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과 피해자 살해사건에 대한 판결분석 토론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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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기념 Ⅲ

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과 피해자 살해사건에 대한 판결분석 토론회

2013년 12월 3일 (화) 10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과 피해자 살해사건에 대한 판결분석 토론회

2013년 12월 3일(화) 10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과 피해자 살해사건에 대한 판결분석 토론회

▌목

차 ▌

• 발제문_살인과 젠더(고미경, 허민숙)

7

• 토론문 1(김엘림)

73

• 토론문 2(박강우)

79

• 토론문 3(원민경)

85

• 토론문 4(김푸른솔)

91

• 토론문 5(신상숙)

99



살인과 젠더 공동발제_고미경(한국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_허민숙(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사법부 인권과 정의를 말한다.

살인과 젠더 고미경1), 허민숙2)

수많은 가정폭력피해자를 만나는 상담현장에서 여성인권운동단체인 한국여성의전 화가 접하는 안타까움은 가정폭력의 끝이 죽거나 죽여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가정폭력피해자들이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거나 가해자로 이름이 뒤바뀌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인권과 정의가 작동하 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무죄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인간의 기본권과 생존을 침해하는 가정폭력을 여전히 부부싸움 이나 집안일로 치부하는 공적시스템과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폭력적 상황을 벗어 나기 위해 선택할 수 없었던 가정폭력피해자에 의한 가해자사망사건을 정당방위사 건이라 명명하고 인권지원활동을 전개해왔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인권지원활동을 당 사자접견과 재판지원, 서명활동 등으로 진행하는 한편 「2000년-가해자 살해 정당 방위 인정될 수 없는가, 2001년-정당방위 긴급토론회, 2004년- 가정폭력 피해여성 의 살인 VS 정당방위, 여성에게 생존의 권리는 없는가,

2011년 - 살인의 해석,

여성폭력피해자의 사법정의실현, 2012년- 인권과 정의의 관점에서 본 가정폭력피 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의 토론회」를 개최하며 가정폭력과 사법정의실현을

1)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 소장 2)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살인과 젠더

9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현실은 2009년 정당방위사건 박 민경씨(가명) 사건판결에서 보여주듯 ‘사회적 큰 충격을 주었기에 엄한 처벌 필요’ 하다고 했다. 가정폭력으로 삶 자체가 충격이었던 그녀의 인생은 판결문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우리나라 사법부에서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정당방위판결은 단 한 건도 없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입니까?” 한국여성의전화는 2012년 7월 25년 동안 지속된 가정폭력으로 단 하루도 인간 일 수 없었던 정숙현씨(가명)가 자신과 아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 속에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을 접하였다. 아들은 본회와의 상담과정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입니까?

우리엄마가 아빠를 만나지 않을 수 있었다

면 내가 태어나지 않아도 좋으니 다시 세월을 돌리고 싶습니다’고 울먹였다. 한국 여성의전화는 사건을 지원하기 위해 상담현장 활동가, 상담회원, 예비법조인들로 구성된 「정숙현 정당방위사건지원팀3)」을 꾸리고 재판지원활동을 준비하였다. 정당 방위지원팀에서는 재판지원활동뿐만 아니라 이전까지 본회에서 지원한 사건의 활 동내용과 판결문을 비롯한 모든 기록을 정리하고 누락된 판결문을 수집하였다. 정 당방위지원팀은 재판준비를 위해 수차례의 회의를 진행하고 가정폭력피해자에 대 한 정의로운 판결을 위하여 토론과 판례 분석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글은 그 활동 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다. 정숙현씨라는 가정폭력피해생존자지원활동이 있었 기에 작업이 가능하였다. 가정폭력피해자인 그녀는 지금 1심 5년, 2심 4년, 상고는 기각되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판결문 분석 작업 판결문 분석 작업은 2012년 10월 구성된 「정숙현 정당방위지원팀」 중심으로 진 행되었다. 정당방위지원팀은 실무수습이나 인턴활동을 통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인 연을 맺은 예비법조인으로 구성하였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기존방식과 다르게 팀 을 구성하여 인권사건을 지원하게 된 것은 재판 지원 자체의 내실화와 더불어 미 래의 법조인들이 정당방위사건지원과정에 직접 함께 함으로써 여성인권문제에 대 3) 김나영(연세대법대), 김푸른솔(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현경(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이아리(한양 대법학전문대학원), 장윤호(서울대법학전문대학원), 천재영(성균관대법학전문대학원), 추다은(연세대법 대)


한 이해와 역량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였다. 정당방위지원팀에서는 재판지원활동과 더불어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지원한 정당방위사건 21건의 자료를 취합분석하기로 하였다.

분석 자료는 이후 정당방위사건지원활동의 강화와 정당방위사건 연구 자

료로도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선 본회에서 지원한 사건을 목록화하고 본회에 비치된 관련 자료취합작업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몇 번의 사무 실이전으로 자료가 유실된 것도 있어 목록에는 있으나 판결문과 활동자료가 없는 사건은 당시의 언론보도나 정당방위논문을 역으로 추척하기도 했다. 판결문 취합을 위해 팀원들은 학업시간을 쪼개어 대법원 도서관에 직접 방문하였다. 취합된 판결 문과 활동내용을 바탕으로 워크숍과 법률전문가 자문을 얻어 분석틀을 마련하였다. 분석틀은 크게 각 사건을 가정폭력피해상황, 사건당일상황, 사건대처, 판결, 지원활 동으로 구성하고 판결에는 검찰 측 공소요지, 변론요지 및 법원 판단 등의 내용으 로 구분하고 각 단계마다 정당방위, 과잉방위, 심신장애, 양형관련 쟁점 내용을 분 석하여 의견을 첨부하였다. 각 사건별로 분석된 자료는 엑셀표로 모든 항목이 들어 갈 수 있도록 구성하고 일괄 취합하여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자료의 분석과 취합 후 우리는 각 사건을 정당방위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대해 논의하였다. 재해석 작업을 앞두고 정당방위의 법적요건과 해석의 문제, 남성언어중심의 법체계의 한계성 등에 대한 내부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자영씨(가명) 사건은 몇 번의 논의를 거쳐 재 해석하였고 현재 2012년 지원한 사건중심으로 재해석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정당 방위지원팀은 정숙현씨 사건지원을 지원하면서 정당방위에 관련한 논문과 국내외 의 판결 분석 작업, 재판참관활동,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 준비를 위한 자료작성 작업 등의 활동을 진행한 자료도 축척하였다. 한편, 한국여성의전화는 2010년부터 언론보도에 나타난 남편이나 남성파트너로부 터 살해된 여성의 숫자를 분노의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고 있다. 2012년 3일 에 1명꼴로 살해되는 통계를 접하며 가해자들의 형량과 판결이유에 대한 추적조사 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이 한국여성의전화사무실로 수업을 오게 된 것을 계기로 죽거나 사건(가정폭력가해자에 의한 피해자사망사건) 판결문 분석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팀을 구성하여 판결문 취합작업을 시작하였 다. 분노의 게이지사건추적은 언론보도기사만으로 판결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대법원 도서관에서 아내폭력, 가정폭력, 부부싸움 등의 용어검색을 통해 가정폭력 으로 희생된 판결문 121건을 수집하였다. 정당방위사건의 사건유형이 거의 살인이 지만, 가정폭력가해자에 의한 피해자사망사건의 경우 감금치사, 과실치사, 살인, 살 인미수, 상해치사, 유기치사, 폭행치사로 나타났다. 판결문의 분석틀은 몇 차례 회 의와 법률전문가 자문을 통해 사건유형, 사건발생일, 사건선고일, 양형이유, 감경사 유, 변호사 주장, 이전 가정폭력상황, 사건당일, 범행동기, 범행방법 등으로 분석하 여 데이터베이스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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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거나 ‧ 죽이거나 사건의 판결문 분석 후에는 비교분석을 위한 작업을 위해 허민 숙 교수(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와 정당방위지원팀의 김푸른솔, 김나영 과 활동가들이 팀을 구성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팀에서는 판결문 나타난 생생한 사례를 통해 사법부에서 나타나는 성편견적 판결내용을 분석하고 인권과 정의 관 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오늘, 저는 그녀를 혼자 두고 싶지 않습니다. 검사로서 말합니다. 알렉상드라는 피고인석에 앉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무죄를 선고하십시오!” 정당방위사건지원팀에서 외국의 정당방위 판례를 수집하는 과정 중 2012년 프랑 스에서 가정폭력피해자가 정당방위 판결을 받은 사례이다. 알렉상드라는 지속적인 구타, 모욕, 수치, 성폭력에 시달린 가정폭력피해자였다. 검사는 ‘알렉상드라는 자 기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요? 자기가 당한 폭력에 미루어 볼 때 그 날 남편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상상했을까요? 물론입니다! 벌써 몇 년이나 지속된 폭력입니다. 그녀는 항상 혼자였습니다.’이라고 했고 알렉산드라가 남편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공권력의 불충분한 개입과 사회적 무관심이 낳은 결과라고 말하 였다. 호주에서도 2006년 남편을 총으로 쏘아죽인 가정폭력피해자 수잔 폴스는 2010년 정당방위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과정에서 판사는 배심원들에게 폴스 의 변호인들이 그녀가 정당방위로 행동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검 사 측에서 그녀가 정당방위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우리는 이러한 외국의 판결을 찾으면서 환호했고 힘을 내었고 한국 사회 에서도 이러한 판결을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가정폭력 ‧ 인권 ‧ 정의 그리고 젠더 한국여성의전화가 가정폭력추방운동을 시작한지 30년이 지났다.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개입이 시작된 지도 15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한 가정폭력의 실태와 살인이 라는 강력범죄화되는 처절하고도 안타까운 현실은 끝이 없다. 2013년 정부에서도 가정폭력을 4대 폭력으로 선정하고 가정폭력문제에 대한 관심과 해결의지가 그 어 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인권과 정의 평등을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법부 에서 가정폭력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성평등한 가치에 입각하여 정의롭게 다루는 것은 우리사회가 가정폭력을 해결하고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데 원동 력과 디딤돌이 될 것이다. 모쪼록 이 글이 실제 재판과정에서 나타나는 생생한 사 례를 통해 사법과정에서 가정폭력과 젠더가 어떻게 다루어지는 지를 직면하고 그


힘을 통해 정의를 위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글은 Ⅰ. 남성배우자에게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 121건 Ⅱ. 가정폭력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21건 Ⅲ. 배우자 살인의 그럴듯한 이유, 또는 용서받지 못 할 이유 로 구성되어 있다. 남편으로부터 살아서는 벗어날 수 없었던 가혹한 가정폭력의 고통 속에 단 하루 만이라도 두 딸과 숨을 쉬면 살기를 꿈꾸었던 윤필정씨(가명)는 살인으로 기소되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윤필정 정당방위사건지원팀’을 구성하 여 그녀와 그녀의 딸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녀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은 일 주일 만에 만 명을 넘었다. 그녀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정의이다.

Ⅰ. 남성배우자에게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 121건 1. 범죄별 건수 남성배우자에게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살인, 폭행치사, 상해치사, 감금치사, 과 실치사, 유기치사, 살인미수’의 범죄명으로 기소되었다. 각각의 건수를 살펴보면 살 인이 49건으로 제일 많았고, 다음으로는 폭행치사 24건, 상해치사 18건순으로 나 타났다. 이밖에 살인미수는 25건이었다.

<표1. 사건유형별 건수>4)

(단위 : 건수)

살인

폭행 치사

상해 치사

감금 치사

과실 치사

유기 치사

살인 미수

합계

49

24

17

2

2

2

25

121

2. 여성을 살해한 이유들 남성배우자가 여성을 살해한 동기로는 ‘격분’ 이 68건으로 제일 높았고, 다음으로 4) 용어설명 : ①살인 - 사람을 죽임. ② 폭행치사 - 사람을 폭행하여 죽음에 이르게 함. ③ 상해치사 사람의 신체를 상하게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함. ④ 감금치사 - 사람을 감금하여 죽음에 이르게 함. ⑤ 과실치사-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함. ⑥ 유기치사 - 부조를 요하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함. ⑦ 살인미수 -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려고 하였으나 미수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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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19건이었다. 기타에는 ‘경제적인 이유’, ‘보험금을 타기위해’, ‘외도녀를 신 고할까봐’ 등의 동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2. 범행동기별 건수>

(단위 : 건수)

격분

분노

무시

다툼

원망

저항

홧김

흥분

기타

알수 없음

합 계

68

19

4

2

1

1

1

5

16

4

121

남성 배우자들이 여성들에게 격분하거나 분노하는 이유는 ‘무시’, ‘집안일에 소 홀’, ‘음주를 하고 늦게 귀가’, 등 여성이 ‘여성답지’않을 때와 ‘외도의심’, ‘경제적 인 이유’가 대부분이었다.‘이혼요구’ 등 이별을 요구할 때 격분하는 판례도 있었다.

사건번호

판결문내용

죄명

선고

2007고합55

피고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한 피해자가 술 에 취하여 아들을 먼저 재우지 아니하고 방에 누 웠다는 이유로

상해치사

징역3년, 집행유예5년

2008고합217

가해자의 의심과 폭행으로 집을 나간 피해자를 자녀를 데리고 찾아가 집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 했으나 피해자가 거절하고 더 이상 같이 살고 싶 지 않다고 하자

살인

징역12년

2010고합223

"남자가 일도 안하고 돈도 벌지 못하면서 왜 때리 냐"는 모욕적인 말을 하자

살인

징역9년

2011고합104 (1심) 2011노1623 (2심)

피고인의 여자문제로 부부싸움 도중 듣기싫은 소 리를 하였다는 이유로

살인

징역13년

2011고합155

최근에 전화도 받지 않고, 집에 들어오지 않은 이 유가 다른 남자와 불륜관계 맺고 있기 때문이라 고 생각하게 되었고, 생각이 반복되자 배신감에

살인미수, 상해

징역4년

2012고합558

피해자의 주거지 앞에서 피해자를 기다리다 만나 재결합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살인, 주거침입

징역12년

2007고합118 (1심) 2007노425(2 심)

피해자가 이혼하려고 집을 떠나려는 것을 보고 만류하였으나 피해자가 짜증을 내자 순간적으로 분노감을 억제하지 못하여

살인

징역12년

2009고합258

피해자를 만나 피고인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 다는 생각에 미치게 되자

살인미수

징역2년 6개월


3. 이전 가정폭력의 상황들 1) 판결문에 명시되어 있는 경우 판결문에 ‘가정폭력’이 있었다고 명시되어 있거나, 가해자가 이전에 이미 가정폭 력으로 인하여 상담위탁처분 등을 받은 적이 있는 경우에는 다른 사정을 살피지 않고도 가정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는 별도로 분류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재판부가 ‘가해자(피고인)가 술을 마시면 자제력을 잃어 피해자를 폭행한 적이 있 었다’고 인정5)한 경우가 있고, 피해자를 폭행하여 대구 지방법원 가정지원으로부터 상담위탁처분을 받은 적이 있음에도 피해자를 폭행하여 사망하게 하였으므로 가정 폭력에 대한 일반예방적 측면에서도 엄히 처벌할 필요성을 인정한 경우6), 피해자 에 대하여 여러 차례 폭행, 협박, 주거침입 등의 전력이 있다고 인정된 경우7), 사 건 발생 이전에도 자주 피해자를 폭행하였고, 피해자가 피고인의 심각한 의처증과 잦은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피고인을 상대로 이혼 청구 소송 제기 후 피고인의 가혹한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인정한 경우8)가 있다. 2) 가해자가 경합범으로 처벌 받은 경우 이 경우는 ‘가정폭력’이 있었다고 판결문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지 만,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하여 상해를 입혔거나 폭행을 했다는 사정이 인정되어 경 합범으로 처벌받은 경우이므로 가정폭력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인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해자가 임신 중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하였고, 살인미수 범행 후 치료 중 인 피해자에게 2회 상해를 가한 경우,9) 피해자와 다투다가 피해자를 폭행하여 상 해를 입힌 적이 수차례 있다고 인정된 경우10), 가해자가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 아 지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경우11), 피해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심한 갈등을 빚어오던 중, 피해자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나서 이를 용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때때로 분노를 참지 못하여 상해를 입힌 경우12), 술을 자주 5)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07. 6. 21. 선고 2007고합16 판결 6) 대구고등법원 2010. 6. 24. 선고 2010노134 판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피고인(가해자)에 대하여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는데,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에 비하여 상당 히 경한 처벌로 보인다. 7) 대구지방법원 2009. 8.10. 선고 2009고합258 판결 8) 대전고등법원 2008. 3. 21. 선고 2007노485 판결 9) 대구지방법원 2006. 5. 3. 선고 2006고합25 판결, 살인미수, 상해, 폭행 10) 청주지방법원 2011. 11. 24. 선고 2011고합127 판결, 상해, 살인미수 11) 제주지방법원 2008. 1. 10. 선고 2007고합125 판결, 상해치사, 상해, 폭행, 재물손괴, 주거침입 12) 대구지방법원 2007. 2. 7. 선고 2006고합911 판결, 폭행치사, 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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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고,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 를 수회 때려 폭행한 경우13),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셔 화가 난다는 이유로 피해 자의 머리채를 양손으로 잡아당겨 바닥에 넘어뜨린 후 피해자의 온몸을 발로 수회 밟아 폭행한 경우14), 피해자가 혈압약을 복용함에도 식사를 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유로 부부 싸움을 해오다 사건 발생 며칠 전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던 중 격분하여 상해를 가한 경우15), 피해자인 처가 당구장 남자손님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의심하였고, 이에 관하여 피해자에게 사실여부 추궁하면서 여 러 차례 상해를 가한 경우16), 장인을 모시고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피해자 가 술을 먹었다며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수회 마구 때려 상해를 가한 경우17), 피해자의 불륜을 의심하여 화가 나 폭행을 가한 경우18)가 있다. 3) 판결문에 드러난 다른 증거들로 추정이 가능한 경우 판결문에 드러난 부부상담일지, 피해자의 일기, 주변인의 증언 등의 증거들을 통 하여 사건 발생 이전에도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폭력행사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경우에는 가정폭력이 있었다고 보았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 음과 같다. 피해자의 편지글로 미루어 볼 때 폭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경우19), 가해자와 다툰 내용, 폭행 당한 내용이 있는 피해자의 일기와 가해자와 피해자가 부부상담을 받을 때 상담자가 상담내용을 기재한 기록이 있는 경우20), 피해자가 경찰서에 가 해자의 상습구타에 관하여 처벌의사를 표시한 고소장을 제출한 적이 있는 경우21), 평소 감정표현을 잘 못했고, 음주 후 집안 식구들에게 분노를 과격하게 표출하였 고,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이고, 때때로 폭력적인 언사를 보였다고 심리보고서에 나 타난 경우22), 평소 피해자와 서로 욕설을 주고받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발로 차 는 등의 잦은 다툼이 있었고, 사고 전날 밤부터 가해자의 집에서는 심하게 말다툼 하는 소리, 욕설을 하는 소리, 쿵쿵 부딪히는 소리 여자가가 "배아프다"하는 소리 13) 14) 15) 16)

인천지방법원 2008. 4. 17. 선고 2007고합601 판결, 폭행치사, 상해, 폭행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2007. 6. 21. 선고 2007고합16 판결, 폭행치사, 폭행 춘천지방법원 영월지원 2010. 7. 8. 선고 2010고합8 판결, 폭행치사, 상해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 2010. 11. 17. 선고 2010고합31 판결, 상해, 폭행치사(인정된 죄명: 폭행) 이 사 건에서 가해자의 폭행으로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에 관해 인과관계는 인정하였지만 예견가능성은 부 정되었음. 17) 서울북부지방법원 2012. 7. 13. 선고 2011고합255 판결, 폭행치사, 상해 18)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2012. 8. 12. 선고 2012고합78 판결, 폭행치사, 폭행 19) 대전고등법원 2008. 1. 23. 2007노425 판결, 20) 의정부지방법원 2010. 4. 2. 선고 2009고합260 판결 21) 제주지방법원 2009. 8. 13. 선고 2009고합29 판결 22) 대전고등법원 2008. 12. 10. 선고 2008노441 판결


등이 연이어 나다가 남자가 여자에게 "야 일어나"라며 깨우는 소리가 났다는 진술 이 있는 경우23), 사건 범행 이전에도 피해자와 부부싸움을 하면서 피해자를 폭행 한 점을 가해자가 인정한 경우24)가 있다. 4) 사실관계로 보아 추정이 가능한 경우 이 경우에 눈에 띄는 것은 배우자의 외도 문제 및 의심으로 인한 다툼에서 폭력 이 있었던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피해 자의 외도를 의심하여 잦은 폭행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가 가출한 적도 있 는 경우25), 가해자는 평소 피해자가 칵테일 바에서 일하며 다른 남자들과 술을 마 시고 늦게 귀가하는 것에 불만이 있어 이로 인하여 잦은 다툼이 있었고 피해자를 자주 폭행하였던 경우26) 술을 마시면 피해자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고 폭행해 왔던 경우27), 피해자의 남자관계를 의심하며 종종 구타하여 피해자가 남편의 구타 를 피하여 서울에 머문 적도 있는 경우28), 피고인이 피해자의 행실을 문제 삼아 계속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경우29), 수년 전부터 피고인이 노래방 여종업원과 내 연관계를 가지면서 외도하고 피해자에게 친정에 가서 돈을 가져오라고 요구하면서 수시로 폭행한 것이 원인이 되어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시고 가정에 소홀히 하고 수시로 가출하여 피해자와 자주 다퉈왔던 경우30),

피고인이 술을 마시면 주사가

심했고, 피해자와 다투면서도 넘어져있는 피해자의 가슴 부위를 발로 밟는 등 피해 자에게 심한 폭력을 행사하였고, 사건발생시점에 즈음에서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여 자관계를 의심한다며 피해자와 다툼이 잦았던 경우31)가 있다. 그 외의 다른 경우들은 다음과 같다. 피해자가 처가보다 본가32)를 소홀히 한다 는 이유로 잦은 다툼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잦은 폭력을 행 사한 경우33), 초등학교 졸업인 피고인과 전문대학 졸업인 피해자 사이의 학력, 경 제적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어오다 2010년 초경부터 부부싸움 중 수 차례에 걸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우34), 재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피고인과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제주지방법원 2010. 8. 9. 선고 2010고합44 판결 부산고등법원 2008. 12. 24. 선고 2008노818 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2008. 9. 5 선고 2008고합217 판결 대구고등법원 2011. 2.16. 선고 2010노456 판결 부산지방법원 2008. 9. 9. 선고 2008고합498 판결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07. 4.12. 선고 2007고합1 판결 광주고등법원 2008. 4. 4. 선고 2008노7 판결 광주고등법원 2009. 1. 22. 선고 2008노356 판결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10. 6. 11. 선고 2010고합59 판결 시댁을 지칭하는 의미인 듯함. 서울동부지방법원 2010. 9. 13. 선고 2010고합133 판결 부산지방법원 2010. 7. 27. 선고 2010고합249 판결

살인과 젠더 17


피해자 사이의 잦은 다툼과 피고인의 폭력 행사가 있었던 경우35), 결혼 후 지속적 으로 폭행하여 왔고, 칼로 몸을 찌른 적도 있으며 가해자가 평소 피해자를 죽이겠 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경우36), 부부싸움 중 피고인이 수시로 피해자를 폭행한 경 우37), 피해자와 다툼을 하는 경우가 잦았으며, 다툼 중에 피해자에게 심한 욕설을 하며 폭행하였던 경우38), 평소 원만한 부부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술에 취하면 사소 한 문제로 서로 다투고 피고인이 피해자를 때린 경우39), 피고인은 평소 피해자와 부부싸움을 하면서 종종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경우40), 평소 피고인은 피해자 가 하는 말이 잔소리라 생각하며 불만을 품고 종종 피해자를 주먹과 발로 때리는 등 폭행을 행사한 경우41), 별거 중에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42)등이 있다.

4. 변호인의 주장 판결문에 드러난 피고인(가해자) 및 피고인의 변호인의 주장은 각 사건의 사실관 계에 따라 다르지만 그 중에서도 중복되는 몇 가지 사유들을 구체적인 경우와 더 불어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주장 가해자가 범행 당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구체 적인 예로는, 가해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는 경우43), 가해자가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주장하는 경우44), 우울감과 자존감 저하로 인해 심신미약의 상 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45), 정신분열증과 알코올의존증후군이 있기 때문에 범행 당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46), 뇌종양이 있기 때문에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경우47), 피해망상적 성향, 음주 후 폭력습벽이

35) 36)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서울고등법원 2011. 1. 7. 선고 2010노3208 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10.10. 1. 선고 2010고합370 판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07. 6. 14. 선고 2007고합55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7. 12. 27. 선고 2007노2250 판결 인천지방법원 2009. 12. 23. 2009고합704 판결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원 2009. 10. 9. 2009고합32 판결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10. 11. 18. 선고 2010고합215 판결 청주지방법원 2010. 7. 2. 선고 2010고합83 판결 대구지방법원 2008. 5.26. 선고 2008고합209 판결 외 9건 서울고등법원 2011. 1. 7. 선고 2010노320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1. 7. 21. 선고 2011노1470 판결 부산고등법원 2012. 4. 5. 선고 2011노679 판결 청주지방법원 2013. 5.30. 선고 2013고합59 판결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48), 사리변별능력과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상황이었다고 주 장하는 경우49),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가해자가 범행 당시 술을 마셔 만취상태 로 심신상실 내지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으므로 이 점이 참작되어야 한다고 주장 하는 경우50), 의처증 및 알콜 남용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에 심신상 실의 상태에 있었음을 주장하는 경우51), 뇌수술 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가해자 회사의 경영상태 악화로 극도의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범행 당시 심 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음을 주장하는 경우52)가 있었다. 2) 피해자가 유발 가해자의 범행은 피해자가 유발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피해자가 불 륜을 저지르고도 반성하기는커녕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줄 것을 요구하는 등으로 피해자가 범행을 유발한 측면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며 관대한 처분을 희망한다고 주장하는 경우53), 피해자가 가해자의 왼손을 끌어당겨 스스로 칼에 찔리게 된 것 이라고 주장하는 경우54), 피해자가 다른 곳에서 다친 것이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한 사실이 없고,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시면서 가정을 돌보지 아니하여 가정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55)가 있었다. 3) 범의가 없었다는 주장 피고인에게 범행을 저지르고자 하는 의도가 없었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가해자에게 범의가 없다고만 주장한 경우56), 범행동기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비추어 볼 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57), 피해자가 남자문제 로 가출하였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겁을 주려고 한 것이지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58), 피해자가 달려들어 회칼을 뺏으려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칼에 찔 린 것이지 살해의 고의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59), 피해자와 다툰 사실은 있으 나 피해자의 목을 조른 사실은 없으며, 설령 가해자가 피해자의 목을 조른 사실이 48) 49) 50) 51) 52) 53) 54) 55) 56) 57) 58) 59)

대전고등법원 2008. 1. 23. 2007노425 판결 서울서부지방법원 2012. 2. 22. 선고 2011고합372 판결 외 5건 대구지방법원 2006. 4.12. 선고 2006고합5 판결 전주지방법원 2009. 11. 26. 선고 2009고합62 판결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2009. 12. 4. 선고 2009고합94 판결 대구지방법원 2006. 4.12. 선고 2006고합5 판결 울산지방법원 2010. 9. 1. 선고 2010고합103 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2012. 7. 13. 2011고합255 판결 의정부지방법원 2010. 4. 2. 선고 2009고합260 판결, 외 8건 전주지방법원 2009. 11. 26. 선고 2009고합62 판결 청주지방법원 2009. 11. 26. 선고 2009고합174 판결 서울북부지방법원 2011. 1. 7. 선고 2010고합359 판결

살인과 젠더 19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60), 당황하여 겨누고 있던 칼로 찌르긴 하였으나 살해의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61), 겁만 주려 고 하였을 뿐 살해할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62), 가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 였고, 피해자의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극도로 흥분하여 우발적으로 상해를 가한 것 일 뿐 살해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63), 살인의 고의를 가지고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피해자의 목 뒷부분 옷을 잡아당겨 바닥 에 넘어지게 한 후 손바닥과 발로 수회 때리는 바람에 뇌출혈로 사망에 이른 것이 라고 주장하는 경우64),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정상적으로 음식물을 공급한 이상 피 해자를 유기하고자 하는 범의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65)가 있었다.

5. 감경사유를 제외한 양형이유 판결문에 드러난 양형이유 중에서 감경사유를 제외한 사유들을 정리하여 보면 아래와 같다. 여러 가지 사유가 고려된 경우에는 중복하여 정리하였다. ‘죄질불량’ 은 생명을 침해하였다는 점에서 고려되는 것으로서 ‘범죄의 중대성이 인정된다’고 한 경우도 여기에 포함하여 정리하였다. 한편 ‘전과 및 전력’이 있다는 것은 폭력 을 행사한 전력이 있다거나 폭행 전과가 있다거나 가해자에게 평소 폭력습벽이 있 었다는 사정 등이 인정되는 경우로서, 가벼운 벌금형 등의 전과는 고려되지 않았 다.

6. 감경이유 양형이유 중에서 감경사유만을 추려 정리하면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 동종 전과 없음, 우발적 범행, 반성, 피해자가 유발했다고 봄, 피고인이 성실했음, 유족 선처 및 처벌 불원, 자수 및 자백, 피해자 유족과 합의,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음, 피고인 이 고령 등이 있었다. 하나의 사건에서 여러 가지 감경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모두 고려하였다. 눈에 띄는 것은 ‘동종 전과없음’, ‘우발적 범행’, ‘반성’이 비슷하게 높

60) 청주지방법원 2011. 11. 24. 선고 2011고합127 판결 61) 의정부지방법원 2011. 12. 20. 선고 2011고합377 판결 62)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2012. 10. 12. 선고 2012고합199 판결 63) 광주고등법원 2010. 5. 27. 선고 2010노109 판결 64) 대구고등법원 2006. 7. 13. 선고 2006노146 판결 65) 부산지방법원 2012. 11. 16. 선고 2012고합448 판결


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많은 사건들에서 이 세 가지 감경이유가 함께 고려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건번호

감경사유

죄명

선고

살인

징역3년

① 피고인이 아내의 불륜에 대한 분노와 상실감에서 비롯 된 우발적 범행인 점

2006고합5

② 피해자가 자신의 불륜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용서를구하 는 대신 오히려 피고인에게 만나던 남자를 불러줄 것을 요구하여 피고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주었던 점 등 범행동기 내지 경위 ③ 피고인이 아무런 처벌 전력이 없고, 공무원으로서 30년 이상 성실하게 근무해 온 점,

2008고합209

가사일에 전념하면서 가정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기울인 점, 피해자는 평소 피고인이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다른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오는 등이 사 건범행 발생의 일부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는 점,

살인

징역13년

2009고합29

피고인은 자신이 꿈꾸던 행복한 가정생활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피해자에 대한 원망으로 순간적으로 격분에 휩싸인 나머지 자신을 통제하지못하고..피고인이 피해자와의 가정 불화 속에서도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하 여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하고..

살인 재물 손괴

징역12년

2009고합593

피고인이 부부싸움 중 피해자가 먼저 식칼과 망치를들고 공격하는데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이사건 범행에 이르 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보이 는 점

살인 사체 유기

징역15년

2010노81

피고인이 이혼을 요구하는 피해자인 처와 다투다가 우발 적으로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고, 피고인에게 이혼 을 강요함으로써 피고인의 범행을 유발한 측면이 인정되 기는 한다.

살인

징역8년

2010고합103

피고인이 피해자와 부부싸움을 하던 중 흥분하여 우발적 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초범인 점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

살인

징역6년

2010고합133

고인이 처음부터 범행을 계획한 것은 아니고, 불면증 및 불안증세가 있던 중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이 사건범행에 나아갔고, 또한 피해자의아들 송00이 현재는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고 있으나, 피고인과는 부자지 간이고 유일한 직계 혈족으로 앞으로 피고인과 다시 원만 한 관계를 유지 할수 있도록 함이 상당한 점..

살인

징역9년

2010고합249

부부간의 사소한 말다툼 끝에 격분하여 우발적으로 이 사 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고, 양육하여야 할 어린 자 녀들이 있는 점..

살인

징역8년

2010고합562

자수, 반성, 국제결혼으로 인한 피해자와의 의사소통문제 와 원만치 못한 결혼생활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살인

징역12년

2010노3208

우발적 범행, 반성, 범행 후 자살 시도

살인

징역6년

살인과 젠더 21


2012고합540

피고인은 피고인을 타박하는 피해자와 다툼이 발생하자 일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이사건범행을 저 질렀으나 살해의 의도나 계획이 있었다기보다는 그 범의 가 미필적 정도에 불과하였던 점.

살인

징역5년

2009고합174

피고인의 처이자 아들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는 피해 자가 오랜 기간 동안 다른 남자와 문자를 주고받고, 의심 을 받자 가출을 하는 등 사건을 유발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이는 점

살인 미수

징역3년 집행유예5 년

2008노441

우발적 범행, 피고인이 자백하며 반성, 36년간 부부로 살 아온 배우자를 잃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평생을 후회와 죄책감으로 살아갈 것이어서 피고인 자신이 최대 피해자 이기도 한 점

상해 치사

징역3년

2008노356

피해자가 가정을 소홀히 한 채 매일 술을 마신 것에 대해 화가 나있었고, 피해자가 집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받고 온 것이 계기가 되어 피해자와 말다툼을 하던 중 순간적 으로 격분하여 우발적 범행

상해 치사

징역3년

2009고합72

순간적인 감정자제가 부족한 성격일 뿐 함부로 타인을 폭 행하는 성향이 있다고 보기어려움, 다소 남성적인성격의 피해자는 거래처 사람들과 잦은 술자리를 갖고 나이 어린 피고인을 무시하였으며,

상해 치사

징역3년 집행유예4 년

2007고합601

피해자에게도 어느 정도 부부싸움의 빌미를 제공한 책임 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벌금형을 5회 선고받은 이외 에 피고인에게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그 밖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범행의 동기 및 수단, 범행의 결과, 피해자와 의 관계 등 참작

폭행 치사, 상해, 폭행

징역4년

2007노742

피해자가 다른 남자에게 불륜관계를 의심할 만한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것을 알고 격분하여 술김에 저지른 점을 참작하여

상해 치사

징역7년

Ⅱ. 가정폭력 피해자66)에 의한 가해자 사망 사건 21건 분석 1. 가정폭력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 21건 사건개요 협박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 장 파열에 아이까지 유산된 그 날의 폭력, 그러나 그녀의 정당방위는 ‘살인죄’로 심판 받다. 남수연 사건(1991. 02. 06)

66)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


시장에서 신발 장사를 하던 남수연은 동창이었던 남편이 “결혼 해주지 않으면 친정식구들을 다 몰살 하겠다”는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 하였다. 당시 친 정식구들도 남편을 두려워하여 ‘너 하나만 희생하면 된다’며 결혼을 권했다. 결혼 초부터 가해자는 남수연을 심하게 폭행하였고, 변태적인 성행위도 요구하였 다. 또한 남수연이 어렵게 장사를 해서 번 돈을 옷을 사거나 유흥비로 탕진하였다. 폭력전과가 있던 남편은 자해로 인해 온 몸이 흉터투성이었고 툭하면 밖에서 싸움 을 하여 남수연이 합의한 것만 20~30번이 되었다. 남수연은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3차례 집을 나오기도 했으나 친정집에 칼을 들고 담을 넘어와 친정식구들을 다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집으로 온 남편은 자고 있던 남수연(당시 임신 4개월)의 배를 발과 두 주먹으로 마구 구타하였고 ‘우리 가족은 다 죽어야 한다’며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왔다. 남편은 아들에게도 ‘밖으로 나가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고 남수연 은 두려운 마음에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남수연은 이 날 남편에 의한 폭 력으로 장이 파열되었고, 아이까지 유산하였다. 남수연은 ‘폭행치사’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기소되면서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며 죄명이 변경되어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한국여성의전화가 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을 ‘정당방위‘로 명명하고 지원한 최초의 사건으로 재판지원, 여론화 활동 등을 활발히 하며 남수연의 구명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정 당방위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1심에서는 징역3년을, 2심에서는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아빠의 죽음은 엄마가 아빠한테 맞은 것의 10분의 1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윤정 사건(1993. 2. 21) 밖에서는 성실한 교사로, 따뜻한 품성으로, 언제나 좋은 평판 받던 이윤정은 집 에서는 15년에 걸친 결혼 생활동안 지속적으로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왔다. 남편은 외도, 음주 등을 하며 이윤정과 자녀들, 이윤정의 친정식구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였 다. 사건 전 날에는 심한 욕설을 하며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멱살과 머리채를 잡 아 벽에 수회 처박고 주먹과 발로 전신을 구타하면서 계속 폭행을 가했을 뿐만 아 니라 부엌에서 칼을 가져와 위협하였다. 다음날 새벽 2시경 부엌에서 칼을 가지고 와 피해자의 목에 들이대며 “같이 죽자”고 하였으나 피해자가 이에 저항하면서 칼 을 밀어내자 이를 자신의 목에 갖다 대며 ‘그럼 내가 먼저 죽을까’하면서 여러 번

살인과 젠더 23


칼을 피해자의 목과 자신의 목에 번갈아 갖다 대었고, 이윤정은 남편이 칼날을 자 기 목에 들이대는 순간에 두 손으로 칼을 남편의 목 부분으로 밀어붙여 목 부위를 찌르고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그 날 이윤정은 남편의 폭력으로 얼굴은 붓고 멍이 들었고 옷에 오줌을 쌀 정도 로 극도의 공포와 한계 상황에 처한 모습이었다. 당시 6학년이었던 이윤정의 딸은 판사에게 제출한 탄원서에서 “우리 엄마는 절대 로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엄마는 아빠의 폭언과 폭력을 참아가며 오빠와 나를 위 해서 이혼을 하지 않고 살아온 불쌍한 사람입니다. (중략)아빠의 죽음은 엄마가 아 빠한테 맞은 것의 10분의 1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죄 없는 엄마와 같이 살게 해주세요”라고 이야기 했다. 재판지원과 대대적인 여론화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으나 정 당방위 주장은 받아드려지지 않았고 이윤정은 징역4년의 형을 선고 받았다.

부모의 폭력을 피해 한 결혼, 남편이 너무 무서워 경찰에 신고도 못하고 23년의 폭력을 견뎌낸 그녀에게 판사가 한 말은 ‘좀 더 참지 그랬냐’였다. 이세영 사건(1994. 1. 16) 이세영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식모살이와 공장의 공원생활을 해오다 아버지 와 새어머니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하였다. 파출부, 막노동일을 하면서 생 계를 유지해온 이세영과 달리 남편은 술만 마시면 별 다른 이유 없이 상습적으로 가재도구를 마구 부수고 이세영을 폭행하였다. 팔과 주먹, 작대기로 마구 구타할 뿐 아니라 석유를 뿌리며 방화를 시도한 적도 있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폭력 은 멈추질 않았고 방망이로 이마를 쳤고 흉기를 얼굴에 그어 흉터도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세영은 남편이 너무 무서워 경찰에 신고할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4일 전부터 가해자는 이세영에게 계속 폭력을 행사했고 이로 인해 이세 영은 코피를 쏟고 기절하기도 하였다. 정당방위를 주장한 이 사건에서 1심에서는 징역4년이 선고되었다. 1심 판사는 공 판 당시 피해자에게 그냥 참지 그랬느냐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항소심에서는 형이 감경되어 징역3년이 선고되었다.

“난 하나의 송장이 되어야 했다. 그 옆에서 남편은 술을 마시고 성행위를 즐겼다” 김윤아 사건 (1995. 3. 25)


「딸이 이혼하는 부모를 원하지 않는다고 아빠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 원했 다. 그리고 지방으로 딸은 내려가고, 남편은 술을 먹고 살림을 부수고 나에게 매를 댔다. 올라온 딸 앞에 멍들어 버린 나의 다리를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날 밤 이, 24일 밤이 가면서 새벽 난 인생의 패배자, 남편을 죽인 아내란 살인자가 된 것 이다. 1995년 3월 22일, 23일, 24일, 25일 새벽 나의 가슴에 커다란 못을 박은 날 이 된 것이다.」 -김윤아의 진술서 중에서 김윤아의 남편은 술을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며칠 동안 계속하여 마셨고 그때마 다 김윤아에게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남편은 김윤아를 아 이들 앞에서 혁대로 구타하기도 하였으며, 심각한 의처증으로 김윤아가 다른 남자 를 만난다고 의심하고 이를 빌미로 폭력을 휘둘렀다.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 남편의 폭력으로 큰 딸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관 두사 람이 도착하였다. 살림살이가 부서지고 김윤아가 맞아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김윤아 가 남편을 고발할 테니 제발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은 부부 싸움을 가지고 왜 그러냐며 조금만 참으라고 하기만 하고 그냥 돌아갔다. 김윤아는 술에 취하여 폭력을 휘둘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하다 잠이 든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언론의 관심을 받았던 이 사건은 1심에서 5년을 선고받고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아이들에게 부모 없는 설움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수영 사건(1995. 6. 25) 알콜중독, 의처증, 경제적 무능력 상태의 남편은 최수영에게 결혼 6개월째부터 구 타를 하기 시작되어 13년간 칼로 위협하고 각목으로 때리는 등의 폭력을 행사했 다. 남편은 산 속으로 밤에 최수영을 끌고 가 나무에 묶고 때리기도 하였다. 폭력 으로 최수영은 이가 부러지기도 하였지만, 고아 같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아이 들에게 부모 없는 설움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고 생 각했다. 사건 전날 최수영은 남편이 큰 딸(13세)의 가슴을 만지면서 추행하는 장면 을 목격하고 남편에게 이야기하였고, “이 쌍년 아가리 함부로 놀리면 참나무 작대 기로 쑤셔죽여 버리겠다”며 최수영에게 폭력을 행하였다. 더 이상 이런 폭력을 참 을 수 없다고 생각한 최수영은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적극적 대응으로 재판과정에서 피학대여성증후군과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법리적 쟁점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1심에서 징역4년이 선고되고 항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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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각되었다. 구타로 인해 실신까지 한 피해자에 ‘평소에는 가해자가 별 다른 이유가 없었고 피해자를 억압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점’으로 엄한 처벌 필요. 이유리 사건(1996. 04. 16) 남편은 배를 타러 나갔다가 한 달에 한 두 번 집에 들어올 때 마다 술에 취해 부인과 아이들을 심하게 폭행하였고, 칼을 들고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곤 했다. 남편의 심한 학대로 이유리와 어린 남매는 수 차례 거처를 옮기기도 하였다. 이유리는 A시에서 문방구를 운영하였는데, 문방구 앞에서 남편으로부터 심한 구타 를 당해 실신한 상태에서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었다. 사건 당일 남편은 술에 취해 유리를 깨고 구타를 하며 칼을 들고 위협하였고 아들과 남편의 폭력을 제지 하는 상황에서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유리는 1심에서 징역5년, 2심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을 선고받았다.

죄책감 때문에 모든 것을 체념해서 경찰이 묻는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김재희 사건(1997. 10. 24) 김재희의 남편은 돈만 생기면 폭음을 일삼았고 그때마다 김재희를 재우지 않고 밤새 폭력을 행사했다. 둘째 자식을 나을 즈음에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최수영은 친정으로 도망가기도 하였으나 남편이 찾아와 끌고 갔다. 결국 김재희는 남편이 휘 둘은 칼에 맞는 상황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남편은 자녀들에게도 혁대와 쇠파이프 등을 이용하여 폭력을 가하였으며, 재떨이를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자녀들이 직장 을 갖고 나서부터는 돈이 떨어질 경우 자녀들에게 용돈을 요구했으며, 용돈을 주지 않는 경우 자녀들 직장에까지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 피해자가 칼에 맞은 날 자녀 를 비롯한 이웃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가정 내 일이라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사건 당일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에게 김재희는 “차라리 같이 죽 자”라고 대꾸를 했고, 남편은 “그래, 같이 죽자”고 하며 자기 목에 가죽 허리띠를 매고 잡아당기는 과정에서 남편이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김재희는 남편이 사망하 자 몹시 당황해서 남편의 고종사촌에게 남편의 사망 사실을 알렸고, 즉시 직접 경 찰에 신고를 해서 자수를 했다. 당시 피해자는 죄책감 때문에 모든 것을 체념해서 경찰이 묻는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조사과정에서 김재희는 남편의 폭력을 심 한 욕설이라고만 표현 했다. 1심에서 징역3년 항소심에서는 고령(60세)이 고려되어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3년 동안의 폭력의 종결, 1심에서 징역3년 선고 후 검사는 형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 이동수 사건(1998. 02. 8) 결혼생활 13여 년간 남편은 불과 1년만 직업을 가졌고, 이동수가 가족들과 시어 머니의 생계까지 책임지고 있었다. 남편은 이동수가 벌어온 돈을 가지고 나가 술값 과 경마비용으로 썼고, 수시로 이동수가 외도를 했다며 의심하고 딸들에게 아버지 가 다를 것이라고 하는 등 심한 의처증 증세를 보였다. 사건 당일 남편은 자고 있 는 이동수를 깨워 2시간가량 외도를 의심하며 행패를 부렸고 이동수는 남편을 달 래서 잠을 자기 위하여 남편이 마시고 있던 소주 3병 중 소주 3잔을 마시며 설득 하였다. 남편의 계속되는 추궁에 이동수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하여 과도를 가지고 와서 자신이 외도한 것이 사실이면 이 칼로 자신을 죽이라고 하였고 이에 남편은 이동수를 폭행하였다. 서로 실랑이 하는 와중에 남편이 칼에 찔려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 사건은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이동수의 주장과 달리 ‘살인’으 로 기소되었고 재판에서도 살인의 고의는 인정되어 1심에서 징역 3년 선고되었다. 그러나 2심에서는 1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검사의 주장에 그 동안의 가정폭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오히려 형이 너무 무겁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였다.

보충수업을 한다는 이유로 톱으로 딸의 등을 긁고, 죽도록 때렸던 남편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효영 사건(1999. 01. 11) 이효영의 남편은 25년의 결혼 생활 동안 돈을 탕진하고, 노름을 하였고, 상습적 으로 폭력을 행사 했다. 날품을 팔아 살림을 꾸려나가는 이효영이 집에 들어오면 잘 때까지 폭행하였다. 남편은 가스 줄을 잘라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을 여러 번 하였고, 실제 불을 지른 적도 있고 이효영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가스 줄을 끊고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하여 112로 신고했지만, 경찰은 가정문제이므로 이혼이나 하 라며 그냥 갔다. 남편은 자녀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장녀의 책가방을 불에 태우고, 옷을 모두 벗겨놓고 때려 죽이겠다고 협박하여 이웃이 딸을 구해 숨겨두기도 하고, 웅덩이로 딸을 데리고 가 빠뜨려 죽이겠다고 한 적도 있으며, 보충수업을 한다는 이유로 톱 으로 딸의 등을 긁어 흉터를 남겼고, 심지어 딸의 결혼 전날까지 구타가 있었다. 어린 아들의 목을 조르고 아이를 들어 빙빙 돌리고 돌도 안 된 아들의 멱살을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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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죽이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 자기보다 일찍 잠들었다며, 자는 아이를 깨워 삽 자루로 머리와 등을 구타하는 등의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남편은 이효영이 차린 생일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구타를 시작하였고, 구타하 다 지치면 자고, 다시 일어나 구타하기를 반복했다. 남편은 “이년아 이제까지 참았 는데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을 하며 구타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효영은 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말만 귀에 계속 맴돌 아‘이렇게 하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다시 살아나서 때리지 못하도 록 했을 뿐이었던 이효영은 정당방위를 주장하여 재판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을 선고 받았다.

무차별적인 구타, 칼로 협박, 성적 학대를 12년간 일삼은 가해자에 법원은 ‘다정한 아버지, 마음 여린 남편’ 김정미 사건(2000. 04. 23) 12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김정미의 남편은 “어느 놈하고 놀고 왔냐”며 의심하고 괴롭혔으며, 여러 차례 직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배를 발로 차고, 머리 채를 잡아 끌고 다니고, 칼을 들어 행패를 부렸다. 칼을 들고 협박하기도 했는데, 술을 마시고 “찢어 죽인다, 갈아 먹어버린다” 등의 폭언을 하였다. 칼로 김정미의 몸을 그으면서 겁을 주었고, 매일 성관계를 요구했고 가학적 성행위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김정미는 자녀들을 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알지 못하게 하 기 위해 남편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었다. 이혼을 결심하고 친언니 집으로 피해 갔지만, “정말 잘 살아 보겠다”는 남편의 말에‘아이들을 엄마, 아빠 밑에서 제대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남편과 합쳤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정미의 남편은 도박 을 하고, 집에 휘발유를 뿌리며 같이 죽자고 난동을 부렸다. 김정미는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집으로 왔으나 가해자는 계속 찾아와 폭력을 행사 하고 친정식구들에게도 식칼을 던지고 가재도구를 부수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 남편은 이혼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면서 김정미를 때렸고 칼을 찾다가 칼이 없자 가위로 김정미를 협박하였다. 그리고 성행위를 강요하였다. 거부 하는 김정미에게 남편은 가위로 찌르려고 했고 이러한 상황에서 남편이 사망에 이 르게 되었다. 검찰 측에서도 정당방위 인정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해 치사로 기소하였으나 1심 에서 정당방위 주장은 인정되지 않고 징역3년 집행유예5년이 선고되었다.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남편을‘어린 두 자녀를 만나지 못하여 가슴 아파하는 다정한 아버지, 재결합을 간절히 원하고 김정미를 크게 원망하지 않는 마음 여린 남편’이


라고 표현하면서,‘사건 당일 김정미를 협박 폭행한 것은 동거 중에도 있었던 정도 의 것이지 특별히 심하였던 것은 아닌데, 김정미가 가해자에 대한 정이 떨어진 나 머지 가해자의 언동을 전과 달리 과대하게 받아’라고 사건을 지나치게 남편의 입장 에서 해석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2년을 선고하였다.

“그 날 저는 남편의 얼굴이 시커멓게 보였다. 꼭 무엇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저승사자처럼 얼굴이 시커멓게 생긴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최경주 사건(2004. 04. 21) 남편은 의처증이 심각하여 최경주를 의심하고 늘 구속했다. 자녀들을 혼외자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남편은 생업에는 관심이 없고 늘 술을 마시러 다녔고, 최경주는 거의 혼자 집안일 가게 일을 도맡아 하며 어렵게 지냈다.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119 구급차로 실려가기도 하고 심한 구타로 인해 시댁식구가 최경주의 얼굴을 알 아보지 못한 정도였다. 자녀들 앞에서도 폭행을 하였고, 아이들에게도 폭언과 폭행 을 행사했다. 특히 큰 아이를 최경주와 닮았다며 자주 폭행하였다. 포르노를 보고 서 그대로 해보자며 원치 않은 성행위도 강요하였다. 사건 당일 최경주에게 칼을 내밀며,“이 씹할 년아, 어디 한번 찔러봐라”며 폭력 을 행사하는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방송 등 언론에도 보도되기도 한 이 사건은 재판상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인정되었으나 ‘남편을 잔인하게 살 해’하였다며 1심에서 징역 8년, 항소심에서 징역 5년 선고 받았다.

“술만 먹으면 아빠가 몸을 아무데나 만져서 울고 있는 딸과 피를 흘리고 있는 10살 배기 아들을 보며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지선 사건(2004. 08. 27) 이지선과 남편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에서 근무하여 겉으로는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는 단란한 결혼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이지선과 자녀들은 남편의 폭 력에 시달려 왔다. 특수부대의 특공무술 소유자였던 남편은 채찍을 이용하여 이지선을 폭행했고, 이 지선 늑골이 부러지기도 하였다. 또한 친정식구들에게도 칼을 휘둘었다. 아내 강간 도 심각하였다. 심지어 자녀들 앞에서도 성행위를 요구하고 폭행하였다. 자녀들에게도 신체적, 정서적, 성적 폭력을 행사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딸의 몸을 만지고 음부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등의 성추행을 일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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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이지선의 남편은 딸에게 성추행을 했고 차라리 목을 조르라는 딸의 말 에 “아빠인 내가 딸에게 첫 번째 남자여야 하고 그 것이 아빠의 의무다”라며 아랑 곳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여 머리에 피가 나기 도 했다. 사건 후 ‘술만 먹으면 아빠가 몸을 아무데나 만져서 울고 있는 딸과 피를 흘리고 있는 10살 배기 아들’을 보며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이지선은 경찰 조사에서 이 야기 한다. 정당방위를 주장했으나 이지선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노력하였다 면 가정폭력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징역 2년을 선고 받았 다.

큰 딸에게도 심한 성학대, 수차례 신고하였지만 경찰은‘집안싸움’이라며 외면하였다. 이선영 사건(2005. 11. 15) 이선영의 남편은 심한 의처증으로 피해자의 머리채를 잡고 목을 조르거나 구타 하는 일이 잦았고 한 번은 각목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때려 입원하게 만든 적도 있 었다. 세 자녀에게도 잦은 폭력을 행사하였는데, 특히 큰 딸이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음부에 손가락을 넣어 피가 나게 했고, 목욕할 때 들어와 “변태 짓을 하자” 고 하는 등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가 심각했다. 이선영은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였지만 출동한 경찰은 집안싸움이라고 외면하거나 남편을 달래고 돌아갔다. 오랜 학대에 시달리던 이선영은 자녀를 먹이려고 한 돼지 고기를 남편이 소주로 바꿔 마시고 오자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이 사건은 ‘김미화의 u – 가정폭력의 끝 살인으로 끝나야 하나’에 방영되는 등 언론에 관심 을 받았다. 1심에서 징역5년이 선고 되었고, 2심에서는 피학대여성증후군이 인정되 어 징역3년을 선고받았다.

오랜 기간 동안 남편으로부터의 폭력이나 학대에 시달려온 피고인의 특별한 심리상태를 수긍, 객관적으로 법익에 대한 침해나 위난이 현존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현미 사건(2006. 04. 06) 조현미는 남편과의 30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심한 폭행과 학대를 당해왔다. 재


판 중 전문가 진술에서는 지속적인 학대로 인한 우울증, 신경과민, 불안증, 공황장 애 등의 심각한 피학대여성증후군을 경험하고 있다고 하였다. 술에 취한 남편이 조 현미에게 욕설을 하며 가슴을 밀쳤고 도망가는 조현미를 쫓아가 애완견을 얼굴에 집어던지는 등의 폭력을 행사하였다.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문을 잠근 조현미에게 한참 동안 친정 식구들에 대한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폭언을 거듭하였다. 이에 조현미는 남편이 이제는 자신의 친정 식구들마저도 죽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법으로 살해하였다. 법원은 지속적이면서도 일방적으로 당해 온 가정폭력이나 학대 때문에 형성된‘중 등도 우울증 에피소드’또는 그로 인한 충동조절의 장애 등으로 말미암은 심신미약 을 인정된다고 하여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보호관찰 5년을 선고하였다.

이혼을 하여도 자식들 걱정에 다시 살 수 밖에 없었다. 이상미 사건(2006. 12. 11) 이상미는 온화하고 착한 성품으로 동네 사람들의 지지가 많았고 친구관계도 원 만하였다.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집에서 권유한 대로 결혼을 하였는데, 남편은 37 년의 결혼생활동안 외도, 폭행과 멸시 등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하였고 이에 이상미 는 계속된 우울증, 불면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주위 가족들도 이상미가 남 편에게 자주 맞고 무시를 당해왔다고 이야기하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였고 수차례 경찰에 신고하였으나 보호 받지 못하였다. 정신과의 권유로 산악회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회장을 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활동을 싫어하여 좋지 않은 소문을 유포해 활 동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사건 1년 전에 협의 이혼을 하였으나 자식들 걱정에 다 시 같이 살 수 밖에 없었다. 사건이 일어나던 날, 신문을 보고 있는 이상미에게 “정신병자가 무슨 신문이냐”며 폭언을 하고 주먹으로 머리를 구타하였고 이러한 와중에 남편이 사망에 이르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상미는 징역2년에 치료감호 명령을 받았다.

경찰조사과정에서 문제와 언론의 보도태도로 더욱 고통 받았던 피해자 김정화 사건(2007. 06. 17) 김정화는 합기도 유단자였던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2006년에서 2007년까지 3차 례 이상 입원했고, 코뼈가 부러져 수술치료까지 받았다. 남편은 김정화를 욕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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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고 가 머리를 발로 밟고 물고문을 하는 등의 행위를 했으며, 폭행을 피해 도망 치는 김정화를 향해 칼을 던지기도 했다. 김정화는 자주 얼굴에 멍이 들어 회사를 하루 이틀 쉬기도 했으며, 급기야 일주일 씩 회사를 나가지 않는 등의 사정이 반 복되어 직장을 아예 그만두게 되었다. 남편은 돈이 필요하다며 축의금을 걷어야 겠다며 결혼식을 올렸고 남편은 갑자기 김정화의 목을 발로 밟아 짓누르고 배를 발로 차는 등 심각한 구타를 했다. 김정 화는 영문을 모르는 채 맞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남편이 축의금이 든 봉투를 들고 나가려고 하는 찰나였다. 김정화는 걱정이 되어 말리려고 했으나 그 과정에서 도 계속 구타당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화는 칼을 뒤로 빼려는 등 실랑이가 있었고, 남편은 과도에 찔려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이미 남편에게 폭행 을 당하여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인 김정화에게 긴 시간에 걸쳐 ‘결론이 정해진 수사’를 하면서 고통을 받게 하였다. 현장에서 한 경찰은 경찰서 가면 자세히 조사할 거니까 그냥 간단히 ‘이렇게 이 렇게 해서 찔렀다’고 쓰라고 하였다. 또 “우리가 이 일을 많이 해봐서 잘 알아 전 남편 이혼하고 아등바등 애들 키우다가 재혼이라고 했는데 못된 놈을 만나 맨날 두들겨 패기나 하고 결혼식 날까지 때리니까 얼마나 승질 나겠어 거기다 축의금까 지 들고 도망을 가니 배신감에 분해서 쫓아가서 찔렀다고 그래, 그게 오히려 판사 한테 동정심을 살 수 있는 방법이야, 알았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도 김 정화를‘축의금 때문에 남편을 살해한 비정한 여성’으로 보도되었다. 살인의 고의를 부정한 김정화에게 반성하지 않는다며, 1심에서 징역12년, 항소심 에서 징역11년을 선고되었다.

가정폭력으로 삶 자체가 충격이었던 그녀의 인생에 법원은 “사회적 큰 충격을 주었기에 엄한 처벌 필요” 박민경 사건(2009. 06. 26) 남편은 결혼 후 26년 간 술에 취하면 폭언과 폭행을 가하고, 가재도구를 부수며, 들고 있는 물건을 던지고, 공기총과 칼을 들고 박민경가 아이들을 죽이겠다고 협박 하는 등 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박민경이 둘째 아이를 임신하자 임신중절수 술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자 온갖 폭언과 폭행을 하였고, 출산한 당일에도 회복중 인 박민경씨의 배를 발로 차서 며칠 동안 하혈을 한 일도 있었다. 남편은 공기총을 들고 와 박민경과 딸을 향하여 조준하면서 위협을 하고, 이에 박 민경이 제지하자 방아쇠를 당겨 공기총이 발사되어 천정을 맞추고, 남편은 자신을 제지하였다는 이유로 들고 있던 총으로 박민경의 친정식구를 죽이겠다고 소리치면


서 밖으로 달려 나가기도 하였다. 박민경은 폭력으로 인해 무릎이 꺾여 연골주사를 9차례 맞고, 무릎과 허리, 손가 락을 다쳐 백여 차례 이상에 걸쳐 병원치료를 받았고,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 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을 받아 우울증과 불면증을 앓는 등 심각한 심적인 고통을 겪었다. 사건 당일 자신과 자식들이 평안해지는 방 법으로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박민경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기에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1심에서 10년, 항소심에서 8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결혼을 실패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김가희 사건(2011. 06. 03) 김가희는 평소 남편의 폭력과 이중적인 모습, 이해할 수 없는 시댁의 처사 등을 대하면서도 남편의 불행한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본인이 감싸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남편의 여자문제와 빚 문제에 대하여 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지속적으로 무시당하자 극단적으로 고함을 지르거나 자해 소동을 벌여 겨우 대화를 이끌어내 곤 했다. 남편과의 결혼이 재혼이었기 때문에 이번 결혼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여 가정폭력 사실을 주변에 숨겨 왔다. 사건 당일 남편은 김가희의 목을 졸랐고 이에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자신은 자살시도를 했다.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경 찰조사과정과 재판과정에서 자신을 제대로 변호할 수 없었다. 2심에서 변호인은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하고자 신청했으나 전문가상담은 초기에 했어야 한다는 판사의 말에 의해 전문심리위원제도는 채택되지 못하고 1심에서 9년, 항소심에서 8년을 선고받았다.

국민참여재판 중 검사는,“이 사건은 필리핀 여성의 일이 아니다. 분당에 집이 두 채 있는 상류층의 사건이다. 정확히 판단해 달라” 김자영 사건(2011. 11. 15) 41년간의 결혼 생활동안 김자영의 남편은 기분이 아주 좋다가도 사소한 일에 불 같이 화를 내며 물건을 마구 집어 던지고, 눈에 보이는 뭐든지 들어 때렸다. 김자 영과 두 딸들은 가죽혁대로 맞은 적도 있고, 연탄집게나 칼에 찔린 적도 있었으며, 구둣발에 무릎 연골이 나간 적도 있었다. 또한 이가 부러져 치료를 받은 적도 있

살인과 젠더 33


었다. 남편은 칼이나 권총을 이용하여 폭행을 하였으며, 심지어 실제로 피해자를 칼로 찌른 경우도 수차례 있다. 김자영의 몸에는 칼자국의 흉터가 4군데나 있으며, 김자영의 두 딸도 싸움을 말리다가 칼에 찔려

흉터가 남아 있다.

김자영의 남편은 혼인 초기부터 의처증 증세가 시작되었는데, 김자영씨가 일을 마 치고 조금만 늦게 들어오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왔다고 검사를 한다며 락스물에 소독을 하였을 정도였다. 또한 큰 딸의 가슴과 음부를 만지고 둘째 딸의 음부를 오랫동안 쳐다보는 등 딸에 대한 성폭력도 있었다. 두 딸들은 학창시절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일도 있었지만 경찰에서는 멀쩡한 직 업을 가지고 있고, 술에 취하지도 않은 남편이“아무 일 없다, 신고가 잘 못 된 거 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무런 확인도 없이 돌아갈 뿐이었다. 김자영의 차녀는 국 민신문고 홈페이지에 본인 가정의 가정폭력 경험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글을 게 시하였으나 담당부서인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의 답변 내용은 전국가정폭력상담소 협의회,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해당 지역 1366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정도에 그쳤다. 사건 당일에는 가해자가 주방에서 길이 20센티미터 가량 되는 식칼을 들고 죽여 버리겠다고 위협하면서 쫓아왔고 김자영은 도망가는 급박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김 자영씨가 미처 일어서서 도망가지 못하고 넘어져 반쯤 누운 상태에서 가해자는 김 자영씨의 눈에 칼을 겨누며 “칼을 찔러 소경을 만들까? 아니면 배때기를 찔러서 난도질을 할까? 아니면 연탄집게를 벌겋게 달궈서 확 찍어 놓을까?”라고 하면서 협박을 하였고 이에 김자영씨가 다신 안 그러겠다며 용서해달라고 “우리 애들이 결혼할 때까지만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가해자는 “도망가면 죽인다”라고 위협하 며 잠이 들었던 상황에서 남편이 사망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었고 징역 5년이 선고 되었고 3심에서 확정되 었다. 국민참여재판과정에서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이 사건은 필리핀 여성의 일이 아니다. 집이 두 채 있는 상류층의 사건이다. 정확히 판단해달라”, 판사는 “최근에 신고한 기록이 없으니 폭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등의 발언을 하는 등 가정폭 력 피해자는 일반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렵고 학력도 낮은 계층에서 발생한다는 가 정폭력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여러 번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 었던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판단하였다

직장에서는 유능하고 모범적인 남편, 그러나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이었다. 김명희(2012. 03. 03)


교육자 집안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김명희는 마 음이 여리고 착하며 형제간, 교우간 대인관계도 아주 원만하였다. 중매로 결혼한 남편의 직업은 장학관이었다. 밖에서는 점잖고 교양있다는 평가를 들으며, 직장에 서 유능하고 모범적이며 대인관계도 원만하였지만, 집에 돌아오면 완전히 달라지는 이중적인 성격의 사람이었다. 자녀들 앞에서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김명희에 대하여 죽여버리겠다는 폭언과 욕 설, 구타 등을 일삼고 칼을 갖다 대기도 하였으며, 김명희를 심하게 폭행하여 상해 를 입히고, 폭행 후에는 김명희의 머리채를 잡거나 하여 방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 행을 하였다. 자녀들이 있는 곳에서도 김명희의 옷 속에 손을 넣는 등의 추행을 하였으며, 김 명희를 하인 취급을 하며 일상생활에 대해서도 철저히 감시하여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게 하였다. 친정 식구들을 만나는 것을 물론이고, 전화통화를 하는 것조차 싫어하여 마음대로 전화를 하기도 어려웠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는 김명희와 아픈 딸에게 “둘 다 죽어라, 없어져라” 하는 폭언을 하고, 폭행을 일삼았다. 어느 날은 술을 마시고 들어와 피해자를 폭행하였는데 피해자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응급실에 실려간 일도 있었다. 119 구급대원이 피해자에게 신고할 것인지 의사를 물었으나 당시 장학관인 남편의 사회적 위치와, 아픈 둘째 딸을 생각하여 신고하지 않았다. 이후 남편은 “신고도 못하는 무식한 년”이라며 김명희를 더욱 무 시하였다. 집에서 둘째 딸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던 중, 딸이 있는 앞에서 김명희의 바지를 벗기고 추행을 하려는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김명희는 징역5년을 선고 받고 현 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입니까?” - 정숙현 아들의 증언 중

정숙현 (2012. 7.17)

정숙현은 어릴 적 부모님이 가정폭력을 원인으로 이혼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았 으나 이후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생모에게로 가서 생활 하였다. 남편은 처음에는 정숙현에게 다정하게 대하였으나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 갔으며 정숙현이 헤어지려고 하자 직장과 가정에 찾아와 협박을 하는 등으로 헤어 지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간이 발생하였고, 이를 통해 임신하게 되 어 정숙현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후 남편은 도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였고, 정숙현은 칼국수 집을 운영하며

살인과 젠더 35


생계부양의 의무를 감당하였다. 가정폭력으로 남편과 이혼하였으나 양육비조차 탕 진하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과 다시 재결합하였다. 남편 은 365일중 360일을 술울 먹었으며 정숙현을 잠을 자지 못하도록 괴롭히고, 이유 없이 물건을 집어던지며 폭언과 폭행을 행하였고 강압적인 성관계도 행하였다. 남 편이 어떠한 행패를 부릴지 몰라 정숙현은 늘 불안증세에 시달리게 되었고 수면제 없이는 잠에 들지 못하게 되었으며, 환청까지 듣게 되었다. 또한 남편은 큰아들의 방에 들어가 ‘죽어’라고 외치며 아들의 목을 조르는 등 자 녀에 대한 폭행까지 가하였다. 남편이 정숙현을 폭행하는 것을 보다 못한 큰 아들 이 남편을 가격하여 경찰서에 다녀오는 일까지 발생하였고 이에 정숙현은 자신의 아들이 범죄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불안해하였다. 이러한 불안이 고조 되어 사건 당일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자녀 방으로 가는 남편의 모습에서 공 포를 느껴 남편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정당방위 사건지원팀’ 을 구성하여 정숙현 사건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피 묻은 칼, 사체사진, 장기해부사진 등 자극적인 자료들을 보여주었다. 변호인의 주장이 상당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은 1심에서 5년 을 선고받았고, 이후 항소심에서 4년을 선고받았다.

2. 나이, 관계지속기간, 자녀유무, 형량 등 <표3 사건발생일, 나이, 관계, 자녀, 자녀폭력, 판결 > 이름 (가명)

사건발생일

당 시 나 이

관계 지속 기간

자녀 (당시 나이)

자녀폭력 (구체적 상황)

1심

2심

남수연

1991-02-06

32

10

아들1(9)

있음

징역3년

징역3년 집유5년

해당 없음

이윤정

1993-02-21

38

15

자녀2(미상)

있음

징역5년

징역4년

상고 기각

이세영

1994-01-16

40

23

딸1(22), 아들2(21, 20)

있음

징역4년

징역3년

해당 없음

김윤아

1995-03-25

42

18

딸2(17, 13)

있음

징역7년

해당 없음

이유리

1996-04-16

미 상

13

딸1(미상), 아들1(미상)

있음

징역5년

징역3년 집유5년 징역3년 집유5년

최수영

1995-06-25

35

13

딸2(13, 미상)

있음 (딸성추행)

징역4년

항소기각

해당 없음

김재희

1997-10-24

60

38

딸1(미상), 아들2(미상)

있음

징역3년

해당 없음

이동수

1998-02-08

13

딸2(미상)

불분명

징역3년

징역3년 집유5년 징역3년 집유5년

이효영

1999-01-11

25

딸1(미상), 아들1(18)

있음

징역3년 집유5년

해당없음

해당 없음

미 상 40 대

판결 3심

해당 없음

해당 없음


후 반 미 상

불분명

징역3년 집유5년

징역2년

상고 기각

있음

징역8년

징역5년

해당 없음

징역3년

징역2년

해당 없음

징역5년

징역3년

해당 없음

불분명

징역3년 집유5년 보호관 찰

항소기각

해당 없음

딸2(33, 29), 아들1(24)

불분명

징역2년

해당 없음

5~6

딸2(23, 미상)

불분명

48

26

딸1(미상), 아들1(미상)

있음

징역12 년 징역10 년

징역2년 치료감호 징역11 년 징역8년

해당 없음

2011-06-03

34

3

아들1(미상)

없음

징역9년

징역8년

상고 기각

김자영

2011-11-15

65

41

딸2 (37, 20대)

있음 (딸성추행)

징역5년

항소기각

상고 기각

김명희

2012-03-03

55

30

딸2(29, 28)

있음

징역5년

항소기각

해당 없음

정숙현

2012-07-17

40

19

아들2 (19, 13)

있음

징역5년

징역4년

상고 기각

12

딸1(11), 아들1(7) 딸1(9), 아들1(11) 딸1(14), 아들1(11) 딸1(15), 아들2(14,12)

김정미

2000-04-23

최경주

2004-04-21

47

14

이지선

2004-08-27

42

15

이선영

2005-11-15

36

20

조현미

2006-04-06

48

30

딸1(미상), 아들1(미상)

이상미

2006-12-11

60

37

김정화

2007-06-17

43

박민경

2009-06-28

김가희

있음 (딸성추행) 있음 (딸성학대)

상고 기각

1) 나이 및 관계지속기간 나이가 확인 가능한 18명의 피해자67)의 연령은 30대부터 60대까지로, 구체적으 로 30대 5명, 40대 9명, 50대 1명, 60대 3명의 분포를 보였다. 관계지속기간은 최소 3년(김가희)부터 최고 41년(김자영)까지 나타났다. 10년 이 하가 3건, 11년 이상 15년 이하가 7건, 16년 이상 20년 이하가 3건, 21년 이상 25년 이하가 2건, 26년 이상 30년 이하가 3건, 31년 이상이 3건으로 평균 약 20 년이다. 전체 사건에서 보면 연령으로는 40대가, 관계지속기간으로는 11-15년 사 이의 분포가 가장 많지만, 그 외의 전 연령에서 비교적 고른 분포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피학대여성의 가해자68) 살해 사건은 여성의 전 연령, 관계의 전 기간에 걸 쳐 상시 발생할 가능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2) 자녀유무 자녀유무가 확인 가능한 피해여성 중 1명의 자녀가 있는 경우는 2건, 2명의 자녀 67) 글에서 피해자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말한다 68) 글에서 가해자는 ‘가정폭력 가해자’를 말한다

살인과 젠더 37


가 있는 경우는 15건, 3명 이상의 자녀가 있는 경우는 4건이었다. 이 중 재판기록이나 상담 내용에 나타난 가해자의 자녀에 대한 폭력은 총 16건에 서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그 가운데 딸에 대한 성폭력이 동반된 경우도 4건이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3) 형량 (1) 시기별69) 분석(지원한 건수) 통시적으로 보았을 때 피학대여성의 가해자 살해 사건의 형량은 2000년의 김정 미 사건70)을 기점으로 큰 폭으로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 1991-1999년에 발생했 던 9건의 사건 가운데 최종적으로 집행유예판결을 받은 사건은 6건이며, 가장 높게 선고된 징역형이 4년이었다. 그에 비해 2000년 이후 발생한 12건의 사건 가운데 최종 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건은 1건(조현미)에 불과했다. 가장 높게 선고된 징역형이 11년(김정화)에 달하고, 가장 낮게 선고된 징역형이 2년(이지선, 이상 미)이었다. 그 밖에도 징역 8년이 선고된 사건이 2건, 징역 5년이 선고된 사건도 3건이나 된다.

<표4 전체 사건 대비 집행유예 선고 사건 비율> 전체 사건 수

집행유예 선고 사건 수

비율

1991년~1999년

9

6

66.7%

2000년~2012년

12

1

8.3%

<그림 1 시기별 형량 변화> 12 10 8 6 4 2 0

11 4 0

3

2

2 0

0

0

0

3.5

8

6.5

5

3 1

1991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4 2005 2006 2007 2009 2011 2012

* 연도별 평균, 집행유예는 0으로 표시

69) 사건발생일 기준. 70) 김정미 사건의 경우 1심에서 징역3년, 집행유예5년이 선고되었으나, 2심에서 징역2년이 선고됨.


사안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사건에서도 90년대와 2000년대의 형량은 차이를 보인다. 90년대의 김윤아 사건과 2000년대의 김자영 사건은 모두 폭력을 행사하 던 가해자가 잠든 사이 피해자가 가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으로, 사건 당 일의 상황이 거의 비슷하다. 또한 김윤아의 경우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당하는 등 심각한 성적 학대를 당하였고, 김자영은 40여년의 기간에 걸쳐 신체적, 정서적, 성적 고통을 받았다. 그럼에도 김윤아 사건에서는 집행유예 판결이, 김자영 사건 에서는 징역 5년의 실형이 선고되는 등 큰 폭의 양형 차이를 보인다. 또한 최근 지원한 사건의 경우, 3건의 사건에서 1심에서 모두 5년형 선고되어 형이 정형화되는 듯한 인상을 보인다. (2) 심급별 분석 1심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는 1건(이효영), 2심에서 확정된 경우는 14건, 3심에서 확정된 경우 6건으로 대부분 2심에서 형이 확정 되었다. 2심으로 가는 경우,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18건 중에 3건은 기각, 9건은 형 이 감경되었고,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경우는 5건, 치료감호 명령을 받은 경우는 1 건이었다.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사건 2건 중에 1건은 기각 되었고, 1건 (김정미)은 실형이 선고 되었다. 3심까지 간 6건의 사건은 모두 기각 되었다.

3. 정당방위 1) 정당방위 개념 및 성립요건 (1) 정당방위의 개념과 사상 정당방위는 불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한 자를 형사적으로 처벌하지 않기 위해 개발된 법리다. 하지만 그 성립요건과 효과는 각 국의 법체계와 입법례에 따 라 상이하다. 한국 형법은 제21조 제1항에서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 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 한다”고 규정한다. 이와 같은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행위자의 위법성이 조각된다. 허용 근거로는 개인적 차원의 자기보호의 원리와 사회적 차원의 법수호의 원리를 든다. 정당방위 는 로마법 이래 인간의 고유권으로 자연법상 권리 중 하나로 인정되어 왔으며, 사

살인과 젠더 39


회적 측면에서도 피해자의 자기방위가 동시에 사회 전체 법질서를 지킨다는 이유 로 인정되었다. (2) 정당방위의 성립요건 정당방위의 구체적 요건으로는 현재성, 침해의 부당성, 방위의사, 상당성 등을 들 수 있다. ① 현재성은 법익에 대한 침해가 바로 발생하였거나 또는 아직 계속 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음으로 ② 침해의 부당성은 위법성을 말하며 부당한 침해인 이상 정신병자나 유아 등 책임무능력자의 침해에 대하여도 원칙적으로 정 당방위가 가능하다. ③ 방위의사는 정당방위에 있어서의 주관적 정당화요소로서, 방위행위자는 자신이 위법한 침해에 대해 방위한다는 인식과 의사를 지녀야 한다. 마지막으로 ④ 상당성은 방위행위가 사회상규에 비추어 상당한 정도를 넘지 아니 하는 것을 말한다.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하여 침해된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판단한다.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니라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의 형태도 포함되나, 그 방 어행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 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71) 2) 정당방위 주장유무 및 부정이유 표에서 보듯이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원한 21건의 사건 중 정당방위를 주장한 사 건은 11건이다. 1심에서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주장한 사건은 총 10건이며, 1,2심 에서 주장하지 않다가 3심에 이르러 주장한 사건이 1건(김가희)이 있었는데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않아 기각되었다. 정당방위가 인정된 경우는 1건도 없었으며, 정당방위를 부정한 이유가 확인되는 7건의 사건 중 현재성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사건은 1심에서 1건(김 명희), 2심에서 1건(이지선), 3심에서 1건(이윤정)이고, 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건 은 현재의 침해가 없거나 상당한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정당방위 주장을 부정 하였다.

<표 5 정당방위 주장유무 및 정당방위 부정이유> 이름 (가명)

정당방위 주장유무 1심 2심 3심

정당방위 부정이유 1심

2심

71) 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2540 판결, 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3도3606 판결 등 참조

3심


남수연

O

O

-

-

-

상당성의 정도를 벗 어난 공격행위 행위 로서 방위행위에 해 당하지 아니하다.

새로운 침해행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남아 있었 다 하더라도, 그 공격성의 정도에 비추어 이를 자기 의 생명, 신체를 방 위하기 위한 행위 로 평가하기는 어 렵다.

이윤정

O

O

O

신체나 생명에 대한 급박한 위협을 방어 하기 위한 상당한 행 위가 아니다.

이세영

O

O

-

자료 없음

현재의 부당하고 급 박한 침해가 있었다 고 할 수 없음이 명 백하다.

-

자 료 없 음 X X X X

자 료 없 음 -

-

-

-

이유리 최수영 김재희 이동수

자 료 없 음 X X X X

-

-

이효영

O

-

-

법익에 대한 현재의 침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 폭행을 방위하기 위 하여 사회적으로 상 당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상대방의 불법한 공 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를 벗어 나기 위한 저항수단 으로서의 소극적인 방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적극 적인 반격행위에 해 당한다고 할 것이어 서, 위 행위가 자기 의 법익에 대한 현재 의 부당한 침해를 방 어하기 위하여 사회 통념상 허용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라거나, 방위행 위가 그 정도를 초과 한 경우에 불과하다 고 할 수는 없다. 가정폭력으로부터 자 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피난 행위로서의 한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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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력으로부터 자신 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로서의 한 도를 넘어선 것이라 고 하지 않을 수 없 고, 따라서 이러한 방위행위는 사회통 념상 용인될 수 없 는 것이므로, 자기 의 법익에 대한 현 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 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거나, 방위행위가 그 정도 를 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방위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법익에 대 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 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거나, 방위행 위가 그 정도를 초 과한 경우에 해당 한다고 할 수 없다.

김윤아

김정미

O

O

O

최경주

X

X

-

이지선

O

O

-

폭행 및 성추행이 반복되어 사건 당시 현재의 침해가 있다 고 볼 여지가 전적 으로 없는 것은 아

-

살인과 젠더 41


넘어선 것으로서 사 회통념상 상당성이 있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다.

이선영

X

X

-

조현미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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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미 김정화 박민경 김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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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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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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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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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범행 당시 객관적으로도 피고인 등의 법익에 대한 침 해나 위난이 현존하 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료 없음 정당방위 상황은 종 료되어 현재의 부당 한 침해 요건을 인정 할 수 없다. 또한 침해행위가 중 단된 상황이었음에도 그 장소를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에 서 상당성 요건이 충 족되지 않는다. 침해행위가 그 후에 도 반복하여 계속될 염려가 있다면 이 사 건 범행 당시 피고인 에 대한 현재의 부당 한 침해나 현재의 위 난이 있었다고 볼 여 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행 위는 사회통념상 상 당성이 없으며 과잉 방위나 과잉피난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

니다. 해결을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아 니하였고, 생명은 우월한 가치로서 존 중받아야 하므로 폭 력으로부터 자녀와 자신을 방어하기 위 한 방위행위로서의 상당성 있는 행위임 을 인정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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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없음 원심이 침해의 현재 성 및 상당성에 관 하여 위와 같이 판 시한 것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이 가 고, 이 사건 범행 당시 객관적으로 법 익에 대한 침해나 위난이 현존하고 있 었다거나 행위에 상 당성이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적법한 이유 없음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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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없음

(1) 논리성을 결여한 침해의 현재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 현재성을 부정한 사건의 판결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세영 사


건에서 가해자는 새벽 2시경 집에 들어와 갑자기 가구들을 부수기 시작하고 자녀 에게 소리치며 컵을 깨부수고 있었음에도 법원은“이 사건 범행 당시에는 가재도구 를 부수다가 안방 벽에 기대어 있었을 뿐, 피고인[이세영]이나 가족들의 생명이나 신체에 어떤 위해를 가하거나 가하려고 한 상황은 아니었던 사실”72)을 언급하며 현재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김자영 사건도 비슷하다. 당시 가해자가 주방에서 20cm가 넘는 식칼을 가져와 김자영을 넘어뜨리고 눈에 칼을 겨누며 협박을 하던 도중 김자영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자기 발을 김자영 발목에 올려놓은 채 잠시 잠 들었던 상황에서 법원은‘칼로 위협하다 잠에 들기 시작함으로써 침해행위는 일단락 되어 그 단계에서 정당방위 상황은 종료되어 현재의 부당한 침해 요건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법원은 침해의 현재성을 부정했다. 또한 이효영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이효영과 자녀를 구타하다가 잠시 잠이 들었던 상황에서 ‘잠든 지 악 3시간 후에 이 사건 범행을 범한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 건 범행 당시에는 가해자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침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현재성이 부정되었다. 이윤정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옷을 벗기며 멱살과 머리칼을 부여잡고, 칼 을 들이대며 같이 죽자고 말하는 등 피해자를 구타하고 협박하던 상황에서 법원은 “낯선 사람이 칼을 들어 위협한 행위와는 그 위험성과 긴박성의 정도를 달리한다 고 보아야 할 것”73)이라고 하여 가정 폭력의 위험성과 긴박성을 낯선 사람이 행하 는 위협에 비해 낮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편, 현재성을 인정한다고 볼 여지가 있는 판결은 다음과 같다. 가해자가 잠든 상황이거나 더 이상 구타를 하지 않는 중이었던 상황에서 사건이 벌어진 이지선, 김명희 사건에서 현재성을 인정할 여지를 남겨 두었다. 이지선 사 건의 당일 상황을 보면 가정폭력가해자가 이지선과 자녀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딸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던 도중 잠이 들었는데, 이에 법원은 “비록 피해자가 피고 인과 자녀들에 대한 폭행 및 딸에 대한 성추행을 반복하여 이 사건 범행 당시 피 고인과 자녀들에 대한 현재의 침해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74) 라고 판시하였다. 김명희 사건은 자신을 추행한 남편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하였으나 1심 법원 은 증인들의 진술과 제출된 증거에 의하여 피해자가 남편으로부터 수시로 폭행과 폭언을 당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러한 침해행위가 그 후에도 ‘반복될 염려’가 있다면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에 대한 72) 서울고등법원 1994. 11. 4. 선고 94노2240 판결. 73) 부산고등법원 1993. 11. 11. 선고 93노950 판결. 74) 서울고등법원 2005. 5. 13. 선고 2005노20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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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부당한 침해’나 ‘현재의 위난’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하였다. 위에서 보듯이, ‘안방 벽에 기대어 있을 뿐’(이세영 사건), ‘잠이 들어 침해 행위가 종료되었다’(김자영 사건), ‘잠든 지 3시간이 지난 후’(이효영 사건), ‘낯선 사람이 칼을 들어 위협한 행위와는 그 위험성과 긴박성의 정도를 달리한다’(이윤정 사건) 등의 이유로 현재성을 부정하였고, 현재성을 인정한다고 볼 여지가 있는 판결들은 ‘반복될 염려’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앞에 기술했듯이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원한 21건에서, 가정폭력피해자들은 평균 20년간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노출된다. 이는 평균 20년간 폭력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결에 따르면 ‘반복될 염려’가 있으면 당일 상황이 ‘가해자가 잠이 든 상황’(이지 선 사건)이라도, 나아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잠이 든 상황을 만들었음’(김명희 사 건)에도 현재성을 인정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41년간 성적학대, 신체적, 정서적 폭력을 당해 온 김자영 사건, 25년간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이효영 사건은 사건 당일 ‘잠이 든 상황’이라는 이유로 현재성이 부정되었다. 심지어 이세영 사건의 경우‘폭행이 반복될 염려’가 있지만 사건 당일의 폭력이 중 단된 상황이었다고 현재성이 부정되었다. 이는 정당방위 인정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의 하나인 침해의 현재성에 대한 재판부의 논리가 섬세하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판 단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윤정 사건에서는 “낯선 사람이 칼을 들어 위협한 행위와는 그 위험성과 긴박성의 정도를 달리한다고 보아야 할 것”75)이라고 하여 가정폭력의 위험성과 긴 박성을 낯선 사람이 행하는 위협에 비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 했듯이, 2012년 언론에 보도된 것만 3일에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다는 것을 봤을 때, 가정폭력의 위협성과 긴박성을 ‘사소하게’ 인식하고 있다 볼 수 있다. (2) 단 한 번도 넘지 못한 사회통념상 상당성 있는 행위의 판단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침해의 현재성 뿐 아니라 방위행위가 사회통념상 상당성 있는 행위여야 한다. 그 동안 한국사회에서 가정폭력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에서 피해자의 행위를 ‘사회통념상 상당성 있는 행위’로 인정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비록 먼저 가위 등으로 폭행 협박당하여 이에 맞서 칼로 찔렀다고 하더라도 위 행위는 상대방의 불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저항 75) 부산고등법원 1993. 11. 11. 선고 93노950 판결.


수단으로서의 소극적인 방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인 반격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어서, 위 행위가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 어하기 위하여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라거나, 방위행위 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 불과하다고 할 수는 없다.”(김정미 사건)

“그 공격성의 정도에 비추어 이를 자기의 생명, 신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평가하기는 어렵고” (이윤정 사건) 판례에서는 정당방위의 성립요건으로서의 방어행위에는 순수한 수비적 방어뿐 아 니라 적극적 반격을 포함하는 반격방어의 형태도 포함’한다고 판시76)하고 있다. 그 러나 위의 김정미 사건에서 보듯이 재판부는 상당성을 부정하는 논거로 ‘방위행위 가 소극적인 방어의 한도를 넘어 상대방에 대한 반격행위에 해당 한다’고 하여 방 위행위를 ‘소극적인 방어’로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미 사건에서 재판부는 가해자가 가위를 가지고 김정미에게 변태적인 성행위 를 요구하고 이를 거절하는 김정미를 ‘죽여버린다’고 위협하는 위급한 상황이었음 에도 ‘가해자가 평상시에도 죽여버린다는 말을 자주 하여 왔으나, 그 동안 그다지 중한 상해를 가한 적은 없었던 사실 등을 인정’하여 칼로 한 번에 명치 부분을 힘 껏 찌른 김정미의 행위의 상당성을 부정하였다. 또한 이윤정 사건에서 극심한 폭력 중에 가해자가 칼을 자신과 이윤정의 목에 번 갈아 가며 대어 이윤정이 옷에 오줌을 쌀 정도의 극한적인 공포를 느꼈던 당일 상 황을 고려하면 재판부가 사용하는‘공격성의 정도’라는 표현은 방위행위가 ‘적극적 인 반격’도 포함한다는 것에 소극적인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 3) 피해자에게 도망가지 않았음에 책임을 묻는 재판부 “(가해자가) 폭행할 당시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는 아니 하였고 이 사건 범행 당시에는 위와 같이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으므로, 다른 방법을 강구하여 폭행으로부터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리 넥타이를 준비해 놓고 있다가 잠들기를 기다려 넥타이로 가해자를 목졸라 죽인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범행이 폭행을 방위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상당한 행위라고 볼 수 없을뿐더러,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아래 공포, 경악, 76) 대법원 1992. 12. 22. 선고 92도2540 판결, 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3도3606 판결 등 참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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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것으로 보여지지도 아니하므로” (이효영 사건) “즉 ① 피고인이 위와 같이 남편으로부터 장기간 반복적으로 가정폭력을 당해왔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으로서는 남편을 살해하기 이전에 이혼을 하거나 가정폭력을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등 가정폭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에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보이는 점, ② 그럼에도 피고인은 가정폭력을 해결하기 위하여 위와 같은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중략) ③ 그로 인하여 그 어떤 가치보다도 고귀하고 존엄한 인간의 생명이라는 법익이 침해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행위는 피해자의 가정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피난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서 사회통념상 상당성이 있는 행위라고 보기 어렵고,” (이지선 사건)

“위협행위가 일단락되어 그 장소를 피해 딸들의 주거지로 가거나 집 밖으로 나가는 등으로 급박한 상황에서 벗어난 후 구호요청을 하는 방법을 충분히 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김자영 사건) 위의 이효영, 이지선, 김자영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재판부는 피해자가 폭력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고 하여 방위행위의 상당성을 부정하 고 있다. 이에 가정폭력피해자가 법원의 판단대로 상황을 피하는 것이 가능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1) 공적시스템에 의해 피해자는 적절한 도움과 구조를 받을 수 있었는가?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 가해자의 폭력으로 큰 딸이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관 두 사람이 도착하였다. 살림살이가 부서지고 피해자가 맞아 울고 있는 것을 보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발할 테니 제발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은 부부싸움을 가지고 왜 그러냐며 조금만 참으라고만 하고 그냥 돌아갔다.” (김윤아 사건)


“피해자가 칼에 맞은 날 자녀를 비롯한 이웃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가정 내 일이라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김재희 사건)

“이혼을 결심하고 친정집으로 이사했을 때, 가해자가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자 112에 신고했는데 출동한 경찰은 ‘가정사니 두 사람이 잘 얘기하라’고 돌아갔다” (김정미 사건)

“경찰에 수차례 신고 하였으나 보호 받지 못했다.” (이상미 사건)

“최근 5-6년 사이 3회 정도 신고하였으나 처벌에까지 나아간 적은 없고 주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여 파출소에서 수습하는 정도로 끝남” (정숙현 사건)

<표 6 경찰 신고 및 경찰 반응> 사건의 수 경찰 신고 경찰 미신고

9 5

경찰의 반응

가정사라며 돌아감 5

보호받지 못함

참으라고 함

2

1

피해자가 처벌 불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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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이 경찰에 신고하였을 때 실제로 공적 구제가 가능했는지 판단할 수 있 다. 경찰 신고 유무를 알 수 있는 14건의 사건 중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9건, 신 고하지 않은 경우는 5건이다. 경찰에 신고한 9건 중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은 경우 는 단 한 번도 없었다. 5건의 사건에서는 가정사라며 돌아갔으며, 1건의 사건에서 는 참으라며 돌아갔다. 김자영 사건에서 자녀들이 경찰에 여러 차례 신고하였고 그냥 돌아가려는 경찰을 붙잡고 애원했으나 경찰관은 “가정사인데, 내가 뭘 어떡하겠나.” 등의 말을 남기고 별다른 조치 없이 떠났다. 또한 멀쩡한 직업을 가지고 있고, 술에 취하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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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가 “아무 일 없다, 신고가 잘못된 거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무런 확인도 없이 돌아갔다. 경찰에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김자영씨의 큰 딸은 국 민신문고 홈페이지에 본인 가정의 가정폭력 경험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글을 게 시하였으나 담당부서인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의 답변 내용은 전국가정폭력상담소 협의회, 가정폭력보호시설협의회, 해당지역 1366의 전화번호 등을 안내했을 뿐이 다. 그럼에도 법원은 ‘급박한 상황에서 벗어난 후 구호요청을 하는 방법을 충분히 취할 수 있었던 것‘으로 행위의 상당성을 부정하였다. 이효영 사건에서도 경찰이 출동했으나 경찰관은 가정문제이므로 이혼이나 하라며 아무런 조치 없이 돌아갔으나 법원은 “다른 방법을 강구하여 폭행으로부터 얼마 든지 벗어날 수 있었음”을 이유로 상당성을 부정한다. 이처럼 법원은 피해자에게 공적체계를 이용하여 가정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 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요청해도 적 절한 조치를 전혀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피해자들이 경 찰에 신고를 해야지만, 행위의 상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경찰에 신 고를 할 수 없었던 사건을 보면, 이세영 사건에서 이세영은 ‘가해자를 극도로 두려 워해서 평소 말대답도 제대로 못했다’고 진술하며 심지어 ‘자신이 자살했으면 자살 했지 경찰에 신고할 생각조차 못했다’고 한다. 또한 이지선 사건에서는 가해자의 협박에 의하여 신고를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2) 전통적인 성역할과 소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갇히다.

“이혼 경험이 있던 피해자는 또 다시 이혼할 경우의 주변 시선이 두려워 가해자의 문란한 사생활과 폭력성을 숨겼다. 이에 따라 피해자의 주변인들은 모두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가희 사건) “결혼 이후 지속적으로 친정 가족들에게 남편의 성적, 신체적, 언어적 폭력 및 술과 외도 등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여 왔고 가해자는 친정가족들에 대한 폭언도 서슴지 않았으나 친정식구들은 자녀양육문제 등을 들어 이혼을 만류해 왔다.”

(김명희 사건)

“남편의 사회적인 지위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본인 및 자녀의 투병에 필요한 치료비 때문에 신고를 포기 했다.”

(김명희 사건)


“97년경에는 가정폭력을 참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 하였으나 이혼을 요구할 때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압박하여 1년 후 재결합 하는 것을 조건으로 합의이혼 하였다. 이 당시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자녀 양육비를 보냈으나 가해자는 이 또한 술로 탕진하였다. 피해자는 이후 가해자에게 자녀들을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재결합하게 되었다.” (정숙현 사건)

자녀들을 바르게 키워야 한다. 어릴 때 입은 마음의 상처는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폭력에 대항하기보다는 남편의 요구를 대부분 들어주었고, 아이들이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1998년에는 이혼을 결심하고 언니네 집으로 피해 갔다가 정말 잘살아보겠다는 가해자의 말에 ‘그래도 아이들을 엄마 아빠 밑에서 제대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 다시 가해자와 합쳤다. (김정미 사건) “가해자 남편은 돈을 탕진하고 일도 하지 않고, 노름을 시작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어린시절 피해자는 어머니가 자신만 남겨두고 시집을 가서 전혀 배우지 못했기에 자식들에게 이런 불행한 인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남편의 폭행을 견뎌왔다.”

(이효영 사건)

사건이 나기 한 달 전인 95년 5월 파주 시동생에게 가서 ‘이제 도저히 못살겠 으니 이혼하게 도와 달라 나는 맞을까봐 무서워서 이야기하지 못하겠다’고 애 원하기도 하였지만 시동생은 ‘어려운 사람끼리 의지하며 싸우지 말고 잘 살라’ 는 말 뿐이었다.

(최수영 사건)

“피해자는 평소 가해자의 폭력과 이중적인 모습, 이해할 수 없는 시댁의 처사 등을 대하면서도 가해자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본인이 감싸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가희 사건)

법원은 ‘이혼’도 가정폭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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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피해여성들이 ‘이혼’을 통해 폭력을 벗어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변의 시선’ 때문에 다시 이혼하는 것은 안된다고 한 김가희 사건, 자녀에게 ‘어 머니 없이 자란 자신의 불행한 인생’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아 견뎠던 이효영 사건 등에서 주변의 시선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여성들을 폭력상황을 떠날 시도조 차 하지 못하게 작동하고 있다. 또한 여성은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역 할(김가희 사건) 역시 여성들을 폭력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하고 있다. 설사 피해자가 폭력에서 벗어날 노력, 즉 가해자의 폭력을 호소하며 주위 친지들 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별거, 이혼을 하게 되어도 이혼을 만류 당하거나(최수영, 김명희 사건) 자녀문제로 다시 폭력상황으로 돌아올 수(김정미, 정숙현) 밖에 없다. 이는 ‘이혼’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음에 피해자에게 책임으로 물을 것이 아니라 ‘이혼’을 할 수 없었거나 ‘이혼’을 하여도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에 대 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4) 가해남성만을 대변하는 듯한 법원의 태도 “또한 피고인의 이혼소장의 기재에 의하더라도 남편의 폭력성을 이혼사유로 삼 고 있지 아니하다.” “별거 기간 동안의 일기장의 기재내용을 보더라도 어린 두 자녀를 만나지 못하 여 가슴 아파하고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다정한 아버지 그리고 피고인과의 헤 어짐을 현실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재결합을 간절히 원하고 그러 면서도 피고인을 크게 원망하지 아니하는 마음 여린 남편의 면모를 느낄 수 있 다” “경제적 무능력에 대한 열등의식과 피고인의 직장생활과 관련한 약간의 의처증 으로 말미암아 피고인에 대하여 위와 같이 거칠고 극단적이 표현을 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행위(피고인이 ‘변태적’이라고 표현하는 성행위는 피해자와 동거 중에도 이 미 행하였던 것으로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로 인한 관계 유지가 싫었다면 당초부터 이를 거절하였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비록 피고인의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중략) 성행위를 5분 이상이나 하고 나서 반대의 경 우에는 이를 허용하지 아니한 피고인의 처신을 이해하기 어렵고”


“피고인은 남편에 대한 정이 떨어진 나머지 남편의 언동을 전과 달리 과대하게 받아들이고 당시의 상황에서 남편은 물론이고 일반인으로서도 예측하기 어려운 불의의 가격을, 그것도 남편이 이를 사용하여 행패를 부릴 것을 우려하여 숨겨 두었다는 바로 그 식칼로 급소를 찔러서 10여 년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이자, 남편이 그토록 사랑하던 두 자녀의 아버지를 사망하게 한 것이다.”

위는 김정미 사건의 2심 판결 내용으로, 재판부는 피해자가 외부에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가정폭력의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이혼사유’에 폭력이 없었다는 것을 들 어 가정폭력사실을 부정한다. 이처럼 가정폭력에 대한 이해는 전혀 보여주지 않으 면서 가해자에 대해서는 아주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모습을 보인다. 12년간 무자비한 폭력을 일삼은 가해자를 ‘어린 두 자녀를 만나지 못하여 가슴 아파하고 혼자서 눈물을 흘리는 다정한 아버지’, ‘재결합을 간절히 원하고 그러면 서도 피고인을 크게 원망하지 아니하는 마음 여린 남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 한 경제적 무능력에 대한 ‘열등의식’과 피고인의 직장생활과 관련한 ‘약간’의 의처 증으로 말미암아 피고인에 대하여 위와 같이 거칠고 극단적이 표현을 쓴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또한 성적 학대 상황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거절하지 않고 성행위를 5분 이상이나 하고 거절한 피고인의 처신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피해자의 상황에 대한 이해는 전 혀 하지 않으려고 하고 피해자의 행위를 ‘남편에 정이 떨어진 나머지 남편의 언동 을 전과 달리 과대하게 받아들인’ 피해자에게 모든 책임을 묻고 있다. 이 같은 판결 내용을 통해 사법부가 피해자의 가정폭력상황에는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 하지만,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성의 입장은 ‘깊은 공감’과 ‘상당한’ 이해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사소한’ 문제로 취급 당하는 가정폭력. “술에 취하면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였으나 평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박민경 사건)

“피고인의 다리를 가위로 그은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하여 죽이겠다고 한 말은 부부 싸움 시에는 평소에도 해오던 말이고 가위로 피고인에 대하여 가하였다는 상처의 정도가 경미하였던 점(증거보전기록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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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등 참조)이나 당시 두 사람이 성행위 중이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위와 같은 언동은 피고인을 침대 위로 올라오게 하기 위한 것이지 피고인의 생명에 위해를 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김정미 사건)

김정미 사건의 경우 죽이겠다는 말이 일상적으로 있어왔고, 상처의 정도가 경미하 고, 칼로 위협하며 성행위를 요구하는 ‘강간’ 상황임에도 칼을 들고 죽이겠다는 협 박이 김정미를 침대로 올라오게 하기 위한 것이지 생명에 위해를 가한 것이 아니 라며 법원은 가정폭력의 심각성울 부정하고 있다. 또한 박민경 사건에서도 ‘폭력적 인 행동을 하였으나 평소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하여 피해자의 ‘생존’의 문 제와 맞닿아 있는 가정폭력 문제를 ‘별 일’ 아닌 것으로 보는 법원의 태도를 확인 할 수 있었다.

4. 심신장애 주장과 피학대여성증후군 재판상 책임을 조각하거나 감경받기 위한 사유로는 심신장애가 있다. 심신장애는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으로 나뉜다. 심신상실은 범행당시에 심 신장애로 인하여 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없어 그 행위의 위법성을 의식하지 못하였거나 그에 따라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77)이며 심신미약은 심신장애로 인하 여 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미약한 자를 말하는데, 심신미약으로 인해 규범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곤란하므로 그 비난가능성이 작다고 보아 책임의 감소를 인정 하는 것으로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은 장애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78)으로 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그 간 가정폭력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에서 정당방위 주 장 뿐 아니라 심신장애 인정을 위한 피학대여성증후군(BWS)79) 등을 주장 해왔다.

77) 1985.5.28. 선고 85도361 등 78) 1984.2.28. 선고 83도3007 79) 미국의 심리학자 L. Walker는 임상적 관찰을 통하여 피학대여성들이 보이는 인지, 정 서, 행동적 증상들을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 이하 BWS)이라고 명명하였다. Walker가 제시한 피학대여성증후군 안에 포함된 여성들의 이상심리는 우울 증과 PTSD이다. 이 두 가지는 피학대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들에서 거듭 확인 되었는바, 학대경험이 없는 여성들보다 피학대여성들이 유의하게 높은 비율로 우울증상 이 있음이 보고되었다. 반복된 학대는 긴장관계, 심한 폭력, 뉘우침이라는 세가지 단계가 장기간 계속된다. 이러한 사회·정황적 관계적인 측면은 피학대여성에게, 우울증, 결여된 자존감, 학습된 무기력, 왜곡된 인지 등의 심리적인 변화를 일으킨다.(형사정책연구원, 앞 의 책, 386쪽)


<표 7 심신장애 주장 유무 및 인정 여부> 이름 (가명) 남수연 이윤정 이세영 김윤아 이유리 최수영 김재희 이동수 이효영 김정미

심신장애 주장유무 1심 불분 명 X O 불분 명 불분 명 불분 명 불분 명 O 불분 명 불분 명

심신장애 인정 여부

2심

3심

1심

2심

3심

불분명

불분명

불분명

불분명

불분명

X O

X -

부정

부정

-

불분명

불분명

불분명

불분명

불분명

불분명

-

불분명

불분명

-

불분명

-

불분명

불분명

-

O

-

불분명

O

-

부정

부정 (양형에서 고려) 부정

-

-

양형에서 고려

-

-

불분명

-

불분명

불분명

-

최경주

O

O

-

부정

이지선

O

O

-

이선영

O

O

-

조현미

O

-

-

이상미

O

O

-

김정화 박민경

O -

O -

O -

부정 부정 (양형에서 고려) 인정 (가정폭력이나 학대로 인한 중등도 우울증 에피소드 또는 그로 인한 충동조절의 장애 등으로 말미암은 심신미약) 인정 (정신분열증으로 심신미약) 부정 -

김가희

X

X

O

-

김자영

O

O

O

김명희

O

O

-

정숙현

O

O

O

부정 (범죄은폐, 일상적인 사회생활 가능, 정확한 기억) 인정 (심신미약) 부정

인정 (심신미약) 인정

-

부정

-

-

-

인정 (심신미약)

-

부정 -

부정 상고이유 로 부적법

-

-

부정

부정

인정 (심신미약) 부정

부정

<표 5>에서 보이듯,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원한 21건의 사건 중 심신장애 주장유무 를 확인할 수 있는 사건 중 심신장애를 주장한 사건은 총 12건이다. 이 중 1건은 3심에서만 주장하여 적법한 상고이유가 되지 않아 기각되었다.(김가희) 1심에서 심 신장애를 인정한 사건은 3건, 부정한 사건은 8건이다. 부정한 사건 중 2건은 양형 에는 고려되었다. 1심에서 부정한 사건 중 2건은 2심에서 인정되었다.

살인과 젠더 53


1) 심신장애 인정여부

“우울증으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당해 온 것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폭발하여 이 사건을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김명희 사건) “정신분열 증세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인정” (이상미 사건) “지속적인 가정폭력과 성적학대로 인하여 형성된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중등도의 우울증을 앓아 오던 중 이 사건 범행 직전 본인과 아들이 폭행 을 당하고 딸이 성추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을 하게 되자 딸이 언젠가는 강간 까지도 당할 수 있다는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딸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머니로서의 책임감 및 죄책감 등으로 인하여 상당한 정서적인 혼란을 겪으면 서 사물에 대한 판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위통제능력이 저하된 상태에 빠져 자 살충동의 한 영장으로서 갑작스럽게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추단되므로,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 당시 심신장애의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지선 사건) “지속적이면서도 일방적으로 당해 온 가정폭력이나 학대 때문에 형성된 ‘중등 도 우울증 에피소드’ 또는 그로 인한 충동조절의 장애 등으로 말미암은 심신미 약의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조현미 사건) “수년 간 계속된 상습 폭행 및 모욕 등에 기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을 보이다가 이 사건 범행 당시 심한 욕설과 함께 모욕을 당하자 이로 인하여 극도의 흥분상태에 이른 나머지남편을‘형체만 시커멓게 보이는 저승사자’로 인 식할 정도로 해리 장애에 빠지면서 억제력을 잃고 폭발적이고 충동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임을 인정할 수 있다. 다만 그 장애의 정도에 관하여 이 사건 범행 당시 피해자는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심신 상실의 상태에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으며, 다만 그러한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된다.”


(최경주 사건) 심신장애를 인정하는 판결에서 ‘우울증’, ‘만성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 증을 앓아 오던 중’, ‘정신분열 증세’, ‘중등도 우울증 에피소드 또는 그로 인한 충 동조절의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다가’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 다. 그러나 이세영 사건에서 “평소에 가정폭력으로 인한 급성해리장애, 기억력 저하, 신경과민, 공포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으며(정신과 의사 소견서), 이러한 증상 을 앓는 사람은 극도의 흥분이 발생하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심신상실 이 되기 때문에 피해자는 당시 책임무능력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변호인의 주장에 법원은 "범행 직전 및 범행 당시 피고인의 행동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 사물을 변 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이야기 하면서 범 행 직전 및 범행 당시의 피해자의 행동을 고려하여 심신장애를 부정하였다. 이선영 사건에서는 ‘심신미약 주장은 이유 없다. PTSD와 우울증은 인정하나 범행 의 경위 및 결과, 수단과 방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행동, 범행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이 범행 당시 위 증상으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지는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김자영 사건에서 “이 사건 범행 당시 장기간 가정폭력으로 인한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와 매 맞는 여성증후군을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상실하거나 미약한 상태, 즉 심선미약 또는 심신상 실의 상태에 있었다. 사망한 이후에 피고인은 남편을 죽였다는 생각이 겁이 나기도 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가 되기도 하였고, 또 다 른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였다고 진술한 것을 보아 심각한 조울증도 앓고 있었다 “는 변호인의 주장에 법원은 “피고인이 2007년 상세불명의 우울병 에피소드로 병 원에 다녀온 외에 별다른 치료를 받은 전력이 없고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는 등 직업을 가지고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여 온 것으로 보이는 점, 다투게 된 경위, 목을 조른 정황,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자세하게 기억하여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 는 점과 범행의 경위 및 수법, 범행의 내용,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등에 비추 어보면 피고인이 우울증 등으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 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고는 보이지 아니한다.”고 보았다. 정숙현 사건에서도 “20년 동안 결혼생활 내내 가정폭력과 학대를 당해와 외상 후

살인과 젠더 55


스트레스 장애 또는 매 맞는 아내 증후군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 사건 당일에도 남편은 술에 만취해서 피고인의 얼굴에 침을 뱉고 폭행을 하고 수험생인 큰아들에 게도 폭행을 가하려고 했다. 그래서 피고인는 남편이 자신과 자녀들을 괴롭힐 것이 두렵고 순간적으로 분노가 폭발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미약한 상태에서 이 사 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변호인에서 주장하였으나 “피고인이 남편으로부터 장기간 폭행을 당하여 심리적으로 위험성을 느끼고 있었던 사실은 인정되나, 한편 앞서 설 시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범행의 경위 및 이 사건 발생 전까지 피고인이 대 항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었던 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무렵의 상황들을 비교적 정확히 기억하여 진술하고 있는 점, 이 사건 직후 피고인 의 큰아들에게 119에 신고하도록 하고 자신은 속옷을 챙겨 입고 수사기관에 자수 한 점 등 범행 전후의 여러 가지 사정에 비추어 보며,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 시 위와 같은 피해자의 장기간 폭행으로 인하여 비정상적 정신 상태에 있었다거나 이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이르렀 다고 보이지는 아니하므로” 라며 심신장애 인정을 부인하였다. 또한 이동수 사건에서 “이 사건 범행 당시 피고인은 심신이 극도로 쇠락한 상태 에서 술에 취하여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있었거 나 그러한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원심이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였음은 심신장애에 대한 사실오인 내지 법리오해의 위법을 저지른 것이다.”라는 주장에 “기록에 나타난 여러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이 사건 범행의 경위, 그 수단과 방법, 범행을 전후한 피고인의 태도, 범행후의 정황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오랫 동안 구타와 시달림을 받아왔고 특히 이 사건 범행일 이전 10여일 전부터는 피고 인으로부터 밤늦게까지 행패를 당하여 심신이 탈진한 상태였고, 범행 직전 피고인 이 가져온 소주 중 3잔을 마신 사실은 인정이 되나, 그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하거 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거나 미약한 상태에 있지는 않았음이 인정되므로 위 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판시하여 가해자에 의해 구타와 시달림을 받아 심신이 탈진한 상태였어도 심신장애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위의 판결처럼 법원은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심신장애 판단에 있어 범행의 경위 및 결과, 수단과 방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행동, 범행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야 한다는 말로 부정하고 있다. 법원이 심신장애를 ‘인정’할만한 피해자의 상태는 정숙현 사건의 판결문에서 보여 지듯이, ‘장기간 폭행으로 인하여 비정상적 정신 상태’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2) 심신장애 입증의 어려움


가정폭력 정당방위 사건에서 오랜 학대에 노출된 피해여성의 심리 상태에 대한 증명력을 가진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감정인제도와 2007년 도입된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활용하고자 하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적지 않다. 2007년 도입된 제도임에도 2013년 현재까지 한국여성의전화가 지원하는 사건에 는 단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하였다. 김가희 사건의 경우 전문심리위원제도를 활용하 고자 신청하였으나 ‘상담은 초기부터 해야 한다’는 이유로 신청이 거부 당하였다. 또한 김자영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정신감정 및 전문심리위원제도 채택여 부는 법원의 직권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에 어느 사안에서는 채택되고 어느 사안 에서는 채택되지 않는 비일관성이 목격되더라도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형사정책연구원이 피학대여성이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의 정신 상태에 대한 전문가 의 의견, 피고인의 정신 상태에 대한 전문가의 정신감정이 있었는지 조사한 결과, 총 70명 중 20명(26.6%)에 대하여만 전문 감정인의 정신감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학대여성들의 대다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나 우울증 등의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선행연구결과를 고려한다면 재판과정에서 피학대여성들의 상태에 대한 충분한 전문가 감정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80) 가정폭력의 위험성을 실증적으로 평가하여 계량적인 지표로 환원할 수 있는 위험 성 평가도구로는 SARA(Spousal Assault Risk Appraisal Guide), DAS(Danger Assessment Scale) 등이 있다. 정숙현 사건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기 위하여 법원전문심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 는 이수정 교수81)가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이수정 교수는 DAS를 이용하여 정숙현 과 그의 아들을 심층 면접 하였다. 재판과정에서 검사는 ‘도구의 신뢰성’과 조사방 법의 문제를 제기 하였고, 재판부도 정숙현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심신장애 주장을 위한 가정폭력피해여성의 사건 당시 심리상태를 입증하 는 방법과 제도 활용은 쉽지 않다.

Ⅲ. 배우자 살인의 그럴듯한 이유, 또는 용서받지 못할 이유 가정, 그리고 살인 가정과 살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안전할 곳이 기대되는

80) 형사정책원구원, 앞의 책, 228쪽 81)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살인과 젠더 57


매우 특별한 공간인 집이란 곳과 그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인 살인이 어울려 서도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 내지는 바램과는 달리 가정은 살인과 그 리 멀리 있지 않다. 가정폭력의 압도적인 피해자는 여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여성만 살해당 하는 것도 아니다. 남성도 여성 배우자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를 두고, 남성도 여 성만큼이나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니, 가정폭력에 대해 가부장제 내지는 성차별이라 는 사회구조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대신 개인적 질병이나 심리적 장애 등을 원인으 로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얘기를 하려고 한다. 가정폭력 에 의해 살해당하는 여성들은 오랜 기간 가정폭력의 피해자였지만, 가정폭력에 의 해 살해당하는 남성들은 오랜 기간 가정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사실 말이다. 이 글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죽거나”, “죽이거나” 라는 참으로 믿을 수 없이 비 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던 그 누군가의 삶을 우리사회가 어떻게 판단하고 단죄해왔 는지를 되짚어보려는 글이다. 객관성과 중립성을 명분으로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자 기방어를 외면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는, 바로 그 사법부의 배우자 살인 재판 기 록에 오롯이 새겨져 있는 성차별적 젠더규범을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법의 중립성과 피학대여성증후군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행동과 심리를 설명하는 중요한 이론 중 하나는 피학대여 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워커(Lenore Walker)는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남편을 살해한 45명의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인터 뷰하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 400명을 조사한 1984년의 연구결과물을 통해, 이들이 육체적 폭력과 더불어 매우 심각한 수준의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상해를 입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적인 신체적·정서적 학대의 결과 가정폭력 피해 여 성은 일반인과는 다른 행동과 인지적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하였다. 가정에서 학대 받는 아내들에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정신적·심리적 상태는 학습된 무력감 (learned helplessness)으로 설명되었는데, 즉 피학대 여성들은 자신들이 놓여있 는 폭력상황을 통제하거나 예방할 수 없다는 것에 학습되어 폭력을 피하거나 관계 를 떠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는 것이다. 워커의 피학대여성증후군과 학 습된 무력감은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결국 가해자를 살해하는 비극적 결말로 인해 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매우 유용한 이론으로 활 용되었다. 가해자(남편)를 살해한 여성에 대한 비난은 ‘왜 떠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함축되어 있다. 가정폭력에 대한 오해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 질문은 가정폭


력 피해여성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그 관계를 떠날 수 있을 것이라 는 단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는 법정에서도 예 외가 아니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전문가 증언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 경험을 설명하려 시도하였다. 이것이 바로 피학대여성증후군, 그리고 학습된 무기력 개념 이 가정폭력 관련 법정에 등장하게 된 계기였다. 전문가 증언을 통해 페미니스트들 은 피해여성이 떠나지 못했던 이유, 가해자에 대한 살인이 그녀 자신의 목숨을 구 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설명하려 했었다. 즉 위험에 대한 인지, 가해자가 잠들어 있거나 혹은 방심하는 사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미래에 발생할 것이 너무도 분명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한 공포 등이 매맞는 여성의 입장에서 충분히 합리 적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법정에서의 이러한 설명들은 가정폭력 피 해여성의 불능, 무능력, 심리적 손상과 인지적 능력의 결핍으로 매우 단순하게 해 석되고 받아들여졌다. 가정폭력 상황에서의 피해여성의 합리적 판단, 그녀가 당연 히 누려야 할 안전과 삶에 대한 권리, 그것이 침해되었던 과정들이 논의되기보다는 불쌍하고 비참한 삶을 살았던 여성에 대한 연민과 동정만이 과도하게 부각된 것이 다. 폭력피해 여성을 연약하고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여전히 호소력 있고 설득적인 효과를 담보한다. 피해여성을 불쌍하게 여기는 관점에 동조될수록 법원은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살해한 가정폭력 피해여성에 대해 ‘원 래는 잘못된 행동이지만 불쌍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변명을 들어주고 최대한 선 처한다는 식’의 법적 판단은 피학대여성을 위한 전문가 증언의 취지를 왜곡시키며 피학대여성증후군 자체를 논쟁적으로 만들었다. 즉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조차 피 학대여성증후군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가해자 살인을 정당화하려다 보면 1)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무능력한 존재로 묘사하여 여성이 보다 약하고 열등한 성(性) 이라는 성전형성을 강화하고 2) 피해여성의 행동을 합리성이 아닌 정신병적인 문 제로 설명하며, 3) 때문에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는 무능력한 피해여성의 전형성을 보이지 않는 여성은 가정폭력 피해자로 인정되지 못하는 모순에 접하게 된다고 비 판하고 있다(Kinport, 2004: 168; Schneider, 1986:196). 이러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을 두고 마치 페미니스트들조차 피학대증후군을 거부한다고 해석하거나, 피학대 증후군은 더 이상 그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이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경우 도 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경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피학대증후군 이론이 초 래한 이런 의도치 않은 결과는 그 자체의 오류 때문이기보다는 이에 대한 법원의 오독과 편견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즉 피학대증후군을 통해 폭력의 역사와 그 폭력 의 효과에 대한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근거로 어떻게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가해 자 살인이라는 행동이 합리성을 구성할 수 있는가를 판단해야 할 법원이 피학대여

살인과 젠더 59


성의 정신적 결함에만 집중한 결과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학대증후군 이론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그 중요성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함을 주장하는 슈나이더 (Schneider)는 ‘폭력으로 찢겨지고 무너져버린 처참하고 불쌍한 여성피해자’에게만 익숙해 있는 사법시스템의 한계(Schneider, 1986:198)로 인해 여성의 주체성과 합 리성이 파악되지 못하는 전체 맥락을 지적하고 있다. 같은 선상에서, 석지영은 가 해자를 살해한 여성을 두고 법원이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자율성, 그에 기반해 판단 하고 행동할 권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해지고 무능해졌기에 주위 의 탄원과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Suk, 2008:259). 그간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가해자 살인사건을 둘러싼 정당방위 논의는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이러한 행동이 현행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기방어의 규범적 기준을 충 족시키지 못한다는 주장과 바로 그 규범적 기준이라는 것이 결국은 남성을 모델로 하고 있는 남성 중심적 기준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대립되어 왔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여성의 경험을 포함하지 않는 기준에 의해 판단되지 않도록”(Crocker, 1985:130) 해야 한다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번번이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법적 가치판단의 기준을 내세우는 객관성 원칙에 의해 묵살되어져 온 것이다. 때문에 앞 서 살펴보았듯이, 여성의 행동은 ‘미쳤거나’ ‘불쌍해서’ ‘용서’ 해줘야 하는 것으로 판단되었고, 때문에 마치 여성은 사람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존재처럼 여겨져 왔다. 과연 현행법의 자기방어의 객관적 요소 는 그렇게 순수하게 객관적인 것인가? 법이 말하는 중립성은 정말로 그렇게 객관 적이며 합리적인 것일까? 법원은 그 모든 편견과 사사로운 감정을 배제한 채 공정 한 판결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하여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는 것 은 성중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는 일인 것일까?

무엇을 심판하는가? - 젠더규범에 대한 재판 한국여성의 전화는 여성이 살해된 121건의 살인사건과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가 정폭력 가해자를 살해한 21사건의 판결문을 분석하였다. 즉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사건과 여성이 남성을 살해한 사건의 판결문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이 살 인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보았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판결문에 매우 빈번히 등장하여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바로 “순간 격분하여”, “우발적으로”, “술에 취하여”, “화가 나”이며, 이 문구는 피 고, 즉 남성에 대한 매우 중요한 감경사유가 된다.


사건번호

판결문 내용

죄명

선고

2012고합78

“우발적으로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지른 것”

폭행치사

징역2년 집행유예3년

2006고합911

“때때로 분노를 참지 못함”

폭행치사무 죄, 상해

벌금 100만원

2010고합91

“화가나 우발적으로 이 사건범행에 이르렀으며”

폭행치사

징역1년6월 집행유예 3년

2009고합201

“격분하여”

폭행치사

징역2년 집행유예3년

2007고합55

“순간적으로 흥분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상해치사

징역3년 집행유예5년

2009고합84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폭행치사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위의 표는 배우자 살해사건 중 아내 사망 사건에 대한 판결문에서 가해자에 대한 감경사유를 밝히는 부분을 편집해 놓은 것이다. ‘순간적이고 우발적인 감정을 통제 하지 못하여’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이 사건들은 모두 폭행치사나 폭행, 또는 상해치사 등의 죄목으로 가해자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즉 하나같이 가해자가 ‘우발적으로 격분하여’ 배우자 살해의 결과에 이르렀다고 해석된 이 불행한 사건들 은 계획적, 혹은 고의적이거나 어떤 원한에 의해 사람을 살해한 것이 아님이 참작 되어 곧 감경사유로 인정되었다. 그야말로 어느 누구도 예측하거나 의도하지 않았 던 ‘우연적인 사고’에 불과함을 인정하여 ‘피해자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가 초래 되었음에도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는 경우도 있는 등 그 죄를 무섭게 추궁하지 않 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두고 개진될 수 있는 여러 논의 중 이 글이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처럼 ‘순간적으로 격분하게 되었다’는 피고의 고의성 배제 주장이 수용되어 최종 판결에 영향을 주는 그 이유에 관한 것이다. 즉 불가항력에 이를 만큼 피고를 격 분하게 한 그 원인에 대한 재판부의 인정과 공감이 있어야지만 ‘우발적인 감정 통 제를 하지 못한 것’이 감경사유로 수긍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발적 살인의 동기 는 매우 중요하다. 다음에서 어떠한 이유가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된 살인사건의 감경사유가 되 었는지, 앞의 표와 동일한 사건의 판결문을 좀 더 완성해 보기로 한다.

살인과 젠더 61


사건번호

판결문 내용

죄명

선고

2012고합78

“피해자의 외도를 의심하여 우발적으로 이 사건 각 범행을 저지른 것”

폭행치사

징역2년 집행유예3년

2006고합911

“피해자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나서 이를 용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때때로 분노를 참지 못함”

폭행치사무 죄, 상해

벌금 100만원

2010고합91

“피해자가 전 직장동료와 자주 연락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 화가나 우발적으로 이 사건범행에 이르렀으며”

폭행치사

징역1년6월 집행유예 3년

2009고합201

“피고인은 피해자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장소에 찾아가 일행 중 남자들도 끼어있음을 발견하고 격분하여”

폭행치사

징역2년 집행유예3년

2007고합55

“피해자의 다소 과격한 언사에 순간적으로 흥분한 나머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상해치사

징역3년 집행유예5년

2009고합84

“피해자가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였다는 이유로 부부싸움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폭행치사

징역2년 집행유예3년

이미 피해자가 사망하여 대질심문을 할 수 없는, 즉 죽은 자는 말이 없는 상황 에서 가해자 남성들은 죽은 여성(아내)이 자신의 경제적 부양능력에 불만을 표시하 며 무시한 점, 외도 등 부정행위를 하거나, 의심스러웠던 점, 지나친 음주와 무절 제한 사생활 등이 순간적으로 격분하게 된 이유이자 살해에 이르게 된 주요 원인 이라 밝히고 있다. “피해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피해자가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알 필요 없다’는 취지로 대답하자 이에 화가 나...피해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피해자가 피고인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격분하여 위 차량 안 에서 손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잡고 밀어 위 차량 조수석 문에 부딪치 게 하고, 손바닥과 주먹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수회 때리고, 피해자와 같이 하차하여 위 공사현장에서 계속 얘기를 하던 중 피해자가 계속 해서 피고인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계속 격분하여 주먹과 신발을 신은 발로 피해자의 온 몸을 수회 때리고 차 넘어뜨리고, 신발을 신은 발 로 넘어진 피해자의 온몸을 밟고 차는 등으로...사망에 이르게 하였


다”(2009고합72) 상해치사, 징역3년 집행유예4년 사회봉사120시간.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정당한가, 혹은 가 해자의 완벽한 제압 하에 자신이 통제하거나 맞설 수 없는 폭력을 지속적으로 당 하는 동안에도 그 가해자를 계속해서 무시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하는 대신 이 재판은 피해 여성의 평소 행동을 문제 삼으며 피해자를 비난한다. “다소 남성적인 성격의 피해자는 거래처 사람들과 잦은 술자리를 갖 고 나이어린 피고인을 무시하였으며”(2009고합72) 상해치사, 징역3년 집행유예4년 사회봉사120시간. 이미 폭력전과가 있는 이 피고인을 두고도 재판부는 “매우 성실하게 생업에 종사 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점”과 피해 여성이 피고를 계속 무시한 것이 범행의 동기임 을 언급하며 “이 사건의 경우 수형생활보다는 화목한 가정환경과 가족들의 따뜻한 배려가 피고인의 교화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어 보이는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 고한다. 여성이 남성을 살해한 경우, 다른 이유가 아닌 오랜 세월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남성을 살해한 경우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우선 여성이 사망하게 된 사 건에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는 ‘격분하여’ 혹은 ‘화가 나’의 문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즉 여성이 어떠한 이유로든 ‘순간적으로 격분하여 우발적으로 남편을 살해하여’라는 문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여성(아내)에 의해 살해당한 남성들이 여성들의 화를 돋굴만한, 여성을 격노케 할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 글에서 분석된 총 21건의 남편살해사건에서 여성들은 평균 20년간의 학대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그들이 당한 학대와 인권침해의 기록은 글로 공개하기도 어려울 만큼 충분히 잔인하며 비극적이다. 그러나 남성이 가해자 인 사건과 비교해 볼 때, 남성이 피해자인 경우, 즉 남성이 살해당했을 때 그가 저 지른 폭력, 외도 등은 여성들의 격노와 살인의 동기로 해석되지 않는다. 때문에 감 경사유로도 고려되지 않는다. 평소 피해자의 폭력에 시달렸으며, 피해자가 부정행위를 하였고, 피고 인의 대화에도 응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가사 위와 같은 사정이 인정 된다고 하더라도 위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 피고인의 이 부 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아니한다(2012노7) 살인, 징역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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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순간적으로 격분하여’라는 표현이 있다하더라도 남편으로부터의 그간의 학대 가 여성이 격분하여야 할 이유로 간주되지도 않고 그 분노는 재판부에 의해 공감 을 얻지도 못한다. 오히려 남편의 생전 (폭력) 행위가 그의 사망을 초래한 것과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소중하고 존엄한 것으로서, 피해 자에 대한 생전행위에 대한 평가 여하를 불문하고 피해자의 생명 또 한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가치인 점을 고려하면 비록 피고인이 가정폭력의 희생자라 하더라도...피고인의 죄책이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2005노208) 살인, 징역2년, 강조는 인용자.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을 살해함으로써 오히려 피고가 되어 법정에 선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겪은 8년이 넘도록 지속된 가정폭력과 성학대, 딸에 대한 성추행과 아 들에 대한 폭행은 이 여성을 격노케 하여 우발적 살인으로 이어진 동기, 그리하여 감경의 사유로 간주되지 못한다. 대신 재판부는 어머니로서의 책임감, 살인에 대한 반성, 남편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릴 것 등을 감경의 이유로 삼고 있다. 딸이 언젠가는 피해자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현실적인 걱 정과 이에 대해 보호를 해주지 못한 어머니로서의 책임감 및 죄책감 으로 괴로워한 나머지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이 사건 범행 후 자수하였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으며...자신의 손으로 남편을 살해하였다는 정신적 멍에를 평생 짊 어지고 살아갈 것으로 보이는 점(2005노208) 살인, 징역2년. 배우자 살해사건을 두고, 재판부가 범행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피고인의 범행동기 에 공감하는지, 아니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미쳤거나 불쌍하거나 죄를 뉘우쳐서’ 마지못해 용서해 주는지의 이러한 차이는 현재 가정폭력 피해여성 의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 현실을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하고도 결정 적인 단초이다. 한국사회의 사법부는 모름지기 법이란 객관성과 중립성에 근거해야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가정폭력 피해라는 특수한 상황을 주관적으로 고려해 줄 수 없다는 이유 를 들며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정당방위 주장을 배제시켜왔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 과 입장을 법의 객관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에는 가정폭력 사건을 다루는 사법부의 젠더를 둘러싼 편견은 너무도 명백해 보인다. 여성의 태도내지는 어떤 행 동에 대한 남성의 격분에 쉽게 공감을 표하는 사법부의 인식은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편견, 여성에 대한 남성의 통제와 지배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가 부장적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랜 기간 남편으로부터 무자비한 폭력과 모욕을 당해왔을지라도 그것이 남편을 살해할 동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사법부의 인식과 태도에는 남성의 욕구에 순응하고 순종적이어야 마땅한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여성답지 못한 아내에 대해 격분한 남편의 행동은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남편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한 아내는 비정상적 이어서 합리적이지 못한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킨포트(Kinports)는 아내의 외도를 알게 된 남편이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법원이 전문가 증언을 채택하지 않는 것, 그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즉 재판부는 아내 의 외도가 왜 그토록 남편들을 화나게 하는지에 대해 전문가 없이도 충분히 이해 하며 동조한다는 점, 그러나 매맞는 아내의 행동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합리성을 문제 삼는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두고 법이라는 것이 “위에서부 터 아래까지 철저히 남성의 이해와 남성의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Kinports, 2004:179). 이처럼 성별에 기반하여 상황과 사건을 판단하고 해석 하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가정폭력 사건이다.

남성에겐 정상참작요인인 경제적 부양, 여성에겐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었다 는 증거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사건에서 남성들은 성실한 사회생활,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는 점을 인정받고 이러한 점은 이 살인 사건이 피해자(아내)에 의해 유발된 매우 우발적인 범죄라는 증거가 되어 형량을 결정하는 데 정상참작의 사유로 기능 한다. “피고인의 평소 성실하고 착한 성품” “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까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성실한 가장, 사 회인으로 생활하여 왔고” “피고인은 지금까지 생업에 종사하면서 성실하게 생활하여 온 점” “피고인은 이 사건 범행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런 전과가 없는 평범 한 회사원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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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은 이 사건 이전까지는 특별한 전과가 없고, ...로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여 왔고” 이와는 달리 여성이 가해자가 된 사건에서 여성의 성실한 사회생활과 여성의 경 제적 부양능력, 평소 활달한 성격들은 여성이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의심하 게 하는 요인이자, 자기구제에 소홀했기 때문에 오히려 비난받아 마땅한 이유로 지 목된다.

사건 범행 당시 ○○○○ 대리로 근무하고 있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므로 피고인이 노력하였더라면 피해자의 가정폭력문 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임에도 별 달리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도 아니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2005노 208) 살인, 징역2년.

‘완전히 무너지고 철저히 파괴된’ 모습이 아니라면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의심받 고 추궁당해야 하는 현실은 가정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그리고 우리사회의 일천한 이해를 반영한다. 여러 학자들의 지적처럼 가정폭력 피해여성은 ‘떠나려 할 때’, ‘관계를 정리하려 할 때’ 가장 많이 살해당하기도 하고, 같은 맥락에서 자신과 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의 전략으로 관계에 남아 있기도 하며, 때론 가해자의 통제 속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그러나 가정폭력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또 알려고 하지 않는 재판부에 의해 정상적 인 사회생활을 해왔거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피해여성의 행동들은 단지 폭력이 없었거나 그 폭력이 매우 사소하거나 경미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바로 그 렇기 때문에, 아내를 살해한 남성들이 그간 이웃과 가정에게 더할 수 없이 친절하 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는 주변인들의 전언은 가정폭력이란 것이 그처럼 집과 차안 에서 커튼이 내려지고 문이 잠긴 채 저질러지는, 그래서 눈치 채기 힘든 그 무서 운 폐쇄성을 갖는 다는 것에 대한 방증이라는 해석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가정폭력 그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회에서 가해남성의 이중성과 폭력의 폐쇄성은 쉽 게 가늠되지 않는다. 성실하고 착한 가장을 분노하게 만든 행실이 나쁘거나 참으로 어리석은 여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가정폭력의 흔적들 – 어디에도 없거나, 관련 없거나 여성이 남성배우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 또 여성이 그 배우자를 살해하는 사건의 핵심에는 가정폭력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많은 경우, 가정 폭력은 어디에도 없거나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게 된다.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끝끝 내 사망한 경우에도 가정폭력은 여성의 사망과 큰 개연성이 없는 단순한 관련 요 인으로 축소된다. “술을 마시면 자제력을 잃어 피해자를 폭행한 적은 있었으나, 그로 인하여 피해자와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거나 감정이 악화되는 등의 사 정은 엿보이지 아니하며...”(2007고합16) 폭행치사 폭행, 징역2년 집행 유예3년. 그러나 가정폭력이 사소했다는 재판부의 판단과는 달리 위 사건에서 살해된 여성 은 가정폭력을 피해 도망쳤다가 다시 붙잡힘으로써 결국은 살해당한 매우 전형적 인 가정폭력 사례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판결문에 적시되어 있다. 피고인과 말다툼 도중 가출했다가 피고인에게 강제로 끌려 집으로 쫒 아온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항의하며 대든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입 부 위를 주먹으로...”(2007고합16) 폭행치사 폭행, 징역2년 집행유예3년. 가정폭력의 이 생생한 긴장감과 공포, 떠날 수 없는 이유들, 폭력적 관계를 떠났 을 때 결국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재판부의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추적 하지 않는, 그리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가정폭력의 잔상들 속에 “과격한 언 사”로 인해 “벌금형을 3회 선고받은 이외에 별다른 전과가 없는” 남편을 살인사건 의 가해자로 만든 그 여성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다. 심지어 폭력 전과가 있는 가해자를 앞에 두고도 입증 자료의 부재를 언급하며 가 정폭력은 없었던 것으로, 때문에 이 사건과 무관하다는 단정이 쉽고도 간단하게 내 려진다. “피고인에게 집행유예 전과를 비롯하여 수회의 폭력으로 인한 범죄전 력이 있는 점...피고인의 성격 및 범죄전력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이전에 피해자를 폭행하였다는 점 등을 인정할 자료가 없 다” (2009고합72) 상해치사, 징역3년 집행유예4년 사회봉사12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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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이라는 사건의 전체 맥락이 사라지는 건,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가해 자가 된 “죽이거나”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몇 십년간 가정폭력을 당하여 코뼈가 부러지 고 얼굴이 찢어지고, 고막이 수회 파열되는 등의 중상을 입었다는 피 고인과 피고인의 자녀들의 주장만 있을 뿐이고 이를 입증할 만한 객 관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아니하고...”(2009고합10) 살인, 징역6년.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정당방위를 주장하는 건, 가정폭 력 피해여성으로 하여금 가해남성을 더 많이 살해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살해당하는 가해남성을 줄이기 위해 피해여성의 정당방위는 반드시 인정되 어야 함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일견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수십 년간 자신 이 사는 바로 그 집에서 폭력에 시달려 온 여성이 가해자를 살해하기까지에는 철 저한 국가와 사회의 방조가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관적 태도에는 여성을, 그리고 여성의 삶을 남성과 동등하거나 그만큼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성차별적 태도가 자리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법과 실행의 큰 괴리, 제도 와 인식의 큰 격차, 그래서 일면 피해자를 더한 위험에 빠뜨리는 제도, 그러나 바 로 그 제도의 존재를 들먹이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푸는 열쇠는 바로 정당방위 판결을 통해 여성 삶의 가치를 회복시 키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 여성의 삶도 남성의 삶만큼이나 가치 있다는 것, 여성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그런 이유가 무척이 나 정당하다는 것, 여성에게 자신의 삶을 지켜낼 그 온당한 권리가 있음을, 이것을 인정해야지만 법제정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정폭력에 대해 수수방관하는 제도 적 허점들, 그리고 그를 초래한 성차별적 인식이 제거될 수 있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정당방위: 누가 벽(wall)을 넘어야 하는가? 재판을 통해 지속되고 있는 여성과 남성에 대한 편견, 여성이 경험하는 가정폭 력에 대한 무지, 정당방위의 현재성과 상당성을 그 근거로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관 점과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하는 태도는 과연 여성이 가정폭력 의 피해자인지, 아니면 법의 피해자인지를 질문하게 한다. 이 장에서는 외국에서의 정당방위를 둘러싼 법적 논쟁, 특히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관점을 보다 진지하게 수 용하는 사회적 변화 등이 시사하는 바를 논의하고자 한다.


영국에서는 19세기에, 미국에서는 20세기에 개인의 법적 권리로 허용된 정당방 위는 의도적 살인이라는 행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이익이 되기보다는 해가되는 자를 개인이 국가를 대신해 처벌한 것으로 간주하였기에 사회적으로 격려되는 행 위로 통용되었다. 그러나 법에 의해 보호될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인 생명과 정당방 위로서의 살인이 서로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용인될 수 있는 방어적 행동은 매우 좁게 정의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여기서 매맞는 여성에 게 매우 불리한 법해석이 도출되었다(Rosen, 1986:25-27). 정당방위는 불법적인 공격자에 대항하기 위해 개인에게 사적구제를 허락한 것으로, 암묵적으로 당시 사 회의 주체였던 남성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집, 자신의 가족,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 기 위한 방어적 권리라는 전제를 가진다. 처음 영국법은 퇴로가 막혔을 경우에만 정당방위를 허용하였다. 즉 공공장소인 경우 도망갈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집에 침입하는 것은 사람의 주거권이라는 자연권에 대한 위반이기 때문에 퇴로의 의무가 부여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에 미국은 공공장소에서의 후퇴의 의무마저 폐기해버린다. 이는 “그가 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그 모든 장소에서 도망갈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을 공표한 것으로 도망갈 이유가 없는, 어떠한 잘 못도 행하지 않는,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고 부양하는 “진짜남자”(the true man) 는 적법한 장소 그 어디에서도 퇴거함 없이 공격에 대항할 수 있고, 그 결과 상대 가

사망에

이르더라도

그것은

정당방위라는

해석이

도출된

것이다(Suk,

2008:241-246). 그러나 공격자가 같은 집에 거주하는 동거인인 경우에는 예외를 적용하여 반드시 퇴거의 의무를 지도록 하였다. 석지영은 이를 두고 “가정폭력을 제재하는 것을 회피하고자하는 필요에 의해 동기화된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Suk, 2008:250). 즉 피하거나 도망감 없이 남편을 살해하는 여성에게 정당방위를 적용 해 주지 않기 위해 동거인 예외조항을 두었다는 설명이다. 미국사회도 지금의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남편을 살해하는 아내에 대해 단지 생명에 대한 침해 때문만이 아니라 “법적 권위에 의해 다스려지는 그 (가부장적)개념에 대한 위협”이란 이유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다(Suk, 2008:251-2). 그러나 여성운동은 꾸준히 정당방위 개념 및 요건에 대한 성편견을 지적해 왔다. 로젠(Rosen)은 남성이 자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기랑 비슷한 체구와 완력을 지닌 자와 단 한 번의 대결에 적용되는 정당방위 개념이 “자기보다 더 크고, 더 세고, 아주 친밀한 관계 인” 그러나 매우 폭력적인 남성배우자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여성의 상황과 부합될 수 있는지를 질문한다(Rosen, 1986:34). 미국사회에서 여성의 자기 방어 권리에 대한 인정은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폭력에 대한 위협을 느 껴 남성을 찔러 죽인 여성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되었고, 1976년에는 두 명의 남성 에게 성폭행당한 후, 다시 돌아와 성폭행하겠다고 위협한 이 두 남성 중 한 남성 을 거리에서 총으로 살해한 여성에게 법원은 “미래에 겪게 될 신체적 상해와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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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합리적 믿음”에 근거한 정당한 행동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1977년의 완 로우(Wanrow) 사건은 무엇보다 인상적인 말을 남겼는데, 판사는 자기방어의 기준 으로서 어느 개인 여성의 관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 여성의 관점이 일 반 다른 여성들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칭하며 이를 “성차별의 길고도 불운한 역사의 산물에 의한 관점”(Schneider, 1986:217에서 재인용)임을 명시하였다. 재판에서의 전문가 증언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폭력의 역사, 그 속에서 갖게 되는 공포와 위협에 대한 인정, 개인의 모든 경험에 기반한 합리적 믿음에 의한 행동임을 간파해 나가던 미국 법원은 급기야 1990년대 이르러서는 앞서의 ‘동거인 예외조항’에도 의구심을 표하게 된다. 오하이오 대법은 “자신의 집에서 벽까지 도 망갔다면 더 이상 도망갈 공간이 없는 것”이라 판시하며 동거인 예외조항의 성차 별적 적용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1997년 뉴저지대법원은 배우자로부터는 도망갈 의무가 있다는 것을 예외로 두지 않으면서도, 잡히게 될 경우, 안으로 끌려들어가 게 되고, 더 많은 폭행이 일어나기 때문에 도망간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아야 할만 큼 불가능한 선택임을 인정하게 된다. 1999년 플로리다 법원은 집으로부터 도망치 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침내 집에서의 후퇴의무를 철회하기에 이른다(Suk, 2008:253-6). 한국사회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가해자 살인 사건 재판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왜 문밖으로 도망가지 않았느냐”, “현관문이 바로 저기인데 왜 그리로 도망가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궁금해서 하는 질문인지, 아니면 가 정폭력 피해자였지만 이제는 가해자가 되어 법정에선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 한 비난인지는 이 질문을 하는 당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알 수 없겠지만, 가정폭력 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의 질문 내지는 비난이라는 점은 매우 분명해 보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성편견에 휩싸인 채, 가정폭력에 대해 단순하게 생각 한 채 - 즉 가정폭력 피해여성은 언제든지 문을 열고 집을 나와 폭력을 피하는 것 이 가능하며, 경찰에 신고하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향후의 폭력과 위협으 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 채,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가해자 살 인을 재단하는 한 그녀들은 언제나 유죄일 수밖에 없다. 여성들은 계속 살해될 것 이고, 몇 몇의 가정폭력 가해자 남성들도 살해될 것이며, 수십 년의 가정폭력을 자 신의 손으로 끊고 나온 여성들은 감옥에 갇힐 것이다. 가정폭력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고, 이 사회는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누가 벽을 넘어야 하는가? 누가 문을 열고 나와야 하는가? 매맞는 여성인가? 아니면 중립성에 숨어 피해자의 등을 다시금 내리쳤던 그 누구인가? 마치 진리인양 반복되어왔던 성중립 적 언어, 객관과 중립의 미사여구에 가려져왔던 성차별과 성편견의 그 지루하고도 옹색한 변명이 이제는 중단되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그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왜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는가?’ 폭력을


피해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벽을 넘어 도망쳤을 때, 그 여성은 사망했었다. 망치와 칼을 들고 방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남편을 피해 벽을 넘어 베란다로 도망쳤던 여 성은 결국 죽음에 이르렀지만, 그 가해자는 폭행치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벌금 100만원 형에 처해졌을 뿐이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 ‘벽을 넘으라’고 더 이상 주문하지 말기 바란다. 목숨을 걸어야 하고, 실제 사망에 이르는 것이 현실이기 때 문이다. 그 대신, 재판부가 합리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그리고 중립적이지도 않은 성차별의 벽을 넘고, 성편견의 문을 열고 나가기 바란다. 그 곳엔 중립성의 훼손이 라는 사법부의 사망이라는 결과가 놓여 있는 대신, 인권의 확립, 정의의 실현이 기 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 벽을 넘어서길 바란다.

살인과 젠더 71



토론 1. 김엘림_ 한국젠더법학회 회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가정폭력 관련 세미나 토론요지 김엘림1)

Ⅰ. [살인과 젠더] 발제에 관한 총평 1. 발제의 가치와 기여 이 발제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배우자 살인에 관한 사건들과 판결례들을

연구대

상으로 하여 젠더의 관점과 가정폭력피해자의 인권보호의 관점에서 사법(司法)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형사법학, 인권법학, 젠더법학 또는 여성주의 법학, 여성학, 피해자학 등 다양한 관련 학문부문에 가정폭력에 관 한 실증적 분석자료를 제시하고 논의를 발전시키게 함으로써 학술적 가치와 기여 가 크다고 본다. 가정폭력에 관한 재판기록과 판결례 133건을 수집하고 젠더와 인권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은 상당한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고 난이도가 높다. 그런 데 가정폭력피해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해 온 한국여성의 전화 활동가들과 여성주 의자, 법학전문대학원생들이 협업하여 시너지 효과를 발휘고 성인지적 분석을 한 방대한 연구물을 만든 점에서 여성주의(젠더)판례연구의 모범이 된다고 평가된다. 한편, 이 발제는 구체적인 분쟁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고 법을 해석, 적용하여 사 건을 처리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사법(司法)을 담당하는 경찰, 검찰, 법원 들이 가정폭력 사건을 어떻게 판단, 처리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문제를 각성시킴으로써 가정폭력에 관한 사법의 개선을 하게 하는 기대효과를 가지고 있 다.

향후 이 발제문은 가정폭력에 관한 연구와 교육의 자료로도 널리 활용될 것

으로 본다.

1)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토론문 75


2. 발제의 한계 이 발제는 통상의 논문형식이 아니라 이례적으로 넌픽션물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가정폭력의 사건과 판결내용이나 사법처리의 문제에 관한 서술 이 쉽게 읽혀지는 장점이 있는 한편, 그에 관한 분석이나 논지의 전개가 심도있고 조리있게 느껴지지 않는 단점이 있다고 본다.

Ⅱ. [살인과 젠더]발제에 관한 질문과 개선점 1. 조사방법 1) 이 발제는

“남성배우자에게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121건” 과 “가정폭력 피

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 21건”으로 분석사건의 대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 한 표현보다는 가정폭력사건 중 배우자 사이의 폭력을 다루고 있으며 그중 남성배 우자(가정폭력가해자)가 여성배우자(가정폭력피해자)를 살해한 사건 121건과 여성 배우자(가정폭력 피해자)가 남성배우자(가정폭력가해자)를 살해한 사건 21건을 분 석하고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 분석대상을 더 명료하게 한다고 본다. 2) 분석사항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인적사항(성별, 연령, 학력, 지위 등)을

넣어

가정폭력이 거의 남성에 의해 여성을 대상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젠더문제를 가진 다는 점과 연령•학력•지위에 관계없이 또는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에서도 많이 발생한 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3) 분석대상이 된 사건 또는 판결들의 발생기간을 제시해야 할 것이며, 시간이 변화됨에 따라 사건과 판결에 어떠한 변화가 있는 지를 분석함이 필요하다.

2. 분석의 방법 1) 이 발제는 프랑스와 호주의 법원이 가정폭력피해자가 가해자인 남편을 살해 한 행위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를 발견하고 “환호하며 힘을 내었고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판결을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라고 하였 다. 사법부를 설득시키려면 이에 관한 사례들을 분석, 제시해야 하는데 이 발제는 12줄에 할애하여 소개하는데 그치고 있다.


2) 이 발제의 “남성배우자에게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121건”에서 분석은 “ 1. 범죄별 건수, 2. 여성을 살해한 이유들, 3. 이전 가정폭력 상황들, 4. 변호인의 주 장 1. 가해자 측 주장 5. 감경사유를 제외한 양형이유 6. 감경이유 ”으로 구분되어 있다. (1) “2. 여성을 살해한 이유들”에서 격분과 분노의 차이는 무엇인가? (2) “ 3. 이전 가정폭력 상황들”은 “살인사건의 배경: 가정폭력”으로 고치는 것이 내용을 보다 잘 함축하는 것은 아닌가? (3) “4. 변호인의 주장”에서 살해사건의 피해자 측 변호인의 주장은 왜 없는 가? “살해동기”라고 고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4) “5. 감경사유를 제외한 양형이유 6. 감경이유 ”는 “법원의 양형과 형의 감경이유”라고 고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닌가? 3) 이 발제의 “Ⅱ.가정폭력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 21건 분석”에서 제 목과 사례내용이 일치하지 않거나 제목이 사례내용을 정확히 집약하지 않은 부분 이 있다. 사례내용에 사법부의 문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문제가 드러나는데 이러한 문제를 잘 표현하도록 제목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4) 이 발제의 “배우자 살인의 그럴듯한 이유, 또는 용서받지 못할 이유”에서 법 원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어떻게 판단을 달리하였는지를 일목요연하

게 정라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5)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남성인 사건과 판례의 양적, 질적 분석을 하여 가정폭 력의 피해자가 여성인 사건과 판례와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함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 분석은 가정폭력을 젠더의 문제로 보지 않거나 피학대여성증후군을 여성편향적 인 것으로 보는 시각을 교정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6) 1993년 12월에 UN이 [여성에 대한 폭력철폐선언]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하였고 아 선언에서

성희롱․성폭력․가정폭력․강제적 성매매 등과 같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남녀 간의 불평등한 힘의 관계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여성의 종속적 지위를 고착시키며, 여성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고, 「여성차별철폐 협약」에서 말하는 여성차별에 해당됨을 명확하게 선언한 점, 또한 이 선언은 국가 가 폭력을 당한 여성의 권리침해를 조사하고, 공정하고 효과적인 구제를 도모하며,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한 다양한 법제도를 발전시키도록 명시하한 점, 또한 여성폭 력의 방지를 위해 조사․처벌하고 법을 집행할 책임 있는 공직자가 여성의 입장을

토론문 77


이해하기 위한 훈련을 받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한 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 다. 7) 가정폭력을 받지 않을 기본적 인권을 구성하고 그 논거를 정치하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Ⅲ. 가정폭력에 관한 사법(司法)의 문제와 개선방향 법을 전공하고 법실무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법과 판례가 공정하고 합리적, 객 관적, 성준랍적이라고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젠더법학 , 여성주의 법학 은 법의 남성편향성을 지적하고 있다. 법의 형성․적용․집행(입법, 사법, 행정)은 주 로 1)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시대적 상황, 2) 입법․사법․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경험․입장, 3) 이해관계 당사자의 영향력(힘관계), 4) 국민의 의 식과 여론이 어떠한가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네 가지 여건이 변화하면 법과 판례, 정책은 변화하게 된다. 그중 특히 입법․사법․행정․법학을 담당 하는 사람들(대통령, 국회의원 등의 정치인,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의 법실무자, 공무원, 법전문가 등)은 권한과 전문성을 가지고 법과 판례, 정책에 그들의 가치관 과 경험, 입장, 이해관계를 반영함으로써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어떠한 사람 들이 입법․사법․행정을 담당하는가에 따라 법과 판례, 정책은 달라질 수 있다.

런데 법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정치와 입법․사법․행정․법학은 주로 남성이 담당 하여 왔다. 이에 따라 법은 남성중심적인 가치관과 경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형 성되고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여 왔다. 법이 남녀평등을 보장하게 된 것은 여성들의 법에 대한 비판과 여성의 인권과 남녀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UN의 [여성에 대한 폭력철폐선언]이 제안한 바와 같이 배우자사이의 살인이 연 루된 사건에서 가정폭력의 배경이 있는지, 살인사건의 가해자에게 가정폭력의 피해 증후군이 있는지, 정당방위를 인정할 정황이 있는지를 사법부의 종사자들이 인지하 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법과대학, 로스쿨, 사법연수원, 법무연수원 등에서 가 정폭력과

젠더법학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


토론 2. 박강우_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토론문 박강우1)

한국사회에서 가정폭력문제는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 사회적 무관심, 법적‧제도 적 지원체제의 열악함 등으로 인하여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 고 질적 문제의 하나입니다. 이번 토론회가 부디 가정폭력문제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 고 선순환의 계기로 자리잡는데 기여할 수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발제문에서 고미경소장님과 허민숙교수님은 가정폭력 관련 판례(남성배우자에 의 해 여성이 살해당하거나 치사에 이른 121건, 가정폭력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살인 사건 22건)를 수집, 분석하신 다음, 우리 법원이 가해자의 처벌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징역 3년 ~ 징역 12년),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이 가해자인 남편을 살해하 거나 치사케 한 경우 정당방위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여성피고인의 형량이 2000년 이전에 비교적 관대하였지만, 2000년 이후 큰폭 으로 상승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1990년대에 발생한 9건의 사건중 최종적으로 집행유예판결을 받은 사건이 6건이고, 가장 높은 징역형이 4년이었음 에 비하여, 2000년 이후 발생한 12건의 사건 중에서 최종적으로 집행유예판결을 받은 사건은 1건에 불과했고, 가장 높게 선고된 징역형이 11년에 달하고 있습니 다. 우리나라 재판부가 가정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오랫동안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 리다가 마지막 방어수단으로 남편을 살해한 경우 이처럼 정당방위 인정에 인색한 이유는 일단 법률이 인정되는 정당방위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형법은 정당방위가 성립하기 위한 객관적으로 요건으로 “자기 또는 타인 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어야 하고, 그 방위행위가 “상당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신체나 생명에 대한 급박한 침해가 있다고 보지 않거나, 1) 충북대학교 법전원 교수

토론문 81


방위행위가 상당성의 정도를 벗어났다고 보는 것이 정당방위를 부정하는 주된 이 유입니다. 이와 같은 재판부의 태도는 남편의 폭력이나 위협이 평소 있었더라도 생 명에 대한 위해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금 참으면 되지, 아내가 그에 극단적으 로 맞서서 남편을 살해하는 것은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당방위의 원래 법정신은 불법하거나 부당한 공격에 맞서서 방위자가 법질서를 수호하기 위하여 하는 행위이므로 엄격한 법익의 비례성 내지 균형성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80년대 변○수사건에서도 인정했듯이 강간범인 가해자가 자신을 강간하려 하자 혀를 물어 절단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법익의 엄격 한 비례성을 요구하면 성적 자유(여성) 대 신체(남성)의 불균형으로 정당방위의 상 당성이 인정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부사이에서는 상대방의 법익이 위험에 빠졌을 때 이를 보호할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호신뢰가 인정되는 정상적 부부사이에 인정되는 것이며, 오랫동안 가정폭력(평균 20년)과 성 적 학대 등으로 인하여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린 부부사이에서 상대방의 폭 력을 참으며 살라는 요구는 부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더구나, 피해여성에게 “다 른 방법을 강구하여 폭행으로부터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라거 나 “피해자와 이혼을 하거나 피해자의 가정폭력을 신고하는 등 … 그러한 상황에 서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라는 재판부의 판단은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열악한 사회적 지원체제를 감안하면, 매우 비현실적이고 안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발제 문에서도 지적했듯이 가정폭력을 신고하면 경찰들은 대부분 “부부싸움을 가지고 왜 그러냐며 조금만 참아달라”고 하거나 “가정사니 두 사람이 잘 얘기하라”고 돌 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가정폭력사건은 단순한 집안의 가정사가 아니라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가정폭 력에 관한 법률이 많이 개정되었지만, 경찰이나 관계당국의 기본적 인식은 크게 변 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가정폭력으로 시달리는 많은 피해여성의 경우 ‘매맞는 여성 증후군’으로 인하여 가해자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평소 말대답도 제대로 못하 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끝으로, 정당방위에 관한 현행 법체계가 뿌리깊은 남성우월주의에 기초한 불평등 한 젠더규범이라는 주장(가정내 폭력에 대해 피해자에게 퇴거의무를 요구한 영미의 규범)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좀 더 논증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재판부의 인식 자체가 남성에 편향적이라는 점은 인정할 수 있을지 몰라도, 법규범 자체가 성차별적이라는 주장은 쉽사리 수긍되지 않습니다. 가정폭력사건이 아닌 기타 정당 방위 사례에서도 정당방위상황을 초래한 원인을 제공한 피공격자는 그러한 상황을


초래한 것에 대한 일단의 책임이 있으므로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일단 피하라는 회피의 원칙이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죽고 죽이는 가정폭력의 악순환의 고리가 끊기고 남녀평등하고 폭력 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로 나아가는데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나갈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토론문 83



토론 3. 원민경_ 법무법인 (유)원 변호사/ 본회인권지원사건 담당변호사



국가와 사법기관이 외면했던 그녀들, 세상과 다시 손을 잡다 원민경1)

1. 들어가는 글 2012년 10월에 구성되어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기성 법조인을 뛰어넘는 열정과 법률가 정신을 가지고 ‘121건의 죽거나 사건’과 ‘21건의 죽이거나 사건’을 정리한 ‘정당방위지원팀’과 가정폭력 피해여성에 대한 올곧은 시각과 혜안으로 ‘정당방위 지원팀’을 구성하고 이끌어오신 ‘한국여성의전화’에 같은 여성으로서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립니다. ‘살인과 젠더’에서 정교하게 분석된 ‘죽거나’, ‘죽이거나’ 사건의 판결과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이 직면해야 했던 현실,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예리한 문제제기와 제언 은 지금도 계속되는 ‘죽거나 죽이거나 사건’을 예방하고 사법제도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데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수십 년 동안 가정폭력피해의 고통 속에 살다가 ‘죽거나, 죽이거나’ 사 건의 당사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과 그 가족들이 희망을 갖고 세상과 다시 손 을 잡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제가 작년과 올해 만난, ‘죽이거나

사건’ 이후 비로소 세상과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어느 누구보다 선한 그녀들2)의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2. 2013년 가을, 징역 4년이 확정된 정숙현씨 1) 법무법인 (유)원 변호사, 본회인권지원사건 담당 변호사 2) 이하 ‘그녀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

토론문 87


2012년 7월 어느 날, 신문기자를 통해 살인사건을 접한 한국여성의 전화 활동가 들의 연락을 받고 아침 일찍 경찰서로 찾아가서 만난 정숙현씨는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말로 지극히 평범한 두 아들의 엄마였습니다. 정숙현씨는 가족의 생 계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식당에서 일을 하느라 또래여성에 비하여 훨씬 두꺼운 손목과 두툼한 손을 갖고 있었습니다. 황망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던 정숙현씨의 손을 잡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도움을 드리려고 한다, 꼭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으나, 남편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도움을 극구 거절하였던 정숙현씨. 정숙현씨 의 손에 겨우 쥐어 드리고 나온 명함. 안타까운 마음으로 영장실질심사가 이루어지 는 법원에 활동가들과 함께 따라가 기다렸지만,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수사관에 이끌려 삶을 포기한 듯한 얼굴로 법정 밖으로 나오셨던 정숙현씨. 이 분이 또래 여성들과 다른 점이라면, 20년 가까이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며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죽이거나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정폭력으로 부모님이 이혼한 후 다가온 불우한 성장기, 남편의 가정폭력, 이혼, 남편이 이혼 후 자녀의 양육비를 술값으로 탕진하는 것을 보고 재결합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경찰에 여러 번 신고도 하였지만,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 에 어느 누구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도와주지 않았던 현실.

결국 피학대여성증

후군에 의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합리적인 능력이 현저히 약해 진 상태에서 2012. 7.에 발생한 참으로 불행한 아니 어쩌면 예상되었을 수도 있는 그 날의 사건. 정숙현씨는 두 아들을 바라보며 인고의 세월을 홀로 감당한 뒤, 결 국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핸드폰도 없이 아침부터 밤까지 식당에서 일하다가 밤에는 남편의 가정폭력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부터 장사 준비를 해야 했던 정숙현씨.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내세우기 보다는 하늘에 있는 남편을 위해 계속 속죄의 기도를 하겠다는 착하디 착하기만 하셨던 정숙현씨.

사건 발생 후 아들 잃은 슬픔을 넘어서서 가

정폭력으로 얼룩진 삶을 버텼던 며느리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마지막까지 보여 주 셨던 정숙현씨의 시어머니. 큰 사건을 겪었으면서도 장학생으로 당당하게 대학에 입학한 큰 아들. 검찰은 국민참여재판 내내 피해자의 부검 사진 중 칼에 찔린 장 기 사진만을 강조하며 정숙현씨를 잔혹한 살인범으로 몰고 갔지만, 정숙현씨는 단 지 장기간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던 가정폭력 피해여성이었을 뿐입니다. 가정폭력에 상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반복되는 공포, 무력감으로 인하여 물리적 인 폭력상황과 무관하게 피해를 당하였던 순간의 고통과 공포를 재 경험하는 정신 장애를 겪게 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끝내 정숙현씨의 피학대여성증후군에 의한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정숙현씨는 비록 지난 20여 년간 세상과 단절되어 홀로 모든 폭력을 감당해야 했 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건 발생 후 비로소 세상과 다시 손을 잡고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지금은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되어 수형생활 중에 계시지만, 변호인에게 위로의 편지를 먼저 보내고 세상에 다시 나오면 본인과 같이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삶 을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정숙현씨.

이제는 ‘가정폭력

피해자’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로 꿋꿋이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실 정숙현씨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뜨거운 지지와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3. 2013년 가을, 윤필정씨의 정당방위 살인 사건 2013년 가을 또 다시 큰 딸 수지양을 통해 ‘죽이거나 사건’의 당사자로 찾아 오신 윤필정씨.

25년이 넘은 장기간 동안 남편의 지속적이고 반복된 폭행으로 인

하여 돌발성 감각신경성 난청, 우울증 등 각종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앓아온 그녀. 더군다나,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에는 남편으로부터 직접적인 살해 위협을 받아 왔 었고, 실제로 살해될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25년 동안 윤필정씨가 격은 가정폭력의 정도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혼인 초

첫 여행을 갔을 때, 남편은 고속버스에서 담배를 핀다는 이유로 다른 승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았을 때, 윤필정씨가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무가내로 폭행 하였습니다. 첫째 딸의 기억에 의하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남편이 윤필정씨의 머리를 공구로 내리쳐 당시 티셔츠가 피로 물들 정도로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도 했습니다. 포커를 해야 하니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면서 유리병을 윤필정씨에게 던지고, 목 뒤 급소를 찍어 내리는 등으로 폭행하였을 때에는 윤필정씨가 이렇게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깨진 유리병 조각으로 손목을 그었지만 아랑곳하 지 않았던 남편. 윤필정씨는 물론이고 딸들까지 제발 이혼해달라, 엄마를 놓아달라 고 부탁하였지만, 윤필정씨가 도망가면 친정식구들을 전부 죽여 피바다로 만들고 청부업체에 의뢰하여 윤필정씨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겠다고 하면서 딸들을 협박 하고 걸핏하면 전깃줄로 채찍질하듯이 때렸던 남편.

사건 발생 며칠 전,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윤필정씨를 폭행하고, 맹독성 화학약품을 먹이려고 하였던 남편. 급기야 윤필정씨를 일방적으로 폭행하고 노끈으로 실신하여 죽기 직 전까지 목을 졸랐던 남편.

그 날 저녁 부엌에서 과도를 가지고 와 죽이겠다고 위

협하고 손으로 다시 윤필정씨의 목을 조르다가 풀어주면서 지금 죽이지 않고 피를

토론문 89


더 말린 후에 죽여야겠다고 하면서 협박한 뒤, 다음 날 새벽 2시경 딸들이 있는 자리에서 윤필정의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자신을 떠나면 친정 식구들을 모두 죽이 고, 불을 지르고 청부살인업자를 사서 피고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겠다고 한 남 편. 그리고, 사건 발생 당일 남편이 망치를 공장의 책상에 두고 스탠드도 깨버리면 서, 일만 끝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자, 결국 공포에 질린 상태에서 자신과 딸들의 생명에 대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앉아있는 남편의 목을 조를 수밖에 없었던 윤필정씨. 그녀 역시 지금 피고인으로, 목이 매어 방청석의 딸 들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여린 마음의 그녀가 형사재판의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혼하게 되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모두 죽여버리고 자살하겠다는 남편으 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윤필정씨가 나갈 수 있는 문이, 넘을 수 있는 벽이 과연 있 었을까요. 이제는 사법부가 가정폭력 피해여성의 삶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토대로 윤필정에 게 그녀가 찾지 못했던 문을 찾아 주고 결코 피난처가 되지 못했던 벽이 되어 주 어야 할 것입니다. 검사가 윤필정씨의 무죄를 구형하고, 재판장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수십 년간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던 윤필정씨와 그녀의 딸들에게 국가와 사법기관을 대표하여 사과를 하는 그 날, 사법부의 진정한 정의가 세워지는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 기대하며 토론을 마칩니다.


토론 4. 김푸른솔_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 본회 정당방위사건지원팀



자기만의 방 김푸른솔1)

<살인과 젠더> 발제문 작성에 필요한 자료 리서치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아마 제가 다루고 싶었던 법리적 차원의 이야기들은 제가 직접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 씬 정교하고 충실하게 발제문에 담겨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해 학문적 엄밀성이나 실무적 적실성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정당방위지원팀 활동에서 들었던 생각들을 보다 자유롭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1. 공포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정당방위지원팀에서 저는 정당방위에 대한 기존 논의와 판례를 수집하고 가정폭 력과 정당방위를 둘러싸서 어떤 대안적인 담론들이 진행되는지 탐색했습니다. 여태 까지 판례는 정당방위를 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해왔습니다. 정당방위지원팀의 기 본 주장은 이런 정당방위 법리를 재구성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공적 시스템과 젠더 권력관계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정당방위 가 인정되는 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히는 작업입니다. 사람들은 미지의 것에 대해 공포를 가집니다.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은 미지의 법리를 마주하는 법조인도 공포를 느낄 것입니다. 새로운 법리에 대한 거부감이나 방어적 행동, 기존 법리에 대한 옹호가 나타나곤 합니다. 정당방위지원팀에 참여하 는 여러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몇 년간 기존 법리를 학습해온 덕분에 새 법리는 낯설고, 때로 두렵기도 합니다. 1)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학생, 본회 정당방위사건지원팀

토론문 93


정당방위지원팀 내에서 많은 논의들이 있었습니다. 판례의 태도보다는 진일보한 논의였지만 새로운 법리에 동의하지 못하는 참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고의 지평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무엇보다 법조인들이 느끼는 낯선 법리에 대 한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며, 상당히 뿌리가 깊다고 느꼈습니다. 명색이 정당방위지 원팀인데 그 안에서도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기 힘드니 말입니다. 미지의 법리에 대한 거부 반응은 자연스럽고, 반드시 부정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법리들, 혹은 외국에서 수입해오는 법리들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고, 기존 체계와 어느 정도로 유기적으로 들어맞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무턱대고 법리와 판례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어느 상황에서 새로운 법리와 논의를 받아들여야 하고, 어느 상 황에서는 기존 법리를 존중해야 하는지, 그 지점을 찾는 작업일 것입니다. 법조인 과 법원의 과제는 사회적 형평과 정의를 되찾는 것이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2. 미지 “고속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웠을 때 자기 편 들어주지 않았다고 막말하고 폭행을 했습니다.” “자기 성질에 못 이겨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고 또 가고 또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고 또 가고 욕하며 주먹 날리고 귀 잡아당기고 가슴 조마조마하고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말 못하고 맘속에 쌓아놓고 속앓이 했던 나만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 피의자 신분으로 살해 혐의로 조사받는 가정폭력피해자가 수사검사에게 보낸 편지 중

가정폭력피해자가 자기가 여태까지 당해온 일들을 상세히 적어 수사검사에게 보 낸 편지 중 일부입니다. 편지를 받은 검사는 피해자의 경험을 자신에게 익숙한 개 념들로 치환할 것입니다. 폭행이나 협박과 같은 개념들로 말입니다. 폭력이 집에서 일어나든 집 밖에서 일어나든, 결국 적용되는 실체법 조항은 폭행이나 협박으로 같


으니 말입니다.2) 검사는 공소장에 이 사실들을 “결혼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해”왔다고 적게 됩니다. 피해자가 겪은 가정폭력은 ‘폭행’으로 정리가 됩니다. 법원의 사고과정도 크게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가정폭력피해자는 폭행을 당해왔 고, 협박받았다고 인식하겠지요. 이는 사실관계를 잘못 파악한 것도 아니니 말입니 다. 검사는, 그리고 법원은 여기에 질문을 하나 덧붙입니다. “일단 폭행과 협박이 중단한 다음에 벗어나면 될 일이 아니었는가? 굳이 가해자를 살해할 필요가 있었 는가?” 맞습니다.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다가 폭행이 멈췄다면 도망치거나, 경찰에 신 고하면 될 일입니다. 폭행하던 자를 살해한 후 정당방위를 주장한다면 법원은 현재 성이 없거나 상당성이 없다고 판단하겠지요. 변호사가 주장하는 이 낯선 정당방위 법리, 이른바 젠더 권력관계를 언급하고 공적 시스템의 부재를 지적하는 법리는 들 어설 곳이 없을 것입니다. 법원은 여기서 가정폭력이라는 건 결국 폭행이나 협박을 비롯한 각종 폭력행위 이고, 그것이 가정폭력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가해자에 의한 폭력행위로부터는 이혼소송이나 경찰신고 등을 통해 벗어나면 그만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사족을 덧붙여 피해자가 벗어날 수 없었다는 점이나, 가정폭력의 맥락을 더 충실하게 이해 해달라고 탄원하면 법원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이미 법원은 가정폭력의 정황을 충분히 고려했는데 무엇이 더 문제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이 가정폭력을 개별적인 폭력행위로 이해하는 한, 법원은 자신이 가정폭력을 이해한다 고 착각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가정폭력은 하나하나의 구타와 협박, 폭력행위의 총합을 초과합니다. 피해자가 수사검사에게 보낸 편지 중 ‘나만의 비밀’이라는 문구야말로 이를 가장 절실하게 나타냅니다. 왜 숱한 피해자들은 가정폭력 경험을 ‘나만의 비밀’로 간직해왔을까 요? 더러는 이 비밀을 폭로하려고 했으나, 수사기관과 이웃의 외면으로, 즉 비자발 적으로 가정폭력을 ‘나만의 비밀’로 등에 져야 했습니다. 더러는 자기 경험이 가정 폭력인지조차 모르고 이를 ‘나만의 비밀’로 여겼고, 더러는 차마 무서워 입 밖에 낼 수가 없었습니다. 법원은 폭행, 협박, 경제적 착취, 모욕, 불안감, 무기력감 등을 비밀로 유지할 수 밖에 없는 가정폭력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가정폭력이 당사자에게 ‘나만의 비밀’로 남을 수밖에 없는 바로 그 지점이 가정폭력의 본질이라는 점을 이 해하고 있을까요? 여태까지 쌓여온 판결문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 입니다. 가정폭력이 비밀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한다는 건 곧 가정폭력 2) 적용되는 절차법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토론문 95


피해자가 벗어날 수 없었던 사정을 이해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이를 이해하는 취지의 판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정당방위를 재구성하라는 주장 자체가 낯설고 새롭다기보다는 법원이 여태까지 가정폭력이라는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 다. 가정폭력 자체가 법원에게는 아직 낯설기 때문에 법원은 이를 폭행이나 협박으 로 치환하려고 그동안 노력해왔습니다. 낯선 법리를 외면하고 기존 법리를 이용하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는 행위입니 다. 하지만 낯선 상황은 외면할 수도, 기존에 익숙한 상황으로 대체할 수도 없습니 다. 가정폭력이라는 법원에게는 낯선 이 상황은 너무도 자명한 현실로 존재하고 있 으며, ‘나만의 비밀’을 이제야 공개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며 검찰청과 법원의 문을 두들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상황에서 새 법리를 수용해야 하고, 또 어떤 상황에서 기존 법리를 고수해 야 할까요? 법원에게 낯선 상황이라고 무조건 새로운 법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적어도 어떤 법리를 적용할지 고민하는 과 정에서 기존 법리와 새로운 법리를 동등한 위치에서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기존의 법리가 예고하지 않은 이 상황 앞에서 기존 법리의 특권적 지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습니다. 법원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정당방위 재구성 논의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3. 감정

“저희 엄마는 두 딸 때문에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빠의 폭력을 참고 견디며 갇혀 살았습니다. 이제야 두려움과 불안에 떨지 않고 사람답게 세 모녀가 살 수 있는데 저와 동생만 편해지고 또 갇혀있는 엄마가 불쌍해서 잠도 오지 않습니다.” -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탄원서 중 수십 년 넘게 가정폭력을 당해온 피해자. 외면하는 사회. 남겨진 두 자녀. 감정 적 동요가 일어나나요? 적어도 제 감정을 울리기에는 충분한 문장이었습니다. 반 면 법조인들은 합리적 판단이란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판단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피해자의 증언과 경험에 녹아있는 고통과 공포, 처절함이 가슴에 와 닿더라도 그 감정의 동요를 차단하는 것이 법조인의 임무라는 듯이 말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감정적인 상황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초 연함과 냉정함’을 지킨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입니다.3) 그런 의미에서 폭력이 지낸 맥락과 피해자가 토해낸 감각과 이야기들, 또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판결문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가정폭력”4)을 당했다는 문구로 다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법 원의 태도야말로 진정 두려움을 자아냅니다. 가정폭력피해자가 당했던 폭력을 하나하나 판결문에 적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가정폭력이 폭행과 구타를 넘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달라는 것입 니다. 국가기관으로서, 작동하지 않은 공적 시스템을 묵과하고 판결문을 작성하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피고인석에 앉고 나서야 ‘나만의 비밀’을 고백할 수 있었던 가정폭력피해자의 부조리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인지해달라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가정폭력’이라는 이 몇 개 안 되는 글자에 담긴 경험과 세월을 듣고, 거기로부터 전달되는 감정적 울림을 깊이 새겨달라는 것입니다. 감정에 치우치는 건 여하간 권장할 일이 아니라고 반박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피해자의 증언에서 전달되는 감정적 울림을 차단하는 동기는 다름 아니라 이런 낯 선 가정폭력을 외면하고 싶은 또 다른 감정에 불과합니다.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 고, 당사자의 경험을 충분히 청취하지 않은 채 판단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무지에 사로잡힌 채 내린 판단으로 어떤 ‘합리성’도 지니지 못합니다. 가정폭력이 그토록 낯설다면 우선 경청하고 익숙해져야 합니다. 가장 생생하게 경험한 당사자로부터 말입니다.

4. 자기만의 방

“픽션에서 그녀는 왕과 정복자들의 삶을 지배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손가락에 강제로 반지를 끼워준 어느 부모의 아들에 딸린 노예였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3)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 이후, 1999, p. 101. “감정의 부재는 합리성을 일으키지도 않 으며 조장하지도 않는다. ‘참을 수 없는 비극’에 비추어 볼 때 ‘초연함과 냉정함’이 오히 려 ‘두려운’ 것일 수 있는데, 이를테면 그것이 통제의 결과가 아니라 이해력 결핍의 명백 한 징후인 경우에 그렇다.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동’해야만 하며, 감정 적인 것의 대립물은, 어떤 의미에서도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동에 대한 무감성’으로 서, 대개 병리적인 감상이거나 아니면 감상으로서, 느낌의 도착이다.” 4) 서울고등법원 2013. 6. 7. 선고 2012노4320 판결. 이외에도 “피해자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점”(서울고등법원 2012. 7. 20. 선고 2012노909 판결) 등으로 표현된다.

토론문 97


오늘날 가정폭력피해자의 삶이란 어떨까요? 저는 노예의 삶이 어떤지는 잘 모릅 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증언과 기록들을 통해 그녀들 삶이 어땠는지는 조금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가해자를 자극할까봐 함부로 재채기도 할 수 없고, 언제나 가해 자의 기분에 온 감각을 기울여야 하는 그 삶을 말입니다. 가해자가 두려우면서도 가해자에게 일정부분 의지할 수밖에 없고, 외출조차 자유롭지 못하며 말 한마디 잘 못했다가 가해자에게 온갖 협박과 구타를 당하는 그 삶을 말입니다. 자기에게 생사 여탈권이라도 있다는 듯이 툭하면 죽이겠다는 폭언에 시달려야 하는 그 삶을 말입 니다. 그런데 자기가 가정폭력 피해자라는 걸 밝히기에 너무 ‘부끄러워’ 스스로를 부정해야 하는 그 삶을 말입니다. 누군가는 가정이란 쉬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가정이라는 단어는 화목, 평화, 건전 등과 어울리곤 합니다. 이건 누구의 시각인가요? 귀가하 여 바로 신문을 읽고, 과일을 먹으며, 다음 날 아침 별다른 수고 없이 다려진 옷을 입은 채 나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노동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 노동은 고스란히 피 해자 몫입니다. 피해자에게 가정이란 일터이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 한 터전입니다. 그 터전 안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서 가정폭력은, 개별적인 구타나 협박, 성폭력 등으로 구체화될 수는 있어도 그렇게 다 설명될 수는 없습니다. 가정폭력이란 피해 자의 삶을 유지 불가능하게 만드는, 터전 자체를 흔드는 폭력임과 동시에 그 터전 에서 내몰리지 않기 위해 감내할 수밖에 없던 폭력입니다. 이건 피해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피해자를 둘러싼 사회 시스템이 강요하는 생각입니다. 부부 사이에 잘 해결 해보라는 경찰관의 부적절한 언행이나 이웃의 외면으로 나타나는 시스템적 강요 말입니다. 피해자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 안식처나 쉴 수 있는 공간, 편하게 기침이 라도 하고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공간, 자기만의 방조차 갖지 못한 채 가해자의 미묘한 기분 변화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서야 하는 삶에 처합니다. 연민이나 동정 을 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환경과 맥락과 감정을 이해하고, 그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선택에는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자는 것입니다. 생계를 위해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던 피해자는, 가정으로 돌아와서 가해자가 발 뻗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고역을 감내합니다. 그녀는, 피해자는 언제쯤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을까요? 피해자가 교도소에 가서야 자기만의 방 을 가질 수 있다는 현실은 지금도 반복됩니다.


토론 5. 신상숙_서울대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


젠더의 관점에서 본 폭력의 맥락화와 대안의 가능성 신상숙1)

1. 들어가며 여성의전화는 1983년에 창립한 이래 아내구타를 상담하고 무수한 가정폭력 피 해자들을 지원해 왔으며, 우리나라 여성폭력추방운동의 효시이자 살아있는 역사를 대변하는 여성인권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의 발제 내용은 그 오랜 상담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정당방위 지원 사례들을 자료화하고, 가정폭 력 피해자 사망사건의 판결문들을 추가로 수집하여 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결과 라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있는 연구 성과이자 정책 개선의 기초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오늘의 발제문을 읽고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은 글의 내용이 담 아내는 암담한 현실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 동안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거나 때로 죽음보다 더 참담하고 잔혹한 비극을 동반하는 가정폭력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제문에서 여러 근거를 통해 제시하고 있듯 이, 배우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남성의 폭력과 정당방위 차원에서 남편을 살해한 피해 여성의 자구적 폭력에 대한 판결의 잣대는 동일하지 않으며 젠더에 따른 편 향을 내포하고 있다. 판결문을 비롯한 사건 관련 자료의 분석을 통하여, 이 연구의 결과는 과연 가정폭력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서 법원이 추구하는 인권과 정의가 무 엇인가를 다시금 질문하고 있다. 발제자 외에 여러 팀원들의 땀과 노고를 통해 수집되었을 판결문들은 가정폭 력, 그 중에서도 특히 배우자 간의 폭력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자료로서의 가치가 클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분석의 내용이나 주장 역시 대단히 중요하고 시사적인 내 용을 담고 있기에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판결문의 자료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만큼 향후의 분석이 더 진전된다면 더욱 풍부한 함의들 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토론의 말씀을 해주시는 1)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부소장


만큼, 본 토론자는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연구작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 가에 한정하여 몇 가지 측면에서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2. '살인과 젠더'; 제목이 환기시키는 문제의 역사성 우선 이 발표는 "살인과 젠더"란 제목이 이목을 사로잡는다. 상당히 강렬하고 섬뜩한 제목이지만, 이것은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 나아가 일견 평온해 보이는 가정이라는 일상의 공간이 언제라도 폭력이 난무하는 전쟁상태로 반전될 수 있음 을 시사하는 점에서 의미심장해 보인다. 일찍이 홉스(Thomas Hobbes)가 간파하 였듯이, 개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추구할 절대적인 자유를 행사하는 자연상태에서 한 개인의 욕망은 다른 이의 그것을 무한정 침탈할 수 있다. 또한 마치 궁지에 몰 린 쥐가 고양이를 물 수 있듯이, 아무리 약한 자도 타인들과 힘을 합치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강한 자의 욕망을 근본적으로 좌절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 죽음이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이러한 만인의 전쟁상태를 벗어나 시민의 생명 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근대 법치국가의 최소 의무이자 법적 질서의 존립근거라 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흔히 자유의 보루로 여겨지는 섹슈얼리티나 가족과 같은 이른바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관한 한, 법적 정의의 실현은 지극히 소 극적인 범위에 머물러 있었다. 돌아보면 1990년대에 여성단체들이 성폭력이나 가정폭력 관련 법제정을 추진할 당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킨 사건들 역시 이처럼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가혹한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와 주변인이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들이었다. 즉, 국 가와 사회는 극한에 몰린 피해자 측이 자기방어적인 폭력으로 수인이 된 후에야 뒤늦게 가해자의 폭력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과연 이러한 근본적인 불균형 과 아이러니가 법률의 제정 이후 얼마나 달라지고 개선되었느냐 하는 점이 이러한 연구를 기획하게 된 문제의식에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3. 판결문의 분석: 사건의 기록 또는 구성된 텍스트 흔히 자료에 대한 분석방법은 자료의 성격과 분석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서 취사선택된다. 이 발제문에 적용된 분석 방법을 보면 몇 가지 방식이 병행하여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판결문에서 주요 항목을 분류하고 핵심적인 키 워드를 추출하여 이를 수량으로 전환하는 내용분석(contents analysis)을 기본적 으로 적용함으로써 많은 질적 자료들을 수량화하고 일목요연하게 비교하여 파악할 수 있게 한 점이 돋보인다. 남성배우자에 의해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121건)과 여 성 피해자에 의한 가해자 사망사건(22건)의 판결문을 하나하나 꼼꼼히 검토하여 이

토론문 101


를 자료화하고 분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발제문에서는 분석 의 결과를 잘 정리하여 압축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내용의 윤곽이 비교적 잘 드러나 고 있다. 그런데 판결문 등의 문헌을 자료화하여 분석함에 있어서, 1차 자료가 동일할지 라도 이를 독해하는 방식은 연구의 목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사 건의 실제 발생과 판결 과정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서 파악하고자 하는 접근으로, 이는 판결문을 사건의 객관적 기록으로 간주하는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는 판결문을 특정 화자에 의해 생산된 일종의 텍스트로 간주하여 해당 텍스트의 생산 자, 문맥, 표현, 연결관계 등을 살피는 접근이다. 다양한 접근을 병행하는 것이 가 능하고 바람직하지만, 분석의 지표나 해석의 방식에 있어서 두 접근 간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령, 사건의 발생과 사실관계에 주목한다면, 가해자-피해자의 관계 기간 뿐 아 니라 최초 폭력의 발생 시점으로부터 해당 사건의 발생까지의 기간 등이 폭력 발 생과 관련하여 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고, 그런 지표들이 보강되면 좋을 것이 다. 텍스트의 분석에 충실한다면, 판결문 역시 구성되고 짜여진 텍스트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 경우에는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어휘들의 연결관계 외에 작성자 또는 생산자(재판부의 성별, 법원의 지역 등)에 대한 분석도 병행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현재의 발제문에서는 판결문에 대한 분석의 개요 외에 두 유형의 폭력에 대한 각론적 분석이 서로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자료제시와 분석 방식 을 맞추어 통일할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여겨진다.

4. 가정, 폭력, 그리고 젠더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의 제정‧시행은 암담한 현실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오늘 발제의 분석결과에서 엿볼 수 있듯이 시 기별 변화는 그다지 뚜렷한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은데, 변화의 장기적 추이에 관한 발표자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은 저 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관한 의미를 둘러싼 해석틀에 좌우된다. 분석

의 곳곳에서 드러나듯이 법률의 근거 조항을 사건에 적용하는 과정에 동원되는 무 수한 언어는 젠더시스템의 영향 속에서 성별에 따른 편향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법원에서 지배적으로 드러나는 '가정폭력'이란 해석틀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떤 해법을 통해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게 된다. 토론자가 보기에 어느 면에서 이 문제는 폭력의 발생 맥락으로서 '가족'이란 집


단과 '가정'이란 공간이 갖는 특성을 여성주의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 법률 제정의 전후로 활발하게 이뤄지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 정과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한국사회에서는 일찍이 1950년대부터 가족법개정운동 이 지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주의'의 사회문화적 지형 자체가 도전받지 않 았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사소한 부부싸움으로 간주되어 방치되는 '아내구타' 문제를 1980년대 초에 쟁점화한 것은 상당히 혁신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성폭력특 별법이 당초의 예상과 달리 좁은 의미의 성폭력범죄에 초점을 맞추어 제정된 후, 아내구타 관련법을 제정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가 되었고, 여러 가지 난관과 반대를 무릅쓰고 조속히 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가정폭력’이란 범주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 다. 이런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오늘의 발제가 '살인과 젠더'라는 불편하고 도발적 인 조합 아래 환기시킨 내용은 흔히 '가족적 가치'나 '가정의 보호'란 차원에서 사 고되기 쉬운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의 프레임에 대한 도전이자 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판결문 분석(제2장)에서 드

러나는 배우자에 의한 폭력(남성 가해자 사망 사건, 여성 피해자 사망사건)의 동기 맥락, 폭력의 양상 등에 대한 서술은 가정폭력이 왜 '젠더에 기반을 둔 폭력 (Gender-Based Violence, 이하 젠더폭력)'이며, 또한 젠더폭력에서 대다수의 피 해가 여성에게 집중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이하 여성 폭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는 것으로 여겨 진다.

5. 대안적 프레임의 모색: 젠더폭력으로서의 여성폭력 무엇보다 토론자는 오늘의 발제가 성희롱, 성폭력 등 여타의 범주와 가정폭력 의 연관성을 재정립하는 새로운 대안적 프레임이 뿌리를 내리고 튼튼하게 자리잡 아야 할 필요성을 뒷받침해 준다고 여겨지기에 반가운 마음을 갖게 된다. 발표자 선생님들께서는 가정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의 행위에 감경이 적용되는 요인, 그리고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받기 어려운 요인들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분석해 주셨 다. 각각의 성립요건과 관련된 법률적 쟁점에 관해서는 다른 전문가께서 짚어주실 것으로 기대되기에 본 토론자는 각도를 조금 달리하여 일반적인 폭력사건과 구별 되는 이 현상의 유형적 특성에 주목하고 싶다. 가정폭력 사건에 있어서 가해자에 대한 감경사유의 적용 여부라든가 정당방위 의 인정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애로사항은 '가정에서' '남녀 배우자 간에' 발생한 폭 력에 대한 우리 사회 및 재판부의 현재의 인식 수준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을 사소한 부부싸움이나 가사분쟁의 연장선에서 바라봄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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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기준의 적용을 기피하는 것이나, 이와 반대로 폭력이나 정당방위의 판단 과 관련된 일반적인 기준을 가정폭력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 모두가 가정폭력 의 젠더적 차원에 대한 몰이해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성희롱, 성폭력, 가정폭력은 별개의 법령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행위 의 태양이 다를지라도 이 하위 범주들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즉, 면식자들 (acquaintance) 간의 폭력이 대다수 혹은 전부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서도 신뢰관 계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내구타와 살해 등에서 시작되는 '배우자 간 폭 력'은 이런 특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젠더폭력의 하위 유형이라고 볼 수 있 다. 또한 일차적으로 여성이 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젠더폭력은 면식자와의 신뢰관계가 의미의 혼선을 야기하고,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공유하는 공간을 쉽게 벗어나기 어려우며, 즉각적인 거부와 저항이 곤란하다는 것이 그 특지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젠더폭력으로서의 여성폭력은 그 폭력의 피해 가 반복되고 나아가 증폭되기 쉬우며, 폭력에 대한 노출 기간이 길어질 확률이 높 고, 피해발생시 가해자와의 공간분리가 매우 곤란하기에, 피해의 내용이 복합적이 고 후유증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폭력의 의미 이해에 작용하는 문화와 언어가 성별화되 어 있고, 그 영향이 폭력의 발생 맥락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폭력에 대한 판결 에 이르기까지 깊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상이한 범주로 여겨지는 폭력을 판단함에 있어서 같은 문제점이 유사하게 재현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가령 가정폭 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였을 때 피해자는 왜 진작 폭력의 현장을 벗어나지 못하였는가를 추궁당한다. 가정폭력 피해자를 학습된 무기력 등 '피학대여성증후군 '에 의존하게 만드는 묵시적인 압력은, 법원이 성폭력의 피해자에게 항거불능의 폭 행‧협박이 있었거나 죽기 직전까지 거부했음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본질상 차이가 없다. 면식자들의 관계, 친밀한 관계, 사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폭력 의 피해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의 일반적 잣대는 은연중에 작용하는 성별화된 문화 적 맥락과 맞물려 무기력한 피해자의 상을 고착화시키는 데 일조해 왔다. 아울러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폭력의 잔혹성이라든가 그 공포가 유발하는 폭력 으로부터의 보호와 안전에만 강조점이 두어지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정의 건강이나 가족적 가치가 피해자의 권리보다 보호 법익으로 우선 하거나, 가해자를 판단함에 있어서 개인의 폭력적 범죄성향 여부에 비중이 두어진 다면, 폭력의 발생 맥락에 작용하는 젠더시스템의 권력관계는 시야에서 소실될 수 밖에 없으며, 인권과 평등의 가치에 입각하여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다른 모든 대안의 가능성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될 우려가 있다. 물론 현재 법령으로 시행되고 법문에 자리잡아 공식화된 '가정폭력'이라는 용어 그 자체를 제도상으로 변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거나 필요한 일이 아닐 것


이다. 오히려 발제의 마지막 장에서 제시된 '정당방위' 적용의 여러가지 한계와 문 제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가정'이란 공간에서 젠더폭력의 피해 상황'에 놓이게 된 여성의 행위가 지닌 맥락성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언어화하고 이를 확산시키려 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친밀한 관계로부터 어떻게 다양한 폭력의 스펙 트럼과 연속선이 만들어질 수 있으며, 이러한 폭력이 증폭되어 극단의 폭력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그 과정의 동학에 대한 보다 세밀한 분석이 진행되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젠더와 폭력의 연관성을 사회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 때, 법원의 판결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은 잘못된 통념에 균열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해 본다. 일찍이 한국사회에서 여성폭력추방운동의 시발점이 된 '아내구타'와 정당방위의 차원에서 이뤄지는 피해자들의 자구적 행위를 적절한 의미 맥락에 자리매김하는 것은 참으로 오랫동안 고민의 주제가 되어 왔다. 그 연장선에서 '살인과 젠더'라는 화두를 천착하여 분석한 오늘의 발표는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었으되 그 함의는 가 정폭력의 범주를 넘어서 여성폭력에 대한 해석으로 확장될 가능성에 열려 있는 것 으로 보인다. 최근에 들어와 여성폭력의 새로운 통합적 프레임을 모색하는 것이 현 안으로 대두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좋은 공동연 구와 발표로 생산적 논의의 물꼬를 터주신 발표자 선생님들과 함께 수고하신 연구 팀원들께 감사의 인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부족하나마 이것으로 토론을 마무 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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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과 피해자 살해사건에 대한 판결분석 토론회 ■ 발행일: 2013년 12월 3일 (한여전 2013-10) ■ 발행처: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 ■ 주소: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1-15번지 ■ 전화: 02-3156-5400

■ 팩스: 02-3156-5499

■ 가정폭력상담 02-2263-6464 ■ 성폭력상담: 02-2263-6465 ■ 이메일상담: counsel@hotline.or.kr ■ 홈페이지: www.hotline.or.kr ■ 이메일: hotline@hotline.or.kr


가정폭력 가해자 사망사건과 피해자 살해사건에 대한 판결분석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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