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 가는 왕을 따라서 삼하 15:13,19-23 정구일 목사 본문은 반역한 압살롬에게 쫓겨나는 다윗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전령이 다윗에게 와서 말하되 이스라 엘의 인심이 다 압살롬에게로 돌아갔나이다 한지라’반역을 일으킨 압살 롬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왕에게서 등을 돌린 상황 인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다윗 왕을 따르겠다고 하겠습니까만. 바로 잇 대라는 이가 다윗을 따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잇대라는 사람은 가드 사람이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방백 중의 하나입니다. 즉 잇대는 이방인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적대국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 런 잇대가 다윗에게‘내 주 왕을 따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19-20절 에‘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 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라고 나와 있듯이, 다윗이 잇대를 만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중에도 잇대는 자발적으로 쫓겨 가는 왕을 따라서 고 난의 행렬에 동참을 합니다. 잇대는 쫓겨 가는 왕을 향해 말합니다.‘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 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잇대와 같이 내가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 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우리의 믿음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의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Contents 8 special I _제암교회, 승동교회 14 special II _응답하라 뉴우송 20 special III _방지일 목사 28 review _동계수련회 32 칭찬 우체통 34 essay _세상과의 구별 36 선교지리포트 40 뉴송뉴스 42 하고싶은말
March & April Story
왜 잇대는 다윗 왕을 따라갈까요? 다윗 왕은 늘 인내하고, 참아주고, 품어 주는 성품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위 기의 순간에도 이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바로 이러한 분이신줄 믿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 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쫓겨 가고 있다 할지라도, 주님은 따스한 손길 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바로 주님의 연약함 가운데 그분의 강함이 있는 줄 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절대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따라가십시 오. 주님을 따라갈 때 그의 사랑이 우리의 삶을 비추어 주시고, 영원한 생명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약할 때에도, 강할 때에도, 가난할 때에도, 마음 가운데 원통한 일들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끝까지 놓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고ː목] 오래된 나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린도후서 4:16
만화 김별(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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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 제암교회, 승동교회 ll 응답하라 뉴우송 III 신앙의 고목_방지일목사
SPECIAL I
석호필을 아시나요? 우리는 석호필하면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인 마이클 스코필드 를 떠올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우리가 제암 리 학살사건과 더불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인물이 바로 ‘석호필’ 이다. 프랭크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1889년 3월 15일 1970년 4월 16일)는 1916년 봄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교장이 었던 올리버 알 에비슨으로부터 일제강점기의 한국으로 와 달라는 권 유 서신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 학과 위생학(衛生學)을 강의했는데. 그는 영어를 할 줄 알았던 목원홍 (睦源洪)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로 강의하였다. 1917년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선교사 자격 획득 한국어 시험’에 합격 한 다. 또한 자신의 한국식 이름도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석호필 (石虎弼)’이다. 그의 성인 ‘石’은 그의 종교적 굳은 의지를 의미 하고, ‘虎’는 호랑이 즉 조선을 뜻하고, ‘弼’은 돕는다는 뜻으로, 한국인을 돕겠다는 마음을 나타낸 이름이었다. 그렇게 선교활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한 수촌리에 관한 비보가 들려왔 고, 현장 확인차 들른 수원에서 우연히 제암리의 참상까지 목격한 것 이었다. 후에 스코필드는 홀로 두 마을을 여러 차례 오가면서 사후 수 습을 돕는 한편, 《끌 수 없는 불꽃》이란 책을 펴서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삼일운동 1919 삼일운동 1919” 기계적으로 외운 덕분에, 나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나에게 ‘제암리’는 그저 ‘좋은 성적’을 받기위해 외웠던 기억의 일부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제암리가 취재지로 결정되었을 때, 오만했던 나는 “제가 또 역사 좀 공부해봤 죠, (취재는) 제가 가겠습니다.” 선언해버렸다. 허세로 가득 찬 나의 발걸음은 그에 걸맞게 굉장히 가벼웠다.
어쩌면 우리는 무임승차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_ 소금과 빛이었던 제암교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고자 노력했던 제암교회의 유산인 기독교정신 에 어쩌면 우리는 무임승차하고 있던 것 아닐까.
1905년 배재학당을 설립한 선교사로 유명한 아펜젤러의 전도를 받 은 안종후가 자기 집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제암리교회의 시작 이었다. 또 독립운동가 홍원식이 권사로서 섬기던 제암리교회는 문맹 퇴치교육으로 사회에 빛이 됨과 동시에 한편으론 비밀조직을 결성하 여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퍼진 삼일운동이 계기로 이어져 1919년 3 월 31일 1천여명의 만세소리가 수원 전역에 울려 퍼졌다. 이에 그치 지 않고 4월 1일,2일에도 일제 순사 주재소를 부수는 등 독립운동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의 애국심에 비해 현실은 너무나 차가웠던 것일까, 일제 의 대대적인 보복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4월 5일, 일본순사와 군 인들이 수촌리로 들이닥쳤다. 종교시설은 물론 민가에도 불을 질러 마 을 전체가 소실되었고. 수촌리에 이어 다음 타겟이 된 마을은 불행하 게도 제암리였다. 사건의 배경을 찾는 중에 존경하는 선생님의 강연 이 떠올랐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은 발안에 살던 조선 인 순사 조희창을 내세워, “만세운동을 진압하며 너무 심한 매질을 한 것을 사과하려고 왔다.”라고 거짓을 말하며 마을의 장정들을 꾀 어냈다, 미리 명단을 파악한 듯 오지 않은 사람은 찾아가 불러오기까 지했다. (우발적인 보복이 아닌 철저한 계획아래 이뤄진 만행임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분들은 역사에 무임승차 하지 마십시오. 선대가 지켜냈던 가치 를 당연시 여기지 말고 우리 역시 그분들처럼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합니다.”
(역사학계에선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한 33인의 지식인에 한 명 을 추가해 34인으로 한다면 프랭크 스코필드가 꼽힌다고 할 정도)
그렇게 교회로 제암리의 모든 장정들이 모이자마자 사격 명령을 내렸 고, 이에 교회당을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이 창문을 통해 안으로 사격 하였다. 사격이 끝난 후엔 그들의 사인과 그들의 신원을 파악할 수 없 게 짚더미와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지르기 까지 했는데, 불행하게도 바 람이 세게 불어, 교회 아래 집들로 불이 옮겨 붙었고, 그 과정에서 제 암리는 많은 소실을 겪어야 했다. 사건 경과를 보고 안타까우면서 도 궁금한 것이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었을까,” 이렇게 처음부 터 끝까지 은폐하고자 철저했던 일제의 만행을 어떻게 고발할 수 있 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바로 옆에 전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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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l
그래도 그곳에선 새싹이 돋습니다. 가벼웠던 발걸음이, 제암리의 숭고함에 마음이 무거워질 때 즈음이었 다. 전시되어있는 사진의 풍경에 익숙함을 느낀 것이, 방금 자릴 옮기 며 봤던 그 언덕이었다. 그 언덕을 가리키는 한 할머니의 사진과 할머 니의 증언이 가슴을 찔러왔다.
“저 언덕을 타고 (일본군이) 내려왔어...” 발안장터에서의 함성소리와,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그 언 덕엔 새싹이 돋고 생명이 살아가는 걸 보고 희망을 얻었다. 우리네 마 음속에,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 선한 싸움을 싸우며 …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딤전 1:18-19 일제강점기엔 수많은 이들이 양심을 버리고 사리사욕을 채우던 암담 한 시기였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도 그러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없 는 혼란의 시대였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믿음의 선한 싸움을 이어나간 제암리교회. 선대가 물려준 믿음의 유산을 받은 우리가 그 선한 싸움을 이어나가야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선한 싸움은 무엇일까.
1919년 소실을 겪어야 했었던 제암교회는 그 해 7월 자리를 옮겨 다 시 건립되었었고, 1938년 현재의 위치에 기와집 예배당이 만들어 졌다. 1959년 4월에 3ㆍ1운동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 9월 에 일본의 기독교인과 사회단체에서 속죄의 뜻을 담아 모은 1천만 엔 을 보내와 새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되었다. (일본 정부가 직접 나 서서 공식적인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일본민간의 기독교인들의 사과 와 모금으로 교회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1982년 9월 대 대적인 유해 발굴 사업이 진행되어 23위의 묘로 안장되었으며, 다음 해 7월 기념관과 새로운 기념탑이 세워졌다.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 리가 생각난다.
“그래도 그곳에선 새싹이 돋아납니다. 폐허가 되었을지라도 새 생명이 살아갑니다.”
글 박노준(23) / 디자인 이지현(24)
선조들이 세운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교회 당회장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당회장 목사님이 기도와 눈물로 교회를 이끌어 온 것처럼,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닐 수 있는 것은 분명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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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I
부모님께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항상 하시던 말씀이 있다. 너는 한국을 위해 선교한 많은 분들의 기도 덕분에 지금 하나님을 알 수 있 고, 교회를 다닐 수 있는 거라고. 그분들을 보내신 하나님께, 그리고 선조들께 감사하라고 하셨다. 어째서인지 문득 그 말씀이 생각났고 의 문이 들었다. 선조들이 세운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교회는 지금 어디 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승동교회의 시작 1892년 당시 32살의 나이로 조선땅을 밟았던 사무엘 무어 선교사 는 1893년에 사대문 안에 있는 곤당골이라는 지역에 곤당골교회 를 설립하였다. 이 교회가 지금의 승동교회로 현재는 인사동 지역으 로 이전하였다. 승동교회는 합동 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모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교회 건물들은 얼마나 오래되었나요? 사진 보시면 본당 교회 첫 번째와 두 번째가 비슷하죠. 교회 뒤편 이 만큼까지가 있었던 거죠. 그 다음에 이만큼 개축을 했고(교회 앞쪽 머 리) 그러다가 이게 색깔도 마음에 안 들고 하니까. 처음 건물 색깔과 똑같은 걸로 바꾸자 해서 다시 리모델링 했고 지금의 교회가 되었습 니다. 현재 건물이 이겁니다. 옛날 건물을 유지하려고 그래서 이 벽 돌들을 옛날 벽돌들을 찾는데 힘들었다고 그래요. 조금 다르죠? 옛날 벽돌들하고 지금 벽돌들하고 색깔이 가장 근접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승동교회는 1912년에 적벽돌을 쌓아 박공지붕을 얹은 로마네스크풍 의 신축 교회를 완공했다. 건축양식은 지붕 원형창과 전면의 큰 아치 창으로 중심을 강조한 모습이다. 지금은 초기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3.1운동의 진원지라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30호로 지정되었다.
왕손이든 백정이든 하나님의 자녀 곤당골교회가 설립될 당시 우리나라는 신분사회였기에, 교회에서 양 반과 상민이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양반들은 절대 낮은 신분과는 예배를 같이 드릴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무어 목사는 “하나님의 같은 자녀들인데 한방에서 예배 드리는 것이 온당치 않겠느냐? 양반들의 신앙만이 특히 뛰어나 하늘나라에 높은 자리를 보장받을 수는 없다”고 하며 백정들 편이 되었다. 결국 양반 교인들은 곤당골교회에서 떨어져나가 양반들만의 홍문수 골교회를 세웠고, 그 결과 곤당골교회는 상민교회가 되었다. 사회에 서 문제가 되었던 신분문제가 교회 안에서도 문제가 되고 만 것이었 다. 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인간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백정교인 들은 헌신적인 노력으로 곤당골교회를 섬겼으며, 교회는 점점 부흥 하게 되었다. 이 같은 성장을 바탕으로 1898년 두 교회는 승동교회 로 통합되었다
승동교회의 흔적들 승동교회는 무어 목사의 목회관을 본받아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선교를 하고 있다. 특별히 현재 탑골공원이나 종묘에 있는 노인들을 위해서 복음전파에 힘쓰고 있으며, 노인초청 예배를드리는 등 많은 사 역을 감당하고 있다 승동교회에는 역사적인 일을 감당했던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 중 두 사람을 꼽자면 한국 최초 백정 의사 박성춘과 3.1운동 당시 독 립선언문을 기초했고 판촉물을 만들었던 김원벽이다. 승동교회에서 는 역사를 빛낸 선조들을 기리고자 기념비와 전시관을 세웠다. 전시 관에는 1대 목사부터 15대 목사의 약력과 그들의 유서, 저서들이 있 고, 교회역사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더불어 손으로 써서 만 든 1950년도 성가곡집과 주보, 목사님 저서들, 교회 행사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
우리는 승동교회를 둘러보며 설명을 들은 후, 교회에 대해 궁금한 것 을 짧게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목사님께서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셔 서 더욱 귀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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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힘든 일이 많으셨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교회를 지키 셨나요? 여기 계신 장로님들 중에 어릴 적부터 6.25나 일제시대를 경험한 권 사님들도 계시죠. 그 당시는 예배할 수 없는 환경이잖아요. 북한과도 전쟁 중이었고, 일제침략도 있었죠.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늘 예 배를 드렸다고 하더라고요. 교회에서 예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교회마다 추구하는 목회관이 있잖아요. 승동교회는 어떤 목회방침을 가지고 있나요? 승동교회는 건강한 말씀 중심의 교회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작 년에도 표어가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교회’ 였고, 올해도 말 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교회예요.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고, 순종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이런 취지를 가지고 계속 말씀에 집중하는 교 회이기도 하고요.
글 이정희(25) / 디자인 이지현(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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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뉴우송4 파릇파릇한 새큼이 친구들은 잘 모르는 대학부에 부어주신 은혜. 대학부를 거쳐간 수많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과거 대학부의 기억나는 모습은 무엇인가요? 디자인 장진아(25)
이선호(29)
박영건(32)
지금 새성전 자리에 있던 옛 베들레헴관 3층. 그곳에서 했던 주일 기도회가 가장 생각 납니다. 저녁예배가 끝나면 지칠 만도 한데 모두가 앞자리에 가서 기도하 려고 구본당 건물을 나와서 베들레헴관 건물로 올라갔었습니다. 기도회는 매주 한 시간 넘게 진행되었습니다. 어느 때는 10시가 넘어도 계속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모두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 지 않고 하나님과 일대일로 간절하게, 또 자유롭게 하나님께 기도 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마치 매주 수련회 부흥회 기도회를 하는 것처럼 기도했었습니다. 그 기도회를 통해 저의 꿈을 발견했고, 한 주 동안 영적으로 살아갈 힘을 공급 받았었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도 너무 좋아요.
2005년에 대학부를 이필산 목사님이 담당 하시다가 12월에 이준 호 목사님이 오셨어. 2005년 임원단 막내였는데 11개월동안 이 필산 목사님이랑 일한 것보다 12월 동안 한 일이 훨씬 많아. 다 수작업이었어. 그 때 한번은 성탄절날 대학부 전체 수련회를 하게 된거야. 지금은 말도 안되는거야. 지금으로선. 근데 갈 곳 없는 애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장학관이나…. 근데 그 계획을 23일 밤에 이야기 하셨어. 그리고 24일밤에 대학부 기도회를 하자고 하셨어. 이준호 목사님께서 촛불을 준비하라고 하셨어. 그땐 전구로 된 LED초 같은 건 없어. 그냥 초 1200개를 구했어. 그 다음엔 그걸 종이컵에 다 뚫었어. 그리고 그걸 켰는데… 그 때 장소는 지금 없는 구성전 베들레헴 3층에서 했어. 거기 빨간 카페트 바닥에서 했는데 기도회를 엄청 오래 하신거야. 거기 촛농이 다 떨어진거야. 거기 예배당 전체에 다 떨어진거야. 그 다음날 써야하는데…. 그걸 또 다 떼야해서 밤새 임원단이 집에서 다림기를 가져와서 뗐 지. 신문지를 이렇게 바닥에 대고 다림기로 살짝 누르면 신문지에 녹아나와. 그걸 베들레헴 전체를 했어. 임원단 26명이서 그걸 밤새 했어. 그렇게 하니까 새벽4시가 된거야. 그 새벽 4시부터 성탄 수련회 준비를 한거야. 근데 우린 얼마 안올 줄 알았어. 25일에 누가 오겠어? 주일 예배 끝나고 오후 1시쯤이었으니까. 근데 샬롬관 지하가 꽉 찼어. 한 600명이 온 것 같아. 간식도 다 급하게 여기저기서 사오고…. 특순도 했어. 임원단 산타복도입고… 연습을 안했는데 그게 되겠 냐고(웃음). 그냥 다같이 웃으면서 보는거지. 목사님이랑 같이…. 가족같은 느낌이었지. 서로 모르는데도 그냥 먹으면서 얘기하면 서 놀았다니까. 그때 크리스마스 수련회는, 수련회가 아니라 파티? 그런것 같이 진짜 재미있었어. 대학부가 하나된 느낌! 처음으로 고등부끝나고 대학부에 적응을 확실히 했고 대학부에 애착이 확갔어. 아, 진짜 재미있었는데….
이찬민(28) 저는 처음 갔던 대학부 예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컬쳐 쇼크였 어요. 찬양을 하는데 뜨거움이 다른 것을 느꼈어요. 다 손들고 찬양하고, 다 눈물로 찬앙하고. 구성전이 꽉 찼었어요. 고등부 때 는 스티그마나 수련회 부흥회 때 가끔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대학부에서는 매주 예배가 그렇게 드려지더라구요. 거기에 압도 되는 게 있었어요. 새큼이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게 있는데 저는 신앙적으로 슬럼프가 있었어요. 그런 슬럼프가 올 때 기도도 안 나오고 찬양도 안 나오고 그랬는데 늦게라도 예배 자리에 오면 어떻게든 회복을 시켜 주시더라구요. 말씀을 통해서 찬양을 통해서 어떻게든 회복을 시켜주시는 것을 경험했 어요. 저를 포함한 모든 대학부원들이 그 예배의 자리만큼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주남규(28) 지금의 새성전이지만, 그 새성전이 지어지기 전에 베들레헴 성전이 있었어요. 거기 식당도 있었어요. 식당 위에 예배당 있고. 아마 제가 새큼이때 였는데, 거기서 예배 끝나고 주일 저녁기도회 를 했었어요. 봉사도 하고 되게 추억이 많아요. 새큼터를 저기서 했었어요. 지금도 너무 좋지만 옛날 모습이 가끔 그리워져요. 제 대학부 첫 시절이라 그런 것도 있는 거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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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29)
문흥윤(28)
07,08년 수련회와 수련회에서 이준호목사님께서 인도하신 새벽 4시까지 이어진 기도회, 나눔 후 다시 시작된 말씀과 새벽 2시에 하게 된 댄스선교부의 특순. 대학부 생활중 가장 기대로 가득하고 열정이 넘쳤던 수련회입니 다. 정말로 뜨거웠어요. 모든 사람들이 짜여진 워십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추며 예배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저의 대학부 생활은 댄스선교부를 빼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매 절기 때마다 특순으로 준비하며 섬겼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부서에 들어갈까 고민하고 있는 대학부원들에게 부서 활동을 적극 추천합니다. 대학부에 적응하기 힘들어 했지만 부서를 하며 교회에 붙어있던 친구도 있었어요. 팀 사람들은 1년 주기로 바뀌고 수련회가 아니면 다른 팀의 사람들과 교류하기에 한계가 있지만 부서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대학부에서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공통의 활동을 하기 때문에 오래, 깊게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거 같아요.
저한테 가장 기억에 남은 수련회는 2008년 동계수련회였어요. 그때 저는 새큼이로 대학부 수련회를 처음 접했었죠. 근데 마침 수련회 충성단 모집 광고를 봤어요. 친구들과 같이 이거다 하고 지원을 했어요. 그 당시 충성단은 지금의 충성단하고 매우 달랐죠. 현재는 화장실 청소, 쓰레기 정리들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설겆이가 주된 업무였어요. 아침, 점심, 저녁 주방에만 붙어있었죠.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했어요. 그냥 뭔가 제대로 헌신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그때 장염에 걸린 상태여서 한 끼 한 끼 버티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정신이 없어서 그랬는지 기억도 잘 안나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 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 주시는 것을 경험했어요. 예배도 잘 드리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만나주시는 은혜를 경험했어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였지만 부흥회 가운데 계속 성령님 이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주셨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는 말씀을 마음에서 계속 느끼게 해주셨어요. 그리고 장염 때문에 몸이 약해 지다 보니 치아가 너무 아팠어요. 분명 썩은 부분이 없는데도 치아가 너무 아팠죠. 수련회 끝나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해보니 치아 문제가 아니고 턱뼈 내부에 있는 뼈조직이 사라지고 있는 상태였어요. 원인도 알 수 없었고 통증도 없는 거래요. 그래서 바로 수술 일정을 잡고 수술을 했고 지금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이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장염에 걸리게 하시고 충성단으로 보내신 것 같아요. 또 한 번 하 나님이 함께하고 계신 것을 경험했죠. 제 첫 수련회가 정말 잊지 못할 수련회가 됐어요.
김백선(28) 첫 수련회 때가 기억이 나요. 새큼이였는데 충성단을 했었어요. 그때 충성단은 하루일정이 다 마치고 저녁에 한꺼번에 청소를 했었거든요. 그래서 거의 잠을 못잤던 것 같아요. 그래도 부흥회 앞자리에 앉아서 은혜를 많이 받았죠. 그때 마지막 부흥회때 28 기들은 따로 새로 짓기 전 벧엘관에서 기도회를 했었어요. 거의 밤새도록 기도회를 했어요. 28기에게만 전설의 28기라고 하잖아요. 이때부터 그랬어요. 그런데 28기 기도회가 끝나고 자 려고 본당에 갔는데 그곳에서도 그때까지 기도하고 있더라구요. 솔직히 놀랐어요. 괜히 대학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 요. 정말 전설의 대학부였죠. 그 자리에 앉아 계속 기도했던 기억 이 있어요.
장호연(28) 2014년도 하계수련회 때, show me the light를 했는데 자기 간증을 얘기하는 프로그램이었어. 그 때 신청해서 나가게 됐는데 그 때 내가 직접 작곡한 찬양을 하게 되었어. 사람들한테 불러주 고. 그러면서 내 작은 간증이지만 같이 나눌 수 있고, 기존에 있는 곡이 아닌 새로운 찬양으로 같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에 은혜로웠 어. 간증했던 내용은“작곡한 첫 곡을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는데 2년이 넘어도 드리지 못했어요. 하나님 좀 늦었어요, 지금에서야 바칩니다.”했었지. 벌써 2년이 지났네.
이호성(28) 2010년도 김활 목사님과 함께한 여름 성경공부(SBS)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요한복음 말씀을 나누었는데 그때 뵙게 된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글로만 읽었는데, 이후로는 예수님을 제 곁에 모시고 예수님을 읽어나가 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두란노 실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줄 끝에 앉아 혼자 기도 하면서 주님 앞에 펑펑 울었습니다. 눈물 앞에 세상이 온대간대 없어졌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꼈던 순간입니다. 당신의 사랑에 조건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 때의 주님이 제 옆에 계심을 느낍니다. 제 마음에 남는 말씀 중 한 가지는 주님은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꿈이라는 명분으로, 사랑이라는 명분으로, 우정이라는 명분으로 주님과 나를 속여 왔습니다. 부끄럽게도 제 자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끝없는 허무로 떨어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아닌, 주님이 높임 받으셔야함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주님께로 부터 멀어진 건 아닐까 걱정하고 나에게 실망하여 눈앞의 세상이 무너짐을 느낄 때, 그때 만난 주님이 제게 다가오십니다. 참된 주님이 다가오셔서 저를 다시 일으켜주십니다. 단언컨대, 이는 제 삶을 지탱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단순히 대학부 생활에서 손꼽는 시간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간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게 걸어오신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이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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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28) 2010년도 대학부 하계수련회입니다. 처음으로 대학부 수련회가 4박5일동안 했다는 것과 야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것, 폐회예배 바로 직전에 물놀이 프로그램을 했던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다들 3일째부터는 거의 정신을 놓은 모습이었는데(웃음), 그래도 모든 프로그램들을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과 밤늦게까지 나눔과 기도를 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또 지금은 야식으로 완제품을 먹지만 그때는 야식을 만들어 먹었었는데 뭔가 이상야릇한 맛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모두 맛있게 먹었었어요. 아, 그리고 폐회예배 직전에 물놀이를 했었는데, 프로그램 순서가 가히 충격적이었지만 다들 또 적극적으로 참여 했죠. 그 모든 것들이 기억에 남고, 좋았습니다.
김석현(28) 2010년 막내 임원단 총무였단 말이야 그때는 처음이자 마지막 으로 수련회가 4박5일이었어. 이 날, 마지막 폐회예배 전에 물놀 이를 했었어. 이 폐회예배 전에 물놀이 하는 것도 장난 아니었고, 전 날에 물이 빨리 안차니까 밤새 양동이로 갖다가 물을 퍼날랐단 말이야. 밤새 퍼날라도 안차. 다음날 또 임원단은 특순을 서야하 니까…. 연습도 해야하는데, 특순도 뭐 되게 이상하게 다 악기를 사용하자 했었어. 내가 드럼을 쳤단 말이야. 쉬지도 못하고 계속 드럼치고…. 정신 없었어.(웃음) 그리고 야외 취침을 했단 말이야. 1교구 팀장님들하고 김윤호 목 사님하고. 그때는 최초로 본당을 자매가 쓰고 숙소를 남자가 썼단 말이야. 아주 혁신이었지. 4박5일도 유일무이, 남녀 숙소도 유일 무이. 기도회 점수 꼴지었던 1교구가 벌칙으로 농구 골대에서 텐 트치고 같이 잤단말이야. 근데 그날 비가 온거야. 그래서 성가대실로 뒤늦게 다 들어왔는데…어우 냄새가….(웃음) 뭐지 이 냄새는? 진짜 찝찝하고…. 근데… 기억에 진짜 많이 남 았지. 그 젖은 팀장님들이 내 옆에 꾸역꾸역 와서 눕는 그 느낌 은… 잊을 수가 없었지… 재미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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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00)
서동균(28)
2011년도 동계수련회 폐회예배…. 예배가 1분만에 끝났어….
2010년 동계수련회가 기억에 남습니다. 부서페스티벌이 기억에 남아서 선택했어요. 밤인가 낮인가도 기억나진 않지만 말이죠. 대학부 부서들이 나와 부서 홍보 및 장기자랑 하는 시간이였는데 그때는 영상이라던지 음향 장비가 정말 안좋았어요. 그래서 준비 없이 잘 못하면 오글거리고 학예회 느낌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부 서들끼리 모여 장기를 준비한다는 것도 은혜였고 다들 준비를 많 이해서 그런지 엉성한 팀이 없었어요. 또한 대학부원들의 숨겨 둔 어마어마한 끼를 발산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보는 내내 즐거 운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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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정류장에 내려서 한 시간 쯤 걸어가야 했으므로 우선 근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했다. 중화요리 집 옆에 장작이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크, 시골 풍경! 서울 토박이 도시남자인 우리는 과거에 응답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장소는 봉화영성수련원으로, 방지일 목사 기념사업회가 폐교한 건물을 매입해 꾸린 곳이다. 이곳은 '성경을 깊이 있게 볼 수 있게 하는 '수련원을 목적으로 삼은 곳이며 방지일 목사가 생전 여러 차례 직접 말씀을 전하신 장소이기도 하다. 방지일 목사는 수 련원 장소를 이곳으로 직접 지정하였는데 이유인즉, 사람들이 도심지로부터 먼 곳에 와서 충분한 은혜를 받고 떠나길 원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있는 두 사람이 앉아있는 동상이 교정에 놓여있다. 둘은 얼마나 오래 저 위치에서 비바람을 견디며 책을 읽고 있었을까. 옆에서 버티고 서있던 고목과 함께 고고함을 보여주었다.
신앙의 고목을 찾아서 지난밤의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아침 반 오십이 넘은 남자 두 명은 신앙의 고목을 찾으러 떠난다. 아직 비몽사몽 중에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다들 열심히 출근하는 아침의 서울 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버스가 향하는 목적지는 방지일 목사 기념관이 위치한 경상북도 봉화군. 약 2시간 40분에 걸쳐서 봉화공용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후다닥 표를 사고 농어촌버스에 올랐다.
/ 방지일 목사 기념관 방문기 글 장원(27) 소민수(27) / 디자인 전보민(25)
방지일 목사는 1911년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37년 목사 안수를 받고 총회파송 중국선교사로 떠나 21년간 봉직했다. "오직 말씀만 전하라" 는 당부를 가슴에 품고 선교에 전력을 다하였다. 방 목사는 5번의 정변과 뒤이은 중국 공산당 치하에 9년을 견뎌냈지만 1957년 홍콩으로 추방되었다. 방 목사로부터 전파된 복음은 중국 땅에 단단한 뿌리를 내려 지금도 중국 곳곳에서 값진 열매를 맺고 있다. 이후 방 목사는 중국 교인을 그리며 선교사로 남아 있으려 했지만 결국 1963년에 영등포교회 담임목사로위임했다. 이후 "닳아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복음전파의 최전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2014년 10월 10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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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lll
수련원 내부에는 방지일 목사님을 기념하는 자료전시실, 서재,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날까지 사용했던 물품을 그대로 옮겨놓은 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방지일 목사가 직접 사용했던 모자, 가방, 타자기, 설교 노트 등. 과거가 그대로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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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가자 어록 하나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기도는 죄 찾는 현미경이다. 신앙은 투항, 곧 무장해제다. 닳아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방지일 목사는 1911년에 태어나 2014년에 돌아가셨으니 100년을 넘게 사셨다. 방 목사는 100년을 달하는 세월동안 한국 근현대와 개신교 역사를 모두 경험했다. 그가 역사를 몸으로 겪으며 품었던 마음이 어록 세 줄 안에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고 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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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lll
두 번째로 이동한 곳은 서재이다. 방지일 목사는 성경 66권 전권 강해서와 나의 나됨, 본 대로 들은 대로 등 약 100여 권의 책을 직접 썼다. 서재 안에는 저서들이 순차적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 방 목사가 직접 읽고 사용했던 성경들과 여러 주석서가 정리되어 있었다.
거대한 고목은 외적인 크기에서 주는 위압감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외부 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닳아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 는 각오 하에 일평생을 선교와 목회 사역에 헌신한 방지일 목사. 고목의 상징성을 인물에 반영한다면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취재일정을 계획할 때 우리를 가장 불안하게 했던 일이 있었는데, 농어촌버스의 배차를 놓치면 봉화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제시간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저녁밥까지 먹을 수 있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기쁨과 감사가 가득 넘쳤다.
세 번째로 간 곳은 방지일 목사가 돌아가시기 전 날까지 사용했던 물품을 그대로 옮겨놓은 방이다. 깔끔히 정리되어 있는 방의 벽에는 달력이 있었다. 달력은 돌아가시기 전 날인 2014년 10월 9일에 멈춰있다. 넘어가지 못하고 같은 날만을 가리키는 달력과 목사님이 사용하던 것들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적막한 방 내부를 보면서 순간 시간이 정지되어있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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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정상윤(26)
REVIEW
수 련 회 리 뷰
2016년 많은 대학부원들이 기다리던 동계수 련회!! 너무나도 은혜로운 예배와 말씀이 있었 지만 그 사이사이에 우리가 수련회를 즐기며 웃을 수 있게 해준 많은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글 배현진(26) / 디자인 장진아(25)
아침체조 아침체조가 돌아왔다. 새벽예배가 끝나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신나는 아침체조. 신나지 만 힘들다...... 그러나 이번 아침체조에서는 잘하는 팀에게 특별히 밥을 빨리 먹을 수 있는 하이패스권을 증정했다고 한다.
뉴송라이트를 켜줘 첫째날 뜨거운 부흥회를 마치고 시작된 ‘뉴송라이트를 켜줘’.대학부원이라면 누구나 했을법한 고민을 가지고 MC고상수 전도사님, 세 명의 패널, 그리고 대학부원들 이 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강캠프 엄성욱 장로님과 김철홍 목사님의 세 시간의 특강이 있었다. 긴 특강 시간에 모두 긴장하였지만 은혜 넘치는 특강을 들은 우리는 더 듣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우리동네 청지기 실내, 실외에 설치되어 있는 20가지가 넘는 미니게임을 통해 팀이 하나 되는 시간을 가졌다.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다들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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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날밤도전 어느덧 셋째날 밤이다. 수련회가 끝나가는 아쉬움을 안고 밤을 새고 싶어 하는 많은 팀들이 모여서 서로 게임을 하고 나눔을 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꽃보다 뉴송 대학부 새로 올라온 36기 새큼이들을 다 같이 축복하는 감동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 때 새큼이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준 말씀 카드는 대학부의 멤버십 기능이 있어 앞으로도 계속 쓰일 것으로 보인다.
힐링을 부탁해 마지막 날 부흥회를 앞두고 몸을 쉬기 위하여 자유시간을 가졌다. 영화 상영, 족구, 사격 등 많은 선택 게임들이 함께 진행되었다.
뇌를 돌아봐 과거와 현재의 뇌구조를 그려서 서로 바꾸 어보고, 나누어보며 서로가 더욱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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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칭찬 우체통
2016년 2월 3일부터 4일까지 3박 4일간 진행된 대학부 동계 수련회.‘청(廳)지기’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수련회에는 ‘칭찬우체통’이 있었다. 수련회 동안 진행된 칭찬 우체통은 칭찬하고 싶은 사람의 이름과 팀, 교구 그리고 칭찬 사연을 종이에 적어 칭찬 우체통에 넣는 것으 로 진행되었다. 수련회 마지막 날 뉴송예배 때 시간이 부족해 소개되지 못한 사연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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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세상과의 구별
세상에는 여러 상황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기준이 존재한다. 때로는 어떠한 이유로 그렇게 구별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심지어 이유가 존재하여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이유조차 알아차리기 힘들 때도 있다.
글 조현택(26) / 디자인 윤지현(23)
늘 타던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가는 길이었다. 신호를 받아서 하남시와 서울시의 경계쯤에 서있었다. 그때, 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건물에 있는 두 점포였다. 점포 중 한 곳은 서울 지역번호(02)를 사용한 전화번호를 쓰고 있었고, 그 옆에 점포는 경기도 지역번호(031)를 사용한 전화번호를 쓰고 있었다. 그 두 점포를 구분 짓는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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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에디터는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다니지만, 사회가 원하는 온유하고 착한 성품을 가진 크리스천은 아니다. 내가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간혹 질타 섞인 몇 가지 질문을 맞이한다. “교회를 다닌다는 애가 뭐 하냐?” “그렇게 살아도 천국 가냐?” “너랑 내가 다를 게 뭐가 있냐?”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말한다. “그래서 교회 다니잖아.” 예수님의 사랑하는 제자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는 행동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 다시 세워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다. 우리는 사회가 원하고 기대하는 크리스천의 모습이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낙심하고 크리스천임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곁으로 오기를 원하신다. 세상에서는 부정하고 우리를 비난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우리를 세워주실 것이고, 우리를 세상에서 구별시켜 주실 것이다.
MISSIONARY WORK
조금 더 많이 사랑하는 것.
하나님♥아이들.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어 아이들과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 많이 당황했어요. 아이들이
MHA에서 아이들과 공부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이 아이들은 하나님과 뭔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요. 한 번은 주말 동안 욥기를 읽고 소감문을 써오는 과제를 한 아이에게 내주게 되었어요. 일본에서 아주 오래 살아서, 제가 한국어를 가르치던 중학생 아이였죠.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42장이나 되는 욥기였기에, 저는 설마 이 아이가 해올까 싶었어요.
“제 삶은 분노 그 자체에요!”, “필리핀에 왔을 때 제 인생은 망했어요!” 라고 원망과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의 제게는 그 마음을 헤아리고 감싸줄 수 없었어요. 저도 유학으로 인해 타지에서 학창 시 절을보내었고, 그 기간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많았지만, 밖으로는 착 한 아이인척하며 그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기에, 밖으로 표출하는 아이 들의 모습에 어려움을 느꼈었죠. 그러던 어느 날인가 몸이 아파 양호 실에서 누워있는 중, 한 아이를 보게 되었어요.
“선생님, 소감문 써왔어요.” “!!! 어…? 응! 그래 한번 이야기해볼래?” “욥이… 원래는 잘… 살았는데… 자녀와 재산을 잃고…, 다음엔 종기가…….” 아이는 욥기서의 내용과 느낀 점을 어눌한 한국어로 열심히 이야기 하는데, 그 짧은 주말 동안 그 내용을 다 읽고 준비해온 아이를 보며 놀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발표를 다한 아이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밖에 없었죠.
“훌쩍, 훌쩍.” 누워있는 양호실 침대 커튼 사이로 막 중학생이 된 듯한 아이의 우는 모습이 보였어요.
필리핀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 (MHA)란? 선교사의 자녀이기에 추방, 안식년, 재정, 국가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여러 나라를 떠돌아야만 했었던 아이들이 있다. 선교지가 인권이 보호되지 않아 위험하거나, 학업 을 이어가기 힘든 오지이기에 부모님과 떨어져야만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님의 사 랑을 전하기 위한 선교로 인해 다른 이들과 다른 어려움 을 갖고 자라는 선교사님의 아이들. 이 아이들을 위한 곳 이 바로 필리핀 마닐라 한국아카데미(MHA)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느껴지는 이 곳에서 아이들과 2015년을 함께했던 청년 대학부원들이 돌아왔다. 세상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사는 아이들과 함께하며 하나님 의 사랑을 나누었던 1년의 이야기 중 일부를 견습 선교사 님 청년부 신지은 자매(89)를 통해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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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니? 선생님한테 한번 말해봐. 부모님 보고 싶니?” 거듭되는 양호선생님의 질문에도 아이는 울음에 먹혀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있었죠.저도 유학시절 이중 문화, 언어 문제 등으로 인한 정체성 혼란과 인종 차별도 겪었어요. 지금은 다 이겨냈고 지나간 일이 되었 지만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선교사님의 자녀로서 겪는 고통은 제 경 험과는 분명히 다르고, 헤아리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죠. 그 때부터 아이들의 아픔에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그만큼 더 사랑 할 수 있었어요.
“그래 우리도 귀로 듣기만 한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는 믿음을 갖자! 어떠한 시험과 환난 소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서는 안돼.” MHA 아이들에게 신앙은 삶과 굉장히 밀접하고 특별해요. 그 점을 명확히 느낄 수 있는 때가 아이들이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인데요. MHA 아이들은 예수님을 태어날 때부터 계속 지켜보시고 함께하시는 존재라고 설명을 하 고는 해요. 때로는 그런 예수님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못한다며 심통을 낼 정도로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는 아이들이랍니다. 또 한 가지 특별 한 것은 아이들의 찬양인데요. MHA에서는 쉬는 시간이 되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기타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곧잘 볼 수 있어요. 그 모습을 볼 때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된답니다. 그만큼 찬양, 워십, 연주등 음악적인 재능을 많이 갖고 있고, 그 재능으로 찬양하기를 즐거워하거든요. 하나님과 아이들 사이의 이런 특별한 관계가 부럽고 도전되면서도, 그런 관계 속에 있는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럽답니다. 제 삶의 첫 선교 이야기였는데, 제가 준 것보다는 보고 얻은 것이 더 많은 여정이었네요.
필리핀 마닐라한국아카데미 신지은(89)
CAMBODIA
ETHIOPIA
김지웅(28) 1. 어머니 건강과 사역 위해 2. 선교하는 동안 타인을 잘 도와주고 순종 하는 사람 되길 3. 영상에 대한 보직을 하는데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섬길 수 있는 시간 되길
오진우(28) 1. 선교지에서 필요한 사람이지만 나의 자취 가 남지 않기를 2. 가족 건강 위해
류다혜(29) 1. 하나님과 더욱 깊은 교재 2. 비전을 위하여 3. 가족 (어머니)
이승원(28) 1. 나의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부끄러워 않 고 그 모습으로 인해 많은 은혜를 내려주 실 주님을 더 많이사랑하고 기대할 수 있길
강혜진(30) 1. 하나님만 붙잡도록 2. 기도 시간, 말씀 시간 지키도록
길단비(26) 1. 가족 건강 2. 맡은 사역 잘 감당할 수 있도록 3. 기도와 말씀 놓지 않도록
TANZANIA
이은세(30) 1. Grace primary school의 모든 학생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2. 김용주선교사님, 최경숙사모님의 사역에 항상 함께 해주시고 강건함 주시도록 3. 이곳에서의 모든 마음과 뜻과 행동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 되도록 4. 영육이 지치지 않고 날마다 새 힘 얻도록
황다정(29) 1. 새벽 잘 깨울 수 있도록, 새벽예배 가는 길도 지켜주시기를 2. 장로님과 권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서 : 두 분의 건강 항상 지켜주시고, 맡겨주 신 사역 항상 형통케 하여 주시고, 모든 지역교회에 은혜 더하여 주시기를 3. 건강 위해서 : 더운 날씨로 인해 생기는 두통과 기침 이 없어지도록, 밤에는 잘 잘 수 있도록
박지형(35) 1. 하나님과 동행하고 믿음의 가정 이루길 2. 맡겨진 일들 잘 감당할 수 있게 도와주시길 3. 동생이 하나님께 속히 돌아오길 심형섭(26) 1. 가족 구원 2. 모든 일에 순종하도록 3. 항상 감사하도록 4. 은혜로 살아가도록
유미선(29) 1. 하나님 중심으로 서서 잘 섬기길 2. 함께 하는 모든 관계 가운데 승리하길 3. 모든 일을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선 교지에서의 삶 4. 가족(아버지/형부/동생)
권수진(27) 1. 하나님의 뜻대로 순리대로 선교를 갈 수 있기를 2. 정직한, 성실한 신앙생활 할 수 있길 3. 가정 위하여(동생)
허준범(27) 1. 하나님께 정직한 선교 2. 부모님을 위한 기도
PHILIPPINES
염민수(25) 1. 영육의 강건함을 위해서 2. 맡겨진 사역 불평, 불만 하지 않고 기쁨 과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3. 영적으로 깨어 있고, 영적 분별력을 주세요. 4. 기도 많이 하고, 성경 읽기 5. 우리 팀 하나 되고 서로 섬기고, 높여주고, 사랑할 수 있도록
조승현(24) 1.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할 수 있기를 2. 맡겨진 자리와 주어진 환경에 늘 감사로 섬기기 3. 수많은 걱정과 고민들에 넘어지지 않기 4. 앞으로 있을 일들에 두려움 없이 최선을 다하기
한소희(31) 1. 하나님께 아낌 없이 쓰임 받고 오길 2. 영적 성장 3. 함께 하는 모든 관계 가운데 화평하길
이희영(30) 1. 범사에 감사 2. 하나님의 계획대로 따르길 3. 나의 부족함 아시고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4. 가족 (엄마,아빠,동생) 위해
서혜진(25) 1.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도록 2. 무슨 일이든 주께 하듯 하고 늘 겸손한 마음으로 섬기며 하루 30분씩 꼭 기도 하도록 3. 하나님 안에서 만나는 분들, 캄보디아팀 서로 사랑하도록 4. 믿음의 가정, 중보자들 위해서
홍민기(27) 1. 맡겨주신 업무에 빨리 적응하도록 2. 경건생활에 더욱 힘쓰도록 3.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도록 4. 건강 지켜주시도록
김주희(26) 1. 사랑으로 섬기도록 2. 하나님 의지하고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길 3. 순종으로 맡겨진 사역 잘 감당하도록 4. 관계의 지혜
민양정(31) 1. 가족들 건강 지켜주시고 영육 간의 강건하길 2. 경건생활 열심히 하기 연형모(26) 1. 성령 충만하고 눈물의 씨앗 많이 뿌리 도록 2. 김병교선교사님께 순종하고 도움이 되도록 3. 캄보디아어 잘할 수 있도록 4. 운전할 때 안전 지켜주시고 피곤하지 않도록 5. 예수님 닮아가도록
정동은(88) 1. 항상 오직 주님의 관계 지키기 2. 주신 일 기도로 준비하도록 3. 기숙사와 교회 무사히 완공되도록 4. 항상 진심과 사랑으로 학생들 위해 기도 하도록
정강은(27) 1. 마음 잘 지키며 오직 주님만을 붙잡도록 2. 사역 가운데 지치지 않고 감사함으로 나아가도록
김찬우(23) 1. 주님 중심인 마음 잘 지킬 수 있도록 2.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수 있도록 3. 건강 지켜주시도록 4. 모든 중보자들과 선교사님들 축복 내려 주세요.
문배규(25) 1. 나태해지지 않기 2. 중보기도 꾸준히 하기 3. 가정 구원 4. 할 일 미루지 않기
송은지(25) 1. 맡은 사역 순종하며 잘 감당하길 2. 모두 건강하고 안전사고 없길 3. 항상 깨어 기도하며 마음 잘 지킬 수 있길 3839
NEWSONG
정구일 목사님
글 서동오(22) 전아영(26) 디자인 윤지현(23)
3월 특별 새벽집회
PLT
새큼터
대학부 전체 담당이시자 1교구 담당 교역자님. 코트가 잘 어울리시고 고음을 잘내신다. 신나는 찬양때 두발 모아 뛰기가 특기.
김문수 전도사님
PLT와 3교구를 담당하고 계신 교역자님. 찬양과 기타를 사랑하시고 사랑스러운 말투를 소유하셨다
고상수 전도사님
믿음의 훈련소 PLT가 시작되었다. 군대에서 간부가 되기위해 훈련을 받아야하듯 대학부에서 리더가 되기위해서는 PLT훈련을 받는다. 아직 PLT를 수료하지 않은 많은 대학부원들이 PLT에 가서 믿음의 훈련을 받았으면 좋겠다. PLT는 매주 토요일 오후1시50분 갈릴리실에서 진행된다.
대학부에 은혜의 절기인 수련회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더 많은 은혜를 사모한다면 명성교회의 은혜의 절기인 3월 특별새벽집회에 참여하자. 당회장 목사님께서 새벽에 주님께서 역사하신다고 말씀하셨듯 이번 새벽집회에서도 많은 은혜를 주실것이다. 이번 집회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주제로 3월 1일부터 5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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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대학부 새큼이 36기들만의 특권 새큼터가 진행중에 있다 새큼터는 새큼이가 아니면 갈수가 없어 가지 않았던 대학부원들중에 새큼터에 갈껄 하고 후회하고 있는 대학부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새큼터에 나가서 새큼이들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새큼터와 2교구를 담당하고 계신 교역자님. 숨길수 없는 열정과 개그감의 소유자. 오로나민춤, 비둘기춤, 랩에 능통하시다.
새큼이가
하고 싶은 말 대학부 새큼이었던 내 밑으로 새로운 새큼이들이 들어서더니 어느새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내가 그 자리에 와있다. 새큼이었을때가 가물가물 해지는 지금 물어봤다. “언니, 오빠, 누나, 형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뭐야?“
디자인 윤지현(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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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김삼환, 청년대학부 김선우, 편집인(편집장) 하영준, editor 김정훈, 조현택, 전아영, 박유나, 소민수, 박노준, 이가람, 이주혜, 김지은, 이정희, 배현진 design 전보민, 박보근, 우세연, 윤지현, 이지현, 장진아 facebook.com/mseditors 인쇄 문영사 02 2263 5087, 발행처 대한 예수교 장로회 명성교회 대학부 /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330-5호, 02 440 9361-5 web www.mscolle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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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소리 0304월 #ISSUE 38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강동마 00006
젊은소리 1112월 #ISSUE 37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강동마 0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