젋은소리 29호(14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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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교회가 무너진 이 때에, 아버지 다시금 신령과 진리의 몸 된 교회가 살아나게 하시는.. . 오늘날 얼마나 많이 순교했습니까. 이때에 기초가 되고 그리스도의 터가,. . 아버지여 구원의 표가 되어서 이 민족을 아버지 구원하여주소서.. 이 민족을 버리시지 아니하시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살얼음 땅입니다. . 아버지 아버지 몸 된 교회를 피로써 순교의 피의 자손들이 오늘 날 다 살아있고.. . 아버지 복원하시고 용서하시는 주의 보혜사로 나타나시기를 원합니다.

- 북한 할머니의 이불 속 기도 -

illust 신다솔



가장 중요한 재능, 스플랑크니조마이

김윤호 목사

학창시절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친구관계나 인기, 외모에 참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옷도 사고 머리도 만지고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학창시절의 또 다른 고민으로는 성적문제와 용돈문제가 있었죠. 졸업 후 대학교에 들어와서도 우리의 고민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학교는 어디를 갔느냐, 이성친구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느냐, 취업은 어디를 해야 하는가, 지금 당장 내 수중에 쓸 수 있는 돈은 얼마인가. 결국 돈과 인기, 성공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나는 삶이 쉽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면 정말 우리 인생에서 돈, 인기, 성공을 가지고 있으면 만사 오케이일까요? 서울대 연구소에서 장수한 한국인들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돈? 명예? 모두 아니었습니다. 성공여부도 상관없었습니다. 그것은 솔직함, 그리고 친구와의 교제였습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있습니다.“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버드 의대 조지 밸런트 교수님은 무려 72년 동안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결론은 역시 인간관계였습니다. 사람에게는 함께 사는 낙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연구 주제는“우리의 행복의 조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였습니다. 결론은 행복의 조건은 역시 인간관계였습니다. 사람이 함께 사는 낙이 있어야한다는 거죠.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함께 사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보면 관계에서 성공하는 것이 행복의 열쇠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마태복음에 보면 관계에 능했던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당시 백부장이라는 직분은 군대에서 미천한 출신이어도 올라갈 수 있는 직위였습니다. 윗사람 눈치를 보면서 내부 전투력을 위해 자기 군인들을 잘 챙겨야만 했었죠. 그런데 이 백부장은 칼 한 자루보다 전투력이 낮은 나병 걸린 종 한 명을 위해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백부장은 하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꼈던 것입니다. 내장이 타들어가는 듯이 함께 아파하는 마음. 헬라어로는‘스플랑크니조마이’ 라고 합니다. 비슷한 말로는‘라카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라카밈’에는 또다른 뜻이 있는데요, 바로‘하나님의 자궁’입니다. 어머니가 온 정성으로 아이를 품듯이 긍휼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이제 통일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통일을 이끄는 주역이 될 텐데 어떤 마음으로 북쪽 동포들을 끌어안으시겠습니까? ‘스플랑크니조마이.’그 긍휼이 우리 안에 있다면, 다른 어떤 능력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준비시키실 줄 믿습니다.


Contents Editor’ s Letter 06

#Culture Praise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08 Book 땅끝의 아이들, 이민아 10 Editor’ s kitchen 오레오 마시멜로 브라우니 12

#Social Photo essay 16 Information 6.25 18

#Special 북한 주민들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 22, DMZ 평화공원 24 여명학교 前교장 우기섭 장로 26

#Inside Newsong 36 에티오피아 무의촌(無醫村)에 다녀오다 39 Editors campaign 42

Letter from The Editor.in.chief

지난호를 처음 리뉴얼한 이후 많은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많이 생각하게 만든다.”였어요. 이번에도 생각할 거리를 한가득 담아왔습니다. 당장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큰, 통일에 대한 이야기에요. 오래 살진 않았지만 어릴 때“우리의 소원은 당연히 평화통일”이었는데, 요즘은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더라고요. 지금 나라 부채가 얼마다, 통일되면 경제가 기울어진다. 독일과는 다르다. 등등.. 그럴리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겠죠. 아직 잘 모르니까. 하지만 그 부정적인 시각들에‘사람,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배제되어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목숨보다 귀한 게 어디 있을까요?) 아사(餓死) 라는 단어가 있어요. 사전적 의미로 굶어 죽음. 최신 스마트폰을 쓰고, 집집마다 컴퓨터도 하나씩 다 갖고 있고, 다이어트 컨텐츠가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도, 북한 사람들은 아사(餓死) 하고 있는 거예요. “통일되면 힘들어진다더라..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이론과 사실에 입각한 똑똑한 지식들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통일이 마냥 두려운건 아닌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담지는 못했습니다. 통일에 대한 어떤 경제학적 이론이나 실제를 담은 전문서적보다야 당연히 부족하고요. 다만, 처음에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기도하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어떤 이론이나 정치를 떠나 생명에 대한 고민. 통일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으면. 크리스천으로서 말이에요.

에디터즈 편집장 김덕유


EDITOR’S LETTER

ED I T OR’S LE T T ER 한 번도 닿지 못했던, 냄새 맡지 못했던, 가보지 못했던 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뻗어야 했다. 북녘.. 다른 사람의 입술을 빌려서라도 꼭 들려줘야 했던 이야기, 이들의 손을 통해 당신에게 전해지길.

오랜만에 부서 일에 참여하면서 에디터즈에 많은 추억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내 대학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 부서가 참 많은 자리를 차지할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이 마음으로 감당하고 싶습니다. :) 수고하는 에디터즈 빠샤빠샤

옛날에 버스커 버스커 노래 중에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곡이 있어요. 노래도 좋지만 제목을 아주 기가 막히게 뽑은 것 같아요. 사랑은 타이밍, 아끼고 아끼다 보면, 막상 다해주고 싶을 때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잊지마세요, 사랑의 타이밍은 언제나 지금 당장..!!

editor 조경희(24)

editor 오창현(28)

이번에 신입생이 되어 학교 적응하고 과제도 하느라 바쁘다.. 다른 또래보다 1년 늦게 들어와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계속해서 밀리는 과제는 어쩔 수 없다. 새로운 마음에 시작했던 에디터즈에서 잘 적응하고 이곳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일 학교에서 과제발표인데 되어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도 밤샘이다.

앎과 삶은 다르다. 누군가의 삶을 앎으로 상처주고 있지는 않을까.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 매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이 있다. 주님의 약속이 내 안에 견고하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editor 신주현(20)

editor 윤지현(21)

웃으면 보조개가 근육처럼 보이는 송수진입니당. 마지막 대학부를 팀장이란 직분과 함께.. 에디터즈라는 부서로 마감하고 싶어서 다시 돌아왔네요. 부족한데 반주자 시켜주셔서 감사해요. 자꾸 도중에 끊기지 않게 연습! 하고 싶은데 집에 피아노가 없어.. 아무튼 제 작은 움직임 하나가 복음 전하는 이 귀한 사역에 도움 되길 소망합니다. 샬롬!

친구 따라 강남가지는 않고 에디터즈에 들어왔다. 한 달간 본 것은 인터뷰와 출사, 쫓기는 일정과 그 와중에 차근차근 진행되어가는 내용들. 비록 지금은 할 줄 아는 것이 없지만 부지런히 배워 1인분 하는 에디터가 되어야지. editor 장 원(25)

designer 송수진 (27)

0607


DMZ 평화공원


PRAISE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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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예

수 보 다 수 보 다 수 보 다

더 더 더

귀 한 귀 한 귀 한

것 것 것

은 없 은 없 은 없

I'D RATHER HAVE JESUS : 12. 11. 10. 10. REF G. B. Shea,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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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내 대 에 즐 기 과 핍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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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세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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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일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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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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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

수 ㅡ 없 수 ㅡ 없 수 ㅡ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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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주 주

와 바 꿀 와 바 꿀 과 바 꿀

네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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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상 부 귀 세 상 명 예 세 상 행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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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 없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새찬송가 94, 통일 찬송가 102장) 작사 레아 밀러(Rhea. F. Miller, 1894~1966) 작곡 조지 베벌리 쉐어(George Beverly Shea, 1909~) editor 신주현 design 송수진

I’d Rather Have Jesus 1. I’d rather have Jesus than silver or gold 은보다 금보다 예수님을 갖겠습니다 I’d rather be His than have riches untold 셀 수 없는 보화를 내 것 삼기보다 내가 주님의 것이 되겠습니다 I’d rather have Jesus than houses or lands 집보다 땅보다 예수님을 갖겠습니다 I’d rather be led by His nail pierced hand 못박힌 그분의 손에 이끌려 가겠습니다 2. I’d rather have Jesus than men’s applause 사람들의 박수 갈채보다 예수님을 갖겠습니다 I’d rather be faithful to His dear cause 그분의 사랑스런 뜻에 신실하겠습니다 I’d rather have Jesus than worldwide fame 온 세상에 떨칠 명성보다 예수님을 갖겠습니다 I’d rather be true to His holy name 거룩하신 그 이름 앞에 진실하겠습니다 3. He’s fairer than lilies of rarest bloom 가장 아름답게 만개한 백합화보다 아름다운 분 He’s sweeter than honey from out the comb 벌꿀보다도 달콤한 분 He’s all that my hungering spirit needs 내 갈급한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 되신 분 I’d rather have Jesus and let Him lead 나는 예수님을 얻고 그를 따르겠습니다 [Chorus] than to be the king of a vast domain and be held in sin’s dread sway 어마어마한 영토를 가진 왕으로 죄의 두려움 속에 떠는 것보다 I’d rather have Jesus than anything this world affords today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나는 예수님을 갖겠습니다

1909년 캐나다에서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난 쉐어는 대학시절 아버지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사랑하는 아들! 네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면서 가능한 방법을 모두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가을 학기에 너를 학교에 보낼 형편이 안 되는구나. 미안하다 아들아.’이후 쉐어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보험회사에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NBC 라디오 방송국 공개방송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쉐어는 황금 바리톤 목소리의 소유자라 불리던 아버지와 음악적 소질이 있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뛰어난 음악적 소양을 갖추고 있었다. 그때 쉐어가 부른 곡은“모세여 내려가라 (Go Down, Moses)”라는 가스펠송이었다. 2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무대를 내려오는 쉐어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안녕하세요. 쉐어씨 저는 미국 NBC 방송사 캐스팅 디렉터입니다. 무대 잘 봤습니다. 당신의 노래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재능이 많은 것 같은데 우리 방송에서 전속 가수로 활동해 보는 게 어떻겠어요?”그의 나이 23살이 되던 해였다. 이제 쉐어는 앞에 놓인 탄탄대로를 따라 쭉 가기만 하면 되었다. 돈과 인기가 보장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쉐어는 마음 한구석이 갑갑하고 불편했다. 흔치 않은 좋은 기회임을 알았지만,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그는 견딜 수 없는 마음에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했다. 그러던 중 피아노 위에 놓인 어머니의 시 한 편을 읽게 되었다. 쉐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내가 내 명예와 영광을 위해 이 길을 가려고 했구나. 하지만.. 그래, 예수님밖에 없어! 주님, 제 목소리, 제 존재, 제 젊음 모두 주를 위해서만 드리겠습니다.’ 강한 확신과 함께, 떠오르는 영감을 따라 이 시에 곡조를 붙이기 시작했다. 오늘날 즐겨 부르는 찬송가 94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NBC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쉐어 씨, 안녕하세요? NBC 방송국입니다. 일정을 잡아야 해서 전화했는데요.”“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음악의 재능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쉐어는 NBC 전속 가수라는 타이틀을 포기했다. 대신 그는, 빌리 그레함 전도자를 만나 그와 평생을 동역하였다.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되었던 찬양은 그가 가는 곳마다 울려 퍼졌다. 1983년 이 곡은 통일 찬송가 102장으로 채택되었다. 그해 쉐어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 전도 집회에서 이 찬송을 불렀다. 그동안 백발이 된 만큼 연륜이 쌓인 쉐어의 노래에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깊은 울림이 있었다. 찬양이 끝나자, 장내의 수많은 사람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갈채를 보냈다. 엄청난 박수갈채가 끝나고 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의 뜨거운 박수와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BOOK

editor 박예언, 박노준 design 송수진

‘사랑’이 제일이다. 성경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하지만 오늘날 길거리를 장악하고 있는 노래들은 조건이 있어야 줄 수 있는 관심, 한순간 불타오르는 욕정, 이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이 왜곡된 세상에서 아이들은 이것이 진리라고 믿는다. 아이들은 부모를 애증 하면서, 기댈 곳 없이 속 쓰린 가슴을 안고 방황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한순간 깨달았다고 다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두 명의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과정처럼 서로 알아가는 과정, 더욱 사랑이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너는 빛이라’라는 두 번째 간증부터 ‘내 신앙의 돌 기념비’라는 마지막 열 번째 간증까지는 저자와 하나님과의 사랑이 어떻게 무르익어갔는지, 여러 어려움 가운데 저자의 신앙이 성숙해지는 모습을 주제 성구와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벼랑으로 내몰렸던 저자의 유년시절 때문일까, 저자는 꿈과 희망 없이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게 된다. 책의 제목이‘땅끝의 아이들’인 까닭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과 자신이 만났던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땅끝의 아이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애타게 부르며 참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이웃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이 땅끝에 선 작은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독자는 책을 통해서 사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겠다.

‘땅끝의 아이들’은 기댈 곳 없이 방황하던 저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깨달았는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몸소 느끼고 체험했던 것을 풀어쓴 간증집이다. 저자는 본래 신을 믿지 않았지만 힘겨운 삶 가운데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왔다가 하나님을 영접하게 된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삶의 여러 이적을 겪으면서 저자는 기존에 갖고 있던 왜곡된 사랑관을 버리고 참사랑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책을 구성하고 있는 열 가지의 간증은 저자가 깨달은 참사랑에 대해 담고 있다. 첫 번째 간증,‘아버지의 딸들, 딸들의 아버지에게’에서는 저자의 오래된 흉터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명한 만큼 몹시 바빴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절대 실수하지 않는, 완벽한 딸이 되어야 했었음을 고백하며 아버지와의 갈등과 하나님과의 첫 만남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을 차분하면서도 힘 있는 어조로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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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장녀 이민아는 미국 해스팅스 로스쿨 (Hastings Law School)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서 청소년 범죄 예방과 선도에 힘썼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는 LA지역 부장검사를 역임하였다. 1992년 세례를 받은 뒤에는 이혼과 암, 둘째 아이의 자폐증, 첫아이의 사망 등 온갖 시련을 겪었지만, 이 가운데 참 크리스천으로 성장하게 된다. 2009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세계 곳곳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하다가 2012년 3월 15일 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박예언 (23) 가끔 사람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달라서 하나님 사랑을 오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또 누군가에게 사랑 받으면서 조금씩 하나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저자의 이야기는 비단 저자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영화라면 달달한 로맨스 스토리가 아닐까? 눈물 젖은 엇나감, 하나님의 오랜 짝사랑, 그리고 진한 감동과 코미디가 곁들여진, 그런 영화 말이다.

조경희 (24) 하나님을 모른 채 이유 없는 혼란을 겪으며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인생을 담은 간증집이기도 하지만 세상에 얼마나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이 많은지, 그 아이들이 왜 방황하는지 알 수 있는 책입니다. 근래에 신앙의 무기력증을 겪으시는 분들이나 자녀들과 소통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김정훈 (21) 종종 소식으로 접하는 선교지의 아이들. 저마다 이름이 있겠지만 그 아이들의 또 다른 이름은‘사랑’이다. 자신을 잃어버린 어른들, 관계가 치유되지 못한 어른들, 광야에서 헤매이는 듯 인생을 살아가는 어른들, 모두 뒤돌아보면, 사랑이란 이름을 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선 제자리걸음만 반복한 땅끝의 아이들이다. 그 이름 꺼내볼 생각도 못하는데 어른이라는 거 할 수 있을까? 나의 기도는 물을 긷지 못하는 두레박. 캄캄한 우물 속을 하염없이 바라만 본다. 부디 땅끝 목마른 사슴들의 입을 축여줄 단비가 하늘에서, 심지어는 우물 속에서 솟아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소민수 (25) 이 책은 눈물과 아픔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상처가 아물고, 기쁨이 넘치고,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요! 우리도 살면서 수많은 아픔을 겪습니다. 그 아픔 속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이 있을까요? 저자는 분명히 그렇다고 자신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EDITOR’S KITCHEN

editor 윤지현, 전아영, 오창현, 소민수 design 전보민, 김덕유

단단한 초코 크래커, 그 안에 부드럽고 하얀 크림, 흑과 백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오레O 1pack 을 잘게 부숴주세요. 말랑말랑한 (자태로 유혹하지만 사실 지구 7바퀴를 돌아야 뺄 수 있는 칼로리를 자랑하는 겉과 속이 다른) 마시멜로를 성능 좋은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린 후, 오레O와 잘 버무려주세요. (성능이 좋을수록 세심한 관심이 필요. 빠르게 부풀 수 있음) 호일을 사용해 모양을 잡아주세요. (종이 호일 적극 추천) 딸기, 견과류등을 함께 곁들여도 좋아요! caution 먹고난 후 큰 후회와 자괴감이 밀려들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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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O MARSHMALLOW BROW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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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성별 불문 누구나 좋아하는 간식 오레O 쿠키. 우유와 함께 찰떡궁합을 자랑하던 이 친구가 어느 순간부터 카페까지 점령하고 나섰다. 오레O 스무디, 오레O 셰이크, 오레O 빙수 까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변신 중인 오레O에게 아직 숨겨진 모습 하나가 더 있다고 하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거대한 칼로리의 기운이 느껴지는 오레O 마시멜로 브라우니. 따뜻한 봄날에 어울리는 간식, 영양은 없어도 맛은 좋은 간식, 오레O 마시멜로 브라우니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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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공원



PHOTO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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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는 빛 뭉툭한 빛줄기 너머 행복하고픈 계절의 그림자 흐림의 미학은 선명하기를 떠나 보이기를 더디한다 행여나 앉아있지 않을까 멋모르고 서성거리지는 않을까 걸터앉은 어둠 끝에서 햇살을 열고 나가면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로 맞이해줄 당신을 이야기 할게요

사진 하늘렌즈 시 김정훈


INFORMATION

editor 박노준, 박예언 design 전보민, 김덕유

박 대통령“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찰 강화 심각하게 봐야” TV를 틀자 뉴스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속보가 흘러나온다. 룸메이트는 ‘쯧쯧, 북한 또 저러네. 하면서 밥 한 숟갈 삼키며 다음 뉴스로 시선을 돌린다. 군대 간 아들·형·동생이 있는 가족이나 이산가족 집안이 아니면, 우리의 일상에서 북한은 거의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 우리는 아직 6·25 전쟁의 연장선에 있는 잠재적 전쟁 국가이다. “동 트기도 전에 뒷산에서 이상한 포 소리가 들려오더라고..” 1950년 6월 25일 평온했던 일요일 새벽 4시, 북한의 불법적인 남침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이 전쟁이 자발적인 게 아니었듯,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야하는 일 역시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준비 없이 기습공격을 받은 후로 대한민국은 같은 해 8월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하며 휘청거렸다. 같은 우방국이었던 UN에서는 남한을 돕고자 지원군을 파견했다.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프랑스, 뉴질랜드, 필리핀, 터키,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콜롬비아, 스웨덴, 인도, 덴마크, 노르웨이, 이탈리아, 그리고 에티오피아 등 21개국에서 한국전쟁 참전 용사를 보냈다.

9월 15일에는 UN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그 기세를 이어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였다. 연합군은 계속해서 3·8선을 지나(이때 처음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은 훗날 국군의 날로 지정되었다.)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이때 중공군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오기 시작했다. 통일을 코앞에 두고서 중국의 인해 전술에 밀려서 1.4후퇴를 겪은 뒤, 전쟁은 현재의 국경 근처에서 고착화 됐다. 미국과 중국은 지지부진한 휴전협정을 펼쳤다. 서로 조금이라도 땅을 더 얻기 위해서 협정이 이뤄지는 동안 사투를 벌였다. 진영 간 요구가 달랐기에 2년이나 되는 시간을 끌었지만 1953년 7월 27일부로 2014년 현재까지 남한과 북한은 휴전 중에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6·25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충돌만이 아니었다. 좀 더 거시적으로 눈을 돌리면 남한과 북한 뒤에 강대국들이 버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서 패권을 잡게 된 소련과 미국의 대립구도 아래, 패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반도는 자연스레 힘겨루기의 장이 되어버렸다. 갓 독립된 한반도에 3·8선을 기준으로 북측에는 소련군이, 남측에는 미군이 들어가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흐루시초프 남침증언 회고록]에 따르면, 1948년 9월 북한의 정부수립과 맞물러 김일성은 스탈린-마오쩌둥과의 3자 협의 하에 남침을 준비하였다. 1950년 1월, 미국이 거듭된 전쟁 때문에 군비에 부담을 느끼고 한반도를 국방방위선에서 제외시켰다. 물론 미국은 국제기구와 일본 주둔 병력만으로도 방위가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한반도를 뺀 것이지만, 북한은 이를 적화통일의 기회로 여겨 그간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해 6월, 남한을 공격한 것이다. 6·25전쟁과 그 이후, 갈등의 연속선상에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통일이 곧 오리라는 희망이 가득 했다. 비록 분단된 정부를 수립하기는 했지만 일제 밑에서 자주독립운동을 했을 적부터 염원하던 독립된 하나의 한국을 꿈꾸는 것은 남과 북이 같았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한국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한 민족이라고 믿었던‘우리’가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며 피 흘렸기 때문이다. 6·25전쟁은 민족의 통일을 표방 하였으나, 오히려 민족의 분열을 심화시키고 이념에 대한 혐오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이후에도 남침 땅굴 사건, 간첩사건, 판문점 도끼 사건 등 남북의 갈등은 악화되었다. 1972년 7·4남북 공동 선언은 남북이 반목한 이래 최초의 평화적 협의로 이뤄냈으나 바로 남북 각각의 독재 체제가 강화되었다. 실제 남북 관계가 개선된 것은 냉전이 종식되고서였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은 평화통일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금강산 총격 사건, 천안함 사태, 연평도 사건, 개성 공단 사태 등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갈등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역사로부터 배운다고 하였다. 최근 들어 북한과의 관계가 더욱 험악해지고 있는 지금, 6.25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로서 생각해 볼 문제이다. 참고자료 6.25전쟁 60주년 홍보 영상 , 국가보훈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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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공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여명학교 前교장 우기섭 장로 여명학교는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청소년들을 위해 동포애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설립된 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다. 1990년대부터 북한의 위기에 식량원조로 돕거나 중국에 탈출한 북한동포를 보호하며 지원하던 단체와 현장 활동가들이 모여 2004년에 설립하였다.


SPECIAL

북한 주민들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 &

2014년 3월 11일 왕립아세아협회 한국 지부 강연회 강연자 LiNK (Liberty in North Korea) Director - Sokeel Park (@sokeel)

<북한이 변화를 피할 수 없는 6가지 이유> 단기간 내에 확인할 수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에서 일어날 변화와 그 이유들이다. 1. 일반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시장경제 a. 당이 주도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은 붕괴됐다. 과거 냉전 시대에는 공산주의 우방 국가들의 지원으로 경제가 지탱됐지만, 지금은 주민들로부터 시작된 시장경제 없이는 모두가 굶어 죽을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시장은 정보 교환과 재화 교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주체사상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2. 만연한 부패 a. 북한 정권은 지난 15년간 거의 파산 상태이다. 월급을 못 받아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친 군인, 경찰, 법관과 같은 공무원들은 각종 뇌물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뇌물의 종류와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i. 한 달간 직장 출근 의무 면제: 5만~6만 원 (약 $7) -> 의무 직장에서 노동을 해도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은 출근을 면제받아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 ii. 여행 허가증: 영내 $1, 국경 지역 $8, 평양 $16 -> 북한 주민들은 여행을 하려면 여행 허가증을 구매해야 한다.

3. 정보 흐름의 가속화 a. 북한 사회 내에서 은밀한 정보 전달 방법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왔다. i. 90년대 후반 라디오부터 시작하여 텔레비전, DVD, USB, SD Card, Micro SD Card 등이 사용되고 있다.

b. 북한 주민들과 외국 매체 및 문화 간의 접촉이 증가하고 있다. i. 한국 및 중국 등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은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은 북한 내 시장의 판매 품목에도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변화는 현 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조용한 반항적 표현이기도 하다. ii. 과거 북한은 동아시아 내의 경제 대국으로 통했으며, 한국은 물론 중국보다 높은 1인당 국내 총생산량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이 중국 매체를 통해 중국의 경제부흥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현 체제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근에는 북한 내에서의 중국 매체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는 추세이다. iii. 북한 주민들은 자신보다 가난한 나라라고 여겼던 중국이 누구나 흰 쌀밥을 먹고, 휴대폰이 필수 아이템이며, 밤낮으로 전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이는 주민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이며 이러한 관심은 항상 “개방”이라는 주제로 결론이 내려진다. 전문가들은 이는 곧 주체사상, 3대 세습 등 독재에 대한 분열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의 집권 사상이 주민들의 실상에서 벗어나 점점 동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4. 탈북민들은 북한과 한국을 연결하는 고리 a. 많은 수의 탈북민들은 탈북 후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에 두고 온 가족 친척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으며, 돈과 정보를 북한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집권 사상을 약화시키는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b. 북한의 상황 변화를 반증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 경제적인 이유, 다시 말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탈북을 결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치사상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ii. 휴대용 DVD Player는 인기 품목이다. 작은 크기로 인해 숨기기가 쉬우며, 내장형 배터리라는 점은 단전이 잘 되는 북한의 전기 사정과 잘 맞아떨어져 큰 이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보통 $60~$80 정도에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5. 장마당 세대 a. 북한에서 1980년 이후 출생한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시장 경제 체제하에서 자라 왔다. 당의 사회경제 체제를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예: 배급 등)

iii. 중국과의 직접 접촉(합법/불법적인 경우 모두)을 통해 중국 휴대폰이 유입되고 있다. 보통 $160~$200에 구입이 가능하며 북한에서는 부와 신분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b. 따라서 통칭 장마당 세대는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심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그리고 정통 북한 방식의 충성심은 구세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태도, 행동, 가치관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iv. 개성공단을 통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한국에 대한 정보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개성 공단 임금은 북한 평균 임금보다 훨씬 높으며,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들도 북한 생산품에 비해 훨씬 고품질이다.

c. 장마당 세대는 한국 대중음악과 TV에 익숙하며, 친구나 연인들 사이에서 서울 말투를 따라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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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이들이 기득권 세대로 성장할 때 북한 정부가 완전한 통제에 성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6. 사적 인적 네트워크의 출현 a. 과거 북한은 어떤 모임이든 간에 당의 통제와 감시를 받았다. b. 하지만 주민들에 의한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어 감에 따라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동업자, 파트너, 협력자 등의 인적 네트워크를 키워가고 있다. 완벽한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북한 정권에게 감시 영역을 벗어난 사적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은 곤란한 상황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1. 불만 세력에 대한 북한의 무자비한 제압 a. 북한 당국은 자신들의 통제 밖의 경제 활동은 어느 정도 묵인해주고 있지만, 그 어떠한 정치적인 불만감의 표현도 용납하지 않는다. 불만감을 표출하는 세력을 효과적이고 무자비하게 제압하고 있다. 북한에는 정부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어떠한 유명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2. 집권 엘리트 계급의 공고함 a. 이집트의 독재 체제가 상대적으로 공고하지 못했던 이유는 집권 엘리트층들 간의 단합이 공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위기의 경우 리더가 빠르게 축출되는 결과를 낳는다. b. 시리아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집권 엘리트 계층들이 모두 사회의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현상 유지를 위해 엘리트층 간 공고한 협력관계가 가능했다. c. 북한도“성분 제도”로 인해 엘리트 특권층이 대물림되어 왔으며 김일성 일가 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1. 지금은 북한 체제의 변화를 가속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a. 북한 주민들은 이미 한국 TV 전파, DVD 등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고 있다. 이미 김정은이 미디어 접촉에 관해 단단히 엄포를 놓을 정도로 퍼져나가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북한 주민들에게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b. 북한의 국영 방송은 오로지 체제 선전을 위한 방송을 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의 대중적 오락 거리는 중국 방송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북한에서 단속을 강화함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외국 매체가 이미 얼마나 북한 주민들 사이에 퍼져 나갔는지를 반증하기도 한다. c. 북한의 실상, 그리고 타국의 현 상황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야 말로 북한 주민들 스스로 북한 체제 변화를 위해 애쓰게 만드는 일이다.

d.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중국 및 외국 언론도 북한에 대한 보도 내용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북한 체제의 취약점을 꼬집을 뿐만 아니라“주민들이 변화를 주동할 것이다”란 식의 보도를 통해 주민들이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을 마련할 수도 있다.

2. 탈북민들 인적 네트워크의 확장 a. 탈북민들은 북한-> 중국-> 동남아를 통해 한국 또는 미국에서 정착하고 있으며, 일단 정착한 이후 탈북민의 50%는 북한에 두고 온 가족과 연락을 취하고 돈이나 정보 등도 함께 보내주고 있다. 요즘은 스마트폰과 메신저 등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b. 현재 2만 6천 명 정도의 탈북민이 남한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이 매해 $1000~$2000 달러를 북한으로 송금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를 계산했을 때, 탈북민들은 매해 천만에서 천오백만 달러(한화 120억~ 180억 원) 북한으로 송금하고있으며, 이는 북한 정부가 가로채지 못하고 주민 경제로 바로 연결되고 있다. c. 이렇게 보내지는 돈은 기본 생활필수품, 자전거(장마당까지의 이동이 용이해짐), 장마당 근처의 집 구입, 더 큰 장사를 위한 자본금 등의 순서로 활용되고 있다고 추측된다. 기타 품목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스쿠터나 오토바이 등이 있다. d. 또한 이러한 자금은 북한의 주요 도시들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평양, 청진, 혜산, 회령 등의 주민들은 타국의 실정에 보다 밝은 편에 속한다. 정보 전달이 굼뜬 내륙 시골 지역보다 큰 도시 위주로 공략하는 것이 북한 체제 변화를 위해 효과적인 접근 방식이 될 것이다.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의 주체는 위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북한 주민들로부터 일어나고 있다>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취약점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전략들을 세워 실행한다면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위해 보다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editor 소민수, 오창현 design 장진아


SPECIAL

64년 전 이곳을 울리던 비명 소리도, 탄약 냄새도 없었다. 그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푸른 풀과 나무로 뒤덮였다. 분단의 역사와 민족 대립의 아픔이 서린 곳이라고 하기에는 아름답기가 그지없는 풍경.. 작년 5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이곳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여기는 북한과의 경계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다. &

DMZ: De-Militarized Zone, No Guns Are Allowed 1953년 7월, 한국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으로 설정된 군사분계선은 서쪽으로 예성강과 한강 어귀로부터 중부의 철원을 거쳐서 동해안 고성에 이른다.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남북으로 각각 2km씩 분할된 지역이 바로 비무장지대(DMZ)이다. DMZ에서는 군대를 새로 주둔시키거나 무기를 배치하고 군사시설을 설치하는 행위가 일체 금지되었다. 이미 배치되어 있던 군대와 관련 시설은 철수 또는 철거되어야 했다.

전쟁과 평화, 그 경계에서 DMZ는 한국전쟁 때 가장 치열한 싸움이 있었던 곳이고 지금도 북한과 가장 밀접한 지역으로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녹색으로 뒤덮인 DMZ의 모습은 평화를 역설한다. 지난 60년간 인간의 침입이 제한되면서, 전쟁으로 황폐해졌던 생태계가 회복된 까닭이다. DMZ는 한반도에서 얼마 남지 않은 원시림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규모의 온대 원시림이다. DMZ에는 사라졌다고 여겨지던 산양, 재두루미, 연어 등 천연기념물과 희귀동물들도 생존하고 있어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editor 박노준, 박예언 design 장진아, 김덕유

평화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故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2004년 7월 15일 시작된 DMZ 포럼 국제회의에 DMZ 활용방안과 관련하여 특별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남북한이 함께 손을 잡고 DMZ를 평화의 공원으로 가꾸어 나가기를 바란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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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공원

이와 같은 제언에 대한 이유로“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 긍정적 효과는 물론, 세계 각국이 평화를 실현하고 새로운 시각과 지평을 열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현재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 측에 DMZ 내 세계평화공원을 짓자고 공식으로 제안했었다. 또, 올해 3월 말에는 독일 드레스덴 공대 연설에서 DMZ 세계평화공원이 ‘한반도의 분단을 통일로, 동아시아의 갈등을 화합으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그런데 사실 경기도에서는 이미 2020년까지 파주 임진각과 임진나루 일원에 270억 원을 들여서 DMZ 내에 평화·생태·교육·관광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는데 예산 부족으로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현 정부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DMZ는 하지만 DMZ를 평화의 상징으로 두기에는 한계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남북의 평화적 합의가 없다면 DMZ 세계평화 공원은 모래위에 지은 집’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이 동의하지 않는 한, 평화를 이루기란 매우 어려운 까닭이다. 현재까지 한국전쟁만큼 불거져 나온 커다란 사태는 없었지만, DMZ 내부에 불법적으로 감시 초소를 설치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위협, 일방적인 폭력은 계속되었다. 한편 DMZ 내부 곳곳에 숨겨진 지뢰들도 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DMZ에서의 평화는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처럼 아슬아슬해 보인다. DMZ 평화공원은 통일로 내딛는 한 걸음이 될 수도, 전쟁을 알리는 침략의 한 걸음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DMZ가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교류·협력의 피할 수 없는 접점이자 통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DMZ 문제는 통일을 준비하는 세대로서 앞으로도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현재 DMZ에는 수많은 꽃봉오리가 열렸다. 이 꽃들이 짓밟히지 않고 풍성하게 피기를 기원할 따름이다. 참고자료 DMZ 비무장지대 홈페이지 http://dmz.gg.go.kr 위키백과 세계평화공원 탭


SPECIAL INTERVIEW

자전거를 타고 저 중국 대륙을 가는 것, 그게 통일이에요. &

여명학교 前교장 우기섭 장로 저녁 7시, 여명학교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통보 받은 곳은 일원동에 위치한 밀알학교였다. 검정색 폴라에 청바지, 흡사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복장(후에 장로님은 자신이 원조라고 웃으며 얘기하셨다)으로 나오신 장로님은 우리에게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은 안 했는지, 저녁들은 먹었는지를 물으셨다. 요 앞 카페에서 빵 몇 개와 간단한 마실 거리를 사오는데 장로님이 사주신다는 걸 간신히 말렸다. 작은 공간을 빌려 하얀색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원래 이스라엘의 전통 문화에서는 둥글게 둘러앉아 손으로 빵을 뜯어 먹으며 편하게 누워서 이야기를 나눴다는데. 저마다 빵을 뜯으며 얘기하는 우리 모습이 흡사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와 닮았으리라 생각을 했다. 물론 눕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작은 공간을 빌려 하얀색 둥근 탁자에 둘러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원래 이스라엘의 전통 문화에서는 둥글게 둘러앉아 손으로 빵을 뜯어 먹으며 편하게 누워서 이야기를 나눴다는데. 저마다 빵을 뜯으며 얘기하는 우리 모습이 흡사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 때와 닮았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눕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근데 여기 밀알 학교는 뭐하는 곳이에요?” 포토에디터 한 명이 빵을 먹다 말고 물었다. 사실 궁금했다. 장로님은 여명학교 (새터민 자녀들을 위한 학교)의 전 교장이시다. 밀알학교와는 무슨 연관이 있으셔서 장소를 이곳으로 잡으셨을까. “밀알학교는 자폐아동을 위한 학교예요. 저는 여기서 장로합창단 단장을 맡고 있어요.”그렇게 말을 하신 후 책을 한 권 꺼내어 읽어주신 내용은 밀알학교가 어떤 곳인지를 더 없이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아, 이런 분이 교장을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한 가운데를 스쳤다, 그리고 장로님에 대한 개인적인 질문을 적은 종이를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과거 모토로라, 인텔, 맥스터 등 내로라하는 다국적 IT기업에서 근무했던 이력도, 여명학교 전 교장이자 현 이사라는 직함도, 그 순간 흘리는 눈물보다 더 진실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여명학교는 북한이탈청소년들을 위해, 동포애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설립된 고등학교 과정의 대안학교다. 1990년대부터 북한의 위기에 식량원조로 돕거나, 중국에 탈출한 북한동포를 보호하며 지원하던 단체와 현장 활동가들이 모여 2004년에 설립 하였다. 그들 중 한 명인 우기섭 장로님은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여명학교의 교장을 역임하였다.

‘자폐아 자녀를 둔 엄마가 아이를 찾았을 때, 아이는 예배당에 불을 지른 뒤 그 불을 보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그 엄마는 목사님에게, 사회가 이런 아이들을 돌보지 않는데 교회가 돌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말한 뒤, 울었다. 죄송해서 울었고, 서럽고 속상한 가슴 때문에 울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님은 자폐아동을 위한 학교를 지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밀알학교가 되었다.’장로님은 여기까지 읽고 책을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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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소민수, 하영준, 조경희, 전아영 photo editor 윤지현, 장원 design 김덕유, 전보민



SPECIAL INTERVIEW

장로님은 IT분야에 계셨잖아요? 어쩌다가 여명학교를 설립하게 되셨나요. 2004년에 제가 섬기는 남서울은혜교회에 새터민(탈북민)가정 20~30가구가 나왔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 가정들을 돕자는 취지로 통일선교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그렇게 돕고 같이 예배드리고 하다 보니까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리고 이 새터민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봤더니 자녀교육이에요. 오기는 함께 왔는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적응을 못 하는 거죠. 그래서 ‘아, 이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지어야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지요.

처음 여명학교에 오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남한 학생들과 다른 점이 많죠? 그렇죠. 그래서 아이들이 처음에는 적응을 어려워해요.

학교가 말처럼 쉽게 지을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시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처음에 저도 그랬어요. 학교가 말이 쉽지 그게 되냐고요. 그래서 얘기를 계속 하다가 ‘그럼 대안학교를 하자’해서 통일선교위원회 내에 계신 여러 분들과 같이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름을 공모해서 여명학교라는 이름이 채택됐죠. 통일에 여명을 비추는 학교라는 뜻이에요. 여명이라는 것이 새벽에 희미하게 밝아오는 빛이잖아요? 그래서 이 통일에 동을 틔우자, 통일을 준비하자, 이런 뜻을 담고 있어요.

아이들이 신앙적으로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여명학교에서 예배도 드릴 테니까요. 예배를 강요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아이들이 그 시간에 할 게 별로 없으니까 대부분 다 참여를 하죠. 그럼 아이들이 처음 예배를 드릴 때 반응이‘이야, 맨날 저쪽에서는 김정은이나 장군님만 얘기하다가 여기 오니깐 또 예수님이 장군님이네?’이래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하나님을 만나서 신앙에 열심을 가지게 되는 아이들도 많죠.

근데 어떻게 교장을 8년이나 하셨어요? 그게 처음에는 임시 교장이었어요. 왜냐면 그 당시 제가 통일선교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었거든요. 또 학교가 2004년 9월 14일에 개교했는데, 개교를 하고 나니까 선생님들을 뽑아야 하겠거든요. 그래서 면접도 보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느라고 임시 교장으로 세워졌다가 그냥 교장으로 쭉 있게 된 거예요.(웃음)

어떤 부분에서요? 일단 아이들이 사랑을 받아들일 줄 몰라요. 어머니나 아버지, 형제간의 사랑은 있어도‘저 선생님이 우릴 사랑해?’이런 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저 집사님이 왜 나한테 밥을 더 줘? 왜 나한테 잘해줘? 그리고 뭘 줘도 고마운 줄 몰라요. 이런 것들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저쪽에선 다 정부가 주는 거니까요.

학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여명학교는 고등학교 3년 과정의 대안학교에요. 교육내용에 있어서는 크게 다른 점이 없지만 학교 특성상 심리치료 같은 시간도 있고, 또 예체능 수업에도 중점을 많이 둬요. 지금 공교육에 문제가 많잖아요? 그거는 예체능교육을 안 시켜서 그래요. 옛날 우리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 체육, 음악 시간이 있었다고요. 지금도 있기야 있죠. 그렇지만 어디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다 입시과목이다, 이런 거에만 매달려 있지. 우리는 그래서 왕따 같은 거는 없어요. 또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한 학년이 한 반이죠. 나이 때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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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중국에서부터가 탈북민을 난민 대접을 안 하고 북송을 하는 마당이니까요. 지금도 전체 탈북자들이 한 26,000명 정도 되는데, 우린 이 분들을 잘 도와야 돼요. 그래서 그 분들이‘야, 남한이 이렇게 살기 좋으니까 우리는 남한하고 통일이 돼야겠다.’그런 말이 나와야 해요.

새터민 청소년을 위한 학교는 여명학교가 유일한가요? 아뇨, 지금 현재도 한꿈학교, 하늘꿈학교 같은 곳이 있어요. 다만 대안학교로서 정식 학력인정 인가를 받은 건 여명학교가 처음이자 유일하죠. 보통은 졸업하면 검정고시를 봐요. 그래서 제가 여명학교를 섬길 때는 여명학교가 탈북 청소년 학교의 모델케이스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럼 여명학교가 통일되기 전까지만 필요하냐? 아니에요. 여명학교가 지금은 탈북 청소년들만 다니고 있지만 조금 더 안정이 되면 선교사 자녀라든가, 여러 일반 학생들도 받을 생각이에요. 그래서 학생 비율을 남한 학생 30%, 탈북학생 70% 정도로 해서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간에 이해하는 좋은 장을 만들었으면 해요. 그럼 나중에 통일이 되어서도 서로의 화합을 더 수월하게 이룰 수 있겠지요.

다르고. 아이들이 왔을 때 선생님이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고 몇 학년으로 갈지 체크를 해요.

새터민 청소년학교 특성상 수업 진행에 어려움은 없나요? 많죠. 수업 중에 브로커가 와서 학생들을 끌어내서 때린다든가, 담당 형사가 와서 얘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기웃거린다든가.. 그러면 애들이 공부에 집중이 되겠어요? 브로커요? 브로커는 뭔가요? 브로커라고, 탈북과정을 도와준 사람이에요. 새터민들이 한국에 올 때 대부분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오지만 그 중간에서 연결시켜주는 브로커가 있어요. 근데 왜 때린다는 거예요? 정착금 내놓으라고요. 새터민들이 한국에 오면 정착금이 나오거든요. 브로커들이 다 조직이 있어요. 누구는 관리하고 누구는 돈 받고. 북한 사람들이 탈북하면 멀리는 저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로 갔다가 한국에 들어와요. 그럼 또 그 비용이 들잖아요? 그러니까 그 비용을 정착금으로 내놓으라는 거죠. 그런데 그 새터민들이 한국에 와서 지낼 곳이 있겠어요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 남한에서 지내려면 그 정착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요. 그럼 이제 브로커 입장에서는 타산이 안 맞으니까‘그럼 노동이라도 해서 벌어 갚아라’라고 하는데, 이 애들이 노동은 안 하고 학교에 와있으니까요. 그러니 학교까지 찾아와서 애를 끌고 나가려는 거죠. 국가차원에서 어떤 보호를 못 해주나요? 브로커들이 돈을 자꾸 뺏으니까 정착금을 한 번에 안 주고 다달이 주기는 해요. 하지만 그 이상은 아직 적극적인 보호가 이뤄지지

현재 새터민 청소년과 학교 간의 수요공급 상황은 어떤가요? 학교가 부족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사실 새터민 청소년을 위한 학교가 더 필요해요. 여명학교 학생이 100명 정도 되는데, 일단 입학요청을 하는 학생은 절대 우리 쪽에서 거부하지는 않지만 공간적으로 수요적 한계가 있어요. 아이들이 졸업을 할 때는 한꺼번에 우르르 나가지만 들어올 때는 다달이 계속 들어오거든요. 또 우리나라 학생들 같은 경우는 100명 중에 1명이 이탈을 한다면 새터민 학생은 100명 중에 5명 정도가 이탈을 해요. 그만큼 일반학교에서는 적응을 잘 못 하는 거죠. 하지만 그렇게 힘들어도 이 아이들 중에서 틀림없이 장관이 나오고 총리가 나올 거예요. 여명학교가 새터민 청소년학교의 개척가적 역할을 감당해야 했을 텐데, 아무래도 힘들었겠네요. 네, 일단 후원 문제도 있고. 처음에는 몇 개 연합 교회에서 후원을 해줬는데 아무래도 건축비, 운영비 등으로 나가다보니까 선생님들 줄 월급이 없었어요. 저는 월급을 못 받아도 최소한 선생님들한테는 생활비라도 줘야 되잖아요? 그래서 2004년도에 처음 8명의 교사 분들에게 월급을 100만원 줬어요. 모두 처녀 총각들이었는데, 우리도 생활비를 넉넉히 줄 수가 없으니까 애초에 싱글인 분들만 뽑았었어요. 그렇다고 교사 분들 일은 쉬우냐? 배로 힘들었어요. 지금도 거의 15시간을 학교에서 있고, 아침에 한 시간 일찍 나와서 수업 준비를 해요. 원래 일반 학교 선생님들은 한 시간 수업을 준비하면 일주일을 버텨요. 왜냐면 가르치기는 반마다 가르쳐도 수업 내용은 같으니까요. 근데 여기는 한 학년이 한 반이니까 한 시간 준비하면 한 시간밖에 못 쓴다고요. 게다가 애들이 또 학교를 오다가 안 와요. 그럼 또 가정방문 해서 학교 나오라고 설득해요.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코칭 해야 하죠. 학생들은 평소에 어디서 지내나요? 30~40%정도는 자기 집에 있고, 50~60%정도는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요. 그래서 여명학교에서는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세 끼를 학교에서 다 먹여요. 아이들이 집에서 돌봐주는 사람이라도 있어야 아침이라도 먹고 할 텐데 그러질 못 하니까요. 아이들은 점심 때 제일 잘 먹어요. 점심때는 각 이사회와 교회에서 봉사오시는 분들이 음식을 좀 해오시거든요. 그럼 그걸 또 남겨서 저녁때도 먹고 하죠.


SPECIAL INTERVIEW

학생들 개개인의 상처도 많겠죠? 많아요. 근데 반드시 조심해야 할 것이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 올 때 어려운 게 뭐였냐’절대로 안 물어봐요. 교육과정에서 심리치료 같은 시간이 있긴 하지만 아이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안 물어봐요. 그럼 아이들이 어떤 때에‘선생님, 저 언제 이렇게 맞고 저렇게 맞았어요’얘길 해요. 개중에는 맞아서 다리가 부러진 애도 있고.. 군인들한테요? 북송 당했을 때요. 새터민의 상처는 배고픔의 고통, 이산의 아픔, 가족의 죽음, 북송경험, 북한 수용소에서의 삶, 난민생활의 상처, 남한적응의 어려움, 미래에 대한 불안함 등등 정말 많아요. 가끔 TV화면에 나오는 꽃제비는 실제 얘기예요. 한 학생은 자기 얘기를 저한테 하는데, 방에 아버지 시체를 놓고 3개월을 있었대요. 엄마는 중국으로 돈 벌러 갔고, 형은 엄마 찾으러 갔고, 아버지는 애 먹으라고 안 먹다가 굶어 죽었어요. 근데 누가 이걸, 그 동네에서 도와 줄 생각을 아무도 못 한다고요. 여유가 없으니까. 그럼 그 아이가 가지고 있는 10살, 11살 때의 상처가 얼마나 크겠어요.

우리는 얼마나 무감각해져있던 걸까. 어쩌면 긍휼 없는 삶의 만족을, 감사라는 말로 포장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은 나라인데 못 들어간다고요? 네, 통행증이나 들어갈 수 있는 여행증명서가 있어야 되지, 우리가 대전에 가듯이 자유롭게 못 가요.

# 20을 위한 80

장로님은 북한에 가보신 적이 있으세요? 딱 한 번 가봤어요. 2006년도에 우리 남서울은혜교회에서 천덕리라고, 북한 황해북도에 있는 지역에 집을 200채 정도 지어주러 간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제가 IT전문가로 가서 평양에 2박 3일 동안 있었어요. 북한의 모습들을 봤을 때, 어땠나요? 저는 그 때 목탄차라고 하는 걸 처음 봤어요. 트럭인데 뒤쪽 드럼통 같은 곳에서 나무가 타요. 저게 뭐냐고 가이드한테 물으니 목탄차래요. 또 평양에서 천덕리까지 60~70km 떨어졌는데, 그래서 고속도로라고 만들어놓은 곳이 있거든요? 근데 가면서 화장실 좀 갈 수 있냐고 물으니까 도로를 기준으로 여자는 이쪽, 남자는 저쪽이래요. 그 말은 고속도로에 휴게소가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차도 없어요. 출입을 금지시킨 건 아닌데 거의 군사도로로 쓰고 있는 거죠. 그 말은 2006년도까지 고속버스라는 게 없었다는 거예요. 고속버스는 아마 지금도 없을 거야. 그리고 집을 보니까 그야말로‘어떻게 저런 집에서 사나’싶은 집들이에요. 사실 우리가 처음에는 집을 지어주러 갔던 게 아니었어요. 주민들 사는 집 지붕에 물이 샌다고 해서 그걸 고쳐주러 간 거예요. 근데 가서 보니까 이건 수리가 불가능한 거죠. 지붕이 말이 지붕이지 다 낡고 어찌나 얇은지, 지붕을 고치자니 집이 무너져버리게 생겼어요. 그리고 거기서 쓰는 달구지를 봤는데, 이야~ 우리나라 리어카는 거기 가면 완전 벤츠예요 벤츠. 평양은 어때요? 그래도 평양은 좀 다를 것 같은데. 평양에서 제가 뭘 봤는지 아세요? TV에서 보는 평양은 그래도 깔끔하잖아요? 근데 그 건물 뒤를 보면 그런 말 못 나와요. 얘들이 보이는 곳에만 신경을 써서, 뒤쪽은 칠하다 만 페인트 때문에 무슨 세트장 같아요. 제가 평양에서 가이드 차량을 타고 가다가 한 7층 정도 되는 아파트를 봤는데, 7층에서 사람이 물 양동이로 두레박질을 해요. 그래서 저건 뭐 하는 거냐고 물으니 가이드가 대답을 안 해. 나중에 알고 봤더니 수돗물이 안 나와서 물을 올려다 쓴대요. 거기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있는데 또 작동을 안 해요. 우리를 안내하는 곳은 그래도 좋은 곳일 텐데 그렇더라고요. 그리고 그거 아세요? 일반 사람들은 평양에 못 들어가요.

아니, 그게 그들이 말하는 평등인가요? 공산주의의 이론 첫 째가 모든 게 평등하다 그러죠? 그러나 실제 공산주의의 내부를 보세요. 얼마나 계급이 많은가. 북한에서도 평양시민은요, 로마시대의 로마인들처럼 살아요. 평양시민 20%를 위해 80%가 희생하는 구조인 거죠. 북한경제가 왜 그렇게 되었나요?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거잖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큰 이유 중 하나가 사상교육 때문이에요. 북한의 주체사상탑? 그거 굉장히 잘 해놨어요. 대리석으로 번쩍번쩍 잘 지어놓았어요. 근데 그 돈이 다 어디서 났어요? 남한은 돈 생기면 어떻게 국가를 잘 살게 할까 하고 고속도로를 놓고 했지만 북한은 자기네들 선전하는 데만 쓴 거예요. 그들이 만든 건 결국 종교예요 종교. 김일성 종교, 김정일 종교, 그리고 지금은 김정은 종교. 평양에 봉수교회라고 있어요. 근데 거기 가짜교회예요. 찬송가 뺏으면 찬송 못 불러요. 교회도 그냥 구색맞추기 위해서 지어놓은 것이지, 북한에는 목사도 중도 없어요. 갔다 와서 새롭게 느끼신 것도 많으셨겠네요. 제가 사실 2004년도부터 2006년까지 2년간 여명학교를 맡으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후원문제도 그렇고 사람한테 힘든 것도 많았고. 근데 갔다 오니까 하나님이 딱 그러시는 거예요.‘너 힘들다고 꾀부리면서 여명학교 그만둘 생각만 하고 앉았지? 그래서 너 보낸 거야.’그 이후로는 투덜대지 않았어요. 이건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이다 생각하고 마음 다잡고 감당했어요. 우리가 60년 이상을 그렇게 다르고 단절된 사회에서 지냈잖아요. 사고방식이나 의식에서 달라진 것도 많을 텐데, 어떤 것이 있나요? 일단 같은 단어라도 의미가 다르고,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우리 생각이 달라요. 가령 우리가 청소를 한다고 해봐요. 그럼 새터민들은 “아 여기 깨끗한데 뭘 청소해요?”라고 해요. 이건 절대 그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그쪽의 삶 자체가 어려웠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우리 남한에서는 화장실도 참 깨끗하지만 그쪽에서 화장실은 당연히 더러운 곳이거든요. 그래서 여명학교에서도 남한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많이 가르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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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듣기로 새터민들이 취직을 하면 퇴직율이 60~70%나 된다고 들었어요. 그 원인도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는 건가요? 그렇죠. 한 번은 사무직 잘한다고 해서 여명학교 졸업생 한 명을 친구네 직장에 취직을 시켰어요. 근데 친구가 밖에 나가보니까 무척 덥거든요? 그래서 들어오면서“야, 오늘 날씨 무척 덥다. 너희들도 더운데 고생한다.”라고 직원들한테 말했어요. 근데 보통 사장이 이렇게 들어오면 직원들이 어떻게 해요?“사장님 더우시죠”하면서 냉수를 떠다 드리거나 수건이라도 적셔서 드리는데 이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고요. 그리고 대표적으로‘일 없습네다’라는 표현이 그래요. 이게 북한에서는 정중한 표현인데, 남한에서는 이런 말 들으면 일단 기분이 나쁘다고요. 그러한 문화적 차이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기관이 따로 있나요? 네, 탈북민취업지원센터라고 여기서 직장생활의 에티켓이나 상식 같은 것들을 가르쳐요. # 통일에 대한 사명

교장을 하시기 전에 IT분야로 다시 진출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혹시 안 하셨나요? 외람 된 말이지만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으셨으면 그리 어렵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사실 여명학교 교장을 맡기 전에 사업을 알아보고 있었어요. 친구가 양식장을 하는데 거기서 일을 좀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기계를 만들어서 납품을 하려고요. 이미 투자자까지 다 받아놓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이 나한테 말씀을 하세요.‘너 이제 돈 버는 거 그만해라’그래서 내가 그랬죠.“아 하나님 난 월급쟁이 사장이었지 내가 언제 내 돈 벌었대요?”(웃음) 근데 그게 아니었어요. 저는 이제 확신하는 것이, 제가 교장을 하게 된 건 나를 여명학교 교장으로 세우시려고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셨다는 거예요. 35년 동안.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계기라기보다도, 저는 33살에서야 예수를 믿었거든요? 저는 지금 예수 믿는 청년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거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요. 제가 과장 때는 등산을 자주 갔는데, 맨날 몇몇이 교회가야 한다고 빠지는 거예요. 그럼 저는“야 임마 미스터 리! 아 그거 좀 한 달에 한 번 빠지면 될 거 아냐. 그것도 안 돼? 야 임마 이거 한 잔 못 먹니? 이것도 사람이라고.”제가 그랬어요. 이 예수쟁이들은 술도 안 먹고 뭐가 그렇게 재밌어서 밤늦게까지 저러고 있는지, 그 때는 그게 막 눈꼴시었어요. 근데 제가 나중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예수 믿기 전부터도 나를 인도하셨고 내 생활의 주관자가 되셨더라고요. 우리가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여러분에게 오늘 두 가지를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 왔어요. 첫째는 초코파이 하나씩 풍선에 달아서 북한에 날리세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우리 국악기를 하나씩 배우세요. 이거 어려운 거 아니에요. 혹시 여러분 중에 보릿고개 겪은 사람은 없죠? 듣기만 했지 겪지는 못했어요. 저기 북한은 지금이 보릿고개예요. 여러분들은 안 겪어서 몰라요. 요즘 사람들은 먹을 게 없다고 하면‘그럼 라면 끓여먹지’그러지만 그 때는 그것도 못 먹었다고요. 북한 사람들이 지금 식량이 없어서 제일 어려울 때거든요? 이럴 때 초코파이 하나씩만 풍선에 달아서 날리세요. 거기에 아무것도 쓰지 마요. 통일이 뭐 어떻다, 김정은이가 뭐 어떻다 이런 거 쓰지 않아도 이미 거기에 우리 한글도 들어가 있잖아요. 초코파이가 아니더라도 비스킷이나 라면처럼 풍선이 감당할 수 있는 거면, 저는 그런 걸 좀 달아서 북한에다가 보냈으면 좋겠어요.


SPECIAL INTERVIEW

그러면 북한 군부에서 문제 삼거나 하진 않나요? 물론 군부에서는 자기네 존엄을 무시한다는 식으로 반응을 하죠. 실제로 예전에 군부에서 방송을 어떻게 했냐면 남한에서 보낸 거 독 들었다, 그러니까 먹지 말라고 했어요. 그랬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배고파서 죽으나 독 먹고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그걸 먹은 거예요. 근데 먹어보니까 와~ 이거는 자기네들이 정말 먹어보지 못했던 그런 맛이거든요? 이 초코파이가 북한에서 한 개에 7,000원, 8,000원에 거래가 돼요.

북한 주민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거죠? 네, 그러려면 초코파이든 비스킷이든 북한 주민들이 받고‘아, 남한 제품이 이렇게 맛있구나. 그리고 남한 사람들은 이걸 우리한테 보내줄 정도로 잘 사는구나’라고 느껴야 돼요. 거기다 글 같은 거 쓸 필요 없어요. 한다면 그냥 뭐 랩 같은 걸로 비와도 물 안 들어가게 하고, 랩은 투명하니까 이것이 폭탄이 아니라 먹을 거라는 걸 누구나 알 수 있다고요. 그렇게 해주면 북한 사람들에게 굉장히 도움이 될 거예요.

한 개요? 한 박스가 아니라? 네, 그거 한 개에요. 이게 어떻게 시작이 됐냐면, 예전에 저기 개성공단의 공원들한테 우리 측에서 밥을 해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북측에서 생각하니까, 만약 우리가 식사를 제공하면 자기네들이 평소에 주던 밥이랑 질적으로 너무 차이가 나겠거든요? 그래서 밥은 안 된다, 대신 간식이나 주라 그랬는데 그게 초코파이였던 거예요. 그리고 이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받으면 그걸로 계를 해요. 먹어보니까 맛있거든요. 어떻게 하냐면 그걸 돌아가면서 한 사람에게 몰아줘요. 왜 맛있는 걸 먹으면 집에 있는 동생들 주고 싶고, 아버지 어머니 주고 싶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걸 원래 밖으로 못 가져나가게 해요. 그래서 이걸 몰아주는 이유가, 한 사람한테 몰아주면 걸려도 한 번 걸리니까. 걸리면 또 뭐해요. 간부한테 하나 주잖아요. 그럼 그게 개성에서 평양까지도 가고 그 이상까지도 들어간다고요. 단순히 먹을 걸 주는 의미만은 아닌 것 같네요. 우리가 통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북한이 통일을 하면 당연히 우리와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지금 중국 자본이 북한에 얼마나 많이 들어가 있는지 아세요? 우리가 통일이 되려면 북한 주민들이 ‘우리는 남한하고 한 나라가 되겠다’라고 말을 해야지, 만약 국민 투표에서 중국하고 합병되길 원한다, 중국의 자치주가 되길 원한다고 하면 정말 큰일 나는 거예요.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 보면 알죠. 푸틴이 큰 소리 치는 게 뭐예요.‘국민들이 원한 거다’그거잖아요. 지금 중국 자본이 북한에 많이 들어가서 안 그래도 북한이 중국에 팔리는 듯한 모양인데.

하지만 일각에서는 퍼주기라는 비판을 할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소리를 분명히 하죠. 하지만 우리가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퍼주기를 하면 안 되지만 주민들에게는 퍼주기를 해야 돼요. 초코파이 날릴 때 누가 옆에서 뭐라고 그러면‘우리는 그냥 그 사람들이 배 안 고팠으면 좋겠다, 순수하게 주님의 마음으로 하는 것뿐이다’라고 얘기하세요. 그리고 우리는 자꾸 뭐 할 때 마다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그러는데, 그것도 저는 너무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장 지금 북한 사람들이 굶고 있는데, 최소한 북한의 어린 아이들이 영양부족으로 죽어가는 일은 없게끔 해야죠. 지금 여러분 명성교회 대학부랬잖아요. 대학부가 몇 명이죠? 매 주 1500명 이상 출석해요. 그럼 여러분 대학부에서 그 일을 한 번 한다고 해봐요. 그럼 1,500명이 다 참석하겠어요? 한 500명 참석한다고 치고, 한 사람당 만 원씩만 모으면 최소 한 사람이 초코파이 다섯 개는 보낼 수 있어요. 그럼 그 중 30%는 분실된다 치고, 한 1,000개만 북한 사람들이 받아먹어도 그게 어디냐 이거예요. 지금 그 일을 하는 단체가 있나요? 구로동에 가면 하나로 교회라고 있어요. 거기 담임목사님이 유대열 목사님인데, 예전에 우리 여명학교 초대 교목이었어요. 그 교회 청년들이 휴전선 근처에 가서 라면이랑 이런 것들을 풍선에 달아서 보내요. 초코파이를 보내는 건 잘 이해했어요. 근데 국악기를 배우는 것과 통일과의 연관성은 쉽게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떤 연관이 있나요? 우리는 자긍심을 가져도 되는 것이, 우리의 문화가 굉장히 뛰어나요. 우리가 통일이 돼서 예술적으로 합쳐진다? 저는 이것은 마치 스포츠에서 남북한이 하나의 축구선수 팀을 결성하는 것과 똑같다고 봐요. 북한은 지금 1인 1기해서 국악기를 가르쳐요. 통일이 된 후에 우리 남한과 북한이 국악기라는, 같은 역사를 담고 있는 하나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저는 큰 의의가 있다고 봐요. 그러면 통일 후에 서로 이해하는 일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라고요. # 청년 & 크리스천

통일 후의 변화를 어떻게 예상하세요? 우리는 통일만 되면 정말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지금 외국을 나간다고 하면 꼭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것만 생각하게 되죠? 우리는 지금 섬나라 아닌 섬나라 노릇을 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우리가 통일만 되면, 생각해보세요. 자전거를 타고 저 중국 대륙을 가고, 연해주를 통해서 러시아를 갈 수 있어요. 기차로만 가도 쉽게 갈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의력이 뛰어나요. 통일이 되면 이 창의력으로 세계를 향해 가고, 우리는 얼마든지 더 부강한 나라가 될 거예요. 그야말로 일자리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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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도 있어야 할까요? 네, 하지만 그걸 치러내야죠. 지금 통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 많잖아요? 그게 왜 그러냐면 난 지금 상태에서도 잘 살고 있다, 내가 왜 희생을 해야 하냐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에요. 저는 최소한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기독교인들이 참 많은 욕을 먹어요. 천주교랑 불교는 신자가 늘어나는데 기독교는 안 늘어난다고요. 지금 교황이 얼마나 멋져요. 정말 존경스럽잖아요. 자기는 임기 마치면 아르헨티나의 양로원에 가서 봉사하며 살겠다, 내가 왜 방탄차를 타고 다니냐, 그러면서 실제로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하잖아요. 그렇지만요, 실제로 우리나라 사회가 이렇게 발전한 거, 또 우리 사회가 이렇게 꾸려져 나갈 수 있는 거는 기독교인들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할 일이 없어서 여기 와서 나하고 얘기하고 있어요? 아니잖아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나하고 얘기하는 거라고요. 또 여러분이 청년의 역할을 다 하려고 하기 때문에 여기 있는 거라고요. 저는 여러분과 같은 귀한 청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역할을 다 할 때 우리나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책임이 막중하네요. 더 많이 알아야 할 것 같고요.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우리 여명학교 학생들이 다 합쳐봐야 110명이에요. 여러분들 대학부원이 1500명이라고 했죠? 그럼 여름수련회 같은 걸 갈 때 연락을 해서‘야 너희들 다 합해봐야 110명이잖아. 우리 전체 다 합치면 1500명인데 너희 같이 갈래? 돈 가져올 거 하나도 없어. 우리랑 같이 놀아주고 예배 보면 되는 거야’이렇게 얘길 한 번 해보세요. 이거 할 수 있잖아요. 여러분 조에 탈북자 학생 한 명만 있어도 그 아이의 사고방식과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있잖아요. 지금 구글에서도 1년에 두 명씩 우리 여명학교에서 학생을 데려가서 연구를 해요.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면서 이 아이의 생각과 사고방식은 어떤지, 그 중에 기발한 것은 없는지 검토를 한다고요. 근데 여러분이 안 해서야 되겠어요? 또 초코파이 날리기 전에 한 번 전화를 해요. 그리고 방문하려고 한다 말하고 그냥 초코파이 몇 상자만 아이들 간식으로 사들고 와요. 그러고 나면 또 느낌이 다르다고요. 그리고 와서 얘기 나누다가 여명학교 졸업생들 모임에도 한 번 갈 수 있고, 이게 어려운 게 아니에요. 장로님의 기도제목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사실 건강이 좋지 않아요. 2008년도에 간이랑 쓸개를 절반정도 잘라냈거든요? 그래서 건강이 늘 조심스러워요. 이게 기도제목이고, 여명학교 졸업생들이 동창회라도 만들어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의 계획이에요. 저는 그 아이들이 정말 자식 같아요. 아이들도 저를‘교장 아빠’,‘교장 아버지’라고 부르고요. 제가 딸 하나 아들 하난데 90년대부터 다 외국 살거든요. 그때 이 아이들이 제 자식이 되어줬어요. 그래서 참 아이들에게 고마워요.



DMZ 평화공원


NEWSONG

중간고사가 끝났다. 문득 쳐다본 오뉴월의 하늘은 참 푸르고 햇볕은 따사롭기만 하다. 도시락을 싸들고 나들이 가고 싶은 화창한 오후. 이쯤에서 한 숨 돌리며 지난날과 앞으로 있을 행사들을 훑어볼까?

NEWSONG & editor 소민수, 조현택, 박예언, 장원 design 장진아

부활절 특별히 명성교회 청년대학부는 4월 19일, 부활주일 전날 흰옷을 입고 새벽예배 성가대를 섰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맞이한 부활절! 고난주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묵상했던 성도들은 금식을 멈추고 달걀을 나누며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했다. ‘우릴 위해 죽으시고, 우릴 위해 다시 사신 예수님!’

세례입교예식 4월 20일, 명성교회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는 세례예식과 더불어, 입교예식이 진행되었다. 부모님의 신앙이 아닌, 자신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를 것을 다짐한 입교자들과 새사람으로 거듭난 세례자들은 많은 성도의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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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JESUS 명성교회 청년대학부의 축제가 5월 17일과 24일에 어김없이 찾아온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신나게 놀고 뜨겁게 찬양하는 SHINE JESUS! 예수님께서 선포하신“너는 빛이라.”는 그 말씀을 기억하며, 세상의‘빛’으로서 선한 영향을 끼치겠다고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어린이 주일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이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5월 4일은 어린이 주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예배 프로그램이 부서별로 진행된다.

성년식

샤인 나눔 마켓 작은 재능이지만 함께 나누며 즐기는 샤인 나눔 마켓이 5월 31일 예배 후 명성교회 앞마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시장에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수많은 음식과 옷, 중고도서, 핸드메이드 물품 등이 거래된다. 나눔 마켓의 수익금은 전액 사회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돌아간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나이‘20’ 성년식이 진행되면서, 20살이 된 청년들은 장로님이 주신 성년반지를 조심스레 끼워본다. 성년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희망찬 앞날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성도들은 스무살 성인으로서의 첫걸음을 축복해주었다.


캠퍼스 전도

PLT(Pre-Leadership Training) 명성교회 대학부의 리더가 되기 위한 훈련, PLT가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라는 주제로 진행되고 있다. 매주 말씀구절을 외우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자 옹기종기 모여앉아 토의하는 수료생들의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명성교회 청년대학부원들이 가진 전도의 열정은 캠퍼스에서도 계속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더운 날씨에도 한 사람 구원을 위한 이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기를 기대한다.

캠퍼스 심방 ‘캠퍼스에도 복음을!’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향기는 캠퍼스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각자 학업의 자리에서도 캠퍼스와 학우들을 위해 기도하며 목사님과 함께 예배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캠퍼스 심방은 매주 학교 또는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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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ionary Work Report 에티오피아 무의촌(無醫村)에 다녀오다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선교지에 와라. 와서 보라. 하나님께서 황량한 당신 속에서 어떤 아름다운 것을 끄집어내시는지 보라. editor 박예언 design 송수진

우리나라 의사 1명 당 환자 비율이 1:300인 것에 비해, 에티오피아는 1:33500이다. 물론 이 값은 평균치이기에 지역차를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정부는 각 지자체별 1:50000을 목표삼고 있다. 홀레타 지역에 두 번째로 MCM(명성교회 의료센터) 정기 모바일 클리닉을 다녀왔다. 모바일 클리닉은 병원이 없는 무의촌에 단기간 머물면서 무료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2월, 2박 3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하루 약 1400명, 이틀간 총 2800여명의 환자가 찾아왔었다. 하루 수용인원의 2배가 되는 수였기에 철문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반 이상을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그때 철문 앞에서 우는 할머니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었는데.. 이번 모바일 클리닉은 고아, 한부모 가정 아이, 그리고 출산을 막 앞둔 임산부로 대상을 한정하여서 지난번과 같은 사태는 없었다. 아이들은 얼굴에 어두운 그늘 하나 없이 해맑기만 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공부한 현지어(암하릭어)로 어눌하게 말을 걸었더니 함박웃음으로 기쁘게 반겨주었다. 아! 아이들 마음에 천국이 있었다. 최태규(28)


에티오피아 최태규(28)

정수영(26)

이상일(25)

중심사역 영상 사역 기도제목 피곤에 지지 않도록 모든 관계 오직 은혜로, 더 섬길 수 있는 지혜얻길

중심사역 간호사로 병원 사역 기도제목 하나님 더욱 사랑, 부모님 구원, 은혜로 일 감당하길

중심사역 우물선교 기도제목 한달간 혼자서 우물선교 하는 것 지혜로 감당하길, 늘 순종하는 마음, 만남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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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천효기(25) 중심사역 BVschool 체육교사 고아원 생활 및 학습보조 주일 의료봉사 기도제목 고아원 아이들 비전을 위해 가정평안(할머니 건강)위해 말씀과 기도로 성장하도록

이소현(24) 중심사역 국제유치원 음악교사 Learning Class 피아노 교사, 주일의료봉사 보조 기도제목 의사소통에 문제없길 무슨 일이든 순종하며 열심히 섬기길

추노을(23) 중심사역 Learning Class 한국반, 교회학교, 영어 유치원 기도제목 건강한 영육 되길 국제 유치원에 많은 학생들 올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 더하여 주시길, 가정 구원, 할아버지 건강 회복

조홍연(28) 중심사역 교회 행정과 지역교회 관리 기도제목 여호수와 갈렙 같이 믿음의 사람 되도록, 아버지 건강 늘 지켜 주시길, 체력 강화 위해

조아라(23) 중심사역 사모님 보조, 고아원 행정 기도제목 더 많이 사랑 하도록, 믿음 기초 잘 쌓도록, 언어 공부 지혜 주시길, 가정 평안, 은혜의 한해 되길

필리핀 박태영(29) 중심사역 미정 기도제목 아프지 않고 잘 적응 하도록 시작된 학기 기도로 승리

김혜란(24) 중심사역 일본어 교사 기도제목 건강 회복, 목 깨끗이 낫길 직분 지혜롭게 잘 감당하고 아이들 주 안에서 자라나길

오원희(22) 중심사역 행정실 행정사역 기도제목 항상 온유하고, 더욱 사랑 새벽예배 승리

김경민(25) 중심사역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 (마한아) 교목실 기도제목 영육간 늘 강건하도록 사랑으로 섬기도록 영적으로 깨어있고 중보 많이 하도록

신민혜(22) 중심사역 마닐라 한국 아카데미 (마한아) 유치원 교사 기도제목 교사로서 책임 의무 잘 감당 개인 묵상시간 가지도록 생활 가운데 필요한 것 채워지도록

김한나(23) 중심사역 중학생 한국사 교사 기도제목 다친 다리 수술 없이 빨리 회복되도록, 예배 잘 지키고 기도 많이 하도록


illust 신다솔

EDITORS CAMPAIGN

동자동 쪽방촌


EDITORS

도시 부동산, 건축, 교육학, 사회심리학, 미디어 문예창작, 국어국문, 화훼 디자인, 산업디자인, 경영학, 회계학, 전자물리학, 영문학, 미술학부, 평생 교육학

“전문적이지 않은, 당신을 기다립니다.”

모임시간 매주 금요일 7시

배부처 사단법인 한국 잡지협회, 5호선 명일역, 5호선 굽은다리역, 카페(명일동, 인사동, 홍대, 대학로, 가로수길등)


젊은소리 0506월 #ISSUE 29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강동마 00006 발행인 김삼환, 청년대학부 김윤호, 편집인(편집장) 김덕유, 부편집장 배현진, editor 전아영, 하영준, 조경희, 최형국, 박노준, 박예언, 윤지현, 강경구, 문희주, 배형주, 송승찬, 소민수, 오창현, 조현택, 김정훈, 황민국, 김희진, 신주현, 장원 designer 전보민, 장진아, 신다솔, 송수진 facebook.com/mseditors 인쇄 문영사 02 2263 5087, 발행처 대한 예수교 장로회 명성교회 대학부 /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 330-5호, 02 440 9361-5 web www.mscolleg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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