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전화 25주년 기념 지역여성운동 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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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

25주년

기념 지역여성운동 심포지엄

“기억을 추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라”

2008년 6월 26일(목) 오후1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2

◎주최 :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주관 : 평등가족평화마을 운동본부 ◎후원 : 다음세대재단


◀차례▶ ▪ 식순...................................................................................2p ▪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지역여성운동에서 만나는 도전과 희망 .......4p ▪ 여성의전화가 해 온 지역여성운동.......................................46p ▪ 여성의전화지역운동 누가했나? 상근활동가는 지역운동을 할 수 없다?

..........................................................................58p

▪ 기초단위 여성의전화 직가능하다........................................60p ▪ 활동가 욕망조사 결과.......................................................71p <부록> ▪ 지부 지역운동 사례..........................................................80p ▪ 심포지엄 준비과정..........................................................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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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일

시 : 2008년 6월 26일 오후 1시 - 5시

-장

소 :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사

회 : 본회 박인혜 상임대표

-인 사 말 : 이두옥(공동대표)

▶주제발제 1. 허성우(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지역여성운동에서 만나는 도전과 희망 2. 강은숙(광명여성의전화 이사) : 여성의전화가 해 온 지역여성운동 ▶패널토의 1. 조윤숙(대구여성의전화 회장) : 여성의전화 지역운동 누가 했는가? 상근활동가는 지역운동을 할 수 없다? 2. 박신연숙(평등평화마을운동본부 위원, 서울여성의전화 지역조직국장) : 기초단위 여성의전화 조직 가능하다! ▶설문조사 결과 발표 : 활동가들은 지역운동을 욕망하는가? ▶외부전문가 평가 및 조언 : 이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종합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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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지역여성운동에서 만나는 도전과 희망 허성우(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 NGO대학원 실천여성학과정)

1. 글을 열며

이 글은 여성의전화(이하 여전) 창립 이후 어떤 변화의 계기들을 통해 여전이 지역여성운동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강조하게 되었으며 지역여성운동 실천을 통해 어떤 도전과 희망들을 만나고 있는가를 살펴본 다. 현재 여전이 마주한 도전과 희망은 일차적으로 여전이라는 일개 여성 운동 조직의 현재와 미래와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아가 여전이 라는 조직 내부를 향해서만 의미를 갖는 닫혀진 메시지는 아니다. 여전은 지난 80년대 창립 이후 한국 현대 여성운동사의 중요한 일부로서, 부분은 전체의 일부이고 전체는 각 부분들의 속성이라고 할 때 여전의 이야기는 다른 한국 여성운동 조직과 실천들에 관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이 발제는 여전의 제안에 따라 2007년 겨울부터 최근까지 수차례에 걸 쳐 여전연합과 지역 활동가들과의 웤샵과 토론회를 거치며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교환하는 과정을 통해 생산되었다. 따라서 여전 활동가들의 이야 기들이 여기 담겨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라는 특정한 개인에 의해 해석 된 여전의 역사라는 점에서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말 활동가 들과의 심포지움을 위한 집담회를 마칠 때까지도 이 발제가 뭔가 보다 분 명한 것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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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제를 보다 명료화하려고 했던 최종단계에서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발견했다. 명료화하려 할수록 문제는 더 복잡하고 넓은 관계의 망 속으로 출렁거리며 빠져들며 나는 그 망의 일부로서만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심포지엄 기획모임에서 많은 토론들이 오고 갔지만, 그 많은 문제의식들 을 다 담기는 어려웠다. 이 글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사실은 여전이 특정한 역사적 계기들 속에서 수많은 활동가들이 실천을 통해 끊 임없이 과거의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이동하면서 새 로운 실천을 시도해 왔다는 점이다. 다른 곳으로의 지속적인 이동, 담론 과 정체성의 재구성의 시도와 새로운 실험적 실천은 그 자체로 생명이고 힘이다. 생명의 정체성은 단일하고 고정적인 개념과 이론에 갇히지 않으 며 근본적으로 다층적, 복수적, 유동적, 복잡하고 역사적으로 진행하는 움 직임들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여전의 변동과정들이 어떻게 그런 모습 인가를 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하나의 정체성이나 담론이 단일하고 고 정된 영원불변하거나 하나의 논리로 말끔하게 정리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오해이거나 혼란이다. 서로 다른 정체성/담론들이 서로 맞물려 있 으되 서로를 긴장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글은 여전 25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를 빌어 지역여성운동 활동가들 사이의 소통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목적에서 쓴 것이다. 서로 다른 지역과 조건 속에서 부단히 진행된 다양한 지역여성운동 실천/담론을 다시 곰씹 어 보고 각자의 위치, 주체성, 욕망과 희망을 드러내는 소통을 위한 글이 다. 즉 학술적인 목적에서 쓴 글은 아니므로 학술적인 글이 갖는 용어와 형식의 제한성을 벗어나 다소 자유롭게 썼다. 글의 후반부 여전의 대안을 모색하는 부분에서는 페미니스트 연구자로서의 나의 지식과 관점이 일정 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현실과 분리된 특정한 하나의 이론 틀로 여전의 활동을 ‘평가’하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생각에서 쓴 것은 아니다. 연구자이지만 동시에 지역 여성운동활동 경험을 가진 사람 으로서 나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다는 뜻에서 쓴 것이다. 이 글에서 사용한 1차 자료들은 주로 소식지 베틀(1983-1995)과 여성의 눈으로 (1996-2004), 정기총회자료집, 그리고 지역여성운동 워크샵 자료들, 활동 가 교육자료와 기타 내부 회의자료 등이다. 문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 에 대해 일부 활동가들과 간단한 전화면접을 했다. 여전에서 나온 방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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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들 중 극히 일부 밖에 손대지 못했고 심지어 아직 발굴되지 않은 풍 부한 내용들도 있는데, 이에 대한 더 풍부한 연구는 후일 다른 이들의 몫 으로 남겨둔다.

2. 여전의 정체성 변동과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의 성립 여전은 1983년 창립 이후 지난 25년간 초기 아내구타상담전화에서 회원 조직으로서의 여성운동조직으로, 여성인권운동단체로, 그리고 지역여성운 동 조직으로 그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재구성하며 활동의 내용과 폭을 넓 혀 왔다. 이 서로 다른 정체성들은 서로 다른 조직적 형태와 운동 정치학 의 조응을 통해 나타난다. 이런 여러 조직 정체성들은 현재 여전의 실천 과 담론들 속에 중첩되어 있고 연속성을 갖기도 하지만 어떤 점에서 서로 가 서로를 넘어서려는 긴장관계에 놓여 있기도 하다. 여전이 지역여성운 동 정체성을 갖기까지 조직형태와 운동 정치학 변동의 역사적 계기들과 내용들을 살펴본다.

1) 아내구타 상담단체(1983-1986): 성폭력의 정치학(The Politics of Sexual Violence) 여전은 1983년 가정에서의 여성학대와 아내구타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치유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돕기를 원해 만들어진 상담전화로 출발하였다. 당시 한국의 진보 시민사회는 군부 독재의 정치적 억압 속에 있다가 83년 유화국면을 맞아 막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려던 시점이었 다.

그러나

아내구타와

가정

폭력과

같은

여성에

폭력(sexual

violence)은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초기 여전 창립 주체들(이화수, 이현숙, 이계경, 김희선 등)은 한국 현대사의 초기 페미니스트 세대에 속한다. 이 초기 세대들은 크리스챤 아카데미의 1970 년대 초반 여성중간집단 교육에 참여하여 한국 현대사에서 최초로 서구 페미니즘이론들을 공부하고, UN 제1차 멕시코 세계여성대회에 참가한 한 국 여성들을(대표적으로 이효재) 통해 세계 여성운동의 흐름을 부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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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로나마 처음 접했으며, 여성 억압과 불평등 문제를 사회구조의 문제로 이 해하기 시작했다. 여성중간집단교육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작성한 ‘여성인 간화선언’은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과 같은 것이다(한명숙, 1993 참 조). 여전이 아내구타 문제를 아내구타 상담을 통해 피해여성들의 치유 및 인간성 회복을 지향하는‘여성의 인간화’(박인혜, 2001: 4)를 위한 운동 으로 본 것은 이런 한국 초기 페미니즘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초기 여전 조직은 적어도 오늘날처럼 여성주의1)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으며 성폭력과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여성에 대한 여러 수준 의 사회적 폭력에 대한 폭로와 저항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여전 초기의 이념적 지향을 성폭력의 정치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초기 <베 틀>지에 나타난 이 성폭력의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정 내 폭력을 사적인 문제나 ‘사랑’에 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억압이라고 보면서 이를

공적, 정치적, 사

회적 권력관계로 분석한다. 이 성폭력의 정치학은 서구 여성해방운동의 역사에서 등장했던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과 유사한 흐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구의 급진주의 성의 정치학은 ‘남녀의 친밀한 관계’, 즉 ‘성관계를 정치적 입장에서' 보고자 했다. 여기 서 정치는 ‘회의, 의장, 또는 정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무리의 인간이 한 무리의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구조적인 제 관계’를 의미한다

(밀레트, 정의숙․조정호 역, 1979: 49-50). 남녀 성관계, 결혼, 양성적 인 간상에 대한 논의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담은 로즈마리 루 터 등의 번역서인 <여성해방과 성의 혁명>과 (베틀 1호)와 서구 급진적

페미니즘의 대표적인 논자인 슐라미스 화이어스톤의 번역서 <성의 변증 법>에 대한 소개(베틀, 2호)들은 이들이 서구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영향 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초기 여전이 이런 서구 급 진주의 페미니즘의 성의 정치학을 그대로 표방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 의 관심은 서구 역사에서 발생했던 남녀 사이의 섹슈얼리티를 중심에 둔

1)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여 유일한 방법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고 정갑희, 2007: 17), 그러나 여전연합 내부에서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 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이것을 페미니즘의 한국어 번역어로 보고 이 글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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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관계 변화를 지향하는 포괄적 성의 정치학이라기보다는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폭력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여전 초기의 성폭력에는 아내 구타, 외도, ‘매매춘’(당시의 용어), 성 상품화, ‘정신대’(당시 용어)와 같 은 범주들이 포함되었으며 이것들이 여러 가지 사회적 폭력과 연결된 것 으로 보고 있다(베틀 1호,1983). 이는 당시 군부 독재의 억압적 정치체제 하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폭력에 대한 저항을 함의하는 것이자, 이런 사회 적 폭력이 성폭력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 히 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에 대한 여전의 중대한 관심은 이런 사회적 맥락에서의 ‘성폭력의 정치학’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여전은 이 성폭력의 정치학을 ‘상담전화’라는 조직적 도구를 통해 실현하고자 했다.

2) 상담기관에서 회원운동체로(80년대 후반) : 성폭력의 정치학(Politics of Sexual

Violence)과

민주화운동

정치학(Politics

of

Democratization

Movements)의 접합(접합A)

상담기관에서 회원운동체로 80년대 후반 '성폭력의 정치학'은 강력한 사회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받 고 또 이 운동에 참여의 주체가 되면서 ‘민주화운동 정치학’과 접합하게 되고, 이 접합을 통해 여전은 ‘상담기관’에서 ‘회원운동체’로 그 조직정체 성을 변화시키게 된다. 이 변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86년 7월 2일 치안본부 김희선 원장이 민통 련 장기표씨 은닉 사건에 연루되어 강제연행되고 서대문구치소 수감되는 사건으로 추정된다(베틀 15호. 86.8.30). 여전은 이에 대해 군부독재 정 권의 부당한 조치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면서 정치적 억압에 분노한다. 이 사건 직후

당시 이현숙 이사는 <베틀>에‘상담사업인가? 여성운동인

가?’라는 주제의 칼럼을 통해 김희선 원장 구속 사건이 여전 정체성에 근 본적인 물음을 묻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고 있다. 이현숙은 여전은 단순한 상담단체가 아니라, 80년대 초반의

젊은 여성운동가들이 여성문제 의식

화 과정을 거친 후 “현장”에 “참여”하고자 하는 흐름에서 조직되었으며 이

운동의 하나로 아내구타문제를 사회문제로 제기하고자 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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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말한다. 즉 상담사업을 표방하기는 했지만 여전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운 동체이며, 그렇게 발전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상담은 “상처나 종 양에 대한 응급처치에 그치는 것”이지 사회적“근본치료”가 아니므로 상담 과 함께 “수술행위로서의 운동”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 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담기관으로부터 이와 다른 어떤 여성운동체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담활동을 지속하면서 이를 매개로 여성운동이라 는 새로운 지향을 설정한다는 점이다. 상담활동과 여성운동은 “동전의 양 면”이며 그 둘 사이의 균형적 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베틀 16호. 86. 12.5. p.2). 이렇게 “독자적 여성운동단체로서 가정폭력, 성폭력, 사회폭력을 투쟁 대상으로 중간층 여성들이 벌이는 평화운동단체”로 가야한다는 입장에서 (박인혜, 2001: 5), 87년 총회를 통해 상담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되 동 시에 회원들이 중심에 되어 여성운동을 하는 회원단체로 이동한다. 회원 들에 의한 '여성운동체'를 건설할 필요성은 여전사업이 한 두 사람이 아 닌 더 많은 여성들이 찾는 사업이 되어야하고 이런 발전은 다수 여성들의 힘으로만 가능한 ‘민주사회발전’과 같이 가야인식에서 나온다(베틀, 17호, 87. 3.7.p. 2-3). 여기서 ‘민주사회 실현’이라는 목적을 명시했음은 여전이 민주화 운동의 주체가 되었음을 말해준다. 초기 몇 년간의 활동을 통해 많은 여성들과 매스컴의 관심에 따른 조직적 자신감과 강력한 중앙집권적 독재체제에 저 항하기 위해 보다 많은 여성대중들의 참여와 결집이 필요하다는 상황적 인식에 따라 상담기관에서 회원운동체로의 전환이 시도된 것이다. 김희선 원장의 출소 후 일성(一聲)은

여전 활동의 “수공업적 단계는 지났다”고

보고 이제 “민주사회발전”과 같이 가는 “발전”이 필요하고 보았다. 그는 기존의 상담사업에 대한 학문적 뒷받침과 상담원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이를 안정화하되, 여전의 사명을 확인하고 그에 걸맞는 조직기반을 마련 하여 “여성의 인간화, 인간의 인간화를 위한 운동”을 해나가자고 말한다 (87.3. 17호.p. 2-3). 이런 흐름에서 87년 상담기구적 조직체에서 회원중 심의 운동체로 개편을 단행한다. 이 때 주요사업은 기존의 상담사업을 넘어 1.가정폭력, 성폭력과 성차별 이데올로기 등 당면한 여성억압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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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 2. 여성 노동권 확보 3. 민중 생존권 획득 4. 자주적 통일민주사회 실현이라는 거시적인 사회구조 변혁운동 으로 제시되었다(87.10.5.). 여기 서 이전 시기의 여전의 ‘성폭력의 정치학’을 유지하되 동시에 이것과 새 로운 요소인 남성중심적 민주화 운동 정치학과의 접합 상태로 이동한다고 볼 수 있다. 성폭력의 정치학과 민주화 운동 정치학의 접합 이 시기 민중여성운동단체들의 전국적 연합조직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 후 여연)의 정치학은 당시 남성중심적 사회운동의 이념과 목적인 삼민주 의(민족, 민중, 민주주의)에 여성해방이라는 요소를 병렬적으로 결합시킨 것이었다(허성우, 2007). 여연에 연대하고 있던 여전은 여연의 정치학을 일정하게 공유하고 있었다. 삼민주의 사회운동 정치학에서 여성운동은 민 중주체의 민족민주운동의 일부로 정의되었는데, 이와 같은 담론이 여전 내에도 존재했다(베틀 16호.p.8-9; 88.12. 33호).2) 당시 여성활동가들은 서구 전통적 맑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들이었지만,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삼민주의 (민중-민족-민족주의)에 기초한 민족민주운동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가지 고 있었다.

여전도 당시 민중여성운동 활동가들 사이에서 풍미하던 맑스

주의 페미니즘에 의해서도 일정하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여진다.3)

2) 이 시기 여전이 가진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은 다음에서 알 수 있다. 80년대 후반 에이즈와 제국주의 성침탈과의 연관성(베틀 28호 88.6.10.), 반공, 통일문제(베틀 28호 88.6.10. ), 여대생추행사건대책협의회, 여성생존권대책위원회, 여성문제고발창구, 주소녀씨 결혼퇴직사건, 1회 한국여성대회참여를 비롯한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과의 연대활동, 미국 수입개방 문제 (베 틀 43호 89.11/12.)와 이에 따른 농민 생존권문제(베틀 45호 90.2.3.), 나아가 반전, 반핵운동 (베틀 52호 91.4.)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다. 그리고 직장여성상담을 통해 여성노동자 권리문제와 생산직 사무직 여성노동운동에 관심을 갖는다(베틀 39호 89.6.) 3) 베틀에는 88년부터 90년에 이르기까지 당시 맑스주의 페미니스트였던 이승희의 여성운동이론에 대한 긴 글이 연재된다. 이 글은 여성운동이란 민중여성들이 주체로 여성해방 실현하는 것이라 며(베틀 37호 89.4. pp. 4-5), 자유주의 여성해방론을 비판하고(베틀 38호 89.5.38), 70년대 민 중여성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80년대 사회주의 페미니즘, 즉 계급과 성의 이중구 조론 비판하면서 여성의 억압과 착취는 자본주의 사회 차별의 일환이라고 봄으로 그의 맑스주의 페미니즘을 펼친다(베틀39호 89.6.). 이 논의는 남녀간의 사회적 관계는 생산관계의 규정을 받으 며 여성억압의 물적 토대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므로 사회변혁운동으로서의 여성운동이 조직 화되어야 하고(89. 9.41), 이런 관점에서 미군정과 식민지 하의 여성운동을 분석하며 (베틀 43 호 89.11/12.) 나아가 60-70년대 공업화를 통해 여성문제가 심화되었다고 본다(베틀45호 9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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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그러나 여전의 정치학은

남성중심적 사회운동과 여연의 여성운동에서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사적인 수준에서의 성 정치(Sexual Politics)의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들과 일정하게 구분되는 지점을 갖고 있었 다. 여전의 여성운동은 남성중심적 삼민주의에 여성해방 정치학을 첨가했 던 여연운동과 일정하게 맥을 같이 했지만 동시에 성폭력의 정치학을 통 해 남성중심적인 민주화 운동정치학을 페미니스트 관점에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여전의 여성운동은 단순히 남성중심적인 민 족민주운동에 여성들이 단순히 그 일부로 참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 았다. 여전은 여성상담을 통해 여성과 남성간의 사적 정치학을 민주주의 정치학에 포함하고자 했다. 성폭력에 대한 저항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물 리적 폭력에 대한 즉각적 반응으로서 이의 해결을 위해 남성을 적으로 싸 우는 것이 아니라 여성억압의 근본구조와 한국 사회 모순구조에 대해 싸 우기 위한 여성의 의식화 조직화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사회 모순구조 가 남성중심적인 삼민주의 정치학에서 말하는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 은 아니었다. 손덕수는 여성상담에서 다루는 “남녀간 사적 관계는 정치적 인 것”이라고 보고, 이것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남녀 간 구조적 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았다(베틀28호 8.6.10.). 즉 상담 활동이 “곧 인권운동”이자 동시에“민주화운동”이라고 보았다(베틀20호 87.6.5.p.4). 성폭력과 다른 광범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억압은 당시 삼민 주의에서 강조하던 자본주의만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가부장제 이데올로 기와 군사문화라는 세 가지 축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았다(베틀28호 8.6.10.). 민주화에는 사회문제와 성차별문제라는 두 가지 차원이 있는 것 이며 성차별문제 해결을 배제한 사회문제만의 개혁과 해결은 절반의 해결 책이요 민주화의 미완성일 뿐이라고 말한다(베틀21호 87.7.10. p.3). 이 와 같은 선상에서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미시적 수준에서 개인들의 삶 의 변화를 중시했다. 당시 남성중심적 사회운동 진영에서 진행되었던 사 회구성체논쟁의 영향을 받아 한국 사회를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로 정 의하면서, 제국주의적 비민주적 정치가 독점재벌을 비호한다고 비판하지 만 여기서 나아가 이 ‘자주화와 민주화 투쟁’은 여성들 ‘자신의 삶을 변 화,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베틀27 호.88.5.20

p.2-3). 즉 공적인 정치 문제와 사적인 일상생활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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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여전의 <성폭력의 정치학과 민주화 운동 정치학의 접합>은 성폭력의 정 치학을 통해 남성중심적 민주화 운동 정치학에서 다루지 않던 남녀 간의 사적 정치와 일상의 정치라는 다른 수준의 정치학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 러나 이 접합은 민주화 이후에는 다른 접합으로 이동한다.

3) 단일조직에서 전국연합조직으로(90년대 초반-후반) : 성폭력의 정치 학(Sexual Politics)과 제도화의 정치학(Politics of Institutionalization) 과의 접합(접합 B) 성폭력의 정치학과 제도화의 정치학과의 접합 90년대 초반 최초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제도화된 정치공간들이 참 여의 공간으로 열려졌다. 이 시기는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운동을 양대 줄기로 하여 여전이 민주적인 국가에 대한 개입과 요구를 통

해 성폭력․가정폭력 이슈를 법제화하고 관련 정책을 공식 제도화하는데 집중했던 시기다. 이 법․제도화운동은 피해여성들을 위한 법적 처리과정에

서 기존 법제도들의 한계가 발견되었으며 피해여성들의 법적 해결요구 수 준이 높아지면서 여전을 포함한 다른 여성단체들이 느낀 법제도화의 시급 성에서 촉발된 것이다(여전 1992년 정기총회자료집.p.24). 이 두 가지 법 제화운동은 91년부터 97년에 걸쳐 많은 여성단체들의 연대활동을 통해 이뤄졌으나, 여전은 여기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법제 화운동은 여전의 ‘성폭력의 정치학’이 제도화의 정치학과 접합하면서 민 주적 제도 안에서 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도화는 운동 이슈의 제도화, 운동 조직의 제도화, 그리고 운동 조직 내 지도력의 제도정치권으로의 진입/포섭 등 세 가지 방향으로 진행된다. 운동 이슈의 제도화는 이 시기 여전운동을 가장 뚜렷이 특징짓는 것으로 위의 성폭력, 가정폭력의제의 법제화이다. 그리고 1994년 8개 지부조직 을

가진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으로 전환함으로써 이전 시기의 반

정부운동단체로부터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한 조직으로 제도화하였다. 운동 지도력의 제도정치권 진입과 이로 인한 지도력의 공백과 자율성의 훼손이라는 문제는 조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지만, 98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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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울여전의 이상덕 부회장의 여성특위 진입에서 보듯 적지 않은 파장을 불 러일으켰다. 따라서 이후 <임원의 정계 및 공직진출에 관한 규정>을 만 들고 개인적인 지도력 정부진출에 대한 조직적 입장을 만들게 되었다.4) 여전이 운동의제를 제도화하고자 했던 것은 민주화 직후부터이며 그 내 용도 광범하다. 1988년 경 부터 성차별법조항은 낡은 시대의 유물 (1988.11.17. 32)이라며 가족법개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에이즈예방 법의 국회통과를 요구했다. 직장 여성 모성보호제도(89.4. 37), 정부 탁아 정책 (89.6.39), 가족법 개정(1989),여성의 평생노동권(90.1. 44), 세법 개정안 개선(90.9.48호), 재산분할청구권과 면접교섭권(91.4. 52) 등도 이 슈화하였으며, 성폭력, 가정폭력 법제도화 이외에도 탁아소 예산확보 (93.9. 73호), 여성복지시설에 대한 예산 지원과 운영문제(95.3.84)에 대 한 제도적 요구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런 운동의제의 법제도화 요구의 전 제는 국가의 정치제도가 일정하게 민주적인 구조로 변화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제도적인 민주화의 일정한 실현이라는 조건에서 이전 시기의 민주화를 지향하던 삼민주의 정치학 담론은 여전의 운동담론 전면에서 점 차 사라졌다. 91년경부터 소식지 <베틀>에는 이전에 자주 등장했던 민주 화와 자주화운동, 그리고 이것과 성폭력, 가정폭력 이슈와의 연관성에 대 한 담론들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즉 민주화 이후 상황에서 여전의 성폭 력의 정치학은 삼민주의 정치학과의 접합을 분리하면서 현실 민주주의 제 도화를 주어진 조건으로 하여 제도화의 정치학과의 새로운 접합을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민주주의 제도적 조건에서 성폭력의 정치학의 실현을 위한 노력이 주어진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무조건적 수 용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는 것은 좀 단순하다. 그것은 페미니스트 관점 에서 볼 때 주어진 현실 민주주의 제도가 여성들의 사적 정치와 여성의 시민권을 배제하고 있다는 인식에서 그것과는 다른 ‘성평등’한 민주주의 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4) 이 규정에 따르면 정계 출마자는 공천신청 이전에, 공직 진출자는 정식 임명 전이라도 내정 즉 시 임원직을 사퇴하여야 하며 배우자 출마 시에도 휴직해야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본부의 지도 부가 임기 중에 조직적 논의 없이 공직으로 가는 사례가 있었고 2003년에는 공동대표 한 명이 조직적 합의 없이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공천 받아 언론에 발표되는 일이 발생하여 임시총회에서 제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박인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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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덧붙여 이 시기 <성폭력의 정치학과 제도화 정치학의 접합>은 법제도화 라는 성과물을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 담론의 사회적 확장에 기여했다. <베틀>을 통해 다뤄졌던 결혼, 성 상품화, 기지촌, 이혼, 강간, 어린이 성폭력, 간통죄, 능동적 참여가 이뤄지는 성관계(92.3.59호), 어린 이 매매춘, 외도, 성희롱 문제, 가족에 대한 평화적 접근들 등과 같은 광 범한 섹슈얼리티 영역들에 대한 담론은 비단 여전 내부뿐만 아니라 제도 화 운동 과정에서 공적 담론으로 확산되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연합조직으로의 확장 성폭력의 정치와 제도화 정치학의 접합은 여전의 비약적인 조직적 성장 을 결과했다. 1983년 창립 이후 서울 이외 전국 각 지역에서 상담전화, 방문상담과 서신이 “폭주”하여 지역 여성들의 반응이 컸다. 이를 반영하 듯, 1980년대 말부터는 대구, 전주, 광주 등 지방에서도 여전과 비슷한 성격의 조직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났다.

이들은 여전과 직접적인 연계는

없었으나 여전으로부터 상담이나 인권활동의 조언을 얻으면서 조직을 정 비해 나가기 시작했다(박인혜, 2008). 지부들의 건설은 서울의 여전본부 가 의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여전의 성폭력의 정치가 지역여성들에게 반 향을 얻은 데서 이뤄졌다고 보인다. 여전 지부조직들이 시기적으로 급증 한 것은 1991년부터 시작된 성폭력특별법 제정운동이라는 계기를 통해서 였다. 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앞두고 만든 「상담단체 연대모임」에 참여했던 조직들 대부분이 94년 지부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광주여성 의전화>, <전북여성의전화>, <부산여성의전화>, <인천여성의전화>, <울 산여성의전화>, <강화여성의전화>, <수원여성의전화>, <성남여성의전화> 가 그들이다. <대구여성의전화>, <청주여성의전화>, <창원여성의전화> (1996), <서울여성의전화>(1997), <시흥여성의전화>, <안양여성의전화>, <익산여성의전화>, <군산여성의전화>, <강릉여성의전화>, <천안여성의전 화>, <강서양천여성의전화>(서울여성의전화지회)(1998) <광명여성의전화 >(1999) 들은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 과정에서 탄생한 지부들이다. 여 전은 위 지부조직을 망라하여 1998년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라는 전국 조직으로 탈바꿈하였다. 여전연합의 지역조직은 2000년대 초반에도 증가 하여 <영광여성의전화>, <김해여성의전화>(2000), <부천여성의전화>, <진해여성의전화>, <김포여성의전화>(2001), <목포여성의전화>(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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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등으로 확장되었다. 이로서 여전연합은 25개 지부와 1개 지회를 가진 전 국적 연합조직으로 변화된다. 이런 90년대 여전조직의 비약적 확장과정은 여전연합조직을 탄생시키지 만, 이 과정은 여전 조직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이 혼란을 안정된 것으로 만들려는 활동가들의 투지와 모색이 지속되면서 다층적 담론들이 생성되 는 과정이기도 하다. 90년대 중반 이후 여전은 <회원조직화․대중조직>으

로의 지향과 <여성주의․여성인권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두드러지게 강 조하기 시작했다. <회원조직․대중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은 조직의 성격과 구성 원리에 관한 것이고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으로서의 정체성은 여

전운동의 이념적 지향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담론들은 곧 다시 <지역여성운동>이라는 정체성담론으로 수렴되고 있다.

4) 지역여성운동 조직화(90년대 후반 - 2008년 현재) : <여성인권운동단

체․여성주의>, <회원조직화․대중조직>과 <지역여성운동>담론과의 들의 접 합(접합 C) 여전의 지역여성운동은 이미 90년대 초반 지부들의 활동을 계기로 시작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역여성운동 정체정을 현저히 강조되기 시 작한 것은 90년대 후반 이후이고 이것이 여전 전체의 조직원리로 자리잡 은 것은 2000년대 초반을 통해서이다. 이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은 <회 원조직․대중조직>담론과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담론과 지역운동의 정치 학의 접합을 통해 생성된 것이다. 여기서는 이 새로운 접합이 어떤 과정 을 통해서 생성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복잡한 접합들은 시기적 으로 분리되어 생성되는 것은 아니며 90년대 중후반 이후 2000년대 초반 에 걸쳐 상호 얽힌 채로 동시적이고 입체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서술의 순서가 반드시 시간적 배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새롭게 등장한 운동 정체성 담론들은 이전 시기의 정체성들과 일정하게 연속성을 갖지만 일정하게는

제도화의 정치학이 초래한 특정한 결과에

대한 실천적 대응으로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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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담론과 <지역여성운동>담론의 접합 여전은 초기부터 ‘인권’운동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 반 이후 북경세계여성대회의 영향을 받아 ‘여성인권’운동의 정체성을 재 발견했으며 이후 98년의 정관개정에서 여성인권운동에 대한 지향이 여전 내 지배적 담론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박인혜와의 인터뷰, 2008. 6 19). 95년 11월「전국간부연수」에서 신혜수 당시 회장은 북경세계여성 대회 보고를 통해 국제적인 여성운동의 동향을 소개하고 여전연합이 기존 에 다뤄왔던 성폭력과 가정폭력을 넘어 보다 포괄적인 성폭력 문제를 다 루며 나아가 모든 여성문제를 포함하는 여성인권 전반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기존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 입법활동과 대중의 식 개선 활동에서 더 나아가 정책결정에 참여하기 위한 정치세력화를 지 향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박인혜, 2008).5) 1999년 여전창립 15 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여전은 성폭력, 아내구타 추방 문제와 함께 ‘정신 대운동, 기지촌여성운동, 매매춘추방운동, 장애여성운동, 여성동성애자 운 동’ 등을 다룬 『한국 여성인권운동사』의 출간 역시 이런 여성인권운동 의 지향성을 확고히 한 것이었다. 이런 여성인권운동에 대한 주장의 배경은 첫째, 90년대 초반 급속히 증

가한 대부분의 여전지부 조직들이 주로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소를 운영하 는 활동에 치중해 있으며, 이는 애초에 여전운동이 지향하고자 했던 여성 운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인식의 발로였다. 즉 상담소 를 통해 구현해왔던 <성폭력의 정치학>을 보다 광범한 여성주의 인권운 동 영역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던 것이 <여성인권운동>담론의 초점이기도 하다(여성의 눈으로. 2002, 11/12 p. 2). 당시 지부활동가들에게 여성운 동 조직과 기반이 미약한 지역사회에서 여전조직은 상담소라는 구체적인 매개를 통해 지역 여성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5) 70년대 말 80년대 초 유신독재반대 운동의 흐름에 선 종교인과 재야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인 권운동’이 실천되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민중항쟁 이후 발전한 민주화운동 진영에서는 이 인권 운동이 체제내적 개량운동으로 보고 체제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자신들과 구분하고자 했다. 한편, 이 시기의 인권운동에서 인권개념은 성(sex-gender-sexuality)을 고려하지 않은 남성중심적인 것이었다. 94년 유엔 인권위원회를 기점으로 하여 여성들의 권리가 기존의 인권개념에 포함됨으 로써 이후 북경여성대회 등의 지구적 여성운동에서 사용하는 여성인권개념은 지난 시기의 남성 중심적인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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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대중성이 있다고 생각되었고, 따라서 여성상담 자체가 여성운동의 한 방 법이자 도구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상담소 운영에 대한 정부지원이라는 조건도 강력한 흡인요인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지부들 은 제도화된 성폭력 상담소 운영을 축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여전연합은 여전지부조직들이 단지 상담소운영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고 보고, 그들로 하여금 여성학 학습, 지역조사, 회원조직사업, 재정사업 등 을 통한 여성운동조직으로 정체성과 조직체계를 준비해 나가도록 유도하 고자 했다(박인혜, 2008). 이런 인식을 담아 1998년에는 여전을 ‘여성인 권단체’로 규정하고 ‘모든 폭력으로부터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의 복지 증진과 나아가 가정․직장․사회에서 성평등을 이룩하고, 정치․경제․사

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이 땅의 평화 와 민주사회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변화시켰다.6) 이 목적규정 은 현재에도 유효한 것으로, 기존의 상담관련사항을 삭제하고 여성인권단 체라는 규정과 함께 보다 포괄적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부문에의 여성 참여와 성평등, 인권의 실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90년대 후반 이후 지부 상황은 크 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으로 인한 상담소 운영 제 도화로 지역 지부들은 여전히 상담활동에 치중하고 여성인권운동단체로서 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연합의 진단은 지부활동가들의 여성주의가치와 여성운동에 대한 정체성이 분명하 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연합은 이 때 기존의 상담활동을 여성운동적인 활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80년대부터 내부에 서 모색되고 발전되어 왔던 여성주의 상담론을 보다 전면에 부각시킨다. 1986년부터 여전은 프로이드 중심의 전통적 상담이론의 오류를 인식하고 여성주의적 대안을 모색하면서 ‘여성상담’ ‘여성중심상담’ ‘여성주의상담’ 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여성학계를 통해 소개된 서구 여 성주의 상담론을 습득하면고 내부화하는 과정을 해왔다. 1998년의 ‘페미

6) 97년까지 정관 상 목적은 ‘가정에서 학대당하는 여성과 성폭력으로 고통당하는 여성을 위해 상 담, 일시보호, 교육 및 인권사업을 통해 피해여성들이 육체적, 정서적 안정을 회복하도록 도와주 며 여성의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는 폭력이 근절되고 남녀가 평등한 삶을 살 수 있는 민주사회 실현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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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니스트 카운슬링 워크숍’은 여성주의 상담이론을 심화하고 상담방법론을 체계화하고 기획의 대표적인 예이다. 2005년 출간된

여성주의상담연구

서 「왜 여성주의상담인가: 역사, 실제, 방법론」은 서울여전 여성주의상 담연구모임의 성과이다(박인혜, 2008). 여성주의 상담론은 지부들의 리더 쉽, 상담원, 회원과 대중들을 위한 교육에도 지속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여성인권운동담론은 기존의 상담활동에 대한 여성주의적, 여 성운동적 재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여성주의가 여성인권운동의 새로운 이념적 기반으로 나타난다. 여성주의 상담론의 정립과정에서 보듯이 여전의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은 창립 이래 지속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라는 용어들이 여 전 내에서 보다 가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은 90년대 초반이다(박 인혜와의 인터뷰, 2008.6.19). 그리고 이를 조직의 이념적 지향으로 전면 에 내세운 것은 90년대 중후반 경이다. 여성주의란 복수적이고 다의적이 며 심지어 경합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개념이다. 세계적으로나 국가적으

로 여성주의 이론과 운동들의 발전, 분화, 확장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 서의 여성체험과 의식들을 이론화하는 보다 많은 여성주의‘들’을 생성하 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복수적인 여성주의들은 여성과 남성간의 불평등 한 권력관계로 인한 여성들의 억압과 이를 극복하려는 여성 개인들의 삶 과 사회구조의 변혁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여성주의의 고전적 의미는 공유하고 있다. 여전의 여성주의 담론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창립 초 기의 <성폭력의 정치학과 민주화운동 정치학의 접합>이 남성중심적인 민 주화운동 정치학 담론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고, 90년대 초중반의 <성폭력의 정치학과 제도화의 정치학의 접합>도 국가제도정치 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그에 의해 포섭될 가능성에 항상적으로 처해 있었다. 이에 비해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담론은 기존 남성중심

적 시민사회나 국가제도에 개입하되 동시에 이것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보 다 자율적인 여성주의 운동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정치학들과 차이를 보여준다.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담론과 <지역여성운동>담론의 접합은 이 지점 에서 발생한다. 2000년대 초에 25개 지부와 1개 지회라는 지역적인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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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들을 확보한 여전에게 다양한 가정폭력추방, 여성폭력추방, 부부재산 공 동명의 운동, 미디어운동, 재산권확보운동, 성상품화 추방운동들과 같은 여성인권운동들을 펼쳐나가는 공간은 지역이고, 이를 실현할 주체들은 지 역여성들로 나타난다. 여성인권운동을 전개하는 여전은 지역여성운동의 대중화 조직화를 조직의 가장 핵심적인 지향으로 삼는다. 여전연합이 지 향하는 여성주의 가치의 실현공간도 지역이고 그 주체도 지역활동가들과 그들이 만나는 다양한 지역 여성들로 나타난다. 여전이 이미 많은 지역 지부들을 가진 전국조직이 되었으나 여전지부들이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대다수 지역 여성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한계’를 경험하고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즉 성폭력, 가정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졌으나 지역여성들의 현실은 이를 통해 큰 변화를 맞지 못하고 있 다는 점에서 개인들의 인식과 행동,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는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새로운 욕구가 발생했다. ‘여성주의적 삶의 양식, 가치, 질서, 관계 등으로 구성되는 새 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소수의 운동가만이 아닌 많은 여성들이 일상 속 에서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박인혜, 2001:2)하기를 욕 망한다. 지역 여성대중과의 분리를 극복하고 보다 더 대중적인 지역조직 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여전의 욕망은 여성주의 가치에 기반을 둔 여성

인권운동을 지역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것으로서 여기서 <여성인권운동․여 성주의>담론과 <지역여성운동>과의 접합이 발생한다. 90년대 초 지부조직들은 성폭력추방운동을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전개한 다는 정도의 인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지역은 정치학 적 담론과 주체에 대한 고려가 없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으로 가정된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의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담론과 접합된 <지역여성 운동>에서는 지역은 주체가 비어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지역여성이 라는 새로운 주체가 그 안에 살아있는 운동의 공간으로 변화한다. 1999 년 10월 강서양천, 인천 강화, 시흥 등 수도권지역의 활동가들이 모여 위 와 같은 인식들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 2월 지역여 성운동센타가 설치되었다. 지역운동센터는 1)지역여성과 함께 가는 과제 개발과 대중성 확보 2)지부조직 운동성 강화 3)인간중심의 조직문화 4)활 동가 역량 개발을 목표로 하여 매년 웤크샵을 열고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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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경험과 생각을 나누고 실천방안을 모색해 왔다(박인혜, 2001: 9-10). 지 역활동가들은 지역여성운동을 ‘여성주의적 가치를 가지고(의식화) 지역의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조직화) 여성문제와 지역의 문제를 지역에 맞게 풀 어내는(세력화) 운동’(임미경, 2000: 6)이라고 스스로 정의한다. 그리고 <생활상담>, <지역여성정책모니터링>,<성평등한 지역사회 만들기> 등의 새로운 전략들을 가지고 지역여성운동을 풀어가고자 했다. 2000년 이후 여전은 지속적으로 다뤄오던 성폭력 사안들을 중심에 두되, 여성주의에 기반을 둔 광범한 여성인권의제들을 지역여성운동에서 구체화한다는 활동 기조 안에서 움직여오고 있다. <회원조직․대중조직> 담론과 <지역여성운동> 담론의 접합

90년대 중반 이후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담론과 함께 여전연합 운동 에서 중요한 의제로 제기되었던 것은 여전조직이 <회원조직이자 대중조 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미 89년 총회에서 여전이 상담기 관에서 회원운동체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바 있었다. 그러나 90 년대를 거치면서도 명실공한 회원운동체로서의 발전은 만족스럽게 이뤄지 지 않았다. 특히 90년대 초반 적극적인 제도화 운동 과정에서는 회원조직 보다는 성폭력 상담소를 통한 정부지원을 최대한 받는 것이 주요한 목적 이 되었었고 상담활동에 치중하면서 결국 회원 조직사업을 제대로 수행하 지 못했다는 시각에서 상담과 조직사업 분화의 필요성이 지적되기도 했 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96년 총회에서는 종래의 교육조직국을 조직국으로 개편하여 내부 회원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고자 했다. 97년 총회에서도 회 원조직 사업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98년도에는 전체 사업 중 회원조 직사업에 전체활동에서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해야한다고 논의한다. 98 년은 여전의 지부조직 사업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으로서 여전연합이 탄생 한 시점이다. 여전은 조직강화사업을 중점사업으로 정하고 전국적 단일조 직으로서 본부와 지부의 통합성을 높이고 지부조직 강화와 확대를 위한 지원활동과 회원조직 사업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 <회원조직> 담론과 함께 접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대중조직>과 <지 역여성운동> 담론이다. 96년 신설된 여전연합 내 조직국의 조직위원회 사업은 1)전국적 단일조직으로서 지부조직 강화확대 활동 2)대중조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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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사업으로 대중성 확보와 회원조직으로서의 위상 강화 3)임원진 지도력과 활동가의 중간지도력 강화 4)여전의 세력화를 통해 전체 여성운동 내 위 상을 강화하고 대 사회적 교섭력과 정치적 영향력 제고 등을 그 주요사업 으로 삼았다. 이 내용들은 여전이 소수 상담원들만을 회원으로 하는 조직 에서 보다 많은 각 지역 여성대중들을 회원으로 조직하여 사회적으로 보 다 큰 조직으로서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망을 담고 있다. 97년 서울여전준비위원회는 한국여성의전화와의 분리를 준비하면서 다음 과 같이 말한다.7) “한국여성의전화가 서울 지역에 영향력을 높여 명실상 부한 대중조직으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상담사 업과 함께 회원조직화 사업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 발언은 <회원조 직>과 <대중조직> 그리고 <지역여성운동>담론이 분리될 수 없이 접합되 어 있는 대표적인 용례를 보여준다. 서울여전의 분리 과정은 여전본부가 “전체 지부의 대표성을 가지고 지부조직과 교육, 국제연대, 정책개발 등 의 역할을 맡는 한편, <서울여성의전화>는 서울 지역의 대중조직으로서 서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면서 본부를

“인적, 물적으로 뒷받침하

는 가장 주요한 지부역할”을 담보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뤄진 것이다(박 인혜, 2008, 필자의 강조). 여기서 보다 많은 회원과 대중성이 지부들이 자리하고 있는 여러 지역이라는 전국적인 공간에서 실현되어야 하며 그럴 수 있다는 지향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잠재적으로 여전의 회원이 될 대중 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지역’이 핵심적인 정치적 장으로 등장한다. 즉 여전의 지역여성운동은 상담소 활동을 매개로 하되 다양한 여성인권이 슈들을 통해 지역 여성 대중을 만나고 조직하는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 다. 여전은 2003년 지역여성운동을 주요한 사업으로 채택했으며 2004년에 는 여성인권운동보다도 회원조직강화와 지역운동 실천이 더 우선적인 과 제로 자리매김 된다. 2005년에는 다시 모든 사업들을 지역운동 관점에서 재조직하고자 했다. 그리고 2006년 정책위원회에서는 지역운동의 중요성 을 다시 강조하고 평화마을평등가족운동본부와 합동 웤샵을 진행하면서 7) 서울여전은 1997년 한국여성의전화와 분리된 조직으로서 실은 이 시기까지 한국여전의 전체 역 사를 공유한다. 즉 서울여전이 한국여전과 별도로 외부에서 조직된 별개의 조직이 아니라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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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풀뿌리 운동 방식으로 지역운동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여전 지부들은 지역여성운동 워크샵,

여성주의 상담교육, 지역 여성정책 모니

터링, 지역 미디어 모니터링과 성평등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들을 각 지역 상황에 적용하고 새로운 실험들을 하면서 지역 여성들과 만나는 접촉면을 넓혀왔다. 회원 수도 이전보다는 성장했고, 각 지역에서 여성들의 크고 작은 모임들도 증가해 오면서 지역여성운동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차 강화되어왔다.

3. 여전 지역여성운동 실천과 담론, 무엇이 문제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여전 활동가들은 이런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하 는 정책방향과 지부들의 현실은 여전히 격차가 있으며 이 새로운 정체성 이 조직 내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고 느끼면서 왜 그런가, 어떻 게 이 정체성을 운동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가를 묻고 있다(박인혜, 2008). 이 장에서는 최종심급으로서의 여전의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이 실 천 상에서 그리고 담론 상으로 내포한 문제점들과 이 문제점들을 풀어나 가기 위한 생각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1) 실천 상의 문제와 대안적 생각들 (1) 실천 상의 문제점들 지부들의 지역여성운동 이행 형태와 정도 여전의 활동자료들은 지난 몇 년간 지역여성운동이 일정한 성과를 내면 서 지부들 속에서 공유된 합의와 일정한 활동 내용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 지역여성운동 실천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 모임과 합의에도 불구하고 왜 이것이 지부들 내에서 제대 로 실천에 옮겨지지 않고 있는가에 대해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논의는 오랫동안 같은 수준의 논의들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경향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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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여전지부들의 활동을 일별해 보면 모든 조직이 유사한 수준 에서 전술한 바의 회원조직, 대중조직으로서 여성인권사안을 실천하는 <지역여성운동> 정체성 아래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25개 지부 1개 지회는 대체로 다음 세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첫째, 조직 내에 지역여성운동을 전담하는 활동단위를 가지고 있고 비교적 활발한 활 동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강릉, 광명, 부천, 서울(강서양천지회포함), 시 흥, 안양, 울산, 전주). 둘째, 독립적인 지역운동 실천단위는 없지만 관련 사업을 실제로 비교적 가시적으로 수행하는 경우이다(강화, 김해, 목포, 영광, 천안). 셋째, 지역여성운동 실천단위도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관련 활동도 미미하게 추진되고 있는 곳으로 보이는 경우이다(군산, 대구, 부 산, 수원, 창원, 인천, 청주, 익산, 진해, 성남).8) 지역여성운동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첫째 범주에서도 서울과 다른 지역들 사이의 편차는 매우 크다. 예컨대 서울지부는 98년부터 강서양천지회 조직을 출발로 하여 각 구에 산재한 여전회원들을 중심으로 지역모임을 조직하고 활동가가 지역으로 활동의 장을 옮겨 주민들과 함께 몇 년간 만나면서 지사모(지역을사랑하 는자매들의모임), 동작구 지역위원회, 도봉구 지역위원회 등 13개의 지역 여성들의 소모임이 조직되었다. 강서양천지회는 <여성들의의식의주인되 기> 등 6개의 소모임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 조직이 있다(서울여전, 2008년 총회자료집, p.7). 반면, 전주지부 경우는 최근 1-2년간 한 명의 활동가가 마을로 나가 지역 여성들과 일상 삶을 공유하면서 부분적으로 지역사회 문제에 참여를 이끌어내는 정도로 이제 막 출발한 곳으로써 서 울지역과는 역사와 자원 측면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조직구도 상에서도 회원조직들을 바탕으로 하여 사무국이나 운영위원회 혹은 집행위원회 등 의 집행단위를 비롯한 상부구조 등이 존재하는 경우는 서울지부가 유일하 다. 목포의 경우 회원을 기반으로 하되 아직 현실이라기보다는 지향점으 8) 2007년과 2008년 총회자료집, 대구여전20년사(대구), 웹사이트(청주, 영광), 그리고 일부는 전화 면접(인천 김성미경 회장, 성남의 이경희 사무국장, 익산 방신영 사무국장, 진해 김윤자 회장) 을 통해 모은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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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보이는 또 다른 경우이다. 그러나 이 외에 대부분 지부들은 상담소나 센터 등 제도화된 기관들의 활동을 축으로 하고 있으며, 사무국이 인권부 서와 조직부서 등 을 둔 활동가조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이른 바 <회원조직․대중조직>지향은 여전 내에서 그 실체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지부 활동가들이 지역여성운동을 실천을 무시하거 나 불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활동가들은 지역여성운동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는 있는데, 실제로는 제도로서의 상담소 운영 등의 사 업과 함께 이것을 진행할 인력과 재원이 없어서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 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를 볼 때 문제는 두 가지 지점에서 발생할 가능성 이 있다고 본다. 첫째, 연합활동가들의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에 대한 강조 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지역활동가들이 이에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실제로 추진되지 않는 것은 지역활동가들이 지역여성운동을 진정 으로 욕망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둘째, 실제로 지역활동 가들 자신이 실제로 지역여성운동을 욕망하지만 그 욕망이 어떤 현실적 이유로 인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다음에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욕망의 주체와 그 형성의 복합성 여전지도력이 지난 10년 이상 지부 조직과 지원에 쏟은 헌신적인 노력 은 아무리 평가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지역여성운동이 그 기대만 큼 잘 진행이 안 되고 있다는 것으로 인해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활동가 내부 논의는 지속적인 동어반복을 하는 경향도 있다. 왜일까. 여기서 과 연 활동가들은 지역여성운동을 근본적으로 욕망하는가 혹은 욕망하지 않 는가, 욕망하는 혹은 욕망하지 않는 그들은 과연 누구이며, 그 욕망을 통 해 또는 욕망하지 않음을 통해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 져 본다. 현재 본부와 지부의 활동가들 모두가 지역여성운동 욕망의 주체로 나타 난다. 지역여성운동 담론이 여전의 핵심적 정체성으로 전면에 제기된 초 기에는 지역여성운동을 강력하게 욕망하는 주체는 지역조직들 자체라기보 다는 수도권 지역조직의 ‘중앙지도력’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박인혜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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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08.6.19). 중앙지도력은 역사가 짧고 여성주의 학습과 상담의 경험이 적은 지역 지도력들을 ‘교육’하면서 그들의 욕망을 관철하고자 한 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 활동가들은 수동적인 교육 대상으로 되거나 혹은 중앙지도력들의 욕망을 공유하고 이 욕망에 의해 전이된 주체가 되기도 한다. 서울여전은 97년 지역여성운동을 욕망하며 한국여전으로부터 분리 된 것으로 추측되나 서울여전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료는 현재 찾을 수 없다. 단지 99년 2차 조직위원회의 토의자료로 제출된 강 서양천지회의 김지선의 논의는 지역운동 개념, 여전이 지역운동 전개에 앞서 정의해야 할 논점들과 활동조건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비교적 상세히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이후 지역여성운동을 자기 욕망 으로 내재화한 활동가들도 출현한다. 서울지부의 박신연숙은 지역여성운 동을 풀뿌리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했던 개인의 욕망과 조직적 욕망을 스스 럼없이 드러내며 지역운동의 전개과정을 새로운 지역 여성들과의 만남을 통한 자기 삶의 성찰과 일치시켜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박신연숙, 2008). 나아가 영광지부, 광명지부, 전주지부, 강릉지부, 목포지부 들에서 지역여 성운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고 지역의 특징적 맥락을 인식하며 새로 운 활동에 도전하는 여성활동가 주체들이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본부와 지부활동가들 주체들의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욕망은 통일 되고 일치된 분명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 갈등적이며 구성되는 과정에 놓 여있는 유동적인 것이다. 먼저 여전의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욕망은 연합 활동가들과 지부활동가들의 서로 조직 발전을 향한 서로 유사하지만 다르 거나 충돌하는 욕망들과 결합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왜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지부활동가들은 욕망은 무엇인가?

그들은 지부조직을 통해 어떤

지역 여성운동을 하고자 했으며, 왜 굳이 다른 길이 아닌 여전지부조직을 선택했을까.9) 90년대 초반 이래 지역 사회에서 전개되는 여성운동 조직 에는 크게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과 연계된 지역조직과 한국여성민 우회(이하 민우회)의 지부들이 있었다. 물론 이들 외에도 다른 내용과 형 식의 독자적인 지역여성조직들이 존재할 수 있고 이는 지역에 따라 특정 9) 지부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본 심포지움에서 별도의 발제가 준비되어 있다. 필자의 여러 가지 현 실적 제약으로 인해 지부활동가들과 일일이 면접을 하지 못한 채 박인혜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 해 내용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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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직이 있을 수도 있다. 예컨대 농촌지역의 경우 전국여성농민회의 지 부들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 지부 활동가들이 여전을 선택한 것 은 먼저 서울에서 이미 시작되어 상담전화라는 여성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중적 영향력을 확보한 여전의 인지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 나 여전지부들이 다른 여성운동 조직들에 비해 갖는 이점은 정부가 지원 하는 상담소를 운영할 수 있는 안정적인 조직적 기반이었다(박인혜와의 인터뷰, 2008.6.19; 박신연숙과의 인터뷰, 2007.12.10). 제도화로 인한 상담소와 여전 조직 분리에 대한 지속적인 논쟁에도 불구하고 상담소를 운영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2002년 지역여성운동 조직을 표방하면서 조직된 목포여전 밖에 없을 정도로 모든 지부에서 상담소 운영이 큰 비중 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활동가들에게는 상담소 운영에 대한 욕망 이 컸던 것으로 가정할 수 있다. 나아가 지역활동가들이 여전을 선택한 것은 ‘보다 큰 전국적 조직’과 ‘전국적 연결망’을 가졌으며 운동비전을 제 시해 줄 수 있는 ‘강한’ 조직에 대한 욕망의 발로였다고 가정할 수 있다. 초기뿐만 아니라 지부들은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조 직을 원하고 있고, 그들은 이런 강한 조직의 일부가 되기를 욕망한다(박 인혜와의 인터뷰, 2008.6.19). 이런 지부들의 욕망과 얽히면서 그리고 또 다른 입장에서 강한 조직을 추구하는 연합활동가들의 욕망도 존재한다.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회원조직 대중조직> 담론은 제도화의 부정적 결 과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도화에 따른 조직적 성장에 고무되어 지속적인 조직 확장에 향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여전연합은 “전국적 단일조직으로서는 최대규모의 여성조직으 로 우뚝 선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이 외연에서만이 아니라 대중성과 운동성 에서도 튼튼한 조직”(<여성의 눈으로>, 98.3. p.7, 강조는 필자)이 되어 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커진 조직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며 이것이 대중 적 영향력을 갖기를 욕망한다. 98년 여전연합이 탄생할 때에도 “연맹” 혹 은 “협의회”라는 명칭도 거론되었지만 결국은 “전국조직체로서의 위용을 보여주”기 위해 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한다(박인혜, 2008, 강조 는 필자). 이런 조직적 확장에의 욕망이 여전의 지역여성운동 조직담론에 내포되어있다고 보여진다. 이 지점에서 이들 본부와 지역활동가들의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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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갈등과 복잡성을 가진 것이며 어디를 향한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초기 여전지부 활동가들이 여성인권운동을 통한 지역여성 운동이 아니라 ‘성폭력 상담소’를 욕망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욕망의 근 저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상담소를 열고, 상담전문가로 훈련받으면서 자 격증도 따고 정부의 재정적인 지원 하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는 개인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그 근저에 있었을까? 아니면 성 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사업으로 상담사 업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뭔가 기여할 수 있다는 여성주의적 신념이 상담 소에 대한 욕망을 떠받치고 있을까? 이 두 가지의 혼합일까? 여전연합의 지역여성운동을 향한 욕망과 만나고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지역 활동가 들의 욕망은 어떤 방식으로 재구성되고 있는가? 그것은 여성주의적으로 가치있는 과정인가? 나아가, 지역활동가들이 본부에 대해 원하는 강한 조 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지역사회의 고립을 넘어 이른 바 수도권에 있는 조직으로부터 운동이념과 조직운영을 위한 강력한 지원 에 대한 필요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여전지부라는 일개 조직의 빈약 함을 중앙 본부의 강함에 의해 상쇄하고자 하는 보상심리에서 나온 것일 까? 이들이 욕망하는 강한 조직은 여성주의 가치로 볼 때 무엇을 의미하 는가? 이것은 남성중심적인 권력에의 의지의 발로인가? 마찬가지로 연합 활동가들의 강한 조직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도 물어볼 필요가 있다. 전국 적인 조직망의 건설, 강한 조직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는 것인가? 사회적 으로 영향력을 가진 강한 조직이 되어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이루고 이를 통해 남성중심적 국가 권력에 참여하여 그것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강한 조직을 이뤄서 많은 여성들에게 여성주의 가치를 알리며 그들과 함 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목적인가? 나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물을 수 있을 뿐 이다.

지역여성운동을 욕망하는 주체들이 누구이며, 그 욕망이 어디를

행해 가는 것인지가 보다 분명해 질 때 지역여성운동의 미래가 더 선명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는 주체들의 욕망이 드러나 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같은 것이든 다른 것이든 그 자체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실험을 통해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 그리고 상담사업과 지역여성운동을 동시에 잘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 않는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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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인 조건의 결여로 인한 낭패감이 중첩되어있다. 이 불투명하고 혼란 스러운 욕망들은 어떤 조건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는가? 여 전의 중앙지도력이 어떤 하나의 선명한 운동 정체성을 강조할 때, 선명하 지 못한 불투명하고 복잡한 정체성들의 표현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 로 포기되거나 억압될 수 있다.

어느 조직에서 하나의 지배적인 정체성

담론이 형성될 때, 즉 보다 많은 정보, 지식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이 무 엇인가를 ‘참’이라 말할 때, 그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욕망은 아니지만 그 것과 다른 어떤 분명한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말 할 수 없다. 지배적인 담론이 활동가들의 욕망 표출을 억압하는 것인지, 혹은 활동가 들의 자기욕망 구성과정의 부재인지, 혹은 양자 모두인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상담과 지역여성운동 사이에서 여전운동의 역사를 관통하여 나타나는 주제는 상담활동과 다른 인권운동 활동과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하는가라는 문제이다. 80년대 후반에 상담활 동이냐 여성운동단체냐를 물었다면 90년대 후반 상담소가 제도화되면서 다시 제도화된 상담활동과 여성운동 실천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 들을 해 오고 있는 중이다. 2000년에 제도화된 상담사업과 대중조직화 사업이 분리되는 것이 바람 직하다는 논의들이 진행되었다. 제도화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 성민우회를 비롯한 여연 소속단체들도 유사한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상담의 전문화가 필요하며, 다른 한편 과중한 상담업무로 인해 대 중조직 사업이 지체되고 있었다. 따라서 상담사업과 대중조직 사업을 분 리하자는 것이다(2000년 제1차 정책위원회 제안서). 2002년 당시 여성부 에서 추진하고 있는 폭력문제의 제도화 과정, 특히 통합 상담소를 중심으 로 한 정부의 정책이 입장과 시각 등 문제가 있다는 것을 논의하면서 시 설중심이며 통합상담소 중심의 지원계획이 가진 문제점들이 지적되었다 (10월 17-18일의 조직논의자료).10) 그리고 향후 정부의 통제가 더 심각 10) 2002년 여성부의 ‘가정폭력성폭력 ․ 상담소 및 보호시설의 기능 및 역할 강화방안’은 가정폭력․ 성폭력의 원인은 가정에 있다고 전제하면서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상담소들이 사회복지 서비스 관점보다는 여성주의, 여성운동 관점에 의하여 운영되기 때문에 전문성과 시설수준이 현저히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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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것으로 예측하며 상담소와 여전 조직의 분리를 현실화하고자 하였

다. 정부 통제 하에 놓이게 되는 성폭력․가정폭력 상담소들과 여전운동을 차별성을 어떻게 구현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은 2004년 제도화문제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토론에서도 이어진다. 제도화 이후 여성운동단체로서 의 정체성을 잃어버릴까봐 풀뿌리 운동을 강조하고 상담소를 분리하자는 논의에 따라 그렇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도 불구하고 이후 상담소는 상담소대로 오히려 더 제도화 되고, 상담소 외의 사무국은 축소 화 되는 문제도 나타났다. 즉 상담소에 대부분의 인력이 배치되어 정작 조직화 운동을 할 사람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상담활동을 어떻게 조직화 와 풀뿌리 지역운동으로 구현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이슈로 남게 된 다.11) 이를 통해 보면 상담소와 지역운동 실천단위라는 여전 조직의 양 축은 이론상 같이 가지만 현실에서는 분리되거나 긴장관계를 보이고 있다. 이 렇게 되면 둘 중 무엇을 먼저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것인가, 혹은 무엇을 먼저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들이 나타나고 이것은 선택의 문제로 다가온 다. 그러면 이미 명료하게 주어진 것으로서의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은 현 실에서 빛을 잃고 그것은 선택의 시간을 향해 불안하게 연기된다. 이것이 활동가들이 답답한 지점들일 것이다. 상담활동에 비해 지역여성운동조직 이 원활히 실천되지 않는 배경에 대해 다수의 활동가들의 지적은 ‘하고는 싶지만 이를 담당한 인력이 내부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 라 약간의 편차가 있기는 하나, 여성주의적 사유와 운동경험을 가지고 불 특정한 지역 여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만들고 이를 실행할 수 있 는 인적 물적 자원이 부재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2) 대안적 생각들 중앙과 지역 간 운동조건의 차이에 대한 고려 어진다고 보고 따라서 시설 기준, 상담원 기준 등을 상향 조정하고, 정부가 상담소를 평가하여 예산을 차등지원하는 방식을 통하여 전문성을 높이겠다고 하였다(박인혜, 2008) 11) 박신연숙 발언. (가칭)풀뿌리 여성운동 비전 논의’ 3차 회의록 중. 2007.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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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지역에서의 자원부재 상황은 근본적으로는 한국 사회의 지역 간 불균등한 발전 구조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지역’(the local)이란 중앙-수도권(the Centre)이라는 독점적인 권력 공간과 대응되는 사회 경 제 정치적으로 불평등한 비수도권을 의미한다. 수도권과 지방간의 불균등 발전, 그리고 이 결과인 지역 격차, 그리고 이와 연관된 지역주의의 사회 정치적 영향력은 한국 사회 구성의 중요한 특징임은 이미 널리 지적되어 왔다. 서울은 전체 국토의 11%를 차지하지만 전체 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대부분의 공공기관, 산업, 대학교, 의료기관, 금융, 연구소 등 자원과 인구가 고도로 집중된 특수한 권력 공간이다(최장집, 2005: 156-7). 런던, 파리, 동경 등 다른 나라 수도들에 비해 그 집중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이런 자원과 인구의 극단적인 밀집은 특정한 정치 경제 사 회 문화적 권력의 독점과 이 독점적인 권력집단의 연결망 혹은 공동체들 을 형성함으로써 그 외의 다른 지역들과 구분된다.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자원과 인구가 집중된 서울-수도권은 이른 바 중심(core)이 되고, 그 외의 지역들은 주변부(Periphery)로 나타난다. 이런 공간적 불균등발전 구조라는 물적 토대를 기초로 하여 중앙 대 지방, 중심 대 주변이라는 강 력한 공간적 위계질서와

담론구조가 창출되었다. 수도권-중앙의 권력으

로부터 소외, 주변화되고 타자화된 공간이 지역이다. 그러나 ‘지역’이 풀 뿌리 일상의 삶의 터 (grassroots)를 의미할 경우에는 서울-수도권 안에 있는 수많은 구획과 마을들도 ‘지역’이다. 그러나 서울-수도권에 있는 지 역풀뿌리 공간들은 권력과 자원의 독점적 공간화로 인해 비수도권 지역들 과는 일정하게 구분되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허성우 2006). 이런 중앙-지역 간 불균등발전은 지역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권력이 독점된 중앙과 권력이 배제된 지역은 경제적, 정치적, 사 회문화적 구성에서 현격한 격차를 보이며 지역 시민사회 발전과 구성에서 도 차이를 보인다. 중앙과 지역 시민사회의 조건의 차이와 연관하여 각 지역들의 여성운동의 역사적 조건도 상이할 것이다(허성우 1998; 2000). 현재 한국 여성운동 분석에서의 여성운동 공간은 한국’혹은 ‘전국’이라는 국민국가 경계 내의 단일하고 추상적 공간을 전제로 하는 경향이다(허성 우, 2000). 그러나‘한국’은 하나의 단일하고 고정된 평면적 공간이 아니 다. 그것은 차이를 가진 무수한 지역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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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차이들의 조합과 긴장, 갈등이 구성해 내는 출렁거리며 움직이는 입체적 장(場)이다. 한국 여성운동 담론과 연구에서 이른 바 지역 간의 차이가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러나 이 차이들의 발견에도 불구하고, 여전 25개 지부 2개 지회가 활동하는 지역공간의 특 정한 역사 사회적 조건과 운동의 특징이 연구된 바는 드물다고 봐야 한 다. 지역 여성운동 조건의 분석에 이런 지역 불균등 발전과 이로 인한 지 역 경제, 정치, 사회문화 구조와 시민사회 구조의 차이들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운동전반이 그러할 뿐만 아니라 여성운 동에 있어서도 중앙과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구조는 큰 격차를 갖는 것이 다. 이런 점에서 나는 서울지부를 포함한 서울의 여전연합 본부와 비수도 권의 여전지부들이 가진 인적 물적 자원구조는 심대한 격차가 있다고 본 다. 위에서 여전연합과 서울지부 활동가들이 다른 지역들보다 더 뚜렷한 욕 망의 주체들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서울지부의 경우 지역여성운동 경험이 90년대 후반부터 이미 10년 이상 쌓여있으며, 인적자원 여전지부들 중에 서 가장 풍부할 것이다. 한국의 사회운동, 학생운동과 여성운동이 배출한 활동가들과 지적 자산, 인적 네트웤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발전은 수도권 을 중심으로 축적되어 왔다. 대부분 지역 간 편차는 있지만 지역들의 경 우 사회운동, 학생운동과 여성운동 활동가를 배출의 풀이 협소하고 그 역 사는 짧아 수도권과 비교할 수 없다. 지역들 중 특히 도시지역과 농촌지 역 사이의 격차는 두드러질 것이다. 수도권과 지역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서울의 시간은 전근대적, 근대적, 탈근대적 시간들이 압축된 것이지만 여기서 주요한 시간의 흐름은 근대적이거나 탈근대적인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지역들에서는 전근대적 시간과 근대적인 것이 더 압도적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수도권에 있는 여전연합과 서울지역 활동가들의 욕망구조와 지역 지부들의 그것이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한다. 최근 한국 페미니스트 진영 내에서 하나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차이 의 정치학이다. 차이의 정치학은 ‘여성’이 동질적인 하나의 집단일 수 없 다는 탈근대 페미니즘의 영향 하에서 여성들 내부에 있는 차이의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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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고려하는 인식의 흐름을 말한다. 북반구 여성과 남반구 여성, 백인 여 성과 유색 인종 여성, 비장애 여성과 장애 여성, 이성애 여성과 동성애 여성, 정규직 여성노동자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억압과 실존은 결코 동질적이고 동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의 요소들은 사실상 여성 들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놓여있는가 하는 위치의 다름을 말하기도 하 는 것이다. 나는 이 위치의 다름에서 지역적인 차이들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본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농촌 간의 극심한 격차는 한국 의 경우 특히 매우 뚜렷한 현상이지만, 이는 대부분 남반구 국가들의 특 징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차이의 정치학은 ‘지역’을 고려해야 한다. 수 도권의 활동가들은 여전지부들 사이의 지역적 차이를 인식하고 이 차이를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이런 흐름에서 지역 간 차이를 반 영한 조직이 필요하다. 지역 간 차이를 반영한 조직의 분화와 재편 지부들 사이의 차이를 반영한다면, 이 차이를 어떻게 조직하며 이 차이 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여전이 추구하는 공동의 목적 아래 연대할 것인가 가 문제가 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연합>조직 형태는 지 역 간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고 실현하는 조직이 되기가 어렵다. <연합조 직>은 민주화운동기에 전국에 산재한 다양한 조직들이 일사불란하게 모 여 중앙집중적 독재권력에 대항하기위한 조직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당시 많은 연합조직들이 사회운동 영역에서 출현했었고 그들은 조직들의 일치와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여전도 내부에서 연합조직 의 다른 형태로의 전환가능성에 대해서 이미 논의가 있어왔지만 적당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단지 본부와 지부 관계를 보다 민주화하는 데 주력 해 왔다. 이 노력 또한 요긴했던 것이지만, 이런 노력이 연합조직과 지부 조직들 사이의 위계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를 가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 역 간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자본주의 가부장체제에 내장된 지역불균등 발전구조를 인식하고 이에 저항하는 변혁운동의 지속적인 수 행이 필요하다. 이것은 지역사회에 현재 주어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조건을 가지고 성평등한 여성운동을 펼치는 것을 넘어서 그 구조 전체를 여성주의 시각에서 바꾸어 나가는 기획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여 성주의적 변혁운동은 매우 다층적이고 다중적인 차이를 갖는 특정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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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체들의 다르지만 동시적인 운동을 통해 가능하다. 한 개의 강력한 통합적 조직에 의해 이런 변혁이 특정 시간에 보다 완전한 결과로 주어지 지는 않는다. 불평등의 구조가 복잡해진 만큼 불평등에 대항하는 운동도 복잡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나는 여전조직이 지역 간의 차이를 고려한 서로 다른 수준과 내용의 조직들과 이들 사이의 다양한 네트웤을 구성하는 다층적 다중적 조직으로 분화, 재구성하는 것이 한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여전의 조직적 비전인 회원조직이자 대중조직이면서 지역운동조직 이라는 개념을 좀 더 명료화해보자. <회원조직>이나 은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다. 어느 조직이든 소수의 사람들만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참여하고 움직여가는 조직이라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소수의 상 담회원과 상담가들이 중요한 활동의 축을 이뤘던 조직이 보다 많은 회원 들의 참여를 희망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중조 직>은 무엇인가? 많은 회원들이 모이면 대중조직인가? 어떤 숫자가 대중 적인 숫자인가? 이 지점에서 회원조직과 대중조직 개념을 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대중운동과 대중조직이라는 개념은 민주화운동 시기에 한국 사회운동에 서 쓰여지던 용어다. 당시 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은 독제정권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정치의식을 가지고 자본과 독재에 대항하여 정치적 위험을 무릎 쓰고 사회 전면에 나서서 투쟁하는 소수 활동가들의 집합을 <전위조직> 이라고 보았다. 이 <전위조직>은 비합법적 소수의 투쟁조직이거나 혹은 해방 직후의 조선공산당과 같은 정당조직이 될 수도 있다(윤수종, 1995). 전위적 활동가들은 권력의 억압과 우민정책으로 인해 일상생활의 정치적 폭력,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해 직접 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나 자신들의 생활상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고자 하 는 각 계급 계층별 다수 대중들의 움직임들이 조직되는 것은 <대중조직> 이라고 보았다. 대중조직의 대표적인 예들은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조 직, 농민조직과 도시빈민조직 등이다(김범우, 1989). 한국 역사에서는 조 선 봉건사회의 수탈구조에 대항하여 투쟁했던 갑오농민조직과 같은 농민 항쟁조직, 식민지 하의 조선노농총동맹과 해방 후의 전국노동합평의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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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농민조합총연맹 등이 그 전형적인 예 들이다. 여성운동에 관한 한 일 제 하 근우회나 해방 후의 조선부녀자총동맹이나 전국여성단체총연맹 같 은 경우도 대중조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윤수종, 1995). 한국 사회운 동론에서 계급계층별 대중조직들은 봉건체제, 식민지 지배 권력, 혹은 군 부독재 세력에 대항하는 통일전선을 만들고자 했는데, 이 통일전선이라는 상상된 전선에서 <전위조직>과 <대중조직>은 결합된다. 즉 <대중조직> 은 <전위조직>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서 때로 전위적 활동가들은 대중 조직을 만들기 위해 대중의 일부가 되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중을 대 상화하기도 한다. 핵심은 <전위조직>은 정치적인 조직이며 <대중조직>은 평범한 다수 대중들이 생활상의 직접적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고 움직여 가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80년대 여전을 포함한 진보적 여성운동조직들은 다른 남성중심적 사회 운동 조직들과 유사한 조직형태를 가졌다. 이 조직들은 <전위조직>이라 고 볼 수는 없으며 당시 용어로 <활동가조직>혹은 <선진적 대중조직>이 라 불렀다.12) 즉 정치적으로 다소 각성된 소수 지식인, 학생, 중간계층들 이 대중들의 이해실현을 위해 지배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정치적인 조직이 다. 초기 여전조직은 여연에 연대한 다른 여성노동자조직이나 여성농민조 직 등과도 또 달라 <대중조직>이라기보다는 <활동가조직>이나 <선진적 대중조직>과 보다 유사한 그 무엇이었다고 할 수 있다. 80년대 말 <회원 조직>에 대한 강조는 선진적 대중조직이지만 여기 참여하는 여성들의 숫 자를 증가시키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지 역여성운동을 이야기하면서 <대중조직>을 이야기할 때, 여기에는 혼란스 러운 점이 있다. 현재 여전연합 자체를 위에서 정의한 바의 사회운동론 입장에서 본 <대중조직>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한 여전연합이 이런 의미 의 <대중조직>을 지향하는 것이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현재 여전연합의 조직 비전 에는 전술한 바 <전위조직>과 <대중조직>적 지향이 혼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여성주의 가치를 구현하면서 여성인권운동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지역 여성리더쉽을 발굴하여 이들이 지방정부나 국회에 진출 12) 이런 분석의 예는 여연 기관지 민주여성 10호. 1990.11.5. 조직논의 특집기사들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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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가져 정당을 만들거나 혹은 기존 정당에 참여하 여 현실 가부장적 국가권력을 변혁하고자 하는 지향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여전 활동가들이 평범한 여성대중들이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지역풀뿌리 운동을 지원함으로써 그들의 삶에 필요한 직접적 욕구와 이해의 실현을 위한 활동 자체가 목적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지향도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전자가 일정하게 전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면, 후자는 보다 더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과정은 유 사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매우 다른 조직적 과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동일한 조직 내에서 동시에 추구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보다 중요하게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적 환경의 변화와 전지구적인 사 회변화 속에서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이 식민지와 독재권력기의 대중조직론 을 그대로 답습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80년대를 거쳐온 사람들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운동의 시대를 거치며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고 외치는 계몽의 주체로 표상되었던 <전위조직>과 변혁의 주체로 가정 되었었지만 때로는 계몽의 대상으로 전락했었던 <대중조직> 사이의 위계 질서를 목도했다. 그러나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계기로 이뤄지 는 촛불시위에 나타난 대중들은 이런 전위와 대중 사이의 이분법을 거절 하는 대중이고, 고정된 조직 형태와 질서를 벗어난 대중들이다.13) 이 새 로운 대중들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가 말하던 대규모 공장 남성노동자 주 체로 대표되며 자본주의라는 단일한 체계를 공략하고자 했던 단일한 집단 으로서의 대중(민중,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다양한 차이들, 문화들, 삶의 방식들, 인종들, 성별들, 성적 지향성들, 노동형식들, 욕구들을 가지고 있 으면서 내부화된 불평등의 ‘제국’을 내파하려는 안토니오 네그리가 서구 사회에서 만났던 다양체로서의‘다중(多衆, multitude)’과 더 가까운 사람들 일 수도 있다(네그리, 조정환 외 역, 1992: 18). 여전이 지향하는 지역여성운동을 통한 대중조직은 80년대 사회운동에서 말하는 대중조직과는 다소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오히려 생활 13) 지도부를 따르지 않고 온 오프 라인 토론을 통해 스스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다양체 인 촛불시위 대중들에 대한 신문기사와 글들을 여러 곳에 발견할 수 있다. 한 예로 천관율, “뜨 겁디 뜨거운 촛불을 어떻게 보듬을까" 시사주간지 <시사 IN> 40호. 2008. 6.21.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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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삶의 자치를 지향하는 지역여성 풀뿌리 조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온당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현재 서울지부에서 부분적으로 실현하는 모 습이기도 하다. 이런 지역여성 풀뿌리 조직이 아니라면 여전은 지역여성 조직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다중’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중 어떤 길을 가든 모든 여전지부들이 특정한 대중적 활동을 같은 수준, 속도와 형태를 가지고 통일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맥락에서 여전지부들의 현실적 운동 조건과 상황, 비전과 욕망을 고려하여 서로 다른 수준을 가진 조직들로의 분화와 재조 합이 가능하다고 본다. 분화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 축이다. 첫째, 활동가 들이 지역 대중의 삶 속으로 흩어져 들어가 지역 풀뿌리 운동을 통해 보 다 대중조직적인 지향을 가지고 활동 하는 조직(지역풀뿌리조직) 둘째, 소수의 상근활동가와 다수의 회원들로 구성된 지역 풀뿌리 운동과 대중조 직을 지원하는 전형적인 NGO (지역풀뿌리지원조직), 셋째, 전문가들로 이뤄진 여성주의 정치 이슈를 연구, 확산, 발굴, 모니터링, 정책제안 하는 조직(전문가조직)이 그것이다. 여전연합의 현재 상담소는 사실상 전문가 조직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여전연합의 정책관련활동이나 정치세력 화 관련 활동 역시 전문가 조직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수준의 조직들은 서로 다양하고 긴밀한 네트웤을 구성 할 필요가 있다. 네트웤을 전제하지 않은 분화는 여성운동의 약화와 고립 을 가져 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14) 네트웤의 존재는 차이의 정치학이 단지 파편화된 차이들로 남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연대를 통한 공동의 여 성주의 기획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조직적 표현이 다. 네트웤의 개념에는 ‘대중’아닌 ‘다중’도 고려될 공간이 열려있다.

2) 담론상의 문제와 대안적 생각들 (1) 담론상의 문제점들 지역여성운동 실천에서 활동가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위에서 본 것처럼 운동 실천의 현실적 조건과 연관된 문제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

14) 나는 최근 여연에 대해서도 같은 논지의 조직개편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허성우, 200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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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지역여성운동 담론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복잡성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조직적으로 그 정체성 변동은 하나를 폐기하고 다른 새로운 하나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이전 정체성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 하되 일정하게 변형시키면서 여기에 새로운 정체성들을 추가하는 양상으 로 이뤄졌다. 즉 서로 다른 역사적 계기들이 축적, 중첩되어 형성된 역사 적 구성물로 보인다. 즉 여전이 거쳐 온 <성폭력의 정치학과 민주화 운동 정치학의 접합>(접합 A), <성폭력의 정치학과 제도화의 정치학의 접합>

(접합 B), <여성인권운동단체․여성주의, 회원조직화․대중조직과 지역여성 운동 담론과의 접합>(접합 C) 이라는 역사적 변동은 접합 A → 접합 B → 접합 C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접합들이 중층적으로 포개지는 과정이다. 따라서 접합 C는 접합 A나 접합 B와 구분되는 다른 질의 것이 아니라 접합 C = 접합 A + 접합 B로 보여진다. 따라서 최종심급으로서 의 지역여성운동 정체성 담론은 이전의 정체성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정 체성이 아니라 이전 것들과의 매끈하지 않은 울퉁불퉁한 연결과 중첩이 다.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은 결코 추구되기에 쉽고 이해되기에 명확한 하 나의 개념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정체성들의 중첩이고 역사적 축적물이다. 각 지부 활동가들이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을 현실에서 체현하기가 어려운 배경에는 이런 담론의 복잡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지역여성운동 정체성 담론의 중층성과 중첩성이 역사적인 축적이라는 점 을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순히 서로 다른 정체성 담론들의 병렬적 이나 총합적 구성보다는 새로운 다층적 입체적 구성이 보다 더 많은 변화 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움은 낡은 것들의 단순한 축적을 통해서 라기보다는 낡은 것을 떠난 자리에서, 낡은 것과 결별할 때, 낡은 것과의 분리를 통해서 창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정체성 담론들의 축적을 다시 한 번 뒤집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접합 A, 접합 B, 접합 C에 대한 재고 80년대에 사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정치학>으로 민주화 운동 에서 남녀관계의 민주화의 중요성과 가부장제의 민주화의 필요성을 제기 했던 여전의 여성주의 담론은 현 시점에서 그 정치적 의미를 다시 평가할 필요가 있다(접합 A). 남성중심적 맑스주의 계급정치학의 강력한 힘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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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의 도그마적 요소들 안에서 민주화 운동 시기 여성들의 성적 불평등은 주변화 되어 왔다. 형식적 제도적 민주주의가 일정하게 자리를 잡아가면 서 남성중심적, 중앙중심적, 그리고 거대조직 중심적인 삼민주의 정치학 의 헤게모니 하에서 억압되었던 욕망과 담론이 다시 등장했다. 이와 함께 다시 등장한 것이 9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하여 2000년대에 보다 가시화된 새로운 ‘여성주의 운동’15)이다. 새로운 여성주의 운동 그룹들은 거대하고 제도화된 운동 조직과 규율적인 행동 방식을 거부하며 몸의 정치, 성의 정치, 일상의 정치를 전면에 내걸고 한국 진보 사회운동과 여성운동, 그 리고 현실 민주주의의 가부장적인 한계를 조롱하고 비판했다. 이 여성주 의 운동은 이른 바 80년대식의 진보 여성운동의 정치학과의 단절을 경험 하며 형성된 흐름이기도 하다(김현미, 2003; 영페미니스트 기획집단, 2000 참조). 이런 시점에서 여전연합의 성폭력의 정치학은 일정하게 이들 2000년대의 여성주의 운동과 맥이 통하는 지점이 있다. 민주화로의 이행 이 이뤄졌지만, 그 민주주의는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것이며 여성은 시민 권에서 배제되어 있어서 여성주의자들은 현실 민주주의에 다시 도전하고 새로운 여성주의적 민주주의를 구성해 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즉 초기에 제기했던 성폭력의 정치학을 가지고 민주주의 정치학을 다시 비판 하고 재구성해가야 하는 연속 지점에 서 있다. 90년대 <성폭력의 정치학과 제도화의 정치학과의 접합>(접합 B)는 접합 A의 연속선에 서 있었다. 즉 이전의 접합 A는 민주화 운동의 정치학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성평등한 것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였다. 그 러나 접합 B는 주어진 민주주의 체제 내의 제도화라는 전략과 접합함으 로써 민주주의 체제 자체의 가부장성을 비판하고 이를 변형하고자 했던 접합A를 크게 발전시키지 못한 측면이 있다. 민주화된 제도를 일단 긍정 함으로써 그것이 가진 구조적인 결함을 일정하게 무시하게 된 경향이 있 다. 한국 현실에서 주어진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적인 글로벌 거번너스 체제의 일부로서 가능했던 것이며, 신자유주의 글로벌 거버넌스는 젠더평 등을 말하기는 했으나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학이라는 남성중심적 지식체 계에 철저히 기반을 둔 것이었다(허성우, 2008b). 접합B는 이 신자유주의

15) 이 2000년대 새로운 ‘여성주의 운동’은 김숙이(2007)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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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민주주의 국가가 여성차별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요인들에 대한 인 식과 이에 대한 비판을 구체화하는데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결과적으 로는 <제도화의 정치학>이 상담소를 제도화하고 이것이 국가 개입으로 인해 자율성을 낮추게 됨으로써 결국 <성폭력의 정치학>을 발 아래 딛고 선 형국이 되었다. 따라서 향후에는 제도화의 정치학보다는 성폭력의 정 치학의 본래적 급진성을 어떻게 회복하는가가 핵심적인 과제인 것으로 보 인다. 급진성 회복을 위해서는 성폭력의 정치학이 제도화 정치학과 일정 하게 분리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전은 여전히 제도화된 상담소를 그 심장부로 한다. 90년대 후반의 접합 C에서도 이런 제도화의 정치학은 일정하게 계승된 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여성인권운동>담론의 정치적 성격을 통해 이 점이 드러난다. 인권담론은 90년대 사회운동과 여성운동의 주요한 키워드 였다. 여성인권담론은 여전 지도력들이 한국 여성들의 전쟁성노예 문제를 가지고 유엔 인권위원회에 개입하는 등의 인권활동과 북경여성대회 등의 UN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여성운동에 참여하면서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 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경여성대회를 포함한 세계 여성대회나 유엔의 여성조직들은 글로벌 젠더-거버넌스의 일부를 이룬다. 이 글로벌 젠더거버넌스는 민주주의 하에서 여성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주 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신자유주의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 의 구조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허성우, 2008b). 오늘날 인권 담론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배제자들의 권리를 추구하는 주요한 도구로 알려져 있고 인간적인 모습을 한 것으로서 민주주의와 여성주의의 주요한 원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권담론이 미국과 IMF나 World Bank 등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적 정치 경제 질서에 의한 불평등을 본질적으로 해소 한다기보다는 그 질서의 위계질서 안에서 국제적 국가적 제도화에 더 기 여한다는 비판도 이미 학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Chandler, 2002). 유엔 중심의 글로벌 여성운동은 미국, 백인, 지식인 여성들이 주 도하는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의 지구적 형태라는 것도 알려져 있다 (Stienstra, 1994; 2000). 이런 흐름에서 북경여성대회의 여성인권담론과 젠더주류화 전략에 영향을 받은 <여성인권>담론은

초기 성폭력의 정치

학이 가졌던 급진적 성격과 다소 다르게 구분되는 지점이다. 가장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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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UN 중심의 자유주의적 글로벌 페미니즘의 젠더주류화 전략은 보편 적 범주로서의 여성을 가정하며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무관심한 패러다임 이라는 점이다(허성우, 2007; 2008b). 여성이 하나의 단일한 범주가 아니라는 것은 최근 세계 페미니스트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제 <여성인권운동․여성주의>를 말하는 것 자체보다 는, 어떤 여성을 위한 어떤 여성인권을 말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여성주 의를 말할 것인지를 숙고해 야 할 것 같다. (2) 대안적 생각들: 지역여성운동의 패러다임 전환은 가능한가? 나는 여전연합의 지역여성운동 담론이 기존의 지역여성운동 패러다임과 아주 다른 새로운 구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한다. 그것은 현재 지역 여성운동 담론에 내장된 낡은 요소들을 가려내고 이것을 여성주의 관점에 서 재구성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여전연합이 초기의 성폭력의 정치학을 계승하고 이것을 통해 남성중심적 사회운동과 다른 지역여성운동을 재해석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남성중 심적 지역사회운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여성주의적 지역여성운동 이론과 실천을 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성폭력 의 정치학의 구현이 상담소를 운영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성폭력의 정치학은 상담소라는 조직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담소는 그 내용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지역운동의 흐름들이 무엇인지 일별해 보 자. 첫째, 도시 빈민지역운동의 흐름이다. 70년대에 도시 빈민지역에서 민중조직을 시도했던 종교인들의 활동은

80년대 개발독재의 발전정책으

로 인한 재개발에 저항하는 철거반대투쟁으로 이어졌고, 이것은 90년대 이후에는 활동가들이 빈민지역에 들어가 대중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생활 에 필요한 사안에 따른 풀뿌리 주민조직을 지향하는 흐름으로 발전한다. 둘째, 8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건설된 연합조직들의 지역지부들의 활동이다. 민주화쟁취를위한국민운동본부, 전국노동자운동단체협의회, 민 주화운동청년연합, 그리고 한국여성단체연합 등이 그 용례이다. 이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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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조직들은 강력한 중앙집중적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사불란한 전국 적 조직투쟁의 필요성에서 움직였던 조직들로서, 지역이라는 특정한 위치 성과 주체성에 근거한 지역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졌었다고 보 기는 어렵다. 이들은 전국단위조직들의 힘을 지지하면서 ‘중앙’이라는 독 재정치 저항 공간으로 수렴되는 경향이었다. 셋째, 90년대 초 지방자치제 의 부활 이후 탈중앙집중화(decentralization)를 위한 지방자치와 분권운 동이다. 지방자치에의 여성참여를 위한 여성운동도 이에 포함될 수 있고, 주택, 환경, 복지, 지방자치, 정책, 보육 문제 등 지역 내에서 발생하며 지방자치제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제기 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흐름이다. 넷째, 보다 최근에 등장한 흐름으로서 지역 풀뿌리 일상 삶의 터전을 대안적으로 재구성하는 지역공동체(local community)운동이다. 성미산 마을운동, 환경생태공동체운동, 대안학교, 마을도서관운동, 귀농운동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다른 지역운동 흐름 들이 보다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변화와 관련된 직접적인 운동이라면 이 지역 공동체 운동은 거시적인 사회구조의 변화를 고려하되 공동체 삶의 형식과 내용을 변화함으로써 대안적 사회를 개인과 공동체의 일상에서 실 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네 가지 유형 중 현재 여전연합의 지역여성운동은 세 번째 흐름과 가 장 유사하지만 아주 부분적으로는 네 번째 흐름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 기도 한다. 여연의 지역조직 등이 실천하는 다른 지역여성운동들도 대체 로 위 네 가지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 은 이 흐름들이 다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가치와 패러다임에서 본질적으

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성주의 입장에서 이것들과는 다른 패러 다임이 필요하다. 나는 여전이 기존의 성폭력의 정치학을 바탕으로 하여 기존의 남성중심적 지역운동 이론과 실천들과는 다른 형태로 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성폭력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지역 이슈들은 다른 곳에 맡기고 여전의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주택, 보육, 문화, 미디어, 교육, 의정모임이나 정책모니터링과 같 은 기존의 사회운동과 여성운동들이 다루고 있는 사안별 이슈들에 대해서 는 다른 관련 단체가 하도록 하거나, 이를 수행할 독자적 단체를 별도로 조직하거나 혹은 다른 조직들과의 연대를 통해 접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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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적인 것은 성폭력의 정치학을 중심으로 하여 기존의 지역 사회 문제 들을 여성주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이에 대한 실천방안들을 수행함으로써 여전의 특성을 담보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성폭력문제를 제기하는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은 한국 사회와 나 아가 지구사회 전반의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 내장된 폭력적 지배 문화와 권력구조에 대한 도전이다. 한국 각 지역사회들의 특정한 성폭력적 구조 와 문제들은 사실상 깊이 드러난 바가 많지 않다. 각 지역마다 공통되고 다양한, 독특한 성폭력의 구조와 문화가 존재할 것이며 이것은 단지 국가 적 차원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구성되는 지역사회의 정치, 경제, 사 회, 문화적 권력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다. 나는 여전이 기존의 성폭 력의 정치학에서 성폭력의 의미와 실행을 좀 더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폭력은 단지 성희롱, 강간, 성적 대상화라는 한정된 형태로만 나 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신체에 대한 착취, 가사노동, 돌봄노동, 성노 동과 성애화된 노동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노동의 가치절하와 비가시화, 여성/남성들의 의식과 행동의 폭력적 재구조화, 권력지배체제의 은밀한 폭력성의 유지와 변형과 같은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통해 생산, 재생산된 다. 지역사회의 가정, 직장, 학교와 문화시설, 시장과 기업, 지방정부 기 관들, 시민사회단체들을 포함한 모든 조직들이 여성의 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토대로 하여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조직들 도 가부장적으로는 폭력적일 수 있고 성과 무관해 보이는 현상들이 성폭 력적일 수 있다. 이런 모순과 차별들을 발견하고 드러내고 공유하며 이것 의 해소를 위해 자신들의 삶, 몸, 의식과 행동, 그리고 외부의 조건들을 변화시킬 것인가를 탐구하는 작업으로부터 여전연합 지역여성운동의 새로 운 패러다임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미 밝힌 것처럼 재구 성된 성폭력의 정치학이 지역여성운동 담론과 다시 접합 할 때 활동가들 은 추상적 보편 범주로서의 여성대중을 붙잡을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어떤 특정한 지역에서 어떤 특정한 여성들의 어떤 성폭력을 어떤 여성들 과 함께 말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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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4. 결론을 대신하여: 지역여성운동과 여성주의 지식과의 접합 2장에서 여전연합이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을 갖게 된 변동의 계기들과 그 복잡한 담론들의 접합의 형태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주로 여전연합 활동가들의 생산한 조직 정체성 담론들이다. 그러나 이 담론 형성과정에 는 지역적, 국가적, 지구적 수준의 사회적 상황과 정보와 지식체계와 내 용의 변화, 한국 시민사회의 운동들과 다른 여성운동들의 변화, 그리고 여성주의 이론과 지식체계의 변화 등이 의식적, 무의식적인 영향을 주었 을 것이다. 여기서 이런 외부적 영향요인들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였다. 3 장에서는 최종심급으로서의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의 담론적 구성과 실천적 문제들을 검토해 보았다. 제시된 대안적 사고들은 서문에서도 밝혔듯 ‘나’ 라는 특정한 개인의 지식과 경험에 근거한 것이며 단지 공유와 소통을 위 해 제기된 것 뿐 다른 뜻은 없다. 여전의 역사를 매우 거칠게나마 공부하면서 모순된 과잉과 결핍을 발견 한다. 지역여성운동조직들 안에는 ‘경험의 과잉과 여성주의 지식의 결핍’ 이, 그리고 여성학 학문의 세계에는 ‘여성주의 지식의 과잉과 지역여성운 동 경험의 결핍’이 있었다. 26개 지역 여성활동가들이 활동하는 내용들은 모두 풍부한 여성주의적 가치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경험들은 대부분 비가시화되어 있으며, 여성주의 사유와 지식의 옷을 입지 못한 채 알몸으로 또는 몸에 맞지 않는 다른 옷을 걸치고 사방을 걸어 돌아다니고 있다. 지난 10여년의 민주주의와 성평등 정치가 이룩한 작은 성과마저도 후퇴하는 이명박 정부시기에, 여전의 여러 지역 활동가들의 소박하지만 생생한 경험을 담은 이야기들이 내게 얼마나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희 망이 되었는지 모른다. 모든 활동가들에게 감사드린다. 여성주의는 가부 장제 사회구조의 변혁을 지향하면서 가부장제 사회의 미세한 유전자와 세 포들이 붙어 자라고 있는 여성/남성들의 몸과 일상 삶의 변혁을 위한 정 치적 실천이자 지식생산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지역사회의 활동가들과 평 범한 여성들이 일상에서 펼쳐나가는 변혁의 삶과 실천의 경험들이 새로운 여성주의 담론으로 풍부하게 생산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로 숨 쉬어 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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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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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여성의전화가 해온 지역여성운동 강은숙(광명여성의전화 이사)

1. 시작하며 여성의전화가 지역여성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합에 지역운동센 타를 설치하고 무수히 많은 논의와 워크샵, 지역에서의 실천을 해온 지 10년 가까이 되고 있다. 여전히 생각만큼 지역여성운동의 실체가 보이지 않고 같은 논의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역에서의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꽤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런 변화들을 가시화하고 서로 나눌 때 지 역여성운동을 하는 우리들에게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2. 여성의전화 지역운동 사례 나누기 여성의전화 지역운동 사례는 지역마다 드러나는 양상이 다르고, 동일한 지역이라도 연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여성의전화가 있는 지역이 처한 조건이 다르고 시기마다 지부의 역량이나 지역여성운동 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보다 지역 속으로 천착해 들어가고 상근활동가 중심이 아닌 회원이나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각 지역에서 지역여성운동을 위해 기울이는 모든 노력은 드러나는 성과의 질을 떠나 모두 소중하고 활동 내용마다 다른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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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모든 여성의전화의 사례들을 다 다루는 것이 마땅하 지만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일부 사례를 유형화해서 다루고자 한다. 유 형화는 어떤 일관된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지역여성운동의 다양한 측 면 또는 다른 접근방법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나눈 것이므로 각각의 사례들이 유형별로 정확히 분리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1)풀뿌리 조직과 만나다 지역에서 운동을 하기 위해 상근활동가가 직접 지역의 자치 조직-제도 화되어 있는 조직이든 자발적인 조직이든 상관없이-과 만나 조직 구성원 들과 함께 하며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지역 또 는 지역 구성원들의 문제를 듣고 함께 의제를 만들어 실천해 보려는 움직 임이다. 강릉의 경우 주민자치위원회와 연결하여 지역의 리더 교육과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례 교육을 통해 자치위원으로서 마을 만들기 사업에 여성 의전화와 함께 실천거리를 찾아내서 현실화하고자 하였다. 강릉여성의전화는 설립된지 10여년이 되지만, 지역민들의 욕구를 들어본 경험이 없이 여성의전화 가치로만 대중사업을 하여왔다. 이에 2007년을 지역운동의 원년으로 삼고 지역민들의 삶 속에서 여성인권운동단체로서의 의미를 갖고자 지역공동체를 만들어 보는데 여성의전화가 함께 할 것을 올해의 사업목적으로 삼았다. 목표로는 지역중간리더들과의 소통, 한 개 마을에 마을 의제 조사하는 것으로 하였다. 회원 구조가 취약하고 대부분 교육을 통한 신입회원들이 많은 상황에서 지역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회원중심의 지역운동을 펼치는 것이 어 려웠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한 것이 지역에 자치 조직으로 주민참여를 이끌어 가려는 목적을 가진 ‘주민자치위원회’의 위 원들과의 소통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주민자치위원 역 략강화를 위한 리더쉽 교육’을 기획하였다. 위원들은 여성의전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었고 10회 교육이 너무 많다는 불만과 늘 봉사하는데 교육비까지 내고 교육을 받으라는 것이 어 렵다는 것이었다.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성교육이나 여성주의교육을 해 온 집행부로서는 위원들의 이야기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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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은 현실로 다가왔고, 강릉시 행정지원과 주민자치계를 찾아 갔을 때도 계 장님 역시 똑같은 말을 하였다. 그들의 속성을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 이다. 다행히 강릉시는 여성의전화의 교육에 대해 행정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시민단체에서 하는 것에 대해 높이 격려해 주었고 각 위원회에 공문을 보 내 위원회별 3인 이상 필수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고 하였으며, 위원들 자 부담 교육비 1인 30,000원씩을 지원하였다.

어려웠던 부분이 민․관의 협력으로 해소되었고 10회 교육을 통해 위원들

이 갖고 있는 지역에 대한 열정과 의지에 대해 희망을 보며 수료식이 있 는 마지막 광주 북구청의 사례발표 교육에서는 60여명이 참여하여 의미 있게 교육을 마칠 수 있었다. 지역운동을 담당하고 있는 실무자의 생각은 지역운동은 지역의 시민, 행 정, 학계, 언론계 모두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교육은 시민사회가 지역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행정에 알리는 기회도 가졌다는 것 또한 유의미하다. 다음 단계로, 교육 과정에서 열정적인 1개의 마을 위원장님과 연계하여 마을의제 발굴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 지역의 여성의전화 회원 2명과 지 역 주민자치위원과 3명, 지역주민 2명과 함께 성덕동 마을의 의제를 마을 신문을 통해 드러내는 작업을 기획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회원화 시키는 목표는 크게 두진 않았다. 하지만 위원들이 후원회원으로 해달라면 적극 적으로 해주고 있다. 다만 적절한 시기를 봐가면서 포섭하고 있는 중이 다. 강릉여성의전화는 지역운동의 개념으로 사업의 목표를 가진 것이 처음이 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지역 속에 들어간다는 것이 두려움 자체였으 나, 이번 과정을 통해 실무자의 역량강화에 절대적이었다. 이제는 무엇이 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강릉관내 10개의 주민자치 조직과 네트

웤을 하게 되었고 지역사회에 시민단체가 주도하여 민․관 협력체제를 구 축하는 모델을 제시하였다. 여성의전화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여성의전화 가 지역의 시민단체협의회 내에서도 지역 속에 살아있는 시민단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체 시민단체들에게도 도전을 주었다. 전주의 경우는 2004년에 회원이 사는 아파트에 가서 교육을 하고 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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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주민들의 현안인 도로 파손 문제를 항의하여 복구시키기까지 하였으나 후속 작업이 이어지지 않아 중단되었다가 2007년에 다시 새로운 상근활 동가가 아파트 엄마들 모임에 참여하면서 지역주민들과 만나게 되었다. 모임에 참여하는 엄마들과 같이 지속적으로 모임을 같이 하면서 그들의 고민과 생활을 나누고 유대감을 형성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지역운 동축제를 만들고 연합의 지역운동 행사에도 같이 참여하였다. 이 모임이 알려지면서 옆 동의 엄마 모임에서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이 와서 새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영광은 농촌 여성들의 낮은 문자 해독률이 기본적인 인권을 억압하는 기 제로 작용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이들을 위한 마을 공부방 사업을 해오고 있다. 2003~2007년까지 4개 마을에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선정은 그 지역에 활동가가 있는지 여부와 마을에서의 역할 등을 고 려해서 선정하였다. 농촌 여성들이 공부방을 통해 한글을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한글만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노인 여성의 자존감과 인권을 높여 주는 과정이 되고 있다.

2)상담소 이외의 부설기관을 통해 지역 주민을 만나다 창원은 부설기관으로 1998년부터 신월사회교육센터(일명 마을 도서관) 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교육적 요구를 바탕으로 적절한 프로그 램을 운영함으로써 주민 개개인의 성장은 물론 지역사회의 발전을 도모하 는 방식으로 지역운동을 하고 있다. 신월사회교육센터는 월 평균 13~4개 프로그램과 5개의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참여 주민들의 욕구에 기반 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소모임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다. 이중에서 자전거 소모임은 창원시 1도시1특화사업 ‘자전거로 가는 환경도 시 창원’에 선정되어 추진하였다. 지역주민들이 1도시1특화사업을 진행하 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대단히 만족하며 자신들이 결성한 소모임 분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다음은 이 사업에 참여했던 회원의 글이다. 작은 실천이 큰 일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내가 필요하고 관심 있는 곳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 지식적으로나 인맥으로 많은 도움을 받게 되어서 기쁩니다. 늘 하는 집안일에 표도 나지 않아 짜증도 나고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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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었는데, 자전거 소모임을 함으로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더욱 더 건강해 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행복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도 떨고 김장김치도 나눠먹고 자녀에 대한 정보도 공유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 다. 앞으로도 창원여성의전화의 회원으로서 저희 지역의 주민으로서 제 능력을 더욱 더 키워 나가고 싶고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마련해 준 창원여성의전화에 깊이 감사드리며 나날이 번창 하는 영원한 여성들의 친구가 되어 주길 바랍니다.

3)지역사회의 제도화 문제를 건드리다 여성의전화가 지역여성운동을 하자고 했던 초기에 개념을 이해하는 과정 도 힘들었지만 개념이 이해된 이후에도 많은 지부들이 지역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막막해 하였다. 그래서 공통된 과제로 해보자고 했던 사업이 지역의 여성정책모니터링 사업이었다. 2003년도에 7개 지부가, 2004년도 에는 16개 지부가 참여하였다. 여성정책 모니터링은 지역의 예산과 사업, 제도를 성인지 관점에서 모니터링하여 문제점을 도출하고 대안을 제시하 여 성평등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행하였던 사업이다. 제도화가 갖 고 있는 한계가 존재하나 그렇다고 하여 제도화가 갖고 있는 긍정성까지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중앙 정부에 좋은 정책과 제도가 생겼 다고 해서 지방정부에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방정부 의 제도화를 위해서는 그 지역의 여성들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광명의 경우는 여정(여성정책모니터링의 줄임말)모임(현재는 지역자치위 원회)가 중심이 되어 2003년부터 지금까지 여성정책과 관련된 내용을 꾸 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속 3회 여성정책 모니터링을 통 해 여성관련 예산과 사업을 분석하여 공무원과 시의원 간담회, 토론회, 지역신문 기고 등을 통해 여론화하였다. 2005년에는 보육정책만 특화하 여 광명시보육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고 여성주간 행사를 모니터링하였다. 2006년에는 여성정책 모니터링 외에 시 산하 위원회 구성원을 분석하여 높은 중복인사 비율과 낮은 여성위원 참여율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 였다. 2007년에는 광명시 공공부문에 대한 양성평등교육 실태 조사를 실 시하여 결과를 발표하는 토론회와 광명시 가정폭력 인식과 실태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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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로 한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지속적인 여성정책 모니터링 활 동은 시의 여성정책 집행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올해 광명시가 우 수 여성정책 도시로 선정되어 상금을 받았고 양성평등교육 우수 도시 5 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1999년과 2003년도에 광명시 여성욕구 및 인식 조사를 하는 등 정기적으로 광명시 여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활 동의 기본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여성정책 모니터링 사업 외에 의회 방청 활동을 하는 지부도 있다. 시흥 의 경우 지역의 시민단체와 연대하여 의회 모니터링을 꾸준히 해왔는데, 연대라고는 하나 시흥여성의전화가 거의 주도적으로 진행해 왔다. 시의회 방청을 하면 체크리스트에 시의원의 발언 횟수나 내용, 참여 정도 등을 점검하여 시의원들의 의정 활동을 평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청 활동 자체가 시의원들에게 자극이 되어 보다 성실히 의정활동에 참여할 수 있 게 만드는 자극제가 된다.

4)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에 따른 진통과 희망 울산여성의전화는 1994년 창립되어 1996년 성폭력상담소 개소, 1998년 울산여성긴급전화 1366 운영, 2000년 가정폭력상담소 개소 등 다양한 부 설기관을 운영하였다. 그중 1996년 개소한 성폭력상담소는 2005년 8월 운영비 및 활동가의 부재 등으로 상담소의 역할이 불분명하여 폐쇄신고를 하였고, 가정폭력상담소는 2002년 1366의 위탁운영 결정으로 인해 운영 법인의 중복으로 반납하게 되었다. 현재 울산여성의전화의 부설기관은 울 산여성긴급전화 1366을 두고 있으며, 1366의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는 2008년 2월부터 진행되었다.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는 그 동안 여성의전화에서 갖고 있던 사무국과의 인적 및 재정적 중복에서 오는 운동성의 부족 및 관과의 관계에서 오는 껄끄러움, 무엇보다 사람을 남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인해 울산여성의 전화의 과감한 결단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울산여성의전화 역시 1366을 운영하면서 상담원의 사무국으로의 파견 등으로 인해 1366상담소에서의 24시간 교대근무를 서야하는 어려움과 활 동가(사무국활동가와 상담원을 포함해)의 의식화 과정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고, 그로 인한 잦은 인사이동과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한 신입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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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원)의 증가가 활동의 가장 큰 장애가 되었다. 더 이상의 운동성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사무국을 유지하기란 무리라는 판단으로 전 활동가가 모여 상황에 대해 충분히 공유하고 앞으로의 활동을 펼쳐보기로 했다. 논의를 통해 1366 상담소와 재정과 인적 자원을 분리하기로 결정하였 다. 각자 원하는 업무에 배치했고 그 결과 사무국에는 회장과 사무국장만 남고 다른 상근활동가는 상담소에 남게 되었다. 사무국은 재정적 어려움 과 인적자원의 부족으로 사실상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재정분리에서 오 는 어려움은 회원의 날을 비롯한 외부활동을 사무국으로 모으고, 회원들 과 사무국의 실정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회원 스스로 참여하고자 하는 열의가 생겼다. 2008년 총회에서는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로 인한 실정과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드러내는 과정에서 회원 들이 자발적으로 주1회 상근을 약속하고, 회원증모에 힘써야겠다는 회원 스스로의 다짐과 적극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매주 화요일과 목욕일에는 회원활동가(2名)가 사무국에서 활동 을 하면서 회원관리 및 여성경제세력화사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어 7월 부터는 또 다른 한명의 회원이 이주여성사업에 관한 활동을 준비 중에 있 으며, 재정적 어려움에 불구하고 3월부터는 신입활동가가 사무국에서 활 동 중 이다. 2008년 6월, 약 3년 동안의 부설기관화의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을 남기는 일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이 부족했으나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우리가 할 수 있다’, ‘우리가 해 낼 수 있다’라는 각오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신감으로 변화되 어, 이제부터 각자의 능력과 역할에 맞는 활발한 활동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확신과 당당함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활동가(사람)의 의식화과정 이 과제로 남아 있다. 드러나는 일적인 부분에서의 성과보다는 활동가 스 스로 운동의 깊이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활동이 더 구체적으로 마련되 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를 망설이고 있는 지부가 있다면 씩씩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망설이지 말고 시작해보라고 우리 안에 힘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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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지역여성조직과 여성폭력 문제가 만나다 서울은 2002년 지역운동센타로 조직을 확대, 개편하면서 센터장과 전담 상근활동가를 배치하고 지사모(지역을사랑하는자매들의모임)를 발족하였 다. 지역 단위 모임인 영등포구구로모임, 송파강남서초구모임, 서대문마포 은평구모임, 노원도봉구모임 등도 이때 생겨난다. 지역별로 성매매 예방 사업, 여성이 재산권 확보를 위한 대중교육, 사이버여성의정지기단, 여성 정책 모니터링 등의 사업을 진행하다가 2005년에 모든 마을 사업에서 지 역여성들을 조직하고 사람을 남기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정하고 지역운 동센타를 나비센타(나로부터 비상하는 지역운동센타)로 명칭을 변경한 후 동작구에 집중하여 모범구를 만들고 다른 지역으로 확산하고자 하였다. 먼저 동작구에 거주하는 회원들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대부분이 활동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인근의 영등포구로구에 사는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대 중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교육은 철저하게 조직화를 목표로 진행하 여 교육이 끝나면 반드시 1시간의 공식적인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이를 통해 동작구 유후모임을 조직하고 이들의 요구사항을 바탕으로‘성에 관한 포럼’을 진행하여 지속적인 만남을 유지하게 되었고 이 모임은 동작구의 맏언니 같은 모임이 되고 있다. 또한 기존에 상근활동가 중심으로 하던 모니터링 사업을 동작구 회원들 이 중심이 되어서 준비하였다. 여성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예산과 정책을 분석하자 더 탄력이 붙었고 여성정책토론회까지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면서 자신감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지역의 여성 리더를 발굴하기 위한 지역여성 리더십 워크샵도 진 행하여 지역의 네트워크망을 다져나갔다. 이들과 함께 계속되는 교육과 지역의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여성폭력은 지역공동체를 위협하 고 파괴하는 문제로서 우리 지역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하며, 우리마 을을 여성폭력 없는 평화마을로 만들자는 평화마을지킴이 ‘동작구 평화마 지’를 발족하게 되었다. 이렇게 3년 동안 지역 주민 조직 활동이 기반이 되어 지역내 발생한 여성폭력 사건을 어떻게 대응했는지 , 그리고 그 과 정에서 느낀 활동가의 소회는 다음과 같다. 2007년 3월, 동작경찰서 늑장대응으로 집단성폭행을 방치한 사건이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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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보도되었다. 기사를 접한 우리는 다음날 신속하게 마을 회원들의 긴급 모임을 오전, 오후, 저녁시간으로 나누어 소집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발생 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바로 대처해야 한다는 결의를 하고, 지역단체들과 연대하여 주민대책모임을 결성하고 동작경찰서에 긴 급간담회를 요구하였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일인 시위도 하였다. 사건보도 나흘 후 동작경찰서에서 경찰서장 및 모든 과장 과 지역단체,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찰서장이 사건경위 설명 및 사과 와 개선방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른다. 주민대책모임에서는 주민들의 입장 을 전달하는 한편, 경찰 개선 방안의 책임있는 수행을 위해 2차 간담회를 제안하였다. 7월, 동작경찰서는 물론 동작구 내 5개 지구대 일선 실무 경 찰까지 참여한 가운데 보다 실질적인 내용의 2차 간담회를 실시하였다. 이 경험을 통해 ‘동작구 평화마지’는 평화마을을 만드는 힘은 주민들로부 터 나온다는 것, 경찰, 지자체 등에 대한 지역엔지오로서의 비판과 견제 기능을 충실히 하는 것이 민관협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풀뿌리 사업을 하면서 사무실 중심이 아닌 마을에서 활동을 하였다. 처 음엔 사무실도 없이, 마을에 아는 사람도 전혀 없이 활동하는 것이 두렵 고,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남편도 없고, 자녀도 없다보니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에 늘 걱정이 앞섰고, 여성의전화 활동가로서 주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우스개 소리로 “하루는 웃 고, 하루는 운다”고 할 정도로 외로움과 기다림도 있었다. 하지만 한명의 회원이라도 함께 하다 보니 이제는 회원들도 많아졌고, 우리와 연결된 마 을사람들도 많아져서 “함께 웃고, 함께 운다”. 외로울 새가 없는 것이다. 마을주민들과 회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오히려 사무실에 가면 일 이 손에 안 잡힐 정도다. 이제는 사무국 활동가들과의 소통과 경험 공유 가 절실하다.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행복한가를 생각했고, 내가 좋아하 는 일을 찾아서 하니 어느덧 여성의전화와의 인연이 십육년이 되었고, 십 여년 상근활동을 지치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여성의전화에서 키워 온 역량으로 늘 도전받고 성장하며 변화를 추구한다. 풀뿌리운동을 하면 서 일상의 관계와 운동과 일이 통합되는 경험을 하였다. 지역의 여성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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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장해 가며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고, 모여서 나누 다보면 에너지가 샘솟는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지역사회로 갈수록 기득권을 가진 남 성 중심이고, 성차별적인 의식과 관행,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있기 때문 에 지역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기는 그만큼 힘들고 더디다. 마을에서 온갖 궂은 일과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 정에는 소외되어 있고, 지역에는 여성단체들이 많지만 성평등을 지향하는 단체이기 보다는 구성원이 주로 여성인 단체들로 수동적이고 관변화된 단 체들이 대부분이다. 풀뿌리 지역여성운동은 이러한 지역사회의 가부장성 에 도전하는 운동이며 성차별적 지역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운동이다.

3. 나오며 여성의전화가 지역에서 해온 다양한 지역여성운동 사례를 이 글에서 다 다룰 수 없음은 이미 앞에서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례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여성의전화 활동가들에게 공유되기도 하였다. 그래 서 아주 거칠게 유형화하여 극히 적은 사례를 다루었다. 그러나 유형화하 여 정리하면서도 이런 방식으로 여성의전화 지역운동을 드러내기에는 너 무 한계가 많다는 것을 절감한다. 무엇보다 지역여성운동을 해나가는 실 천 현장에서는 유형화한 것이 통합되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 다. 가장 좋은 것은 각 지부에서 실천했던 내용들을 당사자들이 당사자의 목 소리로 드러내는 것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성과와 한계, 고민, 깨달음 을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각 지역에서 지역여성운동을 해나갈 때 각각 의 시점에서 유효한 시사점을 받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바람직하리 라고 본다. 일부 활동가는 지역여성운동을 운운한 지 오래 되었어도 여전히 같은 이 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도 하고, 일부는 에너지를 쏟아도 성과가 별로 잡 히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역의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 다 보면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성과와 관계없이 주요한 변화들이 감지된 다. 사업이나 행사의 제목과 주제는 동일할 수 있으나 진행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차이가 보인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업보다 사람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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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상근활동가 중심으로 하던 사업 방식을 회 원과 함께 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변화도 생긴다. 캠페인 하나를 하더라도 지역 주민과 소통을 중요시 여기게 되어 장소 선정과 캠페인 방법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조직화의 관점을 확고하게 견지하여 교육 프로 그램 하나를 놓고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실제 교육 수 료 후 조직을 구성하는 데 성공한다. 지역 내 다른 기관 또는 다른 인적 자원들과 좀 더 활발하게 네트워킹을 하게 되어 여성의전화가 추진하는 사업 내용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지역의 기기관이나 인적 자원들이 더 확 대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을 놓치지 말고 드러내어 격려하고 지속시키는 것이야말로 여성의전화가 지 역여성운동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의 근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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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 지역운동 누가했는가? 상근활동가는 지역운동을 할 수 있는가? 조윤숙(대구여성의전화 대표)

1. 여성의전화 지역운동 누가 했는가? 1) 지역운동은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의전화에서는 대부분 상근활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운동을 전개해 왔 다. 2) 지역운동의 필요성을 느낀 지부는 그마나 지역운동을 담당하는 활동가 를 두었지만, 담당하는 활동가가 없는 경우는 지역운동을 하지 않은 지부 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2. 상근활동가는 지역운동을 할 수 있는가? 1) 지역여성운동만 전담하는 상근활동가가 없는 경우 여러 가지 업무를 같이 하면 다른 업무에 밀려 지역여성운동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 2) 사무실에 앉아서는 지역여성운동을 할 수 없다. 사무실에서 하는 지역 여성운동을 지역여성들이 원하는 지역여성운동이 아니라 사무실 중심의 운동이 될 수밖에 없고, 지역여성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의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3. 어떤 조직적 변화가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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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1) 여성인권운동의 확대로 지역여성운동을 생각하여야 한다. 회원과 인권 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운동도 중요하지만, 직접 주민 속으로 들어가는 적극적인 운동이 되어야 한다. 2) 여성의전화 부설기관이 보조금을 받아 부설기관의 담당자가 서류적인 업무를 하다보면 정체성이 여성운동가인지, 공무원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여성의전화가 보조금을 받아 매너리즘 빠진 면이 없지 않다. 아마 보조금이 없었더라면 회원확대와 조직사업, 지역운동사업이 더 활발 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3) 회원 및 상근활동가의 지역운동에 대한 필요성과 방향에 대한 조직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운동의 방향성을 지역여성운동으로 전환하고 지역여 성운동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결의가 있어야 한다. 4) 지역여성운동을 할 수 있는 상근활동가를 두어야 하며, 지역여성운동 을 담당하는 활동가는 개인의 의지와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 활동가가 지 역여성운동에 대한 의지와 실천력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는 교육과 전 국 네트워크 연결망을 두어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5) 상근활동가는 우리가 원하는 프로그램과 방향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살 면서 지역여성들을 만나고 지역여성들을 주체로 세워야 한다. 그러면 지 역여성운동을 하는 상근활동가가 바뀌더라도 지역여성운동을 계속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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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위 지역여성의전화 조직은 가능하다! 박신연숙(서울지부 나비센터 지역조직국장)

- 여성의전화 25주년을 기념하며 여성의전화 운동의 역사를 지역여성운 동의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기록하고, 성찰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참 소 중하다. 우리들에게 자부심과 용기, 창조력, 상상력을 주기 때문이다. 여성학자로서 지역여성운동에 관심 갖고 연구하는 분이 계셔서 반갑고 고맙고, 오늘 이 자리가 여성의전화의 수많은 다양한 지역 주체들이 목 소리를 내는 자리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 여성의전화는 현재 전국적으로 25개 지부와 1개 지회가 시도 단위 혹 은 시군구 단위에 분포되어 있다. 서울여전은 유일하게 강서양천지회가 있고 동작구, 도봉구 지역위원회와 지역모임들이 있다. 몇 몇 지부에서 기초단위 지역여성들을 조직하기 위한 모임이나 활동들이

전개되고 있

다. - 서울과 수도권은 인구 뿐 아니라 정치,문화,경제,사회 모든 영역에서 자원이 집중되어 있다. 독점적 자원과 비수도권 지역들과의 격차를 반 영하듯 여전 지부들도 서울과 수도권에 많이 분포한다. 반면, 현재 서 울에는 여전연합과 서울여전이 있고,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강서양천 지회 1개만이 조직되어 있다. (경기도는 27개시, 4개군 중 수원, 성남, 시흥, 안양, 광명, 부천, 김포, 7개 지부가 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 는가. 서울은 지역보다는 중앙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왔다. 독점적 권력 과 자원은 중앙권력으로 향할뿐, 실질적인 지방분권화는 아직도 요원하 며, 서울 안에 있는 수많은 마을들은 소외되고 배재된 ‘지역’으로 존재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비수도권 지역 지부들에서 기초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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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지역 조직화가 본격적으로 시도되지는 않았다. - 본 토론문에서는 허성우 선생님의 발제문에 기초하여 여성의전화와 지 역여성운동, 회원조직, 대중조직, 지역운동조직의 개념을 살펴보고, 여 전의 지역여성운동에서 기초단위지역 여성의전화 조직이 왜 필요한가. 기초단위지역 여성의전화 조직은 가능한가? 어떤 어려움과 과제들이 있 는가? 토론하고자 한다. - 본격적인 토론문에 앞서 서울여전의 ‘구단위 조직화 사례’를 소개하고 자 한다. 서울여전의 동작구 지역위원회는 지난 4년간 구단위 조직화라 는 목표를 갖고 한명의 활동가를 지역조직 담당자로 배치하여 지역여성 들을 조직하고 여성의전화 여성인권운동을 기초단위지역에서 모델링한 사례이다. 동작구 지역위원회 사례 - 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되고 서울여전은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을 하 게 되었다. 98년 한국여전에서 서울여성의전화로 분리가 되고 서울여전 이 지역운동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출발했다. - 98년부터 2002년까지 준비기를 갖고 2002년부터 회원들을 조사해서 회원들의 구단위 권역별 모임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서울여전에 지역운 동센터가 발족했던 이 시기가 지역여성운동의 1기라고 할 수 있다. - 2005년부터는 한명의 활동가가 아예 마을로 들어가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직적으로 지역여성운동 전담자를 두고 마을에서 활동하며 지역 여성운동을 실험한다는 정책적 방향이 있었다. 오랫동안 사무실 중심의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지역여성운동을 위해 마을 현장에서 주로 일과를 보냈으며 2005년부터 지역여성 조직화를 시작해 현재 4년째를 맞고 있 다. 지역여성운동 2기이다. - 지역운동센터 이름이 너무 딱딱해서 명칭을 나飛센터로 변경했다.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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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바꾸는 것도 회원들이 수다 떨다가 의견이 나와서 그렇게 바꿨다. 나비센터의 운동방향을 첫째, 회원들이 사무실에 와서 하던 활동을 자 기 지역을 기반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세웠다. 예를 들면 여성주간 행사 를 모니터링 하는 것과 같이 지역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활동경험의 계 기를 만들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하게 됐다. 둘째, 한 개 구라도 정해서 집중해 모델링해보기로 했다. - 25개구 중에서 동작구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동작구는 서울여성플라자 가 대방동에 위치해있다. 거기서 동아리실을 빌려주고 층마다 휴게공간 이 있어 모임공간에 유리하다. 동작구는 자원봉사은행이라는 제도가 있 어 자원봉사가 활성화되어 있다. 이웃에 위치한 관악구는 빈민운동의 역사와 지역조직이 뿌리 깊은 반면 동작구는 뒤늦게 생겨 풀뿌리 주민 조직이 형성돼있지 않다. 현충사가 있고, 관변 여성단체들이 활동을 하 는 문화가 있다. - 동작구에 대해 소개하면, 서울에는 25개 구가 있는데, 동작구는 서울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는 서초, 강남이 있어서 지역주민들의 정서가 돈 벌면 이사가야겠다는 정서가 있다. 서울여전은 주로 대방동 과 사당동, 상도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작구는 42만 인구이고 20개 동, 500여개 통이 있다. 기초 조직단위를 구 단위를 잡는 것도 얼 마나 넓은가 실감하면서, 처음에는 넓게 잡았다가 점차 더 좁은 지역으 로 들어가 조직하게 되었다. - 여성폭력 관련 현황은, 가정폭력은 11% 정도 신고율이 있는데, 매달 평균 112에 신고 되는 동작구 가정폭력 건수가 140건 정도 있으며, 그 중 10건 정도만 입건되는 상황이다. 관내에 성폭력 상담소와 성매매 상 담소가 있지만 우리 구에 관심은 없고 중앙단체로 존재한다. 가정폭력 을 담당하는 상담소는 없다. 가정폭력의 특성상, 지역 네트워크 할 때 파출소, 학교와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한 지구대에서 일 주일에 3~4건 정도 신고가 들어오고 있는데, 가폭법 실효성을 높여 이 신고율을 높여야한다고 보았다. 가정폭력이 많이 발생하는데 친구들, 친정에도 알리지 못하고 쉬쉬하지만, 옆집 사는 이웃은 안다. 이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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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역문제로 함께 해결해야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이웃 지켜주기 식의 지 역사회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다. - 지역여성운동 1기라 할 수 있는 시기에 지역에서 강좌를 열어서 후속 모임을 시도했지만 지역운동까지 이어지지 않고 조직화로 이어지지 않 았다. 거점이 사무실에서 지역으로 바뀌기는 했으나, 사업방식과 과정 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주민을 얼마 나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2005년 1년 동안은 지역 에서 초동모임을 무조건 많이 만들자는 생각으로 활동했다. 주민모임의 한계는 ‘내 아이에서 우리 아이로’는 되지만 지역활동까지 연결되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방향으로 조직화를 했다. 정책모니터링 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그런 내용으로 만났고, 학부모회, 부녀회, 통장, 교사 들에게 다 연락해서 주민리더십교육을 하기도 하고, 발로 뛰면서 지역을 알게 되었다. 2, 3년째 되니까 이미 조직된 회원들이 입소문내 고 사람을 모아오기 시작했다. 발로 뛰는 것, 두려움 없이 주민들을 만 나는 것, 그들의 욕구를 듣고 사업하는 것, 그런 것을 그동안 안했다는 성찰을 하게 됐다. 그렇게 활동하니 지역에서 회원이 70여명으로 늘었 다. - 기초단위지역에서 조직화하면서 우리 사업을 좀 더 지역여성운동 방식 으로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였다. 같은 사업을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상근활동가가 조직가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상근활동가는 잡다한 일이나 실무를 줄이고, 회원이나 주민들과 만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고 회원들과 일을 나누어 했다. 사무실에 앉 아있으면 자꾸 일이 활동가에게 집중되고, 활동가가 아이디어를 내게 되며, 그래서 활동가가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회원들을 불러서 함께 하면 회원들에게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지역에 들어가면 지역여성들에 게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일을 나누고 더 일을 크게, 많이 하게 되면서 도 성취감을 회원들, 주민들 것으로 만들 수 있다. - 지역여성운동에서 어떻게 여성폭력없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가 관심사 였다. ‘지역에서 어떻게 모든 이슈를 다하냐, 여전이 관심있는 내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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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가지고 지역에서 관심 있는 사람과 같이 하지’라고 생각했다. 결국 우 리가 추구하는 전문성은 여성주의이며 여성인권운동이다.

여성주의 상

담의 기본원리가 지역여성운동에 그대로 적용된다. 여전활동 훈련이 더 잘 된 사람일수록 지역여성운동에 더 잘 적응한다. 여성주의 상담의 전 문성과 주민조직화를 연계하고자 했다. 회원들이 더 많이 삶의 터전인 지역에서 일하게 했고, 지역에서 주민들 만나고 얘기하면서 지역의 실 정이 드러났다. 여성관련 법,제도 개선이 되었지만 지역의 현실과 얼마 나 갭이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 중앙방식으로 해온 활동을 어떻게 지역에 밀착해서 할 것인가, 지역여 성 조직화 방식으로 할 것인가 고민한 것 중에서 캠페인(평화마을축제) 과 폭력예방 풀뿌리강사활동, 지역협의체간담회 등이 있다. - 넘어야 할 산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 이다. 제일 힘들면서 공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지역 리더십의 발굴과 성장이다. 관계를 차곡 차곡 쌓기 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 이라는 것,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화하는 것이 보약이라는 것. 서울여전 내에서 기초단위지역 조직화의 목표와 비젼을 내오고, 합의하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서울지역을 어떻 게 편재할 것인가 하는 큰 그림도 필요하다. 지역조직담당자가 사무실 에 일주일에 한번정도 나가기 때문에 사무실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있 다.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사무국 구조는 상근 활동가 중심이고, 지역조 직활동은 조직가와 지역 회원리더십들의 경험으로 쌓여가기 때문에 경 험 공유와 소통이 어렵고, 갭이 많다. 기초단위지역 조직화가 서울여전 조직 확대를 위한 것인가, 여성운동 확대를 위한 것인가, 지역공동체 확대를 위한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다. 서울여전에서는 더욱 더 조직내 부로 수렴되기를 원하고, 지역여성 조직의 발전은 지역 내 자생력을 키 울 때 더욱 더 확장될 수 있고. 전체 여성운동과 연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전연합, 여연 조직과 힘을 모으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내년쯤 맞이하게 될 지역여성운동 3기는 어떤 모양일까, 그것을 상상하 고 모색해가는 과정에 있다. - 서울여전의 동작구 조직화 사례는 지역 지부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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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많이 유사하다. 서울여전에서 조직적으로 기초단위에 찾아 들어간 것, 상근활동가가 조직가로서 역할을 하는 것, 모든 사업과 활동에서 지역 여성들을 만나고, 회원(주민) 리더십을 발굴하고, 지역여성들을 주체로 세워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 그러한 조직운동 관점과 사업 방식을 얼마나 견지하는 가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을까. 여성의전화와 지역여성운동 - 허성우 선생님의 발제문에서 나타나듯이, - 여성의전화는 1990년대에 성폭력, 가정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적 기반 을 만드는 데 앞장서 왔고 1990년대 후반 법 제도 마련 후 지역여성운 동을 강조했다. 여성의전화는 25개 지부와 1개 지회라는 지역조직을 기 반으로 하면서, 여성인권운동을 펼쳐나가는 공간은 지역이고 이를 실현 할 주체들은 지역여성들로 보았다. 여성의전화는 지역여성운동의 대중 화, 조직화를 가장 핵심적인 지향으로 삼았다. - 법과 제도의 변화가 지역여성들의 의식과 삶의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 서는 지역사회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며, 여성의전화가 대다수 지역여성 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서서, 소수의 운동가와 상담 회원들만이 아닌 많은 여성들을 주체로 세우는 대중적인 지역여성조직 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다. - 여성의전화는 보다 많은 각 지역 여성대중들을 회원으로 조직하여 사 회적으로 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고, 보다 많은 회원과 대중성 이 지부들이 자리하고 있는 여러 지역이라는 전국적인 공간에서 실현되 어야 하며, 잠재적으로 여전의 회원이 될 대중들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서의 ‘지역’이 핵심적인 정치적 장으로 등장한다. 여전의 지역여성운동 은 상담소 활동을 매개로 하되 다양한 여성인권이슈들을 통해 지역여성 대중을 만나고 조직하는 여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런 과정에서 여전 지부들은 지역 상황에 맞게 새로운 실험들을 하면 서 지역여성들과 만나는 접촉면을 넓혀왔다. 회원수도 이전보다는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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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각 지역에서 여성들의 크고 작은 모임들도 증가해 오면서 지역여 성운동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차 강화되어왔다. - 지역여성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위해서 조직운영과 사업방식의 변화 가 필요했다. 조직내에 지역여성운동을 전담하는 활동단위를 두기도 하 고, 기존의 사업을 지역운동방식으로 실천하고, 지역여성 리더십을 발 굴하여 성장시키고, 회원조직을 바탕으로 하여 사무국이나 운영위원회, 집행위원회 등의 집행단위를 비롯한 회원 의사결정참여구조를 운영하였 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전화의 지역여성운동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방향과 지부들의 현실은 여전히 격차가 있다. 왜 지역여성운 동이 지부들 내에서 제대로 실천에 옮겨지지 않고 있는가. 어떻게 지역 여성운동의 정체성을 실천해 나갈 것인가. 여성주의 상담활동과 여성인 권운동을 어떻게 조직화와 풀뿌리 지역운동으로 구현할 것인가? 회원조직, 대중조직, 지역운동조직 - 허성우 선생님은 발제문에서 현재 여전의 조직적 비전인 회원조직이자 대중조직이면서 지역운동조직이라는 개념을 명료화 했다. - 회원조직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참여하고 움직여가는 조직이고, 대중조직은 단지 많은 회원들이 모인다고 대중조 직이 아니고, 전위조직과 짝을 이루는 개념으로써, 전위적 활동가들은 대중조직을 만들기 위해 대중의 일부가 되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 중을 대상화하기도 한다. 전위조직은 정치적인 조직이며 대중조직은 평 범한 다수 대중들의 생활상의 직접적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고 움직여가는 조직이라고 보았다. - 초기 여전조직은 대중조직이라기보다는 활동가조직이나 선진적 대중조 직과 유사한 그 무엇이었고, 80년대 말 회원조직에 대한 강조는 선진적 대중조직이지만 여기 참여하는 여성들의 숫자를 증가시키고 싶다는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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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여전이 지향하는 지역여성운동을 통한 대중조 직은 생활정치와 삶의 자치를 지향하는 지역여성 풀뿌리 조직이라고 보 는 것이 더 온당하다는 것이다. - 여성의전화가 회원조직이냐, 대중조직이냐, 지역운동조직이냐 라고 했 을 때 이 개념들은 대치되거나 분리된 개념이 아니고 서로 연결된 개념 이다. 회원조직을 잘 하면 대중조직이 잘 되는 것이고, 여성의전화가 전국의 각 지역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므로 지역운동조직이 잘 되는 것 이다. 누가 대중조직을 만드는가, 활동가들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 다. 회원이 지역여성을 조직하는 것이고, 그 회원들을 조직하는 것이 상근활동가여야 한다.

회원조직을 활성화 시키지 않으면 단체가 지역

여성 대중들을 조직하기는 힘들다. 회원조직을 활성화한다 함은 회원리 더십을 발굴하고, 역량강화하여 운동의 주체로 세워나가는 것을 의미한 다. 지역여성운동 대중조직 역시 지역여성들을 주체로 세우는 것이고 직업적 운동가인 활동가들은 이를 촉진하고 지원하는 조직가로서의 역 할을 하는 것이다. - 기초단위 지역 조직화 한다는 것은 풀뿌리 지역여성들을 주체화 한다 는 것이며, 그간의 여성운동과정에서 여성대중을 계목의 대상이자 운동 의 수혜자로 위치 지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한다. 기초 단위 풀뿌리 여성들을 여성운동의 실질적 주체로 만들어가는 운동인 것이다. - 회원조직운동,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강조가 왜 여전히 중요한가. 풀뿌 리 지역여성운동, 기초단위 지역 조직화가 왜 필요한가. 제도화 운동의 성과를 지키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이고, 또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여전운동의 토대를 확장하기 위해서이다. 기초단위 지역 여성의전화 조직은 가능하다 - 여전은 제도화 과정에서 재정과 사업규모는 늘어났지만 회원조직도, 자 체 재정도, 지역여성들과의 결합도 취약한 채 소수의 상근활동가에게 의존하는 운동을 전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상근활동가들에게 의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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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식은 기존의 상근활동가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고 새로운 상근 활동가들의 충원이 어려운 상황을 맞으면서 한계에 직면한다. - 따라서 회원중심의 활동과 조직운영을 하고, 회원들의 성장에 기초해서 조직과 실천역량이 커지고, 성장하는 회원역량을 풀뿌리 지역여성운동 을 개척하는 데로 모아 갈 수 있다. 실제로 지역의 몇몇 여성단체들이 구단위 지부와 동여성회 시도에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고, 지역내에서 풀뿌리여성조직을 분화해 가는 사례들이 있다. - 여성의전화가 대중조직, 지역운동조직을 지향한다고 할 때, 조직화의 방향으로 시도단위 지부들의 시군구 조직화가 필요하다. 시군구 단위 지부들의 읍면동 단위 조직화가 필요하다. 그것은 가능하다. - 풀뿌리 기초단위지역 여성조직화는 구체적인 지역현장에서 지역사회 공동체 차원의 여성인권운동을 전개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가 있다. - 기초단위 지역사회로 들어갈수록 기득권을 가진 남성 중심이고, 성차별 적인 의식과 관행,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다. 그만큼 풀뿌리 지역사회 를 변화시켜 나가기는 힘들고 더디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 회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여성운동은 무엇보다 지역의 풀뿌리 여성들을 만나고 그 여성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힘을 모아야 한 다. 여성폭력 문제는 바로 지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여성과 주민 자신 의 문제이며 지역사회에서 주민들 스스로가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우리 사무실로 몰려드 는 상담과 실무만 처리하려고 해도 벅차다.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면 지 역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지역공동체 차원의 변화를 꿈꾸게 된다. 전 국의 여전조직이 좀 더 기초단위 지역 조직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누구 한명을 지역조직담당으로 배치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운 동 전반을 회원조직방식, 지역여성 조직화방식으로 하는 것이 점차 우 리조직이 회원조직, 대중조직, 지역여성조직으로 체질개선 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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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다. - 마지막으로, 나의 좌우명은 “나는 행복한가”, “같이 가고 있나”, “상상 하고 창조하자” 이다. 현장이 교과서다. 가라 보라 생각하고 실천하라. 신발이 닳도록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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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운동에 대한 지부활동가 의견(욕망)조사 ■

○ 우리 지부에서 지역운동에 대한 활동가, 회원 간에 필요성에 대한 합 의는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고 합의를 만드는 구조는 어디입니까?.(예 : 사무국 학습 및 회의, 회원의 날 및 회원교육 등) ▶필요성에 대한 합의정도 -대체로 필요성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졌다 -회원과의 합의정도는 회원의 날과 교육 등을 통해 필요성을 전달하고 는 있으나 회원들이 필요성에 공감하고 실천하고자 하고 있는지는 드러나 지 않고 있다. -합의하였으나 실천이 안 되는 문제로는 1). 각자의 일이 많다. 2).상담 소와 사무국의 소통의 문제, 3)경험의 부족, 4)활동가의 의지와 역량의 부족, 5)지역운동에 대한 이해의 차이 등을 꼽았다. ▶답변 예 *문제를 문제로만 느끼고 마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변하면, 내가 참여하면 내 지 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부족한 것 같다. *합의라기보다 지역운동에 대한 고민을 활동가 한 사람의 몫으로 규정되어 지 는 것 같고 공유도 담당자만큼 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필요성과 방식에 대한 개괄적인 논의와 교육이 이루어지긴 하 였으나, ....... 지역운동과 나 라고 하는 구체적인 고민과 합이까지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회원들과 함께할라치면 귀찮고 힘들고 사무실 내 해야할 일이 많다. 문제는 내 역량으로 여성의전화의 정체성을 가지고 회원들과 함께 무엇인가 만들어 내고, 성취하고자 하는 정확한 목적의식이 없다. 그러니 당연히 실천의지가 없다. 그 냥 눈앞에 놓여진 일만 하면 된다. *필요성에 대한 합의는...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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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구조 -총회 -이사회 및 운영위원회 -사무국회의 및 학습 -상담원 학습 -정책토론회 -회원의 날, 소모임, 회원교육 + 소식지, 문자, 전화, 만나기 등을 통한 회원과의 소통 -견학 -합의구조 없음 : 대체로 사무국회의를 통해 지역운동에 대한 합의를 만들고 있는 것으 로 나타나고 있고, 전체적 합의는 총회를 통해 만들었다는 의견도 있었 다. 회원과의 소통은 회원의 날이나 교육을 통해 지역운동에 대해 논의하 고 있으나 대체로 회원과의 합의구조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위 의 필요성에 대한 합의정도에 나타난 것처럼, 필요성이 당위적으로는 인 식되나 실천과 연결되지 못함으로써 체화되지 못하고, 상근활동가 간 이 견이 존재하거나 지역운동의 개념이 모호한 것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 다.

○ 지역운동을 전담하는 부서가 있습니까? 아니면 한 담당자가 여러 사 업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까? ▶전담부서가 있다. -부서는 있으나 겹침 : 한사람이 여러 부서 담당 -부설기관 : 예-창원 신월사회교육센터 -사무국장 -조직사업국 및 회원사업국 -회장 ▶전담부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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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뿐 -각 부서가 각자의 사업에서 지역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대체로 전담부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뜻있는 개인(총무, 사무국 장, 회장)이 자신의 업무이외에 지역 활동을 하고 있거나 각자의 사업영 역에서 지역운동방식으로 하려고 하고 있다고 나타난다. 그러나 각자 영 역 속에서 풀자고 하나, 최소한의 원칙에 대한 합의가 없어 점검은 이루 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답변 예 *각자가 관심있는 대상들에 관해 각자 운동을 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음. 그러 다보니 각자가 하는 일만으로도 벅차서 지역운동을 체계화하고 적극적으로 실 천하기가 어려움 *지역운동? 실천과 방법이 다름. 예를들어 내담자를 상담하여 회원가입하면 운 동이다.사무국활동가가 직접 외부로 나가 지역민을 만나야만 운동인가? 회원가 입과 조직화를 여성의전화 지역운동의 개념으로 설정하면 회원가입까지를 운동 이라고 인식하고자 하는 것 같다. *전담부서는 없고 각자가 하는 사업에서 병행하되, 사람을 남기는 사업으로 진 행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전담부서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운동단체에서 활동가와 회원모두가 운동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역운동만 담당하는 활동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전화 내 분리와 갈등의 소지를 만드는 것 같다. 사업을 통해 하고 자 하는 운동을 활성화 할 수 있다. 활동가, 회원이 합의하에 운동단체로서 역 할을 실천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닐까?

○ 지역운동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 이 해결되어야 지역운동이 활성화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어려운 점 -급한 일에 밀린다. 일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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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 -조직적 합의가 안 되었다.이해에 대한 차이가 있다. 목적의식이 없다. (정의 및 방법) -방법을 모르겠다. -여성운동, 운동, 지역운동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없다. -지역의 보수성, 상대적으로 높은 문턱 : 일은 많은데 인적자원이 부족하다는 대답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때문 에 필요성은 느끼지만 급한 일에 밀리게 되는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으 며, 근본적으로는 개념 및 방법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상대적으 로 다른 사업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활동가들 스스로 운동 및 여성운동에 대한 확고한 의식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지 역운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해결되어야 할 점 -지역운동에 대한 활동가의 인식부족 및 이해의 차이, 소극적인 자세 -조직의 구조문제 : 과중한 업무, 리더십의 지역운동 마인드 -회원 및 주민에 대한 믿음과 자세, 주민의 요구와 단체의 목표의 접합점 찾기 -방법에 대한 합의 -지속적인 회원관계 및 지역운동을 할 수 있는 배려와 문화 -상담운동에 대한 재평가 :어려운 점과 해결되어야 할 점은 내용이 많이 중첩되는데, 어려운 점이 곧 해결할 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어렵고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으로는 정확한 개념에 대한 합의, 활동가들의 인식의 전환과 조직구조 의 변화를 꼽았다. 현재의 구조(재정, 인력, 사업)로는 지역운동을 전개하 기 힘들다는 데 많은 활동가들이 의견을 주었고, 여성의전화의 지향 및 목표를 주민 및 회원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편으로 그간의 여성의전화의 운동방식, 특히 상담운동을 풀뿌리관점에 서 재평가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답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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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의 정의에 대한 합의가 우선인 것 같다. 그 후 지역운동의 방식에 대 한 내부의 합의와 지지가 필요하다. *지역운동을 왜 해야 되는지 뚜렷한 목적의식을 고취시키면 활성화가 될 것 같 다 *가장 시급한 것은 지역의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운동과 어떠한 집단 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지금의 구조로는 지역 주민을 찾아가는 운동을 전개할 수 없다. *전체적인 사업이 너무 많이 긴급하게 돌아가고 있고 현안 문제가 더 시급하게 채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실무자도 맡고 있는 활동에 치여 마음을 내고 있 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업무 분담 및 시간 만 주어진다면 가능하지 않을 까 싶다. *지역운동은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이것은 되고 이것은 안 된 다는 것은 우리의 논리다. 사무국 마음대로 시간정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하 는 것은 지역주민을 무시하라는 것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이 있는 데, 누구의 시간이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이 결정이 현명치 않다고 보는 것은 그들이 삶의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는 발상이다. (그들을 인정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우리 지부의 지역운동에 대한 평가를 간단히 한다면.. (예를 들면, 주체, 준비정도, 필요성에 대한 공감, 구체적인 계획, 집행능 력 등) -자원(인력, 재정)이 부족하다(상담원 중심의 인력구조, 프로젝트로 사업 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 등) -장기적이지 못하고 단기적 이벤트가 강하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만 되어 있다.(구체적 계획, 집행력 없음) -불가능하다 -성급하게 회원 화, 자원봉사자 화 하려는 경향 -상근활동가 중심 -부설기관에서만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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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의견보다 사무국의견이 더 클 때가 있어 담당자로서 힘들다. -준비 중 이거나 진행 중 : 반복적으로 나타는 것은 자원의 문제이다. 업무에 비해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많다. 그러다 보니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 지속되지 못 하고, 사업도 지속되지 못하게 되는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 다. 또한 성급하게 회원으로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도 지역 운동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성과는 예산 및 정책모니터링을 통해 제도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답변도 있었다. 또한 준비 중에 있고, 담당자를 정했으며, 잘 진행되고 있다는 답변도 소수지만 보였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하려고하고, 하고 있으나 인력 등 물리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 전체적인 평가로 보인다. ▶답변 예 *자발적인 활동가의 참여와 인력난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지금 우리지부로서는 지역운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현재의 틀을 깨지 못하는 이상 앞으로도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필요성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 졌으나 개인의 업무에 집중하다보니 차순위로 밀린다. *상담원 중심의 현 인력구조로는 필요성 공감해도 구체적 실현과접근, 집행은 떨어진다.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지속적으로 가지 않는 것. 지역운동을 하여도 지역주민 들의 관심도와 눈높이에 맞지않아 외면당하기도 한다. 지속성도 떨어진다. *필요성에 공감하고 사전준비중임. 담당자를정함 *열심히 여성과 관련된 일을 하느데 운동이 아니라고 한다. 운동으로 해석하면 운동이 된다.

○ 나는 지역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런 이유를, 아 니면 아닌 이유를 함께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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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한일 -여성들을 임파워링 하는 것이 목표, 사람(의식)이 변화되어야 함 -단체가 아닌 풀뿌리(민중)이 주인이 되는 운동이어야 -지역사회 민주화 -지역정치세력화 -회원확대를 위해서 -사회가 발전해서 이제는 와일드한 운동보다 느긋하고 편안한 복지, 주민 운동, 정치로 가야 -그냥 ▶필요한 일이긴 하나 -꾸준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다른 일을 줄여야 -활동가 모두가 일정부분을 맡아서 해야 -상담원들도 참여할 수 있는 지역운동방식과 도구들이 필요 -지역 내 네트웤 구축해야 -결과주의를 버려야 -지역운동=여성운동=인권운동=대중운동=회원조직이 일치하지 않는 혼란 스러움 ▶필요한가? -거부감이 든다. -사람들의 관심(취업 및 경제)과 여성의전화의 지향이 다름 -프로젝트 등 재정문제에 집중해야하는 실정 -상담원으로서 내담자와 상담원대상의 활동이 더 중요 : 대부분이 꼭 필요하다고 응답하였다. 그 이유로는 여성들의 의식을 변 화시켜내는것, 여성들의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응답하였고 지역사 회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필요하다는 것에 동 의하지만 우리 지부에서 당장 현실적으로 실행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었다. 소수지만 거부감이 들거나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는 의견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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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예 *꼭필요한 일이고 지속적으로 해야할 사업이라 생각한다. 지역여성들을 만나 면....자아존중감도 낮고 관념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행복에 대한 가치기준도 낮다. *필요하다. 사람이 변화되어야 운동이 될 수 있다. *필요하다고 생각함. 여성들의 임파워링을 위해서.. *지역여성들과의 만남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만남. 상담원들도 참여 할 수 있는 지역운동방식과 도구들이 필요하다 *필요하고 앞으로의 활동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장 업무에 쫒기는 상황이므 로 지역운도을 중심으로 다른 일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전담자가 혼자하기보 다 활동가 모두가 일정부분을 맡아서 함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겨지 고 업무조정이 필요하다. *지역운동이 필요하지만 사업이 너무 많아서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지역운동이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우선든다. 편안하게 다가가라고 하면서도 운동이라는 관점을 버리지 못하여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 혹시 다른 대안적인 활동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다면 적어주십시오. ▶대상 및 주제별 -청소년사업 -노인 일자리 창출(맞벌이 부부 자녀 등하교길 안전 지킴이) -환경운동 -교육운동 ▶지역운동관련 -찾아가는 홍보사업 -기초적인 지역조사 -학교로 찾아가는 상담 -우리 동네 성 평등한 마을문화 만들기 : 대체로 대안활동에 대한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는 답변이 주를 이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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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 이유로는 과다한 업무와 급한 일들 속에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답변하였다. 다만, 새로운 대안은 없지만 그 대안을 지역민 만나기를 통 한 지역조사를 통해 찾아내고 싶고, 월별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취합하 여 연합차원에서 주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답변 예 *대안이라기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더불어 해보고 싶은가에 대해 기초적인 조사 (반드시 만나서)를 해보고 싶다 *상근활동가들에 대한 심화 교육이 필요하며, 지역운동의성공사례들을 사례관리 를 통해 체험하도록 하여야 한다. 지역운동을 통해 지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월별로 취합하여 연합차원에서 상근활동가들에게 공지하여 최대의 과제로 고민 하게 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다(피곤하다) *지부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되기 때문에 지역운동 의 필요성을 모르겠다. *상담소 상담원으로서 내담자들이나 상담원들을 대상으로 내실있는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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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지역운동 사례 ■ 전주 지역운동의 역사 박숙희(전주지부 활동가)

1.전주 지역운동의 시작은 2001년 ‘5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 을 맞이하여 시내 4개 지역을 순회하는 ‘찾아가는 생활상담’ 을 통해 시민을 찾아가서 만나는 상담을 전개 하였다. 프로그램은 생활여성상담 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전주역, 객사, 코아, 전북대 앞에 간이 부스를 마련하여 공개상담을 진행, 더불어 거리캠페인, 이벤트 행사(홍보진단, 풍선배포) 를 진행 하였다. 이와 함께 여성의 쉼터 공간마련을 위해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전북 도민 1인1구좌 (일천원) 갖기 운동” 을 통해 기금마련 캠페인을 진행하였 다. 2002년도 지역운동사업의 일환으로 여성역사를 찾아 떠나는 여행, 지역 여성을 위한 소모임 (1회원 1조직 가입하기) 만들기를 진행하였다. 2003년 지역여성들과의 만남을 고민하면서 지역여성들을 지역속에 들어 가 만나기가 쉽지 않아, 여성들이 많이 보이는 주민자치센터를 찾아다니 며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주민들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하는지를 파악하여 (프로그램 욕구조사) 지역여성들의 이해와 요구가 반영된

프로프램은 어

떤 것인지 알아보고 더불어 운영개선 방향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부분 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프로그램 욕구조사를 통하여 그들과 연계할 수 있 는 통로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주민자치센터 자체가 그들의 요구에 의해 뭉쳐진 곳 이여서 우리 의 의도대로 관심을 유도하기가 어려웠다. 처음부터 그들과 교육커리를 짜고 함께 준비하여 소통하는 것이 의식화나 조직화에 도움이 되었을 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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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이후의 계속적인 고민은 내년에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주민들과 함 께 할 수 있는 사업을 선정하여 사람이 남을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상근활동가 혼자서 여러 가지 업무를 하다 보니 지역운동 프로그램에 집 중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지역에 파고들 지 못하고 캠페인 방식을 통하여 지역여성운동을 진행했다는 생각이 들었 다. 지속적인 고민 끝에 2005년부터 지역 속으로 들어가 지역여성운동을 해 야한다는 생각으로 지역운동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배영희선생님이 살고있는 현대3차 아파트를 지역으로 선정하였다. 배영희선생님의 주선으로 아파트 부녀회 회의에 참석하여 임원진에게 지 역운동의 취지와 현대 3차 아파트 사람들에게 ‘평등가족 평화마을’을 만 들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부녀회를 통하여 네트웍을 형 성하고 소통하여 “평화마을 지킴이”를 조직하고자 함을 설명했다. 논의 후 부녀회 임원들은 매월 셋째주 수요일 부녀회 회의를 마치고 이 후에 주민들을 대상으로 1시간씩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부녀회원들의 참여로 활동이 적극적이었고,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진행 되 었다. 더불어 전주 여성의 전화도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도중에

현대 3차 아파트 정문 앞으로

건물을 짓

기 위해 대형화물차들이 다니게 되었고, 대형화물차들의 소음 뿐 아니라 현대 3차 정문 앞 도로가 파손되었다. 이에 현대 3차 아파트부녀회는 이 문제를 제기하여 건물 준공 후 도로를 원상복구 해 줄 것을 건의했고, 그 것이 받아들여졌다. 교육은 끝이 났고 도로 파손 문제도 해결되었다. 몇 몇의 주민들이 여성 의 전화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평화마을 지킴이를 조직할 수 있게 되었 다. 그러나 부녀회 교육 후 후속 모임이 진행되지 않았고, 지역운동을 전담 했던 활동가가 바뀜으로 인해

현대 3차 아파트 주민 모임은 흐지부지한

상태로 끝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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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2. 2007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지역운동은 2007년 활동가들이 바뀌고 다시 지역운동을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지 역을 거점으로

삼아야 할지 고심하던 끝에 활동가의 형님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거점을 정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지역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는 회원이나 활동가가 친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이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고, 그들의 욕구를 미리 알 수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대성동은 전주의 외각지였고, 아파트는 2동으로 마을회관은 노인들이 모 이는 장소였고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모여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는 tea time을 가졌다. 엄마들은 모여서 남을 비방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처지와 내 처지를 비교했고 그런 시간들 이

점점 무료해지기 시작했고, 수다를 풀어내지만 좀더 나은 방향의 만

남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무국 활동가 2명이 지역운동을 전담하게 되면서 그분들과 만나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그 중 나이가 많은 활동가의 형님과 두 차례의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그 분을 통해 다른 엄마들의 욕구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하려는 지역운동은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으며 자신을 들여다보고 변화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자신과 가정,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를 위해 지역의 여성들을 만나고 싶다고 이 야기하고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 주민의 집에서 4 명을 만났고, 그들과 마주하고 얘기하면서 풀어내 고 싶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음을 느끼고 다음 주를 기약하며 헤어졋다. 그 다음 주 모임도 첫 모임을 가졌던 엄마의 집에서 만났고, 서먹해하던 주민들이 조금은 편안한 모습으로 만났다. 첫 번째 모임에서도 두 번째 모임에서도 나이많은 주민이 이야기를 많이 드러냈고, 나머지 주민들은 그냥 듣고만 있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 지 않았다. 그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게 하기 위해 그때부터 나의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 중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말 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섯 번째의 만남 을 가지면서 모이는 장소에 대한 문제가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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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성격이 무난한 주민의 집에서만 모였는데 그 집에서 모임을 하게 되니 집 주인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제공 하려고 분주히 움직였고,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로인해 장소를 물색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다행히 사무국장의 친분으로 대성동 교회를 만남의 장소로 정하고 매주 화요일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그 즈음 팀장을 뽑고 팀장이 연락을 담당하기로 했다. 교회에서 만나서 일주일동안 지내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얘기하고 싶은 것들을 돌아가면서 꺼내기로 하였다. 그들의 문제는 시댁과의 갈등, 아이들과의 문제, 남편과 의 문제, 주변 사람들과의 문제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터져나왔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주민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주민들은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은 집값이 싸서 왔지만 조금 있으면 떠날 것이고 별 로 정붙이고 싶지 않은 곳으로 생각했고, 은행이 없어서 불편하고 병원과 마트는 차를 타고 시내권 으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 지역으로 돈 좀 모으면 학군 좋고 학원많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 지역으로 들어가 그 들과 경쟁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아이가 있어서 돈도 벌 수 없고, 그래서 남편과 시댁에서 무시받 는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지금 있는 시간이 행복하지 않고 빨리 지나갔 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 전업주부의 가치는 무가치 하다는 생각과 돈이 있어야 차별받지 않고 무시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물질만능주의의 생각 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그야말로 돈의 가치가 우선시 되는 그들과 만남 을 지속하면서 과연 이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켜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갈수로 무거운 짓눌림으로 다가왔다. 연합의 지역운동회의에 다녀올 때마다 혼란스러웠다. 지금 우리의 상황 은 의식화도 멀었는데 그들을 조직화하여 지역운동 주체로 세워낸다는 것 이 무모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짐으로 다가왔다. 그 무렵 친밀감이 형성된 주민들은 할 이야기가 너무나 많아 만나면 자신 의 애기들을 풀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많지 않은 인원인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이야기 하면 여기저기서 딴 이야기들을 했다. 훈련받은 주민들 이 아니어서 들어주기 조차도 안되는 주민들을 보면서안타까웠다. 이렇게 몇 주가 지나면서 너무 소란스럽고 정신이 없어서 우리만의 규칙 을 정하기로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꺼내놓고 규칙을 정하게 되었 다. 규칙이 정해진 후 주민들과 우리는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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렇게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나자 그들의 입에서 이제는 스트레스도 많이 풀렸으니 주제를 정해서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방향을 잡아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던 중 지역주민들에게 공동의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11월 10일 대 전 만인산에서 1박 2일 동안 전국 지역운동축제에 참석해야 한다는 것과, 참석할 때 대성동을 알릴 수 있는 무언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주민들과 고민하면서 대성동의 지금의 어떤 모습이 좋은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보게 하였다. 앞으로 미래의 대성 동 마을이 어떤 마을로 변하면 사람들이 살기 좋고 모이는 아파트가 될 지 상상하며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이라며 한참을 고민하던 주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그들과 같 이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살기 좋은 아 파트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전국 지역운동축제를 준비하면서 대성동 마을축제도 논의하고 팜 플렛도 만들고 마을축제 진행 방향도 그들과 함께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그들이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마을축제를 기획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 면서 주민들 스스로 조금씩 자신감을 얻게 되고, 열심히 참여하려는 열정 을 보이는 모습에서 그들이 주체로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대성동 주민들은 11개월 전의 그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이 들을 함부로 내 감정대로 대했던 엄마들이 지금은 자신의 감정을 아이나 남편에게 전가시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자신이 초라하고 돈을 벌지 못해 속상했었던 그들이 지금은 돌봄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되었 고, 사회의 이슈(학교에서 우리 부모들이 해야할 역할, 광우병 쇠고기 문 제, 집단성폭력 사건등)를 바로 보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문제의 심각성 을 제시해 주면서 생각 할 수 있는 꺼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사람의 변화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동안 무감각하게 무관심해 하면서 내 가족만 위해서 살아온 그들이 더불어 사는 삶, 타인을 이해하 는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더디 걸리고 힘들 수도 있다. 그 문제를 바로 보고 올바르지 않은 것에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어 표현하고 행동 할 수 있는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지역운동 활동가들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과 함께할 수 있어 힘이 나고 지역운동하는 것이 행복하다.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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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성장과 더불어 나도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말로 사람을 살 리는 일은 얼마나 감동적이고 가슴뿌듯한 일인가?

3. 앞으로 지역운동의 과제 앞으로 해 나가야할 과제는 많지만 2008년도에는 대성동에서 작은 마을 축제(운동회, 지역어르신 음식 대접하기, 마을 청소하기)를 통하여 전주여 성의 전화를 알리고 더 많은 지역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할 것이다. 대성동 인접 마을인 신리 마을에서도 지역운동 해 줄 것 을 요청 받았고 그들에게 모임을 꾸리고 할 만한 장소도 물색해 달라고 했다. 2008년 2 월 그들과 첫 만남을 가졌고 7명의 주민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인원이 들쭉날쭉하고 주민들이 교체되면서 지금까지 오고있다. 신 리 지역도 팀장을 뽑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당분간은 지켜볼 것이다. 지금은 중간중간 그들에게 광우병 쇠고기 문제와 대구 성폭력 사 건에 관해 우리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내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들과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 한다. 앞으로 이렇게 소모임 차원의 지역모임을 늘리고 그들 중 리더들을 모아 서 리더십 교육을 진행하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지역모임이 늘어 날수록 나가서 있는 시간이 많을 텐데 사무국에서의 일은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 이 앞선다. 같이 다닐 수 있는 회원을 찾아봐야 하는데 집에 있는 회원도 별로 없거니와 요즘은 대부분 경제적 가치를 우선하여 자원활동을 하려고 하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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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지역운동 사례 ■ 농촌 여전사들의 열정과 좌절: 농촌지역운동 사례 이 태옥 (영광지부)

1. 가부장제 드센 농촌에 ‘여성의전화’ 깃발을 꽂다. 낯선 땅 영광에 둥지를 틀다 영여전과의 만남을 설명하기 위해 나의 사랑과 삶을 피해갈 수 없다. 89년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사회운동으로 농민운동을 선택했다. 대학4년 서울에서 농민운동을 준비하며 만난 남편과 전국농민운동총연합(현 전농 의 전신)에서 1년동안 간사생활을 한 뒤, 남편의 고향인 전남 영광 땅에 결혼과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나름 촉망(?)받던 예비농민운동 부부였던 터라 운동에 대한 의욕도 농업에 대한 희망도 가득 찼었다. 그러나 현실 은 녹록치 않았고 농민운동과 농업을 병행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매년 빚 농사를 지으며, 사내 아이 둘, 그리고 몸의 살들만큼 농촌에서의 이력도 붙어갔다.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적인 농촌마을에서 서울내기인 내가 여성 농민운동가로 살아가기에는 힘에 부쳤다. 늘 남편의 운동성에 자의반, 타 의반 양보하고, 집안일에 아이들 키우다 보면 여성농민회 꾸리는 일이 만 만치 않았다. 나 말고도 서울, 광주 등지에서 농민운동 또는 결혼을 통해 모인 10여명의 젊은 여자들이 모여 ‘나를 찾는 여성들의 모임’을 결성하 기도 하고, 내가 살던 군남면에서 60여명의 여성농민들이 참여하여 면단 위 여성농민회 창립총회라는 거사(?)를 치르기까지 늦은 밤 하루 종일 노 동으로 녹초가 된 마을언니들을 찾아다니며 공부하자고 법석을 떨어야 했 다. 마을 여성들과도 언니, 동생하며 지낼 즈음 덜컥 남편은 교통사고로 내 곁을 떠나버렸다. 모두들 서울로 떠나겠지, 하는 생각과 달리 나는 영광 에 남았다. 농민운동은 내가 선택한 삶이고 영광은 터전이 되었던 곳이다. 남편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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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영광을 떠난다는 것은 더 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삶의 주체자인 ‘나’와 ‘영광여성’이 어느덧 힘차게 묶여 있었 다. 하정남 교무님의 특명, 영여전을 만들라 1997년 8월 즈음 농협 부녀지도계에 취업이 되었고 첫번째 프로젝트는 ‘여성대학’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일이었다. 여성대학은 당시 농협에서 흔히 하는 사업으로 문화센터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여성대학을 준비하 면서 여성농민만을 만났던 나의 발품이 농촌여성들에게로 넓혀졌다. 어떻게 하면 ‘일회성 교육이 아닌 조직화로 연결할까’를 고민하며 지역 전화번호를 뒤적이다가 눈에 번쩍 뜨이는 단체명을 발견했다. ‘여성문제 연구소’ “아니 이런 촌에 부티(?)나는 여성문제연구소가 있다니?” 탄성을 지르며 당장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선을 타고 경상도 억양의 조용한 목소리가 흘 러나온다. “이차저차하니 찾아뵙겠다”며, 위치를 물으니 백수읍에 있는 영산원불교대학교(현 영산선학대학교)로 오란다. 원불교 성지에 위치한 대학의 여성문제연구소를 찾는 발걸음은 나도 모르 는 흥분으로 달떠 있었다. 연구소를 찾아가니 자그마한 체구에 은은한 미 소가 빛나는 하정남 원불교 교무님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방안에는 사회 과학서적과 여성관련 책, 자료들이 빼곡 했다. “이런 산골 학교에 이렇게 의식 있는 종교인, 학자, 여성이 있다니?” 놀 라움과 반가움의 감탄사를 빠르게 교환하며 우리는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하정남 교무님은 이때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 문을 두드리며, 어떻게 하면 지역여성을 꼬셔서(?) 여성운동판을 만들어 볼까 목하 고민 중 이었다. 하정남 교무님과 인연이 된 나는 1년정도의 농협 일을 접고 아예 여성문 제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의 특명은 ‘영광여성의전화’를 조직하 는 일 이었다. 농촌에서 싹 틔운 여성주의 운동 여성운동의 볼모지에 여성운동 깃발을 꼽는 일은 섣부르게 시작해서도, 결기만 갖고도 진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먼저 사람을 만들고, 여성운동 의 가치를 공유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1998년 3개의 여성학 공부모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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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렸다. 앞서 소개한 ‘나를 찾는 여성들의 모임’ 멤버인 경아, 미화, 경희, 명례 등을 끌어들이고, 농협 여성대학을 통해 만난 방경남, 채봉정, 이이 재, 안금정씨 등이 합류했다. 그리고 이들이 새끼를 치며 직장여성들인 나은미, 정윤아, 정윤숙, 최명희씨 등을 엮었다. 공부모임은 농촌이라는 가부장적 분위기에 짓눌려 살던 여성들에겐 단비와도 같았다. 그동안 참 아왔던 분노가 정리되고, 나에게만 돌려졌던 책임이 우리, 사회로 확대되 면서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1999년 하반기, 영여전 지부준비위원회와 여성문제연구소의 이름을 걸 고

‘성교육지도자 전문교육’을 실시하였다. 영광에서 보기 드물게 긴 교

육기간에, 5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야 하는 교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80 여명이 지원해 20명을 돌려보내고 60여명의 교육생을 배출했다. 보건소 와 병원간호사, 성직자, 자원봉사자, 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과 소수 의 남성들이 참여하면서 여성주의 철학의 대중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 다. 개인적으로는 관심 있는 아이템과 질 높은 교육은 얼마든지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여성주의의 가 치가 영광사회에 얼마나 필요한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여성운동을 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관계와 소통을 여성주의로 재 해석 하고, 대중과의 만남을 통해 영여전이라는 배를 띄우는 일은 신기루 같았다. 여성운동이 만들어준 울림의 공간에서 교육하고 조직하고, 지역 에 떠들어 대며, 2000년 2월 29일 80여명의 회원과 지역민들이 모여 창 립총회를 만들어 냈다.

2. 여전, 농촌여성운동체로 진화하다 도시 여성운동 모방하지 마라 2명의 상근활동가로 시작한 영여전의 1년은 상담소를 ‘개소한다, 성교육 을 나간다, 여성학 소모임을 운영한다, 홍보를 한다, 상담학교를 연다’ 하 며 부산스럽게 지나갔다. 그리고 1년여를 정리하고 2차년도 총회를 준비 하면서 사업감사로 부터 고통스러운 지적을 받는다. 당시 사업감사 였던 송정숙(전 광주여전부회장)선생님은 영여전의 사업이 ‘농촌지역에 위치한 여성단체의 맛을 내고 지역여성을 담는 그릇을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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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더불어 여성단체들의 백화점식 사업방식을 영여전도 답습하고 있음에 다름없다’고 일갈하였다. “영여전은 회원중심의, 지역여성 중심의, 사람중심의 조직화가 필요하다 고 봅니다. 면과 마을단위 지역민들 속에 파고드는 현장에 기반한 활동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회원과 활동가의 중간층을 두텁게 하는 일을 통해 영여전이 여성대중단체임을 잊지 말고 지역여성인권단체로서의 정체성을 발현해 주기 바랍니다” (2001년 제2차 총회자료집) 억울했다. 이 척박한 영광땅에 깃발 꽂은 것만도 얼마나 힘든데...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가 아닌가’ 하는 심리 적 저항이 생겼다. 그러나 며칠 곰곰이 생각하고 총회를 준비하면서 감사 의 지적에 동의가 되었다. 농어촌여성들의 인권단체라는 존재의 이유를 망각하고 도시 여성단체들이 하던 내용들을 흉내 내려 했다는 증거가 사 업곳곳에서 포착되었다. 감사의 지적은 지역운동단체로서의 영여전의 정체성을 되새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촌 여성들과 함께 하려는 의지와 고민이 역력히 부족했음을 절 감했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마을로, 마을로 지역여성단체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기 위해서는 회원증가와 회원관리 가 급선무였다. 2004년 회원조직화의 고민의 끝에서 나온 사업은 ‘오(5)! 여전사랑’이었다. 당시 15명의 열심회원이 5명씩 회원을 관리해 정회원들 을 빠짐없이 네트워킹하고 각 팀별로 회원 소모임들이 만들어지도록 지원 하자는 내용이었다. 2년여 진행되는 동안 15명의 열심회원에 대한 투자 가 선행되지 않아서 사업이 성과 있게 진행되지 않았음을 그땐 잘 몰랐었 던 것 같다. 일과 역할만 주면 성과가 나올 줄 알았다. 형식만 만들고 그 일을 해낼 사람에 대한 투자가 없으면 사람사업은 실패하는 것임을 교훈 삼았다. 그후 회원사업팀을 꾸리고, 2005년 조직 개편 때는 회원협의회로 전환하여 위상과 역할을 높였지만 회원 사업은 여전히 어려운 영역이었 다. ‘회원들이 가장 접근하기 좋은 모임이 무얼까?’를 고민하다가 당시 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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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회원협의회장(현 부대표)은 천주교에서의 사랑방이나 기독교의 구역모 임과 같이 마을모임을 갖자는 의견을 낸다. 종교의 사랑방이나 구역모임 과 같이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모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직화로 연 결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말인즉슨, 종교조직을 벤처마킹하자는 것 이었다. 먼저 오경미씨가 살고 있는 남천리에서 마을모임을 하기로 했다. 2006년 남천리 마을모임을 준비하며 ‘무엇을 할것인가?’가 고민이었다. 그냥 모여서 수다만 떤다면 다음에는 사람들이 안 올 것 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아이템은 ‘천연비누 만들기’였다. 그리고 영여전 소개는 ‘도전 골든벨’의 형식을 이용하기로 했다. 장산아파트에 사는 회원과 위아래층 여성 11명이 모였다. 차를 마시고 퀴 즈와 천연비누 만들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수다로 이어졌다. 이 후 ‘쿠기만들기’를 꺼리삼아 10여명이 모여 모임을 진행한 뒤 옆마을인 교촌리 모임을 꾸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교촌리 모임이 잘 안되고 이후 준비중이던 법성면 모임으로 연계되지 못했다. 조직의 지원과 마을회원들 의 욕구를 끌어내지 못하며 마을모임은 마을공부방, 이주여성지원사업, 양성평등사업 등 굵직굵직한 일들 틈에서 우선순위에 밀리기 일쑤였다. 마을회원의 욕구에 의한 ‘스스로 조직화’가 되지 않은 이유였다. 마을모임은 조직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마을모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 지 못하는 것은 회원들의 욕구를 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쁘게 돌아 가는 일상속에서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모임에 대한 욕구를 갖게 하는 것 이 무엇일지, 어떤 방법이 먹힐지를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7년 7차년도 여름총회에서는 욕심내지 말고 3개마을 조직화를 목표 로 내걸었다. 회원들이 살고 있는 마을만 조직화해도 20여개가 넘을 것인 데 아직 우리는 마을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2008년 회원들이 많이 살고 모임을 주도할 수 있는 마을인 단주리에 마 을모임을 꾸리기로 했다. 또다시 실패하거나 좌절할 수 도 있겠지만 마을 모임에 대한 시도와 고민은 멈출 수 없다.

‘가부장’과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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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회원들의 대부분은 결혼을 통해 영광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 우리 도 국내이주여성들이었다. 서울에서, 광주에서, 울산에서, 나주에서... 그 러고 보니 회원 중 정작 영광토박이는 전체의 10%도 되지 않았다. 국내 이주여성 대부분은 영광이 다른 지역보다 더 가부장적임을 강조한 다. 농촌사회 일반적인 분위기보다 “더 쎄다”는 것이 생활에서 우러나온 진단이다. 어쨌든 이런 ‘쎈’ 지역에서 여성운동을 해나가기란 어렵기도 하 지만 오히려 투지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부장성과의 싸움은 여성들 내부에서부터 일어났다. 여성학 소모임 회 원 중 스스로 지쳐서 또는 남편이 눈치를 줘서 그만두는 경우가 생겨났 다. 여성학을 공부하다 보니 일견 마음이 시원해지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사사건건 남편이나 시댁식구들과 부딪히는 것을 회피하고 싶어 했다. 여 성학은 멀리 있는 이론이 아닌 나 자신의 사례와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 아 자신과 동일시 하다가 극복단계에서는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생긴 다. 또한 어디서 들었는지 ‘여성의전화는 이혼시키는 곳’이라는 혹세무민 (?)한 소문이 나면서 이탈자가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예상보다 직접적인 반격이 없기는 해도 친하게 지냈던 남성 운동가들이 슬슬 ‘나’를 피하는 가 하면 사석에서는 불쾌한 심정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이 갖는 진보성과 대중성은 가부장 문화에 밀리지 않았다.

‘성폭력․성매매 없는 건강한 지역만들기, 핵폐기장 반대로 여성의 건강권 확보하기, 여성농업인을 지역사회의 주인으로’ 등 여성이슈를 지역문제로 연결하면서 지역에서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특히 2003년 군산 성매매지역 화재사건으로 전국에 성매매근절운동이 높아지면서 영광에서도 성매매반대운동을 위한 교육, 조사와 홍보, 경찰 과 연계한 상담활동 등이 이어졌다. 지역신문 전면을 도배한 ‘영광지역 성매매 실태조사’는 영광지역 주민들에게는 놀라움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성매매의 영역이 일반음식점까지 점령당했다는 사실보다도 성매매 관련 지역에 여성들의 접근이 철저히 봉쇄되는 문화적 현실이 더 충격이 었다. 가부장문화의 극단적 모습인 성매매근절 운동을 하면서 남성들은 우리의 접근을 철저하게 봉쇄함으로써 가부장문화의 위력을 보이려 했는 지도 모른다. 그들만의 ‘성욕’에 찬 ‘성역’을 멀찌감치서 피켓정도 들고 서있었던 기분이랄까? 영광지역의 가부장성은 때론 완고하게, 때론 보이 지 않게 힘을 쓰고 있었다. 농촌의 가부장문화속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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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 여자” 들이 되어갔다.

3. 지역과 함께, 여성과 함께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영광과 상처 영여전의 지역운동은 핵폐기장 반대운동이라는 지역현안과 함께 했다. 핵발전소로 인한 환경파괴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영광지역주민들에게 핵의 존재는 ‘안전불감증’과 ‘공포’라는 극단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핵폐기장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2001년부터 2005년 8월 마무 리 되기까지 연대조직에 참여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핵발전소반대 대책위’가 ‘핵폐기장반대대책위’로 전환하면서 영여전은 사무국장인 나를 실무자로 파견하고 대책위 결정단위에도 참여하면서 지역내에서 책임 있 는 단체로 부상하였다. 핵폐기장 반대운동은 2003~2004년 정점에 이르렀다. 100여개가 넘는 단체가 반대대책위에 참여하였고, 유치위원회도 극성을 부리며 핵폐기장 위기가 지역민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지역투쟁이 더욱 거세지면서 영여전은 잠시 사업을 뒤로 미루더라도 핵 폐기장문제 만큼은 조직의 사활을 걸고 싸우기로 결의하고 각종 농성과 집회 등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였다. 기존 실무자 파견을 넘어 조직내부에 ‘핵폐기장반대 특별대책위’를 꾸리고 지역주민 강좌, 회원교육, 가두홍보, 지역신문을 활용한 홍보, 어린이 생태기행 등을 꾸준히 벌였다. 회원교육 과 홍보활동까지 지역현안인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최우선에 놓았다. 내부 적으로는 생태여성주의적 내용을 담는 ‘똥살리기, 땅살리기’모임을 만들며 생태운동으로서 반핵운동의 관점을 가지려 했다. 이런 지역활동은 2005 년 조직개편을 하면서 생태여성자치센터라는 활동기구로 전환되었고 이는 연대운동을 조직내부로 가져오는 귀한 경험이 되었다. 그러나 연대활동은 나와 조직에 큰 깨침을 주었다. 핵폐기장 반대라는 목표를 가지고 연대활동을 하면서 의사소통이나, 사업방식 등이 남성중심 의 사회단체와 여성운동조직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절 친했던 지역운동가들과의 갈등은 오히려 컸다. 역부족임을 느끼면서도 포 기하지 않으려 했다. 때론 문제제기를 통해 때론 헌신성을 통해, 때론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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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정을 표현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관계를 맺어오다가 조직간의 문제로 까지 일이 커졌다.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여성운동은 지역에서 생소했었나보다. 문제제기의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아 우리 조직내부까지 심한 타격 을 입었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이고 나 자신도 지역에서 힘든 상처 를 안게 되었다. 여성운동이 지역과 만나기 위해서는 헌신성과 더불어, 여성주의적 의사 소통이 가부장 문화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물음에 합 의하지 않고는 연대활동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맹목적인 헌신성과 뒤 치다꺼리가 아닌 민주적으로 소통하고 평등하게 책임을 나누고, 존중하는 문화가 전제되는 연대운동이어야 한다. 연대운동을 하면서 우리가 간과했던 문제는 두가지이다. 첫 번째는 내부의 여성주의적 가치가 공고했는가 이다. 연대조직내에서 사업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발생하고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 조직내부의 균열이 생겼다. 외부조직과의 문제보다 활동가들간의 입장차이가 당사자 와 활동가들간의 이견을 더욱 넓혔다. 두 번째는 연대활동의 과정에서 수평적이고 평화로운 의사소통을 책임성 있게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보수적인 지역 문화, 지역단체들의 사업방식이 여성단체와 달라 일거수일투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유연함과 원칙을 견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일’과 ‘책임’만 가져오고 우리의 입장을 밝히는데 소홀하면 안된다. (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과제를 제시해 주시지 요-저도 답을 내리기가 어렵네요. 사건이후 연대활동도 뜸하고, 제가 연 대현장에 있지도 않고 해서요. 이정도로 정리해 봅니다) 지방자치에 참여하는 ‘여치모임’ 지역여성운동의 주요과제중의 하나는 지방자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역 운동을 하려면 지방자치를 알거나,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2001년에 전라남도에 프로젝트 사업으로 신청하여 11월에 여성자치학교를 개설하 였다. 자의반 타의반 시작된 교육은 지역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관심 을 불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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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농협부녀회나 생활개선회, 여성단체협의회 등 농촌여성조직의 활동 적인 여성들의 관심이 높았다. 영여전 회원, 지역여성, 성직자 등 30여명 이 모였다. 여성과 생활정치, 여성의정활동 사례, 의정모니터의 의미와 실 제, 여성자치운동 사례 등의 교육과 영광군의회와의 간담회 일정으로 교 육이 진행되었다. 특히 영광군의회와의 간담회는 교육생들에게는 지방자 치의 현장을 체감하게하고 지방의회에게는 여성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환 기와 압력의 장이 되었다. 교육이 끝나고 의정모니터팀을 조직하였다. 교육생과 영여전 회원, 원불 교와 천주교의 여성 성직자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의정모니터의 목표는 ‘방청’이었다.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실시된 영광 초등학생들 방청과 핵발 전소 문제와 같은 중대사안에 대한 일회적인 방청은 있었지만 여성단체의 목적의식적인 방청은 처음 있는 일 이었다. 처음에는 의원들의 일거수일 투족과 성향파악 위주로 진행되었다. 우리 눈에 거슬린 것은 여직원이 의 원들 수발을 드는 모습이었다. 물 잔이 빌 때마다 주전자를 들고 물을 따 라주는 모습에 영광군의회의 가부장성을 목격했다. 모니터를 끝낸 회원들 은 성토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얼마쯤 지나서 의원들 책상에는 물병 이 올려졌다. 여성들의 방청이 은근한 압력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생각된 다. 한달여 방청을 하다가 무작위 방청보다는 의회일정을 파악하여, 여성 관련 부서업무보고에 3~5명씩 돌아가면서 방청을 했다. 주로 사회복지과 와 농림부, 농촌기술센터, 보건소 업무와 관련한 방청이었다. 방청하는데 익숙해지면서 좀더 객관적인 자료를 통한 의정모니터를 하자는 의견이 나 왔고 광주YMCA 의정지기단에서 사용하는 모니터 평가지를 사용했다. 의정모니터를 진행하면서 일의 양과 책임이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의정모 니터 사업에 몰린 관심과 재미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했다. 지방자치운동은 영여전만으로는 힘에 부치기도 하고 말빨도 안 섰다. 노인여성의 복지문제나 장애여성의 문제를 제기하면 성인지적 관점이 전 혀 없는 지역공무원이나 의원들의 반응은 “장애인과 노인속에 여성도 들 어 있지 않냐, 역차별이다” 하며 일부 여성들의 편협한 시각으로 돌려버 리곤 했다. 그리고 의정모니터단을 꾸리는 일이나 모니터를 조직하는 일, 평가하는 일 등을 영여전 혼자서 해내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조직의 지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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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위해서도 연대조직이 필요했다. 당시 천주교내에 지역문제와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생명과 평화지기의 여 성들과 원불교여성회, 영산원불교대학교 여성문화연구소 등과 ‘영광여성 자치모임’(여치모임)을 꾸렸다. 여치모임은 한달에 한번 모여 지방자치와 여성을 주제로 한 공부와 지역 현안에 대한 토론, 실천활동 등을 논의 했다. 2002년 5월 지방자치선거 시기에는 각후보들의 여성정책을 평가하고 평가내용을 지역신문을 통해 홍보했다. 각 후보들의 여성정책은 대체로 대동소이 했으며 실현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문제가 되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후보가 내놓은 여 성공약이 양적으로 많다거나, 시혜적이거나 성차별적 선거공약에 대한 질 적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3회에 걸친 평가작업을 통 해 양적 평가와 질적평가를 병행하는 원고를 작성하였고 여치회원들과의 수정작업을 통해 지역신문에 기고하였다. 남성위주, 후보위주로 진행되던 지방선거의 분위기에 여성이슈를 제기하고 후보들이 여성공약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군수공약을 중심으로 여성공약을 후보진영에 요 구하였고 내용을 공유하고 당선이후 여성공약 실천여부를 모니터 하기로 했다. 그러나 2007년 초 영광군수가 뇌물수수로 구속되면서 여성공약을 모니터할 대상이 사라져버려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2002년도에는 영광지역여성정책을 분석하고 토론회를 열었다. 여치모임이 주최하는 행사였지만 영여전이 내용분석과 실무전체를 맡았 다. 당시 성인지적 여성정책에 대한 분석이 여성운동에서 시작되었던 터 라 여성민우회 자료를 참고하여 영광여성정책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 석작업을 진행했다. 초안을 만들고 여치모임에서 수정보완하는 방식이었 다. 토론회를 통해 영광지역 여성정책의 부재를 지적하고 이후 군정활동 을 모니터 하는 자료로 삼기로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여성복지계장은 자 료를 보니 무척 고생했고 참고하여 열심히 해야겠다는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여성자치 관련 연대사업의 양이 많아지고 여치 참여단체들의 각기 사정 이 튼실하지 못했던 터라 기획과 실무일의 대부분이 영여전의 몫으로 떨 어지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섣부르게 연대사업을 꾸린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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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고개를 들었다. 연대조직 운영하는데 품이 너무 많이 들고 다른 단체들의 참여정도가 낮으니 차라리 영여전 내에 여성자 치 모임을 만들어 집중하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여성자치 운동은 지역여성 단체와 함께 한다는 원칙과 참여 단체들도 여성자치에 대한 관심은 높다 는 점을 들어 연대모임으로의 의미를 확고히 했다. 여치모임에 참여하는 각 단체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역할분담도 시도하고 회의도 순환제로 실시하면서 어려워도 여성자치 역량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사업 1년여 동안의 의정모니터 활동, 선거 시기 각 후보들의 여성정책 평가와 홍보, 영광지역여성정책 토론회 등 2년여 동안 굵직굵직한 일들이 이어졌 지만 너무 큰 틀만 고민하다보니 ‘여치모임’활동가들 사이에서 “지친다” 는 자체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시금 모임의 목적을 살펴보고 여성대 중과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사안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하여 의견을 구 했다. ‘영광에는 인도가 없어서 보행권이 위협받고 있다. 인도찾기 운동이 어 떨까?’ ‘시골에서 쓰레기 처리문제가 골치아파. 비료푸대건, 건조장 비닐 이건 간에 뭣이든지 다 태워버리 잖아. 환경오염에 치명적이라구’ ‘영광은 너무 삭막해 읍단위에 가로수가 너무 없어’ 등등의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 오다가 결국 ‘문화광장’을 만들자는 의견이 낙찰되었다. “영광에는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문화를 즐길곳이 없어. 왜 우리라고 대 학로 처럼 차없는 거리나 광장에서 춤추고 공연하는 광장문화를 부러워만 해야해?. 한달에 한번씩 스스로 벼룩시장도 만들고 아이들이 인라인스케 이트와 자전거도 즐기는 자연스러운 문화광장이 필요해”라는데 ‘여치모 임’회원 모두가 합의 했다. 2003년 10월부터 시작된 문화광장은 1차 ‘문화야 안녕? 놀이야 놀자!’ 를 주제로 민속놀이터, 먹걸이터, 벼룩시장터, 공연터, 인라인배움터, 성 교육터, 아트풍선터 등으로 진행됐다. 한달에 한번씩 진행되는 사업치고 는 너무나 크다는 지적에 따라 11월 문화광장은 벼룩시장과 민속놀이, 참 여마당 등을 담았다. 겨울을 지낸 문화광장 사업은 2004년 3월 ‘햇살 가 득한 3월 문화광장’ ‘꽃비 내리는 4월 문화광장’ ‘진초록의 행복 5월 문 화광장’으로 진화와 퇴보, 고민을 거듭하며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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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매달 행사를 치르면서 영여전이 맡은 짐이 너무 컸고 오히려 나 누는 연대감이 떨어지면서 여치모임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행사임을 절 감하며 문화광장 행사를 접기로 했다. 물론 힘겹게 이어지는 행사로 대중 들의 호응이 멀어져 간 것이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지역주민을 불러 모으려던 광장은 우리 회원들만의 광장이 되어버렸고 관심주길 기다렸던 지자체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지자체의 협조사항은 행사장소인 실내체육 관 공터를 빌려주는 정도였으며, 행사때 사회복지과장이나 여성복지계장 이 인사차 방문하는 정도였다. (지자체와의 씨름을 좀 더 상세하게 기술 하세요-저희가 게획된 대로 안되어서 지자체에 구체적으로 제기해보지는 못했습니다. 지자체의 무관심정도로만 써야 할 것 같네요.) ‘살고싶은 영광만들기 - 문화광장’ 프로젝트는 여성운동이 지역운동으로 파고들기 위해서는 탄탄한 내부조직력과 준비, 추진력, 지역민 욕구조사 등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여치모임이 좌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광의 대표적 축제인 단오제 행사의 가장 큰 볼거리로 여겨졌던 ‘영광굴비아가씨 선발대회’를 3년여 간의 반대운동 끝에 폐지시키는 쾌거를 이루었고 2004년 군단위로는 첫 번째로 영광군여성발전기본조례 제정을 이뤄내기도 했다.

4. 농촌여성과 함께 한 풀뿌리 운동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지부 중 후발주자이면서 농촌이라는 특성은 지역여 성운동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조건이 되었다. 한여전이 상담활동으로 출발 하여 여성주의상담에 이르기까지 상담활동은 영여전의 정체성인양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농촌지역의 경우 도시에 비해 상담에 대한 비중이 적 다. 가부장문화가 아직도 위세를 떨쳐 부부싸움이 가정폭력으로 인식되기 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더구나 저학력, 노령여성인구가 많고 익명성을 요구하는 상담활동은 작은지역에서는 다가서기 어려운 수단이기도 하다. 영여전은 다른 지부가 상담활동과 지역운동을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에 대 해 심각한 고민에 싸여 있을 때 농촌여성들의 욕구에 기반 한 활동꺼리를 찾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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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마을 공부방 2003부터 시작된 농촌여성 마을공부방 사업은 농촌노인여성들의 문맹탈 출에 대한 바램을 담아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방경남 전대표의 옆동네인 장자동에 처음으로 문을 연 마을공부방은 주2 회 회원들이 마을로 찾아가서 한글을 가르쳤다. 장자동 이안순님 집에서 시작된 공부방은 많을 때는 15명이나 되어서 3개반으로 분반을 하다가 중도포기자가 생기면서 2개반으로 1년여 동안 진행되었다. 우리는 장자동 공부방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한다. 농촌여성들에게 한글은 역사이고 한 이고, 인권문제라는 사실을... 여자여서 배우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서러움은 다 겪는 것이라 치더라도 결혼해서 남편과 자식, 동네사람들로부터 받은 무시와 열등감은 평생 가 슴 한번 쫙 펴지 못하는 한을 남겼다. 기역, 니은 속에 담긴 여성차별의 역사가 농축되어 나타났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푸념하고 “다 늙어서 무슨 추책이냐”며 스스로를 꾸짖는 언사가 많아지면서 포기하는 분들도 생겨났 다. 글을 배우다 보니 마을에서의 서열도 공부 잘하는 순으로 재편되면서 자존심 싸움도 일어났다. 평생 동네 왕따로 살았고 사이도 좋지 않은 누 군가가 한글공부는 1등이니 그 꼴 보기 싫어 안 나오시는 분들도 생기고 한글 배우려다 생병 나는 분들도 있었다. 첫해 장자동 한글교실은 우리에 게 오히려 많은 공부를 하게 했다. 이후 단주리공부방, 대마공부방, 대전리공부방, 월산리공부방, 장수촌공 부방으로 이어지면서 적게는 몇 개월에서 1년~3년차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공부방 사업은 2005년 조직개편을 하면서 ‘농촌여성다지기’라 는 활동기구를 탄생시켰다. 영여전이 공부방을 많이 운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방이라 는 현장을 통해 농촌여성들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영광군의 정책으로 채택하게 하는 제도화 방안으로 공부방의 존재는 중요했다. 그리고 마을 공부방을 선택하는 기준은 해당마을에 회원이나 회원의 가능성이 있는 사 람이 있는지를 중시했다. 외부에서 주2회 활동가를 투입하기도 어렵고 첫 해 장자동과 같은 마을주민들간의 예민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에서 나온 기준이었다. 영여전이 마을공부방을 한다는 소문을 들은 영광읍내 마을에서 요청해 시작한 것이 영광읍 단주리공부방 이었고, 백수 대전리와 법성 월산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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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법성 장수촌 공부방은 ‘찾아가는 마을 축제 - 농촌여성문화축제’ 를 치루면서 마을공부방 사업으로 연결되었다. 한글공부 자체가 농촌여성 임파워먼트임을 알아차리는데 3년여가 걸렸 다. 마을공부방은 지역의 기초단위인 마을여성과 영여전을 이어주는 끈임 에 틀림없다. 농촌마을 공부방은 한글공부만이 아닌 마을여성들을 엮어내 는 마을모임의 단초가 되고 농촌여성들을 위한 정책생산의 산실이 되는 날을 꿈꾼다. 농촌여성문화축제 농촌여성문화축제는 7회를 넘기고 2008년 8회째를 준비하고 있다. 1999년 기획당시 농촌여성문화축제는 ‘농촌여성이 지역의 힘’이라는 주제 로 시작되었다. 농촌을 떠받히는 중요한 구성원인 농촌여성의 삶은 모성 과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굴레속에서 빛보다는 그림자로, 따사로움 보다는 그늘진 곳으로 피해 있었다. 건강한 노동력을 가진, 생명력 있는 잔치판 을 통해 농촌여성들에게 수고 했다는 격려를 보내고 당신들의 목소리로 한판 놀아보길 기대했었다. 그리고 유명짜한 분들을 모셔다 갖가지 공연 을 해 보았지만 3년간 흥행에 실패한다. 교통수단도 수월치 않고, 정보도 먹통인 농촌여성들을 어느 한자리에 모으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뼈아픈 반성끝에 “이렇게 좋은 판을 벌였으니 와서 보고 즐기시오” 라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50명이어도 100명이어도 좋다. 그 마을 주민들이 하루를 즐기고 영여전으로의 끈을 묶어보자”는 마음으로 2004년부터 찾 아가는 마을축제로 전환했다. 행사를 위해 꾸려진 연대단체는 마을부녀회, 그리고 후원은 이장단, 청 년회, 영농회 등이 되었다. 행사 때마다 뒤치다꺼리에 부녀회가 동원되는 것을 막아보려고 먹거리는 최대한 간소화하고 부녀회장이나 회원들이 사 회마이크를 잡았다. 한사코 손사래를 치던 부녀회장님이나 부녀회원들은 무대 맛을 보고는 자신감도 커진다. 두 번째 찾아가는 문화축제를 하면서 농촌여성문화축제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1년동안 마을사업 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고 행사이후에 마을조직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평가 를 내렸다. 행사가 치러진 대전리 마을회원은 그해겨울 농한기 한글공부 방을 열었다. 서너명의 마을여성노인들이었지만 선생님이나 제자들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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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겨울이었다. 그 후 월산리에서도 공부방이 만들어졌고, 부러워하던 옆마을 장자동은 제6회 농촌여성마을축제 개최를 요청했다. 바로 이거다. “우리도 마을축 제 하고 싶어요. 그리고 마을공부방도 열겠으니 도와주세요” 얼마나 기다 렸던 반응이었나? 아직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지만 마을축제는 농촌여성들을 주체로 만나는 계기임에 틀림없다. 결혼이민 여성에게 힘주기 지금은 모두가 하는 사업이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이주여성사업을 시작한 2003년은 아직 이주여성이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2003년 총회준비위 회의에서 한 회원에 의해 제기된 이주여성사업은 2007년말 현재 이주여 성 스스로가 활동가가 되는 ‘이주여성센터’를 준비하는 모임으로 성장하 였다. 4년여 동안 조직의 온 힘을 쏟아 부을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 던 것은 농촌지역에서 차지하는 국제결혼 이주여성과 가족들이 중요한 구 성원으로 자리매김해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역문화는 이들에 대해 차별을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호기심과 동정의 시선은 여전하고 이주 여성들은 불쾌하고 자존심 상해한다. 영여전이 이주여성에 대해 ‘3세계 여성으로 국제결혼을 통해 자신과 가족의 비젼을 찾고자 과감히 바다를 넘는 여성들’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도 불과 1~2년정도에 지나지 않는 다. 그저 피해자라는 관점으로 시작했던 이주여성사업은 이들이 지역여성 으로 살아가는데 손색이 없고, 자격도, 능력도 된다는 사실을 그녀들 스 스로와 지역사회에 인식시키려 노력한다. 한국문화를 주입시키는 것은 한국사회와 가족, 지역사회가 충분히 하고 있다. 우리의 몫은 여성스스로에 대한 임파워먼트이다. 이들을 더 이상 다른 존재로 방치하다가는 우리는 또다시 중요한 지역여성들을 잃게 된 다. 베트남의 연화와 필리핀의 에드나, 몽골의 산자는 다문화교실의 활동 가들이다. 베트남과 필리핀,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영광지역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가난한 나라의 여성이라는 틀안에 눌려왔던 열등의식이 한꺼풀 씩 벗겨지면서 이들의 교육내용도 힘을 갖는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역 사, 문화, 제도, 법률 등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어깨 또한 높아졌다. 미디 엔과 연화는 이주여성 공부방 초급반 교사역할도 하며 스스로 돕는 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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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도 생겨났다. 원어민영어바우처사업을 통해 조직된 4명의 필리핀여성도 이주여성리더쉽 교육을 받으며, 지역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힘을 기르고 있다. 미디엔과 산자는 이주여성센터 준비위모임에 참여하며 자신 들의 조직을 만들어 가는데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이주여성들과 사업을 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도 생긴다. 의사소통 과 우리내부의 편견과 차별이다. 당사자 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이다 보니 이주여성 당사자들의 입장과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부작용도 생긴다. 특히 일자리와 경제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해와 갈등이 더 커진 다. ‘이주여성들도 지역여성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만 이들 의 역사와 관계, 소통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이주여성들이 우리사회의 양적 구성원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이들의 사회 적 역할은 질적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다. 예를들면 이들의 일자리가 식 당, 공장 등에서 다문화사업 교사, 상담원, 활동가 등의 역할로 다양화 하 면서 이들에 대한 교육 훈련과 사업에 대한 구체적 아이템 개발이 필요하 다. 현장에서 조직화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하는 일을 한다면 중앙조직이나 연구기관 등에서는 이주여성들이 직업인으로 자기성장을 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나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역할분담이 필요하 다. 바다 건너 멀리서 이주해온 여성들과 국내 이주여성들이 영광지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고민이 한층 더 깊어지고 있다.

5. 지속되어야 할 농촌지역운동 예지력 있는 여성운동가를 꿈꾸며... 지난 6년여간 치열한 고민터에서 나를 거듭나게 강화해준 탯줄과 같은 영여전 상근을 접으며 나는 비로소 지역사회로 나왔다. 농촌마을일을 해보고 싶던 터에 마을 지역아동센터에서 지역사람들과 만 나고 있다. 가슴 아픈일도 매일같이 일어나고, 재미와 행복한 일도 매일 같이 챙긴다. 지역사람들 속에서 나는 여성운동가로 살아간다. 이것이 영 여전에서 배웠던 가치들을 세상에 부려놓는 일이라 생각한다. 농촌마을은 거대한 양로원이 되어간다. 그리고 농촌사회는 가부장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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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지배한다. 농촌마을 노인 중 대부분은 독거여성노인들이다. 이들은 도시 로 나간 자녀들이 떠맡긴 손자, 손녀들 뒤치다꺼리에 허리가 휜다. 한부

모․장애․조손가정의 아이들도 힘겨운 나날을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농촌 마을의 공동체 의식도 많이 무너졌다. 팍팍한 삶은 이들의 정신건강까지 잡아먹는다. 농업을 생명운동으로, 마을을 공동체적 원리로 상생하게 하는 것, 지방 자치가 살아있게 하는 것, 주변인의 존재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 이런 것들이 농촌에서 여성운동 하는 영여전이 관심 쏟아야 할 부분이 다. 지난해 돌봄과 교육 공동체를 위한 유럽탐방길에 만난 사회적경제의 대 가라 불리는 벨기에 학자 쟈크 드프르니 교수는 풀뿌리 운동가의 능력중 하나로 ‘예지력 있는 운동가’를 꼽았다.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를 향해 거침없이 치닫고 자본의 모순은 극대화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벌려놓은 문제를 뒤치다꺼리하기보다는 먼저 고민하고 실천하며, 문제보다 해결책을 갖고 앞서나가는 운동이 필요하다 는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이다. 여성주의는 작은 것에, 자연적인 것에, 주변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 예 지력 있는 여성운동가들이 지역여성운동의 담론을 많이 만들어 나가고 나 도 그 길에서 여성운동 동지들과 자주 부딪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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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지역운동 사례 ■ 광명여성의전화 지역여성운동 강은숙(광명여성의전화 이사)

1. 지역여성운동을 생각하며 광명여성의전화가 지역에 맞는 운동을 하고자 했던 노력은 1999년 여성 의식과 욕구조사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1997년 창립 준비를 하고 1998년에 진행했던 활동은 굳이 ‘광명’지역이 아니어도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지역에서 지역 여성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판단되어 1999년에 대대적인 조사를 한 것이다. 그때 당시 지역여성운동 개념까지는 없었지만 지역에 천착한 활 동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고나서도 한동안은 여성의전화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활동 - 상담, 상담원교육, 성교육, 성교육강사 양성,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 등 에 매진하였다. 왜냐하면 지역에 뿌리내리는 방식을 지역의 문제에서 찾 아서 하기보다 여성의전화의 대표적인 활동 내용이 정비되어야 했기 때문 이다. 그러면서도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는 않았고, 계속되 는 고민은 회원단체로서의 위상 재정립, 상담교육 방식에 대한 대안 모 색, 회원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업 방식에 대한 고민, 상담 이외의 교육활동이나 일반 여성들이 쉽게 접근 가능한 프로그램 실시 등으로 이 어졌다.

2. 상담교육과 방식에 대한 고민 여성의전화 기본활동은 상담이고, 상담 자원봉사할 수 있는 상담원 양성 교육은 회원 가입의 거의 절대적인 통로였다. 광명도 첫 대중강좌가 여성 상담학교였으며, 이는 광명여전의 대표적인 의식향상 교육이자 대중과 만 나는 교육 프로그램이 되었다. 여성상담학교, 가정폭력전문상담원 교육 등이 현재까지 7차 진행되었고, 이를 통한 가입한 회원들이 초기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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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는 상담원 교육을 다른 방식으로 시도하였다. 이전까지의 상담 원 교육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우리가 모집해서, 즉 여전으로 불러모아 서 교육하고, 이들 중 회원 가입을 한 사람들을 상담원으로 활동할 수 있 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였다. 그러나 지역여성운동을 고민하면서, 꼭 사무실로 불러 모으지 말고 지역 에 있는 여성들, 특히 지역에서 조직에 가입되어 있고 폭력 예방과 관련 된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찾아가서 교육하고,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여성 폭력 예방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을 생각해 본 것이 다. 그래서 2003년에 각 파출소마다 여성자율방범대원이 조직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동마다 그 조직에 가서 가정폭력과 성폭력 예방교육을 실 시하였다. 의도는 좋았으나 여러 가지 요인으로 사업 의도를 살리지 못하 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속사업의 부재, 특히 조직화의 부재이다.

그러

나 그 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3. 회원 조직화에 대한 고민 광명여전이 회원조직에 대해 조직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고민한 시기는 2002~2003년이다.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대안과 지역여성운동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은 바로 회원이라는 생각으로 회원 확대와 회원의 역량 강화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도 회원조직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광명여전은 초창 기부터 프로그램 목표에는 항상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을 확대한다는 것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활동하는 회원들은 대부분 프 로그램을 통해서 여전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회원단체로서의 위상 정립이나 회원의 중요성이 조직 전체에까지 공유한 것은 아니었다. 2002년부터 스왓(swot) 분석도 하고 내부적으로 어떻게 하면 회원단체로 재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끝에 필요한 시스 템을 만들어 놓았다. 상근활동가는 담당하는 회원들이 있어서 수시로 안 부전화나 여전 소식을 알리고 있으며, 상근활동가 1인을 회원 사업 담당 으로 정하였다. 또한 매 회의때마다 회원 조직화의 결과를 보고하고 논의 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상담원모임, 성교육위원회, 지역자치위원회 3개 단위는 기본적인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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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을 사무국회의가 아닌 모임 단위에서 논의하고 추진하고 있다.

4. 여성폭력 예방 활동 방식에 대한 고민 여성의전화는 매년 5월과 여성폭력추방주간에 기본적으로 여성폭력추방 과 예방을 위한 활동을 한다. 광명여전도 마찬가지이다. 해마다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주민이 참여하고 참신한 프로그램을 진행할까 고민한다. 그러나 그 고민도 주민을 대상화한 고민이다. 그들을 어떻게 프로그램에 오게 할까이지, 그들을 어떻게 프로그램의 주체로 만들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회원과 함께 한다고 해도 같은 연장선 상에 있다. 따라서 주민을 주체로 하기 이전에 회원을 주체로 하여 함께 만들어나가 는 것이 필요했다. 그 시도는 2005년 성문화축제로 현실화되었다. 광명여 전에 있는 여러 소모임 중 ‘지역자치위원회’는 지역민과 함께 여성폭력 문제와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가 성인과 아이 모두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성문화축제를 개최하기로 하고 이 프로그램의 준비를 다 른 소모임이 같이 하도록 제안하였다. 각 소모임은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 고 각 코너를 다른 소모임이 주관하여 진행하였다. 2005년의 성문화축제 는 회원이 함께 코너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며 마무리하여, 진정으로 회 원이 주인이 되는 행사의 전형을 만들어내었다. 이것은 2007년 성문화축제때도 이어졌으나 조금 다른 형태를 띠었다. 회 원이 같이 준비하되 회원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회원이 아는 지역 주민과 함께 진행한 것이다. 2005년보다 다른 회원들의 참여는 줄었으나 대신 회원이 사는 동네 주민이 결합하여 또 다른 의미 있는 모습을 만들 어낸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면서 발전해 나가야 진 정한 지역여성운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5. 성평등한 지역사회 만들기에 대한 고민 여성운동의 제도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 고 여전히 성평등한 지역사회가 되려면 다양한 제도 정비와 예산 책정이 되어 있어야 한다. 광명여전은 이에 대한 모니터링이 성평등한 지역사회 를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꾸준히 이에 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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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해왔고, 이를 토론회나 간담회, 언론보도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슈화시키고 있다. 광명여전의 여성정책 모니터링 사업은 2003년부터 시작하였다. 당시 여 정모임(현재 지역자치위원회)을 구성하여 광명시의 여성 관련 예산과 제 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자료를 모으고 필요한 학습과 분석작업을 하였 다. 그러는 한편 1999년 조사에 이어 4년만에 광명시 여성들의 의식과 욕구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광명시여성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다. 2005년에는 광명시 보육정책토론회를 개최하였고, 2007년에는 광명시의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하여 토론회를 실시하였다. 12월 18일에는 광명시 양성평등교육 실태보고와 확산을 위한 토론회가 예정되어 있다. 여성정책 모니터링에 대한 사업은 현재까지 꾸준히 매년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집 행부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6. 누가 지역여성운동을 하는가? 광명에서 지역여성운동을 할 때 누가 그것을 추동하고 이끌어내는가? 기본 동력은 지역여성운동에 대한 의지가 있는 상근활동가이다. 이들이 다른 상근활동가들의 의식을 바꾸고, 회원들을 조직화하여 회원들이 지역 여성운동을 하도록 해야 한다. 즉, 사무국 상근 역량이 중요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 지역여성운동은 절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광명의 고민은 이 사무국 상근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상 근자가 일부 바뀌고 지도부도 바뀌면서 지역여성운동을 추동하는 힘이 약 해졌다. 조직작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지역여성운 동을 힘있게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여전히 사업이 너무 많 다는 문제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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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지역운동 사례 ■ 2007년 내방동 주민과 만나다 임수정(광주지부 사무국장)

1. 내방동으로 정한 이유(5월-7월) 지역을 내방동으로 정한 이유는 성매매피해여성쉼터 한올지기가 있어서 였다. 한올지기는 넓은 정원이 딸린 2층 단독주택이다. 구입 할 때만 해 도 나무가 울창한 정원이었는데 사무실을 짓느라고 정원의 절반정도를 시 멘트로 발라버렸다. 한올지기가 있는 내방동은 단독주택 단지다. 한올지기와 쌍둥이 건물처 럼 옆으로 나란히 단독주택이 한 채있는데 두 집은 마치 같은 건물처럼 보인다. 옆집 이층에서 한올지기 정원을 내려다보면 한올지기 식구들의 움직임이 다 보인다. 한올지기 정원 한 면에 조립식 사무실을 지어 사용 하고 있는데 밤에 불을 켜면 훤히 보여서 커튼을 쳐야한다. 그러나 그것 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한올지기 입소자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잔 다는 것.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다는 것. 그러므로 화가 나거나 다툼이 일어나면 동네가 들썩거릴 정도의 큰 소동이 벌어진다. 소리를 지르고 욕 을 하고 머리카락을 휘어잡아 흔드는 상황이 몇 차례 일어나자 주민들의 관심이 커졌다. 저 집 뭐하는 집이야? 수용소야? 여성의전화가 뭐 하는 곳이야? 쉼터 앞 슈퍼나 문구점에 가면 몹시 궁금해 하면서 뭐하는 곳인지, 애들 꼬라지가 왜 저모양인지 노골적으로 묻곤 했다. 그래서 되도록 바로 앞 슈퍼나 문구점으로 물건을 사러가지 않았다. 입소자들에게도 주의를 주었 지만 입소자들은 개의치 않고 담배를 샀다. 그리고는 햇볕 잘 드는 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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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모여앉아서 담배를 피우면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은 못 볼꼴을 본다 는 듯 힐끗 거렸다. 더욱 큰일은 주민 중 누군가가 왜 저런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왔는지 모르겠다면 주민들의 의견을 묻고 다닌다는 소문이 돈 거였다. 게다가 옆 집 주인도 시끄럽다는 둥, 신고를 하겠다는 둥 불만을 터트리기 시작했 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주민들과의 화합은 한올지기 특 성상 필수사항이었다. 업주들로부터 입소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지 만 사람과 사회에 불신이 가득한 입소자들을 생각해봐도 주민과의 화합과 원활한 소통은 꼭 필요했다. 성매매 피해여성들에게는 피신처와 같은 곳 이 쉼터이다. 그 쉼터가 주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면 입소자들은 무척 불안할 것이며 여성의전화에서 지원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실효 성을 거두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컸다. 또한 장소가 공개되어서 는 안되는데 이렇게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싶었다. 때마침 지부 간담회를 계기로 지역여성운동이 무엇인지, 우리는 왜 지역 운동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해 내부토론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지역여 성운동이 무엇인지 알고 토론에 임했던 상근활동가는 몇 명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왜 해야 하는지, 지금도 일이 많은데 꼭 해야하는지, 그럴려면 지역운동담당자를 배치해야하는데 우리 조직의 상황이 그럴 수 있는지 등 을 중점적으로 토론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 토론이었다. 무엇보다도 지역운동의 개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지역에 나가 지역민과 함께 지 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주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런데 그것을 왜 여성의전화가 해야 하는가? 특히 주민들을 여성의전화 회원으로 끌어들이려는 욕심을 가져서도 안되고, 하루아침에 주민조직을 욕심내서도 안되고, 여성의전화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해서는 더욱 안되고, 이래서도 안되고 저래서도 안되고.... 그렇다면 동네 나가서 놀아야한다는 이야긴데....

2. 조직적 어려움(8월-9월) 고민 끝에 내방동에 한올지기가 있다, 쉼터가 주민들에게 불만의 대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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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있다는 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여성의전화가 무엇을 하는 곳인 지를 주민들에게 홍보하기로 했다. 여성의전화가 여성인권운동단체이고 한올지기는 성매매피해여성을 돕는 쉼터라는 사실을 홍보하자는 목표가 정해지자 지역운동의 실마리가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제일먼저 지역운동 팀을 꾸렸다. 사무국2명, 한올지기1명, 성폭력상담소 1명 등 4명. 사무국의 합류는 지역운동 주관 부서이기 때문이었고 한올지 기 상담원은 당연했고 성폭력상담소의 합류는 지역운동 워크샵 등 교육경 험이 있다는 이유로 지역운동이 뭔가를 숙지했을 것이란 생각에 합류하게 되었다. 기획팀 4명이 모여서 기획회의를 시작했다. 10분 잡담 20분 침묵. 다시 10분 지역운동이 뭐냐 생각해보다가 20분 침묵. 그래도 머리를 쥐어짜야 하지 않겠느냐, 뭔가 내놔봐라고 다그치느라고 10분 그 미칠 것 같은 와 중에 하품하는 것 보면서 참는데 20분...... 서너 번의 기획회의가 진행이 되었는데도 도대체 어떻게 주민을 만날 수 있는지,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우리 활동 무대가 내방동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사무실에서 기획회의를 할 것이 아니라 한올지기에서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1주일에 1회씩 내방동을 돌아다닌 후 한올지기에 모여서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내방동사무소를 방문하여 내방동 화정동 일대 지도를 먼저 구했다. 한올 지기를 중심으로 원을 그렸다. 내방동, 화정동, 쌍촌동의 일부가 원에 들 어왔다. 쌍촌동까지 나가게 되면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서 내방동과 접 경지인 화정동 일부지역만 포함하기로 했다. 지역을 나눠서 무작정 걸어 다녔다. 걷기 시작하면서 깜짝 놀란 것은 동네의 길이란 길은 모두 시멘 트로 발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모든 길이 포장되어있다는 사 실이 무척 낯설고 어색했다. 마치 지금까지 다른 나라에서 살다온 것처럼 새삼스럽고 엉뚱한 느낌이었다. 볕은 따갑고 다리는 아프고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두 시간 쯤 걸어다니다 돌아온 상근활동가들이 지쳐 헐떡이며 너무 힘들다, 못할 것 같다며 늘어져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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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방동 화정동에 사는 회원목록을 뽑았더니 12명이었다. 몇 명이 나눠서 전화를 했다. 만나주겠다고 하는 회원은 단 한명. 직장생활을 한다고 해 서 퇴근시간에 맞춰서 찾아갔다. 지역운동 취지를 설명했다. 열심히 듣던 회원이 저는 지금까지처럼 뒤에서 열심히 후원하겠다. 그것이 나로서는 최선인 것 같다고 했다. 그 회원은 학교 선생이었고 여러 가지 조건이 현 장에서 직접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른 주민을 소개 해달라고 했 더니 직장생활을 30년 동안 하다보니 알고 지내는 주민이 없다고 했다. 암담했다. 못하겠다, 포기하자는 상근활동가들의 푸념을 들으면서도 몇 차례 더 동네를 걸어다녔다. 여성의전화 홍보전을 벌이기에 좋은 장소가 어딘가 찾아 두리번거렸고 누군가 동네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고 기웃 거렸다. 동네 노인정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어린이집, 공부방 등이 몇 개인지 찾아보기도 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포기하자는 원성이 더 높아졌다. 아무런 목표나 대상이 없이 무엇인가를 찾아다닌다는 막연함에 육신이 힘들어서였을 것이다. 하 지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찔러야 할 터. 주민을 조직할 수는 없을 지라도 캠페인이라도 한 번 벌여야했다. 지역운동 기획팀원을 조정했다. 성폭력상담원과 사무국 담당자를 기획팀 에서 뺐다. 사무국장과 한올지기 상담원이 남아서 내방동에서의 여성의전 화 홍보기획을 하기로 했다. 주민을 만난다거나 조직을 해야한다는 목적 의식을 버리고 캠페인을 한 번 벌이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결론을 내리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우리가 누군가. 기획사보다 더 빠르게 기 획하고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조직아닌가. 팀원이 줄어들자 움직임도 가벼 워졌다. 한올지기 상담원 최선영을 담당자로 정하고 실무를 맡겼다.

4. 진행상의 어려움(10월-11월) 한올지기 상담원이 담당자가 되다보니 일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장 소 물색을 위해서 틈틈이 내방동을 돌아다닌 끝에 내방 주공아파트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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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발견했다. 주공아파트 상가와 인접해있고 아파트 주변 주택가와도 연결되어있었다. 무엇보다 한올지기와는 거리가 좀 떨어져있어서 한올지 기가 전면에 드러나는 일없이 여성의전화를 소개하기에 맞춤한 장소였다. 한 달에 한 번 씩 첫 번째 월요일 오후에 내방주공아파트 후문 광장에서 캠페인을 하기로 하였다. 가장 먼저 관할 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한 후 곧바로 행사를 시작했다. 10 월 2일 여성의전화 상근활동가 대부분과 회원 등 20여명이 모여서 잔치 준비를 했다. 부침개를 부쳐 나눠먹으면서 주민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 는 작전을 짰기 때문에 판을 벌이자마자 부침개부터 부쳐서 노인정이며 동네 상가, 경비실에 찾아갔다. 내방 주공아파트는 분양이 진행 중이어서 아파트 내에 주민자치위원회 사무실이 차려져있었다. 주민자치위원들의 세력은 대단한 듯 했다. 부침개를 부쳐들고 찾아가서 행사 취지를 설명했 다. 광주여성의전화에서 홍보 캠페인을 하려고 한다. 평등평화마을만들기 라는 주제이며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고 이웃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려고 한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평화로운 마을을 만 들고.... 이 얼마나 현실성 없는 얘기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오로지 그들 의 관심사는 분양가에 있었고 이미 주민들은 패가 나뉘어서 서로 인사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분양가를 둘러싸고 주민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후문 광장에서 집회를 하고 있지만 거기도 나오 는 사람이 몇 안 된다며 잘 해보라고 했다. 우리는 제대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또한, 한두 번으로 끝낼 작정이 아 니었으므로 상황이 어려운 것은 호재라고도 생각했다. 행사장에서는 사포 에 그림그리기, 즉석사진 찍어주기, 살고싶은 마을은 어떤 곳인지 설문조 사, 마을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등의 주제로 상근활동가, 회원 들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민들은 무척 냉정했다. 따뜻한 부침 개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마을의 불편사항은 없 느냐 물었더니 아파트 값 떨어질 것을 먼저 염려했고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더니 교통 좋고 아파트값 잘 나가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했 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거나 작고 정겨운 오솔길이 있는 마을, 도서관이 있는 마을, 그도 아니면 빈 공터라도 있는 마을을 희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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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부침개의 유혹에 넘 어온 사람들은 초등학생과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다 일 하러 갔거나 집에서 뒹굴거나 혼자 놀거나 할 것이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단지 말 몇 마디 물어보면서 부침개도 부쳐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그림도 그리게 해서 나눠주고 했더니 주민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어디서 왔냐고, 교회에서 자선사업 하느냐고 물었다. 여성의전화 에서 왔다, 여러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여성의전화가 무엇을 하 는 곳인지도 홍보하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고개는 끄덕이면서 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10월 18일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잔치판을 벌였다. 이번에는 판을 벌 이기도 전부터 경비들이 몰려들었다. 관리사무소에 허락받았느냐고 다그 치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관리사무소로 찾아갔다. 관리소장을 만나고 싶 다고 했더니 무슨일이냐, 소장 없다, 행사는 무조건 안된다고 했다. 관할 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했고 경찰서에서는 해도 좋다고 했다고 했다. 경찰 이 무슨 상관이야. 거기는 주공 땅인데! 없다던 소장이 소장실에서 소리 질렀다. 최선영이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무조건 안 된다고 했다. 천막이고 뭐고 다 걷어버린다고도 했다. 주민들이 싫어한다 고도 했다. 그래서 지금 부침개 먹고 그림그리기 등에 참여하고 있는 주 민들은 주공 사람들 아니냐고 물었다. 소장은 끝까지 얼굴을 내밀지 않으 면서 고래고래 소리만 질렀다. 무조건 안 된다였다. 교통에 방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소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주 민들이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관리소장이 그 장소에서 행사를 못하게 하 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10월29일 다시 관리사무소에 찾아갔다.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이번 까지는 봐주겠지만 다음부터는 절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할 수 없 이 다음 행사를 위한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주민과 만나기 위해서 관리사무소와 싸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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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을축제(11월 5일) 날씨가 추워져서 평등부침개 부치는 행사를 계속하기 어렵게 되었다. 몇 번의 주민만나기를 결산하는 의미로 축제를 열기로 했다. 주공 아파트 후 문 광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서 축제를 열 장소를 다시 찾아다녔다. 축 제마당을 열기에는 적당한, 아담한 공원을 찾았다. 공원은 아담하고 좋은 데 마을 안쪽에 치우쳐있었고 도로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있어서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와야 했다. 어떤 방법으로 주민들을 축제 장소로 모이게 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또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공원으로 접근하기 좋은 방향,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공원으로 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 기 위해서였다.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다른 장소를 찾기도 어려운 상황 이어서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대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홍보전단을 곳 곳에 부치고 축제를 홍보하기로 했다. 또 한 가지 좋은 방법은 아이들을 무대로 올리는 것이었다. 다른 지부에 서도 마을 축제를 실시했는데 아이들 공연이나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태권도 학원 유치원 등을 찾아다녔 다. 다행이도 석사 태권도학원에서 시범을 보이겠다고 나섰다. 유치원에 서도 공연 중인 춤을 미리 선보이겠다고 했다. 노인복지관에서도 나와서 실력을 보였다. 평화마을 선언문도 낭독했다. 공원 한쪽에서는 전을 부쳐 돌리고 무대에서는 노인, 어린이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공원의 고목에 줄 을 걸어 그동안 그려온 사포그림, 사진 등을 전시했고 당연히 여성의전화 홍보판도 전시했다. 주민들이 한명도 찾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많은 사람들 이 찾아와 공연도 함께 보고 부침개도 나눠먹었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늦가을 오후에 내방동 한쪽 구석에서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여름 내 절치 부심한 상근활동가들의 노력의 대가로 많은 주민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6. 2007년 지역운동에서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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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덤벼들었지만 주민을 만난다는 명제에 충실했 다. 상근활동가 두 명이 풀뿌리조직가 교육을 받았고 지역여성운동 개념 정 립에 접근해가고 있으며 많은 상근활동가들이 ‘지역운동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에서는 차츰 벗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근활동가가 있는가 하면 그냥 주민과 놀자고 하는 활동가도 있다) 지역운동은 단시간에 이뤄낼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

7. 2007년 지역운동에서 부족했던 것 회원과 함께 하지 못했다. 주민조직을 하지 못했다. 주민의 욕구도 파악하지 못했다. 상근활동가의 욕구는 파악했다. 지역주민과 노는 것도 일이 되면 하고 싶 어 하지 않는 다는 것. 그래서 반드시 회원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일이 아니라 놀이로 주민과 만날 수 있는 회원의 참여가 꼭 필요하다.

8. 2008년 지역운동 계획 내방동 주공아파트 후문 광장을 사용하기 위해서 주택공사측에 행사취지 와 사용허가 신청서를 보냈다. 주택공사측에서는 주공아파트 자체 소관이 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주공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장소 사용허가 신청을 요청했다. 답변은 절대불가였다. 왜 안 되느냐고 했더니 자치위원회에서 안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불가 이유서는 주택공사측으로 보냈다고 했다. 주택공사 측에 자치위원회에서 보낸 불가이유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불가 이유서에는 소음과 교통방해라고 쓰여 있었다. 도로를 점유한 적도 소음을 낸 적도 없다. 그럼에도 교통방해와 소음이 불가이유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 답변서를 받아본 최선영의 의견은 ‘이 사람들이 정말로 싫어 하는구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장소를 찾기로 하였다. 현재 화정동 삼익아파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4월에 첫 행사를 계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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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고 있다. <행사내용별첨>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여서 점심 시간에도 가보고 퇴근길에도 들러보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라선지 동과 동사이에 작은 숲이 조성되어있고 벚꽃, 라일락, 모과나무, 홍매화 등이 만발했다. 마치 우리를 반기는 것 같다. 그 느낌이 착각이 아니기를 바라 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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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지역운동 사례 ■ 도시 속 소외된 공간을 소통하는 풀뿌리 공동체로: 대도시 지역여성운동 사례 박신연숙(서울지부 지역조직국장)

“우리 마을 공원에 화장실이 있는데 날이 저물면 이용하기가 겁나요. 거 기서 성추행 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요.” “아이가 팔만 걷어 올려도 멍자국이 시퍼래요. 집에서 맨날 맞고 사는 거 같은데, 물으면 어디 부딪쳐서 멍들었다고 하지요.” “옆집에 폭력이 있어도 쉬쉬하니까 잘 모르지요. 그러다가 큰 사건이 나 면 그제서야 아는 거죠.” “신고요? 해봤자 소용없어요. 부부싸움이라며 그냥 돌아가는 걸요.” 마을에 들어가 여성들을 만나면 허다하게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여성운 동의 노력에 의해 법과 제도는 많이 바뀌었고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뤄왔 지만, 정작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우리 마을에서 느 끼는 변화속도는 더디다. 지자체와 경찰, 학교의 정책과 관행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사회 일반의 인식과 주민들의 태도도 그다지 변함이 없다. 마을로 들어갈수록 가부장적 권위주의, 지역유지를 중심으로 한 인맥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성들의 역할은 여전히 종속적이며, 쉽 게 동원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성 평등을 지향하는 여성단체들은 아 직까지 지역사회 내에서 영향력이 미약하다. 가정과 일터가 있고, 아이들 초등학교를 보내고, 운동 삼아 동네한바퀴 산책을 하기도 하고, 장도 볼 수 있는, 나의 삶의 터전인 우리 마을.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한 아 이를 기르기 위해서 가정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이 함께 힘을 쏟고 지역사 회가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들 마을에서 6가정 중 1가정은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10명중 6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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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아동이 가정 안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다. 여성폭력에 대한 우리 지역사회 의 무관심과 몰이해, 대응력 부족으로 폭력을 당하면 쉬쉬하고 살거나, 자신의 삶의 터전을 떠나 쉼터로,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야 하는 현실이 다. 이제 나부터, 나의 이웃들이, 우리 마을 공동체가 협력하여 폭력없는 평화마을 지킴이가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의 폭력 피해자가 생존하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다!

1. 들썩 들썩~ 서울여성의전화에서 지역여성운동 시작하다. 여성의전화는 1983년 창립이후 ‘상담’을 통해 여성들의 요구를 접수하 고, 여성인권보호 및 이슈화이팅, 법,제도 개선운동, 가부장적 의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교육, 문화사업 등을 벌여왔다. 90년대 중후반 성폭력, 가정 폭력 법제정 이후 여성운동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여성들의 실 질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지 역여성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1997년 한국여성의전화는 서울여성의전화와 한국여성의전화연합으로 분 화했다. 1994년 전국에 지부들이 설립되면서 지부조직을 총괄할 본부와 서울지역의 지역여성운동체로서 서울지부가 조직적으로 분화하게 된 것이 다. 서울여성의전화 준비위원회는 “서울지역에 영향력을 높여 명실상부한 대 중조직으로서의 입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의 상담사업과 함 께 회원조직화 사업에 주력하여야 할 것이다.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16)고 함으로서 지역여성조직을 지향했다. 서울여성의전화는 중점사업을 조직강화사업으로 하고, 여성인권운동의 대중적 확산과 회원중심의 여성대중조직을 지향했다. 지방자치시대에 걸 맞는 구 단위의 조직 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지회 건설에 목표를 두 었다. 1998년 6월 강서양천지회가 창립되었고, 11월 동대문성북지회준비

16) 한국여성의전화와 서울여성의전화 분리 서울여성의전화 준비위원회 1차 회의자료 199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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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위원회(이하 동성지회준비위)가 발족하였다. 그러나 지회준비위는 이듬해 12월 해소되고 만다. 강서양천지회는 오랜 활동경험을 가진 리더십과 상 근활동가를 포함한 초창기 준비위원들이 튼튼하였던 반면, 동성지회준비 위는 처음부터 활동회원이 부족한 문제가 해소를 결정하기까지 큰 영향을 주었다. 지회 준비의 실패는 2~3년간 지역단위 조직화 사업을 주춤하게 만들면서 소강기를 겪게 되었다. 2003년 지역여성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지역운동센터’로 조직을 확 대, 개편하였다. 다시금 지역여성운동을 중점사업으로 하였다. 센터장을 선임하였고 전담 상근활동가를 두었다. 맨 처음 한 일은 각 지역 마당발 회원들을 찾아내어 일대일로 만나고 ‘지사모’(지역을사랑하는자매들의모 임)를 만들었다. 실패를 경험한 후 무엇보다 지역의 핵심 리더십과 활동 회원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역운동센터는 지사모 회원과 함께 당시 600여명 가까운 회원들이 어 느 구에 많이 살고 있는 지 조사하였다. 서울지역은 25개의 자치구가 있 다. 5명 내외의 인원이 모이면 구별, 권역별 지역모임을 만들었다. 사실 회원들을 모아 지역모임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모임이 들쭉 날쭉 하기 일쑤고 그만 둬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단 2명이 모이더라도 모임을 지속한다는 마음으로 모였다. 이때 만들어진 영등포구로구모임(영 구), 송파강남서초구모임(송강초), 서대문마포은평구모임(서마은)이 우리 단체 지역여성운동의 초동주체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강서양천지회가 등 대 같은 언니로 든든한 모델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 나飛센터, 지역에서 펄럭이다! 지역모임은 점차 안정이 되었다. 2003년, 2004년 송강초 회원들과 강남 에서 평화의달 선포식을 진행하였고, 영등포지역에서는 성매매실태조사사 업, 여성의 재산권확보를 위한 교육, 의정지기단 활동을 전개했다. 지역 대중강좌를 열기도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지역여성들이 조직되지는 않았 다. 왜 그럴까. 조직화를 최우선의 목표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역여성들을 처음 모으는 것도 힘들지만, 지속적으로 모일 수 있도록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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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직하려면 그만큼 공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지역운동센터는 2005년 모든 지역사업에서 마을여성들을 조직하고, 사 람을 남기는 것을 일차적 과제로 설정했다. 사업을 멋지게 수행하는 것 보다 그 사업을 통해 지역여성들을 주체로 세워내고, 지역여성들의 역량 을 강화시켜 내는 걸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였다. 그때만 해도 회원들에게 ‘지역운동이 뭐예요?', ‘여성의전화가 지역운동 도 해요?’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서울은 중앙일 뿐 지역으로 인식되지 않았다.17)

우리는 ‘지역운동센터’ 딱딱한 명칭을 나飛센터(나로부터 비상

하는 지역운동센터의 줄임말)로 바꾸고18), 지역여성들을 만나러 마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마을 여성들을 더 많이 만나서, 친해지

고, 모을까’를 고민하고 토론하였다. 이렇게 하여 2005년 한 해 동안 3개 의 지역모임이 9개 모임으로 늘어났고, 지역모임에 참여하는 회원이 100 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1) 풀뿌리 지역모임에 기초한 지역여성운동 일구기 서울여성의전화는 서울지역 대부분에서 지역모임을 조직하였다. 2005년 ~ 2007년 3년간 지역모임이 주축이 되어 ‘서울시 25개 자치구 여성주간 행사 및 성폭력, 가정폭력정책 모니터링 활동’을 했다. 이 활동은 지역사 회의 뿌리깊은 성차별적 문화와 관행, 의식을 개선해 나갔던 활동임과 동 시에 지역마다 모임을 만들고 자신의 지역을 알아 가는데 아주 적절했다. 한편 한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조직사업을 집중하고 그 경험을 다른 지역 으로 확산해 가기로 하고, 지역을 “동작구”로 정했다. 동작구는 대방동에 ‘서울여성플라자’가 위치해 있어서 모임방을 무료로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영등포구로구가 인접해있어 지역모임 회원들의 조력도 용이했고,

17) 서울지역은 다른 지역과 비교도 안될 만큼 자원이 풍부하지만, 그 자원은 중앙으로 집중되어 있다. 운동세력도 예외는 아니어서 서울지역에는 대부분 중앙운동을 하는 단체들뿐이고, 자치구 와 동단위 지역운동단체가 거의 없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도 서울연대회의는 없고, 여성단체 연합도 서울여연은 없다. 18) 여성의전화의 로고는 나비를 상징한다. 애벌레에서 자유, 꿈, 희망을 상징하는 나비로 새롭게 태어나 폭력없는 사회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여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심벌의 의미를 ‘지역운 동센터’와 접목시킨 것이 ‘나飛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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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지역여성운동이 취약한 곳이었다. 2005년 서울시 동작구에서 지역여성 조직사업을 하기로 하고 우선, 동 작구에 살고 있는 회원을 조사해보았다. 당시 동작구에는 20명 남짓의 회 원이 살고 있었는데, 이 중 활동 중인 회원은 거의 없었다. 한분 한분 전 화통화를 한 결과 대부분 직장에 다니고 있거나, 아이가 어려서 활동이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따라서 가까운 지역인 영등포구로구모임(당시 3년째 지역모임이 운영되 고 있었다) 회원들로 기획팀을 구성하여 “유후~(you who?) 여자세상!” 대중강좌를 열었고, 강좌 후속으로 동작구의 첫 지역모임인 “동작구 유후 모임”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유후모임은 지역의 새로운 여성들을 모았 던 첫 모임인 셈이다. 대중강좌를 열 때 지역여성 조직화를 목표로 두고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조직화에서 확실하게 차이 가 난다는 것을 비로소 체험하게 되었다. 홍보 방식부터 달리했다. 중앙일간지에 내거나 홈페이지에 올리는 홍보 가 아니라, 주택가와 아파트를 돌며 하루 종일 전단을 나눠주고 다녔다. 지역 여성을 만나면 한마디라도 말을 붙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좌진 행도 회원이 돌아가며 했고, 토론시간을 절반 배치했다. 일정이 끝나면 꼭 뒷풀이를 했다. 조윤숙, 임성은, 안명숙 등 유후모임 회원들은 2005년 여성의전화를 만 나 여성주의를 접하고, 새로운 비젼을 찾게 된 것이 한 해 동안의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고백하였다. 2) 지역여성들에 의한 지역여성정책 모니터링하기 서울여성의전화 여성정책 모니터링 사업은 2003년부터 진행하였다. 모 니터링단을 모집해도 별로 호응이 없었고 결국 상근활동가가 전담하게 되 니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자치구 정책과 예산 을 분석해야 하니 전문적이고 딱딱하게만 여겨지고, 주민 참여를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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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2005년 지역여성들의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진행해보기로 맘을 먹고, 모니터링단을 모집하니 동작구에서 5명이 참여했다. 현재 동작구 지역위원회 대표를 맡고 계신 문순자 회원을 바로 그때 처음 만났다. 문 순자 회원은 모니터링단을 시작으로 앞으로 소개될 동작구의 모든 활동에 참여한 분이다.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여성의전화 전도사’ 문순자 회원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힘든 순간도 잘 넘길 수 있었다. 모니터링 활동은 적은 인원이지만 자발적 의지로 모였다는 점과 자신이 사는 지역을 잘 알고 재미있게 참여하는 데 중점을 두어 진행하니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작업이어서 많이 헤매었지만, 우리 지역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자신감이 높아졌다. 분석내용을 지역에 널리 알리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지역 내 여성정책 역량을 높이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모니터링단들은 고생을 많이 한 만큼 활동보고회 까지 마치고 난 뒤의 그 뿌듯함과 보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동작구에서 모니터링 활동을 매년 진행하면서 작년에는 지역에 소재한 다시함께센터, 대방복지관 범죄피해자상담지원센터, 마인하우스, 천주교성 폭력상담소, 평화의샘과 연대하여 공동주최하는 것으로 발전을 하였다. 동작구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면서 중앙단위의 운동을 펼쳐나가는 여성단 체들이 동작구 지역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는 계기로 만들었던 것이 다. 자치구 여성정책 및 예산 모니터링 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데는 우리 역량에 맞게 사업을 배치하고 머리가 아픈 활동인 만큼 쉽고 재밌게 해나가면서 지역의 인맥들을 넓혀가는 때문일 것이다. 3) 리더쉽 워크샵을 통해 지역여성리더를 발굴하다. 어느 운동이든 핵심역량을 계속 발굴 육성해 가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지역여성운동의 확산을 통해 전체 여성운동을 성장, 발전시키려면 지역여 성운동 리더들을 회원 뿐 아니라 지역여성 리더들 속에서도 발굴, 육성하 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기존의 여성주민조직에 여성주의관점을 불어 넣어, 지역의 아젠더들을 젠더문제로 인식하고 성차별적 지역사회를 변화 시켜 나가도록 지원하는 활동으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역시 쉽지 않았다. 지역여성을 모으는 것 못지않게, 모 집도 힘들었고 교육을 끝낸 후 어떻게 지속적으로 함께 할 것인가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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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전화25주년, 지역운동10년

였다. 2005년 리더십 워크샵은 동작구 지역여성 리더로 활약하고 있는 분들과 접촉하고자 만든 자리였다. 유후모임, 참나비모임이 힘을 합쳐 준비했다. 대상을 의논 끝에 학부모회, 통반장, 아파트부녀회, 교사로 정하고 각 2 회차씩 워크샵을 하였다. 워크샵 제목을 ‘마을을 바꾸는 힘! 여성리더의 힘!’으로 하고, 모집에 들 어갔다. 동작구는 7개 고등학교, 16개 중학교, 19개 초등학교, 70여개 유 치원이 있다. 20개동에 통장 500명 중 약 절반가량이 여성통장이고, 약 100개 아파트가 있다. 초청장을 받고 자발적으로 참가를 신청하는 분들 은 거의 없었다. 일일이 전화로 워크샵의 취지를 설명하고 꼭 오시라고 권유하여 참가자를 조직했고, 여성의전화의 그간의 활동과 인지도를 믿고 워크샵에 참여하셨다. 일주일에 한분야씩 우리 지역의 여성리더들을 새롭게 만나가는 데, 매번 이번에는 어떤분들이 참여하실까 설레였고, 한편으로 이번에는 몇 분이나 오실까 노심초사하며 한 달 동안 이 사업을 진행했다. 공교롭게도 워크샵 마다 꼭 12명씩 참가하여 사업팀을 포함하니 20명 정도 되었다. 우리는 이렇듯 어렵게 만난 분들과 일회성 강좌로 끝내지 않고 지속적 관계로 이 끌어내고자 노력하였다. 첫날 워크샵 참가자중에 2~3명 모범사례를 물색 하여 둘째날 워크샵에서 사례발표를 의뢰하였다. 우리 마을 사례를 듣고 나니 좀 더 심화된 내용의 조별작업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공동으로 해나 갈 수 있는 사업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고 다음해 사업계획에 반영되 었다. 참가자들은 “나로부터 시작되고 참여해야겠다.” “내 가슴속에 도전으로 다가온다.” “어느 거대 회합과는 달리 가슴으로 마음으로 활짝 열어젖힌 기분이다.” “소그룹 토론을 통해 실질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많은 경험담을 접하면서 자신감과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든다.” “여성리더의 힘을 느낀다.” “학부모로서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동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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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운동심포지움

“내년 수업시간에 활용해 보겠다.” “네트워크 형성의 기회가 되어 좋았다. 역시 모이면 힘이 생긴다.” “여성단체에서 하는 일들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힘이 되고 여성단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고 하였다. 참여자들과 후속모임을 하고 싶었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리더 십 워크샵을 하고 나서 그 덕을 두고 두고 보고 있다. 이삼십년 동네 궂 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지역내에서 쌓아 온 신뢰와 인적 네트워크, 지역에 대한 정보를 따라 갈 자가 있을까? 첫 워크샵 이후 어떤 사업이든지 지 역의 여성리더들을 찾아가서 만나고 함께 하는 것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 고, 친근한 방식이 되었다.

3. 더욱 더 풀뿌리로 찾아들어가고 뿌리내리기 동작구에 사무실도 없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시작한 조직사업이었다. 서울여성의전화가 풀뿌리 지역여성운동에 힘을 싣는 가운데 담당 상근활 동가와 나비센터장, 지사모 회원들의 열정과 헌신적 노력이 있었다. 초대 센터장이던 김혜경 현 부회장은 1996년 상담원교육을 받고 회원활 동을 시작하면서 본업이던 음악학원 경영을 접고 여성의전화 활동에 전념 할 정도로 의욕적인 분이었다. 자녀들 성장기에는 지역에서 학부모회 활 동을 하였고, 여성의전화 지역실천모임의 성원으로 지역 대중교육을 주최 한 경험을 갖고 계셨다. 교육장소 섭외부터 참가자모집까지 어느 것 하나 순조롭지 않았던 기억이 있으셨다. 김혜경 부회장은 4년간 비상근 센터장 을 역임하면서 여성의전화 조직과 지역여성들 사이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 루어가는 리더십과 헌신적인 활동으로 현재의 동작구 지역여성운동을 일 구어낸 장본인 중 한분이시다. 1) 풀뿌리강사활동가, 학교로, 마을로 찾아들어가다 첫해의 활동이 지역여성리더들을 발굴하고 초동모임을 조직하는 것이었 다면 2006년은 더욱 더 풀뿌리로 찾아들어가는 ‘학교로, 아파트로,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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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센터로 찾아가는 마을 강좌’를 진행하였다. 이 사업은 서울여성의전 화가 가진 밑천으로부터 출발하기에 좋은 사업이었다. 1996년부터 성교 육강사를 배출하고 성교육과 딸들을 위한 캠프를 해왔고, ‘도하의꿈’, ‘폭 력쫑! 대화짱!’, ‘여자와 돈에 관한 이야기’ 영상물을 제작했다. 이러한 전 문성과 인적자원들을 지역여성운동에 접목하여 마을로 찾아들어갔다. 강 사팀을 구성하고 이름을 ‘풀뿌리강사활동가’라고 하였다. 강의도 하고, 지 역여성들도 조직한다는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학교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이 의무화되어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반면, 가정폭력예방교육은 2006년 10월 의무화되었으나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성폭력예방교육도 전교생 집합교육이나 방송수업으로 매우 형식적인 경우가 많았다. 풀뿌리강사활동가팀은 반별 수업을 기본으로 하 고,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 우리가 속해있는 학부모회, 아파트부터 출 발했다. ‘학교의 가정폭력예방교육’ 협조 공문을 보내고 교장선생님 면담을 했는 데, 그 학교 학부모와 동행 했고, 학부모회 임원이 있으면 얘기가 더욱 잘 되었다. 한차례 수업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마을을 만들기 위한 협력 관계를 맺는 것이기에, 직접 발로 뛰면서 소통하고 관계를 형성하였다. 2006년 동작구 7개 학교에서 학부모, 교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50여회, 2,000여명을 교육하였고, 2007년에는 동작구와 인근 영등포구에서 16개 학교와 3군데 공부방 총150여회, 6,000여명을 교육하였다. 이렇게 하다보니 마을을 위한 일이라면 두 팔 걷어 부치고 솔선하시는 지 역 일꾼들을 자연스레 많이 만나게 되었다. 학부모회 임원, 마을복지관 자원봉사자, 통반장, 자율방범대원, 아파트부녀회 임원, 학교 선생님, 여 성 공무원, 여성 경찰 등. 이분들이야말로 우리 마을 실정에 대해서 누구 보다 밝으시고 해법도 갖고 계시다. 2)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드는 평화마을축제 우리단체는 10년 넘게 매년 여성폭력예방 캠페인을 개최해 왔다. 행사 내용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것은 물론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였으 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인사동, 대학로, 선유도공원 등을 찾아다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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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놀러온 시민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하곤 했다. 즉 조직화로 연 결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2006년 “제1회 동작구 평화마을축제”는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적 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만들어 가도록 기획하였다. 동작구는 20개동 41만 5천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작구 서쪽끝이 서울여성플라자가 있는 대방 동이라면 동쪽끝은 사당동이다. 사당동은 여성운동에서 소외된 곳이라며 정교선 회원이 설득하여 축제 장소가 사당동 삼일공원으로 정해졌다. 정 교선 회원은 주민자치위원, 학부모회, 아파트부녀회 활동을 섭렵하며 자 신의 역량을 키워나가고 살기 좋은 동작구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는 30대의 젊은 리더십이다. ‘마을축제’라는 문화적 방식이 남녀노소 주민모두에게 호응이 좋았다. 평 화마을축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축제를 준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동 작구 사당동의 훌륭한 여성리더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김 영례, 김경남 회원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김영례 회원은 20년전 둘째 아이 낳고 동네 반장을 시작으로 온갖 마을봉사에 앞장서는 분이다. 요즘도 매일 매일 하루에 대여섯명을 자원봉사은행에 등록시킬 정도로 탁 월한 조직가시다. 김경남 회원의 순수한 헌신성과 추진력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평화마을축제를 준비하면서 마을의 다양한 기관, 단체, 주민들을 접촉할 수 있었고 마을 내에서 영향력 있는 집단이 누구인지 실질적인 마을 돌봄 노동을 하는 주민들은 누구인지 서서히 알게 되었다. 동작구에는 지역시 민단체가 없는 줄만 알았는데, 소외된 계층과 더불어 살기 좋은 동작구를 만들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단체들과도 연결이 되고, 학교, 지자체, 경찰 서 등 공공기관과도 협력관계를 형성해가게 되었다. 사당동 지역주민들이 주요 소비자인 지역 백화점에서도 마을축제에 참가자 기념품을 후원하여 기쁨을 주었다. 동작구 평화마을축제는 마을자원봉사자 150여명, 마을주민 1,5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감동적으로 치러졌다. 지역주민들의 힘으로 만든 축제였 고, 모두가 보람과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주민조직들과 연대하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도 부딪쳤다. 조직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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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간, 개인과 개인간 권한과 책임에 있어 긴장과 혼선을 겪기도 하였다.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오해가 생길 때도 있었다. 때로는 즉시, 때로는 여 유와 시간을 갖고 대화를 하면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다보니 의사소통과 팀웍의 이치를 배울 수 있었다. 지역에서 누구와 함께할까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이슈에 따라 운동단체 들과 연대의 경험은 무수히 많았지만 소위 관변단체와 함께 할 수 있을 까? 진보적인 운동단체라고 하면서 실은 가부장적인 조직들이 많다. 지역 단위로 가면 그나마도 거의 없다. 새마을부녀회, 녹색어머니회, 여성자율 방범대, 마을봉사단체와 처음으로 함께하면서 도전을 받았다. 서로 다르 다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여성운동의 이념과 철학, 그 조직 들이 가진 조직력과 주민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교환할 수는 없을까? 3) 동작구 평화마을지킴이로 행동하다 지역여성운동이 지속성을 가지려면 의식적, 조직적 성장을 해나가면서 핵심 리더십을 세우고 역량 강화하여 집단적 리더십과 팀웍을 높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모임을 하고 실천 활동을 하는 것이 모두 조직훈련이 지만, 리더십 강화에 있어 교육훈련은 필수적인 윤활유이자 성큼 성장하 는 기회가 된다. 동작구에서 지역모임이 서너 개 운영되면서 리더십교육의 욕구도 높아졌 다. 2007년 모임의 핵심리더 12명을 모아 지역지도력강화훈련을 6회 진 행하였다. 참가자들의 욕구를 일일이 조사하고 프로그램을 짜니 만족도가 높았다. 주민자치와 지역여성리더십, 조직 의사소통과 팀웍, 사례에서 배 우기 등. 강북구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 사례는 어떻게 주민들의 힘으로 마을을 공동체로 바꾸어 나가는지에 대한 생생한 전망을 제시해 주었고, 영국의 ‘지역공동체 협력에 의한 여성폭력 대응 사례’는 제도는 다르지만 불평하느니 누구든 먼저 자각한 사람들이 시작한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교육 수료 후 ‘동작구 평화마지’(동작구 평화마을지킴이)를 발족했다. ‘평화마지’는 첫 사업으로 경찰지구대와 함께 하는 ‘경찰간담회’를 추진했 다. 가정폭력을 112에 신고하면 맨 처음 지구대가 출동하는데, 초동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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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화마지의 김영례, 김경남 회원이 녹색어머 니회, 자율방범대 회장으로 남성지구대와 협력하여 봉사해온 분 들이었 다. 두 분이 주도하여 간담회를 분기별로 실시하였고, 경찰, 학교 교사, 구의원, 통장, 주민자치위원, 녹색어머니회, 자율방범대, 아파트부녀회, 상 담원, 여성단체가 다 모였다. 경찰과 함께 하는 사업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또 한분은 바로 권송자 현 나비센터장이시다. 권송자 센터장은 1998년 여성의전화에서 상담원교육 을 받았다.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남편 사업을 도와야했다. 사무실에 상 담하러 오는 대신 가까운 지역에서 생활상담을 시작한 것이다. 2003년엔 동네 경찰서에도 찾아갔다. 상담원교육을 받았으니 경찰서에서 피해자를 상담을 하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권송자 센터장의 자발적 지역 활동 경험 은 나비센터 지역 사업에 상상력을 불어넣었고, 개인적 차원에서 해온 일 을 조직적 차원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지구대 간담회는 여성폭력에 대한 통념을 깨고, 여성주의 마인드를 갖도 록 자극하며, 정보도 서로 공유하고, 협력사업도 하는 자리가 되었다. 지 역봉사활동을 솔선하고 있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간담회를 열기 때문에 지역 내 공공기관에서도 협조적으로 나왔다. 의식화된 주민들은 일상적인 감시자인 동시에 협력자인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2007년 3월, 동작경찰서 늑장대응으로 집단 성폭행을 방치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기사를 접한 우리는 매우 놀라고 분노하였다. 다음날 마을 회원들의 긴급모임을 오전, 오후, 저녁시 간으로 나누어 소집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우 리가 제대로 알고 바로 대처해야 한다는 결의를 하고, 지역단체들과 연대 하여 주민대책모임을 결성하고 동작경찰서에 긴급간담회를 요구하였다. 매일 아침 출근시간에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일인시위도 하였다. 사건보도 나흘 후 긴급간담회가 열렸고 경찰서장 및 모든 과장과 지역단체, 주민들 이 참석한 가운데 경찰서장이 사건경위 설명 및 사과와 개선방안을 제시 하였다. 주민대책모임에서는 주민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한편, 경찰 개선 방안의 책임있는 수행을 위해 2차 간담회를 제안하였다. 7월, 동작경찰서 와 관내 5개 지구대 일선 실무 경찰까지 참여한 가운데 2차 간담회를 실 시하였다. 평화마을을 만드는 힘은 주민들로부터 나온다는 것, 경찰,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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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등에 대한 지역NGO로서 비판과 견제 기능을 충실히 하는 것이 민관 협력의 기초가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평화마지 활동으로 ‘생활상담실천연구모임’이 있다. ‘서울여성의전화’ 하 면 지역주민들은 ‘상담’, ‘폭력’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만날 때마다 주변에 서 일어난 성폭력, 가정폭력 사례를 의논 해왔다. 이런 것이 바로 ‘생활상 담’이구나 체험을 했다. 생활 속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일상의 관계, 즉 나 자신부터 가족, 이웃, 친구, 이웃과 여성주의상담자로서 상담하고 대화하는 것. 지역 내 폭력 피해 여성들의 상담을 의뢰해 오는 경우도 생겨났다. 전화 상담은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면접상담을 하려면 여성의전화 사무실까지 한 시간이 걸린다. 지역마다 동사무소, 구청, 치안센터에 상담실이 있다. 그 공공의 공간을 빌려 안전하게 면접상담을 했다. ‘생활상담실천연구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이현자 회원은 십 년전 여성의 전화 상담활동을 시작하면서 마을에서 이미 생활상담을 실천해온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비센터 활동에 누구보다 공감하고 ‘생활상담’을 발전시 키는 사명을 즐겁게 감당하고 계시다. 동작구에서 집중적으로 풀뿌리여성인권운동을 전개하다보니 다른 지역에 모델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단체에는 강서양천지회가 있어서 각 지역모임 들에게 하나의 비전을 보여주고 있듯이, 동작구의 평화마을 만들기 사업 은 ‘지사모’의 다른 지역모임에서 우리 마을에서도 해보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을 주고 있다.

4. 글을 마치며 동작구에서 지난 3년간 지역활동을 한 결과 2005년 초 20명이던 회원이 매년 20명 가까이 꾸준히 증가하여 2007년 12월 현재 66명으로 3배 이 상 늘어났다. 당시 활동회원이 한명도 없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약30여 명이 정기적인 모임이나 사업팀에 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비회원으 로서 여성의전화와 함께 하는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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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여성 조직사업을 담당하면서 사무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로 찾아 가서 활동을 하였다. 처음엔 아는 사람도 전혀 없이 활동하는 것이 두렵 고, 누구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했다. 처음 만난 지역여성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늘 걱정이 앞섰다. 모임을 만들고 지속하기위 해 “하루는 웃고, 하루는 운다”고 할 정도로 외로움과 기다림도 있었다. 하지만 한명의 회원이라도 함께 하다보니 이제는 회원들도 많아졌고, 우 리와 연결된 마을사람들도 많아졌다. 마을주민들과 회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사무국 활동가들과의 소통과 경험 공유가 절실 하다. 95년에 상담부를 맡으며 처음 상근활동을 시작했을 때 조직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2000년부터 4년간 사무국장을 하면서 여성의전화에 회원 리더십이 많이 올라오고, 사무국 중심이 아닌 회원을 주체로 세우는 조직 운영을 하고자 고민하였다. 팔년을 상근하니 너무 소진되고 푸석푸석해졌 다. 1년간 안식년을 갖고, 2005년 지역조직 담당을 자원하면서 내가 정 말 하고 싶은 운동은 사람과 함께 하는 풀뿌리여성운동임을 깨달았다.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나는 행복한가를 돌아보았고, 내가 좋아 하는 일을 찾아서 하니 어느덧 십여 년 상근활동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낯가림이 심하면서도 사람 사귀기를 좋아했고 여럿이 함께 무언가 해낼 때 성취감을 느꼈다.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고, 모여서 나 누다보면 에너지가 샘솟았다.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지역사회로 갈수록 기득권을 가진 남성 중 심이고, 성차별적인 의식과 관행,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지역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기는 그만큼 힘들고 더디다. 마을에서 온갖 궂은 일 과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주로 여성이지만 정작 중요한 의사결정에는 소외되어 있고, 지역에는 여성단체들이 많지만 성평등을 지향하는 단체이 기 보다는 구성원이 주로 여성인 단체들로 수동적이고 관변화된 단체들이 대부분이다. 풀뿌리 지역여성운동은 이러한 지역사회의 가부장성에 도전 하는 운동이며 성차별적 지역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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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내적으로도 여성의전화가 왜 지역여성운동을 하며, 우리 역량으로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나 고민이 많다. 구단위, 동단위 조직화가 진행될 수록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커지게 되고 이러한 성장을 조직안에서 담보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여성의전화의 조직력, 자원, 리더십을 중앙으로 집중하기 보다는 지역으로 더욱 분권화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서 울지역이라는 특수한 위치와 서울여성의전화의 역사성 속에서 중앙차원의 선도적 대응과 여성주의상담의 전문성 등을 요구받고 있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의 줄타기, 문턱을 낮추어 회원과 주민들의 참여를 개방하면서 여성의식화하고 전문화하기. 상근활동가 중심의 사업방식을 탈피하여 회원 주체, 주민 활동을 넓혀가야 하는 걸 알지만 점점 빨라지 고 많아지는 사업들의 홍수 속에서, 느릿 느릿 시간을 내고 공들여야 하 는 회원관계, 주민관계 공식을 따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쉬엄쉬엄 가야 하리라. 때로는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도 하면 서 말이다. 더 주민 속으로, 더 풀뿌리현장으로 내려가고, 그 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며 뿌듯한 참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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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부지역운동 사례 ■ 힘든 그러나 씩씩하고 솔직한, 자립을 위한 몸짓들 이정희(울산지부 사무국장)

울산여성의전화는 1994년 창립되어 1996년 부설 성폭력상담소 개소, 1998년 울산여성긴급전화 1366운영, 2000년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개소 등의 다양한 부설기관을 운영하였다. 그중 1996년 개소한 성폭력상담소 는 2005년 8월 운영비 및 활동가의 부재 등으로 상담소의 역할이 불분명 하여 폐쇄신고를 하였고, 가정폭력상담소는 2002년 1366의 위탁운영 결 정으로 인해 운영법인의 중복으로 반납하게 되었다. 현재 울산여성의전화의 부설기관은 울산여성긴급전화 1366을 두고 있으 며, 1366의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는 2008년 2월부터 진행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는 그 동안 여성의전화에서 갖고 있 던 사무국과의 인적 및 재정적 중복에서 오는 운동성의 부족 및 관과의 껄끄러움, 무엇보다 사람을 남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인해 울산여성의 전화의 과감한 결단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 울산여성의전화 역시 1366을 운영하면서 상담원의 사무국으로의 파견 등 으로 인해 1366상담소에서의 24시간 교대근무를 서야하는 어려움과 활동 가(사무국활동가와 상담원을 포함해)의 의식화과정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 고, 그로인한 잦은 인사이동과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신입활동가(상담원) 의 증가가 활동의 가장 큰 장애가 되었다. 더 이상의 운동성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사무국을 유지하기란 무리라는 판 단으로 전 활동가가 모여 상황에 대해 충분히 공유하고 앞으로의 활동을 펼쳐보기로 했다. 1차적(2006년 8월에 논의, 10월 실행)으로 재정적(즉 활동비의 보장)분리 를 통해 낮은 활동비와 많은 양의 활동을 각자의 역량에 맞게 가지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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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다. 당시 논의하는 과정에서 활동가(상담원)들이 사무국의 재정상 태 및 여성의전화의 회원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활동비의 10%에 가까운 금액을 스스로 기부하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2차적(2007년 하반기 논의, 2008년 2월)으로 인적분리는 당시 1366의 상담원 총8명 중 2명의 파견활동가를 상담소로 배치하는 것. 당시만 하더 라도 사무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뿐 아니라 상담소의 활동가 역시 2-3개의 사업을 담당하면서 상담소의 업무 와 사무국의 업무를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 않으면 서 단지 부설기관이라는 이유로 해내야 하는 것의 부담이 불만으로 나타 나는 등의 힘든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 속에서 전 활동가가 스스로 하고 싶은 활동과 자리를 찾는 작업 (업무분석과정)을 약 3개월 동안 진행하면서 결국은 활동의 보장(임금의 보장 등)이 담보(!)되는 상담원으로 자리를 선택하게 되는 안타까움을 맛 봐야 했다. 자리배치는 확정되었지만 여성의전화 활동의 정체성에 대한 부재는 상담 소에서 활동을 하더라도 꼭 필요한 부분임을 알고, 사무국과 상담소의 활 동가들이 서로 소통하며, 여성운동의 정체성을 키우기 위한 방법으로 상 근학습을 기획하고 관련 도서를 선정, 매일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 만남 을 갖고 학습(아침상근학습)을 진행하였다. 2006년부터 현재까지 상근학습을 통해 읽은 책은 약 20여권이 되고 있 다. 아침상근학습을 진행하면서 느끼는 부족함은 2007년부터 상/하반기 상근학습을 따로 기획하고, 여성의전화 선배활동가(전 부회장, 전 사무국 장 등)를 초청해 좀 더 심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사무국은 재정적 어려움과 인적자원의 부족으로 사실상 큰 부담을 안게 되었다. 재정분리에서 오는 어려움은 회원의 날을 비롯한 외부활동을 사 무국으로 모으고, 회원들과 사무국의 실정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회원 스스로 참여하고자 하는 열의가 생겼다. 2008년 총회에서는 명실상부한 부설기관으로 인한 문제점을 사업과 사무국의 실 정에 대해(인적문제 즉 사무국에 회장과 사무국장만 남는 것, 열악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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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상황) 충분히 드러내는 과정에서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주1회 상근을 약속하고, 회원증모에 힘써야 겠다는 회원 스스로의 다짐과 적극성이 나 타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매주 화요일과 목욕일에는 회원활동가(2名)가 사무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회원관리(저녁준비, 술준비) 및 여성경제세력화사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어 7월부터는 또 다른 한명의 회원이 이주여성사업에 관한 활동 을 준비 중에 있으며, 재정적 어려움에 불구하고 3월부터는 신입활동가가 사무국에서 활동 중 이다. 2008년 6월, 약 3년 동안의 부설기관화의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을 남기는 일이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사람이 부족했으나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우리가 할 수 있다’, ‘우리가 해 낼 수 있다’라는 각오를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본부 이사회 및 사무국장단 회의에서 각 지부별 활동상황을 나누면서 그 정보들을 울산지부 사업에 접목시키기 작업 또한 큰 몫을 차지했다. 처음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자신감으로 변화되 어, 이제부터 각자의 능력과 역할에 맞는 활발한 활동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확신과 당당함이 생겼다. 그러나 여전히 활동가(사람)의 의식화과정이 과제로 남아 있다. 드러나는 일적인 부분에서의 성과보다는 활동가 스스로 운동의 깊이와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는 활동이 더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명실상부한 부설기관화를 망설이고 있는 지부가 있다면 씩씩하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망설이지 말고 시작해보라고 우리 안에 힘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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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포지엄 준비과정 ■

본 심포지엄은 2007년부터 준비하여 2007년도 사전심포지엄, 4차례의 기획팀 집담회, 평등가족평화마을 운동본부회의 등을 거치는 등 수차례의 논의과정을 거쳐 수많은 결정을 번복해오면서 전개되어 왔다. 간략히 준 비와 논의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007년도 사전 심포지엄 -일시 : 2007년 12월 13일 -장소 :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2 -내용 : 한국여성의전화연합의 여성운동 정체성 변동과 지역여성운동 ■심포지엄 기획팀 집담회 1. 제1차 기획팀 1)일시 : 2008년 3월 25일(화), 오후1시 2)장소 : 아카이브(서울여성플라자 여성사전시관) 3)내용 : 발제 및 질의응답, 쟁점토의 및 심포지엄 기획 4)쟁점 및 시사점 (1)개념의 문제-상담과 대중사업, 여성인권운동과 지역운동, 사회운동과 여성 운동, 여성주의적 지역운동, 대중은 누구인가? 우리는 대중이 아닌가? (2)지역운동 역사 및 전개과정에서 드러난 문제- 제도화의 문제 + 지역의 경 험들을 살려야 함.(지부 지역운동의 역사이해) (3)시스템의 문제 - 지역운동을 할 수 있는 지부의 조건(관점, 구조, 역량...) +역량 축적과제 (4)활동가의 문제-사람을 성장시키기 위한 구조와 내용 + 활동가 개인의 노력

5)심포지엄 형식 : 참가자 전원이 발언할 수 있는 방식 2. 제2차 기획팀 1)일시 : 2008년 4월 18일(금), 오전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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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소 : 씽크스타 3)내용 : 지부별 지역운동사례 발표(광주, 전주, 광명, 서울, 영광, 창원) 4)시사점 (1)지부들의 지역운동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경험이 축적되어 가고 있다 (2)광명-지역정책 모니터링, 서울-여성폭력이슈의 지역운동화, 전주-지역주 민조직화, 창원-사회교육센터를 통한 주민참여활성화, 광주-지역으로 들어가 는 캠페인, 영광-농촌여성공부방을 통한 여성의 임파워링 등 다양한 주제와 방식의 지역운동이 여성인권으로 연결됨 (3)지부들의 지역운동사례들을 기록할 필요가 있음.

3. 제3차 기획팀 1)일시 : 2008년 5월 2(금), 오전11시 2)장소 : 윙 3)내용 : 심포지엄에 대한 지부들의 욕망 듣기-->심포지엄 주제 정하기 4)결론 및 심포지엄 주제 (1)왜 여성의전화에서 지역운동을 하는가? 는 다루어져야 함 -지부들의 구체적인 욕망이 드러나야 함 : 지부들의 발제 필요(잘하는, 하려고 하는, 안하는, 안하고 싶은...) (2)사례분석을 통한 성과가 드러나야 함 (3)지역운동 및 조직, 대중운동 등의 범주 및 개념에 대한 정리가 필요함 (4)어떻게 지역운동을 할 것인가도 다루어져야 함(방법 및 방식) : 그러나 이 부분은 획일적이거나 통일되지 않음. 지역운동 등에 대한 범 주와 개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임, 지부들의 선택사항임)

4. 제4차 기획팀 1)일시 : 2008년 5월 29(목), 오전11시 2)장소 : 윙 3)내용 ①발제와 질의응답 : 여전 지역여성운동 개념과 이해에 얽힌 문제 들 ②심포지엄 주제 및 형식 4)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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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원단체, 대중단체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선언하였다. 현재 회원단체이 면서, 대중조직을 지향한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초록상상의 형태를 합의하고 실천 (2)상담소를 분리한다면 여성인권이슈, 성정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상담은 매개였지 목적이 아니었음. 상담소를 분리하더라도 성정치화 는 가능함. 중요한 것은 합의의 문제임. 따라서 지부들의 활동가들이 지역운 동을 욕망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함 (3)여성의전화의 고유의 지역운동 방식을 도출해보기 ==>시기상조, 오히려 지부들이 욕망을 듣고 지점을 판단하여 지원하는 것이 우선 시급한 문제

5)심포지엄 기획 ①목표 -여성의전화의 지역운동의 역사 돌아보기 -지부들의 욕망 읽기 ② 사회자 : 박인혜 ③ 순서 1-1. 주제발제1(허성우) : 연합을 중심으로 한 지역운동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과제 1-2. 패널토의1 : 내외부인사 2인 1-3. 전체토의 2-1. 주제발제2 : 지부지역운동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과제 2-2. 패널토의2 : 내외부인사 2인 2-3. 전체토의 3-1. 지부의 욕망진단(조사를 중심으로) 3-2. 질의응답 및 토의 4. 종합토의

④원고 : 15일까지 일차완성, 회람 후 17일까지 의견 취합, 20일 완성 후 담당에 전달 ⑤패널 : 주제1은 내/외부로 하되 외부는 연구소나 풀뿌리 단체 주제2는 외부로 다 해도 될 듯, 경험자들 사례자들 중심으로... ⑥5차 기획팀회의는 하지 않기로 함. ⑦지부욕망 survey : 메일링 서베이로 하되 활동가 개개인들에게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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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인터뷰해서 취합 ■평등가족평화마을 운동본부 1)일시 : 2008년 6월 2일(금) 오후2시 2)장소 :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회의실 3)내용 : 프로그램 순서 및 내용 1. 주 발제1, 2를 합쳐서 주발제 내용을 하나로만 하고 두 개를 한꺼번에 발제 : 지역운동의 역사와 분석 +지부 지역운동의 사례 2.패널토의 : 쟁점을 미리 설명하고 각각의 패널들이 쟁점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방 식으로 함 1)동 단위 여성의전화 가능하다 : 회원조직, 대중조직의 개념, 조직화의 개념을 포함하여 2)상근자가 지역운동할 수 없다 :구조적인 문제, 제도화의 문제등을 포함하여 3)여성의전화 지역운동 누가했는가?(주체의 문제) : 역량의 축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과제, 지도력 발굴, 양성 3. 지부욕망조사 발표와 토의 4. 외부패널 발표 : 여전지역운동에 대한 코멘트-이호 5. 종합토의 : 평등가족평화마을은 무엇인가?(여성의전화 지역운동의 개념과 방식, 비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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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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