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소리 35호(15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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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은혜 (행 3:1-10)

Contents

정구일 목사님

Interview 32 타국에서 사는 사람들_김춘희 목사 42 궁금했어요, 그동안

오늘 본문은 신약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는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첫 번째로 사도들에게 나타난 이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이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는 승천하십니다. 제자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요. 하지만 오늘 3장을 통해 예수님의 끊어졌던 사역이 다시 시작됩니다.

New song 48 선교지 리포트_성아름다비 52 에디터즈 레터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걷지 못하는 사람은 이 날 처음 만난 것이 아닙니다.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날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했고,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갈 때마다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유독 그 날에 베드로와 요한이 그 사람을 눈여겨 본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 안에 예수의 영이 충만할 때 우리는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쉬이 지나치던 남의 아픔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사랑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넘치는 거예요. 성령 충만하면 사랑하지 못하던 사람도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목을 '베드로의 은혜'로 정한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다면 분명 날 때부터 걷지 못했던 사람일 것입니다. 그 당시에 질병은 곧 죄였습니다. 그래서 걷지 못하던 거지는 성전 미문을 넘어가는 순간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자는 그날 처음으로 뛰면서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우리에게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큰 은혜를 받은 베드로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베드로가 받은 첫번째 은혜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같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둘 중 누구를 사용했겠습니까? 요한은 예수님이 가장 신뢰하셨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부탁하셨던 제자, 그가 바로 요한입니다. 반면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였지요. 베드로는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하기 원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때 베드로는 잠잠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하기 원했었지만, 그는 다시 오신 예수님 앞에 나서기 부끄럽고 힘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주셨지요. 하지만 베드로를 용서하시는 것과 다시 사용하시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한 번 넘어졌던 사람을 다시 사용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 또한 만약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많이 고민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시 들어 사용하십니다. 요한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할 때 제자 중 유일하게 그 모습을 지켜봤던 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를 다시 들어 사용하실 때도 그는 증인이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은혜입니까? 나 같은 사람도 다시 들어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과거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베드로의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타날 줄 믿습니다. 베드로가 받은 두 번째 은혜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그날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장소가 어디입니까? 바로 50일 전, 예수님을 스스로 부인했던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베드로의 약한 곳에서 다시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약함을 강함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주님입니다. 약함을 들어 사용하시는 주님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시고, 내가 쓰러진 그곳에서 나를 다시 일으키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어떠한 마음으로 주의 전에 나오셨나요? 베드로를 다시 일으키셨던 사랑의 하나님을 여러분도 만나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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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28 레시피_얼그레이잼 Various 04 우리가 증인이에요 08 Kindness 09 못생긴 곰돌이 30 뉴송의 기쁨들에게 40 N Bus Contribution 46 추억 Social 18 애양원_이 땅이 감당치 못한 사람 54 campaign

Letter from The Editor.in.chief

어느덧 5월도 반이 흘렀네요. 지난 호가 3월 14일에 배부되었으니 딱 2개월 걸렸습니다. 페이지 수는 훨씬 더 늘어났어요. 하하...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시스템적으로 계속 수정 중에 있으니 다음번에는 꼭 정상궤도로 돌려놓도록 하겠습니다. 일을 진행하는 동안 지인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최근에 모 방송에 1인 고깃집이 나와 화두가 됐더라고요. 혼자 가서도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도록 자그마한 1인용 화로가 나온대요.(역삼동에 있다지만 가보길 권하고 싶진 않네요)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좁혀진 내용은 결국‘함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모 방송은 연예인이 혼자 사는 모습을 전파에 실어서 인기를 끌고 있지요. 또 개인적으로 참 싫어하는 단어입니다만‘혼밥족’이라는 신조어가 버젓이 뉴스에서 사용이 되고 있어요. 그런 흐름 탓에 1인 고깃집이라는 게 방송에 나와 화재가 되기도 하나 봐요. 흐름이 변하면 그에 맞게 소비트랜드를 변화시키는 거죠. 세상은 그렇더라고요. 사람이 한 명 한 명 분리가 되고 외로움에 사무치면 그 분리를 메우는 것이 아니라 외로움이 자유라고 가르쳐요. 인기 연예인들도 혼자 살고 있다고, 그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거라고, 그 자유를 즐기라고. 그런데요,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에게 혼자서 살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으시더라고요. 두세 사람이 모여도 반드시 내가 함께 할 테니 너희도 함께 하래요. 예수님도 홀로 기도하실 때 말고는 늘 사람들과 함께 하셨지요. 우리도 함께 해야 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그런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어요. 누군가와 같이 할 때의 행복이 혼자 있을 때의 자유보다 몇 배는 더 귀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수님도 우리가 혼자 살길 원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건 아닐 테니까요. 혹시라도‘이번 주일에는 혼자 예배드려야지’라는 생각이 있으시다면 부디 생각을 고쳐주세요. 그리고 우리와 같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에디터즈 편집장 하영준


새벽 5시 20분. 고요한 적막을 깨며 울리는 알람을 급하게 끄며 일어납니다. 비몽사몽 가운데에서도 혹시 누가 듣고 깨기라도 했을까 숨죽여 인기척을 살피고,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동생의 눈앞에 대고 손도 한 번 흔들어봅니다. 이내 도둑고양이마냥 살금살금 욕실로 들어가 후다닥 씻고, 성경책과 휴대폰만 챙겨서 곧장 집을 나섭니다. 아, 물론 현관문도 살살 닫아주고요. 매주 토요일, 저의 하루는 이렇게 비밀스럽게 시작합니다. 20년이 넘도록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온 제 주위엔 사실 크리스천보단 비(非)크리스천이 더 많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며, 신앙에 열정을 보이는 제 모습에 더러는 놀랐고, 더러는 당황했으며, 대개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말이면 교회에서 하루를 다 보내는 제게 엄마는 화를 내시고, 친구는 충고하고, 세상 사람들은 비아냥댑니다. 그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뭐냐는 거죠. 왜 엉뚱한 데에 세월 낭비를 하냐는 겁니다.

우리가 증인이에요 떳떳하고 당당하게 예수쟁이로 살아가기엔 참 쉽지 않은 요즘인 것 같습니다. 하소연을 하려는 건 아니고요. 사실 자기반성입니다. 세월을 낭비하는게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핍박 받을수록 더욱 정신 바짝 차리고 예수님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저는 오히려 소극적이었거든요. 사람들 앞에서 식기도를 하고 성경책을 읽는 것이, 회식자리에서 교회 다닌다는 이유로 술을 거절하는 것이, 집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이 다 눈치가 보였습니다. 유난 떤다는 그 한 마디 듣는 게 싫어서 말이에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증인 된 삶'을 살기에 저는 참 연약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예수님 다시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는데 말이죠. 잘못된 나의 모습을 의식하고 있을 무렵 성경에서 위로를 얻은 대목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연약했습니다. 가장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던 그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었죠.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받은 베드로는 회중 앞에 담대히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게 됩니다. 저는 연약했던 베드로를 변화시켰던 이 힘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교회로 향합니다. 예배를 통해 얻은 힘으로 그분을 증거하기 위해서요.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증인이 되기를 부탁하셨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예배드릴까요?

글 박유나(24) 디자인 전보민(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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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 라 불 고 러 주 세 요 글 김정훈(22) 디자인 윤지현(22)

예배실에 들어갑니다 성경을 읽고 목사님을 바라봅니다 십자가를 올려다 봅니다

교실로 들어갑니다 교과서를 읽고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칠판을 올려다 봅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종종 그 말에 공감할 때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몰랐던 것, 잊고 있던 것을 마주하고 배우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거든요. 어디서 무엇을 배우든 간에 우리는 배우는 사람들, 학생입니다. 배우는 건 같지만 한 가지 다른 점, 교회에서는 배운만큼 드리는 것이 있습니다. 배우면서 드리기도 하지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받아주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많이 배웠다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드리지 않습니다. 그분께 상식은 통하지 않거든요. 그분은 우리들을 가르치시고 우리들은 그분에게서 배웁니다. 그분은 우리를 학생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어요. 단지 배우는 사람이 아닌, 순종하며 가르쳐 주신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 그래서 어쩌면, ‘제자’가 좀 더 괜찮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네요.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는 학생이자, 한 발자국 나아가서는 제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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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indness of Time 시간이 베푼 친절

못생긴곰돌이

SPECIAL INTERVIEW

글 이가람(22) 그림 윤지현(22)

이창섭 부장집사 오프닝오프닝오프닝

질문질문질문짐눌 본문본문본문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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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es are flying in the sky. 하늘에서 연들이 날고 있어요. Innocent children are running after them. 순진한 아이들은 연을 따라 달리네요. Neat old gentlemen are watching the scene, 말쑥한 노신사들은 그 광경을 보면서,

(신은주, 윤지현, 전아영)

Dreaming of a dream of walking back in time for a moment. 잠시동안 시간을 거슬러 산책하는 꿈을 꿈꿔봐요.

먼저 식빵을 먹기좋은 크기로 잘라줍니다. (칼보단 가위가 더 깔끔하게 잘려요) 큰 조각들은 따로 두고 부스러기들은 입으로 털어 넣어 줍니다.

Now coming back to reality they know so well that 다시 현실로 돌아온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죠,

달궈진 후라이팬에 버터를 살짝 두르고 노릇노릇 해질때 까지 볶아줍니다. 살짝 바삭바삭해질 때 까지 볶아진 빵을 그릇에 담아 줘요.

Even though they cannot go back, they do not need to be frustrated at all. Because, 돌아갈 순 없지만 좌절할 필요는 하나도 없다는걸요. 왜냐하면, Scars have been washed away thanks to ‘the’ time, and 바로 그 시간 덕분에 상처들이 모두 씻겨졌으니까요, 그리고

[이제 소스를 만들어 줄 차례에요] 후라이팬에 설탕3스푼과 물3스푼 을 넣고 중불로 가열해 줍니다. 절대로 섞지말고 온전히 녹을 때 까지 기다려 주세요. 정말 너무너무 젓고 싶으면 후라이팬 손잡이를 잡고 살짝 돌려 주세요. 이 과정에서 야무지게 섞을 경우 이렇게 덩어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절대 섞지 말아주세요 설탕이 완전히 녹았으면 약불로 줄이고 우유를 두스푼 넣고 저어주세요 (이때 우유가 확 튈수 있으니 조금씩 넣어주세요) 갈색 빛으로 보글보글 끓기시작하면 캬라멜 소스가 거의 완성 된 거에요. 이제 볶아둔 빵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Sorrows have changed into anecdotes for their grandchildren, thanks to ‘the’ time. 바로 그 시간 덕분에 슬픔 또한 손주들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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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그릇에 담아서 식혀준 뒤 취향에 따라 견과류를 뿌려주면 카라멜 식빵 팝콘이 완성됩니다!


나는 못생긴 곰인형이에요 눈도 삐뚤고 코도 조그맣고 팔도 다리도 짝짝이에요 걸을때면 뒤뚱뒤뚱 내모습이 창피해요

옆에 디오에게 물어봐요 디오야 난 왜이렇게 생긴걸까 너가 어때서 그래 너무 못생겼잖아 그런가 모르겠는데 아냐 나는 못생겼어

이번엔 뽀로로에게 물어볼 거에요 뽀로로 난 왜 이렇게 생긴 걸까 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인자하신 할아버지 인형은 알고 계실지도 몰라요


맞아요! 수정이는 못생긴 저를 사랑해 주는 세상에 단 한명 이에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는 왜 이렇게 생긴 걸까요? 허허허 너가 왜 그렇게 생겼나구? 글쎄다.. 할아버지도.. 모르시는 거에요..? 허..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너가 만들어 지는건 보았지. 제가 만들어 졌다구요? 그렇단다. 수정이가 널 만들었지

수정이가 절 만들었대요. 수정이에게 물어보면 알수도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요.

뒤뚱뒤뚱 달려가고 있어요! 저멀리 수정이가 절 발견하곤 달려와요.


곰돌아! 수정이가 나를 꼭 안아줘요. 나는 너무 기뻐요. 질문하는 것을 잊어버렸어요. 수정이를 만난게 너무 기뻐서요.

곰돌아 왜 여기까지 왔어? 궁금한게 있어서. 그게 뭔데? 너가 나를 만들었어? 그럼! 내가 너를 만들었지. 정말? 그런데 왜 이렇게 만들었어?

왜 이렇게라니,너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으로 만들었걸? 내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예쁜 단추로 너의 눈을 만들었고, 가장 좋아하는 옷으로 너의 몸을 만들었어. 폭신폭신한 솜으로 그 안을 가득 채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너에게 뽀뽀를 했어.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응!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너도 알고 있잖아. 응!! 알고있어! 고마워 수정아 그래요! 나는 수정이가 사랑을 가득 담아 만든 존재였어요. 눈이 짝짝이면 어때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단추로 만들었는데. 팔다리가 짝짝이면 어때요 폭신한 솜으로 가득 차 있는데, 무엇보다 나는 수정이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요.


글 전아영(25) 그림 신은주(21)


이 땅이 감당치 못한 사람

intro 늦잠을 잤다. 시계를 보니 계획대로라면 이미 출발을 했었어야

여수 손양원 목사 기념관 방문기 글 소민수(26) 디자인 박보근(26)

될 시간이었다. 몇 주 전부터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읽기 시작했었다. 불과 60여 년 전 그의 인생에 일어났던 일들은 나의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나는 손양원 목사가 시무하였던 애양원에 방문을 하고 싶었다. 오늘이 바로 애양원을 방문하는 날인데 늦잠을 자고 만 것이다. 피곤한 눈을 비비고 가만히 생각을 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 가면 몇 시 차를 타야지, 챙겨야 될 건 뭐가 있었지,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졌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는 부랴부랴 식사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하였다. 짐을 순식간에 싸 들고 급한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총총 걸음으로 도착한 터미널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매표소에서 여수행 티켓을 끊고 나니 한시름이 놓였다. 대기석에 앉아 땀을 식히니 여수행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이제야 여수로 간다는 게 실감이 났다.

드디어 도착한 여수. 버스에서 내려서 맡은 여수의 공기는 향긋했다. 그러나 잠깐의 행복도 잠시, 문제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바일로 인출이 가능한 ATM 기계가 없는 것이었다. 체크카드를 두고 온 것이 이렇게 문제가 커질 줄은 생각하지 못 했다. 편의점, 마트를 동분서주 뛰어다녔지만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결국은 찾는 걸 포기했다. 마지막 방법은 여수시내까지 들어가서 은행 지점을 찾는 것이었다. 애양원과는 정반대인 시내까지 들어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 드디어 찾은 은행. 돈을 인출하고 애양원으로 가는 버스를 찾던 중 할머니 두 분이 눈에 들어왔다.

"길 좀 물을게요~ 애양원 가려면 저쪽에서 버스 타면 되나요?" "저 짝으로 가서 타서 곧장 가면 나와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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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과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이들은 세상에서 버림을 당한 자들이옵고, 부모와 형제의 사랑에서 떠난 자들이옵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하여 꺼리는 자들이오나 오! 주여, 그래도 난 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지어 나의 일신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된다면 이들과 함께 기뻐하며

한센병 환자들의 친구

정류장에 도착하니 이제야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흩날리는 벚꽃잎들, 이제 막 돋아나는 파란 나뭇잎 파리들이 바람에

일생을 같이 넘기려 하오니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사

애양원에 부임한 손목사의 하루는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하는

들거리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직 버스 시간이 좀 남은 것을

생활 이외에는 없었다. 당시 애양원에는 병에서 완쾌된 환자도

확인하고 가까운 편의점에 들려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정류장에

많았지만 그동안 심한 병마와의 투병 과정에서 눈을 잃어버린

앉아 식사를 했다. 손양원목사가 1939년 7월 14일부터 1950년 순교할 때까지 시무했던 교회 예배당이다. 지금 애양원 교회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측 성산교회로 등록되어 있다. "애양원 예배당 " 이라는 현판이 적혀 있는 돌 문 안으로 들어가 보면 제법 널찍한 그러나 검소하게 단장되어 있는 예배실을 대할 수 있다. 손양원 목사가 애양원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평양 신학교 2학년 때, 애양원 교회에 사경회 강사로 초청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당시 애양원 교회는 외부 사람이 예배를 인도할 때나 방문했을 때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장갑을 끼고 들어가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손 목사는 교회에 들어가면서 흰 가운을

사람, 손이 꼬부라진 사람,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환자가 많았다. 중환자실에 거주하는 몇 명은 상태가 정말 심각하였는데, 온 방안에는 진물과 핏자국, 땀들이

어루만지심 같이 내가 참으로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만약 내가 여기서 쫓겨남을 당하여 나가게 될지라도 나는 이들을 사랑하여 쫓겨난 그대로

엉겨붙어 도저히 그냥 들어갈 수 없음으로 상처를 보려면

남은 세월을 이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는

방바닥에 신문지 세 장 정도를 깔고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신문을 깔고 들어가려고 하면 그 환우들이 목침을 던지면서 같은 환자끼리 차별을 한다 하여 화를 내곤 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서슴지 않고 방에 들어가 맨손으로 방바닥을 치우고, 그곳에 앉아 환자들의 목을 껴안고 이마를 마주 대고 기도를 해 주었다.

참다운 사랑을 나에게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입는 것조차 거절하고 그렇게 했던 사람들에게 호통을 쳤다고

주께로부터 나온 나의 사랑이옵고 또한 주를 위하여

한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에 들어온 사람이 호랑이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매 내 어찌 주보다 더 사랑케 되오리까?

무서워해서야 어찌 호랑이를 잡겠느냐. 이곳에서 일을 한다는

그러나 나의 일신과 부모와 처자보다는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되

사람들이 병을 무서워해서야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라고

주를 사랑하는 그다음은 이 애양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여수까지 와서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하자니 처량한 기분이

하면서 호통을 치고 그냥 들어갔다고 했다. 이때 애양원 성도들은

들었지만 이내 행복한 마음에 식사를 했다. 속이 든든해지자 여행의

손 목사의 설교에도 은혜를 받았지만 그의 이러한 모습에 더 큰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설렘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감동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후에 그를 애양원 교회로 청빙하게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된 동기가 되었다.

무슨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애양원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 위하는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시간쯤 달렸을까. 드디어 애양원에 도착을 하였다. 이곳은 순천과 여수 중간에 위치하여 순천나병원, 여수나병원 등으로 불리다가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른지 알 수 없으나,

공모 끝에 1935년 애양원이라고 정하여 불리게 되었다.

이 몸과 맘을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중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애양원은 아담한 마을이었다. 마을 대부분의 가정은 양계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양계장 특유의 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애양원을 시무하기 시작했을 때 지은 시-

비교적 인적이 드물었는데 사람 대신 동물들이 나를 반갑게 반겨주었다.

2021


손목사는 청주 구금소에서 독방에 수감되어 그것도 감식형을

예수중독자

받아 쇠약해진 몸이 더욱 약해져 독감에 걸려 사선을 헤맬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손양원 목사는 기회만 주어지면 주를 위해서 죽고자 했다. “제일 좋은 죽음은 주를 위해 죽는 죽음이니 한없이 복됩니다. 나는 이제 살기를 도모하기보다 어떻게 하여야 주를 위해 잘

비인 방 혼자 지키어 고적을 느끼나

죽을까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성삼위 함께 지내니 네 식구 되는 구나

1950년 7월 밀려오는 공산군을 눈 앞에 둔 애양원 식구들은

갖가지 고난아 다 오려거든 오너라 괴로운 중에 진리를 모두 체험하리라

1948년 10월 27일 아침 여수에 있는 애양원 교회 두 아들 장례예배 때의 손양원 목사의 답사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였으니 감사 2. 많은 성도들 중에 이런 보배들을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는지 감사

입옥

3. 3남 3녀중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축복을 감사

손양원 목사는 신학교 시절부터 신사참배를 반대해 왔으며 그는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두 아들의 순교에

가는 곳마다 신사참배를 외쳤고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본은 망

하나님께 감사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던 중 1940년 9월 25일 손 목사는 여수 경찰서에서 나온 형사에 의해 연행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1년 6 개월 형을 받았으나 구속 기간까지 하여 거의 3년의 세월이 흘러 갔다. 그 때 손 목사에게 적용된 죄는 신사 참배 거부와 백성들을 선동했다는 것이었다. 손 목사의 가족들 또한 신사참배를 반대한 다는 이유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 져 끼니를 굶는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나는 고모 집에 와 삽니다. 아버지, 얼마나 고생합니까? 우리 집 식구도 다 잘 있습니다. 안심하세요. 동수도 많이 컸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고모집 식구도 다 잘 있습니다. 아버지, 나오는 것이 소원입니다. 고모가 아버지 면회하러 가신답니다. -손 목사의 어린 딸 동희의 편지가족들을 두고 감옥생활을 하는 손목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 사랑스러운 딸과 놀아주고 싶고, 이야기도 하고 싶었을 그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손 목사에게 어서 피신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순교할 각오가 되어있었다. “양을 먹이는 목자가 그 양을 돌보지 않고 어디로 피신한단 말 입니까? 내가 만일 피신을 한다면 애양원 일천 명의 양떼들을 자살시키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주의 품 이상의 피난처가 또 어디 있습니까? 나는 비록 불의불충하나 우리 주 예수의 의를 힘입어 주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바라던 제물이 되어 볼까 소원할 뿐입니다.” 그는 잡히시기 전까지 금식기도와 철야기도 그리고 특별 집회를 인도하면서 교인들을 격려하면서 “믿음을 지켜 죽을 준비를 하고 잘 죽자”라고 강조하였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거늘 전도하다 총살 순교

종신형

당함에 감사 6. 미국 유학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1943년 5월 17일, 만기 출옥할 날이 가까이 왔을 때 담당 검사는 손 목사를 불러 놓고 사상의 전환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담당 검사는 손 목사에게 “덴꼬(전향)해야 나간다."는 위협을 하였다. 그러나 손 목사는 그 검사에게 전혀 굴하지 않고 “당신은 덴꼬(전향)가 문제이지만 나에게는 신꼬(신앙)가 문제이 다.”라는 말을 하고 결국엔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당시 손목사의 부인과 자녀들은 힘든 생활을 보내며 손목사의 출소일

안심되어 감사 7.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것 감사 8. 두 아들의 순교로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감사 9. 역경 중에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은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께 감사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손목사가 출옥 일 을 며칠 앞두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것이다. 그때 가족들과 손

끝으로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목사가 받았던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영광을 돌립니다.

해방

사랑하는 두 아들을 떠나보내는 손양원 목사의 답사는 장례식장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해방 후 손양원 목사는 출옥하게 된다. 그러나 손 목사는 또 한 번의 시련을 겪게 된다. 여수에서 좌익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여순 반란 사건으로 1주일 동안 좌익세력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

아편으로 인해 죽게 되나니,

이때 우익세력을 비롯한 많은 일반인들이 피해를 입었는데 그중에 순천에서 공부하던 손목사의 두 아들 동인(23세)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동신(18세)이 있었다. 동인은 기독학생회 회장으로 끌려갔고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동신은 아무 죄 없는 형이 잡혀가는 것을 보며 형과 함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좌익 세력은 그들에게 예수 사상을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버리면 살려주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이 땅에서 주님을 놓지

주님 위해 살면 주 같이 부활된다.

않았던 것이다.

주의 종이니 주만 우해

동인과 동신을 살해하는데 동참하다 후에 체포된 좌익 학생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안재선을 손 목사는 용서한다. 또한 그를 양자로 삼겠다는 폭탄적인 선언을 한다.

-손양원 목사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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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당신을 말하는 것은 너무 어설퍼 오히려 누가 됩니다. 버림받은 문둥이들 더러운 피고름 당신 입술로 빨아낼 때 당신은 이미 이 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두 아들 동인, 동신이 피투성이로 쓰러져 순교 제물 되던 주일 “자신 하나 바친 것도 영광인데 둘씩이나 순교 제물 받으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눈물 흘리실 때 당신은 이미 이 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순교

보기만 하는 것도 소름끼치는 사람 두 아들 난사한 안재선 양자로 삼던 날

1950년 7월 27일 여수가 완전히 함락되었다. 손목사는 애양원

사랑의 원자탄은 터지고

성도들에게 순교를 부탁하였고, 24제직은 나와 함께 순교하시자

이 땅에 십자가로 서서

하였다. 순교를 각오하고 교회에서 기도하던 중 9월 13일

기뻐 하늘 보던 당신은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여수 경찰서에 수감되었다. 손목사는

이미 이 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감옥에서 기도로 일관하였으며, 먹을 것을 나눠주며 전도를 하였다. 9월 28일 새벽 공산군은 석방시켜 준다고 안심시킨 후

오늘은 남해가 보이는 애양원 동산에

미평으로 끌고 갔다. 손목사는 끌려가는 도중에도 찬양을 부르며

당신마저 순교자되어

전도를 했다.

두 아들과 나란히 누우셨을 때 당신은 이미 이 땅이 차마 감당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두운 그늘 해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오늘 당신을 말하는 것은 너무 부끄러워 오히려 누가 됩니다. -고 훈 목사의 시-

손목사가 전도를 하자 공산군이 총 괴머리로 입술을 들이쳤다. 손목사는 입술이 짓이겨지면서도 전도를 하다가 끝내 순교하였다. 조용한 아침 비장한 영결식은 원근 각지에서 모여온 귀빈 조객들과 애양원 성도 1천 명의 눈물 속에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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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 우유 2L, 생크림(휘핑크림도 ok) 1L, 설탕 150g, 얼그레이 티백 8개. (750ml 기준)

얼그레이 잼 크림치즈같이 부드러운 질감에 은은한 얼그레이 향이 나는 ‘얼그레이 잼’ 대학로 모 상점에서 잼을 사와 에디터들과 비스킷에 찍어먹다 나눈 대화. “이번 호 레시피 이걸로 할까? 맛있는데?” “n이랑 관련이 없잖아.” “관계성이야 만들면 되지. n으로 시작하는 단어로 ‘나눔’ 어때, nanum.”

1. 2. 3. 4.

냄비에 우유와 생크림을 넣고 중불에 끓인다. 우유+생크림 조합이 끓기 시작하면 얼그레이 티백 4개를 넣어 우려준다. 티백이 어느정도 우려져 베이지색을 띄면 나머지 4개의 티백을 찢어 내용물을 설탕과 함께 넣는다. 3에서 넣었던 티백을 꺼낸 후 약불에서 내용물이 냄비바닥에 눌러붙지 않게 저어준다. (팔이 매우 아플 수 있으니 주의! 생각보다 오래걸려요.) 5. 잼의 완성정도를 보기 위해 잼을 물에 한방울 떨어트린다. 이 때 잼이 퍼지지 않으면 성공! 6. 떠먹는 요플레정도의 점성을 띄었을 때 소독한 유리병에 하루동안 냉장보관 한다. 7. 아이들과 나눌 수 있게 포장하면 끝! (포장하고 남은 잼은 식빵이나 크래커에 찍어먹기!) 중요!! 글 이주혜(20) 디자인 윤지현(22)

짜맞추기 식으로 정한 레시피 얼그레이 잼 디아스포라 어린이들과 나눌 얼그레이 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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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에서 사는 사람들 수제 쨈을 만들어야지'라는 단순한 생각이 시작이었다. 이번 호 레시피로 만들려던 쨈을 우리만 먹지 말고 나누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대상을 고민했다. 포커스는 '아이들'로 모아졌다. 쨈을 받고 정말 좋아해 줄 사람은 아무래도 아이들 같아서, 그 아이들의 기뻐하는 얼굴이 보고싶기도 해서. 나는 주일 봉사를 조금 일찍 가면 만나게 되는 '디아스포라'를 떠올렸다. 그리고 언젠가 예배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선 방긋방긋 웃음을 짓던 아이의 얼굴도 생각났다. 나는 그날 디아스포라 담당목사님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드렸다. 이틀 뒤 저녁 6시, 급하게 약속을 잡고 명성교회 샬롬관 2층에 위치한 교육부 문을 열었다. 목사님 자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어떤 분이 무슨 일로 오셨냐고 물었다. 나는 너무 두리번거렸나 싶었다. "저, 김춘희 목사님 좀 뵈러 왔는데요." "제가 김춘희 목사예요."

#원탁의 대화 예정 돼있던 만남 속 예기치 못한 만남. 멋쩍게 웃으며 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사무실 한 쪽의 원형 테이블에 앉았다. 서로에 대한 간단하게 소개가 오갔다. 자리에 앉았을 때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이 원탁 때문이란 사실을 알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탁은 참 묘했다. 위아래, 가로와 세로, 모서리도 없다. 좌중의 중심이라 할만한 자리도 없어 앉는 순간 주인과 손님의 경계는 사라지고, 상석과 말석 따위의 구분도 없다. 원탁의 배치는 어느 방향으로 보나 평등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이런 원탁에서 대화를 나눴음을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목사님과의 대화는 편안했다. 딱히 질문거리를 생각하느라 고생하지도 않았고, 에디터와 인터뷰이라는 딱딱한 경계(境界)도 원탁의 경계에서 무너졌다. 목사님은 단단하지만 몸에 좋은 들깨과자와 따뜻한 녹차를 내주셨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그럼 그분들이 일하실 때 아이들은 어떻게 있을까 싶어서...이 아이들에게 잼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우리가 디아스포라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소 긴 얘기임에도 목사님은 계속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시며 우리가 오게 된 연유(緣由)를 궁금해 하셨다. 2000년도부터 디아스포라 교육전도사로 시작하여 전임전도사, 목사안수를 받을 때도 쭉 디아스포라에 있었다는 김춘희 목사님. 전담 목사가 계속 바뀌던 중 재작년부터 디아스포라 총 담당 목사로 계셨다고 했다.

저희가 이번에 수제로 얼그레이잼을 만들었어요. 그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누구한테 나눠줄지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어린이가 좋겠더라고요. 아, 잼이요? 좋네요. 잼은 나중에 줄 건가요? 유통기한은 괜찮아요?(웃음) 네, 얼마 전에 만들어서요.(웃음)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디아스포라에 대해 너무 모르더라고요. 정확히 어떤 곳인가요? 쉽게 말해‘타국에서 사는 사람들’이에요. 디아스포라의 90%정도가 외국인 근로자분들이죠. 우리 교회는 96년에 몇몇 근로자분들이 오셨던 것을 시작으로 2,000년도부터 본격적인 디아스포라 예배를 시작했어요. 예배는 언어권별로 중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몽골, 태국, 배트남 6개국으로 나눠서 드리고 있고요. 또 근로자 중심이던 디아스포라에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면서 13년도부터는‘다문화부’라는 부서를 따로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근데 어린이는 교회에도 많은데 왜 디아스포라에 왔어요? 음, 실은 최근에 디아스포라에 대해 좀 알아볼 일이 있었는데 평일에 따로 모임이 있으면 참여해볼까 했어요. 근데 아는 분에게 여쭤봤더니 근로자 중심의 디아스포라라서 평일에 따로 모임이 없고 예배도 야간 연장근무가 없을 때에만 간신히 드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다문화부와 디아스포라는 다른 부서인가요? 다 디아스포라예요. 디아스포라 안의 90%가 근로자고 10%정도의 다문화가 있는 거예요. 그동안은 디아스포라가 예배만 드렸는데 다문화가 점점 늘어나면서 거기에 맞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자꾸 어려운 일이 하나씩 터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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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분들이 꼭 필요한 것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에 다문화부에서 그분들 심방을 하고 얘기도 들으며 주중 프로그램을 만들어요. 특히 다문화 아이들은 이제 갓 태어난 아이도 많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애도 있거든요. 그러면 아무래도 여느 한국 아이들보다 채워지는 것이 덜해요. 그런 부분을 봉사자분들이 애써서 도와주고 있어요.

그렇죠. 그래서‘불쌍해’이런 것이 아니라‘너와 나는 같다’는 식으로 대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가 그렇게 대하니까 다문화분들이 교회를 오면 정말 좋아하는 거죠. 마음 문을 열어요. 마치 동료를 찾은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사실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것뿐이지 그 나라에서 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이 와요. 주눅이 들어도 우리가 들어아죠.(웃음)

설명을 좀 부탁드릴 게요. 디아스포라와 다문화의 정확한 차이가 뭔가요? 근로자와 비근로자, 이런 기준인가요? 좋은 질문이에요. 다문화와 디아스포라의 차이는 이거예요. 외국인 근로자는 말 그대로 외국인 근로자예요. 성인들이죠. 외국국적을 가진 노동자. 그런데 이 사람이 한국에 와서 한국인과 가정을 꾸리면 그게 부부 중 한 쪽이 한국인인 다문화 가정이 되는 거예요. 애초에 결혼을 위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도 있죠. 그렇게 가정을 이루어서 살아가는 가정을 다문화 가정이라고 통상적으로 말하고 있어요. 부서 특성상 일손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래서 저희가 봉사자가 꽤 많아요. 봉사자라면, 교사요? 네, 주일 디아스포라 전체 출석 인원이 한 200명~250명 되는데 그 중 봉사자가 180명이에요. 150명 정도가 매주 출석해요. 주일에는 여느 교육부서처럼 부장, 부감, 총무, 교사로 계시지만 디아스포라 특성상 주중에 예배가 없을 때에도 일이 생기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기면 저희들이 연락을 취해서 급히 심방을 가거나, 병원에 데리고 가거나 하고 어떤 때는 일자리를 찾아주기도 해요. ‘쉘터’라는 곳이 있다고 들었어요. 어떤 곳인가요? 형인아파트 앞에 있는 빌라 한 동, 근로자분들이 며칠씩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근로자는 집이 없어요. 관광을 목적으로 왔다면 호텔이 있고 친척이 있다면 친척 집이라도 있는데, 이분들은 공항에 내리면 갈 데가 없어요. 그럼 교회로 연락해서 거기서 며칠 지내다가 취직해서 나가는 거죠. 취직하면 회사에서 100% 숙소가 제공되거든요. 아픈 사람, 일자리가 없어진 사람도 와요. 운영하는데 문제는 없나요? 저희가 6개 나라잖아요. 그러니까 언어권이 6개 언어권이란 말이에요. 그러면 이 언어권별로 문화가 달라요. 이게 다문화에요. 또 이분들이 믿음이 없이 왔다가 와서 믿거든요. 믿음 있는 사람들도 안 맞을 때가 많은데 여긴 예수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너무 많단 말이죠. 그래서 안 좋은 일들이 하나씩 발생해서, 예전엔 쉘터에서 취사도 가능했었는데 지금은 침구류 정도만 제공이 돼요. 지금은 간이쉘터 정도의 역할에 그치지만 앞으로 계속 그분들의 필요한 부분을 체계적으로 관리해드릴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요. 봉사자 분들이 매주 모여서 릴레이 금식기도를 해요.

#거리 좁히기 디아스포라의 주일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있지만 디아스포라의 전체적 흐름은 예배 중심이에요. 왜냐면 이분들이 주일에만 쉬니까요. 주일도 한 달에 한 주 쉬는 공장이 있고 두 주 쉬는 공장이 있어요. 그래서 매주 출석은 어려워요. 예배는 보통 본당에서 3부를 통역으로 드려요. 그리고 지하 식당, 왜 솔트마인(지하 내 카페)에서 식당으로 가는 통로 있죠? 그 공간을 따로 빼서 무료 배식을 해주고 있어요. 그 후에는 은혜교육관으로 와서 언어권별로 3시 반까지 프로그램을 하는데 우리는 이걸 2부 예배라고 불러요. 자기나라 말로 친교하고 성경공부 하는 거죠. 3시 반에는 그분들도 교회 버스를 타고 귀가해요. 저희가 버스가 8대가 있는데 아침에 가서 데려오고 돌아갈 때 다시 데려다드려요. 공장 대부분이 근교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했거든요. 일정을 여쭤본 이유가, 저는 5부 예배 때 은혜교육관에서 봉사를 해서 그때 디아스포라 분들을 잠깐 봐요. 근데 은혜교육관이 사실 본당과 가장 멀리 떨어져 위치해 있다 보니 공간적 거리가 심리적 거리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예리하시네요.(웃음) 저희가 아까 본당에서 통역으로 예배드린다고 했잖아요. 근데 이렇게 예배드리게 된 건 2012년 예루살렘성전에 입당할 때부터예요. 2011년까지는 은혜교육관에서 따로 예배를 드렸어요. 일단 그때는 통역도 없어서 이분들은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면서도 뭘 하고 있는지 몰라요. 사람들이 노래하고 있으면 찬양인가보다, 눈 감고 있으면 신앙고백하나보다, 듣고 있으면 설교 듣나보다...근데 진짜 가슴 아팠던 에피소드가, 왜 이분들은 명절이 되도 집에를 못 가잖아요. 그래서 따로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퀴즈를 냈어요. 문제가‘당회장 목사님의 이름은?’이었어요. 근데 몰라요. 또‘우리가 다니고 있는 교회 이름은?’물으니까 은혜교육관 교회래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아, 이게 아니구나’싶었죠. 그 이후로 본당에서 같이 드리게 된 거군요. 네. 왜 우리 3월, 9월 특별새벽집회 때면 해외에서도 많이 오잖아요. 그럼 그 분들은 진짜 많은 돈을 내고 와서 그 새벽집회만 참석하고 돌아가거든요. 교회 지도자들이 그렇게 사모하는데 세상에, 우리 디아스포라 성도들은 여기 와서 몇 년을 있으면서도 목사님 설교를 못 듣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께 전반적인 보고를 드리며 성전도 크게 지었는데 우리도 본당에서 통역으로 같이 예배드리면 안 되겠냐고 여쭸더니 목사님이 너무 잘했대요. 바로 본당에서 드리래요. 그러고 나니까 이분들이 너무 은혜를 받는 거예요. 목사님 좋아하는 게 우리 교회학교 애들이 목사님 좋아하듯이 좋아해요. 그래서 이제는 퀴즈내면 다 알죠.(웃음)

심리적 거리는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사실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일반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과 좀 다르잖아요. 뉴스 및 미디어를 통해 비춰지는 모습은 계속해서‘가난해서’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를 생산하고요. 외국인이 그 나라에서 결혼하지 않고 한국에서 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실 경제적 문제가 1순위에요. 물론 연애 결혼한 가정도 있지만 비율로만 봐도 50%가 넘어요. 다문화 가정은 대체로 남편과 부인의 나이차이가 많게는 스무 살까지 나요. 대개 남편이 더 많죠. 그런데도 결혼을 하는 이유가 뭐냐? 그곳에서 결혼하면 똑같이 힘든 생활 해야 하지만 한국 사람과 결혼하면 우선 가정의 빚이나 여러 문제가 해결 되잖아요. 그렇게 오다보니까 100가정이 있으면 상처로 인해 깨지는 가정이 사실 많아요. 이혼은 우리나라가 더 문제인걸요. 그렇죠. 근데 문제는 이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다는 거예요. 한국 가정도 많이 갈라서는 마당이니 깨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거봐라, 돈 벌려고 결혼하러 갔으니 깨지지’라고 보는 거예요. 그런 아픔이 다문화가정에 많아요. 결혼하러 온 외국인뿐만이 아니라 한국인도 마찬가지죠. 보통 나이가 40대가 넘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결혼할 상대가 없으니 외국에서 그냥 좋은 여자 만나서 가정을 이루라는 주위의 압박에 의한 상처가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기처가 좀 흔들리기 쉬워요. 결국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시선’으로 귀결되는 것 같네요. 같은 교인으로서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까요. 좋은 질문이에요. 그렇죠, 사회분위기를 봤을 때는 100이면 95정도가 다문화가정을 좀 낮게 보죠.‘다르고 외면하고 싶다’는 시선까지 포함한다면 본다면 95가 넘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슬픈 건 그 시선을 다문화가정 본인들도 알아요. 아이도 알고 부인도 알고 남편도 알아요. 그러니까 이미 매우 아픈 상태에 있어요. 그래서 가족 구성원 모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해요. 얼마나 그 시선이 따갑겠어요. 친척, 형제, 심지어 자기 부모님의 시선도 그럴 텐데요. 그런데 우리는 교회잖아요. 교회 안에서 만나잖아요. 봉사자분들은 그 시선을 초월한 사람들이에요. 편하게 사랑으로 대하려고 하죠. 왜 장애가 있는 사람을 계속‘불쌍하다’그러면 상처를 받잖아요.

#뫼비우스의 띠, 그 위에 사랑을 얹으면 다문화가정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를 지원하는 국가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근에는 결혼을 25세까지 나이 차이가 나면 국가에서 허락을 안 해줘요.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다고 해서. 또 다문화가정에 애가 있으면 가정이 소속된 구청에서 일주일에 두세 번 가정방문교사가 오고 한글교재를 지원해줘요. 출산하면 돈도 나오는데 액수는 구마다 조금씩 달라요. 그 외에 학교 다니면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어요. 다문화가정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가정이 많아서 이런 지원들이 그래도 도움이 돼요. 의외네요. 영화나 미디어를 통해서는 불법체류자들을 국외 추방하는 모습들만 많이 봐왔거든요. 양과 음이 다 있어요. 국가에서 이런 복지와 혜택을 곳곳에 다 두고 있어요. 이를테면 병원도 국립의료원, 서울의료원, 적십자 같은 곳에는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만 혜택을 주는 복지가 잘 되어있어요. 수술을 했을 경우에는 천만 원 선에서 후원을 해주거든요. 국가에서요? 네, 대한민국에서요.(웃음) 그러나 법무부에서는 불법 체류자들이 너무 많이 오면 안 되니까 또 잡아요. 아예 몇 명을 잡아오라고 할당을 줘요. 그래서 저희도 지난달까지 열 몇 명 잡혀갔어요. 어떻게 보면 모순적인 상황이네요. 한 쪽에서는 잡고 다른 쪽에서는 지원을 해주고. 아주 균형이 맞는 거죠, 계속 잡으면 안 돼요. 그러면 중소기업이 망하고, 또 선진국에는 제3세계 사람들이 많이 와서 되는데 계속 잡으면 사람들이 안 오잖아요. 당근주고 채찍질하고 다 해요. 그래서 우리는 우스개로“조심해라, 기도 많이 하고 빚 다 갚고 돈 어느 정도 번 다음에 잡혀가라”라고 해요. 일단 잡히면 교회에서는 어떤 간섭도 못해요. 나라의 법을 어긴 거라서. 추방당하기 전에 거류하는 외국인 보호소가 화성 쪽에 있거든요? 잡히면 바로 죄인이에요.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핸드폰도 안 돼요. 그럼 거기서 관리하는 분들한테 허락을 받고 연락을 해요.자기 잡혀서 어디에 있고 여권은 어디 있고 짐을 어떻게 해서 가져다 달라고 얘길 하면 사람이 챙겨서 가는 거죠. 그럼 우리는 가서 기도해주고 성경 주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잡혔다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어서 감사하고 어느 나라에 있든 믿음 생활을 잘 해야 한다고 가르쳐줘요.

결국은 믿음의 정체성을 찾게 된 과정인 거네요. 맞아요. 이분들이 믿음의 정체성을 찾고 믿음이 자라나니까 봉사자들도 너무 뿌듯해 해요. 사실 저희 봉사자들 봉사시간이 타부서보다 길어요. 우리가 근로자분들 픽업하러 가는 차량이 8시 30분에 출발해요. 그리고 3부 예배드리고 프로그램이랑 평가회까지 마치면 4시쯤 되거든요. 그럼 그분들 다시 데려다드리고 오면 저녁예배 겨우 드려요. 봉사를 어마어마하게 하는데 이전까진 본당과 동떨어져 있다가 이제 본당에서 특순도 하고 함께 예배드리니까 봉사자분들도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사실 이제는 저희가 딱히 떨어져있다고 느끼진 않아요. 본당에 가면 4층에 통역실이 있고 우리는 예배도 본당 오르간 쪽 세 번째 라인, 2층 3층 앞에서 드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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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대학부에도 디아스포라에 아이들은 몇 명 정도 있나요? 애들이 좀 많아졌어요. 지금 한 30~40명 돼요. 뭐 계속 태어나요.(웃음)

그럼 잘 잘 받아들이나요?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죠. 그때는 절박하니까 축복을 해주죠. 귀국하는 일이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증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여기선 불법체류자인데 자국으로 가면 불법 체류자가 아니지 않냐고 등등. 어떤 사람은 온 지 2년 밖에 안 돼서 빚이 엄청 많은데 빚을 다 못 갚고 잡힌 거예요. 그런 사람은 더 마음이 아프죠. 그래도 몸이 건강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요. 돈을 어느 정도 많이 번 사람은 붙잡혀도 그렇게 슬퍼하지도 않아요.(웃음) 그냥 갈 때가 되어서 간다고, 이제 가서 아쉽다고 그러죠. 가게 되면 다시 오긴 힘든가요? 5년간 비자발급이 안 돼요. 그게 풀려야 다시 올 수 있어요. 그런 아픔 외에도 목사님이 목회자로서 볼 수밖에 없는 그분들의 영적 상태, 메마른 모습들을 보면서 마음 아프신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 그분들이 신앙이 없는 상태에서 만나잖아요. 우리도 제일 처음에는 복음으로 접근해요. 예수 믿으시라고. 그런데 정말 가슴 아픈 건 그 사람만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있는데 우리는 이 복음 하나로 계속 다가가잖아요. 우리는 초월을 해서‘어떤 것도 좋사오니 오직 예수’이런 마음이라도 있지만 그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그게 아니에요. 이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 사람도 초월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잘 해결이 안 되는 거죠. 심지어 언어도 잘 안 통해. 그 현실을 공감할 수 없으면서 복음을 들고 나아갈 때 안타깝고 목회자로서 힘이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한 어떤 한계를 느껴요. 그렇게 다가가면 보통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처음 듣고는 설마설마해요. 그래도 외면은 안 해요. 좋은 거라니까. 그렇게 조금씩 마음 문을 여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전도해도

안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충분히 교회 와서 은혜도 많이 받고, 본인들 말로는 교회의 혜택도 많이 받는대요. 그런데 귀국할 때 보면 예수님이라는 옷을 벗어놓고 가는 경우? 안 믿었던 거죠. 몇 년간 너무 고마웠대서, 그러면 가서 교회도 잘 다니라고 말하면 우리는 교회가 없다고, 여기서 안녕이래요. 그때 무너지는 마음은 표현할 수가 없어요. 내가 2~3년 교회 열심히 와줬다는 거죠. 실제로 교회가 없어서 그러는 걸까요? 없을 수도 있죠. 그러나 믿음이 들어간 사람은 그런 말을 안 해요. 교회를 소개시켜 달라든지, 가서 찾겠다든지 하는데 딱 손 털고 이제 해방된 거예요 교회에서. 100명이 있으면 100명이 다 알곡일 수는 없지만 그게 확인 될 때마다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어요. 반대로 매우 뿌듯할 때도 있으시죠? 그래도 하나님이 그분들을 사랑하시는 게, 우리가 6개 나라를 향해서 선교를 하고 있는 거예요. 외국인 근로자일 경우는 혼자 와있기 때 문에 가족이 다 본국에 있잖아요? 그러면 어떤 경우는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로 전도를 해요. 이제 예배드리고, 예수님 받아들이고, 세례 받고 신앙생활하면서 본국에 있는 부모님 전도하죠, 부인 전도하죠, 집안 어른들 전도하죠...그리고 그곳 주변에 교회가 없으니까 꼭 교회를 소개시켜달라고 하고. 그러면 우리가 성경책도 부쳐주고 해요. 이런 사람도 많아요. 또 요즘에는 심방을 가면 그 영상… 뭐죠? 영상통화 있잖아요. 언제는 그걸로 자기가 전도한 부인이랑 부모님을 우리한테 소개하면서 같이 영상으로 심방을 하 기도 했어요. 이런 거는 진짜 너무 놀랍죠. 정말 감사하고. 그것 말고도 그분들 마음에 성령이 들어가서 남을 섬기는 모습을 볼 때도 무척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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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를 가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 외에 저희가 디아스포라분들이랑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이 뭐가 있을까요. 음, 제 나름대로 의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봉사자로 오시면 한국말은 잘 하나요? 애들은 한국말 잘해요. 애기들은 엄마나라 말을 잘 못하고 한국말을 하죠.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봉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타부서 봉사도 그러다보니 엄마랑 아이 사이에 약간 벽이 생겨요. 학교에서 가정 숙제도 하고 계시니까. 가끔이라도 올 수 있는 거라면, 만약 부서에서 특별한 많이 내주는데 엄마는 한국어를 잘 못하니까. 아빠도 자기랑 나이 차이가 행사가 있잖아요? 야외예배나 연합으로 고정적인 행사를 한다든지. 의향이 있으신 분은 그러한 자리에 초대를 해주셔서 같이 드리면 좀 많이 나니까 잘 못 가르쳐주죠. 그래서 엄마들이 한국어를 열심히 좋을 것 같고요. 아니면 우리 디아스포라 예배 때 나눔의 시간이 배워요.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문화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원을 할 있어요. 그때 봉사자분들과 외국인들이 소그룹으로 모이는데 미리 예정이에요. 연락을 주셔서 같이 나눔을 해도 좋을 것 같네요. 우리는 항상 열려있거든요. 다만 주일에 차타고 와서 한정된 공간에서 초입 때 말씀하신‘다문화부’에서요? 움직이다보니 본당 특순 때 말고는 만나기 힘들 뿐이죠. 오셔서 네, 우리가 지금 건물을 새로 짓고 있어요. 아까‘쉘터’얘기하셨죠? 20~30분 정도 얘기만 한다고 해도 우리는 환영해요. 특별히 그 나라 네 언어권에 관심 있고 선교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어도 좋겠네요. 새로 짓고 있는 게 그거예요. 우리가 교육부 신경민 목사님하고 농담 삼아 얘기했던 것들이 있는데, 여기 엄마들이 젊잖아요. 우리 문화선교학교가 있는데 이분들을 외국인 선생님으로 쓰면 떻겠냐는 거죠. 그럼 이분들도 자기가 한국인에게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다시 얼그레이잼 중국어, 러시아어, 몽골어, 좋잖아요. 이제 공간이 마련되면 이런 주중 아까 말씀드린 잼 있잖아요. 저희가 아이들한테 잼을 좀 나눠주려고 프로그램을 더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거예요. 하는데 어떤 식으로 나눠주면 좋을까요? 저희가 처음 생각했던 건 산타처럼 가서... 참, 저희 부서원 중 한 명이 교회학교에서 봉사하는데 거기에 몽골 좋네요. 이번 주말에 하시는 거예요?(웃음) 아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네, 잼 유통기한도 있으니까요.(웃음) 네, 쌍둥이 있어요. 형은 좀 조용하고 동생이 말을 잘 하죠. 엄마아빠가 다 몽골 사람인데 걔네 엄마는 한국말 너무 잘 해요. 끝으로 목사님께서 디아스포라에서 갖고 계신 비전과 기도제목을 그냥 한국사람 같애.(웃음) 말씀해주세요.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은 이분들이 다른 환경에 있다 왔지만 명성교회를 통해서 제가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게 디아스포라는 은혜교육관에서 따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됐으면 하는 거죠. 다문화가정이 점점 많아지면서 교회학교를 한다고 들었어요. 너무 속상한 게 우리가 그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네, 맞아요. 없다는 거예요. 그게 속상해서 심방도 다녀오고 하면서, 그분들의 필요를 우리가 조금이라도 채워줄 수 있도록 봉사자들이 늘 회의하고 교육부 교회학교랑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혹시 따로 하는 고민하며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예수 잘 믿어서, 그러면 가정이 이유가 있나요? 더 든든히 서요. 다문화 중에서 베트남 성도가 제일 많거든요. 우리는 분리 안 하고 싶죠. 근데 걔네 엄마아빠가 여기 있으니까 애들이 금요일마다 사무실에 있다 보면 구역장 권찰 교육을 간느 사람들로 그동안 갈 데가 없어요. 교육부 교회학교는 1, 2, 3부밖에 없는데 우리는 성단이 메워지는 걸 봐요. 저는 우리 베트남 성도들도 여기 있으면서 시간이 4부 때니까. 물론 애들 중에는 3부 때 교육부 교회학교 갔다가 한국 성도들처럼 구역장 모임에도 나가고, 자기 문제를 가지고 다시 여기로 오는 친구도 있긴 있어요. 근데 다 그렇게 하기가 힘든 다른 데서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 와서 눈물 흘리는 날이 이유가 부모님이 애들이랑 안 떨어지려고 해요. 그래서 은혜교육관에서 왔으면 좋겠어요. 물론 눈물 흘리지 않고 교회 와서 기뻐 찬양하면 따로 하되 교육부 교회학교랑 똑같이 하고 있어요. 얘기도 한국말로 하고. 더욱 좋겠지만요. 그분들이 진짜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러니까 애들도 되게 좋아해요. 처음에는 교회학교가 따로 없었다가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2010년에 생겼어요. 애들이 많아지는데 어른들 모임 가지는 동안 너무 뛰어다니니까.(웃음) 그래서 여기 좀 묶어놓고 해야겠다 싶어서 시작됐죠. 뛰어다니는 애들 하나하나 붙잡아다가 갖다놓으면 잘 놀아요.(웃음) 아직 대학부 올라온 디아스포라 친구는 없죠? 본 적이 없어서. 네, 제일 큰 애가 고1이에요. 애들이 30~40명 되는데 아직 젖먹이도 있고 초등학교 가서 뛰어다니는 애들도 있으니까 이제 곧 진출하겠죠. 문제는 그땐 에디터님께서 안 계시겠네.(웃음) 네, 그렇죠. 이번년도가 마지막이에요. 저는 나이가 차서(웃음) 가끔 디아스포라 청년들이 와요. 유학생들이. 저는 그 친구들이 우리한테 오지 말고 대학부로 갔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근로자가 아니라서 코드도 안 맞고 세대차이도 나서 잘 못 앉아있거든요. 첫 주 등록하고 다 사라져요. 청년대학부 중에는 외국어 잘 하는 친구도 많잖아요. 서로 잘 만남이 되서 대학부에 잘 적응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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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 잼, 나눔 4월 19일 오후 2시 50분 낮에는 추적추적 약속도 안 한 비가 왔다 어젯밤 끓인 얼그레이잼 몇 개가 묽어 병목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저께 급히 모여 입만 맞춘 찬양 아이들 앞에서 불렀다 아이 맑은 눈망울 사진기에 담으려다 눈 속에 들어가 인사하고 나왔다 그때쯤 내리던 비도 다음에 보자며 돌아갔다

글 장원(26), 하영준(28) 디자인 전보민(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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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전보민(24)

어느 덧 해 저문 새벽12시. 모든 것들이 검게 물들어 모든 것들이 예민하게 느껴지는 그 때, 집으로 향하는 늦은 시간에도 안전하게 인도해주는 올빼미가 있다. 올빼미버스, N버스다. N버스는 Night버스의 줄임말로 서울특별시에서 2013년 9월에 신설된 심야버스다. 시내버스 막차가 끊기는 밤 12시부터 새벽5시까지 서울의 도심과 부도심을 오가며 야간에 운행한다. 깜깜한 밤 큰 눈을 깜빡이며 주위를 둘러보는 올빼미처럼 사람들의 늦은 귀가를 돕는 버스라는 의미로 올빼미버스라고도 불린다. N버스는 심야시간에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이동에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밤에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시민들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심야버스 노선번호에서 N은 심야(Late Night)를, 두 자리 숫자는 출발-도착 권역을 의미한다. 예를들어 교회를 지나가는 N30번은 3권역(강동구)에서 출발해서 0권역(중구)을 도착지점이다. 심야버스로 인해 택시 승차거부가 8.9%나 감소했고 밤에 다니는 여성들이 약11%가 증가했다. 버스는 N13(상계동-송파), N15(우이동-사당역), N16(도봉산-온수역), N26(강서-중랑), N30(강동-서울역), N37(진관-송파), N61(양천-노원역), N62(양천-면목동)로 현재 8개 버스가 운행 중이다. N30은 명일역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뉴송인들이 가장 이용이 많은 심야버스다. 오늘 밤에도 누군가는 N버스를 타고 안전하게 집으로 도착할 것이다. *뉴송인 : 명성교회 청년대학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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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다 동기가 특이하시네요. 타이핑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으세요? 승현 -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요. 그래서 사람이 적은 예배시간에 가서 타이핑을 해야 하고 구석진 곳을 찾아가 타이핑을 해야 해요. 아무래도 타이핑을 하면 소리가 나잖아요. 예배 시간인데 다른 분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죄송하더라고요. 지훈 - 저도요. 타이핑을 하는 자리가 힘들어요. 제가 앞자리에서 앉는 걸 좋아해서 처음에는 앞자리에 앉아서 타이핑을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서 조금씩 뒤로 밀려가더니 어느 순간 제가 3층의 제일 뒷자리에서 타이핑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앞자리에 못 간다는 게 제일 아쉬워요. 혹시 말씀 타이핑 메시지를 받고 교회에 나오신 친구 분들이 계세요? 지훈 - 네. 타이핑된 말씀을 보내주니까 친구 한 명이 교회에 나오고 싶다고 말했죠. 지금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타이핑된 메시지를 받으면서 교회에 나온 친구가 세 명 정도 있어요.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는데, 혹시 무슨 일하고 계세요? 지훈 - 저는 학원에서 일했었는데 지금은 쉬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승현 - 저는 놀이 학교 교사에요. 어린이집 같은.

궁금했어요. 그동안

아, 저는 컴퓨터 종사자분이 아니실까 생각했거든요. 지훈 - 아 전혀 아니에요.(웃음) 저는 컴퓨터 잘 못해요. 전혀 관련이 없어요. 승현 - 저도요.(웃음)

글 조현택(25) 편집 하영준(28) 디자인 전보민(24)

명성교회를 다니는 청년대학부라면 한 번씩은 받아 보았을 목사님 말씀 타이핑 메시지. 예배가 끝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단체 채팅방에 목사님의 말씀 전문이 올라온다. 그럴 때면‘도대체 어떤 분이 이렇게 목사님의 말씀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쓰시는 거지? 뭐 하시는 분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곤 했다. 수소문 끝에 타이핑 하시는 분들(한 명이 아니었다)과 연락이 되어 다섯 분 중 두 분과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섣부른 예상일 수 있지만 아마 기자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에디터는 기자에 대해‘딱딱함’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터뷰 장소에는 ‘인상 좋다’라는 느낌의 두 분이 앉아있었다. 뉴송(청년대학부) 청년부 지체인 구승현(34)누나와 한지훈(30)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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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메시지를 받은 지가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 그만큼 꽤 오랜 기간 동안 받아왔던 걸로 기억해요. 혹시 타이핑을 시작하게 된 이유나 동기가 있나요? 승현 - 저도 너무 오래돼서 정확한 년도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2009년 정도에 대학부에서 그룹장 직분을 맡았었어요. 새벽예배를 나가는 날이면 그때그때 감명 받은 말씀, 제가 은혜 받은 구절을 짧게 요약해서 그룹원들에게 문자로 전송했었어요. 그때는 카카오톡이 없었거든요. 시작은 그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새벽의 좋은 말씀을 저 듣기 너무 아까워서 예배를 나오지 못하는 그룹원들과 함께 나누려는 의도였지요. 처음에는 혼자 하다가 친한 친구 한 명도 하고 싶어 해서 나중에는 그 친구랑 같이 했어요. 지훈 - 작년에 타이핑된 말씀을 받아봤어요. 그리고 전도하고 싶었던 친구에게 말씀을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타이핑된 말씀을 전달해주었더니 친구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안 믿는 친구들이고 하니까 욕도 하더라고요. 근데 몇 주간 타이핑하시는 분들이 말씀 타이핑을 못하신 때가 있었어요. 그러자 말씀 메시지를 무시하던 친구들 중 몇몇이 왜 메시지를 보내지 않느냐고 도리어 저한테 물어 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생각했죠. 타이핑하시는 분들이 못하실 때가 있을 테니까, 내가 한번 타이핑을 해보자고

한 명 전도하기도 힘든데 세 명이라니, 대단하시네요.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지훈 - 진짜 좋았죠. 원래 교회에 나오게 하려는 목적으로 보내준 게 아니었는데 친구들이 한 명씩 나오는 것을 보니까요. 내가 한 작은 행동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구나 싶었어요. 타이핑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 동기가 되었죠. 말씀 타이핑을 하실 때 완벽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오타 수정 같은 거는 어떻게 하세요? 지훈 - 일단 예배시간에 타이핑하면서 대충 수정하고 예배 끝난 직후에 다시 수정해요. 승현 - 저는 예배시간에는 수정을 못하고 동시녹음을 하면서 타이핑을 먼저 끝내요. 그리고 오타가 난 부분이나 놓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듣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해요.


말씀정리를 해본 입장으로서, 사실 토씨 하나 놓치지 않고 타이핑하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작업시간도 오래 걸리실 것 같은데. 승현 - 목사님들마다 설교 시간이 다 다르셔서 수정하는 시간도 매번 달라요. 처음엔 좀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좀 능숙해졌는지 평균적으로 1시간 정도 걸려요.

이건 개인적으로 너무 궁금해서 그런데 혹시 타자는 몇 타 나오시는지. 지훈 - 몇 타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이거 하면서 많이 빨라졌어요.(웃음) 저 원래 컴맹이거든요. 처음 시작했을 때는 몇 자 못 적었는데 지금은 많이 빨라졌어요. 그리고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달라요. 겨울 같은 때는 손가락이 안 움직이는 현상도 경험했죠.(웃음) 승현 - 정말 겨울에는 너무 불편해요. 그래서 저는 미리 교회에 와서 손도 좀 풀어주고 해요. 또 가끔 피곤할 때면 손가락이 잘 안 움직여요.(웃음) 타이핑 메시지가 대학부뿐만 아니라 군인이나 해외 유학생들에게도 많이 전해지고 있어요. 혹시 알고 계셨어요? 승현 - 몰랐어요. 그렇게 많이 보는지. 기분이 어떠세요? 많은 분들이 구독하고 계신다는 것에 대해. 지훈 - 신기하죠. 좋은 거는 둘째 치고 신기하네요. 청년부 안에서 돌아다닐 거라 생각했거든요. 승현 - 저는 예전에 얘길 듣긴 했는데, 저도 신기했어요. 사실 그렇게 크게 계획하고 한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저 지인들에게 나누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 그렇게 쓰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신가하고 또 감사하네요.

사실 타이핑을 하시면서 말씀을 들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집중이 잘 될 것 같기도 하고, 도리어 잘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어떠세요? 지훈 - 저는 오히려 너무 좋은 게, 일단 타이핑을 하면서 말씀을 듣잖아요. 그리고 수정을 하면서 한 번 더 봐요. 그리고 메시지를 보낸 뒤에 또 한 번 봐요. 그러면 확실히 받는 은혜도 배가 돼요. 그리고 말씀도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내가 정리했지만 ‘이런 문장이 있었나?’싶을 때면 되게 새로운 느낌을 받아요. 사실 새벽예배를 드리면 점심때만 지나도 말씀내용을 다 까먹어요. 그래서 누가“오늘 새벽 말씀 어땠어?”물어보면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요.(웃음) 그런데 타이핑을 하니까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기억나요. 말씀을 기억하고 하루를 살아가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큰 은혜를 누리고 사는 것 같아요. 승현 - 새벽예배 드릴 때면 많이 졸잖아요. 많이 피곤하니까. 그런데 타이핑을 하면서부터는 절대 못 졸아요.(웃음)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해요. 타이핑을 하면서도, 끝나고 수정하면서도 계속 반복해서 보니까 받는 은혜가 더 컸어요. 또 제가 새벽을 깨우는 원동력도 되더라고요. 시험기간 때는 너무 피곤하고, 그래서 자고 싶을 때도 많았죠. 하지만‘아, 맞다. 말씀 보내달라던 사람들이 있었지’하면서 일어나게 돼요. 그게 참 좋아요.

특별히 타이핑 메시지를 꼭 보내주려는 대상이 있다면요? 지훈 - 저는 믿지 않는 제 친구들이요. 앞서 말씀드렸듯 세 명 정도가 말씀 메시지를 통해 교회를 다니고 있어요. 그걸 한 번 본 이후로는 멈추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타이핑 더 전도를 하려고 해요. 승현 - 우리 교회는 원거리 지체가 많아요. 특히 유학생들은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온라인으로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인터넷이 느려서 안 되는 나라도 많거든요. 저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제가 받은 좋은 말씀을 나누고 싶어요.

너무도 좋은, 우리 입장에선 정말 감사한 일을 하고 계신데요. 사실 있을 때는 소중한 걸 모른다고, 어느덧 말씀 메시지를 받으면 대충 흘려보게 되는 제 모습을 종종 보게 돼요. 그 부분에 대해선 왠지 부끄러워지네요. 혹시 이걸 통한 사명감 같은 게 있으신가요? 승현 - 좀 전에‘말씀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라고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저는 사명감은 없어요. 처음 시작했던 것도 제 그룹원들을 위해서였으니까요. 저는 어떻게 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거지만 제가 은혜를 받으니까 좋은 거죠. 이 일을 통한 사명감, 비전을 물으시면 되게 민망해져요.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한 게 아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은 없어요. 그저 몇 분이 말씀을 더 가까이 하게 된다면, 그걸로 족해요 저는. 지훈 - 저도 비슷해요. 일단은 이 일이 전도의 도구로 사용되어진다면 그 이상 바라는 건 없어요.

언제까지 타이핑 하실 건가요? 지훈 - 글쎄요, 생각해본 적 없어요.(웃음) 승현 - 그냥 할 수 있을 때 까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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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우리 집 앞에는 작은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지금이야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지만 반에서 4번째로 작았던 초딩(?)에겐 이만큼 넓은 장소가 또 없었다. 지금처럼 날 좋은 봄, 마룻바닥에 이불 깔고 누우면 꼬마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락날락거릴 정도로 가깝고 낮았다. 그 소리에 이끌려 놀이터로 터덜터덜 나가면, 여기저기서 고무줄, 비비탄총싸움,딱정벌레잡이, 얼음 땡, 개미잡기.. 그러다 어디서 술래잡기라도 시작하면, 처음부터 알던 사이인냥 삼삼오오 다 같이 모여 놀았다. “안녕, 너 이름 뭐야? 술래잡기할래?” 한 번 두 번 지나치던 얼굴도, 옆반에 있는 낯익은 아이도, 그 순간은 다 친구였다. 네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혼자 그네를 타고 있으니, 그러지 말고 같이 놀자. 단지, 그뿐이다.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에 가면 항상 그렇게 함께 할 수 있었다. 가끔 친구들이 바뀌고 날씨가 바뀌고, 시간대가 바뀌어도 ‘초대’는 늘 같았다. 다 같은 형제고, 자매인 것처럼.

“안녕하세요 저는 디자이너..” 취업을 준비하는 요즘은 이게 자연스럽다. 내가 누구인지는 지금 만나는 상대의 필요에 따라 결정된다. 일손이 필요해 만나는 분들에겐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먼저, 교회에서는 직분이 먼저, 버릇처럼 말이다. 착한 사람이 되었다가, 전문가도 되었다가, 친구도 되었다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나온다.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고 모나지 않은 (오히려 그럴듯한) 편리한 자기소개다. 좋은 처세술이 필요한 시대다. 여기는 놀이터가 아니니까. 전공이 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집이 어딘지, 얼마나 잘 사는지, 어떤 이념을 갖고 있고, 누구를 지지하는지, 학교에서 몇 등 하는지, 윗동네 사는지, 아랫동네 사는지, 왼손잡이 집안인지 오른손잡이 집안인지, 구ㅇ를 입었는지 시장표 천 원짜리 옷을 입었는지, 한 달 용돈이나 일 년 치 용돈이 어떻게 되는지, 쌍까풀이 있는지 없는지, 키가 큰지 작은지, 아ㅇ폰을 쓰는지 갤ㅇ시를 쓰는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따위를 물어보지 않던, 집 앞 놀이터 말이다.

추억

“엄마가 저녁 먹으러 오래, 안녕!” 저녁은 늘 아쉬운 시간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 자리에 가면 늘 한결같은 친구가 있으니. 넘어져 다치기도 하고 울고불고 참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거기서는 어느 누구 하나 홀로 두는 법이 없다. 네가 누구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아니 사실 말 안 해도 이미 다 안다. 그러니 우리, 더 어두운 저녁이 오기 전에 다 같이 놀자. 그뿐이다. 글 김덕유(30) 디자인 전보민(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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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 하는 빨래

선교지 리포트 사역 자체가 아이들 보모이다 보니 다른 나라처럼 특별난 에피소드는 없어요. 웹툰으로 따지면 생활툰 같은? 하루하루가 늘 독특할순 없으니까요 헤헤. 여러 가지 생각나는 것 들 중에 몇 가지, 정말 그냥 이것저것 두서없이 적어봤어요.

이곳에 도착하고 맞은 첫 공휴일. 아이들과 친해지려고 나름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일명 ‘몸으로 말해요’(언어가 안 되다보니 진짜 절실하게 몸으로 말해요가 된다). 전날 저녁까지 프로그램에 필요한 주제어를 그림과 크마에(캄보디아어)로 준비했다. 당일이 되고. 예정했던 프로그램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몇몇 아이들은 보이지도 않고 있던 아이들은 빨래를 준비했다. 우리는 빨래 끝나면 우리가 준비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같이 놀자고 말했다. 그런데 잠시 후 현지 선생님이 오셔서는 날이 더우니 프로그램일 미루자고 하셨다. 일정을 맞춰 놓은 터라 이걸 어떻게 할지 잠시 생각하다가 우리 방식에 아이들을 맞추지 말고 우리를 이곳과 아이들에게 던지기로 했다. 준비한 것 다 내려놓고 아이들이랑 같이 바깥에 있는 수도에서 빨래를 했다. 큰 대야에서 발로 밟으면서 하는 빨래, 태어나서 처음 해봤다. 물, 아이들. 조건이 모두 갖춰졌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빨래는 어느새 본질을 잃어버리고 그냥 물놀이로 변질되었다. 빨래를 사장한 물놀이를 끝내고, 다음은 페이스페인팅이었다. 모두 펜으로 얼굴에 낙서질을 했다. 서로의 얼굴은 맘껏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스케치북이었다. 놀이가 다 끝나자 배고파서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었다. 우리가 계획했던 일정은 전혀 아니었지만 더 즐겁게, 그리고 가깝게 아이들과 교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2 상처

캄보디아 따끄마흐 마을 성아름다비(25) 디자인 우세연(25)

한 아이가 아팠다. 아찔했다. 언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물수건으로 아이의 몸을 닦으며 열이 내리길 기다리고, 약을 챙 기고, 몇 번이고 괜찮은지 확인하고,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기도했다. 간신히 열만 내린 상태에서 아이가 말한 첫마디. “고마워요.” 돌봄, 그리고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것. 사람의 손길도 중요하지만 항상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길 간절히 바랬다. 아이에게 피부병이 생겼다.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염 가능성이 있어서 매일 손을 소독하고 약을 발라 주었다. 시간이 지나 아이의 손이 좋아질 무렵, 늘 맨손으로 소독을 해주던 내 손에도 얼추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물론 미비했고 소독하니 금방 다시 사라졌다) 평소 비위가 약해 메 디컬드라마도 잘 못 보던 내가 여기저기 찢어져오는 아이들의 상처를 소독하 고, 약을 발라주는데도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의 몸에 난 상 처에 약을 발라주는 정도지만, 하나님께서 몸의 상처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 의 마음에 있는 상처까지도 다 회복시켜주시길.

#3. 잔소리는 참 신기해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센터 내부 축구장에서 축구경기를 보고 있는 아이를 봤다. 뒤로 조용히 가서 웃으며 물었다. 왜 지금 여기서 축구 를 보고 있냐고.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 놀란 아이가 대답한다. 오늘은 가고 싶지 않았단다. 이런 자기를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런 말을, 제일 개구지고 예쁘게 웃으면서 말한다. 아무래도 이 아이는 내가 자기 웃는 모습에 약하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유창하지 못한 크마에로 일단 학교를 안 갔으니 잔소리 백 번하고, 이미 수업은 끝을 달리고 있는 시간이기에 경기를 마저 보고 오후에 있는 수업 때는 꼭 학교를 가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오늘도 잔소리가 늘어난다. 잔소리는 참 신기해. 언어가 유창하게 되지 않아도 국적, 언어, 성별불문 하고 잔소리는 다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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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부활절 #4. 네끄루 쯔라운 클랑클랑 센터 내 Grace House 앞은 항상 우리의 아지트. 밥먹기 전후, 학교 가기 전후엔 시간에 상관 없이 그냥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오늘 하루를 이야기하고, 바로 앞에서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며 이야기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 이야기는 비밀이라고 쉿. 언어가 잘 통하지 않을 땐 언어 30, 눈치70으로 다 상황이 파악된다. 매일 저녁 가정예배가 끝나고 나면 남자아이들과 멈추지 않고 센터를 10바퀴씩 뛰기도 했다. 슬리퍼는 걸리적 거리니깐 예쁘게 옆에 벗어두고 맨발로 질주. 10바퀴 다 돌고 다 같이 주저 앉아서 땀 범벅이 된 서로의 몰골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다가 시원한 얼음물 들이키고 나면 그 날 꿀잠 잘 모든 조건이 충족된다. 어느 날은 한 아이(전에 학교를 안 갔던)가 아령을 가지고 나와서 운동법을 공유하더니 나더러 남자같다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다. "네끄루 쯔라은 클랑클랑" 선생님은 힘이 많이 세니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봤다. 학교 안 간 날 무자비했던 헤드락이 좀 인상 깊었나. 애들이 바닥에 앉아있으면 그냥 같이 바닥에 앉고, 뛰면 같이 뛰고, 그냥 주저함 없이 같이 뛰어 놀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힘이 없다고, 아~주 연약하다고, 조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능글맞게 이야기 했더니 아이는 헛웃음을 쳤다. 그래, 난 감사하게도 건강하다.

#5 좋아하는 게 뭐야? 캄보디아는 학교에 예체능 수업이 따로 있지 않다.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대서 오전에 학교 보충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날짜를 정해서 피아노를 가르쳤다. 엄마 말 듣고 초등학교 때 피아노 조금 배운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렇게 몇 분 수업을 하다 보면 학교 갔다가 돌아온 아이 한 명 두 명, 피아노 소리에 성전 안으로 들어와서 자연스럽게 앉는다. 누구는 기 타 앞에, 누구는 베이스를 켜고, 드럼 앞에도 앉고 마이크를 잡으니 자연스 럽게 함께 연주하며 찬양하는 시간으로 바뀌어 간다.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오롯이 기뻐 찬양하는 시간. 참 즐겁다. 이곳의 아이들도 똑같다. 학교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고, 시험기간엔 시험공부로 바쁘고, 희망과 걱정이 교차하는 길에서 앞으로의 장래와 꿈을 그린다. 본인이 바라는 꿈이 확고한 아이들은 그 꿈에 대해 재 잘재잘, 아직 그 꿈을 찾지 못하는 아이들은 오늘도 고민하며 생각한다. '좋아하는 건 뭐라고 생각해? 하고 싶은 걸 이야기해봐. 너가 생각하기에 스스로 잘하는 건 뭐라고 생각해?' 한 가득 질문을 안겨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되려 나의 생각을 물어보 는 아이를 보며 오늘도 기도제목이 늘어난다. 꿈꾸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 겠다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고 주님이 주시는 꿈 안에서 기뻐 뛰어 다니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이 빠른 성장의 진통을 이겨내며. 아이들을 보는 나의 시선은 항상 일정하다. 놀고 있을 땐 저러다 다치진 않 을지, 오늘 제때 밥은 먹었는지. 평소와 조금 다른 표정을 하고 있으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아이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시선은 아이에게 고정하고. 하나님도 내게 그러시겠지. 내가 당신께 이야기하기 원하시고 당신만을 바 라보기를 원하시겠지. 내게 하시는 그 말씀에 귀 기울이며. 아이들을 통해 자녀로서의 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참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상, 이곳이 주님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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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부활절은 성탄절과 함께 가장 큰 행사로 꼽힌다. 몇 주 전부터 부활절을 알리고 아이들은 몇 주 전부터 반별로 특순 연습을 했다. 아이들 연습하는 것만 넋 놓고 구경하는데 현지인 선생님들과 애들이 오더니 한국팀은 뭘 하냐고 물었다. 우리도 뭔가를 해야 하는구나! 우리도 급하게 특순을 준비하게 됐다. 더불어 성전내부 부활절 데코레이션을 준비해야 했다. 또 부활절 당일 성도들에게 나눠줄 500개의 옷 포장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몇 날 며칠 동안 옷으로 잔뜩 덮인 방 안에서 옷 분류 및 포장 작업을 했다. 작업 중에는 항상 스피커로 찬양을 크게 틀었다. 명성교회 임원단 출신, 준비위원 출신이었던 우리는 꼭 수련회를 준비하는 기분이라며 웃었다. 그방에만 들어가면 왜 작은 것에도 웃음이 터져나오는지. 바쁠 땐 꼭 일이 많다고, 부활절 전날 토요일에는 교회에서 결혼예배가 있었다. 피로연을 마치고 성전에 돌아오니 꽃가루며 천이며 청소 할 것이 산더미였다. 우린 청소부로 변신, 쓸고 닦고 有에서 無를 만들고 나니 진이 빠졌지만 아직도 할 건 엄청 많았다. 성전 데코레이션, 특순 연습, 선물포장. 우린 늦은 시간이 돼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부활절 당일 새벽예배는 흰 옷을 입고 촛불을 켜고 밖에서 예배를 드린다. 무덤가에서 예배를 드리고 다같이 센터주변을 돌면서 찬양을 불렀다. “쁘레야예수 루어 라은 왠 하으이(JESUS was risen up from the death!)” 마을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알리고 다시 센터로 돌아 와 부활절 찬양예배를 준비했다. 형제들은 성도들이 마실 물과 빵을 사러, 자매들은 예배 후에 있을 저녁식사 테이블을 세팅하고 주보지와 선물을 옮겨 놨다. 몇 주 전부터 부활절을 기다리며 온 몸에 멍이 들 정도로 열심히 연습한 우리 아이들의 특순 으로 찬양예배가 시작됐다. 덩달아 우리들도 바빠졌다. 형제들은 선물을 나눠줄 준비를 하고 나는 소미라는 친구와 교회 마당에서 식사 준비를 했다, 식사는 놈빵과 찍어먹는 현지 전통음식(카레 같은)을 테이블 마다 배치했다. 예배가 끝나자 아이들과 성도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손에는 선물을 든 채. 그동안 열심히 준비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 신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과 겹쳤다. 너무 예뻤다. 함께 신나게 놀고 있는데 마당에 설치한 스피커에서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달려 나가더니 다들 똑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낯선 광경에 박수만 치고 있는 나를 한 아이가 끌고 나왔다. 무슨 춤인지 알든 모르든 그냥 신나게 같이 춤추며 기쁨의 부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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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D I T O R S

l e t t e r

우리 집에는 엄마가 홈쇼핑에서 구매하신 바디 스크럽이 몇 개 있다.

나눔이란 무엇일까. 선생님이 배고픔을 견디라고 준 돈으로 자신보다 더 가난한 아이와 빵을 나눠 먹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의 나눔은 너무도 순결해 보인다. 에디터즈가 생각한 나눔, 많이 가진 것 중에서 나누는 것이 아닌 두세 개 가진 것으로 나누는 것이었다. 가졌지만 겨우 두세 개니까 충분히 쟁여놓을 수도 있는 것, 우리는 그것을 나누기로 했다. 아주 작은 물품이지만 에디터즈가 나누고 싶은 것들이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디자인 우세연(25)

고후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우리는 성전인 우리의 몸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 막12:31 둘째는 이것이다.‘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을 따라 내가 가진 바디 스크럽 중 하나를 나누고자 한다.

LISTERINE 250ml, 1+1 행사로 샀던 것 중 미개봉 한 병 2,000명이 읽는 정기간행물에 꾸밈없이 내 얘기를 꺼내려니 부끄럽다. 얘기에 앞서 다들 이런 경험 해본 적 있지 않나 묻고 싶다. 본인 구취에 본인이 못 당할 것 같아 양치해본 적.(정말 나만 이런 거야?) 믿거나 말거나, 집에 있을 땐 꼬박꼬박 이를 잘 닦는 필자이지만 이상하게 밖에 나가면 이를 닦는 게 너무 귀찮아지는 것이 사실.(잘 닦지 않는다. 지인들에게 미안) 내세울 거라곤 고른 치열밖에 없는 내게 치명적인 습관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첫 조별과제를 하던 때였나? 그때부터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가 됐을 내 구취에 대한 반성과 함께 구강청정제를 사용하고 있다. 광고모델처럼 입 안을 구석구석 헹구고 씩 웃다 문득 스친 생각, “입 안을 깨끗이 하면 뭐해, 뱉는 말이 더러운데” 내가 구취를 신경 쓰는 것보다 말을 신중히 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란 생각에 그때부터 가글하기도 귀찮아 졌다.(?) 부정적인 말을 일체 하지 않는, 욕하지 않는, 더러운 비난대신 따뜻한 비판을 하게 만드는 기능성 구강청정제가 있으면 좋겠다는 공상적인 생각을 해봤다. 박노준(22)

신은수(22)

천 원샵에서 구매한 두 개들이 스마트폰 거치대. 색상선택은 자유 아직 노트북이 없어서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키보드로 작업을 하는 나. 그래서 가끔 거치대를 집에 두고 나온 날이면 카페에서 컵홀더나 책 등을 사용하여 아슬아슬하게 폰을 세워 둬야했다. 그게 불편해 천원샵에서 구매한 스마트폰 거치대를 나는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톡톡히 사용했다. 또 사람들과 있다 보면 은근히 거치대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기에 가끔은 이 몽글몽글한 녀석을 빌려주며 생색을 내기도. 모서리가 없이 둥근 거치대를 보고 있으면 사람의 어깨 윗부분과 닮은 것 같아 괜히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털도 없는 머리를 땅에 박아가며 누군가를 받쳐주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사용하는 입장에서 미안하기도 하고. 가만히 보다가 언젠가 잃어버렸던 물건 생각나듯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받쳐준 사람이었던가?' 어디 하나 둥글지 못해 모나기만 했던 내 부끄러운 기억들을, 거치대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 거치대지만, 두 개까지는 없어도 될 것 같다.

언제, 어디서, 얼마에 샀는지도 기억 안 나는 미니 수첩. 색상 선택 자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보일 때, 설교 중간 가슴을 울리는 말씀이 들릴 때,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주옥같은 문구가 떠오를 때, 여러분은 어떤 행동을 취하시는지. 수첩이나 펜 같은 걸 귀찮아 서 잘 안 가지고 다니는 나는 후다닥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 어플을 찾는다. 나눌만한 물건이 뭐가 있을까 싶어 서랍을 뒤지다가 가장 구석에서 포장 비닐도 뜯지 않은 미니 수첩 2개와 반쯤 사용한 흔적이 있는 다른 메모장 한 개를 발견했다. 한창 학원 다닐 때 외우던 중국어 단어와 문장이 적혀있었다. 아, 내가 이런 것도 외웠었구나. 지금은 하나도 기억안 나는 데. 몇 장 넘기다 보니 종이 하단에 'ㅠ^ㅠ' 이런 이모티콘이 보였다. 어지간히 외우기 싫었나보다. 그렇게 기록된 것들을 하나하나 넘기다보니 결국 마지막에 시험 성적 잘 받아서 즐거워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지나치게 디지털에 의존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가끔 은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필요할 때도 있지 않을까 싶어 나눈다. 박유나(24)

나의 새내기 시절에 설렘을 줬던, 홍대에서 산 멜빵치마. 사이즈는 M 작년 학교에 입학하기 전 친구들한테 잘 보이고 싶고 패션디자인과라는 타이틀을 타내고 싶어서 나름 홍대 거리에서 구매한 옷이다. 또 작년 새내기의 봄 기분 을 잔뜩 내게 해준, 특별하게 보이고 싶을 때 한두 번 입었던 옷이고. 저번 주에 옷장을 정리하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발견한 셈이다. 이제는 새내기도 아니고, 지금은 입으라고 해도 못 입을 거 같은 멜빵치마. 꽃이 흩날리던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나의 새내기를 빛내줬던, 그리고 나에게 설렘을 줬던 이 옷이 그대에게도 특별한 옷이 되길. 김지은(21)

하영준(28)

5253 디자인 우세연(25)


매거진 N 페이스북 페이지 0506월호가 나왔습니다. 에디터즈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셔서 리뷰를 남겨주세요. 추첨을 통하여‘레터’에 올라온 물품을 선물로 드립니다.

캠페인 시말서 ‘삶을 아름답게 하는 건 사탕 하나로 충분합니다’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하나씩 가져가세요’라는 안내와 함께 엘레베이터에 사탕을 붙였습니다. 물론 옆에는 메모할 수 있는 공간과 펜도 함께 놓았고요. 잠시 기대했습니다. 언젠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이야기,‘OO호에 이사왔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라고 아이가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써서 붙인 메모지에 아파트 주민들의 인사가 이어 달렸다는 일화도 생각이났고요. 월드글로리아 엘레베이터에 사탕을 붙이고, 누군가 메모를 써주진 않았을까 하는 두근거림을 못 참고 30분 후 찾아가 본 결과 사탕은 모두 떼어지고 없었습니다. 옆의 메모지는 떨어지고 없는 사탕만큼 텅텅 비었고요. 결국 종이는 떼어냈고, 에디터즈는 엘레베이터에 허락없이 종이를 붙였다고 30분간 혼이 났습니다. (소통이 잘못되었어요)‘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습니다’와 같은 자조적인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다 우리의 부족함이었습니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기획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교만을 떨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사탕을 다 떼어가신 분들을 결코 원망 않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한 번 웃으셨기를 그저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다음에 더 멋지고 제대로 된 캠페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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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소리 0506월 #ISSUE 3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강동마 00006 발행인 김삼환, 청년대학부 김선우, 편집인(편집장) 하영준, editor 전아영, 장원, 소민수, 조현택, 김정훈, 이가람, 박유나, 이효준, 김지은, 박노준, 신은수, 이주혜, 정성현 design 전보민, 윤지현, 이지현, 신은주, 박보근, 우세연 facebook.com/mseditors 인쇄 문영사 02 2263 5087, 발행처 대한 예수교 장로회 명성교회 대학부 /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330-5호, 02 440 9361-5 web www.mscolle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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