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노동자가 만드는 은 사업장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특집]작은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업장 작은 작은수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우리가사업장 열차를 달릴 있게 합니다 작은 사업장 작은 화장실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여성노동자의 왜 ‘문제’가 되지작은 않았을까? 사업장8%의 작은 사업장 작은사건이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기적:과로자살 행정법원에서 승소할 확률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통권 204호┃2021. 3 사업장 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 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 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 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사업장 작은
발행인 최민 발행기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영우, 경희, 기형, 지안, 혜인, 현석, 채은, 한소, 세은, 승종, 지나, 청희, 다연, 재영 만평 박원종 편집·표지 언제나봄그대곁에 인쇄 동광문화사 발송 산재공동체 발행일 2021.3.10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팩스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이메일 kilshlabor@gmail.com 홈페이지 www.kilsh.or.kr
독자에게
한 청년 노동자의 사고
6년 전 인천의 한 병원에 근무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응급실에서 심정지 환
자가 있다는 방송이 울려서 응급실에 가보았습니다. 응급실에서는 의료진이 심장마 사지 중이었습니다.
환자는 작은 인쇄소에서 일하던 20살이었는데 인쇄소 기계에 가슴을 찍히는 사
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이미 심장이 멎은 채로 구급차로 병원에 도착했었고, 30분 이상의 심폐소생술 시행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의 심장은 다시 뛰지
않았습니다. 황망한 사망에 유가족은 아직 연락이 되지 않았거나 병원에 오던 중이었
을 것입니다. 또래의 친구들은 대학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 그 청년은 일 찍 취업시장에 뛰어 들어서 사고를 당했나 봅니다.
제가 처음으로 접한 산재 사망사고였는데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어
찌 그리 큰 사고가 발생했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은 그 청년이 사망한 이후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신문 어느 곳에서도 그 청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고 어떻게 산재처리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몇 년 지나서 한 해에 산재로 이천 명이나 사망한다는 것, 또 몇 년 이후에
50인 미만 사업장 산재사망 노동자가 전체 사망노동자의 77%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많은 산재사고와 사망사고가 뉴스로 나오고 있지만 우리가 아
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것입니다. 특히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산재 사고는 더 알기 어려운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은 참 더디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 선전위원장
일터 1
사진으로 보는 세상
▲ LG트윈타워분회 82명, 코레일네트웍스지부와 철도고객센터지부 225명, 아시아나케이오지부 8명 이스타항공조종사지부 605명, 뉴대성자동차학원지부 5명. 노동자 천 명이 해고되어 투쟁 중이다. 2월, 공공운수노조는 정부 책임과 적극적인 해결을 촉구하며 공동 투쟁을 선포했다. 출처: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
2
노동자가 만드는
특집 04
문화로 읽는 노동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이 치열한 무기력을
■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실태와 개선과제 ■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선 지역 연대활동의 현재와 가능성 ■작은 사업장, 필요한 규제와 절실한 지원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42
지금 지역에서는
노동현장도, 건강검진 실시도 험난한 물류업계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44 사람이 먼저다. 노동자도 사람이다.
14
투쟁으로 세월을 살아낸 유성 노동자들, 10년 만에 합의서에 ‘금속노조’ 직인을 찍다!
알아보자, LAW동건강
16
여성노동 건강 상식
발칙 건강한 책방
연구리포트 19
우리의 투쟁은 모두 달라서
여성노동자의 화장실은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이러쿵저러쿵
23
8%의 기적 : 과로자살 사건이 행정법원에서 승소할 확률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6
46
날 열받게 한 건 사회인데 왜 내가 약 먹어야 하지?
산업재해 승인 이후 맞닥뜨린 사회보험의 현실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38
50
52
다양한 현장,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안전보건동향
54
한노보연 이모저모
56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현장의 목소리
30
기업-노동자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투쟁 일하는 이들의 무사한 삶을 위해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34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이백 네번째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일터 3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특집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실태와 개선과제
류현철 소장,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차별과 불평등의 역사는 길고도 질기다. 왕
리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억압받고 심지어 죽음
족·귀족과 평민·노예라는 혈통으로, 섬기는 신
에 이르기도 한다. 일터의 위험에 있어 불평등
과 믿음의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민족이나
과 차별은 만연하다.
인종과 피부색으로, 남성과 여성 혹은 기타의 성별로 차별해왔고 불평등을 당연시 했다. 시
작은 사업장 일터 안전건강에서의
대가 변하면서 차별과 불평등의 양상은 달라졌
차별과 불평등
지만 지속되고 있다. 신분제가 사라진 오늘 사
2020년 11월 전태일 50주기를 맞아 민주
농공상이나 반상(班常)의 구분은 사라졌을지
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에서는 『30인미만
몰라도, 직장 갑질, 하청노동, 비정규직, 파견노
‘작은사업장’ 노동자 실태와 정책대안』이라는
동, 근기법 11조 등 노동과 관련된 시사적 단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오늘의 전태
어들을 같이 꿸 수 있는 표제는 여전히 불평등
일 보고서’라는 부제를 단 보고서는 한국 사회
과 차별이다. 중세시대 차별의 잔혹성에 비하
에서 ‘작은’사업장 노동자들이 처한 불평등의
자면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21세기 노동의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8
현장에서 차별은 만연하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년 기준으로 30인 미만 작은 사업장 수는 전체
의 노동자들은 비교적 안전의 수준이 높아졌으
사업체의 97.9%, 종사자 수(자영업자 포함)로
며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경우에
는 61.1%가 작은 사업장에서 근무한다. 노동
는 위험수당이라는 명목으로 금전적 보상의 수
자 수는 2019년 8월 기준으로 약 58.4%가 작
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
은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여성, 고령자,
들은 여전히 위험하거나 더 위험해졌으며, 위
저학력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의 비중이
험수당은커녕 일자리를 유지하는 조건 자체가
높게 나타났다.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임
위험 감수를 전제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는
금, 노동시간, 종사상 지위, 사회보험, 안전보건
가에 따라서 불평등이 존재한다. 같은 일을 하
등 대부분의 권리에서 차별을 겪고 있음을 각
더라도 원청인지 하청인지에 따라서 차별이 발
종 통계와 질적 조사를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1)
생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나이가 어 1) 30인 미만 ‘작은사업장’ 노동자 실태와 정책대안 -오늘
4
노동자가 만드는
▲ 20년 12월 7일,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활동가 워크숍>이 있었다. 출처: 한노보연
이는 한국의 경제적 사회적 변화과정과 맞물려
된 기술력, 사업주의 의지, 정부의 규제 정책 등
있다. 1970년대 정부 주도하에 제조업 육성 정
등 다양하지만 이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
책을 바탕으로 해서 1980년대를 거치며 중화
하지 못하고 위험은 ‘작은’사업장에 수렴되고
학공업 중심으로 수출을 통해 성장한 대기업은
증폭된다. 원하청 관계를 통해 책임 없는 위험
독자적 성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는 대기
의 이전을 통한 기업의 이윤추구를 용인해주겠
업을 정점으로 하는 ‘하청 계열화’ 방식의 동원
다면 정부가 위험 관리의 책임을 지고 비용과
전략을 통해서 뒷받침되었으며 중소기업은 위
자원을 동원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존의 정
계화된 하청 시스템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고
책은 위험의 방조를 선택해왔다. 불공정한 거
말았다. 원하청 불공정거래로 인한 기업간 격
래관행을 개선을 통한 최소한의 안전보건관리
차는 확대되고 이는 결국 기업의 규모에 따른
비용을 보장해주지도 않았으며, 관련한 공공적
노동자들 간의 격차로 이어지고 사회적 불평등
지원은 미미했다. 오히려 작은 사업장에게 영
은 심화되고 있다.
세성을 이유로 안전보건관리체제 구성 등의 의 무를 면제해주고 소극적인 규제로 일관해왔다.
불평등은 일터 안전건강문제에서 더욱 적 나라하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시설, 장
사업주의 사후적 책임은 묻고 있으되 책임
비, 인력, 시술 등 자원이 소요되기 마련이나 불
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기제들을 동원할 의
공정한 원하청 거래관행으로 인해 작은 사업장
무나 안전보건 활동에 있어 노동자들의 참여보
에는 위험관리에 따르는 자원과 비용을 감당
장의 형식적 통로조차 미흡하다. 원청의 책임
할 능력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터의 안
에 대한 법적 규정 역시 실질적으로 담고 있지
전보건 수준과 관련된 요인은 위험통제와 관련
못하다. 위험을 관리할 시설과 자원에 대한 지 불 부담 능력이 없는 사업주가 위험을 담보로
의 전태일 보고서, 민주노총 총서 2020-03, 민주노동연구 원, 2020
생산이나 영업 활동을 유지하는 것을 영세하다
일터 5
는 이유로, 생존권 보장이라는 이유로 용인한
발생하고 있는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결과는 노동자들의 손상과 죽음으로 귀결된다.
들의 안전할 권리에 대한 가치절하를 노골적
2019년 산재 통계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으로 드러낸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의 사망 만인율은 1.65로 전체 평균 1.08보다
지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작은 사업장은 법적
1.5배 이상 높고 이는 산재 통계가 작성된 이후
기준에 맞는 안전보건조치를 제대로 하고 있지
로 변하지 않는 양상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 원청 기업이 적용
산재보험 대상 노동자 중 16.0%를 차지하지만
범위의 축소를 통해서 빠져나가고자하는 현실
사고 재해자중 33.9%, 사고 사망자 중 35.2%
의 반증이며 어차피 관리할 수 없으니 외면한
를 차지한다. 떨어짐, 끼임, 부딪힘, 깔림 등 재
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래식 사고의 위험이 관리되지 않고 있는 작은 사업장 노동자일수록 더 많이 다치고 죽는다.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질병재해에 있어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비
무엇부터 해야 하는가?
율은 17.4%, 질병사망자에서는 16.6%이지미
먼저, 책임의 공백을 채워야 한다. 사업주
만 이는 산재보상 절차와 승인에 있어서 장벽
의 안전보건 관리책임은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
이 더 높은 질병재해의 경우에는 작은 사업장
하게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위험관리 실패
노동자들의 접근성 자체가 낮다는 사실의 반증
의 결과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것
이기도 하다.2)
이기 때문이다. 사업장의 규모에 따라서가 아 니라 위험관리의 실패로 인해서 빚어지는 결과
이렇게 수 십년 간 변함없는 결과를 마주하
의 중대성에 따라 합당한 책임을 지우도록 해
면서도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관리는 해결 안
야 한다. 위험물(Hazard)을 중심으로 도급 금
되는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예방조치는 미진
지 등의 관리책임을 상향할 것이 아니라 일터
하고 생색만 내는 수준으로, 작은 사업장은 위
의 위험 관리에 소요되는 자원의 크기와 비용
험이 상존하지만 관리 책임은 공백인 상태가
지불능력에 따라 관리의 책임을 지워야 한다.
지속된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정에서 도 작은 사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대하는 제도
이를 위해서는 무엇이 얼마나 왜 위험한지
권의 인식의 일면은 그대로 드러난다. 중대재
알고 무엇부터 개입해야할지 파악하는 것이 우
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 과정은 한국 사회에
선이다. 국가적 수준의 위험성 평가가 필요하
서 노동자들과 시민의 안전에 대한 인식수준의
다. 위험성평가는 계속해서 본래 취지는 희석
성장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압축적인 산업화
되고 또 다른 규제로 늘어난 문서작업으로 여
와 경제성장과정에서 용인되던 노동재해에 대
겨진다. 정책 실패에 다름 아니다. 정부차원의
해 이제 기업의 책임을 따져 묻고 있으며, 특히
제대로 된 위험성 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관
원청을 포함한 진짜 사장 처벌이라는 사회적
리는커녕 등록조차 되지 않은 작은 사업장과
쟁점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
노동자들을 파악해야한다. 안전상 문제는 주로
서 손질된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
사업장 단위의 등록이 필요하며 보건상의 문제
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
는 경우는 노동자 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 등
에 대해서도 그 적용을 유예하고 있다. 법의 실
록의 통로는 기존의 여러 법제를 활용하고 정
효성의 차원을 떠나서 중대재해의 상당부분이
보 공유를 통해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화학
2) 최민, 작은 사업장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과제, 작은 사업장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한 활 동가 워크숍 자료집. 2020
6
노동자가 만드는
물질 유통, 위험 기계 기구의 유통에 따라서, 기 업의 서플라이 체인을 따라서, 공장설립 인허
가를 통해서 등록할 수 있다. 또한 지원을 전제
이거니와 관리 감독에 있어서도 국가, 정부, 지
로 한 자발적 등록(안전보건공단의 기존 지원
자체 각각 역할에 대해서 고민하고 체계적인
사업 활용)과 중대한 위험이 확인된 경우 관리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와 규제를 전제로 찾아내서 등록하는 등의 다
을 기획하고 수행할 건전한 안전보건행정조직
양한 통로를 활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기존의
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보건관련 자료와 통합하여 위험을 파악해 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실질적 교섭 과 협상력에 기반한 권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 다. 산안법 개정으로 사업주의 안전보건관리체
이에 기반하여 개별 사업장 단위의 위험성
제 구성과 노동자의 참여 보장 의무가 규모와
평가가 아닌 산업생태계 전반에 대한 위험성
무관하게 적용되는 등 형식적 권리가 획득된
평가가 수행되어야 한다. 위험을 관리하기 위
다고 해서 바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
해서는 보편적인 상황이 아닌 구체적인 위험에
전과 건강이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2019년 통
대한 파악이 필요하며 사업장 규모 자체로서
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30
가지는 보편적인 위험이 아닌 실제적 수준에
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조가입률은 4.0%
서 고위험 우선관리 대상을 파악해야 한다. 위
로 300인 이상 사업장의 33.5%에 비해서 현저
험관리에 소요되는 자원과 비용에 따라 원청이
히 낮고, 2020년 민주노총에서 전략조직화 사
책임져야할 부분을 정해야 하며 위험관리에 필
업의 일환으로 3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요한 기본적인 장비, 자원이 갖춰지지 않은 경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5%만이 노동조합
우에 대해서는 진입장벽을 세우는 것도 필요하
조합원이라고 응답했으며 이는 2018년 한국의
다. 장기적으로는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원재
노조 조직률 11.8%에 훨씬 못 미친다.3) 안전하
료를 포함한 생산-유통-폐기의 전 과정에서 소
고 건강한 일터를 만드는데 있어서 노동자의
요되는 안전보건관리 비용은 마진(margin)이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조
아니라 원가(cost)로 여겨지게 만드는 필요하
합 활동이 노동안전보건 수준을 높인다는 것은
다. 위험으로 이윤을 얻는 자가 책임을 질 수 있
학술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다. 작은 사업장의
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이행하기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방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필수적으로 요구될 수
법으로 노동조합 가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
밖에 없다.
업별 노조를 넘어서서 다양한 형태로 교섭력을 가질 수 있는 조직화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그간 정부의 작은 사업장 지원 사업은 목적 과 방향이 없는 퍼주기식 금전 지원이 대부분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 문제는 실타래처럼
이었다. 사업장 규모만을 기준으로 할 것이 아
얽혀 쉬운 해법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해결할
니라, 지원이나 규제를 통해서 효과가 발생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자연도태(?)를 기다리며
수 있는 커버리지 수준 등을 예측하고 개입해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할 일을 하자. 작은 사업장
야 한다. 위험 관리에 필요한 조건과 자원이 미
의 노동자들은 지금도 쓰러지고 있다. 삶과 죽
비한 작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의 지
음의 크기는 사업장의 규모와 무관하다.
원을 통해서 관리가 가능한 경우와 불가능한 경우를 가려 지원하거나 혹은 해당 업종에서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관 리와 노동자들의 건강관리에 대한 지원은 물론
3) 30인 미만 ‘작은사업장’ 노동자 실태와 정책대안 -오늘 의 전태일 보고서, 민주노총 총서 2020-03, 민주노동연구 원, 2020
일터 7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특집
작은 사업장의 위험에 맞선 지역 연대활동의 현재와 가능성 최진일 회원,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
‘총체적 난국’
업장 안전보건관리의 한계들을 조금 더 깊이
작은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문제를 한마디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작은 사업장들이 안전
로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일 것이다. 혹
보건관리를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
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안전보건관리
는 현실은 ‘원래 그런 것’도 ‘당연한 일’도 아니
정책은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다수가 대기업에 다단
과제라고 말할 정도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계 하청관계로 종속되어 생산을 유지하는 이상
안전과 건강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부분에
의 수입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때문
서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 자체적인 안전보건
에 노동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관리체계를 갖추고 예방적 조치들을 시행하기
법제도적 정비는 발생한 재해에 대한 사후적인
위한 자원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으며, 고용노
책임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예방을 위한 비용
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터의 관리감
의 부담부터 강화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야
독과 지원은 2,632,955개1)의 작은 사업장에 쉽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안전보건관리를 포함한
사리 닿지 않는다. 예방조치는커녕 산재발생에
재생산비용 전체를 사회에 떠넘기는 플랫폼노
대한 사후적 조치로서 산재보상과 재발방지대
동 사용자들의 문제 역시 지적되어야 한다. 둘
책의 수립·시행 역시 시스템 밖의 노동자들에
째, 이번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리과정에서도 반
게는 먼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복된 ‘영세하니까 열외’라는 궤변을 멈추고 국
의 바탕이 되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노동조
가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영세함을 이유
합이 없는 노동자들에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
로 규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제
는다. 작은 사업장의 위험은 시쳇말로 ‘No답’
시하고 영세사업장의 한계는 국가가 책임져야
인 걸까?
한다. 고용노동부-안전보건공단-근로자건강센 터 체계가 이를 수행하기 불가능하다면 대대적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앞서 나열한 작은사
인 개편과 변화가 필요하며, 현재 진행중인 산 업안전보건청 논의에 있어서도 작은 사업장의
1) 고용노동부 2019년 산업재해현황분석 기준 전국 50인 미만 사업장 수
8
노동자가 만드는
문제는 그 중심에 놓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집
단적 조직화를 통한 교섭력의 확보라는 전통적
소용제 등의 화학물질을 마구 섞어서 사용하는
인 노동조합 조직전략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작
작업방식이었다. 고용노동부와의 첫 면담에서
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자기조직화를 위한 새
지역의 활동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식당 및
로운 시도들이 더 늘어나야 한다. 노동조합이
청소노동자들의 소독제 사용이 급격히 늘어난
건 다른 형태건 노동자들의 집단적 결사는 ‘권
상황에서 사고조사와는 별개로 혼합사용의 위
리로서의 안전’을 요구하고 행사하는 원동력이
험을 관련 사업장에 전파하고 경보체계를 가동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할 것을 요구했다. 천안지청 역시 취지에 공감 하고 동의했으나 구체적인 행동은 이루어지지
이처럼 작은 사업장의 안전보건문제는 산
않았다.
업구조의 문제, 정부정책의 문제, 노동운동의 체질개선의 문제 등 다분히 전국적 의제의 성
비슷한 시기, 충남노동권익센터와 지역 이
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방향성
주노동자지원센터들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주
과 조응하며 현장과 지역단위에서 새로운 가
노동자실태조사 과정에서 언어적 장벽과 사업
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노력 역시 절실하다. 아
주들의 무관심으로 인한 이주노동자들의 코로
직 지역에서의 노동안전보건 연대활동은 주로
나19 방역 문제가 제기되었다. 노동권익센터를
중대재해, 중대산업사고에 대한 공동대응이 중
중심으로 구성된 노동단체네트워크에서 이 문
심이며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운동을 통
제가 논의되었고 충남도와의 협의를 통해 방역
해 외연이 확장된 측면이 있을 뿐, 명확하게 작
정보에 대한 다국어번역과 배포, 외국어 방역
은 사업장의 문제에 주목한 활동이 진행된 것
경보 문자발송 등의 대책이 발 빠르게 실행되
은 아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사고
었다.
의 77.2%3)가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현실 과,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에서는 산별노조
작은 사업장에 대한 전면적인 예방조치들
나 단위노조를 중심으로 대응이 이루어지는 반
을 지역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
면 미조직 노동자들의 재해에는 지역에서의 연
가능한 과제이지만, 최소한 드러난 사례들을
대활동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
개념화하고 이를 통해 비슷한 문제로 인한 피
면, 장기간의 연대활동을 작은 사업장 문제를
해를 예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이
중심으로 평가하고 과제를 도출하는 것은 나름
를 위해 지역의 연대체가 스스로 작은 사업장
의 타당성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의 안전보건 감시망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 는 자각과 장기적으로는 공적인 시스템이 이러
사후적 대응을 넘어 예방적 요구로
한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 전망이 공유되어야
2020년 6월 쿠팡 천안물류센터의 식당노
한다. 일부 지역에서 운영 중인 급성중독직업
동자가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을
병관리체계도 비록 협소한 범위이기는 하지만
때 원인 중의 하나로 지목된 것은 소독제와 청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 단, 이러한 평가는 필자가 활동 중인 충남지역에 한정되 는 것으로 타 지역의 활동경험과 평가는 상이할 수 있다. 충남지역에서는 수년전부터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노안 위원회,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등을 중심으로 중대재해에 대응해왔으며 중대재해처벌법제정운동본부 구성을 계기 로 피해자 지원까지 연대활동의 내용이 확장되었다. 3) 고용노동부 2019년 산업재해현황분석 기준 50인 미만 사업장의 사망사고 비율
지역사회에서의 의제화 세월호참사를 지나 김용균투쟁을 기점으 로 생명과 안전, 노동재해의 문제가 사회적 과 제로 자리잡았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 해처벌법 제정과 같은 성과들이 만들어졌지만,
일터 9
문제의 핵심인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위험은
다양한 활동들을 기획하고, 그들이 실질적으로
지역사회 핵심의제로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활동할 수 있는 활동시간과 권한의 보장을 확
지방정부나 의회만을 탓할 일도 아닌 것은, 우
대하는 투쟁들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리의 지역연대활동 역시 중대재해 대응에만 머 물러 있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장에 대한 근로
작은 사업장 조직화와 발맞추기
감독을 강화하라는 요구 외에, 이 문제에 대해
지역차원의 노동안전보건활동이 작은 사업
노동지청과 지방정부에 우리가 어떤 대안을 제
장의 문제들에 있어 (아주 제한적인) 개별적인
시하고 어떤 요구를 할 것인지 충분히 준비되
사건들에 대한 (역시 제한적인) 사후적 개입에
어있지 않다. 하기에, 지역의 노동시민사회단체
만 머물러 있는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작
들 안에서부터 이 문제를 핵심적 의제로 삼고
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의 주체가
구체적 실천과제와 요구들을 토론해 나가는 것
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이 결합되어야 한다. 작
이 중요하다.4)
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일상적인 권리 로 천명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아
일례로, 지역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지역
닌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충남지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지역노조, 공
역에서는 2018년부터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
단노조 등을 비롯해 다양한 방식의 작은 사업
의 주도로 지역명감 양성사업을 활발히 진행했
장 조직화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최근 충남에
다. 매년 20~30명이 위촉장을 받았지만 여전히
서도 세종충남희망노조가 작은사업장 조직화
지역에서 이들의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
를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작은 사업장의 위
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사업장 출입이 보장
험에 맞서는 투쟁은 이러한 조직화사업과 더욱
되지 않는 한 법이 정하고 있는 지역명감들의
긴밀하게 조응해야 한다. 임금과 복지 등 단위
권한과 역할을 행사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
사업장의 요구를 기반으로 조직되는 전통적인
다는 점이다. 과거 몇몇 사고대응 과정에서 지
노동조합들과는 달리 업종이나 지역의 특수성
역명감들의 참여를 보장받고 사고조사에 참여
에 기반해 다양한 형태의 조직전략, 교섭전략
한 사례가 있지만, 현재 고용노동부는 사고조
을 모색하고 있는 작은 사업장 조직화에 있어
사에 있어 노동자 참여를 해당사업장으로만 제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은 조직화의 주요
한하며 지역명감의 참여권을 사실상 부정하고
한 의제로 기능하기에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조차 출입
있다.
이 되지 않는 지역명감들이 지역 내 작은 사업 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예방활동을 벌이는
해법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현실에서 풀리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지 않는 사회문제가 있다면, 그 이유는 해법이
각 현장에서도 지역명감의 지역적 역할과 책임
‘요구’로서 구체화되지 않았거나, 요구를 발화
에 주목하기 보다 자기 현장의 명예산업안전감
할 ‘주인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사업장
독관 숫자를 늘리는 협소한 의미로만 받아들이
의 위험이라는 문제에 있어 아마도 지금의 우
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지
리는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하는 처지이기에, 전
역명감들이 사업장 담을 넘어 활동할 수 있는
국적 차원의 법제도 개선투쟁만이 아니라 지역
4) 지방정부들의 정책은 안전어사대, 산업안전지킴이 등 의 현장감독 보완책과 건강센터, 심리상담 지원 등 직업보 건서비스 보완책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게 제출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지역연대활동을 중심으로 논하기 위해 논외로 한다.
10
노동자가 만드는
에서 다양한 주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노동안전 보건활동을 더욱 촘촘히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사업장의 큰 문제들
특집
작은 사업장, 필요한 규제와 절실한 지원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 공유정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인터뷰
유청희 상임활동가
규모가 큰 국내 사업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안전보건
책임을 부여하고 규제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도
A부터 Z까지
록 하고 있다. 한편, 소규모 사업장은 대부분 법
소규모 사업장에서 산업재해가 자주 일어
조항이 적용 예외로, 법 규제의 ‘빈 곳’에 남아있
나니 관리를 해야 하지만, 현재 법에서는 산재
다. 2019년 산재발생현황을 보면, 국내에서 산
예방을 위한 규제 조항에서 소규모 사업장들
업재해를 입증 노동자 109,242명 중 83,678명
을 적용 예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작
(76.5%)이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다.
은 사업장에서 사업주들이 자발적으로 안전보
산업재해는 더 많이 발생하지만, 법적 규제는
건관리를 할 가능성 역시 매우 낮다. 정부는 이
덜 받는 곳이 바로 ‘작은 사업장’이다.
러한 사업장에 지원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주로 만나는 노
이런 상황에서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안 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환경을 만드는 데 지원
동자들은 누구인지, 진행하는 사업은 무엇인지 물었다.
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 바로 전국의 안전보건 공단 산하 근로자건강센터다. 근로자건강센터
“주로 20~30명 규모 사업장에 방문해요. 사
는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이 연결되고 안전
업장에 가서 상담, 교육, 컨설팅 하면서 사업장
보건공단과 계약한 민간기관이 위탁해 센터를
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의사들은 건강,
운영한다. 경기도 성남시 산업공단에 위치한
작업환경, 보호구 상담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들
경기동부 근로자건강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업
은 뇌심혈관 예방 상담을 해요. 근골격계질환 예
환경의학 전문의 공유정옥님을 만났다. 공유정
방실에서는 운동치료, 스트레칭 가르치는 일을
옥님은 센터에서 노동자들에게 건강 상담을 하
하고요. 심리파트에서는 상담심리사가 감정노
고, 사업장을 방문해 위험요인을 점검하고 교
동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하고 심리평가도 진행
육하며 사업주, 관리자, 노동자들과 만나고 있
합니다. 사업장 다니면서 정신건강 관리 필요한
다. 50인 미만 사업장과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사람들이 있으면 상담을 권하기도 하고요. 산업
가장 필요한 안전보건관리 활동은 무엇인지 물
위생기사, 직업환경팀에서 사업장 보건관리, 화
었다. 일터 11
학물질관리 등 컨설팅을 하고 안전보호구 지도,
은 관리자는 거의 만나지 못해요. 상대하는 사람
위험 표지, 포스터, 스티커 제공하는 활동까지
은 온갖 업무를 다 하는 노동자인 경우가 많죠.
여러 가지를 합니다. 주로 작은 공장들을 방문하
상담 후 결과가 사업주에게 닿아야 하는데 잘 안
는데요. 의사, 간호사, 산업위생기사 셋이 가요.
돼요. 전혀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를 가진
노동자 한 명씩 만나서, 건강진단 결과표 설명하
사업주들도 있어요. 이런 곳들은 두세 달에 한
고 현장 순회도 하고요. 보건관리대행 사업과 유
번씩 열 번 정도 만나면 수준을 올릴 수 있습니
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산업위생기사는 작업
다. 이 사업장들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할 수
환경 컨설팅 보고서를 보내는데, 그 후에 사업장
준이에요. 문맹이라고 할 수 있죠. 아주 기본적
에 재방문해서 개선하도록 권고도 합니다.”
인 것이 제공되어야 하는데 안 되는 상황이에요. 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고가 나는지 알 수
안전보건관리를 위해서 사업장에 방문하는
있어요. 지식, 정보, 교육이 가서 닿은 적이 없으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센터에서는 고용노동
면 특출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위생을 전혀 모
부 지청이나 안전보건공단 지사와 연계해 센터
르고 노동자는 아프죠. 사회의 진보, 성숙 속도
가 방문하는 계획을 사업장에 안내할 수 있게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맹과 견주는 건데요.
한다. 특수건강검진을 진행한 곳에는 사후 관
문맹을 타파하기 위해 뭔가를 시도해본 적이 없
리를 위해 연락을 달라고 한 다음 신청이 오면
었어요. 사업주는 국가가 개입하는 데 불만을 표
찾아가며, 신청이 오지 않으면 별도로 연락해
하고요. 두세 달에 한 번씩은 가고, 일정 기간 동
찾아가기도 한다. 공공 또는 민간어린이집 연
안 반복해서 만나고 잘 되면 졸업하는 식으로 이
합회가 회의를 할 때 찾아가 제안한다. 센터에
루어져야 합니다. 기초 산업보건서비스를 제공
사업주들이 방문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갖가
하는 기관과 사람도 많아져야 하고요.”
지 방법을 써서 센터에서 방문할 방법을 만드 는 것이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지원을 인터뷰 내내 공유정옥님은 지속적으로 들
“센터에서 여러 방법을 써서 사업장을 찾아
여다보아야 많은 사업장이 안전해진다는 것을
가지만 이런 것이 안 되는 업체들, 결국 사각지
지적했다. 그렇다면 산재예방을 위해서 산업안
대에 있는 노동자들은 답이 없어요. 법으로 강제
전보건법으로 풀어야 할 것, 법제도와 다른 방
할 수도 없는 거고요. 20인 미만 제조업에는 보
식으로 풀 것은 무엇인지, 작은 사업장에 필요
건관리의무가 없으니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서
한 조치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안전보건관리를 받도록 법을 바꾸자는 주장도 하고 있습니다.”
“진짜 문제를 풀려면 케어하는 사회를 만들 어야 합니다. A에게는 어떤 조치를, B에게는 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
떤 도움을, C에게는 어떤 지원을 하는 식이어야
고 있는 문제라면 무엇일까? 노동자들이 일반
하죠. 전체가 다 들어오는 그림을 그려놓고 할
적으로 겪는 질환이나 회사에서 취하는 조치는
수 있는 곳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야 해요.
충분한지 등이 궁금했다. 또한, 작업 사업장의
이 전체 그림를 그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국에
노동 환경이나 안전보건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
23개 근로자건강센터가 있지만, 이걸로는 부족
지 물었다.
하고 100개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합 니다. 또 모델을 만들어봤으면 좋겠어요. 파주의
“사실 사업장에 갔을 때 사업주나 공장장 같
12
노동자가 만드는
료원 같은 공공병원에서 하는 방식이나 민간기
업에서 하는 건강센터도 의미 있죠. 조직된 노조
불만, 걱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있으면 가
에서도 시도해봤으면 해요. 50인 미만 사업장을
능한데, 그런 자리를 조직해내야죠. 돌고 돌아서
대상으로, 안전보건공단이 하는 근로자건강센
결국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
터와 다른 식으로 해봤으면 하는 거죠.”
동자와 한 자리에 서는 운동이 같이 있어야 합 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가가기 어려워요. 노동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동, 지역운동, 계층운동 등 다양하게 만나는 시
적용을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3년간
도가 있어야 해요. 그런 기회 면에서 사각지대는
적용을 유예하게 되었다. 산업재해가 가장 많
고령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보편적인 권리
이 발생하는 소규모 사업장에게 이 법을 적용
의식도 부족하니까요. 또 노동조합에서 중년 여
유예하고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는 데 어떤 문
성 노동자들을 만나면 할 일이 많겠다는 생각도
제점이 있다고 보는지 물었다.
해요.”
“이 법은, 정규분포에서 계속 사업을 해서는
정부는 사업장을 법으로 규제하고 근로자
안 될 정도로 가장 나쁜 상황의 사업장을 걸러낼
건강센터와 같은 방식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장치라고 생각해요. 사업주의 자격을 묻는 법이
하나의 흐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할 때 한 발
라 생각합니다. 규모로 예외 두는 것에 물론 동
씩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사
의할 수 없고요. 산안법 처벌이 너무 약한 것도
업장 노동자들을 위해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맞아요. 분명히 처벌할 곳과 처벌이 아니라 다
가지고 건강권을 설계해야 할까?
른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곳들은 프레임에 안 들어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에도 힘을 썼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면, 30년을 보는 비
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기초 공부를 하게 도울
전 세우기라고 생각합니다. 시스템이 없다는 생
까도 생각해야 합니다. 처벌밖에는 답이 없는 사
각이 들어요. 지금은 지반을 다듬으며 집을 짓지
업장은 처벌해서 본보기가 되게 해야 하고, 여기
않거든요. 일목요연하게 정비할 방법을 구상하
전략도 필요합니다.”
고 체계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개별 사안이 돌 아가게 해야 해요. 계속 점검해가면서 정부, 입
노동계, 정부의 과제
법, 행정, 노동계같은 기구가 청사진을 따라가면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노조 조직률 면
서 리포트가 나오는 구조였으면 합니다. 영국은
에서도 저조하다 보니 건강하게 일하는 것이 노
정기 리포트를 제출하게 하고 있어요. 이걸 놓고
동자의 권리라는 인식을 갖기가 쉽지 않겠다는
반대하고 요구하면서 논쟁하는 구조가 한국에
생각이 들었다. 이 노동자들에게서 가능성을 보
도 있었으면 합니다.”
았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노동계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지 물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작은 사업장 노동 자들이 안전과 건강을 보장받으려면 정부와 노
“쉽지 않은 건 맞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물
동계의 역할은 백번 강조해도 부족해 보인다.
꼬가 트이기도 하더라고요. 권리 주장이라기보
그런 한편으로, 근로자건강센터 구성원들의 활
다 ‘사장이 00해야 하는데 안 해’, ‘건강진단 해준
동으로 작은 사업장 사업주의 인식과 노동 환
다더니 안 해준대’ 이런 표현을 듣기도 하거든
경에 아주 조금 변화가 생길 것 같기도 하다. 그
요. 이런 게 권리죠. 이런 인식이 보편적으로 확
변화, 아주 느리게 올 변화를 위해 법과 제도,
산되려면 계기가 필요해요. 역시 교육이 답이죠.
지원책이 꾸준히 모아져야 하지 않을까?
일터 13
지금 지역에서는
투쟁으로 세월을 살아낸 유성 노동자들, 10년 만에 합의서에 ‘금속노조’ 직인을 찍다! 장경희 회원, 두리공감 상임활동가
▲ 출처: 호나라
2020년 12월 31일,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
지독하게 한결같았던 ‘노조파괴’
지회는 10년 투쟁에 종지부를 찍는 노사 의견
10년을 한결같이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접근안 설명회를 열었다. 어느 때보다도 차분
노동자라면 가진다는 노동3권을 국가가 부정
한 분위기가 낯설었다. 조합원들의 얼굴에서는
했다. 감시, 차별, 배제, 혐오가 난무했다. 유성
그야말로 아무 표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쁨
기업은 정부기관과 검경, 거대 재벌기업의 공
과 분노, 실망이나 아쉬움, 속 시원함과 같은 감
조를 앞세워 폭력으로 일관했다. 일하는 곳의
정들이 존재하지 않는 진공상태와 같았다. 다
모든 재료, 모든 자원, 모든 사람이 금속노조 유
만, 이 낯선 분위기가 그럴만하다고 느껴졌다.
성기업 지회를 고사시키는 데 동원됐다.
그 깊은 내면의 이야기와 울림을 감히 짐작하 기 어려웠다. 합의하고 엎어지고, 다시 교섭하
회사는 손수 만든 어용을 통해 노동조건을
고 엎어지기를 수 없이 반복하기를 어언 10년.
악화시켰다. 작업 물량이 증가하자 UPH가 상
노조파괴의 세월 동안 회사에 대한 신뢰는 털
승했고, 이를 강제하기 위해 성과급이라는 유
끝만치도 남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그저 오욕
인책을 썼다. 메탄올 문제가 사회적 공분을 일
의 세월을 ‘정의로움’으로 견디고, 내 마음 같은
으킬 때도 유성기업 현장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동지들의 마음을 느끼며 살아냈다.
없이 사용됐을 정도다.
14
노동자가 만드는
‘견딘다는 것’은 상실의 과정이기도 했다
작년 12월 31일 노사 의견접근안에 대한 찬
한 인간이 견디기에 너무도 가혹하고, 지나
반투표 후, 1월 18일 노사가 조인식을 가졌다.
치게 무거우며, 넘치도록 고통스러운 세월이었
10년 만의 합의서로 금속노조 위원장 직인이
다. 2011년 직장폐쇄 기간 투쟁에서 일탈하거나
찍혔다. 유성지회는 공식 성명을 통해 합의에
선복귀했던 노동자들은 이후 감금노동이나 다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고 언급했다. 하지
를 바 없는 노동을 감내해야만 했다. 한 명의 노
만 단체협약 문구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는 불
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관리자는 기계
필요하다. 합의서에 찍힌 금속노조의 직인은
에 끼여 사망했다. 이름만 떠올려도 눈물 나는
10년간 유성 노동자들이 무엇을 지키고자 했는
고(故) 한광호 열사가 자결했다. 김기종, 박문열
지, 결국 그것을 어떻게 지켜냈는지를 상징한
조합원이 돌연사로 사망하고, 견디다 못해 퇴사
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유성지회는 10년
한 오동환 조합원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
투쟁을 갈무리하고 있다. 수없이 많았던 연대
명의 조합원이 쓰러져 다행히 두 명은 일상 복
에 감사하는 자리를 고민하는 한편, 투쟁의 기
귀를 했으나, 나머지 한 명은 지금도 완전히 회
록도 준비에 있다. 무엇보다도 변화된 상황에
복하지 못한 상태다. 차라리 회사의 주장처럼
서 민주노조로서 성장하고 강화해 나갈 방안들
‘우울증 고위험군 53%’라는 수치가 거짓이고,
을 구체화하는 중이다.
조작이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이다. 조합원 일상회복을 위해 수많은 “최초”의 기록
지난 10년을 긴장 속에서 살아낸 유성 노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지회와 영동지회
동자들은 합의 후에도 여전히 그 긴장을 내려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지옥과도 같았지만,
놓지 못한다.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노조파괴에
그들은 한 번도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직장
맞서 승리했지만, 그간의 세월이 남긴 상흔이
폐쇄 이후 공장에서 들려 난 노동자들이 모두
일시에 회복되지는 않는다. 합의 후에도 합의
모여 3개월을 살아낸 것은 유례없던 일이다. 임
파기를 입에 올렸던 회사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금을 받으며 투쟁한 해고자도 처음이다. 노동
에 대한 태도에 큰 변화가 없다. 조합원들에게
자들의 정신건강 악화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어용도 그대로다. 부
시건강진단 명령도 최초였다. 양재동 현대자동
품사에서 최초로 요구했던 주간 연속 2교대제
차 사옥 앞에 분향소를 만들고 1년이 넘는 시간
는 이미 대부분의 부품사가 시행 중이다. 하지
동안 열사투쟁을 전개한 것 역시 처음 있는 일
만 유성기업은 아직도 주야 맞교대를 유지하고
이다. 전국의 민주노조를 파괴하며 승승장구하
있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준비
던 창조컨설팅의 발목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도 필요해졌다.
유성지회의 투쟁 덕분이다. 노조파괴라는 조직 적 탄압을 자행한 사업주가 최초로 구속됐으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조합원
며, 소위 ‘어용노조’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
들의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다. 가족들과의 관
을 끌어낸 것도 유성지회가 처음이다. 그렇게
계도 변화했으며, 재정적인 어려움 역시 여전
그들은 사상 유례없는 탄압에 맞서 없던 길을
하다. 몸과 마음의 건강도 돌봐야 한다. 아직 감
만들어 내며 10년을 살았다.
옥에서 나오지 못한 동지도 있다. 유성 조합원 들의 일상을 회복하고, 민주노조를 강화하는
도약을 준비하는
길에 많은 이들의 지원과 격려, 그리고 응원이
금속노조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
있기를 바라본다.
일터 15
알아보자, LAW동건강
산업재해 승인 이후 맞닥뜨린 사회보험의 현실 이성민 회원, 노무사
“산업재해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으 신 것이므로 요양비 지급은 가능하지 않다.”
수십차례 실시한 항암치료는 A의 몸을 망가 뜨렸다. A는 후유증으로 인해 수시로 찾아오 는 고통을 견뎌내기 힘들어 산업재해 승인 이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으로 치료받으신 것 은 건강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후에도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대부분 날을 입 원하여 지냈다. 어렵게 찾은 병원에 입원하였 고 2년이 흘렀다. A는 나중에야 입원한 요양병
재해자의 상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었 으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
원이 산업재해 비지정병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 따른 요양비 청구가 가능하지 않으며, 건강 보험 급여도 제한되었다. 심지어, 건강보험공단
어느 날, A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연락을
은 A에게 이미 지급하였던 건강보험 급여는 부
받았다. 건강보험공단 담당자는 말했다. “산업
정수급이므로 전액 환수조치 하겠다고 으름장
재해로 인한 치료 및 요양에 대해 건강보험 급
을 놓고 있다. 어떤 상황일까?
여를 지급 할 수 없다. 당해 비용은 근로복지공 단에서 지급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요양병원
A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반도체와 회 로기판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오퍼레이터로 근
에 지급해온 건강보험 급여는 모두 부정수급이 므로 모두 환수조치 할 것이다”
무했다. 온갖 유해요인에 노출되는 열악한 작 업환경 속에서 하혈 등 증상을 겪어왔던 A는
A는 건강보험공단 담당자에게 ‘비지정 의
건강상 이유로 더 이상 일을 하기 어려워 퇴사
료기관’에서의 치료이기에, 산업재해를 인정받
했다. 그러나 일을 그만둔 A는 난소암을 진단
았음에도 불구하고 당해 요양비를 근로복지공
받았다. A는 양쪽 난소와 자궁을 제거하는 몇
단에 청구할 수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동시에
차례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항암치료도 병
근로복지공단 담당자에게는 산업재해 환자가
행했다. 2018년 A는 자신이 일했던 전자산업에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다면, 산재보험
서의 유해요인이 각종 암을 비롯한 질병을 유
은 물론 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어디서부
민단체와 함께 난소암에 대한 산업재해를 신청
터 잘못된 것일까?
하였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16
노동자가 만드는
산재보험법에 따라 지정된 의료기관에서의
결국 산업재해 승인 이후의 재해자들은 산
요양
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요양이 사실상 강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근로자가 업무상 사
제된다.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다 해당 상
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경우 요양
병이 산업재해로 인정된 경우, 산업재해 승인
급여를 지급한다. 단, 당해 요양급여는 산재법 상 지정된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한 경우 에만 지급을 원칙으로 한다.(산업재해보상보험 법 제40조(요양급여))
이후의 치료에 대해 산재보험법상 요양비를 청 구하려면 산재보험 지정 의료기관으로 전원해 야 한다. 의료기관이 변경됨에 따라 당연히 재해 자와 관계를 형성하여 상병을 치료해왔던 주치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에 대한 급여를
의도 바뀐다. 재해자는 새로운 치료 환경에 적응
지급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산재보험은
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비지정 의료기관에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응급진료 등 긴급한 요
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요양비를 지급할 수 없다
양, 공단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
는 입장을 통보할 뿐 모든 부담은 재해자 스스
우 재해자에게 요양비를 지급한다. 공단이 인
로 해결해야 한다.
정하는 ‘정당한 사유’ 중 대표적인 예는 산업재 해 승인 전 실시한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요 양이다. 이외 대부분의 경우 비지정 의료기관 에서의 치료에 대해서는 요양비 지급이 이루어
산재보험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와 건강보험 급여 제한 앞서 살펴본 A의 사례와 같이 산재보험법상
지지 않는다.
요양비 청구를 포기한 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8조
요양하면 어떻게 될까?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이
(요양비의 청구 등)
라도 재해자에게 더 효과적인 치료와 안정적인 요양을 병행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1. 법 제43조제1항에 따른 산재보험 의 료기관(이하 “산재보험 의료기관”이라 한다)이 아닌 의료기관에서 응급진료 등 긴급하게 요양을 한 경우의 요양비 2.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요양급여에 드는 비용(산재보험 의료기 관에서 제공되지 아니하는 경우로 한정 한다.)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 산재보험은 물론 건 강보험 급여 역시 지급이 제한된다. (2019년 기 준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약 64%, 특히 암환 자 건강보험 보장률은 약 79%라는 점을 감안할 때,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된다는 것은 상당한 의 료비용 부담을 재해자가 오롯이 걸머진다는 것 을 의미한다.)
가. 법 제40조제4항제2호 중 의지(義肢) 나 그 밖의 보조기의 지급 나. 법 제40조제4항제6호 중 간병 다. 법 제40조제4항제7호의 이송
국민건강보험법(이하 ‘건강보험법’)은 건강 보험 급여의 제한 사유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중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부상·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3. 그 밖에 공단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 건강보험 급여를
인정하는 요양비
지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법령에 따른 보
일터 17
험급여나 보상(報償)1) 또는 보상(補償)2)을 받게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
되는 경우’ 에 대한 건강보험공단의 해석은 다른 법령에 의한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 (補償)을 현실적으로 지급받은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법령에 정한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의 요건이 충족되어 보험급여를 받을
① 공단은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보험급여를 하지 아니한다. 1.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그 원인이 있거나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경우
수 있는 경우 및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2.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공단이나 요양기관의
받을 수 있는 경우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본다.
요양에 관한 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 3.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제55조에 따른
전술한 A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결론적으로 산업재해 승인 이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 료에 대해서는 산재보험과 건강보험 모두 적용 되지 않는다. 당해 치료와 관련한 모든 비용은 재해자가 부담하여야 한다.
산업재해 승인 이후에도 재해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움
문서와 그 밖의 물건의 제출을 거부하거나 질문 또는 진단을 기피한 경우 4. 업무 또는 공무로 생긴 질병ㆍ부상ㆍ재해로 다른 법령에 따른 보험급여나 보상(報償) 또는 보상(補償)을 받게 되는 경우
산업재해에 대해 요양하여 수천만원의 건강보 험 급여를 ‘부정수급’한 자가 되었다.
“산업재해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으 신 것이므로 요양비 지급은 가능하지 않다.”
A의 마음으로 생각해본다. ①산업재해로 인 정된 상병에 대해서도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산업재해로 인한 상병으로 치료받으신 것 은 건강보험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
치료에 대한 요양비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현재 의 산재보험 제도, ②현실적으로 산재보험에 따 른 보호가 불가능하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치료
A는 계속하여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달라 지는 것은 없었다. A에게 돌아온 근로복지공단 과 건강보험공단의 답변은 간단했다. 건강보험 공단은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치료를 선택하 여 산재보험 적용을 포기하였으므로, 건강보험
이므로 건강보험의 적용 역시 일률적으로 배제 된다는 건강보험공단의 논리, ③이러한 행정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다가 2년이 지난 후 불 쑥 이루어진 ‘부정수급자’로의 낙인과 환수 통보 까지 어떤 내용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급여가 제한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이야기했다.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는 비지정 의료기관에서 요양한 A의 잘못이므로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결국 A는 비지정 의료기관에서의 1) 나라를 위하여 희생한 사람(국가유공자)들에게, 그 희생 으로 하여 입은 경제적·사회적 손실을 보완해 줌 2)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적법한 행위에 의하여 국민이나 주민에게 가한 재산상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하여 제공하 는 대상
18
노동자가 만드는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사회보험이다. 사회 보험은 국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리고 억울 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각지대가 없도록 촘촘 히 보호하고 작동해야 한다. A에게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신뢰할 수 있는 안전망이 아닌 고통 스러운 경험이 되었다.
연구리포트
여성노동자의 화장실은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 영향 연구 지안 집행위원
연구 배경
여러 질환이 있었지만, 특히 방광염의 경우 일
화장실에 자유롭게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반 인구의 발병률보다 3배 높은 것으로 드러났
은 일하는 사람으로서 존엄의 문제이며 동시에
다.1) 이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에서조차 화장실
건강과도 직결돼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그동
과 휴게실 설치의 미비를 이유로 여성노동자들
안 다수의 일터에서는 화장실 문제가 고충 처
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
리 수준으로 다뤄지거나 별거 아닌 일로 치부
처럼 일하는 여성들에게 화장실은 불편하고,
되면서, 노동환경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
안전과 신변에 위협을 당하는 공간이거나 어떨
로 축소돼왔다. 최근 여성노동자의 화장실 이
땐 권리와 기회까지 박탈되게 만드는 요소로
용과 관련된 문제들이 건설업, 서비스업, 제조
작동하고 있다.
업 등 다양한 업종과 직종을 망라해 드러나고 있다. 노동 문제로서의 화장실 실태를 알아보
법제도 분석
기 위해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한노보연이 함
기존의 법제도 분석을 통해, 일터 내 화장실
께 다양한 업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대상으
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법은 존재
로, 2020년 5월부터 11월까지 <여성노동자 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019년 건
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 영향 연구>를
설노조 여성위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화장실’을
진행했다.
의제화한 이후로 만들어진 〈사업장 세척·목욕 시설 및 화장실 설치·운영에 관한 가이드〉는 강
건설 현장에만 여성노동자가 13만 명으
제력이 있는 법은 아니지만, 고용노동부 및 산
로 이는 전체 건설업 종사자의 10%를 차지하
업안전보건공단에서 마련한 지침으로 노동부가
는 수지만,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일터의 중요
근로감독이나 시정지시를 할 수 있는 근거자료
한 문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노동자 비율
로는 활용할 수 있다. 일반사업장과 옥외작업장
이 높은 서비스업도 심각하다. 2018년 백화점·
으로 구별해 설치기준을 마련하고 있기는 하나,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여성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이 갖는 의미에 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무 중 화장실에 갈 필요
한 고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화장실 설비 등
가 있었으나 화장실에 가지 못한 경험을 한 노 동자가 59.8%에 달했다. 10명 중 6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화장실 접근권이 박탈 되고 있는 형편이다. 방광염, 근골격계질환 등
1)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이용득·전국서비스산업노동 조합연맹(2018),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연구 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 자료 집 참조.
일터 19
이 노동자 건강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고, 공
화장실 접근성의 경우, 업무를 수행하는 장
중화장실을 고객 전용 화장실로 지정하지 못하
소에서 1~2분 거리 내에 화장실이 있는지를 묻
도록 하는 등 일터 내 화장실에 대한 구체적인
는 질문에 응답자의 13.08%가 ‘없다’고 응답했
규정이 될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다. 또한 화장실 도착 후 긴 대기 시간 없이 1~2 분 이내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묻는 말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사업주에게
에서, 13.37%가 ‘가능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화장실 설치의무 및 관리의무를 명시적으로 부
즉 100명 중 13명 이상은 화장실 시설이 절대
담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근로자의 건강 유지
적으로 부족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볼
를 위한 작업환경을 마련하고 건강장해가 발생
수 있다.
하지 않도록 청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포괄적인 의무규정을 통해 화장실 설치 및 관
접근성이란 화장실까지의 물리적 거리만이
리의무도 부여할 수 있다. 화장실은 노동자들
아니라 노동시간 중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이 일하는 데 필수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시설
수 있는지가 주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일정
로써 기본적인 작업환경으로 볼 수 있기 때문
한 공간’ 군의 경우, 근무 중 원할 때 화장실을
이다.
사용하는 것이 대체로 불가능하거나 전혀 가 능하지 않다는 응답이 응답자의 13.53%로 확
설문 분석 설문조사를 통해서 가장 기본적인 위생권이 자 건강권과 관련된 문제인 화장실 사용 실태를 조사하고 이에 관련된 여성노동자의 건강 문제 를 파악하고자 했다. 또한 노동환경을 조사함으 로써 노동조건과의 연관성을 찾고자 했다. 총 14개의 산별 노조에서 총 889명이 설문 에 참여했고, 이중 근무 형태에 따라 화장실 접 근이 매우 다르다는 점에서 ‘일정한 공간에서 일함’과 ‘이동/방문노동 노동을 함’으로 나눠 조사·분석했다. 먼저 노동강도의 현황은 보그 지수를 통해 확인했는데, ‘일정한 공간’ 군의 보 그 지수 평균은 12.69점으로 나타났고, ‘이동/ 방문’ 군은 14.11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일 정한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노동강도에 가장 영향을 미친 요인을 인력부족〉노동시간〉 고용불안 순으로 답했다. 반면 ‘이동/방문’ 군 에서는 성과압박〉노동시간〉고용불안 순으로 답해, 고정사업장에서의 인력부족 문제와, 이 동/방문 사업장의 성과압박 문제가 심각하다 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
노동자가 만드는
인됐다. 원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 유로는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다〉자리를 비워 야 하는 경우 대체 인력이 없다〉사용 가능한 화 장실이 너무 멀리에 있거나 인근에 없다’로 확 인됐다.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고, 그로 인해 노동 밀도가 높아져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다 는 것이다. ‘이동/방문’ 군의 경우, 근무 중 원 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대체로 불가능 하거나 전혀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이 응답자의 57.76%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주변에 없거나 너무 멀리 있으며, 있 어도 위생 등 시설이 너무 열악함을 가장 큰 원 인으로 꼽았다. 설문참여자의 48.3%는 화장실 이용과 관 련된 건강 영향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 러한 건강 문제는 ‘화장실 문제’에 대한 대응 이 개별화돼 노동문화 속에서 심화한다. 화장 실 이용과 관련해 수분 섭취 및 음식물 섭취를 제한한다고 한 응답률이 각각 전체의 36.9%, 30.3%로 나타났다. 화장실로 인한 심리적인 문 제를 느낀다고 답한 응답자 역시 58.9%로 상당 히 큰 폭으로 나타났고, 이들이 경험한 심리적
▲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진행한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 영향 연구사 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화장실 지도 그리기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아래 네모)와 길을 건너 가야하는 화장실 건 물을 그린 것이다. 출처: 김지안
문제로는 불안감(64.5%), 자신감/자존감 저하
에 갈 수 없는 문제’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
(26.5%), 우울감(20.8%) 순이었다. 특히 화장
었다. 문제의 유형을 나눠본다면 사업장에 화
실 이용이 어렵다고 답한 군의 91%가 심리적
장실이 미설치되거나 제대로 된 면적·시설·위
문제가 발생하는 편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
생·안전 환경을 갖추지 않은 경우, 사용할 수
와, 화장실 접근성이 심리적인 문제 및 감정에
있는 화장실 자체가 마련되지 못한 경우, 극심
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노동강도로 인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경 우 등 다양하다.
또한 화장실 이용은 질병의 유병률에도 영 향을 미쳤다. 신우신염을 제외한 대부분의 질 병에서 ‘화장실 이용 어려움’ 군이 ‘이용 쉬움’ 군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은 비율로 진단 받은 것으로 나타나, 화장실 이용 정도에 따른 노동자들의 건강 증상 및 질병 유병률 차이가 있음이 드러났다. 면접분석
이런 원인의 문제들은 화장실에 가는 데 소 요되는 시간은 왜 노동시간의 배치에서 고려되 지 않는지, 휴식시간은 왜 충분한 휴식과 화장 실을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포함해서 구성되 지 않는지, 화장실은 일하는 노동자가 잘 사용 할 수 있도록 왜 위생적이고 안전하게 마련되 어있지 못한지 여러 고민을 제기한다.
설문 및 면접을 진행하면서, 여성노동자들
즉 이 문제를 ‘화장실’을 이용해야 할 때, 단
의 화장실 문제가 다양한 직종·연령대에서 보
순히 화장실이라는 시설의 설치, 운영의 문제
편적으로 경험되고 있음에도 ‘왜’ 문제화되지
로만 한정해선 안 된다. 노동시간, 노동강도, 공
않았는지에 주목했다. 여성노동자들이 ‘화장실
간, 휴식의 배치가 노동자의 건강과 필요를 충 일터 21
분히 고려해 구성돼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필
른 시설과 환경이 주어져 있었다. 이러한 일터
요하고, 더불어 이 목소리들은 노동자의 자기
의 환경 속에서 화장실 이용의 제약은 다양한
몸과 노동에 대한 자율성 및 통제권에 대한 이
건강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었다. 가장 만연한
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질환은 방광염이지만 신우신염과 같이 심각한 질병이나 혈뇨, 오줌소태 등 다양한 비뇨기계
화장실 이용조건과 환경을 봤을 때, ‘시간’
증상들을 청취할 수 있었다.
은 중요한 키워드이다. 전반적으로 인력이 부 족한 노동환경 속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결론 및 제언
속의 여유율은 물론이고 휴식시간조차 제대로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이 꼽는 화장실에
갖지 못했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 물과 음식물
가지 못하는 주요한 원인은 ‘노동강도’이다. 따
섭취를 자제하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그
라서 여성노동자의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
냥 참는’ 등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식으로 대응
해서는 전반적인 노동강도가 낮아져야 하고,
하고 있었다. 1인 근무 매장에서는 대체 인력이
특히 노동시간의 여유율이 높아져야 한다. 그
전무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했지만, 대
러나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도 시급한 개선이
부분의 직종 역시 최소의 인원만을 배치하며
필요하다. 연구 참여자들의 대부분, 비뇨기계
인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나 생식기 질환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 나눈 경험이 많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는 여성노동
자기 노동에 대한 ‘자율성’은 노동시간을 스
자의 화장실 문제가 사회적으로, 공적으로 다
스로 조절해 이용 접근을 향상하는 중요한 힘이
뤄지지 않았다는 현실반영이기도 하다. 사회
다. 그러나 대면 및 방문 사업장에서는 고객 만
적 인식 수준에서 여성노동자들의 건강 문제가
족 평가제도와 민원 등으로 인해 노동자들 스스
‘노동자의 문제’이자 중요한 건강문제로써 다
로가 자신을 단속하고 있었다. 또한 작업 중 휴
뤄지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접근은 일터 내
식시간은 너무 짧게 배치돼 충분히 쉴 권리가
차별을 지양하는 노력과 함께 상기돼야 할 지
보장되지 않거나, 화장실의 긴 대기 시간을 만
점이다.
들어 이용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 다. 충분한 쉼의 보장, 휴식권이 화장실 문제와 연결돼있다는 점을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노동자들의 화장실 접근과 관련된 법·사제 도·사정책이 제정되는 것 역시 중요한 개선 방 안이다. 화장실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사업주 의
화장실을 포함한 일터의 ‘공간’ 역시 노동자
무를 부여함으로써 충분한 시설과 함께 위생적
들의 필요를 고려해 설계 및 운영되지 않고 있
이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편으로
었다. 옥외작업장에서는 인원수에 따른 화장실
는 현장의 노동조합 역시 이번 연구를 계기로
설치가 돼 있지 않았고, 일반사업장에서도 인원
여성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다면적으로 드러
대비 변기대 개수 부족이나 화장실까지의 긴 동
내고, 여성 의제를 현장에서 더 발굴해내는 작
선 문제 등이 확인됐다. 일터 내에 존재하는 차
업이 필요하다. 노조 간부의 여성 비율을 의무
별이 화장실 접근성을 약화한다는 점 역시 주요
적으로 높이고, 여성노동자 건강권 교육을 현
한 지점이다.
장에서 주기적으로 실행하며, 장기적으로도 성 인지적인 노동안전보건 활동이 가능한 현장,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원하 청 관계·사회적 신분·사성별 등에 따라 너무 다
22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8%의 기적: 과로자살 사건이 행정법원에서 승소할 확률 황이링(Huang Yi-Ling) 대만 OSHLink 활동가
2017년 2월 11일, D국제물류기업에서 13
대한 요구가 높으며 연장근로시간도 기준을 초
년 반 동안 근무해 온 윈윈(가명)은 언제나처
과하지 않는다. 회사가 그를 높이 평가하여 줄
럼 혼자서 새벽 4시가 넘도록 회사에서 야근했
곧 승진시켰고 고위 책임자는 부담이 무거운
다. 퇴근 카드를 찍고 대문 밖 통로로 걸어 나
편이 당연하다.’, ‘구체적인 업무스트레스 계기
가다가 약 1시간가량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갑자
가 없고, 초과 근로, 인력 부족 등 정신적 업무
기 몸을 일으키더니 120cm 높이의 펜스를 넘
부하 정도가 中으로 強에 미치지 않아 인정기
어 11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40살이 채 되기
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업재해 신
도 전에 그녀의 삶이 그렇게 끝났다. 이것이 건
청을 반려했다. 쟁의심의를 다시 신청하였으나
물 CCTV에 기록된 마지막 모습이었다. 윈윈은
마찬가지 이유로 반려되었다. 우리는 이 같은
2003년 회사에 입사했다. 업무 성과가 뛰어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증거를
비서에서 시작해 승진을 거듭했다. 2013년 고
찾았다. 유가족에게 윈윈의 휴대폰을 넘겨받아
객서비스 부서 책임자 자리에 오르며, 대만의
이메일함에서 그녀가 매일 700통이 넘는 메일
수출 화물을 차질없이 전 세계의 운송지점에
을 처리해야 했음을 알아냈다. 세상을 떠나기
전달하는 일을 담당했다. 윈윈은 매일 아침 9시
하루 전에는 심지어 1,154통에 달하는 업무메
반에 출근해서 늘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
일을 받았다. 이를 증거자료로 첨부했고, 노동
고 퇴근했다. 금요일만 되면 더욱 극심한 야근
부에 계속 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
지옥이었다. 늘 밤새워 토요일 새벽까지 일해
게도 또다시 반려되었다.
야 했다. 날이 밝은 뒤에야 퇴근한 기록도 있었 다. 최근 몇 년 새 그녀의 삶은 일밖에 남지 않 았다. 사교활동이나 여가생활을 할 여력이 없 었다. 일에 짓눌렸던 것이다.
8%의 기적, 희박한 행정소송 판정 결과 유가족은 마지막으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누구도 행 정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을 거라는 자신이
가혹한 직업병 인정 기준
없었다. 2019년 고등행정법원의 통계에 따르
윈윈의 부모님은 노동보험국에 산업재해보
면, 총 3,470건의 행정소송에서 승소건은 단지
상을 신청했다. 노동보험국은 심사 결과에서
291건뿐으로 승소율은 겨우 8%였다. 그래서
‘본 사건은 구체적인 업무스트레스 계기가 없
많은 사람이 행정법원을 ‘기각법원’이라고 조
고 연장 근로시간이 인정기준에 미치지 않는
롱하듯 말한다.
다.’, ‘당사자의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스스로에
일터 23
▲출처: pixabay
윈윈의 사건은 약 1년 동안의 심리를 거쳐
울증 등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 있어, 해결이 어
서 2019년 말 판결이 나왔다. 뜻밖에도 승소였
려운 신종 직업병 문제가 되었다. 대만은 2009
다. 법원은 노동보험국에 대해 종전의 소원 결
년에 <업무 관련 심리 스트레스 사건으로 인한
정을 파기하고 직업병 인정 여부를 다시 심사
정신질환 참고 지침>을 제정하여 정신질환을
하라고 판결했다. 법관은 동료의 증언을 인용
정식으로 직업병 보상의 범위에 포함시켰다.
해 말했다. “고객서비스 부서는 오랫동안 회사
그러나 2020년 말까지 11년 동안 겨우 47건만
에서 이직률이 가장 높은 부서였다. 가장 높았
이 직업병으로 승인되었다. 그중 자살이 인정
을 때는 이직률이 70%에 달했다. 해당 부서 직
된 건은 고작 7건이다. 정신질환의 직업병 승인
원들은 장시간 야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신입
이 어렵고 심사기관의 태도가 상당히 보수적이
사원들이 버티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윈윈은
라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신입 사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할까봐 걱정하면서 늘
이번 승소 결과는 매우 드문 사례였다. 본
자기가 일을 모두 끌어안았다. 그래서 장기간
판결에서 ‘직업재해 보상보험급여의 목적은 가
업무 스트레스가 매우 컸다.’ 여기에 일일 업무
해자를 찾아서 그 책임을 부담지우는 데 있지
메일량 등 증거를 더해서 윈윈이 세상을 떠나
않고 산업재해가 발생한 후에 노동자 혹은 그
기 전 1개월 동안의 연장 근로시간이 118시간
가족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함으로써, 노동보험국이
그래서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
‘구체적인 업무 스트레스 계기가 없다’라고 주
살한 것은 그 인과관계의 판단을 비교적 느슨
장한 결과에 결함이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하게 해야 상기한 입법 목적에 부합할 수 있다.’
노동보험국은 피고로서 일방 패소한 뒤 윈윈의
고 명시하였다. 또한, 법원은 노동보험국이 심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심사하여 산업재해 인정
사 과정 중에 윈윈의 업무스트레스에 대해 임
으로 결과를 뒤집었고 산업재해 보험금을 지급
의로 평가하여 신청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것
하기로 했다.
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법원 역시 행정 기관이 정신질환의 산업재해 인정이 지나치게
사실 윈윈의 사건은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
보수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를 계기 삼아
니다. 오늘날 업무 형태가 바뀜에 따라 일터 환
오랜 기간 보수적인 직업병 인정 태도를 타파
경도 점점 복잡해지면서, 업무스트레스 역시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과로와 업무스트레스
갈수록 과중해진다. 업무스트레스는 최근 널리
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더 높일 수 있길 바란다.
알려진 ‘과로사’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우 24
노동자가 만드는
사진으로 보는 세상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가운데,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의 폭력에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2021_Myanmar_protests#/media/File:2021_Myanmar_Protest_in_Hleden.jpg
일터 25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합니다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박기형 상임활동가
막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역이 문을 닫는
“전차선 작업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다. 텅 빈 정류장, 불이 꺼진 선로. 기차가 고요
하나는 기존 선로를 보수·정비하는 작업입
하게 잠든 사이, 분주하게 선로 위를 오가는 노
니다. 다른 하나는 선로를 신설하는 작업이
동자들이 있다. 1971년 4월 지하철 1호선(서울
고요. 기존 선로를 작업하는 일은 지하철이
역~청량리역) 착공식 이후, 이들은 지난 50년
나 열차가 운행을 멈춘 시간 동안에 이뤄집
간 전국 곳곳에서 전기 열차가 매일매일 빠짐없
니다. 모든 차량이 차량기지로 들어간 이후
이 달릴 수 있게 선로와 설비를 설치·정비해왔
인 새벽에 작업하는 것이죠. 신설 선로는 보
다. 이번달 다양한 노동이야기에서는 ‘전차선 노
통 낮에 작업하고요. 전차선을 선로 위에 깔
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20년에는 드디어
기 위해서 땅을 고르고 전차선을 걸 빔과 빔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전차선 노동자
을 지지할 구조물을 설치합니다. 이후에 전
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국건설노동
선을 깔고 전기가 흐를 수 있게 연결까지 합
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을 만나, 전차선
니다. 이 일을 마쳐야 비로소 전기가 공급
노동자들의 노동과정과 어려움, 노동조합을 만
됩니다. 우리가 열차를 달릴 수 있게 한다고
들게 된 계기를 들어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전차선 작업이 뭐죠?
그렇다. 이들이 작업을 마쳐야만, 전기가 공
전차선 노동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한마
급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노동은 우리 사
디로 말하면, 열차가 오가는 선로 위의 전차선
회의 필수적인 교통시설을 운영하는 데 핵심적
과 주변의 시설물들, 즉 교류 25000v의 전기가
이다. 하지만 그동안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
흐르는 전선과 관련 설비들을 설치·정비하는
은 늘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고, 그랬기에 아무
일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전국의 모든 지하철
렇게나 방치되고 있었다.
과 열차는 전차선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달 릴 수 없다. 26
노동자가 만드는
쫓기듯 일하는 건 일상
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둔감해져야
일하면서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작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
업을 특정 시간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
니잖아요.”
이다. 신설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덜하지만, 기 존 선로 작업의 경우에는 운행이 멈춘 시간 내
대부분의 정비 작업은 야간에 이뤄지지만,
에 ‘반드시’ 작업을 마쳐야 한다. 열차가 정시
헬맷에 다는 헤드랜턴도 자비로 사야 하는 현
에 운행을 시작할 수 있게 하려면 운행이 멈춘
실에서 작업 현장에 조명 장비를 달아서 밝혀
3~4시간 내에 작업을 끝마쳐야 한다. 혹여 작
주는 건 사치와 다를 바 없다. 보이지 않으니 걸
업이 늦어질 경우엔 운행에 차질을 빚기 때문
려 넘어지거나 장비에 몸이 끼이거나 부딪히는
이다. 운행 중 고장이 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운
일이 다반사다. 급하게 일하다 보니, 그 정도 다
행을 신속히 재개하기 위해선, 정비 작업은 최
치는 건 일도 아니다.
단 시간 내에 이뤄져야 한다. 고소 작업 시 안전은 뒷전 “EBS에서 하는 극한직업에 전차선 노동자
“이렇게 위험한 현장인데도, 노동조합이 없
들 나온 적이 있는데요. 그거 보셨다고 했
을 때는 사고조사조차 제대로 해본 적이 없
죠? 그건 양반이에요. 평상시는 훨씬 심각
어요. 노동조합 만들자마자 시작한 활동 중
해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떤 때에는 최대
하나가 바로 사고조사였어요. 평균적으로
한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마쳐야 해요. 그렇
볼 때, 1년 동안 13~15건의 산재사고가 있
지 않으면, 열차 운행을 못하잖아요. 일을
었던 걸로 추정돼요. 여기서 말하는 사고는
마치고 선로에서 벗어난 지 몇 분도 채 지나
떨어져서 어딘가 부러지거나 끼여서 장애
지 않아서 열차가 쌩하고 지나가요. 일 마칠
를 입는 정도의 심각한 건들만 포함한 겁니
때, ‘야, 빨리 내려와. 열차 온대.’ 소리치면서
다. 그중 절반 이상이 추락사고에요.”
허겁지겁 정리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늘 무 언가에 쫓기듯 일해요.” 전차선 노동자들은 각종 중량물을 들고 나 르고 세우는 일만 하는 게 아니다. 9~10m에 달 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 전선을 깔고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안전장비도 제공받지 못 한다.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조차 ‘시간’과 ‘비 용’이 드는 불필요한 일로 치부된다. “전선을 까는 빔 위에서 안전장비도 없이 서서 작업하거나 매달려 있는 건 일상이에 요. 정확히는 그렇게 안 하면, 일 못하는 사 람 취급받아요. 처음 일 시작하면, 무서워서 두 발로 설 수도 없어요. 그러면, 밑에서 소 장이 소리치고 난리 나죠. 빨리해야 하는데, 엉금엉금 기어 다니냐고 쌍욕 먹는 거죠. 일
언제나 고소 작업이 동반되다 보니, 추락의 위험이 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추락 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추락사고의 대부분이 A 형 사다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최 근 노동조합에서 현 작업에서 A형 사다리를 아 무런 조치 없이 사용하는 것은 위법하고, 노동 자들을 위험에 내모는 것이라 문제제기하였다.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전기철도기술협회 에서는 작업현장 상황상 부득이하게 A형 사다리를 쓸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고, 노동 부에서도 A형 사다리를 쓰되 감독자의 철 저한 지시·관리 하에 안전조치 최대한 하고 사용하라고 회신했었죠. 그게 제대로 된 답 변인가요? 노동조합 결성 후 지속해서 문제 일터 27
제기하니까, 그때서야 A형 사다리 사용을
갖춰진 회사들인 거죠. 원청은 자격증, 담당
규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적은
인력 등을 허위로 기재해두거나 문서상으
비용으로 작업을 빨리하겠다고 A형 사다리
로만 갖고 있을 뿐이에요. 입찰에 지원하고
쓰는 곳이 태반이지요.”
공사를 따내기 위한 자격증만 범람하고 있 어요. 대신 실제 시공은 다른 하청업자에게
또, 위험의 외주화 A형 사다리로 작업할 시의 위험은 널리 알 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왜 소장과 회사에서는 A형 사다리를 고집하는 것일까? 바로 정해진 시간 내 최대한 빨리 많은 작업량을 해치우기 위해서다. “최근까지도 현장에선 알루미늄으로 된 절 연 FRP A형 사다리를 많이 쓰는데요, 거기 다 연장식까지 붙여서 사용하기도 해요. 가 벼우니까 둘이서 들고 나르고 위에선 한 사 람 또는 두 사람이 올라가 작업하면, 이동시 간도 단축하고 작업량을 많이 뽑을 수 있죠. 작업 인원도 많이 필요 없고요. 그런데 노동 자 입장에서는 안전대조차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올려 보내니 위험하기 짝이 없죠. 노
넘겨요. 하청업자도 자기가 시공을 전담하 질 않아요. 사업별로 시공기술이나 설비도 갖추고 있고 인력도 부릴 수 있는 소장, 기 술자 등을 하청업자가 섭외하죠. 그러면, 이 제야 우리 같은 일용직들이 각 팀에 불려갑 니다. 이런 상황이니, 전차선 노동자들은 원 청회사가 어딘지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모든 전차선을 설치하고 정비지만, 이들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기만 하다. 한국철도시설공 단과 전기사업소 등 산하 기관 및 사업장에서 정규직으로 채용된 기술직들이 있지만, 이들은 정작 간단한 점검만 할 뿐이다. 긴급한 사태가 터져도 대처할 역량이 없다. 결국 대처는 일용 직으로 고용되는 전차선 노동자들이다.
동자들이 정말 안전하게 일하려면 안전난 간이랑 안전발판이 갖춰진 이동형 고소작
어둠이 몸을 갉아먹지 못하도록
업대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공사비용
“단지 안전사고만 문제가 아닙니다. 전차선
이 올라간다고, 사람도 많이 써야 하고, 작
노동자들의 직업병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
업시간도 길어지니 거부하고 있는 거예요.”
니다. 우선 근골질환도 상당합니다. 무엇보 다 허리가 많이 안 좋아요, 도지나를 차고 상 부 9~10m에 달하는 높이의 설비를 오르내
그렇다면, 왜 소장과 회사는 명백히 위험하
려요. 도지나(안전벨트)에 전동 임팩트나 펜
다는 것을 알면서도 노동자의 안전을 내팽개치
치나 견삭기(일명 깔깔이) 등 공기구 등을 착
고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위험의 외
용하면, 장비만 10~13kg나 됩니다. 거기다
주화’라는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철제 구조물을 당겨 올리고 조립하는 일도 하죠. 손목이나 팔꿈치도 닳고 닳습니다.”
“전차선 노동자의 90% 이상이 일용직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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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공사를 발주합
야간작업이 대부분인데, 작업일수는 불규
니다. 공개 입찰로 진행하죠. 하지만 정작
칙적이다. 제조업 사업장의 교대제처럼 정기적
입찰된 회사들, 즉 원청에서는 실질적으로
야간노동을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수면장애를
시공능력이 없어요.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
겪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평균 경력이 15~20
작됩니다. 공사를 따기 위한 명의와 구색만
년 되는 조합원들도 잠은 어찌하지 못한다고
노동자가 만드는
▲ 출처: 전국건설노동조합 전차선지부 배정만 지부장
말했다.
하청은 무리하게 작업을 강행한다. 그래야 다 음 입찰 때에 흠 잡힐 일도 없기도 하니까. 노동
“아무래도 전선 작업을 하다 보니, 감전사
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은 흠이 아니다. 주어
고도 빈번합니다. 물론 사선으로 만들어서
진 공사량을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많이 해내
일하긴 하지만, 전기를 죽였다고 해서 전선
는 게 미덕이다. 적절한 조치나 제대로 된 보상
에 전기가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남아
도 없이 말이다.
있는 전류가 있어요. 어떨 때는 전선을 잡으 면, 손에서 전선을 못 놓는 일이 많아요. 특
“전국 각지에서 350여 명의 전차선 노동자
히 흐리고 비 오는 날이면 심해요. 전력을
들이 자기 몸을 바쳐가며 일하고 있습니다.
송출하는 철탑 근처에서는 유도 전력이 발
그중에서 320명이 넘는 전차선 노동자가
생해서 예상치 못하게 감전되는 일도 종종
건설노조 조합원으로 가입했어요. 노동조
있어요.”
건을 개선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노동 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 노동조
또한, 옥외작업의 부담도 상당하다. 혹한기
합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난 50여년 간
나 혹서기에 겪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다. 차
우리 전차선 노동자들이 대한민국의 발전
량운행을 위해서, 아무리 비바람이 심하게 불
에 큰 이바지를 한 사람들이잖아요. 하지만
어도, 심지어 태풍이나 눈보라가 쳐도 작업해
정작 그림자로만 살고 있었죠. 우리가 기여
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발주처
한 바, 우리의 노동현실을 시민들이 잘 모르
및 원하청과 현장 작업상황을 공유하고 노동자
고 있습니다. 앞으로 전차선 노동자들이 사
들의 의사를 반영해 작업개시 여부를 조정하거
회적으로 존중받고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
나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할 수 있도록 전차선 지부가 열심히 활동을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궂은 날씨라도, 원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일터 29
현장의 목소리
기업-노동자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투쟁 일하는 이들의 무사한 삶을 위해 뉴코아노조 김석원 부위원장 인터뷰
김다연 상임활동가
코로나는 증가 추세에 있던 온라인 소비를
입사 이래 24년 중 노조에서 활동한 기간
단번에 새로운 보편으로 이끌어냈다. 동시에
이 하지 않은 기간보다 길고, 그야말로 이런저
비대면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택배 노동자들의
런 산전수전을 겪어낸 김석원 동지. 그가 속한
심각한 노동강도와 과로사 문제가 사회적인 이
뉴코아노조는 이랜드노조와 함께(뉴코아는 ㈜
슈로 대두되었다. 재편된 유통산업의 다른 한
이랜드리테일로 2004년에 인수되었지만, 양
편에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노동자들이 있다.
노조는 독립된 형태로 병존하고 있다.) 작년 10
코로나는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에 내재한 각종
월, 다시 ‘신 구조조정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문제들을 희미하게 만들면서, ‘매출/이윤 하락,
결성해야 했다. 그 배경에는 작년 초부터 계속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불러일으키는 불가항력
진행되어온 사측의 “저강도 구조조정”이 있다.
적인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는 구조조정의 좋 은 핑계거리가 되었다. 국내 이랜드의 노동자 들은 바로 이 흐름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작년 하반기에 이 랜드의 구조조정 움직임에 대항했던 뉴코아 노 조의 부위원장 김석원동지를 만났다. 공교롭게 도 IMF가 터진 1997년에 뉴코아에 입사한 그 는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곧장 회사의 부도와 이랜드로의 인수/합병이라는 큰 사태를 경험 했다. 2008년에는 이랜드•뉴코아 비정규투쟁 에 몸담았고 그 이후로는 죽 노조에서 활동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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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기업 분할, 매각, 그리고 ‘저강도 구조조정’ “사업부의 분할, 매각은 크게 보면 구조조 정 방법 중 하나죠. 가장 고강도의 구조조 정이 정리 해고라면, 사업부의 재배치나 분 리, 매각 등은 상대적으로 저강도 구조조정 이죠. 이런 저강도 구조조정은 웬만한 기업 은 다 합니다. 꼭 사람을 직접 자르는 것만 이 구조조정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수준이 직원들이 납득할만한 수준이어야 하잖아 요. 근데 이번 건은 현직 임원 1인이 독립적 인 회사 ”엠패스트”를 차려 킴스클럽 다섯
개 점포를 인수하고, 운영하겠다는 거였어
니에요. 작년 초에 현직 임원이 가지고 나가
요. 일단 밖으로 회사가 공개적으로 내세운
는 형태로 물류센터를 매각한 게 첫 번째예
명분은 이거였어요.
요. 최근에 또 하나 터진 게, 이랜드엔 미쏘, 후아유, 티니위니 같은 자사 브랜드가 많아
하지만 다섯 개 점포를 운영하려면 적어도
요. 이런 브랜드들은 로드샵도 많아서 영업
50~100억 정도의 비용이 들어갑니다. 임
관리 조직이 따로 있는데, 이 조직을 매각했
원이래도 대기업처럼 임금 수십억 받는 것
어요. 작년부터 시도했는데 직원들이 대부
도 아닌 사람이, 이 사업을 과연 할 수 있냐
분 이직을 거부해서 지지부진하다가 올 1
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사
월 초에 나갔어요. 이렇게 벌써 사업부 3개
실 회사가 계획을 짜고 음으로 지원을 해서
가 분리해서 나간 거예요. 킴스클럽 5개 가
분리(매각)하는 것이 아니냐, 이게 전형적
져간 엠패스트를 제외한 나머지 물류나 의
인 위장계열사 아니냐, 한 거죠. 그 회사가
류 영업관리부서 같은 경우는 우리 조합원
정말 독립된 회사로 나가고, 이후 영업이 잘
이 거의 없다보니 노동조합에서 개입하기
안 되면 회사를 폐업할 수도 있잖아요. 그럼
가 어려웠지만, 그런 매각 흐름들이 계속 있
이 직원들 집에 가야 합니다. 이 직원들을
었던 거예요. 그 뒤에도 모 임원이 킴스클럽
이후에 이랜드리테일이 재채용할 것이냐?
지점을 포함한 건물 5개를 아예 가지고 나
아니죠. 이미 별개 회사의 직원들이니까.
가네 이런 소문들이 파다하게 돌았어요. 그 래서 양 노조가 공대위를 꾸린 거예요. 그
재작년부터 킴스클럽 매각에 대한 이야기
리고 10월 말부터 엠패스트로 나간 다섯 개
는 나왔으나 회사에 물어보면 ‘사실무근이
점포 중 본점 격인 목동점 앞에서 매주 월요
다’ 라고 답했었는데, 그 움직임이 작년 6~7
일, 목요일 점심시간 1시간 반씩 피켓팅을
월에 포착된거죠. 우선 공정거래위원회에
했어요. 12월 초에는 연대단위 꾸려서 진행
질의를 넣어봤어요. 보통 정부부처에 질의
했고요. 양 노조의 위원장들이 언론인터뷰
를 넣었을 때, 조건이 확실하지 않으면 확
도 하고, 외부 기고문도 내고. 본사 앞에서
실하지 않다는 단서가 붙어요. ‘너네가 말하
기자회견도 하고요. 대략 3달 정도 했어요.
는 조건이 맞다면, 위장계열사일수도 있겠 다’ 이렇게 답이 와요. 그래서 판단하기가 어
그리고 12월에 공정거래위원회에 위장계
려웠는데, 그 와중에 회사가 9월에 전격적
열사를 조사해 달라는 고발장을 넣었습니
으로 다섯 개 점포 매각을 발표했어요. 직원
다. 회사를 계속 압박해 간 거죠. 위장계열
들과 사업설명회와 면담을 진행했어요. 그
사라고 판정받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
후 킴스클럽 5개 점포 130여명 정도의 직
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확인이 들어가니
원들이 이랜드리테일을 퇴사하고 엠패스트
까요. 여기서 위장계열사로 판정받으면, 회
로 이직을 했죠. 10월 5개 점포가 매각되었
사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
어요. 저희는 여차하면 이 직원들 정리할 수
겠으나 일단 앞으로의 구조조정 계획에 큰
있게 회사가 주도해서 분사한 것이 아니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죠. 올해 설 직전에
그럼 이건 위장계열사다 이렇게 판단했습
회사에서 지금까지 분리, 매각 되었던 3개
니다.
사업부 제외하고 추가적인 형태의 분리나 매각은 없을 것이며, 그간 매각에 대한 유감
하지만 엠패스트는 첫 번째 매각사례가 아
표명을 할 테니 고발을 취하해달라는 제안
일터 31
이 들어왔어요. 노사 대표자의 서명이 들어
받아냈다. 엠패스트로 이직한 이들을 보호할
간 취하서를 제출한 때가 2월 19일이었습
노조도 지켜냈다. 하지만 동시에, 김석원 동지
니다.”
는 저물어가는 오프라인 유통산업의 현실 역시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기간에 뉴코아/이랜드 양 노조 는 이랜드리테일(위장계열사 고발) 뿐만 아니
“오프라인 시대는 끝났어요. 타 업체들도 점
라 엠패스트를 대상으로도 투쟁을 해야 했다.
포를 많이 정리하고 있고, 있는 점포에서도 사람을 줄이고 있죠. 앞으로 계속 오프라인
“위장계열사 판정이 될 수도 있지만, 위장
매장 숫자는 줄어들 거예요. 이미 온라인 쇼
계열사가 아니라고 기각될 수도 있어요. 그
핑의 시대로 들어섰죠. 온라인유통의 기본은
럼 엠패스트로 넘어간 5개 점포 조합원(양
물류예요. 물류센터를 짓고, 이 시스템을 가
노조 합쳐서 70여명)들을 위한 노조 울타리
동하는데 사람들도 많이 필요하고요. 온라인
를 어떻게 쳐 줄 것인가, 고민이 많았죠. 그
유통을 이랜드도 하고는 있지만, 매출 규모
러다가 양 노조가 엠패스트 지부를 각각 만
가 너무 작아요. 게다가 있는 점포도 무인계
들고, 그 지부 소속의 조합원이 있으니까 회
산대를 도입 하는 식으로 이미 사람을 줄이
사가 나와서 단체협약을 우리(양 노조)와 맺
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식의 전격적인 점포
자고 요구했어요. 처음에 회사는 우리는 이
매각에는, 노조에선 반발할 수밖에 없죠.”
랜드리테일이랑 다른 회사다 하면서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방노동
하지만 이랜드리테일이 과연 ”경영상황 악
위원회에 시정신청을 넣었어요. 단협 맺자
화“를 단순히 소비방식의 변화나 시장상황, 유
고 하는데 회사가 응하지 않으니 교섭절차
통산업발전법과 같은 정부의 규제만 탓할 수
를 지키게 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지노위에
있는가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 뒤에는 이랜드
서 우리쪽 손을 들어줬어요. 그러니 회사는
그룹의 소유구조와 그에 따른 독특한 경영상
이에 불응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
특징들이 있다.
을 넣었으나 기각당했지요. 일반적으로 단 협이 있는 회사는, 회사가 급여를 지급할 때
“기업 오너들도 당기순이익에서 배당 많이
체크오프(Check-off)라고 조합비를 공제
가져가야 보통 15~20% 가져가요. 하지만
해요. 엠패스트는 조합원의 조합비를 공제
이랜드는 작년 당기순이익의 90%를 주주
하지 않았으나 저희는 나간 조합원들에게
배당으로 가져갔어요. 이랜드그룹 중에 2
CMS로 조합비를 받았어요. 그래서 지노위
개 회사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상장이 안 되
에 저희가 조합비를 납부하는 조합원이 있
어 있어요. 그룹의 지주회사인 이랜드월드
다는 사실을 증명한 거죠. 결국 엠패스트는
가 있고, 이랜드월드가 유통회사인 이랜드
조합의 실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현재
리테일의 지분 98%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는 단체교섭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 이랜드월드의 주식 거의 대부분을 오너 가 가지고 있고요. 주식회사라면 이사회도
시대 변화와 함께 온 유통업 위기 지속적인 저강도 구조조정 속에서, 양 노조 는 공대위를 꾸려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회사 로부터 추가적인 매각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32
노동자가 만드는
하고, 주주들이 의결권 행사를 통해 서로를 견제할 수도 있겠지만, 이랜드는 이 부분에 본질적인 한계가 있어요. 게다가 이랜드처 럼 기업공개를 하지 않은 회사는 경영정보 에 대한 접근성에 한계가 있어 금융비용이
▲ 출처: 김다연
높게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이것 때문에도
수 있다는 시혜적인 방식으로만 노동자를 바라
기업 활동에 제약이 발생하지요. 오너가 배
본다. 또한 기업은 사회 구성원들이 마련한 재
당금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지 말고, 온라인
원에서 나오는 정부의 각종 지원과 인프라를
사업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해야 하
이용한다. 애초부터 기업의 존립은 사회에 빚
는데, 그러지 않는 거죠.”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사회에 되돌 려줘야 할 몫들은 일절 고려되지 않고 있다.
높은 금융비용을 감당하면서도, 사업에 재 투자할 수 있는 돈의 대부분이 오너의 주머니
“노동은 사실상 개인의 생활을 회사에 바치
로 들아가는 상황. 사실상 오너의 결정으로, 시
는 거잖아요. ‘내 청춘을 회사에 바쳤다’ 이
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만한 채비가 안
런 소리를 하잖아요.”
된 상태로 온라인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프라인 유통업이 어렵다는
노동은 언제나 유한한 몸과 정신의 힘, 그
이유를 들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을 어떻게
리고 시간의 사용을 수반한다. 즉 노동자의 생
받아들여야 할까. “경영상의 어려움”을 언제나
명과 삶이 투여된다. 그렇게 그 자신과 기업, 사
노동자의 고통분담 방식으로만 해결해가는 것,
회를 먹인다. 노동자의 기여에 대한 인정은 기
그리고 정작 사업의 큰 운영 결정을 하는 책임
업이 이들을 대우하는 태도의 변화를 요구한
자들은 여전히 그대로 자신의 지위와 부를 누
다. 태도의 변화는 곧 관계방식의 변화이다. 뉴
리는 것을.
코아, 이랜드 노조는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 맺 기 방식을 계속해서 달리하고자 하는 투쟁들을
노동자들은 자신의 에너지와 삶을 투여하
이어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역할과 기여를 인
여 자신을 먹이기도 하지만, 기업을 먹이기도
정해야한다고, 기업의 유지와 성장은 노동자에
한다. 기업 활동에 필요한 그 어느 무엇 하나
빚지고 있다고, 그러니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노동 없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도리어 기업에서
책임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는 마치 자신들이 있기에 노동자들이 먹고 살
된다고 주장하면서. 일터 3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권리입니다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 이상진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장
이번 일터 3월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 는다’는 지난 추운 겨울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 업처벌법으로 단식투쟁을 강행한 이상진 민주 노총 전 부위원장님과 인터뷰하였다. 이상진 동 지는 민주노총에서 노동안전 담당 임원으로 활 동하며 여러 투쟁을 이끌었고, 지금은 임원 역 할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가 있다. 1월 초만 해도 그는 국회 앞에서 단식을 하며 중대재해기업처 벌법 제정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벌써 한 시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놀랍기도 하다. 한 노보연 회원이기도 한 이상진 동지와 직접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좋았겠 으나 지역적인 제약으로 그렇게 하지는 못 했다. 봄비가 종일 비가 내리던 3월 1일 저녁 화상으 로 이상진 동지와 지금까지 노동조합 활동, 노동 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동현장을 바꿔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만난 노동조합 그간 해왔던 활동을 끝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먼저 그가 일을 시작한 시기의 이야 기를 들어보았다.
34
노동자가 만드는
▲작년 12월 고 김용균노동자 사망 2주기 현장추모제에서의 이 상진 동지 모습. 출처: 호나라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1994년 입사해서 10년 일하다가 정리해고 되었는데 끝내 복 직은 못했습니다. 최근까지 십 년 넘게 노동 조합활동을 했었습니다.” 노동이란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
본적인 것이지만 노동에서 긍정적인 일을 떠올
부위원장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갔다. 화학
리기란 쉽지 않다. 일을 시작하면 수많은 부당함
섬유연맹과 민주노총 임원으로 14년을 보냈다.
을 겪고 노동자의 권리나 안전보다는 기업의 이 윤이 항상 우선순위에 올라있는 경우가 대부분
“노조활동경험을 기반으로 저는 중앙 노동
이다. 이상진 동지 역시 그런 일들을 목격하고
조합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화학섬유
자신과 동료들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
노동조합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부위원장
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
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올해 부위원장 임기
고, 자연스럽게 노동조합 활동으로 이어졌다.
를 마치고 지금은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습 니다. 제가 이른 나이에 중앙노조활동을 했
“거창하게 말하자면 계급모순에 눈을 떴다
었는데요, 이제는 저와 주위를 돌아볼 시간
고 할까요? 노동조합에 관심 생겼고 2000
이 필요하다고 느껴 재출마는 하지 않았습
년 밀레니엄 시기에 코오롱 노동조합에서
니다. 지금은 거의 백수인데요, 집안에서 음
대의원이 되었습니다. 당시 제조업 현장은
식점을 운영하는데 도와주고 있습니다.”
환경이 참 열악했지만 대부분 노동안전의 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했었
치열했던 투쟁의 순간들
지요. 하지만 제가 대의원이 되고 당연시 되
이상진 동지는 대책위 참여 등 핵심적 활동
었던 현장의 문제를 바꾸려고 노력 했습니
을 한 투쟁이 여럿이다. 최근의 투쟁부터 꼽자
다. 예를 들자면 국소배기장치를 만들고 안
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문중원 열사 투
전장치를 새로 구비했었습니다. 이렇게 현
쟁, 김용균 열사 투쟁 등 바로 떠오르는 것만 해
장을 조금씩 바꾸니 조합원들이 좋아하였
도 여러가지다. 특히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고 저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노동안전활동
투쟁에 돌입하며 보낸 시간은 특별할 수밖에
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요.
없다. 국민들이 함께 해 법안 발의를 위한 10만 동의청원이 이루어진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는 요통, 자상과 부상이나 손상은 공상
그후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회 한 번 하는 것도
처리 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사측에
어려웠기 때문에 여러가지 면에서 한계가 있는
산재처리를 요구했었고 현장 투쟁도 했습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잇따른 노동자 사망 사
니다. 2004년에는 근골격계 집단산재 신청
건 등으로 노동자들의 분노가 모아졌고 그 추
을 시도했어요. 결국 산재신청은 안되었지
운 겨울 산재 유가족들과 노동계에서 단식까지
만 임단협에 우리의 요구가 반영이 되었고
결의하며 투쟁의 열기를 높였다. 이렇게 단식
현장에서 노동안전에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투쟁이라는 어려운 투쟁 전술을 택했을 때, 또
하지만 이후 코오롱은 정리해고를 단행했었
법이 제정되었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
고 대부분의 노동자가 해고 되었습니다.”
지 궁금했다. 한편으로 그런 투쟁을 하면서 들 었을 아쉬움도 있었을 것 같았다. 민주노총 부
코오롱에서 일을 하고, 노동 조건을 바꾸려 열심히 발로 뛰기도 했지만, 회사는 구조조정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돌아봤을 때 가 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였을까?
이라는 카드로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결국 정리 해고 했다.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동료들과 회
“민주노총활동 중에서 제일 보람이 있었던
사를 상대로 싸운 뒤에 복직되지는 않았지만,
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된 점이었습
그는 화학섬유연맹의 임원으로, 그후 민주노총
니다. 비록 이빨이 빠진 채 법안이 통과 되
일터 35
었지만 산재가 기업 범죄라는 것을 우리사
을 훼손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많은 관심
회가 인정했고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일하
이 필요합니다. 노동안전단체가 각자의 활
는 모든 이들의 권리라는 점을 우리사회가
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량을 모아야
배운 것이 이번 투쟁의 가장 큰 성과입니다.
합니다.”
저는 구의역 김 군, 문중원 열사, 김용균 열
더 넓고 깊은
사 대책위 활동을 했었는데요. 작년에 투쟁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기대한다
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인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하면서 기대만큼 좋
해 대중투쟁의 공간에 제약이 있었고, 민주
은 결과가 나온다면 물론 기쁘겠지만 많은 경
노총은 지도부가 교체되어 안팎으로 어려
우 자본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또 때로는 우리
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2020
의 힘이 부족해서 좌절하는 때도 많다. 또한 노
년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원년으로
동조합 역시 노동안전보건 투쟁을 끌어가기란
만들겠다고 결의한 바 있었습니다. 이후 중
쉬운 일이 아니다. 투쟁의 성공 여부, 그리고 노
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에 노동자와 시민
동조합의 역량 등 그를 고민하게 했던 것들이
10만 명이 동의를 한 바가 있고 겨울에 선
있을 것 같았다. 이상진 동지에게 민주노총 부
도적으로 유가족 분들이 단식을 결단하여
위원장 임기를 마치면서 떠오른 아쉬움은 무엇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점은 운동이나 역
이었을까?
사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리고 단식하면서 국회에 잠시 머물다 보니
“뭐 딱히 떠오르진 않는데요, 개인적으로 가
여당에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쪽으
습기 살균제 같은 시민재해를 더 적극적으
로 통과된 데 대해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
로 대응하고 싶었었는데 쉽지는 않았습니
한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향후에도 기회는
다. 그리고 산재현장 대응역량도 좀 강화했
열려있고 개입할 이슈는 많다고 봅니다.
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산재대응 에 있어서도 총연맹이 체계적이고 선제적
하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특정 단체가
인 역량을 더 갖추면 좋겠다면 생각이 들었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단체들이 개별적으
습니다.
로 대응하는 방식으로는 어렵고 민주노총 이 전적으로 할 수도 없습니다. 전국적인 연
민주노총은 16개 가맹조직과 16개 지역본
대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운동본부 이름으
부가 있어요. 하지만 가맹산하조직에 아직
로 형식적으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
도 노안활동가가 없는 곳이 있어요. 현장의
게, 내실 있게 단체들을 규합해야 합니다.
관심이 부족한 조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
하지만 각급 단체들이 조직 고유 업무가 바
전이 비해서는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생각
쁘다 보니 여력을 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합니다. 예전에는 민주노총에 노안국 인원
이 점이 고민입니다. 물론 한노보연도 고민
이 1명인 적이 있었습니다. 조합원은 70만
하겠지만요.
인 큰 조직임에도 불구하고요. 심지어 당시 한국노총은 노안담당자가 3명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노동안전단체들이 좀 지쳐 있
36
어 보여요. 하지만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민주노총 총연맹에서는 노동안전국은 기피
올해가 중요합니다. 정부가 시행령으로 법
부서였습니다. 실무자가 산업안전보건법을
노동자가 만드는
▲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논의되는 법사위 법안 심사 과정을 지켜보는 이상진 동지(왼쪽에서 세번째). 이용관, 김미숙, 강은 미 세 분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출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전문적인 영역이거니
전보건 활동은 당위성 면에서 모두 공감하지만
와 산재사고 현장 대응에 급급하다보니 인
그 활동을 짊어지는 사람은 적은 것이 현실이
력은 늘 부족했습니다. 쉽게 말해 막노동이
다. 그가 지금까지 몰두해온 노동안전보건 활
었지요. 이런 점들로 인해 정책생산능력은
동과 쉽지 않은 현실을 걱정하는 마음을 들을
떨어졌었어요. 내부적으로 개선하려고 애
수 있었다.
를 썼습니다. 그래서 노동안전국이 노동안 전실로 격상되고 상근자도 3명으로 충원했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에 고향에서 집안일을
습니다. 앞으로도 더 인력을 확충할 계획입
돕고 있다는 이상진 동지. 지금은 노동조합 활
니다. 더 나아지겠지요.”
동을 마치고 쉬어가는 기간이다. 지금까지 수많 은 부당함에 맞서 싸워온 그가 앞으로 어떤 계
노동운동, 그리고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하
획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나갈지 궁금해진다. 그
면서 민주노총 노동안전 임원이라는 무게와 책
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굳
임이 따르는 자리에서 여러 투쟁을 이끌어왔
은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 밖으로는 노동자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어 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안으로는 노동안 전보건 활동가 양성에도 애를 쓰면서. 노동안
일터 37
이 치열한 무기력을 -『커밍 업 쇼트』를 읽고
채은 선전위원
당히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단어만 떠올려도, 그 시절의 정치, 사회, 문 화, 경제를 한 순간에 군더더기 없이 느끼게 된 문화로 읽는 노동
다. 나도 이젠 옛날 사람이 되어서 내 시절을 구 분 짓는 그 단어를 들을 때마다 ‘아~ 나 때는 말 이지~’가 저절로 나오려고 한다. 아! 당연히 ‘라 떼’를 시전하지는 않는다. 볼품없어 보여서 말 이다. ‘라떼’는 그래도 괜찮았던 걸까? 나는 IMF 사태 때 학창 시절을 보냈고, Y2K 가 세상을 다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대학을 어디로 가느니, 마느니’ 고민했 었다. 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는 어느 날 같 은 반 친구가 더이상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되 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서 몰래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는 경우가 심 ▲ 출처: 알라딘
심치 않게 생기곤 했다. 우리집은 불행인지 다 행인지 IMF 사태가 오기 전, 이미 어른들의 사 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던 터라 마땅히 더 망
세대를 구분하는 단어들이 있다. 그 시절
해서 도망갈 곳도 없었다. 뭔가 실패에 있어서,
을 특징짓는 ‘공통적인 것’들을 추상화시켜
좀 더 앞선 일종의 선배가 된 것 같았다. “그래,
만들고는 입으로 전하고 온갖 얘기에 널리 사
그래도 어쨌든 살아남기를...” 어제는 친구의 자
용되었다. 예를 들어, X세대 IMF세대 뭐 이런
리였지만 오늘은 주인을 잃은 그곳을 향해 마
것들 아니던가. 참 명쾌하다. 단어 하나로 상
음속으로 말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담담히 받
38
노동자가 만드는
아들였던 듯하다. 당시 함께 떠오로는 기억은
『커밍업 쇼트 :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
교대의 입시 점수 상향이었다. 그 당시 각광받
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라는 책은 한 치 앞
는 직업은 ‘안정’을 담보하는 선생님이었다. 그
을 내다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살아갈 자리
래서 그 당시에 갑자기! 교대와 사범대의 인기
를 찾지 못해 부유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연
가 하늘로 치솟았었다. 학생들 반 이상이 선생
구 대상자들의 삶을 때론 멀리 때론 곁에서
님이 되는 게 ‘꿈’이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명하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치밀하고 꼼꼼 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제처럼 불확실성이 날
돌이켜보면, 그래도 나름 치열하게 열심히
로 증대하는 시대에서 우리가 ‘어른’이라고
하면, ‘살 수는’ 있었던 시절 같았다. 그러니까
부르는 사회적 지위를 성취하지 못하는 실태
그때는 어떻게든 대학을 가면 일자리를 얻을
를 담아낸다. 나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수 있었고 -물론 내 앞 세대 (90년대 초중반 학
문제의 원인을 들춰내고 대안의 방향을 모색
번인 이들)보다 취업은 녹록치 않았고 대학 생
해보려 한다.
활의 낭만, 소위 운동이니, 사랑이니, 이런 것보 다 조금은 더 취업 걱정을 하던 시대였지만- 그
각자도생, 이 치열한 무기력을
래도 꿈은 가져 볼 수는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
작가는 이 책에 담긴 인터뷰 내용은 ‘평생
래서 대학을 나름의 낭만을 간직하고서 다녔던
일터’, 즉 생활 임금을 지급하고 차로 출퇴근
것 같다. 학점 따윈 상관없고, 고시라는 것도 준
할 수 있으며 일상적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
비해보고, 하고 싶은 활동도 하고. 그렇게 좌충
는 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일자리를 찾고 유지
우돌하는 가운데, ‘취업’의 초조함이라는 것은
하는 수많은 노력들로 가득 차 있다고 이야기
없었던 것 같다.
한다.1) 노동계급 청년들은 증대하는 불확실성 앞에서 막중한 리스크를 감내하길 요구받는
불확실한 시대, 부유하는 노동자들
다. 하지만 노동계급 청년들은 무기력 상태에
다시 돌아와 현재를 바라보자니 답답함부
직면한다. 질병, 가족 해체, 장애, 부상 등 예
터 몰려온다.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노
기치 못한 사회경제적 충격을 겪으며, 그때마
력하지만, 온갖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결과는
다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의 안
참담하다. 안정적 일자리라고 불리는 것들에는
전망은 무너졌고, 연대의 끈은 사라졌다. 지
더는 여유가 없다. 거기에 가기 위한 경쟁은 날
금 여기서 살아남기 위한 해결책들은 각자의
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우리 사회의 중심에 닿
몫으로 남겨질 뿐이다. 각자도생의 시대랄까.
지 못한 사람들이 주변부를 채운다. 불안정한
물론 동시에 그 외 대부분의 경우엔 ‘정당한’
주변부에 놓인 사람들에겐 온전한 자리를 찾기
리스크만 감수하면, -등록금을 마련하고 대출
란 불가능에 가깝다. 항상 들뜬 상태로 존재하
을 받거나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는 등의- 안
는 화학원소의 전자들처럼 말이다. 둥둥 떠다
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그렇게 계층 상승
니는 전자들이 다른 것과 결합하여 안정적 상
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2)
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화학물질의 세 계에서나 가능한 일일뿐. 우리가 사는 세계에
우리가 치르고자 하는 ‘정당한 리스크’는
선 끊임없이 주변으로 밀려나며, 언제나 부유
분명 존재한다. 비록 각자마다 다르게 정의되
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 은 갈수록 점점 늘어만 간다.
1) 『커밍 업 쇼트』(2020. 제니퍼 M. 실바 저. 문현아 역. 리시올), p.70 2) 위의 책, p.80
일터 39
▲출처: pixabay
고 경험될지라도 말이다. 내 미래를 위해 당
는 리스크 그 자체뿐만 아니라, 리스크를 감당
연히 투자되어야 하는 비용이라고 ‘여겨야 마
할 때 겪는 박탈감과도 싸워야 하는 세대다. 성
땅한 어떤 것’을 공정하게 지출했을 때, 충분
실하게 하루를 보내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
한 대가나 보상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우
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리 모두에게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공정함이
상처를 입히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다.
문화로 읽는 노동
무너지는 순간, 균열이 생긴다. 더 놀라운 것 은 그럴 때 각자도생의 사회를 떠받치는 공
진창에 내팽겨쳐진 ‘공정’
정함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역설적
“노동계급 청년들은 고등 교육 기관 같은
이게도 균열은 ‘너와 나의 편가르기’로 형상
조직이 사회 통합과 계층 상승에 이바지하리라
화된다.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
기대하지만, 상호작용 실패를 연달아 경험하고
은 비용을 지출했는데. 너는 그렇게 안 하지
는 자신의 미래를 빚는 바로 그 제도들을 불신
않았느냐.”, “운이 좋아서냐. 아니면, 인맥, 혈
하고 경계하게 된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
연, 학력 덕분 아니냐. 여자라서 더 혜택받는
확신할 수 없고 가족 관계는 깨지기 쉬우며 사
거 아니냐.”, “시험을 보든 면접을 보든 경쟁
회 안전망이 축소되고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을 치르고 거기서 승리해 자격을 획득하지도
성인이 되는 것은 선택지가 없음을 받아들이는
않은 사람들에게 우리와 동등한 보상과 자격
과정이다.”3)
을 주는 게 말이 되냐.” 등등. 자신이 들인 노 력과 비용이 부정당했다며 화를 낸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어른의 모습이 있다. 이쯤 되면 취업해야 하고, 다음에는 결혼
물론 이런 반응이 이해가 안 될 일은 아니
해야 하고, 집을 마련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다. 여기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
노후를 챙기는 등등. 인생의 정답이랄까. 그게
회구조적 문제로 해결해야 하니 서로 싸우지
정말 이 사회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이라
말자는 식의 윤리적 수사는 잠시 접어두자.
면, 그걸 차근히 밟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오히려 직시해야 할 것은 억울하다 못해 치
사회의 공적 책임이 아니던가. 이토록 심각한
밀어 오르는 이 분노가 어디로, 어떻게, 왜 향
취업난을 야기한 것, 결혼·출산·육아를 꿈꿀
하는가 하는 문제다. 우리의 감정은 보이지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우리 사회
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곳이 아니라, 바로 눈
의 불평등, 불확실성이 아니던가. 이곳에서 성
에 들어오고 손아귀로 움켜쥘 수 있는 사람
인이 되는 순간은 끝이 언제인지 모른 채 끊임
을 향해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곁에 있는 이
없이 지연될 뿐이다. 청년에 멈춰버린 사람들
들에게 손쉽게 온갖 공격과 비난을 가하게 되
을 외면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는 게 사람의 인지구조가 아닌가. 결국, 우리 3) 위의 책, p.69 40
노동자가 만드는
사진으로 보는 세상
▲ 한국 민중·민족·민주운동에 큰 획을 긋고, 마지막까지도 해고당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목소리 내신 백기완 선생이 돌아가셨다. 선생의 영결식에서 416합창단, 이소선합창단과 평화의나무 합창단 등 연합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 을 부르는 모습. 출처: 호나라
일터 41
노동현장도, 건강검진 실시도 험난한 물류업계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김지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스마트폰 쇼핑앱으
의 연속선상에서 떠맡게 되는 부수적인 업무가
로 터치 몇 번이면 새벽배송으로 제품을 받아
많고 장시간 야간노동을 하기 때문에 보건학적
볼 수 있게 되었다. 포털 사이트나 쇼핑몰에
관심이 필요한 직종이다. 관련 산업보건제도에
서도 주문만 하면 늦어도 다음날이면 문 앞에
의해서도 야간작업은 특수건강진단의 대상으
택배 상자가 놓여 있다. 코로나 덕분에 가속
로 관리되기 시작하면서 일반건강진단 뿐만 아
화된 이러한 일상은 가히 물류의 혁신이라고
니라 특수건강진단을 통해 뇌심질환과 수면장
부를 만 하다. 편리함에 우리 모두 길들여지
애, 위장관계 증상 등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가
고 있다.
이루어지게 되었다.
물론 모두가 편리해 보이는 혁신 뒤에는
물류센터 인력도급업체들의 건강진단 요
많은 물류 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다. 미국
청을 받게 되면 각오를 단단히 하게 된다. 패
나스닥 상장을 추진 중인 기업의 경우 개별주
딩 조끼와 핫팩은 필수다. 일단 물류단지 건물
문 확인과 소포장, 분류, 배송까지 수많은 인
들 자체가 윙바디 트레일러와 트럭 등의 박차
력들이 상당량 수작업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를 위해 모두 뚫린 구조라 냉난방의 의미가 없
알려져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대형마트와 백
고 건물의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 혈압과
화점 등을 운영해온 대기업의 경우 좀 더 자
채혈을 하는 장소는 그대로 외부환경에 노출되
동화와 전산화가 진행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어 사실상 야외나 다름없고, 그나마 문진실이
사실 여기서 혁신이 더 지속된 미국의 아마존
라고 내어주는 행정사무실이나 창고도 가건물
같은 글로벌기업의 경우에는 로봇화, 자동화,
에 가까운 판넬 구조라 전열기구의 도움을 받
무인화가 이루어지면서 고용유발 증가량보다
아 조금 나은 정도이다. 끊임없는 소음과 컨베
는 단순 인력 감소량이 커진다고 한다.
이어 벨트의 진동은 덤이다. 부지런히 몸을 움 직이는 현장 물류 노동자들은 이러한 추위와
군포 복합 물류 센터로 향한다. 최근에는
더위에 익숙해진 터라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게
곤지암, 이천 등 타 물류단지로 물량을 다소
되면 외려 ‘안 추우세요?’ 라고 병원 직원들에
뺏겨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주로 서울남부
게 되묻곤 한다.
의 물류가 집결하는 곳이다. 물류 노동자들은 산재사고나 근골격계 질환 등에 취약하다고
이러한 상황이니 특히 혈압측정의 신뢰성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과로사 문제 등 뇌심
을 담보하는데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혈관계 질환이 대두되기도 하였다. 또한 물류
뿐만 아니라 많은 인력도급 업체들이 야간 분
42
노동자가 만드는
▲ 물류 노동자들이 화물 분류를 하는 모습이다. 출처: 김지원
류작업이 시작되는 오후 5시 경에 검진을 요청
재검사를 사업장에 통보하면 일단 반응은
하는데 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
두 가지다. ‘멀어서 가지 않겠다. 그날 밥을 좀
이 부족한 편이라 건강진단의 기본인 ‘공복상
먹고 와서 당이 높게 나온 것 같다. 왜 재검이
태’를 고지 받지 않고 오는 노동자들이 많다. 오
나오는 거냐. 귀찮다’ 혹은 ‘그 분 퇴사했다’ 이
히려, 몸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때까지
다. 사실 후자의 경우는 추가검사를 강제할 수
공복을 하라는 게 말이 되냐며 채혈하는 병리
단이 마땅치 않다. 마침 이 글을 쓰는 중, 근로
사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의사는 노동자들의
자 공복혈당 수치가 당뇨 진단수치를 상회하여
직업력 등을 먼저 확인하기 시작한다. 도급업
확진검사가 필요하나 알아서 판정해달라는 근
체들을 통한 간접 고용이 일상인 분야이기 때
로자와 사업주의 ‘요청’이 있다는 내용을 행정
문에 대부분 1년 미만 근무를 하거나 매년 재계
직원에게 전해 받았다. 서두에서 말한 기업 중
약을 통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형태로 일
한 곳이었고, 마침 해당 회사 물류 직원 과로사
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로 인해 타격이 컸던
문제로 최근 논란의 중심에 있는 회사였다. 이
분야인 예술계, 관광업 종사자들이 물류센터로
에 나는 신중하게 단어들을 가다듬어 회사 담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뉴스를 현장에서 체감하
당자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거절할 수 없는
게 되었다. 고용환경 변화의 풍랑 속에서 완충
제안을.
역할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 규정을 위반하는 경 건강검진 후 결과 판정을 하다보면 이들에
우, 건강진단을 하지 아니한 사업주의 경우 1천
게서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발견되는 빈
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며(산업안전보건
도가 높다. 특히 기존에 일반건강진단을 전혀
법 제 72조 제4항 제 5호) 건강진단을 하지 아
강제 받지 않았던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를 전
니한 근로자의 경우도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전하던 노동자들이 이러한 물류센터에 적을 두
가 부과됩니다.(산업안전보건법 제 72조 제 5항
게 되면서 비로소 확진 받는 사례가 많다. 사실
제 2호). 귀사의 경우 현재 과로사 문제로 사회
성적표를 읽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두는 학생
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으며, 노동자에 대해서
처럼, 본인의 건강진단 결과서도 제대로 읽지
특수건강진단 등의 안전보건업무를 소홀히 하
않고 치료나 추가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도 많
게 된다면 추후 책임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다. 다양한 직장을 전전하다보면 때로는 좀 더
알려드립니다.’
강한 보건관리 규제의 그물망에 들어왔다 나가 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일터 43
사람이 먼저다. 노동자도 사람이다. -부당한 인사권 남용에 따른 업무상 사망(자살) 사건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행하였다. 노동자는 2019년 6월 정년퇴직을 하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였고, 2019년 7월부터 촉탁직 기간제 노동자로 사회적 신분이 변경되었지만 동일한 사업장에 서 계속하여 시설관리 업무를 수행하였다. 노 동자는 정년퇴직 전에 시설팀장의 직책을 맡아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 사업장은 촉탁직 기간제 노동자로 채용 될 경우 ‘시설직 실무원’으로 직명을 표기하였 고, 무기계약직의 경우 ‘시설직 실무직’으로 구 분하였다. A공단의 관리직은 이 사건 노동자가 정년퇴직한 후 시설팀장이 공석이 된 상황에 ▲출처: pixabay
서 시설팀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노동자를 시설팀장으로 발령하지 않고, 관리직
2020년 2월 A공단에서 시설직 실무원으
을 시설팀장 직무대행으로 발령하는 등 시설관
로 근무하던 노동자가 극단 선택을 하였다.
리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합리적
노동자는 2014년 6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사 조치를 하였
용역회사에 소속되어 시설관리 업무를 수행
다. 이 사건 노동자는 관리직의 인사조치에 문
하였다. 당시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
제를 제기하거나 제대로 된 인사조치가 필요하
라 2018년 1월부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
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관리직과 업무상 갈등을
서 A공단에 직접 고용되어 사회적 신분이 변
지속하게 되었다. 이 사건 노동자는 촉탁직 기
경되었다. 당시 시설관리 업무는 준 고령자,
간제 노동자로 채용되기 전에 시설팀장을 맡았
고령자 우선 고용직종으로 정년퇴직 후에도
던 상황으로 2019년 6월까지의 업무수행 능력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65세까지 1년 단위로
과 2019년 7월 이후의 업무수행 능력에는 차이
촉탁직 기간제 노동자로 고용하는 정책을 시
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44
노동자가 만드는
나, 진단적으로 재발성우울장애를 앓아왔고 그러나 2019년 11월말 인사평가 결과 100
자살 시도력이 있는 고인이 2019. 7. 1. 재고
점 만점 중 47점을 받았다. 부당한 인사평가에
용 이후 업무수행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에 기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였으나 변동은 없었다.
인한 스트레스의 영향으로 우울, 불면, 불안,
이 노동자는 2019년 12월 초 불면, 불안증세를
체중저하 등의 증상이 발현하는 주요 우울삽
호소하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화가 발생하여 2019. 12월 이후 정신건강의학
그러던 중 2020년 1월말 새로운 업무를 부여받
과 진료 받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고인이 스
았다. 2020년 2월부터 새롭게 근무를 해야 하
트레스로 인한 두통, 불면증 등으로 요양 및
는 근무지는 시설직 단 한명이 근무하는 곳이
치료를 받던 기간 중에 고인과 충분히 협의되
었다. 기존에 근무하였던 노동자와 이 사건 노
지 않은 업무 분장으로 갑작스럽게 종전의 시
동자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인사발령을 하였던
설팀원이 근무한 사례가 없던 ○○○○○ 시
것이다. 이 사건 노동자는 자신의 업무를 능력
설물 유지관리업무를 하도록 한 것은 고인에
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허드렛일을 시킨다고
게 모욕감을 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이
격분하였다. 유서와 지인들에게 보낸 기록에는
러한 업무 분장의 배경이 고인을 징계하기 위
“오늘 배치된 곳은 완전 잡부일이다”, “모욕적
한 명분을 찾기 위함이라는 이 건 사업장 관
인 근무평가도 모자라 이전 업무와 전혀 상관
리자의 경찰진술 내용 등을 종합할 때, 고인
없는 곳으로 업무분장을 해 놨다”, “몇 달째 잠
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하여 주요 우울장애
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었고, 새로
증세가 악화되었고, 이로 인하여 정상적인 인
운 근무지로 출근한지 2일째 되는 날 이 사건
식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
노동자는 극단 선택을 하였다.
를 하여 사망하게 된 것으로 판단되므로 고인 의 사망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
유족과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동료 노 동자를 통해 확인한 바에 의하면, A공단은 이
는 것이 참석한 위원들의 다수 의견이다”라 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사건 노동자와 촉탁직 근로계약을 갱신하지 않 을 수 있는 합법적인 사유를 확보하기 위해 단
사건 조사과정에서 A공단 관리자의 경찰
한명만 근무하는 근무지로 인사발령을 한 것이
진술 내용을 확인하지 못하였던 상황이었다.
라는 말을 확인하였다. 이 사건 노동자에 대한
동료 노동자의 진술이나 이 사건 노동자에 대
인사발령 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것
한 석연치 않았던 인사이동 배경에는 촉탁직
으로 받아들여졌다. 2020년 2월 새로운 업무분
근로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인사권 남용을 한
장 사항으로 예전과 달리 ‘일일업무일지 보고’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주장을 하였던 상황에
가 명시되었던 것이 인사권 남용으로 볼 소지
서 막상 관리자가 경찰조서에서사실이라고
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인정하였던 사실을 맞닥뜨리게 되니 당황스 럽기까지 하였다. 사용자에게 인사권이 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고인이 기간제
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용자의
근로자로 전환된 후 업무범위와 책임의 범위가
인사권 남용의 결과가 업무상 사망(자살) 사
변경되는 것은 통상적인 수준에서 벗어난 것으
건으로 이어지게 된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사
로 보기 어렵고, 근무성적평가에서 낮은 점수
용자가 인사권을 행사할 때 보다 신중에 신중
를 받은 부분은 근무의 성실성에 대한 문제제
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사람
기가 반영된 것으로서 부당하다고 보기 어려우
이 먼저이다. 노동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터 45
날 열받게 한 건 사회인데 왜 내가 약 먹어야 하지?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에 대하여 권윤영 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한 분들이 가져온
다! 결국 생물학적-심리-사회적 요인들을 각각
문제는 bio-psycho-social model, 생물학적-
균형 있게 보고 다루는 태도가 정신건강 문제
심리적-사회환경적인 요인들의 상호작용이
해결을 위해 바람직하다. 지난번에는 여성 정
건강과 질병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
신건강에 대해 사회적 접근을 해봤다면 이번에
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타과 질환과
는 생물학적 접근을 해보겠다.
여성노동 건강 상식
달리 원인파악 및 치료과정에서 정신질환은 생물학적인 요인이 쉽게 간과되고 심리적-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는 것에 대
회환경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처
한 거부감은 많이 없어진 것 같지만 약물치료
럼 이해될 때가 있다. 외부적 스트레스로 인해
에 대해서는 여전히 거부감이 크다. 정신과적
서 병이 생겼고 그 병은 스트레스를 멀리하면
증상, 즉 우울, 불안, 불면, 악몽, 강박증, 대인
나아질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에 비해 의
공포, 자살 생각, 환청, 망상 등은 신경 생물학
료인은 생물학적인 요인에 초점을 맞추다보
적 원인(뇌에서의 세로토닌 조절 이상, 도파민
니 ‘정신과에 가면 얘기도 안 듣고 약만 처방
분비 조절 및 자율신경계 장애 등)과 환경적 스
하더라.’라는 불만이 나온다. 정신건강 문제가
트레스, 심리적 어려움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발생된 계기가 사회환경적인 요인이라고 해
경우가 많다. 환경적인 문제, 심리적 어려움이
도 결국 질병이 발생하는 영역은 생물학적인
첫 시작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생겨난 스트레
신체! 바로 우리의 뇌와 신경, 몸이다!
스는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 쳐서 증상을 발생시키게 되고, 단순히 환경을
특히, 여성의 몸은 초경과 월경, 임신, 출
바꿔주거나 심리상담을 해주는 것만으로는 너
산, 완경 등 생리적 변화가 늘 일어나며, 이에
무나 오래 걸리거나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
따른 스트레스가 높다. 월경 전 불쾌기분 장
다. 또한 환경, 심리적인 영향보다 신경 생물학
애와 같이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질환도 있고
적 원인이 제일 크게 작용하는 질환도 일부 존
주요 우울장애, 불안장애, 섭식장애, 외상 후
재한다. 그래서 약으로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스트레스장애 등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더 흔
분비를 교정해주면 생물학적으로 불균형이던
한 질환도 있다. 이런 남녀의 유병률 차이는
뇌의 기능이 정상화되고 그에 따라 증상이 한
문화, 제도, 사회적 역할에서 기인한 면도 분
결 가라앉게 돼서 상담치료, 인지행동치료 등
명 있겠고! 성별에 따른 뇌발달의 차이, 생리
다른 치료들의 효과도 높아지게 된다. 즉, 약이
적 차이, 생물학적인 원인도 중요하게 작용한
심리적 어려움, 환경 변화 등의 외부 스트레스
46
노동자가 만드는
▲출처 : pixabay
자체를 없애주지는 않지만 스트레스 상황에 대
약물 치료는 ‘하다하다 안되면 쓰는 최후
처할 수 있도록 증상을 완화시키고 준비시킬
의 방법’이라는 생각도 많이들 하신다. 약물
수 있다.
치료 없이 상담만 받으면 정신과 문제가 경한 것이고, 약을 먹으면 정신과 문제가 심각한
정신과 약에는 주요우울장애나 불안증상,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던 정신
강박증에 쓰는 항우울제, 불안을 빠르게 가라
과 문제의 다양한 원인과 속성에 맞추어, 약
앉혀 주고 수면을 도와줄 수 있는 항불안제, 기
을 초기에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경우, 초
분이 너무 들뜨거나 너무 가라앉는 것이 반복
기부터 사용하고 약이 필요 없는 경우에는 쓰
적으로 나타날 때 기분의 안정을 도울 수 있는
지 않기도 한다. 정신과적 문제가 지속되면
기분안정제, 환청이나 망상 등의 현실감의 저
뇌기능 저하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에 약물로
하가 있을 때 쓸 수 있는 항정신병제, ADHD
서 정신과적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이 뇌기능
등에 쓸 수 있는 중추신경자극제 등 종류가 여
을 향상시키고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러 가지이다. 항정신병제를 꼭 환청이나 망상
많은 양을 복용할 경우 부작용으로 인해 멍해
이 있어야만 쓰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불면을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증상도 약을
다스리기 위해, 때로는 분노를 조절하기 위해
줄이거나 중지하면 대부분 호전된다. 우울증,
사용하기 때문에 약물은 정신과에 방문한 분의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에서 사용하는
특성에 맞춰 섬세하게 처방된다. 때로는 원래
약은 뇌에서 감정이나 주의집중력을 관장하
고혈압 약으로 발명된 약을 불안을 조절하기
는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해서 장기적으로 뇌
위해 쓰기도 하고 약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
의 신경망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한 목적으로 약을 쓰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약 먹을 때만 효과가 있다고 보기보다 는 장기적으로 뇌 기능을 치료해주는 역할을 하는 약도 있는 것이다. 일터 47
여성노동 건강 상식
▲ 정신장애 일년유병률: 지난 1년 동안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에 한 번 이상 이환된 적이 있는 비율. 출처: 보건복지부, 정신질환실태조사(이 조사는 2011년부터 시작되어 5년 주기로 실시되는 조사로 만 18세 이상 국민의 주요정신질환유병률을 추정하고 있다)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면 중독성이 있어서
그리고 특정 약에 중독이 될 것 같으면 그
평생 먹어야 하는지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한
약은 되도록 소량만 일시적으로 쓰거나 다른
다. 항우울제, 기분안정제, 항정신병제 등은
약으로 대체해서 쓰는 것이지 평생 쓸 수 없다.
의존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최근 주의력 결
어떤 정신과 환자가 약을 거의 평생 먹어야 했
핍 과잉행동장애 등에서 쓰는 중추신경자극
다면 그것은 약에 중독되어서가 아니라 약을
제 역시 ‘약 성분에 마약성 물질이 있다, 중독
중단하면 조절되지 않을 증상이 있거나 재발
이 된다더라’라는 루머가 많다. 하지만 주의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양극성 장
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환자들에서 경
애(조울병) 환자가 증상이 있으나 없으나 약을
구 투여하는 약은 중독, 의존이 생기지 않을
먹지 않으면 조증이나 우울증이 다시 생길 가
뿐더러 오히려 이 환자들이 술, 담배, 약물, 도
능성이 90%이상이고 재발이 잦을수록 치료가
박, 게임 등에 ‘쉽게 중독될 수 있는 성향’이
어려워진다거나 환자 및 보호자에게 손실이 많
있는데 그 성향을 크게 줄여준다. 항불안제와
기 때문에 계속 약물을 복용하도록 안내하는
수면제 중 일부 약물이 내성과 금단 등의 의
것이다.
존이 생길 수 있지만 최근 개발된 약은 의존 성이 낮아졌고 몸에 독성이 없어서 불안해하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과 의사와 약의 작용
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정신과 의사는 알콜
과 부작용, 약에 대해 드는 생각과 감정을 솔직
중독, 도박 중독, 마약 등 약물 중독 등등 ‘중
하게 의논하고 모르는 것을 의사에게 직접 물
독’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정신과 의사가 약
어보면서 용법, 용량을 지키는 것이다. 약에 이
물에 중독이 생기게 내버려두지 않으니 임의
런 저런 의미를 너무 부여하지 말자! 그냥 중요
로 더 먹거나 갑자기 끊지 말고 처방한 대로
한 치료의 한 축일 뿐이다.
먹으면 내성, 금단으로 고생하는 일은 없다.
48
노동자가 만드는
사진으로 보는 세상
▲고 백기완 선생 노제 후 운구 행렬 모습. 출처: 호나라
일터 49
우리의 투쟁은 모두 달라서 『망명과 자긍심』. 2020. 일라이 클레어 지음. 제이 옮김. 현실문화. 현석 선전위원
다른 하나는 한 활동가가 나눈 이야기다. 산 재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직후, 그는 유족을 만나 러 장례식장에 간다. 공론화가 꼭 필요한 사건 이라 여겼으나 그곳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 발칙 건강한 책방
을 리 없고. 무거운 걸음 끝에 유족으로부터 망 자를 그저 무탈하게 보내주고 싶다는 말을 들 은 그는 다시 무겁게 발걸음을 돌린다. 장례식 장을 향하는 걸음과 장례식장을 나서는 걸음에 실린 중력의 미묘한 차이. 이 잔상에는 꽤 오래 도록 붙잡혀 있다. 마지막 하나는 조금 구체적이다. 최근 소설 집이 나오고 언론 인터뷰를 연달아 했다. 어떤 기자들은 저마다 정해둔 답에 부합하는 답변 을 듣고자 같은 질문을 다른 말로 반복했다. 그 ▲ 출처: 알라딘
중 하나. 근래 한국소설은 사소설처럼 내면으
나를 사로잡고 있는 몇몇 잔상들이 있다.
로 파고 들 뿐인데 (그렇지 않아 보이는) 당신
그중 하나는 목소리다. 피해 당사자를 조력하
은 이를 어떻게 보느냐. ‘감정 역시 사회적으로
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당사자의 목소리를 압
구성된 것이므로 그러한 이야기 또한 매우 사
도하고 묵살시켰던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한다.
회적이며 현재와 공명한다’고 답하는 내게 기
사과 한 마디면 충분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미
자가 하는 말.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그게 아니라 고, 외려 네가 틀렸다며 한 목소리를 냈다. 그 렇다면 그것은 공동선을 위한 투쟁이었나, 나
“빈틈없이 대답하셔서 기사는 재미없겠네 요, 허허허.”
르시시즘을 위한 투쟁이었나,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일. 50
노동자가 만드는
나도 기자와 함께 허허허, 웃었지만 집단만
큼이나 한 인간이 개별자로 존재하는 일이 중
서 의료화의 산물인 현재의 인식틀로 바뀌었
요하다는 점은 내가 소설을 쓰는 중요한 동력
을 뿐이다. 유년기에 그는 특수교육을 받는
이기에 집요했던 그 질문은 어떤 벽에 부딪히
다른 장애 아이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 벽은 앞선 두 잔상
않아 했다. 정상인으로 간주되길 원했다. 적
에도 존재했던, 사실은 우리를 공기처럼 둘러
개심은 비슷한 이들에게 향했다. 그래서 그는
싸고 있는 벽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고 심지어
아직도 장애에 대한 글을 쓸 때면, 스스로가
나조차 모두 다르다는 점을 잊고 살기에 펼쳐
사기꾼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충분한 장
지고 덮쳐오는 벽.
애인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장애 공동체에서 비껴있다는 느낌. 수치심과 침묵과 고립이 몸
그래서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을
에 남긴 유산이다.
펼친다. 백인, 생물학적 여성, 엘리트, 대도시 거 주자, 뇌병변 장애인, 퀴어, 시골의 노동계급 출
정체성에 대해 쓴다는 것은 미로와 같은
신, 친족성폭행 생존자. 클레어는 제 몸을 가로
정체성의 모든 면을 쓴다는 것이다, 라고 클
지르는 다종한 정체성을 쓰는 행위로 톺아본다.
레어는 말한다. 책 말미에 그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꺼낸다. 자신이
성인이 된 클레어는 깊은 상처를 남긴 고향
떠나온 곳, 사건이 자행된 곳. 그럼에도 다른
을 떠나 도시의 퀴어 공동체로 만입한다. 하지
무엇만큼이나 자신을 구성하는 바로 그곳. 긴
만 정치적 동지들이 산간벽지의 빈곤과 지방의
고민 끝에 클레어는 이렇게 말한다. 내 몸은
노동계급 문화를 멸시하고 지방민을 보수적이
결코 단일한 적이 없었다고. 도둑맞은 몸도,
고 억압적인 가치들과 짝짓는 것을 본다. 도시
되찾은 몸도 자기 몸이라고. 이것이 그가 피
중산층을 당연시하는 공동체 속에서 그는 묻
부 아래 다다르는 방법이라고.
는다. ‘지방이라는 뿌리와 도시에서 퀴어로 살 기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과연
다시 첫 번째 잔상으로. 너는 잘 모른다고,
온당하냐고. 질문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가
내가 더 옳다고, 내가 더 선명하다고 새된 소
닿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등 뒤로 슬금슬금
리를 내는 군상을 생각한다. 투쟁에 일조한
기어와 피부 아래 자리 잡는 배신이다. 만약에
나, 대오에 함께 섰던 나에 취해 과거를 파먹
우리가 떠나서 어떡해서든지 중산층이 되어 결
기 급급한 군상을 그 군상과 내가 얼마나 많이
코 돌아오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글을 읽을 줄
닮았는지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나 조금 다른
모르는 남자들, 평생 감자 한 자루와 벨비타 치
지 생각한다. 우리의 투쟁은 모두 달라서, 그
즈 5파운드 정도밖에 사오지 못하는 여자들을
래서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피해버린다면,
잊어버리거나, 최악의 경우 깔보게 될까?”
우리가 모두 다르고 나조차 모두 다르다는 사 실을 피한다면 투쟁의 언어를 단일화시키고
클레어는 또한 뇌병변 장애인이다. 성소수
자 하는 유혹에 넘어간다면, 혐오를 쏟아내고
자 운동의 ‘퀴어(queer)’와 같은 변혁적 단어로
차별을 쏟아내고 인간성을 상실해버린 전선
장애 운동에서 ‘프릭(freak : 기형, 괴물)’을 쓰
저편의 이들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고자 할 때, 그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낀다. 프 릭이란 단어를 가져온 모티브가 된 ‘프릭쇼’는
아무리 많이 닮았더라도 아주 조금의 다
이제 사라졌지만 그것이 장애를 전시하는 관음
름은 각자가 개별자일 수 있는 강력한 논거이
증적 행태가 종식됐음을 뜻하지 않기 때문이
기에 우리, 조금의 다름을 놓지 말자. 그 다름
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이 과거의 인식틀에
을 부디 단련하기를. 일터 51
다양한 현장,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을 되돌아보며 -한노보연에서의 특성화 실습 후기
거니 회원, 보건의료학생 매듭
시 여러 자리에서 연구소와 함께한 순간이 많 아 연구소에서의 실습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우선 한국의 노동안전보건투쟁 역사 전반 이러쿵 저러쿵
에 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단편적으 로나마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노동권 의제의 투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고, ‘직업병’을 바 라봄에 있어 어떤 감수성과 감각을 가져야 하 는지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전에 본교 청소 노동자들과 인터뷰할 때, ‘청소해서 몸이 아픈 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여쭤봐야 할지 잘 몰 라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방송 및 건 설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를 읽을 때, 몸의 부 위 별로/얼마나/어떻게 아픈지를 상세하게 파 악할 수 있는 설문지를 눈여겨봤습니다. 각종 ▲출처: 거니
강의와 연구보고서를 통해, 자본이 노동시간을 유연화하고 연장하려는 시도를 건강권 침해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1월 11일부터 6주간 한국노동
몸소 체감하게 됐습니다.
안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에서 특성화 선 택 실습을 함께한 거니입니다. 특성화 선택
지역주민과 노동자의 건강을 고민하며 설
실습은 학생이 원하는 기관을 선택해 해당 기
립한 향남 공감의원에도 방문해 김정수, 임재
관의 활동을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보건의료
우, 정경희 동지와도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
학생 매듭(이하 매듭)에서 활동하던 친구들도
다. 특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공간 만들기·지
연구소에서 실습을 진행한 바가 있고, 저 역
역에서 뿌리내리기 워크숍이나 노동 감사, 북
52
노동자가 만드는
토크 및 강연을 통한 지역주민과의 소통 등 다
듭에서 서울의료원 시민대책위의 만성적인
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
간호 인력의 부족과 직장 내 괴롭힘 등에 대
었습니다.
응하는 회의체에 연대해오면서, 건강 현장활 동을 통해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만나고 연대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일터〉의 일정에도 동
할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자주, 열심히 찾아뵙
행했습니다. 선전위원이자 공감직업환경의학
고 활동했어야 했는데 여러 이유와 핑계로 그
센터 상임이사 정경희 동지와 함께 포천 이주
러지 못해 개인적으로 죄송한 마음이 컸던 현
여성농업노동자 사망사건 대책위·지구인의 정
장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야 2교대제’, ‘노
류장 김이찬 대표와 만나, 이주노동자의 노동
조 탄압’, ‘직장 내 괴롭힘과 조장·방관’, ‘근
조건 및 주거권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
무지 차별배치 및 과도한 노동’ 등으로 인해
다. 이 밖에도 연구소 상임활동가들과 함께 민
불건강이 산재한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주버스본부 정홍근 본부장님, 교육공무직본부
에 다시 만나, 현재 노동자들이 어떤 조건에
경기지부 양선희 노동안전보건위원장님과의
놓여있는지, 이를 사회화하고 문제를 해결하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각각의 인터뷰를 통해
기 위한 투쟁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이후 현
코로나 상황에서 필수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장은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고 앞으로의 모습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건강권과 노동안전활
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등을 묻고 싶었습
동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니다. 그 답을 들을 수 있어 실습의 의미가 더
무엇보다도 의제를 만들고 투쟁해왔던 사람들
욱 커졌습니다.
과 이야기 나누며, 그들의 눈빛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6주간의 시간 동안 많은 분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세브란
질문지 작성부터 시작해 인터뷰이 섭외를
스병원분회 분회장 및 사무장님을 비롯한 노
위한 연락, 녹취를 풀고 정리하는 작업 등 인터
동자들, 회원이자 두리공감 상임활동가 장경
뷰에 필요한 전반적인 과정을 사실상 처음 해
희, 허윤제 동지, 유성기업 김성민 동지, 금속
보는 터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깨너
노조 이태진 동지, 서울의료원 김경희 분회장
머로 연구소 상임활동가 동지들이 어떻게 질문
님과 보라매병원 김경오 조직부장님 등 모든
지를 구성하고 진행하는지를 생생히 배울 수
만남의 의미 있고 소중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인터뷰 이후 녹취
자리에서 활동을 함께할지 모르지만, 실습 이
푸는 작업의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그들의
후에도 많은 자리에서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다시 한번 더 듣고, 메시지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분위기
마지막으로 실습 기간 동안 일정을 총괄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인터뷰이들을 떠
하면서 고민이 들 때마다 조언을 아끼지 않
올리며, 답을 찾아 나가겠습니다. 이 지면을 빌
으셨던 연구소 상임활동가 이나래 동지를 비
어, 정말 감사했던 시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
롯한 김다연, 김지안, 박기형, 손진우, 유청희,
습니다.
한재영 동지에게 감사합니다. 주변에 특성화 선택 실습을 앞두고, 노동자건강권에 관심 있
평소 학교를 오가며 세브란스병원의 청소 노동자들과 일상적으로 마주쳐왔습니다. 일상
는 학생이 있다면 연구소를 적극적으로 추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의 만남은 매듭의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매
일터 53
이 달의 안전보건동향
[고용노동부, 21.02.17] 고용노동부, 아파트 경비
어 관리.감독이 어렵고, 합리적 제도 운영에도 어려
원 등과 관련한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제도 개
움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여, 승인 유효기간을 3년
선 방안” 발표
으로 설정하고, 기존의 승인에 대해서는 3년의 유 효기간을 인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사업장에서
고용노동부(장관 이재갑)는 지난해 7월 발표한 "공
는 승인의 효력을 유지하고자 할 때는 3년의 유효
동주택 경비원 근무환경 개선대책"의 후속 조치로,
기간이 종료되기 전에 갱신 신청을 하여야 한다. 승
2월 17일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제도 개선방안"
인요건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는 사업장에는 일정
을 발표했다.
기간 승인이 제한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다.
현재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경비원과 같이 감시업
아울러, 현행 승인 신청서에는 승인요건을 확인할
무를 주로 하면서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적은 업
수 있는 정보가 불충분하므로 이를 보완하여 신청
무에 종사하는 ‘감시적 근로자’나, 시설기사와 같이
내용을 구체화하는 한편, 사용자가 근로계약서 등
기계 고장 등 돌발상황에 대비해 근로가 간헐적으
에 근로시간.휴게.휴일 관련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로 이루어지는 ‘단속적 근로자’의 경우에는, 고용노
다는 사실을 명시토록 하여, 해당하는 모든 근로자
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근로기준법의 근로시간
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한다.
관련 규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 근로자의 휴식권 보장을 강화한다. 그러나 그동안 승인제도 운영에 미비한 점이 있어
근로자가 정해진 휴게시간에 쉴 수 있도록 사용자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특히 아
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예정이다. 예를 들
파트 경비원의 열악한 근로환경 문제가 제기되면
어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의 휴게시간이 보장될 수
서, 아파트 경비원 대부분이 적용받고 있는 감시·단
있도록, 경비실 외부에 휴게시간 알림판을 부착하
속적 근로자 승인제도의 개편 필요성도 높아졌다.
고, 입주민들에게 휴게시간 준수에 대해 공지하며, 순찰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하는 등의 조치를 하도
이에 따라 감시.단속적 근로자의 업무 특성을 반영
록 한다. 휴게시설에 대해서도 장소 분리, 적정 실
하면서도, 근로자 보호는 충실히 이루어질 수 있도
내온도 유지, 소음 차단 및 위험물질 노출 금지 등
록 개선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의 기준을 마련하여, 감시.단속적 근로자가 적절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사업장 상
이번 개선방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시간은 유지하면서 휴게시간만 늘리는 방식으 로 임금인상을 회피하는 등 사업주의 편법 운영을
근로자 보호와 적절한 관리.감독을 위해 운영방식
방지하기 위해, 휴게시간이 근로시간보다 많아질
을 개선한다.
수 없도록 상한을 설정한다. 또한, 감시.단속적 근
그동안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의 유효기간이 없
로자에게도 월평균 4회 이상의 휴무일이 보장되도
54
노동자가 만드는
록 한다.
의 경우, 대부분 24시간 격일 교대제 형태로 근로하 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장시간 근로를 개선하기 위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과 관련한 겸직 판단기준
해 근무 형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아
을 마련한다.
울러,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으로 공동주택 경비원
기존에는 경비업법에 따라 ‘경비원’이 경비 외 다
에게 다른 업무도 허용됨에 따라, 기존 감시·단속적
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으나, ‘공동주택 경비원’
근로자를 일반근로자로 전환하면서 근무체계 개편
의 경우는 올해 10월부터 공동주택 관리업무도 수
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행할 수 있도록 "공동주택관리법"이 개정됐다. 감 시.단속적 업무의 경우 심신의 피로가 적어 근로시
이에 따라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고용과 임금.관
간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므로, 공동주택 경비
리비용을 유지하는 바람직한 형태의 근무체계 개편
원이 경비 외에 다른 업무 수행으로 업무강도가 높
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동주택 경비원의 근무체
아질 때는 승인 여부가 문제가 된다.
계 개편 우수사례를 발굴하는 한편, 컨설팅 등을 통 해 이를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현행 규정상 감시업무(경비업무) 외에 다른 업무 (청소, 주차, 분리수거, 택배 등)를 반복적으로 수행
그간 현장의 근무체계 개편 사례를 보면, 24시간 근
하거나 겸직하는 경우에는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
무 대신 야간시간대에는 당직자만 남기고 퇴근하는
인대상이 아니지만, 현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판
방식이나, 기존 경비원을 경비원과 관리원으로 분
단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현장의 노사
리하여 관리원은 관리업무 중심으로 주간에만 근무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개정된 "공동주택관리법"
하도록 하는 방식 등이 확인되고 있다.
시행 전까지 "공동주택 경비원의 겸직 판단기준"을
고용노동부는 이번 개선방안과 관련하여 앞으로 법
마련한다.
령 개정, 겸직 판단 기준 마련 등 관련 규정을 정비해 나갈 계획이다.
‘겸직’ 여부는 감시업무 외에 다른 업무의 시간, 빈 도 및 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되,
이재갑 장관은 “이번 제도 개선으로 공동주택 경비
아파트 경비원의 전체 업무 중 다른 업무의 비중이
원 등 근로자 보호가 한층 두터워지고, 제도 운영도
상당한 정도를 차지하여 부수적인 업무로 볼 수 없
체계화되길 기대한다.”라며, “조속히 겸직 판단 기준
는 경우에는 겸직으로 보아 승인을 하지 않는다는
을 마련하고 근무체계 개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
방향 하에 세부 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다.
여, 현장에서 법 준수와 고용안정이 동시에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장시간 근로를 개선할 수 있도록 근무체계 개편을 지원한다.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을 받은 아파트 경비원 등
일터 55
한노보연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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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환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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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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