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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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1 www.kcrc.or.kr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2013 03·04

특집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성공의 길을 말하다


CONTENTS Vol.61 March / April 2013 02 특집

|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성공의 길을 말하다 · 차별성에 대한 강조보다, 과거 정부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 박종철

COVER STORY

북으로 뻗어 있는 도라산 철길

14 공PD의 북한 취재수첩

북으로 이어져 있는 경의선 철길이 도라선 역에서 멈춰있다. 녹슬어가고 있는 철길에 세워진 두개의 ‘정지’표지판이 철거될 날은 언제 일까.

· 남북대화 재개와 남북경협 확대로 ‘통일경제권’ 형성해야 한다 | 이상만 · 햇볕과 반햇볕을 수렴하는 ‘호혜주의’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 이재호

· 김정은이 물려 받은 유산, 先軍

| 공용철

18 진단

· 북한의 우주발사체 제작기술 습득, 어떻게 가능했나? | 강호제 · 북한 핵문제, 그래도 6자회담이 현실적 대안이다 | 임수호

26 특파원 리포트

· 호파당위(戶破堂危)의 중국 외교,

북한을 버릴 수 있을 것인가 | 박일근

28 르포 - 통일로 가는 길목

· 2013년 설날 임진각 망향경모제(望鄕敬慕祭) 분김으로 목메어 부르지 못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32 만나고 싶었습니다

| 이수언

|

유창근 (사)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 “이제 개성공단도 노동집약형 단지를 넘어,

국제화 되어야 합니다” | 염규현

민족화해 2013년 3·4월호(통권 61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3 - 4 동우국제빌딩 4층 전화 02.761.1 2 1 3 팩스 02.761.6590 홈페이지 www.kcrc.or.kr

발행일 2013년 3월 5일 발행인 김덕룡 편집인 이수언 홍보위원장 김영만 편집기획위원 공용철, 김용현, 박현선, 오한샘, 이석, 이우영, 정영태, 조동호 편집장 이운식 편집부 이현희, 정봉우리 디자인 및 제작 (주)풍경애드컴소풍 070.7433.1123

02


통일을 준비하는 격월간지

36 좌담회 - 남북관계 시선vs시선

66 지금 북한은

· ‘인도적 대북지원’,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대규모 축산기지 공사로 분주, 경제상황 나아졌나

| 장철운

과제는 무엇인가 | 박현선·박창일·이금순

42 기획

68 현장 |

북한주민을 위한 ‘적정기술’은?

· 북한의 외부의존도를 낮추는 적정기술 | 김정태 · 북한의 저개발 상황, 지속가능한 녹색개발의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국면,

남북관계 민간단체의 활로는? | 민화협 정책홍보팀

기회가 될 수 있다 | 장수영

70 민족화해 네트워크

50 남북교류협력

72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 북한 산림녹화 사업은

남북 ‘그린 데탕드’의 열쇠이다 | 박경석

74 서평

· 북한에 부는 면학 열풍,

|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민족화해는 ‘교양시민’ 성장의 필수조건

| 김진환

학생들을 위한 희망의 등불이 필요하다 | 곽경전

76 무대 혹은 스크린

58 길에서 만나는 평화

62 새터민 에세이 · 어려웠던 선택, 끝없는 도전 |

대한불교청년회

· 통일운동은 만해정신을 실천하는 것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통일 한반도의 중요한 동력이다

| 박영균

80 독자의 글

| 지예정

64 단체탐방

| 오한샘

78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작은 약속으로 평화를 그리다 | 임영신

·상처 입은 수컷들의 한 판 승부 - 영화 베를린

· 내가 머문 곳의 사람들을 위한 여행,

·‘현명한 정보 소비자 되기’와

‘양질의 정보 제공자 찾기’ | 이민주 | 민화협

회원사업팀

18

36

42


특집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성공의 길을 말하다

차별성에 대한 강조보다, 과거 정부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과거 15년 대북정책의 한계 2000년대 이후 정부교체에 따라 다양한 대북정책이 실시되었다. 김대중·노무현 정 부의 포용정책하에서는 두 차례의 정상회담, 분야별 남북대화, 교류협력 등이 추진 되었다. 그러나 북핵문제의 미해결, 교류협력의 비제도화, 군사적 긴장 지속 등의 문 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하에서는 북한의 비핵 화에 우선순위를 두고 북한의 개방 유도, 교류협력의 제도화 등 남북관계의 패러다 임 전환이 모색되었으나 남북관계 경색, 북한의 대남군사도발 등의 문제가 나타났다.


민족화해 March/ April

02 03

대북포용정책과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은 각기

에 직면하였다.

통일에 대한 철학, 북한에 대한 인식, 목표, 정책수

넷째, 북핵문제와 남북관계의 관계 설정에 대한 것

단 등에 있어서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대

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핵문제는 한반도 및 동북아

북정책의 이러한 차이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들과

의 안보문제일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의 모든 측면

씨름해야 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과

첫째, 대북정책의 목표와 수단의 조합이라는 문제

거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제네바합의나 6자회

가 있다. 대북포용정책은 햇볕이라는 정책수단을

담이라는 북핵문제에 대한 협상틀이 작동하는 상

강조했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인한

황에서 가능하였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북핵문제와

다는 목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취급되었다. 이

남북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명박 정부의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은 비핵화와

인도적 지원이나 국제사회를 통한 대북협력 등은

북한의 변화라는 목표를 중시하고, 정책수단으로

북핵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을 수 있다. 따

압박을 중시하였지만, 대북지원이나 경협 등 다양

라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로, 어떤 분

한 정책수단을 활용하지 못했다.

야에서 연결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둘째, 북한의 의도와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

다섯째, 대북정책에 대한 남남갈등 해소와 국민적

했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제공

합의에 대한 것이다. 대북·통일문제에는 이념갈

하고 교류·협력을 지속하면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등과 지역갈등, 세대갈등이 중첩적으로 얽혀 있다.

핵무기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을 시행하고 적대적

역대 정부는 대북·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

대남정책을 포기할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뿌리 깊은 갈등구

북한의 변화는 기대에 못 미쳤다. 원칙에 입각한

조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북정책은 북한에 압박을 실시하면 북한의 내구 력이 고갈됨으로써 비핵화와 개혁·개방을 수용하

객관적 환경 분석에 기초한 대북정책이 필요

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남

박근혜 정부는 국제적 차원, 북한 차원, 국내 차원

북관계의 단절과 국제적 제재에도 북한체제는 여

의 환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토대 위에서 실현가

전히 생존력을 유지하고 있다.

능성을 고려하여 대북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셋째,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구축하는 데

첫째, 국제환경의 변화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어려움이 있다. 남북관계는 구조적으로 국제적 협

냉전체제의 해체 후 세계화가 추진되면서 유럽의

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특히, 중국의 부상으로

쇠퇴, 미국의 약화, 일본의 침체 등 국제환경의 변

G2 시대가 도래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

화가 발생하였다. 특히 G2시대 도래로 인한 미·

의 영향력이 증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동

중 패권경쟁, 중·일 세력경쟁 등이 대북정책에 미

맹을 공고히 하면서도 한중 협력을 확대해야 하는

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역대 정부는 한미동맹을

둘째, 김정은 체제의 권력구조와 정책전망에 대한

강화하면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반면, 중국

분석이 필요하다. 김정은 체제는 김정은의 우상화,

과 협력을 추구하면 한미동맹이 이완되는 딜레마

권력구조의 개편으로 표면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국가와 사회·시장 간

적 지원 제공, 남북교류협력 진전 등에서 차별화를

역학관계의 변화가 초래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

시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대외정책과 핵·미사일 문제의 전

또한, 대북정책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

망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이 바람직하다.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을 견지하면

셋째, 국내 여론의 동향을 고려해야 한다. 남남갈

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한편, 상황변화에 대한 선제

등이 정치적 대립과 이념갈등으로 굳어져 절대 다

적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 대북포용정책

수의 국민적 지지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사회적

과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의 교훈과 시사점을 활

양극화와 실업난으로 국민들은 실리적 관점에서

용해야 한다. 대북포용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정책

통일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이념갈등과 함께

모두 북한의 비핵화,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협력의

세대갈등의 실태 및 전망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제도화, 북한의 변화 등의 목표 달성에 실패하였

이처럼 국제적 차원, 북한 차원, 국내 차원의 환

다. 이것은 북한의 대남정책 불변, 한반도 문제의

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평가한 바탕 위에서 대북

구조적 제약, 정책수단의 한계, 국민적 합의 부족,

정책의 기회요인과 위협요인을 추출해야 한다. 대

국제협력의 한계 등에서 기인하였다. 또한, 대북

북정책에 대한 기회요인은 북한의 대남관계 개선

포용정책이든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이든 정책효

의 실리적 이유(경제적 실리 기대, 대미접근의 환

과가 나타나기에는 짧은 기간 실시되었다는 문제

경 조성 등), 오바마 2기 행정부의 대북접촉 필요,

점도 있었다.

남북경색 완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 등이다. 그리고

따라서 그동안 축적된 대북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대북정책에 대한 위협요인은 북한의 핵개발 지속

고려한 바탕 위에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모

과 대남도발 가능성,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중국

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 정부의 정책과 차

의 북한 감싸기 지속, 이념갈등, 신세대의 통일무

별성을 강조하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기보

관심 등이다.

다는 과거 정부의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활용해야 한다.

바람직한 대북정책 방향은 무엇인가

둘째, 외교, 국방, 통일 정책을 조정하고 연계해야

대북정책을 바람직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첫째,

한다. 외교, 국방, 통일 정책이 연계된 점을 감안하

대북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면서 변화를 모색해야

여 정책조율 및 연계성을 유지해야 한다. 국정과제

한다. 대북정책의 예측가능성을 향상하고 정책효

를 보면 국방 분야는 억지력 확보, 북핵문제 해결

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등에 대한 것이고, 대북·통일 분야는 한반도 신뢰

가운데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근혜

프로세스 추진, 행복한 통일 등에 대한 것이다. 외

정부의 대북정책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연속

교 분야는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북방 3각 협력 추

성을 유지하면서도 정책의 신축성과 점진적 관계

진, 유라시아협력 확대 등에 대한 것이다. 국가안

진전에 역점을 두고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특

보실이 컨트롤 타워로서 외교, 국방, 통일 분야의

히, 박근혜 정부는 통일준비론 등의 정책을 유지하

정책조율과 역할 분담, 유기적 연계 등을 모색할

면서 한반도 신뢰형성을 위해 남북대화 중시, 인도

것으로 예상된다.


민족화해 March/ April

04 05

셋째,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전략적 유연성을 유지

반도 위기관리에 역점을 두는 한편, 남북관계 개선

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원칙과 기본 방향을 유지하

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강화해야 한

되 북한의 반응과 국내외 상황변화를 감안하여 전

다. 아울러 북한의 변화와 남북협력 여건을 조성하

략적 유연성을 지녀야 한다. 원칙에 너무 집착하

기 위해 남북한 차원과 국제 차원에서 다층적 협력

여 상황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거나 논리적 엄격성

망을 중층적으로 형성해야 한다. 남북대화 재개 노

이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을 방지해야 한다. 대북정

력과 함께, 미·북대화, 중·북관계 등을 활용하여

책의 논리와 체계를 마련하되, 너무 경직된 정책의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한·

체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대북정책의 기조를 유

미·중 3자 전략대화, 한·미·일 3자 전략대화 등

지하면서도 전략적 신축성을 유지하고 정책대안을

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통일에 유리한 국제

검토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특히, 김정은 체제에

환경을 조성하고 우리의 주도력을 향상하기 위해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토대로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

서 통일외교에도 역점을 두어야 한다.

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권력구조, 대내외 정

여섯째, 국민통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민주화 이

책방향 등에 대해서 선입관이나 고정된 시각을 배

후 어느 정부든지 과반수를 약간 상회하는 지지를

제하고, 객관적인 정보 분석과 평가를 실시해야 한

얻어 집권하기 때문에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

다.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의 반응과 정책방

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대북정책에 대

향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

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우선 정치권에

는 대북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서 여·야 간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에 대해서 최

넷째, 대북정책의 현안과 중장기 목표를 구분하여

소한 합의를 도출하여 대북정책이 정치적 문제로

정책방향을 수립해야 한다. 대북정책의 현안에는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진보·보수의

5·24 조치 문제, 남북대화 재개, 인도적 지원, 이

시민단체 간 소통기회를 확대하여 대북정책에 대

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재개, 6자회담 재개 등이

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통일문제에 대

포함된다. 그리고 중장기 목표는 비핵화의 완전 이

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대하기 위해 통일교육체계

행,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통일 추진 등에 대한 것

의 개편도 필요하다. 보수, 진보의 견해가 균형 있

이다. 그리고 분단의 관리 및 평화·협력추진이라

게 반영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균형

는 중기목표와 통일추진이라는 장기목표 간의 연

잡힌 내용의 통일교육이 지속적으로 실시될 수 있

계성을 마련해야 한다. 통일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도록 해야 한다.

염두에 두고 분단관리 및 평화·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실현가능한 목 표를 설정하고 이에 역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대북정책의 법적·제도적 기 반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는 것도 필요하다. 다섯째, 다층적 협력망을 형성해야 한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나 대남도발 등을 방지하기 위한 한

박종철은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를 받고, 통일연구원에서 동 북아 안보, 남북한 협력, 한반도 평화체제, 남북한 군비통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일본 도쿄대 교환교수, 국가안전보장회의 자문 위원, 미국 하버드대 교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통일부 자문위원 으로 활동 중이다.


특집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성공의 길을 말하다

남북대화 재개와 남북경협 확대로 ‘통일경제권’ 형성해야 한다

01

이상만 중앙대학교 북한개발협력학과 교수

과거의 공과를 아우르는 새로운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북한, 미국, 중국에 이어 한국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새로운 정권은 앞으 로 5년간 국민들이 부여한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 저성장, 가계부채, 청년실 업 등 당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산적했다. 그러나 그중에도 최우선적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가 남북문제이다. 현재와 같은 남북갈등 구조는 한반도의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우리 국가의 발전 에도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 간의 글로벌 패권구도 속에서 원하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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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는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통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북한이 미

일은 우리 민족의 잠재력 결집을 통해서 세계 강국

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이러한 기대

으로 나아가기 위한 민족의 장기발전 전략이며 우

감은 무너져버렸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남북관계

리 경제의 발전을 위한 성장 동력으로 활용되어야

가 호전될 가능성도 높지가 않은 상황이다.

한다. 그리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발전이 필수적이다.

남북경협의 위축,

새 정권의 출범으로 경색 국면이 계속되었던 남북

북한의 대 중국 의존도 심화시키고 있다

관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

2000년대에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오던 남북경협

계가 변화의 시점에 있는 만큼 새 정부의 대북정책

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 이후 남북 간 대치 국면이

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정부는 객관적인 평가

장기화하면서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전면 중단된

를 통해 과거 정부의 공과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

상황이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운 대북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북중 간 경협은 양과 질적으로 확대되어 중국에 대

와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의 장점들은 계승되어

한 북한의 경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야 하며,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중 버려야 할 것

천안함 폭침 이후 내려진 대북 경제제재 조처인

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갈

5·24조처에 따라 대북사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등의 관계로부터 대화, 그리고 협력의 관계로 발전

받게 되는데 5·24조처 뒤 남북 간 일반교역액은

시켜야 한다. 남북관계의 안정을 통해 국민들의 불

54.1%나 줄었으며 위탁가공 분야는 22.5%로 줄어

안을 해소하는 것이 중요하다.

들었다가 지금은 사업 전체가 중단된 상태다. 남북

한편, 현재 남북관계는 남북의 군사적 갈등이 지속

경색 국면이 지속되면서 전업 또는 폐업하는 대북

되는 상황에서 당국 간 대화도 중단되고 있어 경색

사업체들이 속출하고 있는데 대북사업을 일시적으

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

로 중단한 기업은 102곳이 되는 것으로 조사되고

에 이어 발생한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은 남북관계

있다. 또한, 협력 사업의 경우 그동안 10건에 이르

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이후 남북관계는

던 남쪽 기업의 북한 광산개발 투자도 중단되었으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사과 요구에 대해

나 상대적으로 중국 기업의 북한 광산투자는 늘어

북한이 불응하면서 남북대화는 중단되어 왔다. 그

나서 2002년 약 5,000만 달러였던 북한의 대 중국

러나 남북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의 개혁

광물 수출액이 2010년에는 8억 6,000만 달러로 증

가능성이 가시화되고 박근혜 정부의 대화 복원에

가하여 17배로 급증하였다.

대한 의지가 강해서 새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에 새

최근 북중경협은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데 압록

로운 변화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강 하구의 황금평과 위화도의 북중 공동개발 그리 고 북한 나진항과 훈춘을 잇는 도로 개설을 위한 공 사도 시작되었다. 중국의 동북지역개발과 연계되

01 개성공단 전경.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남북대화를 촉진하는 요인이다.

는 경우 앞으로 북중경협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 으로 보인다. 북중경협의 급격한 확대는 단기적으


이 상황을 악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하였다는 비판 도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2000년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전면적 부정 그리고 황금평, 위화도 경제지대 북중공동개발 착공식. 남북경협의 위축으로 북한의 대 중국 의존도가 심해지고 있다.

파급 효과에 대한 세밀한 준비와 대응 조처도 없이 북한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5·24 대북 제재의 성과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가 진 전문가들이 많은데 이 조처가 북한보다는 대북 사업을 하는 우리 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북한

로는 북한의 개방을 촉진시키는 긍정적인 영향도

에 주는 영향보다도 우리의 대북사업자들에게 치

있겠지만 북한의 급속한 대 중국 의존 그리고 남북

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경협과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남북관계 경색 이후 남북경협과 북중경협의 균형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 깨진 점도 앞으로 우리의 대북정책 추진에 영향

남북경협의 전반적인 위축 속에서도 개성공단만

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후 남북

은 현재 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데 5·24조처

경협은 정체되는 상황에서 북중경협은 양과 질적

에 따라 신규투자가 허용되지 않는 불리한 상황

으로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에서도 생산액이 26.1% 늘어났다. 개성공단의 경

중국의 단둥과 북한의 황금평 연계개발 그리고 중

우 정상가동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신규투자가 허

국의 동북(장지투) 지역과 북한의 나선 지역의 연

용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활성화될 가능성은 높지

계 개발은 북중경협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가 않다.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의 대 중국

한편, 남북경협의 상징사업인 금강산 관광도 2008

경제 의존도의 심화는 향후 남북경협에 부정적인

년 7월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이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중단되어 그동안 운영되고 있던 호텔 등 모든 시설

중국의 동북아 개발 정책의 가속화로 북중경협이

도 운영 중단 상황에 있다. 그리고 북한은 공식사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금강산 등 기존의

과 없이 금강산 내 우리 재산을 몰수, 동결하겠다

남북경협 사업이 장기적으로 중단되는 경우 그동

고 통보하는 등 일방적인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어

안 쌓아온 남북경협의 기본 틀이 붕괴할 가능성도

북한의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가까운 시일 내에 금

있다. 남북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어 남북경협의 재

강산 관광이 재개될 가능성은 낮다.

개 비용이 점차 증대되면 대북투자에 대한 위험부 담이 높아져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대북사업에 대

남북 경색 장기화,

한 투자 의욕을 저하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남북경협 재개 비용의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이다.

남북 경색 국면이 지속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북한

남북경협의 활성화는 당국 간 그리고 민간차원의

의 군사적 도발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사

남북대화를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북한의

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의 경직성

개혁개방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도 중요하다.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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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남북경협의 복원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

군사적 충돌이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가 받는 충격

다. 현 시점에서 더욱 유연한 대북정책을 통해서

은 심각한 수준 이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충

남북관계를 경색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킬

격은 국가 이미지에도 타격을 입혀 지속적으로 우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 필요가 있다.

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남북 경제협력의 활성화와 이를 통한 남북관계의

북한의 개혁을 지원하는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안정은 군사적 갈등으로부터 발생하는 북한 리스

북한의 경제개혁은 북한의 내부적 변화라는 필요

크를 완화할 수 있다. 북한 리스크 완화는 남북관

조건과 함께 남북관계의 변화라는 충분조건이 충

계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족되어야만 그 시동이 걸리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서도 필수적이다. 남북 간 대화와 교류협력의 활

경제개혁을 시동하기 위해서는 보다 새롭고 창의

성화는 북한 리스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효

적인 우리의 대북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그러한 측

율적인 방안이며, 이를 위해서는 정경분리정책의

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경직된 대북정책을 그대로

추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경분리정책의 지

답습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속적인 추진을 통해서 정치군사 부문의 불안정한

북한의 개혁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설정되

요인이 남북 경제교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화의 재개와 남북경협

필요가 있다.

의 활성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남북경

우리는 남북대화의 재개와 경제협력의 확대를 통

협의 지속적인 확대를 위해서는 정치군사적 영향

해서 남북 경제가 동반성장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을

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경 분리적인 대북정책의 추

열어야 하며, 이를 통해 민족경제의 잠재력을 키

진이 요구된다.

워야 한다. 한국경제가 40-80클럽(1인당 국민소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먼저 통일과 남북협

득 4만 달러, 인구 8,000만 명) 시대로의 장기적

력에 대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통일은 우리가

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북 경제협력을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비용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통일경제권을 형성해야 하며 이를 통해 부작용 없

통일에 따른 장기적 이익도 클 것으로 추정된다.

는 경제통합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야말

안정적인 투자 환경, 내수시장의 확대, 노동력과

로 통일과 남북 경제협력의 진정한 목적임을 인식

풍부한 자원 확보 등을 통한 경제 활성화로 우리

하고, 새 정부가 제시하는 미래로 가는 길임을 명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이 가능해질 것이다.

심해야 한다.

통일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으로 국 민소득이 높아지면 한국경제는 세계적인 슈퍼파워 의 길로 진입할 수 있다. 한편, 남북 간에 불필요한 긴장과 대립은 우리 경 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의 정치 군사문제는 우리 사회와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가 져다줄 수가 있다. 특히, 남북 간에 예견되지 않는

이상만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 경제 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연구학회 회장, KBS 보도본부 객 원해설위원, 통일부 정책평가위원을 지냈으며, 현재는 중앙대 북한 개발협력학과 교수, 개성공단지원재단 자문위원장, 북한정책포럼 운영위원장, 통일경제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집 새 정부의 대북정책, 성공의 길을 말하다

햇볕과 반햇볕을 수렴하는 ‘호혜주의’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원장

무조건 흡수통일론자, 무조건 유화론자가 아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한국과 국제사회를 또 한 번 흔들어놓았다. 핵을 가진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우리의 고민은 더 깊어지게 됐다. 다양한 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있으나 딱히 이렇다 할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답답하다. 으레 그 렇듯이 이런 막막함은 책임소재를 가리는 논쟁으로 번지게 마련이다. 탈북자 출신 북한 연구자 두 사람의 상반된 목소리가 한 예다. 안찬일(세계북한연구 센터장)은 월간 신동아(3월호)가 마련한 긴급 대담에서 “햇볕정책으로 엄청난 액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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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현금이 북으로 넘어갔고, 이 돈이 핵개발에 쓰

서 싸운 게 아니라, 싸우기 위해서 차이를 과장해

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김형덕(한반

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도평화번영연구소장)은 “개성공단 같은 곳을 5~6

이는 햇볕과 반햇볕 모두 스스로 만든 유령과 싸웠

개 더 만들었어야 했다”면서 “10개만 되어도 한국

기 때문이다. 한 예로 흡수통일만 해도 그렇다. 적

기업이 철수하면 북한 주민 100만~200만 명의 생

어도 노태우 정권 이후엔 보수 우파 정부의 책임

존이 위협을 받는데 북이 과연 멋대로 핵실험을 할

있는 인사 중 누구도 흡수통일을 거론한 사람이 없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 당장 실현될 가능성도 없고, 떠안게 될 부담만

두 사람의 주장에는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천문학적인데 공연히 흡수통일 운운해봤자 북한만

갈라진 인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것은 햇볕정책

자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수 우

과 반(反)햇볕정책 간의 오랜 대립과 불화로 응축

파는 햇볕론자들에 의해 흡수통일론자가 돼 있다.

할 수 있다. 국민통합을 위한 대북정책은 양자 사

햇볕론자들은 있지도 않은 ‘유령 흡수통일론자’를

이의 이런 골을 메울 수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어

만들어놓고 공격해왔다.

떻게 메울 것인가. 양자의 수렴을 통해서 메워야

거꾸로 햇볕론자라고 해서 다 ‘퍼주기’이고, 다 유

한다. 나는 햇볕과 반햇볕의 차이가 다분히 과장됐

화론자인가? 아니다. 그들 역시 안보의 중요성을

기 때문에 충분히 수렴될 수 있다고 본다.

모르지 않는다. DJ가 햇볕정책을 위해 내세운 대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햇볕론자들에게 “북한이 무

북 3원칙 중 첫 번째가 무력도발 불용이고, 본인 스

슨 짓을 해도 무조건 대화와 지원만 하자는 것인

스로도 재임 중 기회 있을 때마다 안보를 강조했

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우리가 언제 그랬는가. 김

다. 그런데도 햇볕론자들은 안보는 뒷전인 채 퍼주

대중(DJ) 대통령이 그랬듯이 안보도 중요하다고

기나 하는 유화론자가 돼 있다. 반햇볕론자들은 존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는가”라며 반발할 것이다. 반

재하지도 않는 ‘유령 유화론자’를 만들어놓고 매질

대로 반햇볕론자들에게 “안보가 중요하다고 대화

을 해온 것이다.

1)

도 안 하고 지원도 안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 “우리 가 언제 대화를 안 한다고 했는가, 원칙을 지켜가

햇볕정책은 박정희 정부부터 이어져온 진화의 산물

며 하자는 것 아닌가”라며 화부터 낼 것이다.

햇볕과 반햇볕의 수렴을 위해서는 먼저 햇볕정책

대북정책에 대한 숱한 논쟁과 연구, 이론화 모색도

을 진화(進化)의 산물로 인식하려는 자세가 중요하

결국은 이 두 질문과 두 답변으로 압축된다. 같은

다. DJ의 독창적 산물이라기보다는 역대 정권의

질문을 하고 같은 답변을 하고, 그리고 다시 같은

대북 화해·협력정책이 끊임없이 발전해온 결과로

질문을 하고 같은 답변하기를 거듭해온 것이다. 어

봐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정권에서든 대북 화해·

떻게 보면 참 허망한 일이다. 햇볕도 반햇볕도 결

협력정책은 시대적 당위이자 목표로 추진됐다. DJ

국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는 양쪽으

는 여기에다 ‘햇볕정책’이란 이름을 붙여줬을 뿐이

로 편이 갈려 싸워온 것이다. 양자가 차이가 있어

다. 박정희의 7·4 남북공동성명, 노태우의 북방정

1) 이 글은 필자의 졸저 『사회통합형 대북정책』(나남, 2013)을 기초로 쓰였음을 밝힌다.


<대북화해·협력정책 진화과정>

박정희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7.4남북공동성명

북방정책, 남북기본합의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남북정상회담 추진, 북핵 동결 노력 (북미 제네바기본합의)

햇볕정책

“햇볕정책은 역대정권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이 끊임없이 발전해온 결과로 봐야 한다” 책과 남북기본합의서, 김영삼의 남북정상회담 추

교’처럼 인식되어온 이유는 뭘까. 그것은 △민주화

진과 북핵 동결 노력(북미 제네바기본합의)이 없었

운동가로서의 DJ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채(負債)

다면 DJ의 햇볕정책도 없었을 것이다.

의식이 그의 대북정책에 전이됨으로써 대북정책도

그런데도 DJ는 전 정권들의 이런 노력을 적극적으

그의 민주화투쟁처럼 올바르고 선견지명이 있을

로 인정하거나 평가하지 않았고, 이게 결국 부메랑

것이라는 인식, △엄혹했던 냉전시절의 권위주의

이 됐다. 금강산관광이나 남북정상회담만 해도 역

체제 아래서 남북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소신을 밝

사에 남을 만한 업적임에도 이를 오직 ‘햇볕정책의

힌 선구자적 자세와 용기, △반평생을 남북문제와

성과’로만 한정지음으로써 그 의의를 반감시켰다.

씨름해온 집념과 전문성 때문일 것이다.

만약 DJ가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문제는 이런 ‘김대중 신화’에 대한 반햇볕론자들의

에 담긴 화해·협력의 정신을 이어받고, 김영삼 정

대응이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데 있다. DJ에 대해

권의 북핵 동결 노력의 도움을 받았기에 가능했다”

역대 보수 우파정권은 폭력으로 억누르거나, 이

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념적으로 낙인찍으려고만 들었지 이성적 경쟁의

남북정상회담도 금강산관광도 햇볕정책만의 산물

장(場)에서 대화와 논리로 압도할 생각을 못했다.

이 되는 바람에 상당수 국민에겐 퍼주기의 대가

따라서 결과는 언제나 과민반응으로 나타나곤 했

(代價)로 비춰졌고, 이는 다시 DJ 자신과 햇볕정

다. 선수(先手)를 빼앗긴 사람은 선수를 친 사람에

책에 대한 격렬한 찬반논쟁과 분열로 이어졌다.

게 질시와 열등감을 갖기 마련이어서 대응은 늘 감

DJ와 그 지지자들이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정적 형태를 띠었고, 이런 과잉대응은 오히려 DJ

삶의 평범한 지혜를 대북정책에서도 발휘했더라면

의 위상만 높여주는 일이 반복돼왔다. 한마디로 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 우파는 DJ에게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이로 인

반햇볕론자들의 책임도 크다. 남북관계 담론의 영

해 대북정책 논의는 균형을 잃고 진보 쪽으로 기

역에서 DJ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연 적정한지는 나

울었다.

역시 의문이다. 햇볕정책은 여느 정권의 대북 화

반햇볕론자들이 ‘김대중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려면

해·협력정책과 본질에선 다를 바가 없는데도 지

상대적으로 남북대화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를 버

지자들 사이에선 전혀 다른 것처럼, 심지어는 ‘종

려야 한다. DJ를 의식하지 말고 경우에 따라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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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보다 더 크고 더 잦은 대화도 할 수 있다는 자

람을 통해서 수렴되어야 한다. 대북정책에 대한 담

세를 가져야 한다. 아울러 햇볕정책을 포함해 모든

론과 정책의 영역에서 햇볕과 반햇볕으로 갈린 사

포용정책은 기본적으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정책

람들 사이에서 수렴이 일어나야 분열과 갈등을 줄

임을 인정해야 한다. 햇볕을 쪼여서 결과가 나오려

일 수 있다. 한 예로 임동원과 이동복의 화해가 이

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건 상식인데 기다려주

뤄져야 한다. 대북정책 연구에서 가히 국가대표선

지 않고 그저 몰아붙이니까 햇볕론자들도 어깃장

수라 할 만한 두 사람은 1990년대 초만 해도 생각

을 놓듯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단적인 예가 노무

도 같았고 관계도 긴밀했다. 1991년 탄생한 한반도

현 정권 말기(2007년)에 나온 10·4 남북합의다.

비핵화 공동선언과 19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

실질적 임기를 불과 2개월을 남겨놓고 이런 큰 합

작성 작업도 함께했다. 그런 두 사람이 갈라섬으로

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써 햇볕과 반햇볕 간의 골을 더 깊게 했으므로 이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밀어붙였다. “임기가 끝나

제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 2월 25일 출범하는 새 정

기 전에 쐐기(대못)를 박아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는 이 두 사람을 함께 기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중압감에 쫓긴 탓이었다.

는 대단히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햇볕이건, 반햇볕이건 목표가 전쟁을 하자는 것이

햇볕과 반햇볕은 수렴될 수 있다

아니라면,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을 허용하자는 게

햇볕론자든 반햇볕론자든 이제부터라도 ‘상호주의’

아니라면, 소수 종북주의자들이 햇볕과 반햇볕 간

라는 말을 버리고 ‘호혜주의’라는 말을 써야 한다.

의 벌어진 틈새에서 기생하는 것을 방관할 생각이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에선 1 대 1의 엄격한 상호주

아니라면, 대북정책은 마땅히 양자의 수렴을 통해

의는 존재할 수 없는데도 햇볕론자들은 반햇볕론

수립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대화만 하겠다는 것이

자들을 ‘상호주의자’로 낙인찍고, 반햇볕론자들은

아니라는데, 대화를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는데,

햇볕론자들을 ‘상호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사람들’

왜 수렴이 안 되겠는가. 햇볕도 반햇볕도 지고지선

로 몰아붙임으로써 실익(實益)도 없는 상호주의 논

의 정책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햇볕과 반햇볕으로

쟁만 가열시켰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반햇

나뉘어 이처럼 심한 갈등과 분열을 겪게 된 데에는

볕론자들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대북관계에서 1 대

서로가 자신의 정책과 견해가 완전하다고 믿은 독

1의 상호주의를 고집하겠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10

선과 아집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견해가 완전하지

을 주고 1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않듯이 내 견해도 완벽하지 않다고 스스로 몸을 낮

노태우·김영삼 정권도 다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춘다면 수렴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겸허히 몸을 낮

도 햇볕론자들에 의해 대북 대화와 지원에 소극적

춰 이를 인정하는 것이 국민통합형 대북정책을 일

인 ‘상호주의자’ 이미지로 덧칠해져 있다. ‘호혜주

궈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의’라는 말을 쓴다면 적어도 이런 이미지는 사라질 것이다. 북한도 상호주의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하 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햇볕과 반햇볕은 대화, 시간, 상호주의 외에도 사

이재호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정치 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장, 편집국부국장, 논설실장, 출판편집인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한국출 판문화산업진흥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주한미군』,『사 회통합형 대북정책』 등이 있다.


공PD의 북한 취재수첩

김정은이 물려 받은 유산,

先 軍

공용철 KBS PD

김정은의 유산, 선군과 주체 “위성 하나 띄우고 핵실험에 성공하면 세계적 추세에서 우리나라가 제 일이구나라고 긍지감을 가져요, 허리띠 졸라맬 땐 매더라도….” 북한 이 3차 핵실험을 한 지난 2월, 중국에서 만난 평안북도 용천주민의 얘 기다. 필자가 지금까지 만난 북한 주민들 대다수는 핵과 미사일에 대 해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사탕과자를 못 먹이는 한이 있더라도 총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그렇게 느끼게 된 데는 일제의 식민통치라는 트라우마 와 미국에 대한 증오, 두려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잔혹했고 그 때문에 나라를 잃은 설움이 크기도 했지만, 김일성의 항 일투쟁을 선전하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일제의 식민 통치가 과장되었다. 북한체제의 성립과 존립근거가 일제의 식민지배 로부터의 해방이고, 그 핵심에 김일성의 독립투쟁이 있었다는 이데올 로기를 주입시키는 과정에서 “아무리 못 먹고 못 입더라도 자기 울타 리만은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 이념이 된 것이다. 김일성 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한 항일계의 후손들이 북한의 핵심 지배 엘리 트가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계는 특유의 응 집력으로 해방 이후 계속된 내부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항일계는 자신들의 존립근거를 정당화하기 위해 항일투쟁을 과대 포장 해 주민들에게 세뇌시켰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국에 대한 증오심 부 추기기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추가되었다. 냉전을 거치면서 미국에 대 한 위협인식과 증오의식은 더욱 배가되었다.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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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를 지키지 못하면 일제 식민통치 시절처럼 “종처럼 숨죽이며 살아야 한다”고 주민들은 세 뇌를 받았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나라를 건 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다. 강원도 원산시민의 얘기다. “핵이나 원자탄 이 없었다면 우리 수령님께서 찾아주신 우리나라가 벌써 미군한테 먹혔을 것이에요. 미사 일 만들고 핵무기 만들고 세계적 추세에서 무기도 뒤처지지 말아야지요. 그거 뒤처져서 우 리나라를 얕보고 확 먹어치우면 어떡합니까?” 지난 100여 년간 북한 주민들이 키워온 반일, 반미의식은 선군정치의 뿌리가 되었다. 아무 리 혹독한 독재정권일지라도 대중의 지지 없이는 존립이 어렵다. 북한이 선군정치라는 용 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김일성 사후지만 북한은 해방 이후 줄곧 군사우선 노선을 견지 해왔다.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계는 해방정국에서 건당, 건국에 이르는 시기까지 군사 부문 책임자를 타 세력에게 양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에도 군 수공업을 필두로 한 중공업 우선정책이 핵심노선이었다. 냉전이 격화된 1960년대에는 4대 군사노선이라 하여 전국을 요새화하고 전 주민들을 군대처럼 조직화했다. 1970년대부터는 미사일 개발에 몰두해왔고,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고 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 추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인민생활이 피폐해질수록 선군이 강조되었다. 한정된 자원을 군사부문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선군이라는 용어사용 시기와 무관하게 건 국 이후 일관되게 북한은 선군정치를 시행해왔다. 남한이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경제성장 에 주력하던 시기에도 북한은 군사부문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왔다. 냉전과 분단이 초래한 결과였다.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반일·반미의식이 더욱 강조되었고, 한·미·일을 중심 으로 한 남쪽으로부터의 위협도 확대·과장되었다. 선군은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킨다는 미 명하에 체제유지, 정권안보가 목적이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가 장 큰 유산이 선군이었던 것이다.

先軍에 희생된 북한 주민들 해방 이후 70년 가까이 지속된 선군정치로 북한은 병영국가가 되었다. 110만에 이르는 정규 군에 노농적위대 등 전 주민들을 군사동원체제로 묶었다. 군 복무기간도 10년이다. 북한 어 디를 가나 군인들이 널려 있고 곳곳에서 검문검색이 이뤄진다. 가족이나 친척, 친구 가운데 군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주민들이 군대에 대해서 느끼는 친근감도 각별하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결혼상대자로 군관(군 장교)들이 손꼽힌다. 군인이 아닌 사람들도 카키 색 군복계열의 옷을 즐겨 입고, 외부로부터의 각종 지원물자가 군대에 우선적으로 지급되는


것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평양시민의 얘기다. “우리 군인들도 백성들 의 자식 아닙니까? 내 딸도 군인인데 내가 내 딸을 먹이는 게 왜 나쁩 니까? 나는 내가 배곯아도 우리 딸 먹였으면 좋겠습니다. 내 새끼들이 먹는데 뭐가 나쁩니까? 난 우리 자식이 군대 가서 배 곯을까 봐 걱정입 니다.” 선군이 사회체제와 주민들의 의식까지 바꾼 것이다. 선군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국방부문에 집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 공업·국방공업 우선 성장전략이 강조될수록 북한의 인민경제는 더욱 피폐해졌다. 지난해만 보더라도 김정은이 젊은 지도자로서 대중친화 지난 1월 5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신년사 관 철을 위한 10만 평양시민 군중대회가 열렸다. 선군정치로 한정된 자원이 국방부문에 집중되 면서 인민경제는 더욱 피폐해 지고 있다.

적인 리더십을 선보이고,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지만 인민생활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선대부터 강성대국 진입이라는 슬로건 아래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진행해온 평양의 10만 세대 주택 건설도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건물이 완공돼 주민들이 입주한 아파트도 물이 나오지 않아 원 성이 자자하다. 만성적인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건설한 희천발전소도 부실공사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 후 중국산 저가 제품이 밀려들어 가면서 북한의 경공업도 거의 붕괴되 었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자재와 에너지, 외화 부족으로 공장가동이 멈췄다면, 지금은 가격경쟁으로도 중국산을 이기지 못해 공장을 돌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만성적인 식량난이 회복될 기 미도 보이지 않는다. 하위계층 주민들은 1월부터 식량난을 겪기 시작 해 3, 4월엔 최악의 춘궁기를 견뎌야 한다.

선군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김정은 체제는 핵과 미사일 개발, 군사강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접지 못할 것이다. 선군정치로 인한 핵과 미사일 개발은 국제사회로부터 북한의 고립을 심화시켰다. 연이은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었다. 그 결과 북한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심화되었다. 2000년대 초반만 해 도 태국, 일본, 한국 등 비교적 다변화되어 있던 대외무역구조가 중국 일변도로 바뀌었다. 대북제재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도 대폭 감소했 다. 선군정치가 대외무역,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영향을 미쳐 주 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켰다. 선군을 위해 주민들이 희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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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軍과 우리의 과제 2011년 필자는 최초로 북한 주민들의 통일의식을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깜짝 놀랐던 사실 가운데 하나는 북한 주민들의 주체의식이 대단히 강하다는 것이었다. 102명의 조사 대상자 가운데 61명이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라고 응답했다. 통일을 위해서 남한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이 미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응답했다. “미국 놈 때 문에 우리가 분열의 고통을 겪는구나! 우리 조선민족의 하나같은 목소리일 겁니다. 우리는 자주적인 우리 군대가 지키는데 한국은 아직도 미국이 지켜주는 것과 같죠. 그러니까 한국 은 식민지란 말입니다.” 평안북도 삭주주민의 얘기처럼 응답자 모두가 자주와 주체의 중요 성을 강조했다. 선군정치의 뿌리도 자주와 주체다. 냉전과 분단체제가 낳은 역사적 경험에서 북한 주민들이 주체의식을 내면화한 것이다. 북 한 주민들이 갖게 된 주체의식의 내면화는 선군정치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다. 정권유지를 바라는 지배엘리트들의 욕망과 대중의 인식이 선군으로 모아지기 때문이다. 김정은 등장 이후 군 중심에서 당 중심으로 통치 스타일이 바뀌었다는 얘기도 큰 의미가 없 다. 지배 형식이 어찌되었든 북한 사회 전반에 군사우선논리가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기 때 문이다. 주체와 선군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김정은 체제가 통치 스타일을 바꿀 수는 있어도 본질이 변화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아무리 주변 상황이 바뀐다고 한들 선군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김정은 체제는 핵과 미사일 개발, 군사강국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접지 못할 것 이다.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선군을 고집하는 상황에서 남한의 어떤 정부 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3차 핵실험으로 북한의 핵보유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굳 어져가고 있다. 동시에 북한 핵문제는 우리에게 시급한 안보위기가 되었다. 안보위기와 국 제사회의 제재국면에서, 미국과 중국이 세력경쟁을 하는 동북아 정치구도에서, 우리가 움직 일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극히 좁다. 자주와 주체의식으로 똘똘 뭉친 북한 주민들과 개방화·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글로벌 파트너십을 익혀가는 남한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의식의 접 점도 없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넘어 통일로 가는 길이 요원해 보인다. 김정은의 유산인 先軍, 새롭게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맞이한 가장 큰 도전이자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공용철은 1990년 KBS공채 17기로 입사하여 <도전지구탐험대>, <TV문화기행>, <KBS일요스페셜> 등을 제작했다. 2003년부 터는 북한의 시장과 주민생활을 밀착 취재하는 르포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해오고 있다. 2006년 <KBS일요스페셜> “2006 북한, 중국 자본에 종속되는가?”로 통일언론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진단

북한의 우주발사체 제작기술 습득, 어떻게 가능했나? 강호제 이화여자대학교 통일학연구원 연구위원

1998년, 2009년, 2012년 세 번의 인공위성 발사시험으로 이제는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스 스로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대부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만 들 수 있을 때보다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 때 기계제작 수준이 높아졌다고 이야기한다. 정 밀도 등이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비행기보다 전투기, 전투기보다 우주발 사체를 만들 수 있으려면 기계제작 능력은 또다시 대폭 늘어나야만 한다. 우주발사체를 스스로 제작하여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국가를 일컫는 ‘스페이스 클럽’에 속한 국가가 10개 국밖에 안 되는 이유가 그만큼 어려운 기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정밀 공작기계를 만들 수 있는 국가가 스페이스 클럽에 속한 국가와 거의 같다는 사실을 보아도 기계제작 능력 이 최첨단에 도달해야 우주발사체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과 같이 못사는 나라가 어떻게 최첨단 기술에 해당하는 우주발사체 제작 능 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 : 기계 보급량 확대 1957년, 1958년 2년 동안 계획에 없었던 성과들이 달성되면서 1959년 천리마운동은 북한 의 특징인 집단주의와 결합되어 ‘천리마작업반운동’으로 발전되었다. 기술발전을 통한 ‘질 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일종의 ‘북한식 기술혁신운동’을 추진한 것이었다. 이 당시부터 북한의 과학기술 수준은 부쩍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1961년부터 시작되는 1차 7개년계획에서는 ‘기술혁명’을 우선적인 과제로 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북한 공업 분야의 근본적인 한계인 기계공업 분야는 여전히 다른 분야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 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바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이었다. 1959년에 시 작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은 말 그대로 생산현장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계기구 제 작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공작기계를 가지고 일반 부속을 만들면서 틈틈이 공작기계 자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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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대 더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즉, 공작기계로 일

대한 타진과 점검 이후 새로운 운동은 1985년부

반 부속이 아니라 공작기계 자체를 만들어 기계제

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전자화, 수자조종화

작 능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된 대형 및 특수정밀 공작기계’들을 개발하기 위

처음으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이 시작될 때에는

한 ‘제2의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은 1985년 6월부

주로 선반, 바이트 등을 비롯한 절삭기구 중심이었

터 1988년 9월까지 전개되었다. 그사이에 NC공

지만 1960년부터는 한 단계 수준을 높여 프레스와

작기계인 ‘구성-105호’가 제작되었는데 이는 오늘

같은 압착가공기구를 중심으로 공작기계새끼치기

날 북한의 CNC공작기계의 원조라 불리는 ‘련하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낮은 수준부터 시작하여 점차

계’의 원형(prototype)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CNC

높은 수준으로, 작은 규모의 기계에서부터 대형 기

공작기계 제작기술의 발전을 비추어볼 때 2차 공작

계로 점차 발전하였던 것이다.

기계새끼치기운동을 기점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했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이 공작기계 대수를 늘리는

다고 볼 수 있다.

데 급급했다고 하면서 이 운동의 영향력을 평가절 하하는 연구도 있지만, 기계기구 제작 능력이 매우 떨어졌던 당시 북한의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 운동 이 나름대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공작기계 보급대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 던 상황에서 공작기계 보급대수를 급격히 늘렸던 것이다. 즉 질적 성장까지는 아니었지만 양적 성장 은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1959년 말 전국의 공 작기계 보급대수가 1958년에 비해 1.8배로 늘어났 다고 한다). 또한,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으로 인해 대부분의 공 장에서 부속품과 공구 등을 생산하는 공무직장의 능력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에 원래 부속품과 공 구를 생산하여 공급해줄 임무를 맡았던 전문 기계 공장의 부담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만큼 이들 전문 기계공장들은 전문적인 기계설비를 생산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공작기계새 끼치기운동은 더욱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제2의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은 1982년 11월, 김일 성이 ‘자동화된 공작기계’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운 동을 제안하면서 시작되었다. 그의 제안에 대해 과 학원의 과학자, 기술자를 중심으로 사업 가능성에

북한은 1988년부터 기계설비의 CNC화 추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억지로 인공위성 발사시험을 강행하는 이유가 앞으로 제작하여 팔고 싶은 ‘북한제 기계제품’의 신뢰도와 상관있을 듯하다. “첨단 수준의 기계제작능력을 보유한 ‘북한’이 제작한 제품, 성능을 보장합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만들기 위함일 수도 있다.

1991년 10월에 개최된 ‘전국과학자대회’에서도 이 러한 정책적 방향을 중점적으로 토론, 강조하였다. 1995년 김정일이 처음 보았다고 한 CNC공작기계 는 구성-105호를 토대로 발전시킨 ‘구성-10호 만 북한은 작년 12월 12일 장거리로켓인 ‘은하3호’를 발사했다.

능선반(4축)’이었던 것 같다. 이를 기반으로 2001 년에 개량한 것인 ‘CNC 구성-10호’였다. 이는 동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에 수출되기도 하 였다.

우주발사체 제작에 필수적인 고급CNC공작기계 우주발사체 제작은 굉장한 정밀도가 요구되는 과정 이다. 이를 사람의 손으로 측정하면서 진행하기는

1988년 11월에 개최된 제6기 제14차 전원회의 :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밀한 이송

CNC 개발의 출발점

능력과 계측능력, 그리고 자동제어기능이 갖추어진

2차 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이 마무리되면서 개최

고급CNC공작기계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된 제6기 제14차 전원회의는 북한 기계공업, 좁게

북한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CNC공작기계를 공개한

는 CNC공작기계 제작 능력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

것은 대부분 인공위성 발사시험 직후였다. 1998년

환점이었다. 당시 회의에서는 “공작기계공업과 전

8월 광명성 1호 발사시험 뒤에 ‘CNC 구성-10호’가

자, 자동화 공업발전에서 전환을 일으킬 데 대하여”

공개되었다. ‘CNC 구성-10호’가 언론에 소개된 것

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구성-105호’를 계열 생산하

인 2001년 1월경이었고 이미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는 분공장을 ‘구성기계공장’이 포함된 ‘4월3일공장’

고 하므로 1998년 즈음에는 이 기계가 북한 내부에

에 군인을 동원하여 건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리

서 활용되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역량과 사업집행능력을 강

또한, 2009년 4월 광명성 2호 발사시험 뒤인 2009

화하기 위해 과학원 산하에 ‘전자자동화과학 분원’

년 8월부터 ‘첨단을 돌파하라’라는 로동신문 정론이

을 설치하고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를 꾸리기로 결

발표되면서 5축 CNC공작기계를 이미 개발하였다

정하였다.

는 주장이 외부에 알려졌다. 2009년 1월에 ‘5축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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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 수력타빈날개가공반’과 ‘새 형의 전용수자조종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는 군사·외교적 활용을 염두

장치’가 만들어졌다는 로동신문 보도가 있었던 것

에 둔 것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제발전 전략

으로 보아 2009년 이전에 이미 5축CNC 기술이 확

의 일환이다. 북한은 국방과학기술 분야에서 보유

보된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민간 부문, 즉 경공업과 농업 부문을 발전시키겠다는 경제발전 전략을 2002년부

인공위성 발사시험의 성공,

터 정식화시키고 실천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인

북한제 기계제품 신뢰도 향상으로 이어져

공위성 개발 노력은 국방과학기술 분야에서 확보

이처럼 북한의 기계공업은 북한 지도부가 무척 애

한 기술력으로 민간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

써서 발전시킨 분야이다. 해방 직후 남쪽보다 뒤떨

는, 즉 군수기술의 민수 전환 프로젝트의 일환이라

어진 수준이 20년가량 지나서야(1960년대에 와서

할 수 있다.

야) 다른 분야와 비슷한 수준에 올랐고, 다시 20년

인공위성을 개발하여 자력으로 궤도에 올려 운용할

가량 지나서(1980년대에 와서야) 첨단기술을 확보

수 있다면 전 국토의 효율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북

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이 이미 밝히고 있는 것처럼 농작물 재배 상황,

전반적인 흐름에서 북한의 우주발사체/미사일 제

재해 상황, 기후 관측 등이 이전보다 훨씬 효율적으

작능력은 기계공업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면서 발

로 진행될 수 있다. 통신위성까지 확보한다면 전국

전한 것이라 추정된다. 따라서 인공위성 발사시험

적 통신망 확보까지 가능해진다. 교통, 통신 부문의

이 성공적으로 수행된다면 북한이 만드는 기계제품

낙후가 북한경제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니

의 신뢰도가 향상되는 효과가 따라온다고 할 수 있

충분히 전략적 고민을 진행했을 부분이다.

다. 이런 흐름에서 본다면 북한이 억지로 인공위성

게다가 인공위성 발사장까지 거창하게 준비한 것

발사시험을 강행하는 이유가 앞으로 제작하여 팔고

등을 보면, 인공위성 대리발사 시장에 대한 진출까

싶은 ‘북한제 기계제품’의 신뢰도와 상관있을 듯하

지 염두에 둔 것 같다. 다른 나라들보다 저렴하게 인

다. “첨단 수준의 기계제작능력을 보유한 ‘북한’이

공위성을 제작, 발사 대행해주는 시장은 2000년대

제작한 제품, 성능을 보장합니다!”라는 광고 카피를

이후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분야이다. 하지만 이 시

만들기 위함일 수도 있다.

장에 대해서는 일부 선진국들이 독점하고 있으므로 기술력을 갖추어 제3세계 국가들에게 잘 홍보하면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 군수의 민수 전환

충분히 외화벌이 사업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물론 인공위성을 만들어 자력으로 우주궤도에 올리

보면, 인도가 북한의 롤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려는 노력은 대미 협상력을 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협상을 통해 투입된 자원에 대해 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협상의 결과로 나올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러 한 불확실성에 기대어 대규모 투자와 오랜 기간의 노력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강호제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졸업,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에서 북한과학기술정책사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한 의 과학기술정책, 경제발전 전략, 북한식 기술혁신에 대한 연구를 주 로 하고 최근에는 북한의 선군노선과 과학기술정책, CNC와 인공위 성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 과학기술형성 사 1』이 있다.


진단

북한 핵문제,

그래도 6자회담이 현실적 대안이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체계적으로 증가해 온 북한의 핵능력 북한 핵문제가 글로벌 안보이슈로 부각된 지도 20년이 훨씬 넘었다. 이 기간 동안 북한과 국제사회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2. 2), <북미 제네바합의>(1994. 10), <9. 19 공 동성명>(2005. 9)과 같은 비핵화 합의를 도출했지만, 이 합의들은 지금까지 제대로 실천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20여 년의 기간은 비핵화의 실천과정이라기보다는 북한 의 핵능력이 체계적으로 증가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3월 NPT를 탈퇴할 당시 북한은 1~2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 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현재 북한은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했고, 이를 이용해 실제 핵무기를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공개됐는데, 이것이 정상 가동될 경우 매년 1~2개의 핵무 기를 제조할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이 생산될 수 있다.1) 일각에서는 공개된 시설 이외에 비 밀 농축시설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중량 3~4톤 규모의 초보적 핵무기를 제조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 다. 이후 북한은 수십여 차례의 고폭 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 작업을 추진

1) David Albright, “Disabling North Korea’s Uranium Enrichment Program”(January 20, 2011), <http://isis-online.org/ isis-reports/detail/disabling-north-koreas-uranium-enrichment-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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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이를 바탕으로 3차례에 걸쳐 경량화된 핵무

잠재적 위협을 넘어 실질적인 군사위협으로 전환

기의 성능 입증 실험을 실시했다. 마침내 2013년

이제 북한 핵능력은 한국의 국가안보에 대한 잠재

3차 핵실험에서 최소 7~20kt(평균 14kt)의 폭발

적 위협을 넘어서 실질적인 군사위협으로 전환되고

력을 시연함으로써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

있다. 이전에는 북한 핵위협은 주로 확산통제의 관

기(중량 1톤 수준) 제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2)

점에서 다루어졌다.

핵무기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 역시 크게 개량되었

첫째, 주로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기와 2007~

다. 북한은 1993년 5월 노동(사거리 1,300km) 미사

2008년에 이르는 부시 행정부 말기에 집중된 비확

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이후 1998년 8월, 2006년 7

산(non-proliferation) 차원의 접근들이다. 이것은

월, 2009년 4월, 그리고 2013년 4월과 12월 일련

북한의 핵개발이 국제 비확산체제의 안정성을 훼

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특히,

손하고, 나아가 장기적으로 동북아에 핵무장 경쟁

2013년 12월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

을 촉발할 수 있다고 보고 제재나 협상을 통해 북한

사에 성공함으로써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

의 핵개발을 저지하려는 시도들이다. 그러나 북한

을 확보하게 됐다. 이에 따라 북한 핵무기의 실전배

이 3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된

치가 임박한 시점이다.

현 상황에서 이러한 접근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핵무기를 실전배치하기 위해서는 소형화·경량화

둘째, 2000년대 초·중반 부시 행정부 시기에 집

기술과 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 요구된다. 북한

중된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차원의 접근

은 이미 노동과 무수단(사거리 4,000km) 미사일에

들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대해서는 재진입 기술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patience) 역시 비확산보다는 반확산에 초점을 둔

번 3차 핵실험의 성공으로 탄두 중량을 1톤급으로

접근이라는 해석도 존재해 왔다. 이는 북한 정권이

줄인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북한은 지금 당장 탄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핵기술과 핵물질을 제3국

두 중량이 1~1.2톤급인 노동 미사일을 실전배치할

에 판매하는 경우나 혹은 북한 체제가 불안정해져

수 있으며, 1~2차례 더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서 통제를 상실한 핵물질과 핵무기가 제3국으로 이

를 실시하면 무수단 미사일과 ICBM을 실전배치 할

전되거나 북한 내 강경파들의 손아귀에 장악되는

수 있는 추가 경량화와 발전된 재진입 기술을 확보

경우를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는 접근이다. 그러나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5년 이내에 미 본토를

이 접근 역시 북한의 핵무장이 초래하는 동아시아

겨냥한 ICBM을 실전배치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

의 ‘지정학적 지진’(geopolitical earthquake)과 한

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에 가하는 군사적 위협에는 아무런 대책이 될 수

3)

없다는 문제가 있다.

2) 3차 핵실험의 진도는 4.9~5.2로 다양하게 관측되었다. 이를 폭발력으로 환산하면, 보수적 계산방식인 CTBTO(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 기구) 방식을 적 용할 경우 7~20kt(평균 14kt), Murphy 계산방식을 적용할 경우 15~40kt(평균 27kt)이 된다. 한국의 공식입장인 7kt은 진도 4.9를 CTBTO 방식으로 환 산한 것이다. 3) Chico Harlan, “North Korea has completed missile facility, satellite imagery shows,” Washington Post(February 16, 2011) 재인용.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1/02/16/AR2011021601604.html>.


“한국은 미국과 협력하고 중국 등 관련국들과도 협의하여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군사적 대응태세를 갖춰나감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적절한 외교적 수단을 한국과 미국, 일본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가 2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만나 고위급 협의를 개최하고 대북 공조방침을 재확인했다.

강구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이 한국에 가하는 위협은 매우 심각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개입하더라도 얼마나 신속히

하다.

개입할 수 있을 것인가의 의문이 발생하는 것이다.

첫째, 한국에 대한 북한의 핵 강압 위험이다. 핵 강 압전략은 핵무기로 인해 상대방이 충분한 보복을

6자회담을 통해

가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재래식 국지도발로 상대

핵능력을 향상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야

방을 위협하여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시도이

그렇다면 한국은 북한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해

다. 2010년 11월의 연평도 포격이 전형적인 예가 된

야 할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재래식 억지력 강

다. 당시 한미 양국은 단호한 대응을 통해 일단 북

화, 독자적 핵무장, 확장억지 강화 등 다양한 대응

한의 의도를 좌절시켰지만, 향후 북한의 핵·미사

옵션들이 제안되고 있다. 그러나 재래식 전력은 아

일 능력이 증가할수록 이러한 방식의 도발은 더욱

무리 강화되어도 핵무기라는 절대무기에 대한 억지

빈발하고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력이 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한편 독자적 핵

둘째,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대남 확장억지

무장은 대북 억지력은 증가시킬지 몰라도 국제사회

(extended deterrence)의 신뢰성에 의문이 발생할

의 제재와 고립, 한미동맹 훼손으로 인해 한국경제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대남 확장억지는 한반도

에 치명적 타격을 가져올 수 있는 경제적 자살행위

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라는 평가가 많다. 더욱이 한국의 핵무장은 일본의

가능한 모든 무력을 동원해 한국을 방어한다는 것

핵무장으로 이어져 동북아에 핵 군비경쟁을 초래할

으로, 한미 군사동맹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

가능성이 많다.

데 향후 북한이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따라서 미국의 대남 확장억지의 신뢰성을 획기적

확보한 상황에서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경

으로 강화시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일 수밖

우, 북한이 미국이 개입하면 미국의 도시들을 타격

에 없다. 그러나 이 역시 현재로서는 마땅한 수단이

하겠다고 위협하게 되면, 미국이 과연 자국의 도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컨대 1991년에 철수된 주

를 희생하면서까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개입할

한미군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여 핵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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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미국이 반대하

의 감소와 함께 핵무기를 포기할 당시 흑백 정권교

고 있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당시 전술핵무

체가 예고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역시 지난

기 철수는 미소 간 합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미국

1월 23~25일에 걸쳐 연이어 발표한 성명들을 통

이 일방적으로 재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해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인 ‘조선반도 비핵화’ 노

이에 따라 미국은 전술핵무기 재배치가 아니라 미

선을 폐기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외무성은 “앞으로

사일방어망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

나 이 역시 기술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고

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선

라도 중국의 반대라는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한

언했고, 최고주권기관인 국방위원회는 “6자회담도

국이 미사일방어망에 본격 참여할 경우 중국은 이

<9·19 공동성명>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를 한·미·일에 의한 對 중국 봉쇄망으로 보고 반

을 선포”했으며, 조평통은 “앞으로 남북한 사이의

발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중국이 한국의 첫 번째

비핵화 논의도 없을 것”이라며, <한반도 비핵화 공

무역상대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반발을 무

동선언>의 “전면 무효화를 선포”했던 것이다.4)

시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에 참여하기에는 경제

그러나 북한 비핵화의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6자회

적 부담이 너무 크다.

담 무용론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6자회담은 비록

요컨대, 북한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한국의 군사

비핵화를 목표로 출발한 것이지만, 한반도와 관련

적 대응옵션들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제한적이거나

된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한

한 핵능력이 더 향상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장치

국은 미국과 협력하고 중국 등 관련국들과도 협의

로 그 기능이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하여 장기적으로 효과적인 군사적 대응태세를 갖춰

북한의 핵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대응

나감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북한의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핵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적절한 외교적 수단을 강

능력 증가를 제어하고 위협을 관리하는 것은 한국

구해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와 관련하여 가장

의 국가이익 관점에서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6자회담이다. 물론 이것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denuclearization)시킬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은 아니 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이고, 남아 공을 제외하면 자기가 개발한 핵무기를 스스로 포 기한 나라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남아공이 핵무기를 포기한 이유는 탈냉전에 따른 안보위협

임수호는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삼성경제연 구소 글로벌연구실에서 재직 중이다. 민주평통 상임위원을 역임했 고, 현재 북한연구학회 연구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4) 북한 외무성 성명(2013. 1. 23), 북한 국방위원회 성명(2013. 1. 24),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2013. 1. 25).


특파원 리포트

호파당위(戶破堂危)의 중국 외교, 북한을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한 뒤 중국과 북

험을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다. 일부 매체에선 북한이 중국

한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가 전 세계적 관심

의 만류에도 핵실험을 강행한 만큼 북한에 대한 원조를 줄여

사로 떠오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중국이 북

야 한다는 주장을 실었다. 심지어 차오신성(喬新生) 중난(中

한의 핵실험에 크게 격분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본질적으 로는 변한 게 없고, 앞으로 변할 것도 없다는 게 베이징(北京) 외교가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南)재경정법대학(財經政法大學) 교수는 환구망(環球網) 칼럼 에서 “북한이 정책을 바꾸지 않을 경우 중국은 더 이상 북한 을 보호할 수 없으며, 결국 북한 혼자서 미국의 공격에 직면 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중국은 북한에서 내란이 발생한 후 대량의 난민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당국 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중국에서 북한 내란 상황까지 상정한

핵실험 이후 북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

글이 공개된 것은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북한의 핵실험 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

북한 핵실험에 항의하는 네티즌 시위도 이어졌다. 인터넷엔

은 이전과는 다른 중국 반응이었다. 중국

16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과 광둥(廣東)성 광저우(廣

은 2월 12일 북한이 핵실험 사실을 공표

州) 시위를 필두로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후난(湖南)

하자 먼저 외교부 성명을 통해 북한의 핵

성 헝양(衡陽),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등지에서

실험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단호한 반대의

이어진 북한 핵실험 항의 시위 사진들이 속속 올라왔다. 더구

뜻을 천명했다. 이어 양제츠 외교부장(장

나 이러한 사진이 인터넷에 유포되는데도 당국은 아무런 제

관)이 직접 지재룡 주중북한대사를 불러

지도 안 했다.

강력한 불만을 표출한 뒤 이를 언론에 알 렸다. 중국 외교부장이 북한의 핵실험 당

북한 제재에 동참할 것인가

일 주중북한대사를 초치하고 이를 공개한

그러나 변한 것보다는 변하지 않은 게 더 많다. 중국 정부는

것은 처음이다. 더구나 이날이 중국의 가

무엇보다 북한의 제재에 대해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양 부

장 큰 명절인 춘절(春節, 우리의 설) 연휴

장은 북한의 핵실험 이튿날인 13일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

기간으로, 대부분의 공무원이 쉬는 날이

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국의 냉정과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전

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속하고 이례적인

해졌다. 그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도 “유관 당

조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국이 대국적인 견지에서 적절하게 대응, 정세의 반복적인

중국 언론과 인터넷엔 이후 북한의 핵실

격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강도 제재나 무력 사


민족화해 March/ April

26 27

용 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의 뜻을 표명한 것이다. 이는

에 마오쩌둥 큰아들의 시신을 묻어 거두

2006년과 2009년 북한의 1, 2차 핵실험 당시 중국이 보였던

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이 없다면 중국은

태도와 똑같은 것이다.

미국과 직접 맞닥뜨려야만 한다. 이는 지

더구나 북한의 핵실험 4일 후인 16일부터는 중국 관영 언론

극히 위험한 일이다. 중국으로서는 완충

들이 나서 한·미·일 주도의 대북 제재안을 반박하기 시작

지대로서 북한이 꼭 필요하다. 이것이 건

했다. 신화통신은 이날 ‘북한 핵실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

국한 지 1년밖에 안 된 신생국 중화인민공

는가’란 제목의 기사에서 “꿍꿍이속이 있는 일부 서방 매체들

화국이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 그들 표

이 북한 핵실험을 들어 중국의 대북정책 실패를 이야기하는

현대로 북한을 구하고 미국과의 한판 승

데 이는 중상모략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

부를 벌인 이유다.

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북한의 핵실험 문제에서 깊이 반성해야 할 나라는 바로 미국”이라며 “무력과 제재로 위협하

정전 60년, 우리에게만 멈춰선 시계

는 것은 한 나라를 굴복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나라가 군사

1953년 정전 이후 지난 60년간 세상은 참

역량 발전을 더욱 중시하게 만든다는 게 역사의 경험”이라고

많이 변했다. 사실상의 한국전쟁 당사자

강조했다. 위안쭝쩌(院宗澤) 국제문제연구소 부소장도 “한국

인 미국과 중국도 이미 1979년에 수교했

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 보호를 받고 있고 스스로의 군사력

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냉전시

도 강해 이중의 장치가 있는 반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안보

대의 구도가 그대로다. 역사의 시계가 유

를 위협받고 있어 미국에 대한 핵 억지력을 강구해야 하는 처

독 한반도에서만 멈춰진 상태다. 이는 한

지”라고 사실상 북한 핵실험을 두둔했다.

반도가 다른 한쪽에 넘어가는 것을 절대

중국 일각에선 원조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경우

용납할 수 없는 미국과 중국이 이 구도의

결국 고통받는 것은 북한 주민이어서 적절치 않다는 반론이

변화를 선호하지 않는 데서 그 근원적 이

더 크다. 유엔 제재의 수준도 이러한 중국의 반대로 한·미·

유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에

일이 기대하는 수준엔 크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게도 피동적 역사를 거부하고 민족의 운 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해 얼마나 힘썼

戶破堂危 : 대문이 무너지면 집이 위태롭다

는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남북 모두 민족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이 다소 중국의 심기를 건드린

사적 측면에서 통일을 위해 노력하기보단

다 하더라도 중국은 북한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견해

오히려 각자의 정권을 더 공고히 하는 데

가 적잖다. 이러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

분단을 이용해온 측면도 많았다. 이제 무

주는 역사적 인물이 바로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큰아들

엇보다 시급한 것은 우리의 운명은 우리

마오안잉(毛岸英)이다.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평안남

의 손으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의

도 회창군에서 미군의 폭격에 목숨을 잃은 뒤 북한에 묻혔다.

힘을 키우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시대

처음엔 시신을 송환, 중국 땅에 묻으려 했으나 논란 끝에 중

엔 이 멈춰진 시계가 가는 소릴 들을 수 있

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마오안잉의 북한 안장을 최종 결정했

을지 지켜볼 일이다.

다. 여기엔 전략적 계산이 있었다. 바로 마오안잉의 북한 안 장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영원히 묶어두려 한 것이다. 미국이 남한에 군대를 주둔시켜 거두는 효과를 중국은 북한

박일근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기 술경영이학석사(MSTM)를 마친 뒤 조지아대 연수를 거 쳐 현재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으로 재직 중이다.


르포 | 통일로 가는 길목

2013년 설날 임진각 망향경모제(望鄕敬慕祭)

분김으로 목메어 부르지 못하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글·사진 | 이수언 본지 편집인

“불효를 용서하지 마시옵소서” 아린 바람이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2013년 2월 10일 설날 오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동산 언저리 눈밭 철 책선 앞에 조촐한 차례상을 차려놓고 백발의 노인이 두 아들과 함께 북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허옇게 얼어붙은 임진강 너머 북녘을 향해 절을 하는 노인은 한참이나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손등으로 연신 눈시울을 훔치고 있었다. 제주잔은 모두 네 개. 노인의 조부모, 부모에게 바치는 잔이다. 노 인은 제주잔에 따른 술을 한잔씩 북녘을 향해 흩뿌리고는 그지없는 눈빛으로 망연히 서서 먼데 북녘하늘을 바라보면서 웅얼거렸다.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지 마시옵소서. 머지않아 영혼으로라도 조상님을 뵈옵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임진각 망배단에서는 합동 경모제(敬慕祭)가 치러지고 있었지만 따로 떨어진 곳에서 차례를 지내는 게 자별 나고 애달아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망배(望拜)가 끝날 즈음 다가가 묵례를 하니 노인은 불청객에게 퇴주잔을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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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네면서 고향이 이북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

나는 가슴이 먹먹해져 다른 말을 이을 수가 없었

더니 부럽다고 했다. 동병상련할 처지가 아니어서

다. 그렇다고 얼뜨기처럼 통일의 희망을 저버릴 수

미안스러워졌다.

야 있느냐고 엉너리를 부릴 마음도 없었다. 60여 년

“어르신 고향이 어디세요?”

의 분단세월을 살아오면서 원망(怨望)보다 오매불

“황해남도 송화가 내 고향이오.”

망 고향에 갈 수 있는 날을 원망(願望)해 온 노인에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게 통일의 희망을 말하는 건 주제넘은 아둔한 수사

“팔십넷이오.”

(修辭)가 아닌가.

“언제 남쪽으로 오셨어요?”

머쓱해져 있는 내가 안쓰러웠든지 노인은 제수 부

“전쟁 때 징집을 피해 혼자 내려왔는데 어느새 60

침개까지 집어주며 퇴주(退酒)를 한잔 더 건넸다.

년이 훌쩍 지나버렸어요. 내 생전에 고향에 가서 부

그러고는 “이북사람인 나와 이남사람인 당신이 이

모님 산소에 성묘라도 하고 눈을 감아야 하는데….”

렇게 술을 나누듯 남과 북이 화해하면서 통일의 대

명절 때마다 임진각 언저리에서 망배를 한 지도 27

화를 나누는 날이 와야 할 텐데 양쪽 다 권력을 잡은

년째. 알음알음으로 고향의 부모님이 돌아가신 걸

자들이 저러고들 하고 있으니”라며 술잔을 단숨에

안 후부터 제삿날은 모르지만 명절날마다 임진각에

비우고는 철책 앞으로 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아

서 제사를 지내왔다고 했다.

들의 부축을 받으며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원’ 노

“북한 속담에 ‘까마귀도 반포의 효도가 있고, 비둘

래가 은은하게 휘돌고 있는 임진각 망배단을 떠나

기도 례절을 안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까마귀나 비

는 노인의 뒷모습이 눈시울을 아리게 했다.

둘기만도 못한 불효자식이 되었소. 까마귀는 자라 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효성이 있고,

“실향민들에게 명절은 고통만 더해주는 괴로운 날”

비둘기도 어미와 새끼 사이에 엄격한 질서가 있어

“우리 실향민들에게 설날은 즐거운 게 아니라 실

예절을 지킨다고 하는데 하물며 자식된 도리로 부

향과 이산의 고통만 더해주는 괴로운 날로 바뀐 지

모의 은덕을 갚으며 살아야 하는데 나는 불효를 하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북도민들의 고향

고 말았소.”

을 잃은 애환을 함께 달래고, 선조님을 곁에서 섬 기지 못하는 불효의 죄를 덜어보자는 뜻에서 명절

“까마귀도 반포지효(反哺之孝)를 하는데…”

이면 합동 경모제를 올리고 있지만 해마다 참석하

“분단으로 고향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지 불효는 아

는 실향민들이 줄어들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망배

니잖아요.”

단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제문을 읽는 목소리가 처

“이산가족상봉도 안 되고 있고, 금강산 가는 길도

연했다.

막혀버렸고, 남북관계가 이러니 내 생전에 고향 가

망향경모제는 해마다 설과 추석날 오전 통일부와

기는 틀린 것 같소. 자식 때에라도 통일이 되어야 내

경기도, 이북5도위원회,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의

유골이라도 부모 곁에 묻힐 수 있을 건데 시절도 세

후원으로 ‘통일경모회’가 주최하는 전국 실향민을

월도 한탄스럽기만 하구려.”

위한 합동 차례행사로 각지의 실향민들이 찾아와

“….”

참배를 하면서 망향의 한을 추스르는 행사다. 올 설


이 29회째다.

향민들에 대한 애련(哀憐)과 몰강스러운 시대에 대

망배단에 차려놓은 제물들 앞에 ‘在以北父祖神位’라

한 분김 때문이었다.

고 쓴 지방(紙榜)이 모셔져 있고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의 조화가 양쪽으로 둘러쳐 있었다. 망배단 양

김대중, 노무현, 김정일이 손잡고 불렀던

쪽에 진열된 많은 추모화환과는 대조적으로 행사

‘통일의 노래’

에 참석한 실향민들은 너무 적었다. 물론 늦게 분향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하러 오는 실향민들도 있겠지만 망배단 앞 광장에

의 ‘고향의 봄’은 북간도와 연해주 등 망명동포들이

마련한 200여 석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절반

해방된 조국을 기리며 독립군가와 함께 불렀는데

도 되지 않았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이산가족상

항일투쟁 때 김일성 주석이 만경대 고향집을 그리

봉 신청을 한 후 사망자가 5만여 명이 넘는다고 하

며 불렀던 노래였대서 북한인민들의 애창곡이 되어

니 1세대 실향민들의 멍울진 세월도 얼마 남지 않

있다. 오래전 평양에서 구입한 ‘보천보악단’의 노래

은 것 같다.

모음 테이프에도 ‘고향의 봄’과 함께 ‘반월가’, ‘밀양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상봉신청을 한 이산가

아리랑’, ‘진도아리랑’이 수록되어 있었다.

족은 12만 8,700여 명이지만 이 가운데 생존자는 7

‘우리의 소원’이 북한에서 불리게 된 것은 1989년 이

만 4,800여 명(2월 초)으로 집계되어 있다. 평균나

른바 ‘임수경 방북사건’ 이후부터였다. 평양세계청

이는 78세(남자 77세, 여자 79세)로 연령별로 보면

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밀입북한 임씨가 45

70대가 2만 5,000여 명, 80대 2만 8,000여 명, 90

일 동안 ‘통일의 꽃’으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으면서

대 5,400여 명이며, 100세 이상은 278명이다. 평

각종 행사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균연령이 78세이니 머지않아 ‘이산가족’이니 ‘실향

통일”을 부르면서 북한 전역으로 유행하기 시작하

민’이니 하는 단어마저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 ‘통일노래’ 대표곡이 되었다. 당시 조총련 기관지

경모제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군악대에서 ‘고향의

인 <조선신보>는 ‘우리의 소원’을 일컬어 “이 노래는

봄’과 ‘우리의 소원’이 연주되고 있었지만, 실향민들

사상과 이념을 넘어 북과 남, 해외동포의 마음을 하

은 목이 메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따라 부르는

나로 이어줌으로써 노래가 가지는 힘을 실감케 해

사람이 많지 않았다. 노래를 함께 불러보려 했으나

주었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깊게 팬 주름살과 성성한 백발들이 나를 목메게 했 다. 평양에서 북녘동포들과 함께 불렀을 때와는 다

부자가 작사·작곡한 ‘우리의 소원’(안석주 작사, 안

른 목멤이었다. 북녘동포들과 손잡고 부른 “나의 살

병원 작곡)은 1947년 3·1절행사 특집 동요로 처음

던 고향”은 하나 되는 조국을 그리는 염원이었고,

발표했을 때는 ‘독립’이었던 가사가 이듬해 정부수

“이 정성 다해서 통일”은 우리끼리 “이 겨레 살리는

립 이후 국민학교(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수록

통일”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목청을 돋우었지만,

되면서 ‘통일’로 바뀌었다. ‘북진통일’과 ‘반공통일’

실향민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려니 왜 그리

을 주입시키기 위해서였다. ‘평화통일’은 북한의 ‘적

짠하게 목이 메는지…. 나의 목멤은 분단 세월의 물

화통일’의 위장선전을 고무 찬양하는 불온사상으로

결에 휩쓸려 사그라져 갔고, 사그라져 가고 있는 실

다스리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는 이승만-박정희-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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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까지 40여 년간 이어져 왔다.

한 TV에 방영되어 남녘에서 뉴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람보다 먼저 울다가 바람보다 먼저 일어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만찬장 행사의 마지막

나는 풀”이 민초(民草)이고, 민중의 힘이었다. 4·19

피날레로 손을 맞잡고 부른 ‘고향의 봄’과 ‘우리의 소

혁명 이후 대학가에서 불려졌던 ‘우리의 소원’의 통

원’은 이산가족 상봉장에서나 민간공동행사, 운동

일은 ‘북진통일’도 ‘반공통일’도 ‘적화통일’도 아닌

경기 등 남과 북이 만나는 장소에서는 우리가 하나

‘평화통일’이었고,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의 열

될 것임을 다짐하며 손에 손을 잡고 합창하던 ‘민족

망은 사그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아 1987년 ‘6·10민

의 애창곡’이었는데, 지금은 들을 수도 없을뿐더러

주항쟁’의 함성과 함께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민중

부르기도 왠지 멋쩍고, 부르고 싶어도 주변을 돌아

의 염원으로 결집된 평화통일은 더 이상 보안법으

보아야 할 얄망궂은 시절이니 어찌 분김이 솟구치

로도 다스릴 수 없는 ‘우리의 소원’이 되어 평화통

지 않을 수 있으며 목메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 염원 노래로 휴전선을 넘었던 것이다.

망배단 신위(神位) 앞에서 방한모에 마스크를 한 실 향민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한 손에는 국화꽃을 들

북한에서는 노래 제목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고 고개를 숙인 채 눈시울을 훔치며 ‘우리의 소원’

“이 정성 다해서 통일”을 “이 목숨 바쳐서 통일”로

과 ‘고향의 봄’을 목메어 부르지 못하는 모습을 보

바꾸었고, 2절은 ‘평화’, 3절은 ‘자주’로 가사를 추가

면서 나는 남과 북이 모지락스레 엇서 있는 이 시대

해 부르고 있는데, 올 정초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

를 가탄할 수밖에 없었다.

장과 북한수뇌부가 참석한 모란봉악단 신년경축공 연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합창으로 불리어 눈 길을 끌었다. 특히 노래가 연주될 동안 무대의 대 형 스크린에 2000년, 2007년 김대중, 노무현 대통 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는 장면이 북

이수언은 국민일보 정치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역임했으며, 언 론재단이사와 언론중재위원을 지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유창근 (사)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이제 개성공단도 노동집약형 단지를 넘어, 국제화 되어야 합니다” 글 | 염규현 민족화해 객원기자 사진 | 정봉우리 민화협 정책홍보팀 간사

--- “밖에서 걱정하시는 것에 비해서는 다소 차분하고 조용한 분위기였다고 할까요?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 어서인지 이번에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 다. 북쪽 노동자들 역시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고요. 이 것도 어떻게 보면 그동안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같아요. 내공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웃음)”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다시 한 번 한반

3차 북핵 실험이 임박하던 2월 초 남북이 날카로운 경고

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리고 국내 언론을 비

성 발언을 주고받으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당시

롯한 전 세계는 다시 한 번 이곳을 불안한 시선

양측 모두 언급한 것이 바로 개성공단이었다. 우리는 대

으로 바라봐야 했다. 바로 개성공단이다. 하지만

북 반출물품에 대한 점검 강화를 언급했고, 이에 북한은

2004년 시범단지가 들어선 뒤 10년에 가까운 시

‘개성지구에 대한 특혜 중단, 다시 군사지역화’로 맞섰다.

간동안 ‘남북통일의 실험장’으로, ‘남북협력의 옥

자칫 개성공단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동자’로 불려온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여러 차례

목소리가 높았다.

부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희망의 상징’으로 존

하지만 핵실험이 있었던 바로 그날 공단의 분위기는 유창

재해왔다.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유창근 부회장

근 부회장이 설명한 대로다. 123개의 입주기업들은 5만 3

((주)에스제이테크 대표이사)은 남북관계 개선을

천여 북측 근로자와 함께 정상적인 생산 활동을 유지하고

위한 새 정부의 첫 과제로 ‘개성’을 꼽는다. 아울

있다. 남북관계의 경색이 오랫동안 지속되며 이제 개성공

러 지난 5년의 정체기를 넘어 개성공단의 국제화

단은 남북의 파탄을 막아내는 ‘마지막 안전판’ 역할까지 떠

를 통한 ‘새로운 도약’을 강조했다.

안은 듯한 모습이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남북이 함께 만 들어온 곳 아닌가. (사)개성공단기업협회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 걸맞게 공 단 내에서 두 가지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의 상공회의소 기능과 함께, 북측에서는 개성공업지구법에 근거한 기업 책임자회의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2006년 2월 통일부 에 등록된 이후 지금까지 공단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 을 기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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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화를 만들고 있었어요!” 2004년 6월 30일, 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에서 유 부회장은 북측의 한 당국자로부터 “남측의 인 사들은 행사만 요란하게 하고 사업에는 뜻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때 유 부회장은 남북관계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 아닌 ‘불신’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리 고 스스로 먼저 신뢰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약속을 하게 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각오 를 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2004년 내에 반드시 공장을 준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 고 그해 12월 결국 약속을 지켰다. --- “개성공단사업 모델은 북측이 경험한 그 어떤 경제사업보다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 측의 기술, 북측의 토지와 노동력이 만나서 형성된 개성공단은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의 모 델입니다. 북측 역시 개성을 통해 큰 성과를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성공단사업을 모델로 해 북 측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황금평, 나진선봉 등을 보더라도 남북교류협력은 단순한 퍼주기가 아닌 북측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중요한 경험을 준 것이죠. 저를 비롯한 공단 입주기업들은 단지 이윤을 위한 생산활동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직접 만들어가고 있다는 자부 심이 함께 있었기에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 자부심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유창근 부회장은 남북경협의 중요성을 확신한다. 한반도 주변에서 100여 년 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열강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겨루기를 했듯, 지금도 4대 강국은 외적으로는 6자회담 에 참여해 한반도의 안정을 돕는다고 하지만, 결국 한반도 주변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때문에 이러한 동북아의 역학구도 속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북경협이라고 믿는다. 남북경협이 경제적 이익을 넘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를 통해 통일을 실현하는 지름길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이명박 정부 5년이 그에겐 무척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사실 개성공단의 성장과정을 보면 이명박 정부 이 전 김대중·노무현 시기까지는 남북경협의 활성화가 아닌 준 비 기간이었다. 유 부회장은 2000~2003년을 개성공단의 태동 기, 2004~2005년이 개척기, 2006~2007년을 형성기로 본다. 그런데 더 성장해야 할 시기였던 2008~2012년이 아무런 성과 없이 지나가고 말았다. 아니, 성과는커녕 뒤로 후퇴하는 모습 마저 보였다. ---

“2008년 이후 남북관계가 극단적으로 경색되며 지난 5

년간 개성공단은 현상유지만 간신히 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물 론 이명박 정부가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남북관계 에 있어 경협의 중요성을 간과한듯하여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새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 스를 기반으로 남북경협만은 중단 없이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개성공단의 국제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 개성공단 사업은 북측에게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최근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북·중 경협 을 보면 개성공단의 경험을 적용하고 있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특히 나진 지역에서 북·중간 에 추진하는 관리위원회는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러한 양국의 경제협력 이 활성화될 경우 북측은 개성공단에 대해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유 부회장의 우려다. 때문에 사전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남북경협의 활성화가 늦어질 경우 북측이 선택할 기회는 이미 지금의 북·중 경협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5년의 남북관계가 남겨준 교훈이다. 하지만 유 부회장은 기존의 남북경협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강조한다. 언제까 지 북측의 저임금 노동력만 보고 사업을 이어갈 순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어야 한다는 생각인 것이다. --- “개성공단사업은 국제적 수준의 투자환경을 조성해 개성지역을 동북아 생산거점도시로 육 성하고자 하는 목표로 2012년까지 IT, 바이오 등 첨단산업분야의 지식기반환경을 구축할 계획이었 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오랜 경색으로 인해 1단계에서 추진한 노동집약형 단지에 머물고 있는 수준입니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개성공단은 올해로 착공 10주년을 맞습니다. 개발도상국 의 사례를 보면 10년이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현재 개성공단은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계획대로 성장하고 못하는 가운데 가파른 임금인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공단에 진출한 많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 습니다. 구조변화가 시급한 상황인 것이죠. 다행히 제가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개성공단의 국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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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새 정부도 공약한 바 있습니다. 개성공단에 첨단기업을 유치해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겠다 는 정부의 의지로 보여 집니다. 개성이 원래의 계획대로 성장해 활성화된다면 남북경협의 또 다른 ‘성공 케이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이들이 남북경협에 참여할 것이고, 이는 제2, 3의 성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장기적으로 남북경협을 추진해야 합니다.”

개성부터 다시 열자, 그리고 금강산으로 가자! 2004년 11월 유창근 부회장은 남북의 공단관계자들을 초청해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그 때 그 는 (주)에스제이테크를 ‘유비쿼터스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자 북측의 한 관계자가 “유 선생은 공상기업가인 것 같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5년여 가 지난 이후 어느 날 다시 만난 북 측 관계자는 그에게 “그때 내가 유비쿼터스가 뭔지 알았다면 많이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 다”라고 이야기했다. 유창근 부회장은 여전히 ‘공상기업가’일지 모른다. 아직은 저렴한 북측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 개성공단의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이미 먼 미래를 보고 사업을 꾸리고 있다. 그리고 (사)개성공단기업협회를 중심으로 공단이 한반도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땀 흘리 고 있다. 그는 남북관계에 있어 정치와 경제의 역할 분담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정치는 서로 다른 입장 을 타결하기 위해 협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정치 분야는 특정한 공통의 목적을 위해 서로 힘을 합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으면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 해선 무엇보다 ‘협상과 협력’의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개성공단기업협회는 이미 18대 정부의 인수위 시절에 개성공단의 국제화와 관련해, 수출경쟁 력 강화, 국제기준에 의한 제도개선, 지식기반 환경구축을 통한 첨단산업의 유치 실현을 건의한 바 있다. 지금은 세부 지침을 마련 중인데, 18대 새 정부가 개성공단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 경제의 새 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 “현재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감에 있어 금강산 관광의 재개를 먼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 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불미스러운 사고에 대한 양측의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 하기에 생각보 다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전 일단 개성관광 재개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성은 금강산 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요. 개성관광 재개 후 금강산을 논의하면 훨씬 더 협의가 용이할 것 이라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개성공단의 2단계 확장 공사를 논의한다면 남북관계의 경색도 생각보 다 빨리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어요. 이명박 정부 이전 10년 동 안 힘들게 만들어놓은 경협의 토대와 경험, 인프라들이 속절없이 중국에게 넘어가게 둘 순 없잖아 요?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합니다. 기업도 물론 마찬가지이지만 남북경협 역시 냉동식품이 아니잖 아요. 냉동시켰다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 사용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에요. 부디 새 정부의 현명한 판단과 냉철한 이성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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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담 회 남 북 관 계 시선vs시선

‘인도적 대북지원’,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과제는 무엇인가 사회 박현선 고려대학교 교수(민족화해 편집기획위원) 패널 박창일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 부회장

이금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대북지원을 둘러싼 우리사회의 논란이 뜨겁다. 대북지원은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에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인도적 상황 개선보다는 체제의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비판도 존재 한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인도적 대북지원은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지속해야 한다는 공감이 높긴 하지만, 남북관계에 영향을 받아 온 것이 현실이다. 이에 『민족화해』는 그동안 논란이 되어 온 대북지원, 인도적 대북지원 문제에 대한 원칙과 효과를 재확인하고, 우리사회 의 합의를 높이면서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바람직한 추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리 | 정봉우리 민화협 정책홍보팀 간사

인도적 대북지원, 북한의 인도적 상황

게 영향을 준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개선에는 기여 했으나 평화 관리는 한계였다

는 대화의 창구가 되어 남북관계 윤활유 역할을 하 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보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 고 3차 핵실험의 한계를 보였다. 인도적 지원만으

박현선

먼저 인도적 대북지원이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

로는 남북관계를 관리하는데 한계가 있어 보인다.

및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기여하는지, 그 성과 와 한계에 논의해 보고자 한다.

이금순

대북지원을 통한 효과는, 첫째로 남북 대

화교류협력을 확산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박창일 인도적지원이 어려웠던 지난 5년을 제외한

다. 둘째로 대북지원이 이뤄지고 90년대 북한의 대

지난 10년 동안의 지원은 영유아 지원, 의료분야 지

량 아사상황이 멈춘 것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다.

원, 비닐방막 지원으로 농업생산에 가시적인 성과

2007년까지 일정한 지원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지

를 보여주었다. 인도적 지원이 실질적으로 주민에

원이 군대에 우선 분배가 되었다 하더라도 주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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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미친 효과가 있었다. 특히, 비료지원은 북한 농

된다. 원칙상으로 모든 국가들, 우리 정부도 정치상

업생산량을 증가시키는데 일조한 바 있다. 이렇게

황과 분리하여 추진한다지만, 집행과정에서는 정확

볼 때, 북한의 위기 상황을 막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 규명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북지원이 정치

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그러나 산술적으

와 연계돼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적십자간의 대화

로 어떤 효과가 있는가를 판단하긴 힘들다. 또한 대

채널도 중단된 상황에서 인도적 지원을 정치와 분

북인도적지원이 의도했던 평화관리에 대한 한계가

리해서 진행하는 것이 어렵다고 본다. 명목상으로

드러났다. 지금과 같이 핵실험 및 군사적 위협이 지

는 분리가 바람직하지만, 실제로 추진되는 절차나

속되는 상황이 이어지다보니, 대북지원의 지속성

과정은 모든 국가들이 정치적 경제적 이해를 고려

및 효과에 대해 궁색한 답변밖에 할 수 없게 됐다.

해서 추진하는 것이 북한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현 실이다.

정경분리, 원칙적으로 필요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vs 원칙과 철학이 분명하면 가능하다

박창일

원칙적으로는 정치상황과 안보, 인도주의

분리 할 수 있다. 현재 북핵문제와 같은 안보상황 대북지원은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고 남북관계를

은 우리정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난제이다.

확대하는데 기여했지만, 사실상 정치, 군사적 위기관리 수준

이런 상황에서 정확하게 정치와 인도주의를 분리

까지는 가지 못했다는데 같은 의견을 주셨다. 다음으로 인

하지 않으면, 결국 안보문제에 인도적지원에 관한

도적 대북지원 원칙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대북 인도적지

논의가 묻히게 된다. 북핵 문제는 장기적으로 한반

원의 정경분리 및 민관분리라는 원칙이 가능하다고 보는가.

도 비핵화에 초점을 두고 접근해야한다. 그 과정에

박현선

서 우회적으로 인도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남북 대북 인도적 지원과 주요 원칙과 관련하

교류는 이어나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지혜를 요

여 우리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실제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는 어렵지만, 철

로 인도적 지원의 배경은 자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학과 원칙의 문제다. 정부의 결정과 원칙이 그렇다

수 없는 재난이 일어난 위기지역에 대해 정치·종

면 정치적 상황과 인도적 지원을 분리시켜 갈 수 있

교·이념을 떠나, 인간 존엄이 위협받지 못하도록

다고 본다.

이금순

지원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실제 북한의 인도적 위 기상황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가가 첫 번째 논란이

박현선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변수는 북핵문제가 될 것


박창일 대북지원민간단체협의회 부회장

이금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현선 고려대학교 교수

이다. UN에서는 올 해 대북 인도적 지원에 77억 원을 배정

원은 인도적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하였다. 실제 당사자인 우리가 그 부분에 대해 방관할 수 있

갖는 지원이다 보니, 명확하게 모니터링 요청을 못

을 것인가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인도적 대북지원에서

하는 부분이 있다. 과거에는 물자를 보내면서 무상

논란이 되는 투명성 확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해법이 가

지원 아닌, 차관형태로 지원한 적도 있었다. 그렇

능할 것인가.

다 보니, 북한에서도 모니터링에 대해 거부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독일의 사례처럼 인도

인도적 지원 필요성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적 지원은 종교단체나, 민간이 시행하고 물자를 지

다. 과연 북한이 국제기구에는 다른 원칙을 적용하

원한 단체들이 책임지고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해

지만 우리 민간이나 정부에게 국제기구와 같은 원

야 한다.

이금순

칙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허용하느냐가 문제다. 예 컨대, 북한 식량문제는 90년대와 굉장히 다르다. 그

이금순 지원에서 중요한 것이 북한 어느 지역과 어

당시에는 절대적으로 수급양이 부족했지만, 지금은

느 계층이 취약한 상황에 처했는지, 어떤 상황이 오

일부 취약계층은 장마당에 식량이 있어도 돈이 없

면 취약계층이 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어서 식량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적 상황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

달리, 일부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하

다. 또한, 북한의 위기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

고, 전반적으로 북한 당국이 통제권을 지닌 상황이

해서 북한이 접근을 허용하도록, 남북당국 간 협의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취약계층에게 외부가 어

가 가능하게 하는 게 필요하다. 사실 남북 관계 경색

떻게 접근할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으로 상당기간 민간 지원도 중단된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민간과의 협력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실제

박창일 결국 투명성에 관한 문제다. 하지만 민간과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대북사업이 제대

정부의 지원은 구분해 볼 수 있다. 정부의 경우 대

로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허용하도록 민간도 공

량의 지원으로 모니터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

동으로 북한에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도

만 민간의 지원은 적은양이 가는 만큼, 그 양에 대

우리 민간단체들의 대북지원활동 개선을 위해 북한

해 최소한의 모니터링을 강화시켰다. 정부가 하는

과 당국 간 협의를 해줘야 한다.

지원은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부의 대량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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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의 지원환경 개선을 위한

은 작은 지원을 통해서도 예방 가능한 것이다. 이렇

노력이 필요하다

게 작은 지원으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부 분을 우리의 민관이 함께 발굴하여 추진해 나가야

박현선

투명성 제고와 관련하여 정부보다는 민간단체의

한다고 본다.

모니터링이 용이하다는 의견과 북한 지역의 취약계층에 대

민간단체 전문성과 관련하여 선입견이 있

한 구체적인 모니터링이 요구된다는 다소 다른 차원의 견해

박창일

가 나왔다. 그렇다면 정부, 민간, 지자체 등의 지원주체별로

다. 사실 국제기구들이 국내 민간단체보다 모니터

지원방식이 어떻게 다르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링 부분에서 앞선다. 하지만 WFP만 예로 들더라 도, 규모자체가 민간단체와 비교하기 힘들다. 임금

순수한 인도적 지원은 정부가 승인하고 지

수준, 복지 등 국내 활동가들에 비할 수 없는 대우

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은 남북협

를 받고 있다. 그렇다보니, 앞서 이야기한 결과에

력기금을 비롯한 지원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한 계량화 및 산술적인 측면을 낼 수 있는 전문

대북지원 또한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

인력이 부족하다.

박창일

다. 물자의 분배, 지역, 인원 등 북과의 합의서를 요 구했다. 그렇다 보니 대북지원에 대한 어려움이 있

이금순 비용대비 효율성이라고 본다. 실무자들 직

었다.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지원, 지자체의 지원을

업안정성과도 관련성이 있다. 전문성을 확보할 수

구분한다고 하면, 민간 지원은 자율성을 보장해 주

있도록 민간단체 차원서도 관심을 갖고, 실무자의

어야 한다.

전문성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 필요하다. 북한에 어 느 정도의 지원예산 투입 시 관리비용이 책정되어

이금순 민간 자체 모금 예산 집행 자율성 보장되어

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실제로 시행되는 사업들

야 한다. 그러나 남북협력기금을 통한 민간단체 지

이 체계적으로 운용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제까지

원사업 재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과 절차로 추진

민간차원에서도 큰 틀에서 대북사업을 점검하거나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협력기금을 통한 지원 사업

평가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사업을 시행하기에 바

은 실제로 북한의 상황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

쁜 측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에서 적극적

인지 체계적으로 평가하고, 꼭 필요한 사업들은 민

으로 민간단체들의 협상력을 키워주는 부분도 필요

간이 재원을 부담 못한다 할지라도 정부가 재정 부

하다. UN기구도 그렇지만 유럽연합의 NGO 활동

담을 해서 지속적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추진해야

을 보면, 유렵연합이 실제로 주요원칙들을 북한에

한다. 지금 새 정부는 영유아 임산부 취약계층 지

제시하고, NGO들이 개별단체의 이름이 아닌, EU

원 필요성 강조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국

공동사업의 소속단위로 대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제기구 사업으로 지속할 것인가, 우리 민간과 협

순수 모금에서는 민간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하지만,

력하여 또 다른 사업들을 만들어 낼 것인가 고민해

특정한 규모나 지속성이 있는 사업들, 특히 정부협

봐야한다. 국제기구가 놓치는 사업이 있는데, 바로

력기금을 받는 사업은 우리민간단체 공동 이름으로

이러한 분야가 우리 민관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사업을 추진해야 전체 규모 면에서 협상력도 커지

다. 예를 들어, 요오드 부족으로 인한 뇌손상 위험

고, 지원환경도 나아질 것이다.


능한 상황이다. 유엔기구나 국제사회도 북한에 대 한 본격적인 개발지원을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 다. 북한이 핵실험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 적 위기상황 관련하여 정부의 책임성을 어느 정도 아이디어 차원에서 평양사무소 개설을 제

까지 두어야 하는가를 규정하는데 문제가 있다. 장

시한 바 있다. 현재 민간단체 각자가 가진 정보자료

기적으로 북한에 역량을 키워줘서 북한 스스로 자

의 공개가 부족하다. 반면에 북한은 북 민화협을 통

구계획을 만들고 기본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

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본인들이 가진 정보들을 공

도록 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그동안 우리 민간

유하고 이미 파악한 상태에서 협상에 임한다. 이렇

단체들이 북한 주민의 참여를 높이고 의식이 바뀌

다 보니, 개별적으로 민간단체가 올라가서 북한과

도록 유도하려 했지만, 통합적으로 하지 못해 지원

협상할 때, 협상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평양에

효과가 적었다.

박창일

전문 인력이 상주하면서 체계적으로 관련 정보들을 관리한다면 지원이나 북한과의 교류가 쉬워질 수

박창일 궁극적으로는 맞다.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

있다. 또한,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개발구호사업도

주어야 한다. 정치적 상황과 남북관계를 볼 때 새로

가능할 것이다. 긴급재해, 긴급구호가 아니라 영유

운 시도를 할 수 있다면 개발구호가 좋은 시도다. 이

아 사업 임산부 사업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하고, 모

번 정부에서 모니터링을 확실히 하는 조건하에 의

니터링 문제까지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료사업과 같은 민간개발구호사업을 한다면 좋은 계

러나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것은 남북문제가 정치적

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정부의

으로 있다는 것이다. 과연 북에서 상주사무소를 받

의지가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개발지원의 경우 한

을까 하는 것이다. 또한, 적어도 사람 두 사람 이상

마을을 시범적으로 하여, 점점 확대시킬 수 있다.

은 있어야 하는데, 거주비용 역시 만만찮다. 이러한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갈 수 있는 지원 방

지원을 정부가 할 수 있어야 한다.

식을 고려해야 한다.

개발지원을 위해서는 정치적 환경 개선과

이금순 개발지원을 소규모로 실험적으로 추진하는

국내의 공감이 있어야 한다

것은 북한에 상주하고 있는 유럽NGO들이 이미 진 행하고 있다. 대규모의 개발지원은 북핵 문제 등으

현 시점에서 인도적 지원과 관련한 중요 문제는

로 인한 국제 제재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 또한, 북

새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할 의지가 있는가이다. 인도적 지

한 인권문제 결의안 채택이 지속되고 있고, 유엔차

원에서의 분배투명성 제고, 전문성 확보가 긴급구호를 넘어

원에서 조사위원회 설립에 대한 논의가 있는 상황

서 개발지원까지 발전하게 만드는 할 수 보완장치라고 할

이다. 따라서 지원이 실제로 북한의 인권을 개선하

수 있다. 북한의 식량생산환경 개선을 위한 개발지원 방안

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내부의 공감대 형성

은 무엇인가.

이 필요한 것 같다. 본격적인 대북지원을 재개하기

박현선

위해서는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국민을 설득할 이금순

현재는 정부차원에서는 개발지원이 불가

원칙과 논리를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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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 협력 보완과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아니라, 민간 스스로의 책임성이나 내부의 문제들

장치가 필요하다

을 챙겨가고 실천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어야 한 다. 또한, 북한에서 지원물자가 군사전용이나 현금

‘퍼주기’ 해 준 돈으로 핵을 개발했다는 것이 국민

으로 직접투입되지 않더라도 북한정부가 핵개발을

들의 생각이다. 국민 불신 해소를 위해서는 군사전용의 문제

위해서 재정을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구조가 문제

를 풀어줘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의 신년여론조사에 따르면,

다. 이와 같은 구조적 한계 하에서 어떻게 효과적

국민 67.6%가 정치상황과 관계없이 인도적 대북지원을 해야

으로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

한다고 보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국민적 공감대가

이 필요하다.

박현선

확산된 것은 그간의 성과일 것이다. 국민적 공감대와 국민적 불신 사이에서 대북지원을 재개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박현선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지원정책을 새로이 논의해

있는 안정적인 제도를 만드는 것이 요구된다.

야 하는 현실에 또다시 직면하고 있다. 중장기적 전망하의 인식 변화와 제도적 보완장치가 있어야 하겠다. 끝으로 마

박창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퍼주기’

무리 발언 바란다.

와 관련한 이야기들은 소모적인 논쟁이다. 최소한 각자가 지닌 정치적 성향에 따라 관심 사

민간단체에서도 윤리강령처럼 지원에 관한 방침을

이금순

명확하게 하고, 종교사회단체, 여야 국회의원을 포

안이 다를 수 있으나, 이제는 북한의 사안별 상황

함한 사회적 합의안을 만들면 더 좋다. 북민협은 작

을 객관적으로 꼼꼼하게 파악하고 평가할 수 상황

년에 인도적 대북지원을 위한 사회합의안을 제안했

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인도적 지원을

다. 합의안이 있다면 정부도 편할 수 있고, 민간도

추진하는 것이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

괜히 논쟁 휩쓸리면서 갈 필요가 없다. 인도적 대북

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정보를 파악함

지원에 관한 사회적 합의안 법 개정 등으로 단체 및

으로써, 선입관을 기반으로 한 정책추진을 지양해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야 한다. 근본적으로 북한 상황을 진단할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

이금순

법제화, 민간차원에서 이전에도 발의되었

가야 할 것이다.

지만, 여야가 정치적으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민간 교류협력과 같은 문제들이, 북핵문제

관한 문제가 있다. 큰 문제는 북핵과 주민들 인권

박창일

을 침해하는 북한의 독재체제이다. 일차적 책임은

깔려서 질식사하게 두어선 안 된다. 북핵문제는 멀

북한에게 있지만, 북한당국이 취약계층을 방치하는

리보고 돌아보는 전법을 써야한다. 원칙도 중요하

상황에서 우리 사회가 모른 채 하고 갈 것인지에 관

지만 북핵문제는 멀리 두고 가야지, 먼저 앞으로 내

해 고민해야 한다. 시민사회도 그렇고 정부도 그렇

걸고 다른 것을 하위로 본다면, 남북관계 개선 및 통

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인지가 큰 과제라

일 이후의 인도적 지원문제가 굉장히 어려워질 수

고 본다. 대북협력민관정책협의회와 같이 현재 작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되지 못하는 기존의 협력체계를 살려내는 것이

서는 당국 간 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필요하다. 민간 차원에서도 정부에 대한 요구뿐만


기획

북한주민을 위한 ‘적정기술’은?

북한의 외부의존도를 낮추는 적정기술 김정태 사회혁신 전문 투자컨설팅 MYSC 이사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란 유명한 말이 있다. 1970년대 중후반 ‘인간의 얼 굴을 한 경제학’을 주장했던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 박사의 책 제목으로 널리 알 려진 개념이다. 슈마허는 인도의 평화운동가 간디가 몸소 실천한 ‘지역기반의 경제’를 기술철학적으로 해 석해 중간기술(Intermediary Technology)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그는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을 통한 획일화된 대규모 경제의 발전이 아닌 ‘대중에 의한 생산’(production by mass)을 통해 인간에게 알맞은 규모의 경제발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은 것 이 아름답다는 것은 작은 것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작기 때문이라고 말한 슈마허의 개념은 오늘날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주목받 고 있다. 이 글에서는 21세기 오늘날 적정기술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조명해보면서 통일한국 시대에 적정기술의 활용방안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민족화해 March/ April

인간의 진보를 위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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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은 쉽게 말해 기술의 진보가 아닌 인간의 진보를 중시하는 일련의 세계관 적 접근이다. 좁은 개념으로는 현지의 상황에 적합한 기술이나 디자인 등을 의미하 는 등 첨단기술과 토착기술 사이의 ‘중간기술’을 의미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 간중심’의 관점에서 개발되는 모든 기술, 제품 그리고 디자인을 포함하게 된다. 한국 인 디자이너 유지아 씨가 공동으로 개발한 GiraDora는 ‘발로 작동하는 세탁기’다. 세 계적 석학인 영국 캠브리지대학교의 장하준 교수가 ‘여성을 중노동의 가사에서 해방 시킨 최고의 혁신제품’으로 꼽은 바 있는 세탁기는 여전히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필 요로 하는 기술이다. GiroDora는 드럼통과 비슷한 형태의 통 위에 앉아 재봉틀을 돌 리듯 페달을 돌리면 통 안의 세탁물이 자동세탁기와 동일하게 세탁되도록 설계된 제 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이 제품은 전기가 없거나 전기가 비싼 곳에서 살

GiraDora 공동디자인: 유지아, Alex Cabunoc

아가는 사람을 위한 ‘적정 세탁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적정기술’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비적정기술이란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되어 인간을 소외하는 경우가 일어날 때 발생하게 된다. 사람의 가치를 실현하고 사 람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의 의존성을 심화하고, 기술에의 종 속을 심화한다면 그러한 기술을 ‘비적정기술’이라 볼 수 있다.

적정기술은 왜 다시 주목받고 있는가?

1970년대 후반 전 세계적인 오일쇼크 등을 통해 적정기술은 하나의 대안적인 정책으 로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국립적정기술센터’를 설립하기도 했고, 백악관 지붕에는 에너지 자립을 상징하는 ‘태양광 발전’ 장치가 세워지기도 했다. 주 류사회에 받아들여질 뻔했던 적정기술은 오일 가격이 정상화되는 등 위기감이 약화 되면서 최근까지 비주류의 흐름으로 머물러왔다. 이러한 적정기술이 더욱 현란한 첨 단기술이 연일 뉴스거리가 되는 오늘날 새롭게 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첨단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는 더욱 더 위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개개인의 처한 취약성은 높아만 가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동일본에서 터진 대지진은 ‘원자력 안전신화’를 가진 일본에게는 상당히 치 욕적인 사건이었다. 예측할 수 없던 자연재해 앞에 첨단안전장치와 시스템은 속수 무책 무너졌고, 결국 지역주민들은 방사능 노출 때문에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동일본 지진은 도쿄 등 대도시의 삶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 정부 차원의 절 전 정책으로 인해 사무실 직원들이 앉아서 구동하는 ‘족동식 소형발전기’가 불티나 게 판매되었고, 비상시를 대비해 태양광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정수기와 랜턴 등 의 수요가 급증했다.


적정기술은 특성상 중앙집약형 시스템보다 분산형 시스템에 가까운데, 중앙집약형 은 고도의 편리함을 전해줄 수 있지만, 만에 하나 시스템이 중단되었을 때 그 시스 템에 의존했던 모든 사람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의 원자력발전 소가 그러한 중앙집약형 시스템이고, 소형 태양광발전 장치라든지 개인용 정수기는 개개인의 활용에 적합한 분산형 시스템, 즉 적정기술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렇 듯 전 세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진, 쓰나미, 태풍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첨 단기술의 안전성을 과신하던 선진국에도 적정기술의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재평가 가 이루어지고 있다.

적정기술이란 단어에 ‘기술’이 포함되어 있기에 적정기술의 분야를 기술로 국한시키

적정기술의 다양한 활용

기 쉽지만 앞서 말했듯이 적정기술은 ‘기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진보’를 앞 세운 세계관이다. 따라서 적정기술의 개념과 의미는 기술 영역 외에도 디자인과 비 즈니스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적정기술 디자인’이 부각된 것은 지난 2007년 스 미소니언연구소의 내셔널쿠퍼휴잇디자인박물관에서 주관한 ‘소외된 90%를 위한 디 자인’이란 전시회에서였다. 럭셔리 디자인 등 소수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디자인이 전 세계의 빈곤층을 위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전시회를 통해 디자인 계에 적정기술 열풍이 불게 된다. 그러한 대표적인 제품이 LifeStraw와 Q-drum 이다. LifeStraw는 오염된 물을 통해 확산되는 수인성질병을 예방하는 개인휴대용 정수 장치로서 빨대를 사용하는 원리와 같이 손쉽게 정수기능을 제공하는 적정기술 디자인이다. Q-drum은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해 평균 2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아동과 여성을 위해 고안된 것으로 한 번에 최대 75리터의 물 을 통을 굴려가듯 손쉽게 이동할 수 있는 적정기술 디자인이다. 이러한 적정기술은 기업의 블루오션이라 불리는 저소득층 시 장을 공략하는 비즈니스로서도 주목받고 있다. VisionSpring 은 전 세계 7억 5,000명이 직면한 시력 문제를 적정기술 안경 으로 접근하는 회사이다. 3~5달러에 불과한 안경을 세계 최빈 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 30만 개 이상 판매하는 등 전 세 계적으로 100만 개를 판매했고, 2015년까지 천만 개의 안경을 판매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인기가 많은 SuperMoneyMaker는 발로 움직여 논과 밭에 물을 대는 관개장치 로서 약 150달러에 판매되는데, 농작물 재배가 생계를 유지하 는 데 중요한 빈곤국 다수의 인구에게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LifeStraw와 Q-drum


민족화해 March/ April

적정기술과 대북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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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술은 대북교류 및 향후 통일한국을 준비하는 측면에서도 활용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은 다양한 측면에서 외부의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고 있는데, 그러한 분야 가운데 적정기술을 통해 현지인의 자립도와 발전을 유도하고 ‘외부의존성’을 점차적 으로 낮추는 데 일조할 수 있다. 2010년 UNICEF가 작성한 북한 관련 보고서에 따 르면 ‘열악한 보건의료 서비스’, ‘높은 모자 영양실조’, ‘에너지 빈곤’, ‘자연재해, 토질, 낙후된 농기구 등으로 농작물 재배의 열악한 환경’ 등이 대표적인 현지의 문제로 언 급되고 있다. 이러한 분야에서 적정기술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한 일간지에 보도되었던 ‘평양의 변기주머니’는 현지인들이 나름대로 활용하고 있는 적정기술 접근이다. 한겨울에 적절한 비료를 구할 수 없기에 등장한 ‘변기주머니’는 평양 시민들이 내놓은 인분 주머니를 뜻한다. 수거된 변기주머니는 인근의 협동농장 으로 전달돼 비료로 재활용된다. 이러한 과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든 적정기술 제 품이 바로 Peepoo이다. 개인용 변기주머니에 인분을 넣고 양지 바른 곳에 잠시 묻어 놓으면 생분해성 물질로 구성된 주머니와 인분이 자연스럽게 흙과 섞이게 된다. 삽 으로 해당 부분을 떠서 비료가 필요한 곳에 옮겨놓으면 탁월한 ‘양질의 비료’로 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적정기술 제품이 북한 전역에 보급된다면 열악한 토질에 시도되 는 다양한 농작물의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신생아 사망률을 낮 추는 데 활용되는 적정기술 제품 Embrace는 전기가 없는 곳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신생아 체온 유지 장치이다. 찜질팩을 사용하는 것과 같이 뜨겁게 덥힌 촉매제를 신 생아에게 입히는 재킷에 넣어두면 따뜻한 온기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취약계층 또는 빈곤국을 위한 기술로 이해되던 적정기술은 이제 경제규모와 상관없

적정기술은 첨단기술이자 따뜻한 기술

이 인간다운 삶을 지원하는 혁신적인 기술이자,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각광받고 있 다. 첨단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면에서 적정기술은 또 다른 첨 단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기술의 본래적 가치인 ‘인간중심’을 실현한다는 점에 서 적정기술은 한국 고유의 가치인 ‘홍익인간’과 맞닿아 있는 ‘인간의 얼굴과 체온을 가진’ 따뜻한 기술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적정기술은 기술강국인 한국이 세계에 선보일 또 하나의 K-technology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김정태는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 석사와 헐트국제경영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가정신 석사학위를 취 득했다. 유엔거버넌스센터 팀장으로 근무했으며, 영국 웨일스의 적정기술센터(Center for Appropriate Technology)에서 태양광발전 연수를 받았다. 저서로는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공저) 『인간중심의 기술 적정기술과 의 만남』(공저) 등이 있다.


기획

북한주민을 위한 ‘적정기술’은?

북한의 저개발 상황,

지속가능한 녹색개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장수영 포항공과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남쪽의 지원으로 북한의 양묘장에 건립된 태양광 발전시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에른스트 슈마허가 자신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 후 중간기술은 중간기술개발그룹(Intermediate Technology Development Group: http://itdg. org)과 현실적 행동(Practical Action: http://practicalaction.org), 그리고 여러 국제구호 및 환경 보호 NGO를 통해 계승되어 왔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했으며 사라지는 듯하다가 최근 10년 정 도의 기간에 다시 많은 사람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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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낙후된 북한의 현실은 “꿩 잡는 것이 매다”식의 기능주의를 정당화하고 빈곤의 시급성을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보는 적정기술의 도입에 우호적인 토양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적정기술의 이해에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기술을 기술 그 자체로만 보지 않고 기술 외적인 맥락, 다시 말해서 사회적 혹은 정치적 맥락, 안에서 기술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시장 경제 안에서는 구매력이 취약한 극빈 계층을 위한 제품 설계 활동이 부족하다는 깨달음에서 지구상 인류의 거의 90%를 차지하는 구매력 없는 경제적 소외계층을 위한 제품 설계를 도모하는 ‘90%를 위한 설계’(Design for the other 90%)라는 개념이 폭넓게 주목받고 있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개념 은 MIT와 스탠퍼드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에서는 학제 간 연구실 및 융합 교 과(http://extreme.stanford.edu)로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많은 공과대학 에서 연구되고 가르쳐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굿네이버스와 기아대책 등의 국제 구호활동을 하는 NGO와 나눔과 기술(http://stiweb.org)과 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 (http://www.sewb.org) 등 과학기술인 단체가 연합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 간 국제원조 ODA(Official Development Aid) 활동의 일환으로 KOICA를 중심 으로 한 정부의 국제협력활동과 연계되는 사업도 많이 전개되고 있다. LG, GS, SK 등 국내 유수 대기업 그룹에서도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의 일 환으로 적정기술과 관련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사실, 기술의 본래 의미를 생각할 때 ‘적정’이라는 수식어는 기술 앞에 어울리지 않 는다. 기술은 원래 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적정기술이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반향을 일으키게 된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과학기술 현상에서 우리는 의식 혹은 무의식중에 부적절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 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 안에서 적정기술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왜냐하 면 적정기술을 배우고 연구하고 개발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보상이 없거나 적은 분야 에 시간을 써야 할 것이며, 적정기술 제품을 생산하고 보급할 사업가들도 상당 부분 즉각적인 경제적 이익을 포기해야 하고,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정치행정가들도 가시적인 화려한 성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일 조국을 생각할 때 적정기술을 통해 무언가 이루어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통일 한국에서 북한은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로부터 과

낙후된 북한의 현실은, 적정기술의 우호적 토대가 될 수 있다

학기술 주도형 시장경제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비록 주체사상은 김일성 일가의 독 재를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되었지만, 여기에 담긴 주체의 개념에 뿌리를 둔 공동체 가치는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수용의 토양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사 실, 무분별한 과학기술 지상주의에 뿌리를 둔 시장주의는 자칫 인간의 주권을 시장 기제 속의 과학기술 현상에 종속시키는 우를 범하기 쉽다는 것은 자크엘륄 같은 사 상가들의 매우 타당한 주장이다. 승용차와 KTX 같은 운송수단과 컴퓨터와 핸드폰 등의 통신기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우리 생활의 필수 요건이 되고, 방만한 수자 원 개발과 전력 생산과 소비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기 위한 중요한 선택들에 대 해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 얼마나 넘기 어려운 걸림돌이 되고 있는지를 잊어서 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과거와 현재 북한의 과학기술은 자본의 취약성과 연구 개발의 후진성으로 말 미암아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먼 중간 혹은 저급 기술이 교육, 연구되며 활용되고 있 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후진성은 명백한 약점이지만, 이러한 약점도 새마을 운동과 같은 농업 중심의 지역 공동체 개발 모형을 도입·실행하는 것에는 훨씬 유 리한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지극히 낙후된 북한의 현실은 “꿩 잡는 것이 매다”식의 기 능주의를 정당화하고 빈곤의 시급성을 가장 중요한 맥락으로 보는 적정기술의 도입 에 우호적인 토양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저개발 상황이 친환경 지속가능한 녹색개발의 기회임을 주목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남한에서 수돗물은 리터당 0.5원으로 일인당 매일 평균 400리 터 가까이 소비하고 있으며 전기는 일인당 조명 목적으로만 100와트아워를 소비하 고 있다. 이런 소비 수준이 대부분의 선진국 수준 정도인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적정 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환경친화적인 빗물을 사 용한 새로운 상수도 공급 기술이나 수돗물의 재활용 기술, 태양전지와 풍력발전 기 술 등은 한국의 에너지 소비 수준을 생각할 때 경제적 타당성을 부여받기 매우 어렵

인도 낙후지역의 솔라셀 활용 출처: http://sierraclub.typepad.com/ compass/india/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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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반면, 북한과 같은 저개발국가의 상황은 하루 수십 리터 정도의 식수 공급을 위 한 첨단 정수기술과 세면 및 수세식 변기 물의 재활용 기술 그리고 하루 수십 와트아 워 수준의 재생에너지 발전기술이 경제적 실효성을 부여받기에 더욱 유리할 수 있 다. 따라서 북한의 지역개발에서는 대부분의 선진국과 남한이 걸어온 개발 및 고도 성장의 단계를 생략하고 환경친화적 녹색개발을 통해 북한이 저개발 상태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로 바로 진입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적정기술, 통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에너지 개발을 위한 기술선택은 저개발국가의 개발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첫 단추이 다. 자본집약적인 대규모 에너지 개발은 후속되는 산업 개발을 통한 대규모 소비를 전제하는 것으로 한국과 같은 소수의 성공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해당 국가의 경제발전에 기대 수준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해당국이 더욱더 깊은 채무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만을 초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제 개발 원조를 통한 대규모 댐과 발전소 건설과 같은 사업은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의 건설회사만 수혜를 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획기적인 개발이 이루어진 신재생에너지 기 술들은 개도국에 매우 다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중소 규모 수력발 전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 기술 등은 자본집약적인 대규모 에너지 개발이 아닌 분산 된 형태의 에너지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마을 단위 혹은 중소규모 지역공동 체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에너지 개발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기회를 통일 한국 에서 이루어질 북한의 개발에 충분히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핵발전소 같은 대규모 개발을 지양하고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이용한 분산된 지역사회 개발과 에너 지 개발을 연계하는 것이 지나친 채무를 지지 않은 채 빈곤 계층의 경제적 능력을 향 상하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적정기술은 절대빈곤에 허덕이는 개도국을 향한 구호 및 원조 활동에만 활용 되었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의 날이 온다면 적정기술은 통일 한국을 위해 매우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사실, 돌아보면 남한의 경제개발 과정에 잃어 버린 것들도 많았다. 통일 한국에서 이루어질 북한의 개발은 남한이 걸어왔던 길보 다 좀 더 현명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이 통일을 생각하며 적정기술을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장수영은 포항공과대학교(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로, 크리스천과학기술인포럼과 (사)나눔과기술, (사)국경 없는과학자회의 설립 멤버이다. 사기업의 CSR활동에 적정기술을 이용하는 일, 적정기술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 적기업의 설립, 한국의 ODA사업에 적정기술의 활용 필요성을 알리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사)나눔과기술 이 펴낸 『적정기술: 36.5도의 과학기술』의 저자 중 한 명이다.


남북교류협력

북한 산림녹화 사업은

남북 ‘그린 데탕드’의 열쇠이다 박경석 국립산림과학원 산림경제경영과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산림황폐화의 폐해를 인식하고 10년 내에 수림화를 완성하겠 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북한 산림당국은 주민들이 산림조성에 참여하면 일정부 분 수익을 분배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를 감안하여 박근혜 정부에서 대 북 산림분야 협력을 재개하고 인도적 측면에서 산림복구사업에 참여한 북한주민에게 식량과 에너지를 제공하는 한편, 산림을 통해 일정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산림복구 모델 을 제시하여 한반도 산림녹화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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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산림황폐화 현상과 심각성 북한의 산림황폐화는 1990년대 중반 국제 적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발생한 최악 의 식량난을 극복하고자 북한주민들에게 강요한 고난의 행군 기간 이후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인공위성 사진 분석결과에 의하면 1999년 북한 황 폐산림은 전체 산림면적의 약 18%인 163 만 ha였는데, 10년이 지난 2008년에는 전 02

체 산림면적의 32%인 284만 ha로 대폭 증가하였다. 북한의 산림황폐화 실상은

02 2008년 남측 민화협의 지원으로 건설된 평양 양묘장을 둘러보고 있는 참가자들

국제적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독일 비정 부 환경단체인 `저먼워치’ 보고서는 지난 20년간 북한에서 37건의 대형 자연재해

이렇게 황폐산림 면적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북한당국이 지

가 발생하였고, 매년 평균 2건의 자연재해

속적인 경제난의 악화로 식량배급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

로 국내총생산(GDP)의 8%에 이르는 재산

자 북한주민들의 산지개간을 통한 뙈기밭 조성을 암묵적으

피해와 인명피해를 본다면서 전 세계에서

로 허용하였고, 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산에 있는 나무를

세 번째로 재난대처 능력이 취약하고 자

무분별하게 땔감으로 채취하는 것을 막기 어려웠기 때문이

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가 가장

다. 더욱이 국가 목재수요를 국내 산림에서 전적으로 충당

큰 나라 중 하나라고 밝혔다. 국제조사기

하고 있고, 외화벌이를 위한 대규모 벌채가 자행되고 있어

관인 Maplecraft’s(사)는 북한이 산림전용

황폐산림의 증가가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수에서 나이지리아, 인도네시아에 이어

북한의 산림황폐화로 산림의 수원함양, 토사유출방지 기능

세계에서 3위를 차지한다고 분석하였다.

이 상실되면 지구적 기후변화로 매년 발생하는 극심한 가뭄 과 홍수 피해를 피할 수 없고, 하천범람에 따른 인명 피해 및 도로, 광산, 공장 등 경제기반 시설의 침수로 인한 재산피해 가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남한 민간단체의 북한 산림복구 사업 참여와 성과 19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요청으로 남한 민간단체로는 처 음으로 ‘동북아산림포럼’이 국제기구와 함께 북한의 양묘 장 복구사업에 참여하였으나 북한당국이 남한의 민간단체 01 남측 지원으로 건립된 평양양묘장 인근에서 남북이 공동으로 나무심기를 하고 있다.

라는 이유로 관계자의 모니터링 참여에 반대하면서 지원 이 중단되었다. 이후 민간단체의 본격적인 산림지원사업은


농경지로 개간되고 황폐화된 북한의 산림

1999년 최초로 북한산림녹화 전문 민간단

2009)의 산림복구 지원성과는 남북 간 산림복구에 대한 상

체인 ‘평화의 숲’이 창립되면서 시작되었

호이해 진전 및 신뢰 구축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지원 초

다. 2000년대 중반까지 여러 민간단체가

기 불허하였던 남측 기술자의 방북 허용으로 남북공동 산림

묘목 지원이나 공동 식수행사 등의 형태

병해충 방제작업이 성사되었고, 양묘장 건설과 금강산 지

로 지원사업을 개별적이고 소규모로 진행

역의 밤나무 조림사업 등 남쪽의 양묘·조림기술이 전수되

한 결과 단편적인 성과에 그쳐 효율적이

었다. 더 나아가 북한 측 결정에 의존하였던 양묘장 및 조

고 체계적인 지원 형태를 갖춰야 한다는

림 부지도 일정부분 남측 지원인력과 일부 상의를 거쳐 선

비판이 있었다. 그래서 2007년 체계적인

정되었고, 금강산 지역 조림지에는 현장조사와 함께 식재

북한 산림녹화사업 추진을 위해 민족화해

설계 작업이 공동으로 실시되었다. 이외에도 지속적인 지

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우리민족서로

원이 이어지자 북한당국은 모니터링에 대한 남측 제안을 부

돕기운동, 평화의 숲 등 20여 개 민간단체

분 수용하고, 산림복구에 참여하는 북측 주민들과의 접촉도

로 구성된 연합체인 ‘겨레의 숲’이 창립되

일부 허용하였다. 더욱이 산림복구 지원사업이 중단되기 직

었다. 이를 계기로 대북 산림복구 지원사

전 그동안 꺼려왔던 100ha 규모의 시범조림 사업지가 제공

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겨레의

되는 결과도 있었다.

숲’이 추진하는 북한 산림녹화사업이 남 북교류협력기금의 ‘정책사업’에 포함되어

북한의 산림복구를 위한 자체 노력과 한계

이전보다 안정적인 대북 산림복구 지원이

북한당국도 산림황폐화의 폐해를 인식하고 산림복구 기반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09년

을 구축하기 위해 2000년대 중반부터 산림보호를 위한 제

후반 이후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으로 남

도와 정책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는 매년 10만

북관계가 극도로 경색되면서 타 분야 대

~15만 ha의 식수사업을 진행하여 총 150만 ha의 산림조

북 지원사업과 마찬가지로 산림분야 지원

성을 목표로 한 ‘2001~2010년 산림조성 10개년 계획’을 수

사업도 중단된 지 3년여가 지나고 있다.

립한 바 있다. 이 계획의 달성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남한 민간단체의 꾸준한 10년간(1999~

북한당국이 최초로 산림복구 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자체적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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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을 진행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산림녹화사업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중요한 축

북한당국의 산림복구에 대한 의지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공약을 보면 정치적 상황과 구분해

2009년과 2011년 김정일의 중앙양묘장

인도적 문제의 지속적 해결을 추구하는 한편, 북한 나무 심

현지지도 이후 전 지역의 양묘장 건설과

어주기를 통한 홍수 예방과 탄소배출권의 확보, 녹색경제

수리보수가 대대적으로 실시되었고, 김정

(농업, 조림, 기후변화) 협력의 추진 등 북한 산림복구의 필

일 사후 북한정권을 계승한 김정은 역시

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3년여에 걸쳐 중단된

2012년 4월 ‘국토관리사업의 혁명적 전환

북한 산림복구 지원사업의 재개가 기대되었는데, 북한이 3

할 데에 대하여’에서 10년 내에 벌거숭이

차 핵실험을 실시하여 다시 물거품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

산의 수림화, 원림화 달성을 목표로 제시

는 우려가 있다.

하였음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북한 산림

하지만 이러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북 산림복구 지원사업

당국은 김정은의 교시에 따라 앞으로 산

은 지난 10년 동안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 힘입어 시범 조림

림조성과 산림보호·관리사업을 강화해

사업이 시작된 상태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한 축이 될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북한경제

수 있다. 또한 북한 산림복구지원은 그동안 제기되었던 일

의 구조적인 침체의 지속화로 남한과 국

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통일세대에게 푸른 금수강산을 복

제사회의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광대한

원하여 유산으로 물려주는 미래 투자 사업이다. 그러므로

황폐산림을 복구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북한 산림녹화사업과 산림병해충 방제사업은 북한주민의

밖에 없다.

생활환경 개선과 식량난 해소에 기여하는 인도적 문제의 해

최근 비공식적 자료에 의하면 북한당국

결 방안으로 활용되고, 남북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비정치

이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에서의 산림복구

적인 사업의 특성을 살리면 남북대화를 여는 그린 데탕트의

한계를 인식하고 농촌주민들의 땔나무,

열쇠로 이용될 수 있다.

사료와 목재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면

북한의 김정은 정권도 산림황폐화의 폐해를 인식하고 10

서 산림파괴를 막고 이미 퇴화된 생태계

년 내에 수림화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고, 북

를 개선하고자 산림업 관리의 개선 방도

한 산림당국은 주민들이 산림조성에 참여하면 일정부분 수

를 구상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마을

익을 분배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를 감안하

주변에 있는 뙈기산림의 경우 산림부문에

여 박근혜 정부에서 대북 산림분야 협력을 재개하고 인도적

서 묘목과 노력비를 투자하여 땔나무림과

측면에서 산림복구사업에 참여한 북한주민에게 식량과 에

용재림이 조성되면 그곳에서 얻은 수입은

너지를 제공하는 한편, 산림을 통해 일정소득을 올릴 수 있

산림부문과 현지주민이 절반씩 나누겠다

는 산림복구 모델을 제시하여 한반도 산림녹화에 기여하기

는 구상이다. 또 사회적으로 필요한 산림

를 기대한다.

을 조성하기 위해 산림부문에서 마을 부 근 국영토지에 토지, 종자, 묘목, 노력비 를 제공하고, 벌채할 때에 수입의 20%를 참가한 주민들에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박경석은 동국대학교 임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농학박사를 취득했다. 1991년부터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여 산림정책 연구를 수행해 오다 2008년부터 북한임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 북한 랜턴 지원 사업

북한에 부는 면학 열풍,

학생들을 위한 희망의 등불이 필요하다 곽경전 남북평화재단 경인본부 사무국장

북한주민들의

1990년 전후에 불어 닥친 사회주의 체제의 위기와 붕괴는 북한에 수치화가

삶을 어렵게 하는

힘든 충격을 주었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원유 등 원자재를 사회주의 동맹

심각한 전력난

이라는 체제 안에서의 우호 무역이라는 명분으로 값싸게 수입해 경제체제 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사회주의 동맹 체제 안에서의 우 호 무역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소련의 선언은 북한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동안 소련으로부터의 원자재를 우호 무역으로 조달하며 북한 내 부에서 값싼 비용으로 물자를 조달했던 경제체제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상 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외경제 부분에서 절대적 위상을 차지하던 소련으로부터의 원자재 우호 무 역이 끊기면서 곧 산업전반에 걸쳐 연관관계가 단절되는 상황을 불러일으 켰다. 원자재 산업에서의 급격한 축소 현상이 산업 연관관계 전 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발생한 경제적 빈곤의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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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불고 있는

북한의 전력사정의 열악함

면학 열풍,

은 기업과 사회의 각 인프라

랜턴이 필요하다

의 가동시간의 부족을 넘어 서 학생들의 교육에도 영향

곧이어 불어 닥친 자연재난의 충격이 겹치면서 외

을 미치고 있다. 각 학교에서 교육의 질을 높이기

부의 시각으로 사실상 붕괴직전이라는 표현이 등장

위해서는 다양한 시청각 자료들을 활용해야 하나

할 정도로 엄청난 위기상황으로 이어졌다. 이후 서

전력사정의 어려움에서 기인된 우선순위에서 밀리

서히 충격에서 벗어나던 북한경제는 미국의 북한에

고 있는 것이다.

대한 압박과 이에 대한 북한의 핵개발로 촉발된 북

현재 북한에서는 남한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교육

미 간의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학생들

유엔의 경제봉쇄는 북한경제를 빈곤의 상황에서 벗

은 국가를 위한 신념이든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

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했다. 더구나 북한에

든 평양을 넘어 농촌 지역까지 면학 열풍이 불고 있

대한 경제봉쇄는 어느 특정한 부분에 대한 봉쇄 및

다는 것이다.

위기가 아니라 식량과 전력, 석유 등 에너지, 생활

학생들은 학교에서의 공부와 별개로 집에서도 공부

물자 등 전방위에 걸쳐 어려움을 야기했다.

하고자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런 현상은 남한

그중에서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부분이 문제가 된

의 문화가 흘러들어 갔을 수도 있고, 중국 학생들의

다. 전력 등 에너지가 충분해야 북한 사회의 각 부

면학 분위기가 북한에 전해졌을 수도 있다. 어찌되

문이 가동되기 때문인데 이 부분의 부족으로 기업

었든 현재 북한에서는 학생들의 면학 열풍이 불고

과 주거, 사회기간시설들의 건설과 운영 등이 심각

있으며, 교사와 학부모들은 반대하지 않고 가능한

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전력 부

한 도와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족이다. 전력공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공장들이 제

특히, 학교에서의 공부 외에도 밤에도 공부하고자

대로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공장들이 충분히 가동

하는 열망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되어야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들이 공급될 터인

학생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열망과 이를 지원하

데 전력의 부족으로 인해 공장들이 가동되지 않으

고자 하는 학부모들의 열망은 북한 전력의 열악한

면서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의 만성적인 부족 상

사정이 이루어지기 힘들게 한다. 이 때문에 밤에도

태에 놓여 있다.

공부할 수 있는 랜턴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부족 부분들은 보따리상들을 통해 중국 등에

단, 남쪽처럼 랜턴의 배터리가 충분하다면 상관없

서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이 역시

으나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 배터리 교체식 랜턴

북한 장마당에서 판매될 때 수입가 몇 배의 가격에

은 일회용에 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에 필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북한주민들의 생활을 어렵

요한 랜턴은 배터리 교체식이 아니라 배터리 충전

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북한 기업들이 물자를 필요

식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생이 공부하다 랜턴의

량만큼 생산하여 공급할 때 북한주민들의 생계비가

전력이 다운되었을 때 충전해서 사용할 수 있기 때

낮아지며 사회가 좀 더 여유로워질 것이다.

문이다.


그리고 랜턴 전등을 켜고자 한다면 상단의 태양열 집열판을 종이 등으로 덮어두어야 전등에 불이 켜 진다. 상단의 태양열 집열판을 종이 등으로 덮어두 지 않는다면 랜턴은 태양열 집열판을 통해 충전 기 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태양열이나 자가발전으 로 충전한 후 2일이 지나면 방전되므로 다시 충전 이와 같은 면학 열풍 때문에 학생들의 면학 열풍을

해야 한다. 물론 이 등은 LED 등으로서 적은 전력

지원해주고자 북한 교육계가 중국 교육계에 도움

으로 밝은 빛을 내는 랜턴이다.

을 요청한 것은 학생들이 밤에도 공부할 수 있는 랜 턴이었다. 중국 교육계는 북한 교육계의 지원요청 을 받아 중국에서 생산되는 충전식 랜턴을 지원했

북한의 아이들에게

남북평화재단에 간접적

으며, 이 랜턴이 북한에서 반응이 좋아 추가 지원을

전달될,

으로 전달되어 온 북한

요청했다. 이에 대해 중국 교육계가 남북평화재단

희망의 등불

청소년 랜턴 지원사업에 대해 북한에 지원활동을

에 참여 요청을 해온 것이다. 이처럼 북한 교육당국이 요청한 랜턴은 전구가

하는 해외선교사들에게 확인 요청을 했다. 북한을

LED 방식으로 태양열 충전방식과 자가 발전형 충

지원하기 위해 수십 회에 걸쳐 북한에 다녀온 해외

전방식 두 가지 형태가 혼합된 랜턴이다. 태양열 충

선교사들이 북한 교육계를 만나 협의한 후 랜턴이

전방식은 랜턴 상판의 태양열 집열판을 이용하여

배포되는 과정에 입회하는 것으로 북한 교육당국과

충전하는 방식이다. 랜턴을 밝은 태양 아래 6시간

합의되었다고 알려왔다.

을 놓아두면 상단의 집열판을 통해 충전되며 1단으

또한, 해외선교사들이 북한 교육당국과 협의한 배

로 사용 시 6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2단으로 사용

포 지역은 평안남도와 황해북도 등의 고아원 2곳과

할 때 4시간, 3단으로 사용하면 3시간 사용이 가능

초등과 중등학교 3곳 등 5곳이다. 이를 위해 남북평

하다. 상단에 태양열 집열판이 있기 때문에 집열판

화재단이 중심이 되어 모금을 하기로 하고 모금된

을 덮으면 충전이 되지 않는다,

금액은 해외선교사들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장마기간이나 흐린 날일 경우 태양열 집열

남북평화재단은 설립 5주년 후원의 밤 행사를 북

판의 기능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손잡이

한 청소년 랜턴 지원사업으로 정하고 평화콘서트를

가 달린 자가발전형 충전방식이 함께 있다. 하단부

2012년 11월 8일 기독교회관에서 개최했다. 우리나

에 있는 회전형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내장되어 있

라(민중가요 밴드), 강허달림과 이한철 등 가수들이

는 배터리에 전력이 충전되어 전등에 불이 들어오

출연하여 북한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는 것이다. 처음 사용할 때 약 10분 정도 회전시켜

평화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충전해주어야 한다. 사용하다 회전형 손잡이를 통

평화콘서트의 목적은 북한 학생들에게 10,000개의

해 충전하고자 할 때 1분을 돌리면 1단으로 10분 사

랜턴을 지원하여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기로 결정하

용 가능하다.

고, 명칭을 <북녘 희망의 등불 만개(滿開) 밝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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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평화재단은 설립 5주년 후원의 밤 행사를 북한 청소년 랜턴지원으로 정했다.

로 정했다. 평화콘서트가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것

한당국과 합의한 내용이다.

이 아니라 지속적인 지원을 하는 첫 행사로 잡은 것

국내외의 여러 뉴스들을 종합해보면 북한 사회가

이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후원자들에게는 북한 학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

생들에게 지원할 랜턴을 기념품으로 지급함으로써

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이런 위기를 극

북한 학생들이 어떤 랜턴을 사용하는지 경험케 하

복한다면 남북 간의 평화에 기여할 것은 분명하다.

는 것도 기획되었다.

그렇기에 국제정치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남북한의

남북평화재단 경인본부는 본부 차원의 모금에 참여

교류협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교류협력이 끊어지지

하면서 모금을 경인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다. 경인

않고 지속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의 통일 기

지역의 교회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금 역시 해외

반이 굳건하게 자리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에게 전달되어 그분들이 랜턴을 북한 학생 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금된 금액은 해외선교사들에게 전달되며, 해외선교사들은 중국에서 충전식 랜턴을 구입하여 직접 북한으로 가지고 들어갈 것이다. 해외선교사 들이 가지고 들어간 랜턴은 북한 교육당국과 협의 하여 해당 지역 학생들에게 배포될 것이다. 물론 배 포되는 현장에 해외선교사들이 입회하는 것으로 북

곽경전은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한국기독청년 협의회(EYC) 회장을 역임하고, 인천시민연대 평화통일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남북평화재단 경인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북한 나무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길에서 만나는 평화

내가 머문 곳의 사람들을 위한 여행,

Mountain Fund

작은 약속으로 평화를 그리다 임영신 이매진피스 대표

며 금방 물걸레질을 친 듯 반짝 반짝 윤 이 나는 나무 의자를 가리켰다. 그 위에 물기가 아직 남아있는 우비를 벗지도 못 한 채 그냥 앉았다. 그는 익숙한 듯 말 대 신, 마운틴 펀드의 소개가 담긴 브로슈어

굴 아저씨의 작은 카페

며 그 건물에 속한 다른 단체들의 활동

굴 아저씨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비가 후

이 담긴 브로슈어를 몇 장 가져다주었다.

두둑 떨어지는 타멜의 거리를 헤매며 환경단체 KEEP이

산간지역의 마을들을 돕기 위해 여행자, 자

운영한다던 여행자 정보센터와 그린카페를 찾던 날들, 삼

원봉사자와 마을들, NGO들을 연결해 주

일 만에 간신히 찾아온 KEEP의 대문이 굳건히 닫혀있었

는 것이 마운틴 펀드가 하는 일인 듯 했다.

다. 어찌할지 골목을 서성이다가 문득 KEEP 맞은편 흰색

거실 뒤로 이어진 긴 복도 왼 편에 있는 방

과 푸른 색 페인트로 깔끔히 단장한 Mountain Fund를 발

은 그렇게 자원봉사를 하고 싶은 여행자

견했다. 통유리 안을 들여다보니, 누군가 부지런히 아침 청

들, 또 오가는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공간

소를 하고 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작은 공간이 있다는 작은

이었다.

간판을 보고 성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장님 문고리 잡듯 그 건물을 둘러보기도 하 고, 사무실에 놓인 이런 저런 자료들을 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침부터 찾아든 우리를 맞이해

면서도 그의 이름조차 물어볼 수 없어 서

준 아저씨는 등산화를 신고, 한 손에는 걸레를 들고 있

로 어색한 웃음만 나누었다. 그저 누군가

었다. 눈인사를 나누었으나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길

가 오기를 혹은 KEEP 사무실이 어서 열리

이 없었다. 잠시 바라보다가 그는 몸짓으로 어서 앉으라

기를 기다리며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게시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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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에 붙어 있는 작은 광고지 한 장을 발견했다. 그 광고지를 읽고는 돌아서 조금 전 청소하던 아저씨를 멍

Kul Bahadus’Story

하니 쳐다보았다. 게시판의 종이를 가르치며 당신이냐고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 서야 그의 등산화보다 손 걸레가 더 크게 보였다. 깨끗한 바닥에서 등산화를 신고 있 는 그를 보고 신발을 신어도 되는 곳이구나 싶어 여태껏 젖

37살의 Kul Bahadus, 그는 7년 전 히말라야 15000피트 고도에서 심 한 고산증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고산 증이 찾아왔을 때 그를 포터로 고용했던 여행

은 샌들로 서성였던 걸음이었다. 황급히 신발을 벗어 신발

자들은 아무도 그를 돕지 않았습니다.

장을 향하자 그는 웃으며 말린다. 어찌 수습할 길이 없어,

그들은 그에게 하루치 품삯을 주고, 그를 혼

그에게 커피를 두 잔 부탁했다. 그는 손걸레를 내려놓고 창

자 내려 보냈습니다. 그는 쓰러진 채 발견되어

가, 그의 차구들이 놓인 작은 카페로 갔다. 그건 누군가가

Pheriche Aid Post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의식

그 광고지를 붙여놓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알아볼 수 없는,

불명(COMA) 상태로 9일간을 보냈습니다. 그

그저 어느 사무실이든 한켠에 있는 작은 탕비실 같은 것이 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티와 커피. 아저씨는 정성스레 물 을 담고 커피를 준비했다. 히말라야 높은 곳에선 모든 이가

가 깨어났을 때 그의 양쪽 발은 모두 심각한 동 상에 걸려있었고, 그는 양쪽 발가락을 모두 절 단해야 했습니다. 그 사고로 그는 다시는 포터 가 될 수 없었습니다.

느리게 움직이듯 더디고 느렸다. 30분이나 지났을까, 마침

여기, 그의 작은 카페가 있습니다.

내 그의 커피가 나왔다. 짜이처럼 달고 뭉근한 커피였다.

한 잔의 차로 굴의 삶을 함께 나누어 주십시오.

그는 조심스럽게 차를 마신 우리 얼굴을 살폈다. 맛있다고 활짝 웃자, 그도 웃었다.

커피 30루피

티 15루피

새로운 여행, 새로운 여행자들 굴아저씨를 구했던 여의사 레이첼은 말했다. “굴은 어쩌면 럭키가이에요. 히말라야에서 포터들의 죽음은 이미 뉴스 도 아니죠. 한 해에 수백명의 포터들이 그렇게 여행자들에 게 버려져 죽거나 몸의 일부를 잃는 사고를 당하니까요.” 그 아름다운 산 위에서, 여행의 그늘을 마주하기 시작한 카 메라에 포터들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고, 블로그에 그들이 마주한 진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여행의 그늘을 함께

최소한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 최소의 것

마주한 여행자들은 포터들을 위한 인권규정을 만들어 보

으로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곧 시

기도 했다. 히말라야에 기대어 살아가는 10만 명의 포터들

작되었다. 책임여행 단체와 언론은 영국의

을 위한 인권규정은 간단했다. 한 사람이 30킬로 이상의 짐

트레킹 여행사들에게 그 인권규정을 준수

을 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위급한 경우를 대비해 의료보험

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캠페인 일 년

을 들어주고, 장비를 대여하고, 인건비를 직접 지급한다는

후 영국 여행사의 50%가 그 규정을 지킬


Imagine Peace는 공정여행의 일환으로 여행학교, 여행인문학, 공정여행축제, 평화카페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것에 서약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행자들은 여행 장 비를 모아 포터들을 위한 장비은행을 열었고, 산 위에는 응 급구호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희망은 어느 새 킬리만자로와 페루의 안데스까지 번져나갔다. 포터와

한 사람의 여행자가 여행을 할 때

포터들이 만나기 시작했고, 여행자들은 등산배낭 속에 이

한 사람의 여행자가 여행을 할 때 하루

야기와 약속을 실어 날랐다. 새로운 여행은 그렇게 세상의

평균 3.5kg의 쓰레기를 만들고, 하루에

높고 멀고 깊은 길 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400ℓ의 물을 쓴다. 하루에 쓰는 전기량

여행은 오래도록 ‘떠남’이었다. 이곳을 떠나 그곳에 도착하

은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주민 30명이 쓰

는 일, 이곳의 모든 지친 일상을 잊고 그곳에 마련된 쉼을

는 전기량을 소비하는 규모이다. 한 가족

누리는 일, 지친 감각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더듬이를 세워

이 하루를 살기 위해 20ℓ의 물을 1km 이

가는 설렘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에게 ‘여행’은 도

내에서 구할 수 없는 지역에서도 호텔의

착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고, 누군가가 머물 방

객실 하나에선 평균 1.5톤의 물이 사용하

을 치우며, 누군가의 짐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공정여행,

고 있다. 네팔의 환경단체 KEEP에 의하면

책임여행, 착한 여행... 어렵고 복잡한 여행의 이름들을 이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행자들의 뜨거운

제 그만 지워본다. 대신 그 자리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여행’

샤워를 위해 히말라야에선 날마다 세 그

이라고 쉽고 작은 말들을 넣어본다.

루의 나무가 베어지고 있으며. 여행자 한 사람이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올 때 산에는 72개의 페트병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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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이 지나간 자리는 일자리와 경제개발만을 남기는 것

운 결과로 새로운 여행의 희망을 입중하

이 아님을 집과 마을과 해안을 관광지로 이미 내어준 수많

기도 했다.

은 사람들도 이내 깨달아 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천국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이어진 리조트 개발은 원주민 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리조트의 미관을 지키기 위해 어

공정여행은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부들은 늘 고기를 잡던 바다에서 자국의 경찰들에 의해 잡

공정한 여행을 위해 당신이 당장 사회적

혀가기도 했다. 소중한 공동체의 의례들은 관광지의 몇 푼

기업을 만들거나 적어도 공정여행 패키지

짜리 쇼로 전락하기도 했고, 다섯 개의 마을이 충분히 농사

를 구매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공정여행은

를 지을 수 있는 분량의 물이 골프코스를 위해 쓰이며 마을

새로운 패키지가 아니라 작은 것에서 시작

과 아이들은 가뭄과 기아에 시달리는 진기한 풍경들이 펼

되는 새로운 여행자들의 여행법이기 때문

쳐지기도 했다.

이다. 어떤 이는 “사진을 찍을 때에 묻고 찍겠습니다”, 또 어떤 이는 “물건을 살 때 지나치게 깍지 않겠습니다.”어떤 이는 “여

여행의 진화, 희망의 진화

행할 때 현지의 식당과 숙소를 이용하겠습

1989년, 미국에선 글로벌 익스체인지를 통해 미국정부의

니다”등 저마다 지켜가고 싶은, 혹은 지킬

경제제재로 고통 받는 쿠바의 국경을 넘는 것으로 쿠바 사

수 있는 약속들로 자신의 여행을 만들어

람들을 돕고, 그들과 연대하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다.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공정여행은 무례한

또 남미와 아프리카의 공정무역의 현장을 찾아가 함께 커

여행자가 아니라 존중하는 여행자가 되는

피를 추수하고 카카오를 따며 웃음과 희망을 나누는 여행

것, 약속을 지키는 것 같은 작은 것에서 시

으로 여행자들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정무역의 길

작된다. 새해,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는 당

을 넓히기도 했다. 리얼리티 투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진

신의 수첩 위에, 당신만의 가이드라인 하

행되는 이 여행은 해마다 50여 곳이 넘는 지구촌 곳곳을 여

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늘 시작은 작고 쉬

행하며 국경을 넘고 경계를 넘는 만남을 일구어 가고 있다.

울수록 좋다.

2002년, 영국에서는 바디샵 마케팅 팀장이었던 프란시스 에 의해 리스폰서블 트레블닷컴(www.responsibletravel. com)이라는 책임여행 기업이 시작되었다. 130개국 3천 5 천여 개가 넘는 세계의 책임여행 네트워크를 통해 여행자 가 원하는 키워드에 따라 세계의 어느 곳이든 연결해주는 책임여행의 대중화 시대를 열어왔다. 아시아의 깊은 곳에 선, 네팔 스리시스터즈가 여성들에 의한 여성에 의한 트레 킹 회사와 게스트 하우스를 열어 네팔 산악지대에 새로운 길을 내고, 그들의 수익을 통해 십년간 600명의 여성들이 트레킹 가이드로 훈련받아 독립적인 삶을 일구는 아름다

임영신은 이매진피스 활동가이자 페어라이프 센터장으 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평화는 나의 여행>, <희망 을 여행하라> 등이 있으며 최근 ‘아지’의 <머나면 여행>을 번역했다. 또한, 2006년부터 10여 차례의 공정 여행, 제 천간디학교와 함께한 3년간의 아시아평화교육 프로젝 트, 두 번의 공정 여행 축제를 기획·진행해 왔다


새터민 에세이

어려웠던 선택, 끝없는 도전 지예정 새터민

북한에서 ‘마흔 살’이라면 누구나 다 중년이라고 말한다. 마흔 살이 된 내가 인생역전의 길을 선택 하기에는 너무 많은 고난과 아픔이 있었다. 많은 슬픔과 아픔을 북한에 남겨둔 채 오랫동안 결심을 굳히며 탈북의 길에 올랐다. 며칠 동안의 긴 노정 끝에 태국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북한이 아닌 새로운 세상 을 보았다. 태국 사람들과 태국의 거리를 보면서 내가 가게 될 한국을 그려보았다. 두고 온 부모형제와 많은 추억을 남겨둔 고향 생각 그리고 앞으로 가게 될 한국에서의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런 복잡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낸 끝에 드디어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다.

새롭게 태어난 생명

----- 지난 10월 나는 뜻밖에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하 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 속에서 혼자 울며 힘든 시간을 보내었다. 시간만이 생명을 연 장해주는 위력한 무기였다. 북한에서 암은 불치의 병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에게 서 위암 진단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인생의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진 것처럼 절망스러웠던 나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미래를 안겨준 것은 다름 아닌 한국의 의학 기술이었다. 사실 수술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생명에는 아무 지장 없이 살 수 있다고 너 무 절망하지 말라던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전혀 귀에 들리지도 않았고 믿음도 없었다. 어찌할 수 없으니 수술이라도 받아보자고 수술대 위에 올라섰지만 두려움은 더욱 커져 만 갔다. 그러던 끝에 두 시간 동안의 위암수술은 끝났다.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내다 보며 다시 이 땅과 이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감사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이 너무 기뻤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나는 너무 놀랐다. 수술 회복 속도가 무척 빨랐고 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 몸이 하루하루 좋아지고 있는 것 이다. 수술 7일째 되는 날 나는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다. 참으로 북한에 있었으면 죽음의 시간만 기다려야 했던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너무도 무 서웠고 참혹하였다. 지금도 나처럼 수많은 악성병과 질병에 시달리며 있을 북한 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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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그들에게도 나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으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남북이 통일될 그날까지 새롭게 태어난 생명 늘 감사함으로 소중히 간주하 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리라 마음을 다지며 퇴원의 길에 올랐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다

----- 어느덧 탈북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온 지도 1년이 넘었다. 짧으면 너무 도 짧았고 길면 인생의 절반만큼 길었던 지난 1년 세월이었다. 그만큼 정착은 쉬운 일 이 아니다. 남북이 하나의 땅이고 한겨레이지만 반세기 이상 분단되어 있었던 탓에 모 든 것이 다 어려웠다. 눈에 익히기도 힘들었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만 않 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빨리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 나에게는 가 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였다. 분명히 남과 북이 하나의 언어이지만 나에게는 너무 낯설고 누가 물으면 선뜻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발음이 잘 되지 않았다. 인생의 반을 북한에서 살다온 나에게 언어는 좀처럼 고치기 어려웠다. 살아가는 과정에 언어는 필수이다. 처음에는 서로 대화하기 싫다고 사람을 피해 다녔 고 마트나 공공장소로 갈 때에는 물어보면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도 여기저기 혼자 헤 매면서 반시간 넘게 고생한 적도 무수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렇게만 살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나는 대담하게 생각하고 언어부터 익숙해지자는 생각 으로 열심히 집에서나 어디에서나 할 것 없이 배우며 노력하였다. 뉴스에서 아나운서 의 표준발음을 녹음하여 하루 종일 들었고, 부끄럽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잠시 웃더라 도 나도 많이 대화를 나누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배워 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과 소통이 되고 내가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사람들이 나의 말 을 알아듣는 것이 너무 감사하였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남한의 문화에 적응하기 시작하니 내 마음도 즐거웠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살 수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생각 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간 속에서 처음으로 18대 대선투표의 한 사람으로 귀중한 한 표를 당당한 대 한민국 국민으로서 투표하게 되었다. 남한에서의 대통령선거에 많이 궁금했던 나는 이 번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를 참신 하게 깨닫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고 정정당당하게 자기의 의사와 인권을 보 호받고 그런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 속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는 대한민국 을 보았을 때 나도 이 나라 국민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내가 남한 에서 살아온 1년 동안은 나에게 있어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고 또 가장 귀중하고 감 사한 한 해였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국민이 된 나에게 있어서 도전은 끝없이 있을 것이고 새로운 도전 을 향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단체탐방

대한불교청년회

통일운동은 만해정신을 실천하는 것 민화협 회원사업팀

1920년에 창립된 대한불교청년회(이하 대불청)는 창립자인 한용운 스님의 주인정신, 도전정신, 구국구세정신을 이어받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민족운동단체이자 청년운동단체이다. 9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오면서 일제 탄압으로 해 산되는 아픔을 겪는 등 늘 우리 역사와 함께해왔다. 지난 2013년 1월, 전준호 전 조계사청년회 회장이 27대 중앙회장으로 취임하여 앞으로 2년간 대한불교청년회를 이끌게 됐다. 소통·화합·비상을 비전으로 내세운 전준호 회장은 그동안 대불청 사무총장, 정책기획실장, 청소년위원장, 대의원 회 부의장으로 활약하면서, 대불청의 안방 살림부터 대외사업까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3월 1일에 개 최하는 제34회 ‘전국만해백일장’ 사업 준비로 분주한 대불청 사무실에서 전준호 회장을 만났다.

대한불교청년회! 새 도약의 출발은 지역지회 강화 대불청이 그동안 많은 선배와 동지들의 노력으로 중앙본부의 위상 과 역할은 높아졌지만, 오히려 지역 지회의 활동은 정체되어 있다는 것이 전준호 회장의 진단이다. 전준호 회장은 오랜 기간 몸담은 대 불청을 잠시 떠나 5년여 동안 다른 기관에서 활동하면서도 대불청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지난 시 기 대불청의 활동을 돌아보게 되었고, 젊은 세대 및 불자들과 어울리 고,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 중 하나가 활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지회의 강화다. 대불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 지역지회의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에 서부터 대불청의 위상과 이미지가 다시 제고될 수 있도록 중앙본부 의 지원을 더 강화하는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나갈 계획이다. 각 지 역 대불청의 활동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

01 01 대한불교청년회 전준호 회장

하는 전준호 회장의 도전이 꼭 성공하길 바란다.

대불청의 비상! 기본은 교육사업 현재 청년단체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문제지만, 대불청 또한 20~30대 회원들의 참여가 저조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단체의 규모와 사업의 외형은 커지는데, 회원의 적극적인 결합과 확대가 아쉽다는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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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03

04

02 제32회 만해백일장 03 창립 92주년 기념 전국불교청년대회 04 대불청대의원총회

기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원들에 대한 교육 사업

역 활동을 강화하는 데 온 정성을 기울일 것이다”라

부터 공을 들여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교육 사업은

고 강조했다. 또한, 남북교류의 기회가 온다면, 지

성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는다. 시간도 걸리고, 공을

역지회의 강화와 지역 통일운동 확산 차원에서 대

많이 기울여야 한다. 그래도 기본부터 차근차근 쌓

불청 14개 지구회장과 꼭 함께 방북하고 싶다는 포

아가면, 결국 단체와 사회에 큰 힘으로 반드시 돌아

부도 밝혔다.

오게 된다고 전준호 회장은 굳게 믿고 있다. 전준호 회장은 “불교는 교육과 수행을 함께하는 ‘수행 공동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는 민화협의 역할이 중요

체’를 만들고 이를 통한 깨달음을 얻어 행복한 삶을

전준호 회장은 통일논의가 대중화되지 못하고, 더

살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라면서 ”부처님의 가르침

활발하고 발전적인 논의로 전개되지 못하고 있는

과 수행이 있는 ‘만해 학교’를 활성화하고 싶다. 10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럴 때일수록 민화협

년 계획을 잡고 중앙본부에서부터 성공한 모델을

의 역할이 중요하다.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정부에

만들고, 지구로, 지회로 하나둘 퍼져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고,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민

노력하겠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화협 운동은 부분적인 한계도 있지만, 장점이 훨씬 많고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민화협이 어

통일운동! 멈출 수 없는 만해 정신의 실천 과제

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통일문제 해결을 위해 정

대불청은 1991년 소련 불교 전법 250주년 기념행

도(正道)를 지켜나가는 폭넓은 활동을 흔들림 없이

사에 참가해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 대표단과 만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민화협이 통일문제에 대해

나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남

필요한 목소리를 내고 남북관계 정상화와 한반도의

북불교 교류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이후 통일추진

신뢰를 회복해나가는 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전준호

위원회를 만들어 민간단체들과 교류하며 통일운동

회장과 대불청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을 활발하게 전개해왔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대불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 있어 더욱 활기찬

청의 통일사업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전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소통·화합·비전을 통한

준호 회장은 “통일운동은 멈출 수 없는 만해 정신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대불청의 앞날에 봄

실천과제이기에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다”라고 하

꽃처럼 싱그러운 꽃망울이 하루빨리 터지길 바라

면서 “현재 통일 논의가 국민적이지 못해 안타깝다.

며,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나가는 활

통일운동에 대한 지역 차원의 관심을 더 높이고, 지

발한 활동 또한 기대한다.


지금 북한은

대규모 축산기지 공사로 분주, 경제상황 나아졌나 장철운 연합뉴스 북한부 기자

북한이 올해 내건 목표 가운데 하나는 ‘세포등판 개

주민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이 사업을 직접 지시했

간 사업’이다. ‘등판’이 “산등성이의 평평하게 넓은

다고 선전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작년 12월 “원

곳”을 뜻한다는 점에서 이 사업은 강원도 세포군 일

수님(김정은)께서 세포와 평강, 이천 일대에 대규모

대의 구릉지를 개간해 대규모 풀밭을 만든다는 것

축산전문기지를 꾸릴 데 대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이다. ‘고난의 행군’ 이후 구조적인 식량난을 만성적

전했다. 그러나 북한 경제를 책임지는 최영림 내각

으로 겪는 북한이 이 같은 대규모 풀밭 조성사업을

총리가 작년 11월 초 강원도 세포지구를 찾아 현지

벌이는 이유는 뭘까?

에서 당·정·군의 주요 간부를 모아놓고 협의회 를 주최했다는 점에서 북한은 지난해 11월 이전에

세포등판 조성사업 지난해 말 시작

이 사업을 기획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북한의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대변해 온 재 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올

전국에서 인력·물자 동원해 사업 추진

1월 17일 “세포등판을 나라의 종합적인 축산기지로

북한은 세포등판 개간 사업에 대해 “새로운 주체

전변시키기 위한 사업이 전 국가적인 관심 속에 힘

100년대의 첫 대자연 개조 사업”이라고 선전하고

있게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신보의 보도에

있다. ‘새로운 주체 100년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이 대규모 풀밭을 만

것처럼 세포등판 개간 사업이 완료되면 이것이 김

드는 것은 종합적인 축산기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정은 제1위원장의 업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 매체가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세포

김정은 제1위원장도 이 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

등판 조성사업은 강원도의 세포군을 중심으로 그

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 “축산과 수산, 과수 부문

주변에 있는 평강군·이천군의 평평하고 광활한 대

을 결정적으로 치켜세워 인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

지를 개간해 수만 정보의 인공 및 자연풀밭과 무, 돼

고 더욱 풍족하게 해야 한다”며 세포등판 개간 사업

지감자, 사탕무밭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이

에 동원된 군인과 건설자들에게 “위훈을 창조하라”

풀밭에서 소, 양, 염소, 토끼, 돼지 등 가축을 기를

고 강조했다. 또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2월 11일

수 있도록 수백 동의 축사와 20여 동의 축산물 가공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체인 노동당 정치국회의

공장, 저류지, 방목도로, 1천여 가구의 노동자용 주

를 열고 “세포등판 개간 전투를 다그쳐 풀판 조성을

택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끝내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해 말

북한은 최고지도자의 지시로 세포등판 개간 사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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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되는 만큼 전역에서 노동력과 물자를 동원하고

것은 주민의 영양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이

있다. 작년 11월 24일 평양시에서 선발된 청년 건설

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에 매년 들어가 북

자들이 가장 먼저 세포등판으로 출발한 이후 각지

한의 작황과 식량상황을 조사하는 유엔 식량농업기

에서 청년 건설자들이 이곳을 향해 떠났다. 북한은

구(FAO)의 키산 군잘 박사도 “북한의 배급이 대부

다른 대규모 토목공사에서 그러는 것처럼 이 사업

분 곡물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북한 주민의 필

에도 군인들을 투입하고 있다.

수 단백질과 지방 섭취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확

북한은 이 사업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

인됐다”고 지적했다.

선중앙통신은 올 1월 16일 “인민군 군인들과 각 도

북한이 이 같은 대규모 공사를 벌이는 것은 북한 경

돌격대원(건설자)들은 최근 20여 일 동안에 수천 정

제가 호전됐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보의 땅을 갈아엎고 바람막이숲(방풍림)을 조성하

얻고 있다. 통계청이 작년 말 발표한 ‘북한의 주요

기 위한 7만 5천여 그루의 나무구덩이를 파는 성과

통계지표’를 보면 북한은 2011년 0.8%의 경제성장

를 이룩했다”고 전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

률을 보여 3년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평

이트인 ‘우리민족끼리’도 2월 19일 “인민군 군인들

양을 중심으로 하는 건설·토목 사업의 성과와 농

과 돌격대원들은 한 달 동안 근 200정보(약 200㏊)

업생산량 증가, 북한과 중국 사이의 무역규모 증대

의 등판을 갈아엎는 혁신을 일으켰다”고 선전했다.

가 플러스 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유엔 산하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FAO는 북

대규모 축산기지 건설은 경제 호전의 증거?

한의 ‘2012∼2013 양곡연도’를 기준으로 쌀과 옥수

북한이 현재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세포등판 개간 사

수의 생산량이 전년도보다 각각 11%와 10% 늘어날

업은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을 휩쓴 혹독한 경제

것으로 추산했다. 두 기관은 북한이 쌀 177만 톤, 옥

난인 ‘고난의 행군’ 이후 식량난을 지속적으로 겪고

수수 228만 톤, 밀·보리 16만 톤, 감자 45만 톤, 콩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사업이다. 북

20만 톤, 기타 6만 톤 등 총 492만 톤으로 전망했는

한당국이 주민들에게 배급할 ‘알곡’도 충분히 수확

데, 이는 작년 북한에 봄 가뭄이 심각했고 여름에는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대규

연이은 태풍과 국지성 호우에 따른 어려움이 있었

모의 인력과 자원을 축산기지 건설에 투입하기 때

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성적이다.

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당국이 세포등판 개간 사업을 벌이는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사업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

것은 곡물 생산이 고난의 행군 이전 상황을 회복한

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포등판 개간 사업이 쌀과 옥

상황에서 이제는 주민들에게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

수수 등 곡물 생산에만 집중하지 않고 주민에게 공

는 축산 분야에 집중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같

급하는 식량의 질을 높이려는 북한당국의 시도라는

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북한당국의 식량

점에서 눈여겨봐야 한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KREI) 선임연구위원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북한이 채소 및 축산시설을 대대적으로 만드는

장철운은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통일부 정책실 상임연 구위원을 거쳐 현재 연합뉴스 북한부 기자로 재직 중이다. 북한 내부 상황, 남북관계, 한반도 안보상황에 관심이 있다.


현장

Network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현장

계속되는 남북관계 경색국면, 남북관계 민간단체의 활로는? 민화협 정책홍보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이하 민화협)의 고민도 깊다. 그동안 민화 협은 대북사업과 관련해서 민간차원의 사회문화교류와 산림녹화 사 업,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여러 방면에서 추진되는 민 간교류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 왔다. 또한, 통일기반 조성을 위해 국민 합의를 높이기 위한 남남대화사업, 국민참여형 통일사업, 해외동포 사 업 등을 추진해 왔다. 남북관계의 경색국면 속에서는 남북관계의 물꼬 를 트기 위한 민간차원의 협력 사업과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합의 기반 을 높여 나가기 위한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민화협은 2013년에도 그동안의 사업 기조를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통일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합의를 높이고, 국민합의가 바탕이 된 안 정적인 남북관계 추진 기반을 마련하는데 주력해 나갈 계획이다. 북한 산림녹화 사업, 인도적 대북지원 등 남북협력 사업을 재개하는 노력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민간차원의 노력을 경주하 북한이 결국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새 정부

면서, 각 사업의 질적 도약을 이끌어 내기 위한 다양한 네트워크도 운

의 출범과 함께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릴 것이

영해 나가고자 한다. 3월 12일 개최되는 ‘민화협 15차 정기 대의원회’

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북한의 핵 실험으로 실

가 바로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낱같던 희망도 사그라지고 있다. 우리사회에 서는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남북의 화해

56개의 대북지원단체로 구성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하 북민

와 협력에 대한 목소리를 줄어들고, 안보와 군

협)는 ‘인도적 대북지원에 관한 사회협약’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

사적 대응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북

다. 이 협약에는 종교계, 시민사회, 여성계, 보건의료계, 대북지원 민

관계의 경색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꾸

간단체 등을 대표하는 인사 500여 명이 서명하였으며, 대통령직 인수

준히 남북협력 사업을 추진해 온 사람들에게

위원회에도 전달됐다. 북민협은 협약 내용 이행을 위한 ‘인도적 대북

이러한 현실은 더욱 엄중하게 다가올 수밖에

지원 실행을 위한 민관협력 위원회’설립도 제안하고 있다. 사회협약은

없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의 혹한기,

△정치군사적 상황과 인도적 대북지원의 분리 △북한의 인도적 상황

남북관계에 종사하고 있는 민간단체들은 무엇

을 고려한 식량지원의 지속과 제도화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에 대한

을 준비하고 있을까. 남북관계에 관여하고 있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제도화를 위한 관련 법률의 제정 △대북지원

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점검해 본다.

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노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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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1에는 정기총회에서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회장단체로 재 선출되어, 인명진 우리 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가 북민협 회장으로 연임됐다. 부회장 단체도 나눔인터내셔널과 평화3000이 연임하여 맡았다. 대북 지원 사업을 중심적으로 추진하는 북민협 참여 단체들은 사업자체가 남북관계 환경에 영향 을 받을 수 없어서, 장기간 사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크다. 소규모 단체의 경우는 참여인력들의 이탈과 지원사업의 기반 붕괴로까지 이어지고 있어, 대북지원의 정상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대북 지원 재개를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합의가 중요한 만큼, 북민협은 올해 안정적인 지원을 위한 환경 을 마련하는 일을 더욱 중점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6.15남측위원회는 오는 3월 15일 총회를 개최한다. 남북교류협력이 활발했던 2005년 결성된 6.15 남측위원회는 6.15북측위원회, 6.15해외위원회와 함께 6.15와 8.15 등 남북관계 주요 기념일에 공동 행사를 추진하고, 여성·청년·노동·농민 등 부문별 교류를 지원해 왔다. 그러나 남북공동행사 는 2008년 금강산에서 열린 6.15행사를 마지막으로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 안 남북의 강경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추진해 왔지만, 활동에 대한 내·외의 동 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남측위는 이번 총회를 통해 지도체계를 획기적으로 개편하면서, 활로 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 민간교류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시민단체들은 북한은 3차 핵실험을 중대한 위기로 인식하고, ‘평화’와 ‘시민참여’와 관련된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설립한 평화포럼은 지난 2월 20일 4차 총회를 개최하고, 최근 한반도의 핵 위기와 정치군사적 긴장에 대한 특별성명 을 발표했다. 평화포럼은 성명을 통해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규탄하면서, 평화적 대화와 관계개선 을 위한 일관된 노력이 필요함을 주문했다. 또한 “한반도 동북아에 조성된 군사적 긴장과 불신을 해소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평화와 통일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의 지를 밝히고 있다. 3월 14일에는 평화 관련 시민단체들이 연합하여,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 구’하는 기자회견도 개최할 예정이다.

남북교류와 대북지원이 중단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대부분 단체들은 내부 조직 정비와 역량 강화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이 증대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남북관계 발전 및 평화·통일을 위한 연구와 기반조성 사업,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도발과 제재, 대화와 단절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남북관계 상황은 국민의 피로감과 안보 불안 을 증가시키고 있지만, 관련 활동을 진행하는 관계자들에게는 더욱 무거운 책임감과 허탈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남북관계 위기 국면을 맞이하면서 올바른 선택, 현명한 선택을 촉구하는 목소 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남북관계 관련 민간단체도 지혜로운 선택과 전략이 필요한 시기이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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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민족화해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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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협과 회원단체들의 활동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민화협, 제15차 정기대의원회 개최

민화협은 오는 3월 12일(화) 오후 2시 백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민화협 제15차 정 기대의원회’를 개최한다. 이번 제15차 대의원회에서는 제8기 임원 선출 및 2013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확정하고, 지난 2012년 사업보고 및 결산서 승인과 정관개정 등도 함께 이뤄진다. 이날 행사에서는 그동안 남북관계 증진에 주요한 역할을 한 민화협 회원단체와 개인에게 통일부 장관 표창도 수여된다.

평화재단에서 35세 이상 전문직종인을 대상으로 평화리더십아카데미를 개최한다.

평화재단, 제8기 평화리더십아카데미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 개최

2013년 3월 21일부터 6월 13일까지 12주 과정이며, 매주 목요일 19시부터 22시까지 평화재단 강당(서초구 서초동 1623-2 우일빌딩 3층)에서 열린다. 역사, 정치, 경제 민주화, 사회통합 등 우리사회의 미래를 열어갈 주제들을 선정하여, 조민 평화교육 원 부원장, 법륜스님 평화재단 이사장,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최상룡 전 주일 대사,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김진현 전 과학기술처 장관,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여준 평화교 육원 원장의 강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2013년 3월 16일(토)까지 원서를 접수받는다. 평화재단에서 열리는 ‘새로운 백년 청년학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프로 그램이다. 법륜스님께서 삶과 사랑, 진정한 자유와 행복 그리고 우리 역사의 발자 취와 새로운 백년의 가슴 뛰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예정이다. 오는 3월 15일부터 6 월 2일까지 11주간 진행되며, 서울, 대전, 대구, 울산, 부산, 창원 각 지역에서 열릴 예정이다. 3월 10일(일)까지 접수를 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평화재단 http://www. peacefoundation.or.kr을 참조하고, 평화교육원 02-6925-0522으로 문의하면 된다.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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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2일(월)~4월 27일(토), 5박 6일(기내 1박 포함) 동안 중국 윈난성 일대

남북물류포럼 제3기 경협·물류아카데미

에서 제3기 경협·물류아카데미가 열린다. 샹글리라 옥룡설산 호도협 트래킹, 석 림 및 구향동굴 탐방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5일간 일정에는 ‘북한의 생존 전략과 한반도 정세전망’, ‘북한의 변화와 동북아 평화·협력’, ‘남북이 통일하는 가 장 멋진 방법’, ‘남북경협 물류분야 최우선 과제’, ‘남북경협사례: 대북 임가공교역 사업의 경험과 시사점’, ‘남북경협을 위한 법·제도 개선방향’을 주제로 강좌가 열 릴 예정이다. 오는 3월 15일까지 접수받는다. 자세한 내용은 kolofo@naver.com로 문의하면 된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제9차 정기총회 및 창립 16주년 기념식

한국여성단체연합,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29회 한국여성대회’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10주년 후원의 밤 개최

올해로 16주년을 맞이하는 흥사단 민족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는 3월 7일(목)~8

평화와 통일을 위해 걸어온 평화통일

통일운동본부가 2013년 3월 8일(금) 오

일(금) 제29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한다.

대구시민연대가 지난 2월 21일(목) 대구

후 6시 30분부터 흥사단 강단에서 흥민

3월 7일(목) 오후 2시~7시까지 서울시청

GNI문화공간에서 창립 10주년 후원의 밤

통 제9차 정기총회 및 창립 16주년 기

시민청 시민플라자(B1)에서 시민참여프

을 열었다. 10주년 후원의 밤 기념행사에

념식을 연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2013

로그램 ‘유쾌한 시민난장’이 열린다.

앞서 2월 16일부터는 평화연대가 본 북

년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

‘유쾌한 시민난장’은 전시마당, 체험마

녘의 풍경, 평화연대가 만난 북녘 사람

로,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의 정

당, 바자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후

들 사진전이 열렸으며, 2월 19일에는 김

세강연이 이어진다. 또한 감사패 및 공로

7시부터는 ‘유쾌한 묘비명 축제’로 방송

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을 초청하여 ‘박근

패 수여식, 축하공연, 다과회가 열린다.

인 김미화, 배우 권해효, 국악인 이자람

혜 정부의 안보 딜레마와 한반도 위기’를

씨가 출연하여 축제의 흥을 돋울 예정이

주제로 기념강연이 열렸다.

다. 3월 8일(금)에는 제29회 한국여성대 회 기념식이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개최된다. ‘올해의 여성운동상 시상’, ‘3.8 여성선언과 퍼포먼스’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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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남북관계 새로나온 책 Books

통일부에서 매년 발간하는 『통일백서』와 『북한이해』,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 2013년판이 새롭게 발행됐다.

『2013 통일백서』는 2012년 한 해 동

2013년도 『북한이해』는 통일교육 기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는 북한

안의 통일정책 추진 내용을 종합적으로

본교재로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발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비롯한 362

정리하고 있다. ① 통일정책 ② 실질적

하고 있다. 이번에 발간된 ‘북한이해’에

명의 인물정보를 담고 있다. 올해에는

통일준비 ③ 남북교류협력 ④ 남북 인

는 북한의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

김정은의 부인인 리설주를 포함해 총 17

도적 문제 해결 ⑤ 남북대화 ⑥ 북한이

할 수 있도록 최근의 변화된 북한 상황

명의 이름이 새로 들어갔고, 최승철 전

탈주민 정착지원 ⑦ 통일교육 ⑧ 남북

을 보완했다. 김정은 정권의 출범, 북한

통일선전부 부부장을 비롯한 21명은 명

협력기금 등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의 주변국 관계, 군사 및 경제 분야 현

단에서 빠졌다. 사망하거나 최근 5년간

총 8,000부가 발간되어 공공도서관, 교

황 등 2012년 북한 대내외 변화 동향이

공개 활동이 없는 인물은 빠져 있으나,

육기관, 언론기관, 행정기관, 전문가 등

잘 설명되어 있다. 책은 ① 북한, 어떻게

사망자 중 김일성과 김정일 등 주요 인

에 배포하고 있다.

볼 것인가? ② 북한의 통치이념과 정치

물 42명은 남아 있다. 김정은을 비롯하

『2013 통일백서』에서는 ‘통일 항아리’ 등

체제 ③ 북한의 대외관계 ④ 북한의 군

여, 부인 리설주, 고모ㆍ고모부인 김경

정부가 추진해온 실질적 통일준비에 대

사전략과 군사력 ⑤ 북한의 경제현황과

희ㆍ장성택, 최룡해 총정치국장, 현영

한 내용이 중점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전망 ⑥ 북한의 교육과 문학·예술 ⑦

철 총참모장, 김기남ㆍ김양건 당비서

그러나 그동안 남북관계 경색을 반영하

북한의 사회구조와 주민생활 등 7장으

등 북한 핵심 실세들의 이름을 표지 디

듯, 남북교류협력, 인도적 문제 해결, 남

로 구성되어 있다.『북한이해』는 통일교

자인으로 실은 점도 눈길을 끈다. 통일

북대화 등은 매우 부진했음을 볼 수 있

육 기본 교재인 만큼, 각급 학교 및 사회

부는 노동당, 국방위원회 등 정권기관,

다. ‘통일백서’는 통일정책과 관련한 내

통일교육기관, 관련 단체 및 연구기관,

인민군, 당 외곽 및 사회단체 등의 직책

용들이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종합적으

도서관, 통일교육원 초청 교육생 등에

과 이름을 표기한 『북한 주요기관ㆍ단

로 정리되어 있어, 그해의 남북관계 흐

배포하여 통일교육 자료로 활용된다.

체 인명록』 2013년판도 함께 발행했다.

름과 통일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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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형 대북정책 대북정책은 특정정권에 의한 선택적 방침이 아닌 계승 발전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퍼주기 10년’, ‘잃어버린 5년’ 등의 갖가지 별칭을 붙이며 북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사회적으로 소모적 논

극장국가 북한 : 카리스마 권력은 어떻게 세습되는가

쟁 속에 불신만 쌓였다. 이에 저자는 대북정책, 특

북한은 ‘이념적으로 무장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

히 햇볕과 반햇볕으로 분류되는 양자의 화해와 협

하다.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지는 혁명신화는 북

력을 주장한다.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궁

한주민들의 가슴속에 아로새긴 정신의 총체이다.

극적으로 우리를 위한 대북정책을 모색할 수 있는

왜 그들의 권력은 아직까지 영혼불멸의 정신이 되

기회가 될 것이다.

어 있는가? 막스 베버와 기어츠의 이론을 토대로

이재호 저 | 나남 | 2013년 1월 15일

북한의 권력세습을 분석했다. 북한의 권력에 대한

특정 정권의 정책을 반대해왔다. 그러는 사이 남

2

이해를 높여줄 것이다. 1

2

3

권헌익·정병호 공저 | 창비 | 2013년 2월 15일

4

3

고전문학을 바라보는 북한의 시각 1, 2 순수한 학문적 갈망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연구물 이 출간되었다. 우리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민족 문화유산은 남북한이 공존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 야로, 문화유산에 대한 연구는 남북의 공통점과

4

중국인민지원군과 북·중관계

차이점을 알려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남한과는 다

한국전쟁에 관한 논의는 남북한을 중심으로 이뤄

른 방식을 추구하는 북한의 고전문학연구를 통해

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전 60년이 지난 지

북한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금, 전쟁 참여·관여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만한

정운채·김종군 공저 | 박이정출판사 | 2013년 1월 28일

연구가 있어 주목된다. 현재 북한의 우호자로 비 춰지는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이 라는 이름으로 참전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북·중 연결고리는 어떻게 이어졌는가. 과거를 통해 현재 의 모습을 살펴볼 기회가 될 것이다. 박영실 저 | 선인 | 2012년 10월 19일


서평

는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명실상부한 ‘이분사회’다. 따라서 송호근 교수가 만약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민족화해는 ‘교양시민’ 성장의 필수조건 김진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를 대선 전인 2012년 9월이 아니라 대선 이후에 냈 다면 책 제목을 『이분사회를 넘어서』로 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분사회’는 곧 ‘분단사회’이니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먼저 분단되고, 이제는 남쪽 사회도 분 단되었다고 말해야 할까?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한·미FTA, 4대강사업, 경 제민주화, 복지 등이 논란거리가 될 때마다 좀처럼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는 두 논리, 곧 좌와 우의 진 영논리를 대비해 보여준다. 다음으로 이러한 현상 을 ‘소통의 위기’로 규정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 한 해법을 진지하게 모색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한국 사회가 ‘정치적 민주화’뿐 아니라 “이해 갈등을 해소하고 합의를 끌어내는 ‘대화의 기술’과 ‘마음의 양식’을 생산하는 ‘사회적 민주화’”를 달성하는 방안 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의 촉매제’ 역할을 해야 할 시민단체들마저 ‘주 장단체들’-저자는 이를 “시민운동의 성격을 빌려 전국적 이익이나 공익이 아니라 특정집단, 직업집 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들”로 정의한다-로 변 해간 마당에 어떻게 소통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까? 저자가 내놓은 해법의 핵심은 교양시민의 성장 이다. 불통이 바로 ‘교양시민의 빈곤’에서 비롯됐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의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 송호근 저 | 다산북스 | 2012. 9.

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교양시민’은 “개인 의 권리 의식에 투철하고 공공선에 관한 책임 있는 의식을 겸비한 시민”, “개인과 사회, 사익과 공익의 균형을 이루는 데에 필수 덕목인 ‘도덕’을 내면화한

51.6%와 48%.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18대

시민층 혹은 중산층”이다.

대선 득표율이다. 이긴 자는 유권자의 절반을 약간

저자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 이러한 교양시민, 교양

넘겼고, 진 자는 유권자의 절반에 약간 못 미쳤다.

있는 중산층이 빈곤한 이유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한국 사회가 ‘논리’로만 둘로 나뉜 게 아니라 그 논리

소시민들”이 “1960년대 군부독재와 1970~80년대

를 실제로 지지하는 구성원 숫자도 둘로 나뉘었다

강성 권위주의 체제에서 교양을 배양하기보다 출세


민족화해 March/ Apr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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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성공을 위해 전문기술과 생존수단을 먼저 습득

그런데 남북의 적대적 대치 상황은 ‘자유’뿐 아니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행적을

‘평등’이라는 가치를 논할 때도 강력한 검열 기제로

봐도 중산층은 재산권의 한없는 확대 보장을, 노동

작동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계급은 분배 정의를 강조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재

미국의 사상가 존 듀이가 반박했던 ‘난폭한 개인주

산 축적’에 매달린 건 같았다. 결국 “양자의 충돌은

의’-저자는 이를 “빈곤층과 노동자들도 개인 불굴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시장의 시대’가 열리면서 공

의 노력과 의지로 자본가로 상승할 수 있다는 자유

론장에서 접점을 찾을 수 없는 격돌 양상으로 치달

주의의 극단적 신념”이라고 소개한다-에 대한 도덕

았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적 비판이 ‘빨갱이’, ‘종북’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그렇다면 왜 군부독재, 강성 권위주의 체제가 사라

억압당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함께 살자!”는 비

진 뒤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자유와 평등의 균형을

정규직 노동자의 외침조차 불순세력의 선동으로 매

매개하는 도덕”, 곧 저자가 책 후반에서 한국 사회

도당하는 사회에서 평등이 제대로 이야기될 수 있

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 ‘공공철학’이 형성되지 못

을까? 한번 ‘빨갱이’, ‘종북’ 굴레를 쓴 이들이 공론

했을까? 아쉽게도 저자는 이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

장에 재진입하는 건 민주화됐다는 오늘날에도 낙타

를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가 이명박 정부 시절

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공론장의 침묵’을 분석한 대목을 읽다 보면 간과할

따라서 민족화해,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관계 개선

수 없는 중대한 원인 하나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등은 한국 사회가 정치적 민주화를 넘어 사회적 민

남북분단, 남북의 적대적 대치 상황이다. 조금 길

주화로 나아가기 위한, “시민들의 가치관이 서로 부

지만 직접 들어보자.

딪쳐 혼란과 무질서가 발생할 때 자신을 비춰볼 수

“이명박 정권에서 개인의 자유를 규제하는 국가(미

있는 거울이자 공유이념”인 공공철학(198쪽)을 마

네르바 사태)와 시장경쟁을 촉진해 독과점 상태를

련하기 위한, 궁극적으로는 이 모든 과정을 주도

해결하려는 국가(미디어 정책)가 서로 엇갈렸다. …

할 교양시민의 성장에 필수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

권리 신장을 위해서는 개별 경쟁을, 책무 이행을 위

다. 저자가 남북을 포괄하는 한반도로까지 시선을

해서는 규제를 선택한 이명박 정권의 행보는 자주

넓혀서, ‘실용적 자유주의’, ‘일자리 정치’같이 이분

어긋났고 갈등을 유발했다. 게다가 그 어긋남은 ‘북

법 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나름대로의 방안에 더해,

한과의 대치 상황’이라는 한국의 특수성에 의해 정

민족화해의 방책까지 제시해주었다면 더욱 좋았을

당화되곤 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조치는

것 같다.

국가 위기를 초래하는 주장, 국가정체성을 부정하 는 이념과 행위, 특히 친북 이념에 대한 통제의 필 요성에서 비롯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북한 문 제’는 이념의 스펙트럼을 좁히고 관용을 위축시키 는 한국의 아킬레스건이고, 자유의 두 축을 쟁점 에 따라 달리 해석해야 하는 논리적 모순의 기원이 다”(76~77쪽).

김진환은 동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 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전에는 민주노동당 통일외 교 정책연구원,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등으로 일해 왔다. 이 밖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 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같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무대 혹은 스크린

STAGE or SCREEN

상처 입은 수컷들의 한 판 승부 오한샘 EBS PD

기원전 44년 3월 15일. 이날은 믿었던 측근들의 칼 아래 쓰

영화

베를린

러져 생을 마감한 서양사의 영웅 카이사르가 암살된 날이 다. 더군다나 암살을 감행했던 사람들 중에, 주모자로 꼽히 는 마르쿠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의 최측근이자 연인(세르 빌리아)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욕망 앞에선 언제든지 돌아 설 수 있는 인간사의 서글픈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오 늘날까지 널리 회자되고 있다.

올해도 3월 15일이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

그런데 사람은 언젠가 배신하고 만다는 이 케케묵은 명제가

다. 봄의 입성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이

얼마 전 한 편의 영화와 함께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가

시기에 주변의 따스한 기운과는 달리 역

장 믿음이 가는 사람이 가장 의심을 받아야 할 사람이다.”

사 속 하루는 전혀 다른 일을 기록하고 있

굳이 작품 속에서 제시된 스탈린의 대사를 인용하지 않더라

었다.

도 이야기는 통치체제 아래 숨겨진 인간들의 욕망과 그 앞 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신념들, 그리고 그사이에서 희 생양이 된 가족을 목숨으로 지켜내고자 하는 한 인간의 긴 박한 상황을 속도감 있게 전개해 나간다. 그리고 그 한가운 데에 우리의 분단 상황이 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주먹이 운다(2005)’, ‘짝패 (2007)’, ‘부당거래(2011)’ 등 여과되지 않은 남성들의 세계 를 꾸밈없는 날것의 시선으로 접근하고자 한 류승완 감독의 접근 방식은 이 작품 베를린에서 더욱 섬세히 녹아들어 있 다. 단 한 명의 강자(强者)만이 살아남는 정면승부의 현장에 서 서슴없이 링에 오르는 무명(無名)선수들의 절실한 순수 함이 스크린 너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기면 기세가 오르고, 지면 수치심에 오기가 끓는 맹수(猛獸)들의 야성(野 性)이 보고 있는 관객들을 숨 막히게 한다. 이 영화는 베를린을 배경으로 북한대사관의 특수요원인 표 종성(하정우)과 그에게 누명을 씌워 평양의 해외계좌를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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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하려는 보위부요원 동명수(류승범), 그리고 이에 휘말 리게 되는 국정원 대북요원 정진수(한석규)를 주축으로 이 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서로의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신 봉하며 대립하던 남북의 두 요원(한석규, 하정우)은 부패한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긴 남자의 분노가

보위부요원 동명수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느껴지는 순간이다.

다. 표종성은 동료이자 후배였던 동명수가 자신의 아내(전

삶의 전부였던 가족의 소중함을 뒤늦게

지현)에게 반역의 음모를 씌우려 했던 사실을 발견한 순간,

깨달은 북쪽의 남자(하정우)와 그 가족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자신의 신념체계를 과감히 벗어던

지켜주고자 뛰어든 남쪽의 남자(한석규),

지며 아내를 구하고자 분연히 일어선다. 그리고 여기에 남

그리고 자기 가족의 탐욕을 위해 다른 가

한의 국정원요원인 정진수가 합류한다.

족을 파멸시키고자 날아든 욕망의 화신 (류승범) 간의 한치 앞도 물러설 수 없는

대립하던 남북 이데올로지스트들의 합류! 그토록 대립하던

대결! 가족의 목숨이 걸려 있기에 결코 물

두 이상주의자들은 죄 없는 여인과 아기의 생명이 위험에

러서거나 타협할 수 없는 수컷들의 한판

처하자 미련 없이 손을 잡는다. 양측의 정치적 판단이나 일

승부가 영화의 후반부에 펼쳐진다. 자신

시적 고려에 따른 공조(共助)가 아니라 눈앞의 가족을 구하

의 영역을 지켜내려는 야수들의 상처 뒤

기 위해 서로 목숨을 담보로 손을 잡았던 것이다. 임신한 아

에는 가족이 오롯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손

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죽음 속으로 다가가는 가장을 같은

에 땀을 쥐게 한다. 화면 안을 가득 채우

남자로서 외면할 수 없었던 남쪽요원 정진수의 흔들리는 눈

며 이들 배우가 연주하는 3중주를 목격하

빛 속에서 과연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

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호사(豪奢)가 아닐

까? 아무리 떨어져 살고 사고방식이 달라도 결국 남과 북은

수 없다. 각각의 독특한 음색을 가진 악

같은 피를 나눈 한민족이라는 점을, 서로 외면하기 힘든 한

기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의 감동을 느끼

가족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하지 않았을까?

기를 원하는 분이라면 이 영화를 한번쯤

체제라는 가면 속에 숨어서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무고한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줄거리는

사람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으려 했던 거대세력에 대항하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들의 연기를 음미

여 분연히 맞선 표종성의 분노 앞에서 문득 거대 흰 고래(모

해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연주 못지않을

비딕)에 외로이 맞서려 했던 에이헤브 선장의 일갈(一喝)이

테니까!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이 세상에 보이는 모든 것은 어쩌면 종이 가면일 뿐이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조 용히 그 가면 뒤에서 계획적으로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 다. …… 나는 그 힘을 증오한다. 내게 조심하라고 말하지 말라. 날 모독한다면 태양이라도 부숴버리겠다!”

오한샘은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고, 현재 EBS PD로 있다. 제10회 통일언론인 대상(2004), 대한민국 PD대상 실험정신상(2008), 푸른 미디어상 (2008)을 수상했고, <장학퀴즈>, <예술의 광장>, <EBS 시네마천국>, <천년의 밥상> 등 공연 및 문화예술 관련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분단 언저리를 거닐며

Korea

Diaspora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통일 한반도의 중요한 동력이다 박영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

세계 4위의 해외동포를 가진 나라

지구화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한(조선)민족이 얼마나 많은

디아스포라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코리안들이 이렇

디아스포라를 가진 민족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한

게 많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다. 2011년 말 현재 국외에 거주하는 코리안은 약

못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사람들은 코리안들의 이

720만 명으로, 중국, 이스라엘, 이탈리아를 이어 세

런 해외 거주를 주로 1980년대 이후 급속하게 전개

계에서 4번째로 많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된 지구화시대의 산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이들의 국내 거주민과의 대비로 본다면 해외 거주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주는 구소련-중국-일본 등

코리안의 비율은 약 10% 정도로, 유대인에 이어 두

동북아 지역에 거주하는 코리안들 중 많은 사람들

번째로 많다. 사실,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2,000년

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관련되어 있으며 오늘날의

을 떠돌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의 도움으로

이주와 근본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을 세웠기 때문에, 본국보다 해외에 더 많 은 사람들이 거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능동적인 잠재력을 지닌 코리안 디아스포라

그러나 우리 민족은 적어도 고려 이후 일제강점기

오늘날의 이주는 주로 자발적인 목적으로 이루어진

를 제외하고는 나라를 잃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다. 하지만 이들은 일제 식민통치시기에 정치적 탄

우리 민족구성원들이 이렇게 많이 해외에 거주한다

압을 피해 망명한 경우와 1920년대 토지조사사업

는 사실은 매우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과 같은 수탈로 토지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과

이렇게 많은 코리안들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게

노동자들의 이주, 그리고 1930년대 ‘국가총동원법’

되었는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코리안들이 거

과 같은 일제의 팽창정책을 따라 이루어진 세 가지

주하는 곳의 지정학적 특징이다. 코리안 디아스포

경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들의 이산은 오늘날 행

라는 175개국으로, 전 세계 모든 대륙에 걸쳐 분포

해지고 있는 ‘자발적 이주’가 아니라 국권을 상실함

한다. 하지만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대부분 특정 국

으로써 이루어진 ‘비자발적 이주’였다. 비록 그것이

가, 그것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대립하고 있는 미-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경제적 목적이었다고 하더라

일 남방삼각과 중-러 북방삼각의 국가들에 집중적

도 그것은 일제의 강점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관계

으로 분포하고 있다. 코리안들의 약 57% 정도가 구

한다는 점에서 ‘비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련 국가들-중국-일본 등 동북아 지역에 거주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민족정체

며 미국까지를 포함했을 경우, 거의 90%에 육박하

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는 사람들이 이 지역에 거주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기간에 해외로 나간 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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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숫자는 대략 400~5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

국주의 지배를 극복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약 177만 5,000여 명이

로 이 점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이산’과 ‘통일’의

일제의 패망, 8·15해방으로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과제는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정국과 경제적 이유 등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

그뿐만 아니라 코리안 디아스포라, 특히 동북아 지

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45년 당시 이들의

역의 코리안은 존재론적으로 오늘날 1억 명이나 되

숫자는 해방 직후 중국 170만 명, 일본 210만 명, 구

는 ‘디아스포라’와 다르다. 그들은 국가를 잃은 망국

소련 17만 5,000여 명 등 약 397만 5,000여 명이었

의 한을 뒤집어 쓴 채 동북아지역으로 흩어졌으며

으며 이들 중 고국으로 돌아온 한민족은 중국 70만

분단의 비극 속으로 밀려 들어왔으며 ‘분단이 낳은

명, 일본 150만 명 등으로 약 220만 명이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했

그러므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동북아시아에서의

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한반도에 통일

불행했던 역사, 식민지 지배와 분단으로 이어지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하

역사를 고스란히 존재론적으로 체현하고 있을 뿐

여 한민족 전체의 합력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관점

만 아니라 민족적 박해와 수난을 경험하는 존재라

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게다가 코리안 디아스포라

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동북아시아에 거주

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분단과 직접적으로 관련

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존재론적 특성을 단순히

되어 있는 지역에 거주한다.

‘박해’와 ‘수난’의 대상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은 아

그러므로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한반도의 분단과 냉

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역사적으로 겪을 수밖

전을 해체하고 통일한반도를 건설하는 데 주요한

에 없는 고난을 겪었지만, 그 와중에도 꿋꿋하게 살

자원이자 동력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남은 자들로서 나름의 역량을 키워왔다. 따라서

한반도의 통일을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하는 민

그들은 수동적인 존재 이전에 매우 능동적인 잠재

족적 합력을 창출하는 과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력을 가진 자들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의 존재에

그들의 차이를 통일 한반도의 생산적 능력으로 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꾸어가는 소통과 연대, 문화적 교류와 생산적 만남 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은 ‘하나의 핏줄, 하나의

민족적 합력을 창출하는 통일이 필요

문화, 하나의 민족’이라는 동질성을 벗어나 있다. 따

매우 단순화해서 말하면 통일은 남과 북이라는 두

라서 마지막으로 국가 간의 결합 차원에서만 통일

개의 국가로 분열되어 있는 한반도에 하나의 통일

을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더 나아가 전 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이라는 민족

계 보편적 가치로서 ‘지구촌’을 건설하는 관점에서

사적 과제는 현재의 한반도에 하나의 국가가 아니

이들의 문화적 차이를 적극 배우면서 동북아의 평

라 두 개의 국가, 민족≠국가라는 어긋남으로 존재

화와 공존, 공영의 길로서 ‘한반도의 통일’을 사유하

한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족≠국가라는 어긋남은 역사적으로 ‘일제강점’에 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민족=국가를 일치시키려 는 분단극복과 통일의 과제는 역사적으로 일본 제

박영균은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 를 받았으며 서울시립대 HK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건국대학교 통일 인문학연구단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자의 글

‘현명한 정보 소비자 되기’와 ‘양질의 정보 제공자 찾기’ 이민주 서울대학교 고전문학 석사과정

요즈음 북한 핵문제가 매일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하곤 한

현명하게 정보를 소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질의 정보

다.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져 유명 포털 사이트에 ‘북한’을 검

를 습득해야 한다. 단순히 ‘사실’만을 기록한 정보도 중요하

색하면 ‘핵’, ‘핵실험’, ‘북한 도발’ 등의 연관검색어가 높은 순

지만, 이 사실 이면에 감추어진 ‘문맥’을 파악하도록 도와주

위를 차지한다. 매일 새로운 기사나 자료들이 홍수같이 쏟아

는 정보가 더 질 좋은 정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맥을

지지만, 과연 이들이 북한의 핵실험을 잘 이야기할 수 있을

짚어주는 정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현존하는 대다수

지는 의문이다. 더불어 북한 문제에 관심이 적은 대다수 사

정보들은 정보 소비자의 눈과 귀를 자극하는 다소 강한 것들

람들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혹은 이 문제

이다. 자극적인 정보는 정보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순 있겠지

를 명쾌하게 이해시켜줄 수 있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지에

만, 매우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 분야에 대해 잘 알

대해서도 의구심이 생긴다.

지 못하는 사람이 자극적인 정보만을 접한다면 그는 결코 현

지금 우리는 굉장히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명하게 그 정보를 이해하고 소비하지 못할 것이다.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인터넷은 우리에게 아주 작은 생활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끌고 있는 북핵문제, 그러나 우리

정보부터 학습자료, 심지어 국가 관련 정보들까지 제공한다.

가 소비할 수 있는 질 좋은 정보는 찾기 어려워 보인다. 유명

그러나 한편으론 이 거대한 정보의 양이 우리에게 독이 되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메인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은 대부분 ‘

도 한다. 잘못된 정보를 습득해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인터

도발’, ‘전쟁’ 등의 자극적인 단어를 머리기사로 사용하고 있

넷에서 확대, 재생산된 루머에 의해 그릇된 정보가 제공되기

다. 현명한 정보 소비자의 한 명으로 이 문제와 관련된 다양

도 한다. 이처럼 인터넷은 마치 양날의 검처럼 우리를 겨누

한 시각의 기사들을 접하고 그 문맥을 읽고 싶지만 그러한

고 있다. 그러므로 정보 소비자로서 해야 할 개인의 역할이

정보들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물론, 이를 개인적 관심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의 문제라 치부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

그러나 현명한 정보 소비자의 역할이 쉽지만은 않다. 하나

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또 자신의 관심 분야가 아니면 이

의 사건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그 사건이 벌어진 사실

해하기 어려운 전문화된 세상에서 정보 소비자로서 접근

뿐 아니라 사건 이면에 감추어진 것들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

하고 또 이해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

다. 한국전쟁이 단순히 북한과 남한의 전쟁이 아니었듯이 모

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개인적인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먼

든 사건들은 그 이면에 숨겨진 문맥이 있고 현명한 정보 소

저 질 좋은 정보를 생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

비자라면 이 숨겨진 문맥을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각해본다.

지금 현명한 정보 소비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고 있는가.


Korean Council for Reconciliation and Cooperation

www.kcrc.or.kr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는 국민 합의에 기초한 민족화해 국민과 함께하는 생활 속 통일운동 국민과 함께 만드는 평화와 상생의 통일미래를 위해 노력합니다. 민화협은 국민통합의 장입니다. 민화협은 통일논의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소통과 합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보수와 진보,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다양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통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높이고, 국민통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민화협은 남북 민간교류의 창구입니다. 민화협은 각계각층의 참여와 국민합의를 토대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한반도 생태계 복원과 북한 식량난 해소를 위해 북한 산림녹화 사업을 진행해왔으며, 다방면에서 이루어지는 남북 사회문화 교류사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토대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민화협은 국민과 함께하는 통일준비의 장입니다. 민화협은 남북교류의 현장과 통일논의의 장에 국민 참여의 공간을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국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생활 속 통일운동의 장을 마련하고, 젊은 세대들과 함께 통일의 미래를 설계해나가고 있습니다.

민화협은 민(民)-관(官) 협력의 소통로입니다. 통일은 정부와 민간의 두 수레바퀴가 함께 갈 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민화협은 정부와의 건강한 협력관계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조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민화협은 1998년 9월 3일,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소망을 담아 결성되었으며, 보수와 진보, 중도를 망라하는 200여개의 정당·종교·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영리 민간단체입니다.


독자와 함께 읽는 詩 ➊

“남에도 진달래, 북에도 진달래 봄은 해마다 같건만 트이지 않는 남북의 가슴”

아무리 뭐한들 꽃을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 있으랴 같은 핏줄인 동기간을 세상 원수로 생각하는 사람 있으랴 온 지구 구석구석, 좁은 땅덩어리 어딜 살피더라도 이렇게 살기등등한 동족간의 회담 있으랴 남에도 진달래, 북에도 진달래 남북으로 삼천리 봄은 해마다 같건만 트이지 않는 남북의 가슴 기리니끼, 긱하고 그렇게 했어라우, 이렇게 되었꼬만 다 같은 우리 고향 말 와 이락카노, 허허 웃으면 통할 길 있으련만 아무리 뭐한들 이렇게 남북이 갈라져서 긴 세월 원수인 양 사는 동족의 나라가 어디 있으랴 안 그런가 동포여 <조병화, ‘남북회담’ 전문>

조병화 시인(1921~2003)은 경기도 안성출신으로 그리움, 외로움, 슬픔이 그의 시의 모티브였다. 우리문단에서 최고의 다작시인으로 기록되고 있는 그는 관념적 시어가 아닌 일상의 언어로 시를 썼으며, 이 시는 70년대 냉전시대에 쓴 작품이다.

KC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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