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일본 이주노동자의 과로사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건강관리카드 집단발급 신청은 건강권 투쟁이다
노동자가 만드는
통권 205호┃2021. 4
발행인 최민 발행기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영우, 경희, 기형, 혜인, 채은, 세은, 승종, 지나, 청희, 다연, 재영 만평 박원종 편집·표지 언제나봄그대곁에 인쇄 동광문화사 발송 산재공동체 발행일 2021.4.6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팩스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이메일 kilshlabor@gmail.com 홈페이지 www.kilsh.or.kr
독자에게
아픈 사람의 노동과 일상
예전에는 인간의 건강이나 질병은 단순히 생물학적이거나 자연적인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알려져 왔고, 따라서 사람들은 건강이나 질병이 다분히 개인적인 책임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건강이나 질병이 개인의 사회경제적 수 준, 그리고 인종별 생활 전통이나 문화적 배경 차이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으 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이 나쁜 상태를 무조건 개인의 책임으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
다. 많은 경우, 개인은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들, 예컨대 가난이나 실직, 그리고 나쁜 근무 환경들을 관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픈 몸은 건강한 몸에 비해 열등한 몸도 아니고 아픈 몸을 가지게
되는 것은 내 잘못도 아닙니다. 그동안 당연히 여겼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다’라는 표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건강을 잃는 것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아프면 병원비도 많이 들거니와 일터
와 인간관계를 비롯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 픈 몸으로도 인간다운,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은 ‘아프면 쉬어야 한다’고 이 야기 하는 현실에 너무 앞서나가는 걸까요?
- 선전위원장
일터 1
사진으로 보는 세상
▲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와 세계 전역에서 민주화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한국에서도 미얀마 시민들과 연대하는 집회가 개최되 시위 중 사망한 미얀마 시민들을 추모하고 있다. 출처: 호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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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특집 04
문화로 읽는 노동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 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 아픈 몸들은 외친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42
지금 지역에서는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24시간 격일제, 과연 감시적 노동에 해당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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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증의 삶 그리고 일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44
건강관리카드 집단발급 신청은 건강권 투쟁이다
여성노동 건강 상식 알아보자, LAW동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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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발칙 건강한 책방
연구리포트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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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말의 세계를 횡단할 수 있을까?
노동시간센터 연구동향 보고
동아시아 과로사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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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쿵저러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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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안전보건운동의 매력, 나와 동지들의 삶
일본 이주 노동자의 과로사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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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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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보연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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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현장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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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1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다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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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이백 다섯번째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일터 3
특집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만성질환자의 몸과 마음을 담은 사회제도, 있어? 삼성반도체직업병(전신 홍반성 루프스) 피해자 구진선(가명) 님 인터뷰
정경희 선전위원
구진선 님은 IMF 이후 갑작스런 부서이동
다 퇴사하는 것은 선택 가능한 당연한 권리 아닌
이후 1999년 삼성전자(주) 기흥공장에서 퇴사
가? 당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죠. 근무
하였다. 웨이퍼 가공공정의 포토공정에서 4년
할 당시 피로감이나 편두통 같은 두통이 많았어
7개월간 3교대 근무를 하였고, 2020년 ‘전신성
요. 눈의 피로가 심했고, 한번 라인에 들어가면
홍반 루프스’로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지
방진복을 입고, 담당설비가 있으니 화장실을 자
난 26년간 그녀의 삶을 통해 만성질환자가 겪
유롭게 갈 수가 없으니 방광염 등으로 병원 다니
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자, 3월 17일 요양을
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우리가 취급하는 물질이
목적으로 이사한 여주 시골집을 찾아 인터뷰하
무엇이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어 본 적도 교
였다.
육받은 적도 없어서 누구나 아프니까 아픈 게 당 연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퇴사 후 결혼, 임신 중에 나타난 몸의 이상 증상
퇴사한 해 남자친구였던 현재 남편의 청혼
구진선 님이 근무하던 라인은 정예 멤버만
으로 결혼을 했고, 임신 7개월쯤 다니던 산부
남기고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자진퇴사여부를
인과에서 단백뇨가 나오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가리는 면담과정을 거쳐 그녀는 반자동 신규라
말을 들었다. 그 순간이 지난 20년 동안 겪고
인에 남기로 했다. 그러나 신규라인은 납기일
있는 고통의 시작이었다고 구진선 님은 회고했
에 맞춰 물량을 빼기도 하고 반자동이다 보니
다. 가정을 꾸리고 새 가족을 맞이할 중요하고
그만큼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라인멤버의 유
도 행복한 시기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대관계가 예전 같지 않아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몸이 붓고 다리도 부었는데 정확한 진단을 못 내리는 거예요. 임신중독 증상인지, 루프스인
“퇴사의사를 밝힌 후부터 퇴사당일까지 아
지 애매하게 생각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원주
무 일도 시키지 않고 장비만 돌아가는 곳에 혼자
기독병원 갔을 때 애기 심장소리가 안 들린다고
있게 했어요. 그동안 열심히 일해 왔는데, 일하
하는 거예요. 8개월에 1.43kg 미숙아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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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서 인큐베이터에 한 달 반가량 있었고 저는 먼저
염증수치가 높았던 어느 날 친정 부모형제가 모
퇴원했어요. 애기 낳고나니 친정엄마가 병원에
두 병문안을 왔어요. 나중에 안 사실인데 죽는다
면회 오셨어요. 몸이 붓기도 하고 얼굴에 나비모
고 마지막으로 가족들 다 모셔오라고 의사선생
양 반점이 있어서인지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시
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저로 인해 애기
는 거예요. 퇴원하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아산
가 아팠고, 뇌종양 수술을 했고, 남편은 신장을
병원에서 검사하고 남편이랑 결과 들으러 갔더
떼 줬어요. 그래서 남편도 사회활동을 하는 게
니 ‘이건 완치가 없는 병이라 치료가 안 돼요.’ 라
힘들어요. 남편이 감기만 걸려도 제 입장에서는
고 했어요. 당황스러워서 남편과 서로 쳐다만 봤
엄청 미안한 거예요.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 원
어요. 지금은 신장이 안 좋지만 다음에는 어디로
래 건강한 사람인데 신장이 하나 없어서 그럴까
갈지 모르고 눈에도 가고, 머리에도 가고 전신을
미안함도 크고요.
다 공격한다고 무서운 얘기를 들으며 ‘루프스’라 는 것을 알게 되었죠.
저는 신장이식수술, 자궁적출술도 했어요. 자궁에 염증이 있었는데 일반인 같으면 간단하
달수를 채우고 퇴원할 때도 애기는 2.5kg 밖
게 치료를 받으면 되지만, 면역억제제를 먹기 때
에 되지 않았고, 한돌 쯤 됐을 때 코에 동그랗게
문에 모든 장기 문제가 암으로 갈 수 있는 확률
낭종이 생긴 거예요. 검사하니 뇌종양이었이라
이 엄청 높대요. 그래서 건강검진하고 1년 뒤에
고 하더라고요. 머리를 열어서 수술할 뻔 했는데
자궁을 적출했어요. 자궁적출하고 신장이식하
캐나다에서 소아신경외과 선생님이 오셔서 코
고 퇴원하려는데 후유증으로 눈에 바이러스가
로 수술했어요. 병원 다니면서부터는 온 집안이
침투한 거예요. 퇴원은 하고 버스타고 병원 다니
난리가 났으니 남편이나 저나 결혼해서 신혼의
면서 약을 먹었어요. 신장 이식 초기에는 감염에
달콤함은 남의 말이었어요. 병원생활하기도 어
취약한데 마스크 쓰고 감염내과, 안과에 같이 다
렵고 힘들었죠.”
녔죠. 지금도 좌안이 시력이 떨어져있고, 비문증 이 있어서 운전도 조심스럽고 컴퓨터 보는 것도
루프스 자가면역질환자로 살아가기
힘들어요. 지금은 신장이식센터에서 약이랑 관
잠복기와 활동기를 반복하는 루프스는 활
리하고, 거기 약이랑 루프스에 쓰는 면역억제제
동기에 생명을 위협하고, 잠복기에는 드러나지
가 같아서 6개월에 한 번씩 류마티스내과에 가
않는 통증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활성화로
고 있어요.”
늘 불안의 연속이라고 한다. 고통의 시간을 다 시 떠올리시게 해서 죄송했지만, 루프스 자가 면역질환 투병생활에 대해 여쭤보았다.
발병 후 15년이 지나서 산재신청을 했고, 20년이 지나서야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면 기나긴 투병기간 동안 그녀는 생활비
“잠복기에는 일반사람들과 겉으로는 똑같아
와 의료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요. 그렇지만 저는 계속 약을 먹고 염증을 일으 키지 않게 조심해야 되고, 햇볕을 보면 안 되고,
“루프스가 희귀질환이라 진료비는 10~20%
거의 외부활동도 못하죠. 애기 낳고 퇴원했을 때
정도 본인부담금을 낼 수 있었는데, 약값이 비싸
관절이 너무 아팠어요. 기어 다녀야해서 애기 케
서 남편 월급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거예요. 의
어를 못하는 거죠. 우유도 못 탈 정도로요.
사선생님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알씩 먹으라 고 했는데, 하루는 아침에만 두 알 먹고, 다음날
2005년도쯤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은 저녁에만 두 알 먹고 이렇게 빼먹은 적도 있
일터 5
었어요. 대출, 식구들 도움도 한계가 있었고, 약
승인 이후라도 마음 편하게 병원 다녔으면
값 때문에 남편이 밤에 대리운전도 했어요. 누가
좋겠는데 의사선생님 만나서 요양연기신청서도
건강보험공단에서 재난지원금이 있다고 알려줘
내야 해요. 바쁜 의사선생님께 ‘연장신청서 써주
서 혜택 조금 받았고, 보건소에 본인부담금 지원
세요’ 어떻게 말을 꺼낼지 엄청 고민되고요. 공
해주는 제도가 있어 조금 받았고요.
단에서 환자의 동의를 받아서 의료기관에 조치 를 취해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환자가 직접 받
병원비도 그렇고, 애기 인큐베이터 값도 엄
으러 다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아픈 사람이
청 나왔고,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몸이 좀더 나은
중심에 있지 않고 공단이나 기관이 더 중심에 있
잠복기가 되면 일을 다녔어요. 애기 4살 무렵에
는 것 같아요.”
는 집 가까이 걸어갈 수 있는 곳에서 아르바이트 를 했었거든요. 힘든 일 아니고 시청에서 오래된
서로의 몸 상태가 다름을 인정하고
문서 정리하는 간단한 일이요. 집에 있으면서 우
상처 주고받지 않게 살아가기
울증이 있었거든요.”
건강함이 정상성으로 인정되는 사회에서 질병을 개인의 잘못이나 부족함으로 치부하는
일했다면 일할 수 있는데 왜 안하냐,
시선은 또 다른 고통이다. 구진선 님 역시 그런
휴업수당 못 준다는 근로복지공단
시선 때문에 상처를 받아왔다. 그녀가 경제적
황산, 염산, 불산이 있는 베쓰에 흄이 올라
어려움과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다녔던 일과
오는 걸 쳐다보면서 세척하고, 먼지에 예민한
동료의 반응, 그녀의 기대에 대해 들었다.
반도체와 장비를 아세톤으로 청소를 했다. 웨 이퍼로 코팅을 할 때는 케미칼이 많이 튄 볼도
“그 사람이 아프다는 걸 알면, ‘너 오늘은 어
장비에 올라가 직접 교체하고, 주변에 튀면 손
디가 안 좋아 보인다’, ‘오늘은 얼굴이 왜 이래?’
수 닦아주었는데 그 작업들이 자신의 몸을 망
등 신체적으로 콕 집어서 대놓고 하는 말들이 다
가뜨렸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그녀는
상처거든요. 그냥 저 사람이 아프니까 그런가보
2020년에야 업무상질병 승인을 받았다. 그런
다 속으로만 생각하고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데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
해요. 다름을 인정하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 태도 도 필요해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자기만큼 못
“아픈 몸으로 여기저기 20년 가까이 진료 본
한다고 해서 ‘야 힘 좀 써라’, ‘그것도 못 드냐’, 이
수많은 자료를 냈는데 2015년 10월에 신청해
런 말들이 다 상처니까 저 사람이 아프다고 생각
서 승인받기까지 기간이 너무 길었잖아요. 발병
하면 그런 말들은 삼갔으면 좋겠어요.”
초기 검사하고 수술, 치료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 었는데 병원 진료비 세부 영수증 보관기관이 5
아픈 사람도 정규성 있는
년밖에 안 돼서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중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면
간에 일을 할 수 있는데 왜 안 했냐고 휴업수당
“언제 발병할지 모르니까 업무를 하다가 갑
도 줄 수 없다더라고요. 공단에도 자문의가 있으
자기 아플 수 있고 피해를 주게 되니까 정규직으
면 신장이식을 한 사람은 평생 다시 투석이나 신
로 일하지 못했어요. 관공서 같은 데서 10~11
장이 망가져서 이식을 하거나 평생 면역억제제
개월 일하고 조금 쉬었다가, 또 몸이 괜찮다 싶
를 먹고 계속 진료를 해야 한다는 것을 더 잘 알
으면 다시 했지 퇴사 이후 제대로 된 직장을 가
텐데, 계속 자료를 원하더라고요.
져보질 못 했어요. 잠복기에는 멀쩡해도 조금씩 아프거나 관절이 아플 수 있는데 어디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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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구진선 님이 여주 시골집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출처: 구진선
는 말을 안 했어요. 관공서에서 사무보조로 의자
쓰지 누가 아픈 사람을 쓰겠어요. 그러니까 아프
에 앉아서 서류 정리, 입력해주는 정도 일을 주
다는 얘기를 안 하고 일하다 아프면 그만 두는
로 했죠.
데, 아픈 사람도 꾸준히 일을 할 수 있게끔 했으 면 좋겠어요. 솔직히 아픈 사람들이 점점 사회하
저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사람이 일하기 위
고 멀어지고 우울해지거든요. 잠깐 일을 하더라
해서는 휴게시설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계속
도 나가게 되면 일어나서 씻고 챙기고 자기를 가
일을 하는 건 안 되고, 질병의 특성을 동료들이
꾸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해하고 어느 정도 일하고 쉴 때 눈치 안 주는 분위기, 단순한 일이라도 서로 공감할 수 있게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권 활동, 그러
만성질환자들끼리 모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장
나 이미 사고나 질병으로 아픈 사람은 제대로
이면 더 좋겠고요. 주변에서 눈치를 안 준다고
치료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는 이를 보장해야한
해도 우리가 눈치를 봐요. 만성질환자들은 폐,
다. 구진선 님의 인터뷰를 통해 아픈 사람이 살
신장 등이 안 좋기 때문에 공기나 환경적으로 깨
아가기에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것, 서로
끗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몸들이 살아가기 위해 가져갈 삶의 태도 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꺼이 고통의 시간을 소
만성질환자는 평생을 병원에 다니는데 일
환해주신 구진선 님께 감사드리며, 활동기로부
하다가 아프다고 쉬면서 치료 받고, 다시 직장에
터 불안감을 떨쳐버릴 만큼 잠복기가 지속되길
들어가려면 힘들거든요. 솔직히 건강한 사람을
기원한다.
일터 7
특집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아픈 몸들은 외친다.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은 ‘잘 아플 권리’ 보장하라. 이종란 회원, 반올림 상임활동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아픈 몸에 대한 고려
야 하는 것 외에도 힘든 점이 많다. 아프면 일을
가 없었다. 아파도 학교에 가야 했고, 아파도 일
못 하니 치료비, 생계비 부담이 크다. 오랜 투병
터에 나갔다. 그런데 코로나19 감염병 시대를
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돌봄의 문제는 본인
관통하면서 우리는 ‘아프면 쉴 권리’가 있다는
을 넘어 가족 전체의 문제가 된다. 아픈 게 미안
것을 배우고 있다. 처음엔 단지 감염병 전파로
할 일이 아닌데도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
인한 위험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시작
을 보인다. 혼자 살다가 아프면 요양병원에라
된 의미겠지만, 점점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도 의지해야 한다. 오랫동안 투병생활을 하다
사회적 필요성과 공감대는 커지고 있다.
가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 다. 수급권자가 되면 의료보호 대상이 되므로
‘아프면 쉴 권리’에서 좀 더 나아가 ‘잘 아플 권리’에 대한 주장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
치료비 걱정은 줄지만, 빈곤으로 인한 은근한 차별을 당하며, 작은 일자리도 얻을 수 없다.
리에게 익숙한 ‘건강권’이라는 개념 대신에, ‘질 병권’이라는 개념으로,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
이처럼 아픈 몸으로 살아가다 보면 빈곤과
고 있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소외가 현실이 된다. 오로지 노동으로만 먹고
조한진희 님은, 아픈 몸으로 여러 해를 살다 보
살게 설계되어 있는 현대사회 구조에서 장애인
니 우리 사회의 제도가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
이나 아픈 몸들은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당한
로 설계되어 있고, ‘아픈 몸이 들어설 자리가 없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나마 존재하
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고 한다. 매우 공감 가
는 사회보장제도는 부족하고 허술하다. 차별당
는 말이다. 반올림에서 암이나 난치성 질환 피
하지 않은 사람이 차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해자분들을 만나오면서도 ‘잘 아플 권리’가 얼
하듯이, 건강보험이나 산재보험이 아픈 사람이
마나 부족한지 느낄 수 있다.
겪는 어려움을 바탕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면 제도는 겉 돌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픈 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픈 이는 질병 자체가 주는 고통을 감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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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암이나 난치성 질환 등에 대해 산재 인정
이 시작된 지 수년이 흘렀으나, 산재보험은 이
취업하지 못했다’는 것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
들의 현실적 필요를 잘 흡수·포괄하지 못하고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있다. 이에 반올림에서 경험한 몇 사례를 공유 하면서 개선의 필요성을 이야기해보겠다. 또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신청 소견서’ 서
한 암이나 만성질환의 경우 건강보험 영역에서
식 란에 주치의에게 통원치료 기간 중 환자의
의 보호가 중요하다. 따라서 최근 논의되는 건
취업이 가능한지 또는 불가능한지에 대한 의학
강보험 상병수당에 거는 기대로 글을 마무리해
적 소견을 묻는 체크박스를 만들었다. 어떤 설
보겠다.
명도 없이 그 서식을 맞닥뜨린 주치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주치의는 산재보험 휴업급여 제
난치성 질환,
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자신의 소견으
암 피해자의 휴업급여 부지급 사례
로 취업 불가능하다고 하면 환자가 노동시장에
은희 씨(가명)는 루푸스 환자이다. 25년 전
서 배제당해 생계의 위협을 받을까봐 우려한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할 때 이 병이 발병했
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주치의는 근전도 검
다. 치료제가 없어 25년째 이 병과 함께 살아간
사결과 떨림은 있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양호하
다. 2019년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받
니 취업 가능에 체크했다고 한다. 그게 어떤 영
았다. 루푸스는 신체 장기 침범이 주요 증상이
향을 미치는지는 잘 몰랐다는 것이다.
다. 어느 날 갑자기 신체 장기 어디에서든 이상 이 나타날 수 있다. 갑자기 중환자실에 실려 가
휴업급여 지급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기도 했고, 뇌경색이 와서 현재까지 후유증이
이렇게 아픈 노동자의 절박한 생존권이나
있다. 합병증으로 생긴 쇼그렌(건조증후군) 때
다름없는 휴업급여 문제를 결정하는 데에 있
문에 치아의 80%에 손상이 오고, 한쪽 눈은 궤
어, 주치의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간편한 체
양이 생겨 각막 이식까지 받았다. 그나마 수급
크리스트 하나로 휴업급여 지급 여부를 결정하
권자가 되어 병원비 부담은 덜었으나 생계의
는 것은 부당하다. 또한, ‘취업할 수 없는 상태’
어려움을 겪는다.
를 ‘의학적 소견’으로만 판단하는 것도 재고되 어야 한다.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
이런 은희 씨에게 산재 인정은 큰 희망을 주
지 않으면 취업 가능하다고 판단할지 모른다.
었다. 시효가 남아있는 2011년부터 2019년까
그런데 현실적인 노동시장은 어떤가. 노동자들
지 우선 8년 치의 휴업급여를 신청했다. 그런데
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밤낮이 뒤바뀌는 힘든
믿을 수 없게도 고작 76일 치의 휴업급여만 지
교대근무를 견딘다. 아주 튼튼한 몸으로도 버
급이 되었다. 류마티스 내과 통원치료 일만 지
티기가 힘들어 과로가 일으키는 여러 질병으로
급된 것이다. 몸이 아파 집 밖에 나가지 못했던
고통 받는 것이 만연한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시간들을 보냈음에도, 휴업급여가 거절된 이유
아픈 환자가 억지로 취업시장에 내몰리는 것은
는 무엇일까.
부당하다.
‘휴업급여’란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
은희 씨의 경우, 다행히 재심사 결정으로 8
나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요양으로 취업하지
년 치의 휴업급여를 지급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못한 기간에 대해 지급하는 보험급여를 말한
그러나 은희 씨 만의 문제는 아니다. 반올림의
다. 평균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지급한다.
최근 사례만 해도 두 사례가 더 있다. 암이 재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52조) 여기서 ‘요양으로
한 림프종 피해자의 경우, 주치의는 요양급여
일터 9
신청서 소견서 란에 취업이 가능하다고 체크하
다. 나중에서야 산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였다. 암에 대한 두려움, 약해진 면역력으로 취
알았지만 건강보험이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
업은 고사하고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임에
았다.
도 주치의의 소견 때문에 휴업급여는 부지급 되 었다. 마찬가지로 뼈로 전이가 된 폐암 피해자
2년 뒤 갑자기 건강보험공단에서 청천벽력
에게도 같은 이유로 휴업급여가 부지급 되었다.
같은 통보를 해왔다. 산재 노동자인데 건강보 험이 적용된 것은 ‘부정수급’이니 이달 안으로
암 만성질환자를 보호하는
요양병원 치료비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것
보험급여가 마련되어야
이다. 산재로도 처리가 안 되었는데, 건강보험
건강보험은 암 환자에 대해 요양비 산정 특
요양비마저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례를 두고, 총액의 5%만 부담하게 한다. 5년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동안은 적어도 이 특례가 적용된다. 그러나 산 재보험은 직업성 암 환자에 대해 별다른 대책
산재노동자는 산재의료기관(지정병원)에서
같은 것이 없다. 암이나 만성질환에 맞는 보험
요양하는 경우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부득이
급여가 필요하다.
한 경우에 한해서만 사후 요양비 처리를 할 수 있다(산재법 제40조). 이러한 적용방식은 의료
산재 보험급여 중에 상병보상연금 제도
기관 선택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자 기본권
가 있긴 하다. 요양급여를 받는 노동자가 요양
침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장00 님의 사례
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치유되지 않고
처럼 돌봄이 꼭 필요한 환자가 요양병원을 이
‘중증’요양 상태인 경우에 상병보상연금을 지
용하려 해도, 가까운 곳에 산재 지정병원이 있
급한다(산재법 66조). 그러나 그야말로 중증의
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국림암센터나 원
경우만 지급 하는 것으로는 보호가 미흡하다.
자력병원도 지정병원이 아니다.
이 상태에까지 이르는 정도가 아닌 만성질환자 들은 현실적으로 취업을 할 수 없는데도, 상병
근로복지공단은 비지정병원의 요양에 대해
보상연금을 지급 받을 수 없다. 휴업급여의 경
서도 산재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부득이한 경
우 요양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나면 계속 심사
우에만 예외를 허용하는 부당한 법조항도 개
대상에 오른다. 제도가 불안정한 것이다. 만성
정되어야 한다. 건강보험공단도 문제가 크다.
질환자들을 폭넓게 보호하도록 휴업급여 및 상
아픈 노동자는 단지 몰랐을 뿐이다. 이러한 사
병보상연금 지급기준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정을 건강보험공단에 수차 이야기해도 자신들 이 고려할 사항이 아니란다. 건강보험공단은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이제라도 산재 노동자를 부정수급자 취급하며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
1400만원을 반환하라는 독촉과 협박을 멈추길
산재 비지정 병원의 문제, 건강보험 요양비 부당 환수의 문제도 심각하다. 난소암을 진단 받은 장00님은 생사를 오가는 투병 과정에서 부득이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어렵게 산재가 인정되었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에서는 해당 요양병원이 산재 비지정 병원이므로 산재 요양 급여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를 하지 않았
10
노동자가 만드는
바란다. 2007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현 국민권익 위)는 ‘산재환자의 요양급여 지급제도 개선 권 고안’을 냈다. 요지는 “산재보험법의 적용대상 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국민건강보험법을 적 용하지 않는 것은 사회보험이익을 과도하게 제
▲ 출처: pixabay
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보장제도의 본
기 위해 건강보험에 상병수당 도입을 추진하려
질에도 반하는 것이므로 산재보험급여 대상이
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제 논의 중이라
되지 않는 요양은 건강보험법을 적용하도록 함
는데, 부디 단기적 대안으로 그치지 않길 기대
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 ‘산재노동자가 건강
해본다.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는데 건강보험을 적용하 지 않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
아프면 쉴 권리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이니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될 때
는 지급 기간과 보장수준에서 충분한 수당이
까지 지침을 마련하거나 관련 지침을 개정하
되어야 한다. 휴업급여처럼 지급에 있어 까다
라’고 권고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를
로운 조건을 걸지 말아야 한다. 또한 직장에 복
수용한다고 밝혔다.
귀하는데 있어 어떠한 불이익도 없어야 권리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권고안이 나온 지 14년이 흘렀다. 이제라도 법이 바뀌어야 한다. 법이 바뀌기 전이라도 건
건강보험의 상병수당 논의는 모든 노동자
강보험공단은 부당한 환수조치를 멈춰야 한다.
들의 문제이자 보편적 복지의 문제이다. 사실,
두 보험 간의 연계성이 떨어지고 보장성이 떨
아픈 이유가 일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 때문인
어지는 문제를 재해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유가 혼재되어 있
원칙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기도 하고 이유를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 이다. 산재라 하더라도 규명이 어렵기도 하고,
아프면 쉴 권리,
산재가 아니면 휴업급여 같은 것이 필요 없는
건강보험 ‘상병수당’ 도입에 거는 기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의 원인과 무관하게
코로나19 감염병 시대에 아프면 쉴 권리를
아프면 치료비와 생계비 걱정 없이 잘 치료받
제도상 정착하기 위한 논의가 한참이다. ‘업무
고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상병수당이 제대로
외 질병’에 있어서도 아프면 쉴 권리를 구현하
설계되길 바란다.
일터 11
만성질환 노동자의 자리
특집
질병권의 관점에서 만성질환자의 노동권을 이야기하기 김다연 상임활동가
질병 없는 “건강한 육체”를 도달해야 할 이 상이자 노동자라면 갖춰야 할 기본값으로 여 기는 사회의 노동시장에서는, 만성질환자들과 같이 회복하기 어려운 병과 함께 해야 하는 몸 혹은 아픈 적이 있는 몸(미래에 아플지도 모를 몸)은 그 자체로 결격사유다. 어릴 적 소아암 이력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할 정도니.1) 아 픈 이들은 자신의 질병, 질병 이력을 감추고 몸 을 돌보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도 쉬쉬한다. 설 사 채용이 되어도, 건강한 육체도 병들게 할 만 큼 과도한 근무 시간과 일의 양은 질병과 통증 을 악화시키니 버텨내는 게 불가능하다. ▲ 출처: pixabay
이런 어려움은, 자신의 질병과 통증을 이기 적인 핑계로 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주는 두려
작년 성공회대 시설관리 용역업체는 ‘정년
움으로 배가된다. 아픈 이들은 타인의 기대에
을 맞은 노동자도 “건강상 업무수행“에 문제가
부응해야 사정을 양해받고, 몸에 필요한 조치
없으면, 1년 단위로 촉탁연장 계약을 최대 3번
를 취할 수 있기에 자기 몸의 상태와 통증을 입
까지 맺을 수 있다’는 골자의 단협을 깨고, 방
증하고 설득해야 한다. 질병이 눈에 잘 띄지 않
광암으로 수술과 요양을 위해 2개월 병가를 사
거나 질병명이 없는 경우는 더 쉽게 의심의 대
용했던 한 노동자를 해고했다. “건강한 육체”를
상이 된다. 사회는 폭력의 피해자에게 ‘피해자
바탕으로 청소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다움’을 강요하듯, 아픈 사람에게도 ‘아픈 사람
때문이다. 이 노동자는 건강에 이상 없다는 의
다움’을 강요한다.
사 소견서도 제출했었다. 1) 조한진희, 기사 <건강 중심 세계의 질병 난민>, 비마이 너, 2020.04.01
12
노동자가 만드는
타인의 시선을 포함한 감당할 수 없는 노동
또한, 질병권 담론에서는 한 사회의 폭력과
조건은, 아픈 몸들을 노동에서 배제하고 노동
배제와 차별과 극심한 경쟁과 과로와 오염된
권을 박탈한다. 이렇게 사회에서 몸이 오롯하
환경과 같은 요소들은 몸에 질병과 통증으로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들은, 아픈 이들이
현현하지만, 아픈 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개
질병과 질병을 앓는 자신을 스스로도 수용하기
인에게 전가되는 현실을 비판한다. 이 역시 노
어렵게 만든다.
동자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노동조건을 변화시 켜야 한다는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주장과 직결
질병권, 아픈 몸을 기본값으로 하는
된다.
노동조건을 말하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몇 년 전부터 질병과
질병권의 관점에서 노동권을 볼 때, 더 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질병 경험과 삶
목할 점은 이제까지 사회에서 제대로 고려되
을 공적으로 드러내며 ‘잘 아플 권리’를 주장하
지 않았던 “아픈 몸이라는 정체성”이다. 질병
는 “질병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권에서는 건강중심 사회에서 소수자가 될 수밖
질병권이란, “(건강이 아닌) 질병을 중심에
에 없던 아픈 몸들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며, 정
배치하고, 아픈 몸을 사회의 기본 몸으로 설정
당한 노동조건을 이야기할 때 이 몸들의 특수
하며, 질병을 겪는 상태도 삶의 ’정상적‘시기로
성을 배제해선 안 되고, 더 나아가 바로 이 아픈
본다. 더 이상의 건강을 쟁취할 수 없는 아픈 몸
몸이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을 인정하고, 모든 이가 건강을 삶의 최우선 목 표로 두지 않을 수 있음을 존중”2)받을 권리이다.
이제까지 아픈 몸은 비생산적인 몸, 폐를 끼 치는 몸, 독립적이지 못하고 의존하는 몸, 쉽게
질병권은 “아파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주류에서 밀려나는 몸이기에 배제와 혐오의 대
여건” 정도가 아니라, “취약하고 아픈 몸을 기
상이었다.4) 하지만 몸은 질병과 각종 통증을 포
본값으로 하는 사회”를 강조한다. 이런 사회의
함한 변화에 늘 열려있기에, 아픈 몸 정체성은
노동권은 어떤 모습일까. 아픈 몸들도 ‘정상적
누구나의 것이기도 하다. 질병권의 관점은, “취
으로 아프면서’ 무사히 일할 수 있게 하는 노동
약한 몸”이라는 인간생명체의 본질적인 특성을
환경의 구성을 전제조건으로 할 것이다.3) 포인
기준으로 노동조건을 구성해야 하며, 이는 건
트는 건강한 몸에 기준을 둔 채 예외적으로 아
강한 이들에게도 훨씬 유익하다고 말한다.
픈 몸들을 특별히 배려하는 게 아니라, 애초부 터 아프고 약한 몸에 맞는 노동환경을 설계를 주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ILO의 산업보건서비
그렇다면 넓은 스펙트럼의 아픈 몸 중, 기준 이 되어야 할 ‘아픈 몸’은 무엇일까.
스의 원칙 중 노동자의 능력에 기준을 두고 노 동조건과 노동환경을 맞춰야 한다는 ‘적응의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2) 조한진희(다른몸들), <우리 시대 건강권을 넘어, 질병권 을 제안하다>, 2020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 자료집, 174p 3) 물론, 아픈 몸들 중 전혀 일할 수 없는 몸도 있을 것이다. 질병권은 일하지 않을 권리 역시 동시에 주장한다.(조한진 희(다른몸들), 2020, 175p 참고)
4)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에서는, 아픈 몸에 대한 혐오는 곧 인간이라면 마땅히 피해야 할 ”추함과 역겨움“을 ”’나‘의 현실에서 지우려는 욕구“로 본다. 돌봐져야 할 아픈 몸들은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내가 차마 맞이하고 싶지 않은 ”비참한 상황“에 놓이게 하기 때문이다. 의존하지 않는 “독 립적인 개인”이 바람직한 모델로 제시되고, 아픈 이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적 지원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의존할 곳은 가족뿐이다. 그마저도 운이 좋아야 한다. 돌봄제공자(주로 여성가족구성원)와 집에 고립되어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 불안한 미래를 감당하며 생존 이외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 는 협소한 삶은 취약한 인간의 몸과 타인에의 의존을 혐오 하게 할만큼 충분히 좌절스럽다.
일터 13
“아픈 몸을 인정하는 것”(질병권 개념정의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일부)은,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수용
노동권은 천부적으로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받음을 의미한다. 결국 질병권에서 궁극적으
게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
로 지향하는 노동조건이란, 그 개개인의 특수
에서 생성된다. 그러니 아픈 몸의 노동권을 보
한 몸의 조건과 경험들이 모두 존중받는 환경
장한다는 건, 일정 선 이상으로는 노동할 수 없
을 말한다. 이는 “정상적인 몸, 표준의 몸의 기
고 때론 통증으로만 가득 차 몸을 돌보는 일에
준에 도전함으로써 정상성에 균열을 만들고 새
전념해야 하면서도, 생존을 유지하고 사회관계
로운 n개의 정상을 만드는 것이다”
망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
5)
하기 위해서 노동을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복 동일노동의 기준
잡다단한 몸들의 욕망에 적극적으로 관심 갖고
몸의 조건에 따라 생산량을 배분하면 비교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게
적 건강한 몸이 더 많은 생산량을 소화하게 될
세부적인 개별성을 고려할 때에서야, 아픈 몸
텐데, 이것이 역차별로 오인될 수 있다. “동일
들도 “동등한 인간”의 조건을 누리게 된다.
노동”을 계산하는 방식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 다. 익숙한 슬로건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아픈 몸이 가진 특수성에 주목하고, 그들에
서, 동일노동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신체
게 적합한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돌봄’
적(정신을 포함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동일
그 자체이다. 노동현장은 돌봄현장이다. 하지만
한 시간/작업량과 같이 완전하게 동일한 조건
법은 공식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최소한 지켜
의 노동은 과연 평등한가? 적어도 한국사회에
져야 할 것들이 지켜지게끔 할 뿐, 유연성을 발
서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평등이란, 이러한 기
휘하기 어렵다. 세밀한 조정이 필요한 아픈 몸
계적 평등에 머무는 듯하다.
에 대한 제대로 된 노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상 호 간에 ‘섬세한 눈길과 손을 가진 돌봄의 자
“크론병 환자는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염
세’로 몸을 대해주는 대인관계(방식)라는 제도
증이 심해지고, 장에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
가 때론 더 중요하다. 돌봄은 법이나 기타 규제
크론병을 ‘딛고’ 성공하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로는 차마 파악할 수 없는, 상대방의 독특성을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을 계속 외면하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참아야 한다. 이는 목숨을 건 싸움이 된다.”
대인관계방식의 변화는 단순히 주체들의 마음
6)
먹기에 기대어서는 안 되며, 돌봄을 가능하게 누군가에게는 피로감을 주는 일이 누군가
하는 덜 경쟁적인 사내 문화, 아픈 몸을 기준으
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다. 겉으로 볼 때 동등해
로 한 넉넉한 인원 배치와 같은 조건들 역시 받
보이는 노동조건은, 사람의 신체 조건에 따라
쳐줘야 한다.
천차만별의 노동강도를 유발할 수 있다. 나에 게 오는 신체적 부담의 관점에서, 이는 아픈몸
아픈 몸들이 함께 노동현장에 안녕히 존재
에 대한 차별이다. 따라서 동일노동의 기준은
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곧 모두가 더 편하고
동일하거나 유사한 노동강도라는 관점에서 설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아
정해야 한다.
픈 이들의 각양각색의 질병 경험과 이들의 노
5) 조한진희(다른몸들), 2020, 174p
동권에 대해 더 자주, 많이 듣고 말해야 할 이유
6) 안희제, 『난치의 상상력』, 동녘, 2020, 94p
이다.
7)
7) 기저질환 환자의 경우, 주 52시간 이상 노동시 기저질 환이 없는 이에 비해 심뇌혈관질환 발병률이 1.58배 상승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14
노동자가 만드는
지금 지역에서는
건강관리카드 집단발급 신청은 건강권 투쟁이다
김정열 회원, 금속노조 경남지부 대우조선지회 부지회장
석면은 과거 우리의 삶 곳곳에서 사용되었
리카드 발급을 불허했다. 뿐만 아니라 공단은
다. 조선소 또한 선박 제조에 많은 석면을 사용
지금껏 거제지역 사업장에 단 한 건의 카드발
했다. 하지만 암을 유발하는 1군 발암물질에도
급도 허용하지 않았다.
불구하고, 정부는 2009년에 이르러서야 국내 의 석면 사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그러나 석면 질환의 긴 잠복기로 인하여, 근래 들어 대우조 선 노동자에게 석면질환이 발생했다. 이에 대 우조선지회는 지난 2월 18일, 조합원 49명(1차) 에 대한 건강관리카드 집단발급 투쟁으로 선제 적인 노안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석면취급 인정 여부
말뿐인 추정의 원칙, 복잡하고 긴 산재 절차 산재 기간이 길어지자 휴직이 만료된 상황 에서 산재 결과를 기다리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항암치료를 병행하며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산재 불승인과 해고의 압박까 지 감내해야 한다. 이런 현실은 ‘왜 산재 과정 에서 노동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발생 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반증한다. 이에 정부는
환경부는 거제지역의 석면 노출원을 조선
추정의 원칙으로 산재 절차의 간소화를 홍보했
소로 규정했다. 실제 1981년부터 2000년 초까
다. 하지만 이미 석면의 인과성이 입증된 대우
지 대우조선은 석면비산의 위험이 큰 수리조선
조선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업무를 약 19년간 진행해 왔다. 근로복지공단 또한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에서 발생한 석면 질환의 인과성을 인정하고 있지만, 산업안전보 건공단은 석면 사용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우조선 노동자 6명이 신청한(2018년) 건강관
사업장 명
18년째 무용지물인 건강관리카드 제도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석면은 눈에 보이 지 않기 때문에 관련 질환이 발생해도 직업병
건강관리카드 발급 현황
거제시 전체 대우조선해양(주)
카드 발급 이력 없음
삼성중공업(주) 석면철거 노동자 (*전국 현황)
93명 공단 내부 전산망 상 공정 카테고리에 “해체” 또는 “제거”로 분류되어 있는 노동자수
▲ <표 1> 거제시 건강관리카드 발급 현황 (2021.1.30.기준) 출처: 산업안전보건공단 정보공개 청구 일터 15
산재신청 내역
휴직신청 내역
▶2018.09.20. 폐선암 진단
진단부터
▶2018.12.20. 요양급여 및 휴업급여 신청서 접수
산재접수
▶2019.02.18.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 접수
약 5개월
▶1차 휴직 : 18. 11.29. ~ 19. 02.28 (3개월)
▶2018.09.20. 폐선암 진단
▶2차 휴직 : 19. 03.01. ~ 19. 06.30 (4개월)
▶2018.12.20. 요양급여 및 휴업급여 신청서 접수 ▶2019.02.18. 근로복지공단 통영지사 접수 ▶2019.07.01. 역학조사 의뢰
접수 후 역학조사 약 12개월
▶3차 휴직 : 19. 07.01. ~ 19. 10.28 (4개월)
▶2020.02.07. 역학조사 사업장 방문
▶2020.02.18. 업무상질병위원회 심의 ▶2020.07.03.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판정
▶4차 휴직 : 19. 10.29. ~ 20 .04.28 (6개월) 역학조사후 산재판정
※ 휴직종료 통보서 : 20. 05.11. - 20.05.12.까지 의사 진단서를 첨부한 복직원 미
약 5개월
제출 시 당연퇴직 통보. 당연퇴직 중 산재승인으로 복직(휴직보장 최대
최초 질병발생 부터 산재승인까지 : 약22개월 소요
17개월, 대우조선 단체협약 적용) <표 2> 대우조선 석면 폐암 노동자 산재진행 과정
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산재 과정에서 재
충남지역본부와 제주지역본부는 단 한 건도 없
해자가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었다.
정부는 석면을 포함한 15개 대상물질에 노출된 노동자에게 무료 건강검진으로 질환을 예방하 고 신속한 치료를 지원하도록 건강관리카드를 제도화했다. 이처럼 발암물질에 노출된 노동자 에게 카드발급은 필수이다.
상물질에 해당되는 사업장을 파악하여 카드발 급 업무를 안내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원의 산 업안전보건공단 감사 결과는 심각했다. 보고서 에 따르면 전체 46,423개 대상 사업장 중 카드 발급 안내 업무는 4,964개 사업장에 그쳤으며, 카드발급 안내 대상 사업장
직자, 현재에도 석면을 철거 중인 노동자에게 카드가 발급되도록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 다. 다만 대우조선지회의 투쟁은 사업장을 넘 어, 최소한 15개 대상 물질에 노출된 노동자가
산업안전보건공단은 매년 1회 이상 15개 대
일선 기관명
아직 파악조차 되지 않는 하청노동자와 퇴
원인도 모른 채 죽어가는 문제를 방관하지 않 겠다는 다짐과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쟁취 하고자 하는 의지가 투영된 운동이다. 비록 수 많은 현안 중 하나의 방안일지라도, 대우조선 의 작은 움직임이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을 위한 운동으로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지기를 소 망한다.
실제 안내한 사업장 수
서울광역본부
2,669
211
인천광역본부
3,396
376
부산광역본부
3,213
259
경남지역본부
3,017
259
충남지역본부
2,567
제주지역본부 전 체 (27개)
324 46,423
안내 방법
안내율
15개 발급대상 업무 중 일부에 대해서만 발급가능 사업장 파악
7.9%
기존에 건강관리카드를 발급한 사업장에만 안내
8%
11%
8.6%
0
-
0%
4,946
-
10.65%
<표 3>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건강관리카드 발급 안내 현황 (감사원 2020.9.10) 16
노동자가 만드는
알아보자, LAW동건강
직장 내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선 임혜인 회원, 노무사
직장 내 성희롱(이하 “성희롱”이라고 함)으
성희롱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법원의
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 성희롱 피
판단을 통해 재확인되기도 한다. 한 대학교수
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이하 “원고”라고 함)가 제자를 수 차례 성희롱
취하는 것. 이는 현대사회에서 너무나도 당연
하여 징계 해임되자 본인의 행동이 성희롱이
한 상식이다. 성희롱 가해자는 절대 해서는 안
아님을 주장하며 해임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
될 행동을 한 나쁜 사람이며, 성희롱이 발생할
송을 제기하였다. 이때 대학이 징계사유로 삼
때까지 방관한 회사는 더 나쁘다는 점에 대해
은 성희롱 사실은 다음과 같다.
서 부정하는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우리가
징계사유 1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던 상식이 단숨에 무 너져버리고 만다. “문제를 키워 봤자 너만 손해 다”, “당신이 참아야지 어쩌겠냐”는 식으로 피 해자의 고통을 무시하는 언동은 2차 가해 유형 중 아주 귀여운 축에 속한다. “라떼는 이런 거 다 감수하면서 직장생활 했다.”며 피해자가 경 험한 성적 굴욕감 등이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1) 원고가 학과사무실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있던 피해자에게 “여기서 뭐하냐?”라며 뺨을 때리고, 이어서 “왜 남자랑 붙어서 있냐?”라며 피해자의 뺨을 총 4대 때림 2) 피해자가 봉사활동을 위한 추천서를 받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원고의 연구실을 방문을
것임을 계몽하려는 노력은 아주 보편적인 반응
때 원고가 뽀뽀해 주면 추천서를 만들어 주겠
이다. 심지어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하여 적
다고 함
극적으로 밝히려고 애쓸수록, 이러한 노력은
3) 수업 중 질문을 하면 원고는 피해자를 뒤에
피해자에 대한 공격으로 변모한다.
서 안는 듯한 포즈로 지도함 4) 원고는 피해자가 연구실을 찾아가면 “남자
성희롱의 당사자는 가해자와 피해자이지만,
친구와 왜 사귀냐, 나랑 사귀자.”, “나랑 손잡고
실제로 성희롱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지워지고
밥 먹으러 가고 데이트 가자.”, “엄마를 소개시
오로지 피해자만이 당사자로 남는다. 법률 및 사
켜 달라.”고 하는 등 불쾌한 말을 많이 함.
회적으로 금지된 행동을 한 가해자보다 피해자
... (중략)
에 대한 시선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하다. 일터 17
징계사유 2
- 교수인 원고가 (중략) 소위 ‘백허그’ 자세를 취하여 그와 밀착된 자세에서 어색한 타이핑
1) 원고는 피해자의 1학년 학기 초 수업시간
을 시도하였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에 피해자의 손을 겹쳐서 마우스를 잡고 피해
(중략) 익명으로 이루어진 강의평가에서 원고
자가 앉아 있는 의자에 같이 앉거나 자신의 무
의 부적절한 신체접촉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
릎에 피해자를 앉히려 하였음.
히려 원고의 1:1 맨투맨 교육방식이 긍정적으
… (중략)
로 평가된 점 및 나아가 소외 1조차 원고의 강
3) 피해자가 입고 있던 가슴부분의 남방 단추 가 떨어지려 할 때 원고가 불필요하게 단추를
의에 ‘단점이 없다’거나 ‘재미있고 즐겁다’고 평 가한 점에 비추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만짐
징계사유 1-2 및 1-4을 부정한 이유 징계사유 3 …(중략)
- 원고는 강의뿐만 아니라 동아리 지도를 통 하여 학생들과 격의 없고 친한 관계를 유지하 였는데, 학생들과 식사를 함께 하거나 원고의
4) 학과 MT에서 원고가 아침에 자고 있던 피
연구실에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자주 농담을
해자의 볼에 뽀뽀를 2차례 하여 피해자에게
나누었으며, 일상적인 이야기는 물론 가족에
정신적 충격을 줌
관한 이야기나 연애상담도 나누었다.
5) 원고는 장애인 교육 신청서를 제출하러 간 피해자에게 자신의 볼에 뽀뽀를 하면 신청서 를 받아 주겠다고 하고,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징계사유 3-1부터 3-5을 부정한 이유
볼에 뽀뽀를 하고 신청서를 제출하였다고 거 짓말을 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원고의 볼
- 소외 2는 최초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이 사
에 뽀뽀를 하였으며, 그 상황에서 원고가 피해
건을 신고하게 된 것인데, 자신의 피해사실에
자의 엉덩이에 손을 대려고 하자, 피해자가 자
대하여는 형사고소 이후 조사를 거부하는 한
신의 가방을 이용하여 원고의 행위를 막음
편 소외 1에 대한 피해사실에 대하여는 증인 으로 출석하여 자유롭게 진술하고 있는 것으 로 보이는바, 과연 성희롱 내지 성추행 피해
원심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징계사유 중 대
자로서의 대응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분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원고에 대한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였 다. 원심이 상기 징계사유를 부정한 요지는 다 음과 같다. 징계사유 1-3을 부정한 이유 - 원고의 언동은 원고의 적극적인 교수방법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의심되고, 이 부분 사 건에서 드러난 정도의 접촉만으로는 이를 일 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행위에 이 르렀다고 보기는 매우 곤란하다.
18
노동자가 만드는
- 소외 2가 소외 1의 부탁을 받고 진술서를 작성한 것은 2014. 12. 17. 무렵인데 그 기재 된 내용은 전부 2013년부터 2014년 전반기 의 사실로서 소외 1의 권유 또는 부탁이 없었 다면 소외 2에게 과연 한참 전의 원고 행위를 비난하거나 신고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의 심스럽다. - (중략) 자신의 신고로 인하여 원고가 해임까 지 당하는 무거운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한 책임 추궁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된다.
- 소외 2는 소외 1, 소외 3과 함께 원고에 대
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
한 형사고소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각서
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를 작성하여 주는 대신 원고에게 자신들에 대
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
한 법적대응을 하지 아니할 것을 요구... (중
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
략), 통상 피해자가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
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
는 합의를 하여주는 행동이라고 보기에는 이
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사실을 즉
례적이다.
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 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 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
즉, 원심은 설령 원고가 피해자와 신체적 접
해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
촉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적극적인 강의
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
의욕에서 비롯된 불상사일 뿐이고, 징계사유
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
에 포함된 언동 또한 피해자와 친밀하게 지내
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
는 와중에 성희롱에 대한 고의 없이 이루어진 것을 피해자가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 며, 피해자가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비로
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 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 고 볼 수 없다.
소 성희롱 사실을 문제 삼은 사실이나 법원에 서 피해 사실을 자유롭게 주장하고 있는 모습 등에 비추어 일반적인 성희롱 피해자로서의 면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은 교통사고와 같이
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성희롱에
한 순간에 촉발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구조와
해당하지 않으며, 해임처분 또한 부당하다고 판
같은 맥락에서 발현된다는 특성이 있고, 그 맥
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성희롱에 대한
락에 구속될 수 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을 ‘피
전형적인 2차 가해 유형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직장 내 성희롱을 어떠한
성범죄 피해 사실을 대외적으로 고발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동일한 사건에 대
미투 운동이 확산되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적
하여 대법원은 성희롱 사건을 심리하는 방법에
극적으로 고발하는 피해자들 또한 많아지고 있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원심판결을 파기
다. 피해자들은 점점 더 크게 목소리를 내며 가
환송하였다.
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제도 개선을 요구 한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대법원 2018. 4. 12. 선고
어떠한가. 여전히 사업장에 성희롱이 발생하면
2017두7470 판결
피해자는 피해자답게 처신해야 그나마 원하는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 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조치를 사업장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 자를 예민한 사람이라 가스라이팅 한다.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
피해자의 시각으로 성희롱 사건을 바라보는
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
것. 성희롱으로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
첫 걸음이지만 그 발을 내딛기가 어렵기만 하다.
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
일터 19
연구리포트
노동시간센터 연구동향 보고 -최근 직업환경의학에서 주목할 연구들 김형렬 노동시간센터
노동시간센터에서는 <일터> 2021년 4~5월
어서, 관련된 연구가 제대로 나온 결과인지, 호
2차례 걸쳐, 노동시간과 관련한 주요 연구, 정책
주만의 특성이 반영된 것인지, 추가적인 연구가
동향을 싣고자 한다. 최근 직업환경의학 분야에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서 주목받았던 연구 세 편을 소개하고 한국 사 회에 비춰볼 때, 참고하거나 논의할 거리를 나 누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는 호주에서 비정규직은 대부분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고, 법에 의해 비정규 직에게 임금을 더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에
1. 비정규직의 건강이 더 나쁜가?
주목한다. 호주에서는 동일한 노동을 하는 정규
- 호주 사례를 중심으로
직에 비해 비정규직에게 20%의 임금을 더 주도
첫 번째 소개하려는 연구는 호주에서 진행
록 법에 규정되어 있다. 삶의 질의 측면에서 오
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건강을 비교한 연구이
히려 비정규직을 선택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고
다. 노동시간과 관련한 연구는 아니지만, 고용형
용의 안정 대신 임금을 더 주는 선택이 오히려
태와 관련해서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 연구 결과
책임감은 적고, 스트레스가 적어 건강에 대한
와 그에 대한 해석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부정적인 영향이 덜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1)
호주에서 진행된 몇 차례 연구에서 호주 비
설문도구가 아닌, 실제 건강의 차이가 나타
정규직들의 건강이 정규직에 비해 나쁘지 않거
날지 확인해 봐야 하는 것과 고용시장이 안정적
나, 오히려 건강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건강수
인 상황과 그렇지 않은 시기에도 동일한 결과가
준을 ‘SF-36’이라는 설문도구를 이용하여 조사
나타날지 등은 추가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하였는데, 육체적 활동, 통증, 활력, 사회적 기능
국,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이 연구의 결과를 근
등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 더 좋게 나은
거로 고용안정과 임금의 트레이딩 논의가 가능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북유럽,
할지, 우려 지점은 무엇인지 논의가 필요해 보
국내 연구에서 나온 결과와 반대로 나온 것이
인다.
1) Is casual employment in Australia bad for workers’ health?”. Occup Environ Med 2021; 78:15–21.
20
노동자가 만드는
남자
건강영역
여자
(기준집단: 정규직))
점수 Coefficient
95% 신뢰구간
점수 Coefficient
95% 신뢰구간
육체적 기능
0.55
−0.11 to 1.2
0.27
−0.26 to 0.8
통증
0.37
−0.35 to 1.1
0.9
0.25 to 1.54
일반적 건강
0.44
−0.07 to 0.96
0.41
−0.02 to 0.85
활력
0.53
−0.04 to 1.1
0.65
0.13 to 1.18
사회적기능
1
0.28 to 1.73
0.58
−0.07 to 1.23
감정
1.81
0.73 to 2.89
1.24
0.24 to 2.24
정신건강
0.38
−0.15 to 0.9
−0.04
−0.51 to 0.42
▲표. 고용형태와 일반적건강수준 (SF-36)
2. 과로사의 위험요인으로서 수면 부족 - 일본 트럭 운전 노동자 대상 연구2) 두 번째 소개하는 연구는 일본의 트럭 운전 자들의 과로 실태를 점검하여, 해당 노동자들이 수면 부족과 이로 인해 과로사의 전구증상인 피
(1) 땀이 많아짐, (2) 요통, 어깨통증 (3) 얼굴홍조, (4) 흉통, 압박감, (5) 호흡곤란, (6) 반복적인 구토, (7) 빈맥, (8) 팔다리 감각소실, (9) 갑작스런 시각 상실, (10)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 (11) 말이 어눌해짐, (12) 심한 치통, (13) 감정적인
로의 위험에 처해있는 현실을 밝혀낸 연구이다.
다툼, (14) 갑작스런 의식 상실, (15) 멈추지 않은
본 연구에서는 과로사로 산재 승인된 사람
체중 감소, (18) 수면이나 휴식을 취했음에도
들을 대상으로 사건 발생 전 전구증상을 중심
회복되지 않는 피로감 (19) 졸음, (20) 화를 참지
으로 과로사위험상태를 정의하였다(Excessive
못하고 욱하는 일이 자주 발생, (21) 식욕 상실,
fatigue symptom inventory). 일본 트럭 운전
(22)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과로사위험상태를 측정한
것에 대해 생각함, (23) 하루종일 잠을 잠, (24)
결과, 과로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수면, 노동
직장 끝나고 지쳐서 바로 잠이 듬, (25) 잠에서
시간 등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
일어나기 힘듦, (26) 일상생활 수행이 어려움
코피, (16) 밤에 잠들기 힘듦, (17) 유의미한
의 결과는 수면시간이 짧을수록 과로사의 위험 지표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연구에서 매우 주목해야 할 연구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로사로 산재 승인된 분들의 의 무기록 등을 찾아,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있었 던 전구증상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과로사 위험을 나타내는 설문 도구를 개발하였 다. 26개의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당 문 항들은 아래와 같다. 2) “Shorter sleep duration is associated with potential risks for overwork‑related death among Japanese truck drivers: use of the Karoshi prodromes from worker’s compensation cases”. International Archives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 published online.
▲ 그림. 수면시간과 과로사 위험상태 관련성 일터 21
과로사가 이미 발생하면 대응할 수 없다. 이
미만 야간근무, 교대근무 사이 시간은 11시간
런 전구증상을 위험신호로, 빠른 대책을 마련하
이상으로, 근무시간은 9시간 미만으로 관리하
는 전략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산예방을 위해서는 임신여성은 일주일에 1회를 초과하여 야간근무
이 연구가 진행된 일본은 직업 운전자에 대
를 해서는 안 된다.
해 운전시간 제한을 두고 있는 나라이지만, 실 제 트럭 운전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상당한
고혈압, 당뇨 유방암 등과 야간고정작업, 야
수준이었다. 한 달에 80시간 이상의 연장근무
간작업의 강도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고,
를 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8.7%였다. 국내는 어
순방향 교대가 실험연구에서 생리적으로 더 적
떨까?
합하다고 알려져 있다. 연령증가와 수면장애 가 특별히 관련이 있다는 근거는 없지만, 야간
국내 화물 운송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한
근무를 하는 경우에는 수면효율이 떨어져, 야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반
간근무후 수면을 단축시킨다. 50세 이상에서
화물차 운전자들의 하루(일) 평균 노동시간은
는 야간근무와 빠른 업무복귀(근무와 근무 사
12.7시간, 월평균 일수는 23.3일로 나타났다. 산
이 시간이 짧음)가 피로와 수면장애를 증가시
술적으로 계산했을 때, 월평균 약 300시간(12.7
킨다. 야간근무시 조명, 개인적인 선호도를 반
시간×23.3일)을 일하는 셈이다. 표준운임비 산
영하여 교대 스케쥴 반영, 피로 관리 프로그램
정, (전속성 등의 문제로) 산재 적용의 어려움
제공, 피로 발견 기술 (집중력검사, 눈깜박 확인
등 우리나라 화물 노동자들의 문제도 해결을
등), 멜라토닌 공급 등이 논의되고 있다.
위한 방안이 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교대근무를 하는 이상 건강에 유해하지 않 3. 야간노동 건강문제를 줄이기 위한
은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 같
스케쥴링
다. 역시 ‘좋은 교대제’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세 번째 연구는 야간노동의 건강 문제를 줄
교대근무를 해야 한다면, 여기서 이야기하는
이기 위한 교대제 스케쥴링에 대한 연구이다.
야간근무 최소화, 고령, 임신노동자에서 야간
워크숍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나눈 논의와 체계
노동을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의 요구여야 되지
적인 분석 등을 토대로 야간노동의 위험에 분
않을까 생각한다.
3)
석을 근거로 한 개선방안을 제시하였다. 국내에는 야간노동에 대한 규정이 많지 않 야간노동의 제한은 유방암, 손상예방이 주
고, 그나마 청소년, 임신노동자에게 야간노동을
요 근거로 만들어졌다. 연속야간근무 최소화,
금지하는 규정이 근로기준법에 있다. 하지만
근무간 시간간격 충분한 제공, 야간근무 시간
이 역시 본인이 동의하면 야간노동을 할 수 있
최소화가 가장 중요한 관리 지점으로 설명하고
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실효성이 없다. 연속야
있다. 야간노동에 대한 위험 중 첫 번째는 야간
간노동을 금지하는 규정은 아예 없다. 그래서
근무 동안 졸음과 사고 위험 증가하므로, 이에
최근 물류노동자들이 연속 5-6일 야간 노동만
대한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연속 3일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고, 야간에 고정으로 근 무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 이를 금지하는 규제
3) “How to schedule night shift work in order to reduce health and safety risks.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Stockholm Vol. 46, Iss. 6, (2020): 557-569.
22
노동자가 만드는
방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과로사통신
일본 이주 노동자의 과로사 마코토 이와하시 POSSE 활동가
▲출처: pixabay
1990년대에 한국에서 시작한 산업연수생제도
부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기술 인
는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와 적용한 것이었
턴으로 일본에 온 174명의 이주 노동자가 뇌심
다. 일본과 한국은 이주노동자 고용 제도 측면에
질환, 자살, 질병 사망, 산업재해 사망 등 다양
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고, 그 공유하는 부
한 이유로 목숨을 잃었다. 그중 1건은 동사였고,
분은 안타깝게도 이주노동자들을 저임금 노동
174명 중 118명은 사망 당시 아직 20대였다.
영역에 머물게 하고, 업무 중 사고와 질병으로 이어지게 하는 지점이다. 이번 동아시아 과로사
기술이전이라는 포장
통신 기사에서는 일본 이주노동자들의 과로사
실질은 저임금 노동자 양산
및 산재 사망 사고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국가가 후원하는 기술 인턴 교육 프로그램 은 1993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공식적인 목
이주 노동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과 과
표는 중국, 베트남, 네팔 등 동남아시아의 노동
로사는 일본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법무
자가 일본에서 3년에서 5년동안 해당 프로그 일터 23
램을 통해 일할 수 있도록 하여 개발도상국으
자들이 신청을 했다고 해서 신청한 모든 사건
로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
이 과로사로 공식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실제
질적으로 고령화로 인한 노동자 부족 문제를
로 피해자 가족이 일본어로만 작성된 신청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또
현지 노동 기준청에 제출하는 것은 여전히 너
이로 인해 다수의 노동권 및 인권 침해 사건이
무나 어렵고 피해자 가족이 보상을 받는 경우
보고되고 있다.
는 극히 드물다.
노동기준청의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9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외국인 인턴 노
년에 조사를 실시한 약 70%의 사업장에서 불
동자 10만 명 중 평균 3.7명이 산업재해로 목
법 초과 근로, 미지급 임금 등 근로기준법 위반
숨을 잃었고, 일본인 노동자의 경우 10만 명 중
사례가 다수 적발되었다. 이렇게 많은 위법 사
1.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는 분명 외국인 인턴
례가 적발되는 주된 이유는 해당 프로그램이
노동자들이 일본인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위험
인턴(본질적으로 합법적인 노동자임에도 불구
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을
하고)이 다른 사업장으로 이직하는 것을 허용
뜻한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턴이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 필요
때문에 고용주가 인턴을 착취하기에 상당히 용
국제사회에서도 해당 프로그램을 규탄하
이하다. 하지만 인턴 노동자 대부분은 일본에
고 있다. 깨끗한 의복 캠페인(Clean Clothes
오기 위해 집을 팔거나 돈을 빌린 경우가 많아
Campaign, 1989년 네덜란드에서 결성된 의
서 빚을 갚을 정도로 돈을 벌 때까지 고국에 돌
류업계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 및 비정부 기구
아갈 수 없다.
이며 의복 및 운동복 산업의 노동조건 개선 에 중점을 둔 시민 사회 활동을 목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저임
의 동아시아 긴급 호소 코디네이터인 존슨 양
금으로 엄청나게 긴 시간을 일하고 있다. 일본
(Johnson Yeung)은 “UN 인권 이사회는 수년
기후현의 의류 사업장에서 일하는 중국인 인
간 기술 인턴 교육 프로그램(Technical Intern
턴들은 몇 년 동안 휴일이 거의 없다시피 일하
Training Program)을 비판해왔지만 일본 정부
면서도 그 지역의 최저임금이 시간당 800엔이
는 여전히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프
었을 당시 시간당 400엔을 받았다. 그들은 약
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630만 엔의 초과 근로수당을 받지 못했다.
않고 있다.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완화하기 위 해 이주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지만 착취 근절
지속되는 이주노동자 인턴의 산재 사망 지속적인 극도의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인 턴 노동자들 가운데 과로로 인해 사망한 사건 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2010년부터 2017년까 지 41명의 인턴이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 거나 급사했다. 이 밖에도 14명이 자살했다. 이 러한 경우 업무 관련 가능성이 상당히 높지만, 업무 관련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과로사의 경우, 피해자의 가족)가 정부 에 보상 청구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노동 24
노동자가 만드는
을 거부하고 있다.” 라고 지적하였다.
사진으로 보는 세상
부산에 위치한 신라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 51명 전원을 2월 말일자로 해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대학 총장 ▲ 실 로비 점거를 시작으로 해고 반대 투쟁을 벌여가고 있다. 출처: 민주노총 부산본부
일터 25
A부터 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누군가의 상흔에 빚진 보통날 전국건설노동조합 송전지부 이충구 전국지부장 인터뷰
한재영 상임활동가
혹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마다 사용
허공을 밟으며 일하는 사람들
되는 전기의 행방을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아마
송전탑은 현 전기공급체계에서 널리 활용
없을 것이다. 숨 쉴 때마다 공기의 존재를 구태
되는 시설이지만 동시에 그만큼 꺼려지기도 하
여 알아차리지 않듯이, 전기는 이미 우리에게 너
는 존재다. 송전탑 주위에는 수만 볼트의 고압
무나도 당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
전기가 흐르고 있어 매우 위험하기도 하지만,
까지 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이 있다. 이유를 말
그보다는 고압전기가 주위 환경이나 인체에 부
하기 전에 앞서,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지상으로
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
부터 100m가량 치솟은 곳에 올라가 본 적이 있
다. 이 때문에 송전탑 대부분을 사람들의 눈길
는가? 있다면 잠시 머무는 게 아니라 대여섯 시
이 닿지 않는 곳에 세우다 보니, 최악의 조건에
간 동안 머문 적이 있는가? 앞선 질문의 답과 마
서 작업이 이뤄진다.
찬가지로 아마 없을 것이다. “송전탑은 주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오지 여기에 숨결 하나마다 전기를 떠올리고, 듣
나 야산에 세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
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높이가 일상인 이들이 있
하는 노동자에게도 최악의 현장입니다. 화
다. 바로 송전탑을 오르내리는 ‘송전 전기원’의
장실이 급하다고 50~100m 되는 높이를 올
이야기다. 낮게는 30m 높게는 100m에 이르는
라갔다 내려오기는 어렵죠. 그래도 소변이
높이에, 얼기설기한 철골로 이뤄진 송전탑 위에
면 밑에 있는 사람들한테 말하고 상공에서
서 행해지는 노동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지난
나마 해결하는데, 대변은 어쩔 수가 없죠.
3월 10일, 대림역 인근의 건설노동조합 사무실
그런데 현장 주변에 이동식 화장실이나 간
에서 송전지부 이충구 지회장을 만나 허공을 밟
이 화장실도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죠. 이동
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간 때문에 식당에 가기 어려우니, 점심도 흙바닥에 앉아 도시락으로 대충 때워요. 어 느 계절이고 일하기에는 다 어려워요. 여름
26
노동자가 만드는
에는 폭염 아래에서 일해야 하고, 한겨울에
고 조립하다 보니 쑤시지 않는 데가 없다. 여기
는 산불 위험 때문에 불도 못 피우죠. 화재
서 끝이 아니다. 여름에 햇볕이 있다면 겨울에
위험이 없는 고체연료를 사달라고 요구하
는 칼바람이 있고, 골병은 추락과 세트처럼 묶
지만, 비싸다는 이유로 매번 거절합니다.”
여있다.
주변 지형이나 전압 크기에 따라 높이 역시
“사시사철 외부에서 하는 옥외작업이니만
달라지지만, 고압 송전탑의 경우 평균 높이가
큼 기후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
100m에 달한다. 통상적으로 아파트 1개 층 높
어요. 폭염을 피할 그늘이 없을뿐더러 철탑
이가 약 3m인 점을 고려하면, 사방이 뻥 뚫린
이 달궈지면서 화상도 많이 입죠. 다량의 자
30층짜리 고층 아파트 꼭대기에서 작업하고 있
외선에 장시간 노출되니 피부암 등 피부질
는 셈이다. 게다가 송전탑을 오를 때에는 맨몸
환의 위험도 크고요. 한겨울도 괴롭기는 마
이 아니다. 매번 20kg에 육박하는 여러 장비에
찬가지예요. 겨울에 작업하면 온몸에 핫팩
다가 개당 9kg에 육박하는 애자를 메고 송전탑
을 붙이고 가요. 그래도 종일 추위에 떨죠.
을 오른다. 그들은 단 한 번의 헛길 질도 허용되
그러고서 숙소로 돌아오면 얼었던 얼굴이
지 않는 상공에서 철근을 조립하고, 전선을 연
그제야 녹으면서 벌겋게 달아올라요.
결한다. 감히 그 고단함을 헤아리기조차 어려 웠다.
피부질환 외에도 어깨, 척추까지 완전 종합 병원이에요. 송전탑을 보면 알겠지만, 발 디
“온종일 위에 있다가 땅에 내려오면 멍해지
딜 곳이 하나도 없어요. 작업하는 내내 어디
면서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
모서리에다 발끝이나 발꿈치를 딛고 서서 미
이 들어요. 송전탑 위에서 하는 일은 다양하
끄러지지 않게 온 힘을 줘야 해요. 평지에서
죠. 송전탑 건설은 시작이고, 전선을 탑에
작업하면 물건을 들거나 잡아당길 때, 두 발
걸치는 연선 작업과 선을 잘라서 연결한 뒤
을 바닥에 고정한 채 일할 수 있지만 우리는
지상으로부터 적절한 높이까지 띄우는 긴
그럴 수가 없는 거죠. 그렇게 무게중심도 못
선 작업이 있어요. 송전탑 유지보수작업도
잡고 팔 힘으로만 작업하다 보니 근육과 뼈
있어요. 애자라고 하는 절연체가 있는데요,
모두 성할 곳이 없어요. 제가 일한 지 30년이
보통 교체 주기가 30년이라고 해요. 하지만
다 돼가는데, 양쪽 회전근 모두 파열돼서 한
오염이 심할 경우에는 그만큼 사용할 수 없
동안 치료했는데 완치는 안 된 상태예요.
죠. 아무래도 비바람이니 자외선이니 하는 온갖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보니 부식
예전에는 사망사고가 나도 다음날이면 일하
도 빠르고요. 그래서 주기적으로 애자를 물
러 나갔어요. 30년간 일하면서 눈앞에서 떨
로 세척하거나 노후된 자재를 교체하는 등
어져 죽은 동료만 3명이에요. 추락한 동료에
의 유지보수 작업을 해요.”
게 겉옷 벗어다 덮어주고, 산에서 들고 내려 오는 것도 다 했어요.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
송전탑 위에서 찢기고 데인 몸과 마음
니까 다음 날이면 또 송전탑을 올랐죠.”
내리쬐는 햇볕에 무쇠나 다름없는 철근도 부식되는데, 하물며 그보다 연약한 사람의 피
송전 전기원의 노동은 그 자신의 생활을 가
부가 성할 리 만무하다. 피부뿐만이 아니다. 허
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역시 가능
공에서 오직 상체의 힘으로만 철탑재를 내려치
하게 한다. 이처럼 사회의 필수재인 ‘전기’를 제
일터 27
공하는 이들이지만, 정작 그들의 일상은 당연
마다 안전벨트를 받는다 치면 못해도 1t은
하지 않다. 2년 전부터 안전사고를 대비해 수
될 거예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측에서
평로프와 추락망 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지만,
는 우리더러 안전장비 상태를 확인하라고
여전히 노동자의 안전보다 이윤이 앞서기 때문
하는데, 작업장비의 상태나 교체 시기를 판
이다.
단할 수 있는 기관이나 기준이 없어요. 그러 다 보니 관리자나 개개인이 알아서 헤지거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작업 공기(공사기
나 낡은 정도를 맨눈으로 판단하고 바꾸는
간)를 느슨하게 잡는 거예요. 공기가 늘어나
실정이죠.”
면 그만큼 소요되는 예산이 많기 때문에 무 리하게 공기 단축을 하려고 해요. 그러다 보
이 일이 우리를 먹이고 살리려면
면 당연히 사고가 나죠. 안전 관리감독자 수
지상 수십 미터 철탑에 오르는 것만이 송전
도 늘려야 해요. 우리가 송전탑 하나를 작업
전기원의 고충은 아니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완성하고 다음 송전탑 작업을 하는 시스템
어질해지는 높이에서 벨트 하나에 몸을 맡기는
이 아니거든요. 몇 개의 작업현장에서 일하
것도, 살이 익다 못해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비
는 거죠. 예를 들어 송전탑 10개를 작업한
틀어지는 것을 감내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 살
다고 했을 때, 한데 모여 작업하는 게 아니
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고 산봉우리마다 떨어져서 작업해요. 그럼 총 10개의 현장이 있는데 무슨 수로 소장
“IMF 이후 계속 임금을 깎였죠. 10년 가까
한 명이 모든 현장의 안전을 점검하고 관리
이 평균 노무단가가 30만 원이었는데, 몇
할 수 있겠어요? 송전탑별로 관리자를 두거
년 전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임금 인상이 이
나 아니면 송전작업은 보통 팀 단위를 이뤄
뤄졌죠. 문제는 작업일수예요. 1년 중 성수
작업하니 팀별로 관리자를 두는 게 맞죠. 하
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요. 한전에서 발주
지만 현장의 안전은 작업자들에게만 온전
하는데 1년 중 상반기에는 5, 6월 하반기에
히 맡겨놓고 있어요.
는 10, 11월에 주로 일이 몰려있어요.
송전작업은 안전벨트 하나만을 몸에 매달
성수기보다 비수기가 더 많아, 이 일만 해서
고, 온몸을 공중에 띄운 채 두 손으로 하는
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대부분 비수기 때 다
작업이에요. 그 높은 곳에서 믿을 건 안전벨
른 일을 하러 가죠. 철골작업이나 건물 유리
트 하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몸에 꼭 맞
닦기, 전차선 작업 등 고공에서 할 수 있는
아야 하죠. 그런데 업체는 값싸고 허술한 안
일이라면 뭐든 해요. 요즘에는 지자체에서
전벨트 하나 사서 던져주고, 제공했다고 서
주력하고 있는 출렁다리 사업 현장에 자주
명받고 사진 찍으면 끝이에요. 그저 안전관
가요. 고공작업 외에 중량물 취급도 익숙하
리비 집행했다는 보고에 불과한 겁니다. 그
니 용광로 교체작업에 나가기도 하고요. 이
리고 상용직이면 안전장비 관리 담당자도
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인력소에서 용역을
있고, 때에 맞춰 교체도 할 건데 일용직이다
구해 부족한 수입을 메꿔요.
보니 그럴 수가 없어요. 보통 3일에서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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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짧게 여기저기 현장을 옮겨 다니는
현재 전국의 송전 전기원은 300명 정도 되
일용직이다 보니, 안전벨트는 개인이 구매
는데 평균 연령이 50세예요. 한전에서 고시
해서 사용하는 게 더 편해요. 현장에 갈 때
한 정년은 만 60세에서 지난 2월 17일 이후
노동자가 만드는
▲ 출처: 건설노조 송전지부
만 65세로 늘었어요. 그렇다 해도 새로운
시공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시공능력이 없
인력투입은 거의 없는 게 문제예요. 워낙에
다면 입찰도 막아야 해요. 현재 송전작업
일은 고된데 처우는 열악하고 일거리도 많
은 지중배전이나 변전과 달리 전기공사업
지 않아서 그렇죠. 지금 상황을 보면 5년 후
만 등록돼 있으면 누구나 입찰에 참여할 수
에는 70%, 8년 후에는 80%의 송전 전기원
있어요. 전국의 전기공사업체만 해도 1만
이 사라져요.”
7~8천 개는 되는데, 실제로 작업할 수 있는 업체는 100개도 채 되지 않아요. 이렇다 보
노동조합은 송전 전기원의 열악한 처우 개
니 온갖 페이퍼컴퍼니나 유령자격증이 난
선을 위해서 상용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한
립하고, 불법 하도급이 남발하는 탓에 노동
전 측의 발주금액을 늘리는 등의 방식을 통해,
자들의 처우는 날로 열악해져요. 업체의 시
한전 송전정비협력회사의 상용직으로 일할 수
공능력 검증을 제대로 하고, 이후에도 지속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송전전문업체 등록제를 시행해야죠.”
“현재 실제 시공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자 격증을 가진 사람은 1만 명 가까이 돼요. 대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쉬는 날 무엇을 하며
학생이나 포크레인 기사, 목욕탕 관리사까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다. 그러자 ‘취미는 사치’
지 자격증이 있어요. 현재 송전 관련 자격증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송전 전기원의 삶에서
이 민간자격증인 터라, 6주간 교육이 끝나
사치는 취미 하나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과의
고 자격증이 발급되면 자격증 브로커들이
관계도 사치라 했다. 어디 그뿐이랴. 안전하게
얼마간의 돈을 주고 그 자격증을 관리하는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 고된 노동의 대가, 우리
거죠. 일부 전기 협력업체들은 이런 유령자
사회의 필요한 빛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모두
격증을 동원해서 입찰에 참여해요. 국가자
사치다.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이면 가족들과
격증으로 전환해 국가가 주관하고 관리해
함께 꽃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
야 합니다.
다는 송전 전기원들의 소망이 사치가 아닌 그 저 보통날의 모양새가 되길 바란다.
일터 29
현장의 목소리
기나긴 10여 년의 투쟁을 돌아보다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교육부장 인터뷰
거니 회원, 보건의료학생 매듭
긴 시간동안 수많은 투쟁과 상처를 안고 온
현재 정비과에 소속돼 노동 중인 김성미 교
유성노조 노동자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리고 지
육부장은 이전까지 노조간부로도 활동했다. 그
금의 심정과 향후 계획은 무엇일까. 지난 2월 2
간의 투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지 궁금했다.
일, 수많은 질문의 답을 듣기 위해 유성기업 영 동공장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 교육 부장 김성민 교육부장을 만났다. 노동과 투쟁의 하루일과 ‘유성기업’하면 노조파괴부터 먼저 떠오른 다. 회사와 국가는 잔인하게 노동자의 일상을 파괴해왔고, 자본은 자신이 짠 일정과 강도로 노동자를 유도하며 성과로 하루 일과를 점검했 다. 이에 맞서 투쟁해온 유성노조 노동자들의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 “주조부에서는 합금을 제작해요. 우선 쇠를 녹여서 쇳물을 만들고 니켈·망간·크롬 등을 섞어서 합금을 만드는 거죠. 금형 틀에다가 넣으면 동그랗게 나오는데, 이걸 생산부에 넘기면 가공을 시작해요. 면을 깔끔하게 만 들고 피스톤을 왔다 갔다 한 뒤 검사하고 내 보내는 거죠.” ▲ 출처: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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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작년 12월 31일까지는 출근투쟁(이하 출
하니 사소한 일에도 화가 나는 거죠. 그리고
투)을 했어요. 2011년 처음 투쟁할 때는 회
야간작업을 하면 패턴이 자주 바뀌니 만성
사가 용역을 세우고, 매일 몸싸움 하는 게
피로가 생겨요. 낮에 농사 일손을 돕는다거
일이다보니까 출투하기가 어려웠대요. 조
나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내는 등의 다른 일
합원들은 두려움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죠.
들은 아무것도 못했죠. 너무 피곤해서 퇴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공포가 있는 걸
하면 잠만 자게 되고 그러다 조금 있으면 출
요. 2012년부터는 재정비하고 현장조직화
근해야 하고 그러니까요.”
를 했어요. 어용으로 넘어간 사람들을 금 속으로 오게 하는 거죠. 2015년까지는 현
유성기업에서는 야간노동으로 노동자가 사
장에서 싸우는 게 자주 있었어요. 그러다
망했다. 함께하던 동료가 영영 눈을 뜨지 못하
2016년 3월에 한광호 열사가 목숨을 끊었
는 것을 보며, 노조는 노동시간 문제와 건강권
어요. 이를 계기로 조합원들이 다시 투쟁해
을 연결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렇게 심야노동
야 한다고 마음 먹고, 내부에서 관리자하고
철폐의 요구와 투쟁이 시작됐다.
만 싸우는 문제를 넘어 사회화 투쟁으로 가 는 것에 동의했죠. 한광호 열사가 돌아가
“조합원 중 한 명이 야간노동을 마치고 돌
신 날부터 서울 상경 투쟁을 시작했고, 투
아오는 버스에서 못 내렸어요. 차 안에서 돌
쟁은 시청과 양재동으로까지 이어졌어요.
아가신 거예요. 당시에는 산재고 뭐고 몰랐
2017~2019년 초까지 조를 짜서 농성한 양
어요. 50대였는데 죽을 수도 있구나 그런가
재동 투쟁 때는 현대차가 직접 개입한 걸 두
보다 했어요. 그러다 제가 지회장을 맡고 나
고 볼 수 없다해서 새벽같이 출투하고, 농성
서 29살짜리 조합원이 자다가 죽은 거예요.
장에 와서 아침 먹고 점심에는 대법원 가서
산재 신청을 했는데 불승인 나면서 회사가
피켓 들고 그랬어요. 그러다 2016년 11월
줬던 임금을 도로 뺏어갔어요. 그걸 갚기 위
산재인정을 받았고, 다음 해 2월에는 유시
해서 3주 연속으로 야간에 들어갔었대요.
영 대표가 구속됐죠.”
그렇게 들어가면 안 되거든요. 이후로 우리 에게 숙제가 남았어요. 왜 사람들이 죽는 걸
심야노동 철폐와 주간연속2교대제
까, 우리는 뭘 해야 할까하는 숙제요.
야간노동의 유해함은 모두 알고 있다. 다만 야간수당을 받아야만 하는 경제적 이유나 지금
심야노동이 문제라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
당장의 즉각적인 피해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야 하나 고민했죠. 저 역시도 야간노동을 안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그러나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됐거든요. 그러다 주간
정말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몸에 아무런 영향을
연속 2교대제를 알게 되면서, 저도 공부하
끼치지 않았을까. 김성민 교육부장의 대답은
고 노조 사업에도 포함하기 시작했어요. 주
‘아니었다’이다.
간연속 2교대제의 핵심은 월급제와 심야노 동 철폐라고 생각해요. 2009년에 실물경제
“야간작업에 들어가면서 괜찮다고 하는 사
위기가 오면서 야간 잔업도 없고 퇴근 시키
람은 본 적이 없어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3
더라고요. 그러면 월급이 80~100만원씩 줄
년 밖에 못 하겠더라고요. 야간작업에 들어
어드는 거죠. 오히려 이때 주간연속 2교대제
갈 때는 출근길에 누가 뒤에서 라이트를 조
논의가 탄력을 받았어요. 사람이 죽었을 땐
금만 비춰도 화가 났어요. 스트레스가 상당
초반에 반짝하고 말다가 실질적인 임금이
일터 31
줄어드니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기
리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기도 했어요.
본급 인상과 잔업 줄이기를 동시에 진행하
‘조용히 얘기해. 누가 있을지도 몰라’ 이런
면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요구했어요.”
식으로요. 스트레스 받으면 모든 일에 다 짜 증이 나잖아요. 평소라면 안 그랬을 텐데 아
노조파괴가 끼친 영향들
이들이 조금만 떠들어도 화내고, 가정폭력
노조파괴로 개별화·파편화된 노동자들은 사
도 일어나고 그랬어요. 노조파괴가 사람도
측의 징계를 피하고자, 생존전략의 일환으로써
파괴하고 가정마저 파괴했어요.”
본인의 노동 강도를 증가시킬 수밖에 없었다. 떠난 사람들이 남긴 숙제 “2011년에 생산수량이 20~30% 정도 증가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고(古) 한광호 열사
했어요. 노조가 깨지니까 어용으로 간 사람
를 비롯해 여러 동료를 떠나보냈다. 노조 대의
들이 회사에 잘 보이기 위해서 생산수량을
원으로 활동했던 열사에게 회사는 수많은 소송
높일 수밖에 없었던 거죠. 거부하면 징계하
과 징계, 폭행 등 갖은 탄압을 자행해왔다. 결국
겠다는 식으로 나오니까요.”
2016년, 열사는 죽음으로 내몰렸다. 떠나간 사 람을 안고 남긴 숙제를 풀어나가며, 투쟁을 지
사측은 CCTV 설치를 비롯해 일상적 감시·
속하는 시간을 노조는 어떻게 보냈을까.
민/형사소송·임금 삭감 등 온갖 방법으로 조 합원의 일상을 파괴했다. 이렇게 자행된 조직
“제가 지회장을 한 번 더 맡았을 때 저희 간
적이고 지속적인 탄압은 조합원들의 몸과 정신
부가 지게차에 치여 죽었어요. 한광호 열사
모두에 비가역적인 악영향을 끼쳤다. 탄압의
도 돌아가셨고요. 돌아가신 분들이 남기고
결과는 장소를 가리지 않았고, 스트레스는 가
간 것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심야노동이
족에게로의 폭력으로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었고 두 번째는 재해에 의한 사고였죠. 누 가 지게차에 치여 죽을 줄 알았겠어요. 그런
“누구도 우리의 억울함을 해결해 줄 수 없다
데 적재물은 2단으로 쌓았지, 사람이 지나
는 막막함이 가장 힘들었어요. 월급을 받았
갈 길은 없지 이런 상황이니 그렇게 된 거예
더니 이유도 없이 삭감돼 있는 거예요. 항의
요. 마지막으로는 정신적 재해였어요. 노조
하면 지금 일하는 시간이니까 쉬는 시간에
파괴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이 죽어
오라고 해요. 당연히 10분 안에 다 이야기
나가니까요. 그래서 해고자들 중 일부가 개
못하죠. 그런데도 쉬는 시간 끝나면 작업장
별적으로 산재신청을 했어요. 문제는 굉장
이탈이라고 하면서 가라 하죠. 노조파괴의
히 오래 걸린다는 거예요. 그나마 한광호 열
핵심은 법으로 가는 거예요. 해고자들이 대
사 경우에는 빨리 나온 편이라고 하더라고
법원 판결을 받으려면 5년이 걸려요. 법으
요. 사람이 죽는 데에는 그 이유가 있는 거
로 해결하려면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려요. 그
고, 그 이유를 밝히고 해결하는 게 남아있는
나마 버텨서 이기면 다행인데, 중간에 포기
사람들의 숙제죠. 이런 것들을 노동조합이
해버리면 회사가 이기는 거잖아요. 그러니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힘들죠.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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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감시는 회사가 책임 전가를 위해서
통의 역치가 너무나도 높아졌다. 산재사망은
일상적으로 행동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끼
그동안 내재된 문제들이 곪다가 터진 가장 극
노동자가 만드는
단적인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단식을
작년 연말에 이뤄졌던 합의안에는 감시카
하거나 죽어나가야만 겨우 이슈화 됐다. ‘자본
메라 철거와 부당노동행위 책임자 처벌·조합원
주의 사회에서는 산재로 사람이 하루에 7~8명
트라우마 심리 치유사업 지원·노조 간 차별 금
죽는 것보다, 주식이 1% 내려가고 올라가는 게
지·민형사상 고소/고발 취하·주간연속 2교대
훨씬 더 큰 문제다’는 김성민 동지의 말이 이를
제 도입을 위한 실행위원회 가동 등이 들어있
단적으로 반영한다. 이러한 사회에 ‘감수성’과
다. 앞으로의 노조에게는 어떤 과제가 남아있
‘경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을까.
“예전에는 저 역시 이 정도 힘든 일은 좀 견
“악은 징벌하고 선은 복을 받아야 하는데 안
뎌야지, 참고 일하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
되는 거잖아요. 이제 일상을 찾아가려고 하
하고 살았어요. 그러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는 데, 산 넘어 산이예요. 왜냐하면 어용을
감수성이란 걸 배운 거 같아요. 평등 감수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장 조합
성, 성인지 감수성 이런 감수성을 가진 구성
원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10년째 같이 일을
원을 키워내는 게 필요하다 생각해요. 누군
한 사람들이니 아예 얘기를 안 할 수는 없잖
가의 노동문제가 당장 내 문제라는 인식이
아요. 이런 갈등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게
필요하다는 거예요. LG 트윈타워에서 투쟁
가장 어려운 일이라 예상해요. 이제는 주워
하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힘들까 이런 생각
담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간의 감정싸
과 감수성이 있어야 해요. 노동조합이 할 수
움도 추스르고, 투쟁하면서 미뤄뒀던 치유
있는 것도 그런 거잖아요. 양재동 투쟁 때처
도 노조가 담아야 할 때인 거죠.”
럼요. 저기서 힘들게 투쟁한다더라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을 자꾸
오래된 탄압은 노동자들을 만성적 긴장상
만들어주는 게 필요해요. 1등만이 옳고, 경
태로 내몰았다. 그간의 묵은 감정을 추스르고
쟁체제가 당연하다는 사회에 경종을 울릴
상처를 치유하며,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충분한
수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거죠.”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이 앞으로 꿈꾸는 소망 이나 계획이 궁금했다.
투쟁의 의미와 이후의 과제 연대의 힘으로 버티고, 투쟁으로 이끈 변화
“10년이나 지났잖아요. 항상 불안하게 살다
들이 많다. 유성기업 노조 조합원들이 꼽는 가
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잘 몰라요.
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아직은 조합원들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죠. 그냥 얼마 안 있으면 정년퇴직인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현장에서 자율적 행
데 돈 벌어야지 그런 말들을 나누곤 해요.
동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지금도 일하는 시
지금 조합원들 평균 연령이 10년 뒤면 정년
간에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잖아요. 지금은
퇴직을 할 때니까요. 아무래도 제일 하고 싶
조합원들도 자율적 행동이 당연한 거라고
은 건 쉬는 거죠. 앞으로는 충분히 휴식도
생각해요. 투쟁에서 졌으면 이렇게 못했을
취하고, 가족들하고 놀러 가고 그러고 싶어
걸요? 다음으로는 비록 조합원의 수가 절반
요. 개인적으로는 지금 현장에 돌아온 지 1
으로 줄어들었지만 노동조합을 끝까지 지
년 됐거든요. 1년 새에 조합원들하고 많이
켰다는 거죠.”
친해졌어요. 임원하다보면 아무래도 그러 기 힘드니까 지금의 일상이 좋아요.”
일터 33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과 하는 노동안전보건 활동의 보람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센터 이진우 센터장 인터뷰
장영우 선전위원장
1년여 전까지는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
크게 볼 때 노동안전보건 활동이라는 면에
의 활동가로 다양한 산별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서는 유사하지만, 직장의 성격도, 하는 일도
하고, 집회를 기획하며, 법 제정·개정, 대정부 투
상당히 다른데요. 어떻게 현재의 일을 하게
쟁을 하는 활동가였던 이진우 동지. 어느새 새로
되었나요?
운 직장에서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또 다른 노동 안전보건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일터 4월 ‘노동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에서 일할 때 다
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코너는 벚꽃이 피
양한 업종의 노동안전보건 활동에 관심이 있었
기 시작하는 어느 봄날 저녁 서울의 한 카페에서
어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도 있고요. 하
경기도의료원 산하 파주병원 노동자 건강증진
지만 여러 영역 중에서 작은 사업장에서의 노
센터 센터장이자 연구소 회원이기도 한 이진우
동안전보건 활동을 진행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
동지를 인터뷰하였다.
고요. 50인 이하의 사업장에는 보건관리자를 선임해야 할 의무도 없고, 작은 사업장 노동자
지금은 직업환경의학 의사로, 노동자 건강
들의 건강과 안전을 관리하는 근로자건강센터
증진센터장이신데, 전에는 다양한 곳에서
도 전국에 23개 밖에 없어서 충분하지 않고요.
활동하셨었죠?
그렇게 작은 사업장에 대해 어떤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었고 개인
“안녕하세요, 이진우입니다. 직업환경의학 과 의사이고 1년 전부터 파주의료원 노동자 건
적으로 새로운 일터를 찾아보다가 지인의 소개 로 여기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강증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사회진보 연대 사무국장을 하다가 2016년부터 2019년 민
이진우 동지가 주목했듯 소규모 사업장은
주노총 노동안전실에서 근무한 적 있습니다. 작
산업재해 예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년 초부터 현재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국내 산업재해 노동자 10만 여 명 중 76.5%가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이었
34
노동자가 만드는
다는 씁쓸한 통계가 있다. 작은 사업장은 안전보
였는데 우리 센터가 새로 만들어져 2개가 되었
건 규제의 많은 부분에서 제외되고 있고, 정부의
습니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홍보가 여의치 않
지원을 받아 근로자건강센터 형식으로 노동자
아서 우리 센터에서 약 1500명 정도 검진했어
안전과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경기
요. 보통 특수검진 기간에서 1년에 10,000명
도의료원 파주병원의 노동자 건강증진센터는
정도 하니까 적게 검진한 편에 속해요. 의외로
근로자건강센터와는 또 다른 운영 형태로 소규
파주에 출판단지라든가 LG 디스플레이 공장의
모 사업장들을 지원하고 있고, 이곳에서 소규모
하청업체 등 소규모 사업장이 많아요. 파주 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실시하는 사업들은 큰 의
동자가 수십 만 명인데 1500명 정도 검진했으
미가 있다.
니 아직 갈 길이 멀지요. 저는 바쁘게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차차 나아지겠지요.”
작은 사업장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 사업 파주병원같은 공공 병원 자체가 별로 없고,
이진우 동지가 노동자 건강증진센터에서 하
또 그 병원에서 노동자 건강증진센터를 운
는 활동은 간간이 기사를 통해서도 볼 수 있었
영하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노동자
다. 작년 여름, 대리기사들이 생애 최초로 특수
건강증진센터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고, 그 검진은 바로 파주병원 노동자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50인 이하의
것이었다. 경기도가 도입한 ‘우리 회사 건강주치
사업장은 보건관리자를 선임할 의무가 없어서
의 사업’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과 특수고용 노동
노동자의 건강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자들까지 혜택을 받게 된 것이다. 사업장에서 건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50인 이하 사업장 노
강 관리를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특수고용 노
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
동자들이 건강검진을 받게 되어 흐뭇해하던 기
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하고 사후 관리 등을
사 인터뷰에 나 역시 흐뭇해졌던 기억이 난다.
해주기 위한 노동자 건강증진 조례가 2019년 경기도에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사업장의 건강
노동자 건강증진센터에서의
위해도 평가는 물론 작업장 환경 개선 컨설팅
노동안전보건 활동
도 하는데요. 이 사업은 경기도가 전국에서 처
들어보니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꼭
음으로 시행하는 사업으로 현재 도지사의 공약
필요한 노동안전보건 지원일 것 같습니다.
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이 지원받을 수 있는 것 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조례안을 만들었고 약 11억 가량의 예산을 확보하였습니다. 현재 경기도에서 수원의료원
“지자체에서 노동자 건강을 지원해주는 최
하고 파주의료원에서 이 사업을 하고 있어요.
초의 모델이라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2019년 말에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잘 운영하는 게 중요합니다. 경기도 의료원에
2020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이 건강
서 6개 병원 중에서 노동자 건강증진센터가 현
증진센터가 세워졌습니다. 직원은 총 15명인데
재 파주와 수원에 있습니다.
사례관리 담당 4명, 위험성 평가 담당은 2명, 또 건강검진 직원들이 있습니다.
올해 일정정도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다른 의료원에서도 설립이 된다면 서로 상승효과를
이전에는 파주에 특수건강검진기관이 하나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동안 특수 고용노
일터 35
▲출처: 한노보연
동자는 사업주가 없으니까 검진의 의무가 없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어 건강관리의 사각지대였습니다. 그래서 경기 도에서 이 노동자들을 위한 건강주치의 사업을
의미 있는 사업을 많이 하고 있고 노동자들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택배 노동자 같은 경우
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지만, 처음 하는 사업
CJ, 한진은 계약을 맺은 검진기관에서 건강검
이라 검진 대상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은
진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용관계가 명확
데요?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검진이라 한계가 있 습니다. 정부가 검진을 한다면 더 중립적인 입
“일반 노동자들은 검진이 사업주의 의무니
장에서 노동자 건강관리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까 알아서 저희 센터를 찾아오지만 특수고용노
있겠습니다.
동자들은 제가 직접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사 업주가 없으니까 아는 분을 통해서 하기도 하
여러 연구에서 특수건강검진을 받아야 하
고, 또 노동조합을 통해서도 여러 군데를 일일
는 사업장 중에 특수건강검진을 10%도 하지
이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대리운전이나 배달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머지 90%의 사
라이더 노동자들을 직접 서울로 찾아 가서 작
업장 검진을 하는 게 중요한데 민간업체에만
년에 89명을 검진했어요.
맡겨서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공공기 관이 어느 정도 적자를 감수하면서 노동안전보
파주쪽은 노동조합 활동이 경기 남부에 비
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업주를 교육하는 역할
해 덜 활발해서 노조와 연계하여 사업을 진행
을 하도록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
하기가 쉽지 않아요. 파주시에서 비정규직 지
다. 그리고 실행 주체 중에서는 지자체가 먼저
원센터도 찾아가서 MOU(양해각서) 맺고 자문
36
노동자가 만드는
도 받은 적이 있고요. 예전에 민주노총에서 일
예전에 하시던 일과는 달라서 하지 않던 일
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상공회의소에 가서
도 해야 할텐데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
회장님과 악수하고 MOU 맺은 적도 있어요. 상
을까요?
공회의소에 속해 있는 사업장이 많으니까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가 일일이 사업장 저도 이 사업과 우리 센터를 알려야 하니까
을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 있고요. 우리 센터 내
이렇게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사업 설명을 하
에서도 여러 직종이 있는데 각자 업무가 있는
고 안내 해달라고 했어요. 일종의 영업이라고
분들 사이에 조율할 일도 있고요. 이런 일도 제
할까요. 여기저기 돌아다녀 작년 20곳과 MOU
가 하는 일이에요.
를 맺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건지 제대로 검진 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작년에 이어 올해
노동자 건강증진센터가 센터로서 하는 일
도 특수고용노동자를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하
이 있고 파주병원 내에 있기 때문에 그 구성원
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네요. 레미콘 공장 같은
으로서 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런 것도 조율
경우 검진 할 때도 휴게실 찾아가서 노동자, 사
해야 해요. 또 작년에는 코로나 유행 때문에 한
측에 미리 양해를 구하고 직접 가서 검진을 했
참 여기 집중하게 되기도 해서 하고 싶은 사업
습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일 하는 하루 빼서
을 많이 못 한 것 같아요. 우리 직원은 3년 계약
병원에 검진을 오게 하는 게 쉽지 않으니 직접
비정규직이라 고용이 불안정한 것도 해결되어
찾아 가는 거지요. 이런 식으로 없었던 업무를
야 할 문제인데 직원 정규직화는 어떻게 될지
새로 만들어내면 함께 일 하는 센터 직원들에
알 수가 없네요.
게도 미리 양해를 구해고 설득해야 하는 과정 도 있어요.
하지만 예산도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사업을 기획할 수 있는 자율성은 있는 편이예요. 올해
이렇게 다른 사업장과 단체를 계속 찾아다
제대로 실적이 나야 할 텐데요.”
니는 게 일반적인 직업환경의사가 하는 일은 아니거든요. 단순히 검진 일만 하면 마음이 편
이진우 동지와 인터뷰를 하고 나니 전체 노
할 수도 있는데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아요. 여
동안전보건 활동 중에서 예전에는 A라는 톱니
러 사업장에 찾아가는 일도 직접 하고 있어요.”
바퀴에서 활동을 했다면 지금은 C라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리와 역할이 바뀌
지자체에서 하는 노동자 안전보건 지원사
었지만 여전히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위해 활동
업이 잘 알려지기만 한다면 더 많은 사업장에
하고 있고, 더 큰 질병이 나기 전에 예방을 한다
서 건강검진을 신청하거나 안전보건 지원을 요
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보였다. 쓰지 않던 근육을
청할 것 같지만 지금까지는 사업장에서 직접
써가며 신청을 받기 위해 먼저 사람들에게 제안
문의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듯 했다. 혹은 그
을 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일도 하고 있지만,
보다, 사업주들이나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
이진우 동지 얼굴에 활기가 보여 마음이 놓이기
하게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
도 한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제도적으로
고, 사업장 안전보건을 위해 관리가 필요하다
보호받지 못 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건강과
는 것도 아직 널리 인식되지 못 하기 때문인 것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이진우 동지에게 응원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낸다.
일터 37
세상의 해고에 맞서는 불굴의 투쟁: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노동의 모든 문제들
김상민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이 장면에서 나는 언젠가 사무직 여성 노동자가 오지에 있는 현장으로 파견 발령이 났으나 개의 치 않고 그 상황을 극복해 최고의 현장 노동자 문화로 읽는 노동
가 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는 것이 떠올 랐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이태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 뉴스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 자리 여기 없습니다” 동기들 중에서도 제일 잘나가고 사내 모든 일에 일등이던 박정은 대리는 무슨 일 때문인 지 알 수 없지만 권고사직을 종용받다가 타협 으로 1년만 하청업체에서 일하고 돌아오라는 파견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듯 내려온 낙후된 지방 소도시의 송전탑 관리하청 업체는 소장 포함 직원이 고작 네 명뿐이고, 그 ▲ 출처: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포스터
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원청 에서 좌천되어 온 사무직 직원을 반기는 사람
누군가 늦은 밤 지방 소도시로 장시간 자
은 아무도 없다. 사무직이던 정은은 작업관리
동차를 운전해간다. 새벽녘 임시 숙소에서 전
대장을 만드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
형적인 사무직 노동자 복장을 한 여성이 빨대
아보려고 하지만 돌아오는 동료들의 말과 시선
꽂은 팩소주를 마시면서 절망인지 분노인지
은 차갑다.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가득 차있다. 주인공 인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지방 하청업체에서
게다가 하청에서는 파견 노동자의 인건비
의 1년간의 시한부 파견 근무를 명령받았다.
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원청의 인
38
노동자가 만드는
원감축 방침은 원래 일하던 직원들의 일자리까
도구, 송전탑에 오르는 발판 사이의 폭조차
지 위협한다. 파견 내려온 정은을 잘라내려는
도 남성 노동자의 신체에 맞추어져 있다. 모
목적이지만 근무평가 결과에 따라 누가 해고될
든 것이 여성 노동자를 작업의 환경으로부터
지 모를 일이다. 급기야 원청은 평가관을 내려
배제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도 여성이 한
보내 하청업체 평가를 실시한다.
걸음도 그 안으로 들어설 수 없도록 만들어진 강고한 남성 중심의 노동 환경은 정은의 끈질
한편, 정은은 꿋꿋하게 자신도 현장 일을 하 겠다고 결심하고 밤늦게까지 무거운 전기 작업
긴 노력과 동료들의 수긍으로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도구들과 혼자 씨름해가며 스스로 일을 배운 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작업을 나가려고 하는
“사는 게 그냥 알바에요”
순간 자신이 입을만한 작업복도 없으며 심지어
동료 중 ‘막내’씨는 낮 시간에는 송전탑
현장 노동자들에게 특수 방전 작업복이 지급되
관리 일을 하고 저녁에는 편의점에서 알바를
기는커녕 그것을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을
한다. 편의점이 끝나면 밤늦게 또 대리운전까
알게 된다. 원청의 갑질과도 같은 평가과정, 노
지 한다. 아내 없이 딸 셋을 키우는 그는 적어
동자의 안전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행태
도 쓰리잡 이상을 뛰고, 그러다보니 직장에
는 공공기관의 민영화와 다단계 하청구조나 노
출근해서도 늘 피곤해 시간이 날 때마다 쪽잠
동자를 어떤 식으로 쥐어짜고 위험으로 내모는
을 잔다. 그런 것이 또 그의 근무평점을 낮추
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는 요인이 된다. 잠이 부족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데도 삶은 풍요해지지 않는다.
“여자가 일을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게 아
아니, 이미 불안정한 삶 자체는 끊임없이 알
냐, 아직도 모르겠어?”
바와 부수입을 강제한다. 사는 게 알바와 다
정은이 자신의 일을 혹은 ‘자리’를 찾지 못
름없다.
하던 처음 며칠, 남성 동료들은 작업장 구석 칸 막이 옆에 조그만 책상을 배치해둔다. 이미 원
그런 막내씨가 두려운 것은 일하다가 죽
청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뺏기고 사무실 바깥
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서운 거는 해고예
복도 어딘가에 놓인 좁은 책상에 앉아서 일하
요. 해고되면 알바만 해야 되니까.” 죽음보다
던 그녀에게는 파견 명령을 받던 그 시간이 소
도 직장 없이 불안한 삶이 지속되는 것이 더
환된다. 사무직 여성에게 현장직 남성들의 일
공포스럽다는 것은 그것을 겪어 본 이들, 그
이 주어질 리는 만무하고, 남성 동료는 자신들
것을 겪고 있는 이들, 혹은 그것을 곧 겪게 될
이 식사하고 난 자리를 치우는 것이 그녀의 일
이들이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해고는 죽음
이라고 여긴다. 정은은 더욱 오기가 난다. 일을
이라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두려움이
주지 않는다고 지방노동위에 신고할 생각까지
따르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해
한다.
고든 사망이든 그게 뭐가 달라요.”
성별에 따라 해야 할 일의 종류를 구분하려
“송전탑 위에서는 동료밖에 없어요, 동료를
던 남성 동료들의 잘못된 인식만큼이나 견고
믿어야지”
하게 여성을 노동 현장에서 차별하는 것은 바
퇴근 후 편의점에서 늘 정은과 마주치던
로 노동의 환경 자체다. 여성 노동자의 신체 사
막내씨는 원청의 실태 점검 평가 기간에 정은
이즈에 적합하지 않게 만들어진 작업복, 작업
이 겪는 어려움을 알고 알바로 그녀에게 일을
일터 39
▲ 출처: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가르친다. 평가에서 자신이 낮은 점수를 받고
제 중요하지 않다. 해고 통보, 만류하는 소장,
해고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동료를 위해 시
흐린 날씨, 바람에 흔들리는 송전선, 이 모든 악
간을 내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소공포증
조건을 뚫고 혼자의 힘으로 송전탑에 올라 기
을 약까지 먹어가며 극복해보려는 정은은 처
어코 전선을 연결해낸다. 그들이 나를 해고하
음엔 송전탑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
더라도, 자신은 결코 스스로를 해고하지 않을
힌다. 처음엔 동료의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 1
것이라는 저 굳은 결심.
미터도 올라가지 못했지만, 막내씨 덕분에 고 문화로 읽는 노동
소공포증도 극복하고 일도 배우면서 삶의 활 기를 조금씩 찾아간다.
통쾌한 복수나 반전을 보여주는 결말은 없 다.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이 영화에는 정말 노동의 현장에서 발생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파견을 내려온 지 90일째 되는 날, 전기
문제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들어있다. 민영화,
작업을 하기 좋지 않은 흐린 날씨지만 응급상
권고사직, 하도급 파견노동의 차별, 노동자와
황이라 작업팀은 송전탑 작업에 나선다. 하지
노동자 사이의 무한 경쟁, 관리감독이라는 명
만 송전탑에 오른 막내씨는 그만 사고를 당
분으로 이루어지는 본사의 갑질, 여성 노동(자)
해 사망하고 만다. 장례식장으로 걸려온 원청
에 대한 왜곡된 인식, 불안정 노동으로 인한 불
동료의 전화는 근무평가가 낮은 막내씨만 제
안정한 삶.
치면 정은이 직장에 남아있을 수 있다고 전 한다. 하지만 정은에게 그의 죽음은 경쟁자가
정말 당장 포기하고 싶을 만큼 노동을 둘러
아니라 동료의 죽음이다. 동료의 죽음이자 나
싼 모든 문제들이 나를 둘러싸고 옥죌 때에도
의 죽음. “우리가 제발 살 수 있게만 해달라”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정은에
고 원청 관리자들에게 외치는 정은에게 파견
게서 강철처럼 단련되는 삶의 의지, 노동의 의
이든 하청이든 구분은 의미가 없다. 오직 동
지를 읽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들이 외치던
료밖에 없다.
“우리는 생명, 우리는 빛”이라는 현장 구호는 노동과 삶의 가치를 스스로 드높이고 긍지를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갖게 만드는 주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동과
정전 때문에 장례식장에서 부패해가는 동
삶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손쉬운 해고를 가능하
료의 시신, 섬마을이라 가볍게 무시되는 전기
게 만드는 것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
의 혜택을 정은은 이제 두고 볼 수 없다. 그녀
지는 동료들과의 뜨거운 연대처럼 송전탑을 통
가 이미 해고되었다는 원청 관리자의 말은 이
해 저 멀리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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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사진으로 보는 세상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작년 말부터 집단해고 반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3월, LG 본사 앞에 고용승계 텐트촌을 설 치 했다. 그러나 LG는 텐트촌 바닥에 물을 뿌려 다시 한번 노동자들을 망연자실하게 했다. 해고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 았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일터 41
반증의 삶 그리고 일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송윤희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영화감독•작가
본 글은 영화 현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았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한 영화감독들과 A
으나 비교적 꾸준한 작업이 가능했던 숙련된
급 촬영·미술·조명·음악감독들을 영화계에서
경력자의 이야기로, 전체 영화 현장의 노동을
는 ‘오야지’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이 분야에서
대변할 수 없음을 밝힌다. 현장 노동의 문제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이다. 오야지 밑에
노동자의 건강을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들여
서 노동과 기술을 제공하는 팀원들은 ‘언제까
다보는 것이 〈직환의가 만난 노동자 이야기〉
지 영화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비정
이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매우 개인적이고 주
규 노동자들이다. 즉 아직 자기 이름(브랜드)으
관적인 시각으로 한 동료의 이야기를 담았다.
로 자리 잡지 못한 영화계 노동자들이다. 여전
이는 현재 의사이면서 영화 각본, 감독의 일을
히 꿈을 꾸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불안
계속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이자 ‘친구’
한 청년, 아니 중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일
번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터 독자들의 양해를 미리 구한다. 아주 오랜만에 한 ‘영화 노동자’를 만났다. 9년 전 나와 함께 영화 학교에서 졸업작품으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고 배도 불러오자 나 는 솔직하게 궁금한 걸 물었다.
로 단편영화를 쥐어짜 만든 촬영감독이었다.
“K야 좀 실례일 수도 있는데, 궁금하다. 너
그는 매우 건강해 보였고 잘살고 있는 듯했
정도 경력이면 페이가 어떻게 돼?”
다. 그와 같이 양고기를 먹으며 근황을 나눴 다. 이제 40대에 들어서는 우리는 영화업에 계속 발을 담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살 궁리
“회당 45~50만 원 정도요. 드라마랑 영화랑 비슷해요.”
도 같이 강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나이대가
나쁘지 않은 페이인 것 같았다. 그는 현재
됐다. 다행히도 그는 계속 촬영을 할 생각인
제1 카메라맨이다. ‘퍼스트’라고도 하는 이 직
듯했다. 나는 이미 생계로써 의사로 일하고
무는 카메라 옆에서 계속 수동으로 초점을 맞
있고, 다만 언제 과연 ‘감독 입봉’을 할 수 있
추는 일이어서, 매우 숙련된 기술과 경력을 요
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우
구하는 업무다. 즉 가장 중요한 카메라 포커스
리 둘 다 아직 꿈의 ‘감독’ 직에 입봉하지 못
플레이어다. 얼핏 듣기에 일당이 꽤 괜찮은 것
했다는 뜻이다. (이 짠한 문장에 침울하지 않
같지만, 촬영이 보통 아침 7시에 집합하고 밤이
아도 된다. 글을 끝까지 읽으면 그 이유를 알
되어서야 끝나는 강행군인 걸 생각하면 꼭 그
게 될 거다.)
렇지만도 않다.
42
노동자가 만드는
“그래도 이제 하루 촬영시간이 딱 정해져
상이 넓잖아요. 영화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
있잖아.”
든 것 같고...”
“네. 영화는 14시간이고요, 드라마는 16시 간이에요.”
나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40대 초반에는 영화 현장이 괜찮을 수 있다. 어쩌면 40대 중후
나는 조금 놀랐다. 식사 시간을 빼고는 하루
반까지도 버틸 수 있겠다. 그러나 50대, 60대
12시간,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이었다. 몇몇 기
초반까지 현장을 지키는 기술 스태프는 매우
사를 보면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 먹을 즈음에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 다들 아마도 K와 같은
끝난다던데, 아마 그런 사례는 드물고 아직은
나이대에서 여타의 살길을 조금씩 도모하기 시
최대 허용 촬영시간을 다 써야 하는 현장이 많
작하는 것 같다.
은 듯했다. 고(古) 이한빛 PD의 사건 이후, 지 난 몇 년간 촬영 현장이 매우 좋아졌다고 해도 간신히 수면시간 정도를 확보해준 데 불과한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영화 산업이 많이 죽었 다. 영화계의 앞날은 어찌 될지 걱정이 들었다.
“영화계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영상 산업
“그럼 밤에 끝나면 영화사에서 택시비는 다
은 앞으로 훨씬 더 커질 것 같아요.”
챙겨주는 거야?”
“그래. 꼭 영화만 해야지, 하는 건 아닌 것
“아, 다 포함이에요. 식대랑 교통비 다요. 그
같아. 웹드라마도 할 수 있고, 뭐, 유튜브도
래서 다음 날 촬영 있으면 근처에서 잠만 자
있고, 여러 OTT 플랫폼들이 생겨나니까 계
고, 다음 날이 쉬는 날이면 택시 타서 집에
속 버티자.”
가고 그래요.”
5년 뒤 K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가 상
예전에 다른 동료가 한 말이 기억났다. 그
업 영화 촬영감독으로 입봉하게 된다면 더 바
도 촬영팀이었는데, 촬영에 들어가면 짧게 군
랄 게 없겠다. 그런데 만에 하나 아쉽게도 그 피
대 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주변 지인들과 연락
라미드 오르기에 기회나 운이 닿지 않는다면,
도 두절되고, 작품 촬영 말고는 모든 개인적인
제2의 바람은 그가 영화 현장에서든 어느 분야
일들이 멈추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힘든 스케
에서든 충분히 품위 있게 생계를 해결하면서,
줄을 소화하고 있었음에도 다행히 K는 좋아 보
동시에 이제껏 쌓은 영화 영상의 기술을 이용
였다. 1년에 들어가는 대략 두 개의 작품을 하
해 한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브랜드)을 지니는
는 7~8개월이 아닌 때에는 운동과 자기계발을
것이다.
한다고 했다. 작품을 할 때도 재미없다고는 했 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생생함을 맛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 작업의 특성상 주기적으로 실 직 상태가 되기 때문에 불안정할 수 있지만, K 는 나름대로 그 상황에서 최선의 적응을 한 듯 했다.
나는 그의 5년 뒤가 기대된다. 물론 불안정 한 영화 노동자이기에 고민도 많을 것이다. 미 래에 대한 고민을 10대, 20대를 넘어 40대까지 하는 건 살짝 서글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 쩌면 그건 계속 내 인생을 도전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성장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 러니 아직 입봉을 못 한 40대 촬영감독과 영화
요새 그는 조금 시야를 넓힌 것 같았다.
감독 지망생들의 근황에 침울하지 마라. 우리
“전에는 영화에만 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
는 계속 도전한다. 실패해도 또 일어난다. 좋아
어요. 그게 맞다고, 그래야 한다고. 근데 세
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일터 43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24시간 격일제, 과연 감시적 노동에 해당하는가?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르면, 감시(監
있는 곳으로 수면방해를 받지 않을 정도로 소
視) 또는 단속적(斷續的)으로 노동에 종사하
음과 빛은 물론 외부의 간섭이 차단되어야 함)
며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경우 근
에서 수면시간이 연속 5시간 이상이 제공된 경
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사항이 적용되지
우가 아니면 수면시간은 업무시간에 산입, 독
아니한다. 이때 감시적 업무는 감시업무를 주
립된 장소에서 수면이라 하더라도 순찰 등의
업무로 하며 상대적으로 정신적·육체적 피로
업무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시간으로 간주’하도
가 적은 업무에 종사하는 경우를 말한다. 대
록 하였다. 경비노동자의 과로사 사건에 대하
표적으로 경비업무를 감시적 업무로 보고 있
여 온전하게 수면장소와 수면시간이 보장되지
다. 감시적 노동을 수행하는 자에 대하여 ‘감
않으면, 업무시간으로 본다는 것이다. 아파트
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제도’를 운영하고 있
경비초소는 대개 24시간 교대 근무를 시행하는
다. 이 제도에 따라 대부분 경비노동자가 근
데, 과연 경비노동자는 24시간 중 온전하게 휴
무하는 사업장은 감시·단속적 승인을 받았다
게, 수면시간을 보장받고 있는가?
고 볼 수 있다. 노동부 보도 자료에 따르면, 아 파트 경비노동자의 93.7%(2020년, KLI, 351
노동부는 현실과 괴리된 감시·단속적 근로
개 단지 표본조사)가 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승인제도에 대한 지적에 따라 2019. 9. 1. 「근로
과연 경비노동자의 업무가 감시적 업무에 해
감독관 집무규정」을 개정하여 ‘격일제(24시간
당하는지 의문이다.
교대)근무의 경우 수면시간 또는 근로자가 자 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휴게시간이 8시간 이상
2018. 1. 1. 노동부 고시 및 근로복지공단
확보되어 있는 경우, 당사자 간 합의가 있고 다
지침을 개정하여 경비노동자의 만성적 과로
음 날 24시간 휴무가 보장되는 경우, 별도의 수
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독립되지 않은 수면
면시설 또는 휴게시설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
장소에서 연속으로 5시간 미만의 수면시간이
근로계약서, 확인서 등에 근로시간 등 적용제
제공되면서 12주 동안에 주당 평균 근로시간
외에 대하여 명시하고 있는 경우’ 등 기준을 모
이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 근무초소 이외에
두 갖춘 때에 승인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경비
독립된 장소(업무 장소와는 별개로 마련되어
노동자에게 제대로 설비를 갖추고 독립된 별도
44
노동자가 만드는
의 수면시설 또는 휴게시설을 제공하는 아파트
업규칙, 안내판 등으로 형식적으로 1일 노동
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과연 24시간 격일제 경
시간을 16시간 미만으로 설정하여 명시하는
비노동자가 24시간 중 16시간 미만으로 노동하
경우가 많다. 만약 06시~다음날 06시까지 24
고 있는가?
시간 동안 격일제로 근무하는 경비노동자의 24시간 동안의 노동과정을 실질적으로 살펴
최근 KBS, 용혜인 의원실과 함께 “경비노동
본다면, 형식적인 근무시간 편성과 전혀 다르
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사망(뇌·심혈관계질
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온전하게
병) 사건 분석(2015~2020)” 연구를 진행하였
독립된 장소에서 수면시간, 휴게시간을 보장
다. 경비노동자의 근무형태(중복)를 분석한 결
받는 경우가 드물고, 경비초소에서 제대로 갖
과, 신청사건 중 81.9%가 24시간 격일제를 차
춰진 냉·난방설비도 없이 간이침대에서 휴식
지하였으며, 인정 사건 중 88.8%가 24시간 격
을 취하더라도 24시간 입주민이 출입하는 상
일제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인정 사건 중 아파
황에서 온전한 휴식은 불가능하다.
트는 77.2%를 차지하였고, 아파트 인정 사건 중 98.6%가 24시간 격일제를 차지하였다. 아
경비, 순찰의 주된 업무 외에 주차관리, 환
파트에서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한 경비노동자
경관리, 재활용품분리수거 등 부수적인 업무
의 과로사가 인정된 경우가 많다는 것은 과로
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입주민, 방
사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는 걸 방증한다. 장시
문자, 택배, 배달 등 갈등과 민원이 빈번하게
간 노동, 교대제, 야간노동이 필연적으로 발생
발생한다. 결국 장시간 노동, 교대제, 야간노
하는 24시간 격일제 근무형태는 경비노동자의
동과 온도변화 등 작업환경 적요인, 관계갈등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근무형태라는 것
등 정신적 긴장 등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복합
이다.
적으로 작용하여 경비노동자의 과로사로 이 어지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노동부는 2021. 2. 뒤늦게나마 「아파트 경비 원 등과 관련한 감시·단속적 승인제도 개선방
연구 분석 결과, 2018~2020년 사이 월
안」을 발표하였다. 문제점으로 제도 운영상 미
2.4명의 경비노동자가 과로사로 사망하고 있
비점(유효기간 없음, 위반 시 제재 미흡(취소되
다. 시급하게는 온전하게 쉼의 권리를 보장하
어도 즉시 재신청 가능), 신청·통지 문제), 휴식
는 것,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할 것
보장 미흡(휴게시설, 휴게 편성, 휴무일), 겸직
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인 측면에서
기준 미비 등을 제기하며 제도의 오남용 방지,
경비노동자의 근무형태 중 가장 많은 비중을
휴식 권 보장강화, 겸직판단 기준 마련, 근무체
차지하고 있는 ‘24시간 격일제, 1:1 맞교대 방
계 개편 유도 등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2021년
식’의 근무형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근
하반기에 「감시·단속적 근로자 승인제도 운영
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침(훈령)」 제정, 「겸직 판단기준 가이드라인」 마련·배포 등 규정에 대한 제·개정을 추진한다 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형식적인 보장 과 실질적인 권리보장의 차이는 어느 시점에 좁힐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경우 근로계약서, 취
일터 45
생리,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지 않은 단어 조이 산부인과 전문의, 여성노동건강권팀
산부인과 진료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산
사된 바 있으며, 요새 아이들이 많이 갖고 노는
모를 제외하면 생리와 관련된 증상과 질환
슬라임이나 달걀 노른자의 느낌에 가까워서 그
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산부인과 의사로 살
느낌이 유쾌할 수 없다.
여성노동 건강 상식
면서 남들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많게 입 밖 에 내게 되는 단어가 ‘생리’일 것이다. 생리
종종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생리는 대소
(Menstruation), 즉 월경이란 가임기 여성의
변처럼 조금이라도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궁에서 호르몬의 작용으로 임신을 준비하
생리하고 싶은 날은 지정할 수 있는 것은 더욱
기 위해 자궁내막을 두껍게 만들었다가 그 달
아니며, 주기가 매우 규칙적인 소수의 경우를
에 수정과 착상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 황체
제외하자면 1~2일 정도의 주기 차이는 정상적
호르몬 분비의 감소와 함께 자궁내막이 탈락
으로 존재하기에 그 날짜를 완벽하게 예측하기
하여 자궁 밖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도 어렵다.
이처럼 생리는 말 그대로 건강한 여성에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이러한 자세한 묘
서 한 달에 한 번 일어나는 생리현상일 뿐인
사가 불편하거나 이 정도도 모르는 사람이 존
데, 우리는 왜 ‘그 날’, ‘마법’ 등의 단어로 생
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분들도 있겠으나
리를 표현하며 아무도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
진료실에서 만나는 많은 수의 환자와 보호자들
하지 않는 것일까? 생리라는 단어는 왜 터부
이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실들임을 밝
시되어 왠지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한 단어
힌다. 더불어 궁금하더라도 입 밖으로 내어 묻
가 된 것일까?
기 어려워하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많다.
생리의 불편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월경과 관련된 질환들
생리혈이 배출되는 느낌을 말로 표현하려고
월경은 매달 반복되는 생리현상이지만, 그
해도 쉽지 않다. 생리혈은 자궁에서 질을 통
주기에 따른 여러 질환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
해 신체 밖으로 배출되는데 혈액은 공기와 접
다. 생리통(Dysmenorrhea)은 생리 기간 중 다
촉하면 정상적으로 굳는 특성이 있어서 생리
양한 경로와 강도로 느껴지는 통증을 말하는
혈로 배출되는 혈액은 완전한 액체보다는 조
데, 이는 자궁내막이 탈락될 때 작용하는 프로
금 더 젤 형태에 가깝다. 인터넷에 돌았던 유
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복부 혈관을 수축시
머 중에는 ‘뜨거운 굴을 낳는 느낌’이라고 묘
키며 신경을 자극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46
노동자가 만드는
▲출처 : Mashable India
있다. 생리통의 유무와 강도, 지속 기간은 개인
호르몬 등의 불균형 때문인데 이러한 호르몬
차가 심하여 생리통이 없는 사람도 있고 생리
불균형의 원인은 스트레스, 저체중, 과체중,
기간 내내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극심한 다이어트, 영양 불균형, 불규칙한 생
사람도 있다. 생리의 양과 생리 기간 역시 개인
활, 야간 노동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차가 크며, 이는 생리통과 관련이 있을 수도, 없 을 수도 있다.
생리 기간뿐 아니라 생리 1주 전부터 생리 시작 직전까지 신체적, 정서적 증상으로 고통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20% 정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월경전증후군(PMS,
도는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생리통을
Pre-Menstrual Syndrome)이라고 한다. 한 통
겪으며 유방통 및 두통, 설사 또는 변비, 몸살,
계에 의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월경을 하
어지럼증, 구역감을 함께 겪는 경우도 있다. 흡
는 여성 중 75%가 월경전증후군을 호소하며
연하거나 생리를 일찍 시작했거나 생리기간이
4~5% 정도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의
긴 경우 생리통의 정도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
증상을 호소한다고 한다. 월경전증후군의 증
려져 있다. 생리통이 심한 경우, 자궁내막증, 자
상은 집중력 저하, 건망증, 초조함, 예민함, 긴
궁선근증 등의 산부인과 기저질환을 의심할 수
장감, 불안감, 급격한 기분변화, 분노조절 장
있기에 진료가 필요하다.
애, 공격성 증가, 식욕 증가, 의욕 상실, 업무능 력 감소, 유방통, 요통, 두통, 부종 및 체중증
규칙적인 생리주기란 28~30일을 의미하지 만, 다수의 여성이 생리주기 자체의 불규칙함
가, 과도한 수면, 불면증 등으로 다양하게 나 타난다.
과 생리 기간이 아닐 때 발생하는 출혈을 호소 한다. 이는 대부분 생리주기를 조절하는 에스
원인은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프로게
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난포자극호르몬, 황체
스테론의 비정상적 박동적 분비, 지나치게 높
일터 47
은 에스트로겐 레벨, 도파민 감소에 따는 프로
2004년 주 5일 근무제의 도입으로 1,000명
락틴 분비 증가와 엔도르핀 및 세로토닌의 감
이상 사업장의 경우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전환
소 등 호르몬 변화 및 이상이 증상을 유발할
되었으며 2012년부터는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피임약
확대되어, 실질적으로 한국의 생리휴가는 현재
을 복용하여 호르몬 변화를 감소시키거나 우
무급휴가에 해당한다.
울증 약으로 쓰이는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 (SSRI)를 복용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2014년에 시행된 한 조사(유한킴벌리&인 크루트 조사)에 따르면, 생리휴가가 무급휴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생리휴가
로 전환된 이후 76%의 여성이 생리휴가를 한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5인 이상의 노동자
번도 쓴 적이 없으며 주변의 눈치 때문에 사용
가 근무하는 사업장의 여성노동자에 대해 월
이 어렵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일의 생리휴가를 주도록 되어 있으며 이를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2%가
어길 때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상사에게 눈치가 보여서”를 꼽았으며 36%는
수 있다. 생리휴가는 노동자가 청구하는 날에
“주위에서 아무도 안 써서”라고 응답했다. 이에
무조건 줘야 하는 휴일로, 당일 청구해도 부
대해 남성들은 “생리휴가는 다 꼼수”라고 응답
여하도록 되어 있다. 즉, 회사 측에서 생리휴
했다.
여성노동 건강 상식
가 사용 며칠 전 휴가원 제출 요구, 생리휴가 가 가능한 요일의 지정 등을 통해 사실상 근
생리휴가, 모두에게 온전히 보장되어야
로자의 자유로운 생리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생리는 말 그대로 생리적인 현상으로 많은
행위는 규정상 인정될 수 없다.
신체적 증상과 불편함을 유발한다. 생리휴가의 무급화 당시 경영계가 생리휴가 폐지를 주장하
생리휴가는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
며 펼친 근거 중에는 “선진국에는 생리휴가가
에서 월 1회의 유급휴가로 규정되었으나 거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선진국에서는 생리
의 지켜지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성노동자
휴가를 특별히 제도화하지 않아도 노동자가 몸
들이 생리휴가 보장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이 불편할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
70년대 중반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모성보
되어 있으며, 그건 근무평가에 영향을 미치지
호법 등의 법률의 제개정이 논의될 때마다 사
않기 때문임을 간과한 것이다. 즉, 생리휴가를
업주들은 그 전제조건의 하나로 생리휴가 제
없애려면 생리휴가가 적극적으로 보장되고 그
도 폐지를 주장해 왔다. 이는 생리휴가 제도
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부담할 수 있어야 한다.
가 여성을 육체적으로 취약한 존재임을 증명 하여 오히려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라든가, 여성을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 취 급함으로써 생리휴가가 여성비하에 해당한 다는 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되었지만, 실제 로는 여성 노동자가 하루 동안 노동하지 않음 에도 임금을 받으면, 그만큼 사업주의 이윤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근대적 경영관에 비롯된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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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2021년의 한국 사회에서 생리 중인 모든 여 성 노동자들에겐 생리휴가라는 ‘사회적 배려’ 가 정당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사진으로 보는 세상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비장애중심주의, 장애인차별 철폐!를 외치며,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과 세종시교통약자이 동권보장 및 공공성강화시민사회단체대책위원회가 세종시청 앞에서 ‘장애인 권리보장을 약속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출처: 호나라
일터 49
침묵과 말의 세계를 횡단할 수 있을까? 『우리는 코다입니다』. 2019. 이길보라·이현화·황지성. 교양인. 박기형 상임활동가
까지 간 뒤에야, 내 말을 무시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2 어느 결혼식장, 혼인을 올리는 두 부부 발칙 건강한 책방
가 주례 앞에 서서 백년해로를 언약한다. 사람 들은 그들을 지켜보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하 지만 그곳에는 박수 소리도, 축하한다는 말도 없다. 결혼식장에서 흔히 마주하는 왁자지껄함 은 온데간데없다. 고요함 속에서 사람들은 모 두 웃고 있다. 첫 번째 장면은 필자 이현화 님이 겪은 이야 기를 청인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이다. 청인 은 누구든지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당연하게 말로 자신의 의사를 건넨다. ▲ 출처: 알라딘
의사 전달이 안 되자, 그는 두 가지 방향을 고 려한다. 내 소리가 작아서 안 들리거나, 내 말을
“코다는 경계에 서 있는 존재다.”(p.16)
무시하거나.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건 고려되 지 않는다. 청인의 세계에 농인의 자리는 없다.
#1 한 사내가 육중한 가구를 들고 대문을 나선다. 그런데 대문 앞 계단에 누군가 앉아
두 번째 장면은 또 다른 필자 이길보라 님
있다. 비켜달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묵묵부답
이 연출한 <반짝이는 박수소리>(2015)라는 영
이다. 내 말을 무시하나 싶지만, 못 들었을까
화에 등장하는 씬을 묘사한 것이다. 영화 초입
소리 높여 말한다. 한치의 미동도 없다. 몇 번
에서 관객은 낯선 세계를 마주한다. 바로 침묵
더 크게 소리친다. 이내 욕이 나온다. 결국, 뒤
의 세계다. 어떤 상황에는 그에 맞는 행위가 있
에서 그를 밀친다. 다툼이 벌어진다. 경찰서
다. 생일이나 결혼 등의 자리라면, 축하해라는
50
노동자가 만드는
말과 축하의 의미를 담은 박수 소리를 떠올린
다름 사이에 껴있는 이들은 자주 혼란을
다. 우리의 삶이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연극들
느낀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자
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면, 그 연극을 수행하
신에게 되묻게 된다.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어
는 행위들에는 언제나 특정한 소리들이 수반된
느 지점에서 충돌하는 것”이라고 위 영화에
다. 아니, 소리 자체가 연극의 본질처럼 여겨진
나온 독백처럼, 경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마
다. 그러나 소리 없이도 연극은 상연될 수 있다.
다 코다는 청인인지, 농인인지 자꾸만 시험에
우리는 소리가 아닌 다른 언어로도 소통할 수
들곤 한다. 때론 청인 부모를 둔 아이들에게
있다. 보이지 않기에 손과 소리로 세상을 보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론 온갖 행정을 농
맹인들이 있듯이, 침묵의 세계를 살아가는 농
인 부모를 대신해 처리하거나 청인의 말을 통
인들이 있다. 손과 몸짓으로 대화하는 세계가
역하다 지치기도 하고 심지어 부모에 대한 미
있다.
움이 치밀 때도 있다. 코다라는 이유로 청인들 에게 슬픔을 강요받고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
여기서 흔히 놓치는 건 청인과 농인의 경계,
다. 농인이 아니기에 농인들로부터 이해받지
말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 사이의 경계다. 『우리
못할 때도 있다. 다른 세계 사이를 횡단하는
는 코다입니다』는 바로 그 경계에 서 있는 존재
일은 그만큼 힘들고 치열한 것일테다.
에 관한 이야기다. 농인 부모 아래서 태어난 청 인 자녀, 바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사이의 세계에서 완전한 ‘나’로 바로 설
Adults)’라 불리는 이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수 있는 힘은 코다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형성
코다를 단 하나의 무엇으로 설명하지 않으려
된다. 코다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여정
부단히 애쓴다. ‘저도 코다인가요?’, ‘코다는 뭔
의 동력은 다양한 경험을 나누고 서로의 다름
데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책은 코다
을 알아가고 역으로 자신의 세계를 이해하는
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은 경험을, 삶의 단면
소통들이었다. 이처럼 ‘경계를 횡단하기’는
과 궤적을 펼쳐보인다. 코다의 세계는 다양하
세계들의 부단한 마주침, 서로 다름을 인정하
고 넓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는 환대의 몸짓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이 책에서 공통되게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그건
책을 덮고서도 계속 붙잡고 고민하게 된 문
자신과 같은 자리에 서 있는 이들과의 만남이
구가 있다. ‘경계를 횡단하기.’ 청인과 농인의
다. “너 코다야? 나도 코다야!” 이때부터 우리
세계는 단지 소리내어 대화하느냐 손으로 대화
만의 이야기를 넘어서 타인에게 코다로서의
하느냐의 의사소통 수단의 차이로만 구분되지
경험을 말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자신의 세
않는다. 한쪽은 소리에 기반한 사고를 하며, 다
계를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내보일
른 한쪽은 시각에 기반한 사고를 하기에 사고
수 있다.
방식 자체도 다르며, 어떤 상황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다르다.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에 대
코다가 전하는 낯선 삶의 이야기 끝에 함
한 예시가 인상적이다. 청인은 울음소리로 아
께 간직했으면 하는 물음으로 글을 끝맺으려
이의 상태를 인지하지만, 농인은 그럴 수 없다.
한다. 장애와 비장애, 장애 안에서도 다양한
그래서 소리가 나면 집안의 빛이 번쩍이도록
장애들, 나아가 여성과 성소수자 등 온갖 차이
장치를 해두거나,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생길까
들을 가로질러, 다양한 삶의 모양을 이해하고
봐 아이의 발목과 자신의 손목을 끈으로 이어
존중하는 몸짓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
둔다. 이렇듯 삶을 살아내는 모양새도 다르다.
일터 51
노동안전보건운동의 매력, 나와 동지들의 삶
양문영 회원, 직업환경의학 전공의
저는 노동조합에 3년간 있었고, 인천공항지 역지부 소속 조직부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지부 노안국장님과 함께 노동안전분야 업무를 담당 해왔는데요. 각종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 이러쿵 저러쿵
는지, 노동조합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런 것들을 우당탕탕 겪어 내며 많이 배우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근골격계 질환이 산재라고는 생각도 안 하 셨던 조합원들을 설득하며 산재 신청과 주5일 제 투쟁을 진행하던 때였습니다.1) 공단 담당자 에게 재해경위서와 함께 노조에서 조사한 실태 조사 자료들을 넘겼습니다. 해당 지회였던 환 ▲출처: 양문영
경미화분야는 97%가 통증을 호소하고 88%가 NIOSH(미국 국립 직업안전위생연구소) 기준 1에 해당하는 근골격계 질환 관리대상자였습니
안녕하세요, 연구소 신입회원 양문영입니
다. 공단 담당자는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자
다. 저는 얼마 전까지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
료는요?” 하고 묻더군요. 어차피 3년 뒤면 나갈
지역지부 조직부장으로 있었고, 지금은 직업
용역업체들에서는 그런 것들을 해본 적이 없었
환경의학과 의사로의 수련 과정을 밟기 위해
습니다. 회사 측 자료는 없다고 하니 “왜 없어
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동지들
요? 회사가 했을텐데요?” 하는 이야기만 돌아
께 어떤 글로 인사드릴 수 있을지 줄곧 고민
왔습니다. 물론 법에는 하라고 되어있지만, 소
했는데, 제가 안고 있는, 또 앞으로도 안고갈 고민을 함께 나눌까 합니다.
52
노동자가 만드는
1) 인천공항 환경미화분야 1200명은 21년 3월 현재도 1 일 7.5시간 주 6일씩 근무하고 있습니다. 1일 중 오전조 / 오후조 / 야간고정 3개 반이 돌아갑니다.
규모 사업장이나 용역사들에서는 하지 않거나,
결과로는 NIOSH 기준 1 관리대상자가 업무
하더라도 효용은 1도 없는 대충 하는 것으로 끝
별 70~90%의 인원에 달했지만, 사측 결과는
나는 것이 표준이었지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2.9%에 불과했습니다. 현장 조사가 얼마나
선정한 업체에서 설문조사만 대충 하고 끝날
대강 이루어졌는지는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바엔 우리는 설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조합에서 거부하기도 했었습니다.
노동조합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현장 노 동조합과 연계되지 않은 채 사측 주도의 정보
근로복지공단 담당자들에게 “3년마다 소속
만으로 이루어지는 조사는 얼마나 허울뿐인
사업장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분의 근속은 18년
결과가 되는지, 그리고 사실은 모회사가 모
입니다. 인천공항공사 하청 소속으로 공항에서
든 예산과 권한을 쥐고 있어 그것을 돌파할만
같은 업무를 계속 하셨고 원청과 용역계약 때
한 더 크고 대단한 실력이 요구된다는 것. 그
문에 사업장 이름이 이런 거예요” 라고 설명해
러나 개별 사업장의 투쟁만으로는 결국 따낼
야 한다는 것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공단 담당
수 있는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이 다
자로부터 “이런 경우는 저희가 처음이라... 계속
른 조건에서, 노동운동은 어떻게 연대하고 투
같은 일을 하신거예요?” 하는 질문이 반복해서
쟁할 수 있는 판을 짤 수 있는지, 그것부터 촘
돌아올 때, 그만큼 근로복지공단엔 용역사 소
촘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안전보건
속 노동자들이 산재를 신청하는 것이 낯선 일
은 그 일환에서 사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
이구나 하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용
지. 노동안전보건운동은 노동운동의 한 부문
역을 통한 일자리가 (슬프지만) 당연한 세상인
이면서, 노동운동의 연대를 키우는 판에 기여
반면에, 산업재해를 보상하는 제도가 커버하는
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한 연대
범위는 얼마나 좁은 것인가, 이런 제도적인 접
가 사업장을 넘어 지역과 산별로 이어지기를
근성이 고용형태에 따라 갈리는 것처럼 급여와
바라게 됩니다. 나의 삶과 동료의 삶, 같은 지
고용 안정 외에도 우리의 실질적인 삶을 구성
역 이웃의 삶, 다른 사업장의 동지들의 삶을
하는 많은 요소에서 얼마나 격차가 벌어져 있
보게 되는 단초의 역할. 노동안전보건은 그런
는가 하는 현실도요.
힘이 있고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 자회사로 소속이 변경되고 나니
이런 고민들을 안고 저는 다시 멈춰두었
안전보건 전담부서가 생기고, 근골격계 유해요
던 의사로서 수련 과정의 시간을 돌리게 되었
인조사도 시행되었습니다. 자회사와의 산보위
는데요. 앞으로 직업환경을 전공하는 의사가
에서 자회사는 “돈이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
되면 좀 더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도, 목소리
이었습니다. 실제로 모든 돈줄과 권한을 모회
를 낼 수 있는 힘도 커지지 않을까 생각합니
사가 쥐고 있으니, 자회사에서는 할 수 있는 것
다. 그런 무기들을 활용해 어떻게 노동안전보
이 없었습니다.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에 내
건운동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더 많이 고
려온 예산은 한숨만 나올 정도였고, 노조측에
민하고 몸소 뛰어야 하는 일이겠지요.
서 미리 알아봐둔 기관들은 쥐꼬리만한 예산 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만 했습니다. 결국
요즘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과 병원노동
치뤄진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는 노동조합에
자들을 보면 인천공항지역지부의 우리 조합
서 자체적으로 진행했던 실태조사와 어마어마
원들이 떠오릅니다. 다들 일터에서 건강했으
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에서 조사한
면, 건강할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일터 53
이 달의 안전보건동향
[고용노동부 21. 3. 23] 고용노동부, “산재보험법”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산재보험료 경감
및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
(시행: 2021.7.1.)
정안 임법예고 (3.23.~5.2.)
특고 종사자의 경우 근로자와 달리 보험료 절반을 특고 종사자가 부담하는 관계로 상당수 종사자가
이재갑 장관은 “이번 개정으로 특고 종사자 산재보
보험가입을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와 함께 적용
험 적용제외신청 사유가 엄격히 제한됨으로써 그
제외 신청 사유가 엄격히 제한됨에 따라 노무를 제
동안 산재보험 적용에서 제외되었던 약 45만명의
공받는 사업주의 보험료 부담도 일부 증가할 것으
노동자가 적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진 신
로 예상된다. 이에 사업주 및 종사자의 부담을 줄
고 시 보험료 소급징수 면제와 보험료 경감 등 제
여주기 위해 고위험·저소득 특고 직종을 대상으로
도를 활용하여 더 많은 특고 종사자들이 산재보험
보험료를 50% 범위에서 한시적으로 경감할 예정
에 가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라고
이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특고의 산재보험 특별
밝혔다.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하여 보험료를 소급하여 이 미 면제(최대 3년) 해주고 있다.
이번에 입법예고한 "산재보험법" 및 "보험료징수 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
무급가족종사자 산재보험 가입 전면 허용
과 같다.
(시행: 2021.6.9.) 산재보험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 적용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적용제외 신청사유 제한
것을 원칙으로 하나 현재 중소사업주도 희망하는
(시행: 2021.7.1.)
경우에는 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방식으
택배기사 등 14개 직종의 특고 종사자는 산재보험
로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반면 노무 제공을
적용대상이나 특고 종사자가 사유와 관계없이 적
대가로 보수를 받지 않는 무급가족종사자는 중소
용제외를 신청할 수 있어 애초 취지와 달리 사업주
사업주와 유사한 업무상 재해위험에 노출되어 있
권유, 유도 등 오남용이 많았다.
음에도 그간 산재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문제가 있
이에 법령개정을 통해 질병, 육아휴직 등 법률에서
었다. 이에 중소사업주와 함께 일하는 무급가족종
정한 사유로 실제 일하지 않는 사실이 확인되는 경
사자(중소사업주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도 희
우에만 적용제외를 승인하도록 하여 사실상 적용
망하는 경우 중소사업주와 동일 방식으로 산재보
제외신청 제도 폐지와 같은 효과가 있도록 하였다.
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개정한 것이다.
따라서 올해 7월 1일부터는 산재보험 적용대상 특 고 종사자의 경우 일을 하다 다치면 예외 없이 산
소음성 난청 업무상 질병 인정 기준 개선
재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며, 특히 기존에 적용제
(시행: 2021.7.1.)
외 신청을 하여 산재보상 대상에서 제외된 특고 종
최근 산업현장에서 소음환경에 노출되어 청력이
사자도 개정법령에 따라 당연히 산재보험 혜택을
손실되는 재해인 소음성 난청에 대한 산재 신청 건
받을 수 있게 된다.
수가 증가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정확하면서도
54
노동자가 만드는
신속한 업무상 질병 판정을 위해 의료기술을 반영
제공받는 자가, 환경미화원은 고용관계에 있는 사
한 새로운 검사방법을 적용하고, 청력손실 정도와
업주가 하면 된다.
손상부위 등 파악을 위한 청력검사의 주기도 단축 하게 됐다.(現 3∼7일 단위 3회→48시간 단위 3
건강진단은 고용노동부로부터 지정받은 특수건강
회)
진단기관에서 실시되며, 지역별 특수건강진단기관 현황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확인이
[안전보건공단 21. 3. 29] 안전보건공단, 필수노동
가능하다. 이번 지원의 특징은 최근 과로사, 폐암 등
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맞춤형 건강진단 실시
필수노동자의 사회적 건강 이슈를 반영해 직종별 특성에 맞춘 건강진단이 실시된다는 점이다.
택배·배달·대리운전 노동자 및 환경미화원 약 6만 명 지원
택배기사, 배달종사자, 대리운전기사는 장시간 근
안전보건공단(이사장 박두용)은 필수노동자의 과
로, 야간작업으로 인한 과로사 위험에 따른 뇌심혈
도한 업무로 인한 과로사 등 업무상 질병 예방을
관계 중심의 검사가 실시되며, 환경미화원의 경우
위한 건강진단 지원에 나선다.
에는 차량 매연 등 디젤엔진 배출가스로 인한 폐 암 발생과 관련한 호흡기계 검사와 무거운 생활폐
이번 지원사업은 지난해 12. 14.(월) 정부에서 발표
기물 취급에 따른 근골격계질환 검사가 실시된다.
한 필수노동자 보호·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실시하
건강진단 결과, 과로사 등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에
는 사업으로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도 사회
대해서는 정밀건강진단을 추가로 실시하고, 전국
적 거리두기를 통해 비대면 일상을 유지하는데 핵
23개 근로자건강센터와 연계하여 체계적인 건강
심적인 역할을 한 택배기사, 배달종사자, 대리운전
관리를 받게 할 예정이다.
기사 등 3개 직종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환경미화 원(20인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한편, 공단은 필수노동자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 해 지난 3월 15일부터 택배, 환경미화, 마트 노동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추진하는 이번 지원
자 관련 전국 4,600여 개 사업장에 대한 컨설팅 및
사업 규모는 약 6만 명으로 총 33.5억원의 예산이
보호대 무상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투입되며, 해당 노동자가 건강진단을 받게 되면 공 단이 건강진단 비용의 80%를 지원하고, 나머지
안전보건공단 박두용 이사장은 “코로나-19는 우
20%는 사업주가 부담하게 된다.
리 사회 유지를 위한 필수노동자의 역할을 더욱 중 요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라며, “공단은 이
지원신청은 29일부터 공단 홈페이지(https://
번 건강진단 지원사업을 계기로 사회적 핵심 기능
www.kosha.or.kr)를 통해서 신청을 받으며, 특수형
을 수행하는 필수노동자가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태근로종사자의 경우에는 플랫폼 회사나 택배대
일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리점, 배달대행 업체 등 산업안전보건법 상 노무를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일터 55
한노보연 이모저모
과로사·과로자살 사건에 부딪힌 가족, 동료, 친구를 위한 안내서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 는 유가족 자조모임에서 과로죽음으로 인 정받기 위한 활동을 서로 지원하며 함께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입 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과로문제가 근절되길 바라며, 비슷한 일을 겪게 될 유가족, 동료, 친구들이 자신들보다는 덜 분노하고 더 존중 받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일반 서점,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바 랍니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지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영향 연구 토론회 개최! 민주노총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일터에서의 화장실 이용 실태를 조사하고,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민주노총 내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노동자 약 900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15개 사업장 40명의 노동자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원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 한다고 답 했습니다. 화장실 가기를 참으며 수분, 음식 섭취를 통제하고 있었으며, 방광염 등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도 다 수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는 곧 보고서로 발간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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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만드는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정기구독 회원을 모집합니다 6개월 구독료 20,000원 / 1년 구독료 40,000원 / 권당가격 4,000원 입금계좌 국민은행 660401-01-702487 예금주 : 한노보연 구독신청 02-324-8633 / kilshlabor@gmail.com
2021년 3월에 후원해주신 분들 김병직
김경민
김세규
김창헌
박민정
변준수
이승주
유승준
이병근
이지수
정나위
조윤진
한재영
김병철
김경수
김세영
김태규
박병선
방효훈
이정엽
유영진
이병근
이지연
정두인
조윤희
한진구
김재민
김경연
김소연
김태석
박상정
삼식이
이희영
유장식
이상길
이지영
정문식
조은석
허경
김정신
김경한
김승환
김태훈
박선재
선종현
이희영
유준
이상수
이지혜
정미경
조은혜
허윤제
김진철
김경헌
김영기
김필수
박선희
서동현
임재우
유지현
이상언
이진아
정민준
조이
현순복
강경희
김경호
김영만
김한빛
박성남
서승욱
안규백
유지훈
이상재
이진우
정병관
조인정
호영진
강동묵
김경희
김영선
김한울
박성래
서은석
안기옥
유청희
이서영
이창석
정병욱
조창묵
홍정연
강명원
김계호
김영수
김현준
박성진
서은실
안대엽
유형섭
이선웅
이창후
정성욱
조형래
홍정익
강모열
김광락
김영원
김현호
박성천
서인원
안성혜
윤경옥
이선이
이태성
정송도
주민영
홍주환
강문식
김광조
김영철
김형렬
박수희
서진경
안재범
윤성용
이성민
이태진
정승균
주석재
홍진성
강민혁
김교현
김영호
김혜선
박숙란
성명애
안준호
윤성호
이세미
이현석
정승민
주형민
황선태
강성훈
김그루
김옥헌
김희정
박승권
성상민
안진수
윤소윤
이세영
이현옥
정여진
지영훈
황선호
강수진
김기돈
김용성
김희찬
박신안
성지민
안형석
윤여일
이소은
이현중
정연
지우진
황의현
강영우
김기동
김우태
나영수
박엄선
손근호
안형숙
윤영대
이숙견
이혜은
정영민
진선우
황주신
강은미
김기헌
김위정
남원철
박영일
손덕헌
양문영
윤재설
이순녀
이혜인
정우주
정병권
황지영
강정주
김낙일
김위정
노상철
박용철
손만기
양미순
윤현배
이영일
이활연
정윤경
조종완
황진철
강진욱
김다연
김윤지
노성철
박윤경
손명호
양민재
윤희현
이영철
이효상
정윤희
최영철
황진희
강찬구
김대견
김은경
노현
박정효
손상기
양병훈
은상준
이우상
임경채
정인성
차현주
강충원
김대철
김재천
류영필
박정효
손석기
양선배
이경미
이원태
임선영
정재현
채수용
강태선
김대호
김재훈
류용림
박정훈
손성배
양선희
이경자
이유민
임윤완
정지윤
채종석
강한수
김동근
김정곤
류한소
박제한
손윤환
양장훈
이경재
이윤수
임자운
정찬무
천지선
강호민
김동춘
김정수
류현석
박종국
손익찬
양정석
이경호
이율우
임형렬
정하나
천호선
강화연
김두현
김정열
류현철
박종근
손재현
양진권
이경훈
이은수
임혜인
정해선
최동녘
고옥경
김만원
김정원
문병모
박종우
손진우
양향연
이기만
이은아
장경희
정현일
최병륜
공유정옥
김명성
김정원
문승필
박종우
송기훈
양희만
이기만
이의용
장범식
정호연
최병운
곽경민
김명수
김정훈
문시윤
박주옥
송윤정
양희만
이기태
이이령
장선영
정흥준
최순재
곽진경
김미영
김종남
문은영
박준우
송윤희
엄기한
이기훈
이익진
장소현
정희현
최영아
구자연
김민옥
김종진
문제혁
박지영
송지훈
엄연섭
이나래
이인규
장순원
조건희
최영주
국승종
김민정
김종하
문진영
박채원
송홍석
엄정흠
이나연
이재명
장영우
조광옥
최영준
권경영
김민호
김종현
문현제
박해정
신경석
오동영
이남주
이정규
장영철
조동철
최원영
권기한
김보성
김준우
민병두
배규정
신경화
오진석
이대용
이정렬
장원자
조명심
최재근
권동희
김봉수
김준의
박경득
배성민
신웅섭
오진환
이도연
이정미
장은철
조민제
최종연
권미정
김봉철
김중희
박경현
배수진
신유록
오현아
이동윤
이정호
장진영
조성식
최지수
권오성
김부욱
김지나
박경환
배정란
신진섭
오희정
이동훈
이정희
장태원
조성재
최진일
권윤영
김상귀
김지민
박기형
백남순
신희주
우수영
이명숙
이제혁
장향미
조성진
최한나
권정희
김상호
김지안
박다이
백승호
안태은
우지영
이명준
이종란
장형창
조성철
최향미
권종호
김석원
김지정
박다혜
백승호
오병창
원종만
이명호
이종성
전상희
조승규
최혜란
권중혁
김선미
김지홍
박대선
범혜민
오현정
유기훈
이민경
이주연
전은주
조애진
하기철
김가을길
김선수
김진모
박대성
변승규
이승운
유상철
이민화
이주한
전주희
조영호
한규권
김가을길
김성훈
김찬기
박민영
변은영
이승운
유선경
이병국
이준선
정경희
조영훈
한영선
노무법인 삶 노무법인사람과산재 민주노총법률원 법무법인민심 한국지엠노동조합지부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센터장) 일시 후원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