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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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금속노조 A지회 2018년 위험성평가 반복되는 중대재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게임 속 노동과 노동의 시뮬레이션

통권 182호 / 2019.4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www.kilsh.or.kr



슬픔을 안고서 연대로 나아가는 유가족의 목소리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 신영복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장시간 노동은 근면·성실이 중요한 덕목인 옆 나라 일본에서도 중요 한 사회문제입니다. 가족이 일하다가 갑자기 세상을 등지는 경우, 경황이 없이 장례를 치르고 나서 향후 산재신청 등 일련의 절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럴 때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91년 일본에서 과로사·과로자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의 유가족을 중심으로 ‘전국 과로 사를 생각하는 가족모임’이 결성되었습니다. 유가족모임을 통해 슬픔을 나누면서 사회적 연대 가 점점 단단해졌고, 산재 인정과 재판과정에서 정보 공유도 더욱 원활해졌습니다. 이러한 유 가족들의 헌신에 힘입어 그들을 돕는 변호사, 학자 등이 모였고, 함께 노력한 끝에 2014년 일 본의 ‘과로사방지법’이 제정되었습니다. 법 제정 후에도 유가족모임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 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도 가족을 잃은 슬픔에만 머물지 않고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고 근 본적인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님, 반올림과 함께해주신 고 황유미 님의 아버지 황상기 님, 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등. 최근 현장실습 희생 자 유가족들과 고 김용균님 어머니 김미숙 님이 모임을 만들어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본격적 인 활동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이번 4월호 특집에서는 산업재해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 고자 합니다.

독자에게

01


하루 5명이 일하다 죽는 나라, 대한민국.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2017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는 1,957명으로 하루 5명 가량 일 하다 죽 발행인

는 상황입니다.

최민 발행기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

그렇다면 2천 여명에 달하는 노동자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가족, 친구, 동료 등 까지 포함한다면 사회 전체가 죽음

경희, 승종, 영우, 종호,

의 후유증에 시달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산재 유

나래, 지나, 채은, 경미,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잘 드러나지 않는 실정입니다.

지안, 기형 만평 박원종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산재 신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실을 규

편집·표지

명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 산재

언제나봄그대곁에

유가족들은 홀로 서있습니다.

인쇄 동광문화사 발송

매년 4월 28일은 세계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입니다. 일 하다 죽은

산재공동체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살아 남은 이들, 산재 유가족들의 목소리에도 우

발행일

리가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2019.04.04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팩스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이메일 laborr@jinbo.net 홈페이지 www.klish.or.kr

02

2019년 4월호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04 09 13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16 지금 지역에서는

40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근로기준법 59조와 탄력근로시간제 영향

게임 속 노동과 노동의 시뮬레이션

18 국제안전건강뉴스

42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작업장 폭력 증가에 맞서 직장문화 변화를 꾀하는 병원 노동자들

투명함을 만들어내는 노동자

44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與)

20 국제안전보건비교기준검토

작업환경과 노동자의 건강장해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⑥

46 노동자 건강 상식 실신 (Syncope)

22 연구리포트

금속노조 A지회 2018년 위험성평가

48 문화읽기

26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019년 이연주의 시를 읽는다는 것

안전하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50 발칙 건강한 책방

“과학실 포뇨의 꿈”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닌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30 사진으로 보는 세상

만들어지는 곳

32 현장의 목소리

52 이러쿵저러쿵

반복되는 중대재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서로의 새싹이 움트는 물주기 프로그램

36 노동안전보건활동가에게 듣는다

54 안전보건동향

실질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되기 위하여

출처 : 서울의료원대책위

출처 : 이은영, 윤승섭

56 한노보연 이모저모

필요한 것들

차례

03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산재 유가족, 그들의 못다 한 이야기 [기획] 산재 유가족 대담

선전위원회

하루 5~6명의 노동자가 죽는 나라. 감춰지거나 혹은

대담 참여 유가족

밝힐 수 없는 노동자들의 죽음은 훨씬 많을 거라 짐작

장향미 님(ST유니타스 고 장민순 씨 유가족), 김미숙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신년사에서 안전, 특

님(태안화력 고 김용균 씨 유가족), 김용만 님(군포 토

히 산업재해 예방에 정부가 정책 역량을 집중할 계획

다이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 씨 유가족)

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미 2022년까지 산재사망을 절

진행 이나래 (상임활동가)

반으로 줄이겠다고 하며 자살예방, 교통안전, 산업안

기록 박기형 (상임활동가)

전 등 3대 분야를 국민생명 의제로 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연일 노동자의 사망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한 시인은 얘기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한 사람의 무게를 견디 지 못한다. 그만큼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고, 노동자의

김용만 “제 아들 동균이가 한국 토다이 분당점

건강권은 침해당하기 일쑤다.

에서 일하다가 뛰쳐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

일하다 세상을 떠난 노동자의 이야기는 주목받지 못 한다. 더군다나 유가족들의 존재는 더욱 흐려진다. 그 러나 여기 자신들의 목소리를 드높여 사회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시작한 유가족들이 있다. 지난 3월 17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3명의 유가족과 함께

습니다. 저 혼자 3~4개월 정도 힘들게 싸웠죠. 시민단체도 만나고, 전교조나 민주노총과 힘을 합쳐서 매주 수요일마다 광장에 모여서 집회를 6개월 정도 했어요. 1인 시위도 회사 앞에서 했

가슴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부터 최근 유가족 모임을

죠. 1년 10개월가량 진행했습니다. 제대로 진

만들기까지의 경과를 이야기 나눴다.

상 규명 되지 못했어요. 사과 한마디 받아본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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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연구소 회의실에서 대담을 진행했다. 왼쪽부터 김용만님, 장향미님, 상임활동가 이나래, 김미숙님

도 없어요. 사측과는 협의가 돼서 끝났지만, 과

태가 됐죠. 동료들도 위험하더라도 취업하기

제가 남았죠. 현장실습생 홍수현 양, 이민호 군

힘드니깐 여기서 버티다 경력 쌓아 이직해야지

등이요. 그때 싸웠을 때 좀 더 강력하게 밀고 나

생각했을 텐데 결국 다치게 되죠. 현장에 30대

갈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가 없고 아주 많거나 어리거나, 비슷한 또래들 많았다고 했어요. 자기가 위험한지 모르고 일

제 아들은 인터넷 쇼핑몰을 전공했어요. 자격 증과 특허를 5개씩 땄죠. 학교는 실적 때문에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죠. 그냥 여기는 당연히 그렇게 일하는 곳인가 보다 생각했던 거예요.”

전공이 다른 곳으로 내보냈어요. 회사는 인력 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겠죠. 실습 전에 학교 선

장향미 “동생은 웹디자이너였어요, 공단기, 영

생님과 상담했는데 대기업이라 대우가 좋을 것

단기 등 상품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회사였어

이라고 했대요. 또 선생님은 교장·교감의 압박

요. 회사에 다닌 지 2년 8개월 정도였고, 웹디

을 받기도 했겠죠.”

자인 경력은 10년 정도 됐죠. 이 업종이 야근 을 많이 해요. 그렇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

김미숙 “용균이도 학교에서 견학 가면 전공이

거나 불만을 얘기할 수 없는 분위기죠. 오전 10

나 원하는 것과 맞지도 않고 현장 상태가 안전

시에 출근해서 새벽 3~4시까지 일을 했어요. 5

하지 않다고 했는데, 피해서 간 게 태안화력발

일 중 3일은 야근이었죠. 포괄임금제여서 일한

전소였어요. 교수들은 취업률을 목표로 여기저

만큼 제대로 돈도 못 받았어요. 일하면서 건강

기 알선해줬죠. 사실 전 안전하지 않다는 걸 느

상태가 나빠졌어요. 불면증, 스트레스로 밥을

끼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에 나보다는 낫겠지

못 먹어서 살이 많이 빠졌죠. 동생이 죽은 게 작

하고 보냈어요. 취업하는 것 때문에 걱정도 되

년 1월이었는데 2017년도 여름부터 휴직하고

고, 그런 상태에서 애가 어쩔 수 없이 일하는 상

싶다고 신청했더라고요. 그런데 두 번인가 반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05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려가 됐고, 마지막으로 동생이 퇴사를 할 수 밖

무 열악했어요. 탈의실부터 모든 경로 다 가봤

에 없다고 얘기해서 그때서야 한 달 휴직을 받

죠. 회사는 부검 관련해서도 술이나 약물 등을

았어요. 일로 괴롭힘을 당한 거죠. 일을 안 해야

문제삼았어요. 회사가 개인의 문제로 돌리려고

하는데, ‘못 해’라는 말이 안 나왔고 동생 입장

했던 거죠.”

에서는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런 상 황에서는 시야가 좁아져요. 다른 생각이 나지

여기 계신 분들의 경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

않는 거죠.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가 안 되는 거

책위원회도 꾸려지고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등

예요.”

이 함께 힘을 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도움이 되었나요?

산재 유가족에게 사건 발생 이후 여러 가지 어려움 이 있을 걸로 예상돼요. 실제 가족의 죽음 이후 가

김미숙 “힘 있게 갈 수 있었던 점이요. 저 혼자

장 어려우셨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만이 아니라 100개 넘는 단체가 함께 했어요. 사회 전체의 문제, 비정규직과 안전 문제에 대

장향미 “증거를 확보하기가 어려워요. 입증해

해 발언할 때마다 도와달라고 호소했죠. 사실

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는 게 너무

한 집 건너 한집이 비정규직이잖아요. 연대할

힘들었어요. 책임은 회사에 있는데 회사가 아

수 있었기 때문에 힘 있게 할 수 있었어요.”

니라 유가족이 입증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회 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개인의 책임으로 돌

김용만 “혼자서 시작했어요. 여기저기 찾아다

릴 뿐이에요. 제가 자료를 요청할 때 우울증이

녔죠. 가정이나 개인의 잘못이라고 하는데, 증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관계

거를 찾아서 입증해야겠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

회사에서 동료들 입단속을 시켰더라고요. 6~7 월까지 증거 수집하러 혼자 다녔어요. 언론에

김용만 “저희도 그랬습니다. 경찰이 우울증이

알리려고 했는데 자살 사건이어서 어쩔 수 없

있는지 의료기록을 확인해오라고 했어요.”

다고 기피하더라고요. 조그맣게 대책위가 생기 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내가 죽더라도 이

김미숙 “여기 회사도 용균이 잘못으로 죽었다

거는 해야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정부의 잘못

고 말했어요. 가지 말라는 곳 갔고 하지 말라는

된 정책으로 인해서 한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것 해서 죽은 거라고요. 그런데 회사 동료들은

가정과 다른 사람들의 삶이 파괴됐어요.”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무조건 고치러 가야 한 다고 말했어요. 얘길 듣고 회사 사람들이 용균

그렇다면 산재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정부와 사

이 잘못으로 돌리려고 하나보다 판단했죠. 사

회의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회 시스템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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겪는 일이기 때문에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었어

장향미 “산재 신청의 문턱이 높아요. 입증자료

요. 직접 일하는 장소도 가봤죠. 현장 상태가 너

모으는 것부터가 힘들죠. 회사가 순순히 내주

2019년 4월호


지 않거든요. 저희도 법원에 증거보존신청, 판

습니다. 저도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자요. 1

결까지 받아서 받아냈어요. 그런데도 회사가

년 동안 악몽에 시달렸어요.”

불성실하게 자료를 줬죠. 법적 강제력이 없어 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거죠. 어떻게든

유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이 같은 사건이 반

은폐시키려고 해요. 법적 강제력 없는 상황에

복되지 않기 위해 어떤 게 필요할까요?

선 자료를 확보하는 싸움이 불가능합니다. 개 인 대 조직의 싸움이기 때문이죠. 대책위와 함

장향미 “정부도 문제의식을 점차 가지게 되는

께할 수 있어서 가능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중인 것 같아요. 사실 개인의 문제라면 우리나

유가족이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포기해요. 그

라 사람들이 나약한 사람만 있는 걸까요? 사회

런데 자료를 모아도 문제에요. 추가 자료요청,

구조적 문제죠. 자살자 한 명으로 인해서 영향

진술요청, 자료보관 등 산재 판결이 날 때까지

을 받는 사람은 평균 8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죽음을 안고 있어야 해요. 경제적 문제를 떠나

그에 따른 여파가 있을 거란 거죠. 살아남은 사

서 이게 끝나지 않으면 일상으로 돌아가지를

람들에게 케어를 해줘야 해요. 하지만 현재로

못해요. 오래 걸리는 산재승인 기간문제도 있

는 없죠. 지자체에서는 연락을 취하고 매뉴얼

죠. 그리고 무엇보다 유가족의 싸움이 산재인

을 갖추려고 하는 것 같은데 초반이라 배려 없

정 여부나 개인보상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고,

이 기계적으로 할 뿐이고, 유가족 입장에서는

그러다 돈 때문에 저러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와 닿지 않아요.”

유가족에 대해 비난이 가해지기도 해요.” 김미숙 “사람 목숨값이 제일 싼 거로 취급되잖 김미숙 “서로가 자책하게 돼요. 그래도 내가 할

아요. 영국처럼 강력하게 기업을 처벌하는 중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거기만 안 보내면 되었

대재해 기업처벌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는데, 그만두라고 왜 말하지 못했을까, 또 했는 데도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여

김용만 “교육부의 개악안으로 그동안 요구해온

러 생각이 들어요. 치유는 그냥 되지 않아요.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 노력이 물거품이

법 제도가 바뀌고 개선되는 상황을 봐야 치유

됐어요. 다시 요구해야 합니다. 사실 공공기관

가 되는 거예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의 정책을 신뢰하기 어려워요. 유가족, 시민단

환경이 되어야하고, 죽은 사람이 헛되이 죽은

체, 전문가 등의 참여하에 바꿔나가야 해요.”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죠.” 장향미 님은 과로사·자살 유가족 모임에 참여하고 김용만 “죽을 때까지는 고통 속에서 가슴 아파

계시고, 다른 두 분도 얼마 전 출범한 산업재해, 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변화 없

장실습 유가족 모임에 함께 하고 계시는데요.

이는 그런 상황이 반복될 거잖아요. 그걸 지켜 보기 힘들어요. 나 혼자보다는 같이 뭉쳐서 해

장향미 “일본 과로사, 과로자살 모임에 참여했

결해나가고 싶어요. 사실 삶 자체도 피폐해졌

던 연구자분이 주도해서 유가족들과 연락이 닿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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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게 되어 모임이 결성됐어요. 우리 사회가 안전

장향미 “정부도 기업도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

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회사와 어떻게 싸

간 단축해서 경제가 안 좋아진다고 하는대요.

워나가야 하는지 배워나가 다른 가족들은 시

그런 논리면 소위 선진국들은 다 경제위기에

행착오를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

처해야겠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고 하는 건

여하고 있어요. 유가족 가이드라인을 만들 계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는 거예요. 출산율이 낮

획이에요. 일련의 절차와 노하우, 쟁점 등을 다

아져서 위기라고 하는데 안전하지 않은 나라에

룰 생각입니다. 누구도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

서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자살률, 산재사

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죠.

망률 높은 이유가 뭔가요. 해결 방법을 1차원

일본은 유가족 모임이 지속되면서 과로사 방지

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법까지 만들어 냈어요. 향후엔 이를 한국에서 도 실현해보고 싶은 바람이에요.”

김용만 “현실을 바꾸기 위해선 유가족들이 가 만히 있으면 안 돼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김미숙 “힘을 모아서 싸워나가야 해요. 법제도

싸워나간 것처럼 같이 일어설 수 있어야 해요.

를 개선해나가는 것조차 유가족들이 나서지 않

생업에 쫓기다 보니 힘들겠지만, 당사자들이

고서는 못해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한테 닥

힘들더라도 서로 다독여주며, 서로 연락을 해

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기 문제가 아닐 것이라

서 뭉치고 연대를 해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

고 생각하기 쉬워요. 유가족들이 뭉친다면 사

어야 합니다. 정부-노동자-기업이 상생해서 살

회적 목소리도 커질 거라 생각해요.”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해요.”

김용만 “들불처럼 번질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산재사망 유가족 모임이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사회를 바꾸기 쉽지 않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 전해졌으면 하는 말씀 부 탁드립니다.

김미숙 “인식의 변화, 법제도 변화, 노동과 안 전에 대한 생각이 전환되어야 해요. 사회가 안 전하게 되려면, 상생하며 우리의 삶이 윤택해 지려면, 우리가 나서야 해요. 의지가 있다고 하 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있고, 기업이나 정 치인들은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하잖 아요.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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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형의 이름을 밝히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입니다” 故 이한빛 PD 유가족,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한솔 이사 인터뷰

나래 상임활동가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건

의 성금이 모여 ‘방송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한 줄

어떤 무게일까.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다. 2017

기의 빛’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2018년

년 4월 비상식적인 장시간 노동과 비정규직 스태

1월 24일 설립됐다. 이후 여러 사건이 있었고 1

프 해고 문제로 괴로워한 형의 이름이 새겨진 ‘한

년이 지났다. 그에게 현재 센터의 주요 사업과 활

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에 관해 물었다.

동생 이한솔 씨를 지난 3월 30일 신촌의 한 카페 에서 만났다.

“혼술남녀 사건 이후로 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이하 센터)까지 이어온

tvN의 <혼술남녀> 조연출을 맡았던 고 이한빛

운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방송업계에는 다양한

PD의 죽음은 감춰져 있던 방송업계의 장시간 노

문제가 있는데, 그걸 해결하기 위한 주된 사업이

동, 비정규직 문제 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영

바로 ‘Drama Safe 캠페인’입니다. 제작 가이드

향을 미쳤다. 사회적 관심과 응원, 노동조합, 시

라인은 캠페인 차원에서 나온 거고 노동법 강연,

민사회단체들의 연대 속에서 CJ E&M에 사과와

쉼터 공간 마련 활동을 병행해서 하고 있습니다.

재발 방지를 요구했던 유족들은 마침내 회사의 공식 사과를 받았다. 재발방지 대책 마련의 일환 으로 CJ E&M의 출연기금, 유족 기부금, 시민들

드라마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살인적이란 건 많 이 알려져있는데요.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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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부분이 있는데 안 지켜지는 것도 있고, 아예 사각

하루의 상당 부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지대 영역도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상식적 노동환경으로 바뀔 수 있도록 다

당연히 센터는 현장의 목소리에 민감할 수밖에

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됩니

없다. 홈페이지 익명 게시판, 온라인 채팅 등으로

다. 구체적으로는 현재까지 드라마 제작 개선활

제보가 들어온다. 다들 흩어져서 일하기도 하고

동TF를 구성해서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노동자

아직 자신을 드러내고 문제를 밝히기 어려워하는

성을 인정받는 활동이 한 축으로 있었죠. 또 다른

분위기가 있다. 지금도 방송업계는 장시간 노동

하나는 제보센터를 운영해 희망연대노조 방송스

이 심각하다. 다른 문제도 상당하지만, 하루 21시

태프노조와 대응하는 건데요. 심각한 현장은 건

간씩 일하는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다른 유

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형의 제보가 들어오기엔 갈 길이 멀다.

센터는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근처에 있는데, 역

10

“작년만 하더라도 33건의 제보가 들어왔어요.

주변엔 방송국이 참 많다. CJ E&M은 물론이고

다 다른 드라마였어요. 제보가 안 들어오는 드라

MBC 본사, SBS 프리즘타워, KBS 미디어센터,

마도 있을 거에요. 웹드라마를 제외한 수치죠.

YTN 본사 뉴스퀘어, JTBC 본사뿐만 아니라 IT

웹드라마도 다른 차원으로 심각한데요. 주로 들

기업도 상당수다. 당연히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어오는 건 KMS(KBS, MBC, SBS), CJ E&M,

2019년 4월호


JTBC 쪽으로 들어옵니다. 종편 합쳐 1년에 드라

여있는 것이기 때문에 형의 이름을 잘 간직하고,

마가 백 건 정도 제작돼요. 그렇기 때문에 현장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차원에서 형이 바라던 일이라

전수조사하면 2건 중 1건은 노동시간 위반으로

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초기 협상 국면

걸린다고 예상해요.”

에서 처벌 같은 건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대신 CJ E&M이 선도적으로 드라마 산업의 구조

고 이한빛 PD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를 바꾸는 역할을 하라고 요구했고요. 부담감은

일으켰다. 고인의 죽음을 ‘평소 근무태도가 불량

있었지만 해야 할 일은 명확했던 것 같습니다. 무

하고 나약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던 CJ

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진 않았어요. 위로금을 받

E&M측도 유가족과 연대 단위의 대응과 지지로

아봐야 마음이 쓰여서 쓸 수도 없었을 거고요. 센

결국 자사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터에 사용하도록 하는 게 맞았던 거죠.”

관행적인 제작시스템을 선진화하겠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은 명백히 개인의 죽음

며칠 걸러 노동자의 자살 소식은 심심치 않게

이 아닌 사회적·구조적 문제로 인한 것임을 주장

들린다. 하지만 소식을 접한 이들의 눈총은 따가

했고 회사도 이를 결국 인정했다. 절대 쉽지 않은

울 때가 많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야 했지 않냐

싸움이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쉽지 않은

하는 시선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다. 유가족으

길을 가고 있는 그였다.

로서 이런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이 어떻게 다가 올까.

“응원을 많이 받아요. 그럴 때 제일 보람찹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그럴 때마다 건건이 기쁘죠. 형

“사회적 타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상황은 안

의 이름을 걸고 하는 활동이니깐요. 최대한 많은

타깝죠. 사회적 타살, 노동에 대한 관점이 아직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응원

시대가 요구하는 감수성을 못 따라오는 것 같기

을 들을 때 기뻐요.”

도 해요. 과거 산업화시대 유산이 지금의 수많은, 특히 젊은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강

유가족은 관련자를 처벌하기보다 방송사에서

하게 받아요.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그냥 시키는

책임을 지고, 형의 죽음 이후 또 다른 피해자가

대로 일하라는 게 익숙했던 사회가 이제는 새로

나오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운 감수성을 받아들여야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

노력해왔다. 그에게 센터 설립을 결정하기까지

까요. 그래도 요새 위로와 지지가 많아지고 있다

유가족으로서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물었다.

는 걸 느낍니다. 특히 젊은 층의 사람들은 어떤 문제인지 잘 알기 때문에요.”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질감과 온도가 지금은 좀 다른데요. 형은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고, 그

작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

와 더불어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어요. CJ E&M

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28년 만에

측이 정말 밉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회사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 됐고, 한편에선 산

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산업 전체와 묶

재, 재난 유가족들이 모여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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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시작했다. 최근엔 노동자 죽게 한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 하는 자리에 함께 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순히 피 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문제를 드러내고, 변화를 직접 만들어가기 시작한 유가족들의 모임 구성과 활동에 대해 물었다.

“유가족들의 경우 비슷한 입장일 것 같아요. 삶 의 선택지가 다양하겠지만 사실 선택지는 하나밖 에 없는 것 같아요. 유가족은 삶 자체가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해요. 아마 유가족 모임을 만드신 분 들도 당연하단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 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가 떳떳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말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사회가 유가족을 존중해주고 함께 모여 활동해나가길 바랍니다. 그 활동의 의미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것에 서 찾을 수 있을거에요.

더불어 방송업계에 맞게 노동자에게 필요한 권 리를 요구하려면, 모여서 문제를 토로하고 그것 들을 이슈화 시킬 수 있는 응집력과 조직들이 더 필요해요. 제작사는 거대 제작사까지 더해서 더 뭉치고, 강해지죠.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비정 규직, 프리랜서 등 다 흩어져 있어요. 조금은 어 려워도 일터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주변 사람 들과 모여서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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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산재 유가족들의 활동에 함께 하자

최민 상임활동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이

최근 모여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산재 유가

성으로 사유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먼저 고통 받

족을 보면서 ‘견디는 사람’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는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더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중요한 측면이라는 점에서 호모 파티엔스(homo

모습은, 둥그렇게 둘러서서 어깨를 옹송그리고

patiense, 고통 받는 인간)라는 말을 제안했다고

남극의 겨울을 버티는 펭귄들을 떠올리게 한다.

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빅터 프랭클의 논의

유가족은 무엇보다 함께 모여 아픔을 ‘견디는’ 중

를 이어, 인간이 단순히 고통을 받는 위치에만 있

이다.

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감당해내고 견뎌내며, 그 점이 인간을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질문

“세월호 예은 아빠 유경근 씨가 민호 1주기 때 왔

한다.01 고통을 받으면서 인생의 비참을 보여주지

어요. ‘많이 아프지? 많이 아플 거야.’ 이 말 한마디

만, 동시에 고통을 견디면서 인간임을 증명해내

해주는데, 그게 저한테는 너무 큰 위로가 됐어요.”

는 사람들이 견디는 사람이다. 견디는 사람이 보

(2017.11. 현장실습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민

여주는 것은 인생의 비참, 삶의 비극, 개인이 어

호 님의 아버지 이상영 씨)

찌하기 어려운 구조의 폭력이지만, 동시에 비극 을 넘어선 삶 그 자체의 숭고함, 폭력 너머 새로

“씩씩한 얼굴로 외출을 해도 당신이 지금 어떤지 안

운 구조에의 꿈이기도 하다.

다라고 누군가가 위로를 해줘도 ‘대체 뭘 알아?’라고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와서 같은 감

아픔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담당 변호사 외의 사람에게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 어 너무 기뻤습니다.” (일본 과로사 유가족 모임 ㅇ

01 신형철, ‘호모 파티엔스(homo patiense)’에게 바치는 경의, 권 여선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 해설 259면

ㅋㅁㅌ)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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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하지만 가족들이 함께 모여 견디는 것은 단순

이런 상황에서 산재 유가족들은 거대한 울분에

히 가족을 잃은 ‘슬픔’만은 아니다. 일하다 발생

휩싸이게 된다. 일하다가 생긴 사고인데 왜 책임

한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닌 구조의 문제

지는 사람은 없는가? 일하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하고 일하다 숨

왜 우리가 숨을 죽이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진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부주의

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도,

탓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 관련 조항

수없이 많은 사람이 일하다 죽어갔다는데, 왜 세

이 모두 적용 제외되어, 일주일에 80시간 근무해

상은 아무 일 없는 듯 돌아가는가?

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장시간 일하다 숨

최근 한국 정신보건학계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진 60대 학교 경비 노동자의 죽음은 개인 탓이 아

있는 ‘울분’은 분노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한

니다. 일터에서 폭력과 폭언을 당하고, 지속적인

다. 울분은 ‘이런 처사는 부당하다’는 생각이 지

괴롭힘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의

속되면서 감정적 고통이 격화된 상태이며, 그래

죽음은 개인의 탓이 아니다.

서 공정성이나 정의에 대한 감각과 뗄 수 없다고 한다. ‘세상은 공정해야 한다’는 기대와 ‘실제 세

울분을 함께 견디는 산재 유가족들

상은 공정하지 않다’는 경험 사이의 괴리에서 발 생한다는 것이다.02 산재유가족의 고통은 여기에

하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은 쉽

정확히 들어맞는다.

게 ‘동정’의 대상이 되거나, ‘불운’의 상징이 되 고, 결국 개인의 문제로 돌아간다. 심지어 남겨진

“제 아들은 현장실습으로 나간 업체에서 일하다 자

가족들은 ‘왜 그런 험한 일을 시켜서’, ‘그렇게 힘

살했습니다. 전공과도 맞지 않는 실습처였고, 학교

들게 일하는지 몰랐냐?’, ‘평소에 건강 좀 잘 챙

에서 체결했다는 표준계약서에는 엉뚱한 사람의 사

겨주지 그랬냐’와 같은 비난에 부닥치기도 한다. 02 박권일, 한국인의 대표감정, 한겨레신문 칼럼, 20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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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인이 들어 있을 정도로 엉망인 채 나간 실습이었는

끝에 삼성과의 합의에 도달하고, 김용균 씨의 어

데 학교에서는 끝내 사과 한마디가 없었어요.”(직업

머니가 나서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시키는 모습

계고현장실습피해가족모임 김용만 씨)

을 보면서 산재 유가족들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조금씩 모임을 이어 가던 ‘한국 과로사·

“(산재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유가족들에게 있다

과로자살유가족모임’, ‘직업계고현장실습희생자

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회사가 자료를 다 가지고서

가족모임’, ‘재난· 참사가족모임’, ‘산재피해자및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뿐이에요. 자료를 요청할 때

가족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활동의 싹

우울증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이지 회사랑은

을 틔우고 있다. 한 해에 2천여 명이 산재로 사망

관계없다고 얘기하기까지 했어요.”(한국과로사·과

하는 현실에 비추어, 이런 모임들이 생기는 것은

로자살유가족모임 장향미 씨)

당연하다. 산재 사망자의 1차 가족만 해도 한 해 에 8천~1만 명이 발생하고 있다. 홀로, 각개로 견

현실을 바꾸려 손을 잡는 산재 유가족들

디고 견디던 그들이 이제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손을 잡은 것이다.

이렇게 고통을 함께 견디고, 울분을 함께 견디 던 유가족들은 끝내 울화통 터지는 현실을 함께

“산재로 제 남편의 자살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하

바꿔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유가족들이 피해

지만 저는 여전히 유족모임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자로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가는

비록 승소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남편과 같은 사람

주체로 나서는 모습은 한국사회에서 낯설지 않

들이 발생하고 있고 열심히 목소리를 내고 다른 유

다. 가까이에는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으

족들을 보니 ‘그래! 이들과 함께라면 끝까지 싸워보

며 싸워 온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독재 정권 시

자!’란 생각이 들었고, 이젠 남편 산재를 위해 싸우

절 사망한 열사들의 가족들이 결성해 민주화운동

는 것이 아닌 일본사회에 과로사와 과로자살문제를

에 함께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도 있다.

없애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일본 과로자살 유

일본에서는 좀 더 특수한 산재 유가족 모임이라

가족. ㅅㅇㄹㅋ)

고 할 수 있는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모임이 있 다. 공식 명칭은 ‘전국과로사를생각하는가족회’

견디는 사람의 얼굴을 보라. 거기에는 인생의

이다. 약 300여 명의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이

비참, 삶의 비극, 구조의 폭력이 있지만, 동시에

가입된 이 모임은 1991년 결성되어 서로의 아픔

비참함을 견디는 인간의 숭고함이 있고, 비극에

을 보듬고, 과로사·과로자살을 낳은 구조적 원인

도 다시 이어지는 인생의 이야기가 있고, 다른 구

에 대해 학습하고,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사회

조, 다른 삶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

적 관심을 끊임없이 환기해, 결국 2014년 「과로

다. 한국에서 이제 본격화되는 산재유가족들의

사 등 방지대책 추진법(과로사 방지법)」의 제정

활동에 함께 하자.

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도 2018년 반올림이 10년 넘는 싸움

*일본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 구술은 모두 <<과로자살 사례 연구>>보고서에 실린 「과로자살 이후 남겨진 유가 족들의 이야기」(강민정, 2018)에서 인용.

산재 유가족, 슬픔을 안고 연대로 나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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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역에서는

지난 3월 28일 부산에서 ‘근로기준법 59조와 탄력근로시간제 영향 현 장간담회’가 개최되었다. 공동주최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사회변

근로기준법 59조와 탄력근로시간제 영향 부산지역 현장간담회

혁노동자당부산시당, 그리고 부산지하철노동조합, 전국집배노동조합부 산지역본부가 함께 했다. 부산지역의 여러 현장과 시민단체 회원 30여명 이 참석하여 근기법 59조의 태생적인 문제와 더불어 탄력근로시간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현장에서의 문제점 등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 졌다.

먼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상임활동가는 기조 발제에서 “실 근로시간 단축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향후 발생할 사회적 비용을 최 소화하기 위하여, 1주일당 최대 근로시간이 휴일근로를 포함 52시간임 을 분명히 하고”라며 도입된 근기법 59조가 한국사회의 하루 8시간 노동 의 정착에는 여전히 부족하며,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12시간의 연장 노 동을 인정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주 12시간의 연장시간 부여도 모자라서, 마치 탄력근로시간제가 꼭 필요한 것처럼 현 재의 3개월 탄력근로시간제를 6개월로 연장하겠다는 정부의 행태는 더 욱 심각하다. 경총의 일방적인 요구만을 수용하여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 는 국회와 정부가 결국 노동자들을 또 다시 과로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 고 있는 것이다.

현장 발제에서 부산지하철노조 김준우 연대사업부장은 작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으로 인한 부산지하철 현장의 변화를 발표 하였다. 이미 현장은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전부터 인력이 부족했다. 교 번제 교대 근무자의 경우 월 평균 2일 이상의 휴일 근무를 해왔기 때문에 연간 87일의 휴일을 갖지 못하고 연 50일만 쉴 수 있었다. 이것이 주 52 시간 상한제 시행 이후 52시간 초과 문제에 걸려서 휴일 근무를 할 수 없 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기관사뿐만 아니라 3조2교대 근무자에게도 동일 하게 나타나는 문제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국의 궤도사업장 중 유일하 게 탄력근로시간제를 합의하지 않는 사업장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2016 년부터 부산지하철노조는 부산도시교통공사에게 노동시간 단축과 적정 인력 확보를 위하여, 탄력근로 시간제 미도입으로 발생하는 통상임금(1 이숙견 상임활동가

년 300억 예상)을 노조가 양보하는 대신 신규 인력채용과 3조2교대제를 4조2교대제로 전환하자고 먼저 제안하였으나, 사측의 입장은 신규 채용 보다는 탄력근로 시간제를 도입하라며 2016년부터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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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두 번째 현장 발제는 전국집배노동조합부산지역본부 류기문 동지(전 준비위원장)가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에 따른 현장 변화를 발제하였다. 시행 전부터 장시간노동, 과로 노동의 대명사였던 우체국 노동자의 현장상황은 도입 이후 달라진 것은 없었으며, 오히 려 이들은 더욱 더 강화된 노동강도와 무급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형식적인 인력충원(?)으로 실질적인 인력 충원 없는 주 52시간 상한제 맞추기에 시달리며 노동강 도가 강화되었고, 근본적인 작업조건을 해결하지 않는 채 ‘소포위탁’이라는 이상한 방식 으로 업무량 줄이기가 등장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강제 유연근무 증가, 탄력근로시간제 도입, 집배 이원화 근무 추진으로 각각의 지역과 우체국 지점에서 의 초과 근무 불법·편법 운영이 증가하고 있으며, 여기에 과다한 작업량 문제로 주 52시 간 상한제를 맞추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개인별 면담 등을 진행하여 스트레스를 가중시 키고 있었다. 결국 적정한 인력 확충 없이 노동조합 의견을 무시한 채 강제로 진행되는 주 52시간 상한제 시행, 탄력근로시간제의 무제한 도입은 집배 노동자의 노동강도 강화 와 건강권의 훼손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현장간담회는 시간 부족으로 아쉬움이 있었지만 근기법 59조 도입 전후로 부산지역 일부 현장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었다. 더불어 실제적인 근로시간 단축 이 제대로 노동자의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탄력근로시간제 확대를 막 아야 하는 것, 제대로 된 노동시간 단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지점임을 확인하였 다.

탄력근로시간제 확대가 국회에 상정되어 법 통과를 앞둔 지금,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 을 위협하고 노동조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한 탄력근로제 확대가 저지될 수 있기 를 기원한다.

지금 지역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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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전건강뉴스

미국 클리브랜드 클리닉 메인 캠퍼스의 응급실에 가면 금속 탐지기로 유

작업장 폭력 증가에 맞서 직장문화 변화를 꾀하는 병원 노동자들

도하는 커다란 표지판이 있다. 이 병원은 자체 경찰 인력을 갖추고 있고, 병원 관계자가 방문객의 모든 가방과 짐을 검사한 후 금속 탐지기로 걸어 가도록 유도하고, 금속탐지봉이 사용되기도 한다. 성냥갑부터 페퍼 스프 레이나 권총까지 무기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압수한다. 병원 종사자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면서 이 병원은 물론 클리브랜드 지역 의 병원들은 보안을 강화했다. 클리브랜드 클리닉의 CEO 톰 미할레빅은 병원 종사자들에 대한 폭력을 ‘소리 없는 전염병’이라고 부른다. 최근 셰 러드 브라운 상원의원은 의료 및 사회서비스 분야 작업장 폭력에 대한 정 부 조사를 강화하는 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지역 병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보안을 강화해왔다. 사원증에 비상 버튼 을 부착하거나, 응급실에 보안카메라와 사복 경찰을 보완하기도 한다. 대 학병원에서는 직원들이 비상 버튼으로 쓸 수 있는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 도록 했고, 메트로헬스(MetroHealth)01 메인 병원의 응급실에는 금속탐지 기를 배치했다. 이러한 온갖 보안 장치에도 불구하고, 매일 폭력을 경험한다고 병원 관계 자들은 입을 모은다.

안전에 대한 노동자들의 우려 “최근에 행동 문제와 약물 남용으로 치료 중인 환자 한 명이 간호사를 때 렸어요. 간호사들 면전에서 주먹을 휘둘렀죠.” 클리브랜드 클리닉 응급 의료서비스 연구소의 의사 스티븐 멜던이 말했다. 결국 그 환자는 제지당 했고 이 사건은 경찰에 보고됐다. 맞은 간호사는 신체적으로 괜찮았지만, 그 사고로 인한 정서적 피해는 남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신체적으로 다 치지 않았더라도, 출근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나 폭력에 대한 우려는 분 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멜던은 말한다. 클리브랜드 클리닉의 응급실 간호사인 브리짓 램버트는 자신이 운이 좋 았다고 이야기한다. 다행히 신체적 폭력을 당한 적은 없었지만, 15년간 근무하면서 약 부작용이나 질병으로 인한 정신착란 상태에 있는 환자들 정리 김세은 회원

이 때리려고 달려드는 것을 봐왔다고 한다. “당신이 그런 상황에 있고, 그 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오싹하죠.” 01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 있는 공공의료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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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미 직업안전보건청(이하 OSHA)에 따르면, 미국 민간 기업과 비교해 보건의료업계의 작업 장 폭력은 평균 4배 이상이라고 한다.

병원의 침묵 문화 대학병원 최고운영책임자(COO)인 론 지치츠키는 오늘날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더욱더 많 아졌다고 말한다. “우리는 환자들의 인생에서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시기에, 그 가족들을 상대합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많은 급성기 환자들을 보고 있어요. 그만큼 스트레스도 더 커졌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정상적인 극복 반응도 무너지게 돼요.” 미국 응급의학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응급실 의사의 거의 절반이 신체 폭력을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그 중 60% 이상이 작년에 일어났다. 노동자가 폭력 사건을 보고할 수 있는 몇 가지 절차가 있는데도, 보건의료 분야에는 여전히 침묵하는 관례가 많다고 미국 간호사노동조합(National Nurses United)의 미셸 마혼 위원 장은 말한다. 노동자들은 신체 및 언어폭력을 일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학습되고, 보 복이 두려워 폭력 건을 축소 보고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직장문화 바꾸기 클리브랜드 지역의 병원 관계자들은 이러한 직장문화를 바꾸기 위한 과정 중에 있다고 말 한다. 한가지 예로, 클리브랜드 클리닉은 안전 사건·사고를 경영진 레벨까지 보고한다고 한 다고 멜던은 말한다. 브라운 상원의원 등이 발의한 관련 법안은 보건의료 분야 노동자들의 안전과 직장문화를 바꾸기 위한 또 다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병원 및 사회서비스 분야의 작업장 폭력 예방에 관한 법(Workplace Violence Prevention for Health Care and Social Service Workers Act)’은 지난 2월 제출된 법안과 유사하다. OSHA가 강제력 있는 규정을 마련해 보건의료 업계에 더 큰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브라운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의견을 밝혔다. 연방 법령은 지난해 통과된 캘리포니아주의 법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마혼은 말한다. 간호 사 노조의 활약으로 제정된 그 법은 병원 측이 폭력 방지 계획을 세울 것을 요구한다. “우리 가 권장하는 규정은 연방 차원에서 사업주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유지할 책임을 지 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투명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거죠.” 마혼의 이야기다. 또한 병원 측 에서 OSHA에 사고를 보고하지 않으면 과태료을 낼 수도 있을 거라고 그녀가 덧붙였다. 이 법안의 하원안은 이달 초 의회에서 첫 번째 청문회를 거쳤다. 출처 : Hospital Employees Seek Change In Culture As Workplace Violence Increases, Ideastream, 2019.3.27. ※ 덧붙이는 말 <국제 노동안전건강뉴스> 코너는 19년 4월호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종료합니다. 그동안 코너에 관심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국제안전건강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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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산업안전보건 국제기준 비교 연구팀에서는 2018년 9월부터 독일 산업안전보 건법과 체계를 공부하면서, 한국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독일 산업안전보건 체계가 한국 산안법 전면개정안에 주는 메시지 ⑥ - 산업재해보험 ②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여섯 번째 글로 산업재해보험 문제의 두번째 내용을 다룬다. <머리말>

한국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의 목적에 따르면 재해 근로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 복귀는 산재보험법이 달성해야 할 소 명이다. 이하에서는 독일 산재법의 관련 내용 중 한국 산재보험법의 목적 실현을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산재보험급여의 직권 지급 독일의 법정 산재보험 급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해노동자에 게 직권으로 지급된다. 이는 사업주 및 산재전문의사의 ‘산재신고의 무’와 관련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는 사고의 규모와 상관없이 산재보험조합(이하 산재조합)에 이를 신고해야 한다. 또한 산재전문 의사는 재해노동자를 치료함과 동시에, 산재조합에 이를 보고해야 한 다. 산재보험요율의 인상 등으로 사업주가 신고의무를 해태하기도 하 나, 재해노동자 본인 스스로 또는 동료를 통해 병원을 방문하기 때문 에 사업주가 신고하지 않더라도 병원에서 신고가 이루어진다. 산재조 합은 조사원칙에 따라 사실관계를 직권으로 조사해야 한다. 이때 조 합은 피보험자인 재해노동자에게 유리한 사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러한 독일의 산재신고절차는 산재보상을 위한 재해노동자의 신 청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의 산재보상절차와 차이가 있다. 노동자나 사용자가 산재발생사실 또는 산재보상신청에 대한 현 실적인 부담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특히 노동자의 경우 산재신청 후 보상지급여부에 대한 불확실성, 사업주와의 관계 등으로 인해 산재보 상 신청조차 주저하며 적절한 보상 및 요양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발 생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재해노동자의 신청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산 재보험급여의 직권 지급은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임혜인 노무사,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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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까지 독일은 직업재활을 넘어 사회재활까지 도모하며 이를 위한 세세한 부분까지 법률로서 보장한다. 독일 의 사회재활급여에는 재해노동자가 지속적인 차량 사용이 필요한 경우 지급하는 ‘차량에 대한 보충급 여’, 산재로 장애를 갖게 된 재해노동자가 치료시설 이용을 위해 주거지를 개축·수리하거나 이사를 하는 등의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주거지에 대한 보충급여’, 재해노동자가 가계를 이끌어나가기 불 가능한 상황을 지원하기 위해 지급하는 ‘가계보조 및 어린이 돌봄비용’ 등이 포함된다. 법률과 제도로서 재해근로자의 사회화를 지원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의 산재보험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적극적인 사업장복귀관리 독일의 모든 사업장은 재해노동자가 1년 동안 계속하여 또는 단속적으로 6주를 초과하여 노동 불능이 면 그 노동자에 대하여 사업장 복귀관리를 하여야 한다. 목적은 재해노동자의 노동 불능을 억제 및 예방 하고 실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있다. <사업장 복귀 단계> 1. 노동 불능 6주 초과 확인 2. 사업장복귀관리팀 구성 3. 해당 취업자와 최초 접촉 4. 해당 취업자와 대화 5. 해당 취업자의 동의하에 사업장 내에서 사례를 의논 6. 사업장 내에서 해결방안을 찾지 못 할 경우 외부 자문 활용 7. 확실한 사업장복귀대책 합의 8. 대책 시행 9. 대책의 효과 점검

사업장복귀관리에 따른 독일의 재해노동자 직업복귀율을 따져봤을 때 사업장복귀관리에 따른 독일 의 재해노동자 직업복귀율은 산재보험의 재활 관리와 추가·특별 직업재활을 받은 산재 노동자 통틀어 98%가 직업복귀가 가능했다.01 우리나라의 2018년도 재해노동자의 직업복귀율이 65.3%에 불과하다 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독일과 같은 재해노동자의 사업장 복귀를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상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 재활, 사회복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독일의 산업안전보건체계를 살펴 보았다. 독일은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복귀의 단계가 일련의 과정으로서 관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적 치료와 현금급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산재보험제도와 차별점이 있다. 독일과 같이 재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재활-사회 복귀의 과정이 상호 연관되어 기능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산재 보험 제도 또한 그 목적 실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01 자료: DGUV(2018), Guidelines in Case Management of Work Accidents and Occupational Diseases/ Rehabilitation Management in the German Social Accident Insurance, p. 40.

국제안전보건기준비교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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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리포트

금속노조 A지회 2018년 위험성평가

푸우씨 상임활동가

금속노조 A지회는 2017년에 이어, 2018년 노사 공동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했다. 한국노동안 전보건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위험성평가 자문기관으로서 노사의 실행위원 역량강화 교육, 안전보 건교육 시간을 활용한 전 조합원 교육 설명회 및 결과보고회, 현장조사 지원 및 개선방향 수립 토론 등에 함께 하였다. 이번 연구리포트에서는 2018년 진행된 A지회의 위험성평가 결과를 담았다. 2018년 A지회의 위험성평가 실시 목표는 아래와 같았다. ▲ 노사공동으로 실시하는 위험성평가에서, 어떻게 실무역량을 기를 것이며 어떤 관점을 가질 것인가 ▲ 현장의 유해위험요인을 있는 그대로 찾아, 개선할 내용과 방안 만들기 ▲ 지난 위험성평가 이후 개선이 미비했던 점에 대한 평가 및 개선 방안 만들기 ▲ 일하는 이들이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일터 조성에 기여 ▲ A지회의 안전보건 당사자인 일하는 이들의 관심과 참여 재고 ▲ 회사의 환경안전보건 방침을 보다 구체적으로 구현하는데 일조

위험성평가 주요결과

위험성평가에 있어 공장 내 모든 작업공정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자 하였으며, 일부 중복공 정 등을 제외한 74개 공정을 조사하여 시트에 담았다. 조사내용을 회사 안전보건담당자와 작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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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들에게 제공하여 의견을 취합하였다. 이런 과정은

다. 위험성평가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개선과

조사내용에 대한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개

제를 확인하고 이를 단기적, 중장기적 과제로 분

선에 대한 노사의 대책 논의가 원활히 진행될 수

류하여 그에 맞는 이행의 계획을 산보위 등을 통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해 실물화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비용부담 이 덜한 즉시 개선과제를 우선 과제로 삼아 선별

조사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근무형태 변

하고, 이행해 나가는 방식 등을 취할 수 있다. 개

경이다. 지난 위험성평가 당시 A 지회 대부분의

선에 있어서 무엇보다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노

작업자가 장시간 노동과 심야노동으로 인한 고충

사가 작업자의 필요와 요구를 확인하여 내실 있는

을 토로했고 이에 대해 주간연속2교대라는 근무

개선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형태 변경을 통해 장시간, 야간노동에 따른 위험 성을 낮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서서 일하는

2. 주간연속2교대 실시 후 제기되는 노동강도의 문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일부 공정을 중심으로 우선

A 회사는 지난 위험성평가에서 가장 큰 유해 위

공급된 의자 비치 현황, 조도개선 위해 진행된 조

험요인으로 꼽은 장시간 노동, 심야노동의 문제를

명설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근골격계 질환

주간연속2교대-근무형태 변경을 통해 근본적으

부담요인 완화, MSDS의 게시 및 관리시스템 구

로 개선하였다. 그렇지만 작업자들은 이번 위험성

축, 취급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 저감방안, 소

평가 과정에서 여전히 노동강도의 문제를 제기하

음 저감을 위한 노력, 재래형 사고 위험 낮추기 등

였다.

에 있어서는 별다른 개선이 진행되지 않은 현황이 확인됐다.

근무형태 변경으로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단축 되었고, 그에 따른 유해 위험 노출부담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소된 시간만큼 물량이

현장개선 방향과 제언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근무형태 변경이 동반한 휴식시간, 점심시간 등의 축소로 인해 작업부하와

1. 회사의 안전보건경영 선언을 실현해 나가기 위한

부담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도

노력이 필요하다.

한 업무 부담 완화를 위한 적절한 휴식시간과 휴

A 회사는 지난 위험성평가 이후 안전보건경영 방침을 마련했다. ‘▲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통한

게공간의 제공 등 향후 노동강도와 부하에 대한 개선 계획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유해·위험 사전 예방활동 ▲ 관련 법규의 준수와 지속적 재해예방 개선활동 ▲ 환경과 인간을 존

3. 근골격계 부담 완화를 위한 노력

중하는 지속 가능한 경영활동 ▲ 능동적인 교육참

근무형태 변경 이외에 기존의 낙후된 노후설비,

여와 적극적인 책임 역할 완수’를 핵심가치로 담

작업방식과 작업방법의 변화는 동반되지 않았다.

았다. 이러한 안전보건경영 선언의 의미를 살리

이로 인한 작업자들의 근골격계 부담은 여전히 이

고 현실화하는 것은, 위험성평가에서 도출된 개

전과 다를 바 없이 상존하고 있다.

선과제에 대한 이행계획을 착실히 수립하는 것이

당장 인간공학적 설비개선을 단기적으로 추진

연구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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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는 쉽지 않은 조건이기 때문에 우선 서서 일 하는 작업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작업자들의 필

5. 국소배기장치 점검 및 내실화 국소배기장치는 유해 위험 물질을 취급하는 작

요와 작업방식에 대한 고려를 바탕으로 입좌식 의

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설비로, 이를 제

자의 배치 등을 적극적으로 실행할 필요가 있다.

대로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난 위험성평가

또한 중장기적으로 작업대 높이 개선 등 인간공학

개선안으로 국소배기 장치에 대한 성능검사 및 확

적 설비개선을 만들기 위한 노력 또한 동반되어야

인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으나, 개선의 성과가 뚜렷

한다.

하지 않았다. 실질적인 개선을 위한 조치를 위해 서라도, 상하반기 작업환경측정 시 국소배기장치

4. MSDS 관리 및 화학물질 관리 시스템 구축 지난 위험성평가 이후 물질안전보건자료

성능검사 및 확인을 계획하는 등 적극적으로 현황 파악부터 진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

(MSDS)가 일부 공정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각 공 정에 비치, 게시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6. 방청유, 금강사 및 랩제 보관 방법 개선

러나 자료의 업데이트 등 최신화가 제대로 진행되

지난 위험성평가에서 발암물질 및 화학물질 보

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또한 작업자들의 눈에 띄

관 방법의 개선이 즉각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음

는 곳에 부착하고, 관리하는 등의 세심한 노력이

을 제안하였으나, 제대로 개선되지 않은 현황을

필요할 것이다.

다시 확인하였다.

작업자에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부적절한 유해 위험 물질 보관은, 이를 직접 다

단순한 비치, 게시 의무가 있기 때문이 아니다. 공

루고 취급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해당 공정 주변

정마다 취급하는 유해 위험물질의 현황을 작업자

작업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적극적인

가 인지하도록 하여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밀폐, 환기, 격리 등의 조치를 강구해 나갈 필요가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가장 기초적인 정보를

있다.

제공하는 것이다. 특별안전보건교육을 받아야 하는 유해화학물질

7. 소음 저감 조치 및 관리를 위한 체계 구축

을 직접 취급하는 작업자들과 노출정도가 심할 수

소음 저감 조치는 비용과 기간 등의 측면을 고려

있는 주변 작업자들에 대해서는 특별안전보건교

하여 장기적 기획이 필요하다. 이전 위험성평가에

육 혹은 그에 준하는 교육을 통해 유해성을 주지

서 공장동별 소음지도 작성과 소음관리를 위한 기

하고 대처방안을 숙지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노

관 선정과 대책수립의 필요성을 개선과제로 제기

력이 보다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성분표시가 안

한 바 있다. 이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놓치지 않고

되어 있는 상태로 덜어서 사용하는 유해화학물질

수립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단기적으로 소음 차

취급 방법 및 옥내보관 등에 대한 개선과 더불어

단, 소음원 저감, 흡음 및 차음재의 부착 등의 노

방청유, 가공유 등을 제거한 걸레가 덮개가 없는

력과 함께 작업자들이 귀마개 등 보호구 착용을

폐기통에 방치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시급한 개

게을리하지 않도록 유해 위험성에 대한 주지와 교

선이 필요하다.

육이 필요할 것이다. 귀마개 등 보호구의 적극적 인 사용으로 인하여 사고 발생 위험 등, 긴급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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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에서의 경보나 알림 등을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위험을 시각화하는 방식에 대한 고려 또한 동반되어야 한다.

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가령, 사람의 키 높이 이상으로 쌓고 있는 적재 방식의 개선, 작업자 이동통로에 대차가 방치되어 있는 문제 등이 일상적으로 점검되어야 한다.

8. 냉온풍기의 도입 고온과 한파에 노출되는 공정을 대상으로 냉온

안전사고 예방을 위하여 생산에 필요한 각 공정 의 유해 위험성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사업장 전

풍기의 도입이 일부 진행되었다. 작업자들의 필요

체 시설에 대한 정기적 순회점검이 노사 공동으로

를 반영하여 미비한 곳에 냉온풍기를 보강하여 비

진행될 필요가 있다.

치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이때 제공에서 그 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위생상태 점검 및 성 능관리가 동반되어야 한다.

11. 안전교육의 내실화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의 구현은 노사의 협력뿐 아니라 작업자들이 적극적인 주체로 나서야 가능

9. 작업자의 필요와 요구에 기반한 조도 개선

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안전교육의

A 회사의 작업현장은 낮은 조도의 문제가 심각

내실화가 필요하다. 작업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하였다.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작업을

것은 물론 노동안전보건의 감수성과 역량을 키워

하면서 노동과정에서의 피로감뿐 아니라 유해 위

나가기 위한 내실 있는 안전보건 교육 계획 수립

험요인을 그대로 방치하게 되는 문제도 동반된다.

에 노사가 지혜를 모아나갈 필요가 있다.

지난 위험성평가의 반영으로 일부 공정에서 조도 개선 작업이 진행되었으나, 작업자 의견을 적극적 으로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개선작업으로 인한 공들임에 비하여 작업자들의 조도 개선에 대한 만 족도가 높지 않은 한계가 있었다. 작업방식 등에 대한 작업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조도 개선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또한 설치된 조명을 비용절감 등의 사유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문 제가 있었다. 이 또한 개선해 나가야 한다.

10. 일상적인 재래형 사고예방 및 일상적 점검 시스 템 구축 A회사는 오래된 기계기구, 설비로 인한 안전사 고의 문제뿐 아니라 지면 평탄화 작업 미비, 청소 와 정리 정돈 문제 등으로 인한 넘어짐 등 각종 재 래형 사고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일상적 사고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일상적 점검 시스템을 구축

연구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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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게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은

“과학실 포뇨의 꿈” [인터뷰] 초등 과학실무사 이은영, 윤승섭 선생님 경희 선전위원 초행길 운전의 걱정은 포뇨(<벼랑 위의 포뇨>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봄 바람에 넘실대는 오이도 앞바다에 싹 날려버리고, 이은영 선생님과 윤승섭 선생님을 지난 3월 21일 퇴근 후 오 이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급 발암물질보다 당황스러운 건 인격적 모멸감

초·중·고등학교에 과학실험수업을 위해 과학실무사가 있다는 사실을 나만 몰랐 나싶다.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듣고 싶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 학교 과학실에서 일하는 과학실무사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대학 다닐 때 생물을 전공했고, 1995년 졸업 후 전북정읍 초 등학교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아무도 과학실이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위험한 약품들이 너무 많았어요. 희석해서 써야 하는 황산, 염산 같은 원액이 밀폐장이 아닌 나무장에 놓여 있었어요.”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부품 꿈을 안고 출근한 첫날, 아무런 설명 없이 유해물 질과 맞닥뜨리다니 당황했을듯한데 그보다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에 동참하고 함께한다는 기대를 안고 갔는데, 그야말 로 보조 역할만 하는 거였어요. 교장, 교감선생님 같은 관리자로부터 허드렛일이 나 하는 시녀나 몸종처럼 대하는데서 인격적인 모멸감을 느꼈어요. 수업하기 전 에 아이들에게 실험에 대해 설명을 해 준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네가 뭔데 교 권을 침해하느냐’고 해서 위험한 실험이 아닐 때는 수업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 어요.” 그러나 안전에 대한 대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과학실험을 지도하는 것이 위험 하다고 이은영, 윤승섭 선생님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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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과학실험 시 과학실무사가 보조 선생님

직업이 등장한 지는 30년이 되어가요. 전

으로 함께하는 것이 아이들의 안전을 담

문적인 준비와 지식이 필요한데도, 관리

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필수교구 실험

자나 교사는 아무나 해도 되는 쉽고 간단

자재 92종, 권장교구까지 하면 200~300

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종, 거기에 소모품, 약품까지 1000종이 넘는데, 종종 위험한 일이 발생해요. 비커 에 물을 넣고 그 안에 알코올이 든 작은 비

과학실무사는 주 업무에 버금가는 행정 업무가 많았다.

커에 이파리를 넣고 엽록소를 빼는 실험 을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비커가 엎어져

“출근하면 과학실험 신청서를 보고, 각

서 알코올이 쏟아지고 불이 번진 거예요.

학년별 반별로 다른 수업내용에 맞춰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니까 알코올에 불이

바구니마다 실험준비에 필요한 것들을 채

붙었을 때 물을 뿌리면 더 번진다는 사실

워 넣어두죠. 수업진행 중일 때는 행정업

을 몰랐던 교사가 물을 뿌려서 눈썹이 탄

무를 해요. 컴퓨터, 프린터기, TV 등 기

아이들도 있었어요.”

자재가 고장 나면 수리기사님과 연결하는 문제나 프린터기 잉크가 떨어지면 품의하

일당제에서 무기한 비정규직 교육청 소속

고, 정보화 기자재 허브 등에 대한 품의와

무기계약직이 되다

구입을 해요. 학교운영위원회 선출, 회의 주관, 학부모 소통에 대한 업무, 학교 홈페

아이들 교육에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으

이지 운영을 하고 있어요. 학교운영위준

로 힘든 나날을 버텨왔다는 그녀는 9대 1

비, 홈페이지 관리, 기자재유지보수 등의

의 경쟁률을 뚫고 2008년 오이도에 있는

업무는 대부분 3월에 집중돼서 너무 힘들

초등학교에서 과학실무사를 하게 되었다.

어요.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실질적 인 과학수업이 되려면 과학실무사에게 본

“전에는 학교장에 채용해서 나온 일수

연의 업무를 주고 역할 분장이 돼야 해요.

만큼 세어서 월급을 주는 일당제였어요.

다른 행정업무를 하다보면 과학실험을 준

2007년 이후 ‘2년을 근무하면 무기계약

비할 시간이 없어요.”

직이 된다.’는 법이 적용돼서 현재는 교육 청 소속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요.

과학실무사에게 행정업무가 많게 된 것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무기계약직이

은 2012년도에 행정실무사제도가 생기면

요. 풀어 얘기하면 무기한 비정규직이죠.

서라고 한다.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과학실무사는 교사들이 과학실험 수업

질병에 걸려서 그만두는 경우가 없어야

을 위해서는 사전실험, 실험자재 구입, 실

하는데, 이런 일은 일어났다.

험도구 정리, 약품구입 등을 위해 과학실 무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생겼고, 이

“교육청에서 과학실무사 처우를 개선해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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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면서 행정업무를 몇 개 받으라고 했어

면서 손바닥이 찢어졌다는 사람들이 셋

요. 그래서 업무 폭탄을 맞은 거예요. 충북

중 한 명꼴이에요.

에서 과학실무사가 학교 내 나무에 목을

포르말린 병에 개구리, 뱀 등을 담아놓

메달아 사망하는 일이 있었어요. 일이 너

은 표본이 깨져 제가 기간제 교사를 피신

무 많아 힘들어서 쉬려고 했는데 병가제

시키고 치우는 과정에서 호흡곤란으로 쓰

도를 잘 몰라서 사직서를 낸 거예요. 직후

러져 119에 실려 갔던 적도 있죠. 그 후로

에 병가를 일주일보다 더 쓸 수 있다는 사

저는 장에 궤양성 염증이 생겼어요. 부천

실을 알고 취소하려했으나 학교에서 들어

의 한 선생님은 시력이 점점 퇴화되는 질

주지 않은 거죠. 온몸을 다 바쳐 일하다 병

환에 걸리셨는데, 염산 증기에 노출이 된

까지 얻었는데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극

것 같지만, 그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

단적인 선택을 한 거예요. 2013년도에는

서 모두 개인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죠.”

과학실무사가 부가적인 업무를 하던 와중 에 과학실 전체가 전소되는 일이 있었어

화학물질은 예전에 엄청 많았지만 현재

요. 예전에는 교사들이 나누어서 했었는

초등에서는 13종정도 남았다고 한다. 올

데, 지금은 교무실, 행정실, 과학실에 1명

해도 묽은 염산 대신 진한 식초로 대체되

씩 있는 실무사가 다 해야 해요.”

었지만, 중·고등학교는 아직 100종이 넘 고 과학영재고등학교는 훨씬 많다고 한

고무장갑 낄 틈도 없이

다.

설거지하느라 지워진 지문 “약품냄새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하세요. 과학실무 중에는 실험자재에 의한 사고

밀폐시약장이 있어도 냄새가 새어나와요.

나 유해물질로 인한 노출사고 등이 여느

그래서 일하는 곳과 떨어진 곳에 약품장

공장 못지않게 위험이 높은 수준으로 보

을 두는 게 필요하죠. 물질안전보건자료

였다. 10년 이상 주부습진이 없던 적이 없

(MSDS)가 있긴 한데 그것으로 인해 안전

다며 보여준 그녀의 엄지와 검지는 지문

을 위한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이 거의 지워진 상태였다.

와 관련한 행정업무만 많아지는 것 같아 요. 노동부에서 조사를 나온 적이 있는데

“6학년 실험 중 ‘산소·이산화탄소 발생

물질안전보건자료가 비치되지 않은 경우

실험’이 있어요. 삼각 플라스크에 고무마

교장과 과학실무사에게도 과태료를 내게

개를 끼우고 고무마개 안에 유리관을 집

하더군요. MSDS가 뭔지도 몰랐고, 어떻

어넣는 실험이에요. 시간이 없다보니 빨

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

리빨리 세팅을 해야 하는데, 유리관을 고

데 말이죠.

무관에 끼우는 과정에서 유리관이 파손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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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또 보호장구가 있어도 착용할 새도 없


고, 지급되지 않는 곳도 있어요. 의무적

이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어요, 더 힘들어

으로 지급해야 하는 규정이 없잖아요. 그

졌다고 다시 도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더

래서 급식실에도 적용되는 산업안전보건

니, 교장선생님 태도가 확 바뀌었어요. 하

법이 과학실에는 적용되어야한다고 생각

라는 대로 다 하면 인간취급도 못 받지만,

해요. 급식실 못지않게 알코올램프에 의

강하게 당당하게 나가면 함부로 못한다는

한 화상, 베임, 절단 같은 사고도 자주 발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요. 2015년에는 파

생해요. 특수검진을 하려할 때 5만 원이

업이라는 걸 나가봤고, 지금 다니고 있는

면 되는데, 타 학교의 경우 근거가 없다고

학교에서도 약품장을 앉은 자리와 분리

교장선생님이 못하게 하면서 학기말에는

되게 설치하는 것을 요구해서 관철시켰어

몇 천만 원이 남아서 교장실 소파를 교체

요. 제 몸은 제가 지켜야겠더라고요.”

하거나 행정실 천공기를 구입하는 기이한 일들이 벌어져요. 정말 필요한 건강이나 안전에는 인색하면서 말이죠.”

평소 만들기를 좋아해서 과학실 일이 적 성에 잘 맞다는 윤승섭 선생님은 분과대 표의 일 년간 끈질긴 전화로 노동조합 활

내가 나를 버리면 남도 나를 버린다

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엄지 와 검지 사이에도 깊은 상흔이 있었다.

이은영 선생님은 교육공무직 노동조합 경기지부 과학실무사분과 부분과장을 맡

“과학실무사의 99%가 여선생님이어서

고 있고, 윤승섭 선생님은 과학실무사분

인지, 자신을 너무 아끼지 않는 것 같아

과장을 맡고 있다.

요. 내가 나를 버리면, 남도 나를 버리는 거예요. 참고 인내하는 것이 해법은 아니

“무기계약직이 되기 전에 교장선생님이

라는 것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자

출장을 가면 과학수업동안 하는 일 없다

신의 건강과 안전을 먼저 지키는 것이 모

고, 제 차를 타고 가세요. 차 안에서 “내년

든 일의 기본이고, 그런 측면에서 개정된

에도 재계약하고 싶지?” 하면서 자기 말을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 과

잘 들어야 재계약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당

학실무사가 꼭 적용되었으면 해요.”

시 재계약은 목숨 줄과도 같은 거였어요. 그래서 부당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노동조 합에 가입했어요. 가족여행으로 연차를 쓰려고 했는데 하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물고기소녀 포뇨의 ‘인간이 되고자하는 꿈’이 이루어지듯, 아 이들의 실질적인 과학실험을 위해 필요한

루 전이라고 연가승인을 못 해주겠다고

과학실무사의 무기한 비정규직이라는 고

하더군요. 도교육청에 민원 올리고, 노동

용형태도 언젠가는 정규직이 되는 날을

조합에도 알렸어요. 다음날 교장선생님

고대한다.

A-Z까지 다양한 노동 이야기

29


사진으로 보는 세상

길을 걸을 때마다 곳곳에서 쓰레기들이 보인다. 언젠가 필요해서 사용한 물건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쓰레기로 내버려진 다. 산같이 쌓여만 가는 쓰레기들. 재활용이란 이름으로 위로하며 내놓을순 있어도 제대로 재활용될 수 있는 건 얼마나 될까? 이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라고 하면서, 쓰레기는 줄여보자고 말하는 게 진짜 쓰레기같 다. 길가의 쓰레기를 보며 답답해 하다가 발견한 페트병 화분들이다. 저 화분을 만들어 내놓은 이처럼 정부나 기업이나 사람들이나 쉽게 쓰레기로 만들고 버리는 선택을 하기 전,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올라온다. 사진·글 자연해영

30

2019년 4월호


* 이번 호는 공모를 통해 사진과 글을 실었습니다. 응모해주신 자연해영 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진으로 보는 세상

31


현장의 목소리

반복되는 중대재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오임술 노동안전국장 인터뷰

박기형 상임활동가

지난 3월 13일 오전에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 세 분의 합동 영결식이 열렸다. 사고 발생 28일 만이었다.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합의문을 받고 나서야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어려웠을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장례식장을 지키며 유가족들과 연대해온 민주노총 대전지역본 부 오임술 노동안전국장을 지난 3월 15일 대전에서 직접 만나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 이후 대응 과정 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화 대전공장 폭발사고에 어떻게 연대하게 되

민청원을 올리셨죠. 유가족들이 크게 분노하

셨나요?

신 건 작년에 발생했던 사고 이후로 9개월 동 안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조치 등

“장례식장을 먼저 찾아가 유가족들을 뵈었 죠. 물론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부터 체계적으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게 없었다는 사실 때문 이에요.

로 결합하지는 못했어요. 아무래도 한화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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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한국노총 사업장이고 돌아가신 분 중

국민청원이 진행될 때쯤 저 혼자서라도 연

한국노총 조합원도 계셨으니까요. 민주노총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례식장에 찾

대전지역본부에서 이번 중대재해 사망사고

아가게 되었죠. 유가족들께서 많이 질타하셨

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심이 많았죠. 그

어요. 지역에서는 도대체 뭐 하고 있었냐고.

때 유가족들이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

그 말을 듣고 나니 참 마음이 무거웠어요. 물

숙 님의 투쟁을 보고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주

론 대책위원회가 꾸려지지 않았어요. 그렇지

셨어요. 사고 발생 직후인 2월 15일에 청와대

만 곁에서 뭐라도 함께 하며 힘을 보태야겠

게시판에 ‘한화 대전공장 폭발 진상규명’ 국

다고 생각했죠. 그때 유가족들이 세종시, 한

2019년 4월호


화, 방사청, 노동청 등으로의 항의 방문 및 지

책을 시행한다는 명목으로 공정위험평가서

역 내 현수막 게시 등 연대를 요청했고, 지역

또는 위험요인발굴서를 작성하기로 했었죠.

활동가들과 함께 곁에서 도움 드리게 되었어

그때 노동자들이 참여해서 70개 동에서 135

요.”

건의 위험요인을 발굴했다고 해요. 하지만 어 떠한 개선 조치나 재발방지 대책이 취해지지

작년에 있었던 사망사고에 대해 좀 더 얘기해주

않았어요. 2018년 5월 발생했던 사고의 원인

실 수 있을까요?

에 대해서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고요.

“우선 지난 2월에 있었던 사망사고는 70동

안타까운 건 당시 위험요인발굴서를 작성

공장에서 벌어진 것이에요. 로켓 추진체와 코

했던 분 중의 한 분이 이번 폭발사고로 돌아

어를 분리하고 유압실린더를 연결하는 이형

가신 거예요. 유가족들이 분노하신 것도 그때

작업을 하다 폭발이 발생해서 20~30대 청년

제대로 조사, 처벌, 개선이 이뤄졌으면, 이런

노동자 세 분이 돌아가셨죠. 같은 사업장인

일이 반복되었겠냐는 거죠. 더구나 최신식 첨

한화 대전공장에서 작년에도 비슷한 사망사

단무기인 천무를 생산하는 공장의 작업환경

고가 있었어요. 2018년 5월 29일 51동 공장

이 다른 일반 공장들보다도 더 열악하다는 것

에서 일하던 노동자 다섯 분이 중대재해로 사

에 충격을 많이 받으셨다고 해요.”

망했죠. 사고가 발생한 이후 노동청에서 특별 근로감독을 실시했고, 처벌 126건, 과태료 2

비록 대책위가 꾸려지지 않았지만, 유가족들과

억 6156만원(322건), 시정지시 31건, 권고 7

함께 대응해오셨잖아요. 지역 차원에서는 어떤

건 등 총 486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행위

활동들을 진행하셨나요?

출처 : 민중의소리

를 적발했어요. 그리고 한화 측에서도 안전대

현장의 목소리

33


“대책위가 구성되어서 그 일원으로 참여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활동하기엔

중요한 데, 그걸 여전히 소홀히 생각하는 거 죠.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진상규명, 재발 방지 차원에서 유가족들과 공감대가 형성되

그나마 다행인 건 연 1회 위험환경평가를

었죠. 결국 한화 대전공장에서 반복되는 중대

시행하기로 합의한 거죠. 여기에 방사청, 노

재해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동청, 대전소방본부, 대전시와 대전소방본부

생각했죠.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드리려

가 추천한 전문가 외에 조합원 투표로 선출

고 많이 노력했어요. 산업안전보건법, 산업재

된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참여하지요. 그리

해보상보험법과 같은 법률적 자문이나 현수

고 작업 중지 및 해제, 위험환경 평가를 실시

막과 성명서 등의 내용 수정 및 게시, 항의 방

할 때, 위험요인발굴서를 심의위원들이나 조

문시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연대요청 등

사단에게 공유하기로 했잖아요. 이 정도에 만

을 계속했죠. 특히 한화 및 유관기관들과 유

족할 수는 없겠지만, 이전에 비해 노동자들

가족들이 합의하는 과정에서 작업중지해제

의 참여 측면에서는 진전된 부분이 있다고 봐

심의위원회에 노동자 참여권을 보장받기 위

요.”

한 조항을 넣을 수 있도록 유가족들과 여러 차례 소통했어요.”

방산업체가 갖는 특수성 때문에 노동자에 대해 기밀엄수, 보안유지 등을 이유로 통제가 어느 정

3월 4일 대전시, 대전고용노동청, 대전소방본

도 가해진다고 알고 있는데, 노동자 참여 측면의

부, 방위사업청 등이 참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진전은 어떤 내용인가요?

주재한 ‘한화 중대재해 관계기관 회의’에서 유가 족들의 요구사항이 담긴 합의문이 받아들여졌잖

“위험요인발굴서의 공개 및 공유, 합동조사

아요. 여기서 어떤 내용을 강조해야 한다고 조언

단에 의한 위험환경평가를 약속이 의미 있는

하셨나요?

이유는 노동자 참여가 일정 수준이나마 보장 받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한화 대전공장의 특

“노동자들의 위험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

34

수성 때문이기도 해요. 한화 대전공장은 군

동자들이 가장 잘 알잖아요. 그래서 노동자들

사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예요. 그래서 국방

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노

부와 방사청이 모두 연관되어 있어요. 기밀

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

유지, 보안 등의 이유 때문에 외부에서 관리

가가 작업중지해제심의위원회에 참여할 수

감독하기가 어려운 특성이 있는 거죠. 더구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조언했어요. 하지만

나 발주처가 국방부인데다, 거의 방산업을 특

아쉽게도 관계기관들 회의에서는 사회단체

정 기업들이 독점하다시피하기 때문에 패널

가 아니라 대전소방본부가 추천하는 전문가

티를 가하기가 여러모로 어렵죠. 그리고 해

가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죠. 안전 문제에

당 사업장에 적용되는 안전관련 법제도도 방

서 화약만이 아니라 작업공정에 대한 이해도

위사업법, 산업안전보건법 둘 다 적용을 받아

2019년 4월호


요. 그래서 사업장 안전문제에 대해 어디까지

대재해 기업처벌법의 취지와 내용에 크게 공

가 노동청이나 방사청의 책임인지 명확하지

감하시더라고요.

않아요.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떠넘길 뿐이죠.

또한, 노동조합이 사업장의 안건보건문제 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

이런 식으로 방산업체 사업장이 지닌 특수

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노동조합이 있는 사

성 때문에 안전보건관리가 제대로 되기 어려

업장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노동안전보건활

운 한계가 있어서 감독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동에 대한 인식이 낮은 곳이 많아요. 대개 당

하는 것이 필요하죠. 그만큼 안전보건 관련

장 위험하지 않고, 내가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정보가 보안 문제를 이유로 은폐되지 않고 노

는 이유로 안전보건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동자와 조사단에게 공개하는 것도 중요해요.

않아요. 하지만 정말 산재사망사고가 없었을

노동자 자신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는지 알면,

지, 정말 위험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 들어

대응하거나 관련된 요구를 할 수 있으니까요.

요. 자신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죠.

작업장의 정보가 공개된다 하더라도 일상적

더욱이 노동안전보건활동은 임금과 각종 수

인 안전보건 활동 같은 작업장 분위기가 중요

당 등 다른 문제들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해요. 작업장 내에서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해

자주 밀려나죠. 특히 단체협상이 시작되면,

져야, 합의문의 내용이 작업장에서 진짜로 실

협상 테이블에서 노동안전보건문제는 거래

현되고, 안전한 작업장을 노동자 스스로 만들

를 위한 수단, 흥정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경

어갈 수 있는 현장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고

우가 많아요. 그러다보니 지속적이고 확실하

봐요.”

게 안전보건과 관련한 활동을 해내기가 어렵 죠.

대전 한화공장 폭발사고의 원인에 대한 진상조 사가 진행되고 있잖아요. 이형 작업에 대한 실험

작업장 내 어려움도 있지만, 중대재해의 경

조사로 물리적 요인 또는 작업장 내 위험이 밝혀

우 지역 차원에서 연대해서 경험을 나누고 함

진다고 해도, 그걸 제거 또는 관리하기 위해 작

께 대응하는 것이 중요해요. 이를 위해 중대

업장 안팎에서 유가족들 또는 연대단체 및 활동

재해에 대처하는 매뉴얼을 고민할 필요가 있

가들과 고민을 나눈 적이 있으신가요?

어요. 그런데 매뉴얼을 포함한 대응활동이 가 능한 조직 단위가 없어요. 예를 들어, 한화 대

“유가족 중 몇 분은 한화와 관계기관들이 처 벌받지 않는 것에 많이 답답해하고 화도 내셨 어요. 사업장에 대한 관리 감독의 책임을 그 들에게 물을 수 없는 상황에 실망하신 거죠. 그래도 대응 과정에서 저나 다른 분을 통해

전공장 폭발사고 발생 시, 대전충청권 내에서 공동대응을 할 수 있는 조직 단위가 필요한 거죠. 이를 위해서 공장 담을 넘어선 지역 내 역량 있는 네트워크가 구축되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해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에 대해 알게 되셨죠. 중

현장의 목소리

35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실질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 서울교통공사노조 한창운 노동안전국장 인터뷰

지안 상임활동가

지난 3월 19일 한창운 노안국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노조가 있는 차량기지를 방문했다. 이날의 인터뷰는 매우 다채로웠다. 노안활동가와 조직들의 연대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부터 노안활동이 법적인 경계를 아울러야 한 다는 의견, 그리고 미조직, 영세사업장의 노안문제를 위해 상위 노조들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여 러 가지 층위에서 노안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차, 그리고 양자를 이어주는 총 세 가지의 설비가 “저는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국장 한창운입니다. 현장에서는 기술파트의 신호를 담 당하고 있어요. 지난 17년 5월 서울지하철이 통 합되었는데요. 노조의 통합은 18년 4월 14일에 있었습니다. 통합 전에는 1~4호선의 노동안전부 장을 했었습니다. 줄곧 노동안전보건 활동을 해온 셈입니다.”

기술파트 신호 담당이란 어떤 업무인가요?

있어요. 신호설비가 자동으로도 되지만 안전 간 격을 유지하면서 열차가 오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예전에는 손으로 깃발을 들어 신호를 보내는 일이었죠. 사람 힘으로 선로 를 바꾸던 업무가 요새는 프로그램화가 되어 전자 적으로 움직입니다. 즉 여러 열차가 신호를 토대 로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역할입니다.”

어떻게 노조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노안활동을 하게 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자동차도 신호가 있잖아요. 열차는 자동신호이 긴 한데, 그게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역,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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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지회장도 하고, 대의원


계획들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현장 점 검을 하는 거죠. 노동조합 주도로 이루어졌지만, 사용자 측도 불러서 함께 입회합니다. 이러한 활 동이 근골격계 실행위원의 담당입니다. 법적으로 는 3년에 한 번 씩 조사를 하게 되어있어요. 그렇 지만 조사를 한다는 것이 활동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해요. 만약에 노조 집행부가 사용자 측 과 친화적인 어용노조라면, 사용자 측과 자체 조 사를 하는 방식으로 상당히 형식적인 조사가 이루 어질 때가 있죠. 그래서 조사를 한다는 것만으로 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시간과 돈이 많이 들더라도 좋은 기관에 의뢰해서 제대로 된 조사를

출처 : 한창운

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죠. 보통은 노조, 사용자 측, 연구용역 기관 세 주체가 같이 90일에서 150일 정도 조사를 합니다. 2020년에는 모든 호선을 통 합해서 진행하려고 해요. 조사한 지 3년이 안 된 현장 간부도 하다가, 선배 활동가의 권유로 근골

셈이지만 통합이라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2년

격계 실행위원을 1년 정도 하게 되었어요. 그 후

만인 내년도에 조사를 실행할 예정입니다.”

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하 명산관) 활동했습 니다. 서울교통공사에는 직종별로 명산관이 있어

최근에 무인운전 테스트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

요. 저는 기술 파트이니 기술 담당 명산관 활동을

았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무인운전을 통해 인력을

했습니다. 2016년도부터 서울지하철 1~4호선

감축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은데요. 1인승무제

노안부장을 하게 되어 현재의 활동까지 이어지게

와 비슷한 맥락에서 대응이 필요한 일일 것 같아

되었어요.”

요.

근골 실행위를 통해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무인운전은 사용자 측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를 해왔던 사업이에요. 먼저 무인운전은 안전문제와

“2004년에 처음 근골격계 유해요인 조사를 했어

직결됩니다. 열차가 안전하지 않다면, 노동자뿐

요. 근골 사업 이후에 근골 예방 활동을 해야 한

만 아니라 탑승한 승객들 전부가 위험에 노출됩니

다고 요구해서 사측과 합의해 ‘근골 예방 프로그

다. 그런 점에서 무인운전 시스템이 정말 100%

램’을 만들었어요. 그 안에는 ‘근골 실행위원이 월

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무

16시간 활동해야 한다.’ 등의 조항이 있었어요.

인운전은 검증되지 않은 시스템이라는 것이 노조

이 조항에 따라서 유해요인조사에 따른 실행이 잘

의 입장입니다. 인력감축 문제도 이야기하지 않을

되고 있는지, 조사 결과에 따른 단기·중기·장기

수 없는데요. 무인운전뿐만 아니라 1인 승무제 자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37


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차장과 승무원, 이렇게 2

해도 환경 개선부터 시작해서 인원충원까지 충분

인제로 운영되던 것이 두 가지 역할을 1명이 맡게

히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다른 곳들 역시 직종

되면서 업무가 과중해지기 때문에 안전에도 당연

과 개별 사업장의 상황에 따라서 그 특성이 있으

히 구멍이 뚫립니다. 예를 들어 2002년 대구지하

니 산보위 구성은 정말 절실한 문제일 거예요. 관

철 참사도 1인 승무제를 도입한 후 발생한 사고라

련해서 자문이나 도움 요청이 온다면 언제든지 가

고 봅니다. 여러 가지 기록에도 나와 있지만 2인

능한 만큼이라도 돕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는 조

승무만 되었어도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거예

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되, 그 이후의 어떤

요. 노조의 기조는 2인 1조가 최소한의 안전장치

예방책들을 만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관리·감

라는 것입니다. 현재 서울 지하철 1~4호선은 2인

독할 것인지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승무제이고 5~8호선은 1인 승무제입니다. 물론 1~4호선이 10량으로 5~8호선보다 2량이 더 많

한창운 활동가가 인터뷰 내내 강조했던 것은

은 것도 있지만 5~8호선은 나중에 만들어진 호선

어떤 사업이든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이루어질

이니 자동 운전 시스템이 되어있어요. 여기서 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노안활동

용자 측은 자동운전도 아니고 무인으로 운영을 하

은 노조가 사업과 활동에 얼만큼 개입하고 주체

고 싶은 거죠. 작년에 노조가 싸워서 무인운전 도

적으로 질문하고 문제 제기하는지에 달려있다

입은 안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그 뒤

는 것이다.

로는 서울시,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무인운전시 스템에 대해서 사회적 논의를 하기 위해 공청회를

“산안법은 현장에서의 웬만한 문제를 다룰 수 있

열자고 한 상황입니다.”

는 채널로써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나 사업장 의 모든 안전은 산보위에 달려있다고 봐야죠. 물

산보위 활동을 오래 해오셨는데, 새로 산보위 구성

론 산보위 역시 매우 형식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

하려는 사업장에 조언을 해준다면요?

어요. 법에 아무리 보장되어있더라도 형식적으로 하려면 얼마든지 형식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38

“당연히 처음부터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을 거예

거든요. 그런 점에서 노조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

요. 분기마다 실행해야 하는 사업들이 있고, 그것

으면 산보위가 있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요. 의

과 별도로 해당 시기에 현장에서 이슈가 되는 문

결 사항들도 법적으로, 형식적으로만 넘어갈 수도

제들이 있을 거예요. 그래서 산보위 활동이란 항

있거든요. 그래서 어쩌면 있는 사업을 제대로 하

상 전략·전술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가장 중요한

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법에

건 산보위 활동을 잘 하고 있는 노조를 방문해서

나와 있는 것만 제대로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아

직접 참관을 해보는 거라고 조언해드리고 싶어요.

요. 예를 들어 근골 조사만 하려고 해도 활동가 조

최근 산보위를 구성하게 된 학교비정규직의 경우

직이라든지, 교육이라든지, 부수적인 활동과 사업

에는 너무 도움을 주고 싶어요. 사실 학교뿐만 아

이 필요해요. 특히 노안 사업을 할 때 현장에서는

니라 조리원들의 작업환경이나 처우가 굉장히 심

귀찮아하는 것도 있긴 있어요. 이럴 경우에 충분

각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근골 사업만 제대로

히 사업을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내야 해요. 그런

2019년 4월호


과정이 없으면 또 ‘왜 하냐, 해봤자 바뀌지도 않는

시작하는 곳이나 힘든 사업장에 가서 도와주고 조

데’라는 의견들도 생겨요. 이런 의견은 노조가 설

언만 해줘도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득해야 할 우리의 몫이죠.”

노동안전보건 영역은 활동가가 하려고 마음만 먹 으면 한도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분야예요. 그만큼

말씀하신대로 실질적으로 노안활동이 현장에서 의

할 게 많다는 얘기기도 하고 가능성이 많은 영역

미가 있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네트워크가 없는 건 아니지만, 활동가 개인의 인적 네트워크 범위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는 활동가들이 중요합니

를 넘어서서 좀 더 높은 차원에서 일상적으로 교

다. 경험도 있어야 하고요. 경험과 더불어서 공부

류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담당 기구가 있

를 많이 해야 해요. 지금은 예전 같지 않게 사용자

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노동안전문제는 노

측도 산업관리기사나 전문가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가 없는 문제라고 흔히 말하는데, 실제로 우리

법리싸움이 치열합니다. 거기서 이기지 못하면 아

가 그렇게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무것도 못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한 50%만 진행

특히 영세사업장 같은 경우에 당연히 노조가 없을

해놓고 이건 사업 진행한 거다라고 사측이 주장하

확률이 높고 작업 환경도 더 열악할 겁니다. 그런

기도 해요. 그럴 때는 노조가 나서서 싸워야겠죠.

데 그런 사업장에서 열악한 노안 문제를 제기하려

그래서 공부와 투쟁이 동시에 필요한 일입니다.

면, 다시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주체인 노조가

지식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태에서 투쟁해야 승산

없다는 모순이 있어요. 저는 이 문제를 더 상위 조

이 있을 거예요. 두 번째로는 어떤 법 조항에 근거

직, 더 체계 잡힌 노조가 있는 단위에서 나서서 같

해서나 어떤 담론의 결과물을 넘어서, 그 해당 사

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노안활동가

업장의 직접적인 활동을 통해서 사업들을 만들어

로서 가장 주요하게 고민하는 지점이고 그 문제를

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안활동이 당연히 법을 넘

계속 제기하고 싶습니다.”

어서는 지점도 있어야겠지만, 일차적으로는 법적 지식도 갖추면서 각 사업장에 맞는 활동을 통해 개선을 해야 한다고 봐요.”

노안활동가로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 엇이라고 보시나요?

“노안활동가끼리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노조, 노안 단체, 노안 활동가, 기관 등이 정보도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이 있어야 해요. 힘든 사업 장이 있으면 가서 도와주기도 하고 고민도 나누 고 해야 서로 발전이 생겨요. 뛰어나게 잘하는 사 업장이 있거든요. 그런 사업장에서 처음 노안활동

노동안전보건 활동가에게 듣는다 39


노동시간읽어주는 읽어주는사람 사람 노동시간

게임 속 노동과 노동의 시뮬레이션 김상민 문화사회연구소 소장

비슷하다. 아이의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높은 게임 들이나 멀티 플레이어 게임들은 즐기기 어려웠을 출처 : google play 갈무리

것이다. 그나마 단순한 루틴으로 이루어지고 정해 진 순서에 따라 적절한 타이밍에 클릭이나 터치를 해주기만 하면 되니 나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단순 업무를 완료하면 금색 동전이 나 초록색 지폐가 짤랑 혹은 촤르륵 소리를 내면 서 자기의 아바타에게 날아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쯤 아이 패드라는 물건이 세상에 나왔고, 당연하게도 노트 북이나 데스크탑 컴퓨터 보다는 납작한 이 태블릿 으로 이런저런 것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자연스럽 게 되었다.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게임을 하는 것 이 대부분의 용도였다. 친구들이 하던 게임이나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게임을 설치해 플레이하곤 했 는데, 유난히 좋아했던 게임들이 있다. 다름 아닌 미용실 게임과 햄버거 가게 게임이었다. 노동과정부터 자본주의 윤리의식까지 가르치는 게임의 공식 미용실 게임은 플레이어가 애견 미용사가 되어 서 줄 서 있는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머리를 손 질한 다음 샴푸를 하고 드라이어로 말려 주고서 돈을 받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빨리하지 않거나 순서가 꼬이면 손님들이 화를 내고 가버리 거나 돈을 지불하지 않기도 했다. 햄버거 가게도

40 2019년 4월호

무척 보람된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놀이와 그에 대한 보상은 많은 게 임들이 채택한 기본적 방식이다. 플레이어가 받는 보상이 실제 돈은 아니지만,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주어진 임무(머리 깎기, 햄버거 만들기 등) 를 한정된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수행할 때에만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아이는 게임을 플레이할 뿐이지만 언젠 가 자신이 살아갈 현실의 노동 조건 하에서 어떻 게 고객에 응대하고 주어진 노동의 프로세스에 맞 춰나가야 하는지 학습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정해진 순서나 시간에 맞추지 못하거나 한눈을 팔 아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여지 없이 자기 노동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받지 못한 다는 매우 자본주의적인 윤리의식도 어느새 심어 준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게임이지만 진지하게 들 여다볼 필요도 있다.


어느새 게임들은 점점 세련되고 복잡한 방식으

재미를 얻는다. 게임이 재현하는 상황이나 시각적

로 디자인된다. 화려한 그래픽과 실감 나는 장면,

경험은 현실에서와 무척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지

캐릭터의 묘사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내에서

만, 게임을 통해서 플레이하는 노동은 언제나 노

노동하도록 혹은 ‘노동을 플레이’하면서 게임을

동이 아니라 플레이, 즉 놀이가 된다. 그렇다고 해

즐기도록 한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들에서 특

서 게임 속에서의 노동이 무의미하거나 아무 것도

히 그런 특성들이 보인다. 예컨대 농사 시뮬레이

아닌 것은 아니다. 노동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플

션 게임이나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은 플레이

레이어는 여전히 노동을 경험하는 셈인데, 때로는

하는 일-노동이 얼마나 신나고 흥미롭고 매력적

그 노동의 시간과 강도가 단순히 감내해야 할 것,

인지를 보여준다.

게임처럼 즐겁고 즐길만한 것으로 낭만화하게 된 다.

농사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광활한 미국, 유럽 의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거나 각종 트랙터와 콤

게임은 게임일 뿐이니 즐기기만 하라는 것도 일

바인 등 성능 좋은 첨단 농기계와 시설을 선택해

견 맞는 말이지만, 게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플레

가면서 파종에서부터 수확과 저장에 이르기까지

이어의 노동과 그 노동에 투여되는 시간, 그리고

실제 농사를 짓는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플레이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실제로 매우 물질

현재 실제로 시판되고 있는 고가의 농기계 브랜드

적인 것으로 그것이 현실과 맺는 관계는 매우 밀

가 그대로 등장하고 농장주와 계약을 맺어 특정

접하다. 말하자면, 게임의 플레이 혹은 게임을 통

농작물을 수확하는 등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이들

한 노동은 그 자체로 플레이어의 재미만을 제공하

도 실감나게 농사를 지어볼 수 있다. 트럭운전 시

도록 설계되지는 않는다. 모든 노동의 절차가 자

뮬레이션 게임 또한 플레이어가 운전기사가 되어

동화되고 가상화되는 게임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

유럽의 경계를 넘나들며 여러 나라의 풍경과 날

면서 플레이어는 스스로 경영자가 되는 자본주의

씨, 도로 등을 경험하면서 화물을 정해진 시간 안

적 인간, 호모에코노미쿠스, 나아가 노동을 놀이

에 배달하는 것이 목표다. 실제 판매되고 있는 유

하거나 놀이로 노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금

명 자동차 제조사의 트럭 모델을 구매하기 위해서

여기에서의 노동 현실과 조건을 그저 하나의 시뮬

는 게임 속에서 대출도 받아야 하고 운전 도중 사

레이션의 대상으로 경험한다. 또한 게임은 플레이

고가 발생하거나 교통법규 위반을 할 경우 수리비

어의 노동 시뮬레이션이면서 동시에 플레이어의

가 들거나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다. 트럭에서 라

게임 데이터 수집과 이를 통한 미래 경제의 시뮬

디오를 듣거나 내비게이션 장치를 켤 수도 있고

레이션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장시간 운전 시에는 졸음운전을 할 위험도 있다.

트럭운전 시뮬레이션 게임 플레이어들의 데이 터가 머지않아 무인(자동운전) 트럭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나 플랫폼을 제작하기 위한 기본 데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임은 정말 ‘게임’일 뿐일까

터로 쓰일지 누가 알겠는가. 게임 속 노동이 현실 노동의 시뮬레이션이 되고 또 그것이 인간의 노동

이처럼 현실에서의 노동 환경과 조건은 시뮬레

을 대체할 자동화의 시뮬레이션이 되는 그런 시대

이션 게임 속으로 들어오면서도 여전히 유지되는

가 금방 도달할 것만 같다. 그때 인간의 노동은 또

것처럼 보인다. 플레이어들은 노동에 대한 시뮬레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까.

이션으로, 즉 노동을 재미로 플레이하면서 경험의

노동시간 읽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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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 이야기

투명함을 만들어내는 노동자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데 문제를 삼으

있는 경우 병원이 행정적 처분을 받기도 한다. 실

면 문제가 된다고 했어요.”

제로 한 병원은 이곳의 건강검진을 맡았다가 특

- 영화 ‘베테랑’에서

수건강진단 업무 2개월 금지 처분을 받은 적도 있다. 병원 평가에도 문제가 생길 수가 있기 때문

경인 지역의 한 중소기업은 유리제품을 만들고

에 이 회사 맡기를 꺼려 직원 건강진단 실시에 어

있다. 화학용기, 화장품 용기, 약병, 가전제품에

려움을 느낀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산업

들어가는 초자부품 등을 대기업의 주문에 따라

보건의 요구가 더 절실한 곳이 오히려 전문가들

생산해내고 있다. 반세기의 오랜 역사를 지닌 이

이 기피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회사는 아쉽게도 산업안전보건 관계자 입장에서 면 참으로 계륵 같은 곳이다. 2010년에는 산재다

유리를 만드는 산업의 현황은 어떨까. 2019년

발 사업장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

현재 한국유리공업협동조합의 조합원 명부를 보

내용을 살펴보면 사망이나 중독 같은 심각한 재

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

해가 발생했다기보다는 소음성 난청 유소견자가

다. 대기업에서는 기술력이 좀 더 필요한 판유리,

3명 나와서 3%의 재해발생율을 기록했다는 이

건축자재, 자동차유리, 용광로 내열소재, LCD의

야기다. 그 때 노동자수가 100여 명이었고 지금

기판이나 액정유리 등을 만든다. 중소기업에서는

은 50명 정도이다. 단순 계산으로는 직업병 유소

식품용기와 그릇, 화장품 용기, 약병, 화학실험용

견자가 두 배 가량 폭증한 것처럼 통계적 착시를

비커나 플라스크 일체, 음료수병 등을 만들고 있

보여주게 될 것이다.

다.

직업병·산업재해 유소견자가 발생하면 해당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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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제조업에 가깝다 보니 규모를 가리지

서는 평소보다 귀찮은 일들이 생긴다. 현장지도

않고 산재사고가 발생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모

를 하고 유소견자 관리를 해야 한다. 소음성 난청

대기업 공장에서 판유리에 깔려 근로자가 숨지는

의 경우 청력검사과정이나 결과 판정에 문제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2019년 4월호


유리공장에서 유리를 만드는 라인의 전경이다. 보호구와 작업복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수십 년 해온 일이기 때문에 다들 익숙하다.

중소기업에서 주로 만들어내는 유리제품들은

들 모두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료들을 혼합하여 뜨거운 열로 녹인 뒤 용해·성

산재를 추방하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하지만, 허

형하고 서서히 식혀 후처리와 가공을 하고 포장,

탈하게도 글로벌한 세계 자본의 흐름에 따라 직

출하하는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

업병을 유발하는 산업들이 구조조정의 흐름 속에

서 고열·적외선에 의한 온열장애·백내장 등의 발

재편되거나 사라져가는 경우도 많다.

생 가능성이 생기게 되고, 분진에 의한 호흡기 질 환, 소음에 의한 난청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공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된 우리 주변 이

장에서도 수십 년간 난청이 발생하여 왔고, 최근

웃에는 아직 옛날 ‘공장’들이 남아있고 여전히 힘

작업환경 측정에서는 유기화합물인 디클로로메

들고 위험한 일을 예전과 다름없이 묵묵히 해 나

탄이 노출기준치를 상회하여 측정되었다. 하지만

가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도 기록해본다.

관할 관서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정의 본질은 크게 바뀌지 못했다. 영세한 업체들은 중 국과의 경쟁에 밀리거나 가파른 임금 상승의 여 파로 회사 자체의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결 국 지금의 이 노동자들이 정년을 맞이하게 되면 자연스레 사라질 사양산업이라는 걸 사장과 직원

김지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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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작업환경과 노동자의 건강장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 안전과 보건에

작업의 성질상 온도·습도 조절장치를 설치하는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그 책임의 소재를 명확하

것이 매우 곤란하여 별도의 건강장해 방지 조치

게 하여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를 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아도 되고, 작업의 성

조성함으로써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

질상 냉방장치를 가동하여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

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쾌적하다’는 단어

여야 하는 장소로서 보온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

의 사전적 의미는 ‘기분이 상쾌하고 즐겁다’이다.

를 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정하

노동 현장에서 상쾌하고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고 있다.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작업환경을 쾌적하 게 만든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즉,

A 씨는 자동차를 개발하는 연구소에서 차량 시

사업주는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보건을 유지·증

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영상 40~50℃의 환경

진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과 영하 25~40℃의 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차량의 운행상태를 살피는 고온시험, 저온시험 을 수행한다. 시험 차량을 시험실에 장착하고 운

과거에 비해 한겨울 혹한작업과 한여름 혹서작

행시켜 각각의 환경에서 시험 차량의 상태를 체

업 등 혹한, 혹서작업 시 안전·보건에 관한 조치

크하고, 시험 종료 후 차량을 이동시키는 등 작업

가 필요하다는 뉴스가 자주 나오고, 안전보건공

과정에서 고온과 저온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

단이나 노동부 등 관계부처에서 이에 대한 예방

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심근경색이 발

책을 배포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볼 수

병하였다. 발병 3개월 전부터는 저온시험 차량에

있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온도·

직접 탑승하여 영하 20℃에서 상온까지 온도가

습도에 의한 건강장해의 예방’에 대하여 고열작

변화하는 과정을 직접 체크하였다. 발병 전 12주

업, 한랭작업, 다습작업, 폭염작업 등에 대하여

동안 1주 평균 업무시간은 40시간 내외이며, 1일

정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이 실내에서 이루어지

업무시간 중 40% 가량 고온, 저온시험실을 들락

는 경우 냉난방 또는 통풍 등을 위하여 적절한 온

거리며 작업을 수행하였다. 저온시험에 대비해서

도·습도 조절장치를 설치하여야 하고 냉난방 장

사업주가 지급한 용품은 잠바와 장갑뿐이다. 업

치를 설치하는 경우 외부의 대기온도보다 현저히

무상 과로 및 스트레스 요인 중 무엇보다 재해자

낮게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의 심근경색 발병에는 극심한 온도변화의 작업환

44 2019년 4월호


경이 주된 요인이라고 판단하였고 현재 근로복지

대한 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1차적인 관심과

공단에서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소개한 사건의 경우 업 무시간의 많고 적음보다는 영상 40~50℃와 영하

현재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20~40℃ 등 80℃ 이상의 극심한 온도변화가 발생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 시 뇌심혈관

하는 작업환경에서 수년간 업무를 수행하였던 상

계질병의 발병 전 12주 동안 1주 평균 52시간을

황에 초점을 맞춰 업무 관련성 여부를 판단하여야

초과하는 경우 업무관련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

한다고 본다. 아직 사건이 진행 중이라 결과를 지

고, 업무관령성 판단 시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켜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건 조사 과정을 통해

있는 경우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느낀 문제점은 뇌심혈관 질병의 경우 ‘업무시간

평가하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삼고 있는 ‘업무

의 많고 적음’에 대하여 너무 큰 비중으로 바라보

부담 가중요인’은 ① 근무일정 예측이 어려운 업

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목적과 같

무, ② 교대제 업무, ③ 휴일이 부족한 업무, ④ 유

이 기분이 상쾌해지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쾌

해한 작업환경(한랭, 온도변화, 소음)에 노출되는

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업무, ⑤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 ⑥ 시차가 큰

일하는 과정에서 건강에 어떤 악영향을 끼칠 수 있

출장이 잦은 업무, ⑦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로

는지 작업환경적 요인에 대해 보다 세밀한 검토와

구분하고 있다.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차적으로 뇌심혈 관계 질병 사건의 업무 관련성 여부를 판단하는 시

그런데 여전히 뇌심혈관계 질병에 대한 업무상

각 자체가 집착이 심하다고 느낄 정도로 업무시간

과로 및 스트레스의 정도에 대한 판단 시 1차적

에만 편중되는 것을 바꿔야 하는 것은 물론 작업

으로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어느 정도인

환경적 요인,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

지를 평가하고, 후차적으로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부담 가중요인에 대하여 보다 세밀한 검토를 통해

있는지 여부, 만약 업무부담 가중요인이 있다면

업무부담 가중요인을 추가하거나 보완하는 노력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재해조사와 판

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이 이루어지고 있다. 여전히 업무상 재해 관련 사건조사 등 실무과정에서 무엇보다 업무시간에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여 (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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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건강 상식

실신 (Syncope) TV를 보다 보면 드라마에서 갑자기 충격적인

실신은 크게 분류하면 미주신경성 실신, 기립

이야기를 듣거나,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쓰러

성저혈압에 의한 실신, 심인성실신 3가지입니다.

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학창 시절 아침

그 밖에 신경계질환에 의한 실신, 기타 다른 요인

조회 시간에 갑자기 쓰러진 친구들도 있었습니

에 의한 실신, 원인불명에 의한 실신이 있습니다.

다. 이번 달에는 성인이 살아가는 동안 100명 중 3명 정도가 한 번은 경험하여 드물지만은 않은 실신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2002년 실신의 원인별 분포 자료에 의하면 원 인불명인 경우(36.6%)가 제일 많습니다. 원인불 명인 경우도 미주신경성 실신인 경우가 많을 것

실신은 뇌혈류량 감소로 인한 일시적 의식 소

으로 추정하지만 문제는 실신환자를 검사해도 원

실로 정의됩니다. 실신은 발생이 즉각적이며, 지

인이 뚜렷이 규명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속 시간이 짧고 회복이 자발적으로 특별한 조치

그리고 실신의 원인이 다양하고 원인에 따라 예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흔히 ‘의식을

후가 양호한 질환부터 불량한 질환까지 뒤섞여

잃고 쓰러졌다‘고 하는데 이는 여러 가지가 있습

있다는 점 또한 실신의 특징입니다.

니다.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도 갑자기 의식 을 잃을 수 있으며, 관상동맥이 갑자기 막혀 심장

실신의 제일 흔한 원인은 미주신경성 실신입니

의 펌프기능이 떨어지는 심근경색의 경우에도 의

다. 미주신경은 부교감신경 중 뇌신경에서 나와

식소실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의식이

심장, 폐, 위에 분포한 신경을 말합니다. 미주신

언제 회복될지 장담할 수 없는 반면 실신은 의식

경성 실신은 부교감신경인 미주신경의 과도한 활

이 수 초 내지는 1분 이내의 짧은 시간에 회복되

성화로 인해 발생합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교

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실신과 혼동하기

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쉬운 개념 중 하나가 어지럼증인데, 어지럼증은

교감신경은 공포와 분노, 긴장했을 때 동공은 확

의식 소실이 일어나지 않고 단지 어지럽기만 한

대되고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혈관이 수축하어

것을 의미합니다. 또 실신할 것 같은 심각한 증

혈압은 상승합니다. 부교감신경은 반대의 작용

상을 느끼지만 의식은 잃지 않는 경우를 ‘실신전

을 하여 혈압과 맥박을 떨어뜨리는 등의 신체 에

(Presyncope)’이라고 합니다.

너지를 절약하고 저장하는 작용을 합니다. 두 신 경은 상호작용을 하여 한쪽이 너무 항진되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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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른 한쪽도 활성화합니다. 극도로 긴장하거나 스

지면 확실히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도 특

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흥분하면서 반작용

별한 치료가 있는 것은 아니고 누워 있다가 천천

으로 부교감신경도 흥분합니다. 이 때 부교감신

히 움직이게 하거나 저혈압을 유발할만한 약물

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되면서 심장박동수가 급격

을 복용하는 경우 약물의 조절, 적절한 수분공급

히 감소해 뇌로 가는 혈류가 일시적으로 멈추거

이 필요하겠습니다.

나 부족해져 의식을 잃고 쓰러져 미주신경성 실 신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미주신경성 실신은 스

다음으로는 심인성 실신, 즉 심장이 문제가 있

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 발생합니다. 스트레스

어 혈류가 원활하게 뇌로 가지 못하는 경우 실신

를 받는 상황은 개인마다 다릅니다. 심하게 놀라

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정맥으로 일시

거나 채혈하면서 피를 볼 때, 몸이 몹시 아플 때,

적으로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경우, 대동맥판막이

밀폐된 공간에 서 있을 때, 배뇨할 때, 기침할 때

좁아지거나 좌심실의 유출로가 좁아져 혈류가

등 다양합니다. 그리고 미주신경성 실신은 대부

제대로 가지 못하는 경우, 폐에 혈전(피덩어리)

분 전조증상이 있는데 실신 전에 어지럽고 속이

이 생기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심인성 실신이

메슥거리거나 식은땀이 나고 귀가 먹먹해지고 피

발생합니다. 이 경우 꼭 원인이 되는 심질환을

부가 창백해지는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 특징입니

확인해서 치료해야 합니다.

다. 특정한 상황과 이때 발생하는 전조증상, 실신 의 양상이 진단에 제일 중요합니다. 기립경검사

실신 환자의 대부분이 위에서 설명한 미주신

라고 오래 서 있게 하여 실신 유무를 알아보는 검

경성 실신과 기립성 저혈압이 실신의 대부분을

사가 진단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치료

차지하며 크게 위험한 질병은 아니며 이차적인

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자주 발생하지

두부 손상을 막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 심장이

않는다면 전조증상이 있을 때 얼른 앉거나 눕는

문제가 되어 발생하는 실신은 그 빈도가 낮지만,

등 자세를 낮추어 실신으로 인한 두부 손상을 막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료를 통해서 심질환 유무를 꼭 확인해야 합니 다. 실신이 심질환의 병력이 있거나 고령, 전조

또한 기립성저혈압으로 인한 실신이 있습니다.

증상 없이 발생한다면 고위험 실신에 해당합니

갑자기 일어날 경우 순간적으로 핑도는 증상을

다. 또한 흉통이나 호흡곤란, 두근거림이 실신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반신에 모인 혈액이

전에 있었다던가 누워있거나 앉은 자세에서 실

갑자기 서는 경우 뇌로 제때 전달이 되지 않아 발

신이 발생한다면 이 또한 고위험 실신에 해당하

생합니다. 나이가 많은 경우 더 증상이 빈발하는

여 심장질환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겠습니다.

데 대부분은 잠시 어지럽다가 회복되는데 심한 경우 실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충분히 누운 상태에서 혈압을 측정한 후 즉시 일어나게 하여 1분 간격으로 혈압을 3회 측정하여 수축기혈압 20mmHg 또는 이완기혈압 10mmHg으로 떨어

장영우 선전위원, 내과의사

노동자 건강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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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읽기

2019년 이연주의 시를 읽는다는 것 매음녀 4 / 이연주

반쯤 부서진 문짝을 박살내고 아버지가 집을 나가던 날 그날도 함박눈 내렸다

함박눈 내린다 소요산 기슭 하얀 벽돌 집으로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는 관공서 지프에 실려서 간다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고물거린다

달아오른 한 대의 석유 난로를 지나

한때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진찰대 옆에서 익숙하게 아랫도리를 벗는다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양다리가 벌려지고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켜 붙는다

고름 섞인 누런 체액이 면봉에 둘둘 감겨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유리관 속에 담아진다

쉬고 싶다

꽝꽝 얼어붙은 창 바깥에서 흠뻑 눈을 뒤집어쓴 나무 잔가지들이 키들키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그녀를 웃는다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우리는 첫 문단에서 이미 시적 화자가 어떤 정서 적 풍경 속에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왜 관공

된가래가 엉겨 붙습니다. 그가 2층 계단을 오르며 내다본 창 밖은 여전히 함박눈이 내립니다.

서 지프에 실려 소요산 산기슭 하얀 집으로 가고 있는 걸까요? 1960년대부터 이 시가 쓰인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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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음녀 4”를 비롯 매음녀 연작시는 이연주 시인

년대까지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운영된 낙검

의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1991, 세

자 수용소가 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동두천 소요

계사)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한국문학사에서 지금

산입니다. ‘매음녀’인 그는 성병 검진을 받고 강제

껏 성매매/여성에 대해 집요하게 쓴 작품이 거의

치료를 받기 위해 수용소로 끌려가는 중입니다. 나

전무하다는 점에서 시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작

뭇가지들이 키들키들 웃는 모습을 보며 그는 어린

품입니다. 그의 시가 발표된 90년대는 미군을 대

시절을 떠올립니다. 함박눈은 그의 삶이 원하지 않

상으로 한 성매매 산업이 국가에 의해 조직되고 관

는 방향으로 흘러갈 때마다 내립니다. 호주머니 속

리되어온 폭력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며

에서 부지런히 다른 추억을 찾아보지만, 그 추억도

수용소가 폐소된 시기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

2019년 4월호


에서 시 “매음녀 4”는 국가폭력과 억압 속에 놓인

호명하며 성매매/여성의 고통에 감응하고 또 그들

성매매/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보고 생각할 풍경을

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치열한 시대적 사투를 벌였

담담히 서술해 갑니다. 한편, 그의 다른 연작시에

다면, 2010년대의 이현호는 지금껏 문학/사회가

서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기보단 그들의 삶

‘매음녀’, 즉 여성을 착취·소비해온 방식을 재현하

을 지나치게 비관적이고 피로 물든 고통의 장으로

며, 더 나아가 성매매/여성은 그를 기억하는 자를

시인 자신을 투사하여 표현했다는 시대적 한계를

통해서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됩니다.

지니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그들의 고통만을 소 급하고자 하는 자기투사의 욕망 속 이연주의 ‘매음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페미니즘 리부트를

녀’가 2019년에 와서도 낡지 못하는 이유는 이 때

거쳐 이제 한국 사회는 피해자다움이 어떻게 당사

문입니다. 2010년대에 와서도 여전히 남성의 성

자(화자)의 목소리를 빼앗게 되는지, 그렇다면 타

장/위무 서사에 필요한 제물로 여성을 소비하며 비

자, 즉 목소리를 전달하는 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

윤리적이고 성차별적인 ‘감수성’을 고집하는 작품

야 하는지 고민하는 지점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발표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연주의 시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 현호 시인의 시집 <라이터 좀 빌립시다>(2014, 문

윤이형 소설가는 올해 초 한 인터뷰에서 글은 인

학동네)에 수록된 “매음녀를 기억하는 밤”은 시의

간보다 위대하지 않고, 글도 생활과 같은 선에 있

부제를 통해 이연주 시인의 매음녀 연작시를 오마

다고 말했습니다. 글이 사람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주하여 쓰인 시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는 그의 생각은 창작물에 대한 작가의 전지전능함

시적 화자는 필리핀으로 원정 성매매를 하러 갔던

을 칭송하던/받던 시대에서 벗어나, 글을 통해 작

‘추억’을 떠올리며 헛헛함에 사로잡힙니다. 시 속

가 또한 한 인간으로서 기본 윤리를 지키기 위해

성매매 여성은 사람이 아닌 귀신으로 묘사되며 화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

자에게 “수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위로하

음을 나타냅니다. 낡아야 할 것들이 순차적으로 낡

거나 허무맹랑한 꿈을 꾸는 젊은 예술가의 겨드랑

아가는 시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연주의 시

이를 간지럽히는 존재로 ‘기능’합니다. 종국에는

를 2019년 4월 다시 읽습니다.

성매매 여성을 기꺼이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구절”로 기억하는 ‘나’의 낭만적 심상에 혼자 감격 하여 비장한 어조로 끝을 맺습니다.

* 덧붙이며, 늘 저의 부족한 생각이 풍성해질 수 있 도록 함께 읽고 기꺼이 의견을 보태준 경계너머의 마 녀들에게 간소하게나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1990년대의 이연주가 여성 주체로서 ‘매음녀’를 은수 페미니스트 작가

문화읽기

49


발칙 건강한 책방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닌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고통과 함께함에 대한 성찰』 엄기호 저, 나무연필, 2018. 12.

이 책은 저자가 국제 인권 활동을 하면서 만

닌, 고통에 대한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낼 수 있

난 ‘증언자들’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을까?”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아마도 그에

에 대해 가졌던 의문에서 시작한다. 저자에 따

대한 대답으로, 이 책에서 강조하는 ‘고통의 곁

르면, 보통 이런 행사들은 세 가지 단계로 구성

에서 만들어지는 언어’를 제시하는 것 같다.

된다. 처음에는 당사자들이 자신의 고통에 대 해 증언하고, 두 번째는 이 증언에 대해 학자와

저자에 따르면, 그동안 고통에 대해 말하기를

전문가, 활동가 등이 모여 토론하는 자리가 만

억눌러왔던 사회에서 고통에 대한 말하기가 늘

들어지고, 마지막으로 참가자 모두가 모여 이

어난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과

고통이 만들어진 세상을 향해 행동을 개시하

정을 통해 고통은 늘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겠다는 정치적 선언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

알게 되고, 특히 그동안 많은 사람에게 비가시

다. 저자는 이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하면 정의

화된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날수록, “사람

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전시하여 소비하지 않

과 사회를 바라보는 기초 값”이 바뀌는 데 영

되 고통의 절대성에 사람들이 충분히 공명하

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스러

게 할 수 있을까? 또한 어떻게 하면 고통에 대

운 점은 고통의 서사가 많아질수록 더 강하고,

한 증언을 그저 전문가의 해석을 기다리는 정

더 충격적이게, 입에 담기도 거북한 ‘고통 포르

보가 아닌, 그렇다고 그 자체로 완벽한 말도 아

노’를 즐기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말해야 사

50 2019년 4월호


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에서도 그렇지만 고통의 곁이 바로 그 고통에

과정에서 고통을 겪는 이들의 존엄이 파괴되고,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자리라는 점에서도

그들이 사력을 다해 증언한 이야기는 사람들에

그렇다는 것이다.

게 가 닿기도 전에 빛을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 하다.

따라서 이 책은 고통의 곁에 서 있는 사람에게 도 또한 곁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방

고통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겪는 이에

식으로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

게도 ‘아무리 그래도 너는 내 고통을 다 알지 못

을까? 아마도 아주 정돈되고 명료한 말로 고통

한다’며 찬밥이 되기 쉽지만, 이 고통을 외부에

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닐 것이

서 지켜보는 사람들에게조차 찬밥 취급을 당하

다. 이렇듯 고통에 대한 ‘언어의 불충분함’을 인

기 쉽다. 그들은 이미 고통의 곁에 있었던 말들

식한다면, 이제 고통에 대한 접근은 마치 고통

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다

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듯 고통의 세세한 묘사에

는 듯 굴거나 혹은 손쉽게 ‘수거’하려 들기 때문

집착하는 것보다 그 고통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

에. 이런 상황에서 고통의 곁에 선 이는 역시 자

는 두께들을 신중한 언어로 전달하는 데 집중해

신의 곁에 선 이가 있을 때 이들과 말을 나눌 수

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점에

있고, 그러한 대화에서 고통에 관한 이야기들이

서 저자는 고통을 겪는 이의 ‘곁’에 있는 사람들

만들어지고 전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만들어내는 언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데 안타깝게도 고통의 파괴력은 그것을 겪는 당

짐작했겠지만 이 책은 서문과 말미에 나와 있

사자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곁에 있는 사람 또

듯 저자가 국제 인권 활동 현장에서 만난 활동

한 앗아가기 쉽다.

가들에게 바치는 책이다. 이 책의 힘은 고통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고통의 곁에 서 있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비를 맞는 이에게 가장

들에게도 함께 존경을 표하는 데 있다. 그러면

좋은 사람은 같이 비를 맞는 사람”이라는 말에

서 고통의 곁에 있는 사람이 서 있는 자리가 고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같이 비를 맞

통을 겪는 이들의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라

는 사람은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데가 없고, 더

그곳에서 고통에 대한 이야기가 생산되는 장소

욱이 이미 비를 맞느라 녹초가 된 이에게 하소

가 될 수 있게 하려면, 그리하여 고통에 대한 증

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사랑’과 ‘정

언이 ‘불행 올림픽’이나 ‘고통 포르노’가 아니라

의’란 이름으로 같이 비를 맞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우리 사회의 기본 값을 바꾸는 새로운

결국 같이 비를 맞는 사람이 병이 나지 않기란

언어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결국 고통의 곁의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저자는 고통을

곁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데 있

겪는 이를 지원하는 것만큼이나 그 곁을 지키고

다.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고통을 겪는 이의 고통을 함께한다는 의미

류한소 후원회원

발칙 건강한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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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쿵 저러쿵

서로의 새싹이 움트는 물주기 프로그램 - 신임 상임활동가 박기형의 인사

“안녕하세요. 올해 2월부터 상임 활동 시작한

물주기 프로그램을 하면서, 물을 많이 줘서 뿌

박기형이라고 합니다.” 연구소 활동을 시작한 지

리가 썩는 것 아니냐는 질문과 함께 들었던 말이

어느새 두 달이 되어 갑니다. 사무실, 현장, 회의

있습니다. “저도 물을 많이 받아갑니다. 이렇게

등 여러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명함을 건네

힘을 얻어가네요.”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 보니,

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물주기 프로그램의 백미는 연구소 회원들과 직접

는 일이 아직은 서툴고 어색합니다. 머쓱한 미소

만나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처

를 저도 모르게 짓게 되더군요. 아마도 상임활동

음에는 교육 내용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로부터

가로서의 저 자신이 아직 낯설어서 그럴지도 모

배우도록 배치한 건가 여겼습니다. 그런데 물주

릅니다. 그렇지만 2월과 3월, 짧은 두 달여의 시

기 프로그램은 단순히 신임 상임활동가들의 활동

간이 무척 길게 다가옵니다. 면접 볼 때 한노보연

관련 지식 쌓기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배

사무실을 처음 들렀던 기억이 꽤 오래전 일 같이

운 게 별로 없더라 이런 얘기는 아닙니다(웃음).

느껴집니다. 그만큼 지난 시간이 한노보연과의

다들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서 무척 열정적

활동들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으로 물을 주셨죠. 거기서 연구소 활동에 임하는 자세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욱 인상 깊

지난 두 달 동안 상임 물주기 프로그램이 진행 되었습니다. 한노보연의 로고(?)인 ‘나무’를 키우

었던 것은 물주기를 진행해주신 회원 동지들이 역으로 자신들도 물을 받아간다는 말이었습니다.

는 물주기. 만나는 분마다 “물주기라니 너무 이름 이 좋네요.”라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도 처음

52

그 마음은 뭘까.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되었습니

들었을 때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때마다 다들 물

다. 그러다 노동안전보건 활동은 뭘까. 아니 운동

어보셨죠. 물을 많이 줘서 뿌리가 썩는 건 아니냐

을 하면서 가장 소중한 건 뭘까. 그런 질문까지

고 걱정 반 농담 반 섞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

문득 하게 되더군요.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러고 보니 물주기 프로그램이 참 빡빡하게 돌아

있는 세상이 되어서 연구소가 해체하게 되는 것?

갔습니다. 어떤 주에는 매일 물주기 일정이 있기

그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할 테고, 활동 과정에

도 했죠.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며 한노보연의 활

서 놓치지 말아야 할 기치일 테죠. 그러나 그것

동에 대한 지식을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보

못지않게 목표를 향해가는 과정, 즉 우리의 운동

다 좋았던 것은 단순히 활동에 필요한 상임활동

에서 함께 가져가야 할 가치 또한 있다는 생각이

가로서의 역량 쌓기만이 아니었습니다.

들었습니다.

2019년 4월호


비록 짧은 두 달여의 시간이었지만, 연구소 회

가늠이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상임활동

원들을 물주기 외에 회의나 모임 등 여러 곳에서

가로서 연구소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가야 할지,

뵈었습니다. 몇몇 회원분들은 힘든 길을 함께 걷

저 나름대로 운동의 방향을 찾아갈 때, 놓치지 말

게 되어서 반갑다는 말과 함께 당부의 말씀도 해

아야 할 가치를 하나 배운 것 같습니다. 회원들과

주셨습니다. ‘소진되지 않기’ 사회를 변화시키기

함께 운동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투쟁은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기에, 몸과 마 음이 지치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럴 때 무너지지

일정을 살펴보니 물주기 프로그램이 거의 끝나

않게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 그건 함께 하는 누

갑니다. 빡빡했던 물주기 일정이 마무리로 접어

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

들어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만, ‘저도 물을 받아갑

다. 쉼. 스스로 자신을 돌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

니다’는 말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끝나는

겠죠. 그와 함께 쉼터. 같이 쉬어갈 수 있는 자리

것 같아 아쉬움도 남습니다. 활동 관련 내용에 관

를 마련하기. 그것이야말로 안전하고 건강한 일

한 교육만 받기보다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서로

터를 만들어가는 운동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에 대해 알아갔으면 어땠을까, 그걸 위해 먼저 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함께 하는 이들이 소

발짝 다가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도 듭니다.

진되지 않도록 서로에게 물주기. 그게 이루어지

물주기 프로그램이 끝나도 더 많은 분과 만나서

는 쉼터는 한노보연 활동 중 언제 어디서나 자리

서로 물을 나눠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할 것입니다. 함께 운동하는 이들의 만남 속에서 말이죠. 기나긴 싸움의 한가운데 홀로 남겨지지

물주기 프로그램 준비해주시고 교육해주신 분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서로의 손을 맞잡고

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직 뵙지 못한 한노보연

물을 주는 일을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회원분들 어서 만나 뵙고 인사 나눌 수 있으면 좋 겠습니다. 소진되지 않게 서로를 다독여주며 노

물론 쉼과 돌봄에 관한 얘기가 활동을 시작한

동안전보건 활동을 같이 만들어갈 수 있도록, 상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임 상임활동가에게 나올

임활동가로서 저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한노보

말인가 싶기도 하고, 무르익지 않은 이른 판단은

연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라는 새싹을 틔울 수

아닐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도 물을

있도록 앞으로도 함께 해주세요!

받고 갑니다.’라는 그 말이 주는 무게감이 아직은 박기형 상임활동가 이러쿵 저러쿵

53


안전보건동향

[19.03.12, 행정안전부] 2019년

자체 관리 도로 91,391KM)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7년

위험도로 구조개선 사업 331억

지자체가 관리하고, 교통사고

전체 산재 사망자수는 1,957

투입

발생건수(17년 기준 216,335

명으로 확인됐습니다. 문재인

- 행안부, 지방도로의 교통사고

건, 지방도로 상 발생건수

정부가 선언한 산재사망자수를

다발 위험구간 정비·개선 확대

187,509건)의 86.7%, 사망자

절반으로 감소시키기 위해선

의 73.2%(17년 기준 교통사고

무엇보다 관리감독의 강화와

행정안전부는 지방도로 위험구

사망자수 4,185명, 지방도로

더불어 행정안전부가 331억을

간의 구조개선을 위해 ’19년도

상 사망자수 3,064명)가 지방

투입한것처럼 필요한 재원을

에 331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도로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정

적극 투자해야할 것입니다.

다고 밝혔습니다.

에도 불구하고 지자체의 열악 한 재정여건 등으로 인해 개선

[19.03.19, 안전보건공단] 오창

지방도로 위험도로 구조개선

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

산업단지 중소기업 어린이집 개

사업은 지방도로 상 급경사, 급

라고 밝혔습니다.

않는 위험구간을 정비하여 교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지방

근로복지공단(이사장 심 경우)

통사고 감소 및 주민불편 해

도로상 교통사고 감소 및 주민

은 산업단지 및 중소기업 밀집

소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으

의 교통안전 보장을 위해 ’04

지역 노동자를 위한 공동직장

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년부터 위험도로 구조개선을

어린이집 설치를 지원하고 있

1,692개소에 8,742억원을 투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으

습니다.

자한데 이어, ‘위험도로 구조개

며, 그 결과 사업 시행 전·후로

선 제2차 중장기계획’에 의해

교통사고 발생건수가 최근 5년

오창과학미래어린이집(987.6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

간 평균 65% 감소하는 등 높

㎡, 정원 158명)은 오창과학산

개년 동안 16개 시·도, 715개

은 사업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업단지 내 입주기업 15개사가

소에 총 1조 3,672억원(국비

그동안의 사업성과를 바탕으

공동으로 노동자 자녀의 양육

50%, 지방비50%) 규모의 사업

로 행안부는 ’19년도 위험도로

지원을 위해 설치한 중소기업

을 연차별로 추진 중입니다.

구조개선 사업에 지난해 대비

공동직장어린이집으로 2016

30% 증가한 331억원을 투자

년 10월 근로복지공단 중소기

하기로 했습니다.

업 공동직장어린이집 공모사업

커브 등 도로시설기준에 맞지

국내 전체 도로의 83%(17년 기준 전체 110.091KM 증 지

54 2019년 4월호

을 통해 사업자로 선정되었으


며, 산업단지 내 다수의 중소기

시간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실습교육 등 석면 안전관리 기

업을 포함한 입주 노동자들의

단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술을 전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육아부담을 해소하고 우수한

일과 삶의 균형이라 할 수 있지

2001년부터 베트남, 몽골 등

인력 확보 및 근로환경 개선에

않을까요.

아시아 지역 9개 국가와 협정

기여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습 니다.

을 체결하고 기술자문과 초청 [19.03.15, 안전보건공단] 베트

연수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남 석면 금지정책 수립 돕는다 근로복지공단은 공동직장어린

공단의 기술이 베트남을 포

이집의 설치비(15.5억원)와 매

안전보건공단은 지난 3월 14

함 아시아 지역에 도움이 되

월 어린이집 교직원 인건비 및

일 공단을 방문한 베트남 대표

길 바라는 한편 2017년 11월

운영비를 지원하고, 충청북도

단에 석면 안전관리 기술을 전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 아이펜

는 1억원의 재정지원을, 청주

수하고 산업안전보건 증진을

(IPEN)과 베트남 시민단체 성·

시는 어린이집 설치를 위한 부

위한 협력을 논의했다고 밝혔

가정·환경 연구센터(CGFED)

지를 무상제공하고 있습니다.

습니다.

가 발표한 ‘베트남 전자산업 여

베트남은 석면사용이 활발한

성 근로자 실태 보고서’에서 밝

근로복지공단은 2012년부터

국가 중 하나로 최근 관련 질병

힌 베트남 삼성 전자 현지 공장

중소기업의 공동직장어린이집

이 증가하고 있어 이를 제한하

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인권 실

확충을 지원하기 위한 ‘중소기

는 정책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태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

업 공동직장어린이집 설치비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베트

입니다.

공모사업’을 추진해오고 있으

남 건설부는 한국과 일본이 석

며, 2018년도 기준 총86개 컨

면 안전관리 정책과 기술을 벤

소시엄을 지원사업자로 선정,

치마킹해 정책 수립에 도움을

개원한 52개소의 중소기업 공

받고자 WHO 베트남 사무소의

동직장어린이집 운영을 지원하

협조를 얻어 이번 대표단을 파

고 있습니다.

견했습니다.

공공성을 갖춘 어린이집 확충

공단은 베트남 대표단에 ▲석

도 필요하지만 가장 우선 해결

면섬유 포집 및 분석 방법 ▲

되야할 지점은 노동자의 초장

석면 함유물질 해체·제거작업

안전보건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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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보연 이모저모

<올해의 현장 2019> 개최 지난 3월 8일 금요일 오후 1 시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 원에서 <올해의 현장 2019> 가 개최됐습니다. 연구소가 매년 진행해 왔던 ‘현장연구 나눔마당’을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 센터의 ‘올해의 현장’과 공동 주최한 자리였습니다. 노동 시간을 중심으로 한 최근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주제로 버스 운전, 유통 노동 현장의 목소 리를 직접 들어보고 해결할 과제 및 대안을 논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공동 주최 지속에 대한 고민을 이 어나갈 예정입니다. 2020년에도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한노보연×노벗 산업안전보건법 기획 강좌 끝나 한노보연과 수습 공인노무사 모임 ‘노벗’이 공 동주최한 <권리의 관점으로 읽는 산업안전보 건법> 기획강좌가 지난 2월 25일부터 5주 간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용산 철도회관에서 진행 됐습니다. 최근 고 김용균 님의 사고 이후 28 년 만에 법이 전면개정되면서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듯 40명의 참여자가 함께 했습니다. 건 강권에 대한 이해부터 알권리, 거부할 권리, 참여할 권리, 건강검진•작업환경측정 등 실제 노동안전보건 문제에 대한 이해와 관점을 갖출 수 있는 주제별 교육이 이어졌습니다. 노무사 분들에게 노동자의 건강과 삶을 유지•증 진할 수 있는 법에 대한 이해와 노동자의 벗으로서 고민의 단초를 마련한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고 박선욱 간호사·서지윤 간호사 투쟁의 재점화 고 박선욱 간호사가 드디어 산재승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서 울아산병원은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 다. 관련하여 대책위도 지난 3월 28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시민 선전전을 시작했습니다. 산재인정 뿐만 아니라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도 병원 측은 나몰라라입니 다. 또한 고 서지윤 간호사 사건 해결을 위한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3월 12일 출범하였으나 서울의료원은 여전히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고 있어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 에 서울의료원대책위 역시 매주 병원과 인근 역사에서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 중입니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의료원 모두 하루 빨리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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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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