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일터

Page 1



독 자 에 게 … 살기 힘들다는 국민들에게, 정부에서는 참 많은 ‘대책’과 ‘계획’을 내놓습니 다. 지난 1월 말에는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이라는 거 창한 제목의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2019년까지 산재사망률을 지금의 절반 이 하로 낮추고, 선진국 수준의 안전 일터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대법원까지 똘똘 뭉쳐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긴박한 경영상의 이 유’가 없더라도 업무평가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거나 해고할 수 있게 되는 세 상에서 노동자는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까요? 비정규직 차별을 없앤다며 정 규직 노동자까지 삶의 벼랑으로 모는 경제 기조 속에서 안전 일터는 어떻게 가능할까요? 현장에서는 가스 냄새가 코를 찔러도 회사 눈치 보느라 참고 일하다 노동자 들이 응급실로 실려 갑니다. 일하다 다치면 하청업체 사장이 제일 먼저 ‘누구 본 사람 없느냐’ 묻고, 승용차에 싣고 몰래 병원으로 데려가 공상 처리합니 다. 이런 현실에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은 어떤 의미 가 있을까요? 이번 ‘연구소 리포트’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실업이 노동자 건강에 얼마나 큰 위협인지 다뤘습니다. 더 많은 노동자에게 실업의 위협을 일상으로 만드는 사회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회입니다. 전체 정부 기조가 바뀌지 않 는 이상 건강한 일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 스스로도 건강해 지려면 ‘노동안전’만 얘기해서는 부족하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노동안전보건 잡지인 ‘일터’도 총파업 준비를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22

특집

제4차 산업재해 예방 5개년 계획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 (2015~2019) 파헤치기 1.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계획이었나 2. 안전한 일터, 국민 행복 시대는 가능한가? 3. 산재예방 5개년 계획, 노동자가 감시하자

2015년 벽두, 고용노동부에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

<제4차 산재예

방 5개년계획 (2015~2019)>'을 발표했다. 종합계획의 의미와 과제를 짚어보았다.

2 ․

03

뉴스

사내하청 노동자, 재해중 산재처리 비율 8.6%에 그쳐 外 l 장영우

06

지금 지역에서는

삼성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하는데... l 재현

08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네이티브 뺨치게 잘 가르쳐도 안정적으로 가르칠 순 없어요 l 정하나

12

현장의 목소리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운다 l 재현

16

연구소 리포트

비자발적 실업, 뇌졸중 6배 높인다 l 김형렬

21

사진으로 보는 세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 l 쌀집아재

32

직업환경의학의가 만난 노동자건강 이야기

의사들은 왜 산재를 두려워하나요? l 최민

34

작업중지권 기획

살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이진우

36

노동시간센터(준) 기획

스마트하고 새로운 노동세계 l 노동시간센터(준)·한국학중앙연구원 김영선

40

문화읽기

웹툰으로 엿본 IT업계 그녀들의 사정 l 정하나

42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씹다 버려진 껌이 된 KTX 승무원 해고자들

44

일터 다시보기

여성노동자, ‘노동’, ‘사회적인 것’, ‘건강’의 경계를 질문하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영

46

이러쿵저러쿵

<일터>와 함께한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보며

48

퀴즈

가로세로 퀴즈로 본 일터

통권 134

2015.3

l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

l 노무법인 필 유상철

l 송홍석

l


사내하청 노동자, 재해중 산재처리 비율 8.6%에 그쳐

신세계 센텀시티점 확장공사 현장, 노동자 추락 사망사고 은폐 시도 논란

2월 10일 금속노조가 현대제철 당진ㆍ순천ㆍ

지난 2월 9일 부산시 해운대구 신세계 센텀시

포항ㆍ인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709명을 대상

티 증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추락 사망

으로 실시한 철강실태조사 보고서 결과 응답자

사고를 신세계 측이 은폐하려 했다는 보도가 나

643명 중 44.3%(285명)가 “업무상 부상이나 질

왔다.

병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나 산재보험으로 처리 한 비율이 8.6%에 그쳤다고 밝혔다. 2014년 8 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이 조사에서 응답자의 92.9%(601명)는 “직접 고용된 정규직보다 사내

뉴스타파는 3월 3일 ‘신세계건설은 왜 사건 현 장 문을 닫았나’라는 보도를 통해 신세계 측이 고 조계택 씨의 사망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청 노동자의 산재 발생이 더 많다”고 대답했 다.

보도에 따르면 신세계 현장 안전 책임자는 유 족들에게 본인이 사고 발생 직후 119에 신고했

산재 발생이 많은 원인으로는 ▲원청업체와의 계약에 따라 고용규모가 결정되는 하청업체 특 성상 소속 직원들이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기 어 려운 점 ▲원청기업에서도 위험성이 높은 작업 을 분담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청에 비해 하는

다고 말했으나, 실제로는 현장을 지나던 행인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신고자는 119로 전화를 걸어 "현장에 추락 환자가 있는데 신고 를 하지 않고 다른 조치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신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의 재해 위험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 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점을 꼽았다.

신세계 측은 사고가 나자 119가 아닌 지정 병 원에 연락을 했다. 현장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했

산재처리를 하지 않는 이유로는 “하청업체나 직영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54.6%), “소속 업체에서 산재로 처리하지 말도록 강요해 서”(17.8%)라고 응답했다. 대부분 산재 노동자 는 직접 고용된 하청업체의 비용으로 공상처리 (40.4%ㆍ108명)하거나 건강보험 (16.9%ㆍ45명), 민간보험(19.9%ㆍ53명)으로 처리했다.

을 때 조 씨는 지정 병원 응급차에 실려 있었 다. 그러나 지정 병원은 머리 외상 환자를 치료 할 능력이 없어, 결국 119 구급차로 조 씨를 다 시 옮겨 싣고 응급실로 이송했으나 끝내 숨졌 다. 신세계건설 측이 사고를 은폐하고 일반 상 해로 처리하기 위해 지정 병원 응급차를 부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당시 지반 침하와 인근 영화의 전당 균열 등 안전성 문제가 논란이 되어 부분 공사중지 명령 을 받은 상태여서, 신세계 측이 사고를 은폐하 려 했다는 의혹이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l 일터 l ․ 3


금호타이어 노동자, 도급화 반대하며 분신 사망

다. 김 씨가 속한 스프레이-운반 업무도 도급화 대상이었다. 이에 지회는 2014년 임단협 타결 이후 회사의 도급화를 막기 위해 지난 2월 3일 도급화 금지 가처분 신청을 광주지방법원에 접 수한 바 있다. 지회는 “회사가 도급화 추진을 지속하자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심적 고통을 받던 김 열사가 회사의 도급화 저지를 위해 목숨을 내던 진 것”이라며 “도급화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열 사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져라”라고 촉구 하고 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지난 2월 25일 광주에서 열린 특별교섭에서 사측은 스프레이 운반 48개 직무 도급화 철회,

민주노총 금속노조 금호타이어지회 곡성공장

유가족 및 희망사원에 대한 심리치료 보장 등 2

대의원 김 모 씨(45세)가 도급화(비정규직)에 반

개 안건은 수용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사측

대하며 2월 16일 분신자살했다.

책임 인정과 사과’, ‘유가족 배상’ 2개 안건에는

김 씨는 광주공장에서 있었던 공정 도급화에

입장 차를 보여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반대하는 저지투쟁에 참석한 후 자신이 근무하

유족들은 “48개 직무의 도급화가 철회되어 모든

는 곡성공장으로 돌아온 오후 9시 8분경 분신을

것이 끝난 것처럼, 이제는 우리 유족들에게 보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차량에는 “그동

상 문제만 남은 것처럼 호도되는 것에 너무 비

안 함께한 동지들 너무 미안합니다. 조합 활동

통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이런 거구나 새삼 느끼네요. 제가 죽는다 해

“(유족과 3번 만난 김창규 금호타이어 사장은)

서 노동 세상이 바뀌진 않겠지만 우리 금타(금

한 번도 ‘불법도급으로 인한 책임’있는 사과를

호타이어)만은 바뀌어졌으면 하는 제 바램입니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 “이런 식으로는 앞

다. 동지들 부디 노동자 세상이 와서 노동자가

으로 회사 측과 만나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주인이 되는 그날까지 저 세상에서 저도 노력할 게요”라는 유서가 발견됐다. 앞서 금호타이어는 2010년 워크아웃에 돌입했 던 당시 노사합의에 따라 597개의 직무 중 521 개(87%)를 도급으로 전환했다가, 지난해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했음에도 도급화하지 않은 나머 지 76개의 직무 중 48개까지 도급화를 추진했

4 ․

통권 134

2015.3


경주 코오롱호텔 구조작업 중 이산화탄소 방출, 1명 사망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자살, 산재 인정

2월 14일 오후 3시 15분께 경북 경주시 마동 코오롱호텔 지하 1층 보일러실에서 소화설비의 이산화탄소 가스가 다량 방출됐다. 이 사고로 현장에 있던 남성 노동자 1명이 가 스에 질식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또 6 명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부상자 가운데 1명은 사고가 난 이후 구조작 업을 돕던 호텔 관계자라고 소방당국은 밝혔다. 이들은 “보일러실에서 단열재를 교체하던 중 화 재감지기가 울리면서 소화설비에서 이산화탄소 가 나왔다”고 경찰과 소방당국에 진술했다.

▲ 김군 자살당시 언론보도

사내 폭행과 따돌림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 을 끊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김모(18)군이 3월 4일 산업재해 사망으로 인정됐다. 특성화고 3학년이던 김 군은 2014년 1월 CJ제 일제당 진천공장 기숙사에서 자살했다. 당시 김 군은 회사 선배에게 체벌과 폭행을 당했던 것으

그러나 실제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고 사고가

로 알려졌다. 회식 자리에서 폭행과 인격 모독

발생하자 방화문이 자동으로 닫혀 노동자들이

을 당한 김군은 어머니에게 “회사에 가기 싫다.

밖으로 나올 수 없어 이산화탄소에 질식됐던 것

맞기 싫다”고 호소했고,

으로 전해졌다.

(SNS)에도 “너무 무섭다. 제 정신으로 회사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포항지청은 코오롱호텔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다닐 수 있을까”라는 글을 남겼다.

서 진행 중인 모든 작업에 대해 15일 전면 작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이

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또 사고조사 전담팀을

를 근거로 “어린 나이에 현장근무에 투입되면서

구성,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유관기관과 함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로 인한 급성 우

께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울 상태에서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해 발생한 사고”라며 김군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 사망으로 인정했다.

일터

정리 : 장영우 선전위원

l 일터 l ․ 5


삼성은 직업병이 아니라고 하는데... 재현 선전위원

지난 3월 4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 주최로 반도체· 전자산업 직업병 피해 노동자 증언대회가 개최되었다. 증언대회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 자 고 황유미 씨의 기일이자 반도체·전자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추모기일인 3월 6일에 맞춰 진행되었다. 시작에 앞서 반올림의 공유정옥 활동가는 현재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직업 병 피해자 327명 가운데 2.5%인 8명만이 산재로 인정을 받은 현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 번 증언대회는 지금도 여전히 기록되지 않고,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숨어있는 수 많은 직업병 피해 노동자를 기록하고 기억하는데 실마리를 마련하고자 준비하게 되었다”고 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딸의 이야기를 하려니 본인 마음에 못을 박는 것 같다며 무겁게 이야기 를 꺼낸 고 조은주 씨의 어머니 김경희 씨는, 딸이 작업 중 불량이 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약품으로 제품을 닦아내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을 하면서부터 몸이 아파 그때부터 병원 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김경희 씨의 증언에 따르면 고 조은주 씨는 회사에 입사하 기 전까지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일이 없었을 정도로 매우 건강했다고 했다. 김경희 씨는 딸 이 투병 중인 2013년 9월 병원으로 삼성 직원이 왔길래 “내 딸이 산재인 것 같다고, 산재 신청은 안되는 거냐” 묻자, “몇천 명이 되는 사원이 있는데 병에 걸리려면 다 걸려야지, 특 정한 사람만 병에 걸렸는데 어떻게 직업병이냐”는 모진 말도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 서 “삼성은 내 딸이 아픈 게 직업병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직업병이라고 확신한다”며 “우 리 애가 어린 나이(만 23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삼성 은 책임을 회피하지만 말고 왜 이러한 일이 생겼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다음 증언에 나선 손성배 씨는 1959년생으로 삼성 반도체 협력 업체 현장소장으로 반도체 생산라인의 유지보수업무를 총괄하다 2009년 5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12 년 8월 31일 사망한 고 손경주 씨의 아들이다. 손성배 씨는 증언을 통해 “아버지께서 백혈 병 확진 1년 전인 2008년 5월 인터넷 가족 카페를 개설했는데 여기에 친척들 사진은 물론, 반도체 업무 관련 자료를 모으는 게시판을 만들었다”며 투병 중에도 기필코 병이 나아서 반 올림에 이 사실을 알리겠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고 전했다.

6 ․

통권 134 2015.3


고 손경주 씨의 유족들은 고인의 사망 이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 로복지공단은 현장 소장이 관리직이라 업무 관련 유해물질 노출 수준이 낮다고 판단, 산재 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손성배 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 때문에 회사와 척지기 싫어서 산재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이제는 그냥 덮어두 기엔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고 말했다. 현재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 증언에 나선 직업병 피해 노동자 김미선 씨는 1980년생으로, 만 17살인 1997 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 LCD 모듈공정에 배치돼 주·야 맞교대로 하루 12시간 가까 이 화학약품으로 이물질을 제거하고, 납땜도 자주 했다. 그러다 3년여 만인 지난 2000년 팔·다리 마비 증상을 겪고 그다음 해인 2001년 6월 ‘다발성경화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김 미선 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 했지만, 다발성경화증이 의학적으로 질병의 발병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병을 일으킬만한 업무상 유해요인 노출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개인 질병이 라는 판정을 받았다. 지금은 근로복지공단 판정에 불복하여 서울행정법원에 산재소송을 진행 하고 있다. 10여 년 넘게 투병하면서 팔·다리 마비뿐만 아니라 관절이 손상되고 시력 또한 거의 잃고 있다고 전한 김미선 씨는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것조차 큰 꿈이 되었다”며 “어느 때는 내가 죽어버리면 가족들에게도 부담 주지도 않고 아픈 것도 모를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증언대회를 마친 반올림은 3월 6일 늦은 7시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고 황유미 씨 8주기 및 반도체·전자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제 ‘유미가 유미에게’ 문화제를 개최 했다.

일터

l 일터 l ․ 7


스물여덟 번째 이야기

네이티브 뺨치게 잘 가르쳐도 안정적으로 가르칠 순 없어요 방과후학교 영어강사, 고미래(가명) 씨

정하나 선전위원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참 좋아했어요. 학교에서 배우고, 혼자 공부했어요. 중학교 때 선생님한테 따로 수업용 테이프 빌려달라고 해서 녹음해서 늘어질 때 까지 듣고 발음 따라하고 그렇게 했더니 꽤 잘하게 되었네요.”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고미래(가명) 씨는 ‘공부가 제일 좋았어요’ 타입이다. 영어가 좋아서 놀 듯 공부했더니 특기가 되었고, 그 특기를 살려 일을 시작했다. 대학 교 2학년 때 시작한 영어강사 경력이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었다. 유치원 영어수업, 어 학원, 중고등학생 내신·수능대비 학원, 특목고 준비반, 직장인 강의, 1:1 회화과외 등 그간 가르친 학생, 소속됐던 학원도 다종다양하다. 어느 순간 학원에 속해 일하는 것이 좀 불편해졌다. 가르치는 것 외에 신경 쓸 일이 많았다. 특히 대형학원으로 갈수록 배정받는 수업시수 때문에 선생님들끼리 일종의 눈 치싸움을 벌이게 되는 상황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수업도 가뜩이나 늦은 밤 에 끝나는데다가, 회식이 잦은 것도, 그걸 거절하는 것도 몸과 마음에 부담이 됐다. 그 러던 중 공교육에 도입된 ‘방과후학교’를 알게 되었다. “학원이나 과외하던 중 몇 번 크게 데고, 맘 상하는 일도 좀 겪고 하다가 방과후학교 를 알게 되었어요. 밤 늦게 까지 학원 몇 개씩 하는 것보다 점심에 시작해 늦어도 6시 에는 끝나는 것도 참 매력적이었죠. 초등학교에 주로 나가고, 중학교도 해본 적 있어요. 수업 종류는 뭐, 정말 많아요. 제가 하는 영어처럼 일반 학교 교과목들은 다 있고요. 가 야금, 오카리나, 난타, 양궁, 골프 같은 신기한 예체능 수업이나 여러 창작·문화교실이 학교마다 다양하게 개설되어 있어요. ‘돌봄교실’이라고 해서 늦게 맞벌이 부모들이 아이 를 맡길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요.”

8 ․

통권 134 2015.3


「방과후학교」는 2004년부터 시작된 사교육비 경감 대책에 따라 수준별 보충학습과 특기적성교육, 방과후 보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다가, 이듬해 3월 이들 프로그램을 '방과 후학교'로 통합하여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2007년 정식사업으로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미래 씨는 이명박 정부가 한참 열을 올리며 방과후학교를 확대·추진하던 2008년부터 이쪽 일을 시작했다.

해 주는 것도 없이 수수료 떼어가는 송출업체 “처음에 들어갈 때는 브로커업체(송출업체)를 통해 들어갔어요. 학교와 강사가 직접계 약을 맺는 게 기본방식인데, 당시에는 방과후학교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 고, 교사 지원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막막하고 해서 업체를 통해 취업을 했어요. 기본급 에다가 제가 데리고 있는 학생 머릿수 곱하기 얼마 해서 업체에서 월급을 주었고요. 원 래는 임금(수업료)도 학교가 직접 강사 통장에 쏘아주는 건데요, 업체를 끼었기 때문에 수수료를 냈어야 했죠. 그래서 제 이름으로 된 학교 월급(수업료)통장을 브로커업체에서 뺐어가 수수료 제하고 저의 제2통장으로 월급을 송금해 줬어요.”

현행 방과후학교 운영 가이드라인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는 많이 있으나 학교의 시설이나 지도교사가 부족하여 학교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강좌가 있는 경우, 비영리단 체(기관)에 프로그램 전체 또는 일부, 영리단체에 개별 프로그램 단위로 위탁 운영 가 능’하다고 명시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체 프로그램 없이 강사 송출만을 전문적으 로 하는 인력송출업체와의 계약은 금지되어있다. 인천시 26개 학교가 관할교육청의 허 가를 받지 않고 자체강사가 없는 인력송출업체인 비영리법인 2곳과 방과후학교 운영위 탁 계약을 체결한 것이 2014년 감사원의 감사로 밝혀지기도 했다. “처음 1년 정도 해보다 보니 브로커나 위탁업체가 정말 안 좋은 거라는 의식이 커져 갔어요.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할 뿐만 아니라, 교육내용을 기획하고 일일 교육계획안 같은 것도 만들어 올리고 학부모에게 학생 발달향상 알림 같은 상담을 하는 것도 저 같 은 선생님들인데, 세금에도 안 잡히는 수수료 이익을 챙기는 업체들이 얄미운 정도를 넘어 정말 비윤리적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업체로부 터 어떤 특별한 관리나 복리후생 같은 걸 제공받아본 적이 전혀 없거든요. 사실 강사구 인 정보나 관련자료 같은 것은 각 시·도 교육청별 지원센터 홈페이지만 가도 다 볼 수 있는 것인데, 교육에 기여한 바는 없이 소개료 조로 수업료의 30%나 가져가는 건 좀 이상하죠.”

l 일터 l ․ 9


학교 직원이 아니니, 학교시설 이용료 내래요 이제 미래 씨는 단독으로 일한다. 학교에 직접 이력서 넣고 연락이 오면 면접을 보러 간다. 이제까지 강의안이 나 가정통신문을 모아 만든 포트폴리 오도 몇 권 챙겨가 보여주기도 하고, 영어인터뷰나 강의 시연을 요청하면 그것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 학 교 수업강사로 발탁되면 학교와 3개월 (한 학기) 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방과 후학교 출강을 시작한 이래 네번째 학 교에 다니고 있는 지금, 미래 씨가 맡 고 있는 학생은 130명 정도. 한 반에 12명에서 20명 까지 8개 반 수업을 월 -목, 화-목, 수-금, 월-수-금 이렇게 나 눠 수업진행을 한다. 영어가 인기과목 이기도 하거니와 다년간의 노하우를 쌓은 미래 씨의 수업은 학생이 끊이지 않고 늘 많은 편이다. 원어민 강사 수 업도 있지만 학생수 경쟁을 크게 의식 하는 느낌은 아니다. 그만큼 안정적인 수업 노하우를 가진 영어 선생님인 것 ▲ 방과후학교 운영체계 및 목적 (출처 : 서울시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센터 홈페이지)

같았다.

“수업 신청이 5명 미만이면 수업폐강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런 적 은 없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에서 영어는 꼭 배워야 하는 언어, 성적이 잘 나와야 하는 주요과목이잖아요. (웃음) 계약은 별 일 없으면 계속 연장되기는 하는데, 저는 나름 별 일이 계속 생겨서 4번을 옮겼어요. 처음 학교는 업체 통해 들어간 거니까 업체계약 해 지 후 옮긴 거고, 두 번째 학교에서는 갑자기 학교장이 이것저것 요구하는 게 많아져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첫째로 갑자기 11시 출근을 강요하더라구요. 원래 방과후 강사는 수업 20분 전에만 출근하면 되는 건데요(현재는 직전 출근으로 지침 변경됨). 그리고 저한테만 수용비도 확 인상해서 받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방과후 교사들은 학교소속이 아 니니까 학교시설이용료 조로 수용비라는 걸 학교에서 받아가는데, 세후 월급액 3~10%

10 ․

통권 134

2015.3


이내(당시 기준)로 받도록 되어 있었어요. 올린 금액도 기준 최대치 10%에 딱 맞춰 불 법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20만원 대로 확 올려 받겠다고 한 거죠. 금액 차 때문에도 놀 라긴 했지요. 하지만 뭐 그거 못 내겠어요. 기분이 너무 나빴던 건, 일괄로 올린 게 아 니라 저한테만 따로 요구하셨기 때문이었죠. 아마 제 수업 신청학생이 점점 많아지는 걸 보고 그러신 것 같아요. 그 다음 세 번째 학교에서는 위탁업체 때문에 또 그만두게 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거긴 처음에 갔을 때만 해도 위탁운영을 안하고 있었어요. 교장이 부임한 첫 해라 위탁 추진은 부담스러웠을 테죠. 위탁이 사실 말이 많거든요. 방과후 선생님들 처우문제도 그 렇지만, 위탁업체와 학교 혹은 학교장 사이 비리문제나 수수료 때문에 전반적으로 수업 료가 올라가는 등 학부모들도 반기지 않는단 말이죠. 그러다가 다음해 위탁을 추진하기 시작했어요. 위탁업체가 들어와 학교 전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 저처럼 단독 계약한 선 생님들은 나가야 하거든요. 그때 그 업체는 ‘현재 있는 선생님들 자리와 수업을 보전해 주겠다. 대신 수수료는 내야한다. 우리 업체 소속이 되면 점점 수업료단가도 올라갈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방과후 시작할 때 생긴 ‘업체’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기도 했고, 그냥 감언이설로 들리더라고요. 그 학교에 계속 남고픈 맘도 컸기에 며칠간 고민 하다 결국 그만두겠다고 학교에 말했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위탁계약이 1년 만에 해지 됐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업체가 했던 얘기는 감언이설 맞았던 거죠.”

옮길 때 마다 미래 씨도 아쉬움이 크다. 1년이든, 2년이든 몇 학기 이어 미래 씨 수 업을 듣던 친구들을 계속 만나며 연속성 있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짜 학교 선 생님도 아닌데, 어떻게 보면 이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미래 씨는 어느 순간부터 ‘거리두기’ 하는 편이라고 했다. 영어를 좋아하 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미래 씨인데, 그 일상에서 적당히 마음의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는 것이다. 방과후학교를 포함한 사교육 시장에서 계속 일하는 한, 꾸준히 지속적으로 가르치기 어렵고 일터를 자주 옮겨야만 할 테니, 학생에 대한 애정과 영어에 대한 열 정을 다 쏟아내기 보다는 적당히 쏟고 적당히 거두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 건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일터

l 일터 l ․ 11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싸운다 현대위아평택 가스 누출사고 대응 투쟁 이야기

재현 선전위원

지난 1월 15일 현대위아 평택 2공장 SM 테크에서 유독가스 누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유독가스에 노출된 12명의 노동자가 구토, 안구 통증, 신체 마비 등 고통을 호소했다. 인 터뷰가 있던 2월 말까지 사고 원인은커녕 회사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다. 노동자의 편 에 서야 할 고용노동부조차 회사와 다를 바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대체 사고 당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금속노조 경기지부 현대위아 비정규직 평택지회 활동가들을 만나 자세 한 이야기를 들었다.

냄새 난다 항의해도 무시하던 회사 김경진(조직부장) : 11시 20분쯤 코를 찌르는 심한 냄새가 났어요. 처음에는 페인트나 신 나 작업을 하는 줄 알았죠. 그러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라인 하나(J3)를 없애면서 폐 세척 액을 탱크로리 차량으로 옮기느라 나는 냄새라는 걸 알았어요. 냄새의 원인은 엔진에 도포된 방청제를 제거하기 위한 세척 작업에서 생긴 폐 세척액이 었다. 지하 탱크에 2년가량 방치된 상태였다. 위응량(부지회장) : 그날 작업이 있는지 조·반장도 전혀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보통은 냄 새가 심해서 작업자들이 대부분 퇴근한 저녁에 하거나, 3주에 한 번 정도 주말에 하는데 그날은 특별한 경우였죠. 박인규(교선부장) : 평소에도 세척 작업을 자주 해서 냄새가 나기는 하는데 그날은 유독 심하더라고요.

12 ․

통권 134 2015.3


김경진 : 냄새가 하도 심해서 세척액 퍼내는 데를 가니까 2공장 원청에서 나온 관리자가 세척액 푸는 직원한테 작업 지시를 하고 있더라고요. 근무시간인데 냄새가 많이 나고 그 러니 작업을 나중에 하면 안 되느냐 물었어요. 그런데 아무 대꾸가 없더라고요. 당시 세척액 푸는 작업을 폐기물 수거 업체인 뉴그린이라는 회사에서 했는데, 작업자들 은 방독면을 끼고 일했다. 그러나 방독면 없이 현장에 있던 50여 명 노동자들은 1시간 가 까이 가스 누출에 방치된 채 불쾌한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식당이나 탈의실도 마찬 가지였다. 그 사이 여성 노동자 한 명이 점심도 못 먹고 탈의실에서 쉬던 도중, 탈의실에 서도 냄새가 심해 구토를 하며 몸에 마비 증세까지 생겨 119로 실려 나갔다. 위응량 : 회사는 한 시간 동안 내버려 두더니 나중에 조치를 한다는 게 현장 바깥으로 대 피시키는 게 다였어요.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 소장이 가스 냄새가 가득한 식당 에서 특별안전교육을 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조합에선 노동부를 계속 불렀어요. 그런데 전 화를 받은 근로감독관이 시종일관 자기들이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했죠. 그때 현장에선 세 분이 또다시 구토 증세를 보이고 이후에도 두 차례 119를 부르니까 나중엔 소방방재 청, 경찰까지 총출동하더군요. 노동부는 2시 반 다 돼서 왔어요. 노동부 관계자는 회사 관리자에게 전화로 신속한 사고처리를 지시했다고 하지만 현장은 방치되어 있었다. 소방방재청은 얼마나 능력이 뛰어난지 사고 누출의 원인으로 지목된 탱 크로리 차량을 후각으로 검사하더니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조합은 재조사를 요구했고, 3시간이 지나 노동부 도움으로 유해물질 측정 기기로 다시 조사했다. 그러나 이미 현장은 환기가 다 된 상태였고, 유해물질은 검출되지 않았다. 위응량 : 사고 다음 날 아침 사장을 찾아가 산보위를 개최해서 어떤 가스가 누출된 건지, 피해를 본 조합원들 대책은 어떻게 세울 건지 논의하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사장이 일단 (근골 예방) 체조를 해야 하니까 조회 끝나고 얘기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리곤 퇴근할 때쯤 돼서 이미 기업 노조랑 산보위를 하고 있으니 금속노조랑 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 었어요. 같은 날 구토, 두통을 호소한 9명의 노동자는 회사 지정병원에서 특수건강검진을 받았 다. 특수건강검진이라고는 하나 병원 측은 무슨 검사를 하는지 노동자들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회사 관리자인 현장 소장하고만 소통했다. 검진 결과 대부분 각막 및 결막 화상 등 으로 일주일간 안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회사는 정 힘들면 연차로 퇴근하라고 강요했다. 조합은 회사에 사과와 사고 원인 규명, 피해 노동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현장 1인 시위

l 일터 l ․ 13


및 출근 투쟁을 시작했다. 위응량 : 1월 20일부터 시작했는데 처음엔 회사 관리자들이 동영상 촬영해가고, 명단 적어 가고 하면서 조합원들이 위축됐어요. 그래도 이제는 계속하다 보니 조합원 참여율도 높고, 기업 노조 사람들도 회사 사람들 안 볼 때 웃어 주고 가기도 해요.

사고 난지 한 달 만에 시료 채취가 제대로 된 감독인가요? 김경진 : 1월 21일에는 노동부 평택지청 산재예방과를 찾아갔어요. 과장이랑 면담을 하는 데 가스 누출로 몸이 아픈 거랑 유해 가스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정 아프면 병원에 가라 고 하데요. 또, 사고 이후에 회사가 사과 한마디를 안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니 까 그건 ‘근로개선과 가서 얘기하세요.’ 그러는 거예요. 면담이라고 그렇게 1시간 앉아 있 었는데, 지나고 보니 우롱 당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월 30일에는 금속노조의 요구로 경기지부·지회 노안 간부들과 노동부 평택지청장이 면담을 했다. 노동부는 이 자리에서도 12명의 피해자와 가스 누출 사고는 무관하다는 말 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면담 과정에서 세척제에 발암 및 생식독성 가능성이 있어 금속노 조에서 금지 물질로 규정·관리하고 있는 트리에탄올 성분이 함유된 점을 확인했다. 금속 노조는 우선 노동부에 세척액 성분 분석, 현장점검 실태에 관한 원청 사업주 관리 책임성 등 확인을 요구했다. 또, 피해자 12명의 치료비 및 근태 인정,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해 조합을 포함한 노사 공동대책 회의를 제안했다. 위응량 : 노동부 면담 있고 나서 2월 10일에 노동부에서 2명이 와서 시료를 채취해갔어 요. 13일엔 시정명령이 나왔는데 앞으로 작업자에게 방독 마스크 지급해라, 국소배기장치 제대로 점검하고 보완해라 그게 전부더라고요. 시료 분석 결과는 3월 초에 나온다고 하는 데 사실 기대가 크지 않아요. 당일 탱크로리에서 세척액을 퍼 나르면서 가스가 누출된 건 데 뒤늦게 시료 채취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노동부는 이래 놓고 자기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겠죠. 현대위아는 자동차 핵심부품인 엔진을 비롯하여 공작기계를 생산하며 잘 나가는 회사 다. 그러나 정작 일하는 노동자들은 구토가 나고 몸에 마비가 올 정도로 아파도 회사 눈 치 보고, 참고 일하는 삶을 살고 있다. 더군다나 이제 3월 재계약 시즌이 다가왔다. 자칫 회사 눈 밖에 났다가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14 ․

통권 134 2015.3


▲ 현대위아 비정규직 평택지회의 노동부 앞 집회 현장

위응량 : 저는 관리자로 5년을 일했어요. 2013년 금속노조가 다수가 되니까 위장 폐업을 하고 다시 만든 회사에 들어오면서 금속노조에 가입했어요. 회사는 노동자를 노예로 봐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근무 시간에 화장실 가면 이름 적히면서 살고 있어요. 인간답게 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민주노조가 없으면 우리 는 더욱 회사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와 내 동료들이 행복해지기 위 해 싸울 거예요. 박인규(교선부장) : 사회가 발전했다 하는데도, 기계를 돌리고 사회를 움직이는 노동자들에 게 최소한의 대우도 안 하고 쓰고 버리려고만 하니까 그 현실이 안타까워요. 민경복(대의원) : 사고가 있던 날도 바로 옆 동료한테 냄새가 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냄새난다는 거예요. 다들 잘릴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참고 일하는 거죠. TV 광고를 보니까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하는데, 노동자를 무시하고 기계 취급하 는 회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겠어요? 조합을 만든 지 만 2년이 안 되다 보니 경험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많지 않았지만, 이 번 사고로 노동조합은 회사가 노동자들을 어떻게 여기는지 처음 배웠다. 그래서 노동조합, 그것도 민주노조가 왜 필요한지 새삼 알았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온 힘을 다하는 현대위 아 평택지회 동지들의 건투를 빈다.

일터

l 일터 l ․ 15


비자발적 실업, 뇌졸중 6배 높인다 실업·퇴직과 뇌심혈관질환 김형렬 회원(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직업환경의학과)

실업과 퇴직, 그리고 건강 실업을 당하면 건강이 악화되는 건 모두가 짐작할 수 있는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직장을 잃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며 스트레스가 된다. 이러한 스 트레스가 사람 몸에 변화를 일으켜 건강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일상생활의 패턴 이 바뀌고, 음주와 흡연 등 건강행태의 변화가 나타나고, 경제적 손실로 인해 다 양한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건강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반해 의료기 관에 대한 접근도는 더 떨어지게 된다. 가족과의 갈등은 증폭되는 경우가 많고, 상처 받은 자존감은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꺼려하게 된다. 넓게 보면 스트레스라 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 직 장을 잃은 사람에 대한 사회보장의 정도가 어떤지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해고와 직장폐쇄에 의해 직장을 잃게 되는 비자발적인 실업의 영향은 당연히 그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하지만, 일반적인 퇴직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퇴직 이 후의 삶을 우리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라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 고령의 노동자들은 퇴직을 하게 되는 경우, 해고와 같은 비자발적인 실업의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 연구는 해고와 같은 비자발적 실업과 일반적인 정년에 의한 퇴직이 뇌혈관, 심장질환에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기 위해 진행되었고, 고령자 패널 자료를 이용 하여 실업이나 퇴직 상태 이후 질병 발생을 추적 관찰하였다.

IMF 해고노동자, 사망률도 더 높았다 이미 여러 나라의 연구에서 실업과 건강의 관련을 밝힌 연구가 있고, 우리는 현실에서 이러한 연구가 무색하게 이들의 관계를 목격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이 를 드러낸 연구는 그리 많지 않다. 실업률이 증가할수록 자살이 증가한다는 연구,

16 ․

통권 134

2015.3


실업을 경험한 사람에서 사망의 위험이 2배 증가한다는 연구, 실업이 암으로 인 한 사망을 증가시킨다는 연구 등이 국내에서 진행되었다. 다른 나라 연구에서는 실업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준다는 것과 심혈관계질환의 발생을 증가시킨다는 연구가 다수 진행되었다.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과도 한 음주, 높은 흡연율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연구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실업이 건강에 주는 영향의 크기가 나라마다, 실업을 당한 집단마다, 실업을 당한 시기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2006년에 국내에 서 실시한 연구에 의하면,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위기시에 실업을 경험한 경우, 사망의 위험이 더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사회보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 발생하는 실업은 경제위기상황에서 그 영향이 더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영국에서 진행한 연구에서 남성 노동자에서, 육체노 동을 하면서 실업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에서 실업의 효과가 더 두드 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실업이라는 극도의 위기 상황도 그 나 라의 사회 보장 체계와 개인의 소득수준 등에 따라 그 영향이 다를 수밖에 없음 을 보여주고 있다.

45세 이상 노동자들을 6년간 관찰 고령자 패널은 45세 이상으로 표본 추출된 중고령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동일인 에 대해 2006년부터 2년 단위로 노동시장 참여, 재정상태, 가족 및 사회관계, 건 강 상태 등을 파악하고 있는 자료이다. 이 자료를 이용하여, 2006년에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이 없었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2012년까지 실업과 퇴직에 따른 이 들 질환의 발생위험을 추적 관찰하였다. 4,000명의 대상자가 6년여 간 추적관찰 자료에 포함되었다.

해고되면 뇌졸중 6배 증가 남성 노동자에서 실업 및 퇴직에 의한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이 증 가하였다. 해고와 같은 비자발적 실업에 의해 뇌혈관질환은 6.2배, 심장질환도 2.8배 증가하였다. 퇴직에 의해서도 뇌혈관질환의 위험은 4.5배 증가하였다. 두 질병을 합하면 해고에 의해서는 3.6배, 퇴직에 의해서도 2.9배 질병 발생이 증가 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노동자에서는 그 영향의 정도는 조금 낮았지만, 위험은 남성노동자와 같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l 일터 l ․ 17


* 위험의 정도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음을 의미함. 2.768의 의미는 고용을 유지한 사람에 비해 2.768배 심장질환의 발생 위험 이 높음을 의미함. 위 결과는 나이, 고혈압, 당뇨, 흡연, 음주, 운동, 비만을 보정한 결과임.

18 ․

통권 134 2015.3


건강이 안 좋은 사람이 실업을 당한다? 이 결과가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실업에 따른 건강의 변화를 ‘추적 관찰’ 했다는 것이다. 실업 상태인 사람들이 취업 상태인 사람들보다 건강이 나쁘다는 현상만 살펴보면, ‘건강이 좋지 않거나, 생활 습관이 좋지 않은 사람이 실업을 당한다’, ‘그러니 실업 때문에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 나빠서 직장을 잃는 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결과는 애초에 심장질환, 뇌혈관 질환이 없 었던 사람들, 그리고 당시에는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실업이 나 퇴직을 겪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건강 상태가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본 것이다. 즉, 건강이 실업에 미친 영향보다는, 실업과 퇴직이 건강에 미친 영향이 드러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년에 의한 퇴직도 건강에 부정적이다 본 연구의 결과가 음주, 흡연, 운동, 비만 등의 상태를 보정한 결과임을 고려하 면, 일반적으로 퇴직이후 생활습관의 변화에 의해 심뇌혈관질환이 생기는 기전 외에도 다른 이유에 의해서도 건강 영향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퇴직 이 일로 인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관계 의 단절을 경험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퇴직 이 후에도 경제적 필요가 많고, 국가가 이를 위해 책임을 갖지 않은 사회에서는 퇴 직은 실업만큼의 고통일 수밖에 없다.

성별에 따라 실업 영향도 다르다 이번 연구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에서, 심혈관질환/뇌혈관질환과 실업의 관련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이 정신건강이나 우울 증상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 본 이전 연구에서도 여성보다 남성에서 그 영향이 더 컸다. 그것은 ‘남성 부양자여성 가사책임자’라는 사고방식이 이 사회에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성들 은 직장에서 임금 노동자로 일하는 시간 못지않게 많은 시간을 돌봄과 가사 노동 에 쏟아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실제로 그렇게 일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는 집 요하게 여성 노동자들에게 불안정한 직장, 적은 임금, 낮은 지위를 강요한다. 그 래서 실업이나 퇴직이 여성노동자보다 남성 노동자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큰 것 같다. 사회는 남성 노동자가 실업을 당하면 곧바로 낙오자 취급을 하지만, 여

l 일터 l ․ 19


성 노동자에게는 ‘집에서 살림 하면 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많은 여 성 노동자들에게 실업과 퇴직은 결혼, 출산, 육아 때문에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렸지 않은가.

맺으며 일을 하는 것도 고통이고, 일을 못하는 것도 고통인 사회. 실업에 의한 건강영 향을 연구하는 것은 이런 아이러니를 경험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사회적 안전망 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서 일을 못한다는 것은 노동자 개인에게 상상 이상의 고 통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지금 실업은 한 시점의 사건이라기보다는 고용불안의 연속된 선상에 위 치한 극단점이다. 노동자로 일하는 시작부터 고용불안에 놓이게 되고, 해고는 언 제든지 벌어질 수 있는 현실이 되고 있다. ‘비정규직 종합대책’,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노동시장 구조개 혁이 국정 주요 과제인 시대다. 고용불안과 해고가 일상화된 사회는 노동자들의 삶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사회다.

일터

* 본 글은 실업과 건강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함께 다음 논문의 주요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Kang MY, Kim HR. Association between voluntary/involuntary job loss and the development of stroke or cardiovascular disease: a prospective study of middle-aged to older workers in a rapidly developing Asian country. PLoS One. 2014 Nov 19;9(11)”

20 ․

통권 134 2015.3


107년전 빵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열악한 노동조건개선과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도 진행형이다. 사진, 글 _ 쌀집아재

l 일터 l ․ 21


[특집] 제4차 산업재해 예방 5개년 계획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 (2015~2019) 파헤치기

1. 일하는 노동자를 위한 계획이었나 지난 제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2010~2014) 평가 김재광 회원(공인노무사)

지난 2000년 이후 노동부는 5년 단위로 산업재해예방(5개년 계획)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 여 점검하고 있다. 5개년 계획이 이전에도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제1차 산업재해 예방 6개 년 계획,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산업안전 선진화 3개년 계획을 시행한 바가 있다. 이를 고 려하면 근 25년간 정부 나름의 체계적인 산업재해예방 계획을 수립하고 점검하고 있는 셈이 다. 현재 제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2010~2014)이 종료되고, 제4차 계획이 수립된 시점

22 ․

통권 134

2015.3


에서 지난 제3차 계획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목표’를 중심으로 확인하고자 한다. 재해율 0.5%대 달성? 빛 좋은 개살구 정부의 5개년 계획은 비전, 목표, 기본방향, 추진전략 및 과제로 구분되어 있다. 제3차 계 획의 비전은 ‘근로자가 안전한 삶과 행복을 영위하는 안전행복사회 구현’ 이다. 이러한 비전 이 구현되었는지는 전체를 검토하고 글의 말미에 살피고자 한다. 제3차 계획의 목표는 ‘2014 년 재해자수를 6만 명대로 감소시키고, 재해율 0.5%대를 달성’ 하는 것이었다. 당시 재해자 수는 9만 7000여명 대에 이르고, 재해율은 0.7% 대에서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노동부 가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에 따르면 재해자는 9만1천824명, 재해율은 0.59%로, 제3차 5개년 계획이 목표한 재해자수 6만 명에 이르기에는 부족했지만 재해율은 0.59%로 목 표한 0.5%대에 가까웠다. 아마도 2013년도부터 업무상 교통사고 등을 통계에서 제외한 숨은 노력이 0.5%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수치만 보면 재해율이 줄어든 것은 사실인데 꼭 성공하였다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지는 것 이 사실이다. 2013년 사망만인율1)은 2012년보다 오히려 증가하였고, 제3차 계획 기간 동안 사고사망만인율은 0.7%대에서 큰 변동을 보이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재해율 저하 목표가 현 실을 더욱더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보통 사고사망만인율이 산재재해 율보다 낮은 것이 일본을 제외한 OECD 국가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재해율에 비교하여 턱없이 사고사망만인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 말인즉, 사망사고는 은 폐할 수 없어 상당부분이 통계로 드러나고 있으나, 거꾸로 사망이 아닌 경우는 상당부분 은 폐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재해율을 줄이고자 하는 각고의 노력은, 의도가 무 엇이건 간에, 산업재해의 은폐를 조장 묵인하는 것에 한 몫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자유 로울 수 없다. 여전히 제자리를 맴도는 사고사망률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애초 정책 목표가 산재율, 사고사망만인율 감소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산재 은폐에 대한 단호한 처벌, 산재 보험 급여의 내실화가 동반되었어야 하나 이에 미치지 않아 수치상 목표는 달성했으나 취지 에는 벗어난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를 의식했는지 그나마 제4차 5개년 계획에서는 사고사 망만인율을 0.7%대에서 2019년에는 0.3%로 줄이고자 계획하고 있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그 러나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산재은폐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산재보험 급여의 내실화가 뒤 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목표마저도 현실적 실효성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 사망자수의 1만 배를 전체 근로자 수로 나눈 값. 전 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산재로 사망한 근로 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지표

l 일터 l ․ 23


사업장 자율시스템은 어떻게 되었나? 제3차 계획이 기존의 5개년 계획과 비교하여 눈에 띄었던 대목은 위험성 평가 그리고 노 사자율, 민간참여 유도 등 이라 하겠다. 제3차 계획 목표는 재해율 저하 이외에도 또 하나의 목표를 제시하였다. ‘위험성 평가를 기반으로 한 자율안전보건시스템 정착’ 이 그것이다. 위 험성 평가는 사업장에 대한 포괄적인 안전보건평가이며 동시에 근로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선진화된 사업장 자율시스템이라 할 것이다. 이것에 대해 제3차 계획은 상당히 힘주어 강조 하고 있었다. 실제 위험성 평가는 법제도적으로 2010년부터 3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2013년 부터 본격 시행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참여와 협력을 통한 서비스전달체계 다원화’ 를 추진 전략 및 과제로 선정하고,

‘지역별 산업안전 네크워크 구축’, ‘중앙/지방정부간 연계협력강

화’, ‘노사공동 산업안전보건 협력체계구축 지원’ 등을 세부과제로 두고 있었다. 위험성 평가의 경우 노동부의 안전보건부문에서 2000년도 중반 이후 여러 연구 용역 및 시험 적용 등 상당한 노력을 보였고, 시행이후 이에 대한 선전 및 평가 기법의 교육 등에 대한 대대적인 공을 들인 바 있다. 실제로 안전보건공단에서 주최한 위험성 평가에 대한 교 육의 경우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위험성 평가가 자율적 안전보건관리체계라는 점, 작업자의 참여가 독려된다는 점에서 일정한 긍정적인 요인이 있으며 이것에 대한 제3차 계 획의 중점이 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중점 목표였던 위험 성 평가의 이행이 얼마나 진행되었는가와 별개로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이 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자료나 결과를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위험성의 선진성은 자율적인 안전보건예방관리시스템이고, 여기서의 자율은 회사뿐 아니라 작업자(노동자)에게도 부여된 것인데, 정작 대부분의 현장 노동자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 지어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조차 활발한 위험성 평가 작업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불어 제시된 세부과제인 ‘지역별 산업안전 네크워크 구축’, ‘중앙/지방정부간 연계협력강화’, ‘노사공동 산업안전보건 협력체계구축 지원’ 은 이렇다 할 결과를 낳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 찌된 일인지 제3차 계획에서 강조된 위험성 평가는 제4차 계획에서 찾아보기가 힘들어 이러 한 취지의 사업이 사실상 폐기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가지게 된다. 계획의 실효성 평가가 필요하다 제3차 계획에서는 건설, 제조, 화학, 서비스, 소규모 사업장 등 ‘특성화된 예방대책 추진을 통한 사업실효성 제고’ 라는 추진전략 및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제3차 계획 기간에 유독 중 대 산업 사고나 하청 노동자의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2013년 다른 모든 업종에서 산재

24 ․

통권 134

2015.3


사망이 감소할 때 건설업에 서는 산재사망률이 오히려 증가했다. 사업의 실효성이 전혀 발휘되지 못한 것이다. 3차 계획 추진 중 하나로 제시됐던 ‘산업안전보건 행 정역량강화’ 역시 마찬가지 다. 정부는 산업안전감독관 의 수와 역량을 키워 산업 안전감독을 내실화하겠다고 하였으나, 2015년 지금까지도 여전히 산업안전감독관 1명은 4000~5000 개의 사업장을 담당한다. 역시 계획이 계획에 머무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단면이다. 계획을 실행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예산과 행정력, 뚜렷한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난 산재예방계획들이 그렇게 작동해왔는 지 검토가 먼저 필요하다. 계획의 근본은 노동자의 권리 앞서 제3차 계획의 비전은 ‘근로자가 안전한 삶과 행복을 영위하는 안전행복사회 구현’ 이 었다. 그러나 사망만인율은 다시 증가세가 되었고, 사고사망만인율은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더욱이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는 제3차 계획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물론 세월호 는 산업안전보건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세월호 참사과정에서 나타난 해당 노동자의 위험에 대한 거부와 통제의 권한이 얼마나 하잘것없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산 업재해예방 5개년 계획은 노동자의 참여를 양념처럼 집어넣고 있으나, 정작 노동자에게 중요 한 알 권리, 참여할 권리, 거부할 권리에 대한 실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변화되는 산업 환경을 거론하면서도 요청되는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보호와 권리를 성의있게 바라보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3차 계획의 비전 ‘근로자가 안전한 삶과 행복을 영위하는 안전행복사회 구현’ 은 만무하고, 제4차 계획의 비전 ‘선진국 수준의 안전 일터 구현’ 은 요원한 것이다. 체계적이고 정기적인 국가적 계획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계획에 정작 일하는 노동 자의 권리가 중심이 아니라면 무엇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인지, ‘계획’인지 돌이켜볼 일이다. 일터

l 일터 l ․ 25


2. 안전한 일터, 국민 행복 시대는 가능한가? 제4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의 의미와 과제 선전위원회

지난 1월 27일 고용노동부에서 ‘산업현장의 안전보건 혁신을 위한 종합계획 <제4차 산재 예방 5개년계획 (2015~2019)>’ (이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혁신안과 함 께 안전한 일터·건강한 근로자·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한 4대 추진 전략을 제시했다. 선전위 원회는 이번 종합계획이 짧게는 박근혜 정부 남은 3년, 길게는 2019년까지 노동자들의 안전 보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그 의미와 과제를 짚어보았다.

‘산업안전보건 혁신 종합계획’ 의 배경 고용노동부는 이번 종합계획을 수립한 가장 큰 이유로 그간 각종 안전보건대책의 성과로 재해율 지표는 꾸준히 개선되었으나, 산재사망만인율의 경우 여전히 선진국보 다 2~4배가량 높고 (2010년 기준 한국 0.78, 일본 0.22, 미국 0.38, 독일 0.18), 경제 적 손실액도 19조원에 달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작년 현대 중공업에서만 9명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한 사례에서 보듯 위험의 외주화에 따라 안전보건의 사 각지대가 확대되고, 안전보건에 관한 책임을 하청에 떠넘기는 현실을 지적했다.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일터뿐만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안전보건에 관한 요구가 높 아지면서 이번 종합계획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고용노동부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삼성 반도체 직업병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산재인정 판결이나, 제주의료원 간호사 노동자들의 집단 유산 산재인정 판결 등 직업성 암, 생식독성 등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이번 종합계획이 만들 어지는데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산업안전보건 혁신 종합계획’의 목표 고용노동부는 이번 종합계획으로 선진국 수준의 안전한 일터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 로 2013년 0.71%의 산재사망만인율을 2019년 0.3%로 낮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4대

26 ․

통권 134 2015.3


추진 과제를 ▲ 안전보건 책임 명확화 ▲ 대응 능력제고 ▲ 확고한 기반 구축 ▲ 실 천 중심의 안전보건 문화 확산으로 설정했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책임 강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안전보건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듯 이번 종합계획에서 가장 먼저 사내하청업체의 위험작업에 대해 원·하청 공동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확 대했다. 만약 유해·위험작업을 도급할 땐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이 확보되도록 기 존의 도급인가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사업주의 안전보건 책임 확대를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앞으로 300인 이상 고위험 업종 (조선·철강·건설 등) 사업장에서는 의무적으로 안전보건관리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했다. 사업장 내 안전보건관리자 선임 의무가 없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사업장의 직·반장이 안전보건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앞으로 위험성 평가를 하지 않는 사업주에게는 과태료 부과 및 안전보건공단에서 수행하는 사업 제공에 불이익을 주고, 위험성 평가에 따른 개선계획을 이행하지 않으 면 사법조치 대상으로 분류하기로 했다. 노동자의 참여 및 역할 확대 노동자에게 작업현장의 급박한 위험 발생시 '작업회피' 를 결정하게 하고, 사업주에 게 안전보건점검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 또한, 현장책임자에게 안전수칙을 미준수한 노동자에게 작업을 제한하는 권리도 부여했다. 위험성 평가의 경우 노동자 대표가 의 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방안도 마련되었다. 업무 특성 맞춤형 안전보건 지원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재생산 노동영역 (교육·사회복지 서비스, 청소, 병원) 노동자들의 건강증진 및 직무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을 보급하기로 했다. 청소, 현장 실습 노동자를 다수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휴게 공간을 제공했는지, 현장 실습 노동자에게 안전보건교육을 했는지 등 관련해서 집중 지도점검을 시행한다. 유해·위험 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을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상 관리

l 일터 l ․ 27


대상 화학물질의 범위를 현재 751종에서 확대해 나가는 한편, 유해·위험성 평가 프 로세스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사용물질, 노출정도, 작업방법 등이 노동자의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실태조사를 통해 작업환경개선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안전보건문화 확산 노·사·정이 TF를 구성 산재 은폐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한, 복지부 (건강보험관리공단 담당), 국민안전처 (119, 응급환자 이송기관 담당) 등 민·관 협업 체계를 통해 산재 은폐를 근절하고, 안전보건문화를 확산하도록 했다. 기존 ‘안전점검의 날’ 을 매월 4일에서 세월호 참사일인 16일로 변경해, 일터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안전의식을 높이는데 힘쓰기로 했다.

기업 편의 위한 규제완화 정부가 노동자 건강을? 그러나 이번 ‘산업안전보건 혁신 종합계획’ 역시 박근혜 정부 특유의 유체이탈 기조는 변 함이 없었다. 왜 선진국보다 산재사망만인율이 2~4배 높은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사망이 왜 많은지, 4.16 세월호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찰도, 책임도, 반 성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산재 사망률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높은 이유는 고용의 불안 정과 함께 위험 작업을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전가하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급박한 위험 발생시 ‘작업회피’를 결정하도록 보장한다지만, 노동조합이 나서서 작업중지를 선언해도 하루 일당 공치는 것이 답답해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현실이다. 원청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확대한다지만, 그동안 기업 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 (기업규제완화법) 아래에서 기업은 다양한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면제받아왔다. 정부가 지속 해서 견지하고 있는 ‘규제개혁’ 이다. 전체 정부 정책과 기조는 노동자 안전과 건강, 생명을 경시하는 방향인데 개별적인 접근으로 안전보건이 혁신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될 뿐이다. 산재은폐 막지 않고 산재사망률 관리? 우리나라 산재 발생률 통계에 대해서는 항상 물음표가 따라 다닌다. 전체 산재 발생률은 낮은데, 사망사고 발생률은 높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사고 사망률’ 을 낮추는 것 을 첫 번째 목표로 제안했다. 그러나 만일 산재 발생 보고가 적어서 산재 발생률이 낮게 나

28 ․

통권 134 2015.3


타나는 것이라면 정확한 상황 인식과 통계를 위해 산재 은폐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현재 낮은 산재 보험 적용률, 산재인정에 대한 부담, 3일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보고하게 되어 있는 체계 등이 모두 산재 보고를 낮추는 원인이 된다. 물론 이런 단순보고 누락 외에 산재 은폐를 막기 위해 강력한 처벌을 포함한 실질적인 노력이 따라야 하는데, 규제 완화라는 미명 하에 산재 은폐의 중요한 기전으로 작용하는 개별실적요율제를 10인 미 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하자고 결정한 것이 작년의 일이다. 정부가 산재 발생 실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고민 없이,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방향의 정책을 펴는 상황에서 가 장 중요한 정책 목표를 '사고 사망률 낮추기' 로 설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짜 노동자 참여가 필요하다 산재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현장책임자에게 ‘안전수칙 미준수 근로자’ 의 작업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고 한다. 이는 노동자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안전에 불감하기 때문 에 안전사고가 발생한다는 고용노동부의 발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면서 이 대책이 ‘근로 자의 참여와 역할을 강화’ 하는 조치라고 한다.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데 노동자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기존 노동자의 참 여를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명예산업안전감독관 등이 실질적으로 역할을 못 하고 있 다. 지난 몇 년간 수십 명의 산재 사망자를 낸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조는 사고가 발생해도 공식적인 보고는커녕, 사고 조사에도 정규직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참여할 수 있다. 숫자로도 절반에 가깝고 더 위험한 부서에 배치되어 있어도 산보위에도 참여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은 물론,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의 산보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곳도 많다. 노동자의 참여라기보다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 사용 또한 회사의 징계와 고 소·고발 폭탄을 맞는다. 노동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묻고, 작업을 제한한다는 발상으로는 노 동자들의 자율과 권리에 기반을 둔 노동자 참여를 통한 ‘안전문화 확산’ 은 요원하다. 물론 한 번의 ‘종합계획’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도 안전보건 감독 인력과 예산 확보 없는 계획은 ‘증세 없는 복지’ 처럼 그저 공염불에 불과하 다. 공정안전보고, 위험방지계획, 원·하청 공생협력, 위험성 평가 등 이미 있는 법과 제도조 차 이행되지 않은 게 작금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전체 국정 방향이 노동자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데 안전한 일터, 건강한 노동자, 국민 행복시대는 불가능할 것이 다.

일터

l 일터 l ․ 29


3. 산재예방 5개년 계획, 노동자가 감시하자 3차 계획 (2010~2014)

4차 계획 (2015~2019)

근로자가 안전한 삶과 행복을 영위하는 안전행복사회 구현

안전한 일터, 건강한 근로자, 행복한 대한민국

고삐풀린 규제완화, 끝없는 유연화와 안전한 일터는 공존 불가

선진국 수준의 안전 일터 구현

2013년 재해자 수 9만 1,824명, 업무상 교통사고 제외하니 재해율 감소?

14년 산업재해자 6만명대로 감소 → 재해율 0.5% 달성

19년 사고사망만인율 0.3% 대로 감소

산재은폐 강력히 단속하지 않으면 의미없는 목표일 뿐!

노사 자율적 재해예방활동 제도화

안전보건 주체별 책임강화를 통한 안전보건 질서 확립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책임이 아니라 권리!

비전

위험성 평가를 기반으로 한 자율안전보건시스템 정착 목표

민간참여를 통한 협력적 네트워크 구축

산재취약분야에 대한 지원 강화

30 ․

통권 134 2015.3

기본 방향

인프라 확충과 대응 능력 보강을 통한 안전보건정책 역량 강화

교육 강화와 인식제고를 통한 실천중심의 안전보건 문화 확산


3차 계획 (2010~2014)

4차 계획 (2015~2019)

위험성 평가 등 법 제도 기반 구축을 통한 자율적 산재예방활동 정착

기업, 노동자, 정부, 전문기관의 안전보건책임 명확화

노동자 책임을 말하려면 진짜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라!

산업안전보건 거버넌스 구축 등 참여와 협력을 통한 서비스 전달체계 다원화

재해요인, 취약계층 등 산재대응능력제고

건설업 산재사망 증가, 빈발한 화학물질 관련 사고. 제대로 된 평가는?

특성화된 예방대책 추진을 통한 사업실효성 제고

확고한 법, 정보시스템 등 기반 구축

확고한 기반 구축은 충분한 예산과 인력 확보로부터!

추진 계획

선제적 질병예방 관리체계 구축

안전문화 확산을 통한 안전의식 내재화, 생활화

산업안전보건 행정역량강화

실천 중심의 안전보건 문화 확산

여전히 1인당 4~5,000개 사업장을 담당하는 산업안전감독관

l 일터 l ․ 31


의사들은 왜 산재를 두려워하나요? 최민 선전위원장(직업환경의학전문의)

고등학교 급식실에서 10여 년간 조리노동자로 일한 여성 노동자였다. 노동조합에서 요구해 교육 청에서 실시했던 ‘학교급식종사자 근골격계 질환 예방 사업’에 참여해서 내가 진찰하고, 치료가 필요 할 것으로 보여 서울까지 와서 정밀 검사를 마쳤던 터다. 정밀검사 결과 확인된 환자의 진단명은 ‘회전근개 완전 파열’. 팔을 몸통에 붙잡아두는 근육 중 하나가 완전히 끊어져서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통증이 심하고, 물건을 들기도 어려운 상태였다. 팔을 반복적으로 쓰는 작업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했다. 지역 이 먼 관계로 정밀검사 결과까지 알려준 후 산재 신청과 이후 치료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고 있었는 데, 어느 날 그녀가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수술한 선생님이 저 산재 안 될 거래요. 저 산재 안 되는 거예요? 저 산재 안 되면 안 돼요. 돈 없어요. 다른 쪽도 수술하라는데, 산재 안 되면 저 수술 안 할 거예요.”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고, 우리는 오른쪽만 검사했었는데, 진료를 의뢰한 정형외과 교수 소견으로 는 나머지 어깨도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나보다. 첫 번째 수술 후 입원했을 때는 산재가 될 거라고 했던 정형외과 의사가 수술 후 처음 방문한 외래에서 ‘정말 산재가 될까요?’ 라고 물어봤더 니, 산재는 무슨 산재냐고, 그런 소리 말라고, 자기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단다.

화가 난다. 우리나라 산재 보험은 ‘일 때문에 생긴 질병’이라고 직업환경의학 의사에게 진단까지 받은 환자가 산재 승인이 될지 걱정돼 울며 전화할 정도로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화가 나는 것은 그 의사다. 대체 의사들은 왜 그럴까?

이 환자 뿐만이 아니다. 치료하는 의사로부터 산재 환자라고 꺼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호소하는 얘기를 꽤 듣는다. 실제로 많은 의사들이 산재 환자를 귀찮아하기도 한다. 환자 1명 당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진료해야 하는 대학병원 외래에서 일하다 다치고, 일 때문에 아프게 됐다는 환 자의 억울한 사연을 듣는 것도, 업무관련성과 관련된 소견서를 쓰거나 공단에 제출해야 할 간단한 문서를 쓰는 것도 피곤하고 귀찮을 수 있다.

32 ․

통권 134 2015.3


최선을 다 하더라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직업의 특성상 의사는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도록 배운다. 의학적인 소견, 예후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산재가 될까요?’라는 환자의 질문이 두렵 거나, 자신이 대답하기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실제로 산재 신청을 하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이 되고 산재와 건강보험이 환자에게 무엇이 다른지 모르는 의사가 대부분이다.

그럼 산재가 승인될지 어떨지는 모르더라도, 이 병이 업무와 관련이 있는지라도 속 시원히 말해 주면 좋은데 그것도 어렵다. 무엇보다 의사는 다양한 ‘노동’과 몸과 마음의 거리가 멀다. 자기 환자 에게 무슨 일 하는지 안 물어보는 것도 문제지만, 환자들이 직업을 얘기해도 그 직업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기 어렵다. 나 같은 직업환경의학 의사도 직업 이름, 회사 이름만 듣고 그 노동자 의 노동 강도, 구체적인 노동 형태를 짐작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의사 입장에서는 자 신이 모르는 질문을 하는 환자가 두렵고 귀찮은 것이다.

‘산재 승인될 가능성이 높다’고 겨우 달래 전화를 끊었다. 결국, 환자는 얼마 후 산재 승인을 받 았고 무사히 수술도 잘 마쳤다. 산재 승인됐다고 고마웠다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기분이 씁쓸했다. 의사들이 산재 환자들을 예방 가능한 질병 치료의 동반자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환 자들의 노동과 삶을 들여다보는 의학 교육, 환자와 의사가 서로 질문하고 답할 수 있는 진료 환경 도 우리의 과제다.

일터

l 일터 l ․ 33


[작업중지권 기획]

살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이진우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팀

현대제철은 2013년 한 해 동안 10명의 노동자가 산재 사고로 사망하여, 2014년 최악의 살인기 업으로 선정된 사업장이다. 이후 노동부의 집중관리대상이 되면서 사측에서도 안전 관련 부분에 투자가 일정부분 진행되었다. 정규직지회 노안부장에 의하면 안전 인력이 3배 가까이 늘었고, 사 망사고와 사고빈도도 상당히 줄었다고 한다. 또한 조합원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 수준자체도 높아 졌다고 한다. 반면, 현대제철 당진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지난 2012년 결성한 비정규직지회가 사업장 안 전에 대해 느끼는 것은 정규직지회와 큰 온도차가 있었다. 현대제철 내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은 주로 중앙관제실, 관리, 통제, 업무지시 등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제 생산을 담당하거나 정비를 한다. 1차 협력업체가 70여개, 2차 협력업체까지 150여개 정도 되어, 정규직은 4천 명, 비정규직은 1만 여명 정도다. 현재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850명 정도다.

하청업체에는 잔류가스 측정기기도 없어 작업중지권 경험도 정규직 지회와 비정규직 지회가 많이 달랐다. 현대제철 지회 : 2013년 신설공장 안전점검 중 비계 설치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제기 했 고, 그 날 작업을 못 한 적이 있다. 물론 직영도 사고가 나기 전에 작업중지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차사고나 재해사고가 났을 때 보완책 마련 차원에서 작업중지를 요구하는 경우는 많다. 작업중지 했을 때 부사장이 내려와 작업중지를 풀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게 노동조합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노조에 힘이 없다면, 회사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비정규직 지회 : 제철소는 365일 가동된다. 라인을 잡으면 전 공장이 가동이 중단되기 때문에 사 실상 작업중지권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작업중지를 한 경험은 없고, 작업거부는 해본 경험이 있 다. 고로에서 발생한 가스를 이송하는 내경 2m 정도의 배관 안에 들어가서 용접을 해야 하는 일 이 있다. 그런데 배기가 제대로 안 된 상태라서, 같이 일하는 작업자들에게 나오시라고 하고 작업 을 거부했다. 문제는 잔류가스 측정기기를 하청업체가 가지고 있지 않으니, 가스가 있다는 걸 증 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회사에 중대재해 문제로 근로감독관이 상주하던 시기여서 그 사람들을 불러서 확인하고, 작업 중단해야 한다고 결정됐다. 사실 작업거부도 어렵다. 업체는 위

34 ․

통권 134 2015.3


험하면 하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원청은 업체에게 해당 업무에 대한 오더를 취소 하기도 한다. 또, 작업을 안 하는 시간동안 급여를 못 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 다.

비정규직 사고 처리에도 비정규직 지회는 배제돼 숱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서, 회사의 사고 처리 과정은 빨라지고 회사에서 정규직 지회에 보 고하는 시스템도 자리를 잡고 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사망 사고 처리, 사망 사고 예방 대상에서 소외돼 있다. 현대제철 지회 : 사고발생 대응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 사내 119가 사고 확인 후 바로 출동 해, 전 공장에 15분 내로 도착이 가능하다. 상황실에서는 지회 노안부장 2명과 노안차장들까지 문자를 발송한다. 예전에는 사내 의료 시설에서 치료 받는 정도의 사고는 보고하지 않았는데, 노 조가 문제제기 한 후 그 내용도 보고받고 있다. 하청 노동자가 다친 것도 100% 보고 받는다. 만약에 은폐 사고가 난다면, 그 업체 대표를 재계약 시기에 퇴출시키도록 회사에 압력을 행사하 기도 한다. 비정규직 지회 : 사고가 나면 업체 관계자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누구 본 사람 있냐?”는 거다. 본 사람 없다고 하면, 개인 승용차에 태워 회사랑 상관없는 병원으로 가서 다친 사람이 돈 내고 치료받게 한다. 이런 식으로 자주 은폐되기 때문에 하청에서는 사고가 얼마나 자주, 어떻게 발생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내 119가 출동하는 경우 정규직지회에게는 통보를 해주는 것으로 알지 만, 매번 물어보고,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수습 과정에서는 잠시 작업이 중단되고, 원청 안전 쪽에서 사고현장 보존, 출입통제, 사고 관 련 조사를 정규직지회와 진행한다. 하청 노동자가 다쳤어도 비정규직지회는 참여 못 한다. 노사 합동안전점검도 회사랑 정규직지회에서 하고 비정규직지회는 개입할 수 없다. 원청은 ‘시설은 우 리 것인데, 너희는 우리 회사 사람도 아니고, 이 시설에 대한 권한도 없는데 왜 같이 하느냐’고 한다.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이 다하는 데, 설비시설에 대해 말할 권한은 없다. 사고 소식은 나중 에 업체마다 게시판에 게시되거나, 아침 조회 때 잠깐 얘기하는 수준이다.

일터

l 일터 l ․ 35


[노동시간센터(준) 특집]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노동시간

스마트하고 새로운 노동세계 김영선 노동시간센터(준)/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노동과 비노동 간의 관계와 관련해 산업사회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노동시간과 여 타 남는 시간 간의 ‘분리’다. 대공장으로 표상되는 산업사회 이후 노동시간은 성긴 형태에서 보다 규칙적이고 연속적이고 조밀한 형태로 바뀌었다. 이와 동시에 성기고 느슨한 시간들 및 ‘낭비적인’ 요소들은 제거되고 작업장 밖 여타 남는 시간으로 배치되어야 했다. 이것이 ‘분리’ 가 함축하는 바다. 그런데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 간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노동시간과 여타 남는 시간 간의 경계가 흐려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다양한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그것은 산업시대 ‘표준화’를 지향했던 노동시간의 패턴이 디지털 모바일 기 술을 매개로 ‘비표준화’되어 간다는 의미다. 그 변화는 단순한 형태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질적인 차이를 내포한다. 여기서는 그 차이를 중심으로 디지털 모바일 시대의 노동시간과 비노동시간 간의 관계가 어떻게 재구조화되는지 일별한다. 여느 나라보다 디지털 모바일 기 술의 파급 속도가 유난히 빠른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노동시간의 유연화가 유독 급격히 진행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간의 구조적 유사성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공통적인 시공간의 삭제

디지털 모바일 시대 눈에 띠는 변화는 표준화된 전일노동이라는 노동패턴이 전반적으로 감소한다는 점이다. 출근에서 퇴근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진 노동패턴이 아닌 비표준 형태의 노동들이 여기에 해당할텐데, 이를테면 콜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대리운전 기사에게 언제, 얼마동안 일하느냐하는 시간의 관리는 기존의 전일노동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퀵서비스 기사, 방문판매원, 보험설계사, 프로젝트 기반의 전문직 종사자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노 동자들은 독특한 시간의 세계에 놓이게 되는데, 그것은 출퇴근이라는 리듬과는 별개로 콜 신 호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움직이는 그런 비규칙적인 리듬의 세계다. 여기서 연속적인 길이로 서의 전일노동은 무의미하다. 디지털 모바일 기술은 업무의 발생시점, 순서, 지속시간, 종료 시점 등을 재구조화함으로써 노동의 단시간성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36 ․

통권 134 2015.3


물론 대리운전 기사는 일하는 시간을 얼마나 어떻게 쪼개든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 시 공간 구속적인 업무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자율적이다. 그러나 콜 신호에 따라 여기저기 떠돌며 불연속적이고 조각난 일들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그 자율성은 허구적인 수 사에 불과하다. 형식적으로는 자율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콜 신호를 받기 위해 대기해야하고 조각난 여러 건수들을 알아서 엮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부 초처럼 정처 없이 표류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리차드 세넷의 지적은 이와 상통한다. 이러한 세계에서 전일노동이라는 시간적 묶음은 진부한 것이 된다. 공간 차원에서도 디지털 모바일 노동의 질적 차이는 발견되는데, 그것은 공장이나 사무실 같은 집단적인 장소에 구속됐던 업무들이 탈공간화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모바일 기술이 매 개된 노동에는 특수한 공간에의 구속성이 더욱 불필요해진다. 온갖 생산도구 기능이 집단적 인 장소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인간의 신체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비 가시적인 조직 네트워크에 디지털로 연결된 형태로 조각난 업무들을 실행할 뿐이다. 이러한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특정한 장소에서 서로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이 비동시적인 의사소통 을 가능하게 한 디지털 모바일 기술에 연결될 뿐이다. 그것은 공장이나 사무실에 구속된 노 동과는 상이한 모습이다. 노동의 장소성은 사라지고 오직 ‘개인화된 노동’만이 디지털 네트워 크에 걸쳐져 있기에 전례 없는 수준으로 이동성이 극대화된다.

함께 쉬기의 침식

“노동과정이 장소에 묶이지 않는다.”는 말을 관계 차원에서 다시 풀어보면, ‘동일한 장소에 서 함께 일하기’의 정체성이 침식된다는 의미다. 공동의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 동안 함께 일 하기가 가져다주는 집합적인 경험과 감각 말이다. 디지털 모바일 기술이 적용되면서 특정 장 소에서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 자체가 줄어들기에, 콜 신호에 의해 매개되는 개인화 된 노동 이외에 어떤 사회적 관계도 없게 된다. 물론 콜 신호 주변의 사회관계가 가능하기 는 하지만, 그것은 시간성이 요구되는 ‘관계’라기보다는 일종의 우발적이고 단속적인 ‘마주침’ 에 불과하다. 노동의 탈공간화는 또한 ‘함께 쉬기’의 정체성을 침식한다. “(업무 전) 차 한 잔 합시다”, “(점심식사 후) 커피 한 잔 합시다”, “(쉬는 시간) 담배 한대 태워요?” 등의 여유시간-휴게시 간이 발생할 수 없다. “퇴근은 언제하나요?”, “(퇴근 후) 소주 한 잔 합시다”, “올 여름 휴가 는 언제로 잡아야하는지?” 등의 표현도 성립되지 않는다. 관계적이고 의례적인 성격의 함께 쉬기는 사라지고 만다. 경험은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생겨난다. 공통의 시공간은 집합적인 경험을 담아낼 수 있

l 일터 l ․ 37


는 틀을 제공한다. 전통적으로 노동자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공장지대나 생활공간, 의복 양식, 조직의례, 이완의 시공간이었다. 이에 반해 디지털 모바일 노동자의 경험들은 콜 신호 가 뜨는 시공간으로 분절된다. 문화적 동질성을 구축할 공통의 토대가 사라지면서 디지털 모 바일 노동자의 시간은 지극히 개별화된 사건들로 채워진다. 이렇게 노동의 탈시공간화는 (노 동일에 포함되어 있던) ‘집단이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공통 경험, 시간에 대한 공통 감각, 다시 말해 집합적인, 관계적인, 의례적인 시공간감을 제거하는 것을 내포한다.

미래 서사가 불가능한 삶

시계 시간에 의해 규정된 ‘시간 지향적인’ 노동패턴이 산업사회의 결정적 특징이라면, 디지 털 모바일 기술을 매개로 시간 지향적인 노동의 의미는 퇴색된다. 이는 노동이 ‘노동시간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건수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음을 의 미한다. 특정한 시공간에서의 작업과정에 기초한 업무평가가 아니라 콜 신호로 상징되는 건 수와 실적에 기초한 평가가 중요해지는 노동세계의 도래 말이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삶의 파편화 가능성도 일반화시킨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자신의 삶을 연속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어떤 전후 연관성도 사라 지게 한다. 오늘의 일과표와 내일의 일과표 간의 연속성을 찾을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 이 어떻게 벌어질지를 예측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노동자 개인은 수시로 자신의 인생사를 취사선택하고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위험을 계 급지위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위험 가능성이 하층에 더욱 축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취약 노동자 개인의 생애사는 파손당하기 십상이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노동시간 전후의 여타 남는 시간들을 안정적으로 기획하기 어렵게 한다. 생활패턴을 엇갈리게 하는 것은 물론 가족시간을 단절시킨다. 식사시간, 쉬는 시간, 여 가시간, 수면시간 역시 파편화시킨다. 분절화된 노동패턴은 시간 사용의 불규칙성과 비예측 성을 낳고 자율적인 시간 사용의 안정적인 주기성까지 침해하기 때문이다. 시간구조는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독특한 노동시간표는 여타 남는 시간을 질적 으로 다르게 모양 짓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디지털 모바일 기술을 장착한 특수고용노동자들 에게 소위 ‘8시간 잠-8시간 노동-8시간 휴식’이라는 구호는 공허허기만 하다.

38 ․

통권 134

2015.3


위험의 개인화

디지털 모바일 기술에 따른 노동의 탈공간화는 산업사회가 요구했던 시간규율을 위한 비 용까지 부차화한다. 더 이상 자본의 입장에서 시간규율은 불필요해진다는 의미다. 콜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노동자들에게도 외적인 형태의 시간규율은 무의미해진다. “지각했다.”, “시간 을 못 지킨다.”, “점심시간이다.”, “퇴근시간이다.” 등 규범적인 차원의 표현들은 모두 사라지 고, 오직 개별적으로 분절된 콜 신호에의 시간엄수가 관건이 된다. 이는 산업사회의 집합적 인 시간엄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의 본 모습은 전일노동이 담보했던 조직적 전제들을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하는데서 두드러진다. 전일노동 시대 기업 조직이 제공해야 했던 집합적인 보장·보호 기능을 없애버린다는 이야기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가면을 더 이상 쓸 필요가 없게 된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에서는 전일노동 중간중간에 배치됐던 휴게시간은 발생하지 않는 다. 각종 부가급여도 애초에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전자장비를 구입·유지하기 위해 들이는 모든 비용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건강상의 위험이나 미래 불안에 대처 하는 비용까지 노동자 개인이 감수해야한다. 공간적인 탈중심화가 이뤄지면서 노동자는 자기 노동에 대한 주권을 얻은 듯 보이지만, 동시에 이런 노동에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사적인 문제가 되어 버린다. 디지털 모바일 노동은 위험을 더욱 개인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디지털 모바일 기술을 매개로 더욱 두드러진 시간 경계의 모호함은 산업사회 노동시간을 둘러싼 노동과 자본 간의 투쟁 더 구체적으로 말해, 자유시간을 손에 넣기 위한 노동의 투쟁을 유의미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노동과 자본 간 공통의 분모가 되었던 ‘노동시 간’의 척도적 의미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시간당 얼마’라는 시간과 임금 간의 연결고리가 해체되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노동의 오랜 구호는 무용지물이 된다. 오직 콜 신호에 따른 건수와 실적을 채우는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시간으로 환원 할 수 없는 형태의 일들이다. 새로운 형태의 노동세계에서 자유시간을 손에 넣기 위한 투쟁 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디지털 모바일 기술이 유난히 빠르게 파급되는 한국사회에 서 더욱 고민해야 하는 지점일 것이다.

일터

필자 김영선은 노동시간센터(준) 회원이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있다. 「잃어버린 10일(이학사, 2011)」과 「과로사회(이매진, 2013)」를 집필했다.

l 일터 l ․ 39


웹툰으로 엿본 IT업계 그녀들의 사정 정하나 선전위원

내 지식의 8할은 만화책으로부터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정만화에서 연애를 배운 것으로 시작, 요리만화로 아직 한 번 본 적도 없는 세계 유명 음식들과 음식재료들을 알게 되었 다. 연극배우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받는 훈련을 따라 나도 연기수업을 들었 고, 무협만화 같은 데에서 왕왕 인용되는 성어나 한자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선명하게 기억 에 남아있다. 사실 만화는 정보와 지식 이상을 알게 해 주었다. 맛을 추구하며 쌓아가는 요리노동, 배우 외 에 빛을 숨긴 많은 사람이 협업으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예술의 과정, 역사적 인물들이 살았 던 시대와 일상을, 만화를 통해 그야말로 ‘보았다’. 만화를 통해 그렇게 다른 분야를 엿보고, 타 인의 삶과 가치를 짐작해본다. 요즘은 자기 전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만화(웹툰)를 보다가 잠들곤 한다. 최근 재미나게 보고 있는 웹툰은 ≪게임회사 여직원들≫이다. 보면 볼수록 IT업계, 게임회사 노동자들의 현실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게임 캐릭터와 배경효과를 디자인하는 그래픽디자 이너 마시멜 씨, 게임시스템 전체를 구현하는 프로그 래머 름 씨, 아이디어를 내고 각 공정을 기획하는 게 임기획자 기혜 씨. 성격도 직무 내용도 아주 다른 이 세 주인공은 중소 게임개발업체 ‘식빵소프트’에 다니 고 있다. 여성인력이 많지 않은 게임업계에서 다들 4~7년 정도씩 일한 경력자들이다. 프로그래머 곰개발 씨와 관리자인 맹팀장님도 있다. 식빵소프트社 주인공들이 각자의 업무를 하는 중에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 동료들과 함께 회의할 때의 오가는 이야기들을 매주 2회씩 보고 있노라면 IT 업 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을 간접경험 할 수 있 다. 야근을 자주, 길게 하는 것은 마치 IT노동자의 필 수요건처럼 여겨진다. ≪게임회사 여직원들≫에서도 ▲ 야근을 밥 먹듯 하는 그들에게 수면부족과 불면증은 일상이다. (출처: ‘게임회사 여직원들’ 11화 中)

40 ․

통권 134 2015.3

야근 코드가 단연 자주 등장한다. 야근과 철야, 주말 출근이 아니면 불가능한 무리한 개발 일정을 요구하


는 투자자 앞에서 식빵사장님도, 맹팀장도 입도 뻥긋 못한다. 평소 똑소리나는 성격인 데다, 경 력도 오래되어 사내 발언력이 센 기혜 씨도 투자자 미팅에서 정해진 일정을 뒤엎진 못한다. 야 근 강행군에 허덕이는 팀원들을 보다 못해 ‘1일 강제 칼퇴’를 제안하는 정도이다. 그 중 프로그 래머 름 씨가 야근을 가장 자주 한다. 이른 아침 1등으로 출근한 줄 알고 좋아하던 마시멜 씨 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름 씨를 발견하고 “출근을 일찍 한 건지, 퇴근을 안 한 건지 잘 모 르겠다”며 갸우뚱하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 야근 많이 하는 IT노동자들이 출근시 졸다가 하차역을 놓치지 않도록 깨워달라는 메시지를 넣어 실제 판매중인 모자. IT회사 밀집지역인 선릉역, 판교역, 구로디지털단지역, 가산디지털단지역 4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출처: startupkit.kr)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몇 년간 평일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출근까지 수도 없이 해왔던 그들이 지만, ≪게임회사 여직원≫ 중 누구도 수당을 받아본 적은 없다. “우리 회사도 야근 수당 나오 면 얼마나 좋을까요? 돈이라도 좀 벌게” 하던 누군가의 말에 “근데 야근 수당이 얼마에요?”라고 되묻던 장면, 그 후 잠시 정적이 흐르고 ‘7년 차’ 기혜 씨가 (ㅠ_ㅠ) 표정으로 답한다. “한 번도 안 받아봐서 얼마인지 모르겠어요.” 최근 몇 년간의 IT업종 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하루 회사 상주 노동시간만 약 12시간이라고 한다. 「을이라도 되고 싶은 IT노동자 증언대회(2013,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장하나 의원실 주최)」자료집에 실린 여러 IT노동자들의 증언도 하나같이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과 노동의 가치 가 인정될 수 없는 구조에 대한 불만을 1순위로 꼽는다. 촉박하게 마감 시기를 정하고 사정없이 쪼아대는 투자자와 도급업체에 대한 울분, 하청에 하청으로 계약을 하다 보니 생산물(게임이나 앱, 관리 시스템 등)이 나오기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노동이 평가절하되는 현실, 몸은 몸대 로 축나고 파괴되는 일상에 대해 토로가 넘쳐난다. 그 중에서도 모 정보시스템 회사에서 일하는 2년 반 동안 약 8,000시간을 일했다던 양모 씨 의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계속되는 과로에 폐렴에 걸렸고,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일반 항생제 치료가 소용이 없어 폐를 일부 절제했다는 그의 증언을 읽으며 웹툰 주인공들의 얼굴이 겹친다. 명랑만화 컨셉이니 새드엔딩은 없겠지만 그렇다손 웹툰 속 그녀들의 사정이 뭐 얼마나 다르겠는 가? 언제나 귀엽고, 대부분 발랄한 웹툰 속 행간이 이렇게 채워지는 듯하다.

일터

l 일터 l ․ 41


씹다 버려진 껌이 된 KTX 승무원 해고자들 유 상 철 노무법인 필 노무사 nextstep1@hanmail.net

지난 2월 26일 대법원은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7명이 제기한 근로 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여 4명은 현대차 소속 노동자임은 인정한 다고 확정판결을 하였다. 그러나 현대차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성립되어 있지 는 않다고 하였다. 불법파견 사건은 복잡한 법률적 판단 기준이 적용되는 판결이 다. 그러나 이 사건은 2005년 소송을 제기한 날로부터 확정되기까지 10년이 걸렸 다. 왜일까? 같은 날 대법원은 ‘KTX 승무원’ 사건에서 “묵시적 근로관계 법리와 근로자파견 판단 기준을 동일하게 전제하면서도 KTX 승무원은 한국철도공사와 묵시적 근로계 약관계에 있지 않고, 근로자파견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며 한국철도공사의 근로자 지위에 있지 않다.”라는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1심, 2심 판결을 뒤엎었다. 2006년 해고되고, 2008년 소송을 제기한 후 대법원 판결까지 약 10년이 걸렸다. 2008년 한국철도공사는 교섭 과정에서 ‘1심 판결에 따르겠다’는 말을 하였지만 계 속 소송을 이어가 2015년에 이르렀다. 그 사이 KTX 승무원들은 민사소송을 통해 월 180만 원의 임금 상당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당시 KTX 승무 원들의 사용자는 ‘한국철도공사’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 법원은 장기간 시간을 끌다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기존의 판결을 뒤엎었다. 소 송을 제기한 KTX 승무원들은 하루아침에 1억 원을 빚진 채무자로 전락하였다. 약 10년 가까운 해고 기간 동안 소송만 7년, 대법원 판결만 4년이 걸렸다. 그런데 대 법원의 납득할 수 없는 판결로 지난 10년의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상황에 놓였다.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처음 소송에서 지는 편이 나을 뻔했다.”라는 자조가 터져 나왔다.

42 ․

통권 134

2015.3


3월 4일 서울역 광장에 다시 모인 KTX 승무원들은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씹다 버려진 껌이 돼 버린 기분”이라는 발언과 함께 “회사도 정부도 대법원도 과연 이 렇게 헌신짝 버리듯이 내팽개칠 수 있을까?”, “승무원이 담당해야 할 안전 업무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단순 서비스직으로 치부하는 대법원 판결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그동안 법원은 KTX 승무원들의 주장을 계속해서 인정해왔다. 대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식의 판결이 이 사회에서 믿 음을 얻을 수 있는지 그 배경과 저의가 무엇인지 알 것도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서 “정든 일터인 KTX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투쟁의 지를 불태웠다. 대법원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로 인해 이들은 다시 거리로 내몰렸 다. 사법부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분명 배후가 있을 것이다. 왜 일까? 상황이 역전되어 승자로 돌변한 한국철도공사는 안타깝지만 법원의 판결을 수 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교섭은 할 수 없고, 임금 상당액은 반환 조치해야 한다 는 입장을 밝혔다. 2014년 12월 29일 정부가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 대책에서 생 명․안전 핵심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겠고 하였다. “(국민의 생명․안전 분 야) 여객운송 선박, 철도(도시철도 포함), 항공사업 중 생명․안전 핵심 업무(여객선 선장․기관사, 철도 기관사․관제사, 항공 조종사․관제사)에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 사 용 제한”의 방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대책은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추진된 것이 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안전을 중요시한다는 명분만 있을 뿐 핵심은 빠져 있었다. 각 분야에서 ‘승무원’ 업무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KTX 승무원의 업무 가 생명․안전의 핵심 업무냐 아니냐는 논의는 제쳐두더라도 대법원이 “코레일 소 속 열차팀장의 업무와 KTX 승무원의 업무가 구분됐으며, 한국 철도유통이 독립적 으로 KTX 승객 서비스업을 경영하고 직접 고용한 KTX 승무원을 관리하면서 인 사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무 자르듯이 판단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최근 사장을 사장이라 부르지 못하고, 사장이 누군지 알 수 없거나 진짜 사장 인데 아니라고 주장하는 고용관계가 늘어나고 있다. 직접 고용이 아니라 간접고용 이 무분별하게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위탁사업자, 자유 소득자로 둔갑하여 노동자가 아니라고 치부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해법을 찾 고 싶다. 뒤죽박죽 뒤엉켜버린 노동시장의 왜곡된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씹다 버려진 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일터

l 일터 l ․ 43


여성노동자,‘노동’, ‘사회적인 것’, ‘건강’의 경계를 질문하다 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관절, 척추치료로 유명한 병원에 간 일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청소 노 동자 두 분이 옆으로 오셨다. 한 분이 다른 한 분에게 물었다. "그래서 허리는 좀 어때?" 다 른 한 분이 대답했다. "아주 죽겠어. 움직이지를 못하겠네." "그럼 어떡해?"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아. 점점 더 아프기만 하고. 손 쓸 도리가 없어." 더는 둘 다 아무 말도 하 지 않았다. 몇 년간 디스크로 고생하다가 수술 없이 치료했다는 환자들의 후기가 자랑스레 걸려있는 병원에서 조용하고 담담하게 오가던 두 분의 대화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았다. 왜 여성들은 이렇게 아픈가? 지난 3월 6일은 고 황유미 씨의 기일이다. 나는 <전자산업 여성노동자 건강권 모임>에서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셨던 박민숙 님을 만나게 되었고, 민숙 님을 통해 90년대 전자산업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의 경험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 다. 민숙 님이 다니던 공장은 수원에 있었는데 기계를 만지는 엔지니어는 모두 남성이었고,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을 담당하는 오퍼레이터는 모두 여성이었다. 삼성은 오퍼레이터 대부분 을 전라도에서 전세버스를 태워 모셔왔다. 민숙님 또한 고향이 전라도 벌교였다. 민숙 님과 동료들은 고등학교를 열아홉, 스물에 입사했고 대부분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기숙사에 살았다. 농촌에서 이주한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삼성이 가장 원하는 노동자였다. 그건 그녀들이 삼성이 강요하는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화학약품들로 둘러싸인 노동 조건 등을 감내할 이 유가 많았기 때문이다. 박민숙님은 처음 입사를 해 2Kg짜리 상자 2~3개를 들고 설비와 설비 사이를 종일 뛰어다니다가 3개월 만에 아킬레스건이 끊어졌다. 그러나 민숙 님은 당시 그냥 묵묵히 현실을 다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계시고 일자리도 없는 벌교로 갈 수는 없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민숙 님이 이직을 결심했더라도 더 나은 선택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허용된 일자리라는 게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오퍼레이터들의 월 급은 엔지니어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성 노동 시장의 전반적인 저임금 때문에 그 돈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이 아니었다. 44 ․

통권 134

2015.3


이건 민숙 님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수많은 여성노동자가 삼성을 비롯한 초국적 자본의 공장에서 일한다. 이런 공장은 주로 가장 가난한 지역, 즉 가 장 지대가 싼 곳에 자리 잡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이주한 여성들을 고용한다. 더 많은 빈곤, 더 많은 가족의 불행이 여성들을 이 열 악한 노동지대로 몬다. 가부장적 질서가 더 강력한 농촌 지역에서 이주한 여성들은 회사 내 의 성별 임금 격차, 남성관리자와 여성노동자의 권력 차이를 더 많이 인내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어디에서나 성별 위계는 자본과 관리자가 여성노동자를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한편 여성의 '전통적인' 생애주기도 자본에 유리하다. 여성이 20대 후반에 출산과 육아 때 문에 회사를 그만둔다면 회사로서는 해고의 부담 없이 젊고 건강한 노동자들을 언제든지 고 용할 수 있고 노동자의 몸이 소모되어 생산력이 떨어지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 다. 가정에서 무상으로 출산노동과 육아노동, 가사노동, 감정노동, 돌봄노동으로 사람들을 낳 고 먹이고 입히고 돌보던 여성들이 다시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자본은 예전보다 더 낮은 임금, 더 열악한 노동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이처럼 여성들은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가정에서, 거리에서, 작업장에서, 저임금으로 때로는 그것조차 없이 한 곳의 노동이 끝나면 또 다른 곳에서 끊임없이 일해왔지만 그들의 건강은 누구도 제대로 돌본 일이 없다. 그들 자신조차 말이다. 지난 호 <일터>에는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집단유산과 선천성 심장실환아 출산이 산업재 해로 인정되었다는 글이 실렸다. 이처럼 여성이 놓인 현실은 지금까지 남성들의 몸과 노동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기준을 다시 정의하게 한다. 노동자의 손상을 노동재해라 말하는 건 사회 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손상은 개인적인 관리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인 책임의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일 테다. 그렇다면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들의 질병은 노동재해가 될 수 있을까? 가정에서 전업주부로 일하는 여성의 근육통, 혹은 우 울증, 혹은 남편으로부터의 성폭력은 어떠한가? 성 노동자의 건강권은 지금 사회적으로 보장 받고 있는가? 일하는 여성의 현실은 '사회적인 것'과 '노동' 그 자체의 경계를 시험한다. 3.8 여성의 날은 이러한 위계와 분할에 저항하는 여성들이 모이는 날이다.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을 선언하고 있다. 그 선언에는 각자의 삶과 경험 의 결이 촘촘하게 엮여 있다. 봄이 온다는 사실만으로는 무엇도 낙관할 수 없는 때이지만,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여성들, 일하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그리고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결국 이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바꿀 힘이 될 거라는 것을 믿는다.

일터

l 일터 l ․ 45


<일터>와 함께한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보며 송홍석 소장

“이제 라인을 펴듯 허리를 펴자!”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창간준비 1호의 표지 제목이다. 골병의 원인이었던 굽은 생산라인을, 근골격계투쟁과 함께 허리를 쫙 펴듯 펴냈던 두원정공 노동 자들이 당시 창간 1호의 얼굴이었다. 2003년 연구소가 출범하면서 ‘이러한 현장 투쟁과 희망의 목소리를 더 많은 노동자에게 전파하고 알릴 수 있는 매체를 발간하자’, ‘그런데 많은 노동자에게 무겁지 않게 다가가야 하니까 노동자 삶의 모습도 담아낼 수 있는 잡지 형태로 만들어보자’, ‘노동자의 시선으로 만들려면 현장 노동자가 직접 일터 제작 과정 에 참여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렇게 근골격계 투쟁을 함께 만들면서 인연을 맺었던 울산, 거제, 안성, 대전, 군산, 광주 등 전국 각지의 노동자와 활 동가들이 대전에서 모였다. 우리는 일터 편집위원회를 구성하고 2003년 8월 첫 창간 준비 1호를 세상에 내놓았다. 대전에서 하는 전국편집회의는 당시 숨 가 쁘게 돌아갔던 현장 상황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지만, 당시엔 말 그대로 <노동 자가 만드는> 일터였다. 2003, 2004년 <일터> 초창기, 우리는 당시 자본의 지배와 통제에 억눌려 있 던 현장에서 근골격계 투쟁을 승리로 이끈 목소리를 전하고 싶어, ‘우리 일터, 이렇게 바꿨다’,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 대우조선, 현대자동차, 풀무원, 한라공 조, 삼호중공업, 대한이연, 두원정공 등의 사례를 담았다. 회사의 회유와 협박, 탄압을 이기고 근골격계 집단요양투쟁을 승리로 이끈 경험들, 현장 조합원들의 의식과 행동의 변화들. 당시엔 쓸 거리도, 희망을 전해줄 이야기도 꽤 있었다. 사진들도 이야기만큼이나 꽤 많이, 그리고 꽤 큼직큼직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 나 이후 <일터>에서는 형식화되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계속되는 산재 불승 인, 강제 요양 종결의 우울한 현실을 드러내고 대응을 모색하게 되었다. 당시 김재천이 기획한 <요양자 이야기>라는 꼭지가 있었는데, 산재인정과정의 어려 움, 요양과정의 어려움, 강제요양종결의 분통함, 부실한 재활치료 이야기, 복귀 후 근골 증상 재발로 우울하다는 요양자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했었다.

46 ․

통권 134 2015.3


자본과 국가의 대응 에 특별한 돌파구를 찾 지 못한 노동운동의 상 황을 반영하듯, 2005년 이후 한동안 매달 <일 터>를

발간하는

것이

꽤 힘들었다. 산재법 문 제,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 등 몇 년째 풀어 야 할 숙제로만 남아 있는 빈약한 기획 글,

▲ 2006년 노동자건강권 쟁취를 위한 선전전 때

성원이 안 되어 매달 편집 회의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현실들, 합본호의 경험들, 반복되는 편집 실수 들, 제작 비용의 만성 적자 등등이 겹쳤다. 실동회원 2~3인이 만들다 보니 매 달 1일 발행해야 하는 일터가 한동안 20일 넘게 지체되었던 적도 있었다. 한 달에 보름은 일터를 만드느라 힘들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책이 나오면 후 련하고 뿌듯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매체가 여전히 쓸 모 있다는, 노동의 입장에 선 안전보건분야의 유일한 종이 잡지라는 역사를 쭈 욱 이어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터>로만 보자면 2014년은 창간 원년만큼이나 기억되어야 할 해일 거 같 다. 창간 이후 처음으로 재정 자립을 이루었고, 오마이뉴스나 페이스북 등 더 많이 읽힐 수 있도록 하였고, 정기간행물로 등록되어 이제는 도서관에서도 볼 수 있다. 노동시간센터, 작업중지권 팀 활동 등 연구소 활동의 폭과 깊이가 더 해짐에 따라 글 내용도 풍부해졌다. 다만 한 가지 바란다면 이젠 잡지로서 대 중에게 보이는 겉모양새도 더 가다듬었으면 좋겠다. 현재 판형의 이점을 십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한데, 질 좋은 사진을 되도록 많이, 되도록 큼직큼 직하게, 아날로그적 감성을 실컷 살렸으면 좋겠다. 과거 일터에서 아날로그 감 성으로 치자면 예술적 재능을 선보이셨던 서울 상용직 노동자 고영복 그림, 글 김재천의 <컷 만화> <만평>도 참 좋았다. 11년여의 선전위를 정리하면서 이제 최고 연식 선전위원은 승종이 형이 될 거 같다. 승종이 형, 선전위를 잘 부탁해^^ 선전위원 동지들, 작년 한 해 수고 많으셨고, 앞으로도 종이책이 사라지는 그 날까지 화이팅!!!^^ 저를 포함하여 그동안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신 수많은 동지들, <일터> 만드느 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터

l 일터 l ․ 47


6) 2)

5)

1)

4)

7)

3) 8)

☞ 가로열쇠

☟ 세로열쇠

1. 2013년 한 해 10명의 노동자 사망으로 2014년 최악의

2. 지난 1월 15일 가스 누출 사고로 12명의 노동자들이 구토 및 마비 증상을 보였음에도 이를 방치한 사업장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사업장이다. 34p. 3. 지난 2월 14일 보일러실에서 이산화탄소 가스 다량 누

은? 12p.

출로, 현장 노동자 1명이 가스로 질식 사망했다. 이번

4. 광주지역 대표기업으로 지역주민의 사랑과 관심으로 성

에 사고가 난 00000과 지난해 2월 10명이 숨진 마우나

장한 향토기업이라고 주장하며 2010년부터 5년간의 워

오션 리조트 체육관 지붕 사고 모두 코오롱글로텍이 운

크아웃으로 1,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 결

영하는 사업장이다. 5p.

국 지난 2월 16일 故 김재기 노동자를 분신자결까지

5. 지난 1월 고용노동부는 000000에 따라 원청 사업주가

이르게 한 사업장은? 4p.

안전보건에 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사각지대가 넓어져

6. 00000란 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을 파악하고 개선방안을

제4차 산재예방 5개년 계획에 하청업체의 위험작업에

마련하는 포괄적인 안전보건평가이며 동시에 노동자의

대한 원·하청 공동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확대했다.

참여를 유도하고 보장하는 선진화된 사업장의 자율적인

27p.

안전보건예방관리시스템이다. 24p.

8. 박근혜 정부는 제4차 산재예방 5개년계획을(2015~2019)

7. 제3차 산업재해예방 5개년계획 (2010~2014)의 핵심 기

을 발표하며 000한 일터, 건강한 노동자, 행복한 대한

조는 위험성 평가, 노사자율 및 민간참여 유도 등 통한

민국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법과 제도조차

사업장의 0000보건시스템 마련이었다. 24p.

이행하지 않는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에서 이것들 이 가능할지 두고 볼일이다. 26p.

지난 호 정답자 중

48 ․

정답을 이름, 연락처와 함께 연구소 메일 laborr@jinbo.net이나

상품당첨자는

문자 010-3782-1871로 보내주세요.

강*주 님입니다.

정답자 중 추첨을 통해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통권 134 2015.3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