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2 www.kcrc.or.kr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2013 05·06
특집
위기 이후의 남북관계 권두인터뷰
인요한
“남과 북이 서로 윽박지르기보다는, 유연한 자세로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CONTENTS Vol.62 May / June 2013 02 권두인터뷰
인요한 John Linton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남과 북이 서로 윽박지르기보다는,
유연한 자세로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 박현선 COVER STORY
어둠이 깔려오는 개성공단 가는 길목 이 어둠은 우리의 마음이다 이 어둠은 우리의 아쉬움이다 이 어둠은 우리의 아픔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의 밝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08 특집 |
위기 이후의 남북관계
· 남북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대북정책을 모색해야
·북한의 계산된 의도를 파악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해야
·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 박인휘 | 정영태
한·미·중의 협력에 달려 있다 | 김용현
20 개성공단을 말하다
· 기로에 선 남과 북의 접촉지대, 개성공단
· 첫 삽에서 근로자 철수까지, 상생의 기록을 짚어본다
| 공용철 | 편집부
28 진단
· 김정은 시대의 ‘경제·핵무력 병진노선’
경제발전과 핵무력 강화, 모두 안겨다줄까 | 정창현
· 한반도 안핵(安核): 사용은 안전하게, 처리는 안심하게
| 서균렬
36 특파원 리포트
· 의회에서 시작해 의회에서 완성되는
미국의 대북정책 | 신석호
민족화해 2013년 5·6월호(통권 62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 4 동우국제빌딩 4층 전화 02.761.1 2 1 3 팩스 02.761.6590 홈페이지 www.kcrc.or.kr
발행일 2013년 5월 2일 발행인 김덕룡 편집인 이수언 홍보위원장 김영만 편집기획위원 공용철, 김용현, 박현선, 오한샘, 이석, 이우영, 정영태, 조동호 편집장 이운식 편집부 이현희, 정봉우리 디자인 및 제작 (주)풍경애드컴소풍 070.7433.1123
02
통일을 준비하는 격월간지
62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40 남북관계와 한국경제
·장기화된 북한리스크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42 기획 |
| 홍순직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적극적 평화’
| 이병수
64 통일교육·평화교육
상생 한반도의 길을 찾는다
·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북한의 환경실태,
·통일교육, 평화교육과 안보교육에서 길 찾기
| 박찬석
다자적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 홍이경
68 회원단체탐방 |
·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CDM 협력사업,
남북 상생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 박지민
(사)남북장애인교류협회중앙회
· 북한 장애인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남북협력 사업을 준비해 나갈 것 | 박지용
50 르포
· 남북 위기, 민통선 사람들은 지금
71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 한성희
54 남북교류협력
72 민족화해 네트워크
· 푸른나무가 시작하는
76 서평 |
통일복지국가의 디딤돌 | 신영순
58 지금 북한은
·北전역 들썩들썩… 체육강국 건설 목표
| 장철운
| 문대근
78 무대 혹은 스크린
60 새터민 에세이
『북한·중국관계 60년』
·북한·중국 순치관계 60년의 구조와 변용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영화 <가족의 나라>
| 오한샘
80 독자 의견
· 막을 수 없는 IT정보유입의 바람,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까? | 박문일
08
42
54
권두인터뷰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John Linton
인 요 한
“남과 북이 서로 윽박지르기보다는, 유연한 자세로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대담 | 박현선 본지 편집기획위원 정리·사진 | 정봉우리 정책홍보팀 간사
화창한 봄날, 환자들로 분주한 세브란스병
“Korean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원을 찾았다. 국제진료센터가 리모델링 중 이라 ‘임시정부’라 부르는 임시거처에서 만 난 인요한 소장은 유쾌하고 진솔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부위 원장직에 있었으며,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의 상처를 치유하는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요한 소장님은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이란 책을 발간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사랑도 각별합니다. 한국과 인연을 맺고 이렇게 정 착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국과의 인연은 진외증조부까
지 올라갑니다. 할아버지께서 3·1운동 보고특사로 3·1운동
‘전라도 순천 촌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어울
을 교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셨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신사참
리는 구수한 말투로 여느 한국인보다 더 한
배 반대를 하셨던 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추방당한 적도 있습니
국스럽다. 북녘 사람들과도 ‘한국적 가치’
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 4년 전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애국애
때문에 더 잘 통했다는 인요한 소장. 한반도
족훈장도 받은 국가유공자 집안입니다. 우리 조상은 한국 사람
의 군사적 긴장으로 모두의 마음이 흉흉해
들에게 큰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선교지에서 쫓겨나
진 지금, ‘한국적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인요 한 소장의 통일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고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꽤 많지만, 우리 조상은 편안하게 전 라도에서 116년을 지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외국인 전형으로 특혜를 받아 연세대 의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고, 1997년 졸 업 이후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장 젊은 부소장이 되었습니다. 이 러한 인연으로 2012년 3월 21일 귀화도 했습니다.
민족화해 May / June
02 03
소장님께서는 한국형 앰뷸런스 보급 1등 공신으로도 유명
과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사람을 모
하신데요, 한국에서 의사의 길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
두 대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이는 의사밖에 없었습
한국에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많습니다. 어떻
니다. 어릴 때 염소가 개한테 물려서 다리가 찢어진
게 보답을 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그중 잘
적이 있었습니다. 치실과 바늘을 삶아서 염소의 다
한 것 한 가지를 꼽자면, 한국형 구급차 보급에 기
리를 꿰매주었는데, 아버지 친구가 그걸 보시곤 “마
여했다는 것입니다. 구급차가 갖춰지지 않았던 시
음 아프지?”라고 하시면서, “동물도 불쌍한데 사람
절에 교통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택시로 이송되다가
은 얼마나 더 불쌍하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
결국 돌아가신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1992
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까?
년부터 한국형 구급차 개발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5,000대 정도가 다니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무척
소장님의 집안은 1895년부터 5대째 한국에서 선교·봉사
뿌듯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과학
활동, 북한결핵퇴치사업과 의료장비 지원사업 등을 펼치고
러시아와 중국 투자로 다른 지역과 많이 다릅니다. 제가 학교에 방문했을 때,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 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친근하게 대하더 라고요. 딱 흥선대원군 시대죠. 나진·선봉에서 희 망을 자주 봤습니다. 라선지역 사람들과 대화를 많 이 했는데, 남조선과의 거래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남한과 거래할 경우, 말도 잘 통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대를 이어 이러한 봉사활동을 하게 된 이
자원에 대해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더라
우리 조
고요. 당시 지난 정부는 북한을 봉쇄했다고 기뻐했
상은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인근의 이스트린튼과 웨
지만, 사실 봉쇄 때문에 북한의 대중의존도가 더욱
스트린튼에 살던 켈트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성
높아졌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유와 북한 돕기를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공회가 장로교파인 린튼 일족이 미워서 가톨릭교도 가 점령한 아일랜드로 강제 이주시켰고, 아일랜드
현 정부 들어와서 처음으로 형님이신 인세반 회장님이 대
에 번진 감자 바이러스로 기근이 들자 미국으로 건
표로 있는 유진벨재단에서 북한에 결핵약을 지원했습니다.
너가게 되었습니다. 조지아에서 맨몸으로 정착생활
북한의 허가도 있어야 했을 텐데,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을 시작했는데, 일궈둔 땅에서 터진 남북전쟁으로
우리 형님이 결핵을 두 번이나 앓았습니다. 북한에
고조할아버지가 남부군의 리 장군 기병대에서 싸웠
가서 “저도 결핵환자였습니다. 여러분 힘들죠?”라
습니다. 그리고 진외증조부(유진벨)가 미국 남장로
고 말하니 다들 말을 잘 들어주더군요. 감성이 지
교로부터 한국 선교사로 나가라는 명령을 받고 도
성보다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나라
착한 곳이 동학농민운동으로 혼란스러웠던 전라도
가 외국인이 들어와서 결핵약을 나눠주는 걸 허용
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형(인세반)과 저는 북한
할 수 있겠습니까. 외국인이 와서 약을 나눠주는 것
에 지원사업을 펼치며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안
은 사실은 불법입니다. 그래도 환자 치료가 중요하
은 어려운 환경을 찾아서 개척해내는 숙명을 타고
니까 북한 당국이 허용을 해줬고, 환자들을 교육하
난 것 같습니다.
고 집합시키면서 협조도 했습니다. 이것은 북한 당 국에 고마운 점입니다. 이게 신뢰라고 생각합니다.
“대북지원에 있어, 정부와 비정부를 혼동해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우리 정부가 지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장님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압니다.
대통령과 특별 통로가 있
는 것은 아니고, 조찬기도회 때 공식석상에서 말씀 1997년부터 스물일곱 차례 북한을 왕래해온 것으로 알고
드린 적이 있습니다.“현재 결핵약이 못 들어가고 있
있습니다. 또한 지난해 말에도 북한을 다녀오신 것으로 아
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더 무서운 결핵으로 변하게
는데, 그간 북한의 변화나 최근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됩니다, 결핵을 치료하지 못하면 통일 후에 더 큰 문
라선 이야기를 하자면, 나진·선봉은 특수지역이라
제가 생깁니다, 이런 약품들은 군대전용물자도 아닙
민족화해 May / June
04 05
니다, 환자들 약조차도 끊어지면 안 됩니다”라고 전
1밖에 되지 않아요. 정직하게 보았을 때 ‘퍼줬다’는
했습니다. 그랬더니 박근혜 대통령이,
말은 맞지 않죠. 북한 사람들이 1990년대 말에 대
“정말 필요한 인도적 지원은 해야 한단 말씀이죠?”라
거 아사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북한 사람들이 살아
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예”라고 했지요. 이후 통일
남는 것을 보면, 그만큼 북한 사람들이 튼튼해졌음
부 승인을 받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개
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잘살아가도록 도와
탄스러운 것이 일부 보수언론에서 ‘남한은 약을 지원
줘야 합니다.
하고, 북한은 미사일을 보낸다’는 논조로 보도를 했 습니다. 정부와 비정부를 혼동해서 판단하면 안 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 진보보다는
는데 말입니다.
이성적 진보, 꼴통 보수가 아닌 세련된 보수입니다.” “가난도 인권탄압입니다.
지난해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했을 당시, 박근
정부와 국민을 분리하고, 정치와 인도적 지원을
혜 대통령의 합류 요청을 한차례 거절했던 것으로 알고 있
분리해야 합니다.”
는데요, 대선과정에서 합류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박근혜 대통령과는 12년 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일부 언론들의 보도가 도를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인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고 온 대통령께
적 지원과 정치적 문제를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어머니가 희생됐는데 어떻게 만나고 왔느냐”라고
남한 사람들 피부에는 그 사람
물었더니, “국가 일은 국가 일이고 가족 일은 가족
들의 어려움이 와 닿지 않아요. 그러나 북한 사람들
일”이라고 답하시더라고요. 대단한 사람이라고 느꼈
이 처한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
습니다. 지난 10월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에 합
합니다. 북한에는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난방이 잘
류했는데, 당시 박 후보께서 남북관계, 동서화합, 다
안 됩니다. 식량도 여전히 부족하며, 환자를 치료할
문화가정 등 세 가지 문제 해결을 위해 도와달라고
약조차 없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가난도 인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늘 중요하게 생각
탄압이라는 것입니다. 체제를 떠나서 인간이 어려
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참여하게 됐습니다.
움에 처한 현실을 방관하고, 먹을 것도 먹지 못하
전라도 사람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기가 쉽지는 않은
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을 치료하지 못하는 상태로 두
일이지만, 그 뜻에 공감하여 참여하게 됐습니다.
고 생각하십니까?
는 것 역시 인권탄압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견지해 야 할 자세는 첫째는 정부와 국민을 분리시키는 것,
‘우리가 지원해도, 돌아오는 것은 군사적 위협’이라고 생각
둘째는 정치와 인도적 지원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러한 현실 속에서 남북관계를 어
정부를 미워할 수는 있지만 국민을 미워할 수는 없
떻게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는 노릇입니다.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한은 지난 10년간 대북지원
‘퍼주기’라는 말은 정치권과 기자들의 말입니다. 우
을 했고, 남북한이 긍정적 행보를 함께했다고 생각
리의 지원액은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것의 60분의
했는데, 북한은 미사일을 쏘고, 핵 실험을 했습니다.
우리도 변화
남한이 굉장히 지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살
터링을 진행합니다. 환자들을 모아 반장을 뽑고, 관
아가면서 친구 혹은 가족에게 나쁘게 하기도 하지
리를 시키니 90% 이상 직접 환자를 만날 수 있었습
만, 너무 한쪽 측면만 강조해서 지치지 않았으면 좋
니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것이 차관형식으로 지
겠습니다. 인세반 형님과 북한 당국이 협상하는데,
원하고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하여 북한과의 충돌이
저쪽에서 남한, 미국을 두고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에서 쌀을 주면서 나중에 갚
우리 형이 가만히 듣기만 하다가, “시트 필요하다면
으라고 한다는 건 웃긴 이야기죠. 원조형태로 지원
서요? 시트 몇 장이죠?”라고 물으니, 그쪽에서 “시
하고 협상 과정에서 모니터링에 대한 약속을 확실히
트 2만 장 보내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나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을 명시해 지원하기 전
중에 형에게 물었습니다. 저렇게 욕을 하는데, 왜 아
에 약속을 받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다
무 말도 안 하고 지원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그랬더
시 협상이 재개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니 형이 하는 말이, “그 사람 욕하는 건 자기 마음이
DJ, 참여정부에서는 기다릴 줄 몰랐고, MB 정부에
아니라 참모들 받아 적으라고 한 행동인데, 왜 거기
서는 정반대의 실수를 저질렀죠.
에 신경을 쓰냐”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 다. 형님이 나보다 고단수란 걸 말입니다. 이렇게 협 상에서는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기다릴 준비
“빌리 브란트는 동서독 간에 화해의 씨를 심었고,
도 되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너무 성과에 집착하
그 씨앗이 자라 벽이 무너졌습니다.”
면 북한에 끌려갈 수 있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전 제로 하면 협상 자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저는 협
박근혜정부가 지난 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어
상에서 성공에 대한 집착보다 실패의 여유도 가져야
떤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보십니까?
한다고 봅니다.
수 있는 정책을 해야 합니다. 빌리 브란트를 기억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적 진보보다는 이성적
필요가 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처음 동독과 화해
진보, 꼴통 보수가 아닌 세련된 보수입니다. 정말
를 제시한 위대한 사람입니다. 빌리 브란트는 동서
북한의 붕괴를 원하는가? 잘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
독 간에 화해의 씨를 심었고, 그 씨앗이 자라 벽이 무
다. 북한이 무너진다고 쳐요. 북녘 부녀자들이 아이
너졌죠. 대북정책은 끊어져서는 안 됩니다. 여야를
300만을 업고 휴전선을 넘어온다면, 그런 상황을 진
따지지 않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anything but–’
정 우리가 원했던 상황인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습
식의 정책을 펼치면 안 됩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은
니다. 소프트 파워의 시대입니다. 서로 윽박지르기
‘Anything but Noh’가 강했습니다. 이런 식의 문화
보다는, 유연한 자세로 북과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는 사라져야 합니다.
인도적 대북지원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투명성 확보 문제
일전에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람의 단점으로 보수와 진보,
때문에 여론이 악화되는 등 정치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좌·우의 구분에 대해 지적을 하셨습니다. 한국 사회 내 갈
여러 차례 지원하셨는데 지원과정에서 투명성 확보는 어떻
등을 촉발되는 요인과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
게 하시는지요.
유진벨재단의 경우, 직접 가서 모니
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끊임없이 이어갈
한국 사회의 갈등은 동서 다
민족화해 May / June
06 07
문화가정,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간의 갈등이 있
30%에 이릅니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은 빠르
습니다. 하지만 최근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대 간 갈
게 늘어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
등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경험
해나가야 합니다. 멀리 보면 다문화가정은 통일연습
은 어릴 적 온돌방에서 컸다는 것입니다. 온돌방에
입니다. 우리가 다문화가정을 포용할 수 있다면, 마
군불을 때는 문화 속에서 어른들로부터 지식과 지혜
치 외국인처럼 돼버린 이북형제들과 화합이 가능할
그리고 도덕을 배웠지요. 이렇게 과거 온돌방에서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제와 정치통일을 걱정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있었습
사실상 사회적 통일을 진정으로 걱정해야 한다고 봅
니다. 한국의 온돌문화가 사라지면서, 젊은 세대들
니다. 이러한 연습은 다문화가정을 끌어안는 것에서
이 노인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게 되
시작할 수 있습니다.
었습니다.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분리되는 세대 는 갈등을 넘어서 충돌로까지 이어집니다. 이러한
‘한국적 가치’가 살아 있는 통일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
세대갈등을 한국 사회가 빨리 해결해가지 않으면 우
라고 생각하십니까?
리가 알던 한국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은 사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가치관도 다를 수 있습
현재,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
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저는 북한 사람들과 가까워 지기 수월했는데, 그 이유는 북한 사람들이 아직 정
“제가 북한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수월했던 것은
통적 한국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아직 정통적인 한국적 가치관을 지니고
어쩌면 통일은 다시 한국적 가치를 살릴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람에게 인맥이란 매우 중요 한 요소입니다. 남북한을 이어줄 인맥이 바로 이산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 가치를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통
가족입니다. 그런데 이산가족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
일을 위해서 한국 사회가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
니다. 이산가족이 없어지면, 누가 북한을 기억하고,
박근혜정부 인수위에서 국민대
무엇을 고리로 대화를 하겠습니까? 한국적 가치관
통합부위원장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인수위원회 당
과 문화를 살릴 수 있는 연결고리가 사라지는 것입
시 제가 주장한 것은 이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니다. 이산가족 때문이라도 하루빨리 남북이 대화와
이었습니다. 농촌에 가보면 외국에서 온 부녀자가
협력으로 나서야 합니다.
지 말씀해주세요.
특집 위기 이후의 남북관계
남북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대북정책을 모색해야 박인휘 이화여자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12년 4월 13일 북한 스스로 핵보유국 지위를 헌법에 명문화한 이후 1년여에 걸친 북한의 위기고조 전략이 대 체로 마무리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사이 북한은 두 차례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정전 협정 파기 선언 등 탈냉전기 기간 중 전례가 없는 위기고조 국면을 전개하였다. 대체로 지난 1년은 김정은의 공 식 집권 이후 첫 1년이라는 의미와 함께 남, 북, 미, 중, 일 등 모든 동북아 이해당사자 국가의 리더십이 교체하 는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새로운 판이 짜이는 동북아 안보환경 조정기를 맞이하여 자국의 생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 조정 국면이 탄력을 받아서 남북 및 북미 사이의 유화국면이 조성될 것인지 혹은 북한이 일종의 상시위기 전략을 지속적으로 채택할 것인지 현재로서는
민족화해 May / June
08 09
의적 관점을 대변하였고, 후자의 시각은 보수주의적 관점을 대변하였다. 따라서 그 결과 전자의 시각은 과거 햇볕정책을 포함하여 다양한 대북한 관여정책 으로 구현되었고, 후자의 시각은 소위 원칙 있는 대 북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남북교류를 최소화하는 강 경정책으로 구현되었다. 그런데 지난 3차 북 핵실험 이후 우리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는 북한 비핵화 의 가능성에 회의를 품으면서, 결국 북한이 변화하 고 핵을 포기하느냐의 문제는 다른 누구의 노력으로 도 성사될 수 없는 북한 스스로의 문제라는 시각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매우 우려되는 딜레마적 상 황에 빠지게 되는데, 북한이 현명한 선택을 하는 그
ⓒ연합
3월 27일 열린 통일부 업무보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한국과 북한 사이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반영해 나가야 한다.
순간까지 우리의 노력과 행위는 모두 무의미하다는 의미인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북한 비 핵화라는 완전한 달성은 북한 스스로의 변화 의지와 노력에 달렸지만, 그러한 의지와 노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외부행위자인 한국은 매우 정교 한 논리 및 정책 개발을 통해 북한의 생각과 세계관 에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현 정부의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우나, 일단은 지난 4월 12일 케
신뢰 프로세스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 역시 이러
리 국무장관의 한·중·일 순방을 계기로 최고조에
한 생각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북
달했던 위기가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한이 다름 아닌 핵개발을 가장 핵심적인 생존의 수 단으로 채택하였다는 점은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
북한의 핵 포기 결단을 위한 외부 행위자의 역할
는 국제 행위자를 한반도에 지속적으로 개입하게 만
지난 20년 동안 북한의 핵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
드는 특징을 가진다. 즉, 핵이라는 이슈는 사안의 특
리 사회는 동일한 논쟁을 반복적으로 경험해왔다.
수성 때문에 미국을 핵심 행위자로 하는 국제사회
그것은 북한의 비핵화는 한국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의 개입을 정당화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논
북한 이외 행위자의 노력과 정책적 선택에 따라 가
리적으로는 지난 수십 년간 북한이 강조해온 ‘한반
능하다고 보는 시각과 북한의 비핵화는 궁극적으로
도 문제의 한반도화’라는 주장과 상반되는 모순을
북한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는 시각 사
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외
이의 논쟁이었다.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기에는 어
부 행위자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측
려움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전자의 시각은 유화주
면도 있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변화 가능성
정부의 외교정책 마무리 등으로 본인의 정체성과 리
5월 7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를 둘
더십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정책을 구사하지 못한
러싼 한국과 미국의 신정부에 의한 큰 그림이 제시
측면이 있고,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략적 인
될 것으로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한미정
내’라는 차원에서 전임 행정부들과 비교하면 북미외
상회담 이후 연이어 중국 방문이 예고되어 있고, 북
교관계는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
한이 지난 1년 동안 전개한 위기고조 전략이 상당
라서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4년과는
한 수준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북
다른 정책을 구사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 주
한 문제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전
목해야 한다.
반적으로 원칙론적인 입장에서 향후 한반도 평화에 대한 의지가 천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
우리 정부의 남북관계 정상화 전략
과 미국 모두 북한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할 수도 없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 앞으로의 남북관계 정상화 방
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대북한 관여정책 이외에
안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략적 관점들을 고려해
는 다른 정책수단이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연
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이론적으로 두 가지의
스럽게 향후 현재의 위기국면을 어떻게 연착륙시켜
정상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소위 ‘단계적’ 플랜
서 유화국면의 모멘텀을 조성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
과 ‘거시적’ 플랜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단계적’ 플
아지고 있다.
랜의 경우 점진적이고 신중한 정상화 전략을 의미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오바마 행정부 2
하는데,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라는 영역은 매우 상
기 외교정책 전망과 관련한 부분인데, 지난 2월 12
대성이 강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한국 및 미국의 유
일 오바마 대통령이 행한 2013년 상하원 합동연설
화적인 제스처에 북한이 반응하는 정도와 방식을 봐
에서 구체적으로 밝힌 바와 같이, 오바마 행정부 2
가면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단계적이고 점
기 동안인 향후 4년 동안 미국은 글로벌 비핵화정책
진적으로 노력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남북관계
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와
는 핵문제, 군사 분야, 경제협력, 사회문화교류, 인
합의한 핵무기 감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함은 물
권문제 등 매우 다양한 영역에 걸쳐 현안들이 산재
론 핵안보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에 국가 에너
해 있는 관계로, 이들 사이에서 매우 정교한 정책개
지를 투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히 현재 미국이
발 및 동력추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특히 지금까
직면한 이란 및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
지의 남북관계 경험을 돌이켜볼 때 특정 정책 이슈
로 대처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재 워싱턴 정가
에서 문제나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 해당 영역을 뛰
의 분위기는 북한에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그
어넘어 남북한 관계 전반에 걸친 다른 사안들에까지
렇다고 북한을 상대로 군사적 옵션을 정책수단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사례가 많았던 관계로 이러한 점에
사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결국 비확산의 내용
특히 유념할 필요가 있다. 즉, ‘위기 발생의 횡적 및
을 담고 있는 대북한 정책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가
종적 확산’을 방지하고 관리하는 정책적 예방장치가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필요한 것이다.
은 지난 1기 집권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및 전임 행
또 다른 정상화 전략으로 ‘거시적’ 플랜을 생각해볼
민족화해 May / June
10 11
수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정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점은 기본적으
상화 단계가 아닌 상대적으로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로 대북한 관여정책 혹은 유화정책의 주도자인 한국
정상화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지구
은 남북관계에서 ‘지원의 주체’라는 정체성을 가진
촌 곳곳에서 20여 년의 탈냉전적 국제질서가 변화
다. 반면 관여의 대상인 북한은 ‘수혜의 주체’라는 정
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북한이 핵
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원 주체의 이해
보유를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관계는 대북한 관여정책의 결과가 북한의 변화로 이
운 대북정책 기조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어지기를 바라는 데에 있고, 수혜의 주체인 북한의
다. 만약 이러한 사고와 노력이 가시화된다면 1988
이해관계는 관여정책의 결과가 북한의 변화가 아닌
년의 7·7선언, 2000년의 베를린선언을 이은 한반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결과를 기대하게 마련이다. 한
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차원의 창의적이고 거시적인
마디로 남북관계 정상화에 대한 한국의 이익구조와
접근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거시적’ 플
북한의 이익구조가 근본적으로 상이할 수밖에 없는
랜 역시 북한 정세와 동북아안보환경에 대한 치밀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
하고 정교한 분석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고, 미래의 특정 시점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익
남북관계 정상화 전략과 관련한 두 번째 고려사항
구조가 수렴하고, 그 결과 북한의 정체성에 변화를
은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다면적’ 목표
야기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
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교육정
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 국민이 정치적 이념을
책은 수험생과 교육관계자, 조세정책은 납세자, 노
떠나 광범위하게 지지할 수 있는 대북정책, 그리고
동정책은 근로자를 목표로 하듯이, 국가정책은 특
국제사회의 지지를 유도할 수 있는 대북정책이 추진
정정책이 추구하는 목표에 따라 고유한 정책목표 그
될 수 있다. 현 정부가 제시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룹(policy target audience)이 존재한다. 그런데 대
는 과거 이명박 정부처럼 북한의 변화를 우리가 주
북정책의 어려움은 이와 같은 정책목표 그룹이 한
도적으로 설정하고 기획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한
국, 북한, 국제사회 등 매우 다층적이라는 점이다.
국과 북한 사이의 상이한 이해관계를 잘 반영한 것
우리의 대북정책은 우리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함
으로 보인다. 장기간 지속된 남북한 사이의 전례 없
은 물론, 북한의 거부반응이 없도록 해야 하면서도
는 위기국면이 대화와 유화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
동시에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국 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지금까 지의 대북정책은 다양한 정책목표 그룹의 이해 혹은 동의를 유도하는 데에 실패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향후의 남북관계 정상화 전략은 작은 범위의 정책이 건 거시적 범위의 정책이건 다양한 정책 수용 집단 의 이익구조(interest structure)를 고려하면서 준비 되어야 할 것이다.
박인휘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 재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외교부·통일부·국방 부 정책자문위원, 한미교류협회 연구위원도 역임하고 있다.
특집 위기 이후의 남북관계
01 ⓒ연합
북한의 계산된 의도를 파악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비해야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의 핵무장 능력은? 북한은 2012년 4월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를 강행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같은 해 12월에 로켓 시험발사를 재강행 하여 성공하였다. 그 후 약 3개월 뒤 3차 핵실험을 강행(2013년 2월)함으로써 그들의 핵 군사역량을 과시하였 다. 북한의 3차에 걸친 핵실험 모두가 10kt 미만의 위력을 보인 것이라서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일 반적으로 핵탄의 위력이 10kt은 넘어야 성공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 규모 분 석에 기초하여 한국 정부 당국은 3차 핵실험의 위력이 TNT 폭약 6,000~7,000t(6~7kt)으로 추정·발표하였 다.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위력이 10kt 미만인 이번 3차 핵실험은 완전한 성공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것
민족화해 May / June
12 13
이다. 하지만 핵실험에서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 어
북한의 10~20kt급 핵미사일이 실전 배치되어 남한
려운 측면도 있다. 어떻든 3차에 걸친 핵실험으로 북
을 공격하게 되면 이는 발사 3~5분이면 서울 상공
한의 핵무장력이 높아져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
에 도달하여 폭발할 수 있다. 단 1기로 적게는 수십
실이 되고 있다.
만, 많게는 100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특히 북한의 핵폭탄 개발은 조만간 소형화, 경량화
서울은 완전히 초토화될 정도이며 몇 기를 동시에
에 성큼 다가서게 될 것이라는 강한 우려가 있어 북
투하할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상황
한의 핵무장이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군사적 위협요
이 초래될 것이다.
소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의 민간 핵연구기관인 ISIS 는 북한이 사거리 1,300km인 노동미사일에 탑재할
‘핵전쟁’은 심리전인가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를 소형화할 능력이 있는 것
여기에 더해서 북한 당국은 장거리 로켓시험발사 및
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같이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
핵실험 행위에 멈추지 않고 ‘핵전쟁’ 위기를 조성하
하게 된다는 의미는 북한의 단·중·장거리 미사일
는 상황을 창출하여 핵전력의 실전사용 의지를 과시
탑재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 전역이
하기에 이르렀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시작을 기점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노출될 위험성에 직면하게
으로 하여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3월 5일),
되어 우리의 안보적 취약성이 심화된다는 사실에 주
남북불가침 무효화 선언(3월 8일), 판문점 직통전화
의를 요한다. 북한은 핵무장의 최종단계인 운반수단
차단(3월 11일), 1호 전투근무태세 선언(3월 26일),
확보에 있어서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다. 조잡
남북간 군통신선 단절(3월 27일) 등 일련의 전쟁상
한 핵탄두라고 할지라도 북한의 핵위협은 더해진다.
황을 연출해나갔다. 북한은 정전협정 백지화와 함
현재 북한은 우리나라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스커
께 남북한관계를 전시상황으로 선포하고 단·중거
드·노동 등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이동식 발사대가
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가시화함으로써 한반도의
총 100여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동식
군사적 긴장을 높였다. 그런데 북한이 선언한 ‘남북
발사대는 스커드 미사일(사거리 300~1,000km), 노
한 관계의 전시상황’은 단순히 ‘재래식 전시상황’을
동미사일(사거리 1,300km) 등이 각각 27~40여 기,
넘어 ‘핵 전시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징
무수단 미사일(사거리 3,000~4,000km)이 14기 등
이다. 북한은 먼저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그들을 겨
이다. 요격미사일(ABM)망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
냥한 ‘핵전쟁소동’이라 강변하고 나섰다. 즉, 북한 당
서 이러한 핵미사일 공격은 폭격기에 의한 원폭의 공
국이 “100여 발의 핵탄을 적재한 미제침략군의 핵동
중투하를 훨씬 능가하는 심대한 위협이 될 것이다.
력 초대형 항공모함타격집단과 전략 폭격기 B51을 비롯해서 지상, 해상, 공중핵타격수단들이 대량 투 입”(조선인민군 최고 사령부 대변인 성명 2013. 3. 5) 된 합동군사훈련이 한반도에서 전개되고 있다고 지 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01 북한은 4월 25일 인민군 창건 81주년을 맞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 회 제1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 ‘약식 열병 행사’를 벌였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그들이 “다종화된 우리 식의 정밀핵타격수단으로 맞받아치게 될 것”이며 “누르
면 발사하게 되어 있고 퍼부으면 불바다로 타 번지
통솔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여야 하며 그 스스로
게 되어”(조선인민군 최고 사령부 대변인 성명 2013.
가 군사에 능통한 군지휘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
3. 5) 있다고 함으로써 대미 ‘핵전쟁’을 직접적으로
한 바 있다.
시사하였다. 북한은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핵 운
그렇지만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같은 지도력을
반수단인 단·중거리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보이면
갖출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건강 이상을
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심화시켰다. 실제
겪고 난 이후 김정일은 김정은을 대장칭호 부여와
로 북한군은 강원 원산과 함남 동해안 지역 등 동해
함께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에 앉히고 얼마 있
안 일대에 이동식 발사 차량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지 않아 급서하고 말았다. 선군정치 통치체제를 이
이동식 발사 차량의 움직임은 ‘핵미사일’ 발사를 통
끌어가기 위해서는 김정은 스스로가 훌륭한 최고 군
한 ‘핵전쟁’ 발발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전의
사지휘관으로서의 경륜을 갖추어야 하지만 그렇지
일환일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핵전쟁’은 위협할
못한 것이 사실이다. 김정은이 이 같은 취약한 군사
수 있는 수단이지 결코 쉽게 전개할 수 있는 것이 아
지도력으로 군대뿐만 아니라 당과 국가를 통치해나
니기 때문이다.
가기는 어렵다. 아직까지 20대에 불과한 ‘어린 세자’ 가 갑자기 ‘군주’의 자리에 앉혀진 것과 별로 다를 바
김정은의 지도자상 강화위한 ‘반미대전’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은 ‘김정은 어른
그렇다면 왜 북한 당국은 이 같은 위험천만한 대미
만들기’를 통해 김정은의 어린 지도자 이미지를 불
‘핵전쟁’ 심리전을 과감하게 전개해오고 있는 것일
식시켜나가면서 명실상부한 최고 군사지휘관 이미
까? 먼저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새로 북한
지를 굳혀나가는 정치·군사적 활동에 집중해오고
의 최고권좌에 오른 김정은의 세습 지도력 강화 필
있다. 평양 당국은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과는 달
요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지적된다. 작년
리 이례적으로 부인 이설주를 대동해서 공개활동을
한 해 동안 김정은은 1차적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벌이도록 하는가 하면 김정은의 담배 피우는 장면을
군권장악이 곧 당 및 국가관련 전권을 자연스럽게
부각·선전하는 모습을 연출하여 ‘김정은 어른 만들
틀어쥘 수 있도록 하는 ‘선군정치식’ 권력세습과정
기’ 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김정은이 군부
을 위한 공식절차를 서둘러 진행하였다. 우선적으
대를 방문하고 군대를 실제로 지휘하는 모습을 과
로 김정은은 최고사령관으로 추대(2011. 12. 30)되어
장·선전함으로써 최고 군사지휘관, 즉, ‘김정은 천
군사최고지도권을 먼저 장악하는 수순을 밟았다. 이
출명장 만들기’ 노력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것은 김정은이 선군정치를 이어가겠다는 신호탄일
아버지 김정일이 그의 군사 최고지도자상을 구축하
뿐만 아니라 군부장악을 가장 우선적인 과제로 삼
기 위하여 각종 국제적 압력과 제재위협에도 불구하
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을 군사지휘관으로서
고 핵실험을 단행하고 장거리 운반수단인 미사일 시
면모를 갖추도록 하여 선군시대의 새로운 통치자로
험발사를 강행하는 등의 군사적 도발을 감행한 것은
정통성을 우선적으로 구축하도록 한 것이다. 생전
익히 알려진 바다. 김정은 역시 아버지의 ‘선군 통치
에 김정일은 군대를 틀어쥔 정치지도자는 군대를 장
자’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군사적 위기조성을 통
악하는 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실제 군대를 지휘·
한 김정은의 군사 지도자상 강화 노력을 인위적으
민족화해 May / June
14 15
로 펼쳐나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
기 위해 북한은 그들의 핵수단을 적극 활용하고자
리 로켓 발사로 미국을 자극하여 ‘반미대전’ 상황을
하는 것이다. 정전협정을 백지화한 상태에서 한반
만들고 김정은이 ‘반미대전’을 직접 진두지휘하여 미
도에서의 ‘핵전쟁’ 위험성을 심화시켜 미국으로 하
국을 굴복시키는 ‘천출명장’ 이미지를 창출해나가고
여금 미·북평화협정체결을 인위적으로 도출해내
있다. 실제로 북한은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한반
려고 한다.
도의 군사적 위기상황을 ‘반미대전’ 으로 치부하여
또한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남한으로부터 경
김정은이 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하는 대결전을 펼
제적 지원을 이끌어낼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그러
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도록 하고 있다. 북한 당국
나 일방적인 경제적 지원으로 인해 한국의 영향력이
은 김정은 자신이 ‘반미대전 결판’ 결정을 직접 내렸
김정은 체제에 악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있다는 전제
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실제로 그들은 “김정은
하에 북한 당국은 군사적 위력 시위로 주도권을 유
시대의 조선은 세기와 세기를 이어 지속되어온 미
지하면서 남북관계 개선 노력을 전개하고자 하는 것
국과의 대결전에 결판을 내자고 하고 있다”(조선신
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그들의 군사적 위력이 결
보 원문자료, 제005)라든가, “반미항쟁을 새로운 단
정적임을 남한 당국에 인식시킨 상태에서 남북한의
계에서 설계하고 그것을 끝까지 전개해나가려는 지
경제적 교류와 협력을 본격화해나가고자 할 가능성
도부(김정은)의 의지”(조선신보 원문자료, 제005)라
이 큰 것이다. 북한이 이제까지 보여온 군사적 긴장
는 점을 선전하고 있다. 김정은이 “조성된 정세에 대
조성은 전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한국을 군사적으
처하기 위한 국가 안전 및 대외부문 일군 협의회를
로 제압하고 있다는 인식을 대내외적으로 심어놓기
소집하고 지도”(1월 26일)하였다거나 서해 군부대를
위한 물리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볼 때,
직접 방문지도하는 모습도 부각·선전하는 각고의
향후 일정한 시간을 두고 북한 당국이 먼저 남북대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대내외 협의회의 장면이
화 제의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일련의 움직
상징하듯이 그 중심에는 새 시대의 개막을 선언하신
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개성공단사업 재
령도자(김정은)의 영상이 있다”(조선신보 원문자료,
가동 문제를 중심으로 실무대화로 나타날 가능성도
제005)라고 선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있다. 아니면 북한이 개성공단사업 및 금강산관광
1)
사업 등 남북교류협력사업 재활성화를 위한 남북대
핵수단을 활용한 주도권 잡기
화 제의가 먼저 나올 수도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다른 한편으로 이번 북한의 군사적 긴장조성은 향
소리가 나듯 우리도 이러한 관계개선 가능성에 미
후에 전개될 미북대화와 남북대화에서 주도권을 잡
리 대비하는 치밀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아나가기 위한 군사적 시위로 이해되기도 한다. 북 한은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고자 한 다. 북한은 미국과의 안보대화를 가지고자 하나 미 국이 미온적인 상황에서 미·북 안보대화를 강제하
정영태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현재 통일연구 원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경찰청 대테러협 상위원, 서울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국 방부 자체평가위원, 국방부 기관평가위원이다.
1) 북한 당국은 유엔결의 후의 전면대결전에서 <비핵화종말>, 반미항쟁의 새 단계로 설정했음을 선포, 조선신보 원문자료(제005) 2013. 2. 4.
특집 위기 이후의 남북관계
01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한·미·중의 협력에 달려 있다 김용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북미, 남북 간 강대강 대결구도 2013년 2월 12일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가 심각한 위협에 노출되 었다. 유엔의 추가 제재 2087호, 2094호가 나오면서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두 달 이상 지속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제가 현실화하면서 상당 기간 긴장이 고조되었다. 아직도 북한은 제2, 제3의 추가 행동 예고를 거두지 않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지금까지는 대화가 실종되고, 외교가 설 자리를 잃은 시간들이 었다. 북한은 대미, 대남, 대 국제사회를 향해 강경 입장들을 쏟아냈다. 한반도가 군사
ⓒ연합
민족화해 May / June
16 17
적 충돌이 우려되는 위기 상황으로 내몰렸다. 북한
대화로의 전환을 위한 모색
의 3차 핵실험과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 이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던 한반도의 위기지수가
후 단기간에 북한과 국제사회, 남북한 간 강대강(强
점차 떨어지고 있다. 한반도 위기지수를 떨어뜨리는
對强)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
작업이 시급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존 케리
북한은 말로써 대미, 대남 ‘벼랑끝 전술’을 펼쳤다.
미국 국무장관의 한중일 순방(4월 12일-15일)을 기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와 ‘키리졸브 한미연합훈
점으로 대화로의 전환이 모색되고 있다.
련’에 맞서 ‘서울·워싱턴 불바다’와 정전협정 백지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나서
화 및 남북 불가침 합의의 폐기를 선언하고 전면전
미사일부대에 ‘1호 전투근무태세’와 사격대기 지시
준비까지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
까지 하며 군사적 긴장을 바짝 끌어올렸으나, 4월
평화통일위원회는 3월 11일 대변인 성명에서 ‘땅과
10∼15일께로 예상됐던 무수단 중거리미사일을 발
바다, 하늘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날린다면 침략
사하지 않았다. 키리졸브 및 독수리 한미합동군사
의 아성과 본거지를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벌초해 버
연습과 확장억지를 내세워 B-52 전략폭격기, B-2
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남한 군은 ‘북한의 군사
스텔스 전폭기를 한반도에 진입시켜 대북 압박에 주
위협에 대해 도발 원점과 도발 지원세력은 물론 그
력했던 한미도 대화가 필요하다는데 한목소리를 내
지휘세력까지 강력하고 단호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고 있다.
맞대응했다. 이런 가운데 남한사회에서는 대북 경제
한미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한·중·일 순방을
적, 군사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이 거론되었다. 심
계기로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케리 장관
지어 일부에서는 ‘선제타격론’이나 ‘남한 핵무장론’을
의 방한에 하루 앞선 4월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
제안한 바 있다.
은 “북측이 제기하는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이후 3차 핵실험 이후 말로써 남측과 국제사회를 향
북한 당국은 대화의 장으로 나오길 바란다”는 내용
한 ‘벼랑끝 전술’을 펼치던 북한이 구체적인 시위의
의 성명을 발표했고,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행동 수단으로 남측을 향해 개성공단 잠정 폐쇄 수
과 대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같은 발언은
순을 선택했다. 개성공단 잠정 폐쇄 선언은 그동안
케리 장관의 방한을 앞두고 한미의 조율을 거쳐 남
한미 두 나라가 보인 대북 강경방침에 대해 북한 당
한 정부가 먼저 대북 대화제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남한 방문에서 케리 장관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
북한은 단계적으로 남한을 압박하고 한반도의 긴장
화하는 것”이라면서 “6자회담을 통해서든 양자회담
을 고조시키는 수단으로 개성공단 카드를 활용하고
을 통해서든 실질적인 미래를 위해서 얘기하고 싶
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개성공단은 폐쇄되고 있다.
다”고 북한과의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밝혔다. 특히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를 우려하는 중국을 방 문하면서 케리 장관은 “만약 (북한 핵보유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우리로서도 강화된 방어 자세를 그 시점
01 한·미·중 순방에 나선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이 지난 4월 13일 중 국의 지도부와 면담을 가졌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중의 협 력이 필요하다.
에 갖춰야 할 긴급성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며 MD 시스템 축소 가능성이라는 선물까지 제시하며 중국
의 역할을 강조했다.
미·중의 역할과 대응
중국의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중국
미국의 대북정책은 중국의 협력 속에 ‘전략적 인내
의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 진전에 전념해왔으며,
(patience)’에서 ‘전략적 비인내(impatience)’로의 변
미국을 포함한 당사국들과 함께 건설적인 역할을 할
화를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케리 미국 국무장관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케리 장관
은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략적
은 한·중·일 순방을 마치면서 미국이 북한과 접
비인내’라고 지칭하며, 중국과 협조해 북한 문제
촉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혀 대북특사 파견과 뉴
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4월 17일 케리
욕 북미 공식 대화채널의 가동 가능성까지 열어 놨
장관은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예산안 청문회에 참
다. 미, 중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공약수
석해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pa-
를 찾는 접점이 마련될 수 있는 중요한 발언들이 나
tience)’가 아니라 ‘전략적 비인내(impatience)’라고
온 것이다.
말하고 싶다”고 언급했다.
북한도 한·미·중의 대화로의 전환 분위기에 정세
이는 북한이 변화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오바마 1
를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가동을
기 행정부의 소극적 정책에서 적극적인 외교적 개
잠정 중단한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101회 생일을 맞
입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쪽으로 정책 기
아 중거리 미사일 발사 등으로 무력시위를 할 것이
조를 바꾸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 발언은 케리 장
라는 일부 전망이 있었지만 실제 행동을 하지는 않
관이 지난 12~14일 한·중·일 동북아 3국 순방 직
았다. 일단 북한이 최근 들어 강경한 행동을 멈춘
후 나온 것이어서 오바마 2기 정부의 대북정책 구상
채 한미 양쪽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
으로 보인다.
인다.
전략적 비인내를 정책화하는 데, 미국은 중국이 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남한 정
를 쥐고 있다고 보고 있다. 케리 장관은 4월 17일
부의 대화제의를 ‘교활한 술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청문회에서 미국이 “군사적 위협 이외에는 북한에
“앞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지 마는지 하는 것은 남
직접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며 “그러나 중국
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려 있다”고 밝힌 것도 이
은 (북한과) 관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런 맥락으로 보인다. 북한군 최고사령부도 4월 16일
이 없으면 북한은 붕괴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과 협
‘최고통첩장’에서 국내 일부 보수단체의 반북 퍼포먼
조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은 우리와 협조할 의지를
스를 비난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원한다면 지금까지
시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에 갖
감행한 모든 반공화국 적대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전
고 있는 영향력을 지렛대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겠
면중지하겠다는 실천적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
다는 입장을 내세운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것도 남한의 대화 제의를 완전 거
중국도 관련 국가들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화
부했다기보다는 남쪽의 움직임을 주시하겠다는 의
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 국방위원회 정
도로 보인다. 전제조건이 충족되면 대화를 하겠다는
책국 성명(4월 18일)에 대한 논평에서, “대화와 협상
의도다. 대남, 대미 강경 행보를 이어온 북한으로서
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하고 정확한 길”이며,
도 출구를 생각하는 고민을 읽을 수 있다.
“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평화·안정 수호, 반도의 비
민족화해 May / June
18 19
핵화 실현은 관련국들의 공동 책임”이라고 말했다.
않고 평화체제, 북한 문제 전반을 포괄할 필요가 있
미국은 4월 30일 독수리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끝내
다. 북미 뉴욕 유엔 채널 가동과 미국의 대북 식량
고 5월 7일 한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북한에 대한
지원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좀 더 진전
외교적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바마
된다면 미국의 대북특사 파견도 고려할 수 있을 것
대통령과 케리 장관 모두 북한의 협상 태도가 과거
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특사로 갈 수도
와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어 실제
있을 것이다.
협상까지는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케리 장관
사태 해결을 위해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핵문제 해결
은 4월 17일 “비핵화를 어떻게 진전시킬 것인지에
을 위한 한·미·중의 협력구도가 얼마나 잘 작동
대한 개념이 (북한에) 없는 한 우리는 보상하지 않을
하는가이다. 우선, 5월 7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대화
것이고, 협상 테이블에 가지 않을 것이며, 식량 지원
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의 보다 구체적인 선언이 나
협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올 필요가 있다. 한미 간, 한중 간, 미중 간 대화가
이제 대화로의 출구를 찾을 시점이 되었다. 남한과
충분히 이뤄져 북핵문제 전반에 대한 한·미·중의
미국, 중국 등 3개국이 협력과 공조를 통해 북한을
공통의 입장이 정리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한·
설득하고 압박하는 ‘투트랙 전략’을 적극 펼쳐야 한
미·중이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에 체계적으로 나서
다. 특히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단 한반도 위기가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
북중 간 책임 있는 수준의 대화가 시급하다. 중국이
이지만, 상황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
고위급 특사를 북한에 파견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우발적, 돌발적 사건이
1위원장에게 국제사회의 입장과 우려를 정확히 전
발생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
달하고 설득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제1위원장과 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관리하면서 한·미·중
지한 대화가 가능한 중국의 고위급 인물, 양제츠 외
의 협조체제가 구축된다면,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과
교 담당 국무위원 등의 방북이 빨리 이루어질 필요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가 있다. 현 사태에 대한 한미의 입장이 가감 없이 설 명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의 입장이 국제사회에 정 확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미 와의 협력 속에 중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빨리 만들어져야 한다. 미국 역시 유엔 채널 등을 통해 북한과 직·간접적 인 대화의 틀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미국 정부 당 국자들이 핵개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면서도 북한이 의미 있는 조치만 취한다면 ‘진 정한 협상’에 응할 것임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하는 것을 주목한다. 북미 간 대화는 핵문제에 국한하지
김용현은 동국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현재는 동 대학 북 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민화협 정책위원, 북한연구학회 이사 로도 활동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말하다
공PD의 북한 취재수첩
기로에 선 남과 북의 접촉지대,
개성 공단
공용철 KBS PD
접촉 그리고 충돌 개성공단은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남과 북 주민들의 접촉지대였다. 북한이 남한 근로자들의 출근을 봉쇄한 4월 3일 이전까지 5만 3,000여 명의 북한 주민들과 850여 명의 남한 주민들이 함께 피와 땀을 흘렸던 곳 이다. 남과 북의 주민들은 개성공단을 통해서 서로의 체제를 배웠다. 말 로만 듣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현장에서 체험했다. 북한의 토지와 노동력, 남한의 자본과 기술을 결합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서로 다른 체제와 제도의 만남은 충돌을 불러왔다. 임금지 불을 둘러싼 서로 간의 인식 차이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남한은 북한 근 로자들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기를 원했다. 북한은 근로자들의 임금총 액을 당국이 지정한 통장계좌로 일괄 입금해주기를 원했다. 지난한 협상 이 이어졌지만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남한에선 북측 근로자들의 임금을 당국에 주면, 당국이 상당액을 제하고 근로자들에겐 조금만 줄 거라는 불신이 깔려 있었다. 북한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다. 개성이 경 제특구이긴 하나 노동의 대가를 전액 화폐로 근로자들에게 지급한다는 것은 북한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남한의 강력한 요구로 ‘개성 공업지구 노동규정’에 임금 직불조항이 들어가긴 했지만, 시행되지 못했 던 것도 북한의 고민이 컸기 때문이었다. 개성공단 입주 초기에 A기업 이 실제로 겪었던 사례를 소개한다. A기업은 임금 직불을 주장하며 북한 당국이 지정한 계좌로 입금하지 않았다. 북측 근로자 대표인 직장장이나 개성총국(북측 당국)이 임금 지불을 요구할 때마다 노동규정상의 직불조 항을 제시하며 버텼다고 한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자 당국자가 조용히
민족화해 May / June
20 21
찾아와서 사정을 하더란다. 개성시내에 환전시스템 과 시장체계가 완비되지 않아서 임금 직불을 받아들 일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고. 노동과 임금(노동보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본 주의와 사회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자본주의는 근 로자들의 노동 대가를 화폐로 지불한다. 근로자들 은 그 화폐로 의식주는 물론 교육, 의료, 보험, 연금 등 노후 비용까지 해결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노
남과 북의 주민들은 개성공단을 통해서
동보상은 다르다. 식량과 의류, 각종 생활필수품을
서로의 체제를 배웠다. 말로만 듣던 자본주의와
현물로 교환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고, 주택도 무
사회주의를 현장에서 체험했다.
상으로 공급한다. 노동보상의 대부분이 현물이다. 의료나 교육, 노후보장도 국가가 책임진다. 근로자 들이 화폐로 받는 것은 ‘생활비’라 하여 극히 소소 한 액수에 불과하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부정
배후시장이 필요하다. 임금 직불이 가능하기 위해
하기 위해서 화폐의 기능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킨 결
서는 북한 체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시장친화적으로
과였다. 시장이 주민들의 생활 속에 뿌리내리긴 했
개혁되어야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임금 직불 논
지만, 북한은 여전히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고
란을 통해서 남과 북은 서로의 차이를 많이 이해하
수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들이 근
게 되었다는 점이다.
로자들의 임금총액을 총국이 지정한 계좌에 입금하
남북한의 제도적인 충돌이 교묘하게 접점을 찾은 사
면 북한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근로자들에게 현물을
례도 있었다. 북한에서 노동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공급하고, 임금은 극히 소액만 지급해왔다. 개성공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당국의 필요에 의해 배치된
단 때문에 자신들의 노동보상 체계를 허물 수 없었
다. 주민들 입장에서 보면 직업선택권이 없다. 개성
던 것이다. 한때는 남한에서 하나로마트를 개성공
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도 당국의 계획에 의
단에 입주시켜서 북한 근로자들의 식량과 생필품을
해 배치를 받는다. 그런데 북한이 제정한 개성공업
현물로 직접 공급할 계획을 세운 적도 있다. 하지만
지구 노동규정에 따르면 남한 기업은 북한 근로자를
근로자들에게 지급하는 월급으로 4인 가족의 한 달
해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남한의 요구가 반영된
식량과 생필품을 공급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
결과다. 완전고용을 자랑해온 북한에서 어떻게 해고
북한의 엄청난 물가 차이 때문이었다. 북한에서 개
가 가능할까? 북한은 남한 기업에서 해고된 근로자
인이 외화를 거래하는 것도 불법이다. 개성공단에
를 개성 시내 다른 작업장에 재배치하면 된다. 남한
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가 임금을 외화로 직접 받을
기업 입장에서 보면 해고지만, 북한 당국이나 근로
경우, 그 돈을 환전할 곳도 마땅치 않다. 환전이 가
자 입장에서 보면 배치 장소가 달라질 뿐이다. 철저
능하다고 해도 그 많은 근로자들이 화폐로 생필품
하게 노동을 계획·통제·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남
전체를 구입하기 위해선 양적·질적으로 광범위한
한 기업에게 해고권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접촉을 통한 변화
개성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항상 같은 모습이
개성에서 북한 근로자들과 접촉했던 남한 주민들
라고 해서 그들의 속내까지 같을 거라고 보면 큰 오
은 희망과 좌절을 수차례 반복한 경험이 있을 것이
산이다. 오랫동안 주민들을 만나온 필자의 경험에
다. 북한 주민들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랬다.
빗대보면 북한 근로자들은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순
호감을 가지고 접근했지만 싸늘한 반응이 되돌아올
간부터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선 공장
때,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주말을 보내
에 24시간 전기가 공급되는 것이 그들에겐 충격이
고 월요일 아침에 만나면 다시 처음 본 사람처럼 어
다. 현대식 생산설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끊임없
색하고 서먹해할 때 정나미가 뚝 떨어지더라고 증언
이 원자재가 조달되고 공장이 돌아가는 것도 충격이
한 사람들이 많았다. 같은 공장에서 일은 하지만 남
다. 작업이 끝나면 날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한 사람들에게 북한 근로자들이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있다는 것도 문화적인 충격이다. 남한 주민들이 매
는 것이다. 북한 근로자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 샤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식 주택과 가정용
이유도 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도
에너지가 공급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부터였다.
엄격한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북한 주민들의 생활수준을 감안할 때 목욕의 일상화
마치고 퇴근하면 각 단위별로 모여서 학습과 강연회
는 사고의 변화까지를 초래할 수 있는 생활의 변화
에 참석해야 하고 생활총화도 실시한다. 특히 생활
다. 겨울철이면 미혼 여성들이 정해진 출근시간보
총화는 엄격하다. 한 주간의 직장생활을 스스로 반
다 두어 시간 일찍 사무실에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성하는 ‘자아비판’을 비롯해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
적이 있다. 남쪽 사무실이 집보다 따뜻하고, 온수로
도 비판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비판해
세수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로 씻어야 화
야 하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 남한 근로자와 단둘이
장도 잘 받는다.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본
속삭였다거나, 웃음을 자주 보이고 정을 나누는 행
주의 기업에서 일하게 되면서 식량과 생필품을 안
동은 엄격한 비판 대상이다. 심하면 사상적으로 문
정적으로 배급받는다는 것도 큰 충격일 것이다. 초
제가 돼 공단에서 쫓겨나거나 교화소(교도소)에 수
기에는 근로자들의 결근율이 높았는데 개성시내에
용될 수도 있다. 북한 근로자들은 생존을 위해 남한
우리가 정수한 식수를 공급하면서 결근율이 낮아졌
동료들을 차갑게 대해야 하는 것이다. 외부와 격리
다. 개성 시민들이 깨끗하게 정수된 물을 먹게 되면
된 공간에서 단둘이 있지 않으면 북한 주민들은 좀
서 배탈이나 설사 등 수인성 질환의 감염이 현저하
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여럿이 함께 있
게 낮아졌기 때문이었다. 북한 근로자들이 출근할
는 공간에선 항상 공식적인 입장을 취한다. 몇 년 동
때 충전기를 가져와 공장에서 전기를 충전해가는 모
안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은 항
습도 변화 가운데 하나였다. 공단에 출근하게 됨으
상 똑같은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적당하게 거리
로써 가정용 전기까지 해결하게 된 것이다. 공단을
를 유지하고 속내를 감추는 것이 생존을 위한 길이
통한 개성시내의 전기 공급은 한류의 유통을 불러왔
라는 것을 체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두면 안
다. 남한 근로자들을 통해서 건네진 CD가 개성시내
전하지만 가까워지면 서로에게 해가 되는 현실, 남
에서 암암리에 유통된 것이다. 개성에 출근하는 북
과 북의 근로자들이 매일 접해온 일상이었다.
한 주민들은 안다. 아무리 사회주의 체제가 위대하
민족화해 May / June
22 23
개성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항상 같은 모습이라고 해서 그들의 속내까지 같을 거라고 보면 큰 오산이다.
다고 해도, 자본주의의 해악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
변화를 통한 접촉
도, 내가 다니는 공장이 ‘조국’이 내게 해주는 것보다
남과 북 주민들의 접촉지대였던 개성공단이 존폐의
훨씬 많은 것을 주고 있다는 것을. 공단에 출근하게
기로에 놓여 있다. 공단가동이 재개되더라도 많은
되면서 이렇게 생활의 변화가 커졌는데 주민들의 의
변화가 예상된다. 입주기업들은 개성 리스크를 분
식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생
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신규투자를 꺼리게 될
존을 위해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것이다. 북한은 북한대로 그동안의 공과를 냉정하
개성공단을 시작하면서 북한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
게 ‘총화’하고, 근로자들 단속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은 주민들이 자본주의 황색바람에 젖어드는 것이었
것이다. 공단의 가동중단을 불러온 당사자가 입주기
다. 그래서 북한 근로자들이 남한 주민들과 직접 접
업이나 북한 근로자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날벼락
촉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차단했다. 근로자에 대한
은 그들이 온몸으로 맞고 있다.
작업지시도 북측 직장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했
접촉지대 9년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도 많
고, 식당도 분리했다. 남측 인원과 북측 근로자들의
다. 북한의 변화는 결국 주민들이 만들어갈 것이고,
개별적인 접촉을 구조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매주
그 여정은 길고도 험난할 거라는 교훈을 얻었다. 북
주말이면 공단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혹독한 사상교
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주민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
육과 생활총화를 실시하는 것도 남풍(南風)을 차단
해서는 우리도 변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달러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접촉은 변화를 낳는다. 공
박스’라는 고정관념으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단 초기부터 개성에서 일해온 남한 기업인의 고백이
어렵다. 긴 호흡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것, 변화를 통
다. “9년 가까이 일하면서 처음엔 막무가내로 떼를
해 접촉하고 접촉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개
쓰던 사람들이 점차 합리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
성공단 9년의 실험이 우리에게 던져 준 교훈이자 민
끼게 되었다.”
족화해와 통일로 가는 길이다.
공용철은 1990년 KBS공채 17기로 입사하여 <도전지구탐험대>, <TV문화기행>, <KBS일요스페셜> 등을 제작했다. 2003년부터는 북한의 시장과 주민생활을 밀착 취재하는 르포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해오고 있다. 2006년 <KBS일요스페셜> “2006 북한, 중국 자본에 종속되는가?”로 통일언 론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개성공단을 말하다
첫 삽에서 근로자 철수까지, 상생의 기록을 짚어본다 편집부
‘남북의 화해협력의 상징’, ‘작은 통일’, ‘옥동자’로 불려 왔던, 개성공단이 잠정 중단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했다. 천안 함과 연평도 폭격 등 남북관계가 최악의 군사적 위기를 겪을 때도 정상 가동되면서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해 왔 던 개성공단이다. 북한이 작년 12월 12일 은하 3호를 발사하고, UN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해 반발하면서 한반도에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 상황이었지만, 개성공단만은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3월 27일 북한은 개성공단 입·출경 채널인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차단했고, 4월 3일부터는 남측 근로자의 공 단 진입을 차단하고 귀환만 허용했다. 8일에는 개성공단 잠정 중단을 선언하면서 북측 근로자들을 전원 철수시켰다.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히고 북한에 실무회담을 제의했지만 북은 거절했고, 이에 우리정부는 남 측 체류인원에 대한 전원 철수 방침을 정하고 철수 조치를 취했다. 이제 개성공단은 사실상 잠정 폐쇄라는 불가피한 상황 을 맞고 있다. 개성공단은 얼렸다가 해동하면 되는 냉동식품이 아니다. 재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루빨리 정상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개성공단이 남북관계 속에서 정치적 압박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도록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하는 어려운 과제도 던져졌다.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으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이에 개 성공단 첫 삽에서, 근로자 철수까지의 상황을 돌아봤다.
‘퍼주기’ 논란을 딛고 남북협력의 상징으로 북한의 개성공업지구법에서 ‘개성공업지구’로 불리는 개성공단은 남 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노동력을 결합하여 남북 공동의 이익창출 을 위해 조성된 공단이다. 개성공단은 1999년 10월 정주영 명예회장 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공단건설에 대해 큰 틀에서 합의한 것이 첫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8월 9일 정몽헌 현대 회장에게 개성을 공단 후보지로 전격 제안했고, 이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민경련과 현대가 ‘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7대 남북경협사업 합의서)’를 체결 하게 된다. 이어 2000년 11월, 현대가 자금 확보를 위해 한국토지공사 와 ‘1단계 개발 공동사업 시행 협약’을 맺어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면 서 가시화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도 남쪽에서는 ‘퍼주기’논란, 낙관적 2003.6 개성공단 1단계 개발 착공식
결과에 대한 우려, 북한과의 협상 난항 등의 문제 제기 등이 있었다.
민족화해 May / June
24 25
통일을 지금 하자는 것이 아니다. 통일은 20~30 년을 내다보고 있다. 화해와 협력이 현 단계 목표 다. 끌려간다고 하지만 북한에 가서 그들이 반세기 동안 주장한 세 가지를 사실상 양보받았다. 미군의 주둔에 대해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받았고 연방제도 북한이 버리고 사실상 우리 의 남북연합을 받아들였다. 국가보안법 문제도 남 쪽이 맡긴다고 했다. 보안법이 김 위원장 답방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국방장관회담에서 절대 무력 쓰지 않기로 했고 철도, 도로 연결에 합의도 했다. 투자보장 등 4대 협정도 맺었다. 임진강 수방대책 도 협의하고 개성공단도 수백 개의 기업이 들어가 려 하고 있다. 이산가족 교류도 편지 왕래, 면회소 로 발전할 것이다. 일방적 끌려가는 것 아니다. 북 2005.10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사무소 개소
한이 자주 날짜와 장소를 바꾸기 때문에 오해하 고 있다. 퍼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1억 8000만 달러를 줬다. 과거 정권 때 쌀 50만톤 등 2억 3000만 달러어치를 줬다. 국회에서 예산통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
과 된 범위에서 준다. 올해 5000억이 통과됐으니
목하고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이 일
그 범위 내에서 준다. 과거 소련과 수교할 때 14억
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남북 군사 당국이
3000만 달러차관을 줬다. 독일은 서독이 동독에
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임시도로 통행문제 타
15억 달러씩 17년 동안 무상으로 줬다. 전례에 비
결, 서해선 임시도로 완공, 북한 최고인민위원회에
춰봐도 퍼주는 것이 아니다.
서 ‘개성공업지구개발규정’, ‘개성공업지구기업창설
김대중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외교·통일분야, 2001.3.1.
및 운영규정’을 채택·발효하면서 2003년 6월 30일 부터 1단계 330만 제곱미터가 개발이 착수되어 첫 삽을 뜰 수 있었다. 2007년에는 1단계 분양 및 1단 계 1차 기반시설이 준공되어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통일냄비시대, 남북경제협력모델로 자리매김 2004년 4월, 북한 개성시 봉동리 일대의 공단부지 조성공사를 시작으로 시범단지(9만 3천 ㎡)가 남한 기업에 분양되기 시작했다. 시범단지는 식기회사 리 2004.12 개성공단 첫 생산품 출시
빙아트, 의류회사 신원 등 봉제, 신발, 전자부품 등 4
개 업종 15개의 기업이 2004년 6월 14일 입주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2004년 12월 15일 첫 개성공단산 제품인 ‘통일냄비’ 1000세트가 생산됐다. 이후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국내는 물론 남미, 유럽 등 FTA 체결과 함께 무관세로 해외로 수출되기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들
도 했다. 그러나 한미FTA 체결과정에서는 FTA 협상 을 타결할 때 개성공단의 ‘한반도 역외가공지역(OPZ Outward Processing Zone)’ 지정 및 개성공단 제품
2007년 5월 25일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의 역외가공 인정 여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을 제정했다. 2009년 12월에는 개성공단 종합지원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현재 섬유 72개, 화학 9개, 기
센터를 완공하였으며, 2010년 9월에는 개성공단 북
계금속 23개, 전기전자 13개, 식품 2개, 종이목재 3
한근로자를 위한 탁아소를 개원하였다. 남한은 북
개, 비금속광물 1개 총 123개로 크게 늘었으며, 2005
한 근로자의 기술생산력 향상을 위해 근로자 교육
년 1,491만 달러에서 2013년 2월까지 총 205,655만
에 집중했고, 공단 내 기업운영 및 복지를 위해 지원
달러의 생산총액을 기록했다. 북한 근로자 역시,
을 아끼지 않았다. 개성공단은 향후 국내기업의 해
2005년 6,103명이었던 근로자 수가 2013년 2월 총
외공단(중국, 베트남) 진출을 대체하는 경쟁력 있는
53,466명으로 늘어났다. 근로자들은 지난해 기준으
공단으로 성장할 것으로 촉망받았으며, ‘옥동자’라
로 월평균 134달러를 임금으로 받고 있다.
는 명성에 걸맞게 ‘남북의 완충지대’이자, ‘남북경제
한편, 남한에서는 2006년 기술교육센터 착공하고,
협력모델’로 제시되기도 했다.
< 개성공단 현황 > 입주기업 가동 현황
<2013.2월 현재>
계
섬유
화학
기계금속
전기전자
식품
종이목재
비금속광물
123
72
9
23
13
2
3
1
생산 현황
<단위:10,000USD>
구분
’05년
’06년
생산
1,491
7,374
’07년
’08년
’09년
’10년
’11년
’12년
18,478 25,142 25,647 32,332 40,185 46,950
’13년(1~2월)
누계
8,056
205,655
근로자 현황
<단위:명>
계
’05년
’06년
’07년
’08년
’09년
’10년
’11년
’12년
’13년 2월
북측
6,013
11,160
22,538
38,931
42,561
46,284
49,866
53,448
53,466
남측
507
791
785
1,055
935
804
776
786
788
※ 출처 :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민족화해 May / June
26 27
위기 속에서도 가동되었던 개성공단,
2009년에는 개성공단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북한
‘위장된 평화’였을까?
은 당시 한·미 키리졸브 훈련(2009.03.9.~20.)을
제2차 남북정상회담(2007.10.4.)에서는 1단계 완공,
문제 삼으며 군 통신선을 차단, 세 차례의 육로통행
2단계 부지 500만 ㎡, 총 150만평 건설과 3단계 1천
을 차단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달 현대아산 직원의
160만 ㎡, 350만평, 2천개 기업입주, 근로자 35만
억류로 사업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명, 160억 매출 달성을 추진하기로 구상했다. 그러
개성공단 내 현대아산 숙소 관리 담당 직원을 ‘탈북
나 MB정부이후 급격히 경색된 남북관계는 2008년
책동 및 체제비난’ 혐의로 억류하고 같은 해 8월 13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 2010년 천안함·연평도 사
일 석방 했다.
건, 5.24조치로 이어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2009년 7월 1일 한겨레신문은 북한의 김정일 국방
상황이 지속되었다.
위원장이 개성공단 임금 및 토지사용료 등의 재계 약 협상과 관련해 ‘개성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어렵 지 않게 하라’는 특별지침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김
<개성공단 추진경과> 2000.08 현대아산-북한간 「공업지구개발에 관한 합의서」채택 2002.11 북한, 「개성공업지구법」제정 2003.06 1단계 개발 착공식 2004.04 통일부, 1단계 330만㎡(100만평) 협력사업 승인
정일 위원장은 DJ-참여정부와의 회담 때 ‘개성공단 과 같은 것을 10개, 20개 만들자’는 입장을 보였다 고 한다. 북한은 개성공단을 ‘6.15의 옥동자’라고 이 야기하면서 우리 측에 2·3단계 계발을 요구해 왔
2004.06 시범단지 15개 입주기업 계약체결
었다. 지난 5년간 ‘남북관계가 바닥을 쳤다’고 할 정
2004.12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
도로 남북관계가 막혀 있었지만, 개성공단은 남북
2005.09 본단지 1차(16만9천㎡) 23개 입주기업과 계약체결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런데 박근혜 정
2007.05 우리 정부,「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제정
부가 출범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커지
2007.06 본 단지 2차(175만㎡) 183개 입주기업 체약체결
는 상황에서, 북한이 개성공단을 정치적 압박 수단
2007.12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출범 2009.05 북한, 개성공단 관련법규 및 계약 무효선언 2009.10 「남북협력지구지원단」 출범 2009.12 종합지원센터 완공
으로 활용하면서 결국 막혀 버렸다. 우리 사회 내부 에서는 개성공단 해법과 존폐를 둘러싸고 논쟁이 증 폭되고 있다.
2010.03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
2007년 생산액 1억 달러 돌파. 2008년 생산액 5억
2010.05 천안함 피격사건 관련 ‘5.24 조치’ 실시
달러 돌파, 근로자 3만 명 돌파. 2009년 생산액 6억
2010.09 개성공단 탁아소 개원
달러 돌파, 근로자 4만 명 돌파. 2010년 생산액 10
2010.09 개성공업지구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억 달러 돌파. 2011년 공업지구 출퇴근버스 통합 운
2010.11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잠정 출경차단 조치 시행 2010.12 연평도 해상사격 훈련 당일 잠정 출경차단 조치 시행 2011.04 개성공단 체류인원 점진적 확대조정 조치 2012.01 개성공업지구 관리위, 종합지원센터 입주 및 운영개시 2013.04 북한의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로 잠정 중단 ※ 출처 : 통일부
영, LNG저장 위성기지 준공, 생산액 15억 달러 돌 파, 소방서 착공. 2012년 근로자 5만 명 돌파, 생산 액 20억 돌파. ‘위장된 평화’라고 문을 닫기엔 남북이 함께 ‘돌파’해 낸 상생의 기록들이 너무 아깝지 아니한가.
진단
김정은 시대의 ‘경제·핵무력 병진노선’
경제발전과 핵무력 강화, 모두 안겨다줄까 정창현 국민대학교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경제 발전
핵무력 강화
일시적 아닌 장기적 노선 북한은 3월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동시에 발 전시키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채택했다. 200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국방공업을 우선적 으로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선군시대의 경제건설노선’을 제시한 지 10년 만에 북이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내놓은 것이다. ‘자위적 핵무력’을 강화·발전시키 면서 동시에 경제건설에도 주력해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구상이다.
민족화해 May / June
28 29
지난해 4월 6일 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진행 한 담화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선군시대 경제건 설노선의 요구대로 국방공업발전에 선차적인 힘을 넣어 나라의 군사력을 백방으로 강화하여야 합니다” 라고 언급해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의 계승을 강조 했지만, 3차 핵실험 이후 국방공업의 핵심이 핵무력 건설에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셈이다. 북 한은 병진노선에 대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 원장 등이 구현했던 “독창적인 경제국방 병진노선 의 빛나는 계승”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항구적으
북한은 지난 3월 3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경제·핵 무력 병진노선을 채택한 바 있다.
로 틀어쥐고 나가야 할 전략적 노선”이라고 규정했 다. 병진노선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노 선으로 제시된 것을 알 수 있다. 3월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병진노선은 2009년 5월 2
대외노선으로는 북미관계정상화를 중심으로 하면
차 핵실험 이후 내부적으로 총화(결산)되어, 대내외
서도 남북·북일 대화를 병행해서 전방위적으로 추
적으로 공개했던 정책들을 종합해 김정은시대의 ‘전
진해 나간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북은 북미고
략적 노선’으로 체계화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병
위급회담,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북일관계정상화
진노선이 나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차
등을 동시에 추진한 바 있다. 이와 관련 김계관 외
핵실험 이후 2010년 당대표자회까지 시기에 북한 내
무성 제1부상은 2009년 12월 방북한 미국의 빌 리
부에서 논의 결정된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처드슨 주지사에게 ‘포괄적인 대외전략’이라고 표현 했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노선전환 논의
둘째, 2차 핵실험 성공으로 북한은 핵보유국이 됐으
첫째, 1990년대 초반 김일성시대에 제시된 마지막
며, 이를 통해 안보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됐기 때
노선을 대내외 정책의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문에 모든 역량을 경제발전, 인민생활 발전에 돌릴
경제노선으로는 ‘3대 제일주의’의 계승이다. 김 주석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인정하든 인정
은 1993년 12월 8일 ‘혁명적 경제전략’을 발표해 경
하지 않든 핵이 있다는 것을 발표하고 실험을 통해
공업과 농업, 대외경제를 중시해야 한다는 ‘3대 제일
서 입증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국제사회도 ‘사실상
주의’를 표방한 바 있다. 3월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특
을 위해 △인민경제 선행부문·기초공업부문의 생
히 북한은 ‘비핵화가 수령님의 유훈이고 우리의 최
산력 증대, 농업과 경공업에 대한 역량 집중을 통한
종목표’이기 때문에 핵무기를 가지려 하지 않지만
최단기간 내 인민생활 안정 △지식경제로의 전환,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어쩔 수 없이 핵무기를 가
대외무역의 다각화·다양화를 통한 투자활성화 등
지게 됐고, 핵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비핵화에도
을 제시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잘 보여준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 지난 4월 8일 재일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지, 한미 연합기지를 소멸 △일본의 사세보 항, 오키
《조선신보》가 “자위적인 핵보유를 영구화하는 길에
나와의 군사기지를 소멸 △태평양의 미군기지를 소
평화도 있고 나라의 부강번영도 있고 인민들의 행복
멸 △미국의 워싱턴·시카고·뉴욕 등 주요 기지들
도 있다는 것은 좌절과 실패를 거듭한 비핵화회담에
을 타격할 것 등이다. 최근 진행된 미국과 한국에 대
서 얻은 교훈”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 같은 북한의 내
한 북한의 무력시위와 위협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
부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판단에 기초해 북한은 6자회담의 성격이 근 본적으로 변화됐다고 결론 내리고, 2009년 7월 “6자
김정은 시대의 기본으로 정립
회담은 영원히 끝났다”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평화
이와 같이 3월 당 전원회의에서 채택된 ‘경제와 핵무
협정 논의가 수반되지 않는 6자회담에는 복귀하지
력 건설 병진노선’은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북한
않겠다는 의미였다. 2010년 1월 북한은 “비핵화에
의 변화된 노선을 함축하고 있으며, 김일성·김정일
관한 전략적 결단이 없이 평화협정 회담을 제안하지
시대의 노선을 계승하면서도 변화된 정세를 반영해
는 않았을 것”이라며 평화협정 문제가 논의돼야 6자
김정은시대의 기본노선으로 정립, 공개된 것이다.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반
3월 당 전원회의 이후 북은 최고인민회의와 내각전
도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동시에 논의한다면 대
원회의 확대회의를 열어 병진노선을 구체화하기 시
화에 나갈 수 있지만 미국이 군사적 압박으로 나온
작했다. 우선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자위적 핵보유국
다면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 실험을 할 수밖에 없
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 ‘우주개발법’
다는 것이다.
을 제정하고, 원자력공업성과 국가우주개발국 신설
셋째, 위성발사와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는 ‘자주권’
을 결정했다. 원자력공업성 신설에 대해 북한은 “나
에 해당하는 문제로 다른 나라가 제재하거나 간섭
라의 원자력공업을 현대화, 과학화하며 최첨단 과학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
기술의 토대 우에 확고히 올려 세워 핵물질의 생산
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
을 늘리고 제품의 질을 높이며 자립적인 핵동력공업
서 “강성국가 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총적 목표로
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내세우고 있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에 있어서 평
북한은 ‘우라늄농축공장’을 비롯한 영변의 모든 핵시
화는 더없이 귀중하다”라며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
설과 함께 2007년 10월 6자회담 합의에 따라 가동을
했지만 “우리에게는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
중지하고 무력화했던 5MW 흑연감속로를 재정비,
이 더 귀중하다”라고 발언해 ‘자주권’을 전제조건으
재가동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로 제시한 바 있다. 북한이 이른바 위성발사에 대해
북한은 앞으로 영변에 건설 중인 시험용 경수로 완
유엔안보리의 제재가 이뤄지자 강하게 반발할 수밖
공 및 가동, 새로운 핵연료 제조공장 및 원심분리시
에 없는 이유다. 북한은 이미 2009년에 미국이 대북
설 공개, 재처리시설 재가동 등 다양한 카드를 내세
선제공격을 할 경우에 대비해 다섯 개의 대응방안도
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4차 핵실험, 장거리 미사
마련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5개 방안은 △일본과
일발사, 위성발사 등을 언제든지 압박카드로 활용할
남조선에 있는 미군기지를 소멸 △남조선의 군수기
수 있도록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민족화해 May / June
30 31
박봉주 내각총리가 8일 김정일국방위원장 추대 20주년 보고대회에서 총 리 취임이후 첫 연설을 했다. 2013.4.8 조선중앙TV
박봉주 총리 기용해 경제개혁 가속화
임 박봉주 총리가 첫 ‘현지요해(파악)’ 대상으로 김정
이와 함께 북한은 새로운 경제건설 노선을 추진하
숙평양방직공장과 황해남도에 있는 협동농장을 선
기 위해 박봉주 당 경공업부장을 정치국 위원으로
택하고, ‘분조관리제의 우월성’을 언급한 것도 경제
승진시켜 내각총리에 다시 기용했다. 2002년 사회
개선에 대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특히, 북한은 함경
주의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 때 내각상무조(태
남도 단천지구 광산들과 공장, 기업소 수익을 전적
스크포스)로 활동했던 인물들도 새로 구성된 내각
으로 경공업과 농업 등 인민생활 향상에 투자하는
상무조에 복귀했다. 지난 4월 22일 열린 내각전원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의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처럼 지식경제시대에
그러나 북한이 채택한 병진노선의 성공 가능성에 대
맞는 경제구조를 완비하고, “경제지도와 관리 개선
해서는 회의적 전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북한이
사업을 박력 있게 밀고 나가며, 대외경제사업을 개
1960년대 초 채택한 ‘국방과 경제 병진노선’도 예산
선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2002년 ‘7·1조치’가
의 30%를 넘는 국방비 투입으로 경제계획 목표 달
나올 때도 이를 위한 상무조가 구성됐고, 2003년에
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은 병진노선이
기용된 박봉주 총리는 2004년 6월 내각상무조를 가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방위력을
동해 가족영농제 도입, 기업경영 자율화, 당의 노력
더욱 강화하면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꾀할
동원 금지, 도매시장 등 유통구조 구축, 상업·무역
수 있는 방도라고 강조하면서 올해 예산에서 국방비
은행 신설 등 파격적인 경제개혁안을 입안했던 것으
를 지난해보다 0.2% 늘린 지출 총액의 16%로 책정
로 알려져 있다.
했지만 추가 예상 투입 없이 핵시설 추가 가동, 미사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경제관리 개선 방도를 강구
일 개발, 위성발사 등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해보라’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내각상
따라서 ‘세계의 비핵화 실현시까지 핵무력을 질량적
무조를 구성해 여러 개선방안을 만들고, 현장 간부
으로 확대·강화’는 북한의 주장은 수사적인 의미가
들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하는 한편, 공장·기
강하다고 볼 수 있으며, 비핵화와 평화협정이 동시
업소, 협동농장, 각 도·시·군의 일부 시범단위에
에 논의, 진행될 경우 경제건설을 위한 환경조성을
서 개선조치를 시행했다. 북한은 이러한 시범단위
위해 양자 및 다자 대화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의 경험을 종합평가한 뒤 성과가 좋게 나온 방안부 터 단계적으로 전국화, 일반화한다는 방침이다. 실 질적인 내각책임제 도입과 공장·기업소, 협동농장 의 상대적 독자성(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이다. 신
정창현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월간 《민족21》 대표와 국민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진단
한반도 안핵(安核)
사용은 안전하게, 처리는 안심하게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安全
安 核
安心
세계 5위의 원전 보유국, 안핵(安核)을 고민할 때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4월 12일 한국 정부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요구하는 데 대해 민감한 시점에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한국이 요구한 권한들 을 인정할 경우, 북한과 이란 문제에 미치게 될 영향에 미국이 예민하다는 것이다. 북한과 이 란에 핵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만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인정해주기 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다만 케리 장관은 “한국이 평화로운 민간 원전사업을 효과적으로 관 리하는 데 상당한 존경과 믿음을 갖고 있다”면서 세계 5위 원전 보유국으로서 한국의 위상 을 확인했다.
민족화해 May / June
32 33
100년 전 핵의 발견 이후, 수십 년 만에 핵폭탄과 핵
에너지의 풍요, 저당 잡힌 미래는 아닌지
발전, 방사선 등 원자력의 이용으로 인류의 문명이
핵에 엄청난 힘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인류가 발견하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지
고 이용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 실험적 발견과 상대
만, 대신 더 위태로워진 것도 사실이다. 특히 2년 전
성 원리에 힘입은 바 크다. 1895년 뢴트겐의 엑스선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구촌 삶의 방식에 변화
발견, 1896년 베크렐의 방사선 발견, 1897년 톰슨의
를 주문하는 신호탄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회를 위
전자 발견 외에도 러더포드는 방사선과 원자의 구조
기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위기를 기
를 밝혀냈다. 물질의 신비가 벗겨지면서 아인슈타인
회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은 나아가 물질과 에너지는 맞바꿀 수 있다는 이른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후쿠시마 사고를 인간의 오
바 질량-에너지 등가법칙을 발표하였다.
만함이나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기회로 삼는다면 이
물질구조의 해명과 이론이 결합되어 인류가 원자력
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을 이용하기까지에는 또 몇몇 과학자들의 공헌이 필
풍요와 안전은 동전의 두 얼굴과 같아서, 성장사회
요했는데 그들 중 대표적인 두 사람이 채드윅과 페
의 견인을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자연환경의 보전은
르미다. 1932년 채드윅은 중성자를 발견하였는데
더욱이 소홀히 할 수 없다. 복은 근심하고 조심할 때
그 때부터 중성자가 핵반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
오고, 화는 과신하고 자만할 때 온다는 말이 있다.
혀졌다. 1934년 페르미가 중성자가 우라늄 핵에 부
복이 되기도 하고 화가 되기도 하는 핵이야말로 우
딪치면 연쇄 핵분열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리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후쿠시마
원자력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1942년 미국 시카고에
는 본시 복도(福島)가 아니었던가?
최초의 원자로가 태어났고, 우라늄으로부터 플루토
핵은 집착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반대하는 것도 능
늄도 만들게 되었다. 한편 미국 오크리지에는 대규
사는 아니다. 핵은 잡기도 어렵지만 놓기도 쉽지 않
모 우라늄 농축공장이 세워졌다.
으니 바람직한 것은 찬핵이냐, 반핵이냐의 소모적
초기의 군사적 이용단계를 거쳐 1950년대 후반부터
논쟁보다는 이왕 예까지 온 것, 핵을 안전하게 잘 다
는 평화적 이용이 확대되어 각국은 산업에 원자력을
루어 함께 가기를 모색하는, 즉 안핵(安核)뿐일 것이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이용되
다. 핵은 장미라고 할까. 아름다운 송이와 날카로운
고 있는 원자력발전은 1950년대 후반에 시작, 1960
가시가 한 가지에 달려 같은 뿌리로부터 자라는 것.
년대 실용화되어 여러 단계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경
송이 밑에 가시가 있듯 인류를 에너지 고갈로부터
제성을 높여 1970년대 이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값
해방시켜줄 수도 있을 핵이 우리 손가락을 찌를지도
싼 전력공급과 함께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
모른다. 굳이 릴케가 아니라도 말이다. 핵은 다름 아
다. 1980년대부턴 안전성을 더욱 높여 오늘날 23기
닌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초여름 장미도 잘 다듬어주
의 원전이 우리나라 전력의 3분의 1을 공급하는 세
면 늦가을 국화까지 이어지겠지만 자칫 소홀히 하면
계 굴지의 원자력 강국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여름 뙤약볕에 말라죽을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인류가 사용한 에너지와 물질의 양 은 그 이전 사용했던 에너지와 물질의 총량보다 많 다고 한다. 그만큼 일상생활은 풍요로워진 반면, 되
돌릴 수 없을 만큼 넘치는 에너지 사용에 익숙해져
입장이 서로 다를 수도 있지만 공론화를 위해서는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는 데 절제와 경외마저 잃은
산업계가 한목소리를 내야 원자력에 대해 국민이 신
듯하다. 우리가 더 갖기 위해 위험한 뒷골목으로 들
뢰하고 진정성을 알아줄 것이다. 더욱이 과거와는
어선 건 아닌지, 지금 편하기 위해 미래마저 저당 잡
다른 산업계의 분위기도 감지됐다. 이번 공론화 과
히고 사는 건 아닌지, 건설과 사용에만 몰두하다가
정에서 시민단체를 맞대결 상대가 아닌 국민의 의견
쓰레기에 묻힐 수도 있다는 걸 잊은 건 아닌지 돌아
을 제시할 단체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볼 때다. 안전한 퇴로도 마련하지 못한 채 원전 증설 만을 밀고 가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미국은 이제 부턴 신규원전을 건설하려 할 때 사용후핵연료 처분
습식 재처리와 파이로 프로세싱(Pyro-processing)
등 출구전략을 미리 마련하게 되어 있다.
원전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을 연료로 가동된 다. 천연 우라늄의 0.7%는 235이고, 나머지는 핵분 열하기 힘든 238이다. 이 때문에 핵분열하는 235 비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율을 높여야 하는데 이게 바로 농축이다. 3~5년간
우리 새 정부 출범 초기, 너무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쓰고 난 연료 일부는 원자로에서 다시 쓸 수 있다.
고 말하기도 한다. 바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에
일부 우라늄 238이 플루토늄 239로 바뀌는데 이는
대한 공론화다. 이제 본격적인 공론화를 펼칠 예정
핵분열이 가능한 연료가 된다. 사용후핵연료를 꺼
이지만, 벌써부터 공론화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
내어 가공해 다시 핵연료로 쓰는 것을 재처리라고
다. 양쪽 이야기를 모두 들어야 하는 공론화는 결국
한다. 그러나 이 재처리과정을 조금만 바꾸면 핵무
시간낭비일 뿐 국내 토론문화에선 결론을 도출하기
기를 만들 수 있으므로 재처리는 국제적으로 민감
는 힘들다는 거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건 공
한 사안이다.
론화를 해야 하는 이유다. 정답을 찾기 위해서라기
습식 재처리는 현재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공법으
보단 여러 사람의 의견과 지혜를 모으고자 함이다.
로, 질산 등에 녹인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우라늄과
재작년 후쿠시마에 이어 작년 줄줄이 국내 원전에
플루토늄을 떼어낸다. 상용 연료를 재처리할 땐 핵
대해 국민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진 가운데 진행될
무기에 쓰이기 좋은 순도 높은 플루토늄 239가 대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문제는 분명 원자력업계의 뜨
량 포함된다. 파이로 프로세싱이라 불리는 건식 재
거운 감자이자 새 정부 원자력 정책에 대한 시험대
처리는 고열을 이용한 공법으로 용융염이나 용융금
가 될 게 분명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3월 18일 수석
속 등을 사용해 전기 정련, 증류, 추출로 이뤄진다.
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원전정책
사실 파이로 프로세싱은 미국에서 1970년대에 개발
이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특히 사용후
됐으며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핵연료와 관련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반드시 선행
핵확산을 저지하는 데도 그다지 이득이 없다는 결과
돼야 할 것을 당부했다. 일각에서 추후 논의하는 것
도 나왔다. 재처리 과정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해내기
이 어떻겠냐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정면돌파하는 방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히펠 교수는 “재처
향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를 하면 20% 농축도의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이란
민족화해 May / June
34 35
“굴지의 원전 강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아궁이 못지않게 땔감도 홀로서기, 즉 국가 에너지 백년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울진원자력발전소
보다도 더 많은 플루토늄이 나올 수도 있다”며 “1974
원소는 방사능이 떨어지는 데 10만 년이 넘어가며,
년에 인도가 이 재처리 시설을 통해서, 처음에는 평
초 우라늄 원소를 연료로 사용하지 못할 땐 핵확산
화적인 이용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핵폭탄을 개발했
과 방사능으로 인하여 엄격하게 처분되어야 한다.
다”라고 강조했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현재 전 세계
최근 미국이 중동 등 소규모 원전 도입국에는 우라
적으로 쓰이고 있지 않지만,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모두 금지하는 황
연구 중에 있다.
금기준을 철저히 적용하되, 한국 등 대규모 원전 운 영국에는 개별적 접근 원칙에 따라 별도로 대처하
사용후핵연료 처리, 실리적 접근이 동시에 필요
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
사용후핵연료를 처리해 다시 쓰느냐, 아니면 처분해
련, 내년 3월까지 개정해야 하는 한미원자력협정이
버리느냐에 대한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해묵은 논쟁
농축과 재처리 금지에서 한국이 예외적용을 받을 수
의 초점이 되었다. 다양한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가 하면, 북한과 이란에
재로서는 재처리 쪽이 좀 더 비싼 걸로 결론지어졌
미칠 수 있는 후폭풍 때문에 결코 녹록하지 않으리
다. 그렇다고 영구처분장을 찾기도 쉽지는 않다. 스
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농축과 재처
웨덴이나 핀란드를 빼곤 심지어 미국마저도 주민 반
리를 집요하게 요구하는 외교적 설득 못지않게, 한
대와 기술 난제 등에 부딪혀 출구전략이 표류 중이
편으로는 세계원전 연료은행이나 해외공장 합작투
다. 게다가 굴지의 원전 강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아
자 등 실리적 접근이 동시에 필요하다.
궁이 못지않게 땔감도 홀로서기, 즉 국가 에너지 백
북쪽의 핵을 머리에 이고, 언제라도 발등의 불로 떨
년대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질 수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핵무장이냐 핵
만약 재처리가 사용후핵연료의 방사능을 낮추기 위
폐기냐 하는 케케묵은 논란보다는 남북을 아우르는
해 사용된다면, 재처리로 인해서 40년 후엔 연료의
핵을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유익하게 사용할 것인
방사능이 99.9%까지 떨어지게 되며, 이와 더불어 천
가. 사용은 한반도 모두 안전하게, 처리는 지구촌 두
연 우라늄을 천 년 넘게 원전에 사용하는 것과 같은
루 안심하게, 즉 안핵이 답이다.
경제적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에 서 목도한 것처럼 사고 시 플루토늄은 우라늄보다 더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어 마냥 좋은 것만은 아 니다. 게다가 플루토늄 239를 포함하는 초 우라늄
서균렬은 MIT에서 핵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프랑스 전력국 립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웨스팅하우스 선임연구원 등으로 근무 하였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특파원 리포트
의회에서 시작해 의회에서 완성되는 미국의 대북정책 신석호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
발사와 최근 핵실험은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과 한국, 역내 국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 의회의 분위기
가와 세계를 위협하는 능력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는 신호”라며 북한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잇따른 도발은 효과 없는 제재와 빈말뿐인
북한이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실시한 뒤
경고로 일관한 오바마 1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음을
정신없이 미국발 기사를 써야 했던 필자는
보여주는 증거”라며 “존 케리 국무장관, 앞으로 새로 국방장관
3일 뒤인 15일(이하 미국은 현지 시간) 재
을 맡을 사람에게 당근과 채찍을 반복하는 과거의 실패한 정
미 한인 민간단체인 한미연구소(ICAS)가
책을 되풀이하지 말고 새로운 대북전략을 개발하라고 촉구한
워싱턴 미 하원 청사에서 ‘한반도 이슈와
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가 거기까지만 말하고 박수를 받은
미국의 안보’를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
뒤 회의장을 나가버렸다는 것. 필자는 냉큼 그를 쫓아 나갔다.
참석했다. 스티브 셰벗 신임 미국 하원 외
이미 입장할 때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넨 사이였기 때문에 셰벗
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공화·
소위원장은 ‘한국에서 막 온 기자인데 한 가지만 물어보겠다’는
오하이오)이 참석한다는 정보를 듣고 미국
필자의 요청에 응했다. 필자는 “미 행정부에 새로운 대북정책
의회가 북한의 도발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
을 촉구한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주문할 것이냐”
는지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라고 물었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북한에 대한 제재를 더
미 하원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현안
강하게(tougher) 하고 중국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더 주의
을 관장하는 셰벗 소위원장은 기조연설을
(attention)를 갖도록 촉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통해 북한의 위협을 역내 현안 가운데 가장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계속하는 것은) 그동안
먼저 언급했다. 그는 청중에게 “북한이 핵
대북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졌고 중국의 노력이 약했기 때문이
무기로 뉴욕을 공격하는 기괴한 유튜브 동
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과 미사일 개발 노력으로 한국과 일본
영상을 봤느냐”며 “지난해 말 장거리 로켓
등 주변국은 당연히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방어능력
민족화해 May / June
36 37
기(WMD) 개발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 다며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북한의 대 외 결재은행인 FTB를 제재하겠다는 것은 합법과 불법을 막론하고 북한으로 들어가 는 달러를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 었다. 필자는 한·미·일 동맹이 중국을 움직여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오래된 주장을 실현 가능성이 적은 일종의 ‘희망사항’이라 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당시 셰벗 의원의 두 번째 주장에 대해서는 그다 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 행정 을 키우고 싶어하며 이는 중국이 좋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
부는 중국을 상대로 더 강력한 대북 억제
맹국들의 이런 상황을 미국이 정치적 지렛대로 삼아 중국에 마
역할을 해달라는 것도 실천에 옮겼다.
땅한 노력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3월 4일 점심을 겸한 인터뷰에 응한 크리스
셰벗 소위원장의 주문은 두 가지였지만 사실상 하나를 더 포
토퍼 넬슨(아시아 지역 현안에 초점을 맞춘
함하고 있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섣불리 북한과 대화에 나서지
미국의 외교정책과 국제소식을 전하는 워
말라는 것이었다. 독자들이 익히 본 바와 같이 그의 주문 세 가
싱턴의 대표적인 정보지 ‘넬슨 리포트’의 편
지는 이후 그대로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현실화됐다.
집장)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에 미 행 정부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느 냐”는 질문에 “미국은 중국 정부와의 당국 간 대화는 물론이고 민간 싱크탱크 등을 통
의회의 목소리가 미국의 대북정책으로 현실화
해서 북한을 감싸는 것이 중국에 도움이 되 지 않는다고 설득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는 “중국 지도부 내에서 북한을 지금처럼
우선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3월 7일 오전 북
맹목적으로 감싸는 것이 과연 옳은지를 놓
한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결의안 2094호를 채택
고 진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
했다. 이 결의는 중국을 포함한 15개 이사국의 만장일치로 10
이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중국 내에서
분 만에 통과됐다. 특히 안보리는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더
그런 논의가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라며 워
중대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싱턴 정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기자 출신인
미국의 독자적이 대북 제재도 이어졌다. 특히 미국 재무부는
넬슨 편집장은 1974년 미국 하원 민주당 출
3월 11일 대통령 행정명령 13382호를 발동하고 조선무역은행
신 의원실 홍보 담당으로 의회에 발을 들여
(FTB)과 백세봉 제2경제위원장이 탄도미사일 및 대량살상무
놓은 뒤 1977년부터 1983년까지 상하원 외
미국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의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의견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교위원회의 아시아태평양소위원회 스태프
오바마 미국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집권 2기 첫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의회는 미국의 대북정책 형성에 큰 영 향을 미치고 있다.
로 일해 의회 내 인맥이 두터운 인물이다. 이후 익명의 국무부 관리들이 사석에서 ‘중 국 역할론’을 강조하더니 급기야 버락 오바 마 대통령까지 나섰다. 그는 3월 13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은 역사적으로
정부가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
북한 정권의 붕괴와 그것의 파급효과를 우
국 행정부는 공식·비공식적으로 ‘이젠 한국이 좀 나서라’며 박
려해 북한의 비행을 계속 참아왔다”며 “하
근혜정부의 역할을 강조했고 동아일보는 이를 ‘K 이니셔티브’
지만 지금은 (중국의) 계산이 바뀌고 있어
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기사를 쓰기도 했다.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국 지도부 가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상황을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한편 넬슨 편집장은 3월 4일 인터뷰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미국 내 보수진영
공론화를 통해 행정부의 정책을 움직이는 의회
에서조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평양에 고 위급 특사를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
장황하게 필자의 취재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북한 3차 핵실험
이 형성되고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 형성과정을 복기해보면 셰벗 소위원장
미 북한에 두 번이나 뒤통수를 맞은 상태고
이 전한 미국 의회 내 의견이 현실화되는 과정이었다는 단순한
강경한 의회가 지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미 의회는 직접 대북정책을 입안하
에 북한에 지원의 손길을 내밀기 어렵다”라
지는 않는다. 그것은 대통령과 국무부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의
고 워싱턴 내부의 신중한 분위기를 전했다.
역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국민을
하루 전날인 3월 3일 저녁 워싱턴 한국 특
대표하는 의회는 이처럼 다양한 공론화의 장을 만들어 행정부
파원단과 간담회를 한 미국 스탠퍼드대 한
에 정책 입안을 요구하고 방향을 제시하고 점검하고 국민이 알
국학연구소 신기욱 소장과 미 국무부 한국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과장 출신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부소장은
시도 때도 없이 열리는 청문회는 가장 중요한 공론화의 장이
“지난 20년 동안 대화로도, 제재로도 북한
다. 민감한 대외정책에 대해 일절 함구하는 행정부 관리들도
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 미국은 이제 지친
의회 청문회장에 나오면 각종 사안에 대한 현재 상황과 판단,
기색이 역력”하다며 “새로 출범한 박근혜
앞으로의 정책 대안에 대해 술술 이야기를 한다. 백악관과 국
민족화해 May / June
38 39
무부 등도 거의 매일 브리핑을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고비마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단편적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이론화된 형
이처럼 미국 대북정책 형성에 의회의 역할
태로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청문회장인 것 같다.
이 크다는 주장이 한국의 대북정책 담당 당
3월 7일 오전 미 상원 외교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가 대표적인
국자들과 북한 문제를 국제적 시각에서 연
경우다. 증인으로 나온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구하는 전문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명확
는 이제까지 단편적으로 공개됐던 오바마 행정부 2기의 대북
하다. 미국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기 위해서
정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고했다. 골자는 △중국의 협조
는 의회 구성원들의 생각과 의견이 무엇인
가 절실하며 이를 위해 중국과 깊게 관여하고 있다. △동맹국
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의회를 공부하
인 한국과 일본에 핵우산과 통상병기, 미사일 방어(MD) 시스
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이 의회
템을 통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제공하고 재확인한
의 오피니언을 주도하고 있는지, 이들이 어
다. △북한을 핵 보유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과 대화
떤 통로로 어떤 정보를 얻고 있는지 파악하
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로 요약된다.
고 부단히 접촉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의
박근혜정부가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뒤
회를 통해 미국의 정책을 움직일 방법은 무
한·중·일 3국을 방문해 북한에 대화 제의를 했던 존 케리 미
엇인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국무장관이 진의를 놓고 벌어진 논란을 정리한 곳도 바로 의
역설적으로 이 조언은 북한에도 그대로 적
회 청문회장이었다.
용된다. 필자가 보기에 2013년 현재 미국
그는 4월 17일 하원 외교위원회 2014회계연도(2013년 10월
하원은 북한 문제에 강경한 공화당 의원들
∼2014년 9월) 예산안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 비핵화 조치를
이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
위한 굳은 관념이 없다면 우리는 보상하지도 않을 것이고 협
는 상원에서도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
상테이블에 나가지도 않을 것이며 식량지원 협상도 하지 않을
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2기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히면 국
에 들어서도 북한의 도발과 대화 제의라는
무장관인 나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똑같은 거래를 되풀
‘이중 전술’ 공세에 ‘전략적 인내’라는 초심
이하고 과거의 전철을 밟을 생각은 절대 없다. 러시아나 중국,
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북
한국, 일본, 미국 모두의 정책은 비핵화”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중심을 잡고 있는
이날 북한 비핵화를 위해 중국의 협조를 최대한 이끌어낸다는
의회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을 북한 당국자
미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다시 확인하면서 “중국이 없으면 북한
들에게 전하고 싶다.
은 붕괴할 것이라고 말하는 게 꽤 적절하다고 본다”며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겨냥했다. 그는 다음 날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나와서는 북한이 대 화의 조건으로 내건 유엔 제재 철회 등에 대해 “수용할 수 없 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북한이 협상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이 라며 “(협상을 위한) 첫 수(beginning gambit)로 볼 준비가 돼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북한의 태도 여하에 따라 대화에 나설
신석호는 1995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2002년부터 11년 째 북한과 남북관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2008년 2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한국 신문기자로는 처음으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2년 12월 워 싱턴에 부임해 오바마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에 특화된 보도와 집필을 하고 있다.
남북관계와 한국경제
장기화된 북한리스크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예측불허의 한반도 정세
가와 기업의 부도위험률과 신용도를 나타내는 CDS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최근 한반도 정세는 예측불
프리미엄과 국제신용기관의 한국 신용등급 등에 부
허의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유
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2094호 채택과 한미합
그러나 실제로 1990년대 이후 지난 20여 년간 북한
동군사훈련 등에 반발하여 정전협정 백지화와 남북
문제는 한국경제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불가침합의 폐기를 선언하였다. 4월에는 남북 간의
사건·사고 발생 당시에는 주가와 환율, CDS 프리미
민간 경제협력사업인 개성공단마저 출입 제한과 북
엄 등이 변동하였으나, 주가의 경우 짧게는 하루, 길
한 근로자 전원 철수 조치를 취해 4월 24일 현재 가
게는 7∼10일 정도가 지나면 대부분 회복하였다. 국
동 중단 17일째를 맞고 있다. 남북 간의 정치·군사
제신용기관들도 남북 간 긴장을 직접적인 이유로 국
적 긴장고조가 남북경협에 영향을 미쳐 북한 리스크
가신용등급을 조정한 사례는 없었다. 이 같은 현상은
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분단의 장기화와 오랜 경험으로 인해 북한 리스크가 만성화되어 있었기에 내성이 생겼고, 남북 간 긴장이
2013년 북한 리스크는 이전보다 심각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의 학습
그동안 남북관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한반도의 지
효과(learning effect)에 근거한다.
정학적 리스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들
그러나 최근 북한의 긴장 고조와 한국경제에 미치는
이 많았다. 3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비롯하여, 북한
영향은 이전과 다소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지금 한
최고지도자의 사망, 서해교전과 천안함·연평도 포
반도는 군사·안보적으로는 리더십 변화 속에 긴장
격 사건, 미사일 발사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 리스크
이 중·장기화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저성장과
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주가와 환율 그리고 국
경기 부진 상황까지 겹쳐 북한 리스크가 자칫 한국경
민족화해 May / June
40 41
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를 포함한
우선 군사·안보적으로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매우
포괄적 안보 논리 접근과 위기관리 필요
엄중한 상황에 있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의 새 정부
DJ정부-참여정부-MB정부 출범 첫해의 경제성장
출범과 오바마 2기 행정부 등장 등의 새로운 리더십
률은 임기 내 가장 최저치를 기록했던 신정부 1년차
변화를 겨냥하여 지난해 말부터 지속적으로 위협 수
증후군이 있었음을 비춰볼 때, 첫 단추 꿰기가 매우
위를 높여오고 있다. 김정은 체제 1년과 김일성 전 주
중요하다. 신정부 첫해에 북한 리스크까지 겹쳐 해외
석의 생일 등 4월까지의 굵직굵직한 행사일을 맞아
자본 유출, 투자와 소비 심리 냉각 등으로 경기침체
강한 지도자 이미지 부각을 통해 내부 결속 강화와 체
가 심화되면 고용 악화 등으로 창조경제 실현이 어
제 공고화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북한은 핵
려워질 수도 있다. 따라서 남북문제의 안정적 관리
보유국임을 개정 헌법에 명문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와 위기확산 방지를 위한 당국 간 대화가 시급하다.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과 3차 핵실험에서의 경량화
우선은 북한의 추가적 도발 방지와 상황 관리에 초점
진전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을 맞춰 북한을 자극하거나 도발의 빌미 제공 여지를
점하기 위해 긴장을 계속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차단하여 무력충돌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 또한 대북
특히 정전협정 60주년(7·27)을 맞아 불안정한 한반
인도적 지원 확대, 개성공단 현안에 대한 One-point
도 상황과 핵보유국 지위 인정 요구를 내세워 북방
긴급 회담 제안 등 대화국면 전환을 위한 보다 적극
한계선(NLL)과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고 평화협정을
적 자세가 요구된다.
체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
남북경협은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내수 진작의
해 과거의 북한 리스크는 단발성에 그친 반면에 이번
효과가 있다. 이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내수 부진으
에는 장기화되고 있으며, 개성공단마저 중단되고 대
로 잠재성장률을 밑돌고 있는 한국경제에 매우 중요
화 채널이 막힌 상황이어서, 북한이 출구 명분을 찾
한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실질적 동
지 못하면 긴장 고조 국면은 당분간 장기화·확산될
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새 정부 출범 초기에 남북
우려가 있다.
간 기싸움보다는 평화안정을 위한 보다 적극적 자세
한국경제 역시, 매우 세계경제 회복 지연 속에 수출
로 첫 단추 꿰기가 매우 중요하다.
과 소비, 투자 등 내·외수 부진과 엔저 영향 등으로
세계는 지금 경제 전쟁 시대이다. 국가안보 이상으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2%대의 저성
로 경제안보도 중요하므로 남북문제를 군사안보 논
장 함정에 빠져 있다. 오죽했으면 현오석 경제부총리
리를 넘어 경제안보가 포함된 포괄적·총체적 접근
가 북핵보다 엔저가 더 큰 문제라고 했을까?
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이외에 한반도 위기의 장기화와 위기 확산은 국민들 의 안보 불안과 남남갈등을 초래하여 정치사회적 혼 란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남북 간 신뢰 형성을 위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은 자칫 MB정부 의 비핵·개방·3000처럼 시작도 못해보고 중단될 우려가 있다.
홍순직은 중앙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현대경제연 구원 통일경제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민주평통 상임위원과 북한 연구학회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앙대 대학원 북한협력개발학과 겸임교수와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다.
기획
상생 한반도의 길을 찾는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북한의 환경실태,
다자적 국제협력이 필요하다 홍이경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
평양 인근의 농경지, 산지에는 다락밭이 개간되어 있다.
민족화해 May / June
42 43
경제 회복을 저해하고 있는
농작물 생산을 위해 구릉지 산림을 다락밭 등으로 개
북한의 환경실태
간하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식량 획득을 위한 산림훼손 이외에도 농촌자연재해
유엔환경계획(UNEP)이 북한 국토환경보호성과 공
가정의 난방과 취사를 위한 무분별한 벌목은 산림
동 조사하여 2012년 10월 말 외부에 공개한 「북한
파괴를 가중시키고 있다. 농촌 인구의 대부분이 에
환경과 기후변화 전망 보고서(DPRK Environment
너지를 땔나무(firewood)에서 얻고 있어, 생활용 땔
and Climate Change Outlook)」는 북한의 환경문제
감 소비로 인해 감소한 산림의 면적은 1990년 1,944
가 심각한 상태이며 이러한 환경문제가 경제 회복
㎢에서 2005년 3,988㎢로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
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였다.
2000년대 이후 북한 당국도 산림 황폐화의 심각성을
UNEP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국토의 80%를 차지하
인식하고 산림조성과 보호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으
는 산지는 숲 면적이 크게 감소하였으며, 황폐화된
나, 경제난으로 인해 황폐화된 산림을 복구하기 위
산림으로 인해 가뭄, 홍수, 산사태 등의 자연재해가
한 사업들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쉽게 발생되고 농경지가 훼손되는 문제가 야기되고
경제난과 산업 전반에 걸친 생산 침체로 인해 1990
있다. 농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북한은 과거 식량증
년 이후 북한 에너지, 제조업 생산 부문에서의 온실
산을 위해 산림을 농경지로 전환시키는 정책을 추진
가스 배출은 감소하였다. 북한 자연재해 온실가스
하였다. 2005년 북한의 산림자연재해(forested land)
배출량은 1990년에 총 186,515Gg이었는데, 2007년
은 8만 9,273㎢, 농경지는 20.421㎢로 조사되었다.
93,919Gg로 감소하면서 절반 가까이 감소하였다. 그
이는 인구 기준으로 산림은 1인당 약 0.4ha인데 비해
러나 2000년대 후반기 북한 제조업이 미약하지만 회
농경지는 1인당 0.08ha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
복세를 보이기 시작하였고, 에너지 소비가 다시 증가
듯 농경지가 부족하다 보니 가파른 경사지에서 이루
하면서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증가하는 것으로 조
어지는 농경도 보편화되어 있다. 문제는 10도를 초과
사되었다. 북한이 2000년대 들어 ‘4대 선행부문’과
하는 경사지에서는 토양 침식과 유실이 심각하게 발
광업부문에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금속, 기계, 군수부
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북한
문을 중심으로 일부 공장과 기업소의 가동률이 2000
의 경제난으로 인해 국가의 식량배급기능이 약화되
년대 중반 이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발전
어 북한 주민들은 산림을 농경지로 개간하여 식량을
소건설, 주택건설, 산업시설의 가동률 증가로 인해
생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화석연료의 소비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산업
1990년대 이후 농민을 포함한 상당수의 북한 주민
부문에서의 에너지 소비 증가로 인해 이산화탄소, 이
들은 텃밭, 뙈기밭, 다락밭 등에서 ‘부업 농사’를 하
산화황, 이산화질소 배출이 증가하였다.
고 있다. 2008년 북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
평양지역은 석탄 연소로 인한 분진이 2005년 이
900만 명 이상이 가정 단위로 채소 및 과수 재배에 참
후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UNEP 보고서에
여하고 있으며, 이는 16세 이상 경제활동 대상인구의
따르면 평양의 2008년 연평균 아황산가스 농도는
56%에 달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농업 관련 부
0.009ppm으로 서울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활동은 취약계층의 식량난 완화에 기여하였으나,
평양시와 북한의 주요 산업도시에서 배출되는 대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제사회의 환경지원 현황 UN기구와 국제 NGO들은 이러한 북한의 상황을 인 식하고 북한의 경제회복과 지속가능개발을 위한 자 북한 만경대에서 바라본 대동강 유역
체 역량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환경부문에서의 기술, 자금 지원을 추진하였다. UNDP는 1999년부터 농업
오염원은 주로 석탄, 중유 등의 화석연료 사용과 관
복구 및 환경보호(Agricultural Recovery and En-
련되어 있다. 이러한 인위적인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vironment Protection, AREP) 프로그램을 추진하면
더불어 중국과 몽골에서 발원하는 황사가 북한 대기
서 북한 자연재해의 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들을 추진
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였다. AREP 프로그램은 식량 위주의 대북 구호성
수질오염에 있어서도, 하수처리시설에 대한 투자 부
지원을 중장기적으로 농업생산 증대를 위한 기술지
족, 폐수처리 규제 부족, 기술적 한계 등으로 인해 북
원과 개발사업으로 전환하는 목적으로 추진되었다.
한의 강과 하천에 미처리된 폐수가 방류되어 수질의
당초 계획하였던 3억 달러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였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강과 하천의 수질은
지만, 국제기구와 공여국들은 1억 3,000만 달러 상당
자연재해와 계절에 따른 차이가 크다. 오염물질 밀도
의 대북지원을 AREP 프로그램을 통해 집행하였다.
는 수위가 낮은 봄에 가장 높은 경향이 있고, 비가 많
1999년부터 2007년까지 UNDP는 북한에서 106개의
이 와서 수위가 높은 가을에 가장 낮은 경향이 있다.
독자적인 지원사업을 수행하였으며, 이들 사업을 수
북한 하천의 주요 오염원은 인간과 동물이 배출하는
행하기 위해 UNDP는 1,891만 달러를 지원하였다.
유기물이며, 심각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광산과 공
2007년 3월부터 2009년 9월까지 북한 내 활동을 잠
장이 많이 존재한다. 자연재해에 따라, 공업폐수가
정 중단하였던 UNDP는 2009년 대북지원을 재개하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류되어 수질오염과 하천
면서 지속 가능한 농업에너지 개발과 종자생산 증
생태계 파괴를 야기하고 있다. 북한 당국은 내각결정
대 등의 6개 분야 사업을 중점 추진할 것을 밝혔다.
채택과 수자원 관련 입법을 통해 수질보호에 노력을
국제기구뿐만 아니라 비정부기구도 북한 취약계
기울이고 있다. 북한은 매년 봄철에 중소규모 강과
층의 위생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보호를
하천 정리주간(3월 첫째 주~4월 마지막 주)을 지정
위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였다. 보건 분야에 대
하고, 매년 가을(11월 첫째 주~12월 말)에는 강과 하
한 지원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WASH(water,
천 개선·정비를 위한 전국적 운동을 벌인다. 북한은
sanitation and hygiene) 사업은 지원 금액은 상대적
수질관리와 관련된 입법에도 노력을 기울여, 대동강
으로 적지만 도시와 농촌 자연재해의 깨끗한 식수 공
오염방지법, 수자원법, 환경보호법, 하천법 등을 제
급을 위해 수자원 개선, 하수처리, 공중위생 개선과
정하였다. 이러한 운동과 입법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관련한 환경보호 사업을 추진하였다.
경제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환경문제를
UNEP(유엔환경계획)와 한국 정부는 북한 자연재해
크게 개선시키기 어려운 실정이다.
의 환경개선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11월 신탁
민족화해 May / June
44 45
기금 설립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였으나, 북한 핵문
에너지부문 재건과 연계하여 환경 관련 사업들을 동
제와 대외관계 악화로 사업 추진이 보류되고 있다.
시에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핵문제가 해결되는 시
북한 환경개선을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참여를 유
점에서 EU와 회원국들은 북핵문제의 돌출로 인해 집
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한국이 신탁기금 조성
행이 유예되고 있는 「유럽연합-북한 협력전략 보고
을 위한 초기자금으로 40억 원을 기탁하기로 하였
서(The EC-DPRK Country Strategy Paper 2001-
다. 조성된 신탁기금은 북한의 산림, 토양, 대기, 수
2004)」에서 설정한 대북 경제지원 프로그램을 추진
질 등의 북한 자연재해 환경개선사업에 추진될 계획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었다.
북한 자연재해 환경보호 및 지속가능개발을 지원하 는 방안으로 다자간 신탁기금 활용을 모색할 수도 있 다. 신탁기금은 특정한 개발 목적과 사업 수행을 위
북한의 환경개선을 위해
해 일국 또는 다수의 국가가 자금을 출연하여 설립하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필요
는 기금으로, 일반적으로 세계은행 또는 UN 기구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다자간 공여신
북한의 식량난 완화와 지속가능발전을 지원하기 위
탁기금을 통해 개도국, 위기 국가들에 대한 지원이
한 국제사회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이 세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신탁기금을 통한 대북지원은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대남 강경정책을 추진함으로
참여하는 국가와 국제기구를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써 대북지원은 크게 감소한 상황이다. 2008년 이후
있고, 또한 공여국과 단체들이 공동으로 사업을 평가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인도
하고 추진 현황을 점검할 수 있어 대북지원의 투명성
적 사업(긴급구호 식량제공, 백신사업, 산모 및 어린
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 건강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중단되었다. 2010년
북한 환경문제를 개선시키기 위해 한국과 국제사회
국제사회의 지원 금액은 2,480만 달러로 대북지원이
의 노력과 지원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문제가
시작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였고, 북한에서 활동 중
해결되지 않는 한 국제사회와 한국의 환경 분야에 있
인 UN기구들은 계획한 사업에 필요한 1억 3,700만
어서 대북지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
달러의 9.8%만을 모금하였다. 이렇듯 북한 핵문제의
다. 북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 환경 분야 지원을
미해결에 따른 대외관계의 악화는 한국과 국제사회
위한 자금의 모금이나 이용에도 제한이 생기기 때문
의 협력사업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다. 북한의 환경문제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뿐만 아
북한 당국은 비핵화 실천을 통해 국제사회와의 관계
니라 남한의 환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선에 우선적으로 노력하면서 환경문제 개선을 위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
한 국제협력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되면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이 핵문제 해결과 대외관계 개선을 위해 전향적
북한 환경문제 개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인 태도를 보이면 한국과 국제사회는 다자적 국제협 력 방식에 의한 대북지원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북 한의 경제 회복을 위해 필요한 농촌 자연재해 개발,
홍이경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통상학 석사학위를 취득 하고, 현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통일국제협력팀 연구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기획
상생 한반도의 길을 찾는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CDM 협력사업,
남북 상생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박지민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남북 공동의 기후변화 대응 및
에 대한 우려가 더욱 심각하게 대두하고 있다. 국립
CDM 협력 필요성
환경연구원에서는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남한의 피 해 비용만 2100년까지 최대 2,800조 원에 이를 것으
남북관계는 북한의 핵위협 사태, 개성공단 사업중단
로 추정하고 있어, 남북한이 공동의 기후변화 대응방
장기화 등으로 어느 때보다 긴장상태에 있다. 하지
안을 마련하여 협력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2009년
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남북관계를 보았을 때 비(非)
녹색성장위원회는 녹색성장 5개년계획(2009~2013)
정치적인 영역에서부터의 남북 간의 협력을 강화하
의 50대 실천과제로 저탄소를 지향하는 그린 한반도
여 신뢰관계를 회복해나갈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대
를 선정하여 북한 산림복구 지원, 남북 간 신재생에
응은 비정치적 영역에서 남북의 협력이 절실한 사업
너지 협력 기반 조성, 남북 공동의 기후변화대응 등
중 하나이다.
을 추진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기후변화는 남북한 공동의 문제로 남한과 북한 모두
특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청정개발체제(Clean
지구온난화로 한파, 가뭄, 태풍, 집중호우 등의 이상
Development Mechanism, CDM)1)사업은 남한과 북
기후가 빈번히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겪고 있다.
한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경협부문이다. 남한은 북
더욱이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 보고
한 CDM 사업추진을 통해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달
에 따르면, 지난 100년 사이에 전 세계의 평균기온은
성할 수 있고, 북한은 경제성장을 위한 투자 프로그
0.74℃ 상승했지만, 한반도는 1.6℃가 상승해 온난화
램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북관계에
1) C DM 사업은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지닌 선진국이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투자하여 획득한 탄소배출권을 자국의 감축의무 달성에 활용하는 제도로 시작되었으나, 현재는 비(非)의무감축국이 독자적으로 CDM 사업을 발굴하고 투자하여 탄소배출권을 팔거나 이월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CDM 사업을 통해 투자국은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고, 투자유치국은 투자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이나 자본투자를 유치함으로써 지속가능한 개발에 이바지할 수 있다.
민족화해 May / June
46 47
평양 중화군 양묘장에 건설된 태양광 발전기
서 에너지부문의 CDM 사업은 선진국과 개도국이 갖
북한의 CDM 사업
는 범용적 효과 이외에도 다양한 외부효과(external
잠재력과 추진현황
effects)를 기대해볼 수 있다. 즉, 북한 지역에서 남한 기업의 CDM 사업이 확대되면 궁극적으로 남북 간
북한은 산림이 크게 훼손되어 있고 에너지 설비가 노
에너지체계의 연계에 이바지할 것이다. 또한, CDM
후화되었으며 에너지 효율은 낮지만, 화석에너지의
사업은 저비용으로 북한 에너지 공급력 확대를 지원
비중이 높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과 함께
함과 동시에 앞으로 전개될 남북 경제협력 사업들에
CDM 투자 잠재력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필요한 에너지 인프라를 보다 낮은 비용으로 구축하
있다. 산림과 함께 수력, 풍력발전, 바이오매스 등의
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 따라서 실리와 명분을 동시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는 물론 송배전망 설비 및 가
에 추구할 수 있는 CDM 사업에 대한 남북한 협력을
정·산업부문의 에너지효율 개선 부문에 대한 CDM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사업은 잠재력이 높다. 더욱이 전 세계적으로 CDM 사업이 활발한 가운데, 북한도 에너지난 해결을 위해
로는 연간 약 19만톤 수준에 달한다. 이들 사업은 모 두 2012년에 등록된 소규모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으 로, 북한이 자국 CDM 사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식이 다. 국외 사업참여자로 체코의 토픽 에네르고(Topic 평안남도 남포시의 영남배수리공장에 건설된 풍력발전기
Energo)가 참여하고는 있지만, 토픽 에네르고는 북 한 수력발전소 건설 CDM 사업투자에는 관여하지 않 고, 이 사업으로부터 발급받은 탄소배출권을 북한으 로부터 양도받아 판매하는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만 약 이들 6개 CDM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수력, 풍력, 바이오매스 등의 신재생에너지 개발 및
북한은 앞으로 연간 19만 톤 이상의 탄소배출권을 발
에너지효율 개선 등의 CDM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급받아 매년 약 190만 달러(탄소배출권 가격을 $10로
남북 간 협력 여지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
그러나 풍력을 포함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CDM 사
다. 또한, 이를 통해 총 61.5㎿의 수력발전소가 신규
업은 대규모 비용이 소요되고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
로 건설되어 북한 전력난 해결에도 다소나마 이바지
아 어려움이 예상된다. 더욱이 신재생에너지로부터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북한에서 탄소배
전력을 공급 시 직류로 송출되는 전류를 교류로 변
출권을 발급받기까지는 북한 내부의 투자환경으로
환시키는 전류 변환장치를 북한 송배전망에 장착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야 하는데 이에 대규모 비용이 소요된다. 경제성 문 제를 떠나서도 북한에 건설된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북한 송배전망의 낙후로 전력 공급이 효율적으로 이
불안정한 북한의
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
CDM 투자환경
발전은 북한 특정 지역으로 사업 대상지를 한정하여 북한 송배전망과 연계하지 않는 소규모 시범 사업을
북한은 제도적 불안정성과 시장의 불투명성, 열악한
우선하여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인프라 그리고 정보 공개의 폐쇄성 등으로 CDM 투자
한, 북한 산림지원사업은 난방용과 취사용 에너지로
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특히 북한에서의 외국인 투자
이용 가능한 태양열 또는 지열, 바이오에너지 설비를
제도의 불투명성이 높은 상황에서 CDM 투자를 추진
CDM 사업화하여 지원하는 것과 병행되어야 할 것
하기는 어렵다. 한번 투자하면 탄소배출권을 받는 기
이다. 북한의 산림이 황폐해진 것은 난방용이나 취
간이 적어도 10년에서 21년으로 장기간이 소요되므
사용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북한 주민이 산에
로, 오랫동안 투자안정을 담보하기에는 북한의 현 외
서 나무를 베어다 사용한 것이 주된 원인이라 할 수
국인 투자제도는 불안도가 너무 높다고 할 수 있다.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엔에 등록된 북한 CDM 사업들도 사업등록
북한은 2013년 2월 18일 현재 총 6건의 CDM 사업을
후 탄소배출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모니터링, 사업
UN에 공식적으로 등록하였으며, 예상감축량 기준으
검증 및 입증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북한은 이 과정
민족화해 May / June
48 49
에 높은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어 실제로 탄소배출
CDM 협력을 위한 합의서”를 만들고, 이 합의서에 의
권을 발급받는 데는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모니터링
해 CDM 협력 사업들을 우선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
기간 동안 북한 기업이 등록된 사업계획서에 따라 설
다. 북한은 우선 특정지역을 CDM 구역으로 설정하
비운영 및 관리, 기술유지, 사업활동 기록 등이 실행
여 사업을 시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될지에 대한 여부가 불투명하다. 특히, 북한의 설비
이 특별구역 안에 관리기구를 세워 CDM 사업에 대
공개에 대한 폐쇄적 태도로 검증 및 인증단계에서 반
한 모든 투자 관련 행위들을 담당하게 되면 남한 투
드시 필요한 절차인 현장심사, 실무기록(raw data)
자자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의 관리가 쉽고 CDM 사
점검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업관리 및 행정조치 등이 크게 수월해진다. CDM 사
국제적으로도 탄소배출권 거래가격과 포스트교토
업 초기에는 소규모 설비, 주민과의 접촉도가 낮은
체제하에서의 탄소배출권 판매가능 여부에 대한 불
설비를 먼저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고 성과를 보아가
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며 대규모 사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시장 구조와 관습상의 문제도 크다. 통상 CDM
북한에서 CDM 사업이 확대되려면 북한이 신뢰도가
사업의 수익이 탄소배출권에만 의지하는 경우는 드
높은 CDM 투자유인정책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 중요
물고 탄소배출권 외에 판매수입을 위한 투자가 이루
하다. 현재 북한 CDM 사업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진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탄소배출권 수입 외에
CDM 사업 자체보다도 투자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
북한 시장에서 투자 이익을 얻기가 매우 제한적이다.
다. 한편 북한으로서는 이러한 투자유인정책에 앞서,
또한, 북한 인프라의 낙후로 개별 CDM 사업이 성공
에너지 산업 발전과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큰 정책
적으로 추진되었다 하더라도 원료의 공급, 장비의 수
적 틀을 마련하고 중장기 로드맵하에서 CDM 사업의
송 등 기본적인 사업 운영에 장애가 높을 것으로 예
역할과 효과들을 명확하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하며 특히 심각한 전력 부족은 CDM 사업 운영에
남한으로서는 대북 CDM 사업이 탄소배출권을 얻는
많은 차질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밖에 CDM을
수익사업이기도 하지만, 남북한의 에너지 수급 체계
이해하는 인적 자원의 부족, 외부 기술에 대한 정보
의 동질성 구현, 북한의 에너지 공급력 증강 지원, 나
나 경험 부족도 북한에서 CDM 사업 추진을 어렵게
아가 남북 경협을 위한 에너지 인프라의 저비용 구축
하는 요소들이다.
등 다양한 외부효과를 고려하여 단기의 수익보다는 중장기 대북 개발 지원, 즉 남북 상생의 측면에서 접 근하여야 할 것이다.
CDM 사업에 대한 남북 협력방안 남한 기업이 북한 CDM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 당국 간의 사전 환경 조성이 반드시 추 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이 CDM 특별법 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것이 어렵다면 “남북
박지민은 광주과학기술원 환경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원에서 환경 공학석사를 취득했다. 2006년부터 에너지경제연구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여 북한 에너지 및 광물자원 연구와 자원개발정책 연구를 수 행하고 있다.
르포
남북 위기, 민통선 사람들은 지금 한성희 파주저널 편집부 차장
01
마을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없어 4월 23일, 차를 몰아 통일대교 입구에 있는 군사 초소에 선다. 창문을 내리고 민통선 출입증을 건 네자 전자장치에 대고 확인한 후 돌려준다. 비 내린 다음날이어서 그런지 화창한 날씨에 어울리 지 않는, 통일대교에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군사용 바리게이트를 피해 S자로 차를 몰며 민통선으 로 들어섰다. 지난 2월, 북한 3차 핵실험으로 3월 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강력한 대북조치결의안을 만장일 치로 채택하자, 3월 11일 북한은 ‘정전협정백지화’를 선언했다. 4월 9일에는 개성공단사업까지 중 단한 이후, 전 세계는 한반도에 전쟁이 임박했다는 보도를 하루하루 쏟아내는 중이다. 며칠 전 미 국 시카고에 사는 언니에게서 국제전화가 왔다. “얘, 한국에 전쟁 난다고 뉴스에서 난리던데 괜찮 니?” “언니, 여기 사람 신경도 안 써. 걱정하지 마.” 막상 북한을 코앞에 맞대고 파주에 사는 나보다 먼 미국 땅에서 사는 언니가 더 걱정이 심한 듯했
민족화해 May / June
50 51
02 01 통일촌
02 민통선 임진강변
03 03 해마루촌 이재석 씨(좌) 정주호 씨(우)
다. 통일촌 앞 사거리에서 차를 해마루촌 방향으로 꺾는다. 민통선 지역은 서울과 안양시를 합친 파주시 면적의 22.3%에 달하니 결코 작은 지역은 아니다. 가는 도중, 밭을 갈고 못자리 준비에 논 에 물을 대는 농부들의 차가 도로에 몇 대 보일 뿐 한적한 봄 풍경이 이어진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어우러져 곱게 피어 있고 임진강가에 파랗게 물오른 버들가지가 평화로운 조용한 농촌 풍경이다. 2001년 조성된 해마루촌은 전쟁 전 장단군에 살던 실향민들이 모여 사는 예쁜 마을이다. 마을 어 귀에서 이 마을에 사는 조봉연(52) 씨와 이재석(46) 씨를 만났다. 두 사람 다 이곳에서 10대 이상 수백 년을 살아온 후손들이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바로 앞인데 어쩌느냐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관 심이 없어요. 변화와 개선을 위해 마을사람들이 건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잖아요. 관심 을 기울인다 한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이재석 씨는 남북이 전쟁 위기라는 상 황이 ‘어차피 생활터전인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마을사람에겐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 민통선 마을에 산다는 건 군대와 같이 머무는 일이며 파주시민이지만 파주시 행정력보다 군이 우 선이기에 일상이 군과 부딪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조봉연 씨는 그 일화를 들려준다. 군의 요 구로 민통선 곳곳에 있는 바리게이트에 파주시는 시비를 들여 ID카드를 대면 차단기가 열리는 출 입시설을 만들었단다. 카드를 이용하기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과 주민들의 항의가 당장 이어졌고 결국 얼마 못 가서 철거하고 말았다고. “이런 쓸모없는 낭비를 왜 합니까.” 출입영농추진위원장을 맡았던 정주호(86) 씨 역시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대대로 살아온 조상의 땅에서 6.25전쟁도 겪었는데 더 이상 겁날 거 없지요.”
관광객은 줄지 않은 도라산역, 제3땅굴 남북출입사무소를 지나 도라산역 주차장에 차를 대자 군인이 부리나케 달려와 “왜 오셨느냐”고 묻는다. 민통선 곳곳은 군부대 감시의 눈이 번뜩이지만 이곳은 개성공단을 들어가는 관문이라 더 욱 철저하다. 관광버스들은 예나 다름없이 중국 관광객을 쏟아놓고 있다. 도라산역 문화관광해설 사 송경숙 씨와 양만규 씨가 반겨준다. “관광객은 별로 줄어든 거 없고 그대로인 거 같아요. 다만 일본 관광객은 많이 줄었어요.” 도라산역은 북으로 들어가는 우리나라 유일의 민통선 국제역이기
04 04 남북출입사무소, 개성공단 차량 통과소
05 도라산 역사 내 중국 관광객들
도 하지만 관계부처가 복잡한 곳이다. 국방부, 통일부, 경기도, 파주시, 코레일이 은근히 견제하 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북출입사무소의 통일부, 접경지대 국방부, 경기도 땅이자 도가 운영하 는 평화공원이 있고, 파주시 행정구역이며 코레일 기차역이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니만큼 전 세계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기념사진을 찍고 웃는 중국 관광객들의 모습은 늘 보던 풍경이 다. 도라산역을 나와 제3땅굴로 가는 도중, 개성공단에서 나오던 차량이 끊긴 남북출입사무소는 인적 하나 없이 쓸쓸하기만 하다.
제3땅굴, 관광객 500만 돌파 제3땅굴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역시 군인이 와서 용건을 묻는다. 민북관광사업소에 왔노라니까 출입증을 받아들더니 무전으로 신분을 확인한다. 때마침 신동주 민북관광사업소장이 나타나 나 를 반기자 군인은 말없이 돌아섰다. 민북관광사업소는 제3땅굴, 도라산역, 도라산전망대, 허준 선 생 묘, 통일촌, 판문점 등 민간인출입통제구역인 비무장지대에서 안보관광견학프로그램을 운영 하는 파주시 행정기관이다. “다음에 오실 때는 미리 전화주세요. 여기는 낯선 차가 들어오면 카메라로 다 보고 있거든요. 방 문차량들이 가끔 길을 잘못 들어오기도 해요.” 민통선에서 군인 검문을 안 받는 방법은 임진각에 서 DMZ 관광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것밖엔 없다. 그 역시 허점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지만 최전방에서 군의 임무는 긴장을 늦출 수 없기에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지. “관광객은 작년 대비 준 것은 없어요. 다만 일본 관광객은 눈에 띄게 줄었어요. 남북 긴장보다 독도 문제 때문이 아닌가 싶 어요. 일본수학여행 단체관광이 취소되기도 하고요. 실제로는 관광객이 늘어야 정상이니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지요.” 2002년 시작된 안보관광은 제3땅굴 관람객이 곧 500만 명을 돌파하고 그 준비를 계획하고 있다고 신 소장은 귀띔했다. “제가 문산 마정리 출신이잖아요. 매일 대북방송 듣고 포 소리 듣고 임진강변 에서 놀며 자랐는데 여기서 근무한다는 소식 듣고 친구가 전화했어요. 거기 불안하지 않느냐고. ‘ 임마, 자란 곳이 여긴데 뭐가 불안해’ 했더니 뉴스를 보니 밖에서 보는 건 무척 위험하고 불안하다 네요.” 신 소장은 밝게 웃으며 “밖에서 보는 시선과 현장에 있는 관점이 다른 것 같다”라고 했다. 차 한 잔 마시고 나오는 길에 아까 군인의 심문에 내심 겁을 먹었는지 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05
민족화해 May / June
52 53
전쟁이 난다 해도 못자리하고 농사짓고 통일촌에 사는 안순금(60) 씨와 서정학(65) 씨 부부를 만나러 갔다. 안순금 씨는 군부대 영양사로 일하면서 농사를 짓는 수필가이며 나와 같은 파주문협회원이기도 하다. “어서 와라. 너 어제 왜 문 학기행 빠졌냐?” “일이 많은걸요. 가고 싶었는데 못 갔어요. 여기는 분위기가 어때요?” “전쟁 난다 해도 못자리하고, 고추 모 심고 그러지 다를 게 뭐 있나. 막내아들 결혼준비에 바쁘다. 예전에 6.25 때도 못자리하고 모를 던져놓기라도 한 사람은 피난 갔다 와서 수확했는데 그대로 나간 사람은 하 나도 못 건졌다더라. 전쟁이 나든 말든 할 일은 하고 살아야지.” 안순금 씨는 개성공단이 중단된 이후, 오가던 차량이 없어져서 조용해졌다는 거 외엔 바뀐 게 없다고 했다. “차가 좀 다녔냐. 이 동 네 차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개성공단 중단되니까 소음 없이 조용하게 살아.” 안순금 씨는 지난주 못자리 준비에, 고기도 사고 시장을 보려고 나갔다가 개성공단에서 마지막으 로 나오는 차를 통일대교에서 보았다고 했다. “승용차에 운전석만 빼고 꽉꽉 채워서 겨우 사람 하 나 운전하면서 차 지붕까지 잔뜩 올려 나오는데 처음에는 동글동글해서 솜뭉친가 했다. 그게 브 래지어더라. 그거 보니 기분이 참 묘하데.” 통일대교에는 외신을 포함한 취재진들이 잔뜩 몰려 있 었고, 비닐봉지에 담은 브래지어를 갖고 나온 차량은 대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싣고 갔 다고 한다. “별로 신경 안 썼는데, 차에 그렇게 피난 보따리처럼 잔뜩 싣고 나오는 모습을 직접 보 니까, 그거 참 기분이 묘해.” 안씨는 연신 ‘기분이 묘했다’는 말을 하면서 잠깐 얼굴이 흐려졌다. 혹시, 개성공단이 이대로 문 닫고 남북이 최악으로 가는 상황을 생각하는 건 아닐까. “들어온 김에 나 통일촌 된장 좀 사가지고 갈게요. 안만례 씨에게 전화 좀 해주세요.” 안만례 씨는 통일촌에서 나오는 장단콩으로 된장과 고추장을 만들어 ‘안만례 된장 고추장’으로 유명한 안순금 씨 친언니이 다. 안만례 씨 집에 들어 된장 외에 고추장까지 싸주는 푸근한 인심에 감사하며 통일촌을 나섰다. 다시 통행증을 건네고 전자장치에 대는 확인절차를 마친 후 통일대교를 건너니 젊은이 한 쌍이 통일대교를 배경으로 사 진을 찍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통일대교 입구에서 흔히 보는 광경이다. 철조망, 바리게이트, 검문하는 군인이 사라진 통일 대교를 자유롭게 건너 북까지 차를 몰고 가는 꿈을 꾸는 날이 올 것인가. 저녁 무렵, 임진강을 넘어 잠자리를 찾아 떼 지어 날아가는 철 새의 날갯짓은 무심하기만 하다. 통일촌 입구 안내 간판
한성희는 파주 출생으로 파주저널 편집부 차장으로 근무 중이며 2008년 『여기자가 파헤친 조선왕릉의 비밀』 저서로 한국간행 물윤리위원회 역사부문 ‘이달의 읽을 만한 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남북교류협력
푸른나무가 시작하는
통일복지국가의 디딤돌 신영순 (사)푸른나무 대북사업 본부장
민족을 향한 새로운 사명 지난 5년 동안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새 정부를 향한 기대감과는 다르게, 남과 북 의 정치적, 군사적 문제로 남북관계는 더 위기 일촉즉발의 상태로 빠져들게 되었다. 이 긴장으로 인해 개성공단마저 닫혀버리는 위기를 맞은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루 빨 리 남과 북의 지도자들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서로 지혜를 모으고, 평화적으로 대화의 길을 열어가는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푸른나무가 지원하는 북한의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한 필자
민족화해 May / June
54 55
이런 민족의 현실 상황 속에서 정치적으로
‘평양장애인종합회복센터’
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미국 장로교 선
건립이 눈앞에
교사로서 하나님의 은혜로 40년 동안 남한
창립한 지 2주년을 맞이하는 푸른나무가 북녘 내 많은 사업
장애인들의 직업 재활을 위해서 일하던 중
은 푸르게 가지를 뻗어가고 있다. 평양과 사리원 일대 3곳에
에 1998년 5월 북녘에 식량과 의약품을 전
콩우유빵공장들과 보통강 종합편의, 그리고 북한 전역에 있
달하러 처음으로 평양, 개성 그리고 원산을
는 43개의 고아원과 8개의 농아학교, 3개의 맹인 특수학교들
방문하며 민족을 향한 새로운 사명을 깨닫
을 지원하는 모든 사업을 활발히 전개해왔다. 1년에 6~7차
게 되었다. 그 후 북녘에 작은 보탬이 되고
례씩 해외교포들과 지속적으로 현장들을 방문하여 지원하고
자 지난 15년 동안 분단 민족의 많은 어려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가운데 민족애로 따뜻한 정을 나누며
움을 넘으며, 건강한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평양 대동강구역에 평양장애인종합
고아들과 장애인들을 돌보며, 기쁨과 보람
회복센터 건축을 위해서 2007년부터 대동강구역 문흥2동에
속에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과 희망을 많은
3,629평(12,000㎡)의 부지에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 설계도
사람과 나누게 되었다.
준비도 완료하고 6년째 착공식만을 기다리고 있다. 착공식 을 위해서 남한에서 장애인들과 건축 후원자분들과 세계 뉴 스 미디어 기자단과 장애인 연예인들까지 300명이 판문점을 거쳐서 평양으로 육로를 통해 이동하는 내용의 합의서도 만 들어놓고 남과 북에 정치적인 화해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남북 장애인 함께하는 그날을 꿈꾸다 북녘 농아 장애인들의 무용과 마술이 수준급으로 향상되었 고, 시각장애인들의 악기 연주단과 가야금 그리고 노래 수준 도 매우 높아졌다. 이제 곧 남과 북의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손에 손잡고 춤추며 노래하는 그날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 다. 남북 장애인 친선 탁구대회와 통일을 향한 남과 북의 장 애인 복지 세미나도 서울이나 평양 또는 금강산에서 진행하 기로 합의서를 북측과 이미 만들어놓은 상태다. 분단된 이 강 토는 마치 허리가 잘려 마비된 장애의 모습이기에 이 땅에 육 신의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남과 북의 장애인들도 민 족화해의 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왔다. 남과 북의 사상 도 이념도 모두 뛰어넘어, 장애인이기 때문에 한민족의 동질 성을 서로 더 느낄 수 있기에 이것이 가슴 뭉클한 통일의 시 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본다.
런던 장애인올림픽의 추억 2012년 8월 29일 런던에서 개막된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처음 출전하였을 때는 공 식적으로 IPC와 북한 정부로부터 허락을 받아 23명의 북한 대표단과 함께 본인도 DPRK 정장 유니폼을 입고 평양에서 출발 했다. 런던에 도착한 이후에는 미국 성조기 와 대한민국 태극기와 세 나라 국기를 가슴 에 달고 다니며, 내가 사랑하는 분단된 조
2012년 런던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한 북한 선수단
국의 화해꾼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런던에서 2주간 동안 DPRK 대표단과 함 께 동고동락하는 중에는 런던에 살고 계
이 이루어졌고, 2011년 8월 북한 ‘조선장애자체육협회’가 발
신 임춘자 목사님과 한인교회들의 헌신적
족되었다.
인 지원으로 큰 도움이 되어주셨고, 영국의
북측에 수영선수로 참가했던 임주성은 왼팔과 왼다리를 6세
NGO 단체인 ‘Care for Children’도 대표단
에 사고로 잃고, 18세까지 수영을 한 번도 안 해본 학생이었
의 런던 체류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40여 일간 수영 훈련을 한 임주성
북한이 참가하게 된 것에 신기해하는 국내
선수는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 장애인 수영 예선전에서 3종목
외 여러 기자들과의 인터뷰 요청에 관습적
모두 10등 안에 들었고 마침내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할
으로 거부 반응이 심한 북측 대표단을 설
수 있는 출전권을 받게 되었다.
득하여서 임주성과 리분희가 KBS와 SBS
남북 간의 정치적인 관계가 좋았더라면 더욱 가슴 뜨거운 런
에 인터뷰에 응할 수 있도록 중간 역할도
던 장애인올림픽이 되었을 아쉬움에 많은 여운을 남기게 되
해주었다.
었다. 또한, 북측 리분희 서기장이 현정화 감독을 만나고 싶
7년 전 말레이시아 아시안게임에 4명의 조
어하는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의 우정과 그리움이 얼마나 깊은
선장애자련맹 관계자들을 모시고 가서 장
지 알게 되었기에 더욱 아쉬움이 컸다.
애인체육을 참관하게 하였고, 남한 장애 인체육회 관계자들도 처음으로 만남을 주 선하였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민족통일 복지균형의 과제
도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남과 북이 첨예한
그동안 남과 북에 서해교전과 천안함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상황이었지만 조선장애자보호련맹 김문철
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미국과 남과 북을 오가며, 북녘에 고아
부위원장과 리분희를 비롯해 6명과 평양에
들과 장애인에게 사랑의 지원을 계속해왔다. 정기적으로 평
서부터 함께 동행하며, 평화의 길이 막히
양과 사리원과 원산과 성천 등지에 특수학교와 고아원들과
지 않도록 실낱같은 통로가 되어왔다. 이
빵공장, 장애인 직업재활센터와 전국에 8개의 롱아학교와 3
때를 계기로, 북측은 올림픽위원들과 만남
개의 맹아학교들에, 장애인들에게 식량, 의약품, 생필품 등
민족화해 May / June
56 57
을 전달하며, 후원자들과 함께 사랑으로 통
푸른나무, 조선장애자보호련맹과
일의 현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2005년 조
민족화해 준비 중!
선장애자보호련맹중앙위원회와 처음 만나
머지않아 통일의 물꼬가 트인 그 이후에 복지정책을 세우려
휠체어를 전달하는 과정부터 모든 일에 모
면 너무 늦기에 푸른나무는 가장 관계가 어려울 때 장애인들
니터링과 물자지원 확인증과 합의서를 작
과 고아들을 돕는 디딤돌을 하나씩 놓아가고 있다. 그리고 앞
성해가며 일해오고 있다.
으로 더 많은 국내외 교회들과 남한 내 대북지원 단체들이 북
국내외 교회들과 개인 및 단체들의 지속적
녘의 고아들과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넓혀나가도록
인 후원으로 1년에 6~7차례씩 식량과 생필
조선장애자보호련맹과 민족화해의 준비를 하고 있다.
품 및 의약품을 고아들과 장애인들에게 지
그동안 90여 차례가 넘는 방북을 통해서 희열이 넘치는 통일
원하는 푸른나무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
의 희망을 보게 되었다. 60년이 넘도록 남과 북의 사랑하는
다. 2013년 5월 2일에도 해외동포 6명과 올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헤어져 분단의 슬픔 속에 살아온 한을
해 들어 세 번째 방북을 하게 된다. 푸른나
치유하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평화의 길로 되돌려놓을 수 있
무가 정기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고아들과
는 가능성도 그동안의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우
장애인들은 현재 남북이 정치적으로 어려
리 민족의 통일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운 상황 속에서 그 누구보다 큰 피해자들
평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통일이다!
이 되고 있기에 한 핏줄 민족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건강한 민족의 미래 를 위해서 통일이 오기 전에 취약한 계층들 을 돕는 것은 인도주의적인 차원을 넘어 민 족통일 복지균형을 이루어가는 중요한 과 제라 믿는다.
신영순은 미국 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40년간 선교사역, 번동코이 노니아 장애인보호작업장 설립 및 원장으로 근무, 사단법인 등대복지회를 설 립하여 상임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사단법인 푸른나무 대북사업 본부장으 로 활동 중이다.
지금 북한은
北전역 들썩들썩… 체육강국 건설 목표 장철운 연합뉴스 북한부 기자
북한은 지난해 11월 4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발족한다 는 내용의 결정서를 채택했다. 북한이 밝힌 바에 따 르면, 국가체육지도위원회는 ‘체육 대중화, 체육 과 학기술 발전, 체육인재 양성, 체육사업 지원 등 전반 적인 체육사업을 통일적으로 장악·지도’하는 국가 단위의 기관으로 각 도·시·군과 군경(軍警) 기관 에 위원회의 산하조직이 설치된다. 국가체육위원회 발족을 계기로 북한은 ‘체육강국’ 건설을 국가목표로 제시하며 북한 전역에 관련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북한의 ‘체육강국’ 건설 진행 상황 북한 전역에서 체육시설 개선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함흥시 등에서도 체육환경 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북
되고 있다. 지난해 평양에는 인민야외빙상장과 통일
한 전역이 체육시설 확충으로 들썩이는 것이다.
거리운동센터, 양각도체육촌이 새로 건설돼 운영을
체육시설 확충에 대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시작했고 월미도체육단에 인조잔디를 깐 축구경기
의 관심도 높다. 그는 지난 3월 9일 장성택 국방위 부
장을 새로 만들었다. 평안남도에서는 평성경기장 등
위원장 겸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최룡해 인민
의 시설이 신설되거나 리모델링됐고, 북한의 주요 석
군 총정치국장, 현영철 총참모장, 김격식 인민무력부
유화학공장 중 하나인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에는
장, 리영수 노동당 근로단체부장, 리종무 내각 체육
10여 개의 체육시설이 새로 꾸려졌다. 평안북도에는
상 등을 대동하고 평양시내 청춘거리 체육촌을 시찰
차광수 신의주 제1사범대학에 축구경기장 신축사업
했다. 평양의 청춘거리 체육촌은 북한의 국가대표급
이 벌어지고 있으며,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함경남도
선수들이 경기와 훈련을 하는 체육시설로 우리의 태
민족화해 May / June
58 59
릉선수촌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
을 맺고 매주 2경기를 중계하고 있으며, 8시 보도를
은 체육촌의 농구·탁구·역도 경기장과 체육선수
마친 뒤에는 약 10분 동안 스페인과 독일, 러시아, 아
들을 위한 숙박시설인 서산호텔을 차례로 둘러보고
르헨티나의 프로축구 1부리그 소식을 소개하는 ‘국제
‘체육촌을 훌륭히 개·보수하는 것은 나라의 체육사
체육소식’이라는 코너를 신설했다. 전임 지도자들에
업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중요한 사업’
비해 부쩍 체육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이라며 리모델링을 지시했다.
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
평양에는 국제축구학교도 설립됐다. 재일본조선인
1992년 바르셀로나대회(금메달 4개, 동메달 5개) 이
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4월 4
후 20년 만에 최고 성적을 거둔 것도 국가체육지도위
일 “세계적 수준의 선수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평양
원회를 설립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국제축구학교가 설립됐다”며 “능라도 지구에 세워진
김정은 정권이 대표적인 비정치 분야인 체육에 신경
이 학교는 4월 중으로 개교한다”라고 전했다. 즉, 축
쓰는 이유는 스포츠로 민심을 사로잡고 사회에 활력
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국제학교가 평양에 문을
을 불어넣으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즉,
연 것이다. 북한 전역에서 치러진 5차례의 시험과 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 시절부터 영화, 음악 등
발과정을 거쳐 90여 명의 남녀학생이 이 학교 학생
의 문화예술을 체제 선전의 도구로 삼았지만 김정은
으로 뽑혔고, 각급 체육단과 청소년체육학교에서 감
제1위원장은 아버지와 달리 스포츠를 통해 민심을 잡
독과 지도교사를 선발했다. 평양 국제축구학교에서
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는 유럽을 비롯한 외국 축구전문가와 감독의 초빙강
또 중국이 냉전시대인 1970년대 이른바 ‘핑퐁외교’를
의도 계획하고 있고, 희망하는 외국 청소년도 여기에
통해 적대국 관계였던 미국과 관계를 개선한 것처럼
서 유학할 수 있다.
스포츠 역시 북한과 국제사회를 이어주는 끈이 될 수 있다. 지난 2월 말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선수 출
‘체육강국’ 건설 나서는 북한의 속내는
신인 데니스 로드맨의 방북에 대해 북한은 체육 교
북한은 첫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김정은 시대 북한
류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 당국이 운
의 최고 실세로 알려진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영하는 포털 사이트인 ‘내나라’는 지난 3월 6일 ‘미국
을 임명했다. 로두철 내각 부총리와 최부일 당시 인
농구선수 일행의 평양방문 의미’라는 글에서 김정은
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현재 인민보안부장), 리
제1위원장이 올해 신년사 등을 통해 밝힌 대로 세계
영수 노동당 근로단체부장을 부위원장으로 임명해
여러 나라와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은 북
북한의 3대 권력기관인 노동당·내각·인민군이 국
한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미국이 조선을 적대적으로
가체육지도위원회에 모두 참여하는 형태를 취했다.
대하지만 않는다면 조미관계 전망은 낙관적일 수 있
북한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은 김정
다’고 강조했다.
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정책기조에 부응하기 위 한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유학 경험이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집권한 뒤 북한의 조선중앙TV는 독일 프로축구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와 경기 중계 계약
장철운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통일부 정책실 상임연 구위원을 거쳐 현재 연합뉴스 북한부 기자로 재직 중이다. 북한 내부 상황, 남북관계, 한반도 안보상황에 관심이 있다.
새터민 에세이
막을 수 없는 IT정보유입의 바람,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까? 박문일 사회적기업 대표
체신법 제정에서 계약파기 그리고…
이집트 오라스콤에 서명한 이유는?
1995년 북한은 타이의 록슬리와 MOU를 맺은 이후
북한의 타이의 록슬리 이동통신망 거부와 오라스콤
1997년 전기통신사업에 대한 근간을 규정하고 있는
의 선택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체신법’을 제정하였고, 2002년 휴대전화 서비스가
북한 정권의 직접적 위협을 두려워하고 있다. 2004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2004년 평안도 용천폭발사
년 4월 용천역 폭발사건을 기해 북한 전역의 휴대전
건을 휴대전화에 의한 김정일의 암살모략으로 간주
화 도청시스템을 갖추기 전까지 무기한 사용금지조
한 당국은 타이의 록슬리와의 모든 계약과 법규를 무
치를 내렸다. 다음으로 타이와 탈북자 문제 갈등으로
시하고 무효화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 후 4년
인한 북한의 강경조치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재스민
이 지난 2008년 5월 남북관계가 한창 무르익고 있던
혁명이 일어나기 전의 이집트는 북한과 같은 독재국
시점에서 이집트의 오라스콤은 북한에서 25년의 사
가이며 주변국이 아니라 거리상 멀고 먼 아프리카의
업권을 부여받고 협조문체결을 이루었고, 이동통신
국가라는 점에서 자본주의 황색바람이 유입될 가능
망 시험에 성공하였으며, 12월 15일을 기해 본격적인
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타산했을 것이다. 물론 IT
휴대전화 서비스를 개시하게 되었고, 현재 100만 명
정보유입이 독재정권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지만,
을 상회한다.
독재정권에서 휴대전화 사용 개방이 반드시 잠재 불 만 대중의 조직 및 행위능력을 단시간에 현격히 증가 시키는 것은 아니다.
민족화해 May / June
글로벌시대, ‘김정은’식의 자리 굳히기가 필요하다
60 61
전파차단장치도 뛰어넘은 통화열기
김정일 시대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최첨단 과학기
보통 중국으로 나온 탈북자의 사례를 들면 2~6개월
술의 발전에 대한 형식상의 지시에만 그쳤을 뿐 북한
중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생각이 바뀌게 되고 북한 당
전역에서 낙후된 전자산업의 운용을 방치했으며 ‘선
국에 속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는 북한
군정치’라는 군 위주의 노선만 강조해왔다. 2008년
의 상황이 주변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열악
김정일의 와병설이 돌기 시작하면서 어린 김정은에
하고 낙후한데다가 북한 정부의 사상교양내용은 현
게 선행지도자의 군주정치를 그대로 넘겨준다는 것
실과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중
은 ‘선군정치’의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한 북한 주민들
국 단둥에 나와 있는 북한의 무역대표 일꾼들은 오라
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새것
스콤 통신망으로 평양에 있는 자택과 북한 보위부의
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한 김정은 또래의 청년들의
삼엄한 감시 속에 직접 통화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
환심을 사기 위해서는 반드시 글로벌시대의 IT정보
다. 한때 중국 지역으로 퍼지는 북한 이동통신망 전
통신망이 필요했고, 그의 확산은 곧 김정은의 치적으
파를 차단하기 위해 북한 당국은 여러 번 전파차단장
로 인지될 것이며 후계자 자리 굳히기를 위한 최고의
치를 도입했으나 북한 내의 휴대전화 통화품질이 떨
수단이기도 했다.
어져 철회했다.
통제사회, 변화에 촉각을 세우다
불어오는 IT정보, 사람들을 깨우다
북한이라는 사회가 강력한 사회통제를 기반으로 하
북한 주민들 속에서 새로운 IT정보망을 통해 개혁개
고 있으며 체제유지를 무엇보다 중요시하고 있기 때
방의 우월성을 인지하게 되고 단말기하나 제대로 만
문에 사회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사회변화에 대
들지 못하는 잘못된 북한사회에 대한 혐오감을 느낄
한 개입 역시 다른 사회보다 적극적이라고 할 수 있
것이며 당국의 결정지시는 하부말단의 간접적 태공
다. 북한 노동자의 한 달 급여가 북한 돈 2,000원이
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 타이의 통신망에 의한 휴
라고 볼 때 (북한 돈 20만 원에 100달러) 이는 1달러
대전화 가입자는 법기관의 감시와 통제로 인해 소극
밖에 안 되지만 천문학적 숫자인 거액을 들여 휴대
적이었다면 현재의 오라스콤의 가입자는 대규모로
전화를 구입해야만 하는 것은 북한 주민들의 생존활
확산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흐름을 막기에는 역
동(시장활동)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본수단으로 활용
부족이라고 본다. 댐이 한번 균열되면 터지는 것은
되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고위층을 위한 국정가격
시간문제이듯 북한 주민들이 이미 IT정보 확산과 외
과 화폐개혁 같은 위기상황의 협정가격 그리고 시장
부사조 유입을 통해 체제의 모순을 인식했기 때문에
에서 운용되는 암시장가격이 있는데 북한 주민 90%
북한체제는 안정적일 수 없다고 본다.
이상이 암시장가격으로 생존한다.) 정보와 외부 문화 유입·소통의 주요한 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휴대 전화의 확산은 경제적 변화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다원화 측면에서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박문일(가명)은 2012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현 재 박사과정에 있으며 사회적 기업 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적극적 평화’ 이병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평화’와 ‘통일’은 구분되는가?
적인 두 체제가 통합되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으
최근 들어 나타나는 통일에 대한 회의와 무관심은 냉
로 이해된 ‘통일’ 개념은 ‘평화’와 분리되기 쉬우며, 전
전기의 반공주의적 냉담과는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
쟁이 없는 상태로 이해된 현상유지적 차원의 ‘평화’
급격한 통일이 수반할 경제적 비용에 대한 우려가 증
개념 역시 ‘통일’과 분리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평
대하는 한편, 민족적 유대와 정서에 입각한 통일론에
화와 통일의 긴밀한 상호연관성에 대한 주장은 기존
대한 의구심이 매우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평
의 상식적인 통일과 평화 개념에 대한 재해석을 동반
화와 통일을 구분해서 바라보는 시각도 등장하고 있
할 때만 정당화된다. ‘과정으로서의 통일’과 ‘적극적
다. 특히, 주목할 만한 현상은 당장의 통일보다는 남
평화’는 대립적이 아니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
북의 평화공존과 현상유지를 원하는 경향이 증대하
주는 개념이다.
고 있다는 점이다. 평화와 통일을 구분하는 시각에는 기존의 통일담론
과정으로서의 통일
이 분단을 강화시켜왔다는 전제 아래 무조건적 통일
사람들은 통일을 이야기할 때, 이질적인 두 체제가 통
이 아니라 적대의 청산과 평화공존이 중요하다는 문
합된 하나의 국가를 떠올리게 된다. 통일을 서로 다른
제의식이 놓여 있다. 통일의 절대적 당위성은 문제
두 개의 정치경제체제가 하나의 체제로 통합되는 것
가 있으며, 통일이 한반도 주민의 평화와 삶의 질 향
으로 여길 때, 통일의 노력은 오히려 갈등과 전쟁을
상을 위한 선택적 과제로 여겨져야 한다는 문제의식
불러올 수 있다. 하나의 체제로 통합된 단일 국민국가
은 나무랄 바 없다. 그러나 통일이 안 되어도 평화공
를 목표로 하는 통일은 독일, 베트남, 예멘 등 분단국
존이 가능하다거나 통일담론을 자제하고 평화를 앞
의 통일 사례에서도 드러나듯이 많은 문제점을 내포
세움으로써, 평화와 통일의 과제를 분리하는 경향이
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체제갈등이 동족상
문제다.
잔의 전쟁으로 비화된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체제
평화와 통일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평화’와 ‘통
통합을 지향한 통일은 그것이 쟁점화될수록 오히려
일’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
갈등과 대립을 증폭시킬 공산이 크다.
다.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통일’과 ‘평화’ 개념을 전제
‘과정으로서의 통일’ 개념이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가
할 경우, 양자는 분리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이질
진전되면서 학계에 확산된 것도 그 때문이다. ‘과정
민족화해 May / June
62 63
으로서의 통일’ 개념은 학자마다 강조점은 조금씩 다
정치적 탄압, 성적·인종적 차별 등 구조적, 문화적
를지라도, 분단구조가 만든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극복
폭력의 부재까지 평화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요한 갈
하면서, 보다 나은 상태로 남북사회를 변화시켜나가
퉁의 ‘적극적 평화’ 개념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의
는 동태적 과정(process)으로 통일을 이해하려는 점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한반도의 적
에서는 공통적이며, 현재 사회문화적 통합을 중시하
극적 평화는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넘어, 분단체제의
는 많은 이들에 의해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일
적대적 구조와 냉전적 사고를 청산하고 통일된 민족
회성 사건(event)으로서의 통일은 전쟁이나 그에 버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적극적
금가는 파국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과정으로서의 통
평화가 남북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구조적 폭력과 문
일’이라는 질적으로 다른 방식의 통일을 생각해보자
화적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분단
는 것이다.
상태를 해소하는 통일지향적인 내용을 담을 수밖에
통일을 체제통합이 아니라 남북 주민의 삶의 질을 향
없다. 통일은 분단상황이 남북 주민의 인간다운 삶을
상시켜가는 과정으로 본다면, 통일은 평화와 대립하
위협하는 구조적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우리의 절
지 않는다. 오히려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
실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는 것이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다. 따라서 통일의 강
평화는 인류보편적 가치이고 통일은 한반도에 국한
조가 남북의 대립과 갈등을 불러온다는 주장은 통
된 가치다. 만약 평화와 통일의 가치가 하나로 합치
일을 체제와 이념을 하나로 만드는 일회적 사건으
되지 않는다면, 원리적으로 평화가 통일에 우선하는
로 여길 경우에만 타당하다.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
가치라는 주장은 부인할 수 없는 설득력을 지닌다.
고 상호 대립되는 생활문화를 인정하는 가운데 남북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서로 분리될 수 없
의 상호소통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가치, 정서, 생활
다. 한국의 평화운동이 세계적 탈냉전 후 남북관계의
문화의 공통성을 서서히 그리고 새롭게 형성하는 과
개선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급속히 발전했다는 점은
정으로 통일을 생각할 때, 그것은 곧 평화의 과정이
이를 말해준다. 따라서 평화가 비록 인류보편적 가치
기도 하다.
라 하더라도, 한반도의 분단현실에서 요구되는 평화 는 분단 극복의 노력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 분단은
적극적 평화
한반도 평화를 구조적으로 침해할 수밖에 없으며, 분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평화의 개념은 전쟁이
단 상태에서의 평화와 안정이란 근본적으로 임시적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소극적’인 것이다. 소극적 평
일 뿐이기 때문이다. 통일을 유보하면서 평화의 과제
화는 남북의 소통과 상호신뢰를 통한 통일의 노력과
만을 강조할 경우, 결국 평화의 과제 실현에 오히려
무관하게 분단의 평화적 관리에 그칠 수 있기 때문에
미달하는 불안정한 평화, 곧 분단체제의 임시적인 평
통일의 과제와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의 가능성
화적 관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 상존하는 한반도의 경우, 이러한 소극적 평화의 확보도 물론 절실한 과제이긴 하지만, 여기에만 머무 를 경우 평화와 통일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전쟁의 부재뿐만 아니라 경제적 빈곤,
이병수는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건국대학교 통 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일교육·평화교육
통일교육, 평화교육과 안보교육에서 길 찾기 박찬석 공주교육대학교 초등윤리교육과 부교수
응어리 풀기와 되돌아보기의 필요성
있게 개진하고 소화해 내는 내용을 담고 접근되어야
우리 사회는 갈등과 회한의 응어리를 풀고 분단 직전
함에도, 통일교육의 내용은 점점 줄어들고 국민적 통
과 이후 그리고 오늘의 민족적 절규를 되돌아보는 기
일의 의지는 감퇴되고 있다. 한마디로 통일교육은 안
회를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보수층은 남한
보논의와 평화논의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학교
우월적 인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대북문제에 대한
나 사회에서 건전하게 진행할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
정확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북한에 피해를 보고 있
하고 있다. 그렇기에 통일교육은 국민들의 삶에서 지
다는 응어리에 빠져 있다. 또한, 진보층의 경우는 평
향하는, 스스로 안보와 스스로 평화를 생활화하는 중
화교육적 논의를 내세우지만 안보를 등한시한다는
요한 기초를 반영하여야 할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
보수의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보 정
는 것이다. 다시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할 대목은 현
권을 재창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한숨만 쉬고 있다.
상황에서 진정한 남북한 평화와 안보 그리고 통일을
그 안에서 통일교육의 진정한 내용은 점점 줄어가고
찾는 교육인 통일교육을 충실하게 구성하여야 한다
보수 일색의 안보 교육과 진보 일색의 평화교육이 국
는 사실이다.
민들의 인식을 어렵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통일 교육은 보수와 진보의 평화 논의와 안보 논의를 심도
민족화해 May / June
64 65
분단과 갈등 속에서 자생하는 극단의 아비투스
른 견해가 분출되어 나오는 것에 대해 보수 사회는
통일교육의 출발은 분단과 전쟁의 척박한 상황에서
긴장하고 있다. 이러한 보수적 긴장은 이중 구조적
전개되어 온 반공교육이 기초가 된 역사성에서 비롯
행태로 나타난다. 반북을 향한 충성과 복종의 메커니
되었다. 그렇기에 통일교육의 보수적 지향은 어쩌면
즘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한 합리적 선택을 전개하
당연한 남북 갈등과 대치의 산물이다. 한마디로 통일
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수적 반공 논리는 일
교육은 대한민국의 안보적 인식에 대한 결속을 위한
상적인 반복으로 통일교육의 변화나 다양한 인식을
교육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한 통일교육은 반공교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육을 통해 철저히 반북적 논리로 강화되었다. 그 논
진보적 인사들의 남과 북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단호
리는 6·25 전쟁의 경험이나 분단으로 인한 갈등적
하다. 북한에 대해 친북적 언사를 하고 있다는 증거
경험에 의한 성향(habitus)으로 나타난다. 우리 사회
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반공주의자들은 아직
의 반공적 성향은 우리 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에게 깊
도 북한은 물론 남한의 진보세력이 북한을 추종한다
이 뿌리박힌 특정한 행위자의 삶에서 나타나 있다.
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재 친북 세력은 구조
이러한 과정의 반복은 일상적으로 생성된다. 장기적
적 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기승을 부릴 하등의 조건
인 반북적 인식관성이 구조적으로 체계화된 반북적
이 되지 못한다. 즉, 구조와 행위를 파악하면서 인식
사회가 대한민국에 구성되었다. 학교 역시 지속적으
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로 전이된 아비투스, 즉 성향에 의해 철저하게 반공
북한 정권을 미워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실질적으로
적 인식이 집중되어 왔다.
모색하지 못하면서 통일을 생각하는 것은 진보에게
반공적 인식을 강조하는 보수 논리는 결정적으로 바
는 통일을 거부하는 논의로 비추어 진다. 그러한 상
뀌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그 문제점은 북한의 전
이한 인식 배경은 이제 조정되고 실질적으로 조율되
향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어야 한다.
변화만을 조성하려는 평화적 논리를 의심하기 때문 이다. 실제적으로 보수층들은 평화적 논리를 내세우 면 그 논리를 친북 좌파라는 인식의 틀을 크게 벗어 나지 않고 있다. 그러한 반공적 논리가 강하게 우리 사회에 자리 잡 게 된 것은 지속적인 북한에 대한 실질적 피해와 그 로 인한 적대 의식에서 기인된다. 전쟁과 갈등의 주 된 원인 제공자가 바로 북한인데, 이러한 북한에 대 해 평화논리 주창자들이 반북적 논리로 대응하지 않 는다며 보수층은 진보 세력에 대해 분노한다. 여기서 북한에 대한 적대감은 줄지 않고, 사건들이 계속 일 어나고 있다는 역사적 관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기 지속된 반북적 성향에서 다
우리 사회는 북한의 엄청난 언어적, 외교적, 군사적 호언과 침략성을 막는 안보와 평화의 일상적 생활양식이 구현되는 통일교육의 기초를 마련하여야 한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남북 갈등과 그에 따른 아(我)와
그러나 통일교육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안보문제
적(敵)에 대한 구분이 일상화되었다. 그처럼 일상은
는 복잡한 양상을 안고 있다. 안보에 관하여 보수와
인간으로서의 삶을 지배한다. 일상에서 생각하는 일
진보진영에 드러난 통일교육은 평화와 안보문제에
이 사건으로 발현되어 보수적 지역 공동체나 진보적
대해 상충된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기관이
정치 공동체들은 보수와 진보의 ‘상부구조’의 아래를
나 단체들은 그 성격에 맞게 다양한 통일의 길과 평
든든하게 받치고 자신의 입지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화의 길을 논하고 있을뿐, 통합적 논의는 매우 어려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앞으로 지나치게 우리 내부
운 지경에 이르렀다.
의 갈등이 고조된다면, 이는 고스란히 보수와 진보간
물론 통일문제와 안보문제에 대한 다양성 논의는 다
의 긴장으로 나타나고, 이는 사회 공동체의 통합력을
원주의 사회를 지향하는 국가적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어렵게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또한 바람직한 현
따라서 통일교육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
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 대해 보
줄 갈등적 요소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는 길을 찾아
다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통일문제가 정치적 갈등으
야 한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일교육의 올
로 문제화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통
바른 현실 이해가 필요하며, 일상적인 활동들에 대
일교육은 남북 및 남남갈등을 해소하려는 평화교육
한 문제 제기와 문제 해결에 중요한 의미를 파악하
적 요소와 현실적 대북 관계 및 안보를 현실적으로
여야 할 것이다.
파악하려는 안보 교육적 요소가 연계되고 조율되어 야 한다.
실천력 있는 안보교육의 실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실질적인 남북 화해 협력을 통한 평화교육의 조율
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
통일교육, 평화교육을 학교나 사회에 적용할 경우,
다.”는 헌법규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처럼 통일교육
학생들이나 국민의 일상적인 삶속에서 평화를 구현
은 분단 이후 오래전부터 효과적으로 접근되어 건전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우리 내부의 지
한 안보관과 평화통일을 주장하여 왔다. 이러한 통일
나친 소외, 따돌림, 경쟁의 비평화적 상황이 서서히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평화와 안보의 법
논의되고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
적·제도적 뒷받침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로 평화가 개인이나 사회에 주는 것이 어느 가치보다
민족화해 May / June
66 67
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평화는 분단 60년이 넘
말하자면 교육은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일정한 형
는 한국 사회에서 통일의 완성을 도모하는 길에 가장
태의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하며, 그 결과 사회의 결
기본적이며 현실적인 과제이다.
속력과 통합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오늘날 평화는 통일교육을 적극적으로 포괄하는 가
따라서 안보와 평화 그리고 통일 전후 국가통합까지
치로 부상하고 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를 예상하는 통일교육이 가지는 의미는 지대하다. 그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에서도 ‘평화’의
러면 무슨 통일교육을 실시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생
가치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결과 한때는 북
기는데 그것은 당연히 안보와 평화를 아우르는 통일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에
교육이 되어야 한다.
대한 밝은 전망을 반영하며 평화적 문제해결에 대한
우리 사회는 북한의 엄청난 언어적, 외교적, 군사적
교육과 시민사회의 평화문화 증진에 대한 기대가 높
호언과 침략성을 막는 안보교육과 더불어 평화의 일
아진 바 있다. 그러나 향후 남북관계가 더욱 어려워
상적 생활양식이 구현되는 방향에서 통일교육의 기
지고 진정한 평화교육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한반도
초를 마련하여야 한다. 한편으로 우리 스스로 대북
의 평화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안보와 대북 평화의 균형적인 인식을 갖춰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평화를 정착하려는 굳은 의지
진정한 사회통합과 건전한 안보관과 평화관이 보장
를 보이고 있다. 평화교육은 새로운 통일교육의 내
되는 사회로의 도약을 위해서 통일교육이 제대로 된
용과 방법을 정립하는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이 논
역할을 해야 한다.
의 속에서 교실이나 현장에서의 통일교육은 지식으
이를 위해 통일교육의 전문가들은 통일교육이 지향
로 있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참여자 중심의 교
하고 있는 내용과 방침에 대해 면밀히 분석하고 통
육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한 순간의 평화는 몇
일의지를 올바르게 모아 가려는 노력을 지속하여야
명의 정치 지도자들에서 가능할 수는 있지만, 지속적
한다. 또한, 박근혜 정부의 통일교육은 안보와 평화
인 평화는 한반도 구성원들의 자각과 인내에서만 가
의 갈등과 난맥의 교착점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보다
능하다. 서로 신뢰하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평화
일상적으로, 보다 실질적으로, 보다 통일 지향적으
주의자나 안보주의자들은 더 큰 가치인 안보와 평화
로 안보와 평화를 수용할 수 있는 인내와 과감성, 포
를 유지시키는 방향에서 통일교육을 해야 함을 명심
용력을 갖춰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민
하면서 스스로의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간 통일교육 단체의 숙의를 통해 우리 사회가 한 걸 음 한 걸음 우보(牛步)의 통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미래 비전을 갖는 통일교육의 체계화
이다.
교육의 통합적 역할은 사회화의 문제와 관련된다. 교 육이 가진 사회화의 역할은 일체감의 형성이나 정치 질서의 정통성을 고양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 특히, 학교교육을 통해 일정한 문화양태나 정치이념 등이 체계적으로 학생들에게 전수될 경우, 그 교육은 국가 사회의 통합을 증진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박찬석은 서울대학교 (국민)윤리교육과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 고, 경수중, 광남중, 언남중, 가락고에서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공주교육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회원단체탐방
(사)남북장애인교류협회중앙회 안광범 회장
북한 장애인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남북협력 사업을 준비해 나갈 것 박지용 민화협 회원사업팀장
(사)남북장애인교류협회중앙회(이하 남북장애인교류협회)가 있는 충무로에도 벚꽃이 활짝 피었다. 여의도 벚꽃 길과는 사 뭇 다른 느낌이다. 인쇄소마다 작업에 분주한 사람들, 그 사이를 바삐 움직이는 지게차와 삼륜차, 오토바이는 충무로 골목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사람과 기계가 어우러져 만든 수많은 음표와 벚꽃이라는 쉼표가 훌륭한 음악을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일하는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공간 속에 핀 벚꽃은 아무래도 연인들과 노점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4월의 여의도 벚꽃 길 풍경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음표와 쉼표가 녹아 있는 충무로 골목의 남북장애인교류협회 사무 실에서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기념하는 장애인주간에 남북장애인교류협회 안광범 회장을 만났다.
민족화해 May / June
68 69
를 만들게 된 것이다.” 남북장애인교류협회 인쇄사업부에는 중증과 경증 장애인 각 4명씩 총 8명의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후원 사업도 꾸준하게 전개하고 있는데 몇 해 전까지는 북한이탈 주민 2명도 함께 일했다고 한다. 처음에 단순작업을 위해 채 용했는데 한 사람은 함경도에서 중학교 교사였고, 다른 사람 안광범 회장은 14세 때 사회에 나와 지금
은 한국에 와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았단다.
까지 45년 동안 ‘인쇄외길’을 걸어온 우
그래서 단순 작업에 종사시키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리나라 인쇄업계의 산증인이다. 등사부
라고 생각해 IBM 편집과 MAC 편집 교육을 했다고 한다. 북
터 시작해서 현재의 최첨단 디지털 기기
한의 교육수준이 높다고는 들었지만, 습득과 적응이 굉장히
까지 다루어보지 않은 것이 없단다. 한평
빨랐고, 이에 6~7개월 만에 월급을 많이 주는 더 좋은 직장
생 인쇄업에 종사해왔고, 시련을 딛고 이
으로 보내줬다고 한다. 안 회장은 재정적인 문제로 북한이탈
제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성
주민을 많이 채용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채용하
공한 분이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을 위
고 교육해서 북한이탈주민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해 봉사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게
바람을 전했다.
다가 남북 장애인 교류를 실현하여 민족 의 통일에 기여하겠다는 계획까지 하고
우는 사람도 속이 있어 운다
있으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안 회장은 남북 장애인 교류를 위해 북한과 접촉을 지속해서
안 회장의 설명이다. “그동안 우여곡절
시도하고 있다. 올 2월에 접촉이 예정되었으나 북한의 3차 핵
이 많았다. 부도도 있었지만, 돈도 많이
실험으로 무산되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박근혜정부는 이전의
벌었다. 53세 때 검정고시 보고, 55세 때
이명박정부와는 차별화된 대북정책을 펼 것으로 판단한다며
대학에 입학하여 과거를 돌아보니 내가
“정치적인 냉각기야 있겠지만, 민간교류차원의 보폭은 넓어
사회로부터 받았던 많은 것을 환원해야
질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전망했다. 또한 하반기쯤에 북한과
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법이 좋을까 하
의 접촉도 다시 시도할 계획이란다. 그는 “금강산관광, 개성
고 생각하다가 지금까지 인쇄업에만 종
공단 문제는 북한이 상당히 잘못하고 있다. 계약은 중요하고
사해왔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와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자기들 마음에 안 든다고 저런 식
기술로 장애인들의 재활에 도움을 주는
으로 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하면서도 “우는 사람도 속이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순수한
있어 운다고 나름대로 속이 있어 우는 건데 그들 속도 한번
장애인단체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장
들어보고, 실현 가능한 부분부터 차분하게 준비하고 노력할
기적으로 봤을 때 언젠가는 남북통일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휠체어, 의수, 의족, 목발을 지원하는
것이고, 민간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오히려 단순 지원보다는 북한 장애인
면 사회와 국가에 더 기여하는 것으로 생
들의 자립과 자활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에서 자세하게 밝힐
각해서 2009년에 남북장애인교류협회
수는 없지만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01
02 01 탈북자에게 인쇄기술을 교육하고 있는 안 회장
다음 세대가 이루어갈 통일을 함께 준비해야
02 남북장애인교류협회 이사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안 회장은 남북장애인교류협회의 인쇄사업부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지만, 앞으로 북한 어린이지원본부나 교육지원본부를
인터뷰를 마치고 충무로 골목길을 걸어
설치하고 싶다고 한다. “인쇄업계에 오래 있어서 그런지 이북
나오면서 사람과 기계의 음표와 벚꽃의
의 컴퓨터 자판이 우리와 다르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쉼표로 만들어지는 음악을 다시 생각한
이건 좀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는 지금도 남북이 공통으로 사
다. 남과 북, 보수와 진보, 장애인과 비장
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초등교육에서부터 우리가 지원해서
애인, 그리고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들을
하나씩 통합해나가야 한다. 10년, 20년 후면 바로 지금 초등
위한 삶도 생각해본다. 피아노에서 흰색
생들이 우리와 통일문제를 협의해나갈 사람들 아닌가. 초등
의 온음과 검은색의 반음이 어울려야 더
교육 지원 사업에 집중 투자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욱 아름답고 훌륭한 음악이 되는 것처럼,
한 “남북관계에서는 현재에 대한 이해관계도 중요하지만, 이
인생의 순간에도 온음과 반음이 있고, 우
에 한정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구상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 필
리 사회 곳곳에도 온음과 반음은 있다.
요하다”라고 말한다.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다음 세
온음과 반음이 많이 섞일수록 듣기 좋은
대까지도 고려하는 책임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음악이 탄생하는 것과 같이 남과 북, 보
안 회장은 “지금까지 민화협이 정말 여러 가지 역할을 많이
수와 진보,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더 많
해왔다. 남북관계에서 정부 차원의 냉각기에도 민간 차원의
이, 더 자주 섞여야 하지 않을까.
대북 인도지원을 성사시키는 등 민화협의 역할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유지해왔다는 측면에서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라며 “민화협이 남남대화와 소외계층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 고, 통일문제는 우리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 안고 가야 할 숙제이기에 앞으로도 더 큰 소임을 맡아나가야 할 것”이라 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동안 민화협과 남북장애인교류협회 와의 협력이 조금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적극 소통 하고 협력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가
70 71
민족화해 May / June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Books
1
북한소설선 북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 가고 있을까? 매체가 한정돼 있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한을 알기란 더더욱 어렵다. 다만 그들 이 직접 쓴 글을 본다면 조금 더 북한을 이해하는 선’은 12편의 북한 작품을 모아 그들의 인식을 가
사적 기록성과 미적 거리의 길항: 북한 대표작가 천세봉의 문학과 삶
늠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한다. 특히
제3세계의 노벨상인 로스터상을 수상한 작가 천
국내에 소개되었던 북한 소설이 1980~90년대 작
세봉. 그는 북한의 대표 작가로 북한 문학사에서
품이었다면,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양적·질
해방 이전의 문학사적 전통과 1960년대 이후 형성
적으로 상당한 다양성과 풍부함을 제공할 것이다.
되는 주체문학론으로의 교량적 역할을 한 지위를
유임하 편 | 작가와비평 | 2013년 3월 30일
가진다. 또한 천세봉은 1946년 초 문단에 등장하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번에 발간된 ‘북한소설
2
여 1986년 작고 전 마지막 장편 수기 『작가수업 40 1
2
년』을 남기기까지 40여 년간 작품을 발표(10편의
3
장편(권수로는 13권), 중편 4편, 단편 33편과 이외 에도 많은 가사, 장시 평론 등)한 다작가로 북한문 학을 거시적 안목에서 접근하게끔 한다. 김은정 저 | 소명출판 | 2013년 3월 25일
4 3
삐라에서 디도스까지: 북한 대남 사이버테러의 현재와 미래 휴전선 인근에서 서로 뿌리고 뿌렸던 삐라, 그리 고 지금 대북전단살포. 북한의 대남사이버공작과
4
평양과 프라하: 프라하의 봄, 평양의 미래
속속들이 들려오는 해킹소식. 휴전 이후 보이지
‘프라하의 봄’은 실패와 좌절의 과정으로서의 자
않는 미디어전쟁을 남북한은 치르고 있다. ‘삐라
유민주주의의 상징이다. 1980년대 남한사회도 ‘서
에서 디도스까지’는 저자가 겪은 다양한 경험담
울의 봄’을 외쳤다. 그런데 우리 윗동네 평양은 어
을 통해 남북 미디어 전쟁의 치열한 이면을 보여
떨까? 저자는 체제전환에 성공한 프라하와 북한
준다. 다소 감정적이고 색깔이 덫칠되었다고 바라
을 비교·연구했다. 프라하의 혁명과정을 지켜보
보는 이들도 있겠지만, 현재 남북한의 현실을 보
며, 평양이 선택해야 할 미래는 무엇인지, 저자가
여주는 자료일 것이다.
이야기하는 영세중립국은 가능할지 ‘평양과 프라
하태경 저 | 글통 | 2013년 3월 30일
하’를 통해 북한이 가야 할 길, ‘평양의 봄’을 조심 스레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김정훈 저 | 한국학술정보 | 2013년 4월 1일
Network
신임임원
행사 안내
민족화해 네트워크
NETWORK
민화협과 회원단체들의 활동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민화협 제15차 대의원회, 8기 지도부 구성 및 2013년 사업계획 확정 민화협은 3월 12일 오후 2시 백범기념관에서 ‘민화협 제15차 정기 대의원회’를 개최 하여 8기 지도부를 새롭게 선출하고, 2013년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8기 지도부 구 성과 관련해서는 김덕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을 비롯하여, 김정숙 한국여성단체 협의회 회장,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문진국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 통일부 장관 표창자 단체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김필건)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 구천서)
원장이 재선출되었으며,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설훈 국회의원(민주통합당), 황영철 국회의원(새누리당)이 새롭게 상임의장단에 합류했다. 또한 구천서 공동의 장을 비롯한 공동의장 32인과 감사 2인에 대한 선출도 이뤄졌다.
개인 강승구 (민화협 샌프란시스코협의회 사무처장)
민화협은 2013년 주요 추진과제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민간차원의 주도적 역
김삼수 (경실련 통일협회 팀장)
김종진 (남북문화교류협회 사무총장)
할 수행, ▶남북 민간교류의 업그레이드와 새로운 발전전망 모색, ▶통일문제에 대
박현선 (‘민족화해’ 편집기획위원)
송원상 (세계평화청년연합 사무국장)
신명언 (한국자유총연맹 기획조정본부장)
사업, ③ 국민합의기반 확대사업, ④ 홍보사업, ⑤ 조직활성화사업, ⑥ 단체운영 등
여혜숙 (민화협 여성위원장)
6개 분야의 사업을 확정했다.
이석자 (통일여성안보중앙회 중앙회장)
대의원들은 결의문을 통해 “북한은 민족을 공멸로 몰고 갈 수 있는 일체의 행위를
이찬재 (한국역술인협회 사무총장) 이효정 (민화협 간사)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촉구하고, 우리 정부가 “냉철하고 이성적인 자세로 현재
장흥석 (민화협 중국협의회 공동 상임의장)
정우식 (민화협 청년위원장)
최원식 (민화협 대양주협의회 공동의장)
한 국민적 합의수준 제고, ▶‘정당·사회단체 간 상설 협의체’로 기능 강화, ▶국민 참여의 확대와 통일준비 역량 강화로 정하고, ① 민족화해사업, ② 국민참여 통일
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보다 대담 한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하면서, 한반도 평화, 국민합의, 통일기반 확대를 위 해 민화협이 더욱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천식 통일부차관이 참석하여 축사를 했으며, 평화와 통일을 위 해 열심히 노력해온 민화협 소속 단체와 개인에게 통일부장관 표창도 주어졌다.
민화협은 지난 4월 5일(금) 민화협 8기 제1차 의장단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는
민화협 8기 제1차 의장단 회의, 집행위원회 구성
지난 3월 12일 대의원대회에서 선출된 상임의장 및 공동의장이 참여한 첫 회의로 의장단은 개성공단 등 최근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민화협 사업 및 활동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특히, 이날 회의에서는 ‘제8기 집행임원’에 대 한 선임도 이뤄졌으며, 4월 19일 열린 집행위원회에서는 이성헌 집행위원장이 상 임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이로써 민화협은 상임의장, 공동의장, 감사, 집 행임원 등 8기 지도부 인선을 마무리했으며, 앞으로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민간통 일기구로서 남북관계 정상화와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합의 확대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해나갈 예정이다.
민족화해 May / June
72 73
민화협은 4월 18일 오전 11시, 프레스센터 19층 국화홀에서 민화협 고문단 초청 간
민화협 초청 고문단 간담회,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화협의 적극적 역할 주문
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개성공단 잠정 중단 등 엄중한 남북관계 상황에 대한 종교·시민사회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민화 협의 활동방향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이날 행사에는 김민하(전 평통수석부의장), 김영주(NCCK 총무), 남궁성(원불교 교 정원장), 박남수(천도교 교령), 손장래(사랑의 연탄나눔 상임고문), 이창복(6·15남 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임동원(전 통일부장관), 한양원(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민화협 고문단과 더불어, 김덕룡 대표상임의장, 권미혁 상임의장, 설훈 상임의장, 영담 공동의장(스님), 김삼열 공동의장 등 민화협 의장단이 참석하여 최근의 한반 도 정세와 민화협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고문단은 현재의 상황을 악화시키기 않도록 남북 모두 자극적인 언동을 자제할 것 을 당부했으며, 정전협정 60년을 맞이하여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4개 국 평화회담을 시작하는 운동 등을 민화협이 전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 도 제시됐다. 또한 위기의 남북관계 상황을 타개를 위한 활동을 민화협이 적극적 으로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며, 민화협이 정당·종교·시민단체로 구성된 만큼, 범 국민적 지혜를 모아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각계가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방안을 찾 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민화협 정책위원회는 4월 3일(수) 배재학술센터 역사관물관 3층 회의실에서 제1차
민화협 정책위원회 전문가 간담회,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모색
전문가 간담회를 개최했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정상화 전략”을 주제 로 진행된 이번 간담회는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을 분석하고, 향후 남북관계 정상화 전략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로 진행됐다. 발표를 맡은 정낙근 여의도연구소 정책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동안 실현 가 능성을 고려하여 대북정책의 목표를 잡고 있으며, 신뢰와 균형으로 남북관계를 정 상화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인도적 문제의 실질적인 해 결’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나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법과 제도가 뒷 받침된 대북정책 추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간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북한의 책임만을 강조하 기보다는 그러한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초점을 맞춘 대북정책이 추진되어 야 한다고 강조하고, 5~6월부터는 남북관계가 풀릴 가능성이 있는 만큼, 지금부터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Network
신임임원
행사 안내
신임임원
민화협 8기 임원
민화협 15차 대의원회에서 새롭게 선임된 민화협 임원진 입니다.
여성위원장
상임의장 (7인) 김덕룡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영 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여혜숙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권미혁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유시춘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공동이사장
진민자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부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이배영 남북문화교류협회 이사장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장
이병웅 남북지역교류중앙협의회 상임의장
문진국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이장희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대표
설 훈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이재윤 민족통일중앙협의회 회장
전준호 대한불교청년회 회장
황영철 국회의원, 새누리당
장주영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하준태 KYC 공동대표
청년위원장
정의화 남북의료협력재단 이사장
공동의장 (32인)
정지창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회장 조성우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조직위원장
구천서 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
차경애 한국YWCA연합회 회장
이규홍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하철경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이이재 국회의원, 새누리당
집행위원장
홍보위원장
이성헌 상임집행위원장 전 국회의원, 새누리당
김영만 위키트리 부회장
김은숙 남북지역균형발전협의회 회장 김진표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김형문 한국유권자운동연합 상임의장 김희철 민화협중국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남부원 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마의웅 전 대한태권도협회 총재대행 문난영 세계평화여성연합 회장
백복순 한국교총 사무총장 진성준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통일교육위원장
이승환 통일맞이 이사
이영동 전 통일교육협의회 사무총장 박현선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문상주 한국직능경제단체총연합회 회장 박남수 동학민족통일회 대표의장
정책위원장
박원철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상임대표 박종률 한국기자협회 회장 백옥자 새마을부녀회중앙연합회 회장 법 륜 평화재단 이사장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민족화해 편집인
정문헌 국회의원, 새누리당
이경형
홍익표 국회의원, 민주통합당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예술마을 헤이리 이사장
설용수 남북통일국민운동연합 회장 성명숙 대한간호협회 회장
문화예술체육 위원장
안무혁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회장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황의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
민족화해 May / June
74 75
행사 안내
민화협 행사 안내 2013 민화협 정책토론회 한반도 ‘그린 데탕트’의 길을 찾는다 민화협은 5월 7일 오후 2시, “한반
일시 2013년 5월 7일(화) 오후 1시 30분
장소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도 ‘그린 데탕트’의 길을 찾는다”를
주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관
겨레의 숲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프로그램
번 토론회는 남북관계가 어려운 상
사회 박명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원장
황이긴 하지만, 북한 산림녹화 사
발표 한반도 그린 데탕트와 남북녹색협력 방향 | 손기웅 한국DMZ학회 회장
업과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 등
북한 산림실태와 산림복구를 위한 남북협력 방안 | 김성일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환경·생태 분야를 중심으로 남북
남북 공유하천과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방안 | 김영봉 한반도발전연구원 원장
협력 방안을 모색하면서, 남북관계
토론 노태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글로벌센터장
발전과 상생의 토대를 만들어나가
이정민 평화의숲 사무국장(겨레의숲 운영위원)
기 위해 마련되었다.
최용환 경기개발연구원 통일·동북아센터장
여성평화통일대화마당
탈북한의사 김지은이 말하는 “마음의 경계를 넘어 통일의 희망 찾기”
민화협 여성위원회는 오는 5월 16일 오후 2시,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 탈북 한의사인 김지은 진한의원 원장을 초청하 여 ‘여성통일대화마당‘을 진행한다. 김지은 한의사는 북한에서 한의사로 일하다가 1999년 탈북하여 2009년 남한에서도 한의학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번 행사는 김지은 한의사의 삶을 통해, 북한 사회와 통일문제를 이해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일시 2013년 5월 16일(목) 오후 14시~16시
장소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
강사 김지은 진한의원 원장
주관 민화협 여성위원회
참가문의 민화협 회원사업팀 (02-761-1213)
2030 통일을 말하다 남북관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민화협은 오는 5월 14일, 프레스센
일시 2013. 5. 14(화) 오후 2시
터 19층에서 ‘2030 통일공감 포럼’
주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을 개최한다. 이번 포럼은 20~30
주관
대 대학생 및 대학원생이 주축이
프로그램
되어 진행되며, 젊은 세대의 시선
사회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으로 보는 통일 및 남북관계 해법
발표 급변하는 한반도, 한국의 통일 환경 평가와 과제 | 조진희 고려대 북한학과 박사과정
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기반 조성 | 정대진 연세대 통일학협동과정
되었다.
정전 60년, 2030세대의 역할과 과제 | 노현종 고려대 북한학과 석사
장소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고려대학교대학원북한학과원우회, 북한통일학대학원생연구협의회
토론 백진숙 고려대 북한학과 석사과정
정세희 중앙대 북한개발협력학과 석사
탁용달 동국대 북한학과 박사수료
장 휘 고려대 북한학과 2년, 학술부장
서평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와중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동아시아 국가 관계에 복잡하고 미묘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
북한·중국 순치관계 60년의 구조와 변용 문대근 통일부 상근회담 대표
북핵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과 불신은 동북아에서 얕은 진영의 논리를 재현, 신냉전의 분위 기를 조성하고 있다. 한반도 남북관계는 강대국의 동 맹정치가 지배하는 가운데 구심력이 고갈되어 긴장 과 경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국제사회는 동북아와 한반도 불안정의 원천인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일면 중국의 북한 후견·보호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국과 미 국은 북한의 변화와 올바른 선택을 위해 중국이 실효 적인 대북 제재조치(영향력)를 취하라고 요구하고 있 다. 북한의 변화와 한반도 상황의 긍정적 변화에 큰 영 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국은 여전히 모호성과 이중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기존의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 의 관심사는 중북관계가 언제까지 역사적·지정학적 인식에 입각한 ‘순치관계’와 ‘전통적 우호협력관계’를 지속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책(『북한·중국관계 60년』)은 이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귀중한 책이다.
북한·중국관계 60년 히라이와
지 저 | 이종국 역 | 선인 | 2013. 3.
사실, 그동안 동북아 상황의 핵심변수인 중국과 중북 관계에 대한 연구는 그 관심도만큼 다방면에서 수많 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이 책과 같이 중북관계에
21세기 초 동아시아 정세는 핵심변수인 미중관계가
관한 통시적인 연구와 함께 현안 중심의 사건 분석을
변화하면서 역내 질서의 지각변동을 초래하고 있다.
통해 중북관계의 본질과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 특히 2010년 중
지속되어온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는 중북관계를 규
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G2)가 된 것은 동아시
정하고 있는 요인으로 역사·사회문화·이념·지정
아 역사를 가르는 큰 사건이었다. 2011년 중일 간의
학적 요인 또는 구조적 요인과 행위자 요인을 중심으
조어도(釣魚島)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이 승리함으로
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 통시적인 중북관계 역사 연
써 중국은 청일전쟁 이후 100여 년 만에 다시 동아시
구는 이종석의 『북한-중국관계 1945-2000』뿐이다.
아의 강자가 되었다. 이에 미국은 중국을 견제·봉쇄
이런 실정에서, 이 책은 중북 순치관계 60년(1949-
하고자 급히 ‘아시아로 회귀’한다. 중국은 북한의 전
2009)을 4개의 요인(① 대미 안보, ② 이데올로기,
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중북관계를 밀착, ‘과거로
③ 전통적 관계, ④ 경제관계)을 가지고 중북관계의
민족화해 May / June
76 77
역사적 전개와 구조적인 변용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
보고자 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다. 저자는 구
다만, 이 책은 중북관계의 성격 변화를 가져온 각종
조적인 관점에서 중북 순치상의(또는 보가위국) 관계
사건과 요인을 중심으로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형식
는 미국에 대항하는 것으로, 중국의 대북정책은 기본
을 취하고 있지만, 60년 동안의 거의 모든 관련 사실
적으로 대미관계와 직결되어 있다고 본다. 그 연장선
과 현상을 열거하는 경우가 많다. 다소 생동감이 부
상에서 미중 수교와 협력, 갈등 등 미중관계의 변화
족해서 일독하는 데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고 있다.
와 북한의 대미접근 태도가 중북관계의 구조적이고
중북관계의 결정요인과 성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 주요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구의 대상 시기의 제한으로 인해 2009년 10월 이
특히 저자가 안보·통일 측면의 중북관계를 북한문
후 세기적인 미중관계의 변화 속에서 중북 순치관계
제와 타이완문제를 연계해서 분석하고 있는 것은 핵
와 전통적 우의가 재평가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 점
심을 짚는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중북관계 60년이 상
도 아쉬움이다.
호 비대칭성에도 불구하고 불신·갈등 속에서 초조
그럼에도 이 책은 중국과 중북관계를 연구하는 분들
함을 쌓아온, 단결·대립의 위험성이 내포된 유사적
께 중요한 많은 정보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과
인 대등관계라고 본 것도 특수한 중북관계의 본질과
한반도 통일, 중국의 대북정책과 중북관계를 연구하
실체에 더 다가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북관계 60
는 필자에게는 중북관계를 미중관계 및 타이완문제
년 동안 ① 요인인 대미 안전보장상의 관계와 ④ 요
와 연계해볼 필요성을 환기시켜주었다. 또 중북관계
인인 경제관계의 상호작용을 중심축으로, 그때그때
를 규정해온 위의 4개 요인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
의 필요에 따라 ② 요인인 이데올로기와 ③ 요인인
서 중북관계의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작용해왔는지
전통적 관계가 양국관계의 긴밀성을 치장하고 중북
에 대한 문제인식과 단초를 제공해준 것도 큰 소득
관계를 파탄상태로 이르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로서
이다. 이 책을 내 서재의 중심에 놓여야 할 이유이다.
작용해왔다는 결론은 중북관계를 조망하는 데 유용
끝으로, 중국과 중북관계는 미중관계와 함께 한반도
한 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규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중국의 대북정책
이 책이 가치가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 학자라
과 중북관계는 한국의 대북·통일정책 및 남북관계
는 제3자적 입장에서 비교적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와 직결되어 있다. 한국이 중국과의 소통·협력, 신
시각과 가치관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한
뢰프로세스 없이 북한·통일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국과 미국의 학자들의 경우 다분히 희망적 사고를 가
없다. 이 책이 관련 연구와 논의는 물론 우리가 주도
지고 중국의 대북정책과 중북관계의 변화·조정을
적으로 북한·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한국의 미
찾고자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중북
래를 열어 가는 데 있어 좋은 참고가 되기를 기대해
관계 60년의 역사적 사실들을 북한과 중국의 1차 자
본다. 중북관계 60년의 역사를 보면, 중북관계와 한
료를 바탕으로 사실들을 조합해 결론을 도출하고 있
반도의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다. 저자가 미중 간의 불신·경쟁 관계 속에서 타이 완문제, 분단 상황에서 대미 안보불안 및 체제적 동 일성이 중북 특수관계를 지속시키는 요인이라는 점 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문대근은 1985년부터 통일부에서 근무(일반직 고위공무원)하고 있 다. 요녕사회과학원, 주중국대사관, 상하이사회과학원 근무·연수(4 년 반)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를 취득했다. 저서 로는 『한반도 통일과 중국』(2009), 『중국의 대북정책』(2013)이 있다.
무대 혹은 스크린
STAGE or SCREEN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한샘 EBS PD
시공간을 종횡무진으로 휘저으며 초특급 스타들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들과 비교해볼 때,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초
영화
가족의 나라
라하기 그지없다. 그 흔한 액션장면이나 컴퓨터CG 하나 찾 아볼 수조차 없다. 그저 오사카 이쿠노의 작은 동네를 배경삼 아, 한 가족 사이에서 일어난 몇 주간의 이야기들을 묵묵히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초, 혁명에 대한 애국심과 기대를 품고 북송선인 만경봉호에 세 아들을 미련 없이 태워 보냈던 한 조 총련계 가족이 바로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겪을 수밖에 없는 사연들을 다루고 있다. 선전선동에 속아 자식들을 북쪽에 보
작품을 보는 내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낸 것이 곧 씻을 수 없는 오판임을 깨닫게 된 부모는 여생(餘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가슴 한구석이 막혀오
生)을 속죄의 심정으로 아들들을 위해 보낸다. 북쪽 자식들
는 듯한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스크
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그들은 슬픔을 표현할 수조차 없다. 오
린 쪽으로 가는 시선을 어찌할 수 없었다는
히려 가족을 붕괴시킨 가해세력에게 끝없이 물질적·정신적
점이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으로 봉사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희한한 상황을 소녀 때부터 지켜보며 자라온 여동생은 이 영화의 감독(양영희)이 되었다. 이즈음 되면, 작품의 배경부 터가 누구나 알고 있는 흔한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영화 속에는 사랑하는 새끼를 맹수 앞에 인질로 내어준 어미 의 심정이 너무나도 절박하게 드러나 있다. 다만 여타의 작 품들과 다른 점이라면 인질이 영원히 풀려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당사자도, 주변 가족들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극 도의 감정적 긴장감이 역시 극도의 절제감을 통해 스크린 전 편에 흐르고 있었다. 이야기는 종양에 걸린 막내오빠 건민이 치료를 위해 평양에서 오사카로 일시귀국하면서 시작된다. 아들의 병이 평양에서 완치가 불가능함을 알게 된 부모는 각 고의 노력으로 3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허락받아 그를 일본 의 집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 이 기적과 같은 실화는 바로 딸 에 의해 작품의 소재가 된다. 대다수의 영화가 주는 감동과 즐거움을 이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다. 무언가를 애써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럼
민족화해 May / June
78 79
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극적 구성을 통해 객석을 장악해나가
났던 실재적 상황을 영화 속에 그대로 재
고 있었다. 이른바 정면승부다. 관객에게 일일이 설명하거나
현해냄으로써 각색된 드라마가 갖는 한계
감정을 배려하려는 기색조차 없는 것이다. 감독의 이러한 자
를 넘어서서 진실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참
신감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필자는 점점 이 묘한 영화의 매력
으로 강력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아
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닐 수 없다.
화면 속 주인공은 말이 거의 없다. 수십 년 만에 고향을 찾아
이제 국가권력에 의해 삶이 박탈되었던 북
온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무수한 주변의 질문들에도 주인공
송동포들의 이야기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알 듯 말 듯한 미소만 지을 뿐,
않은 그들의 연로(年老)한 나이와 함께 역
북쪽의 생활에 대해서도 직장에 대해서도 남겨두고 온 가족
사의 뒤편 너머로 사라져가고 있다. 그리고
에 대해서도 그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가 살아온 세상은 자
양영희 감독은 여기에 분연히 맞서고 있다.
신에 대한 질문조차도 스스로 답할 수가 없는 사회였던 것이
자기 가족에게 자행된 폭력의 상처들이 그
다. 당(黨)이 답을 정해줄 때까지 그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말
냥 방치된 채, 세월이라는 흐름 속에서 잊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는 이 역설
힐 위기에 처하자 감독은 자신의 이야기와
적인 전달 방식이 작품 <가족의 나라>에서는 너무나도 훌륭
카메라를 무기삼아 배후의 세력을 향해 선
하게 들어맞고 있었다. 유쾌한 웃음거리나 손에 땀을 쥐게 하
전포고를 하고 있었다. 쉽게 이길 수 없는,
는 복선들, 눈물로 얼룩진 연애사가 전무(全無)함에도 불구하
어쩌면 상대 자체가 불가능한 싸움이다. 그
고 이 영화는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 일반적인 영화가 주
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
는 오락적 기능 이외에 또 다른 중요한 기능–한 편의 영화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해 특정시대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이야기와 함께 담아
그녀의 의지가 살아 있는 한, 그리고 그녀
냄으로써 잊히기 쉬운 소중한 진실들을 후세에 전달하고 보
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관객들이 있는
존하는–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감독 양영희의
한, 그들은 이 싸움을 절대 회피할 수도, 또
화면 속에서 영화라는 장르가 갖는 몇몇 가치를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도 없다. 신념을 이겨낼 수 있는
발견할 수 있었다.
무기는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계속될지도
영화 <가족의 나라>에서는 감독의 오빠이자 북송동포였던 건
모를 싸움을 시작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
민이 한정된 체류기간 동안 잃어버렸던 자신을 찾아가는 과
다. 양영희 감독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정을 잔잔히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 조직을 위해, 직장을 위
않았다. 끝나지 않았기에 오늘도 여전히 현
해, 그리고 위대한 지도자를 위해 오직 누군가를 위한 삶만
재진행형이다.
을 살아야만 했던 주인공이 여태까지 포기해왔던 자신의 존 재를 어렴풋이 되찾아갈 무렵, 영화는 북쪽으로부터 떨어진 급작스러운 건민의 귀환명령과 함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잔 인한 현실적인 구성에 말문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그들의 인생에 기적은 없었던 것이다. 감독은 자신에게 일어
오한샘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고, 현재 EBS PD로 있다. 제10회 통일언론인 대상(2004), 대한민국 PD대상 실험정신상(2008), 푸른 미디어상 (2008)을 수상했고, <장학퀴즈>, <예술의 광장>, <EBS 시네마천국>, <천년의 밥상> 등 공연 및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독자 의견
READER'S
2013. 03+04 Vol.61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독자 여러분이 보내주신 의견을 소개해드립니다.
남북관계는 언제나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지만 결론의 대화와 타협이 중요합니 다. 서로 대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쟁 위협은 우리를 안심할 수 없게 만듭니 다. 민족화해가 서로 살아남을 수 있는 최대, 최후의 답입니다. 민화협은 민족화 해를 계속해서 추진하고 끝까지 인내로 한반도 평화를 구축해주시길 바랍니다. 박재옥 서울시 도봉구
<독자엽서>로 정답과 의견을 보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61호 정답은 ③ 적정기술입니다. 채택되신 분들께는 2만원 상당의
안녕하세요! 이번 처음으로 접했는데 도움도 많이 된 것 같아서 이렇게 엽서를
문화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쓰네요. 저는 62호에서 “남북 ‘그린 데탕트’의 열쇠이다”라는 기사가 좋았습니다. 요즘 북한과의 관계가 더 나빠진 듯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전쟁 이야기가 나오 니 점점 국민들 마음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연 전남 여수
61호에는 특집, 박종철 박사의 글 ‘차별성에 대한 강조보다, 과거 정부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를 가장 관심 있게 봤습니다. 바람직한 대북정책 방향 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정보를 제공해주셔서 나중에 아이들 안보교육할 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알찬 정보 부탁드립니다. 강건우 인천 남동구
함께 만드는 민족화해
61호에서 가장 유익한 정보가 된 기사는 “지속가능한 녹색 개발의 기회가 될 수
민족화해 63호에서 독자여러분의 작품을 받습니다.
있다”였습니다. 요즘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날씨가 이상하고 기온이 쉽게 떨어졌
아래 주제와 어울리는 수필, 시, 그림, 카툰,
다가 또 갑자기 더워지는데요. 날씨가 점점 예전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지구온 난화 방지를 위해 힘써서 지구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이런
포토에세이 등 여러분의 작품을 보내주세요. 선정되신 분께는 작품게재와 함께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정보들 많이 주세요. 송국화 전북 순창
7·8월호(63호) 주제 DMZ (비무장지대) 응모형식 수필(원고지 14매 분량), 시, 일촉즉발, 국민은 두렵다. 평화는 간데없고 전쟁이란 공포가 와 닿는다. 언제까 지 이래야 하는가? 전쟁은 한민족 공멸이다. 승자라도 남을 것이 없다. 전쟁은 미연에 막고 평화는 누려야 한다. 정부 당국은 남북대화를 회복해 우발적인 국
그림, 카툰, 포토에세이 등 2013년 6월 15일(토) 보낼곳 kcrcpolicy @ naver.com 수상작 발표 및 게재 민족화해 7·8월호(63호) 지면 응모기한
지적 도발도 막아야 한다. 남북대화만이 한민족 번영을 보장한다. 번영이냐 공 멸이냐는 우리 선택에 달렸다. 군사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 민족번영을 추구해 야 한다. 채규정 전북 군산
※ 반드시 본인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독자와 함께 읽는 글 ➋
“다시 손을 잡을 날은...”
신랑, 어때, 좋지? 신부도 좋지? 남과 북도 이렇게 합치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면서 다투지들 말어 서로 고무찬양해야 돼 <정희성, ‘어느 통일꾼의 주례사’ 전문>
정희성 시인은 1945년 경남 창원 출신으로 서울대 국문과를 나와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제1회 김수영문학상과 만해문학상을 받았다. 외모나 성품처럼 단정하고 단아하면서 절제된 시어로 오달지게 가슴 아리는 시를 아끼고 아껴 쓰는 그런 시인이다. 이 시는 그의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창비시선, 1991년)에 실려 있는데 시인은 “나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지 않고 당신들의 가슴을 울리기를 기대하면서”시집을 냈다고 했다. 남은 북을, 북은 남을 ‘고무찬양’ 할 그런 시절은 오려나.
KC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