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12 웹

Page 1

통권 166호 2017년 12월 노동자가 만드는

www.kilsh.or.kr

반올림 1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청소년이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 일본의 과로자살 다시보기 현장 노동자 의견이 반영된 작업중지 해제?!


《보이지 않는 고통》은 노동보건과학자 캐런 메싱의 회고록이다. 책에서 메싱은 과학자가 노동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게 만드는 과학계의 관행과, 때로 노동자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 직업보건 과학자들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그는 절망하는 대신, 동료 과학자와 시민들에게 타인의 고통에 함께 귀 기울여보자고 제안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번역을 기획하였습니다. 국판 ┃ 296쪽 ┃ 16,500원 출간일: 2017년 10월 30일 펴낸곳: 도서출판 동녘


독자에게

다시 봄이 돌아오면 너희가 아프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지하철에서 TV 뉴스를 보고 있는데 이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 뉴스는 지난겨울 박근혜 정권 퇴진과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겠다고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세계 각지 에서 인권 증진에 탁월한 공헌을 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는 <에버트 인권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 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랬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 ‘촛불 시민’을 대표 하여 이 상을 받은 세월호 참사 생존자 장애진 씨가 마지막에 남긴 말은 오랜 시간 귓가를 맴돌았습니다.

“(하늘로 떠난 단원고 친구 민지와 민정에게) 내가 이 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너희 덕분이야. 다시 봄이 오 면 너희가 아프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할게.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어.”

세월호 참사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 생존자는 2014년 4월 16일부터 지금까지 어떠한 어려움에도 촛불을 끄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비록 미수습자 가족이 세금 도둑이라 비난당하면서 선체 수색 을 포기하고 가족을 가슴에 묻어야 했지만, 국회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과 수습과정 후속 조치 등 사실관계와 책임소재를 규명하기 위한 사회적 참사법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비록 만들어졌다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이겠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오는 봄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와 유가족, 미수습자, 생존자 모두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3


차례

특집

반올림 10년,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반올림은 지난 2007년 11월 20일 삼성 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원 회 활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삼성뿐만 아니라 전체 전자산업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 증진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

표지_불꽃행동

왔다. 그리고 올해로 반올림 활동 10년 을 맞아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가 사회적 으로 어디까지 왔는지 여전히 가야 할 길 이 먼 곳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하였다.

26 반올림 10년, 현장의 변화와 과제 31 반올림 10년, 정부·법·제도의 변화와 남겨진 과제 34 반올림과 노동안전보건운동 36 반올림 10년을 돌아보고, 10년을 꿈꾸다

4


출처_반올림

37

31 1

독자에게

38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검토 노동자 건강 관련ILO 협약을 살펴보기에 앞

2

차례

4

노동안전건강뉴스

6

지금 지역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 STOP을 외치다!

서 40

노동시간에세이 일본의 과로자살 다시보기

44

노동자 건강상식 집에서도 통증 잡기 붙이면 편해지는 테이핑 따라잡기 (4)

8

안전보건동향 영국,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10가지 설계 측면 개선방안 내놓아

46

발칙X건강한 책방 질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질문과 답

10

안전과 건강 칼럼 청소년이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

48

유노무사 상담일기 더불어 與 시멘트벽돌 생산공장에서 40년, 그리고 폐암

12

현장의 목소리 현장 노동자 의견이 반영된

50

작업중지 해제?!

16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슬픔과 희망을 확인했던 지난달 52

연구리포트 일자리 창출? 어떤 일자리 창출?

24

사진으로 보는 세상

36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이러쿵저러쿵 달인이 필요 없는 사회

영원히 기억될 프로젝트를 남기고 싶어요 20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54

문화읽기 슬프고 좋은 일

드가의 발레, 아니 빨래하는 여인을 보았나요 5


노동안전건강뉴스

정부,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 대책‘ 내놓아

정리 콜라비 선전위원

정부가 타워크레인 전수조사에 나선다. 최근 공

레인이 전체의 20.9%를 차지한다. 그나마 수입

사 현장에서 잇따른 타워크레인 사고 원인이

제품의 경우는 이 통계조차 불명확하다. 지자체

노후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어 연식 허위 등

에 등록하는 과정에서 허위로 신고해도 판별할

록 여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계획이다. 재

방법이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허위신고

발 방지를 위해서는 제작된 지 20년 이상 지난

가 너무 많아 사실상 이 데이터의 신뢰성은 매

타워크레인의 사용을 중지키로 했다. 건설업체

우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허위 신고

와 타워크레인 임대 업체의 관리 책임도 보다

사실이 적발되면 등록을 말소하고 관련 업체에

강화한다.

추가적인 제재 조치도 가하기로 했다.

정부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

사고 예방 차원에서는 연식이 20년 이상 지난

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통해

타워크레인의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대

‘타워크레인 중대 재해 예방 대책’을 심의·의결

책을 내놨다. 10년 이상 지난 타워크레인은 정

했다.

밀 검사를 의무화해 점검을 강화하기로 했다. 부실 검사를 방지하기 위해선 검사기관의 운영

우선 내년 4월까지 6,074대의 타워크레인을 모

실태 점검 및 현장 불시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두 살펴볼 계획이다. 특히 규모 5.5의 강진이 발 생한 포항 및 인근 지역의 타워크레인 건설 현

관리 사각지대도 없앤다. 타워크레인을 임대해

장 24곳에서 운용 중인 55대의 타워크레인은

사용하는 건설사는 작업 감독자를 지정, 타워크

긴급 점검 대상으로 분류했다.

레인 임대 업체와 설치·해체 업체의 작업을 의 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설치·해체 작업 중 사

노후화 여부 점검이 이번 조사의 핵심이다. 등

고가 발생했을 때 불분명했던 책임소재를 명확

록 서류 기준으로 20년 이상 지난 노후 타워크

히 한 것이다. 출처 :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대책' -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2017.11.17

6


화장품 공장 화재·폭발사고로 사상자가 125명에 달해

화장품 공장 폭발사고로 인한 사상자가 125명

에 공장 안에서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을 넘어서면서, 조사관들이 사고 원인을 조사하 는 한편, 올해 안전규정 위반으로 낸 벌금을 포

폭발과 함께 공장 지붕으로 불꽃이 솟았고, 짙

함하여 12년 전 있었던 총격사건까지 포함하는

은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고가 난 카운

파란만장한 역사(checkered history)를 조사하

티 전역과 인근 지역의 소방관들도 동원되어

고 있다.

사고당일 자정까지 화재진압이 계속됐다.

미국 뉴욕시 북쪽 88km에 위치한 뉴윈저(New

Verla International은 37년 전 설립된 회사로,

Windsor)의 Verla International(화장품공장)

공식홈페이지에 따르면 매니큐어, 화장품, 로션

에서 11월 20일 아침 25분 간격으로 두 차례 폭

과 향수 제품을 제조하고 포장하는 곳이다. 연

발과 함께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오전 10시 15

방 직업안전ㆍ보건국(OSHA) 공식홈페이지 기

분경 첫 번째 폭발이 일어나자 직원들이 비명

록에 따르면 올해 Verla는 9건의 안전보건 규정

을 지르며 대피하였다. 뉴버그(Newburgh)인근

위반 이력이 확인된다. 그 중 한건은 가연성/인

의 소방관들이 응답했고, 두 번째 폭발이 일어

화성 액체 취급 관과 관련된 문제였다.

났을 때 소방관 몇 명이 공장 건물 안에 있었다. 연방 당국은 호흡보호구와 비상대피로 유지와 세인트루크콘월 병원 측은 이 사고로 내원한

관련해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회사는 과태료 4

환자가 사고 당일 이후 상당히 증가해 125명이

만1천 달러(한화 약 4,450만원)를 내는데 동의

며 대부분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상으로 치

했다.

료받고 퇴원했다고 밝혔다. 한편, 관련 당국은 이 회사 직원인 윌리엄 헌팅턴(57)씨가 사망했 다고 밝혔다. 소방관은 사망자를 폭발 9시간 만 출처 : People Hurt in Cosmetics Factory Explosions, Fire Tops 125, The New York Times, 2017.11.21. 7


지금 지역에서는

모든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 STOP을 외치다! - 장시간노동, 과로사 근절을 위한 안전보건시민단체부문 기자회견

나래 상임활동가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 중 ‘장시간 노동’

상 필요한 경우 조항을 도입하여 하위령에서 사회

과 ‘과로사’는 당연 상위권에 들 것이다. 그만큼

복지사업을 추가 확대하였다. 결국 정부의 승인,

장시간노동과 격무에 시달린 노동자들의 사건사

신고, 상한시간 등이 삭제되면서 사업장에서는 무

고가 끊이질 않았고, 특히 집배원과 버스운전 노

제한 장시간 노동이 확대되었고, 정부의 실태파악

동자들의 과로 문제는 전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

및 감독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다.

다. 바로 ‘과로문제’가 낯선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 라, 내 문제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특례업종에 속

정부는 장시간노동과 과로사 문제와 투쟁이 확대

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직장인들은 야근이 일상이

되자 2017년 7월31일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고, 수당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에서 26개 업종에서 10개를 줄인, 16개 업종 제 외에 추가로 노선버스도 적용제외로 가합의에 포

총취업자의 50%가 이미 특례업종 노동자다. 특

함시켰으나, 지금은 이조차도 표류중이다.

례업종 노동자는 무제한 연장근무가 가능하다.

8

1961년 제정된 노동시간 특례제도는 도입 당시

그래서 특례제도 폐지를 위해 안전보건시민단체

공익 또는 국방상에 특히 필요한 때, 보건사회부

들이 나섰다. 2017년 11월22일 수요일 오전11

장관의 승인이 있을 때, 초과근로 상한 규정을 두

시, 국회 앞에서 <장시간 노동, 과로사 근절을 위

고 해당 업종을 열거하는 방식의 제도였다. 하지

한 안전보건시민단체부문 기자회견>을 열었다.

만 무분별한 규제완화, 특히 신자유주의 강화 흐

건강한노동세상, 과로사예방센터, 노동건강연대,

름에서 3차례 개정이 진행되어 특례 요건과 절차

반올림, 일과건강,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6개

가 삭제됐고, 현행 규정에서는 노사의 서면합의만

단체는 산업재해, 직업병, 장시간노동과 과로사,

있으면 연장근로와 휴게시간 변경이 가능하도록

현장실습문제 등 노동안전보건문제를 해결하는데

했다. 1997년에는 공중의 편의 또는 업무의 특성

앞장서온 곳들이다. 이 6개 단체들이 모여 이번에


는 장시간노동과 과로사 근절을 위한 특례제도 폐

의 다양하고 가슴을 울리는 발언들로 채워졌다.

지를 국회 앞에서 외쳤다. 이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된 것은 장시간노동과 과 기자회견은 특례업종 노동자뿐만 아니라 모든 노

로 문제가 절대 특례업종 노동자들로 제한된 것이

동자를 위해 특례제도가 폐지되어야 함을 이야기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한국사회가 과로사회

하는 자리였다. 장시간노동과 과로가 노동자의 건

이며, 모두가 아픔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런

강과 삶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발언해주신 일과건

점에서 무제한 노동을 조장하는 근로기준법 59조

강의 한인임 사무처장 , 본인 스스로 야간노동을

특례제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그 투쟁의

끝내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발언을 한다며,

길에 전국의 몇 안 되지만, 소중한 노동안전보건

특례업종 노동자는 아니지만 제조업 노동자로서

단체들이 함께 할 것이다.

12시간 주야교대 근무의 폐해와 노동시간 단축 을 강조한 만도헬라지회 한샘 부지회장 부터 이주 노동자들의 장시간노동과 과로사문제에 대해 발 언한 우다야 이주노조위원장, 특례업종에 속하는 택시노동자로서 하루 15시간 넘게 일하며 언제나 과로로 인한 사고의 위험 부담을 져야하는 문제 를 밝힌 신주하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조직국장, 특례업종이 특히 몰려있어 더욱 투쟁에 힘을 쏟 고 있는 정찬무 공공운수노조 조직쟁의국장, 자본 이 왜, 어떻게 과로를 조장하고 있는지 노동자들 의 이야기를 해주신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9


안전보건 동향

영국,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10가지 설계 측면 개선방안 내놓아 선전위원회

영국 안전보건청(HSE)에서 근골격계 질환 예

- 수집된 아차사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빈번히

방을 위해 10가지 설계 측면에서 개선 방안을

일어나는 문제점 파악하여, 공정 설계부터 인간

내놓았다. 안전보건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학적 접근법을 적용하여 위험요소를 제거한

근골격계 질환은 지난 5년간 꾸준히 영국 내 직

다.

업성 질환의 약 39%를 차지하였다. 근골격계 질환 1건당 평균 17.6일의 노동손실이 발생하

2. 작업자를 위한 적절한 작업 높이 고려

였고, 척추 또는 허리 통증 등 직업성 질환 발

- 작업자들의 신장, 체형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생 시, 동일 노동자에게 5년 이내에 재발할 가

‘평균’ 신체사이즈를 고려한 작업높이 설정은

능성이 매우 높았다. 안전보건청은 근골격계 질

무의미하고 비효과적이다.

환 문제 해법을 올바른 중량물 취급방법 등 교

- 작업자에게 맞게 높이를 조절하여 개인별 최

육에만 의존하는 것이 적절한 문제해결 방법이

적 작업조건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아니고, 보다 근본적으로 위험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설계 측면의 접근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3. 자동화

강조하였다.

- 작업자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동화 설 비 도입 및 활용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총 10가지를 안내하였는 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인력 취급이 불가능하게 만들기 - 취급 물품의 단위 무게를 가볍게 하는 것이

10

1. 작업 분석

항상 올바른 예방법은 될 수 없다.

- 작업자, 관리감독자, 위험성평가 전문가의 협

- 애초에 물류 단위를 인력 취급이 불가능하도

업이 필요한 부분으로, 해당 작업을 꼭 인력으

록 크고 무겁게 하여 동력 기계를 활용하도록

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검토부터 시작한다.

하는 방법이 적절할 수 있다.


5. 보조 동력설비의 사용

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작업부담을 낮추는

- 노동자의 인력 작업을 대체할 수 있는 설비를

등의 관리적 고려와 개선 필요하다.

사용하고, 이는 가벼운 단위 중량물 취급 시에 도 해당한다.

9. 노동자가 안전하게 작업하도록 동기부여

- 가능한 동력 이송을 활용하여 인력 취급을 불

- ‘안전한 방법’이 일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추가 적용 할 수 있다.

되도록 작업을 설계하여 노동자가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올바른 작업방법을 준수하고 스

6. 인력작업 시 취급 단위 중량을 줄이기

스로 인지하여 실천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

- 인력작업이 불가피한 경우는 단위 중량을 줄

다.

이도록 고려해야 한다. - 가령 건축용 내장 패널 부착작업의 경우, 안

10. 반복작업 부담경감

전보건당국, 노동자단체, 자재 생산 공급자 등

- 단위 작업(Work Station) 설계 시 반복적으

의 유기적인 협조로 인력작업 부담을 줄이면서

로 허리를 굽히거나, 먼 곳의 물건을 잡기 위해

작업능률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취급 단위

손을 뻗어야 하도록 작업을 애초에 설계하지

중량 결정을 위한 협업이 필요하다.

않는다.

7. 신기술의 활용

근골격계 질환 예방은 인간공학적 요인 개선으

- 로봇기술, 외골격·협력 로봇 등을 활용한 인

로만 가능하지 않고, 작업량이나 작업조건 등

력작업 부담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전반적인 노동강도 문제를 개선할 때 가능하 다. 이번 영국 안전보건청에서 발표한 내용에

8. 고강도 위험작업 없애기

서도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10가지 설계

- 지나치게 높은 작업강 도를 설정하면 작업 목

측면 개선 방안이여야, 결국 높은 노동강도를

표 달성을 위해 노동자가 작업 수칙을 준수하

낮추거나 근본적으로 작업자가 근골 부담 작업

지 않고 작업하다 아차사고 등이 발생하도록

을 할 수 없도록 작업장 설비나 작업 내용을 바

한다.

꿔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 이럴 경우 노동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적 절한 작업 목표 설정으로 위험 사전예방 및 근

출처 : 안전보건공단 [주요 국제 안전보건동향 제440 호 (17. 11. 28)] http://www.kosha.or.kr/www/boardView.do?conte ntId=373224&menuId=1572&boardType=A

11


안전과 건강 칼럼

청소년이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

최민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지난 1월 통신업체 콜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생이 자살한 데 이어 얼마 전 제주에서 특성화고

유지하자는 근거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교

현장실습생이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누군가는

육계 일각에서는 ‘현장실습 없이 직업교육을 어

현장실습 문제가 아니라, 노동현장이 문제라고

떻게 하느냐’며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하

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이 안전하게

라는 주장에 반대한다. 어차피 졸업하면 취업할

일할 수 있는 사회는 따로 없다. 우리 모두, 누구

거 몇 달 일찍 학교에서 취업처를 알아주기까지

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에서만 청소

하는 게 뭐가 잘못이냐고도 한다.

년 노동자도 안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 주 40시 간 일하고도 잘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청소년 노

하지만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관련된 교사·학생·

동자도 12시간 근무, 주 6일 근무를 안 할 수 있

동료노동자·사업주 누구도 산업체 파견 현장실

다. 사업주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기계를 수

습을 현장실습이라 부르지 않는다. ‘취업’이라고

리하지 않고 방치할 때, 노동자가 작업을 거부

부른다. 실습이 아니라 취업이니, 전공과 아무

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제주 현장실습생도 본인

관련 없는 곳으로도 간다. 금융경영과를 전공한

의 안전을 먼저 요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험

학생이 외식업체 조리실에서, 복지경영을 전공

한 작업은 2인1조로 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서

하고 카드사 콜센터에서 ‘실습’한다. 사고가 난

청소년 노동자도 둘이 해야 하는 일을 혼자 하다

두 학생도 전공과 관련 없는 업체에서 ‘실습’ 중

죽지 않을 수 있다. 콜 처리 건수를 근거로 성과

이었다.

급으로 급여를 지급하며, 제때 식사하기도 어려

12

운 콜센터는 청소년이든 아니든 건강하게 일하

‘취업’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다들 업체가 ‘갑’이

기 힘든 곳이다.

고 학교가 ‘을’이라고 한다. 한 명이라도 취업을


더 시켜야 하는 입장에서, 교사들이 업체를 걸러

들을 배출하는 지금의 ‘방기’를 중단하자는 것이

내고 감독하기 어렵다. 전공과 관계없이 아무 데

다. 직업교육과 현장실습의 판을 완전히 새로 짜

나 취업하게 되니 교사 입장에서도 업체마다 무

자는 얘기다.

엇을 확인하고, 학생에게 어떤 점을 주의시켜야 할지 알 수도 없을 것이다. 하루 7시간만 일해야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안 하고 학교에 있는 동

하는 현장실습표준협약서와 이면으로 하루 10

안 더 익힐 것도 많다. 근골격계질환은 무엇이

시간씩 일하는 근로계약서가 횡행하는 배경이

고, 감정노동은 무엇인지, 이들로부터 스스로를

다. 사고를 당한 두 학생 모두 표준협약서와 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특성화고 학생들이 직

로계약서 내용이 달랐다.

접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배우면 좋겠다. 위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폐지하자는 것이 직업

험할 때 일을 멈추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기본

교육을 포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다

적인 권리라는 것, 일하다 다치거나 아플 때 치

양한 현장실습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전공과 관

료받는 것도 권리라는 것,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

련 있고 정말 가서 배울 만한 사업장에 교사 인

동자가 더 건강한 이유는 무엇인지도 배울 수 있

솔하에 훨씬 짧은 기간 실습하는 것, 생산부서에

으면 좋겠다. 이렇게 배운 젊은 노동자들이 졸업

곧바로 투입되는 대신 업체나 관련 기능협회 등

후 근골격계질환에 찌들고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기관에서 일정 기간 교

현장을 낯설게 느끼기를, 낯설고 힘든 만큼 바꿔

육을 받는 것, 실제 기능이 있는 노동자가 학교

낼 힘을 갖기를 기대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실습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보장하라

모두, 누구든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는 사회,

는 말이다. 이미 전혀 ‘실습’이 아니고 절대 ‘교

청소년도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

육’이 아닌 공간으로 몇 달 일찍 특성화고 학생

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13


현장의 목소리

출처_금속노조

현장 노동자 의견이 반영된 작업중지 해제?!

중대재해 예방과 작업중지권 실현을 위한 당장멈춰 상황실

지난 10월22일 저녁7시15분경 한국타이어 금산공

다. 그렇다면 한국타이어에서 작업중지 상황은 어떻

장 정련공정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고무 원단을 옮기

게 마무리 됐을까? 자세한 이야기를 11월21일 금속

는 컨베이어벨트와 롤에 끼어 숨졌다. 그 후 전면 작

노조 대전충북지부 한국타이어지회 양장훈 지회장,

업중지됐던 한국타이어 금산공장은 18일 만인, 11

김용성 노안담당 부지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어

월9일 모두 재가동됐다.

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 제50회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사망사고 발생 사업장의 안전 확보는 현장 근

10월22일 사고가 발생한 것을 어떻게 알

로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

게 되셨나요? 회사에서 연락을 줬나요?

한 후, 고용노동부가 8월 ‘작업중지 해제를 판단할

조합원이 저에게 사고가 났다고 연락을 했어요. 전화를

경우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외부 전문가가

받고 회사에 곧 바로 들어갔던 거죠.

포함된 심의위원회에서 현장의 위험 개선 사항과 향

14

후 작업 계획의 안전 여부를 검토해 결정토록 한다.’

그럼, 사고가 발생하면 전 사원(작업자)에게 이

고 운영기준을 내놓은 상황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이

를 알리는 시스템이 있나요?


그런 건 없습니다. 사고가 나면 은폐하고 감추려 하죠.

려고 1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계속 그 대답만 들었습니

이번에는 사망사고였기 때문에 감출 수 없어서 이렇게

다. 그때가 저녁 9시정도였는데. 마침 공장에 들어가는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근로감독관이 있길래 제가 그 사람을 붙잡아서 내가 출 입을 해야 하는데 못 들어가게 하고 있으니, 들어갈 수

당일 사고현장에 지회장님의 재해조사 참여를

있도록 조치를 해달라고 했는데, 별말을 안 하고 자기

막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어땠나요?

만 회사로 들어가더라고요.

처음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죠. 사고 때문에 연락이 와서 들어간다고 하니까 들여보내 줬어요. 사고를 최

처음엔 작업중지를 안했던 거군요.

초로 목격한 게 저희 조합원이에요. 조합원이 사고 목

예, 사고설비 이외에 그 옆의 설비들은 가동되는 상황

격 후 굉장히 두려움에 떨고 있고, 전화 통화만으로도

이었어요. 24시부터 가동이 정지됐다고 알고 있어요.

조합원이 걱정됐어요. 금산공장에 1시간가량 걸려 도

빨리된 곳이 24시, 다른 곳은 새벽 01시에 정지됐어요.

착했는데, 그때까지 그 조합원을 정신적 충격으로 덜

그래서 제가 거기 나와 있는 회사의 관리자(환경안전팀

덜 떨고 있는데 방치해 뒀더군요. 제가 최초에 들어갔

장)에게 당신 뭐하는거냐, 지금. 이렇게 중대재해가 일

을 때 사고발생 공정 주변 작업자들은 다 일을 하고 있

어났는데, 전체 중단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했는

더라고요. 다들 불안한 게 얼굴에 나타난 상태로요. 그

데. 그런 건 신경 안 쓰더라고요.

래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냐고 하니까. 안 났 다고. 그래서 작업중지 해야 하는가 아니냐고 말하고,

재해발생 당일 출입통제로 사고재해 조사

사고 장소로 이동했는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에 참여하지 못한 이후에는 참여하게 된 건

휴게실에 갔더니, 주임, 반장, 경찰 등 관계자들이 모여

가요?

있었어요. 그 상황에서 우리 조합원이 경찰조사를 받으

3일간의 재해 조사 중 마지막 날만 참여했습니다. 그런

며 계속 떨고 있었어요. 그래서 119를 불러서 그 조합

데 그 날은 사실상 사고 현장조사가 거의 다 끝났고, 유

원을 우선 병원으로 보냈죠. 후송하는 것만 보고, 사고

족들이 어떻게 사고가 난 것인지 확인하고 싶다고 해서

조사 하는 걸 확인하려고 회사로 다시 들어가는데, 그

그걸 재연하는 자리였어요. 어이없는 게 첫날 출입통

때부터 못 들어가게 막았어요. “니네 조합원 아니니까

제로 못 들어오게 해놓고, 둘째 날 카톡으로 새벽4시에

들어가지 마라.” 사고에 우리 조합원이 관계가 없는 것

(부지회장에게) 메세지를 보내놨더라구요. “8시까지 회

도 아니고, 사고재해 조사에 조합원이냐, 아니냐를 따

사에 들어와라”, 사실상 오던지 말던지 통보만 한거죠.

질 문제가 아닌데 경비실에서 출입을 통제하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안 오길 바랐으니, 전화도 아니고, 새벽4시

대전지방노동청(이하 노동청)에 전화를 해서 상황 설명

에 카톡으로 통보해서 4시간 후에 회사에 들어오라고

을 하니, 노동청에서는 그와 관련해서 자기들이 할 수

한 건데. 결국 회사는 참여를 요청했는데, 금속노조가

있는 일은 없다면서, 회사에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참여를 안한거다라는 명분을 만들려고 그렇게 한 게 아

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더군요. 출입문 앞에서 들어가

닐까 싶어요. 15


사고 재해조사에는 배제됐고, 근로감독관

외부전문가는 누구인지 확인하셨어요?

들이 실시하는 조사에 결합하게 된 거네요.

그건 노동청에서 기밀, 비밀이라고 안 알려주더라고요.

노동청에서 24일부터 정기근로감독을 하는데 참여하 라고 요청이 왔어요. 그래서 저희가 정기 감독의 내용

물류공정을 해제할 때 현장노동자의 동의 절차는 있

이 뭔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 공유하자고 했는

었나요?

데. 그 자료를 공유할 수 없다고 참여 중간에 얘기를 하

그걸 하긴 했는데. 동의과정을 거치는 것도 문제가 있

더라고요. 그래서 정기 감독 진행하는 도중에 저희가

었어요. 동의를 받고 나서, 미동의자에 대해서는 1:1로

빠져 나왔어요. 자료공유를 안한다는 건, 저희를 들러

사측이 면담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는 협력업체라

리 세워놓고, 같이 조사한 것이니 결과에 대해서만 너

서 협력업체 부장이 1:1로 면담을 해서 동의로 바꿔 써

희도 책임 있다고 하는 거라서 그렇게는 못한다고 빠져

라, 고쳐 쓰라고 해서 바꿨다고 당사자들이 저희에게

나온 거죠.

제보를 해주셨어요.

전면 작업중지 중 10월 27일 물류공정만 먼저

물류공정만 먼저 푼 건 직접 생산이 아니니

작업중지를 해제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까, 그런 건가요?

해제과정도 기가 막힌 게 회사와 노동청이 얼마나 밀접

완성차와의 물량공급 약속이 있으니까. 그래서 납품을

한 관계인지를 재확인한 상황인 것 같아요. 노동부 내부

위해서 빨리 해제요청을 먼저 한 거고, 그걸 노동청이

지침에 작업중지를 해제하려면 회사가 작업개선내용,

편의를 봐준 것이라고 생각돼요. 사고 다음날, 물류공

작업자 동의서,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이렇게 3가지를 노

정은 작업을 했어요. 그래서 노동청에 가서 전 공정 작

동청에 제출을 한데요. 그럼 노동청이 그에 따라 현장

업중지 아니냐고 항의를 하니까. 그 다음날 정지를 한

확인을 하고 노동자들의 의견청취를 해서, 심의위원회

거고요. 그러다가 회사가 먼저 물류만 풀어달라고 요구

를 거쳐서 작업중지를 해제하게 되는데 그게 순식간에

하고, 그걸 받아서 해제를 한 거죠.

이뤄졌어요. 그 과정이 5시간 만에 진행됐어요. 심의에

물류공정은 전체공정을 작업중지 했는데 가동된다고

는 외부전문가를 위촉해서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

제보가 왔어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래

외부전문가가 한국타이어의 문제를 제대로 모를 텐데.

서 제보를 듣고 노동청장과 면담을 하면서 그 얘기를

30분 만에 심의를 하고, 바로 해제를 결정했더라고요.

했더니. 그 얘기를 듣고서는, 회사에 나가있는 근로감

물류공정에서 56가지의 문제가 확인됐는데, 그걸 30분

독관에게 전달해서 오전에는 그 명령으로 중단했고요.

만에 해제를 했다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불

그런데 오후에는 숨어서 작업을 했답니다. 오전에는 밖

안전한 56가지의 요소를 그걸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는

으로 외부에 싣고나가는 작업을 했는데, 오후에는 밖으

걸 텐데. 물론 심의위원 중에 노동청에 있던 사람들이야

로 나가는 작업은 들통 나니까 못하고, 컨테이너에 싣

업무를 계속 하던 사람들이니까 바로 파악하겠지만. 외

기만 하는 작업을 몰래 말이죠.

부전문가는 몰랐을 텐데. 그게 가능한 건가요? 16


그러다가 11월3일 3공장만 먼저 가동하는

한계적이지만 작업중지를 했던 효과도 있

데요. 이건 어땠나요?

을 것 같은데요, 어떤 걸까요?

물류공정 작업해제 절차 때문에 항의를 지속적으로 엄

제일 효과라고 하면, 기존에 한국타이어에서는 안전보

청 했거든요. 그래서 3공장 해제 시에는 조금 더 보완

건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게 맞거든요.

해서 하더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3공장도 제대로 확

그런데 어쨌든 이번 사망사건을 통해서 받은 충격이,

인을 하고 절차를 밟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런 건 아니

이게 가족한테까지 전달된 거죠. 오랫동안 휴업을 하다

라고 생각합니다.

보니까. 한 측면에서 가족까지 전파되고 인식하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현장이 현재 가동 중인 상황이긴 하

3공장에 대한 작업자 동의절차는 어땠습니까?

지만 현장의 팀마다 조금씩 분위기는 다르겠으나, 작업

실명을 쓰고, 찬반을 표시하게 하고, 가동을 해야 하는

재개 명령시에 나왔던 내용을 엄밀하게 준수하려는 노

지 여부에 대해서 날인을 하게 했어요. 현장의 문제를

동자들의 의식이 생긴 것 같아요.

적어내는 칸이 있었고, 거기에 몇 건의 개선지적 사항 의견이 있었는데. 그것도 개선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제 시 작업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한다고

작업재개를 시킨 거라고 할 수 있죠.

했으나, 사실상 형식에 그치는 이런 상황이 어

그런데 말이죠, 한국타이어 회사의 분위기상 주임이나

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반장 앞에서 그런 걸 작성하도록 하면 자기 주관대로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가 뭐겠어요. 사측이 아니라 노동

제대로 작성을 못해요. 그런걸 비춰봤을 때 형식적인

조합이 조합원들과 얘기를 하고, 작업자들의 의견을 반

절차인거죠.

영해서 회사 측에 전달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사측 관 리자들이 나와서 얘기하는데 ‘나 찍히는 거 아냐’라고

언론에는 노동청이 노동자 과반수의 의견

겁부터 먹을게 대부분의 노동자들인데. 노동조합이 있

을 들어서 작업중지 심의위원회를 열어서

다면, 노동조합이 의견을 취합해서 회사에 전달하는 게

전면 재가동을 하게 됐다고 하던데요.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노동청 감독관도 저희에게 과반수 얘기는 했던 적이 없

한국타이어에 있는 두 노조가 같이 조합원 총회 형식으

어요. 노동자 3%의 의견청취를 들었다는 얘기를 했고.

로 작업자들의 의견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고, 의견을

의견청취에 대해서도 저희 지회가 의견을 냈던 게 사측

수렴해서 진행하는 게 작업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일

에 가까운 노동자들만 데려다가 의견청취를 하면 올바

텐데요. 그걸 가능하도록 하는 게 노동청이 해야 할 또

른 의견이 나오긴 하겠냐는 의혹을 제기하니까. 노동청

다른 역할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에서는 전체 작업자들의 전화번호를 받아서 자기들이 임의적으로 선택해서 전화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고는 했는데. 누구랑 했는지 알 수 없죠. 신뢰가 안 되 니까요, 지금껏 봤을 때 말이죠. 17


A-Z까지 다양한 노동이야기

쉰 아홉번째 이야기

영원히 기억될 프로젝트를 남기고 싶어요 - 홍보대행사 AE 김서영님 인터뷰

재현 선전위원장

언제나 클라이언트의 필요와 요구를

예전에는 홍보할 수 있는 매체가 주로 언론사

충족해야 하는 홍보대행사

밖에 없었는데 요즘엔 인터넷이나 SNS가 발달

“저는 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데요. 기업이나 공

해서 홍보대행사에서 집중하는 매체도 이쪽으

공기관에서 홍보를 해야 하는 모든 역할과 내

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용을 컨설팅해요. 그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저는

18

AE(Account Executive)역할을 하고 있어요. 회

“AE가 하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제안서를

사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면서 홍보대행과 관련한

쓰는 거예요. 매년 봄에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전체 모든 일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죠. 1년에 보

홍보 관련해서 입찰 공고를 내거든요. 그럼 이때

통 4~5개 정도 회사랑 일하는데, 회사 관련 언론

부터 회사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홍보 방향에 맞

모니터링부터 시작해서 보도자료 만들고, 홍보물

게 제안서를 쓰기 위해 제품이나 정책에 대한 공

이나 각종 행사 기획도 하고 인터넷이나 오프라

부를 시작해야 해서 준비할 게 많아요. 공부를 해

인에 광고가 필요하면 광고대행사 통해서 직접

야 만일 공공기관이라고 했을 때 그 정책이 왜 잘

광고를 배치하는 일 등등을 해요.”

알려지지 않았는지 원인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적인 어떤 메시지와 방법이 필요한지,

요. 그렇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최소한 벌

홍보를 위한 효과적인 매체나 수단은 뭘지 이런

어야 하는 연간사업비가 있잖아요. 그걸 맞추려면

걸 분석하고 예상할 수 있거든요.”

제안서를 안 쓸 수가 없어요. 그리고 회사도 회사 인데 결국 그 일을 하게 되면 저 스스로 커리어에

AE들은 제안서 채택 여부에 따라 회사의 1년이

도움이 되는 거잖아요. 성과가 있으면 연말에 인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1년 농사를 시작하는 마

센티브도 있으니까 시간이 부족해도 그 일을 하

음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일하다 보니 야근도 밥 먹듯이 하고 가장 바쁘게

일상이 되어버린 야근과 주말 출근

지내요. 그래서 이때가 가장 힘든데 늘 그때가 벚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할 텐데

꽃이 지거든요. 그래서 우리끼리 매년 하는 말이

야근도 워낙 자주 하고 주말에 출근하는 일도 생

벚꽃이 떨어지는 걸 보니 제안서를 쓸 때가 됐나

각보다 많아서 내가 하는 일은 노동강도가 높은

보다 이런 푸념을 늘어놔요. 친구들하고 약속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야근과 관련해서 이게

있어도 ‘나 이번에 제안서 쓰는 시즌이라 아무래

참 애매하고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면 회사에선

도 못 나갈 것 같아’ 이런 이야기만 반복하게 되고

스스로 야근 안 하고 싶으면 6시 퇴근 시간 맞춰

요. 그리고 꼭 이때가 아니어도 공공기관에서 종

서 일 끝내고 집에 가라고 하거든요. 대신 내가 일

종 긴급입찰이라고 해서 7~10일 정도 시간만 주

을 다 못 마치니까, 결과물이 없으면 평가나 성과

고 제안서를 받을 때가 있어요. 일반적으론 40일

에 안 좋으니까 하는 거죠. 그리고 제안서를 쓰거

정도 시간을 주는데 이때는 회사에서 발등에 불

나 뭔가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은 낮에 하기가 어

이 떨어졌으니 진짜 급하게 써야 해요. 문제는 애

려워요. 이때는 회사 클라이언트나 같이 협력해서

초에 계획에 있던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원래

일해야 하는 광고, 행사업체들이랑 조율하면서 일

예정에 있던 일은 그대로 하면서 야근하거나 주

상 업무를 해야 하거든요. 만약 회사나 공공기관

말에 출근해서 그 회사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부

에서 클라이언트도 예상 못 한 이슈가 터져서 내

하고 1주일 만에 제안서를 쓰는 거예요.“

일까지 해결해달라고 우리한테 전화가 오면 현장 에 가서 사실관계 확인하고 기자나 SNS 등에 알

이쯤에서 무조건 긴급입찰에 참여해야 하는 것

려야 하거든요.”

인지, 제안서를 쓰자, 쓰지 말자 선택하는 기준 에서 AE에게 권한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결국 AE들은 제안서를 쓰는 일처럼 긴 시간 집중이 필요한 일들은 저녁이나 주말에

“무조건 모든 긴급입찰을 다 해야 하는 건 아니에

몰아서 하게 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19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저평가하는 사회

가 제출한 내용이 좋든 안 좋든 맞든 아니든 그 회

“일하면서 속상할 때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사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

우리와 같은 일하는 사람들 인건비에 대한 개념

공한 거잖아요. 적어도 우리가 한 곳을 결정하는

이 부족하거나 없을 때인 것 같아요. 우리는 재료

데 비교 대상 역할이라도 한 거고요.”

를 사서 상품을 만드는 일이 아니잖아요. 홍보 기 획을 하는데 비용이 얼마가 드는지 시간은 얼마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을 잊어버리게

나 들었는지 필요한지 정해진 답이 있거나 증명

되는 요즘

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만족할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건 그때는 몰랐는데 요즘

만한 기획을 했다고 해도 결국엔 회사 클라이언

고등학교 때 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새

트의 필요나 취향, 선호도에 따라서 합격이든 아

삼 느끼고 있어요. 언젠가 선생님들이 대학교에서

니든 결정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밤새도록 고민하

<송환>이라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데 보러 가

고 준비했든 아니든 회사 클라이언트가 별로라고

고 싶은 사람은 야간자율학습 빼줄 테니까 가도

저평가하면 그만이에요. 사람들이 우리가 만들어

된다고 안내해주셨어요. 그 영화가 비전향 장기수

내는 무형의 가치를 인정하는 거에 너무 인색한

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왠지 그 영화를 보면 뭔가

거죠. 그래서 매번 계약할 때마다 인건비 좀 깎아

세상에 비밀을 알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더라

주시죠 이 말이 자동으로 나오나 봐요."

고요. 그래서 친구들이랑 같이 영화를 보러 갔는 데 그때 아니 사람이 이렇게 사는 세상이 있구나!

이러한 경우가 유독 한국만 있는지 해외에서는

그런데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어떻게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런 걸 모르고 살았을까 충격이 엄청 컸어요. 그 때까지 살면서 이렇게 마음이 힘들었던 적이 없

20

“제안서를 낼 때 한 회사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가

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대학에 가서 다큐멘터

제안서를 낼 거 아니에요. 그러면 외국 같은 경우

리 감독을 하고 싶어서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꿈

엔 기획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제안서를 제출해준

을 키웠는데, 졸업을 앞두고 문득 현실에 벽이 높

회사에 최소한의 보상을 하고 있어요. 제안서를

다는 걸 느끼겠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더

쓰기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있고 자료를 만들든

라도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기

디자인을 만들든 비용이 들어갔을 거 아니에요.

업이나 공공기관에서 그게 이미지 포장이든 뭐든

그 수고에 대해 답례를 하는 개념인 거죠. 우리도

광고를 통해 이런 역할을 하잖아요. 그래서 자연

광고 시장이 호황일 때는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

스레 이쪽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벌써 7년이

은 홍보 대행사가 워낙 많으니까 너희 아니어도

란 시간이 흘렀어요. 요즘엔 직업관이라고 해야

입찰할 회사 많다, 우리는 그 내용으로 안 할 건데

하나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처음 시작했을 땐 뭔

돈을 왜 줘야 하냐 그렇게 이야기해요. 근데 우리

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일에 치이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해야 할

가 자주 있어요. 일을 통해 재미를 찾거나 자부심

사회적 책임이나 역할을 내가 대신 때워주고 있

을 느끼거나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들만 남는 거

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에서 의미를

죠. 그리고 저희 일이 늘 촉각을 다투다 보니 시기

못 찾겠으니까 몸도 마음도 더 힘들어지고 그냥

도 중요하고 마감도 지키면서 완벽해야 하는 부

월급이나 받자 사람이 이렇게 되더라고요.”

담이 있어요. 기사로든 온라인으로든 세상에 알 려지고 나면 주워 담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저 같

그래서일까. 김서영 님은 요즘 사회적인 가치를

은 경우엔 평일엔 항상 몸이 많이 긴장되어 있어

우선하고 그 가치를 같이 실현할 수 있는 조직

요. 작은 것 하나에도 예민해지고요. 이럴 때 그나

이나 사람과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고민이 깊

마 숨 좀 쉬고 싶을 땐 여행을 가요. 우리 회사가

어지고 있다고 한다.

출퇴근이나 연차 휴가 이런 게 자유로운 편이라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을

“이런 생각을 들게 한 시발점이 노동강도에요. 하

때 여행 갈 수 있게 시간을 보장해주거든요. 그리

루 24시간 중에 저를 위해 쓰는 시간이 절대적

고 3년마다 유급으로 안식월 휴가를 줘요. 그나마

으로 부족하더라고요. 저 스스로 에너지가 있어

이런 시간을 회사가 보장해주니까 다들 재충전하

야 일에 결과물도 좋을 텐데 지금은 영 그렇지 못

고 힘내서 일하는 것 같아요.”

해요. 한편으론 그동안 너무 일을 통해서만 자아 실현을 하려고 했나 그런 고민도 들어요. 요즘 워

앞으로의 계획과 바람

라벨(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 Walk and

“저는 끝까지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어요. 일은 힘

Life Balance)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되고

들지만, 항상 일할 때 이 생각해요. 사람이 평생

있는데 저한테도 절실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살면서 뭔가를 남기잖아요. 그래서 저는 뭔가 프 로젝트를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고 오늘 인터뷰 나오면서 이 이야기는 꼭 하고 싶

“일에 대해 자부심도 있고 기쁨도 있어서일 거에

었는데 요즘 4차 산업혁명이다 뭐 다 그러는데 저

요. 제가 기획한 홍보가 지하철이나 라디오 광고

는 오히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사람이 할 수밖

로 나오고 이런 결과물이 나왔을 때 가장 기쁜 것

에 없는 일에 대해 사회적으로 가치 평가가 높아

같아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과 협업이 중요한

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제주에서 특성

데 다 같이 과로하고 힘들지만 서로 잘 알고 이해

화고 현장실습생 문제가 또 불거졌잖아요. 일하다

해주고, 서로서로 인정해줄 땐 뿌듯하기도 하고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볼 때면 너무나 슬프고

요. 가장 힘들었을 땐 내 생활이 없을 때겠죠. 2주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어쩔 땐 외면하고 싶은 마

동안 계속 야근해봐요. 일하는 시간이 길어서 신

음도 들어요.”

입들이 들어오면 1년 정도 다니다 그만두는 경우

21


연구소 리포트

일자리 창출? 어떤 일자리 창출? - 공공·운수부문 교대제개선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과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 연구

최민 상임활동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연구를 시작하며

해를 끼치는 것이야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때, 취임 일성으로 인천

한국의 교대노동은 장시간 노동과 결합된 낡은

공항을 전격 방문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

형태로 교대·야간 노동의 유해성을 증폭시켜왔

직화 하겠다고 했던 것이 벌써 옛날 일로 느껴

다. 공공·운수부문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하나의

진다. 쉽게 진행되지만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경로로 노동조합이 낡은 교대제 개편을 고민한

이후 발표된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나 일자

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리 창출 규모는 기대보다 미미했다. 예상 밖으

좋은 일자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

로 강력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와 적대감은

다. 그 중 ▲ 교대제와 노동시간 측면에서 “공

바라보기 민망하기까지 하다.

공·운수부문 좋은 일자리”에 대한 기준을 마련

‘공공·운수부문 교대제개선을 통한 노동시간

하고, 이에 따라 적정한 교대제 제안을 만드는

단축과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 연구’를 시작했

것 ▲ 실제로 교대제가 이렇게 개선됐을 때, 노

을 때는, 지금보다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동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 또 이를 통

대해 조금은 기대가 남아 있을 때였다. 공공부

해 새로 창출될 일자리는 얼마나 되며, 비용은

문 일자리 창출 방안 중, 낡은 교대제를 개선해

얼마나 소요되는지 가늠해보는 것이 연구의 목

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구

표였다. ▲이 과정에서 교대제 관련 법제도 개

체적인 경로를 노동조합 주도로 만들어보자는

선안도 만들고자 했다.

제안이었다. 연구 방법 심야·교대노동이 노동자의 몸과 삶에 다양한 22

이를 위해 그 동안의 교대제 개선 및 변경 사


례를 검토했다. 자동차 부품사 주간연속2교대

이상의 휴식을 보장하며, 여기에 더해 주휴일

제 시행 사례, 포스코와 유한킴벌리 4조2교대

24시간이 완전히 보장되도록 하여 일주일에 한

제 사례, 교대제 유형에 따른 버스 운전노동자

번은 연속35시간 이상 휴식이 보장되도록 하는

과로 실태 사례, 서울형 노동시간 단축 모델 시

나라도 있다. 호주에서는 주간 근무하는 노동자

범 적용 사례 등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들여다

들이 연간 4주 연차를 보장 받을 때 교대근무자

보니, 교대제 변경 과정에서 실질적인 노동시

들은 5주간 연차를 보장받는다. 가족이나 사회

간 단축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전체 노동시간

생활을 돕기 위해 가급적 휴일을 주말과 맞추

은 그대로 두고, 출근 일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도록 하라는 ILO 권고도 있다.

교대제를 변경하는 4조2교대의 경우가 그랬다.

이에 비해 국내법은 현재 교대근무 관련 원칙

출근 일수가 줄어드니 노동자들도 찬성했지만,

이나 세부 내용이 전혀 없다. 교대·야간 노동에

하루 노동시간은 증가하고 특히 심야 노동시간

대한 정의도 없고(야간근로 임금 가산을 위한

이 증가하는 문제가 있었다. 제조업 주간연속2

정의만 있음), 교대근무 시간 규정, 1일 혹은 1

교대제 도입에서 나타난 것처럼 노동시간을 줄

주 단위의 연속 휴게시간 보장 관련 내용이 모

이는 대신, 노동강도를 높이는 경우도 있었다.

두 전혀 없다. 근로시간 특례 업종 및 적용 제외

모두 교대제 개편이 노동자보다 사측 주도로

업종의 경우 법적으로 야간노동을 포함하여 무

이루어졌고, 교대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제한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상태다. 산업안전보

질 향상이라는 근본적인 목표가 희석되고 말았

건에 관한 규칙에서 장시간, 야간근무를 포함한

다.

교대근무, 운전업무 등을 행하는 경우 노동자의

교대제 관련 국제기준 및 해외 입법례도 살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사용자가 취해야 할

봤다. 교대근로 관련 국제노동기구(ILO)의 협

조치를 열거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의무 규정이

약과 권고를 검토하고, 교대근로 관련해 핀란

아니라서 실효성이 의심된다.

드, 영국, 독일, EU, 터키, 프랑스, 스웨덴 등의 법령을 검토했다. 이들 나라와 국제 협약 및 권

연구 결과 (1) 공공·운수부문 교대제 개선 및

고에서는 대부분 야간 노동을 명확히 정의하

운영 가이드라인

고, 전체 노동시간 길이 규정 외에 야간 노동시

다양한 업종의 교대제 개선 사례와 국제 기준,

간 길이를 제한하고 있었다. EU 대부분의 나라

해외 법령을 보면서 공공·운수부문에서 교대제

들은 교대 근무 혹은 야간 근무를 하는 경우 연

를 개선하는 과정, 그리고 교대제를 운영하는

장근무를 금지하는 식이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과정에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안했다.

다음 날 다시 일을 시작할 때까지 최소 11시간 23


<공공·운수부문 교대제 개선의 원칙 중 부분> (1) 교대제 변경 목표 ○ 교대제 변경 목표는 노동자의 건강과 삶의 질 개선이 첫째다. ○ 야간, 교대근무는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교대제 변경과정은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 교대제 변경과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노동강도가 강화되지 않아야 한다. ○ 교대제 개편은 인력충원과 함께 진행돼야 하고, 정원에 반영되어야 한다. (2) 임금 보장과 시민 안전 보장 ○ 교대제 변경과정에서 실질 임금 저하가 없어야 한다. ○ 공공·운수부문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안정된 일자리는 대시민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진다. ○ 공공·운수부문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시민 안전 보장의 필수조건이다. (3) 차별 없는 교대제 개선 ○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한다. ○ 고정된 야간 노동의 용역, 파견, 하청화는 금지한다. ○ 통상근무자와 교대근무자의 노동 조건에 불합리한 격차가 없어야 한다. (4) 노동자 참여 보장 ○ 각 사업장 별로 교대제 개선과 노동시간 단축 준비 과정에서부터 노동자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 교대제 변화와 연관된 임금, 인력, 업무 재분배 등 제반 문제 역시 노동자 참여 하에 논의·결정돼야 한다.

<공공·운수부문 교대제 운영의 원칙 중 부분> (1) 야간 노동 ○ 야간노동을 하는 횟수를 최소화 한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인력확보가 필수적이다. ○ 야간 전담 근무는 없어야 한다. ○ 야간 연속근무는 3일 연속 하지 않도록 한다. (2) 노동시간 ○ 24시간 연속 조업하는 사업장의 교대근무는 3교대가 원칙이다. ○ 교대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24시간 연속 교대제를 운영할 경우, 주 35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 3교대 근무 시 연속 2개의 교대근무를 해서는 안 된다. ○ 24시간 격일제 노동은 금지한다. (3) 휴식시간 ○ 근무와 근무 사이에는 최소 11시간 이상의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 ○ 주 1회 이상 연속 35시간 휴식이 보장되어야 한다. ○ 야간근무에서 주간근무로 바뀌는 경우에는 역일(曆日)상 24시간(오전 0시에서 오후 12시)의 휴일이 보장되어야 한 다. ○ 월 1회 이상 주말에 휴일이 보장되어야 한다. 24


연구 결과 (2) 업종별 교대제 개편 인력 및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연간 1,765시

비용 추계

간~1,825시간 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 물론

이런 개선과 운영 원칙에 맞추어, 공공운수노조 내 교대제 사업장 몇 군데에 대해서 실제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대제 개선안을 제안하고, 필 요인력 및 비용을 추계해보았다. 추계 과정에서, 교대제 개선에 필요한 인력은 전체 정규인력 충 원을 원칙으로 하고, 평균임금이 하락하지 않는 모델을 기본으로 했다. 다만 사회적 비용을 무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신규채용으로 인력 충원 을 하게 되니 인력 충원비율보다는 인건비 증 가폭은 적지만, 이마저도 큰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개선해봤자 이 사업장 노 동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1,800시간인 셈이 다.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수준의 노동시간 단 축이라고 본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부담할 수 있 는 비용 수준을 고려할 수 있도록 몇 가지 변형 안도 제시했다. 교대제 개선 과정에서 노동시간단축으로 임금하 락 규모가 매우 크고, 임금 수준이 낮은 경우 임 금체계 개편도 필요함을 분명히 했다. 실질임금 저하가 없어야 교대제 변경의 목적인 노동자 몸 과 삶의 복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대제 개선 은 실제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하므로, 줄 어드는 노동시간을 별도의 지원근무나 대근으로 벌충하는 방식은 배제했다. 교대제 개선비용 추계 사업장 중에도 3조2교대 근무로 연간 2,312시간, 4조3교대 근무로 연간 2,281시간 근무 중인 경우가 있었다. 이 노동자 들의 교대제를 주 40시간이 넘지 않도록 하고, 24시간 조업하는 업무의 경우 심야노동의 부담 을 고려하여 35시간을 넘지 않도록 설계했다. 일 주일에 한 번은 연속 35시간 쉬도록 보장하며, 한 달에 한 번은 주말에 쉬어 가족이나 친구, 이 웃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보장하고자 했다. 서로 업무 내용이나 특징이 상당히 다른 6 개 사업장을 뽑아 계산해보니, 전체 인원의 13.3%~24.9%까지 새로운 인력이 필요했다. 다

연구 평가와 시사점 연구는 흥미롭게 진행됐고, 의미 있는 제안을 했지만, 아직까지는 연구에 기반해 이후 정책 방향을 수립했다거나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없다. 인천공항지역지부(비정규직노 조)의 경우 임금이 낮고, 이를 장시간 노동으로 벌충하는 체계여서 우리 연구에서는 노동시간 은 줄이고 시간당 임금은 대폭 인상해야 한다 는 방안을 제시했는데, 정규직화 요구만으로도 무임승차하려는 사람 취급받고 있어 앞으로 논의가 걱정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정 규직화 과정에서 인간다운 노동시간도 쟁취하 길 기대한다. 상대적으로 고임금 기업의 경우 임금에서 손 실을 보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을 제안해야 한 다는 고민이 현장 조합 활동가들에게도 있었 다. 일부 기업에서라도 연구 결과에 따라 좀 더 인간적인 교대제 운영, 파격적인 노동시간 단 축, 심야노동에 대한 소정근무시간 단축(주35 시간)의 실험이 현실화되고 교대제 개선 전과 후를 비교하는 연구에 다시 한 번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른 말로는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 25


사진으로 보는 세상

26


12월 1일 저녁 7시 부산에서 현장실습 과정에서 숨진 제주 현장실습생 고 이◯◯ 님 추모문화제를 진행하였다. 발가 락이 아플 정도로 추운 날이었지만 50여 명의 부산시민들이 함께 모여서 고 이◯◯ 님을 추모하였고, 더 이상 이러한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기 위하여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폐지와 대안적인 직업교육 마련에 힘을 모으기로 다짐하 였다. 추모문화제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 부산연대, 부산청소년정치행동 ‘청정’, 부산 특성화고.마이스터고 현장실 습 대책위가 공동 주최로 개최하였다.

글/사진 이숙견 상임활동가

27


특집 : 반올림 10년,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반올림 10년, 현장의 변화와 과제

공유정옥 회원, 반올림 활동가

28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에 눈뜨게 된 10년

분의 1은 CMR(발암성, 변이원성, 생식독성) 물질

2007년 11월 반올림을 시작할 당시 한국 사회는

임이 알려졌다. 약 40%는 영업비밀을 이유로 일

반도체 산업 안전보건에 관하여 관심과 지식이 거

부 성분을 모르는 채 사용 중이며, 노출평가도 극

의 없었다. 반올림이 초기부터 산재신청을 통해

히 일부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피해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여 단지 개인에 대한 보

반도체 공정의 특성 때문에 단시간 고농도 노출이

상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진상 규명과 예방대책

수시로 이루어지고 부산물로 발암물질이 생기며,

을 촉구해왔다.

여러 공정의 공기 혼합 때문에 직접 취급하지 않

그에 대한 반향으로 10년 동안 여러 연구·조사가

는 화학물질에도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

진행되었다.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

다.

건연구원에서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화학물질

반도체 산업 현장의 안전보건관리 실태도 여러 번

사용 실태를 조사하거나 암 발생 양상, 작업환경

에 걸쳐 진단을 받았다. 2009년 반도체 3사 사업

유해요인 등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기업들은 정

장 위험성 평가 자문(서울대학교), 2010년 삼성

부의 권고나 명령에 따라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자

전자 반도체 노출평가와 노출재구성평가(인바이

문 및 점검을 받기도 했고, 여론의 비판에 대응하

론), 2013년 불산누출사고를 계기로 진행된 삼성

기 위하여 자체적인 조사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반도체 종합진단(안전보건공단), 2014년 한겨레

그 결과 지금은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에 대한

신문 보도를 계기로 시작된 SK하이닉스 산업보건

정보가 상당히 많아졌다. 반도체 제조에 1천 종

관리 평가(산업보건검증위원회) 등이 이에 해당

이상의 화학물질 성분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 중 4

한다.


SK하이닉스 산업보건관리 평가는 화학물질 관리

나’, ‘한 번도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 없다’라 말한

와 작업환경측정, 노출평가 등 각 부문에서 127

다.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어 노동자들이 안전보건

개의 개선 과제를 도출했고, 회사는 이를 100%

관리 의사결정 및 실행에 참여할 경로가 부족하다

이행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의 경우 2010년 인

는 걱정에 더하여, 일방적인 선전의 영향으로 기

바이론을 고용하여 수행한 자체 평가에서는 작업

업이 조장하는 안전불감증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

환경이 매우 잘 관리되고 있어 개선할 지점이 없

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고 결론 내렸으나, 2013년 안전보건공단이 수 행한 평가에서 따르면 안전보건관리가 ‘통제 중

기업의 사회적 소통 시작과 실패

심’이고 ‘형식적’이며 ‘전문성’이 부족하여 ‘근본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의 안전보건 문제에 대하여

적인 개선’이 필요한 지경이었다.

사회 구성원들을 향해 입장을 밝힌 기업은 삼성전 자와 SK하이닉스 두 곳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업

들리지 않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

무환경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입

안전보건관리가 성공하려면 사업주나 전문가의

증되지 않았다는 ‘부정(否定, denial)’ 전략이다.

노력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실천

그러나 SK하이닉스는 ‘아직 모른다’는 정도의 조

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에서는 노동조합이 산업

심스러운 부정으로 임하는 데 비하여 삼성전자는

보건 검증위원회와 그 후속 활동에 참여 중이다.

직업병 문제 제기가 ‘호도’이며 ‘객관적인 사실에

다만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신이 체감하는 문

근거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훨씬 공세적으로

제들을 제기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회사가 줄 불

대처해왔다.

이익이 두렵거나, 말해봤자 회사가 해결하지 않을

삼성은 부정의 ‘과학적’ 근거를 스스로 생산하기

거라는 예상 때문이다.

위해 청부과학자들을 고용하여 연구결과를 생산

사실 최근 SK하이닉스 노동자들이 이런 고충 상

하기도 했고(2010년 인바이론 연구). 다른 기관

담과 제보를 해오는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다. 안

들이 수행한 조사 결과를 호도하기까지 했다. 삼

전보건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과 필요가 높아지

성은 자사 블로그에 2008년 이후 고용노동부 및

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산하기관이나 서울대학교 등이 수행했던 각종 연

더 큰 문제는 삼성이다. 심각한 질병에 걸리지 않

구를 열거한 뒤 ‘이와 같은 다양한 과학적 검증 결

은 한,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는 현직 노동자들은

과’ ‘회사에서 근무환경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어

공장 이야기를 바깥에서 하지 않는다. 이들의 목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었다고 요약하고 있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경로는 회사가 만

다. 사실 이 조사연구들은 삼성전자의 화학물질

든 선전 영상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

관리가 부실하다거나 실제 작업 중 화학물질 노출

>이다. 영상 속 노동자들은 ‘15년 동안 근무한 사

이 빈번하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공장 안에서 발

업장인데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 벌써 있지 않겠

암물질이 측정되고 공정 부산물로 벤젠이 발생하 29


출처_반올림

고 있으니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꼬집

남은 과제

는 내용이었다.

첫째, 반도체 작업환경이나 노동자 건강에 관련된

삼성은 직업병 위험이 없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조사연구의 투명성이 제고되어야 한다. 노동자 안

과학적 근거로, 반도체 산업의 암 발병률이 한국

전과 건강에 관련된 정보들이므로 전적인 공개를

평균보다 낮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

기본원칙으로 삼고, 기업의 영업비밀은 정말로 보

다. 그러나 이는 취업 인구의 건강 상태를 일반 인

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하여 엄격히 제

구 집단과 비교하면 대개 전자의 건강이 더 좋은

한해야 한다.

것으로 나오는 ‘건강 노동자 효과’의 전형적인 사

둘째, 대기업 사내 협력업체를 넘어 부품이나 폐

례일 뿐이며, 반도체 산업이 안전하다는 증거로

기물 처리 등 생산 시스템에 종속된 업무를 담당

사용될 수 없는 자료다.

하는 사외 협력업체들 대한 조사와 개선이 이루

또한, 삼성은 ‘반올림은 피해자가 2백 명이 넘는

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유해위험성이 이전되지

다고 주장하고 계시지만 한 번도 구체적 명단을

못하도록 하고, 이미 이전된 문제들에 대해 원청

공개한 바 없다’면서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기

이 책임 있게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도 하고, ‘삼성이 죽음의 사업장이라면서 왜 본인

셋째, 기업들의 사회적 대화와 소통 실패에 대해

의 자녀들이 계속 근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서는 기업 내부의 각성과 변화도 필요하지만 제

가’라며 삼성에 자녀를 입사시킨 부모들이나 건

대로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의 무력함이나 이런

강피해를 걱정하면서도 삼성에서 일하고 있는 노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하는 사회의 분위기도

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

한몫 해왔다. 비판과 감시의 주체들이 더 많아지

다(2016년 1월 ‘아시아 미국 언론인 연합’ 토론

고 더 단단하게 뭉칠 필요가 있다.

회).

넷째, 노동자의 단결권, 내부고발과 보호받을 권

결국, 지난 10년 동안 삼성이 보여준 것은 책임의

리, 위험작업 회피 및 중지권 등을 실현하기 위한

부정, 문제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 피해자 비

현장 노동자들의 운동이 더욱 진전되어야 한다.

난 일색에 허위 주장까지 동원하는 일방적 선전 (propaganda)이었지 사회적 소통이라 보긴 어렵 다. 30


특집 : 반올림 10년,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반올림 10년, 정부·법 제도의 변화와 남겨진 과제

임자운 반올림 활동가

산업재해 인정 투쟁의 경과와 성과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둘째, 유해물질 노

지난 10월 31일 제13차 집단 산재신청을 포함하

출 정도를 추단하면서 사업장 안전보건 관리 문제

여 반올림은 현재까지 전자산업 노동자 92명의

와 같은 간접사실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였다. 셋

30여 개 질환에 대해 산재신청을 했다. 근로복지

째, 다양한 유해인자가 복합적으로 노출되었을 때

공단은 그중 11명의 7개 질환에 대해 산재인정

의 위험성(상가 작용)을 강조했다. 넷째, 업무환경

처분을, 법원은 10명의 6개 질환에 대해 산재인

의 유해성 입증을 어렵게 만드는 사정들에 대한

정 판결을 했다.

규범적 판단을 하였다. 다섯째, 희귀질환에 대한

최근까지의 산재신청 및 인정 사례들을 검토해 보

업무관련성 판단 기준을 완화했다.

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여전히 산재신청

2017년 8월에 나온 대법원 판결은 위에서 열거

숫자와 산재인정 숫자 사이의 틈이 크다. 둘째, 법

한 주요 내용이 대부분 들어가 있을 뿐 아니라, 더

원의 산재인정 판단이 그 숫자와 내용면에서 근로

진일보한 내용도 있다. 대법원은 먼저 ①산재보상

복지공단을 계속 앞서고 있다. 전체 숫자만 보아

보험이 첨단산업분야 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현실

도 법원은 총 17건, 공단은 총 12건의 산재인정

적·규범적 이유와 ②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

판단을 했고, 사업장과 질병 면에서도 법원이 인

적과 기능을 세 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설명한 뒤,

정 범위를 확장하면 공단이 그 뒤를 따르는 형국

산재보험법상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는

이다.

의학적ㆍ자연과학적 관점이 아닌 법적ㆍ규범적

반도체 산재인정 판결들의 주요 특징들을 나열하

관점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

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했다. 그리고 세 가지 판단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31


질병이 “희귀질환” 또는 “첨단산업현장에서 새

법 연구사업을 벌였다. 고용노동부가 보관하고

롭게 발생하는 질환”에 해당하고 관련 연구결과

있는 사업장 안전보건자료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가 충분하지 않아, 현재의 의학·자연과학 수준에

소송도 제기했다.

서 발병원인 의심 요인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

알권리법 연구사업의 성과로 ‘산업안전보건법

를 규명하는 것이 곤란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인

개정안’이 나왔고, 2015년 10월과 2016년 11

과관계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둘째, 특정 산업 혹

월 두 차례에 걸쳐 발의되었다. 정보공개청구 소

은 사업장에서 특정 질환의 발병률이 높게 나타

송의 주요 성과로 2017년 10월 선고된 서울고

나거나 사업주 혹은 행정청의 잘못으로 업무환경

법 판결이 나왔는데, 이 판결은 삼성반도체 공장

을 알 수 없게 된 사정이 존재한다면 이는 근로자

「특별감독 보고서」와 「안전보건진단 보고서」의

에게 유리한 간접사실로 고려할 수 있다. 셋째, 작

공개를 명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2017년 1월

업환경에 여러 유해물질이나 유해요소가 존재하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청구 처리 지침>을 마

는 경우, 개별 유해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 혹

련했는데, 동 지침은 “공공기관에서 산업안전보

은 악화에 복합적으로 점점 더 작용할 가능성을

건법령에 따라 보유·관리하는 안전보건자료 등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에 관하여 국민이 정보공개법에 근거한 공개를 청구하는 경우에 적용”함을 전제로, “정보공개법

노동자 알권리 투쟁의 경과와 성과

에 따른 비공개대상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적

반올림은 활동 초기부터 노동자 알권리를 강조해

극적으로 공개”한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왔다. 반도체 등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32

확보되려면 현장 노동자들이 안전보건 활동의 핵

남겨진 과제

심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 기본 전제가 알권리

전자산업 현장의 안전보건 관리에 대한 실효성

기 때문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위험에는 대처

있는 감시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일회적 진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이 아닌 안정적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고, 공공

들이 하나같이 자신이 취급한 화학제품의 이름·

기관과 전문가, 현장 노동자, 시민사회가 참여하

성분조차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기도 하

는 사회적 감시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다.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사내외 협력업체 노동자

삼성반도체 공장 인근을 중심으로 지역 곳곳을

의 건강권 문제도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돌며 알권리 캠페인을 벌였고, 2013년에는 노동

제도적으로 위험 사업의 외주화를 더욱 제한하

환경건강연구소 등과 함께 지역사회 화학물질 알

고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건강문제에 대한 원

권리 법·조례 제정 운동에 함께 했다. 2015년부

청의 책임이 강화되도록 해야 한다.

터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함께 노동자 알권리

여전히 질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증명책임이


출처_반올림

노동자에게 있는 것도 문제다. 이번 대법 판결이

세한 판단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그 입증 정도를 상당 부분 완화할 수는 있겠지

노동자 알권리 투쟁에 관하여는 우선 이미 발

만, 재해자 입증책임 원칙이 살아있는 한 그로부

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노동자 알권리법)

터 파생되는 기본적인 문제점들은 여전히 남는

이 무사히 통과되도록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다.

2017. 1 <안전보건자료 정보공개청구 처리 지

직업병 역학조사도 전반적으로 개선되어야 한

침>도 내용으로 개선이 필요하다. 「안전보건진

다. 산보연, 직업성 폐질환 연구소 등이 시행하는

단 보고서」의 경우, 동 지침이 비공개로 설정한

역학조사는 재해자 업무환경에 대한 ‘자연과학

부분을 2017. 10.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공개하

적·의학적’ 조사를 하는 것이고, 이는 업무상질

라고 명했다. 정보공개 심의위원회에 외부 전문

판위가 내리는 질병의 업무관련성에 대한 ‘규범

가를 위촉하겠다고 했는데, 어떤 전문가를 어떻

적’ 판단에 참고자료로 제공된다. 따라서 역학조

게 선정할 것인지는 내용이 없다. 얼핏 보기에

사는 과학적 합리성을 갖출 뿐 아니라 질판위의

기술분야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 안전보

규범적 판단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건, 노동자 알권리에 대한 전문성이 더 필요하

의 역학조사는 어느 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

다.

다.

한편, 발의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노동자 알

업무상 질판위도 위원 구성부터 바뀌어야 한다.

권리법)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안전보건

법적·규범적 판단을 하는 자리에 자연과학·의학

자료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사업장 안전보건

전문가가 많이 참여하는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

에 관한 훨씬 더 많은 자료를 사업주가 갖고 있

일 수 있다. 또한 위에서 설명한 반도체 직업병

다. 이들 자료에 대한 알권리 보장 방안은 별도

판결의 주요 내용, 특히 최근 대법 판결 내용이

로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법으로 보장된 노동

질판위의 구체적 판단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한

자의 권리를 현실화하는 문제는 노동자의 기본

다. 질판위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건 법원이 정한

권 보장과 그에 따른 활동에 긴밀하게 맞물려있

원칙들이 모든 사건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세

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33


특집 : 반올림 10년,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반올림과 노동안전보건운동

김재광 소장

구조적 문제로 야기된 노동재해를

한 안전과 정보 그리고 영업비밀에 대한 회의(懷疑)

끈질기게 제기하다

와 개선에 대한 사회적 환기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

전자산업에서의 직업성 질환 및 직업병으로, 직접적

다. 동시에 청정한 작업공간이라 기만 속에서 침묵

으로는 삼성전자의 백혈병 사망으로 시작된 활동은

을 강요당하였던 반도체 및 전자산업의 환경에 대한

작업장의 유해물질에 의해서 연유된 것으로 직접적

직접적 문제제기와 폭로는 감시되지 않는 자본의 폭

인 노동재해의 승인에서부터 사과, 재발방지, 정보의

거와 폭주 그리고 행정기관의 비호를 밝혀내기에 이

공개, 알권리, 영업비밀과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의

르렀다. ‘반올림’의 투쟁과 활동으로 직접적으로 삼

관계, 구조적 미 저항의 원인 등의 문제로 확장되어

성전자는 깨끗한 공장이라는 거짓선전을 더 이상 할

왔다. ‘반올림’이 제기한 문제는 대자본의 이윤과 은

수 없게 되었고 국내 동종의 자본에 영향을 미치게

폐 그리고 침범불가 등 사회구조적 요인 및 모순관

되었다.

계 속에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폭로

반올림의 활동은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으로 상징

하고 깨뜨리는 것에는 다양한 시도와 노력을 동반하

되는 더럽고 유해한 작업장과 이 보다 더 더럽고 유

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었다.

해한 자본의 거짓과 농간을 돌파한 투쟁이라는 점에

노동안전보건 영역이 사실상 운동으로서 출발(당시

서, 자본에 대한 사회적 감시와 노동자의 알권리 그

에는 산재추방운동으로 명명됨)하였다고 할 수 있

리고 영업비밀의 절대성을 깨고자하는 지속적 활동

는 ‘고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 ‘원진레이온 CS2(이

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가진다.

황화탄소) 집단 중독’ 이후 작업장 물질안전에 대한 요구와 노력이 부단히 있었으나, ‘반올림’ 투쟁과 활 동은 반도체, 전자산업 뿐 아니라, 작업장 물질에 대 34


피해자는 주체로 서고,

로 인해 전국적인 제보와 상담 그리고 소송 등이 가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다

능하였던 한편, 국내적 활동 뿐 아니라, 국제적 활동

한편, 운동 의제의 의의 뿐 아니라, 활동 양식의 측면

을 통하여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에서도 발전적인 모습을 보였다. 피해자가 발생하면

이는 세계화된 자본시장 환경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

이에 대해서 그 피해자 혹은 가족(유족으로 포함한)

한 활동이었으며, 국제 활동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과 활동가가 함께하는 것이 보통의 양태이며, 제 단

결과이다. 향후 활동에 중요한 자산을 형성하게 되었

체 및 활동가의 연대를 형성하여 대처하게 된다. 초

다.

기 ‘반올림’ 역시 대책위 형태로 구성 되고 이후 한

또한, 보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과와 재발방지

시조직인 대책위를 해소하고 상시연대체로 전환하

등 개별을 넘어서는 사회적 의의를 균형 있게 견지

였다. 통상 피해 발생 이후의 투쟁에서는 피해자와

하려한 점은 일반적 보상대책위와는 다른 모습이 분

가족이 중요한 주체이고, 이들의 각성이 투쟁의 중요

명하다.

한 분기점이 되곤 한다. (피해주체가 투쟁의 모든 것 을 결정하지 않지만, 중요한 의사판단의 주체임은 분

삼성 포피아 (Phobia)1를 깨다

명하다.) 이 과정에서 여러 피해자와 가족으로 만나

‘반올림’은 노동안전부문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고, 부침으로 거듭하게 된다. ‘반올림’ 역시 이 과정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으로 ‘삼성Phobia’을 극복하

을 겪었고, 아픔도 있었지만, 피해자는 분명한 주체

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0년 전 과감하게 삼성에

로 자리하게 되었다.

대항한 투쟁을 전개한 것은 말 그대로 ‘보통일’이 아

더불어 활동의 과정에서 대중적 공분을 형성하는 여

니었음은 분명하다. 이럼에도 과감한 제기와 끈질긴

러 기제를 만들어 내었다. 영화, 연극, 만화 등등의

투쟁은 다양한 대 삼성투쟁 주체들에게 직/간접적으

시도는 서로 간 연쇄반응을 일으키게 되어 대중적

로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삼성에 대한 객관적 사

호응과 참여를 조성하였고, 이로 인해 이미 조직된

회적 인식형성에도 분명한 역할을 하였다. 삼성이 한

자와 조직되어지지 않은 자간에 이물감이 최소화되

국사회에 차지하는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위치를

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노동운동적’ 의제임에도 또

고려한다면 그 의의는 매우 큰 것이다.

다른 형태의 ‘시민운동적’ 흐름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안전보건, 직업병 등 그 용어의 인지유

‘대 삼성투쟁’을 넘어

무와 관계없이, 시민들 속에서 직업병에 대한 대중적

여전히 진행 중인 ‘반올림’의 활동과 투쟁은 향후

인식을 확장하는데 역할을 하였고, 알권리와 영업비

‘대 삼성 투쟁’을 넘어 전체 전자산업에서의 노동안

밀 제한 등에 관한 입법적 노력에 기여하였을 뿐 아

전보건 문제를 감시 제기하는 한편, 국제적 차원에서

니라, 직업병 판결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발생하는 전자산업의 직업병의 이전 및 방치에 대하

일부 지역 만에 국한된 활동이 아닌 전국적인 선전

여 신뢰할 만한 제기자가 될 때, 지금까지의 운동적

과 조직을 시도한 활동이었는데, 지역의 노동안전보

성과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 있어

건단체 및 노동조합 조직의 노력이 적지 않았다. 이

그간 활동에 관계한 많은 이들의 지혜와 행동을 기 대한다. 1 어떠한 상황 또는 대상을 지나치게 두려워하거나 혐오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35


특집 : 반올림 10년,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반올림 10년을 돌아보고, 10년을 꿈꾸다.

랄라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2007년 11월 20일. 10년 전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기업에 대한 기본적인 요구에서부터, ‘산업재해 인

에서 반올림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누구도 주목하

정하라’는 국가 차원의 요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

지 않았고, ‘과연 잘 될 수 있을까?’라고 의심했던

하라’는 안전대책에 대한 요구까지 안전한 일터와

그 싸움은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반올림

노동자의 건강권에 대한 폭넓은 대응을 해왔다. 신

의 지난 10년은 삼성에서 일하다 직업병이 걸린 노

체적 고통을 넘어 희소질환 등 다양한 질병들에 대

동자들의 질병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회사의 책

한 직업병 인정 투쟁은 산업재해의 외연을 확대하

임이고, 산업재해라는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시키

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산업재해 노동자들이 겪

고, 확장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지난 10

는 심리적 고통과 재해 이후 현실을 알리며 산업재

년 동안 산업재해라는 사회적 문제와 직업병이라

해가 개인을 넘어서 가족과 그들의 공동체가 마주

는 회사의 책임을 노동자 개인의 질병으로 축소해

해야 하는 고통이라는 폭넓은 문제의식을 던져주

왔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삼성은 외면하고 있지

었다. 일터에서 노동자의 존엄과 안전, 인권을 보

만, 반올림은 오늘도 진심 어린 사과와 배제 없는

장해야 한다는 반올림의 고민이 있었기에 산업재

보상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해를 기업, 정부 등 사회적으로 함께 책임져야 할 의제로 확대해 갈 수 있었다. 이것은 직업병 피해

반올림은 지난 10년 동안 기업이 기본의무를 이행

자와 가족들, 활동가, 시민들의 연대의 힘이 있었

하지 못해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태롭게 함

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에 문제 제기를 해왔다. ‘이것은 직업병이다’라는

36


반올림의 활동은 삼성이라는 기업 감시 측면에서

일 것이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도 기여하는 바가 컸다. 삼성 노동조합 결성 시 연

노동권을 요구하는 것은 직업병을 줄이고, 노동자

대 활동, 삼성 불산누출사고, 삼성의 환경오염 사

들의 건강과 인권을 확장하는데 중요한 지점이다.

고도 반올림 성원들의 지혜가 있었기에 대응 가능

이러한 기본적임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직

한 일이었다. 삼성 최대 반도체 산업공장이라는 고

업병 문제는 제자리걸음일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

덕공단 플랜트 노동자들의 안전문제와 공기 단축

화는 단순히 한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을

을 위한 부실한 안전대책에 대한 문제 제기, 박근

넘어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직업병 피해를 줄일

혜-최순실 국정농단 공범으로 지목된 삼성 이재용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올림의 지

구속투쟁 등에서 반올림은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난 10년은 직업병을 인정을 위한 싸움이었다면 앞

활동했다. 반올림의 활동은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

으로 10년은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이 주체가

업에 맞선 기업 감시 운동으로서 큰 힘을 발휘했고

되어 직접 나설 수 있도록 외부적으로 힘을 줄 수

결국 이재용의 구속이라는 결과를 얻어 내는데 주

있는 싸움을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한 역할을 했다.

기업들의 국경 없는 착취에 맞서는, 반올림 10년을 꿈꾸다

국제 연대로서 반올림

반올림 10주년이지만 기념하거나 축하할 수 없는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은 그 슬로건에 맞게 전 세

것이 현실이다. 추워지는 날씨에 800일이 가까워

계적으로 공장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에 진

지고 있는 농성. 어려운 현실이지만 현재를 발판삼

출한 삼성 공장들의 환경은 한국과 사정이 크게 다

아 더 나은 활동을 만들어나갈 꿈을 꾸는 것 역시

르지 않았다. 아시아에 진출한 삼성이 노동자를 상

도 멈출 수 없다. 반올림은 지난 10년간 그래왔던

대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고용형태를

것처럼 앞으로도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인

활용해 비용 절감을 꾀하면서 노동자 착취 구조가

권과 건강권을 위해 든든한 지킴이 역할을 해나갈

심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삼성뿐 아니

것이기 때문이다.

라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다른 기업들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기업의 착취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하여!

에 대응하고, 피해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는

지난 10년 동안 풀리지 않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

반올림의 활동 역시도 좀 더 반경을 넓혀 국제적

로 현장 노동자들의 문제이다. 반올림 활동을 지난

으로 그려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아시아 전자산업

10년 동안 삼성 반도체·LCD에서 무수한 피해자가

노동자들의 건강과 인권의 허브 역할로서의 반올

나왔음이 확인되었고, 유해한 환경임이 밝혀졌는

림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한국에서 삼성과 기업을

데도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은 제보를 해오거나, 노

상대로 싸워 온 경험들을 전파해나가고, 아시아 피

동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없었다. 이는 아마도 견

해노동자들의 현실을 폭로하고 노동자들이 연대하

고한 삼성의 노동통제와 무노조 경영이 주된 이유

는 것을 목적으로 말이다.

37


직업환경의학 의사가 만난 노동자 건강이야기

드가의 발레, 아니 빨래하는 여인을 보았나요

김지원 후원회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관내 영세한 업체 건강진단은 우리 병원의 몫

수술적출물들이 묻는 경우도 있다. 가운에는 피

이다. 지역 내 유일한 특수건강진단 기관이지만

고름이 튀고 베타딘 소독액이 묻어나온다. 가끔

인근 경쟁병원들의 영업망이 죽 훑고 지나간

심폐소생술을 하다보면 가운이 찢어지고 단추

뒤 이삭을 줍는 터라 50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

가 떨어져 나간다. 그다음엔 우리 모두 크게 신

를 맡는 데 익숙해졌다. 물론 의사 입장에서는

경 쓰지 않았다. 일단 수거함에 던져두고 잊을

사실 편하고 사업장도 중간중간 둘러볼 수 있

만할 때쯤 되면 가운은 다시 하얗게 표백되어

어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덕분에 조그만 유

각이 잡혀 접힌 채 비닐에 쌓여 누군가가 가져

리를 입으로(!) 불어 성형하는 공장, 소규모 도

다 놓는다. 떨어진 단추도 알아서 달려있고, 인

금업, 화장품 용기 따위를 제조하는 업체 등을

턴이니 레지던트니 하는 글귀도 다시 잘 수놓

훨씬 많이 가보게 되었다.

아져 있었다.

가을에 방문한 이 업체는 수술복과 가운이 산

그 생략된 이야기 속에 이곳 노동자들이 있었

더미처럼 쌓여있는 곳이었다. 압도적이었다. 갠

다. 이런 일감은 이문이 많이 남지 않는다. 대개

지스 강가의 빨래터를 본다면 이러할 것만 같

사회적 기업, 장애인 채용 기업들에서 맡는다.

다.

혹은 종교단체나 사회봉사단체에서 운영한다. 고용된 여성 중에는 작업에 지장이 없는 수준

38

병원에서는 가운, 수술복을 아무렇게나 수거함

의 청각장애인이거나 지적장애인들도 제법 있

에 집어 던진다. 수술복으로 음식물을 닦거나

다. 그들은 종일 수술복에 묻은 이물질들을 털


어내고 커다란 공업용 세탁기와 건조기에 넣고

포착하여 그려내는 데 관심을 옮긴다. 발레 무

돌린 뒤 다시 꺼내 일일이 다림질을 하고 또 하

용수들은 그 당시에 매춘부보다 조금 더 나은

나씩 포장한다. 세탁소와 비슷하지만, 그 규모

정도의 삶을 누리며 퍽 곤란한 노동을 이어갔

나 양이 상당하고 단순 반복적이다. 빨래 더미

다고 한다. 드가는 이런 무용수들의 처우 개선

위에 앉아 허리를 비틀고 고개를 숙이고 작업

에까지 직접 개입할 정도로 자신의 피사체들에

을 하다 보면 근골격계 통증을 가장 많이 호소

게 공감하였다. 아마도 무대 뒤에서 빨래하고

한다. 면 분진에 의한 호흡기 자극증상과 화학

다림질하는 여성 노동자들까지 같은 맥락으로

약품에 의한 비특이적 피부 자극증상 등도 발

아꼈고 화폭에 담은 것 같다.

생한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다수인 사업 장답게 다 같이 집에서 싸 온 고구마와 떡을 꺼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라고 세탁 노동자들을 다

내먹으며 또 감사하게 일을 하루하루 이어 나

아는 것처럼 감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간다.

까지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의사 노릇을 위해 가운을 빨아주고 다려준 이분들의 노고에 대해

산더미처럼 쌓인 빨래 작업장 사진을 보여

실로 처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간 감사했노라

줬더니, 다른 직환의가 에드가 드가(Hilaire-

고 고백해본다. 늘 그렇듯 우리의 일은 이것에

Germain-Edgar Degas)가 그린 작품 중에 빨

서부터 출발한다.

래하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있단다. 발레하 는 여자들 말고 빨래하는 여자들? 기억에 없다. 그의 아름다운 그림 속에는 아름다운 여인들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드가도 여느 화가들처럼 이쁜 정물화나 초상화 를 그렸다. 하지만 점차 민중 노동자들의 삶을 39


국제안전보건기준에 관한 비교 검토 연구

노동자 건강 관련 ILO 협약을 살펴보기에 앞서

콜라비 선전위원

연구소에서는 올해 3월부터 회원 몇 명이 팀을 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노동

루어 안전보건 관련 국제적 기준을 국내 현황과 비

기본권의 완전한 보장이 이뤄지지 않은 국가로 지

교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동안 유럽과 북미 여러

목되어온 이유다.

국가의 교대제, 노동시간 관련 기준을 살펴보았고, 그 내용을 일터에도 실었다.

물론 ILO 협약을 비준한다고 해서 한국의 노동 현 실이 ‘글로벌 스탠다드’로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

이어서 다음 과제로,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 중

다. 예를 들어, ‘제47호 주 40시간 근로 협약’에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협약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비준했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은

현 정부에서는 ILO의 4개 핵심협약 △결사의 자유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긴 나라이

(87, 98호) △강제노동 철폐(29, 105호) 등을 비준

며, 주 노동시간 40시간은커녕 ‘68시간’에서 ‘52시

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최근에는 UN에 구체적 의

간’으로 줄이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이번 국회

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환영할만한 소식이지만 아

문턱을 넘을지 미지수다.

직 갈 길이 멀다. 한국이 비준한 협약 중 아동노동 관련 협약인 제 현재, ILO 협약 189개 중 한국은 29개를 비준한 상

182호는 아동에게 심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한

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의 평균이 61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아동

개임을 생각하면 양적으로 뒤처지는 데다, 질적으

노동의 범주는 만 18세 미만이고, 한국의 고등학

로도 문제가 있다. ILO 협약 중 그야말로 가장 기

생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달 제주의 음료

본이 되는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1

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사고로 사망한 고등학생도

8개 중 4개, 우선적 비준을 권고하는 거버넌스 협

마찬가지다. 협약 비준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도록

약(governance conventions) 4개 중 1개를 비준

적극적인 감시와 촉구가 필요할 것이다.

(1) 중요성 내지 지위를 기준으로 하면 ILO협약은 기본협약(fundamental conventions), 거버넌스협약(governanace conventions), 전문협약(technical conventions)으로 구분된다. 기본협약은 1998년 “노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들과 권리에 관한 선언(기본원칙 선언)”에서 열거한 4개 원칙(결사의 자유, 강제노동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금지)과 관련된 8개 협약이다.

40


본 연구팀에서는 한국이 노동자 건강과 관련해 비준한 협약과 비준하지 않은 협약을 살펴보고자 한다. 비준 하지 않은 협약과 국내법을 비교해보고 비준을 촉구하는 데 도움이 될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비준한 협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따져보기도 할 것이다. 먼저 다음의 표에 제시한 노동시간, 산업안전보건 관 련 협약을 먼저 살펴보고, 그 외 아동노동 및 청소년의 보호, 모성보호, 사회보장 관련 협약 등을 고려할 예정 이다. 그 내용 역시 일터를 통해 알리려 한다. 많은 분의 관심과 의견 부탁드린다.

주제

노동시간

비준여부

미비준

비준

산업안전보건

미비준

협약 제14호 주휴일(공업)협약(1921) 제106호 주휴일(상업과 사무)협약(1957) 제171호 야간근로 협약(1990) 제175호 단시간근로 협약(1994) * 단시간근로(여성) 협약에 관한 의정서(개정)(1990) 제155호 산업안전보건 협약(1981) * 산업안전보건 협약에 곤한 의정서(2002) 제187호 산업안전보건증진체계 협약(2006) 제115호 방사선보호 협약(1960) 제162호 석면 협약(1986) 제170호 화학물질 협약(1990) 제139호 직업성암 협약(1974) 제148호 근로환경(대기오염, 소음과 진동)협약(1977) 제161호 산업보건 서비스 협약(1985) 제174호 중대산업재해 방지 협약(1993) 제120호 위생(상업과 사무) 협약)1964) 제167호 건설안전보건 협약(1988) 제176호 광산안전보건 협약(1995) 제184호 농업안전보건 협약(2001)

* 참고문헌 : 김근주, 국제기준의 근로조건 규율-ILO협약을 중심으로, 한국노동연구원, 2016

41


노동시간에세이_과로자살 거둬내기

일본의 과로자살 다시보기: 덴츠의 기이한 시간과 지리멸렬한 시간

김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

42

두 차례의 ‘과로자살’ 사건

끊은 노동자는 신입사원이었고, 스물 네 살이었다.

일본에서 과로사 문제는 198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

2016년 10월 7일 유족인 어머니 다카하시 유키미(高

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과로자살이 사회문제로 떠

橋幸美)의 기자회견 발표를 통해 덴츠에서 2015년

오른 것은 1990년대 들어서이다. 2000년대 들어서

12월 다카하시 마츠리(高橋まつり)씨의 과로자살 사

는 과로사가 비정규직에까지 확대되는 한편, 과로자

건(이하 ‘2차 덴츠 사건’)이 발생하였고, 2016년 9월

살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과로자살

노동재해로 인정받았음이 밝혀졌다. 그밖에도 1차

문제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린 사례가 바로 덴츠의

덴츠 사건 이후 2013년 6월 당시 30세의 남성 사원

1991년 입사 2년차 대졸 남성 신입사원의 과로자살

이 과로사한 바 있고, 2014년 6월 간사이 지사가, 그

사건(이하 ‘1차 덴츠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1996

리고 2015년 8월에 본사가 노동기준감독서의 장시

년 첫 재판에서 업무기인성을 인정받았으며, 2000

간 과중노동 관련 시정권고를 받은 적이 있다는 사

년 상고심은 원심에서의 유족 측의 부분적 패소 부

실 또한 밝혀졌다.

분도 파기 환송하였고 무엇보다 과로자살에 대한 사

입사 1년차였던 다카하시 씨의 2015년 10월에서 11

용자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최고재판소 판결로 기

월 사이 1개월간의 시간외노동은 105시간에 이르렀

록되었다. 이 판례는 이후의 과로자살 소송에 큰 영

다. 10월 이후 소속 부서 인원이 14명에서 6명으로

향을 미쳤다. 당시 덴츠 사측은 책임을 인정하고 재

줄어들면서 담당 기업도 늘어났다. 그밖에도 신입사

발 방지를 다짐한 바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덴츠에서

원이라는 이유로 각종 접대,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맡

25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공

았고, 회식 후에는 선배 사원에게 늦은 밤까지 지도

교롭게도 이전 사건과 이번 사건에서 스스로 목숨을

를 받기도 했다. 11월 들어서는 상사에게 업무를 줄


여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되려

채 ‘기록상의 퇴근’을 한 후 다시 ‘기록상으로’ 그리

폭언을 들어야 했다.

고 ‘사적인 이유로 제 자리로 돌아와’ 밤12시까지 잔 업을 하는데, 이 시간은 자기계발 활동 등 개인적인

‘기이한 시간’: ‘자기신고제’를 통한 덴츠의

용무를 본 것으로 기록된다. 일사불란한 조직문화 속

시간기록 조작

에서 암암리에 만연된 근무시간기록 조작이 작동하

덴츠에서 월100시간을 넘는 잔업으로 고통을 겪은

는 방식이다.

것은 다카하시 씨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30대 중 견 사원들도 장시간 과중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

성과압박과 내부경쟁 심화의 배경

측은 월 잔업시간 상한을 원칙적으로 50시간으로 규

덴츠는 오래 전부터 일사불란한 조직문화와 더불어

정하고 있고, 노동자들이 시업 및 종업시간을 신고하

높은 업무강도로 유명한 기업이었다. 덴츠의 사원수

고 상사가 승인하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

첩에 적혀 있는 열 가지 수칙(이른바 ‘귀십칙’ 鬼十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다카하시 씨의 유족과 대리

則)에는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목적을 완수할 때까

인이 산재 승인을 얻기 위해 길게는 월130시간에 이

지 죽어도 손에서 놓지 말라’, ‘수동적인 인간이 되지

르기도 했던 다카하시 씨의 잔업 시간을 계산한 방

말고 항상 한 발 앞서 알아서 움직여라’ 같은 내용이

식도 사측의 자료가 아닌, 건물 입·퇴관 기록 등이었

포함되어 있다.

다.

최근 덴츠의 성과압박 및 내부경쟁 강화와 이에 따

덴츠 사원들은 자신의 근무시간을 직접 관리시스템

른 장시간 과중노동 관행 지속의 배경으로 2001년

에 입력하고 1개월분의 근무시간에 대해 관리자로부

이루어진 주식 상장과 미디어환경의 변화 또한 꼽을

터 승인을 받는다. 그런데 명목상 규정상의 초과근무

수 있다. 덴츠는 인터넷 광고부문에서 후발주자였다.

상한을 넘기지 않기 위해 근무기록을 ‘조작’하는 것

뿐만 아니라 TV광고수입의 감소로 인해 2009년 덴

이 관행화되어 있었다. 소정근로시간 대로라면 오전

츠는 106년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덴츠의

9시30분에 출근하여 오후 5시30분에 퇴근할 터인

경영관리체제는 ‘사원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는’ 방

데, 실상은 오전 8시40분에 출근하여 밤12시에 퇴근

식으로 변해갔다. 이후 2010년에서 2015년 사이 스

하는 것이었다. 더욱 기이한 사실은 분명 15시간20

마트폰 보급과 SNS 이용 증가라는 흐름 속에서 모바

분 동안 건물 내에 있었는데, 기록상으로는 기껏해야

일 광고를 핵심으로 한 인터넷 광고의 매출 비중 증

1~2시간 초과근무 한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해당 노

가가 약50%에 이를 정도였다.

동자는 업무 종료시간 이후 3~4시간 잔업을 계속하

다카하시 씨도 인터넷 광고 담당 부서에 배치되어

면서 그 중 3시간 정도를 ‘자리 비움’으로 기록한다.

자동차보험 등의 광고를 담당하였으며, 자료 분석 및

그리고 사측에서 근무시간을 파악할 때 자리를 비운

보고서 작성 등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문제는 덴츠

이유는 묻지 않는다. 그렇게 해당 노동자는 밤9~10

가 대기업임에도 환경변화에 적응하려 시도하지 않

시쯤 어떤 이유에서인지 건물 밖으로 나가지도 않은

고 중소영세기업과 같은 노동방식을 유지했다는 점 43


이다. 기존 방식의 광고와 달리 인터넷 광고는 조회

도(博報堂)의 매출은 덴츠의 절반 수준이다. 이들 미

수 등을 근거로 사후적으로 대금이 지급된다. 인력

디어의 영향력, 특히 TV 영향력은 막대하다. 덴츠와

충원에 따른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덴츠는 업무량

하쿠호도 2개사의 매출 가운데 이른바 일본의 ‘4대

증가의 부담을 기존 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

TV 네트워크’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70%에 이르며 이익규모로 치면 90%에 달한다. TV의 경우 활자매

광고업계 ‘괴물’의 탄생과 그 군사적 기원

체에 비해 광고 의존도가 큰 데다, 광고주 모집의 상

앞서 언급한 ‘열 가지 수칙’은 어떤 측면에서는

당 부분을 덴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까지 승승장구를 계속해 왔던 상황을 반영

2차 덴츠 사건이 드러난 이후 10월 중순경 이시이

하는 적극적인 사원상(像)이라 볼 수 도 있다. 그런

나오(石井直) 사장 명의로 사원들에게 한 통의 문서

데 단순히 적극적인 수준을 넘어 지나치다 싶을 정

가 배포되었다. 일본의 주간지 <주간현대> 2016년

도로 도전정신을 강조하는데, 이는 전쟁과 밀접한 관

11월12일자가 소개하고 있는 내용에 따르면, 대체로

계를 가져온 덴츠의 초기 성장과정과 관련을 갖는다

인사노무관리상의 잘못된 관행을 인정하고 개선의

고 볼 수 있다. 덴츠는 메이지 시대 말기에 설립된 일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으나, 정부는 물론 미디어로부

본전보통신사를 전신으로 한다. 현재의 사명인 ‘덴

터도 억울함과 당혹스러움을 호소하는 듯한 논조 역

츠’(電通)는 한자로 ‘전보통신’의 줄임말인 ‘전통’이

시 띠고 있다. 덴츠는 정관계 주요 인물들의 자녀가

다. 일본전보통신사는 아시아 침략전쟁 기간에는 국

대거 연고채용 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며, 다른 기업에

책회사인 만주국통신사로 이어져 광고 업무 외에 정

서 발생하면 화제될 만한 성희롱 사건 등이 조용히

보기관으로서의 업무, 나아가서는 관동군과 만주국

묻힌 사례도 많다. 덴츠는 광고주와 관련된 스캔들을

에의 자금조달 등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마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각종 사건의 무마 의혹

패전 이후 해체된 만주국통신사는 미점령군(GHQ )

이 끊이지 않는 기업이다.

과의 밀월관계 하에서 ‘덴츠’로 복원되었고, 이 과정

44

에서 전 만주철도 직원이나 군 간부 등을 대거 받아

준비된 ‘역공세’에 대비해야

들였으며, 전범을 포함한 기존 임원들도 그대로 기용

1차 덴츠 사건은 노동성이 노동재해 인정기준 개정

되었다.

에 착수하는 주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정신질환에

현재까지도 덴츠는 정부와 자본의 미디어 길들이기

대한 노동재해 인정 또한 확대되었다. 문제는 사측의

혹은 ‘언론통제’의 핵심 고리이다. 덴츠는 광고업계

대응도 이루어져 왔다는 점이다. 관리직으로 하여금

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지닌 광고회사인데, 일본 내

사원 동향을 감시하여 노동재해 발생 시 재판에 이

전체 광고업계 매출 가운데 덴츠의 매출이 차지하는

를 경우 제출할 반대증거를 수집하도록 한 것이 대

비율은 30% 수준에 이른다. 업계 2위 규모인 하쿠호

표적인 사례이다. 2015년 12월부터 의무사항으로 도


입 실시된 스트레스 체크 제도와 관련해서도 노동자

고 있다고 울상을 짓는 배경이기도 하다.

개인의 자질이나 건강관리 등의 요인을 부각시키기

역공세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물

위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2차 덴츠 사

론 우리는 세월호 사고 이후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

건이 보도되고 정부의 과로사방지백서가 발표된 직

다. 일본은 과로사와 과로자살 뿐만 아니라 ‘넷우익’

후, 사측에서 조직한 학계 등의 인사들에 의해 과로

으로도 유명하다. 스스로를 다그치던 다카하시 씨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화하거나 ‘기업활동이 어려워진

자살 전 친지들에게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

다’는 식의 논조의 몇몇 언론 투고가 이루어진 것(물

졌다’,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

론 이들은 덴츠 만큼이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역

는다’, ‘살기 위해 일 하는 건지, 일 하기 위해 사는

시 사측이 항시적으로 방어 내지는 ‘역공세’를 준비

건지 모르겠다’, ‘내일이 올까 두려워 잠을 못 이루겠

하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2016년 말 이시이 사장은

다’, ‘주말에도 출근해야 한다니 진심으로 죽고 싶다’

결국 사임하였으나, 덴츠는 건재하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건이 보도된 뒤 인

2차 덴츠 사건 이후 덴츠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

터넷 공간에서는 “멘헤라”를 비난하는 혐오성 댓글

고, 기존의 노동관행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것이

들 역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멘헤라’란 ‘정신

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왜 하

건강(멘탈 헬스)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인

필 과로사방지백서 발표일에 맞추어 2차 덴츠 사건

터넷 신조어로서, 차별적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

을 공개하고 이후로도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는지는

최근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전, 그것도 노동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차 덴츠 사건이 여론의 커

합이 적극적으로 나서 과로사대책위를 구성하여 활

다란 주목을 얻은 이유는 사망한 다카하시 씨가 ‘도

발한 활동을 벌이고 과로사예방센터가 만들어지는

쿄대 출신’에 갓 졸업한 ‘신입사원’인데다 ‘준수한 외

등의 상황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일본의 사례

모’를 지니고 있었다는 수요측 요인에서 찾아볼 수

는 저 앞의 어딘가에 복마전 혹은 지리멸렬한 시간

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베 정권의 필요라는 공급측

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한

요인이 더 커 보인다. 덴츠를 노동개혁의 본보기로

다. 일본에서 과로자살이 ‘정신건강’ 상의 문제를 매

삼아 재계를 길들이고 지지율도 챙기자는 것이다. 덴

개로 한 죽음의 형식으로만 공식적인 재해로 인정되

츠는 건드려도 쓰러지지 않기 때문, 혹은 쓰러지지

고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과로사와 과로자

않도록 광고주인 정부와 재계가 뒷받침해 줄 것이

살의 노동재해 인정만큼이나 문제를 개인화하는 흐

기 때문이다. 더욱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비롯하

름을 차단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 일본 정부는 덴츠에게 안겨줄 광고 일거리가 아 주 많다. 최근 근로감독 등이 강화되면서 규모가 작 은 편인 외식업계와 IT업계가 자신들만 희생양이 되

45


노동자 건강상식 집에서도 통증 잡기

붙이면 편해지는 테이핑 따라잡기 (4)

[팔꿈치와 손목 통증] 팔꿈치가 시큰거려 아이 안기가 힘들어요! 정경희 선전위원 (사)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향남공감의원 물리치료사

영아반 담당인 보육교사 K 씨는 아이를 안아주는 일이 잦은 편이다. 조금 무리하면 시큰거렸던 팔꿈치의 통증이 밤중에 더 심해져 병원을 찾았고, “골프 엘보”라는 진단을 받고 물리치료실을 방문하게 되었다. 팔꿈치 안쪽에 압 통이 있었고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손목관절의 움직임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였다. 물리치료 후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라 테이핑을 활용해 통증 완화는 물론, 일할 때 팔꿈치 내측과 손목에 받는 스트레스를 최소화시키려 했다. 이번에는 손을 많이 써서 발생하는 팔꿈치, 손목과 관련된 테이핑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외측 상과염 ‘테니스 엘보’ 손목을 손등 방향으로 젖히는 동작을 할 때 주로 작용하는 손가락폄근의 부착부 건 에 염증이 생기는 외측 상과염에 대한 테이핑 방법은 다음과 같다.

46

①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길이의 테이프 를 긴 방향으로 2/3 정도 반으로 잘라 준비한 것과 손목 둘레보다 약간 짧은 길이의 테이프를 준비한다.

② 팔꿈치를 90도 정도 굽힌 상태에서 붙은 방향의 테이프를 손목에 붙이고, 나뉘어 있는 양쪽 중 한쪽은 바깥쪽 튀 어나온 외측상과에 부착한다.

③ 나머지 한쪽은 팔꿈치의 근육층이 두꺼운 볼록 튀어나와 있는 부분에 부 착한다.

④ 손목을 중립자세로 편 상태에서 손 목 안쪽에서 테이프 양 끝 사이가 벌어 지 도록 둘러서 부착한다.


2) 내측 상과염 ‘골프 엘보’ 손목을 손바닥 방향으로 굽히는 동작을 할 때 주로 작용하는 손가락굽힘근의 부착 부 건에 염증이 생기는 내측 상과염에 대한 테이핑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길이의 테 이프를 긴 방향으로 2/3 정도 반으 로 잘라 준비한 것과 손목 둘레보다 약간 짧은 길이의 테이프를 준비한 다.

② 팔꿈치를 펴고 손목을 손등으로 젖힌 상태에서 붙은 방향의 테이프 를 손목에 붙이고, 나뉘어 있는 양 쪽 중 한쪽은 안쪽 튀어나온 외측 상과에, 나머지 한쪽은 팔꿈치 안쪽 넓은 근육층에 부착한다.

③ 손목을 중립자세로 편 상태 에서 손목의 손등 방향에 테이 프 양 끝 사이가 벌어지도록 둘 러서 부착한다.

3) 긴엄지벌림건염 ‘드퀘르벵 병’ 엄지를 과도하게 펼 때 튀어나오는 건이 긴엄지벌림근인데 손목을 엄지와 새끼손 가락 방향으로 자주 굽혔다 펼 때 손상되기 쉽다.

①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길이의 테 이프를 긴 방향으로 2/3 정도 반으 로 잘라 준비한 것과 손목 둘레보 다 약간 짧은 길이의 테이프를 준 비한다.

② 팔꿈치를 펴고 손목을 손등으로 젖힌 상태에서 붙은 방향의 테이프 를 손목에 붙이고, 나뉘어 있는 양 쪽 중 한쪽은 안쪽 튀어나온 외측 상과에, 나머지 한쪽은 팔꿈치 안쪽 넓은 근육층에 부착한다.

③ 손목을 중립자세로 편 상태에서 손목의 손등 방향에 테이프 양 끝 사이가 벌어지도록 둘러서 부착한 다.

4) 수근관증후군 손목수평인대 아래에는 손바닥으로 가는 근육의 힘줄과 신경이 지나가는데 손목에 무리가 갈 경우 손목수평인대가 부어서 힘줄과 신경을 압박하여 손바닥에 저린 증상이 나타난다.

① 아래팔 1/3지점에서 손바닥 절 반 길이만큼 테이프의 2/5 정도를 반으로 나누고, 손목 둘레 길이보 다 약간 짧은 테이프를 준비하여 손가락을 벌리고 손목을 손등 방향 으로 젖힌 상태에서 나누지 않은 방향의 테이프를 아래팔에 부착한

② 팔꿈치를 펴고 손목을 손등으로 젖힌 상태에서 붙은 방향의 테이프 를 손목에 붙이고, 나뉘어 있는 양 쪽 중 한쪽은 안쪽 튀어나온 외측 상과에, 나머지 한쪽은 팔꿈치 안쪽 넓은 근육층에 부착한다.

③ 손목을 중립자세로 편 상태에서 손목의 손등 방향에 테이프 양 끝 사이가 벌어지도록 둘러서 부착한 다.

47


발칙 건강한 책방

공감격차 적을수록 건강한 사회 - <보이지 않는 고통>을 읽고

출처_동녘

김지나 노무사, 후원회원

<보이지 않는 고통>은 캐런 메싱 캐나다 퀘벡

메싱 교수는 이들의 노동을 분석하고 건강에 어

대 명예교수가 노동자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떤 영향을 미치는지, 나아가 그들의 노동환경을

건강을 지키고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끊

개선하기 위해 연구와 더불어 제안해왔다. 하지

임없이 연구해온 과정을 담은 회고록 형식의 책

만 그녀의 연구는 대부분 외면 받거나 지원받지

이다.

못하면서 실패와 좌절을 겪었는데, 저자는 이를

‘공감격차’ 때문이라고 봤다.

방사성 분진에 노출된 제련공장의 노동자, 야간 근무나 교대근무로 건강이 악화되는 노동자, 좁

공감격차는 ‘과학자나 정책결정권자가 노동자

은 기차 화장실을 1~2분 동안 청소하며 만성 허

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리 통증에 시달리는 청소노동자, 한 번에 7킬로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일부 의사나 과학자들

그램의 그릇을 옮기며 성희롱까지 함께 견뎌야

이 “외상과염(테니스엘보라고도 알려진 근골격

하는 웨이트리스, 고객보다 ‘낮은 계급’으로서

계 질환)은 테니스를 두 시간쯤 쳐서 생긴 결과

하루 종일 서서 그들을 맞아야 하는 마트 계산

라고 자신 있게 진단한다. 하지만 반 년 동안 주

원 노동자….

50시간씩 전선을 잡아당기고 벗겨내는 업무가 정확히 같은 근골격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48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서는 ‘위험하다’는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연구에 근거한 정책은 노동자의 건강문

공감격차는 노동과 관련한 건강 연구의 필요성

제를 외면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을 인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 해석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밥하는 아

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게 되어 공감격차가 클수

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는 어느

록 노동으로 인한 위험과 건강의 인과관계를 추

국회의원의 발언은 정책 결정자가 노동에 대한

정할 때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만든

이해가 얼마나 없는지, 그 공감격차가 얼마나

다.

큰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위험요인과 건강문제의

결과적으로 구제 받지 못할 것이라 여긴 노동

관련성을 추정할 때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

자들, 특히 일자리가 소중한 저소득 노동자들은

은 위험요인이 건강문제와 관련이 없을 가능성

아파도 산재신청을 못하게 만들고, 그들의 건강

이 5퍼센트 미만일 때를 말하는데, 연구 결과

은 보호받지 못하는 악순환을 불러온다. 공감격

(논문)에 ‘관련이 있다(위험하다)’고 표현하기

차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위해서는 그 결과가 틀릴 확률이 5퍼센트 미만 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그 업무가 건강

메싱 교수는 수십 년 간 ‘공감하는 과학자’로서

문제를 일으켰다는 95퍼센트를 증명해야만 노

노동환경과 노동자 건강에 대한 연구 필요성과

동자의 건강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중요성을 강조하며 많은 업적을 남겼다. 공감하 는 과학자와 정책결정자들이 많아져 잘못된 노

하지만 책에 의하면 이 ‘5퍼센트’라는 비율의

동환경이 개선되고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보장

근거는 그리 과학적이지 않으며, ‘과학적 엄밀

되기를 바란다.

함과 객관성’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 걸이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대개 ‘주저하는 언 어’를 사용하는데, ‘관련이 없다’고 표현할 때보 다 ‘관련이 있다’고 표현할 때 훨씬 더 엄격한 근거를 찾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 다. 결국 노동자의 입장에서 노동과 건강을 생 각해보지 않은(공감격차가 큰) 과학자의 논문에

49


유노무사의 상담일기 더불어 與

시멘트벽돌 생산공장에서 40년, 그리고 폐암 유상철 노무사 노무법인 필

며칠 전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옆 건물

지난 10월 노원 근로자복지센터에서 상담이 들어왔

주차장 윗부분이 파손된 것을 보았다. 함께 일하는

다. 70세를 넘긴 남성 노동자인데 최근 폐암 진단을

노무사가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혹시 주차장 천장과

받았다는 것이다. 폐암 치료는 잘 되어 있는 상황이

벽 사이 하얀 가루가 ‘석면’이 아닐까요? 라고 물었

지만 거친 호흡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다. 글쎄 석면사용 건물은 나름대로 관리가 되는 거

있는 상황이라 자택 인근에서 만나 상담을 하였다.

로 알고 있는데 저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겠냐고 무

처음 눈에 띈 것은 그분의 왼손이었다. 테이블 밑으

심코 넘겼다.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은 노무사는 사

로 내려둔 왼손은 4개의 손가락이 절단되어 있었다.

무실로 돌아와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의 말

20대에 일하다 다쳤다는 것이다. 혹시나 그때 산재

에 의하면 해당 건물은 석면을 사용한 건물로 파악

처리를 했냐고 물으니, 다친 게 60년대 말인데 그런

되는데 상태가 어떤지는 직접 육안으로 확인하고 조

게 어디 있었겠느냐며 헛웃음을 치셨다.

처를 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30분 남짓 지났을 무 렵 구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정확한 것은

본격적으로 자료를 살펴보았다. 2017년 8월에 폐암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육안으로 석면이 맞는다는 것

진단을 받았다고 했는데 자료를 보니 2015년 9월에

이다. 임시로 비닐을 덮어 비산되지 않도록 조치했

좌측에 폐암이 이미 발병하여 치료를 받았고 이번에

다는 것이다. 이런 젠장! 알고 나니 그 건물 앞을 지

는 우측에 폐암이 생긴 상황이었다. 왜 2015년에는

나치기 싫다. 어쩌면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때는 “하는 일과

어린 시절 석면의 위험을 모르고 무심코 살아왔을

상관이 있을지 몰랐다”는 것이다. 재해자는 건강이

것이다. 지금이라도 체계적인 관리를 한다고 노력하

호전되자 2016년부터 2017년까지 1년 반가량 다시

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아 보인다.

시멘트벽돌 생산공장에서 일하였다.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산재 신청을 생각하게 되었냐고 되물었다.

50


“주치의가 폐암의 유형을 살펴보니 업무와 관련이

개 손가락이 절단되고 30대 초반부터 70대 초반까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왜 2015

지 40년가량을 시멘트벽돌을 생산하면서 살아온 노

년에는 그런 말을 못 들었냐고 물었다. 그때의 주치

동자는 아픈 건 아픈 거지만 그래도 내 몸이 약해서

의와 지금의 주치의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문득「굴

폐암이 걸린 게 아니라 일 때문에 그런 거라면 조금

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아

은 덜 억울할 것 같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접수했다는

픈 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 일 때문입니다”라는 글이

소식을 알리자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며 미소를 지어

떠올랐다. 다행히 2017년 8월에 발병된 폐암도 잘

보였다.

치료가 되는 상황이지만 재해자는 이미 가뿐 호흡으 로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재해자와 함께 방문하였던 시멘트벽돌 생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

힘겹게 사업장에 함께 방문하였다. 시멘트와 골재를

다. 그냥 무심코 석면이 위험을 모르고 살아왔던 나

혼합해 물, 조강제, 혼화제를 섞어서 기계로 찍어내

의 어린 시절과 같이 그들은 매캐한 냄새와 분진이

는 공정이다. 작업장은 야외에 설치되어 있고, 기계

앞을 가리는 작업장에서 마스크조차 제대로 착용하

위로 지붕만 설치된 곳이었지만 곳곳에 분진이 쌓

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여 있고 매캐한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재해자

도 재해자와 같이 폐암이 발병할 수 있다고 단정을

의 폐암은 석면과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주치

지을 수 없지만, 위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지금 당

의 소견을 바탕으로 취급 물질, 공정을 중심으로 자

장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료를 정리하고, 시멘트벽돌 생산 노동자의 폐암 발 병 사례를 찾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였다.

하지만 시멘트벽돌 공장의 사업주와 노동자들은 재

작업 중 기계가 고장 난 경우 전기용접, 산소용접을

해자가 일하였던 과정과 달라진 것 없이 하루하루를

수행하였던 상황이라 해당 자료도 함께 제출하였다.

보내고 있었다. 재해자에게 발병한 폐암은 단지 그

앞으로 폐 질환 연구소 등 관련 기관의 조사를 바탕

사람의 일이라는 태도이다. 아마도 재해자의 산재

으로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 받을 예정이다.

인정 여부에 따라 그들의 긴장감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 본다.

여러 문헌과 사례를 바탕으로 6가 크롬, 결정형 실 리카 등 폐암 추정유발물질에 노출되었다고 주장 을 한 상황이다. 시멘트벽돌 생산 시 사용하는 골재 는 건축 폐기물 등 재생 골재라는 점에서 여러 관련 성이 있다는 자료가 있었다. 20년대 초반 왼손의 4

51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슬픔과 희망을 확인했던 지난달

재현 선전위원장

세월호 미수습자 가슴에 묻다

세월호 미수습자를 찾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지난 11월 16일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1,311일이

생각하는 일부 시각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세

자, 목포 신항에 거치된 지 231일이 되던 날이었

월호 선체 수색을 요구하는 가족들을 세금도둑

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3년 7개월의

으로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기다림 끝에 세월호가 거치되어 있는 목포 신항 부두 안쪽에 마련된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며 유

결국,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은 더는 선체 수색

해라도 발견되기를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을 요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비통하고 힘들지만,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한

그러나 끝내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선생

것입니다. 제발 가족들 뼈 조각 하나라도 찾아

님 권재근 님과 권혁규 군은 가족의 품으로 돌

서 차가운 바다가 아닌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이,

싶다는 마지막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

세월호에 있을 가족들을 가슴에 묻기로 하였기

러나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정부

때문입니다.

와 세월호 선처조사위원회에서, 참사의 진실을 찾기 위해 선체를 조사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가족들은

여기서 가족들을 찾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

유해라도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에서 견

니다.

뎌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희망보다

52

영원히 가족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세월호 참사 가족 가슴에 대 못 박는 해수부

와 고통이 커져만 갔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지난 11월 17일엔 세월호 선체 <가>구역 진흙


출처_416연대

세척 과정에서 유해 1점이 발견되었으나 해양수

태 부본부장을 비롯하여 과거 정권 시절의 조사

산부 관계자가 이를 미수습자 가족과 선체조사

방해 진실 은폐 인양지연 등에 관련된 인사들에

위원회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잘못을 결코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였

와 같은 사실을 몰랐던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은

습니다.

16일 수색 중단을 요청하고 모든 장례 절차를 경과한 뒤 11월 20일 발인식을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은 해수부 장관이 이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미수습자 가족을

당시 해수부의 현장수습본부 김현태 부본부장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공식 사죄

은 담당 공무원에게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

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또한, . 해수부 장관이 직

세월호 선체조사위 조사관에게 알리지 말라고

접 이 사건의 전말을 철저히 규명하고, 이철조

했고, 해수부 현장수습본부장 역시 21일까지 해

선체수습본부장, 김현태 부본부장, 김철홍 수습

수부 장관에게도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것이 드러

과장 등 이미 드러난 이들을 포함하여 이 은폐

났습니다. 김현태 부본부장의 경우 과거 박근혜

사태에 연관된 모든 관련자를 조사하여 엄중 문

정부 시절 해수부 인양추진단 부단장으로서 세

책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해수부

월호 인양 지연, 미수습자 유실방지망 부실 조

장관이 이후 미수습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치, 선체 훼손 행위 등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

가 추가 발견될 경우는 물론이고 어떤 다른 상황

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이 현장에서 발생하더라도 결코 자의적이고 비밀 스럽고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그래서 (사)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김현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53


이러쿵저러쿵

달인이 필요 없는 사회

김규연 회원, 직업환경의 전공의

전 ‘생활의 달인’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거나 끌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싫어합니다. 한 업종에 수십 년을 종사하여 그

그 능력은 정말 대단했지만 그건 명백히 근골격

분야의 달인이 되신 분들의 능력과 직업에 대해

계 부담작업이었습니다. 한 번에 밀고 끄는 카

자부심을 보는 것이 싫은 게 아닙니다. 지름이

트가 최대 3톤까지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3톤

1cm의 한 세계를 고쳐내던 시계 달인, 아이스

을 맨손으로 밀고 끄는 것을 보며 달인이라고

크림 맛만 보고도 그 아이스크림의 유분 함량을

박수만 쳐야 하는 걸까요.

소수점 단위로 맞추시던 아이스크림 달인, 30년 째 빵 반죽을 연구하며 더 맛있는 식빵을 만들

다른 일화에선 쌀을 배달하는 청년 달인이 소개

고 있던 식빵 달인, 라면 달인, 떡볶이 달인, 가

되었습니다. 이분은 프로그램의 요청으로 카메

발 달인... 모두 존경해 마지않을 대상이었습니

라가 돌아가는 앞에서 20kg짜리 쌀 포대 10개

다. 다만,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달인 중에서는

를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났습니다. 텔레비전 자

세상을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돌아가게 하려고

막에 ‘총 10개(200kg) 성공!’이라고 뜨는데 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달인이 된 것이 아닌가 싶은

역시 웃으며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 청년의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 그 프로그램을

어깨와 목은 지금 괜찮을지요.

싫어합니다. 방송 때마다 무리한 동작, 무리한 중량물 취급

54

카트의 달인이라는 분이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의 달인들이 소개된 건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는

큰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정리하시는 업무를 하

여럿 있었습니다. 그중 무대 설치의 달인 편은

는 분이었는데 한 번에 백 개 이상의 카트를 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10m가 넘는 높은 철골


구조 위에서 달인은 적절한 안전장치 없이 날아

번에 이렇게 많은 양을 카트로 이동해야 합니

다니듯 했고, 화면 하단엔 날다람쥐, 스파이더

까? 왜 청소차에 매달려서 이동하십니까? 왜 재

맨과 같은 찬사 어린 자막이 떠올랐습니다. 하

활용 쓰레기를 이렇게 높게 쌓아야 합니까? 모

지만 전 안전을 잃은 노동현장이 일종의 묘기로

든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같았습니다. 사람이 부

써 미화되어 방송되는 것을 보며 무척 불편했습

족하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더군요.

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나 볼 것만 같았던 2층 방송사 측이 일화를 적절히 채택했는지에 대한

높이를 점프해서 내려오는 분들을 보고 주위 사

문제는 차치하고, 저는 그 달인들이 ‘달인’이 되

람들을 다시 둘러보았습니다. 한 환경미화원 아

어버린 과정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바빴을 겁

주머니는 물을 가득 담은 양동이 두 개에 대걸

니다. 시간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여러

레를 꽂고 걸어가시곤 했고요, 어떤 택배기사님

개를 옮겨야 했을 겁니다. 사람이 없어서 혼자

은 500ml 생수 20개가 든 상자 2개를 한 번에

서 많은 수량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옮기기도 하시더군요. 사방에 생활의 달인이 아

처음엔 쌀 포댓자루를 한 개, 몇 년이 지난 후

닌 분들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 사회는 모든 사

엔 두 개, 그렇게 달인이 되어버렸겠죠. 각 일화

람이 달인이 아니고서는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의 끝 무렵엔 달인 인터뷰가 나옵니다. 달인들

이른 걸까요.

이 자기 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부심과 긍지 를 보여주죠. 하지만 자부심, 긍지와는 별개로,

제가 만났던 한 환경미화원 아저씨께 물었습니

그분들의 팔과 다리는 지쳐있을 것이라는 게 너

다. “힘들지 않으세요?” 그냥 커피 한 모금을 홀

무 명확해 보였습니다.

짝 들이켜곤 허허허 하고 웃으시더군요. 돌이켜 보니 저만한 우문도 없습니다. 그분들은 분명

언젠가 환경미화원의 작업현장을 조사할 일

달인이었지만, 3톤을 밀고 끄는 작업이, 수십 킬

이 있었습니다.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환경

로그램을 어깨 위에 올리는 작업이, 2층 높이로

미화원의 작업현장을 그대로 따라다녔습니다.

쓰레기를 던지는 작업이 힘들지 않은 게 아닙니

A4 용지 2개 크기쯤 되는 바퀴 하나 달린 카트

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은 일을 끝내기

에 생활 쓰레기를 400L가량 담아 경사로를 이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달인이 되었을 뿐이지요.

동하는 것도 보았고, 청소차가 환경미화원을 뒤 편에 매단 채로 큰길에서 달리는 것도 보았습니

그래서 저는 여전히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싫

다. 재활용 쓰레기를 2층 높이까지 던지기도 하

습니다. 무리한 노동을 미화시키는 것이 불편합

고, 다시 2층 높이의 트럭에서 그걸 정리한 뒤에

니다. 그 누구도 달인이 될 필요가 없는 사회였

훌쩍 뛰어 내려오시기도 하더군요. 그 어떤 작

으면 좋겠습니다.

업도 ‘달인 급’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왜 한 55


문화읽기

슬프고 좋은 일 - 노동안전보건활동가의 삶 <결국 사람을 위하여>, 사회건강연구소 기획, 정진주 외 지음, 소이연

정글 회원

출처_소이연

56

최근 출판계의 한 경향이 있다면 ‘보건’이다. <아픔이

단단한 근거에 입각한 그들의 주장을 통해 건강불평

길이 되려면>을 시작으로, <건강 격차>, <보이지 않

등의 거시적 문제점을 인식하는 일 역시 절대 가볍지

는 고통>까지 인구집단의 건강은 하나의 화두를 이

않다. 하지만 산업 현장이라는 특정 장소가 있고, 그

루고 있다. 이런 현상의 의미는 여러 모로 해석될 수

곳에서 아파하는 이들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을 ‘전문

있지만, 하나의 해석을 하자면 세월호라는 파국을 겪

가’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어떤 사람을 ‘전문가가

으며 안전과 생명의 문제가 사회구조와 직결되어 있

아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뼈마디 마디마다 고통을

음을 재인식한 우리의 의식 변화와 관련 있지 않을

새기고 살아온 이들을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까? 즉, 이런 경향은 건강불평등과 산업보건의 문제

까?

와 같은 사회구조가 다른 무엇이 아닌 ‘자신의 몸’에

이 책은 이 물음에 답하고 있다. 그 답변은 단순한 대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이제 적잖은 사람들이

답이 아닌 김신범, 박세민, 이은주, 이훈구 네 명의 노

각인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안전보건 분야의 노동/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몸으

앞서 언급한 세 권의 책은 모두 훌륭하지만 소위 ‘전

로 써내려간 기록이다. 그들이 안전보건분야에 투신

문가’에 의해 쓰였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

했던 당시는 노동운동이 시대의 과업이었던 시절이

다.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다.

었고,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부차적이었다. 인간의 조


건을 두고 목숨이 오가는 장에서 ‘건강’은 사치스러

“장례를 치르는데, 발인하고 고인이 살던 집에서 제

운 이슈였다. 그럼에도 노동자와 함께 하는, 그들 중

를 지내잖아요. 아버지랑 저랑 제사 지내는 걸 보는

다수는 스스로 노동자이기도 했던 이들은 다음과 같

데. 아버지가 담배 한 대를 태우는데, 아버지 담배 피

은 문제의식에 직면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왜 똑같은

우는 그 모습 뒤로 만장이 있고. ‘은주야, 내가 산 인

건강 문제가 반복되는가? 이렇게 억울하게 아픈 사람

생이 내 아들 둘이 살다 간 인생보다 더 길다.’ 이 말

들이 있는데 왜 우리는 왜 바꾸지 못하나” 그리고 각

씀을 하시는데, 아. 그 장면이 내 머리 속에 찍혀 버려

자의 현장에서 비참을 경험하며 무엇이 답인지, 끊임

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어요.”

없이 자문하고 있다. 다른 세 명 역시 이런 죽음의 장면에서 자유롭지 못 어쩌면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명 모두에게 강렬한 영

하다. 이런 상황을 거치며 활동가들은 지식의 문제보

향을 끼쳤을 하나의 사건을 살펴보자. 요양중 자살을

다, 몸으로 부딪히는 기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 최초의 사례인 이상관

다. 김신범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노동

사건은 다음과 같았다. 이상관은 대우자동차 입사 1

자들은 자신이 지금 몇 ppm의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년 만에 산재 환자가 됐다. 그해(1999년) 2월 20일 공

있는지를 몰라서 못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싸워

장에서 짐을 옮기다 차에 치여 고향 사천 성모병원에

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못 싸우는 거라고 생각했

입원했다. 아버지는 다리를 절고 염좌 증상이 심해져

다.”고 한다. 그가 택한 방식은 싸우는 방법을 만들어

걷지도 못하는 아들의 증상과, 입원해야 한다는 주치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런 전략은 자신의 몸

의 소견을 전하러 근로복지공단에 갔다. 근로복지공

을 보호하기 위해 아닌 것에 대해 ‘아니다!’라고 말할

단은 “25세 이후 찾아오는 노화 때문”이라며 연기신

수 있는 주체성을 포괄한다.

청을 거부했다. 6월 22일 아들은 “도저히 예전같이

이훈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다음

회복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과 같은 한노보연 설립취지도 같은 맥락이다.

떠났다.

“소위 전문가라는 외부 사람들이 일하는 노동자보다

그랬던 이상관의 아버지는 2002년 다시 이은주가 있

더 전문가인 것처럼 인식해서 노동자 당사자의 문제

는 마산창원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을 찾았다. 대우

를 ‘대리’하거나 ‘대행’하는 구도가 보편화 되어 있었

조선에 다니던 이상관의 형이 산재 치료 중 자살했

다. 한노보연은 대행 구도를 반대했다. 한노보연은 보

기 때문이다. 이은주는 다시 아들을 잃은 아버지 옆

건의료인과 학자의 역할을 존중하되 노동안전보건운

에 있었다. 자신이 한 일은 아버지 옆에 있는 일뿐이

동의 중심세력은 현장노동자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

었고, 회사가 알아서 가족들이 동의할 수 있는 선에

다.”

서 안을 가져와 합의를 했다. 당시 형제의 아버지 곁 을 함께 했던 이은주는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57


하지만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안전보건운동이란 말

에게 오늘도 달려가는 그들이 여기 있다. 그리고 그들

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좌절의 기

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일하다 아프면서도 알려지

록에 가깝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박세민 노

지 않은 수많은 노동자의 삶으로 들어가게 된다. 고되

동안전보건실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 그 일을 기꺼이 슬프

“작업 중지를 시키고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데, 물량

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이은주의 다음과 같은 구

팀에게는 할 수가 없어요. 예를 들면, 그라인더를 하

술은 노동자도, 전문가도, 활동가도 아닌 일개 ‘참관

고 있는데 가서 환기조치 안하고 있다고 작업중지시

인’에 불과한 나조차도 감화 받게 만든다.

키면 그라인더 그냥 집어 던져 버려요. ‘느그들이 우 리 새끼들 먹여 살릴 거냐?’ 그러면서 난리치거든

“제가 아프다는 걸 인식은 하지 않고 산 거 같아요. 그

요.”

때 생긴 버릇이 화장실 입구에서, 세숫대야에 발을 담

이런 현상은 박세민의 구술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 사

구고 주무르며 그날 퉁명스레 말한 일을 생각해보며

람의 구술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산재의 기저에

‘참 그럴 만했네, 힘들었으니 그랬네.’ 며 저를 다독여

는 다단계 하도급과 기성 삭감 등 수많은 구조적 문

준 거죠. 좀 여유가 생기면 ‘아 그 사람이 나에게 이렇

제가 있지만, 활동가들이 마주하는 저항에는 다름 아

게 말해 내가 상처 입었구나. 저 사람은 이거 때문에

닌 노동자가 있는 것이다. 이런 강요된 자발성은 노

그렇게 말했겠구나.’ 이게 된 거죠.”

동자들 간의 분리와 경쟁이라는 현상으로 표면에 드 러났고,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런 굴레 안에서 활동가들 역시 지친다. “일단 이거 부터 해결하자.”는 다짐을 매일 새로운 사건을 대하 며 되풀이해야 하는 악순환이 생긴다. 하지만 산업재 해는 노동 강도와 노동 조건 전반에서 누적된 위험이 드러난 결과다. 근본적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을 건드 리지 못하고 매번 다른 이슈에 뛰어들어야 하는 그들 의 고단함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곳에 있다. 좀 더 힘이 없는 사람

58


노동안전보건잡지

일터의 정기구독 회원을 모집합니다 6개월 구독료 20,000원 1년 구독료 40,000원 권당 가격 4,000원 구독 신청 031-247-8633, laborr@jinbo.net 입금계좌 국민은행 660401-01-702487(예금주 : 한노보연)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향해 모든 이들의 안녕함을 위해 한걸음씩 내딛어 가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후원회원으로 함께해주세요 후원신청 www.klish.or.kr, laborr@jinbo.net 669702-04-026894, 국민은행 김정수 (한노보연)

11월 후원회비를 납부해주셨습니다. 강모열 강영우 강정주 강진욱 강찬구 강충원 곽선영 권동희 권영국 김경도 김경희 김기동 김기헌 김대광 김동춘 김두현 김만원 김명성 김미선 김봉철 김부욱 김선미 김선배 김선수 김설민 김설민 김성희 김수현 김승섭 김승환 김영수 김영철 김옥헌 김우태 김윤지 김재민 김정신 김정열 김정원1 김정원2 김종은 김준우 김준우 김지나 김지 원 김진철 김창헌 김필수 김혜선 남원철 노현 류현석 명준표 문제혁 문진영 민주노총법률원 박상정 박선재 박성천 박신안 박윤경 박일원 박제한 박종국 박종우 박주옥 박채원 박해정 배정란 백남순 백남운 법무법인민심 변승규 변승규 변은영 변진경 붉은몫소리 삼식이 서동현 서문기 선종현 손근호 손석기 손익찬 송영석 신경석 신경화 신유록 신정범 신진섭 안기옥 안대엽 안성민 안태은 양문영 양진권 양희만 엄연섭 예병진 오동영 오병창 오진석 오진환 오현정 오희정 우지영 유기훈 유상철 유준 윤성용 윤정식 은상준 이고은 이기태 이대용 이동윤 이명숙 이명준 이병근 이상언 이상재 이선웅 이세영 이승운 이승주 이영호 이우상 이원태 이은주 이인규 이자호 이재범 이재중 이정규 이진아 이창후 이한진 이활연 이효상 이희영 임경채 임재우 장성미 장현석 정규전 정두인 정미경 정병권 정성욱 정영민 정윤경 정하나 정해선 정현섭 조명심 조민제 조애진 조연선 조영호 조은혜 조인정 조종완 조창묵 조창묵 주석재 지영훈 진선우 차은우 채수용 채종석 천지선 최재근 추상효 추승현 한국지엠노동조합지부 한규권 한진구 함승호 허경 현대자동차지부남양위원회 홍정연 홍진성 황선태 황진철 * 지난 164호 일터에서 7/8월 후원회원 납부 명단에서 추승현, 한국지엠노동조 합지부, 한규권, 한진구, 함승호, 향남약국, 허경, 현대자동차지부남양위원회, 홍 정연, 홍진성, 황선태, 황진철 님을 누락하였습니다. 사과 말씀 드립니다.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통권 166호 2017년 12월 발행인 김형렬 선전위원 경희, 승종, 영우, 콜라비, 종호, 경미, 나래, 재현 만평 박원종 편집 성실 표지 불꽃행동 인쇄 동 광문화사 발행기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발행일 2017년 12월 7일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남부순환로 2019 경신 빌딩 501호 (우 07023) 전화 (서울) 02-324-8633 (수원) 031-247-8633 (부산) 051-816-8633 (홈페이지) www.klish. or.kr 이메일 laborr@jinbo.net 팩스 (서울) 02-324-8632 (수원) 031-247-8632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