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심과살림』 16호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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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의 위기 ● <좌담> 기후위기, 농업의 생존과 대응 전략 ● 기후위기 시대, 청년 농부로 살아가기 ●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못난이 농산물(B급 농산물)의 판매와 소비 ● 기후위기를 살아내기: 함께, 즐겁게, 창조하며

2020년

이론과 실천 생 명 협· 동 운 동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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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협동운동의 이론과 담론, 한살림 안팎의 보다 다양한 현장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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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모심과살림연구소는 생명의 세계관과 협동적 생활양식을 바탕으로

모심의 눈

·기후위기와 한살림운동 - 황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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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과 사회, 문명을 만들어가는 데 보탬이 되는 지혜를 탐구하고자 200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생명·협동운동에 대한 연구조사와 세미나 및 포럼, 관련 연구자 및 단체와의 교류 활동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 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좌담> 기후위기, 농업의 생존과 대응 전략 - 임채도, 강마야, 남재작, 진주, 최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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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청년 농부로 살아가기 - 권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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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못난이 농산물(B급 농산물)의 판매와 소비 - 김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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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살아내기: 함께, 즐겁게, 창조하며 - 조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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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돌봄 의제의 사회적 맥락과 한살림 돌봄의 가능성 - 석재은 ·<인터뷰> 한살림 돌봄의 현황과 고민 - 권옥자 외

90 106

·농촌형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조건들 : 전남 영광군 묘량면 ‘여민동락공동체’의 사례 - 윤태영 120

| 담론 연재 | 협동운동을 보는 다양한 시각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 김자경

모심과살림 16호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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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심과살림, 2020 | 연구소 활동들

등록번호

강남, 사00117

발행인

황도근

·청년다양성 포럼을 시작하며 - 김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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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신명호, 홍덕화, 임채도(편집위원장) 조미성, 김진아

·청년 주체가 고민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건들 - 청년다양성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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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디자인

그린다

·2020 진행한 생명·협동연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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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 날

2020년 12월 24일

펴낸 곳

(사)모심과살림연구소

| 독자기고 |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 81길 15 4층 www.mosim.or.kr / mosim@hansalim.or.kr / 02-6931-3604

지난 호를 읽고

책값은 8천원입니다.

·한살림 정체성 논의를 제안합니다 - 유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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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2020년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해로 기억 될 듯합니다.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매 년 연말이면 10대 뉴스를 정하는데 코로나19라는 용어 외에는 특별할 게 없어서 언론이 조용합니다. 코로나는 어느 한순간 세계 주요 도시를 멈

모심의 눈

춰서 거리에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였고, 모든 공항은 유령의 도시처럼 갑자기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주말이면 수업 동영상을 만들어 학 생들에게 보내는 일이 학교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이제는 학생들 얼굴이 아련하게 멀어지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불확실합니다. 백신만 나오면 밝

기후위기와 한살림운동

은 미래가 펼쳐질 듯 떠들지만 어쩌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로 들어 섰습니다. 올 한 해는 코로나 이슈 말고도 또 다른 문제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기후위기’라는 화두는 오랫동안 언급되고 경고해왔지만 우리는 무시하며 살아왔습니다. 특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분 명한 한국 사람들은 심한 온도 변화에 익숙해서 기후변화에 둔감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분명히 예년과 달랐고, 장마가 50여 일을 넘으면서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연결시키는데, 분명한 것은 지구공동체의 미래 가 불확실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한살림연합 이사회에 올해 들어 가장 중요한 안건이 올라왔 습니다. 참깨 수입 여부에 대한 논의였는데, 긴 장마와 냉해로 참깨의 작 황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현재 참기름 생산이 어려워졌다는 것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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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의 눈 - 기후위기와 한살림운동


다. 1986년 한살림농산이 서울에서 처음 문을 열면서 공급하기 시작했

우려를 했습니다. 또한 매출의 안정성을 위한 시설재배는 생산자분들의

던 참기름 생산이 이제 어려워진 것입니다. 한살림에서 참기름은 특별

소득격차를 더욱 확대하여 기후위기에 따른 불평등을 더욱 고착화 하는

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참기름을 처음 공급했던 원주소비자협동조합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기후위기는 일상생활에도

은 지학순 주교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협동적 삶과 생명사상이 모두 녹

여러 문제를 야기하겠지만, 친환경 먹거리 사업을 주관하는 한살림에게

아 있는 한살림 운동의 출발지였습니다. 고 박재일 회장께서 초대 이사

는 더욱 심각한 문제들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한살림의 정

장을 맡아서 활동했고 지학순 주교의 지원으로 기름 짜는 기계를 구입하

체성과 사업성의 뿌리를 모두 흔들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여 참기름과 들기름을 생산했습니다. 그것이 한살림 가공사업의 시작이

봐야 합니다.

었습니다. 이런 한살림 운동의 상징적인 참기름이 수입품으로 대체되는

코로나는 비록 강력하게 우리 삶에 충격을 주었지만, 백신을 개발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모든 조합원들이 혼란스러워 합니다. 어찌해야 할

면서 단기적으로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후위기

까요. 이제 기후위기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번 참기름 문제도 시작일

는 장기적으로 누적되어왔던 문제로 쉽게 풀 수 없는 과제입니다. 200

뿐입니다.

년 전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에너지 대량소비사회는 탄소배출을 급격

올해 노지에서 재배된 농작물들이 기후변화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

히 증가시키면서 지구의 온도를 빠르게 올려 놓았습니다. 더욱이 20세기

했습니다. 이번 18기 무위당학교에서 ‘기후위기-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들어와서 산업화로 축적된 금융자본이 돈 중심의 경쟁사회를 부추기면

얼마일까’를 주제로 강연이 있었습니다. 특히 강연해주신 한살림부여 참

서 대량생산과 과소비사회를 구축하면서 탄소배출을 가파르게 증가시

벗공동체 정천귀 생산자 말씀에 의하면 올해 4월에는 과수 개화와 감자,

켜 기후위기를 가속화 시켰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열은 바다

노지 채소에 냉해를 입었고, 54일 동안 긴 장마로 여름작물인 콩, 참깨,

가 흡수합니다. 물은 열용량이 가장 뛰어나 거의 무한정으로 열을 받아

들깨, 잡곡, 벼, 여름 채소 등이 생육이 부진했으며, 잦은 태풍으로 과수

들이지만 열을 배출할 때도 끊임없이 내어놓습니다. 물은 사람들이 통제

의 낙과와 가을채소 파종이 지연되었고, 10월 가뭄으로 잡곡 및 김장배

하기 어렵지요. 그만큼 기후위기는 오랫동안 산업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

추가 부실해졌다고 합니다. 결국 노지에서 농작물 생산이 시간이 갈수록

물로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타적인 공동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우스 재배가 확대되어 농업에

체 의식이 전제되어 있지 않으면 풀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도 비

서 에너지 소비는 늘어나고 시설재배에 따른 탄소배출도 확대될 것이라

록 너무 늦었지만 찜통 지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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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의 눈 - 기후위기와 한살림운동


신 바짝 차리고 대처해야 합니다. 다행히 탄소배출 8위인 한국도 올해 그

후위기를 극복하려면 문제를 근원적으로 깨닫고, 생명공동체적 삶과 사

린뉴딜을 통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

상을 잘 이해하여 실천하는 삶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봤던 것입니다. 먹

도 파리협약을 통해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기후위기를 극복

거리 운동은 이 운동의 한가지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하고자 지속적인 대화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모두 힘

지금부터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한살림운동을 전 지구적

을 합해야지요.

운동으로 확대해서 봐야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지구공동

먼저 한살림 식구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체 살리기에 동참해야 합니다. 공유지의 비극처럼 이기적인 먹거리운동

1989년 『한살림선언』의 의미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단

이 되어서는 미래의 희망이 없습니다. 생산자를 보호하고 싶어도 기후위

순히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을 소비하기 위해 한살림운동을 선언한 것이

기 앞에서는 모두가 무기력해질 것입니다. 사업적 기반을 튼튼히 하는 것

아닙니다. 이미 산업사회의 문제점을 열거하면서 인간이 주변 생명을 경

도 운동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삶의 방향을 넓게 보고 더

시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사회에 경고한 것입니다. 『한살림선언』이 있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생활운동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필요 없는 소비

직후 <문명의 위기에서 생명의 질서로-한살림선언의 이념적 배경을 중

를 줄이고,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포장을 파격적으로 포기하고, 격

심으로>라는 주제의 대화모임에서 “한살림운동이 유기농업운동과 소비

차를 줄여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21세기 한살림운동은 밥상

자운동의 연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소외 분열시

을 넘어, 마을 넘어, 지역을 넘어, 한국을 넘어, 지구공동체를 위해 새롭게

키는 억압과 파괴시키는 죽임의 질서인 산업문명 전반에 대항하여 생명

설계해야 합니다. 이런 새로운 생활 운동만이 1세대 선배들이 만든 한살

을 총체적으로 살리는 전면적인 생명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

림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함

을 하게 되면서, 우선 그 이념과 실천 방략을 찾는 연구모임을 갖게 되었

께 갈 수만 있다면.

습니다”라고 김지하 시인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한살림연구회는

이번 『모심과살림』지 16호는 이런 논의의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마

단순히 도농 간 협동운동만이 아니라 근대의 산업문명이 전 인류와 지구

음으로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문제를 [기획특집]으로 정했습니다. 특

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시대적 흐름을 인지하고 그 대안적 삶을

히 가장 직격탄을 맞은 농업과 농민이 어떻게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

찾고자 한살림선언을 준비했습니다. 이미 1세대 선배들은 인류의 위기,

을지 모색해 보기 위해 <기후위기, 농업의 생존과 대응전략> 주제의 좌

지구의 위기를 예견하고 준비하고자 한살림운동을 선언한 것입니다. 기

담회를 통해 그동안의 반성과 농업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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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의 눈 - 기후위기와 한살림운동


천적인 논의들을 실었습니다. 또한 기후위기를 맞아 생산현장에서 어려

합니다. 그 외 연구소에서 꾸준히 해온 활동 결과물인 <청년다양성 포럼을

움을 겪은 청년 농부의 생생한 고민은 <기후위기 시대, 청년 농부로 살

시작하며>와 <청년주체가 고민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건들>이란 글을

아가기>라는 글에 담았습니다. 먹거리 분야에서는 <기후위기 시대의 먹

통해 청년 세대의 대안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미래의 실천 내용들을 담았습

거리>란 주제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려는 운동인 못난이(대견한) 농산

니다. 그리고 생명협동연구 결과물과 독자님께서 보내오신 <한살림 정체성

물 판매와 소비 동향에 대한 연구를 정리했습니다. <기후위기를 살아 내

논의를 제안합니다>라는 글도 있습니다. 『모심과살림』지는 좀 더 많은 독자

기: 함께, 즐겁게, 창조하며>라는 글에서는 대안공동체에서 즐거운 실천

님들의 목소리를 가까이 듣고자 합니다. 어렵고 험한 길일수록 좋은 이들과

과 인간적이고 창조적인 기술 적용으로 기후위기를 극복해보자는 제안

손잡고 함께 가고 싶습니다.

을 하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한편 한살림에서는 최근 여러 지역에서 돌봄이 중요한 실천과제로

황도근 모심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슈]에서는 <돌봄 의제의 사회적 맥락과 한살림 돌 봄의 가능성>이라는 글을 통해 돌봄의 사회적 의미를 짚어보며 이를 한 살림 운동과 연결 지어 보았습니다. 또한 한살림에서 돌봄 사업을 하고 있는 살림꾼들의 이야기를 모은 <한살림 돌봄의 현황과 고민>을 통해 현 장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돌봄 정책에서 소외된 농촌지 역 돌봄 공동체 사례를 다룬 <농촌형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조건들>은 우 리에게 또 다른 시사점을 줍니다. 앞으로 연구소에서는 생명운동과 협동운동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이 론, 혹은 실천을 장기 연재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호에는 <협동조합 으로 커먼즈 만들기>라는 글을 통해 커먼즈가 협동조합과 연결되는 관 점을 제시하였고 한살림 제주의 사례를 통해 실천적인 시사점도 주고 있 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생명운동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발굴해 수록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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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의 눈 - 기후위기와 한살림운동


기획

특집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① <좌담> 기후위기, 농업의 생존과 대응 전략 ② 기후위기 시대, 청년 농부로 살아가기 ③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못난이 농산물(B급 농산물)의 판매와 소비 ④ 기후위기를 살아내기: 함께, 즐겁게, 창조하며


기획

특집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는 심각성을 더해가는 기후위기와 이에 따라 더욱 심 화되는 농업의 위기에 대해 농민생산자, 정부, 학계, 시민단체 등 각 분야에서

모심과살림 좌담회

는 어떤 인식을 가지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진단하는 좌담회를 열었습니 다. 각 분야의 현황을 살펴보며 가감 없는 평가와 성찰과 반성을 통해 이후 농

기후위기, 농업의 생존과 대응전략

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전략을 제안합니다.

때: 2020년 11월 9일 10시 곳: 한살림연합 회의실 참석자: 임채도(모심과살림연구소장/좌장), 강마야(충남연구원 연구위원),

남재작(한국정밀농업연구소장), 진주(농민농업정책연구소 녀름 연구원), 최병찬(한살림생산자연합회 정책부장) (가나다 순) 정 리: 조미성(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왼쪽부터 임채도 소장, 강마야 연구위원, 남재작 연구소장, 진주 연구원, 최병찬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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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임채도: 최근 기후위기가 사회전체의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올해 50일 넘는 장마가

그치지 않고 다음 연도까지 이어지는 것이 기존 상황과 다릅니다. 약정량을 지키

있었고 냉해도 심했고, 한살림도 침수피해와 병충해, 수확감소를 겪었습니다. 다들

기 위해서는 다음 연도 생산량을 늘려야 하고,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투자도 필요

걱정이 많으신 것 같고 생산자들은 당사자이므로 더 큰 고민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할 것입니다. 기후위기에 따른 리스크와 늘어나는 생산비를 감당하면서 생명농업

오늘은 우리 농업의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시고 기후위기에 따른 농업 위기 인식

을 계속 지켜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됩니다.

과 대응 방안에 관해 좋은 지적과 자유로운 의견 말씀을 듣고자 자리를 마련했습 니다. 기후위기가 농업위기를 가중하는 시점에서 농업정책의 개선방안에 대해서

진주: 저는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정

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먼저, 한 분씩 각자 인사 소개와 함께 속하신 부문에

부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 에너지전환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또 이야

서의 기후위기 인식과 대응 현황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기하다 보니, 먹거리 분야는 거의 논의가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게 상당 히 위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조직 내에 주제별로 활동이 세 분화되면서 작년에 농업·먹거리 모임이 생겼습니다. 모임에는 한살림을 비롯한 생

농업 분야의 기후위기 인식과 대응

협 활동가들과 농민운동의 대표적 조직들, 연구자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습 니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따른 농업·먹거리 위기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직 미약

최병찬: 저는 한살림생산자연합회 정책기획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생산자

하다 보니, 방향성과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에 대한 논의도 미약합니다.

들은 기본적으로 유기농업을 하면서 동시에 안정적인 먹거리를 생산해야 하는 책

그중 민감한 부분이 농촌의 에너지 전환입니다. 가령 재생에너지 확대 논의를

임을 갖고 있습니다. 2019년에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한살림생산자의 실태와 의

살펴보면, 농촌의 입장에서는 이게 의도치 않았겠지만, 갑자기 밖에서 밀고 들어

식조사를 해 주셨는데, “한살림농사를 지으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라

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지역주민들과 같이 협의하며 진행되는 과정이 필요한데

고 물으면, 한살림생산자들은 “한살림농사 자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과정이 부족해 곳곳에서 태양광발전소 반대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농업·먹

일반적인 생산자들은 ‘판로’가 가장 어렵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거리 모임에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지 논의하며 최근 토론회를 시작하고

그리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생산자분들께

있고, 이런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서 “심각하다” 혹은 “매우 심각하다”고 답을 하셨어요. 그런데 또 많은 분들이 “대 응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대책이 없다”고 답을 하셨어요. 작물성장, 재배적지 변화,

강마야: 저는 충남연구원에서 농업경제 및 농업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

병해충 증가, 재해 위험성 증가 등 모든 항목에서 위기는 느끼지만 뭘 어떻게 해야

실 이 자리에 고해성사를 하는 느낌으로 왔습니다. 기후위기 문제에 있어 저를 포

할지 몰라 당혹스러운 상황입니다.

함하여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우는 집단조차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

실제로 올해 한살림 생산자들은 심각한 생산량 감소를 경험하였습니다. 정부

었고 위기의식이 부족했으며 활동 반경이 현장에 가 있지 않았다는 반성을 합니다.

는 쌀 생산량이 5%만 감소했다고 서둘러 발표했지만, 현장에서 파악되는 생산량

전문가들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에 제안하는 기존 정책 연구들의 내용을 살펴보

감소는 20%가 넘습니다. 그리고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는 당해연도 수확량 감소에

면 그다지 환경적인 고려를 하지 못한 채 새로운 정책과 사업 발굴에만 골몰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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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니다. 대개 당면 현안의 대책에 그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근본적인 연구, 융복

얼마 전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발표가 있었습니다만, 최근 20~30년 간 농업분야

합 연구, 통합 연구를 잘 못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 대응이 제대로 되어 왔는가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었습니다. 더불어 소비자의 각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테면 1994년경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이 체결되고 이후 WTO가 출범하면서부터 농 업의 지속가능성과 환경문제가 지적되어 왔고, 이미 그 당시에도 정부의 주요 전문

남재작: 저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농업환경연구를 했는데요, 1993년경

가 그룹들 사이에서 환경문제 대응의 필요성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는데, 실제 제대

부터 우리나라 유기농업 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2006년 노무

로 된 대응이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명박 정권에서 녹색성장과 저탄소 정책을

현 정부 때 농업진흥청에 기후변화 전문 분야가 생기면서 그 분야를 맡아서 에너

내놓았지만, 진정한 문제의식이 있었거나 효과적인 대책은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

지·기후변화 전문가들의 관점을 농업분야에 소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2009년

났습니다. 지난 정부와 지금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은 어떤 특징이나 한계가 있었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출범할 때 농업분야에서도 저탄소인증제와 탄소감축제도

고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는데, 그런 노력들이 농업분야의 기후위기 대응에 큰 도움이 되었는가 평가한다면, 여러 한계점을 느낀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재작: 어려운 질문입니다. 정권들마다 세부적으로 다르겠지만, 저는 근본적으

농업분야에서 다들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한다고 하지만, 가끔은 하나의

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정책은 농업계의 역량과 인식을 바탕으

트렌드처럼 지나가는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농업시스템은

로 제안되는데, 농업분야 역량이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

금방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5년 내지 10년 두고

후변화 담론에서 현실적으로 별 대책이 나올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정책이 현장에 정착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문제인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농업계가 전반적으로 토론이 잘 되

이게 제일 어려운 문제인데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느끼는 순간 지금 당장 대

지 않습니다. 농업 규모화, 인구 감소, 토지 소유구조 등 예민한 문제는 회피하고

응을 시작해도 5~10년은 그냥 갈 것입니다. 농업인들은 시급하게 느끼지 않는데,

농업계 내부의 이해가 일치하는 쉬운 문제들만 다루게 됩니다. ‘쉬운’이라는 말이

정부에서 대응을 하면 괴리감을 느끼고 참여를 주저하게 되며 실제로 문제를 인식

적절하지는 않습니다만, 가령 ‘농민소득을 높이자’와 ‘귀농귀촌을 늘리자’는 제가

했을 때는 대응에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큰 인식 차이가 있지만 이

볼 때 논리적으로 상충합니다. 결과적으로 기후변화와 같이 복잡한 이슈를 간과

해를 구하려고 하면 너무 어렵습니다. 농업문제는 사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갈지 매

하게 됩니다.

우 어렵습니다. 강마야: 저도 지금 정부 정책에서 기존 대응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는 남선생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환경부 주관 기후변화 대응 기본계획에 참여했는데, 적응이라

정부의 기후위기 대책 평가

는 용어부터 소극적이죠. 적응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소극적 개념이고, 완화는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인데, 사실 소극

임채도: 우리 정부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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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강화하는 인상이 있습니다. 농민들이 농작물이나 가축 피해, 농경지 침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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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배지 변화 등 기후변화의 수동적인 피해자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여전히 기후

적으로 큰 연교차에 익숙해 기후위기를 민감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도 있다고 해요.

변화 대응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고 느껴집니다.

올해 농민들도 긴 장마를 겪으며 비로소 이제 기후위기가 문제라는 인식을 시작했

또한 많은 사업들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 대응 5년 계획을 세

죠. 그런 상황에서 농식품부에서 제출한 1차년도 기본계획을 보면, 한편으로는 국

웠으면, 계획이 끝나는 올해에 평가하고 성과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온

제적 대응을 언급하고, 대외적으로 IPCC 등에 제출해야 하니까 국제 기준에 맞춰

실가스를 감축했는가 하고 물으면 결과는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성과로 보여줄

진단은 심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계획은 너무 미약해요.

만한 정량수치 데이터조차 없습니다. 제대로 평가받지 않는다면 비슷한 오류를 반

이 계획에 대해 몇 가지 평가를 하자면 먹거리 뿐만 아니라 농업이 전반적으로

복할 수밖에 없고, 정부 조직과 인력과 예산이 정합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예를 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애초 낮게 잡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학비료를 5% 감

어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정책국에 농촌 재생에너지 팀이 있습니다. 심각한 기후위

소시킨다고 했는데 실제는 13%나 증가했어요. 그리고 물 오염 문제, 산림 문제도

기 대응을 위해서 여러 부서가 합쳐도 모자랄 판에 ‘과’도 아니고 ‘팀’ 하나가 대응

마찬가지고요. 여전히 산림 노화와 감소가 진행되고 있어요. 진단에 부합하는 정

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듭니다.

책은 진행되지 않고 누구도 평가하지 않는 거죠. 당시 한살림이 산림관련 보고서

예산과 관련해서도 당황스러운 지점이 있습니다. 내년 농업환경보존프로그램

를 내고 지적했지만, 그게 대중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어요. 정부와 소비자와 생

예산이 삭감되었어요. 환경위기 와중에 환경관련 예산이 오히려 축소되는 것은 환

산자가 이 문제를 고심해서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경부와 기재부 등 관련 정부부처 사이에서 제대로 된 인식과 조율이 없기 때문입니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다. 여러 환경정책들이 통합되지 않고 각자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 하 는 성과를 다른 곳에서 체크하지 못하고, 중복되니까 예산이 깎일 수밖에 없는 구

최병찬: 농업분야의 고민을 연구자님들이 잘 짚어 주신 것 같습니다. 남선생님 말

조입니다. 민간에서는 기후위기 대응을 이야기하지만, 정부 정책은 그런 문제의식

씀처럼 5년 전부터 준비해 왔어야 했는데 지금 부터라도 하지 않으면 또 늦어질 것

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문재인 정부가 사람과 환경을 중시한다고 말

입니다. 현장에서 보기에도 문제 진단은 거창한데, 실행 계획은 기존에 하던 사업

하지만 실제 진행되는 양상과는 거리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굉장히 치열하게 이

을 이름만 바꾸거나, 정부의 구체적인 역할과 책임이 빠진 채 두루뭉술하게 가는

야기하자고 계속 제안해야 합니다.

상황이 화가 납니다. 우리 농업은 날씨와 기후에 민감합니다. 날씨 변화에는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진주: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만들어졌지

기후위기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올해처럼 집중호우가 내리고, 장마가 두 달 동안

만, 정부나 시민단체, 기후위기에 대한 농업·먹거리 진영의 대응이 매우 미약합니

이어져 햇빛을 받지 못하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다. 최근 농특위 중심으로 제안서가 나온 그린뉴딜 정책 내용과 기후변화 대응 기

객관화하고 현장 중심의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산량이 줄었을 때

본계획을 꼼꼼히 살펴보면 정책이 통합적이지 않은데요, 이건 심각하게 여기지 않

농민이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기상이변에 따른 피해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

는다는 의미입니다. 왜 우리나라가 기후위기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가 생각했을

다. 만약 기후위기에 의한 생산량 감소라면 국가도 함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연구

때, 정부의 무능력도 있을 수 있겠지만, 조천호 박사님 말씀처럼 한국인들은 계절

자분들이 이 문제들을 함께 정리하고 자료화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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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직불제와 농업예산

라고 생각합니다. 유럽형 직불제는 모든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규모가 우리 와 비교도 안될 만큼 크지만, 국내에 도입되면서 예산이 너무 축소되었어요. 또 ‘공

강마야: 저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정책수단으로서 정부가 현재 시행하는 공익형 직

익’의 개념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도 중요합니다. 적은 예산으로 관행농이나 친환경

불제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직불제가 공익형과 선택형으로 나뉘는데 지금은 사

농이나 모든 농민에게 다 면적에 따라 기계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공익’이라고 말

실 기본형 직불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기본형 직불제는 소농한테 일괄적

할 수 있을까요? 소농에게 주는 일년 120만원은 정말 빈약한 예산인데, 이것을 과

으로 120만원씩 지급하는 소농직불금과 면적에 따라 지급하는 면적직불금으로 구

연 ‘공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공익형 직불제에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개

성되어 있고, 현재 이 두 개에 많은 인적자원과 예산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2020년

념이 들어있지 않아요. 저는 ‘공익’이라는 용어에 기후위기 대응이 들어가야 되고,

농식품부 전체 예산이 15조 원인데 이 중 2조 2,753억 원을 차지합니다.

제한된 자원을 고려해 기후위기에 대응한 공익형 직불제가 어떤 식으로 되어야 할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한 이 시점에 선택형 직불제도 중요하게 다뤄야 하지만

지 고민하면서 만들어졌어야 한다고 봅니다.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즉, 현재 친환경농업직불제, 친환경축산직불제, 경

막상 유럽에서도 캡(CAP)개정안이 나오면서 논쟁이 되고 있어요.1 CAP개정

관보전직불제, 논활용 직불제가 있는데 이것을 농업분야의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

안이 그린딜 목표안에 부합하지 않아 의원들이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기후위기에

할 정책수단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등에 대해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어요. 지급

대응하는 시민사회도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그 단계까지 가기도

대상 농가가 직불금을 받기 위한 공익기능 이행사항으로 17개 정도를 나열했지만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공익형 직불제를 포함한 농업정책들을 기후위기를 고려하

실제 현장에서 잘 이행되지 않습니다. 정부정책의 속도나 현장 준비 단계를 봤을

면서 살펴봐야 합니다.

때 선택형 직불제는 다음 정부의 역할로 넘기는 듯합니다. 정부 의지도 중요하지 만 민간에서도 우리 농업과 농촌이 어떤 공익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

임채도: 공익형 직불제의 성격을 가장 잘 보완하는 것이 친환경 직불제라고 생각하

는지 합의하고 논의하고 소통하는 구조가 되어야 비로소 선택형 직불제 제도가 제

고, 이 논의가 바람직하게 결론 나고 방향이 잘 잡혔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한편

대로 작동될 것 같습니다.

으로 정부 예산 중 농민을 직접 보조 지원하는 예산의 규모도 문제되는 것 같습니

또 농업 환경 정책에 정부는 조직이나 예산과 자원을 투입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 농업 관련 예산에서 농민에게 직접 혜택이 가는 예산은 적은데 비해 다른 행정

당분간 환경 관련 예산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가령 유기질비료지원사업나

비용 예산이 너무 많습니다. 정부 농업예산을 쓰는 수많은 관변 단체, 기관, 연구조

농촌형 태양광지원사업 예산이 꽤 큰데, 이러한 투입재 보조금을 받지 않고 기후

직들이 과연 농민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확한 정책을 얼마

위기 예산으로 대체하겠다고 해도 기획재정부 지침 상 절약된 예산만큼 삭감해버

나 생산해내는지, 예산은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리는 구조라고 합니다. 이는 환경을 생각하는 국가인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되고 있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는 씁쓸한 상황입니다. 1) 공동농업정책(CAP, Common Agricultural Policy)은 유럽 연합의 농업보조를 위한 시스템으로, 최소가격 보장, 유럽 연합 외부의 특정 물품에 대한 수입세 등을 포함하여 가격 보조 계획을 통해 곡물과 경작지에 대해 직접

진주: 공익형 직불제는 유럽형 직불제를 모델로 삼았지만, 정책이 잘못 도입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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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을 제공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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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최병찬: 현장에서 친환경 농업과 직거래를 열심히 한 결과로 정부의 친환경 인증제

계자들이 만나 소통하고 회의하고 문제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충남이 얻

도와 친환경직불제도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 기후위기 시대가

은 성과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농민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역량을 쌓게 되고 정책이

되니까 기존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기상이변으로 인해 먹거리 생산 자체

현장과 교감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인식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 위기를 맞고 있고, 그 속에서 안정적인 식량 생산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인위

는 것입니다.

적인 행위가 추가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민간의 역할과 현재 위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기후위기를 애기하면

이런 기후위기 시대에는 결과중심인 정부 인증제도보다는 한살림이 추진하

서 축산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농특위 내부에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

는 과정과 활동중심의 자주인증, 참여인증이 더 타당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됩니

소배출을 줄이자는 논의를 꺼냈을 때, 축산단체들이 규제에 대한 두려움으로 철벽

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한살림의 참여인증을 국가인증과 병행하여서 친

방어를 하면서 대화와 소통이 잘 안되었어요. 작년 농특위에서 경종과 축산 순환농

환경 직불제에 포함시켜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농민들이 결과중심의 국

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의결했고 올해 그 구체적인 세부 방안을 진전시켜 논의해

가 인증의 틀에 매여 수확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야 하는데, 진도가 안 나가고 있어요. 같은 농업인이지만 축산과 경종, 친환경농업

도 합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활동중심의 직불제로 확대되었으면 좋

인들과 일반 관행농업인들 등 각자 입장이 세부적으로 다릅니다. 축산인들을 순환

겠습니다.

체계로 끌어들여야 하는 동력이 필요한데 그게 약해요.

진주: 저는 민간의 영향력과 소통에 대해 더 말씀을 나누어 봤으면 합니다. 많은 이

정부와 지자체, 민간의 역할

해당사자들 사이에서 무엇을 기본원칙으로 삼을 것인가하는 것입니다. 가령 성장 과 기후위기 사이의 중요도에 대한 논의는 경제발전과 실질적인 자유 사이의 논의

임채도: 우리 농업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민간과 정부의 공익적 관점에서의

와 매우 유사합니다. 지금이 기후위기 대응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기의 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강선생님, 충남에서는 비교적 활발한 대응이

대임을 자각해야 하고, 그 원칙을 중심에 두고 축산단체, 정부, 농민, 소비자들이 어

있는 것 같은데 지자체의 역할까지 포함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떻게 한 발짝 다가갈 것인지 각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우 리가 어떤 지표를 사용할 것이냐는 관건이 아닙니다. 이미 국제 기준과 정부간 협

강마야: 정부나 지자체 역할과 현재 위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얼마 전까지 충청남

의가 나와 있고, 이것을 달성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해당사자로서 구체

도는 농정 분야에 3농 혁신이라는 정책으로 활기를 띠었는데, 지금은 예전보다 정

적인 접점들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책 관심과 의지가 줄어든 상태입니다. 기존 야심차게 추진했던 농업생태환경프로 그램 시범사업, 농업환경실천사업 등 농업환경과 관련된 사업이 폐지되고 정체상

강마야: 이 대목에서 소비자도 같이 논의 그룹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는

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민선5, 6기때 농업계 내부의 민간 역량을 많이 쌓아 놓았

가 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잘못된 소비 문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먹거리

던 것이 자산 중 하나입니다. 거의 5년 이상 3농혁신대학을 통해서 매달 모여 관

과잉을 넘어 폭증의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책임한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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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패턴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과 정부 역할이 중요한데, 행정에서는 아직 민간과 소통하는 것을 부담스럽고 어 려운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민간에서는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 생각하지 못

임채도: 소비자가 논의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저도 뜻이나 취지는 100% 동감합

하는 부분들을 꼼꼼히 봐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농업이 극도로 빈사 상태에 놓여 있고 대부분 비관적인 전망을 이야기합니다. 가급적 먹거리 진영과 같이 농업진영의 논의를 해서 잘 살아

최병찬: 최근에 친환경농업 재배기술과 기후위기 대응 등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농

나가면 좋지만, 한편으로는 농업이 가지는 독자성과 생리구조를 과연 먹거리 진영

촌진흥청 등 여러 기관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행정기관들이 인식

의 도시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같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하는 절박함의 정도가 농업 현장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민간에서는 행정

살림은 도시 소비자들이 ‘생산자를 위하여’ 라는 관점을 수용하면서 시작했지만,

이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고 행정에서는 민간의 요구 없이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과연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이런 의식이 어디까지 수용될지 걱정입니다. 우리 세대

수 있냐고 말하는 것을 보면, 서로 간에 소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까지는 그래도 농업, 농촌과의 유대감이 있지만, 최소한의 낭만적인 소속감이나 유

기본적으로 행정이 좀 더 투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행정을 이해하고 있

대감이 부족한 미래세대에서는 과연 무엇으로 농업과 먹거리, 생산자와 소비자의

는 전문가들이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민간에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부

연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사실 이것은 한살림 내부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농민

의 어느 부서가 어떤 자원과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지, 농업정책이 언제 어떤 방식

과 도시 소비자의 입장을 절충하고 대화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예산을 투입한다

으로 만들어지는지, 민간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의견을 모아야 하고, 누구를 만나

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율적, 자발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와

야 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실천 전략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생산자를 중매설 수 있는 중개 그룹, 시민단체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남재작: 대부분 정부의 역할과 문제에 대한 지적을 하시지만, 제가 봤을 때 적어도 강마야: 사실 푸드플랜이 그런 지점입니다. 생산과 소비가 지역 내에서 순환하고 민

농업 분야에서는 오히려 민간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간이 협의하는 것이죠. 충남이 민선 5, 6기 때 친환경급식과 무상급식을 선도적으

합니다. 일부 민간 영역에 계신 분들은 자기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이해하지 못하

로 진행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협치 기능이 잘 운영되지 않아요. 점점 행정이 민

고 계십니다. 민간의 여러 주장, 담론이 때로 잘 조율되거나 다듬어지지 않고 정책

간과 소통을 하지 않고, 컨트롤타워가 부족하여 약간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생산

에 그냥 반영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핵심적으로 중심에 놓고 가야

자와 소비자가 만난다는 것이 매우 좋은 수식어인데, 사실 현장에서는 협치가 잘

할 사안들을 놓치고 현안 대응에 빠져버리는 느낌이 듭니다. 정제된 토론이 되고,

작동하지 않습니다. 민간만 독자적으로 할 수 없고 행정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큰 담론부터 세부 정책까지 일관성이 있는 체계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

균형적으로 풀어나가는지가 중요한데 예전보다는 원활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물론 정부의 책임이 더 크지만, 민간도 함께 책임을 느꼈

그러다 보니 푸드플랜이 여전히 또 하나의 문서로 끝나고, 하드웨어 중심의 계획이

으면 합니다.

많이 나오면서 적게는 50~60억 원, 많게는 100억 원 이상의 센터 건물을 만드는

부분적으로는 최적의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최적의 목표를 달

것으로 귀결되고 있어요. 이게 충남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행

성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소득과 식량생산의 관계를 보면, 식량자급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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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높인다는 것은 농민 소득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적으로

는 양이 29%입니다. 그만큼 너무 취약합니다. 우리나라는 농업, 임업, 수산업을 다

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농민 소득이 떨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겁니

합해도 온실가스 흡수가 미진할 뿐 아니라 오히려 퇴행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여

다. 또한 소농에게 이익을 주려는 정책에 더 큰 영향을 받는 분들은 실제로 대농입

기서 민관 협치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관은 새로운 분야에 매우 취약

니다. 전기요금 혜택이나 보조금들은 대농들에게 더 유리합니다. 이해관계자들 사

합니다. 관이, 설령 지자체 장이 바뀌어도 민의 네트워크가 강하면 실행이 가능합

이에 토론이 부족하니 분야별, 섹터별로 각자의 최선을 찾는 것이죠. 저는 그게 문

니다. 영국의 푸드플랜이 가능했던 것은 민의 네트워크가 계속 이루어지면서 어떤

제를 꼬이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부분의 최적이 전체 최적이 안 되는 구조적인

순간이 왔을 때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거든요. 북유럽과 같이, 복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세부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똑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게 되

국가 정책이 신자유주의보다 강하면 좀 더 탄탄하고 안정적일 수 있지만, 그렇지

고, 잘 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점점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않은 국가들은 상당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민의 역할이 매우 의미 있게 이루어질 수

우리가 농업과 농촌에 대해 어떤 미래상을 그리고 있고, 어떤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도 민의 네트워크가 강해져야 하는 시점이고, 도매시장들

가지고 있는지가 먼저 명확해야 합니다.

이 거의 합병 인수되는 심각한 상황에서 농민, 소비자, 시장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대안시장이 많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 주도는 하드웨어로 귀결되기 때문에 민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가야 한다

농업계의 과제 - 민관 거버넌스의 조건

고 생각해요. 캘리포니아주 사례를 언급하자면, 관과 민이 같이 기후위기 대응을 합니다. 농민, 축산업 네트워크, 시민사회가 바탕이 되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

임채도: 선생님들께서 정부의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의 부족함, 대책의 부실함과 구

하고 감축할 수 있는 친환경적 방법에 대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합니다. 주정부에서

조적인 문제를 지적해 주셨고, 정부-민간 거버넌스가 지속적이지 못하고 절충적인

는 법제정과 정책 마련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민과 축산업자들을 보조하

형태로 진행되거나 엄밀하게 평가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충

고 지원합니다. 민관 양쪽이 균형 있게 가면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한쪽이라도 취

남 사례에서 보듯, 거버넌스에서 소통의 경험과 지자체 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

약해지면 오히려 민의 네트워크가 강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다는 것도 드러납니다. 한편으로는 일단 소통 시스템과 구조를 만들면 상당히 오

때 우리 사회는 아직 농민들도 마찬가지고 소비자들도 농업이 왜 중요한지에 대

래 지속되므로 민간 협치와 대화를 포기하지 말고 축적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

한 인식이 너무 취약해요. 그러다 보니 자급률만 이야기하는 오류에 빠질 수가 있

습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농업계의 과제로 어떤 것이 있을지 말씀해 주시기

거든요.

바랍니다. 남재작: 에너지전환에 있어 그린뉴딜 정책을 제시하려고 해도 농업분야에서는 제 진주: 농업과 먹거리 문제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이미 배출

시하기가 어렵습니다. 농업분야의 에너지 연구는 국가 차원의 연구와 데이터가 거

된 온실가스를 흡수할 곳이 농업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IPCC에서 발간한

의 없습니다. 정책은 지표가 없으면 예산 투자를 못하고 검증도 못하거든요. 실질

토양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보면, 방출되는 온실가스 양에 비해 자연적으로 흡수하

적인 집행력을 가지려면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지표와 수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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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합니다. 농업 R&D 예산이 1조라고 하는데, 그 중 일부라도 투자했으면 좋겠습니

에 놓아야 한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강하게 이끌고 나갈 필

다. 연구기관에서 R&D 연구를 했으면 그에 관한 자료를 내놓도록 민간영역에서

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

강하게 요구해야 합니다.

늘과 같은 이런 토론회도 많아지고, 더 많은 농민들이 기후위기를 농정의 우선과제

기후변화 대응에 예산 투입이 잘 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고령화 때문입

로 놓자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니다. 65세 넘는 농민들이 50%인 상황에서 이 분들이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는 현 상의 유지에 더 관심이 크고, 다음 세대는 토지 문제로 농업에 진입하기 어렵습니

강마야: 우리가 기후위기의 원인제공자라는 반성과 평가를 먼저 하고, 규모화와 산

다. 농업 소득이 별로 희망적이지 않고, 점점 더 위기가 커지는데 누가 농업에 새

업지상주의 패러다임이 기후위기 시대에 부적합하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서로

롭게 뛰어들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 농업에서 기후위기보다 심각한 것은 세대

가 서로에게 전달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패러다임을 전환하고자 하는 의지

교체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일년에 9만명씩 농민이 줄어들었습니다. 10년 후 농

를 자꾸 표명하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의 시작이자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고 봅니

민과 농가가 얼마나 줄고, 농지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농업이 어떤 모습이 될지

다. 기후위기와 농업위기가 전방위적으로 이야기되려면 농업·농촌이 가진 6대 공

에 대한 미래 틀을 잡아 놓고 이 위에 기후정책이 올라서야 합니다. 기후위기도 중

익기능, 즉 식량의 안정적 공급, 국토환경 및 자연경관의 보전, 수자원의 형성과 함

요하지만 농업은 근본적인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양 등에 수식어를 덧붙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식량의 안정적 공급이

필요합니다.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식량을 생산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식량을 안정적으

사업을 하려면 예산이 세워져야 하고, 예산으로 반영되려면 사회적인 분위기

로 공급할 것인지가 필요합니다. 즉 ‘환경 친화적인’,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

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기획재정부 공무원들도 여론의 흐름에 예민한데, 농업계가

응하는’, ‘순환을 장려하는’ 식량생산과 자급이라는 것이 우리가 합의해야 할 지점

나서지 않는 문제에 예산을 배정하는 데 인색합니다. 농업분야에서 기후위기 대응

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민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합의 꼭지점들을 만들

을 하려면 뭘 해야 하는지, 또한 정책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데이터가 무엇인지 명

어가야 합니다.

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농업 인프라를 재정비하면 됩니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성과지표를 다시 생산해야 합니다. 예를 들

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농업계가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

면 친환경인증 사업의 성과지표가 친환경농지 면적 증가율이예요. 농지면적 증가

다고 생각합니다.

율은 온실가스 저감과 별 관계가 없습니다. 친환경농업을 했을 때 어디서 얼마나

농업계 리더들이 조금 더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후위기 이

탄소배출을 저감했고 어떤 순환농업을 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야

야기를 하다가 다른 논쟁적이고 예민한 이슈가 나와 버리면 기후위기는 묻혀버립

합니다. 성과지표를 바꾸면 전후방 정책과 사업방식도 바뀝니다. 탄소배출저감 수

니다. 어떤 이슈를 다룰 때, 전략적으로 전문가들의 연구가 축적될 때까지 기다렸

치를 성과지표로 만들어 놓으면 그걸 측정하기 위해 농업실천활동들을 다 바꾸어

다가 필요할 때 터뜨려야 하는 것이 있고, 어느 정도 연구가 축적되어 있어 당장 이

야 하니까요. 저는 정책프로세스 상에서 맨 끝 단계에 위치한 성과지표를 기후위

슈화하고 제도화해야 하는 사안도 있습니다. 기후위기 의제가 자리잡을 동안 다른

기에 대응하는 실천지표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한다면 앞 단계도 바뀌지 않을

의제들은 연구 성과가 축적되도록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우선순위

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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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최병찬: 작년까지만 해도 기후위기가 먼 이야기였는데, 올해는 바로 눈앞에 위기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가왔습니다. 집중 폭우로 과수원이 매몰되기도 하고, 벼가 여물지 않아 아예 수

남소장님께서 농민에게 책임이 전가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

확을 포기하고 논을 갈아 엎은 농가도 있습니다. 두 달 간 비가 오니까 하우스 안

습니다. 지금은 농민이 2백만에 불과하고 더이상 민관이 힘으로 대결하는 시대가

에서 햇빛을 못 본 채소가 녹아내리는 것도 경험한 초유의 한 해였습니다. 우리 생

아닌 거죠. 농업문제가 농민과 농업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통된 인식이 확인

산자들은 약정량을 지키기 위해 내년 생산계획을 얼마나 늘려 잡아야 할지 고민

되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사회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답을 내놓아야

입니다.

하는 시기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동안 시민사회도 정부만큼이나 농업에 관심이

지금까지 한살림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인증제도를 운영하고, 생산과

부족했다는 것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기후위기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

가격안정기금으로 리스크를 줄이는 노력 등 자체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

제를 돌아보게 하는 만큼,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농업정책의 근본적인 숙제들을 해

니다. 하지만 기후위기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은 한살림이 내부적으로 감당할 수

결해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기본 데이터, 기본 지표, 계획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행정과의 소통경험도 많으신 연구자분들이 오셨으니, 한살

행 후 이를 확인하는 과정 등 기본적인 농업정책 구조가 바로잡혀야 한다는 말씀도

림의 노력들이 내부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함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살림 내부역량을 쌓는데 노력했다면,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외부와 소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도 이런 민감한 이슈들을 더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남재작: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민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우면 안

됩니다. 농업을 둘러싸고 있는 정부와 민간영역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잘 해야 하는 것이지, 농민들이 책임을 지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임채도: 고맙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해서 농업을 앞

으로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가에 대해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습 니다. 최근 20~30년 간 정부의 기후변화 방책들과 민간의 대응을 봤을 때 여러 한 계점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성찰과 반성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지적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정부와 민간의 협치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주셨는데, 그 협치라 는 것이 날짜를 정해 대면하는 것만으로는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반복을 멈추려면, 민간 네트워크의 튼튼한 기반 위에서 꾸준한 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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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기획

특집

부모님 삶을 통해 이해한 ‘유기농업’

기후위기 시대, 청년농부로 살아가기

한살림대전에서 실무자 생활을 마치고 받은 퇴직금으로 전북 장수의 값싼 골짜기 땅을 매입해 귀농한지도 만 3년이 되었다. 그간 정신없이 살아왔던 도시생활의 기 억을 떠올릴 새도 없이 풀과 벌레, 종잡을 수 없는 하늘과 씨름하며 바쁜 나날을 보 내왔다. 농부로서의 삶이 육체적으로 버겁기는 하지만 도시 생활의 각종 스트레스 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 특히 가족과 함께 틈틈이 보내는 시

권성현(한살림 생산자)

간이 도시생활의 편리와 맞바꾼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다. 귀농은 내 오래된 꿈이었다. 다행히도 아내가 동의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한살림대전 실무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전북연합회 진안, 장수 구량천 공동체 생산자이며, [좋아서 하는 농사] 농장을 운영 중이다. 수박, 미니단호박, 고추 등을 생산하여 한살림에 출하하고 있다.

것이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3살짜리 아들과 함께 우리 부부 는 전북 장수의 작은 마을로 귀농을 하였다. 이곳은 무주, 진안과 맞닿아 있어 ‘무 진장’이라 불리는 중고랭지 지역이다. 비교적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춥다. 내 가 사는 ‘파파실’은 남덕유산 자락 아래 자리 잡은 20가구 남짓한 마을인데, 청년이 라고는 나 하나뿐인 초고령화 마을이다. 이 지역에 아예 연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진안군 동향면은 내가 11살부터 살던 곳이다. 이곳에 24년 차 귀농 선배인 부모님이 사신다. 부모님께서도 오랜 시간 한살림 농사를 짓고 계 신데, 자주 서로의 일을 돕지만 각자의 농장에서 각자의 농사를 짓는다. 부모님의 농장 면적을 넓혀 함께 경작하면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일 테지만 아버지 와 일을 할 때면 서로 생각의 차이로 자꾸만 부딪히는 탓에 적당히 ‘평화적 거리두 기’를 하며 농사를 짓는다. 사실 귀농을 선택한 내 생각의 대부분은 농사짓는 부모 님의 삶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생각이 조금 다르더라도 존 중하고 넘어갈 만도 한데 나의 고집도 어지간하다.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시골로 이사를 간다는 말을 듣고 싫다며 한참을 울었 던 것이 생각난다. 결국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말에 설득당해 졸지에 동생과 나는 시골아이가 되어버렸다. 사실 부모님은 조금씩 귀농을 준비해 오셨던 것 같다. 전 국귀농운동본부의 1기 귀농학교 수료를 계기로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팍팍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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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시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가 좀 더 생태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셨

십대를 이끌어준 풀무학교와 ‘위대한 평민’

다. 대중에게는 ‘무공해’라는 말이 더 익숙했던 당시에 ‘유기농업’으로 농촌에서 자 립하겠다며 정착하는 내내 부단히도 애쓰셨던 것이 기억난다. 거리도 먼 골짜기 천

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 되자 줄곧 풀무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하루는 아

수답과 매일 같이 멧돼지가 출몰하는 밭으로 다니며 바쁘게 일하셨다. 동네 사람들

버지 손에 이끌려 별 생각 없이 학교 방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활력과 분위기

은 죽자 살자 맨 손으로 김을 매는 젊은 부부를 보며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뒤에

에 매료되어 진학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라는 명칭 때문

서 빨갱이니 뭐니 했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내가 성인이 된 이후 들은 바

에 중학교 친구들은 졸업선물로 경운기나 트랙터를 주냐며 놀리기도 하였는데 뭣

로는 귀농 당시 몇 년 동안은 제대로 된 수입을 만져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다. 그럼

모르고 하는 소리려니 무시했던 것 같다. 다행히도 운 좋게 입학한 풀무학교에서

에도 어린 동생과 나는 논, 밭에서 개구지게 뒹굴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을

는 매일 매일이 즐겁고 새로운 배움으로 가득했다. ‘위대한 평민’, ‘더불어 사는 평

즐겼고, 부모님 역시 고되지만 참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하시곤 했다. 돌이켜보면

민’, ‘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는 이 곳에서 3년 내내 자주 듣게 되는 교

그 어릴 적 농촌에서 느꼈던 행복의 잔상이 오랜 시간 가슴에 남아 내가 다시 시골

훈 같은 것이다. 3년 동안 이곳의 아이들은 각자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을 통해 그 뜻을 몸소 이해할 수

‘친환경 농업’이라고는 체계화된 이론과 법규, 다양한 농자재도 없었던 당시의

있는 시간들을 보낸다. 나에겐 특히 생명, 생태, 유기농업, 공동체 등과 관련된 수

유기농업을 나는 ‘소농’이었던 부모님의 삶과 노동을 통해 기억하고 이해한다. 소

업과 실습, 문화시간 초청강연, 모임, 토론이 관심사였다. 『녹색평론』, 『쌀과 민주

와 염소를 통해 나온 배설물을 흙으로 다시 돌리는 경축순환, 다양한 작물을 그리

주의』, 『소농』,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같은 책을 읽으며 친구, 선후배들과 이러한

많지 않은 규모로 여러 필지에 돌려 짓는 윤작, 밭에서 나온 농가부산물로 만든 친

주제에 대해 자주 이야기 나누곤 했는데, 그런 경험이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부모

환경 액비 자가 제조, 밤이면 밤마다 가기 무서웠던 생태 화장실과 자가 퇴비, 물관

님의 삶에 대해 더 깊은 존경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돈이나 권력, 명

리의 어려움으로 매번 실패였던 천수답 우렁이의 제초작업, 쉰 막걸리, 현미식초,

예 등으로 포장된 세상의 위대함과는 다른, 그야말로 스스로를 낮추지만 묵묵히

목초액 등을 섞어 만든 친환경 방충해 자재, 토착미생물 활용을 위해 앞산의 부엽

필요한 일을 하는 ‘위대한 평민’의 철학이 십대였던 나에게 무엇보다도 힙(HIP)한

토를 긁어왔던 기억 등이 남아있다. 그 외에도 지역에 새로 정착한 귀농자들과 어

삶의 모토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꿈도 뒤로 하고

렵게 유지해온 생산자공동체 활동, 도시 소비자들과 오랜 직거래를 통해 쌓아온 신

몇몇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학교 옥상에 모여 ‘공동체 농업’을 하자! 약속

뢰 관계, 늘 꼼꼼하게 기록하는 아버지의 영농일지에 관한 기억들은 내가 유기농업

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졸업 후에

을 하나의 농법이 아닌 실천이자 운동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도 모임을 이어 갔지만 10년을 채 지속하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지만 지속 가능한 농업과 건강한 농촌 공동체를 고민하며 사는 다른 또래들과의 만남을 여전히 기 대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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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세상의 농업에서 살리는 농업으로

농업, 농촌 이외에도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의 물질 만능주의와 이윤 추구가 빚

대학생이 되어 농업관련 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육에 큰 기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

어내는 사회 문제를 한살림에서는 호혜적 생산/소비운동으로, 조합원들의 자발적

지만, 교수님들이 가진 농업에 대한 생각들이 매번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제

인 생활운동으로, 사회적 연대로, 협동운영의 방식으로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었

도권 교육이 농업을 세계화 속에 중요한 경쟁산업으로 바라보며, 관행화된 대규모

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들을 경험을 통해 내 안에서 구체화하며 성장하는 기회

기술 농업을 지향하는 것의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드는

가 되었다. 퇴사 후에 생산자가 된 지금도 그 때의 경험으로 인해 땅을 일구고, 생활

실망과 회의감은 피할 수 없었다. 농업학계에도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과학기

하며 갖는 생각과 마음가짐이 다르다.

술 만능주의적 사고와 시장경제 중심적인 사고가 팽배하고, 관련 산업들과의 보이 지 않는 경제적, 정치적 연결고리들이 형성돼 있어 본래 학문적 순수성이 많이 훼 손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생태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4대강 사업의

좋아서 하는 농사

당위성을 강조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한번은 수업 리포트 주제로 바이오 에너 지, 바이오 에탄올에 대한 문제성(대규모 열대우림 파괴, 기업형 관행재배로 인한

‘생명이 살아있는 친환경 농지입니다.’ 한살림 필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는 작은 깃

환경파괴, GMO 종자 사용, 초국적 자본에 의한 가족농 해체, 식량가격 폭등의 문

발이 농지마다 입구에 꽂혀 있다. 아마도 농지에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표식이겠

제 등)을 제기한 것에 대해, 근거 없는 시대착오적 비판이라며 도리어 비판을 되돌

지만, 그 내용을 볼 때마다 유기농업을 하는 나 자신도 마음을 다지게 된다. 그 깃

려 받은 경험이 있다. 또한 대규모 기술영농이 제3세계 기아문제의 근본적인 문제

발을 6살 난 아들 녀석은 농장을 올 때마다 뽑아 휘두른다. “뭐라도 재밌으면 됐지”

를 해결하고 있다거나, 친환경 농산물을 통해서 섭취할 수도 있는 기생충과 유해균

하다가도 매번 설치하는 것이 사실 귀찮기도 하다.

이 농약, 화학비료의 살포로 인한 위험성에 비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등의 단편

아직 어설프고 어수선한 내 농장의 이름은 ‘좋아서 하는 농사’다. 어떤 선배농

적인 견해를 매번 납득하기 어려웠다. 제도의 틀 안에서 농업의 입지를 이해하면서

부들은 “어떻게 농사를 짓는 게 늘 좋을 수만 있나?”라고 되묻기도 한다. 틀린 말은

도 조금 더 다양한 견해와 철학들이 공존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아니다. 사실 이 말은 현재 진행형이 아니라 앞으로의 ‘의지’이다. 유기농업이 좋고,

농업, 농촌 문제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회의감에 혼란스러울 즈음 한살림대

아무리 가치가 있어도 농사일에만 전념하다가 지치고 싶진 않았다. 가족을 돌볼 수

전에서 실무자로 일하게 되었다. 지역 한살림에서 실무자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

있는 여유도 갖고 내 몸과 마음도 챙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어야 했다. 주로는 홍보를 담당했지만 도농교류나 직거래장터, 각종 강좌 등의 조

지역사회와 세상일에도 관심 가지며 참여하고, 농촌에서도 문화적으로나 정신적

합원 활동 기획과 사업기획, 매장관리, 대사회적 의제와 지역연대, 각종 조직지원

으로도 풍요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짓는 농사를 통해 그런 생활들을 건

업무 등 7년 동안 안 해본 역할 없이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하나도 쉬운 일은 없었지

강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직거래하는 소비자들께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이

만 모든 활동이 나에게 새로운 생각의 길을 터주고 식었던 열정에 불을 붙여주었

로운 농사를 짓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담아 농산물 상자에 함께 동봉하는데, 사실

다. 생산자, 소비자가 민간 차원에서 만들어가는 생명협동 운동과 한살림의 철학이

내가 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되물으며 늘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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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현실은 생각보다 여유가 없고, 고된 육체노동으로 자주 지치곤 한다. 심지어는

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그러나 포기하고

농촌 역시 안정적인 주거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고, 초고령화로 정서적인 교감을 이

있던 나와는 달리 생명의 힘은 경이로웠다. 날이 개이고 며칠이 지나 찾은 밭에서

룰 청년세대는 찾아보기 힘들며 어린 아이들은 그보다도 더 없다. 각종 돌봄, 교육

는 찢긴 이파리와 줄기들이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서고 있었다. 사실 과학기술을 등

문제에 있어서도 사각지대이다. 이 모든 것들이 현재 나를 둘러싼 환경인데, 아무

에 업은 인간이 훌륭해서 성공한 농사를 짓는 줄 알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작물이

런 변화 없이 매년 풍년이 든다 한들 내 농사가 즐거울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환

가지고 있는 본연의 강하고 질긴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것을 인간이 옆에서 거드는

경에 관심 갖고 참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건강한 농사를 짓는 만큼

것이 더 맞는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유기농업의 본질 아닐까

이나 중요한 ‘좋아서 하는 농사’의 미션이다.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도 힘을 내어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단호박 줄기를 울타리에 올리고, 다시 맺힐 열매를 위해 상처 난 열매를 따주었다. 기대 이상으로 울창한 넝 쿨과 함께 적지만 소중한 과실들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른바 ‘저승에서 돌아온 미니

기후위기의 실체 마주하기

단호박’ 이라 소개하며 자신 있게 판매할 수 있었다. 올해 농사는 우박 피해로 액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주 수입원인 수박 농사도

올해로 3년째 모든 가을걷이를 마치고 조금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제 아

50일이 넘은 최장기 장마로 위기를 맞았다. 이 지역은 노지수박 재배 지역이라 기

직은 걸음마 수준인 나의 농사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매년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

후에 더 취약하다. 언제 해가 뜨나 기다리기에도 지루한 날이 지속됐다. 수박밭은

지만 다양한 작물을 재배해보면서 큰 공부가 되었고 재미있었다. 그동안 수박, 미

폭우로 인해 두둑 위까지 물이 넘쳤다 빠지기를 반복했다. 건강했던 이파리들이 주

니단호박, 양배추, 콩, 고추, 포도, 들깨, 참깨 등을 재배해 봤는데 계획대로 되는 것

저앉고 병들기 시작했다. 비가 잠깐 멈추는 틈을 타 해주는 친환경 방제가 내가 할

이 하나도 없었다. 어릴 적부터 종종 부모님 일을 거들어왔으니 웬만큼은 익숙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데 그마저도 이렇다 할 효과는 없었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 그

줄 알았던 농사일도 도무지 쉽게 손에 익질 않았다. 그 중에 가장 애정을 가진 작물

저 지켜보며 애만 닳고 있었는데 다행히 수확일이 다 될 즘 비가 잠시 그쳤고, 생산

은 미니단호박이다. 다른 작물에 비해 쑥쑥 잘 크는 것도 그렇지만 맛도 훌륭하고

약정량은 채우지 못했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당도와 품위가 기준을 충족해서 출하

연령 구분 없이 소비자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다. 직거래를 하면 유통마진이 없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도하며 기뻐할 수도 없었다. 내 농사에 비해 부모님 댁 수

농민 소득에 도움이 되는 점도 있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들으며 소통할

박은 10분의 1가량 수확에 그쳤고, 주변 농가들 또한 수박 수확을 포기한 채 연거푸

수 있어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면에서도 좋다. 게다가 미니단호박은 저장성도 좋고

한숨을 내쉬는 상황이었다. 농사라는 것이 언제든 울고 웃는 사람의 입장이 쉽게

친환경농산물로서도 품위가 좋아 영유아 이유식 재료부터 해서, 간식, 식사대용으

바뀌는 일이라 다른 농민들의 피해가 남의 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로도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어 나에겐 든든한 효자 품목이다. 그런데 올해는 우여

얼마 전 한살림 일일채소 생산회의에 참석해 각 생산지의 피해상황을 전해 들

곡절이 많았다. 자갈 같은 우박이 장시간 쏟아져 그림같이 자라던 1천평 규모의 미

었다. 대파 2천평이 긴 장마로 인해 모조리 병에 걸린 이야기부터 6년근 인삼이 침

니단호박 밭이 초토화되었다. 이파리와 줄기가 갈기갈기 찢기고 튼실하게 달린 열

수되어 하나도 거두지 못한 안타까운 사정, 인근 댐 방류로 농지가 수몰이 된 이야

매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벌집이 되어 축 늘어진 잎과 줄기들을 보고 있자니 허탈

기 등 거론하지 못한 수많은 피해들로 많은 생산자들이 시름에 잠겨 있었다.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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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친환경 농가들은 날씨로 인한 병해에 더욱 취약한데, 이로 인한 농산물의 낮은 품

도 풀을 깎거나 경운을 하는 일, 이랑을 형성하는 등의 작업을 온전히 사람의 힘으

위에 반응하는 소비자들에게 매번 이상기후 탓을 반복하여 설명하게 되는 상황도

로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비닐멀칭을 하지 않거나 각종 고비용 농자재들의 투

사실 구차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올해는 특히 많은 비로 인해 관행 농가들의

입 대신 자가 제조 비율을 높이는 등의 고민들도 하기는 하지만 현실화하기에는 여

농약 살포가 훨씬 빈번했는데, 그렇게 살려 낸 시중의 비교적 좋은 품질의 농산물

러 애로사항들이 있다. 낮은 효율은 곧바로 비용증가와 농사실패로 이어져 농가의

이 친환경 농가들에게는 어쩌면 발등에 떨어진 기후위기보다 더 이겨내야 하는 상

생계를 위협하는데 그럼에도 낫으로 풀을 깎고 소로 쟁기질하는 전통방식의 농업

대가 되었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위기에 협력해야 할 대상을 경쟁의 상대로 대립

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후위기의 유일한 대안이라 고집하기에도 어려운 현실이다.

시키고 전체의 위기를 누군가의 기회로 포장한다. 그 기회에 농업, 농촌이 함께 살

실제로 많은 생산자들이 농사를 통해 배출되는 많은 양의 농업폐기물에 대해 큰 죄

수 있는 탈출구는 없어 보인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우리 모두의 위기를 어떻게 바

책감을 가지고 있다. 생분해 멀칭 비닐 사용 등의 새로운 대안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꿀 것이냐 보다도 위기의 실체를 어떻게 마주볼 것이냐가 더 시급한 과제가 아닌

그 마저도 고비용, 고투입 농업이다. 개개인의 실천도 물론 함께 가야 하지만, 기후

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위기 책임에 대한 농업, 농촌 공동체의 자각과 위기의 실체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선 행돼야 생산부터 유통, 소비에 걸친 거대한 시스템의 전환을 시작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임계점에 다다른 기후위기의 대안을 찾아가는 길이 더 이상 이득과 손해의

농업도 기후위기의 가해자

관점으로 왜곡되지 않고 농촌만이 아닌 우리사회 전체가 상실해가고 있는 생명의 가치, 협동과 배려의 가치를 되살려 동력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전세계 농식품부분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관한 자료를 본적이 있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농식품부분의 배출량이 26%를 차지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는 농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자연환경에 미치는 순기능도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

복불복을 피하는 방법

에 4분의 1이나 되는 온실가스 배출량 수치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대규모 축산으 로 인한 메탄가스 발생과 엄청난 수요의 곡물사료생산을 위한 막대한 에너지 사용,

농사가 마치 복불복 게임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갈수록 빈번한 자연재해로 ‘복’보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단작중심의 대규모 기계화 영농, 복잡한 유통체계에서 발생

다는 ‘불’의 확률이 높아져만 간다. 많은 농민들이 예측할 수 없는 실패에 대한 불안

되는 에너지까지 사실 조금만 따져 봐도 농업 역시 기후위기의 심각한 가해자로서

감으로 경작규모를 더 확대하거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여 시설하우스를 신축하

시급히 그 해결을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리스크가 높은 고소득 품목으로의 전환을 계획한다. 한해 벌어 한해 빚 갚고 살

친환경농업도 그 문제의식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친환경농사에도 다양한 방

아가는 것마저 불안정한 현실에 무리하더라도 소득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안정적

식이 있지만 대체로 화석연료에 기대지 않고 경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쿠바와 같

이기 때문이다. 이 복불복 게임에 실패한 농민들은 다시 농가부채 문제로 허덕이고

이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화석연료 수급이 어려워 유기농업과 도시농업으로 전환,

회생하기 위한 무리한 계획을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농민의 안정적인 생활 보장을

발전된 사례도 있지만 그 방식을 빌려 오기에는 여건이 너무 다르다. 내 농사만 봐

하는 동시에 농촌에서의 공익적 역할을 증진시키기 위한 농민기본소득, 농민수당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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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과 같은 정책의 필요성이 이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살림 생산자의 다짐’처럼만 된다면 농업이 더 이상 지구를 고갈시키는 일은

올해에는 처음 시행되는 전북형 농민공익수당을 60만원 지역사랑 상품권으

없을 것이다. 나무랄 것 없이 훌륭한 말이지만 생산자 자신이 그런 삶을 살지 못하

로 받았다. 아마도 농민들이 이런 ‘공돈’이라 생각할 만한 돈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

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큰 부담과 죄책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사실 그 죄책감

어리둥절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특히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로 인해 재난지원금

은 고갈되어 가는 지구에게 갖는 인간에게 내재된 양심의 다른 말일 수도 있겠다.

까지 경험하면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직접적이고 낯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화학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환경에 대한 죄책감

내가 받은 농민공익수당이나 각종 농업직불금은 ‘공돈’이 아니다. 허리 굽혀 감사

이 씻기는 것도 아니며, 앞서 얘기했듯이 내 농사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와

하게 받을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간 산업화와 시장개방 등의 희생양이었던 농

대기오염이 생긴다. 따지자면 생명물질순환원리를 거스르는 점이 있지만 앞으로

민의 공익적인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자, 인정이다. 더불어 기후위기와 농업,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 부분도 있다. 특히 어려운 부

농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역할과 책임도 더 선명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분은 에너지 사용이다. 대부분의 농기계들은 여전히 내연기관으로 되어 있어 전기

농민기본소득 운동이 농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공익적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자동차 산업 같이 비교적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쉬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다

정책운동인 동시에 농촌을 넘어 이 사회가 탈성장 사회로 전환해 가는 신호가 되었

고 기계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인력으로 대체할 수는 있는 상황도 아니다. 단순 소

으면 좋겠다. 자본주의의 무한 성장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반성을 통해 자본

박한 삶을 지향하기 위해 좀 더 경작규모를 줄이고 자급자족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에 내몰리던 농촌이 새로운 가능성과 활력을 찾아야한다. 탈성장 사회의 지속가능

보는 것은 어떤가? 난 가족을 설득해가며 그렇게까지 할 자신도 없다. 이처럼 유기

한 농업, 농촌에는 농업생산 기능 이외에도 현재 공동체가 상실했거나, 새로운 시

농업도 그 방식에 따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한살림 생

대에 발굴하지 못한 다원적 가치들이 공존해야 한다. 더 이상 농촌을 희생 삼는 사

산자의 다짐’을 지향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지구에게 덜 미안한 농사를 짓는 정도의

회가 아니라 농촌의 활력을 근간에 둔 체질적으로 건강한 사회가 우리에게 필요하

실천을 하고 있다. 현실과의 간극 속에 이 풀리지 않는 문제의 본질은 어쩌면 맞고

다고 생각한다. 물론 농민기본소득 운동 등이 완벽한 전환을 이룰 수는 없지만, 그

틀림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인간으로부터 발생한 기후위기의 실체를 이해하고 스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여론 형성의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기후위기와 한살림 생산자의 다짐

위기를 새로운 활력의 기회로

<한살림 생산자의 다짐>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작년에 대산농촌재단에서 ‘협동과 연대로 전환하는 동아시아의 농農’이란 내용으

3. 나는 한살림 생산자로서 물질의 풍요만을 추구하지 않는 단순 소박한 삶을 지향합니다.

로 주최한 해외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중국에서의 일정 중에 중산치시생활농장,

4. 나는 한살림 생산자로서 모든 농사를 생명물질순환원리에 맞는 농업으로 전환합니다.

슈미생태학교, 인린생태농장 등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에서는 바이오다이나믹 농

5. 나는 한살림 생산자로서 이웃과 함께 생태적인 지역순환농업을 만들어 갑니다.

모심과 살림 _ 16호

업, CSA, 주말농장, 식농교육, 생태교육, 유기농업 기술 워크숍 등의 다양한 활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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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농촌의 붕괴와 무분

아니라 아쉬운 점이 있다. 도시의 다양한 결핍을 농촌이 내재하고 있는 생태적, 정

별한 자연생태계의 파괴를 실제로 경험한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의

서적, 공동체적 가치와의 융합을 통해 극복하고, 농촌 역시 사회의 문제의식에 발

식들을 통해 이런 활력 넘치는 다양한 대안운동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실제로

맞춰 좀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로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을 준비할 필요가

반향청년이라는 조어가 있는데, 도시에서 농업 등을 전공한 청년세대들이 도시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위기를 이왕이면 새로운 활력과 더 나은

서의 취업을 거부하고 시골로 내려와 유기농업, 생태농업으로 대안적인 농업 모델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희망의 에너지로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을 모색하고, 농업뿐만이 아닌 6차 산업과 농촌마을 살리기 같은 지역사업에 참여 하는 이들을 흔히 일컫는 말이다. 중국에서의 이러한 흐름은 적지 않은 귀농, 귀촌 과 전국적으로 2000개가 넘는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공동체

소소한 행복을 꿈꾸며

지원농업)농장의 사례로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사회를 활력으로 이끌고 있는 세 대들이 주로 80년대 생들이라 느껴지는 에너지의 기운도 달랐고 그것이 크게 부러

어쩌면 어릴 적 꿈을 이루고자 오랜 기간 강박처럼 생태적인 삶을 사는 농부가 되

웠다. 국가가 다르고 서로의 여건도 다르지만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과 가치관에 공

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농부가 된 지금에야 대체로 후회하지는 않지

통점이 있어 끈끈한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만 가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농사에 당황스럽기도 했고, 여름철 뜨거운 햇볕 아래

얼마 전 귀농귀촌을 계획하는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내 귀농 이야기를 할 기회

일할 때면 내 적성과 맞지 않는 것 같아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겨울로

가 있었다. 아직 풋내기 농사꾼이라 정착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아직 어설픈 농

접어들어 여유가 생긴 요즘에는 다시 농사짓기를 너무 잘 했다고 금방 고쳐 생각

사에 대해 얘기했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코로나로 인해 귀농, 귀촌에 대한 요구가

하게 된다. 도시만큼 또래 아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아이가 자연을 놀이터 삼아 신

더 많아졌다고 하는데, 대부분 치열한 도시의 삶속에서 벗어나 휴식을 원하는 사람

나게 놀 때나 꽤 많은 나무나 꽃의 이름을 외워 기억해 낼 때에도 시골살이 선택을

들, 농업을 통해 새 희망과 기회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었다. 평소에 농촌에 더 많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에서일까? 나의 시골살이는 위대한 성공보다는

은 청년세대의 유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뭐라도 보탬이 되고자 강연을 수락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즐거움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짧지만 3년의 귀농

했는데 사실 참가자들이 기대해 왔던 농촌에 대해 희망적인 말만 할 수는 없었다.

생활이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런 삶이 나의 정신 건강과 행복에도 더 큰 기여를 할

나조차도 아직 안정적인 주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기후위기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욱 이 소중한 삶을 가능하게 해준 자연에 고마

로 인한 농사의 어려움이나 농촌의 인구부족 문제로 일해 발생하는 현실들을 정착

워하며 유기농업을 하는 농부로서의 책임도 온당히 지는 삶을 살도록 앞으로도 노

전에 어느 정도 염두에 두어야 그나마 덜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농촌에는

력해야겠다. 이왕이면 이 무거운 다짐을 함께 할 동료들이 주위에 많이 생겨났으면

자연환경이 주는 정서적 안락함과 도시에 비해 비교적 열려 있는 기회들이 있어 자

하는 희망도 담아보면서 부족한 글을 마무리한다.

발적인 불편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고 아직 주저하는 많은 이들에게 농 촌이 살 만한 곳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만 늘 느끼는 것은 우리의 귀농, 귀촌이 기존 농촌공동체와 융합되는 방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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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기획

특집

기후위기와 먹거리

기후위기 시대의 먹거리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는 우리가 꽤 오래 동안 들어온 용어다. 뒤이어 생겨 난 기후변화(Climate Change), 기후위기(Climate Crisis) 같은 용어들은 점점 더

못난이 농산물(B급 농산물)의 판매와 소비*

심각한 표현을 담고 있다. 2019년 11월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회사는 2019년 올해 의 단어로 ‘Climate Emergency(기후비상)’를 선정했는데 이 단어는 “기후변화로 파괴된 환경이 잠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 전에 지구온난화를 막거

김영석(한국세대융합연구소)

나 줄일 수 있도록 위급한 조치가 요구되는 상황”을 정의한다.1 지구온난화는 인간 활동, 주로 화석 연료 연소로 인하여 산업화 이전(1850~1900)부터 지구 기후시스

주요 활동으로 사회적경제조직(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에 대한 경 영 컨설팅과 멘토링, 그리고 연구과제 참여를 하고 있다. 주요 연구로는 ‘지구 환경을 위한 지속가능한 패션의 착한 소비 확산 연구’, ‘50+세대의 세대융합 일자리 개선 방안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환경과 고령사회 문 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템의 장기적인 온난화로 지구 대기의 온실 가스 수준을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기후변화는 인간 및 자연적으로 생성된 온난화와 그것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모 두 지칭하며 기상패턴의 장기적인 변화를 말한다. 기후위기는 지구온난화와 기후 변화의 결과를 설명하는 용어로 지구 온난화의 위협을 설명하고 공격적인 기후 변 화 완화를 촉구하는 데 사용된다. 2020년 11월 21~22일 이틀간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은 ‘모두를 위한 21세 기 기회 실현’을 주제로 화상으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정상선언문을 채택했다. 정상선언문에는 기후변화와 식량 관련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D. 지속가능 한 미래보장’ 섹션의 29항에서 “환경, 에너지, 기후: 환경 훼손을 예방하고, 생물다 양성을 보존하고 지속가능하게 사용하며, 회복하고, 해양을 보전하고, 깨끗한 공 기와 물을 추구하고, 자연재해와 기상 이변에 대응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 은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34항의 농업에서 “코 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고려하여 식품과 농업 공급망의 효율성, 회복력 및 지속 가능성 제고와 식량 안보 및 영양에 있어서의 도전에 대처한다는 공약을 재확인 하고 2030년까지 식량 손실과 낭비를 전 세계 인구 일인당 절반으로 줄이기 위한

1) https://languages.oup.com/word-of-the-year/2019/

* 이 원고는 필자의 2020 한살림 생명협동연구 보고서의 내용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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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노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별 중간 목표를 자발적으로 수립하자는 목표를 인정한

구 9명 중 1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 지역 기아 증가의 주요 원

다.”고 선언했다.2

인은 이례적인 가뭄, 홍수와 강우 패턴의 변화 등 농사 계절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기후변화는 굶주리고 영양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키는데 특히

변동성과 극심한 기후로 분석하고 있다.

기아 수준이 높은 국가는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하고 적응 능력이 낮다. 기후변화는 식량 생산 및 가용성, 접근, 품질, 활용 및 식량 시스템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는 식량 시스템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기후 관련 재해가 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

년 증가하고 주요 작물의 수확량을 감소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높은 수준의 이 산화탄소는 작물의 영양가를 감소시킨다. 세계 식량 시스템은 온실 가스 배출량의

우리나라는 식량부족 국가

약 19~29%를 차지하며 약 1/3의 식품이 농장에서 식탁으로 오는 과정에서 낭비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공한 ‘국내 식량자급률 및 곡물자급률 현황’에 의하면 우리

고 쓰레기로 처리된다.3 따라서 이렇게 발생한 손실은 식량안보나 영양 개선에 기

나라의 식량자급률이 10년 사이 10% 넘게 하락하였으며 2019년 국내 식량자급률

여하지 않고 기후변화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은 45.8%로 나타났다.5 이는 2009년 56.2%보다 10.4%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

기후변화는 농업과 식량 생산을 위협한다. 점점 상승하는 기온, 물 부족, 가뭄

곡물자급률은 29.6%에서 21.0%로 8.6% 떨어졌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식

과 홍수, 증가하는 대기 중 CO2 농도는 이미 전 세계의 주요 작물에 영향을 미치기

품자급률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사료를 포함한 곡물자급률과 식용 목적의 식량자

시작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기상 이변, 식물 질병, 물 부족의 전반적인 증가로 곡물

급률은 1995년 이후 급격히 감소 추세이며, 1990년 이후 곡류 외 자급률도 계란을

의 생산량이 감소했다는 보고도 있다.4 기후변화는 생산량이 줄고, 가격이 급등하

제외한 동·식물성 식품 모두 크게 감소했다.6

며, 기아 인구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후변화로 글로벌

「2022년도 식량 및 주요 식품자급률 목표」(농림축산식품부 고시)에서 정한 목

식량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면서 2050년에는 주요 곡물 가격이 최대 23% 상승할 것

표 대비 2018년 자급률의 달성도는 대부분 80% 이상이나 밀(7.1%), 옥수수(8.5%),

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유엔세계식량기획(WFP)은 이미 저개

콩(13.9%)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드러났다. 1990년에서 2018년 사이 동물성 식

발국가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현상이 식량자급 능력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분

품 중 수입이 어려운 계란류(100.0%→99.4%)를 제외한 모든 품목의 자급률이

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UN의 ‘2018년 세계 식량안보 및 영양 현황

급격히 감소하였으며, 특히 동물성 식품의 자급률 감소폭이 더 큰 것으로 나타

(The State of Food Security and Nutrition in the World 2018)’을 인용하여 보도

났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소고기(53.6%→36.3%), 돼지고기(100.3%→71.6%), 닭

한 바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지구상의 기아 인구는 약 8억2100만 명으로 세계 인 5) 2020년 10월 4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서울경 2) 김범현. 2020. “[전문] 2020 G20 정상회의 정상선언문”. 『연합뉴스』 2020.11.23.

제, “식량자급률 45.8%...10년새 10포인트 넘게 하락”, 2020.10.04), (https://www.sedaily.com/NewsVIew/

3) CGIAR·CCAFS, Food Emissions, https://ccafs.cgiar.org/bigfacts/#theme=food-emissions(2020.11.28)

1Z900NMPTX)

4) Ali Raza et al. 2019. “Impact of Climate Change on Crops Adaptation and Strategies to Tackle Its

6) 식품자급률(Food Self-Sufficiency Rate)은 소비량 대비 국내 생산량 수준을 계산한 지표로, 정부는 식품자

Outcome: A Review”. Plants (Basel) 2019 Feb; 8(2): 34. Published online 2019 Jan 30. doi: 10.3390/

급률 제고를 위하여 「농업·농촌 및 식품기본법」 제7조와 제14조에 따라 5년 주기 식량자급률 목표를 설정하

plants8020034

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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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의 자급률 제고 대책을 우선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며, 특히 국내 소

<그림1> 연도별 곡물자급률 및 식량자급률 현황 80

식량자급률

70 60 50

비량이 많은 주·부식 곡물 중 밀, 콩 등 식량자급률 목표 달성률이 저조한 품목의

곡물자급률

종자, 생산, 수입, 유통, 소비단계 연계 대책과 해외 곡물 확보 체계를 총괄하여 중

69.6% 56.0%

40

45.8%

장기 대책을 마련하고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추진체계를 갖출 것을 권고하고 있다.

30

지난 11월 11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안’(‘그린뉴딜기

20 21.0%

10

2019

2018

2017

2015

2016

2014

2012

2013

2011

2010

2009

2007

2008

2005

2006

2004

2003

2000

1995

1985

1990

1980

0

주: 곡물자급률(%)=생산량/(수요량-(해외원조+수출))x100 식량자급률(%)=생산량/(수요량-(사료+해외원조+수출))x100 자료: 농림축산식품부, 「양정자료」, 2019.8., pp.33~35.; 농림축산식품부 제출자료, 2020.10.21.

본법안’)이 이소영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에 의해 대표 발의 됐다. 발의된 법안의 제44조 ①항은 “정부는 에너지 절감 및 바이오 에너지 생산을 위한 농업기술을 개 발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기술을 개발하여 화학비료·자재 와 농약사용을 최대한 억제하고 친환경·유기농 농수산물 및 나무제품의 생산·유 통 및 소비를 확산하여야 한다.” 라고 되어 있으며 ③항은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

<출처> 국회입법조사처, 지표로 보는 이슈(2020.10.30)

응할 수 있는 신품종 개량 등을 통하여 식량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시책을 수립·시 행하여야 한다.”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기(100.0%→89.9%), 우유류(92.8%→49.8%), 어패류(121.7%→51.2%), 유지류 (8.0%→1.2%), 식물성 식품인 채소류 (98.9%→87.2%), 과실류(102.5%→75.4%), 종 실류(86.3%→37.4%), 해조류(172.8%→119.1%) 모두 감소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B급(못난이) 농산물의 판매와 소비

곡물과 채소, 과수 및 축산물 등 농업생산 분야 전체를 아우른 자급률은 ‘농산물 자 급률’이 되는데 사료용 곡물을 제외해도 식용 농산물 자급률은 지난 1999년 84.9%

기후변화와 B급 농산물

에서 20년이 지난 2019년 71%(추정)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농산물

농업은 어느 분야보다 기후의존적인 산업으로 기후변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

시장 개방과 농지면적 감소의 영향으로 연평균 0.2%가 하락해 오는 2029년에는

지고 있으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상승은 식량생산, 병해충, 생태계, 수자원, 농

69.3%에 이르고 곡물류 자급률은 연평균 0.3%p 하락하여 2029년 42.6% 수준으

경지 토양, 농업기반시설 등 농업의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8 기후변화

로 전망되며, 2029년 육류 자급률은 2019년 수준과 비슷한 62.8%에 이를 것으로

는 농산물의 품질을 떨어뜨려 상품성을 저하시키며 되며 이런 제품들은 단지 모양,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전망하고 있다.7

크기, 색상 등이 사람들의 미적 기준(겉모양)을 충족하지 못하여 소비자의 외면을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는 비상시 식량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대책과 국내

받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이 흔히 ‘표준’이라고 판단하는 것에서 약간 벗어난 과일

농업 유지 및 지속가능성 향상을 고려하여 필수 전략 품목을 선정하여 이들 품목

과 채소 같은 농산물을 ‘B급 농산물’ 또는 ‘못난이 농산물’이라고 부른다. 미국이나

7) 국승용 외. 2020. “2020년 농업 및 농가경제 동향과 전망”. 『2020년 농업전망』. 한국농촌경제연구원. E042020. pp15-16.

모심과 살림 _ 16호

8) 김창길 외. 2012. “기후변화가 식량공급에 미치는 영향분석과 대응방안”. 한국경제연구원. R663

52

53

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유럽에서는 ugly produce(fruits and vegetables), imperfect produce, misshapen

용되는 기타 투입물과 같은 자원 낭비는 물론 온실가스 배출을 증가시키는 요인

produce, wonky produce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기도 하다. 생산자(농민)들은 단지 유통업체의 겉모양 상품 기준에 미달한다는

B급(못난이) 농산물은 맛과 품질에 있어 일반 농산물과 별 차이가 없지만 크

이유로 신선 농산물의 20~40%가 폐기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12 미국에

기·모양·중량·색깔 등의 겉모양으로 다소 상품가치가 떨어져 생산자가 유통 비용

서는 약 20%의 유기농과 재래식 농산물이 단지 조금 다르게 보인다는 이유로 폐

과 판매처 미확보로 수확을 포기해 버리거나 동물의 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

기된다.13

행히 판매를 할 수 있다 해도 일반 가격 대비 훨씬 저렴하게 판매가 되는 것이 현 실이다. 문제는 자연재해 증가와 소비자의 구매 형태가 B급 농산물 비중을 증가

B급 농산물의 소비와 단계별 손실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기후변화로 태풍, 호우, 이상고온 등의 자연재해 빈도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B급 농산물(못난이 농산물)이 자연스러움을 추

가 잦아짐에 따라 B급 농산물 비중이 늘고 있다.9 소비자들의 건강과 먹거리에 대

구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소비자들의 지지를 얻고 있으며, 장터에서 농산물을 사고

한 관심은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과일과 채소에 대한 구매로 이어지는 경향을 보인

파는 것이 일반적인 주요 유럽 도시에서는 크기, 색, 형태도 자유분방한 B급 농산

다. 그러나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유기농법은 다른 농법

물이 오히려 다양성을 상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성인 5명 중 3명

에 비해 병충해 피해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과일과 채소를 겉모양으로 구

이상(62%)이 B급 농산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응답했다.14 우

매하는 우리나라 소비자의 구매 형태를 고려하면 유기농법으로 생산된 농산물이

리나라의 경우 2014년 농협경제연구소가 실시한 조사(‘B급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오히려 B급 농산물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B급 농산물에 대

태도 조사’)에서 B급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 태도가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19

한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같은 사과나무에서 열린 사과 중에 흠집이

세 이상 소비자 1,000명 가운데 72.2%가 ‘B급 농산물 구매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있는 사과가 그렇지 않은 사과에 비해 당도가 2~5% 높게 나왔다는 보고도 있으며,

답했다. B급 상품이 실제 시중에 팔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응답자도 81.7%에 이르

유기농 농산물은 기존 농산물보다 농약 잔류량이 적고 항산화제 함량이 20~40%

렀다.15 영국의 경우, 농장(생산자)에서 유통업체로 이어지는 공급망 각 단계에서

높다는 보고도 있다.10

발생하는 과일과 채소류 폐기물의 손실 및 폐기물 수준을 11개의 자원맵으로 정리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소비를 목적으로

된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16 아래 <표1>은 이 연구를 통해 확인된 손실 및 폐기

생산된 음식물의 3분의 1이 손실되거나 낭비되며 이는 매년 약 13억 톤에 이른다 고 한다.11 이는 초기 생산단계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식품 공급망 전체에서 발 생하는 손실과 낭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토지, 물, 에너지, 토양, 종자 및 생산에 사

12) FAO. “What governments, farmers, food businesses – and you – can do about food waste” http://www. fao.org/news/story/en/item/196377/icode 13) Sarah Taber. 2019. “Farmers aren’t tossing perfectly good produce. You are.” 『The Washington Post』 2019.3.08

9) 하지영 외. 2019. “B급 농산물의 구매자 소비성향과 구매 후 행동 간의 영향관계에서 구매동기의 매개효과

14) Harris Poll. 2016. “Eight in Ten Americans Say Appearance at Least Somewhat Important When Shop-

검증”. 『사단법인 한국식품유통학회 2019년 하계학술대회』

ping for Fresh Produce” 2016.9.22

10) NPR. 2016. “Beneath An Ugly Outside, Marred Fruits May Pack More Nutrition.” 2016.4.26

15) 최선욱. 2014. “못난이가 맛난이…어깨 펴는 B급 농산물” 『중앙일보』 2014.8.05

11) Gustavsson J. et al. 2011. “Global Food Losses and Food Wast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16) Terry L.A., Mena C., Williams A., Jenny N., & Whitehead P., 2011. “Fruit and vegetable resource maps”

the United Nations.

Final Report to WRAP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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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물 백분율에 대한 요약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공급망의 손실과 폐기는 일반적으로

때문에 먹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수억 파운드의 농산물이 매년 농장에서 썩게 된

10% 미만이지만 일부 농산물의 경우 25%까지 이르고 있다. 특히 생산물의 판매등

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오랫동안 음식물 쓰레기로 분류되었던 소위 B급 농산물을 판

급 미달(B급 농산물)로 손실 또는 폐기되는 농산물은 다른 유통 경로상에서 발생

매, 소비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는 생산자(농민)에서

하는 양보다 훨씬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사과, 양파, 감자 및 아보카도 등은

부터 포장, 운송업체, 제조업체와 소매업체에 이르기까지 식품 생산과 유통의 각

판매등급 미달로 손실 또는 폐기되는 비율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단계에서 발생한다. 미국의 가정에서 낭비되는 음식물 쓰레기 이외에 매년 약 720 억 파운드의 음식물이 낭비되는데 이 중 520억 파운드의 식품은 제조업자·식료품 점·음식점 등에서 쓰레기 매립지로 가고, 매립지로 가지 않은 200억 파운드의 과

<표1> 공급망을 통한 과일과 채소의 손실 비율 농산물

재배현장 손실

등급 외 손실

저장 중 손실

포장 중 손실

유통 중 손실

일과 채소는 농장이나 밭에서 수확도 하지 않은 채 버려지게 된다.17 이 물량은 축

딸기

2~3%

1%

0.50%

2~3%

2~4%

구 경기장 4개를 채우기에 충분한 양의 음식물 쓰레기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

라스베리

2%

데이터 없음

데이터 없음

2~3%

2~3%

상추

5~10%

데이터 없음

0.5~2%

1%

2%

토마토

5%

7%

데이터 없음

3~5%

2.5~3%

사과

5~25%

5~25%

3~4%

3~8%

2~3%

메탄을 배출한다. 따라서 B급 농산물의 소비는 지구 온난화 방지와 탄소발자국 감

양파

3~5%

9~20%

3~10%

2~3%

0.5~1%

소에도 기여한다. B급 농산물과 전통방식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섭취하면, 미국 농

감자

1~2%

3~13%

3~5%

20~25%

1.5~3%

무부(USDA)가 정한 미국 인구의 과일과 채소 소비 일일 권장 섭취량을 충족시키

브로콜리

10%

3%

0%

0%

1.5~3%

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19

아보카도

데이터 없음

30%

5%

3%

2.5~5%

감귤

데이터 없음

3%

데이터 없음

0.1~0.5%

2.5~5%

바나나

데이터 없음

3%

데이터 없음

0~3%

2%

에 따르면 미국에서 낭비되는 음식물의 96%가 매립이나 소각으로 처리된다.18 매 립지에 들어간 음식물 쓰레기는 분해되면서 기후변화의 요인이 되는 온실가스인

미국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음식물 쓰레기 낭비 방지와 B급 농산물의 소 비촉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특히 비영리단체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Imperfect Foods, Hungry Harvest, Misfits Market, Full Harvest 등과 같은 스타

<출처> WRAP, 2011, Fruit and vegetable resource maps

트업의 활동도 활발하며 Walmart, Kroger, Whole Foods Market과 Giant Eagle 등의 대형 마트와 슈퍼마켓에서 B급 과일과 채소를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한다.

해외 및 국내의 B급(못난이) 농산물 판매 현황 17) Feeding America. ”How We Fight Food Waste in the US”. https://www.feedingamerica.org/our- work/ our-approach/reduce-food-waste(2020.11.2 검색)

미국의 B급 농산물 판매 현황

18) Environment Protection Agency. “Reducing Wasted Food at Home”. https://www.epa.gov/recycle/

미국은 과일과 채소를 판매 가능한 것과 폐기해야 할 것 두 가지 범주로 오랫동안 구분해 왔다. 미국의 식품체계는 완벽한 모양, 색깔 및 크기의 농산물을 요구하기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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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ucing-wasted-food-home (2020.11.2 검색) 19) 미국인을 위한 2015-2020년 식생활지침(2015-2020 Dietary Guidelines for Americans)은 하루에 2,000 칼로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과일 2컵과 채소 2.5컵을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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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천만 톤 이상의 신선한 농산물이 주로 슈퍼마켓과 소비자의 겉모양 기준을 충족하

<표2> 미국 B급 농산물 판매기업 현황 회사명

설립연도 매출(추정)

Imperfect Foods

Misfits Market

Hungry Harvest

2015

$640만

직원수(명) 약 1,600명

기타

지 못하기 때문에 매년 버려지고 있다고 추정했다.20 이 연구 논문은 전 세계 인구

· COVID19로 주문량

의 10%가 만성적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상황에서 Food Loss and Waste(FLW)를

투자유치 금액 회원수(명) $119백만

약 40만 명

2배 증가

“우리 시대의 큰 재앙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매년 유럽경제지역(EEA)

· 유기농과 2018

2014

$340만

$600만

약 750명

약 100명

$101.5백만

$13.75백만

미상

미상

내에서 얼마나 많은 식품이 판매되기 전에 폐기되는지 조사했다. 그들의 연구에 따

Non-GMO B급 농산물만 판매

르면 판매와 소비 목적으로 신선식품을 분류하고 수용 가능한 겉모양 조건의 사용

· 과일, 채소 3종류

은 유럽연합의 식품품질 기준과 규정에 기초한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식품 유통

상자 · COVID19로 매출 급증

Full Harvest

2015

$300만

약 30명

$11.5백만

미상

분야는 본질적으로 과점적인 분야로 소수의 슈퍼마켓 체인점들이 큰 시장 점유율 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유통 체인점들의 영향으로 그들은 추가로 독점적인 품질

· B2B 비즈니스

기준을 만들어서 상품의 진입 장벽을 만들고 있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농산물은

플랫폼

식품 공급망에서 제외되고 슈퍼마켓 판매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고 심지어 농장 을 떠나지 못할 수도 있다. 같은 대학의 연구는 겉모양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서 발 위 <표2>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이들 B급 농산물판매 기업에 대한 투자기

생하는 Food Loss and Waste(FLW)가 영국에서 연간 최대 450만 톤, 유럽경제지

관들의 투자금액이다. 기업의 설립연도가 오래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투자기관

역(EEA)에서는 연 5,150만 톤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는 전체 농산물의 3분의

들은 이들 기업의 성장과 미래가치를 높게 보고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1 이상이 겉모양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여 폐기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 중 일부는

Imperfect Foods사와 Misfits Market사는 1억불이 넘는 투자를 받아 물류시설 확

밭으로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있고 동물 사료에 쓰이거나 또는 다른 방법으로 재사

충과 고객 편의성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B급 농산물 생산자(농민)들

용될 수도 있는데 이는 거의 40만 대의 자동차들이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과 같다

을 위한 새로운 유통 경로를 만들고, 고객들에게 소매점에서 구입할 때 보다 상당

고 말한다. 단지 겉모양 기준을 만족하지 못하여 폐기된 농산물의 재배와 폐기로

히 할인된 금액으로 B급 농산물을 제공하고, 남는 것들은 푸드뱅크에 기부한다. B

인한 기후변화에 대한 부정적 영향은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B급 농산

급 농산물을 판매하는 스타트업 기업과 일부 대형 유통회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제고와 지속가능한 구매운동은 더 많은 B급 농산물 소

B급 농산물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인식은 여전히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따라

비를 장려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그들은 또한 B급 농산물을 더 잘게 썰거나 가공

서, 미국의 B급 농산물의 시장규모도 더욱 성장할 여지가 있다.

상품에 더 많이 사용하고 자선단체에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 등을 제안한다. EU 공통 농업 정책(EU Common Agriculture Policy) 매커니즘으로 인해 식품 공

유럽의 B급 농산물 판매 현황

영국 에딘버러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유럽의 경우, 재배된 과일과 채소의 1/3이 모 양, 크기 등의 이유로 상점의 판매대에 진열되지 않으며 유럽 전역에서 재배되는 5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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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Peter Stephen D et al. 2018. “Avoidable food losses and associated production-phase greenhouse gas emissions arising from application of cosmetic standards to fresh fruit and vegetables in Europe and the UK”. Journal of Cleaner Prod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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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급망에서 제외되는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EU 전체 과일 및 채소 생산량의 약 2%,

비로 생산자와 인도장소까지의 운송 경로와 거리를 최적화하였는데, 이는 경제적,

EU 관할의 토양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0.15%에 해당한다. 신선한 과

환경적으로 지속가능성을 높여주었다.

일과 채소에 겉모양 기준을 적용한 결과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영국에서는 7%, 유럽경제지역은 14%라고 추정하고 있다.

국내 B급 농산물 판매 현황

유럽에서 B급 농산물을 판매하는 기업은 영국의 Oddbox, Wonky Vegetables,

미국의 경우, 농장에서 식탁으로 음식을 가져오기까지 총 미국 에너지 예산의 10%

독일의 Querfeld 등이 있다. 소비자협동조합으로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활동하

를 소비하고 미국 땅의 50%를 사용하며 미국에서 소비되는 모든 담수의 80%를

는 Fruta Feia 가 주목할만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사용하지만 음식물의 40%는 먹지 않는다고 한다.21 폐기되거나 낭비되는 B급 농 산물은 먹지 않는 40% 음식물의 일부분이지만 유통업체의 판매 겉모양 기준을 충 족시키지 못하여 폐기된 과일 및 채소가 최대 40%에 이른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표3> 유럽 B급 농산물 판매기업 현황 회사명

설립 연도

매출 (추정)

직원수 (명)

투자유치 금액

회원수 (명)

사과의 25%, 양파의 20%, 그리고 감자의 13%가 유통업체의 겉모양 기준을 만족하

기타

지 못하여 폐기된다고 한다.22 현재 우리나라는 곡물별 B급 농산물의 품목별 생산

· B2C/B2B 비즈니스 모델 Oddbox (영국 런던)

2015

$200만

약 9명

$4.2백만

약 1만

· 잉여 B급 농산물은 런던

량, 판매량, 폐기량에 대한 공식적인 통계를 만들지 않고 있다.

노숙자 지원단체

다행히 우리나라에도 최근 모양이 예쁘지 않거나, 벌레가 먹었거나, 상처 등으

(City Harvest)기증

로 겉보기에 문제가 있어 팔리지 않고 버려지던 B급 농산물에 대한 관심과 소비

Wonky Vegetables

2016

미상

약 4명

미상

미상

(영국 탬워스) Querfeld (독일 베를린)

2016

$32만

약 12명

미상

미상

· 주1회 B급 계절 채소 배송 · 사전 주문 물량만 배송

가 증가하고 있다. 가벼운 지갑 사정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가성비 소비와, 농가

· B2C/B2B 비즈니스 모델

소득에 보탬이 되기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B급 농산물을 구매하는 가치소비가 맞

· 이산화탄소 감소를 화물

물린 결과로 보인다. 특히, 온라인 마켓을 중심으로 그 판매가 증가하고 있는 양상

자전거와 전기 자동차로 배출 Fruta Feia (포르투갈)

을 보이고 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티몬은 2019년 4월부터 같은 해 7월 8

· 소비자협동조합(조합원 12명) 2013

$80만

약 11명

미상

5,900

일까지 B급 과일 매출이 2018년 같은 기간보다 134%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 기간

· 물류시설 없이 운영 (12개 인도장소)

일반 과일 매출은 61% 증가했다. 전체 과일 매출 가운데 B급 과일이 차지하는 비

위 <표3>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의 B급 농산물 판매기업들은 미국의 기업들과 비슷한 연도에 설립되었으나 규모, 매출 및 투자유치 등에서 미국의 기업들과 비교 가 어려울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B 급 농산물 관련 활동이 비영리단체 중심 또는 대형유통업체들의 판매 캠페인 차원 에서 주로 진행되고 있는 점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의 Fruta Feia 소비자협 동조합은 포르투갈의 8개 지역 12개 인도장소에서 물류시설 없이 생산품의 지역소

모심과 살림 _ 16호

60

중도 2017년 17%, 2018년 24%, 2019년 31%로 매년 7%씩 늘고 있다.23 B급 과일 은 일반 제품보다 20~30% 낮은 가격에 팔리고 있다. 티몬에서 이런 ‘B급 과일’을 21) Dana Gunders. 2012. “Wasted: How America is Losing up to 40 percent of its Food from Farm to Fork to Landfill.” IP:12-06-B, NRDC ISSUE PAPER 22) Miriam C Dobson, Jill L Edmondson. 2019. “Ugly vegetables are a major cause of food waste.” 『Inde�pendent』 2019.3.29 23) 안효주. 2019. “못난이 과일 온라인서 인기”. 『한국경제』 2019.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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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많이 구매한 소비자의 연령대별 비중은 40대가 41%로 가장 높았다. 이어 30대 28

전자상거래업체와 대형 유통업체를 중심으로 한 B급 농산물의 판매와 별도로 사

%, 50대 18% 순이었다. 2019년 12월 17일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최근 한

회적기업(파머스페이스)과 스타트업(지구인컴퍼니, 프레시 어글리, DamoGO) 등

달(2019년 11월 15일~12월 15일)간 G마켓에서 ‘못난이’ 키워드를 포함한 신선식품

에서 B급 농산물 판매를 비즈니스 모델로 하여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농민과 소비

매출은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B급 당근은 285%, B급 배는 198%, B급 고구마는

자 모두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규모나 매출 측면에서 여전히 소비자들에게 인지

93% 매출이 늘었다. 그 중에서도 B급 감자는 방송 효과가 더해지면서 매출이 전년

도는 낮은 편이다.

대비 무려 439%가 뛴 것으로 나타났다.24

시사점과 제언

<표4> G마켓 B급 농산물 판매 신장률 못난이 농산물 품목

신장률

‘못난이’ 키워드 들어간 신선식품 전체

25%

못난이 감자

439%

못난이 당근

285%

못난이 배

198%

못난이 고구마

93%

시사점

미국은 B급 농산물의 판매에 개별 기업의 활동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고 볼 수 있 다. 다양한 NGO/NPO 단체들이 전체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차원에서 B급 농산 물 소비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이들의 활동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고 노출되어 소 비자의 인식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미국의 Imperfect Foods사는 2020년 코

* 기간: 최근 한달(2019년 11월 5일~12월 15일)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이베이코리아 제공) <출처> 헤럴드 경제. 2019.12.17

로나바이러스-19 팬데믹이라는 어려운 상황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으 며 평균 고객 주문 규모는 전년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고 한다. 미국과 달리 유럽은

기상이변으로 B급 농산물이 증가하면서 대형 유통업체 등에서 ‘농가도 돕

B급 농산물에 대한 관심과 판매는 주로 Sainsbury, Tesco 및 Morrison과 같은 대

고’,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내세우며 이벤트성

형 유통기업과 민간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기업은 영국 런

B급 농산물 판매 행사를 진행하곤 한다. 이는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농

던의 Oddbox가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Brexit

가를 돕는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B급 과일 판매가 활성화되면

와 Covid-19로 인하여 식품 공급망에 많은 변동성이 생기고 있다. 이는 생산자들

서 문제를 제기하는 과일업계 관계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우박을 맞은 과일의 경

이 온라인 배송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의

우 오히려 내성이 강해 당도가 더 높은 경우가 많은 반면 가격은 낮아, 이를 소비

Fruta Feia 소비자협동조합이 운영하는 B급 농산물 판매는 미션에 충실하면서도

한 소비자들이 굳이 정상품 과일을 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이로 인해 정상품 과

보관 창고나 물류시설에 대한 인프라 투자 없이 진행하는 비즈니스 모델로서 우리

일 시세와 소비 지지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우려다.25 온라인

나라의 소비자생활협동조합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사례로 보여진다. 가장 신선 한 B급 농산물 공급을 위해서 로컬푸드 운동과 결합하여 최소한 주1회는 B급 농산

24) 이혜미. 2019. “못난이 농산물의 화려한 부활”. 『헤럴드경제』 2019.12.17

물을 주문 받아 판매하는 방식 등을 도입하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25) 김경욱. 2018. “’B급 과일’ 판매 증가…득일까 독일까”. 『한국농어민신문』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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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 B급 농산물 소비 및 인식제고를 위한 캠페인 진행 - 정부, 유통업체 등을 대상으로 B급 농산물 정책 수립과 판매지원 방안 도입을 위한 비영리단체

제언

(NPO)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모니터링 - B급 농산물과 환경, 기후, 자원의 연계성 교육 - 잉여 농산물 및 B급 농산물의 푸드뱅크 등 기부 장려

“B급 농산물”은 크기, 모양, 색깔 등의 이유로 마트나 슈퍼마켓 같은 유통업체의

- 해외 NPO 단체와의 교류를 통한 B급 농산물 소비촉진 공동 이벤트와 자료 공유

판매대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영양가 측면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신선한 과일 - B급 농산물에 대한 인식 개선과 제고

과 채소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이다. 이제 이 용어는 좀 더 확장하여 판매되지 못하

- 적극적인 B급 농산물 소비 참여 소비자

는 과잉(잉여) 농산물도 포함하는 용어가 되었다. 우리가 B급 농산물에 좀 더 관심

- B급 농산물 판매기업에 대한 지지와 응원 - 계획적인 구매와 조리로 음식물 쓰레기 최소화

을 가지고 소비를 촉진해야 하는 것은 이미 충분히 설명을 했지만, 환경, 식량안보,

- 적절한 B급 농산물 보관과 이용으로 버리는 음식물 최소화

기후,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생산자인 농민들의 소득향상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B급 농산물의 소비활동을 촉진하기 위하여 B급 농산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 우리나라, 미국과 유럽 등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B급 농산물을 구

달하고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B급 농산물에 대한 가격도 중요한 구매요소이기 때문에 판매자는 신중한 가격 결

매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 다만, 이들이 실제 적극적인 구매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여러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도 이 문제에 대해 다

정이 중요하다.

양한 접근과 연구를 통해 제도적인 지원 및 홍보를 병행하여야 한다. 소비자들의 B급 농산물에 대한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과 아

<표5> B급 농산물 소비촉진을 위한 주체별 역할 구분

정부

울러 유통업체들이 적극적으로 B급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제도적

역할 - B급 농산물 품목별 생산·판매·폐기에 대한 연구 및 통계자료 생산

장치도 필요하다. 윤리적 소비, 착한 소비는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타인 즉 사회와

- B급 농산물 판매·소비 장려를 위한 인센티브 정책 도입

생산자, 판매자, 환경을 고려하는 소비인데, 소비자가 개별적, 도덕적 신념을 가지

- B급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제고를 위한 교육, 캠페인 진행

고 인간, 사회, 환경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소비행동이다. 윤리적 소비,

- B급 농산물 판매·이용·기부 등 모범 사례 발굴/지원/포상

유통업체 (마트, 수퍼 등)

- 식용 가능한 B급 농산물의 매립·소각 등 폐기되지 못하도록 법제화

착한 소비는 지구환경과 인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B급 농산

- B급 농산물의 판매등급 기준 완화와 B급 농산물 상시 판매 코너 확대

물 소비 촉진은 생산자와 소비자만의 몫도 아니며,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고민

(로컬 농산물 중심)

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순환적인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태계 조성이 이루

- 매장에서 폐기되는 농산물의 종류, 사유와 양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공개 - 지역 생산자와의 정기적 소통체계 강화 (신선식품은 로컬 농산물 우선 판매)

기업체 (B급 농산물 온라인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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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질 것이다.

- B급 농산물 판매방식의 최적화 (차별화된 마케팅) - 내부 조직원들의 동기부여를 위한 미션, 비전, 단기, 중/장기 목표 정립 - B급 농산물 구출 등 제반 지표 개발 및 보고서 공개 - 기업 혁신 (경영, 기술)을 위한 끊임없는 투자와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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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기획

특집

들어가며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 내기: 함께, 즐겁게, 창조하며

올해 이상기후가 빈번해지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교육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던 나로서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다. 나는 이 글에서 현재 기후위기가 얼마나 심 각한지를 강조해서 이야기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고, 그래서 솔깃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피곤함

조미성(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을 느낀다. 나는 이 글의 전반부에서는 우리가 조금은 간과하고 있는, 기후위기에 직면한

대안학교 교사, 기후변화에너지교육 연구자이자 환경교육시민단체 활동가 의 길을 걷다가, 코로나가 우리 삶을 강타하기 시작한 2020년 여름부터 모 심과살림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눈 뜨고 있는 시간의 반 정도는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거나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대안을 찾는 노력 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거기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 고자 한다. 기후위기는 농업생산성 악화, 식량부족,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측면 이 외에도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 총체적 환경위기 시 대에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 람들은 위기를 느끼지만 애써 회피하거나 우울감에 빠져든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 적 상태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긍정적인 해결방안을 찾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실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은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기후위기 시대를 ‘해결 한다’기 보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물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는 단순히 지구 온도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작동 시스템이 변하는 것 이며 사회시스템도 뿌리부터 뒤흔들어 놓을 것이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전 혀 다른 세상을 우리 눈앞에 펼쳐 놓을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지금까지 해왔던 관 성을 유지해서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지는 세상을 헤쳐 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흔 히들 기후변화 대응으로 ‘지속가능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 애매한 용어 는 내가 보기에 썩 적합하지는 않다. 무엇을 지속한다는 것인가? 그리고 지속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현재의 사회시스템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 능하지도 않다. 에너지전환, 지속가능한 전환에서 쓰이는 ‘전환’이라는 용어도 사 실 적합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균형의 상태로 이전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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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에 초점이 가 있다. 우리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시스템

첫째 마당: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 내기

을 만들어 나가는 ‘변형의 과정’에 더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1 그 변형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천착해야 할 것이 ‘기술’을 대하는 관점이다. 왜

환경운동가가 되거나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거나

냐하면 기술은 시스템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 중 하나기 때문이다. 단

어느 날 열두 살 아이가 문득 물었다. “엄마, 기후변화를 정말 해결할 수 있다고 생

적인 예로 스마트폰을 들어보자.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우리 시대는 스마트폰이

각해? 내가 에너지 아끼고 핸드폰 좀 덜 쓴다고 정말 기후변화가 나아질까? 나는

존재하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스마트폰이 우리가 일하고 놀고 관계 맺으며 살아

안 그럴 것 같아. 나는 내가 컸을 때 세상이 어떻게 될지 무서워.” 아이는 그러고 나

가는 방식을 얼마나 많이 바꾸었는가. 스마트폰을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사용한 세

서 한참을 울었다.

대와 어른이 되고 나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시작한 세대는 의식구조부터가 다르

2년 전,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시간이 최대 1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다. 기술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인간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는 매우

경고했다.3 그 12년이라는 시간은 지구 시스템이 깨어져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물리적 도구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만, 사실 기술에

올 수 없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기는 시점이다. 혹자는 이미 티핑 포인

대한 가장 중요한 물음은 우리가 ‘물건을 작동시킬 때 어떤 종류의 세상을 만들고

트를 넘었다고도 말한다.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의 ‘지금

있는가’ 하는 것이다.2 특정한 기계나 물건을 작동시키는 순간 심리적, 사회적, 정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는 이것이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조급함과 절망적

치적 조건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으로 우리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하는

인 두려움이 묻어 있다.

질문은 ‘어떤 기술과 도구를 사용하는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래서 글의 후반

201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은 ‘그레타 툰베리’라는 17세 스웨덴 아이였다. 툰

부에서는 기술에 대한 관점, 특히 농업기술을 보는 시각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세상

베리는 전 세계를 향해 기후변화의 위험성과 급박한 대응의 필요성을 말과 행동

을 살아 내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누구도 정답을 이야기할 수 없

으로 보여주었고, 이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한국에서도 툰베리의 행보가 이

는 시대, 여러 질문을 던지고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슈가 되어 청소년들은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을 조직했으며, 일련의 과정들은 책 으로도 출간되었다. 어떤 환경운동가는 툰베리같은 아이가 등장할 수 있었던 스웨 덴의 교육환경을 부러워하며 한국에서도 그런 ‘스타’ 청년환경운동가가 나오면 좋 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툰베리는 어떻게 해서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활동에 뛰어들었으며, 이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한 강연에서 툰베리는 자신이 기후변화에 관심 을 가지게 된 계기와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했다.4 8세 무렵, 기후변화 영상을 보고

1)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전환(transition)이 아닌 변형은 transformation, 혹은 metamorphosis(Beck, 2015)를 의미한다. 2) Winner, L. 1986. The Whale and the Reactor: A Search for Limits in an Age of High Technology. Uni-

3) 2018년 10월 IPCC 『지구온난화 1.5℃ 특별 보고서』.

versity of Chicago Press. (손화철 역. 2010. 『길을 묻는 테크놀로지: 첨단 기술 시대의 한계를 찾아서』. 서울:

4) 2018년 11월 테드(TED) 강연. https://www.ted.com/talks/greta_thunberg_the_disarming_case_to_act_

씨·아이·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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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몇 개월 동안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먹는 것을 거부하고 말도 하지 않고 학교에 가

반하기 때문에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생태공포증(ecophobia)’을 일으킨다.5 캐나

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이는 “어른들은 위선적이며, 어른들이 나의 미래를

다의 한 연구에서는 80%의 어린이들이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공포, 슬픔, 분노와

망쳤다”고 말했다. 겨우 여덟 살 어린 아이가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미래가 없다

같은 감정을 드러냈으며, 지구의 미래에 대해 종말적이고 염세적인 이미지를 가지

는 좌절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10분 남짓한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가 안스

고 있다고 밝혔다.6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많은 이들이 환경문제로 인해 공

러워 심장이 조여 드는 것 같았고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 눈에는 환경운

포, 우울, 좌절, 무력감을 느낀다. 성인들도 끊임없이 환경적 위기에 살고 있다는 이

동가로서 그 아이의 성공이 아니라 그 이면의 고통이 보였다. 기후를 위한 학교파

야기를 들으며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엄청난 일에 대해 무기력함, 무관심, 혼란

업에 동참하는 한국의 청소년들도 ‘미래가 없는데 왜 공부를 하는가, 우리에게 미

을 겪는다.7 공포심과 무력감 외에도 환경파괴로 인한 생물의 멸종이나 애착을 가

래가 없고,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분노

진 지역 경관의 변화 등으로 인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상실감과 비통함을 느

와 절망이 묻어난다.

끼기도 하고, 심지어 정체성의 혼란, 고립감과 향수병(solastalgia)을 느끼기도 한

툰베리 이야기는 내가 기후변화 교육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던 개인적인 동기와도 맞닿아 있다. 10여 년 전, 환경 수업에서 당

다.8 나는 내가 사랑했던 숲길이 새로운 도로를 내느라 파헤쳐지는 것을 보고 한동 안 깊은 고통과 그리움에 시달렸던 적이 있다.

시 고등학생들에게 <불편한 진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에너지 절약 행동을 시작할 수 있기를 의

방 안의 코끼리

도하며 수업을 기획했고,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 학생들과 소감을 나누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기후변화를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반복되는

그런데 아이들이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을 깨닫게

메시지에 대해서 ‘녹색 피로감’을 느끼고 회피하기도 한다.9 이러한 경향은 매년 실

되었다. 아이들의 첫마디는 “그럼 이제 우리는 다 죽나요?”였다. 이들은 공포감과

시하는 <국민환경의식조사>에서도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

불안을 이야기했다. 어떤 아이들은 “어차피 곧 죽을 건데 치킨 많이 먹고 여자 친

는 크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참여율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드러

구 빨리 사귀어야겠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봐야겠다, 이제 막 살아야겠다.”고 말했

났다.10 91.4%의 응답자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기후변화가 매우 심각하지만, 자기

다. 아이들은 환경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작성하 5) Sobel, D. 1996. Beyond ecophobia: Reclaiming the heart in nature education. Orion Society.

는 ‘버킷리스트’를 나열하고 있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우리가 기후변화를 다루고

6) Strife, S. J. 2012. “Children’s environmental concerns: expressing ecophobia.” The Journal of Environ-

mental Education 43(1): pp37-54.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7) Clover, D. 2002. “Traversing the gap: Concientizacióon, educative-activism in environmental adult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중 다수는 자포자기하는

education.” Environmental Education Research 8(3): pp315-323. 8) Albrecht, G., Sartore, G.M., Connor, L., Higginbotham, N., Freeman, S., Kelly, B., Stain, H., Tonna, A.,

심정으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극소수는 툰베리와 같이 분노에 차 어른들을 꾸 짖는 환경운동가가 된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으로 비슷한 감정을 겪는다. 언론, 영상, 환경교육에 등장하는 기후변화는 종종 지구 종말과 같은 재앙적 이미지를 수

& Pollard, G. 2007. “Solastalgia: the distress caused by environmental change.” Australasian Psychiatry

15(sup1): S95-S98. 9) Lorenzoni, I., & Pidgeon, N. F. 2006. “Public views on climate change: European and USA perspectives.”

Climatic change 77(1):pp73-95. 10) 김현노 외. 2019. 『환경·경제 통합분석을 위한 환경가치 종합연구 별책부록: 2019 국민환경의식조사』. 한 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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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69.6%만이 심각하다고 답하였다. 즉, 기후변화

어쩔 수 없이 차를 몰고 출퇴근 해서 에어컨을 켜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쓸 수밖에

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본인 이외의 사회계층, 미래세대, 저개발국가, 혹은 극지방

없는 상황은 인식과 행동 사이의 내적 모순을 일으킨다. 인지부조화 상태가 지속

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 심각하게 받는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같은 인식의 불

되면 괴롭기 때문에 인식이든 행동이든 한쪽을 바꾸어 일치시키려고 노력하게 된

협화음은 특히 산업국가에서 두드러지는데, 유럽과 미국 대중들도 기후변화가 심

다.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행동을 바꾸는 것보다 더 쉽다. 그래서 기후변화 이

각하지만 다른 개인적, 사회적인 문제에 비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멀리 있는

야기가 나오면 애써 고개를 돌리거나, 나 혼자 실천해 봐야 소용없다는 식으로 합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11 사실 이러한 인식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코

리화하게 된다. 결국 내적 모순에 대한 심리적 방어기제로 인해 사람들은 ‘방 안의

로나든 기후위기든 대부분의 재난은 사회적· 생물학적으로 가장 책임이 적은 지

코끼리’처럼 기후위기를 외면하거나 회피, 혹은 거부하게 된다. 즉, 다수의 사람들

역과 계층, 생물종들에게 가장 취약하며, 가장 먼저 약자들에게 위협적으로 영향

이 기후변화에 대응한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

을 미치기 때문이다.

각한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대부분은 마음 깊이 죄책감을 느끼고 변화의 필요

어쨌든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피로감을 느끼거나 회피

성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문제에 맞서 현실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고

하고 아무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별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후

느끼기 때문에, 애써 회피하고 무관심해지지 않으면 괴로워서 도저히 일상을 살아

위기는 너무나 큰 문제인데 나 혼자 어쩔 도리가 없다. 지금 당장 원시시대로 돌아

갈 수 없는 것이다.

갈 수 없고, 나의 삶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환경을 파괴하 고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끊임없이 지구의 보물같은 자원을 파내어 쓰레기 같은 물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찾는 실마리

건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바꾸기도 어렵다. 어렵게 합의한 기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심리상담사를 찾아갔는데, 만약 심리상담사가 그에게 “그

변화협정은 강대국 대통령이 바뀌어 손바닥 뒤집듯 탈퇴해도 어쩔 도리가 없었고,

렇게 사시면 안되죠.”라고 훈계를 하거나 잔소리를 한다면 어떨까? 그는 상담사

정치적 해법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며 온실가스 감축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텀

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을 것이고 우울증은 더 심해질 것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하

블러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며 강박적으로 안 쓰는 플러그를 뽑기는 하지만 자기

는 방식이 끊임없이 도덕적 의무감을 상기시키고 잔소리를 퍼붓는 계몽적 방식이

위안같은 이 행동들이 솔직히 온실가스 감축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지는 않는다.

어서는 안된다. 계몽과 잔소리는 말하는 이가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전제를 하

높은 공포심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이 없거나 해결책을 실행하기 어려운 상황

기 때문에 듣는 이는 자존심이 상하고 기분이 나빠진다. 우울과 공포에 빠져 있는

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12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인식하지만

이들에게는 위로를 건네며 공감하고 치유해주어야 한다. 이 공감과 위로는 비슷한 고통을 느끼고 있거나 느껴봤던 사람들이 모여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가능하 다. 그리고 치유가 선행되어야 그 이후 뭔가를 실천할 수 있는 내면의 동기가 생

11) Lorenzoni, I., & Pidgeon, N. F. 2006. op.cit. 12)인지부조화란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지닐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 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 등을 말한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길 수 있다.

사람들의 내적 일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불일치를 겪고 있는 개인은 심리적으로 불편해지며, 이런 불일치를 줄

내면의 동기가 생겼다 할지라도 실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동력이

이고자 하거나, 불일치를 증가시키는 행동을 피한다. 개인이 이러한 인지부조화를 겪을 때 공격적, 합리화, 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천의 동력을 가질 수 있을까? 실마리를 찾기 위해

행, 고착, 체념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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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잠깐 들여다보려 한다. 공중 보건 분야에서는 충치, 금연, 에

이 이론은 다소간 논란이 있고 다른 연구결과도 있지만, 기후위기 소통이 왜 성

이즈 예방 등의 이슈에서 대중 캠페인을 보다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메시지

공하거나 실패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시사하

전달과 소통 전략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여러 소통 전략 중 하나는,

는 바가 있다.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가 자신의 일로 다가오지 않고 시공간

발생할 질병의 심각성을 대중들에게 알려 위협하면 이 공포심이 예방적 행동을 하

적으로 멀리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느끼는 것은 <표 1>의 ②에서와 같은 ‘무관심/

는 동기가 된다는 가정에 기반한 ‘공포동인모델’이다.13 이 모델은 여러 학자들에 의

무반응’을 일으키고 이것은 효능감 수준과 관계없이 실패하게 된다. 반면 기후변

해 점점 발전되고 정교화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확장된 병행과정 모델’이다.14 이

화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종말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만 어떻게 해도 해결될 수 없

이론에서는 왜 공포심으로 위협하는 메시지 전달이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를 설

으며 ‘나 혼자 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은 효능감을 낮추어 ‘공포-통제 반응’을 일

명한다. 핵심 개념은 ‘위협’과 ‘효능’인데, 가장 성공적인 소통 전략은 높은 수준의

으키고 메시지는 거부되며 결국 ③과 같이 실패한다.

공포심을 주고(고 위협) 특정한 행동을 하면 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거나 예

그렇다면 ①과 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높은 위협을 주고 곧이어 구체적이고

방할 수 있다(고 효능)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공포심을 이용한 메시지가

효과적인 행동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즉, 이렇게 저렇게 하면 기후위기를 극복할

실패하는 원인은 두 가지로, 충분히 위협적이지 않거나(저 위협), 혹은 특정한 행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방안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이며 현실적으

동이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저 효능)이다.

로도 효과가 보여서 그 행동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표 1> 공포 메시지의 성공과 실패(확장된 병행과정 모델)

즐거움과 연대를 통한 변화

① 성공

② 실패

구분

위협 수준

통제 수준

위험-통제 반응

고 위협

고 효능

무관심/무반응

저 위협

고/저 효능

사람들의 반응

손쉽고 효과가 눈에 보여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기후위기 극복 행동이 어디 있냐

메시지에 위협을 느끼고 수용, 제시된 행

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행동을 실천하는 사례들을 매우 많이 봤다. 은근히 우

동을 이행함.

리 주위에 많다. 내가 최근까지 관여한 한 에너지자립마을에서는 ‘절전소 운동’을

메시지에 위협을 느끼지 않음.

꾸준히 하고 있다.15 이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가구는 월별 에너지 사용량을 그래프

자신과 무관하거나 사소하다고 느낌.

로 그려 벽에 붙여 놓는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작년에 비해 에너지를 얼마나 절약

메시지에 위협을 느끼지만 거부, 제시된 ③ 실패

공포-통제 반응

고 위협

저 효능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가장 절감량이 큰 가구에게 칭찬을 하고 소소한 상품도

행동을 해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여 방 어적 회피, 거부, 반발.

준다. 그러면 서로 에너지 적게 쓰기 경쟁을 하게 된다. 특히 초등학생, 중학생 정

출처: Witte(1992) 재구성

도의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아이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한다. 그 달 자기 집 에너 지 사용량이 많으면 아이는 침울해지고, 집에 가서는 TV도 그만 보라며 부모에게

13)차동필. 2006. “공포소구 메시지의 위협과 효능감 수준에 따른 설득효과.” 『한국언론학부』 50(4): pp411436.

15) ‘네가와트(Negawatt)’라는 용어를 핵심 개념으로 하는 절전소 운동은 효율성을 향상시키거나 소비를 줄임

14) 확장된 병행과정 모델(EPPM: extended parallel process model); Witte, K. 1992. “Putting the fear back

으로써 절약되는 단위 전력을 가리키며, ‘절약이 곧 생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용어의 출처는 Lovins,

into fear appeals: The extended parallel process model.” Communications Monographs 59(4): pp329-349.

A. B. 1990. “The negawatt revolution.” Across the Board 27(9): pp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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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잔소리를 한다. 어른들은 전력사용량이 높은 전기밥솥을 압력밥솥으로 바꾼다. 한

속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혼자는 못 했을 것 같아요. 이게 혼자 하면 궁상인데요, 같

우리 사회에는 이곳저곳에서 대안적으로 멋지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하니까 재미있어요.” 그리고 다른 주민은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나의 작은 변

꽤 많다. 생태공동체, 전환마을, 에너지자립마을, 대안학교, 대안연구모임, 청년농

화가 공동체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고, 작은 실천 하나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자

장,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경제 조직들. 한살림도 그 중 하나다. 이들은(우리는)

신감을 맛보게 되었어요.” 이들을 움직이는 초기 동력은 거창한 비장함이나 의무

혼자서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함께 해 나가면서 이 견고해 보이는 시스템에 ‘틈새

감이 아닌 ‘재미’와 ‘자신감’이었다.16

(niche)’를 만들어 이미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 모든 대안 공동체와 조직들

대중을 움직이는 것은 도덕적 의무감보다는 즐거움이다. 대안적인 삶의 모습 이 멋지고 즐겁고 행복해 보여서 그 생활 방식이 부러워져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 갈등과 어려움이 없거나 모두 전망이 밝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한 소규모 공 동체의 실천이면 충분하다고 낙관하는 것도 아니다.

한다. 이효리라는 연예인이 제주도에서 농사짓고 여유롭게 사는 모습이 많은 이들

우리는 기후위기 극복 전략을 흔히들 개인의 실천이 우선인가, 제도적 변화가

에게 부러워 보이고 그이가 입었던 생활한복이 ‘쿨’해 보여 한동안 붐을 일으켰다.

우선인가의 이분법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한 유명한 환경단체가 제작한 기후변화

그이는 어린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말하는 다른 출연자에게 “뭘 훌

동영상에서는 이제 더 이상 개인의 실천은 의미가 없으며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륭한 사람이 돼, 아무나 돼라.”고 받아 친다. 그이의 그런 태도는 묘하게 마음의 안

직접적으로 말한다. 당연히 개인의 실천은 지속하기 어렵고 효과도 약하며 무력감

정을 주고 호감을 높인다. 대안공동체에서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생태적인 사람이

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의미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개인의 실천과 시스템의 변

될 것을 요구하고 그 기준에 따르지 못하는 이를 이등시민 취급하는 것은 폭력적

화는 서로에게 필요충분 조건이다. 혼자서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한다. 함께

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족하며 고민하고 갈등하는 존재다. 불완전한

하는 개인들의 연대, 개인들의 공동체가 실천을 추동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런

개인들이 서로의 불안함과 부족함을 솔직하게 나누고, 여러 창의적인 실험들을 즐

공동체들 간의 연대와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겁게 시도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필요하다.

이러한 틈새들은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며 동시에 그 안팎에 사는 사

에너지자립마을에서 활동했던 주민들이 ‘작은 실천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독특한 작은 틈새들의 실험이 성공하고 살아남으면

자신감’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마을들의 연대를 통한 시스템의 변화가 눈에 보였

서 비슷한 결을 가진 틈새들이 연결되어 확산되고 분화되면 체제에 영향을 주

기 때문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함께 한다는 즐거움으로 시작했지만, 종국에는 불합

게 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전체 경관의 변화를 일으켜 시스템이 변화하게 된다.17

리하고 불공정한 에너지 시스템 속에서 밀양 할머니들이나 우리 손주들과 같은 피

한번 시스템이 형성되면 강한 관성을 가지고 견고해 보이지만, 역사를 뒤돌아보면

해자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으며, 나 자신도 이 연결망 속에서 약자가 될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이 관성을 이겨내고 변화할 때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

는 깨달음이 연대로 확장되었다. 연대는 도덕적 의무감이나 시혜가 아닌 공감에서

래서 제도 변화를 위한 노력과 생활문화운동은 서로를 추동하면서 함께 가야 하

시작된다. 그리고 이 연대는 결국 에너지전환에 대한 열망으로 나타났고 실천을 지

는 것이다.

16) 조미성, 윤순진. 2016. “에너지전환운동 과정에서의 생태시민성 학습: 서울시 관악구 에너지자립마을에 대

17) Geels, F. 2002. “Technological transitions as evolutionary reconfiguration processes: a multi-level per-

한 질적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공간과 사회』 58:pp190-228.

spective and a case-study.” Research Policy. 31(8-9). pp1257-1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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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둘째 마당: 기술을 다시 생각하기

지설비가 증가할수록 오히려 총 에너지사용량이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19 집에 태양광패널을 설치한 사람은 일종의 보상심리로 인해 더 큰 가전제품을 사고

기술에 대한 두 가지 편향

에너지를 더 많이 쓰게 된다. 최근 재생에너지설비의 사회적 수용성에 대한 논란

흔히 기술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의 편향- 한편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낙관

이 있는데, 간혹 농촌에서는 거대한 태양광발전소나 풍력발전시설이 주민들의 합

주의가, 다른 한편에는 무조건적인 거부-이 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기후변화

의 없이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와 농촌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주민공동체를 분열시

에 대응하자는 움직임 안에서도 이러한 편향적인 두 관점이 공존한다. 과학기술

키기도 한다. 농민들 스스로 지역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식으로서 재생

에 대한 낙관주의는 기술이 발전하면 기후위기를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들이 저

에너지설비가 활용되어야 하지, 농촌이 주변지역으로서 도시민들에게 필요한 에

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재생에너지기술과 제로에너지건축기술,

너지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재생에너지를 설치하기 전에 먼

지구공학 기술 등 환경보전기술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반면 생태

저 에너지중독을 벗어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는 일종의 백업플랜

성과 생명을 중시하는 다른 대안 운동에서는 산업문명과 첨단과학기술이 문제의

이다. 최대한 전기와 석유가 없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상태를 먼저 만들려고 노

원인이라고 보고 과학기술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가지고 기술 그 자체를 멀리

력하고, 그러고 나서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

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이 편향적인 두 관점은 각자 성찰하고 서로 보완될 필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과학기술 낙관주의의 반대편에는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가 있다. 과학기

요가 있다. 과학기술은 단순히 기술로서 중립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적용되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고, 다시 그 기술은 사회에 영향을 주며 사람들의

술에 대한 성찰의 역사는 길다. 2,400년 전쯤 살았던 문명 비판론자인 장자의 이야 기를 빌어 기술에 대한 논의를 이어보고자 한다.

의식과 삶을 변화시킨다. 기술은 원래 인간의 신체를 확장시켜 자아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한 것이다.18 그러나 근대의 거대 기술은 마치 고삐 풀

자공이 진나라로 가는 길에 한수 남쪽을 지나게 되었다. 한 노인이 우물

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발전해왔다. 현대 사회는 전문가들과 엘리트들이 설계하

에서 물을 길어 밭에 내고 있었는데 힘은 많이 드나 효과가 별로 없었

는 첨단 과학기술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에 의존할수록 평

다. 딱하게 여긴 자공이 용두레라는 기계를 소개한다. 노력은 적게 들고

범한 인간은 수단으로 전락하고 점점 더 소외되며 무력해진다.

효과는 큰 기계를 소개하자 노인은 불끈 낯빛을 붉혔다가 곧 웃음을 띠

핵기술과 유전공학기술이 당시에는 예측하기 어려웠던 부작용과 문제를 일

고 말했다.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기 마련이네.

으켰듯이, 환경보전기술도 우리가 예측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거나 생태계에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교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재생에너지의 활용도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전하지 못

다. 가령 태양광 발전이 무조건 좋거나 만능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재생에너 19) Gunderson, R., Yun, S.-J. 2017. “South Korean green growth and the Jevons paradox: An assessment with democratic and degrowth policy recommendations.” Journal of cleaner production 144: pp23918) 루이스 멈포드. 박홍규 역. 2000. 『예술과 기술』.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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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道가 깃들지 못하는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네들 원주민들이 사는 방식으로 돌아갈 수 있느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 기계를 사용

냐, 그건 이미 그렇게 해 가지고는 오늘날의 세계인류를 먹여 살릴 수

하지 않을 뿐이네.”20

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과학을 해야 하는데 어떤 과학이냐? 생명 의 과학. 요전번에는 자연을 이용해서 인간들이 편리하기만 하면 잇속

이 이야기에서 노인에게 야단맞고 있는 자공은 공자의 제자다. 이어 장자는 노

만 있으면 좋다고 하는 물질과학으로 갔지만 이제는 생명의 과학의 방

인의 입을 빌려 공자가 중히 여기는 문명과 인위에 대해서도 같이 꾸짖고 있다. 산

향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이 말이예요. (중략) 시각을 달리 하고 자연과

업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살았던 장자는 기술과 기계가 본질적으로 인간을 소

인간 다 같이 다 건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서의 과학이 앞으로

외시키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 나오는 용두레는 논에 물을 대는 원

자꾸 태동이 되어서 여기까지 잘못된 것을 후퇴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시적인 기구다. 지금의 양수기에 비하면 조악하기 짝이 없는 도구이지만 2,000여

해야지 기술과학이 나와 가지고 전부 망가뜨려 놨다는 생각만 해서도

년 전에는 첨단기술이다. 그런 조악한 도구라도 생명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쓰

안된다 이거예요. (중략) 그러니까 과학도 그런 차원에서 앞으로 얘기

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가 되어야 하겠지요.”21

나는 장일순 선생님이라면 상황에 따라 용두레보다 더한 첨단(?) 도구 사용도

생명의 생산기술

장자의 일화에서 ‘기술을 멀리하고 기계를 사용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읽어낸다면

찬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우선시하고 경쟁과 효율을 따지지 말아야 한

기술 그 자체를 거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장자의 일화에서 가장 중요한 구

다는 원칙을 기본적으로 가져가지만, 기후위기 시대 쟁기와 낫으로만 농사지어서

절은 ‘부끄러이 여겨’라고 생각한다. 핵심은 ‘기술을 사용할 때는 효율보다는 생명

는 도저히 먹고 살수가 없다. 용두레가 아니라 태양광으로 충전한 전기 농기계를

을 중심에 두고, 늘 부끄러이 여기며 성찰하라’일 것이다. 우리는 기술 그 자체를 거

사용할 수도 있다. 사실 효율도 중요하다. 기후위기 시대, 자칫 효율을 놓치면 정작

부하기보다는, 인간과 뭇 생명과 자연에 위해를 가하는 기술의 뒤에 숨겨진 관점을

농민들의 생계와 우리 모두의 생존이 위태롭다. 뭇 생명과 자연을 착취하지 않으면

읽어내야 할 것이다. 민중이 기술을 거부할 때, 기술은 전문가와 자본의 손에 독점

서도 효율적인 농사 기술이 필요하다. 컴퓨터를 마다하고 타자기로 글을 쓰며 농사

적으로 사용된다. 효율성만을 중시하고 인간을 소외시키며 자연을 착취하는 첨단

짓고 살았던 웬델 베리는 농민의 입장에서 기술 혁신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

기술을 외치는 전문가 엘리트, 자본의 이윤추구의 관점에 끌려가게 된다. 가장 약

한다.22 문명과 거대기술을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 철학자도 더 경제적이고 더 효율

한 사람의 눈, 생산 현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의 눈, 생명의 눈으로 기술을 성찰하며

적인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이 개발되고 이용되어야 민중이 원하는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다. 무위당 장일 순은 과학기술의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1) 1991년 4월 한살림활동가연수회 장일순 특강 중. 『나락한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p76. 22) 웬델 베리. 정승진 역. 2002. 『나에게 컴퓨터는 필요없다』. 양문.

20) 신영복. 2004. 『강의』.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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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류의 기술은 자연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한 기술로 주목받기도 한 첫째, 새로운 도구는 이전 것보다 값이 싸야 한다.

다. 중간기술, 적정기술, 지속가능기술, 혹은 전환기술, 무엇이라 불리든 이름이 중

둘째, 크기에 있어 이전 것에 비해 작아야 한다.

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하는 사람이 ‘생명의 마음을

셋째, 이전 것보다 분명하고 명백하게 더 작업 효율이 좋아야 한다.

잃지 않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사용하는가, 이다. 이런 기술은 다름 아닌 생산

넷째, 이전 것보다 에너지 소비가 적어야 한다.

현장에 있는 농민들의 손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생명의 생산기술’ 개발을 농

다섯째, 가능하면 새 도구는 신체처럼 어떤 형태로든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야 한다.

민들에게만 맡겨서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농민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의 책임을 더

여섯째, 보통의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도구들을 가지고 수리할 수

떠넘기는 셈이다. 농민이 주도하되 제반 인력과 자원과 예산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

일곱째, 가능하면 집 가까운 곳에서 구입할 수 있고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수리를 맡길 수 있는 작은 개인 가게나 상점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스마트 농업기술을 보는 시각

아홉째, 가족이나 공동체 관계를 포함한 기존의 어떤 좋은 것들을 대체하거나

농업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기후변화 대응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사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

실이다. 『농림축산 기후변화 대응 기본계획(2011~2020)』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 감축수단으로는 논물 얕게 대기, 가축분뇨 처리시설 확충, 신재생에너지시설 도입, 인간과 생명을 소외시키는 산업문명과 첨단기술을 성찰하고 대안적인 기술을

농어업 에너지 절감시설(다겹보온커튼, 보온터널 개폐장치 등) 보급 등이 제안되

추구하는 움직임은 1960년대부터 박차를 가했다. 슈마허는 과거의 원시적 기술에

었고, 기후변화 적응 수단으로는 신품종 개발, 아열대 작물 보급 등이 제시되었다.25

비하면 훨씬 우수하지만, 부자들의 거대기술에 비하면 소박하고 값싸며 제약이 적

10년 간의 기본계획이 올해로 마무리되었지만, 제시된 정책수단들이 크게 반향을

다는 의미의 ‘중간기술’을 주장했다.23 인간의 얼굴을 한 이 기술은 소박하고 비폭

얻거나 실제로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에 효과적인 성과를 보인 것 같지는 않다. 이

력적이며, 자조의 기술, 민주적 기술, 민중의 기술, 지역기술의 성격을 띤다. 국내

에 2020년 2월 『2050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 검토안이 도출되었는데, 이 검토안

에서도 슈마허의 정신을 되살리는 ‘적정기술’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24 이런 종

에서 제시하는 핵심 과제는 ‘지속가능한 스마트 농축어업으로의 전환’, ‘농경지 탄 소저장 기술개발의 지속 추진’ 등이다.26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핵심 과제에서 주목할 용어들은 ‘스마트’

23) Schumacher, E.F. 1973. Small is Beautiful: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 New York: Harper. (이상호 역. 2002. 『작은 것이 아름답다』. 문예출판사.)

와 ‘기술개발’이다.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고 식량 생산량을 높이며 동시에 기후변

24) 다수의 귀농귀촌 학교 교육과정에는 농촌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적정기술 교육이 필수로 자리매김하고 있 다. 전환마을운동이나 에너지자립마을 운동을 하는 분들이 적정기술을 하는 이유도 기후위기 시대 화석연료를

화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4차산업혁명에 대응한 농업, 스마트팜과 같은 정

쓰지 않고 보다 효율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다. 충남에서는 귀농귀촌자들을 위한 『적정기술안내서』 (2016)를 발간했다. 책자는 총3권이며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내 손으로 직접 집을 짓는 이들을 위한 생태건축과 냉난방기술, 무가온비닐하우스, 농촌생활에 필요한 소소한 비전력 도구와 농기계를 만드는 매뉴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 충남연구원의 웹주소를 소개한다.

25) 농림축산식품부 https://www.mafra.go.kr/

http://shari.re.kr/environmental/education03

26) 임영아. 2020. “농업부문의 기후변화 대응, 현황과 과제.” 『농정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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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놓는다.27 스마트팜에 첨단기술이 들어간다고 해서 무조건 거부감을 가질

만약 기술 전문가들의 설계대로 청년들이 이용만 당하거나, 농민이 주도권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농민이 주체성과 자율성을 잃지 않으며 ICT 기술을

상실하는 방식으로 스마트팜이 적용되어서는 곤란하다. 다수가 고령인 농민들 중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고 이를 유용하게 농사에 활용하여 농민들의 삶의 질이 더

ICT 기술을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

높아지고 더 여유롭고 행복해진다면 일부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편으로 기술을 점점 첨단화, 고도화시키는 것은 기술 사용자들의 이해도를 낮추고

ICT 기술에 익숙한 청년들이 농촌으로 유입되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지속가능한

주도권을 빼앗아가 소수의 전문가가 의사결정을 하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첨단 농

농업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만한 방식이다.

업기술은 자칫하면 농민과 농업에 이익을 주기보다는 정보기술 대기업의 배만 불

스마트 농업기술에서의 기술 소외를 이야기하기 위해 자동차와 관련한 기술을

리거나, 새로운 설비에 투자할 여유가 없는 영세 소농과 기업농의 소득 격차를 벌

예로 들어보려 한다. 기술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 정비하는

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스마트 농업기술에 농민들은 얼마나 관여하고 있

기술, 관리하고 운전하는 기술로 나눌 수 있다. 기술 소외를 막기 위해 모든 사람들

는가? 스마트팜이 마을로부터 고립되지 않고 청년을 불러모으고 공동체를 살리는

이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시민들 중 누군가는 정비하는 기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으려면 농민들의 민주적 개입이 필요할 것이다.

술을 보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수는 자동차를 관리하고 운전하는 기술을 가지

사실 스마트팜 정책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농촌을 도시민을 위한 식량생산 공

고, 이에 더해 적절한 가격에 자동차가 공급되어 필요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다면

장이자 주변적 배후지로만 간주하는 수단적 사고의 발로라는 점이다. 대체 누구를

우리는 자동차로부터의 소외를 최소화할 수 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

위한 것인가? 농민보다 도시민과 전문가들을 위한 정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시계획과 교통시스템이 인간을 중심에 두고 자동차가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고 삶

없다. 스마트팜 정책에는 사람이 없고 마을도 없다. 농촌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지

의 질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는가를 계속해서 성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

역사회로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서, 공동체로서 농촌의 기능을 회복하면서 사람

해서는 도시 교통 계획에 시민들의 민주적 개입이 필요하다. 이 관점을 농업기술과

의 업으로서 농업을 생각하는 마음이 부족한 점을 비판해야 한다. 농업 문제는 사

스마트팜에 그대로 적용해 볼 수 있다.

실 청년들이 살아가기에 괜찮은 곳으로서의 농촌, 괜찮은 일자리로서의 농업을 만 들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아주 작은 해결의 실마리라도 보일 것이다.

27) 스마트팜(지능형 농장)은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원격으로, 자동으로 작물 의생육환경을 관측하고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는 과학 기반의 농업방식이다. 빅데이터 기술과 결합해 수확시 기와 수확량도 예측하며 농산물의 생산량 증가와 노동시간 감소를 통해 농업환경을 개선한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정책위키 https://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64055)

나가며

한편으로 기후변화 대응 방안으로서 스마트팜에 대한 일각의 비판은, 불확실성이 커지는 기후위기 시대에 스 마트팜이 과연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스마트팜은 인공지능(AI)을 이용한다. 인공지능은 기존 에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여 상황에 대처한다. 따라서 매우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학습 데이터가 부족하여 대처하기가 어렵다. 바둑기사 이세돌이 매우 예측하지 못한 수를 두었을 때 인공지능은 참고할 데이 터가 없어 한번 패배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기존과는 매우 다른 불확실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며, 이상기후의 폭이 점점 커져 과거 데이터의 사용이 오히려 부적합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불확실성의 시대에 인공지능은 새

코로나가 우리 삶을 뒤흔들고 시스템을 멈춰 세우는 것보다 기후위기는 어쩌면 더 크게 우리 삶을 뒤흔들고 멈추게 만들 것이다. 그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자발적으 로 잠시 멈춰서 ‘정말 잘 살아왔나? 잘 살고 있나?’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로운 위기 상황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될 때까지 시간이 걸리거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직관적이

할 시점이다.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책에서 기후정상회의의 교훈

고 창의적인 발상과 새로운 적용이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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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 위기


은 “국가 지도자들이 우리를 돌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존이 위태로운 순간인데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는 갑작스럽고도 고통스러운 깨달음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이는 결국 우리는 스스로의 힘에 의지해야 하고 믿을 수 있는 희망은 아 래로부터 온다고,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위기는 역설적으로 소수의 권력을 다수 대 중에게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가능성을 가져온다고 말한다.28 지 속가능한 인류의 미래는 풀뿌리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적극적인 참여로 가능한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결국 사람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기술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기술이 너무나 쉽게 생명을 하찮게 여기고, 인간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사고도, 기술 을 악으로 간주하고 멀리하는 사고도 모두 위험하다. 사람과 생명을 위한 기술이 개발되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주도권을 빼앗아와야 한다. 민중이 자율적인 문화 와 공간을 창조하고,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회복하며 삶의 자율성을 지켜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대안 공동체들에서 생명을 위한 기술에 보다 관 심을 가지고,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기쁨을 되찾고 창조의 즐거움을 향유하며 마을 기술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농업살림과 생명살림을 지향하는 한살림과 농촌마을에서, 함께 하는 재미있는 실험으로 ‘생명의 생산기술’을 창조해내는 마을 기술 공동체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길 바란다.

28) Klein, N. 2015. This Changes Everything: Capitalism vs. the Climate. New York: Simon& Schuster. (이 순희 역. 2016.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자본주의 대 기후』. 파주: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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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의 협동조합의 돌봄

돌봄 시대, ① 돌봄 의제의 사회적 맥락과 한살림 돌봄의 가능성 ② <인터뷰> 한살림 돌봄의 현황과 고민 ③ 농촌형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조건들 : 전남 영광군 묘량면 ‘여민동락공동체’의 사례


한 돌봄 위기는 돌봄 요구를 새로운 사회적 위험으로 등장케 했다.1 이와 같이 노인 돌봄 요구의 급격한 성장은 돌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하고 돌봄의 보편적인 사회제도화를 추동하였다.2

돌봄 의제의 사회적 맥락과 한살림 돌봄의 가능성*

돌봄이란 무엇인가? 피셔와 트론토는 “돌봄(caring)은 우리의 세계를 유지하 고, 지속하고 개선하는, 그리하여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 는 활동이다. 여기에서 세계는 우리의 몸, 자아, 환경을 포함하며, 복잡한 삶의 그물 속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였다.3 우리 모두는 돌봄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을 필요로 하며, 돌봄은 우리의 삶의 필수적 구성요소임을 의미한다. 헬드는 “돌봄은 먹이기, 씻기기, 환경정리 등 기능적 돌봄만을 의미하는 것이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노인복지학회장, 한국사 회복지정책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책운영위원, 장기요 양위원회 위원, 중앙생활보장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사회정책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관심을 두고, 소득보장정책, 돌봄정책 등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저출산고령화와 한국의 연금개 혁』(공저, 2019, 집문당), 『왜 커뮤니티케어인가』(2019, 한국사회복지협의회), 『돌 봄과 공정』(공저, 2018, 박영사) 등이 있다.

아니라 상호 신뢰와 상호 존중 및 배려와 같은 ‘관계적 성격’을 가지는 것이다. 따 라서 돌봄은 관계적이고, 기계로 대체될 수 없다. 돌봄을 받는 대상이 가치 있는 존 재로 대우받고,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4 엥스터는 “돌봄은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고 존중하면서, 필수적인 생물학적 욕구를 충족시키 고, 내재적 능력을 발전시키거나 유지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돕는 모든 것이다”고 하였다.5 이와 같은 돌봄의 정의에서 우리 모두의 삶에 관련되는 돌봄의 보편적 성격, 광범위한 돌봄의 확장성, 기능적 돌봄을 넘어 서는 돌봄의 관계적 특성 등을 이해할 수 있다.

돌봄 의제의 사회적 맥락

관계적 존재로서의 인간관에 대한 강조는 한나 아렌트의 저서 『인간의 조건』 에서도 나타난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생계를 위한 활동인 ‘노동’, 의미 있는 활

지난 30여 년 간 돌봄 정책은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사회정책 영역이다. 길어지는 수명과 인구 고령화로 돌봄 요구가 급격히 증가한 데 비해 여성의 유급노동 증가, 1인 가구의 증가 등 돌봄을 담당해왔던 가족의 현저한 돌봄 역량 약화는 가정 내 그 림자 노동으로 이뤄지는 돌봄의 한계를 드러내며 돌봄 공백을 초래했다. 이로 인

1) Taylor-Goodby, P.(ed.). 2004. New Risk, New Welfare: The Transformation of the European Welfare

Stat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 석재은. 2018, “돌봄 정의 개념구성과 한국 장기요양정책의 평가”, 『한국사회정책』, 25(2): 57-91. ; 돌봄의 보 편적 사회제도화 (social institutionalization of care). 3) Fisher, B. and Tronto, J. 1990. “Toward a Feminist Theory of Caring”, 35-62, in Circles of Care Work and

Identity in Women’s Lives. Abel, E. and Nelson, M.(eds.),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4) Held, V. 2006. The Ethic of Care: personal, Political, and Global. Oxford University Press. * 이 원고는 필자의 <한살림과 돌봄운동 연구보고서> 연구보고서의 내용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임.

모심과 살림 _ 16호

5) Engster, D. 2007. The Heart of Justice: Care Ethics and Political Theory. Oxford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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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동을 위한 ‘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로서 타인과 소통을 추구하는

으로 보장하는 법제도들이 속속 도입되었으며, 사회적 돌봄을 받는 대상자도 급속

활동으로서 ‘행위’로 구분하며, 행위란 공동체 안에서 타인을 승인하고 소통을 나

하게 확대되었다.

누며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즉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활동을 의미한다고 하였

아동 돌봄은 『영유아보육법』에 근거하여 0-5세 영유아에 대한 보육서비스가

다.6 폴라니에게 인간은 육체적 생명을 지닌 객체적 존재이며, 개인의 내면생활에

확대되고, 보편적인 국가무상보육으로까지 확대되었다. 3-5세 보육서비스 이용율

서 영원히 살아가는 인격적 존재이고, 자신의 행위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은 89.7%에 달하고 있다. 또한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양육공백이 발생한 가정의

것에 책임을 지는 사회적 존재이다. 모든 사회는 상품교환, 재분배, 호혜라는 교역

만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아이 돌보미가 찾아가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여

양식의 관계이고, 모든 인간은 개체적, 사회적, 인격적 존재양식의 관계이다.7

부모의 양육부담을 경감하고 시설보육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도록 『아동돌봄지원

현행 제도화된 돌봄은 양적 충분성과 질적 수준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법』에 근거하여 아동 돌봄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아동 돌봄 서비스 이용가구는

돌봄제공자에게 정당한 가치를 보상하지 못하고 있어, 좋은 돌봄관계에 기반한 인간

70,000가구에 달하고 있다. 또한 방과 후 아동 돌봄 서비스가 다음과 같이 여러 전

적인 돌봄을 지속가능하게 보장하는 데에도 상당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사람 중심의

달체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표 1 참조).

온전한 돌봄안전망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제도화된 돌봄을 넘어서 상호 신뢰에 기반 하여 촘촘하고 중층적인 돌봄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한살림 생활

<표 1> 방과 후 아동돌봄 서비스

협동조합이 그동안 안전한 먹거리에 대해 공정한 가치를 보상함으로써 안전먹거리

지역아동센터

의 지속가능한 선순환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쌓아온 신뢰자본을 기반

소관부처

으로 돌봄 영역으로 한살림의 관심과 사업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법적 근거

보건복지부 아동복지법 제52조, 제59조

다함께돌봄센터 보건복지부

초등돌봄교실 (오후 돌봄 기준) 교육부

여성가족부

초·중등학교 아동복지법 제52조

교육과정고시 제2015-74호

18세 미만 지원 대상

한국 사회의 돌봄 사업의 현황과 쟁점

(초등학생 비율

돌봄의 제도화 현황 운영 주체

2000년대 후반부터 지난 10여 년 간 한국 사회에서 돌봄의 제도화는 압축적으로 발전해왔다. 아동 돌봄과 노인 돌봄 관련하여 돌봄 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사회적

초등학생 4~6학년

109천명

2,878명

290천명

9천명

법인, 개인 등

지자체

민간, 지자체

(민간위탁 가능)

단위 학교

청소년 수련시설

법인, 개인 등 신고 운영

지원시설 수 4,148개소

6) Arendt, Hannah (1958). The Human Condition. (이진우(역). 2019. 『인간의 조건』. 한길사.)

제48조의 2

초등학생 저학년

시·군·구에 등록된 운영 방식

청소년기본법

초등학생

67.6%) 이용 아동

청소년 방과후아카데미

지자체가 직영 혹은 민간 위탁 운영 162개소

시·도 교육청 계획·지도에 의해 단위 학교에서 운영 12,984교실

중학생 1~3학년

지자체가 민간 위탁 운영 349개소

; 김호기. 2020. “자유와 공공성의 연대...아렌트의 ‘인간학’이 필요하다.” 『한국일보』. 2020.09.29. 7) 김기섭. 2018.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가?』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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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프로그램

지원 예산

돌봄 및 급식 제공,

돌봄 및 급식 제공,

학습지도, 체험활동,

학습지도, 체험활동, 숙제지도,

참여활동 등

참여활동 등

189,019백만원

26,234백만원

전액지원(일반 지원 형태

아동은 월 10만원 이내 부담 가능)

본인 부담금 10만원

예체능, 놀이, 독서활동 등 21,000백만원 364,760백만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상당하다. 제도 간, 서비스 간, 서비스 기관 간 연계·조 전문체험, 학습지원, 자기개발, 생활지원 등

생으로 인해 정책효과가 불충분하고 수급자가 불편을 겪게 된다. 현재 요양병원의 25,106백만원

높은 사회적 입원율이 보여주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기’의 실패는 노 년의 존엄한 삶의 질을 보장하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높은 사회적 비용부담을 안긴

전액 지원: 저소득 및 지원형: 전액 지원 교육비 지원 대상

정할 수 있는 체계도 부재하다. 제도별로 분리된 케어는 수급 중복 및 사각지대 발

혼합형: 이용료(50%)

(미지원은 비용 부담) +전액지원(50%)

다는 측면에서 모두 부정적이다. 두 번째는 돌봄 서비스의 경직성이다. 개인의 개별적 상황의 다양성에도 불구

자료: 각 부처별 사업 안내 및 통계자료 재구성.

하고 정책 형평성이나 정책 편의성을 이유로 표준화된 니즈 평가기준에 따라 요구 또한 노인 돌봄 제도로는 2008년 일상생활에 장애가 있는 노인들을 보편적으 로 지원하기 위한 노인장기요양 보험제도가 도입되었으며, 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를 획일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개인별 다양한 상황에 따른 맞춤 서비스가 제공되 는데 한계를 가지는 방식이다.

등급을 받지 못한 등급외자 등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주관으로 노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인맞춤 돌봄 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 보험제도는 현재 장기요양인정자가 80만명에 달하고 있으며, 이는 노인인구의 10%에 달하는 수준 이다. 노인맞춤 돌봄 서비스 수급대상은 약 45만명 수준이다.

세 번째는 돌봄 서비스의 불충분성이다. 이용 가능한 서비스 종류 및 양이 절 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시설 서비스와 재가 서비스 간 보장 서비스양, 시간, 급여 수준의 격차로 인해 불가피하게 시설 입소 및 병원입원이 강요되는 결과를 초래하 여 사회적 입원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네 번째는 돌봄 서비스 공급체계 정책의 실패이다. 정부는 장기요양 서비스 시

돌봄 사업의 쟁점과 지역사회 통합 돌봄의 도입

장화 정책을 통해 최소 국가 기준을 충족시킨 서비스 공급기관의 자유로운 진입 허

- 돌봄 사업의 쟁점

용을 통한 경쟁시장 형성이 공급기관의 서비스 질 제고 노력을 견인하는 정책효과

돌봄의 제도화가 사회적 돌봄의 혜택을 받는 노인, 아동, 장애인 등의 삶의 질 향상 에 기여하고, 가족돌봄자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의 돌봄 사업에 대한 비판적 성찰 속에서 돌봄 사업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같이 커져 왔다. 노인 돌봄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를 낳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여러 관련 연구 및 실증 연구에서 밝혀지듯, 적정 수량 관리 없는 공급기관 과잉경쟁과 규모의 영세화는 결국 이용자 확보를 위한 편법적, 불법적 행태를 낳았고, 서비스 질 선진화에 구조적 한계로 작용하였다. 더욱이 공 공서비스 제공 기관으로서 공감대 형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공 급기관들의 행태는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는 돌봄 서비스의 파편성과 분절성이다. 파편적이고 분절적이고 불 충분한 건강 돌봄 체계로 인하여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기(Aging in Place)’ 를 희망하는 노인의 바람과 달리 부득이하게 병원 입원 또는 시설 입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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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는 돌봄 노동 가치의 저평가에 따른 역량 있는 돌봄 인력의 지속가능 성 위기이다.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평판은 낮다. 낮은 사회적 평판은 돌봄 노동 자의 낮은 직업 자긍심과 잦은 직업이탈로 귀결되고 있다.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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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오를 겪고 있는 돌봄 노동자의 부족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

- 지역사회 통합 돌봄 정책방향

의 서비스 현장에서도 역량 있는 돌봄 노동자 구인난이 심화되고 있다. 돌봄 노동

정부는 돌봄 사업을 통해 제기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

자 구인난은 인력 양성 단계에서의 부족이라기보다 양성된 돌봄 노동자가 실제 돌

뮤니티케어, community care) 정책방향을 표방하였다. 커뮤니티케어는 여러 유형

봄 서비스 현장으로 유입되지 않거나 유입되었다가도 금방 이탈하고 복귀하지 않

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에서 존엄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며 사회적으로 고

음으로써 발생하고 있다. 즉, 돌봄 노동자의 재생산 고리가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립되지 않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커뮤니티케어

돌봄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에는 역량 있고 잘 동기화되

강화는 친숙하고 편안하게 살던 곳에서 삶의 주인으로서 자기결정권을 가지며 그

어 있는 돌봄 노동자의 유입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면 돌봄 생태계가 파괴되어 사회

동안 맺어 온 관계들을 지속하며 늙어가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기’를

적 돌봄 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커뮤니티케어는 삶의 질을 고려하는 독립성과 존엄성 보

여섯 번째는 저성장 시대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재정적 지속가능성의 위기이 다. 저성장 시대에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됨으로써 고령화의 사회적 부양 부담을 경

장을 목표로 한다. 커뮤니티를 기반으로(in the community) 커뮤니티에 의해(by the community) 케어가 이루어지며, 지속가능한 돌봄 생태계 구축을 지향한다.

제성장으로 완충하는 기대를 하기 어렵다. 이는 가용 재정자원의 한계를 의미한다.

커뮤니티케어의 목적은 첫째,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기’를 지원함으

특히 고령화율이 5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증가하는 한국의 울트라 초고령화는

로써 삶의 연속성, 독립성 및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며 세심하게 배려하는 존엄

미래세대로의 재정부담 전가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 돌봄을 실천하고자 한다. 친숙한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그동안 관계 맺고 살았 던 사람들과 함께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연속성을 보장한

[그림 1] 사람중심 지속가능한 돌봄 생태계

다. 이를 위해 죽음의 순간까지 삶의 주인으로서 독립성을 최대한 유지하며 자기관 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재활과 잔존능력의 활용을 지원하고자 한다. 개개인의 고유 불충분성

한 맥락과 요구를 이해하고 서비스 제공방식, 내용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전문가의 경직성

충분성

유연성

수동적 대상

판단뿐만 아니라 삶의 주인으로서 개개인의 자율적인 결정,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

주체적 참여

분절성

하는 삶의 방식과 존엄한 돌봄-의료-죽음이 보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 에서 커뮤니티케어는 익숙하고 친숙한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그동안 관계 맺고 살

질병, 장애치료

사람중심 통합성

았던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최대한 자율적인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질 중심

여건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관계적 존재로서 인간을 이해하는 돌봄, 사람중심으 저평가된 돌봄노동 가치의 정상화

로 조정된 통합적인 맞춤 돌봄, 인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존엄한 돌봄을 하는 접

비용효과적인 돌봄체계

근이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삶의 질을 고려한 돌봄을 지향한다. 둘째, 커뮤니티케어는 ‘사람중심으로 조정된 케어’를 지향한다. ‘사람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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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로 맞춤 돌봄을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람 중심은 사람마다 상

는 상당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은 30여 년 전에 생활에 기

이한 맥락적 상황과 상이한 욕구를 세심하게 고려하는 개별화된 사례관리를 통해

초가 되는 먹을거리를 통해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함께 밥상과 농업을 살리는 실

맞춤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보건-의료-요양-주

천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시작되었다. 한살림 가치 지향에

거-복지 등 분리된 영역 및 제도가 사람 중심 케어라는 공공적 목적을 위해 상호 소

는 생명존중 사상, 인간의 존엄성, 관계적 존재와 연대성, 생태주의, 살림 경제, 살

통·협력·연계하고자 한다. 이는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

림 운동 등이 깔려 있다.8

환을 의미한다. 분절화 되고 다원화된 서비스 제도 및 서비스 공급 환경에서 수요 자 맞춤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공공적 개입 및 조정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서비

“ 먹을거리 관계망으로 조합원들과 연결되고, 조합원뿐만 아니라 그들

스 공급기관의 공공성 담보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때 공공

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까지도 확장되는 것을 기대한다. 우리의 먹거리

성은 소유권 차원의 ‘공적(public)’인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민주적 공공성’을 의

안전 관계망이 지역사회 생활의 안전, 안전한 돌봄으로 확대되어도 좋

미하는 것이므로 민관 협치가 중요하다.

겠다고 생각한다” (한살림서울 이사장 권옥자 인터뷰).

셋째, 커뮤니티케어는 사회적 입원 등 비효율적인 케어를 지양하고, 지역사회 에 밀착하여 요구를 세심히 평가하고 배려하며, 지역기반 보건-의료-요양-주거-복

먹거리와 돌봄은 모두 생명을 구성하는 필수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한살

지 등 공식적 의료 돌봄· 비공식적 돌봄· 스마트 기술을 활용한 돌봄을 통해 비용

림이 그동안 먹을거리 사업을 통해 쌓아온 신뢰 자본, 민주적 거버넌스, 연대문화 등

효과적인 케어를 제공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의 무형의 자산들이 그동안 돌봄 사업 수행 과정에서 결핍으로 문제가 되어 온 것들

넷째, 커뮤니티케어는 지역사회 케어 주체들의 협치를 위한 돌봄 거버넌스가

이고 커뮤니티케어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지역사회에서 ‘한

중요하다. 또한 지역사회 공동체의 느슨한 연대에 입각한 돌봄 책임 실천과 민주적

살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이다.9 돌봄의 측면에서 신뢰 자

공공성에 기반하여 자원 배분과 같은 지역사회 돌봄 정책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모

본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가치 있는 자산인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심 돌봄은

니터링하는 돌봄 민주주의를 지향하고자 한다.

돌봄 사업을 수행해 온 이후 가장 큰 사회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불신이 팽배한 현 행 돌봄 서비스 공급 시장의 맥락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또한 민주적 거버넌스 의 문화도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커뮤니티케어의 성공조건의 하나는 시민적 공공

돌봄 민주주의 실천의 장으로서 한살림의 가능성

성인데, 이미 생활협동조합 운영에서 시민적 공공성을 체화 시켜온 한살림의 경험 은 그 자체로 귀한 자산이다. 또한 먹을거리 사업에서 공급자와 소비자 간 연대를 통 해 모두가 윈윈하는 시너지 전략을 채택해 온 한살림의 가치 지향은 돌봄 대상자와

한살림 가치지향과 돌봄 사업

사람 중심의 존엄한 돌봄을 지향하는 커뮤니티케어의 정책방향은 생명 존중 사상 을 기반으로 지역사회에서 먹을거리 사업을 하는 한살림의 가치 지향과 큰 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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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살림 30년 비전위원회. 2017. 『한살림, 새로운 30년의 비전을 묻다』. 한살림. 9) 한살림 30년 비전위원회. 2017. 위의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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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돌봄 노동자를 모두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 돌봄 사업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좋은

치창출 사업으로서 먹을거리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획득하였다. 또한 생산자에 대

돌봄은 좋은 돌봄 관계에서 나오고, 좋은 일자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적정 보상을 통해 생활수준을 제고하며 동시에 소비자에게 안심 먹거리를 제공 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경제 체계로 흡수됨으로써, 더 이상 도전적 과제가 아니고 살아있는 생명존중, 인간존중 가치 활력은 낮아졌다.

<표 2> 한살림 가치 지향과 돌봄: 먹거리 사업과의 비교 먹거리 사업 한살림 가치지향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조합원의 활동내용이 빈약해지고 소비자로

돌봄 사업

생명존중 사상, 인간의 존엄성, 관계적 존재와 연대성,

서의 정체성이 강화되고 있다. 반면, 돌봄은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으며 돌봄의 제

생태주의, 살림경제, 살림운동

도화에 따른 사회적 돌봄 확대에도 불구하고 향후 서비스 수요 증가 규모는 매우

한살림 자산

신뢰자본, 민주적 거버넌스, 연대문화

한살림 활동가

교육자, 가치전파자, 중개자, 조정자

목표

지속가능한 먹거리 공생체계 구축

지속가능한 돌봄 생태계 구축

생산자에게 적정한 보상

돌봄 노동자에게 적정한 보상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 보장

돌봄 대상자에게 안심 돌봄 보장

먹거리는 삶, 생명의 필수재

돌봄은 삶, 생명유지의 필수재

클 것이고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매우 많다. 사람 중심의 돌봄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 창출이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 무궁무진하여 운동적 활력이 높다. 또한 안심 먹거리는 유형의 제품인데 반해, 돌봄 서비스는 무형의 서비스이고,

전략 공통점

안전한 먹거리 인식 확산 보편적 일상적 경제체계로 흡수 가치 탈색, 보증상품 정체성 강화 현재 상황

조합원에서 소비자로 정체성 변화조합원의 객체화, 대상화 관계망에서 공급망으로 인식 변화 운동성 낮아지고 사업만 남음

차이점

돌봄은 사실상 매우 광범하기 때문에 무제한적인 확장성을 가진다. 이상과 같은 맥 락에서 한살림에서 돌봄 사업을 주요한 사업 영역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매우

돌봄 공백, 새로운 사회적위험

적합하고 타당해 보인다.

돌봄 필요 충족 위한 엮음 필요 사람중심 돌봄의 가치 추구 필요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 존엄한 돌봄

돌봄 사업의 구성: 정부의 종속적 대행자를 넘어서

돌봄 받는 자와 돌봄 주는 자 간의 상호적 관계성 인식하는 좋은 돌봄

그렇다면 한살림은 돌봄 사업을 어떻게 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가? 첫 번째로, 한살림

신뢰기반 안심 관계망 구축

은 재분배 영역에서 정부에서 믿고 서비스 제공을 맡기고 협력할 수 있는 선호도 높

높은 활력의 운동성과 사업의 결합

공동체성 강조

개별성, 다양성 인정 중요

유형의 재화(상품)

무형의 서비스의 시대

안심 먹거리-확장성 제한적

생활서비스의 시대-확장성 무한대

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제도화를 통해 만든 서비스 제공자로서 본격 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기요양보험 급여사업의 경우, 방문요양, 주야간 보호 등 단종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참여하는 방향은 지양하고, 지역사회 돌봄 거점

한편, <한살림 30주년 비전위원회>에 따르면, 한살림 먹을거리 사업이 운동적

이 될 수 있도록 일정 규모 이상의 공간을 마련하고 주야간 보호, 방문요양, 단기보호

측면의 활력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10 한살림은 그간의 엄청난 노력과 함께 안전

등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 복합/통합 재가서비스 기관을 구성하고 참여하는 것이 중

한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와 가계의 높아진 구매 역량 덕분에 경제적 가

요하다. 한살림이 공공 영역에서 믿고 협력할 수 있는 지역사회 돌봄 거점이 된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유익하다. 장기요양 재가서비스 공급정책과 부합되는 것이므 로 안정적 사업의 측면에서도 유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복합/통합 재가서비스 기

10) 한살림 30년 비전위원회. 2017. 위의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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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관으로 운영할 때 돌봄 노동자에 대한 안정적 고용과 적절한 인력 운용도 가능하고 한살림의 가치와 부합하며, 돌봄 서비스 이용자에게 돌봄 노동자의 역량강화 교육 과 한살림 가치의 공유를 통해 안심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다.

[그림 2] 돌봄과 사회적경제(한살림)

포괄 수준

교환

공적급여 초과 수준 돌봄사업

재분배

공적보장 돌봄급여 Agency

선도적 돌봄사업

두 번째로 한살림은 상품 교환 영역에서 정부의 공공서비스 대행자 역할을 넘 어서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공적 급여를 초과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현재도 공적 급여를 초과하는 서비스 양에 대한 사업 영역 은 존재하지만, 사업의 질에 대한 차별적 가격은 현행 제도에서는 아직 허용되지

호혜

지역허브: 지역기반 돌봄 공동체 활동

않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 이 부분도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인 돌봄 수급자가 되 는 상황에서는 허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포괄 범위

세 번째로 한살림은 상품 교환의 영역에서 공적 영역이 제도화를 통해 급여화 시키지 않은 서비스 수요를 가진 광범한 돌봄 서비스에 대한 사업을 선도적으로 수 행해 나갈 수 있다. 영양급식 사업, 이동서비스 사업 등은 이미 시장의 수요도 확인

<표 3> 한살림의 돌봄 사업 구성(안) 중심원리

되었으나, 보편적인 급여로 만들 성격은 아니라는 부분으로 인해 중앙정부 차원의 급여화보다는 지자체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그것 외에도 집 정리 사업이나 유산

재분배

중심가치 사회적연대,

· 노인장기요양보험 재가서비스 안심보증 급여기관

사회적책임,

· 노인장기요양보험 시설서비스 안심보증 급여기관

표준화, 형평성

· 지역사회 통합 돌봄 종합재가서비스센터 안심보증 수탁기관

정리 대행 사업 등이 가능하다. 서비스 영역은 무제한적으로 확장 가능성이 있다. 개별화, 다양성

네 번째로 한살림은 호혜의 차원에서 지역사회 신뢰 자산을 기반으로 지역 돌 봄 공동체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정부 공적급여 사업과 함께 지역사회 거점 플랫

교환

· 공적제도 서비스 양을 초과하는 돌봄 서비스 제공기관 · 공적제도 서비스 질을 초과하는 돌봄 서비스 제공기관 · 공적제도에서 포괄하지 않는 포괄적 생활지원 서비스

선도성, 창발성

폼의 역할을 하며, 그동안 쌓아온 관계망을 통해 정보소통 및 상호 자원 컨설팅을

중심활동

· 제공기관: 영양급식사업, 이동지원사업, 집정리사업, 후견인사업 등 · 복합/통합 재가서비스 제공기관

제공하고 연결하며, 지역사회 돌봄을 둘러싼 시민 공론장 역할을 하고, 지역사회 신뢰, 소통,

친구, 품앗이, 봉사 조직화 및 활동을 수행한다. 느슨한 돌봄 연대에 기반한 지역사 호혜

회 주도 지역주민의 돌봄 공동체 참여는 ‘함께 돌봄’의 가치를 확산하며 돌봄의 주

상호부조, 시민적 공공성

· 지역사회 거점 플랫폼 · 정보소통 및 상호 자원 컨설팅 · 지역사회 돌봄을 둘러싼 시민 공론장 · 지역사회 친구, 품앗이, 봉사 조직화 및 활동

류화 및 돌봄의 지속가능성 제고에 기여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돌봄의 세대 연대, 상 호 연대를 통한 돌봄 공동체의 사회적 자본을 강화할 수 있다.11 연합회와 지역의 역할

정부가 새 사업을 할 때 중요한 파트너는 한살림과 같은 사회적경제 영역이다. 한

11) 석재은. 2019. “커뮤니티케어의 의의와 과제” 『왜 커뮤니티케어인가』 중에서. 한국사회복지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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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살림이 돌봄에서 본격적인 역할을 해 나가는 데 있어, 연합회와 지역의 역할이 각

고 말한다.13 즉 돌봄 노동의 가치 재평가와 돌봄 부담의 민주적 배분을 위해 돌봄

각 다르다.

은 정치적 아젠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돌봄을 운동적으로 접근해야 하 는 이유가 있다.

“ 연합회는 돌봄 사업 비전을 발표하고 선도하면서 ‘돌봄 사업 2021’이

또한 김기섭은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가?』에서 사회적 경제의 목표는 국가와

라는 전체 예산구조를 편성할 때 돌봄 사업에 대한 과감한 편성을 해

자본의 지배로부터 폴라니가 강조한 ‘사회’를 재구축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외적으

나갈 필요가 있다. 각 지역은 그 내에서 각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방안

로 완전히 독립해 있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 내적으로 통일된 사회를 재구축하는 것

을 짜서 각 지역은 지역마다 활동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조성기 원주

이다. 이를 위해 사업과 운동의 중층적 결합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사회적 경

이사장 인터뷰)

제는 처음에는 인간의 필요를 엮는 ‘사업’에서 시작하게 되지만, 궁극적으로 사회 적 경제의 목표는 인간 자체로 향하기 때문에 사업에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 중층

개별 지역의 자발성에 맡겨 두어서는 지역사회 돌봄 거점인 복합/통합 재가

적으로 결합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필요 충족에만 머무르면 필요가 곧 인간이 되고

서비스 기관 등을 만드는 등 돌봄에 큰 자원을 투자하기 어렵다. 연합회가 과감하

인간은 이해당사자로 남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사회적 경제가 행하는 사회 서비

고 주도적으로 판을 만들어 돌봄 사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예산구조를 만들어주

스 확충과 일자리 창출은 국가의 그것과 성격이 다르고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14

고, 각 지역은 그 틀내에서 지역의 맥락을 반영한 창의적 사업을 수행하는 방향이

“시장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문제는 국가가

적절해 보인다.

해결해야 할 당연한 책무인 데 비해, 사회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사회에서 노동이 무시당하는 문제는 사회적 경제가 해결해야 할 고유 영역이다. 사회적 경제의 존재

왜 돌봄 사업을 넘어 돌봄 운동이 필요한가?

이유는 인간이 주인인 세상을 인간을 포함한 일체의 생명이 주인이 되도록 구현하

트론토는 저서 『돌봄 민주주의』에서 “돌봄이 왜 정치적 주제가 되어야 하는가?”

는 데 있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데 있다.”15

라고 질문하며, 돌봄은 진정 민주주주의의 문제라고 역설한다.12 그는 “현 민주주

따라서 돌봄이라는 인간 생명 유지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의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개인이나 의존하는 개인을 돌보는 이들을 시민으로 동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호혜, 재분배, 교환을 엮는 것이 중요하다. 엮는 과정에서 돌

등하게 대우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돌봄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

봄이 필요한 사람들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돌봄의 공론장에 주체적으로 참

고 있고 있다. 누군가에게 불공정하게 돌봄의 책임이 분담되는 것은 부정의(不正

여하여 호혜, 재분배, 교환의 중층적 엮음 속에 돌봄 받는 사람과 돌봄 주는 사람들

義)하다. 모든 시민이 평등해지는 역량에 영향을 미치는 돌봄 불평등은 민주사회

모두의 인간적 고양이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의 중심적인 정치적 과제여야 한다. ‘함께 돌봄’이 민주적 돌봄의 핵심어이다.”라 13) Tronto, J. 2013. Ibid. 12) Tronto, J. 2013. Caring Democracy: Markets, Equality, and Justice. New York University Press. (김희강·

14) 김기섭. 2018.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가?』. 들녘.

나상원 옮김. 2013. 『돌봄 민주주의: 시장, 평등, 정의』. 박영사.)

15) 김기섭. 2018. 위의 책. 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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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슈 인터뷰 단위

일시/장소

인터뷰

한살림서울

2020년 7월 15일/ 한살림서울

한살림 돌봄의 현황과 고민

한살림고양파주

2020년 8월 5일/ 한살림고양파주

한살림연합

2020년 8월 14일/ 한살림연합

한살림성남용인

2020년 9월 4일/ 화상 면담

한살림경기동부 한살림원주 한살림제주

2020년 9월 11일/ 화상 면담 2020년 9월 17일/ 화상 면담

지역 참석자 권옥자(이사장), 이승언(돌봄사업팀장) 서미영(이사장), 김기중(조합원활동실장), 서춘원(기획홍보팀장) 조완석(한살림연합 상임대표) 박영순(이사장), 강준석(기획운영팀장), 정주연(돌봄활동위원장) 경기동부: 황지연(이사장) 원주: 조성기(이사장), 안윤희(조합원 활동가) 강순원(전무이사), 조소영(실무자)

한살림 돌봄의 현황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비대면 사회가 확산되면서 돌봄의 사회적 필요성이 대두

Q. 지역에서 돌봄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되고 있다. 돌봄 영역은 신뢰 관계 속에서 생활 안전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한살림

이승언(서울): 어르신돌봄과 아이방문돌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어르신 돌봄을 시

운동과도 맞닿아 있다. 사회적 필요성과 한살림 가치 실현을 위해 여러 지역에서

작한지 4년 차가 되어가고, 현재는 30명의 어르신이 계시다. 운영위원회, 교육위원

다양한 방법으로 돌봄운동에 접근하고 실천하고 있다. 한살림 돌봄을 고민하고 실

회를 분기별로 진행하며, 맞춤형 관리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천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있다. 아이방문 돌봄 사업 또한 시작한지 4년 차이며, 가정 및 모임에서 아이를 돌

이 원고는 모심과살림연구소의 <한살림과 돌봄운동 연구(연구책임자: 한림

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돌봄교사 양성 과정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돌봄을

대학교 석재은 교수)>의 면담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면담은 다음 표와 같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두 사업 모두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이 진행되었으며, 진행 순서대로 내용을 정리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주춤하고 있다. 이외에도 생활돌봄활동으로 식사지원, 반찬지원 등을 진행하고 있

마음이 컸지만 지면상 모든 내용을 다 싣지 못한 점에 대하여 양해를 부탁드린다.

으며 지자체, 사회적경제 영역 조직들과 다양한 연대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한 살림돌봄전문법인 설립을 준비 중이다.

● 면담 개요

- 진행: 석재은(연구자) - 참관: 윤희진(한살림연합)

서미영(고양파주): 고양파주는 현재 조합원 참여형 기금을 주축으로 돌봄이 이루어지

- 기록·정리: 김진아(모심과살림연구소)

고 있다.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 돌봄 활동을 기획하자는 것이 큰 맥락이다. 돌봄 교사 양성과정 1기를 진행했는데, 교사들은 지역에서 아이들이 방과 후 엄마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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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나기 전 시간 동안 돌봄을 진행한다. 지부의 모임 공간을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고,

조소영(제주): 제주에서는 돌봄을 강화하기 위해 ‘모심회’라는 이름으로 임의단체를

우리 공간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조합원 주도로 계획을 실행하자는 목적을 가지

구성하려고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돌봄 문제와 현안들을 다

고 있다. 현재 조합원 공모로 이주여성 돌봄, 어린이 식당을 진행 중이다.

루고자 한다.

강준석·정주연(성남용인): 아이방문돌봄사업과 방과 후 돌봄을 진행 중이다. 아이방문

돌봄사업은 2018년부터 3년 차 진행 중이며 대상은 영유아부터 초등학생까지다.

한살림 돌봄 활동을 시작한 배경

돌봄 선생님들이 직접 조합원 댁에 방문해서 아이들을 돌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방과 후 돌봄은 ‘돌봄활동위원회’가 운영하던 ‘어린이 식당’이 좋은 모델이 되어 용

Q. 어떤 고민을 토대로 돌봄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인시의 제안으로 민관 협치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 식당은 방학 동안 혼

권옥자(서울): 한살림은 생활에 기초가 되는 먹거리를 매개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

자 밥 먹는 아이들의 식사를 돕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께 밥상이나 농업을 살리는 실천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먹을거리 관계망으로 조합원들과 연결되고,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사

조성기·안윤희(원주): 작년 총회를 준비할 때 돌봄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올

회까지도 확장되었다. 먹을거리 운동을 통해 관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고

해 돌봄 시범 사업과 돌봄 기금을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잘 모아졌다. 원주 돌

만들어진 관계를 기반으로 우리가 돌봐야 하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기

봄은 지역의 돌봄 전문가들과 함께 시작했는데, 상반기에는 총 3강의 돌봄 학교와

계적인 돌봄이 아닌 인권과 존중이 함께 하는 돌봄을, 신뢰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아이 돌봄 시범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와 맞물리면서 확장되지 않아 아쉬운 부

한살림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돌봄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을

분이 있다. 이런 사업적인 것 외에도 매장에 온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

때 많은 조합원들이 관심을 가져 주었다.

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매장이 돌봄 기능을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 을 키우고 있다.

서미영(고양파주): 고양파주에서는 먹거리 운동을 하면서도 늘 복지를 생각하며 복

지위원회를 운영했는데 활동이 주로 먹거리 운동을 기반으로 한 지역 돌봄에 대한 황지연(경기동부): 일본 생협으로 연수를 다녀온 후, 경기동부에서도 지역 돌봄이 필

것이었다. 위원회 활동의 확장으로 지역살림의 가치를 확산해보고자 ‘지역살림 학

요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지역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공부 모임을 만들었다. 먼저

교’를 운영하다가 일본 생협에서 운영하는 ‘백엔 기금’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래서

돌봄을 진행한 다른 나라나 지역 사례를 보면서 돌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

기금을 모아 지역 조합원 활동을 지원하고, 돌봄 활동을 후원하자는 의지를 모아

해 같이 공부했고, 앞으로 어떤 것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여 돌봄 제안서를 이사회

돌봄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 제안했고 부분 수정되어 승인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활동을 진 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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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연(성남용인): 돌봄 운동에 관심 있는 조합원들이 한살림만의 돌봄이 있으면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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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바라는 돌봄을 이야기하면서도 조합원들의 의지를 알

의 돌봄이 지역 공동체로 이어지고, 공동체성을 가지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

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한살림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응답을 받았

을 하면서 돌봄을 고민하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도 돌봄의 대상이 되고 돌봄의 대

다. 설문조사에서 아이 돌봄, 어르신 돌봄, 생활 돌봄 순으로 조합원 필요를 확인할

상이 지역으로 확대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수 있었기에 아이 방문 돌봄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안윤희(원주): 한살림은 돌봄 사업이 아닌 먹거리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

한살림 돌봄의 가치와 방향

었는데, 한살림 자체가 먹거리 사업을 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다. 서로의 불신이 싹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며 서로를 돌보기 위해 시작한

Q. 한살림 돌봄의 가치는 무엇이며, 방향성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것이지 내가 잘 먹고 잘 살자고 한살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활동가의 입장은 한

권옥자(서울): 30년 전 한살림운동을 시작하면서 ‘먹거리’를 통해 서로를 돌봤다고

살림의 모든 사업이 사실 돌봄 사업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돌봄의 기능이

생각한다. 초창기에 먹거리 운동을 물품사업으로 시작을 해서, 현재 우리의 물품

가정에 있다가 국가로 갔다가 다시 우리 사회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제 아이 돌

이 일상에서 모든 사람을 만날 통로와 매개가 된다. 한살림의 돌봄은 더 많은 사람

봄과 어르신 돌봄뿐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고립된 모든 조합원들을 보살피는 것이

들의 일상에서 매개가 될 수 있는 제2의 물품이 되었으면 한다. 지역사회의 먹거리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35년 간 한살림을 지탱해 온 가치 중 하나가 돌봄

안전 관계망이 생활의 안전 관계망으로 확장되어 변화되는 것이 한살림 돌봄의 가

과 모심의 개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돌봄을 주요 과제로 가져가야 하고, 이런 고

치라고 생각한다.

민을 토대로 돌봄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서미영·김기중(고양파주): 내 밥상으로 우리 가족의 생명을 살리는 것을 넘어 전 지구 황지연(경기동부): 일본 연수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절이 새롭게 마음에 와

적인 생명을 살리는 한살림 운동은 우리 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이웃이 같이

닿았다. 협동조합에서 단순히 먹거리만 가지고 활동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

간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돌봄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

한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조합원들의 생활을 돌보는 생애주기에 맞는 돌봄 활동

기보다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것을 많이 인식해야 한다. 먼 이야기처럼 느껴져도 나

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공부 모임을 통해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돌봄은 우리 주변을 돌본다는 의미에서 중

것인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요하다. 최근에는 도시 소비자들의 삶 자체가 외로워졌다. 사회 안전망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고,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지역의 모습은 곧

강순원(제주): 우리가 세상에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

우리 조합원들의 모습이다. 한살림 돌봄의 가치는, 그런 사람들이 외롭지 않게 하

이 스스로 행복하지 않으면 주변에 긍정적인 에너지가 안 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

는 것이다.

조합원들 내부를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기적인 돌봄이 아니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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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정주연(성남용인): 한살림 돌봄의 가장 큰 특징인 ‘서로 돌봄’은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

Q. 지자체에서 하는 돌봄과 한살림 돌봄의 차별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 되는 돌봄이다. 무언가 더 있다고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

이승언(서울): 한살림 돌봄의 가장 큰 차별성은 요양보호사가 주체적으로 활동한다

고 생각한다. 관계성을 맺어가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한살림에서 하고 싶은 돌

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해 계속 함께 이야기를 해 나가고 성장하는 것이 한살림

봄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돌봄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서로 돌

돌봄 운동을 지속하는 힘이자 큰 차별성이다. 이를 통해 돌봄 운동에 종사하는 것

봄은 수평적 관계를 기반으로 할 수 있는데, 그동안 돌봄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

이 큰 자기 존재,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의논해

에게 베푼다는 상하관계의 이미지가 있었다. 서로 돌봄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서로

나가는 지금의 구조가 중요하다. 한살림이 쌓아온 관계, 한살림 돌봄에 대한 신뢰

돌봄이 가지는 가치를 꾸준히 알리는 작업이 중요하다.

등이 다 공유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Q. 한살림이 추구하는 지역살림의 가치와 돌봄 활동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서미영(고양파주): 한살림 돌봄은 조합원들이 주체가 되어 돌봄을 펼치고 돌봄 활동

서미영(고양파주): 결국은 조합원들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 안에서 함께 살

을 기획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자체의 돌봄은 선별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그 대

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한살림은 지금까지 먹거리 운동을 통해 돌봄 공

상이 되지 못해서 돌봄을 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살림에서는 누구나 필요할

동체 운동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지역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자는 것은 우리 운동

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조합원들이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돌봄 기금을

을 더욱 확장되게 만들어준다. 조합원 활동을 더 확장하면서 지역을 돌아봐야 하

직접 마련하고 스스로 계획해서 우리의 필요를 직접 충족해보자는 것이다. 조직에

며, 특정한 대상을 두고 돌봄을 하는 것보다 생활과 지역 속에서 우리 한살림이 함

서 ‘이렇게 합시다’고 하지 않는 것이 한살림 돌봄의 차별성이며, 이는 조합원들에

께 나눌 수 있는 돌봄을 찾고자 한다.

의한 자발적인 돌봄의 욕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살림이 너무 잘 할 수 있는 것 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영순(성남용인): 유기농 밥상을 살려내는 것도 과제지만 지역과 같이 연대해서 상

생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돌봄도 그렇다. 혼자서만 할 수 없고 지역과 함께 만들

윤희진(연합): 한살림 조합원들은 먹거리에 대해 생각할 때, 식자재뿐만 아니라 어떻

어 가야 한다. 우리가 30년 동안 해온 먹거리 운동도 지역에서 지역살림을 실천하

게 먹을 것인가에도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돌봄 사업이든 활동이든 모든 돌봄

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역살림에 대한 조합원의 욕구는 돌봄과도 연결된다.

안에 먹는 문제가 들어온다. 성남용인의 방과 후 돌봄, 고양파주의 돌봄 기금 공모

내가 살아가는 지역에서 떠나고 싶지 않은 욕구, 지역에서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

사업 활동, 제주의 나눔냉장고 활동, 서울의 생활돌봄도 다 먹는 문제를 가지고 돌

들이 끊임없이 있다. 우리가 물품을 기반으로 세상의 밥이 되기를 바랐다면, 이제

봄을 펼쳐 나가는 것이다. 그동안 먹을거리 활동을 했던 조합원 주체들이 돌봄 영

돌봄이 새로운 밥이 되어야 한다.

역과 만나는 지점도 있고 돌봄사업 영역 안에 먹을거리와 결합되는 지점도 생기 고 있다. 앞으로 이렇게 먹을거리와 돌봄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점점 많아질 것이 고 그 내용을 잘 만들어가는 것도 한살림 돌봄의 차별성과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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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돌봄 활동의 어려움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든다. 위에서 내려서 하는 방식은 맞지 않지만 필요 성을 느끼는 단위부터 시작하지 못하면 돌봄을 못하게 될 듯도 하다.

Q. 돌봄 활동을 하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계신가요? 이승언(서울): 돌봄은 필요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한

살림 내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존재한다. 우리 조직 안에서도 돌봄을 시혜적 관

한살림 돌봄의 지속가능성과 앞으로의 과제

점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다는 보편적 돌 봄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정부 사업이 크게 진행되다 보니 돌봄의 내용과

Q. 한살림 돌봄이 지속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방식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인식이 강해서 우리의 돌봄을 상상하기 어렵다. 구체

권옥자·이승언(서울):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장 고민되는 것은 ‘조합원 결속’이다. 초창

적으로 나는 어떤 돌봄을 받고 싶고, 어떤 돌봄 노동이 필요하며, 어떤 돌봄 노동을

기 먹거리 운동에서는 많은 스토리와 비전의 언어들을 만들어냈는데, 돌봄에 대해

제공하고 싶은지에 대해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서는 그런 부분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봐야 한다. 사업을 내놓고 확장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런 고민이 부족하다면 답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또

서춘원(고양파주): 우리가 가진 자원 안에서 하려면 코디네이터, 회계, 시스템이 있어

한 한살림 돌봄의 주체들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함께 운영하는 주체로서 대

야 하는데 아직 그런 여력이 없다. 규모상의 부담이 있고, 파이를 키워야 하는 것이

상화하지 않는 평등한 관계 맺기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지

있다. 기금 운영 등에 있어 전산화 시스템이 도입되면 실무의 품이 덜 들 것 같은데,

역의 거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지역에서의 돌봄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고양파주만 진행하고 있어 개발이 어렵다 보니 업무가 과중된다. 같은 고민을 하는

공간이 가지는 힘이 있기 때문에 여분의 공간을 돌봄의 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

지역에서 공동으로 진행한다면 연합에 요구해서 시스템화 하면 좋겠다. 무엇보다

고 생각한다.

돌봄이 한살림의 전체 의제가 되어 연합 차원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 서미영(고양파주): 돌봄이 선택이 아닌 우리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면 더욱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면, 기금을 적립해서 안정적인 활동 기반을 만들어가는 것이 돌봄의 지속가능성 황지연(경기동부): 지역에서 아이 돌봄의 필요성은 크다. 그러나 지금 이 시기에 아무

을 위해 중요하다. 안정적 활동 기반이 있어야 조합원들이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준비가 안되어 있기 때문에 해보자고 이야기만 하다가 몇 년이 지나고 보면 함께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고민하는 이들이 한살림 안에 머물지 않게 된다. 작은 일이라도 시작을 하여 변화 가 있기를 바라본다. 사업을 먼저 시작하고 가치를 얹어서 만들어 나가는 방식도

박영순(성남용인): 돌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사업에 운동의 내용을 담으려는 노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너무나도 인식과 욕구가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

력이 가장 중요하다. 협동조합은 끊임없이 운동성으로 돌봄 의제를 가져가야 한다.

을 어떻게 두 세가지라도 의견을 모으고 설득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매끄럽게 가져

물품이 단순히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생명살림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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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것처럼, 돌봄도 가치를 어떻게 얹는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운동으로 가져가야 한다.

Q. 한살림 돌봄의 확장을 위해 연합 차원에서는 어떤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황지연(경기동부): 지역생협의 재정은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연합 차원에서 풀

윤희진(연합): 돌봄 운동이 지속가능성을 가지려면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연합에서 공모사업이나 펀딩 등의 방식으로 함께 시작

대한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돌봄이라는 가치 있는 일이 일자리와도 연결되어 지역

해봐도 좋겠다. 또한 연합에서 돌봄에 대한 인식을 조금 더 확장시키는 역할을 함

내의 커뮤니티 노동으로 인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돌봄은 봉사로만 연결되고

께 하면 좋겠다. 그렇게 되어야 지역에서 여러 단계의 활동을 기획하는 의지가 생

있다. 내가 소속되어 가치 있는 일을 해 나갈 수 있다는 비전이 있다면, 충분히 많은

기고 그 의지를 통합할 때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합 돌봄의 형태가 있기 때문에 그것 을 잘 네트워킹해서 조합원들에게 좋은 일자리, 여성의 자립을 도와주는 것까지 고

안윤희(원주): 소식지나 소통되는 매체들을 이용해 한살림에서 자꾸 말을 거는 방

민할 수 있다. 이것을 해낼 주체들이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느끼고, 그들의 자립을

법으로 화두를 던지고 이야기를 해서 분위기를 가져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지역

도울 수 있다면, 제공자와 받는 자가 같이 상생할 수 있는 틀거리를 지역 안에서 만

에서 조합원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문화를 함께 만들 수 있게 이야기하

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한살림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면 좋겠다.

Q. 지역에서 돌봄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강순원(제주): 연합차원에서 분명하게 돌봄에 대한 결단과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

조성기(원주): 협동조합이 일하는 방식은 일반 기업이나 정부와는 다르다. 많은 조합

한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면서 구체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

원들이 내건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지금 할 수 있는 자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다. 한살림 안에서 돌봄 운동에 동의하는 이들이 모여 어느 정도 투자를 해야 한다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협동조합 방식은 조합원들이 하고자 하면

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제도나 지원 정책 같은 것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다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지르는 방식이 필요하다. 시작하다 보면 공감대의

이때는 행정이나 공공이 가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거버넌스와의 파트너십을 수

내용도 정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적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우리 조직이 주체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강순원(제주): 국가 영역에서의 돌봄은 분명 한계가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영역과 민

Q. 한살림 돌봄의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인가요?

간이 해야 할 역할이 있지만, 우리의 역할에 대해 조직 안에서 고민이 스스로 잘 되

권옥자(서울): 돌봄 사업이 복지성이냐 수익성이냐고 물어보는데, 답을 하기 어렵다.

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제주에서는 우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모델을 단계적

그런 부분에서 현재 우리가 하는 돌봄 사업이라는 것이 선명하지 않은 것처럼 느

으로 만들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핵심 그룹에서는 구체적인 설계를

껴진다. 이것이 가장 큰 과제다. 돌봄을 제2의 먹거리 운동이라고 표현하는데, 조합

하면서 내부적으로 몇 가지를 실현하기 시작해야 한다. 모델을 만들어 가는 과정,

원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돌봄 사업도 물품 사업처럼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 것인

구체적으로 설계를 만드는 과정을 동시에 진행하려고 한다.

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는 여전히 우리가 같이 고민해야 하고, 토론해서 협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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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한다. 협동조합 안에서는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

려움에도 지속적으로 이것을 끌고 오는 의지나 추진력이 필요한 시기다. 비대면 사

한다. 지금은 말문이 트이는 단계다. 아직은 한계가 있지만 우리가 하고싶은 돌봄

회가 되면서 한살림이 다시 지역 자체를 두고 운동을 재설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에 대해 다시 한 번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것들이 기

다. 그것 중에 핵심적인 것이 돌봄이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해 연합과 전국 실무

폭제가 되어 처음에 했던 이야기를 지역 안에서 복합적으로 구축해 나갔으면 한다.

책임자들이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의지를 가지고 실천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 다. 내년도 사업을 구상할 때 강하게 제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하는 우리 동

조완석(연합): 지금의 사회는 개인화 현상을 새로운 공동체 속에 어떻게 담아갈 것인

지들에게 반드시 하자는 의지를 보내고 싶다.

가가 과제가 되었다. 그동안 한살림 공동체는 공간과 지역에서 공동체성을 느끼고 그 안에서 가치를 나누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공간의 해체 또는 공간의 확대 속에서 생명살림이라는 가치가 무겁게 다가온다.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이 고 돌봄을 지속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 나가야 한다. 돌봄을 먹거리 사업에 다 포함시켜 버리지 말고 다시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구현해 내야 한다. 민주주의, 돌봄, 공동체를 어떻게 조합해 나갈 수 있을지가 중요한 과제이다. 한살림을 한다 는 것은 좋은 먹을거리만 먹는 것이 아니라 ‘모심’을 어떻게 자기의 삶 속에서 풀어 낼 수 있을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윤희진(연합): 지금의 시대는 혼자 자기 문제들을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다. 어떤 것

을 우선적으로 해 나갈 것인지 고민을 해야 한다. 조급할 필요는 없지만 시작은 하 나씩 해야 한다. 공부도 하지만 우리는 어느 층위에서 어떤 것부터 해 나갈 것인 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생명운동을 먹거리 협동과 생산자와의 협동으 로 시작한 것처럼, 사람을 돌보는 것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 한살림 돌봄을 실천하는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

제는 시대적으로 돌봄이 부재한 문제를 연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고령의 생산

었다. 모심과살림연구소의 <한살림과 돌봄운동 연구>를 통해 앞으로 한살림 돌

자 분들을 돌보는 일, 농촌의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 등 한살림의 시대적 과제가 많

봄에 대한 논의와 접근 방향성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여러 공론장이 형성되었으

이 남아있다.

면 한다. 더 나아가서 한살림 운동의 비전 속에 담긴 돌봄의 가치 실현을 위한 시 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돌봄 연구 결과는 모심과살림연구소 누리집에서 확인

강순원(제주): 공감대도 중요하고 합의도 중요하지만,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여러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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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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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의 삶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가족과 지역사회를 통한 사회적 지지를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2 이에 따라 정부는 ‘어르신이 살던 곳에서

농촌형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조건들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포용국가’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2018년부터 ‘지역사 회 통합돌봄(커뮤티니케어)’ 모델을 구상하고 단계별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모델의 핵심인 ‘지역사회’는 추상적 공간이 아니다. 노인이 거 주하는 지역사회는 대도시, 중소도시, 농촌 등으로 구분된다. 각 지역은 인구구성 과 고령화 정도, 주요산업, 대중교통, 편의시설, 의료서비스의 접근성과 같은 사회

전남 영광군 묘량면 ‘여민동락공동체’의 사례*

적 인프라의 측면에서 지역 간 격차가 존재한다. 농촌 지역은 괜찮은 일자리의 부 족, 교육, 문화시설 등 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 청장년층의 유출이 급격하게

윤태영(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강사)

높아져 고령화율이 도시와 비교하여 매우 높을 뿐 아니라 이것이 최근 몇 년간 가

독일 괴팅겐대학교에서 ‘한국의노인장기요양보험에서 요양보호사자격증을 취득한 가족의 경험’을 주제로 2019년 사회정책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는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강사로 재직중이다. 노년기 역시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생애주기 상의 중요한 시 기 중 하나이며, 이 시기의 ‘사회적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사 회의 각 주체들과 구성원들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한다 고 생각한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회정책, 노인 돌봄 정책, 가족 사회학, 질적 연구 방법론이다.

속화되어 ‘지역 소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 촌 지역의 통합돌봄 전략은 도시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현재 지자체 규모별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관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도 초기단계에 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주지에서의 노년’이 농촌지역 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하다. 이 글에서는 영광군 묘량면의 ‘여민동락공동체’의 사례를 통해 농촌지역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가 능하게 할 몇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제안하고자 한다.

노년기에도 가능한 자신의 생활하던 환경을 유지하는 것, 즉 ‘거주지에서의 노년 (aging in place, AIP)’을 보낼 수 있는지가 노년기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 소로 주목받고 있다.1 노인이 자신의 거주지에서 노년의 삶을 지속함으로써 자신

여민동락공동체에 대한 소개: 농촌 지역 노인 복지와 마을 경제의 만남

1) ‘Aging in place’는 ‘거주지에서의 노년’,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 들어가기’(석재은, 2020), ‘노인의 지역 사회 계속 거주’(이윤경 외, 2017) 등 여러 번역어로 사용되고 있다. 필자의 선택을 존중하여 수정하지 않고 사 용하도록 한다.(편집자 주)

여민동락공동체는 영광군 묘량면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2019년 기준 전체인구 2) Bundesministerium für Familie, Senioren, Frauen und Jugend. 2006. 󰡔Wohnen im Alter: Bewährte Wege

* 이 원고는 필자의 한살림 생명·협동연구 결과보고서의 내용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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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ue Herausforderungen󰡕. BMfFSFJ, publ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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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1,793명 중 65세 이상의 인구가 695명으로 고령화율이 약 38%에 달하며3 지역 주

<표1> 여민동락공동체의 구성

민들의 주요 소득원이 벼농사인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다. 묘량면 내 교육기관은 초

단체명

법인의 형태

설립년도

등학교 1개가 유일하고 면사무소, 보건소, 우체국 등 필수적인 공공기관을 제외한 기반시설이 매우 부족하다. 묘량면과 영광읍을 연결하는 관내버스도 일 4-8회만 운행된다.4

더불어 살 수 있는 농촌공동체를 만들기 위 여민동락공동체

영리단체로 출발하였다. 도시에서 거주하던 당시 3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 농촌

비영리민간단체

2007

한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 공동체 기업을 운 영하기 위한 활동들 수행.

여민동락

이러한 조건에서 여민동락공동체는 2007년 2월 이곳 묘량면에서 소규모 비

주요업무

주야간보호센터 모싯잎떡공장

사회복지법인

2008

마을기업

2009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재가복지급여 항목 중 주야간보호서비스를 제공 모싯잎 송편생산 및 지역 어르신에 일자리 제공

지역에 정착하여 만든 이 공동체는 이후 사회복지법인, 사회적협동조합, 사회적농 ‘지역을 이롭게 하는 마을가게-동락점빵’운

장 등 시기별로 마을에 필요한 조직을 설립하여 마을 사람들의 일과 삶을 구성하

동락점빵

사회적협동조합

2011

물 ‘도-농 직거래 사업’실시

였다. 초기설립 인원 6인에서 시작하여 이후 지역주민과 귀농·귀촌인이 공동체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들은 현재까지 느슨한 형태의 일터공동체, 생활공동체로 살아

영, ‘찾아가는 이동5일장’, 지역 친환경 농산

여민동락 사회적 농장

영농조합법인

2018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거점농장으로 선정 노인 일자리 창출

가고 있다. 여민동락공동체는 2008년 설립된 주야간보호센터를 시작으로 모싯잎떡공장 (2009년 설립),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2011 설립) 등 돌봄, 일자리 창출, 그리고 구매에 대한 농촌 지역사회의 편의 향상을 위한 생필품 판매까지 농촌공동체에 필

농촌 지역 돌봄 종사자들의 경험

요한 생활 밀착형 서비스를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또한 2018년에 공동체는 영농조합법인인 ‘사회적 농장’을 설립하였다. 사회적 농장은 홀로 농사를 꾸려가

위에 언급된 여민동락공동체 내 실무자들의 상당수가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간

기 버거운 고령의 노인에게 본인이 소화할 수 있는 ‘소일거리’ 수준의 농업 일자리

호조무사 등의 돌봄 종사자이다. 고령화율이 높은 묘량면에서 노인 돌봄과 노인 복

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노인은 일정 정도의 소득을 얻는 것과 동시에 지역사회 구

지에 대한 요구가 높기 때문이다. 또한 여민동락공동체의 돌봄 종사자들은 노인 돌

성원으로서 사회참여를 지속할 수 있다. 여민동락의 사회적 농장은 2020년 농림

봄 서비스의 제공자인 동시에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농촌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축산식품부의 권역별 거점농장으로 지정되어 사회적 농장에 대한 자문 및 현장교

농촌 지역에서 공동체 이웃 어르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살펴보는 과정

육을 진행 중이다.

에서 현재 농촌과 농촌의 돌봄 종사자가 겪는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여민동락공동체는 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장기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원 17명 규모의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종사자들은 평일과 토요일 아침에 어

3) 통계청. 2019. 주민등록인구현황. 4) 영광군 홈페이지. 군내버스 안내. https://www.yeonggwang.go.kr/subpage/?mn=1214

르신의 댁에 찾아가 센터까지 모시고 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9시 30

(검색일자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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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주말에는 오후 1시 30분까지) 17명의 어르신들과 7명의

앞과 같은 동네의 거점지역에서 장터를 열거나 거동이 어려운 어르신의 댁으로 원

종사자들이 낮 동안 이 센터에서 함께 지낸다.5 점심과 저녁식사는 물론이고 오전

하시는 생필품을 배달하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락점빵은

과 오후 2번의 간식이 어르신께 제공되며, 종사자들은 매일 체온측정 및 투약보조,

조합원과 지역사회 구성원을 위하여 ‘이문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6

건강체조를 비롯한 신체기능과 인지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건강관련 프로그램

그러나 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할지라도 시장경제체제의 일부로서 자립성과 경쟁

도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센터에서는 요일을 정하여 어르신들이 혼자서는 하기 어

력을 갖추어야 한다. 동락점빵을 운영하고 있는 실무자는 구매의 편의성과 조합의

려운 일에 도움을 드리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일정으로는 매주 화요일 종사자들이

복리증진이라는 요구와 시장경제에서의 경쟁력 확보라는 양자의 목표를 동시에

어르신과 함께 병원에 동행하거나 읍내에 나가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일에 도움을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드리는 것과, 매주 목요일 어르신이 목욕하는 데 도움을 드리는 것을 꼽을 수 있다.

한편, 동락점빵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특수법인이긴

묘량면의 어르신들은 수십 년 동안 마을 내 각자의 집에서 거주하며 생활했지

하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설치된 주간보호센터나 『사회복지사업법』에

만, 돌봄이 필요한 현재는 주간보호센터에 모여 적어도 낮 시간에는 함께 생활한

따라 설치된 사회복지시설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복지사가 필수적인 인력이 아니

다. 이 과정에서 어르신 간의 작은 소란과 다툼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

다. 동락점빵은 생필품을 공급하는 것 외에도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지역의 어

상적인 업무와 더불어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

르신들이 안녕하신지를 살펴보는 역할을 겸하고 있으며, 실제로 2인의 사회복지

시 주간보호센터에서 근무하는 돌봄 종사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이다. 현재 7명

사가 점빵의 실무자로 근무하고 있다. 동락점빵은 ‘아직은’ 돌봄 대상으로 분류되

의 필수인력으로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상적인 업무 원활하게 수행하기 쉽지 않

지 않는 자립이 가능한 어르신들의 자립생활을 돕는 중요한 돌봄의 역할을 하고

은 실정이며, 그에 더해 종사자를 위한 교육과 훈련을 병행할 시간과 여력을 내기

있지만, 이러한 역할이 체계적으로 논의되거나 정립되지 않았으며, 현재는 사회복

가 어렵다고 돌봄 종사자들은 지적한다. 또한 농촌지역에 위치한 장기요양기관 종

지사이자 사회적협동조합의 직원인 실무자 1인이 자발적으로 ‘1인 2역’을 담당하

사자는 낮은 임금과 더불어 교통 환경이 열악하고 주변에 편의시설과 문화시설이

는 실정이다.

없다는 농촌지역 거주자로서의 어려움에도 직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농장 역시 사회적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사가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에 근무하는 종사자들 또한 농촌 지역에서 사회적 협

필수 인력이 아니지만 여민동락공동체에서는 사회적 농장이 노인일자리를 창출

동조합을 운영하면서 처하게 되는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한다. 동락점빵은 조합원

하는 효과 이외에도 노인의 삶에 미치는 사회복지적 효과에 주목하여 사회복지사

및 마을 사람들의 구매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설립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농

를 실무자로 고용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농장이 사회복지적 기능을 하고 있음

촌지역의 교통 약자인 지역민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동락점빵

에도 불구하고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관할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복지와 관련한 예

은 주간보호센터 옆에 작은 매점을 운영하고 이동점빵 차량을 이용해 마을 경로당

산을 신청하거나 지원받을 수 없으며 자원봉사자도 활용할 수 없다. 농촌과 농촌

5) 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주간보호센터는 시설장 1인, 사회복지사 1인, 간호조무사 1인, 요양보호사 2인, 조리 6) ‘이문’은 이익, 수익을 의미한다. (편집자 주)

원 1인, 보조원 1인의 필수인력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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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노인의 특성을 고려하여 사회적 농업에서 사회 복지적 기능이 잘 결합되어 상승

업장 내의 동료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존감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노

작용효과를 낼 수 있도록 농림축산식품부와 함께 보건복지부의 관련 부처의 직

인이 신체기능과 인지 기능이 저하되더라도 주위의 사회적 자원을 통하여 혼자서

접 지원이나 연계사업에 대한 필요성이 실무자들로부터 제기되었다. 사회적 농장

는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에서 자원봉사자와 인턴십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등이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안되었다.

위에 언급된 기본적인 조건과 함께, 노년기에도 ‘노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적 으로 노년기는 생애주기 상 마지막 시기로, 즉 삶의 모든 활력이 소진되어 그저 네

사회적 농장을 본연의 임무, 즉 농산물을 생산하고 어르신께 일자리를 제공하

가지 고통 4고(苦)-‘병(病), 가난(生活苦), 무위(無爲), 고독(孤獨)’-에 시달리는 것으

는 ‘농사일’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현재 여민동락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사회적

로 묘사된다. 그러나 노년기를 자신의 쓸모가 다 한 뒤 고통을 피하며 버티는 시기

농장은 사회복지사들이 농사일과 관련된 실무와 어르신들의 활동을 돕는 일을 동

가 아니라, 생애주기 상의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

시에 하고 있다. 어르신을 돌보는 일 뿐만 아니라 작물을 관리하고 출하하는 것과

는 시기로 바라보아야 함을 묘량면의 돌봄 종사자들은 이야기한다. 건강과 경제적

관련해서도 농업기술에 대한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해 줄 수 있는 지원방안이 필

안정 그 자체만으로는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요하다.

주거지에서의 노년을 지속하기 위해 노인의 신체 기능과 생활패턴에 맞도록 주택과 주거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 물론, 현재 도시에 있는 아파트나 일반 다세 대 주택 역시 노인이 생활하기에는 완벽하지 않지만 농촌의 주택은 도시와 비교하

돌봄 종사자가 바라보는 이상적인 노년의 삶과

였을 때 상대적으로 더욱 낙후되어 있다. 필요와 상황에 따라 이사를 빈번하게 하

농촌형 통합 돌봄의 가능성

며 여러 거주지와 주택을 살아오는 도시와는 달리 농촌에서는 같은 집에서 수십 년간을 살아온 노인이 많다. 이 때문에 농촌 노인이 거주하는 주택은 상대적으로

여민동락공동체의 돌봄 종사자들은 ‘좋은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 건강과 경제적 자

노인과 긴 세월을 함께 보내면 노후화된 경우가 많으며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아

립,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필수적이라 이야기한다. 노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

충분한 소득이 없으며 신체적으로 기력이 쇠한 노인은 스스로 노후 주택을 수리할

을 스스로 충당할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자립은 자존감과도 연결되어 있다. 노년기

수 있는 여력이 많지 않다.

에 적절한 경제적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일상에서 우울감, 무기력, 권태감에 빠

주간보호센터에서 이송 서비스를 하며 노인분들이 살고 계시는 집을 방문할

지기 쉬우며, 이러한 상황이 심각해지면 영양부족과 자기방임으로 이어지게 되는

일이 많은 돌봄 종사자들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노후된 주택과 옛날식 집구조로

어르신의 사례를 종종 본다고 이야기한다. 주간보호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이러한

인하여 낙상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부상의 정도에 따라 야외활동이 어려워지

사례를 보았던 참여자는 노인에게도 자신이 기능이 허락하는 만큼이라도 소득창

거나 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기존에 잘 유지되던 사회적 관계도 불가피하게 끊

출과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할 수 있도록 노인 일자리 사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

어지게 된다고 한다. 또한 돌봄 종사자들은 노인이 생활하는 주택을 개조할 때 노

인에게 ‘소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일상생활 유지를 위한 고정수입을 제공하며, 작

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낙상 예방을 위한 문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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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거와 함께, 안전바를 설치하는 등의 신체적인 기능 저하를 보조하는 수단뿐만 아

구감소의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이에 대하여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대

니라,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움직임감지센서 설치’, ‘수도용량을 주기적으로 파

응하지 않았을 때, 인프라의 부족으로 인하여 지역의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악하는 것’ 이 노인의 주거환경 개선에 실제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이렇게 돌

이동하게 되는 ‘인구유출’의 악순환을 불러올 우려가 있다.

봄 종사자가 열거한 구체적인 예시들은 평소 종사자들이 마을의 어르신들과 일상

위에서 언급된 주택개조의 계획 및 의료·돌봄 서비스가 제공되는 단위가 ‘마

에서 함께 생활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기 때문에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을’, ‘지역사회’ 범주로 좁혀져야 한다는 것이 현재의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핵심내

노인은 신체 및 인지기능이 점차적으로 저하되는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감안하여

용이라고 볼 수 있다. 어르신이 필요한 경우 충분한 돌봄이 제공될 뿐만 아니라 돌

주택의 개조 역시 1회성의 단기적인 조치가 아니라 기능저하의 시기에 맞추어 주

봄 서비스와 의료서비스가 각 역할에 맞게 통합되어 제공되어야 한다. 이 때, 새로

택 내부의 시설과 장치를 주기적으로 변경하고 보수할 대책 역시 강구해야 한다고

운 체계를 고안하기 이전에 기존에 마을에 존재하는 동사무소, 보건소, 사회복지법

종사자들은 이야기한다.

인, 그리고 지역의 협동조합 간의 협력을 통하여 통합돌봄을 강화할 방법이 없는

묘량면의 돌봄 종사자들 역시 오랫동안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고자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농촌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녹록하지 않음을 토로한다. 앞서 언급한 노후

돌봄 종사자들은 현재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에 대해 이미 들어 잘 알고 있

화된 주거 환경뿐 아니라 농촌지역의 사회적 인프라 부족이 지역사회에서 계속하

고,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재의 정책이 각 지역이 처해 있는 각자의 사정이 고

여 거주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거론된다. 대표적으로는 대중교통의 편의성

려되지 않고 획일적인 것은 아닌지, 즉 ‘도시형’이 아닌지 우려한다. 특히 정책수립

과 의료접근성이 도시와 비교하였을 때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관

과정에서 정부가 농촌지역의 높은 고령화율을 반영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

내 버스의 경우 배차간격이 길뿐 아니라, 정류장 간의 간격이 지나치게 떨어져 있

다. 또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민

기 때문에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 역시도 자가용이 없이는 마을 밖으로 이

과 관의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못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는 지역사회

동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미 집에서 정류장으로 나가는 길 역시 정비가

통합돌봄이 시행 초기단계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향후 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되어있지 않은 좁고 경사진 길인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노인의 개인공간인

위해서는 이 부분 역시 보완되어야 한다.

주택이 아무리 노인 친화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활동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오히려 집안에 ‘갇히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지역사회 내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에게 맞는 역할을 분 담하면서 협력하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 여러 주체들 중 협동조합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인프라지만 농촌지역에 부족한 것들 중에 중요한 것으로

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협동조합이 지역사회 통합돌봄에서 가지는 강점

의료서비스를 들 수 있다. 노인은 젊은 사람에 비해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을 가능

은 무엇이 있을까? 여민동락공동체의 돌봄 종사자들은 협동조합을 비롯한 지역사

성이 높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또한 위급한 상황에서는 가능

회 내의 여러 공동체가 민과 관의 파트너십을 구성하는 역할뿐 아니라 기존에 노

하면 빠르게 병원에 이송되어 적절한 처치를 받아야 하지만 농촌 지역의 경우 이

인돌봄서비스를 제공해 왔던 국가, 가족, 사회복지지관이 직접 하기 어려운 서비스

러한 접근성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사회적 인프라 부족은 농촌의 인구고령화와 인

를 보완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공동체를 형성하여 함께 생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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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면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발견하고 돌봄서비스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

할 필요가 있다.

다. 또한 마을 주민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협동조합이 거버넌스에 참여함으로써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지역사회의 발전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체계 및 법령정비와 더불어 농촌 지역의 사회적 인프라도 확충되어야 한다. 노 년기 삶의 필수적인 요소인 의료와 복지서비스는 물론이고, 시민의 기본적인 권리 로서 이동의 권리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농촌에서는 ‘약을 타기 위해 하루에 4번 뿐인 버스를 기다려서 다녀오시면 금세 하루가 지나가는’ 현실과 낙후된 삶의 조

농촌 맞춤형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위한

건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환경’에 놓이게 된 주요 원인은 도시와

준비가 필요하다

농촌 간의 지역 격차에 있으며 이러한 지역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하고 창의적 인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격차 완화는 돌봄을 제공받는 노인의

2007년에 6명의 청년들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여민동락공동체는 이후 노

삶뿐만 아니라 돌봄을 제공할 돌봄 종사자, 즉 청장년층의 삶과도 직접적으로 연결

인복지센터, 모싯잎떡공장, 동락점빵, 그리고 사회적 농장까지 매 시기별로 마을

되어 있다. 돌보는 사람에게도 살만한 지역이 되기 위하여 교육, 여가, 문화와 관련

공동체에 가장 필요한 돌봄과 일자리, 생활편의에 대해 고민하고 활동하였다. 여민

된 인프라와 시설에 대한 균형발전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동락공동체의 사례는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대 농촌지역의 마을과 그 마을에서 생

체계와 인프라 구축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서 통합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

활하는 어르신들이 자신의 거주지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

기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구상해볼 수 있다. 특히 제도의 당사자인 노인의 생

고 그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민

애주기와 신체기능의 변화를 반영한 단계별 프로그램이 지역사회 내에 마련되어

동락공동체의 돌봄 종사자들은 마을 어르신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농촌 공동체 내

야 한다. 어르신이 마을에서 가능한 오랫동안 자립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아직

의 자발성과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구체적으

은 노쇠단계에 접어들지 않은 어르신들이 농사를 그만두더라도 간단한 소일거리

로 돌봄 종사자들은 어르신의 집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주거상황을 파악하고

를 통해 소득과 사회적 관계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사회적 농업 형태의 노인 일

어르신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발견’한다.

자리를 마을 단위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노인이 지역

농촌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통합돌봄의 추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인과 마을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건강 및

진체계, 사회 인프라의 확충, 그리고 프로그램과 돌봄 당사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노년의 삶에 대한 인식의 개선을 도울 필요가 있다. 건

한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우선 기본 행정구역, 즉 읍 면 단위의 특성에 맞게 세

강 교육 프로그램 외에도, 재미있는 소일거리, 물리치료, 의료 및 돌봄 서비스에 대

밀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체계를 세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며, 이때 민간영

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협동조합의 사업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역 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지자체의 비전 수립과 실행의지

지역사회 내의 조직들 간의 물적, 사업적 연계도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가

에 따라 돌봄의 내용과 질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때 지자체와 민간영역의

장 직접적으로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매일 제공되는 식사와 간식 등의 먹거리를 사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가능하도록 주민자치와 관련된 법령을 정비

회적 농장 혹은 인근 다른 협동조합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농산물을 이용하는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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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서로 돌봄의 시대, 협동조합의 돌봄


방식 등을 제안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인프라, 그리고 프로그램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을의 어르신과 가족들이 알아야 이 프로그 램에 접근할 수 있다. 또한 농촌 지역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성공을 위해서는 현장에서 어르신을 만나는 돌봄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마을 사람들 곁에 누구보다 가깝게 있는 사회복지사들의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고령화율이 높 고 사회적 인프라 및 인적자원, 의료서비스 자원이 부족한 농어촌에 적합한 모델 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실행의지, 곧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 통합돌봄이 도입된 지 얼마 안 되어 생경하다고는 하나 내용을 뜯어보 면 그다지 어렵거나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깐 중요한 건 실행 의지라고 생각해요. 늘 그 부분이 아쉽습니다.” (여민동락 노인복지센 터 팀장,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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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협동운동을 보는 다양한 시각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들어가며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커먼즈1는 마을의 기원이다. 사람들이 이사 갈 집을 볼 때, 의식적으로 수도꼭지를 틀어본다. 물은 잘 나오고, 배수는 잘 되는지, 부엌 싱크대와 화장실 세면대의 물을 점검한다. 이러한 의식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느 한 곳에 사람들이 정착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는 식수를 쉽게 확보할 수 있는 곳이다. 제주도 마을 의 유래를 살펴보면 대부분 마실 물이 나오는 용천수를 찾아내고, 그 근처에 한 두

김자경(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집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되었다는 기록이 많이 나온다. 이 물은 그냥 사용 하는 물이 아니다. 물을 깨끗하게 모두가 사용하기 위해 용도를 구분했다. 맨 윗물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주 류 경제학 중심의 농업경제학을 공부하다가 로컬푸드, 협동조합, 사 회적경제, 커먼즈 그리고 마을로 연구의 주제어가 계속 바뀌고 있 다. 주말에는 ‘달빛숲감귤밭’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공저로 『로컬푸 드, 제주를 상상하다』, 『공동자원론, 오늘의 한국사회를 묻다』, 『제주 사회의 변동과 공동자원』 등이 있다.

은 식수로, 중간에 흐르는 물은 채소를 씻는 물로, 제일 아래쪽 물은 허드레용이다. 물론 물놀이를 하거나 빨래를 하면서 수다를 떠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 용천수가 나오는 곳에는 ‘물통’이라는 지명이 잘 붙는다. 그리고 ‘물통’ 옆에는 연자방아가 있 다. 연자방아는 곡식을 추수한 후 도정을 위해 사용하는 큰 맷돌로 주로 소나 말의 힘을 이용한다. 한 마을에 물통이 세 개가 있으면 연자방아도 세 개쯤 되며, 자연마 을도 세 곳으로 이뤄진다. 한편 제주의 마을에서도 가장 맑고 깨끗한 물에 ‘할망물’ 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 이유는 우리 가족들 아프지 말라고 장독대에 가장 맑은 물을 한 바가지 받아 놓고 비는 성스러운 물이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가족들의 안 녕을 기원하기 위해 공양하는 가장 맑고 깨끗한 물이라는 뜻인 것이다. 이와 같이 물은 인간의 삶에 가장 중요하고 마을을 이루고 사는데 필수적인 것

1) 커먼즈(commons)를 우리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 것인가는 항상 논쟁거리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공동 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에서 함께 연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논쟁 중이다. 주로 최현의 논 의에 따라 ‘공동자원’이라 번역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커 먼즈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커먼즈가 분명히 우리 삶 속에서 존재했기 때문이 다. 제주의 경우 상호부조를 일컫는 ‘수눌음’이나 마을공동목장을 운영했던 ‘목축계’, 마을공동어장을 지금도 운영하고 있는 ‘어촌계’가 있으며, 이 단어 자체가 커먼즈를 지칭할 수 있는 단어이다. 때문에 공동자원의 운영 과 관리 또는 공동자원 만들기, 공동자원화 등을 지칭하는 동사형 커머닝(commoning)은 제주어로 ‘수눌다’ 라고 직역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삶터의 단어를 사용한 번역어를 찾고자 하는 의미에서 일부 러 ‘커먼즈’를 그대로 사용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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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이었다. 물은 누구의 사용을 배제할 수 없고, 마구잡이로 사용하면 고갈되거나 더

러했다. 경남 밀양, 제주 강정과 성산, 인천 배다리, 서울 경의선과 송현동 등 다양

럽혀 지기 때문에 마을구성원들은 지속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약속을 정했다.

한 지역에서 커먼즈 운동의 싹은 이미 자라고 있다.

성문화되어 있지 않지만 마을에서 구전되는 속담이나 설화를 들어보면 물을 지키

오늘 날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커먼즈 개념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영역

기 위한 터부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내륙 지역에서는 아마도 강물이나 마을 공

으로 확장하는 움직임이 운동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금 왜 커먼즈일까? 그리고 무

동 우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엇을 커먼즈이게 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첫째, 커먼즈의 개념과 이론

1960년대 들어서 상수도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에는

적 지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실천을 중시하고, 커먼즈를 만들어 나가는 의미

거의 100% 상수도가 보급되었다. 이제 물통에 관한 이야기는 과거 기억 속에나 존

로서 커먼즈 운동이 협동조합 운동과 어떻게 접점을 이루는가에 대해 살펴보고자

재하게 되었다. 커먼즈는 이렇게 사라지고 만 것인가? 아니다. 이른바 ‘커먼즈 운

한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으로 커먼즈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의 결합 사례를 살펴보

동’이 뜨고 있다.

기 위해 제주의 한 생협이 실천하고 있는 지역살림 운동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삶의 국면을 지나는 굵직한 사건들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평 생 농사를 짓고 살았던 땅이, 소를 방목해서 키웠던 마을 땅이, 공항 건설 예정지로 정해지고 나서 살던 집이, 공항부지에 들어간다며 강제퇴거 당하게 생겼다. 어렵사

커먼즈란 무엇인가?

리 작은 가게 하나 임대해서 동네 상권을 띄워 놓으니 갑자기 임대료를 올리며 건 물주인이 나가라고 한다. 집에 아픈 이가 있어 병원비는 국가 의료보험을 이용하지

커먼즈로서 자원

만, 보험을 사용할 수 없는 약도 많고, 간병인을 구할 수 없어 병자가 있는 집에 머

커먼즈는 예로부터 어디서나 존재했다. 커먼즈는 중세 영어로 관습법에 따라 자기

물러야 하는 며느리나 딸들은 24시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어디에도 고용되지 않

소유는 아니지만 공동체가 일정한 형태로 생계를 위해 자원을 사용할 권한을 인정

았지만 공유경제 플랫폼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노동자는 사고가 나도 하소연할

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물고기를 잡고 사냥할 권리, 가축에게 풀을 먹일 권리, 숲에

곳이 없다. 비정규직이라도 고용되어 감사하게 여기던 직장에서 영원히 집으로 돌

서 땔나무를 모으고 약초를 캘 권리 등을 다루고 있다.2 라인보우는 ‘마그나카르타’

아 갈 수 없는 길을 걷고 말았던 청년들이 있다.

와 ‘산림헌장’에서 커먼즈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로 설명되는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 공동체가 주

었다.3 커먼즈를 역사적 경험 속에 운영해온 내용을 토대로, 커먼즈 운동의 대표 주

체가 되어 지속가능한 삶을 스스로 그려 나갈 수 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오스

자 중 한 명인 볼리어는 커먼즈를 “자원 + 일련의 사회적 규약 + 공동체”로 정의한

트롬의 커먼즈 이론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2009년 오스트롬이 노벨경

다.4 커먼즈는 이 세 가지가 상호의존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통합된 전체를 이루

제학상을 받은 이후 십여 년이 흘렀다. 이제는 공유의 개념을 쉐어링(sharing)과 커 머닝(commoning)으로 구분하기 시작했으며, ‘커먼즈 운동’라 직접적으로 부르지 는 않았지만 커먼즈를 만들어가거나 커먼즈를 지켜내면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

2) 이반 일리치. 2013.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현대의 상식과 진보에 대한 급진적 도전』. 권루시안 역. 느린걸 음. pp63-73. 3) 피터 라인보우. 2012. 『마그나카르타 선언』. 정남영 역. 갈무리. 4) 데이비드 볼리어. 2015. 『공유인으로 사고하라: 새로운 공유의 시대를 살아가는 공유인을 위한 안내서』. 배

기 위해 서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운동과 협동조합 운동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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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역. 갈무리.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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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는 것이다. 따라서 커먼즈에 대한 연구는 공동체 사람들과 그들의 일상에 중심이

이러한 오스트롬의 자원에 대한 정의에 대해 최현은 자원 이용의 독점정당성

되는 공유지(자원)를 둘러싼 운영 원리나 제도, 관습, 문화 등이 함께 주요 연구 대

문제를 중점에 두고 비배제성에 관한 개념에 문제를 제기한다.10 배제성은 자원의

상이 된다.5 이 글에서는 볼리어의 개념에 따라 커먼즈의 구성 요소별로 구분하여,

속성 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거나 사유재

이론적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산권이 강화되면서 배제할 수 없었던 자원이 배제할 수 있는 자원으로 바뀌는 경

우선 커먼즈의 대상이 되는 자원에 대한 논의이다. 자원은 주로 강, 바다, 산처

우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서론에서 이야기한 물(용천수, 지하수)은 비배제성을 가

럼 예로부터 존재한, 인간에게 주어진 부존자원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졌다. 흐르는 물을 다른 사람들이 먹을 수 없게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독점정당

그렇기 때문에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에서 비유한 것처럼, 주인 없는 땅이기에 누

성을 가지지 못한 자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먹는 샘물을 만들어 파는 시대가 되

구나 사용할 수 있으며, 개인은 이익을 채우기 위해 자유롭게 이용하기 때문에 자

었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페트병에 든 물을 사 먹는다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다.

원은 고갈되고 만다는 우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 우화는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지하수가 먹는 샘물로 상품화되면서 배제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문제제기이기도 하다.6 하딘은 한정된 자원과 증가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한 장

지하수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직접 생산할 수 없다.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

치로서 자원의 국유화 내지는 사유화를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만 하더라도 ‘산림헌

들어 몇 겹의 토양층에서 정화되는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먹는 샘

장’을 통해 숲이 있는 관습을 보면 하딘의 우화 속에 나오는 아무나 개인의 욕심에

물을 만드는 공장은 페트병을 만들어 지하수를 담을 뿐이다. 그러나 지하수를 보전

맞게 사용했던 땅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스트롬은 실제 다양한 사례 분석을 통

하기 위한 비용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이용된다. 때문에 제주에서 먹는 샘물의 생산

해 ‘공유지의 비극’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증명하였다.7

은 공사에서 담당하고 도의회는 대기업의 진출을 반대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먹는

오스트롬은 자원을 비배제성과 경합성이라는 물리적 속성으로 설명한다.8 다

샘물 공장을 지으면 지하수의 이용은 배제가능하게 된다. 대기업이 지하수를 독점

시 말하면 커먼즈는 누가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사용하지 못하는 성질을 가

적으로 이용하게 되면, 지하수는 곧 상품이 되어버리고 만다. 즉 “사회적 정당성 없

진 자원(경합성)이자,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을 수 없는 자원(비배제성)을 가진

이 자원을 독점한 결과”이다. 따라서 커먼즈론에서 다루는 자원은 “배제되면 사람

자원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오스트롬은 이러한 속성을 가진 자원의 이용을 최대한

들이 살아갈 수 없는 자원, 그리고 정당성 없이 독점할 수 없는 자원이어야 한다. 독

지속가능하게 유지하기 위한 제도 연구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롬의

점에 대한 정당성이 작을 때 배제가능성도 작아지기 때문”이다.11

경험적 연구는 자원을 보호하는데 기여는 하지만, 배제가능한 자원이 상품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선언한다.9

이와 같이 최현은 오스트롬의 자원 개념은 같은 자원이 역사적, 사회적, 공간적 변화에 따라 다른 유형의 자원이 된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커먼즈론에서 다루는 자원은 윤리적, 사회학적으로 자원에 대해 재정의해야 한다.

5) 김자경. 2015. “일본 공동자원론의 비판적 검토”. 『대안연구총서』 1. 제주대안연구공동체. p79.

이를 통해 자원의 개념은 자연자원에서 다양한 자원으로 확장할 수 있다. 도시라는

6) 정영신. 2016. “엘리너 오스트롬의 자원관리론을 넘어서”. 『환경사회학연구 ECO』 20(1). p403. 7) 김자경. 2017. “커머닝 개념을 통한 마을의 문제 해결 방안에 관한 사례 연구-제주 금악마을의 양돈 악취문 제 해결과정을 중심으로”. 『로컬리티 인문학』17. pp90-91. 8) 엘리너 오스트롬. 2010. 『공유의 비극을 넘어』. 윤홍근 역. 랜덤하우스코리아.

10) 최현. 2013. “공동자원 개념과 제주의 공동목장-공동자원으로서의 특징”. 『경제와 사회』 98.

9) 최현. 2019. “공동자원의 새로운 정의와 제주의 공동자원: 바다밭을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ECO』

11) 최현. 2019. “공동자원의 새로운 정의와 제주의 공동자원: 바다밭을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ECO』

23(1). p14.

23(1). pp13-14.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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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공간, 지식, 돌봄 등 다양한 커먼즈의 개념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동백동산의 사례처럼 국유지인 마을 숲(common-pool resource)을 마을 사람들

커먼즈론에서 자원을 정의할 때 또 다른 쟁점 중 하나는 소유권에 관한 것이

이 공동으로 이용하고 관리하며 생태관광을 활성화하는 마을 사례도 있다.

다. 1985년 국제학술대회에서 커먼즈 연구자들 사이에 커먼즈에서 다루는 자원 (common-pool resource 또는 common property resource)에 대한 논쟁이 있었

마을공동체와 커먼즈

다.12 자원을 공동소유의 개념과 공동 이용의 개념으로 구분한 것이다. 공동소유 자

두 번째로 자원을 이용하고 관리하는 공동체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마을이

원은 공동체에 의해 소유되고 관리되는 자원으로, 농촌 지역에서는 공동 소유의 마

라는 공간에서 주로 이뤄지지만, 마을, 지자체, 국가라는 주체 역시 한 공간에서 중

을 재산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편이다. 그러나 한 마을의 자원 소유 형태 역시 국공

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원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거듭 제기되고 있

유지, 개인 소유 등 다양한 소유형태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 보편적이며, 대체적으

는 실정이다. 여기에서는 일단 삶의 단위로서 가장 일상에서 가까운 마을을 중심

로 이러한 자원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으로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 학술대회 논쟁 이후 자원은 오스트롬이 주장하는 공동 이용(common-pool

홍성태13와 김준14은 마을과 공동체를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을 우려한다. 마을

resource)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영신은 자원의

공동체라 하면 주로 사회적 관계인 공동체를 강조하게 되는데, 마을은 생업의 장

물리적 성격을 중심에 두고 공동이용에 초점을 맞춘 오스트롬의 이론은 다양한 한

이자 삶의 터로서 물질적 기반이 중요하다. 이 물질적 기반이 바로 위에서 언급했

계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자원은 주어진 그대로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제도의 형

던 커먼즈로서 자원이다. 마을은 사람들이 자원을 지속가능하게 관리하고 운영하

성과 유지를 위한 연구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속가능한 자원을

기 위해서 마을 조직 내에 커먼즈를 운영하는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유지 관리하기 위한 제도를 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자원 그 자체의 속성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마을은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때문에 홍성태는 커먼즈가 보

에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커먼즈 그 자체를 해체했던 인클로저 운동이나 국가 주

전되지 않는 마을은 해체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도의 개발정책으로 인한 커먼즈의 박탈, 기술 발전으로 인해 자원의 수요가 감소하

한 어촌마을을 살펴보자. 바다는 생존을 위해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삶의 터이

여 나타나는 커먼즈의 쇠퇴 등과 같은 사회 변동 요인이 작용하여 자원을 유지 관

다. 바다는 공유수면으로 국공유지와 동일하지만, 소유권의 관계를 묻지 않고 마을

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따라서 오스트롬이 자원을 정의한 논의에 따르면

사람들이 관리를 하고 누구나 모자라지 않게 사용해 왔다. 즉 ‘자원의 희소성을 극

커먼즈의 동학을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존재한다.

복하는 장치’를 스스로 마련해 왔으며, 마을 공동체는 커먼즈를 통해 만들어졌다.15

한편 커먼즈 운동의 현장에서는 자원의 소유권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을 사람들이 정성 들여 일구어 왔기 때문에 자신들이 관리하는 바다를 마을의

사례가 존재한다. 서울 마포구의 <해빗투게더협동조합>, 경기 시흥시의 예비사회

소유, 마을의 공동재산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16 따라서 마을의 사회적 관계는 커먼

적기업 <(주)빌드>의 사례처럼 ‘시민자산화’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공동으로 구입 하여 커먼즈(common property resource)로 사용하려는 곳이 있다. 제주 선흘1리

13) 홍성태. 2017. “마을의 복귀와 위기”. 『로컬리티 인문학』17. p61. 14) 김준. 2020. 『한국어촌사회학』. 민속원. p20-24. 15) 김자경. 2019. “공동자원을 둘러싼 마을의 의사결정구조와 공동관리: 제주 행원리 사례를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ECO』 23(1). p43.

12) 정영신. 2016. “엘리너 오스트롬의 자원관리론을 넘어서”. 『환경사회학연구 ECO』 20(1). pp407-408.

모심과 살림 _ 16호

16) 김준. 2020. 『바닷마을 인문학』. 따비.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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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즈로서 자원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공동체가 된다.17 즉 커먼즈는 그 자체의 단위

성원이 되어 자원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관습상의 권리를 얻는 것을 ‘입호권’이라

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커먼즈 연

한다. 커먼즈는 생계를 이어 나가기 위해 중요한 생산수단이기 때문에 입호에 관한

구가 마을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커먼즈를 이용하고 관리하면서 지속가

권리는 상당히 엄격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이는 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남

능성과 회복력을 갖출 수 있는 삶의 단위가 마을이기 때문이다.

획, 남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20

여기서 마을 공동체에서 ‘누가 마을사람인가’에 대한 주체 문제가 중요하게 대

한편 어촌마을마다 해녀와 다이버의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바다 이용을 둘러

두된다. 사람들은 주로 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전입신고만 하면 그 마을의 주

싼 갈등이 공동성과 공공성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녀들은 어촌계를 구

민으로서 권리를 얻는다. 하지만 농촌지역에서는 이와 달리 자원을 이용하고 수익

성하여 바다를 돌보고 지키며 마을 구성원으로 인정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마을 공

을 배분 받는 권리주체로서, 자원을 지켜내는 주체로서 ‘당사자 인정’ 문제를 발생

동체는 바다라는 커먼즈를 통하여 공동성을 강화해 왔다. 이에 반해 다이버들은 바

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서귀포 가시리 마을에서는 마을공동목장을 활용하면서 수

다를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한다. 다이버들도 바다 속 쓰레기를 치우

익이 발생하자, 같은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귀촌한 이주민들이 수익 배분에서 소

며 바다를 지키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공공성을 요구하며 바다는 누구나 이용할

외되는 일이 생겼다. 서귀포 강정마을에서는 마을공동어장이 있는 바다에 해군기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바다라는 커먼즈를 이용하고 관리하는 측면에서 주체의

지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을 추진했을 때, 이 국책사업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기 위

문제를 상정할 때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해 마을총회를 여는데 오랜 기간 마을에서 살았던 활동가들이 마을 사람으로 인정 받지 못해 마을총회 의결권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적도 있다.

커먼즈의 관습 및 제도: 운영원리

마을공동체에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마을을 구성하는 성원으로서 자격

오스트롬은 수많은 커먼즈 사례를 분석하면서 커먼즈의 지속가능한 운영 조건이

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마을에 거주한다고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되는 디자인 원리를 발표하였다. 첫째, (사용자와 자원의)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

른바 ‘홋수를 가지는 문제’가 발생한다.18 역사학, 민속학에서는 이 문제를 ‘입호권’

둘째, 사용규칙과 제공규칙의 현지 조건과의 부합성, 셋째, 집합적 선택장치, 넷째,

으로 다루고 있었지만, 커먼즈 연구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았다.

감시 활동, 다섯째, 점증적 제재 조치, 여섯째, 갈등 해결 장치, 일곱째, 최소한의 자

어촌 마을의 경우 마을공동어장이라고 하는 자원이 존재하며, 어업활동을 하 기 위해서는 ‘어촌계’에 가입해야 한다. 어촌계에 가입한다고 해서 바로 마을어업

치 조직권 보장, 여덟째, 중층적 사업단위(nested enterprise)이다. 이 디자인 원리 를 한국의 현장에 적용해 본 연구들이 다수 존재한다.

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없으며, 일정기간 마을에서 살아야 하며, 입호료(가입

오스트롬은 이에 머물지 않고 제도분석모델과 사회-생태계모델 등을 고안했

비)를 납부해야 한다.19 즉 마을에 들어와서 신뢰를 쌓으며 살면서 마을의 기본 구

다.21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 효과적으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자연환경과 인간

17) 김준. 2020. 『한국어촌사회학』. 민속원. p21.

20) 김자경. 2019. “공동자원을 둘러싼 마을의 의사결정구조와 공동관리: 제주 행원리 사례를 중심으로”.

18) 김자경. 2019. “공동자원을 둘러싼 마을의 의사결정구조와 공동관리: 제주 행원리 사례를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구 ECO』 23(1). p68.

『환경사회학연구 ECO』 23(1). p67.

21) 제도분석(institutional analysis and development: IAD)모델, 사회-생태계(social-ecological system: SES)

19) 김준. 2020. 『한국어촌사회학』. 민속원. p23.

모델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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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사회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고, 자연 환경 체계와 인간의 사회 체계를 하나의 시스

한 경작지에는 부농들이 황소를 끌고 가서 도와야 했다. 즉, 마을공동체와 경제, 정

템으로 통합해 연구하는 이론으로 발전시켰다.22 이러한 제도 분석의 틀은 오히려

치, 사회적 유대 관계를 맺지 못한 농민은 생존을 할 수 없었다.

커먼즈를 관리하고 이용하는 관습이나 규칙 등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제주의 한 마을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주의 마을 지도를 보면 상당수

따라서 예로부터 커먼즈를 이용했던 관행에 대해 유럽에서는 어땠는지 살펴

마을이 긴 부채살처럼 한라산을 따라 내려와 중산간 목장지대를 지나 바닷가를 향

보고 난 뒤,23 한국에서 커먼즈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제주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

해 길게 이어진다. 해안가에서 나오는 용천수는 식수가 되었기에 여러 집들이 모여

다. 이는 오스트롬과 함께 했던 수많은 연구자들이 현장 연구를 통해서 얻었던 원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마을을 이루고, 주로 반농반어의 생활을 했다. 바다는 어촌계

자료의 묘사에 해당할 것이다.

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이를 마을공동어장이라 부른다. 중산간 지대에서는 농사용

중세 영국과 유럽 대륙의 상당한 지역에서는 장원을 중심으로 농사를 지었다.

가축인 소나 말을 방목한다. 농가는 개인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지만, 회산회토로

장원 내에는 개방 경지, 공유지, 황무지로 구분되는 땅이 존재한다. 개방 경지는 두

이뤄진 토양은 농사짓기에 어렵다. 따라서 농가들의 소나 말을 한자리에 모아 한꺼

개 또는 세 개의 대규모 농지들이 장원 법정이나 그에 상응하는 기구의 관리 하에

번에 흙을 밟아주면 수분을 빼앗기지 않은 씨앗이 발아하게 된다. 이 소나 말들은

서 농민들에 의해 단독 혹은 공동으로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이 개방 경지는 영주

파종시기와 수확시기를 제외하고는 중산간 지대에서 방목하며 키운다. 그런데 개

직영지와 농민 보유농지(탁영지)로 구분한다. 당시 장원은 삼포작 농법을 채택하

별 농가가 소나 말을 돌보는 일은 상당히 품이 든다. 그래서 목축계를 만들어 마을

였다. 이는 지력을 보존하기 위해, 한 해에 경작을 마치면 다음 해에는 그 땅(휴경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소나 말을 돌보는 당번을 정한다. 이 관행이 현재의 마을공동

지)을 쉬게 하는 방식으로 경작지를 3개로 나누어 돌려 짓는다. 휴경지에는 가축을

목장이 된 것이다. 이러한 마을공동어장과 마을공동목장은 마을공동체가 함께 운

방목하는데, 이곳에 가축을 방목할 권리는 각자의 농지 소유 비율에 따라 관습적으

영하면서 커먼즈가 되었다. 그리고 개별 가구가 수행하기 어려운 일은 마을단위로

로 할당되었다. 따라서 경작지를 쉬게 하는 동안 이 개방 경지는 마을 공동체가 집

서로 돕는다. 특히 관혼상제에 관한 일이 그러하다. 제주에서는 이러한 상호부조의

단적으로 관리하는 공유지가 되는 것이다. 농민들은 자신의 농사뿐 아니라 마을 공

모든 관계를 ‘수눌음’이라 부르며, 수눌음 관계망은 자연환경이 준 삶의 지혜로서

동체에서 부과하는 규율을 지켰다. 14세 이상의 모든 남성은 장원 법정에서 내리는

공동체적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삶을 말한다. 중세 장원처럼 제주 역시 마을공동

판결에 대해 연대 책임을 지거나, 행정과 분쟁 조정의 상당부분을 맡아야 했다. 험

체와 다양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생존이 어렵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한편 마을에는 다양한 경제조직(작목반, 식당 등)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조 직들이 모두 커먼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을공동체에 의해 운영되고 관리되는 것

22) 최현, 따이싱셩. 2015. “공동자원론과 한국 공동자원 연구의 현황과 과제”. 『경제와사회』 108. p172. 23) 중세 영국의 장원제도에 대해서는 마글린의 『공동체경제학』과 심재윤의 『중세 영국 토지제도사 연구』를

만이 커먼즈가 된다. 또한 모든 커먼즈가 공동노동, 공동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마

참조하였다. 장원제도와 공유지(커먼즈)에 대한 두 연구자의 시각은 서로 다른 점이 존재했다. 심재윤은 ‘비 용’의 측면에서 왜 장원제도가 유지되었는가를 분석했으며, 마글린은 ‘분배’의 시각에서 장원제도를 설명하고 있다. 커먼즈는 마을 공동체의 농민은 누구나 방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어 떤 땅을 커먼즈로 보는가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르다. 심재윤은 황무지를 커먼즈로 보고 있으며, 마글린은 경 작지 중 휴경지를 커먼즈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각 차에도 불구하고 당시 커먼즈 관행은 소유권에 관계없

을공동목장만 보더라도 목장 관리와 소나 말의 관리를 공동으로 하지 개인의 농사 까지 모두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능력만큼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지만, 이 농사를 위해 커먼즈가 필요한 것이다. 일종의 공동생산 수단이 된다. 따라서 커먼

이 방목할 수 있는 권리, 그에 따른 마을 공동체의 의무 수행, 마을공동체 집단의 커먼즈 운영이라는 공통의 요

즈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도록 유지 관리하는 것은 공동의 부와 개인의 부 모두

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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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를 향상시키는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이것이 커먼즈 운영의 핵심이다.

특히 제주의 경우 목축계나 어촌계와 같이 조직이 구성되어 커먼즈를 운영한

다음 <그림 1>은 목축계를 중심으로 수눌음 관계망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 가를 보여준다.

다. 목축계나 어촌계는 각자의 정관이나 관습에 따라 운영되지만, 마을의 의사결정 구조에도 포함된다. 마을총회 때 목축계나 어촌계는 사업 내용 및 결산을 보고하 고, 사업계획은 총회의 의결로 승인된다. 이것은 커먼즈가 마을공동체의 공동 생 산수단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24 그만큼 커먼즈를 둘러싼 수익의 공정한 분배는

<그림 1> 목축계를 중심으로 한 수눌음 관계망 <등가 노동교환>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때문에

김매기계

무임승차자를 제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공동체가 깨지고 생존 D

이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마을공동목장의 형식으로 운영되기 이전부

C

김매기 1일

터 목축계는 방목이 필요한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방목하는 규칙을 만들고, 서

쌀계

목축계

김매기 2.5일 밭밟기 1일

그릇계

로 순번을 정해가면서 소를 돌보았던 조직이다. “자율적인 개인들이 모여 자치 규 정을 지키는 그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 이 안에는 무임승차자가

E

존재할 수 없다”.25 이기심을 억제하거나 호혜를 해야만 하는 관습이나 제도는 이

B

밭밟기 1일 제사부조 김매기 3일 <부등가 노동교환>

A

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커먼즈의 운영 원리라 생각한다.26

<중답> 반테우기

그렇다고 해서 개인의 자유를 무조건 억제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을

소 없음

24) 한편 A농가는 소가 없이도 수눌음 연결망을 통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목축계에 가입하게

<그림 1 설명>

된다. ‘맴쉐 제도’라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맴쉐 제도는 소가 없는 집에 임신한 어미소를 빌려주는 제도이

농가: ABCDE

다. 예를 들어 B농가는 A농가에게 어미소를 빌려준다. A농가는 B농가의 어미소를 먹이고 돌보는 것으로 어

목축계: BCDE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소를 돌봄

미소 빌리는 값을 대신하게 된다. 어미소가 숫송아지를 낳게 되면 숫송아지는 B농가에게 주고 계속해서 어미

김매기계: CD 등가 노동의 교환

소를 돌본다. 다음 번에 이 어미소가 암송아지를 낳게 되면 이 암송아지는 A농가가 가지고, 어미소는 B농가에

그릇계: ABCD 현금을 소액 출자하여 행사 때 사용할 많은 그릇을 사서 마을회관에 놓아

게 되돌려주게 된다. 이렇게 해서 A농가는 농사의 중요한 생산수단인 소를 얻게 되고 목축계에 가입하게 되

둠. 구성원은 잔치가 있을 때 공짜로 그릇을 사용하지만, 다른 마을사람들은 일정 한 금액을 내고 그릇을 빌려 사용하게 됨.

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독립된 자립농의 기회를 마을에서 지지한다는 점에서 상당 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제주의 맴쉐 제도는 인류학, 민속학, 농촌사회학 분야에서 ‘소 배내기’라는 용어로 연 구가 진행된 바 있다.

쌀계: BDE 구성원이 이번 달에 B가 필요한 쌀을 모아 받으면, 다음 번에는 D와 E가 순

25) 김자경. 2019. “제주의 전통적 커머닝 수눌음: 제주 목축문화의 재해석.” 『제주사회의 변동과 공동자원』. 진인진. p48.

서대로 쌀을 받음 A와 C, A와 E: 부등가 노동의 교환. 밭을 밟기 위해 1일 소를 빌리면, 2일~3일 김매기 노

26) 오스트롬은 커먼즈의 운영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사용자와 자원의) 명확하게 정의된 경계, 둘째, 사용규칙과 제공규칙의 현지 조건과의 부합성, 셋째, 집합적 선택장치, 넷째, 감시 활동, 다섯째, 점증

동으로 돌려줌. A와 B: 물물교환이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부조하면 다음에 다른 물건으로 돌려받음. 증답

적 제재 조치, 여섯째, 갈등 해결 장치, 일곱째, 최소한의 자치 조직권 보장, 여덟째, 중층적 사업단위(nested enterprise)이다. 이러한 운영규칙은 다양한 국가의 소규모 지역 공동체에서 커먼즈의 지속가능한 관리가 가 능했던 사례의 공통점을 추출한 것이다. 하지만 그 지역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커먼즈를 관리했던 삶의 서사

출처: 김자경. 2019. 제주의 전통적 커머닝 수눌음: 제주 목축문화의 재해석. 『제주사회의 변동과 공동자원』. 진인진. 49쪽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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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를 따라가면서 파악하기 쉽지 않으며, 이 원칙이 있다고 모든 공동체가 저절로 커먼즈를 잘 관리할 수 있는 것 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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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사람들은 커먼즈를 이용할 권리를 획득하면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큼 수익을 얻는

화시키면 자치권이 강화되는 그 점이 매력적이다.

다. 마을공동어장의 해녀들은 자신의 능력만큼 해산물을 수확하여 경제적 수익을 올린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신체적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할망바당’이라는 곳을 할당 받는다. 마을공동어장에서 비교적 수심이 낮은 곳으로 나이가 들어서도 해산

커먼즈의 변동

물을 채취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젊은 해녀들이 해산물을 채취해서는 안 된 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인클로저와 관련해서는 상당히 많은 연구와 논쟁이 존재하는데, 공통적인 점은 인

또한 마을에 큰 행사가 있어 큰 돈이 필요하여 마을기금을 모아야 하는 경우나,

클로저로 인해 커먼즈가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중세 유럽의 토지제도가 인클로저

전복과 같이 경제적 수익이 너무 커서 개인이 수익을 독점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경

로 인해 해체되는 과정을 간단하게 마글린의 논의를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다.27 전

우는 공동 노동(결석 시 벌금), 공동 배분을 한다. 전복에 비해 가격이 낮은 미역의

통적 공동체 농업은 지주에게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실제로 앞에서 언급한

경우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수확해서 판매할 수 있다. 그리고 공동 노동에

장원의 개방 경지를 살펴보면, 소농들뿐 아니라 지주들의 의무와 제한이 상당부분

참가한 집안의 형편에 따라 수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부양하는 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배분적 측면에서 지주들은 개방 경지에서 더 많은 이득을 차지

족의 수가 많거나 가장이 아픈 경우에는 조금 더 배려하는 것이다. 금채기에는 수

하기 위해 인클로저 운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인클로저로 인해 공동체 기반 농업은

확을 하면 안 되고 바다를 청소하는 날에는 모두 모여 청소를 해야 하는 의무를 진

자영농으로 이행하게 되었으며 대지주가 탄생하였다. 즉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

다. 이를 어기면 벌금이 부과된다. 이러한 합의와 관습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

의 이익이 극대화로 추구하는 집합들만 남아있게 된 것이다. 마글린은 인클로저를

는 것이 아니다. 오랜 생활을 함께 하면서 신뢰와 친분을 쌓아가면서 상호 인정을

통해 봉건주의와 장원의 해체, 계급 보다는 자산이 중요하게 되었으며, 개인주의,

받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절차가 커먼즈를 운영하는 관습과 제도이며,

자기 이익 추구, 국민 국가 같은 근대의 싹이 태어났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인클로

마을의 문화가 되는 것이다.

저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인클로저로 인해 자본주의가 탄생하였고, 자본주의는

이와 같이 마을공동체는 자율적이고 자치적이며 커먼즈를 통해 연결되어 있

다양한 인클로저 방식으로 자연과 인간을 착취 또는 수탈해왔다. 마글린의 논의를

다. 하지만 현대의 시선에서 이를 살펴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민주주의와 젠

이어받아 인클로저를 ‘커먼즈의 사유화’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고, 국가에 의한

더, 신분의 문제는 역사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입호권을 부여받은 자만이 의사

‘커먼즈의 강탈’이라는 측면에서 볼 수도 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커먼즈를 사용

개진이 가능하다. 세대주 중심의 의사개진이 되며, 이는 장남에게만 우선적으로 상

하지 않게 되어 커먼즈가 사라지게 되는 ‘커먼즈의 쇠퇴’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즉

속이 된다. 신분이나 친분을 중심으로 모인 계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협동의

인클로저는 중세에 머물지 않고 현재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바꾸며 나타나

계가 빗장을 친 담합의 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는 이러한 것들을

고 있다. 또한 인클로저는 모두의 생계 수단이었던 커먼즈를 사유화하는 모든 제

극복하기 위해 마을공동체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극복해야 할 지점과 계

도적, 기술적 사건들이다.

승해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담합은 공공성으로 극복해야 하며, 개인주의는 공동성 으로 극복해야 한다. 구성원은 자율적이지만 연결되어 있어 공동체가 커먼즈를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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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스티븐 A. 마글린. 2020. 『공동체경제학』. 경희대학교 출판문화원. pp147~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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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 인클로저가 발생한 시기와 사건은 어떤 것인지 간략히

『지방자치임시조치법』은 마을 및 읍면의 소유권을 군(郡)에 귀속시켰던 법이다. 일

살펴보고자 한다.28 첫째, 일제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이다. 토지조사사업과 산림

제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 이후 그나마 남아 있는 마을 재산들이 또다시 국유화되

조사사업을 통해 사유재산 제도가 확립되었다고 본다. 1931년 일제는 마을의 법인

고 만 것이다. 이와 동시에 마을의 자치권을 흡수하기 위해 군사독재정부는 1964

격을 없애고 마을의 재산 및 토지를 조선총독부 소유로 이전했다. 마을의 커먼즈가

년 7월 28일 『리동개발위원회 육성요강 및 리동 개발위원회 조례준칙시달』이라는

국유화된 것이다. 또한 1934년 제주에 마을마다 있었던 목축계를 마을공동목장조

명령을 내렸다.30 그 해 8월 31일까지 도지사는 리동개발위원회 설치상황을 내무부

합으로 흡수하고 세금을 부과하였다. 1934년 100여개 이상 존재했던 마을공동목

장관에게 보고하게 되었다. 이 명령에 따라 리장은 개발위원장을 겸하고 마을 내

장은 2020년 현재 50곳에 불과하다. 마을공동목장의 소유권은 지금도 국공유지,

자생조직은 개발위원회 산하에 두게 되었다. 개발위원회는 주민들과 마을의 대표

사유지, 마을 소유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마을공동목장은 몇 십만 평에 이르

성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 농촌 마을에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개발위원회는 마을의

는 넓은 땅이 한 곳에 있기에 골프장이나 리조트 개발에 상당히 유리한 편이다. 국

각종 이권 사업에 독자적으로 개입하면서 마을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도 다수

유지는 토지강제수용 등 강경한 수단을 사용하지 않고서 환경영향평가만 통과되

존재한다. 군사독재정부는 마을의 재산을 국공유지로 이전하여 자립의 기반을 빼

면 바로 개발업자들에게 매각되어 사유지가 되고 있다. 한편 일제강점기 때 커먼

앗았으며, 개발위원회를 설치하여 마을의 자치권을 흡수하며 마을을 통제했다. 결

즈를 수탈한 역사는 그 당시로 끝나지 않고 현재에 국유지의 사유지화로 다시 등

국 마을은 말단의 행정단위로 남게 되고 말았다.

장하고 있다.

한편 커먼즈는 인클로저가 아닌 기술 발전을 통해서도 해체의 길을 가고 있다.

실제 제주의 한 마을에는 일제강점기 때의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한 커먼즈 문

제주의 마을에서 중요한 식수원이었던 용천수는 상수도가 도입되면서 상당수 사

제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사건으로 일어난 사례가 존재한다.29 대대손손 마을의 커

라졌다. 경운기, 트랙터,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해 마을공동목장의 필요성을 상실하

먼즈였던 방목지는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군유지로 등록되었다. 그러

게 되었다. 마을공동목장은 이제 개발압력에 놓이게 되었으며, 국가 공권력은 개

나 여전히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마을의 관습에 따라 이용하고, 관리해 온 방식 그

발업자들의 편의를 도울 뿐이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탑동 매립 반대운동, 골

대로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마을에서 이용하고 관리해 왔다. 우리의 것

프장 반대운동은 마을공동어장과 마을공동목장을 지키려는 마을공동체의 저항이

이라 인식되었던 그 마을공동목장에 외국자본이 투자하면서 리조트 개발 대상지

었다. 국책사업 역시 토지강제수용을 통해 마을에서 살던 사람들을 인클로저 하고

가 되었다. 당황한 마을 주민들은 그제서야 마을공동목장에 대한 소유권을 확인하

있다. 개발압력(시장)과 공권력(국가)에 맞서 지역에서 생존의 삶터를 지켜 나가고

며 법정투쟁을 하게 되었지만, 결국 임대료를 지불했던 기록 때문에 대법원 패소

자 하는 사람들의 저항은 어디에서나 있었고, 삶터를 지키는 저항 자체가 커먼즈

에 이르렀다.

를 지키는 것이다.

다음으로 1960∼1970년대 군사독재정부 시기의 지방자치임시조치법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살림살이’를 구성해 온 커먼즈는 해체되고 있고, 소멸의 위

28) 김자경. 2019. “공동자원을 둘러싼 마을의 의사결정구조와 공동관리: 제주 행원리 사례를 중심으로”. 『환

30) 국가기록원에서 ‘리동개발위원회 육성요강 및 리동개발위원회 조례준칙 시달’ 자료를 확인할 수 있음.

경사회학연구 ECO』 23(1). pp70~71.

(http://theme.archives.go.kr/viewer/common/archWebViewer.do?bsid=200301012410&dsid=00000000

29) 홍창빈. 2015. “제주 상가리 공동목장 소송 ‘패소’...중산간 빗장 풀리나?” 『헤드라인제주』 2015. 3. 26.

0045&gubun=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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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기에 놓여 있다. 마을에서 살고 있지만, 마을공동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증

형태로 다시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가하고 있다. 농촌도 마찬가지이지만, 도시에서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어떠한

협동조합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장 경제에서 다른 기

도움도 서로 주지 못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생존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

업들과 경쟁을 해야만 했고, 복지국가 정책이 강화되면서 협동조합 운동이 상당히

해 더욱 시장과 국가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시

약화된 시기도 있었다. 기업들과의 경쟁 속에서 협동조합이 도산된 경우가 속출했

고립된 개인으로서, 파괴된 자연 조건 속에서 어떻게 생존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 시장의 일부로 전락하면서 주변화 되었다. 또한 협동조합의 일부 사업들은 공

과제가 대두되고 있다. 커먼즈에 대한 새로운 욕구가 드러나고 있다.

공부문의 일부로 재편되기도 했다. 협동조합은 2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사회적 으로 주변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면서 가부장적 국가는 복 지 정책을 더 이상 강화시키지 못했으며, 노동 유연화 등으로 완전고용 신화가 무

커먼즈, 협동조합의 오래된 미래

너지면서 협동조합의 가치가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이제 경제는 시장 경제, 공 공 경제, 사회적 경제의 세 바퀴로 굴러가고 있다.

실제로 보릿고개가 사라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다시 생존을 위해 노력하

최근 학술분야에서 커먼즈를 주제로 한 연구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농촌 양돈

고 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지는 사회에서 탈출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무

장의 악취문제31, 국책사업에 대한 대항32, 농촌 마을만들기33 등 지역재생의 문제,

장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대학입시에 공무원 시험에 달려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

돌봄의 문제34, 에너지 문제와 기후위기35, 지식의 독점36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

속에서 다른 삶을 상상하기란 무척이나 어렵다. 그런데 대안을 상상하고 실현하는

기 위한 이론적 개념으로 커먼즈를 소환하고 있다. 커먼즈 관련 연구들은 공통적

개척자들이 존재했다.

으로 자본주의의 성장방식을 비판하면서 시장이 인클로저(사유화 및 독점화) 하고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지독하게 노동자들을 무너뜨렸다. 삶의 터전인 커

있으며 국가가 이를 지원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국가는 공공성을 구현하는 것

먼즈를 빼앗긴 사람들은 도시로 나가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값싼 임 금으로 생필품을 모두 시장에서 얻어야 했지만, 조악한 밀가루와 깨끗하지 못한 우

31) 김자경. 2017. “커머닝 개념을 통한 마을의 문제 해결 방안에 관한 사례 연구-제주 금악마을의 양돈 악취문 제 해결과정을 중심으로”. 『로컬리티 인문학』17.

유 밖에 구하지 못했다. 일자리도 제대로 구할 수 없었으며, 열악한 일자리에 내몰

32) 윤여일. 2017. “강정, 마을에 대한 세 가지 시선: 커먼즈에서 커머닝으로”. 『환경사회학연구 ECO』 21(1). 정

린 이들은 국가의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시장경제에 내몰린 이들은 시장의

“제주 제2공항과 민주주의 그리고 기반시설 공동관리자원의 가능성”. 『기억과 전망』 39.

규칙에 따라 굶는 것 말고는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 커먼즈를 통해 보호받았

영신. 2018.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투쟁과 강정마을 공동체의 변동”. 『탐라문화』 58. 장훈교, 서영표. 2018. 33) 최현, 김선필. 2016. “공동자원의 지속가능성과 마을만들기 전략”. 『공간과사회』 26(4). 최현. 2017. “선흘1 리 마을만들기와 공동자원의 지속가능성” 『환경사회학연구 ECO』 21(1). 김자경, 최현. 2020. “공동자원을 활용

던 이들은 전통적인 촌락공동체에서 벗어나 원자화 된 개인으로서 모든 사회적 위

한 농촌 마을만들기- 제주 하례1리의 효돈천 생태관광”. 『지역사회연구』 28(1).

험이나 필요에 대처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무기력하

21(1). 홍덕화. 2018. “생태적 복지 커먼즈의 이상과 현실: 한살림서울의 돌봄사업을 중심으로”. 『환경사회학연

게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들은 협동을 선택하였다. 서로 모여 한두 푼 모아 출자를

34) 백영경. 2017. “커먼즈와 복지: 사회재생산 위기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위한 시론”. 『환경사회학연구 ECO』 구 ECO』 22(1). 35) 홍덕화. 2019. “에너지 민주주의의 쟁점과 에너지 커먼즈의 가능성”. 『환경사회학연구 ECO』 23(1). 안새롬.

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문제 해결을 시작하였다. 바로 ‘로치데일 공정개척자조합’

2020. “전환 담론으로서 커먼즈: 대기 커먼즈를 위한 시론”. 『환경사회학연구 ECO』 24(1).

이었다. 이것이 협동조합의 시작이다. 이들은 이미 빼앗겼던 커먼즈를 협동조합의

과학연구』 59(1).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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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박서현. 2020. “한국 학계에서 지식 커먼즈의 대안적 생산에 대하여: 인문사회계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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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이 아니라 공권력을 휘두르며 대기업에게 부를 집중시켜주는 방식으로 경제 성장

야 한다. 커먼즈 역시 지역의 경계, 주체의 경계를 넘어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한

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저항의 양식을 찾는 가운데, 다양하게 직면한 문

다. ‘위험사회’는 이미 도래했으며,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사회의 회복력

제를 해결하고자 스스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고 있는 공동체 운동의 사례들을

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커먼즈가 확보될 때 회복력은 강화될 수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상호부조의 연대망을 구성하며 자치와 자립을 추구해 온 커

있을 것이다.

먼즈의 운영방식에 기대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커먼즈와 공동체의 동학은 공동체 구성원 개인의 부와 커먼즈를 이용 한 공동의 부가 동시에 상승하는 체계를 갖추었을 때 빛이 난다. 개인의 부는 커먼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한살림제주의 지역살림 운동 사례

즈를 이용하거나 커먼즈 수익 배당을 통하여 얻어지고, 커먼즈 자체도 지속가능하 게 관리되는 측면과 커먼즈 자체에서 수익이 나는 경우 이를 구성원에게 나눠지

커먼즈는 다양한 입장에서 연구되고 있다. 그 중 도시 커먼즈를 중심으로 연구하

는 측면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커먼즈에 대한 권리가 강화될수록 공동체의 자치권

는 진영에서는 커먼즈를 만들어가는 수단으로서 협동조합의 가능성을 인정한다.

은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조합 이기주의’를 보이거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어느 정도 보

앞 절에서 간략히 살펴보았지만 지구촌 어디서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다

완하는 것에 그쳐 커먼즈 운동에 비하여 협동조합 운동은 한계가 있다는 견해도

양한 인클로저에 직면하고 있다. 현대의 인클로저는 커먼즈의 사유화로 진행되는

있다.37 커먼즈 연구자들이 협동조합에 대해 비판하는 지점은 반드시 극복되어야

데, 원래 상품이 아니었던 것들이 상품화가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할 것이다. 과거 농촌의 커먼즈를 보더라도 커먼즈의 경계, 주체를 둘러싸고 상당

그리고 국책사업과 개발사업을 위한 토지수용의 문제, 지하수의 오염, 기후 위기,

히 폐쇄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마을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과 청년들이 의사결정

쇠락한 도시, 돌봄의 위기, 지식의 독점 등 인클로저는 다양한 모습으로 기세를 떨

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구조는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아니다. 커먼즈에서도 이

치고 있다. 때문에 커먼즈는 사회 혁신을 위해, 문제 해결을 위해, 빼앗긴 것에 저

른바 ‘빗장을 친 커먼즈’ 역시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시대적으로도 일제강점기까

항을 하기 위해, 사회 생태적 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문제를

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협동조합 운동의 역사가 긴 만큼, 협동조합은 성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즉 자연자원을 공동으로 관리했던 커먼즈의 영역이

공과 실패의 역사가 함께 한다. 법률적으로 협동조합법에 따른 법인의 형태를 띤다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커먼즈 운동의 영역에서 협동조합은 상당한

하더라도 협동조합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협동조합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생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각한다. 협동과 담합이 다르듯이 빗장을 친 커먼즈에 해당하는 다른 단어가 필요하

위기의 시대에 협동조합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한 원인은 커먼즈 가 인클로저 되면서 벌어진 커먼즈의 해체와 소멸에 있다. 커먼즈를 복원하는 일

다. 따라서 협동조합의 조합원 중심주의와 빗장을 친 커먼즈는 경계를 넘어 지역사 회에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은 매우 중요하며, 협동조합은 커먼즈를 복원하는데 상당히 유용한 도구이다. 협동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협동조합의 담을 넘어 지역사회와 연대하기’라는 문

조합이 커먼즈가 되어야 한다. 물론 협동조합이 조합원 중심주의로 가서는 안 될 것이며, 협동조합 원칙에서도 나타났듯이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협동조합이어

모심과 살림 _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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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이광석. 2020. “커먼즈, 다른 삶의 직조를 위하여: ‘피지털’로부터 읽기”. 『문화과학』 101.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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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제의식을 가지고 ‘지역살림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살림제주소비

회적경제 주체들이 만든 물품을 판매하기 위한 매대를 ‘스토어36.5 제주점’라는 이

자생활협동조합>(이하, 한살림제주라 함)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한살림제주

름으로 설치하였다. 한살림 매장 안에 한살림 물품이 아닌 지역의 사회적 경제 물

가 처음 ‘지역살림’ 운동을 시작했을 때는 커먼즈 운동이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하

품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2015년 대의원 총회에서는 대의원들의 의

지만 커먼즈 개념이 화두가 되면서 지역 살림 운동과 커먼즈 운동이 서로 다르지

결을 거쳐, ‘한살림 가치 확산을 위한 지역살림 운동의 활성화’가 활동 부문 주요

않음을 느끼고 있다.

사업 목표가 되었다.

한살림 운동의 비전은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이다. 1986년 한살림이

2014년부터 한살림제주는 한시적으로 ‘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한

설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생명운동을 지향했다. 한살림 운

살림제주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들을 검토하였다. 제도개선특별위원회는 1년

동은 명칭 상 소비자 중심의 협동조합이라 여겨지지만 ‘생산자와 소비자는 하나

활동의 결과 한살림제주의 사업과 활동을 평가하기 위해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

다’라는 구호를 의식적으로 되새기면서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하지 않은 생활자

고 판단하여 2015년 대의원총회 때 ‘사회적회계’ 도입을 제안하였다. 한살림제주

의 입장에서 전개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생활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문제에

는 사업체로서 회계 감사 및 활동 감사를 받기는 하지만, 매출액으로 평가되지 못

직면하게 되었다. 한살림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오랜 학습과 숙의를 거

하는 다양한 활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조합원과 지역사회에 설명을 할까 고

쳐 새로운 비전을 추가하였다. 2006년 2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추가되어진 한

민했었다. 한살림제주가 왜 제주에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했

살림 운동의 비전이 ‘지역살림’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직거래 및 먹을

다. 2015년 대의원 총회의 의결에 따라 한살림제주는 사회적회계 실행팀을 만들

거리와 생활재의 공급을 넘어서, 조합원들의 생활을 서로 돌보고, 지역사회에 기여

어 사회적회계에 대해 공부를 했다. 단어조차 생소한 사회적 회계에 대해 이사회,

하는 한살림 운동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현재 한살림의 몇 지역에서 돌봄 사업, 로

대의원, 조합원과 이해당사자들에게 거듭하여 의견을 구하고, 설문지 조사와 핵심

컬푸드 사업 등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한살림 전체를 돌아보았을 때 얼마

이해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사명과 가치, 목적과 활동을 정했다. 그리고 2016년 사

나 지역살림을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는 낮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살림제주의

회적회계 감사를 처음 받았다. 현재는 사회적 회계를 적용해 한 해의 계획을 수립

사례는 한살림 전체에서도 새로운 도전이며, 지역에서 한살림의 정체성을 찾기 위

하고 평가하는 체계로 대의원총회 자료집을 만들고 있다. 한시적 기구였던 제도개

한 고군분투의 과정이기도 하다.

선특별위원회는 2019년 ‘제도개선위원회’로 명칭을 바꾸어 한살림제주의 상설위

한살림제주는 2008년 5월에 창립되었으며, 2012년부터 매장사업과 공급사업

원회가 되었다.

이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한살림제주는 노형 매장에 조합원들이 장을 보다가 편하

현재 한살림제주의 사명은 한살림의 비전과 동일하며, 가치는 ‘모심과 살림의

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예상하고 소통카페를 만들었다. 소통카페는 공간의 협소함

자세로 생산과 소비를 통해 지역순환과 생태적 삶을 실현하는 생명과 평화의 곳간

도 있고 매장 안쪽에 있어, 지금은 각종 위원회, 소모임, 이사회 등의 회의 공간, 요

이 된다.’이다. 한살림제주의 활동목적으로서 첫째, 건강한 먹거리 공급, 둘째, 가까

리 강좌 등 교육 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조합원 소통의 최전선은 역시 매장이다.

운 먹을거리 체계 구축, 셋째, 조합원 자치, 넷째, 협동조합 지역사회 만들기, 다섯

한살림제주는 현재 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 동네별 특색을 담은 특성화

째, 조합원 필요의 환경생태적·공동체적 해결, 여섯째, 조합원 자기 계발, 일곱째,

매장이 될 수 있도록 기획 중이다. 그리고 2013년에는 한살림제주 노형 매장에 사

사업 및 활동역량 강화이다. 한살림제주는 사회적회계를 통해 사명과 가치를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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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하기 위한 목적과 활동을 매년 점검하면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한살림제주에서 제주 산지를 찾기 위해 상당히 노력한 사례이다. 자연방사식 계란

러한 과정은 내부 혁신의 길을 탐색하고, 본격적으로 지역과의 연대의 길을 모색하

은 계절에 따라 생산량이 다르다. 또한 2014년 세월호 이후 해상 물류가 상당히 불

는 일이기도 하다. 조합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조합원들만의 한살림이 아니라 제주

안정하게 되었고, 조류독감, 구제역 발생, 기후위기로 인해 이 불안감은 더 커지게

의 한살림이 되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다.

되었다. 따라서 최소한 지역에서 계란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관행식으로 계사를 운

한살림제주의 첫째 목적이 ‘건강한 먹거리 공급’인만큼, 먹거리와 생활재 등을 조합원에게 직접 공급하는 사업을 수행해왔다. 2012년에는 <수눌음자활센터>와

영하던 농장을 섭외하여 재래닭 계란을 공급받았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형편이지만 계란농장의 경영 상 2020년에 폐업을 하게 되었다.

협약을 통해 주문공급 배송업무 협업을 시작하였고 이후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

이와 같이 2015년 사회적회계에서 가까운 먹을거리 체계 구축을 목적을 정하

을 위한 <제주희망협동조합>이 물류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한살림제주는 공급

였지만 구체적인 사업으로 추진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

사업을 <제주희망협동조합>에 위탁하게 되었다. <제주희망협동조합>은 사업 초

던 차에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기반구축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서

기 시장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한살림제주가 시장을 제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새로운 매장과 물류센터를 설립하기로 기획하여 2020년 한살림 가치를 담아내고,

한살림제주는 공급사업에 따르는 직접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

지역 소농들을 담아낸다는 의미로 ‘담을 로컬푸드 직매장’과 물류센터를 완공하였

었다. 2020년 한살림제주가 가까운 먹을거리 운동을 위해 물류센터를 만들고, 로

다(이하, 이 둘을 모아 통칭 ‘담을센터’라 부른다). 담을센터의 내용을 제대로 담아

컬푸드 직매장을 만들면서 희망협동조합의 공급 위탁은 종료했지만, 연합물품의

내기 위해서는 생협법의 제약요소들을 넘어설 수 있는 운영주체가 필요하여 한살

제주물류, 한살림 생산지의 물류 업무는 지속해서 담당하고 있다.

림제주와 한살림제주생산자회가 공동으로 출자한 영농회사법인 ‘밥상살림’ 주식

한살림제주의 두 번째 목적은 ‘가까운 먹을거리 체계 구축’이었다. 일상에서 가

회사를 만들었다.

장 많이 먹는 콩나물과 두부, 계란은 필수적인 농산물이다. 이 목적이 수립되기 이

밥상살림이 담을센터의 사업을 구체화시켜 나가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진통도

전부터 콩나물은 제주 산지를 개발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두부와 계란은 그렇

있었다. 자금 확보보다 한살림생산자들의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한살림은 약정된

지 못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두부의 제주 산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제주 서쪽

농산물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농산물을 입점시키면 한살림

에 있는 5개 마을이 공동사업으로 두부공장을 설립하였지만, 단 한 번의 시운전 이

생산자의 입지가 약화된다는 의견이 강했었다. 이에 담을센터는 두 가지 목적을 세

후 경영의 어려움을 느끼고 방치하던 것을 한살림제주와 깊게 연계돼 있던 생산자

웠다. 첫째, 담을 센터를 통해 새로운 조합원의 확대를 꾀하고, 특히 ‘담을장’ 등 다

가 뛰어들어 본격적인 재가동에 나섰으며, 한살림제주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주살

양한 농민장터를 주말마다 개최하여 조합원이 아닌 지역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림이라는 두부 생산 법인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후 한살림제주에서는 매년

기획하였다. 조합원이 증가하면 한살림생산자의 약정물량이 자연스레 증가할 것

6개월 치에 해당하는 정도의 두부 선급금을 제공하고 이후 두부로 물건 값을 받고

이라는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실제로 담을장 등 농민장터를 방문한 지역 주민들이

있다. 이 선급금은 제주살림의 두부콩 수매자금이 되었으며, 두부로 받던 6개월치

담을 로컬푸드 직매장을 이용하고, 이들이 한살림조합원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선급금을 다 갚게 되면 이후는 한살림제주에서 두부를 직접 구매하는 것이다. 현재

지역 소농들이 기댈 언덕 즉 시장이 되어주는 것이다. 소농들이 장터나 직매장에

제주살림에서 개발한 ‘마른 두부’는 한살림의 연합물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계란은

출하를 하고, 여기에서 호응이 좋은 것은 한살림제주의 지역물품으로 선정하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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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를 다시 연합 물품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한살림제주의 입장에서는 겨울작목 주

협약을 맺고, ‘솜뽁살레’라는 나눔 냉장고를 주민자치센터에 추가로 설치하였다.

산지가 된 제주 농산물의 다양한 구색을 맞출 수 있으며, 지역 소농들 역시 농산물

나눔 냉장고의 특성 상 가공품 위주로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다. 한살림제주의 조

판매 수익이 올라가고 있다. 특히 한살림 담을장은 매월 초에 한 번 열리지만, 다른

합원 활동팀에서는 조합원들의 자원봉사를 조직하여 신선한 한살림 농산물로 반

주말에는 지역의 소농들이 모여 스스로 농민장터를 개최하고 있다. 담을장 공간은

찬을 직접 만들고 이를 취약계층에게 전달하고 있다. 한살림제주에서 돌봄사업의

소농들 간의 교류의 장이 되면서 다양한 활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편 담을장 등

시작인 셈이다. 또한 비닐 사용과 쓰레기 문제가 제주사회의 심각한 현안으로 대

농민장터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다보니 처음에는 주차 등의 문제로 민원이 발생하

두되면서 재활용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일장 등지에서 비닐 없는 장보기 캠페인을

였으나, 다양한 시도 끝에 주변 상점들의 주차장을 함께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장

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시도들이 일회적인 행사에 머물지 않기 위해 임의단체를

터가 열리는 날은 한살림제주의 매출뿐만 아니라 주변 상권의 매출이 동시에 오른

따로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고, 2020년 11월 25일 ‘한살림제주모심회’의 발기인대

다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살림제주 담을센터와 지역상권이 함께 혜택

회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한살림제주모심회는 한살림제주의 조합원과 지역사회

을 본다는 경험을 토대로 2021년에는 지역상권과 지역주민들이 함께하는 공간이

를 망라하는 돌봄재단이 될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될 수 있도록 담을센터의 새로운 역할을 구상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한살림제주는 건강한 먹거리와 생활재의 판매에 그치지 않고, 다양

한살림제주의 세 번째 목적인 조합원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위원회, 마을모임,

한 사업을 통해, 제주 커먼즈의 전형인 수눌음 연결망처럼, 지역 내에서 연결망을

소모임의 규약을 정비하고, 활동지원비를 상당히 증가시켰다. 한살림제주의 회계

지어내고 있다. 이것이 플랫폼으로서 커먼즈의 역할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년 대

상으로는 비용으로 처리되지만,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조합원들의 활동비로 사용

의원총회를 준비하는 총회준비위원회에서는 한살림제주가 왜 제주에 필요한가를

되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배당이라고 생각된다.

항상 질문하고 있었다. 이제 이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보이기 시작했다. 한살림제

한살림제주의 네 번째 목적인 협동조합 지역사회 만들기 위해서도 다양한 시 도를 하고 있다. ‘우렁각시’ 소모임은 제주 강정의 마을 활동가들을 위해 2012년부

주는 제주의 커먼즈가 되고 싶은 것이다. 용천수처럼, 곶자왈처럼, 오름처럼, 한라 산처럼.

터 매월 한살림 식재료로 식사를 준비하는 모임이다. 적은 액수지만 한살림제주 의 예산 지원과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소모임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2016년 이사회에서는 매번 지역 사회에 어떤 일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모금을 하

나가며

는 것보다 한살림제주의 매출 중 일부를 모아 ‘지역사회공헌기금’으로 조성하자는 결의를 하기에 이르렀다. 2019년 제주 성산 제2공항 반대를 위한 활동가 모임 ‘공

커먼즈는 공동체의 기원이다.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커먼즈를 이용하기 위해 사람

항마랑’팀이 한살림제주에 구성되었고, 이 팀의 활동지원을 위해 이 기금이 처음

들이 모였다. 비록 그 양이 부족할지언정 누구에게나 불공평하지 않게 이용할 수

으로 사용되었다.

있게 규약을 정하면서 공동체가 되었다. 커먼즈를 중심으로 상호부조 문화가 형성

한편 2020년 5월 담을센터를 개소할 때 나눔 냉장고를 설치하였다. 취약계층

되었고 마을 공동체가 만들어졌다. 커먼즈는 개인의 부와 공동의 부가 연동되는 구

에게 먹거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담을센터가 있는 주민자치센터와 업무

조를 가진 공동의 생산수단이자 모두의 자원이 되었다. 시대를 넘어 공간을 불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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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연재 - 협동조합으로 커먼즈 만들기


고, 커먼즈라 불리는 것의 공통점은 공동체를 통해 자원을 함께 생산하고 관리하 며 스스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 공동 생산수단의 지배력이 마을이나 길드와 같은 결사체에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의 이용을 배제할 수 없는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는 젠더 의식과 민주주의 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 고 싶다. 하지만 현재 커먼즈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새로운 필요가 등장했고, 시장 과 국가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커먼즈에 접근 하는 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아나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문제를 혼자 의 힘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 나가고자 크고 작은 모임을 만들어 왔다. 그 모임이 어 떠한 명칭으로 불렸던지 스스로 참여하고자 나서는 행동이 중요하다. 그것이 계였 고, 협동조합이다. 시장과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와 새로운 필요가 발생함에 따라 다양한 시각으로 커먼즈를 접근하려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을 통해 전 세계는 하나로 이어졌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 었다. 물리적 거리를 둔 만큼 사회적 거리(신뢰)를 어떻게 가깝게 할 것인가 고민 하게 되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다. 커먼즈적 삶의 원 형을 살펴보면서, 다시 사람들과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먼즈를 재구성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 의 복원, 공동체의 복원일 수 있다. 협동조합은 커먼즈를 만들어가 가는데 유효한 수단이며, 커먼즈의 운영 원리에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살림제주의 사례는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지역살림 운동을 통해 생활의 장에서 연결망을 지어내고자 도전하고 있다. 한살림제주에서 시작한 도전 이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모두의 공생을 위해, 지금 여기, 할 수 있는 자신의 방식으로 커먼즈를 만들어 나갈 때이다. 커먼즈는 해체되고 소 멸되고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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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과 살림

2020

연구소 활동들 ① 청년다양성포럼을 시작하며 ② 청년 주체가 고민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건들 ③ 2020 진행한 생명·협동연구들


모심과 살림

피로감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 능동적인 주체로 인정되지 않

2020

고, 교육받고 훈련 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조 직의 의사결정은 나이가 많고 경험이 충분한 사람들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청년들 은 수식어로만 소비되고, 그들의 주장은 이상적이고 현실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되 고 만다. 실제로 조직의 방향성을 모색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청년들의 움직임은 실 현되지 못하고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만 맴돈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어

청년다양성포럼을 시작하며

느 순간부터는 청년들 조차도 상상력을 발휘하는 창의적인 주장보다는 현재에 안 주하는 선에서 고민을 멈춘다. 이상을 실현하는 일은 더 많은 경험이 쌓이고 난 뒤 의 문제로 인지된다. 조직에서 청년들이 의지를 잃고 이탈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청 년들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김진아(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원) 대학 내 학생 주도권 회복을 위해 대학생협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모심과 살림연구소에서 활동 중이다. 누군가에 의해 종속되는 삶이 아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꿈꾸며 사회적경제 영역과 협동조합 조직이 가지는 다양한 가 치와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사회 속 청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나이 중심 권력 구조 속에서 청년은 늘 동등한 주체가 아닌 지원과 보살핌의 대상이 되어왔다. 우리 사회가 쉽게 청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 했기에 늘 청년들은 주체로 설 수 없었다. 그동안 청년 정책을 생산하는 주체는 청 년 당사자가 아닌 기성세대였다. 그들이 말하는 청년은 기성세대의 조언을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따르는 ‘건전한’ 청년이었다. 이 속에서 청년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처음 연구소의 청년다양성포럼을 알게 되었을 때,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다. 왜냐하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없는 존재로 인식되었고, 획일화된 청년 정의로 인해 다양

면 ‘청년’과 ‘다양성’은 우리 사회가 주목하는 좋은 단어지만, 실제로는 청년 정체

한 청년들의 목소리가 소외되고 배제되기도 했다. 기성세대의 방식은 다양한 청년

성과 다양성의 가치가 소모적인 이미지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삶이 날이

주체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막고 그들이 허용한 틀 안에서만 청년 담론이 생산되고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정치권에서는 청년들을 위한다는 여러 정책들을 쏟아내고,

실행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늘 청년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며 희

민간 영역에서도 미래세대인 청년을 주요 소비 계층과 주된 인력으로 인지하며 여

망을 이야기했지만, 반대로 현실에서 청년들은 그들이 만들어 놓은 틀 외에서 아무

러 지원 정책으로 청년들을 유입할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 당사자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입장에서는 청년 의제와 지원 정책들에 피로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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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능동성이 훼손된 사회에서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 청년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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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과 살림, 2020 - 연구소 활동들


회의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사회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

회의 변화를 이끌어갈 주체와 결합할 수 없다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뿐

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이미 많은 청년들이

더러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도 없다. 지역살림의 가치 실현을 위해 지역

당사자성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성세대는 기존에 만들어

활동 활성화를 고민하면서 정작 지역 청년들이 본인의 주거지조차 안정적으로 확

놓은 사회 구조에 익숙해져 변화에 저항력이 있는 반면, 청년들은 새로운 상상력

보하지 못하는 상황을 외면한다면 조직이 이야기하는 지역 활동이 그들에게 어떠

을 통해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새로운 사회의 변화를 위

한 의미가 있을까.

해서는 청년들의 활동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 때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지금 현재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력을 실현하는 조직에 청년들이 없다면, 우

‘기특한’ 청년으로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동등한 동료로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리 조직의 메시지가 그들과 함께 가고 있는지, 그리고 미래를 향한 것인지를 돌아

사회 전체의 변화는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봐야 한다. 기계론적 문명에 대항하고 1차 생산자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생명운동

조직의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 경험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회

을 지향하는 한살림의 메시지는 어떠한가. 청년들은 이미, 그리고 적어도 농업, 생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하고자 하는 능동적 주체들은 당사자의 필

명으로부터 멀어진 세대일지도 모른다. 농촌파괴를 통한 도시 인력 유입이 청년들

요와 욕구에 의해 의견을 나타내고 이를 통해 다양한 담론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에게 생명력이 아닌 노동력 중심의 자기 개발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

가능성을 가진다. 사회 경험을 가진 주체와 문제 해결의 의지를 가진 주체가 동등

회의 요구로 청년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기보다 사회의 부속

한 주체로서 협력하고 연대하여 조직의 방향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회의 변화를 위

품처럼 살아갈 것을 강요당한다. 이런 사회에서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빚에 허덕이

한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대안 사회를 이야기하는 사회적경제 조직에서조차 자

며, 미래를 위해 현재의 삶(건강한 식사 등)을 포기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건강

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청년을 조직 안에서 중요한 주체로 세우지 못했고, 그들의

한 먹거리에 대한 필요성과 농촌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이고 있

주장을 늘 사업의 후 순위의 문제로 여겼다. 청년들의 주장은 늘 ‘호기로운 도전’으

기도 하다. 다만, 기존의 방식과 다른 방식을 원할 뿐이다. 이러한 청년들의 절실함

로만 소개되고, 그 누구도 그들과 연대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삶을 안타까워했지만

에 부응하지 못할 때 한살림의 메시지는 와 닿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조직의 중요한 담론으로 확장시키지 못했다.

한살림 운동의 메시지는 사회의 강요에서 벗어나서 청년들이 자기 삶의 주체 로서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 혹은 수단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한살림에서의 청

우리 사회가 ‘진짜’ 변화를 희망한다면

년 담론이 그들을 약자로 규정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만 그치거나, 소비계 층으로만 바라본다면 결국 청년들은 한살림의 메시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조직과

일 수 없거나, 삶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연대체로의 고민까지 확장되기

앞으로의 미래를 만들어갈 청년 세대가 만나야 한다. 만나서 우리 사회의 방향성

가 어려울 것이다.

을 재설정 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조직의 지향과 미래 세대의

30년 전 한살림 운동은 새로운 변화를 희망하는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가치가 교차하는 지점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만일 조직의 지향이 미래 사

때의 한살림 운동을 만들어낸 것은 사회 문제를 자신의 삶의 문제로 받아들인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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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주체들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롭

돌아보며 노동 가치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하고 있다. ‘먹거리’라는 키워드로는 육

게 상상하고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행동들로 늘 사회는 변화해 왔다. 그동안 청년

식 중심의 식문화가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되짚어 보며 인간 중심 사고

들은 자신들의 의제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리고 현재에도

에서 모든 생명을 향하는 사고로의 전환을 고민하는 중에 있다. 더하여 ‘노동’과

이미 많은 청년 주체들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건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변화시

‘먹거리’ 담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 착취와 동물 착취의 종착점인 자본주의

키기 위한 상상력을 실천하고 있다. 청년 주체들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향한 상상

사회 구조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눌 예정이다. 이것은 시작이다. 미담의 활동에

력을 키우고 실천할 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우리의 고민이 상상으로만 그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란다.

지 않고 실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조직 안에서 청년 주체들이 움직일 활동 기반 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실현할 단위들을 조직하며 다 른 단위들과 접점을 확대할 수 있는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 한살림은 청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갈 미래를 상상하려는 노 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은 모심과살림연구소의 청년·다양성포럼은 이런 상상력의 시작점이다. 각자의 욕구 와 필요, 그리고 상상력을 토대로 개인의 고민을 우리의 고민으로 확장하며 더 나 은 사회를 위한 조건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청년이 대상으로만 소 비되지 않고, 사회의 동등한 주체로서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담론을 고민하고 실천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우리의 활동을 ‘미담(미래를 위한 담론)’이라고 이름 지었다. 우리의 활동은 현재에 안주하는 대안보다는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상상력을 키워 나가는 데 중점을 두고, 지속해서 다른 청년 조직들과의 협력과 연대를 통해 우리 의 상상을 실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올해는 ‘노동’과 ‘먹거리’라는 키워드를 설정하여 개인의 생활에서의 고민을 우리의 고민으로 확장했다. ‘노동’이라는 키워드로는 불평등과 차별을 넘어 변화 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노동의 정의를 고민하며,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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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과 살림

다. 포럼에서는 ‘모두 함께 행복한 사회’라는 주제로 두 키워드의 교차점에 대한 이

2020

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아래 글은 ‘노동’과 ‘먹거리’ 각각에 대해 우리가 함께 생 각해 보아야 할 지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청년 주체가 고민하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조건들 청년다양성포럼

미담 워크숍 당일 사진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는 생명·협동운동에 대한 청년세대의 담론을 형성하기 위 해, 2019년부터 청년다양성포럼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는 ‘청년의 삶과

미담 노동팀

협동운동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포럼을 진행했고, 2020년에는 ‘모두 함께 행복 한 사회’라는 주제로 공부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 없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2020년에는 5명의 청년들이 모여 지난 5월부터 월 2회 전체 모임을 진행했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우리사회는 ‘노동’에 단순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노동’, ‘먹거리’ 키워드 공부모임을 매주 1회씩 진행하고 있습니다. 모임은 서로 관

의미를 넘어 인간의 도리로서, 최소한의 의무로서, 도덕적 의미로 많은 비중을 두

심있는 책이나 논문을 발제 하고 토론하며 논의와 관련된 법제도, 사회 현상 등을

어 왔다. 노동의 유무를 기초로 하고 있는 여러 사회보장제도가 이러한 상황을 반

조사하여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9월에는 우리의 고민을 더 많은 이들과

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관념은 개인이 노동의 유무를 고를 수 있는 상황일 때나

나누기 위해 워크숍을 진행했으며 워크숍에서 나온 다양한 이야기는 모심과살림

가능하다. 기계화, 감염병,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미친 듯이 요동치는 사회를 보고

연구소 누리집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1월에는 ‘비건 실천 2주 캠페인’을 진행

있노라면 앞으로 노동을 할 수 있고, 아니고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닐

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올해의 활동을 총 정리하는 전체 포럼을 기획하고 있습니

것만 같다. 그리고 소위 ‘좋은 일자리’라고 불리는 고수입의 안정적인 일자리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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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특권이 되었다. 점차 부모가 자녀에게 단지 재산을 물려주는 부의 세습만이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사회계약은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변화된 노동의 정의를 포

아니라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가 자녀에게 본인과 같은 좋은 직업을 갖도록 하는

함하는가? 제도상의 중대한 하자는 없는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한가? 등

인적자본의 세습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는 것은 그야말로 천

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이 제도들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되면 근본적인

운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전환의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렇듯 기술과 노동시장의 변화 속도에 비해 노동에 대한 관념은 더디게 변화

그 다음으로 미담 노동팀은 ‘어떤 노동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현재 우

하고 있다. 이미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지는 오래됐고, 지금은 다양한 고

리나라 노동시장에 공고히 자리 잡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블루칼

용형태의 등장, 기술적 실업 등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네이버의 시가총액이 현

라, 화이트칼라 노동 구조는 흔들리고 있다. 기존의 노동 구조가 무너지고 난 자리

대자동차의 2배임에도 직원 수는 1/20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키오스크 한 달 렌

에는 어떤 노동이 있을까? 그 전에 ‘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탈비가 아르바이트생의 한 달 임금과 비교했을 때 1/10 비용 밖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해보자. 이제껏 우리에게 노동은 ‘생계유지를 위한 유급노동’ 그 이상도 이하

사실, 이미 제조업·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고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도 아니었다면 좀 더 인간적이고 덜 고통스러운 노동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빈번하게 들려오고 있다.1 이제는 새로운 노동의 정의를 내려야 하며 새로운 사회

변화한다고 해서 더 나빠지기만 하라는 법 있는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

안전망을 생존의 문제로 인식해야 된다는 경고메시지를 주고 있는 듯하다.

화가 다가오고 있다면 이 시점을 기존의 노동과 다른 좀 더 인간적이고, 안전하고,

코로나가 종식되고 경제가 다시 안정화되면 일자리를 잃었던 사람들이 다시

주체적인 노동으로 변모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 보자.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금융위기(2008-2010)때 49개의 직업이 사라지고 일 자리 84만개가 줄었지만 사라진 일자리는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2 일시적으로 일 자리가 없어졌다가 경기가 안정화가 되면 다시 일자리가 되돌아오는 순환 고리가

미담 먹거리팀

끊겼다는 뜻이다. 앞으로는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직업과 일자리가 사라져 돌아 오지 못할 것이다. 이미 우리 동네, 내 주변에서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

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서 서서히 밀려오는 기계와 기술 자본에 잠식

미담에서 ‘먹거리’를 키워드로 논의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모두

당할 것인가. 앞으로 다가올 충격에 대비할 완충제가 필요하다.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식량불평등, 소비자 알 권리, 유기농,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미담 노동팀은 기존의 사회안전망을 뜯어 고치는

GMO, 환경, 건강 등 다양한 키워드를 이야기했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현재를 살

대대적인 공사가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아예 새로운 사회안전망에 관

아가는 우리가 어떤 것을 먹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와 닿았다. 이런 고민을

한 논의가 될 수도 있다. 가장 많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전 국민 고용보험’과 ‘기본

처음 던졌을 때, 다수가 가장 공감했던 것이 바로 ‘육식 중심의 식생활’이었다. 누군

소득’이라는 제도들이다. 미담 노동팀은 이 두 가지 제도를 중심으로 앞으로 우리

가의 생명을 해치면서 나의 식탁이 차려지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 왔다. 하지만 ‘모두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이야

1) 안용성·윤지로·배민영. “노동4.0 별 ‘일’ 없습니까? [특집 기획].” 『세계일보』 2020.06.06.

기하면서 늘 배제되어 왔던 생명을 더 이상 외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 어떤

2) 안용성·윤지로·배민영.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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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도 배제되지 않는 먹거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도서 『동물해방』, 『사랑할까 먹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이걸 벗어나자

을까』, 다큐멘터리 <잡식가족의 딜레마> 등 다양한 컨텐츠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고 말하면 누군가는 인간조차 인간으로 대우받기 어려운 사회인데, 이걸 더 넓히는

나누었다.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어쩌면 보지 않으려고 했던 육류 생산에 얽

것이 중요하냐’고 되물을 수도 있다. 물론 중요하다. 레이첼 카슨은 “인간의 힘으로

힌 이야기를 접하면서 지극히 인간만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사회를 돌아볼 수 있

자연을 통제하고, 바꾸고, 파괴시키려는 모든 노력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

었다. 인간의 막대한 육류 소비를 뒷받침할 수 있게 한 공장식 축산은(공장에서 물

움으로 발전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자연과 화해하지 않는 한 절대로 이 싸움에서

건을 찍어내듯 더 많은 고기 생산을 위해 작은 공간에 많은 생명을 밀집시켜 사육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2020년을 뒤덮은 코로나도, 환경파괴로 인해 발생한 지구

하는 축산 방식) 윤리적 문제와 더불어 환경 파괴와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되는, 결

곳곳의 화재를 비롯한 자연재해도 모두 인간 중심적 사고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코 외면해서도, 할 수도 없는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

결국 지구를 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게 돌아온다.

게 되었다.

육식 중심 식생활도 순전히 먹거리 문제를 인간 중심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의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에 대한 고민은 ‘인간 중심’에서 ‘모든

가능하다. 우리는 가정, 학교, 직장에서 늘 고기를 섭취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생명’으로 확장되었고, 이를 위한 삶의 실천방안으로 비거니즘 운동에 동참해보려

왔다. 장을 볼 때면 동물성 재료가 첨가되지 않은 식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육

고 한다. 채식주의 운동이 아닌 비거니즘 운동을 주장하는 이유는 동물 해방의 관

식은 이미 인간의 식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매년 늘어나는 육류 소비

점에서 식습관 변화에만 한정하지 않고 인간의 생활 양식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량, 이 막대한 양의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먹거리뿐만 아니라 의약품, 화장품, 의류 등 일상의 많 은 부분을 동물 착취를 통해 영위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기호에 의한 선택의 문제 가 아닌 인류의 생존과 생명 공동체의 공생을 향한 일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의 고민

<표 1> 1인당 연간 축산물 소비량(kg/년) 축산물 소비량(Animal Product Consumption)

을 ‘채식’에서 머무르지 않고 ‘탈육식’ 담론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1인당 연간 축산물 소비량 Annual per capita Animal Product Consumption

-주 요 축산물의 1인당 연간 소비량은 모두 증가, 닭고기 소비량은 증가율이 가장 큼 - 1인당 연간 축산물 소비량(kg/년): 우유 79.5, 돼

우리의 고민을 다양한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지난 9월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79.5

80 70 60

있다. 모두 함께 사는 지구를 위한 지속가능한 식생활의 중심에는 탈육식이 있고,

지고기 24.5, 닭고기 13.3, 쇠고기 11.3 (2017)

50

- Annual per capita consumptions of major animal

40

products have increased. The chicken consumption

30

24.5

had the biggest increase in rate.

20

13.3

- Annual per capita animal product consumptions(kg/

10

year): milk 79.5, pork 24.5, chicken 13.3, and beef

0

11.3 (2017)

했고, 생활의 변화를 실천하기 위해 모인 이들과 비건 실천 2주 캠페인을 진행하고

지금의 비거니즘 실천을 미담 구성원 스스로, 그리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실천하 기 위한 고민과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서로의 생활을 돌아보고 고민을 나눌 때,

11.3 2000 쇠고기 Beef

2005 돼지고기 Pork

2010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 용기를 가지고 불편함을 마주할 때, 우리는 더 나은 사회

2015

닭고기 Chicken

우유 Milk

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주요통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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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심과 살림

2020

2020 진행한 생명·협동연구들

모심과살림연구소는 한살림재단과 함께 생명의 가치와 협동하는 삶을 실현하는데 밑거름이 될 <한살림 생명·협동연구 공모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 는 ‘공동체와 돌봄’, ‘먹거리’를 주제로 총 네 개의 연구과제를 선정하여 진행하였 습니다. 연구소는 하반기 발간되는 『모심과살림』지를 통해 현장연구자들의 의미 있는 연구결과를 보다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연구결과보고서 전문은 모 심과살림연구소 누리집에서 다운로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첫번째 연구 공동체에서 참여와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회의 문화 만들기 이송지, 김경태, 김미애, 김미영, 김수정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컨설팅 사업단

이 연구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비영리조직들이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환경을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특히 공동체의 소통 기구인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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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에서의 소통 구조를 살펴보고, 구조화된 회의 절차와 방식의 하나로 참여적 회의

며, B급 농산물의 판매와 소비촉진은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한 요소임

‘모듈’을 제안하였다. 그 안에는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이 드러났다.

을 포함하여,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직의 문화를 참여적으로 변화시 키기 위한 일종의 ‘넛지’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네번째 연구 통합 돌봄의 그물망 짜기: 통합 돌봄시대, 협동조합의 역할

두번째 연구

윤태영 /인하대학교 강사

지역공동체의 먹을거리 시장 활성화를 위한 빅데이터 연계방안 연구

고령화로 인해 노인 돌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통합적

최홍규/ EBS

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연구는 이용자 입장에 이 연구는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지역공동체의 먹을거리 시장 활성

서 노인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데 필요한 요소에 대한 현장

화를 위한 빅데이터 연계 방안을 조사하였다. 먼저 국내 지역공동체에서 부각된 먹

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남 영광의 ‘여민동락공동체’의 돌봄 종사자들을 면담하

을거리 관련 내용을 분석하고, 이 먹거리가 소셜미디어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였다. 연구를 통해 현행 농촌지역의 통합돌봄 추진과정과 한계점을 살펴보았고,

대한 내용을 주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마지막으로 비대면 사회에서

협동조합이 노인 친화적 주택과 주거 인프라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

빅데이터를 활용한 지역공동체 먹을거리 시장 활성화의 전략적 대안은 무엇인지

였다.

제안해 보았다.

세번째 연구 B급 농산물(못난이 농산물) 판매 국내외기업 사례연구: 해외 기업을 중심으로 김영석, 이병길 /한국세대융합연구소 협동조합

기후변화로 인해 상품성이 떨어져 버려지는 농산물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가운 데, 이 연구에서는 B급 농산물을 판매하고 활용하여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기 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국내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연구 결 과 생활협동조합들이 벤치마킹 할 수 있는 몇 개의 비즈니스 모델이 발견되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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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글을 통해 한살림 정체성 논의를 위한 생각의 단서를 잡게 되어 감사하다 독자

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기고 | 지난 호를 읽고

“협동조합의 원칙은 시대(근대 전후)에 따라, 인구 변화에 따라, 나라

한살림 정체성 논의를 제안합니다

마다, 단체마다 다양하게 원칙을 만들어갈 수 있으므로 정체성을 중 시하는 영국 협동조합의 원칙을 기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아 독점 금지법의 예외로 인정받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논자가 협동조합을 보는 관점은 ‘자유의 증대’ 여부이다.

‘정체성의 시대, 협동조합과 한살림에 대한 몇 가지 견해’ 를 읽고

그 자유의 증대는 에번스와 에센이 말한 사회정치적으로 권리를 박

(모심과살림 15호, 2020년 9월호, 108-125쪽)

탈당한 사람들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 한살림은 자기 나름의 비전 을 가지고 책임 있는 협동조합의 원칙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체성은 열려 있는 개념이라 만들

유영희

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한살림은 자신에 대해 대중 운동도 아니고, 공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대학원에서는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1994년 한살림에 가입하고 ‘한살림운동의 지향’(1999년)을 대표 집필하였다. 고려대학교 등에 서 29년간 강의하였으며, 성인 대상 글쓰기 강좌 결과물로 <나를 발견하는 관찰글쓰기>(희망사업단, 2018)를 썼다. 최근에는 몸과 마음 관찰하기를 생 활의 중심에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동체 운동도 아니며, 협동조합 운동도 아니고, 사회 운동도 아니라면 서 우리는 ‘생명 운동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이인우 님의 글을 읽고 협동조합의 원칙이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국가별로, 단체별로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한살림은 자신이 대중 운동이 아니다, 협동조합 운동도 아니다, 공동체 운동도 아 니다, 사회 운동도 아니다, 생명 운동이라고 넌지시 암시하면서 그것으로는 부족하 다고 한 부분에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경청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목을 보고 기대가 컸는지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한살림 정체성 관련 논의가 너무 빈약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논자는 시작 하면서 정체성 논의를 위한 기초자료 제공을 목표로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활용 할 자료가 너무 우회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한살림의 연혁과 활동 내용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필요한 자료를 제시해주었으면 더 도움이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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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합니다.

회에서 사업 자금을 지원받아 해결했습니다. 거기에 농산물을 공급한 성미마을, 공

두 번째는 한살림이 어떤 맥락에서 ‘대중 운동’, ‘공동체 운동’, ‘협동조합 운동’,

근마을, 안성 등의 후원도 있었습니다. 1985년 창립된 원주소비자협동조합의 경험

‘사회 운동’이 아니라고 했는지 좀 더 직접적이고 상세한 설명이 있었다면, 이에 대

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남들이 30-40만원 받을 때 12만원 받으며

한 논의가 더 깊어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한살림이 이런 표현을 실제 했다면, 아

1인 다역을 해낸 실무자들의 헌신도 컸습니다.1 여기서 보다시피 한살림은 소비자

마도 그 의미는 다만 그것에 머물지 않는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가 주도해서 만든 조직은 아닙니다.2

지적해주신 대로, ‘생명 운동’이라는 말은 그동안 많이 써왔던 용어인데, 이번

이때 한살림의 정체성은 도농 직거래 조직이었습니다. 사회적인 모습은 유통

기회에 의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맥락을 뚝 떼어 생각하면 철학 같기도

사업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박재일 회장님이 ‘회장’이라는 직위에 장

하고, 종교 같기도 한 추상적인 단어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한살

기간 재임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다른 단체에서 비민주적이

림 창립부터 돌아본다면, 제가 보기에 한살림 맥락에서는 목숨 또는 건강, 나아가

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만 그것은 한살림의 성격을 잘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

사람다운 생활까지 포함하는 구체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살림을 비롯한 생협의 양적 성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또 확인할 것은 처음에는 협동조합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자유의 증대’ 또는 ‘정치사회적으로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권리 증진’

1988년 한살림공동체소비자협동조합을 결성한 적은 있지만, 이름뿐이고 법인격

이라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한살

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입한 1994년에는 한살림이 사단법인이어서 구성원을 회

림에서도 ‘지역으로 가자’, 또는 ‘도시의 뒷골목으로 가자’는 주장이 나오기는 했

원이라고 불렀습니다.3

지만, 아직까지는 생산자의 생활 보장과 소비자의 밥상 살림이 한살림의 주요 목 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살림 농산’에서 시작된 한살림은 단순한 유통사업체는 아니 었습니다. 1989년 10월 세상에 나온 『한살림 선언』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살림 농

이런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인우 님의 논의를 계기로 한살림의 정체성을 정립

산’의 도농직거래는 근대 산업사회가 생명죽임의 문명이라는 비판을 바탕에 깔고

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참고하고 싶

있었습니다. 일본 그린코프워커즈연합회 유키오카 회장의 말처럼, 『한살림 선언』

은 한살림 역사의 몇 가지 사건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한살림은 1986년 12월 4일

이 있었기에 한살림은 한살림다워졌습니다.4

제기동에서 고 박재일 회장님이 마련하신 쌀가게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쌀 가게 상호가 ‘한살림 농산’이었습니다. 이런 시작은 한살림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1) 서형숙·윤선주. 2016. 『한살림 첫 마음』. 도서출판한살림. pp 24-33. 2) 도쿄의 ‘생활클럽 생협’은 1965년 도시 주부들이 생활 자치를 목표로 만든 협동조합이다. (https://seikatsuclub. coop/kr/ 참고) 1989년 여성민우회가 주도해서 만든 현재의 ‘행복중심생협’ 역시 소비자 주도의 생협이다.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3) 1994년 2월에 사단법인 한살림이 되었다. 구전으로 들은 바로는, 농민들의 쌀 수매를 일시에 해주기 위해 신

고 박재일 회장님은 모두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확보하는 일을 하다 보면 믿음 이 회복되고 그러다 보면 민주주의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 래서 먼저 농약과 중간상인의 농간으로 힘겨워하는 농민의 아픔을 해결하고 도시

용 대출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시기를 나누어 순차적으로 조금씩 쌀을 수매했는데, 이것이 농민에게는 큰 부담이어서 농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신용 대출이 가능한 형태로 조직을 변경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생협법이 만들어진 후 생협으로 전환하였다. 4) 『한살림 선언』이 있었기에 ‘한살림의 지향’이 나올 수 있었다. 주 1의 『한살림 첫 마음』 중 ‘우리의 지향을 만 들어요’(244-247쪽)를 보면, ‘한살림의 지향’은 1998년 소비자 활동가 연수 때 소비자의 눈으로 쉽게 써보자는

민의 건강을 위해 쌀가게를 시작했습니다. 재정 문제는 독일 카톨릭 메제레올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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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이 나와서 만들어졌다. 쑥스럽지만 다섯 조항의 대표 집필자는 유영희라는 것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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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한살림 선언』에 입각해서 ‘한살림 농산’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5

이인우 님의 설명처럼, 협동조합이 근대를 이끈 것이 아니라 근대가 협동조합

『한살림 선언』은 ‘한살림 농산’이 만들어지고 나서 3년 후에 나왔습니다. 둘이 불가

을 이끌었다면, 탈근대라고도 할 수 있는 미래 사회의 변화는 새로운 협동조합을

분의 관계를 가지고는 있지만, 선언과 농산이 인과관계는 아닙니다. 이것 역시 도

요구할 것입니다. 도농의 공동체성 회복이 1980년대에 가장 필요한 공동체적 연대

농공동체로서 한살림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한 가지 단서입니다.

였다면, 앞으로 요청되는 공동체적 연대의 주체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살림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저는 한살림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도농공동체 운동’

이 지향하는 도농공동체에서 ‘도농’은 시대에 따라 확대되고 진화해가겠지만, ‘공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신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습니다.6 ‘도농공동체 운동’은, 한

동체’는 변함없는 가치를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린코프의 경우, 노인과 여성

편으로 조합원 수 증가를 추구하기 때문에 대중 운동이기도 하고, 도농 연대를 추

과 어린이로 관심을 넓히며 일반사단법인공동체를 설립하여 공동체성을 확대해가

구하기 때문에 공동체 운동이기도 하며, 조합원의 참여를 보장하기 때문에 협동조

고 있다고 합니다.7 한살림에서 지역살림을 말한다면, 그 지역의 내용은 무엇인지

합 운동이기도 하고, 열악한 농민의 삶을 보장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사회 운

도 채울 필요가 있습니다.

동이기도 합니다.

한살림 정체성 논의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내부 분화의 방향과 방법을 결정하

다른 한편으로 한살림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 운동이라 하기는

는 데에도 중요한 기준이 되는 만큼 더 깊은 논의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어렵고, 공동체 운동이라고 했을 때 상상하는 닫힌 성격보다 훨씬 유연하고 열려 있다는 점에서 협의의 공동체 운동이라고 하기는 어려우며, 소비자와 생산자라는 이질적인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협동조합과는 결이 다르 고, 정치사회적 약자(소수자)의 권리 증진 운동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 운동이라 고만은 할 수 없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살림은 도농 공동체를 키워드로 하고 있어 일반 소비자 중심의 생 활협동조합과는 다릅니다. 그러면서도 운동의 성격을 무엇이라고 딱 규정하기에 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점이 있습니다. 한살림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조직 이므로 한살림의 정체성은 스스로 미래와 가능성을 그리면서 만들어가야 할 필요 가 있습니다.

5) 김신양. 2017. 『깊은 협동을 위한 작은 안내서』. 모심과살림연구소. p 85. 김신양은 여기에서 『한살림 선언』은 1989년에 나왔지만, 그 작성자들이 이미 1980년에 원주보고서를 만들었 기 때문에 『한살림 선언』 작성자들은 1980년 이전부터 모임을 가지고 『한살림 선언』의 생각을 준비하고 있었 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러나 『한살림 선언』을 만든 ‘한살림 공부 모임’이 정식으로 결성된 것은 1989년 1월이고, 그해 10월에 『한살림 선언』이 나왔다. 6) 2019년 한살림 소개 책자에도 이렇게 나온다. http://www.hansalim.or.kr/?p=52057 참조.

모심과 살림 _ 16호

7) 2019년 그린코프이사장모임에서 정리한 <제2차 꿈을 현실로>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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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 지난 호를 읽고


“결국 네가 공부 안 해서 그런 거잖아”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한국 사회 ‘공정성’ 논란과 경쟁 교육, 학벌주의의 뿌리에 존재하는 능력주의 문제를 해부한다. 교육과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를 분석하여 그 해악을 고발하는 책.

시험 성적으로 줄 세우고 차별하는 교육은 당연한가? ‘능력에 따라’ 교육받는다는 헌법 조항은 문제없나? 과연 ‘학벌이 아닌 능력을 보는 것’이 바람직한가? 공채 시험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가? ‘전교 1등’ 의사들이 공공 의대에 반대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능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일까?

박권일 외 씀 | 14,000원

(03971)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1길 30 2층 | 전화 02-332-0712 | 전송 0505-115-0712



www.mosim.or.kr / mosim@hansalim.or.kr / 02-6931-3604

값 8,000원

재생종이로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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