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1961 제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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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소식지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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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열 선교사님의 글이 지난 주로 끝났으나 총회 소식지에 실린 글이 있어서 연재합니다.

"1961년부터 1966년까지 한국 선교사 생활: 특별한 방문" 이번 호에서 나는 1964년 6월 중반부터 8월초까지 6주간 동안 우리 집을 방문했던 특별 한 두 손님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 두 손님은 나의 장모 루스 워노스키(Ruth Wonoski)와 그의 친구 루스 윈터(Ruth Winter)이다. 그들은 같은 루터교회에 다니는 오 랜 친구들이었고 둘 다 위스콘신 주 초등학교에서 가르친 훌륭한 교사 경력을 가진 분들이 었다. 그들의 방문 목적은 장모님이 그녀의 첫 번째 손녀를 만나 안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1963년 5월 6일 태어난 우리의 딸 켈리는 할머니가 왔을 때 한 살을 갓 넘기고 있었다. 그 6주간은 우리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으로서 뿐 아니라 한국을 관광할 수 있는 기 회가 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기간이 되었다. 우선 해외 선교사들의 부모들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 싶다. 나는 그들이 교회의 선교 사 업에 있어서 “칭송받지 못한 영웅들”이라고 믿는다. 고국을 떠나 선교지에서 사는 손자 손 녀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특별히 그러하다. 예를 들어 나의 선교 임무는 1961년 9월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할 수 있 었던 것은 5년이 지난 후였다. 그 때서야 나의 부모님과 장인은 한국에서 낳은 우리의 딸 켈리와 마이클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때문에 나는 해외 선교사들의 부모와 조부모들을 해외 선교사업의 “칭송받지 못한 영웅 들”이라고 부른다. 어느 할머니가 새로 태어난 손녀들을 품에 안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까? 그러나 거리가 멀 때 여행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부모들은 선교사로 나가 있는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이다. 1964년 8월, 이무열 선교사 내외와 딸 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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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도 그런 분들이었다. 늘 적극적으로 우리를 지원하였다. 헌신적 인 교인들이었던 그들은 우리의 한국 선교사역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물론 그들도 자녀와 손 자 손녀들이 가깝게 살수 있었다면 더 기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 일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나의 장모님이 한국을 방문하신 것이었다. 그녀의 친구이자 동료 교사였던 루스 윈터가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장모님의 여행에 동행하였다. 장인 어른은 일 때문에 함 께 올 수가 없었다. 그는 후에 1971년과 1978년 두 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하였다. 장모님의 방문 기간 중 우리는 교회와 관련된 일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경험을 하였다. 1964년 당시 우리의 차는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짙은 녹색의 윌리스 지프 스테이션 왜곤이 었다. 우리는 아직 한남동에 살고 있었다. 잠깐만 걸으면 유엔 빌리지 지역 꼭대기에 올라가 한강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당시 한강 주변에는 모래밭과 논과 밭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요즘과 비교하면 그 변화가 믿을 수 없다. 한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는 용산과 노량진, 영등포 지역을 잇는 제1 한강교가 유일한 것이 었다. 한남동에서 한강을 건너는 방법은 사람이 노를 저어 움직이는 나룻배를 이용하는 것이 었다. 한남동과 유엔 빌리지 부근의 도로는 아직 비포장이었다. 적은 교통량에도 많은 먼지 가 일었다. 그리고 장마철에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였다. 기억에 남는 여행 중 하나는 지프를 몰고 동해안을 찾은 여행이었다. 험한 길을 12시간이나 운전하여 도착하였다. 길가의 한 중국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춘천을 경유하는 북쪽 길 을 택하였다. 그 당시에는 그 길이 차를 몰고 설악산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많은 부 분의 길이 한 쪽에는 산이 벽을 이루고 다른 쪽으로는 위험한 낭떠러지가 있는 단선 도로였 다. 산 사태 경고 표지가 많이 있었다. 길 곳곳에 특별히 단선 도로 끝 부분에 군 초소가 많이 있었다. 군인들은 무전기를 들고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있었다. 1964년 7월 동해안으로 가는 도중 길에서 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 이무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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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 동해안으로 가는 도중 단선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는 초소에 멈추어 있다.

마침내 우리가 설악산 근처 신흥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관광호텔에 도착하였을 때 나 는 우리 차량에 덮여 있는 먼지를 보고 놀랐다. 스페어 타이어 위, 창문 틀과 엔진 덮개 등 조 금이라도 평평한 곳이면 어디든지 두꺼운 먼지가 쌓여 있었다. 먼지 뿐 아니라 차가 흔들리는 것도 문제였다. 서울을 출발하여 북동쪽으로 향하는 처음 한 시간 반 동안의 길이 특히 심하였다. 그 구간은 도로 공사중이어서 차가 매우 흔들렸다. 다행 히도 한 시간 반쯤 지나자 완전한 비포장 도로가 나와 먼지가 나기는 했지만 처음 보다는 참 을 만 하였다. 나중에 장모님은 길 전체가 처음 한 시간 반과 같은 험한 길이었다면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깊은 시골길 옆에 있었던 중국 음식점에서의 점심식사도 우리의 손님들에게는 특별한 경험 이었다. 음식은 좋았다. 탕수육과 잡채밥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분의 루스 모두 화장 실에 가기를 원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뒤편 녹색 문 뒤에 있다고 했다. 얼마 지 나지 않아 그들은 놀라서 돌아와 웃었다. 녹색 문 뒤에는 땅에 구멍을 파고 판자 두 개가 얹 혀져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1964년 7월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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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을 처음 방문한 그 여행에서 나는 설악산이 내가 본 경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산길을 따라 꽤 높은 데까지 올라갔다. 지금처럼 한국인, 외국 인 여행객들로 붐비지 않았다. 등산길은 훼손되지 않은 산 길이었다. 콘도나 다른 관광 시설 이 아직 지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왜 한국의 경치가 뜨거운 여름에 아름답다고 하는지 이해 할 수 있었다. 소년들이 어깨에 상자를 메고 다니면서 아이스 케이크를 팔았다. 우리는 또한 강화섬도 여행하였다. 다리가 아직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배를 타고 가야만 했다. 수원 지역은 우리가 다른 곳보다 많이 방문했던 여행지였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길은 양편의 가로수가 아름다운 길이었고 우리는 여러 번 시흥 근처 좁은 길을 드라이브하였 다. 수원 칠수문에 멈추었을 때 여자들이 옛날 방식으로 빨래판을 가지고 빨래를 하고 있었 다. 용주사도 우리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우리는 서해 대천 해수욕장을 여행하기도 했다. 5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는데 올 때와 갈 때 모두 타이어가 펑크가 나기도 했다. 펑크가 나면 물론 곧 타이어를 갈아끼우고 가까운 펑크 수리점에서 펑크난 타이어를 수리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또 펑크가 날 경우 갈아 끼울 타 이어가 없게 된다. 우리의 손님들은 대천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비록 전기도 뜨거운 물도 냉장고도 없었지만 그곳은 쉬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루터교 한국선교부(KLM)는 대천 해수욕장 협 회에 속한 휴양소 하나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협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등록된 단체로서 모 든 교파의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전국에 걸쳐 휴양소를 제공하였다. 한국에 오래 머물렀던 선교사들 자녀들은 아마도 대천 휴양소에서 보낸 시간들을 가장 기억 에 남는 시간들로 기억할 것이다. 나와 내 동료 선교사 자녀들은 그렇게 생각하였다. 주일 낮 예배는 강당에서 드렸지만 주일 저녁과 수요일 저녁 예배는 해가 지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야 외에서 드렸다. 해수욕장은 부드러운 모래와 길고도 완만한 경사를 갖춘 훌륭한 해수욕장이 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10미터가 넘어서 해변의 모습은 늘 변하였다. 대천 해수욕장에 서 수영을 처음 배운 내 아이들은 수영을 잘 하였다. 아이들은 조개 수집에 대해서도 많이 배 웠다. 대천은 장마철 기간 중 몇 주를 보내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었다. 불행하게도 대천 해수욕장 협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곳이 선교사 가족 들이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해외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았고 한국 내에도 휴 양지로 개발된 곳이 많지 않았다. 대천 해수욕장은 또한 다른 교파의 선교사들과 친교를 나 눌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가장 값싼 곳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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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규모가 축소된 대천 해수욕장 협의에 속한 조그마한 휴양소가 해수욕장 한 쪽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땅들은 국내 업체들이나 정부가 사들여서 유명한 관광지로 개 발하였다. 대학교가 소유하고 있는 휴양소들도 많이 있다. 밀물과 썰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이 들어 왔다 나가지만 대천 해수욕장은 예전의 해수욕장이 아니다. 한국에서 보낸 또 다른 즐거운 시간은 한국관에서의 시간이다. 한국관의 역사는 아마도 20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지금의 한국관은 과거의 한국관과 많이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요즘 최고의 전문가들이 공연하는 한국 고전 음악과 춤 연주는 극장 타입의 무대 방에서 이 루어지고 있다. 관람료는 싸지 않다. 사실은 꽤 비싼 편이다. 연주는 이른 저녁에 한 번, 그리고 늦은 저녁에 한 번 한다. 공연 전 한국관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면 가격은 더 올라 간다. 뷔페 식으로 하지 않고 온돌에 앉아 시중을 받으며 식사를 하게 되면 가격은 더 올라 간다. 왕족들이 사용한 하 얀 접시에 담겨 제공되는 음식은 의심할 바 없이 훌륭하다. 한국관은 방문객들에게 잊지 못 할 좋은 추억을 남겨 준다. 그러나 과거에는 한국관은 다르게 운영되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관은 문화부의 후원으 로 운영된다. 과거에는 관람료가 없었다. 매 토요일과 주일 오후, 정확히 3 시와 3시 50분에 한국 전통 음악을 한국 전통의 악기로 연주하고, 또 관중들을 즐겁게 하는 전통 무용이 공연 되었다. 시간은 분도 틀리지 않고 항상 정확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공연은 실내의 큰 마루에서 실시 되었다. 그러나 더운 여름 계절에는 때때로 날씨가 좋을 때 야외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아주 근사했다. 사진을 찍는 데 아무 제한이 없어서 나는 그 공연들에 관한 많은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교회와 선교와 관련된 외국 방문객들, 특별히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서 우리는 가능 하면 언제나 토요일 3시나 일요일 오후에 있는 한국관 공연을 그들 일정에 넣었다. 제도가 바뀌게 된 것을 나는 유감으로 생각한다. 한국관은 한국의 예술과 예술가들을 방문객들에게 소개하는 아주 좋은 공헌을 해 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른 모든 방문객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의 장모님과 루스 윈터는 한국관 공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날 공연은 특별히 야외에서 실시된 것이었기 때문에 나도 매우 기뻤 다. 그리고 많은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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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 이무열 선교사와 루스 원터가 한 한국인 할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다.

장모님과 루스 윈터 모두 교사이고 여러 해 동안 초등학교에서 가르쳐 왔기 때문에 그들 은 한국의 초등학교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의 초등학교를 방문하 고 싶어했다. 다행히 한남동 단국대학교와 국제루터교회 중간에 있는 한 초등학교 방문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이 특별히 받은 인상 중의 하나는 한 교실에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학 생들은 책상을 함께 써야 했고, 적은 교실에 학생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서 2부제로 학교 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들은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교사로서 헌신하고 있는 한국 교사들 에게 존경심을 표현했다. 그들은 위스콘신에 돌아가 한국 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서 교사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새롭게 깨닫고 감사하였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들 미국인 할머니들이 가는 곳마다 호기심 많은 다른 한국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호기심은 상호적인 것이었고, 그들의 방문은 많은 부분 좋은 추억으로 남 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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