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일터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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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통권 153호 2016년 10월

www.kilsh.or.kr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대찬인생 살아볼랍니다! 과로 평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1) 지진, 피할 수 없다면 노동자의 대피권 보장하라!



독자에게

꺾이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1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란 하늘과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었던 작년 10월 7일 반올림은 강남 한 복 판인 삼성전자 서초 사옥 앞에 노숙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서울에 하도 농성장이 많아서 어렵사리 두어개 빌린 팔레 트를 바닥에 깔면서 가슴 한켠엔 왠지 모를 긴장감에 떨리기도 하고, 비장하게 농성장을 정비했던 그날이 떠오릅니 다. 팔레트가 너무 부족해서 정말 길바닥을 방바닥으로 삼아, 하늘을 지붕 삼아 자야해서 소수의 인원만 남긴 채 발걸 음이 떨어지지 않던 그 날이 떠오릅니다.

농성을 시작하면서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철옹성 같은 삼성과의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지도 문 제였지만 무엇보다 농성장을 몇날 며칠 내내 지켜낼 수 있을지 역시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농성이 계속되면 서 혹한의 겨울이 찾아왔고, 1994년 이래 가장 더웠다는 살인적인 폭염이었지만 반올림 농성장을 찾는 이들의 발걸 음이 끊이지 않았고 우려했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40여명이 넘는 반올림 지킴이들은 각자 활동 시간을 쪼 개고 쪼개, 주말과 휴가를 반납하면서 반올림 농성에 늘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곳보다 따뜻하고 웃음이 넘치는 따뜻함을 농성장에 채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대의 힘으로 농성 1년을 경과하면서 재해예방대책을 마련하여 폐쇄적인 삼성 현장을 작은 틈으로라도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폐암과 악성 림프종은 산재로 인정되며 삼성 직업병과 업무관련성을 인정하는 폭 또 한 점차 넓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삼성에게 직업병 피해자들이 진심어린 사과와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길 은 여전히 험난하기만 합니다. 삼성은 이 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태도는커녕 이병철, 이건희에 이어 이재용 부회장을 등기이사로 선임하기 위한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해서, 세계사에 전례 없는 재벌 3대 세습을 완성하려 합니다. 삼성의 3대 세습은 경영권 세습만이 아니라 삼성의 전근대적인 무노조 경영과 삼성 직업병 문제를 철저히 외면하는 경영을 세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반올림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삼성 직업병 문제를 해결을 위한 대화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할 시 이재용 퇴진 운동에 돌입하고자 합니다. 국내 노동/시민 사회단체만이 아니라 국제 NGO 단체들과 함께 삼성을 압박하는 투쟁을 벌여나갈 것입니다. 농성 1년을 맞아 삼성이 직업병 문제 해결에 답하는 그날까지 반올림이 지치지 않고 흔들려도 꺾 이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지금껏 보여 왔던 연대의 마음, 따뜻한 기운을 농성장에 불어넣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럼 삼성 서초동 사옥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뵙겠습니다! 3


차례

특집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강남역 삼성전자 사옥 앞에 반올림이 삼성 반 도체/LCD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에 대한 사과 와 보상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전개한 지 어 느덧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노숙농성 과정에 서 어떤 성과와 과제가 있었는지 돌아보았다.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26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어떤 일들이 있었나

28

반올림 산재인정 투쟁의 성과

30 말 뒤짚는 삼성과 직업병 피해자 고통 가중하는 정부

4

32

반올림 농성 1년, 이제 삼성이 답하라!

34

우리들의 이어말하기는 계속된다


54

16 1

독자에게

2

차례

4

노동안전건강뉴스

6

지금 지역에서는 지하철 기관사의 자살은 업무연관성이 있습니다!

8

포커스 자본의 탐욕이 김군의 죽음을 불러왔다

10

알기 쉬운 위험성 평가

24

사진으로 보는 세상

36

직업환경의학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38

지키고 되살리자, 작업중지권 지진, 피할 수 없다면 노동자의 대피권을 보장하라!

42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위해 46

현장의 목소리

48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50

연구소 리포트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20대 청년의 고백

52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치졸하고 뻔뻔한 정부의 방해

54

이러쿵저러쿵 나이 한 살 이야기

안전하지 않은 안전매니저 20

발칙X건강한 책방 박노자의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읽고

대찬인생 살아볼랍니다! 16

문화읽기 좀비가 무서일까? 사람이 무서울까?

위험성 평가란 무엇인가(6) 12

시간의 재발견_노동시간 에세이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과로 평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1) 5


노동안전건강뉴스

30대 그룹 산재 보험료 4,981억 원 할인

정리 장영우 선전위원

지난해 30대 그룹 소속 계열사 사업장이 할인받은

지난해 8만971곳 사업장 가운데 감면을 받은 사업

보험료가 4,981억 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장은 모두 7만2,756곳으로 1조4,447억여 원의 보

재해 발생 정도에 따라 보험률을 할인·할증하는 제

험료를 할인받았지만, 보험료가 할증된 곳은 7174

도 때문으로, 산재 은폐의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

곳 411억여 원에 그쳤다. 올해 산재보험료 수입이 6

어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5,668억 원으로 추산되고, 개별실적요율제를 적 용받는 사업장이 전체의 5%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

면 할인액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2003년 2,980

원이 지난 9월 18일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아 공개

억 원이었던 할인 액은 12년 만에 5배 넘게 늘어났

한 ‘개별실적요율제적용 산재보험료 감면현황’을 보

다. 또, 1,000인 이상 사업장 569곳이 할인받은 금

면, 30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가운데 삼성이 지

액이 4,505억여 원으로 전체 할인 액의 31%에 달

난해 1,009억 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아 가장 많

하는 등 대기업에 할인 혜택이 집중되는 모습도 보

은 혜택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뒤이어 현대자동

였다.

차가 785억 원, 에스케이가 379억7,000만원, 엘지 가 379억1,000만원을 할인받았다. 올해만 하청노

강병원 의원은 “산재 은폐와 ‘위험의 외주화’의 한

동자 6명, 원청노동자 3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한 현

요인이 되는 개별실적요율제의 할인 폭을 기업규

대중공업도 228억 원을 감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에 관계없이 보험료 대비 최대 20% 이하로 줄여 전체 보험료율을 낮춰야 한다." 고 말했다.

산재보험 개별실적요율제는 최근 3년 동안 개별사 업장이 낸 산재 보험료와 산재보험 기금에서 지출 된 산재보험 급여 액수의 비율에 따라 최대 50%까 지 산재 보험료를 할인·할증하는 제도다. 기업의 산 재예방을 독려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지만, 산재보 험 할증을 우려한 기업들이 사고가 발생해도 산재 처리를 꺼려 산재 은폐의 한 원인으로 꼽혀 왔다. 6


지난 7년간 배달사고 사망 63명, 부상 3,042명

음식점에서 배달 일을 하는 청소년 중 해마다 10명 정도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500여 명 정도가 부 상을 당해 산재승인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0년부터 줄곧 사회문제로 나타나 청년단체 의 시위까지 있었으나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에 나선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국회 환경 노동위원회)이 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7년간 19세 이하 청소년 63명이 배달

출처_청년유니온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3,042명이 부상을 당해

달제’가 최근 들어 패스트푸드 업계를 중심으로 ‘20

산재승인을 받았다. 올해만 해도 2명이 목숨을 잃고

분 배달제’로 바뀌며 속도전쟁을 하는 것은 결국 배

124명이 다쳤다.

달 청소년들의 ‘배달 중 교통사고’를 발생시키는 지 름길이다. 배달업이 외주화 된 뒤 이 문제는 더 심각

배달 청소년의 잦은 교통사망 사고가 사회적으로

하다.

이슈화되자, 최근 고용노동부는 사업주의 안전모 지 급을 의무화하고, 브레이크 등 안전장치가 정상작

이에 문제를 지적한 국민의당 김삼화 의원은 “최근

동 되지 않을 경우 탑승을 금지시킨다는 내용의「산

급증하고 있는 배달대행업체 소속 특수고용직 청소

업안전보건규칙」 개정을 예고한 바 있다. 이 같은 고

년들은 산재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

용노동부의 조치는 청소년 배달 교통사고의 원인을

부가 배달업체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실효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적인 배달 청소년 안전 및 권리보호방안을 마련해 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1일 ‘20분 배달제’로 인해 시간에 쫓기며 오토바이로 패스트푸드를 배달하다 택시와 충돌해 24살의 알바 청년이 숨진 사건이 있었다. ‘30분 배 7


지금 지역에서는

지하철 기관사의 자살은 업무연관성 있습니다! - 부산지하철, 도시철도 자살기관사 유족보상청구를 위한 공동기자회견

김옥 부산지하철 미디어연대부장

올해 4월 부산도시철도와 서울도시철도의 기

짜여진 운행표에 따라 열차를 몰아야 합니다.

관사 두 분이 자살을 했습니다. 부산도시철도

역마다 승객들의 승하차를 확인해야 하고 열차

의 경우에는 처음으로 발생한 자살사건이었고,

가 지연되면 운행시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아

서울도시철도의 경우에는 9번째 발생된 기관

무리 대소변이 급해도 열차를 놔두고 갈 수는

사 자살입니다.

없습니다. 기관사는 3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 어도 운전대를 지켜야 합니다.

기관사는 일반인에 비해 우울증 발생빈도가 2 배고 공황장애는 7배가 높습니다. 개인의 나약

기관사들의 노동은 자기결정권이 거의 없는 노

함이나 건강부주의로 보는 시선에 대한 두려

동입니다. 업무 중 아주 힘들거나 급할 때 잠

움 때문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감추고 일하

시 숨을 돌리거나 동료들에게 업무를 맡길 수

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관사들의 경

있어야 하는데 기관사들은 열차의 운행과 승

우 이런 심리적 압박감은 더욱 심합니다. 동료

객들의 안전을 위해 혼자서 3시간 동안 꼼짝없

없이 혼자 열차를 몰아야 하는 업무 특성상 정

이 매여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장시간 동안 자

신적 질환을 밝힐 경우 자신의 업무에서 완전

신을 철저히 통제하고 매분마다 시간을 맞추는

히 배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자신

일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의 업무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상당한 충격이 될 수 있습니다.

지하라는 근무환경도 문제입니다. 똑같은 모양 의 어두운 터널을 오랫동안 주시하며 달리는

8

기관사들의 노동은 열차의 운행시각에 철저히

느낌은 불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의 불빛도

맞춰져 있습니다. 최소 3시간 동안은 분단위로

그렇게 반갑지는 않습니다. 100미터가 넘는 열


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기관사 혼자서 확

자살한 기관사들의 유족보상청구 공동 기자회

인해야 합니다. 가끔 문에 이물질을 끼워 세우

견을 가졌습니다. 기자회견에 모인 조합원들은

는 승객을 만나면 머리카락이 곤두섭니다. 이

서울과 부산의 지하철에서 자살한 기관사들의

렇게 극단적인 빛과 어둠을 백 번 넘게 반복해

산재 인정을 촉구하면서, 기관사들이 이렇게

야 하루 일이 끝납니다.

자살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노동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볼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스트레스가 오랜 동안 쌓이면 정신적으로 상처를 주게 됩니다. 남자들의 경우 군대에 다

기자회견장 발언에서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이

시 입대하는 악몽을 꾸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의용 위원장은 산재신청을 한 두 명의 노동자

2년간의 군생활이 뇌에 쌓여 상처로 남았기 때

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일했다는 자부

문입니다. 기관사들은 남녀 구분 없이 제동이

심이 가득한 노동자로서 대우해주는 결정이 나

안 된다거나 문에 승객이 끼이는 등의 열차 관

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살 기관사 유

련한 악몽을 꿉니다. 이건 정신적으로 상처를

족들의 명예를 위해서도 근로복지공단이 신중

줄 만큼 기관사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강하다는

히 판단하길 기대합니다.

얘기입니다. 기관사들의 악몽이 공통적인 현상 이라면 두 노동자의 자실과 업무연관성은 보다 자세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입니다.

지난 9월 20일 근로복지공단본부 앞에서 부산 지하철과 도시철도 조합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9


포커스

자본의 탐욕이 김군의 죽음을 불러왔다 - 구의역 사망 재해 진상조사단 진상조사 결과 선전위원회

지난 8월 25일 서울시청에선 구의역 사망 재해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진상조사단)의 진상조사 결과 시민 보고회가 있었다. 이번 보고회는 총 53개의 시민단체로 구성된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 재해 해결과 안전사 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가 진상조사를 한 결과다. 한편, 진상조사단엔 교통/안전/기술/법률 전문가를 비 롯해 활동가 등을 포함해 15명의 진상조사위원과 10명의 지원팀 등 25명으로 구성했다.

진상조사에서 무엇이 밝혀졌나 - 이윤추구 구의역 사고 이전 발생했던 성수, 강남역 사고는 모두 작업자가 선로 측의 고정문 위치에서 센서를 수리하 다 사고가 났다. 이 고정문은 유진메트로컴이라는 광고업체가 광고수익률을 높이기 강력하게 주장했던 설 계다. 만일 정비 작업자를 고려한 설계였다면 선로 안쪽에서 작업하는 노동자가 비상시 밖으로 나갈 수 있 는 문으로 설계되었을 것이다. 또, 서울메트로는 안전보다 이윤을 선택하면서 은성PSD(주)와 사실상 도급을 위장한 파견을 진행했다. 서 울메트로가 실질적으로 경영권, 인사권에 개입하고 업무지시, 작업 배치 관여, 주요 기자재 및 설비 제공, 업무 평가, 임금 등 노동조건 결정권을 모두 행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고 책임을 은성PSD(주)는 물론 이윤을 위해 도급에 동의했던 서울시, 정부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부실 설비 스크린도어는 승객과 노동자의 안전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크린도어에 신체가 끼거나 선로 측에서 작업자가 정비할 시 전동차가 자동 멈추는 기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스크린도어는 2007년 부터 2009년까지 급하게 진행되면서 기술표준도 없는 상태에서 최저가 낙찰을 통해 시공되었다. 부실한 시공과 관리감독 소홀로 인해 스크린도어 설치 이후 4개월 동안 발생한 사고만 1,812건이었다. 시험 운전 절차 역시 반드시 필요했지만 2010년 완공 목표를 오세훈 서울시장이 1년 앞당기면서 빠졌다. 10


출처_서울지하철 노동조합

- 안전 매뉴얼, 교육 조차 없는 서울메트로 일관성 없는 업무 매뉴얼은 현장 작업자에게 혼란을 가중했다. 2인 1조 작업 매뉴얼 역시 조건부에 따라, 주 간 조에 따라 변칙적이었고 기타 세부 규정 역시 늘 바뀌었다. 또, 스크린도어 설비는 신호, 전기, 차량 등 여 타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정비 인력은 스크린도어뿐만 아니라 지하철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 가 필요하다. 그러나 하청 노동자들은 종합적인 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은성PSD(주)는 저렴한 인건비로 2인 1조 매뉴얼을 지키기 위해 2014년부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21명을 고용했다. 이제 처음 일 을 시작하는 실습생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위험한 일을 해야 했다.

- 늘 쫓기듯 일했던 김군 은성PSD(주) 노동자들은 늘 시간에 쫓겼다. 1개 역 당 1.2명 이하 인원이 97개 역사의 스크린도어를 관리하 다 보니 턱없이 인력이 부족했다. 게다가 하루 90건 이상 발생하는 장애로 인해 작업자들은 늘 시간에 쫓겼 고 그런 상황에서 2인 1조 매뉴얼은 그림의 떡이었다.

이후 과제 진상조사단은 이번 1차로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 관련 진상조사 이후 10월 말까지 지하철 안전 전반에 대 한 종합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대책은 서울시와 운영기관에 권고가 될 예정이다.

한편, 이번 구의역 사고 이후 서울시는 산하 감사위원회와 시민, 전문가 중심의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지난 7월 28일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회를 통해 안전관리 시스템 부재와 위험의 외주화를 지적했다. 서울시 산하 기관이 주도한 진상조사 결과이기 때문에 우려가 컸지만 진상조사단의 지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의 책임 소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간과한 부분이 있어 진상조사단에 어깨가 무거운 상황이다. 11


알기 쉬운 위험성 평가

위험성 평가 실시 시기와 실태는 어떠했나? 알기 쉬운 위험성 평가 (6)

선전위원회

위험성 평가는 최초평가, 수시평가, 정기평가로 구분하여 실시한다. 최초, 정기평가인 경우 현장 전체 작업을 대상으로 진행해야 한다. 수시평가의 경우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위험성 평가에 관한 지침’ 고시에서 정한 기준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계획이 있는 경우 실시해야 한다.

1. 사업장 건설물의 설치, 이전, 변경 또는 해체 2. 기계기구, 설비, 원재료 등의 신규 도입 또는 변경 3. 건설물, 기계기구, 설비 등의 정비 또는 보수 (주기적, 반복적 작업으로서 정기평가를 실시한 경우 에는 제외한다) 4. 작업방법 또는 작업절차의 신규 도입 또는 변경 5. 중대산업사고 또는 산업재해 (휴업 이상의 요양을 요하는 경우에 한정한다) 발생 6. 그 밖에 사업주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

수시평가와 달리 정기평가는 최초평가 이후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때 다음 사항들을 고려하여 진행해야 한다.

1. 기계기구, 설비 등의 기간 경과에 의한 성능 저하 2. 근로자의 교체 등에 수반하는 안전, 보건과 관련되는 지식 또는 경험의 변화 3. 안전, 보건과 관련되는 새로운 지식의 습득 4. 현재 수립되어 있는 위험성 감소대책의 유효성 등 12


기존 위험성 평가 실태는 어떠했을까? 2013년 제도 도입 이후 위험성 평가는 노사가 함께 현장의 모든 위험성을 조사하고 정도를 결정하 여 개선한다는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사측이 일방적으로 진행해왔다. 1년에 한번 진행하도록 한 법 적 요건을 맞추기 위해 노동조합과 작업자들은 배제하고 안전관리자, 직/반장 중심으로 평가를 진 행했다. 이렇다 보니 일하는 작업자들이 실제 느끼는 위험성들은 조사에 반영되지 못했다. 실제 지 난 봄 금속노조 경기지부 소속 사업장을 돌며 위험성 평가 교육을 진행했을 때 회사가 이전에 평가 를 하는 걸 본 적이 있거나 알고 있냐는 질문에 조합원 3,000여명 중에 딱 한분이 있다고 응답했 다.

또한, 기존에 진행한 위험성 평가는 현장에 있는 모든 위험성을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사가 사고성 재해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화학물질, 소음, 근골격계질환 등 작업자들이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고 대책이 필요한 부분들이지만 이 부분들은 상당히 저평가 되었다. 그 결과 위험성을 개선하 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결과 역시 작업자들에게 귀마개를 지급 하여 소음을 예방하거나, 스트레칭을 통해 근골격계 질환을 예방하는 등의 개선만 언급되었다. 종 합적으로 볼 때 이전에 사측이 진행한 위험성 평가는 실제 현장을 개선하려고 했다기 보다 법적 요 건 달성의 위해 평가를 위한 평가를 진행했다고 봐야 한다.

노조 차원의 대책 고민했지만 금속노조의 경우 2015년 위험성 평가 전국추진위원회를 구성,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각 사업장 에 위험성 평가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 실태를 확인하기로 했다. 이렇게 확인한 실태를 근거로 금속노조의 위험성 평가 기준과 위험성 평가 지침, 위험성 평가 시트를 개발하여 2016년 제대로 된 위험성 평가 사업을 준비했다.

그리고 2016년 금속노조 중앙교섭에서 회사는 산업재해의 근본적 예방을 위해, 매년 노사동수가 참여하여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조합측 인원에 대한 회의시간, 활동시간을 보장하도록 했다. 단, 실시기구, 시기, 방법 등 구체적인 사항은 노사합의로 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2016년 10월 현재 중앙교섭과 노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위험성 평 가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사측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혹은 평가 사업에 노동조합 대표 약간 명을 포함시켜서 진행하는 정도여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왜 이럴 수 밖에 없었는지를 확인하며 다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13


현장의 목소리

대찬인생 살아볼랍니다! -노동조합 인정 요구하며 파업중인 금속노조 경기지부 대창지회 노동조합 김용세 사무장, 장종우 노안부장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전면파업 37일 (9/23기준)을 맞는 금속노조 경기

임금의 경우 최저임금은 조금씩이라도 올랐건만

지부 대창지회는 노동조합 설립 5개월 차 신생 노

대창은 늘 제자리였다고 한다. 이러니 10년을 일

동조합이다. 금형 황봉을 수입하여 가공하는 일

해도 최저임금, 1년 다녀도 최저임금이고 심지어

을 하는 대창은 설립된 지 40년이 넘는 역사와 한

경기가 어렵다고 2년 정도 임금을 동결한 적도 있

해 매출 5,000억을 넘는 건실한 기업이다. 그래서

었다. 정년 2년 전부터는 임금피크제라서 해마다

일까 대규모 중소·영세 사업장이 밀집한 반월/시

20% 임금이 깎였다.

화 공단에 있는 대창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가 고 싶은 회사였다고 한다.

김용세 사무장 : 연 순이익만 400~500억이 되는 회사에요. 그런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한테 투

사람들은 모르는 대창의 실상

자는 미비하죠. 18년 다니면서 회사가 20억 벌 때가

김용세 사무장 : 택시를 타고 대창가주세요 그러면

분위기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불편하

좋은 회사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지역에서 포

니까 바꿔달라고 하면 개선해주고, 힘들어하면 회

장이 잘되어있는 회사에요. 일단 회사가 크고 급여

식도 하고 그랬는데 수익이 200억 정도 되니까 분

도 주변보다 더 받으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르

위기가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죠. 우리가 주말 내내 일해서 그나마 이 정도 받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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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데 다들 기본 8시간 일해서 받는 기본급이라고

위험한 현장이지만 다치면 늘 작업자 탓이었다

생각해요. 현실은 연간 노동시간이 3,000시간이 넘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였던 불만은 노동조합이

거든요. 그것도 현장에서 적게 일한다는 분들이 그

필요하다는 고민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지회장을

랬어요.

포함해 몇몇 분들이 금속노조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김용세 사무장 : 현장에 안전사고가 너무 잦아요. 특

휴먼노조 들먹이며 노동조합 인정 안 해

히 절단 사고가 많고, 근골은 기본으로 깔고 가요.

김용세 사무장 : 노사협의회 성원이던 지금의 지회

내가 언제 다칠지 모르는 환경인 거죠. 만일에 다치

장님과 몇몇 분이 1년 넘게 노동조합 준비를 했어

기라도 하면 회사 관리자들은 무조건 다친 사람책

요. 그런데 오픈하기 직전에 회사에 발각됐어요. 논

임이라고 뒤집어 씌우는 거예요. 만일 산재신청이

의 끝에 그날 바로 노동조합 가입을 받기로 하고, 하

라도 한다고 하면 회사는 거짓으로 서류를 제출하

루 만에 220명을 받았어요. 이후에 나머지 사람들

고 그랬어요.

도 다 받았고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절박감으 로 이렇게 오게 된 것 같아요.

장종우 노안부장 : 저는 금형에 호일을 당겨서 봉을 만다는 작업을 하고, 기계도 조작하고 했는데요. 일

회사는 긴급하게 전체 직원들을 강당으로 불렀

하다 무릎이 아파서 산재신청을 했는데 결국 승인

다. 대표는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을 회유하려 했

도 못 받고 장해만 남았어요.

다.

산재 승인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 회사는 재해자

김용세 사무장 : 직원들을 다 부르더니 다 해주려고

를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했다.

했다 그러는 거예요. 임금 올리고 그런 거 다 준비했 다고요. 그런데 그때 한 분이 일어나서 그랬죠. “우

장종우 노안부장 : 그때 당시엔 산재를 잘 몰라서 제

린 더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없다. 우리가 돈 때문에

대로 대응도 못 했어요. 그러다 나중에 회사가 제출

그런 걸로 보이냐며 나가자”고 했고 전 직원이 일어

했던 서류를 봤는데 악의적으로 꾸며서 제출했더라

나서 강당을 나왔다.

고요. 저희 설비는 수동인데 자동이라고 했고, 지난 20년간 이 설비에서 다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냈

휴먼노조를 핑계로 노조와 대화거부

더라고요. 하지만 저랑 같이 일했던 4명 중에 한 사

김용세 사무장 : 회사에 대화를 요구했는데 기존에

람은 무릎 수술을 했고, 한 사람은 무릎연골이 없어

있는 노동조합과 지난 1월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유

요. 저는 장애가 남았고요. 그런데 누구도 반발할 수

효기간이 지나지 않아서 2노조인 금속노조 대창지

없는 분위기에요. 그게 오래전 일도 아니고 2015년

회의 교섭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면서 노동조합과

에 일이에요.

대화를 계속 거부했어요.

장종우 노안부장이 산재를 신청한 것만으로 동료

그러나 이는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

들 사이에서 용기가 부럽다는 말이 있었다고 한

려는 거짓이었다. 회사가 주장하는 1노조는 휴면

다. 회사 분위기가 어떠한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

노조 즉 페이퍼 노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휴먼

다.

노조 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나일권 대창지회장 15


을 만나 “회사에 페이퍼 노조가 있는 것 알지 않았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더 강해지고요. 어쩌면 회

냐. 회사에서 이름만 올리고 서명만 하면 된다”는

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노동조합 조직

이야기를 했다. 실제 휴먼노조는 2003년 설립했

력이 만들어지게 회사가 도와주는 것 같아요. 물론

지만, 조합원이 4명에 불과하고 단 한 차례도 회

파업이 길어지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있겠지만,

사와 임금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것이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배우듯 노동조합에서 파업하 면서 조직력을 배우는 시간 같아요.

김용세 사무장 : 4월 19일 노조를 만들고 지금까지 교섭을 회피하고 있고 그래서 우리는 부당한 대우

회사의 무리한 대체생산이

를 받고 있어요. 1노조가 휴면노조라서 교섭 회피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지 말라는 지노위, 중노위 결정문 나 몰라라 하고,

장종우 노안부장 : 회사에서 저희가 부분 파업할 때

휴먼노조를 해체하라고 결정하니까 그제야 마지못

마다 대체 생산을 했거든요. 그때마다 다른 설비들

해 교섭하자고 하더라고요.

돌려야 하니까 작동법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저희가 안 알려줬어요. 그러자 이압출 기계를 깔지 1년여

결국 전면파업에 나서다

됐는데 설치한 사람을 불러다 작동법을 배우더라고

회사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요. 이후에 사측에 붙어먹은 김상표라는 사람과 고

대창지회가 요구하는 수준이 과해서 어렵다는 입

인이 된 이규재 부장이 같이 일하다 이압출 기계 오

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창지회로썬 노동조합

작동으로 이규재 부장이 가슴이 눌려서 압착으로

활동 인정 외엔 신규 노조에서 맺는 수준의 요구

사망했어요.

안이기 때문에 결국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겠다 는 회사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결

신규설비이고 조작법이 익숙하지 않은 사무실 직

국 노동조합은 전면파업에 돌입하게 되었다.

원들이 대체생산에 투입되었다가 끔찍한 일을 겪 었고, 그 이후 모든 대체 생산은 중단되었다. 사무

김용세 사무장 : 결국 우리가 전면적으로 파업해서

실 직원들을 이제 물건 출하 중심으로 남은 재고

대화를 해야지 그러지 않고서는 답이 안 나오겠다

들만 보내는 업무를 하고 있다. 한편, 고인의 가족

는 판단이 있었어요. 처음 하는 파업이라 걱정도 많

들은 회사와 이후 협의하고 장례를 마쳤다.

이 됐는데 지금 와서 보면 선배 노동자들이 대창 분 위기가 최강이라고 말씀하더라고요. 한 달 넘는 시

대창만의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간인데 조직력도 흐트러지지 않고요.

김용세 사무장 : 금속노조 경기지부가 아니었으면 이 자리까지 못 왔죠. 전면파업하고 여러 사업장에

16

장종우 노안부장 : 한 달 임금 안 받고 마이너스 대

서 연대 와주시는데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저

출받고 생활해보니까 악에 받치더라고요. 이대로

희끼리 농성장 지키면 그것처럼 처량한 게 없는데


출처_금속노조

요. 올 때 또 그냥 빈손으로 안 오세요.

장종우 노안부장 : 노동조합 만들고 여러 변화가 있 는데요, 팔자에도 없는 부장을 하고, 사람들 앞에도

장종우 노안부장 : 금속노조가 없었으면 이런 조직

서서 교육도 해보고, 산안법 고발도 하는데요. 저한

력이 만들어졌을까 생각해요. 아마 지금까지 오지

테 가장 큰 변화는 개개인으로 흩어져 있을 땐 그렇

못했을 거예요. 그리고 처음에 여기저기서 와주시

게 이기적이었던 사람들이 노동조합이라는 틀 하나

는 게 품앗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품

로 뭉치는 게 신기했어요. 그런 말이 있죠 나무가 모

앗이는 아닌 것 같아요. 의리도 아닌 것 같고. 뭐라

이면 숲이 된다고요. 이분들과 하루 빨리 파업 끝내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에요.

고 돌아가면 안전한 일터 만드는 거에 관심이 많아 요. 우리 조합원들 다들 골병들어있는데 예방도 하

안전한 일터, 변화를 인정하는 일터가 되었으면

고 아픈 분들은 치료도 받고요 그렇게 해서 살맛나

김용세 사무장 : 회사도 저희도 모두 대창이 세계 일

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류 기업이 되는 게 꿈이에요. 저희 열심히 일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할 거예요. 그런데 진짜 1등이 되려면 노동자랑 파트너쉽을 가져야 해요. 우리를 인정하 지 않으면 결코 1등이 될 수 없죠. 그리고 현장에 없 던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는데 대체 왜 만들어졌는지 한번 돌아보고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 해요. 17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마흔 일곱 번째 이야기

안전하지 않은 안전매니저들 출처_엠빅카드뉴스 본 사진은 실제 인터뷰한 분과 다른분임을 알려드립니다

정경희 선전위원

집밖에 나가있는 동안 가스 불을 끈 기억이 나질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서울도시가스

않아 안절부절 할 때가 종종 있다. 믿을만한 이웃

본사에서 퇴직해 나가는 관리자들에게 지분을 주

집이나 관리사무소의 신세를 지더라도 확인을 해

어 개인사업자로 지역고객센터를 관리하도록 함

야 안심이 될 만큼 가스는 생활에 유용하지만 위

에 따라, 떨어져 나온 개인사업자에 소속돼 있다

험하기 때문에 정기점검이 중요하다.

가 이번에 4개 개인사업자가 법인으로 합쳐지면

가스 관리는 대부분 가가호호 방문하여 검침, 점

서 은평도시가스 고객센터에 근무하게 되었고 현

검, 고지서 송달업무를 하는 안전매니저에 의해

재 33명이 함께 일한다고 한다.

이루어진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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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방문을 하는 업무가 쉽지만은 않을 것

여태 저희가 정규직인 줄 알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같다. 생각이 이 쯤 되니 안전매니저들의 안전은

알게 되었는데 근속수당이 없기 때문에 1년 계약직

어떤지 궁금해진다.

이라 하더라고요. 같은 일을 1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은평도시가스 고객센터에서 10년, 15년 넘게 안

도 정규직이 아니라니 할 말이 없었어요. 대부분 1년

전매니저를 하고 계신 정화숙 님과 공순옥 님을

단위로 재계약이 이루어져요. 지역별 고객센터도 서

만났다. 예전에는 서울도시가스 직영에 소속돼

울도시가스 본사에 속해 있고 서울도시가스는 서울


시에서 관여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내야 하기 때문에 배낭에 고지서를 가득 넣어 매고 서 한 손에는 PDA를 들어야 해요. 왼쪽 손부터 어깨

PDA에 나타나지 않는 업무와 어려움들

까지 무리가 가서 통증을 많이 호소해요. 검침하러

공식적인 사무실 출근은 한 달에 한 번. 대부분

다니다 보면 거미줄도 너무 많아요. 풀숲을 헤치고

PDA로 자료를 받아서 처리하는데 보통 6개월간

다녀야 할 때도 있고, 높은 곳은 올라갔다 뛰어내리

1인당 3,400세대수를 맡는다고 한다. 가구 방문

다 다리를 다치기도 하고, 난간에 매달려서 아슬아슬

횟수는 고지서 송달과 검침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하게 하는 경우도 있고, 4,5층 빌라의 경우 나머지 층

안전점검으로 6개월 동안 나눠서 한 번씩 방문해

은 완료됐지만 꼭대기 층이 남았다면 4,5층을 계속

서 한 가구를 6개월 동안 13번 방문하게 된다. 그

몇 번씩 오르내려야 하는데 일하는 내내 걸어야 하

러니 그 구역에 대해서 빠삭하게 잘 알 수밖에 없

니 다리도 돌아가면서 안 아픈 곳이 거의 없어요. 요

고 가끔 통장님들이 도움을 청하기도 할 정도라

즘 애완견들 많이 키우니 개한테 물리는 경우도 다

반사죠. 그런데 조금 할퀴거나 긁히는 건 말도 못해

안전점검이 첫 달이 10%고, 다음 달이 20%면 한 달

요. 피가 줄줄 나고 살점이 뜯어질 정도는 돼야 회사

에 700세대를 해야 해요. 하루에 50세대를 완료하

에서 치료비 받는 거죠. 사냥개에 물려서 7cm 꿰맨

려면 150번 정도 세대 방문을 다녀야 가능해요. 고

사람도 있어요.

객들이 집에 많이 계신 시간을 골라 돌아다니니 그 시간에는 노동강도가 강해지고 업무시간이 일정할

일하시다 다치면 당연히 산재로 처리하시냐는 질

수 없죠. 그것을 서울시에서 감안해줘야 하는데 시

문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간만 따지는 거예요. PDA를 통해서 시간 안에 몇 집 을 하는지만 계산하더라고요. 그런데 PDA에 나타나

산재는 아주 크게 다쳤을 때 부러지거나 누워있어야

지 않는 것도 있거든요. 고지서 일일이 보내지. 고객

할 때나 처리하죠. 산재를 하더라도 우리는 한 달 이

님께 문자 보내지. 방문을 했는데 사람이 없는 경우

상 쉬지 못해요. 취업규칙에 한 달 이상 쉬면 퇴사하

는 메모를 남겨두기 때문에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게 돼 있어요. 이 지역은 나만 알아서 다른 사람이 하

전화 받아야하지.

는 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그만두라는 거죠. 일하 다 다치면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지부터 생각해요. 내

안전매니저들은 수도나 전기처럼 검침과 고지서

가 힘드니까 동료들에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미안

송달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안전점검을 해야 한

한 거예요. 동료들이 대신 도와 줄 때 예전에는 회사

다. 큰 휴대폰 3배정도 되는 무게의 PDA를 업무

에서 점심값을 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줘요. 다친

내내 들고 다니면서 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듯했다.

사람이 알아서 부담하라는 거죠. 회사에서 전혀 책 임지지 않겠다는 거죠. 몸이 아파서 수술을 하려고

점검이 10납기에 몰려있는 경우는 2,3일 안에 다 끝

해도 검침기간을 피해서 해야 해요. 19


점검 완료 99.9%를 위해 견뎌야하는 것들

데 아저씨가 하는 말이 아들하고 둘만 있는데 성추

수리나 설치기사는 고객이 원해서 하는 예정된

행 당하면 어쩌게 여길 들어오겠냐는 거예요. 그래

방문인 반면 안전점검은 고객이 원치 않은 방문

도 나는 점검률 99.9%를 맞추기 위해서 해야 하니

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문을 닫아버리거나 못마

까 들어갔죠.

땅해 하고 푸대접받기 일쑤라고 한다. 보통 마지 막 달인 6월에 고객들과 부딪히는 일이 많다고 한

상황이 이 정도이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실질

다.

적인 방법이 강구돼야 하고 감정노동관련 치유 프로그램이 절실히 필요해 보였다.

처음에 갔더니 다음에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분들 많으니까. 지나가다 불이 켜져 있어서 노크를 하고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진짜 하고 싶어요. 스트레

가스점검 왔다고 하니 안한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귀

스를 정말 많이 느끼거든요. 예전에 수도검침원이

찮게 하느냐고 대번에 XXX 욕을 하더라구요. 그래도

성폭행을 당해서 사망한 사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실 때 하시라고 달랬더니 신경질 내며 문을 열어

요구를 해서 나온 게 있어요. 호루라기 허허~. PDA

주어서 금방 끝나는 건데 그렇게 화를 내시냐고 했

에 누르면 회사 사장이나 상무에게 연락이 가는 프

어요. 키도 엄청 크고 체격도 있는 아들뻘 되는 사람

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오작동이 잘 돼요. 연락이 된

이 나를 내려다보면서 한 대 칠 것처럼 손을 올리더

다고 해도 현장에 오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이미 상

라고요. 화를 참고 점검을 마치고 나오는데도 계속

황 끝나죠.

서서 욕을 하고요. 얼마나 서러웠던지... 이런 일을 책으로 쓰라고 하면 몇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외주화와 부당한 대우에 안전매니저들 뿔났다 일선에서 어려움이 많은데도 센터에서는 최저임

안전매니저님끼리는 얘기를 들으면 공감이 된다

금에 준하는 급여뿐 아니라 각종 안내문 뿌리는

고 하셨다. 어떤 상황이었겠구나! 아마도 이렇게

일, 제휴 카드 신청서 받기 등 잡일을 많이 시켰고

얘기만 들어서는 못 느끼실 거라며 사무실에서도

정규직으로도 인정하지 않아 불만이 쌓여가고 있

잘 모른다고 했다.

었다. 결국 그러한 불만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고 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점검하는데 집중하다 보면 뒤에 누가 왔는지 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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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이에 가슴을 슥 만지는 남자들도 있어요. 팬티

1,200세대 신규아파트 입주가 시작되자 사설업체

입고 나오는 것은 다반사구요. 너무 당황하니까 처

들과 경쟁이 붙어서 우리보고 아파트에 나가서 타이

음에는 대처하는 게 잘 안되죠. 그러니까 이건 젊은

머를 팔면서 가스렌지 연결 신청서를 받으라는 거예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이 먹은 주부들이

요. 물론 본 업무는 모두 하면서, 하루 일당 3만 5천

나 견디면서 하죠. 낮에 사람이 없어서 저녁에 갔는

원 줄테니 하루씩 돌아가면서 하라는 거죠. 힘들었


출처_엠빅카드뉴스

지만 회사에서 요구하니 열심히 했죠. 그래서 4~5 천만 원을 벌었다는데 추석 때 행정과 민원기사들만 20만원씩 더 주고 우린 원래 받기로 한 일당만 준 거 예요. 고생은 우리가 다 했는데 인정을 너무 안 해주 니 안 되겠다 싶어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거죠. 33명 중 26명이 노조를 결성해서 교섭 중이고 교섭 대표로 4명이 들어가고 있어요.

털어서 먼지 하나도 안 나기 때문에 노조 결성해 도 어쩔 수 없다고 우리 끼리 안에서 얘기하자고

혼밥, 혼술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처럼 1인 가구가

회유 반 협박 반 하는 사장의 말에도 끄떡하지 않

늘어나고 사회생활로 인해 빈 집이 많아지는 추

는다고, 협상 대상은 일단 센터 사장이고 서울도

세라 앞으로 일은 더 힘들어질 것 같다고 안전매

시가스 그 다음은 서울시가 될 것이라며 자신있

니저분들은 입을 모았다. 앞으로 바람은 일한 만

게 말씀했다

큼 정당한 댓가를 받고, 현재 담당하는 3,400세대 에서 3,000세대로 줄고, 근본적으로는 서비스 질

사실은 서울시가 모두 관할해야 하는데 서울도시가

을 보장하기 위해 2,500~2,600세대로 일의 양으

스로 분할하고 여기서 또 외주화시켜서 교섭도 그렇

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본사에

게 하는 거죠. 지하철도 스크린 도어 정비를 외주에

서 검침일정 등을 잡을 때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맡긴 거잖아요. 사실 구의역 사고 보면서 얼마나 공

들의 여건을 배려하는 것을 이루어나가겠다고 한

감했는지 몰라요. 가방에서 컵라면, 빵 나온 것 보고.

다. 안전매니저의 바람들이 현실화되고 동시에

우리도 검침이나 고지서 송달하러 나갈 때는 아침부

안전매니저의 안전이 보장되어 결국 시민의 안전

터 나가는데 주택가라 음식을 사먹을 수 없으니 떡

이 보장되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일터 독

이나 빵을 싸가지고 가요. 남한테 보여주기 싫어서

자들부터라도 집에 방문하는 안전매니저를 친절

주택가 구석이나 아파트 꼭대기층 계단에서 쪼그리

하게 대해주는 건 어떨까?

고 앉아 먹어요. 먹으면서도 내 자신이 비참해요. 음 식점이 밑에 있는데 맨날 걷는 게 지겨운데 거기까 지 걸어가서 먹고 현장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게 힘들고 시간도 걸리니 자투리 시간에 먹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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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리포트

과로 평가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1) - 2015년 근로복지공단 패소 뇌심혈관계질환 사례 분석

이혜은 노동시간센터장,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뇌심혈관질환 산재승인의 어려움

2014년 기준 근로복지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은 발 표된 통계상 11.2%로 낮은 수준이지만 공단은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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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라는 말은 흔히 일상에서 마주치지만 실제로

가 예견되는 사건에 대해 조정을 요청하여 소송을 ‘취

과로와 관련되어 뇌심혈관질환을 산재로 승인받기란

하’하고 업무상재해/질병으로 승인하는 경우가 많다.

쉽지 않다. 근로복지공단에 처음 산재신청을 하여 불

근로복지공단의 소송상황분석보고서에 의하면 ‘취하’

승인 되면 몇 가지 구제방법이 있는데 해당 노동자는

사건은 2012년 375건, 2013년 446건, 2014년 586건

관할 근로복지공단에 심사청구와 고용노동부 산업재

에 달한다. 결국 이를 고려하면 2014년 기준 패소 사

해보상보험 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청구를 할 수 있

건 185건과 취하 사건 586건 중 상당수가 근로복지

다.

공단에서 불승인하였으나 최종적으로 인정된 사례

또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이다. 결국은 산재로 인정받을 것을 소송을 위한 비

법원의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근로복지공단

용부담과 기나긴 시간의 소모, 정신적인 고통으로 피

이 행정소송에서 패소한 사건은 최초 또는 심사, 재심

해를 입은 셈이다. 더욱이 소송비용과 시간의 여유가

사 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업무상재해, 질병

없는 노동자는 행정소송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이 아니라고 판단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업

바로 포기할 수밖에 없어 취약한 노동자에게 더욱 불

무상재해, 질병으로 판단하여 산재보상이 이루어진

공정한 형평성의 문제까지 있다.

경우이다.

이러한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최대한 폭넓게 업


무상질병을 인정하여 행정소송 판단과의 간극을 좁

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동종의 근로자라도 적응하기 어려운 정

히고 행정소송의 필요성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며, 이

도로 바뀐 경우를 말하며, 해당 근로자의 업무가 “단기간 동

를 위해서 법원의 판단과 근로복지공단의 판단 기준

안 업무상 부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업무의 양ㆍ시간ㆍ강

이 어떤 면에서 차이가 났는지를 분석해 보고자 2015

도ㆍ책임, 휴일ㆍ휴가 등 휴무시간, 근무형태ㆍ업무환경의 변

년 근로복지공단의 뇌심혈관질환 패소사건 43례에

화 및 적응기간,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건강상태 등

대해 분석하였다.

을 종합하여 판단한다. 다. 영 별표 3 제1호 가목 3)에서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및

현행 뇌심혈관질환 업무상질병 인정 지침

업무 환경의 변화 등에 따른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로 뇌혈관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과로 평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의 가이드가 되고 있는 고용노동부고시를 먼저 이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유발한 경우”란 발병 전 3개월 이상

해할 필요가 있다.

연속적으로 과중한 육체적·정신적 부담을 발생시켰다고 인정 되는 업무적 요인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경우 해당 근로자의 업무가 “만성적인 과중한 업무”에 해당하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 고용노동부고시 제2016-25

는지 여부는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휴일·휴가 등 휴무시간,

호, 2016.7.1., 일부개정

교대제 및 야간근로 등 근무형태, 정신적 긴장의 정도, 수면시

Ⅰ.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간, 작업 환경, 그 밖에 그 근로자의 연령, 성별, 건강상태 등을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

종합하여 판단하되, 업무시간에 관하여는 다음의 사항을 고려

1.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한다.

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이하 “영”이라 한다) 별표 3

1)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

제1호 가목 1)에서 “업무와 관련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정

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발병

도의 긴장·흥분·공포·놀람 등과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뚜

과의 관련성이 강하다.

렷한 생리적 변화가 생긴 경우”란 발병 전 24시간 이내에 업

2)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

무와 관련된 돌발적이고 예측 곤란한 사건의 발생과 급격한

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경우라도 업무시

업무 환경의 변화로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병변 등이 그 자

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서서히 증가하며,

연경과를 넘어 급격하고 뚜렷하게 악화된 경우를 말한다.

야간근무(야간근무를 포함하는 교대근무도 해당)의 경우는 주

나. 영 별표 3 제1호 가목 2)에서 “업무의 양․시간․강도․책임

간근무에 비하여 더 많은 육체적·정신적인 부담을 발생시킬

및 업무 환경의 변화 등으로 발병 전 단기간 동안 업무상 부담

수 있다.

이 증가하여 뇌혈관 또는 심장혈관의 정상적인 기능에 뚜렷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인 과로를 유발한 경우”란 발

이와 같이 크게 급성과로, 단기과로, 만성과로를 평가

병 전 1주일 이내의 업무의 양이나 시간이 일상 업무보다 30

하며 노동시간은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

퍼센트 이상 증가되거나 업무 강도․책임 및 업무 환경 등이 유 23


과로평가의 문제점

전직에 해당된다. 경비직의 휴식시간/수면시간의 경

분석하였던 43례의 사건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다음

우 보통 휴식을 취하기에는 열악한 사업장에서 정해

과 같은 과로평가에서의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진 장소에 구속되어 있고 휴식시간 중이라도 민원/사 고의 발생시 이를 처리해야 하는 특성이 있으나 이에

1) 업무범위의 편협한 해석

대해 공단은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

공단은 출근부터 퇴근까지(휴식/대기시간도 제외한)

었다. 버스운전기사의 심근경색 사례에서 근로복지

직접적인 근로에 대해서만 업무로 인정하는 경향이

공단은 운행일지에 근거해 운전시간만을 노동시간으

있었다. 이에 비해 법원의 경우 업무와 관련하여 불

로 산정해 하루 4.5-5시간 운전하여 노동시간이 짧다

가피하게 수행하여야 하는 활동에 대해서도 폭넓게

는 이유로 불승인하였고 법원에서는 대기실의 환경

업무로 인정하였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 영업직원의

이 열악하고 배차가 되는 경우 운행을 해야 하는 조건

고객(의사 등 병원직원)과 동반한 주말산행이나 일상

을 고려하여 업무의 연장으로 해석하여 과로로 보았

업무가 국내의 장거리 출장이 포함되는 경우 출퇴근

다.

(출장지 이동)시간을 업무로 인정했다 4) 휴일부족/연속근무에 대한 고려 부족 2) 교대근무/야간노동에 대한 고려 부족

공단에서는 만성과로의 평가에 있어 12주간의 총 노

교대근무/야간노동을 한다는 것은 주간근무만 하는

동시간에만 주로 초점을 맞추어 평가하고 있으나 법

것에 비해 큰 부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절대적인 노

원의 판결에서는 정해진 휴일이 없이 상당기간 연속

동시간만을 따지는 것 뿐 아니라 노동시간의 배치를

근무가 있을 경우 과로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고시에도 불구하고 공단의 심

외딴 섬에 파견되어 조경업무를 하였던 근로자가 26

의에서 이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경우들이 확인되었

일간 정해진 휴일 없이 근무하였으나 공단에서는 발

다. 한 사례에서는 평소 3교대근무를 하다가 발병 1

병 전날과 전전날에 우천으로 작업이 없었다는 점을

달전부터 2교대근무로 바뀌면서 부하가 늘었고 과로

들어 과로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고 법원은 정해진 휴

기준에 인접한 노동시간 일하였으나 공단에서는 고

일 없이 장기간 근무한 것을 고려하였다.

용노동부의 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 승인하였고 법원에서는 전체 시간이 기준에 근접하

5) 노동시간 이외 업무량 평가 지표 고려 부족

며 이 중 야간근로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들어 승인했

과로에 대한 평가는 노동시간 뿐 아니라 단위 노동시

다.

간 동안의 업무량을 고려해야 한다. 인력의 감축, 물 량의 변화 등 다양한 지표로 평가가 가능하고 상당히

24

3) 노동시간 산정시 대기시간/휴식시간 배제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평가도 가능하다. 그러나 공

직종에 따라 업무 수행 중 작업 공정 상 불가피하게

단은 노동시간 외의 업무량 지표를 인정하지 않은 사

대기시간이 포함되는 경우가 있으며 주로 경비직/운

례를 법원은 인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가령 수상운수


업 회사의 환경미화원 뇌출혈 사건에서 단풍철 행락

8) 스트레스의 질적인 측면 고려 부족

객의 증가로 유람선 이용객 수가 발병 전월 일 평균

정량적/객관적인 평가가 어렵지만 업무에 대한 심리

154명에서 발병 당월 일 평균 442명, 발병 당일 873

적 부담감, 관계갈등, 감정노동, 고용불안 등 업무와

명으로 증가한 자료에 근거해 급격한 업무량의 증가

관련된 다양한 질적 측면이 존재하며 이는 업무 부하

로 판단했다.

를 높이는 요소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이를 고려하지 못하는데 법원에서는 첫 국외 출장으로 인

6) 만성적인 과로 상태를 ‘적응’상태로 평가

한 스트레스 등을 노동강도를 높인 요인으로 인정하

이는 법원의 판결문에서 발견된 문제점이다. 만성과

는 경우가 있었다.

로의 개념은 산재보상보험법 시행령에도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

개선방안과 앞으로의 과제

에만 치우쳐 장기간 힘든 일을 수행한 점은 ‘익숙해졌

근로복지공단의 행정소송 패소 사건들을 검토하면서

으므로 영향이 없다’ 는 평가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근로복지공단의 편협한 과로 평가가 확인되었다. 행

버스기사의 돌연사 사례에서 발병 전 12주간 주당 평

정소송을 통해 인정될 사례들을 근로복지공단의 심

균 노동시간이 68시간에 달했으나 1심 판결에서 약 2

의에서 인정하게 된다면 해당노동자의 경제적 부담

년 이상 버스운전업무를 하였으므로 업무환경에 충

과 시간 소모를 줄이고 정신적인 고통 역시 줄일 수

분히 적응했다는 것을 불승인의 한 사유로 제시했다.

있으며 행정소송을 포기하는 다른 많은 노동자들도 함께 구제될 수 있다.

7) 촉발요인으로서 고된 육체노동, 급성 심리적 스트

이를 위해 과로의 평가에 있어서 고용노동부 고시의

레스, 물리적 환경의 고려 부족

기준시간 여부 이외에도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정보들

심장사고에 있어 촉발요인(trigger, 방아쇠)의 역할은

을 최대한 활용하여 보다 폭넓은 과로의 인정이 될 수

많은 연구에서 밝혀져 있고 심한 육체활동, 급성 심리

있어야 하며 야간근무, 대기/휴식시간에 대한 평가에

적 스트레스, 추위나 더위 등이 이러한 촉발요인에 해

있어 일정수준의 가중치를 매기는 합의점을 마련할

당된다. 고시에도 이미 촉발요인으로서 급격한 업무

필요가 있다. 업무관련성의 판단에 참여하는 질병판

환경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나 공단의 촉발요

정위원, 자문의, 공단 직원 등의 지속적인 교육과 사

인 인정기준은 과도하게 높은 것으로 보인다. 주차관

례 배포, 심의한 사례의 최종 결과 피드백이 이루어지

리노동자의 심근경색 사례에서 평소 주차관리업무를

도록 공단의 노력이 필요하고 더 나은 업무상질병 여

하다가 눈이 내려 평소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출근하

부 결정을 위해 많은 관련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

여 약 1시간 동안 주차장 제설작업을 하던 중 쓰러진

는 것이 필요하다.

사건에 대해 신체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과중한 부 담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25


사진으로 보는 세상

26


경찰이 쏜 물대포에 의해 돌아가신 백남기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헬조선을 더욱 헬로 만들 성과연봉제 도입. 공통점은 국가폭력이 국민의 목을 조이고 있다는 것이다. 9.23 금융노조 총파업, 10.1 범국민대회, 10.1 백남기농민 추 모대회, 10.4 공공운수노조 2차 총파업 등등 수많은 민중들이 생존을 위해 들고 일어나고 있다.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

사진/글_미디어 뻐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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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어떤 일들이 있었나? 선전위원회

2015.10.07.

2016.02.16.

삼성전자와 반올림, 가족대책위가 수용해서 만들어

외신기자모임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삼성 반도체

진 조정위원회(조정위)의 7월 23일 권고안 발표 이

직업병 문제>가 다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삼성은 외

후 두 달 만에 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조

신기자들이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을 진행했냐고

정위 권고가 아닌 자신들이 만든 보상위원회(보상

묻자 고 황유미님의 아버지 황상기님 앞에서 작업

위)로 인해 조정위 권고안을 미루자는 입장을 발표

관련해서 메모했던 유미 씨의 일기장을 꺼내 안전

했고, 반올림은 삼성전자를 규탄하며 ‘직업병 피해

교육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의 거짓 주장

자에 대한 사과, 보상, 재방방지대책’을 요구하며 노

을 위해 딸을 잃은 아버지 앞에 사망자의 일기를 꺼

숙농성에 돌입했다.

내는 파렴치한 행태를 보였다.

반올림 강남역 8번 출구 앞 농성 돌입

유족을 두 번 죽이는 삼성전자

2015.10.22.

삼성 “피해자들에게 보상할테니 반올림 만나지 마라” 삼성전자가 보상위를 통해 보상 신청을 한 피해자

28

2016.03.04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에게 전달한 수령확인증에 “일체의 민·형사상 이의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달을 맞

를 제기하지 않고 △합의서와 관련한 모든 사실을

아 1달 여간 반올림 활동가들과 직업병 피해 가족들

일체 비밀로 유지하며 △이를 어길시 수령한 보상

이 릴레이 연좌시위를 결의했다. 연좌농성을 시작

금을 반환하겠다고 확약” 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

한 이날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고 황유미 님의

다는 점을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국회의원을 통해

기일 (3월 6일)을 맞아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확인했다.

말고’ 추모제를 진행했다.


2016.06.01

악성 림프종 산재 인정

정하지만, 노출의 정도가 질병을 유발했다고 볼 증 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산재를 불승인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악성 림프종 사망자 고 박효순 님 의 죽음에 대해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번 산재는 화 학물질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를 비공개한 삼성을 지적하고, 벤젠 등 발암 물질 노출가능성 인정했다 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판정이었다.

2016.06.08.

옴부즈만 위원회 출범 삼성전자가 옴부즈만 위원회 공식 출범을 발표했 다. 옴부즈만 위원회는 애초 반올림 요구안이나 조

2016.09.15

유엔인권이사회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이 부족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33차 유엔인권이사회에 서 "유해물질 및 폐기물 처리 관련 인권 특별 보고 관의 방한 보고서”가 공식 채택되었다. 유엔인권이 사회는 삼성전자가 영업 비밀을 이유로 화학물질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폐쇄적인 피해자 보상을 지 적하며 개선을 권고했다.

정위 권고안에 담겨있는 재발방지대책에 비하면 일 부분에 불과하지만 극도로 폐쇄적인 삼성전자의 안 전관리보건 실태를 외부의 눈으로 지켜볼 틈이 만 들어진 것이라 그 의미가 상당하다. 반올림은 옴부 즈만 출범에 대해 위원회 구성에 오랜 시간이 걸리 고, 얼마나 삼성으로부터 독립적일지 우려되나 옴 부즈만 위원회가 더욱 내실 있는 활동을 펼쳐주길 바란다는 당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2016.09.02.

폐암 업무상 질병으로 첫 인정받아 9월 2일 근로복지공단(공단)이 폐암으로 숨진 삼성 반도체 노동자 2인을 산업재해로 인정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경우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 적 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않다. 공단은 “고인들 이 비소 등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고

2016.09.22

반올림에게 악의적인 언론에 제동을 걸다! 일방적으로 삼성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반올림에게 악의적인 기사를 쏟아내면서 명예를 실추시킨 뉴데 일리, 디지털데일리 등 총 5개 매체를 상대로 공익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언론인권센터, 민주 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가 함께한다.

2016.10.07.

이제 삼성이 답하라! 반올림 노숙농성 1년을 맞아 삼성직업병 문제 올바 른 해결을 촉구하는 “이제 삼성이 답하라” 문화제를 진행한다. 또, 이날 방진복 퍼포먼스를 비롯해 땡땡 땡 협동조합과 반올림의 노력으로 탄생한 이어말하 기 책이 출간되어 판매하고 있다.

판단되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한 점을 고려할 때 업무관련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한편, 대법원이 8월 30일 백혈병과 비호지킴 림프 종에 대해서는 발암물질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은 인 29


특집 :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반올림 산재인정 투쟁의 성과

임자운 반올림 상임활동가

224명의 피해 제보. 57명의 산재보상 신청. 8개의

않거나 제출하지 않은 문제들을 지적한 것이다.

질병(백혈병, 림프종, 재생불량성빈혈, 유방암, 뇌

그러면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업무기인성에 대한

종양, 난소암, 다발성신경병증, 폐암)에 대한 13명

엄격 증명책임을 근로자 측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의 산재인정.

맞지 않다.”거나 “이러한 사정은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함에 있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정황으로

2007년부터 시작된 삼성반도체 산재인정 투쟁의

참작함이 마땅하다.”고 했다. 난소암에 대한 산재

성과다. 2011년 법원이 처음으로 반도체 백혈병을

인정 판결에서는 “발병률이 낮고 그 발병원인이나

직업병으로 인정했을 때, 모두들 기적 같은 판결

발생기전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한

이 나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회사의 자

질병에 대하여는 의학적으로 다수의 연구가 이루

료 은폐와 근로복지공단의 부실한 재해조사는 계

어진 질병에 비하여 상당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의

속 되었고, 무거운 입증책임을 노동자 측에 떠안

정도를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기는 산재보험법의 문제도 여전했다. 그 와중에 만들어진 이러한 성과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문기관인 산업보건연구원과 폐 질환연구소가 작성한 ‘역학조사 보고서’에도 인상

30

하지만 이 싸움의 진정한 성과를 알려면 법원과

적인 내용들이 나왔다. 회사의 자료 미비나 은폐,

근로복지공단이 밝힌 산재인정의 근거들을 보아

조사 거부 등을 적시한 후, “직무를 세세하게 구분

야 한다. 예컨대, 법원은 일부 판결에서 “근로자에

하여 판단하기보다는 생산직 여성 내지는 여성 오

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 규명이 어렵게 된 사정”

퍼레이터라 보고 업무관련성을 판단하는 것이 타

들을 나열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재해조사를 잘못

당하다.”고 하거나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당수

한 점, 회사가 업무환경에 관한 자료를 구비하지

준의 유해물질 노출을 배제할 수 없다”며, 질병의


업무관련성을 긍정한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직업병 문제와 관련된 과거 의 판결문이나 공단 측 보고서에서 찾기 힘들었던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토록 은폐되고 규명

내용들이다. 반도체 공장의 위험성은 시간이 지날

되지 않은 위험이 더 이상 회사와 공단에게 이로

수록 알 수 있는 부분보다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더

운 방향으로 해석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 회사와

많이 드러났다. 예컨대 재해자가 취급한 화학제품

정부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정보 부족의 문제가 재

의 위험성을 규명하려 해도, 그 제품의 이름과 성

해노동자의 불이익을 귀결되는 ‘입증책임’의 문제

분, 노출 정도 등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하

를 뜯어 고쳐야 한다. 산재보험법상질병의 업무관

게 되는 것이다. 회사가 관련 조사를 아예 하지 않

련성에 대한 입증책임의 전환 혹은 분배를 이끌어

았거나 관련 자료들을 진작 폐기해 버렸고, 국가

내야 한다. 또한, 은폐되고 규명되지 않은 위험에

도 그러한 상황을 계속 방치해 왔다는 문제가 여

대해 노동자들이 직접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마

러 사건에서 드러났다. 그래서 법원과 공단도 ‘업

련되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거나 별

무환경이 얼마나 위험했느냐’와 함께 ‘업무환경의

도의 법률을 제정하여,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관한

위험성을 알 수 없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 ‘그러한

정보를 정부가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장기간 보관

정보 부족이나 정보 은폐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느

하도록 해야 하고, 해당 사업장의 전ㆍ현직 근무

냐’를 묻기 시작한 것이다.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

자들은 그 자료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할 수 있다.

야 한다.

앞으로 5개월 후면, 황유미 씨가 세상을 떠난 지

지난해와 올해, UN ‘인권과 유해물질ㆍ폐기물 특

10년이 된다. 유미 씨의 아버지는 삼성전자 본관

별보고관’과 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이 잇따라

앞 노숙농성을 1년 째 하고 있다. 그 오랜 시간 동

한국을 방문하여 각각 담당 분야와 관련된 인권

안 피해자들에 대한 산재인정 여부를 다투는 법

침해 실태를 조사한 후 보고서를 발표했다. 두 보

적 공방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런데 그러한 법

고서 모두 산재인정 과정에서의 입증책임 문제와

적 공방들의 가장 중요한 성과를 한마디로 요약하

알권리 문제를 주요하게 지적했다. 어쩌면 10년

자면, 다소 허무한 감이 있다. 우리는 여러 사건과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는 반올림 산재인정 투쟁

소송을 거치며 피해자들이 처했던 업무환경의 구

의 가장 큰 성과는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냈다는

체적인 위험성을 알게 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얼

데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산재보험법상 입증책임

마나 심각한 위험 속에서 일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문제’와 ‘노동자 알권리 문제’가 큰 관심을 받고 있

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위험이

다. 이 싸움의 진정한 성과를 만들어 낼, 제2라운

은폐되거나 규명되지 않은 채 그 공장 안에서 수

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31


특집 :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말 뒤짚는 삼성과 직업병 피해자 고통 가중하는 정부

이종란 반올림 상임활동가

삼성의 심장부 삼성 서초 사옥 아래 비닐 한 장에

라 말한다. 문제가 있는 보상위원회에 보상 신청

의지한 반올림의 노숙농성이 1년 되었다. 작년 10

을 하지 않은 피해자들, 조정권고안에는 보상대

월 7일 삼성전자는 삼성 반도체/LCD 공장의 직업

상에 포함되나 삼성 자체 보상위원회에서는 배제

병 문제의 사회적 대화기구인 ‘조정위원회’를 ‘보

되어 보상조차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많음에도

류한다’는 말로 무력화 시켰다. 그래서 반올림은

삼성은 다 해결되었다고 거짓말을 늘어 놓는다.

이날부로 삼성 앞에 그대로 눌러 앉아 아직도 해

이러한 말 바꾸기와 왜곡은 삼성이 한해 2조 8천

결되지 않은 삼성 반도체/LCD 직업병 피해자에

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언론사 광

대한 삼성의 진심어린 사과, 배제 없는 충분한 보

고홍보비로 주는 덕에 언론 기사들을 통해 사실

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올해 1월 농성투쟁의

로 둔갑된다.

성과로 재해예방대책은 삼성과 합의 했지만 아직 많은 피해자가 사과/보상을 받지 못한 상태다.

또한, 삼성은 보상이 직업병 피해자에 대한 사회 적 부조의 성격이지 직업병 발생의 책임을 인정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삼성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법원과 공단을 통해 산재

삼성은 보상/사과 문제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이

를 인정 받은 13명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마찬가

문제가 다 끝났다고 말한다. 조정위 권고안을 거

지다. 삼성은 책임 인정 없이 단지 위로금 몇 푼

부해놓고 삼성은 조정위 권고안을 무시하고 만든

으로 이 문제를 덮으려고 한다. 지난 9년간 삼성

자체 보상위원회가 조정 권고안을 이행하는 것이

이 이 문제를 대하는 태도와 하나도 바뀐 것이 없 다.

32


기업에 편에 선 정부 삼성 못지않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체가 바로 정부다. 첨단전자산 업에서 심각한 직업병 발생하고 있는데 이점에 대해 정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아무런 대책도 없 이 손을 놓고 있다. 아니 오히려 고용노동부의 경 우 삼성의 안전보건자료들이 기업의 영업비밀이 라며 자료제공조차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재해 노동자가 산재를 입증할 방법이 없음에도 여전히 산재의 입증책임이 노동자에게 있는 부당한 제도 에 대해서도 전혀 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출처_민중의 소리

올해 5월 근로복지공단은 삼성반도체 악성림프 종 사망노동자 고 박효순(28세)님에 대한 산재(업

삼성과 정부는 직업병 노동자를 두 번 죽이지 마라!

무상질병) 유족급여신청에 대해 승인결정을 내렸

이번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근로복

다. 2012년 10월 공단에 산재신청 접수를 한 뒤

지공단,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무려 3년 8개월이나 걸렸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

따르면 2011년부터 최근 5년간 진행된 389건의

하다 폐암에 걸려 사망한 설비엔지니어 고 이경

산업재해 역학조사에서 현장방문을 거부하거나

희, 고 송유경 님의 유족급여청구에 대해서도 마

신청인 및 대리인의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사

찬가지다. 폐질환연구소의 역학조사 과정에서 삼

업장 16곳 중 절반인 8건이 삼성전자와 삼성전자

성 및 협력업체의 조사거부 등 어려움으로 인해

협력 업체였다.

최종 공단의 산재승인까지 근 4년의 시간이 걸렸 다.

언제까지 기업의 궁색한 변명과 방해에 산재입 증 곤란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입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 입증책임의 제도(증명 곤

증곤란의 불이익을 결국 재해자가 져야 하는 부

란시에 불이익은 노동자가 지는 제도)가 바뀌지

당한 노동자 입증책임 제도는 언제까지 계속되는

않는 한, 산재인정에 소요되는 시간 또한 쉬이 줄

것인가. 이제 전면 바꿔야 할 때가 왔다. 산재인

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기업의 은폐와 조사방해

정은 손쉽게, 직업병 예방 대책은 철저히 하자는

의 엄연한 현실 하에서 이로 인한 지연 뿐 아니라

상식이 더 이상 지체 없이 법 제도로 현실화 되어

산재 판단의 잣대에 대한 논쟁으로 더욱 시간이

야 한다. 이것은 최근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인권

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보고관이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권고사항이 기도 하다. 33


특집 :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반올림 농성 1년, 이제 삼성이 답하라! 공유정옥 회원, 반올림 활동가

농성은 어렵다

들은 겨울을 대비해 히말라야에서도 잘 수 있는

농성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몸으로 버텨

겨울 침낭들과 핫팩 상자들을 차고 넘치게 보내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오래 매달리

왔고, 여름이면 얼음봉지들과 아이스커피를 농성

기처럼, 싸움의 상대방보다는 두 팔에 걸리는 내

장에 밀어넣고 갔다.

자신의 무게와 싸워야 한다. 반올림의 삼성전자 사옥 앞 농성 1년도 그러했다. 직업병 문제 해결

그들은 물과 도시락, 과자와 라면을 보내오기도

을 위해 대화와 조정을 약속해놓고는 뻔뻔스럽

했고, 일부러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싸들고 오거

게 약속을 깨버린 삼성의 불의를 인정할 수 없어

나 아예 조리기구를 싸들고 와 요리를 하기도 했

농성을 시작했지만, 정당한 명분만으로는 노숙농

다. 어떤 날엔 얼굴도 보여주지 않은 채 박카스

성을 이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삼성에게 이 농성

몇 병이나 달콤한 도너츠 상자를 농성장에 쓱 밀

이 과연 얼마나 압박이 될지 언제쯤 삼성이 대화

어넣고 달아났고, 다른 날에는 이어말하기 게스

에 다시 나올지는 모호한 반면, 비닐 한 장으로 버

트가 되어 마이크를 잡았으며, 또 어떤 날에는

텨야 하는 길바닥 위의 온도, 습도, 풍속과 강우량

36.5도의 난로가 되어 추운 밤 농성장을 덥혔다.

이나 우리들의 체력의 한계는 아주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농성장 앞에서 판자를 자르고 붙여 선반 을 만들고 하얀 고무신에 초록 식물들을 심었다.

34

그런데 1년을 버텼다

그들은 물동이를 들고 강남역 지하 화장실에서

1년을 버틴 건 순전히 ‘그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물을 길어다가 그 식물들을 살렸다. 그들은 굳이

농성장 바닥에 깔 팔렛트나 그 위에 올려 냉기를

어수선한 농성장에 와서 시험 공부를 하거나 회

막아줄 스티로폼을 트럭에 싣고 멀리서 왔다. 그

의 자료를 만들었고, 일부러 농성장에 와서 낮잠


을 자거나 독서를 했다. 그들은 길을 가다 말고 농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나쁜 집단’이라는 주

성장에 들러 무심하게 반올림 책을 샀고, 이천원

장이다. 삼성을 위해 이 논리를 주장하며 버텨 줄

짜리 뱃지를 두 개 사면서 오천원을 넣고 도망치

근육으로‘가족대책위원회’와 삼성을 위해 허위 왜

듯 사라졌다.

곡 보도도 불사하는 소위 ‘기레기’들을 활용했다.

애초 ‘그들’은 황상기, 김시녀, 한혜경, 반올림 교

버틸수록 위험해지는 삼성

섭단이나 상황실 멤버 정도였다. 그런데 2015년

그런데도 삼성은 아직 반올림을 정리시키지 못했

10월 7일 노숙 농성을 시작하던 첫날부터 ‘그들’이

다. 피해 가족들과 활동가 고작 몇 사람이던 반올

하나 둘 늘더니, 이제는 그 이름을 다 헤아릴 수

림의 ‘그들’은 날마다 늘어나고 있는 반면, 삼성의

없을 만큼 많아졌다. 그들은 농성이 1년을 이어올

‘근육’들은 처음보다 더 늘어나기 어렵다. 사실 시

수 있는 원동력인 동시에 1년의 노숙 농성을 통해

간이 갈수록 더 힘들고 위험해지는 건 삼성이다.

거둔 가장 큰 성과다. 그들은 바로 ‘더 많아진 우

이미 이재용 삼대 세습 문제나 갤럭시 노트7 폭발

리’다.

사고 등이 있고, 이런 일들은 조기에 수습되기 어 려운 사안들이다. 게다가 앞으로 이 큰 기업 안팎

삼성도 버티고 있다

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위험은 상존한다. 그

반올림이 ‘더 많아진 우리’의 힘으로 1년을 버티는

러니 삼성 입장에서는 직업병 문제에 대하여 대

동안, 삼성도 버티는 중이다. 사실 삼성이 반올림

화를 미루고 오래 버틸수록 더 힘들고 나빠질 수

과의 대화를 깨고 조정으로, 다시 조정을 깨고 독

있다.

단적 보상위원회로 몰고 간 까닭은 단순하다. 반 올림의 요구를 들어주기 싫어서다. 직업병 문제

이제 이재용이 답하라

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사과는 하기 싫은 거다.

그런 삼성을 위해(?) 반올림은 다시 한번 너그러

모든 피해자들을 배제없이 충분히 보상하거나 실

운 손길을 내밀고 있다. 10월 27일 삼성전자는 임

효성 있는 재발방지대책을 투명하게 이행하기에

시주주총회를 열어 이재용을 등기이사로 뽑을 예

는 돈이 아까운 거다.

정이다. 이에 반올림은 이재용에게 10월 27일 전 까지 반올림과의 대화를 재개하라고 요구하고 있

그런데 하기 싫다고 말하기에는 삼성의 명분이

다. 만일 이를 거부할 경우, 반올림과 국내외 여러

없다. 그러니 단 한번도 반올림의 요구에 대해 제

단체들은 함께 힘을 모아 이재용 퇴진운동을 나

대로 반박하지 못한 채, 대화를 깨고 조정을 깨는

설 참이다. 부디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노동자의

방식으로 도망쳐온 것이다. 그 대신 삼성은 이를

인권과 생명을 경시하는 악덕 3세 기업인’이라는

변명할 두 가지 논리를 만들었다. ‘이 문제는 다

오명을 벗을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해결이 종료되었다’는 주장과, ‘반올림은 직업병 35


특집 : 반올림 노숙농성 1년, 이제 삼성은 답하라!

우리들의 이어말하기는 계속된다 선전위원회

반올림이 노숙농성 1년을 맞아 삼성 직업병 문제

또, 이어말하기는 삼성 직업병 문제만이 지난 노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이어말하기를 엮어 책

숙농성 1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발생했던 강남역

으로 발간했다. 이어말하기는 노숙농성 돌입 전

10번 출구 여성혐오 살해, 가습기 살균제피해 문

인 2015년 9월 21일 ‘삼성의 중심에서 나를 말하

제 등 여러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

다‘로 시작해 반올림이 노숙농성에 돌입하면서 주

는 장으로 그 역할을 해왔다.

요하게 삼성 직업병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 노숙농성 1년을 맞아 주옥같은 이어 말하기를 더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책으로 엮

지난 1년 동안 이어말하기에는 삼성 반도체/LCD

였다. 이 과정에서 땡땡땡 협동조합의 연대가 없

직업병 피해 노동자와 유가족을 비롯해 노동, 인

었다면 이 책은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권, 환경 등 각 영역의 활동가들은 물론 언론인,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실을 수 없어 총 340여 명

법률가, 의사, 교수 등 각계각층의 전문가, 반올

의 이어말하기 참여자들 가운데 삼성 직업병 피

림 농성장 지킴이 활동가 등이 함께했다. 이들은

해자 및 유가족 13분의 이야기와 연대했던 85명

이어말하기를 통해 삼성이 직업병의 실태를 알리

분의 이야기를 실었다. 이중 직업병 피해 노동자

고, 삼성에게 책임있는 역할을 줄곧 요구했다. 혹

들의 이어말하기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한의 추위와 폭염에도 길바닥에서 농성을 이어하 는 반올림에겐 따뜻한 연대를 나누는 자리였다. 36


김미선 님 삼성 LCD 기흥공장, 다발성경화증 피해자, 시력장애 1급 삼성이 보상위원회를 꾸렸다는데 어이가 없습니다. 회사에서 일한 노동자는 다 똑같은 사람 아닌가요? 눈이 안 보 이는 것도 힘이 드는데 삼성은 차별하려 하네요. 삼성은 정신 차리고 제발 피해자들 얘기를 들으세요. 병을 나눠서 보상한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당신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이게 할 짓입니까!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윤은진 님의 언니 (윤은진 님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 입사, 급성백혈병으로 23세 나이에 사망) 동생 떠난 지 벌써 13년이더라고요. 저도 다섯 살 난 아들을 키우고 있는데요.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은 다 같을 거 같아요. 아마 동생이 살아 있었으면 결혼도 했을 거고 아이도 낳고 그랬을텐데 이런 평범한 일상들을 하나도 경험 하지 못하고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이 아주 아파요. 제가 사는 곳이 안산이 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정말 세월호 부모님들도 똑같은 마음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월 호 유가족분들도 그런 얘기하시더라고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 지 이유를 알아야지 위로받고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신부전 님 : 삼성LCD 재생불량성빈혈 고 윤슬기 님 어머니 (윤슬기 님은 삼성 LCD 천안사업 장에 입사, 재생불량성빈혈로 만 31세에 사망) 우리 슬기는 맞는 골수가 없어서 13년간 수혈과 스테로이드 약에 의존해 살았어요. 그러다 피를 토하고 슬기가 “엄 마 나 죽는거야?”라고 묻는데, 폐출혈, 장출혈이 다 온 상태라 마지막 가는 길이 너무 고통스러울 거 같아 의사한테 수면제를 놓아달라고 했고 그렇게 갔습니다. 우리 슬기는 무척 건강했어요. 공부도 잘했고요. 특히 일본어를 잘했 어요. 그런 슬기가 일할 때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부모로서 자식에게 몹쓸 짓을 했어요. 그런데 삼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고 있습니다. 내 새끼 삼성 보냈다가 평생 가슴에 묻고 살게 됐는데, 삼성은 돈 몇 푼 주고 끝 내려 하는 거예요. 이렇게 두면 우리 슬기 같은 사람 계속 생겨날 거예요.

손성배 -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손경주 님 아들 하늘나라에 있는 유미 누나에게 유미 누나, 누나라고 불러도 되지요 제 아버지는 잘 지내시는지요. 제 아버지도 그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돌아가셨어요. 얼마나 억울하셨나요. 우리 아버지는 눈을 못 감으시더라고 요. 눈꺼풀이 안 감겨서 간호사가 연고로 붙였어요. 이런 아픔과 죽음들을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하는 걸까요? 강남 한복판에서 오늘로 딱 150일째 노숙농성 24시간 이어말하기를 하고 있어요. 이어말하기를 하고 있으면 냉소와 혐오의 눈빛으로 우리를 보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혀를 끌끌 차는 분들도 있고요. 하지만 성과도 있었어요. 회사 가 재발방지에 힘쓰기로 했어요. 이제 크게 두 가지가 남았어요.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 두 가지예요. 지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 거대한 회사는 우리가 지치기를 기다린대요.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 는 일. 똘똘 뭉쳐서 해볼게요. 누나도 위에서 힘 많이 보태주세요. 37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건강이야기

신규 병원노동자 이야기 – 배우며 일하는 노동

김형렬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근무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종합병원 외과병동

“야간 근무하고 나면 아침에 몇 시에 퇴근을 하나

에 신입 간호사가 외래에 들어 왔다. 수면건강을 평

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보통 12시에 퇴근해요.”

가하는 설문도구의 점수가 매우 높았다. 이제 막 병

“야간근무 끝나고……. 그러니까 인계 시간 이런 거

원에 들어와 한 달에 6-8일 가량 야간 근무를 하는

있는 거 아는데, 보통 1시간 정도인걸로 아는데…….

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면장애가 없는 경우가

12시까지 일을 하는 거예요?” “네……. 제가 아직 많

거의 없다. 야간 근무를 해야만 한다면 효과적인 적

이 부족해서 그래요.”

응을 위해 수면위생과 관련된 설명을 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예방적 수면을 이 최근 “예방적 수면”, 혹은 “쪼개어 자기”라고 해서,

야기 하는 건 불가능한 근무조건이었다. 그 이후로

야간 근무 후에 아침에 퇴근하고 바로 수면을 취한

우울감을 묻게 되었고, 이와 관련한 심각한 상황을

후 낮 1시 혹은 2시에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고, 밤에

확인하고 정신건강 상담과 치료를 권고하는 시간이

일하러 가기 전에 1-2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가는

이어졌다.

방법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이렇게

38

예방적 수면을 취하면 밤 근무 때 멜라토닌 분비를

상황은 이렇다. 최근 병원은 간호사들의 노동 내용

늦추고, 덜 졸리게 되고, 더불어 아침에 집에 가서

과 강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환자들에 대

더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한 안전문제, 감염관리 등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었


고, 병원 경영 측면(?)에서 환자들의 입/퇴원도 잦아

아니라 일하는 곳이다.”하고 말하며 능력이 안 되면

졌다. 이를 병상회전율이라고 하는데, 환자들이 초

시간으로 때우라고 이야기 한다. 누구나 신규 직원

기 입원 시 지불하는 금액이 높다는 점 때문에 병상

이었을 때가 있었고, 그때 어떤 것이 힘들었는지 기

회전율이 높은 병원일수록 병원의 수익은 높아진

억을 꺼내 보자. 그때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했는

다. 한 명의 환자를 입원, 퇴원 시키는 일이 간호사

지…….

업무의 힘든 정도를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인데, 이 렇듯 환자의 입퇴원이 잦아지는 것은 간호사 업무

능력 있는 선배의 모습을 보며, “나도 시간이 지나면

를 가중시키고 있다. 어느 현장에서나 그렇듯, 일은

이곳에서 저렇게 성장할 수 있겠구나” “일은 힘들지

늘어났지만 인력은 그대로이다.

만, 선배들이 잘 챙겨줘요.”, “신규직원이라고 해도,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있어요.”, “제가 돌

이직률이 어느 직종보다 높다고 알려진 병원의 간

봤던 환자가 건강하게 퇴원하는 걸 보면 힘들었던

호사 일은 언제나 신규직원들이 많다. 신규직원이

것도 다 잊게 돼요.” 이런 말들을 들은 지 너무 오래

많다고 그날 해야 할 일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일의

되었다.

효율을 위해 신규 간호사가 맡아야 할 일의 상당 부 분을 몇 년간의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맡게 된다.

“시간이 지난다고 이런 허드렛일 하며 과연 선배처

당연히 일이 서툴고 속도가 느린 신규간호사는 자

럼 될 수 있을까?”, “선배들도 하루하루 사는 게 전

기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선배 간호사들을 대신해

쟁인데, 말 붙이기도 힘들어요.”, “1년을 버티고 야간

서, 다른 노동을 부가적으로 더 처리하고 퇴근을 한

근무하며, 희망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른 데

다. “물품관리, 장부정리, 기초 행정처리” 등, 시간압

갈 곳이 없어서 남아있죠. 신규 직원들이 자기 이야

박을 덜 받는 일들을 퇴근을 하고 나서도 해야 한다.

기 하는 건 불가능이에요.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도

물론 이런 노동에 대한 임금은 지불되지 않는다.

모르겠고요.”, “환자들 보면 잘해야지 생각하다가도, 저도 살아야 하잖아요. 그냥 일이죠.” 이제 이런 말

이런 병원 환경에서 신규직원을 배려하지 않는 기

들을 주로 듣게 되었다.

존 직원들에 대한 비난만을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일은 돌아가야 하고, 그 일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노동의 효율적 배치, 수익의 창출, 구조조정……. 이

일이라는 이유로 효율(?)적인 업무분장과 초과노동

런 용어들이 환자를 돌보는 병원에서도 일상적으로

을 하도록 강요한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지만, 신

듣는 말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신규 직원들의 “노

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없다. “회사는 배우는 곳이

동”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고 있다. 39


지키고 되살리자, 작업중지권 사는 지진 발생 후 안내 방송으로 사람들을 대피시 켰다가, 이후 직원들을 다시 들어오게 해서 수습하 고 다시 근무하도록 했다.

지진,

피할 수 없다면 노동자의 대피권을 보장하라!

지진에는 도움 안 되는 매뉴얼 “포항 죽도점과 경주점은 노동조합 지부가 없는 곳이 라 직접 직원들에게 연락하고, 회사에도 조치와 대응 을 묻고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재난 매뉴얼에 제 대로 된 지진 대응이 없더라고요. 어느 정도 강도일 때 어떻게 행동하라는 구체적인 얘기가 없어서, 매뉴얼대 로 했는지 따지기가 어렵더군요. 이번 지진 이후, 회사에서는 지진 안내 방송 문구도 정

최민, 이숙견 상임활동가

비하고 지진 발생 시 바로 대피시키도록 전 지점에 지 침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장관리자로서는 영업 중

지난 9월 12일과 19일 경주에서 각각 진도 5.8과

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잘 지켜질지는 두고 봐

4.5의 지진이 발생했다. 현장에서 이번 지진을 직접

야겠습니다.”

겪은 두 노동조합을 만나 경험을 들어봤다. 위험을 감지해도 영업을 중단하는 것에는 부담이

지진,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부담으로 인해, 영

- 홈플러스 노동조합 최대영 부위원장 인터뷰

업이나 생산에는 최대한 지장을 줄여야 한다는 지 상과제 때문에 벌어졌던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

대형마트는 사람이 많이 모여 있고 빽빽하고 높게

다. 2012년, 구미 불산 누출 사고에서 마을 주민들

물건이 쌓여 있어 지진 발생 시 위험할 수 있는 곳

은 27분 만에 자체 판단 때문에 대피를 시작했지만,

중 하나다. 지난번 지진 때 홈플러스 경주점에선 진

인접한 산업단지 지역은 사고 발생 후 1시간 25분

열 상품이 떨어졌고, 포항 죽도점 건물의 일부에는

이 지나고서야 구미시로부터 대피 통보를 받았다.

균열이 생겼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최대영 부위원

올해 7월 26일 세종 부강공단 렌즈 제조업체에서도

장은 지진 직후, 회사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점검했

유해물질이 누출돼 2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인

다.

근 공단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으나, 소식을 늦게 접한 일부 노동자들은 사

“대형마트는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라

고 발생 2시간이 넘도록 작업을 계속했다. 뒤늦게

소소한 안전사고가 꽤 많습니다. 그런데도 대응이 늘

회사에 작업중지와 안전조치를 요구했지만 무시당

철저한 것은 아닙니다. 가령, 화재 시 울리는 사이렌

했다.

오작동이 종종 있어서, 실제로 작은 불이 났는데 오작

그래서, 안전 문제로 작업을 중지하거나 스스로 대

동인 줄 알고 무시했다가 뒤늦게 대응한 적도 있었죠.”

피한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이런 판단이 늦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판단이 늦

다행히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없었다. 회 40

어져 발생하는 위험은 결국 현장의 노동자들이 떠 안게 된다.


2016.9.12 지진 발생 직후 홈플러스 매장 사진이라고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이다

매뉴얼과 함께 노동자에게 힘과 권리를 홈플러스 역시 경주점이나 포항 죽도점 이외에도 울산, 부산 지역의 지점에서도 고객과 노동자들이 불 안에 떨었지만, 노동자들이 대피를 강하게 주장하기 는 어려웠다. “경주점이나 포항 죽도점의 경우, 물건이 떨어지고 건 물에 균열이 발생하는 일이 있다 보니 회사에서 방송 을 하고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근처 울산이나 부산 지 역에서도 진동을 크게 느끼고 회사에 대책을 요구했지 만, 별다른 조치 없이 안전하다는 얘기만 들은 거죠.”

최대영 부위원장은, 이번 지진을 경험하면서 구체 적인 매뉴얼 보완과 교육·훈련 은 물론 작업중지권 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양한 재난에 대해 실제로 도움이 되는 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매뉴얼에도 지진 관련 내용이 훨씬 자세히 들어가야 할 것 같고요. 위험할 때 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도 필요하죠. 그런 데 단체협약에 반영이 안 돼 있고 경험도 없어 사용하 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는 있습니다.”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노동자의 참여와 권한을 높이는 것이 안전을 확보하는 데 중 요하고 실효적이다. 지진이 나면 지진매뉴얼을 만 들고,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에 누출사고 매뉴얼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안전을 확보할 수 없 다. 매번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는 셈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져야 할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 하다. 그중 하나가 작업중지권이다. 여러 전문가에 의하면 지진은 예측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만큼, 위험을 느낀 노동자들이 신속하게 스스로 대피하고 고객도 대피시킬 수 있도록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 41


2016.9.19 발생한 지진으로, 현대차 승용 2공장 2라인 자재히터가 휘어진 모습

이윤보다 더 소중한 것은 노동자의 안전,

자, 라인을 중지하고 현장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 현대차 지부 고선길 노동안전보건실장 인터뷰

수차례 요구하였다. 하지만 회사는 시간을 끌며 회 사 독자적인 자체점검을 통하여 생산가동에 큰 문

9월 12일, 진앙으로부터 직선거리 32㎞에 위치한

제가 없으니, 작업중지는 안 된다는 입장만 반복하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노동조합의 주도로 노동자

였다.

의 안전을 위해 전 공장의 라인을 멈추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2조(주간연속 2교대제)가 한창 작업

“조합에서는 20시 50분부터 우선 작업을 중단하고 노

중이었다. 진도 5.1의 지진에 이어 한 시간 만에 발

사합동 안전진단을 통해 현장 상황을 점검하자고 회사

생한 5.8의 강진은 현장 곳곳의 건물을 뒤흔들었다.

에 수차례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10분만, 10

작업자들은 지진에 대한 생경한 두려움으로 술렁대

분만 하면서 시간을 끌었고, 3~40분이 지나도 답변

기 시작하였다. 노동조합의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

은 같았습니다. 심지어 회사는 일방적인 자체진단을

렸다.

한 결과, 작업을 중지할 만큼의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었습니다. 회사의 자체진단은 생산이 가능한지에 대한

“두 번째 지진 때, 현장에서 엄청난 강도의 지진을 느

확인뿐이었고, 작업자의 불안과 두려움, 여진에 대한

꼈습니다. 건물에 균열이 생기고, 물건이 떨어지고, 빔

가능성은 배제한 것이었죠.”

이 휘어졌다는 제보가 노동조합에 빗발쳤습니다. 이후 추가로 발생 가능한 강진에 대한 두려움, 작업을 중지

시간 끌던 회사, 처음으로 전 공장을 멈춘 노동조합!

시켜야 한다는 요구와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회사의

공장별로 부분적인 작업중지를 한 경험은 있었지만

조치와 노동조합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전 공장에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사례는 조합 설립 이후 29년 만에 처음이다. 전 공장의 작업중지 조치

42

19시 44분 진도 5.1의 지진이 발생한 후 노동조합

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작업자의 안전보다 생산

은 바로 회사에 재발 우려가 있으니 대책을 세우자

과 이윤에 목숨 거는 회사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거

고 제안하였다. 진도 5.8의 두 번째 지진이 발생하

부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도 현장 조합원들의


작업중지에 대한 요구가 있었기에 이러한 조치가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내진설계가 된 건물은

가능했다고 한다.

200여 개 중 15여 개입니다. 대부분 무방비 상태인 거 죠. 중·장기적인 매뉴얼 마련이나 사전대책도 필요하

“결국, 21시 50분까지 작업을 중지하지 않으면 노동조

지만, 즉각적인 대피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

합이 작업중지권을 발동시키겠다고 회사에 통보하였

니다. 하지만 회사는 작업자의 대피권 보장에는 소극

습니다. 그리고 비상연락망을 통하여, '안전점검이 필

적입니다. 결국, 지진 발생 시 즉각적인 대피를 시키지

요하니 라인을 정지해라, 모든 책임은 노동조합이 지

않으면, 노동조합에서 작업중지와 함께 즉시 대피시키

겠다'라고 전달하였습니다. 결국, 21시 50분부터 전 공

겠다고 통보하고 임시 산보위를 마쳤습니다.”

장이 멈추었고, 전반적인 안전점검을 위해 다음날 8시 50분까지 작업을 중지하였습니다.”

이번 지진으로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경주~양산~부산에 이르는 ‘양

9월 19일 20시 30분경 또다시 진도 4.8의 지진이

산단층’은 활성 단층으로, 진도 5.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자재히터가 휘어지는 사

발생할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다른 여러 현장에서

고가 발생한 승용2공장 라인이 다시 멈추게 된다.

도 이러한 위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장기적 인 지진 대응 매뉴얼을 제대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

지진 안전대책, 지진 발생 시 작업자 즉시 대피권 요구

지만, 지진 발생 시 위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1968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는 대부분 건물에 내

작업자의 즉각적인 대피권 보장과 노동조합의 작업

진설계가 되어있지 않고 노후화된 설비가 많아 전

중지권 행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반적인 지진 안전대책이 필요하다. 두 번의 지진과 작업중지 이후 9월 21일 개최된 임시 산업안전보건 위원회(이하 임시 산보위)에서 합의된 사항은 아래 와 같다.

회사는 지진 발생시 직원의 안전을 위

지진 발생 시 작업자 즉시 대피 건

해 적극 대응하고 세부적인 대응요령 마련을 위해 매뉴얼을 ‘16년 말까지 수 립

노사는 지진 발생에 따른 안전점검 진

지진 발생으로 인한 유해위험 장비, 설비 및 건물 안전진단 건

단대상, 유해위험 장비, 설비에 대하여 9월말까지 대상을 선정하고, 10월부터 노사 합동점검을 실시. 단, 정밀진단이 필요한 설비에 대해서는 외부전문업체 에서 실시.

울산공장 건물 내진 설계 관련 자료요청 건

회사는 건물 내진설계 관련자료를 준비 하여 즉시 설명 및 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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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재발견_노동시간 에세이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위해

송한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 교수

1. 일과 개인적 삶의 갈등

여기 두 가지 질문이 있다. 첫 번째 질문은 다음과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결국 ‘역할’을 갖는 것이다.

같다. ‘당신은 직장에서의 역할 때문에, 가정에서 역

‘역할’은 어떤 책임을 부여받는 것이며, 살아가는 방

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얼마나 자주

식이기도 하다. 사람은 나이에 따라 새로운 역할을

있습니까?’ 당신은 이 질문에 어떤 상황을 떠올렸나?

부여받는다. 자녀이면서 학생이기도 한 청소년기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를 거쳐, 성인이 되어 남편 또는 아내이기도 하고 엄 마 또는 아빠가 될 수 있다. 직장에서는 구성원으로

A씨는 직장에서 상사의 부탁으로 어떤 일을 오늘 내

서 어떤 업무를 책임진다. 친구의 역할도 소중하고,

로 완결지어야 했다. 이 일은 회사에서 매우 중요한

할아버지 또는 할머니의 역할도 갖게 될 수 있다. 우

일이라, 결국 정시 퇴근을 포기하고 회사에 남았다.

리는 인생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역할들을 잘 해내기

B씨는 회사를 옮기기 전까지 퇴근 후 정기적으로 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한다. 감당해야 할

드민턴 동호회 활동을 했다. 새 직장은 이전 직장보

다양한 역할들은 성장 속에서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

다 급여는 더 높았다. 그러나 퇴근이 늦어지는 경우

지만, 때로는 충돌하거나 갈등을 일으킬 때도 있다.

가 빈번했다. 결국, 불규칙한 연장근무로 퇴근 이후

이 글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례인 일과 개인적인

의 시간이 안정적이지 못하여 동호회 활동을 하지

삶, 또는 일과 가정 사이의 갈등에 관해 이야기해보

못하게 되었다.

고자 한다.

C씨는 자동차 공장의 조립공정에서 일하고 있다. 어 깨와 팔을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근골격계 부담 작업

44


을 수행한다. 최근에 공정이 변경되어 어깨 부담이

G씨는 임신 8개월 직장맘이다. 원래 교대근무를 하

가중되면서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퇴근 후 통증

고 있었는데, 임신 이후 야간근무는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병원에 가야

최근에 배가 무거워지면서 예전처럼 활발하게 일을

했다.

하기 어려워졌고, 동료들에게 자신의 업무를 부탁하

D씨는 올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았다. 자녀의

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육문제로 가족이 함께 이사할 수 없다는 결론을

이 경우도 F씨처럼 역할의 갈등이 일시적일 수도 있

내린 D씨는 회사 근처의 원룸을 구해 혼자 생활하고

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역할 때문에 직장의 역할이

있다. 그는 가족과의 단절로 인해 고립감을 느끼고

방해받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역할의 갈등은 남성

있다. 퇴근 후의 시간은 주로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

보다 여성들이 크게 느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과 술을 마시면서 보내고 있다. 어떤 경우는 A씨처럼 역할의 갈등이 일시적일 수 있

2. 개인적인 삶의 가치

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역할로 인해 개인적 삶은 지

‘일이 중요한가? 개인적인 삶이 중요한가?’ 만약 둘

속적으로 또는 크게 방해받을 수 있다. 당신은 어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주로 어느 쪽을

한가?

선택하게 되는가? 개인적인 삶의 가치는 일의 가치 보다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일은 직장 공동체

두 번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가정에서의 역

가 공동으로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더 크게 느

할 때문에, 직장에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

껴질 수 있다. 황우석 박사가 말해서 유명해진 ‘월화

운 상황이 얼마나 자주 있습니까?’ 당신은 이 질문에

수목금금금’에 대해 생각해보자. 줄기세포 연구로

대해 어떤 상황을 떠올렸나? 예를 들어 보자면 다음

불치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일은 얼마

과 같다.

나 가치 있는 일인가? 그래서 연구 성과를 앞당기는 것과 주말의 개인적 삶 중에, 전자가 선택되었고 후

E씨는 맞벌이 부부의 직장맘이다. 남편보다 출근이

자는 희생되었다. 또한, 이러한 결정은 책임자가 주

늦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일을 맡고 있다. 어느

도하는 경우가 많지만, 당사자 스스로 선택하기도

날 아침, 아이가 감기에 걸렸다. 유치원에 보낼 수

한다. 왜냐면 일의 가치는 나의 삶의 중요한 가치일

없는 상황이고 부탁할 사람도 없다. 그래서 아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에 데려가느라 늦게 출근하게 되었다. F씨는 입시를 앞둔 자녀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수

그러나 개인적 삶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필

십만 원의 입시컨설팅을 받는다고 하지만 F씨는 그

요가 있다. 일은 삶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럴 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업무시간 중 입시 관련

나의 전부는 아니다. 누구나 일 이외의 개인적 삶이

정보를 찾기 위해 웹서핑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

있다. 그리고 개인적 삶 중에서 상당한 시간은 가족

나고 있다.

과 함께 보낸다. 예를 들어,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45


쇼핑한다. 자녀가 어떤 학원에 갈지 결정하거나, 다

노동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남성생계부양자 모델

음 주 부모님 생신 때 무엇을 할지 이야기한다. 가족

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통해 도전받고 있다.

이라는 단위를 통해 미래의 사회구성원을 교육하고, 성장시키고, 돌본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다음 날

이러한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우리는 일과 개인적

다시 일하기 위한 휴식과 수면의 공간을 제공한다.

삶의 균형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을까? 한 가지 사례

이러한 기능은 물질적 요소뿐만 아니라, 성장 과정

를 이야기해보자. 국내의 모 완성차 제조사는 주야

의 갈등과 어려움을 나누고 상호지지해주는 심리적

교대근무제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로 전환했고, 모

요소를 포함한다. 따라서 가족은 한 사회를 재생산

기업의 변화에 맞추어 하청회사들도 비슷하게 교대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너무나 일상적이고 소소

제를 전환하여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

한 개인적인 삶은 마치 물이나 공기와 같아서 평소

쳤다. 이 변화의 핵심은 심야시간대의 노동시간을

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이러한 평

줄이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노사 간의 협상이 있었

화가 갑자기 사라져버렸을 때, 삶이 송두리째 흔들

고,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의견대립이 있었다. 사업

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주는 생산성의 하락을 우려했으며. 조합원들은 노 동강도의 강화나 임금삭감에 대해 우려했다. 결국,

3.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에 찾아온 변화

이 제도는 합의를 이루어 시행되었다. 이후 가장 두

개인적 삶의 가치가 하찮게 여겨지고 일의 가치만

드러진 변화는 여가의 증가와 수면 문제의 개선이었

중요하게 여겨서, 삶 대부분을 일로 보내는 현상을

다. 여가의 증가는 가족과 보낼 수 있는 더 많은 시

흔히 일 중독(workaholism)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간,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의미

는 일 중독의 경향이 사회적으로 지지가 되고 있는

했다. 제도 시행 전후를 분석한 연구에서 앞서 이야

사회다. 이 경향은 전체주의, 장시간 노동, 남성생계

기했던 ‘직장의 역할로 인한 가정 역할의 방해’가 크

부양자 모델이라는 토대 위에서 강화됐다. 전체주의

게 완화되었고,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수

는 전체를 위하는 것이 개인을 위하는 것이고, 전체

준이 크게 향상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반면에 이혼율

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이 증가하거나, 가족 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경우도

장시간 노동은 주변국의 자본(capital)이 최대의 이

있었다. 그리고 새롭게 생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

윤을 얻는 방법이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고정

야 할지 모르겠다는 경우도 있었다. 토대가 달라지

된 성 역할에 근거하여 남성이 생계부양자로 가계수

면 큰 변화가 생기지만, 그 변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입을 책임지고, 여성은 가정에서 재생산을 담당하는

전환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노력이 필요

모델이다. 이는 남성이 가정에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한 것 같다.

것에 알리바이를 제공해주면서, 여성이 남성보다 낮 은 임금을 받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전체주의는 민주화를 통해, 장시간 46


4.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기여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그

종합병원 간호사들의 ‘임신순번제’가 사회적 논란이

래서 우리는 ‘일과 개인의 삶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되었다. 여성이 다수인 종합병원의 간호사 중 여러

라는 지향을 좀 더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명이 같은 시기에 출산휴가를 가면 인력 공백이 발 생한다. 이는 모든 종합병원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

이런 변화가 어려워 보이는가? 이미 현대사회는 사

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만약 중간관리자들이 전

회보장제도를 통해 재생산영역의 지원을 공적 의무

체주의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면, 전체의 이익을

로 이양하고 있다. 더 많은 공적 육아, 공적 교육, 공

위해 개인의 인권적 가치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이

적보건의료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남성생계부양

러한 현상이 병원만의 일일까? 많은 여성이 회사를

자 모델이 해체되면서 남성이 육아와 가사노동을 담

선택하는 대신 결혼 또는 출산을 포기하거나, 회사

당하는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남성이

를 포기하고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다. 상황은 다양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벌써 여성 육

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 휴직자의 10%에 근접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새 로운 전망을 그려보자. 직장에서 무재해나 안전제일

생계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최저임금과 초과노동 임

과 같은 표어처럼 이제는 ‘가정 친화적 직장’이라는

금할증제도로 인해, 주 40시간만으로 생계를 유지하

의제 하에 정시퇴근, 모성보호, 가정지원이라는 표

기 어려운 저소득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장시간노

어를 확산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동이나 야간노동을 선택한다. 그래서 노동시간의 단 축을 시도하면, 장시간 저임금 노동자에게 임금하락

이러한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그 변화를 앞

이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된다. 장시간 노동은

당기고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의식적 변화를

‘일을 위해 개인적 삶의 상당 부분을 포기한 삶’이라

촉진할 수 있는 자원(resource)도 필요하다. 과거의

는 사실을 전제에 놓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려워

관념은 관성처럼 남아 있어, 직장인 여성에게 가사

진다.

노동의 의무를 지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남 성들이 여전히 있기 마련이다. 가족과 보낼 수 있는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이며,

시간이 더 많아졌음에도 자녀와의 대화가 어려워서

임금, 노동시간, 노동 건강, 복지를 아우르는 상위개

상황이 더 악화할 수도 있다. 그래서 페미니즘교육

념이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나 부모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이 더 필요하다. 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임금을 인상하려면 어떻게 해

엇보다 자신을 돌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스스

야 하는가?’라는 사회적 의제를 생각할 때 ‘일과 개인

로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는 마음 교육이 모든 직장

적 삶의 균형’은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과거에는 직

인에게 일반화되어야 한다.

장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시했다 면, 이제는 개인의 삶을 위해 직장과 사회가 더 많은 47


문화읽기

김재광 회원

드디어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 시즌 7’이 미국 현지

없다. 가족 단위의 공동체는 좀비를 방어하는 문제

시간으로 10월 23일 시작 한다. 어수선한 시절에 한

뿐 아니라 다른 인간 공동체의 위협에 쉽게 무너지

낱 미드 따위가 방영되는 것이 뭣이 중요하겠냐 싶

고 약탈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마치 현

겠지만, 한번이라도 ‘워킹데드’를 접한 독자라면 이

대의 지능을 가진 과거의 인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설렘을 조금은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좀

점점 더 큰 공동체를 이루고 약탈하고 약탈당하면

비 영화가 그렇듯 ‘워킹데드’에서 좀비는 조건일 뿐

서 패권을 장악하거나 적지 않은 수가 좀비가 아닌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은 사람이

인간으로부터 살해된다.

다. ‘워킹데드’는 영리하고 설득력 있게 사람의 이야 기를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믿음을 가지려 무던 히 애쓰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 대해 회의한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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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좀비가 생기고 좀비에게

자를 구애하면서도 지도자를 질시하고, 추종자를

물린 사람은 다시 좀비가 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끼면서도 경계한다. 무정부적 상태는 다른 형태

좀비의 행동양식을 파악한다. 때로는 피하고 때로

의 준 정부를 구성하고 독재와 민주정 그리고 왕정

는 맞서면서 생존을 이어간다. 처음에는 가족 단위

까지 다양한 범위의 정치형태로 뻗어 나간다. 물론

의 작은 규모로 생존을 이어가지만, 점점 더 규모가

자위권의 행사건 침략이건 무력을 전제로 하는 공

커진 다양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생존할 수밖에

동체다. 이쯤 되면 좀비는 그저 사나운 폭풍과 지진


정도의 자연재해이지 인류 전멸의 위협이 아니다.

황에 내몰린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하는

실제 드라마 초입을 넘어서고 중반에 이르면 좀비

것이 바람직했을까? 바람직하다면 그 기준은 무엇

는 중대한 위협이 되지 못하고 악조건에 지나지 않

이며, 그 기준은 옳은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아

는다.

무튼, 짜릿한 갈등은 보는 재미를 꾸준히 돋게 한다.

항상 다음 회가 기다려지는 이 드라마를 보고 있노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 멀

라면 자연스럽게 현 사회가 투사된다. 미국에서도

쩡한 강을 정부가 나서서 죽이는 세상, 활성 단층이

이런 평이 있는 걸 보면, 아마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

있는 줄 알면서도 이를 숨기고 그 근처에 추가 원전

점에서 다를 바가 없나보다. 진짜 무서운 것이 사람

을 만들려는 세상, 음주운전에다 이를 은폐한 전력

인지 좀비인지 분간이 안 가는 세상 말이다. 천만 영

이 있는 자가 치안 총수가 되는 세상, 대통령의 특별

화가 된 ‘부산행’이나 일본 만화이자 영화인 ‘아이 엠

감찰관이 정작 자신의 업무를 하려고 하니 쫓겨나

어 히어로’역시 같은 맥락에 서있다. 좀비를 제재로

는 세상, 앞뒤 없이 핵무기와 전쟁을 운운하는 세상,

한 인간의 본성 탐구가 좀비 영화에서는 빠질 수 없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습기 살균제로 죽어 나가는

는 재미이지 않겠는가.

세상, 노동조합을 부당한 기득권과 등치 시키는 세 상, 경찰의 물대포 맡아 죽은 것이 명확한데 사인을

얼마 전 노동인권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강의를 의

밝혀야 한다는 세상, 고독사가 늘어가는 세상, 돈이

뢰한 단체에서 수강생들에게 추천할 도서를 요청하

면 다 될 것 같은 세상과 ‘워킹데드’의 세상 중 어떤

기에 몇 권의 책과 드라마 ‘워킹데드’ 주저 없이 추

세상이 더 무서운 세상일까?

천했다. 이 좀비물은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매번, 딜 레마 던지며 시청자에게 묻는다. 매 순간 인간과 인

선뜻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아 이 곤란함이 싫다.

권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극한의 상 49


발칙 건강한 책방

박노자의 ‘주식회사 대한민국’을 읽고

안규백 한국지엠지부 정책기획실장

대한민국은 커다란 주식회사다. 모든 이가 동의할 수는 없는 명제이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박노자 교수가 바라본 대한민국은 주식회사다. 박 교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으로 본명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해 '박노자'라는 이름의 한국인이 됐다.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한국 사회의 뿌리 깊 은 전근대성을 비판하며 주목을 받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날카로운 칼럼 을 써왔다. '주식회사 대한민국'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가 바라본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몇 가지의 특징이 있다. 우선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주주가 아닌 다른 것이다. 소액주주라도 되려면 적어도 뭔 가를 '가져야'한다. 빼앗길 가능성이 낮은 정규직 일자리, 약간의 땅이나 집 내지 아파트, 주식 등 이런 저런 형태의 자산, 이들 중 무엇이라도 가져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국민의 태생적 권리로 국가로부터 각종 형태 의 사회임금을 받을 자격이라도 가져야 '소액'이기는 하지만 주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렇지 못하다. 실업수당이나 국민연금 등 사회임금에만 의존해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 는 게 '국민의 상식'이다. 집이나 정규직, 절반에 가까운 한국인들에게 집이나 정규직은 없다. 자산, 상위계 층 10%가 전체 부의 66%를 독점하는 게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절반 가까이가 이 사회의 주주가 될 자 격이 없는 명실상부한 무산자다. 50


박노자 교수가 지적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자본의 탐욕을 견제하고 사회 약자를 보 호하기는커녕 스스로 '기업국가'화 되어 자본의 이익 보호에 집중하고 사회적 연대는 막아선다는 점이다. 저 자처럼 대한민국을 하나의 주식회사로 견주어본다면 상황은 더 명확해진다. 대한민국의 주주는 누구인가.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경영 참여는 꿈도 못 꾸고, 하라는 대로 잔업과 특근을 하느라 일주일 실질노 동시간이 50~60시간이나 되는, 40대 이상 되면 근골격계 질환이나 신경질환을 앓게 되는 대한민국의 '피 곤한 노동자'들은 과연 주주인가"라고 되묻는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비정규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이는 단순히 고용 형태의 차이가 아니다. 의료ㆍ교육 등 본인의 생존과 자녀 의 성장에 가장 필요한 사회적 시비스부터 기업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 제대로 꾸려나가기 힘든 게 현실이 다. 실업수당,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적 임금들은 그 지급기간이 짧거나 조건이 까다롭거나 생활이 불가능 한 작은 액수다. 이런 측면에서 비정직 양산은 현대판 천민계급 만들기와 다름없다는 게 박노자 교수의 생 각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이런 주식회사 형 국가에 대한 종합보고서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에서 '1부 지옥의 논 리'는 '헬조선'을 떠받치고 있는 논리들을 살펴본다. 경제력을 중심으로 차별하고 서열화하는 모습, '생존'이 라는 미명 아래 양심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모습, '능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스스로를 착취하는 모습 등을 살펴본다. '2부 그들이 원하는 세상'은 '박근혜 시대' 우리 사회 주류세력의 모순과 한계를 집중 분석하 고, '3부 씨줄과 날줄 :병영국가, 민주주의, 식민성'에서는 '박근혜 시대'를 가능하게 했던 우리 사회 밑바닥 에 깔려 있는 인식들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4부 문제는 국가다'에서는 대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적어 도 재분배 기능, 자본에 대한 견제ㆍ보안 기능을 갖춘 국가로 나가자고 저자는 외친다.

"결국 문제는 '정치'다"고 저자는 강조하지만, 여기서 정치란 단순히 정치인들이 하는 행위가 아니다. 대한 민국의 기본적 구조와 그 구조를 유지하려는 지배계층의 힘, 그리고 그에 맞서는 피해대중들의 저항력. 이 두 거대한 힘이 서로 맞서 그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이루는 것이 저가가 바라본 정치다.

저자는 이런 정치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고, 특히 최근 진보정치 약화는 바로 이런 부분을 놓 쳤기 때문이다. 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해답을 저자는 강조한다. "우 리 사회는 공통의 책임의식을 공유하는 자율적인 개인들 사이의 연대만이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51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20대 청년의 고백 - 채용내정 취소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여느 때와 달리 추석 연휴가 비교적 길었다. 월요일 출근을 준비하는 마음은 일요일부터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월요일 아침이 되니 무슨 일인지 눈이 번쩍 떠졌다. 뭔가 밀렸던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밤새 했 던 모양이다. 비록 마음은 무거웠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에 출근했다. 이런저런 밀렸던 일을 시작 할 생각으로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다. 9시를 넘자마자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상대방의 다급한 음성이 들 려왔다. “제가 지금 회사와 해고 문제로 다퉈야 할 것 같은데 지금가면 상담을 받을 수 있나요? 합정동 근 처에 있는데 바로 갈 수 있어요.” 격앙된 목소리가 이어졌다. 상담자가 사무실 문을 열기까지 5분도 채 걸리 지 않았다. 20대 청년이 들어서고 그 뒤에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뒤쫓아 들어왔다.

청년이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몇 마디 하자 어머니가 끼어들어 아이가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며 속사포 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6년 동안 일본에서 IT분야를 전공하며 유학을 하였던 청년이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IT분야 전공, 일본어 능통자”라는 조건을 보고 회사에 연락을 취했다. 회사에 이력서 등 전형 서류를 보내니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당시 청년은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회사와 일정을 조정해서 8월 말경 자비로 일시 귀국하여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 흔쾌히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추석을 마 치고 9월 19일부터 출근하라는 소식을 접했다. 6년간 거주했던 일본살이를 마무리하면서 이삿짐을 싸고 들뜬 마음으로 추석을 보내기 위해 9월 14일 입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청년의 집으로 9월 13일 합 격 통지를 했던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전화가 왔다. 청년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급하게 연락해야 한다고 했다. 회사의 대표이사는 청년을 뽑으려고 했던 이유는 누군가로부터 35억을 투자 받아 일본 관련 사업을 할 계획이었는데 투자 유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청년을 채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52


그렇게 전해달라는 것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된 9월 14일부터 9월 18일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러간지도 모 르고 19일을 맞았다고 한다. 청년과 어머니는 “이거는 아니다”라는 생각에 합격 통지를 하였던 회사를 찾 았다. 회사측 반응은 너무도 뻔했다. 대표이사가 자리에 없다며 문전박대를 한 것이다. 얼핏 보기에 새로 장만한 것으로 보이는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청년은 상담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채용내정 취소의 법률적 문제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실상 해고를 다투는 것 보다는 민사상 손해배상청구를 고민하는 것 이 보다 효과적이라는 상담을 할 수밖에 없었다. 흥분한 어머니가 잠시 화장실을 간다고 나간 사이 눈물 을 글썽이며 청년이 한마디 했다. “노무사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모든 게 끝난 것 같아요. 도저히 가족을 볼 엄두가 안나요. 저 이제 28살인데 어떻게 하죠?”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어머니가 돌아 왔다. 애써 상담료를 내겠다고 했지만 원래 노동자에게 받지도 않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으니 그냥 돌아가 라고 했다. 청년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사무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절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청년은 나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1990년대 중반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구조조정을 해야 했던 기업체에서 해고회피노력을 기울이는 방안으 로 신규 채용자 입사를 취소하는 이른바, 채용내정 취소의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였다. “채용내정”이란, 사 용자가 본채용(정식채용)을 하기 이전에 공개시험이나 추천 등을 통하여 채용할 사람을 미리 결정하는 것 을 말한다. 신규 채용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사용자가 대학 졸업예정자를 대상으로 채용시험의 실시, 합 격통지서 발송, 건강진단 등실시 후 채용관련 구비서류 제출한 후 예정된 입사일자에 출근하도록 하는 것 이다. 그러나 회사의 사정으로 취소하는 경우 채용내정자 입장에서는 부당해고, 손해배상청구 등 법률적 대응을 하면서 채용내정의 취소에 관한 법리적 논쟁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공통 적으로 사용자가 채용내정을 취소하기 위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사회통념상 상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유”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청년에게 너무 절망하지 말라는 말 밖에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물론 그 청년에게 전하지는 못했지 만, 그 말로 과연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 지만 채용내정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때문에 사용자의 권한이라 할 수 있지만 인사재량권을 행사하는데 사용자는 신중에 신중을 기울여야만 한다. 회사 사정에 의해 채용내정 을 취소하겠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20대 청년과 가족 모두에서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점을 과 연 사용자는 기억이나 할지 의문이다. 정말 답답한 현실이다. 청년들이 그래도 뭔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 해야 하는데 그럴 용기를 내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우리 모두 뭔가 길을 만들고 해법을 찾기 위 해 끊임없이 실천을 해야만 한다. 53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치졸하고 뻔뻔한 정부의 방해 - 세월호 참사 특조위 3차 청문회에서 밝혀진 진상

권종호 선전위원

지난 9월호 일터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

포기하고 일방적인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법적

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들며 특조위 활동 기간을 6월

근거’를 운운하는 뻔뻔함과 치졸함을 보이고 있다. 이

30일까지로 규정하고, 이번 3차 청문회를 무산시키려

전 특별법 위원회 활동 기간에 관련한 법제처의 법령

애썼다. 하지만 특조위는 실제 업무 시작일인 2015년

해석 사례들은 항상 업무 시행일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

8월 4일을 기준으로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3차 청문회

다는 점에서 해수부의 주장은 더욱 설득력이 얻기 어렵

를 9월 1일부터 2일까지로 공고하였다. 사립학교교직

다.

원연금공단(연금공단)은 대관료까지 납부한 사학연금 회관의 대관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치졸함을 보이면

3차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정부의 민낯

서 청문회를 방해했고, 결국 3차 청문회는 장소를 변경

이렇게 눈에 보이는 정부의 방해만으로도 충분히 치졸

해 김대중 도서관에서 열리게 되었다.

하고 뻔뻔한데 실제 특조위 활동 중에 겪었을 정부의 방해와 관련자들의 불성실한 태도, 은폐된 자료로 인한

이번 3차 청문회는 이미 우려했던 것처럼 청문회에 증

어려움은 얼마나 컸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조위는

인으로 채택된 총 38명 중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3차 청문회를 통해 세월호 참사에 숨겨진 정부의 더러

을 비롯해 30명이 불참했다. 이는 지난 8월 23일 특조

운 민낯을 속속들이 공개했다.

위가 3차 청문회 일정과 증인 명단을 공개하자 해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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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이를 두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또 다시 반박하고 나

해경의 대국민 쇼

서면서 이미 예견된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특조위는 그 동안 해경의 주파수공용통신(TRS) 음성파

해수부의 판단이야말로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해

일 7,164개를 정밀 분석한 결과, 당시 해경은 공기주입

수부는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법제처에 특조위 활동

시 세월호가 좌우로 흔들리거나 가라앉을 수 있음을 인

기간과 관련한 법령 해석을 요청해야 하지만 해수부는

지하고도 청와대 보고를 위해 공기주입을 강행했으며

이를 공문으로 요청했다가 돌연 취소하고 법적 근거를

공식 발표를 통해 생존자가 가장 많이 모여 있었을 것


출처_416연대

으로 예상됐던 세월호 3층 식당칸에 공기를 주입했다

언론 개입 및 유병언 화제 전환

고 했지만 실제로는 조타실 부근에 공기를 주입한 것으

이렇게 총력을 다한 정권 비호 활동이 언론을 통해 진

로 드러났다. 또한, 수중무인탐사기 ROV를 통해 선내

행된 내용도 이번 청문회를 통해 밝혀졌다. 얼마 전 이

에 진입했다고 발표하고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

정현 새누리당 대표(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세월호 참

했지만 실제로는 선체 내부에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심

사 관련 언론 개입을 폭로한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지어 2대 중 1대는 시범운영 중 유실되기까지 한 것으

은 추가로 길환영 전 KBS사장의 대통령 관련 뉴스 통

로 밝혀졌다. 즉, 구조의 목적은 온데간데 없고 보여주기

제 내용을 공개했다. 또한 특조위는 “인천지검에서는

식 구조 활동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마저도 허위로 발표했

총 27회에 달하는 유병언 관련 백브리핑이 있었는데,

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언론이 유병언 문제에 집중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경찰 조직을 통한 정부 비호 이러한 비상식적인 구조활동과 허위보고와 관련해 이

잊지말아야할 기억이 아닌 끝나지 않은 싸움

번 특조위에서 밝혀진 서해청의 2014년 4월23일 보고

특조위는 3차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은 증인 중 26명을

문건을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그 문건에는 “경찰

고발조치 했으며 ‘법적 근거 없는’ 해수부의 지침을 철

청에서는 경비·정보·수사 등 경찰 전 기능을 적극 지원

회시키기 위해 릴레이 단식 농성을 진행했었다. 또 지

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편, 사고 현장이 야권의

난 9월 30일부로 정부의 주장으로 인해 특조위 기간은

텃밭으로 이번 사고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SNS 의견 개

종료되었으나 10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진 등을 차단해 민심 동요 없도록 대처”라고 되어있다.

참사 900일 문화제에서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을

먼저 구조에 총력을 다하고 참사 발생의 원인 규명과

비롯해 특조위원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

관련자를 수사하는데 힘을 써야할 판에 유가족과 온 국

한 싸움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여전히

민을 기만하면서 정권을 비호하는데만 총력을 기울이

우리의 싸움은 진행중이다.

는 것이다. 55


이러쿵 저러쿵

나이 한 살 이야기 송홍석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향남공감의원 원장

10년 같은 일 년이 지났다. 여느 의료생활협동조합처럼 지역의 끈도 존재하지 않았고, 든든한 지지 세력에 의하거나 그들을 규합하여 만든 병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산업보건 사각지대 노동자들의 안전보건관리 에 대한 분명한 상이나 지역 건강권운동에 대한 경험이나 전망이 명확한 것도 아니었다. 의료기관들과 경 쟁하면서 생존해야한다는 부담과 우려도 있었지만, 오로지 연구소의 힘과 신뢰하는 동지들을 믿고 중소영 세사업장이 많고 일정 규모 이상의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는 향남 지역에 터를 잡았다.

모든 것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병원의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했고, 여태껏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것들 투성이었다. 진료와 검진을 위한 장비와 시설을 갖추고, 그에 필요한 사람을 뽑고, 진료와 검진서비스를 위 한 직원들 교육을 하고, 다양한 진료서비스 제공을 위한 나 자신의 재교육도 지속적으로 필요하고, 구석진 곳에 외따로이 위치한 병원을 알리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도 실행되어져야 했다. 이런 과정들은 끝이 있지 않다. 가끔 평지가 보일 때도 있지만 계속 올라가야만 한다. 특히나 우리의 포부가 어디 일개 의원급 의료기 관이었던가! ㅎㅎ. 어쨌든 여느 신생 의료기관들처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병원의 구색을 갖추는데 여 념이 없었던 짧지만 긴~ 시간들이 흘렀다. 다행히도 병원 운영은 초반이지만 선방하고 있다. 외래 환자 등 록번호도 일만 번을 넘어섰다. 원장들의 임금 현실화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직원들의 임금은 대출 없이 운영되었다.

센터로의 지향은 항상 나의 물음이다. 나는, 우리는 이곳에 왜 왔나? 장시간노동으로 몸이 힘들 때도, 초동 주체 간 갈등이 있을 때도, 직원들을 바라볼 때도, 현실에 발 딛은 이후 항상 내 안의 물음이었다. 공감의원 을 찾는 환자들 중에는 주야 맞교대, 장시간 노동에 몸도 마음도 지친 노동자도 있고, 그들을 고용한 중견 기업 사장도 있고, 이주노동자와 그들을 고용한 농장주, 사업주도 있고, 납기일에 쫓겨 야근을 밥 먹듯 하는 56


지난 8월 5일 화성남부복지관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소화기 질환에 대해 강의를 진행 했다

‘을’ 설계엔지니어도 있고,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는 자영업자도 많고, 돈 많고 시간 많은 할머니도 있고, 골병든 식당 아주머니도 있다.

이들의 삶과 건강에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은 무엇이고, 개입할 수 있는 수준은 어디까지일까? 얼마 전 보건 소와 함께 고혈압, 당뇨병 만성질환 교육을 진행했다. 일 년밖에 안 된 신생병원을 찾은 환자 수의 한계는 있겠지만, 혈당, 혈압조절이 정작 필요한 이들은 40분의 짬을 내기가 힘들어 오고 싶지만 오지 못했다. 별 다른 방책이 없다면, 우리가 앞으로 무얼 하려해도 짬을 내기 쉽지 않은 조건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 다면 별다른 방책은 무엇일까?

연구소 소장으로 역할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하고 병원 구색 갖추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지역 사람 들과 그들의 삶을 만나려 노력하고 있다. 방책도 방책이지만, 한편으로 지역에 필요한 이들임을 사람들 마 음속에 새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런 과정이 몸은 힘들지만, 즐겁기도 하다. 새롭게 살아 꿈틀거리는 것 같아 재밌다. 직원들과 함께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하고 있다. 하지만 멀기도 하다. 아직 뭔가를 말하기에 앞서 만나 고 부딪쳐야 할 것들이 많다. 새로운 제안과 새로운 삶을 만들자고 얘기하기까지 10년이 필요할 수 있다. 우 리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명확할 수 있다. 어쨌든 연구소 운동, 전체 운동과 함께 고민해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57


한노보연 이모저모 9월 10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한노보연 노동시 간센터와 한정애 의원실 공동주최로 근로복지공단의 뇌심혈 관질환 심의과정의 쟁점과 개선과제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 번 토론회는 노동시간센터 연구팀이 2015년 근로복지공단 이 패소한 뇌심혈관질환 행정소송 판결문 43례를 분석한 결 과를 발표했다. 또한, 과로에 대한 산재심의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과 개선방안, 의학적 측면에서의 문제점, 법적 측면에 서의 쟁점 등을 토론했다. 자세한 사항은 노동시간센터 홈페 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workingtime.tistory.com)

9월 30일 경기도특성화고졸업생사망사건 대책위는 오후 19 시 군포 산본동 중심상가에서 토다이와 합의 발표 내용과 이 후 활동 과제를 발표하는 보고대회를 진행했다. 대책위는 토 다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일터 괴롭힘, 가학적 노무관리로 인해 사망한 김군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이번 사건에 대한 사 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싸웠다. 이전 몇 차 례나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일터괴롭힘, 가학적노무관리 등 으로 인해 사망했지만 별 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끝났 던 것과 달리 이번 토다이 사건의 경우 유족을 비롯해 지역의 노동/사회 단체들의 투쟁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얻어냈다. 대 책위는 이번으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회사 측에 제시하고, 교 육청을 통해 특성화 교육문제를 개선하는 등 싸움을 계속 이 어갈 예정이다.

10월 6일 부산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현장실습 공동대책위원 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부산시교육청에게 인권유린, 노동법 위반, 전공불일치 등 부산지역에서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장실습 문제의 진상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 했다. 2015년 부산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부산교육청과 부산지방노동청으로부터 정보공개신청으로 받은 자료에 따 르면 부산지역에 1,700여개 특성화고 현장실습 업체들 가운 데 50% 이상이 의류판매장·식당·편의점·슈퍼 등과 같은 곳 에서 단순 업무를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2015년 특 성화고 현장실습생 4,017명 가운데 노동조건 열악, 상사와의 관계, 전공불일치 등으로 1,221명 (30.3%)이 현장실습을 중 단한다고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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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보건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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