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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영적 순환 정현구 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
아픈 환자들이 많다. 매주 두세 차례 신장투석
역사 속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살 수 있는 집이 되
을 받는 환자도 있고, 또 피순환을 돕는 장치를 심
려면 반드시 상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어야 한다.
장에 넣고 다니는 환자도 있고, 산소호흡기를 끼고
건강한 몸이 되려면 물론 심장과 신장과 허파와 같
있는 중환자도 있다. 혈액순환, 호흡순환, 소화기
은 순환장치가 잘 작동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구
순환이 잘 안 되면 몸이 아프다. 순환은 몸에서 곧
약백성들에게 언약백성으로서의 삶을 가능케 하는
생명과 같다.
심장과 허파와 같은 영적 순환장치를 그들 속에 두
때로 마음이 약해지고 매사가 불만스럽고, 삶이
셨다. 그것은 유월절과 오순절이었다.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 마음이 왜 그런지 모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다. 그들은 유
르겠다 싶다. 마음의 순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월절을 지키면서 무엇을 떠나야 하며, 무엇에서부
내보내야 할 것이 마음에서 나가지 않고 있거나,
터 자유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과거 출애굽을 기
마음에 들어와야 할 것이 들어오지 않으면 마음이
억하면서 그들의 영혼을 붙잡는 죄란 애굽으로부
아프다. 원망과 미움이 나가지 않고, 칭찬, 격려 같
터의 현재의 출애굽이 중요함을 기억하는 것이다.
은 것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든다. 가
그러므로 유월절 제사는 그들 마음속의 애굽을 버
정도 마찬가지다. 가족간의 소통이 안되면 행복할
리게 하는 일종의 영적 하수도와 같았다.
수가 없다. 순환의 문제가 핵심이다.
그들이 출애굽 한 지 오십 일째 되는 날 시내산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다. 주님에 대한 사랑이 식고, 성경에 대한 식욕이 떨어지 고, 신앙이 형식적이 된 것 같은데, 그 이 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율법을 받는다. 그들에게
그 이유는 분명해진다. 영적 탁한 공기, 영적 독소
던 그 날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무엇을 위해 자유
를 밖으로 내보내는 영혼의 배출구가 막혀 있기 때
로워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오순절은 그들이 하나
문이다. 말씀의 신선한 공기와 영적 영양소가 들어
님의 율법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게 하는 일종의 영
오는 영혼의 유입구가 막힌 것이다. 순환에 문제가
적 상수도와 같았다. 마음의 애굽을 버리는 유월
생기면 영혼도 영양실조에 걸린다.
절, 하나님의 율법이 채우는 오순절, 이 두 절기는
순환에 관한 이 평범한 진리는 구약 이스라엘
오순절은 율법부여일이었다. 이런 오순절을 지키 면서 그들은 과거 그들이 받았던 하나님의 율법을 기억했다. 노예의 법이 아니라 자유인의 법을 받았
그들의 삶을 가능케 하는 영적 순환장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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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R September 2013 Vol. 10
장치가 잘 돌아갈 때 그 나라가 융성했고, 그렇지
게 영적 순환장치를 주셨다. 이런 장치가 잘 작동
않을 때 패망했다는 이야기, 그것이 구약 이스라엘
할 때 자라고 성장하고 전진할 수 있다. 사도행전
백성들의 이야기다.
에 나타난 신약성도들의 승리의 삶 뒤에는 영적순
신약의 이야기도 순환이란 모티브로 생각할 수 있다. 구약에 유월절과 오순절이 있었듯이, 신약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간다. 시대가 많이 변했
약보다 더 확실한 유월절 출애굽이 있다. 이스라엘
고, 너무나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원리는 바뀐 것
백성들이 애굽이란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듯이, 모
이 없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몸과 마음 속에 있는
든 사람들이 죄와 사망이란 애굽의 지배 아래서 산
순환장치들이 잘 돌아가야 건강하듯이, 신앙생활
다. ‘죄와 사망의 법 아래서’ 모든 인간은 영적 애
도 그렇다. 내 삶에 유월절과 오순절이 매일 일어
굽의 노예다. 누구도 스스로 그 애굽에서 벗어나
나야 한다. 살면서 영혼에 묻은 죄의 먼지를 매일
지 못할 때, 유월절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이 죽
씻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
으심으로 죄와 사망의 애굽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보혈을 우리의 마음과 존재의 문설주에 바를 때 영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
적인 출애굽이 일어난다. 신약의 유월절 출애굽 사
자백을 통해서 매일의 삶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는
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다. 유월절 십자가는
영적 유월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붙들어야 할
우리 안의 죄와 허물을 버리게 하는 은혜의 순환장
것을 붙들고, 채워야 할 것을 채워야 한다. “오직
치다. 어떤 죄나 허물도 씻음을 받을 수 있다. 하나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매일 성령님을 주
님은 벗어나야 할 것에서 벗어나고, 버려야 할 것
인으로 모시는 영적인 오순절을 지켜야 한다.
을 버릴 수 있도록 유월절 십자가를 주셨다.
한 약속이다. 약속대로 유월절 십자가 사건 이후
유월절과 오순절, 버림과 붙듬, 나감과 들어옴, 비움과 채움, 이 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몸의 원리요, 마음의 원리 요, 신앙의 원리다. 두 손에 쥔 과자를 놓지 못
50일째 되는 날, 하늘로부터 성령님이 오셨다. 구
해서 더 좋은 것을 받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비
약시대 오순절에 율법이 주어졌다면, 신약시대 오
워야 할 것을 비우지 못하면 채워야 할 것이 채워
순절에는 성령님이 오셨다. 구약의 오순절에는 율
지지 않는다. 정말 채워야 할 것을 채우지 않으면
법이 우리 밖에 주어졌다면, 신약의 오순절에는 율
헛된 것들이 내 마음을 채운다. 그래서 결국 놓아
법이 우리 안에 주어졌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
버려야 할 것을 평생 붙잡고 살게 된다.
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다. 성령님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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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에도 역시 동일한 절기가 있었다. 신약은 구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어진 전부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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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치가 잘 돌아가는 그들의 건강한 영적 몸이 있
하시게 되었다. 그 성령님을 통해서 하늘에 속한
지금도 심장이 뛰고 있고 폐가 움직이고 있다.
신령한 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그 성령님을
몸이 순환의 중요성을 외치고 있다. 우리의 영적
통해서 예수님이 이루신 크고 놀라운 은혜를 지금
순환장치도 잘 돌아가고 있는지 물어보라. 매일의
여기서 누릴 수 있다.
유월절을 통해 나를 누르는 죄책의 애굽, 분노와
유월절 십자가는 버려야 할 것을 버리게 하는
미움과 실망과 불안의 애굽에서 벗어나라. 십자가
순환장치라면, 오순절 성령님은 받아들여야 할 것
앞에서 마음을 토하라.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구하
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순환장치이다. 유월절 십자
라. 매일매일 성령님의 다스림을 요청하라. 성령님
가는 무슨 죄라도 사하고, 오순절 성령님은 하나님
과 함께 말씀의 숲에 들어가, 그 숲이 발산하는 최
께 속한 신령한 것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
고 순도의 신선한 공기를 가슴 속 깊이 호흡하라.
지금 어려워도 낙망치 말라. 지금 힘들어도 희 망은 있다. 만약 영적 순환장치가 돌아가기 시작한 다면 영적 혈색이 돌아온다. 회복의 봄을 지나 풍 성한 여름이 주어진다. 건강한 영적 심장박동소리 가 들리는지 확인해 보라. 매일 들숨과 날숨의 건 강한 영적 숨소리가 들리는지 들어보라. 지금 이 녹색 짙은 여름 뒤에는 버리고 붙들고, 비우고 채 우는 생명의 선순환인 광합성이 계속 일어나고 있 음을 잊지 말라. 우리의 삶에도 영적 심장이 뛰고 영적 호흡이 그치지 않고 영적 광합성이 계속된다 면, 반드시 짙은 녹색의 푸르고 푸른 계절이 지속 될 것이다. CMR
정현구 현재 서울영동교회 담임목사이며 부산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그리고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미국 예일(Yale)대학교에서 역사신학(S.T.M.)과 밴더빌트(Vanderbilt)대학교에서 기독교 사상사(Ph.D.)를 전 공했다. 저서로는 <주기도문과 21세기를 위한 영성>, <영 원을 품고 오늘을 걷다>, <하나님 나라 복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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