간에 감춰진 자본을 국가 개발부문으로 돌

도 갈리고 있다. 붕괴의 전초로 보려는 사람들이 있

리고 심화되는 양극화를 해소할 것인가? 북한이 풀

는가 하면, 당국의 체제 장악력이 이완된다는 점에

어야 할 숙제다.

서 애써 외면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시장화를 북한

시장화 20년이 가져다준 북한의 변화 가운데 긍정

붕괴의 전초로 보려는 사람들은 압박과 봉쇄를 더

적인 요소도 많다. 주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있

욱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외면하려는 사

는 것이 그 가운데 하나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북

람들은 방법이 무엇이든 지원과 교류협력을 강화해

한 주민들의 삶의 질은 현저하게 향상됐다. 의식주

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 많이 개선됐고, 자녀들에게 외국어나 악기, 컴퓨

우리 내부의 사정이 어떻든 남북한은 평화와 통일

터 등을 사교육하는 중산층도 형성되었다. 긍정적

을 위해 상호 교집합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

인 변화는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주민들이

해 있다. 탈냉전 이후 세계는 화해와 평화를 지향해

당이나 정부에 의지하지 않고, 시장논리로 무장하

가고 있다. 중국의 성장으로 한국전쟁 이후 짜인 동

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도

북아질서도 변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남북이 교집합

아름다운 변화 가운데 하나다. 당국의 시혜만을 기

을 확대해가지 못할 경우, 질서변환기에 우리는 또

다리던 20년 전의 수동적인 주민들이 아닌 것이다.

다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릴 수 있다. 남북

북한의 이러한 변화가 국제사회와 흐름을 같이한다

이 관여의 폭을 넓혀가야 하는 이유다.

는 점도 긍정적이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시장과

우리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합의할 수 있는 대북

성취동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계 시민들의

정책을 찾아내야 하고, 그것은 남북의 교집합과 공

삶의 양태와 비슷해지고 있다. 북한이 폐쇄적이지

통가치를 확장해가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것은 북한

만 문이 열리면 국제사회와 언제든 함께 호흡할 수

의 시장화를 촉진하고 남북 주민들의 직접적인 접촉

있다는 토대가 형성된 것이다.

을 넓혀가는 방향이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그 방법 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찾으려는 노력

남겨진 과제, 우리의 선택은?

마저 포기해선 안 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우

우리의 목표는 남북의 평화적 통일이다. 평화통일

리의 목표라면….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의 교집합과 공감대를 확대해가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의 시장화 20 년이 가져온 변화는 장기적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통일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시장과 돈, 인센 티브,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통가치가 형성되 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시장화와 변화를

공용철은 1990년 KBS공채 17기로 입사하여 <도전지구탐험대>, <TV 문화기행>, <KBS일요스페셜> 등을 제작했다. 2003년부터는 북한의 시장과 주민생활을 밀착 취재하는 르포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해오 고 있다. 2006년 <KBS일요스페셜> “2006 북한, 중국 자본에 종속 되는가?”로 통일언론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시선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남북 언론보도를 통해 본 화해의 길 이주철 KBS 보도본부 북한부 박사연구원

거칠게 말해야 일이 잘 풀리는 경우가 있다. 예의바

게 보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은 그

르게 행동하면 의사전달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안에 깊은 내면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잔혹한 전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그래서 말이 거칠어야 한다

쟁의 상처가 그 깊은 뿌리이고, 서로에게 대한 불신

고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

과 분노가 그 구조이다. 북한과 남한은 오랫동안 상

한 사람들이 가족인데, 세상에서 가장 많이 거친 말

대방의 정권과 체제를 비난해왔는데, 이러한 비난을

을 하는 대상도 가족이라고 한다. 늘 가깝게 지내고

조심스러워한 적은 2000년 이후 몇 년간을 제외하

허물이 없다보니,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무례를

고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례가 도를 넘는 경우

북한의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극에 달했던

도 있다. 직장에서 동료나 후배들에게 예의바른 사

2013년 초의 상황은 단순한 말싸움의 수준이 아니

람이 가정에서 식구들에게 거칠게 말하는 일도 적

었다. 남한 국민 일부는 민족의 비극을 또 한 번 경

지 않다고 한다.

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북 한정권이 거친 말로 남한을 위협한 것은 남한을 길

남북의 불신과 분노,

들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

“가는 말이 거칠어야 오는 말이 곱다?”

한 북한정권의 행동은 남한 국민의 가슴에 깊은 불

거친 말을 쓰는 것은 의도적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신을 남길 뿐 그들이 의도한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

굴복시키려는 것이지만,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울 것이다. 설령 거친 말이 일순간의 복종을 만들어

주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어느 경우든 거친

낸다 해도, 마음속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반감의 상

말은 상처를 남긴다. 상대방을 위협하여 일시적으로

처를 남길 뿐이다.

는 성과를 거둘지 모르지만, 누구도 반복적 위협에 긍정적으로 호응할 수는 없다. 거친 말은 사람들의

남북 언론의 갈등구조,

마음속에 크고 작은 깊은 상처를 남기고 결국 소중

남북의 대립은 ‘말’ 때문이 아니다

한 관계를 손상시킨다.

북한체제는 단일구조라서 정권의 입이 곧 언론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남북은 거친 말과 행동을 서로에

즉 북한 언론은 정권의 입으로써 기능한다. 하지만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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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언론구조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북한정권에

수 없다. 이것이 남한 언론의 성격이고 언론의 본질

대단한 불신과 적대감을 가진 언론도 있고, 중립적

적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한 언론도

태도를 견지하려는 언론도 있고, 나름대로 기대감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다.

을 나타내는 언론도 있다. 이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

합리적인 비판이 아니고,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보

진 다양한 남한 언론이 북한정권에 대해 고운 말을

도는 삼가야 한다. 최근에 벌어지는 북한에 대한 보

쓰자면 두 가지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야 한다. 하나

도의 일부는 근거가 희박하거나 악의적 감정이 바탕

는 북한정권이 합리적인 정권으로 변해야 하고, 또

에 깔린 것도 있다. 이러한 보도행태는 북한정권의

하나는 남한 사회에 존재하는 ‘대북 적대감’이 사라

위험성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행동일 수 있다. 특히

져야 한다.

그 의도가 독자나 시청자들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두 가지 변화를 기대하

고, 지면과 화면에 대한 접근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기는 모두 어렵다. 둘 중 하나도 변화를 기대하기는

라면, 우리 국민의 안전과 평화에 해로운 행동이라

어려운데, 둘 다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은 성급한 일

고 할 수 있다.

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호 지나친 적대적 행동

정당한 비판이 아닌, 상대방의 감정이나 분노만 자

과 표현이 협력을 손상시키고 피해만 만들어낸다는

극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남북 언론의 행태는 이제

것에 대해서는 남북한 모두가 일정한 공동의 인식이

없어질 필요가 있다. 언론은 자극적인 뉴스를 찾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내 비

이 곱다는 생각을 양쪽이 모두 하고 있다는 것이다.

판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북한은 정권이 가진 체제의 모순을 고치기 어렵고,

러한 합리적인 언론이 우리 국민의 호응을 받는 상

남한은 언론이 가진 다양성을 바꾸기 어려운 상황에

황이 전개되는 것이 필요하다. 무책임한 언론을 비

서 상호 공존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이 필요하다. 그

판하고, 언론이 바로 서게끔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래서 나온 것이 ‘상호간의 비방 금지’ 합의였던 것으

우리 국민에게 있다. 특히 언론이 상업적인 의도로

로 생각된다. 그러나 남북한의 대립은 단순히 ‘입’의

남북관계를 악화시키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대립이 아니고, 체제와 정권의 문제로 인한 구조적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한다. 남북 상

갈등이기 때문에 이러한 ‘합의’만으로 풀어내는 것

호간에는 시시비비를 따질 일이 매우 많다. 그 과정

은 매우 어렵다.

에서 감정적인 말로 상처를 입히는 어리석음을 서로 피해가는 냉정함과 현명함이 필요하다.

그래도 가야 할 화해협력의 먼 길,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결국은 풀 수 없는 문제는 놔두고 쉬운 문제, 합리적 으로 합의할 수 있는 문제들부터 풀어야 한다. 상대 방에 대한 비판 중단도 풀 수 없는 문제이다. 북한정 권은 필요하다면 당장이라도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남한에서는 이 문제를 정치권력이 풀

이주철은 북한정치사와 북한방송언론을 전공하고, 현재 북한대학 원대학교 겸임교수, KBS 보도본부 북한부 박사연구원으로 재직 중 이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로동당 당원조직 연구』 『북한의 텔레비 전 방송』 등이 있다.


칼럼

Editors Column

‘DMZ 세계평화공원’에 앞서 할 일 이경형 민족화해 편집인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는 사

관계도 개성공단이 정상 가동되면서 대화나 교류

업은 우리 생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경기도

가 다소 활성화되는 기미가 보였으나 이산가족상

와 강원도의 해당 지자체들은 평화공원 유치에 과

봉 행사가 북측의 일방적 연기로 무산된 후 급격하

열 경쟁을 빚고 있다. 자칫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

게 식어갔다.

이 될지 모른다.

동족상잔이라는 전쟁의 결과물로 생긴 DMZ는 실

류길재 통일부장관도 지난 10월 22일 서울외신기

제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지뢰밭 천지의 중무장지

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DMZ평화공원문제와 관

대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련, “남북관계가 지금 상태와 같이 지속돼서는 이

인간의 발길이 끊긴 60년의 세월은 생태를 스스로

루기 어렵다. 남북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남

복원했다. DMZ와 그 후방의 민간통제지역의 이른

북관계가 좀 더 발전해야 한다”라고 말해 당장 가

바 DMZ생태지역에는 남한 서식종의 25%에 해당

시적인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있음을 비쳤다.

하는 2,0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81종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미국 상·하원합동회의

의 멸종위기종과 보호종이 살고 있다.

연설에서 그 구상을 밝혔고, 후속 조치로 통일부 등

DMZ는 통일 이후에도 백두대간과 함께 보전되어

9개 관련 부처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주재로 특

야 할 중요한 생태축이다. 정부 국토종합관리정책

별대책반을 구성했으며, 7월에 대강의 마스트플랜

의 하나로 DMZ 정책은 무엇보다 먼저 생태보전

을 짰다. 이어 통일부는 내년 예산에 지뢰제거비 등

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생태관광사업의 일환으로

으로 402억 원을 배정했다. 이런 일련의 절차는 북

필요한 시설물을 이 지역에 구축하더라도 개발 개

한이 박 대통령의 제의에 호응해올 때를 대비한 것

념이 아닌 ‘지속가능한 최소한의 이용’이라는 원칙

이다.

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DMZ 전

통일부가 마스트플랜을 마련했다고는 하지만, 그

체를 국립공원처럼 ‘국가생태벨트공원’으로 지정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아직까지 공론에 붙일

하고, 지금부터 각종 시책을 그런 방향에서 집행

만큼 주변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

해야 한다.

다. 북한이 아직까지 가타부타 의사 표명이 없고,

작년부터 중요 일간지에 간헐적으로 DMZ 토지매

유엔사도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남북

각 광고가 대문짝만 하게 게재되고 있다. 이명박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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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시절, DMZ 권역을 생태관광벨트로 육성하

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

고, 저탄소 녹색성장지역 및 접경특화발전지구를

다. 누구든 평당 2만 원(1계좌)씩 기부하면 그만큼

조성한다는 등 장밋빛 계획을 발표하고, 파주 일대

의 DMZ 땅을 영원히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독

가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해제된 것을 계기로 부

일은 1989년 11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 동·서

동산업자들이 이에 편승했는지 모르겠다.

독 국경지대 1,393km를 생태보전구역인 그뤼네

이 광고는 ‘제5차 경기파주 DMZ 토지 매각’이라

스반트로 지정하고 독일자연환경보전연합인 분트

는 큰 제목에 ‘매각주체는 농업회사 경기새마을,

(BUNT)가 캠페인을 벌여 이곳의 사유지를 사들여

자금관리는 한국자산신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

공유지로 전환했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의 DMZ

다. 소유권이전등기 시까지 한국자산신탁에서 대

미래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금을 보관하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매각된다는 설

DMZ 생태지역은 남북한 철책을 뛰어넘어 후방

명까지 하고 있다. 이들이 소개하는 매물은 DMZ

의 민통지역까지 거대한 생물군집을 이루고 있다.

안의 유일한 영농촌락인 대성동 인근 토지는 물론

DMZ의 생태와 민통지역의 생태는 떼려야 뗄 수가

민통선 일대 논과 밭들이었다. 사유지를 사고파는

없다. DMZ의 습지는 더욱 그렇다. 유네스코 생물

데 국가가 막을 수는 없다 해도, 정부가 DMZ 토지

권보전지역 지정도 핵심지역 외곽의 완충지역을

의 투자나 투기를 조장할 수는 없다. 한국자산신탁

반드시 두고 있다. 지금 파주시 관내 민통지역의

은 준정부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 회사의 2

영농실태를 보면 습지를 메워 인삼밭으로 개간하

대 주주로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는 업체다. 결

고, 숲을 파헤쳐 경작지로 전환하는 것은 물론 몰

국 정부가 간접적으로 DMZ 토지매매를 부추기고

래 개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간혹 사람의 눈길

있는 셈이다.

이 닿지 않는 군 장벽물 부근엔 가전 및 영농기기 쓰레기들이 가득히 쌓여 있다. 민통선 지역의 토지

DMZ 토지의 국공유지화가 필요

이용도 DMZ 생태보전이라는 큰 방향에서 행정지

DMZ 일대의 토지는 한국전쟁 등으로 소유권 관련

도를 해나가야 한다. 군사보호지역 등으로 묶여 상

문서가 멸실되어 한때 토지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대적으로 낙후된 민통선 이남의 접경구역 주민들

되었다. 국공유지와 사유지가 섞여 있는 DMZ 남

의 생활향상을 위한 각종 지원사업은 그것대로 하

측 토지는 개발 압력에 노출되기 쉽다. 정부는 국

더라도 DMZ와 민통선 내부의 토지 이용에 관해서

공유지는 계속 보유하고, 사유지도 가급적이면 사

는 필요한 규제가 작동되어야 DMZ가 한반도의 새

들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향후 ‘세계평화공

로운 허파로 기능할 수 있다.

원’뿐 아니라 남북한 간에 DMZ의 평화적 이용을 실현하는 데도 DMZ 토지의 국공유지화는 중요한 선행조치가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금년 7월 DMZ 60주년을 맞아 자연 환경국민신탁이 우리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을 향 해 ‘DMZ 땅 1평 저축하기(DMZ Global Trust)’ 캠

이경형은 서울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서울신문 편집국장, 논 설실장, 임원, 고문을 역임했다.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 수와 ‘장준하공원’ 건립추진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현재는 내일 신문 칼럼니스트와 예술마을 헤이리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르포

연평도를 가

이 시대, 이 땅의 가장 절실한 종교는 평화! 강제윤 시인, 섬여행가

01

“포격 연습하면 힘들어. 후유증이 있어서 더 무서운 거예요. 포탄이 막 머리 위로 날아다니던 때가 생 각나서 힘들어. 할머니들은 포 소리만 나면 내 손목을 잡고 우리 어떻게 하냐. 어디로 가냐. 죽겄다! 얼른 피하자 해요. 나는 포 소리가 나면 귀를 틀어 막어. 그래야 덜 무서워.” 평화기행 길에 만난 연평도의 어떤 식당 여주인은 포격연습을 할 때마다 힘들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민화협 여성위원회 평화기행단은 1박 2일 동안 분단의 십자가를 온몸으로 지고 있는 연평도에 머물며 평화의 소중함을 몸으로 체험했다. 2013년 10월 16일 오후 연평도 망향전망대 아래 해변에서는 국군

01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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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포격연습이 있었고 평화기행단은 눈앞에서 형제

도와 1.6km 거리에 북방한계선(NLL)이 지난다. 보

끼리 총구를 겨누는 분단의 비극을 목도했다.

이지 않는 선 하나로 인해 손 내밀면 잡힐 듯 가깝던 이웃 섬마을이 갈 수 없는 먼 나라가 돼버렸다. 물고

| 전쟁과 평화, 그 경계에 서 있는 연평도

기와 새들은 자유롭게 넘나드는 바다를 이제 사람들

2010년 11월 23일, 북한군의 연평도 민간인 포격은

만 오가지 못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만행이었다. 그에 따라 국군의 사격연습 또한 불가피하다. 물론 포격사

| 풍요의 바다에서 긴장과 갈등의 바다로

건 이전에도 포격훈련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현실

조기의 섬, 연평도의 조기잡이가 역사에 처음 기록으

감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주민들은 포탄소리가 들릴

로 나타난 데는 조선의 세종실록지리지다. “토산(土

때마다 공포스러운 현실 앞에 몸서리를 친다. 포격사

産)은 조기[石首魚]가 주의 남쪽 연평평(延平坪)에서

건 이후 병력과 무기가 증강된 연평도는 전시처럼 긴

난다.” (세종실록지리지 황해도 해주목)

장감이 팽팽하다. 전쟁과 평화, 그 경계에서 연평도

해마다 봄이면 연평도는 조기떼 우는 소리에 잠을 설

는 끊임없이 흔들린다. 연평도 사람들의 삶 또한 그

쳤다. 1960년대 후반까지 연평바다는 수천 척의 배

렇게 흔들리며 부유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어선들이 몰려오면 연평도에

준비해야 한다는 모순, 그것은 삶의 모순이고, 생애

는 파시가 섰다. 조기떼의 이동을 따라 임시로 형성

의 모순이고, 감히 형용할 수 없는 모순이다.

되는 바다의 시장이 파시(波市)다. 파시 때면 선구와

지금은 퇴락했지만 연평도는 역사의 한 시절을 풍미

생필품을 파는 상점들이 들어서고 어선을 쫓아온 ‘물

했던 섬이다. 오랜 세월 연평도는 ‘조기의 섬’이었다.

새 떼’가 어부들을 유혹했다. 한창때는 색주가만 100

해마다 5월이면 연평도는 조기떼 우는 소리에 잠을

여 곳이 생겼고 ‘물새’라 부르는 작부들이 500명도 넘

설쳤다. 수백억 조기 군단이 몰려오면 ‘조기 한 바가

었다. 일제 때는 일본 유곽도 있었고 일본 기생들도

지, 물 한 바가지’일 정도로 황금어장이었다. 조기 철

많았다. 1930년대 연평파시에는 상점 중에서 요릿집

이면 연평도에는 파시가 섰다. 파시 때 연평도에는

과 음식점이 가장 많았다. 어느 해에는 요릿집에 일

수천 척의 어선과 상선이 몰려들었다. “한 배를 타면

본 기생만도 50명이 넘었다. 파시 동안 작은 섬 연평

천배를 건너다녔다.” 파시철 연평도는 주민과 선원,

도는 수만 명의 사람으로 밤낮없이 흥청거렸다. 10톤

상인들 수만 명이 북적거리는 하나의 해상도시였다.

남짓 되는 중선(안강망 어선) 한 척이 한 번 조업에

오랜 세월 연평도는 해주문화권이었다. 연평도에서

참조기를 100동(10만 마리)씩 잡는 것도 예사였다.

해주는 30여 km 거리에 불과하다. 1953년 7월 27일

매일신보는 파시가 절정에 달한 1943년 4월 말, 연평

휴전협정 이후 해주가 북한 땅이 되면서 122km의 먼

도에 무려 5,000여 척의 배가 몰려왔다고 기록하고

거리지만 연평도는 인천문화권으로 편입됐다. 연평

있다. 1944년에도 연평도의 조기 어획량은 97억 마 리였다. 1947년 파시 때 연평도어장에 동원된 어부 들은 연인원 9만 명에 달했다. 조기잡이 배들이 들 어오면 연평도의 여자들도 바빠졌다. 연평도에 정박

01 연평도를 방문한 민화협 여성위원회 회원들.

한 배들은 물과 식량, 장작 등을 보급받았다. 여자들


02

03

은 이때를 틈타 물을 팔기 위해 물동이를 이고 갯가

선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동네에 사람들이 없었어요.

에 늘어섰다. 카페도 있었으며 여관, 대서소를 비롯

천운이었지요.”

해 이발관이나 목욕탕도 생겼다. 색주가를 비롯한 장

포격사건 후 주민들은 해경 배를 타고 밤새 인천으

사치들은 조기잡이가 끝나면 미련 없이 섬을 떠났다.

로 피난을 떠났다. 피난을 나갔을 때는 찜질방에서

영원할 것 같던 연평도의 황금시대는 갑자기 종말을

잠을 자면서도 다시 연평도에 돌아갈 생각이 없었

맞이했다. 어느 순간 그 많던 조기가 거짓말처럼 자

다. “천금을 준다 해도 들어가기 싫었어요.” 하지만

취를 감추고 말았다. 연평도를 찾는 어선도 상인도

시간이 지나고 연평도가 차츰 안정을 되찾아가자 주

더 이상 없어졌다. 파시는 끝이 났다. 연평바다에서

민들 대부분이 다시 돌아왔다. “생활 터전이 여기니

조기떼가 사라진 것은 1960년대 말이다. 1968년 어

해먹고 살게 없는데 어쩌겠어요.” 도리가 없었다. 어

로제하선이 생기면서 조기잡이는 사실상 종말을 고

디 가서 무얼 해먹고 살 수 있겠는가. 먹고사는 일 또

했다. 비슷한 시기 칠산어장에도 조기가 나타나지 않

한 전쟁이 아닌가. 전쟁을 치를 바에야 살던 터전에

았다. 오랜 세월 대규모 선단이 어린 새끼들까지 잡

서 치러야지. 하지만 주민들은 포 소리만 나면 가슴

아들인 남획의 결과였다. 무차별포획이 계속되자 멸

이 철렁한다. 포격이 있기 전에는 50년 넘게 포 소리

종의 위험을 감지한 조기떼는 더 이상 사지를 찾아들

를 듣고 살아왔지만 불안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

지 않고 바다 깊숙이 숨어버렸던 것이다.

금은 포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 없다. 연평도 주민들은 대부분 악몽에 시달린다. “다

| “포 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철렁해”

들 똑 같은 꿈을 꿔요. 전쟁이 나고 포가 떨어지고 도

조기가 떠나면서 연평도의 황금기도 끝이 났다. 이

망가는 꿈.” 그러면서도 주민들은 설마 하는 기대감

제 연평도는 군사적 긴장이 흐르는 작은 섬이다. 북

으로 살아간다. “한 번 쐈는데 설마 또 쏘겠는가 하

한의 포격을 받은 뒤에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섬

는 생각이지요.”

이 돼버렸다. 포격을 당한 집들 대부분은 철거됐으

지금 연평도 주민들은 별로 큰 욕심이 없다. 무슨 큰

나 몇 채는 ‘안보관광’용으로 허물지 않고 안보교육

지원 같은 거 바라지도 않는다. “큰 욕심 없어요. 옛

장에 ‘전시 중’이다. 부서진 집들은 처참하다. 포격

날처럼 평화롭게 살 수만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

의 와중에 군인과 군부대 공사장 인부 몇이 사망했

래서 주민들은 보복하자고 들어와 목청 높이는 사람

다. 하지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집이 허물

들이 반갑지 않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

어졌는데 주민들의 인명사고는 없었다. 식당을 운영

니라 평화다. “여기가 없는 사람들 살기 좋아요. 자기

하는 주민 한 분이 그 의문을 풀어준다. “마침 여객

만 노력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 없어요. 남북이 서로


02 우리 해군이 연평도에서 포격 연습을 하고 있다. 03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연평도 앞바다. 04 평화를 기원하며 행사를 하고 있는 참가자들.

04

대화도 많이 하고 포 떨어지기 전처럼 평화롭게 살

닭이다.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다보니 우리는 그 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평화는

중함을 잊고 살았다. 평화가 없다면 우리의 생명, 가

안개 속이다. 자꾸 연평도에 더 큰 무기를 들여온다

족, 재산, 무엇 하나 온전할 수 없다. 한반도에 다시

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불안하다. “무기가 많이 들어

전쟁이 일어나면 남과 북 모두가 공멸하리란 것은 자

오면 들어온 만큼 더 위험해질 수 있어요. 여기서 대

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연평도와 이 땅과 우리의

응사격 많이 하면 저쪽에서도 포를 더 많이 쏠 거 아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전쟁이 아

녜요. 그럼 죽어나는 것은 주민들이지.” 주민들은 정

니라 평화다. 평화보다 더 성능 좋은 첨단무기는 세

부에서 공짜 돈 주는 거 바라지 않는다. “내가 노력

상 어디에도 없다.

해서 먹고살 수 있는데 뭘 바라. 그저 평화롭게 살게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더 이성적이 되어야 한

만 해주면 돼지.”

다. 절대 분노로 싸워서는 안 된다. 차가운 철이 달군 철을 자른다 했다. 분노는 장작불 같아 남을 태우기

| 평화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

전에 자신을 먼저 태우고 만다. 그러므로 진정 평화

식당주인은 또 하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

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평화가 돼야 한다. 평

평도에 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주

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지킬 수 있다고 나는 믿는

민들이 피난을 떠날 때 섬에 갑자기 유인물이 뿌려졌

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

다. 북에서 날아온 삐라였을까. 아니다. 육지에서 들

리는 모두 평화운동가가 돼야 한다. 평화운동은 거창

어온 부동산 투기꾼이 뿌린 전단지였다. 섬에 남은

한 것이 아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주민들은 집이나 부동산 팔 사람은 연락을 달라는 전

평화운동가다. 하루 한 번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

단지를 보고 기가 막혔다. 심지어 주민들을 통해 땅

만으로도 우리는 평화운동을 하는 것이다. 종교인은

을 팔 생각이 없는지 직접 의사를 타진해오기도 했

자신의 신에게, 종교가 없는 이들은 그저 간절한 마

다. 그 와중에도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투기꾼들. 남

음으로 평화라는 신에게 기도하자. 이 시대, 이 땅의

의 불행을 내 이익의 기회로 삼으려는 자들이 전쟁터

가장 절실한 종교는 평화다.

라고 왜 없겠는가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 인간계가 참으로 그악스런 세상이구나 싶다. 우리는 늘 늦게 깨닫는다. 평화가 깨진 다음에야 새 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평화는 공기와 같아서 그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까

강제윤은 시인이자 섬여행가, 인문학습원 ‘섬학교’ 교장으로 문화일 보 평화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사람 사는 한국의 모든 섬을 걷겠다 는 서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400여 개의 섬을 걷고 기록해왔다. 주 요 저서로는 『섬을 걷다』 『어머니전』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등이 있다.


통일교육·평화교육

탈북자와 우리와의 통합교육 북한이탈주민 정서지원과 남북 소통의 장 필요 최지혜 한국YWCA연합회 북한어린이돕기사업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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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은 입국 전부터 잘살려면 북한의 말투를 포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오히려 그들에

함해 북한적인 것들을 버리고, 남한적인 것을 찬양하

대한 오해와 편견만을 더하고 있다. 남한민이 갖는

고 받아들이는 것이 적응이고 정착이라고 학습 받아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편견은 그들의 적응을 더욱 어

요. 학교에 가서 북한 말투를 쓰면 차가운 시선으로

렵게만 한다.

쳐다보고, 탈북자라는 사실 하나에 남한민과 함께 어 울리기가 어려워요.” 남과 북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남과 북의 ‘또래’가 함께하는 ‘길 위의 평화학교’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 그 첫날에 탈북 청년이 한 이

한국YWCA는 남한민과 탈북민이 여행과 이야기 나

야기이다. 그의 이야기가 마음 깊이 남는다.

눔을 테마로 하는 평화의 동행을 시작한다. 길 위의

북한이탈주민 2만 5,210명(2013년 5월 기준 통일부

평화학교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지원을 넘어, 남한

통계자료)시대다. 2012년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이

과 탈북민이 함께 통일을 준비하는 사회통합 프로

탈주민 입국 수가 1,000명대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램으로, 서울YWCA, 부산YWCA 새터민지원센터,

지난 6년간 한 해 기준 2,0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청주YWCA가 지역별로 실시한다. 남한과 탈북 청소

이들은 정치와 이념의 문제를 떠나 살기 위해 하나뿐

년과 대학생, 청년, 젊은 여성 그룹을 대상으로 남과

인 목숨을 걸고 국내에 입국한다. 국경을 넘어 남한

북의 문화와 서로를 이해하며, 평화 감수성을 향상시

으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은

키고, 또래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나누며 대안을

굶주림과 인신매매, 체포와 강제북송의 위험을 겪으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며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는다.

현재 한국YWCA는 부산YWCA와 전주YWCA에서

이러한 상처에 더해, 남한사회의 차별과 차가운 시선

새터민지원센터를 운영 중이다. 새터민지원센터는

이 이들의 적응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주로 새터민들의 취업상담과 취업알선 그리고 진로

민주당 박병석 의원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자살

지원상담을 하고 있다. 또 새터민들을 위한 정서지원

률은 남한 전체 국민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하나센

과 심리프로그램, 남북 주민교류사업과 지역 시민들

터에서의 1년 적응지원 이후 정착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정서적 지원과 소통의 장 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의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남한민 대부분은 여전히 이들을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다.

길 위의 평화학교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지원을 넘어, 남한과 탈북민이 함께 통일을 준비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으로, 서울YWCA, 부산YWCA 새터민지원센터, 청주YWCA가 지역별로 실시한다.


탈북민의 성공적인 남한사회 적응과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 여부는 다가오는 남과 북의 통일을 2013년 8월 31일 길 위의 평화학교

대비하여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예비과정이다.

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개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공감과 소통 속에 이뤄지는 힐링, 그리고 이해

이러한 탈북민 지원에 한 발 더 나아간 길 위의 평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남과 북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학교는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연령대로 구성해 정

서로에 대해 더욱 가깝게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남

서적 지원과 소통의 장을 제공한다.

한과 탈북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

길 위의 평화학교 프로그램은 탈북민만을 대상으로

는 청주YWCA에서는 북한, 남한이란 용어 대신 ‘윗

하지 않는다. 남한민과 탈북민이 멘토-멘티의 관계

동네’, ‘아랫동네’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서로 보

로 참여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강의 형식의 프로그램

이지 않는 선을 지우려고 한다. 남과 북의 여성이 서

이 아니며, 한 번 만나고 끝나는 행사가 아니다. 길 위

로 짝이 되고, 이름 대신 별칭을 지어 부른다. 그 사

의 평화학교는 남과 북의 또래가 ‘친구’로서 6개월간

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엔젤, 짱구, 토끼 등의 친근

지속적으로 만난다. 일방적인 강의 형식이 아닌 여행

한 별칭으로 서로를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느낀다.

과 탐방, 이야기 나눔이라는 소통 형식을 통해서 진

요가와 춤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와 힐링의 시간, 영

행된다. 6개월의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남과 북의 ‘친

화를 통해 남과 북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

구’들은 통일을 향한 길을 함께 걷는다. ‘친해지는 길’

간, 지리산 유기농 선진지 견학을 하며 함께 안전하

을 통해 서로에 대한 낯설음을 없애고, ‘나를 찾아가

고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들을 통해

는 길’을 통해 자신을 좀 더 파악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 서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좀 더 쉽게 마음을 열

또 ‘가정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에서는 양성평등에 대

고 소통한다. 남한과 탈북민 또래가 ‘친구’의 관계로

해 남한과 북한의 청년들이 각자 경험에 따라 양성평

참여하여, 어디에서도 마음을 드러내기 힘들었던 탈

등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이후 진행되는 ‘우리 지역

북민들에게 또래의 고민을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탈

의 평화를 찾는 길’에서는 비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

북 과정에서 겪었던 정서적인 상처들을 여행을 통해

고 지역사회의 현안인 현장 탐방을 통해 서로의 생각

치유할 수 있게 된다.

을 나눈다. 이어 지속되는 모임을 통해 서로를 이해

또한 탈북 이후 일방적으로 듣는 강의에 지친 탈북

하고 공감을 확장시키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찾아가

민들에게 또래들이 갖는 일상의 고민들과 사회의 이

는 길’을 모색한다.

슈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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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갖는다. 결혼적령기의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북 평화의 길은 더디기만 하다. 남한으로 입국하는

부산YWCA 새터민지원센터에서는 남북 청년들에게

탈북민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탈북민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력, 가정폭력,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남한민의 선입견은 여전하고 탈북민이 남한에서 적

개념과 건강한 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강의와 자

응하기는 어렵기만 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통은

유로운 토론의 시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북한의 청

더욱 힘에 겹다.

년은 “북한에서는 성희롱, 성폭력에 대한 담론은 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문제는 소수자를 배려하고 다

재하지 않고 남존여비의 가부장적 관계가 만연한다”

문화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차원을 넘어 통일을 바

고 말했다. 남한 청년은 “남한에서는 아동 성범죄에

라는 민족애와 인권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는 결코 피

대한 공포로 인해 친족까지도 의심 대상으로 삼도록

할 수 없는 현안이 되었다. 탈북민의 성공적인 남한

아이들을 교육한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하기도

사회 적응과 이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포용 여부는

한다. 남북 청년들은 워크숍을 통해 남과 북의 차이

다가오는 남과 북의 통일을 대비하여 우리에게 반드

를 이해하고 현재 남한사회의 이슈와 문제에 대해서

시 필요한 예비과정이다.

도 공감하고 자연스럽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나아가 우리는 탈북민에 대한 지원과 시선이 일방적

을 갖는다.

인 적응과 동화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성장기간에 중국 등지를 떠돌며 학업 기회를 놓친 탈

한다. 우리 사회는 탈북자들을 포함해 다문화가정 여

북 청소년들은 남한사회에서 학교에 적응하기가 어

성들과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소수자들에게 우리의

렵다. 특히 또래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 청소년기에

가치와 문화에 동화되어 살아갈 것을 일방적으로 강

는 탈북 청소년들이 적응하기도, 남한 청소년들이 포

요한다. 그들의 가치관과 문화와 심지어 말투와 언어

용하기도 힘들다. 남한과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

까지 모두 버리고, 지금 밟고 있는 땅의 문화와 생활

는 서울YWCA는 길 위의 평화학교를 통해 탈북 청소

방식에 따라 모든 것을 바꾸고 치열하게 경쟁하라고

년에게는 남한사회 적응과 또래문화를 공유하게 하

요구한다. 그것이 남한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이라고

고, 남한 청소년에게는 탈북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의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일방적인 하나됨을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지속적인 평화통일 의식 향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통합이 아닐 것이다.

상 기회를 갖게 함으로써 남북통일을 대비한 통일준

길 위의 평화학교에 참가하는 남한민과 탈북민 참가

비세대의 지도자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자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면서 함께 평화의 길

또한 한국YWCA연합회는 평화와 통일에 관심이 많

을 걷는다. 이들의 한 걸음은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

은 남한과 탈북 청년으로 이뤄진 ‘YWCA PR(Peace

는 평화의 큰 몸짓이다.

Reporter)기자단’을 만들어 이들과 함께 길 위의 평 화학교 프로그램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YWCA의 평 화와 통일 활동을 홍보하고 있다.

길 위에서 발견한 동행의 한 걸음, 평화의 큰 몸짓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6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남

최지혜는 한국YWCA연합회 평화나눔팀, 북한어린이돕기사업단에 서 팀장으로 재직 중이며, 남북 통합교육에 관심을 갖고 통일 준비를 위한 대상별 ‘길 위의 평화학교’ 프로그램과 북한어린이에게 분유보 내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길에서 만나는 평화와 통일

남북관계 경색국면 불구, 종교계 교류·민간단체 모니터링 방북 이어져 편집부

01

02

9월 25일로 예정되어 있던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북한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무기한 연기 된 이후,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로 기대되었던 남북관계의 개선이 다시금 경색국면에 접어들 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국내 종교 및 민간단체들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을 멈 추지 않았다. 10월 30일 부산에서 개최된 제10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의 사전 행사로 WCC 제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주관하는 ‘평화열차’ 행사가 10월 7일 시작해 총회 개막일 전인 28일까지 이어졌고, 남북의 불교도들은 10월 12일 금강산에서 ‘금강산 신계사 복원 6돌 기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봉행하기도 했다. 또한 10월 25일에서 27일까지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4주년을 기 념하는 남북공동행사가 진행되었다. 남측에서는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함세웅 이사장을 비 롯해 곽동철 신부 등 천주교 사제와 회원 등 50여 명이 참석했으며, 북측에서는 조선가톨릭교 중앙위원회 서철수 서기장, 김철웅 장충성당 회장 등 4명이 참석했다. 남북은 하얼빈의 안중 근기념관을 방문하고, 안중근 의사 의거 104주년 기념 남북공동미사를 집전했다. 아울러 우리 정부가 밝힌 ‘정치적 상황과 별개로 인도적 대북지원은 지속한다’는 방침하에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 및 모니터링도 이어졌다. 나눔인터내셔날이 10월 19일부터 22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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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평양과 황해북도 강남군에 지원한 의약품 모니터

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회담했고, NCCK와 북측 조

링을 위해 방북했고, 남북평화재단도 같은 일정으로

선그리스도연맹이 10월 14일 중국 선양에서 실무접

평양과 남포 지역에 지원한 전지분유의 분배 모니터

촉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해

링을 위해 방북했다. 또한 10월 23일에는 남북함께

무산되는 아쉬움을 남겼다.

살기운동 관계자 4명이 평양과 사리원시를 방문, 학

하지만 이번 평화열차가 남긴 것은 적지 않다. 한반

생용 구두와 부츠 지원에 대한 분배 모니터링을 실

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16개국의 참가자들이

시하고 돌아왔다. 한편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모니터

베를린부터 부산까지 무려 10,000km를 달려왔다.

링과 관련해, 기존의 단체 대표단 및 실무진 방북에

그들은 열차가 멈출 때마다 기도회, 심포지엄, 평화

서 최소한의 실무진만 방북을 허용하는 통일부의 규

순례, 문화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한반도의

제에 대해 일부 단체가 반발해 모니터링을 실시하지

분단과 통일의 간절함을 호소했고, 이는 기독교인뿐

않기도 했다.

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48년 창립된 WCC는 세계 교회의 일치와 공동선교

우리가 지나는 모든 땅에 평화와 화해가

를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대표 기구로, 7년에

WCC 제10차 총회 한국준비위원회와 한국기독교교

한 번 열리는 총회에서는 개신교의 시대적 과제와 신

회협의회(NCCK)가 진행한 평화열차는 10월 7일 베

학적 방향을 설정한다. 이번 부산 총회는 역대 최대

를린을 출발해 20일간 15개국의 131명이 참가한 대

규모인 8,5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생명의 하나님,

규모 행사였다. 분단 극복의 상징인 독일 베를린에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를 주제로 11월 8일

서 출발한 열차는 애초 러시아 모스크바 및 이르쿠츠

까지 진행된다. 행사 중 교회의 일치 문제를 다루는

크, 중국 베이징, 평양을 거쳐 부산에 도착하는 일정

에큐메니컬 좌담은 한반도와 중동 평화, 생명과 정의

으로 준비되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경색국면이 이

와 평화를 향한 도덕적 분별, 기후변화와 생태 정의

어지면서 끝내 평양을 경유하는 일정은 취소되었고,

등 21개 주제를 논의한다. 아울러 21세기 세계선교

참가자들은 중국 단둥에서 배를 타고 인천항에 도착,

신선언, 한반도와 중동 평화, 환경 등에 관한 내용이

다시 기차로 부산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담긴 선언서를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회의 사전

이번 평화열차가 평양을 경유해 도착할 수 있도록 하

행사인 평화열차는 이러한 총회의 정신, 시대적 사

기 위해 9월 21일 WCC의 울라프 총무와 WCC 관계

명을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의미에서 더욱 각별하다.

자들이 북한을 방문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

이처럼 남북 간 경색국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종 교계를 비롯한 민간 차원의 교류와 인도적 지원 등의 노력은 이어지고 있다. 평화열차 심포지엄에 참석한 콘라드 라이저 전 WCC총무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을 위해서는 평화열차 같은 평화운동이 끊임없이 진

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04주년을 기념하는 남북공동행사가 지난 01 안 10월 25일부터 27일까지 중국 하얼빈에서 열렸다. 02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횡단한 ‘평화열차’ 참가자들이 10월 28일 오전 인천항1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해 평화 의 염원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있다.

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민간차원의 노 력이 비록 더디더라도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에 또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본다.


길에서 만나는 평화와 통일

금강산에 울려퍼진 평화를 염원하는 남북 불교도들의 기도 소리 일감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01

02

어른 스님들께서 지나온 수행담을 들려주실 때 자랑스럽게 등장하는 수행처가 금강산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하연 선원에서 정진하던 말씀을 하실 때면 엊그제 일을 말씀하시는 듯 하다. 마치 이 세상에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녔던 아라한들이 서로 뒹굴며 선방에서 정진하 고 살았던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진다. 하지만 끝 말씀은 늘 눈 감기 전에 그곳을 ‘다시 가봐야 하는데…’이시다. 안타깝게도 그런 어르신들이 금강산에 다시 못 가시고 한 분, 두 분 우리 곁 을 떠나신다. 옛날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요즘 말로 하면 고시생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신계사였 다. 왜냐하면 그곳에 영험하기로 소문난 문필봉이 있기 때문이다. 이율곡 선생도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신계사를 참배하였다 전한다. 함께 갔던 제정스님 왈 “통일이 되면 전국의 고 3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이 신계사에 많이 올 텐데…” 하신다.

그리운 금강산, 그리고 신계사 “내가 말한 모든 법 그거 다 군더더기 오늘 일을 묻는가? 달이 일천강에 비치리”라는 열반송을 남긴 효봉스님이 속세를 떠나 엿장수로 만행을 하다가, 금강산에서 석두스님을 만난다. 겉모 습은 엿장수이지만 진리를 향한 도심(道心)이 숨어 있음을 모를 리 없는 석두스님이 넌지시 질 문을 던진다. “장안에서 여기까지 몇 걸음에 왔느냐?” 질문 떨어지기가 바쁘게 벌떡 일어나서 꿍꿍꿍 구들장이 울리는 황소걸음으로 방 안을 한 바퀴 휙 돌아옴으로 대답을 대신한 효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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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석두스님의 선문답 장소가 신계사이기도 하다.

내지만, 합동법회를 하면서 불심은 서로 같다는 생

통일의 첫 상징이 될 신계사 낙성이 벌써 6주년이 되

각을 하였다. 이 법회를 계기로 남북이 서로 마음을

어 신계사에서 남북합동법회가 열렸다. 이미 약속된

합하고 하나 되어 우리 민족이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일이기는 하였으나 남북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기 때

를 기도하였다.

문에 서로가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고, 금강산 신선놀음

다. 몇 년 동안 왕래가 없다가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도 있다. 오늘 법회

어렵게 신계사 길이 열렸다. 기쁨과 책임감으로 군

에 참석한 남북의 스님들과 신도들이 만세루에 앉았

사분계선을 넘었다. 예전하고는 다르게 북쪽에도 가

다. 신계사 주지스님과 내금강의 표훈사 주지스님도

로등이 잘 설치되어 있고 도로에 잡풀들이 깨끗하게

참석하였다. 준비한 떡과 과일들을 나누면서 남북이

정비되어 있었다. 남북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준비를

함께 펼쳐갈 불교활동에 대한 얘기들을 하였다. 108

많이 하였다는 말을 들으니 성사되지 못한 안타까움

산사순례 혜자스님은 버스 100대에 참배객 3,000명

이 느껴졌다. 차창 밖으로 한창 가을걷이를 하는 북

과 함께 금강산을 오고 싶다고 하였다. 원력이 성취

녘동포들의 모습도 보였다. 바쁘거나 서두르는 기색

되리라고 리기룡 서기장과 지홍스님이 화답하였다.

은 없었다. 발달된 기계로 혼자 가을걷이를 끝내는

어느 결에 남북은 어디 가고 없고, 그냥 부처님의 제

바쁜 하루보다는, 이웃과 함께 넉넉한 마음을 나누

자들이었다. 만세루로 드나드는 바람은 시원하였다.

며 품앗이하던 어린 시절의 시골 풍경이 생각났다.

구경 가서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는 허망한 말이 있다. 하지만 어쩌랴, 머릿속 기억력은 나이가 들수

이산가족상봉 연기의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록 떨어져가니 이런 말이 맞는 말이 되는 것을…. 우

인간사 시절 인연에 따라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리도 사진을 찍었다. 표정을 밝게 웃자고 하면서 오

형상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뀔 수가 있다. 하지만

른손을 들어서 ‘파이팅!’을 하자고 제안했다. 나중에

중생을 향한 보살의 마음이야 달라질 수가 없다. 신

사진을 보니 남쪽사람들은 다 ‘파이팅(잘 싸우자)’을

계사는 최근에 복원된 사찰이지만 천년을 이어온 수

외치고 있었고 북쪽 사람들은 그냥 서 있었다. 말없

행도량의 기운은 변함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웅전

이…. 우리만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해석은 각자

을 비롯한 각 전각, 그리고 부처님을 모실 때에도 온

가 알아서 하자.

정성을 다한 기도가 함께하였고, 단청을 비롯한 크

사회국장 성원스님이 버스 타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하

고 작은 불사들이 오랜 생을 기다렸다는 듯이 신심

면서 시를 한 수 읊었다 “금강봉래요 풍악개골이라,

을 낸 시주자들과 남과 북의 신심과 원력의 장인들

동서본무니 남북역연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

이 통일의 초석을 함께 놓듯이, 설렘과 감동으로 불

기도 하고… 뒷말은 대충 알아듣겠는데 앞말은 모르

사를 하였다고 한다. 비록 남과 북이 서로 떨어져 지

겠다. 한참 있다가 스님들이 웃는다. 앞말은 사계절 을 따라 지은 금강산의 이름들이었다.

01 남북이 함께 복원한 금강산 신계사 전경. 02 남북합동법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

일감 스님은 불교신문 주간,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남북불교 교류 활성화를 위한 활동에 관심과 힘을 쏟고 있다.


지금 북한은

북한의 ‘스포츠 정치’, 새로운 리더십 구축과 주변국 관계 개선의 두 가지 목적 있나 장용훈 연합뉴스 기자

01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면서 지금 북한은 그 어느 분야보다 체육 분야에서 강풍이 불고 있다. 젊은이들은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고 야외 물놀이장도 속속 건설되고 있으며 국제대회에 서 우승한 체육인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혼합복식에서 우승한 북한 혼합복식 조 김혁봉·김정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공항은 고위인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최태복 노동당 비서, 리영수 당 부장, 리종무 체육상, 전용남 청년동맹위원회 위원장 등 고 위 인사들이 직접 나와 이들을 맞이했다. 화환을 목에 걸고 꽃다발을 든 두 선수는 차에 올 라 룡흥 네거리, 개선문거리, 창전거리 등을 지나며 퍼레이드를 벌였고 평양 시민이 거리에 서 이들을 축하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세계 탁구계를 놀라게 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 었던 것은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 승리의 보고를 드릴 애국충정을 안고 조선식 경기 원 칙과 방법을 경기마다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정은 체제 들어 크고 작은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북한 체육인은 이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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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체육인들을 위한 전용 아파트를

김 제1위원장의 공개 활동 보도가 “체육 중시로 일관된 것이

건설해 사기진작에도 나서고 있다. ‘체육인

었다”고 강조했다.

살림집’(주택)은 평양 보통강 기슭에 건설 됐으며 가정용품과 고급가구를 일식으로

스포츠 중시는 김정은식 통치 스타일?

갖췄고 진료소와 식당, 세탁소 등의 편의

김정은 제1위원장이 체육 관련 공개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

시설도 마련됐다. 북한의 언론 매체들은 이

은 ‘스포츠광’으로 알려진 그의 개인적 관심을 드러내는 데

아파트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그치지 않고 통치의 한 방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선물’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 아파트에는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음악과 문학, 영화 등 예술을 아

올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우승자 김정, 세

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음악정치’라는 조어까지 나왔

계유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설경, 축

을 정도였다. 반면 김 제1위원장은 확실히 체육에 힘을 주

구감독 김광민, 탁구감독 김철웅 등이 입

는 모양새다.

주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한마디로 예술이 대세였다. 예술을 좋아

아울러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포츠 관련 공

하고 예술적 재능도 있었던 김 위원장은 예술을 통해 후계

개 활동도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김 제1

자의 기반을 쌓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1973년 논

위원장은 9월 15일 부인 리설주와 함께 평

문 〈영화예술론〉을 직접 발표할 정도로 영화광이었고 ‘꽃파

양에서 진행 중인 2013아시안컵 및 아시아

는 처녀’ 등 영화와 연극, 가극도 예술인들과 함께 현장에서

클럽 역도선수권대회를 관람했다. 특이 이

직접 만들었다.

날 경기에서는 한국 선수가 등장했으며 김

만수대예술단과 백두산창작단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단체도

제1위원장 부부는 박수를 치며 한국 선수를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예술인 대우와 지위는 급상승했다.

응원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다.

북한의 모든 조직에 공연팀이 구성됐고 조직 간 경연도 치

경기 관람 하루 전에는 김 제1위원장이 평

열해 예술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닥치는 대로 선발됐다.

양체육관을 시찰한 사실이 보도됐다. 최근

김 위원장과 예술작품 창작을 같이했던 최익규(전 당 선전선

개축 공사가 끝난 평양체육관은 체육경기

동부 부부장), 리창선(전 당 대외연락부장) 등 예술계 인사들

뿐 아니라 군중집회도 열리는 북한 최대의

은 김정일 체제의 요직을 속속 꿰찼다.

실내체육관이다. 김 제1위원장은 9월 초에

하지만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부친과 달리 예술보다 스포츠

는 북한을 방문한 미국 프로농구(NBA) 선

에 더 열정을 쏟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

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과 함께 농구경기를

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가 자서전에서 10대 시

관람하기도 했다.

절 김정은 제1위원장의 뛰어난 운동 실력과 유별난 농구 사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체육 열기로

랑을 전할 정도로 스포츠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한 것으

한껏 달아오른 8월’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로 알려졌다.

지난달 이 신문에 실린 김 제1위원장의 공

한때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로 알려졌던 북한의 리명훈 등

개 활동 18건 가운데 체육 관련 활동이 8건

과 농구팀을 만들어 경기를 즐겼고 아버지를 졸라 리명훈의

이나 된다고 밝혔다. <노동신문>은 지난달

미 프로농구(NBA) 진출을 추진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으로 스포츠는 동적이다. 경기를 하는 선수나 응원을 하는 관객이나 모두 흥분하고 빠져든다. 01

그래서 체육은 새로 출범한 정치권력에게는 좋은 통치방법 중의 하나이다. 국민들을 체육으로 묶어내면서 불만을 잠재울 수 있고, 스포츠의 활기를 통해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모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02 01 북 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한 남자 축구 선 수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청년절’인 지 난 8월 28일 김일성경기장에서 ‘횃불컵’ 1급 남자축구 결 승전을 관람했다. 02 지 난 7월 27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막을 내린 2013 동아시안컵축구대회 여자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북 한팀 선수들과, 한일전에서 승리를 거둬 3위를 달성한 한 국팀 선수들이 시상대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라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발족했다. 스포츠가 국정의 중 심에 우뚝 선 것이다. 김정은 체제가 내세운 이른바 ‘사회주의 문명강국’ 건설의 핵 심 목표 가운데 하나도 ‘체육강국’이다. 예술인들을 자주 만 나던 부친과 달리 김 제1위원장은 국제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들을 불러 격려하고 선물도 안겨주고 있다. 지난달 에는 북한 최고의 축구해설가인 리동규를 곁에 앉히고 축구 경기를 관람했고 <노동신문>은 이를 크게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2월과 이달 초 NBA 출신의 데니스 로드먼을 초청해 농 구경기를 관람한 데 이어 3년간 올림픽 북한 농구대표팀의 훈련을 위임한 것도 그의 농구 사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 제1위원장이 강원도 마식령에 세계적 규모의 스키장을 건 설토록 하고 완공 후 스키시범을 보이겠다고 호언장담한 것

당시 군 체육단 농구선수 출신으로 김 제1

도 스위스 유학시절 스키에 심취한 영향으로 보인다. 세계

위원장의 농구 개인교사였던 최부일은 군

적 수준의 축구선수 양성을 위한 국제축구학교 건설과 스포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거쳐 인민보안부장

츠 과학화, 체육시설 리모델링 등에 대한 국가적 투자도 아

으로 활동 중이다.

끼지 않고 있다. 전문선수뿐 아니라 단위별로 체육경기가 수시로 열리고, 산

국제적 기준 부합하는 체육 강국 발전계획

책 공원에는 롤러스케이트장, 배구장, 농구장, 배드민턴장

김정은 제1위원장의 스포츠 사랑은 그가 최

등이 들어서면서 일반 주민들이 스포츠를 생활화할 수 있

고지도자에 오른 이후 북한 전역에서 들썩

는 체육공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근에는 체육시설 인

이는 스포츠 열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프라 구축과 더불어 제도적 인프라를 갖추는 데도 애를 쓰

있다. 2012년 11월 김정은 체제의 실세인

는 모습이다.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직접 위원

한편 ‘체육강국’ 건설을 목표로 체육 발전에 힘을 쏟는 북한

장을 맡고 당·정·군의 핵심인사들을 망

이 최근 스포츠 부정행위에 엄격한 징계 조처를 내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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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눈길을 끈다. <노동신문>은 10월 15일

스포츠 통한 주변국 관계 개선 의지 보여

‘전국 도(道) 대항 체육경기’가 이달 1일부

새로운 종목의 육성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미국

터 10일까지 평양에서 성황리에 열렸다며

스포츠인 야구가 북한에서도 선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

각 도(시)별 종합 순위를 공개했다.

선중앙TV 보도에 따르면 9월 20일부터 남포 야구경기장에

올해 처음 열린 이 대회에서는 평양시와 나

서 청년선수권대회의 야구경기가 시작돼 30일까지 열렸다.

선시(특별시)를 제외한 10개의 도 및 특별

북한 매체가 과거 청년선수권대회의 야구경기를 보도하지

시에서 올라온 팀이 농구, 배구, 탁구 등 10

않은 점으로 미뤄 야구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 대회의 종목이

개 종목의 경기에서 시합을 벌였다. 신문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올해 1월 24일에는 조선중앙통신

평안남도가 종합 1등, 황해남도가 2등, 남

이 ‘기관차체육단’ 선수들의 동계훈련 소식을 전하며 야구 배

포특별시가 3등을 했고 함경북도, 황해북

트를 든 선수의 사진을 웹사이트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과

도, 강원도, 함경남도, 자강도, 양강도 순

거 북한 매체가 야구 종목을 소개한 사례가 흔치 않아 올해

으로 순위가 결정됐다고 전한 뒤 “여자 배

야구 관련 소식과 사진이 잇달아 나온 것은 매우 이례적인

구경기에서 부정행위를 한 평안북도는 종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북한 야구팀의 전력도 매우 약

합순위 10등으로 밀려났다”고 밝혔다. 경

해 국제무대에서 남북한 대결은 항상 북한의 참패로 끝났다.

기 한 종목에서의 부정행위 때문에 평안북

이런 가운데 북한이 최근 야구를 활성화할 조짐을 보이는 것

도 팀 전체가 징계를 받은 것이다.

은 ‘체육강국 건설’이라는 목표에 맞춰 인기 종목을 다양화

북한은 앞서 지난 9월 10일에도 체육성 체

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야구가 남한뿐 아니라 미국과 일

육경기규율심의위원회 회의를 열고 김정

본에서 인기 있는 종목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야구

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관람한 가운데 김일

를 육성해 이들과의 관계 개선에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

성경기장에서 지난 8월 28일 열린 ‘햇불컵’

측도 나온다.

1급 남자축구 결승경기에서 선봉팀이 부정

일반적으로 스포츠는 동적이다. 경기를 하는 선수나 응원을

선수를 영입했다며 이 팀에 대한 징계를 결

하는 관객이나 모두 흥분하고 빠져든다. 그래서 체육은 새

정했다. 실제로 선봉팀은 10개의 남자축구

로 출범한 정치권력에게는 좋은 통치방법 중 하나이다. 국

팀과 12개의 여자축구팀이 참가한 가운데

민들을 체육으로 묶어내면서 불만을 잠재울 수 있고, 스포

이달 1일부터 29일까지 열린 공화국선수

츠의 활기를 통해 구성원들의 에너지를 모아낼 수 있기 때

권대회 축구 1급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문이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 체제의 체육 사랑은 당분간 이

북한이 이처럼 체육경기에서의 부정행위

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관측이다. 앞으로 각종

를 엄격히 처벌하고 또 부정행위에 대한 징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들이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

계 내용을 매체를 통해 공개하는 것은 체

지 주목된다.

육 발전과 더불어 체육경기의 공정성과 올 바른 스포츠 정신을 확립하려는 의도로 보 인다.

장용훈은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내외통신과 연합뉴스에서 북 한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남대 북한대학원에서 북한학 박사를 취득 했다.


지금 북한은

모란봉악단, 남북문화교류의 효과가 보인다 오기현 SBS PD

01

‘오늘 몽땅 접고 집에 들어가서 테레비 보자!’ 평양의 장마당 상인들은 모란봉악단 공연의 TV방영소식이 전해지자 서둘러 귀가했다고 한 다. 공연장 앞자리는 젊은이들이 웃돈을 주고라도 서로 앉으려고 다툰다. 모란봉악단의 악 기조 조장(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선우 향희’는 북한의 아이돌이다. 그녀의 의상, 헤어스 타일, 장신구 등 모든 것이 북한 젊은이들의 관심사다. 평양과 외국을 오가는 JS항공기의 객실, 양각도호텔의 로비 등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여지없이 모란봉악단의 ‘2013년 신년 경축공연 실황록화’ 영상이 반복해서 상영된다. 어깨가 드러난 튜브톱 원피스와 쇼트커트 머리 등 도발적 외모, 바다르체브스카의 ‘소녀의 기도’, 이브 몽탕의 ‘고엽’ 등 서구 대중음악 연주, 거대한 LED 백스크린의 몽환적 영상 등 이전의 시각으로는 수용될 수 없는 내용이 공공장소에서 방영되는 것이다. 7명의 가수와 11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모란봉악단은 2012년 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 원장의 지시로 조직되었다. 2012년 7월 6일 김정은 제1위원장 참석하에 시범공연을 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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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올해 10월 10일 ‘노동당창건기념공연’

미자의 동백아가씨, 2003년 KBS 평양노래자랑)와 처음부터

에 이르기까지 10여 차례 공연을 열었다.

우리 문화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경우(1999

국내외 전문가들은 약 20년 만에 지도자가

년 SBS 평화친선음악회, 2003년 윤도현의 오! 통일코리아,

바뀌면서 체제결속과 새로운 이미지 창출

2003년 SBS 류경정주영체육관개관기념 통일음악회, 2005

을 위해 음악과 시각적 효과가 극대화된 ‘

년 SBS 조용필 평양공연)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공감요법’

걸 그룹’을 등장시켰다고 분석한다. 국내보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남한문화를 비롯한 외래문화에

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총 10회

익숙하지 않은 북한주민들과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

의 모란봉악단 공연 중 6회나 공연을 관람

해 북한가요, 민요, 계몽기 가요 등의 레퍼토리를 선정하는

했다. 최고지도자의 일거수일투족에 정치

방식이다. 그리고 후자는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남한의 실

적 의미가 부여되는 북한사회에서 최고지

제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북한주민들의 내재적 욕구에 주목

도자가 특정악단의 공연을 절반 이상 관람

해 남한 대중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는 방식이다.

했다는 것은 곧 그 악단의 공연내용이 단순 한 문화정책의 경계를 넘어 새 지도자가 의

공감과 충격, 무엇이 효과적인가?

도하는 포괄적인 정책변화의 방향을 상징

남한 방송사의 방북공연 영상을 분석해볼 때, 북한관객들의

한다고 볼 수 있다.

선호 레퍼토리는 민요, 계몽기가요, 가곡, 운동가요이며 일

필자는 공연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보다는

단 북한주민들은 비교적 ‘동질적 문화’에 대해 용이한 수용태

공연형식에 주목한다. 모란봉악단의 공연

도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는 제작진의 기획의

중 가장 인상적인 공연은 2013년 1월 1일

도, 즉 ‘대중음악을 통한 남북한의 정서적 교감(2002년 MBC

열린 ‘신년경축음악회’다. 류경정주영체육

공연)’ 같은 ‘공감요법’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증명한

관에서 열린 이날 공연은 1999년부터 진행

다. 하지만 문화를 역동적인 삶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되어온 남한 방송사의 방북대중공연 영향

구성되고 재해석되는 동태적 현상이라고 규정한다면, 다양

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것으로, 남북대중문

한 하부문화(subculture)가 존재하는 현대사회에서 분단 60

화교류의 실증적 효과로 볼 수 있다.

년이 지난 남북이 여전히 동질적인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시기별, 방송사별로 남한 방송사의 방북공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관객들이 동질적인 문화에 대해

연 내용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나타내는 공감현상은 ‘익숙한 문화적 표현방식에 대한 관심

공연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데, 북한주

과 호감의 표출’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방북대중공연의 궁극

민의 정서를 고려해 가능한 한 북한주민에

적인 목표는 동질적인 문화에 대해 쉽게 마음의 문을 연 북

게 친숙한 레퍼토리로 접근하는 경우(1999

한관객들에게 어떻게 남한문화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년 MBC 민족통일음악회, 2002년 MBC 이

더 나아가 이질적인 문화를 인정하는 자세를 갖도록 하느냐 에 있다. 그런 면에서 모란봉악단의 공연방식은 1999년 말부 터 진행되어온 남한방송사의 방북대중공연이 북한주민들에 게 수용되고 있으며, 공감요법뿐 아니라 충격요법이 현재 북

01 북 한의 아이돌, 모란봉악단 악기조 조장 선우 향희.

한의 공연기획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위원회는 평양의 대형극장을 강력 추천했다. 경기가 아 닌 공연을 체육관에서 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이 유였다. 2005년 조용필 평양공연 당시에도 북한 측은 같은 02

주장을 반복했다. 2004년 7월부터 1년 가까이 끌어온 조용 필 공연은 마지막에 공연장소 문제로 무산위기까지 갔던 적 이 있으며, 북한 최고위층의 결단으로 체육관에서 가까스로 개최되었다. 체육관공연은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트러스트(기둥)와 바 닥 등 무대세트를 세워야 하고, 조명, 오디오시설, 카메라 설 치대 등을 새로 준비해야 한다. 극장식 공연에 비해 비용이 최대 10여 배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

03 02 류 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2013년 신년공연에서 무대 앞에서 춤을 추는 평양관객. 03 류 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모란봉악단의 2013년 신년 공연.

육관공연을 추진하는 이유는 공연의 규모를 대형화할 수 있 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무대장치를 연출자 의도대로 변 형할 수 있어서 다양하고 입체적인 공연이 가능하고, 체육 관 규모에 맞게 관객 수가 확대된다. 체육관공연은 무대와 관객의 일체화를 꾀하는 데 유용하며 공연의 상업성을 극대 화할 수 있다.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모란봉악단의 2013년 신년경축 음악회는 3단 무대 위에 트러스트를 세우고 배경에는 대형 LED화면을 여러 개 배치하였다. 2005년 조용필 공연 당시 에는 금지했던 특수효과용 불꽃과 화약을 사용했으며 그 당 시 처음 선보인 ‘꽃가루대포’도 눈에 띈다. 일반적인 대형공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개최된 ‘2013년 신

연에서와 같이 대략 8대 이상의 카메라를 사용한 것으로 보

년경축음악회’는 이전의 공연과 비교해

이는데, 그중 한 대는 이른바 ‘지미 집 카메라’로 공연의 입

볼 때 획기적인 변화가 발견된다. 평양에

체감과 생동감을 높이는 데 큰 효과가 있는 장비이다. ‘지미

는 봉화예술극장, 동평양대극장, 만수대예

집 카메라’는 남한 방송사들의 방북제작과정에서 북한에 소

술극장 등 1,000~2,000석 규모의 대형극

개되었으며, 2003년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기념공연’ 직후

장이 여러 개 있다. 대형공연을 상시로 개

북한 측의 요청으로 1대가 조선중앙TV에 전달되었다. 선명

최하는 공연장은 때로는 정치적 선전물로

도에서 좀 떨어지지만 공연무대 뒤편에 세운 4m×10m짜리

도 활용되며, 남한방송사의 방북대중공연

대형 모니터도 북한의 공연에서는 새로 등장한 것이다. 무대

은 주로 이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2003년

뒤의 모니터는 2005년 조용필 평양공연 당시 처음 소개되어

SBS가 ‘류경정주영체육관개관기념공연’을

평양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적이 있다. 빠른 영상커트,

준비할 당시,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

지미집의 과감한 활용, 악기에 밀착해 촬영하는 타이트 쇼트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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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ht shot), 틈을 주지 않는 빠른 곡목 전

서 선보인 윤도현의 록 음악에 대한 예상외의 호응은 단순한

개 등은 남한 PD들의 연출방식이다. 한편

해프닝이 아니라 북한관객의 잠재적 욕구가 표출된 것으로

속도가 빠른 영상편집은 리허설 당시 미리

볼 수 있다. 침묵과 무표정 가운데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

한 번 촬영하여 본공연의 영상에 삽입한 것

가 내재해 있었으며, 긴장된 시선 속에 변화의 조짐을 감추

으로 보인다.

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의 이질적 문화에 대한 적응과 수용 태도의 변화는 장기적으로는 충격요법이 큰 효력을 발휘하

창조적 자세로

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통일 문화 공간 열어가자

이처럼 모란봉악단의 등장은 남북대중문화의 교류공간이 확

모란봉악단의 공연 스타일을 남한 방송사

대되었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교류방식에서 우리에게 더 적

의 방북대중공연의 영향으로 바로 연결하

극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 김정은 제1위

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원장의 친형인 김정철 일행이 싱가포르에서 열린 에릭 클랩

2003년 북한지역에서 열린 최초의 체육관

튼의 공연에 참석했을 때 우리 언론들은 북한의 경제현실에

공연 장소에서 10년 뒤 북한의 체육관공연

서 일탈한 부도덕한 행동이라고 비난일색의 보도를 했다. 북

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에도 우리와 정서적 공감을 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존재

2000년 태진아가 평양봉화예술극장에서

한다는 긍정적 면은 간과한 것이다. 남한대중문화 콘텐츠의

부른 ‘사모곡’이 그 후 북한에서 허용된 점,

우수한 경쟁력은 한류를 통해 입증되었다.

2003년 평양노래자랑에서 송대관이 부른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교류가 진행될 경우 남한의 풍부한 콘

‘네 박자 뽕짝’이 북한의 해외식당공연장의

텐츠가 북한대중문화의 변화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

레퍼토리로 선정된 점, 지미집 카메라의

서 문화교류에서는 남한이 이슈를 선점하고 북한에 대해 다

촬영방식이 남한 방송사의 도움으로 도입

양한 선택안을 제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남북문화교류의

된 점 등은 북한공연문화가 남한 방송사의

목적이 상대방의 문화를 인정한 상태에서 상호발전을 꾀하

영향을 받고 있음을 증명한다.

는 공존적 통합이라면, 모란봉악단의 등장은 남북의 공존적

따라서 모란봉악단을 통해 남한대중문화

통합을 원하는 북한당국이 남한에 보내는 의미 있는 메시지

의 영향을 발견하는 것은 새삼스럽거나 새

라고 판단된다.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창조적 발상으로 남

로운 현상은 아니다. 6·15선언을 전후한

북문화교류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시점부터 다양하게 전개되어온 남한대중 문화에 대한 공식적·비공식적 접촉이 북 한관객들의 문화수용능력의 확대를 가져 왔으며, 표면적으로는 생소했던 ‘류경정주 영체육관 개관기념공연’이나 ‘조용필 평양 공연’ 등에서 선보인 남한의 이질적인 레퍼 토리와 공연내용이 북한 공연방식에 큰 변 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오! 통일코리아’에

오기현은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통일학 석사)하고, SBS 제작본부 시사다큐팀 PD로 일하고 있다. 1999년 남한방송사로서는 남 북 당국의 승인을 받고 최초로 방북 취재를 한 이래 약 20여 회 방북하였으 며 지난 8월 14일 3박 4일간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은 등장 이후 새롭게 변화 하는 북한의 모습을 확인했다. <SBS평양뉴스 2000>, <2005년 조용필 평양공 연>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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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민족화해 네트워크

민화협 NEWS

민화협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민화협 제3차 의장단회의 개최,

홍사덕 대표상임의장 선출

민화협은 10월 2일(수) 오전 11시 제8기 3차 의장단회의(이사회)를 개최하여, 홍사덕 전 국 회의원을 민화협의 제8기 대표상임의장으로 선출했다. 김덕룡 의장의 후임으로 직을 맡게 된 홍사덕 신임 의장은 6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새누리 당 원내총무, 정무장관, 국회부의장을 지냈으 며, 1988년에는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 임’을 설립하고 최근까지 상임대표를 역임하 는 등 통일 분야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꾸준 히 활동해왔다.

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로써 민화협 상임의장단은 홍사덕 대표상임

이후 홍사덕 의장은 ‘2013년 통일문화축제’와 ‘2013 민화협 해외협의회 전체회

의장을 포함하여, 김정숙(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의’ 등 민화협 사업을 추진하면서, 민화협 활동에 대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회장), 권미혁(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문

무엇보다 북한 동포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인도적 지원사업을 적극적

진국(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기문(중

으로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기업중앙회 회장), 설훈(국회의원, 민주당),

또한 중국의 해협양안관계협회와 대만의 해협교류기금회가 중국과 대만 간

황영철(국회의원, 새누리당) 등 정당과 시민사

경제·사회·문화 교류에 눈부신 성과를 거둔 점을 남북 민화협이 유의해야

회를 대표하는 7명으로 구성되었다. 전임 김덕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민화협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나가기 위해 노력하겠

룡 대표상임의장은 민화협 상임고문으로 추대

다고 의지를 밝혔다.

되었으며, 홍사덕 의장은 김덕룡 전 의장을 ‘상

이와 함께 현재 여의도에 위치한 민화협 사무실을 접근성이 편리한 광화문 인

담역’으로 모시고 대소사를 상의해 나갈 것이

근으로 옮겨, 민화협 회원단체와 관계자들이 좀더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편

라며, 앞으로도 김덕룡 의장이 적극적인 역할

의를 제공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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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위원회 워크숍 개최, ‘청년이 간다, 통일로! 미래로!’ 민화협 청년위원회(위원장 전준호, 하준태)는 9월 6일(금)에 난지캠핑장에서 워크 숍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민화협 청년위원회 소속 단체 실무자 사이의 교류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다. 이날 워크숍은 자기소개에 이어 김창수 민화협 정책위원의 강연과 체험활동, 교류회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 민화협 청년위 원회 소속단체들 사이의 소통과 연대, 협력의 공간을 더욱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

통일교육네트워크, 새로운 틀의 통일교육을 모색하다 민화협 통일교육위원회(위원장 박현선, 이영동)는 8월 30일(금)과 10월 23일(수) 에 통일교육네트워크 3차, 4차 간담회를 개최했다. 통일교육을 시행하는 단체와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새로운 틀의 통일교육 방안을 모색하는 통일교육네트 워크는 간담회를 통해 재외동포 대상 통일교육 강화와 맞춤형 통일교육 프로그 램개발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하고, 통일과 안보, 평화의 관계 및 교육방법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전개했다.

정책위원회 전문가 간담회, ‘한반도 신뢰의 길을 찾는다’ 수, 박인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가 발표를 맡았으며, 정영철 서강대 교수,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이 지정토론으로 참여했다. 이어 9월 11일에는 광화문 통일문제협의회 회의실에서 ‘우리 사회 신뢰 형성의 길’을 주제로 4차 간담회를 진행했다. 통일연구원 조민 선임연구위원이 남 북문제를 둘러싼 사회 갈등의 구조와 극복 방향을,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정책실 장이 통일 및 남북관계에 대한 민관협력과 신뢰 형성 방안을,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남북관계 쟁점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와 신뢰 형성 방안을 주 제로 발표를 맡았다. 그리고 고유환 동국대 교수, 강동완 동서대 교수, 김종수 민 주당 정책위원회 통일전문위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민화협 정책위원회는 9월 9일(월), 11일(수), 10

10월 16일에는 남북교류협력추진기반 확대를 위한 간담회(5차 간담회)가 광화문

월 16일(수) 등 세 차례에 걸쳐 3~5차 전문가

통일문제협의회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남북 신뢰 형성 방안과 교류협력 추진 전

간담회를 개최했다. 9월 9일 민화협 회의실에

략’을 주제로 진행된 간담회는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조봉현

서 개최된 3차 간담회는 ‘신뢰의 이론과 국제

기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석향 이화여대 교수가 각각 발표했다. 그리고 양무

적 신뢰형성’을 주제로 안승국 덕성여대 교수,

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조영기 고려대학교 교수, 정은미 서울대학교 통일평

서보혁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

화연구원 연구교수가 토론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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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13남남대화 제9차·10차 화해공영포럼 개최

제9차 화해공영포럼

일시 2013년 11월 7일(목) 오후 1시 30분 ~6시 장소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민화협 정책위원회는 ‘한반도 신뢰’에 대한

주제 남북 간 신뢰형성과 국제협력 추진 방향

이론적, 실천적 고찰을 통해 바람직한 한반 도 신뢰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노력해왔다.

프로그램

이러한 연구의 일환으로 제9차·10차 화해

<개회식> 13:40~14:00

공영포럼을 개최하여, 한반도 신뢰의 내용

국민의례

이 되는 ‘남북 간 신뢰’, ‘국제적 신뢰’, ‘우리

인사말 홍사덕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사회 신뢰’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

<1부> 남북 간 신뢰형성 방안 14:00~15:50

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사회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발표

남북 정치군사적 신뢰형성 |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남북 경제협력과 신뢰형성 |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회문화 분야를 통한 남북 간 신뢰형성 |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토론

엄상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권영경 통일교육원 교수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

| 문의 02-761-1213

<휴식> 15:50~16:00 <2부> 국제적 신뢰형성 방안 16:00~17:30 사회

남궁영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표

유럽안보협력의 경험과 동북아 신뢰형성 방안 | 서보혁 서울대학교 HK연구교수

신뢰외교의 실천과 국제협력 방안 | 박인휘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토론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

마상윤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제10차 화해공영포럼

일시 2013년 11월 21일(목) 오후 2시 장소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주제 남남갈등 해소와 우리 사회 신뢰형성 방안

프로그램 사회

최완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발표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와 극복 방향 | 조 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통일문제에 대한 민관협력과 신뢰형성 방안 | 정낙근 여의도연구원 정책실장

통일문제에 대한 내적 신뢰프로세스 추진 방안 |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토론

미정


제11회

‘민족화해상’추천 바랍니다 ‘제11회 민족화해상’ 후보자 추천을 받습니다. 민족화해상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를 찾아 격려하고, 활동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만든 상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추천 대상 정치, 경제, 학술, 문화, 예술, 교육, 사회운동 등 각 분야에서 헌신적인 활동으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개인과 단체

• 시상부문 및 상금 개인부문(500만 원), 단체부문(500만 원) • 제출서류 추천서(소정양식), 증빙자료(사진자료·보도자료·활동근거 등)

※ 접수된 서류는 반환하지 않습니다.

• 접수 방법 민화협 홈페이지(www.kcrc.or.kr)에서 추천서 양식을 다운받아 작성한 후

등기우편 또는 이메일로 접수

• 접수마감 2013년 11월 15일(금) 오후 6시까지 • 시상식

접수 및 문의처

12월 예정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3-4 동우국제빌딩 4층 민화협 ‘민족화해상심사위원회’ 전화 02-761-1213 e-mail kcrc121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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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13 민화협 해외협의회 전체회의

“해외동포와 함께 여는 행복한 통일미래”

700만 재외동포와 함께 통일기반 조성에 앞장설 것

2013년 민화협 해외협의회 전체회의가 10월 24일부터 27일까지 3박 4일의 일정 으로 개최됐다. 이번 회의는 “해외동포와 함께하는 행복한 통일미래”를 주제로 서울 반포동 소재 ‘팔레스 호텔’에서 진행됐으며, 미국, 중국, 대양주, 일본 등 민 화협 10개 해외협의회에서 60여 명의 해외 대표단들이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해외동포사회에 남북관계, 통일문제 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 하여 해외동포사회의 평화통일기반을 확대하고 해외동포사회의 단합에 기여하 01

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뤄졌다. 또한 해외에서 민화협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동 포들을 격려하는 한편, 분단 현장 방문, 간담회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남북관 계와 통일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하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행사의 세부 일정은 민화협 해외협의회의 향후 활동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회 의와 특강, 분단 현장 방문 등으로 진행됐다. 행사 첫날인 10월 24일 진행된 개 막식 및 환영만찬에서는 홍사덕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개회사를 했으며, 그동 안 민화협 해외협의회 설립에 주요한 역할을 한 김덕룡 전 대표상임의장이 환영 사를 통해 그간의 활동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해외협의회의 더욱 적극적인 역 할을 주문했다.

01 도 라산 남북 출입사무소에서 개성공단 현황 브리핑을 받은 후 기념 촬영. 02 1 0월 24일 개막식에서 국민 의례를 하고 있 는 참석자들.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해 둘째 날인 25일에는 류길재 통일부장관의 강연과 더불어, 각 당의 재외동포정 책에 대한 간담회,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의 특강, 그리고 해외협의회 전 체회의가 진행되었다. 먼저 강연에 나선 류길재 통일부장관은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비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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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최근의 남북관계 현황을 설명하고, 남북관계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류 장관은 대북 정책을 비롯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나감에 있어 정부가 독단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추진하던 시대 는 이미 지났다며, 민과 관이 함께 제 역할에 충실하며 서로 협조해나가는 가운데 통일의 꿈을 앞 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민화협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는 동시 에, 700만 해외동포의 적극적 참여와 관심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할 것 이라 당부하기도 하였다. 각 정당의 재외동포정책과 관련해서는 홍문종(새누리당 사무총장) 국회의원과 김성곤(민주당 세계 한인민주회의 수석부의장) 국회의원이 참석하여, 각 당이 추진하고자 하는 재외동포 정책을 설명하 고, 이에 대한 해외협의회의 의견을 청취했다. 참석한 재외동포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각 국가의 상황을 설명하며,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우리 정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개선해주기를 기대했다. 이어 오후에 열린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특강에서는 현재 해외동포사회의 현황과 역할, 그 리고 우리 정부의 재외동포정책 등 재외동포 현황 및 정책 전반을 설명하여, 해외동포 문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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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민화협 해외협의회 전체회의에서는 해외동포사회의 통일운동과 민화 협 해외협의회 활동 방향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했다. 이날 회의는 홍사 덕 대표상임의장이 토크쇼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홍 대표상임의장은 해외협의 회 대표단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남북문제를 비롯하여 해외동포의 역할, 민화협 의 활동 방향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홍 대표상임의 장은 “최근 통일비용만 생각해 통일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 고 있다”며 “이는 앞뒤가 바뀐 잘못된 생각이다. 통일은 너무나 많은 기회와 성 공의 조건들을 젊은 세대들에게 안겨줄 것이다. 취업은 물론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가는 데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해외협의회 대표 단들이 각자 살고 있는 나라에서 한반도 조국의 통일을 위해 애써달라고 당부 하기도 하였다.

03 1 0월 25일 오전에 개최된 류길재 통일부장 관 초청 강연. 류 장관은 정부의 한반도 신 뢰프로세스를 설명하고 남북의 화해와 한반 도 평화를 위해 재외동포들이 함께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 04 조규형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의 초청강연. 조 이사장은 700만 재외동포들이 대한민국 의 자부심이자 커다란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05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과 민주당 김성곤 의원 은 각 당의 재외동포 정책 추진 상황을 소개 하며, 재외동포들이 해외에서도 ‘코리안’의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하 겠다고 강조했다. 06 민화협 해외협의회 대표단이 김덕룡 전 대표 상임의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분단 현장에서 평화와 통일을 그리다 행사 3일째인 26일에는 분단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조국 분단의 현실을 체험하 고, 평화와 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시간을 마련했다. 남북관계에 대한 이해와 통 일 준비 노력의 중요성을 느끼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해외협의회 대표단 일 행은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도라전망대, 북한군·중국군 묘역(적군묘지) 등 분 단의 아픔이 서려 있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조국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특 히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 방문 시에는 홍양호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장이 직접 참석하여 개성공단 현황을 브리핑하면서 해외동포들의 이해를 높여주기도 하였 다. 홍양호 위원장은 “개성공단은 남과 북이 미리 통일을 연습하고 있는 작은 통 일의 장”이라며 “남과 북의 당국이 합의한 대로 개성공단이 국제화의 길로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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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더 많은 가치와 성과를 이루어낼 것”이라 강조했다. 아울러 해외동포협의회 대표단 일행에게 각 자 살고 있는 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 개성공단을 홍보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하였다. 이후 저녁에 는 전체 일정을 마무리하는 폐막식 행사가 열렸다. 해외협의회 대표단들은 이번 일정 동안 남북문제를 비롯하여 민화협 활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후 본부를 비롯하여 협의회 간 더 적극적인 협력 사업을 추진해나갈 것을 다짐했다. 또한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김덕룡 전 대표상임의장에게 해외협의회 이름으로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MINI-INTERVIEW “솔직히 민화협이란 단체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얼마나 통일 문제 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는지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남북이 모두 행복할 수 있 는 통일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데 민화협과 함께 저도 힘을 모으겠습니다!” 현재 중국 심천대학교 한국유학생회를 이끌고 있는 남기택 회장. 이번 민화협 해외협의회 전체 회의에 참여한 최연소 회원 중 하나다. 경제학부 국제무역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이번 일정을 통해 세계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여러 선배, 어르신들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아직은 제가 통일을 위해,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제가 한반도의 엄연한 구성원이며, 오랜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 땅 의 분단을 끝내야 하는 사명과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학생의 신분이지만, 제가 할

남기택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믿어요. 앞으로 민화협의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며 제가 참여할

중국 심천대학교 한국유학생회 회장(25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적극 나서겠습니다. 민화협에 바라는 점이요? 각 지역의 대학생 대표를 선발해 학교 간 커뮤니티를 만들어 민화협 활동이나 회의에 참석해 통일의 젊은 담론들을 만 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남북의 대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 하게 통일에 관하여 논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화협이라면 가능하겠죠?”


포토 스케치

01

민화협 2013 통일문화축제

정전 60년, 화해로! 평화로! 통일로! 분단 현장을 달리고 걸으며 통일을 꿈꾸다 글

편집부

|

사진

조천현·장경운

02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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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임진각과 민통선 일대에서는 한바탕 유쾌 한 ‘소동’이 벌어졌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민화협 주최 ‘2013 통일문화축제’가 열린 것이다. 동아일 보와 공동주최로 진행된 이번 ‘2013 통일문화축제’에서는 임진각을 출발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까지 약 20km의 민통선 지역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DMZ 자전거 투어’ 와 임진강변의 철책을 따라 2km, 7km의 구간을 걷는 ‘평 화로 한마음! 통일로 한걸음! 걷기대회’가 진행되었다. 아 울러 11일부터 13일까지는 경기 파주시 경기영어마을 오토 캠핑장에서 ‘통일오토캠핑’ 행사가 이어졌다. 1,2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하여 진행된 ‘2013 통일문화축 제’는 이밖에도 음악회, 사진전, 통일페인팅, 평화의 돌쌓 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통일과 평화에 대한 소망과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통일을 묵상하고 기도하자” 임진각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홍사덕 대표상임의장은 참 가한 시민들에게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통일로 가는 길을 그리고, 민통선 지역을 걸으며 통일에 대한 이야기 를 나누고, 음악을 감상하며 통일을 묵상하고 기도해달 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설훈 민화협 상임의장(민주당 국 회의원)은 “우리 시대의 마지막 과제인 통일을 생각하며 걷고 자전거를 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개막식 직후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자전거 투어와 걷기대 01

회가 진행되었다. 임진각 통문에서 500여 명의 라이더가 먼저 출발하고, 각각 철책을 따라 2km, 7km 구간을 걷는 800여 명의 참가자가 뒤를 이었다. 이번 자전거 투어는 그 의미가 사뭇 달랐다. 개성공단으로 통하는 신1번국도(경 의선 도로)를 따라 남북출입사무소까지 자전거로 이동하 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즉 임진각 통문-통 일대교 남단-판문점과 남북출입사무소로 갈라지는 군내

01 2013 통일문화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자전거 투어. 500 여 명의 라이더들이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출발을 기 다리고 있다.

삼거리-남북출입사무소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자전거로 이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02

참가자들은 북쪽을 향해 자전거를 달리는 색다른 체험을 하면서도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특히 어린 참가자들은 “같은 민 족인데 왜 더 북쪽으로 가면 안 돼요?”라고 어른들에게 물 어 주위를 머쓱하게 하기도 했다. 03

한편 걷기대회에 참가한 시민들과 가족들은 황금벌판으 로 무르익어가고 있는 가을 논밭과 동시에 날카로운 철조 망으로 둘러쳐진 임진강을 바라보며 분단의 비극과 함께 민족화해와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 졌다. 걷기대회 참가자들은 각각 걷는 구간에 따라 장산전 망대와 임진각에서 ‘통일비빔밥’으로 식사를 한 뒤, 임진각 에서 진행되는 ‘통일 페이스페인팅’ ‘통일 돌탑 쌓기’ ‘사진 전’ ‘통일 윷놀이’ 등 부대행사를 즐겼다. 그리고 이어 임진 04

각 광장에서 ‘통일음악회’가 이어졌다. 음악회에는 통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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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밴드, 퓨전국악밴드 브이스타, 개그콘서트 ‘오성과 한음’, 안치환 등이 출연해 멋진 무대를 연출했다. 경기영어마을에서 2박 3일간 열린 ‘통일오토캠핑’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오토캠핑은 올해 처음 신설된 프로그램으로 캠 핑장에서는 임진강을 건너 북한 땅인 황해남도 개풍군이 건 06

너다 보였다. 참가 가족들은 텐트를 둘러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가을 정취를 즐겼다. 이곳에 서도 ‘가을음악회’가 진행되어 ‘여행스케치’ 등이 출연해 깊 은 가을밤을 더욱 따뜻하게 해주었다. 이번 ‘2013 통일문화축제’는 자전거 투어 및 걷기대회를 통해 분단과 화해, 통일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음악회 및 오토캠핑, 사진전 등의 행사를 통해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즐거움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에 서 행사 광고를 보고 참여했다는 김기정(68) 씨는 “진즉에 이 렇게 좋은 행사가 있는 줄 알았으면 매년 참여했을 것”이라 며, “내년 행사에도 반드시 참가하겠다. 그리고 주위에도 많 이 알려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02 가족 단위로 참가한 많은 시민들이 민통선 걷기 대회를 즐기고 있다. 03 철조망을 바라보며 달리고 걷는 체험을 통해 분단의 현 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04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윷놀이’. 05 2013 통일문화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음악회. 개그콘서 트 오성과 한음, 안치환 등이 출연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06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던 통일 페이스페인팅.

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정전 60년을 생각하고 화해와 평화, 통일을 염원한 ‘2013 통 일문화축제.’ 축제는 끝났지만, 남북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염원했던 참가자들의 마음은 오래오래 남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통일에 한 걸음 다가간 것은 아닐까.


2030통일론

You are judging me! 백경서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2학년

나는 미국 드라마 광팬이다. 하이틴, 로맨스, 수사, 사이파이부터 스릴러까지, 시 트콤과 드라마 모두 다 본다. 중학교 3학년 때 ‘프리즌 브레이크’를 시작으로 미국 드라마를 시청한 지 거의 7년이 되어간다. 이때까지 본 미드를 세어보면 대충 100 여 개 된다. 그런데 이 100여 개 되는 미드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You are judging me”다. “너 지금 네 마음대로 날 판단하고 있구나” 하고 비꼬 는 것이다. 2013년 하반기에 접어들며 고려대학교 북한인권학회 동아리인 리베르타스에 가입 하였다. 리베르타스에 가입한 가장 큰 이유는 북한학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나는 북한학과 소속이기 때문에 본래 세종캠퍼스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이번 학기 부터 세종캠퍼스가 아닌 안암캠퍼스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고 북한 전공 수업을 듣 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북한인권학회 동아리가 있다는 홍보를 보고 북한학에 대한 어떠한 연결고리를 간직하고 싶어서 가입하게 되었다. 북한인권학회는 남한 학생과 북한 학생들이 함께 운영하는 동아리이다. 나는 북한 학과였지만 탈북자가 와서 하는 강연이나 북한 관련 봉사활동 외에는 북한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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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만나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북

또 기억에 남은 것은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을 북한

한 학생들과 직접 함께 동아리를 꾸려간다는 사실

에 두고 혼자 왔다고 하였다. 계급사회인 북한은 개

이 날 강하게 잡아끌었다. 전공수업을 통하여 북한

인자료 명세와 문건들에 출신성분, 사회성분과 함

의 경제가 어떻고 북한 인민들은 어떠한 문화를 가

께 가정환경 평가란이 있다. 가정환경 평가란의 존

지고 있고 어떠한 인사정책에 따라 직업을 갖는지를

재는 북한 인민 개인의 활동이 연좌제적 성격을 갖

배웠는데 그 모든 것의 복합체인 북한 사람을 만나

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그의 탈북은 가족

게 된 것이다.

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생각이 자꾸 맴

북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앞서 나는 북한 사람들에 대

돌아 아빠에게 삼국지를 인용하며 적벽대전에서 채

하여 일정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과도단순화(over

중과 채화 이야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였

- simplification)로 북한 사람들을 어떠한 틀 안에

다. 그러자 아빠는 “부처님도 가족을 두고 혼자 가셨

가두어놓았다. 가령 북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는걸?” 하고 말씀하셨다. 순간 나는 말문이 막혔다.

교류에서 소극적이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탈북자

부처님과 탈북자의 상황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내

들에 대하여 ‘왜’라는 질문을 하였다. 또한 그들을 내

가 그를 탈북자란 이유로 ‘judging’하고 있었다는

가치기준대로 판단했다.

것을 깨달았다. 북한과 통일에 대하여 논할 때 북한 인민과 북한 정권을 분리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왔

첫 모임 후 돌아가는 길

다. 그러나 리베르타스 첫 모임 후 북한 친구와의 대

리베르타스 첫 모임 후 회식이 있었다. 나는 통금이

화로 내가 이제껏 북한 인민과 대한민국 국민을 분

있어 회식을 하지 못하고 가게 되었다. 나 말고 한

리해서 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명, 다른 회원도 먼저 가게 되어 함께 지하철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처음에 그가 남한 사람이라는

민족화해의 첫 손길은 어렵지 않다!

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스스럼없이 나에게 학번

내가 지금 직접 만날 수 있는 북한 인민은 북한에 거

과 이름을 묻고 이것저것 서로 이야기하였다. 오히

주하고 있는 인민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이탈주민들이

려 내가 낯을 가리는 편이라 지하철역 입구에 도착

다. 나는 통일의 필요성에 동감하면서도 그것을 나

해서야 그에 대하여 물어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혼자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해왔다. 북한 정부

북한에서 왔다고 소개하였고 순간 밤 시간에 다가가

와의 통일은 확실히 나 혼자 하기에는 버겁다. 북한

며 서서히 수면상태로 접어들던 뇌가 확 깼다. 그는

에 거주하는 북한 인민에게 손을 내밀기에는 지리적

또한 모임에서 누가 북한에서 왔는지를 이야기했는

제약이 있다. 그러나 우리 주변의 이탈주민은 다르

데 들으면서 물음표와 느낌표가 사방으로 돌아다녔

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이탈주민을 함부로 판단하

다. 전혀 북한 사람들인지 몰랐다. 내가 정한 틀대로

지 않고 우리의 잣대만으로 보지 않을 충분한 능력

이지 않았다. 나보다 옷도 잘 입고 모임 내내 적극

이 있다. 북한이탈주민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껴안아

적이고 활발했던 그들이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

민족화해의 첫 손길을 내밀 수 있다. 우리와 이탈주

가는 시간은 몇 분이 채 되지 않았고 우리는 방향이

민의 민족화해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직접적

달라 헤어졌다. 그 시간에 그가 내게 말해준 것 중

기여가 될 것이다.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바보 온달’로 바라보는 통일의 염원과 미래 강미정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은 2009년 인문한국

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 이 글에서는 우리들이 잘 알

사업에 선정된 이래 연구단의 어젠다인 ‘소통·치

고 있는 <온달설화>를 통일의 염원과 관련하여 흥미

유·통합의 통일인문학: 통일의 인문적 비전과 한

롭게 구성해보고 탈북청소년과 탈북여대생을 대상

국 인문학의 세계화’를 다각적으로 풀어내고 심화하

으로 문학치료과정을 수행하여 서사의 이해와 전환

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처럼 통일을 전망하

의 효과를 보여준 최근의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고 대비하면서 우리들에게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 은 무엇인가.

통일을 바라며 다시 읽는 <온달설화>

이 글에서는 문학치료학적 관점에 따른 자기서사의

우리들에게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다

강화를 생각해보려 한다. 문학치료학에서는 우리의

룬 <온달설화>가 익숙하다. 이 이야기는 바보였던

삶에서 겪게 되는 위기가 서사의 전환으로 극복될

남자가 공주를 만나 나무꾼에서 일국의 장수로 출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작품서사와 자기서사의 조응

세하는 내용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바보온달

을 통하여 우리 내면의 자기서사에 변화와 성장의

이 평강공주를 만나는 장면부터 되짚어보면 <온달

가능성이 열리게 되면, 잃었던 건강성을 되찾고 힘

설화>는 조언을 받아들이고 초심을 잃지 않는 뚝심

겨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리라 전

있는 한 인간의 이야기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

망한다.1)

처음에 온달이 평강공주를 산중에서 만났을 때 온

만일 현재의 통일의지가 과거의 열정으로부터 힘을

달은 그녀가 여우이거나 귀신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초심을 회복하면서 활성화해

서 그녀의 접근을 마땅치 않아 한다. 온달은 나무를

1) 이 글에서 말한 작품서사, 자기서사 등은 문학치료학의 주요 개념 중 하나이다. 자기서사(自己敍事)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구조화하여 운영하는 서사를 가 리키고, 작품서사(作品敍事)는 자기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문학작품의 서사를 가리킨다. 문학치료학의 이론 및 연구동향에 관한 주요 단행본으로는 정운채, 「문학치료의 이론적 기초」(도서출판 문학과치료, 2006); 정운채 외, 「문학치료학의 분야별 연구성과」(도서출판 문학과치료, 2013)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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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노모를 봉양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

복에 산다>의 재창작을 통한 탈북청소년의 문해력

다. 그가 추구했던 하나의 목표는 순수하면서 소박

신장 사례 연구」 2)에서는 주변 사람들을 원망의 시

하다. 그리고 평강공주는 온달의 허황되지 않음에

선으로 바라보았던 탈북청소년이 설화 재창작을 통

신뢰를 갖고 온달의 어머니에게 마음이 같으니 함께

해 점차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음을 보

지낼 수 있음을 강조하면서 온달과 부부가 된다. 훗

고한다. 탈북청소년의 변화는 그의 마음에 도사리

날 온달은 평강공주가 기대했던 것처럼 그녀와 한마

고 있던 편벽된 서사가 달라지면서 얻어지는 성과

음으로 살아가면서 훌륭한 장수로 성장한다. 평강왕

이기도 하다.

의 수하에서 고구려의 영토를 넓히는 일에 앞장섰던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탈북여성 B의 구비

온달은 전쟁터에서 죽음을 맞이하나 그의 관은 움직

설화에 대한 이해 방식과 자기서사」 3)에서는 특정 이

이지 않는다. 그때 평강공주가 이제 일을 다 마쳤다

야기에 편중되었던 탈북여성 B가 점차 다양한 이야

고 하자 온달의 관이 움직인다. 그는 죽음에 이르면

기를 기억해내고 조합하는 등의 변화 양상을 보여줌

서도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마음을 놓지 않았고 평강

을 보고한다. 탈북여성의 변화는 편향적인 자기서

공주의 조언에 따라 마무리한 것이다.

사의 양상에서 벗어나 인간관계의 여러 모습을 수

<온달설화>를 통해 통일이라는 오랜 소망을 잘 유지

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하고, 통일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잘 갈무리함에 대

이러한 사례 연구들을 통해 서사의 전환은 인간관계

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온달처럼 순수한 초

의 원만함에 구체적으로 기여함을 알 수 있다. 이와

심을 발판 삼아 신뢰할 수 있는 조언을 받아들이며

같은 서사의 전환은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처음에

항심(恒心)을 갖고 목표를 향한 발걸음을 옮겨야 한

목표한 이상을 이끌어가는 발판이 될 것이다. 나아

다는 것이다. 이렇게 읽게 되는 <온달설화>는 통일

가 서사의 전환은 불통의 시대를 소통의 시대로 만

에 대한 열망을 식히지 않고 우리의 자기서사를 추

들고, 문제적 상황을 치유하며, 분열되어 있는 현상

동하는 작품서사가 된다.

을 통합하는 데에도 필요할 것이다.

서사의 전환이 가지고 오는 효과를 기대한다 작품서사를 통하여 우리 내면의 자기서사 변화 가 능성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러한 궁금증에 최 근 통일인문학연구단의 치유프로그램개발팀의 연 구원들이 탈북청소년과 탈북여성을 대상으로 시행 한 문학치료프로그램의 사례를 들어볼 수 있다. 이 를테면, 탈북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설화 <내

강미정은 건국대학교에서 고전문학(문학치료학) 전공으로 박사학위 를 받았다. 주로 문학치료학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최근에는 역 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 재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2) 나지영, 「설화 <내 복에 산다>의 재창작을 통한 탈북청소년의 문해력 신장 사례 연구」, 「고전문학과 교육」 제23집, 한국고전문학교육학회, 2012, 151~176쪽. 3) 박재인, 「탈북여성 B의 구비설화에 대한 이해 방식과 자기서사」, 「고전문학과 교육」 제26집, 한국고전문학교육학회, 2013, 291~324쪽.


무대 혹은 스크린

STAGE or SCREEN 부터 외면당한 전 세계 지식인들의 절망을 가장 적확하게 표 오한샘 EBS PD

현해준 명언의 하나로 자리매김해왔다. 세상에 태어나 살면 서 남에게 실망을 하게 되고, 심한 경우 속임을 당하거나 배 반을 겪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뇌하는

스파이

인생사의 한 단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단순히 눈앞의 사람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추구해온 신념체계나 가치체계라 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신념체계가 우연한 기회에 가식이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지켜오고 따 라왔던 모든 것이 한낱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그 인간의 고뇌는 곧 햄릿의 고뇌가 된다. 셰익스피어 이후 동서양의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가 이 주제

〈햄릿〉이라는 작품이 있다. 자신이 사실이

를 놓고 다양한 작품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이

라고 믿어왔던 진리가 한순간에 허위로 밝

야기가 종종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 21세기 디지털 시대라고

혀짐에 따라 깊은 고뇌 속에 빠진 덴마크

일컬어지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세상 어디에선가는 앞만 보고

왕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국의 대문호 셰익

달려가다가 인생을 송두리째 도둑맞는 일이 아직도 간간이

스피어의 걸작이다. 오늘날까지 ‘햄릿형 인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부터 한국 영

간’이라는 말로 전해져 내려올 만큼 인간

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

사의 한 전형을 창조해낸 것으로 보아 햄

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살펴볼 때, 한동안 영화 속에서 우

릿의 고뇌는 작품이 태어났던 1601년경이

리가 접할 수 있었던 간첩의 이미지들은 별 고민할 필요도 없

나 2013년의 오늘날이나 분명 여전히 존재

는 살인병기이거나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소모품이었다.

하는 듯하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

그들에게는 가족이 없었고 감정이 없었다. 관객들은 화면 속

로다!’라는 명료하면서도 절규에 찬 햄릿의

출연자인 ‘간첩’에게서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모습을, 사랑하

이 유명한 극중 대사는 그 뒤 삶의 현실로

는 자식이나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연을 기대할 수가 없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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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설령 있었다 해도 극중 ‘간첩’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으

명민 분)과 ‘베를린(2013)’의 표종성(하정우

니 도무지 그 속내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

분), 그리고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의

게도 그들에게는 임무 외에는 아무 고민거리도 없어 보였기

원류환(김수현 분)에서도 우리는 그 변화를

때문에 영화를 보는 우리들 역시, 큰 부담감 없이 분개하고

엿볼 수 있다. 공화국의 미래와 보이지도

개탄하며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작품 내내 눈썹 하나

않는 이념을 위한 혁명전사가 되기보다는

움직이지 않고 표정 하나 변함없이 어떤 일이 닥치든 한 치의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지키기 위한 소시

오차도 없이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거의 해탈한 도인(?) 수준

민이 되기를 선택한 그들의 변신에 이제 남

의 이들이 등장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날수

쪽 관객들도 서서히 주목하는 듯하다. 조직

록 영화 속 ‘간첩’들은 웬만한 능력 가지고는 관객의 눈길조차

보다 눈앞에 서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가

도 얻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그런 도인 수준의 간

치를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는 스파이가 우

첩들을 영화 후반부 즈음 갑자기 나타난 우리 측 요원들이 기

리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가 막히게 무찔러가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정말 놀라울 지경

그들은 자신들이 뒤늦게 발견한 이 고귀한

이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화면 속 실력으로만 치면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다.

007영화의 스파이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능력자들이었던

비록 영화 속이나마 필자는 이러한 캐릭터

것 같다. 그런데 무엇 때문일까? 2000년대가 지나면서부터,

의 출현이 썩 싫지만은 않다. 아니 오히려

어느 순간부터인가 영화 속 간첩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천하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싶은 심정이다. 같은

무적일 것만 같았던 그들이 남몰래 한숨짓고, 흐느껴 울고,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그들의

급기야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왜일까?

입장에 공감이 간다고 말한다면 너무 앞서

영화 속 그들은 여전히 북에서 수많은 경쟁률을 뚫고 선발되

나가는 표현일까? 문득 영화 ‘쉰들러 리스

어 내려온 남다른 실력과 지력을 지닌 자들임에는 틀림없었

트(1993)’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다. 싸움에도 능할뿐더러 갑작스러운 곤경조차도 별 군소리 없이 해결해낼 만큼 능력도 있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자신

“눈앞의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

이 종교처럼 믿고 있었던 이념체계가, 가난한 인민을 위하고

곧 이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그 인민을 위한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왔던 당 에 대한 신념이, 오히려 인민 위에 군림하고 인민을 지배하기

지금 이 순간에도 눈앞의 생명 하나를 구하

위한 맹목적 수단으로 이용되어왔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자신의 운명과 맞서

들은 바로 그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속해왔던 모든 것

는 영화 속 모든 무명의 캐릭터들에게 박수

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게 되고, 밑바닥으로 내팽개쳐지는

를 보낸다.

숙명을 맞게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그들의 절망에 찬 고 뇌가 시작된다. 고뇌하는 스파이의 출현! 그토록 자기가 꿈꾸 어왔던 그 세계로 인해 자신의 이웃들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 던 고통을 애써 외면해왔던 스파이는 이제 자신의 운명과 분 연히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최근 영화인 ‘간첩(2012)’의 김 과장(김

오한샘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고, 현재 EBS PD로 있다. 제10회 통일언론인 대상(2004), 대한민국 PD 대상 실험정신상(2008), 푸른 미디어상 (2008)을 수상했고, 〈장학퀴즈〉,〈예술의 광장〉,〈EBS 시 네마천국〉,〈천년의 밥상〉등 공연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남북관계 Books 새로나온 책

“보수와 진보를 떠나 북한의 민중을 주목하라” 편집부

과거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젊은 세대들이 세대교체에 나 서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북한이 변화와 개혁에 대해 자신 감 있게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다. 책을 통해 란코프 박사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진보와 보수가 이뤄낸 성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한계를 명확히 지적한다. 그 1

『리얼 노스코리아 - 좌와 우의 눈이 아닌 현실의 눈으로 보다』

는 진보진영의 대북지원이 애초의 목적인 북한 변화를 이끌

안드레이 란코프 저 개마고원 2013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보수의 강경정책 역

|

|

어낸 측면도 있지만, 오히려 체제 유지 용도로 더 많이 이용 시 원하는 성과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북한에게 연평도 포격 과 같은 군사적 모험주의를 감행하도록 부추겼다고 지적하 고 있다. 그리고 강경정책을 유지하면 할수록 북한 지도부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란코프 박사는 이른바 ‘우

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한반도에 불필요한 긴장상태를 유지

파 햇볕론자’로 잘 알려져 있다. 언뜻 모순적으로 들리는 호

할 것이라 말한다.

칭이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적어도 그가 보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

기에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원하는 평화적 통일이 가능하고,

택지는 햇볕정책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햇볕정책

북한 역시 순조롭게 체제를 변화시켜가며 발전의 길로 접어

은 조금 다르다. 지금까지 햇볕정책의 추진자들이 북한 지도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를 파트너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의 주된 관심사는 바

란코프 박사는 북한을 ‘고매한 이상과 지극한 선의로 이룩한

로 ‘북한의 민중’이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협력과 민간교류

재앙’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태생적 모순이 종종 이

야말로 북한 민중에게 더 나은 대안이 있음을 알리는 유력

해하기 어려운 행동과 발언을 하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할 수

한 수단이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중요한 예로 개성공단을

있는 거울이라 단언한다. 그는 북한 지도부에게 개혁이 치

든다. 그가 보기에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이들과 그들의 친

명적인 위험으로 인식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가만

구, 가족 등 15만~2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이미 예

히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 역시 현명한 행동은 아니라

전과 다르다.

고 말한다. 다만 시간이 조금 연장될 뿐이지 결국 무너질 것

진보의 낙관과 보수의 무모함을 경계하는 란코프 박사. 현

이라는 예상이다.

정부가 오히려 햇볕정책을 성공시키는 데 더 유리한 환경을

이 때문에 그는 김정은 체제에 일정한 기대감을 드러낸다.

가졌다고 평가하는 그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민족화해 November / December

2

78 79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 세계적인 정형외과 의사인 재미동포 오인동 박사 가 꿈꾸는 통일 조국의 미래상이다. 2008년부터 매년 북한을 방문해 인공관절기술 전수와 관절기 자체 제작을 도와온 그는 남과 북이 이제는 오랜 적대적 갈등관계를 청산하고, 무궁한 발전과 번영

3

『한반도의 미래에 관한 대담한 생각』

의 가능성이 있는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을 간절

저자는 더 이상 체제대결이나 진영논리에 갇혀 결

히 호소하고 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

론 없는 소모전을 계속해나갈 게 아니라, 한반도

국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뛰어온 그의 열정과 헌

땅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번영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신이 그대로 묻어 있는 책이다.

길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문제의식으로 책을 썼

오인동 저 | 다트앤 | 2013

다. 그리고 한반도 공생발전과 균형발전을 위한 과감한 제안에 나선다. 한국 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해 남북경제협력을 발

2

3

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4

이계안 저 | 위너스북 | 2013

5

4

『기로에 선 북중관계』 중국의 대북한 정책 딜레마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추수롱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 장달중 전(前) 서울대학교 교수 등 27명의 북

5

『한반도는 아프다』 - 적대적 공생의 비극

중관계 전문가가 변하고 있는 중국의 속마음을 통

1993년 YS의 문민정부에서 통일부총리 및 대통령

해 북핵문제와 북한문제, 그리고 한반도와 동아시

특사를, 국민의 정부에서 교육부총리를 지내고 노

아 외교 및 안보지형을 진단하고 있다. 아울러 앞

무현의 참여정부 시절엔 적십자 총재를 지낸 저자

으로 북중관계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달라진

가 숱한 대립과 갈등 및 언론 오보의 비사, 그 속에

북중관계가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분

서도 통일과 평화를 향해 나아갔던 남북관계의 역

석하고 전망한다. 여전히 불투명한 북중관계를 이

사적 의의를 담아 책으로 내놓았다. 그는 남북관

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계의 악화야말로 각 체제 안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정덕구 외 | 중앙북스 | 2013

훼손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발목을 잡는 근본 원 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한완상 저 | 한울 | 2013


독자 의견

READER'S

2013. 09+10 Vol.64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해드립니다.

이번 호에서 가장 흥미가 갔던 기사는 바로 ‘남북체육교류는 신뢰 를 만드는 메신저입니다!’ 였습니다. 선 하나로 두 개로 나뉘어져버 린 남한과 북한이 체육으로라도 교류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이런 체육교류가 많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남 한과 북한을 응원하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 양서정 전북 장수군

많은 기사 가운데 가장 관심 있게 읽은 글은 ‘DMZ의 생채기를 담다’ 입니다. 철책선 너머로 꽁꽁 얼어버린 강을 혼자 건너가고 있는 고 라니 한 마리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고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전 <독자엽서>로 정답과 의견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64호 정답은 ‘한반도 신뢰’입니다. 채택되신 분들께는 소정의 문화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쟁이 멈춘 지 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비무장지대 모습을 보면 그 당시 참혹했던 전쟁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이제는 남북 간 대립의 상징처럼 굳어버린 비무장지대가 하루 빨리 사라지길 기대합니다. - 김휘곤 울산시 북구

체육인의 한 사람이자 이산가족이신 노부모를 모시는 사람으로서 ‘특집-북한 경제 어디로?’ 기사가 인상 깊었습니다. 북한 경제의 현

‘남북체육교류는 신뢰를 만드는 메신저’ 기사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주소와 과제, 전망 등을 다각도로 또 깊이 있게 다루어 좋았습니다.

갔습니다.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에서 보았듯 스포츠만큼 온 국민

북한이 점진적인 개방·개혁정책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심각한

을 화합시켜 하나가 되게 만드는 매개체도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합

경제난을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었고, 지

니다. 남북단일팀으로 세계대회에 나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교류

금 북한 상태로는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고깃국과 쌀밥을 먹이겠다

조차 뜸한 지금 무언가 점진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필요한 때가 아

는 주장은 실현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을 보유한 상태

닌가 생각합니다. 체육교류가 그 선도적 역할을 해야 문화·학술

에서 북한에 대규모 외자유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핵화를 통한

분야 그리고 경제협력도 꼬인 실타래가 풀리듯 열리지 않을까요.

실질적인 개혁·개방 정책만이 북한의 경제난을 해소하고 피폐한

- 정경석 대전시 중구

북한주민들의 민생을 개선할 열쇠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대북정책’, 정상적 국가관계로 조정하나?’ 기 사도 흥미로웠습니다. 현실적으로 중국에서는 일반 중국인들처럼

우리는 그동안 북한이 남한에 대한 군사적 도발이나 핵실험을 하

북한을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생각을 가지고

는 경우 중국의 입장이 어떤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북

있는 계층도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완충지대라고 주장하는

한의 행위에 대한 중국의 태도가 우리 국가 안보에 중요한 변수로

지식인 계층도 존재합니다. 상반된 대북여론은 지금 중국의 대북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 ‘중국의 대북정책, 정상적 국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최근

가관계로 조정하나?’ 기사를 읽으며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혈맹의

중국에서 북한에 대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지만 중국의 대

특수관계에서 우호적인 정상적 국가관계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북정책은 한국, 미국, 일본이 원하는 변화가 아니라는 현실적이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는 한국의 입장만을 위한

객관적인 사실을 바라볼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끝으로 2013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 것을 간과해

민화협 창립 15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송지수 서울시 노원구

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최경희 서울시 강동구



독자와 함께 읽는 글 ➎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시인은 1970년 작품활동을 시작해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시를 찾아서’ ‘돌아다보면 문득’ 등을 펴낸 시단의 기둥이다. 시 제목인 ‘저문 강에 삽을 씻고’는 전국 곳곳에 주막 혹은 한식당 이름으로 걸려 있을 정도로 대중 친화적인 애송시이기도 하다.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는 언뜻 연인 간의 사랑을 노래한 듯하지만,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시다. 시인이 끊임없이 언어를 조탁해 우리말의 깊이를 더욱 풍요롭게 했듯, 이 시 역시 단정하고 절제된 언어로 남과 북의 화해와 만남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K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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